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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낮예배 영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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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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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6 Jun 2026 02:24: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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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copyrigh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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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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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28)] 다윗의 아들 솔로몬(06)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아가1:14, 2:2)_2026-06-2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0791</link>
				<description>&lt;p&gt;2026-06-21(일) 주일낮2부예배(투박하게 요약한 글)&lt;/p&gt; &lt;p&gt;제목:[기독론(128)]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다윗의 아들 솔로몬(06)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아가1:14, 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abDcwFeBc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abDcwFeBc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15px; line-height:1.8; margin:0; padding:0; } .sermon-title { font-size:16px; font-weight:bold; color:#3868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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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주님을 아는 만큼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고 살 수 있다. 천국의 실제를 알아야 지금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알 수 있다. 천국의 미래를 모르면 현재를 준비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구약 성경에는 신약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고, 신약 성경은 구약에 감추어진 비밀을 열어 보인다. 아가서는 그 둘을 잇는 열쇠 중 하나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앎이 삶을 바꾸고, 그 앎이 천국을 준비하게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가 솔로몬의 존재 목적과 어떻게 맞닿아 있으며, 그 안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가서를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신부, 순결한 백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솔로몬은 왜 이 땅에 보냄을 받았으며, 그가 성전을 지은 목적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가 역대상 22장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2:7-9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보라 한 아들이 내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안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amp;#39;샬롬(shalom)&amp;#39;에서 왔다. 평화, 안식, 온전함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솔로몬은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아버지 다윗이 모든 대적을 물리쳐 놓았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세대가 있고, 그 전쟁의 열매를 누리는 세대가 있다. 부모 세대가 회개하고 영적 싸움을 감당하면 자녀 세대는 그 수고의 결실 위에서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부모 세대가 회개하지 않고 영적 전쟁을 외면하면 자녀들이 그 고난을 대신 짊어지게 된다. 솔로몬의 태평성대는 다윗의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약 스무 살 즈음에 왕이 되었다. 형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등에 업고 먼저 왕위를 선포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자,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솔로몬을 서둘러 왕으로 세웠다. 갑작스러운 즉위였던 만큼 솔로몬은 스스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자 그는 당시 번제단이 있던 기브온으로 나아가 일천 번제를 드렸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솔로몬은 부도 장수도 명예도 아닌, 오직 듣는 마음, 곧 지혜를 구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그 구함을 기뻐하셔서 지혜뿐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들, 부와 장수와 영광까지 더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동방 사람들의 지혜도 연구하고, 애굽 사람들의 지혜도 배웠다(왕상 4:29-30).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에 더하는 것이었다. 세상 지식은 배워야 세상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면 헛되고 헛되다.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전 1:1-2).&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이후 세 가지 사명을 갖게 되었다. &lt;strong&gt;첫째로 평화의 왕이 되는 것&lt;/strong&gt;이요, &lt;strong&gt;둘째로 지혜의 왕이 되는 것&lt;/strong&gt;이며, &lt;strong&gt;셋째로 성전을 건축하는 왕이 되는 것&lt;/strong&gt;이다. 평화는 아버지 다윗이 전쟁을 통해 만들어 준 것이고, 지혜는 하나님이 기브온에서 직접 주신 것이자 솔로몬이 동방사람의 지혜와 애굽사람의 지혜를 배운 것이다. 그리고 성전 건축은 그 평화와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째인 스물네 살 즈음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기원전 966년의 일이다. 무려 7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성전을 완공하였다. 이것이 솔로몬의 존재 목적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60세까지 살았으니, 서른 살에 이미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룬 것이다. 나머지 30년은 그 성전 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왜 성전을 짓는 것이 솔로몬의 존재 목적이었는가? 그것은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듯이, 솔로몬은 성전을 짓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직접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성령이 믿는 자들의 영 속에 거하실 때 비로소 참된 성전이 이루어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전 3:16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돌과 백향목과 금으로 지은 성전은 외형적 그림자였다. 실제 성전은 성령이 거하시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 곧 교회다. 