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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9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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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Apr 2026 15:39: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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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copyrigh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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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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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9강) 목차와 영상</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15</link>
				<description>&lt;p&gt;&lt;strong&gt;[ 바른 종교개혁 시리즈 ]&lt;/strong&gt;&lt;br /&gt; 2020년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하여, 어떤 신앙이 바른 신앙인지를 전체적으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구원론, 인간론, 종말론, 회개론을 중심으로 과연 오늘날 우리가 믿고있는 신앙의 내용이 얼마나 성경과 빗나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올바른 신앙의 개혁을 위한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2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XfylQa9MR-s?list=PLPn1GC5bxDjjHyrgKjIm4snm8XjfXY_c2&quot; width=&quot;1280&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1. 바른 종교개혁(01)이 시대의 참된 종교개혁의 방향은?(고후13:8~9)_2020-11-01(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XfylQa9MR-s&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XfylQa9MR-s&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2. 바른 종교개혁(02) 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요17:3)_2020-11-08(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anP803cUDIo&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anP803cUDIo&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3. 바른 종교개혁(0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계22:13)_2020-11-15(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0svTSBIJL1c&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0svTSBIJL1c&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4. 바른 종교개혁(04) 성령님은 누구시며 그분의 본질적인 사역은 무엇인가?(계5:6)_2020-11-22(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VrMJPgmGpU8&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VrMJPgmGpU8&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5. 바른 종교개혁(05) 사람이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히3:12~14)_2020-11-&lt;br /&gt; 29(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iiuPuimC5fM&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iiuPuimC5fM&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6. 바른 종교개혁(06)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자유의지는 의미가 없는가?(마12:20)_2020-12-06(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jE_ey0jnNy8&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jE_ey0jnNy8&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7. 바른 종교개혁(07) 잘못된 부활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이유(고전15:20~26)_2020-12-13(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FkHW3sl1tbc&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FkHW3sl1tbc&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8. 바른 종교개혁(08) 성도들의 휴거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바른 이해는 무엇인가?(마24:4~14)_2020-12-20(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oAO7eP6u93s&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oAO7eP6u93s&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9. 바른 종교개혁(09)[최종회] 회개에 담긴 놀라운 2가지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민14:17~20)_2020-12-27(주일)&lt;br /&gt; &lt;a href=&quot;https://youtu.be/dcL-yo4GntQ&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s://youtu.be/dcL-yo4GntQ&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0년 12월 28일(월)&lt;br /&gt; 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20201228_172234.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67012/415/067/25ebb4b64ece3bc20466868726b42943.jpg&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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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15#comment</comments>			<pubDate>Mon, 28 Dec 2020 17:31: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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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9) 회개에 담긴 놀라운 2가지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민14:17~20)_2020-12-27(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2</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ecf0f1;&quot;&gt;회개는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관문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회개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다윗은 죄용서를 받았지만 그 죄에 대한 결과를 오랜동안 치러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신약시대 이후 우리의 모든 막힘과 질병과 사건사고의 배후에는 꼭 귀신들이 있었다.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2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dcL-yo4GntQ&quot; width=&quot;1280&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리스도인들이란&amp;nbsp;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로 깔고서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회개를 동반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처음 믿을 때에, 회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에, 믿기는 믿게 되었지만&amp;nbsp;왜 믿어야했는지, 어떻게 믿을 때에&amp;nbsp;제대로 믿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amp;nbsp;예수님을 믿었지만&amp;nbsp;행복한 삶은 경험하지 못하고, 불신자처럼&amp;nbsp;질병에 시달리고, 가난에 허덕이며, 자녀들의 길이 열리지 않고, 삶에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하는 핵심내용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질병과 가난과 저주에 시달려왔는지 그&amp;nbsp;이유를 살펴보고&amp;nbsp;그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출애굽1세대들은 왜 가나안 땅에서 징계를 받고 죽어야 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늘날 그리스도들은 왜&amp;nbsp;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amp;nbsp;과거 광야로 나온&amp;nbsp;출애굽1세대들의 이야기가&amp;nbsp;그 해답을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그렇다. 때가 찼을 때에&amp;nbsp;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amp;nbsp;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광야로 탈출시켰다. 그리고는 얼마후 장차 그들이 들어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각지파에서&amp;nbsp;1명씩의 정탐꾼이 가나안땅에 파견되었고 그들은&amp;nbsp;40일동안 가나안을 정탐했다. 그리고 와서 보고를 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amp;quot;그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곳에 신장이 장대한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이 살고 있어서, 우리들은 메뚜기와 같아서 만약 우리가&amp;nbsp;들어갔다가는 전부 칼에 죽을 것&amp;quot;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여 통곡하였다. &amp;quot;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가서 가나안 땅에서 죽이려 하는가?&amp;quot;하면서, 한 지휘관을 세우고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amp;quot;내가 아무렴 너희들을 가나안 땅에서 죽이려고 끌고 나왔겠느냐&amp;quot;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전염병으로 쓸어버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모세가 즉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때 모세의 한 마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살릴 수가 있었다. &amp;quot;만약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이 백성을 죽이신다면, 주의 명성을 들엇던&amp;nbsp;이방인들이&amp;nbsp;저 하나님은&amp;nbsp;자기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이고 말았다&amp;quot;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민14:20).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다음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고&amp;nbsp;죄사함을 받았던 출애굽1세대들이 여호수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고 말았던 것인가?&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lt;strong&gt;죄용서와 죄의 결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은&amp;nbsp;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의 의미와&amp;nbsp;그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죄를 용서해주셨면 정말로 그는 용서받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가에 대한 벌은 받지 아니하는가? 아니다. 죄의 결과는 또다른 문제다. 다윗도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았지만 일평생에 걸쳐 벌을 받았야 했음을 기억해 보자. 고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다든지, 아니면 다른 이들을 괴롭혔다든지 하여 죄를 짓게 되면, 누군가는 그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받지 않는다면 내 후손중에서 누군가가 그 벌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죄는 용서받아도 그 형벌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amp;nbsp;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은 자는&amp;nbsp;반드시 죄의 형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모세를&amp;nbsp;통하여&amp;nbsp;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출34:6-7&amp;nbsp;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다. 하지만 벌은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아들들과 손자들과 그리고 삼사때기지 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나 우리후손이 조상들의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조상들이 지었던 죄의 결과를 우리와 우리후손이 받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회개에 관한&amp;nbsp;2가지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죄를 회개한다면&amp;nbsp;과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크게 2가지 일이 일어난다. &lt;strong&gt;하나는 우리가 지었던&amp;nbsp;죄들을&amp;nbsp;용서받는 것이다&lt;/strong&gt;. 이것은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어져서 없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두고 &amp;quot;죄용서받았다&amp;quot;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또 하나는 우리가 지은 죄가 깨끗히 씻겨진다는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우리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내면에 있는 죄들을 말씀히 씻어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죄의 결과들이 제거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바로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요일1:9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죄[들]를 자백하면(시인하고 있으면), 그는 미쁘시고(신실하시고) 의로우사(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들]를 [단번에] 사하시며(용서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부터] [단번에]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사실 우리의 내면을 영안을 열어 들여다보았더니, 우리가 죄를 짓거나&amp;nbsp;우리의 조상들이 죄를 지었다면&amp;nbsp;귀신들이 우리의 몸 속으로&amp;nbsp;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게 되기 때문이며(요일3:8), 하나님께서 뱀에게 사람의 육체의 성분을 먹고 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창3:14).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늘의 행위책에&amp;nbsp;우리의 죄목이 기록될 뿐만 아니라 ,귀신이 우리 몸&amp;nbsp;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 몸 안에 들어와있는 세력들(귀신들 곧 뱀들)이 힘을 잃어버리고, 나갈 것을 명령하면 그것들이 떠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들이&amp;nbsp;우리 몸 속에 있을 때에 그들은 우리에게 온갖 재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신들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오게 되니, 그때부터 질병이 나타나게 되고, 가난하게 되고, 우리의 자녀들의 앞길의 막히게 되어, 우리가 온갖 저주가운데 머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회개하게 되면 이러한 역사가 중단되고 귀신들이 쫓겨나가게 된다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우리는 어떻게 할 때&amp;nbsp;바르게 회개하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가 회개하여 귀신들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어떤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 그것은 우리가 지은 자범죄들만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까지도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목사님의 딸은 18년동안이나 무기력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갑자기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자매의 과거를 영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이 자매님의 14대 조상이 어떤 소녀를 우물에 빠뜨려 죽이는 장면이 보였다. 우물의&amp;nbsp;물이 마르지 않도록&amp;nbsp;인신제사를 드렸다든지 아니라면 겁탈을 한 것이 탄로날까봐 우물에 빠뜨려 죽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소녀가&amp;nbsp;물에 빠져 허욱적대면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이 목사님의 딸은 물소리만 들어도&amp;nbsp;극혐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소녀가&amp;nbsp;우물에&amp;nbsp;빠져 죽어갈 때에 물소리를 들어가면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님 사모님은 그때부터 밥짓기 위해 씽크대 물도 제대로 한 번 틀어보지 못했고, 세탁기도 못 돌렸다는 것이다. 14대 조상이 지은 죄값을 이제 지금 목사님의 따님이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누군가 죄를 지었으면 그 벌을 누군가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조상 중에 남을 억울하게 모함했거나 죽였거나 혹은 고문했다면 그 죄의 결과는&amp;nbsp;후손인 누군가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amp;nbsp;우리 교회와&amp;nbsp;관련된 성도에게서 실제로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할 때 내가 지은 죄만을 회개하는 것으로 회개를 다 했다고 하면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벌을 반드시 물을 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출34: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그냥 두지)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죄악)을 자손(아들들과 손자들과) [그리고]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벌하리라)&lt;/span&gt;&lt;br /&gt; &amp;nbsp; &lt;strong&gt;둘째, 얼마만큼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고 회개해야 한다는&amp;nbsp;것이다&lt;/strong&gt;.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거나 소홀히 여겼던 회개에 관한 두번째 사실은&amp;nbsp;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제도를 보더라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amp;nbsp;속죄제물은 한 번만 사용가능한 것이었다. 하나의 제물을 계속해서 다시 사용할 수&amp;nbsp;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들어와서도 이 원칙은 동일하다.&amp;nbsp;지금은 과거&amp;nbsp;우리 주 예수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린 이후인지라, 다시 속제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은 죄의 숫자만큼&amp;nbsp;본인의 입술로 자백해야 그 죄를&amp;nbsp;용서받을 수&amp;nbsp;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회개했으면 자신은 모든 죄가&amp;nbsp;다 용서된 줄로 안다. 아니다. 한 번 회개했으면 그 죄만 용서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긴 시간이 필요한&amp;nbsp;것이다.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가 죄를 지은 숫자만큼 채워서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했던 것이다. &amp;quot;국민북스&amp;quot;라는 출판사를 통해 &amp;quot;회개&amp;quot;라는 책을 출판한&amp;nbsp;김석곤목사는 회개의 분량이 어느정도 되어야 하는지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자범죄를 회개하는데에도&amp;nbsp;하루에 2시간씩 회개한다면 적어도 3~4년이 소요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나 회개를 쉽게 얕보았던 것이다. 아니다. 회개는 내가 죄를 지은 분량만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회개할 죄가 나와 나의&amp;nbsp;윗대의 모든 조상들까지 있으니, 윗대조상이의 우상숭배의 죄까지 회개하려 한다면, 실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lt;/strong&gt;. 우리가 회개할 때에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회개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처음 믿을 때에 돌이킴으로 회개하는 것으로 회개는&amp;nbsp;시작되지만, 과거의 모든 죄들은&amp;nbsp;우리의 입술로 자백할 때에&amp;nbsp;비로소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설령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할지라도,&amp;nbsp;우리는 내&amp;nbsp;입술로 시인하여 죄를 회개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amp;nbsp;지난 날에 지었던 범죄의 결과들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었던 죄를&amp;nbsp;철저히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야&amp;nbsp;귀신들이 우리 몸 속에서 제거게 된다. 그래야&amp;nbsp;죄의 결과로부터도 우리도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실 조상 때부터 지은 죄들로 인해 우리 몸 안에&amp;nbsp;들어온 귀신들은 하늘에서 떨어질 때부터&amp;nbsp;저주를 받았기에, 세력이 작은 놈들은 뱀들이 되었고, 큰 놈들은 용이 되었다. 이때 우리 몸 속에 들어오는 귀신들은 대부분은 작은 놈들이다. 이것들은 보통 실뱀의 형태로 우리 몸 안에 들어오는데, 이 실뱀들도 자기네끼리 엉겨붙어 뭉치게 되면 좀 더 큰 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은 낱낱의 죄를 전부 다 자백하지 않는다면, 그놈들은&amp;nbsp;다른 놈들 때문에 계속&amp;nbsp;붙어있으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낱낱의 모든 죄를 다 토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간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amp;nbsp;그렇게 낱낱이 자백하면서 회개했는데도 나가지 않는 뱀들이 있다면, 그때에는 금식해야 한다. 우리가 금식하면서 회개하면, 우리 몸에 단단히 부착하고 있던 이놈들은&amp;nbsp;우리 몸에서 헐렁헐렁해진다. 그때 쫓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amp;nbsp; 불구하고 혹 떨어져나가지 않는 놈들이 있다면 우리는 세번째 방법을 써야 한다. 그것은 속죄예물을 바치는 것이다. 나와 내 부모 중에&amp;nbsp;예수님을 믿기 전에 절이나 무당에게 많은 물질을 바쳤던 분들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들&amp;nbsp;중에는&amp;nbsp;그 신들에게 바친&amp;nbsp;것보다 하나님께 바치는 데에&amp;nbsp;너무나 인색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속에 들어온 귀신들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우대받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속죄예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회개하면 즉시 귀신이 떠나간다. 시16:4에서도,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amp;nbsp;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에는 그들에게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나병환자의 조상 중에는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분명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amp;nbsp;물질로 다른 신들을 섬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마8:3~4). 또한 귀신이 잘 나가지 않고 문제가 있을 때에는 혹시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았거나 훔쳤거나 빌렸지만 값지 않은 것이 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때에는 율법규정은&amp;nbsp;본물에다다가&amp;nbsp;1/5을 추가하여 변상하라는 속건제사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레6:5). 오늘날에는 그림자법은 율법규정대로&amp;nbsp;할 수는 없겠지만, 성의를 보여서&amp;nbsp;되갚아주면서 회개한다면, 귀신이 떠나가고 불치병도 낫게 되는 것이다. 혹 당사자를 찾지 못하겠으면 친척을 찾아서 그에게 주면 되고, 친척도 못찾겠으면 그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레6:5).&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회개할 때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마지막으로 우리가 회개할 때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 몇 가지가&amp;nbsp;있다면 &lt;strong&gt;첫째로, 회개할 때에 귀신들이 발악으로 인하여 약간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amp;nbsp;우리를 두려워하여 겁먹어서&amp;nbsp;순간에 저지르는 일이니 우리가 되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amp;quot;십자가 세우기&amp;quot;를 하여 그놈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lt;strong&gt;둘째로, 회개를 시작했는데도 내게 별 진전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서 회개하라&lt;/strong&gt;는 것이다. 지금 회개의 분량이 차고 있는 중인데, 그것을 모른채&amp;nbsp;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조금만 더 회개하면,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지만 어떤 빈 병에 물ㅇ르 채우면 그것이 차고 넘칠 때가 오듯이 꼭 넘칠 때가 오기 때문이다. &lt;strong&gt;셋째로, 혼자 회개하기보다는 함께 부부나 가족이 함께 회개하면 훨씬 더 회개를 잘 할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목회자가 회개기간을 선포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순종하여&amp;nbsp;회개할 필요가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렇듯 회개할 때에는 내가 죄은 죄만을 회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할 때에는 한 두번 하고 회개를 끝낼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분량만큼 많이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할 때에는 마음 속으로나 눈으로만 회개하지 말고, 반드시 소리를 내어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법적인 증거로서의 효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믿고 나서 회개할 때에는 전부다 자백함으로 회개하는 것이지 한 번 회개한 것으로 다 회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회개했는데도 별 차도가&amp;nbsp;없을 때에는 금식하며 회개하길 바란다. 그리고 재물을 다른 신에게 많이 바친 자는 속죄예물을 주님께 바치면서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약시대에는 속건제물을 주님께 드렸듯이 변상의 차원에서 회개해야 하는&amp;nbsp;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회개를 실천하게 되었을 때에는 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lt;/strong&gt; 그때에는 내 속에 들어와 있던 귀신들이 점차 힘을 잃고 떠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막혀 있었던던 길이 쫙 열려지게 된다. 그렇게 낫지 않던&amp;nbsp;질병이 낫게 된다. 자녀가 잘 된다. 새어나가던 물질도&amp;nbsp;다시 들어와 쌓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았을&amp;nbsp;때에는 엄청난 축복인데, 그때부터는 다니엘의 경우처럼 영안이 열려져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고 환상도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님께&amp;nbsp;왔다갔다하는 하늘길이 뚫어짐으로&amp;nbsp;기도응답도 아주 잘 된다. 그렇다. 회개를 제대로 잘 하기만 하면, 건강의 축복과 물질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받고 천국으로&amp;nbsp;입성하게 된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진짜로 회개다운 회개를 하여서 회개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살기를 바란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2월 27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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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2#comment</comments>			<pubDate>Sun, 27 Dec 2020 18:20:17 +0900</pubDate>
		</item><item>
