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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낮예배 영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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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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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Oct 2026 07:58: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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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copyrigh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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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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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1)]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 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욜3:14~16)_2026-10-2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1074</link>
				<description>&lt;p&gt;2026-10-25(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1)]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 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욜 3:14~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https://youtu.be/5gOUQiZtRsM&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5gOUQiZtRs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여호와의 날이 누군가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되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lt;/strong&gt;는 성경적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구약 시대의 요엘서가 경고하는 회개의 중요성&lt;/strong&gt;과 더불어,&amp;nbsp;&lt;strong&gt;신약 시대 성도들이 가져야 할 깨어 있음과 충성의 자세&lt;/strong&gt;를 강조하며 성도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죄를 회개하고 주님 안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함으로써&lt;/strong&gt;, 다가올 심판을 피하고&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더 큰 은혜와 상급을 누릴 것&lt;/strong&gt;을 권면하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요엘서 2장 32절의 &amp;#39;구원을 얻으리라&amp;#39;는 본래 무슨 뜻인가?&lt;br /&gt; 2. 요엘서의 주제인 여호와의 날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lt;br /&gt; 3. 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lt;br /&gt; 4.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회복의 날로 어떻게 그리는가?&lt;br /&gt; 5. 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br /&gt; 6. 신약은 회개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br /&gt; 7. 깨어 있는 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3:14-1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의 영적 진리도 흩어져 있으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단편적인 지식을 얻어 간다. 그러나 그것을 꿸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도 의문을 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부족했던 것은 우리의 지혜였지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단편적으로 알던 지식을 하나님의 경륜과 뜻의 입장에서 찾아내어 영적 원리로 법칙화하고, 그 원리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 말씀을 그 상황에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없이 적용될 원리로 찾아내어 주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언제나 정답이었고 반대편의 말이 없었다. 목회자도 반대편의 말이 있는 것을 진리라고 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떳떳하게 입을 벌려 그렇게 말하는 주의 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시대와 장소와 남녀와 혈통에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복음이 되는 말씀이어야 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이다. 구약에 계시된 것은 적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계시하셨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통하여 더 확실해졌다. 그런데 주님께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성 밖도 있고 더 바깥 어두운 데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지금 교회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000년 동안 성경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구원의 드라마 전체를 꿰어 말하지 않고 부분만 말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면 다 지옥에 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 특히 의심을 주고 불신앙을 주는 의심의 영이 나가야 한다. 이 영이 있는 한 우리는 귀가 얇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황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계 2-3장; 마 13: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의 날은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 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 나는 안전한가? 가만히 있어도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가? 어떻게 해야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함과 감사함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요엘서 3장 14-16절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이며,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닌 구원과 보상의 날로 맞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요엘서 2장 32절의 &amp;#39;구원을 얻으리라&amp;#39;는 본래 무슨 뜻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 요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있다. 앞에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와,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날에 주로 오실 그리스도, 열방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키실 그리스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를 함께 살펴본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날에 그분이 나에게 심판주로 오실 것인가, 구원주로 오실 것인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amp;#39;구원을 얻으리니&amp;#39;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2차적인 의미, 곧 의역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말라트(מָלַט)라는 단어를 쓴다. 본래 뜻은 피하다, 벗어나다, 도망하다이고, 거기서 파생된 2차적 의미가 구출하다, 구조하다, 구원하다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텐데 그 심판에서 피할 자가 되는 것이 곧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바로 앞 31절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핏빛 같이 된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이다.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도 어두워지고 달도 핏빛이 되겠는가? 하늘의 천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는 것이다. 그 크고 두려운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되라는 것이 1차적 의미이고, 더 나아가 그 심판의 날에 구원을 얻을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누구든지 주님을 불러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영생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과 저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amp;quot;모두가 심판을 받을 것인데 너희는 그 심판에서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공의롭기 때문에 죄를 없다고 눈감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사탄과 마귀를 심판하겠느냐? 공의로 해야만 나에게 반역한 자를 불에 던지지 않겠느냐?&amp;quot; 그래서 모두가 심판의 날 앞에 설 것이다. 그 진노의 날, 멸망의 날, 파괴의 날, 재앙의 날에 살아남을 자가 되라고 주님께서 요구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아서 살려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나에게 찾아와서 부르짖으라, 나를 의지하라, 내가 너희를 구원하는 방법을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해서 취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죄를 범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 죗값을 받지 말고 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으로 예정된다. 어떤 개인이 구원받기로, 어떤 개인이 멸망받기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총수가 정해져 있고, 너도 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 그 구원받을 총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를 저주하기로 예정하셨다는 사상은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 폭군 같은 하나님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잘 듣고 선택을 잘해야 한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를 듣고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요엘서의 주제인 여호와의 날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피해야 할 그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인가? 요엘서의 주제는 이것이다. &amp;quot;여호와의 날의 도래를 준비하라.&amp;quot; 여호와의 날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 여호와의 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날을 지금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로, 어떤 사람은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좋은 날일 수도 있고 나쁜 날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 다시 오실 주님께서도 주의 날이 이를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의 여호와이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로 맞이할 염소의 자리에 있을 것인지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할 양의 자리에 있을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1장 15절은 여호와의 날이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른다고 규정하고, 2장 1-2절은 그날이 어둡고 캄캄하며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2장 18절부터 완전히 바뀐다. 심판과 멸망의 날을 예언했던 요엘 선지자가 회복과 구원의 날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장에 가면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러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하는 표현이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장면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3:14-16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을 모아 놓고 심판하시는 날이 매우 엄중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날 오히려 여호와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신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주님의 재림이다. 그런데 그날에 주님에게서 떠나 멸망으로 들어갈 자도 있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자도 있다(마 25:34, 4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죽으면 네 군데로 간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장차 천국과 지옥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 새 땅 위쪽은 일종의 천국이고 땅 아래는 지옥이다. 땅 위쪽의 가장 핵심은 새 예루살렘 성이며, 우리는 이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자가 그리로 들어간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모두 이 땅 위에 산다. 어떤 사람은 성 안에 살고, 어떤 사람은 성 밖에 산다. 성 바로 밖은 성의 빛이 비쳐 물도 있고 지구와 비슷한 살 만한 곳이다. 그러나 더 바깥쪽으로 가면 빛과 물이 적어지는 황량한 외곽을 지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마 25:30). 그리고 더 악한 사람들은 땅속의 불못에 들어간다(계 21:8). 그러므로 성경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 성 밖에 있을 자(계 22:15), 바깥 어두운 데로 들어갈 자, 지옥에 들어갈 자의 네 부류를 말씀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성 안이라면 꽃밭이라도 괜찮은가, 아니면 성문 바로 바깥의 아름다운 지역에서라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필자가 이렇게 말해도 &amp;quot;천국과 지옥밖에 없지 무슨 성 밖이 있느냐, 미친 사람이다&amp;quot;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성경책을 찢어 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믿는 것인지,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인지, 교리를 믿는 것인지, 성경을 믿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는데 언제까지 희석되고 불순물이 섞인 말을 듣다가, 평생 수고했으나 헛된 삶을 살아 죽어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되겠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셨다(마 20:16). 지금 회개하고 깨달으면 더 앞서 갈 수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 앞에서 샘플로 보여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산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amp;quot;그래, 너라면 이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amp;quot;(마 25:21)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꽃밭이라도 좋으니 우리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중에도 지옥에 들어갈 자가 있다. 지난 금요일에 살펴본 것처럼, 가라지 비유에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을 놓는 자와 귀신의 힘을 빌려 성령의 사역이라 한 불법을 행하는 자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복음을 위해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힌 자를 외면한 채 생색내며 자기가 올라갈 자리만 찾은 외식하는 자가, 그물 비유에서는 의인이 되고도 죄를 지어도 괜찮고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썩은 생각으로 살아간 자가 풀무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히 분별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언제 주신 말씀인가? 남유다의 선지자 요엘이 활동한 때는 주전 835-83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때 남유다 백성은 네 가지 황충 재앙(욜 1:4)으로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더 큰 전멸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요엘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셨다. 장차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 곧 여호사밧 골짜기에 모여 심판을 받게 된다.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도 그 빛을 거두겠는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면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그때 어떤 사람은 심판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3장은 이 심판의 골짜기를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부른다(욜 3:2, 12). 많은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며,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한다. 그렇다면 많은 골짜기 가운데 왜 여호사밧 골짜기인가? 여호사밧은 &amp;#39;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amp;#39;는 뜻이다. 곧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날의 심판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심판과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과 회복과 축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축복을 받을 것처럼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처럼 할례만 받으면 자동으로 구원받고 그날에 상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지금도 &amp;quot;나는 예수를 믿었다&amp;quot;는 것 하나로 그렇게 생각한다. &amp;quot;나는 할례를 받았다&amp;quot;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과 &amp;quot;나는 예수를 믿었다&amp;quot;는 오늘의 성도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말했다(롬 2:28-29).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에 나온다고, 단순히 예수를 믿었다고 그날을 안전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두 부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자들, 곧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다. 짐승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거기에 속한 자들은 그날 주님의 철장 권세로 완전히 부서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들과 동시에 같이 처벌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그날에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궁극적 예정을 잘 몰라서,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은 구원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날을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구원과 보상의 복된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준비하지 않는다. 믿음이 없으면 그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는 자에게 그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고 끝내실 것이기에 악한 자가 발흥하는 가운데서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날을 준비하도록 성경 말씀과 시대마다 세우신 선지자를 통해 인도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허투루 여기며 지나쳐 버린다. 믿음이 없으면 잘못된 예정론에 기대어 &amp;quot;준비하지 않아도 그날 구원받는다, 그날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amp;quot;는 말에 속아 일평생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성 밖에 남겨지거나,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지 못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거나,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주님을 부인하고 남을 죄짓게 만드는 일에 쓰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도 생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날이 되면 너무 늦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처럼 잠시 갔다 와서 기름을 사 올 수가 없다(마 25:10). 지금이 기름을 살 수 있는 날이요, 지금이 충성할 수 있는 날이며, 지금이 나를 돌이킬 수 있는 날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날인가? 그런데 이 귀중한 날을 오늘도 세상 밥 먹는 데 쓰며 맛집을 찾아다닌다. 언제까지 맛집을 쫓아다니고, 날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고, 날마다 모여 등산을 다닐 것인가? 등산을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한 번씩 가서 &amp;quot;참 아름다워라&amp;quot; 하고 감탄할 필요도 있다. 날마다 그렇게만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회복의 날로 어떻게 그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말하는가? 여호와의 날이라는 개념은 선지서에 나온다. 요엘서는 가장 먼저 기록된 선지서 가운데 하나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여호와의 날을 처음 말한 책이 요엘서라고 할 수도 있다.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의 중기, 에스겔은 말기에 활동했으니 요엘은 그보다 앞선다.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사 2: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도 그날이 가깝고 여호와의 날이 가까우니 구름의 날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라고 말했다(겔 30:3). 그런데 여호와의 날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확실하게,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은 요엘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엘서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는 먼저 여호와의 날이 악인들과 죄인들과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두려운 심판의 날이 된다고 말한다. 그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며, 옛날에도 없었고 후로도 대대에 없을 날이다(욜 2:2).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되며(욜 2:31), 해와 달이 캄캄하고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욜 3:15).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우면 벌벌 떨어 해가 비치지 않겠는가? 그날은 갑자기 임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공의로 심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을 찾고 구하며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그날은 회복과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 요엘서 3장 1절은 그날에 포로 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가 붙잡혀 갇힌 자들을 되돌리시는 날로 본다. 또한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민족을 처단하는 날이다(욜 2:25; 3:2, 19). 특히 3장 19-20절은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애굽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에돔을 황무한 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사탄과 마귀를 주님께서 재림 때 완전히 부숴 버리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때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을 따랐던 땅의 왕들과 그 군대들은 새들의 밥이 되고(계 19:17-21), 그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계 14:20). 그러므로 절대 악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완전히 회복시켜 주신다. 오늘 본문 뒤의 요엘서 3장 18절은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리며, 말랐던 유다의 모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를 적신다고 말한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고 천국에서 실현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회복이 그때에만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 전에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엘서 2장 28절 이하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만, 그 전에도 성령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비유로 성령의 은혜를 듬뿍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욜 2:23-24). 필자는 이른 비는 초대교회에 부어 주신 성령의 역사이고, 늦은 비는 이 마지막 시대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그래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회복은 마지막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 회개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악한 영으로부터, 재앙으로부터, 저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시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통해 지금부터 하나님의 실제를 맛보게 해 주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다가 영원히 안전하게 살고 예루살렘, 곧 새 예루살렘이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한다는 약속(욜 3:20)이 성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날을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다. 구약의 요엘서는 딱 한 가지를 요구한다. 요엘서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1장 1절부터 2장 1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과 멸망의 날이라고 예언하고, 2장 18절부터 3장 21절까지는 그날이 회복과 구원의 날이라고 예언한다. 그 사이에 2장 12-17절이 있다. 이 부분이 그날을 회복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이며, 그 요절이 12-13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단 한 가지 요구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회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여 죄를 씻어 버리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안 들어가고 싶어도 회개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좋은 회개를 발견했다가 조금 힘들다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떠나 버린다. 언제까지 방황하며 살 것인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뒤로 물러가 멸망하게 된다고 히브리서는 말한다(히 10:38-39). 한번 그리스도를 붙잡았으면 그분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다른 것을 추구해 보았자 얻는 것이 없다. 회개는 힘들고 늦게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이며, 이것만이 영원히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 베푸신 속죄가 우리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복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개하기를 싫어한다. 회개의 축복은 어마어마하며, 구약 성경은 이것이 기본이자 필수라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에는 두 차원이 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하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다. 입술로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죄는 날마다 짓고 있다면 그 회개 기도는 무엇 하러 하는가? 회개 기도는 죄로부터 돌아서려고 하는 것이다. 죄를 계속 지으면서 회개 기도문을 천 번 읽어 보라. 효과가 있겠는가?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죄로부터 돌이키고 성품이 달라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2장 15-17절은 시온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말한다. 백성과 장로들과 어린아이와 젖 먹는 자까지 모으고, 신랑은 그 방에서, 신부는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울며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다(욜 2:17).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시면 그날 우리가 다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죄를 짓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도 그날은 똑같이 심판의 날이다. 회개하고 있어야 구원의 날이다. 그날 우리가 무죄한 자로 발견되어야 그날이 구원의 날이요 보상의 날이 된다. 그날 죄 있는 자로 책망을 들으면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 요엘서 3장 19-2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 곧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 자손은 무죄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회개하여 죄가 없어야 한다. 내 속에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귀신이 드글드글한데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겠는가?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질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신약은 회개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여호와의 날에 심판과 멸망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복과 구원으로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약에는 그날을 맞이할 자세로 한 가지 요구가 더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런 명령을 하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에만 있는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때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20:23). 그러나 그 자리에 이미 누가 있어도 더 충성된 사람이 생기면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구약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종교개혁 시대에 머물렀다면 칭의만 붙들다가 죽을 뻔했다. 지금도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말이 인터넷에 남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종교개혁의 가르침에만 머물 것인가? 그들이 칭의에서 멈춘 것은 잘못이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도 구약과 똑같다. 그날이 진노의 날이 될 것인가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요한계시록 6장 16-17절은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을 말하고, 22장 12절은 그날에 상을 받을 자를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종류의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그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한 것은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마 4:17) 하셨고,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 계실 때에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다(계 22:14). 회개하고 있으면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더 이상 힘든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살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아픔도 없고, 통곡도 없고, 어둠도 없고, 시련도 없고, 마귀와 귀신도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얼마 전 한 장로님이 위독하셔서 살리려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그분에게 붙은 귀신들을 다 떼어 냈다. 생명이 위험할 만큼 나빴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잠도 못 주무시고 힘드셨으니 조금 쉬시라고 했더니 잠이 드셨는데, 천국에 가셔서 주님을 만나시고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필자가 천국에 가면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있으면 최소한 천국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신약에서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깨어 있으라는 것은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 불면증으로 죽는다. 한마디로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그것을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깨어 있는 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깨어 있는 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가 말하는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열 처녀의 비유다(마 25:1-13).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신부로 맞이하시기에 합당한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달란트의 비유다(마 25:14-30).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에게 적용되는 가장 강력한 말씀은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은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 25:31-46).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실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생색낼 것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악한 종은 어떠한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종은 동료들을 때린다. &amp;quot;회개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이미 다 구원받았고 저주는 끝났다&amp;quot; 하고 동료들을 세뇌시킨다. 자기가 저주에 걸려 있는데도 저주가 없다고 한다. 회개해야 저주가 떠나가는데, 회개하는 동료에게 &amp;quot;너 이단에 빠졌지&amp;quot; 하며 때린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며 맛집이나 찾아다니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등산이나 다니며, 오리 맛집에 가서 찰밥과 오리고기를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여긴다. 그러면 그날에 엄히 맞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해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 구약 성경은 회개하고 있으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과 면류관과 지위가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다 알려 주셨다. 구약에서는 한 사람도 몰랐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지만 알려 주지 않으셨다(벧전 1:12).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으며(엡 1:3-6; 3:6), 우리가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 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딤후 2:11-12).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날을 준비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충성하려면 무엇인가를 맡아야 한다. 맡으려면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딤후 2:21).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회개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 있으면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 아름다운 상이 준비된다. 구약에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 않은 &amp;quot;충성하고 있으라&amp;quot;는 말씀은 신약의 성도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자기의 영역을 찾아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그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과 축복의 날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의 날은 두 얼굴을 가진 날이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빛을 거두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그날, 어떤 사람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신다. 그날이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그날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로,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날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회개하라고 했고, 신약은 거기에 더하여 깨어 충성하고 있으라고 한다. 회개하고 있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 곧 필요조건이요, 충성하고 있는 것은 충분조건이다.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충성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그날이 되면 기름을 사러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며,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자.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하고, &amp;quot;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amp;quot;(마 25:21) 하시는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요엘서</category><category>여호와의날</category><category>심판과구원</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재림</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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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1074#comment</comments>			<pubDate>Sun, 25 Oct 2026 21:29: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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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15)]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堅忍)교리, 과연 성경적인가?(욜2:32, 요10:28~29)_2026-10-18(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0585</link>
				<description>&lt;p&gt;2026-10-18(주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15)]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堅忍)교리, 과연 성경적인가?(욜2:32, 요10:28~2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lfOTVmKOL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lfOTVmKOL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칼빈주의 예정론과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lt;strong&gt;성경적이지 않으며 잘못된 가설에서 비롯되었다&lt;/strong&gt;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lt;strong&gt;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구원 여부가 아니라 아들 삼으심과 사역에 대한 것&lt;/strong&gt;이며, 구원은 &lt;strong&gt;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회개하는 자의 책임&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신자들이 &lt;strong&gt;잘못된 교리적 안심에서 벗어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lt;/strong&gt;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입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왜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되었는가?&lt;br /&gt; 2.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래 예정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lt;br /&gt; 3.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교리인가?&lt;br /&gt; 4.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가?&lt;br /&gt; 5. 칼빈주의자들이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lt;br /&gt; 6. 요한복음 10장 27-30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lt;br /&gt; 7. 성경은 왜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가?&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堅忍) 교리, 과연 성경적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요 10:28-2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난 시간에 칼빈주의의 5대 교리가 과연 성경적인가를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 무조건적 선택 교리가 근거로 삼는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5대 교리의 마지막 기둥인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교리가 가장 강력한 근거로 내세우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복음 10장 28-29절이다. 여기에 보면, 아버지께서 양들을 아들에게로 보내주시는데, 그러면 그 양들에게 예수께서 영생을 줄 것이요, 그러면 양들을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양들을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나온다. 이는 마치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처럼 보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예정해두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욜 2:3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으로 예정해 두신 어떤 개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처럼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그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게 보존되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채 있게 되는 것인가? 정말로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끝까지 강하게 견디어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구원받게 되는가? 과연 이러한 칼빈주의의 &amp;#39;성도의 견인&amp;#39;의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인가? 과연 이 교리를 성경이 뒷받침해 주고 있는가? 그리고 이 교리에 담긴 잘못된 가정과 함정은 대체 무엇인가? 이번 시간에는 이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왜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성도의 견인&amp;#39; 교리를 바로 보려면 먼저 그 뿌리인 칼빈의 예정론이 과연 성경적이었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lt;strong&gt;첫째는 이중 예정론이 처음 등장한 자리&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칼빈이 그것을 어떻게 확장했는가&lt;/strong&gt;이며, &lt;strong&gt;셋째는 그것이 왜 잘못된 가정인가&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칼빈(A.D.1509-1564)의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은 처음 어디에서 등장하는가?&lt;/strong&gt; 그것은 그가 서른 살이던 1539년에 펴낸 「기독교 강요」 제2판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는 그의 책 제8장 &amp;#39;예정 및 섭리&amp;#39;에서 &amp;quot;하나님은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영생과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다&amp;quot;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amp;quot;예정이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신 영원한 뜻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결코 바꿀 수 없다&amp;quot;고 했다. 이것이 「기독교 강요」에 담긴 예정 교리의 핵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칼빈은 그러한 예정교리를 어떻게 확장했는가?&lt;/strong&gt; 그것은 칼빈이 1559년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서 예정과 섭리를 제3권 21장부터 24장까지로 확장했다. 제3권 21장 5절의 소제목은 &amp;#39;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이스라엘의 선택&amp;#39;이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amp;quot;경건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예정,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그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르며, 이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스스로 결정하셨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예정되며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이 중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우리는 그가 생명 또는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amp;quot;고 되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러한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 예정론인데 과연 이것은 성경적인가?&lt;/strong&gt;&amp;nbsp;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정이 잘못되면 그 위에 세운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고로 이중 예정론 위에 세워진 성도의 견인 교리도 처음부터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도 불구하고&amp;nbsp;칼빈주의자들은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 외에도, 사도행전 13장 48절을 그 증거로 대면서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이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했던 말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해 두신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하니, 칼빈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한 사람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따진다. 그러나 이 구절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자로 배치된 만큼 믿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서 &amp;#39;작정된&amp;#39;(테타그메노이, &amp;tau;&amp;epsilon;&amp;tau;&amp;alpha;&amp;gamma;&amp;mu;έ&amp;nu;&amp;omicron;&amp;iota;)은 &amp;#39;배치하다, 정하다&amp;#39;라는 뜻의 동사 타소(&amp;tau;ά&amp;sigma;&amp;sigma;&amp;omega;)에 대한 완료 수동 분사다. 결코 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만세 전에 작정해 두신 자만 구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예정해 놓은 바, 구원받을 이방인들의 총수가 있는데, 거기에 그날 하나님께서 배정해놓은 만큼 이방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래 예정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무엇이 원래의 하나님의 예정이었는가? 그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을 향한 만세 전의 예정이고, 둘째는 예정이 있다면 있는 세 가지 예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천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겠다고 예정하신 것이다&lt;/strong&gt;.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베소서 1:3~6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예정은 더 나아가서 이방인들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데까지 이어진다(엡 3:6). 여기서 &amp;#39;함께&amp;#39;는 공동상속자, 공동지체, 공동 약속참여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칼빈은 이러한 예정을 바꾸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는 구원할 자로, 누구는 멸망할 자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엉뚱한 구원론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것은 칼빈의 상상물에 불과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만약 하나님의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lt;/strong&gt;. &lt;strong&gt;첫째로, 구원 예정에는 민족적인 구원 예정의 순서&lt;/strong&gt;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이 먼저이고 이방인이 나중이라는 것이다(롬 1:16; 행 1:8). &lt;strong&gt;둘째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구원받을 총수가 정해진 채 &lt;/strong&gt;있다는 것이다(롬 11:25-26).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주로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지만 잠시 중단되고 예수님 시대부터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이방인이 구원받을 숫자가 차면 이제는 다시 남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amp;nbsp;&lt;strong&gt;셋째로, 혹시 개인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 구원 예정이 아니라 개인 사역 예정일 뿐&lt;/strong&gt;이라는 것이다(렘 1:5; 갈 1:15-16).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 예레미야는 모태에서부터 거룩히 구별된 자로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워졌다고 말한다(렘 1:5). 사도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택정하시고 불러내셔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한다(갈 1:15-16). 그런데 이런 것들 다 개인의 사역을 위한 예정인 것이지,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시키기로 정하신 그러한 예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인류 공동체를 향한 예정이며, 개인에게는 사역을 위한 예정만 있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교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의 견인 교리를 정확히 알려면 두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이 교리가 5대 교리 가운데 어떤 자리에 있는가이고, 둘째는 이 교리의 내용인가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자리에서 나온 것인가? &lt;/strong&gt;성도의 견인교리는 칼빈주의의 5대 교리 가운데 5번째 교리이다. 이는 칼빈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5대 교리가 생겨났다. 칼빈이 죽은 뒤 1618-1619년의 도르트 회의에서 정리된 이 교리는 전적 타락(全的墮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選擇,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制限贖罪,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총(不可抗力的恩寵,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교리 가운데 칼빈의 이중 예정론을 이어받은 것은 두 번째인 &amp;#39;무조건적 선택&amp;#39; 교리와 다섯 번째인 &amp;#39;성도의 견인&amp;#39; 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가운데 &amp;#39;무조건적 선택 교리&amp;#39;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무조건적으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따라올 수 있도록 당신의 종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으로 초청하셨고, 나중에는 이방인들을 초청하셨다. 지금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고 있는 때다. 그러다가 구원받을 총수로서 이방인들의 수가 차면 남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이 오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성도의 견인 교리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한 번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끝까지 받아 자신의 믿음도 굳게 지킬 것이므로, 그가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하는 교리&lt;/strong&gt;다. 