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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낮예배 영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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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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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Aug 2026 22:11: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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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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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렘2:4~8)_2026-08-2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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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3(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예레미야 2:4~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2eFz6NXr-u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eFz6NXr-u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낮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4-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독론을 공부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인격과 삶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 삶으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다. 이러한 예언이 있었기에 우리는 약 이천 년 전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누가 참그리스도인지, 어떤 역사가 성령에게서 오고 어떤 역사가 악한 영에게서 오는지 분별하기 어렵다. 말씀으로 영혼을 채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선지자(사역시간: B.C.593~571년)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보좌와 새 성전과 생명수 강과 새 땅을 보았던 환상의 선지자였다. 그는 절망에 빠진 포로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실 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레미야(사역기간: B.C.627~561)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자기 민족이 죄로 무너지는 전 과정을 보았다. 성이 포위되고 백성이 굶주리며 마침내 성전과 성읍이 불타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는 눈물과 탄식과 비통함이 배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예레미야 시대에 멸망하게 두셨는가?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한 성전과 다윗의 후손이 있었는데도 왜 예루살렘을 버리셨는가? 예레미야서 1장부터 30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세 가지 이유가 드러난다. 첫째,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타락했다. 둘째,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셋째,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차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옛 이스라엘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고, 회개를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죄를 계속 쌓는다면 같은 원리 아래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심판을 피하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 멸망의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과 오늘 대한민국과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는 어느 시대에 어떤 사명을 감당한 선지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를 이해하려면 동시대를 전후하여 활동한 네 선지자의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로, 이사야는 예레미야보다 약 백 년 앞선 주전 740년경부터 680년경까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다. 당시의 세계 제국은 앗수르였다. 왕족 출신이었던 이사야는 예루살렘 왕궁을 중심으로 왕들과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며 장차 올 심판과 메시아의 소망을 선포했다(사 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제십삼년인 주전 627년경에 부름을 받았다. 그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시대를 지나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사십 년 동안 말씀을 전했다(렘 1:1-3). 예레미야서 52장의 부록은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주전 561년경 바벨론에서 석방되는 사건까지 전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중심 사역은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셋째로, 다니엘은 주전 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 때 끌려갔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훈련받은 뒤 제국의 통치 현장에 서서 바벨론과 메대&amp;middot;바사와 그 뒤에 일어날 나라들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단 1:1-6). 그러므로 다니엘을 계시의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넷째로, 에스겔은 주전 597년 제2차 포로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주전 593년경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부름받았다(겔 1:1-3). 그는 약 이십이 년 동안(B.C.593~571) 하나님의 보좌와 성전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환상으로 보았으므로 환상의 선지자라고 부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 세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 있던 장소와 사명이 달랐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멸망의 현장을 보았고,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 공동체에서 환상을 보았으며, 다니엘은 제국의 왕궁에서 열방의 장래를 계시받았다. 그중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이 굶주림과 칼과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성전까지 불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예레미야애가는 그 아픔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예루살렘은 과부처럼 되었고, 절기를 지키러 오던 길은 적막해졌으며,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어린 자녀들은 원수에게 끌려갔다(애 1:1-6). 예레미야는 딸 시온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애 2:11). 또 그의 눈에서는 백성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시내처럼 흘러 쉬지 않았다고 했다(애 3:48-49). 선지자의 눈물은 민족의 죄와 하나님의 아픔을 함께 품은 눈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레미야는 폐허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아침에도 이슬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어둠 뒤에 새날이 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끝나지 않았음을 노래했다. 진멸되어 마땅한 백성을 완전히 끊지 않고 남은 자를 두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붙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사랑한다. 필자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 심판받아 마땅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진실한 회개를 받으시고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며 다시 사명의 길에 세워 주셨다. 우리가 지금 어둠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을 붙들고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뿌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신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눈물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온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의 타락은 왜 멸망을 불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에 멸망이 임한 &lt;strong&gt;첫째 이유는 사회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온 백성과 모든 지도층이 함께 타락했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로, 백성들&lt;/strong&gt;은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고 영적인 음행을 저질렀다(렘 2:20).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손으로 만든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절했다. 유다의 신들은 성읍의 수만큼 많아졌고, 수치스러운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은 예루살렘 거리의 수만큼 많아졌다(렘 2:28; 11:13). 하나님께 제사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찾는 혼합 신앙이 온 땅을 덮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회 전체가 거짓과 탐욕과 폭력에 물들었다. 십계명을 무시하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며, 진리를 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더 두려운 일은 백성을 깨워야 할 &lt;strong&gt;지도자들도 함께 무너졌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예레미야 2장 8절은 네 부류의 지도자를 지적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무익한 것을 따랐다. 직분은 남아 있었지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진 상태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하고, 율법을 다루는 레위인은 말씀의 뜻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왕과 관리들은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만 전해야 했다. 그러나 제사장과 선지자는 탐욕을 따르고, 관리들은 권력을 사유화하며, 백성은 그 거짓을 좋게 여겼다. 부패한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패를 환영한 백성의 문제이기도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다고 말해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신다. 약속의 자손이라는 신분도, 약속의 땅에 산다는 역사도, 다윗의 후손이 왕으로 있다는 제도도 죄를 계속 지을 권리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고 해도 정의와 진리가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찾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도자의 타락은 한 사람의 사생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가 불의를 법으로 만들면 백성이 그 길을 따라가고, 제사장이 말씀을 굽게 해석하면 성도들은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며, 선지자가 받지도 않은 환상으로 평안을 선포하면 멸망이 눈앞에 와도 준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직분을 맡을수록 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백성 역시 지도자가 자기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고 해서 그 불의를 좋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정치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진리를 감추며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긴다면 소망이 끊어진다. 나라를 살리는 길은 자기편의 잘못을 덮고 상대편만 정죄하는 데 있지 않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진리를 회복하고, 교회가 먼저 탐욕과 거짓과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에 대한 거짓 확신은 왜 무너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나라가 결코 망하지 않을 이유를 여럿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받은 할례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다윗의 후손이 왕좌에 앉아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 성을 버리실 수 없다고 확신했다.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도 곧 돌아올 것이며 모든 일이 평안하게 끝날 것이라고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39;언약&amp;#39;은 하나님을 버려도 안전하다는 보증서가 아니다. &amp;#39;성전&amp;#39;은 죄를 감추는 부적이 아니며, &amp;#39;다윗 왕조&amp;#39;도 왕과 백성이 하나님께 반역할 수 있는 면허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에 선 예레미야를 통해 &amp;ldquo;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amp;rdquo;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고 이웃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우상에게 가지 않아야 그 땅에 살게 하신다는 말씀이었다(렘 7: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선지자들은 상처가 깊고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도 &amp;ldquo;평강하다, 평강하다&amp;rdquo;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평강이 없었다(렘 6:13-14). 그들은 백성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회개를 막았다. 멸망이 다가오는데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거짓말이다. 참선지자는 백성이 싫어하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amp;ldquo;예수님을 믿었으니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amp;rdquo;, &amp;ldquo;교회에 다니니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amp;rdquo;라고 말한다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평안과 다르지 않다. 믿음은 구원의 출발이지만, 참된 믿음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신앙의 외형을 붙들면서 우상숭배와 탐욕과 음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성전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백성이 그 건물만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가 성전을 불태우도록 허용하셨다(왕하 25:8-10).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웅장한 건물도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작고 연약한 공동체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경력과 직분과 교단과 건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 안에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 말씀을 들을 때 죄를 끊고 있는지, 지도자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거짓 확신을 버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멸망을 피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하면 왜 소망이 끊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예레미야 시대까지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악한 길과 행위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백성은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목을 굳게 했다. 조상들의 죄를 보고도 더 악하게 행했다(렘 7:25-26; 25: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5: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첫 메시지는 분명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악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정하신 뒤에는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제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항복하면 자기들의 생명은 보전하고 성읍의 완전한 파멸도 줄일 수 있으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했다(렘 21:8-10; 38: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은 이 말을 매국적인 발언으로 여겼다.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며 진흙 구덩이에 던졌다(렘 37:15-16; 38:4-6).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사랑해서 항복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었으므로 살아남아 훗날의 회복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었다.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한 결과, 백성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겪었고 성과 성전은 불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자기 땅에 오셔서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말씀을 거절했다. 예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 자녀들을 모으려 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탄식하셨다(마 23:37-38).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면 결국 듣지 못하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분노만 자극하거나 정치적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죄인지 말씀으로 밝히고, 먼저 교회와 성도가 회개하며, 지도자와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해야 한다. 회개 없는 집회와 구호만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을 듣고 삶을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말은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은 아니다. 때로는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게 하고, 잘못 선택한 길을 인정하게 하며, 이미 시작된 징계를 겸손히 받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말씀을 거절하면 선지자만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마지막 살길도 잃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죄가 차고 찰 때 땅이 주민을 토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셋째 이유는 오랫동안 연기된 죄악의 분량이 예레미야 시대에 가득 찼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만 죄를 없었던 일처럼 여기시지는 않는다. 죄가 반복되고 회개가 없으면 개인과 가정과 민족 안에 그 결과가 쌓인다. 마침내 정해진 분량이 차면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은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경고한다. 그들은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고, 근친상간과 동성 간의 음행과 수간 같은 가증한 일을 행했다(레 18:6-23). 그 죄 때문에 사람만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땅도 더러워졌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주민을 토해내게 하셨다. 이스라엘도 같은 죄를 따르면 똑같이 토해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찼을 때 그 땅을 차지했다(창 15:16). 그러나 자신들도 우상숭배와 음행을 반복하면서 땅을 더럽혔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사실이 죄에 대한 심판을 막아 주지 못했다. 예레미야 시대가 되자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낼 때가 되었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바벨론을 섬기며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을 정하셨다(렘 25:11-12). 이 칠십 년은 우연한 정치적 패배의 기간이 아니라, 땅이 안식을 누리고 백성이 죄의 결과를 담당하는 징계의 시간이었다.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는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가 있었지만, 분량이 찬 뒤에는 정해진 징계를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회개는 언제나 지금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원리를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해 보았다. 이스라엘이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을 겪은 것처럼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삼십오 년을 겪었다. 이것을 성경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우상숭배와 죄를 어떻게 다루실지를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본다. 남은 삼십오 년의 징계를 더 겪을 것인지, 아니면 회개로 긍휼을 입을 것인지는 오늘 우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개인의 고난을 볼 때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모든 장애와 질병을 어떤 한 죄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축사와 회개의 현장에서 조상과 본인이 쌓은 죄가 악한 영이 역사할 근거가 되어 몸과 삶에 고통을 줄 수 있음을 보아 왔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과 가문의 죄를 살피고 진실로 회개하며, 필요한 돌봄과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 역시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다.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을 채운 뒤가 아니라 천 번에 가까운 회개를 드리던 중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고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 주셨다. 횟수가 공로가 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죄까지 자기 죄처럼 아파하며 진실로 돌이킨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이다. 심판의 원리는 엄중하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회개하는 자에게 열려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백성에게 전한 세 가지 길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lt;strong&gt;백성에게 전한 길은 세 가지&lt;/strong&gt;로 정리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첫째,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lt;/strong&gt;이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 바알과 아세라와 여러 우상에게 생명과 안전을 구했지만 그 신들은 위기의 날에 구원하지 못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아간다는 것은 입술로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버리고 악한 길과 행위를 고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자식들에게 돌아오면 배역함을 고치겠다고 하셨고, 가증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셨다(렘 3:22; 4:1). 회개했는데도 계속 같은 죄를 붙들고 있다면 아직 그 죄에서 온전히 돌이킨 것이 아니다. 진실한 회개는 죄짓고 싶은 충동이 약해지고 성품과 행동이 달라지는 열매로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받아들이는 길&lt;/strong&gt;이다. 엎질러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오면, 징계를 부정하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생명을 보전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징계를 겸손히 받으면서 남은 자가 되어 다음 회복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고 자기 죄를 인정하는 것이 살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징계의 기간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와 희망을 붙드는 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끝없는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날에 다윗과 같은 왕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하시고, 돌판 바깥에만 있던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렘 30:9; 31:31-34).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게 한다. 사람의 힘으로 지키지 못했던 말씀을 성령께서 마음에 새겨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게 하시는 날이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회개, 징계의 수용, 회복의 소망&lt;/strong&gt;은 서로 떨어진 말씀이 아니다. 회개할 때에는 전심으로 돌아와야 하고, 이미 시작된 징계는 겸손히 받아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징계 자체를 마지막 목적으로 삼지도 않으신다. 남은 자를 정결하게 하여 새 시대와 새 언약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대한민국과 우리는 멸망을 막기 위해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지난 주 화요일(2026.08.18)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 57개를 보유했다고 언급했고, 국내에서는 80개에서 120개까지 추정해 왔다고 한다. 수많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한때 가득 찼던 교회가 비고 기독교 신앙이 급격히 약해졌다. 우리도 예외라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멸망하는 징조는 외부의 무기만이 아니다.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백성이 불의를 좋게 여기고, 회개를 외치는 말씀을 막을 때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자기편이면 잘못을 덮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정죄하는 태도도 회개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는 백성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릴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무속과 불교와 조상 제사의 영향을 받아 왔다. 필자는 약 오천 년의 무속적 전통과 천 년의 불교적 영향과 오백 년의 조상 제사 문화 속에서 수많은 우상숭배가 쌓였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885년 선교사들을 이 땅에 보내 복음과 성경을 전하게 하셨고, 한글 성경을 통해 백성이 말씀을 읽게 하셨다. 이 은혜는 우리만 잘 살라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먼저 자신과 가정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우상과 물질과 권력, 거짓과 음행과 탐욕을 자백하고 끊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자백하는 자를 깨끗하게 하며,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근거를 마련한다(요일 1:7-9). 필자는 진실한 회개와 축사를 통해 개인과 가정에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역사가 약해지고 끊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민족의 죄도 내 일이 아니라고 뒤로 미루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다니엘은 포로지에서 조상과 백성의 죄를 자기 죄처럼 고백했다(단 9:4-19). 우리도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와 백성이 지은 우상숭배와 불의와 음란의 죄를 품고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셨다. 오늘도 한 사람의 진실한 회개와 한 공동체의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나라를 향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가장 실제적인 길이다. 죄의 분량이 차기 전에 돌이키면 심판을 피할 수 있고, 이미 시작된 징계도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단축될 수 있다. 필자는 자신의 회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형벌을 긍휼로 덜어 주시고 사명의 길을 다시 열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은혜를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입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한 번 눈물을 흘렸다는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비추고, 드러난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그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행동을 고쳐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역사를 끊기 위해 꾸준히 회개하고 축사를 받으며, 성령의 다스림을 따라 성품과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그 열매가 나타날 때 우리의 회개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실제적인 힘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되고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죄라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죄인을 살리기 위해 눈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회개를 외치는 교회와 성도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마지막까지 사용하실 소망이 있다. 대한민국이 회개와 천국 복음을 열방에 전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민족으로 쓰임받도록 우리는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이 시대의 한 무리로서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통곡과 한 공동체의 진실한 회개가 가정의 저주를 끊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심판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amp;ldquo;너희 때문에 이 성을 살려 주겠다&amp;rdquo;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죄를 끊으며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때 개인의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는 사명에도 참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이 멸망한 세 가지 이유, 그리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백성의 굶주림과 성전의 파괴를 보며 눈물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소망을 놓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가 함께 타락했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거절했으며,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찼기 때문에 멸망했다. 할례받은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조도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지켜 주지 못했다. 외형적인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고, 심판이 확정된 뒤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라고 했으며, 징계 가운데서도 칠십 년 뒤의 회복과 새 언약의 소망을 붙들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지만 회개하는 자를 완전히 끊지 않으시며 남은 자를 통해 새 일을 시작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같은 말씀 앞에 서 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불의를 사랑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회개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다른 사람만 정죄하지 말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의 죄를 먼저 품고 회개해야 한다. 우상숭배와 거짓과 탐욕과 음행을 끊고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절망의 말이 아니라 살길을 여는 복음이다.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악한 영의 역사는 약해지고,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새 사명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징계가 시작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미래와 희망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통곡과 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고, 이 민족이 마지막까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나라로 쓰임받도록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죄를 품고 울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의 설교를 바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amp;nbsp;&lt;strong&gt;멸망의 근본적인 원인&lt;/strong&gt;을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인이 모두 타락하여 소망이 끊긴&amp;nbsp;&lt;strong&gt;영적 부패&lt;/strong&gt;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한&amp;nbsp;&lt;strong&gt;거역의 죄&lt;/strong&gt;, 그리고 땅조차 주민을 토해낼 정도로 가득 찬&amp;nbsp;&lt;strong&gt;죄악의 임계점&lt;/strong&gt;을 멸망의 세 가지 이유로 제시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눈물 섞인 애통함과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인자하심&lt;/strong&gt;을 강조하며, 비극적인 심판의 현장 속에서도 회복의 소망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오직 진실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영적 돌이킴&lt;/strong&gt;만이 민족과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강력히 촉구하는&amp;nbsp;&lt;strong&gt;영적 경성&lt;/strong&gt;의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ChatGPT Image 2026년 8월 23일 오후 08_50_3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6a08864288aa6cf41b24f46239f5fe9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2c10f1e3350c5af40f77b4917f1d5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314cabda3e9be04a6c6d1abd0e4eb3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1965e2fc7b37fdc727ecc4e080ad4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80794ea6f29d5ff189ee32cbd71ce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2e9d16aa8575ae18a1a6063c17d5f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cb630fc4598a97bdbc611bec303786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578318ea6b2987755b139817e0f9e5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1dfa395b1f6484dce42f67080c1ef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fb3d9bafadc516022049cea31ade4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c31a4e102a8fd77db2b73e3b5ff3f7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4c9510fbb5b6f49c1aa39c2e1b2e5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41d5e8aa73a3e24efa82974c79c9d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87021eb27372bc9f21c61e89d34d71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709930779c34b300b5cc7764567388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예레미야의_눈물과_이스라엘의_멸망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8e08cb90f9c89e6310b588749b5fe26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501d0d4a3b1b795bd431a9143f8af1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60bec2c9032235900808dfef295316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85c977eb86368e5a96987efd99cee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4d82e17ddd1e36147d9de234fa5c6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8cdfa7ae6a5a652b8674c650bef263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c790128d88eadf9bc9ce4e4031e19a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36e5800f7db832110c411eab7fcdb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28c34ffa0d73d20818b244e02e9ff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0e4d05f4cc38b9b94bec66dc6874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eb58fdf00af9e35730e671a946a18d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ccef45f9b53dde8622f3469f65cac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3674621ce8a95202569416a00cd2d4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3532d497b48e241fb0dc491392809b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58b8ffe7d0852e0bb85944998cbc8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5507b53251e3bd41ace5e5fb0086439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cf00bb328194f1ea658e6c311f2c7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bccbecd2fff2cffd212db840206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9398213636dddbd2418bf90357ed2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5802e703c126d5500d58d510539fc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22af6fd1634a290510d0c200024938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322cba1a70bc29c481bb00fc69de6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795529d1d09665bd550046e47820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b7aa1d07a3deae557e1473a00f8d59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f2c2f24c243fc7ad5dfecbd071fd3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d9cd96f0db6834e058786d0485fb2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0b7d517b0bb1b838d83bb9319366ce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6426c3c3eccdfa0759eb3ee1d9b56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8f3f242e42ed3c082c24eca95616f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01cb56a10c2647ea75c600bdc3bc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fc27a7d09976bf2ea759da72dec8ca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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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2f1a2e7446a2c5abb2109ab57668c6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60c5736323c2db2710a5c2747324b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efc6e2ea3c9790dea2578873479e84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fb87e2f9cd21157e0124758443e620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구약_4대_선지자_사역_로드맵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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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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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4860#comment</comments>			<pubDate>Sun, 23 Aug 2026 20:39: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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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65)] 에스겔 선지자, 그는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에스겔2:1~7)_2026-08-1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4392</link>
				<description>&lt;p&gt;2026-08-16(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65)] 에스겔 선지자, 그는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에스겔2: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_zrobJxRnQ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zrobJxRnQ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6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에스겔 선지자,&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는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2:1-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발 강가에서 네 생물과 바퀴들, 수정 같은 궁창과 보좌가 나타났고, 보좌 위에는 사람 같은 형상이 앉아 있었다. 에스겔은 그것을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기록하였다. 그가 그 영광 앞에 엎드렸을 때에 비로소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이 들렸다(겔 1:28-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부르심은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해도 조금 독특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명을 먼저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 사명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패역한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해야 할 사람은 사람들의 반응보다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듣는 이들이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할지라도, 보좌에 앉으신 분을 분명히 본 사람은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lsquo;마르아&amp;rsquo;는 &amp;lsquo;보다&amp;rsquo;라는 말에서 왔으며, 다른 문맥에서는 &amp;#39;거울&amp;#39;을 뜻하기도 한다(출 38:8). 환상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는 창인 동시에 사명 받은 사람이 자신을 살피게 하는 거울이다. 환상 자체가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 요구하는 순종이 진실함을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채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의 진로는 무너졌고 그의 자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땅에서 하늘을 여셨고,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던 그를 말씀을 맡은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사람의 계획이 중단된 장소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시작되는 장소가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시는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amp;ldquo;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amp;rdquo;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선지자의 성공은 많은 사람이 즉시 반응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충실히 전하여, 적어도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데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이기는 자가 된 까닭은 화려한 환상을 보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고 들은 것을 끝까지 책임 있게 전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에스겔이 천국에서 왕과 제사장의 반열에 있으며 스물네 장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는 핵심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말씀을 받아 패역한 백성에게 전했으며, 파수꾼의 책임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에스겔이 어떤 형편에서 부름받았고, 왜 환상과 말씀을 받았으며,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에스겔은 어떤 시대와 처지에서 부름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과 더불어 대선지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거듭 받으며 멸망으로 기울어 가던 시대에 살았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경 1차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을 끌고 갔다. 이어 주전 597년경 바벨론의 2차침공으로 여호야긴 왕과 지도층 인사들을 다시 포로로 잡아갔는데, 에스겔도 이때 바벨론 땅으로 끌려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때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시기였다. 그때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침략과 포로 사건은 이미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불의와 반역을 버리지 않았고, 형식적인 종교적 확신으로 현실을 외면하였다. 드디어 주전 586년경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시드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파괴되고 더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이러한 격변의 한복판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이름은 &amp;lsquo;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amp;rsquo; 또는 &amp;lsquo;하나님께서 붙드신다&amp;rsquo;는 뜻을 지닌다. 이름처럼 그는 자신의 힘으로 버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강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이었다(겔 1:3). 레위인은 스물다섯 살부터 회막 봉사에 참여하고 서른 살부터 본격적인 직무를 담당하였다(민 8:24-25, 4:3). 에스겔은 제사장으로 봉사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고국을 떠나 포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포로가 된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 에스겔은 자기 나라와 성전과 익숙한 공동체를 떠나 바벨론 제국의 통치 아래 살아야 했다. 이때 그는 바벨론의 건축 노동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성경이 그의 구체적인 노동 형태를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그가 그발 강가의 포로 공동체 안에서 상실과 수치를 함께 겪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로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려던 그의 꿈은 인간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은 장소에 갇히지 않으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도 하늘을 여시는 분이었다. 바벨론에서 5년의 시간이 흐라자, 에스겔도 서른 살이 되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었더라면 제사장 직무를 감당했어야 할 바로 그 나이에 하나님의 권능이 그이 위에 임하였다. 비록 그는 지상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지 못했으나, 포로 공동체를 깨우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부르심의 자리가 반드시 편안하고 준비된 환경은 아니다. 길이 막히고 익숙한 기반을 잃은 때에도 하나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에스겔에게 바벨론은 실패의 땅인 동시에 계시의 땅이었고, 포로 신분은 파수꾼 사명의 출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전할 사람을 부르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은 왜 말씀 전에 환상을 보여주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는 &amp;ldquo;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들이 내게 보이니&amp;rdquo;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겔 1:1).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에스겔의 영의 눈을 여셨다. 그래서 그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본다. 만약 그가 그때에 백성의 완고함과 바벨론의 권세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왕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를 받드는 하늘의 질서를 먼저 환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눈앞의 형편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선지자에게 있어서 환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은 꿈보다 선명한 계시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은 주로 잠든 상태에서 경험하지만, 환상은 낮이나 밤에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장면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고 구약시대에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다니엘과 에스겔을 비롯하여, 신약시대의 사도 요한도 환상을 통하여 영의 세계와 장래의 일을 볼 수 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2:6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먼저 보여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첫째로, 그의 사명의 근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에스겔이 전할 메시지는 자신의 정치적 분석이나 자기의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백성이 거부하더라도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 선지자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앞으로 감당할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에스겔이 받아 먹은 두루마리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되어 있었다(겔 2:8-10). 그것은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그가 전해야 할 내용은 심판과 멸망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기쁨과 그 말씀을 패역한 백성에게 선포하는 고통이 함께 있었다. 보좌의 영광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그는 무거운 메시지와 사람들의 거절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현재의 영적 실상과 미래의 경륜을 함께 알게 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이 들어와 있는 현재의 죄악을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가는 장면과 예루살렘이 심판받을 미래를 보았다. 또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회복과 새 성전과 새 땅의 분배도 보았다. 환상은 보이는 현실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과 계획을 드러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유는 환상을 보는 사람 자신을 비추기 위해서&lt;/strong&gt;다. &amp;lsquo;마르아&amp;rsquo;가 거울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환상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아내어 자기를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맡았는지를 보게 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환상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낮아지고, 본 것을 함부로 더하거나 빼지 않으며, 해석할 때에도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신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사람마다 부르심의 통로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씀 연구에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은사나 환상을 통하여 사명을 깨닫는다. 그러나 환상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분별하기 어렵고, 말씀을 떠난 은사는 악한 영의 속임에 노출될 수 있다. 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을 깊이 연구하게 하신 후에 축사와 환상의 은사를 주셨다. 이 개인적 체험이 주는 교훈은 환상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환상을 분별하고 사명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네 생물과 보좌 위 사람 같은 분은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처음 본 환상의 중심에는 &lt;strong&gt;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lt;/strong&gt;가 있다. 네 생물은 전체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가졌으나 각각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네 얼굴을 지녔다. 네 날개 가운데 두 날개로 날고 두 날개로 몸을 가렸으며, 갈 때에는 몸을 돌이키지 않고 곧장 나아갔다. 그들의 모양은 불붙는 숯과 횃불 같았고, 번개처럼 왕래하였다. 생물 곁의 바퀴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모양이었으며 둘레에는 눈이 가득했다(겔 1:5-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네 생물은 피조물로서 천상에 있는 생명체들&lt;/strong&gt;이다. 에스겔 10장은 그들을 &amp;#39;그룹들&amp;#39;이라고 부른다(겔 10:20).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받들고 하나님의 영이 가려는 곳으로 움직인다. 네 얼굴은 피조 세계의 다양한 특성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 주며, 바퀴에 가득한 눈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느 곳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네 생물 위에는 수정처럼 빛나는 궁창&lt;/strong&gt;이 펼쳐져 있었고, &lt;strong&gt;그 궁창 위에는 남보석 같은 보좌의 형상&lt;/strong&gt;이 있었다. &lt;strong&gt;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lt;/strong&gt;이 앉아 있었다. 허리 위는 불 가운데 빛나는 단 쇠 같고, 허리 아래도 불 같았으며, 사방에는 무지개 같은 광채가 둘렀다. 에스겔은 이 장면을 하나님 자체를 완전히 보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amp;ldquo;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amp;rdquo;이라고 거듭 제한하여 기록한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보좌 위의 사람 같은 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다. 본문은 그 광경을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부른다. 기독론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이 모습은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떠오르게 한다. 신약은 아들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고 증언한다(골 1:15, 고후 4:6). 에스겔이 본 환상을 곧바로 성육신 이후의 예수님의 모습과 동일한 장면이라고 단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사람 같은 형상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드러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신약의 사도 요한도 하늘의 열린 문과 보좌, 보좌에 앉으신 이와 네 생물&lt;/strong&gt;을 보았다(계 4장). 이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보았고, 어린양이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취하는 장면을 기록하였다(계 5장).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은 모두 먼저 하늘 보좌의 주권을 보여 준 뒤 땅에서 진행될 심판과 구원의 경륜을 펼친다. 역사의 중심은 바벨론이나 로마 같은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에게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영광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엎드리는 것이었다. 참된 환상은 사람을 과장하고 높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 앞에 자신을 낮추게 한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들어와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겔 2:1-2).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리고, 사명을 위해서는 성령으로 일어서야 한다. 이것이 환상을 받은 종의 바른 자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에스겔이 본 네 가지 환상은 무엇을 계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의 큰 흐름을 따라가면 네 묶음의 중요한 환상을 발견할 수 있다. &lt;strong&gt;첫째는 1장과 10장에 나오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환상&lt;/strong&gt;이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갇힌 지역 신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치하시는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퀴 달린 보좌가 움직이는 모습은 포로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가 에스겔에게 미칠 수 있음을 알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8장부터 11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의 죄악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환상&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영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를 보았다. 장로들은 어두운 방에서 각종 가증한 형상 앞에 분향했고, 여인들은 담무스를 위하여 울었으며, 사람들은 성전을 등지고 해를 향하여 절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가 가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8:3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 안쪽에서 문지방으로, 다시 동문으로, 마침내 성읍 동쪽 산으로 옮겨 갔다(겔 10:18-19, 11:22-23). 성전 건물이 존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계속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랑하는 제도와 건물을 떠나실 수 있다. 이 환상은 예루살렘 멸망의 영적 원인을 보여 주는 동시에 오늘의 교회가 외형만 붙들지 말고 거룩함을 지켜야 함을 경고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 환상&lt;/strong&gt;이다. 골짜기에는 심히 많고 아주 마른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사람의 눈에는 다시 살 가능성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가 임하자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겼으며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되었다. 이 환상은 포로 생활 속에서 소망을 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복은 인간의 가능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가 들어올 때 죽은 것 같은 공동체가 살아난다. 그러므로 심판의 메시지를 맡은 선지자는 절망만 선포하는 사람이 아니다. 죄의 결과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열려 있는 생명과 회복의 길을 함께 전해야 한다. 이 환상은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며, 더 넓게는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이 살아나는 영적 원리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40장부터 48장에 나오는 새 성전과 새 땅의 분배에 관한 환상&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매우 높은 산에서 성읍 같은 형상을 보고,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성전의 문과 뜰과 방과 제단을 측량한다.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흘러나온 물은 점점 깊어져 큰 강이 되고, 이 강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살아나며 바다의 물도 되살아난다(겔 47:1-12). 마지막에는 회복된 땅이 지파들에게 분배되고 성읍의 이름이 &amp;lsquo;여호와 삼마&amp;rsquo;, 곧 &amp;lsquo;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amp;rsquo;가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새 성전과 새 제사 그리고 새 땅의 분배는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문자적으로 보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성취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에스겔의 예언처럼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성전과 새 제사 및 새 땅의 분배는 아마도 영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amp;nbsp;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고, 궁극적으로 하늘에서 성취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고 생명의 강이 죽은 것들을 살리며, 백성이 그분의 임재 안에서 새 질서를 누린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환상은 하나의 구원 역사를 이룬다. 하나님의 보좌가 모든 역사를 다스리고, 백성의 감추어진 죄가 드러나 심판받으며, 죽은 백성이 말씀과 생기로 살아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새 성전과 새 땅에 이른다. 환상은 호기심을 채우는 그림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와 회복과 영원한 소망으로 이끄는 계시다. 에스겔은 이 흐름을 보고 기록하여 후대의 성도들에게까지 전해 주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듣지 않는 백성에게도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신 대상은 &amp;ldquo;패역한 백성&amp;rdquo;이었다(겔 2:2, 7).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얼굴이 뻔뻔하며 마음이 굳었다(겔 2:4).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시와 찔레가 에스겔 곁에 있고 그가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다(겔 2:3-6). 그러므로 사명의 수행은 청중의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서 시작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가 자신의 받은 계시를 전해야 하는&amp;nbsp; 무엇인가? 그중에서 &lt;strong&gt;첫째 이유는 그 가운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민족 전체가 심판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모든 개인의 반응이 똑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경고를 듣고 죄를 깨달으며 돌이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한 사람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선지자가 결과를 미리 단정하여 침묵하면 그 사람이 들을 기회마저 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심판의 원인과 회복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lt;/strong&gt;다. 포로가 된 백성은 바벨론이 강해서 자기 나라가 망한다고만 생각할 수 있었다. 에스겔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반역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밝혀야 했다. 동시에 포로가 된 뒤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고 회복하신다는 소망을 전해야 했다. 원인을 모르면 고난 속에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길을 모르면 절망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말씀을 듣는 자와 전하는 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겔 3:17). 악인에게 죽을 것이라고 경고해야 할 때 그가 침묵하면 악인은 죄악 중에 죽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 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신다. 그러나 에스겔이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그 사람이 돌이키지 않으면 그 책임은 말씀을 거절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파수꾼은 자기 생명을 보존한다(겔 3:17-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선지자가 억지로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선지자는 회개를 촉구하고 생명의 길을 알려 주되 선택의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들을 자는 듣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는다(겔 3:27). 전하는 사람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충성해야 하며, 듣는 사람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주어진 경고에 응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내를 증언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백성이 끝내 심판받더라도 &amp;ldquo;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줄&amp;rdquo;은 알게 된다(겔 2:5).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선지자를 보내어 죄를 지적하고 돌아올 길을 열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반응이 냉담하다고 진리를 바꾸거나 침묵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기 생각과 체험을 하나님의 직접 명령처럼 말해서도 안 된다. 성경의 복음과 회개를 분명히 전하고, 개인적인 환상이나 해석은 그 성격을 밝혀야 한다. &amp;ldquo;듣든지 아니 듣든지&amp;rdquo;라는 말씀은 무책임하게 말하라는 허가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감추지 말라는 명령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에스겔은 어떻게 사명을 완수하고 이기는 자가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lt;strong&gt;첫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리고 성령으로 일어섰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는 환상을 보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얼굴을 땅에 대었다. 그때 영이 그에게 들어가 발로 일으켜 세웠고, 그는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었다(겔 2:1-2). 자기 힘으로 서서 사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세움을 받아 출발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처럼 거역하지 말고 입을 벌려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다. 에스겔이 먹은 두루마리는 입에서 꿀같이 달았지만 그 안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되어 있었다(겔 2:8-3:3). 선지자는 말씀을 밖에서 구경하거나 남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자기 안에 받아들여 소화한 뒤 전해야 한다. 달콤한 약속만 골라 말하지 않고 아픈 심판의 말씀까지 전하는 충성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본 것과 들은 것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가감하지 않고 전했기 때문&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1장부터 24장까지 선포했고, 주변 이방 나라들의 심판을 25장부터 32장까지 전했으며,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 성전과 새 땅을 증언했다. 그는 심판만 말하는 비관주의자도 아니었고, 회개 없는 회복만 말하는 낙관주의자도 아니었다. 죄와 심판, 회개와 회복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께 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유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도 사명을 앞세웠기 때문&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포로 생활을 겪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큰 슬픔도 감당해야 했다(겔 24:15-18).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 자체를 예루살렘에 닥칠 사건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사용하셨다. 그의 모든 행동을 오늘의 사역자가 문자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기 감정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앞세우며 매우 무거운 사명을 수행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메시지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얼굴을 그들의 얼굴에 맞서 굳게 하고 이마를 금강석같이 강하게 하셨다(겔 3:8-9). 여기서 강함은 완고함이나 무례함이 아니다. 패역한 백성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는 영적 견고함이다. 그는 말해야 할 때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면 말했고,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하였다. 자기 욕망대로 많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를 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이유는 파수꾼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기 때문&lt;/strong&gt;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는 심판을 경고했고, 멸망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회복의 소망을 더욱 분명히 선포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의 강조점은 달라졌지만, 생명을 살리려는 목적은 한결같았다. 