			<title>바른 종교개혁(08) 성도들의 휴거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바른 이해는 무엇인가?(마24:4~14)_2020-12-20(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4</link>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AO7eP6u93s&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종말에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고 우주적인 종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부활하는가? 지난 주일에 우리는 개인의 부활시기에 관한&amp;nbsp;말씀을 나눴다. 사람은 죽은 다음에 무덤에 가서 잠을 잔다거나 낙원에 가서 쉬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amp;nbsp;말씀을 드렸다. 그것은 예수께서 구약의 절기상 초실절의 열매 곧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며, 그때 이후부터 계속해서 추수가 이어지다가(개인적인 부활이 있다가), 맥추절(칠칠절)에 가서는 한꺼번에 추수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amp;quot;우주적인 부활&amp;quot;이라고 한다고&amp;nbsp;배웠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처리한다고 한다면&amp;nbsp;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제 오늘은 이러한 개인적인 부활이 아니라 우주적인 부활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주께서 재림하시는 때는 과연&amp;nbsp;언제이며 그때가 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amp;nbsp;성도들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같은 사건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사건인지, 그리고 이것은 은밀하게 있는지&amp;nbsp;아니면 공개적으로 있는 것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과연&amp;nbsp;환난전에 오시는지&amp;nbsp;아니면 환난후에 오시는지도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지어 등장하는 여러가지 소주제들도 함께 다뤄보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도들의 휴거는 과연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은 단회적인 반복적인가? 그리고 그것은 은밀하게 일어나는가 공개적으로 일어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도들의 휴거란 있는가? 있다면 언제 있는가?&amp;nbsp;사실 성도들의 휴거시에 관해, 환난전에 있다는 분들도 있고 환난후에 있다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그 답을 들려준다. 그것은&amp;nbsp;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그것은&amp;nbsp;매우 분명하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은 마24:4~14의 말씀과 마24:30~31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다 답이 나온다. 그래서 오늘은 헬라어성경에서 그 본문들을 직역하여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 금방 수많은 종말론의 문제들을 풀 수가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24:4~14 [헬라어직역]&lt;/strong&gt; (4) 그리고 예수께서 대답하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amp;ldquo;누가 너희를 미혹하지 않도록 계속 주의하고 있어라. (5)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장차 내 이름으로 인하여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고 있기를, &amp;lsquo;나는 그리스도요&amp;rsquo;. 그리하여 그들이 장차 많은 이들을 미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너희는 장차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들을 계속해서 듣는 것을 하려고(들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계속해서] 불안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의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다. (7) 왜냐하면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장차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장차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소를 따라서(곳곳에) 기근들과 지진들이 장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8)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해산의 고통이 시작이다. (9) 그때에 그들(사람들)이 너희를 장차 환난 속으로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를 장차 살해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 의하여 미움을 받고 있으면서 장차 있을 것이다. (10) 그리고 그때에 많은 이들이 장차 실족하게 될(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장차 그들은 서로들을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들을 미워할 것이다. (11) 그리고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장차 일어나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많은 거짓선지자들)은 많은 이들을 장차 미혹할 것이다. (12) 그리고 무법한 일(불법, 악행)이 증가되어지는 것 때문에 많은 이들의 사랑이 장차 차가워질(식어질) 것이다. (13) 그런데 끝까지 견뎠던(기다렸던) 자, 그이는 장차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14)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이 왕국의 복음이 온 거주지(사람이 사는 곳)에 장차 전파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끝이 장차 올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24:29~31[헬라어직역]&lt;/strong&gt; (29) 그런데 저 날들의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장차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달이 장차 빛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별들이 장차 하늘로부터(아포)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늘들의 능력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30) 그리고 그때에 사람의 아들(인자)의 표적이 하늘 안에서 장차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기를 위하여 장차 가슴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의 아들(인자)이 하늘의 구름들 위에서 많은 영광과 능력과 함께 오고 있는 것을 장차 볼 것이다. (31) 그리고 그분(인자)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자신의 천사들을 장차 파송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천사들)은 그분의 선택받은 이들을 하늘들의 끝부분들로부터(아포) 하늘들의 끝부분들까지 네 바람(사방)으로부터 장차 함께 모을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 주님께서는&amp;nbsp;환난 후에 오신다고 했다(마24:29). 그리고 성도들의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일어나는 동시적인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마24:31).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나 성도들의 휴거는&amp;nbsp;단회적이며 공개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땅의 모든 족속들이 인자가 재림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마24:30~31). 그리고 주님의 재림 때에 일어나게 될 &amp;quot;우주적인 부활&amp;quot;은 곧 &amp;quot;휴거&amp;quot;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주님께서 공중으로 먼저 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가 되면 성도들은 구름속으로 끌어올려져서 주님을 영접하러 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죽은 자들과 그때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한꺼번에 순차적으로 부활을 입어&amp;nbsp;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게 될&amp;nbsp;것이다(살전4: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있을 우주적인 부활을 가리켜 흔히들&amp;nbsp;&amp;quot;휴거&amp;quot;라고 따른 용어로 부르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예수재림 전에 7년대환란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순절 교단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amp;nbsp;2가지 양상으로 본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중으로 오셔서 은밀하게 알곡성도들을 휴거시킬 방면이 있고, 이어서&amp;nbsp;공중에서 혼인잔치가 7년간 베풀어지고 땅에서는&amp;nbsp;적그리스도에 의하여 대대적인 핍박이 자행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에는 대환난이 분명 있다고 나오기는 하지만, 7년대환난이나 7년공중혼인잔치라는 말인 직역이든 의역이든&amp;nbsp;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니엘의 70이레에서 한 이레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환난과 대환난에 대해 언급할 때에 분명이 언급하셨지만, 그때를 7년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전혀 없으며, 또한 대환난의 날도 선택받은 자들을 위하여 단축시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바 있기&amp;nbsp;때문이다(마24:21~22).&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마24:21-22 왜냐하면 그때에 큰 환난이 장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작으로부터(아포)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고, 결코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22 그리고 만일 저 날들이 단축되지 않았다면 모든 육체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 날들은 선택받은 이들 때문에 장차 단축될 것이다. &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예수께서는 먼저,&amp;nbsp;누구나 다 자연적인 재난을 다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때 성도들도 함께&amp;nbsp;핍박을 받고&amp;nbsp;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러한 환난은 반복적이며 점층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리고 주님께서는 마지막의 시기가 이르게 되면, &amp;quot;대환난&amp;quot;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날&amp;nbsp;것이라고 했다. 이 대환난을 두고서, 요한계시록에서&amp;nbsp;요한사도는 &amp;quot;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quot;라고 언급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다니엘서에서&amp;nbsp;가져온 말인데, 3년반(42달, 1260일)을 일컫는 또다른 표현이다. 이런&amp;nbsp;마지막 때의 짐승이 출현하여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라고 했다(계13장). 그러나 42달의&amp;nbsp;기간은 환난의 기간만을 가리키는 것이&amp;nbsp;아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의하면, 그 기간은 성도들이 광야로 피신하여 양육받는 기간이라고도 했기 때문이다(계12:14). 그리고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나가서 활동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11:3). 여기서 &amp;quot;두 증인&amp;#39;이라는 모세와 엘리야같은 사람들로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표자들로서, 십계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치고, 회개를 촉구하는 주의 종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3년반의 기간은 짐승에 의해 핍박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이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두 증인들과&amp;nbsp;같은 마지막 시대의 사명자들에 의해 천국복음이 선포되는 기간이&amp;nbsp;되기도 하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계13:5 또 [첫째]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amp;nbsp;&lt;br /&gt; 계12:14 그 여자(사내아이를 낳은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amp;nbsp;&lt;br /&gt; 계11:3 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다니엘의 한 이레는 그리스도의 초림예언인가 재림예언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이 말한 바 &amp;quot;70이레&amp;quot;의 예언은 과연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인가 아니면 재림에 관한 예언인가? 그 답은 단9:24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단9:24,26 네(이스라엘) 백성과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위하여 일흔(70) 이레(7)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6 예순 두 이레(62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한 예언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6가지 예언의&amp;nbsp;성취로 완성되는데 그것은 기름부음받은 자의 출현과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의 파괴로 끝이 난다. 고로 이 예언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이후에 있을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에 불과한&amp;nbsp;것이다.&amp;nbsp;그러나 이 예언은 천주교의 리베라 신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어서,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한 주간(한 이레=7년)에 해석으로 비화되었다. 그래서 그 기간(7년)을 따로 떼어&amp;nbsp;먼 미래에 있을 일로 곧&amp;nbsp;적그리스도가 나타나&amp;nbsp;이스라엘과 7년간의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라고&amp;nbsp;곡해시켜버렸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 예언임에도 불구하고, 재림예언의 둔갑하게 되어 퍼져나가고 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러한 해석은&amp;nbsp;자의적인 해석이요 성경을 문맥을 무시한 불행한 해석인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마지막 시기가 되면 적그리스도에 의한 단일정부가 탄생할 것이며, 예루살렘에 제3의 성전도 세워질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늘도 단일세계정부 음모론자들은 정말로 마지막 시기가 되면 로마의 뒤를 잇는 유럽연합의 국가에서 적그리스도(짐승)가 등장하게 될 것이고, 그 짐승에 의해 세계가&amp;nbsp;하나로 통합될 것이며, 짐승에 의해&amp;nbsp;통제되는 사회 곧&amp;nbsp;단일세계정부가 세워질&amp;nbsp;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사실 다니엘서 2장과 7장만&amp;nbsp;읽어보더라도 우리는 마지막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amp;quot;열 발가락시대&amp;quot;와 &amp;quot;열 뿔시대&amp;quot;라고 나온다. 여기서 열발가락 혹은&amp;nbsp;열 뿔은 다 로마제국이 망하고 거기에서 분열된 나라들을 지칭한다. 특히 다니엘 2장에 보면, 하늘에서 뜨인 돌이 날아와 열발가락을 쳐서 부순다. 그러니 금과 은과 놋과 철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신상이 깨드려져서&amp;nbsp;태산을 이룬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에 보면, 마지막 네번째 짐승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히 나온다. 그런데 이때도 역시 짐승과 열뿔이 등장하고 있다. 즉 세계의 영적 세계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짐승과 국가를 통치할 열 나라들(상징적으로 많고 충분한 나라들)이 계속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amp;nbsp;배후에는 용과 거짓선지자(둘째짐승)도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 셋이 결국 한데 모여 아마겟돈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계16:16). 고로 마지막 시기가 되더라도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세계 모든 정부가 통제받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 어떤 흉내내는 일이&amp;nbsp;나타날른는지&amp;nbsp;모르겠으나&amp;nbsp;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시기에&amp;nbsp;[먼저]짐승(적그리스도)이&amp;nbsp;이스라엘과 평화협성을 맺을 때에는 제3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것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허상에&amp;nbsp;불과하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전제사와 제물은 실체이신 예수님에 대한&amp;nbsp;모형이었고,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2천년전 골고다언덕에서 마지막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려 속죄를 완성했기에, 우리는 더이상 모형과 그림자와같은 양이나 소의 제물이 바쳐질 필요가 없어졌다(히9:11~12). 그래서 초대교회 스데반집사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다(행7:48). 성령이 오신 다음부터는 교회가 구약의 성전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3의 성전이 세워진다고 아무리 외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에 가서 의미없는 메아리로 끝날 확률이 크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베리칩이 과연 마지막 시대의 짐승의 표 곧 666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게 될 &amp;quot;짐승&amp;quot;과 더불어,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amp;nbsp;있다. 과연 마지막&amp;nbsp;시대에 베리칩은 짐승의 표라고 불릴 수 있는가?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렇다고 믿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이것도 허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베리칩이 666이 되려면, 베리칩은 짐승의 표이므로, 짐승이 누군지가 먼저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짐승의&amp;nbsp;이름이 있고 그 이름의 숫자값이 666이라고 했으니,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되려면 짐승이 누구며, 그러한 짐승의 이름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짐승이&amp;nbsp;아직 출현하지 않았다는데도, 베리칩이 666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은행의 수표를 가져가서는 시중은행에서&amp;nbsp;현찰로 바꿔달라고 억지로 시도하는 것이나 똑같다. 그러면 창구직원에서 곧 은행이 설립될 것이니 돈이나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 같다. 앞뒤가 틀린 것이다.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이름값이 666인 짐승이 나온 적이 없다. 결국 짐승의 표는 짐승을 경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표식으로서, 우상숭배자들이 사탄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식이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7. 천년왕국은 과연 지상에 문자적으로 펼쳐질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전천년설주의자들은 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amp;nbsp;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인가? 이것도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전에 있는 아마겟돈 전쟁이 있고, 천년왕국 후에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는데, 이 두 가지의 전쟁은 하나의 전쟁에 대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분들은 말세가 되면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해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터질&amp;nbsp;것인데, 이 전쟁 때에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지지만, 용은 무저갱에 약 천년간 갇히게 되며, 이후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는 잠깐 사탄이 풀려나 지상에서 살던 사람들 곧 곡과 마곡을 모아 전쟁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 헬라어원문을 읽어보면,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하나의 전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곡과 마곡의 전쟁 후에 사탄마귀도&amp;nbsp;불못에 던져진다고 하기 때문이다.&amp;nbsp;헬라어원문을 보면, 이 때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사탄과 함께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기록되어&amp;nbsp;있기 때문이다(계20:10). 계16:16에 보면,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하나가 되어 일으키는 전쟁이 아마겟돈전쟁이며, 이 셋이 한꺼번에 불못에 던져지는 전쟁이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 고로 우리는 이 두 전쟁이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문자적으로 이 지상에 펼쳐지지 않음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천국에 먼저 들어간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년왕국의 끝무렵에 하나님께서 사탄마귀에게 무저갱으로부터&amp;nbsp;잠시 내어놓는데, 이것이 바로 3년반의 대환난의 끄트머리에 있을 일인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성도들의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수많은 미혹들이 있어온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여기서 그렇다면, 왜 성도들의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수많은 미혹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그것은 주님께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신&amp;nbsp;것을 알아야 한다(마24:4~14).&amp;nbsp;그것은 이미 선택받아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이라도 사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이유라는 것을&amp;nbsp;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더욱 더&amp;nbsp;큰 문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성경을 원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말장이라고 일컫는 마24장이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보지 않으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말을 듣고는 없는 것까지도&amp;nbsp;만들어내며&amp;nbsp;또한 문맥을 무시한 해석까지&amp;nbsp;내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amp;nbsp;셋째, 잘못된 여러가지의 종말론의 교리들을&amp;nbsp;마치 성경의&amp;nbsp;진리인량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교리에&amp;nbsp;맞는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서 끼워맞츰으로&amp;nbsp;잘못된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 나도 거짓선지자가 되어 선택받은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세에는&amp;nbsp;미혹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해석을 잘못하는 주의 종들이다. 특히 종말론에 관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자에 의해&amp;nbsp;귀한&amp;nbsp;영혼이&amp;nbsp;망가뜨릴 수도&amp;nbsp;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성도들의 바른 종말신앙이란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성도들의 올바른 종말신앙은 어떠해야&amp;nbsp;하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3가지를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 &lt;strong&gt;첫째, 미혹을 주의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lt;/strong&gt;이다. 성도들은 개인적인 종말에서부터 우주적인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비성경적인 교리나 주장들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헬라어원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lt;strong&gt;둘째, 환난에 대비하는데&amp;nbsp;혹 우리가 환난성도가 된다면 어떠한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말고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것&lt;/strong&gt;이다. 환난전휴거 맹신이&amp;nbsp;무서운 것은 환난이 없다고 믿다가 그만 환난에 닥치게 될 때 그들에게 나타날&amp;nbsp;반응이다. 그들은 환난을 이겨낼 힘을 비축해두지 않은 탓에, 그 현장에 막상 부딪히게 되면 대부분은 핍박과 죽음이&amp;nbsp;두려워 주님을 부인해버릴 것이다. 고로 주님의 재림은 환난후에 있고 성도들도 환난후에 휴거된다는 것을 알고 잘 대비하고 있으면 죽음이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즉시 우리는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입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천국가게 할려면 회개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천국이라는&amp;nbsp;것을 일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0.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믿음이란 주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바로 세우고 그때를 날마다 잘 준비하는 것이다. 혹 우리 시대에 그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그때를 잘 준비했다가 주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잘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너끈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들어가서도 면류관을 쓰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집에&amp;nbsp;수많은 보화들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환난과 핍박을 이겨낸 만큼 그리고 주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한 만큼 많은 보석들과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2월 20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01220_172124.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67012/394/067/fb9e714e0a7a219c39888c78eb70bdb3.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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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4#comment</comments>			<pubDate>Sun, 20 Dec 2020 19:34:30 +0900</pubDate>
		</item><item>
			<title>바른 종교개혁(07) 잘못된 부활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고전15:20~26)_2020-12-13(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6</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잘못된 부활신앙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성도들을 나태하게 만들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며 슬퍼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른채, 죽으면 잠자는 상태에 있다가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심판받고 그때에 가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면, 어찌 지금 회개하고 지금 충성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바른 부활신앙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연 성도는 언제 부활하는가? 그리고 상급은 언제 받는가? 왜곡되어 있는 개인의 종말신앙관을 이제 성경의 진리로 살펴보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kHW3sl1tbc&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가 개혁해야&amp;nbsp;할 신앙 중에는 종말론이 그중에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교단의 교리가 종말론에 있어서 성경과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도들의 개인 종말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 성경과 어긋나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때인가? 어떤 교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중간상태에서 곧 잠자는 상태로 있다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서 쉬고 있다가&amp;nbsp;부활한다고까지 말한다. 과연 어떤 견해가 성경이 말하는&amp;nbsp;견해인가? 성도들의 개인적인&amp;nbsp;부활에 관하여 주님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말했던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과 많이 빗나가 있는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와 아울러&amp;nbsp;성도들의 부활과 사망권세가 무너진 것은&amp;nbsp;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올바른 개인적인 종말관을 찾아보고자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우리가 개인 종말론에 관하여&amp;nbsp;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늘날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말론이 잘못 되었을 때에 과연&amp;nbsp;어떤 결과들이 도출되는가? 적어도 3가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첫째,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기에&amp;nbsp;환난과 핍박을 받지 않고 훌쩍 휴거되는 것을&amp;nbsp;바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마24:29~30). 둘째, 죽음 앞에서 &amp;nbsp;슬퍼하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이&amp;nbsp;죽은 이후에 어떤 상태로 들어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태만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죽으면 곧바로 자신의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amp;nbsp;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면 올바른 종말신앙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종말론으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언급한 바로 바로 그 종말관이요 종말신앙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에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할 때에 신앙고백을 한다. 보통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가 요약되어 있다. 거기의&amp;nbsp;두번째 항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항목이다. 그리고 그것의 첫번째&amp;nbsp;항목은 그분의 성육신에 관한 항목이다.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서 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사람되심은 사실&amp;nbsp;그분이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한 흠없는 속죄제물로 죽으시기&amp;nbsp;위함이다. 두번째 항목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분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또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그 항목이다. 그리고 세번째와 네번째 항목은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항목이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죄가 사함받고 자기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amp;nbsp;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통해 나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답은 틀린 대답은 아니나, 분한 대답은 아니다. 왜냐화면 그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을 가르쳐주기 위함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핵심을 비켜나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그리스도께서는 왜 부활하셨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리스도께서는 왜 부활하셨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인류를 대신하는 죽음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분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인가? 이런 이유도 사실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체를 말하지 않은 진술이자&amp;nbsp;핵심을 놓치고 있는 진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amp;nbsp;부활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이 그 핵심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께서 무소불휘의 힘을 가진, 아담 안에서 왕노릇하고 있던,&amp;nbsp;사망의 권세를&amp;nbsp;처리하시어&amp;nbsp;쓸모없게 하셨다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자신의 구원에 필요한 요소일 뿐, 굳이 부활하지 않으셔도 별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amp;nbsp;죄의 문제를 처리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의 문제를 처리해주기&amp;nbsp;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아담이후 인류 위에&amp;nbsp;왕노릇하고 있는 사망이 무너지고 박살났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최초로 사람이셨던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사망 권세다. 