한마디로 한 번 구원받으면 어찌하든지 그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선택한 자는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고, 끝까지 확실하고 견고하게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은 진실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완전히 타락하거나 멸망받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는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에게는 대체 어떤 함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말씀을 바로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함정은 다음과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잘 모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사람이 받는 것이므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그분의 작정은 변경될 수 없고 그분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으며 그분이 목적하시고 부르신 것은 절대 취소될 수 없으니, 한 번 받은 구원도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의 예정은 천사들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예정으로서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로 삼으시겠다는 것이었음을 잘 모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하여 자녀 삼고 상속자 삼으려는 것이었음을 깨닫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예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그만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어, 구원과 멸망을 당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으로 보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도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자신의 구원은 지켜지고 변함없이 보존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잘못된 가정을 한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사람을 설득하려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만세 전 구원 예정만 믿다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구원에서 떨어지는 자도 생기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만세 전 구원 예정만 믿다가 죽을 때에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던져지는 자신을 보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 함정은 단지 교리 하나를 잘못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제대로 모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하고, 자기가 받은 구원을 안일하게 여기게 하며,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버려져서 성 밖에서 슬피 울게 만들 것이다. 고로 우리는 교리를 붙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칼빈주의자들이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의 견인 교리를 뒷받침해 줄 만한 성경 구절이 무엇인가?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성경 구절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이 교리의 근거로 드는 구절을 다 찾아보면 그나마 그래도 좀 비슷하다고 보이는 구절은 다섯 구절 정도 된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 로마서 8장 38-39절, 빌립보서 1장 6절, 베드로전서 1장 5절, 요한일서 2장 19절이 그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구절은 바로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29절 말씀&lt;/strong&gt;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하신 말씀이다(요 10:2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칼빈주의자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아버지의 손과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으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이 구절의 참뜻은 다음 장에서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살펴보겠다. 그 내용인즉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왜곡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로마서 8장 38-39절과 빌립보서 1장 6절&lt;/strong&gt;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두 구절은 모두 바울이 확신한다는 고백의 선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피조물로도 끊어지지 않으며,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다. 고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니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베드로전서 1장 5절&lt;/strong&gt;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에 나오는 &amp;#39;그들&amp;#39;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벧전 1:1-2). 그런데 이 말씀에 따르면 보호하심을 받는 자는 &amp;#39;믿음으로 말미암아&amp;#39;, 곧 믿음을 통하여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믿음을 지키지 않아도 보호받는다는 뜻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요한일서 2장 19절&lt;/strong&gt;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칼빈주의자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요한공동체 중에 &amp;#39;그들&amp;#39;이 떠나간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요한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이는 처음부터 그들이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amp;nbsp; 말해, 떨어져 나간 그들은 처음부터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amp;#39;그들&amp;#39;은 2장 18절에 보면 &amp;#39;적그리스도들&amp;#39;을 가리키고, 26절에서는 &amp;#39;너희를 미혹하는 자들&amp;#39;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킨다(요일 2:22). 고로 이 구절은 구원받은 성도가 결코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지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요한복음 10장 27-30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요한복음 10장 28-29절의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원문으로 보면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는 지켜 주시는 대상이 누구이고, 둘째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며, 셋째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필자가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에 입각하여, 요한복음 10절 27절부터 30절까지 직역하면 이렇다.&amp;nbsp;&amp;quot;27 나에게 속한 것들인 양들은 내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것들(양들)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들(양들)은 나를 따릅니다. 28 그리고 나도 역시 그것들(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영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대까지(영원히) 그것들은 스스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내 손에서부터 [장차] 낚아챌 수 없을 것입니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아버지 손에서부터 낚아채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30 나 자신과 그리고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입니다.&amp;quo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예수님께서 과연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며 끝까지 지켜주시는가? &lt;/strong&gt;여기서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고 지켜 주시는 대상은 바로 주님의 양이 된 자들로서, 그분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그분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요 10:27). 여기서 듣고, 따른다는 동사가 현재인 것을 보면, 이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양은 지금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지금도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그들은 그 시대까지, 곧 영원히 스스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켜주는 이유가 그를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정해 둔 사람이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lt;/strong&gt;2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것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 성경 중에는 &amp;#3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amp;#39;라고 번역하여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읽히게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원문은 &amp;#39;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다&amp;#39;라고 말한다. 이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보았듯이,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amp;#39;모든 것&amp;#39;이 결코 사람이 아니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오는 양들을 아들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신 채 계셨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누구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손에서 양을 빼앗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lt;/strong&gt;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양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므로(요 10:30), 아들의 손에서도 아버지의 손에서도 그 양들을 결코 낚아채 갈 수 없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요한복음 10:28-29의 말씀도 역시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 주시고 그 사람만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끝까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아들이 철저히 지키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신 채 있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성경은 왜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누군가 성경 교리를 만들고 싶은데,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교리에 정반대되는 성경 구절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면 그것은 자기의 주장일 뿐이라고 알리고, 그것을 교리로 세상에 내놓아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와 반대되는 논리도 성립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을 보라. 그들은 이러한 영적 진리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영적 진리를 이단시한다. 그러나 자기들이 사상누각에 교리를 올려놓았으면 겸손해져야지, 그것을 믿고 따라오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어리석음이 있게 해야 되겠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러한 성도의 견인 교리에 정반대되는 말씀도 많이 나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을 고르라면, 마태복음 24장 13절, 로마서 11장 20-22절, 히브리서 6장 4-8절, 히브리서 10장 26-29절이 바로 그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1:20-22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6:4-8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들은 사람이 구원을 지켜내려면 한 번 믿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번 빛을 받고 성령에 참여한 자라도 여전히 타락할 수 있으며,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뒤에도 짐짓 죄를 범한다면 그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고 맹렬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 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어떤 개인을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성경말씀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다. 이것은 칼빈이 없던 것을 가정하여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하나님은 누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인내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딱 두 부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lt;/strong&gt;이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마 24:13; 딤후 4:7-8). 사도 요한이 기록한 주님의 말씀은 이렇다(계 2:10-11; 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0-11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죽도록 충성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 생명의 관도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lt;strong&gt;믿다가도 믿음에서 파선한 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그러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에베소 성도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이들이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있어서는 파선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수도 있다(딤전 4:1). 그리고 바로의 술객이었던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처럼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딤후 3:8; 출 7:11). 고로 한 번 믿었다고 해서 그 믿음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자&lt;/strong&gt;다. 예수님께서 처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하신 말씀이 &amp;#39;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39;였다(마 4:17).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계 2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39;빠는(세탁하는)&amp;#39;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현재분사로서 &amp;#39;빨고 있는&amp;#39;이라는 뜻이다. 이는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빨고 있는 자, 곧 계속해서 회개(悔改, repentance)하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12 진주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amp;#39;성도의 견인&amp;#39; 교리, 곧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또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좀 더 양보하더라도, 성도의 견인 교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바람이며,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왜곡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am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한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들은 왜곡된 성경 말씀을 왜 믿고 그대로 따라가는가? 그 이유는 바로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고 끝까지 지켜 주실 사람은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자&lt;/strong&gt;이기 때문이다(요 10: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며 끝까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라오는 자를 구원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신 채 계시고,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채 갈 수 없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그 사람만 끝까지 지켜 주신다고 말씀을 왜곡해 놓았다. 이는 번역을 잘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지금 믿고 있던 사람이라도 주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서 주님을 부인하거나, 계속해서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강제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태복음에서, 히브리서에서, 디모데전후서에서, 요한계시록에서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더라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말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구원받은 성도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끝까지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믿음이란 두려움과 떨림으로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을 지키고, 지은 죄들을 회개하여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해 주신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에 반응하여 주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주님을 따라오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누구든지 때가 되면 구원의 은총으로 그들을 불러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우리는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여야&lt;/strong&gt; 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을 믿고 마음속에 영접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렇게 구원받아 성령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수호천사를 받았다면,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와도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lt;/strong&gt; 한다.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특히 이미 지었던 과거의 죄들을 낱낱이 회개&lt;/strong&gt;해야 한다. 날마다 옷을 빨아야 한다. 그래야 정결한 처녀가 되어 새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가 구원받으려면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인내와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도 바로 그런 자를 끝까지 지켜 주시고 결코 내쫓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자신의 구원의 가장 확실한 근거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들은 날마다 회개하여 꼭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18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한 번 구원은 영원한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962b41e9313515bcd8fcbec81526c35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f99b1b153dc152499d1b52b4ed1044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e0a510ca6ba13e526f61accc775a33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635205ab81e96c52abc8d59084d9e2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48c9acc1a0bb307e88b69a09dcb95a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7dcb4a090110cf80ee9fa292931849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9f52c0f1bed84b0c583bcf7314a204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59340fa6840c0e19be93f712753673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9afc06b8afe604bfe66c957efafc6a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cad8e39a1c61df7ab81f125cd43ffc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338070ffb9103b47cbef2fd0e16bbc5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1d29cbbdf95286ea13202c7a1cefc9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d08c19f820e8f1c5747f33c5e1a2907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f43f65fa2fecda75e8a984e2d7f036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36cb15d57e09e3316adc0f4d1fa553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Rethinking_Eternal_Security.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450399644efdbd17adf460d15d8201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경으로_보는_성도의_견인_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0b02016d289300101d05c36b80cd7d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성도의_견인_교리와_성경적_구원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abcf108c539fa41f3ad484a0730cfd5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a593e764b175fac6bfe6af6996d47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1532c24689bb3fe1e50f7182d3e471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e481602d90d3e043ffad35ab795bcc8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f99c3da4f75c475960257700c8417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34d62aaf19aeb82ddaf98f774aca27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e5239e9f3332a69fe5ea8c17934f2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bb429eadd348e1fd2b8d01e1b87da8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5f95b6b03e1c8be96be4387a91ea4f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3bc8f2af135a955c8757665669f7b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bd3480178b06ac07729498d1617643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e76e1a5aa83059e9700dc4a9c12194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8327a3d64eafc1a242b4d160605f62f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cd9eb2f9b92054dcc120fc0dd70cb3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33dff55b6144997563a5d3ac9fb2da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5)] 성도의_견인_교리와_구원의_진실.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5/330/74c203c60f2314d2cbdad2652595312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성도의견인</category><category>칼빈주의</category><category>예정론</category><category>구원론</category><category>이중예정론</category><category>성경적교리</category><category>하나님의예정</category><category>구원의확신</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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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30585#comment</comments>			<pubDate>Sun, 18 Oct 2026 21:14:39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10)]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요엘 2:30~32)_2026-10-11(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329847</link>
				<description>&lt;p&gt;2026-10-11(주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10)]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요엘 2:30~3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9QYao9FBLXc&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9QYao9FBLX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amp;nbsp;&lt;strong&gt;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의 오류&lt;/strong&gt;를 지적하고, 성경에 기록된&amp;nbsp;&lt;strong&gt;참된 구원의 원리&lt;/strong&gt;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요엘서의 예언&lt;/strong&gt;과 신약 성경의 사도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구원은 특정 개인의 영원한 멸망이나 구원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누구든지 회개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은혜&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장로교의 뿌리가 된&amp;nbsp;&lt;strong&gt;칼빈의 이중 예정론&lt;/strong&gt;과 역사적 배경인&amp;nbsp;&lt;strong&gt;도르트 총회의 결정&lt;/strong&gt;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성경 원어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amp;nbsp;&lt;strong&gt;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도&lt;/strong&gt;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요엘서가 말하는 &lt;strong&gt;구원은 어떤 세 단계&lt;/strong&gt;로 이루어지는가?&lt;br /&gt; 2. &lt;strong&gt;요엘의 &amp;#39;누구든지&amp;#39;를 베드로와 바울&lt;/strong&gt;은 각각 어디까지 적용했는가?&lt;br /&gt; 3. 믿음이 있어도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lt;strong&gt;구원의 범위&lt;/strong&gt;는 어떻게 좁아지는가?&lt;br /&gt; 4. 칼빈은 &lt;strong&gt;기독교 강요에서 이중 예정론&lt;/strong&gt;을 어떻게 세웠는가?&lt;br /&gt; 5. 칼빈은 &lt;strong&gt;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9장&lt;/strong&gt;을 어떻게 개인 예정으로 읽었는가?&lt;br /&gt; 6. 칼빈주의 5대 교리는 &lt;strong&gt;아르미니우스 논쟁&lt;/strong&gt;과 &lt;strong&gt;도르트 회의&lt;/strong&gt;에서 어떻게 나왔나?&lt;br /&gt; 7. 성경이 말하는 &lt;strong&gt;참된 예정&lt;/strong&gt;은 무엇이며 누구를 향한 것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1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0-3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B.C.835-830년경 남유다의 요엘 선지자는 어느 날 여호와께서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인데 그러면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욜 2:28-29). 뿐만 아니라 그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욜 2:32).&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요엘 선지자는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에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과 어린아이, 그리고 주인과 종을 가리지 않고 성령을 부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때가 되면 성별도 나이도 신분도 상관없이 누구든지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amp;nbsp;그런데 다만 구약과 신약에는 몇 가지 경륜적인 차이가 있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사람의 육체 위나 육체 속에만 들어오고 머물렀지만, 신약에서는 성령이 사람의 육체 위에 부어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 속에도 들어오시는 것이다(요 14:17, 행 1:8).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예언하고 꿈을 꾸며 병을 고치고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으로 환상을 볼 수 있었지만, 방언을 말한 경우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이 생명을 주는 영이신 성령을 받아야 영이 살아나 비로소 말을 하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구약에 없었던 은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 구약 시대에는 귀신을 쫓는 은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축사의 은사가 나타난 것은 A.D.30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부터다. 창세기 3장 이후 타락한 천사의 한 종류로서 뱀들은 사람의 육체 속에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영들, 곧 귀신들은 구약 시대에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는 사탄의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고 이 세상의 임금(지배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2:26; 요 12:31). 이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의 중간사 동안 하늘의 많은 천사들이 타락하여 귀신이 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금식하셨다. 그러자 귀신들의 왕이 나타나 예수님을 시험하셨는데, 그때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그를 이기셨다(마 4장).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해야 그 세간을 늑탈할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제압하신 뒤에 그의 졸개들인 귀신을 쫓아내셨고, 제자들과 믿는 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셨다. 한편 구약 시대의 인물이었던 다윗이 악한 영을 쫓아내었을 때에는 직접 쫓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악기를 연주했는데 귀신이 나간 것뿐이다. 그러므로 A.D. 30년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 이후를 사는 성도들에게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방언(方言, tongues)을 말하는 것이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일반적으로 장로교는 성령의 은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방언은 순복음 교단에서나 하고, 귀신 이야기는 이상한 이단이나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꺼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필자를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연구하면 할수록 필자 속에서는 예수님만 나올 것이다. 한편 이단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낚시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선한 낚시다. 주님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고, 나중에는 그물을 던져 한 번에 3천 명, 5천 명을 구원하게 하셨다. 지금은 낚시지만 앞으로는 그물을 던져짐으로 회개와 천국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될 것이라 믿는다. 한 번 듣고 이렇다 저렇다고 판단하지 말라. 필자의 설교가 9,200편이나 있으니 천천히 다 들어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구원론의 핵심인 &amp;ldquo;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amp;rdquo;(욜 2:32)는 말씀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한다. 특히 이 말씀에 나오는 &amp;lsquo;누구든지&amp;rsquo;가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오늘날 장로교에서 말하는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론이 무엇이며, 이 교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전체적인 개요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부적인 것은 이어지는 시간에 다룰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요엘서가 말하는 구원은 어떤 세 단계로 이루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 선지자는 과연 어떤 구원론을 전하였는가? 사실 요엘서가 쓰여지기 이전에 유대인들은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안식일과 율법을 지키는 언약 자손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B.C. 835년에서 830년경 남유다 요아스 왕 때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요엘 선지자는 그 대상을 &amp;lsquo;누구든지&amp;rsquo;라고 처음으로 예언하였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요엘서를 구원론의 관점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 중요한 요소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구원받으려면 회개(悔改, repentance)를 해야 한다&lt;/strong&gt;고 말씀하고 있다(욜 2:12-13). 요엘이 살던 시대는 요아스왕의 4대 조상 때인 여호사밧 왕 때부터 바알 신앙과 우상숭배에 찌들어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때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4가지 황충재앙을 보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바알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lsquo;돌아오라&amp;rsquo;는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로 &amp;lsquo;슈브&amp;rsquo;라는 단어다. 그것은 옷을 찢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누구든지 회개해야 &lt;/strong&gt;한다. 이는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rdquo;(마 4:17)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다. 왜냐하면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amp;ldquo;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무당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고 살았습니다.&amp;rdquo; 하고 말하면서 자신이 죄인으로 살아왔음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미 믿은 사람은 그때부터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저주를 없애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성결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천국에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회개의 다음 차원의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lt;/strong&gt;한다(욜 2:32).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사실 맨 처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셔야 하며,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을 보자.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흥청망청 써댈 때는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그런데 재산을 탕진하자 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환경적인 안배를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근을 보낸 것이다. 그러자 그는 돼지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amp;ldquo;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양식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amp;rdquo; 하고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눅 15:17). 이는 곧 아버지께서 환경적인 안배로 그를 불렀다는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꼭 음성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회개 기도문을 통해서도 우리를 불러내신다.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잔치 비유도 그러한 부르심의 비유이다. 임금은 모든 것을 다 갖춘 후에 예비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잔치에 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먼저 그 잔치에 참여하기로 약속된 유대인들은 밭 때문에 그리고 사업 때문에 그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몸이 불편한 자, 죄인, 귀신 들린 자, 창녀를 먼저 부르셨다. 그리고 그래도 자리가 차지 아니하니, 나중에는 사거리에 나가 아무나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종들이 나가서 아무나 오라고 불렀다.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셔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누구도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욜 2:32). 이는 인간의 측면에서 구원을 위해 인간이 가져야 할 믿음&lt;/strong&gt;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와서 복음을 들어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비로소 알게 된다. 저주받아 죽을 뻔했는데 회개와 믿음을 통해 우선 구원을 받게 되고 이어서 계속된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신분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세우신 계획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할 때에 &amp;ldquo;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요 구원자이십니다&amp;rdquo; 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회개하여 자신이 죄인인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이 구원으로 부르지 않으시는 사람도 있을까? 믿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강제로 믿게 하는 경우가 있는가?&amp;nbsp;그동안 신학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더 크냐 아니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더 크냐를 두고 대립해 왔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쪽에서 은혜론과 예정론이 나왔는데, 여기에 속한 교단은 주로 칼빈주의를 따르는 장로교이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쪽이 있는데, 이쪽에 속한 교단이 아르미니우스주의나 웨슬리안주의를 따르는 감리교와 성결교다. 사실 장로교단이나 감리교나 성결교단은 둘 다 건전한 교단에 속하며 결코 이단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쪽 교단은 구원론에 있어서 첨예하게 대립된 교리적 체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제공하고 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요엘의 &amp;lsquo;누구든지&amp;rsquo;를 베드로와 바울은 각각 어디까지 적용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B.C.835-830년경 남유다의 요엘 선지자 &amp;lsquo;누구든지&amp;rsquo;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욜 2:32). 그렇다면 요엘 선지자가 말했던 &amp;lsquo;누구든지&amp;rsquo;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유대인들 가운데 여자를 포함한다는 말인가? 스무 살 이상만이 아니라 어린아이까지 포함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유다에 와 있던 나그네와 팔려 온 종까지 포함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방 지역에 사는 이방인까지 포함한다는 말인가? 이 대상을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구원의 대상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민감한 문제는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석을 따라가야 하는가? 그것은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들은 무엇이라고 해석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요엘서 2장 32절을 보면, 신약에서 두 번 인용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한 번은 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가(행 2:21), 한 번은 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인용했음(롬 10:13)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다(행 2:21). 그러면 &amp;#39;누구든지&amp;#39;를 베드로는 누구라고 해석했을까? 그때는 오순절 날이다.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오순절을 지키러 열다섯 개 지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행 2:9-11). 이방 지역에 살면서 그곳에 회당을 짓고 안식일과 율법을 지키며 살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방언 소리를 듣고 몰려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동네의 본토 유대인들도 그 자리에 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베드로는 모인 무리에게 &amp;ldquo;이스라엘 사람들아&amp;rdquo;(행 2:22), 그리고 &amp;ldquo;형제들아&amp;rdquo;(행 2:29)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이방인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직 할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일컬어지는 언약의 자손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베드로가 오순절날 그들을 향하여 설교를 마칠 무렵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그것은 누구든지 성령을 받고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요엘서의 말씀이 그날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렇게 말했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39;누구든지&amp;#39;에 포함되는 대상은 첫째로, 그때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로서, 곧 할례를 받고 안식일과 율법을 지키고 있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둘째로, 그들의 자식들이다. 셋째로, 모든 먼 데 사람들, 곧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amp;lsquo;먼 데 사람&amp;rsquo;이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구원이 유대인을 떠나 더 멀리 이방인에게까지 주어질 것임을 집어넣어 놓았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베드로는 복음 전파 대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1차 대상으로 삼았다가 점차 먼 데로 나아갔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마리아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10장에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스라엘이 복음 전파의 1차 대상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보고할 때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야단맞을까 봐 사실 조마조마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조금 달랐다. 그는 이방 지역에서 태어난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사야의 예언, 곧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사 28:16)을 인용한 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복음을 듣고 주의 이름으로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랬다. 바울은 이제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고, 이방인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베드로는 처음에 덜덜 떨면서 복음의 문을 이방인에게 열었지만 바울은 이방 지역까지 활짝 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을 더 활짝 열어서 귀신 들린 사람도, 무당 신기가 있는 사람도, 제사 종손 가문도 다 오라고 한다. 누구든지 말씀을 들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믿음이 있어도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구원의 범위는 어떻게 좁혀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구원받을 사람의 범위를 자기 민족으로 한정할 수 있다. 믿음이 있어도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원래 하나님의 의도에서 빗나갈 수 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가까운 사람에게만 손을 뻗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무나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한 사람만 구원받는다고 해석하게 된다. 하나님이 예정하지 않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 믿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이 한정해 놓으셨으니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일이니 나는 할 일이 별로 없고 수동적으로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다(마 28:19).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잘못된 구원론을 가지고 있으면 나만, 우리끼리만이라는 국소주의나 폐쇄주의에 빠지고 만다.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떤 사람은 필자에게 &amp;ldquo;목사님, 이렇게 좋은 말씀은 세미나를 해서 돈을 받고 하시지 왜 유튜브로 다 공개합니까?&amp;rdquo; 하고 묻는다. 필자는 장사꾼이 아니다. 좋은 소식을 다 들으라고 열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편집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설교 말씀 전체를 생중계로 올린다.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사람은 그중에서 이상한 말 하나를 골라 정죄거리로 만들겠지만, 그런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중심을 바로잡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amp;lsquo;누구든지&amp;rsquo;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지 않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구원받을 자로 예정한 사람만 구원받는다고 한정한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는 바로 장로교의 아버지 격인 존 칼빈(A.D.1509~1564)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중 예정론을 어떻게 세웠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태어나 오직 장로교에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장로교(통합측)에서 안수를 받아 목회자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로교는 &amp;lsquo;누구든지&amp;rsquo;의 대상을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정하신 자로 한정하고 있는 교단이다. 필자는 그것을 믿고 자랐다. 그런데 2013년이 되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가 신약성경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하려고 하는 계기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장로교는 칼빈의 이중 예정론과 5대 교리를 매우 신봉한다. 이중 예정론이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누구는 영생으로 예정하셨고, 누구는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교리이다. 그리고 5대 교리는 &amp;#39;전적 타락&amp;#39;, &amp;#39;무조건적인 선택&amp;#39;, &amp;#39;제한 속죄&amp;#39;, &amp;#39;불가항력인 은혜&amp;#39;, &amp;#39;성도의 견인&amp;#39;을 가리킨다. 처음에 이러한 교리를 들었을 때 필자는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눈물이 다 나왔다. 왜 나 같은 자를 만세 전에 선택하여 구원받게 하셨는지 오로지 감사할 뿐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2013년에 비로소 알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칼빈의 이중예정론과 5대교리를 세세하게 살피면서,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했는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칼빈의 5대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까지 왜곡해서 번역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대한민국의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떤 직역 성경도, 또한 전 세계의 모든 영어 성경도 역시 칼빈의 5대 교리를 지지해주는 성경구절의 일부를 제대로 직역하고 있는 성경은 없었다. 참고로 필자는 1993년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웠고 그 후 신대원 시절 내내 원전 강독을 했다. 그리고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아마 내년쯤에는 반드시 원문을 직역한 신약성경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번역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론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칼빈은 프랑스 사람으로서 1509년에 태어나 1564년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5세였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려고 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썼다. 1536년 발행한 초판을 보면(그의 나이 27살 때), 거기에는 십계명 강해, 사도신경 강해, 주기도문 강해가 나온다. 우리가 소요리문답을 볼 때 이것이 골격으로 나온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런데 3년 뒤인 1539년에 제2판을 내면서 초판에 없던 &amp;lsquo;예정과 섭리&amp;rsquo;라는 장을 제8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제3판(A.D.1543~1550)도 나온다. 그런데 제2판과 제3판은 지금까지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1539년 제2판의 1541년 프랑스어판 원문을 찾아 AI의 도움으로 번역해 읽어 보았다. 그 핵심은 이렇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궁서,Gungsuh,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amp;quot;하나님은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영생과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신 영원한 뜻이며, 인간은 그 뜻을 캐어 밝힐 수 없다. 곧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영생으로 예정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amp;quo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칼빈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이렇게 주장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석학 중의 석학이다. 방대한 성경 주석을 남겼는데, 성경 구절을 찾아보지 않고 장절을 다 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그만큼 똑똑하지 않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을 깨우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라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기독교 강요 최종판(A.D.1559, 칼빈의 나이 50세)은 예정을 네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제3권 21-24장). 그 핵심은 제3권 21장 5절에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궁서,Gungsuh,serif;&quot;&gt;&amp;quot;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자는 누구도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갖도록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 부르며, 이 작정으로 하나님은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 스스로 정하셨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어 있다. 각 사람은 이 둘 중 한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생명 또는 사망에 예정되었다고 말한다.&amp;quo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것이 가리켜 보통, 칼빈의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그가 말한 것처럼, 과연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저주를 예정해 놓으셨겠는가?&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칼빈은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9장을 어떻게 개인 예정으로 읽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과연 칼빈은 어떤 말씀을 근거로 이러한 이중 예정론을 펼친 것인가? 그의 기독교 강요를 읽어보면, 칼빈이 이중 예정론의 근거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인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 에베소서 1장 말씀&lt;/strong&gt;이다(엡 1:3-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1:3-6&amp;nbsp;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예정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로 예정하신 것이다(엡 1:3-6). 그런데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이대로만 썼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로 예정된 그 대상을 어떤 개인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lt;strong&gt;성경 본문은 전부 &amp;lsquo;우리&amp;rsquo;(유대인인 사도 바울을 포함하고 있고, 이방인 에베소 성도들을 포함하는 개념)라고 되어 있다. 