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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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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동탄명성교회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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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26 19:20: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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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copyrigh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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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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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5)]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아모스9:11~12)_2026-10-30(금)</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52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5)]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yR2xlC20J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yR2xlC20J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본 설교는 구약 성경의 &lt;strong&gt;아모스서&lt;/strong&gt;와 &lt;strong&gt;요한계시록&lt;/strong&gt;을 바탕으로 &lt;strong&gt;다윗 왕국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lt;/strong&gt;과 성도가 천국에서 누릴 &lt;strong&gt;영적 왕권&lt;/strong&gt;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성경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인물인 이유가 그가 장차 &lt;strong&gt;만왕의 왕이자 영원한 제사장&lt;/strong&gt;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이며, 예수님 역시 스스로 &lt;strong&gt;다윗의 자손이자 뿌리&lt;/strong&gt;임을 증명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구약 시대의 육적인 전쟁과 달리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lt;strong&gt;영적 전쟁&lt;/strong&gt;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음으로써 천국에서 &lt;strong&gt;만국을 다스리는 권세&lt;/strong&gt;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의 목적은 육체적 쾌락을 좇는 삶에서 벗어나 회개와 순종을 통해 &lt;strong&gt;영적 이스라엘로서 존귀한 신분을 얻고 천국 복을 놓치지 않는 것&lt;/strong&gt;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예수님은 왜 스스로 &lt;strong&gt;&amp;quot;다윗의 뿌리요 자손&amp;quot;&lt;/strong&gt;이라고 밝히셨는가?&lt;br /&gt; 2.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lt;strong&gt;왕의 대표&lt;/strong&gt;로 높이며, 그 &lt;strong&gt;왕권&lt;/strong&gt;을 누구에게 주시는가?&lt;br /&gt; 3. &amp;quot;&lt;strong&g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lt;/strong&gt;&amp;quot;는 말씀은 어떤 왕권을 뜻하는가?&lt;br /&gt; 4. 다윗은 &lt;strong&gt;시편 110편&lt;/strong&gt;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lt;strong&gt;천국의 왕과 제사장&lt;/strong&gt;은 무슨 일을 하는가?&lt;br /&gt; 5. 다윗은 왜 &lt;strong&gt;피를 많이 흘렸다&lt;/strong&gt;는 이유로 &lt;strong&gt;성전&lt;/strong&gt;을 짓지 못했는가?&lt;br /&gt; 6.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lt;strong&gt;왕위&lt;/strong&gt;를 대했기에 참된 왕이 되었는가?&lt;br /&gt; 7. &lt;strong&gt;무너진 다윗의 장막&lt;/strong&gt;은 무엇이며, 그 &lt;strong&gt;복&lt;/strong&gt;은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최고의 목적은 하늘나라를 준비하여 그곳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을 얻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존귀한 신분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를 보고 배워야 하는가? 성경은 한 사람을 계속 가리킨다. 그것은 다윗이다. 다윗이 대체 누구이기에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그를 자랑하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는 &amp;quot;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amp;quot;(암 9:11)라는 약속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먼저 다윗이 어떤 왕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다윗을 잘못 생각하면 다윗의 장막을 세상의 왕국으로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amp;quo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amp;quot;(요 18:36)고 말씀하셨다. 왜 그런가? 다윗의 장막의 회복은 이 땅의 왕국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나라를 세우시고 그 복을 이방인에게까지 넓히시는 일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하셨는지, 성경이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로 높이는지, 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성전을 짓지 못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왕위를 대했는지를 살피고,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무엇이며 그 복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지&lt;/strong&gt;&lt;/span&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수님은 왜 스스로 &amp;quot;다윗의 뿌리요 자손&amp;quot;이라고 밝히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amp;quot;다윗의 자손&amp;quot;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마 9:20, 12:23, 15:22, 20:30-31, 21:9, 15).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도 다윗의 동네라고 불렸다(눅 2:4).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다윗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과 주님께서 직접 &amp;quot;내가 다윗의 자손이다&amp;quot;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사람은 부족할 수 있다. 어리석어서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요한계시록을 모든 성경의 결론으로 본다. 신약 성경의 결론이자 구약 성경의 결론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모든 판단의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amp;quot;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amp;quot;(출 3:6)고 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을 예표하는 이기는 자들이다. 그리고 &amp;quot;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amp;quot;(출 3:14)고 하셨고, 이사야를 통해서는 &amp;quot;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amp;quot;(사 41:4, 44:6, 48:12)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 1장에서 똑같이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amp;quot;(계 1:17)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에게 인간의 이름을 붙이신다(계 2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왔다 간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예수님은 천국에 다시 올라가셔서도 &amp;quot;나는 다윗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다윗을 중요하게 여긴다&amp;quot;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올라간 성도의 대표인 이십사 장로 가운데 한 사람도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계 5: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 지파의 사자는 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다윗은 왕으로 나온다. 고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밝히신 것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의 본이 다윗이라는 것을 친히 보증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로 높이며, 그 왕권을 누구에게 주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이라고 높이고 있는가?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로, 다윗의 왕권은 철장 권세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lt;/span&gt;이다.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이렇게 약속하셨다(계 2:26-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한 것이다(시 2:7-9). 여기서 &amp;quot;내게&amp;quot;라고 말하는 이가 다윗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다윗의 시편을 그대로 인용하여 이기는 자에게 철장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평생 다윗을 탐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로, 예수님께서 천국 문의 열쇠를 다윗의 열쇠라고 부르셨기 때문&lt;/span&gt;이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다(계 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는 열쇠를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라고 하신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다윗이 가졌던 왕권을 예수님도 그대로 가지시고, 이기는 자에게도 그 왕권을 주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족보에서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직분을 붙였기 때문&lt;/span&gt;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 그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 모두 42대로 되어 있다(마 1:17). 그 가운데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최초의 왕은 다윗이고, 다윗부터 여고냐까지 열다섯 명의 왕이 나온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이름을 댈 때 아무도 직분을 쓰지 않는데, 단 한 사람 다윗에게만 직분을 넣었다. &amp;quot;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amp;quot;(마 1:5-6). 솔로몬도 왕이었고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웃시야, 히스기야, 요시야도 다 왕이었지만 왕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다. 다윗에게만 왕을 넣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동방 박사들은 &amp;quot;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amp;quot;(마 2:2)고 물었다. 두 맹인은 &amp;quot;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마 9:27)라고 외쳤고, 가나안 여자도 &amp;quot;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마 15:22)라고 외쳤다. 마가복음은 이 여자를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한다(막 7:26).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에도 무리는 &amp;quot;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amp;quot;(마 21:9)라고 환영했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붙인 죄패에도 &amp;quot;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amp;quot;(요 19:19)이라고 왕의 명칭을 넣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서라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존귀한 신분, 곧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 왕 노릇 하는 자리에서 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로 성경은 다윗을 왕의 대표로 세우고, 그 왕권을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quo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amp;quot;는 말씀은 어떤 왕권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요 20:31).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인간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한다면,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말한다. 인간의 최고 높은 자리는 왕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아 왕 노릇 하실 분이다. 그래서 더 높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amp;quot;네가 유대인의 왕이냐&amp;quot;고 묻자(요 18:33),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요 18:36-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8:36-3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리에 속한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필자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듣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말씀을 한 번만 들어도 삶을 고치고, 누가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를 다그치며 회개한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진리에 마음이 꽂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짓과 진리를 늘 섞어서 물 탄 것을 먹던 사람은 계속 물 탄 것을 좋아한다. 필자는 물 탄 것, 설탕 탄 것을 다 빼고 순수한 복음으로 간다. 할렐루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왕이라고 하신 것은 어디에서 왕 노릇하는 자라는 뜻인가? 그분은 바로 영계의 왕이라는 뜻이다. 원문으로 보면 &amp;quot;내 나라&amp;quot;는 &amp;quot;내 왕국&amp;quot;이다. 예수님은 이 땅의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시다. 물리적인 이 세상에 속한 왕만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다(계 17:14). 영적인 모든 세계와 사탄과 마귀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그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리실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왜 그냥 두시는가?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시험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다. 마귀의 말을 따라갈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갈 것인가를 선택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로봇처럼 프로그램을 집어넣어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게 한다면 인간에게 무슨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겠는가?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amp;quot;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amp;quot;(고전 9:27)라고 했다. 내게 주신 많은 시간과 은사와 달란트와 물질을 어디에 가장 값지게 쓸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고로 가장 인간다움은 자유의지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자유의지를 자기 욕망을 위해 쓰거나, 사탄 마귀처럼 주님 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면 교만이 높아지고 자기 자랑과 뽐냄이 시작된다.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가 그랬다. 여로보암 2세의 왕조는 끝났고, 웃시야 왕은 나병에 걸려 죽는 날까지 별궁에 살았다(대하 26:21). 하나님이 왜 너를 왕으로 세우셨는지, 왜 너에게 그 지위와 직분을 주셨는지, 왜 너에게 돈을 주셨으며 왜 너에게 건강을 주셨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고 왜 법관으로 세우셨는지를 모르면 마찬가지다.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나님을 알았다가도 교만해지면 무너지고(단 4:30-33),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지워질 수 있다(계 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 육체가 잘 먹고 잘 살며 쾌락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골프를 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다. 하늘나라를 준비하여 거기에서 아름다운 신분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다. 할렐루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다. 고로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의 왕권이 아니라 영계를 다스리는 왕권이며, 우리도 그 나라를 바라보고 자유의지로 날마다 주님을 선택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다윗은 시편 110편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천국의 왕과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가장 훌륭한 계시를 받은 사람 세 명을 꼽는다면 그 가운데 한 명이 다윗이라고 본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들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 왕국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국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110편을 보자(시 110: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1-2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amp;quot;라는 말에서 &amp;quot;내 주&amp;quot;는 장차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가 천국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왕 노릇 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원수들을 발판으로 밟고 권능의 규를 잡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베드로도 오순절에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선포했다(행 2:34-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B.C.1040년에 태어나 30세에 왕이 되었고, B.C.1010년부터 970년까지 40년 동안 왕 노릇 하였다(삼하 5:4). 그러니 B.C.1000년경에 살았던 사람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왕 노릇 하실 것을 환상으로 보아 버린 것이다. 당시에 하나님께 아들이 있을 줄을,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힌트는 창세기 18장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두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amp;quot;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amp;quot;(창 18:10)고 하셨다. 필자는 이것을 아들이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신 힌트로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확인해 보니 천국에서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도 집에 심방하실 때가 있다. 그러면 그때 보좌는 비어 있을까? 아니다. 거기에 빛으로 앉아 계신 분이 있다. 동시에 존재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시는 것도 들을 수 있다. 보좌가 세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른편에 보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보좌는 하나이고 거기 앉으신 분도 한 분이시다. 놀라운 비밀이다.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전혀 다른 두 인격체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신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기로 선택하셨고, 그래서 아들로 오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시 110: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왕일 뿐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祭司長, priest)이라는 것이다. 아론 반차의 제사장들은 죽으면 그 직분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했지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던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 14:18-19). 멜기세덱이 제사를 드렸는가? 아니었다. 그는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축복하는 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신 것은 &amp;quot;나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온 대제사장이다, 나는 왕만이 아니다&amp;quot;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서 우리의 마지막 신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벧전 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국에서 왕 노릇과 제사장 노릇은 무엇인가? 필자가 천국에서 자세히 확인해 보니, 왕 노릇 하는 것은 성 밖에 가서 만국 위에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성 밖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들어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들 위에서 왕 노릇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무엇인가?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24 반차로 나뉘어 24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가 있다. 이십사 장로는 24 마을의 수장이다. 주님께서 영광의 광장으로 불러 예배를 드리실 때에는 24 마을의 모든 사람이 올라가 예배드릴 때도 있고, 지파와 같은 각 마을만 올라가서 예배드릴 때도 있다. 예배의 자리에는 24 마을의 자리가 다 있다. 그때 24 마을의 대표가 주님 앞에 가서 거문고를 타는데, 그 옆에는 금 대접이 있다(계 5:8). 이십사 장로만 부르는 노래가 있고, 십사만 사천 명만 부르는 노래가 있고(계 14:3), 허다한 무리가 부르는 노래와 천사만 부르는 노래가 다 다르다. 그런데 이때에 이십사 장로가 거문고를 타면 주님께서 너무 기뻐하신다. 그때 금 대접을 주님께 올린다. 이때 올린 금 대접은 천국의 24 마을에 살고 있는 천국 성도들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다. 그 기도를 주님께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이미 우리 가족이 들어가 있으면 구원받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천국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쓰임 받으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성 밖으로 가서 다스리려면 왕이 되어야 한다. 그 예표가 바로 &amp;#39;다윗&amp;#39;이다. 다윗은 성가대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었고,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다 24 반차로 나누어서 일하게 했다(대상 24:18; 대상 25:31). 다윗은 천국을 보고 와서 그것을 천 년 전에 미리 이 땅에 세운 것이다. 고로 우리는 다윗을 일평생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다윗은 왜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성전을 짓지 못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을 읽을 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다윗이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했지만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다. 회개하면 누구든지 용서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청원은 다 들어주셨지만 성전을 짓는 것만큼은 안 된다고 하셨다(대상 22: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상 22:8-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왕 가운데 가장 많이 전쟁한 왕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amp;quot;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amp;quot;(대상 28:3) 성전을 지을 수 없고 평화의 왕이 와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평화의 왕이 그의 아들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평강이라는 뜻의 샬롬에서 나온 이름이다. 아가서의 술람미(아 6:13)를 솔로몬의 여성형으로 보기도 한다. 히브리어는 원래 자음으로만 기록되었고 모음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붙여 읽는데, 같은 어근에서 솔로몬은 남성형, 술람미는 여성형으로 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다윗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 열쇠가 앞에서 본 요한복음 18장의 말씀이다. &amp;quot;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amp;quot; 이기게 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전쟁이 영적 전쟁(靈的 戰爭, spiritual warfare)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구약 시대는 아직 강한 귀신들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탄의 왕국이 아직 없었고 뱀들이 돌아다녔을 뿐이다. 물론 귀신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들은 숫자가 적어서 아직 군대로 조성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귀신과 싸우라거나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한 번도 없다. 그 대신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아닌 바알과 아세라 같은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가 신 노릇을 하면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종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다시 넘보지 못하게 하도록 전쟁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것이었지만, 인간과 전쟁하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육적인 전쟁을 하면 죄없는 여자도 죽이고 아이도 죽여야 할 때가 있다. 그 성을 끝까지 방어하겠다고 버티면 불로 태워 모두 죽이게 되는데, 그때 여자도 죽고 아이도 죽지 않겠는가? 실제로 다윗은 그 땅을 칠 때 남녀를 살려 두지 않았다(삼상 27:9). 죄 없는 사람들도 죽어 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살인죄와도 맞물려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었기에 전쟁을 수행했지만, 그때 무고한 사람도 죽어 갔다. 그렇기 때문에 &amp;quot;네가 피를 많이 흘렸다&amp;quot;는 것은 육적인 전쟁에서 무고한 피를 흘렸으니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신약에서는 단 한 번도 인간과 전쟁하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영적 전쟁을 하라고만 되어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2).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amp;quot;서로 싸우지 마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amp;quot; 하는 인간의 방법만 가르친다. 그것만 가르친다면 사실 그 종은 가짜다. 그것은 세상에 학문에서도 가르치고 또한 일반 치유학에서도 다 가르친다. 교회에 오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할렐루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신약에서는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자에 대한 소개가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신약시대 이후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귀신과 싸워서 이기는 자인 것이지, 사람과 싸우는 자가 아니다. 사람과 싸우고 있다면 아직 귀신에 속고 있는 자이다. 지금도 내가 혈기가 나서 다른 사람과 다투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노릇 하기 어렵다. 어떤 교회에 가면 장로들이 목사를 휘두르며 &amp;quot;젊은 목사야,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안 들으면 너는 끝이다&amp;quot;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로가 되니 이 땅에서 왕 노릇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막 9:35). 그런데 그것을 모른다. 조금 지위가 있고, 조금 능력이 나타나고, 조금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한다. 귀신이 가르쳐 준 것을 깨달음이라 여기고 스스로 보혜사라고 하는 자도 있다. 완전히 미혹된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내일 아침에 그냥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주 예수님께서 허락하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셔서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고로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것은 육적 전쟁에서 흘린 무고한 피 때문이며, 신약의 성도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과 싸워 이기는 왕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왕위를 대했기에 참된 왕이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짜 왕다운 왕은 다윗밖에 없었다. 왜 그런가?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가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하나님만 높아지시면 되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다윗의 생애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를 보라. 요압 장군을 보내어 압살롬을 치게 했다면 그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왕노릇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우는 가운데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머금고 건너갔다(삼하 15:23).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했다(삼하 15:25-2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15:25-26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 왕이다. 다윗은 &amp;quot;나는 천한 사람으로서 왕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왕으로 세워 주셨다&amp;quot;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다. 최소한 두 번은 직접 죽일 수 있었으나 살려 주었다. &amp;quot;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amp;quot;(삼상 24:6)이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가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설령 이 땅의 목사가 타락하여 잘못 가르칠지라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대우할 때 하나님은 그 성도의 마음을 다 아신다. &amp;quot;함부로 하지 마라, 그는 내가 종으로 세운 자다.&amp;quot; 이처럼 하나님께는 질서가 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부터 그것을 알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다윗은 왕이 된 뒤에도 왕위를 움켜쥐고 왕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백성과 가나안 땅을 주변 민족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 힘썼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장 많이 전쟁을 해야 했고 많은 피를 흘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가 시온 산성을 빼앗고(삼하 5:7),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으로 집을 지어 주었을 때에도(삼하 5:11) &amp;quot;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내 하나님의 집은 초라한 천막에 있다&amp;quot;는 생각을 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주님이 앞에 있었다. &amp;quo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amp;quot;(시 23:1). &amp;quot;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amp;quot;(시 23:5). 그분이 내 마음의 중심에 계셔야지, 내가 주인이 되면 망가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울은 반대였다. 왕위에 남아 있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다윗이 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며 그를 죽이라고 했다. 밥상에서 다윗 편을 드는 아들 요나단에게 오히려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도 했다(삼상 20:33).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권을 넘기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을 끝까지 보호해 주었고, 다윗이 왕이 되거든 자기 자손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윗은 왕이 된 뒤에 끝까지 수소문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amp;quot;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amp;quot;(삼하 9:7) 하고 자기 밥상에서 먹게 했다. 이처럼 다윗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잊지 않고 배신하지 않았다. 고로 다윗이 참된 왕이 된 것은 왕위를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은혜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무엇이며, 그 복은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다시 아모스서로 가 보자. 아모스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고,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회개하라는 것이다. 아모스서에 나타난 회개는 5장 4절부터 나온다.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암 5:4). &amp;quot;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암 5:6). 찾으라는 이 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회개(悔改, repentance)라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amp;quot;아버지, 살려 주세요.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amp;quot; 이렇게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amp;quot;찾으라&amp;quot;는 말이 아모스서의 결론인 9장 11-12절과 연결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두 가지가 나온다. 핵심은 11절이다. 그렇다면 &amp;#39;다윗의 무너진 장막&amp;#39;은 무엇이겠는가? 죄를 지어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쇠잔해진 왕국, 쇠락해진 왕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 때에 그들의 왕권을 가장 높여 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잘한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장내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불을 보내시고 지진을 보냈다. 그래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은 교만하다. 무언가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 된 줄로 착각한다. 주님께서 하게 하셔서 가능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물론 인간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필자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목숨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적당히 하면 은혜도 적당히 온다. 죽기를 각오해야 내 몸이 죽을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형벌을 받아 쇠잔해질 것을 다 아시고 다섯 가지 환상을 통하여 아모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끝장난다고 그대로 끝나 버린다면 너무나 소망이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윗의 허물어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무너진 왕권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웃시야 이후에 히스기야 왕도 있었고 요시야 왕도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러 온 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다윗의 장막을 세우러 오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설교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왕위에 앉게 하리라고 맹세하셨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선포했다(행 2:30-36).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실시된 최초 회의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는 아모스 9장 11-12절을 직접 인용했다(행 15: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려고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무진장 관심이 많으셨다.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도 &amp;quot;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amp;quot;(마 10:5-6)고 하셨다. 그러나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을 거부해 버렸다. 기득권을 가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가 선생 노릇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만 배우러 가니 기분이 나빠서 죽이려 했다.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인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돈 버는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책망하자 기분이 나빠서 죽이라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트집잡기를 &amp;quot;그가 안식일을 범했다, 그가 신성을 모독했다, 그가 성전을 헐었다가 사흘 만에 세운다고 거짓말을 했다&amp;quot;라며 예수님을 공격하고 모함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도 예수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그들을 계속해서 품으려 하셨다(마 23:37). 그래도 안 되자 &amp;quot;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amp;quot;(눅 23:28)고 하셨다. A.D.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그날이 보이셨던 것이다. 그 죄가 얼마나 컸으면 훗날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겠는가? 그래서 결국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amp;quot;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amp;quot;(마 28:19)라고 명하셨다. 그것이 바로 아모스 9장 12절의 성취다. B.C.760년경의 예언이 약 800년 뒤에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2절의 &amp;quot;그들&amp;quot;은 다윗의 장막, 곧 하나님께서 하나로 보시는 남북의 이스라엘이다. 에돔은 아모스 1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쳤기 때문에 불로 태우시겠다고 한 민족 가운데 하나다(암 1:11-12). 그 에돔이 다 쳐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또 다른 이방 나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에돔의 남은 자들도 적이 아니라 살려야 할 자들이다. 그런데 그 기업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메시아를 배척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8: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아모스 9장 11-12절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천년왕국을 만들어 다시 유대인을 쓰시겠다고 한다. 이제 그런 해석은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나라를 세우시고 영적인 천국을 주시는 것이지, 이 땅에 육신적인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타락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소망을 둘 수는 없다. 온전히 성령의 소유가 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유대인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성도들을 쓰신다. 그들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 상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을 쓰시고, 이기는 자를 쓰시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놀랍게도 아모스 9:12절의 말씀이 번역의 과정에서 바뀌었다. 12절의 &amp;quot;기업으로 얻게 하리라&amp;quot;는 히브리어로 야라쉬(יָרַשׁ)다. 이는 &amp;#39;상속으로 받다, 기업으로 얻다, 획득하다&amp;#39;라는 뜻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할 때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인용하였다. 그런데 70인역은 이 대목을 &amp;quot;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모든 민족들이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amp;quot;라고 번역했다. &amp;#39;에돔&amp;#39;이 &amp;#39;사람&amp;#39;으로 바뀌었고, 동사가 &amp;#39;에크제테오(ἐ&amp;kappa;&amp;zeta;&amp;eta;&amp;tau;έ&amp;omega;)&amp;#39;로 바뀌었다. 제테오는 &amp;#39;찾다&amp;#39;라는 말인데 앞에 에크가 붙어 강조하므로 &amp;quot;간절히 찾다&amp;quot;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은 원래는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었는데, 에돔(אדום)과 사람(אדם)은 자음이 거의 같고, 기업으로 얻다(야라쉬)와 찾다(다라쉬)도 한 글자 차이가 날 뿐 거의 비슷하다. 이것이 어떻게 바뀌었고 왜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말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에크제테오는 바로 5장 4절의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amp;quot;와 연결된다. 5장 4절과 6절의 &amp;quot;찾으라&amp;quot;는 히브리어로 다라쉬(דָּרַשׁ)이고, 70인역은 그것도 똑같이 에크제테오로 번역했다. 그러니 무슨 뜻인가? 원래 기업으로 얻게 하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거역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이방인들이 나를 찾으면 원래 유대인들과 북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그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 하늘나라 성 밖의 만국을 기업으로 차지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유대인이 넘어진 것을 고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지만(롬 11:11),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니 원가지를 향하여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롬 11:18).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 복은 다시 넘어간다. 주님은 누구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시겠다고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셨다(계 2:5). 고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세워졌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방인에게 그 기업이 넘어왔으니, 우리는 그 촛대를 놓쳐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지금 대한민국에 엄청난 복을 주시려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불러 깨우고 계신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게 된 이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 촛대가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한국까지 옮겨 왔는데, 이것을 놓쳐 버리면 안 된다. 필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이 일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동참한다면, 하늘에서 받을 상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상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다윗을 일평생 연구하자. 그는 자신이 받은 왕위를 결코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살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게 주어진 지위와 직분이 주님의 것인 줄로&amp;nbsp; 알고, 군림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자. 사람과 싸우지 말고 이제는 정말 귀신과 싸워 이기자. 그리고 아모스가 외친 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자. 회개란 아버지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번역까지 바꾸셔서 하나님을 찾는 이방인에게 주시겠다고 한 그 복을 놓치지 말자. 우리가 회개하여 준비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할 때, 북한에까지 복음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모스의 이 놀라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도착했으니, 이 복을 놓치지 않고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는 복된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30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morning_qt/331524</guid>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524#comment</comments>			<pubDate>Fri, 30 Oct 2026 09:57: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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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4)]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아모스9:11~12)_2026-10-29(목)</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485</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4)]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7BdiTtGV6r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BdiTtGV6r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와 성도의 올바른 태도&lt;/strong&gt;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물질적 번영 이면에 숨겨진&amp;nbsp;&lt;strong&gt;정치적 오만과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도덕적&amp;middot;종교적 타락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심판을 경고&lt;/strong&gt;한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자신의 쾌락과 지배를 위한 도구로 오용했던 여로보암 2세나 웃시야 왕의 태도를 비판하며, 자신의 허물을 겸손히 인정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던&amp;nbsp;&lt;strong&gt;다윗의 중심과 삶야말로 진정한 왕의 모형이자 하나님이 회복하고자 하는 무너진 장막의 핵심&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직분이나 부유함 앞에서 교만하여 군림하려 들지 말고&amp;nbsp;&lt;strong&gt;겸손히 섬김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lt;/strong&gt;, 가난한 자 역시 요행을 바라기보다 성실하게 본분을 다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선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lt;/strong&gt;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lt;/strong&gt;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lt;br /&gt; 2. 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lt;strong&gt;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lt;/strong&gt; 예언했는가?&lt;br /&gt; 3. 하나님은 왜 &lt;strong&gt;지진&lt;/strong&gt;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lt;br /&gt; 4. 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lt;strong&gt;심판과 회개와 회복&lt;/strong&gt;을 선포하는가?&lt;br /&gt; 5. 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lt;strong&gt;부자와 가난한 자&lt;/strong&gt;는 어떻게 살았는가?&lt;br /&gt; 6. 하나님은 왜 하필 &lt;strong&gt;&amp;#39;다윗&amp;#39;의 무너진 장막&lt;/strong&gt;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lt;br /&gt; 7. &lt;strong&gt;천국에서&lt;/strong&gt; &lt;strong&gt;왕 노릇 할 자&lt;/strong&gt;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위와 권세와 부를 맡기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누리고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조금만 일이 잘 되고 지위가 높아지면 교만해진다. 자기가 어디에서 시작된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줄로 착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며, 어떤 사람을 참된 왕의 본으로 세우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는 이 물음에 답을 준다. 아모스서는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라는 두 왕의 시대에 일어난 지진으로 시작하여(암 1:1),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난다(암 9:11). 왜 하필 다윗인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다윗 이후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그때, 두 나라의 왕은 다윗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두 왕에게, 그리고 그 시대의 부자들과 지도자들에게 &amp;quot;다윗을 보라&amp;quot;고 외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남유다 사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예언했는지, 아모스서가 어떤 구조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지, 그리고 부강했던 북이스라엘의 속사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으며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라는 이름은 &amp;quot;짐을 지고 가는 자&amp;quot;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여기에 &amp;quot;무거운&amp;quot;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짐을 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아모스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영의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이 그에게는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써 주신 것이 감사했다. 그의 속에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amp;quot;대한민국에서 목사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새벽 기도만 없으면 정말 좋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되려면 새벽 기도를 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amp;quot;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지 거기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하나가 나쁘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다. 주어진 환경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회개가 되어 악한 영이 떠나간 뒤로 날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이렇게 지쳐 쓰러질 정도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수천 년 된 귀신이 들어와서 나가지도 않고 버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목소리가 상할 때가 있다. &amp;quot;찬양을 잘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어쩌지?&amp;quot;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금요일에 강력하게 전투 기도를 하고도 주일에 말씀을 증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귀신을 쫓는 일과 함께 말씀도 잘 증언하라고 맡기셔서 늘 바쁘다. 그래도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를 통하여 누군가가 주님을 더 알게 되고 주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주의 일을 하다가 가기를 원하는 것, 이 마음이 바로 다윗의 마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셨는가?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세례 요한에게 안수를 받아 죄를 넘겨받으셨다. 대속죄일에 아론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그 머리에 두었던 아사셀 염소처럼(레 16:21),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신 것이다. 그때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요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고(마 11:11), 제사장이자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인류의 대표였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듯이(삼상 16:13),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아 메시아의 직분을 감당하는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면서도 &amp;quot;힘들다, 피곤하다&amp;quot;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배를 타고 이동하실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겠는가(막 4:38). 그래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찾아 살리시는 데 마음을 쏟으셨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사람이 바로 &amp;#39;다윗&amp;#39;이다. 고로 짐을 감사로 지게 하는 힘은 주님의 마음, 곧 다윗의 마음에서 나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 예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를 공부할 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남유다 사람이 북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노릇을 할 때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자고 살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기 집이 있었다면 집에서 밥을 먹고 나와서 예언을 선포했겠지만, 그곳은 남의 나라였다. 밥 먹으러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남유다까지 오가려면 며칠이 걸렸겠는가? 성경에는 아내가 따라와서 밥을 해 주었다는 말도 없고, 북이스라엘에 집이 있었다는 말도 없다. 그러면 기록이 없으니 모른 채 지나가면 되는가? 사람은 육체를 가졌기에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가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할 때에 과연 그는 어디에서 살았고 누가 밥을 먹여 주었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볼 때에는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훨씬 더 잘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으려면 모든 배경이 세팅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까지 생각해 보아야 아모스 선지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예언을 했는지 좀 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예수님을 보자. 예수께서는 원래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었지만 공생애 동안에는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마 4:13). 고로 그곳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머무르셨던 집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집에 계실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는데,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렸다(막 2:1-4). 필자는 그 집이 예수님께서 사시던 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 집이 예수님이 기거하던 집이 아니었다면 남의 집 지붕을 함부로 뜯어내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으셨겠는가? 남의 집 지붕을 뜯었다면 돈을 많이 물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시는 집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허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북이스라엘로 건너갔다(암 1:1). 그런데 그때 그곳에서 그가 선지자 노릇을 하기가 과연 좋았겠는가?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지혜롭게 예언했다. 먼저 북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부터 그들의 심판을 예고했다. 그러다가 맨 나중에 북이스라엘에 관하여 예언을 했다. 그러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가 왕을 모반한다고 여로보암에게 고발하고(암 7:10-11), 아모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암 7:1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2-14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모스가 아주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선 시간에 말했듯이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아모스는 목축업자였고,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가 북이스라엘에서 머물 곳을 구하여 살았을 것이고, 밥도 사 먹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우리도 어떤 곳에 집이 없으면 얼마 동안이나마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 집을 얻은 후에, 음식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는가? 그도 역시 남의 나라의 땅에 집도 가지고 있지 않고 밥을 먹여줄 사람도 없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물질을 어느정도 소유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로 아모스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자였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촌사람이고 가난한 농부나 목동이었다고 하면서 그가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외지 사람이었던 아모스의 말에 힘이 실리도록 어떤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도 깜짝 놀랄 어마어마하게 큰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이 바로 B.C.758년경에 일어난 그 웃시야 지진이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는 웃시야 왕이 분향하던 날에 지진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진은 200년이 훨씬 지난 스가랴 시대에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감람산이 갈라지면 &amp;quot;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amp;quot; 도망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슥 14:5). 