솔로몬이 이 땅에 온 목적은 바로 그 진리를 예표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나서 쓴 아가서는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참된 성전인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계시하는 책이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솔로몬이 쓴 세 권의 지혜 문학은 각각 무엇을 가르치며, 아가서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남긴 책은 크게 세 권이다. &lt;strong&gt;잠언,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lt;/strong&gt;다. 시편 72편과 127편이 솔로몬의 작품으로 추가되지만, 핵심 지혜 문학은 이 세 권이다. &lt;strong&gt;솔로몬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었다&lt;/strong&gt;고 열왕기상 4장 32절은 전한다. 그러나 그 방대한 저작 중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선별되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이 세 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후 두 종류의 지혜를 더 연구하였다. 하나는 동방 사람들의 지혜요, 다른 하나는 애굽 사람들의 지혜다. 동방의 지혜는 욥기에 나타나 있다. 욥이 갑자기 재산을 잃고 몸에 악창이 생기자 동방의 지혜자들이 몰려왔다. 욥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들이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였다. 고난이 있으면 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논리다. 욥은 이에 맞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고, 두 진영의 논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단순한 도식을 초월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애굽의 지혜는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보편 법칙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잠언이 바로 이 방식을 따른다. &amp;quot;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amp;quot;(잠 10:12), &amp;quot;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amp;quot;(잠 15:1), &amp;quot;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amp;quot;(잠 11:25). 무엇은 무엇이고 무엇은 무엇이다, 혹은 무엇이면 무엇이 된다는 식의 명제들이다. 그러나 잠언은 이 모든 지혜의 지향점을 하나님 경외에 둔다. &amp;quot;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amp;quot;(잠 1:7, 9:10).&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전도서는 솔로몬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책이다. 그는 포도원도 가꾸고, 연못도 파고, 노비도 사고, 금은보화도 모으고, 노래하는 남녀도 두었다. 학문도 연구하고, 철학도 탐구하고, 온갖 즐거움도 누려 보았다. 그 모든 것을 다 해 본 결론이 전도서 1장 2절의 선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상의 공부로는, 세상의 쾌락으로는, 세상의 지혜로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마지막 심판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지를 준비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전도서 12장 13절은 &amp;quot;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amp;quot;로 결론을 맺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가서는 무엇인가? 잠언이 &amp;quot;어떻게 살 것인가&amp;quot;를 가르치고, 전도서가 &amp;quot;무엇이 헛된가&amp;quot;를 가르친다면, 아가서는 &amp;quot;무엇이 본질인가&amp;quot;를 가르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가서는 솔로몬이 이 땅에 보냄받은 목적인 성전이 무엇인지를 문학적으로 계시한 책이다. 솔로몬이 외형적으로 돌과 금으로 성전을 지었다면, 아가서는 그 성전의 실제 의미&amp;mdash;성령이 거하시는 인격적 처소로서의 교회&amp;mdash;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가르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 권의 책은 단계를 이루며 상승한다. 첫째로, 잠언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친다. 가정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잠언에서 멈추면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양 착각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전도서는 그 착각을 깨뜨린다.&lt;/strong&gt; 잠언의 지혜를 다 실천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려 보았더니, 결론은 헛되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혜롭게 살고,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도,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헛되다. 그렇다면 진정한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 심판 앞에 서는 것, 그날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라는 결론에 이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아가서는 그 준비가 무엇인지를&lt;/strong&gt; 가르친다. 마지막 심판 앞에 서는 것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신부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며 신앙의 최종 목표다. 아가서는 그 신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가,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강한 것인가를 문학적으로 계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잠언과 전도서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지혜를 가르친다면, 아가서는 그 모든 지혜가 향하는 종착점,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연합을 계시한다. 그래서 아가서가 지혜 문학의 최고봉이다. 최고봉은 가장 화려하거나 가장 쉬운 책이 아니다. 가장 깊고, 가장 어렵고, 그렇기에 가장 귀한 진리를 담은 책이 아가서다. 그 진리를 발견하는 데는 성령의 감동이 필요하고, 오랜 묵상이 필요하며, 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아가서 1장 1절의 표제는 &amp;quot;솔로몬의 아가라&amp;quot;고 선언한다. 아가서 안에서 교회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가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아가서는 어떤 장르의 문학 작품이며, 왜 번역이 어렵고 오해를 받아 왔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한마디로&lt;strong&gt; 가극시(歌劇詩&lt;/strong&gt;)다.&lt;strong&gt; 노래로 연극하기 위하여 쓴 시&lt;/strong&gt;다. &lt;strong&gt;등장인물들이 순서에 따라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구조인데, 무대 지문도 없고 대사도 없고 오직 노래만 있다. 한 인물이 노래하면 다른 인물이 화답하고, 예루살렘 딸들이 합창으로 끼어드는 형식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히브리어 원문에 누가 노래하는지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브리어는 동사와 명사의 성(性)이 구분되기 때문에, 원문을 면밀히 살피면 어느 구절이 남성의 말이고 어느 구절이 여성의 말인지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간과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히게 된다. 번역의 문제도 심각하다. 1장 12절에 나오는 단어는 개역개정에서 &amp;quot;침상&amp;quot;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은 &amp;quot;식탁&amp;quot;이다. 