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45-2.로마서강해(65강)</title>
	<subtitle>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sub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romans2"/>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atom"/>
	<updated>2026-04-06T21:52:40+09:00</updated>
	<id>https://dongtanms.kr/romans2/atom</id>
	<generator>Rhymix</generator>
	<rights>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rights>	<entry>
		<title>[로마서강해(34)]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롬8:23~25)_2025-06-06(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591"/>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591#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591</id>
		<published>2025-09-24T20:50:38+09:00</published>
		<updated>2025-09-24T20:50:3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34)]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롬8:23~25)_2025-06-06(금) https://youtu.be/Quwn1m18FNk 1. 들어가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종말의 징조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노아와 롯의 때처럼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고 있으며, 특히 동성애와 같은 죄악들이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현실은 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로마서강해(34)]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롬8:23~25)&lt;/strong&gt;&lt;/span&gt;_2025-06-06(금)&lt;/p&gt; &lt;p&gt;https://youtu.be/Quwn1m18FNk&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uwn1m18FNk&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종말의 징조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노아와 롯의 때처럼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고 있으며, 특히 동성애와 같은 죄악들이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현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과 그곳에서 누릴 기업, 신분, 면류관, 그리고 천국 집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4절부터 39절까지 &amp;#39;영화의 단계&amp;#39;를 설명하며, 인간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우선적으로 첫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며, 둘째는 주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 것이다. 그럼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따라서 이번 메시지는 이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인 &amp;lsquo;기다림&amp;rsquo;의 의미와 방법을 로마서 8장 23-25절 말씀을 중심으로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도 어떠한 태도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야 할지 함께 나누고자 한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하나님의 상속자, 혹은 후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c3e50;&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상속자, 즉 후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말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c3e50;&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lt;/strong&gt; 한다는 것이다(롬 8:14).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고, 또한 그분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받되, 죄와 심판의 책망을 받아가면서 계속해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가능하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c3e50;&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주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겪어야&lt;/strong&gt; 한다(롬 8:17). 여기서 &amp;#39;고난&amp;#39;이라는 자신이 죄를 지어서 당하는 고난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의 고난이란 주와 복음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리다가 받게 되는 고난이다. 사실 성도가 주와 복음전파를 위한 수고를 하지 않으면 그리 고난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었기에 이제는 우리도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선순위를 주님의 나라에 두어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도 저 하늘나라에서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 8장 23절에 나온 바와 같이, &amp;quot;참고 기다려야 한다&amp;quot;는 것이다. 이는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받을 열매와 상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3절에서 &amp;quot;우리 곧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amp;quot;고 말하였다. 극러므로 이러한 기다림은 &amp;quot;간절히 기다리는 것&amp;quot; 또는 &amp;quot;학수고대하는 것&amp;quot;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소망과 인내함으로 그날 기다랴야 한다. 왜냐하면 그날 나의 지위와 신분을 밝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마지막 때에 사는 자들에게 능력 행함과 예언 중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기적과 거짓 표적이 많아져서 택하신 자들도 미혹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마 24:24). 그리고 심판의 날에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예언하며,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자들에게 &amp;quot;불법을 행하는 자들&amp;quot;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마지막 때가 되다 보면 거짓으로 능력을 행하고, 거짓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거짓으로 예언을 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당신의 12제자들과 70명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당부하셨는가? 놀랍게도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한 번도 예언을 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따라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능력을 행하는 것(귀신을 쫓는 것)과 병든 자를 고치는 치유사역은 계속해야 한다. 그것도 양신역사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예언은 늘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천년전에 이미 메시야가 오셨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낸 후,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만약 회개치도 않은 상태에서 꿈이나 환상, 예언 등을 지나치게 따라가면 사탄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날마다 회개하는 가운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도래했음을 알려주고,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4절에서 어떻게 설명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구원얻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말했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4절의 말씀을 통하여 &amp;quot;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음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amp;quot;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구원을 &amp;quot;얻었다&amp;quot;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형이지만, 아직 그 구원이 완전히 &amp;quot;완성된&amp;quot; 것이 아니했다는 것도 동시에 의미한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었으나 소망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구원의 여정은 자신이 죽지 않는한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인내하면서 장차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죽은 날에 구원을 잃어버릴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단순히 지금 내가 믿고 있다고 해서 나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난과 시련 가운데 주님을 부인할 사람도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마음을 다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가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amp;#39;소망으로&amp;#39; &amp;#39;참음으로&amp;#39;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 이 땅에서의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며,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한 치열한 영적 전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가까운 지금, 우리는 세상의 일시적인 쾌락과 안위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영적 눈을 열어 천국에서의 영원한 기업과 상급을 바라보아야 한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키고,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영들을 몰아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천국 집과 면류관, 그리고 영원한 영광을 허락해 주실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6월 06일(금)&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hr /&gt; &lt;p&gt;&lt;b&gt;[설교요약]&lt;/b&gt;&lt;/p&gt; &lt;p&gt;본 설교는 로마서 8장 23-25절을 통해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이 &amp;#39;몸의 구속&amp;#39;, 즉 부활을 &amp;#39;기다리는 것&amp;#39;임을 강조한다. 이 기다림은 &amp;#39;소망으로&amp;#39;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과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며, &amp;#39;참음으로&amp;#39;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겪는 고난과 시련을 인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는 구원이 믿음의 시작점일 뿐 최종 완성이 아니며, 이 땅에서 육체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악한 영과 싸우며, 고난을 견뎌내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지위와 상급이 결정됨을 역설한다.&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5)](최종회) 바울에게 알려졌으며 바울에 의해 전파되었던 복음은 어떤 복음이었나?(롬16:21~27)_2025-07-15(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28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28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286</id>
		<published>2025-07-15T18:39:06+09:00</published>
		<updated>2025-07-15T19:36:5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5)](최종회)바울에게 알려졌으며 바울에 의해 전파되었던 복음은 어떤 복음이었나?(롬16:21~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WXt3MafBMns 1. 들어가며: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과 그 구조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은 명확하다. 우선 그것은 자신이 깨달은 복음의 진수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고자 함이었다(롬1:16~17, 16:25~26). 당시 로마 교회는 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65)](최종회)바울에게 알려졌으며 바울에 의해 전파되었던 복음은 어떤 복음이었나?(롬16:21~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Xt3MafBMns&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Xt3MafBMn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amp;nbsp;로마서를 기록한 목적과 그 구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은 명확하다. 우선 그것은 자신이 깨달은 복음의 진수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고자 함이었다(롬1:16~17, 16:25~26). 당시 로마 교회는 사도들의 직접적인 가르침 없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이 주를 이루었기에,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논리적이고 깊이 있게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다. 더불어 장차 스페인 선교를 계획하고 있었던 바울은 로마 교회가 자신의 사역에 영적, 재정적 후원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서신을 쓴 것이다(롬1:15, 15:22~24,28).&amp;nbsp;로마서는 본래 16장 16절에서 모든 안부를 마치며 끝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펜을 놓지 않고,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덧붙혔다. 하나는 사탄의 세력을 짓밟는 &amp;lsquo;영적 전쟁&amp;rsquo;의 필연성과 승리에 관한 말씀(16:17-20)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과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안부를 전하면서 로마 교회를 축복하는 송영(16:21-27)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마지막 부분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했던 복음의 깊이와 그 영광을 다시 한 번 압축하여 보여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amp;nbsp;바울과 함께 있던 동역자들은 누구였으며, 24절의 &amp;lsquo;없음&amp;rsquo;이란 무슨 뜻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로마서 16장 21절부터 27절은 3차 전도여행 시&amp;nbsp;&lt;strong&gt;바울 곁에서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동역자들의 이름&lt;/strong&gt;이 나온다. 이들은 영적인 아들로서 디모데의 이름을 필두로 하여, 동족 유대인인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한 이 편지를 대필한 더디오가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문안 인사를 남기고 있다. 이어서 바울과 모든 고린도 교회를 섬겼던 식주인 가이오가 나오고, 고린도 성읍의 재무관이었던 에라스도와 구아도 형제가 나온다. 우리는 이러한 이름들과 활동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랑의 공동체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특히 주목할 부분은 &lt;strong&gt;24절의 &amp;lsquo;없음&amp;rsquo; 표기&lt;/strong&gt;이다. 이는 &lt;strong&gt;권위 있는 고대 대문자 사본들(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이 구절이 존재하지 않지만,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에서 &amp;ldquo;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amp;rdquo;이라는 축복의 문장이 첨가되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사실 종교개혁 이후 활발해진 원문 비평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신약성경이 시대를 거치며 필사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추가되거나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24절의 말씀은 원래 초기에 필사되었던 대문자 사본들에는 없었지만 후대의 소문자 사본이 출현할 때 추가된 본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의 편지가 24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7절로 끝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4&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h4&gt; &lt;p&gt;&amp;nbsp; 바울이 로마서 전체를 통해, 그리고 마지막 송영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핵심(롬1:1~17, 16:25~27)은 대체 무엇인가?&lt;/p&gt; &lt;p&gt;&lt;b&gt;&amp;nbsp; 첫째, 복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음이자 &amp;lsquo;예수 그리스도&amp;rsquo;에 관한 복음이라는 것이다(롬1:1, 2~4).&lt;/b&gt;&amp;nbsp;그러므로 이 복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 곧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인류의 구원계획이 들어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b&gt;&amp;nbsp; 둘째, 복음은 &amp;lsquo;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amp;rsquo;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롬1:16~17).&lt;/b&gt;&amp;nbsp;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노력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義)에 이르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러한 구원의 은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lt;/p&gt; &lt;p&gt;&lt;b&gt;&amp;nbsp; 셋째, 복음은 &amp;lsquo;만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의 계시&amp;rsquo;라는 것이다(롬16:25~26).&lt;/b&gt; 이 구원의 계획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신비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비밀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여겼지만, 바울은 이 복음이 이제 모든 민족에게 활짝 열린 것임을 선포한다. 시대적 시간들 동안 감추어졌던 이 비밀이 이제는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만방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울이 선포하게 된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b&gt;&amp;nbsp; 넷째, 복음은 &amp;lsquo;믿음의 순종&amp;rsquo;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롬1:5, 16:26).