그만큼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에서 올라와서 심판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조사해 보니, 문서를 남긴 기록 선지자들 가운데 남유다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한 사람은 아모스밖에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벧엘로 가서 예언한 일은 있었지만(왕상 13:1), 기록 선지자로는 오직 아모스뿐이다. 호세아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지만(호 1:1) 그는 남유다 사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남유다 사람을 보내어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하게 하셨겠는가? 그리고 그가 선포한 예언이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건 한마디로, B.C. 758년에 일어난 대지진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하나님은 왜 지진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B.C.763년에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amp;quot;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amp;quot;고 외쳤다(욘 3:4). 사흘 동안 걸어야 할 큰 성읍에서 하루만 외쳤는데도 그들은 동물까지 함께 금식하면서 회개했다. 그런데 그날 마침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욘 3:5). 그리고 그 뒤로 함부로 요나의 나라를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5년 뒤인 B.C.758년경에는 북이스라엘의 어떤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아모스서 첫 절은 그것을 말한다(암 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의 진앙지는 북쪽 하솔 지역으로 추정된다. 북쪽에서 땅이 흔들렸다는 것은 그때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가 깨닫고 돌아왔어야 했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하나님께서 땅을 흔드시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진이 잦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땅이 흔들릴 때 속히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나라는 지진 지대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깨우시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 태풍과 홍수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난을 다녔는지 모른다. 강변 둑 바로 안쪽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강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둑이 있었는데, 어느 해에는 그 둑이 터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강물이 불어나면 피난을 가야 했다. 물이 둑의 끝까지를 10으로 볼 때, 8부 능선 높이까지 차오르면 공무원들이 와서 사람들을 모두 피난시켰다. 그렇게 위험한 지경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필자는 그때마다 자연재난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연의 신호를 볼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나팔 재앙을 내리실 때를 보자.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연을 치신다. 첫째 나팔은 땅을, 둘째 나팔은 바다를, 셋째 나팔은 강들과 물샘을,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을 치신다(계 8:7-12). 그리고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에 가서야 사람을 치신다(계 9:4). 그러므로 자연을 먼저 치실 때 빨리 알아들으면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내 육체의 문제로 치실 때 빨리 깨달으면 내 영혼이 다치지 않는다. 할렐루야! 이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랫동안, 즉 41년간 통치했다(왕하 14:23). 그리고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가장 넓은 영토를 회복한 왕이기도 했다(왕하 14:25). 하나님께서 그렇게 엄청난 영토를 주셨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송아지 우상과 바알 신앙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자고 종교개혁 운동을 펼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을 세웠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4:24). 자기가 잘나서 북이스라엘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그를 흔들어 깨웠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그때 엄청난 규모의 강한 지진은 그와 그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북이스라엘로 파송을 받은 남유다의 선지자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가서 무엇을 전했는가? 아모스서를 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장부터 4장까지는 죄를 폭로하고 심판(審判, judgment)을 선고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5장과 6장은 회개를 촉구하고 다시 멸망을 경고한다. 그리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 회복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요엘서나 호세아서와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심판을 선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 그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아모스 1장과 2장은 주변의 나라들과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간단하게 선고한다. 모두 똑같은 말로 시작한다. &amp;quot;아무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amp;quot; 그리고 똑같이 &amp;quot;불을 보낼 것이다&amp;quot;로 이어진다. 첫째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이었다(암 1:3-4). 둘째는 블레셋의 도시 가사다(암 1:6-7). 셋째는 페니키아의 도시 두로다(암 1:9). 그다음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암 1:11; 창 36:1), 롯의 후손인 암몬(암 1:13; 창 19:38)과 모압(암 2:1; 창 19:37)이다. 그리고 남유다였다(암 2: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아모스는 아람 나라부터 남유다까지 일곱 나라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2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를 언급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유다까지도 모두 불을 보내신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은 불을 보내신다는 말이 없다. 필자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예고편으로 지진을 내리신 것으로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지는 아모스 3장과 4장은 북이스라엘만을 향하여 집중적으로 심판을 선고한다. 3장 1절은 &amp;quot;이스라엘 자손들아&amp;quot;라고 부르며 시작하고, 4장 1절은 &amp;quot;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amp;quot;라고 부른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기름진 목초지여서 그곳의 암소들은 살이 잘 찐 채 있었다. 이것은 부유층에 사는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들은 힘없는 자를 학대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면서 남편에게 술을 가져오게 하여 마셨다(암 4: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처음에 주변 나라들을 다 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가 3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니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7장에서는 그가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하라고 하며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암 7:12-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아모스 5장 4절부터 분위기는 바뀐다. 그러니 회개(悔改, repentance)하라는 것이다(암 5: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4-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나를 찾으라&amp;quot;는 말씀은 곧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불이 나온다. 그리고 요셉의 집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지파, 곧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의 행위가 더러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을 구하라고 하셨다(암 5: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14-15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18절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곧 올 것을 경고한다.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고 한다(암 5:18).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되지 않고 구원의 날이 되도록 하라고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모스 6장에 들어가면 시온과 사마리아의 교만한 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며(암 6:1) 이스라엘의 멸망을 다시 말하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미리 보여 준다. 그리고 9장에서 회복을 말한다. 그 회복의 말씀이 9장 11절부터 15절까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아모스더러 왜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틈을 막고, 허물어진 것을 세우겠다고 예언하게 하셨겠는가? 그것은 아모스 1장 1절의 지진 때문이다. 지진으로 다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언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참 잘 와닿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고로 아모스서는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다윗의 장막으로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소망케 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어떻게 살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이 지진으로 집들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겠는가? 그때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로, 정치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자기가 잘나서 나라가 잘 먹고 잘 사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주변의 강국을 눌러 놓았는데도 그것을 잘 몰랐다. 하나님께서 북쪽의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은 남북의 두 나라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려는 배려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착각했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착각이다. 실제로 그때는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를 제외하면 남북 역사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때였다. 주변 나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니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로, 경제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북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잘 사는 듯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빈부 격차가 엄청나게 심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아모스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amp;quot;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amp;quot;고 선포케 하신다(암 3:15). 부자들은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었고, 값비싼 상아로 장식한 집을 짓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이다. 청년부 임원들이 모여서 다음 임원 모임을 어디에서 할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amp;quot;이번에는 우리 아빠 별장으로 가자&amp;quot;고 하는 것이었다. 그 청년들은 거의 다 명문대에 다니는 부잣집 자녀들이었다. 임원 회의를 마치면, 부장님이 사 주는 랍스터를 먹으러 가고, 큰 스테이크가 나오는 식당에 갔다. &amp;quot;여기는 진짜 부자 동네구나.&amp;quot;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리밥만 먹고 자란 필자는 그때 처음 부자 동네가 어떤 곳인지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모스 시대의 부자들이 바로 그렇게 별장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 6장에서는 그 지도자들의 생활을 더 자세히 묘사한다(암 6: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6:4-6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집만 상아로 지은 것이 아니라 침상까지 상아로 만들었다. 그 위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양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다윗처럼 악기를 만들되 자기 흥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유흥의 영이 가득했던 것이다. 필자가 축사를 해 보면 과거에 부자로 살았던 양반들 가운데 유흥의 영이 가득한 사람이 많았다. 손만 대도 몸의 여러 곳에서 유흥의 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은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비싼 향유를 바르면서도 요셉의 환난, 곧 무너져 가는 나라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때 약한 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모스 2장 6-7절은 그것을 보여 준다(암 2: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2:6-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것은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신 한 켤레 값에 팔려 갈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권세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았다. 올바로 가려는 연약한 자에게는 &amp;quot;그따위로 살아서 밥 먹고 살겠느냐, 잘못된 것이라도 옳다고 말하라&amp;quot; 하면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굽게 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드나들 정도로 도덕적, 성적으로도 타락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5장 11-12절은 그들이 어떻게 재물을 모았는지도 말해준다(암 5: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11-12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옛날에는 재판관들이 성문에서 재판했다. 그런데 그들이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의 송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율법은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신 24:17), 그들은 그 반대로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8장 4-6절은 그들의 장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암 8: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4-6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월삭과 안식일에는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그날이 언제 지나서 빨리 장사하여 돈을 벌까 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곡식을 담는 그릇인 에바는 작게 하고, 값을 치르는 무게인 세겔은 크게 하여 눈속임으로 돈을 벌었다. 사기를 친 것이다. 이렇게 불리한 경제 활동으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로, 종교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2장 8절은 이렇게 말한다. &amp;quot;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amp;quot; 율법은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다(출 22:26-27). 그런데 제사장들은 그 옷을 돌려주지 않고 제단 옆에서 그 겉옷 위에 누웠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권력을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빌려주고 받은 담보물로서 겉옷은 해 지기 전에 되돌려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려주지 않았고, 신전에서 벌금으로 거둔 돈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취하고 살았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벧엘과 길갈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더했다(암 4: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기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도 기부를 많이 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객과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자가 하는 일은 모두 선하고 다 옳다고 보는 것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가난한 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것까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땀 흘려 수고해서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선택이 무조건 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다(막 10:18). 고로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가난한 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부자인 사람은 더욱더 누리려 하고 더 빼앗으려 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는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은 왜 하필 &amp;#39;다윗&amp;#39;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장차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예언하게 하셨는가? 왜 모세의 장막도 아니고, 여호수아의 장막도 아니고, 솔로몬의 장막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을 언급하셨는가? 그것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 장차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와 신분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게 될른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다윗은 30살에 왕이 되었지만, 한 번도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윗은 항상 자신이 원래 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경 기록을 다 조사해 보면, 다윗의 어머니는 이새의 정식 아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다윗은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고 형제들에게서도 천대를 받았다(삼상 17:28). 그러므로 그는 항상 &amp;quot;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amp;quot;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위를 내려놓아야 할 순간에 결코 미적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는 상아 궁에서 고기를 상에 미어터지게 차려서 먹으며 엄청나게 누리고 살았다. 그건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윗은 항상 그렇게 사는 것이 과분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백성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다윗은 자기를 내려놓을 줄을 알았다. 특히 그의 나이 65세 때에 인구 조사를 시킨 죄로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어갔을 때,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청원했다(삼하 24: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범죄한 자는 나인데 왜 백성을 치십니까? 나와 내 집을 쳐서 없애 버리시고 이 백성은 살려 주십시오.&amp;quot; 다윗은 이런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다. 사실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큰 죄는 단 두 번뿐이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이고, 또 하나는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한 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회개하는 법을 배웠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했을 때 그는 즉시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삼하 12:13), 시편 51편에 보면 눈물로 회개했다. &amp;quot;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amp;quot;(시 6:6)라고 고백할 만큼 그는 울며 회개했다. 왕일지라도 그는 기꺼이 권세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다윗이 미리 알려 준 것이다. 그는 자기가 누리고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라고 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라고 왕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평생 자기를 대적했던 여러 장군들이 있었으나, 그 장군들이 자기에게 투항하여 나올 때 한 번도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다 품어 주었다. 다만 다윗 밑에 있던 장군들이 시기하여 죽여 버렸다. 그래서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요압이 죽였고(삼하 3:27),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도 요압이 죽였다(삼하 20:10).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기꺼이 받아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amp;quot;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amp;quot;(삼하 7:2)라고 말했다. 내 집은 향기 나는 백향목 집인데 하나님의 집을 초라한 천막에 둘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집을 내 집보다 더 아름답게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오늘날 자기 집은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집은 초라해도 아무런 걱정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amp;quot;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amp;quot;으나 누구에게도 백향목 집을 지어 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삼하 7:6-7). 그런데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너무 감동하셔서 이렇게 약속하셨다(삼하 7: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7:14-15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혹시 후손이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겠지만 왕위는 빼앗지 않으시겠다는 언약(言約, covenant)이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왕위가 세워졌다. 그렇다면 그 왕위에 앉아 남유다의 제10대 왕이 된 웃시야는 다윗처럼 이러한 마음을 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나중에는 왕권과 제사장의 권한을 구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교의 권한까지 자기가 차지하려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달려들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졌던 것이다(대하 26:16).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하셨고(대하 26:19),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내리셨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웃시야가 눈물로 통회했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로 별궁에 살았다고 전할 뿐이다(대하 26:21).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amp;quot;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왕들아, 여로보암 2세야, 웃시야 왕아, 다윗을 보라. 다윗은 너희처럼 살지 않았다.&amp;quot; 고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은,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며 백성을 살리려 했던 다윗의 마음이 진정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다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는가? 하나님의 경륜은 야곱에게서부터 시작된 이기는 자를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창 32:28). 그런데 이기는 자의 최고봉은 역시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이었던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도 그것을 잘 보여 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야곱에게 그의 허리에서 장차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창 35: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5:11-12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이기는 자의 꽃은 역시 왕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는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가고 상속자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으로 받는다고 했다(계 21:7). 그리고 그 가운데 최고는 바로 왕 노릇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하늘의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시는가? 그 땅을 누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가? 그것은 왕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것이 왕 노릇하는 자를 탄생시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경륜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야곱은 왜 이기는 자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아브라함과 이삭 때에는 장자 한 사람만 기업을 잇고 나머지는 멀어져 갔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자식 모두가 다 기업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걸었다.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되도록 힘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얍복 강가에 남아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로 몸부림치면서 기도하면서(창 32:25), &amp;quot;하나님이여, 이 내 열두 아들을 다 상속자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들을 살려주소서&amp;quot; 하고 간구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도 야곱과 마찬가지의 품성을 지녔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왕이 되었으나 그 자리에서 군림하려 하지 않았고 누리려 하지 않았으며 압제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백성을 살리라고 세워졌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늘 겸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다윗의 그런 마음을 기뻐하셨다. 왕 노릇을 할 자는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는 그것을 시인할 줄 알고, 자신이 가진 왕적 지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징계하고 백성을 살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모세도 그랬다.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던가!(출 32: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다윗(B.C.1040~970)의 삶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이사야 선지자(B.C.740~680, 사역기간)를 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메시아를 이렇게 약속하셨겠는가!(사 9: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계속해서 다윗을 언급하셨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amp;quot;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amp;quot;라고 전했다(눅 1:32). 이것은 그 보좌에 앉는 자,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알려 주시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진짜인 사람, 그러한 자가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큰 교회를 하면서 누리기만 했다면 그가 천국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 상황을 확인해 보니 천국에서는 평소에 모두 흰옷을 입고 다니는데, 단 두 사람만 왕복을 입고 다닌다. 다윗과 솔로몬이다. 그런데 다윗의 왕복은 빛으로 가득하지만, 솔로몬의 왕복은 빛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 왕이 돌아다니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말년에 마음이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했다(왕상 11:4). 그래서 간신히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 세워진 이유를 잘 알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이 권세를 잡으면 군림하려 하는가? 그건 그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 때문이라고 본다. 사탄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며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타락했던 존재였는데, 그 부하들 역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탄의 반역에 가담했기 때문이다(사 14:14). 그래서 뱀들과 귀신은 계속 올라가려고 하고, 자리를 차지하면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말 다윗처럼 되려면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이 떠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귀신이 떠나가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회개로 자신의 더럽혀진 마음을 비우고, 끝까지 겸손히 섬기고 충성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지위와 직분을 주실 때 그것으로 군림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려 먹고, 떵떵거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권한을 누리면서도 뻔뻔스럽게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파렴치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이 힘들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amp;quot;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amp;quot; 필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 종손 집안에서, 단군의 무당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오직 감사할 뿐이다.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과중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일평생 단 한 번이라도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고 본다. 내게 주어진 어떤 지위나 어떤 은사도 나에게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지도자가 될수록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않았는가!(마 20: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권력을 주셨는지, 왜 부자로 살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다. 또한 가난한 자로 태어났다면 열심히 회개하고 열심히 일해서 그 가난을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요행이나 법을 이용해서, 일하지 않고도 누리려 하는 얄팍하고 거짓된 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도 망하게 된다. 그렇다. 부자들은 부자가 될수록 섬겨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잘 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남북으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통하여 우리도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바를 우리 마음에 새기자. 날마다 회개하여, 내 속에서 군림을 부추기는 악한 영을 내보내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끝까지 겸손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자.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큰 자는 낮은 자로서 섬기고 낮은 자는 더 열심히 일하여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욱더 살펴보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9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와 다윗의 장막 회복 인포그래픽-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9fc0f990a0ccf04b02311b09c0d88ef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07515f83eafd585195c5c2134530c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130d08fb813c96ebed71c7807221a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c3777e89222b48b28e60cc1f72d6cf0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52d742ca0b5c36e29f11440bb7caf4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50ca092a904927fa15d2a94ca45f7c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918497fa65d2d1a148f0045adfb67e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f994819ca00d4d64b79f1ca9e451b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4df314723d78a3b97a54662f41915a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3197ad699b7af03950117caf8c9c9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c684f03fe006535630ef80cdab0e3a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ecf93abf3c9bbe304882a5df324aa3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b94966346bfe5adc0ec2fa2cb9b572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8131b87df07b299b2ef394131478f5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의_경고와_회복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d45303a8a9ff73a1ca1335b0ce26c0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와_다윗의_장막_리더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3c48153a2ddffe8d330811b6b6da62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aef326da01fd046c2bdc824f1ecf30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428a9f886e0e9b1deed0935568cc3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21a80c1cea66d10099abe3fee6106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896fc13d7fd2564d6e30f18ac68ab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fd785a596451bceb3baa09bebb956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f243be268c515c1c842a3b1817ad9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f8e002cb31a6b234a9db03fe97d26a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fa185ef7e74a3f070f519e2205b27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b44b703950f80c47da254e008e3809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f20fa17efc8ca56018c76cb7d3cb10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5cc3d1eef0fa5831ece5f906f5ecd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345769b7b582f895d55449efe618528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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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485#comment</comments>			<pubDate>Thu, 29 Oct 2026 17:39:29 +0900</pubDate>
		</item><item>
			<title>[민수기강해(04)]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3)(민1:1~4)_2026-10-28(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331345</link>
				<description>&lt;p&gt;2026-10-28(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민수기강해(04)]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3)(민1: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2VSnir64UP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VSnir64UP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민수기의 전체적인 구조와 구약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를 다루며, 신자들이&amp;nbsp;&lt;strong&gt;영적 전사로 거듭나기 위한 회개의 중요성&lt;/strong&gt;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출애굽 1세대의 실패와 2세대의 회개를 대조하며,&amp;nbsp;&lt;strong&gt;죄로 인한 징계에서 벗어나 참된 의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필수적&lt;/strong&gt;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민수기에 등장하는&amp;nbsp;&lt;strong&gt;만나,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의 생수, 장대에 달린 놋뱀, 그리고 42번의 진을 치는 여정&lt;/strong&gt;&amp;nbsp;등이 모두&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예표&lt;/strong&gt;임을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궁극적인 안식처이자 좋은 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lt;/strong&gt;&amp;nbsp;영적으로 무장시키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민수기는 왜 백성의 수가 아니라 &lt;strong&gt;영적 전사의 수&lt;/strong&gt;를 센 책인가?&lt;br /&gt; 2. &lt;strong&gt;출애굽 1세대의 38년 광야 생활&lt;/strong&gt;은 왜 의미 없는 삶이 되었는가?&lt;br /&gt; 3. &lt;strong&gt;만나&amp;middot;붉은 암송아지의 재&amp;middot;반석의 생수&lt;/strong&gt;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4. &lt;strong&gt;불뱀&lt;/strong&gt;은 무엇이었으며, 백성은 왜 &amp;#39;우리가 범죄하였다&amp;#39;고 고백했는가?&lt;br /&gt; 5. &lt;strong&gt;장대 위의 놋뱀&lt;/strong&gt;은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예표인가?&lt;br /&gt; 6. &lt;strong&gt;죄의 독을 이기는 생명&lt;/strong&gt;은 무엇이며, 요 11:25-26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lt;br /&gt; 7. 출애굽의 42번 진 친 여정은 왜 &lt;strong&gt;좋은 땅이신 그리스도&lt;/strong&gt;를 예표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민수기강해(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 1: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군대로 부르신다. 민수기는 백성의 수를 세고 기록했다는 뜻의 책인데, 그 수를 두 번 센다. 1장에서는 출애굽 1세대를, 26장에서는 출애굽 2세대를 세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신 것은 단순한 인구가 아니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의 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군대가 될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결국 하나님의 군대가 되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져 없어져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전사가 될 수 없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 은혜를 우리에게 끼쳐 주시는 분이 장차 오실 메시아이시며, 민수기에는 그분에 관한 예표(豫表, type)가 최소한 아홉 가지 정도가 나온다. 필자는 그중 도피성과 도피성의 대제사장을 나누어 열 가지로 정리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께서 광야의 만나로 예표되었으며, 붉은 암송아지의 재 그리고 반석의 생수로 예표되었음을 살펴보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민수기가 영적 전사를 뽑는 책이라는 사실과 출애굽 1세대의 38년이 남긴 교훈을 먼저 정리하고, 지난 세 가지 예표를 간단히 복습한 뒤, 민수기 21장의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민수기 33장의 42번 진을 친 여정을 히브리어 원문과 신약의 말씀으로 풀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예표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민수기는 왜 백성의 수가 아니라 영적 전사의 수를 센 책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출애굽 후 2년 2월 1일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수를&amp;nbsp; 세라고 하신다(민 1:1). 그런데 어떤 수를 세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싸움에 나갈 만한 전사를 세라고 하셨다(민 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2-3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각 지파별로 계수해 보니 총계가 60만 3,550명이었다(민 1:46). 나중에 26장에서 출애굽 2세대를 다시 세어 보면, 그들은 60만 1,730명이다(민 26:51). 거의 비슷한 숫자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단순히 당신의 백성을 세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싸움에 나갈 영적 전사의 숫자를 세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대에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세라고 하셨는가? 그건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십 세 이상 청년을 세라고 하셨는가? 그것 역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지금의 시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는 이제 인류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무리를 쓸어버리시기 위해 영적 전사를 뽑고 계신다. 그 전사를 소집하는 신호가 바로 &amp;#39;나팔절&amp;#39;이라는 절기다. 이스라엘은 대적을 치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불었다(민 10:9).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야말로 아마겟돈 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뽑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는 누구와 싸울 준비를 해야 하는가? 구약에서는 그것이 육체적 싸움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영적인 싸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다(엡 6:1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기는 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 1세대는 르비딤에서 아말렉 족속과 한 번 딱 싸웠다(출 17:8-13).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앞에 두고 계속 불평했다. 그 땅은 좋고, 농산물과 과일도 좋고, 성읍도 다 견고해서 좋은데, 그 땅의 거민은 이스라엘을 잡아 죽일 존재이니 절대 못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민 14: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들의 말대로 되었다. 주님께서 무려 광야 38년을 보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정했던 자들을 광야에 엎드려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그대로 될 줄 믿어야 한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현재 내가 가진 상황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그대로 믿고 나가야 한다. 그러면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까지 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안 된다고 하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날마다 영적 포부를 더 강력하게 갖추어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영적 전사는 누가 되었는가? 그들을 출애굽 1세대가 아니라 출애굽 2세대였다. 왜냐하면 출애굽 2세대들이 처음으로 민수기 21장에서 비로소 회개한 후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수었기 때문이다(민 21:21-35). 바산 왕 옥은 철 침상을 가진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였다. 그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신 3:11).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가나안 땅의 아낙자손의 거인 족속처럼 그들은 어마어마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 땅까지 두 지파 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셨다(민 32장). 너희가 차지했으니 너희 것이라는 것이다. 고로 민수기는 영적 전사를 뽑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만한 이십 세 이상의 남자, 곧 영적 전사가 되게 하려고 우리는 민수기를 공부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출애굽 1세대의 38년 광야 생활은 왜 의미 없는 삶이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 기자였던 모세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어떻게 기록했는가?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1세대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20장부터 36장까지는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민수기에서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출애굽 후 2년째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9장과 20장 사이에는 약 38년간의 공백이 들어있다. 고로 38년의 역사가 거의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는가? 그건 출애굽 1세대들의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어 가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amp;nbsp; 그리 즐거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인생도 주님의 징계 아래에서만 일평생을 살다간다면 의미 없는 삶이 된다. 회개해야 그때부터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는 삶은 사실 거의 의미가 있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돌이키는 반작용으로서 그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은 절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회개부터 시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20장과 21장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죄를 지어서 죽는 장면이 20장이라면,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21장이다. 그래서 민수기 20장에서는 출애굽 1세대의 마지막 사람들인 신(Zin)광야에서 미리암이 죽고(민 20:1),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는다. 왜냐하면 이들 2명도 역시 백성들처럼 민수기 12장에서 하나님의 영도자 모세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다. &amp;quot;너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않느냐?&amp;quot;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영도자, 아론은 제사장, 미리암은 선지자로서 맡은 분야가 원래부터 달랐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자기의 분량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미리암은 나병에 걸렸다가 나았다. 필자가 보기에 아론도 그 일이 하나님께 계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들이 므리바 물에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한 까닭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셨다(민 20:24). 그러자 아론은 모세를 거역했고 하나님께 거역함으로 호르 산에서 자기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그대로 죽었다(민 20:26). 그때 나이가 123세였다(민 33:39). 그러나 필자는 그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amp;quot;넌 끝났다&amp;quot; 하신 것으로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 때 범죄 때문에 받는 고통을 두고 의인인 척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로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도 나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징계다. 죗값을 받고 있는 것이니 하나도 상급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징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그것을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포장하여 스스로를 세뇌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병상에 누워 심방을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기보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던 백부장의 믿음(마 8:8)을 가져야 한다. 고로 회개 없이 징계 속에 보낸 38년은 정말 기록할 것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의미 있는 삶을 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만나&amp;middot;붉은 암송아지의 재&amp;middot;반석의 생수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에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예표되어 있는가? 필자가 정리한 열 가지는 이렇다. 1)광야의 만나, 2)붉은 암송아지의 재, 3)반석의 생수, 4)장대에 달린 놋뱀, 5)42번째 좋은 땅, 6)구름기둥과 불기둥, 7)아론의 싹 난 지팡이, 8)야곱의 별과 규과 주권자, 9)도피성, 10)도피성의 대제사장이다. 그중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이제는 세 가지를 간단히 복습해 보자.&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 광야의 만나다&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민 11:6-9, 출16:4, 31)&lt;/strong&gt;&lt;/span&gt;.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으며, 백성이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었는데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다(민 11:7-9). 예수님은 &amp;quot;나는 생명의 떡&amp;quot;이라고 하셨다(요 6:35). 그렇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전사로 준비되려면 애굽의 음식을 끊고 만나를 먹어야 했다. 그 만나는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로 무장하지 않고는 절대 전사가 될 수 없다. 은사만 터득해 가지고는 몇 번 쓰임받다가 끝나 버린다. 내 속이, 내 내면이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갈 때 베드로는 &amp;quot;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amp;quot;라고 고백했다(요 6:66-69). 먼저 믿으면 곧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했다(고전 15:45). 육체의 양식은 우리가 먹는 밥이고, 혼의 양식은 세상 공부이며,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힘들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 붉은 암송아지의 재&lt;/span&gt;다(민 19:9).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진영 밖 정한 곳에 두었다가 물에 타서 부정을 씻는 물로 뿌렸다(민 19:9). 그러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회개 기도하는 것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물론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성도들은 속죄는 이미 받았고 정결(淨潔)을 위하여 전심으로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한 회개가 99%인 것이다. 속죄(贖罪, atonement)는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영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 죄를 덮을 수 있으니 하나님이 100% 하시고 100% 공짜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용하여, 회개하고 자백함으로 내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하나님이 대신 해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자백하지 않으면 일반 병이든 정신병이든 귀신이 꽉 차서 일평생 병원에 다니며 살게 된다. 장차 정말 마지막 때가 되어 용이 저 무저갱에서 올라와 다섯 달 동안 괴롭힐 때(계 9:5) 귀신이 많으면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빼야 한다. 그런데 회개만 하면 너무 힘드니, 말씀도 듣고 영적 전투 기도와 방언 기도로 영의 에너지를 올리고, 사역자를 통해 사역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눌리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조화롭게 세워진다. 그렇게 정결한 그릇이 되어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금 그릇, 은 그릇으로 쓰임받는다(딤후 2:20-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셋째, 반석의 생수&lt;/strong&gt;&lt;/span&gt;다(민 20:11, 출17:6).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마셨다(민 20:11). 출애굽기 17장의 르비딤 반석 사건은 1세대의 이야기이고(출 17:6), 민수기 20장은 2세대의 이야기다. 여기서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말씀(민 20:8)에 순종하지 않고 반석을 쳐서 물을 냈다. 그 일 때문에 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채 느보 산 꼭대기에서 죽었다(신 34:1-5). 여기서 반석의 생수는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다(요 4:14). 그리고 그 물은 성령이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요 7:37-39). 반석은 예수님의 몸이고, 쪼개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신약의 예수님과 구약의 사건과 일을 서로 대입하는 방법을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 해석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먼저 알려 주셨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고린도전서 10장에 그 원형이 나와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름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고, 바다는 홍해이며, 신령한 음식은 만나이고, 신령한 음료는 반석에서 나온 물이다. 그리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요 12:24). 필자가 해바라기 씨 하나를 심어 보았더니 500개 이상 열렸다(실제는 1,000개에서 2,000개까지 열린다고 한다). 예수님 혼자 생명을 가지고 계시면 그 생명은 한 알 그대로 있다. 예수님은 그 생명을 해방하여 나누어 주시려고 죽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죽음일 뿐 아니라, 생명을 해방하여 분배해 주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보통 교회에서는 이 두 번째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속죄만 들려준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요 20:22). 예수님이 육체로만 계시면 그분이 직접 오셔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제자들에게 가셔야 했다. 그러나 살려 주는 영이 되시니 보혜사 성령으로 바람과 같이 들어오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불뱀은 무엇이었으며, 백성은 왜 &amp;#39;우리가 범죄하였다&amp;#39;고 고백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번 시간의 핵심인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네 번째 예표&lt;/span&gt;로 들어가 보자. 민수기 21장 7절에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통틀어 참된 회개로 살아난 첫 고백이 나온다. 1세대도 정탐 사건 뒤에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말했지만, 곧 명령을 어기고 올라갔다가 패했다(민 14:40-45). 그러나 21장 7절의 고백은 달랐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살려 주시기 위하여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살리는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1:5-9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백성은 아론이 죽은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다가 마음이 상했다(민 21:4). 그런데 이들은 출애굽 2세대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일도 하지 않고 날마다 하늘에서 공짜로 만나를 먹었다. 돈 주고 사 먹었는가? 물이 없다고 하는데, 따르는 반석에서 계속 물이 나왔다. 불평하려고 시작하면 끝이 없다. 광야에서 열흘만 굶어 보라. 땅을 파도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은혜를 그렇게 쉽게 잊어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셨다. 불뱀은 어떤 뱀인가? 독이 많은 뱀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계산해 보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약 200만 명이다. 200만 명을 물어 죽일 만큼 심각하려면 불뱀이 얼마나 많아야 하겠는가? 그 많은 뱀이 어디서 왔는가? 땅속에서 올라왔는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 불뱀을 &amp;#39;독사&amp;#39;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6절의 불뱀들은 네하쉼 세라핌(הַנְּחָשִׁים הַשְּׂרָפִים), 곧 스랍 뱀들이다. &amp;#39;나하쉬(נָחָשׁ)&amp;#39;는 뱀이고, &amp;#39;사라프(שָׂרָף)&amp;#39;는 스랍이다. 8절에서 만들라고 하신 불뱀도 사라프다. 스랍이 대체 어떤 존재인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스랍은 하나님 보좌 곁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송하던 천사다(사 6:2-3). 