어떤 무리를 말씀하시는, 단체적인 예정&lt;/strong&gt;이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에 대해서는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에베소서에 나오지 않지만 어떤 개인은 멸망시키기로 예정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칼빈은 왜 예정을 단체적으로 보지 않고, 개인으로 보았던 것일까? 그것은 로마서 9장에서 그렇게 보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는 로마서 9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비유&lt;/strong&gt;에서다(롬 9:11-13).&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9: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에서와 야곱을 임신했을 때,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선택하신 하나님께 과연 불의가 있는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롬 9:14). 칼빈은 여기서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다. &amp;quot;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신다. 그리고 설령 어떤 사람을 멸망으로 예정하셔도 하나님께 불의는 없다. 하나님은 선하고 인자하신 분이므로 그 깊으신 뜻 안에서 만세 전에 구원할 자와 멸망할 자를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amp;quo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까지 들으면 그의 해석이 거의 들어맞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잘못된 해석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로부터 약 50년 뒤에 칼빈을 이은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주장이 맞도록 교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도르트 회의(A.D.1618-1619)에서 나온 칼빈주의 5대 교리인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교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로 쓰는 핵심 구절의 번역을 그들은 왜곡해서 번역했다(요 6:37, 39, 10:28-29). 전 세계 모든 성경이 그 왜곡된 번역을 보고 있다.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번역했으니 일반 성도는&amp;nbsp; 그렇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말씀을 일생에 한 번은 들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런 잘못된 해석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영원 전에 구원받을 자로 예정되었다고 믿으면 너무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이 한 번 예정하셨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신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았는가? 자신이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예수 믿어서 구원받기를 원하는데, 자신이 예정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믿고 싶어도 구원받을 수 없다면, 그래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형벌을 받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하겠는가? 언젠가 하나님은 심판대에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심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을 주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amp;ldquo;너는 영원히 멸망받을 자로 예정했으니 지옥에 가라. 그래도 나는 원래 선하니 너는 아무런 댓구를 하지 마라&amp;rdquo; 라고 하신다면 누가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하겠는가? 제 마음대로 하는 엿장수, 폭군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코 우리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칼빈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 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였다. &lt;/strong&gt;그러나 필자는 오직 장로교에서 자라 장로교 목회자가 되었는데, 어찌 장로교의 아버지 격인 칼빈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는가? 그러나 아버지도 실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말을 절대 하면 안 되고, 건드리면 이단이라며 잡아 죽이려고까지 한다. 칼빈의 5대 교리는 일종의 성역화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건드리면 큰일 난다. 필자는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성경 해석이 옳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은 필자가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나오는 모든 성경 말씀을 다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아예 칼빈주의 5개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성경까지 잘못 번역하고 있었다는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믿고 있었던 구원론 교리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칼빈만큼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니, 하나 하나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신비로 남겨 두고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필자는 말씀을 맡아 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모든 자는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경고하셨다(계 22:15). 그래서 필자도 성 밖으로 가지 않으려고 지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아르미니우스 논쟁과 도르트 회의에서 어떻게 나왔나?&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칼빈주의 5대 교리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은 칼빈이 만든 것이 아니다. 칼빈은 단지 『기독교강요』라는 그의 책에서 이중 예정론을 주장했을 뿐이다. 그것은 칼빈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자들과의 논쟁이 있은 후에&amp;nbsp; 그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칼빈의 5대 교리가 만들어지는 경위는 이렇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점차 널리 보급되자 코른헤르트(A.D.1522-1590)라는 한 평신도가 등장한다. 칼빈이 죽은 후, 그는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할 만큼 잔인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암스테르담 교회의 요청으로 그를 반박하는 일이 아르미니우스(A.D.1560-1609)에게 맡겨졌다. 아르미니우스는 칼빈의 후계자 베자(A.D.1519-1605)의 제자이자 신학교 교수였다. 베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바탕이 된 헬라어 신약을 편집한 사람이다. 아르미니우스는 코른헤르트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다 읽어 보았다. 그런데 공부해 보니 코른헤르트가 맞고 칼빈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자 그는 칼빈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레이던 대학의 동료 교수 고마루스(A.D.1563-1641)가 그에게 맞섰고, 논쟁이 이어지다가 아르미니우스는 세상을 떠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제자들, 곧 항론파(抗論派, Remonstrants)가 칼빈의 해석이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 달라며 다섯 가지 조항(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 우주적 속죄=보편 속죄(Universal Redemption or General Atonement),&amp;nbsp;부분적인 타락 (Partial Depravity),&amp;nbsp;항거할 수 있는 은혜(Grace to resist),&amp;nbsp;은혜의 상실(Loss of grace))을 담은 항의서를 네덜란드 의회에 제출했다. 칼빈의 5대 교리가 나오기 전에 이 다섯 조항이 먼저 나온 것이다. 그러자 고마루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 항의서와 반대되는 내용을 성경에서 찾아 만든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토론은 1618년에서 1619년에 열린 도르트 회의에서 결론이 났다. 회의는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정통이고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이단적이라고 결정되었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이 만든 칼빈주의 5대 교리, 곧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이 성경적이며 칼빈이 맞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아르미니우스파 대표들도 초청되었으나 논쟁 끝에 배제되었고, 칼빈주의자들만 모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 대표들을 교수직과 목사직에서 박탈하고 추방했다. 그들의 대표는 처형되었다. 이것이 역사다. 그래서 지금도 역시 이 도르트 회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일부는 죽이려고 달려든다. 그것이 성경에 맞느냐고 묻지 않고 &amp;ldquo;네가 칼빈보다 똑똑하냐?&amp;rdquo; 하고 말하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칼빈은 분명 필자보다 똑똑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lt;strong&gt;칼빈의 주장이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lt;/strong&gt;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정은 무엇이며 누구를 향한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예정은 어떤 것이며, 누구를 향한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lt;strong&gt;하나님의 진짜 예정&lt;/strong&gt;은 구원받을 자를 창세 전에 개인적으로 정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lt;strong&gt;단체적인 예정&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lt;strong&gt;&amp;nbsp;구원받을 어떤 무리를 예정해 놓으신 것&lt;/strong&gt;이다(엡 1:3-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칼빈은 그것을 개인 구원 예정과 개인 멸망 예정으로 바꾸어 버렸다. 성경은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다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amp;lsquo;우리&amp;rsquo;를 택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의 &amp;lsquo;우리&amp;rsquo;란 유대인인 바울과 이방인인 에베소 성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 &amp;lsquo;우리&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3:6-9&amp;nbsp;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것은 에베소서 3장에 가서 비로소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었다(엡 3:9).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 전에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로 예정하셨다. 구약 시대에 기록된 욥기서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다(욥 1:6). 그러나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만세 전에 천사들이 아니라 인류를, 즉 인류를 하나님의 아들들과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게 하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예정은 개인 구원 예정이 아니다. 그런데 칼빈은 이것을 개인 예정으로 만들어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리고 둘째, 성경이 말하는 예정은 구원의 순서에 대한 예정&lt;/strong&gt;이다. 즉 하나님의 예정은&amp;nbsp;&lt;strong&gt;민족에 대한 예정&lt;/strong&gt;으로서, 유대인을 먼저 구원하고 그다음에 이방인을 구원하도록 구원의 순서를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롬 1:16). 즉 아브라함의 언약 백성들을 먼저 구원하고 그리고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셨다(행 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16&amp;nbsp;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amp;nbsp;&lt;br /&gt; 행 1:8&amp;nbsp;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만약 개인에 대한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사역에 대한 예정일 뿐, 구원 예정이 아니다&lt;/strong&gt;. 하나님이 사람의 영을 창조하여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 사람을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지를 정하신 후에 이 땅에 보내신다. 그러므로 사람 개인에 대한 예정은 그의 사역에 대한 예정인 것이지 그에 대한 구원이나 멸망의 예정이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열방의 선지자로 사용하시려고 보내셨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려고 보내셨다. 그러므로 개인 예정이라고 함은 모두가 다 개인 사역에 대한 예정뿐이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개인 구원 예정은 나오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칼빈은 구원 예정을 로마서 9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로 잘못 풀었다. 야곱과 에서는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인물이다. 리브가의 아들들을 임신하고 있을 때, 태중에서 그들이 싸웠다. 그러자 리브가가 여호와께 물었다. &amp;quot;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amp;quot;라고 말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대답해 주신 말씀이 바로 창세기 25장 23절의 말씀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에서 에서는 멸망으로, 야곱은 영생으로 예정했다는 말이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다. 두 국민, 두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가 나올 뿐이다.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amp;nbsp;즉 훗날에 족속이 야곱 족속을 섬길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리브가에게 말씀해 주신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멸망으로 예정하고, 야곱은 영생으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섬기는 자가 더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겠는가? 필자는 진리를, 성경 말씀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결정적인 것은 칼빈주의자들의 왜곡된 성경 번역이다.&amp;nbsp;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다루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은 만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 있다. 즉 에베소서 1장을 보니, 하나님의 예정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예정은 칼빈이 말한 이중 예정이 아니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단체적인 무리에 대한 예정이고, 둘째로, 민족적인 구원의 순서에 대한 예정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천사들이 아니라 인류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순서가 유대인이 먼저요, 그 다음이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제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구원을 받은 이후에, 자기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회개하여 점차로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생활을 하는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기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요엘서의 말씀이 맞다. 회개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욜 2:32).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 부르심에는 순서가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어 천국에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11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요엘서의 그리스도 예표와 만민 구원 Infographic.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79ea8852973441da3d234b3f8be4997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의_회복.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738b9f7f9ef47a4058cef374cea499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의_회복.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ac3eec78b8a70889a54f16a19f0f62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의_회복.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c5682fca173f2fef8d30f046ebbd5f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의_회복.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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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참된_구원과_예정론_요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17f15b6727a165d324187c066f3328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칼빈_예정론과_성경적_예정론_비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b1e053af51ffd0df2437557ed1d6a8c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과_참된_구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ec47fbc5690691d3b6a48d8e6119fb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과_참된_구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47/329/b1d8d938359330c9f314a9208f8324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10)] 성경적_예정론과_참된_구원.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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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요엘서</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구원예정론</category><category>이중예정론</category><category>칼빈주의</category><category>하나님의은혜</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성경해석</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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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item>
			<title>[기독론(20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모든 만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성령 시대를 예고하다(요엘2:28~32)_2026-10-04(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86584</link>
				<description>&lt;p&gt;2026-10-04(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0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모든 만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성령 시대를 예고하다(요엘2:28~3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t8mhe1SMtPc&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t8mhe1SMtP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구약의 소선지서인 &lt;strong&gt;요엘서&lt;/strong&gt;를 중심으로 &lt;strong&gt;하나님이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대&lt;/strong&gt;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일부 지도자들에게만 성령이 제한적으로 임하였으나, &lt;strong&gt;요엘의 예언&lt;/strong&gt;대로 오순절 성건강림 사건을 통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lt;strong&gt;보편적인 성령과 은사&lt;/strong&gt;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영적 혼란과 환난의 시대 속에서 성도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닌 &lt;strong&gt;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lt;/strong&gt;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lt;strong&gt;조건 없는 성령의 은혜&lt;/strong&gt;를 힘입어 가정과 나라를 살리는 &lt;strong&gt;영적 군사&lt;/strong&gt;로 굳건히 서야 한다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요엘서는 왜 &lt;strong&gt;요아스 왕 초기의 위기 속&lt;/strong&gt;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보는가?&lt;br /&gt; 2. &lt;strong&gt;네 종류의 황충 재앙&lt;/strong&gt;은 남유다에 무엇을 경고하며 어떤 회개를 요구하는가?&lt;br /&gt; 3. 회개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lt;strong&gt;네 가지 회복&lt;/strong&gt;은 무엇인가?&lt;br /&gt; 4. 하나님은 왜 &lt;strong&gt;소수 지도자에게만 임하던 성령&lt;/strong&gt;을 모든 육체에 부으시는가?&lt;br /&gt; 5. 요엘의 성령 약속은 &lt;strong&gt;오순절부터 사마리아와 이방인&lt;/strong&gt;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br /&gt; 6.&lt;strong&gt;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다&lt;/strong&gt;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lt;br /&gt; 7. &lt;strong&gt;말세의 성도&lt;/strong&gt;는 회개하고 은사를 받아 가정과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모든 만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성령 시대를 예고하다&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28-3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는 세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소선지서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그 말씀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구약의 열일곱 예언서 가운데 열두 소선지서의 두 번째에 놓인 요엘서에는 오늘의 교회가 자주 부르는 찬송과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나온다. &amp;ldquo;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amp;rdquo;라고 노래하며 자녀의 예언, 젊은이의 환상, 늙은이의 꿈을 노래할 때 우리는 요엘서를 만나고 있다. 또한 예수님 찬양의 4절에 나오는 &amp;ldquo;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amp;rdquo;라는 가사도 요엘의 약속을 노래하는 곡이다. 그 구절이 어디에 있었는지 주소를 잘 몰라도 우리는 이미 요엘의 말씀을 가까이해 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선 호세아의 이름에는 &amp;#39;구원&amp;#39;이라는 뜻이 있고,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amp;#39;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을 가진다. 이어지는 요엘의 이름은 &amp;ldquo;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amp;rdquo;라는 뜻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단지 브두엘이라고만 나올 뿐이다(욜 1:1). 하나님께서는 이 짧은 3장의 책에 &amp;#39;재앙의 경고&amp;#39;(욜 1:1-2:17)와 아울러 &amp;#39;회복의 약속&amp;#39;(욜 2:18-3:21)을 함께 담으셨다. 메뚜기 떼가 모든 소출을 먹어 치우는 시대에 백성에게는 무엇이 필요했는가? 옷만 찢는 외형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필요했고, 소수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만민에게 부어 주실 하나님의 영이 필요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 선지자는 특별히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다. 나아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救援, salvation)을 얻으리라고 선포한다(욜 2:28-32). 그리하여 구약의 특정 지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하던 성령의 시대가 종료되고, 구원의 문이 민족과 신분의 경계를 넘어 열릴 것을 내다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에 성령이 오심으로 실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요엘이 본 남유다의 위기와 회개의 요청, 모든 만민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요엘서는 왜 요아스 왕 초기의 위기 속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는 기록 연대를 쉽게 알려 주지 않는다. 첫 장 첫 절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고 할 뿐이다(욜 1:1). 이사야서나 다른 예언서처럼 어느 왕 때에 임한 말씀인지 밝히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읽어도 왕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제사장과 장로, 농부, 신랑과 신부, 어린아이와 노인은 등장한다. 이 침묵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남유다 왕국 가운데 어느 때에 왕의 존재가 이토록 희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요엘 선지자가 남유다 제8대 왕 요아스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초기, 대략 주전 835년에서 830년 사이에 활동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요엘서에 연도가 적혀 있어서 내리는 단정이 아니라, 왕이 드러나지 않고 제사장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상황을 남유다의 역사와 대조한 추정치이다. 요아스는 일곱 살에 왕이 되었고 사십 년간을 다스렸다. 그가 7살에 왕위에 올랐을 때 나라를 실제로 붙들고 이끈 이는 대제사장(大祭司長, high priest) 여호야다였다(왕하 11:21; 대하 24: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떻게 어린 요아스가 이토록 위태로운 왕좌에 앉게 되었는가? 그 배후에는 여러 대에 걸친 잘못된 결합이 있었다. 증조부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가까워졌고, 그의 아들 여호람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혼인했다. 그 뒤 여호람 왕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남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북이스라엘 왕 요람(아합 왕의 아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예후가 아합의 집을 치던 때에 함께 죽고 말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바알을 섬기는 왕가와 손잡자, 그 영향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4대 자손의 왕궁에까지 들어왔다(대하 18:1; 22: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신이 남유다의 왕위를 차지하려고 왕의 자손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갓난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아스였다. 그때 그의 고모 여호세바가 그 아이를 숨겼고, 여호야다는 그를 지키며 때를 기다렸다. 아달랴가 약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제거했다(왕하 11:1-16). 그러나 일곱 살에 왕이 된 요아스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었으니, 여호야다가 백성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고 성전을 바로 세우는 일을 이끌었다. 요아스의 통치 초기에 잠시 회복이 일어난 까닭도 이 신실한 대제사장의 지도력 때문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는 다시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갔다. 그래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왕과 백성의 죄를 꾸짖었지만, 왕은 그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였다(대하 24:17-22). 예수님께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당한 스가랴의 피를 말씀하신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마 23:35). 자기 생명을 지켜 준 집안의 아들에게까지 돌을 던지는 나라가 되었으니, 그 영적 형편이 어떠했겠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요엘서에는 왕보다 제사장들이 앞에 나오고, 백성이 굵은 베를 입고 밤을 새우며 울라는 명령을 듣는 것은 이처럼 흔들리는 나라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욜 1:13-14). 또한 요엘서에는 앗수르나 바벨론이라는 나라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두로와 시돈, 애굽과 에돔 같은 주변 나라만이 등장한다(욜 3:4, 19). 이러한 여러 단서를 따라 읽으면, 그 시기가 남유다 왕의 초기이며, 왕의 존재가 크지 않았던 요아스 왕 초기라는 추정은 설득력을 얻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대를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사라질 때 왕과 백성이 함께 길을 잃고 고통을 받는다는 경고를 듣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네 종류의 황충 재앙은 남유다에 무엇을 경고하며 어떤 회개를 요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그때에 요엘은 황충의 재앙이 쓰나미처럼 그 나라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도 메뚜기의 한 종류가 지나간 후 그대로 끝나는 재앙이 아니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었으며,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어치웠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것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다(욜 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1: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나무와 그리고 유실수들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다 상했고 밭의 곡식의 소출이 끊어졌다. 그런데 이때 백성이 먹을 것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전에 바칠 얼마 되지 않은 소제와 전제도 드릴 수 없게 되었다(욜 1:7-10, 13). 그러자 농부들은 곡식이 없어서 울고, 제사장들은 제단에서 드릴 것이 없어서 울었다. 신랑과 신부가 있어도 기쁨을 나누지 못했으며, 노인부터 아이까지 먹을 것이 없어 굶게 되었다. 자연재해가 신앙생활과 일상의 바닥까지 함께 뒤흔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은 이 재앙을 보고 장차 닥칠 더 큰 일을 내다보게 된다. 한 메뚜기의 떼가 휩쓸고 간 다음 다른 떼가 또 들어오는 모습은 남유다를 삼키러 올 강한 민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욜 2:2-3). 그는 그 뒤에 일어날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세력이 자신의 나라를 압박하고 무너뜨릴 일까지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엘은 단순히 곤충 이름 네 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나라에 하나님의 사람이 사라지고 우상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지킬 사람이 없는 땅을 외부 세력이 차례로 먹어치우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자연의 황충과 나라를 치는 군대가 서로 겹쳐 보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셨는가?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셨다(욜 2:12). 겉옷을 찢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한다고 하셨다. 재앙을 무서워하는 바, 순간의 몸짓만으로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떠난 삶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야 할 대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욜 2: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엘서 2장 13절의 말씀에는 경고와 소망이 함께 있다. 하나님은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니지만, 돌이키는 자를 맞아 주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또한 백성의 지도자 한 사람만 회개하면 된다는 뜻도 아니다. 제사장들이 제단 앞에서 울고 백성도 함께 울어야 한다. 요엘은 노인과 어린아이, 신랑과 신부까지 모으라고 한다(욜 2:15-17). 온 나라가 흔들리는 때에는 온 나라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겪고서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더 큰 황충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회개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네 가지 회복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요엘의 말씀은 심판의 예고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음을 찢고 돌아오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을 회복해 주실지를 선포하고 있다. 그 약속은 네 가지로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는 빼앗긴 소출을 돌려주시는 것이고, 둘은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시는 것이며, 셋은 백성을 친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이고, 넷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영원히 거하시는 것이다. 심판의 이유가 죄였다면 회복의 길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먹을 것과 제사의 재료가 회복&lt;/strong&gt;된다고 하셨다(욜 2:23-24). 곡식이 다시 나고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칠 것이라고 했다(욜 2:19, 24). 하나님은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가 먹어 버린 햇수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셨다. 황충의 재앙은 하루아침에 지나간 불편함이 아니었다. 여러 해의 삶을 갉아먹은 손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그 햇수를 언급하신다(욜 2: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의 신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lt;/strong&gt; 주신다고 하셨다(욜 2:28-29). 소출만 회복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다시 사라진다면, 같은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백성의 안쪽을 바꾸신다. 성령을 받은 한 명의 지도자가 쓰러질 때 나라 전체가 함께 쓰러지지 않도록, 아들과 딸과 늙은이와 젊은이, 남종과 여종에게까지 아무런 조건 벙ㅅ이 성령을 부으시겠다고 하신다(욜 2:28-29). 이 약속이 요엘서의 중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침탈하는 이방 민족을 가만두지&lt;/strong&gt; 않으신다고 하셨다(욜 3:12). 요엘서 3장은 여러 민족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욜 3:2, 12-14). 회개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은 그 백성을 치고 흩어 버린 나라들에 대한 공의로운 판결로 행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황충처럼 백성의 삶을 뜯어 먹는 자들이 끝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아와 영원히 거하&lt;/strong&gt;신다고 하셨다(욜 3:17, 20-21). 회복의 절정은 곡식의 양이나 적군의 패배만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 거주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며, 예루살렘은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욜 3:17, 21). 농사의 회복, 사람들의 영적 회복, 원수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는 각각 다른 약속이면서 한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으로 다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은 왜 소수 지도자에게만 임하던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으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령은 역사하셨다. 그러나 요엘의 약속처럼 모든 믿는 자에게 다 성령을 부어 주시는 그러한 시대는 아니었다. 모세와 함께한 칠십 장로가 예언을 하였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를 받아 성막의 공교한 일을 맡았다(민 11:25; 출 31:2-6). 사사 시대에는 옷니엘, 기드온, 삼손 같은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 백성을 이끌었다(삿 3:10; 6:34; 14:6). 사울에게도 영이 임하여 예언하게 하셨고, 다윗에게도 임하셨다(삼상 10:10; 16:13). 선지자와 제사장들 가운데도 성령이 임하여 말씀을 맡아 전한 사람이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 사람이 사라지면 어찌 되는가? 요아스 왕을 붙들던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갔다. 선지자 스가랴의 바른 책망마저 돌로 막아 버렸다. 그렇다. 성령받은 지도자 하나에게만 영적 분별이 있고 백성은 그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가 떠난 뒤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다. 왕이 흐려지면 백성도 함께 흐려지기 때문이다. 재앙이 와도 그 까닭을 깨닫고 회개를 외칠 사람이 없다. 요엘의 시대를 떠올릴 때 가장 두려운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amp;ldquo;그 후에&amp;rdquo; 자신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 강림(聖靈降臨, descent of the Holy Spirit)이 몇 사람에만 부어지는 시대를 끝내시겠다는 것이다. 자녀는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욜 2:28-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28-29&amp;nbsp;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dquo;장래 일을 말한다&amp;rdquo;는 말은 개역한글의 번역처럼 미래를 맞히는 일로만 좁혀서는 안 된다. 예언(豫言, prophecy)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이 약속을 인용한 곳에서는 자녀들이 &amp;ldquo;예언할 것이요&amp;rdquo;라고 제대로 번역하고 있다(행 2:17). 그리고 꿈과 환상과 예언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백성에게 주시는 은사(恩賜, spiritual gifts)다. 모두가 똑같은 은사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안에 다양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며, 성령께서 필요를 따라 나눠 주시는 것을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과연 누가 보편적인 성령강림의 약속에서 제외되는가? 아들과 딸 사이에 구별이 없다.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에도 구별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과 종 사이에도 구별이 없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 후에 부어 주시는 성령은 할례를 받았는가가 더 이상 조건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어떤 혈통에서 태어났는가 혹은 나이가 몇인가 하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가 왔다. 그때는 바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떠나신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부터다. 요엘서의 예언은 이제 성별과 나이와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으시는가? 그것은 성령받은 지도자 한 사람이 무너진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가정이 살아나고, 자녀가 깨어나면 부모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나라의 지도자가 흐려도 성령 받은 백성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없어서 나라가 황충에게 먹히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바로 그 성령을 받아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요엘의 성령 약속은 오순절부터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요엘 선지자의 예언은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그것은 약속으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시고 높임을 받으신 후 그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며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행 1:4-5, 12-14).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약 백이십 명이었고, 그들은 부어 주실 성령을 기다렸다. 바울이 전한 바,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자는 오백여 형제였지만(고전 15:6),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약 백이십 명만이 남아서 기도하며 기다린 것이다. 필자는 그 자리에 가족의 권유를 받아 마지못해 앉았던 사람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공동체 위에 성령을 부으셨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그해 오순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내려왔고, 모인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1-4). 그들은 대부분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때였다. 예루살렘에 칠칠절 절기를 지키러 온 여러 지역 사람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놀라게 된다. 어떤 이는 술에 취했다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자 베드로가 일어나 지금이 오전 아홉 시 무렵이니 우리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며,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일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행 2:15-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15-18&amp;nbsp;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요엘의 &amp;ldquo;그 후에&amp;rdquo;를 인용하면서 &amp;ldquo;말세에&amp;rdquo;라고 선포한다(행 2:17). 이제 자녀와 젊은이와 늙은이가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성령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작은 예수님과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높이신 예수께서 아버지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기 때문이다(행 2:32-33). 요엘이 내다본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주님은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행 1:8). 그런데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며 머물렀다. 그러자 박해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일곱 집사 중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귀신이 떠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행 8:4-8). 이 소식은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졌고,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 안수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도 아무런 조건 없이 성령을 받았다(행 8:14-17). 유대인들이 멀리하던 혼혈의 백성도 약속 밖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다음 문은 이방인에게 열렸다.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냈고, 베드로는 보자기에 담긴 여러 짐승을 보는 환상을 통해 자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주어함을 깨달았다(행 10:1-16, 28).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바로 그때,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왔다. 안수를 하기 전이었다. 그러자 안수를 받기도 전에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와 함께 따라온 유대인 신자들도 놀랐다(행 10:44-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44-46&amp;nbsp;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사마리아를 지나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의 집까지 간 복음은 이제 바울을 통하여 더 넓게 퍼졌다.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서 바울이 제자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고 방언과 예언이 나타났다(행 19:1-7).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서 시작된 일이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인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복음은 로마와 유럽으로 전해졌고, 서바나(스페인)와 포르투갈과 영국을 거쳐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1774년 무렵, 독립을 향해 가던 미국을 지나 1885년에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B.C.835~830년경 먼 남유다에서 요엘을 통하여 선포된 약속의 은혜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누리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다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때 요엘의 예언은 조건 없이 부어지는 성령에서 끝나지 않았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되는 징조를 말하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한다(욜 2:30-32). 여기서 &amp;ldquo;누구든지&amp;rdquo;가 중요하다. 그렇다. 앞으로 구원은 혈통과 성별과 사회적 지위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의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바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다(행 2:21). 이제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설교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 예수님을 전했다. 사람의 손에 못 박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전했다(행 2:22-24, 36). 요엘이 말한 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 요엘서의 성령 약속을 성취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 성령을 부어 주신 분도 높임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행 2:33).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은 이 약속을 로마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바로 그 같은 분이신 주께서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다고 전한 것이다(롬 10:12). 그리고 그도 역시 요엘의 말씀을 다시 인용한다(롬 10:13). 구원은 유대인의 회당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 있는 도시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차별 없이 모두 똑같다고 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는 것이다(갈 3:28-29). 그래서 구약의 언약 백성이 아닌 사람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도,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도, 로마와 에베소의 사람도 그 약속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5천 년 이상 무속신앙으로 살아온 우리나라 대한민국에도 그 은혜가 임하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amp;ldquo;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른다&amp;rdquo;는 말씀을 익숙한 찬양 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돌아와 그분을 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엘은 입술의 소리만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오는 백성에게 이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했다(욜 2:12-13).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은혜가 모든 만민에게 열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말세의 성도는 회개하고 은사를 받아 가정과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어느 시대보다도 성령을 사모해야 할 시대다.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성령과 은사를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우리는 몇몇 사람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머지는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나라의 지도자가 흐릿하고 교회의 지도자가 약해져도,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요아스 시대에 한 명의 대제사장이 떠나자 왕과 백성이 길을 잃었던 것을 이 시대에 반복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자기 집을 위해 기도하고,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 필요한 은사도 나누어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요엘 선지자는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예언하고 꿈을 꾸며 환상을 본다고 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들어와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이 더 풍성해지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임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언급한 신약시대의 성령의 은사로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각종 방언과 방언 통역 등, 9가지가 있다고 말했다(고전 12:8-10). 물론 성령의 신령한 은사는 이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은사가 그렇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누가 이러한 은사를 받는가? 구약 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은사가 임했는데, 그것도 한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한 가지 정도의 은사만 임했었다. 그러자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는 성령이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누어 주시는 시대가 되었다(고전 12:11). 그리고 사역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자에게는 더 많은 종류의 은사를 부어 주신다. 그러므로 은사는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언이 필요한 사역자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주시고, 영 분별이 필요한 때에는 영 분별의 은사를 주시며, 치유가 필요한 때에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병 고침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지만 더욱더 신령한 은사를 구하고 풍성하게 구하라고도 하셨다(고전 12:31).&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가 먼저라는 것이다. 마음을 찢지 않고 능력만 얻으려 하면 그 은사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인지 악한 영에게서 온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한 영이 준 것을 성령의 선물이라고 알고 그것을 사용하면 공동체 전체가 어지럽게 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들어와 사역자가 되려면 깨끗해지고 분별하면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신약 시대에는 누구든지 은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이 깨끗한 자가 되었느냐이다. 요엘서에 나온 순서를 보라. 먼저 마음을 찢고 돌아오라는 말씀이 먼저였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했다(욜 2:12-13, 28). 그러므로 사역자로 쓰임받으려면 더 회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내보내고, 그리고 나서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집안에는 종손 가문의 제사 전통이 있었고, 어머니 쪽으로는 사대조상까지 엄청난 무속인이 있었다. 필자는 삼강문을 가진 집안이며, 고조선 마지막 무당의 후손이라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미신과 잡신의 영향을 받았는지 돌아본다. 어머니는 가난하여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마다 필자를 방에 눕히고 반 되짜리 되에다가 보자기에 놓고 거기에 녹두를 담아 묶은 뒤 그것으로 머리를 치면서 영을 쫓는 일을 반복하셨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필자는 회개하는 과정에서 얼마 전에 새벽 네 시 무렵, 침실이 밝아지고 천사가 나타나는 체험을 했다. 천사가 눈을 손가락으로 내 양쪽 눈썹 위의 머리를 뚫는 일을 약 삼십 분 동안 행했는데, 그때 필자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필자는 회개를 이어 가며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고, 사역 중에는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장면을 보면서 기도해 주고 있다. 이 경험을 말하는 까닭은 자기 능력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상숭배의 흔적이 깊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금이 마지막 시대인 만큼 하늘의 은사 창고에 남아 있는 은사들을 받아서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은사 창고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은사가 귀신 축사(逐邪)의 은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악한 영을 분별하고 내보낼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 전사로 참여하려면 아무 준비 없이 거기에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먼저 회개하여 깨끗해지고, 성령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며 나라를 위해 싸울 그리스도의 군사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지금 시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은 해질 무렵이기 때문이다. 장터에 가보면 마감 시간이 되면 아직 남은 물건을 값싸게 내어놓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의 일꾼을 찾으시며 은사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실제로 영적 싸움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죄를 버려 영적 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은사를 자기 자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가정과 민족을 위해 쓰임받고,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 나아갈 그리스도의 군사로 준비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엘서가 남유다의 황충 재앙과 위기 가운데 선포한 회개의 요청, 네 가지 회복의 약속,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얻는 구원을 살펴보았다. 나라의 왕이 어린아이이고 신실한 제사장 한 사람에게 기대어 있을 때, 그 사람이 떠난 뒤 얼마나 빨리 우상숭배가 다시 일어났는가? 요엘은 그 위기를 보며 백성 전체가 깨어날 하나님의 때를 내다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높임을 받으신 뒤, 오순절에 백이십 명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 역사는 사마리아와 고넬료의 집과 에베소로 퍼져 이방인에게도 이르렀다. 요엘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까지 열렸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의 믿음만을 바라보지 말고 각자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주께서 주시는 은사를 분별하며,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고 맡기신 사람을 살리며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05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요엘서강의] ChatGPT 이미지 2026년 10월 4일 오전 08_44_05.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ecc1fa43625b59b16e3494f655ac11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요엘서강의]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는 네 가지 복.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2edd7d60d6c12b0dd71c971709a3e9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요엘겅강의]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9120656e3c58f71cac94fcf2f2d9c5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요엘서강의] 요아스 시대 황충재앙 4단계 도해.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65d3ad72268c22fc7ee7fe3319eeea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요엘서강의]유다 왕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신실하심.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9c67f5e4227cf9f128db595e555367ad.webp&quot; /&gt;&lt;/p&gt; &lt;p&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의 성령 시대와 구원 예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330a00b7ef83b27e97191769acef9a8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13cc053c18a905ae539e1e14a117f0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6bb9804e0e738b7418d0e9d8220022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242ea3a139ddeb419bf5da92d2cad5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2152211465ae7a39d9b2dd81889357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17d705bf192d025a79e007d49976f7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5b07095fb066aea53b9623b12027d8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62084955c929664b8690a6b2ad907f6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d3ababcc97f5ee8f4badd5223fa71f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fd9d28b42ad31f00a41b5c5018dd90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5cc1d62f4af61beb029af15e5eb360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167f41d25e9f1e6463935159e91ec1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요엘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a4dad52dbfb043ea4acd27eced1b7f95.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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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c3049b70e939c3105e6196f5727727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c52b15620684de44dfca2047c3ee68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603a50ca277ba20752d67246d317d7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e764f499a9ca9ab970c814ee5020ae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ad70b791447d793cf104ad345e7c1e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754b501f8717394feb0f3284e9eb29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badec69c08adff1c90b8921e6680ba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69a51ff9701c883d1e0bec253b1732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aacdc04498d77b1e9a9a5bcfa665d4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e0914c94961ca77122da53caaa9e6a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04) 요엘서(01)] 만민에게_임한_성령의_시대.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584/286/eba6a646faaf7532373b491f3522c64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요엘서</category><category>성령</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category>하나님의약속</category><category>성령강림</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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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86584#comment</comments>			<pubDate>Mon, 05 Oct 2026 14:40:08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99)]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B.C.722년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는데 어떻게 다윗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나?(호3:5)_2026-09-27(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7229</link>