&lt;/b&gt; 바울은 복음이 단순히 지적인 동의나 믿음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라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란 반드시 &amp;lsquo;믿음의 순종(믿음에서 순종에 이르게 하는)&amp;rsquo;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졌던 믿음을 결국 회개로 인치고 순종의 행위를 통해서 증명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삶의 순종을 통해 자신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믿음과 순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복음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h4&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로마서가 증어하는 구원론의 약점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h4&gt; &lt;p&gt;&amp;nbsp;&amp;nbsp;로마서는 어떤 편지인가? 이 편지는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을 담고 있는 위대한 서신이다.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로마서를 다시 볼 때에는 이러한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성경의 가르침들까지 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원론을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에는 과연 무엇이 부족하거나 혹은 빠져있는가?&amp;nbsp;&lt;/p&gt; &lt;p&gt;&lt;b&gt;&amp;nbsp; 첫째, &amp;lsquo;중생(거듭남)&amp;rsquo;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lt;/b&gt; 로마서는 칭의(稱義)에 대해서는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새롭게 태어나는 &amp;lsquo;중생&amp;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이 부분은 사도 요한이 썼던 복음서 곧 &amp;ldquo;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amp;rdquo;고 말씀하신 요한복음의 가르침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lt;/p&gt; &lt;p&gt;&lt;b&gt;&amp;nbsp; 둘째, &amp;lsquo;회개&amp;rsquo;의 중요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lt;/b&gt;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의 필연성과 반복되는 회개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사도 요힌이 썼던 요한일서에서는 &amp;ldquo;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amp;rdquo;이라고 언급하며,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회개가 죄 용서와 성화의 필수적인 통로임을 가르치고 있다.&amp;nbsp;&lt;/p&gt; &lt;p&gt;&lt;b&gt;&amp;nbsp; 셋째, &amp;lsquo;죄 된 본성&amp;rsquo;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lt;/b&gt;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amp;ldquo;내 속에 거하는 죄(롬7:18~20)&amp;rdquo;에 대해 고뇌하지만, 그 죄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께서는&amp;nbsp; 더러운 귀신이 사람 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으나, 이것이 억지가 떠나가게 되면, 다시 들어올 때에는 그 사람을 이전보다 더욱 악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amp;nbsp; 우리는 죄 된 본성의 영적인 실체가&amp;nbsp; 바로 악한 영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amp;nbsp;&lt;/p&gt; &lt;p&gt;&lt;b&gt;&amp;nbsp; 넷째, &amp;lsquo;예수 피&amp;rsquo;의 지상에서의 효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lt;/b&gt; 로마서는 예수의 피가 사람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amp;lsquo;하늘에서의 효능&amp;rsquo;에 집중한다. 즉 로마서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피의 효능들 중에서 하늘에서의 효능으로서, 속죄의 효능과 칭의의 효능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예수의 피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보호하고(출12:13,23), 정결하게 할 뿐만 아니라(요일1:9, 고후7:1), 질병을 치유하는 실제적인 능력이 있음을 증언한다(마8:16).&lt;/p&gt; &lt;p&gt;&amp;nbsp;&lt;/p&gt; &lt;h4&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오늘날 우리가 붙들어야 하고 전해주어야 할 복음은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h4&gt; &lt;p&gt;&amp;nbsp;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전한 &lt;strong&gt;로마서의 위대한 복음을 통하여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로마서가 가진 한계도 우리는 인식해야&lt;/strong&gt; 한다. 왜나하면 로마서는 복음에 나오는 필수적인 몇몇 부분을 생략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핵심은 3가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로마서 외에 요한복음에 나오는, 생명분배를 통한 &amp;#39;중생&amp;#39;의 복음, 요한일서에 나오는, 저주를 없애기 위한 &amp;#39;반복적인 회개&amp;#39;의 복음, 그리고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증언하는 천국 복음과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통합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바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rdquo;는 &amp;#39;회개와 천국복음&amp;#39;이다&lt;/strong&gt;. 반복적인 회개를 통해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나와 내 조상들의 범죄로 인해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추방함으로 저주에서 해방받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반복적인 회개를 통해서 저주의 실체들인 귀신들과 뱀들을 추방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말로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만 가졌다고 마냥 기뻐할 것이 아니다. 속죄와 칭의는 구원의 여정에서 시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아나가서 중생을 얻어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거듭난 성도들은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는 옛사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주었다고 여기고,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광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을 인도받아야 한다.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이 올 때까지 인내로 참고 기대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상속자의 신분으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화의 단계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구원의 여정에서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칭의란 구원의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은 결코 완성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lt;/strong&gt;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도들은 어떠한가?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의 시작을 마치 구원의 완성인 것처럼 여긴다. &lt;strong&gt;그러나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마4:17, 요일1:9, 계22:14). &lt;/strong&gt;회개없이는 최종적으로 구원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lt;strong&gt;더욱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구원받은 이후에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하늘의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한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이&lt;/strong&gt;다(롬1:5, 16:26). 그래야 비로소 성도들은 썩지 않을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자 곧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구원의 여정을 힘써 달려가서, 로마서에서 마지막 축복으로 나오는 송영처럼,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세세무궁토록 돌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15일(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1_65-162127.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45c7e98de5f9ec5f7d99c660d4596765.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91f44303fcc1518487dd318b14cd82f8.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84e8af6c043318f52c96cf077e5fef5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550203b13191fd5f0b39ef9038ea190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3baded898de171e0b1818b610469677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957ea67fb21153a33ae6b904da9cc6c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ebfbea13402cdf863969e56f650f1e8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86/203/b8dbca6e257315d2cfb998830382b8b0.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4)] 이기는 자, 영적 전쟁에 대한 승리는 어떻게 성취되는가?(롬16:17~20)_2025-07-14(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29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29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296</id>
		<published>2025-07-14T23:59:03+09:00</published>
		<updated>2025-07-17T08:58:2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4)] 이기는 자, 영적 전쟁에 대한 승리는 어떻게 성취되는가?(롬16:17~20)_2025-07-14(월) https://youtu.be/PNDcjs2yv9c 1. 들어가며 로마서의 구조는 도입부(1:1~17)와 본론부(1:18~15:13)와 종결부(15:14~16:27)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종결부는 다시 로마서의 기록목적과 바울의 사역소개(15:14~21) 그리고 바울의 로마방문 계획과 기도요청(15:22~33)이 앞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뒷부...</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64)] 이기는 자, 영적 전쟁에 대한 승리는 어떻게 성취되는가?(롬16:17~20)&lt;/strong&gt;&lt;/span&gt;_2025-07-14(월)&lt;/p&gt; &lt;p&gt;https://youtu.be/PNDcjs2yv9c&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NDcjs2yv9c&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로마서의 구조는 도입부(1:1~17)와 본론부(1:18~15:13)와 종결부(15:14~16:27)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종결부는 다시 로마서의 기록목적과 바울의 사역소개(15:14~21) 그리고 바울의 로마방문 계획과 기도요청(15:22~33)이 앞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다시 로마서를 전달하는 뵈뵈집사에 대한 천거(16:1~2), 로마교회 성도 26명에 대한 인삿말(16:3~16) 그리고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계(16:17~20) 및 바울의 동역자들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을 인사하고 송영으로서 로마교회를 축복함(16:21~27)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로마서 16장 17-20절의 말씀은 단순히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계만을 다루고 있지 않는다. 이 부분은 성도들의 영적 전쟁의 실체와 그 승리 비결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바울은 로마서를 16:16절로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로마서를 끝내지 않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2가지를 말씀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이전에 로마서에 쓰지 못했지만 장차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비결과 그 결과를 그리고 성도들을 향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이나마 언급하고 시도한다. 고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최종적인 신분이 곧 영적 전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은 왜 필요하며 그 대상은 누구인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하며 두 가지 중요한 주제, 즉 영적 전쟁(16:17~20)과 하나님의 구원 경륜(16:21~27)이라는 주제를 추가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로마서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훗날 에베소서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지게 되는 주제들이다. 왜냐하면 로마서보다 약 5년 뒤에 기록한 에베소서를 통하여 바울은 &amp;#39;하나님의 구원경륜&amp;#39;(엡1장과 3장)과 &amp;#39;영적 전쟁&amp;#39;(엡6장)을 다시 심도있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이 롬16:17~20에서 언급한 영적 전쟁은 성도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많은 성도들이 이 영적 전쟁의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영적 전쟁을 어떤 이론과의 싸움이자 사람과의 싸움을 인식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옛사람과 육체,세상과의 싸움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적 전쟁은 정확히 말하면 죄의 장본인인 사탄과의 싸움이요, 더 구체적으로는 귀신들과 뱀들과의 싸움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쉽게도 영적 전쟁을 로마서 7장에서는 사람 속에 거하는 죄와의 싸움이라고 언급한다(롬7장). 그리고 에베소서 6장에 가서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정의한다(엡6:12). 즉 성도들의 싸움은 혈과 육, 즉 눈에 보이는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amp;quot;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amp;quot;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공중에 있는 악한 영들 뿐만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 곧 귀신들과 뱀들과의 싸움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그리하여 저주가운데로 끌어가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비록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 구원의 여정에 들어왔지만 진짜 힘써야 할 것은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우리를 죄의 길로 유혹하고 넘어뜨리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어서 우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죄를 짓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천국에 들어갈 사람마저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적 전쟁의 실체인 귀신들과 뱀들을 잘 알고 이것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내 속에 거하는 내면의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죄된 본성 곧 &amp;quot;사람 속에 거주하고 있는 죄(롬7:18~20)&amp;quot;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 내면에 들어있는 죄성과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고뇌를 비통한 시점으로 토로한다(롬7:21~24). 그것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싶으나 죄의 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롬7:18~20&amp;nbsp;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amp;nbsp;&lt;br /&gt; 롬7:21~24&amp;nbsp;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 속에 드러있은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서 죄를 짓게 만드는 장본인을 가리킨다. 그것은 마12:43~45에 따르면 귀신들이다. 귀신들이 사람의 육체 속에 자기들의 집을 짓고 거기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란 사람 안에 들어있는 분노, 혈기, 음란, 시기,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성품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죄된 성품들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이다.&amp;nbsp;따라서 이러한 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빨리 눈치채야 한다. 죄의 뿌리가 되는 악한 영을 대적하고 축출하는 것이 진정한 영적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내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몸 속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지백하는 것이다(요일1:7~9). 고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 우리 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보혈의 능력으로 악한 영을 녹이고 분리시키고 떼어놓음으로 인하여, 이것들을 밖으로 내보낼 때에 비로서 우리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마12:43~45&amp;nbsp;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amp;nbsp;&lt;br /&gt; 요일1:7~9&amp;nbsp;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도가 거짓 교훈을 분별하고 대적하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영적 전쟁의 시작은 무엇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은 교회 안에 뿌려놓는 거짓된 가르침들이다. 사탄은 오늘도 거짓된 교사들을 통하여 교회 안에 진리가 아닌 거짓된 가르침을 뿌리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 17~18절에서 사도 바울은 &amp;quot;너희가 배운(배웠던 바) 교훈(가르침)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벗어나고 있어라)&amp;quot;고 강력하게 권한다. 거짓된 교사들은 교묘하고 그럴듯한 말로 순진한 성도들의 마음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거짓된 교사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 즉 이기적인 욕망과 탐욕을 채우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아첨하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성도들을 분열시키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교사들을 사용하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가르침을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을 단호히 대적하고 멀리해야 한다. 만약 그런데 만약 환경이 그럴 수 없다면 거짓된 가르침에서 벗어나 오직 진리만을 추구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영적 전쟁의 최종적인 승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바울은 로마서 16장 20절을 통해 영적 전쟁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포한다. &amp;quot;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amp;quot; 여기에 나오는 &amp;#39;상하게 한다&amp;#39;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amp;#39;쉰트리보&amp;#39;인데, 이 단어의 뜻은 &amp;#39;산산히 깨뜨리다. 