모든 것의 끝은&amp;nbsp;사망으로 끝나고, 그러면 모든 사람은 다 사망권세 아래에 놓이기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신 예수께서 사망을 당한지 3일만에 약속대로 살아나셨다. 이는 사망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음부에서 걸어 나오셨다. 이것은 음부가 그분을 붙잡아두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음부에서 걸어나오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amp;nbsp;일을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다. 고로 그분이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분이 사망을 이기셨다는 것이고 그분이 사망권세를 무너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로 인해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최초의 열매&amp;nbsp;곧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예수님의 죽으심의 두번째 의미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 죽으신&amp;nbsp;것이 아니라, 사망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없이하기) 위함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히2:24). 그렇다. 그분은 죄가 있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혹은 사망을 이길&amp;nbsp;수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망을 쓸모없게 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amp;quot;멸하시기 위하여&amp;quot;라는 단어를 보면, 헬라어로 &amp;quot;카타르게오&amp;quot;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amp;quot;쓸모없게 하다. 무효화시키다.&amp;quot;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사탄마귀가 멸망당한 것은 아니었다. 사탄은 지금 현재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지구의 땅 속 음부에서 자신의 부하들인 귀신을 올려보내어 자신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 마귀가 가진 사망권세를 쓸모없게 만드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실&amp;nbsp;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amp;quot;카타르게오&amp;quot;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온다. 24절에 한 번, 26절에 한 번 더 나온다. 그런데 26절에 나오는 &amp;quot;카타르게오&amp;quot;는 잘못 번역되어 있다. 먼저 우리말 번역을 보자. &amp;quot;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6)&amp;quot; 이 말은 사망은 맨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아 있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가서야 비로소 멸망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말을 거부하는 번역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다. 그럼, 헬라어원문에서는 26절이 어떻게 쓰여있는가? &amp;quot;맨 나중의 원수로서 사망은 [현재] 쓸모없게 되고 있다.&amp;quot; 그렇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의 사망의 상태를 그대로 묘사해주고 있는데, 사망은 그때도 &amp;quot;쓸모없게 되고 있었다&amp;quot;. 왜 그런가?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무너뜨리고&amp;nbsp;3일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망권세는 이제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도&amp;nbsp;예수님 이후부터는 죽은 즉시 사망권세에서 놓임받게 된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도들은 과연 언제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amp;nbsp;아마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기들도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교단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부활하시는 시기는 죽은 즉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이후의 세대들 가운데,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부활체를 입고 곧바로 천국에 있는&amp;nbsp;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증거로서&amp;nbsp;확인할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성경상에 나타난 증거가 있다&lt;/strong&gt;.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amp;quot;지금&amp;quot;이라고 말씀하셨다(요5:25). 그렇다면, 이때 &amp;quot;죽은 자들&amp;quot;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진짜 죽어서 무덤 속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영이 죽어있는 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영이 죽어있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amp;nbsp;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amp;quot;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5:28)&amp;quot;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곧 예수께서&amp;nbsp;사람의 육체을 가리켜 &amp;quot;무덤&amp;quot;이라고 표현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영이 살게 되기 때문이다.&amp;nbsp;그러면 그러한 자는 자신의&amp;nbsp;육체가 죽은 다음에 곧바로 생명의 부활로 직행한다는 뜻이다. 즉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요5:29). 그리고 사도바울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써보낸 전편의 편지에서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고 알려주었다(살전3:13). 왜냐하면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있기에 주께서 그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기 때문이다(계19:14).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부활의 순서를 언급하고 있는데,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며, 두번째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다(고전154:23). 주께서 그날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던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lt;strong&gt; 둘째, 구약시대에 절기상의 증거가 있다.&lt;/strong&gt; 그것은 레위기 23장에 들어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시작하여,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맥추절,오순절), 나팔절, 초막절(장막절,수장절), 속죄일 등의 총 7가지 절기를 지킨다. 그중에 세번째 절기가&amp;nbsp;&amp;quot;초실절&amp;quot;이다. 이 초실절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amp;nbsp;날을 가리킨다. 그리고 초실절에는 맨 처음 익은 곡식 이삭 한 단을 요제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레23:10~11). 이는 보리 중에 제일 처음으로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드리는 것은 보리 이삭의 한 단이다. 그리고 나서 보리추수를 계속한다. 그 기간이 50일 정도 된다. 그리고 50일째 되는 날은 한꺼번에 추수를 한다. 이것이 바로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이다. 그러니까 칠칠절은 한 마디로 보리추수를 끝내는 날이다. 그렇다면, 왜 초실절에 한 묶음으로 이삭 한 단을 드리라고 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의 시작이&amp;nbsp;되셨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어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까지 죽어서 낙원에 들어가 있던 구약의 성도들도&amp;nbsp;이 날에 예수님을 따라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을 만지려하자 말리면서&amp;nbsp;&amp;quot;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amp;nbsp;아니하였노라(요20:17)&amp;quot;고 하셨던 것이다.&amp;nbsp;아직 요제로 자신이 드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신&amp;nbsp;것이다. 그날 주께서는 구약의 성도들과 함께 요제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여 지금도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외 오면, 한꺼번에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이날&amp;nbsp;우주적인 영혼의 추수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절기가 보여주는 예수님의 첫 열매되심은 예수께서 그날에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고 이어서 계속해서 성도들의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일러준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이미 천국에 들어간 자들의 실제의 증거가 있다&lt;/strong&gt;. 지금 성도들은 죽으면 구약의 성도들처럼 영혼의 상태로 낙원에&amp;nbsp;가는 것이 아니다. 곧바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있는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amp;nbsp;이미 천국에 성도가&amp;nbsp;들어가 있다는 것을 무려 12번 이상을 언급하고 있다. 최초의 언급은 요한계시록 6:9~11에 나온다. 이들은 천국에 있는 제단(분향단제단)에서&amp;nbsp;자신의 피를 신원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이들은 아마도 순교자들일 것이다. 이미 순교자들이 천국에 있어서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가서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는 지금 거기에&amp;nbsp;들어가서 살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 이러한 실제적인 증거는&amp;nbsp;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천국과 지옥을 갔다왔다고 하는 간증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국에 가보면, 이미 면류관을&amp;nbsp; 쓰고 있는 성도들도 있고,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상급심판까지 다 받고 천국에서 그 영광을 누리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중간상태로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상급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미 천국에서 그 상급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죽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된 부활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은 후에 다들&amp;nbsp;잠자고 있는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amp;quot;잠잔다&amp;quot;는 뜻은 신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죽은 이가 계속해서&amp;nbsp;사망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도가 죽으면, 그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날까지&amp;nbsp;사망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도가 죽으면&amp;nbsp;잠자고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살아나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고&amp;nbsp;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 이미 사망권세를 이기고 쓸모없게 하셨기에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러한 제대로 된 부활신앙 곧 개인적 종말신앙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lt;strong&gt;첫째, 성도들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amp;nbsp;위해서다(계2:8~10).&lt;/strong&gt;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성도들이&amp;nbsp;죽게 되었을 때에&amp;nbsp;자신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죽음 앞에서&amp;nbsp;담대해질 것이다. 특히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상황에서,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죽음 앞에 의연히 맞설 수 있을&amp;nbsp;것이다. &lt;strong&gt;둘째, 죽음을 슬퍼하지&amp;nbsp;않기 위해서다(살전4:13)&lt;/strong&gt;. 죽음은 껍데기인 육신을 벗는 작업일 뿐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사망권세가&amp;nbsp;더 이상 우리를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하기에 죽음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가 죽었는데 그것을 두고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은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amp;nbsp;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장례예배 그리고 추도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뻐할 일을 왜 슬퍼해야 하는가? &lt;strong&gt;셋째, 회개나 충성을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충성하기 위해서다(고전15:57~58).&lt;/strong&gt;&amp;nbsp;지금 죽으면 곧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기 때문에 지금 회개하는&amp;nbsp;것이다. 지금 죽으면 바로 하늘에서 상급을 받기 때문에 좋은 상급을 얻기 위해 지금 충성하는&amp;nbsp;것이다. 주님 앞에 충성하고 수고한 만큼 우리가 상급을 받는데, 어찌 시간을 지체할 수 있겠는가? 어찌 뒤로 미루겠는가?&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부활하셨는데 어찌 교회인 몸이 따라서 부활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리스도만 2천년전에 부활하고 모든 성도들은 다 사망 권세 아래서 2천년동안 잠자는 상태로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은 지금도 하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처럼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의 생명을 얻어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머리로서 첫 열매가 드려졌으니 그 다음에 죽은 성도들도 차근차근 익은대로 곧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시온산에 14만 4천명이 서 있는데, 그들은 &amp;quot;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amp;quot;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6에 보면, 그들은 &amp;quot;첫째 부활에 참여하는&amp;nbsp;자들&amp;quot;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첫 열매로 드려지신 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죽은 성도들은 지금도 개인별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고전15:23). 이들을 가리켜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우주적인 추수가 일어난다(고전15:24). 그때는 성도 전체가 부활할 것이다. 이것을 &amp;quot;둘째 부활&amp;quot;이라고 한다. 고로 성도들은 개인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우주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둘째부활에 참여할&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죽는다고 죽음을 무서워할 것도 아니며, 다른 이가 죽었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생명이 붙어있는 한 회개를 더 많이 하고 충성하여 장차 들어갈 나라에서 상얻는 자로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0년 12월 13일(주일)&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01213_154023.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67012/396/067/af21831c1d2f95343241d4161dd1652a.jpg&quot; /&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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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396#comment</comments>			<pubDate>Sun, 13 Dec 2020 16:41: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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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6)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자유의지는 의미가 없는가?(마12:20)_2020-11-06(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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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대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가?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해주셔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담당할 어떤 영역이 있기는 하는 것인가?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 것을 두고서 행위구원론을 펼치는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오늘은 구원론에 관한 성경적 견해가 대체 무엇이며, 거기에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사도바울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미경을 쓰고 들여다보도록 하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E_ey0jnNy8&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구원론에 관한 메시지를 나눌 터인데, 그중에서 인간론과 관련지어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참된 구원론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amp;nbsp;구원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이면서 회심하고&amp;nbsp;자백하는&amp;nbsp;회개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 자체가&amp;nbsp;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첫째는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준비된 후에&amp;nbsp;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베풀어질 때다(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상태다). 그리고 둘째로, 누구든지 이 복된 메시지를 들었을 때에 이때까지 자신이&amp;nbsp;사망의 길로 가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 길로부터 돌이킨 후에 자신이 지었던 지난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이에 따르는 인간의 책임이 과연 어느 선까지인지가를&amp;nbsp;살펴보려고&amp;nbsp;한다.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조명하심이 함께 하기를 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경적인 구원론을 저해하는 &amp;quot;산데만주의&amp;quot;란 무엇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 개신교회에 어느새부턴가 산데만주의가 치고 들어와 터줏대감의 자리를 차지한 지도 벌써 300년이 넘었다. 산데만주의는 1,720년 스코틀랜드의 &amp;#39;존 글래스&amp;#39;에 의해 시작된 구원론으로서 절대신앙주의를 가리킨다. 이것은 롬10:9~10에 기록된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선포에 누구나 지적으로 동의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단사설이다. 그런데도 산데만주의자들은 오직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죄를 탐닉하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외면한 채 책망의 음성에&amp;nbsp;귀를 기울이지 아니한다. 다만, 그들은 과거에 믿었던 단 번에 가진 믿음 때문에 자신은 구원받은 것이고, 그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해설교의 대가였던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는 이것이야말로&amp;nbsp;이단적인 사설이며, 기독교신앙이 아니라고 질타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오늘날 개혁교회의 신앙은 어떠한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에 개혁신앙을 가진 분들 중에도 위와같은 산데만주의와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믿음을 가진 분들은&amp;nbsp;인간이&amp;nbsp;구원받기 위해서는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만세전 예정만을 믿기만 하면&amp;nbsp;다 구원을 받으며,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amp;nbsp;취소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잘못된 가짜신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가르쳐준 신앙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을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말씀하셨으며, 우리가 죽은 후에 완성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amp;quot;내 말을 지금도 듣고 있고, 또 나를 보내셨던 분을&amp;nbsp;지금도&amp;nbsp;믿고 있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요5:24)&amp;quot;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승천하사&amp;nbsp;하늘로 가신&amp;nbsp;예수께서는 한 번 얻은 구원일지라도 결국 죄와 사탄과 사망에 지는 자는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amp;nbsp;이름이 지워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계3:5). 더욱이 계13:10, 14:12에&amp;nbsp;따르면, 이미 믿음을 가졌던 자라도 환난과 죽음에 직면하여서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교리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근원을 찾아가 올라가가보면 우리는 2가지 근원을&amp;nbsp;발견하게 된다. 그것의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에서 그것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amp;nbsp;이것은 어거스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또 하나는 믿음지상주의에서&amp;nbsp;온 것인데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서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부터&amp;nbsp;보자&lt;/strong&gt;. 이것은 구원의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맞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아담과 함께&amp;nbsp;죄를 범하였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 곧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롬3:23).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amp;nbsp;인류의 죄값을 하나님께서 대신 담당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amp;nbsp;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오직 흠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amp;nbsp;속죄제물 되심과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하여,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이란 절대&amp;nbsp;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amp;nbsp;한 번 얻은 구원을&amp;nbsp;영원히 잃어버릴 수 없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주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고, 죄를 짓고도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자들은 한 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했으면 하나님의 선택은 불변하며 불가항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으로 초청했어도 스스로가 구원의 길을 버리고 간다면,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는 버림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와&amp;nbsp;결혼하기로 하고서는 약혼을 했다 하자. 그런데 이 여자가 그런 상테에서도 계속&amp;nbsp;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과연 약혼한 남자와 결혼하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데 하나님께서 속아주어서 우리와 결혼해주시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구원의 시작과 주권이 주님께&amp;nbsp;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계속해서 세상과 마귀를 사랑하고 그 길로 가는 자는 결국 주님과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제는 믿음지상주의를 살펴보자&lt;/strong&gt;. 이것은 중세구원론의 핵심인 행위구원론에 반대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의 공로나 선행에 의한 구원관이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서 그리고&amp;nbsp;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믿음만 가져도&amp;nbsp;구원을 받으며, 이미 믿음을 가졌으면 그는 만세전에 구원이 예정된&amp;nbsp;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믿음지상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마련하셨다. 그리고 그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하시고 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귀기울여 듣는 인간이라면 그는 세상과 마귀로부터&amp;nbsp;돌이키게 된다. 이것을 회심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자신의 구주로 섬기기로 결정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게 된다. 그래서 구원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한 번 회심했으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는다. 고로, 구원은 믿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회심의 회개와 자백의 회개를 통해 점차로 완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통한 구원을 맞기는 하지만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믿음지상주의는 잘못된 신앙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amp;nbsp;했으니 그런 자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계22:14). 그러므로 구원의 최종관문은 회개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의의 옷을 예수님의 피로 깨끗히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부가 되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의 기저에는 어떤 것이 깔려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어떤 배경에서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가 나왔는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따른 구원을 받으려면 사람은 완전히 타락해 있어야 하고 전적인 무능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야&amp;nbsp;하나님께서 구원의 모든 과정을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말이 성립될&amp;nbsp;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는 절대적으로 망가져 있어야 했고, 이미 망가져 있는 자는 절대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도 없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것에 가장 합당한 성경말씀을 찾아서 대입하려 했으니, 그렇게 해서&amp;nbsp;나온 말씀이 바로 로마서 3:10이하의 말씀이다.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amp;quot;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amp;quot;라는 말씀을 이해할 때,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고 전적으로 무능해져 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개입하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그래서 개입하시는&amp;nbsp;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아니하실 분이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롬3:10에 대한 잘못된 해설에서 비롯된 엄청난 실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롬3:10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는 그것이 사람의 전적인 부패와 전적인 무능력의 상태에 관한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구약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말씀을 살펴보자.&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사도바울이 말했던 &amp;quot;의인이 아닌 자&amp;quot;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제 좀 더 롬3:10이하에 다한 사도바울의 이해에 접근을 해보도록 하자. 롬3:10의 말씀은 사실 롬3:9에 대한&amp;nbsp;결론을 구약성경의 말씀으로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롬3:9절부터&amp;nbsp;말씀을 살펴보자.&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롬3:9-15&amp;nbsp;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lt;u&gt;&lt;strong&gt;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lt;/strong&gt;&lt;/u&gt;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lt;u&gt;&lt;strong&gt;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lt;/strong&gt;&lt;/u&gt;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선, 롬3:10이하의 말씀들은 롬3:9의 근거로 제시되는 말씀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구약성경의&amp;nbsp;말씀들이다. 그러므로 롬3:10의 말씀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가져왔던&amp;nbsp;말씀들이다. 그러므로 &amp;quot;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amp;quot;라는 말은 모든 사람은 다 죄 아래에 있는 인간이라는 뜻을 따라 가져온 구약성경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amp;quot;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amp;quot;라는 말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무능해져 있어서&amp;nbsp;스스로 깨닫는 자도 없도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지못하는 자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롬3:10의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롬3:11~12의 말씀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롬3:10의 말씀은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롬3:10과 롬3:11~12의 말씀은 전혀 다른 구약성경에서 가져온 서로 다른 본문들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롬3:10의 말씀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며, 롬3:11~12의 말씀은 또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관주를 찾아본다. 