왕이 여인을 침상으로 데려간 것이 아니라 식탁으로, 곧 잔치 자리로 초대한 것이다. 2장 4절의 &amp;quot;잔치집&amp;quot; 역시 원문은 &amp;quot;포도주의 집&amp;quot;이다. 이러한 번역 오류들이 겹치면서 아가서는 마치 야한 소설처럼 읽히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아가서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lt;strong&gt;신앙과 관련된 단어가 사실상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amp;quot;하나님&amp;quot;, &amp;quot;여호와&amp;quot;, &amp;quot;기도&amp;quot;, &amp;quot;예배&amp;quot;, &amp;quot;회개&amp;quot;, &amp;quot;경외&amp;quot;&amp;mdash;이런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lt;/strong&gt;. 8장 6절에 &amp;quot;여호와의 불&amp;quot;이라는 표현이 한 번 등장하는데, 이것도 번역상의 문제다. 히브리어 원문은 최상급을 표현하는 어법으로 &amp;quot;가장 강한 불&amp;quot;이라는 뜻이지, 여호와를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등장인물과 배경 지명도 실존하지 않는다. 술람미 여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열왕기상 11장에 솔로몬의 왕비 700명과 후궁 300명이 나오지만 그 이름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바알하몬이라는 지명도 성경 지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장소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실존하지 않는 인물과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배경으로 이 책을 썼는가? 그것은 아가서가 특정한 실제 사건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담기 위해 가상의 소재를 빌린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랍비들은 아가서를 정경(正經)에 반드시 포함시켰다. 그들은 아가서가 그 어떤 책보다도 중요한 책이라고 선언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연애 이야기처럼 보이고, 신앙 용어도 전무하며, 등장인물과 배경마저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다. 그들이 본 것은 문자 너머에 감추어진 영적 실재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 없이 읽으면 청춘 남녀의 에로틱한 이야기로 흐른다. 조금 더 신앙적으로 본다 해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이야기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읽을 때, 그 안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하나님의 경륜, 사랑의 실체가 환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아가서는 바로 그 이중의 비밀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은 책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를 읽고 눈물 없이는 넘길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수천 년 전 솔로몬이라는 한 왕이 쓴 노래 속에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다. 그 놀라운 발견이 아가서를 단순한 고전 문학이 아닌, 오늘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험하게 한다. 솔로몬이 의도하여 쓴 것이든 성령이 그를 도구로 쓰신 것이든, 아가서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사랑 편지다. 그 편지를 읽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다. 나는 이만큼 너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너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문학 작품은 복선을 깔아 놓는다. 처음에 충격적인 이미지를 던지고, 그 의미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풀린다. 인물 하나, 색깔 하나, 숫자 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다. 아가서 1장 2절이 그 첫 충격이다. &amp;quot;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amp;quot; 누군가가 갑자기 등장하여 이렇게 외친다. 누가 누구에게 이 말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사모하는가? 독자는 그 의문을 안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수천 년을 이어 온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임을 발견하게 된다. 아가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책이기에, 그것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도 성령의 감동과 지혜를 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아가서의 등장인물인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각각 누구를 상징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핵심 등장인물은 두 사람이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다. 예루살렘 딸들이 주변 인물로 등장하여 합창하거나 화답하고, 오빠들도 간접적으로 언급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들로 이루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은 누구인가? 그 이름은 아가서 6장 13절에 처음 나타난다. &amp;quot;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리라.&amp;quot; 그런데 이 &amp;quot;술람미&amp;quot;는 고유명사 이름이 아니다. &amp;quot;술람미&amp;quot;는 &amp;quot;솔로몬&amp;quot;의 여성형 명사다. 히브리어에서 솔로몬과 술람미는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 둘 다 샬롬, 평화를 의미한다. 솔로몬이 &amp;quot;평화의 왕&amp;quot;이라면, 술람미 여인은 &amp;quot;평화에 속한 여인&amp;quot;이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가 따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를 연상시킨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셨을 때, 아담은 그녀를 보는 순간 &amp;quot;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amp;quot;(창 2:23)고 외쳤다. 자신의 일부임을 즉각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처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보는 것도 이 원리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구도에서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술람미 여인은 교회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아담이 솔로몬을 예표하고, 하와가 술람미 여인을 예표한다. 에베소서 5장 31절에서 32절은 이것을 명확히 선언한다. &amp;quot;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amp;quot; 아담과 하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예표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과 술람미라는 이름이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둘 다 샬롬, 평화를 의미한다. 신랑이 평화의 왕이고, 신부는 그 평화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의 말씀이 이것을 가르쳐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또한 우리의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성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솔로몬 없이 술람미 여인은 완성될 수 없고, 술람미 여인 없이 솔로몬도 온전하지 않다. 그리스도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고, 교회 없이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는다. 