부숴버리다. 박살을 내다. 으스러뜨리다. 멧돌로 갈다. 빻아버리다. 분쇄하다. 짓밟다. 밟아버리다&amp;#39;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최종적인 승리는 사탄의 공격에 대한 단순히 방어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세력들 곧 귀신들과 뱀들을 완전히 짓밟고 무력화시키는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승리를 가리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과연 성도들은 사탄의 졸개들인 귀신들과 뱀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산산히 깨뜨릴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진리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롬16:18a). 그리고 둘째는 선한 것에 대해서는 지혜로워야 하고, 악한 것에 대해서는 섞지 말아야 한다(롬16:18b).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침과 무기들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서 진리의 가르침만을 따라가기로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무기들로 무장해야 한다. 이때 성도들이 악한 영들과 치르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의 불, 성령의 검, 단검, 불화살, 철장 등과 같은 성령의 무기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무기들 중에서 최종적이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철장은 쇠지팡이로서 악한 영들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을 으스러뜨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장 권세는 성도들 중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권세로서, 훗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노릇할 때 사용하는 권세인데, 이것으로 성밖에 있는 만국(이방인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2:26~27). 이러한 철장 권세를 우리 이 땅에서 받는다면, 그것은&amp;nbsp;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모든 견고한 진을 파괴하는 강력한 영적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철장 권세를 소유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의 시작은 바로 &amp;#39;회개&amp;#39;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회개없이는 영적 싸움을 시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통하는 적이 내게 남아있는데 어찌 전쟁에서 승리하겠는가! 그러므로 성도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라면 회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직접 귀신들과 뱀들을 주의 위임된 권한으로 물리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영적인 계급을 점차적으로 올려주실 것이며 또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무기들을 계속해서 장착시켜 주실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 영적 전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모든 성도들의 삶 가운데 벌어지는 치열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죄와 외부의 거짓 가르침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성도들은 악의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회개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해서 맞서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사탄의 모든 계략을 분쇄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롬16:20). 그리고 이러한 최종적인 승리자만이 이기는 자가 되어 하늘의 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늘에 마련하신 복은 놀랍고 영원하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차지할 수 있는 최종적인 지위와 신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이 되며,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왕노릇하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시적으로 그러한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그러한 지위와 능력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이다. 천국을 준비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전쟁을 회피하거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하늘에 준비된 복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분발하자. 그리고 회개를 통하여 영적이 전쟁에 뛰어들자. 그리고 영적인 무기들과 예수님의 피로 그것들을 이기자. 그러면 사탄이 우리의 발 앞에서 무너질 것이며 그들의 권세는 박살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14일(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1_64-161720.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39c3100f4d95576f8e8460894d65748f.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c6079be7eafcf0c3e71671e8eed7bbb9.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26aa9a0f2bc5c75510b1a3563403ca91.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cd3b5630753a224092f56cec9abebb0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ec0538d756ed1fa4c3f0a5f20159a03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d92327ce2916f5c2f1c7afcb1aaf8bf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1f6dc3b0eeb1d44e1f77308db738bc2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296/203/e714a9a5734fb56f85e130ddebfeaf94.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3)] 이름도 빛도 없이 그러나 가장 영광스럽게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롬16:6~16)_2025-07-11(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0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0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06</id>
		<published>2025-07-11T14:51:24+09:00</published>
		<updated>2025-07-11T14:59:3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3)] 이름도 빛도 없이 그러나 가장 영광스럽게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롬16:6~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UtktcSlSjs 1. 들어가며 : 이름 없는 헌신, 그 영원한 가치 일반적으로 역사는 종종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과 업적을 중심으로 기록이 된다. 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만들어온 수많은 이들의 땀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63)] 이름도 빛도 없이 그러나 가장 영광스럽게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롬16:6~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UtktcSlSjs&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UtktcSlSj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 :&amp;nbsp;이름 없는 헌신, 그 영원한 가치&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일반적으로&amp;nbsp;역사는 종종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과 업적을 중심으로 기록이 된다. 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만들어온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 있다. 로마서 16장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말미에, 자신의 사역을 돕고 주 안에서 함께했던 26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amp;nbsp; 그들의 헌신을 기린다. 이들은 비록 세상의 역사에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되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헌신과 믿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로마서 16장 3절에서 5절과 로마서 16장 6절에서 16절에 나타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이름 없는 헌신의 가치를 조명하고,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로마서 16:3~16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 누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위대한 신앙 인물들이 성경에 있다. 그중에 신약의 인물로서는 설교와 능력행함으로 한 번에 수 천 명을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던 베드로도 있고,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남겨 신약성경책이 되게 하는 사도 바울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서신서와 묵시서와 같은 세 개의 쟝르의 신약성경을 저술한 사도 요한도 있다. 그런데 롬16:3~16에는 밤하늘의 달과 밝은 별들 사이에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작은 별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살았던 자들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루는 사역자들과 함께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자들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로마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들을 언급하는데, 총 26명의 성도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은 교회사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사복음서에 등장하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아리스토 불로(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버지) 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 때에 선교사역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첫째로, 바울이 담당했던 선교사역에 자신의 삶을 바치면서 헌신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바울의 사역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이들 성도들의 이름은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빚진 자들이거나 자신이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이름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로마서 16:3~16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3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로마서 16:3~16에등장하는 인물들의 3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lt;strong&gt;첫째는 모두 주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어, 서로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했다&lt;/strong&gt;는 것이다. 바울은 이 짧은 구절에서 &amp;#39;주 안에서&amp;#39;나 &amp;#39;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고 &amp;#39;그리스도 안에서&amp;#39;라는 말을 무려 8번이나 사용하였다(3, 8, 9, 10, 11, 12, 13절). 이는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주 예수님을 믿어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lt;strong&gt;둘째는 이들이 주와 복음 때문에 고난도 받고 시험도 받았다&lt;/strong&gt;는 것이다(7, 10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보낸 자 바울을 돕다가 그만 옥에 갇히기도 하고 여러가지 환난을 만났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lt;strong&gt;셋째는 이들 중에는 한 가족이나 공동체의 대표자가 되어 그 그룹을 기쁨으로 섬겼다&lt;/strong&gt;는 것이다(5, 10, 11, 13절). 왜냐하면 당시 교회는 어떤 집합건물로 모인 것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모였기에, 당시이 교회는 가정공동체를 중심으로 믿음생활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어지는 본문과 같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amp;nbsp;주 안에서 수고한 이들의 헌신의 깊이는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먼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3~16에 나오는 인물들을 가리켜 &amp;quot;주 안에서&amp;quot; 만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서 가족보다 더 끈끈한 영적 유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바울은 특히 그들의 &amp;quot;수고&amp;quot;를 여러 번 강조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amp;#39;코피아오&amp;#39;는 단순히 일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amp;#39;진이 빠질 정도로, 녹초가 될 만큼 힘썼다&amp;#39;는 깊은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 중에 먼저&amp;nbsp;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보자.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든든한 물질적, 영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으며,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주기까지 했다(롬16:3~5). 이처럼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했던 이들의 삶은, 비록 세상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나고 향기를 계속해서 발할 것이다. 그들의 헌신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된,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던 숭고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 중에는 마리아(롬16:6), 우르바노와 스다구(롬16:8),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와 버시(롬16:12)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시련 속에서 믿음의 꽃은 어떻게 피어나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둘째로, 로마서 16:3~16절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와 복음을 때문에 고난을 당했으나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했던 자들이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언제나 평탄한 길이나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혹독한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보배로운 인물들이다(롬16:7). 그들은 바울을 변호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주와 복음을 향한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amp;nbsp;또한 바울이 &amp;quot;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amp;quot;라고 칭찬했던 아벨레는 수많은 시험을 거쳐 그 믿음이 진짜임을 입증받은 사람이었다 (롬16:10).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역경과 환난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낙심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 하나님은 지금도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키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반석 위에 굳건히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각 가정의 지도자들은 믿음의 지체들을 어떻게 돌보았는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셋째로, 로마서 16:3~16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각 가정과 공동체를 책임지하고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편지에서 각 가정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특별한 안부를 전한다. 특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 아리스토불로(헤롯 아그립바 1세의 부친)의 권속, 나깃수의 가족, 루포(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의 아들)와 그의 어머니의 집 등이 나온다. 이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교회를 이루고 영혼들을 돌보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바울이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지도자가 흔들리면 그를 따르는 양들도 함께 길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amp;nbsp;이는 오늘날 교회의 구역장이나 리더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닌가 싶다. 각 영혼을 돌보는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이며, 그 책임 또한 막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려 영혼을 책임지는 지도자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든지 영혼을 돌보고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이며,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 :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역사&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소수의 특별한 인물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어낸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와 수고가 모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이다.&amp;nbsp;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받거나 유명해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자리일지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복된 성도가 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며,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맡겨진 영혼들을 돌보는 일에 힘쓸 때,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귀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16장의 이름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천국의 이름다운 초대장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11일(금)&lt;/p&gt; &lt;p&gt;정보배목사&lt;br /&gt; &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1_63-16616.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91abc57377915ccf1255978d0d8f9aed.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16.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87610b5510993059b4ea53a40129546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16316-3.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40d5a82ecffc76c7060e9586980aa38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a3446e679e69866b8ec4435100990d40.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bb413df926af63acca5fc8f05e2ef44f.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c15ef16133cdc5dc2d1ceaacc06a3d92.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7e2109167588e761b01a93e721982be6.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06/203/bb7ce51cbbb3a538e4516044df5dbecf.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2)]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대체 어떤 존재였는가?(롬16:1~5)_2025-07-10(목)</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1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1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16</id>