악인에게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하고, 의인에게는 과거의 의만 믿고 죄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인지 에스겔은 이미 천국에서 최고의 신분과 지위로서 왕과 제사장이 되어 섬기고 있다. 이는 성경이 에스겔의 현재 천국 지위를 직접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고 왕 노릇 하게 하며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전한다(계 3:21, 20:6). 에스겔의 생애가 보여 주는 확실한 원리는 맡은 부르심에 충성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자로 인정받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기는 것은 사람을 많이 모으거나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일이 아니다. 듣지 않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명을 위해 사용하며, 고난 속에서도 돌아서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환상을 본 것 자체가 상급이 아니라 그 환상에 순종한 삶이 상급이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남의 사명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끝까지 이루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부르심과 책임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이야기는 먼저 우리가 왜 이 시대에 태어나 이 말씀을 듣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모든 성도의 직무가 선지자와 같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증언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이나 영 분별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김과 물질과 중보기도의 사명을 맡기신다. 중요한 것은 은사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목적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와 선교회가 감당해야할 사명은 대체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전해야&lt;/strong&gt; 한다. 회개에는 하나님께 돌아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필요한 회심의 회개와, 믿은 뒤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자백의 회개로 구분한다. 또한 더불어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나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은 죄를 숨기지 말고 자백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요일 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전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면서 자기의 교만과 탐욕과 음란과 거짓을 감추면 파수꾼의 외침에 능력이 없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성품과 생활의 열매가 달라져야 한다. 회개는 두려움만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죄인에게 다시 살 길이 열려 있다는 복된 소식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우리는 천국의 소망과 상급을 전해야&lt;/strong&gt; 한다. 천국에서는 성도들의 신분과 지위가 같지 않으며,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 자리도 충성에 따라 주어진다. 사람은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받지만 각 사람의 충성에 따라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상급이 있는 것이다(고전 3:8-15, 계 22: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우리는 말씀과 성령을 함께 붙들어야&lt;/strong&gt; 한다. 말씀만 연구하면서 성령의 실제적인 인도와 능력을 부인해서도 안 되고, 은사와 환상을 추구하면서 성경의 기준을 떠나서도 안 된다. 설교자는 자신이 말씀으로 구원론과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을 먼저 공부한 뒤 귀신론과 성령의 은사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순서는 은사의 출처와 내용을 분별하는 데 중요하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장식품이나 자기 과시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위한 도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우리는 받은 것을 자기 형편에 맞는 방법으로 전해야&lt;/strong&gt; 한다. 직접 설교하거나 선교지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순종하면 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은 바른 복음을 담은 책을 선물하거나 유튜브 말씀을 알려 줄 수 있고, 선교사를 물질과 기도로 후원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복음과 영혼을 위하여 사용할 길을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로 우리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lt;/strong&gt; 한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말씀을 전해도 즉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낙심하여 포기하거나 억지로 굴복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인내로 진리를 전하고 자신의 변화된 삶으로 복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씨를 뿌린 수고를 기억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교회가 받은 부르심에 대해서도 분명히 해야 한다. 회개와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말씀과 성령의 두 영역을 함께 섬기는 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비전이다. 이 비전은 다른 교회를 낮추거나 자기 공동체를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에스겔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며, 영혼을 살리려는 사랑으로 충실히 전할 때 비로소 부르심에 합당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각자는 자기 부르심을 귀하게 여겨야&lt;/strong&gt; 한다. 고난이 예상된다고 사명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의 은사가 더 커 보인다고 자기 몫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은사를 더하시고 길을 여신다. 에스겔이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는 포로였지만 그발 강가에서 대선지자로 부름받았듯, 지금의 형편이 사명을 막는 최종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순종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때 그 삶이 이기는 자의 길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어떤 시대와 처지에서 부름받았고, 하나님께서 왜 말씀 전에 환상을 보여 주셨으며, 그가 어떻게 맡은 사명을 완수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성전에서 일할 미래를 잃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발 강가에서 하늘을 여시고, 네 생물과 움직이는 보좌와 사람 같은 형상으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셨다. 인간의 길이 막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시작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본 네 가지 환상은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과 회복의 큰 흐름을 드러낸다. 보좌의 환상은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주고, 성전의 죄와 영광의 떠남은 회개하지 않는 종교의 종말을 경고한다. 마른 뼈의 환상은 말씀과 생기로 죽은 백성이 살아날 것을 선포하며, 새 성전과 새 땅은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이 충만한 최종적인 회복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이 놀라운 환상을 자기 명예로 삼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렸고, 성령으로 일어섰으며, 두루마리를 받아 먹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받은 말씀을 전했다. 심판을 말해야 할 때 심판을 전하고 회복을 선포해야 할 때 소망을 전했다. 백성이 거절해도 침묵하지 않았고, 개인의 상실과 고난 속에서도 파수꾼의 자리를 지켰다. 바로 이러한 충성이 그를 이기는 자의 길로 이끌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자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을 살펴야 한다. 말씀을 맡은 사람은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경의 기준 안에서 영혼을 살리는 데 사용하며,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 특히 회개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천국의 소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이 즉시 듣지 않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전한 책임은 하나님 앞에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상보다 중요한 것은 환상을 주신 분께 순종하는 것이고,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사람의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으로 일어서고, 말씀을 받아 먹으며, 맡겨진 자리에서 보고 들은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을 끝까지 완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6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정보배 목사의 강해를 통해&amp;nbsp;&lt;strong&gt;에스겔 선지자의 소명과 천국의 실상&lt;/strong&gt;을 조명하며, 오늘날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amp;nbsp;&lt;strong&gt;이기는 자의 삶&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영성을 바탕으로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계획을 입체적으로 깨달았으며, 이 과정에서&amp;nbsp;&lt;strong&gt;24장로의 반열&lt;/strong&gt;에 오른 승리자의 모델로 제시됩니다. 정보배 목사는 환상이 단순한 초자연적 경험을 넘어 자기 성찰과 사명 확인의 도구임을 설명하고, 에스겔이&amp;nbsp;&lt;strong&gt;폐역한 시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말씀을 선포&lt;/strong&gt;했음을 부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현대인들이&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와 영적 분별력&lt;/strong&gt;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발견하고, 천국에서의 상급을 예비하는&amp;nbsp;&lt;strong&gt;종말론적 신앙&lt;/strong&gt;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ChatGPT Image 2026년 8월 17일 오전 09_29_4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3c637cade106b17ade1ee0c65749f92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7d52ddb93e03fe5603ad354a67dc9a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72ae8873a76c9fecedaaff5189cdcb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c30c0b4f9c23b4e4814c93952d311c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241dac66160ba39ea73c9d58a5ff5b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e6a1827f9c238142ce709ff6b1505b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3a7e163b5ab772700e78722883a616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b86bb4440d6099979bd5b774108e09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e314a86825206c93b4e17ac7b1fa16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8540c34ce8d12419b1adeae97bcb419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afeb1911855f72b1ac4364f2ca4980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2a72d4a7eeb6c636f29949dfbf6d2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s_Heavenly_Blueprint1.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7a36e016192ef489cd8b9e1a61dea12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에스겔_환상과_사명의_파수꾼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ee0af20c80e3dc1b9d45eccecc6adf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a59f4c52da819c3f0e4fb76f7439d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3c26aacde5a92688e55ae96c307c72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166cf0a6e9144a250e9c7409bd13d8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546133257489a5da989a09085797a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349f2a9fc6eb81ad42c0e1e816bdab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0658a150ed34d21dcae20130d8df40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658f1d0dfee4c4926e005943a5c4f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0864269b454e1d74e01c45dbe31aa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423f5cc6300f4230c3d734bd1196f5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a35019e69c5d9822bc7f1829437bfd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5)] Ezekiel_The_Overcome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92/264/68de5baeaf6ed62aadbe4d6f3ecb565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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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4392#comment</comments>			<pubDate>Sun, 16 Aug 2026 20:59:53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58)] 이사야의 예언(18) 이사야,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예언하다(사14:12~15)_2026-08-0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3968</link>
				<description>&lt;p&gt;2026-08-09(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58)] 이사야의 예언(18) 이사야,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예언하다(사14:12~15)_&lt;/strong&gt;&lt;/span&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4JbV1YRIW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4JbV1YRIW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5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이사야의 예언 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예언하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사 14장 12-15절)&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성경에는 신약성경처럼 귀신이라는 명칭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뱀과 리워야단과 라합과 용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연구하며 깨달은 바에 따르면, 영물로서 뱀들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꾈 때 그의 회유에 동참했던 천사들이다. 그들도 원래 날개를 지녔지만 심판을 받아 날개를 잃고 배로 기어 다니며 사람의 육체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귀신들은 언제 하늘에서 쫓겨났는가?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 곧 사탄 마귀는 본래 어떤 존재였으며, 그는 왜 하늘에서 쫓겨나 심판을 받게 되었는가? 천사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지음 받은 그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었는가? 또한 그는 어떻게 하늘의 천사들 삼분의 일을 미혹하여 자기 부하로 삼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알지 못하면 우리도 사탄이 덧칠해 놓은 유혹과 미끼에 빠져 그의 교만에 동조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14장은 직접적으로는 장차 일어날 바벨론 왕의 타락과 심판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 왕을 묘사하는 말씀 속에는 땅에서만 일어난 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사건이 함께 들어 있다. 에스겔 28장도 두로 왕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동산 에덴과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과 하나님의 성산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두 본문을 함께 보면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의 교만한 모습을 통하여 사탄의 타락과 심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에스겔 28장은 장차 두로 왕에 대한 슬픈 노래의 예언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에덴동산과 기름부음을 받았던 그룹천사라고 말하고 있어, 이 본문 역시 하늘에서 되어진 일들을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그룹천사였던 사탄은 범죄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스스로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피조물이면서 섬기는 종으로 지음 받았으면서도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천사들 위에 자기 보좌를 두고, 천상 회의의 산에서 왕 노릇하며, 마침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만은 오늘도 영적 우월감, 비판과 판단, 권위에 대한 거역,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혈기와 분노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의 타락을 아는 것은 먼 옛날의 비밀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의 교만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와 에스겔의 예언을 통하여 사탄이 어떻게 타락하고 심판을 받았으며, 우리가 교만의 영을 이기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amp;lsquo;아침의 아들 계명성&amp;rsquo;은 누구이며 왜 루시퍼라 불리게 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활동하던 기원전 700년경에는 앗수르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신바벨론 제국은 아직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고대 바벨론은 제1왕조의 제6대 함무라비 시대에 흥왕했다가 쇠잔했으며, 이사야의 예언으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뒤 신바벨론이 다시 일어났다. 훗날 느부갓네살 왕 때에 막강한 힘을 떨치며 여러 민족을 압제했다. 이사야는 그 제국이 일어나기도 전에 바벨론 왕이 강포와 교만으로 높아졌다가 패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바벨론 왕을 이사야 선지자는 &amp;ldquo;아침의 아들 계명성&amp;rdquo;이라고 칭했다(사 14:12). 히브리어 본문의 어순을 따르면 &amp;lsquo;헬렐 벤 샤하르&amp;rsquo;이며, 히브리어로는 &amp;lsquo;הֵילֵל בֶּן־שָׁחַר&amp;rsquo;이다. 여기서 &amp;lsquo;헬렐&amp;rsquo;은 빛나는 자 또는 새벽별을 가리키고, &amp;lsquo;벤 샤하르&amp;rsquo;는 새벽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체 표현은 &amp;lsquo;새벽의 아들, 빛나는 별(새벽별, 샛별, 금성)&amp;rsquo;이라는 뜻을 지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시퍼는 사탄의 본래 고유 이름은 아니다. 주후 405년경 제롬이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편찬하면서 &amp;lsquo;헬렐&amp;rsquo;을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 &amp;lsquo;루키페르&amp;rsquo;로 옮겼고, 이것이 킹제임스성경에 &amp;lsquo;Lucifer(루시퍼)&amp;rsquo;로 들어가면서 사탄의 이름처럼 알려졌다. 그러므로 이번 설교 본문의 직접적인 대상은 장차 왔다가 멸망으로 치닫게 될 교만한 바벨론 왕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그 왕에게 적용된 하늘의 언어는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의 타락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계명성(루시퍼)은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고 북극 집회의 산에 앉아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곳은 높은 보좌가 아니라 스올의 맨 밑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했다(사 14:12-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이사야는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고 땅에 찍혀질 것이며 스올의 맨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고로 그가 높아지려 했던 의도와 하나님께서 낮추신 결과가 선명하게 대조된다고 하겠다. 피조물이 자기 자리를 높일수록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만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벨론 왕의 몰락과 사탄의 타락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4:13-15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lt;/span&gt;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만약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이러한 말씀을 바벨론 왕에게만 적용하거나 우연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은 땅의 왕에게 선포된 역사적 심판 속에서 하늘의 반역자에게 내릴 영적 심판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로 계명성(루시퍼)은 바벨론 왕을 가리키면서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예언적 표상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의 예언은 어떻게 사탄의 타락을 보여 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사탄의 타락 과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문이 있다고 그것은 두 곳이다. 하나는 이사야 14장이요 또 하나는 에스겔 28장이다. 이사야는 바벨론 왕을, 에스겔은 두로 왕을 향해 심판을 선포한다. 그런데 두 왕은 공히 부와 권력과 지혜로 자신이 높아지자 여러 민족을 억압하고 자신을 신처럼 여겼다. 그러나 이 예언의 언어는 지상의 왕의 교만을 넘어 하늘에서 시작된 반역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두로 왕은 마음이 교만하여 자신이 신이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그가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그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겔 28: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에스겔은 사탄의 화신인 두로 왕에 대해 어떤 예언을 하였는가? 에스겔은 그를 향한 슬픈 노래를 지어부를 때에 이렇게 말했다. &amp;quot;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amp;quot;고 말이다(겔 28:12). 더구나 그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거처를 가지고 있었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되었으며,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으로서 하나님의 성산을 왕래했다고 한다(겔 28:12-14).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은 보통 사람인 두로 왕의 생애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12-14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lt;/span&gt;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은 사탄의 성품을 땅에서 되풀이해서 보여준 왕들이라고 하겠다. 즉 바벨론 왕의 높은 보좌에 대한 욕망과 두로 왕의 신적인 자만은 사탄이 품었던 교만을 그대로 사람의 왕들 가운데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와 에스겔의 이러한 예언은 지상의 악한 통치자에 대한 심판과 그 배후 사탄에 대한 심판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악의 화신인 바벨론 왕과 두로왕은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건 이사야 24장부터 27장에 등장하는 &amp;#39;이사야의 소묵시록&amp;#39;에 답이 있다. 거기에는 악의 무리들이 층위별로 나타난다. 첫째는 사탄과 그 졸개인 귀신들이 있고, 둘째는 그들을 추종하는 악한 왕들이며, 셋째는 그 왕들의 통치 아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악의 우두머리뿐 아니라 그의 뜻을 따라 강포를 행한 왕들과 악인들까지 함께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우리 성도들은 바벨론과 두로의 패망을 역사적 사실로만 읽지 않고, 교만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사탄의 기원과 종말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 교만을 받아들여 남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우리들도 같은 패망의 길에 갈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완전한 지혜&amp;middot;아름다움&amp;middot;지위를 가진 천사장은 왜 교만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이 교만해진 배경은 그가 부족하게 지음 받았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피조물로서 거의 완전하게 지음 받은 것이 교만의 빌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천사인 계명성이 그처럼 교만해진 것일까? 에스겔 선지자는 그가 교만해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그는 완전한 도장이라 불릴 만큼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겔 28:12). 그가 창조된 받던 날부터 모든 길에 완전했으나 마침내 그 안에서 불의가 드러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는 매우 지혜롭고 총명했기 때문이다(겔 28:12). 그는 자신이 다니엘보다 지혜로워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고 자랑했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고 금과 은을 쌓았으며, 큰 지혜와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자 그 재물로 말미암아 마음이 교만해진 것이다(겔 28: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3-5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무역이란 단순히 그가 물건을 사고판 일을 넘어, 말을 주고받으며 세력을 넓힌 일을 보여 준다. 그는 뛰어난 말의 수완으로 거짓을 퍼뜨리고 천사들을 속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신다는 식의 불의를 유통하여 하늘의 천사들 삼분의 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지혜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쓰이지 않고 거짓과 자기 확대에 쓰일 때 이렇듯 불의한 무역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는 온전히 아름답게 창조&lt;/strong&gt;되었기 때문이다(겔 28:12).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을 비롯한 아홉 가지 보석과 황금으로 그는 단장되었으며, 그가 지음을 받던 날 소고와 비파가 준비된 채 있었다(겔 28:13). 이렇듯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선물이지만 계명성은 그것을 자기 영광의 근거로 삼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그의 신분과 지위가 천사들 가운데 가장 높았&lt;/strong&gt;기 때문이다(겔 28:13-14).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상징적으로 갖추었으며, 하나님의 처소를 지키는 덮는 그룹이었다(겔 28:14). 또한 예배를 담당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별도의 처소까지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는 맡겨진 자리를 섬김의 자리로 보지 않고 왕 노릇할 발판으로 삼아 타락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그의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그의 지혜를 더럽힌 것이다. 그의 무역이 많아지자 그는 강포로 가득했고 그가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천국에 있는 에덴동산인 성산에서 쫓아내고 말았다(겔 28:1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15-17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인 은사들과 지혜 그기고 아름다움과 높은 지위 자체가 그 사람의 죄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창조주께 받은 선물임을 잊고 자기 소유와 공로로 여긴 데에 있다. 그러나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받은 것이 많다는 이유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면 사탄이 걸었던 타락의 길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사탄이 품은 세 가지 교만은 무엇이며 천사 3분의 1은 어떻게 미혹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사탄의 이러한 교만은 어떻게 범죄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주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첫째, 그는 하나님의 별들 곧 천사들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겠다&lt;/strong&gt;고 했다(사 14:13). 보좌가 없는 섬기는 영이 그만 천국에서 자기 보좌를 가지려고 시도한 것이다. 천사는 아무리 능력이 크고 지위가 높다고 할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뜻을 받드는 종일 뿐인 것이지(시 103:20-22), 자기의 보좌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히 1: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03:20-22&amp;nbsp;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amp;nbsp;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다윗이 지었던 시편의 말씀도 천사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그 뜻을 받드는 천군이라고 알려준다(시 103:21). 그러므로 천사의 영광은 자기 뜻을 세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수종드는 데 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얻을 후사들인 우리 성도들까지 섬기는 존재가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천사로 지음받았던 사탄은 자신에게 주어진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천사들 위에 군림하려 했기에 스스로 타락하고 말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는 북극 집회의 산에 앉겠다&lt;/strong&gt;고 했다(사 14:13). 이는 최고급 천사들이 모이는 천상 회의에서 스스로 왕 노릇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에서 하나님의 처소를 지키는 그룹의 지위를 주셨으나 그는 허락받은 위치를 떠나 회의의 주재자가 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의 하나인 유다서에 보면, 자기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유 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유 1:6 또 자기 지위(처음)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개최하시는 천상 회의의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다. 욥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나타나서 회의하는 장면이 나온다(욥 1:6-7). 열왕기상에서는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하늘의 만군이 좌우에 서 있는 가운데 아합에 관한 일이 논의된다(왕상 22:19-22). 거기에 한 영인 사탄이 자신이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하기 위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다고 제안한다. 한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서 재판하신다고 언급하고 있고(시 82:1),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말씀을 들은 자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이 나온다(렘 23:18). 더욱이 B.C.600년경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를 대적하는 사탄의 모습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탄이 비록 신분이 높은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그 역시 천상회의의 한 구성원으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 산 위에 앉아서 회의를 주재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늘에 속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이 땅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amp;#39;하나님의 종&amp;#39;이라 칭하면서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실 지위를 바라보며 오늘의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lt;/strong&gt;고 했다(사 14:14).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려 한 죄가 된다. 게명성은 천사들 위에 서고 회의를 지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까지 마음 먹었다. 자기 위치를 망각한 교만으로 인하여 그의 반역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계명성은 자신이 혼자 이 야망을 품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불의한 무역, 곧 거짓말과 미혹의 말을 통하여 여러 다른 천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에 따르면, 큰 붉은 용이 자신의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모습이 나온다(계 12:3-4). 이때 별들은 사탄의 거짓에 속아 처음 지위와 처소를 버린 천사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기 직전에 계명성이 천국에 있는 다른 천사들을 꼬드기어 이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이때 계명성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귀신들(다이모니아)이 된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3-4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귀신들은 이렇게 사탄에게 동조한 천사들이었다. 그들이 사탄의 무역에 속아서 그의 부하가 되어 이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들은 자기 왕인 계명성을 따라 교만과 거짓과 반역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기원을 알려면 사탄의 불의한 무역과 천사 삼분의 일의 동조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능력 이전에 거짓말에 있으며, 무역은 그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게 하는 회유책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리워야단과 용은 사탄과 그 세력의 심판을 어떻게 드러내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소묵시록(사 24-27장)은 사탄의 무리들을 리워야단과 용의 모습으로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는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과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사 27: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필자는 이 장면에서 육지의 왕 바벨론과 바다의 왕 두로를 통하여 사탄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본다. 육지에서 활동하는 리워야단과 바다의 용은 사탄의 세력을 대표하며, 종말에는 사탄의 이인자(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와 삼인자(땅에서 올라오는 둘째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계13:1-10, 13:11-18). 이들은 사탄의 뜻을 실행하는 화신들이며 궁극적으로 사탄 자신에게 속한 세력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시편 74편도 하나님께서 바다의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고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부수시는 일을 노래하고 있음을 본다(시 74: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74:13-14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욥기 41장은 리워야단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시 피조물 가운데 으뜸으로서, 베헤못(욥 40:15)과 리워야단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다. 이때 리워야단은 사람이 낚시로 끌어낼 수 없고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없는 존재라고 말씀하신다(욥 41:1). 그리고 작살이나 칼로 쉽게 뚫을 수 없고 늠름한 체구를 지녔다고 한다(사 41:2, 12). 그래서 한 때 성경번역자들은 이러한 리워야단을 &amp;#39;악어&amp;#39;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악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견고한 비늘이 서로 빽빽하게 붙어 있어 바람도 통하지 않고 나눌 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욥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욥 41:15&amp;nbsp;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그것이 재채기하면 빛을 발하고 눈은 새벽의 눈꺼풀처럼 보인다고 했다(욥 41:18). 그리고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과 불꽃이 나오고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며 입김은 숯불을 지핀다고 했다(욥 41:19-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욥 41:18-21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 세상에는 그것과 비교할 것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는 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묘사는 오늘날의 악어나 단순한 뱀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리워야단이 큰 뱀이나 악어 모양을 한 공룡과 같은 존재라고 본다. 욥의 시대 곧 아브라함 시대에도 그러한 거대한 동물이 이 땅에 살았다고 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리워야단이 아무리 강해도 창조주보다 강하지 않는 존재이다. 사람의 도구로 뚫기 어려운 비늘도 하나님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두려움 없는 왕처럼 군림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의 머리를 깨뜨리고 마침내 죽이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리워야단과 용의 심판 곧 악한 영들의 최후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말한다*사 27:1). 지금은 사탄의 세력이 왕들과 악인들을 움직여 강포를 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뱀과 용과 그들을 따르는 모든 세력을 한꺼번에 심판하실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탄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의 위세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의 칼과 최종 승리를 믿고 강력하게 대적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사탄과 귀신들은 어떤 세 단계의 추락과 최후 심판을 받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교만하여 하나님의 위치를 넘보려 했던 계명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가? 그에 대한 추락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진행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그를 하늘들에서 추방할 것&lt;/strong&gt;이다(사 14:12). 왜냐하면 하나님의 동산 에덴과 성산에 있던 자기 처소에서 불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탄이 하늘에서 내어쫓기면서 그를 따르던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추방을 당한다. 이러한 일은 구약시대 말라기 선지자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랬다. 계명성은 가장 높은 곳에 자기 보좌를 세우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처소를 잃고 하늘에서 추방당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어서 그는 땅 위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사 14:12). 그러자 그때부터는 계명성은 이 세상의 임금(통치자)로서 활동하게&lt;/strong&gt;&amp;nbsp;되었던 것이다(요 12:31, 14:30, 16:11). 이때부터 사탄과 귀신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사람을 미혹하고 참소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욥기서에 보면 사탄이 땅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하나님의 법정에 나아가 욥을 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는 아직 하늘에서 쫓겨난 상태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B.C.2000년경). 스가랴서에서도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도 역시 아직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난 시기가 아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는 무저갱에 갇히게 될 것이다(사 14:15).&lt;/strong&gt;&amp;nbsp;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시켜 용과 그의 사자들을 대항하여 싸워 승리케 함으로써 그때 그를 무저갱의 감옥에 쳐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년왕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날 일천년이 차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계명성을 잠깐 풀어줄 날이 오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묵시의 진행을 따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탄이 무저갱에 갇혔고, 그의 부하인 귀신들은 땅 위로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미가엘로 추정되는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내려와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인 용을 붙잡아 무저갱에 던져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므로 지금의 무저갱은 무저갱은 사탄이 형벌받는 장소가 아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완성되면,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거기에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때에 첫째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둘째 짐승인 거짓 선지자도 같이 불못에 산 채 던져져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계 20: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0[직역]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에 역시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던져져서 그들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탄의 역사는 상승의 역사가 아니라 끝없는 추락의 역사다. 하늘의 처소에서 땅으로, 땅에서 무저갱으로, 마침내 불못으로 떨어진다.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는 마음이 결국 그를 가장 낮은 구덩이로 끌고 갈 것이다. 그의 말을 믿고 지위와 처소를 떠난 천사들도 역시 이 큰 날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이 타임라인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탄의 교만에 동조하고 그의 거짓과 지배욕을 받아들이면 그가 받을 심판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자기 자리에서 충성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사탄의 운명에서 벗어나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교만의 영을 이기고 천국의 보좌와 면류관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란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기 때문이다(잠 16: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마귀가 인간에게 주입하는 교만함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자기가 가진 지혜와 은사와 능력 때문에 남보다 뛰어나다는 영적 우월감&lt;/strong&gt;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지배하려 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잊게 된다면, 자신의 아름다움과 지혜 때문에 오히려 교만해진 사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자신을 판단자의 자리에 세운&lt;/strong&gt;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판단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피조물이지 최종 심판주가 아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자기 마음의 교만을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자기보다 권위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lt;/strong&gt;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가 꼭대기에 서서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다스리려 한다. 이는 천상 회의의 산 위에 앉으려 했던 사탄의 죄와 같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범위를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자기 힘과 지식과 경험과 판단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혈기와 분노를 낸&lt;/strong&gt;다는 것이다. 서운함을 품고 상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높이는 순간 교만은 분노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혈기가 올라올 때 단지 감정을 누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뿌리에 있는 자기 높임을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amp;#39;보좌 자리&amp;#39;는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알고 그 안에서 충성한 사람에게 주시는 큰 상이다. 그 다음은 &amp;#39;면류관&amp;#39;이며 그 다음은 &amp;#39;천국 집&amp;#39;이다. 그러나 그 어떤 천사들에게도 보좌자리와 면류관과 개인 집이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복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라는 신분을 가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뜻과 경륜을 이루며 충성한 사람에게 왕적 지위가 주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럴려면 적어도 우리는 3가지 정도는 실천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사람을 구원하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주신 목적은 사람 위에 군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경륜을 이루게 하려는 데 있다.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떠나 사람을 끝까지 섬기셨듯이 우리도 낮아져 영혼을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파악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자기에게 없는 자리를 탐내고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성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와 은사를 부러워하기보다 자기 몫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가졌어도 여전히 피조물이라는 위치를 망각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분께 감사하며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구해야 한다. 이 경계를 벗어나 자기를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놓는 자가 이단의 괴수가 되고 말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만을 이기는 길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감사히 받고, 그 신분을 자기 자랑이 아니라 섬김의 책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 지위를 알고도 넘어서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것이 참된 겸손이다. 그렇게 충성한 사람에게 보좌와 면류관과 천국 집이 주어질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와 에스겔이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을 통하여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어떻게 예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amp;lsquo;아침의 아들 계명성&amp;rsquo;은 직접적으로 교만한 바벨론 왕을 가리키지만,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나님의 별 위에 자리를 높이려 했다는 묘사는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를 드러낸다. 루시퍼는 그의 본래 고유 이름이 아니라 히브리어 &amp;lsquo;헬렐&amp;rsquo;을 라틴어로 옮긴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은 완전한 도장처럼 지음 받았고 지혜와 총명이 충족했으며 온전히 아름다웠다. 아홉 가지 보석으로 단장되고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으며, 기름 부음을 받은 지키는 그룹으로 하나님의 성산을 왕래했다. 그러나 받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자기 우월함의 근거로 삼자 아름다움이 마음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지혜를 더럽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의 교만은 세 가지 범죄로 나타났다. 천사들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려 했고, 천상 회의의 산에서 왕 노릇하려 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같아지려 했다. 그는 불의한 무역과 거짓말로 천사들 삼분의 일을 미혹하여 자기 부하로 만들었다. 자기 지위와 처소를 버린 천사들은 귀신의 무리가 되어 사탄의 뜻을 수행하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정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리워야단과 용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신다. 사탄은 하늘의 처소에서 땅으로, 땅에서 무저갱으로, 마침내 불과 유황 못으로 추락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 했던 교만이 그를 가장 낮은 곳으로 끌고 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사탄의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영적 우월감으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판단자의 자리에 서서 비판하거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혈기와 분노를 내면 사탄의 성품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이 피조물이며 구원받은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보좌와 면류관과 집은 교만하게 빼앗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알고 사람을 구원하며 마귀의 일을 멸하는 데 힘쓰고, 받은 은사와 달란트로 작은 일에 충성하며,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긴 사람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라는 신분을 자랑의 재료가 아니라 섬김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만의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충성해야 한다. 받은 지혜와 아름다움과 은사가 클수록 더 낮아지고, 모든 영광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지키며 예수님처럼 끝까지 겸손히 섬기고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9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 14장의 예언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바벨론 왕의 멸망&lt;/strong&gt;&amp;nbsp;뒤에 숨겨진&amp;nbsp;&lt;strong&gt;사탄 루시퍼의 타락과 심판&lt;/strong&gt;에 관한 영적 비밀을 파헤친 설교문입니다. 본문은 장차 나타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보였던 극도의 교만이 사실은&amp;nbsp;&lt;strong&gt;하나님과 같아지려 했던 타락한 천사&lt;/strong&gt;의 속성을 투영하고 있음을 성경적 근거들을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계명성(루시퍼)의 추락 과정&lt;/strong&gt;을 설명하며, 피조물인 천사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을 때 맞이하게 된 비참한 결말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신앙인들이 영적 우월감이나 비판 같은&amp;nbsp;&lt;strong&gt;사탄의 교만&lt;/strong&gt;을 경계하고, 오직&amp;nbsp;&lt;strong&gt;회개와 겸손한 섬김&lt;/strong&gt;을 통해 바벨론 성이 아닌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권면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hatGPT Image 2026년 8월 10일 오전 08_14_5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765269b3577f13423e6fd0b60e32ffe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4c393f256c538a49c9975303ee3dcb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db6d84bc5dbcfa5b56f29393a53fe2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5cd7a1cce3a386baf5180a7819f65b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a5fc9b94c2f5e75b7044e1f02a69ef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0f5510506b65807d0be522adbea3a9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320da5777e0f3fc31c4802816fddcdf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d20b4306743fc2050c5fad1026c4ab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4243129439a83776e3eb99ecde7b8d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bc1c67ee1acc551ea5b13b32610068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c6ede0ce1cf0cb54c176a76258ba36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75dcf735e235b0125b5286b871c33d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12-repaint-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40aa63f0c3b5c4097f3057b4d50b00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Celestial_Blueprint-p13-repaint-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db6d42758172834b7befa565d286789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사탄의_타락과_3단계_심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ea91d6f478018df90b1601abd7ed6f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56e8645d177130c2a0e6744549ee07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914851bb7b9369a458377a3c0cd9437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f0e53f6a762be484d07ca98423b19d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84ad5456986d30b838b15a95a7485d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f9e601af5abdfe429634b9a2737568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048b6bdbf67ce8031c0b8ca733d003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d7ab168adf9d5335506d9ff97ba1e8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67d8059b15783a9ab47c9e175bf553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725d740b05051fdddedfa1400116db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1e12451829bf46a7f479d2f51ebedd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8efa1e3c8c5ce2b67d4662e3d77c54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8)] Spiritual_Forensic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68/263/3b4df8a0f85e867fecc52eb643178d7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5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이사야의 예언 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예언하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사 14장 12-15절)&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귀신들은 언제 하늘에서 쫓겨났는가?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 곧 사탄 마귀는 본래 어떤 존재였으며, 그는 왜 하늘에서 쫓겨나 심판을 받게 되었는가? 천사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지음 받은 그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었는가? 또한 그는 어떻게 하늘의 천사들 삼분의 일을 미혹하여 자기 부하로 삼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우리도 사탄이 덧칠해 놓은 유혹과 미끼에 빠져 그의 교만에 동조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14장은 직접적으로는 장차 일어날 바벨론 왕의 몰락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 왕을 묘사하는 말씀 속에는 땅에서만 일어난 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사건이 함께 들어 있다. 에스겔 28장도 두로 왕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동산 에덴과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과 하나님의 성산을 말한다. 두 본문을 함께 보면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의 교만한 모습을 통하여 사탄의 타락과 심판이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의 범죄는 한마디로 &amp;#39;교만&amp;#39;이다. 그는 피조물이자 섬기는 종으로 지음 받았으면서도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망각했다. 천사들 위에 자기 보좌를 두고, 천상 회의의 산에서 왕 노릇하며, 마침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다. 이 교만은 오늘도 영적 우월감, 비판과 판단, 권위에 대한 거역,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혈기와 분노로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사탄의 타락을 아는 것은 먼 옛날의 비밀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의 교만을 발견하고 회개하기 위한 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와 에스겔의 예언을 통하여 사탄이 어떻게 타락하고 심판을 받았으며, 우리가 교만의 영을 이기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바벨론의 역사와 상징은 왜 사탄의 타락 예언을 이해하는 열쇠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벨론의 역사는 창세기의 바벨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10장에는 니므롯이 시날 땅의 바벨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일이 나오고, 11장에는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탑과 성을 쌓아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한 사건이 나온다. 성경이 니므롯을 바벨탑 건축자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두 본문은 바벨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권력과 자기 높임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로 자라났는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는 수메르와 아카드와 여러 왕조가 흥망했고, 기원전 18세기경 함무라비 시대의 고바벨론이 강성해졌다.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사회의 질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이 지역에서 발전한 육십진법은 한 시간을 60분, 원을 360도로 나누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바벨론의 천문학과 문화는 후대 세계에 널리 전해졌다. 바벨론은 군사 제국일 뿐 아니라 세상 문명을 조직하고 확산한 중심지이기도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바벨론이 쇠잔한 뒤 여러 왕조가 이어졌고, 마침내 신바벨론이 다시 일어났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기원전 700년 무렵에는 앗수르가 세계를 지배했고 신바벨론은 아직 두드러지게 나타난 제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약 120년 뒤 느부갓네살 2세가 강력한 왕으로 등장했다. 그는 여러 민족을 정복했고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으며 유다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갔다.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뽑아 쇠사슬로 묶어서 데려간 사건은 바벨론 권력의 잔혹성을 잘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이 강성해지기도 전에 그 흥망을 이사야에게 보여 주셨다. 이사야 13장은 바벨론의 심판을 예고하고, 14장은 포로 생활의 슬픔과 곤고와 고역에서 이스라엘을 놓아주실 날에 바벨론 왕을 향해 조롱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압제자가 그치고 강포한 성이 패했다는 선언이다(사 14: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4:3-4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경에서 &amp;#39;바벨&amp;#39;론은 역사적 제국인 동시에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체제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의 큰 성 바벨론은 사치와 음행과 권력에 취하여 성도들의 피를 흘리는 도성이다. 세상의 쾌락과 욕망을 사랑하고 믿음을 세속의 가치와 바꾼 사람들은 그 성의 정신에 속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재앙을 받지 않도록 거기서 나오라고 하신다(계 18: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벨론의 반대편에는 &amp;#39;새 예루살렘&amp;#39;이 있다. 바벨론이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세우는 도성이라면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가 거하는 하나님의 도성이다. 세상의 문화 자체를 모두 악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성공과 쾌락과 권세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바벨론의 정신을 분별해야 한다. 역사 속 바벨론 왕의 교만을 알아야 그 배후에 있던 사탄의 자기 높임을 볼 수 있고, 오늘 내 삶에 스며드는 바벨론의 유혹도 알아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계명성은 왜 바벨론 왕과 사탄 마귀를 동시에 가리키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구약에서 사탄의 타락 과정&lt;/strong&gt;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문은 &lt;strong&gt;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바벨론 왕을, 에스겔은 두로 왕을 향해 심판을 선포한다. 두 왕은 부와 권력과 지혜로 높아져 여러 민족을 억압하고 자신을 신처럼 여겼다. 그러나 예언의 언어는 지상의 왕을 넘어 하늘에서 시작된 반역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에스겔 선지자에 따르면, 두로 왕은 마음이 교만하여 자신이 신이며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셨다(겔 28: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에스겔은 두로 왕을 향한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를 때에, 그가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했다. 더구나 그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되었으며,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으로서 하나님의 성산을 왕래했다고 한다(겔 28:12-14). 이 표현은 보통 사람인 두로 왕의 생애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12-14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은 사탄의 성품을 땅에서 되풀이한 왕들이다. 바벨론 왕의 높은 보좌와 두로 왕의 신적 자만은 사탄이 품었던 교만을 역사 속에 드러냈다. 이사야와 에스겔의 예언은 지상의 악한 통치자에 대한 심판과 그 배후 사탄에 대한 심판을 동시에 아우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두 예언의 연결을 알아본다. 바벨론과 두로의 패망을 역사적 사실로만 읽지 않고, 교만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사탄의 기원과 종말을 본다. 동시에 그 교만을 받아들여 남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사람도 같은 패망의 길에 선다는 경고를 듣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amp;lsquo;헬렐&amp;rsquo;과 &amp;lsquo;루시퍼&amp;rsquo;는 무슨 뜻이며 그 명칭은 어떻게 전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사야의 사탄마귀에 대한 예언의 중심을 보면 &amp;ldquo;아침의 아들 계명성&amp;rdquo;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히브리어로 보면, &amp;lsquo;헬렐 벤 샤하르&amp;rsquo;이며, 히브리어로는 &amp;lsquo;הֵילֵל בֶּן־שָׁחַר&amp;rsquo;이다. &amp;lsquo;헬렐&amp;rsquo;은 빛나는 자 또는 새벽별을 가리키고, &amp;lsquo;벤 샤하르&amp;rsquo;는 새벽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체 표현은 &amp;lsquo;새벽의 아들, 빛나는 별(샛별, 새벽별, 금성)&amp;rsquo;이라는 뜻을 지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시퍼는 사탄의 본래 고유 이름이 아니었다. 주후 405년경 제롬이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편찬하면서 &amp;lsquo;헬렐&amp;rsquo;을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 &amp;lsquo;루키페르&amp;rsquo;로 옮겼고, 이것이 킹제임스성경에 &amp;lsquo;Lucifer&amp;rsquo;로 들어가면서 사탄의 이름처럼 알려졌다. 본문의 직접 대상은 교만한 바벨론 왕이지만, 그 왕에게 적용된 하늘의 언어는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의 타락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amp;#39;계명성&amp;#39;은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고 북극 집회의 산에 앉아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곳은 높은 보좌가 아니라 스올의 맨 밑이었다(사 14:12-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사야는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 찍히며 스올의 맨 아래로 내려갈 것을 예언하였다. 그가 높아지려 했던 의도와 하나님께서 낮추신 결과가 선명하게 대조된다. 피조물이 자기 자리를 높일수록 하나님께서는 그 교만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벨론 왕의 몰락과 사탄의 타락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3-15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없으면 이 말씀을 바벨론 왕에게만 한 말이나 우연한 표현으로 여긴다. 그러나 믿음은 땅의 왕에게 선포된 역사적 심판 속에서 하늘의 반역자에게 내릴 영적 심판을 함께 본다. 계명성은 바벨론 왕을 가리키면서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를 드러내는 예언적 표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리워야단과 용은 사탄&amp;middot;귀신과 종말의 심판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소묵시록(24-27장)은 사탄의 무리를 리워야단과 용의 형상으로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는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과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실 것이라고 하셨다(사 27: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장면에서 육지의 왕 바벨론과 바다의 왕 두로를 빗대어 본다. 육지에서 활동하는 리워야단과 바다의 용은 사탄의 세력을 대표하며, 종말에는 사탄의 이인자인 첫째 짐승 곧 적그리스도와 삼인자인 둘째짐승으로서 거짓 선지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사탄의 뜻을 실행하는 화신들이며 궁극적으로 사탄 자신에게 속한 세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편 74편도 하나님께서 바다의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고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부수신 일을 노래하고 있다(시 74: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74:13-14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욥기 41장은 리워야단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 준다. 사람이 낚시로 끌어낼 수 없고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없는 존재이며, 견고한 비늘이 서로 빽빽하게 붙어 있어 바람도 통하지 않고 나눌 수도 없다. 작살이나 칼로 쉽게 뚫을 수 없고 늠름한 체구를 지녔다고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욥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것이 재채기하면 빛을 발하고 눈은 새벽의 눈꺼풀처럼 보인다. 입에서는 횃불과 불꽃이 나오고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며 입김은 숯불을 지핀다고 했다(욥 41:18-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욥 41:18-21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상에는 그것과 비교할 것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는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묘사는 오늘날의 악어나 단순한 뱀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리워야단이 큰 뱀이나 악어 모양을 한 공룡과 같은 존재였고, 욥의 시대 곧 아브라함 시대에도 그러한 거대한 동물이 땅에 살았다고 본다. 이는 욥기 41장에 기록된 리워야단에 대한 묘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리워야단이 아무리 강해도 창조주보다 강하지 않다. 사람의 도구로 뚫기 어려운 비늘도 하나님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두려움 없는 왕처럼 군림해도 하나님께서 그 머리를 깨뜨리고 마침내 죽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리워야단과 용의 심판은 악한 영들의 최후가 이미 결정되었음을 보여 준다. 지금은 사탄의 세력이 왕들과 악인들을 움직여 강포를 행하지만, 하나님은 뱀과 용과 그들을 따르는 모든 세력을 한꺼번에 심판하신다. 