여기의 온 땅은 천국에 있는 땅이다. 그런데 뱀이 나왔다고 200만 명이 물려 죽었겠는가? 보통 독사에게 물리는 일은 독사가 거기에 있는지 몰라서 물리는 것이다. 알면 물리겠는가? 독사가 있으면 사람은 무서워서 도망간다. 물어 달라고 가지 않는다. 남자들이었다면 그 뱀을 가만두지 않고 막대기로 때려죽일 것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꼴을 베다가 뱀만 나오면 낫으로 대가리를 찍어 버렸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물려 죽어 갔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실제 뱀이었다고 해도 틀렸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주님이 보내셨다고 하셨으니 그대로 믿으면 된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조금 더 따져 보면 이것은 스랍 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 6장과 에스겔 1장을 읽어 보면 구약 시대의 하나님 보좌는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그 불이 사라지고 생명수가 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하늘에 오르신 뒤, 태워 없애는 심판의 불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되었다(계 22:1). 이것이 신구약의 하나님 보좌에 일어난 현격한 변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생명수로 경험하지만, 과거에는 심판으로 경험했다. 그 이글이글 타는 보좌 곁에서 스랍 천사도 불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고로 하나님께서 그날 하늘에서 스랍 천사들이었지만 뱀들이 되어버린 존재들을 파송하신 것이다. 유월절 때 장자들을 치러 온 멸하는 자(출 12:23)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던 것처럼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스랍 천사가 아니라 스랍 뱀이라고 했는가? 타락한 천사가 곧 뱀이기 때문이다. 그 뱀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창 3:14). 그때 하나님을 찬양하던 스랍이었다가 타락하여 이 땅에 쫓겨난 천사, 곧 귀신 뱀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백성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3장의 뱀도 나하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창세기 3장 1절의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다. 영어 성경은 이 뱀을 일반적인 뱀을 뜻하는 스네이크(snake)가 아니라 서펀트(serpent)라고 번역했다. 특별한 뱀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 뱀이 물질적인 뱀이 아니라 영적인 뱀이라고 말한다(계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의 옛 뱀은 헬라어로 오피스(ὄ&amp;phi;&amp;iota;&amp;sigmaf;)이고, 히브리어로 나하쉬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의 나하쉬는 일반적인 뱀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말을 했던 것이다. 그 존재가 만약 육체를 가진 뱀이었다면 그 속에 영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백성이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는가? 얼마나 많은 식구와 자녀와 사람들이 죽어 갔으면 이런 고백이 나왔겠는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뱀들이 와서 많은 사람이 죽어 갔기 때문에 &amp;quot;여호와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 하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로 불뱀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보내신 스랍 뱀, 곧 영적인 뱀으로 보이며, 그 엄청난 죽음 앞에서 2세대는 처음으로 참된 회개의 고백을 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장대 위의 놋뱀은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예표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필 놋으로 뱀을 만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게 하셨는가? 사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성막에서 번제단은 조각목에 놋을 입혀 만들었고, 그 뿔도 놋이다(출 27:1-2). 물두멍도 놋이다(출 30:18). 성막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금이 있고 은이 있으며, 지성소는 완전히 금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바깥뜰의 번제단, 곧 심판의 자리는 놋이다. 그러니 놋뱀을 만들라는 것은 심판을 대신 받을 뱀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 놋뱀에게 죄를 넘겨 심판을 놋뱀이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민수기와 출애굽기를 읽다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는 말씀(고전 5:7)을 통하여, 구약의 율법 말씀 속에 예수님이 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 각도에서 성경을 읽으니 예수님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왜 우리는 구약은 구약의 이야기, 신약은 신약의 이야기로 그냥 넘어갔던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한다(요 3:14). 그때 뱀에 물린 백성은 죽어 가고 있었다. 독 없는 뱀에 물리면 죽지 않는다. 독 있는 뱀에 물리면 몇 시간 안에 죽으니 빨리 병원에 가서 해독제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놋뱀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산다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두 종류의 반응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이렇다. &amp;quot;미친 짓이다, 해독제를 써야지, 해독시켜줄 수 있는 풀을 찧어서 먹이든지, 물린 자리를 칼로 째고 독을 빨아내든지 해야지, 저 놋뱀을 쳐다본다고 낫겠느냐, 이 바보야. &amp;quot;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나가서 예수 믿는다고 구원받겠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한 사람은 그때 장막 안에서 죽었을 것이고, 박으로 기어 나와 쳐다본 자는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려고 이 예를 쓰셨다. 죄의 독이 퍼져 내가 죽어 가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용서한다고 믿으면 속죄를 받는다. 주먹을 믿어야지, 힘을 믿어야지 그걸 어떻게 믿느냐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나의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법이고 그것이 생명이라고 믿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놋뱀이 뱀이라면 예수님이 사탄이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아까 백성을 물어죽인 불뱀은 독이 있는 뱀이었다. 그러나 놋뱀에는 독이 없다. 예수님은 대신 심판받기 위하여 독 없는 뱀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정확히 알고 이렇게 해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율법의 요구는 죄의 삯인 사망이다. 예수님 자체는 죄가 없으시다. 그러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전가받으셨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고(요 1:29), 그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죄를 없애셨다. 이 방식을 놋뱀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없이 하시는 방법을 만드신 것이다. 민수기 21장에서 회개하는 사람을 살려 주시는 일을 광야에서 미리 연습시켜 주셨고,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그것으로 가르쳐 주셨다. 고로 장대 위의 놋뱀은 독 없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이며, 그분을 쳐다보고 믿는 자는 살고, 비웃는 자는 죽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죄의 독을 이기는 생명은 무엇이며, 요 11:25-26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죄의 독은 어떻게 우리를 죽이는가? 죄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과거에 내가 지은 죄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꺼내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선 그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동시에 그 죗값으로 뱀들이 나를 공격하면서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계속 사망의 영이 쌓이다가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많아질 때 우리가 죽는 것이다. 필자의 사역 경험으로는 80세가 넘으면 영이 너무 많아서 축사를 위한 안수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너무 많은 영이 들어와 가득 차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한 말씀(시 90:10)처럼, 죄의 독인 사망의 영들이 다 들어와서 결국 죽어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필자는 그 뱀들에게 직접 물려 보았다. 손과 발 양쪽을 다 물려 보았다. 금요기도회 때 사진으로도 보여 주었다. 이때 독있는 뱀들은 다 입 위쪽에 2개의 이빨이 있다. 그러므로 독사에게 물리면 이빨 자국이 2개가 남는다. 그런데 필자는 여러 번 물렸으나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고 있다. 분명히 죽어야 하는데 희한하다. 그래서 필자는 민수기 21장의 불뱀이 물질적인 뱀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왜냐하면 내가 영적인 뱀들에게 물려 보았고 그 흔적을 지금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뱀이 없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으면, 뱀에 물려도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요1:5). 칠흑 같은 어둠이라도 빛을 비추면 어둠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이겨보지) 못하더라&lt;/div&gt; &lt;p&gt;&lt;img alt=&quot;KakaoTalk_20250704_194742186_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84f35fcd5a659ef21294118ea87ce2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KakaoTalk_20250704_194805933_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8aa28fe37d9bde63d91478e1ae3712c2.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나오는 &amp;#39;깨닫지 못하더&amp;#39;라는 동사는 난외주에 &amp;#39;이기지 못하더라&amp;#39;로도 되어 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절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망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 뱀의 공격을 받았다면 해를 받았을 것이고 그것이 겹치게 되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내 안에 영적 생명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민수기 21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죽어나갔다. 그러나 내 속에 예수님이 가득하고 뱀이 없으니, 뱀이 공격해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갈 6:17). 필자는 독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필자의 스승께서 영으로 보시니,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지 3,000년 된 영, 곧 예수님 오시기 1,000년 전에 떨어진 놈이 와서 확 물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므로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내 속에 죄가 없고 사망의 영이 없고 뱀이 없으면 독뱀이 물어도 효과가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생명에 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독교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 구절이 성경이 거짓말이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한다. &amp;quot;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니, 죽으면 죽는 것이지 죽었는데 사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데 믿어도 다 죽더라, 그러니 거짓말이다.&amp;quot;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영과 육을 교차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살겠고, 무릇 육체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은 자기가 해석을 잘못해 놓고 성경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사망은 육체가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영이 영원히 죽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한다(계 2:1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이 다스릴 권세가 없다(계 20:6). 그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들어갈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고 죄를 계속 지어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수준까지 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간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비율이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필자가 보니 성 안에 든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예수를 믿었으나 수도 없는 사람들이 성 밖에서 살고 있다. 고로 죄의 독을 이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회개로 뱀을 내보내고 그 생명으로 채운 자는 사망을 이기고, 계속 죄를 지어 이름이 지워진 자는 성 밖에 남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출애굽의 42번 진 친 여정은 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다섯 번째 예표로서, 인생의 최종적인 종착지로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lt;/span&gt;는 어디에 나오는가? 민수기 33장은 출애굽의 여정을 요약한 장이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이 기록되어 있다(민 33:1).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도 떠났고, 멈추면 그 자리에 진을 쳤다(민 9:15-23). 그 진을 친 장소가 여기에 다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3:3-4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처음으로 출발 장소는 라암셋이었다. 라암세의 &amp;#39;라&amp;#39;는 애굽의 태양신을 가리키고, &amp;#39;라암셋&amp;#39;은 &amp;#39;라&amp;#39;가 그를 낳았다는 뜻이다. 라가 애굽의 왕을 낳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그 라 신의 이름을 가진 곳에서 출발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에게 내리신 벌이었다(출 12:12). 나일강의 신, 개구리, 이, 파리 신, 메뚜기의 신에게 차례로 벌을 내리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5절부터 진을 친 곳이 나온다. 라암셋이 첫 번째, 그곳을 떠나 진을 친 숙곳이 두 번째, 광야 끝 에담이 세 번째, 비하히롯 앞이 네 번째다. 이렇게 번호를 붙여 가면 에시온게벨을 떠나 진을 친 신 광야 곧 가데스가 33번째(민 33:36)이고, 에돔 땅 변경의 호르 산이 34번째다. 출애굽한 지 40년째 오월 초하루에 아론이 그 호르 산에서 죽었다(민 33:38). 그 뒤 살모나가 35번째, 부논이 36번째, 오봇이 37번째,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이 38번째, 디본갓이 39번째, 알몬디블라다임이 40번째, 느보 앞 아바림 산이 41번째, 그리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가 42번째다(민 33:48). 그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출애굽 2세대에게 유언처럼 신명기를 선포하고 생을 마쳤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42번 진을 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왜 42번인가?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가 그 답을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4대, 14대, 14대를 합치면 42대다. 그런데 실제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열왕들의 족보를 보면 42대보다 더 많다. 마태는 몇몇 왕을 뺀 것이다. 예를 들어,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서는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 세 왕이 빠졌고(마 1:8),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서는 여호야김이 빠졌다(마 1:11). 왜 뺐는가? 42대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러면 왜 42대를 맞추었는가? 마태가 민수기 33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2번 진을 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종적인 종착지인 좋은 땅 앞에 이르렀듯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된 족보도 42대 만에 좋은 땅이신 예수님께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분이 안식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천국이시다. 그리고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빠진 왕들은 천국에 없었다. 천국에 간 사람들만 예수님의 조상으로 셈하면 42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증명할 수 없으니 믿지 않아도 된다. 다만 천국의 실상을 말해 주어야 여러분이 이해하기 쉬우니 참조만 하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인생의 여정도 예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버지 집, 천국이다. 이스라엘이 라 신의 땅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모압 평지에 이르렀듯이, 우리의 여정도 그 모든 어려움을 통과하여 결국 예수님께로 귀결되어야 한다. 고로 42번 진을 친 여정은 풍성한 모든 것이 가득하고 없는 것이 없으신 좋은 땅,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이며, 그 여정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곧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갈 때 그리스도 안에서 종결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다음에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번 시간에 역사와 원문의 많은 자료를 통하여 민수기에 예표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다. 민수기는 영적 전사를 뽑는 책이다. 불평하며 안 된다고 말한 1세대는 그 말대로 광야에서 엎드러졌고, 그 38년은 기록할 것이 없는 삶이 되었다. 그러나 불뱀에 물려 죽어 가던 2세대가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쳐다보는 자를 다 살리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징계를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포장하지 말고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속죄는 하나님이 100% 공짜로 주셨으니, 우리는 자백함으로 내 속에 들어온 뱀들을 내보내어 정결해져야 한다.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고, 기도로 영의 에너지를 올리며,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내 속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하면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바라보자. 그리고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 우리의 좋은 땅이시요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부지런히 달려가, 마지막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8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와 그리스도의 예표 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6b83f3a9ad9354a80245775e30a620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547c74b0f2fa67c3db447e5a5f61a9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7506d2ed22f16cef74522077f381eb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5fc29a07e442fe632d1dc62c7cbdba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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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3512ac0c1b1e5911bac5c395f0e74c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2526da5a7c34ebe465ea039b393386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aa637687d48cd7a65ffcf5d366c547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f5ef2cd5e71e72f69989a8ca989132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abc3db8c9876048aca58f7cb00c30e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민수기_생명의_청사진.pdf_1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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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a219550d5aec38f31c37182c554238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a28fdd6844098590a970ad765cada4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b2524b4265b54b53100c539319cd2e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dc641462bdbdfa9c59e8e0d865c8b7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53a78a3b478565c333fd5cae6857c4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4872b864ad9a5e0648e05fe305c320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7d6a075ccb85d3564a2b0d95ede995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858e69f7dca034a7cf8c93bae95dd5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c7b6aae3cf6e11a71133df95a8b55a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4)] 영적_전사의_청사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45/331/6b7f00f670ac962ac50494bbfe79f36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민수기</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영적전사</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광야생활</category><category>만나</category><category>놋뱀</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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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3)]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아모스9:11~12)_2026-10-28(수)</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34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3)]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YrsnA18ZvD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rsnA18ZvD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교만,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lt;/strong&gt;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남유다의 &lt;strong&gt;웃시아 왕&lt;/strong&gt;과 북이스라엘의&amp;nbsp;&lt;strong&gt;여로보암 2세&lt;/strong&gt;가 거둔 국가적 번영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와 역사적 도우심&lt;/strong&gt;의 결과였음을 역사적 사건과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두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amp;nbsp;&lt;strong&gt;대지진&lt;/strong&gt;과 같은 강력한 경고를 통해 그들의 교만을 깨우치려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는 인간의 업적을 자랑하는 삶에서 돌이켜&amp;nbsp;&lt;strong&gt;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lt;/strong&gt;만이 진정한 구원과 회복에 이르는 길임을 청중에게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아모스서의 주제 말씀&lt;/strong&gt;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lt;br /&gt; 2. 예수님은 &lt;strong&gt;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lt;/strong&gt;를 어떻게 도우셨는가?&lt;br /&gt; 3. 아모스 1장 1-2절의 &lt;strong&gt;지진&lt;/strong&gt;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lt;br /&gt; 4. &lt;strong&gt;여로보암 2세&lt;/strong&gt;와 &lt;strong&gt;웃시야&lt;/strong&gt;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lt;br /&gt; 5. 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lt;strong&gt;일식&lt;/strong&gt;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lt;br /&gt; 6. &lt;strong&gt;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lt;/strong&gt;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lt;br /&gt; 7. &lt;strong&gt;무너진 다윗의 장막&lt;/strong&gt;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 grace)로 된 것이다. 나라의 안정도, 개인의 형통도, 사역의 열매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미리 일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자주 잊는다. 자기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한 줄로,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안정된 줄로 착각한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다른 하나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착각에 빠진 자들을 어떻게 깨우시는가? 그리고 깨우침을 받지 못하고 무너진 자들을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에는 바로 이 착각에 빠진 두 명의 정치 지도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이고, 또 한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했다. 왜 이 두 왕이 아모스서의 첫 장 첫 절에 등장하는가? 그리고 왜 아모스서는 9장 11-15절,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나는가?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있다. 그 사이를 잇는 단서가 1장 1절에 나오는 웃시야 시대에 일어난 지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이 무엇인지를 먼저 바로 잡고, 성경과 함께 역사의 기록, 곧 요나 시대의 일식과 요세푸스가 남긴 웃시야 때의 대지진 기록을 통하여 아모스 9장 11-12절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통치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5장 24절이라고 즉각적으로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오직 정의를 물 같이 흐르게 하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구원을 얻거나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요 심판자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것이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니 잘 사는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본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말씀은 율법에 나온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라고 하셨고(신 24:17-21), 옷 한 벌밖에 없는 사람의 옷을 전당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하셨으며(출 22:26), 자기의 형제를 종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다(레 25:39-4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대로&amp;nbsp;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긍휼(矜恤, mercy)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밥을 퍼 주는 사역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필자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9장 11-12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이것이 핵심인가? 이 말씀을 따라가면 누구나 구원을 받고 이방인도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하여 아모스서를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말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옛날부터 다 그래 왔기 때문에 그것이 중심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로 아모스서의 중심은 공의로운 심판의 경고를 넘어, 그 심판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고 이방인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어떻게 도우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어떻게 도우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약한 자와 힘없는 자를 도우셨다. 그런데 복음서를 다 들어가 보면 예수님은 가난한 자보다 귀신에게 시달린 자를 고쳐 주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밥을 주신 사역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마 15:34), 이 두 번이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쫓아오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요 6:15). 그리고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는 너희에게 밥을 주는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정확히 알려 주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도와주면 그 사람은 일하지 않는다. 게을러진다. 공짜로 어떻게 얻어먹을 수 없나 하며 일평생을 살게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먹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것이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정말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면 우리도 잘못하면 좌파 사상으로 넘어가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도우셨지만, 사도행전은 그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도우신 사람들은 전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이었다. 마귀에게 눌려서 병들고, 마귀에게 눌려서 귀신 들리고, 마귀에게 눌려서 가난하게 되고, 마귀에게 눌려서 어려움을 당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주셨다. 진짜 핵심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약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마지막 때에 용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시대가 온다(계 9:1). 그때 엄청난 황충, 곧 귀신들이 올라와서 다섯 달 동안 전 세계를 괴롭힌다(계 9:5). 그때 우리 속에 귀신이 많으면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내 속에 있는 귀신을 드러내고 내보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아모스 1장 1-2절의 지진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언제 활동했으며,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보여 주셨는가? 아모스 1장 1-2절을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2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온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이다. 갈멜산은 북이스라엘에 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 모두 팔백오십 명과 맞붙었던 곳이다(왕상 18:19).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다 심판(審判, judgment)하시겠다는 뜻이다. 그 심판이 임하면 목자의 초장도 말라 버린다. 이 목자는 누구인가? 드고아의 목자, 곧 아모스 자신의 초장도 마르는 것이다. 갈멜산 꼭대기도 마르고 파괴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서부터 계속 일어날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하나님은 장차 심판하실 것을 무엇으로 미리 보여 주셨는가? 지진으로 보여 주셨다. 1장 1절은 그 지진이 남쪽은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북쪽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모스가 계시의 말씀을 받은 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였다. 말씀을 받은 뒤 2년 후에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진은 하나님이 장차 공의(公義, justice)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전조였다.&lt;br /&gt; &lt;img alt=&quot;[호세아강해(08)] 웃시야 시대 대지진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4c9f8046a1d4fa4755477e4d6b6842a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을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경험했겠는가, 경험하지 않았겠는가?(암 7:10) 당연히 경험했을 것이다. 여로보암 2세도 당연히 겪었을 것이고 웃시야 왕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일찍 망하고 그 뒤로 남유다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이 지진 이야기는 20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잊히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이 스가랴서에 나온다(슥 14:4-5). 하나님은 예수님이 감람산에 지상 재림하실 때 지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비유로 웃시야 때의 지진을 쓰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스가랴는 BC 52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웃시야 때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9&amp;middot;11 사태라고 하면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던 충격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과 같다. 대체 무슨 지진이었기에 그랬겠는가? 고로 이 지진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면 아모스 9장 11-12절을 이해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는 어떤 왕이었는가?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남유다의 제10대 웃시야 왕은 BC 792-740년에 통치했고,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여로보암 2세는 그보다 1년 앞선 BC 793년부터 753년까지 통치했다.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에서 남쪽은 20명의 왕이 이어졌고 북쪽은 19명의 왕이 이어졌다. 웃시야는 남유다의 제10대 왕으로서, 52년을 다스렸다(대하 26:3). 가장 오래 다스린 왕은 55년을 다스린 제14대 므낫세이고(왕하 21:1), 웃시야는 두 번째다.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는 41년을 다스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때에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르호보암 때 나라가 갈라져,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남아 남유다가 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가 올라가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그렇게 갈라진 이후로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 때가 가장 넓은 영토에서 살았던 때이고, 어쩌면 주변의 공격 없이 가장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세상의 역사책에는 이때가 가장 부강한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때 거의 다 타락했다. 재판관들은 은을 받고 불리한 재판을 하게 했고, 부자들은 사람을 신 한 켤레에 사고팔았다(암 2:6).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아주 괴롭혔고, 부자들은 상아 침대에 누워 고기를 먹고 살았다(암 6:4). 이것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지도자들은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아 주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해 주었다. 제사장들도 타락하여 정치적인 세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괜찮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열왕기의 기록을 보자(왕하 14:23-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14:23-25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원래 북이스라엘 땅은 갈릴리 바다 근처까지였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때 다메섹을 회복하고 하맛까지 차지했다(왕하 14:28). 아람의 다메섹을 지나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도 앗수르가 쳐들어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가 지난번 호세아서를 강의하면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2세 시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평화를 주신 데에는 뜻이 있었다. 바람이 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북이스라엘을, 고멜을 아내로 취한 호세아를 통하여 돌이키게 하시되,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하셨을 때 그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 시대에는 선지자 세 명이 겹친다. 25절을 보면 여로보암이 영토를 회복할 때 요나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요나는 BC 795-755년, 호세아는 BC 760-725년, 아모스는 BC 760-750년에 활동했다. 그러니 BC 760년경에는 요나는 끄트머리였고, 호세아는 시작했으며, 아모스는 한창 활동하고 있었다. 아모스가 BC 760년에 부름을 받았다면 지진은 2년 뒤인 BC 758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에 스티븐 오스틴 등의 학자들이 이 지진을 조사했는데, 그들은 이 지진을 BC 750년경에 일어난 규모 7.8에서 8.2의 지진으로 보았다. 지금도 이런 지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그 진앙지가 하솔 위쪽, 곧 북쪽이었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09)] 요나·아모스·호세아 활동 시기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c53eb62275686649d777f78fffbf3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0261028_05194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64655f5a24dda4f696f55106b0bb97f.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이 지진에 남쪽의 웃시야 왕이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아니면 북쪽의 여로보암 2세가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북쪽의 여로보암 2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충격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amp;quot;너의 땅을 이렇게 많이 넓혀 준 때가 없었는데,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자만하지 말라,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영토가 안정된 나라를 만든 것은 내가 한 것임을 잊지 말라.&amp;quot; 하시며 땅을 흔들어 깨우신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당시 북쪽 최고의 왕이 되었고, 빈부 격차가 심했지만 주변의 어느 나라도 쳐들어오지 못하는 안정된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주신 이유를 여로보암 2세도 몰랐고 웃시야도 몰랐다. 고로 이 지진은 하나님께서 두 왕을 깨우시려고 보내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일식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세계 최대 강국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치지 않았는가? 요나서를 보자. 요나는 호세아와 아모스보다 한참 앞선 세대이면서 마지막에 겹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여,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셨다.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욘 1:1-2).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다. 요나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지만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욘 3:4-6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십 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선포를 듣고 왕은 사람과 짐승까지 다 금식하게 했다(욘 3:7). 예수님은 이 일을 이렇게 인용하셨다(마 12:4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41 심판 때에ㅍ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나의 이야기는 지어낸 우화나 전래 동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니느웨 왕은 누구였는가? 학자들은 역사 기록을 추적하여 그 왕을 BC 772-755년에 재위했던 아슈르단 3세로 추정한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나온다. 그의 재위 때 개기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가 외치기만 해서는 바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기일식을 보내셨다. 그날이 BC 763년 6월 15일이다. 해와 달과 별은 창조 이후로 똑같이 돌기 때문에 거꾸로 계산하면 그 날짜를 알 수 있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해(07)] 앗수르 왕들의 재위 연대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8606270b204bd8efca4d558b9ff824d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 전에 앗수르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 엄청난 소요 사태가 있었고 전염병이 쏟아졌는데, 6월 15일에 일식까지 일어나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옛날에는 해와 달과 별로 점을 쳤으니 온 나라가 캄캄해지자 난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금식하며 여호와를 믿고 회개했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그때의 아슈르단 3세와 그때 니느웨에 살았던 사람들이 천국에 있었다. 앗수르 사람들 가운데 그때 회개했던 사람들만 천국에 가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해(08)] 앗슈르단 3세 통치기 주요 사건.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681a16b4f26deff965876c13f0362621.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여로보암 2세가 무슨 실력이 있고 군사력이 좋아서 넓은 영토를 차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진이 있기 약 5년 전인 BC 763년에 요나가 가서 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쳐서 앗수르 전체가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대 강국 앗수르를 회개시켜 놓으셨기 때문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계속 치고 올라가 하맛까지 올라갔다(왕하 14:25). 하나님이 다 작업하신 것이다. 만세 전부터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을 정해 놓으시고, 그때에 요나를 딱 보내셔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셨다. 앗수르 제국은 벌벌 떨며 절대 북이스라엘을 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는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치적이라고 자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하여 깨우신 것이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의 영토_하맛어귀에서 아라바바다까지.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b1b19c4f275bba4c1e371279f96972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아라바 바다.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22fd911905195fdda67a1a165ca493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여로보암2세때의 북이스라엘의 영토_하맛어귀에서 아라바바다(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c388792fefce8a9450a36b53abf4c30d.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올라가 벧엘에서 외쳐도, 지진의 충격파가 있었으므로 아무도 남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니 조금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로 북이스라엘의 평화는 여로보암의 실력이 아니라, 요나를 통해 앗수르를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나온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남유다의 웃시야는 어떻게 되었는가? 웃시야도 자기가 나라를 잘 다스려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는 겁을 상실하여 자기가 제사장 노릇까지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왕이 권력을 남용하여 제사장의 직분까지 다 쥐어 보려고 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종교까지 다 쥐어 보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지도자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보라(대하 26:16-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하 26:16-19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감히 왕에게 덤빈다고 화를 내는 그때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나병은 최고의 저주의 형벌이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그를 성전에서 급히 쫓아냈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갔다. 웃시야 왕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다(대하 26:20-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깨우는 지진은 언제 일어났는가? 바로 웃시야에게 나병이 생긴 그날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은 과연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AD 37-100년경에 살았던 유대 학자 요세푸스가 고대 유대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유대 고대사」 9권 10장 4절에 나온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웃시야는 자신의 성공으로 교만해져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분향을 직접 행하려 했다. 제사장 아사랴와 제사장 80명이 저지했다. 제사장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왕이 분노하고 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렸다. 지진으로 성전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왕의 얼굴을 비추자 왕의 얼굴에 나병이 생겼다. 그 지진으로 예루살렘 서쪽 산의 절반이 떨어져 나와 약 4스타디온, 곧 약 740m를 굴러가 멈추었고, 그 토사로 길과 왕의 정원까지 다 묻혀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02)] 웃시야 왕 시대의 대지진 기록.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35ec0c7fb5065eccf4a020101cd4aeb0.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날 740m나 산이 쫙 갈라져 옮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BC 758년경의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셔서 두 왕에게, &amp;quot;이 두 나라를 지금 가장 융성한 나라로 만들어 준 것은 나다, 너희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다.&amp;quot;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북쪽의 여로보암 2세도 회개하지 않았고 남쪽의 웃시야도 회개하지 않았다. 웃시야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분향까지 하다가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그 병을 안고 살다가 죽어 갔다. 북이스라엘은 끝까지 깨닫지 못하다가 40년이 채 못 되어 BC 722년에 멸망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지진이 일어나자, 2년 전부터 북쪽으로 와서 선포하던 아모스의 말을 북쪽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모스 선지자는 &amp;quot;하나님께서 이 지진을 일으키신 것처럼 너희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너희의 잘못을 다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이다, 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이것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amp;quot;고 하였던 것이다. &amp;quot;나는 반드시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amp;quot;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제단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모스가 보았던 다섯 번째 환상, 곧 제단 곁에 서신 주님의 환상이다(암 9:1). 지진 2년 전부터 받은 말씀이었으니 이 환상이 미리 그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판단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서도 아모스서는 회개의 길을 열어 둔다. 심판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회개를 말하고, 그다음에 회복을 말하는 요엘서와 똑같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리고 5년 전, B.C.763년에 개기일식이 있었고, B.C.758년에 지진까지 일어나니 앗수르와 제3대 아슈르단 3세(B.C.772-755)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래서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것이다. 고로 대지진은 남북의 두 왕에게 너희의 부강함은 너희의 치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으니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깨우친 사건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9장 11-12절로 돌아가 보자.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지진으로 무너진 틈을 막고, 쓰러진 장막과 성전을 다시 세우며,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는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너희가 내가 다 도와주어서 잘 먹고 잘 살고 평안하게 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불의를 계속 행한다면 내가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징계를 받아 완전히 망한 나라에도 주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언젠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고, 지진으로 생긴 그 틈을 메우셔서 다시 잘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4-15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일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고 지금도 믿지 않는 저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된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 사상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이제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파할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9). 이것은 다음 시간에 더 이야기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아모스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아홉 가지 예표(豫表, type)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바로 이 9장 11-12절에 있다.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다. 고로 아모스서는 첫 절의 지진으로 시작하여, 그 지진의 상처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물게 하실 하나님을 노래하며 끝난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아강해(06)] 아모스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9가지 예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29af9460fa58a2ac7b38661527c78d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난밤 이것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잘나서 이룬 업적과 치적을 자랑하다가, 사울처럼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나 세우며 다니다가(삼상 15:12) 결국 비참하게 버려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내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를 잘해서,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회개기도문을 잘해서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내가 여기 있기까지 보이지 않게 나를 도와주셨다. 이것을 기억해야만 우리가 타락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갈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일생에 행복한 일, 좋은 일이 많아진다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을 믿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혹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닥쳤다면 주님을 찾으라는 경고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빨리 하나님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내 인생이 망가졌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쓰디쓴 물이 빠져나가고 새 인생을 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그분이 바라시는 회개를 통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어 주님께 온전히 치유를 받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다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아모스서의 이 교훈을 평생 잊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8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서와 다윗의 장막 회복 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7869fb82a95418b8a7b50581a503b2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cccc5c6512888c8a71ac757f78bf1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5c5125c11170dec7f06a5638024579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a9cfdcbc65e6ba00755619c79cb26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9f48074231c970b46ad9ffaaee927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f2ca774b21caed102c45d8a3e56b7a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f9b79b30ded9fd3acdc40865b19d11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3bbf1862449242bad7e7fd7884f6b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8cb23b419a06746efb128710b60c8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2fabaaaf9254320c0c2802126765a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3634d3163b334ccbffe996e0b26db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6e6fd52e26f2c68555907b20f99ae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7566848a82c344f9f519c23d9cb0a0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34c4cf4d55c64457fbeb3091f0c48d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54c41fbedac8006bae73aa6f7850c5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45f348d14c78dc1eac05cda9e85514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_심판을_넘어선_은혜와_회복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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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e24cf85754eb998b8b6f1aecc4a8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d66cef775c3760c2b2b2e2d947752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54734a44fad2d5fb113dac3ae7e23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c3eab59c8ffe7cbffe0aeefa3f5da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dd3f35a4e1669cbc9d246f573145f6ab.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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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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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344#comment</comments>			<pubDate>Wed, 28 Oct 2026 21:56:16 +0900</pubDate>
		</item><item>
			<title>[세대주의(08)]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7) 천년왕국을 올바로 푸는 5가지 열쇠(03)(요한계시록20:1~10)_2026-10-25(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331263</link>