				<description>&lt;p&gt;2026-09-27(주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99)]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B.C.722년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는데 어떻게 다윗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나?(호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VF6SOM5Th7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F6SOM5Th7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lt;strong&gt;호세아서의 회복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lt;/strong&gt;를 역사적&amp;middot;신학적 관점에서 통찰력 있게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북이스라엘이 혈통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lt;strong&gt; 남겨진 자들이 그리심산 성전을 중심으로 여호와 신앙을 회복&lt;/strong&gt;했으며, 메&lt;strong&gt;시아를 기다리는 영적 공동체로 존속해 왔음&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호세아가 예언한 &lt;strong&gt;참된 다윗 왕이자 회복자&lt;/strong&gt;로 오셨음을 밝히며, &lt;strong&gt;구원이 특정 장소나 혈통에 국한되지 않음&lt;/strong&gt;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과거의 예언이 &lt;strong&gt;그리스도 안에서 영과 진리의 예배로 완성&lt;/strong&gt;되었음을 보여주며,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호세아의 이름과 고멜을 다시 사 온 행동은 북이스라엘에 무엇을 보여 주는가?&lt;br /&gt; 2. 호세아가 선포한 북이스라엘 회복의 다섯 약속은 무엇인가?&lt;br /&gt; 3. B.C. 722년 멸망 후 북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lt;br /&gt; 4. 사마리아인은 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고, 그 성전은 왜 파괴되었는가?&lt;br /&gt; 5. 사마리아인이 기다린 타헤브와 호세아가 예언한 다윗 왕은 누구인가?&lt;br /&gt; 6.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와 구원의 길을 어떻게 밝혀 주셨는가?&lt;br /&gt; 7. 호세아의 회복 예언은 사마리아와 이방인,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의 순종_ChatGPT Image 2026년 9월 27일 오전 06_59_02.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2b098b32aabda68abf69ba3a5757d9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북이스라엘에 관한 5가지 회복 예언들_ChatGPT Image 2026년 9월 27일 오전 12_42_00.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c91569a006c02ffa01fe8564e1cca0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멸망했지만 살아남은 북이스라엘 사람들_ChatGPT Image 2026년 9월 27일 오전 01_05_511.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48f2224f699c70b72a655ca4ecef20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앗수리의 살만에셀과 사르곤왕ChatGPT Image 2026년 9월 27일 오전 07_29_37.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a332fccc5efc33025f75f9503a2f8a2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하테브신앙.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066494e26c65837e89bb5bae43bf21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그리심 산_ChatGPT Image 2026년 9월 27일 오전 01_32_35.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68606472bec8472a85ba2ebe8412a30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lt;br /&gt; B.C.722년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는데 어떻게 다윗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나?&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 3: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했다. 나라가 사라졌고, 그 뒤로 북이스라엘의 왕이 다시 세워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호세아가 예언한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여호와께 돌아오고 다윗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숭배한 나라가 멸망했는데 어떻게 여호와를 찾고 어떻게 다윗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기 민족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였다.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선지 활동을 한 사람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 이름으로 된 선지서를 남기지 않았다. 요나는 북이스라엘 사람이었으나 니느웨에 가서 예언했고,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말씀을 전했다. 자기 민족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나 그 백성의 미래를 말하고 책까지 남긴 선지자는 호세아뿐이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에 담긴 북이스라엘의 미래를 주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고 명하셨다. 호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자식을 셋이나 낳앟지만 고멜은 다시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노예 시장에서 아내를 찾은 호세아는 값을 치르고 고멜을 데려왔다. 이 행동은 북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행동예언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송아지 우상과 바알 숭배를 버리지 않았고 결국 나라가 세워진 210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호세아를 통해 주신 회복의 약속이 헛된 말이 되고 말았는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언젠가 여호와께 돌아와 다시 다윗왕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호 3:5).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은 멸망한 뒤에 어떻게 되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여호와 신앙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을 갖게 되었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호세아의 회복 예언이 어떻게 사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모든 민족에게 이어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호세아의 이름과 고멜을 다시 사 온 행동은 북이스라엘에 무엇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을 아끼고 사랑한 선지자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으라고 했을 때에 순종하였고, 자녀들에게도 심판을 알리는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amp;#39;이스르엘&amp;#39;이었다. 이 이름에는 &amp;#39;하나님께서 흩으신다&amp;#39;는 뜻이다. 둘째는 딸로서 &amp;#39;로루하마&amp;#39;인데, 이는 &amp;#39;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amp;#39;는 이름이다. 셋째 아들은 &amp;#39;로암미&amp;#39;로 지었는데, 이는 &amp;#39;내 백성이 아니다&amp;#39;는 이름이었다. 고로 호세아의 세 자녀의 이름들은 각각 북이스라엘의 죄와 심판을 드러내고 있는 이름이었다(호 1:4-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심판을 선언함과 동시에 회복도 약속하셨다.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불린 곳에서 그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긍휼을 받지 못했던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내 백성이라고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말로만 전하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세 자녀를 출산한 후 고멜은 다시 집을 떠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여자를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호 3:1). 호세아는 또다시 고멜을 찾아갔는데 이번에 그 여자는 어떤 남자의 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예 시장에 있었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과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그녀를 사 왔다(호 3:2). 그 값을 지불하고 데려온 행동은 남편을 배신한 아내를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자, 죄로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을 다시 사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호세아가 이런 일을 해야 했는가? 그것은 그의 이름이 예수님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원래 &amp;#39;호세아&amp;#39;라는 이름은 &amp;#39;구원자&amp;#39;라는 뜻이다. 이를 고쳐 불렀던 &amp;#39;여호수아&amp;#39;라는 이름은 이름의 계열이며, 여호수아가 예수아로 줄어들었고 신약 시대의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로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은 &amp;#39;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과 삶을 통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표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결혼과 회복의 행동을 명하신 까닭도 바로 그 행동 안에서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그에게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이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참고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 때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 때까지 약 210년 동안 존속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 말기인 B.C. 753년 무렵부터,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B.C. 722년까지 약 30년 동안 예언하였다. 백성이 끝내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아 북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고 말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거듭 촉구하셨다. 그러므로 고멜을 다시 데려온 호세아의 행위는 심판 뒤에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호세아가 선포한 북이스라엘 회복의 다섯 약속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lt;strong&gt;다섯 가지 회복을 선포&lt;/strong&gt;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lt;/strong&gt;는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흩으셨던 땅에 다시 심으시고, 긍휼을 입지 못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하신 것이다(호 1:10, 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안 다윗 왕을 세우고 그 땅에서 올라온다&lt;/strong&gt;는 약속이었다(호 1:11, 3:5). 호세아는 이를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구하는 일로 미리 밝혀주었다. 북이스라엘은 다윗의 집을 떠나 독립된 북왕국을 세웠지만, 장차 다윗왕을 찾고 그의 다스림 아래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 약속은 호세아서의 중심 예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하나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장가들어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으로 관계를 회복하시겠다&lt;/strong&gt;고 하셨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호 2:19-20). 하나님께서는 잠시 받아 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원한 언약의 관계로 그들을 다시 맞으신다고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셨으나 다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며, 이틀 후에 살리고 셋째 날에 일으키신다&lt;/strong&gt;는 약속이었다(호 6:1-2). 심판은 끝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그 앞에서 살게 하신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사랑하시며 진노를 거두시겠다&lt;/strong&gt;고 하셨다. 그들이 백합화처럼 피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내리며, 감람나무와 포도나무처럼 풍성해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호 14:4-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4:4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다섯 약속은 듣기 좋은 말로만 끝난 것일까? 하나님께서 &amp;#39;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amp;#39;으로 삼으시고, 다윗의 왕 아래 연합시키며, 다시 사랑하고, 고쳐 살리며, 나라를 풍성하게 하시겠다는 구체적인 회복의 말씀은 과연 그대로 실현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북이스라엘이 실제로 B.C. 722년에 멸망당하고 나라가 없어졌으니 이 예언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다. 혹 문자적으로 그대로 성취되지 못하면 영적으로라도 반드시 성취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B.C. 722년 멸망 후 북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B.C.722년 북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멸망했지만 그 민족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성경과 당시 세상 왕들의 비문을 함께 살펴보면, 북쪽에 남은 사람들과 남쪽 유다로 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리한 쪽의 관점으로 기록되기 쉽다. 성경의 역사 서술도 남유다 왕조를 중심으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역대상과 역대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왕조를 공평하게 기록한 열왕기상과 열왕기하 책도 같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존과 신앙을 놓치고 지나가 버리기 쉽상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남북으로 나라가 갈리자마자 그때부터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로 계속 유입되었다는 사실부터 확인해 보자.&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 번째 이동은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와 갈라졌을 때&lt;/strong&gt;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북쪽에는 레위 사람과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로보암이 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제사장들을 일반 사람들로 세우자 대거 남유다로 내려왔다. 더불어 여호와를 찾기로 마음을 정한 북이스라엘 사람들도 레위인들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11:13-17). 북쪽 모든 지파에서 여호와를 향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이동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이동은 아사왕 때&lt;/strong&gt;였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아사에게로 넘어와 유다에 정착했다(대하 15:9). 북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남쪽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로 히스기야왕 때&lt;/strong&gt;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히스기야는 보발꾼을 보내 북쪽 지파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라고 했다.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의 사람들이 그 초청을 받아들였다(대하 30장). 이들 가운데 남쪽에 머물며 산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 아셀 지파 출신 안나가 성전에서 선지자로 섬겼다는 기록은 북쪽 지파의 후손들이 남유다에서 이어져 살았음을 보여 준다(눅 2:3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네 번째로 요시야왕 때&lt;/strong&gt;에도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람들이 남쪽의 신앙 개혁과 연결되었다.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은 한 방향으로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일부는 남쪽으로 내려왔고 일부는 북쪽 땅에 남았다. 고로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는데, 앗수르에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땅의 주민 전체가 다 포로로 잡혀간 것은 아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앗수르 왕 사르곤의 비문에는 북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끌고 간 사람의 수가 27,29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들이 끌려가고, 이스라엘의 병거대는 앗수르 군대에 편입되었고,&amp;nbsp; 앗수르의 통치자들이 북이스라엘 땅에 배치되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는 이제 앗수르의 속주가 되었으니, 이곳을 사베리나(Saberina)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일반 백성 가운데 대부분이 북쪽의 땅에 잔존하게 되었다. 그렇다. 북이스라엘은 나라로서는 없어졌어도 그 땅의 주민과 민족의 후손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앗수르 제국의&amp;nbsp; 뒤를 이어 바벨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자 북이스라엘 땅은 계속해서 여러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바벨론 뒤에 페르시아가 지역을 재편했을 때, 이때 사마리아는 &amp;#39;강 건너 서편&amp;#39;이라는 속주로 편성되었고, 호론 사람 산발랏이 총독으로 등장한다. 느헤미야서에 계속해서 나오는 산발랏은 바로 &amp;#39;강 건너 서편&amp;#39;의 총독으로서,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려는 도착한 예루살렘의 총독인 느헤미야를 계속해서 방해했던 인물이다(느 2:10, 19). 그러나 북쪽 땅에서 일어난 일은 정치적 통치의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여호와께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신앙이 새롭고 꿈틀거리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사마리아인은 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고, 그 성전은 왜 파괴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사 시대에 북쪽에 여호와 신앙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성전이 세워진 과정에는 당시 남쪽의 대제사장 가문과 산발랏의 집안이 서로 얽혀 있었다. 성경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느 13:28). 그러자 예루살렘의 총독이었던 느헤미야는 대제사장 가문의 사람이 이방인과 결혼한 일을 용납하지 않고 그를 쫓아냈다. 페르시아 시대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에는 요야다의 아들의 이름이 &amp;#39;므낫세&amp;#39;라고 나오며, 그가 북쪽으로 쫓겨나 떠날 때에, 여러 제사장과 레위인도 함께 그를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랬다. 므낫세와 함께한 이들이 북쪽에 여호와 신앙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세겜이었고 세겜 땅에 있는 한 산,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다. 그리심산 성전은 대략 B.C. 450년에서 400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연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예수님 시대보다 약 350년 전부터 북쪽에 여호와께 예배하는 성전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조상들이 이 산 곧 그리심 산에서 예배했다고 말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그리심산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성전이 세워지게 되었는가? 그리심산은 에발산과 함께 세겜 땅에 자리한 산들 가운데 하나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장소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으로 들어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이 세겜이었다. 그리고 야곱도 세겜에 머물며 제단을 쌓았다. 야곱의 우물이 거기에 있었으며, 요셉의 뼈도 그 땅에 묻혔다(창 12:6-7, 33:18-20, 수 24:32, 요 4:5-6). 북이스라엘 중심부였던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 한가운데 있는 세겜은 남북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처럼 유서 깊은 장소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여호수아가 아이성을 점령한 뒤 백성을 이끌고 올라간 곳이 바로 세겜이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에발산과 그리심산으로 그분의 백성을 이끌고 일부러 올라갔다. 모세가 명한 대로 백성을 두 산 앞에 세워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율법을 읽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수 8:30-35).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각각 여섯 지파로 나누어,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게 했다. 그런데 신명기 27장 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산에 돌을 세우라고 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가진 모세오경을 보면, 그 장소를 그리심산으로 바꾸어 놓았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들은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배의 장소로 이해하고는 그곳을 성전 터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택하신 곳이라고 남유다 사람들이 해석했을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을 그 장소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사시대의 예수님 시대까지 사마리아인들이 가졌던 믿음은 북이스라엘의 송아지 숭배와는 다른 시기에 형성된 참된 여호와 신앙이었다. 이것이 바로 호세아 3장 5절의 성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그리심산에 세운 성전은 헬라 시대에도 매우 번성했는데, 이를 시기했던 남유다의 하스모니안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가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 B.C. 110년 무렵 그 성전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배의 중심은 무너졌고, 자신들의 신앙을 남유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을 품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지만 그들은 그리심산 성전이 파괴된 뒤에도 모세오경을 버리지 않고 메시아를 기다렸다. 이제 자신들도 여호와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였고, 호세아가 예언한 회복의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다린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더러 &amp;ldquo;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amp;rdquo;라고 말한 것은 단지 장소 논쟁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신앙과 역사도 있었음을 예수님께 호소한 말이었다(요 4:20).&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사마리아인이 기다린 타헤브(Tabeb)와 호세아가 예언한 다윗왕은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제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는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래서 로마의 봉신왕이었던 헤롯 대왕은 그곳을 세바스테(Sebaste)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헤롯 대왕이 죽자 헤롯 안디바가 다스렸으나 그도 폐위되자 로마가 직접 통치하였으니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할하에 있었다.&amp;nbsp;비록 성전은 파괴되고 없어졌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을 성산으로 두고 독자적인 제사장과 장로 체제의 종교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 때 일부러 그리로 가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를 가리켜 타헤브(Taheb)라고 불렀다. 이 말은 기억한다는 뜻과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실 회복자가 와서 모든 것을 알려 주리라는 기대를 담은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오직 모세오경, 곧 창세기&amp;middot;출애굽기&amp;middot;레위기&amp;middot;민수기&amp;middot;신명기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명기에 약속된 메시아 곧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기다렸다. 하나님께서 형제 가운데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그 말씀을 듣게 하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신 18:15-19). 사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가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온다고 한 것은 사무엘하부터 등장하는데, 이는 남유다의 역사책에 비로소 나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그리심 산이 약 100년전에 파괴되고 없어졌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 안다고 말했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자기들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요 4:25).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메시아관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자기들이 겪은 멸망과 그리심산의 성전 파괴, 남유다와의 갈라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메시아가 밝혀 주리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북이스라엘 출신의 북이스라엘 선지자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찾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이미 바사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회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윗 왕을 찾고 섬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남유다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희년을 성취하려고 그분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더불어 다윗 왕을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은 무너진 북왕국의 옛 왕조를 단순히 복원한다는 의미만 들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이 되시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로 모아 구원하신다는 뜻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 3장 5절의 예언이 비로소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일부러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타헤브이자 다윗왕으로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라고 직접 밝히셨다. 그랬다. 북이스라엘 후손으로서 그 여인이 기다리고 있던 타해브, 곧 모든 것을 알려 주고 회복을 이루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4:26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그 소식을 들었던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타헤브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했다(요 4:28-30, 39-42). 남유다의 다윗 혈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가셔서 그들의 기다림에도 지금이 그때가 되었다고 응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일부러 사마리아를 지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 땅에 가셔서 그들을 만나신 것이다. 호세아가 예언한 여호와께로 돌아오고 다윗 왕을 찾는다는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와 구원의 길을 어떻게 밝혀 주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역사적으로 한때 곧 350년간 동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여호와를 예배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를 예배했다. 그러나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제 예배의 장소가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히셨다. 예배하는 자가 장소에 상관없이 영 안에서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 형식적으로 변해 버린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장소적인 예배 공간을 폐지하시고, 새로운 예배처소를 여셨으니, 그것이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몸이었고, 나중에는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이 땅의 공간인데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물질적인 성전은 이제 인격적인 성전 형태로 바뀌게 된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4:21-24&amp;nbsp;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amp;nbsp;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북쪽의 그리심산도 남쪽의 예루살렘도 예배의 최종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구원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말씀하셨다(요 4:21-22).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구원자로서 유다 지파의 후손이자 다윗 왕의 자손으로서 유대인 가운데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미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으로 삼고,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먼저는 남유다가 그렇게 배척했던 사마리아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미 왔고 그가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그럿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만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혈통을 통해 오셨지만 구원을 유대인 안에게만 가두어 두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다 사람들은 여호와 신앙을 다시 되찾아 하나님만을 섬기려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심 산에 만든 예배 장소를 파괴하였고,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이제 물질적인 어떤 성전에만 거하시지 않고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신다고 알려주셨다. 그리심산과 예루살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거룩한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랬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10장에서 다른 양들도 인도하여 한 무리와 한 목자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는 말씀에 우선적으로 사마리아를 포함시키셨다(요 10: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10:16&amp;nbsp;&amp;nbsp;또 이 우리(울타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유대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쳐 버린 강도 만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 돌보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눅 10:25-37). 그리고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지만 돌아와 감사한 사람도 사마리아인이었다고 말씀하셨다(눅 17:11-19). 이처럼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을 무시하는 유대인의 잘못된 태도를 드러내시고,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백성임을 보여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예수께서는 그곳에서도 성령을 받고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파할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 지역 다음으로는 반드시 사마리아를 포함시킬 것을 지명하여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행 1:8).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끼리만 복음을 누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핍박을 허락하셨고 그것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도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으로 내려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사도적인 교회가 사마리아 지역에도 생겨난 것이다. 드디어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루살렘 교회와 동일한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와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행 8:4-17). 그리하여 &amp;#39;내 백성이 아닌 자&amp;#39;가 &amp;#39;내 백성이 될 것&amp;#39;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복음의 길에서 빼놓지 말라고 하셨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후손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하나로 부르셨다는 증거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호세아의 회복 예언은 사마리아와 이방인,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호세아가 말했던 &amp;ldquo;내 백성 아닌 자&amp;rdquo;는 북이스라엘만을 가리키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내 백성 아니었던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고 사랑받지 못하던 자를 사랑받는 자라 부르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얼마든지 부르는 자라고 말했다(롬 9:24-26). 그리소 사도 베드로도 전에는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긍휼을 얻지 못했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벧전 2: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9:23-26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4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5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6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amp;nbsp;&lt;br /&gt;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그룹에 합류했듯이 이제는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 시대 이후부터는 어떤 혈통적인 특징이나 장소적인 특권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라는 차별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며 약속을 이을 상속자가 되게 허락하신 것이다(갈 3:26-29). 이처럼 호세아의 회복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마리아를 넘어서 모든 민족에게 확대되기에 이른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26-29&amp;nbsp;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북이스라엘은 나라로서는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 백성과 후손은 남쪽으로 이동하거나 북쪽에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바사 통치 시대에 이르러 여호와 신앙은 사마리아에서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헬라 시대에 그리심산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그때부터는 그들은 메시아를 줄곧 기다렸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가 타헤브이자 다윗왕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를 알려주셨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분을 세상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이것이 다윗왕을 찾고 여호와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는 호세아의 예언이 성취된 아름다운 모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도 이방 민족이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과 아들들이 되었다. 약 140년 전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해준 뒤, 한국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고 세계 여러 곳에 선교사를 보내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잊지 않으셨듯이 이제는 욕단 민족의 후예인 우리 민족도 사랑하신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회개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마리아를 아끼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제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28:18-20&amp;nbsp;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단지 북이스라엘이 비록 나라가 멸망하고 없어졌지만 민족은 사라지지 않았고 드디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고 다윗왕으로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를 받아들임으로 구원받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의 국가적인 멸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회복의 약속까지 사라졌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무너졌으나 백성은 남았고, 예배는 다시 세워졌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이 이어졌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그들을 만나셨고, 사마리아와 땅끝을 향한 복음의 문을 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호세아의 회복 예언이 어떻게 사마리아의 여호와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나라를 잃었지만 민족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남유다로 내려왔고, 일부는 북쪽 땅에 남았으며,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은 비문에 기록된 27,290명뿐이었다. 이후 남겨진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여호와께 예배했으며, 모세와 같은 회복자 타해브를 기다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자 호세아가 예언했던 바 다윗의 왕으로 오셨다. 그리고 예배는 이제 특정 장소에 매이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씀하셨다. 장소 우선주의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도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호세아의 &amp;ldquo;내 백성이 아닌 자가 내 백성이 되리라&amp;rdquo;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 민족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의 역사적 형편만으로 가지고 쉽게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린 구원의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욕단 민족도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7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ChatGPT Image 2026년 9월 28일 오전 03_03_5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9c8a89a3e654a3534bf25e7e036616a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5ac92d8f664a53a5fb3a200539bc2a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ec0b1e77a1e20107fecbc8e55a975d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b62c4a36043150c3cf45cbe6b8a86a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19ac2f0ebf0ca2e4c96836e5927baa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f8b0f0972fe5e2b4bd8314a47bf4b7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a911d039e22a76c867f39ac551bf9c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ed3b14cf1a6ca939df007d1368269a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840775672ea6349c97eb40887f4be8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7dc916b6df756ae19c7e7dc4160027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00373e79abbc5747df333fabebd05b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74c6999ccfb6b9c5428d35aa09a7db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49d421a1ad0a67e4e2bb1782edf4ff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3c7472f6bda308e25c41ca9cb03c2c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Return_of_the_Fallen_King.pdf_1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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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97ad6c8cff78ab6fc2728479d97771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a760346de00b49440f08b33130f8e4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0539feafbc4038841e87e58db6eda4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2d42373176217090919f9aa6aac773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5f024c5a4e80e7601161df3e240b788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9457f0dc1c6e0ae11528841d0afab1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1ad2fc5cd43d7d4ffc57d36d7569e0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7442b4e2929b711c6a031853350817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9ed340bef8ce4489bfe108d67c8227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4100e4cc0d0fd56aa0f5414d8b106b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d0790ba89ffdbf1a5a7150f2c494a9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d201b2762ae5566acd8698fa17a2b5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2fc999e0bf76c900a452ac0795e72a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7227e29bcf20e203abec4ecefc870b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9)] Hosea_s_Hidden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229/267/7ba84bedb9952ad888f4ac185a41b7a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호세아</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북이스라엘</category><category>다윗왕</category><category>회복</category><category>메시아</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하나님의사랑</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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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7229#comment</comments>			<pubDate>Sun, 27 Sep 2026 20:41:56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96)]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신 놀라운 사랑 (호3:1~5)_2026-09-20(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6751</link>