성도는 그들의 위세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의 칼과 최종 승리를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지혜&amp;middot;아름다움&amp;middot;높은 지위를 받은 사탄은 왜 교만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이 교만해진 배경은 그가 부족하게 지음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피조물로서 거의 완전하게 지음 받은 것이 교만의 빌미가 되었다. 첫째, 그는 완전한 도장이라 불릴 만큼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지음을 받던 날부터 모든 길에 완전했으나 마침내 그 안에서 불의가 드러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는 매우 지혜롭고 총명했다. 자신이 다니엘보다 지혜로워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고 자랑했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고 금과 은을 쌓았으며, 큰 지혜와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자 그 재물로 말미암아 마음이 교만해졌다(겔 28: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3-5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무역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판 일을 넘어 말을 주고받으며 세력을 넓힌 일을 보여 준다. 그는 뛰어난 말의 수완으로 거짓을 퍼뜨리고 천사들을 속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신다는 식의 불의를 유통하여 하늘의 천사들 삼분의 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지혜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쓰이지 않고 거짓과 자기 확대에 쓰일 때 불의한 무역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는 온전히 아름답게 창조되었다.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을 비롯한 아홉 가지 보석과 황금으로 단장되었고, 그가 지음을 받던 날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다. 아름다움과 영광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선물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기 영광의 근거로 삼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그의 신분과 지위가 천사들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상징적으로 갖추었으며, 하나님의 처소를 지키는 덮는 그룹이었다. 예배를 담당하는 천사장의 위치와 별도의 처소가 주어졌으나, 그는 맡겨진 자리를 섬김의 자리로 보지 않고 왕 노릇할 발판으로 삼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그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그의 지혜를 더럽혔다. 무역이 많아지자 강포가 가득했고 그가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성산에서 쫓아내셨다(겔 28:1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8:15-17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와 지혜와 아름다움과 높은 지위 자체가 죄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창조주께 받은 선물임을 잊고 자기 소유와 공로로 여긴 데 있다.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받은 것이 많다는 이유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면 사탄이 걸었던 타락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사탄의 세 가지 야망과 세 단계의 추락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게 한다. 하늘에서 반역한 영들이 쫓겨났듯이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고 마귀의 일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표지라고 하셨다(마 12: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데 있고, 예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요일 3:8, 히 2:14). 십자가와 부활로 원수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도 사람을 구원하고 악한 영의 일을 대적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공백기에 하늘의 천사들이 대규모로 떨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amp;ldquo;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amp;rdquo;는 예수님의 말씀도 함께 살핀다(눅 10:18). 이는 성경이 정확한 연대를 직접 기록한 사실이라기보다, 구약에는 드물던 귀신들의 활동이 복음서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영적 해석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의 교만은 세 가지 구체적인 범죄로 나타났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별들 곧 천사들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겠다고 했다. 보좌가 없는 섬기는 영이 자기 보좌를 가지려 한 것이다. 천사는 아무리 능력이 크고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뜻을 받드는 종이다(히 1: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편도 천사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그 뜻을 받드는 천군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천사의 영광은 자기 뜻을 세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수종드는 데 있다. 사탄은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천사들 위에 군림하려 했으므로 타락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는 북극 집회의 산에 앉겠다고 했다. 이는 최고급 천사들이 모이는 천상 회의에서 스스로 왕 노릇하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키는 그룹의 지위를 주셨으나 그는 허락받은 위치를 떠나 회의의 주재자가 되려 했다. 유다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유 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천상 회의의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다. 욥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나타난다. 열왕기상에서는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하늘의 만군이 좌우에 서 있는 가운데 아합에 관한 일이 논의된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서 재판하신다고 말하고,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말씀을 들은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여호와의 천사와 그를 대적하는 사탄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고 했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려 한 죄다. 천사들 위에 서고 회의를 지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 했다. 자기 위치를 망각한 교만이 반역의 절정에 이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은 이 야망을 혼자 품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불의한 무역, 곧 거짓말과 미혹의 말을 통하여 천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은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다. 별들은 사탄의 거짓에 속아 처음 지위와 처소를 버린 천사들을 가리킨다(계 12: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3-4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사탄에게 동조한 천사들이 그의 부하가 되어 귀신의 무리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기 왕을 따라 교만과 거짓과 반역에 가담했다. 그러므로 귀신의 기원을 알려면 사탄의 불의한 무역과 천사 삼분의 일의 동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능력 이전에 거짓말이며, 교만은 그 거짓을 받아들이게 하는 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의 추락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그는 하늘들에서 떨어졌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과 성산에 있던 자기 처소에서 불의가 드러나자 그를 따르던 천사들과 함께 쫓겨났다. 가장 높은 곳에 자기 보좌를 세우려 했지만 오히려 하늘의 영광스러운 처소를 잃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는 땅에 내던져져 이 세상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탄과 귀신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사람을 미혹하고 참소하는 일을 했다. 욥기에서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하나님의 법정에 나아가 욥을 참소했다. 스가랴서에서도 사탄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요 12:3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탄이 땅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와 동등한 왕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이며 허락된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다. 사람을 참소하고 미혹했지만 그 활동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늘에서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을 대항하여 싸웠다. 용과 그의 사자들이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얻지 못했고, 큰 용 곧 옛 뱀이며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가 땅으로 내쫓겼다(계 12:7-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묵시의 진행을 따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탄이 무저갱에 갇혔고, 그의 부하인 귀신들은 땅 위에서 오가며 활동한다고 정리한다. 계시록 20장은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내려와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인 용을 붙잡아 무저갱에 던져 넣는 장면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저갱은 최종 형벌의 끝이 아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완성되면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같은 불못에서 심판을 받는다(계 20: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의 역사는 상승의 역사가 아니라 끝없는 추락의 역사다. 하늘의 처소에서 땅으로, 땅에서 무저갱으로, 마침내 불못으로 떨어진다.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는 마음이 그를 가장 낮은 구덩이로 끌고 갔다. 그의 말을 믿고 지위와 처소를 떠난 천사들도 큰 날의 심판을 기다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네 가지 교만을 이기고 새 예루살렘의 상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만의 뿌리를 끊는 실제적인 길은 회개다. 받은 은사를 자기 공로로 여긴 것, 남을 판단한 것,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한 것을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로 악한 영의 통로가 닫히고 성령의 다스림이 확장되면, 남을 섬기는 일이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란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 16: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만은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자기가 가진 지혜와 은사와 능력 때문에 남보다 뛰어나다는 영적 우월감에 빠진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지배하려 한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임을 잊으면 아름다움과 지혜 때문에 교만해진 사탄의 길을 걷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자신을 판단자의 자리에 세운다. 자기 판단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피조물이지 최종 심판주가 아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자기 마음의 교만을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자기보다 권위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가 꼭대기에 서서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다스리려 한다. 이는 천상 회의의 산 위에 앉으려 했던 사탄의 죄와 같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범위를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자기 힘과 지식과 경험과 판단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혈기와 분노를 낸다. 서운함을 품고 상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높이는 순간 교만은 분노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혈기가 올라올 때 단지 감정을 누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뿌리에 있는 자기 높임을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보좌는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알고 그 안에서 충성한 사람에게 주시는 큰 상이다. 그 다음은 면류관이며 그 다음은 천국 집이다. 천사들에게는 보좌와 면류관과 개인 집이 주어지지 않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복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라는 신분만 자랑한다고 자동으로 보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뜻과 경륜을 이루며 충성한 사람에게 왕적 지위가 주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사람을 구원하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주신 목적은 사람 위에 군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경륜을 이루게 하려는 데 있다.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떠나 사람을 끝까지 섬기셨듯이 우리도 낮아져 영혼을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파악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자기에게 없는 자리를 탐내고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성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와 은사를 부러워하기보다 자기 몫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가졌어도 여전히 피조물이라는 위치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분께 감사하며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구해야 한다. 이 경계를 벗어나 자기를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놓는 자가 이단의 괴수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amp;lsquo;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amp;rsquo;로 감사와 회개와 결단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사탄이 자기 교만 때문에 타락했고, 영적 우월감과 비판과 권위 거부와 혈기와 분노가 교만의 열매임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동시에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인간을 끝까지 섬기신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는 교만하지 않고 우월의식에 빠지지 않으며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입술로만 겸손을 말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높이고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 결단을 증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교만의 영을 대적해야 한다. &amp;ldquo;내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망각하게 만드는 교만의 영들은 떠나가라.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깨어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될지어다&amp;rdquo;라고 명령하고 선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은 높은 자리에서 섬김을 버렸기 때문에 추락했지만, 예수께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모습으로 섬기셨기에 만유의 주로 높임을 받으셨다. 천국의 보좌는 사탄처럼 빼앗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충성하고 섬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다. 그러므로 더 높은 지혜와 은사와 지위를 받을수록 더욱 낮아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만을 이기는 길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감사히 받고, 그 신분을 자기 자랑이 아니라 섬김의 책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 지위를 알고도 넘어서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것이 참된 겸손이다. 그렇게 충성한 사람에게 보좌와 면류관과 천국 집이 주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와 에스겔이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을 통하여 사탄의 타락과 심판을 어떻게 예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amp;lsquo;아침의 아들 계명성&amp;rsquo;은 직접적으로 교만한 바벨론 왕을 가리키지만,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나님의 별 위에 자리를 높이려 했다는 묘사는 궁극적으로 사탄 마귀를 드러낸다. 루시퍼는 그의 본래 고유 이름이 아니라 히브리어 &amp;lsquo;헬렐&amp;rsquo;을 라틴어로 옮긴 말에서 유래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사탄의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영적 우월감으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판단자의 자리에 서서 비판하거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혈기와 분노를 내면 사탄의 성품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이 피조물이며 구원받은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보좌와 면류관과 집은 교만하게 빼앗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알고 사람을 구원하며 마귀의 일을 멸하는 데 힘쓰고, 받은 은사와 달란트로 작은 일에 충성하며,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긴 사람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라는 신분을 자랑의 재료가 아니라 섬김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만의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충성해야 한다. 받은 지혜와 아름다움과 은사가 클수록 더 낮아지고, 모든 영광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신분과 지위와 위치를 지키며 예수님처럼 끝까지 겸손히 섬기고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0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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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약 예언의 3가지 성취 유형이 들려주는 순종의 중요성(이사야 65:17~25)_2026-08-02(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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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6-08-02(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구약 예언의 3가지 성취 유형이 들려주는 순종의 중요성(이사야 65:17~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oMCjBic9O1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MCjBic9O1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낮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구약 예언의 3가지 성취 유형이 들려주는 순종의 중요성&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마다 그를 향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를 품고, 먼저 믿은 사람이 뒤에 믿을 가족에게 기대를 가지듯이 하나님께서도 개인과 민족에게 이루기 원하시는 뜻을 두신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알고 그것에 순종(順從, obedience)해야 한다. 열심히 살았으나 하나님의 기대와 다른 일을 하다가 생을 마친다면 정작 하나님이 원하신 열매를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세계의 민족 가운데 특별한 기대를 받고 태어난 두 민족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구약의 알파 민족인 이스라엘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시대의 오메가 민족인 대한민국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제사장 나라로 삼기 원하셨다(출 19:5-6).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복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에 불순종하였다. 그 결과 약속의 말씀 가운데 일부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으나,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통하여 이루기 원하셨던 영광스러운 모습은 온전히 나타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주신 예언(豫言, prophecy)이 실패한 것인가? 이사야서는 새 하늘과 새 땅, 천 년을 살 만큼 긴 수명, 전쟁 없는 예루살렘,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세상이 올 것을 약속한다(사 65:17-25). 에스겔은 성막보다 훨씬 큰 성전과 그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달마다 열매를 맺는 나무를 예언한다(겔 47:1-12). 하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이런 모습이 문자 그대로 온전히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成就, fulfillment)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lt;strong&gt;첫째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문자적이고 부분적인 성취&lt;/strong&gt;다. &lt;strong&gt;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 영적 성취&lt;/strong&gt;다. &lt;strong&gt;셋째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 이루어질 완전한 성취&lt;/strong&gt;다. 이 세 층위를 구별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억지로 지상 천년왕국에 집어넣거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했다고 오해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더 중요한 것은 예언의 성취 방식을 연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았으나 불순종함으로 그 약속의 영광을 직접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더 크고 영적인 방식으로 이루셨다. 그러므로 오늘 대한민국과 교회가 맡은 회개와 천국복음 전파 사명도 순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구약 예언이 문자적&amp;middot;영적&amp;middot;완전한 세 단계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살펴보고, 하나님의 기대를 받은 개인과 민족이 왜 끝까지 순종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구약 예언은 왜 성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성경은 단지 이스라엘의 옛이야기나 도덕적인 교훈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문을 통하여 개인이 어떻게 이기는 자와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지를 보여 준다. 출애굽기 이후에는 한 민족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어떤 기업을 얻는지를 펼쳐 보인다. 동시에 구약 전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약도와 지도다. 예수께서도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5:3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구약의 율법서와 역사서에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모형이 있다. 모세가 장대에 매단 놋뱀을 바라본 사람이 살아난 사건은 십자가에 달리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민 21:4-9).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에서 죽음이 넘어간 사건은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심판에서 건짐받는 일을 예표한다(출 12:1-14). 선지서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이 더 직접적으로 예언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은 100% 그대로 성취되었고 다만 재림에 관한 예언만이 성취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구약시대에 주어진 어떤 예언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한다. 특히 예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 5: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구약 율법을 가장 좁게 보면 &amp;#39;십계명&amp;#39;이고, 일반적인 의미로는 &amp;#39;모세오경&amp;#39;이며, 넓게는 &amp;#39;구약 성경 전체&amp;#39;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엄밀히 말해 모세오경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선지자가 귀신의 말을 받아서 전해 주었다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언의 성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예언의 대상과 시기와 성취 방식을 우리가 잘못 한정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과 달리 &lt;strong&gt;육적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예언 가운데&lt;/strong&gt;에는 &lt;strong&gt;지금까지 문자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것들&lt;/strong&gt;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본문이 바로 이사야 65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터인데, 그러면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 6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곳에서는 백 세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 부르고,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라고 할 만큼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셨다(사 65: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하나님의 성산에서는 해함과 상함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사 65: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모든 백성이 나무의 수명처럼 오래 살거나, 육식동물이 포악성을 버리고 풀을 먹으며, 예루살렘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가 없었다. 이사야 11장도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는 세상을 예언하고 있다. 또한 이사야 2장과 미가 4장을 보면, 여러 이방 민족들이 여호와의 산으로 몰려와 말씀을 배우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육적인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살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에스겔 40장부터 48장에 나오는 바 소위 &amp;#39;에스겔 성전&amp;#39;도 그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이 지은 것은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이었고, 그것을 확장한 것이 헤롯 성전일 뿐이다. 에스겔이 본 거대한 성전과 열두 지파의 영원한 땅 분배는 역사 속에서 문자적으로 한 번도 성취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냐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모든 예언을 한 민족과 한 시대와 한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가정하려는 데 있는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에스겔 42장 20절은 성전 구역의 사방을 각각 오백 척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의 한 척을 미터로 환산하면 한 변이 약 266미터가 되며, 성막의 뜰보다 약 오십 배 큰 규모가 된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성전을 세운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의 수치는 이 성전이 단순히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 도면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구약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일까? 보통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성취된다. 첫째는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둘째는 영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천국에서 성취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첫째 유형인 문자적 성취는 어디까지 이루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제 구약 예언 성취의 첫 번째 유형을 살펴보자. 이 유형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lt;strong&gt;문자적 성취(文字的 成就, literal fulfillment)&lt;/strong&gt;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뿐 아니라 정한 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사 2:1-4, 미 4:1-5). 이때 바벨론 귀환을 허락할 왕에 대해서 이사야는 고레스가 등장하기 150년 전에 이미 예언하였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그를 하나님의 목자요 기름부음 받은 도구로 지목했다. 그리하여 실제로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포로 귀환을 허락함으로써 이 예언은 실제 역사에서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사야와 동시대에 살았던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 2장의 예언과 똑같은 예언을 했으니, 마지막 날들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굳게 서고 민족들이 그곳으로 몰려오며 전쟁이 그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미 4:1-5). 그런데 이어지는 문맥을 보니, 시온의 딸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그곳에서 구원을 받고 원수의 손에서 속량될 것이라고 언급한다(미 4:10). 따라서 이 예언의 일차적인 성취는 먼 미래에 펼쳐질 지상의 천년왕국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와 귀환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하여 백성을 돌려보내시고 성전을 다시 세우게 하셨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사야 2:1~4에 나오는 예언은 사실 문자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귀환했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했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을 다시 찾고 제사를 회복했으며 민족 공동체를 재정비했다. 여기까지는 역사 속에서 눈에 보이게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이 영원히 끝나거나,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길을 배우는 단계에 이르는 것은 성취되지 못했다. 더욱이 예루살렘 백성이 천 년 가까이 사는 일도 없었으며, 동물의 포악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에스겔이 예언한 바 있는 거대 규모의 성전도 세워지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첫째 성취가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은 장차 이루어질 더 큰 일을 미리 보여 주는 실제 역사이자 맛보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예언의 모형을 세우셨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약속의 모든 차원이 육적인 이스라엘 안에서 그대로 펼쳐지지는 못했다. &lt;strong&gt;문자적 성취는 시작되었으나 그 민족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기대에 이르는 완성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이 사람의 순종 여부에 따라 사라진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lt;strong&gt;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민족에게 먼저 맡기신 사명은 그들이 거부할 때 다른 그릇을 통하여 성취될 수 있음을 알아야&lt;/strong&gt; 한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통로로 선택되었다는 사실과 그 약속의 모든 영광을 자동으로 누린다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선택에는 반드시 순종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문자적 성취를 읽을 때에는 `실제로 역사에서 이루어진 부분`, `불순종 때문에 그 민족 안에서 완성되지 못한 부분`, `다음 단계로 확대된 부분`을 구별해야&lt;/strong&gt; 한다. 포로 귀환만 보고 모든 예언이 끝났다고 해도 안 되고, 남은 내용을 모두 미래의 지상 천년왕국으로 미루어도 안 된다. 문자적 성취는 영적 성취와 완전한 성취로 나아가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약속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아담 이후 노아를 통하여 새 출발을 시도하셨으나 노아의 후손들도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에게서 떠나간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의 손자 야곱이 낳은 열두 아들을 통하여 애굽에서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켰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약 이백만 명에 이르는 민족으로 성장시킨 그들을 출애굽시키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목적은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다(출 19:5-6).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언약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12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받았다. 그리고 사사시대를 거친 후에 비로소 이긴 자의 표상인 다윗왕이 탄생하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하나님의 기대에 가까이 쓰임받은 왕이 있다면 그는 바로 다윗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 이후 몇몇 선한 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왕과 백성이 우상숭배와 불순종에 빠지고 말았다.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왕들이 개혁을 시도했지만 민족 전체의 흐름을 되돌이키지 못했다. 특히 므낫세 시대의 우상숭배와 악행은 유다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심판을 늦추셨지만 마침내 시드기야 때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바벨론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바사왕 고레스를 사용하셨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결국 70년만에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정말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민족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민족으로 온전히 서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바벨론 이후 메대와 바사, 헬라와 로마의 속국이 되어 대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들어오셨을 때, 유대인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할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죄에서 구원하는 영적인 메시아로 오셔서 활동하셨다. 그러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과 율법을 자신들의 권세를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하며 예수님을 배척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넘겨 죽게 하고 말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는가 생각해보자. 그것은 공생애 기간에 친히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그 대답이 들어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12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실 때에,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메시아를 배척하여 십자가에 죽게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더이상 한 민족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정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했던 초기 제자들에 의해 드디어 교회가 탄생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루시고자 했던 일을 이제는 교회로 이관하신다. 이는 구약시대에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이 약속을 수행할 그릇을 혈통적 이스라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로 전환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좋은 기대를 갖고 사명을 주었을지라도 그 사명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옮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느날 어떤 개인이나 민족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셨다는 사실만으로 개인과 민족이 받을 최종적인 영광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과 율법과 선지자를 받기는 받았으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제사장 민족의 사명이 교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예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성취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일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직분과 기회가 자기에게 주어진다고 하여도 자기 욕심과 세상 방법을 계속해서 따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그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옮기신다.&amp;nbsp;이러한 일은 민족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우리 대한민족 백성이 회개와 천국복음을 깨닫고 그것을 전해야 할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이 일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릇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럼로 약속의 성취는 실패하지 않겠지만 불순종한 사람은 그 성취의 주인공 자리에서 탈락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둘째 유형인 영적 성취는 교회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lt;strong&gt;구약 예언 성취의 두 번째 유형&lt;/strong&gt;을 살펴보자.&amp;nbsp; 구약 예언의 둘째 유형은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한 영적 성취(靈的 成就, spiritual fulfillment)&lt;/strong&gt;다. 이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를 하나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익히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비록 모세와 세운 옛 언약은 돌판에 기록되었으나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하셨다(렘 31:3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제정하셨다. 그리하여 돌판 바깥에 있던 율법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믿는 자들의 속으로 들어왔다. 이때 그리스도의 속죄는 새 언약의 문을 여는 토대이며, 성령께서 생명주는 영으로서 사람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시는 것은 새 언약의 실제다. 그런데 이 언약은 처음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약속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 약속을 거부하자 이 약속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민족에게 활짝 열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지금 이 시대에 교회는 단지 이스라엘 옆에 덧붙여진 하나의 종교 단체가 아니다. 육적인 이스라엘도 수행하지 못했던 사명을 이어받은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옛날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한 민족을 이루었다면, 지금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12지파별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부름받는다. 그러므로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민족들이 하나님의 길을 배우리라는 예언은 복음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전파되게 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와 말씀을 배우는 것으로 인하여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은 영적으로 성취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 이후에 세워질 에스겔 성전에 대한 예언도 사실은 교회를 통하여 영적으로 이미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성막보다 훨씬 커서 모든 민족을 품을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는 한 민족만을 위한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을 품는 인격적인 교회를 가리킨다. 에스겔 선지자에 예언에 따르면 새로 지어질 성전 동쪽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그 물이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지나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된다. 그리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생물이 살아난다. 강 좌우의 나무는 시들지 않고 달마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자란다(겔 47:12). 그런데 이러한 일은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지상에 어디에 가더라도 일 년 열두 달에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잎이 시들지 않는 과일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을 영적으로 교회에 적용시키면 금방 답이 나온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과 그 물을 먹고 자라 달마다 열매를 맺는 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 생명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복음을 받은 사람이 성령의 생명을 얻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매달 새 영혼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 에스겔이 본 생명수에 대한 영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스가랴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다시는 저주가 없고 평안히 서리라고 예언한 말씀 역시 육적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영적인 예루살렘인 교회와 성도의 몸에서 이루어질 것이다(슥 14: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14: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평안히 거주하고 동물들에게서 양육강식의 속성이 제거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땅에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마침내 자신의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제물로 내어주신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율법이 말하고 있는 저주까지 다 담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개인의 삶에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의 과정이 더 필요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amp;#39;자백으로서의 회개&amp;#39;라고 부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지금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이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그건 교회가 회개를 통하여 자기의 몸속에 들어와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저주의 세력이 떠나가고,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회복되기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저주 없는 예루살렘이 오늘 교회와 성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취되는 방식이다. 지금은 에스겔의 물이 발목에 찬 것처럼 시작 단계일지라도, 회개와 천국복음이 퍼지면 무릎과 허리를 지나 온몸을 덮는 강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셋째 유형인 완전한 성취는 천국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lt;strong&gt;구약 예언 성취의 두 번째 유형&lt;/strong&gt;을 살펴보자. 이러한 구약 예언의 셋째 유형은 &lt;strong&gt;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성취(完全한 成就, consummate fulfillment)&lt;/strong&gt;이다. 교회 시대의 영적 성취는 참된 성취이긴 하였지만 아직 모든 것이 눈에 보이게 완성된 상태는 아니다. 성도는 생명수를 마시고 영생을 얻었으나 육체는 늙고 죽고 있다. 회개를 통하여 저주의 세력을 내보내도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질병과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 성취는 천국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와 달마다 열매 맺는 나무는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완전한 실체로 성취된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는 생명나무가 있기 때문이다(계 22: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본 성전의 물은 교회 시대에는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천국에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으로 완전히 드러난다. 달마다 열매를 맺는 나무도 이 땅의 평범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amp;#39;생명나무&amp;#39;다.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성산, 울음과 고통이 없는 예루살렘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천국에서는 내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가지 않고, 내가 가진 열매를 원수가 탈취하지 못한다. 전쟁과 압제와 노예 생활도 없으며 사탄과 귀신의 공격도 전혀 없다. 백 세에 죽는 사람이 젊다고 불리는 정도가 아니라 더 이상 죽음 자체가 없다(계 21:4). 그러므로 이사야의 언어는 이스라엘이 이해할 수 있는 장수와 평화와 풍요의 모습으로 천국의 실체를 미리 보여 준 것이라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예언의 성취를 먼저 맛보기로 보여 주셨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영적인 실체를 경험하게 하고 계시며, 천국에서 그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완성하신다. 고로 문자적 성취와 영적 성취와 완전한 성취는 서로 경쟁하는 해석이 아니다. 하나님의 한 약속이 역사와 교회와 천국을 지나 점점 충만하게 펼쳐지는 세 단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을 알면 하나님께서 성취되지 않을 공약을 남발하셨다는 의심에서 벗어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더 큰 그릇으로 옮겨 이루셨고, 마지막에는 사람이 상상한 것보다 완전하게 성취하신다. 성도는 이 땅에 임시로 세워질 왕국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실제로 존재하는 천국을 바라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지상 천년왕국 해석은 왜 세 성취 유형을 혼동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구약 예언을 모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하여 만들어 낸 대표적인 해석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지상 천년왕국(地上 千年王國, earthly millennial kingdom)의 도래이다(전천년설). 이 견해는 예수께서 재림하신 뒤 지상에서 천 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시고, 사탄이 갇힌 동안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며, 예루살렘 성전과 절기와 제사가 회복된다고 본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고 사자가 풀을 먹는 예언도 그때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러한 지상적 전천년 해석이 성경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옳지만, 모든 예언을 같은 시대의 지상 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야와 미가는 포로 귀환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보여 주고(사 2:1-4, 미4:1-5),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렘 31:31), 에스겔은 교회와 생명수를(겔47장), 요한계시록은 천국의 완성을 보여 준다(계21-22장). 이 세 층위를 천 년이라는 한 시기에 몰아넣으면 각 본문의 문맥이 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역사적 전천년설(歷史的 前千年說, historic premillennialism)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世代主義的 前千年說,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은 세부 내용에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재림 뒤의 지상 천년 통치를 전제하는 이론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성전과 제사와 절기가 지상에서 다시 회복된다는 설명은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와 교회를 통한 새 언약의 성취를 과거의 모형으로 되돌릴 위험이 매우 크다. 이미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다시 그림자인 제사 제도로 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유한한 물질 세계로 구성된 이 지구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심판이 지나가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황폐한 땅에 다시 내려와 임시 왕국을 건설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고 다시는 저주와 죽음이 없는 새 예루살렘으로 부르실 것이다. 완전한 나라는 이 땅에 잠시 복구되는 정치적 왕국이 아니라 저 하늘에 준비된 영원 천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언을 푸는 기준은 `문자냐 비문자냐` 하나가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떤 단계로 성취되는지를 보아야 한다. 바벨론 귀환은 문자적이었고,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교회의 탄생은 영적이면서 실제적이며, 새 예루살렘은 완전하고 영원한 실체다. 이 세 유형을 구별하면 억지로 천년왕국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변호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와 교회와 천국을 통하여 한 치의 실패도 없이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오메가 민족인 대한민국은 어떤 순종을 감당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알파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듯이 마지막 시대의 오메가 민족으로 동이족(東夷族, Eastern people)의 후손인 대한민국을 선택하셨다고 믿는다. 이 견해는 성경이 직접 대한민국을 지명한 구절이 있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성경의 족보와 동방 민족의 이동, 고대 한자의 형성과 우리 민족의 역사 자료를 연구하여 내린 역사적&amp;middot;신학적 판단이다. 필자는 욕단(Joktan)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세운 민족과 단군의 역사가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창 10:25-3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면밀히 조사하고 살펴본 바에 따르면, 고대 한자에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사건과 연결되는 수많은 흔적들이 빼곡하다. 직접 그것을 보거나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면 절대 알 수 없는 천지창조의 비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과정, 가인과 아벨의 제사, 노아의 홍수의 여정, 바벨탑과 언어의 혼잡 등이 고스란히 한자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노아과 욕단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이족을 구성했다는 기록으로 가득하다. 특히 공자가 한자를 동이족의 언어라고 말했다는 전승, 진시황인 여불위가 진나라로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하나라와 은나라가 중국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동이족의 역사였다는 사실, 비록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 선조의 역사가 중국사에 편입되기는 했으나 갈수록 그것이 부정된다는 사실도 함께 검토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노아와 욕단 계열의 자손이 바벨탑의 타락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역사 자료를 통하여 확신하게 된 민족사적 해석이므로 성경의 직접 진술과는 구별하면서도 그 확신 자체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다시 세운 것도 필자에게는 우연이 아니다. 셈의 아들로서 벨렉자손인 이스라엘이 먼저 온 인류에게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했듯이, 이제 셈의 아들로서 욕단자손인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서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일으킴받았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이 알파 민족으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시작하는 통로가 되었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오메가 민족으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은 자동적으로 우리의 안전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를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제사장 민족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촛대가 교회로 옮겨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도 교권과 정치적인 늪에 빠져 하나님께서 맡기신 회개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 민족의 사명을 만약 거부한다면 이 나라가 분열될 것이고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다른 민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마지막 시대의 사명이 옮겨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이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이 감당할 핵심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복음(天國福音, gospel of the kingdom)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천국복음 전파 명령과 더불어 &amp;quot;더 이상 저주가 없으며&amp;quot;라고 하는 스가랴서의 예언의 말씀에 근거한다(슥 14:11). 이 말씀도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 이어서,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반드시 성취될 것을 우리는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2천년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담당하여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갈 3:13).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저주는 자신의 혼과 몸에게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죄된 본성이 자신에게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해석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7장에 나오는 &amp;quot;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amp;quot;이라고 하는 말씀이다(롬 7: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14:11&amp;nbsp;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7:18&amp;nbsp;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진짜 천국의 실재는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저주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저주의 실제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저주의 값을 치르셨지만 그 효력이 개인의 몸과 삶에 실제로 적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사도 요한이 밝혀주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내려온 영들을 제거하기 위해 또한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내가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 이미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는 뱀들과&amp;nbsp; 귀신들은 우리 몸에 머물 합법적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저주의 실체인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뱀들과 귀신들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영들은 버티고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무기인 불과 칼 등을 사용하여 그들을 내보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저주 없는 예루살렘으로 회복되고 건강과 영적 능력을 실제로 경험하면,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저주가 떠나가는 현장을 목도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 천국이 있다는 것을 사모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삶을 준비케 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 회개의 복음은 시작 단계이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발목에 찬 단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이 무릎과 허리를 채우고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처럼, 회개와 천국복음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지고 각 민족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준비되면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이 열린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깨달은 대한민국의 성도들은 이 사명을 자신만의 복으로 간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회개하여 저주 없는 삶의 첫 열매가 되고, 그 비밀을 가족과 교회와 민족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대한민국은 적그리스도의 통치에 삼켜지지 않고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님 편에 선 영적 군대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처럼 기대를 받았으나 사명을 놓친 민족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메가 민족의 영광은 민족적 자부심이 아니라 끝까지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순종에 달려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 예언이 이스라엘 역사 속의 문자적 성취,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한 영적 성취,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완전한 성취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주셨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통하여 첫 단계를 이루셨다. 그러나 그 민족이 불순종하자 약속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더 크고 영적인 방식으로 이루셨으며, 마지막에는 천국에서 완전하게 성취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유형을 구별하면 성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예언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모든 예언을 미래의 지상 천년왕국에 몰아넣을 필요도 없다. 역사 속의 맛보기와 교회 안의 영적 실체와 천국의 완성을 연결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말씀의 중심은 예언 해석의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었으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영광을 직접 누리지 못했다. 개인과 교회와 대한민국도 맡겨진 사명을 자동으로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과 은사와 기회에는 반드시 순종의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그릇을 통하여서라도 이루어지지만, 불순종한 사람은 그 영광스러운 성취에서 제외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한민국은 이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책임을 감당해야 민족으로 부름받았다. 그러니 먼저는 죄를 자백하여 저주의 통로를 끊어 우리 몸 속에서 뱀들과 귀신들을 내어쫓고, 성령이 주시는 생명과 은사와 능력을 받아 사용하며, 이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해야 한다. 지금은 작은 물줄기처럼 보여도 끝까지 순종하면 온 세계를 살리는 생명수의 강이 될 것이다. 반대로 사명을 외면하고 자기 이익만 좇는다면 이스라엘의 실패를 우리도 반복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교회와 민족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실제 삶과 사역으로 옮겨야 한다. 회개를 붙들고 천국복음을 전하며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대에 끝까지 순종하여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고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2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설교핵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구약 예언의 성취 유형&lt;/strong&gt;을 세 가지 관점으로 분석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으로 인해 유보된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amp;nbsp;&lt;strong&gt;영적 이스라엘인 교회&lt;/strong&gt;와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불순종 때문이며, 이는 결국&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성취&lt;/strong&gt;와 미래의 천국에서 완성될 최종적 실재를 가리킨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amp;#39;알파 민족&amp;#39;으로, 동이족의 후예인 대한민국을 마지막 때의 &amp;#39;오메가 민족&amp;#39;으로 규정하며,&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저주 극복&lt;/strong&gt;이 민족적 사명을 완수하는 핵심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철저한 순종과 회개&lt;/strong&gt;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영적 군사가 되어, 성경에 약속된 평화와 회복의 기대를 삶 속에서 성취해 나갈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ChatGPT Image 2026년 8월 3일 오전 09_00_0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6d348ee6f16285785db5dc5330c17c4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Divine_Prophet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70bacb2127a60fbf6cb9072e47b408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Divine_Prophet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1b39a522ad86dbdd406c6128f97568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Divine_Prophet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b6bcc506141d5b88d80568d8439c30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Divine_Prophet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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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구약_예언_성취와_한국의_사명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93e779be4ced80fd023a07f27b0b1b2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ba0bf6ff4692746ea9d1699824459b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b411d969cbb7fd498a5b71a35bd040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4074f1233123a67391e4fbd0ef7f06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13b643f4fb0001dcf91f3cb38d7946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b71f4e087c34e1e2cc3e6c47be5f51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556a4ca5256582bee55de01f03f876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2ac61f147393f0c1857b6386e5b9cf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af17bbe98c3d67dea7e63f243cda263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0dd37134947555ba5d258134c9adf0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dd8b8ac42ef7ee44e0e70ec15b1238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151b50311ba7c885665457313a1b65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7e4c223472c46e7beefb675de87dbd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5854ef724639399a9accf1c84220fe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시대적사명] The_Holy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495/263/625815112ccdaa7651607c8d9411939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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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3495#comment</comments>			<pubDate>Sun, 02 Aug 2026 21:46:01 +0900</pubDate>
		</item><item>
			<title>조상죄 회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갈라디아서 3:19, 4:9)_2026-07-2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3080</link>