신부를 얻는 것이 신랑의 가장 큰 기쁨이듯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 사역의 완성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열왕기상 11장을 보면, 솔로몬의 왕비는 700명이요 후궁은 300명이었다. 그런데 아가서 6장에는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숫자가 다르다. 이것은 아가서가 솔로몬 통치 초기에 기록된 것임을 시사한다. 성전을 완공한 직후, 그 영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해설서로 아가서를 썼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이 사는 곳은 &amp;quot;바알하몬&amp;quot;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나 이 지명은 실제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장소다. 마찬가지로 술람미 여인도 가상의 인물이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 천국에 들어갈 그리스도의 신부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름이 없다.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1장 6절은 이 여인의 형편을 이렇게 전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여인에게는 오빠들이 있다. 그런데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오빠들이 아니라 의붓 오빠들이다. 이 오빠들은 타락한 천사들, 곧 마귀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들이 연약한 여동생에게 포도원을 지키게 하였고, 여인의 얼굴은 태양에 그을려 검어졌다. 사탄 마귀의 통치 아래서 죄에 물들고 고통받는 인류의 형편이 바로 이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아가서 6장은 이 여인을 이렇게 묘사한다. &amp;quot;왕비가 육십이요 후궁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동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amp;quot; 아무리 많은 사람이 솔로몬 곁에 있어도,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시골 처녀 단 하나다. 그 어머니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그 외동딸은 교회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아가서 1장 14절에서 여인이 고백한 고페르 나무 꽃송이는 그리스도의 어떤 사역을 계시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바알하몬의 포도원을 시찰하기 위해 왕비 60명과 후궁 80명, 그리고 60명의 호위 병사를 데리고 그곳에 이르렀다. 그 화려한 행렬 가운데 포도원에서 일하던 한 시골 처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여인은 나도 향기름을 풍기며 식탁 앞에 나타났다. 나도(nard)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매우 값비싼 향료다. 당시 나도 향 한 병은 노동자 1년 치 임금에 해당할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후에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가 바로 나도 향이었다. 제자들이 &amp;quot;무슨 이유로 이것을 허비하느냐&amp;quot;(마 26:8)며 분개할 정도였다. 이 여인이 나도 향기름을 풍기며 등장한 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헌신과 같은 맥락이다. 가장 귀한 것을 아끼지 않고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모습이다. 왕과 시골 처녀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은 서로가 서로임을 알아버렸다. 수많은 왕비와 후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이 여인이 자신이 찾던 진정한 짝임을 직감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순간 여인이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페르 나무 꽃송이로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고백 안에 네 가지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솔로몬이라는 신랑이 어떤 존재인지를, 여인이 꽃 하나에 담아 고백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엔게디(En Gedi)다. 히브리어로 &amp;quot;엔(Ain)&amp;quot;은 샘, 혹은 눈(眼)을 뜻하고 &amp;quot;게디(Gedi)&amp;quot;는 염소를 뜻한다. &amp;quot;염소의 샘&amp;quot;이라는 의미다. 엔게디는 유대 광야의 두 산 사이의 계곡에 움푹 파인 샘물 웅덩이로, 폭포가 흘러내려 그 물이 동그랗게 고이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사울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이 몸을 숨기던 곳이 바로 엔게디 동굴이다(삼상 24:1). 그 동그랗게 고인 샘물 가에 사슴과 염소들이 물을 마시러 모여든다. 영적으로 엔게디는 천국 보좌 앞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근원을 상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염소들이 그 샘물을 마시러 오듯이,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와 생명수를 마심으로 양이 된다. 염소에서 양으로의 변화, 이것이 구원의 본질이다. 또한 &amp;quot;엔&amp;quot;이 눈(眼)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천국 지성소로 들어갈 때 하나님의 눈 앞에 서게 된다는 영적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포도원이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포도원 안에서 일하는 여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여인이 포도원을 지키되 여우들 때문에 힘겨운 것처럼, 교회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되 악한 영들의 방해로 인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여우들을 잡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포도원은 이 세상을 상징하며,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수많은 열매가 맺히듯이,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된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에서 가져온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에 꿰어 메어 왔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 준다(민 13:23). 한 송이에서 그토록 많은 열매가 달리듯이,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고페르 나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amp;quot;고페르(kopher)&amp;quot;에서 왔으며, &amp;quot;카파르(kapar)&amp;quot;라는 동사 어근을 갖는다. 카파르는 &amp;quot;속죄하다&amp;quot;, &amp;quot;속량하다&amp;quot;, &amp;quot;몸값을 지불하다&amp;quot;를 뜻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흔히 &amp;quot;henna blossom&amp;quot;으로 옮긴다. 이 고페르 나무의 꽃은 바깥쪽은 적갈색이고 안쪽은 흰 꽃잎에 노란 수술을 품고 있다. 바깥의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리킨다. 원래 죄가 없으신 분&amp;mdash;안쪽의 흰색&amp;mdash;이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속죄를 이루신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 때 사용한 고페르 나무(창 6:14)도 같은 어원이다. 방주가 물 심판에서 인류를 구원하였듯이, 속죄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심판에서 인류를 구원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인은 솔로몬을 보는 순간, 저분이 바로 나를 속죄하실 분이심을 꽃 하나에 담아 고백한 것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날 때 발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분이 나의 속죄자이시다. 