		<published>2025-07-10T22:12:26+09:00</published>
		<updated>2025-07-11T01:06:4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2)]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대체 어떤 존재였는가?(롬16:1~5)_2025-07-10(목) https://youtu.be/OiW5AAYVwHA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는 그가 계시받은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생생한 현장과 그 속에서 함께했던 동역자들의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다. 특히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바울이 로...</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제목:&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로마서강해(62)]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대체 어떤 존재였는가?(롬16:1~5)&lt;/span&gt;&lt;/strong&gt;_2025-07-10(목)&lt;/p&gt; &lt;p&gt;https://youtu.be/OiW5AAYVwHA&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iW5AAYVwHA&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는 그가 계시받은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생생한 현장과 그 속에서 함께했던 동역자들의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다. 특히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내는 개인적인 문안 인사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단순한 안부 인사를 넘어 바울의 사역이 결코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동역자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amp;nbsp;&lt;/p&gt; &lt;p&gt;&amp;nbsp; 특히 바울은 문안인사의 서두에서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인 뵈뵈를 천거하고 로마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서 맨 처음으로 인삿말을 전한다. 왜 바울은 문안인사에서 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맨 처음으로 언급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의 사역에 깊은 영향을 끼친 동역자들의 역할과 그들의 헌신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바울은 혼자가 아니라 &amp;#39;함께&amp;#39; 사역을 했으며, 오늘날 교회가 지향해야 할 동역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더 새겨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거대한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했던 이들의 발자취가 얼마나 중요하며, 이들의 섬김이 어떻게 바울의 사역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던 사도 바울의 선교비전과 전략은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가졌던 명확한 자기 정체성과 선교 비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스스로를 &amp;#39;이방인을 위한 사도&amp;#39;로 규정했다(롬 11:13, 15:16). 그러므로 그의 사명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방 세계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명 의식은 그의 선교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amp;quot;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한다&amp;quot;는 것을 선교 원칙으로 삼았다(롬15:20). 그리하여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는 곳을 피하여 미개척지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을 자신의 핵심적인 사역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 이러한 바울의 선교적 열망의 정점은 당시 &amp;#39;땅끝&amp;#39;으로 여겨지던 서바나(Hispania, 현재의 스페인)를 향한 선교 비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롬15:24, 28). 그는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적 소명을 완수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써보낸 목적이 바로 이 서바나 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 그들의 기도와 물질적 후원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거대한 선교 비전을 품었던 바울에게는 자신의 사역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함께 짐을 짊어질 신실한 동역자들과 함께 동역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선교는 아무리 역량을 갖춘 사역자라 할지라도 혼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보면, 이들이 바로 이러한 바울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 준 핵심적인 동역자들이었음을 말해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바울은 과연 로마 교회를 위해 자신이 썼던 편지를 누구에게 맡겼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은 로마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겐그레아 교회의 여성 일꾼인 뵈뵈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여러 면에 있어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으며, 여성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추천하지 않고, 고린도 옆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겐그레아 교회의 사람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로마서는 바울의 구원론이 담긴 중요한 서신이었기에, 이를 전달하는 임무는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때 뵈뵈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얼마나 바울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여기서 뵈뵈를 &amp;quot;우리의 자매&amp;quot;이자 &amp;quot;겐그레아 교회의 일꾼(&amp;delta;&amp;iota;ά&amp;kappa;&amp;omicron;&amp;nu;&amp;omicron;&amp;sigmaf;, diakonos)&amp;quot;으로 소개하고 있다(롬 16:1). 여기서 &amp;#39;일꾼&amp;#39;으로 번역된 &amp;#39;디아코노스&amp;#39;는 성경에서 &amp;#39;사역자&amp;#39;(롬13:4, 고전3:5), &amp;#39;일꾼&amp;#39;(롬16:1, 엡3:7), &amp;#39;추종자&amp;#39;(롬15:8), &amp;#39;집사&amp;#39;(빌1:1, 딤전3:8) 등, 4가지 용어로 번역된 단어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아마도 &amp;#39;교역자&amp;#39;에 해당하는 직분에 해당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로 그녀가 겐그레아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고로 바울이 사람을 추천할 때에는 성별이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실함과 역량을 기준으로 동역자를 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lt;/p&gt; &lt;p&gt;&amp;nbsp; 더 나아가 바울은 뵈뵈를 &amp;quot;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amp;pi;&amp;rho;&amp;omicron;&amp;sigma;&amp;tau;ά&amp;tau;&amp;iota;&amp;sigmaf;, prostatis)가 되었다&amp;quot;고 증언한다(롬 16:2). 여기서 &amp;#39;보호자&amp;#39;로 번역된 &amp;#39;프로스타티스&amp;#39;는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재정적 후원자, 법적 보호자, 또는 영향력 있는 후견인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뵈뵈가 상당한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사용하여 바울을 비롯한 여러 순회 사역자들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서원이 실행할 때에, 금식하며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있을 때, 뵈뵈는 그의 곁에서 그를 돌보며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뵈뵈는 바울에게 단순한 편지 전달자가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가능하게 한 필수적인 후원자이자 영적인 동지였던 것이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왜 바울은 26명의 로마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맨 처음으로 인삿말을 전했을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로마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 가운데 바울이 가장 먼저 문안 인사를 전하는 인물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이다(롬 16:3). 이는 그들이 바울의 사역과 삶에 얼마나 특별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바울은 그들을 &amp;quot;나의 동역자들&amp;quot;이라고 부르며(롬16:3), 그들이 &amp;quot;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던 자들&amp;quot;이라고 고백하였다(롬16:4).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에 그들이 보여준 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을 증언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lt;/p&gt; &lt;p&gt;&amp;nbsp; A.D.52년경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하여,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했던 이들 부부는 그곳에서 바울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행18:1~3). 그리고 이들은 바울과 같이 장막을 만드는 생업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동역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부부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그 시대 가운데서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므로 이들 부부는 바울에게 기거할 거처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은 고린도 교회의 시작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에베소와 로마에서도 그들의 가정은 지역 교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amp;#39;가정 교회(house church)&amp;#39;의 표본이 된다(고전16:19).&lt;/p&gt; &lt;p&gt;&amp;nbsp; 여기서 가장 주목할 인삿말은 그들이 바울을 위해 &amp;quot;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다&amp;quot;는 것이다(롬16:4).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은 단순히 그들일 바울을 희생적으로 도왔다는 표현인 것인가? 성경에서는 정확히 어떤 사건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에베소 사역 당시 바울이 겪었던 극심한 생명의 위협 속에서(고후1:8~10),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을 보호하고 구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우정이나 동료애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로서의 희생적인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랬다. 그들 부부는 바울의 사역이 곧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하였고, 그 사역의 중심인물인 바울을 지키고 돕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돕는 일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에게 단순한 동역자를 넘어, 생명을 함께 나눈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자 영적 싸움의 현장&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에서 함께한 전우였던 것이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처럼 뵈뵈 집사 그리고 브리&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삶은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선교사역이 결코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거대한 선교 비전 뒤에는 뵈뵈 집사와 같이 묵묵히 후원하며 신뢰를 보낸 보호자가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함께 짐을 짊어진 동역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기 다른 은사와 모습으로, 그러나 동일한 목표, 즉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렸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이들의 헌신은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 사실 깊은 울림을 준다. 하나님 나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한두 명의 지도자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수많은 뵈뵈와 브리스길라, 아굴라들의 연합과 헌신을 통해 세워져 가기 때문이다. 재정으로, 기도로, 시간으로, 그리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희생으로 함께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amp;nbsp;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서 과연 어떠한 존재로 천국에서 기억될 것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든든한 &amp;#39;보호자&amp;#39;가 되어주고 있는가? 우리도 역시 주님과 복음을 위해 &amp;#39;목이라도 내놓을&amp;#39; 각오가 되어 있는 &amp;#39;동역자&amp;#39;들인가? 뵈뵈 집사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누군가의 사역에 디딤돌이 되고 있ㄴ느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할 때에 우리의 삶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6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동역의 의미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제자도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10일(목)&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1_62-1615.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001b857e5aa5b89452b173ca7edd2042.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337b9b376a00f5a33d6bddbb44754e51.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21325f92afa95901ae8931009300349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a37139e34f4d860b90a8281051c922d2.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490bc65d6f43e2b2629dfe18ab6f80b4.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007faf2d30a545f97be5666f5490c82d.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3d7a9c56c7aad9e3ff3bf77fdffbdbf1.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16/203/1a29d24a0fc7d47b515f944e116edafd.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1)] 바울의 사명감, 그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불타고 있었는가?(롬15:22~33)_2025-07-09(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2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2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26</id>
		<published>2025-07-10T00:14:30+09:00</published>