				<description>&lt;p&gt;2026-07-26(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조상죄 회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갈라디아서 3:19, 4: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uAzMrquLlV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AzMrquLlV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낮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조상죄 회개와 관련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의 말씀에 대한&amp;nbsp;&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01em;&quot;&gt;오해와 바른 이해&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01em;&quot;&gt;(갈 3:19, 4:9)&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지난주 금요일에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평생 회개기도문』(정보배 목사,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이 출간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뒤 여러 사람이 회개를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왔지만, 이번 기도문에는 그동안 나온 여러 자료들과 실제 축사 현장에서 깨달은 내용이 함께 반영되었다. 이 기도문은 조상들이 지은 죄와 내가 지은 죄를 모두 회개하도록 안내해줄 것이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일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거나 조상이 받아야 할 죄책을 내가 대신 지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는 문제와 조상의 죄로 인해 후손에게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사실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독교계에서는 조상죄 회개를 &amp;#39;가계저주론&amp;#39;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며 경계해 왔다. 미신적 관행이나 샤먼의 흑주술이며, 행위구원의 변형이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완전성과 충분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국 소망을 약화하고 조상 탓을 하게 만들며 회개를 거부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과연 조상죄 회개가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 또한 근거로 제시된 성경 말씀을 문맥에 맞게 해석한 것인지는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 회개를 반대하는 이들은 주로 네 가지 말씀을 제시한다. 첫째,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갈라디아서의 말씀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에스겔의 말씀이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바울의 말씀이다. 넷째,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장애는 본인이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다. 문제는 이 말씀들이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각각의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별하지 않은 채 조상죄의 모든 영향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셨다고 해서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십계명 법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은 죄와 그 죄를 근거로 역사하는 악한 영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다. 믿은 뒤에도 자기 죄를 자백하고 두루마기를 빠는 회개가 필요하다(계 22:14). 조상죄 회개는 구원의 조건을 더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십계명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상의 죄로 내려온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조상죄 회개가 구원과 저주 해방에서 어떻게 구별되며, 예수께서 오신 뒤에도 십계명이 왜 유효하고, 반대 근거로 제시되는 네 가지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바르게 이해해야 하며, 자백하는 회개가 삶과 영적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조상죄 회개는 개인의 구원과 저주 해방에서 어떻게 구별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들이 지은 죄는 나의 영원한 구원을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후손이 그 죄책 때문에 반드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각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며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반대로 부모가 믿고 회개했다고 해서 자녀가 아무런 믿음과 회개 없이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영원한 심판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믿음과 회개와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영원한 죄책과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은 같은 것이 아니다. 조상의 죄는 후손의 구원을 대신 결정하지 않지만,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과 저주의 결과는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내려갈 수 있다.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 음란과 중독과 우울과 불면 같은 문제가 한 가계 안에서 반복되는 데에는 조상들이 범한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영적 통로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는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도 나를 구원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조상의 죄로 인해 내게 내려온 악한 영을 제거하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한 회개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를 서로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죄인임을 시인하는 회심의 회개는 사실 영원한 생명과 관계된다. 그러나 믿은 뒤에 이미 지은 구체적인 죄를 자백하는 회개는 그 죄를 용서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일과 관계된다. 여기에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자백할 수 있다면 그 죄를 근거로 후손에게 내려온 악한 영이 떠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회개기도문은 이 두 영역을 혼동하지 않고 함께 다루어, 구원의 길을 돕고 일상생활의 저주에서도 벗어나도록 안내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을 놓치면 조상죄 회개를 행위구원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조상죄를 많이 회개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죄를 용서하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뿐이다. 사람의 회개가 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자기 삶에 적용되도록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다. 구속의 값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치르셨으며,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그 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조상죄 회개는 모든 고통을 무조건 조상 탓으로 돌리는 운명론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를 먼저 인정하고 돌이켜야 한다. 조상의 죄를 말하면서 자기의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탐욕과 미움과 중독을 외면한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상죄와 자범죄를 함께 회개하라는 까닭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나를 붙들고 있는 죄의 뿌리와 열매를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조상죄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말은 조상죄의 영향도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구원과 저주 해방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서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 &lt;strong&gt;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며, 조상죄와 자범죄를 자백하여 삶을 괴롭히는 악한 영과 저주의 영향에서도 벗어나야&lt;/strong&gt; 한다. 이 구별이 분명할 때 조상죄 회개는 예수님의 대속을 약화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보혈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의지하는 일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수께서 오신 뒤에도 십계명은 왜 여전히 유효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율법에는 &amp;#39;도덕법&amp;#39;과 &amp;#39;의식법&amp;#39;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도덕법인 십계명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는 기준법이다. 반면 할례법, 안식일법, 음식법, 제사법, 성결법, 절기법과 같은 의식법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신지를 예표와 그림자와 표지로 보여 주기 위해 주어진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그 의식법의 모든 목적을 완성하셨으므로, 의식법은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이상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자가 또다시 의식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예수께서 오심으로 율법이 전부 폐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 의식법들만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시고,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하셨기 때문이다. 공생에 기간에 예수께서는 당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마 5:17-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을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탐심이 예수님의 오심 이후에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죄도 마찬가지다. 십계명은 행위로 칭의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무엇을 죄로 알고 회개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는 도덕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조상들이 지은 죄악을 자손 삼사 대까지 갚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붙어있는 보조 조항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에게 절하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다(출 20:5-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5-6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어떤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조상들의 죄의 영향을 자손들이 안 받는다고 가르친다. 만약 후손에게 내려오는 죄의 결과를 부정하려면 같은 문맥에 있는 천 대의 은혜도 함께 부정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후손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죄가 후손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복에 관한 말씀만 취하고 죄의 결과에 관한 말씀은 폐지되었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결코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켜 자기 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그러나 의롭다 여김을 받은 뒤에도 계속 죄를 범하는데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4: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십계명은 죄를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돕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보여 주기에 매우 고마운 것이다. 한 번 믿었다는 이유로 우상숭배와 음란과 탐욕을 계속 행하는데, 자신은 결코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다고 안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믿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들어주는 면허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십계명의 빛 앞에서 자신의 삶을 살피고, 범한 죄를 자백하며, 끝까지 믿음과 회개 안에 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갈라디아서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율법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자신이 3차전도여행 중에 썼던 갈라디아서의 편지에서 율법은 범법함으로 더하여졌으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갈 3:19). 그러므로 이 말씀만 따로 떼어 놓으면 예수께서 오신 뒤 모든 율법이 폐지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전체의 논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면 바울이 문제 삼은 그 율법이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가 분명해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느날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인 갈라디아 교회 안에 어떤 유대인 형제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더라도 유대인처럼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야 온전한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믿음에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며 절기들도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쳐다. 그러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얻은 진정한 자유를 버리고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인 율법의 의식법 아래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였다(갈 4: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여기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은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오심으로 이미 폐지된 바 있는 율법의 의식법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바울은 초등학문의 내용이 무엇인지의 예를 하나 언급하는데, 그것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갈 4:10). 여기서 &amp;#39;날&amp;#39;은 안식일과 금식일을, &amp;#39;달&amp;#39;은 초하루와 관련된 의식을, &amp;#39;절기&amp;#39;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을, &amp;#39;해&amp;#39;는 안식년과 희년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메시야의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의식법들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이러한 날들을 계속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미 폐해진 율법의 의식법들에게 다시 종노릇하는 것이 된다(갈 4:9-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4:9-11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amp;#39;할례&amp;#39;에 관한 바울의 경고도 같은 문맥에 놓여 있다. 할례를 받아야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지며,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갈 5: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5:2-4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정죄한 것은 십계명을 따라 살며 죄를 회개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할례를 받고 절기를 지키는 의식으로 칭의를 얻으려는 시도를 하는 자들에게 경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의식법을 준수한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칭의의 근거와 구원받은 이후의 사람의 도덕적 삶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십계명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메시야가 누군지를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 주는 의식법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도덕법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을 근거로 하여, 출애굽기 20장의 제2계명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다. 약속하신 씨가 오시기까지 필요했던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어진 의식법들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고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가 죄라는 사실과 살인&amp;middot;간음&amp;middot;거짓&amp;middot;탐심이 죄라는 기준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고로 갈라디아서를 바르게 이해하면 율법주의에서는 벗어나되 도덕적 방종으로 흐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십계명을 통해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에스겔 18장은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하는 말씀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떤 이는 에스겔 18장의 말씀을 소환하여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에스겔 18장은 &amp;#39;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의 개별성&amp;#39;을 가르칠 뿐이다. 이 말씀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며, 아들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아버지라 할지라도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이다. 고로 의인의 공의는 그 자신에게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그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겔 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이 말씀은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 그건 아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가 범죄했다고 해서 아들이 그 죄책을 대신 지고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부모의 믿음이 자녀를 자동으로 구원하지도 않으며, 부모의 죄가 자녀를 자동으로 멸망으로 인도하지도 않는 것이다. 악인이 자기 악에서 돌이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며, 스스로 헤아리고 모든 죄악에서 돌이키면 살고 죽지 않기 때문이다(겔 18:27-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8:27-28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결론은 위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모든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죄악이 심판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겔 18:3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8: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지만 심판의 개별성이 조상의 죄가 후손의 현재 삶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고로 예레미야애가는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나 후손이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고 있다고 고백한다(애 5:7). 만약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다고 한다면, 예레미야애가 5장 7절과 같은 성경의 말씀들을 찢어버려야 한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출애굽기 20:5의 말씀과 에스겔 18:20의 말씀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에스겔은 누가 영원한 심판을 받는지를 말하고 있지만, 예레미야애가는 조상이 지은 죄의 역사적&amp;middot;현세적 결과를 후손이 겪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우상숭배와 음란과 폭력으로 가정을 파괴되면 자녀가 그 상처와 가난과 무너진 환경을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도 조상의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혈통을 따라 내려와 후손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출애굽기 20장의 제2계명에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하는 말씀은 여전이 유효하다. 만약 에스겔 18장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20:5의 말씀을 찢어 버리거나 억지로 무효화시켜서는 안 된다. 심판의 개별성과 죄의 영향이 세대에 미치는 원리도 함께 보아야 한다. 영원한 죄책은 각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죄가 낳은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은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후손이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조상의 죄책을 대신 담당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amp;ldquo;우리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amp;rdquo;라고 자백함으로써 그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근거로 자기에게 내려온 악한 영이 떠나도록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이 범한 자범죄들에 대해서도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에스겔 18장이 요구하는 개인의 회개와 조상죄의 영향을 끊는 회개는 서로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회개를 함께 행할 때 남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가계 안에 누적된 죄의 영향까지 처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셨는데도 왜 그리스도인은 자백하며 회개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로 모든 믿는 이들을 속량하셨기 때문에 더이상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으므로, 율법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맞는 말인가?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만 죄값인 사망의 값만 치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받게 되는 저주까지 담당하신 것은 사실이다(갈 3:13).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신 2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랬다. 그날 예수께서는 죄의 형벌인 사망만 담당하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헐벗고 굶주리셨으며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침 뱉음을 받으신 것이다. 죄 없으셨지만 그 몸으로 채찍에 맞으시고 따르던 이들로부터 버림까지 받으셨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죄악 때문에 상하였으며,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예언했다(사 5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의 모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이 자동으로 제거되지 않는가? 왜 그리스도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죄의 습관에 묶여 있고 악한 영에게 눌려 있으며 가정 안의 고통은 반복되고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이 불완전해서가 결코 아니다. 십자가에서 마련된 속량의 은혜를 자기 삶에 적용받으려면, 한 가지 과정이 더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회개를 하면서 해답을 찾았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중생을 얻는다. 그러면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므로 그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해서 자기 속에 들어온 악한 영들이 자동적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기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사람이 죄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요한일서에 사도 요한은 신자들에게 죄의 자백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우리들의 죄들을 용서해주실 것이며 모든 불의에서부터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셨다(요일 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과거에 지은 죄를 자백했을 때에 죄들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도 동시에 깨끗하게 되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했을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에는 2가지 조치가 취해진다. 먼저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목이 예수님의 피로 지워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죄를 통하여 내 몸에 들어와 있던 악한 영도 떠나갈 근거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요일 1:7), 모든 더러움에서부터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예수께서 분명하게 저주를 담당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왜 내 삶에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이 남아 있는지를 오랫동안 질문하고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요한일서의 말씀과 실제로 축사를 해 본 경험을 통하여, 이미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에라야 그리스도의 피가 하늘의 죄 기록를 없애줄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추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십자가의 능력을 보충하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와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는 믿음의 반응에 해당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모든 이들은 자신의 가문이 지은 죄의 종류와 분량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아무런 자백 없이 모든 결과가 기계적으로 같아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한다면,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용서받고 깨끗하게 될 뿐마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쫓겨 나가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이미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들까지 내보내기에 충분하며 완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몸에서 실행되려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주를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려면, 다른 공로나 의식을 의지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믿으며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로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진다고 말했다(계 2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건만을 붙들고 이후의 죄를 방치해 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 빨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조상들이 지은 죄도 자백하여 이미 내 몸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추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이제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은혜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 안에 머물게 해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사건은 조상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 어떤 이는 예수께서 직접 맹인을 언급하시면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의 죄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했다는 말씀을 근거로 조상들의 죄의 영향을 후손이 받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이 주장은 맞는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느날이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한 사람을 만나셨다. 제자들은 그가 맹인으로 난 것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하게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하셨다(요 9: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조상죄 회개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부모나 그 윗대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어떤 질병과 장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출애굽기 20:5의 십계명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답변은 그 사람 본인과 그의 부모, 곧 바로 그 사람의 윗대의 죄로 인하여 맹인이 된 것이 아니라고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제2계명의 말씀처럼 조상들이 지은 죄의 영향이 그의 자손 삼사 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했으니, 한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그의 3~4대의 조상들 때문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을 두고, 본인과 그의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답변만을 가지고서,&amp;nbsp; 윗대 조상의 죄와 그 죄의 영향까지 모두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죄값에 대한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자, 출애굽 직전으로 돌아가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당신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못하겠다고 거절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이 뻣뻣하고 둔하여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떤 답변을 해 주셨는가? 사람의 입을 지으신 이도 여호와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말 못 하는 것와 못 듣게 하는 것와 눈을 밝게 하는 것과 맹인이 되게 하는 것도 이 여호와가 한느 일이라고 말씀하셨다(출 4:10-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10-11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사람은 왜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신명기 28장에 답이 나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저주 가운데 하나가 맹인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어긴다면 그의 눈이 멀게 되고 정신병에 걸리게 되며, 형통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신 28:28-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28:28-29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면,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과 장애가 죄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만을 보고서, 본인이나 부모의 특정한 죄를 가지고 그를 함부로 정죄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고로 요한복음 9장의 사건은 제자들이 제시한 두 선택지만으로 그 원인을 재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내실 더 큰 뜻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그날 그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참빛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일도 동시에 하셨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이 사건에 대한 바른 이해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lt;strong&gt;하나는 모든 질병을 당사자의 자범죄로만 단정하여 정죄하는 것&lt;/strong&gt;이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죄와 질병과 저주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의 죄, 부모의 죄, 윗대 조상의 죄,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구별하고 있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볼 때 그를 판단하기보다 긍휼히 여기고, 가능한 모든 죄의 통로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피며, 회개와 기도와 치유를 간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게서 주님은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셨다. 그것은 어둠에 속한 자가 빛에 속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상 죄를 회개하는 것이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왜 이런 고통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자기와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여 악한 영의 통로를 차단하며, 예수님의 피와 이름으로 자유와 회복을 얻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회개와 치유의 중심에는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조상죄와 자범죄를 회개하면 삶과 영적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와 자범죄를 함께 회개하면 구원과 삶의 두 영역이 바로 세워진다. 자기 죄를 자백함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조상죄를 자백함으로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과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회개는 죄의 기록만 지우는 관념적인 절차가 아니다.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법적인 근거를 만들고, 사람의 몸과 혼을 붙들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삶에 실제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조상죄로 내려온 악한 영이 육체를 붙들면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혼을 붙들면 우울과 불면과 좌절과 집착과 분노와 신기로 나타날 수 있다. 때로는 가난과 반복되는 실패와 자녀의 앞길이 막히는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안의 음란과 중독과 폭력적 성향이 가계 안에서 반복될 수도 있다. 이때 현상만 억누르거나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죄의 뿌리가 해결되지 않는다. 관련된 죄를 찾아 자백하고 그 죄를 버리며,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해 달라고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할 때에는 &amp;ldquo;내가 무슨무슨 죄를 지었습니다&amp;rdquo;라는 고백과 함께 그 죄를 통하여 악한 영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세워야 한다. 입으로만 죄목을 읽고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회개의 열매가 온전하게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십계명을 지키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돌이켜야 한다. 회개는 과거의 죄를 처리하면서 현재의 행동도 바꾸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과정에서 &lt;strong&gt;『평생 회개기도문』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길잡이&lt;/strong&gt;가 되어줄 것이다. 자기 기억에 떠오르는 몇 가지 죄만 회개하고 끝내지 않도록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개인의 성품&amp;middot;생활 속 죄를 체계적으로 살피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문 자체가 부적이나 주문처럼 능력을 내는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기록된 죄를 자기 죄와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고 진실하게 자백하며,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유익이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가 깊어진 후에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죄에 대한 충동과 악한 영의 압박은 더 심해질 것이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임하여 형통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는 미워하고 성령을 통한 거룩함을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얻기 위해 그것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한 욕망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저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천국을 준비하기 위한 변화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그동안 우리가 신뢰해왔던 교리들 특히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교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결코 성경보다 위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로 오늘날 강단에 서는 설교자는 교단의 교리나 익숙한 주석만 반복하여 보지 말고, 성경 전체와 실제 영적 현장을 함께 그 죄값을 함께 살펴야 한다.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이 실제 말씀과 열매에 맞지 않는다면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점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는 있어도 성경 자체가 틀릴 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는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는 데 머물지 말고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자기 죄를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할 수 있으면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고 악한 영을 떠나보내며, 형통한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평생 회개기도문』은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가도록 돕는 실제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 회개와 관련하여 자주 제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상죄 회개는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후손이 대신 지거나 조상을 구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는 문제와 조상의 죄로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문제는 분명히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신 율법은 메시야의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의식법이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법인 십계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제2계명에 기록된 죄의 삼사 대 영향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갈라디아서의 초등학문은 할례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의식법의 종노릇을 가리키며, 십계명을 지키며 회개하는 삶을 금지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18장은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심판의 개별성을 가르치지만, 조상의 죄가 후손의 삶에 미치는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속량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피를 의지하여 이미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 자백할 때 죄를 용서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를 근거로 역사하던 악한 영도 떠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사건도 본인이나 바로 윗대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말씀을 모든 조상죄의 영향이 없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질병과 고통을 겪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구하면서 자기와 조상들의 죄를 겸손히 살피고, 예수님의 피와 이름으로 치유와 자유를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교리를 성경 위에 두지 말고 말씀을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시인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날마다 두루마기를 빠는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또한 할 수 있으면 조상들의 죄까지 자백하여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회개를 통하여 죄의 충동과 악한 영의 압박을 끊고, 거룩한 삶과 천국의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 끝까지 회개하고 구원과 저주 해방의 은혜를 누리며 천국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6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신자들이 겪는 삶의 저주와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amp;nbsp;&lt;strong&gt;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회개&lt;/strong&gt;가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하며, 이를 위해 제작된&amp;nbsp;&lt;strong&gt;&amp;lsquo;평생 회개 기도문&amp;rsquo;의 중요성&lt;/strong&gt;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현대 교계가 갈라디아서나 에스겔서 등의 성경 구절을&amp;nbsp;&lt;strong&gt;편협하게 해석하여 율법의 도덕적 책임과 죄의 대물림을 부정&lt;/strong&gt;함으로써 성도들이 실제적인 영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대속이 의식법을 폐한 것이지&amp;nbsp;&lt;strong&gt;십계명에 명시된 가계의 저주&lt;/strong&gt;까지 자동으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므로, 성도는&amp;nbsp;&lt;strong&gt;자백을 통한 성결의 과정&lt;/strong&gt;을 거쳐야만 악한 영을 축출하고 진정한 형통함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에 대한&amp;nbsp;&lt;strong&gt;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회개&lt;/strong&gt;만이 개인의 구원을 완성하고 가문의 영적 굴레를 끊어내는&amp;nbsp;&lt;strong&gt;인류사적 기념비적 도구&lt;/strong&gt;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ChatGPT Image 2026년 7월 27일 오전 12_52_5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368f9593e5b546449e7e2425263fb66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7281a06a87282440d456ad37bd7759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dc954b938cafdd4848187819686b86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698079f19faa5fdc30a31f6028d490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f688dc6c196c2e42a8da7b8ab00d0d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f6dc5eb31573e96193d1a592860e20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47440f054c06c0c1cffb8082f360bd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b89411386e15e5b88529f0d2b12fe2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018e1fdd07fbe070fe0ffa3e3c7dd5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e91558d22f845baaf925243397e6c0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Biblical_Truth_of_Ancestral_Repentanc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3083d0ce5787de35b7843b3d4e1d530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조상죄_회개와_성경적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7f4f8388c761e5d9c84ee10988ac11c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f7b0a53048980c87a91baa302572fa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082e279f911a65e2a9122bb124e0aa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01d499cf4bfc123e473bf6deab484c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7765b17377c0cc926c741bbab534ae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f35f482bab0ddc08064aff219af21b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22468ab047ec0574f84469ed6a7f4d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533e2f7016e4fab959403d5598c666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5ad1ef6f294b6c003670d7a4362651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c6169fab654f64593dbe725a39c91c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58304b4cbcda38149253ffa0b54b2f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조상죄] Ancestral_Repentance_Decode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80/263/5d3179f6b62de0149d5fbe3f37559a28.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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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3080#comment</comments>			<pubDate>Sun, 26 Jul 2026 21:19: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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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립감사주일] AI첨단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천국입성을 도와주는 교회(마태복음 4:23~5:3)_2026-07-1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2619</link>
				<description>&lt;p&gt;2026-07-19(일) 주일낮1부예배&amp;nbsp;&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 [창립감사주일] &lt;/span&gt;&lt;/p&gt; &lt;p&gt;제목:&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AI첨단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천국입성을 도와주는 교회(마태복음 4:23~5: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rmMuu45kd6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mMuu45kd6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창립감사주일&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AI 첨단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천국입성을 도와주는 교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빠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설교를 작성하고, 논문를 요약하며, 성경 원어를 분석하고, 수천 권의 신학 서적을 순식간에 정리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었던 연구가 이제는 몇 분 안에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교회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아무리 AI가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聖靈, Holy Spirit)을 통하여 행하시는 영적인 역사이다. AI는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할 수는 있지만, 지금도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려줄 수는 없다. 또한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惡靈, evil spirit)의 실체를 분별하거나, 귀신을 쫓아내며,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s)와 능력을 부어 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AI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유익한 도구일 뿐이며, 결코 성령의 사역을 대신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왜 교회를 세우셨는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의 사명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데 있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존경받는 기관이 되는 데 있는가? 아니면 성도들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공동체가 되는 데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보여 주신 사역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天國, Kingdom of Heaven)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일이었다(마 4:23). 이것은 단순한 사역의 목록이 아니라, 장차 교회가 계승해야 할 사명의 원형이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천국 복음을 정확하게 전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어둠의 권세를 무너뜨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흐름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붙들어야 한다. 첨단 기술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성령께서 지금도 교회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경쟁력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이며, 교회의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에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왜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시는지, 그리고 그러한 교회는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한 부르심을 받아 그 사명을 이루어 가고 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왜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친히 세우신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알려면 먼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인간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다스릴 존재로 계획하셨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lt;strong&gt;교회의 사명은 단순히 죄인을 구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구원받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준비시키는 데 &lt;/strong&gt;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2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특별한 사명을 맡길 교회를 세우셨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복음을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시키는 교회를 사용하셨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복음의 진리를 회복하는 교회를 일으키셨다. 또한 세계 선교 시대에는 수많은 선교사를 배출하는 교회를 사용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대적 필요에 따라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를 찾고 계신다.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을 영적 전사로 세우고,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 복음을 전하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성도를 준비시키는 교회를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목적은 단순히 신자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천국 백성을 준비시키고,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의 상속자(相續者, heir)와 왕 노릇할 성도를 세우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사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적인 종을 준비하시고, 그 종을 통하여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신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영적 전쟁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시며, 마침내 세상을 향하여 회개와 천국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 역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세워졌다. 처음부터 오늘과 같은 사역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훈련하게 하셨고,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으며, 점차 천국 복음의 실체를 밝히게 하셨다. 이어 영적 세계를 배우게 하시고, 축사와 치유 사역을 통하여 예수께서 행하셨던 사역을 실제로 감당하도록 인도하셨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으며, 결국 마지막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한 섭리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교회의 세 가지 핵심 사역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본질은 사람의 생각이나 시대의 요구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교회의 본질은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 주신 사역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는 먼저 예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이 곧 오늘날 교회가 계승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 가지 사역을 집중적으로 수행하셨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었고, 둘째, 천국(天國, Kingdom of Heaven)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었으며, 셋째,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사역이었다(마 4: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 번째 사역은 말씀 교육&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이었으므로 구약성경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단순히 율법의 조문을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가 자신을 증언하고 있음을 밝히셨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 역시 성경을 단편적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같은 원리를 가르치셨다(눅 24:27). 성경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라, 성경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사역은 천국 복음의 선포&lt;/strong&gt;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은 단순히 죄 사함만을 말하는 복음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라고 선포하셨다(마 4:17). 다시 말해 회개 없는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천국 없는 회개도 존재하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가까이 왔다&amp;#39;로 번역된 헬라어 &lt;strong&gt;ἤ&amp;gamma;&amp;gamma;&amp;iota;&amp;kappa;&amp;epsilon;&amp;nu;(엥기켄) &lt;/strong&gt;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 가까이 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은 미래에만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도 회개하는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회개를 통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의 핵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역&lt;/strong&gt;이다. 많은 사람은 예수께서 병만 고치셨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병의 치유보다 먼저 귀신을 쫓아내셨음을 여러 차례 증언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순서를 보여 준다. 먼저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그 후에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이는 예수께서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과 영적 세계까지 함께 다루셨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교회 역시 영적인 세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문제를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이나 육체적인 질병으로만 이해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전모를 설명할 수 없다. 교회는 성경이 증언하는 영적 실재를 바르게 가르치고, 성령의 능력으로 어둠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사역을 회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된 사역이 아니다. 말씀은 천국 복음을 이해하도록 인도하며, 천국 복음은 사람을 회개(悔改, repentance)로 이끌고, 회개한 사람은 영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귀신의 결박이 풀어지고 육체의 연약함이 치유되는 열매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세 가지는 하나의 구원 사역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예수께서 보여 주신 세 가지 사역은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다. 말씀만 있고 천국 복음이 없으면 지식만 남게 된다. 천국 복음만 있고 영적 권세가 없으면 실제적인 자유를 경험하기 어렵다. 치유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시는 교회는 이 세 가지를 균형 있게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왜 오늘날의 교회는 천국에 들어가는 복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도들은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목표를 갖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복음의 중심이 &amp;#39;천국&amp;#39;보다 &amp;#39;현재의 구원 경험&amp;#39;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분명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말한다.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반복해서 권면하였으며, 사도 요한 역시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상속을 강조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이기는 자&amp;#39;라는 표현은 헬라어 &lt;strong&gt;ὁ &amp;nu;&amp;iota;&amp;kappa;ῶ&amp;nu;(호 니콘) &lt;/strong&gt;으로,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단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전제한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amp;quot;믿었으니 끝났다&amp;quot;는 수준의 메시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회개를 지속하며 믿음을 완성해 가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섰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달려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마 24: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대적인 교회는 단순히 사람을 교인으로 만드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도를 새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준비시키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세워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교회의 목표는 출석 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천국 시민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교회의 성공은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얼마나 길러 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일수록 교회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중심에 두고 성도들을 끝까지 양육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친히 보여 주신 복음의 방향이며,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 요구하시는 시대적 사명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대적인 목회자는 어떤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방향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통하여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먼저 준비하셨고,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어떠한 목회자를 사용하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홍수 심판의 시대를 준비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이루셨으며,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정복을 완성하셨다. 또한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예표하셨고,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신약 교회를 세우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대적인 종을 먼저 준비하시고, 그 종을 통하여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목회자&lt;/strong&gt;는 단순히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이루고자 하시는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amp;quot;하나님의 경륜&amp;quot;이라고 설명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3:9-11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경륜&amp;#39;으로 번역된 헬라어 &lt;strong&gt;&amp;omicron;ἰ&amp;kappa;&amp;omicron;&amp;nu;&amp;omicron;&amp;mu;ί&amp;alpha;(오이코노미아) &lt;/strong&gt;는 집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직무를 의미한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전체 설계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시대적인 목회자는 성경의 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대적인 목회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시대적인 목회자는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의 일부를 잘 설명할 수는 있지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도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려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시대적인 목회자는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 복음을 정확하게 선포하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외치신 말씀은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였다(마 4:17).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죄를 용서받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도록 촉구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목회자 역시 사람들에게 천국을 준비시키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시대적인 목회자는 영적 전쟁(靈的戰爭, spiritual warfare)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셨다. 사도들도 동일한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목회자는 영적 세계를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가운데 실제로 어둠의 권세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권능&amp;#39;으로 번역된 헬라어 &lt;strong&gt;ἐ&amp;xi;&amp;omicron;&amp;upsilon;&amp;sigma;ί&amp;alpha;(엑수시아) &lt;/strong&gt;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로 수행하는 사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시대적인 목회자는 성도를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사람이어야 &lt;/strong&gt;한다. 교회의 최종 목표는 성도를 세상에서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다. 성도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고 왕과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목회자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현재의 삶만을 위한 설교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시키는 설교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시대적인 목회자는 자신의 사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목회자는 자신의 명예나 교회의 규모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시고, 시대적인 사명을 이루어 가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대적인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사명은 목회자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시지만, 그 지도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많은 성도들을 동시에 준비하신다. 그러므로 &lt;strong&gt;시대적인 교회는 시대적인 목회자뿐 아니라 시대적인 성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는 교회를 신앙생활을 하는 장소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Body of Christ)이라고 말씀한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가 있으며, 모든 지체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생명을 이루어 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불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였다. 눈도 필요하고 손도 필요하며 발도 필요하다. 눈이 손을 대신할 수 없고 손이 발을 대신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恩賜, spiritual gifts)와 달란트를 맡기셨으며, 그 모든 것을 통하여 교회를 세워 가신다. 그렇다면 시대적인 성도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시대적인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성도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그 사역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임이 확인되면 마음을 다하여 협력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을 부르시고 보내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 분별력(靈的分別力, spiritual discernment)을 길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시대적인 성도는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교회의 모든 사역을 목회자가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찬양으로 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선교에 헌신하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긴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청지기&amp;#39;는 헬라어 &lt;strong&gt;&amp;omicron;ἰ&amp;kappa;&amp;omicron;&amp;nu;ό&amp;mu;&amp;omicron;&amp;sigmaf;(오이코노모스) &lt;/strong&gt;이다. 이는 주인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은사와 재능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책임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시대적인 성도는 영적 전사로 성장해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단순한 신자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도로 세우셨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단순한 출석 신자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영적 전사(靈的戰士, spiritual warrior)를 세우는 곳이어야 한다. 성도는 회개를 생활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시대적인 성도는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 성도의 목표는 이 땅에서만 잘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유익보다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0:41-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께서는 작은 섬김 하나도 결코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각 사람의 충성을 기억하시고 그에 합당한 상급을 베푸신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lt;strong&gt;시대적인 성도란 시대적인 교회 안에서 시대적인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사람&lt;/strong&gt;이다. 그는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사와 달란트를 충성스럽게 사용한다. 이러한 성도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대적인 교회로 세워지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AI 첨단시대에도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인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AI가 논문을 요약하고, 수십 권의 신학 서적을 비교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분석하고, 설교의 개요와 예화를 제안하는 일까지 수행한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대부분의 지식 노동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목회자는 AI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lt;/strong&gt; 한다. AI는 방대한 자료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 매우 뛰어난 도구이기 때문이다. 성경 원어 연구, 교회사 자료 조사, 신학 사조의 비교, 설교 자료의 정리 등은 AI를 활용할 때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대적 도구는 지혜롭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lt;/strong&gt;이다. AI는 스스로 계시(啓示, revelation)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 또한 영적 세계를 실제로 경험하거나 성령의 역사에 참여할 수도 없다. AI는 기존의 자료를 학습하여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제시할 뿐이며, 하나님의 현재적인 말씀인 레마(Rhema)를 전해 줄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AI와 성령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 준다. AI는 이미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답을 생성하지만, 성령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며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설교의 출발점과 결론은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더욱이 AI를 통해서 우리는 결코 영적 실재를 체험할 수&lt;/strong&gt; 없다. 천사(天使, angel)의 사역과 악한 영(惡靈, evil spirit)의 역사, 천국과 지옥의 실제,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s), 영적 권세와 같은 영역은 인간의 데이터 분석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러한 영역은 오직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영적 분별(靈的分別, discernment)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I 시대에도 교회의 사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교회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을 감당해야 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음성으로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천국 복음을 증언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전쟁을 수행하며, 사람들을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으로 뛰어난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AI가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성령이시며,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고, 악한 영을 떠나가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AI 시대일수록 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더욱 민감해야 하며,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적 사역을 회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한 사명을 맡은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교회는 분명하다&lt;/strong&gt;. 그것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lt;strong&gt;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lt;/strong&gt;이다. 그럿다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쓰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마지막 시대에 쓰임받는 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lt;/strong&gt;이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단편적인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 목적을 향하여 살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마지막 시대에 쓰임받는 교회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lt;/strong&gt;이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을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회개를 통하여 삶이 변화되도록 도와야 하며,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도록 양육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마지막 시대에 쓰임받는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lt;/strong&gt;이다. 교회는 성령의 임재가 실제하는 곳이어야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와 능력으로 성도를 치유하고, 영적 전쟁을 수행하며, 복음의 능력을 실제로 나타내야 한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조직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마지막 시대에 쓰임받는 교회는 성도를 영적 전사로 세우는 교회&lt;/strong&gt;이다. 교회의 목표는 신앙 소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영적 전사를 세우는 것이다. 모든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은사와 달란트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마지막 시대에 쓰임받는 교회는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 교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며, 시대적인 사역자를 양성하여 열방으로 파송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말씀 사역과 천국 복음, 성령의 은사와 능력, 영적 전쟁, 그리고 세계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시대적인 교회로 사용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왜 시대적인 교회를 세우시는지, 예수께서 보여 주신 교회의 세 가지 핵심 사역은 무엇인지, 그리고 AI 첨단시대에도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는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AI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목회와 신학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대의 도구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AI를 의존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중심에 두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회복하여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교회는 성도를 새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준비시켜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와 왕 노릇할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또한 시대적인 사역자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보다도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시대적인 부르심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서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충성스럽게 사용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사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I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설교 준비를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죄인을 회개시키며,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고, 악한 영을 물리치며,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성령을 의지해야 하며, 예수께서 보여 주신 교회의 본질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회개와 천국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마지막 시대를 섬기고, 많은 영혼을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19일(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동탄명성교회 창립 19주년을 맞아&amp;nbsp;&lt;strong&gt;예수님의 3대 사역&lt;/strong&gt;인 가르침, 전파, 치유를 현대적 사명으로 재해석하며 교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인공지능이 지식을 대체하는&amp;nbsp;&lt;strong&gt;첨단 AI 시대&lt;/strong&gt;&amp;nbsp;속에서도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amp;nbsp;&lt;strong&gt;영적 전쟁과 은사 사역&lt;/strong&gt;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도들을 단순한 신자가 아닌 영적 전사로 훈련시켜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궁극적으로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amp;nbsp;&lt;strong&gt;하늘의 상속자이자 왕&lt;/strong&gt;으로 노릇하게 돕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시대적 경륜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성도는 각자의 달란트로 이 일에 동참하여&amp;nbsp;&lt;strong&gt;천국의 상급&lt;/strong&gt;을 준비해야 한다는 비전을 선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인포그래픽_ChatGPT Image 2026년 7월 20일 오전 01_13_51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37ab198535fb3ed43f2371de071e135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3231890f10cea8a2626abf8bda5621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eec6375d20cb84b1527dcd66b6565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d1b364443595ffd8e8c7e709e0f890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bab7f0fdb0d46ebd8de70fdcc45cd2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ab72527c4df00fc3b9fe20e62294bd0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73ad765dd85ea28caf923ab7ad1647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6e91ffc6dc18e40137bbb05b8f198e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6ee1ca771720a509a942368c9eda89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e7109dee09f6a921de20c61ec67fc9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033d425e2dbf79b993be26dc98de045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c71c032d5d7846c2c6e15a9f7a9811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Holy_Spirit_Power_Beyond_AI.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e3e5a7631a2839e448d148b442293bb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AI_시대_교회_본질_사명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e3882affc9cd9767aa1d73b85ad12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63098f9565e19b81ae4ae3eaa40f72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f7e21c009ba98d6a24a9c56f3c70ec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5b3ba4f0c59ad7e09e88f358cc02c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ec1b3bdaa1f35ee302ade01ec208ef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0c6af10d196188b8226fd901047382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e4ea46c4f36745afc9169549e6146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df8a737f50f5de9c6c0d0a92ae6fd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8a7df68e3c50df8e039511aeb14b1a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5a4d11a27184bd6c33e5582d7e42b6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93d95b7263cbc9bc48ab4f65548084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f880830c78126918c6f37ef714c8f51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4c97dd806b8da0b16fad59cf2f2a04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ed536093dd405d7453f1f0c9f43e29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창립감사주일] Eternal_Authority_in_the_AI_Era.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19/262/4cba1753cd0ca32bd68e6adf231e74a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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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_2026-07-12(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2141</link>