저분이 내 죄의 빚을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꽃송이다. 고페르 나무는 열매가 맺히면 포도 송이처럼 붉게 열린다. 그 열매의 즙은 천연 염료로 사용되어, 결혼식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쓰인다. 수많은 열매가 하나의 송이를 이루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의 몸인 교회를 이룬다. 고페르 나무 열매의 즙이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염료로 쓰이듯이, 그리스도의 보혈이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한다. 계시록 19장 7절에서 8절은 혼인 잔치 때 신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amp;quot;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amp;quot; 보혈로 씻기고, 그 보혈로 말미암아 옳은 행실로 아름답게 단장된 신부&amp;mdash;이것이 고페르 나무 꽃송이가 계시하는 교회의 최종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속죄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자신의 보혈로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하시는 신랑이시다. 고페르 나무 꽃송이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아낸 놀라운 표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인의 이 한마디 고백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수 되심, 풍성한 산출자 되심, 속죄자 되심, 교회의 신랑 되심이 모두 담겨 있다. 솔로몬이 그 꽃을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성령의 감동이 솔로몬의 손을 이끌어 그 꽃에 이 모든 진리를 담게 하였다. 아가서 1장 14절 한 구절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역이 이미 계시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아가서 2장 2절에서 솔로몬이 여인을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 비유한 의미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인이 솔로몬을 고페르 나무 꽃송이로 고백하자, 솔로몬도 여인을 향해 화답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구절 역시 번역의 문제를 안고 있다. 개역개정에서 &amp;quot;백합화&amp;quot;로 옮긴 히브리어 원어 &amp;quot;샤샤나(shoshana)&amp;quot;는 실제로는 아네모네(anemone)를 가리킨다. 봄이 되면 이스라엘 들판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는 아네모네 꽃이다. 하얀 백합이 아니라 선명한 색을 가진 들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네모네의 꽃은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바깥쪽은 선명한 붉은색이고, 그 안쪽은 흰색이며, 가장 중심부는 짙은 보라색이다. 이 세 가지 색이 구원의 세 단계를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구원의 시작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다. 우리의 죄가 그 피로 말미암아 씻겨나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흰색은 의인의 신분이다. 보혈로 씻음을 받으면 눈처럼 희어진다. 죄인이 의인으로 선언된다. 이것이 칭의(稱義)의 은혜다. 그리고 가장 중심부의 보라색은 왕의 색깔이다. 고대 세계에서 보라색 옷은 왕과 귀족의 상징이었다. 구원받은 자들은 단순히 죄 용서를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자와 왕녀의 신분을 얻는다. 계시록 1장 6절은 &amp;quot;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amp;quot;이라고 선언한다. 보혈로 씻기고, 의인으로 선언되며, 왕의 권세에 참여하는 것&amp;mdash;이 세 단계가 아네모네 한 송이 꽃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 아네모네는 어디에 피어 있는가? &amp;quot;가시나무 가운데&amp;quot;다. 가시나무는 창세기 3장의 저주를 연상시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3:18 땅은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 이 땅은 가시밭이 되었다.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사탄 마귀의 통치 아래 고통받으며, 가시나무 가운데서 신음한다. 아가서의 여인이 오빠들의 지시로 포도원을 지켜야 했던 것, 태양 아래 일하느라 피부가 검어진 것 모두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고통받는 인류의 형편을 보여 준다. 여인은 스스로 고백한다. &amp;quot;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amp;quot;(아 1:6). 자신을 돌보아야 할 의붓 오빠들이 오히려 자신을 혹사시켰다. 타락한 천사들이 인류를 죄 아래 묶어 두고 착취하는 형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가시밭 한가운데서 솔로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아네모네 한 송이였다. 수많은 여자들 중에, 가시덤불 속 고통받는 인류 가운데, 신랑의 눈에 포착되는 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지며 왕의 권세에 참여할 자들이다. 솔로몬은 그 여인을 보며 감격하였다. 저 가시밭 속에 저토록 순결하고 아름다운 자가 있다니. 나는 저 여인을 내 신부로 삼을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해 가지신 마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여인의 현재 모습만 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에 그을려 거무스름한 피부, 화려하지 않은 시골 처녀의 차림새&amp;mdash;그 외형을 본 것이 아니다. 솔로몬은 그 여인이 장차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본 것이다. 아네모네 꽃이 그 장래를 계시한다. 지금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지만, 내 피로 씻기면 흰 의인이 되고, 내 왕국에 들어오면 보라색 왕복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시는 시각이 이러하다. 지금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로 씻겨진 이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시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27절이 그것을 설명한다. &amp;quot;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그리스도는 교회를 영광스럽게 세우시기 위해 자신을 주셨다. 이것이 신랑이 신부를 위해 행하시는 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그 여인을 &amp;quot;가시나무 가운데 아네모네&amp;quot;로 본 것은, 지금은 가시밭 속에 있지만 장차 내 피로 씻어 왕비로 세울 존재로 본 것이다.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꽃 한 송이&amp;mdash;그것이 교회의 현재이자 미래다. 지금은 세상 속에서 고통받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고 왕의 권세에 참여할 자들이다. 온 세상이 죄와 사망의 가시밭이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의 피로 씻길 자들을 바라보시며 &amp;quot;일어나 함께 가자&amp;quot;(아 2:10)고 청하시는 신랑의 초대가 아가서 2장 2절 안에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아가서 전체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대주제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아가서 8장이 절정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8:6-7 너는 나를 인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나니 그 기세가 가장 강한 불 같으니이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고백은 신랑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죽음처럼 강한 사랑, 홍수로도 끌 수 없는 사랑, 온 가산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사랑&amp;mdash;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해 가지신 사랑의 실체다. 