		<updated>2025-07-10T00:35:2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1)] 바울의 사명감, 그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불타고 있었는가?(롬15:22~33)_2025-07-09(수) https://youtu.be/ztr3Eusvf34 1. 들어가며 사도 바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amp;#039;열정&amp;#039;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극적인 회심을 이룬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것이다. 로마서 15장 후반부는 이러한 바울의 사역이 정점...</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로마서강해(61)] 바울의 사명감, 그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불타고 있었는가?(롬15:22~33)&lt;/strong&gt;&lt;/span&gt;_2025-07-09(수)&lt;/p&gt; &lt;p&gt;https://youtu.be/ztr3Eusvf34&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tr3Eusvf34&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amp;#39;열정&amp;#39;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극적인 회심을 이룬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것이다. 로마서 15장 후반부는 이러한 바울의 사역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의 내면을 지배하던 뜨거운 열정과 구체적인 사역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망의 창과 같다. 그는 스스로를 &amp;quot;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amp;quot;(롬 1:14)고 고백했다. 이 &amp;#39;빚진 자의 마음&amp;#39;이야말로 그의 모든 사역을 이끌어간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이 어떻게 자신이 받은 은혜의 빚을 갚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의 시선은 항상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그의 노정 가운데 무엇을 바라고 소망했는지를 심도 있게 조명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어떻게 복음의 빚을 갚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바울이 자신의 사명을 뜨겁게 붙들고 가게 되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amp;nbsp;&lt;/span&gt;&lt;/strong&gt;&lt;br /&gt; &amp;nbsp; &lt;strong&gt;바울의 불타는 사명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자신이 누구였었는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그 위를 덮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lt;/strong&gt;. 그가 다메섹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자신이 본래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폭행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다(고전15:9~10, 갈1:13~17). 그는 스스로를 &amp;#39;죄인 중의 괴수(우두머리)&amp;#39;라 칭하기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딤전1:13~1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고전15:9~10&amp;nbsp;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amp;nbsp;&lt;br /&gt; 갈1:13~17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amp;nbsp;&lt;br /&gt; 딤전1:13~16&amp;nbsp;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이러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징계하거나 죽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전율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오래 참으심을 보이신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을 넘어 장차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모든 이들에게 &amp;#39;본&amp;#39;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딤전1:16). 즉, 자신의 구원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의 한 모델 케이스가 되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의 남은 생을 온전히 드려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맹목적인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나온 필연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과연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지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신 그분의 십자가의 사랑이 날마다 삶 속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처럼 은혜의 깊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도 역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을 품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이방인에 대한 복음전파를 명받았던 바울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자신은 받은 은혜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바울을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하면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방인의 사도를 삼으셨기에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amp;#39;땅끝&amp;#39;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행9:15, 갈2:8, 롬11:13).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유언적인 말씀 곧 &amp;quot;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amp;quot;는 지상 대위임령을 자신의 사명으로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울은 어린양의 12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과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lt;strong&gt;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파했다면, 자신은 이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amp;#39;땅끝&amp;#39;이란 대체 어디였는가? 그리고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그것은 그가 2차 전도여행 때에 이제는 전도지역을 아시아의 북쪽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떄문이다(행16:6~10). 그리고 그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지역에서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에 거기에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행23:11). 그러므로 바울의 관심사는 언제는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의 육지가 끝나는 곳, 곧 &amp;#39;서바나&amp;#39;(오늘날의 스페인)를 땅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찌하든지 땅끝인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의 필생의 과제로 삼고 달려갔다. 그랬다. 그는 복음이 예루살렘에 시작되었지만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가서 온 세상에 편만하게 증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로마서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간절히 요청했던 것 2가지는 대체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이러한 거대한 선교비전을 이루기 위해 바울은 달려갔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잠시 머무르면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먼저 보낸다. 그 이유는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lt;strong&gt;하나는 복음전파에는 많은 재정이 지출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리고&lt;strong&gt; 또 하나는 복음전파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lt;strong&gt;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서바나 선교를 위한 &amp;#39;파송&amp;#39;과 &amp;#39;후원&amp;#39;을 요청하였고,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던 것이다&lt;/strong&gt;. 이는 선교가 한 명의 위대한 사역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면서 동역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먼저, 바울은 로마 교회에게 부탁을 한다&lt;/strong&gt;(롬15:22~24). &lt;strong&gt;그것은 자신이 땅끝인 서바나로 전도하러 갈 때에 그들과 교제하여 기쁨을 얻은 후, 그들이 자신을 서바나로 파송해해 달라는 것&lt;/strong&gt;이었다. 왜냐하면 선교라는 것은 선교비의 후원이 없으면 매우 어렵고 난관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도 처음에는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았으나, 2차 전도여행 때부터 중간에 선교비가 떨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로마 교회 성도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재정적인 후원자로 붙혀주셔서 2차와 3차 선교여행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들 부부가 다시 로마로 돌아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그리고 바울을 둘째로 로마 교회에게 세 가지 구체적인 중보기도를 부탁한다&lt;/strong&gt;. 첫째는, 유대에 있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 즉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달라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둘째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준비한 구제 헌금이 그곳 성도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해줄 것을 부택했다. 셋째는, 이 모든 사역을 마친 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쁨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성도들과 교제하며 평안히 쉬었다가 다시 서바나로 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 이러한 바울의 기도 요청은 그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는 사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의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복음 전파는 사실 영적인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기도의 화력 지원 없이는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고 하겠다. 선교는 단순히 재정을 보내는 것을 넘어, 선교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복음 전파의 모든 과정에 마음으로 함께 참여하는 전인격적인 동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나오며&lt;/span&gt;&lt;/strong&gt;&lt;br /&gt; &amp;nbsp; 바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땅끝을 향한 복음 전파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회개를 통해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입성하는 것을 돕는 일과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을 잘 준비케 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일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이 그러했듯, 우리도 역시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길은 지금 이시대에 주어진 사명 곧 회개와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이다.&amp;nbsp;먼저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 동료가 복음을 들어야 할 가장 가까운 유대인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에 바울이 로마 교회의 동역을 요청했듯이, 오늘날의 교회 역시 성도들의 헌신적인 재정과 기도의 동역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고,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려 복음 전파에 동참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때 지녔던 바울의 열정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amp;nbsp; 세상은 곧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에 주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나는 &amp;quot;착하고 충성된 종&amp;quot;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러한 칭찬은 오직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인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린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바울의 심장을 가득 채웠던 그 꺼지지 않는 불꽃이 오늘 우리 모두의 심장 속에서 다시 타오르기를 소망해 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09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1_61-152233.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db4e1061d17a94ccdbed3728109d6695.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08d53432521baba203002ff13c453ee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22f778c5c15a19f2d910b32d24f194d4.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78f28ed5dd037c0e653940990b4d78e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43309c774ba2125ff055dde504bd39b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8a189053315df26cdb7a37fea91b252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c92c9440158f8fc74571177738cc124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26/203/ae2c62ffb44f7bfd1c2ed6a7390dcfd4.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60)] 바울에게 주어진 사명과 복음전파의 원칙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롬15:14~21)_2025-07-08(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3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3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36</id>
		<published>2025-07-08T09:36:10+09:00</published>
		<updated>2025-07-11T15:44:0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 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0)] 바울에게 주어진 사명과 복음전파의 원칙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롬15:14~21)_2025-07-08(화) https://youtu.be/saJ20dQxhDc 1. 들어가며 자신의 나이가 약 30세쯤 되었을 때에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다메섹의 형제인 아나니아를 통하여 예언적인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행9:15). 그후 바울은 한 번도 흐트러뜨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60)] 바울에게 주어진 사명과 복음전파의 원칙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롬15:14~21)&lt;/strong&gt;&lt;/span&gt;_2025-07-08(화) https://youtu.be/saJ20dQxhDc&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papago-attr-id=&quot;36&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aJ20dQxhDc&quot; title=&quot;유튜브 비디오 플레이어&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자신의 나이가 약 30세쯤 되었을 때에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다메섹의 형제인 아나니아를 통하여 예언적인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행9:15). 그후 바울은 한 번도 흐트러뜨림 없이 자신만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럼 그가 받은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왕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신에게 주어진 분명한 소명과 사명에서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 길을 따라서 일평생을 헌신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항상 원칙으로 삼고 있었던 규칙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이었으며, 복음전파의&amp;nbsp; 원칙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더불어 우리 각자에게 부여된 소명과 그 소명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함께 성찰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분량을 잘 깨닫고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각자에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와 복음을 위해 일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바울의 복음전파 원칙과 사명은 대체&amp;nbsp;&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무엇이었는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있어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amp;nbsp;&lt;strong&gt;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이 한 번도 선포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lt;/strong&gt;는 것이다(롬15:20). 이는 &amp;quot;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amp;quot;는 그의 고백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복음의 지평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lt;br /&gt; &amp;nbsp; 그렇지만 그가 받은 사명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것이었다. 믿음의 지체였던 다메섹의 아나니아 형제를 통해서였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 따르면, 이날 &lt;strong&gt;바울은 아나니아부터 자신이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하나님의 그릇&lt;/strong&gt;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베드로가 주로 할례자(유대인)의 사도로서 부름받아 활동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것이다(갈2:6~7, 롬11:13).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대상이 3가지였다. 그런데 세 종류의 대상들 중에서도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직분맡은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여겼다. 바울은 스스로 갈라디아서 2장 7~8절에서,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것과 같이 자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소명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사역 방향을 설정하였다. 고로 그의 삶은 오직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을 통해 이방지역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롬15:20&amp;nbsp;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amp;nbsp;&lt;br /&gt; 행9:15&amp;nbsp;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갈2:7~8&amp;nbsp;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롬11:13&amp;nbsp;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오늘날 우리 개인의 사명과 영적 분량은 어떻게 정해지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바울의 사명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바울과 똑같은 사명을 지닌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고유한 그릇과 할 일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방언 통역, 예언, 꿈, 환상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주의 종의 길을 걷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신 영적 분량이 다르기에,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 또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을 친히 불러 깨닫게 하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시키신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감당할 사람을은 일찌감치 불러내어 깨우쳐 주신다. 그리고 그를 철저히 준비시킨 후 그에게 능력을 주어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이지만, 각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각자가 다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역자들은 이 땅에 보낼 때에 영적인 나이가 매우 높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기까지 철저한 준비를 시키신다. 모세를 보라. 그리고 사도 바울을 보라. 그러므로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을 빨리 알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이러한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회개와 충성을 통하여 영적인 성숙도를 높여주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베드로와 바울의 복음 전파의 여정은 어떠했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 지역에서 태어나 헬라어에 능통했기에 이방인들과 쉽게 소통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 베드로는 유대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므로 그는 할례자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A.D.66년경 예루살렘 교회가 없어짐에 따라 그는 로마로 이동한다. 