				<description>&lt;p&gt;2026-10-2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세대주의(08)]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7) 천년왕국을 올바로 푸는 5가지 열쇠(03)(요한계시록20:1~1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_1j7J0OMe1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1j7J0OMe1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세대주의적 전천년설&lt;/strong&gt;과 전통적인 성경 해석의 모순을 비판하며&amp;nbsp;&lt;strong&gt;천년왕국의 참된 의미와 종말론적 환난의 실상&lt;/strong&gt;을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년왕국이 미래의 지상에서 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재림 전까지 하늘에서 진행 중인 하늘의 영적인 왕국&lt;/strong&gt;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환난 전에 공중 휴거되어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대환란을 직접 통과해야 하므로 인내와 믿음으로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lt;/strong&gt;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원문과 구약의 예언을 비교 분석할 때&amp;nbsp;&lt;strong&gt;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동일한 사건&lt;/strong&gt;이며, 세상의 종말은 지상 천년왕국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주의 재림과 함께 모든 것이 불에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lt;/strong&gt;으로 완성된다고 역설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1. 천년왕국의 네 견해 가운데 &lt;strong&gt;세대주의적 전천년설&lt;/strong&gt;은 무엇이 다른가?&lt;br /&gt; &amp;nbsp; 2. 성도는 왜 환난 전에 휴거되지 않고 &lt;strong&gt;대환난을 통과&lt;/strong&gt;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 3. 지금 &lt;strong&gt;천국에서 진행되는 천년왕국&lt;/strong&gt;은 누가, 언제, 어디서 왕 노릇하는가?&lt;br /&gt; &amp;nbsp; 4. 세대주의는 이사야서와 스가랴서로 &lt;strong&gt;지상 천년왕국&lt;/strong&gt;을 어떻게 그리는가?&lt;br /&gt; &amp;nbsp; 5. &lt;strong&gt;세대주의의 지상 천년왕국&lt;/strong&gt;은 어떤 점에서 성경과 논리에 맞지 않는가?&lt;br /&gt; &amp;nbsp; 6. &lt;strong&gt;아마겟돈 전쟁&lt;/strong&gt;과 &lt;strong&gt;곡과 마곡의 전쟁&lt;/strong&gt;은 왜 같은 전쟁인가?&lt;br /&gt; &amp;nbsp; 7. 천년왕국이 재림으로 끝난다면 지금 우리는 &lt;strong&gt;어떻게 준비&lt;/strong&gt;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세대주의(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천년왕국을 올바로 푸는 5가지 열쇠(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계 20:1-10)&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년왕국(千年王國, millennium)은 성경에 분명히 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한다(계 20:4). 그러나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천년왕국이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며,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누가 거기에 참여하는지를 바로 알지 못하면 같은 성경을 읽고도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끝난 뒤에 이 땅에 또 한 번의 천국왕국의 시대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재림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천년왕국을 올바로 푸는 다섯 가지 열쇠 중에서 4가지를 살펴보았다. 누가, 어디에서, 언제 왕 노릇하는가를 먼저 살펴보았고, 사탄이 언제 무저갱에 갇혔다가 언제 풀려나는가를 계속해서 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의 관계를 풀 차례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아마겟돈 전쟁 뒤에 지상 천년왕국이 오고, 그 천 년이 끝난 뒤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따로 일어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전쟁이 같은 전쟁이라면 그 사이에 지상 천년왕국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먼저 성도가 대환난을 통과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세대주의가 이사야서와 스가랴서를 엮어 그리는 지상 천년왕국의 모습을 그들의 주장대로 그대로 들어 본 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의 헬라어 원문과 에스겔 38-39장을 통하여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 같은 전쟁임을 밝히고, 천년왕국이 재림으로 끝난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천년왕국의 네 견해 가운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년왕국은 어떻게 풀 수 있는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풀 수 있다. 무천년설(無千年說, amillennialism), 후천년설(後千年說, postmillennialism), 그리고 전천년설 가운데 역사적 전천년설(歷史的 前千年說, historic premillennialism)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이다. 더 나누면 더 나눌 수 있겠지만 이 네 가지가 기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무천년설을 따르지 않는다. 성경대로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는 견해 가운데 후천년설은 세상이 점점 평화로워지다가 그대로 천국으로 이어진다고 보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파괴되고 점점 더 악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악의 무리가 넘쳐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마지막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주님이 오신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전천년설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교회가 7년 대환난 전에 휴거(携擧, rapture)되어 올라가서 환난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단 한 명도 남김없이 하늘로 올라가 그곳에서 혼인잔치를 즐긴다고 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나라 교회도 대체로 이 여러 견해들을 각각 나누어 지지한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평양신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친 것으로 합동 측이 주로 이어받았고, 무천년설은 통합 측에서 가져왔으며, 세대주의는 순복음 쪽에서 가져갔다. 그래서 교단마다 종말론 교리가 각각 다르다. 어떤 교단에서는 종말론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말론을 건드리면 이단이 될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하여 요한계시록에 아예 손도 못 대는 곳도 있다. 실상을 모르니까 무서운 것이다. 필자는 늘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는데, 이제 그 실상과 성경과 원문과 교회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말하는 것이니 잘 따라오면 유익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밝히는 것은 필자의 견해는 네 가지 천년왕국 가운데는 어느 한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는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하늘에 있는 땅에서 실현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교회 전체가 대환난 전에 휴거되어 환난을 피할 것이고, 주님의 재림 뒤에도 이 지구 위에서 천년왕국이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견해가 진정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도는 왜 환난 전에 휴거되지 않고 대환난을 통과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는 과연 대환난 전에 다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는가? 만약 성도들이 그렇게 올라가서 핍박을 받지 않는다면 성경의 여러 구절을 찢어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환난 중에 성도가 남아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선 요한계시록 13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1-10절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에 의한 성도들의 핍박이고, 11-18절은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 짐승, 곧 거짓 선지자가 죽었다가 살아난 첫째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하고 표를 받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첫째 짐승을 흔히 &amp;#39;적그리스도&amp;#39;(敵基督, antichrist)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요, 악한 영이 그 속에 들어가 역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대환난을 일으킬 때 그곳에는 과연 성도가 하나도 없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3:7-10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보라! 그때에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이 성도들과 싸운다고 말한다(계 13:10). 성도들이 그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성도들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핍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따르지 말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에는 &amp;#39;둘째 짐승(거짓 선지자)&amp;#39;의 때를 보자. 이때도 마찬가지다. 어린 양 같이 두 뿔을 가진 짐승은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며,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가 없는 자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계 13:15-17).&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대제국, 곧 불신 세계에서 나올 세상 지배자를 가리킨다면, 어린 양 같은 두 뿔을 가진 둘째 짐승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 곧 교회 지도자로서 결국 세상과 야합하고 결탁하여 나오는 거짓 선지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고 하셨다(마 24:24). 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죽었다가 살아난 첫째 짐승을 메시아라고 부르면서 그를 섬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교회 지도자들 중에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절대 그 가르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때 가서 필자도 그렇게 말한다면 필자를 버려야 한다. 따라가지 말고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둘째 짐승이 활동할 때도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계 14:9-12).&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4:9-12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amp;#39;고난을 받는다&amp;#39;는 말은 헬라어로 바사니조(&amp;beta;&amp;alpha;&amp;sigma;&amp;alpha;&amp;nu;ί&amp;zeta;&amp;omega;)이며, 고문을 당한다고도 번역할 수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지키라는 뜻이다. 예수님 위에 다른 사람을 예수로, 메시아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짐승의 때에도 핍박이 있어 성도들에게 인내가 필요하고, 둘째 짐승의 때에도 그것을 참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성도가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모든 성도가 다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의 성도는 누구인가? 옛날에 들어 익숙해진 것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성도라고 환난을 받는다. 사도 요한도 자신을 가리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며 밧모 섬에서 환난을 통과하고 있었다(계 1:9). 그리고 예수께서도 환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24:21-2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21-22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대환난(大患難, great tribulation)이다. 그 환난이 너무 심하니까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단축시켜 주신다고 하셨다(마 24:22). 환난을 통과하고 있을 때(마 24:29-30) 어느 순간에 갑자기 데려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다(살전 4: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29-30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전 4:16-17&amp;nbsp;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amp;nbsp;&amp;nbsp;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도 직접 성도들의 휴거가 환난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엘서에도 주의 재림 직전에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고 했다(욜 2:31; 3:15).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창조물도 벌벌 떨며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나팔이 불릴 때까지 모든 성도는 다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후 3년 반에 있을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한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의 나라가 될 때(계 11:15) 알곡 성도들은 휴거되어 올라갈 것이다(계 14:14-16). 그러나 마지막 나팔인 일곱 대접 심판 때에는 적그리스도와 그 치하에 있는 자들에게 그 재앙이 쏟아지는데, 우리 알곡 성도들은 그 대접 재앙을 받지 않고 휴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올라가는 대상이 모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대환난 끝무렵에 있을 휴거의 대상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오직 알곡뿐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 14:14-16). 그렇다. 대환난의 때에는 알곡이 되어야만 추수가 되어 올라가는데,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군사를 뽑는 나팔절의 군대 소집이 될 것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때 한 사람을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마 24:40-41, 눅 17:34-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만약 환난 없이 다 올라간다고 믿고 있었는데 실제로 환난이 닥쳐 죽게 생겼다면 모두들 어떻게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을 부인해 버리기 쉬울 것이다. 반대로 환난을 통과할 줄 알고 대비하고 있었는데 환난 없이 올라간다면 그때는 그저 감사할 일이다. 그러므로 환난을 통과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환난과 풍파가 올지라도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지금 천국에서 진행되는 천년왕국은 누가, 언제, 어디서 왕 노릇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년왕국은 과연 누가 참여하고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지난 두 시간에 말한 것들을 정리해 보자.&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먼저, 누가 참여하는가?&lt;/span&gt;&amp;nbsp;그 대상은 우선적으로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 곧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들이다(계 20:4-5). 그들이 살아나서 왕 노릇할 것이다. 이때 살아나서 왕국에 참여하는 자들을 가리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계 20:5-6). 이들이야말로 복이 있는 거룩한 자들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amp;#39;첫째 부활&amp;#39;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필자는 첫째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한꺼번에 부활할 것은 단체적 부활로서 둘째 부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올라가신 다음에 계속해서 개인적으로, 죽었을 때 바로 부활체를 입고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 그런데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100% 정확하다고 문자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살아나서 천년왕국에 참여한다고 하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재림 때에 비로소 전부 살아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 그때의 부활과 둘째 부활을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현재의 천국에서 실상을 확인해 보니, 이미 24 장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 필자는 예수 재림 이후부터 천년왕국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상을 알게 되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우리는 사탄의 감금 시기를 통하여 천년왕국이 언제 시작되는지도 알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는 언제인가? 그 힌트는 계 20:2에 나오는 용에게 있다. 그 용이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는데, 이놈이 누군지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철장 권세를 가진 아이, 곧 어린 양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간 다음에(승천 이후에), 하늘에 전쟁이 발생한다. 그때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천사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천사들)을 내쫓는다(계 12:5-9). 왜냐하면 이제 하늘에는 더이상 두 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 올라가시니(계 17:14), 그동안 최고의 영적 존재로서 왕 노릇하던 사탄 마귀가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예수께서 영원히 왕 노릇하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구약 성도들은 어떻게 되는가? 주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으니 거처를 예비하러 가서 예비하면 너희를 내게로 데려가겠다고 하셨다(요 14:1-3). 왜냐하면 천국의 집인 하늘의 처소가 구약 시대에는 아직 지어지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렇다. 주님께서 집을 장만하기 전까지 구약 성도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산 사람이 없었다. 주님이 지어 주셔야 하는데 아직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전부 다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안식의 장소에 있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천국의 왕으로 등극하시면서 건축 천사들을 시켜 생명책과 행위책에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집을 짓게 하셨고, 구약 성도들을 한꺼번에 그 집에 들어가게 해 주셨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모든 성도들은 각자가 죽으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자신의 천국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 중에서 이기는 성도들 가운데 왕 노릇할 자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성도들이 죽으면 천국 집이 지어져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의 변두리의 꽃밭에서 산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기왕이면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 천국집을 준비해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지위와 신분도 준비해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나무 패며 물 긷는 자와 같은 신분이 있으니(수 9:21) 우리도 그들 중의 한 부류로 들어갈 것이다. 그중 대제사장 역할을 하는 24 장로급은 성 밖에 가서 우주까지 통치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부활한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을 가리켜 &amp;#39;천년왕국&amp;#39;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계 20:4에 나오는 바, 그들이 살아난다는 것을 가리켜 마지막 재림 때로 보지 말아야 한다. 지금 죽으면 바로 살아나는 것이다. 다 왕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왕국 안에 참여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24장로들이 천국 성도들 중에 어떤 이들이 땅 위에서 왕 노릇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amp;#39;땅&amp;#39;은 천국의 땅,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성 밖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21장 하반절에 가면, 성 밖에서 왕노릇하던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 성 안으로 들어온다고 말씀하고 있다(계 21:24-26). 천국의 성도들 가운데 14만 4천 명은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보좌에 앉게 되며, 그들 중에 고위층이 왕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계 7:4; 14:1).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왕 노릇할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지금 이때를 가리켜 &amp;#39;천년왕국&amp;#39;이라 부르는가? 그것은 이때가 바로 사탄 마귀가 감금되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미가엘로 추청되는 천사가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사탄 마귀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는데 그곳이 바로 무저갱(無底坑, abyss)인 것이다(계 20:1-2). 무저갱은 음부 영역 안에서 영적으로 묶여서, 못 나오게 된 감옥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탄만 못 나오고 귀신들은 음부를 왔다 갔다 한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귀신들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자신을 무저갱으로 보내려 하느냐면서 그곳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세상과 음부를 왔다 갔다 하고 싶었던 것이다(눅 8:3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귀신들은 다 무저갱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지금까지 사탄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사탄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를 말이다.&amp;nbsp; 그가 감옥인 무저갱에 갇혀 못 돌아다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계 20:3 그가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감금했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사탄은 지금 비록 감금되어 있지만, 그가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어(계 13:2) 대신 일하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는 거짓 선지자의 영도 마찬가지이다. 아바타들이 올라와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무렵이 되면 용이 직접 올라온다. 그것이 바로 다섯째 나팔이 불려질 때다(계 9:1). 그때 무저갱이 열리면서 사탄이 귀신을 다 데리고 나와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괴롭게 할 것인데, 귀신이 많은 사람은 그때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는 고통에 처하게 될 것이다(계 9:5-6). 그래서 세계 모든 사람에게 귀신의 강력한 공격이 있을 때 우리는 사탄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감옥에서 놓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계 20:7). 그러면 그때부터 마지막 대환난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까지 환난을 다 겪을 것이다. 그러나 일곱째 나팔 때 쯤에 휴거되어 알곡 성도들이 먼저 공중에 추수하러 오신 예수님을 향하여 올라갈 것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천년왕국은 이기는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 이 지구가 아니라 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밖의 땅에서 왕 노릇하는 나라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세대주의는 이사야서와 스가랴서로 지상 천년왕국을 어떻게 그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년왕국이 지구 위에서 펼쳐진다고 보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무엇을 근거로 지상 천년왕국을 주장하는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해석은 조금 다르지만, 보통 전천년설이라 하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것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 세대주의를 따라가는 것이니 잘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은 먼저 이사야 11장의 말씀을 예로 든다(사 11:6-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지금 지구에서는 이리가 어린 양을 잡아먹고, 표범은 어린 염소와 송아지를 잡아먹고, 곰은 암소를 잡아먹으며, 독사의 구멍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으면 독사가 물어버린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없는 시기가 온다고 이사야가 예언을 해 놓았다. 그때가 되면 약육강식이 사라지고 동물과 사람이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싸우지 않으며 물어뜯지 않는 평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은 에덴동산이 타락하기 전에는 있었겠지만 타락한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미래의 예언이 실현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그들은 말한다. 그것이 바로 지상 천년왕궁의 때라고 말한다. 사실 이 지구상에는 악한 영들이 가득하고 악한 자들 속에 그러한 영들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평화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주님이 재림하셔서 귀신들을 다 쫓아 버리실 때, 곧 그때가 지상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때가 아니겠느냐고 그들은 주장한다. 듣고 보면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말씀이 문자적으로 반드시 성취될 때가 천년왕국이라고 보는 것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그때 사람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들은 이사야 65장을 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이 천 년 동안 나이를 먹으며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25절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다고 한다(사 65:25).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동물에게 풀을 먹을거리로 주셨고(창 1:29-30),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하셨다(창 9:3). 그러니 홍수 이전,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때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니, 주님이 따로 다스리시는 때가 와야 하는데, 그때가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거기에 누가 사는가? 어떤 세대주의자들은 그것에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말하는 자들도 있다. 세대주의도 시대마다 변천사가 있어 주장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종합해 보면 이렇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천년왕국은 하늘의 왕국과 땅의 왕국으로 나뉜다. 하늘의 왕국은 이미 휴거되어 올라간 교회가 차지하는데, 그들은 이기는 자라 불리며 그곳을 아버지의 나라라고 한다. 땅의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땅의 왕이 되시고 땅의 백성들을 다스리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땅의 백성은 누가 되는가?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거국적인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을 일으키셔서 유대인들이 주께 돌아ㅇ로 것인데, 그들은 교회라 불리지 않고 계속 유대인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에 불신 세계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사탄 마귀의 아바타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는 자들과, 불신자이지만 그들을 따라가지 않는 자들이다. 따라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다 죽여 없애 버리시지만, 따라가지 않은 불신자들은 그대로 살아남아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처음에는 모르고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 줄 알고 속았다가 핍박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킬 것인데, 그들 중에 많은 순교자가 나올 것이지만 많은 수도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이때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제사장의 일을 담당하고, 육체를 가지고 들어간 이방 사람들이 그들의 인도를 따라 시온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제사를 드리며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그들은 이사야 2장을 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2-4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가 되면 이방 사람들이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전부다 유대인들에게 배우러 가자며 시온산으로 몰려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들이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말하고 있으니 성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성전이 없다. 그래서 대환난 기간에 제3성전이 세워질 것인데, 이 성전이 바로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에스겔 성전, 곧 말세에 나타날 천년왕국 성전이라고 주장한다. 이 성전을 세워 준 사람(적그리스도)을 그리스도로 따라갔다가 가짜인 줄 알게 되어 그를 버린다. 그렇지만 그에 의해서 성전이 지어졌으니 그것이 천년왕국의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방인들은 그곳에 율법을 배우러, 제사를 드리러, 절기를 지키러 올라온다고 한다.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키고, 올라오지 않는 족속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는다는 스가랴 14장의 말씀의 그 예라고 말한다(슥 14:16-17). 그런데 그때가 천년왕국이라면 비가 잘 내려야 어린 양이 뛰노는 초장이 있어 지구가 낙원으로 변할 텐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 유대인들은 제사장이 될 것이라 하며 이사야 61장 6절을 그 예로 든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천년왕국의 제사장이 유대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사 61:6). 그러면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한 명의 옷자락을 잡고 가르쳐 달라고 한다는 스가랴 8장 23절의 말씀이 실현된다고 주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땅의 백성들 위에 왕 노릇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늘에 있는 이기는 자들이라고 하며, 그때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 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라는 스가랴 14장 9절과 다시는 저주가 없으리라는 11절이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고로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는 4절은 예수님이 감람산에 재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슥 14:3-4; 행 1:11). 그러니 예수님이 감람산에 재림하셔서 왕 노릇하시고, 살아 있는 유대인들은 제사장이 되며,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육신을 입은 땅의 백성이 되는 것이 땅의 천년왕국의 모습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여기저기서 말씀을 갖다 붙이면 하나의 이론이 만들어진다. 이것만 들으면 꼭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고로 세대주의의 지상 천년왕국은 이사야 11장, 65장, 2장, 61장과 스가랴 8장, 14장과 에스겔 40-48장 등의 말씀을 엮어서 만든 하나의 이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대주의의 지상 천년왕국은 어떤 점에서 성경과 논리에 맞지 않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러한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이들이 그린 이 그림은 어디서부터 좀 이상하다. 그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 부활체를 입은 사람과 육체를 입은 사람이 동시에 함께 공존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lt;/span&gt;이다. 하늘의 왕국에는 부활체를 입은 교회가 있고 땅의 왕국에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산다면, 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과 산 사람이 지금 함께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죽으면 가서 그 사람은 다시 지구에 오지 못한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부활체를 입은 사람이 와서 왕 노릇하고 땅에서는 육체를 입은 사람이 산다는 것이 천년왕국이겠는가? 천국에 있는 자기의 집을 떠나온 분들이 대부분 하늘에 있을 것인데, 하늘 어디에서 살아간다는 말인가? 구름 위에서 계속 서 있을 것인가? 논리를 많이 세워 갖다 붙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 지상 천년왕국 동안 귀신들과 뱀들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lt;/span&gt;.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아마겟돈 전쟁으로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다 처단하시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질 것이다(계 19:20). 그러면 뱀들과 귀신들은 어떻게 되는가? 지상에 천년왕국이 시작되는데, 귀신들과 뱀들은 천 년 동안 어디에 가져다 두겠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심판에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마 25:41). 그렇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즉 아마겟돈 전쟁 때에 타락한 영들인 뱀들과 귀신들도 함께 무저갱에 보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님을 뒤따르는 군대는 두 무리임을 알 수 있다. 마하나임, 곧 두 무리의 군대인 것이다(창 32:2). 하나는 천사의 군대이고 하나는 사람이었던 이들의 군대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를 때에(계 19:14),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그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하셨다(계 17: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도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신다고 했다(유 1:14-1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때에 그분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것이다(마 25:31).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 때에는 이미 의인이 된 성도들의 무리와 천사들의 무리가 함께 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 때 뱀들과 귀신들은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하여 다 무저갱에 처넣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어디에 두겠는가? 이때 지상의 사람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른 무리와 따르지 않은 무리로 나눈다고 치자. 그러면 귀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상 천년왕국이 이뤄지려면 다 처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가 땅의 왕들을 미혹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계 16: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하실 예수님을 대적할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누가 과연 모으는가? 사도 요한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곧 사탄의 삼위일체가 모은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을 따른 땅의 왕들과 그 무리만 죽이고 그들을 미혹한 영들은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같이 처단해야 옳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 천 년 뒤에 사탄 혼자서 바다의 모래 같은 무리를 미혹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lt;/span&gt;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사탄만 혼자 남아 천 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천 년이 끝난 뒤에 풀려날 것이다. 그런데 천 년 동안 하나님만 섬기고 율법만 배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통치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들을, 과연 사탄 혼자서 바다의 모래처럼 많이 미혹시킬 수 있겠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7-9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 마귀가 무소부재한 존재인가? 아니다. 사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여기 있으면 저기 없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무소부재하신 분은 영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뿐이시다. 아무리 빠르다 해도 사탄 혼자서 몇 사람이나 꾀겠는가? 그런데 곡과 마곡의 전쟁은 바다의 모래 같은 반역자들을 만든다고 나와 있다(계 20:8).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오늘 우리 속에 귀신이 많은데도 우리는 사탄 마귀를 따라가지 않고 성령을 따라간다. 하물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보이게 통치하시는데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탄 마귀를 따라갈 사람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 수 있겠는가? 세대주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천년왕국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땅의 백성으로 들어갔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자랐어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 거역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사탄 마귀가 지금까지 본 것은 다 환영이라고 속이면 따라갈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에는 먼저 죽은 선배들이 부활체로 있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으며 예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데, 천년왕국이 끝났다고 해서 사탄 마귀를 따라갈 자가 있다 한들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세대주의의 지상 천년왕국은 부활체와 육체의 공존, 귀신들의 행방, 사탄 혼자의 미혹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이 주장은 성경과 논리에 맞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왜 같은 전쟁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필자는 아마겟돈 전쟁이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본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경원문을 보면 답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하늘에서 천년왕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천년왕국은 끝날 것이다. 그 끝에 사탄이 잠깐 놓여 올라와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엄청난 무리가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여 죽일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합쳐 표를 받게 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때 주님이 오셔서 끝내시는 것이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요 곡과 마곡의 전쟁인 것이다. 그 근거는 세 가지 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 두 전쟁을 일으키는 존재들이 동일하기 때문&lt;/span&gt;이다. 앞에서 본 요한계시록 16장 13-14절의 아마겟돈 전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세 더러운 영들이 세상의 왕들을 모아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셋이 함께 일으키는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짐승과 거짓 선지자만 사람들을 미혹해서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고, 사탄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일천년 뒤로 홀로 나와서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같이 했으니 같이 심판을 받아야 함이 옳은 것이다. 이제는 아마겟돈 전쟁의 장면을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9:17-2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이고 거짓 선지자는 둘째 짐승이며, 용은 그 뒤에서 명령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는 그분의 군대다. 고로 아마겟돈 전쟁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사탄이 함께 미혹하여 일으킨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사탄 마귀만 쏙 빼서, 너는 천 년 뒤에 혼자 다시 미혹해야 하니 바쁘겠지만 감옥에 있으라는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의 헬라어 원문이 세 존재가 함께 던져졌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lt;/span&gt;이다. 이것은 거의 결정적인 증거다.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왕국 전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못에 던져지고(계 19:20), 천년왕국 동안 마귀는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천 년 뒤에 마귀가 불못에 던져진다고 한다. 그 근거가 계 19:20과 20장 10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9:20&amp;nbsp;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lt;br /&gt;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읽으면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이미 천년전에 불못에 있고 천 년 뒤에 마귀가 같은 곳에 던져지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필자가 헬라어 원문을 보았을 때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다. 번역을 잘못해 놓아서 한 개의 전쟁을 두 개의 전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계 20:10의 헬라어 원문은 이렇다. 카이 호 디아볼로스 호 플라논 아우투스 에블레테 에이스 텐 림넨 투 퓌로스 카이 테이우, 호푸 카이 토 테리온 카이 호 프슈도프로페테스(&amp;kappa;&amp;alpha;ὶ ὁ &amp;delta;&amp;iota;ά&amp;beta;&amp;omicron;&amp;lambda;&amp;omicron;&amp;sigmaf; ὁ &amp;pi;&amp;lambda;&amp;alpha;&amp;nu;ῶ&amp;nu; &amp;alpha;ὐ&amp;tau;&amp;omicron;ὺ&amp;sigmaf; ἐ&amp;beta;&amp;lambda;ή&amp;theta;&amp;eta; &amp;epsilon;ἰ&amp;sigmaf; &amp;tau;ὴ&amp;nu; &amp;lambda;ί&amp;mu;&amp;nu;&amp;eta;&amp;nu; &amp;tau;&amp;omicron;ῦ &amp;pi;&amp;upsilon;&amp;rho;ὸ&amp;sigmaf; &amp;kappa;&amp;alpha;ὶ &amp;theta;&amp;epsilon;ί&amp;omicron;&amp;upsilon;, ὅ&amp;pi;&amp;omicron;&amp;upsilon; &amp;kappa;&amp;alpha;ὶ &amp;tau;ὸ &amp;theta;&amp;eta;&amp;rho;ί&amp;omicron;&amp;nu; &amp;kappa;&amp;alpha;ὶ ὁ &amp;psi;&amp;epsilon;&amp;upsilon;&amp;delta;&amp;omicron;&amp;pi;&amp;rho;&amp;omicron;&amp;phi;ή&amp;tau;&amp;eta;&amp;sigmaf;). 여기서 &amp;#39;호 플라논(ὁ &amp;pi;&amp;lambda;&amp;alpha;&amp;nu;ῶ&amp;nu;)&amp;#39;은 현재분사로서 &amp;#39;미혹하고 있는 자&amp;#39;이고, &amp;#39;에블레테(ἐ&amp;beta;&amp;lambda;ή&amp;theta;&amp;eta;)&amp;#39;는 &amp;#39;그가 던져졌다&amp;#39;는 뜻이다. 그러니 앞 문장은 &amp;quot;그리고 그들을 미혹하고 있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 안으로 던져졌다&amp;quot;가 된다. 그다음으로 &amp;#39;호푸(ὅ&amp;pi;&amp;omicron;&amp;upsilon;)&amp;#39;는 &amp;#39;그런 그곳에&amp;#39;라는 뜻의 관계부사이고, &amp;#39;카이&amp;#39;가 있으니 &amp;#39;짐승도 역시&amp;#39;라는 뜻이다. &amp;#39;그리고 거짓 선지자도&amp;#39;가 나온다. 그리고 뒷 문장에는 동사가 없다. 개역개정의 &amp;#39;있어&amp;#39;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앞 문장에 &amp;#39;던져졌다&amp;#39;는 동사가 있다. 그리고 뒤에 동사가 나오지 않으면 앞의 동사가 생략된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뒷 문장은 &amp;quot;불과 유황 못 안으로, 그런 그곳에 짐승도 역시, 그리고 거짓 선지자도 [던져졌다]&amp;quot;라고 해석해야 한다. &amp;quot;그리고 그들이 밤과 낮으로 세대들의 세대까지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amp;quot;라 계 20:10의 헬라어 원문 번역이다. 그러므로 헬라어 원문에는 사탄 마귀가 불못에 던져질 때에 같이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역시 같이 던져졌다는 뜻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먼저 던져진 다음에 마귀가 나중에 던져진 것처럼 번역해서, 그 사이에 지상 천년왕국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왜 그렇게 번역했을까? 그것은 옛날부터 천년왕국이 지상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찾아본 우리말과 영어 역본은 대부분 이것을 원문대로 직역하지 않았다. 옛날부터 그렇게 믿어 왔고 그렇게 해석해 왔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이렇게 고착화 되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다. 원문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도 남들이 다 그렇게 번역하지 않는데 왜 너만 왜 그렇게 번역하느냐고 나무랄 뿐이다. 그러면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남들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필자처럼 성경을 따라갈 것인가?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오죽하면 필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외치겠는지 생각해보라. 그래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믿겠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가면 된다. 그것을 따라간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 에스겔의 곡과 마곡의 전쟁에 관한 예언의 본문을 요한계시록이 아마겟돈 전쟁의 본문으로 인용하기 때문&lt;/span&gt;이다. 세대주의가 곡과 마곡의 전쟁을 어디서 따왔는가? 그건 에스겔 38-39장에서 따온 것이다. 에스겔 38장 2절에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이 나오고, 바사와 구스와 붓, 고멜과 도갈마 족속이 연합군이 되어 이스라엘을 친다(겔 38:2-6).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신다. 끝 날에 곡을 이끌어다가 하나님의 땅을 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겔 38:16). 세상의 모든 왕들을 끌어다가 전쟁을 일으키게 하시고, 그들을 한 번에 처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곡과 마곡의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9:17-18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 인자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18 너희가 용사의 살을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진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들이 사람들의 시체를 뜯어 먹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 그들을 매장할 만큼(겔 39:12), 하나님을 대적한 엄청나게 많은 시체가 널브러질 것이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인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것이다(마 24:28). 그런데 이 에스겔 39장 17-18절을 요한계시록 19장 17-18절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아는가? 에스겔에서는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의 결론의 말씀인데,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곡과 마곡의 전쟁이 무슨 전쟁인가? 요한계시록 19장의 아마겟돈 전쟁을 에스겔서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세대주의는 이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쏙 빼다가 맞추면 그림이 쫙 그려지니까 그 얘기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듣고 있으면 진짜 그런 것 같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러므로 남들이 그렇다고 그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진짜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필자는 다 확인해 보았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은 같은 전쟁인데, 거의 모든 성경들이 다른 전쟁처럼 번역하였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신약에서 아마겟돈 전쟁으로 인용되었는데 따로 떼어 천 년 뒤의 전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이며, 그 사이에 지상 천년왕국은 없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천년왕국이 재림으로 끝난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모든 것은 어떻게 끝나는가? 주님의 재림으로 끝난다.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지지 않는다. 휴거가 있고 곧바로 재림이 있어 끝난다. 잠깐의 시간차는 있겠지만 휴거와 곧 이어지는 지상 재림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 말했는가? 그건 베드로 사도가 말했다. 우리는 여러 신학자들보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훨썬 더 나을 것이다. 가장 먼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고, 그다음에는 사도들의 말도 들어야 한다. 그럼, 사도 베드로가 재림과 그 뒤의 상황을 어떻게 말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날, 하나님의 날이 임하여 하늘과 땅을 불로 다 태워질 것인데, 그다음에 바라보는 것이 천년왕국이라고 했는가, 아니면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는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다(벧후 3:10-13).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이처럼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미 하늘에서 진행되던 왕국이 끝나고,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영원한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가 죽어 천국에 올라가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다가,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것을 끝내시면 그 지위를 가지고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영원한 지위와 천국집을 우리가 이 육신 안에 있을 때 장만할 수 있다. 그런데 맨날 세상에서 먹을 것, 마실 것, 놀 것, 즐길 것만 찾으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그 시간에 회개해야 한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면 충성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환난과 풍파가 온다 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말고 인내로 그 믿음을 지켜 가야 한다. 받은 지혜와 은사와 능력과 달란트를 사용하여 주의 몸 된 교회가 온전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종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 소극적으로 회개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신약은 깨어 있으라고 한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요,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때 나를 신부로 맞아 주실 만한가를 살피고, 두루마기를 빨리 빨아야 한다(계 22:14). 그리고 주님이 나를 기뻐하시도록 무언가 예물을 준비해야 한다. 주님, 제가 기도의 예물을 드립니다 하고 무엇 하나라도 드리는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 좋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어떻게 살아도 천국에 간다고, 적당히 살라고, 회개는 그만 작작하라고, 그거 한다고 좋아진 것 없다고,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말에 쏙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어차피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며 세상을 따라가면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수 있다(마 8:12). 깨어 준비한 자는 영원토록 왕 노릇할 지위를 얻고, 세상을 따라간 자는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 같다는 것은 에스겔서 자체와 요한계시록 자체가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천년왕국이고, 주님이 오시면 천년왕국이 끝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헬라어 원문도 보지 못한 채 해석하다가 올무에 빠지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이미 세상을 다 파괴하여 없애 버리실 것인데, 다시 이 지구를 새롭게 만드실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전 제사는 이미 끝났는데, 또 제3성전을 세운다고 한다. 언제까지 헛된 것을 추구할 것인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그러므로 이 성전을 거룩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부터라도 잘 준비하자. 환난을 통과할 것을 각오하고 인내로 믿음을 지키자. 회개하고,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며, 주의 나라의 아름다운 예물을 준비하자. 그리하여 주님이 오실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설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성경의 천년왕국과 마지막 때의 흐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e287e7fded3bf3bf5eb71b81ea5c5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bea95236f72c9b4a43b41494476574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0893e542e2af91494e9ed9c90de9a1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4d9e6ea6599dea1e77da74de1835c2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d3fb77b27857cc33565b721cf846c2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8ccfb4769526376446b71583cb5994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18328f895827a77414870d84d9861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6756be1f511082bcb3de49ba23d5dc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11397f7b1185765292e139f11dd7d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40db85aad069dcde88a0c722a56de3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501421b42eb38f1d4dfd6fe393220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c8e8c188d503a5579522fcbfc80c5f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b0adc191cb3eb3b133f4eb7bc565d9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0101377f08277b7cc885b93a48135b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63e729f162b9ede911e3b6ee0b54e1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과_종말의_진실.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2067f761281b2a34bbce9887834046d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세대주의_오류와_성경적_종말론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ea974a206db6587b902add59363434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세대주의_오류와_성경적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6a77812d19ee887f8b88a65ae2b9d6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7359c40f4d5e9ff9a40dd0bb33c5f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b34dfb6967bad9da73571c50bcdc1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091dc6fa14aa88ce7926c533771957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a13ab03c91fe60e15c85abff01c23e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7274bf977676e4594f74cbd366f3f9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63f96c8842ebc4e9eee22ce45e2c5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e8032fef42a6c4da92d837d0a6217f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f9cfafd9779708357c9c243cb6266c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74437b6e3849e0ad5899f9ed601e1b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8e650682843543702861222a6fe578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8)] 천년왕국_해독.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263/331/14dbe7740284719b19ea1fd836258c0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세대주의</category><category>천년왕국</category><category>요한계시록</category><category>종말론</category><category>대환난</category><category>휴거</category><category>적그리스도</category><category>성경해석</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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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331263#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Oct 2026 19:16: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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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2)]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아모스 1:1, 7:14~15)_2026-10-27(화)</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link>