그 사랑은 감상적 정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증명된 실재다. 피를 흘리고 죽음을 감수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amp;quot;인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amp;quot;는 것은 이 사랑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온 삶으로 고백하라는 권면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러하다. 솔로몬이 바알하몬의 포도원을 시찰하러 왔다가 술람미 여인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1장). 그는 그 여인을 포도주의 집, 곧 잔치 자리로 초대한다. 이것은 자신의 피를 나누겠다는 것을 의미한다(2장 4절). 그가 그녀에게 &amp;quot;일어나 함께 가자&amp;quot;고 청원한다(2장 10절). 이것은 가시밭의 삶을 떠나 왕성(王城)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인은 즉각 따르지 않는다. 아직 포도원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들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은 믿는 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한 영들을 상징한다. 작은 여우들이다.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포도원을 황폐하게 만드는 영적 세력들이다. 신랑은 그 여우들을 잡아 주겠다고 약속한다. 원수들을 무력화하고 여인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중 하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3:8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3장에서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이야기는 점점 깊어진다. 신랑이 포도주의 집으로 신부를 데려가는 것은 자신이 신부를 위해 무엇을 감당할 것인지를 보여 주는 행위다. 포도주의 집이란 자신의 피를 나누는 자리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잔을 들어 &amp;quot;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amp;quot;(눅 22:20)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랑이 신부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겠다는 선언이다. 그 피의 선언을 들은 신부는 비로소 신랑을 온전히 신뢰하게 된다. 신랑이 자기를 위해 죽어 줄 것임을 아는 자만이 그 신랑을 따를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근본적인 확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오빠들은 술람미 여인의 의붓 오빠들이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은 오빠들이다. 이들은 타락한 천사들, 곧 마귀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들이 연약한 여동생에게 포도원을 지키게 하였고, 여인의 얼굴은 태양에 그을려 검어졌다. 그것은 사탄 마귀의 통치 아래서 죄에 물들고 고통받는 인류의 형편이다. 그러나 솔로몬&amp;mdash;그리스도&amp;mdash;이 나타나자, 여인은 오빠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신랑을 따를 길이 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사랑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계시한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다. 신랑이 사랑하고, 신부도 사랑한다. &amp;quot;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amp;quot;(아 6:3). 이 상호 속함, 이 온전한 연합이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의 본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한 연애 교과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획된 사랑의 드라마를 문학이라는 옷을 입혀 계시한 책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amp;quot;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amp;quot;라고 말한다. 창세 전에 이미 계획되었다. 솔로몬이 아가서를 쓰기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그 사랑 이야기를 이미 작정하고 계셨다. 성전이 무엇인지,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그리스도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신부인 교회가 어떤 자세로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지&amp;mdash;이 모든 것이 아가서라는 한 권의 가극시 안에 고도로 압축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전체의 구조 안에서 우리는 교회의 탄생과 성장과 완성을 본다. 첫째로, 1장과 2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성도가 처음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는 경험을 상징한다. 둘째로, 2장에서 신랑이 &amp;quot;일어나 함께 가자&amp;quot;고 초대하는 장면은 구원받은 후 성화(聖化)의 여정을 걷도록 부르시는 초대다. 셋째로, 3장의 결혼식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예표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엡 1:4), 때가 되어 그 선택된 자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시며, 마침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완성하시는 경륜의 이야기다. 그래서 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경륜 전체가 조명되어야 한다. 1장에서 처음 만나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알아보고, 2장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함께 가자고 초대하며, 3장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이후 신부는 점점 더 신랑을 닮아가고 신랑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성도의 여정이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을 더 알아가고, 더 닮아가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점점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가서에 담겨 있다. 마침내 8장에 이르러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사랑에 완전히 응답하는 자리에 이른다. &amp;quot;나를 인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amp;quot; 이 고백이 성도의 최종 목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목적, 그가 남긴 지혜 문학의 구조와 위계, 아가서가 어떤 장르인지, 등장인물의 정체와 상징, 고페르 나무 꽃송이와 아네모네가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계시, 그리고 아가서 전체가 전하는 사랑의 비밀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믿음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 안에서 읽을 때,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장 소리다. 죽음처럼 강하고 홍수로도 끌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랑의 목소리다.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아네모네처럼, 죄로 물든 세상 한가운데서 당신의 신부를 발견하시고 &amp;quot;일어나 함께 가자&amp;quot;고 부르시는 초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 물질적 성전을 지었다면, 아가서는 영적 성전인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알려 주는 교과서다. 성전을 짓기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아가서가 가르쳐 준다. 