그러나 헬라어에 익숙하지 못했던 베드로는 마가 요한의 통역을 통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전한 말씀을 마가 요한이 기록한 것이므로 베드로 복음이라고 해도 된다. 이처럼 각 사도에게 주어진 배경과 은사는 그들의 사역 방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lt;br /&gt; &amp;nbsp; 이방인으로 사도로 부름을 받았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일루리곤(지금의 알바니아 지역)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했다(롬15:19).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서바나(스페인: 땅끝)까지 가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롬15:16, 23, 28).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의 핵심 지도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편지를 보내 로마 교회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이;때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하면서 그들이 선함과 지식으로 충만하여 서로 권면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를 통해 그들에게 그들이 받은 진리를 상기시키고, 자신이 전한 복음과 그들이 가진 복음이 일치한다면 자신을 후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왜냐하면 바울도 한 때는 텐트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감당해야 했는데,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그들의 후원을 받고 복음 전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전파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동역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오늘날 우리 교회의 사명과 개인의 역할은 무엇인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알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가거나, 자신의 능력을 축소평가하여 세상 향락을 좇아 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두 달란트, 세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음을 모든 성도는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을 빨리 알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방언통역과 예언 그리고 환상과 꿈 그리고 듣게 하시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알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영적 성숙도를 따라 일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 방언 통역이나 예언은 많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영이 직접 천국에 들어가 환상으로 자신의 천국 준비 상황과 이 세상을 위한 주님의 계획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혹시 내가 나에게 주어진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사명을 아직 듣지 못했다면, 그는 일반적인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amp;nbsp; 딱 3가지다. 첫째는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케 돕는 일이다(행16:31). 둘째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사실 성도가 함께 모이면 그만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를 따라 교회의 지체들을 섬겨야 한다(롬6:13).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도와야 한다. 그러한 주의 종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헌신을 기억하시고 저 하늘에서 복으로 갚아주실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결론적으로, 바울의 삶과 사역은 우리에게 각자의 소명을 깨닫고 그 소명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실히 감당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 복음 전파와 교회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헌신조차도 귀하게 여기시며, 그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지금은 자다깨도 깰 때가 된 것이다. 구원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의 종은 주의 종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발견하고 찾아서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하나님의 사람과 더불어 시대에 주어진 마지막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야 할 시대다.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만이 구원받고 또한 질병과 가난 그리고 정신병과 막힘의 저주에서 풀려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으로 더이상 죄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남들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을 얻게 될 것이다.&amp;nbsp;&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08일(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1_60-151421.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e3852fcafbb05988d435ffc66ecf7f7e.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3c22b1249bd30256f50da47bda9901e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43532736cdd6116a498166d1fbd023d1.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ce2f77f6ba67f83fea870126eb5821b8.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c7592cc6667221200fd0577b4164e3cf.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fc5e0d96af731c0802dd6ff149c5a50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3fad84b781ada52dd4a5b3d84f92315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36/203/66b946bcde5167af4f76a8c6144a821e.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59)] 로마교회 성도들의 삶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무엇이었는가?(로마서15:1~13)_2025-07-07(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4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4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46</id>
		<published>2025-07-07T22:41:40+09:00</published>
		<updated>2025-07-08T08:47:5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59)] 로마교회 성도들의 삶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무엇이었는가?(로마서15:1~13)_2025-07-07(월) https://youtu.be/fsk7RRT4cfQ 1. 들어가며 로마서는 과연 어떤 책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신앙과 삶의 기초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위대한 서신서로써, 신앙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59)] 로마교회 성도들의 삶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무엇이었는가?(로마서15:1~13)&lt;/strong&gt;&lt;/span&gt;_2025-07-07(월)&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https://youtu.be/fsk7RRT4cfQ&lt;/font&gt;&lt;br /&gt; &amp;nbsp;&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papago-attr-id=&quot;57&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sk7RRT4cfQ&quot; title=&quot;유튜브 비디오 플레이어&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로마서는 과연 어떤 책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신앙과 삶의 기초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amp;nbsp;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위대한 서신서로써, 신앙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amp;lsquo;신앙&amp;rsquo;에 관한 부분으로, 구원의 교리가 그 핵심을 이르고 있다. 특히 1장부터 8장까지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 다루고 있고, 9장부터 11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죄인 된 인간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후반부인 12장부터 15장 13절까지는 &amp;lsquo;삶&amp;rsquo;에 관한 구체적인 권면으로 이어진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지침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믿음이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롬15:1~13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다.&amp;nbsp;&lt;/font&gt;&lt;br /&gt; &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amp;nbsp;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amp;nbsp;&lt;/span&gt;&lt;/strong&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가 실천해야 할 삶의 대원칙들을 여러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amp;nbsp;&lt;/font&gt;&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2:1~2)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이는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세대의 가치관과 풍조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성도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로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성도 간의 관계&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2:3~13)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가 한 몸의 지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겸손하게 서로를 섬기며,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 지체 의식은 공동체의 연합을 이루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으로 하나 될 때 교회는 굳건히 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셋째, 핍박자와 원수를 대하는 태도&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2:14~20) 사도 바울은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명령이다. 하지만 스데반이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넷째,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3:1~7) 성도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에는, 마땅히 하나님의 법을 우선해야 한다. 이는 불의한 권력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다섯째, 이웃에 대해서&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3:8~10)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여섯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세&lt;/strong&gt;는 어떠해야 하는가?(롬13:11~14) 그때나 지금이나 성도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이다. 그럴려면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일곱째, 신앙의 자유와 남에 대한 비판&lt;/strong&gt;은 어떠해야 하는가?(롬14:1~23) 교회의 성도가 음식이나 날짜 특히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함부로 서로를 비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형식으로 주님을 섬기든 주님께서 그들을 받으셨기 때문이요,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신앙의 패턴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마음에 확정한 대로 행하면 된다. 하지만 다른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특히 술과 같이 중독성이 강하고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멀리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하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무엇인가?&lt;/span&gt;&lt;/strong&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amp;nbsp;&amp;nbsp;성도들의 성숙한 삶을 위하여 바울은 과연 어떤 권면으로 마무리를 하는가? 그것을 정리하면, 한 마디로 &amp;quot;그리스도를 본받으라.&amp;quot;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amp;nbsp;삶의 원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amp;ldquo;그리스도를 본받는 것&amp;rdquo;이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amp;nbsp;&lt;/font&gt;&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믿음이 약한 자를 너그럽게 품으라&lt;/strong&gt;는 것이다(롬15:1a). 능력이 있는 자는 자신의 신앙적 기준을 약한 자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는데에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기꺼이 떠맡고,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그들을 이끌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까지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이 연약한 형제 자매들을 윽박지르거나 다그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희생이 있어서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사 가운데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대하게 성장했듯이, 이제는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돕고 세우는 예수님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남을 기쁘게 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롬15:1b~4).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으며,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나이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칭하는 수많은 칭호들 중에서 분에게 그분에게 가장 어울리는 칭호가 있다면 그것은 &amp;lsquo;죽임 당한 어린 양&amp;rsquo;이라는 표현일 것이다(계5:6). 그분의 삶이 온전한 희생과 헌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세상적인 가치와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고, 오직 그리스도를 얻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빌3:7~9). 우리 또한 나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섬기고 세워주는 이타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셋째, 서로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lt;/strong&gt;는 것이다(롬15:5~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연약함과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드러나고 나의 의가 주장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모든 직분을 내려놓고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사라지고 오직 주님만이 드러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예수께서는 할례자의 수종자가 되셨으며, 이어서는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은총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가 진정 드려야 할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만은 아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의 현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로&amp;nbsp;사도 바울은 &lt;strong&gt;로마서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면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계속해서 제시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amp;lsquo;그리스도를 본받는 삶&amp;rsquo;로 귀결되는 것&lt;/strong&gt;이다. 연약한 자를 돕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목표이자, 삶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2025년 07월 07일(월)&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정보배 목사&lt;/font&gt;&lt;/p&gt; &lt;p&gt;&lt;img alt=&quot;1_59-15113.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1daf36a38ebf4d0833b4dcf79d3b26b2.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5c1f7e960944192851dd5bb1581baa43.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1.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332db11abdf0e8dafe2cf123c16933dc.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2.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31b093fe9e28699072859a430888d66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45de54e2568ee6239b311f7e39e5704d.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d02e191aef2cd95658aabe0c123ab22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d0581dcbef79c516b46efa0c18a89c45.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46/203/566b7286219f6cf70e51633b2c0fa769.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58)] 술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롬14:20~21)_2025-07-04(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5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5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56</id>
		<published>2025-07-04T12:50:34+09:00</published>