				<description>&lt;p&gt;2026-07-12(주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p&gt;제목 :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vgJ9JALwF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vgJ9JALwF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0pt; line-height: 1.65; } h2 {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 2.8em 0 0.8em 0; padding: 0; } p { margin: 0 0 0.75em 0; padding: 0; } p.scriptur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date { margin-top: 1.5em; } &lt;/style&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신분을 말할 때, 그분을 한 분 하나님이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유일한 구원자라고 증언한다. 또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 고난받는 종, 목자, 모퉁잇돌과 반석, 재림주와 심판주로 예언한다. 이사야가 증언한 메시야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나 도덕 교사가 아니다. 그분은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요,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구원자이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할 선언이 있다. 그것은 &amp;ldquo;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amp;rdquo;는 여호와의 자기 선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셨는데, 신약은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선포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두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와 예수님은 서로 다른 두 구원자가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의 기독론이 신약의 복음과 만나는 핵심 지점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말씀 한마디로 인류를 구원하지 않으시고, 굳이 아기이자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왜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혈과 육을 입으셔야 했는가? 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야 했는가? 이 질문의 답이 바로 이사야 53장과 42장과 61장에 담겨 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야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는 종으로 오실 것을 말하고, 이사야 42장과 61장은 그분이 마귀에게 눌리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오실 것을 예언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 61장은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설교와 직접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고 &amp;ldquo;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amp;rdquo;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이며, 그분의 사역이 희년의 성취라는 선포였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지 죄 사함의 소식만이 아니다. 복음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갇힌 자가 놓임을 얻고, 눌린 자가 해방되며, 잃어버린 기업으로 돌아가는 희년의 소식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왜 유일한 구원자이자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으며, 그분이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어떻게 해방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h2&gt;2. 이사야는 왜 메시야를 유일한 구원자로 말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선포한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강한 신이 아니다. &lt;strong&gt;이사야의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lt;/strong&gt;. 이사야 44장 6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여호와께서 &amp;ldquo;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amp;rdquo;고 하신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독점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선언이다. 구원자는 오직 창조주만 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분만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설계하신 분만이 우리를 고칠 수 있으며,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신 분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을 위로할 수는 있지만,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다. 피조물은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 안으로 옮길 수 없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약성경은 바로 이 이사야의 선언을 예수님에게 적용한다. 누가복음은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고 말한다(눅 2:10-11). 여기서 &amp;ldquo;구주&amp;rdquo;는 헬라어로 &amp;ldquo;소테르&amp;rdquo;이며, 구원자를 뜻한다. 사도행전은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선포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말한다(행 4;12). 이것은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또 하나의 구원자라는 뜻이 아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신분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만이 구원자라는 말씀은 처음 들을 때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좋은 가르침도 있고, 여러 종교도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윤리적 개선이나 종교적 위로가 아니다. &lt;strong&gt;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의 빚에서 풀려나는 것이요,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가 메시야를 유일한 구원자로 예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신다. 구원은 우상이나 인간 영웅에게 맡겨질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의 일이며, 신약에서 그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선생으로만 보면 안 된다.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분이 이루신 복음의 능력을 실제로 누릴 수 있다.&lt;/p&gt; &lt;h2&gt;3. 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죄와 죽음과 마귀의 문제도 말씀 한마디로 해결하실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질문은 성육신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이루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구원은 단순한 힘의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인류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되찾으시는 사랑의 사건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 9장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런데 그 아들의 이름은 놀랍다. 그는 기묘자요 모사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 평강의 왕이다(사 9:6). 이 아들은 피조물이 아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과 다른 별개의 신도 아니다. 그는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아기 예언은 단순히 다윗 왕조의 한 후손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성육신의 예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왜 그분은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lt;strong&gt;첫째,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입으셔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죽으실 수 없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담당하시려면 혈과 육을 입으셔야 했다. 히브리서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으므로 그분도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아들로&lt;/strong&gt; 오셨다. 전능자가 멀리서 명령만 내리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알 수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낮아지셨고, 육신을 입으셨고, 고난을 받으셨고, 피 흘려 죽으셨다. 이것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가장 깊은 증거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lt;/strong&gt;. 마귀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붙잡고 사람을 종노릇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죄 없는 사람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마귀는 죄 없는 예수님을 죽임으로 불법을 저질렀고, 그 결과 사망과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께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다. 하나님은 강제로 빼앗듯이 구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와 지혜로 사탄을 이기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육신은 하나님의 약함이 아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지혜다.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패배자가 아니라 마귀를 멸하신 승리자이시다. 성도는 예수님을 아기와 아들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아기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들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담겨 있음을 보아야 한다.&lt;/p&gt; &lt;h2&gt;4. 메시야는 무엇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구원은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lt;strong&gt;첫째는 죄로부터의 속량&lt;/strong&gt;이다. &lt;strong&gt;둘째는 마귀의 압제에서의 해방&lt;/strong&gt;이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죄는 마귀에게 틈을 주고, 마귀는 죄를 통해 사람을 묶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은 죄 사함과 귀신의 속박에서의 해방을 함께 포함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사야 53장은 메시야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을 것을 예언&lt;/strong&gt;한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다. 그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신다. 이것이 대속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메시야의 구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lt;strong&gt;이사야 42장은 메시야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할 것&lt;/strong&gt;이라고 예언한다.&lt;strong&gt; 이사야 61장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lt;/strong&gt;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포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빛에서 보면 이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 마귀에게 눌린 자들, 귀신에게 묶인 자들이 해방되는 것을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도 베드로&lt;/strong&gt;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정리한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고,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는 것이다(행 10:38). 이것이 이사야 61장의 신약적 성취다. 예수님의 구원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귀신의 압제와 저주와 질병과 신기와 가난과 막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 주님은 그것에서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사도 요한&lt;/strong&gt;도 예수님의 오심을 마귀의 일과 연결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요일 3:8).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구원자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눌림에서 벗어나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구원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종교적 자격증이 아니다. 구원은 죄의 빚에서 놓이는 것이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놓이는 것이며,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바로 이 구원을 이루러 오셨다.&lt;/p&gt; &lt;h2&gt;5. 이사야 61장은 왜 희년의 성취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 61장은 메시야 사역의 핵심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임하셨고,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으며, 그 이유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사 61:1-2). 여기서 &amp;ldquo;기름부음 받은 자&amp;rdquo;가 곧 메시야다. 히브리어 &amp;ldquo;마쉬아흐&amp;rdquo;와 헬라어 &amp;ldquo;그리스토스&amp;rdquo;는 모두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야이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이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말씀의 중심에는 &amp;ldquo;자유&amp;rdquo;와 &amp;ldquo;놓임&amp;rdquo;이 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 본문을 읽으시며 자신에게 응했다고 말씀하신다(눅 4:20-21). 누가복음에 사용된 &amp;ldquo;자유&amp;rdquo;라는 단어는 헬라어 &amp;ldquo;아페시스&amp;rdquo;다. 이 단어는 자유, 해방, 용서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죄의 빚이 사해지는 것도 아페시스이며, 포로가 풀려나는 것도 아페시스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죄 사함과 해방을 동시에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4:20-21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lt;/p&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 61장의 &amp;ldquo;여호와의 은혜의 해&amp;rdquo;는 레위기 25장의 희년과 연결된다. 희년은 오십 년째 해에 선포되는 해방의 해다. 종은 자유를 얻고, 빚은 탕감되며, 잃어버린 기업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다(레 25:10).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자기 기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구원의 예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은 바로 이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그분은 죄의 빚을 탕감하러 오셨다. 그분은 마귀의 종노릇에서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 그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게 하러 오셨다&lt;/strong&gt;. 궁극적으로 되찾아줄 그 기업은 &amp;#39;새 예루살렘 성&amp;#39;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지 구약의 경제 제도가 아니다. &lt;strong&gt;희년은 메시야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실제&lt;/strong&gt;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 61장은 보복의 날도 함께 말한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지만, 그들을 묶고 압제하던 마귀와 악한 세력에게는 보복의 날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희년은 자유만이 아니라 심판도 포함한다. 포로에게는 해방이지만, 포로를 붙잡고 있던 자에게는 심판이다. 이것이 메시야 사역의 양면이다.&lt;/p&gt; &lt;h2&gt;6. 성경의 세 가지 대탈출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의 구원 역사는 한 마디로 &amp;#39;대탈출의 역사&amp;#39;라고 정리할 수 있다. &lt;strong&gt;첫 번째 대탈출은 B.C.1446년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lt;/strong&gt;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종으로 살았다. 그들은 노예였고, 압제당했으며, 자기 기업을 누리지 못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다. 출애굽은 세상 권세와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첫 번째 큰 예표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대탈출은 B.C.538년에 있었던 남유다의 바벨론 포로귀환&lt;/strong&gt;이다. 남유다 백성은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 2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amp;#39;고레스&amp;#39;라는 이름까지 예언하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자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대하 36:22-23, 스 1:1-4). 놀랍게도 이사야는 고레스를 &amp;ldquo;내 목자&amp;rdquo;라고 부르고(사 44:28), &amp;ldquo;기름부음을 받은 자&amp;rdquo;라고 말한다(사 45:1). 고레스는 영혼의 구원자는 아니지만,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나오게 하는 도구적 메시야의 예표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두 번째 대탈출의 목적지는 &amp;#39;예루살렘&amp;#39;이었다. 바벨론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이 탈출을 강하게 선포한다. &amp;ldquo;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오라&amp;rdquo;고 말한다(사 48:20). 이것은 역사적으로 포로귀환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의 죄와 우상과 혼합에서 나와야 함을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48: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대탈출은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대탈출하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크시고, 고레스보다 크신 참 메시야다. 모세는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했고, 고레스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흑암에서 빛으로, 죄와 죽음에서 생명으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신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경의 대탈출은 점점 더 깊어지고 완성된다. &lt;strong&gt;출애굽은 육체적 노예상태에서의 탈출&lt;/strong&gt;이었고, &lt;strong&gt;포로귀환은 역사적 바벨론에서의 탈출&lt;/strong&gt;이었다. 그러나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적 포로상태에서의 탈출이다. 이것이 최종 대탈출&lt;/strong&gt;이다. 이 대탈출의 목적지는 단순한 가나안도 아니고 지상의 예루살렘도 아니다. 최종 목적지는 &amp;#39;새 예루살렘 성&amp;#39;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아직도 바벨론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우상과 죄와 마귀의 속박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정상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희년은 이미 선포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벨론에서 나오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lt;/p&gt; &lt;h2&gt;7.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의 갈릴리 사역도 예언하였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이방의 갈릴리에 큰 빛이 비칠 것이라고 했다(사 9:1-2).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이사야 9장의 성취로 본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빛이 비쳤다. 그 빛이 예수님이시다(마 4:15-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의 공생애는 이사야 61장의 실제 성취&lt;/strong&gt;였다. 그분은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귀신들이 떠나갔고, 병든 자들이 일어났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 쇼가 아니다. 이것은 희년이 실제로 시작되었다는 증거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lt;/p&gt; &lt;p&gt;&amp;nbsp;&amp;nbsp;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을 읽으신 뒤 곧바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께서 &amp;ldquo;포로된 자에게 자유&amp;rdquo;와 &amp;ldquo;눌린 자에게 해방&amp;rdquo;을 선포하셨다면, 그 해방의 실제는 귀신이 떠나가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와 축사와 치유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 이것이 희년의 삼중적 성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4:33-36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다.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귀먹은 자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다. 이것은 육체의 치유이면서 동시에 영적 해방의 표적&lt;/strong&gt;이다. 질병과 저주와 눌림의 배후에는 죄와 마귀의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의학적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임재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죽은 뒤 천국에 보내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마귀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시고, 죄의 빚에 묶인 자를 용서하시고, 흑암에 앉은 자를 빛으로 이끄신다. 복음은 듣는 교리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해방으로 나타나야 한다.&lt;/p&gt; &lt;h2&gt;8. 오늘 우리는 희년의 축복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이미 오셨다면, &lt;strong&gt;성도는 그분이 성취하신 희년을 누려야&lt;/strong&gt; 한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눌린 채 살아간다. 질병과 신기와 가난과 막힘과 두려움과 우울과 중독과 혈기와 음란과 무기력에 묶여 산다. 이것은 복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예수님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희년을 누리려면&lt;/strong&gt; &lt;strong&gt;첫째,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 외에는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우리를 건질 이름이 없다. 선한 사람도 많고 좋은 교훈도 많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옮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단순히 종교적 위로자로만 믿지 말고,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죄 사함을 누려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하러 오셨다. 죄의 빚은 인간이 스스로 갚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 또한 자백을 통해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고, 죄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회개해야 한다. 회개 없는 믿음은 희년을 실제로 누리게 하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요일 3:8). 그러므로 성도는 귀신에게 눌려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하고, 회개로 악한 영들의 근거를 제거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 희년은 말로만 선포되는 자유가 아니라 실제로 묶임이 풀리는 자유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살아야&lt;/strong&gt; 한다. 희년은 각 사람이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해다. 신약의 최종 기업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성 밖이 아니라 성 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게 18:4).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목적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음은 분명하다. 예수께서 이미 희년을 성취하셨다. 죄의 빚은 탕감될 수 있고, 마귀의 압제는 끊어질 수 있으며, 잃어버린 기업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마귀의 속박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 복음은 실제 능력이며, 예수님은 지금도 구원자이시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유일한 구원자이자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사실&lt;/strong&gt;을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여호와만이 구원자라고 선포했으며, 신약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증언한다. 이것은 두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구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아들로 오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말씀 한마디로만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랑과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 혈과 육을 입으셨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를 단순한 고난의 상징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는 속죄의 자리이며, 마귀가 패배한 자리이며, 희년의 문이 열린 자리로 보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고 우리는 &lt;strong&gt;이사야 61장이 희년의 성취를 말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 이것은 레위기 25장의 희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사함만 말하고 마귀의 속박에서의 해방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죄의 빚에서 놓임을 받아야 하고, 귀신의 압제에서도 벗어나야 하며, 잃어버린 기업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성경의 세 가지 대탈출도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나아간 출애굽이고, 두 번째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귀환이며,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아가는 최종 대탈출이다. 성도는 아직도 바벨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흑암의 권세에 묶인 삶을 정상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이미 오셨으므로, 이제는 해방된 자답게 살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하고, 회개를 통해 죄 사함과 정결함을 받아야 하며,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 또한 구원의 목적지가 새 예루살렘 성임을 알고, 그 성 안에 들어갈 자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희년은 교리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에서 자유와 해방과 회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7월 12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이사야가 예언한&amp;nbsp;&lt;strong&gt;메시아의 정체성&lt;/strong&gt;과 그가 가져올&amp;nbsp;&lt;strong&gt;영적인 희년&lt;/strong&gt;의 축복을 신학적 통찰로 풀어낸 강론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과 별개의 존재가 아닌, 인류를 죄와 마귀의 압제로부터&amp;nbsp;&lt;strong&gt;직접 구출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lt;/strong&gt;이심을 강조합니다. 특히 200년 전 고레스 왕을 지명한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성을 증명하며,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포로된 자에게&amp;nbsp;&lt;strong&gt;자유와 해방을 주어 잃어버린 천국 기업을 회복&lt;/strong&gt;시키는 사건이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우리를 만드신&amp;nbsp;&lt;strong&gt;창조주만이 인간의 고장 난 근본 문제를 해결&lt;/strong&gt;할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성도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이 완전한 구원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요약]&lt;/p&gt; &lt;p&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lt;strong&gt;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유일한 구원자&lt;/strong&gt;이며, &lt;strong&gt;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인류를 해방하러 오신 희년의 성취자&lt;/strong&gt;다. 그분은 이사야 53장처럼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대속물로 죽으셨고, 이사야 42장과 61장처럼 마귀에게 눌리고 포로 되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오셨다. 출애굽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의 탈출이었고, 포로귀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탈출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흑암에서 빛으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는 최종 대탈출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께서 이미 성취하신 희년의 복음을 믿고, 죄와 죽음과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 자유를 실제로 누려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인포_ChatGPT Image 2026년 7월 12일 오후 10_21_34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45f0f238e248b786b2581f786578209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cf635226768bcb616a575d923a9e88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56bd71a2090aa21bc3f7a9495a68e2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284ad2ef36d87c86da5d7c1fc5db02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73a9333a3a475f55bbbdc004ece95b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cdd6049e48788fb9525a97a943e8b8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ed743cf1add6ec046e90c21cc2a247b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f2e733bbe1c7c893653c201c006ea0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2d6b0222b990462e864b2c324a098c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8d6bb0263a490f2ae8114198b1ca72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2fd4faa1643d1f45d4c908c93a667a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98cb610d6d6525727abe9f2acfe402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46e1aa139f6af00af9ef58d6ebf74b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b343516c9d1690fc6a1b269aecfd7b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5bdf4018576afa654618ed592a1358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The_Light_of_Jubilee.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f757064565191981754242d4307637e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container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하는 악한 영의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간과한 채 살아왔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amp;quot;귀신은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라. 그러면 없는 것이다. 왜 귀신들에게 눌리고 고통을 받으며 사느냐. 없다고 무시해 버려라.&amp;quot; 귀신을 무시하고 사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무시한다고 해서 귀신의 공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속에 들어온 영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하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특히 예수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도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려면 주님이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한다. 주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 살펴보면 딱 세 가지였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회당에서 성경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마 4:2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도 매주마다 천국 복음을 들어야 하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배워야 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한다는 것을 이 땅에서부터 경험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천국이 소망이 되겠으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는데 어떻게 천국이 상상이 되겠는가.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임재라고 말씀하셨다 (마 12:28).&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귀신을 쫓아내 보아야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은 하루아침에 다 나가지 않는다. 그 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기 때문이다. 거머리를 백 마리나 몸에 달고 살면서 날마다 보약을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강해질 수 없듯이, 우리 속의 악한 영들을 뜯어내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회개하며 뽑아낸 귀신의 숫자를 헤아려 보면 이만이 넘을 만큼 많으니, 회개기도문으로 이천 번, 삼천 번 기도해야 할 만큼 뽑아내야 할 귀신이 많은 것이다. 일평생 귀신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지 않아 별문제 없이 산 사람은 그 귀신을 하나도 뽑아내지 못한 채 무거워서 휴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귀신의 영향으로 병이 들고 신기에 시달리고 잠을 못 자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죽을 무렵에는 귀신이 다 떠나가서 휴거될 때 맨 먼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모른 채 살고 무시하며 사는 것보다 성경적 지식을 알고 살아갈 때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 구원의 혜택을 우리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이긴 자가 되려면 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모든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려면 악한 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곧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긴 자이심을 밝히시면서, 우리도 이긴 자가 되면 그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 3: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이겨야 하는가. 옛사람과 세상과 육신 등 이겨야 할 것이 많지만 그 핵심은 세 가지, 곧 죄와 죽음과 마귀다. 그런데 이긴 자의 삶은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긴 자로 걸어가신 길은 즉흥적인 길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행동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하였거나, 그 이전 사람들이 율법과 역사서 속에서 예표로 보여 준 것들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모세오경, 사무엘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까지 쭉 살펴보면서 이사야서까지 왔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는 인물적 예표와 모형론적 예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긴 자로 살아가실 것인지를 알려 준 모형들을 찾아보았다. 특별히 인물적 예표로서 다윗 왕을 통하여 전쟁에 능한 자가 이긴 자였음을 배웠고, 그 전에 여호수아가 잠깐 그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사실도 배웠다. 다윗으로 이긴 자의 여정이 끝난 줄 알았더니, 이긴 자의 삶은 결국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의 삶으로 이어졌다. 솔로몬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어갈 자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메시아의 삶과 그분이 행하실 일들, 그리고 그분이 어떤 신분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실 것인지에 관하여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미 구체적으로 말씀해 놓으셨다. 그 예언자들을 선지자라고 하는데, 기록한 분량이 많은 선지자를 대선지자, 분량이 적은 선지자를 소선지자라 하여 모두 열일곱 명이 있다. 그중에서 심판과 회복과 메시아 예언이라는 전형적인 선지자의 길을 걸어간 대표 주자가 이사야다.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면서 (사 1:1) 주전 740년부터 680년 어간까지 약 60년 동안 네 왕을 섬기며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메시아가 어떤 신분을 가지신 분인가에 대한 예언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이다. 곧 그분의 인격과 사역이다. 그중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둘째, 그분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동시 존재가 가능하시기에 아들로 오실 때 인격적 구분이 되어, 아들이 아버지께 자기의 뜻을 아뢸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눅 22:42). 이는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요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만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오시려고 작정하셨고,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으므로 아직 드러나지 않아 구약 시대에는 마귀도 아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다만 다윗이 성령 안에서 천 년 뒤에 있을 일을 미리 보았으니 그것이 시편 110편이다 (시 110:1).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기에 미래의 일까지 다 보이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천국에 가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보좌가 있을 것 같으나 보좌는 하나뿐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모세와 다윗에게 나타나신 만군의 여호와가 바로 그분이시다. 처음부터 세 분으로 계셨다고 여기는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회개하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는 아기와 아들로 오시는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고 예언하였다 (사 9: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기와 아들로 오실 그분이 원래 아버지셨다는 것이다. 이 한 분 하나님이 정리되고 나면 귀신을 이길 수 있겠다는 강력한 믿음이 오기 시작한다. 이처럼 이긴 자가 되는 길은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시작되며, 그 예수님을 알려면 그분에 대하여 미리 기록해 놓은 구약의 예언과 예표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여호와는 이사야서에서 자신을 누구라고 선언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 세 번에 걸쳐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고 자신을 선언하셨다 (사 41:4; 44:6; 48: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와도 함께 있는 자니 곧 내가 그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도 세 번에 걸쳐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고 말씀하셨다 (계 22:1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자기 선언을 예수님이 그대로 하신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을 모르면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칭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분 하나님을 알면 이것이 예수님이 곧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임을 알게 된다. 그 하나님이 이사야서에서 자신에 대하여 선언하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 44장 6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호와께서 자신을 &amp;quot;이스라엘의 구원자&amp;quot;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사야 43장 11절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amp;quot;라는 선언만 있는 줄 알았더니 &amp;quot;나는 구원자다&amp;quot;라는 선언이 또 있었던 것이다. 구약 성경 전체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심으로 구원자이심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신 곳은 많다. 그러나 &amp;quot;나는 구원자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직접 선언하신 곳은 이사야서 외에 단 한 곳뿐이니, 호세아 13장 4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호 13: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구약의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서와 호세아서를 통하여 &amp;quot;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이 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신약과 구약의 구원자는 어떻게 한 분 하나님으로 통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신약 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셨다 (요 14: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도 예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고 증언하였다 (행 4: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교회에 와서 예수만이 구원자라는 것을 계속 듣고 배운 사람이 구약 성경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amp;#39;아들이 구원자인데 왜 아버지가 자신을 구원자라 하시는가. 구원자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아버지시고 구원자는 예수님이시라고 해야 맞지 않는가.&amp;#39; 심지어 여호와가 아들의 자리를 사칭하시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칭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는 모두 한 분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양쪽 말씀이 모두 옳다.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말씀은 &amp;#39;내가 창조주요 내가 구속주다, 내가 구약 성경의 여호와요 신약의 예수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마친다&amp;#39;는 선언이었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amp;#39;여호와가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이다 (마 1:21).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가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소식, 하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무엇이라 하는가. 바로 복음이다. 그래서 마가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하고 (막 1:1),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막 1: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 자체가 구원자의 탄생이었음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으로 선포하였다 (눅 2:10-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amp;quot;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으니 그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신약 성경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소개해 주는 책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꿰어지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모든 소식이 복음이었음을 알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예수님은 나사렛 취임 설교에서 무엇을 선포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 바로 본문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눅 4:16-2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자라나신 나사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첫 설교, 곧 취임 설교를 하셨다.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 열 명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회당이 세워졌고, 회당을 맡은 회당장에게는 설교자를 세울 권한이 있어 훌륭한 사람이 오면 설교할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가 예수님께 주어지자,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이사야의 두루마리 성경을 찾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예레미야서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책이다. 그 두루마리는 두 사람이 낑낑대며 들고 와야 할 만큼 무거웠고, 한쪽을 풀면 다른 쪽을 말아 가면서 읽어야 했으므로 61장을 찾으려면 한참을 말아 들어가야 했다. 어느 장이든 펼치면 즉시 나오는 성경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이사야 61장 1절과 2절이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예수님은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신 후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눅 4: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1장 1절의 &amp;quot;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amp;quot;에서 &amp;#39;나&amp;#39;는 일차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가리킨다. 이사야도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도 일종의 메시아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완전한 메시아가 아니라, 그 메시아가 어떤 존재인지를 예언해 준 선지자로서의 메시아였다. 이 말씀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amp;quot;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amp;quot;라고 말씀하심으로 확증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취임 설교로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설교 그대로의 삶을 사셨고, 십자가에서 &amp;quot;다 이루었다&amp;quot;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막 16:15).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을 온 세상에 설명해 주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본문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은 주 여호와의 영이 메시아에게 내려와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실 것인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 주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를 놓아주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 오신다는 말씀이다. 나아가 슬퍼하는 자에게 재를 대신하여 화관을 주고, 슬픔을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을 주고, 근심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입혀 주셔서, 그들이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가 하실 일이며, 예수님은 이 첫 설교 그대로 사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른다면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누리지 못한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공생애에 하신 일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복음을 통해 받을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살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건져 주러 오셨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질병과 가난과 시달림과 막힘의 저주 가운데서 귀신들에게 눌려 살면서도 예수께서 이미 해방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이미 우리를 해방시켜 놓으셨음에도 그 혜택을 누리는 방법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하는 신약 성경만 읽다가 이사야서를 읽으면 앞에서 말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이 선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간과한 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메시아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자이신가. 첫째, 죄와 죽음으로부터다. 죽음은 죄의 삯이므로 이 둘은 하나로 묶인다. 이 구원이 이사야 53장에 예언되어 있다 (사 53:4-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분은 우리 때문에 이마와 가슴과 손과 발이 찔리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 받아 굶주리시고 목마르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고 모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다음에 죽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속물로 오셨음을 친히 말씀하셨다 (막 10:4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어 사망으로 끌어가려는 그 세력 자체, 곧 마귀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려고 오셨다. 이사야 42장은 메시아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이끌어 내실 것을 예언한다 (사 42:6-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단언하였다 (요일 3:8).&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 주려고 오셨다고 증언한다 (히 2:14-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사야 61장과 53장을 합쳐 보면, 예수님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고 마귀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도 이것이었다 (행 10:38).&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받은 사명을 증언하면서,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였다 (행 26:18).&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해방자이시다. 한때 해방 신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표현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해방 신학은 노동자를 억압하는 지주와 경영자를 없애기 위해 주님이 오셨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권력 있는 자를 무조건 없애자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써먹은 수법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지주를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압제하는 악한 마귀를 없애러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려고 해방자로 오셨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그 압제의 자리에서 빨리 나오라고 계속 선포한다 (사 52: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에서도 세상의 영인 바벨론에 속한 자들을 향하여 같은 음성이 울린다 (계 18: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장차 대환란이 닥치면 끝까지 남겨진 자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요구받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주님을 진짜 사랑하는지 그 자리에 남아 목숨을 바쳐 증명하려 하기보다, 지금부터 회개하고 지금부터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지금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는 익은 곡식처럼 먼저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고레스는 어떻게 해방자의 예표가 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를 해방자와 탈출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놀라운 계시가 들어 있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39장까지가 전반부로 심판의 선언이고, 40장부터 66장까지가 후반부로 회복의 선언이며, 양쪽 모두에 메시아가 예언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장 이후 회복을 선언하시면서 한 사람의 해방자를 등장시키신다. 그가 바로 고레스 왕이다 (사 44-45장).&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희년이란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해로서, 종 된 자가 해방되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는 해다 (레 25: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고레스는 바로 이 희년적 해방의 예표였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으로, 키루스라고도 불린다. 이 고레스가 주전 538년에 이스라엘의 해방령을 내렸으니, 그 기록이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대하 36:22-2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하 36:22-23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역대하의 기록에 이어지는 내용이 에스라서에 나온다. 에스라 1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역대하의 기록과 같고, 4절부터는 추가된 명령이 나온다 (스 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스 1: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계 대제국을 형성한 왕이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던 포로 백성을 놓아줄 뿐 아니라, 돌아가는 그들을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돕고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까지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비를 얻은 것도 아니고 신하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누가 고레스로 하여금 이런 명령을 내리게 하였는가. 하나님이 하셨다. 역사적으로도 고레스 왕의 원통형 비문이 발견되어 이 조서가 실제 있었던 일임이 확인되었다.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희년의 선포자, 해방자, 구원자의 삶을 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사야가 이 고레스를 이름까지 지목하여 예언했다는 사실이다 (사 44:28; 45: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고레스를 &amp;quot;내 목자&amp;quot;, &amp;quot;기름 부음을 받은 자&amp;quot;라고 부르셨다. 목자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칭호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만큼 고레스는 메시아의 예표로 쓰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예언을 언제 하였는가. 이사야서 36장부터 39장에 히스기야 왕 이야기가 나오므로 이 예언은 히스기야 왕 때, 곧 주전 700년경에 한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는 주전 728년경에 태어나 697년에 죽었다. 그런데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등장한다. 약 이백 년 뒤에 등장할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 앞에서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들은 이사야 40장부터 66장은 바벨론 포로 귀환 때에 후대 사람이 기록하여 이사야서 사이에 집어넣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40장부터 55장까지는 제2이사야가, 56장부터 66장까지는 제3이사야가 썼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백 년 뒤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느냐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이사야 두루마리 가운데 그렇게 나뉘어 발견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이사야 61장을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으로 읽으셨는데, 후대 편집설을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재단하는 것이다. 신학교에 가서 이런 것을 배우다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에서 말씀을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마태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이사야 53장의 성취라고 기록하였다 (마 8:1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보면 성경의 역사는 삼 대 출애굽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출애굽은 모세가 바로 왕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것이다. 둘째 출애굽은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게 한 것이다. 셋째 출애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건져 새 예루살렘 성으로 데려가시려고 구출해 내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면 고통받던 자들에게 흑암이 사라질 것을 예언하였다 (사 9: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1-2 그러나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는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셔서 사역하신 것이 바로 그 예언의 성취라고 기록하였다 (마 4:15-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창조주이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왜 하나님은 &amp;quot;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말씀하셨을까. 오랫동안 고민해 보면 답은 한 가지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생각했지 창조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증언한다 (요 1: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만드신 분에게 주권이 있다. 우리가 죄를 지어 고장이 났는데, 만드신 분이 아니고서야 누가 우리를 고칠 수 있겠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어느 날 포드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이 고장 난 차를 세워 놓고 고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포드 자동차였고, 그 옷차림을 보니 포드 자동차 정비사였다. 노신사가 차를 멈추고 물으니 정비사가 말하였다. &amp;quot;이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데 도무지 수리할 수가 없습니다.&amp;quot; &amp;quot;정비 일을 몇 년이나 했는가?&amp;quot; &amp;quot;수십 년 했지요. 그런데도 모르겠으니 어떻게 합니까?&amp;quot; &amp;quot;그럼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겠나?&amp;quot; 그는 오 분 안에 차를 고쳐 버렸다. 놀란 정비사가 당신이 누구시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amp;quot;내가 이 차를 만든 장본인이네.&amp;quo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제일 잘 아신다. 이것밖에 살리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말로만 하시지 않고 직접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구약의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러 오셨으니, 그분이 &amp;quot;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고 이미 십자가에서 &amp;quot;다 이루었다&amp;quot;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자 곧 마귀로부터 구출된 것인가, 안 된 것인가. 구출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귀신들에게 &amp;quot;우리는 해방되었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압제하느냐, 왜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느냐&amp;quot;라고 물으면 귀신들은 자기도 합법적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므로 죄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고 (요일 3:8),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죽이려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롬 6:2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한다 (요일 1: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근거로 들어와 있던 귀신들이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개해 보면 그들이 떠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희년의 선포자로 오셔서 우리를 종의 자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이 이미 예언을 따라 오셔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는 그 희년의 축복을 지금 누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수리하러 오셨다. 회개만 하면 우리 인생을 다 수리해 주셔서 다시 싱싱하게 달리게 하시며, 성령의 기름까지 넣고 달리면 천국까지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서에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선언과 함께 &amp;quot;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amp;quot;라고 선언하셨다 (사 43:11; 44:6). 신약 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증언하는데,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곧 구약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이며, 그 구원자가 오셨다는 소식이 곧 복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의 취임 설교에서 이사야 61장 1절과 2절을 일부러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이 예언의 성취자이심을 밝히셨다. 그분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나아가 우리로 죄를 짓게 하여 사망으로 끌어가는 세력인 마귀를 멸하시고 그에게 종노릇하던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 하나님은 이 해방자의 예표로 고레스를 이백 년 전에 이름까지 지목하여 예언하셨고, 모세의 출애굽과 고레스의 출애굽에 이어 예수님을 통한 셋째 출애굽으로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이끄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에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해방을 주장하며,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우리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던 귀신들을 쫓아내야 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누리지 못하므로,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년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구원자 되신 주님을 힘입어 죄와 죽음과 마귀에게서 온전히 자유함을 얻고,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운 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7월 12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인포_메시아의_희년_위대한_대탈출_vora (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6979c610f6048605a7548cd3226ac0e6.webp&quot; /&gt;&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c0c5f217a54718a2bc2043191d7243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eb37dc3e6851fdd6a523dcc94a95b2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eec416b9baef1cf86aa4bdbfd7bc89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aff7a91543bbae3d98a14b4689b1bf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c374c226b22eb80531d34b3e484fcdf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a721a59e2ce892d09f4b74208ffda0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7ca033eec74f8caa9403f8c0de154a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0c6d3a0d452738ca2a31394258a1b7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1)] 이사야의_기독론과_위대한_해방.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41/262/eaa9472b48c02e4f92c181a54ef6b9a8.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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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2141#comment</comments>			<pubDate>Sun, 12 Jul 2026 20:56:54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2026-07-0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1802</link>