대체 이 말씀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려고 말이다. 그런데 관주를 보니 롬3:10~12의 말씀은 시14:1이하와 시53:1이하에 있는 것이라고 되어 있으니, 롬3:10의 말씀은 응당 시편14:1이나 혹은 시53:1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14:1이하와 시53:1이하에는 &amp;quot;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amp;quot;라는 말씀이 없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본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도서 7:20에서 가져온 것이다.&lt;br /&gt;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전7:20 선을 행하고 전혀&lt;u&gt;&lt;strong&gt;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lt;/strong&gt;&lt;/u&gt;이로다&amp;nbsp;&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amp;nbsp;사도바울은 선을 행하면서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은 없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amp;nbsp;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본문으로서 전7:20의 말씀을 가져온 것이다.&amp;nbsp;&lt;br /&gt; &amp;nbsp;&lt;strong&gt; 그렇다면, 롬3:10~11의 말씀은 또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lt;/strong&gt; 이 말씀은 시14:1이하와 시53:1에서 가져온 말씀들이다(두 개의 본문은 대동소이하다).&amp;nbsp;&lt;br /&gt;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14:1-3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lt;u&gt;&lt;strong&gt;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lt;/strong&gt;&lt;/u&gt;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lt;u&gt;&lt;strong&gt;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amp;nbsp;&lt;/strong&gt;&lt;/u&gt;&lt;/span&gt;&lt;br /&gt; &amp;nbsp; 고로,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부패하여 그 행실이 가증한 자는 &amp;quot;어리석은 자&amp;quot;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악한 자 &amp;quot;나발&amp;quot;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편14편의 말씀과 그&amp;nbsp;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시편14편의 저자는 &amp;quot;다윗&amp;quot;이다. 그런데 &amp;quot;어리석은&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보라. 그것은 &amp;quot;나발&amp;quot;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다윗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없는 자를 &amp;quot;나발&amp;quot;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구약성경 사무엘상 25장의&amp;nbsp;나발이야기에 나온다. 마온에 사는 &amp;quot;나발&amp;quot;이라는 사람이&amp;nbsp;갈멜산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옆에서 다윗도 사울왕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윗의 사람은 600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양떼를 지켜주었을 뿐 그 양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나발이&amp;nbsp;양털을 깎을 때가 되자, 다윗은 소년 10명을 보내 그동안 자신이 그를 선히 대한 것에 말하면서&amp;nbsp;먹을 것을 좀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나발은 악한 자였다. 그는 &amp;quot;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 사는 종이 많다는데, 어디서 온 지인도 모르는 자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다&amp;quot;고 딱 잘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를 죽이려고 작정하였다. 그런데 나발의 하인들 중 한 명이 나발의 처 아비가일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비가일은 즉시 떡과 고기와 건포도, 무화과 뭉치 등을 챙겨&amp;nbsp;다윗에게로 갔다. 그리고 말하기를 &amp;quot;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은 &amp;#39;나발&amp;#39;이라. 그는 미련한(어리석은)&amp;nbsp;자니이다(삼상25:25)&amp;quot; 그러자 다윗은 그녀의 말을 듣고&amp;nbsp;용서해주었다. 하지만 그녀가&amp;nbsp;집에 돌아왔을 때에, 나발은&amp;nbsp;자기를 위해 잔치를 배설하고 즐기다가 그만 자초지종을 듣더니 며칠이 못되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14편에서 나발을 대신하여 &amp;quot;어리석은 자&amp;quot;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amp;nbsp;그러므로 시14:1이하의 말씀은&amp;nbsp;베풀어준 은혜도 몰라보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며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한 설명이라는&amp;nbsp;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롬3:10에 나오는 죄인에 대한 설명을, 롬14:1~3에 나오는 악인의 설명을 가지고 설명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죄인들 중에는 나발과 같은 악인도 있는데, 모두를 다 악인 취급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amp;quot;죄인&amp;quot;과 &amp;quot;악인&amp;quot;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여기서 롬3:10에서 말하고 있는 &amp;quot;죄인&amp;quot;과 롬3:11~12에서 말씀하고 있는 &amp;quot;악인&amp;quot;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시편기자는 계속해서 죄인과 악인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말하였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1:4-6&amp;nbsp;&lt;u&gt;&lt;strong&gt;악인들&lt;/strong&gt;&lt;/u&gt;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lt;u&gt;&lt;strong&gt;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lt;/strong&gt;&lt;/u&gt; &lt;u&gt;&lt;strong&gt;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lt;/strong&gt;&lt;/u&gt; 6 무릇 &lt;u&gt;&lt;strong&gt;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lt;/strong&gt;&lt;/u&gt;하시나 &lt;u&gt;&lt;strong&gt;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lt;/strong&gt;&lt;/u&gt;&amp;nbsp;&lt;/span&gt;&lt;br /&gt; &amp;nbsp; 그렇다. 죄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으며 회개하지도 않고 악하게 살아가는 악인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악인들은 결코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amp;quot;죄인&amp;quot; 중에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회개할 수&amp;nbsp;있으나, 악인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문을 닫고 하나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눅5:32&amp;nbsp;내가 &lt;u&gt;&lt;strong&gt;의인을 부르러&lt;/strong&gt;&lt;/u&gt; 온 것이 아니요 &lt;u&gt;&lt;strong&gt;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lt;/strong&gt;&lt;/u&gt; 왔노라&amp;nbsp;&lt;br /&gt; 마13:49-50&amp;nbsp;&lt;u&gt;&lt;strong&gt;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lt;/strong&gt;&lt;/u&gt; 천사들이 와서 &lt;u&gt;&lt;strong&gt;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lt;/strong&gt;&lt;/u&gt;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amp;quot;죄인&amp;quot;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자를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amp;nbsp;예수께서는 &amp;quot;내가 악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amp;quot;고 말씀하지 않았던 것이다. 악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책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에 일어날 일도 말씀해주셨다. 그때에는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서 풀무불에 던져넣을 것이라고 하셨다. 심판의 날까지 자신의 악한 행위를 그치지 않는 자는 결국 풀무불(지옥불)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이때 주님께서는 &amp;quot;의인들 중에서 죄인들을 갈라낼 것&amp;quot;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amp;nbsp;죄인들 중에는 성령의 책망하는 음성을 듣고 돌이켜 회개할 자도 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고로 우리는 롬3:10의 말씀은 &amp;quot;죄인&amp;quot;에 대한 설명이요, 롬3:11~12의 말씀은 &amp;quot;악인&amp;quot;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롬3:10에 나오는 &amp;quot;죄인&amp;quot;은 다윗과 같이 죄를 지은 후에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돌이켰던 회개하는&amp;nbsp;자를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롬3:11~12에 나오는 &amp;quot;악인&amp;quot;은 나발처럼 책망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거절하며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며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자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왜 누군가 악인에 대한 설명을 롬3:10에 나오는 죄인에 대한&amp;nbsp;설명으로 바꿔치기한&amp;nbsp;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럼, 누가 관주를 잘못 기재하여, 롬3:10의 말씀이 나발과 같은 악인에 대한 설명이라고 끌어간&amp;nbsp;것인가? 정확히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제부터&amp;nbsp;관주가 달아졌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원을 찾아가 보니, 우리나라에서 관주성경의 최초는&amp;nbsp;1911년에 신약성경을 발행할 때였다. 그것도 미국에서 1907년에 발행된 스코필드 관주성경에서 따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또 어떻게 해서 생겨난&amp;nbsp;것인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1800년대 어느&amp;nbsp;선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 같아 보인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다만,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amp;nbsp;알 수 있는 것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제4판 최종본, 1559년)에 보면,&amp;nbsp;롬3:10이하에 대한 해설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amp;nbsp;롬3:10~12을 말씀을 써놓고는 괄호 안에 (참고, 시편14:1이하, 시53:1이하)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적어도 칼빈이&amp;nbsp;롬3:10과 롬3:11~12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칼빈도 역시 악인에 대한 설명을 가지고 롬3:10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성경말씀에 대한 장절 표기가 칼빈시대에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펼쳐지기 전까지 누구도 성경에 장절을 표기하지 않았는데, 1551년에 프랑스 파리의 인쇄업자였던 스테파노스가 처음으로 신약성경에 장절표기를 시도하였고, 그 무렵에 칼빈이 그것에 대한 추천사를 써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롬3:10이하의 말씀이 시14:1이하에 있다고 표기한 것은 칼빈이 최초가 아닌가 추측을 해 볼&amp;nbsp;뿐이다. 그런데 후대에 가면서 그러한 사실은 점차 고착화되었으니,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관주성경은 칼빈처럼 롬3:10의 말씀의 관주를&amp;nbsp;시14:1, 53:1이하의 말씀이라고 달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버젓이 말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 절대지상주의는 대체 어디서&amp;nbsp;잘못되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지상주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amp;nbsp;절대 주권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신다는 것을 관철시키기&amp;nbsp;위해,&amp;nbsp;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며&amp;nbsp;전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정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롬3:10의 말씀은 다윗처럼 죄인에 대한 설명으로 설명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전적으로 부패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위해서&amp;nbsp;롬3:11~12의 나오는 나발&amp;nbsp;곧 &amp;quot;악인&amp;quot;의 상황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인 것이다 모두가 다 악인은 아닌&amp;nbsp;것이다. 그중에는 나발과 같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악을&amp;nbsp;일삼는 악인도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은 이러한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이라도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으면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amp;nbsp;나올 자도&amp;nbsp;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0. 예수께서 가르쳐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한 인간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께서는 과연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사도들은 어떻게 말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의 경우는 앞에서 줄곧 설명했으니 생략하고, 예수께서는 과연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마12:20)에 나오는 인간이해다. 곧 인간은 &amp;quot;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심지&amp;quot;라는&amp;nbsp;것이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은 상한 갈대처럼 꺾여진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갈대는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꺼져가는 심지(혹은 등불) 상태에 있었던&amp;nbsp;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놔두면 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람을 막아주고 기름을 보충해 준다면 다시 활활 타오를 수가 있다. 바람인 귀신들의 공격을 차단해주고, 기름인 성령을 보내어 깨닫게 하시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붙잡을 수 있는&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lt;strong&gt;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있거나 전적으로 무능하다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이미 타락해 있어서 스스로는 절대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상태는 된다고 말이다.&amp;nbsp;&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만약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고 무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 번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죄인들에게 &amp;quot;내게로 나아오라. 나를 믿으라&amp;quot;고 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는가? 그리고 왜 성령께서도 &amp;quot;오라. 와서 원하는 자는 생명수를 받으라(계22:17)&amp;quot;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사람이 비록 타락은 했어도 주님의 초청에 응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주님의 초청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거절할 것인가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이렇듯 선택할 수 없는 자유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지 않다면 어떻게 주님과 성령께서 구원으로 그들을 초청하고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책망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날에 주님께서 사람을 불러다가 심판한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했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그것에 대한 처벌로서 심판할 때에 그들은 어느누구도&amp;nbsp;항변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타락해 있어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에, 적어도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총에 반응할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1.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실 때에 즉시 마음의 문을 열고 구원의 초청을 수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결코&amp;nbsp;현재의 상태에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가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탈출하여 구원받을 수&amp;nbsp;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돌이켜 회개하여 주님을 믿는 자라&amp;nbsp;할지라도 다시 범죄하게 되었을 때는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묻혀 지내다가 그만 회개하지 않고&amp;nbsp;불못으로&amp;nbsp;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21:8). 그러면 죽을 때에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3:5).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amp;quot;열심을 내라. 회개하라&amp;quot;고 말씀하셨다(계3:19). 열심을 내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 것이며, 회개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amp;nbsp;마음의 문을 노크하실 때에 속히 응답해야 한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회개한&amp;nbsp;죄인 다윗처럼 구원받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죽어&amp;nbsp;악인 나발처럼 영원한 멸망을 당할&amp;nbsp;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2월 06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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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5) 사람이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2부예배](히3:12~14)_2020-11-29(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00</link>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iuPuimC5fM&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람이 구원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중의 핵심은 역시 &amp;quot;믿음&amp;quot;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는데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믿고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로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조건은 대체 무엇이며, 사람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었으나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는지, 그리고 한 번 얻은 구원은 정말 안전하고 영원한 것인지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2. 칭의가 곧 구원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어떤 분은 사람이 칭의를 얻게 되면 그 사람은&amp;nbsp;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amp;nbsp;꼭 그렇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은 자라도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할 사람이&amp;nbsp;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칭의란&amp;nbsp;무엇을 가리키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amp;quot;칭의&amp;quot;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나는 비록 추하고 더럽지만&amp;nbsp;예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해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더러운 죄인이라도 얼마든지 칭의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칭의를 얻은 사람은 다 구원을 받는 것일까? 대체로 그렇다고&amp;nbsp;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바른 구원관이 아니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은 것은 다만 구원의 첫 출발을 가리키는 것이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구원의 종착역에 도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의 여정에서 &amp;quot;칭의&amp;quot;는 구원의 시작점에 있는 것이지 결코 구원의 종착점을 가리키고 있지&amp;nbsp;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amp;nbsp;이뤄지는&amp;nbsp;것이기 때문이다(눅18:13~14).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칭의를 &amp;quot;믿음으로만&amp;quot; 받는다고 알고&amp;nbsp;있다. 물론 칭의는 믿음으로 받는다(롬5:1). 그렇지만&amp;nbsp;칭의를 오직&amp;nbsp;믿음으로만 받는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되는&amp;nbsp;예수께서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하여, 사람이 칭의를&amp;nbsp;받는 것은 회개함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8:13~14).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서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을 읽은&amp;nbsp;사람들은 회개가 칭의의 반대쪽에 있는 요소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칭의가 회개를 통해 얻는다고 되어&amp;nbsp;있다(눅18:13~14). 예수께서는 그때&amp;nbsp;이 비유를 들어서 누가 의롭다함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는지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신이&amp;nbsp;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하게 회개했던 자라고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칭의는 구원의 노정에서 첫 출발점일 뿐이다. 그것은 종착역이 아니다. 그리고 칭의는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회개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회개하지도 않은 채 죄로 인해 계속해서 더럽혀져&amp;nbsp;있는 신부를 신랑은 그날 결코 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3.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더이상 하나님께서는 죄값을 묻지 아니하실까?&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또한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amp;nbsp;죄값을 더 이상 우리에게 묻지 않고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믿고 회개할 때에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에 해당하는 것일 뿐, 믿기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을 면해준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할지라도 또다시 죄를 지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그 죄를 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도&amp;nbsp;그에게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엡5:5:~6).&amp;nbsp;뿐만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도 이긴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대로 믿는 자라 할지라도 비겁한 자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한 자들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amp;nbsp;때문이다(계21:7~8).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amp;nbsp;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지은&amp;nbsp;죄에 대한 처벌을 주님이 묻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음행하는 자는 결국 불못에 떨어지고 말&amp;nbsp;것이다. 우리의 심판의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함의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회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야고보 장로는 말하기를,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어찌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약2:14,17).&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또한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 데에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 개인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에 그를 불러내셨고 또한 그를 구원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amp;nbsp;사람이 구원받게 된 데에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고 오직 그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만&amp;nbsp;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를&amp;nbsp;생각해보았는가!&amp;nbsp;어떤 사람이 멸망으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친다면, 그가 심판의 법정에서 왜 나를 처음부터 버리기로 결정하셨는지를 묻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신의 구원이&amp;nbsp;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예정되었다고 믿는 이들은 자신의 구원은 절대 취소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주님의 예정에 따른 구원이므로 자신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며, 자신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 주장은 옳다고 보는가? 성경66권을 보라. 성경 어디에도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영원히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은 있는가를 말이다. 한 구절도 없다. 오히려 주님이 말씀하신 예정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예정 뿐이다. 예수믿고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amp;nbsp;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계속해서 이뤄가라고 권면하였으며(빌2:12), 남에게 복음을 전파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떨어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던 것이다(고전9:27)&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4. &amp;quot;구원&amp;quot;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구원이란 대체 무엇을&amp;nbsp;가리키는가? 성경에서는 구원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에서 나은 것을 일컬어서 구원받았다고도 하며(막5:34), 바다에 빠진 사람이&amp;nbsp;건짐을 받은 것도 구원이라고 말하고(마14:30, 귀신들린 자에게서&amp;nbsp;귀신이 떠나나가 정신이 온전해진 것도 구원이라고 하고(눅8:36), 한 민족이 타 민족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해방받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행7:34).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하려는 구원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구원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의 진로하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말하려고 한다(딤후4:18, 벧전1:9).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야말로 구원의 최고봉이요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5.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에게&amp;nbsp;믿음이 필요하다(롬10:9).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어야만이&amp;nbsp;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에 입성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인가? 어떤 분들은 &amp;quot;오직 믿음&amp;quot;으로 구원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믿을 때를 생각해보라. 사람이 처음으로 믿게 될 때에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한 것인가? 아니었다. 처음 믿을 때에는 자신이 이전의 삶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amp;nbsp;인정하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자인 것을 시인하면서 믿는 것이다. 즉 지난 날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고로 구원받는 믿음은 기본적으로 회개가 동반되고 있다는&amp;nbsp;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그러므로 구원받으려면 믿어도 회개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amp;quot;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2:38)&amp;quot;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즉 자신이 과거에 우상숭배하던 것과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죄인이었음을 시인하면서 그 길에서 돌이켜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되심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6. 