		<updated>2025-07-04T13:24:5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58)] 술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롬14:20~21)_2025-07-04(금) https://youtu.be/wtzCm6N3TEA 1.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술은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자리에서부터 고독한 슬픔을 달래는 순간까지, 인간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일정 선을 넘어서면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경고는 술의 이중적인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로마서강해(58)] 술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롬14:20~21)&lt;/strong&gt;&lt;/span&gt;_2025-07-04(금) https://youtu.be/wtzCm6N3TEA&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papago-attr-id=&quot;53&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tzCm6N3TEA&quot; title=&quot;유튜브 비디오 플레이어&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인류의 역사와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함께해 온 술은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자리에서부터 고독한 슬픔을 달래는 순간까지, 인간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일정 선을 넘어서면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경고는 술의 이중적인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적당한 음주는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만, 통제력을 잃는 순간부터 술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무서운 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번 시간에는 술, 특히 한국 사회의 음주 문화와 그로 인한 중독의 문제를 좀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술과 포도주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으며, 술 중독이 발생하는 원인을 뇌과학적, 영적 차원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나아가 술 중독이 개인과 가정,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이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과 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은 술의 본질을 바로 알고, 중독의 위험성을 깨닫고, 자신과 이웃을 지키는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amp;nbsp;&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포도주와 술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많은 신앙인이 성경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셨고 또한 마셨떤 기록을 보며 혼란을 겪는다. &amp;lsquo;술을 마시지 말라&amp;rsquo;는 가르침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술과 포도주에 대한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인지해야 한다.&lt;/font&gt;&lt;/p&gt; &lt;p&gt;&amp;nbsp;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물이 귀하고 석회질이 많아 식수로 부적합했던 환경에서 포도주는 중요한 수분 섭취원이자, 식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포도주는 상처를 소독하거나 위장병을 치료하는 등 약용으로도 사용되었다(눅10:34, 딤전5:23). 이사야 25장 6절에서는 이 세상에서 잔치에서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포도주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유익한 음료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이스라엘 문화에서 포도주는 잔치의 흥을 돋우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역할을 했지만, 그 목적이 &amp;lsquo;취하는 것&amp;rsquo;에 있지는 않았다.&lt;/p&gt; &lt;p&gt;&amp;nbsp; 그러나 현대의 한국 사회의 음주 문화는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해소와 근심과 걱정을 잊기 위한 목적 그리고 고통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은 필연적으로 &amp;lsquo;취하는&amp;rsquo;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맨 정신으로 잊고 싶은 현실의 문제를 술기운을 빌려 잠시나마 도피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음용의 목적 자체가 다르기에, 성경의 포도주와 한국의 술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중독이란 무엇을 가리키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술 중독 곧 알코올리즘은 술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병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회로가 망가지는 명백한 &amp;lsquo;질병&amp;rsquo;에 속한다.&amp;nbsp;&lt;/font&gt;&lt;/p&gt; &lt;p&gt;&amp;nbsp; 뇌의 변연계(邊緣系, limbic system)는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다. 술을 마시면 이 변연계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행복감과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뇌가 알코올의 자극에 내성이 생겨, 같은 쾌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뇌는 술이 없으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 바로 중독이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리고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술 중독은 &amp;lsquo;술 중독의 영&amp;rsquo;에 의해서 발생하고 또한 술 중독의 영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술에 중독되는 경우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 첫째는, 조상 대대로 음주 문제가 있었던 가계력을 통하여 겉으로 볼 때에는 유전적이라고 말하나 실제로는 영적으로 중독의 영이 대물림되어서 발생하는 경우다. 둘째는, 직업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선택으로 술을 반복적으로 마시다가 스스로 중독의 문을 여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러한 술 중독의 영이 한 번 사람의 몸에 자리 잡으면 기관지, 위장, 간, 특히 뇌에 달라붙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마비시키고, 결국 개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으시 술 중독에 빠지면 아니 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술 중독는 어떤 문제들을 야기시키는가?&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사실 술 중독은 사람의 전인격을 파괴시키는 질병이라고할 수 있다. 왜냐하면&amp;nbsp;술 중독은 한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는 간을 손상시키고, 알코올성 치매를 가져오며, 시력을 저하시키고, 뇌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등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한때 유능했던 사람이 술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지고,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아니한가! 과거 공무원으로서 촉망받던 인재가 술 중독으로 직장을 잃고 결국 파킨슨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례는 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lt;/font&gt;&lt;/p&gt; &lt;p&gt;&amp;nbsp; 또한 술 중독은 정신적으로는 우울증,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등을 동반하며, 가정 내에서는 폭언과 폭력의 원인이 되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회적으로는 음주운전, 폭력 사건 등 범죄로 이어져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처럼 술 중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정과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라고 정의하지 아니할 수 없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술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사실상 한 번 술 중독에 빠진 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러한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뇌의 회로가 변형되어 버렸고, 영적으로 악한 영에 깊이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lt;/font&gt;&lt;/p&gt; &lt;p&gt;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질병이자 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니코틴, 알코올과 같은 중독성 물질에 의지하며 살아온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반드시 영적 권위가 있는 사역자의 도움을 받아 &amp;lsquo;술 중독의 영&amp;rsquo;을 축출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러한 술 중독에 대한 축사 사역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최소 3개월 이상 꾸준히 기도와 사역을 받으며 중독의 영이 떠나갈 때까지 영적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이때 사역자는 12주동안 매일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술 중독에 관한 죄를 회개하게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사역자에게 나와서 술 중독의 영을 제거해야 한다. 이때 영안을 열어서 술 중독의 영을 보면 그 모습이 노란색으로 끈적끈적한 상태로 우리 몸의 뇌에 붙어 있다. 그리고 간에는 약간 빨간색의으로 끈적끈적한 상태로 붙에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러한 축사사역의 과정 없이는 일시적으로 혹 술을 끊을 수는 있겠지만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고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술 중독을 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술 중독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무서운 늪과 같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처음부터 그 늪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예방인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음주에 관대하고, 취하기 위해 마시는 문화 속에서는 더욱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lt;/p&gt; &lt;p&gt;&amp;nbsp; 성경은 제사장, 나실인, 그리고 왕에게 금주를 명령하고 있다(레10:9, 민6:3, 잠31:4).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이끌고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직분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술이 지도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치명적인 방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 성도들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거룩함과 분별력을 지켜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 역시 술에 있어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사실상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나 직장 회식 자리를 참석해보. 이러한 모임에서 강요되는 술잔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amp;ldquo;첫 번째 허용이 중독의 시작&amp;rdquo;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으로 술잔을 거부할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반드시 지켜주시고 더 큰 복으로 갚아주신다. 단 한 번의 단호한 거절이 평생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amp;nbsp; 술은 세상의 즐거움과 위로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끝은 파멸과 고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의 음주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술 중독은 개인의 의지로 끊을 수 있는 질병이 아닌, 전인격적인 치료와 영적 도움이 필요한 질병이다. 이미 중독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정죄가 아니라, 사랑의 관심과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하다. 동시에 우리는 술 중독의 비극이 &amp;lsquo;나&amp;rsquo;와 &amp;lsquo;우리 가정&amp;rsquo;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술을 멀리하는 예방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amp;nbsp;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위로는 세상이 주는 순간적인 쾌락과 비교할 수 없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할 때, 우리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모든 근심과 염려를 이겨낼 수 있다. 거룩하고 분별력 있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복된 길을 선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5년 07월 04일(금)&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1_58-142021.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a6287991293e7408788a9f04a4bc738f.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6f2c8546ad95dd06cfe28a01e2f95a3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5e449f9d942ae7599ddca21fff115b0a.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4157aa4f199072263334dc83378e15eb.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da10aa09f5c018ebda06cb21deefaa34.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8c313408720ad60c03ce70b56fa44730.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3e91993c54010a7d829a338c5bf8c017.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56/203/c70ef386199013f61eae4a48ba077dd9.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로마서강해(57)] 거듭난 성도는 술을 마셔도 상관없으며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가?(로마서14:20~23)_2025-07-03(목)</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6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romans2/203366#comment"/>		<id>https://dongtanms.kr/romans2/203366</id>
		<published>2025-07-03T13:18:25+09:00</published>
		<updated>2025-07-04T01:00:5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57)] 거듭난 성도는 술을 마셔도 상관없으며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가?(로마서14:20~23)_2025-07-03(목) https://youtu.be/W-ljyBXOrWw 1. 들어가며 거듭난 성도는 과연 술을 마셔도 되는가? 아니 술을 마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가? 구약성경에서는 술은 거의 포도주로 언릅되어 있다. 신약성경에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포도주로 언급되지만 나중에는 술로 언급된다. 그렇다면 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로마서강해(57)] 거듭난 성도는 술을 마셔도 상관없으며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가?(로마서14:20~23)&lt;/strong&gt;&lt;/span&gt;_2025-07-03(목)&lt;/p&gt; &lt;p&gt;https://youtu.be/W-ljyBXOrWw&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papago-attr-id=&quot;65&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ljyBXOrWw&quot; title=&quot;유튜브 비디오 플레이어&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거듭난 성도는 과연 술을 마셔도 되는가? 아니 술을 마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가? 구약성경에서는 술은 거의 포도주로 언릅되어 있다. 신약성경에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포도주로 언급되지만 나중에는 술로 언급된다. 그렇다면 포도주를 비롯한 술에 대해서 성경 은 무엇이라고 언급하고 있는가? 특히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에서, 그리고 구약성경이라면 율법과 선지자와 지혜문학에서 그리고 신약성경이라면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리고 술에 대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문화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술&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특히 포도주에 대한 언급들을 면밀히 살펴보면서,&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lt;/span&gt;이를 통해 거듭난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경은 술에 대해 어떤 경고를 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성경은 여러 곳에서 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trong&gt;먼저&amp;nbsp;&lt;/strong&gt;&lt;/span&gt;&lt;strong&gt;구약성의 성문서인 지혜문학과 선지서에서는 술에 대해 어떤 경고를 하고 있는가&lt;/strong&gt;? 우선&amp;nbsp;&lt;strong&gt;구약성경 중 지혜문학의 하나인 잠언서의 말씀&lt;/strong&gt;을 살펴보자. 잠언서는 그 어떤 곳보다 술에 대해 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잠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3&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30~32&lt;/span&gt;절에서는 술에 잠긴 자에게 재앙&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근심&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분쟁&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상처&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붉은 눈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amp;quot;&lt;/span&gt;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lt;/span&gt;라고까지 경고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이는 술이 주는 순간적인 즐거움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위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amp;nbsp;잠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31&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4-7&lt;/span&gt;절은 왕들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공의로운 판결을 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다만&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죽게 된 자나 마음이 근심한 자에게는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술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하여&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술의 제한적인 사용에 대해서는 열어두고 있기도 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또한&amp;nbsp;&lt;/span&gt;잠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0&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lt;/span&gt;절은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lt;/span&gt;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lt;/span&gt;고 하여&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술이 사람을 교만하고 분별력 없게 만든다고 지적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어서 &lt;strong&gt;구약의 선지서에서도 역시 술에 대한 강력한 경고&lt;/strong&gt;를 날린다. 