고페르 나무의 붉은 꽃잎 속에 속죄의 피가 담겨 있고, 아네모네의 보라색 중심부에 왕의 신분이 예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속죄자이시고, 생명수의 근원이시며, 교회를 산출하시는 포도나무이시고, 교회를 단장하시는 신랑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그 신랑의 초대에 응답해야 한다. 신부는 마냥 앉아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포도원의 여우들을 인식하고, 신랑이 약속하신 대로 그것들을 제거해 주실 것을 믿으며, 마침내 왕성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함께 걸어야 한다. 솔로몬이 7년 동안 성전을 지었듯이, 우리 각 사람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영적 성전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성전이 된다. 성전을 짓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솔로몬도 7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워지는 것도 긴 여정의 과정이다. 회개를 통해 죄를 씻고, 말씀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기도를 통해 신랑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 포도원의 여우들을 제거하며, 점점 더 신랑을 닮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중에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신랑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amp;quot;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amp;quot;(아 8:7). 죽음처럼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고, 그 피의 붉음에서 의인의 흰 세마포를 입고, 나아가 왕의 보라색 영광에 참여하는 것&amp;mdash;이것이 아네모네가 가리키는 구원의 완성이다. 아가서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여야 한다. 이 관계를 붙들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날마다 자신을 점검하여 주님이 빚으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자리에서 신랑 앞에 흠 없는 신부로 당당히 설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아가서의 첫 고백이 &amp;quot;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amp;quot;였다면, 그 결론은 &amp;quot;나를 인장같이 마음에 품으라&amp;quot;이다.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 안에 인印 쳐진 삶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삶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21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amp;nbsp;&lt;strong&gt;아가서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담은 지혜 문학의 정수&lt;/strong&gt;임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생애가&amp;nbsp;&lt;strong&gt;교회를 세우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이며, 아가서에 등장하는 시적 대사들은 인간의 연애 소설이 아닌&amp;nbsp;&lt;strong&gt;구속사적 경륜&lt;/strong&gt;을 보여주는 가극시라고 정의합니다. 특히 본문은 &amp;#39;엔게디 포도원의 고베라 송이&amp;#39;와 &amp;#39;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amp;#39;라는 상징을 통해&amp;nbsp;&lt;strong&gt;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lt;/strong&gt;과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서도&amp;nbsp;&lt;strong&gt;보석처럼 빛나는 성도의 정체성&lt;/strong&gt;을 조명합니다. 결국 아가서의 목적은 신랑 되신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강렬하게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하여, 우리가 그 피로 깨끗해진&amp;nbsp;&lt;strong&gt;천국의 신부이자 상속자&lt;/strong&gt;로 준비되도록 이끄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아가서_그리스도와_교회의_비밀_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9446029fddad6b92d7d999101d683fd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5359bab08de6e02bbaae7b2e490c2d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348bb380603413ba23c9bdac3f9b7b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2c54cc59a50617e3cac402d1bc7478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7b0dd7a9fcafee330317c4ab03b712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2d186dbf4e08501191026bf7d2748f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267c41489c58dcced87dc580fee2f4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54dbc5e7bdb3cf8d3714a0fa041998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77bb2544e2f98b9a7a19586e04dcf0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d10ee9d249cc4aac8fa8cb3ad229a6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fe9ad24ede3375d7e2b0ecb763beba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c4b8ad343739e94c6768e5955df748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11c18ae83f55ae2b135953dfe760a81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lomon’s_Sacred_Myster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dad9b155725470b447a1d8b3950202e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06-21(일) 주일낮2부예배(정제된 요약)&lt;/p&gt; &lt;p&gt;제목:[기독론(128)]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다윗의 아들 솔로몬(06)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아가1:14, 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0&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75; color: #222; } h2 { margin: 2.6em 0 0.7em 0; padding: 0; font-size: 17px; font-weight: 700; color: #38688c; } p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p.para { font-weight: 400; } p.scripture {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p.date { margin-top: 1em; } p.author { margin-bottom: 0; } &lt;/style&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은 단순한 이스라엘 역사책이 아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와 그림자와 사건과 인물 속에 감추어 보여 주는 하나님의 계시다. 그러므로 구약을 읽는 성도는 단순히 옛날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장차 우리를 어떤 영광으로 이끄실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도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부활하신 주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24:4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구약 기독론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구약을 그리스도 없이 읽으면 성경의 심장을 놓치게 된다. 