				<description>&lt;p&gt;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88FklwjHV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88FklwjHV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이 질문 앞에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증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일 4:10). 여기에서 &amp;#39;화목제물&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 &amp;#39;힐라스모스&amp;#39;는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이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여전히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이 셋은 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 &amp;quot;예수님이 하나님이셨어?&amp;quot;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오시어 속죄를 담당하셨으며, 돌아가신 다음에는 영원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의 머릿속에는 사실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존재하셨는데 이 셋은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곧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곧 영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증언하는가. 놀랍게도 이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한꺼번에 정리해 주는 구약의 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다. 이사야서에는 그리스도이신 아들에 대한 놀라운 계시의 말씀들이 들어 있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만약 이사야 선지자의 계시를 몰랐다면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신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이신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셨다는 말씀이요(사 44:6), 바로 그분이 한 아기와 한 아들로 태어나실 것인데 그분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 불릴 것이라는 말씀이다(사 9: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구원자&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가알&amp;#39;은 구속자 혹은 속량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amp;#39;전능하신&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깁보르&amp;#39;는 능하신 자, 강한 자, 전사라는 뜻이며, &amp;#39;기묘자&amp;#39;는 놀라운 분, &amp;#39;모사&amp;#39;는 조언자, &amp;#39;평강의 왕&amp;#39;에서 &amp;#39;왕&amp;#39;에 해당하는 &amp;#39;사르&amp;#39;는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심각한 질문이 생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친히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신다고 하였으니, 과연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기로 태어나신 그분의 이름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신약성경,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고(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으며(요 14:9),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12:44-4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amp;#39;내가 그&amp;#39;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요 8:24). 여기에서 &amp;#39;내가 그&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 &amp;#39;에고 에이미&amp;#39;는 &amp;quot;나는 나다&amp;quot; 곧 &amp;quot;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amp;quot;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사용하신 바로 그 이름이다(출 3:14).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곧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하신 것이요, 이것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는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계 1:17).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자기선언과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세 번씩이나 반복하신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quot;라는 자기선언 사이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는 무엇이 문제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의 교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장로교는 1648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를 믿고 있다. 이것은 1643년부터 1647년까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회의 기간 중에 제정된 전문 33장의 칼빈주의적 신앙고백서다. 이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ldquo;하나님의 본체(本體)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三位)이시다(요일5:7; 마3:16-17, 28:19; 고후13:13).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요1:14,18),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요15:25; 갈4:6).&amp;rdquo;&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교리는 뒷부분에서 잘못된 정의를 내렸다. 성자가 &amp;#39;영원히&amp;#39; 나셨고 성령이 &amp;#39;영원히&amp;#39; 나오셨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성자가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다는 표현이다. 이 교리를 따르는 이들은 영원 전에 나셨던 아들과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던 성령이 함께 활동하셔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계셨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교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으로 계셨으나 우리 인간을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는 시간적인 절차를 무시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에는 분명한 시간의 순서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홀로 한 분으로 계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 그리고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셨다. 아들이 나신 때는 영원이 아니라 성육신 때이며, 보혜사 성령이 나오신 때도 영원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때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실 분이 예수님이시니, 보혜사 성령이 나오시는 때는 영원 전이 아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갈 4:6).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진 때가 언제인가. 그것 역시 영원 전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왜 한 분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잘못 알게 되었는가. 필자는 그 뿌리가 벨직신앙고백서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561년에 나온 벨직신앙고백서는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amp;#39;아니다&amp;#39;라고 할 것이 아니라 &amp;#39;구별된다&amp;#39;라고 표현했어야 했다. &amp;#39;아니다&amp;#39;라고 정의하는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른 세 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천주교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그림들을 보면 이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그림은 성부는 할아버지처럼, 아들은 젊은 사람처럼, 성령은 비둘기로 그려 놓았기 때문에 셋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은 셋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그림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눈에 셋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이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세 분으로 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증언하는가.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들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와 그림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 앞에 서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아들과 성령의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러한 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교리에서는 아들과 성령의 &amp;#39;존재하심&amp;#39;과 &amp;#39;나타나심&amp;#39;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인데 말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아들의 경우를 보자.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다. 곧 존재하고 계셨다. 사도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8).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다가 때가 되매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실 수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언하였다(골 1:15-16). 여기에서 &amp;#39;먼저 나신 이&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amp;#39;프로토토코스&amp;#39;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골 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니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아들로 나타나셔서 활동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존재로 말하면 아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으나, 나타나심으로 말하면 아들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실 때에 비로소 이 땅에 나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바로 이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하고 &amp;#39;영원히 나셨다&amp;#39;고 정의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리와는 달리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증언한다(창 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령께서 보혜사 성령으로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기 위하여 오신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 말씀하시어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amp;#39;영원히 나오신다&amp;#39;는 정의 역시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한 정의다. 성령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이미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고, 내주하시는 보혜사로 나타나신 때는 오순절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고 나면,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아들로 오시고 보혜사로 오셨다는 하나님의 경륜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이사야는 대체 누구이며 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러한 한 분 하나님을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는 이사야는 대체 누구인가.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약 60년 어간에 남유다의 네 왕, 곧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에 활동하였던 궁궐 선지자다(사 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가 궁궐 선지자였다고 보는 것은 그가 웃시야(아사랴) 왕의 아버지였던 남유다 제9대 왕 아마샤의 형제이거나 아들로서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왕실의 혈통에 속한 사람으로서 왕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었다(사 6:1).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선지자로 보내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사 49: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 이사야서가 중요한 것은 다음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구약의 열일곱 권의 선지서들 가운데 맨 앞에 나오는 예언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구약의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선지서는 아니다. 기록된 선지서만 따진다면 이사야보다 약 100년 전에 이미 오바댜서와 요엘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 여부와 상관없이 선지자로 말한다면 사무엘 선지자 내지는 엘리야나 엘리사가 먼저일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가 예언한 것들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분량으로 보면 선지자들 가운데서 예레미야 다음이지만, 장수로 보면 제일 많다. 예레미야서는 52장이요, 이사야서는 66장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의 예언은 구약 예언자의 모형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과 회복, 심판과 회개의 촉구, 회복과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걸어간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구약 예언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가장 많은 직접적인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한마디로 &amp;#39;구약의 복음서&amp;#39;라고 불린다.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를 보면 영락없이 사복음서를 닮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이사야 40장에 나온다. 그리고 공생애에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가 그 중간에 나오고, 이사야 65장과 66장에는 재림 후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전 과정을 미리 보여 주는 책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사야가 예언하였던 메시야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에 관한 것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서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 이상의 메시야의 신분이 나온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첫째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둘째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으로, 셋째 유일한 구원자로, 넷째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자신으로, 다섯째 다윗 왕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여섯째 고난받는 종으로, 일곱째 목자로, 여덟째 모퉁잇돌이자 반석으로, 아홉째 재림주이자 심판주로 예언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가운데 몇 가지만 성구로 확인해 보자. 이사야는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선언하였다(사 43:11). 그런데 신약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증언하니, 예수님이 곧 여호와가 아니시라면 이 두 증언은 충돌하고 만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임마누엘은 &amp;#39;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amp;#39;라는 뜻이니, 처녀에게서 나실 그 아기가 곧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한 싹이요 그 뿌리에서 나는 한 가지라고 예언하였고(사 11:1),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는 고난받는 종이라고 예언하였으며(사 53:5),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는 목자라고 예언하였고(사 40:11),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촛돌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8: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놀랍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한 인간 정도가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이시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한 분 하나님 그분이시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혈통과, 잉태와 출생과, 선구자의 인도와, 성령을 받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과, 이방인의 빛으로서 병든 자를 치유하실 것과,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과, 높아지셔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과, 심판주로 오셔서 왕 노릇 하실 것과, 회복될 그분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까지 예언하였다. 메시야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역하실 것과(사 61:1), 죽으신 후에 부자와 함께 장사되실 것까지(사 53:9) 낱낱이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컨대 메시야보다 앞서 와서 그분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에 대하여 이사야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예언하였는데(사 40:3), 사복음서는 이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선구자가 예비하는 길이 &amp;#39;여호와의 길&amp;#39;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세례 요한이 예비한 길은 예수님의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심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곧 이방의 갈릴리에서 큰 빛으로 비추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9:1-2).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시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성취라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사복음서에서 확인하는 예수님의 생애가 이미 700여 년 전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낱낱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예언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여호와와 예수님의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선언은 어떤 관계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번씩이나 당신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라고 하셨고(사 41:4),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으며(사 44:6), 야곱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고 하셨다(사 48: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선언하셨다(계 1:17-18, 2:8). 나아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까지 선언하셨다(계 22:1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칭호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자기 칭호이기도 하다(계 1:8). 알파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니, 알파와 오메가는 곧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예수님의 자기선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완전히 동일한 자기선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결론 앞에 서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분이시라면 처음과 마지막이 두 분이 되고, 이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여호와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뿐이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다(사 44:6). 이사야 9장 6절이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그분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우리 인류를 위하여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증거는 세 가지다. 첫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8:24). 둘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 1:17). 셋째, 그분이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말하였다(행 20:28).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피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예수께서는 원래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데,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피 흘려 죽으시고자 육신을 입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사 9:6). 그러므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며, 그것을 가리켜 그분이 아들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홀로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이후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활동하시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요 14:9-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보혜사로 오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은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셔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니, 사도 바울이 노래한 대로 이것이야말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 아닐 수 없다(딤전 3: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게 된다. 창조주는 여호와요 구속자는 예수님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홀로 한 분으로 계신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예수님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우기게 되며, 예수님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그분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의 이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그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때에도 귀신이 안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믿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셔서 나의 죄를 속죄하여 주셨음을 믿는다고, 그리고 다시 오실 한 분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지만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으로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고백해야 한다. 나아가 이제까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고, 예수께서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온 인류를 위하여 아들로 오신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던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을 향하여 깨어나라고 선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분은 아들로 존재하시기 위하여 존재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원래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두 가지를 행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시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때에 단지 아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에게서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난다. 그분이 전능자시요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까지 행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그분의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실제로 영적 세계에서 사용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남유다의 네 왕의 시대에 활동한 궁궐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신분에 관하여 아홉 가지 이상을 예언하였고 메시야의 사역에 관하여 잉태와 출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예언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사 9:6).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으로서 동일하게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고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시니, 두 분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지만 원래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지금은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활동하고 계신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교리는 셋을 강조하다가 그만 삼신론적 신앙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이사야서는 한 분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강력한 책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아야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하여 친히 피조물의 몸을 입고 오셨으니, 그 사랑을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 곧 전능자의 이름이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임을 알아, 그 이름의 권세를 영적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시대에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7월 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사야서를 &amp;#39;구약의 복음서&amp;#39;로 정의하는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한 분뿐인 여호와 하나님의 성육신적 나타남&lt;/strong&gt;이라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규명합니다. 이 설교는 구약에서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 선포하신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임을 강조하며,&amp;nbsp;&lt;strong&gt;아들이라는 신분은 인류를 속죄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낮아지신 경륜적 모습&lt;/strong&gt;일 뿐 그 본질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통치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넘어&amp;nbsp;&lt;strong&gt;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구원 사역&lt;/strong&gt;의 완성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예수 이름을 단순히 아들의 이름이 아닌&amp;nbsp;&lt;strong&gt;유일신 하나님의 권세&lt;/strong&gt;로 인식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복음의 신비를 깊이 깨닫도록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_인포ChatGPT Image 2026년 7월 5일 오후 10_03_43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90255b9d9dc3259ae71c5d5d9cf5b6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f6924a8a48c8201b8da7b0deedd9b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511b30a8276df3c24d316b98d8489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238583f3d86f63d12f46c05a539e1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2165339ad412fc48ba47c763bf9282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20f36062e9a9a7b9479365a74700d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043482b713541aa4855027906f67b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fd36fe98ee80bee4aa8130ff453968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24cbe5bf668bfc059cd3dcfc71ca89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ff7c857128761715fca7ce69c968e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ca10576d4887b368b266ffa762b54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ea542e07a34e8f15b0ebd35892aa70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0c3ef0a2459e62146758a35a6d91d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19788399d350357c5b04f8ac608262f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amp;nbsp;&lt;/div&gt; &lt;p&gt;&lt;!--%3Cmeta%20charset%3D%22UTF-8%22%3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5; } h1 { font-size: 18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1.5em 0; padding: 0; } h2 { font-size: 15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0.8em 0; padding: 0; } p.body { margin: 0 0 0 0; padding: 0; } p.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footer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p&gt; &lt;h1&gt;1. 들어가며&lt;/h1&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기독론은 모형과 예표와 예언을 통하여 점점 더 선명해진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이기는 자를 산출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났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정에서는 만나와 쪼개진 반석과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성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 공급과 속죄와 임재가 계시되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하여 악한 영들과 싸워 기업을 차지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았다. 이어서 다윗과 솔로몬의 삶에서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전쟁에 능한 그리스도, 그리고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지혜의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성전 곧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예표로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제 선지서에 이르면 그리스도는 모형이나 인물의 그림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직접적인 예언의 말씀으로 직접 선포된다&lt;/strong&gt;.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분의 오심과 고난과 죽음과 영광과 왕노릇과 심판까지 증언했다. 그중에서도 &lt;strong&gt;이사야서는 &amp;#39;구약의 복음서&amp;#39;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풍성&lt;/strong&gt;하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잉태와 탄생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메시아의 신분을 말했고, 그분의 사역을 말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amp;#39;하나님의 아들&amp;#39;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베드로처럼 매우 성경적인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지만, 원래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하시려고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amp;#39;아들&amp;#39;이라는 말은 한 분 하나님의 낮아지심과 보내심과 성육신의 신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들로만 제한하면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분이 흘리신 피가 왜 하나님의 피인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고 분명하게 증언했다(요일4: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들을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dquo;화목 제물&amp;rdquo;은 헬라어로 &amp;lsquo;힐라스모스&amp;rsquo;이며,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그분의 피를 &amp;ldquo;하나님의 피&amp;rdquo;라고 언급한다(행20:2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20:28 여러분은 [자기]자신[들]과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주의하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이 자기[자신에게 속한] 피로 사신(획득하신) 교회를 보살피게(목양하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원래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보지 못하면 성경 전체의 기독론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서가 왜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2. 왜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 불리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선지서 가운데 가장 복음서적인 책이다. 이 책에는 심판과 회복, 죄와 속죄, 남은 자와 새 창조,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읽으면 마치 구약 속에서 복음서를 미리 읽는 것과 같다. 이사야 40장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말한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의 죽음과 속죄를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이사야 61장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말씀을 읽으시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선언하셨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의 왕들을 정확히 밝힌다. 그는 &amp;#39;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amp;#39; 왕의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다(사1:1). 그는 궁궐과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는 선지자였고, 동시에 하늘 보좌를 본 선지자였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그 해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고, 스랍들이 &amp;ldquo;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amp;rdquo;고 찬송하는 것을 들었다(사6: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를 읽아보면 이 선지서는 크게 두 흐름으로 볼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1장부터 39장까지는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과 경고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40장부터 66장까지는 위로와 회복과 새 창조의 소망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역사적 배경과 문체 등을 이유로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때로는 제3이사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이사야 한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심판과 위로, 현재와 미래,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메시야의 시대까지 통전적으로 예언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인 이유는 &lt;strong&gt;메시야 예언이 가장 풍성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을 낳을 것을 말했고(사 7:14), 한 아기와 한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와 평강의 왕으로 불릴 것을 예언했다(사 9:6). 또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머물 것을 말했다(사 11:1-2).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을 말했다(사 42:3). 그는 찔리고 상하며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는 고난받는 종을 말했다(사 53:4-5). 그는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보았다(사65:17-18, 66:22-24).&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lt;strong&gt;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오심과 사역과 속죄와 왕국과 새 창조까지 한 흐름으로 보게 된다. 이사야서의 중심에는 복음이 있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lt;/strong&gt;가 계시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3. 이사야는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증언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사야서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매우 독특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선언&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심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선포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며,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시다. 그리고 이사야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이 아니다. 그분은 홀로 하나님이시며, 비교 대상이 없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런데 이사야 44장 6절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놀랍게 압축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라고 말씀하신 후에,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rdquo;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amp;ldquo;구원자&amp;rdquo;란 히브리어로 &amp;lsquo;가알&amp;rsquo;이라는 말과 관련된다. 이는 구속자, 속량자, 값을 치르고 되찾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여호와는 단지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자기 백성을 되찾으시는 구속자이시다(사44:6). 그런데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가리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amp;quot;라는 표현을 세 번씩이나 말씀하신다(사41:4, 44:6,. 48: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리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이사야 45장에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선언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이며, 다른 이가 없고, 자신 외에 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사45:5-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5:5-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런데 이 선언은 단순한 유일신 사상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매우 소중한 열쇠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이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약에서 하나님이 여러 위격의 하나님들이 따로따로 활동하셨다고만 본다면, 이사야의 &amp;ldquo;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rdquo;는 선언이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러한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로 증언한다. 그리고 신약은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amp;#39;존재&amp;#39;와 &amp;#39;나타나심&amp;#39;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렇다. &amp;#39;아들&amp;#39;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품 안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었다(골 1:15-16). 그때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골1:15-16). 그러나 아들로 나타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성령도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영으로 활동하셨지만,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골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의) &amp;#39;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amp;#39;시니, 만물이 그에게서(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사야의 한 분 하나님 선언은 신약 기독론의 뿌리인 셈이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증언한 여호와 자기선언을 먼저 들어야 한다. 그렇다. 그분은 언제나 홀로 한 분이시다.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기이자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이 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신비적인 증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4. 여호와의 &amp;lsquo;처음과 마지막&amp;rsquo; 선언은 무엇을 뜻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는 자기선언을 하신다(사 41:4, 44:6, 48:12).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적 영원성만을 뜻하는 표현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시작 전부터 계셨고 끝 이후에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시작이시며 완성이시라는 뜻이다. 만대를 불러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지막에 심판하고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역사는 그분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특히 이사야 41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amp;ldquo;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amp;rdquo;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세대와 만대를 부르시고 이루시는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사41:4). 그런데 하나님이 한 분으로서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48장 12절에서도 동일하게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신다(사48: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즉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을 가리켜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자신을 가리켜 &amp;ldquo;내가 전에 죽었었노라&amp;rdquo;고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이사야에서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고 말씀하셨던 분은 여호와이신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또 나타나는 것이다(계1:17-18). 이러한 사실은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에서도 또 다시 나온다. 즉 예수께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amp;ldquo;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amp;rdquo;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2:8).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역시 주 예수께서 &amp;ldquo;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amp;rdquo;고 선언하고 계신다(계22: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amp;nbsp;&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자 다시 시작해보자. 구약시대에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만의 독특한 자기선언이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또다 등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둘 중의 하나가 된다. 하나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이든지 아니면 또 하나는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서의 하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오직 홀로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가 말한 홀로 한 분 하나님이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실로 예수님은 비록 아들의 신분으로 이 따에 들어오셨으나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 곁에 있는 또 다른 신적 존재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 표현이다(요10:30). 그리고&amp;nbsp;또한 자신의 제사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14:9).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두 인격적인 존재로 아버지와 아들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셨으미,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은 두 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amp;nbsp;&amp;nbsp;&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더욱이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들은 이사야의 여호와 자기선언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경쟁하는 분이 아니시다.&amp;nbsp;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두 번째 하나님도 아니시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나타나 있는, 한 분 하나님의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rdquo;는 선언은 요한계시록의 예수님 안에서 완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5. 이사야 9장 6절은 아들과 하나님을 어떻게 연결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리고 이사야 9장 6절의 말씀은 이사야서의 기독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결정적 본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이 본문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들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아기의 이름이 놀랍다. 그는 기묘자인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요, 평강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아기와 아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린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사9: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통치권)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놀라우신 분)라 모사(조언자)라 전능하신(전사이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영원한) 아버지라 평강의 왕(통치자)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본문에서&lt;strong&gt; &amp;ldquo;전능하신 하나님&amp;rdquo;&lt;/strong&gt;에 나오는 &amp;ldquo;능하신&amp;rdquo;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보면 &amp;lsquo;깁보르&amp;rsquo;이다. &amp;lsquo;깁보르&amp;rsquo;는 강한 자, 능한 자, 용사, 전쟁에 능한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 연약한 아기로 오시지만 본질상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귀신과 사망과 음부와 죄를 이기시는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신 승리자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아기는 그분을 &lt;strong&gt;&amp;ldquo;영존하시는 아버지&amp;rdquo;&lt;/strong&gt;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아들로 오셨으나, 그분의 본질이 아버지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 준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목적을 가진 존재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amp;ldquo;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amp;rdquo;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다(요14: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lt;strong&gt; &amp;ldquo;평강(샬롬)의 왕&lt;/strong&gt;&amp;rdquo;이다. 여기서 &amp;ldquo;왕&amp;rdquo;이란 히브리어 &amp;lsquo;사르&amp;rsquo;로서 통치자, 다스리는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분은 평화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 예표되었지만, 솔로몬의 평화는 일시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긴 후 주어지는 영원한 평화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lt;strong&gt;이처럼 이사야 9장 6절은 예수님의 신분을 한꺼번에 보여 준다. 그는 아기로 오셨다. 그는 아들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다. 그는 평강의 왕(통치자)이다&lt;/strong&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낮추어 이해하면 안 된다&lt;/strong&gt;&lt;/span&gt;. 아들이라는 신분은 성육신의 경륜에서 필요했던 낮아지심의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이다. &lt;strong&gt;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 아들은 보내심을 받으셨고, 육신을 입으셨고, 피 흘려 죽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를 흘릴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에 피를 흘리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피는 단순히 한 의인의 피가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amp;#39;하나님의 피&amp;#39;라고 증언&lt;/strong&gt;한다(행 20:28).&amp;nbsp;그러므로 이사야 9장 6절은 한 분 하나님과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본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떤 독립된 제2의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6.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이사야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단순히 선지자나 교사나 기적 행하는 자로만 소개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다. 또한 &amp;ldquo;내가 그(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 보면, &amp;ldquo;내가 그&amp;rdquo;라는 번역은 헬라어로 보면 &amp;lsquo;에고 에이미&amp;rsquo;이다. 이는 &amp;ldquo;나는 나다&amp;rdquo;, &amp;ldquo;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amp;rdquo;라는 신적 자기선언과 같은 표현이다(요8:2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렇다. 예수게서는 자신을 믿는 자는 자신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보는 자는 자신을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요12:44-4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사실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확히 이해가 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분리된 다른 존재처럼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신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아들의 이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나타내신 이름이다. 고로&amp;nbsp;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요1:18). 그분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amp;ldquo;나타내셨다&amp;rdquo;는 표현이다. 구약시대가지 아들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다. 그러다가 때가 되자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경륜의 시간 속에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와 나타나심을 혼동하면 아들을 영원 전부터 아버지 옆에 따로 서 계셨던 이 곧 또 다른 하나님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심으로 자신을 이 땅에 나타내셨다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모든 사실을 하나로 결론짓는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rdquo;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자기선언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와 따로 떨어진 분이 아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경건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그분(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서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다(딤전3: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원래부터 육신이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서 아들로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 존재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한 분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7. 이사야는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어떻게 예언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또한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는다. 그분의 사역도 구체적으로 예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이사야는 그분의 잉태와 탄생&lt;/strong&gt;에 대해 예언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사7:14).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사야는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lt;/strong&gt;을 예언하고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다. 그 위에는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머물 것이다(사11: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사야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lt;/strong&gt;가 있다고 말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칠 것이다(사40:3). 이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사야는 그분의 공생애 사역을 예언&lt;/strong&gt;한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이다(사61:1).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하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이사야는 그분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으로 오실 것&lt;/strong&gt;을 말한다(사42:1-3). 그는 강압으로 세우는 왕이 아니라, 긍휼과 공의로 세우는 종이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2:1-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이사야는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선명하게 예언&lt;/strong&gt;한다. 그는 멸시를 받고 버림받으며, 질고를 알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다(사53:4-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이사야는 그분의 장사와 높아짐도&lt;/strong&gt; 말한다. 그는 악인들과 함께 죽을 자리로 정해졌으나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며,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린 후에는 씨를 보며 그의 날이 길 것이고 여호와의 뜻을 성취할 것이다(사53:9-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53:9-11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덟째,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lt;/strong&gt;을 말한다. 메시야의 사역은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어진다(사65:1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이사야는 &lt;strong&gt;그리스도의 잉태, 탄생, 혈통, 선구자, 성령의 기름부음, 공생애, 치유와 자유 선포, 고난, 죽음, 장사, 높아짐, 왕국, 새 창조까지 &lt;/strong&gt;예언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8.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이름의 권세는 왜 강력한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고로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청년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한 인물의 이름만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의 뜻은 &amp;#39;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39; 혹은 &amp;#39;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amp;#39;라는 뜻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에는 전능자의 권세가 뒤 따른다. 귀신들이 예수 이름 앞에서 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단지 종교 지도자라면 귀신들이 그분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므로, 그 이름에는 사망과 음부를 이긴 권세가 들어있다. 특히&amp;nbsp;예수께서는 부활 후 승천하실 때에 &amp;ldquo;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amp;rdquo;고 말씀하셨다(마28: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막16:1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amp;#39;이름&amp;#39;이다. 우리가 축사할 때에 사용하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결코 아니다. 교단의 이름도 아니고, 사람의 권위도 아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그 예수는 대체 누구신가? 이사야가 말한 그분은 한 아기요 한 아들이시자,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 자신을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예수님이 그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단지 아들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수록 이름의 권세 역시 더 담대히 사용할 수 있다&lt;/strong&gt;.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하면, 귀신을 쫓을 때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알면, 그 이름 앞에서 어떤 악한 영도 최종 권세를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귀신들은 피조물이며 타락한 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예수의 피는 단지 의로운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피&lt;/strong&gt;다. 성도가 회개하고 자백할 때, 예수의 피는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한다(요일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lt;strong&gt;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한 권세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권세다&lt;/strong&gt;.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아는 자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하고, 더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속죄를 위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며, 부활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권세가 강력한 이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단지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는 책 수준을 뛰어넘는다. 특별히 이사야서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메시야의 예언을 함께 담고 있는데, 그 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셨는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도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없으나,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면 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아들 되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속죄의 경륜을 드러내는 낮아지심의 신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 성도들은 이사야 9장 6절을 깊이 붙들어야 한다. 한 아기와 한 아들로 오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이나 하나님의 아들로만 제한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의 이름에서 전능자의 권세를 보게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특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교리의 틀보다 성경의 증언을 더 깊이 붙들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고, 이사야가 여호와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하며,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한다면, 성도는 그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 성도가 바로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에 삶은 바뀐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면, 성도도 다른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 이름이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씻으며, 예수의 말씀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분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고, 평강의 왕이시다. &lt;strong&gt;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만큼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하게&lt;/strong&gt; 된다. 그리하여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7월 05일(일)&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이사야의_그리스도_예언과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daa6c61acf182a3e97fe546d304c50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3021f023f0a88b1b5bb127dfaabd77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edbe5bfe2210616a1be08ea405219c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309a31e44bb54642366bda1e5b44c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f0e029a0758bfe1132d03fcffdf598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93ea69d413280c2cb8aa43433365d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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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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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2026-07-0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1770</link>