이사야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5&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1&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22&lt;/span&gt;절에서는 독주와 포도주에 취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사야 26:7에서는 술은 사람을 옆걸음치게 하고 비틀거리게 하며 또한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술로 인하여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 그렇다면&amp;nbsp;&lt;/span&gt;&lt;strong&gt;신약성경에서도 술 취함에 대해서 어떤 명령을 하고 있는가? 신약의 서신서와 묵시서를 보면, 술취함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lt;/strong&gt;을 강력히 권한다.&amp;nbsp;에베소서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5&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8&lt;/span&gt;절을 보자. 사도 바울은&amp;nbsp;&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lt;/span&gt;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lt;/span&gt;고 명확히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amp;nbsp;갈라디아서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5&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1&lt;/span&gt;절과 고린도전 6:10에서는 술 취함을 육체의 일로 규정하고 있으며&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그리고 신약의 묵시서인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이 심판을 맹렬한 포도주에 빗대어 이야기함으로 술취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계14:8,12,19, 16:19, 17:2, 18:3, 19:15).&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amp;nbsp;&amp;nbsp;술에 대해서 율법서와 복음서가 말씀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나 성경은 술에 대해서 항상 부정적인 것을 언급하지는 않는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특히 &lt;strong&gt;구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쁨의 상징으로 자주 묘사&lt;/strong&gt;되고 있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그리고&amp;nbsp;&lt;strong&gt;구약의 율법서인 토라에서는&amp;nbsp;&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금지 조항이 없다&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오히려 신명기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7&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3&lt;/span&gt;절과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1&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4&lt;/span&gt;절을 보면, 포도주가 곡식&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기름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으로 언급되고 있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창세기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7&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7~28&lt;/span&gt;절에서는 이삭이 포도주를 마신 후에 야곱을 축복하는데, 그때에 아들 야곱에서 포도주의 풍성함을 기원하고 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신7:13&amp;nbsp;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신11:14&amp;nbsp;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창27:27~28&amp;nbsp;그(야곱)가 가까이 가서 그(이삭)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또한 시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4&lt;/span&gt;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7&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104&lt;/span&gt;편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5&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스가랴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0&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7&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전도서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0&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9&lt;/span&gt;절 등에서는 &lt;strong&gt;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lt;/strong&gt;으로 묘사된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또한&amp;nbsp;&lt;/span&gt;이사야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5&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6&lt;/span&gt;절에서는 만민을 위해 베푸는 연회에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가 중요한 도구로 등장하여&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lt;strong&gt;포도주가 잔치의 중요한 요소&lt;/strong&gt;임을 보여준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lt;/span&gt;또한&amp;nbsp;하나님께서는&amp;nbsp;&lt;strong&gt;제사를 지낼 때 포도주를 하나님께 전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출&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40&lt;/span&gt;). 그리고 포도주를&lt;/strong&gt;&amp;nbsp;&lt;strong&gt;첫 열매로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고(민18:12, 대하31:5, 신12:17), 십일조로 바치라는 명령도 있다&lt;/strong&gt;(신14:23, 느13:5,12)&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이는 포도주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예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히&amp;nbsp;요한복음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lt;/span&gt;장에서 예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이러한 사실은 포도주가 잔치의 흥을 돋우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라고할 수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시4:7&amp;nbsp;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시104:15&amp;nbsp;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슥10:7&amp;nbsp;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전10:9&amp;nbsp;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출29:40&amp;nbsp;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민18:12&amp;nbsp;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대하31:5&amp;nbsp;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신12:17&amp;nbsp;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신14:23&amp;nbsp;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amp;nbsp;&lt;/font&gt;&lt;/span&gt;&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느13:5&amp;nbsp;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느13:12&amp;nbsp;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amp;nbsp;&lt;/font&gt;&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와같이 포도주는 흥겨운 잔치의 필수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위장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용 도구일 수도 있고(딤전5:23)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눅10:34). 그러므로 풍성한 포도주는 여호와의 복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렘31:12, 욜2:24).&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딤전5:23&amp;nbsp;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눅10:34&amp;nbsp;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렘31:12&amp;nbsp;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욜2:24&amp;nbsp;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amp;nbsp;&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경은 과연 누구에게 금주를 명하고 있는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나 구약의 율법서에는 특정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금주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그것도 구약시대에는 딱 2종류의 사람들뿐이었다. 첫째는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께 구별이이 바쳐진 사람은 결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또한 둘째는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역시 술을 떼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하도록 기름부어 세운 존재이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 그리고 구약 율법서는 아니라 선지서에서는 왕도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한다(잠31:4). 그리고&amp;nbsp;&lt;/span&gt;민수기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6&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3~4&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사사기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3&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4~5&lt;/span&gt;절&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누가복음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5&lt;/span&gt;절에서는 나실인&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즉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삼손도 그렇게 살아야 했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의 그렇게 살았었다(눅1:25). 특히&amp;nbsp;레위기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0&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9~11&lt;/span&gt;절에서는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고 있는데, 이는&amp;nbsp;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함이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잠31:4&amp;nbsp;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민6:3~4&amp;nbsp;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amp;nbsp;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삿13:4~5&amp;nbsp;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amp;nbsp;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눅1:15&amp;nbsp;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amp;nbsp;&lt;/font&gt;&lt;br /&gt; &lt;font papago-translate=&quot;splitted&quot;&gt;레10:9~11&amp;nbsp;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이스라엘의 포도주 음용 문화와 한국의 술 문화는 과연 같은가 다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렇다면&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666667px;&quot;&gt; &lt;/span&gt;성경이 쓰여지고 있던 시대의 음주 문화와 현대 한국 음주 문화는 같은가 다른가? 결론적으로 둘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amp;nbsp;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포도주를 물에 타서 음료 대용으로 마시는 문화가 있었고&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잔치에 포도주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상대방의 적을 무찌르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포도주는 일상음료였던 것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르다. 술은 결코 음료 대용이 아니며&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주로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그래서&amp;nbsp;&lt;/span&gt;근심 걱정을 잊어버리려 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술을 찾는 것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에서 죽는 자를 천국에 때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허비되는 것이다. &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666667px;&quot;&gt;고로 그리스도인들은&amp;nbsp;&lt;/span&gt;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풀거나 삶의 고민거리를 잊어버리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술취한 것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 바꾸어질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것은 응당 아니었던 것이다.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 문제가 생길 때에는, 내가 곧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자유의지를 발동해야 한다.&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이 모든 성경적 고찰을 종합하여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amp;nbsp;성경은 포도주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지만&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과음과 술 취함은 엄격히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둘째,&amp;nbsp;&lt;/span&gt;술 취함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amp;nbsp;알코올 중독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로 이어져서 그것 자체가 죄가 된다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시대에서는 디모데전서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5&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3&lt;/span&gt;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편지하기를, 자신의 아들같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너의 위장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하고 있다. 이처럼 &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666667px;&quot;&gt;아무리 좋아보이지 않는 포도주라 할지라도&amp;nbsp;&lt;/span&gt;의학적인 목적으로 포도주가 사용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러나 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칙은 로마서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14&lt;/span&gt;장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21&lt;/span&gt;절에 나오는 바, 인간의 자유의지의 한계에 와 있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즉 &amp;quot;&lt;/span&gt;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quot;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lt;/span&gt;즉&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나의 자유가 다른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며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따라서&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 &lt;/span&gt;삶의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올 때 술이 아닌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로써 해결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div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20020&quot;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gt;&amp;nbsp;&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5년 07월 03일(목)&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img alt=&quot;1_57-142023.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666949eee589093d662a666fabd11251.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4282f6bafb6fb7891a675608468b0a69.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3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efc2f97e7432e8bec715ae6d3cae2436.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4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be910b8840b67afe8aa3264783df9e55.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5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a82bad74a9819b3d22bef7e68088bb86.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6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780dc0dacfab666b43c48b1e71387118.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7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834a1f162325d09b30dd803082286ee5.png&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8_.pn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81566/366/203/b67af285c486b48e47ed257f76a46b21.pn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