				<description>&lt;p&gt;2026-09-20(주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6)]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신 놀라운 사랑 (호3: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quiQB31CxO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uiQB31CxO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호세아서는 어떤 시대적 배경과 네 가지 영적 문제를 다루는가?&lt;br /&gt; 2.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예표는 무엇인가?&lt;br /&gt; 3. 음란한 고멜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가?&lt;br /&gt; 4. 고멜을 값 주고 다시 산 호세아는 그리스도의 어떤 사랑을 보여 주는가?&lt;br /&gt; 5.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 다섯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lt;br /&gt; 6. 왕정의 실패는 왜 참된 다윗 왕이신 그리스도를 요구하는가?&lt;br /&gt; 7. 회개하고 돌아온 신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호세아서를 통해 나타난&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lt;/strong&gt;을 주제로 한 설교 강연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음란한 아내 고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amp;nbsp;&lt;strong&gt;값 주고 사온 호세아의 순종&lt;/strong&gt;을 통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신실한 약속과 구속의 의지&lt;/strong&gt;를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특히 호세아를 신랑, 다윗 왕, 회복시키시는 이, 아들, 사망을 이긴 구속자라는&amp;nbsp;&lt;strong&gt;다섯 가지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로 정의하며, 인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을 지불해 우리를 사 오신&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세상의 유혹과 영적 간음을 버리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해 참된 신랑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lt;/strong&gt;을 강력히 권면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신 놀라운 사랑&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 3:1-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호세아서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것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어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시되 마침내 값을 지불해서라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신 끝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amp;nbsp;호세아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amp;ldquo;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amp;rdquo;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그런데 호세아는 이전의 대선지서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구약성경의 17개의 예언서의 대부분은 남유다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호세아서와 아모스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몇 안 되는 예언서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자기 백성에게 예언했고,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이지만 북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은 주전 931년 여로보암 1세(B.C.931-910) 때 남유다와 갈라진 뒤, 주전 722년 호세아 왕(B.C.732-722)이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까지 약 210년간 금송아지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셔야할 언약 백성이 다른 신을 따라갔으니,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착오가 아니라 영적 간음(靈的姦淫, spiritual adultery)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즉각 버리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회개를 촉구하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북이스라엘의 13_19대 역대왕들 계보.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41c58189cd2afc3b35cfa7d82461fa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 당시 남왕국 왕들의 비교_ChatGPT Image 2026년 9월 20일 오전 06_37_51.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b032e64c19b9c22eb70a9ba8ebabff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선지자와 호세아왕의 비교_ChatGPT Image 2026년 9월 20일 오전 06_48_56.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e63ce60679796dc7aa0c80a3f4739cf0.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때 하나님게서는 그 사랑을 말로만 설명하지 않으셨다.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세 자녀를 낳게 하셨고(호 1장), 그 여인이 다시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떠났을 때 값을 주고 사 오라고 명령하셨다(호 3:1-2). 남편과 두 아들과 한 딸을 버리고 떠난 아내 고멜을 찾아가 여종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다시 데려오라는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바로 그 장면이 복음이다. 고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세상과 우상을 따라간 우리 죄인의 모습을 보여 주며, 호세아는 배신한 신부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값을 치러 사시기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버리실 수도 있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셨고, 마침내 사람으로 오셔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lt;/div&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 개요_ChatGPT Image 2026년 9월 20일 오전 12_54_47.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f7b27a92f9dc266a5525f2757eb5d6b1.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음란한 북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는가? 호세아서에는 과연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들이 예표(豫表, type)되어 있으며, 고멜을 다시 산 호세아의 행동은 십자가의 구속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리고 돌아오는 신부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회복을 약속하시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호세아서의 시대적 배경과 다섯 가지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음란한 신부를 값 주고 다시 사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회개하는 성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호세아서는 어떤 시대적 배경과 네 가지 영적 문제를 다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라는 이름은 &amp;ldquo;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rdquo;는 뜻이다. 여호수아의 본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 모세가 그를 여호수아라고 고쳐 불렀다(민 13:8, 16). 총 14장으로 구성된 호세아서는 12개의 소예언서 가운데 스가랴서와 더불어 가장 긴 책에 속한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B.C.793-753)의 번영기인 주전 755년경부터 제19대 호세아 왕(B.C.732-722) 때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인 주전 725년경까지 약 30년간 회개를 외친 선지자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 선지자도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하기는 했지만 그는 남유다 출신이었다. 반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기 백성의 죄와 고통을 몸으로 품고 말씀을 전한 대표적인 북이스라엘 선지자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호세아는 하나님의 보좌 앞 십사만 사천 명의 보좌들 가운데 이십사 장로 다음인 둘째 줄에 앉아 있다. 그가 순종으로 감당한 선지자적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북이스라엘이란 영적으로 어떤 나라인가? 남유다에는 여러 차례 종교개혁이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의 열아홉 명의 왕들 가운데 금송아지를 없애고 나라를 회개시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킨 왕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겉으로 여로보암 2세(B.C.793-753)가 통치하던 시기로서 때 가장 번영하기는 했으나 안으로는 멸망을 스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네 가지 심각한 영적 문제가 있었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 당시 사회정치적 종교적인 문제_ChatGPT Image 2026년 9월 21일 오전 08_18_44.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6b3cd10577884f1cc5cede7974828d5d.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는 혼합주의와 우상숭배(偶像崇拜, idolatry)&lt;/strong&gt;였다. 나라를 세운 여로보암 1세는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갈까 두려워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것을 여호와라 부르게 했다.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까지 제사장으로 삼았다(왕상 12:26-33). 그러니 북이스라엘의 신앙은 애굽의 송아지 숭배와 광야의 금송아지 죄를 되풀이한 혼합 종교였다. 뒤이어 북이스라엘 7대 왕이었던 아합(B.C.874-853)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으면서 바알과 아세라 숭배까지 온 나라에 퍼졌다(왕상 16:30-33). 백성은 비와 농산물을 주는 신이 바알이라고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으로 바알을 섬겼다(호 2:5, 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백성은 산꼭대기와 작은 산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나무와 막대기에게 장래 일을 물었다(호 4:12-14). 남자들은 창기와 함께 나가 우상에게 희생을 드렸고, 딸들과 며느리들도 음행과 간음에 빠졌다. 호세아는 이러한 우상숭배를 언약의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린 음행이라고 선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진 것&lt;/strong&gt;이었다.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호 4:1). 여기서 인애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언약을 끝까지 지키는 사랑이다.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고,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렸다(호 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신앙이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한 것&lt;/strong&gt;이었다. 제사와 번제는 계속 드렸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형식보다 인애를 원하시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다(호 6:6). 예배의 모양을 갖추어도 마음이 우상과 세상을 향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정치적인 불안 속에서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한 것&lt;/strong&gt;이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와 애굽 사이를 오가며 조약과 외교로 살아남으려 했다. 에브라임은 지혜 없는 비둘기처럼 애굽을 향해 부르짖다가 앗수르로 갔고, 앗수르와 계약을 맺으며 애굽에 기름을 보냈다(호 7:11; 8:9; 12:1). 위기가 올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힘을 사랑하는 자로 삼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문제는 오늘의 교회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재능을 세상을 섬기는 데 쓰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며, 위기 때 기도보다 사람과 돈과 권력을 붙드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호세아의 외침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살아 있다. &amp;ldquo;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amp;rdquo;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고 자백해야 한다(호 14:1-2).&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예표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호세아서에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다섯 가지 중요한 예표들&lt;/strong&gt;이 등장한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호세아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5가지 예표_ChatGPT Image 2026년 9월 20일 오전 07_47_05.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02c59f8cd79953ba2672057c9938c09f.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그리스도는 바람이 나 집을 떠난 아내를 다시 값 주고 사 오는 남편&lt;/strong&gt;으로 나타난다(호 3:1-2). 호세아는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여자를 다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지불하고 고멜을 샀다. 이는 죄와 세상에 팔린 교회를 자기 피로 사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이 찾아갈 &amp;ldquo;그들의 왕 다윗&amp;rdquo;으로&lt;/strong&gt; 나타난다(호 3:5). 호세아 시대보다 오래전에 다윗은 죽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옛 왕이 되살아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곧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리스도는 다시 살려 회복시키는 이로&lt;/strong&gt; 나타난다. 여호와께 돌아가면 그분이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신다. 이틀 후에 살리시며 셋째 날에 일으켜 그 앞에서 살게 하신다는 말씀은 부활(復活, resurrection)의 주님을 바라보게 한다(호 6:1-2). 죄로 죽은 백성을 다시 일으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의 말씀은 먼저 심판받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지만,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셋째 날 죽음에서 일어나신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하나님께서 찢으신 상처를 하나님께서 친히 싸매시고, 죄로 죽은 백성을 생명 가운데 세우신다. 그러므로 회개는 과거의 실패를 후회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일어나는 데까지 나아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그리스도는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아들로&lt;/strong&gt; 나타난다. 호세아 11장 1절은 먼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만,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애굽으로 피하셨다가 돌아오신 사건을 이 말씀의 성취로 제시한다(마 2:14-15). 이스라엘이 실패한 아들의 사명을 참아들이신 예수께서 온전히 이루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그리스도는 사망과 스올의 권세를 깨뜨리는 구속자(救贖者, redeemer)&lt;/strong&gt;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고 사망에서 구속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셨고, 그분께 속한 자들을 죽음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남편, 다윗 왕, 다시 살리는 이, 하나님의 아들, 사망과 스올을 이기는 구속자는 서로 떨어진 다섯 인물이 아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준다. 주님은 배신한 신부를 사랑하여 값을 치르시고, 영원한 왕으로 다스리시며, 죽은 자를 살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순종하며,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음란한 고멜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멜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아내의 자리를 버리고 왜 세상으로 떠났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고도 세상을 사랑하여 밖으로 나가는 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총각이었던 호세아더러 처음부터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래서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했다. 그래서 아내 고멜은 결혼후 자기와의 사이에서 &amp;#39;이스르엘&amp;#39;과 &amp;#39;로암미&amp;#39;라는 두 아들과 &amp;#39;로루하마&amp;#39;라는 딸을 낳았다(호 1:3-9). 하지만 그녀는 다시 남편과 세 자녀를 버리고 다른 남자의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났다(호 3:1-2).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멜은 매우 예쁘게 생긴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음란의 영이 아주 많았다. 그러자 결혼후에도 바람을 피었으나 그녀를 사랑한 호세아 때문에 나중에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랑이 한 영혼을 돌이키게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황도 이와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으며(호 11:1),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을 풍성히 주셨다(호 2:8).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모든 복을 바알이 주었다고 생각하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서 다른 신에게 바친 것이다. 고멜의 음행은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눈에 보이게 보여 주는 살아 있는 표징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고멜을 멀리 있는 악한 여인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보다 돈과 성공과 쾌락을 더 사랑하고, 어려움이 생길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무당과 점쟁이와 세상의 힘을 찾아간다면 우리도 언약의 남편을 떠난 고멜과 같은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과 재물과 시간을 자기 욕망과 우상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고멜의 길을 걷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고멜은 죄가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도 보여 준다. 다른 사랑을 좇아 자유를 얻으려 했지만 결국 돈을 지불해야 풀려날 수 있는 종의 처지로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한 사랑처럼 다가오지만 마침내 사람을 속박하고 팔아 버린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실 때 머뭇거린다. 또한 호세아처럼 상처를 감수하며 사랑하라는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한다. 한두 번 권면하다가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마음에서 지우고 버리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배신했다고 마음에서 지워 버리지 않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멜의 이야기는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고멜을 다시 데려온 뒤 많은 날 동안 음행하지 말고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고 명하셨다(호 3:3). 사랑으로 되찾았다면, 그것은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구속받은 신부는 남편에게 돌아와 정절을 지켜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고멜과 같은 존재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救援, salvation)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에 팔려 스스로 돌아올 수 없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셨기 때문에 살아났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교만이 무너지고, 세상과 우상을 버리며, 신랑이신 주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가 시작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고멜을 값 주고 다시 산 호세아는 그리스도의 어떤 사랑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배신한 아내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보여 준다. 당시 남편과 집과 자식을 버리고 떠난 고멜은 이미 다른 남자의 품에 있었고, 호세아가 그녀를 데려오려면 값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아여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단지 용서한다고 말하라고 하시지 않고, 직접 찾아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그 여자를 사 오게 하셨다. 이는 당시 여종 한 명을 살 수 있는 값에 해당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간적으로 보면 호세아에게 아무 책임이 없었다. 아내가 먼저 언약을 깨뜨렸고 남편과 세 자녀를 버렸다. 호세아는 그녀와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넘어 다시 사랑하고, 자기 재산을 내어 값을 치르고, 수치 가운데 있는 아내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호세아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순종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구속(救贖, redemption)의 사랑이다. 죄인이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을 되찾기 위해 값을 지불하셨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셨고, 은이나 금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내어 주셨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엡 5: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산 사건은 아담이 범죄한 하와를 버리지 않고 함께 책임을 지고 죽음의 길로 들어간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첫 아담보다 더 온전하게 신부를 사랑하셨다. 자신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인 신부를 살리기 위하여 죽음을 담당하시고, 피로 값을 지불하여 교회를 자기 소유로 삼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묵인하는 감정이 아니다. 호세아는 값을 주고 고멜을 데려온 뒤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고 했다. 그리스도도 우리를 죄에서 사셨으므로 이제는 몸과 마음을 세상에 내어 주지 말고 신랑에게 속한 신부로 살아야 한다. 구속은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라 죄의 주인에게서 벗어나 주님께 속하게 된 사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고 세상의 즐거움을 사랑할 때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고 자기 힘과 돈을 의지해도 당장 버리지 않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회개를 촉구하신다. 왜 그러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며, 우리를 천국의 신혼집으로 데려가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2:19-20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국을 앞둔 성도는 주님만 사랑하는 거룩한 신부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충성된 전사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amp;nbsp;&lt;strong&gt;초림의 예수&amp;nbsp;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을 찾아가는 사랑, 값을 치르는 사랑, 다시 아내의 자리에 세우는 사랑,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랑&lt;/strong&gt;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품어 주시는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 다섯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lt;strong&gt;우상숭배에 빠진 북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신 데에는 다섯 가지 이유&lt;/strong&gt;가 있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의]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사랑하신 5가지 이유.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746e138ba309b9ee9dfa24f695168cfd.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言約, covenant)을 지키시기 위함&lt;/strong&gt;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고, 자손을 땅의 티끌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3:14-16; 15:5-7).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의 약 210년 역사에는 네 번의 왕조 교체가 있었다. 여로보암 왕조는 2대, 바아사 왕조는 2대, 오므리 왕조는 4대, 예후 왕조는 5대로 이어졌다. 여로보암 2세 이후에 약 30년간 스가랴를 살룸이, 살룸을 므나헴이, 브가히야를 베가가, 베가를 호세아가 죽이고 왕이 되는 쿠데타가 연달아 일어났다(왕하 15:8-30). 정권은 계속 바뀌었지만 여로보암 1세가 시작한 금송아지 우상숭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조상들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들은 약 400년 동안 애굽에서 살며 송아지 우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출 2:24-25).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출 3:5-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긍휼(矜恤, mercy)이 많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다(출 34:6).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에 우리가 진멸되지 않으며, 그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다(애 3:22-23). 하나님은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킬 시간을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회개(悔改, repentance)의 기회를 주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끝없는 사랑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오면 긍휼히 여기며 너그럽게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다(사 55:7). 북이스라엘이 계속 배신해도 호세아를 보내신 까닭은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회복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 명을 보존해주시기 위함&lt;/strong&gt;이었다.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이 언약을 버리고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자기만 남았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거나 입맞추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셨다(왕상 19:14, 18). 필자가 갈멜산 사건을 묵상하며 깨달은 바에 따르면,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열두 돌로 다시 쌓은 일은 갈라진 남북이 본래 하나님의 한 백성임을 선포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제단에 불로 응답하셨고, 다수가 타락해도 충성된 남은 자를 버리지 않으셨다(왕상 18:30-3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죄인을 찾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함&lt;/strong&gt;이었다. 목자는 백 마리 양 가운데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을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내기까지 다닌다. 찾아낸 뒤에는 어깨에 메고 돌아와 이웃과 함께 기뻐한다(눅 15:3-6).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달려가 안고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주며 잔치를 연다(눅 15:22-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심, 오래 참으시는 긍휼, 회개를 기다리는 사랑, 남은 자를 기억하시는 섭리, 죄인을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북이스라엘을 붙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지나온 모든 세월에 주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자기 백성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오래 참으심을 심판이 없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북이스라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아 결국 주전 722년에 멸망했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수십 년 동안 호세아를 보내신 것은 죄를 괜찮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 전에 충분한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함과 분리되지 않으며, 언약의 신실하심은 죄를 버리고 돌아오라는 부르심으로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속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세월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회개를 기다리신 은혜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 신실하심 앞에 자신의 불신실함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므로 우리도 언약 백성답게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왕정의 실패는 왜 참된 다윗 왕이신 그리스도를 요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B.C.931-910)부터 호세아 왕(B.C.732-722)까지 약 210년 동안 수많은 왕을 세웠다. 남유다도 르호보암(B.C.931-913)부터 시드기야(B.C.597-586)까지 약 345년 동안 왕조가 이어졌다. 좋은 왕도 있었고 악한 왕도 있었지만 어느 왕도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구원하지 못했다. 북이스라엘의 잦은 왕조 교체와 쿠데타는 인간 왕권의 불안과 무능을 드러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으며 제사와 종교적 기구도 없는 기간을 오래 지낼 것이라고 예언했다(호 3:4). 실제로 나라가 멸망하면 그들을 다스릴 왕도, 하나님의 뜻을 전할 선지자도,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황폐한 상태가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 3장 4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으며 에봇과 드라빔도 없이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 왕권과 국가 제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제사와 우상에게 묻던 거짓 종교 수단까지 모두 끊어지는 공백의 때가 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을 거두어 오직 여호와와 참된 왕을 찾게 하신다(호 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가 예언할 당시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찾을 다윗은 옛 다윗 개인이 아니라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어 갈 메시아다. 좋은 왕과 악한 왕의 역사는 모두 인간 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죄를 이기고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며 영원히 다스릴 참된 왕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왕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으며(마 1:1), 죽고 부활하여 영원한 왕이 되셨다. 그분은 힘으로 백성을 억누르는 왕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백성을 사는 왕이다(마 20:28). 남편으로서는 음란한 신부를 값 주고 사고, 왕으로서는 흩어진 백성을 모아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이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함께 찾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과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일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거절할 수 없으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서 그분의 왕권에는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다. 구원은 죄 사함만이 아니라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날의 회복은 정치적 왕조를 다시 세우는 데 있지 않다(요 18:36).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왕으로 찾을 때 참회복이 시작된다. 그때 백성은 두려움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하고, 자기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아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8:36&amp;nbsp;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인간 지도자와 세상 권력을 궁극적인 구원자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가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죄인을 새사람으로 만들거나 사망을 이기게 할 수는 없다. 참된 다윗 왕이신 예수님만이 찢어진 것을 낫게 하고, 상처를 싸매며, 죽은 자를 일으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하고 돌아온 신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의 심판 선언은 회복을 향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죄 가운데 편안히 살게 하려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역을 고치고 다시 신부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호세아서의 마지막 요청은 &amp;ldquo;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amp;rdquo;는 말씀이다(호 14: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4: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막연히 미안해하는 감정이 아니다. 자기 불의 때문에 엎드러졌음을 인정하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가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다. 우상과 세상의 사랑을 끊고 언약의 남편에게 돌아가야 한다. 고멜이 다른 남자를 따르지 않고 호세아와 함께 지내야 했듯이, 구속받은 성도도 죄의 옛 주인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시고, 그 죄를 발판으로 역사하던 악한 영도 권리를 잃고 떠나가게 된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회개를 계속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특히 약 250번에서 500번 사이에 강한 저항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회개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이 롯과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넘어 마침내 이삭을 바치는 창세기 22장의 시험까지 통과했듯, 우리도 &amp;ldquo;됐다&amp;rdquo; 하시는 주님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일편단심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회개하다가 극심한 공포와 호흡 곤란, 척추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하에서도 원망의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다. 허리의 디스크가 3번, 4번, 5번에 녹아내려 더 이상 물렁뼈가 없어서 걷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하여 고침받고 30년을 아무 이상 없이 생활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회개하면 &lt;strong&gt;첫째, 하나님께서 반역을 고쳐주신다&lt;/strong&gt;. 죄의 행동만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배반과 우상숭배를 치료하신다.&lt;strong&gt; 둘째, 그를 기쁘게 사랑하신다&lt;/strong&gt;. 마지못해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여는 아버지처럼 기쁨으로 품으신다. &lt;strong&gt;셋째, 진노를 거두어가신다&lt;/strong&gt;. 죄 때문에 임하던 심판이 떠나고 언약의 은총이 다시 흐른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4:4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하나님께서 이슬처럼 임하신다&lt;/strong&gt;. 이슬을 받은 백합화가 피어나듯 메말랐던 삶에 꽃이 다시 핀다. 레바논 백향목처럼 뿌리가 깊어지고, 가지가 퍼지며, 감람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향기가 백향목과 포도주처럼 퍼진다. 그 그늘 아래로 사람들이 돌아오고 곡식과 포도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호 14: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회복의 순서가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슬처럼 은혜를 내리시면 백합화처럼 꽃이 피고, 백향목처럼 보이지 않는 뿌리가 깊어진다. 그다음 가지가 넓게 퍼지고 감람나무 같은 아름다움과 레바논의 향기가 나타난다. 마침내 다른 이들이 그 그늘 아래로 돌아와 쉼을 얻고 곡식과 포도나무 같은 풍성한 열매를 함께 누린다. 한 사람의 진실한 회개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어 가정과 공동체를 살리는 복으로 확장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의 복은 단지 형편이 좋아지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혼인 언약이 회복되고 신랑과 신부가 다시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lt;/strong&gt;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으로 우리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함께 살겠다고 하신다(호 2:19-20).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사랑 속에서 인격적으로 알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부르실 때 즉시 돌이켜야&lt;/strong&gt; 한다. 세상과 짝하고 다른 신을 찾았더라도 주님이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핑계로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오래 참으심은 죄를 허락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을 듣는 때가 신랑의 품으로 돌아갈 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심판이 무서워서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찾으러 오시고 피로 값을 치르신 신랑의 사랑에 감격하여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는 다른 사랑을 좇지 않고, 천국의 신혼집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날을 준비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호세아서의 시대적 배경과 북이스라엘의 네 가지 영적 문제, 그리고 다섯 가지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았다. 호세아서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 형식적인 종교, 강대국 의존으로 멸망을 향하던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친 사랑의 예언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인간은 고멜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고도 세상과 우상을 찾아 떠난 신부였다. 죄는 자유를 약속하지만 결국 사람을 종으로 팔아 버린다. 우리는 스스로 값을 치르고 돌아올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신한 신부를 버리지 않으셨고, 사람으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지불하여 교회를 다시 사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의 그리스도는 음란한 아내를 다시 사는 남편이며, 마지막 날에 백성이 찾을 다윗 왕이고, 찢어진 자를 낫게 하며 셋째 날에 일으키는 부활의 주님이다. 또한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망과 스올의 권세를 깨뜨리는 구속자다. 이 다섯 모습은 죄인을 끝까지 찾아 회복시키시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신 것은 조상들과 세운 언약에 신실하시고, 긍휼이 많으며,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남은 자 칠천 명을 기억하시며, 잃은 죄인을 찾아오실 예수님의 마음을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왕조가 바뀌고 쿠데타가 반복되어도 인간 왕은 백성을 구원하지 못했으므로 참된 다윗 왕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사랑하시며 진노를 거두고, 이슬처럼 임하여 삶에 꽃과 열매가 다시 피게 하신다. 무엇보다 신랑과 신부의 언약을 회복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음란한 고멜과 같았던 자신을 인정하고, 피로 값을 치러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하며, 다른 사랑을 버리고 신랑이신 주님께 끝까지 정절을 지켜 천국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0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atGPT Image 2026년 9월 21일 오전 09_05_1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7f4cfe1795754e87159fdb0e1e1e42d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075e78a28ab05d88ba4f49982501ea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ae3bb2da530204a4218a5578d33a01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8fd07716dca0d6e22202db92a7c52f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016e548d132ecefc99cf8e37ff7ae7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8154ced35b30fa9b99193b871196a8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0be2d38ffdcc5905c22dc3a2574dc4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32fb6be66e3ae4f8691e05b38c1764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3b7374dfcd2e7e92681c3b9c44625c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c1b4dd2587f3aadbfa143a7876fa2ea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d761ade6552a2ebd18ff3e03163f3a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6eca294587629f78a97a71292ccd54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6019d3a85eda1ffe3d710b2a94313a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4f68860080df29c4180f9848c809c3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ccdb1ea751d5bd4a6aea3417afc20af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Christ_Revealed_in_Hosea.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5e7d8e581c66deeb765fce1f9674440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변치_않는_하나님의_사랑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4c41a290e5aad864d86c2470ffbe91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호세아서의_그리스도_구속_예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b1061ffc4882d8414462ad100ef025e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0ba59907b19a23d356ec54abb08764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ea7c356a73c9a6541ab31df346de2e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82f4b3c077a22640faf338ec2d371e5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a67f1380ad99806fbb28c46b88ed0d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375cccff9b5740935dd0b4ce4f36b7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c4d89279a4f42b9cf88b6b86652e7b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870774e12e4be9eed84dd788376f09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75f02f61f1e1660811c9e9b4534c4f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51/266/7cdacbc34a302bb45e12f8cbc0a7a2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6)] Relentless_Redeeming_Love.pdf_10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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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호세아서</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하나님의사랑</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구속</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복음</category><category>영적회복</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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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6751#comment</comments>			<pubDate>Sun, 20 Sep 2026 21:53:25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9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단9:24~27)_2026-09-13(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6330</link>
				<description>&lt;p&gt;2026-09-13(일) 주일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단9:24~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8c6dcW-uh7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c6dcW-uh7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핵심 질문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1. 다니엘서는 그리스도를 어떤 네 가지 모습으로 예언하는가?&lt;br /&gt; &amp;nbsp; 2.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3. 70이레의 세 구간과 그 안에서 성취될 여섯 일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4.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에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lt;br /&gt; &amp;nbsp; 5. 세대주의의 70이레 해석은 어떻게 초림을 재림으로 바꾸었는가?&lt;br /&gt; &amp;nbsp; 6.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7. 70이레는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lt;br /&gt; &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다니엘서 9장의 &amp;#39;70이레&amp;#39; 환상&lt;/strong&gt;을 세대주의적 미래 해석이 아닌&amp;nbsp;&lt;strong&gt;초림 예수 그리스도 중심&lt;/strong&gt;으로 풀어낸 설교강해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오역을 바로잡으며, 70이레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메시아의 사역과 대속적 죽음&lt;/strong&gt;을 통해 구약의 안식년, 면제년, 희년의 정신을 완성하는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신자들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관&lt;/strong&gt;을 가질 때 환난을 이길 내면의 힘을 얻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회개와 충성&lt;/strong&gt;을 다해 천국 시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 최종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난 1월 14일부터 구약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공부하고 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그분이 주시는 것을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충만한 만큼 환난과 풍파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없이 은사와 축사만 따라가면 시련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알면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붙들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우리가 들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시다(요 14:26).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말씀이 쌓일수록 그것을 먹고 자라므로 영의 나이는 성정하게 되고 환난 앞에 담대해진다. 필자는 손이 작고 본래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채우고 믿음의 은사로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그때 주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이 내 것이 되었고 귀신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채우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창세기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의 예표 공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사들, 다윗과 솔로몬을 지나 이제는 예언서에 이르렀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에 이어 이제 다니엘서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 다니엘서의 70이레는 구약의 난해한 예언 가운데 하나다. 해석의 기준이 달라 일곱 가지가 넘는 견해가 있으며,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종말 시간표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대부분 역사 속에서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성경과 역사를 대조하면 그 중심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의 핵심은 적그리스도나 날짜 계산이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 예언은 그분이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성취하실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가 그리스도를 예언한 네 가지 모습,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 70이레의 세 구간과 여섯 가지 성취,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 쟁점, 세대주의가 초림 예언을 재림 예언으로 해석한 과정,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의미, 그리고 70이레가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서는 그리스도를 어떤 네 가지 모습으로 예언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네 가지 모습으로 예시해 주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다니엘서 2장에서는 &amp;#39;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amp;#39;&lt;/strong&gt;로 나타난다. 그 돌은 신상의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세상 제국들을 무너뜨리고, 큰 산이 되어 온 세계에 가득해진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영원한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단 2:34-35, 44-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다니엘서 7장에서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lt;/strong&gt;로 나타난다. 사자와 곰과 표범과 열 뿔 가진 짐승으로 상징된 제국들이 성도들을 괴롭히지만,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단 7:13-14). 이 땅에 인자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신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모습을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로 보았다. 그분의 권세는 영원하며 그 나라는 폐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다니엘서 9장에서는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amp;rsquo;&lt;/strong&gt;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amp;lsquo;마시아흐&amp;rsquo;(מָשִׁיחַ, Messiah)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며, 헬라어 &amp;lsquo;크리스토스&amp;rsquo;(&amp;Chi;&amp;rho;&amp;iota;&amp;sigma;&amp;tau;ό&amp;sigmaf;, Christ)와 연결된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아 직분을 수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직과 제사장직과 선지자직이라는 삼중직(三重職, threefold office)을 모두 수행하신다. 그 최초의 중요한 모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 다윗이다(시 2:2, 6).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성도는 장차 하늘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는 공동 왕의 지위에 참여하게 된다(계 2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다니엘서 10장부터 12장에서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분&amp;#39;&lt;/strong&gt;으로 나타난다. 그분은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에게 장차 일어날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충돌과 마지막 환난을 알려 주며 역사의 주권을 행사한다(단 10:4-6; 12:5-7). 세상 왕들이 싸우고 악한 권세가 성도를 핍박해도 역사의 마지막 결정권은 그리스도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네 모습은 모두 세상 나라를 심판하고 성도를 구하며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는 한 분 그리스도에게 모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의 초점은 세 번째 모습인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다. 그분은 단순히 한 왕조를 바꾸는 정치적 통치자가 아니다. 죄와 반역을 끝내고 죄악을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올 분이다. 그분이 어떻게 죽음을 통하여 이 일을 이루고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셨는지를 70이레의 환상이 정밀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제국의 궁정에서 겪은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1장에서는 이들이 바벨론 왕궁의 교육을 받게 된 과정이 나오고, 2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본 거대한 신상의 꿈이 나온다. 3장에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살아나오며, 6장에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구원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장부터 12장까지는 장차 일어날 일을 상징적인 환상으로 보여 준다. 