맨 처음에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amp;nbsp;어떤 일이 일어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럼, 우리가 처음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지난 날에 지었던 모든 죄들에 대한 용서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amp;nbsp;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다(눅15:11~24). 이 탕자의 비유는 사람이 회개할 때 과거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는지를 잘 보여주고&amp;nbsp;있다. 둘째아들(젊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하더니, 먼 나라로 가서&amp;nbsp;허랑방탕하면서&amp;nbsp;물쓰듯 돈을 날려버린다. 그런데 그 해에&amp;nbsp;큰 흉년이들어서 돼지라도&amp;nbsp;치게 되는데, 배가 고파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를 결정하게 된다. 그때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기에 어떻게 하면 아버지께서 자신을 받아주실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는 가서 아버지를 만나뵙고서 이렇게 말하려고 결정한다. 첫째,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둘째,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자신을 받아주시려면 자신을 품군(일꾼)으로 하나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번째를 미쳐 말하기도 전에&amp;nbsp;아버지는 그는 용서해주고 말았다. 아버지는 결코 지난 시간동안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탕진했는지를 낱낱이 고백하라고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다. 우선 아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는&amp;nbsp;가장 좋은 옷으로&amp;nbsp;입혀주었고, 손에 가락지도 끼워주었으며,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렇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날, 진실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지었던 죄를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과거 우리가&amp;nbsp;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과거의 지은 죄를 다 낱낱이 고백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던 길을 돌이켜 아버지께로 향해 왔기에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7. 왜 예수믿은 자라도 과거 조상들&amp;nbsp;지은 죄들과 자신이 지은&amp;nbsp;죄를 낱낱이 자백해야만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과거의 지은 죄를 낱낱이 자백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죄용서를 받기 위함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처음&amp;nbsp;믿을 때에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이미 죄를 다 용서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amp;nbsp;과거에 지었던&amp;nbsp;죄들로 인한 결과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러므로&amp;nbsp;우리는 과거의 죄들을 낱낱이 고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들로 인하여 우리의 몸과 내 자녀들 속에 귀신들이 침투해 들어와&amp;nbsp;있기 때문이다. 그들은&amp;nbsp;저주받은 영들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인해 우리 안에는 여전히 저주가 남아있다. 그러므로&amp;nbsp;예수님을 믿게 된&amp;nbsp;자라도 귀신을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놈들은&amp;nbsp;그냥 순순히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나가는 것이다. 그놈들이 나가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놈들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 모든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어리석음들도 같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형통과 부요와 건강과 지혜의 복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들을 자백하고&amp;nbsp;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을 대신 자백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가 지은&amp;nbsp;죄들도&amp;nbsp;용서받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들 그리고 3~4대까지 받아야 할 벌이 있는데, 그 벌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백하므로 이놈들을 우리 몸에서 제거하면 우리는 형통한&amp;nbsp;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8. 예수믿은 다음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예수믿고 난 다음에 지은 죄들은 가만히 있어도 믿고 있기만 하면 그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예수믿을 때에 우리는 주님께로 돌이켰다. 그때에는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들을 한꺼번에 용서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죄들로 인하여 내게 침투해 들어온 귀신들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간&amp;nbsp;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들이 용서된&amp;nbsp;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은 후에 지은 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amp;nbsp;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amp;nbsp;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른 길로 가려고 했으니, 그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는 낱낱이 고백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대부분의 성도들은 죄를 잘 지을 수가 없다. 죄를 지으려면 나 자신이&amp;nbsp;동의를 해주어야 하는데, 성령께서 죄를 참소함으로 죄를 짓기가 여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된 옛습관들이 남아 있어서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우리는 즉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믿어서 회개한 자는 치명적인 죄들을 짓지 못하게 된다. 특히 행동으로 죄를 짓지 못한다.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하던 행동들이었지,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그러한 과감한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 막으시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9.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중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왜 일어날 수 없으며&amp;nbsp;일어나서도&amp;nbsp;안 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어떻게 해서 내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잘못된 교리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제대로 아는 자는 함부로 죄를 범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들이 달랑 죽은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딤전3:16).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받으시고 대신 버림받아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는 하나님의 피라고 말할 수 있다(하지만 그것을 우리는&amp;nbsp;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amp;nbsp;피흘려 죽으시려고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그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자들은 결코 성령의 의지를 꺾으면서&amp;nbsp;죄를 범할 수 없다. 그리고 둘째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의 범죄가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예정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은&amp;nbsp;절대로 취소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한 성경적인&amp;nbsp;근거는 없다. 성경66권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말씀은 없다. 다만 번역을 잘못하여서 발생한 오역을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바램을 기정사실화하여 주장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결국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일차적인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멸망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자신의 범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교리)를 신봉해서다. 그러다가&amp;nbsp;결국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amp;nbsp;자백하지 아니하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라(요일1:9). 그 죄는 회개하지 않는한 여전히 남아 있으며 죽을 때까지&amp;nbsp;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은 결국 최소되고 말 것이며, 생명책에 기록된&amp;nbsp;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말&amp;nbsp;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10.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를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고 하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예수를 믿은 성도는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지금도 귀신들이 호시탐탐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은 다음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린다는 것을 아는 자는 결코 성령을 거역하여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 범죄는 우리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때 성령께서 우리가 죄를 지으려면 책망하여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 중에는 자기가 죄를 짓는다&amp;nbsp;해도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는다는 가르침에 미혹을 받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가 있다. 그런데&amp;nbsp;이러한 사람들 중에는&amp;nbsp;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치르신 값진 희생을 잘 모르기에 또 죄를 짓는 것이요, 죄를 지어도 그 죄가 자신의 구원을 흔들어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종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값진 희생도 모르고, 회개없이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으려고 한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무서운 일이다.&amp;nbsp;그리고 한 번 두 번 죄를 지어도 자신이 삶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에게 죄짓는 일은&amp;nbsp;대수롭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한 번 구원받았으면 구원은 최소되지 아니한다는 가르침을 꼭 붙잡는다. 그리고 우리가 더러워도&amp;nbsp;예수님께서&amp;nbsp;의의 옷을 입혀주시면 우리가 칭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살아간다. 그러다가 결국 회개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제&amp;nbsp;나는 과연 구원받을 사람으로서 지금 합당한 자인지를 점검할 때가 되었다. 사실&amp;nbsp;구원은 이미 믿을 때에 시작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죽을 때에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때 가서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바깥 어두운 곳에&amp;nbsp;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회개하자. 그리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배워 그분의 값진 희생을 값싸게 만들지 말자. 그리고 거듭날 때 들어온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지 말자.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자. 그리고 혹 넘어졌을지라도 즉시 회개하여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지 말자. 건투를 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1월 29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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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00#comment</comments>			<pubDate>Sun, 29 Nov 2020 17:47:4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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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4) 성령님은 누구시며 그분의 본질적인 사역은 무엇인가?(계5:6)_2020-11-22(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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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가짜성령운동, 가짜성령사역을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낼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다. 성령과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럼, 성령은 누구신가? 그리고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잘 모르면 귀신이 행하는 것을 성령사역으로 따라갈 수 있다. 여기에 진짜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의 사역이 진짜인지를 구분하는 기준들이 있다. 정말 영적인 눈이 새롭게 열려지기를 바란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rMJPgmGpU8&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령님은 누구신가? 보통은 성령님을&amp;nbsp;생각할 때 은사나 예언 그리고 치유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님의 본질적인 사역은&amp;nbsp;아니다. 그것은 선물사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더 성령에 대해 안다고 하시는 분들은 성령님은 &amp;quot;하나님의 영&amp;quot;이라든지 아니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세번째 위격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하지만 여기에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성령을 세 신들 중의 하나로&amp;nbsp;여기게 된다. 그리고&amp;nbsp;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신&amp;nbsp;본질적인 목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잘 모른다면, 우리는 신사도나 빈야드운동과 같은 유사 혹은 가짜성령운동에 속아넘어갈 수도&amp;nbsp;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가운데 성령사역이라고는 하나 성령이 아닌 가짜를 분별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존재에 관한&amp;nbsp;실체에&amp;nbsp;접근해보고자 한다. 그리고&amp;nbsp;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과 보조적인 사역이&amp;nbsp;무엇인지를 점검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성령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잘 하므로, 성령의&amp;nbsp;인도를 잘 받아&amp;nbsp;예수님을 잘 믿고 죄를 회개하여&amp;nbsp;천국에까지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amp;quot;성령&amp;quot; 사역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방언이나 예언같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거나, 병이 들어 병을 치료해보기 위해 갖가지 은사 사역하는데를&amp;nbsp;쫓아다니셨던 분들에게&amp;nbsp;&amp;quot;성령!&amp;quot;이라는 단어를 들려주었을 때,&amp;nbsp;떠오르는 말이 무엇인지를&amp;nbsp;물으면 보통&amp;nbsp;&amp;quot;기름부음, 임파테이션&amp;quot;이나 혹은&amp;nbsp;&amp;quot;뒤로 넘어지는 것, 머리나 손과 몸을 흔들어대는 것,&amp;nbsp; 몸 어딘가가&amp;nbsp;막 뜨거워지는 것, 손에 금가루가 나타나거나 이빨이 금이빨로 변하는 것, 입신하는 것,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것&amp;quot;이라고 말한다. 그런데&amp;nbsp;사실 이러한 사역의 상당 부분은 가짜요, 귀신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것을 그렇다고 판단할&amp;nbsp;수 있는가? 누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amp;nbsp;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amp;nbsp;절대 변할 수 없는 것 곧 성경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을 때에는 우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amp;nbsp;성령께서 오신 본질적인 목적에서 어긋나 있거나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짜이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성령을 빙자하여&amp;nbsp;귀신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증인이라는 곳을 가보라. 그곳에서는 성령을 &amp;quot;하나님의 활동력&amp;quot;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amp;nbsp;가짜를 분별할 수 있으며, 올바른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성령은 누구신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세번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인가? 그렇다. 그런데 이 다음이&amp;nbsp;문제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며,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한 분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바로 그 성령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령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계속해서 나온다. 성령은 창1:2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그리고 계22:17에서는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령은 처음부터&amp;nbsp;끝까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셨던 성령에 대한 호칭이 사사기에 가면 처음으로 &amp;quot;여호와의 영&amp;quot;이라고 불린다(삿3:9).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을 &amp;quot;아버지의 영&amp;quot;이라고 하셨다(마10:20). 그리고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에서는, 성령은&amp;nbsp;이제 &amp;quot;아들의 영&amp;quot;(갈4:6)이라고도&amp;nbsp;하고, &amp;quot;그리스도의 영&amp;quot;(롬8:9)이라고도 한다. 그럼 삼위일체의 교리에 따르면 분명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성령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되어서 성령이 &amp;quot;아버지의 영&amp;quot;이면서 동시에 &amp;quot;아들의 영&amp;quot;이 될 수 있는가? 또&amp;nbsp;성령은 어떻게 &amp;quot;하나님의 영&amp;quot;이면서 &amp;quot;그리스도의 영&amp;quot;이 되는가?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령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amp;nbsp;성경66권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amp;nbsp;정리된 성령에 대한 정의를 찾기는&amp;nbsp;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진리에 가까운 정의를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계5:6의 말씀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amp;quot;어린양의 일곱눈들&amp;quot;이자, &amp;quot;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영들&amp;quot;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이 누군지를 그 실체를&amp;nbsp;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계5:6의 말씀을 통해&amp;nbsp;알 수 있는 성령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amp;nbsp;성령은 어린양과 관계된 영&lt;/strong&gt;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amp;quot;어린양의 일곱눈들&amp;quot;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amp;quot;눈&amp;quot;이란&amp;nbsp;이 세상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는 전능하신 이의 전지성을 가리킨다. 사실 계2:23에 보더라도, 예수께서는 &amp;quot;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이&amp;quot;라고 나온다. 그분이 이제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감찰하기 위해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요15:26).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지만 실은 어린양되신 예수님으로부터&amp;nbsp;파송받은 영이시다. 그래서&amp;nbsp;성령은 예수님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amp;nbsp;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영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늘로 승천한 후에는 곧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보혜사가 오셨으니, 성령은 예수님 자신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계5:6의 말씀을&amp;nbsp;통해 알 수 있는&amp;nbsp;성령에 대한 두번째&amp;nbsp;정의는 성령은 하나님과 관계된 영&lt;/strong&gt;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amp;quot;하나님의 일곱 영들&amp;quot;이라고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일곱영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amp;nbsp;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오순절 이후에 동시존재가 가능한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그런데 셋째, 계5:6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성령에 대한 세 번째 정의가 놀랍다.&lt;/strong&gt; 왜냐하면 &lt;strong&gt;성령이&amp;nbsp;&amp;quot;일곱&amp;#39;이라는 숫자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왜 성령을 일컬어, &amp;quot;어린양의 열두 눈들&amp;quot; 혹은 &amp;quot;하나님의 열두 눈들&amp;quot;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한사코 성령을 &amp;quot;어린양의 일곱눈들&amp;quot;, &amp;quot;하나님의 일곱영들&amp;quot;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7이라는 숫자는 12에 비해&amp;nbsp;이 땅에 관련된 숫자이며, 그것은 이 땅에서 완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12이라는 숫자는 하늘(천국)과 관련된 숫자이며, 하늘에서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것들은 거의가 다 12이라는 숫자를 담고 있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들과&amp;nbsp;신약의 12사도들을&amp;nbsp;합친 것이다. 144,000명은 12 곱하기 12인 144에다가, 많은 수를 의미하는 1,000을 곱한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것들 중에 유독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금촛대가 7이라는 숫자를 담고 있고 그 일곱금촛대에 하나님의 일곱영들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7이라는 숫자는&amp;nbsp;하늘의 숫자와 어울리는 숫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는 유독 성령과 관계된 것이 12이 아니라 7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amp;quot;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완전한 영&amp;quot;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이 땅과 관련한 영이 아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amp;quot;어린양의 12영들&amp;quot; 내지는 &amp;quot;하나님의 12영들&amp;quot;이라고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처음부터 이 땅에 파송을 받아 일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었기에 그분은 당신 자신이&amp;nbsp;높히 여김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신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를 찾아보더라고 성령 하나님께 절을 했다든지 예배를 드렸다든지, 기도를 드렸다는 곳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보좌도 하나님의 보좌요 어린양의 보좌라고 언급되지만, 성령의 보좌라는 말은&amp;nbsp;나오지 않는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령을 왜 경륜적인 영이라고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람들이 성령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실수하는 것은 성령이&amp;nbsp;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성령이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성령이 누군지에 대하여 눈에 선히 들어온다. 그럼, 성령이 경륜적인 영이라는 뜻은&amp;nbsp;무엇인가? 그것은 성령께서 시대마다 역사하는 방식과 역할이 다르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첫째, 우선 성령의 명칭부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자&lt;/strong&gt;&lt;/span&gt;. 사사기 시대가 되기까지 성령의 명칭은 오직 한 가지로서 &amp;quot;하나님의 영&amp;quot;이이었다. 하지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amp;quot;여호와&amp;quot;로 계시하신 이후부터, 성령은 이제 &amp;quot;여호와의 영&amp;quot;이라고 불리기&amp;nbsp;시작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자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지상에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성령을 &amp;quot;아버지의 영&amp;quot;(마10:20)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시자, 초대교회는 성령을 &amp;quot;예수의 영&amp;quot;이라고도&amp;nbsp;불렀고(행16:7), &amp;quot;아들의 영&amp;quot;(갈4:6), &amp;quot;그리스도의 영(롬8:9)&amp;quot;이라고도 불렀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amp;#39;여호와&amp;#39;라고 계시했다가, 신약시대에는 예수라고 계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륜을 거꾸로 뒤집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성령을 &amp;quot;아들의 영&amp;quot;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아들이 출현하기 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시대 이전에 &amp;quot;여호와의 영&amp;quot;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경륜적인 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A.D.95~96년에 불렀던 성령의 명칭은 &amp;quot;어린양의 일곱눈들&amp;quot;이자, &amp;quot;하나님의 일곱영들&amp;quot;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둘째,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amp;nbsp;살펴보자&lt;/strong&gt;&lt;/span&gt;. 구약시대에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은 오순절성령강림 전후로 그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구약시대에 성령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서 창조의 일을 수행하셨다(창1:2). 그리고는 사람에게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해도 성령께서는&amp;nbsp;어떤 특정한 사람 위에 내려오셔서 그에게 특정한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amp;nbsp;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맡겨진 직임을 잘 수행하게 하셨다. 예를 들어, 성막을 지을 무렵에는 성령께서 브살렐과&amp;nbsp;오홀리압의&amp;nbsp;머리 위에 내려오셔서&amp;nbsp;그들에게 &amp;quot;지혜와 총명과 지식&amp;quot;을 은사로 주셨다(출36:31). 그리고 기드온에게는 사사(판관)로서&amp;nbsp;&amp;quot;지도력&amp;quot;의 은사를 주셨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사로 믿고 따랐다(삿6:34). 그리고 삼손에게는 나귀턱뼈로&amp;nbsp;블레셋사람 일천명을 죽일 수 있는 &amp;quot;강한 힘&amp;quot;을&amp;nbsp;주셨다(삿14:6). 그리고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왕이었던 사울 위에 성령이 내려오니, 그는&amp;nbsp;예언을 하기 시작했다(삼상10:10). 그리고 선지자 다니엘에게 성령이 내려오니, 그에게는 &amp;quot;지혜와 분별력&amp;quot;의 일반은사가 부어졌고, 이어서 &amp;quot;환상과 꿈&amp;quot;을 꾸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같이&amp;nbsp;주어졌다(단1:17). 그리고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오니 그들이&amp;nbsp;예언할 수 있었다. 그래도&amp;nbsp;구약시대에&amp;nbsp;성령께서&amp;nbsp;임재하는 방식은 전부 다 위에 머무르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았더라도 범죄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에는 성령도 그 사람을 떠나가셨고 그러면 은사도&amp;nbsp;사라졌다. 대표적인 경우가&amp;nbsp;바로 사울왕의 경우다(삼상16:14).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갔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았던 다윗은 자신이 범죄한 후,&amp;nbsp;다음과 같은&amp;nbsp;기도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amp;quot;주여, 나를 당신의 눈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성령을 내게서 취하지 마소서(시51:11).&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보내주신&amp;nbsp;보혜사 성령은 그 역사하시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첫째로, 그분은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오셨기&amp;nbsp;때문이다(요14:17). 그리고 둘째로, 사람의 영과 하나가 됨으로&amp;nbsp;사람이 죽기까지 성령께서는 그를 떠나가지도 않으셨다(요14:16). 