				<description>&lt;p&gt;ㅊ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2)]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아모스 1:1, 7:14~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rf_y5Rbxs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rf_y5Rbxs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아모스서의 배경과 선지자 아모스의 정체성&lt;/strong&gt;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할 시각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좌파 세력이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아모스서를 정치적 또는 왜곡된 목적로 오용하는 실태를 지적&lt;/strong&gt;하며, 아모스가 단순한 가난한 천민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풍족한 부유함과 목축업을 겸비했던 유력한 인물&lt;/strong&gt;이었음을 원문 분석을 통해 밝혀냅니다. 또한, 남유다 출신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로 파송되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대히 선포한 사명자&lt;/strong&gt;였음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인간적 욕심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대언했던 아모스의 삶&lt;/strong&gt;을 통해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아모스서는 왜&lt;strong&gt;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자들&lt;/strong&gt;이 자주 이용하는 책이 되었는가?&lt;br /&gt; 2. 아모스가 예언하던 &lt;strong&gt;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lt;/strong&gt;은 어떤 나라였는가?&lt;br /&gt; 3. &lt;strong&gt;드고의 &amp;#39;목자&amp;#39; 아모스&lt;/strong&gt;는 정말 가난한 천민이었는가?&lt;br /&gt; 4. 하나님은 왜 &lt;strong&gt;남유다 사람 아모스&lt;/strong&gt;를 &lt;strong&gt;북이스라엘&lt;/strong&gt;에 보내셨는가?&lt;br /&gt; 5. 아모스는 &lt;strong&gt;벧엘의 제사장 아마샤 &lt;/strong&gt;앞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예언했는가?&lt;br /&gt; 6. 선지자가 아니었던 아모스는 어떻게 &lt;strong&gt;환상을 보는 선견자&lt;/strong&gt;가 되었는가?&lt;br /&gt; 7. 하나님께서 &lt;strong&gt;아모스를 쓰신 이유&lt;/strong&gt;는 무엇이며, 그&lt;strong&gt; 이름&lt;/strong&gt;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1:1; 7:14-1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으신다.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멀어져 갈 때에도 하나님은 종을 보내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고 돌아오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엉뚱한 사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려는 핵심을 놓치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성경에 덧입혀 이용하기 때문이다. 아모스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아모스서는 1장부터 9장까지로 되어 있어 소선지서 가운데 상당히 긴 쪽에 속하며, 우리가 자주 들어 보는 유명한 말씀이 여럿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말씀들 가운데 몇몇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특정한 사상과 운동을 위해 이용되어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아모스서에 들어오기 전에 요엘서를 통하여 기독론과 성령론, 구원론과 종말론을 살펴보았다. 특히 구원론을 많이 다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한 번 받은 구원이 무조건 영원한 것은 아니며, 이중 예정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이제 아모스서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말씀은 좌파 사상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이용해 온 말씀들이다. 왜 하필 아모스서가 그렇게 이용되었을까? 아모스서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책이고, 그 경고 속에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해,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을 통해 주어졌는지를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북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남유다 드고아 사람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을까? 왜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양을 치고 돌무화과를 거두던 사람을 부르셨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아모스가 어떤 시대에 살았고, 어떤 신분의 사람이었으며, 벧엘의 제사장 앞에서 어떻게 말씀을 전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아모스 1장 1절과 7장 14-15절을 중심으로, 히브리어 원문에 나타난 아모스의 직업과 이름의 뜻을 살펴서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아모스서는 왜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책이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어떤 말씀들이 이용되어 왔는가? 아모스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5장 24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은 좌파 계열의 사람들이다. 이 구절을 거의 그들의 중심 주제처럼 사용한다. 아모스서에는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착취당하는 자가 다른 서신서에 비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좌파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성경이며, 특히 5장 24절은 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절이다. 좌파가 말하는 것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와 연결되면 하나님의 사상이 아닌 전혀 다른 사상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므로 아모스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성도도 자칫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주의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다음으로 잘 알려진 아모스서의 말씀은 말씀의 기갈을 다룬 8장 11-12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11-1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만한 선지자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유다의 선지자가 올라가서 말씀을 전해야 했다. 말씀이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금 더 아는 사람은 9장 11-12절을 안다. 이 말씀은 아모스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이 말씀이 사도행전 15장에 그대로 인용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었다(갈 1:19). A.D. 49년경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을 때 야고보는 이방인들도 이제 구원받을 때가 되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아모스 선지자가 이미 말했다고 이 말씀을 가지고 선언했다(행 15:16-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옛날 다미선교회가 많이 이용한 말씀이 있다. 그것은 아모스 3장 7절이다. 필자는 당시 이 말씀을 귀에 닳도록 들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에 주님이 오신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끈 목사와 사역자는 천사들이 와서 그 날짜를 다 보여 주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감추어 두지 않으시고 이렇게 종들에게 알려 주신다는 근거로 이 구절을 이용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아모스서에는 상당히 중요한 말씀들이 있는 동시에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時限附 終末論)자들이 이용해 온 말씀도 들어 있다. 이 아모스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도 까딱 잘못하면 그들의 이용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준 바대로 들어야 한다. 이 아모스서를 잘 뜯어서 삶아서 구워서 요리해서 절구에 찧어서 번철에 부쳐서, 광야의 만나처럼(민 11:8)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아모스가 예언하던 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어느 시대에 북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했는가? 아모스 1장 1절은 그 시대를 밝힌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나오는 여로보암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다. 그의 통치 기간은 BC 793-753년경이다. 지진 전 이 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웃시야 때의 이 지진은 수백 년 뒤 스가랴 선지자도 기억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슥 14:5). 그런데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은 영토가 가장 크게 확장되었고 가장 잘 살던 시대였다.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일 풍요로운 때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아모스서를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시대의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해서 부자가 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앞으로 차례대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에게 역사하시고 보호하셨기에 북이스라엘이 그런 풍요를 누릴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아모스서를 부자가 약한 자를 착취해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부자들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로만 잘못 알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아모스의 말씀을 잘못 듣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노동자는 무조건 선이고, 부자나 기업은 없애야 할 존재요, 기업가는 악덕 지주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게 된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바로 그렇게 했다. 1946년 악덕 지주의 모든 재산을 몰수해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다. 나누어 주니까 사람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스탈린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협동농장으로 다 거두어 가 버렸다. 공산주의가 되면 나중에는 사유지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완전히 빼앗겨 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아모스서는 다른 성경에 비해 사람들을 좌파 사상의 노예로 만드는 자들에게 특히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모스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잘못 적용할 수 있다. 고로 아모스서를 읽을 때에는 착취와 가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죄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드고아의 &amp;#39;목자&amp;#39; 아모스는 정말 가난한 천민이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1장 1절은 그를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한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이다. 이 지역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이고, 돌무화과나무도 많았다. 돌무화과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잘 먹지 않는 열매다. 그런데 열매가 맺힐 때 칼로 상처를 내어 즙을 빼 주면 열매가 익으면서 쓴맛이 빠져 먹을 수 있게 된다. 본래는 주로 동물에게 주는 사료였다. 그런데 그것이 많이 나는 산지로 알려진 곳이 바로 드고아이다. 또한 다윗 시대에 요압이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려고 드고아에서 지혜로운 여인을 데려온 일이 있다(삼하 14:2). 그래서 드고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는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드고아는 지형상 어디에 있는가? 지도를 놓고 보면, 누가 어디에서 선지자가 되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북쪽에는 가드헤벨 사람 요나가 있었고(왕하 14:25), 엘리사가 있었고, 디셉 사람 엘리야가 있었다. 모두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사무엘과 예레미야, 그리고 아모스가 나온다.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의 남유다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북이스라엘에 파송되어 예언했던 사람이다. 지난번에 살펴본 바와 같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서 자기 백성 북이스라엘에 말씀을 전했고, 요나도 북이스라엘 출신이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으로서 북쪽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특히 호세아와 아모스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다(호 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가 드고아의 목자라고 성경에 나오는데, 그는 목자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히브리어로 목자는 보케르요, 헬라어로는 포이멘(&amp;pi;&amp;omicron;&amp;iota;&amp;mu;ή&amp;nu;)이다. 영어로 하면 셰퍼드(shepherd), 양을 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모스 1장 1절의 목자는 이 셰퍼드라는 뜻의 일반적인 목자가 아니다. 우리말로는 목자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노케드(נֹקֵד)라는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다. 칠십인역은 이 단어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아카림이라고 음역해 두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것을 확인하려고 칠십인역(헬라어 번역 구약성경)을 찾아보았다. 이 노케드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한 번 더 나온다. 열왕기하 3장 4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3: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의 양을 치는 자가 바로 &amp;#39;노케드&amp;#39;다. 이스라엘의 목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삯꾼 목자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삯꾼은 목자이기는 하지만 진짜 목자가 아니라 삯을 받고 고용되어 일하는 목자다.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이리나 늑대가 와서 양떼를 해치려고 하면 도망가 버린다.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요 10:12-13). 이런 삯꾼 목자는 대부분 고용된 자로서 천민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갈멜의 거부였던 나발처럼 많은 양 떼를 직접 소유하고 치는 사람이다(삼상 25:2). 이런 사람은 부자에 속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노케드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건 후자에 속한다. 드고아의 목자라고 하니 천한 목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노케드는 양을 직접 쳐서 그것을 공급해 주는 자로서, 목자 중에서도 부자에 속한 목자인 것이다. 이는 털이 많은 좋은 양들을 키우는 사람이다. 모압 왕 메사가 그랬다. 그는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칠 만큼 엄청난 털을 생산하고 양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노케드는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노케드를 가장 잘 번역한 말은 목자보다는 목축업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털을 판매하고 양을 판매하고 양을 거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파 계열의 설교를 들어 보면 아모스가 드고아의 목자였다는 이유로 그를 날품팔이 삯꾼이요 천민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그렇지 않다. 아모스는 부자였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모스를 가난한 사람의 대표로 생각했을까? 7장 14절 때문이다. 아모스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amp;quot;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amp;quot;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여기의 목자는 히브리어로 보케르(בּוֹקֵר)이며, 소를 뜻하는 바카르와 관련된 말이다. 1장 1절의 목축업자는 노케드이고 7장 14절의 목자는 보케르다. 그러니 아모스는 직접 가축을 치는 목자이면서 양들을 거래하고 판매하고, 털을 생산해서 옷을 만드는 공장에 갖다 주는 사람이었다. 옛날로 말하면 지주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기다가 그는 &amp;#39;뽕나무를 재배하는 자&amp;#39;라고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 뽕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거의 비슷하다. 둘은 같은 뽕나무과에 속한다. 가지를 툭 꺾으면 쌀뜨물 같은 하얀 즙이 나오는데, 무화과에서는 많이 나오고 뽕나무에서도 나온다. 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양잠업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뽕나무로 번역했을 뿐이지, 원문은 돌무화과인 것이다. 히브리어로 쉬크밈(שִׁקְמִים)이라고 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무화과는 무화과처럼 열매가 크고 달콤하지 않다. 작고 별로 달지 않다. 감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당감, 장두감이 있는가 하면 똘감이 있지 않은가! 똘감은 동그랗게 생겼지만 떫기 때문에 우려 먹거나 아니면 홍시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 그것이 돌무화과다. 그런데 그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했지만 원문을 보면 돌무화과를 거두어들이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집단으로 돌무화과를 심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열매를 거두어 짐승의 양식으로 판매했을 것이다. 너무 가난하고 기근이 들면 사람도 그것을 먹었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탕자가 먹으려 했던 쥐엄 열매도 원래 동물의 사료로 들어가는 것이다. 쥐엄 열매는 아카시아나무 열매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카시아 열매의 콩은 납작한 반면 쥐엄 열매 안에는 동글동글한 콩이 들어 있다. 맛은 별로 없지만 한 나무에 어마어마하게 열린다. 그것이 뚝뚝 떨어지면 주워다가 그 안에 있는 콩을 사료로 썼다. 보통 동물이 먹고 사람은 잘 먹지 않는 것인데, 탕자는 그것으로나마 배를 채우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얻지 못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무화과도 이처럼 사람이 먹기에는 조금 껄끄럽고 맛이 없지만 동물의 사료로는 많이 쓰이는 것이었다. 아모스는 그것을 집단으로 재배해서 판매하던 사람이었다. 한글의 개역개정 번역본으로 보면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랐다는 말이라고 나오니, 이 양반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고로 아모스의 정확한 신분은 목축업자이면서 돌무화과를 대규모로 거두는 농부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은 왜 남유다 사람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에 보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남유다 드고아에 살던 이 사람을 누가 북쪽으로 보냈는가? 7장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데려다가 선지자로 파송했다고 나온다(암 7: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4-15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15절에 말씀에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은 송아지를 갖다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던 우상숭배 국가였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죽은 뒤 왕국이 나뉘자(BC 930년경) 여로보암 1세는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 12:28-29). 그 뒤로 약 17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전히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하신다. 아직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그러신가? 하나님은 한 번 우리를 구원하셨으면 영원히 구원하고 싶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포기를 잘 안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부르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계속 지어서 더럽혀져 버리거나, 현저하게 죄를 짓거나, 남들을 실족하게 만들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지옥에 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썩은 부패의 삶을 계속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구원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 자답게 살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원에서 탈락된다. 그러면 그는 성 밖이나 더 바깥의 어두운 데 혹은 불못에까지 간다(계 22:15, 21:8).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성 밖에 두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섬겼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저 북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가 기록된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B.C. 760년에서 75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더 말할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멸망한다. 약 30년에서 40년 뒤에 북쪽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망하기 전까지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제는 남유다 사람까지 보내신 것이다. 북 이스라엘도 내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만큼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을 그렇게 계속해서 사랑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하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통해 나를 부르시면 즉시 응답해야 한다. 나를 살리시려고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의 종을 보내시고 이 땅에서 그를 부르시지만, 그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만다. 부르심에 빨리 응답하는 자는 살고, 끝까지 듣지 않는 자는 망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아모스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 앞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예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어디에 가서 누구 앞에서 말씀을 전했는가? 그는 북이스라엘의 땅에 있는 벧엘로 갔다. 북이스라엘이 자기 백성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도록,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속이고, 그 우상을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단에도 제사장이 있었고 벧엘에도 제사장이 있었다. 단은 북쪽 끝에, 벧엘은 남쪽에 있었으니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과 부산처럼 나라의 양쪽에 세워 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은 벧엘이었다. 벧엘은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불릴 만큼 북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다(암 7:13). 모든 백성이 제사를 지내러 벧엘로 몰려왔다. 아모스는 바로 그 벧엘에서 말씀을 선포했다. 그 벧엘의 제사장이 아마샤였다. 벧엘의 제사장이었으니 그의 권력과 힘이 대단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처음에는 아마샤도 아모스를 좋아했을 것이다. 왜 좋아했을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나라들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셔서 불로 태워 없애 버리실 것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1장과 2장에 보면,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나라들 6개국과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먼저 선포한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3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그중 하나만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3-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다메섹&amp;#39;은 아람 나라의 수도이고 벤하닷은 아람의 왕이다. 그 벤하닷의 궁궐들을 불로 다 사르겠다는 것이다. 6절에는 &amp;#39;가사&amp;#39;가 나온다. 가사는 블레셋의 수도 같은 곳인데, 가사도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겠고 그 성에 불을 보내겠다고 하신다(암 1:6-7). 이런 패턴으로 두로, 에돔, 암몬, 그리고 2장 1절의 모압까지 여섯 나라가 나온다. 그다음 2장 4절에는 유다까지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을 듣는 벧엘의 제사장은 기분이 좋았을까, 아니면 나빴을까? 아마 기분이 좋아서 &amp;quot;잘했어, 잘했어&amp;quot; 하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우리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 우리를 괴롭힌 나라들이 다 망한다니, 불에 타서 궁궐들이 다 파괴된다니 &amp;quot;잘 되었군, 잘 됐어&amp;quot; 했을 것이다. 그리고 덩달아 유다도 망한다고 하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amp;quot;오, 너는 선지자요 나는 제사장이니 너하고 나하고는 러닝메이트하자.&amp;quot; 하면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을지도 모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다음에 아모스는 2장 6-8절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요약해서 짧게 선포한다. 먼저 운을 띄운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2:6-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아모스는 이렇게 말했다. 은으로 의인을 팔았다는 것은 재판관들이 판결을 굽게 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신 한 켤레에 거래했다는 것은 가진 자의 착취가 엄청나게 심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드나들었다는 것은 도덕적 타락, 곧 성적 타락이 극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럼,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와서 자기의 겉옷을 맡기고 무언가를 빌려 갔는데, 부자가 그 옷을 돌려주지 않고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율법은 전당 잡은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명령했다(출 22:26). 그런데도 돌려주지 않았으니 부자들의 엄청난 착취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것으로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은 제사장도 덩달아 타락했다는 말이다. 그랬다. 재판관과 부자와 지도자와 제사장들의 타락, 거기에 성적 타락까지, 결국 북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부패했고 더럽혀져 있었으며, 악이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장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아 하고 부르며, 너희가 포로로 잡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비참하게 될 것을 본격적으로 풀어서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보기에 아모스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된다. 만약 처음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고 착취하여, 너희의 부녀들이 먹을 것이 없어 자식들을 잃고, 너희는 포로로 잡혀가 자식들은 종이 되고, 농사지은 것은 다 빼앗겨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때가 올 것이니 회개하라고 했다면 그들이 들었겠는가? 처음부터 북이스라엘을 막 내리치는 말을 했다면 벧엘의 제사장이 가만두었겠는가? 결코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정치적으로 볼 때 최고 권력자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있었다. 그는 사실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신의 말을 받았다며 신탁을 왕께 말하고, 왕을 추켜 세우고, 왕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자였다. 아마샤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5장에 가서 비로소 회개하라고 선포한다.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고 선포한다(암 5:4). 그리고 9장에 가서 북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말한다. 이는 심판을 말하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말하고, 그다음에 회복을 말하는 요엘서와 거의 비슷한 스타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렇듯 점차적으로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재앙과 멸망을 예고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는 조금 말했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세 배, 네 배로 확 불려서 말하니 아마샤가 화가 끝까지 났던 것이다. 그러자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무엇이라고 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2-13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다 땅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도망가지 않으면 그를 죽이겠다는 말이다.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라는 말에는 아마샤의 처지가 들어 있다. 너도 떡 먹으려고 여기서 이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샤의 자기 생각이다. 자기는 왕에게 잘 보여 떡 먹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제사장 노릇을 하니까, 아모스도 그런 줄 안 것이다. 너도 권력을 잡으려고 이러는 것이지, 너도 돈을 벌려고 이러는 것이지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마샤의 수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아마샤는 벧엘의 제단을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보았다. 여기는 왕의 권력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곳을 정치적인 힘을 쓰는 곳으로 보았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똑같이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제사를 드려 주지만 그 제사는 완전히 정치적인 목적의 것이었고, 아마샤는 자신을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장소라고 생각했고, 왕은 그의 지지자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거꾸로 추정해 보면 북쪽에는 참된 영적 지도자가&amp;nbsp; 없었던 것이다.&amp;nbsp; 제단에서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제사를 드려 주는 제사장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종이 없어 당신의 백성이 망하게 되었으니 살리시려고 호세아를 들어서 쓰시고 또 아모스를 보내셨는데, 아마샤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승에 따르면 아모스는 벧엘에서 회개를 외치다가 결국 아마샤(또는 그 아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순교(殉敎, martyrdom)했다고 한다. 고로 아모스는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되, 권력자의 분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던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선지자가 아니었던 아모스는 어떻게 환상을 보는 선견자가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원래 선지자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는가? 7장 14절에 보면, 아모스는 그러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하기를 &amp;quot;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amp;quot;라고 말했다. 선지자의 아들이란 선지자 학교에 들어가 공부해서 결국 선지자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엘리야 시대에 선지자의 제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엘리사 시대에 이르러 그들이 엘리사 밑에서 무리를 이루어 공식적으로 배운 것이다(왕하 2:3; 6:1). 다시 말해 선지자학교가 있어서 그곳에서 선지자들을 배출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되려면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해야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는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여 거두어 판매하고, 양 떼를 목축하여 판매하던 사람이었다. 고로 그의 말은 &amp;quot;나는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amp;quot;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노릇을 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때 아마샤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그는 그를 선지자(先知者, prophet)를 뜻하는 나비라고 부르지 않고 선견자(先見者, seer)라고 불렀다. 선견자는 미리 보는 자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환상을 보지 않고도 예언할 수 있다. 그러나 선견자는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마샤가 그를 선견자를 뜻하는 &amp;#39;호제&amp;#39;라고 부른 것은 아모스가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로 아모스서에는 그가 본 환상이 무려 다섯 가지나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는 7장 1-3절의 &amp;#39;메뚜기 환상&amp;#39;이다. 메뚜기가 와서 북이스라엘을 다 먹어 치울 것이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여 주신 환상이다. 두 번째는 7장 4-6절의 &amp;#39;불 환상&amp;#39;이다. 도시가 다 불에 타 버릴 것이라는 환상이다. 그런데 이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상에서는 아모스가 살려 달라고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그것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암 7:3, 6). 하나님께서 그나마 북이스라엘에게 주의 종의 청원을 들으시고 마지막 긍휼을 베푸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는 7장 7-9절의 &amp;#39;다림줄 환상&amp;#39;이다. 하나님께서 이 도시를 멸망시키려고 다림줄로 재고 계심을 뜻한다. 그렇다. 언제 그 나라를 심판하실지를 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환상부터는 하나님께서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이제 벌하시겠다고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네 번째는 8장 1-3절의 &amp;#39;여름 과일 환상&amp;#39;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름 과일은 히브리어로 &amp;#39;카이츠&amp;#39;(קַיִץ)이고 끝은 &amp;#39;케츠&amp;#39;(קֵץ)다. 두 단어는 같은 자음으로 되어 있고 모음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은 여름 과일이 다 거두어져 싹 없어지는 환상을 통해, 언어유희로 이스라엘에 &amp;#39;끝&amp;#39;이 이르렀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9장 1-4절의 환상이다. 그것은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그 제단을 허물어 버리시는 환상이다. 그렇다. 아모스는 환상을 보는 예언자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사람이 부름을 받기 전에 예언을 해 보았을까? 또한 환상을 보았을까? 아마도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실 때부터, 아모스 1장 1절 말씀처럼 이상으로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계시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진짜 이 땅에 쓰시려고 보내셨으면 즉시 즉시 초자연적인 역사가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붙고, 환상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주어진다. 그러나 내가 주의 종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수고해도 그러한 은사와 능력이 달라붙지 않는다. 주의 종들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내 조상들이 어떤 조상들이었는지도 매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 조상으로부터는 일반 은사(恩賜, gift)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 부름을 받으면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한 은사가 달라붙는다. 능력이 붙고, 축사의 은사가 붙고, 환상의 은사가 붙고, 예언할 수 있는 은사가 붙는다. 분별력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달라붙는다(고전 12:8-10). 고로 아모스가 선견자로 불리게 된 것은 원래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사역을 맡기실 때부터 그에게 환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려 주신다. 네가 이런 일을 해야 하니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원래 글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의 가문의 후손으로서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필자는 그쪽 방면으로 쓰임받을 줄 알았고, 교육 목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 공부를 많이 시켰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통해 최종적으로 찾아낸 것은 &amp;#39;회개&amp;#39;의 중요성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마 4:17, 계 22:15). 그래서 필자는 7년 동안 오직 이 회개만을 외쳤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회개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회개해야 천국에 가는데, 천국은 저 멀리 있고 지금 내 삶이 어려워 죽겠으니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7년을 외쳐 보았지만 사람들이 별로 따라 주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다음 2차 작전으로 돌입하셨다. 그것이 바로 코로나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드디어 사람들이 유튜브로, 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필자는 2020년 6월, 한 사건을 통해 비로소 영적 세계의 사역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 사역 쪽에 들어와 환상을 보고, 능력을 행하고, 축사하고, 병을 고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달라붙게 되었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온다. 살겠다고 더 먼 곳일지라도 찾아온다. 이런 일은 필자에게 이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미 그것을 예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자 필자를 불러내셨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붙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나님의 사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역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쓰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름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모스에게는 선지자로서 장차 부름받아 쓰임받는 사명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 아모스는 144,000명의 보좌 가운데 일곱 번째 줄의 보좌에 앉아 있는 엄청나게 높은 지위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회개를 외치는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셨다면, 처음부터 선지자 학교에 보내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는가? 어릴 때부터 선지자 학교에 들어가서 예언하는 법, 환상 보는 법, 말하는 법, 선포하는 법, 그리고 율법을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돌무화과를 거래하는 일과 목축을 거래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시골에 살았지만 일종의 큰 거상으로 일하게 하셨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살게 하신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불러내어 직무를 맡기셨을까? 그리고 또 왜 북쪽 사람이 아닌 남쪽 사람인 그를 데려다가 쓰셨던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 사람 곧 아모스를 쓰시려는 뜻은 이미 그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아모스라는 이름에서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서 아모스라는 이름은 &amp;#39;짐을 지고 있는 자&amp;#39;라는 뜻이다(아마스, עָמַס, 짐을 싣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짊어지고 갈 사람, 정치적인 거물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그 일을 위해 배포가 큰 사람으로 그를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냥 시골에서 뽕나무나 재배하다가 양떼나 치던 사람이었다면 벧엘의 아마샤 앞에 가서 그는 주눅이 들어 말도 못 꺼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를 쓰시려고 배포가 큰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아모스는 엄청나게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주변 나라들이 멸망한다고 먼저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가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리고 그는 글도 엄청나게 잘 쓰는 문장가였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에는 문학적인 표현이 대단히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amp;quot;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amp;quot;는 5장 24절도 엄청나게 멋있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뽕나무나 재바하고 양 똥이나 치유는 무식쟁이였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는 비록 시골에서 살았지만 상당히 지혜롭고 유식했던 사람이었다.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해 쓰임받았던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처럼, 아모스도 그 동네에서 공부를 꽤나 잘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아모스는 엄청나게 온유했다. 남쪽 유다 사람이 북쪽에 왔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바로 내치지 않을 정도로 말을 참 잘했다. 혈기와 분노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대언한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첫째, 아모스는 돈이나 명예나 인기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lt;/span&gt;이다. 그렇다. 주의 사역자는 돈과 명예와 인기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일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아모스는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북쪽에 온 것이 아니었다. 권력을 누려 보려고 온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파송하셔서 온 것이다. 그는 이미 남쪽에 있을 때에 권세도 누려 보고 돈도 가져 보았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난한 자를 대변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둘째, 아모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lt;/span&gt;이다. 옛날부터 선지자 학교를 나왔다면 그에게도 약간 우쭐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나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들어 쓰셨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만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셋째, 아모스는 예상외로 유식하고 지혜로웠으며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lt;/span&gt;이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생각보다 유식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부름받은 이후에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넷째, 아모스는 그 이름의 뜻대로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자였기 때문&lt;/span&gt;이다. 그는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그것을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임을 완성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순교까지 한 것 같다. 그랬다. 아모스는 하나님이 그에게 짊어지게 하신 짐이 있었지만, 그 짐을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권력자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기쁨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아모스 선지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11: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시편 기자도 이렇게 말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우리가 짐을 맡길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 짐을 맡기셔도 기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모스는 아마샤라는 엄청난 거물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고로 하나님은 욕심 없이, 겸손히, 지혜롭게 기도하며 끝까지 짐을 지는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를 이용하여 아모스가 가난한 자의 대변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아모스는 가난한 천민이 아니라 양떼를 사고파는 목축업자요 돌무화과를 대규모로 거두는 부유한 농부였다. 그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부자를 없애자고 외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 부르시는 북이스라엘을 살리시려고 보내신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나눌 것이다. 또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이용한 3장 7절도 하나님의 종 선지자가 어떤 선지자여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말씀이다. 이것도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서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amp;#39;일반 은사&amp;#39;를 주시고, 직분을 맡았을 때에는 그 직임에 따라 성령의 &amp;#39;특별 은사&amp;#39;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나의 분량과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충성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자신을 과장하여 허풍을 떨면서 일하다가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또한 이미 주어진 것이 있는데도 게을러서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맡기시려고 누군가를 통해 부르실 때 빨리 응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을 맡기실 때에는 우리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을 맡기실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ㅇ 영적인 은사도 붙여주시기 때문이다. 송아지를 섬기던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하시며 끝까지 예비된 당신의 종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아모스처럼 맡겨 주신 짐을 기쁨으로 지고 끝까지 걸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7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서와 그리스도의 예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7adce98ed342c3fa542d537fcd1468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d4ac88f695761793074ef98e525cc2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c074454111fc6bd1b4584b3abeb354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ff4e2eeb59eee63c83d1588cf4b68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49bfc22937533aac056ea8b06204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a9e92ce8a1162fad5984b4442f11d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147486129b084c5c09453aa15b7c6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dbe4bbed9a4ad10c56288b04e04210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900981e875105ea25258494f48148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f9174cfe07b5c78a03f873945c0076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020c08196ad9f5aac599422c0d918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4f403ae45ab59dd1f79b6ac2a41a0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3e3e9caf2521ced78eeee85cd2cc8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2aa5866a0a3b4cbbec40bd7d8ffd5f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_선지자를_쓰신_이유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0d6edde09aac4c7154c4752b083e6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_선지자의_오해와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0cd5fe140edf3f6d99c48c10a4fb4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207bd4dc9f8b9acce13a50225ef92e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e997237437a24678bed5e32dd3d28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90430c167383fad4e9e4fbcc06a00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75b61b7885f0834e94cbd17d37e3e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3b4ae8df6a854c44c53248f9b515fb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7aae92478756a73eab619cc77a97e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7ef9dfe07fbeb99c35d60114c813b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78968b727a59de27efcbc06a8a3150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871cbadd4ea591cc32eefe7207911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8aa745d7f0bdb8b5565cc83ca965f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b60ccf1ad5a3f9271edf68095be14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0b116391697b3e043514401299e0f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9a550f0df87f965f0b957ee4ec967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ac02da0cfe4771a6cd48e92a450ad79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guid>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Oct 2026 12:46:19 +0900</pubDate>
		</item><item>