계시(啓示, revelation)는 하나님께서 감추어진 뜻을 열어 보이시는 것이고, 예언(豫言, prophecy)은 장차 이루어질 일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묵시(默示, apocalypse)는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구원자를 보내 악을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내용을 꿈과 환상과 천사와 짐승 같은 상징으로 보여 준다. 이런 까닭에 다니엘서는 구약 묵시문학의 완전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2장과 4장의 느부갓네살의 꿈도 이러한 묵시적 성격을 지닌다. 특히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와 요엘서, 이사야서 24-27장에도 묵시적인 부분이 있으나 그 요소를 종합적으로 갖춘 책은 다니엘서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본 네 환상은 다음과 같다. &lt;strong&gt;첫째, 7장의 네 짐승 환상&lt;/strong&gt;이다. 사자와 곰과 표범과 열 뿔 가진 무서운 짐승은 바벨론과 메대&amp;middot;바사와 헬라와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 작은 뿔이 올라와 성도들을 괴롭히지만 인자 같은 이가 와서 그 권세를 끝낸다(단 7:3-14, 19-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8장의 숫양과 숫염소 환상&lt;/strong&gt;이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 왕들을, 큰 뿔 가진 숫염소는 헬라 왕을 가리킨다. 큰 뿔이 꺾인 뒤 네 뿔이 나고 그 가운데 작은 뿔이 올라와 성소와 성도를 짓밟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뜨려진다(단 8:3-12, 20-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9장의 70이레 환상이다.&lt;/strong&gt;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와서 끊어짐을 당하고 죄를 속죄하는 초림의 사역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10장부터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분의 환상이다. &lt;/strong&gt;이는 장차 벌어질 제국들의 충돌과 마지막 구원을 주관하는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도 짐승과 천사와 환상과 전쟁을 통하여 같은 묵시적 구조를 보여 준다.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666 표가 있어도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구원(救援, salvation)을 받고, 주께서 오셔서 아마겟돈 전쟁을 끝내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묵시의 목적은 성도를 공포에 빠뜨리는 데 있지 않다. 악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70이레의 세 구간과 그 안에서 성취될 여섯 일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는 히브리어식으로 &amp;lsquo;일흔 개의 이레들&amp;rsquo;, 곧 70&amp;times;7을 뜻한다. 이때 숫자 하나를 한 해로 환산하면 490년이라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백성 이스라엘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이 기간을 정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단 9:24). 그런데 이러한 490년은 7이레와 62이레와 마지막 1이레라는 세 구간으로 나뉜다. 앞의 두 구간은 69이레, 곧 483년이며 그 뒤에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환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이 예언이 주어진 배경을 먼저 보아야 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난다는 말씀을 깨달았다(렘 25:11-12; 29:10; 단 9:2). 그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자신과 조상과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포로 생활 70년이 언제 끝나는지만 알려 주지 않으시고, 가브리엘을 보내 이스라엘을 향한 490년의 더 큰 경륜을 계시하셨다(단 9:3-23).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회개(悔改, repentance)할 때 다니엘은 민족의 회복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역까지 보는 보너스의 계시를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 70이레 곧 490년 안에는 여섯 가지 일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셨다(단 9:24). 첫째, 반역이 철저히 끝난다. 둘째, 죄들이 마감된다. 셋째, 죄악이 속죄(贖罪, atonement)된다. 넷째, 영원한 의가 나타난다. 다섯째, 환상과 예언이 성취된다. 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이 부어진다(단 9:24). 고레스나 아닥사스다 같은 왕은 포로 귀환이나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명령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고로 이 여섯 가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히 성취하실 수 있는 것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그것을 예루살렘을 돌이키고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간 때다. 그 명령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가 나타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가고,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했다(단 9:25). 69이레 뒤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짐을 당하며, 그 뒤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예루살렘 성과 성소를 파괴한다고 하였다. 전쟁과 황폐함은 이미 작정되어 있고 대적하는 자의 끝은 홍수처럼 닥칠 것이다(단 9: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 예언을 해석할 때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amp;nbsp; 이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이 해석을 제대로 풀어내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날짜를 중심에 두면 계산에 매이고, 사건만 중심에 두면 성전 파괴에 머물며, 미래의 적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초림의 십자가를 놓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예언은 인물을 중심에 두되 그 인물을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세 구간과 여섯 성취가 하나로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의 성취도 중요하다. 마지막 한 이레를 성취할 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인가? 세대주의는 69이레 다음에 있는 한 이레를 무려 2천년 이상 떼어내서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행할 일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어떤 근거도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리스도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셔서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세우셨기 때문이다(막 14:24). 그리고 그 이레의 절반인 3년반 후에 그분이 죽으심으로 희생제사와 곡식제사가 그치셨기 때문이다(단 9:27). 그렇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성만찬을 집행하시면서 그분은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그러므로 한 이레의 중간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죽음은 재림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행동이 아니라 초림하신 그리스도가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구약의 속죄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신 사건이라고 해석해야 한다(히 9:11-15; 10:10-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에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70이레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성경 본문 특히&amp;nbsp;&lt;strong&gt;히브리어 원문을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lt;/strong&gt; 한다. 번역의 작은 차이가 중심인물을 그리스도에서 적그리스도로 바꾸고, 연속된 예언을 먼 미래의 종말 시간표로 옮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의 다니엘서 9장 24-27절에는 네 가지 중요한 오류와 삭제와 추가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24절의 &amp;lsquo;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amp;rsquo;는 부분&lt;/strong&gt;이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표현은 문법적으로 사람만을 가리키는 &amp;lsquo;지극히 거룩한 자&amp;rsquo;로 제한되지 않는 단어이다.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을 모두 다 가리킬 수 있는 &amp;lsquo;지극히 거룩한 것&amp;rsquo;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이 부어질 것이라고 옮겨야 그 범위를 보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25절에는 &amp;lsquo;돌이키다&amp;rsquo;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amp;lsquo;슈브&amp;rsquo;가 빠져&amp;nbsp;&lt;/strong&gt;있다. 원문에는 예루살렘을 다시 건축하라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루살렘을 돌이키게 하고, 곧 회개시키라는 단어가 있고 그리고 다시 건축하라는 단어가 나온다. 회개(悔改, repentance)와 재건은 분리되지 않는다. 무너진 성읍의 외형을 세우기 전에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빠져 있다. 그런데 성전 건축 이전에 회개시키는 사역이 먼저 있어야 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25절의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amp;rsquo;에서 &amp;lsquo;왕&amp;rsquo;으로 옮긴 단어는 히브리어 &amp;lsquo;멜레크&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나기드&amp;rsquo;다&lt;/strong&gt;. 나기드는 지도자 또는 통치자를 뜻한다. 고레스나 아닥사스다 같은 왕과, 그 명령을 받아 백성을 이끌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를 구별하려면 이 단어를 &amp;lsquo;통치자&amp;rsquo; 또는 &amp;lsquo;지도자&amp;rsquo;로 옮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26절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amp;lsquo;끊어져 없어지는&amp;rsquo; 것이 아니라 &amp;lsquo;끊어짐을 당한다는 뜻이다.&lt;/strong&gt;&amp;rsquo; 히브리어 동사는 수동의 뜻을 가지므로 그가 타인에 의해 죽임당하는 사건을 가리킨다. &amp;lsquo;없어질 것임이요&amp;rsquo;라는 말로 그 존재가 사라지는 듯 번역하면 십자가 뒤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그분은 끊어짐을 당하겠지만 없어지는 분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27절의 동사는 희생제사와 예물을 &amp;lsquo;금지하다&amp;rsquo;가 아니라 &amp;#39;솨바트&amp;#39;라는 단어로서 &amp;lsquo;그치게 하다&amp;rsquo;라는 뜻을 가진다&lt;/strong&gt;. 그래서 이 단어를 &amp;lsquo;금지한다&amp;rsquo;고 번역하면 미래의 적그리스도가 성전 제사를 폭력으로 중단시키는 장면으로 읽히기 쉽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성경을 번역하던 분들이 이미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고 번역하면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더는 반복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하신 사건임이 분명해진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그리스도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10:1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성경 번역도 번역자가 가진 바,&amp;nbsp; 어떤 신학적 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신약 원문을 연구해 온 필자는 앞으로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헬라어 본문을 충실히 옮긴 신약성경을 내고자 준비하고 있다. 구약은 전문 연구자들의 도움과 훈련한 AI도구를 활용하여 히브리어 형태도 살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신학사상을 번역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이 말하는 문법과 문맥을 따라 그대로 번역하여, 성경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주제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데에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대주의의 70이레 해석은 어떻게 초림을 재림으로 바꾸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 세대에 주어진 성경해석 가운데 하나인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최초로 다니엘서와 에스겔 성전과 천년왕국 같은 난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말론의 빈틈을 상세한 시간표로 채웠기 때문에 많은 교회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틀을 표준처럼 따라가면 본문이 말하지 않는 간격을 삽입하고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바꾸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존 넬슨 다비는 성경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어 시대마다 하나님의 통치와 경영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상은 미국으로 전해졌고, 사이러스 스코필드는 1909년 성경 본문 아래에 세대주의 해석을 붙인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발행했다. 방대한 주석서를 갖기 어려웠던 목회자와 평신도는 한 권으로 본문과 해석을 함께 읽을 수 있었고, 이 성경은 미국 교계에 선풍적인 영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이전의 칼뱅주의와 웨슬리안 전통 위에 세대주의 종말론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흐름은 선교에도 큰 열정을 일으켰다. 주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지막 시대에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로 가야 한다고 결단한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다. 학자와 의사로 온 이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을 전했고, 한국 교회는 큰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인재들이 미국에서 신학을 배우고 돌아오면서 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도 널리 퍼졌다. 그러므로 세대주의가 준 선교적 유익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해석의 오류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대주의는 7이레와 62이레를 연속된 69이레로 보면서도 마지막 한 이레는 거기서 떼어 2천 년이 넘는 교회 시대 뒤로 옮겨버렸다&lt;/strong&gt;. 그리고 &lt;strong&gt;그 마지막 7년을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 7년 대환난으로 해석하고 있ㄴ다&lt;/strong&gt;. &lt;strong&gt;이레의 절반인 3년 반이 지나면 적그리스도가 그 조약을 깨고 성전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시간표&lt;/strong&gt;를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니엘서 9장의 본문은 69이레 뒤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지고, 마지막 한 이레 동안 그가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며, 그 절반에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단 9:26-27). 먼저 끊어지게 될, 죽임당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누군가? 그분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재림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죽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다니엘 9장 27절에 나오는 &amp;#39;그&amp;#39;는 초림하셔서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과 굳게 세운 언약도 적그리스도의 평화조약이 아니라 예수께서 피로 세우신 &amp;#39;새 언약&amp;#39;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세대주의는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를 적그리스도로, &amp;lsquo;언약&amp;rsquo;을 이스라엘과 맺는 정치적 조약으로,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를 &amp;lsquo;금지한다&amp;rsquo;로 바꾸어 읽는다. 그러면 초림의 그리스도가 사라지고 관심은 미래 적그리스도와 7년 대환난과 날짜 계산에 집중된다.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를 적그리스도와 666 체계의 주역으로 지목하는 주장도 나오지만 미래의 인물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원문에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70이레의 중심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죽임당하여 언약을 세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예언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려면 어떤 성경해석 기준이 필요한가? 그것의&amp;nbsp;&lt;strong&gt;첫째 열쇠는 이 예언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lt;/strong&gt;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특히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가지 일, 곧 반역을 끝내고 죄를 마감하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은 오직 예수께서 완성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사의 초대왕 고레스는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리고, 총독 스룹바벨을 보내어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의 길을 열었던 왕이었다(사 44:28-45:1). 바사왕 아닥사스다는 예루살렘 재건을 명령했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러므로 이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통치자(나기드)의 부분적인 예표가 될 수 있지만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중심을 왕이나 지도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예언의 중심을 죄용서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열쇠는 70&amp;times;7을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70은 7&amp;times;10이며, 여기에 다시 이레의 7을 곱하면 490이 된다. 안식년의 일곱 주기가 지나면 49년이 되고 그 다음 해는 희년이다. 그러므로 490년은 희년의 구조가 열 번 반복되는 충만한 기간이며,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안식과 빚의 탕감과 자유와 기업의 회복을 가져올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역대하 기자가 남유다가 가나안땅을 떠나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살게 되었던 이유가 그들이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해놓았기 때문이다(대하 36:21). 그러므로 70이레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우리는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면제년, 그리고 안식년이 7번이 지나서 돌아오는 희년의 뜻과 구조를 살펴보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lt;/strong&gt;은 가나안 땅을 7년마다 쉬게 하는 제도다(레 25:2-7). 땅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맡기신 것이므로 일곱째 해에는 경작하지 않고 자연히 난 소산을 모든 사람이 먹게 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 역대하 기자는 예루살렘이 황폐한 70년 동안 땅이 안식을 누림으로 예레미야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한다(대하 36:20-21). 가나안 땅의 분배(B.C.1399)에서 바벨론 멸망(B.C.586)까지 약 8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를 7년 단위로 계산하면 안식년은 약 116차례, 희년은 16차례 지켜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안식년을 외면한 불순종이 결국 백성이 땅에서 뽑히는 징계로 돌아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쉼을 주러 오셨다(마 11:28; 12:8).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육체가 죄와 악한 영의 억압으로 안식을 잃었으나,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 육체에도 안식을 주셨다(창 2:7).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풀어 주신 사건이 그 뜻을 보여 준다(눅 13:10-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음으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lt;/strong&gt;은 동족이 진 빚과 종살이를 일곱째 해에 풀어 주는 제도다(신 15:1-18). 이스라엘은 빚을 끝까지 받으려 하고 종을 놓아주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의 빚을 탕감하고 마귀의 종 된 사람을 해방하러 오셨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빚진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한다(마 6:12).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70&amp;times;7의 용서는 70이레가 품고 있는 면제의 정신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마지막으로 희년(禧年, jubilee)&lt;/strong&gt;은 안식년 일곱 번, 곧 49년이 지난 뒤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자유를 선포하는 해다(레 25:8-22). 희년에는 네 가지가 이루어진다. 첫째, 땅을 쉬게 한다. 둘째, 종을 놓아준다. 셋째, 팔렸던 기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넷째, 각 사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스라엘은 이 명령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성령께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께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날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분은 우리 몸에 안식을 주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며, 잃어버린 하늘 기업을 되찾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사역은 곧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열쇠&lt;/strong&gt;는 &lt;strong&gt;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끊지 않고 연속된 490년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은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옮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69이레 뒤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끊어져 새 언약을 세우고 제사를 그치게 한다.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연속된 시간이라는 세 열쇠를 함께 사용할 때 70이레의 구조가 하나로 풀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70이레는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의 연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점으로 삼아 살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후 27년경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그때부터 약 3년 반 뒤인 주후 30년경, 곧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셨다. 그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위한 새 언약을 세우고 구약의 희생제사를 완성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기름부음의 시점에서 62이레, 곧 434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08년이며, 다시 7이레인 49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57년에 이른다. 이때는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율법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돌이키며 재건하도록 명령받은 시기다(스 7:7-10, 25-26). 이 연대는 예루살렘을 돌이키게 하고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간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까지 69이레가 지난다는 예언과 맞아떨어진다.&lt;/p&gt; &lt;p&gt;&lt;img alt=&quot;ChatGPT Image 2026년 9월 13일 오전 02_29_15.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f5232571b33e185ace5fb5219f68b6dc.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째, 고레스의 명령으로 스룹바벨이 백성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스 1:1-4; 2:1-2). 둘째,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돌아와 율법과 예배를 회복했다(스 7:1-10). 셋째,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에 느헤미야가 돌아와 다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다(느 2:1-8). 고레스와 아닥사스다 왕들은 재건을 명령한 기름부음 받은 도구가 될 수 있었고,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그 명령을 수행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의 최종 목표는 죄를 속죄할 참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데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끊어짐을 당하신 뒤 약 40년이 지난 주후 70년, &amp;#39;한 통치자의 백성&amp;#39;인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다. 이는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파괴하고 전쟁과 황폐함이 뒤따를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다(단 9:26). 이처럼 시작과 기름부음과 십자가와 성전 파괴의 사건을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보면 70이레는 미래 적그리스도를 위한 빈 시간표가 아니라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언하는 완성된 예언으로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한다. &lt;strong&gt;첫째,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힘써야&lt;/strong&gt; 한다는 것이다. 예언의 중심을 적그리스도와 날짜에 두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과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lt;strong&gt;둘째, 예수께서는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영적 메시아로 오셨음&lt;/strong&gt;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로마의 압제에서 풀어 줄 다윗 같은 왕을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8:36). 그분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고 죄의 종을 풀어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행 10:38; 히 12:22-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예수께서 이루신 해방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해야&lt;/strong&gt; 한다. 주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8-20). 육체와 영혼이 악한 영에게 눌려 안식을 잃은 사람이 회개하면 해방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돌아가 하늘의 기업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 이 사명을 감당한 분량에 따라 하늘에서 누릴 지위와 기업도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가을 절기들의 의미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레 23:23-43). 먼저 7월 1일 &amp;#39;나팔절&amp;#39;은 모든 신자가 무조건 환난 전에 휴거되는 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일과 아마겟돈 전쟁을 앞두고 참여할 자들을 소집하는 절기로 인식해야 한다(계 16:16; 19:14-21). 그리고 7월 10일 속죄일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성결케 하였듯이, 그날에는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악의 무리를 완전히 청산하고 자유와 해방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는 초막절의 절기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완성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날 나팔절에 나팔이 울릴 때 우리가 주님의 군대로 소집되려면 지금부터라도 회개를 실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내 속에 간첩이 없어야 그날 하나님의 군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악한 영과 내통하는 상태로는 하늘의 군대에 참여할 수 없으며, 충성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회개가 끝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이후부터 진짜 본격적인 회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때가 가까워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시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버틴다면 땅에서 뽑힌 이스라엘처럼 하늘의 생명책에서도 내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계 3:5).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여 정결(淨潔)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안식과 면제와 희년의 복을 누리며, 아직 묶인 자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만난 것과 말씀을 들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회개하고 충성하여 천국의 기업을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가 예언한 그리스도의 네 모습과 70이레의 구조, 번역의 쟁점과 역사적 성취,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70이레는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로 이어지는 490년이며, 그 중심에는 기름부음을 받고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끊어짐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반역과 죄를 끝내고 죄악을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셨다.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고 반복되던 희생제사를 그치게 하셨다. 그분은 안식년의 쉼과 면제년의 탕감과 희년의 자유를 성취하여 죄와 마귀에게 매인 사람을 풀어 주고,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70이레 사이에 2천 년의 간격을 삽입하여 초림의 예언을 미래 적그리스도의 시간표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성경과 번역과 주석을 분별하되, 날짜 계산과 적그리스도에 대한 공포보다 구약 전체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그분이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을 믿고 누리며, 날마다 회개하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안식을 잃은 자에게 그리스도의 쉼을, 죄의 빚과 마귀의 종살이에 묶인 자에게 면제와 자유를, 하늘의 기업을 잃은 자에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길을 전해야 한다.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충만히 알고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하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까지 환난에 흔들리지 않고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4일 오전 09_02_4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5f6db20b4bf54ff2a5be55e750ff17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e308aa2d48a4cad25ba3c2313249a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0898dbe724f0f4ccde84089549f28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7e265d79ae297976dacff53b21409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3450f49c3aeb07b42cd6cea5aaeca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6981dbfcd845e60014a0b0798142d7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4f2f02d638c52ca7f468c40a06798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b23ca18872c8438f6b82c77dd7a92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d35ed040abe59da1d73a88915386a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ef5ddc36e2ee0ead2d9688a7cc932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8251e525384c9c5918c96d8c37d851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16fbdca774a9e902440bf0056496b0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8049272765739ab4f896ace648172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64a1b4e8e89c72a20425da3080f734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95950895fa00fba382d6f071266304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7e9a09c9dd066a19fc1727e3e25e6d3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다니엘의_70이레와_그리스도의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4a6fae0206bdfd0582760f2205ef5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다니엘서_70이레와_그리스도의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2a16b3da9be38454371d682c432c99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44f2acfafe3b880405063bb8933b96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e6cbdc04e93faacd3a5e5de289e92c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2a17911287a2ae6b865e573dad055c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3961dfbb1d03e2dac1dbbb77b8a56a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8b569f4da4b371553c39a5a3849e2d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9fcbe0b4b8b7b6bf2bb37d8063756f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24dca49c8e99b0712e89c50953391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08fff862f6b7326015ac488e6735b2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4e19e67d88d28396d470fb704dda8b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ad2763f5de60b9cc9b086132e8652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5f0d30c0d951ff9dc4010692a73a1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13371f4e5e2ada0c84ca7b9b8b8efa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b7fda81b73a6d385963c3f9172227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fa0a4c30bc1a1012490b0d9503360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74bfb09577986db8bc567c8d2299eb7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다니엘서</category><category>70이레</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성경해석</category><category>초림</category><category>메시아</category><category>묵시문학</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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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6330#comment</comments>			<pubDate>Sun, 13 Sep 2026 22: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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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8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인자 같은 이(05)(다니엘7:13~14)_2026-09-06(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5922</link>
				<description>&lt;p&gt;2026-09-06(일) 주일낮1부예배&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제목: &lt;strong&gt;[기독론(185)]&amp;nbsp;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인자 같은 이(05)(다니엘7:13~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AK4cetSF_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AK4cetSF_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를 정리하기 위한 핵심 질문 7가지]&lt;/strong&gt;&lt;/p&gt; &lt;p&gt;&amp;nbsp; 1.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lt;br /&gt; &amp;nbsp; 2. 다니엘은 왜 메시아를 &amp;lsquo;인자&amp;rsquo;가 아닌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 했는가?&lt;br /&gt; &amp;nbsp; 3. &amp;lsquo;인자&amp;rsquo;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권세를 가지셨는가?&lt;br /&gt; &amp;nbsp; 4. 인자는 왜 고난받고 죽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는가?&lt;br /&gt; &amp;nbsp; 5.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셨는가?&lt;br /&gt; &amp;nbsp; 6.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7. 하늘의 영광을 얻으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8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인자 같은 이(0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7:13-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한 주일, 우리는 오늘도 말씀 앞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amp;nbsp;대선지서에 나타난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들여다보면 저마다 강조점이 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종으로 예언했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세우시는 의로운 왕으로, 에스겔은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는 참 목자와 새 성전으로 예언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로 보여 준다. 그분은 세상 나라를 끝내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분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삼십삼 년 반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 자신을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자신을 가리켜 가장 많이 사용하신 칭호는 &amp;lsquo;인자&amp;rsquo;였다. 헬라어로는 &amp;lsquo;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amp;rsquo;, 곧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칭호들 가운데 &amp;#39;인자&amp;#39;라는 칭호를 사복음서에서 찾아보면 무려 예순일곱 차례 사용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amp;#39;인자&amp;#39;라는 용어 외에도,&amp;nbsp; &amp;#39;아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왕,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의 문, 선한 목자, 길과 진리와 생명, 부활과 생명, 에고 에이미, 심판자&amp;#39;라는 여러 칭호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과 삶을 가장 자주 설명하신 말은 단연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약 서른다섯 살이던 무렵, 바벨론의 벨사살 원년, 곧 주전 577년경에 그는 밤 환상 가운데 네 짐승을 본다. 느부갓네살이 광인이 되어 정상적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던 3년 차에 그의 아들 벨사살 1세가 대신 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다. 넷째 짐승은 죽임을 당해 그 시체가 불에 던져졌고, 앞에 보여졌던 사자와 곰과 표범은 권세를 빼앗겼으나 정한 때까지 생명을 보존받은 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가 되면, 이 세 짐승의 속성이 다시 모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표출될 것이다(계 13:1-2). 그런데 넷째 짐승의 사망 직후에 다니엘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을 본다. 다시 말해 다니엘에게 세상 왕국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에는 인자 같은 이에 의해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마지막 시기를 앞둔 우리 성도들 역시 &amp;#39;인자 같은 이&amp;#39;가 누군지를 잘 모르면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는지, 왜 그분이 사람들을 섬기려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는지 알기 어렵다. 또한 지금 그분이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만유를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이 인자 같은 이라는 사실도 놓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천국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저절로 같은 왕 같은 지위와 신분을 얻는다고 착각하게 된다. 하늘의 영광을 탐내기는 하지만 이 땅에서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가지 예표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amp;#39;인자&amp;#39;와 &amp;#39;인자 같은 이&amp;#39;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 가지신 권세와 대속의 죽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신 과정,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네 가지 예표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전부를 읽어보면,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보여 주는 네 가지 중요한 예표들이 나온다. 제2장에는 &amp;lsquo;손대지 아니한 돌&amp;rsquo;이 나오고, 제7장에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가 나오며, 제9장에는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amp;rsquo;, 곧 메시아가 나온다. 제10장과 제12장에는 &amp;lsquo;세마포 옷(힌 옷)을 입은 이&amp;rsquo;가 나온다(단 2:34-35, 44-45; 7:13; 9:24-26; 10:5-6; 12:6-7). 그런데 이 네 가지 모습은 서로 다른 네 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신분을 각각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손대지 아니한 돌(단 2:34-35, 44-45)&lt;/strong&gt;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왕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왕이 누군지를 보여 준다.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금 신상의 발과 열 발가락을 이 돌이 쳐서 부서뜨리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함께 가루가 되었다. 그러자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단 2:34-35). 이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시대의 세상 왕국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王國, kingdom)을 세우실 것을 뜻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2:44-45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인자 같은 이(단 7:13)&lt;/strong&gt;는 하나님에게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아 모든 백성과 민족과 언어를 다스리는 영원한 왕을 보여 준다. 그분은 이 땅에서 인자로 섬기고 희생하셨지만, 사명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신 뒤에는 소멸되지 않는 권세를 가진 분이 되신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세상 왕국을 깨뜨리는 심판의 능력을 보여 준다면, 인자 같은 이는 그 심판 뒤에 세워질 왕적 지위와 통치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름부음을 받은 자(단 9:24-26)&lt;/strong&gt;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일을 이루기 위해 보냄받은 메시아를 보여 준다(단 9:24-26).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시지만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세마포 옷을 입은 이(계 10:5-6; 12:6-7)&lt;/strong&gt;는 죄가 없고 거룩하며 하늘의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이때&amp;nbsp;다니엘이 보았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 띠고 있었고,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으며 눈은 횃불 같았다. 팔과 발은 빛난 놋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단 10:5-6). 그런데 이 모습을 찬찬히 보라. 그러면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영광스러운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님의 모습과 똑같다. 흰옷과 금 띠, 불꽃 같은 눈, 빛난 놋 같은 발과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이 서로 평행적으로 연결된다(계 1:13-16). 그러므로 &amp;#39;인자 같은 이&amp;#39;란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 죄 없이 사명을 완수하고 승리하신 뒤 얻으신 천상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명칭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다니엘이 보았던 그리스도의 4가지 예표는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곧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죄 없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로 사명을 완수하시어 인자 같은 이가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는 인자 같은 이가 되셔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손대지 아니한 돌로 오셔서 이 세상 왕국과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깨뜨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보았던 그리스도의 네 가지 예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 승리와 영광, 재림과 영원한 통치를 함께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다니엘은 왜 메시아를 &amp;lsquo;인자&amp;rsquo;가 아닌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은 왜 메시아를 인자로 본 것이 아니라 인자 같은 이로 본 것인가? 이는 &amp;lsquo;인자&amp;rsquo;와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가 서로 같은 분이지만 서로 다른 상태임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한 표현은 &amp;#39;인자&amp;#39;였다. 그분은 단 한 번도 지상에 계실 때 자신을 가리켜 &amp;#39;인자 같은 이&amp;#39;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신 것은 그분의 인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실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다는 측면에서는 하나님이지만 이 땅에 육신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분은 아들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즉 육체를 가진 존재 그리고 인성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신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분 자신을 우리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 내어주시기 위함이다(마 20:28). 왜냐하면 흠 없는 그분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피 흘릴 육체를 입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죽으실 수 없기에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왜 지상에 계셨던 예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실 때에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칭호를 자주 사용하신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이유는 그분이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을 섬기되,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lt;/strong&gt;이다. 그분의 낮아지심은 단지 겉모양만 사람처럼 보인 것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배고픔과 피곤함을 겪으시고, 배척과 능욕을 당하시며, 실제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과 우리 인생이 다른 점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 제10장과 제12장에 나타나신 이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계신다. 이는 장차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승리를 함께 보여 준다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사람이 되어 받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신 뒤 하늘로 올라가 왕 노릇하고 심판하실 분이 되신 것을 암시하기 위함&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사람이 되시어 섬김과 희생의 길을 걸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셨고 또한 승천(昇天, ascension)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이기는 자가 되시어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계 3:21). 그리고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만유를 통치하실 것이다. 그렇다. 그분이 비록 지상에서는 사람으로 사셨지만, 죽고 부활하신 뒤에 천상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지니면서도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가지신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로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우리 인생도 구원을 받은 후 예수님을 따라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기는 자가 될 때에는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으신 것같이 이기는 자에게도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는 예수님의 영광만을 보여 주는 칭호가 아니라,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에게 그분이 주실 하늘의 신분도 표현하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것은 인자가 아니가 인자이었던 자였으나 하늘의 영광과 지위를 얻으신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였다. 그렇다. 그분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지녔으나 평범한 사람으로 그의 인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다. 그분이 지상 생애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셨을 대에는 하늘 구름을 타고 가시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으로 나아가 모든 권세와 영광과 왕국을 받으셨다. 그리고 모든 백성과 민족과 언어가 다른 이들로부터 섬김을 받으셨다. 이는 사람으로 오셔서 섬기셨던 그분이 하나님과 같은 영원한 통치자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는 표현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lsquo;인자&amp;rsquo;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권세를 가지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참 사람으로 오셨지만 원래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셨다.&amp;nbsp; 만약 그분이 군데군데마다 그분이 원래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분이 원래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간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이 이 땅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하늘에서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이전에 계시던 곳으로 다시 올라가실 분이라고 증언해 주고 있다(요 3:13; 6:62).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amp;ldquo;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야 비로소 내가 그인 줄 알&amp;rdquo;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된 &amp;lsquo;내가 그다&amp;rsquo;라는 표현은 헬라어 &amp;lsquo;에고 에이미&amp;rsquo;라는 것이며, 이는 그분이 단지 한 선지자가 아니라 본래 하나님으로 계셨던 바, 스스로 계신 하나님임을 드러내준다(요 8:28). 