셋째로, 구약시대처럼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성령께서&amp;nbsp;오시어&amp;nbsp;그 사람 속 안으로&amp;nbsp;들어가셨다(요14:16). 넷째, 구약시대에는 은사를&amp;nbsp;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이 지정한 사람만 받을 수 있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기&amp;nbsp;시작했다. 그리고 은사는 더욱 다양해졌고 풍성해졌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성령이 오셔서 하셨던 본질적인 사역과 보조적인 사역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제 오늘 우리가 꼭 들어야 할 핵심적인 말씀에 왔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amp;nbsp;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은사사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amp;quot;은사&amp;quot;라는 말은 선물이라는&amp;nbsp;말로서, 받는다면 좋겠지만 안 받아도 되는 것을 가리킨다. 고로 은사사역은&amp;nbsp;일종의 선택사항인 것이다. 그렇더라도&amp;nbsp;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반드시 하시는&amp;nbsp;일이 있다. 그것을 일컬어 우리는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말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에 대한 소개는 예수께서 떠나가실 무렵,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직접 일러주신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요한복음 14~16장까지의 말씀에 나와있다. 그렇다면,&amp;nbsp;&lt;strong&gt;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목적은 무엇인가?&lt;/strong&gt; &lt;strong&gt;첫째는 성령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요15:26,14:26)&lt;/strong&gt;. 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는지&amp;nbsp;그리고 왜 죽으셔야 했는지를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려 성령께서&amp;nbsp;오신&amp;nbsp;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성령께서 오신&amp;nbsp;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에도 예수님을&amp;nbsp;자존하신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는 분은 사실 얼마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8:24,28,58을 보면, 거기에 그것이 나온다. 하지만&amp;nbsp;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수께서 자신을 &amp;quot;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amp;quot;고 말씀하셨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을 번역할 당시만해도&amp;nbsp;아직 그것을 잘 모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성경을 보면 그것이 나온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아는 이는&amp;nbsp;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 &lt;strong&gt;둘째,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lt;/strong&gt;이다(요16:7~8). 이것은 성령이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사역의 두번째 방면이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신다고 했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을 성령께서 책망하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람인&amp;nbsp;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을 미가엘천사장이라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교정해주고 수정해주시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려주시려 오신&amp;nbsp;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를&amp;nbsp;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믿으면 의롭지 못한 자라도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마귀는 십자가에서 그의 권세가 박살났다는 것을 성령께서 폭로해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amp;nbsp;예수님에게 졌으니 예수 이름의 권세 아래 있음을 성령께서 폭로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역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귀신을 제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가심으로 하시는 일들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그렇다면, 성령께서 외부에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인가?&lt;/strong&gt; 그것은 구약시대처럼 은사(선물들)을 나눠주시는 일이다. 그것을 주시는 목적은 성경을 통틀어보면 딱 2가지다. 하나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고전12:7,11). 또 하나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행1:8). 그래야 능력과 권세로 무장되어&amp;nbsp;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사들은&amp;nbsp;어디까지나 선물에 해당한다. 선물은 받으면 좋겠지만 안 반아도 되는 것이 선물이다. 그러므로&amp;nbsp;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모르면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믿지 못해서, 죄사함도&amp;nbsp;받을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amp;nbsp;없다. 그런데&amp;nbsp;성령의 은사는 다르다. 선물로 주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사역은 성령의 보조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고 은사도&amp;nbsp;제대로&amp;nbsp;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져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 자신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동시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오심으로 사람은 거듭태어나기도 하고, 인치심과 보증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은사를 받아서 교회를 섬길 수 있고 복음전파를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제대로 알고 그분이 주시는 은사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짜 곧 귀신에게 속지 않고 성령을 알고, 가짜 곧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2가지 원칙이 있고, 팁이 3가지가 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2가지 원칙부터 살펴보자&lt;/strong&gt;. 어떤 곳에서 성령운동을 한다고 하면 우선 2가지를 지켜보라. 하나는 과연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가르쳐주는지를 보라. 만약 예수님이 누군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성령받게 하고 있다면 개인이나 단체는&amp;nbsp;가짜성령운동임을 알라. 둘째, 회개를 충분히 시키지 않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고 한다면 그것도 가짜인 줄 알라. 회개없이 은사를 받으려 하다가 대부분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lt;strong&gt; 그리고&amp;nbsp;3가지 팁이 있다&lt;/strong&gt;.&lt;strong&gt; 첫째, &lt;/strong&gt;성령은 &lt;strong&gt;예수께서 하신 말씀 곧 구약으로 치자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우쳐주시는 분&lt;/strong&gt;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lt;strong&gt;할 수만 있으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lt;/strong&gt;한다. 신약은 1,000독 정도&amp;nbsp;하라. 그러면 성령께서 성경말씀을 다 깨우쳐주실 것이다. &lt;strong&gt;둘째,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만을 드러내시는 분이므로, 나는 일평생 진리만을 믿고 따라가리라고 각오하라&lt;/strong&gt;. 그 길을 가는 것이 외롭고 힘들고 핍박받는 일이 생길지라도&amp;nbsp;겁내지 말고 그 길을 걸어가라. 심판대 앞에 가면&amp;nbsp;오직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말이다. &lt;strong&gt;셋째, 그분은 인격적이시므로, 그분에게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잘 쓰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즉시 순종하기를&lt;/strong&gt;&amp;nbsp;힘쓰라. 순종하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라. 성령의 음성에 즉각즉각 응답하고&amp;nbsp;순종하라.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잘 받게 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계시록을 보면, 2~3장에 일곱교회가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패턴을 보면 한결같이 동일하다. 처음에는 예수께서 당신이 누군지를 그 교회의 상황과&amp;nbsp;관련지어 말씀하신다. 그리고 칭찬할 것이 있으면 칭찬하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를 책망하신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고, 침상에 던져버릴 것이고, 환난에 두며, 자식을 죽여버리고, 토해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 패턴을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이는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성령사역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하는 것이라야&amp;nbsp;한다. 그래야 귀신의 주는 은사를 받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귀신에게 속지 않고 진짜 성령이 주시는 것들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0년 11월 22일(주일)&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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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계22:13)_2020-11-15(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04</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왜 성경에서는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이라는 용어는 나오지만, &amp;quot;아들(성자) 하나님&amp;quot;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가? 오늘 이 설교를 처음 듣는 사람은 아마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성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어떤 기준을 삼으면 어디선가 그리고 언젠가 펑크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대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이신가?&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ETFUdSo1T74&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바른 종교개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의 신앙부터 제대로 되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과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이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표출한 분인지, 그것이&amp;nbsp;아니라면 믿음의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교리대로 믿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는 가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분이든, 믿음의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교리든,&amp;nbsp;우리의 믿음은 성경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것은 결국 사탄마귀의 기만의 포섭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우리의 신앙의 대상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겠는데, 그중에서도&amp;nbsp;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보통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amp;quot;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amp;quot; 혹은 &amp;quot;아들 하나님(성자 하나님)&amp;quot;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앙이 가진 한계는 대체 무엇이며, 우리가 성경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자.&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분이 누군지(person)를 믿는 것이며, 그분이 무슨 일(work)을 하셨는지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그분이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그분이 인류의 모든 죄들을 속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amp;nbsp;정작 죄가 없었기에 3일만에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amp;nbsp;제자들에게 40일동안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맞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분에&amp;nbsp;대해&amp;nbsp;어떤 분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마16:16). 그리고 이것도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이야말로&amp;nbsp;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기로 약속된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 뿐만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amp;nbsp;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백하는 신앙고백은 결국 그분을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으로 믿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66권을 다 들춰보더라도, 거기에 &amp;quot;아들 하나님(성자 하나님)&amp;quot;이라는 고백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누군가 만들어낸 교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고 만들어내었겠지만 성경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적용하면 안 된다. 이것을 가지고 신앙여부를 판단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어 중에 &amp;quot;삼위일체&amp;quot;라는 용어나&amp;nbsp;&amp;quot;성자 하나님&amp;quot;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단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데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 의미가&amp;nbsp;무엇인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분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예수님을 알되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분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것만 알고 지내는는 것이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아들(성자) 하나님이시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시다. 넷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예수님의 피이지 하나님의 피는&amp;nbsp;아니다. 다섯째, 천국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 여섯째,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중에서 두번째이신 아들 하나님이시다. 일곱째, 예수님은 세 분 하나님 중에서 한 분이시다. 여덟째, 성부 하나님은 천국에서 가만히 있고 아들 하나님이 오셔서 희생당하셨다. 아홉째,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성부와 같다. 이 모든 내용들은 사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 알아서는 예수님을 절반 밖에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아닌 예수님의 모습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단세력에게 쉽게 농락당할 수 있다. 이것을 모르면 귀신들을&amp;nbsp;대항할 때 주춤거리게 된다. 이것을 모르면 사실 영생을 찾아가기가 어렵다. 왜 그런가?&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서사라목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소개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최근 들어서 기독교계에서 뜨는 분이 한 분이 있다. 그분은 LA 주님의사랑교회 담임목사인&amp;nbsp;서사라목사다. 이분은 사실 2014년도에 대한민국이&amp;nbsp;전쟁난다고 홍혜선전도사와 함께 말했던 분이다. 하지만 나중은 그것은 경고를 전달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벌써 6년이 지난 지금 이분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은 분이 되어있다. 특히 그분이 말한 간증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분에게&amp;nbsp;특이한 점은 박소리목사처럼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직접 물어보고 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amp;nbsp;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보고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amp;nbsp;말하는 천국의 모습은 성경과 상당히 다르며, 그분이&amp;nbsp;만나서 들었다는 이야기들 중에는&amp;nbsp;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래도 우리는 서사라목사가 예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말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수준을 뛰어넘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작년에 &amp;quot;요한계시록의 핵심&amp;quot;이라는 책을 펴냈다.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며, 요한계시록 1:8에 말씀하고 있는 &amp;quot;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amp;quot;가&amp;nbsp;예수님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실 &amp;quot;주 하나님&amp;quot;에 대한 소개인데, 이것을 예수님에게 직접 적용하고 있다. 과연 이분이 말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사실일까? 그녀는 2015년 4월 27일에, 천년왕국 후에 펼쳐진 백보좌 심판에 관해&amp;nbsp;주님께&amp;nbsp;묻는다. &amp;quot;백보좌에 앉아계신 분은 누구신가요?&amp;quot;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amp;quot;내로라&amp;quot;. &amp;quot;주님, 그러면&amp;nbsp;성부 하나님은요?&amp;quot; 그러자 예수께서는 또다시 &amp;quot;내가 그로라&amp;quot;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amp;nbsp;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amp;quot;우리가 지금까지&amp;nbsp;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각각 따로 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amp;quot;라고 말이다.&amp;nbsp;과연 이분의 진술은 사실인가 아니면 거짓일까?&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amp;quot;그리스도&amp;quot;이자,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로&amp;nbsp;믿고 있다. 좀 더 안다는 분은 그분을 &amp;quot;성자 하나님(아들 하나님)&amp;quot;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amp;nbsp;&amp;quot;하나님 아버지&amp;quot; 내지는 &amp;quot;아버지 하나님&amp;quot;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는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이라는 용어는 나오지만,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자는 베드로였다(마16:16). 그러나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오셔서 &amp;quot;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amp;quot;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람이 공간의 제약없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제자들도 처음에는 자기들의 눈을 의심했지만 보고도 믿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도마도&amp;nbsp;현현하신 주님을 보고는 &amp;quot;나의 주 나의 하나님&amp;quot;이라고 고백했다(요20:28). 그분이 단지 하나님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그분은 원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이제 그분이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신앙고백(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의 신앙고백(도마의 신앙고백)으로 2개가 된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들이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상태로 계시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amp;nbsp;어떻게 알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누군가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려면, 그는 다음과 같이 4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 자존성. 둘째, 전지전능성. 셋째, 무소부재성. 넷째, 영원불변성이 그것이다. 이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그는 신(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amp;nbsp;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도 하나님이셨는가? 우리는 놀랍게도 그분이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하나님이셨음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가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그분은 육신을 갖고 있을 때에도 자신은 이 땅에 오기 전에 자존하는 하나님이셨다&lt;/strong&gt;고 언급하셨다(요8:24,28,58). 그러나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으로서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다.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들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해도 헬라어에 능숙하지 못한 자는 예수께서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lt;strong&gt;둘째, 그분은 육신 안에 있을 때에도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셨다&lt;/strong&gt;. 예수께서 비록 육체를 갖고 계셨지만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었고 못 하실 일이 없으셨다. 그렇다. 그분은 사람의 과거를 아셨고 미래를 아셨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고&amp;nbsp;주님께서&amp;nbsp;말씀하시자 그는 예수님에게&amp;nbsp;&amp;quot;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amp;quot;고 고백했다(요1:49).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도 &amp;quot;네가&amp;nbsp;오늘밤 닭울기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amp;quot;고 예고하셨는데 진짜 그대로 되었다. 그분은 미래의 일도 아셨던&amp;nbsp;것이다. 또한 그분은 모든 것에도 능하셨다.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잔잔케 하셨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게하셨다. 또한&amp;nbsp;나면서 소경된 자와 문둥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예수님 이외에 지금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된&amp;nbsp;나사로도 무덤에서 걸어나오게 하셨다. 그렇다.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에도 전지전능하신 분이셨던 것이다. &lt;strong&gt;셋째,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셨다&lt;/strong&gt;. 그렇지만 육체에&amp;nbsp;계실 때에 무소부재성은 조금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amp;nbsp;제자들이 위험에 처하자 주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 가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분의 영은 매우 자유로웠다. 그러므로 &amp;quot;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든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amp;quot;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후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께서는&amp;nbsp;제자들에게 &amp;quot;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amp;quot;이라고 약속하셨다(마28:20).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lt;strong&gt;넷째, 그분은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lt;/strong&gt;.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함이 없으신 분히다. 그분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일정하시고 변하지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히13:8).&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사실 2가지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사실이 사실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희미하게 알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는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첫째 우리가 희미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분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라는 사실&lt;/strong&gt;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는 성부가 보내신 분이라고만 알고 있다(요일4:14).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만 말하지 않는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임마누엘 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라고도 소개하기 때문이다(마1:23). 다시 말해, 원래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도 오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9:6, 딤전3:16). 그래서 예수께서는 &amp;quot;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으로 들어왔고,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를 향하여 간다&amp;quot;고 하셨다(요8:42,16:28). 그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기 전에도 이미 선재하고 계셨던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다고도&amp;nbsp;말씀하셨다(요8:24,28,58).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내서 온 것도 맞는 말이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온 것도 맞다는 뜻이다. 그래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진술이 계속해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결코 예수님에게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고 있고, 아들 하나님도 있어서 하나님이 두 분처럼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오직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이라는 용어만 사용할 뿐, 아들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amp;nbsp; 또 하나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모르는 것이 한 가지&amp;nbsp;있다&lt;/strong&gt;. 그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계3:21). 대부분은 다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만 알고 있다(막16:19). 이 말은&amp;nbsp;그분이 천국에 가서도 아들로서의 사역을 계속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amp;nbsp;지금도 천국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자로서 사역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보좌에도 동시에 앉아계신다(계3:21, 22:1,3).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예수님을&amp;nbsp;주 하나님이시요(계1:8), 보좌에 앉으신 이(계21:5~6)라고 소개한다.&amp;nbsp;그분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예수님은 자기자신은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오직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 자기자신에 대해&amp;nbsp;소개하는 말을 요한계시록에서&amp;nbsp;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분이 &amp;quot;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amp;quot;이라는 것이다(계22:13). 이것은 사실 충격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amp;quot;알파와 오메가&amp;quot;는 주 하나님의 자기선언이기 때문이요, &amp;quot;시작과 끝&amp;quot;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자기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amp;nbsp;&amp;quot;처음과 마지막&amp;quot;은 구약시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선언이었기 때문이다(사41:4,44:6,48:12).&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실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 누군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책은 요한계시록 뿐이다. 예수께서는 사도요한이 쓴&amp;nbsp;계시록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소개하신다. 그러한 것은 특히&amp;nbsp;하나님과 예수님의 자기선언에 나온다. &lt;strong&gt;첫째, 계1:8에 의하면, 주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소개할 때에 &amp;quot;나는 알파와 오메가&amp;quot;&lt;/strong&gt;라고 하셨다. &lt;strong&gt;둘째, 계1:17에서는, 인자같은 이(부활승천하신 예수님)가&amp;nbsp;당신자신을&amp;nbsp;&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lt;/strong&gt;이라고 하셨다(계1:17). &lt;strong&gt;셋째, 계21:6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하나님)께서 이번에는 &amp;quot;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다&amp;quot;&lt;/strong&gt;고 하셨다. 