			<title>[온라인새벽기도회(2026.10.26/월,새벽5시반] [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싯점은 언제인가?(출32:30~35)</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0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싯점은 언제인가?(출32:30~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R3DRZpyYgE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3DRZpyYgE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구원의 확신과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조건&lt;/strong&gt;에 대한 목회적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진정한 구원은&amp;nbsp;&lt;strong&gt;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lt;/strong&gt;&amp;nbsp;시작되며, 이때 신자의 이름이&amp;nbsp;&lt;strong&gt;하늘의 생명책에 기록&lt;/strong&gt;된다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선물이나, 신자가&amp;nbsp;&lt;strong&gt;지속적인 범죄와 불순종&lt;/strong&gt;&amp;nbsp;속에서 회개하지 않고 은혜를 등한시한다면&amp;nbsp;&lt;strong&gt;살아있을 때라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lt;/strong&gt;을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므로 인간에게는&amp;nbsp;&lt;strong&gt;믿음을 지키고 죄를 즉시 회개할 책임&lt;/strong&gt;이 있으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 돌이킬 때만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영원한 구원&lt;/strong&gt;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lt;/strong&gt;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lt;br /&gt; 2. 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lt;strong&gt;인간에게 책임&lt;/strong&gt;이 있는가?&lt;br /&gt; 3. 한 번 주신 구원이 &lt;strong&gt;영원한 구원&lt;/strong&gt;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lt;br /&gt; 4. &lt;strong&gt;출애굽과 광야 여정&lt;/strong&gt;은 우리의 &lt;strong&gt;구원 과정&lt;/strong&gt;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5. &lt;strong&gt;금송아지를 만든 일&lt;/strong&gt;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lt;br /&gt; 6.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lt;strong&gt;생명책&lt;/strong&gt;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lt;br /&gt; 7. &lt;strong&gt;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lt;/strong&gt;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바른 구원(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출 32:30-3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천국에 간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이름이 지워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 역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계 3:5). 그렇다면 한 번 기록된 이름이 지워졌다가 다시 회개하면 다시 기록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 그럼,&amp;nbsp;사도 바울은 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 말했을까?&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간다고 정의한다. 왜냐하면 믿는다 하더라도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고, 그 죄가 쌓이면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자발적인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우리 속에 귀신이 있어서 유혹하여 넘어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시면 그 유혹을 버텨낼 힘이 있겠지만,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버틸 힘이 없어서 우울증과 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구원받을 때에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내 안에 전쟁터가 된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뒤에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생&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와 그 기준은 무엇이며,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지를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드린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살펴보고자&lt;/strong&gt;&lt;/span&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거듭날 때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성령이 내 영 안에 들어오실 때 구원을 받는다(요 3:5-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에게는 두 번의 출생이 있다. 먼저 부모를 통하여 육체로 태어나는 출생이 있고, 그다음에 영으로 또 태어나는 두 번째의 출생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육신의 부모가 있고 영의 부모가 있는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생명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거듭남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분배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거듭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분이 A.D.30년 오순절 이후의 보혜사 성령이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을 넣어 주시고 계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살려 주는 영 곧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왜 많은 이름 가운데 &amp;#39;생명책&amp;#39;이라고 부르는가?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의 여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가 믿어서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면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순절 이후 예수께서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계 3:20). 이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이면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 문을 여는 것은 사실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신다. 이때 성령이 들어오시게 하려면 반드시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영접해야 한다(롬 10:9-10, 요 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그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순간에 반드시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믿음과 동시에 들어오시기도 하지만, 믿은 뒤 한참 후에 성령이 들어오시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아 생명이 없는 채로 교양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의 하나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 수호천사가 2명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명책과 구원 여부를 조사해 보니, 아직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없었고, 기록되었다가 살아 있는 동안 지워져 버린 사람에게도 수호천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천사들은 우리의 상태를 알려 주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책은 천국에 있는 어떤 큰 건물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 건물에 엄청나게 많은 생명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거기에 우리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다. 하나님께서 무턱대고 &amp;quot;너를 구원시켜야 되겠다&amp;quot; 하시며 강제로 들어오시는 법은 없다. 그런데 예정론은 이 자유의지를 아주 무시해 버렸다. 천국에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 예정하지 않았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선행적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만, 사람이 스스로 거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약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수 없다. 멸망으로 예정해 놓고 &amp;quot;너는 지옥에 가라&amp;quot; 하시면 그 사람이 심판 때에 따지지 않겠는가? &amp;quot;왜 당신은 나를 구원으로 예정하지 않고 멸망으로 정하셨습니까?&amp;quot; 그러면 하실 말씀이 없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amp;quot;내가 너에게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 그런데 네가 거역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의 운명은 네가 결정한 것이다.&amp;quot; 그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지옥에 마땅히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려면 반드시 우리에게도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없이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주님께서 전적으로 준비해 주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히 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필자는 한 명도 본 일 없다. 모두 자기는 구원으로 예정되었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반대편에는 공의가 있다. 공의를 빼면 안 된다. 공의를 빼면 악을 심판하실 수 없고 사탄을 심판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amp;quot;구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내가 다 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네가 선택하라&amp;quot;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도하러 나오는 것도, 말씀을 듣는 것도, 회개하는 것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 &amp;quot;내가 너에게 분명히 기회를 주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amp;quot;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떤 사람은 로마서 8장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면 그 사람을 끝까지 놓으려 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손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롬 8:26) &amp;quot;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amp;quot; 하고 계속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아서 결국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에게는 책임이 항상 따른다. 그래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빌 2:12).&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한 번 주신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령이 들어오셔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정론 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서, &amp;#39;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amp;#39;이라고 믿는 믿음에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지, 빼앗아 가려고 준비하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조금 그를 살펴보다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특히 현저하게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구원에서 제외시켜 버리신다. 영원한 구원으로 주신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지우실 것인지 말 것인지를 훗날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구원을 우리 스스로 놓쳐 버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진다. 성령께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그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amp;quot;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빨리 돌이켜야 한다.&amp;quot; 그런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신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지워지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필자는 예전에 이것을 제대로 몰라서 죽을 때 지워진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amp;#39;영적 전투&amp;#39; 설교를 하면서 생명책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조사하다가, 죽을 때 지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지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에도 그것이 나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타락한 사역자들이나 목사들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평신도는 그렇게까지 쉽게 지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목사들은 지워 버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과 사역이 계속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나 집회라는 이름 안에서 시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고 말했다(약 3:1). 생명도 없는 사람, 이미 지워진 사람이 가르치는 것, 또는 죄를 계속 지으면서 생명을 전하고 구원받으라고 하는 것은 가증한 일이다. 그런 자는 지워 버리시고, 다시는 회개할 기회도 주시지 않으신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잘 나온다. 그러므로 함부로 지도자가 되지 말라. 지도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국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평신도가 구원받는 것보다 주의 종이 구원받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면에 생명책에 아예 기록되지 않은 사람, 곧 교회에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한 번 생명을 받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면서도 성령의 계속된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지워진 사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출애굽과 광야 여정은 우리의 구원 과정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언제 지워지는지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와 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 구원의 여정에 관한 정확한 샘플이다. 애굽의 바로 왕은 사탄과 세상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나옴으로써 사탄과 마귀의 포로에서 나와 1차적 구원을 받은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다시 말해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그들을 데려오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출 3:6)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데려가시려고 데리고 나오셨다.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죽지 않고 애굽에서 나왔고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았다. 성막으로 보면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소의 일곱 금 촛대인 성령의 인도와 분향단의 기도와 떡상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교회생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요단강, 곧 우리 육체의 죽음을 건너야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무 범죄도 하지 않은 사람을 광야에서 죽이시겠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영생을 주시는 것이지 멸망이 아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구원이다. 구원을 주셨다가 빼앗았다가 하는 등의 장난처럼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광야로 데려다 놓았더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싫다고, 애굽이 더 낫다고, 애굽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 생활이 곧 광야 생활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귀신이 가만히 놔두겠는가? 어떻게든 실족시켜 떨어뜨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나를 데려가시려고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하셨으니, 내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믿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이 내게도 필요하다. &amp;quot;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으면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헤치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겪고 어려움과 고통은 일시적인 것뿐이다. &amp;quot;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출애굽 1세대들은 불평하다가 38년간 광야에 살다가 죽었는데 이들 전부가 다 지옥에 들어갔는가?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광야에 나온 모든 사람이 다 범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 중 열 명의 정탐꾼과 정탐꾼을 따르는 무리들이 범죄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 1세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물을 자발적으로 드려 성막을 지은 사람들이다. 너무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라고 할 정도로 많이 가져왔다(출 36:5-7). 그러므로 광야에 나온 출애굽 1세대들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도 있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자들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광야에 나왔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천국에 가 보면, 14만 4천에 들어 보좌에 앉아 있는 이들도 있다. 다 지옥에 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의 믿음으로 된 것이다. 우리도 &amp;quot;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amp;quot;고 외쳤던 지휘관을 따라 그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교단이 어떤 교리를 가지고 말하든지, 그것이 성경 말씀에 어긋난 것이라면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된다. 필자는 목사가 된 지 30년이 되었지만 교단이 필자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실 필요가 없다(겔 18:2).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은 천국에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금송아지를 만든 일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금송아지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굽에서 살 때에 눈에 보이는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특별히 애굽의 소 신(아피스&amp;middot;하토르)을 섬겼던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숫자만 많아졌을 뿐(출 1:7)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했다. 그들은 다른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 곧 엘로힘을 송아지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세계에 계신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물질로 만들 수가 있는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실수하지 않도록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그러자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신격화하고 빌고 음식을 차려 놓고 촛불을 켜 놓고 거기에 절을 한다. 우상은 나무를 깎아서 금박을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거기에 절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렇게 해 보니 어떤 효험이 있고 영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꾸 나무에 절을 하니 귀신들이 와서 달라붙어 있다가 어떤 일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면 안 된다. 사람이 절을 하면, 그 형상은 신이 아니지만 그 뒤에 있는 악한 영이 신 노릇을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가 드리는 제사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차려 놓고 신주와 위패를 놓고 절하면 원래는 없던 영이 그곳에 오는데, 그것은 자기 조상이 아니라 귀신이다. 귀신이 와서 조상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필자가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방, 곧 조상 귀신 역할을 하는 귀신의 방을 확인해 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귀신들이 돌아가신 분의 영정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그 얼굴 모양을 흉내 내기 위해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100% 똑같이 흉내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amp;quot;어, 이건 좀 다르다&amp;quot; 하면서 눈치채기도 한다. 불신자인데도 불구하고 &amp;quot;이분은 우리 조상이 아닌데&amp;quot; 하고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진짜 조상이 오셨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무당을 찾아가도 발생하는 일이다. 무당은 굿을 신청한 사람과 자기의 돌아가신 어머니만 아는 추억, 예를 들어 장롱 속에 돈다발을 넣어 둔 일 같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amp;quot;어머니가 오셨구나&amp;quot;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귀신은 그간 어머니의 일을 다 지켜보고 있던 놈이었다. 그러므로 귀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 그의 후손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출애굽 후 1세대들이 절대 만들지 말라고 했던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춘 것은 큰 죄 중의 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로 다 죽게 생겼다. 그러자 모세가 먼저 하나님 대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레위 자손이 합류했다. 그러자 모세는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자들을 치게 하였다. 그래서 그날 레위 자손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쳐서 삼천 명가량 죽였다(출 32:2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생명책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상태에서 모세는 이 죄를 어떻게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올라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모세는 백성을 살려 보려고 하나님이 거부할 수 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아마도 모세의 영의 나이가 22세로 높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포부가 크고 그릇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영의 나이가 적으면 속이 좁아 자꾸 삐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그리고 무슨 말을 들으면 이전과는 완전히 뒤집힌 말도 따라간다. 그러나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무슨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포가 컸던 모세는 하나님께 담판을 지어도 세게 지었다. &amp;quot;주여, 이 백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만약 이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옵소서.&amp;quot;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청원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생명책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때 모세가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한 것은 그의 이름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amp;quot;그래, 네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이 백성을 살리겠다&amp;quot;고 하지 않으셨다.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는 청원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필자는 그것이 사람의 이름이 한 번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다시 지워지면 다시는 기록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세에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즉 사람이 범죄하면 지워 버린다고 하셨다. 이 말은 꼭 죽을 때 지운다고 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 번 구원받은 자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신다. 그래서 &amp;quot;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언젠가는 회개할 것입니다. 1년만, 2년만 기다려 주세요&amp;quot; 하시며 끝까지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를 붙잡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큰 죄를 지었거나 죄가 너무 많으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사람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빌립보 교회의 중직자였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서로 심히 다투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복음에 힘쓴 그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했다(빌 4:2-3). 그 정도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가? 첫째는 주님을 부인할 때다. 둘째는 현저히 죄를 짓고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다른 우상을 계속해서 섬기는 것, 예수를 믿으면서 무당을 찾아가는 것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이 신사참배를 하였다. 예수를 믿었으나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 중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자가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함부로 예수를 믿다가 어려움이 왔다고 해서 예수를 안 믿는다고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믿음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한 번 믿은 것을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이고, 회개란 지은 죄를 빨리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얼마 전에도 예수님을 잘 믿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현저하게 무효로 만드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실까? 아닐 것이다. 당장 지워 버리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생명책에서 삭제된 이름은 두 번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 번 지워지면 회개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것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까? 용서는 하셨지만 그 죄에 대해 징계를 내리셨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랬는가? 그건 그들이 그 죄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amp;nbsp; 송아지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그 뒤로 한 번도 회개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을 취하셨다. 그것이 출애굽기 20장 5절의 방식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우상숭배의 죗값을 묻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죄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값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그들이 빨리 깨닫고 회개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즉,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찾아올 때 빨리 돌이키려고 아픔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출애굽하면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에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송아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으니,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한 것이고, 그것을 회개하라고 벌을 삼사대까지 묻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그 죄값으로 인하여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도 똑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죄를 짓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귀신을 통해서 질병과 가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 빨리 &amp;quot;아, 내가 범죄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구나&amp;quot; 하고 재빨리 돌이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현저하게 죄를 지으면 그날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거역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지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모든 인류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도 그 피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 죄값을 자신이 받게 되어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셨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니 스스로가 그 죄값을 받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면서 빨리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한다. &amp;quot;하나님,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잘못했습니다.&amp;quot; 이 한마디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 돌아온 탕자를 보라(눅 15:11-32).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했다. 이는 아버지더러 빨리 없어지라는 말과 같다. 아직 성숙하지 않아 돈을 쓸 능력이 없는데도 그는 그 돈을 아버지께 받아내어 허랑방탕하게 썼다. 원문의 뜻대로 번역하면 돈을 마구 뿌리며 다 날려 버린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근을 보내셨다. 그에게 일종의 간접 징계를 내리신 것이다. 그러자 그도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 했으나 그것을 주는 자가 없었다(눅 15:16). 그때 그는 &amp;quot;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한 것도 나빴지만 그것을 허랑방탕하게 날려 버린 것은 큰 잘못이로구나. 아버지께 가서 용서를 빌자. 아들로 받아 주지 않으시면 품꾼의 하나로라도 받아 달라고 부탁해 보자&amp;quot; 하고 아버지께 돌아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버지는 &amp;quot;이놈의 자식, 내 말을 그때 들었어야지&amp;quot; 하고 단 한마디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들이 온다고 하니 버선발로 달려 나가 목을 끌어안았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신다. 우리는 용서한다면서도 &amp;quot;이번 한 번만 봐준다&amp;quot; 하며 용서해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지었던 무슨 죄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더 이상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시고 발에 신을 신기시고 옷을 입히시며 아들의 자리를 다 회복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회개가 구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다. 그때 우리는 거듭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신다.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지지만, 주님을 부인하거나 현저하게 죄를 짓는 자, 특히 잘못 가르치는 지도자는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amp;quot;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amp;quot;(출 32:3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번 지워진 이름은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내게 질병이나 가난이나 어려움으로 징계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회개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빨리 탕자처럼 아버지께 돌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큰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결코 등한히 여기지 말고, 어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믿음을 지켜내며, 잘못했으면 즉시 회개하여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구원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 끝까지 지켜, 천국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인포_생명책과 끝까지 지키는 믿음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ed8429051efe0cdcbec6a3b40f59e4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3e03a77e6a1da48e599585d609641b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79a805cc16e405a7dab603affb8372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feaa4af98f449b75d6e183235b9d9c5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b4fee3cf42c25b0ec6729743e4614a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c08b73144730f813406252591a571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7da769e39e6723450b3954c4d70f8e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1744a06908f7f63187afc64740260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ad373dc8e2bcb137806c4ee9e37f626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4140c97030243e50986b6d7af69442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5ac4adc3b24e9df0876ce0f1662ab3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2eb696a5a92f58978b9e9b268c6f54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93d1d826e20bb52343748d71af50ab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2a835a45e9a289e94473608307913c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f62c2835995aecd837b3c565d89fc7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구원의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b4fbf5f770de04c1917e0bfdaf2524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에_기록된_구원의_지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9be7712eaa9f10795b1ce374b55f31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바른_구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5c4f9daf6471e37c1ce053f53e29b9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바른_구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113e88845ac9c648345757b05fbee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바른_구원.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38a656b90485fbaa77fd2d4ba542835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바른_구원.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9a37a323b820b788f329faad8eae17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바른_구원.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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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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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04#comment</comments>			<pubDate>Sun, 25 Oct 2026 23:39:15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21)]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 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욜3:14~16)_2026-10-2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1074</link>
				<description>&lt;p&gt;2026-10-25(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1)]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 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욜 3:14~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https://youtu.be/5gOUQiZtRsM&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5gOUQiZtRs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여호와의 날이 누군가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되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lt;/strong&gt;는 성경적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구약 시대의 요엘서가 경고하는 회개의 중요성&lt;/strong&gt;과 더불어,&amp;nbsp;&lt;strong&gt;신약 시대 성도들이 가져야 할 깨어 있음과 충성의 자세&lt;/strong&gt;를 강조하며 성도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죄를 회개하고 주님 안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함으로써&lt;/strong&gt;, 다가올 심판을 피하고&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더 큰 은혜와 상급을 누릴 것&lt;/strong&gt;을 권면하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요엘서 2장 32절의 &lt;strong&gt;&amp;#39;구원을 얻으리라&amp;#39;&lt;/strong&gt;는 본래 무슨 뜻인가?&lt;br /&gt; 2. 요엘서의 주제인 &lt;strong&gt;여호와의 날&lt;/strong&gt;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lt;br /&gt; 3. 여호와의 날에 &lt;strong&gt;심판의 골짜기&lt;/strong&gt;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lt;br /&gt; 4.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lt;strong&gt;심판과 회복의 날&lt;/strong&gt;로 어떻게 그리는가?&lt;br /&gt; 5. 구약은 그날을 &lt;strong&gt;구원의 날&lt;/strong&gt;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br /&gt; 6. &lt;strong&gt;신약&lt;/strong&gt;은 &lt;strong&gt;회개&lt;/strong&gt;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br /&gt; 7. 깨어 있는 자는 &lt;strong&gt;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lt;/strong&gt;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3:14-1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의 영적 진리도 흩어져 있으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단편적인 지식을 얻어 간다. 그러나 그것을 꿸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도 의문을 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부족했던 것은 우리의 지혜인 것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단편적으로 알던 지식을 하나님의 경륜과 뜻의 입장에서 찾아내어 영적 원리로 법칙화하고, 그 원리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 말씀을 그 상황에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없이 적용될 원리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언제나 정답이었고 또한 반대편의 말은 하나도 없었다. 목회자도 반대편의 말이 있는 것을 진리라고 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떳떳하게 입을 벌려 그렇게 말하는 주의 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어떤 것이 복음이 되려면 시대와 장소와 남녀와 혈통에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복음이 되는 말씀이어야 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이다. 구약 시대에는 계시가 적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에 와서 더 많이 계시하셨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통하여 더 확실해졌다. 그런데 주님께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성 밖도 있고 더 바깥 어두운 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교회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000년 동안 성경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구원의 드라마 전체를 꿰어 말하지 않고 부분만 말해 왔기 때문에 천국의 문제만 보더라도, 천국에 못 들어가면 다 지옥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 특히 의심을 주고 불신앙을 주는 의심의 영을 제거해야 한다. 이 영이 있는 한 우리는 귀가 얇아져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황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계 2-3장; 마 13: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amp;#39;여호와의 날&amp;#39;은 과연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 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 나는 안전한 것인가? 가만히 있어도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함과 감사함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요엘서 3장 14-16절을 중심으로 &amp;#39;여호와의 날&amp;#39;이란 어떤 날이며,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닌 구원과 보상의 날로 맞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lt;/span&gt;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요엘서 2장 32절의 &amp;#39;구원을 얻으리라&amp;#39;는 본래 무슨 뜻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 요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있다. 앞에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와,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날에 주로 오실 그리스도, 열방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키실 그리스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말씀들의 핵심은 여호와의 날에 그분이 나에게 심판주로 오실 것인가, 구원주로 오실 것인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요엘서 2장 32절에 나오는 &amp;#39;구원을 얻으리니&amp;#39;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2차적인 의미, 곧 의역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말라트(מָלַט)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 단어의 본래의 뜻은 &amp;#39;피하다&amp;#39;, &amp;#39;벗어나다&amp;#39;, &amp;#39;도망하다&amp;#39;이고, 거기서 파생된 2차적 의미는 &amp;#39;구출하다&amp;#39;, &amp;#39;구조하다&amp;#39;, &amp;#39;구원하다&amp;#39;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텐데 그 심판에서 피할 자가 되는 것이 곧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무엇에서 피해야 구원을 얻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앞 31절에 나와 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핏빛같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어떤 날인가? 그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도 어두워지고 달도 핏빛이 되겠는가? 하늘의 천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는 것이다. 그 크고 두려운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되라는 것이 1차적 의미이고, 더 나아가 그 심판의 날에 피하여 구원을 얻을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주님을 불러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영생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과 저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amp;quot;모두가 심판을 받을 것인데, 너희가 그 심판에서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공의롭기 때문에 죄를 없다고 눈을 감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악을 저지른 사탄과 마귀를 심판하겠느냐? 그래서 나는 공의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반역한 자를 불에 던지는 것이 불법이 되고 말 것이다.&amp;quot;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심판의 날 공의로운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진노의 날, 멸망의 날, 파괴의 날, 재앙의 날에 살아남을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알아서 우리를 살려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주님께 와서 부르짖으라, 주님을 의지하라,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과 방법을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해서 취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바른 하나님의 예정이란 무엇인가? 누구든지 죄를 범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 죄값을 받지 말고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으로 예정되는 것이다.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받기로, 어떤 개인은 멸망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총수가 이미 정해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amp;quot;너도 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 그 구원받을 총수 안으로 들어간다&amp;quot;고 하는 것이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를 저주하기로 예정하셨다는 생각은 사실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 폭군 같은 하나님으로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잘 듣고 선택을 잘해야 한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를 듣고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요엘서의 주제인 여호와의 날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피해야 할 &amp;#39;여호와의 날&amp;#39;은 대체 어떤 날인가? 요엘서의 주제는 사실상 다음과 같다. &amp;quot;여호와의 날의 도래를 준비하라.&amp;quot; 여호와의 날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이니 그날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날을 지금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로 맞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좋은 날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날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날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 다시 오실 주님께서도 &amp;quot;주의 날이 갑자기 올 것이니 깨어 있으라&amp;quot;고 말씀하신다(마 24:42). 그날은 구약의 여호와이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심판할 것이니, 우리가 그날에 심판과 멸망의 날로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할 것인지를 우리가 결정하라고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1장 15절은 여호와의 날이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2장 1-2절은 그날이 어둡고 캄캄하며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2장 18절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심판과 멸망의 날을 예언했던 요엘 선지자가 회복과 구원의 날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장에 가면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러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번에 나누고 있는 본문 말씀이 바로 그 장면이다(욜 3:14-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3:14-16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엘 선지자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을 모아 놓고 심판하시는 날은 매우 엄중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겠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날 오히려 여호와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실 것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 성도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주님의 재림이다. 그런데 그날에 주님에게서 떠나 멸망으로 들어갈 자도 있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자도 있기 때문이다(마 25:34, 4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장차 어디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고 준비해야 한다. 성경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을 네 군데로 말씀한다. 사실 장차 도래할 천국과 지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다. 크게는 새 땅의 위쪽은 일종의 천국이고 땅 아래는 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땅 위쪽의 가장 핵심은 한가운데 위치한 새 예루살렘 성이며, 우리는 이 성 안에 들어가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가?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자가 그리로 들어간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었던 자들은 대부분 새 하늘과 새 땅 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성 안에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성 밖에 살 것이다. 성 바로 바깥 부분인 &amp;#39;성 밖&amp;#39;은 성의 빛이 비침으로 어느 정도 밝고, 또한 성 안에 있는 생명수의 물이 흘러나와서 물도 있다. 그러므로 지구와 비슷한 장소다. 그러나 더 바깥쪽으로 가면 빛과 물이 적어지는 황량한 외곽을 지나 &amp;#39;바깥 어두운 데&amp;#39;가 된다(마 25:30). 그리고 더 악한 사람들은 땅속의 &amp;#39;불못&amp;#39; 안으로 떨어간다(계 21:8).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가 4가지 장소에 들어갈 자를 말한다. 즉 새 예루살렘 &amp;#39;성 안&amp;#39;에 들어갈 자, &amp;#39;성 밖&amp;#39;에 남아 있는 자(계 22:15),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로 던져질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amp;#39;지옥&amp;#39; 안으로 떨어질 자가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기왕이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성 안이라면 꽃밭이라도 괜찮다고 하는 분도 있고, 성문 바로 바깥의 아름다운 지역이라도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경이 있는 4군데의 장소를 말해 주어도 &amp;quot;죽으면 천국과 지옥밖에 없지 무슨 성 밖이 있고 더 바깥 어두운 데가 있느냐, 저 목사는 미친 사람이다&amp;quot;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성도가 죽어서 가는 장소가 천국과 지옥뿐이라면 그는 당장 성경책을 찢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주님께서 말씀하신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믿고 있는지, 자기의 생각이나 교리와 전통을 믿는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는데 언제까지 희석되고 불순물이 섞인 교리와 전통을 따라가려고 하는가? 그러면 평생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없든지 아니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후회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마 20:16). 지금 회개하고 깨달을 수 있고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는 더 앞서 갈 수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주님께 샘플로 보여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amp;quot;그래, 너라면 이 자리에 들어가 좋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amp;quot;(마 25:21)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으면, 우리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중에도 지옥에 들어갈 자도 있다. 지난 번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에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을 놓는 자와 귀신의 힘을 빌려 성령의 사역이라 행하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불못에 들어간다고 나온다(마 13:37-43).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복음을 위해 사는 자가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혀 있는대로 그들을 외면한 채 생색내며 자기가 높아질 자리만 찾은 외식하는 자가 그리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25:31-46).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의 그물 비유에서는 의인이 되고도 죄를 지어도 괜찮고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썩은 생각으로 살아간 자가 풀무불에 던져진다(마 13:47-50).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히 분별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언제 주어진 말씀인가? 남유다의 선지자 요엘이 활동한 때는 주전 835-83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때 남유다 백성은 네 가지 황충 재앙(욜 1:4)으로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더 큰 전멸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요엘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셨다. 그래서 장차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 곧 여호사밧 골짜기에 모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도 그 빛을 거둔다고 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면(포효하시면) 하늘과 땅이 진동할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은 심판으로 나아갈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어 주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때 심판하는 자리를 가리켜, 요엘서 3장에서는 심판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언급하고 있다(욜 3:2, 12). 이는 마지막 날에 여호와께서 많은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많은 골짜기 가운데 왜 여호사밧 골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그건 여호사밧이라는 낱말이 &amp;#39;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amp;#39;는 뜻이기 때문이다. 곧 여호사밧 골짜기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날의 심판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 것이다. 하나는 심판과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과 회복과 축복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꼭 축복을 받을 자인 것처럼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처럼 할례만 받았다면 자기는 자동으로 구원받고 그날에 상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듯이, 지금도 자기가 &amp;quot;예수를 믿었다&amp;quot;는 이유 하나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amp;quot;나는 할례를 받았다&amp;quot;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과 &amp;quot;나는 예수를 믿었다&amp;quot;는 오늘의 성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말했다(롬 2:28-29).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에 나온다고, 단순히 예수를 믿었다고 그날을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두 부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첫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자들, 곧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lt;/span&gt;이다.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및 그들에게 속한 자들은 그날 주님의 철장 권세로 완전히 부서지면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둘째, 이들과 함께 처벌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들&lt;/span&gt;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그날 천국 혼인잔치에 들어갈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궁극적 예정을 잘 몰라서,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은 구원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날을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구원과 보상의 복된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그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는 자에게 그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고 끝내실 것이기에 악한 자가 발흥하는 가운데서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날을 준비하도록 성경 말씀과 시대마다 세우신 선지자를 통해 인도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허투루 여기며 지나쳐 버릴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잘못된 예정론에 기대어 &amp;quot;준비하지 않아도 그날 구원받는다, 그날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amp;quot;는 말에 속아 일평생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이미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성 밖에 남겨지거나,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지 못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거나,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주님을 부인하고 남을 죄짓게 만드는 일에 쓰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도 생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미리 그 심판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 그날이 이르면 너무 늦다. 고로 지금이 바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처럼 산 자는 기름을 절대 사 올 수가 없다(마 25:10). 값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기름을 살 수 있는 날이요, 지금이 충성할 수 있는 날이며, 지금이야말로 나를 돌이킬 수 있는 날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날인가? 그런데 이 귀중한 날을 어떤 이들은 오늘도 세상 밥을 먹는 데 쓰며 맛집을 찾아다닌다. 언제까지 맛집을 쫓아다니고, 언제까지 골프를 치러 다니고, 언제까지 모여 등산을 다닐 것인가? 등산을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한 번씩 가서 &amp;quot;참 아름다워라&amp;quot; 하고 찬양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날마다 그렇게만 살면 안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회복의 날로 어떻게 그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말하는가? 여호와의 날이라는 개념은 선지서에 비로소 나온다. 요엘서는 가장 먼저 기록된 선지서 가운데 하나로 추정될 수 있으므로, 여호와의 날을 처음 말한 책이 요엘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록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의 중기, 에스겔은 말기에 활동했으니 요엘은 그보다 앞서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이 낮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2: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도 그날이 가깝고 여호와의 날이 가까운데, 그날은 구름의 날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라고 말했다(겔 30: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확실하게,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은 어떤 책일까? 그 책은 바로 요엘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엘서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는 &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lt;strong&gt;먼저 여호와의 날이 악인들과 죄인들과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날이 된다&lt;/strong&gt;&lt;/span&gt;고 했다. 그래서 그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며,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대대에 없을 날이라고 했다(욜 2:2). 그날이 되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되며(욜 2:31), 해와 달이 캄캄하고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고 했다(욜 3:15).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우면 해와 달과 별들이 벌벌 떨어 그 빛이 어두워지겠는가? 그날은 갑자기 임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는 날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회개하고 주님을 찾고 구하며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그날은 &amp;#39;회복과 구원과 보상의 날&amp;#39;이 될 것&lt;/span&gt;이다. 요엘서 3장 1절은 그날에 포로 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가 붙잡혀 갇힌 자들을 되돌리시는 날로 본다. 또한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민족을 처단하는 날이다(욜 2:25; 3:2, 19). 특히 요엘서 3장 19-20절은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애굽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에돔을 황무한 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사탄과 마귀를 주님께서 재림 때 완전히 부숴 버리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때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을 따랐던 땅의 왕들과 그 군대들은 새들의 밥이 되고(계 19:17-21), 그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계 14:20). 그러므로 절대 악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번 본문 뒤에 나오는 요엘서 3장 18절은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말랐던 유다의 모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를 적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고 천국에서 실현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회복이 그때에만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 전에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엘서 2장 28절 이하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만, 그전에도 성령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비유로 성령의 은혜를 듬뿍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욜 2:23-24). 필자는 이른 비는 초대교회에 부어 주신 성령의 역사이고, 늦은 비는 이 마지막 시대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그래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회복&amp;#39;은 마지막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회개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한 영으로부터, 재앙으로부터,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통해 지금부터 하나님의 실제를 맛보게 해 주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다가 영원히 안전하게 살고 예루살렘, 곧 새 예루살렘이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한다는 약속(욜 3:20)이 성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날을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다. 구약의 요엘서는 딱 한 가지를 말씀한다. 