그렇다면 인성을 취하신 그분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예수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행하심으로 인자가 원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lt;/strong&gt;. 중풍병자를 향해 죄 사함을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기관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그분이 비록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분이 원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신다고 하면서 병자에게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다. 그러자 그가 일어났다. 이는 그분이 보이지 않는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이 눈에 보이는 치유를 통해 증명되신 것이다(마 9: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예수께서는 인자됨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한을 받으셨다&lt;/strong&gt;. 사도 요한은 아버지께서 그가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한이 그에게 주어졌다고 말했다(요 5:27). 여기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시험과 고난을 몸소 겪으셨고, 끝까지 죄 없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다. 그러자 그분에게 온 인류의 행위를 공의롭게 판단하실 인자가 되신 것이다. 고로 그분의 심판은 겉모양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과 행위를 모두 아는 심판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예수께서는 인자가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나타내셨다&lt;/strong&gt;. 왜냐하면 그분은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가진 권세를 자신의 편안함과 명예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 죄와 사망에 묶인 사람을 놓아 주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다. 인자의 권세는 군림하는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권세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예수께서는 장차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고,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권세를 가지셨음을 나타내셨다&lt;/strong&gt;(마 16:27). 그렇다. 이 땅에서 죄를 사하시고 생명을 주셨던 인자께서 마지막 날에는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초림 때에는 인자는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심판하시러 왕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낮아지신 인자와 영광스러운 심판주는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동시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어떤 권세를 가지고 계셨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권세를 가지셨고, 동시에 사람으로서 순종과 고난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죄 사함과 치유와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직분과 권위를 내 영광을 위해 쓰지 말고,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인자는 왜 고난받고 죽으시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자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막 10:45).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없다(요 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사람이 되어 오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할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고, 죄 없는 삶을 사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피 흘려 죽으셨다(막 10: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39;대속물&amp;#39;이라는 말은 헬라어 &amp;lsquo;뤼트론&amp;rsquo;과 연결되며 이는 속전, 속죄물, 석방금을 뜻한다. 노예나 포로를 풀어 주기 위해서는 어떤 값을 지불해야 했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을 놓아 주는 값으로 내어 주셨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선행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인자께서 대신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속죄(贖罪, atonement)라는 뜻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적어도 세 차례 분명히 예고하셨다.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고 죽임당한 뒤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고 말이다(막 8:31). 또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다(막 9:31).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죽임당한 뒤 삼 일 만에 살아나실 것까지 구체적으로 예고하셨다(막 10:33-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그러므로 인자의 고난은 우연한 실패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배신과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과 로마의 형벌이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피할 능력이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열두 군단이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어놓으신 것이다. 인자의 섬김과 희생은 인자가 걸어갈 필수적인 사명을 완수하는 길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그대로 거기서 멈추셨는가? 아니었다. 그분은 부활하시어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승리관)을 쓰셨다.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뒤 부활하여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히 2:9). 고로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께서 먼저 낮아지고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의 삶을 따르려는 성도도 섬김 없이 왕권만 탐하거나 희생 없이 영광만 구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대속의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니다. 죄인을 구속하는 속죄의 죽음은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만 감당하실 수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따를 것은 그분의 구속 사역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섬김과 순종과 자기희생의 길이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게 된 우리 인간은 이제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주께서 맡기신 사람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께서 사명을 완수하신 뒤 그분은 어떻게 되셨는가? 잘 아시다시피 그분은 부활하셨고 또한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계 3:21). 이는 그분이 거기에서 왕 노릇하며 심판하시는 분, 곧 인자 같은 이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다니엘이 본 인자 같은 이의 권세와 영광과 왕국은 결국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하여 얻으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충성하고 승리하신 뒤에 받으신 것이다. 먼저 그분은 인자로 오셔서 섬기셨고, 그 후에 하늘에 올라가시어 인자 같은 이가 되시어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어지는 다니엘 제8장의 환상은 예수께서 어떻게 인자 같은 이가 되시어 세상의 악한 왕을 끝내시는지를 잘 보여 준다. 벨사살 왕 삼 년, 곧 주전 575년경이었다. 다니엘은 을래강변에서 두 뿔을 가진 숫양과 큰 뿔이 있는 털 많은 숫염소 환상을 보았다(단 8:1-8).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장이 나타나 숫양이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뜻하고, 털이 많고 큰 뿔을 가진 숫염소는 헬라 왕을 뜻하며, 두 눈 사이에 나 있는 큰 뿔은 첫째 왕이라고 해석했다(단 8:20-21). 그가 바로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십 년 만에 죽었다. 그러자 그의 나라는 이제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셀류코스, 프톨레마이오스라는 부하 장수들에 의해 네 왕국으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권세는 앞선 알렉산더의 권세만큼 강하지는 못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바로 그 네 나라의 마지막 때에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한 왕이 일어날 것이며, 그가 거룩한 백성을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은 역사 속에서도 고스란히 성취되었으니 그는 바로 셀류코스 왕국의 안디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주전 215년에 태어나 주전 164년에 쉰한 살로 죽었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과 성전을 대적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마지막 때 하나님을 대적할 적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을 할 것이지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한 왕인, 그는 스스로 높아져 만왕의 왕을 대적하겠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는 어떤 존재, 곧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깨질 것이다(단 8:23-25). 그런데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amp;lsquo;사르들의 사르&amp;rsquo;이시다. 이것을 신약의 표현으로 하면 &amp;lsquo;주들의 주&amp;rsquo;, 곧 만주의 주이다(계 17;14). 그러므로 다니엘서 8장에 나오는 숫염소에서 나오는 한 왕이 손으로 말미암지 않은 존재, 곧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깨지는데, 이는 다니엘 제2장에서 이미 나온 바,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이 금 신상을 부서뜨린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권세를&amp;nbsp; 끝장내시는 것은 인간의 무기나 정치적 연합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인자 같은 이를 통하여 악한 왕의 권세를 끝내시는 것이다. 고로 장차 오실 인자 같은 이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로서 모든 짐승의 나라와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심판하실 분임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주어진 사역을 마치고 부활&amp;middot;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그리고 만유를 통치하고 계신다. 장차 때가 되면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다. 그때에는 인자 같은 이로 오셔서 먼저 익은 알곡 성도를 거두실 것이다(계 14;14-16), 그리고 곧이어 한 무리의 이기는 군대를 얻으신 예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왕들과 그 군대를 쳐부수실 것이다. 고로 장차 일어날 그분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은 초림처럼 낮고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능력과 큰 영광 가운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일어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 그분은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4:61-62). 또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와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 16:27).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의 영원한 왕권에는 통치만 아니라 의로운 심판(審判, judgment)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때 인자 같은 이에게 주어지는 권세는 세상 권세와 다르다. 그분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이 세우실 왕국도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세상에서 일어난 왕들은 죽고 나라의 주인도 바뀌겠지만, 예수께서 받으시는 통치권은 절대로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백성과 나라와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그분을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섬기게 될 것이다. 이 영원성 때문에 인자 같은 이는 단지 위대한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영광과 권세를 지니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영혼(정확히는 &amp;#39;영&amp;#39;)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의 영혼은 이 땅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저 하늘에서 창조되어 이 땅으로 보내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이, 어머니의 태에서 육체가 지어질 때 하나님께서 영혼을 그 육체 속으로 집어넣으신다.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이는 하늘에서부터 사명을 받고 이 땅에 보내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땅에 내려갔다가 다시 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 이 땅으로 보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이 된 뒤 과연 누가 다시 천국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이 땅에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lt;/strong&gt;이다. 사람이 범한 죄는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되며,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사람을 붙잡는다. 그러므로 그 죄가 가려지지 않으면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고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오셔서 흘리신 피가 자기 죄를 가린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믿고 죄를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둘째,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사람&lt;/strong&gt;이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들어간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생명 주는 영이 되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신다(고전 15:45). 사람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한 번 영접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삶과 상관없이 생명이 영구적으로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고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 3:5). 이 약속은 끝까지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과 회개를 계속 지키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것을 구별해야&lt;/strong&gt; 한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은 다 천국에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한 사람은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 되어 들어가며, 더 나아가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지위을 갖고 들어간다. 이처럼 하늘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은 이 땅에서의 충성과 섬김과 이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자신을 따른 열두 제자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예고해 주셨다(마 19:28). 또한 아버지께서 왕국을 맡기신 것같이 제자들에게도 맡겨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눅 22:29-30).&amp;nbsp;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역시 주와 함께 죽고 인내하는 사람은 주와 함께 살고 왕 노릇할 것이라고 했다(딤후 2:11-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천국에서 왕과 심판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권력을 탐하는 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먼저 섬김과 희생과 충성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고로 모든 성도들도 역시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수행하고 죄와 세상을 이겨야 한다. 자기 욕심을 위해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섬기고 영혼을 살리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견디는 사람이 하늘에서 왕적 지위가 주어지면 다스리는 보좌가 주어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하늘의 영광을 얻으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말로만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하고, 예수님을 따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늘의 영광을 원하는 사람은 먼저 지상에서 인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겨야 하며, 자기 유익만 붙잡지 말고 주께서 맡기신 영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고난을 참고 견뎌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가 오해와 손해를 만나더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아야 한다. &amp;ldquo;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amp;rdquo;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딤후 2:12). 인내는 하늘의 지위를 돈으로 사는 공로가 아니라,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열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섬기고 희생하며 겸손해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과정에는 발을 씻기고 병든 자를 고치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마침내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삶이 있었다. 우리는 결과와 칭찬만 바라보지 말고 작은 일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높여야 한다. 하늘의 영광만 탐하면서 땅에서 섬기지 않는 것은 인자의 길과 반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사람마다 받은 사명과 분량은 다르지만 충성의 기준은 같다. 주께서 맡기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진실해야 하고,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 이 모든 사역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리와 천국의 도래를 증언하기 위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며 정결함을 지켜야&lt;/strong&gt; 한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과거의 경험에만 의지하지 말고 오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살펴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함으로 악한 영이 붙잡을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회개는 사명을 가로막는 죄를 치우고 끝까지 이기는 자로 서게 하는 실제적인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니엘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왜 인자 같은 이로 보았는가? 그것은 인자의 삶을 살아내셨기에 인자 같은 이가 되셨음을 말해준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손대지 아니한 돌, 인자 같은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흰옷을 입은 이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하늘의 영광만 탐해서는 아니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amp;ldquo;이제는 언제나 잘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희생하고 겸손하며 사명에 충성하고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amp;rdquo;라고 결단해야 한다. 예수께서 어떻게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는지 보지 못하게 막는 악한 영과, 영광만 탐하게 하고 섬기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떠나가라고 명해야 한다. 잠든 영혼을 깨우고 먼저 인자로 사신 뒤 인자 같은 이의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신분을 얻는 길은 이 땅에서 높아지는 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기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위해 살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데 있다. 왕 노릇과 심판의 권세는 자기 영광을 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장식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고 진리를 지킨 이기는 자에게 맡겨지는 책임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와 인자와 인자 같은 이의 차이,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지신 권세, 대속의 고난과 죽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신 과정,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얻는 삶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와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모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왕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왕이며, 죄 없는 메시아로서 죽음을 통과하고 영광을 얻으셨다. 마지막에는 세상 왕국과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다. 인자로서 죄를 사하고 생명을 주는 권세를 나타내셨으며,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고난과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사명을 이루는 길이었고, 부활과 승천 뒤에는 인자 같은 이로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과 그곳에서 받을 지위의 조건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한다. 동시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회개하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녀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데 머물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여 상속자와 왕과 심판자의 신분을 얻도록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늘의 보좌는 땅에서 섬김을 외면한 채 영광만 탐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먼저 낮아지고 섬기시며 희생하셨다. 우리도 고난을 참고, 작은 일에 충성하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에게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은사와 권세도 자기 자랑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이르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인자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그 후에 인자 같은 이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섬기고 희생하며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인자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6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br /&gt; 이 설교는 다니엘서에 나타난 네 가지 예표를 통해&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구속 사역의 완성&lt;/strong&gt;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께서 비천한 &amp;#39;인자&amp;#39;로서 지상에서 섬김과 대속의 죽음을 실천하셨기에, 부활 후 하늘 보좌에서 영원한 통치권과 심판권을 가진 &amp;#39;인자 같은 이&amp;#39;의 영광을 얻으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사역을&amp;nbsp;&lt;strong&gt;고난받는 메시아와 승리하는 심판주&lt;/strong&gt;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하며, 성도들 역시 이 땅에서 낮아짐과 충성의 삶을 살 때 천국에서&amp;nbsp;&lt;strong&gt;왕 같은 지위와 신분&lt;/strong&gt;을 공유할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하늘의 영광을 소망한다면 반드시 현세에서&amp;nbsp;&lt;strong&gt;회개와 섬김의 사명&lt;/strong&gt;을 완수해야 한다는 영적 원리를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ChatGPT Image 2026년 9월 7일 오전 01_18_0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59d00637a7191e0722f749289b190e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779a07dec764392e64066f5f5f0c994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2342b296f643f2e3976c46145a93c1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bf5996bc086d135380660b687a1afe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5725564bb6cbab72fb14e919a1a313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90e9262ced28f5b3621b44a11b09b7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f67a0fc2a0b8795320fbd412c17dab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1fd5875b232176d97541a7781377c4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9e8167204a07790648c3527e023b77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6e0c34274e80f68d62282a51505fb0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6e9ec63641f58c87a9a0d2b5464c46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3129601a6e4a31bd25af92e01d1f46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ba6a99c1d55b35e8b66dd104130aa6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c53fe375e1873c66b0e7ce9263214b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b81dea4bbbd3713fb6c0ad5a01ed2c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The_Son_of_Man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4a855780bb7c3847795be6b7c75df94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다니엘서_속_그리스도의_영광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5e6e68acb4eb04021a7ad9f1c67a612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From_Cross_to_Thron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22/265/4e6ba1b00ad87d187bfdcbee002f6a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85)] From_Cross_to_Throne.pdf_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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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다니엘서</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인자</category><category>인자같은이</category><category>성경예표</category><category>메시아</category><category>대속</category><category>하나님나라</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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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5922#comment</comments>			<pubDate>Sun, 06 Sep 2026 21:40:51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79)]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와 어떻게 다른가? (다니엘 7:13~14)_2026-08-30(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5311</link>
				<description>&lt;p&gt;2026-08-30(주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9)]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와 어떻게 다른가? (다니엘 7:13~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duUZ7oWBU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duUZ7oWBU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7:13-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기업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지식으로만 아는 공부가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사시고 어떻게 이기셨는지를 배우며, 우리도 그분을 따라 이기는 자로 준비되는 공부인 것이다. 구약 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彌賽亞, Messiah)가 누구시며 어떤 사역을 이루실지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선지자들로서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은 네 명의 대선지자로서 메시아의 모습을 각기 다른 방면에서 예언했다. 이사야는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는 고난받는 종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사 53:4-6). 그리고 예레미야는 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하나님께서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며 죄를 사하실 것을 예언한다(렘 31:31-34). 또한 에스겔은 무너진 백성에게 새 성전과 그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보여 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완성된 나라를 소망하게 한다(겔 40-48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다니엘의 기독론은 이들과 차원이 다르다. 다니엘은 메시아를 단지 고난받고 죽는 종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다니엘에서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를 다스리는 우주적인 왕으로 선포한다(단 7:13-14). 이사야가 메시아의 대속적 고난을, 예레미야가 마음에 새겨질 새 언약을, 에스겔이 새 성전과 새 예루살렘의 소망을 강조한다면, 다니엘은 모든 세상 제국을 끝내고 영원한 왕국(王國, kingdom)을 세우실 메시아의 왕권(王權, kingship)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 자신도 예레미야처럼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심으로 다시 살아 나왔다(단 6:16-23). 이는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메시아에 대한 예표와 예언을 비롯하여 세속 제국 한가운데서 믿음의 지조를 지킨 한 사람이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되고, 그를 통해 왕들의 생각까지 바뀌는지를 실제 역사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장부터 제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과 메대의 권력 아래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개인적 승리의 역사다. 제7장부터 제12장까지는 장차 세상 제국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무너지며, 마지막에 인자 같은 이가 영원한 통치권(統治權, dominion)을 받는지를 보여 주는 민족적&amp;middot;우주적 승리의 묵시(默示, apocalypse)다. 앞부분은 &amp;ldquo;세속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amp;rdquo;에 답하고, 뒷부분은 &amp;ldquo;악한 통치 아래서 무엇을 소망할 것인가&amp;rdquo;에 답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를 보고 승진에서 밀리며, 때로는 감옥에 갇히거나 죽음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불의한 권력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라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동화되어 믿음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인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니엘서의 그리스도가 다른 대선지서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다른지,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승리가 무엇인지, 포로 소년 다니엘이 두 제국의 총리가 된 이유, 세 번의 신앙 시험,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의 선택, 인자 같은 이가 받을 영원한 왕국, 그리고 악한 통치 시대에도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어떻게 소망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서의 그리스도는 이사야&amp;middot;예레미야&amp;middot;에스겔서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네 명의 대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중에 이사야는 고난과 대속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멸시와 간고를 겪고, 찔리고 상하며,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는 여호와의 종을 예언했다. 그분이 고난받는 이유는 자기 죄가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다(사 53:3-7). 이사야의 그리스도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는 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다. 남유다는 율법의 돌판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 새 언약을 세워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며, 그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렘 31:31-34). 이 약속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성취되었다(눅 22:20). 예레미야의 그리스도는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통해 사람을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에스겔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새 성전과 하나님의 임재를 완성하는 분이다. 에스겔은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고,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은 바다를 살리며, 마지막 성읍의 이름이 &amp;ldquo;여호와삼마&amp;rdquo;,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고 불리는 환상을 보았다(겔 43:1-5; 47:1-12; 48:35). 에스겔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거하실 새 예루살렘의 완성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니엘의 그리스도는 좀 다르다. 전 세계 제국들을 심판하고 영원히 통치하는 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살던 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비롯한 세상 왕들이 절대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들 위에 참된 왕이 계시며, 마침내 하늘로부터 인자 같은 이가 와서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게 된다고 예언했다. 다니엘의 메시아는 단지 한 민족만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를 섬기게 하는 우주적 통치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사야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예레미야는 우리 안에 새 언약을 이루시는 그리스도를, 에스겔은 새 성전과 영원한 임재를 완성하시는 그리스도를, 다니엘은 모든 세상 나라를 정복하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는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이처럼 메시아에 대한 고난과 언약과 성전과 왕권이 합쳐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다니엘서 전반부와 후반부는 어떤 두 승리의 역사를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장부터 제6장까지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 빛난 개인적 승리의 역사다. 남유다는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니엘과 세 친구인 하나냐(사드락)와 미사엘(메삭)과 아사랴(아벳느고)는 주전 605년 느부갓네살의 제1차 침공 때 바벨론으로 끌려갔다(단 1:1-6). 그들은 왕족과 귀족 출신이었지만 포로가 되었고, 자기 나라와 성전과 익숙한 신앙 환경을 모두 잃었다. 그럼에도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정절을 지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니엘서의 전반부에는 세 가지 대표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제1장에서는 소년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졌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는 다니엘이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제정된 뒤에도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세 사건 모두는 세상의 명령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했을 그들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말해주는 사건들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그순간에 목숨보다 믿음을 선택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더 큰 은혜를 주셨다는 이야기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인 믿음의 승리는 단순히 위험에서 살아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순결과 지조를 지킨 네 소년에게 학문과 재주와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닫는 능력까지 더하셨기 때문이다(단 1:17). 그 결과 포로 소년들이 제국의 관리가 되었고,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석하여 높임을 받았다. 그들의 삶을 지켜본 이방 왕들은 마침내 다니엘과 세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심을 고백해야 했다(단 2:46-49; 3:28-30; 6:25-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다니엘서의 후반부인 제7장부터 제12장까지는 개인의 승리를 넘어선 민족적&amp;middot;우주적 승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네 편의 큰 환상(幻像, vision)이 나온다. 제7장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짐승과 인자 같은 이의 영원한 왕국 묵시가 나온다. 제8장에서는 을래 강변에서 두 뿔 가진 숫양과 숫염소의 충돌 묵시가 나온다. 제9장에서는 예레미야의 칠십 년을 깨닫고 기도하던 중 칠십 이레에 관한 계시를 본 것이 나온다.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는 힛데겔 강가에서 마지막 때까지 이어질 전쟁과 환난과 부활의 묵시를 받은 것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다니엘서의 언어 구성도 이 두 세계를 함께 보여 준다. 책은 히브리어로 시작하다가 바벨론 왕과 제국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제2장 중간부터 아람어로 기록되고, 제8장부터 다시 히브리어로 돌아온다. 포로 백성의 언어와 당시 국제 사회의 언어가 한 책 안에 함께 들어 있다. 다니엘은 이방 제국의 언어와 학문을 배웠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제국의 왕들이 알아들을 언어로도 하나님의 주권을 증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의 여섯 장은 믿는 한 사람이 세속 권력 아래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뒤의 여섯 장은 세상 제국들이 결국 누구의 손에 의해 세워지고 무너지는지를 보여 준다. 개인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왕들의 생각을 바꾸신다. 민족과 제국의 차원에서는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정해진 때가 되면 무너지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히 선다. 이것이 다니엘서가 보여 주는 승리의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소년 시절의 음식 시험부터 노년의 사자 굴 사건까지 평생 같은 믿음을 지켰다. 처음 한 번 뜨겁게 결단하고 끝난 것이 아니다. 제국이 바뀌고 왕이 바뀌며 지위가 높아진 뒤에도 그는 자신의 기도의 습관과 신앙의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말기에 이르러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주권과 장차 일어날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바사의 고레스 왕 제삼년에 받은 마지막 큰 계시가 다니엘서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 이어진다(단 10:1). 한 소년의 결단이 노년까지 계속되어 개인의 간증과 세계 역사의 묵시가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포로 소년 다니엘은 어떻게 두 제국의 총리가 될 수 있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에 끌려갈 때는 소년이었다. 그의 나이는 약 열네 살에서 열다섯 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느부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이스라엘 왕족과 귀족 가운데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지혜와 지식과 학문을 갖춘 소년들을 선발하게 했다.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하여 삼 년 뒤 왕 앞에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단 1: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가운데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그들의 이름까지 바벨론식으로 바꾸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가 되었다(단 1:6-7). 이름과 언어와 학문과 음식까지 바꾸어 여호와 신앙을 지우고 바벨론 제국에 충성하는 관료로 만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갈대아 학문은 배웠어도 바벨론의 신을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당시 그들이 바벨론식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에는 본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담겨 있었지만, 새 이름에는 바벨론 신들의 이름과 가치가 반영되었다. 제국은 그들의 겉모습과 호칭을 바꾸려 했으나 마음의 주인은 바꾸지 못했다. 오늘도 학교와 직장과 군대는 성도에게 세상의 가치와 언어를 익히게 한다. 필요한 지식은 배워야 하지만, 그 지식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상을 섬기게 할 때에는 마음의 중심을 내주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니엘이 두 제국에서 높임을 받은 이유&lt;/strong&gt;는 대체 무엇인가? 먼저 그것의 &lt;strong&gt;첫째 이유는 그들이 지켜낸 신앙의 순결과 지조 때문&lt;/strong&gt;이다. 왕의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무모하게 대항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지킬 길을 찾아내었다. 열흘 동안 채식을 주어 시험해 달라고 요청했고, 하나님께서는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 열흘 뒤 그들의 얼굴은 왕의 음식을 먹은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살이 윤택해 보였다(단 1:8-16). 믿음을 지키면서도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 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은사 때문&lt;/strong&gt;이다. 네 소년은 모든 학문과 지혜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고, 왕이 묻는 모든 일에서 박수와 술객보다 열 배나 나았다(단 1:17-20).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잊어버린 꿈의 내용과 해석까지 하나님께 받아 알려 주는 수준을 갖추었다. 그래서 바벨론의 온 지방을 다스리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되었다(단 2:46-49). 그들은 세상 학문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 위에서 필요한 학문을 충실히 익혀 쌓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충성되고 흠 없는 생활 때문&lt;/strong&gt;이다. 바벨론이 무너진 뒤 메대의 다리오는 나라에 백이십 명의 고관을 세우고 그 위에 세 총리를 두었는데,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와 고관들보다 뛰어났다. 왕은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 했다(단 6:1-3). 시기한 사람들이 그의 허물을 찾았지만 아무 근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니엘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던 것이다(단 6: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포로라는 신분으로 살았지만 그것을 핑계로 하여 대충 살지 않았다.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신앙에는 타협하지 않았지만 맡은 업무에는 누구보다 충성했고, 학문과 지혜와 행정 능력에서도 탁월했다. 그 때문에 제국이 바뀌어도 새 왕들은 그를 버릴 수 없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높임받는 길은 아첨과 타협이 아니라 거룩한 지조, 하나님이 주신 지혜, 그리고 흠 없는 충성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떤 세 시험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켰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소년 시절의 다니엘은 어떤 시험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것의 첫 번째는 &amp;#39;음식의 시험&amp;#39;&lt;/strong&gt;이었다. 왕의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졌고 율법이 금한 부정한 음식과 피를 제거하지 않은 고기가 포함될 수 있었다. 포도주도 바벨론 신에게 바친 것이었다. 그것을 거절하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출세의 길이 막힐 수 있었다. 그때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자기의 나라가 이미 망했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에 잡혀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법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에 뜻을 정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단 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는 &amp;#39;우상숭배의 시험&amp;#39;&lt;/strong&gt;이었다. 어느날 꿈을 꾼 느부갓네살은 자신을 위하여 금 신상을 세우고 낙성식에 모인 모든 관리에게 음악이 울릴 때 절하라고 명령했다.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였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건져 주실 것이라고 했고, 설령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다(단 3:16-18). 그들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어서만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죽어도 우상을 섬길 수 없었기에 지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그들의 결단을 하나님께서는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결박된 채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불은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했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으며 불 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불 가운데 네 사람이 걷는 것을 보았고, 넷째 사람의 모습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말했다(단 3:24-27). 왕은 자기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은 종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고 고백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는 &amp;#39;기도의 시험&amp;#39;&lt;/strong&gt;이었다. 메대의 다리오 왕 아래서 다른 두 명의 총리와 고관들은 다른 한 명의 총리인 다니엘을 시기하여 그를 제거하려 했지만 그의 업무에서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해 감사하며 기도했다(단 6:10). 위기가 왔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를 숨기거나 중단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 다음 날 새벽 왕이 달려와 다니엘을 불렀을 때 그는 살아 있었다. 왕은 다니엘을 끌어 올리고 모함한 자들을 심판한 뒤, 모든 백성에게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조서를 내렸다(단 6:19-27). 음식과 우상과 기도의 세 시험에서 믿음을 지킨 결과, 포로의 하나님이 제국의 왕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선포되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 성도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에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다니엘서 가르쳐주는 것은 &lt;strong&gt;하나님의 법을 선택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다니엘처럼 지혜롭게 대안을 제시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이 우상에게 절하라는 것이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타협할 수 없다. 불이익과 손해와 죽음의 위험이 있어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보다 말씀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한 사람을 보시고 그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충돌은 거창한 박해의 순간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amp;nbsp;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권할 때부터 그것은 시작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때에도 직장 상사가 회식을 핑계로 술을 먹이려고 할 것이다. 특히 군대에 들어가면 그러한 일은 대단히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그곳은 군대이니만큼 위계와 조직의 분위기가 신앙 양심을 가문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잔, 혹은 한 번, 잠시만 타협하라고 하겠지만 그 선택이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처음이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의 첫 시험도 한 끼 음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것처럼 보이는 첫 선택에서 뜻을 정해야만이 큰 시험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대학과 군대에서 이 시험을 겪어야 했다. 대학에 들어가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어 한 모임에 들어갔는데, 겉으로는 풍물과 마당극을 가르치면서 안에서는 철학 에세이를 읽히며 유물론과 좌경 의식화 교육을 했다. 공부가 끝나면 막걸리를 마시게 했다. 선배들은 자기들 중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도 다 마신다고 하면서 압박했지만 필자는 일 년 동안 술을 거절하고 창조 신앙을 지켰다. 결국 지도하던 선배가 &amp;ldquo;너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 교회로 가야 할 사람&amp;rdquo;이라며 나가라고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군대에서도 신참 환영회 때 술을 강요받았다. 하늘 같은 고참이 잔을 가득 따라 주고 모두 원샷을 했지만 필자는 마시지 않았다. 다시 기회를 준다며 협박했어도 거절했다. 그날 이후 매일 밤 불려 나가 무 저장창고에서 구타를 당했고, 주일에 교회에 가겠다고 하자 더 심한 위협을 받았다. 그래도 교회에 나갔다. 어느 날 참나무 몽둥이로 꼬리뼈와 허리를 맞아 의식을 잃었고, 겨울 시냇물에 던져진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훗날 허리의 디스크가 오게 되어, 5년뒤 전임전도사 시절에는 육 개월 동안 누워서 아무 것도 못한 채 지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신앙을 지키려면 당장 모든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친구들도 먼저 풀무불에 던져졌고 다니엘도 먼저 사자 굴에 들어갔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군폭력으로 인하여 후유증을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믿음의 지조를 기억하셨고 허리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후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일없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 어떤 이는 &amp;ldquo;목사님을 세상에서 돈을 벌지 않으니 그렇게 쉽게 말한다&amp;rdquo;고 핑계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세상에서 일하기 때문에 술과 부정과 음란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을 왜 선택했는지를 하나님은 다 아신다. 다니엘은 이방 제국의 관료였지만 믿음을 지켰다. 오늘날 성도도 직장과 학교와 군대에서 맡은 일은 탁월하게 하되 죄를 요구하는 명령에는 지혜롭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인자 같은 이가 받는 권세와 영광과 왕국은 어떤 나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절정은 &amp;#39;인자 같은 이의 출현&amp;#39;에서다. 제7장에서 네 짐승으로 상징된 세상 제국들은 무섭고 강하며 성도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영원하지 않다. 하늘의 심판정이 열리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신 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그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39;인자 같은 이&amp;#39;란 장차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도 대제사장 앞에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6:64). 다니엘이 본 메시아는 인간 왕들 가운데 조금 더 나은 왕이 아니다. 하늘에서 오시며 모든 민족의 섬김을 받고,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를 가진 전능한 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왕국은 세상 제국과 본질적으로 다른 왕국이다. 