그리고 &lt;strong&gt;넷째, 계22:13에 따르면, 이제 예수께서 직접 자신을 가리켜 &amp;quot;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amp;quot;&lt;/strong&gt;이라고 하셨다. 결국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바로&amp;nbsp;이 4번의&amp;nbsp;선언(7개의 선언문)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다. 즉 예수님은 주 하나님 곧 한 분 하나님이라는&amp;nbsp;것이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자신을 &amp;quot;여호와&amp;quot;라고 계시하셨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 분 하나님께서 이번에는&amp;nbsp;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때에 한 분 하나님은&amp;nbsp;자신을 &amp;quot;예수&amp;quot;라고 소개하셨다. 그러므로&amp;nbsp;여호와나 예수님이나 다&amp;nbsp;한 분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 내지는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구약으로 치자면 당신은 여호와와 같은 존재요, 나는 원래 &amp;quot;알파와 오메가이며, 시작과 마침&amp;quot;이이자, 보좌에 앉으신 이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당신 자신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일러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지만 동시에 존재가 가능하신 분이시다. 구약시대만해도 그분은 자신을&amp;nbsp;홀로 한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이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다. 그런데 홀로 한 분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이 때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셨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amp;nbsp;홀로 한 분이셨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amp;nbsp;보냄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아들 혹은 아들이셨으며,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고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시는 순간, 하나님은&amp;nbsp;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하신 것이다. 그렇지만&amp;nbsp;그분이 천상에 오르신 이후, 한 분이신 하나님은 두 분으로 존재하실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수행할 직책이 남아있으셔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면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아들의 피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피라고 할 수 있는&amp;nbsp;것이다(행20:28). 그러나 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분은 단지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로만 알아서는 아니 되며,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으로 알아서는 아니 되는가? 그것은 그분을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로만 알아서는 육체를 입기 전의 그분의 신분과 육체를 벗은 후의 그분의 신분 곧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요, 그분을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으로서 알아서 안&amp;nbsp;되는 이유는 그렇게 알게 되면, 하나님을 두 분으로 잘못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이실 뿐만 아니라,&amp;nbsp;그분은 하나님 곧 한 분이신 주 하나님이시다(사9:6). 그분은 한 분 하나님으로서 &amp;quot;알파와 오메가&amp;quot;이시며, &amp;quot;시작과 마침&amp;quot;이시다(계22:13). 그리고 그분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하신 분이시다(계1:8). 그분은 우리 인류의 속죄를 위해 아들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지 원래는 한 분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계실 분이시다. 우리를 위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우리 주 하나님 곧 예수님께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amp;nbsp;올려드리자!!!&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사9:6 이는&lt;strong&gt; 한 아기&lt;/strong&gt;가 우리에게 났고 &lt;strong&gt;한 아들&lt;/strong&gt;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lt;strong&gt;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lt;/strong&gt;,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lt;strong&gt;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strong&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마1:23 보라 &lt;strong&gt;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lt;/strong&gt;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lt;strong&gt;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lt;/strong&gt; 함이라&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인자같은 이)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lt;strong&g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lt;/strong&gt;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22:13 &lt;strong&gt;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lt;/strong&gt;이라&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quot;나눔고딕, NanumGothic, Malgun Gothic, sans-serif&quot;&gt;2020년 11월 15일(주일)&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나눔고딕, NanumGothic, Malgun Gothic, 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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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04#comment</comments>			<pubDate>Sun, 15 Nov 2020 20:05: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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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2) 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요17:3)_2020-11-08(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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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종교개혁은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의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내가 어디선가 듣고 배웠던 하나님인가? 다들 자기 생각으로는 성경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메시지를 듣고 나면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말은 성경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삼위일체라는 말은 인간이 회의를 통해 만들어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왜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 분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이것을 읽는 자는 놀라운 영적인 진보를 이를 것이며, 이단을 똑바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anP803cUDIo&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amp;nbsp; 지난 주일은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래서 참된 종교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종교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성령의 진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말은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리와 신학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연 교회에서 외치는 메시지 가운데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얼마나 될까? 이것을 조사해보았더니, 큰 주제만 해도 적어도 10가지 이상, 그리고 작은 주제만 해도 10가지 이상이나&amp;nbsp;된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하나씩 하나씩 주제별로 성경에 나오는&amp;nbsp;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주제별로 다루는 메시지들 중에서 첫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은 과연 한 분 하나님인가 아니면 삼위일체 하나님인가를 다뤄보고자 한다. 새로운 영적인 눈이 열려 교단신학이나 교리에서 벗어나 성경의 진리로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되기를 바란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오늘날 교회에서 회복되어야 할 진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amp;nbsp; 오늘날 교회에서 회복되어야 할 진리는 대체 얼마나 될까? 사실 이것을 주제별로 구분해 보니, 교회론을 제외하고는 사실 전 분야에&amp;nbsp;문제를 가지고&amp;nbsp;있었다. 그래서 큰 주제별로 나눠보았더니 적어도 10가지 이상은 되었다. 그리고 작은 소주제들도 10가지 이상 되었다. 앞으로 이 주제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겠지만 그것을 우선 제목으로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amp;nbsp; 첫째, 신론에서는 &amp;quot;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amp;quot;를 다룰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론에서는 &amp;quot;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amp;quot;를 다룰&amp;nbsp;것이다. 그리고 셋째, 성령론에서는 &amp;quot;성령의 제3의 하나님인가 예수님의 또다른 표현인가?&amp;quot;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 구원론에 관한 말씀&amp;nbsp;3가지 정도의 주제들이&amp;nbsp;있다. 첫째는 구원의 필수요소는 믿음인가 아니면 믿음과 회개인가? 둘째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셋째는 구원에 관한 개인2중예정론은 과연 진짜인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크게 다섯째로, 다소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는 종말론이 있다. 첫째는 천국은 상태인가 장소인가?&amp;nbsp;둘째는 베리칩이 짐승의 표 곧 666인가?&amp;nbsp;셋째는 천년왕국은 정말 지상에서 펼쳐질 것인가? 넷째는 주님은 환난전에 오시는가 환난후에 오시는가? 여섯째, 이제는 여러가지 소주제별로 나눠보았다. 첫째는 사탄과 천사의 타락 및 쫓겨남의 시기는 언제였는가? 둘째는 인간의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무지의 원인은 무엇인가? 셋째는 안식일 규정 등 율법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가? 넷째는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도 하나님이 받으실까? 다섯째는 방언과 예언과 방언통역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여섯째는 성도의 부활과 휴거의 시기는 언제인가? 일곱째는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은 성령운동인가 가짜성령운동인가? 여덟째는 십일조는 지금 이 시대에서 드려야 하는가? 아홉째는 기도응답은 어떻게 오는가? 열째는 치유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열한째는 귀신은 어떻게 해야 쫓아낼 수 있는가? 등등이 있다. 오늘은 이것들 중에서 신론에 관한 부분으로 &amp;quot;하나님은 과연 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amp;quot;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에는&amp;nbsp;적어도 2가지 방법이 있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을 체험함으로&amp;nbsp;아는 방법이 있다&lt;/strong&gt;. 이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amp;nbsp;내 삶과 문제를 아뢰어 그분이 내 삶 속에 개입하여서 역사하시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lt;strong&gt;둘째, 듣고 배워서 아는 방법도 있다&lt;/strong&gt;. 설교를 들어보고 성경을 읽고 공부해서 하나님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둘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체험해서 아는 방법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확실한&amp;nbsp;방법이기는 하나, 귀신들이 장난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하나님으로 둔갑하여 기적과 환상을 보여줌으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착각하게 할&amp;nbsp;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amp;nbsp;높은 산에 불러내어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던 마귀가 여전히 성도들을 가짜로 미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험으로 주님을 알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던 1,000명 이상의 간증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적과 환상은 사탄이 보여줄 수는 있어도,&amp;nbsp;성경책은 사탄이라도 변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amp;nbsp;성경은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성경만 공부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 늘 남의 이야기만 듣고 배우는 것일 뿐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도들이 듣고 배운 것은 과연 성경말씀이었을까?&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그동안 성도들이 교회나 유튜브 같은 방송매체에서 들었던 설교나 또는 교회에서 행하는 성경공부에 참여할 때에&amp;nbsp;배운 것들이 과연 다 성경말씀이었을까?&amp;nbsp;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선 염두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질문했을 때, 좀 배웠다고 하는 분은 &amp;quot;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amp;quot;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amp;quot;삼위일체 하나님&amp;quot;이라는 말은&amp;nbsp;성경에&amp;nbsp;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군지를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듣고 배웠던 말씀을&amp;nbsp;성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교리와 교단신학이나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캐나다 개혁교회가 사용하는 신앙고백은 1,561년 네덜란드에서 나온 &amp;quot;벨직신앙고백&amp;quot;이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amp;nbsp;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amp;quot;하나님은 본질은 하나이지만 위격적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있다. 그런데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이와같이 성령도 성부와 성자가 아니다&amp;quot;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는 과연 성경적인가? 결론은 &amp;quot;아니다&amp;quot;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지만 각 위가 구별되시는 분이신데, 벨직신앙고백에 나온대로&amp;nbsp;정의하다보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님으로서는 같을 뿐 서로 다른 존재로 보이기&amp;nbsp;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벨직신앙고백의 삼위일체.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67012/406/067/9026200890c04c3e10b854135b7daeb8.jpg&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amp;quot;그분은 창조의 하나님이요 구속의 하나님이십니다.&amp;quot; 물론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amp;quot;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도 되십니다.&amp;quot;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것이요, 그분의 속성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정의다. 이런 정의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다만&amp;nbsp;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내용은 하나님의 사역과 속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본질이 어떠한가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분은 본질적으로&amp;nbsp;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로 말할 것이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lt;/strong&gt;. 그렇다면 어느것 맞다고 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본다면, 둘 다 맞는 표현이다. 다만 두번째 정의는 성경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에 이것을 적용할 때에는 조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계속해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하나님은 한 분인가 아니면 세 분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그것은 당연히 한 분이시다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에&amp;nbsp;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했는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셨으며,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도 그렇게 말했다.&amp;nbsp;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는 둘째로&amp;nbsp;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그렇게 소개하셨으며, 신약의 믿음의 선배들도&amp;nbsp;그렇게 말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이 누군지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살펴보자&lt;/strong&gt;. 사46:9에 의하면, &amp;quot;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amp;quot;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43:10~11에 보면, &amp;quot;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amp;quot;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데, 그럼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호와가 예수님이시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저 위대한 신학자 칼빈도 기독교강요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곧 예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지, 예수님을 두번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든지, 아니면 아버지도 하나님이고 아들도 하나님인데 아버지는&amp;nbsp;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lt;strong&gt;그럼,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은 어떻게 고백했을까?&lt;/strong&gt; 구약의 가장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amp;quot;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quot;(신4:35), &amp;quot;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amp;quot;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유다의 히스기야왕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amp;quot;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지으셨나이다(왕상19:5)&amp;quot;라고 말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자신도 그리고 구약의 믿음의 선지자들도 다 하나같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언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교부들의 신앙과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학자들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들 말한다. 만약 그렇게 믿지 않으면 이단이 된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겠다. &amp;quot;구약의 어떤 성도가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알고 믿었는가?&amp;quot;라고 말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이&amp;nbsp;한 분임을 믿었고 오실 메시야를 믿고 회개하여&amp;nbsp;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정의할 때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맞는 정의라고 할 수 있지만, 구약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그렇다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떠한 하나님을 믿었고 또한 소개했던 것인가?&lt;/strong&gt; 먼저,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소개할 때에는 &amp;quot;유일한 하나님&amp;quot;이라고 소개하셨다(요17:3). 그리고 사도바울이나 야고보장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서술하였다. 즉 사도바울도 역시&amp;nbsp;&amp;quot;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8:4)&amp;quot;라고 했으며, &amp;quot;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갈3:20)&amp;quot; 그리고&amp;nbsp;&amp;quot;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6)&amp;quot;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장로도 &amp;quot;하나님은 한 분이다(약2:19)&amp;quot;고 고백했음을 알&amp;nbsp;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그리스도로 오셨던 예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amp;nbsp;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어느날 이스라엘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50가지 이상 약속된 메시야가 나타난 것이다. 그분을 살펴보니,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셨다. 바람과 파도를 말로 잔잔케 하셨고, 죽은지 4일된 자도 살려내셨으며,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자들도 온전케 하셨다. 그리고 본인이 죽었는데&amp;nbsp;스스로 3일만에 되살아나셨고 제자들에게 12번 이상을 나타내 보이셨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들도 하셨다. &amp;quot;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amp;quot;, &amp;quot;만일 내가 그(나는~이다)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죄 가운데 죽으리라(요8:24)&amp;quot; &amp;quot;너희는 율법에서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amp;quot; 등등은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부활후에 제자들은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분이 무소부재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마가다락방에서 당신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로 가시면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당신 대신에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분이 대신&amp;nbsp;제자들과 함께 하게 할 것이며, 또한 그분이 오시면 &amp;quot;그분은 내가 누군지를 알게 할 것이다&amp;quot;고 하셨고, 그분이 오시면 &amp;quot;내가 했던&amp;nbsp;말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amp;quot;고도 하셨다.&amp;nbsp;그러자&amp;nbsp;결국 교회의 성도들은&amp;nbsp;성령님도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amp;nbsp;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Arius, 250?~336)가 주후 319년,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골1:15에 나오는 말씀 곧 &amp;quot;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amp;quot;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첫번째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예수님은 아니 계신 적이 있었으며,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본질이 아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놓고 니케아종교회의(A.D.325년)가 열렸고 그를 이단으로 파문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신조가 니케아신앙고백(A.D.325년)인데, 이 신조는 예수님을 &amp;quot;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시다&amp;quot;라고 정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콘스탄티노플 회의(A.D.381년)를&amp;nbsp;통하여 성령님도 하나님이다고 정의하게 된다. 그리하여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신앙이 정립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아리우스를 파문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가 신앙고백을 만들어 냄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만들어낸 신앙고백서(A.D.420~450)에 이런 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amp;quot;누구든지 구원을 받기 원하는 자는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이 신앙을 완전무결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없이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amp;quot;. 이 선언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이 선언 때문에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아니하면 그때부터는 그런 자는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영원한 멸망에 처하는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약의 어떤 성도가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경륜적으로 아들로도 나타나시고 다시 성령으로 오신 이후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을 소급 적용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하면 그를 마치 이단인 것처럼 여기고 정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하는 고백을 생략한 채&amp;nbsp;삼위일체 하나님만을 강조하면 어떤 오류가 빠질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단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잘 설명하려고 해서 만들어낸 신앙고백(신조) 때문에&amp;nbsp;훗날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그것은&amp;nbsp;성경에 나와있는&amp;nbsp;하나님을 아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성육신과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이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만을 정통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구약시대에 하나님도&amp;nbsp;이미 삼위일체&amp;nbsp;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또한 활동하고 있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lt;/strong&gt;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벨직신앙고백서(1561년)에&amp;nbsp;보면, 구약시대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활동하셨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창조사역 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나온다는 것이다. &amp;quot;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가]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amp;quot;고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소유격 인칭대명사 &amp;quot;우리&amp;quot;가 하나님을&amp;nbsp;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상의하는듯 보이는 &amp;quot;우리&amp;quot;라는 의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상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던 천사들과 상의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거는 구약성경에서 여러군데 계속해서 나온다. 그래서 전총신대 구약학교수였던 김정우박사는 창1:26에 나오는 &amp;quot;우리&amp;quot;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함께 한 천상회의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자신의 논문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인터넷을 검색해보라). 만약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회의를 하여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말씀들을 파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amp;quot;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amp;quot;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amp;quot; 그렇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나 인간을 지으실 때 홀로,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불리던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협의하지 않은 것이다. &lt;strong&gt;그럼, 그분은 어떻게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는가?&lt;/strong&gt; 구약성경을 통틀어 살펴보면, 첫째로&amp;nbsp;그분은 당신의 지혜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잠3:19). 그리고&amp;nbsp;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시33:6). 그러므로&amp;nbsp;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분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하셨다고&amp;nbsp;하는 것을 두고, 신약시대에&amp;nbsp;사도요한은 만물이 말씀으로 지은 바 되었으니 그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언급하게 된 것이다(요1:3). 