그건 요엘서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1장 1절부터 2장 1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2장 18절부터 3장 21절까지는 그날이 회복과 구원의 날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에 2장 12-17절이 있다. 이 부분이 그날을 회복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이며, 그 요절이 바로 2장 12-13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는 단 한 가지만 요구한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회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똑같이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여 죄를 씻어 버리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들어가고 싶어도 회개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좋은 회개의 방법을 발견했다가 조금 힘들다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떠나 버리기도 한다. 언제까지 방황하며 살 것인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히브리서는 말한다(히 10:38-39). 한번 그리스도를 붙잡았으면 그분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다른 것을 추구해 본들 얻는 것이 없다. 회개는 힘들고 늦게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이며, 사실 이것만이 영원히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 베푸신 속죄가 우리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개하기를 싫어한다. 회개의 축복은 어마어마하며, 구약 성경은 이것이 기본이자 필수라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회개에는 두 차원이 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하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으면 그건 회개한 것이 아니다. 입술로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죄는 날마다 짓고 있다면 그 회개 기도는 과연 무엇 하러 하는가? 회개 기도는 죄로부터 돌아서려고 하는 것이다. 죄를 계속 지으면서 회개 기도문을 천 번 읽어 보라. 효과가 있겠는가?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죄로부터 돌이키고 성품이 달라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2장 15-17절은 시온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말한다. 백성과 장로들과 어린아이와 젖먹는 자까지 모으고, 신랑은 그 방에서, 신부는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울며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다(욜 2:17).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시면 그날 우리 모두가 다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죄를 짓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도 그날은 똑같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회개하고 있어야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날 우리가 무죄한 자로 발견되어야 그날이 구원의 날이요 보상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날 죄 있는 자로 발견되어 책망을 받으면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가게 될 것이다. 요엘서 3장 19-2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 곧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키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 자손은 무죄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회개하여 죄가 없어야 한다. 내 속에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귀신이 드글드글한데 그날이 자신에게 구원의 날이 되겠는가?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지고 말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신약은 회개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여호와의 날에 심판과 멸망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복과 구원으로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있으라고 권한다. 그런데 신약에는 그날을 맞이할 자세로서 한 가지 요구가 더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에만 있는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이 마지막 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20:23). 그러나 그 자리에 이미 누가 있어도 더 충성된 사람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구약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종교개혁 시대에 머물렀다면 칭의만 붙들고 있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지금도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말이 인터넷에 떠돈다. 그러나 언제까지 종교개혁의 가르침에만 머물 것인가? 그들이 칭의에서 멈춘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더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가 더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도 구약과 똑같다. 그날이 진노의 날이 될 것인가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요한계시록 6장 16-17절은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을 말하고, 22장 12절은 그날에 상을 받을 자를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종류의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그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한 것은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마 4:17) 하셨고,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 계실 때에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 22:14). 회개하고 있으면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더 이상 힘든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살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아픔도 없고, 통곡도 없고, 어둠도 없고, 시련도 없고, 마귀와 귀신도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얼마 전 한 장로님이 위독하셔서 살리려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장로님에게 붙은 귀신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생명이 위험할 만큼 나빴던 수치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그동안 잠도 못 주무시고 힘드셨으니 조금 쉬시라고 했더니 잠이 드셨는데, 천국에 가셔서 주님을 만나시고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필자가 천국에 가면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알 것은 최소한 회개하고 있으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신약에서는 한 가지 명령이 더 있다. 그것은 &amp;#39;깨어 있으라&amp;#39;는 것이다(마 24:4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면 불면증으로 죽는다. 한마디로 &amp;#39;준비하고 있으라&amp;#39;는 것이다. 그러면 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그것을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깨어 있는 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깨어 있는 자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가 말하는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열 처녀의 비유다(마 25:1-13).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신부로 맞이하시기에 합당한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달란트의 비유다(마 25:14-30).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에게 적용되는 가장 강력한 말씀은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은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 25:31-46).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실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생색낼 것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악한 종은 어떠한 존재인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종은 동료들을 때린다. &amp;quot;회개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이미 다 구원받았고 저주는 끝났다&amp;quot; 하고 동료들을 세뇌시킨다. 자기가 저주에 걸려 신음하고 있어도 저주가 없다고 한다. 회개해야 저주가 떠나가는데, 회개하는 동료에게 &amp;quot;너 이단에 빠졌지&amp;quot; 하며 그들을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어차피 이 세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남는 것이라며 맛집이나 찾아다니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등산이나 다니며, 그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여긴다. 그러면 그날에 그는 엄히 맞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해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 구약 시대에는 회개하고 있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과 면류관과 지위가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더 알려 주셨다. 그런데 사실 구약에서는 한 사람도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지만 알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벧전 1:12).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것을 알고 있다. 만세전에 품으신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 전에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양자들)이 되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엡 1:3-6; 3:6). 바울도 우리가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2:11-12).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날을 준비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우리가 충성하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주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맡아야 한다. 맡으려면 먼저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딤후 2:21).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회개하고 있으며, 깨끗한 그릇으로 자신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 있으면 그것에 충성하면 된다. 그러면 하늘에 아름다운 상이 준비된다. 구약에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 않은 &amp;quot;충성하고 있으라&amp;quot;는 말씀은 신약의 성도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자기의 영역을 찾아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그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과 축복의 날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여호와의 날&amp;#39;은 두 얼굴을 가진 날이다. 그런데 그날은 반드시 온다.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빛을 거두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그날, 어떤 사람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날 여호와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실 것이다. 그날이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정해 놓으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그날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로,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날은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회개하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신약은 거기에 더하여 깨어 충성하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회개하고 있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 곧 필요조건이요, 충성하고 있는 것은 충분조건이다. 여기서 회개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충성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마지막 때요. 지금은 구원의 마지막 날이다. 정작 그날이 찾아오면 그때는 기름을 사러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며,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날 주님으로부터 &amp;quot;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amp;quot;(마 25:21) 하시는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세대가 살아갈 나의 준비가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 날, 심판과 구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fdd4cbe74f586454cd378c8a7992d3c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f67e4530106c84cfd7b875f0168c9f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47a3ae707b6dd52ad157e54cbd82b6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19efe6378ba65d606f87d90921422d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faf47f7fe951979f191b3ab3ae6d8d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2fabc09a32f772f0fef0f7787ec5b0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4f6b99daaae04d3ab26c16bae36256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ec23b5cb10d64c49e1bde2948bcc81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5e1877757a5a137ee38b2ef55d6b6b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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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3b2ce1779122171a29a7b56642dde7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The_Divine_Blueprint_of_Salv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2d0ae16e545997f8d6743929e56b029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_심판과_구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34c57cbd5f65f86437114a9cec6e79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_심판인가,_구원인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5b63176091d7cf9ff34fccfaeaa5414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823366d295a07a2abe5a51949601d1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21937fa7cbe2bad475e94e5fb09426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e6dba4aae4b91928380d3bd1a09ee4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8d931caeafbc1dd914da4f2aa5f314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52a9b44587242d3385ec8bd7e1a879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690e73e37b53cd9cce16fbcfa77280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fbb48580e2971a4597935fa7625ec3b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994bf4cf2971da636b6229ab9f2198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a29a2c04f2efff0417dad2bf775772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8774c548fc3c8ccbff4ccb14cff74df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a411e602fc136e7a81166326252d36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1)] 여호와의_날과_영원한_구원.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74/331/f4c5e15501410518f6de175c8c8be6a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요엘서</category><category>여호와의날</category><category>심판과구원</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재림</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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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1074#comment</comments>			<pubDate>Sun, 25 Oct 2026 21:29:34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20)]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7) 구원받은 자들 중에는 과연 누가 불못(지옥)에 들어가는가?(욜2:32, 마13:36~43)_2026-10-23(금)</title>
			<link>https://dongtanms.kr/friday_prayer/330889</link>
				<description>&lt;p&gt;2026-10-23(금) 금요기도회 1부 순서&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0)]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7) 구원받은 자들 중에는 과연 누가 불못(지옥)에 들어가는가?(욜2:32, 마13:36~4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2Hva9YFwba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Hva9YFwba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구원받은 기독교인 중에서도 누가 지옥(불못)에 떨어질 수 있는지&lt;/strong&gt;를 성경 구절과 예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며, 신자들이 스스로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해 천국에 이를 것&lt;/strong&gt;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가는 장소는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곳 외에도 극히 일부가 지옥에 해당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예수를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 지속적으로 십계명을 어기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가라지나 염소처럼 외식하거나 남을 실족시키는 자들&lt;/strong&gt;이 이에 해당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과거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고 날마다 회개하는 삶&lt;/strong&gt;만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임을 거듭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모두 지옥에 가는가?&lt;br /&gt; 2.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지옥의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lt;br /&gt; 3.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따르면 구원받은 자 가운데 누가 불못에 가는가?&lt;br /&gt; 4.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은 왜 위험한가?&lt;br /&gt; 5. 가라지 비유에서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는 누구인가?&lt;br /&gt; 6. 양과 어린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lt;br /&gt; 7. 그물 비유에서 의인 중의 악인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구원받은 자들 중에는 과연 누가 불못(지옥)에 들어가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마 13:36-4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그러나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그 구원이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할 자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지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amp;quot;천국에 못 가면 지옥에 떨어진다&amp;quot;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이 말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일종의 천국 전공자다. 천국에 대해 전하라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옥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옥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지옥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지옥에 가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니 지옥에 갈까 봐 벌벌 떨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과연 누가 불못에 들어가는가?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서 그것을 한 구절로 총평하셨고, 마태복음에서 세 가지 비유로 풀어 말씀하셨다. 그래서 &lt;strong&gt;이번 시간에는 요한계시록 21장 8절과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마 13:36-43), 양과 어린 염소의 비유(마 25:31-46), 그물 비유(마 13:47-50)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누가 불못에 들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모두 지옥에 가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전에는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니, 반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세 군데로 간다. 꼭 지옥에만 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성 밖으로, 어떤 사람은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가며, 마지막으로 또 어떤 사람은 불못(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 곧 지옥에 들어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말하는 &amp;#39;천국&amp;#39;(하늘들의 왕국)은 정확히 말하면 &amp;#39;새 예루살렘 성 안&amp;#39;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성 밖으로 간다. 그보다 적은 수가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가고, 아주 적은 수가 불못에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전에는 무조건 천국과 지옥이라는 양대 구분밖에 없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우리의 앞선 세대가 천국과 지옥밖에 없다고 가르쳐 왔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필자가 성 밖이 있고 더 바깥 어두운 데가 있다고 하니 &amp;quot;미쳤냐? 이 목사야&amp;quot;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말을 하려면 필자에게 하지 말고 예수님께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 밖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계 22:15), 더 바깥 어두운 데가 있다고 말씀하신 분도 역시 우리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마 8:12; 22:13; 25:30). 필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성 밖에도 가고,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증언할 뿐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을 보라. 여기에는 자기 [더럽혀진] 두루마기, 곧 겉옷을 빨고 있는 자들이 진주 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생명나무에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15절에서는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가 다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하는 말이 아니라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성도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그가 들어갈 장소가 세 곳이 있다&lt;/strong&gt;고 하는 말씀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3가지 비유에 나온다. 즉 천국에 못 들어간 사람이 가는 세 장소가 거기에 한꺼번에 나온다. 먼저 &lt;strong&gt;열 처녀의 비유(마 25:1-13)에는 문 밖,&lt;/strong&gt; 곧 성 밖이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의 집, 곧 아버지의 집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곳이다. 사실 미련한 다섯 처녀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나 다 등불을 들고 있었다. 이 등불은 성령을 가리킨다(계 4:5). 성령을 받은 자는 생명 주는 영을 가진 자로서 그는 이미 영생을 가진 자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로서 주님과 약혼한 사람들인데, 그 가운데 어떤 자가 성 밖에 남겨지는 것이다. 마 25장 2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미련한(어리석은) 처녀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그녀가 죽을 때까지 어리석은 자로 있어 왔고, 슬기로운(지혜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지혜로운 자로 있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에 어떻게 듣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등불만 있어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다. 그러니 일평생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그곳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이다(계 19:9; 21:2).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 성도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마태복음 25장의 두 번째 비유인 &amp;#39;달란트의 비유&amp;#39;(마 25:14-30)에서는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로 쫓겨나는 주인의 종&lt;/strong&gt;이 나온다(마 25:3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종은 어떤 종인가? 이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 쓸모없는 종이다(마 25:26, 30). 이 비유에 등장하는 종은 마태복음 24장에서도 나오는 바, 주님이 어떤 일을 맡겨 주신 사역자들을 가리킨다(마 24:45-51). 그런데 그가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명을 주어 보내신 종들은 악하고 게을러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만약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인을 못된 고리대금업자로 보고 일하기 싫어하면 그는 틀림없이 성 밖 너머에 있는 &amp;#39;더 바깥쪽 어두운 곳&amp;#39;으로 쫓겨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마태복음 25장의 세 번째 비유인 &amp;#39;양과 염소의 비유&amp;#39;(마 25:31-46)에는 영원한 불, 곧 불못&lt;/strong&gt;이 나온다(마 25:41, 46). 41절은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왼편에 서 있는 자들 곧 염소로 심판받은 자들에게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마귀와 그의 사자들(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시고, 46절은 그들이 영벌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지옥은 형벌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갈까 봐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 건강 염려증이 가득한 사람은 몇 번 아프면 암에 걸렸나 싶어 병원에서 검사를 다 해 본다.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다. 천국에 못 간다고 하니 지옥 염려증으로 가득 차 날마다 벌벌 떠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영이 살아나 방언을 말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다면 99.9%는 이미 거듭난 천국 백성이다. 그런 자들이 타락하여 고의로 죄를 짓고 주님을 부인하여 지옥까지 가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부분은 성 밖에 남겨질 것이다. 그렇다.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지옥에 일부러 멸하실 만큼 주님께서는 잔인하지 않으시다. 다만 그가 계속해서 지옥에 갈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지옥에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나신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살게 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말씀해 놓으셨다. 듣고 깨달으라는 것이다. 성 밖이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나 불못에 들어가지 말고, 성 안에 들어오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설교 때마다 거의 이 성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말한다. 필자처럼 천국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amp;quot;천국이 바로 이런 곳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충성하자.&amp;quot; 이것이 바로 필자의 설교의 핵심 요지다. 그런데 필자의 설교는 듣고만 있어도 정리가 되다 보니, 이러한 영적 지식을 많이 알게 된 사람이 자기 교회 목사가 틀렸다며 정죄하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겸손해야 한다. 아는 사람은 남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 주어야 한다. 30년이라도 그 교회에 남아서 자신의 교회의 지도자가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지옥의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건 이렇다. 새 하늘과 새 땅의 한가운데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고, 그 성 바깥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장소다. 그 성의 바깥쪽에는 성 바로 &amp;#39;바깥&amp;#39;이라는 장소가 있고, 그다음에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가 있다. 성 바로 바깥에 있는 사람은 형벌을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더 바깥 어두운 데에 있는 사람은 손발이 묶인 채 있고(마 22:13) 채찍질을 당한다고 하니(마 24:51) 형벌이 있는 장소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amp;#39;성 밖&amp;#39;이나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에는 사탄 마귀와 귀신들이 있지 않다. 새 하늘과 새 땅 위에는 귀신이 없고, 그 아래가 지옥, 곧 불못인데 거기에 귀신들이 있다. 그러므로 바깥 어두운 데에서 형벌을 받는다면 아마 천사들에게 받을 것이다. 귀신들이 형벌을 주는 곳이 아니니, 형벌을 받기는 받지만 지옥보다는 나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더 바깥 어두운 데에는 &lt;strong&gt;구원받지 않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곳에는 오직 구원받았던 자가 탈락되어 가기 때문&lt;/strong&gt;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그곳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불신자는 100%가 새 땅의 땅속, 곧 불못에 들어간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성 밖에도, 바깥 어두운 데에도 전혀 없다. 한 번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중에 남겨진 장소가 &amp;#39;성 밖&amp;#39;이고, 쫓겨난 장소가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이다. 그리고 불신자들과 타락한 자들 가운데 극히 작은 숫자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가 장차 들어가게 될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은 빛으로 가득 찬 빛의 성이다. 그래서 그곳은 더 이상 해와 달이 필요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둘러 비추는 곳이다. 그 성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만 2천 스다디온, 곧 약 2,200km이니(계 21:16),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다섯 배 남짓 된다. 그 높이의 1/3까지 사람들이 사는 장소이니 천국은 엄청나게 크고 넓다. 그리고 성 안은 거의 모든 것이 정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금 길, 정금 집이 있고, 우리가 쓰고 다니는 면류관도 황금이요 허리띠도 황금이요 신발도 황금 신발이다. 예수님을 만나 보면 금띠를 띠고 계시고(계 1:13) 황금 신발을 신고 계신다. 그래서 천국은 밝으면서도 약간 노란빛이 난다. 이 빛이 성 밖으로까지 둘러 비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바로 그 성의 빛 때문에 &lt;strong&gt;성 바로 바깥에 사는 사람은 지구와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산다&lt;/strong&gt;고 보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물도 있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물이 철철 넘치는데, 그 물이 성벽을 통해 밑으로 흘러나와 성 바로 밖으로 흐른다. 그래서 성 바로 밖은 지구처럼 아름다운 환경이다. 처음 천국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자연이 보이는데, 그것은 성 바로 밖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을 볼 때 엄청난 빛이 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lt;strong&gt;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물이 없어지고 빛도 비치지 않는다.&lt;/strong&gt;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와 달이 없기 때문에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진다. 바깥 어두운 데는 &lt;strong&gt;빛이 없어서 거의 캄캄한 곳이다&lt;/strong&gt;. 그래도 그곳은 더듬어서 실루엣 정도는 보인다. 그러나 지옥은 빛이 아예 없다. 그래서 완전 캄캄하다. 100% 흑암이다. 지옥의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있어서가 아니라 유황불이 올라올 때 그 불꽃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그 캄캄한 곳에는 유황이 타고 있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계 21:8; 14:9-11).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못한다. 거기와 여기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할 수 없다(눅 16: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지옥이나 성 밖과 더 바깥 어두운 데에서는 다치기도 하고 병도 든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는다. 죽게 되더라도 다시 살아난다. 필자가 확인한 지옥에서는 귀신들이 사람을 높은 데서 들어서 저 아래 낭떠러지로 확 던져 버린다. 그러면 수박이 깨지듯이 머리부터 몸뚱이가 팍 깨져서 피와 창자가 튀겨 나간다. 그래서 보면 그 한가운데 파란 불만 보인다. 그 파란 불에서 다시 사람의 형체가 생겨나는데, 그러면 귀신들이 또 그를 끌고 올라가서 저 아래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다. 그러면 또 돌이 깨지고 수박이 깨지듯 또 깨진다. 그것을 계속해서 받는다. 그리고 목사들이 가는 지옥은 따로 있다. 혀를 갈고리에 매달아 놓은 지옥이다. 혀가 이만큼 나와 갈고리에 달려 있고, 밑에서는 불이 뜨겁게 올라와 &amp;quot;아, 뜨거워, 뜨거워&amp;quot; 한다. 말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설교 시간에 거짓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목사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목사가 되려면 진짜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잘못 들어서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에 속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살다가, 그리고 핍박과 환난이 찾아오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함으로 그곳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 번 그곳에 가서 체험해 보고 싶어도 우리가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는 임시로 체험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그곳에 들어간다면 그는 영원히 그곳에서 못 나온다. 그러니 지옥 체험을 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따르면 구원받은 자 가운데 누가 불못에 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시 정리하건대, 성 밖은 성도가 남겨지는 장소요, 더 바깥 어두운 데는 성도가 쫓겨나는 장소요, 불못은 성도가 떨어지는 장소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 중에 누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떨어지는가? 핵심 요절은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며, 이 구절은 7절부터 이어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기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그의 아들이 되며, 천국에서 주시는 많은 것을 상속으로 받는다. 그런데 8절은 &amp;#39;그러나&amp;#39;로 시작한다. 7절이 이기는 자를 말한다면 8절은 이기지 못하는 자, 곧 지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못은 호수나 바다라고도 할 수 있다. 불못은 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다. 그렇다면 이 구절에서 불못에 가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두려워하는 자들&lt;/strong&gt;이다. 원문에서 직역하면 비겁한 자들이다. 주님을 시인해야 할 때 시인하지 않고 모른다고 말하는 자, 곧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부인한다는 것은 그가 믿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비겁한 자는 믿는 자로서 주님을 부인하는 자를 가리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가 주님을 부인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주님께서도 심판 때에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리고 직접 우리를 모른다고 부인하신다고 하셨다(눅 12:9; 딤후 2:12).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의 신사 참배 때 한 번 그러한 시험이 있었고, 공산군이 쳐들어왔을 때 또 한 번 그러한 시험이 있었다. 이런 일이 다시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15분만 참자고 늘 말한다. 아무리 죽창을 찔러서 죽인다고 해도 15분 안에 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유다서에서도 주님의 친동생 유다가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했다(유 1: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유 1: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것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주님을 믿고 있다가 위험이 닥칠 때 주님을 모른다고 해 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그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 지옥에도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믿지 아니하는 자들, 곧 불신자들&lt;/strong&gt;이다. 불신자들은 100% 다 지옥에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십계명을 지키지 않은 자들&lt;/strong&gt;이다. 흉악한 자들은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다. 몰렉에게 자식을 불로 태워 바치거나 동성애처럼 너무 추한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이 곧 가증한 일이다(레 18:21-22). 살인자들은 제6계명을, 음행하는 자들은 제7계명을,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제1, 2계명을, 거짓말하는 자들은 제9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 말씀과 히브리서 10장을 합쳐 보면 이것은 현저하게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이다(히 10:26).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를 믿었으나 탈락하여 지옥에 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불신자 외에 예수를 믿었으나 탈락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두 가지 유형이 나온다.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들과, 계속해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이 지옥에 떨어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세 종류의 사람들도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말씀을 들어 보면 내가 죽을 때 성 밖으로 갈 것인지,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 아니면 진짜 천국에 갈 것인지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은 왜 위험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 승천하시고 천국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계 21장 8절 말씀 외에도,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 들려주신 비유 말씀 가운데에도 역시 불못에 떨어지는 성도들이 있다. 이들은 세 종류다. 하나는 가라지요, 또 하나는 염소이며, 또 하나는 못된 물고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성도들 중에 지옥에 떨어질 자는 가라지와 같은 자들이&lt;/strong&gt;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나온다. 일명 &amp;#39;가라지 비유&amp;#39;라는 비유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 마귀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 가라지도 보였다. 집주인의 종들, 곧 천사들이 &amp;quot;주인이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amp;quot; 하고 묻자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다고 답했다. 종들이 가서 뽑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교회 안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섞여 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처음부터 곡식인 사람이 있는가? 없다. 모두가 죄 가운데 태어나며, 생명을 받지 않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라지도 되고 곡식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곡식이 아니라 곡식이 되고 알곡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셨으니, 자기가 곡식인지 가라지인지는 주님의 재림 때, 그가 죽는 끝날까지 자기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주님께서 가라지를 계속 제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한때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에 빠져 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보니 성령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 주시고 나를 믿게 하셨구나. 방언도 하니 나는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만세 전에 나를 예정해 놓으셨을 것이 틀림없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니 나는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다. 그런데 성도라도 어느 날 누구를 미워했거나, 음란한 생각을 했거나, 거짓말을 하여 죄를 지었다고 치자. 죄를 지었으면 내 삶에 무엇인가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이것이 죄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징계도 내리지 않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보통 성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amp;quot;아, 이런 죄는 지어도 천국은 가는 모양이구나.&amp;quot;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만약 이 죄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죄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라도 회개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 보았는데 회개시키신 날이 없었다. 그러니 &amp;quot;내가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 데는 지장이 없구나. 역시 나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었어&amp;quot;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의 논리이자 생각이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거짓말하고 있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있고(계 21:8), 성 밖에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 22:15). 주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지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말씀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 속았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옥에 갈 뻔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제 더 이상 죄짓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자유롭게 죄를 지으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자유로 회개하고 충성하여 천국을 준비하라고 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기 속에 악한 영들이 많아서 그것들이 우리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요일 2:16) 계속해서 끌고 가지 않았던가! 성령 충만할 때는 죄의 유혹을 이기지만 또 이기지 못하는 일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느 날에는 이러한 죄의 욕망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내가 죽었다고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얼마나 암송했던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필자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amp;quot;시체가 과연 화를 내는 것을 보았는가?&amp;quot; 그래서 아내가 화를 내게 해도 필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죽었는데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4년 전 귀신의 집이 파괴되면서 보니, 내 몸속에는 2조 개 이상의 악한 영들이 있었고, 머리에 있는 놋집의 첫 번째 방에는 2,000명 이상 되는 대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회개하지 않았고 귀신의 집이 파괴되지 못했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죄의 유혹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라도 죄를 짓게 되면 점차 화인 맞아 아무런 느낌이 없게 되고, 특히 주의 종으로 지음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형벌을 세게 내리시니 틀림없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뻔했다. 필자가 너무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대로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곡식과 가라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라지는 자기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곡식은 내가 조금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두려워 떨지는 않아도 주님을 경외하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슬기로운 채로 있어 왔고, 미련한 처녀는 처음부터 미련한 채로 있어 왔다. 그래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만 있으면 된다, 성령만 받았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격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가라지는 &amp;quot;봐라,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지 않으셨다. 내 구원에는 문제가 없다&amp;quot;고 생각한다. 그래서 점차 죄의 분량이 늘어나고, 이 정도 죄는 괜찮다는 생각이 점점 넓어져서 나중에는 뻔뻔스럽게 죄를 짓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죄를 짓는 한 사람을 보았다. 필자가 사역했던 교회에서 장로들이 목사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냈다. 목사를 없애 버리려고 노회에 고소하고 세상 법정까지 고소했다. 자기들끼리 알리바이를 맞추었다. 부임하고 얼마 후 서초동 법정에 갔다 나오는 장로에게 &amp;quot;장로님, 그게 사실입니까?&amp;quot; 하고 물었더니 &amp;quot;사실이겠어? 내 말을 안 들으니까&amp;quot;라고 대답했다. 계속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시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amp;quot;내 말 안 들으면 너도 가만두지 않는다&amp;quot;는 데까지 간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십계명을 쓰고 자기 죄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완악해져서 나중에 화인 맞은 사람(딤전 4:2)으로 완전히 변해 버린다면 그런 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 죄를 지은 즉시 우리를 버리셨다면 우리는 수천 번 지옥에 갔을 것이다. 주님께서 놔두시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amp;quot;죄를 지어도 천국 가는 데는 이상이 없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는구나&amp;quot; 하고 생각한다. 오늘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쳐야 하는데 멀쩡하니 나는 괜찮다고 여긴다. 그 생각을 주님 오실 때까지, 그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대로 두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의지로 죄를 합리화하는 이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쉽게 천국에 가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작은 죄 하나 때문에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멈추고 회개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처럼 날마다 자신의 잘못을 십계명에 비추어 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해서 빨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가라지 비유에서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가라지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자 직접 풀어 주셨다(마 13:3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3:38-40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라지는 불에 살라진다. 그러므로 가라지가 떨어진 곳은 지옥이다. 왜냐하면 바깥 어두운 데는 어둡기는 하지만 불은 없기 때문이다. 지옥은 어두움에 더하여 불도 있다. 그러므로 불에 던져진다는 말은 바깥 어두운 데가 아니라 그가 지옥에 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과연 가라지인지를 41절에서 설명해 놓으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39;그 나라에서&amp;#39;는 원문에서 &amp;#39;그의 왕국으로부터(에크)&amp;#39;다. 이 사람들은 이미 그의 왕국에 속했다가 밖으로 나오는 자들, 곧 예수를 믿었던 자들이다. 그 가운데 두 부류가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다. 헬라어 스칸달론(&amp;sigma;&amp;kappa;ά&amp;nu;&amp;delta;&amp;alpha;&amp;lambda;&amp;omicron;&amp;nu;)은 걸림돌, 실족시키는 것&lt;/strong&gt;이라는 뜻이다. 믿음이 연약한 형제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그가 그것을 보고 담대해져서 먹다가 실족할 수 있다고 바울이 말했다(고전 8:9-13). 그러므로 먼저 믿은 자는 믿음이 약한 자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가도록 걸림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 믿고 죄를 지어도 괜찮다, 믿고만 있으면 천국에 가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을 놓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자들 중에 지옥에 떨어질 자가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떤 구역장이 한 사람을 전도하여 그 사람이 교회에 나왔다. 그런데 주일에 보니 예배 때에 구역장이 안 보였다. 나중에 &amp;quot;구역장님 어디 가셨어요?&amp;quot; 하고 물으니 결혼식이 있어서 갔다고 했다. 그때 새신자는 무엇을 배웠겠는가? &amp;quot;아, 결혼식 날처럼 세상에서 중요한 날은 교회에 안 나가도 되는구나.&amp;quot;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새신자도 당연히 주일에 결혼식에 간다. 앞선 사람이 덫을 놓은 것이다. 잘못된 길인데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때 구역장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amp;quot;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따라 하지 마십시오. 오늘 내가 빠졌으니 나를 책망해 주십시오. 이 길은 가지 마십시오.&amp;quot; 이것이 참된 길이다. 하나님의 길이 아닌 것을 뻔뻔스럽게 하고 남 앞에서 죄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그 길을 따라오도록 유도하면 자신도 가라지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려면 차라리 지도자가 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나중에 회개한 강도처럼 믿을 때 딱 회개하고 죽으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아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간다. 참고로 회개한 강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다. 그러나 그날 믿고 그날 죽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30년, 50년 신앙생활을 더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주신 것은 나를 죄짓게 만들어 힘들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지위와 신분은 예수 믿고 난 후에 회개를 통해서 준비하라고 주신 시간이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을 주신 것은 감사할 일이지 그날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다음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lt;/strong&gt;이다. 불법은 헬라어 아노미아(ἀ&amp;nu;&amp;omicron;&amp;mu;ί&amp;alpha;)로서 부정을 뜻하는 &amp;#39;아&amp;#39;와 율법을 뜻하는 &amp;#39;노모스&amp;#39;가 합쳐진 말이다. &lt;strong&gt;율법이 없는 것, 곧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 사례는 마태복음 7장에 나와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은 &amp;quot;주여 주여&amp;quot;라고 말했다. 이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다. 이것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얼마나 신령했으면, 어떻게 기도했으면 이러한 은사를 받았겠는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것으로 예언하고 축사하고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때그때마다 귀신의 힘도 빌려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성령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양신의 역사를 다 사용한 것이다. 능력만 준다면 귀신이 주어도 좋다는 것이다. 이런 은사자는 지옥에 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어떤 평신도는 자신이 영안이 열려서 무엇인가를 보겠다고 한다.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일이다. 사명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게 하시는 사람은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그 길을 걸어간다. 죽을 길이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역이나 은사에 욕심이 나서 액세서리처럼 축사와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를 주신 것은 고통받는 자를 살리라고 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고통받는 자를 살리려고 할 때 악한 영이 그대로 놔두겠는가? 그런 사역자를 공격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깨끗하지 않고 죄성이 있는 가운데 사역하면 악한 영들이 사역할 때마다 쏙 들어온다. 그래서 은사자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래서 은사자들이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악한 영이 계속 들어와 심장을 공격하면 심장마비로 죽기도 하고, 또는 중풍으로 쓰러져 말을 못 하기도 한다. 은사를 주셨는데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상당수가 지도자일 가능성이 높다. 고로 교회 지도자가 지옥에 갈 확률이 높다고 표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분명히 죄인데도 괜찮다고 하여 덫을 놓아서 자기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까지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에 &amp;quot;이렇게 해도 교회만 나오면 천국 갑니다,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갑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amp;quot; 하는 것은 큰일 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온전한 인도하심과 통치가 아니라 귀신의 힘을 빌려 성령의 은사를 활용하는 자들은 지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필자가 대한민국의 은사자들을 보니 무당과 같은 영이 가득 찬 자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은사를 받기 전에 회개부터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딤후 2:21). 필자가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고 능력을 받았다가 마태복음 7장 22-23절의 말씀이 이루어져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가라지는 처음부터 가라지가 아니었다. &amp;quot;주여 주여&amp;quot; 하는 예수 믿는 자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령이 아닌 악한 영들의 인도를 따라 행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심판 날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amp;quot;너는 아니다. 너는 이제 형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너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더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귀신을 나와 섞어 버렸다.&amp;quot;&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양과 어린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임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예수님의 &lt;strong&gt;두 번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염소들과 같은 자들&lt;/strong&gt;이다. 먼저 이 비유의 단어를 정확히 번역한다면 양과 어린 염소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양은 프로바톤(&amp;pi;&amp;rho;ό&amp;beta;&amp;alpha;&amp;tau;&amp;omicron;&amp;nu;)으로 다 자란 양을 가리키고, 염소는 에리포스(ἔ&amp;rho;&amp;iota;&amp;phi;&amp;omicron;&amp;sigmaf;)로 어린 염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자란 양과 어린 염소는 똑같이 생겨서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앞서 예시한 곡식과 가라지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비유의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도 똑같이 물고기다. 