				<description>&lt;p&gt;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88FklwjHV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88FklwjHV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5; } h1 { font-size: 18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1.5em 0; padding: 0; } h2 { font-size: 15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0.8em 0; padding: 0; } p.body { margin: 0 0 0 0; padding: 0; } p.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footer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h1&gt;1. 들어가며&lt;/h1&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기독론은 모형과 예표와 예언을 통하여 점점 더 선명해진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이기는 자를 산출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났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정에서는 만나와 쪼개진 반석과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성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 공급과 속죄와 임재가 계시되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하여 악한 영들과 싸워 기업을 차지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았다. 이어서 다윗과 솔로몬의 삶에서는 왕이신 그리스도, 전쟁에 능한 그리스도,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 지혜의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성전 곧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예표로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선지서에 이르면 그리스도는 모형이나 인물의 그림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예언의 말씀으로 직접 선포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메시야를 말했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분의 오심과 고난과 죽음과 영광과 왕노릇과 심판까지 증언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풍성하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잉태와 탄생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분의 신분을 말했고, 그분의 사역을 말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성경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지만, 원래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하시려고 아들로 오신 분이다. 아들이라는 말은 그분의 낮아지심과 보내심과 성육신의 신분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들로만 제한하면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분이 흘리신 피가 왜 하나님의 피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고 증언했다(요일4: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들을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dquo;화목 제물&amp;rdquo;은 헬라어로 &amp;lsquo;힐라스모스&amp;rsquo;이며,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그 피를 &amp;ldquo;하나님의 피&amp;rdquo;라고까지 말한다(행20:2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20:28 여러분은 자신과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원래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보지 못하면 성경 전체의 기독론이 흐려진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가 왜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2. 왜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 불리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선지서 가운데 가장 복음서적인 책이다. 이 책에는 심판과 회복, 죄와 속죄, 남은 자와 새 창조,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읽으면 마치 구약 속에서 복음서를 미리 읽는 것과 같다. 이사야 40장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말한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의 죽음과 속죄를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이사야 61장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말씀을 읽으시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선언하셨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의 왕들을 정확히 밝힌다. 그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다(사1:1). 그는 궁궐과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는 선지자였고, 동시에 하늘 보좌를 본 선지자였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그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고, 스랍들이 &amp;ldquo;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amp;rdquo;고 찬송하는 것을 들었다(사6: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크게 두 흐름으로 볼 수 있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과 경고가 강하게 나타난다. 40장부터 66장까지는 위로와 회복과 새 창조의 소망이 강조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역사적 배경과 문체 등을 이유로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때로는 제3이사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이사야 한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심판과 위로, 현재와 미래,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메시야의 시대까지 통전적으로 예언했다고 본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인 이유는 메시야 예언이 가장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을 낳을 것을 말했고, 한 아기와 한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와 평강의 왕으로 불릴 것을 예언했다. 또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머물 것을 말했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을 말했다. 그는 찔리고 상하며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는 고난받는 종을 말했다. 그는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보았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오심과 사역과 속죄와 왕국과 새 창조까지 한 흐름으로 보게 된다. 이사야서의 중심에는 복음이 있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3. 이사야는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증언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선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심을 반복해서 선포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며,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시다. 이사야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이 아니다. 그분은 홀로 하나님이시며, 비교 대상이 없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이사야 44장 6절은 이 사실을 압축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라고 말씀하시며,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rdquo;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amp;ldquo;구원자&amp;rdquo;는 히브리어로 &amp;lsquo;가알&amp;rsquo;이라는 말과 관련된다. 이는 구속자, 속량자, 값을 치르고 되찾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여호와는 단지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자기 백성을 되찾으시는 구속자이시다(사44: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45장에서도 같은 선언이 반복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이며, 다른 이가 없고, 자신 외에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사45:5-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5:5-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선언은 단순한 유일신 사상이 아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근본 열쇠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이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약에서 하나님이 여러 위격의 하나님들이 따로따로 활동하셨다고만 본다면, 이사야의 &amp;ldquo;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rdquo;는 선언이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을 홀로 한 분으로 증언한다. 그리고 신약은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음을 밝힌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와 나타나심을 구별하는 것이다. 아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품 안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 계셨다. 만물은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골1:15-16). 그러나 아들로 나타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성령도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영으로 활동하셨지만,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골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사야의 한 분 하나님 선언은 신약 기독론의 뿌리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면 이사야의 여호와 선언을 먼저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다.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다.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기와 아들로 오신다. 이것이 이사야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4. 여호와의 &amp;lsquo;처음과 마지막&amp;rsquo; 선언은 무엇을 뜻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는 자기선언을 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적 영원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시작 전부터 계셨고 끝 이후에도 계신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이상이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시작이시며 완성이시다. 만대를 불러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지막에 심판하고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역사는 그분에게서 시작되어 그분에게로 돌아간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41장 4절은 이렇게 말한다. &amp;ldquo;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amp;rdquo;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세대와 만대를 부르시고 이루시는 분이 자신이라고 하신다(사41: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48장 12절에서도 여호와께서는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신다(사48: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선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입으로 다시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이어서 &amp;ldquo;내가 전에 죽었었노라&amp;rdquo;고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이사야에서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고 하신 여호와의 자기선언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나타난다(계1:17-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amp;ldquo;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amp;rdquo;라고 하신다(계2: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amp;ldquo;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amp;rdquo;고 선언하신다(계22: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연결은 결정적이다. 구약에서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은 여호와의 자기선언이었다. 신약에서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호와와 별개의 또 다른 신이 될 수 없다. 이사야가 말한 홀로 한 분 하나님이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은 아들로 오셨으나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 곁에 있는 또 다른 신적 존재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요10:3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다(요14: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들은 이사야의 여호와 자기선언과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경쟁하는 분이 아니고, 아버지와 분리된 두 번째 하나님도 아니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 선언은 요한계시록의 예수님 안에서 완결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5. 이사야 9장 6절은 아들과 하나님을 어떻게 연결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9장 6절은 이사야서의 기독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결정적 본문이다. 이 본문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들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아기의 이름이 놀랍다. 그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아기와 아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린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사9: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본문에서 &amp;ldquo;전능하신 하나님&amp;rdquo;의 &amp;ldquo;능하신&amp;rdquo;은 히브리어 &amp;lsquo;깁보르&amp;rsquo;와 관련된다. &amp;lsquo;깁보르&amp;rsquo;는 강한 자, 능한 자, 용사, 전쟁에 능한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 연약한 아기로 오시지만 본질상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귀신과 사망과 음부와 죄를 이기시는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신 승리자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아기는 &amp;ldquo;영존하시는 아버지&amp;rdquo;라고 불린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아들로 오셨으나, 그분의 본질이 아버지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나타내신다. 예수께서 &amp;ldquo;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amp;rdquo;고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요14: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 &amp;ldquo;평강의 왕&amp;rdquo;이다. 여기서 &amp;ldquo;왕&amp;rdquo;은 히브리어 &amp;lsquo;사르&amp;rsquo;로서 통치자, 다스리는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분은 평화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 예표되었지만, 솔로몬의 평화는 일시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긴 후 주어지는 영원한 평화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9장 6절은 예수님의 신분을 한꺼번에 보여 준다. 그는 아기로 오셨다. 그는 아들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다. 그는 평강의 왕이다. 그러므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낮추어 이해하면 안 된다. 아들이라는 신분은 성육신의 경륜에서 필요했던 낮아지심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 아들은 보내심을 받으셨고, 육신을 입으셨고, 피 흘려 죽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를 흘릴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에 피를 흘리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피는 단순히 한 의인의 피가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피라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사야 9장 6절은 한 분 하나님과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본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떤 독립된 제2의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6.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이사야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단순히 선지자나 교사나 기적 행하는 자로만 소개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셨고,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다. 또한 &amp;ldquo;내가 그&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 24절의 &amp;ldquo;내가 그&amp;rdquo;는 헬라어로 &amp;lsquo;에고 에이미&amp;rsquo;와 연결된다. 이는 &amp;ldquo;나는 나다&amp;rdquo;, &amp;ldquo;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amp;rdquo;라는 신적 자기선언의 울림을 가진다(요8:2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가 자신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하셨고, 자신을 보는 자가 자신을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2:44-4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확히 이해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분리된 다른 존재처럼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신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아들의 이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나타내신 이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 1장 18절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요1: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amp;ldquo;나타내셨다&amp;rdquo;는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고, 때가 되자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아들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경륜의 시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존재와 나타나심을 혼동하면 아들을 영원 전부터 아버지 옆에 따로 서 계신 또 다른 하나님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이 모든 것을 결론짓는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rdquo;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자기선언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와 따로 떨어진 분이 아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경건의 비밀을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서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다(딤전3: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원래부터 육신이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서 아들로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 존재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한 분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7. 이사야는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어떻게 예언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신분만 말하지 않는다. 그분의 사역도 구체적으로 예언한다. 첫째, 이사야는 그분의 잉태와 탄생을 말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사7:14).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이사야는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다. 그 위에는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머물 것이다(사11: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이사야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를 말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칠 것이다(사40:3). 이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이사야는 그분의 공생애 사역을 예언한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이다(사61:1).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하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이사야는 그분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으로 오실 것을 말한다(사42:1-3). 그는 강압으로 세우는 왕이 아니라, 긍휼과 공의로 세우는 종이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42:1-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섯째, 이사야는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선명하게 예언한다. 그는 멸시를 받고 버림받으며, 질고를 알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다(사53:4-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일곱째, 이사야는 그분의 장사와 높아짐도 말한다. 그는 악인들과 함께 죽을 자리로 정해졌으나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며,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린 후에는 씨를 보며 그의 날이 길 것이고 여호와의 뜻을 성취할 것이다(사53:9-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53:9-11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덟째,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메시야의 사역은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어진다(사65:1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잉태, 탄생, 혈통, 선구자, 성령의 기름부음, 공생애, 치유와 자유 선포, 고난, 죽음, 장사, 높아짐, 왕국, 새 창조까지 예언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8.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이름의 권세는 왜 강력한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선지자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한 인물의 이름만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는 전능자의 권세가 있다. 귀신들이 예수 이름 앞에서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단지 종교 지도자라면 귀신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므로, 그 이름에는 사망과 음부를 이긴 권세가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부활 후 &amp;ldquo;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amp;rdquo;고 말씀하셨다(마28: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막16:1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자기 이름이 아니다. 교단의 이름도 아니고, 사람의 권위도 아니다. 예수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 예수는 누구신가? 이사야가 말한 한 아기요 한 아들이시며,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 &amp;ldquo;처음과 마지막&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수록 이름의 권세를 더 담대히 사용할 수 있다.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하면, 귀신을 쫓을 때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알면, 그 이름 앞에서 어떤 악한 영도 최종 권세를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귀신들은 피조물이며 타락한 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예수의 피는 단지 의로운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피다. 성도가 회개하고 자백할 때, 예수의 피는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한다(요일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한 권세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권세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아는 자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하고, 더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속죄를 위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며, 부활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권세가 강력한 이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인지를 살펴보았다. 이사야서는 단지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한 책이 아니다. 이사야서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메시야의 예언을 함께 담고 있으며, 그 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도 &amp;ldquo;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신 분임을 증거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없으나,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면 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아들 되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속죄의 경륜을 드러내는 낮아지심의 신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도는 이사야 9장 6절을 깊이 붙들어야 한다. 한 아기와 한 아들로 오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이나 하나님의 아들로만 제한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의 이름에서 전능자의 권세를 보게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교리의 틀보다 성경의 증언을 더 깊이 붙들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고, 이사야가 여호와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하며,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한다면, 성도는 그 증언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믿음은 삶을 바꾼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면, 성도도 다른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예수 이름이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씻으며, 예수의 말씀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분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고,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만큼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7월 05일(일)&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사야서를 &amp;#39;구약의 복음서&amp;#39;로 정의하는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한 분뿐인 여호와 하나님의 성육신적 나타남&lt;/strong&gt;이라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규명합니다. 이 설교는 구약에서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 선포하신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임을 강조하며,&amp;nbsp;&lt;strong&gt;아들이라는 신분은 인류를 속죄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낮아지신 경륜적 모습&lt;/strong&gt;일 뿐 그 본질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통치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넘어&amp;nbsp;&lt;strong&gt;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구원 사역&lt;/strong&gt;의 완성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예수 이름을 단순히 아들의 이름이 아닌&amp;nbsp;&lt;strong&gt;유일신 하나님의 권세&lt;/strong&gt;로 인식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복음의 신비를 깊이 깨닫도록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_인포ChatGPT Image 2026년 7월 5일 오후 10_03_43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90255b9d9dc3259ae71c5d5d9cf5b6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f6924a8a48c8201b8da7b0deedd9b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511b30a8276df3c24d316b98d8489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238583f3d86f63d12f46c05a539e1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2165339ad412fc48ba47c763bf9282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20f36062e9a9a7b9479365a74700d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6043482b713541aa4855027906f67b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fd36fe98ee80bee4aa8130ff453968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24cbe5bf668bfc059cd3dcfc71ca89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ff7c857128761715fca7ce69c968e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ca10576d4887b368b266ffa762b54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ea542e07a34e8f15b0ebd35892aa70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0c3ef0a2459e62146758a35a6d91d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One_God_Manifested_in_Isaiah.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19788399d350357c5b04f8ac608262f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투박한 글 요약)&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이 질문 앞에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증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일 4:10). 여기에서 &amp;#39;화목제물&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 &amp;#39;힐라스모스&amp;#39;는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이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여전히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이 셋은 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 &amp;quot;예수님이 하나님이셨어?&amp;quot;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오시어 속죄를 담당하셨으며, 돌아가신 다음에는 영원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의 머릿속에는 사실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존재하셨는데 이 셋은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곧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곧 영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증언하는가. 놀랍게도 이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한꺼번에 정리해 주는 구약의 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다. 이사야서에는 그리스도이신 아들에 대한 놀라운 계시의 말씀들이 들어 있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만약 이사야 선지자의 계시를 몰랐다면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신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이신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셨다는 말씀이요(사 44:6), 바로 그분이 한 아기와 한 아들로 태어나실 것인데 그분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 불릴 것이라는 말씀이다(사 9: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구원자&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가알&amp;#39;은 구속자 혹은 속량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amp;#39;전능하신&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깁보르&amp;#39;는 능하신 자, 강한 자, 전사라는 뜻이며, &amp;#39;기묘자&amp;#39;는 놀라운 분, &amp;#39;모사&amp;#39;는 조언자, &amp;#39;평강의 왕&amp;#39;에서 &amp;#39;왕&amp;#39;에 해당하는 &amp;#39;사르&amp;#39;는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심각한 질문이 생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친히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신다고 하였으니, 과연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기로 태어나신 그분의 이름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신약성경,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고(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으며(요 14:9),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12:44-4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amp;#39;내가 그&amp;#39;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요 8:24). 여기에서 &amp;#39;내가 그&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 &amp;#39;에고 에이미&amp;#39;는 &amp;quot;나는 나다&amp;quot; 곧 &amp;quot;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amp;quot;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사용하신 바로 그 이름이다(출 3:14).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곧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하신 것이요, 이것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는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계 1:17).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자기선언과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세 번씩이나 반복하신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quot;라는 자기선언 사이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는 무엇이 문제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의 교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장로교는 1648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를 믿고 있다. 이것은 1643년부터 1647년까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회의 기간 중에 제정된 전문 33장의 칼빈주의적 신앙고백서다. 이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amp;quot;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이시다.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amp;quo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교리는 뒷부분에서 잘못된 정의를 내렸다. 성자가 &amp;#39;영원히&amp;#39; 나셨고 성령이 &amp;#39;영원히&amp;#39; 나오셨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성자가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다는 표현이다. 이 교리를 따르는 이들은 영원 전에 나셨던 아들과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던 성령이 함께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계셨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교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으로 계셨으나 우리 인간을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는 시간적인 절차를 무시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에는 분명한 시간의 순서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홀로 한 분으로 계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 그리고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셨다. 아들이 나신 때는 영원이 아니라 성육신 때이며, 보혜사 성령이 나오신 때도 영원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때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실 분이 예수님이시니, 보혜사 성령이 나오시는 때는 영원 전이 아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갈 4:6).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진 때가 언제인가. 그것 역시 영원 전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왜 한 분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잘못 알게 되었는가. 나는 그 뿌리가 벨직신앙고백서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561년에 나온 벨직신앙고백서는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amp;#39;아니다&amp;#39;라고 할 것이 아니라 &amp;#39;구별된다&amp;#39;라고 표현했어야 했다. &amp;#39;아니다&amp;#39;라고 정의하는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른 세 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천주교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그림들을 보면 이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그림은 성부는 할아버지처럼, 아들은 젊은 사람처럼, 성령은 비둘기로 그려 놓았기 때문에 셋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은 셋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그림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눈에 셋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이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세 분으로 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증언하는가.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들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와 그림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 앞에 서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아들과 성령의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러한 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아들과 성령의 &amp;#39;존재하심&amp;#39;과 &amp;#39;나타나심&amp;#39;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아들의 경우를 보자.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다. 곧 존재하고 계셨다. 사도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8).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다가 때가 되매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실 수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언하였다(골 1:15-16). 여기에서 &amp;#39;먼저 나신 이&amp;#39;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amp;#39;프로토토코스&amp;#39;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골 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니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아들로 나타나셔서 활동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존재로 말하면 아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으나, 나타나심으로 말하면 아들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실 때에 비로소 이 땅에 나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바로 이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하고 &amp;#39;영원히 나셨다&amp;#39;고 정의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리와는 달리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증언한다(창 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령께서 보혜사 성령으로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기 위하여 오신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 말씀하시어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amp;#39;영원히 나오신다&amp;#39;는 정의 역시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한 정의다. 성령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이미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고, 내주하시는 보혜사로 나타나신 때는 오순절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고 나면,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아들로 오시고 보혜사로 오셨다는 하나님의 경륜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이사야는 대체 누구이며 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러한 한 분 하나님을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는 이사야는 대체 누구인가.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약 60년 어간에 남유다의 네 왕, 곧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에 활동하였던 궁궐 선지자다(사 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가 궁궐 선지자였다고 보는 것은 그가 웃시야(아사랴) 왕의 아버지였던 남유다 제9대 왕 아마샤의 형제이거나 아들로서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왕실의 혈통에 속한 사람으로서 왕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었다(사 6:1).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선지자로 보내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사 49: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 이사야서가 중요한 것은 다음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구약의 열일곱 권의 선지서들 가운데 맨 앞에 나오는 예언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구약의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선지서는 아니다. 기록된 선지서만 따진다면 이사야보다 약 100년 전에 이미 오바댜서와 요엘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 여부와 상관없이 선지자로 말한다면 사무엘 선지자 내지는 엘리야나 엘리사가 먼저일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가 예언한 것들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분량으로 보면 선지자들 가운데서 예레미야 다음이지만, 장수로 보면 제일 많다. 예레미야서는 52장이요, 이사야서는 66장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의 예언은 구약 예언자의 모형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과 회복, 심판과 회개의 촉구, 회복과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걸어간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구약 예언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가장 많은 직접적인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한마디로 &amp;#39;구약의 복음서&amp;#39;라고 불린다.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를 보면 영락없이 사복음서를 닮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이사야 40장에 나온다. 그리고 공생애에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가 그 중간에 나오고, 이사야 65장과 66장에는 재림 후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전 과정을 미리 보여 주는 책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사야가 예언하였던 메시야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에 관한 것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서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 이상의 메시야의 신분이 나온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첫째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둘째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으로, 셋째 유일한 구원자로, 넷째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자신으로, 다섯째 다윗 왕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여섯째 고난받는 종으로, 일곱째 목자로, 여덟째 모퉁잇돌이자 반석으로, 아홉째 재림주이자 심판주로 예언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가운데 몇 가지만 성구로 확인해 보자. 이사야는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선언하였다(사 43:11). 그런데 신약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증언하니, 예수님이 곧 여호와가 아니시라면 이 두 증언은 충돌하고 만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임마누엘은 &amp;#39;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amp;#39;라는 뜻이니, 처녀에게서 나실 그 아기가 곧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한 싹이요 그 뿌리에서 나는 한 가지라고 예언하였고(사 11:1),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는 고난받는 종이라고 예언하였으며(사 53:5),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는 목자라고 예언하였고(사 40:11),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촛돌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8: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놀랍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한 인간 정도가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이시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한 분 하나님 그분이시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혈통과, 잉태와 출생과, 선구자의 인도와, 성령을 받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과, 이방인의 빛으로서 병든 자를 치유하실 것과,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과, 높아지셔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과, 심판주로 오셔서 왕 노릇 하실 것과, 회복될 그분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까지 예언하였다. 메시야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역하실 것과(사 61:1), 죽으신 후에 부자와 함께 장사되실 것까지(사 53:9) 낱낱이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컨대 메시야보다 앞서 와서 그분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에 대하여 이사야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예언하였는데(사 40:3), 사복음서는 이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선구자가 예비하는 길이 &amp;#39;여호와의 길&amp;#39;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세례 요한이 예비한 길은 예수님의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심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곧 이방의 갈릴리에서 큰 빛으로 비추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9:1-2).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시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성취라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사복음서에서 확인하는 예수님의 생애가 이미 700여 년 전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낱낱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예언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여호와와 예수님의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선언은 어떤 관계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번씩이나 당신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라고 하셨고(사 41:4),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으며(사 44:6), 야곱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고 하셨다(사 48: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선언하셨다(계 1:17-18, 2:8). 나아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까지 선언하셨다(계 22:13).&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칭호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자기 칭호이기도 하다(계 1:8). 알파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니, 알파와 오메가는 곧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예수님의 자기선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완전히 동일한 자기선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결론 앞에 서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분이시라면 처음과 마지막이 두 분이 되고, 이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여호와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뿐이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다(사 44:6). 이사야 9장 6절이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그분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우리 인류를 위하여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증거는 세 가지다. 첫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8:24). 둘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 1:17). 셋째, 그분이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말하였다(행 20:28).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피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예수께서는 원래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데,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피 흘려 죽으시고자 육신을 입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사 9:6). 그러므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며, 그것을 가리켜 그분이 아들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홀로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이후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활동하시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요 14:9-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보혜사로 오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은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셔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니, 사도 바울이 노래한 대로 이것이야말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 아닐 수 없다(딤전 3: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게 된다. 창조주는 여호와요 구속자는 예수님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홀로 한 분으로 계신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예수님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우기게 되며, 예수님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그분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의 이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그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때에도 귀신이 안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믿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셔서 나의 죄를 속죄하여 주셨음을 믿는다고, 그리고 다시 오실 한 분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지만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으로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고백해야 한다. 나아가 이제까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고, 예수께서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온 인류를 위하여 아들로 오신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던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을 향하여 깨어나라고 선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분은 아들로 존재하시기 위하여 존재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원래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두 가지를 행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시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때에 단지 아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에게서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난다. 그분이 전능자시요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까지 행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그분의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실제로 영적 세계에서 사용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남유다의 네 왕의 시대에 활동한 궁궐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신분에 관하여 아홉 가지 이상을 예언하였고 메시야의 사역에 관하여 잉태와 출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예언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사 9:6).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으로서 동일하게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고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시니, 두 분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지만 원래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지금은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활동하고 계신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교리는 셋을 강조하다가 그만 삼신론적 신앙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이사야서는 한 분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강력한 책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아야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하여 친히 피조물의 몸을 입고 오셨으니, 그 사랑을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 곧 전능자의 이름이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임을 알아, 그 이름의 권세를 영적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시대에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7월 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이사야의_그리스도_예언과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daa6c61acf182a3e97fe546d304c50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3021f023f0a88b1b5bb127dfaabd77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edbe5bfe2210616a1be08ea405219c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0309a31e44bb54642366bda1e5b44c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f0e029a0758bfe1132d03fcffdf598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93ea69d413280c2cb8aa43433365d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56337520c071079e071e7343ae6706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8a24d6df5b302d1a4b7a4ad53aa515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58cfff8b4abfcfee84d1b09faa833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acfdeaa2b4af27e16a21313b705977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7c10ca7f71edd644a665875298d6c8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464ce04ac72a3e6adc4ac5b0952430fa.webp&quot; /&gt;&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0)] The_Isa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70/261/1bd9792c0d381deb6fbd9278c3e1fca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container { margin:0; padding:0; 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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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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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_2026-06-28(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1275</link>