바벨론도 강했고 메대와 바사도 광대한 영토를 가졌지만 모두 멸망했다. 왕들은 교만하고 부패하며 자기 영광을 위해 백성을 사용했다. 그러나 인자 같은 이의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통치권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의와 공의로 다스려질 것이다. 그리고 짐승 같은 제국에 핍박받던 성도들이 그때가 되면 나라와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단 7:18, 22, 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다니엘서의 왕권 예언은 우리의 최종 신분과도 연결된다. 종말의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시고 이기는 성도들도 그분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일은 단지 고난을 참는 훈련만이 아니다.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왕적 기업을 맡을 사람으로 검증받는 과정이다. 작은 음식의 시험과 그리고 직장의 압력, 또한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만이 장차 천국에서 기업을 갖게 되며 큰 지위를 얻게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악한 통치 시대에도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어떻게 소망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통치자가 다스리게 될 때 백성으로 성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악한 통치자가 권력을 잡았다고 절망해야 하는가? 다니엘이 섬겼던 느부갓네살은 전 세계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 군주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그를 경고하시고, 교만으로 낮아졌던 기간을 지나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단 4:17, 28-37). 벨사살도 하나님 앞에서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드러나자 그날 밤 나라와 생명을 잃었다(단 5:22-3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니엘서는 나라의 흥망이 인간 왕에게만 달려 있지 않다고 선포&lt;/strong&gt;한다. 왕을 세우고 폐하며 시대와 계절을 바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단 2:20-21). 바벨론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메대와 바사에게 넘어갔고, 뒤이어 다른 제국들도 정해진 때에 일어났다가 또한 사라졌다. 제7장의 네 짐승, 제8장의 숫양과 숫염소, 제9장의 칠십 이레, 제10장부터 제12장의 전쟁과 환난은 역사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는 나라가 없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세상의 정치와 제도가 흔들리고 악이 만연해 보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된다는 소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lt;/strong&gt;. 성도는 불의한 권력에 아첨하거나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맡겨진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정의와 진리를 행하되, 최종 소망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에게 두어야 한다. 그분이 오시면 짐승 같은 제국의 권세를 끝내고 의로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의 지조를 지키는 한 사람을 통해 지도자의 생각과 나라의 방향을 바꾸신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타협했다면 이방 왕들은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걸고 말씀을 지켰기에 느부갓네살과 다리오는 그들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모든 백성에게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선포했다. 포로 한 사람의 믿음이 대제국의 왕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성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끌려가 적당히 섞이는 사람이 아니라, 학문과 업무에는 충성하면서 죄에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이 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영원한 왕국과 천국의 기업을 바라보며 견뎌야 한다. 완전한 통치는 인간 정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의 나라에서 오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다니엘서의 그리스도가 다른 대선지서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다른지,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승리, 포로 소년 다니엘이 두 제국에서 높임받은 이유, 음식과 우상과 기도의 세 시험,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의 선택, 인자 같은 이가 받을 영원한 왕국, 그리고 악한 통치 시대에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소망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네 대선지서의 기독론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예레미야의 새 언약, 에스겔의 새 성전, 다니엘의 영원한 왕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을 각기 다른 방면에서 보여 준다. 그중 다니엘은 모든 세상 제국을 끝내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우주적 왕을 가장 강력하게 선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개인적 승리와 우주적 승리를 함께 붙들어야&lt;/strong&gt; 한다. 제1장부터 제6장까지는 한 사람이 세속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는지를 보여 주고, 제7장부터 제12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제국과 역사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오늘 작은 시험에서 이겨야 장차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합당한 왕적 존재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lt;/strong&gt; 한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고,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으며, 다니엘은 사자 굴을 앞에 두고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지혜롭게 대안을 찾되 신앙의 본질에서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세상도 인정할 충성된 일꾼으로 세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고난이 온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풀무불과 사자 굴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지조가 검증되는 자리였다. 필자도 대학과 군대에서 술과 사상과 예배의 문제로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을 기억하시고 회복시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고난 속에서도 안전한 도움을 구하며 믿음과 생명을 함께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세상 통치자 때문에 절망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느부갓네살과 벨사살과 다리오 위에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이 계셨다. 오늘의 정치와 제도가 불완전해도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도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정의를 행하면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와 멸망하지 않을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맡은 학문과 직무에는 탁월하고 충성되어야 하며, 우상숭배와 죄의 요구에는 단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지조를 지키는 한 사람을 통해 지도자를 바꾸고 살아 계심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30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다니엘서는 이방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낸 인물들의&amp;nbsp;&lt;strong&gt;신앙 승리 사건&lt;/strong&gt;과,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는&amp;nbsp;&lt;strong&gt;묵시적 환상&lt;/strong&gt;이라는 두 가지 핵심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다니엘과 친구들이 목숨을 건 시험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고&amp;nbsp;&lt;strong&gt;여호와의 절대 신앙&lt;/strong&gt;을 증명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루며, 후반부에서는 세상 제국의 흥망성쇠를 넘어 영원한 통치권을 지닌&amp;nbsp;&lt;strong&gt;인자 같은 이&lt;/strong&gt;가 세울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예고합니다. 특히 이사야나 에스겔서가 고난받는 종이나 목자로서의 메시아를 강조했다면, 다니엘서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amp;nbsp;&lt;strong&gt;초월적이고 영원한 왕&lt;/strong&gt;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독보적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가 거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장차 임할&amp;nbsp;&lt;strong&gt;완전한 왕국&lt;/strong&gt;을 소망하며 당당히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 기독론(179) ChatGPT Image 2026년 8월 30일 오후 09_03_0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8f2e29a51e6c3d2d2b319678eee9cd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1552460994349c752c1bc6c0b0b4b2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0e2203cc7350a74c389130b1255c98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db114cafb86230cfa1ccb11eb34717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426dcb4183e04e2004ac7e9c91c42f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0386e1f3264e1c012d1a0ab0793a05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310fe020822c3682d748b9265fce38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f27dace6e0af6e3c5e1c4661421fc9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02c6c796cb2c8b638374fc700485e1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8f7c0c5f6930f186e78b5fbde7c75d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2c2ac0ec52c5087c698df0b072e9e0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a66694a49c19ac0d9265b2137c3782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 (1).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fb170753a6cbb11e7065afdb7f9ed9d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다니엘서의_그리스도와_신앙_승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b30651ab6d299d7d09eb43b00b84a3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792be26ef4a18380e05c65154e78e81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e5a09df8d98b9f7d6c2640cd90480f3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65b43d5dbe31607afe35b6e25d75d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237e41f9e9a39ce4d514be870744ad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3f97d3ac51de6718d41578b7f26cc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d73b87de45183cc753869e31935023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a23a37241378c134c205695ad18016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1d31d97c622663e17bd87d3dbb6248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9be382bcfd2b52d821b2db29d51834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35eca2de69e13657586bbcb774a85f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39636dab46b969e716e7e97e95f2ad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28849a9552ae7f3f8810aa7bc6d41c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b396233df098e92981af1b712b0e98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The_Eternal_King_in_Daniel.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e96e0dbc0a9a59dd255c231b79e330e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0ec534df49713c4a3027ee6463b584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6a9a0ab9ac4279f1e7a4d4db8103f30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3c3fe05607a5100a48e68565f8fce8b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f35fea386366a02e6320c95579902c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edf92553505fa81daec034924bfc99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b7aad280c484d60a960b362f87f1ac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45906f47eba2459c41cace94805c63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26e36d4163ec76c60d1d39ade55fea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Christ_the_Universal_King.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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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c790d76bba873630f4563c69e83fb0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b13a7945b5548fd499c58d0b1f2b3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5d128cd9efad9fe72e2ad65a5f818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b45ffa62a630eb0e96468d4a23747d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cf18e5a8d73bcd4facbeca575ed2eb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8ac7ad8dd8759d1a2f4595be893679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9ec1a75fe6f644a8088ae3677ef9a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3e50bbf02ae819ea8dde62b455c829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260c1a3428bf1dd1d3805cf0ccf5e8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5da61094e72c8980e111ce0b4517f4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9)] Daniel_s_Eternal_King.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11/265/03ea9e6387e300bbdadd15b4f8a972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다니엘서</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메시아</category><category>구약예언</category><category>성경공부</category><category>하나님나라</category><category>신앙의정절</category><category>영원한왕국</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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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5311#comment</comments>			<pubDate>Sun, 30 Aug 2026 21:36: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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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렘2:4~8)_2026-08-2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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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3(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예레미야 2:4~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2eFz6NXr-u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eFz6NXr-u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낮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4-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독론을 공부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인격과 삶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 삶으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다. 이러한 예언이 있었기에 우리는 약 이천 년 전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누가 참그리스도인지, 어떤 역사가 성령에게서 오고 어떤 역사가 악한 영에게서 오는지 분별하기 어렵다. 말씀으로 영혼을 채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선지자(사역시간: B.C.593~571년)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보좌와 새 성전과 생명수 강과 새 땅을 보았던 환상의 선지자였다. 그는 절망에 빠진 포로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실 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레미야(사역기간: B.C.627~561)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자기 민족이 죄로 무너지는 전 과정을 보았다. 성이 포위되고 백성이 굶주리며 마침내 성전과 성읍이 불타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는 눈물과 탄식과 비통함이 배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예레미야 시대에 멸망하게 두셨는가?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한 성전과 다윗의 후손이 있었는데도 왜 예루살렘을 버리셨는가? 예레미야서 1장부터 30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세 가지 이유가 드러난다. 첫째,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타락했다. 둘째,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셋째,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차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옛 이스라엘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고, 회개를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죄를 계속 쌓는다면 같은 원리 아래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심판을 피하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 멸망의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과 오늘 대한민국과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는 어느 시대에 어떤 사명을 감당한 선지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를 이해하려면 동시대를 전후하여 활동한 네 선지자의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로, 이사야는 예레미야보다 약 백 년 앞선 주전 740년경부터 680년경까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다. 당시의 세계 제국은 앗수르였다. 왕족 출신이었던 이사야는 예루살렘 왕궁을 중심으로 왕들과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며 장차 올 심판과 메시아의 소망을 선포했다(사 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제십삼년인 주전 627년경에 부름을 받았다. 그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시대를 지나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사십 년 동안 말씀을 전했다(렘 1:1-3). 예레미야서 52장의 부록은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주전 561년경 바벨론에서 석방되는 사건까지 전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중심 사역은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셋째로, 다니엘은 주전 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 때 끌려갔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훈련받은 뒤 제국의 통치 현장에 서서 바벨론과 메대&amp;middot;바사와 그 뒤에 일어날 나라들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단 1:1-6). 그러므로 다니엘을 계시의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넷째로, 에스겔은 주전 597년 제2차 포로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주전 593년경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부름받았다(겔 1:1-3). 그는 약 이십이 년 동안(B.C.593~571) 하나님의 보좌와 성전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환상으로 보았으므로 환상의 선지자라고 부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 세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 있던 장소와 사명이 달랐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멸망의 현장을 보았고,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 공동체에서 환상을 보았으며, 다니엘은 제국의 왕궁에서 열방의 장래를 계시받았다. 그중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이 굶주림과 칼과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성전까지 불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예레미야애가는 그 아픔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예루살렘은 과부처럼 되었고, 절기를 지키러 오던 길은 적막해졌으며,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어린 자녀들은 원수에게 끌려갔다(애 1:1-6). 예레미야는 딸 시온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애 2:11). 또 그의 눈에서는 백성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시내처럼 흘러 쉬지 않았다고 했다(애 3:48-49). 선지자의 눈물은 민족의 죄와 하나님의 아픔을 함께 품은 눈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레미야는 폐허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아침에도 이슬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어둠 뒤에 새날이 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끝나지 않았음을 노래했다. 진멸되어 마땅한 백성을 완전히 끊지 않고 남은 자를 두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붙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사랑한다. 필자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 심판받아 마땅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진실한 회개를 받으시고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며 다시 사명의 길에 세워 주셨다. 우리가 지금 어둠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을 붙들고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뿌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신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눈물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온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의 타락은 왜 멸망을 불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에 멸망이 임한 &lt;strong&gt;첫째 이유는 사회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온 백성과 모든 지도층이 함께 타락했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로, 백성들&lt;/strong&gt;은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고 영적인 음행을 저질렀다(렘 2:20).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손으로 만든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절했다. 유다의 신들은 성읍의 수만큼 많아졌고, 수치스러운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은 예루살렘 거리의 수만큼 많아졌다(렘 2:28; 11:13). 하나님께 제사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찾는 혼합 신앙이 온 땅을 덮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회 전체가 거짓과 탐욕과 폭력에 물들었다. 십계명을 무시하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며, 진리를 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더 두려운 일은 백성을 깨워야 할 &lt;strong&gt;지도자들도 함께 무너졌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예레미야 2장 8절은 네 부류의 지도자를 지적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무익한 것을 따랐다. 직분은 남아 있었지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진 상태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하고, 율법을 다루는 레위인은 말씀의 뜻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왕과 관리들은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만 전해야 했다. 그러나 제사장과 선지자는 탐욕을 따르고, 관리들은 권력을 사유화하며, 백성은 그 거짓을 좋게 여겼다. 부패한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패를 환영한 백성의 문제이기도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다고 말해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신다. 약속의 자손이라는 신분도, 약속의 땅에 산다는 역사도, 다윗의 후손이 왕으로 있다는 제도도 죄를 계속 지을 권리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고 해도 정의와 진리가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찾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도자의 타락은 한 사람의 사생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가 불의를 법으로 만들면 백성이 그 길을 따라가고, 제사장이 말씀을 굽게 해석하면 성도들은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며, 선지자가 받지도 않은 환상으로 평안을 선포하면 멸망이 눈앞에 와도 준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직분을 맡을수록 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백성 역시 지도자가 자기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고 해서 그 불의를 좋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정치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진리를 감추며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긴다면 소망이 끊어진다. 나라를 살리는 길은 자기편의 잘못을 덮고 상대편만 정죄하는 데 있지 않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진리를 회복하고, 교회가 먼저 탐욕과 거짓과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에 대한 거짓 확신은 왜 무너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나라가 결코 망하지 않을 이유를 여럿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받은 할례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다윗의 후손이 왕좌에 앉아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 성을 버리실 수 없다고 확신했다.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도 곧 돌아올 것이며 모든 일이 평안하게 끝날 것이라고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39;언약&amp;#39;은 하나님을 버려도 안전하다는 보증서가 아니다. &amp;#39;성전&amp;#39;은 죄를 감추는 부적이 아니며, &amp;#39;다윗 왕조&amp;#39;도 왕과 백성이 하나님께 반역할 수 있는 면허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에 선 예레미야를 통해 &amp;ldquo;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amp;rdquo;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고 이웃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우상에게 가지 않아야 그 땅에 살게 하신다는 말씀이었다(렘 7: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선지자들은 상처가 깊고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도 &amp;ldquo;평강하다, 평강하다&amp;rdquo;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평강이 없었다(렘 6:13-14). 그들은 백성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회개를 막았다. 멸망이 다가오는데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거짓말이다. 참선지자는 백성이 싫어하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amp;ldquo;예수님을 믿었으니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amp;rdquo;, &amp;ldquo;교회에 다니니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amp;rdquo;라고 말한다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평안과 다르지 않다. 믿음은 구원의 출발이지만, 참된 믿음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신앙의 외형을 붙들면서 우상숭배와 탐욕과 음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성전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백성이 그 건물만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가 성전을 불태우도록 허용하셨다(왕하 25:8-10).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웅장한 건물도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작고 연약한 공동체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경력과 직분과 교단과 건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 안에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 말씀을 들을 때 죄를 끊고 있는지, 지도자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거짓 확신을 버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멸망을 피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하면 왜 소망이 끊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예레미야 시대까지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악한 길과 행위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백성은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목을 굳게 했다. 조상들의 죄를 보고도 더 악하게 행했다(렘 7:25-26; 25: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5: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첫 메시지는 분명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악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정하신 뒤에는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제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항복하면 자기들의 생명은 보전하고 성읍의 완전한 파멸도 줄일 수 있으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했다(렘 21:8-10; 38: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은 이 말을 매국적인 발언으로 여겼다.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며 진흙 구덩이에 던졌다(렘 37:15-16; 38:4-6).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사랑해서 항복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었으므로 살아남아 훗날의 회복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었다.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한 결과, 백성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겪었고 성과 성전은 불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자기 땅에 오셔서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말씀을 거절했다. 예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 자녀들을 모으려 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탄식하셨다(마 23:37-38).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면 결국 듣지 못하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분노만 자극하거나 정치적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죄인지 말씀으로 밝히고, 먼저 교회와 성도가 회개하며, 지도자와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해야 한다. 회개 없는 집회와 구호만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을 듣고 삶을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말은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은 아니다. 때로는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게 하고, 잘못 선택한 길을 인정하게 하며, 이미 시작된 징계를 겸손히 받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말씀을 거절하면 선지자만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마지막 살길도 잃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죄가 차고 찰 때 땅이 주민을 토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셋째 이유는 오랫동안 연기된 죄악의 분량이 예레미야 시대에 가득 찼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만 죄를 없었던 일처럼 여기시지는 않는다. 죄가 반복되고 회개가 없으면 개인과 가정과 민족 안에 그 결과가 쌓인다. 마침내 정해진 분량이 차면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은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경고한다. 그들은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고, 근친상간과 동성 간의 음행과 수간 같은 가증한 일을 행했다(레 18:6-23). 그 죄 때문에 사람만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땅도 더러워졌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주민을 토해내게 하셨다. 이스라엘도 같은 죄를 따르면 똑같이 토해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찼을 때 그 땅을 차지했다(창 15:16). 그러나 자신들도 우상숭배와 음행을 반복하면서 땅을 더럽혔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사실이 죄에 대한 심판을 막아 주지 못했다. 예레미야 시대가 되자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낼 때가 되었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바벨론을 섬기며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을 정하셨다(렘 25:11-12). 이 칠십 년은 우연한 정치적 패배의 기간이 아니라, 땅이 안식을 누리고 백성이 죄의 결과를 담당하는 징계의 시간이었다.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는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가 있었지만, 분량이 찬 뒤에는 정해진 징계를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회개는 언제나 지금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원리를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해 보았다. 이스라엘이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을 겪은 것처럼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삼십오 년을 겪었다. 이것을 성경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우상숭배와 죄를 어떻게 다루실지를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본다. 남은 삼십오 년의 징계를 더 겪을 것인지, 아니면 회개로 긍휼을 입을 것인지는 오늘 우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개인의 고난을 볼 때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모든 장애와 질병을 어떤 한 죄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축사와 회개의 현장에서 조상과 본인이 쌓은 죄가 악한 영이 역사할 근거가 되어 몸과 삶에 고통을 줄 수 있음을 보아 왔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과 가문의 죄를 살피고 진실로 회개하며, 필요한 돌봄과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 역시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다.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을 채운 뒤가 아니라 천 번에 가까운 회개를 드리던 중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고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 주셨다. 횟수가 공로가 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죄까지 자기 죄처럼 아파하며 진실로 돌이킨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이다. 심판의 원리는 엄중하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회개하는 자에게 열려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백성에게 전한 세 가지 길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lt;strong&gt;백성에게 전한 길은 세 가지&lt;/strong&gt;로 정리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첫째,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lt;/strong&gt;이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 바알과 아세라와 여러 우상에게 생명과 안전을 구했지만 그 신들은 위기의 날에 구원하지 못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아간다는 것은 입술로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버리고 악한 길과 행위를 고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자식들에게 돌아오면 배역함을 고치겠다고 하셨고, 가증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셨다(렘 3:22; 4:1). 회개했는데도 계속 같은 죄를 붙들고 있다면 아직 그 죄에서 온전히 돌이킨 것이 아니다. 진실한 회개는 죄짓고 싶은 충동이 약해지고 성품과 행동이 달라지는 열매로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받아들이는 길&lt;/strong&gt;이다. 엎질러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오면, 징계를 부정하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생명을 보전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징계를 겸손히 받으면서 남은 자가 되어 다음 회복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고 자기 죄를 인정하는 것이 살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징계의 기간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와 희망을 붙드는 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끝없는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날에 다윗과 같은 왕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하시고, 돌판 바깥에만 있던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렘 30:9; 31:31-34).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게 한다. 사람의 힘으로 지키지 못했던 말씀을 성령께서 마음에 새겨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게 하시는 날이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회개, 징계의 수용, 회복의 소망&lt;/strong&gt;은 서로 떨어진 말씀이 아니다. 회개할 때에는 전심으로 돌아와야 하고, 이미 시작된 징계는 겸손히 받아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징계 자체를 마지막 목적으로 삼지도 않으신다. 남은 자를 정결하게 하여 새 시대와 새 언약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대한민국과 우리는 멸망을 막기 위해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지난 주 화요일(2026.08.18)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 57개를 보유했다고 언급했고, 국내에서는 80개에서 120개까지 추정해 왔다고 한다. 수많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한때 가득 찼던 교회가 비고 기독교 신앙이 급격히 약해졌다. 우리도 예외라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멸망하는 징조는 외부의 무기만이 아니다.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백성이 불의를 좋게 여기고, 회개를 외치는 말씀을 막을 때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자기편이면 잘못을 덮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정죄하는 태도도 회개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는 백성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릴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무속과 불교와 조상 제사의 영향을 받아 왔다. 필자는 약 오천 년의 무속적 전통과 천 년의 불교적 영향과 오백 년의 조상 제사 문화 속에서 수많은 우상숭배가 쌓였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885년 선교사들을 이 땅에 보내 복음과 성경을 전하게 하셨고, 한글 성경을 통해 백성이 말씀을 읽게 하셨다. 이 은혜는 우리만 잘 살라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먼저 자신과 가정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우상과 물질과 권력, 거짓과 음행과 탐욕을 자백하고 끊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자백하는 자를 깨끗하게 하며,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근거를 마련한다(요일 1:7-9). 필자는 진실한 회개와 축사를 통해 개인과 가정에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역사가 약해지고 끊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민족의 죄도 내 일이 아니라고 뒤로 미루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다니엘은 포로지에서 조상과 백성의 죄를 자기 죄처럼 고백했다(단 9:4-19). 우리도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와 백성이 지은 우상숭배와 불의와 음란의 죄를 품고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셨다. 오늘도 한 사람의 진실한 회개와 한 공동체의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나라를 향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가장 실제적인 길이다. 죄의 분량이 차기 전에 돌이키면 심판을 피할 수 있고, 이미 시작된 징계도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단축될 수 있다. 필자는 자신의 회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형벌을 긍휼로 덜어 주시고 사명의 길을 다시 열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은혜를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입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한 번 눈물을 흘렸다는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비추고, 드러난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그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행동을 고쳐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역사를 끊기 위해 꾸준히 회개하고 축사를 받으며, 성령의 다스림을 따라 성품과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그 열매가 나타날 때 우리의 회개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실제적인 힘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되고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죄라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죄인을 살리기 위해 눈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회개를 외치는 교회와 성도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마지막까지 사용하실 소망이 있다. 대한민국이 회개와 천국 복음을 열방에 전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민족으로 쓰임받도록 우리는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이 시대의 한 무리로서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통곡과 한 공동체의 진실한 회개가 가정의 저주를 끊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심판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amp;ldquo;너희 때문에 이 성을 살려 주겠다&amp;rdquo;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죄를 끊으며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때 개인의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는 사명에도 참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이 멸망한 세 가지 이유, 그리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백성의 굶주림과 성전의 파괴를 보며 눈물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소망을 놓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가 함께 타락했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거절했으며,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찼기 때문에 멸망했다. 할례받은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조도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지켜 주지 못했다. 외형적인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고, 심판이 확정된 뒤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라고 했으며, 징계 가운데서도 칠십 년 뒤의 회복과 새 언약의 소망을 붙들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지만 회개하는 자를 완전히 끊지 않으시며 남은 자를 통해 새 일을 시작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같은 말씀 앞에 서 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불의를 사랑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회개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다른 사람만 정죄하지 말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의 죄를 먼저 품고 회개해야 한다. 우상숭배와 거짓과 탐욕과 음행을 끊고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절망의 말이 아니라 살길을 여는 복음이다.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악한 영의 역사는 약해지고,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새 사명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징계가 시작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미래와 희망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통곡과 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고, 이 민족이 마지막까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나라로 쓰임받도록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죄를 품고 울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의 설교를 바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amp;nbsp;&lt;strong&gt;멸망의 근본적인 원인&lt;/strong&gt;을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인이 모두 타락하여 소망이 끊긴&amp;nbsp;&lt;strong&gt;영적 부패&lt;/strong&gt;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한&amp;nbsp;&lt;strong&gt;거역의 죄&lt;/strong&gt;, 그리고 땅조차 주민을 토해낼 정도로 가득 찬&amp;nbsp;&lt;strong&gt;죄악의 임계점&lt;/strong&gt;을 멸망의 세 가지 이유로 제시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눈물 섞인 애통함과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인자하심&lt;/strong&gt;을 강조하며, 비극적인 심판의 현장 속에서도 회복의 소망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오직 진실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영적 돌이킴&lt;/strong&gt;만이 민족과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강력히 촉구하는&amp;nbsp;&lt;strong&gt;영적 경성&lt;/strong&gt;의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ChatGPT Image 2026년 8월 23일 오후 08_50_3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6a08864288aa6cf41b24f46239f5fe9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2c10f1e3350c5af40f77b4917f1d5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314cabda3e9be04a6c6d1abd0e4eb3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1965e2fc7b37fdc727ecc4e080ad4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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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85c977eb86368e5a96987efd99cee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4d82e17ddd1e36147d9de234fa5c6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8cdfa7ae6a5a652b8674c650bef263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c790128d88eadf9bc9ce4e4031e19a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36e5800f7db832110c411eab7fcdb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28c34ffa0d73d20818b244e02e9ff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0e4d05f4cc38b9b94bec66dc6874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eb58fdf00af9e35730e671a946a18d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ccef45f9b53dde8622f3469f65cac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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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bccbecd2fff2cffd212db840206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9398213636dddbd2418bf90357ed2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5802e703c126d5500d58d510539fc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22af6fd1634a290510d0c200024938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322cba1a70bc29c481bb00fc69de6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795529d1d09665bd550046e47820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b7aa1d07a3deae557e1473a00f8d59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f2c2f24c243fc7ad5dfecbd071fd3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d9cd96f0db6834e058786d0485fb2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0b7d517b0bb1b838d83bb9319366ce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6426c3c3eccdfa0759eb3ee1d9b56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8f3f242e42ed3c082c24eca95616f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01cb56a10c2647ea75c600bdc3bc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fc27a7d09976bf2ea759da72dec8ca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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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예레미야</category><category>이스라엘멸망</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성경공부</category><category>지도자의타락</category><category>우상숭배</category><category>하나님의심판</category><category>예루살렘</category><category>신앙회복</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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