이것이 세 비유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염소 짓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는 항상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길을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이 괜찮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 중에 혹시 나중에 깨닫고 회개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그에게는 &amp;quot;너는 아니다&amp;quot;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마 25장에 나오는 양과 어린 염소의 심판은 어떠한 심판인가? 우선 이 심판은 믿음으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릴 때 음식을 대접하였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냐를 물어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주린 자, 병든 자, 헐벗은 자, 옥에 갇힌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냥 노숙자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말하는가? 이것을 정확히 알았어야 하는데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행을 하면 천국에 가는 것처럼 가르치는 곳도 있다. 그곳이 바로 천주교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 그들은 누구인가? 원문에는 &amp;#39;여기&amp;#39;라는 말이 없고 &amp;#39;이 내 형제들&amp;#39;이라고만 되어 있다. 영어로 말하면 &amp;#39;that(저)&amp;#39;이 아니라 &amp;#39;this(이)&amp;#39;다.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다. 그리고 원문에 보면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 &amp;#39;오른쪽들로부터&amp;#39;, &amp;#39;왼쪽들로부터&amp;#39; 세우신다고 했다. 오른쪽에 있는 자들이 많은데, 주님께 가까이 있는 자일수록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였던 자일 확률이 높고 빛이 더 많이 나는 자일 것이다. &amp;#39;이 내 형제들&amp;#39;은 바로 옆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는 예수 믿는 &amp;#39;이 내 형제들&amp;#39;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작은 자들로 불리는 자들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예수 믿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우리가 다 도와주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옥에 갇힌 자를 보자. 그가 죄를 지어서 갔는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 감옥에 들어갔는가? 어떤 사람은 이것을 죄를 지어 갇힌 사람을 계속 도우라는 말로 잘못 해석하여, 동성애자들을 위해 축복하고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최소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양심 때문에 동성애를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길 때마다 성령께서 계속 잘못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뻔뻔스럽게 나를 위해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자 적용이다. 성경 말씀은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옥에 갇히고, 병들고, 옷을 입지 못한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의 규정에 보면 그가 누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10장에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0:9-10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이들은 아무런 돈 없이 복음을 전하던 방랑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17-20절에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방랑 전도자인 제자들을 장차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할 말을 주실 것이며 말하는 이는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라고 하셨다. 그들은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그만 가난해지고 헐벗게 된 것이다. 때로는 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법이어서 옥에 갇히게 되고, 좋은 환경에서 살지 못하므로 병도 들었으며,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내려놓고 기꺼이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던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을 가리켜 주님께서 &amp;#39;이 내 형제들&amp;#39;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기가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나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가 고통받는 전도자를 도와주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요, 그런 자를 박대했던 자가 불못에 들어간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이때 염소는 어떤 삶을 살아온 자인가? 이들은 &amp;quot;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당신을 돌아보지 아니하더이까?&amp;quot; 하고 묻는다. 이들도 믿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는 지극히 작은 자로 보이는 사람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생색낼 일, 자랑할 일은 열심히 하다가 전혀 생색낼 수 없는 작은 일에는 무관심했고 무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염소를 &amp;#39;외식하는 자&amp;#39;이지 않겠는가 하고 해석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제일 좋다.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을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맹인 된 인도자로서 그들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킨다고 책망하셨다(마 23: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에는 아주 나쁜 마음이 있으면서, 밖으로 드러나 칭찬받을 일은 자기가 다 차지하고, 험하고 궂은 일이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들이 바로 염소가 되어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그물 비유에서 의인 중의 악인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양인 자는 없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처음부터 가라지로 운명 지워진 자도 없고 처음부터 염소로 운명이 지워진 자도 없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염소가 되고 가라지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두 비유에서 이들 모두를 심판대까지 그대로 놔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짓고 있었는데도 벌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회개하라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필자가 아무리 이렇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외쳐도 듣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듣지 않는다. 고로 이 말씀이 들리는 사람은 복 있는 자라고 본다. 가라지의 길과 염소의 길을 가고 있는 자는 필자를 미친 사람처럼 여기고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노력한다. 천국 이야기를 하면, 직통 계시를 한다며 이단이라고 한다. 제발 영이 열려서 보고 확인해 보고 말하기를 바란다. 주님이 이 시대에는 죽어 계신가? 아무런 계시를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들을 다 보냄으로 깨끗하여진 자가 지금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보는 것이 과연 죄인가, 영적인 실제를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죄인가? 자기가 모르니까 정죄하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amp;quot;나는 저 길을 따라가지 못하니, 나도 저 종처럼 쓰임받도록 붙잡아 주옵소서&amp;quot;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하는 종이 되기를 바란다. 밤을 새워서라도 말씀을 연구하여 진리를 전하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그런데 &amp;quot;저 종을 어떻게 하면 죄로 엮어서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여, 우리를 책망하지 못하게 할까&amp;quot; 하고 생각한다. 가라지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염소도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이다. 생색낼 것만 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라지가 되고 염소가 되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 그것을 맞다고 다른 사람 앞에 덫을 놓고 있는 자가 염소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lt;strong&gt;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이 있다는 예수님의 세 번째 비유는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가르는 &amp;#39;그물 비유&amp;#39;에 나온다. 그들은 &amp;#39;못된 물고기&amp;#39;와 같은 자들&lt;/strong&gt;이다(마 13:47-5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3:47-5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천국은 마치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의인, 곧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은 의인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 의인이 되었으나 계속 악을 일삼는 자가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도 끝에 가서도 그의 행위가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 야고보서 2장의 말씀처럼 그가 가진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서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약 2:17). 주님께서도 그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하셨다(마 7:20).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악인으로 분리될 것인지 아니면 의인으로 분리될 것인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39;못된 것&amp;#39;은 원어로 사프로스(&amp;sigma;&amp;alpha;&amp;pi;&amp;rho;ό&amp;sigmaf;), 곧 썩은 것, 부패한 것이다. 아름답고 깨끗한 생각이 아니라 썩은 생각, 부패한 생각, 아주 더러운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다. &amp;quot;죄를 지어도 걱정 없다,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amp;quot; 하며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가라지의 비유, 양과 어린 염소의 비유,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의 비유에는 공통된 특징&lt;/strong&gt;이 있다. &lt;strong&gt;풀무 불, 곧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lt;/strong&gt;는 것과 &lt;strong&gt;함께 반드시 &amp;#39;울며 이를 간다&amp;#39;&lt;/strong&gt;는 말이 따라온다. 울며 이를 가는 것은 후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amp;quot;그때 누구로부터 이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리고 그때 회개했어야 했는데 회개하지 않아서 내가 지금 이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되었구나.&amp;quot;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불신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예수 믿는 자가 타락하여 지옥에 가는 것을 가리키는 비유다. 이들은 심판의 날까지 하나님께서 당장 징계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던 것을, 자신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승인으로 알고 살았던 자들이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한 열매가 없는 자는 가짜라고 말씀하셨다. 심판의 날에 그들은 이렇게 후회할 것이다. &amp;quot;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깨닫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 버렸구나. 내 길이 맞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걱정 없다고 스스로 말했구나.&amp;quot; 그 자신이 너무나 후회되어 가슴을 치며 자기 자신을 향해 이를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혹시 내가 그런 삶을 살았다면,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지금 회개하면 다시 돌이킬 수 있다. 회개한 강도가 그날 회개하여 낙원에 들어간 것처럼(눅 23:42-43),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지금 회개하면 누구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누가 불못에 들어가는가?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과, 십계명을 계속해서 어기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 그들이 누구인지를 더 자세하게 풀어 주셨다. 가라지 비유에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을 놓는 자와 귀신의 힘을 빌려 은사를 행하는 불법한 자가, 양과 어린 염소의 비유에서는 복음 때문에 고통받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외면하고 외식하며 살아온 자가, 그물 비유에서는 의인이 되고도 썩은 생각과 부패한 삶을 계속 행한 자가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그런 자가 아니라 예수를 믿었으나 그렇게 되어 간 자들이며, 그리고 죽고 나서는 모두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하는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먼저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계명을 쉽게 어기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괜찮다고 말하여 남들이 죄짓도록 덫을 놓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성령이 아닌 악한 영이 역사하는데도 성령의 역사처럼 자기를 포장해서도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영광 받을 큰일은 자기가 다 하고 험하고 궂으며 보이지 않는 섬김은 남에게 미루는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썩은 냄새가 나는 삶을 계속 살아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은 회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amp;quot;주님, 잘못했습니다. 다시 살겠습니다&amp;quot; 하고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턱걸이라도 넘게 하셔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여보내 주실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anumMyeongjo&#039;,&#039;나눔명조&#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039;바탕&#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나에게 하나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금부터 회개하고 그 반대의 길을 걸어가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3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인포_천국과 불못 사이, 구원의 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8896122c306b8eaa77db92885749e1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48c650ac1212724130b3fe4864bed5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81f34625aa5f3c2f1947331b4839b9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0b12e28a26c67d88d825baed5024c9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d79748eb5757d13d06cd4464607366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3f301d87a0fa2d9c241b504fe0c27a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8c1121eb1c2aa91e7a599c40b320a2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04fb9b2bbcade92bd40b2c7405815aa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dbeb9ce1e4fff538a888df44f0a799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baf3f4c67cfbf2587abc0dbdefd8a9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18d6af4a6819c2a9d610928d6f8db1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71b7d9385112c82848265133a9c13f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The_Cosmic_Tribunal.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e6624564c3bcda8480f11ab14c74f44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받은_자의_사후_거처_구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f05f4e21be159e417ced2e36349500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불못을_피하는_지속적인_회개의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6acd0a96027305f3e729e7d7b839252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3985302fab865077d1bbb06e7b1122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2716e4ae852a0048b99d9b36073902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877b540d5789f5569520f12e2fb0597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5fdeebd8c053a35ff810f99c2a659f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f485aafc0e4b918aa1dd763d2b2af3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cea0ceeff46625c932108d9fc48718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0)] 구원과_영원한_심판.pdf_7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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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889/330/e84cc28040ede222652419c5c397742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금요기도회</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요엘서</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category>지옥</category><category>불못</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천국</category><category>성경공부</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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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friday_prayer/330889#comment</comments>			<pubDate>Sat, 24 Oct 2026 01:27:09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19)]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있는가?(욜2:32, 마25:41~46)_2026-10-22(금)</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0879</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19)]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있는가?(욜2:32, 마25:41~4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lt;/p&gt; &lt;p&gt;https://youtu.be/uHUFTYR961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HUFTYR961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성경적 구원관과 종말론적 심판의 기준&lt;/strong&gt;을 다루며, 특히&amp;nbsp;&lt;strong&gt;신자라 할지라도 행함과 회개의 부족으로 인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lt;/strong&gt;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만세전 예정설을 반박하며&amp;nbsp;&lt;strong&gt;조건적 견인과 구원 탈락의 가능성&lt;/strong&gt;을 주장하고, 천국 안에서도 세부적인 처소가 나뉘어 성 밖, 바깥 어두운 곳, 그리고 불못(지옥)으로 향하는 네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말만 앞세우고 섬김이 없었던&amp;nbsp;&lt;strong&gt;외식하는 자들과 지도자들&lt;/strong&gt;이 양의 탈을 쓴 염소처럼 심판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며, 성도들에게&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와 진실한 섬김의 삶&lt;/strong&gt;을 촉구하는 것이 이 메시지의 핵심 목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예정과 견인&lt;/strong&gt;을 살펴본 결론은 무엇이며, 구원에서 탈락한 자는 어디로 가는가?&lt;br /&gt; 2. &lt;strong&gt;성 안,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불못&lt;/strong&gt;은 어떻게 다른가?&lt;br /&gt; 3.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amp;#39;&lt;strong&gt;개들&lt;/strong&gt;&amp;#39;은 누구이며, 왜 성 밖에 있는가?&lt;br /&gt; 4.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 말하는 &amp;#39;&lt;strong&gt;불못&lt;/strong&gt;&amp;#39;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lt;br /&gt; 5. 마태복음 25장의&lt;strong&gt; 양과 염소 심판&lt;/strong&gt;은 언제,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가?&lt;br /&gt; 6. &amp;#39;&lt;strong&gt;지극히 작은 자 하나&amp;#39;&lt;/strong&gt;는 누구이며, &lt;strong&gt;염소&lt;/strong&gt;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lt;br /&gt; 7. 자신을 양이라 여기는 &lt;strong&gt;염소&lt;/strong&gt;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1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마 25:41-4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처음부터 어떤 사람을 구원에서 차단해 놓고 지옥에 가라고 심판하시는 잔인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그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성 밖으로 가기도 하고, 성 밖에서도 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기도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불못, 곧 지옥에는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만 들어가는가?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던 자들 가운데서도 불못에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고 왼편에 있는 자들을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런데 그 염소는 과연 불신자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불못에 들어갈 자들이 누구이며, 그 가운데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지를 요한계시록과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정과 견인을 살펴본 결론은 무엇이며, 구원에서 탈락한 자는 어디로 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가정이 성경적인지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어떤 개인을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였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설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들어 줄 만하다. 그러나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속성을 완전히 위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으로부터 처음부터 차단해 놓으시고 &quot;나는 의로우니 내가 차단했지만 너는 지옥에 가라는 심판을 달게 받으라&quot;고 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문제를 교리로 만든 것이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 1618~1619)의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 選擇, unconditional election)과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었고, 이것은 칼빈의 이중 예정설(二重豫定說, double predestination)에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살펴보니 무조건적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적 부르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다 부르신다. 다만 그 부르심에는 순서가 있었다. 유대인이 먼저요 헬라인이 나중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누구를 구원하기로 하고 누구를 멸망하기로 정하는 것은 사람이 타락한 뒤에 나오는 과정이었다. 원래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양자가 되고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엡 1:3-5; 3:6). 그 예정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을 베푸셔서 죄인의 상태와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고, 그 상태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시며,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빼앗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존중하신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계 3:20). 하나님께서는 강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잘못을 고백하기도 전에 용서하실 모든 것을 다 해 놓으시고 믿으라고 초청하신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말하니 그것이 맞는 것처럼 따라갔다. 왜 신학자를 따라가는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고,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하며, 성경 원어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가야 한다. 원어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아주 중요한 잣대가 된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니 만세 전에 구원할 자를 예정했다고 말해 온 본문들은 번역이 왜곡되어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성도의 견인이 아니라 조건적 견인(條件的 堅忍)이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 그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바울이 &quot;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quot;(딤후 4:7)라고 고백한 것처럼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4-15절은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 죄를 용서받아야 성 안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신자를 가리킨다. 믿는 신자라 할지라도 죄의 총량이 너무 많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계 3:5) 성 밖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두 가지다. 성 밖으로 가는 자가 있고(계 22:15), 불못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계 2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 안,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불못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동안 우리는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들어 왔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성 밖도 있고, 마태복음에는 세 번에 걸쳐 바깥 어두운 데가 나온다(마 8:12; 22:13; 25:30).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표현이 한 번 나오지만(눅 13:28), 정확한 표현은 마태복음에만 세 번 나온다. 천국(天國), 곧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표현도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다른 곳에서는 상태로서의 천국을 말하지만, 마태복음은 들어가는 천국, 곧 장소로서의 천국을 말한다. 그 장소적 천국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이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들어간 집이 아버지의 집이요 신랑의 집이며,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 안에 들어갈 자가 있고 성 밖에 남겨질 자가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성 밖에 남겨진 자다. 마태복음 25장 2절의 &#039;어리석은 자로 있었다&#039;는 미완료형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자로 있어 왔다.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등불만 들고 있었다. 등불만 있으면 신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분의 기름이란 무엇인가? 신랑을 사모하고 신랑만을 나의 신랑으로 맞이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거기에는 기도도 있고, 눈물도 있고, 정성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인내도 있고, 고난을 겪어 낸 것도 있다. 이것들이 모아져 주님께 보여졌을 때 &quot;합당하다&quot; 하시며 들이시지만, 그냥 성령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 밖에 남겨질 확률이 매우 높다. 어떤 상태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함이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으로 설명해 왔다. 여분의 기름이 있을 때가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필요조건으로서 회개를 하면 들어갈 수는 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도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자는 죄된 본성과 귀신이 하나도 나가지 않은 채 예수를 믿는다. 그 때문에 죄를 지어 죄가 주렁주렁 많으니 성 밖에 남겨질 수밖에 없다. 천국 성 안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성 밖에 남겨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쫓기는 자들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직역하면 &quot;그리고 너희는 쓸모없는 종을 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 내쫓으라. 거기서 울부짖음과 이들의 갊이 장차 있을 것이다&quot;이다. 쓸모없는 종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열 처녀의 비유가 모든 성도들을 비유하는 표현이라면, 14-30절의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마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인을 쳐서 이 땅에 보내신 14만 4천에 들어갈 자들이요, 장차 왕 노릇 할 자들이며, 천국에 가면 보좌에 앉아 통치할 자들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성 밖이 아니라 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 간다. 그곳은 형벌의 장소다. 그러나 지옥은 아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다가 지워진 자만 가는 곳이며 불신자는 가지 않는다. 손발이 묶이는 자도 있고 채찍에 맞을 자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바깥 어두운 데에는 세 부류가 간다. 마태복음 8장의 나라의 본 자손처럼 민족적 사명을 받고도 완수하지 않은 자, 22장의 예복을 입지 않은 자, 그리고 25장의 달란트 비유처럼 개인적 사명을 받고도 망각하고 게을러 하지 않은 자다. 특히 무익한 종은 하나님을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마치 자기를 부려 먹는 고리대금업자처럼 여겼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필자는 주님 앞에 쓰임받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려 먹으려고 부르셨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오늘도 갚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quot;당신이 나를 고용해서 일을 시킨 것이니 나는 안 하겠다&quot;는 것, 이것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 주의 종들에게는 엄청난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실제를 말한다. 주의 종들 가운데 천국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말씀 하나하나에 날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면 주의 종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 안에 들어갈 자, 성 밖에 남겨질 자,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질 자, 그리고 아예 지옥에 들어갈 자다. 하나님의 영광의 측면에서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은 영광으로 가득 차 있어 따로 빛이 필요 없고 밤이 없다. 성 밖은 성 안에서 비치는 빛이 있어서 지구와 거의 동일한 환경이다. 물도 있고 자연도 아름다워 그래도 살 만하다. 그러나 더 바깥 어두운 데는 빛이 없는 황량한 장소이며 형벌의 장소다. 지옥은 빛이 하나도 없고 불이 타는 곳이며, 고통과 영원한 형벌의 장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보여 준 그림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의 땅속이 불못이다. 그곳은 캄캄함과 어둠에 더하여 영원한 불이 있는 장소이며, 영혼이 태워지는 장소다. 지상에서 손가락 하나를 태울 때의 고통보다 천 배가 넘는 엄청난 고통을 그것도 계속해서 겪는 곳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신부와 충성된 성도는 당연히 들어간다. 그리고 더 작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회개하는 자는 들어간다. 그러나 천국에 턱걸이로 들어간 사람은 신부가 되지 못한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신부가 될 자는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 온 자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부터 신부 단장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턱걸이로 들어간 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구경한다. 필자가 직접 현실을 말한다. 구경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개들은 누구이며, 왜 성 밖에 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22장은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말한다. 점술가들은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음행하는 자들은 제7계명을, 살인자들은 제6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당연히 제1, 2계명을, 거짓말하는 자들은 제9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처럼 십계명을 어긴 자들이 성 밖으로 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것이 지금 당장 예수 믿을 때에 판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고보의 말씀처럼 그의 인생을 다 돌아보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었다면 당연히 성 밖으로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원문에는 15절에 &#039;성&#039;이라는 말이 없다. 단지 &#039;바깥쪽에 있으리라&#039;이다. 그렇다면 무엇의 바깥쪽인가? 14절을 보면 알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기의 겉옷을 계속 빨고 있어야 성 안에 들어간다. 그러니 15절의 바깥쪽은 성 바깥쪽이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의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남겨진 자들이다. &quot;나는 예수만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나는 만세 전에 예정되었으니 구원은 걱정 없다.&quot; 죄를 엄청나게 지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거기에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개들은 누구인가? 개들이 천국에 못 간다니 슬퍼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에는 강아지를 사람처럼 키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개는 영혼이 없다. 천국의 존재는 영적 세계에 속한 존재다. 이 땅의 개들은 영혼이 없으니 성 밖에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들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알고 인용하신 것이다. 나중에 주님께 기도하며 물어보라. 주님께서 알려 주신다. 이사야 56장 9-12절이 개들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들은 타락한 지도자들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6:10-11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파수꾼은 지도자다. 파수꾼은 적이 쳐들어오고 귀신이 쳐들어오면 빨리 알려서 사람들을 살려 내야 한다. 그런데 맹인이어서 보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성도들에게 무슨 경고를 하겠는가?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한다.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이단 정죄를 받을까 봐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꿈꾸는 자들은 옛날 예언자들이 꿈으로 예언했던 것처럼 예언하는 자들이며, 누워서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039;탐욕이 심하여&#039;는 원문에 &#039;목구멍이 커서&#039;라는 뜻이다. 목구멍이 커서 만족을 알지 못하고 날마다 먹을 것만 찾는다. 인생은 잘 먹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바짝 말라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데, 자기 배가 부르다고 성도들의 영혼을 살지게 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목자라 한다. 짖지 못하는 개요, 맹인이요, 가짜 예언자다. 몰지각한 목자들, 곧 분별력이 없는 목자들이다. 다 제 길로 돌아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quot;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quot;(사 56:12) 하고 먹고 마신다. 개들은 이런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 자들은 성 밖으로 간다. 그래도 성 밖으로 가는 자는 조금이라도 한 것이 있는 자다. 악하고 게으른 주의 종들은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 너무나 많이 간다. 주의 종들은 성 안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 주의 종들은 깨어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은 어떠한가? &quot;무슨 십계명을 지키느냐, 교회에서 십일조를 할 필요가 있느냐, 뭘 거룩하게 사느냐, 믿음만 가지면 의롭다 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으면 자동으로 거룩해져서 천국에 들어가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회개 기도를 하느냐, 너는 속죄를 모르느냐&quot; 하는 사람들이 성 밖으로 간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이 속죄만을 위한 것인가? 속죄는 시작이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이며,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이며, 내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어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거룩한 자들로 발견되기 위해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 말하는 불못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불못, 곧 지옥의 형벌은 누가 받는가? 그곳은 성문 출입이 불가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는 장소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불못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이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비겁한 자들이다. 죽이려고 할 때 주님을 모른다고 하고, 교회에 가서는 &quot;주님 용서해 주세요&quot; 하는 자들이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때에는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절대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주님을 부인하면 성 밖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것도 아니다. 지옥으로 간다. 인내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믿지 아니하는 자들, 곧 불신자들이다. 불신자들 가운데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자는 아무도 없다. 불신자는 전부 불못으로 간다. 그의 죄가 용서되지 않았으므로 죗값을 받아 영원한 멸망, 곧 둘째 사망,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장소로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십계명을 어기는 자들이다. 흉악한 자들은 가증한 자들이니 몰렉에게 자녀를 바친 자들과 같은 자들이다. 살인자들은 제6계명을, 음행하는 자들은 제7계명을,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제1계명을, 거짓말하는 자들은 제9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불바다에 던져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상 숭배하는 자들, 곧 옛날의 십계명으로 말하면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요한계시록 14장이 말한다. 9절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한다. 말세에는 표를 받는 것까지 하겠지만, 사람들은 옛날부터 그 표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그 표는 물질적인 표가 아니라 영적인 표일 수 있다. 창세 이후로 그런 표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이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받는 형벌은 이러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4:10-11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039;고난을 받으리니&#039;는 헬라어 바사니스테세타이(βασανισθήσεται)로서 고통을 겪는다, 더 정확하게는 고문을 받는다는 뜻이다. &#039;세세토록&#039;은 에이스 아이오나스 아이오논(εἰς αἰῶνας αἰώνων), 곧 세대들의 세대들까지다. 그렇기 때문에 12절은 &quot;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quot;라고 말한다. 우리가 마침내 구원을 얻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표를 절대 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13절은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천국에서 쉬고 그다음에 왕 노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십계명을 어기는 자 가운데서도 필자가 히브리서 6장이나 10장을 대입해 보면, 현재의 죄를 짓는 자, 곧 고의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자가 불못에 들어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적들을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짐짓 죄를 범하면 맹렬한 불만 있다. 맹렬한 불은 바깥 어두운 데에는 없다. 29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어도 지옥에 떨어질 자가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불못에 떨어질 자의 총지도와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 불신자들, 그리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심판은 언제,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풀어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의 말씀에 의하면 불에 던져질 자는 세 종류다. 그 첫 종류가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염소에 속한 자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원한 불은 영원히 불타오르는 곳, 곧 불못을 가리킨다. 46절은 이것을 영원한 형벌, 곧 영벌이라고 말한다. 성 밖에서 더 멀어진 바깥 어두운 데에 있는 것도 일종의 형벌이다. 그러나 바깥 어두운 데는 어두운 곳이지 불못은 아니다. 진짜 형벌이라고 나오는 곳은 불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염소는 누구인가? 옛날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염소는 예수를 믿지 않는 자요 양은 예수를 믿는 자다. 그래서 양은 천국, 염소는 지옥이다. 불신자는 지옥에 가고 믿는 자는 천국에 가니 믿음이 중요하다. 과연 그러한가?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가 불신자들에게 해당하는 비유인가, 아니면 성도들에게 경고하는 비유인가? 예수님께서 &quot;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quot; 하실 때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는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 계열의 한 해석은 이 본문의 &#039;모든 민족&#039;에 주목한다. 믿는 자들이 아니라 민족들이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는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양에 속한 민족은 지상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간다고 해석한다. 과연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것인가? 우리는 이 심판이 언제 있으며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지를 본문을 통하여 찾아보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언제 심판하는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신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마태복음 16장이 그때 어떤 심판이 있는지를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는 심판이 있다. 28절은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그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19장은 그 보좌에 앉으시는 때를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때 제자들도 심판자로 참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해 보니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29절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한다고 말한다.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니 이것은 상급 심판(賞給 審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심판은 불신자와 신자를 가르는 심판이 아니라 신자를 대상으로 행한 대로 갚는 심판이다. 상을 줄 것인가 벌을 줄 것인가를 정하는 심판이다. 그 결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여보낼 자와 성 밖으로,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그리고 지옥으로 보낼 자가 갈리는 총심판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심판은 믿음을 가졌느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따라 갚아 주는 심판이다.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신다. 이 심판은 상속시키는 심판이다. 그러자 의인들이 &quot;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였나이까&quot;라고 묻는다(37-39절). 여기서 의인들은 행위로 의로운 삶을 살아온 자들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구원이 시작될 때의 일이고, 지금은 마지막 때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생애를 보고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039;주여&#039;라는 말은 의인들도 하고, 44절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도 한다. 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이 불신자였을 가능성은 차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누구이며, 염소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이 형제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간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2장 11절은 믿는 자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원문에는 &#039;오른편에&#039;가 &#039;오른쪽들로부터&#039;라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보좌로부터 오른쪽에 있는 자들이 있고 왼쪽에 있는 자들이 있다. 보좌에, 곧 주님께 가까울수록 상이 크다. 필자는 이것이 상급에 차이가 있음을 말해 준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통합측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어려서 교사를 할 때 이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를 통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이렇게 배웠다. 지극히 작은 자, 곧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자를 도와주면 천국에 간다. 이것은 천주교의 해석과 비슷하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입혀 주면 된다는 것이다. 밥퍼 사역 같은 일이 그런 해석과 비슷하다. 그런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 필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 사명이 있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밥퍼 사역을 통해 예수를 믿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난한 자에게 밥을 퍼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해 서명하고 변호하면 천국에 위대한 신분으로 들어가는 줄 아는데, 그 해석은 &#039;이 나의 형제들&#039;을 빼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원문을 직역하면 이러하다. &quot;그리고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장차 말할 것이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나의 형제들, 곧 가장 작은 이들 중 하나에게 행한 만큼 나에게 행한 것이다.&quot; 원문에는 &#039;여기&#039;라는 말이 없다. &#039;이&#039;라는 지시대명사다. 멀리 있는 것을 가리키는 &#039;저&#039;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039;이&#039;다. 이것은 지금 오른편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039;이 나의 형제들&#039;이면서 동시에 가장 작은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작은 자는 누구인가? 본문에 나와 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다. 여기서 옥에 갇힌 자가 가장 큰 힌트다. 그가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갔겠는가, 예수를 전파하다가 감옥에 갔겠는가?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말씀하신 오른편의 사람들에게, 죄를 지어 감옥에 간 자를 돌아보았다고 칭찬하시는 것이겠는가? 이들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혀 먹을 것도 없이 헐벗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상태에 있던 자들이다. 감옥에 갇혔으니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 그들은 주와 복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당시에는 오늘날의 선교사가 아니라 방랑 전도자가 있었다. 주님 말씀처럼 전대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마 10:9-10). 그러니 그들은 돈이 없고,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으며,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히면 감옥에 갇혔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끌려갈 때에 할 말을 그때에 주시리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10:19). 지극히 작은 자는 단순히 가난한 자, 병든 자, 고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때문에 스스로 가난해진 자요, 복음 때문에 헐벗은 자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다. 이것이 원초적인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른편에 있는 양에 속한 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빌립보의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행 16:14-15)나 로마 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롬 16:3-5) 같은 사람들이다. 바울이 먹고살 수 없어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겠는가? 그런 사람들도 일을 하며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섬겼다.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빛나는 사람은 전도를 가장 많이 하여 천국에 많은 사람을 보낸 사람이다. 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이 하지 않은 것은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지 않은 것이요, 그 때문에 핍박받지 않은 것이요, 예수를 믿게 하려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도 &#039;주여&#039;라고 부른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오셨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통받는 자들, 영광스럽지도 않고 생색낼 수도 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드러내고 생색낼 때는 했지만 지극히 작은 자, 별 볼 일 없는 자는 무시했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다(마 23:24).&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자신을 양이라 여기는 염소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놀라운 힌트가 마태복음 25장 32절에 있다. 여기서 양은 프로바톤(πρόβατον)으로 다 자란 양이고, 염소는 에리포스(ἔριφος)로 새끼 염소다. 다 자란 양과 새끼 염소를 그림으로 비교해 보면 거의 비슷하다. 다 자란 염소는 수염이 나서 염소처럼 보이지만, 새끼 염소는 양과 거의 똑같다. 염소에 속한 자들은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염소인데도 자기는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과 염소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염소에 속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039;주여&#039;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답게 살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생활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결국 영원한 불로 들어간다. 그들은 본문의 의인들처럼 바깥으로 드러날 일이 아닌 작은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행함이 없었던 자들이다. 생색내는 자요, 외식(外飾)하는 자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다.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자일 가능성이 높고, 오래 믿었을 가능성도 높다. 주의 종일 가능성은 더 높다. 주의 종이 성도들 가운데 부자가 오면 &quot;여기 앉으라&quot; 하고 가난한 사람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살았다면(약 2:2-4) 그는 염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양으로 태어난 자는 없다. 다 염소다. 거기서 예수를 믿어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가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듯이,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를 모르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면서도 자기가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믿었던 자들이 염소에 속한 자들이다. 외식하는 자, 생색내는 자, 이름을 낼 때는 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가 아니라 지옥으로 간다.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quot;너는 나를 믿는 자라고 말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였으나 바깥 어두운 데에도 못 간다. 너는 불못이다.&quo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실제를 말한다. 이런 자는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성 밖으로 가는 자는 어마어마하게 많고,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자는 조금 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불못에까지 들어가는 자, 곧 주님을 부인하거나, 현재의 죄를 짓거나, 일평생을 외식하며 지도자인 척하며 살아온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 적다. 그러나 적다 할지라도 이런 자들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요(마 23:3), 성도들 앞에서 높임받기를 원하나 섬기지 않은 자다. 교회에 와서 한 번도 섬기지 아니하고 섬기는 것을 추하게 생각하며 보이는 것에만 자기를 드러내려 하는 자를 주님께서는 염소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 나는 항상 양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내 삶의 행위를 통하여 과연 내가 양에 속한 자인지 염소에 속한 자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회개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로 나 자신을 바꾸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불못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가? 그렇다. 불신자는 모두 불못으로 간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던 자들 가운데서도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 짐짓 죄를 범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 그리고 예수를 믿고도 일평생 섬기지 않고 말만 하며 높임받기를 원하고 외식하며 살아온 염소에 속한 자는 불못에 들어간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왼편에 있는 자라고 하셨으니, 그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은 불신자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를 향한 경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었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시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특히 이 나의 형제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곧 복음 때문에 가난해지고 헐벗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보신다. 생색낼 수 있는 일에만 손을 내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자를 외면했다면, 우리는 스스로 양이라 여기는 새끼 염소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삶의 행위가 양에 속한 자의 것인지 염소에 속한 자의 것인지를 살피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고,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섬겨야 한다. 섬기는 자가 복된 자이며,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모든 것을 통해 꼭 섬기는 자가 되어,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3일(금)&lt;br /&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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