고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확립된 삼위일체 하나님(해석)을 정통으로 알고 그것이 아니면 이단이라는 도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이것은 오히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amp;nbsp;잔뜩&amp;nbsp;부풀게 했을 뿐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amp;nbsp;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고 예수께서는 그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거나 혹은 서 계시다고 정의함으로서, 마치 한 분 하나님을 두 분으로 착각하게&amp;nbsp;만들고 있다는 것이다&lt;/strong&gt;. 그렇다면, &lt;strong&gt;예수께서 부활승천이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lt;/strong&gt;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요 실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다른 보좌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맡은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마귀를 이기시고 승리하셔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이다. 왜냐하면 &amp;quot;오른편&amp;quot;은 성경에서&amp;nbsp;힘과 권세와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lt;strong&gt;그럼,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lt;/strong&gt; 그것은 그분이 천국에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어떤 일을 수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대제사장으로서, 혹은 중보자로서 사역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이다. 스데반이 죽어갈 때에도 예수께서는 보좌 우편에 서셨다. 그분은 그때에&amp;nbsp;중보자로서, 스데반을&amp;nbsp;격려하고 그가 순교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셨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라. 예수께서는 부활승천 후에 아버지의 보좌 곧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3;21).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하나님의 보좌는 이제 &amp;quot;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amp;quot;가 되었다(계22:1,3).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천국에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면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보는 것이다. 그분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22:13)&amp;quot;.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를&amp;nbsp;보면, 여호와께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amp;quot; 그러므로 저 위대한 신학자 칼빈도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라고 그의 책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땅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일하시고 있는&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셋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천국에서 그분은 한 분이신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고,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 것을 두고(마3:16),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위격은 다른 세 분이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삼신론적인 생각을 갖게 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lt;/strong&gt;.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위격이 셋이라는 표현을 여기에 적용하면 누구나 &amp;quot;하나님은 셋 같은데 그래도 한 분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로구나&amp;quot;하고&amp;nbsp;생각할&amp;nbsp;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이&amp;nbsp;설명하면 간단하게 정리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동시에 셋으로 나타나셨다고 말이다.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동시에 나타날 수가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매주일 오전11시에 모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 동시에 나타나실 수가 있으신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도&amp;nbsp;동시에 존재하고 나타사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 동시존재를 생각하면 한 분이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삼위일체로 설명하다보면, 하나님은 셋인데 굳이 한 분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단이 되니까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amp;nbsp;사도들은 한 분이지만 삼위일체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실 때에 &amp;quot;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amp;quot;고 명령하셨지만, 사도들이 나가서 세례를 줄 때에는 전부 다 &amp;quot;예수의 이름으로&amp;quot;만 세례를 주었다.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성도 3천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세례주었고(행2:38), 사마리아에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으며(행8:16),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가서도 &amp;quot;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amp;quot; 세례를 주었다(행10:48).&amp;nbsp;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에베소 성도들에게 세례를 줄 때에 &amp;quot;주 예수의 이름으로&amp;quot; 세례를 주었다(행19:5). 그렇다. 그들은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다른 체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알았고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지만 삼위일체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다는 말은 성경의 진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amp;nbsp;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는 말은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적용할 때에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홀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세 가지 위격으로 나타나셔서 일을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통교리로 알려져 있는 &amp;quot;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amp;quot;는 말로 앞세우고 한 분이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2가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amp;nbsp;정말 이단이 될 수 있다&lt;/strong&gt;. 왜냐하면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만 강조하다보면, 여호와증인 이단과 유대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증인들은 여호와만 하나님이요, 예수님은 미가엘천사장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만 하나님이요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천국가기&amp;nbsp;힘들다. 천국에 가면&amp;nbsp;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을 삼위일체식으로 강조하다보면, 하나님의 교회와 신천지와 같은 이단과 천주교가 나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amp;nbsp;한 분인 줄&amp;nbsp;모르고 둘, 셋이라고 하니,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아들 하나님이 있다면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다들 수긍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 흉내낸다는 말인가? 그녀는 과연&amp;nbsp;무소부재한 존재인가? 전지전능한가?&amp;nbsp;아니면 동시존재가 가능한가? 이적 하나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머니 하나님이라&amp;nbsp;불려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천주교는 어떠한가? 천주교는 A.D.451년 칼케톤회의에서 마리아를 &amp;quot;하나님의 어머니&amp;quot;라고 정의해버렸다. 이 얼마나 불경스런 일인가? 마리아는 인간&amp;nbsp;예수를 낳은 것이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태만 빌려주었을 뿐이다. 선재하신 그리스도이자&amp;nbsp;선재하신 말씀이 육신을 입었는데, 천주교는 이 신조 때문에 마리아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다.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알아야 하고, 또한 삼위일체 방식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그리고 둘째는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lt;/strong&gt;.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영생이란 유일하신(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아는 것이라고 했다(요17:3).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기 때문이다(요1;18). 아버지의 생각 속에 계셨던 것이다. 그것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미리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그분은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활동하셨던 아들이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사9:6, 딤전3:16).&amp;nbsp;그분은&amp;nbsp;동시존재하신 하나님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0.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우리는 교리를 믿고 따르기보다는 먼저&amp;nbsp;성경말씀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삼위일체라고&amp;nbsp;하는 것은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 나온 상황신학의 결과물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말씀은&amp;nbsp;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사람을 이단이니&amp;nbsp;삼단이니 정죄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을 어겨서 말하거나 잘못 해석할 때에 비로소&amp;nbsp;이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amp;quot;임마누엘&amp;quot;이라고 했다(마1:23). 그 뜻은 &amp;quot;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amp;quot;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동시존재하시며 사역하고 계시는 것이다. 잘 알고 있게씨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들을 다시 한 번 상고해 보라.&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사9:6 이는 &lt;u&gt;&lt;strong&gt;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lt;/strong&gt;&lt;/u&gt;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lt;u&gt;&lt;strong&gt;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lt;/strong&gt;&lt;/u&gt;,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lt;u&gt;&lt;strong&gt;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lt;/strong&gt;&lt;/u&gt;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lt;u&gt;&lt;strong&gt;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lt;/strong&gt;&lt;/u&gt; &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1월 08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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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reformation_truth/67406#comment</comments>			<pubDate>Sun, 08 Nov 2020 16:45: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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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른 종교개혁(01)이 시대의 참된 종교개혁의 방향은?(고후13:8~9)_2020-11-01(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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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XfylQa9MR-s&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어제(2020.10.31)는&amp;nbsp;루터의 종교개혁 50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저마다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종교개혁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개신교회의 상황을 보면, 종교개혁자들의 5가지 원리(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에서&amp;nbsp;4가지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amp;quot;오직 믿음&amp;quot;만 남은듯 하다. 믿기하면 하면 칭의도 얻고 믿기만하면&amp;nbsp;성화도 얻고, 믿기만 하면 다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 것은&amp;nbsp;종교개혁자들의 외침에는 &amp;quot;회개&amp;quot;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오직 처음부터 회개를&amp;nbsp;외치셨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9마4;17), 그리고 땅끝까지 회개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가?(눅24:47). 그렇다.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에는&amp;nbsp;회개가 빠져 있었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종교개혁은 직제를 개편하는 것이라고&amp;nbsp;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교회자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는 믿음에 행함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아닌듯 하다. 행함은 심판의 기준이요, 구원의 기준은 믿음과 회개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amp;nbsp;어떤 종교개혁을 이뤄가야 하는가? 그래서&amp;nbsp;오늘은 바울의 전파했던 복음전파의 원칙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종교개혁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2.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종교개혁의 모토는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어떤 분들은 참다운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amp;quot;행함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amp;quot;는 것을 외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동조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amp;nbsp;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행함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원에서 행함을 강조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결론적으로 행함을 강조하다보면, 이 세상에서 구원얻을 사람은 한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십계명을 비롯한&amp;nbsp;613가지의 율법을 다 지키고 살 사람은&amp;nbsp;아무도 없기&amp;nbsp;때문이다. 또한 행함을 강조하다보면, 믿어지지 않는 부분을 행함으로 메구려고 시도할 것이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완해보려 하는 것이다. 천국이 믿겨지지 않으니&amp;nbsp;행함으로 떼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amp;nbsp;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있고 자신은 잘 하고 있다면서&amp;nbsp;자기의 의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함을 심판의 기준으로 생각하야지, 구원의 조건으로 보면 안 된다. 구원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직&amp;nbsp;믿음과 회개로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종교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amp;quot;성경으로 돌아가는 것&amp;quot;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자고&amp;nbsp;외치는 분들 중에는 안타깝게도&amp;nbsp;자기 교리와 주장에 갇혀 있는 모습을 많이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종교개혁의 구호는 다음과 같이 것이라로 정의하고 싶다. 그것은 &amp;quot;오직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자!&amp;quot;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성경말씀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것에서 어떤 것이라도&amp;nbsp;빼지도 말고 한 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교리를 성경보다 우위에 놓거나 성경의 한 쪽부분을 주장하다보면 성경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울의 복음전파의 원칙을 통해서 바른 종교개혁의 방향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3. 바울의 복음전파의 원칙은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2번째 편지를 통하여 바울의 복음전파원칙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고후13:8~9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면, &amp;quot;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amp;quot; 그랬다. 바울은 진리를 반대하여 결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오직 진리를 위하여&amp;nbsp;복음을 전파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울은 이후에도 자신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도 이러한 원칙을 당부하고 있었다. &amp;quot;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amp;quot; 복음을 전파할 때에 우리는 때로 유혹을 받는다. 어떤 위기상황을&amp;nbsp;모면해보고자 가짜를 섞어서 말씀을 전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 또한 진리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제대로 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니 된다.&amp;nbsp;또한 살펴보니 사도요한도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전파했던 교회의 성도들이 진리를 따라간다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고 했다(요삼3~4).&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4. 왜 지금의 이 시대는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라고 보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왜 지금의 시대가 종교개혁을 위한 최고의 적기라고 보는가? 사실 2017년은 종교개혁의 500주년 기념이 되는 해였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종교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기만큼 무르익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 해 들어와 초유의 사태가 찾아왔다. 전 세계애&amp;nbsp;창궐한&amp;nbsp;코로나 바이러스 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재택근무가 생활화된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영상으로 모든 것을 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하여 이제는 들고다니면서 정보를 보고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이야말로 종교개혁의 적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시대야말로&amp;nbsp;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지금의 시대는 루터의 시대처럼, 이제는 누구나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정보전달매체를 통하여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위대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lt;/strong&gt;. 어떤 사람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3가지&amp;nbsp;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인쇄술의 발달로 루터의 개혁사상이 책으로&amp;nbsp;인쇄되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중세 로마카톡릭의 부패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돈을 주고 파는 면죄부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신학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로마교황이 전해주는 성경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지금의 현실로 너무나 딱 맞아떨어진다. 왜냐하면 첫째, 지금의 시기는&amp;nbsp;유튜브와 같은 정보전달매체의 발달로 인해 누구든지 검색하기만 하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신앙 정보를 거의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종교개혁이후 가장 개신교회가 부패한 채 있기 때문이다. 거짓 논문과 가짜 박사학위, 종교지도자들의 간음와 일탈행위, 대형교회의 부자세습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셋째, 예전과는 달리 일반 평신도들의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진리에 접속할 수 있고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적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amp;nbsp; 둘째, 동시에 조금만&amp;nbsp;헛눈질을 했다가는 거짓된 가르침과 잘못된 미혹의 영의 가르침에 속아넘어가기 딱 좋은 시대가&amp;nbsp;되었기 때문이다&lt;/strong&gt;. 문명의 이기의 발달은 고급정보와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에 매우 좋지만, 반대로 너무나 많은 지식정보의 홍수로 인해&amp;nbsp;옥석을 가리지 못한다면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불순물이 섞여있는인지를 좀처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게 됨으로&amp;nbsp;더욱 더 편행적인&amp;nbsp;사람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이야말로 정신 차리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amp;nbsp; 셋째, 이제는 각자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amp;nbsp;&lt;/strong&gt; 올 해 코로나 사태는&amp;nbsp;온라인예배를 일상화시켰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그동안 들어왔던 말씀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듣고 있는 말씀이 혹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중에 본인이 지옥에 떨어졌을 때에 과연&amp;nbsp;누구를 원망하겠는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amp;nbsp;심판받을 때에 &amp;quot;나는 내가 섬기는 교회와 주의 종의 말만을 믿고 따랐으니 천국주세요&amp;quot;라고 떼를 쓸 것인가? 한 교회에서 충성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설교말씀이&amp;nbsp;성경과 일치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은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각자 도생의 길을 찾아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벌써&amp;nbsp;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많이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믿는 이들 중에는&amp;nbsp;구원에서 탈락하는 이가 있어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보장되는 구원이 아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믿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지었던&amp;nbsp;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받았다는 것은 거짓된 가르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으로 보면, 어머니 하나님을 주장하는 이단의 가르침에&amp;nbsp;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경에는 &amp;quot;아들 하나님&amp;quot;이라는 용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배워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가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어디 그뿐이겠는가? 어떤 분은 신앙생활의 궁극적인&amp;nbsp;목적을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 혹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과정에 있어서 한 켠을 차지할 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영혼이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어도 무턱대고 믿을 시기가 아니라는&amp;nbsp;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믿어야만이&amp;nbsp;구원을 받을 수 있고(살후2:13), 진리만을 따라가야만이 불의의 모든 속임에서 속지 않고&amp;nbsp;멸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살후2:10). 그리고&amp;nbsp;진리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엡1:13).&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이 시대에 참된 종교개혁에서 자신이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은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그것은&amp;nbsp;오직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정에서&amp;nbsp;중간탈락하는 이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신앙개혁을 이루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듣고 진리의 말씀만을 믿으며 진리의 말씀만을 따라갈 것을&amp;nbsp;굳게 결심하는 것이다.&lt;/strong&gt;&amp;nbsp;조그마한&amp;nbsp;불순물이 섞여있는 말씀도 분별하여 걸러내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것이다. 그것을&amp;nbsp;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말씀하셨다(요17:17). 그리고&amp;nbsp;당신도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신다고 하셨으니(요8:45~47), 성경말씀을 자주 읽되, 아버지의 말씀 곧 여호와께서&amp;nbsp;직접 하신 말씀들을 듣고 또 보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amp;nbsp;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들려주신 말씀들 곧 신약의 사복음서의 말씀과 그분이 부활하셔서 들려주신 말씀인 요한계시록을 또 보고 또 듣고 또 공부해야 한다. &lt;strong&gt;둘째, 우리에게 진리자체이자 진리만을 들려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만을 따라갈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이다&lt;/strong&gt;. 진리를&amp;nbsp;말씀하신 예수님만을 나의 주님이자&amp;nbsp;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는 것이다. 진리이신 그분이 아니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요14:6). 또한&amp;nbsp;까딱 잘못했다가는 거짓말의 아버지인 마귀를 좇아갈 것이기 때문이다(요8:44). 그리고 &lt;strong&gt;셋째, 이제는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의 인도만을 따라가리라고 작정하고&amp;nbsp;또 작정하는 것이다&lt;/strong&gt;. 왜냐하면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께서는(요14:17), 오직 진리이신 예수님만이 누군지를 증언해주시고, 그분이 하신 진리의 말씀만을 생각나게 하실 분이기 때문이다(요15:26,14:26).&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믿음이란 오직 진리를 거슬러 결코 말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만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입성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거짓이 전혀 섞일 수&amp;nbsp;없는 진리의 장소이기 때문이요,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그곳에 좌정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한 자의 궤계에서 벗어나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이제 그 약속이 성취될 날이 머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를 느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영혼의 살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만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amp;nbsp;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우리에게 진리를 접할 수 있는 다른 환경도 마련해 주셨다. 온라인과 인터넷과 유튜브를 그냥 보지 말라. 하나님께서 내 영혼 천국에 들어오라고 깨우시는 새벽종소리라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들어야 할 참된 진리의 말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리해 보면, 한 15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10가지 정도 되는 것 같고, 보조적인 것으로 한 5가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새롭게 봄, 상징적으로는 보좌 우편에 계시나 실제는 보좌 위에 앉아&amp;nbsp;계시는 예수님, 제3의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자 표현이신 보혜사 성령님, 개인구원예정이 아니라&amp;nbsp;회개가 동반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잃어버릴 수도 있어&amp;nbsp;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할 구원, 상태적인 천국만이 아니라 장소적인 천국을 사모함, 베리칩 666우상으로부터 벗어남, 이단들이 계속 사용했던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아니라 비유적인 천년왕국으로의 회복, 환난후에 오실 주님을 예비함 등등이 그것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말세의 끝자락에 서 있는 만큼 오직 진리만을 따르겠노라는&amp;nbsp;각오가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은혜가 진리가 충만하기를 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0년 11월 01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바른 종교개혁(09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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