				<description>&lt;p&gt;2026-06-28(주일) 주일낮2부예배(투박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9o61XQdiPr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9o61XQdiPr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0; padding: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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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게 읽을 때, 아가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가 된다. 왜 솔로몬은 부족함이 없는 왕이었음에도 멀리 레바논의 포도원까지 내려갔으며, 왜 그곳의 시골 처녀에게 청혼했고, 왜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왔으며, 왕궁에 데려온 이유가 단순히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과연 무슨 목적이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 모든 질문들이 아가서 전체를 통해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로 펼쳐진다. 특별히 이번 기독론 시리즈에서는 아가서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미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처럼, 그의 아들 솔로몬도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형으로 등장한다. 다윗이 전쟁을 치르고 원수를 물리치는 용사로서 예수님의 초림을,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 왕국을 예표한다. 그리고 솔로몬이 신부를 찾아 왕궁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삼으시는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부를 사랑한 신랑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목적과 그 신부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아가서는 왜 특별한 책이며, 어떻게 해석해야 그 참된 의미가 드러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형식과 내용에 있다. 이 책은 가곡으로 쓰여진 대화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이 압축된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문자 그대로 읽으면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인다. 특히 등장하는 나무들과 꽃들, 동물들과 향품들이 모두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를 모르고 읽으면 그 깊이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에서 &amp;#39;하나님&amp;#39; 혹은 &amp;#39;여호와&amp;#39;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가서 8장 6절에 등장하는 &amp;#39;여호와의 불&amp;#39;이라는 표현조차도 원어를 보면 &amp;#39;에쉬 솰르헤베트&amp;#39;, 곧 최상급의 표현으로 &amp;#39;매우 강렬한 불&amp;#39;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톨릭성경은 &amp;#39;격렬한 불길&amp;#39;, 권위역은 &amp;#39;가장 맹렬한 불꽃&amp;#39;, 새번역은 &amp;#39;거센 불길&amp;#39;, 쉬운말 성경은 &amp;#39;맹렬한 불길&amp;#39;로 번역했다 (아 8:6). 즉 하나님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책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서가 정경에 포함된 것은, 이 책이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비밀이라고 선언하면서 모형론적 해석의 열쇠를 제공했다 (엡 5:31-32). 이 열쇠를 사용하면 아가서의 모든 장면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을 신랑 예수 그리스도로, 술람미 여인을 그분의 신부 된 성도로 볼 때 아가서는 완전히 다른 책이 된다. &lt;strong&gt;솔로몬이 왕이지만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치는 목자의 모습은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비워 두시고 이 땅에 오신 모습&lt;/strong&gt;이다. &lt;strong&gt;술람미 여인이 포도원지기로 일하면서 오빠들에게 착취당하고 독수리와 매를 피해 바위틈에 숨어 사는 모습은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고통받는 인류의 모습&lt;/strong&gt;이다. 솔로몬이 그녀를 찾아내어 청혼하고 왕궁으로 데려오는 과정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아가서를 모형론적으로 해석할 때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이 책이 단순히 개인과 그리스도의 관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가서에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등장하고, 왕비와 후궁과 시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천국에서의 다양한 신분과 위치를 상징한다. 왕비, 후궁, 시녀는 모두 구원받은 성도들이지만, 그 위치와 역할은 서로 다르다. 아가서는 그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신분, 곧 솔로몬의 단 하나뿐인 신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신분으로 영원한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인지가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아가서는 솔로몬이 자신을 신랑으로 내세우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목자로 행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술람미 여인은 처음에 솔로몬을 왕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목자로 생각했다.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를 가리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예언했다 (사 53:2). 왕이셨으나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믿음이 없는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알아보았듯이, 믿음의 눈이 열린 자는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를 단번에 알아본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아가서는 참으로 특이하고 놀라운 책이다. 신앙의 언어가 하나도 없이 쓰여졌지만, 실상은 가장 깊은 신앙의 비밀을 담고 있는 천국 신부 수업의 교과서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솔로몬은 왜 왕궁을 떠나 레바논의 포도원까지 내려갔던 것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 왕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왕비가 60명이요, 후궁이 80명이며, 시녀들도 아주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왕궁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굳이 왕궁을 떠나 멀리 레바논에 있는 바알하몬의 포도원까지 내려간 것일까? 왜 왕궁 안에 있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신부를 택하지 않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시골 포도원지기 처녀를 찾아 내려간 것일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후반부에 가면 그 답이 나온다. &lt;strong&gt;솔로몬은 자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고 있었던 것&lt;/strong&gt;이다 (아 6:9). 그의 짝은 왕궁 안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레바논의 포도원에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를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 나아가 아가서 8장 5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lt;strong&gt;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사실 &amp;#39;사과나무 아래&amp;#39;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잃어버린 짝을 다시 찾기 위해 왕궁 밖으로 나선 것&lt;/strong&gt;이다 (아 8: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신부를 찾아내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신이 왕임을 내세우지 않고 목자처럼 행동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처음에 술람미 여인은 그를 목자로 알았고, 자신의 양떼를 어디서 먹이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 1:7).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을 예표한다. 왕이시지만 종처럼 오신 예수님,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솔로몬의 모습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왕이 시골 처녀의 눈에 처음에는 단순한 목자로 보였지만, 나중에 그녀는 그가 솔로몬 왕임을 알게 된다. 우리도 처음에는 나사렛 예수를 단순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믿음의 눈이 열릴 때 그분이 만왕의 왕이심을 알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들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lt;strong&gt;왕은 단순히 새로운 왕비를 하나 더 얻으려고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왕에게는 60명의 왕비와 80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솔로몬의 진정한 짝이 아니었다&lt;/strong&gt;. 솔로몬이 원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자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lt;strong&gt;하나님 나라에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예수님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당신의 신부를 다시 찾으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내려오셨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솔로몬이 왕궁이 아닌 곳에 포도원을 만들어 세를 준 것도 이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왕궁 안에 있는 여자들 중에는 거친 세상을 살아갈 자로서, 왕처럼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칠 만한 그러한 동역자가 없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lt;strong&gt;솔로몬은 단순히 자신을 바라보며 섬기는 여인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왕국의 일을 감당할 동역자를 찾고 있었던 것&lt;/strong&gt;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시찰을 나가던 중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가 바로 자신의 유일한 짝임을 알아보고 청혼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술람미 여인은 왜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amp;#39;사과나무&amp;#39;에 비유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처음 만났을 때, 솔로몬은 그녀를 &amp;quot;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아네모네) 같도다&amp;quot;라고 칭찬했다. 이에 그녀도 솔로몬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이렇게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포도원에는 포도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류나무, 무화과나무, 고벨화나무, 유향나무, 계수나무, 몰약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lt;strong&gt;왜 그녀는 솔로몬을 처음 보고 그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 하필 &amp;#39;사과나무&amp;#39;에 비유했을까&lt;/strong&gt;? 단순히 생김새가 사과나무처럼 생겼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과나무의 히브리어는&lt;strong&gt; &amp;#39;탑부아흐&amp;#39;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사과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를 상징한다는 것이 중요&lt;/strong&gt;하다. 아가서 8장 5절을 다시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amp;quot;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amp;quot;고 말한다 (아 8:5). 이 사과나무 아래가 바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장소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낳기 위해 산고를 겪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amp;#39;사과나무 아래&amp;#39;는 &lt;strong&gt;탄생과 만남, 그리고 생명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장소&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그녀가 솔로몬을 보고 사과나무 같다고 한 것은, 그 사과나무 아래에서 있었던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그녀를 잃어버리기 전,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처음 깨우고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솔로몬이 바로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다른 남자들이 가시나무 같다면, 솔로몬은 그늘을 주고 달콤한 열매를 주는 사과나무 같았다.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는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이다. 다른 나무들에서는 그늘도 없고 열매도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입에 달았다. 이것이 솔로몬이 다른 모든 남자들과 구별되는 이유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lt;strong&gt;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인류는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관계가 끊어졌다&lt;/strong&gt;.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면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lt;strong&gt;솔로몬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깨웠다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생명나무 아래에서 인류와 함께하셨다가 죄로 인해 그들을 잃어버리셨다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lt;/strong&gt;하고 있다. 그래서 &lt;strong&gt;솔로몬은 그 잃어버린 짝을 다시 찾기 위해 포도원으로 내려간 것이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인류를 찾으시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알 수 있다. 나무들의 숲, 곧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은 유일하게 참된 그늘과 달콤한 열매를 주시는 분이다. 그 어떤 세상의 것도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예수님 아래에 앉으면 심히 기뻐하게 되고 그 말씀의 열매는 입에 달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보자마자 사과나무라고 알아본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만날 때 그분이 생명나무이심을 즉시 알아보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lt;strong&gt; &amp;#39;사과나무&amp;#39;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첫 만남과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나무&lt;/strong&gt;였다. 그 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깨어났고, 솔로몬을 처음 만났으며, 그를 잃어버리기 전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 다시 솔로몬을 보게 된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사과나무의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amp;quot;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amp;quot;고 말한 것이다. 그 그늘에 다시 앉아 쉬고 싶었고, 그 달콤한 열매를 다시 맛보고 싶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만난 성도의 고백이기도 하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았지만, 예수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안식과 달콤함을 발견한다. 세상이 주는 위로와 기쁨은 일시적이고 금방 사라지지만, 예수님의 그늘 아래에서 얻는 안식과 그분의 말씀에서 맛보는 달콤함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수풀 가운데 유일하게 그늘을 주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와야 했던 4가지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발견하고 청혼한 뒤 &lt;strong&gt;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와야 했던 데는 분명한 이유들&lt;/strong&gt;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lt;strong&gt;그녀의 삶의 형편이 너무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크게 네 가지로&lt;/strong&gt;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그녀가 자신의 오빠들에 의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녀는 오빠들의 노여움으로 인해 포도원지기로 일하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의 포도원은 지키지 못했다 (아 1:6). 자신의 것을 돌보지 못한 채 남의 것만을 위해 혹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서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그녀는 독수리와 매 등이 무서워서 늘 바위틈 낭떨어진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야 했기 때문&lt;/strong&gt;이다 (아 2:14). 하늘의 맹금류들이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그녀는 숨어서 살아야 했다. 이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공격 앞에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현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포도원이 위치한 곳이 사자 굴과 표범 산 근처였기 때문&lt;/strong&gt;이다 (아 4:8). 솔로몬은 신부에게 &amp;quot;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너라&amp;quot;라고 말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환경이었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 세상이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가득한 곳임을 뜻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포도원에 들어오는 여우들을 잡아낼 수 없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아 2:15).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익고 포도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작은 여우들이 그 포도원을 허물고 있었다. 포도원을 지키는 것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역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 힘으로 신앙의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네 가지 이유는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솔로몬이 그녀를 구해 오지 않으면 그녀는 착취와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네 가지 상황은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상태&lt;/strong&gt;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도 사탄마귀에게 착취당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도 사탄의 공격이 두려워 숨어 살았다. 우리도 악한 영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홀로 힘으로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켜낼 수 없었다. 그 처절한 현실 앞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찾아내신 것이다. 그분의 눈에는 우리가 비록 얼굴이 햇볕에 타서 거무스름한 시골 처녀처럼 보잘것없었지만, 당신의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이 은혜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달라는 구절이 있다 (아 2:15). &lt;strong&gt;왕이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을 처치해 주시겠다는 약속&lt;/strong&gt;이다. 작은 여우들은 큰 짐승들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의 꽃을 물어뜯고 열매를 망친다. 우리 삶에도 이처럼 작은 것들, 곧 작은 죄들, 작은 게으름들, 작은 불순종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너뜨린다. 이것들을 혼자서는 잡아낼 수 없다. 왕이 직접 잡아주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작은 여우들을 처치해 나가는 것이 날마다의 신앙생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솔로몬이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녀에게 자신의 왕궁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그는 그녀에게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을 보여 주었고, 동산에서 함께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줍는 일을 했다. 왕이지만 종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마 20:28). 그 섬기는 왕의 모습에 감동받은 신부가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솔로몬 왕이 왕비 60명과 후궁 80명을 두고도 레바논의 시골 처녀를 찾아 내려간 것처럼,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지만 죄로 인해 잃어버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lt;/strong&gt;.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단지 감사하며 그 사랑을 받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랑에 응답하여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될 것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솔로몬은 신부를 얻기 위해 어떤 3가지 행동을 취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신부를 얻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했다. 크게 세 가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그녀를 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녀를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이며 그녀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lt;/strong&gt;(아 2:4-5). 포도주의 집, 곧 &amp;#39;야인 바이트&amp;#39;는 포도즙을 짜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솔로몬은 그녀 위에 &amp;#39;사랑&amp;#39;이라는 이름이 쓰인 깃발을 세워 주었다. 깃발은 정복과 소유의 표시이다. 왕이 그녀 위에 사랑의 깃발을 세웠다는 것은, 왕이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선언하고 그녀를 위해 싸울 것임을 공표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4-5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녀가 &amp;quot;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amp;quot;고 고백할 만큼, 왕의 사랑은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건포도와 사과로 힘을 얻어야 할 만큼 그 사랑에 압도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압도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사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그녀가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약속&lt;/strong&gt;했다 (아 2:15).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허물고 있었고, 그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왕이 직접 그 여우들을 잡아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과 싸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싸움을 주님이 대신 싸워 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그녀를 왕비로 삼기 위해 왕이 타는 가마를 보내고,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이스라엘의 용사 60명을 붙여 그녀를 호위하게 했다&lt;/strong&gt; (아 3:7-8). 왕은 연약한 그녀를 위해 자신의 가마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밤길의 위험에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칼을 찬 용사 60명을 보냈다. 왕이 직접 치를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3: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그녀를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 행동은 솔로몬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신부를 얻으려 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과 정확히 대응된다. 왕이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새벽에 돌아온 것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을 예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솔로몬은 신부를 왕궁에 데려온 후 어떤 존재로 성장시키려 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온 것은 구중궁궐에 가두어 놓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었는가? 왕은 그녀를 자신의 진정한 동역자로 삼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왕이 그녀를 어떤 존재로 성장시키려 했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로 만들기를 원했다&lt;/strong&gt;. 처음 왕궁에 들어온 그녀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안락함에 취해 있었다. 신랑이 와서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신랑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려 했다. &amp;quot;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amp;quot;라고 했지만 (아 5:2), 그녀는 이미 옷을 벗었다는 핑계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잠시 후 마음이 움직여 문을 열었을 때는 신랑이 이미 가고 없었다. 그녀는 신랑을 찾아 밤거리로 나섰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가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밤이었다. 순찰하는 자들이 그녀를 쳐서 상하게 했다. 성벽의 파수꾼들이 그녀의 겉옷을 벗겨갔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는 이들에게 신랑ㅇ르 찾아달라고 신랑의 아름다움을 10가지로 자랑했다 (아 5:10-16). 그러자 예루살렘의 딸들도 함께 왕을 찾아주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을 찾아냈을 때, 왕은 그녀를 이렇게 칭찬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이 여자가 누구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녀는 이제 밤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전사&lt;/strong&gt;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amp;nbsp;술람미 여인이 밤에 신랑을 찾아나선 이 경험은 그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불평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밤의 어둠 속에서 순찰자들에게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기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 고통이 그녀를 성장시킨 것이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신랑을 잃어버린 것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우리를 더 강한 전사로 만들어 가신다. 신랑이 문 앞에서 두드릴 때 빨리 열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막심이었지만, 그 실수가 오히려 그녀를 성장으로 이끈 것이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도 주님 안에서는 성장의 재료가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신랑을 찾아나선 그녀가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10가지로 자랑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아 5:10-16). 그녀는 자신이 고통받고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신랑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랑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자랑했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모습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것, 이것이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위엄 있는 신부의 삶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5:10-11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중에서 뛰어나구나 그의 머리는 순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lt;/p&gt; &lt;p&gt;&amp;nbsp; 왕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된 것이다. 왕이 새벽늦게까지 나가 일하고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돌아온 것이 왕의 삶이었다. 그 신랑의 모습을 보고 그녀도 자신이 왕궁에 온 목적을 깨달은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왕의 동산에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재배하며 양떼를 치는 동역자로 만들기를 원했&lt;/strong&gt;다. 어느 날 신랑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서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꺾는 것을 그녀가 보게 되었다 (아 6:2-3). 신랑은 그날도 피 흘려 순교한 꺾어진 백합화들을 모으고 홀로는 살 수 없는 양떼를 먹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본 그녀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왕의 동산에 자신의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나무와 석류나무를 재배하여 많은 과실을 거둬들인 후 그것을 왕에게 드리기 위해 함께 가자고 했다 (아 7:10-13). 왕궁에 들어올 때는 시골 포도원지기 처녀였지만, 이제는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진정한 동역자가 된 것이다. 왕이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온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왕이 왕궁으로 신부를 데려온 후 그녀를 이 두 가지 존재로 성장시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lt;/strong&gt; 그녀가 신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 신랑을 잃어버리는 실수도 있었다. 성 안을 헤매며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기는 고통도 겪었다. &lt;strong&gt;그러나 바로 그 과정이 그녀를 &amp;#39;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amp;#39; 존재로 만들어 갔다&lt;/strong&gt;. 왕이 그녀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랑이 늦게 들어오고, 그 신랑을 찾아야 하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성장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방식이다. 편안함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도전 속에서 우리의 영적 근육이 강해지고 진정한 신부의 모습이 갖추어져 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새벽늦게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몰약은 죽음을 상징하는 향품이다. 왕이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그분은 이 땅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까지 잃어버린 양떼를 찾으시고, 백합화처럼 꺾어진 순교자들을 모으는 일을 하셨다. 신부는 신랑이 그 늦은 시간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그 순간, 안락함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왕의 신부라면 왕이 하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신부의 성장이고,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 늦은 새벽까지 동산에서 일하던 신랑의 손에 몰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부의 마음이 움직였다. 신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리고 그 헌신과 희생으로 신부의 마음을 이겼다.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음이 움직인다&lt;/strong&gt;. 말이 아니라 피 흘려 죽으신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 사랑에 감동된 신부가 왕과 함께 포도원으로 나가는 자가 된다. 이것이 신부 사랑의 완성이며, 이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lt;strong&gt; 왕의 동산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양떼를 치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바람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lt;/strong&gt;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돌보라는 사명을 주셨다 (창 2:15). 죄로 인해 그 사명이 왜곡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그 원래의 사명을 회복하게 된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양떼를 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의 모형이다. 우리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일을 배워 간 그녀는 마침내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 7:11-12).&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quot;나의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함께 들로 나가서 동네(고페르나무의 숲)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amp;quot; 이것은 왕비가 왕에게 하는 말이다. 이제 그녀는 왕궁에 편안히 앉아 있는 왕비가 아니라, 왕과 함께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나가는 동역자가 되었다(왕7:121~13).&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것이 왕이 꿈꾸던 신부의 모습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7:11-12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들로 나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구절은 신부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왕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왕과 함께 일하는 자리로 나아갔음을 보여 준다. &amp;quot;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amp;quot;는 고백은, 일하는 현장에서 왕을 더 깊이 사랑하겠다는 선언이다. 왕궁 침실에서만 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왕을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모습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우리는 천국에서 어떤 존재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lt;strong&gt;술람미 여인의 성장을 통해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가르쳐 준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은 구원받았으니 &lt;strong&gt;이제는 놀고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왕궁에 들어온 후 안락함에 취해 신랑이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술람미 여인처럼, 구원받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왕이 원하는 신부의 모습&lt;/strong&gt;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우리는 어떤 존재가 &lt;/strong&gt;되어야 하는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가시나무밭의 백합화가 되어야&lt;/strong&gt; 한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amp;quot;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amp;quot;라고 했다. 이 세상은 가시나무밭이다. 악한 영들이 가득하고 죄와 고통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백합화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어둡고 딱딱하고 차갑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정결함으로 밝고 향기롭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밤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전사가 되어야 &lt;/strong&gt;한다. 술람미 여인이 밤에 신랑을 찾아 나설 때, 그녀는 순찰하는 자들에게 상처를 입고 겉옷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는 이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함께 찾아나서도록 독려했다. 이것이 전사의 모습이다. 우리를 둘러싼 악한 세력들이 공격해 올 때 두려워하여 숨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맞서며 깃발을 꽂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이 포도주의 집에서 그녀 위에 사랑의 깃발을 세워 주었듯이, 우리도 원수의 영토에 복음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다른 신부를 산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lt;/strong&gt;한다. 술람미 여인은 단순히 자신이 왕비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밤에 신랑을 찾아나서면서 만나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신랑의 아름다움을 증거했다. 그래서 그들도 신랑을 함께 찾는 자들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된 것은 다른 이들도 신부가 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나 혼자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신랑을 만나지 못한 영혼들을 찾아가 신랑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 모습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가시나무밭의 백합화가 된 사람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고, 그 전사가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가 된다. 회개와 정결함으로 빛나는 삶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힘이 되고, 그 힘으로 이긴 자가 다른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된다. 이 세 가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왕이 신부를 데려온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더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처음에 왕궁에 들어왔을 때 자신이 검다고, 즉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 1:5). 그러나 왕은 그녀를 &amp;quot;여자들 중에 어여쁜 자&amp;quot;라고 불렀다. 왕의 눈에 그녀는 이미 아름다운 자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할 때, 왕은 우리를 당신의 신부라고 부르신다. 그 왕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신부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왕의 신부라는 정체성이 확고해질 때,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고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가 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이며 (롬 8:17),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아무나 그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업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람미 여인이 왕과 함께 포도원에서 땀 흘리고 밤에 신랑을 찾아 거리를 헤맨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왕과 함께 고난과 수고를 감당할 때 비로소 그 유업을 함께 누리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가시나무밭에서 피어나는 백합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밤의 두려움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다른 신부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에너지와 삶을 다른 이를 위해 쏟아부어야&lt;/strong&gt; 한다. 이 모든 것이 고난이지만, 동시에 영광으로 가는 길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그 과정을 통과했을 때 &amp;quot;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amp;quot;고 칭찬했다 (아 6:10). 주님도 우리가 이 과정을 통과했을 때 그렇게 칭찬해 주실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이란 바로 이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원수를 멸하고 다른 이들도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왕비가 되었으니 그냥 왕궁에서 편히 쉬면 된다는 생각은 왕의 뜻과 맞지 않는다. 왕은 그녀를 구중궁궐에 가두어 두려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더 강한 군사로 만들어 악한 영들을 때려잡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특이한 책이지만 여기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면 놀라운 책이다. 비록 이 책에서 우리는 신앙의 언어를 하나도 발견할 수없지만, 이 책이 실상은 가장 완벽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임을 확인했다. 솔로몬이 레바논의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간 것은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해서였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라고 한 것은 생명나무 아래서 있었던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그녀를 착취와 두려움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왕궁으로 데려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마와 60명의 용사를 동원하며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왕궁에 데려온 목적은 그녀를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로, 왕의 동산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동역자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착취당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오신 목적은 단순히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더 강한 군사로 만들어 악한 영들과 싸우게 하시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신부로 산출하는 자들로 만들려 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인지를 준비해야 한다. 왕궁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왕비 60명과 후궁 80명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왕의 단 하나의 진정한 신부로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다른 신부를 양육하는 자로 살 것인지, 지금 이 땅에서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한다&lt;/strong&gt;. 가시나무밭의 백합화로,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로,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아가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술람미 여인은 광야에서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올라오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 8:5). 광야는 이 세상이다. 거친 광야를 걸어오면서도 그녀는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어 함께 올라온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삶의 모습이다. 세상이라는 광야가 힘들고 거칠더라도, 주님께 기댄 채로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올라와서 왕이 우리를 당신의 어머니 집으로, 영원한 집으로 들여보내 주실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아가서이며,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견되어 구원받은 존재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광야를 걸어가며 주님께 기대어 함께 올라가야 한다. 포도원에서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먹이며, 밤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로,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술람미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가서를 읽을 때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목적은 모두 하나이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동역자, 거룩한 신부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솔로몬이 레바논의 험한 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 근처의 위험한 포도원에서 그녀를 찾아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찾아오신다&lt;/strong&gt;. 그리고 그 손에는 몰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왕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일어서야 한다. 왕의 동산에 나의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가꾸고, 양떼를 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풍성한 과실을 왕 앞에 내어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부의 삶이고, 이것이 천국에서 영원히 왕과 함께 살아갈 자의 이 땅에서의 준비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그 준비된 신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이렇게 말한다. &amp;quot;나의 사랑하는 자야 빨리 달려오라 (아 8:14).&amp;quot; 이것이 신부의 마지막 간구이다. 신랑을 기다리며, 신랑이 오시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8:14 나의 사랑하는 자야 빨리 달려오라 향기로운 산들 위의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목적을 온전히 이루어 왕이 영원히 기뻐하시는 진정한 신부가 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28일(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아가서를 단순한 남녀의 연가로 보지 않고,&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lt;/strong&gt;을 풀어낸 심오한 신학적 강론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를 통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찾아오심&lt;/strong&gt;과 죄인인 교회를 신부로 삼아가는&amp;nbsp;&lt;strong&gt;구속사적 경륜&lt;/strong&gt;을 모형론적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신부가 정결한 백합화에서 시작하여 원수를 이기는&amp;nbsp;&lt;strong&gt;전사&lt;/strong&gt;로, 더 나아가 다른 영혼을 돌보는&amp;nbsp;&lt;strong&gt;신랑의 동역자&lt;/strong&gt;로 성숙해가는 단계를 강조하며 성도의 사명을 일깨웁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아가서를 성도가 천국 왕의 짝으로서 합당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기 위한&amp;nbsp;&lt;strong&gt;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lt;/strong&gt;라고 정의하며 신앙의 성숙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인포그래픽_ChatGPT Image 2026년 6월 28일 오후 08_41_38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6a82d5f1be6ea580beeed599600714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ba37f9cb8c246807b35235423196fb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b57dc454537ca1605ed2bf8b7dfdc3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bff3d03f2ac5f18999b4b212a17cf2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329f5c5438f7132b383e714acacb9a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ec097e9c18220263ed7b799856bb5a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4c15b2dbbf6e1b35e40e3147eb16a5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18109b335f891139aa23270a3322e4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c70e1c8678be8717ba449e443e25e0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778a598dac41deba58f2487c0607de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933b524b04e8bf18448b5a299062bf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f8c1d4dabbbde9a3d7eb7c50dc2a35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Brid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fa9a2c8a6d770c6481bd717a16b19c7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2026-06-28(주일) 주일낮2부예배(정제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0pt; line-height: 1.72; color: #222; } h2 { margin: 2.2em 0 0.8em 0; padding: 0;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 p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p.scriptur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plain { margin: 0 0 1em 0; } &lt;/style&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는 성경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책이다. 이 책에는 &amp;ldquo;하나님&amp;rdquo;, &amp;ldquo;여호와&amp;rdquo;, &amp;ldquo;기도&amp;rdquo;, &amp;ldquo;회개&amp;rdquo;, &amp;ldquo;찬양&amp;rdquo; 같은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만 읽으면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향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향품과 포도원과 동산과 사과나무와 백합화와 몰약과 포도주를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으면, 이것은 단지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요 연애시처럼 보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성경은 겉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제자들에게 풀어 주셨다(요 5:39, 눅 24:4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붙들고 아가서를 읽으면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솔로몬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술람미 여인은 단순한 시골 처녀가 아니다. 그녀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신부, 곧 교회를 예표한다. 아가서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출하기 위해 내려오신 왕의 사랑이며, 자기 피를 포도주처럼 쏟아 신부를 살리려는 사랑이며, 마침내 그 신부를 왕궁으로 데려가 왕의 동역자로 세우려는 사랑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말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해석하였다(엡 5:31-32). 그러므로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 안에서 읽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번 본문은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amp;ldquo;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amp;rdquo;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였고, 그의 사랑이 자기 위에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신부를 위해 무엇을 하시며, 그 신부를 장차 어떤 존재로 세우려 하시는지가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왜 잃어버린 신부를 찾아오셨으며, 그 신부를 어떤 존재로 세워 가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아가서는 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정경 안에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교리 문장으로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때로는 인물과 사건과 제도와 성막과 제사와 왕권과 결혼의 그림자를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신다. 아가서가 바로 그러한 책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모형론적 성경해석은 구약의 인물과 사건과 사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광야의 반석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성막도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특히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요 성전 건축자였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깊이 연결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원수를 이기시고 평화를 이루셨으며, 하나님의 지혜로 사탄을 멸하셨고,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성전으로 세우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솔로몬이 쓴 아가서는 단순한 궁중 연애시가 아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왕이라면, 아가서는 물질적 성전 너머에 있는 영적 성전, 곧 교회가 어떻게 산출되고 어떻게 신부로 준비되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과 금과 나무로 지어졌지만,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성령으로 세워진다. 이 교회가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의 신랑은 왕이다. 그는 부족함이 없는 자다. 왕비도 있고 후궁도 있고 시녀들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가 한 여인을 찾는다. 이것이 아가서의 비밀이다. 신랑에게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신랑에게는 반드시 찾아야 할 &amp;ldquo;단 하나의 짝&amp;rdquo;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은 그 짝을 찾아내어 사랑하고,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고, 왕궁으로 데려오고, 자기 동산에서 함께 일할 동역자로 세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런 의미에서 아가서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신부수업이란 단지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신부수업은 왕의 마음을 알고, 왕의 고난을 이해하고, 왕의 피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왕의 전쟁에 동참하고, 왕의 동산에서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일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는 성도는 &amp;ldquo;나는 예수 믿었으니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amp;rdquo;는 낮은 생각에 머물면 안 된다. 왕이 신부를 부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 8장 6절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한 질투로 표현된다. 여기서 &amp;ldquo;여호와의 불&amp;rdquo;로 번역된 표현은 원문상 최상급의 의미를 가진 강렬한 불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죽음도 이기는 사랑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가장 맹렬한 불꽃과 같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향한 소유욕이 아니라 구원과 성숙과 동역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알 때 아가서는 육체적 사랑의 노래에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로 열린다.&lt;/p&gt; &lt;h2&gt;3. 왜 솔로몬은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왕궁에 있었다. 왕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평화의 왕이었고 지혜의 왕이었다.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 시녀들이 무수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다. 이 장면은 단순한 농장 시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왕이 내려간 깊은 이유는 자신의 잃어버린 짝을 찾기 위함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 6장 9절은 이 비밀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amp;ldquo;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amp;rdquo;이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amp;ldquo;하나&amp;rdquo;는 히브리어로 에하드의 의미를 가진다. 에하드는 고립된 하나가 아니라 연합된 하나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그 하나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많은 여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신랑이 찾던 단 하나의 짝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를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이 바알하몬 포도원으로 내려간 것은 왕궁 안에 사랑의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다. 왕궁 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왕의 동역자가 될 여인은 없었다. 왕과 함께 포도원을 알고, 양떼를 알고, 광야의 두려움을 알고, 사자굴과 표범산의 위험을 알고, 여우가 포도원을 허는 현실을 아는 여인이 필요했다. 신부는 왕궁의 장식물이 아니라 왕의 마음과 사역을 함께 감당할 짝이어야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계셨고,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셨으며, 만물의 주인이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죄와 귀신과 사망과 저주가 가득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왜 내려오셨는가? 잃어버린 신부를 찾기 위해서다. 자기 생명을 나누어 받을 짝을 얻기 위해서다. 사탄과 귀신들에게 억압당하던 사람들을 건져 새 예루살렘의 신부로 세우기 위해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은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은 자유로운 사명이 아니라 억압된 노동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준다. 악한 영들이 인간을 종처럼 부리고, 인간은 자기 포도원을 지킬 힘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솔로몬의 내려옴은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을 예표한다. 신랑은 높은 왕궁에 머물며 신부가 스스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신부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것이 은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lt;/p&gt; &lt;h2&gt;4. 술람미는 왜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 2장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amp;ldquo;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amp;rdquo; 여기서 &amp;ldquo;나의 사랑하는 자&amp;rdquo;는 히브리어 도드다. 도드는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부르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한 고백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왜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 아가서에는 많은 나무들이 나온다. 포도나무도 있고 석류나무도 있으며 무화과나무도 있고 고벨화나무와 유향나무와 계수나무와 몰약나무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사과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타푸아흐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숨쉬다, 향기를 내다, 생명의 기운을 연상시키는 의미와 연결하여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사과나무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다. 사람은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에서 쫓겨났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술람미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이것은 그녀가 신랑 안에서 잃어버린 생명의 근원을 본 것이다. 신랑은 숲의 많은 나무들 가운데 특별한 나무다. 그 나무는 그늘을 준다. 그 나무는 열매를 준다. 그 열매는 입에 달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과 안식과 말씀의 달콤함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으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신랑이 사과나무 같다는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신부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아가서 8장 5절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을 암시한다. &amp;ldquo;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amp;rdquo;는 말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근원과 연결된 관계임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lt;/p&gt; &lt;p&gt;&amp;nbsp;&amp;nbsp;신부는 신랑의 그늘 아래 앉아 기뻐한다. 이것은 피곤한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신부는 그의 열매가 입에 달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말씀이 꿀보다 달고, 생명이 영혼을 살리며, 그리스도의 공급이 세상 어떤 즐거움보다 더 깊은 기쁨을 준다는 뜻이다.&lt;/p&gt; &lt;h2&gt;5. 포도주의 집과 사랑의 깃발은 무엇을 뜻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술람미를 &amp;ldquo;잔칫집&amp;rdquo;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를 살피면 이것은 단순한 잔칫집이라기보다 야인 바이트, 곧 포도주의 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도주의 집은 포도가 눌리고 짜여 포도주가 되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곳은 신랑이 신부에게 자기 사랑의 본질을 보여 주는 자리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포도가 으깨어지고 짓눌려 포도주가 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녀를 위해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피 흘림의 사랑이다. 신부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7-28). 포도주의 집은 이 피의 언약을 예표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신랑은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도 보여 준다. 깃발은 소속과 승리와 전쟁을 의미한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깃발이다. 신랑의 사랑은 신부 위에 꽂힌다. 이것은 &amp;ldquo;너는 내 것이다&amp;rdquo;라는 소속의 표시이며, 동시에 &amp;ldquo;너는 원수의 영토에서도 승리할 자다&amp;rdquo;라는 승리의 표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의 신랑은 신부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는 피 흘리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원수의 영토 위에 꽂힐 승리의 깃발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긴다. 피는 속죄를 이루고, 증언은 깃발을 세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포도주의 집은 신부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치는 장소다. 신부는 거기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원수를 이기는 전쟁의 깃발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부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랑은 신부를 전사로 세운다.&lt;/p&gt; &lt;h2&gt;6. 왜 신부는 포도원에서 왕궁으로 옮겨져야 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술람미를 포도원에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려 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첫째, 그녀는 오빠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아가서 1장 6절에서 그녀는 &amp;ldquo;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amp;rdquo;고 말한다. 여기서 오빠들은 단순한 혈육으로만 볼 수 없다. 모형론적으로 보면, 이는 인간을 억압하고 자기 일에 종처럼 부리는 타락한 영들을 예표한다. 그녀는 포도원지기였지만 자기 포도원조차 지키지 못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둘째, 그녀는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위험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 준다. 비둘기는 순결한 새이지만, 포식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숨어야 한다. 신부는 순결을 지키고 있었지만 두려움과 위협 속에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셋째, 그녀가 있던 곳은 사자굴과 표범산이었다. 아가서 4장 8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레바논에서,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 사자와 표범은 포악하고 빠르며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다. 성경의 상징 세계에서 이것은 악한 권세와 적그리스도적 세력을 떠올리게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들과 표범들의 산들에서 내려오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넷째, 그녀 혼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을 수 없었다. 포도원에 꽃이 피었는데 여우들이 들어와 포도원을 허문다. 이것은 열매가 맺히기 직전에 들어와 사명을 망가뜨리는 작은 악한 영들의 역사를 보여 준다. 신부는 포도원을 맡았지만, 여우를 잡을 힘이 없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은 그녀를 데려와야 했다. 왕궁으로 데려온다는 것은 단지 편안하게 살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왕의 보호 안으로 옮기는 것이며, 왕의 훈련 안으로 들이는 것이며, 왕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자로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구원은 위험한 포도원에서 건져지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구원의 목적은 왕궁에서 놀고먹는 것이 아니다. 왕과 함께 다스리고 왕과 함께 싸우고 왕과 함께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데 있다.&lt;/p&gt; &lt;h2&gt;7. 왕은 신부를 어떤 전사로 세우려 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술람미를 데려오기 위해 자기 가마를 보냈다. 그 가마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왕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보내는 영광의 수단이다. 그 가마 주변에는 이스라엘 용사 60명이 둘러섰다. 그들은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자들이었다. 밤의 두려움 때문에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3: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그녀를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그의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은 신부가 왕에게로 가는 길이 단순한 꽃길만은 아님을 말해 준다. 밤의 두려움이 있다. 영적 원수들이 있다. 그러나 왕은 신부를 홀로 두지 않는다. 왕은 자기 용사들을 보내고, 가마를 보내며, 신부를 안전하게 인도한다. 이 장면은 성도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천사의 호위가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지만 왕은 신부를 영원히 보호받는 연약한 자로만 두지 않는다. 신부는 왕궁에 들어온 뒤에도 성장해야 한다. 아가서 5장에서 그녀는 신랑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신랑은 밤이슬을 맞고 돌아와 문을 두드리며 &amp;ldquo;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amp;rdquo;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 문을 열지 않는다. 이미 옷을 벗었고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힐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신부는 왕궁의 안락함에 젖어 신랑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신랑의 손에서 몰약이 떨어진다. 몰약은 죽음과 희생의 향품이다. 신부는 신랑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밤길로 나가 신랑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순찰자들에게 맞고 상처를 입으며 겉옷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숨지 않는다. 신랑을 찾기 위해 밤을 통과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과정을 지난 뒤 신랑은 그녀를 향해 &amp;ldquo;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amp;rdquo;고 말한다. 여기서 당당함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두려움을 주는 위엄이다. 신부는 이제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이 여자가 누구인가&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신부의 두 번째 단계다. 첫째 단계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순결을 지키는 단계다. 둘째 단계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신부는 사랑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왕의 권세를 받아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단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왕의 사랑을 힘입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lt;/p&gt; &lt;h2&gt;8. 신부는 왜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해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술람미를 왕궁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녀를 구중궁궐에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는 왕궁에서 신랑의 사랑만 받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랑의 마음은 더 넓었다. 그는 신혼의 밤에도 밖에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했다. 신랑은 어디에 있었는가?&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 6장 2절에서 그 답이 나온다. 신랑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고 있었다. 여기서 백합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아가서의 흐름에서 백합화는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신부, 곧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성도를 상징한다. 꺾어진 백합화는 피 흘린 순교자와 고난받는 성도를 떠올리게 한다. 신랑은 지금도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피 흘린 백합화들을 거두고, 또 다른 신부들을 돌보고 계신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들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치는구나&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을 깨닫는 순간 신부의 시야가 바뀐다. 신랑은 나만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신랑은 지금도 양떼를 먹이시고, 또 다른 신부들을 찾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순교자들을 맞이하신다. 그러므로 신부가 성숙하면 신랑의 마음에 동참해야 한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신랑이 하는 일을 함께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가서 7장 10절에서 13절은 성숙한 신부의 고백을 보여 준다. 그녀는 이제 신랑에게 함께 들로 가자고 말한다.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왕의 동산과 포도원 사역에 동참하려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7:10-1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신부의 세 번째 단계다. 첫째는 백합화 같은 신부다. 둘째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다. 셋째는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신부다. 왕의 신부가 되었다면 왕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고생하는 다른 술람미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여우들에게 포도원을 빼앗긴 자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는 일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붙들어야 한다. 신부의 성장은 한 번의 감정적 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술람미가 처음부터 깃발을 세운 군대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햇볕에 그을린 포도원지기였고,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자였으며,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였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을 보고, 왕의 가마에 실려 왕궁으로 옮겨지고, 밤에 신랑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점차 강한 신부로 빚어졌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도 한순간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와 말씀과 영적 전쟁과 양육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신부다운 신부로 성숙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신부가 다른 신부를 양육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랑이 어떤 분인지, 왜 피 흘리셨는지, 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아야 하는지, 왜 천국 왕의 동산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양육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랑의 마음을 전수하는 일이다. 신부가 신랑의 마음을 모르면 다른 신부를 낳을 수 없다. 신부가 포도주의 집의 비밀을 모르면 피의 사랑을 전할 수 없고, 신부가 여우를 이긴 경험이 없으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자신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를 구원하신 신랑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주님이 나를 신부로 부르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나를 통해 또 다른 신부를 얻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신부는 신랑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양떼를 먹이고, 여우를 잡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또 다른 신부를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을 중심으로 신부를 사랑한 신랑의 목적을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솔로몬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는 왕궁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해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오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랑은 신부를 보자마자 자기 짝임을 알아보았다. 신부도 신랑을 보며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고백하였다. 그 사과나무는 생명나무의 그림자요, 그 그늘은 그리스도 안의 안식이며, 그 열매는 말씀과 생명의 달콤함이다. 신랑은 그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여 자기 사랑이 피 흘림의 사랑이며 원수의 영토에 꽂히는 깃발임을 보여 주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편하게 쉬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셨고, 왕의 가마와 60용사를 보내 왕궁으로 데려오셨다. 그리고 그녀를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세워 가셨다. 나아가 그녀가 신랑의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줍는 신랑의 일을 깨닫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동역자로 성숙하기를 원하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자신이 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받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도 천국 왕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돕는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여 왕궁으로 데려온 목적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신부는 신랑의 마음도 알아야 한다. 신랑의 마음은 아직도 포도원에 있고, 양떼에게 있으며, 꺾어진 백합화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궁의 편안함만 바라보지 말고,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다녀오신 동산의 일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신랑의 피와 사랑으로 정결하게 되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으며,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하여 천국 왕의 동산에 함께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2026년 06월 28일(일)&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천국_왕의_신부수업_안내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5c538178a4fac27d9bc032b96ef68fe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b7514780de4a251622b4fb08d64783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94d21c90fd3861fdb845a08f240a9a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9779b513cbbb80e30a19c6ecc102a3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5fadf7cf10e3916be05300aa5367d1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3de6d55757dcc5bb2abd7cb0d2ef18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dde16fc9486c6e48a9ca1ff2bb9126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c36e20944aba8ca4041d276740e8ab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96220f377f6eb9ec4d5d403242606c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4e697a5c2951142d5f6e49ffff165e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2158cc212e0f8331e5d46c9b0d2d56a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822ea5d44f8c6a0203d842521835aa5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4)] The_King_s_Secret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75/261/7debcf2b647d3c8ecb58d7f85434066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lain&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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