창세기의 유다와 요셉, 출애굽 이후의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서의 다윗, 그리고 열왕기상과 역대상에 등장하는 솔로몬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을 보여 준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서 이기는 자의 모형을 보여 주었다면, 솔로몬은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성전 건축자로서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솔로몬에게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작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amp;#39;아가서&amp;#39;다. 아가서는 겉으로 보면 남녀의 사랑 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지혜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은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다. 아가서는 바로 이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사랑이라는 문학적 형식 안에 감추어 둔 책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가 왜 지혜문학의 최고봉이며, 그 안에 감추어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왜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책인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바르게 읽으려면 먼저 전체 방향을 알아야 한다. 구약 성경은 단순히 율법과 역사와 시와 예언의 모음이 아니다. 구약 전체는 오실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간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예표와 그림자로 말씀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그 실체가 밝히 드러났다. 그러므로 구약의 인물과 사건은 단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한 방면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예표라는 말은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신약에서 예표와 관련하여 쓰이는 헬라어는 튀포스, 곧 &amp;lsquo;모형, 본, 도장에 찍힌 형상&amp;rsquo;이라는 뜻을 가진다. 구약의 인물들이 그리스도와 동일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삶 속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한 특징이 찍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의 예표이고, 솔로몬은 평화와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예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amp;ldquo;다윗의 자손&amp;rdquo;이라고 말한다(마 1:1). 여기서 &amp;ldquo;자손&amp;rdquo;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휘오스, 곧 &amp;lsquo;아들&amp;rsquo;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다윗 언약을 완성하시는 다윗의 아들이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솔로몬도 다윗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완전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지혜와 영광과 성전 건축의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열왕기상 11장에 이르면 이방 여인들과 우상숭배로 인해 실패한 왕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완성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해 열려 있는 그림자다. 우리는 솔로몬에게서 그리스도를 보되, 솔로몬에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가 계시기 때문이다(마 12:4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밝히신다(계 22:16). 이것은 그분이 다윗에게서 나온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존재 근원이신 분이라는 뜻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으므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면서 다윗의 주가 되신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런 관점에서 아가서를 읽어야 한다. 아가서에 등장하는 솔로몬은 단순한 역사 속 왕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은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으로 준비될 교회를 가리킨다. 이 사실을 놓치면 아가서는 단지 아름답지만 난해한 연애시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으면, 아가서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깊은 신랑과 신부의 비밀을 알려 주는 책이 된다.&lt;/p&gt; &lt;h2&gt;3. 솔로몬의 세 가지 사명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의 생애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 사명을 붙잡아야 한다. &lt;strong&gt;첫째, 그는 평화의 왕&lt;/strong&gt;이다. &lt;strong&gt;둘째, 그는 지혜의 왕&lt;/strong&gt;이다. &lt;strong&gt;셋째, 그는 성전 건축자&lt;/strong&gt;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평화가 주어졌고,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는 그 평화의 시대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가 피를 많이 흘리고 크게 전쟁했기 때문이다. 대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평안을 주시고, 그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하셨다(대상 22:7-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대상 22:7-9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하리라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샬롬, 곧 평안과 관련된다. 그는 평화의 시대를 대표하는 왕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다윗의 전쟁 이후에 온 평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과도 연결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고, 그 승리 위에 성도들에게 참 평화를 주셨다. 성도 안에 참 평화가 오려면 먼저 악한 영들이 쫓겨나야 한다. 전쟁이 끝나야 성전이 세워진다. 이 원리는 다윗과 솔로몬에게서도 나타나고, 성도의 영적 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다. 그는 왕이 되었을 때 아직 어렸다. 아도니야의 반역적 움직임 가운데 갑자기 왕위에 올랐기에, 자신에게는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다(왕상 3: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셨다. 그의 지혜는 동방 사람들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왕상 4:29-3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왕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셋째, 솔로몬은 성전 건축자다. 하나님이 그에게 평화를 주시고 지혜를 주신 최종 목적은 성전을 건축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째 되는 해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했다. 그가 존재한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세우는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솔로몬의 사명에는 시간표가 있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왕이 되었고, 왕이 된 지 넷째 해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으며, 일곱 해 동안 성전을 지어 서른 살 무렵에 완성했다. 그의 인생에서 성전 건축은 주변 업무가 아니라 중심 사명이었다. 그 후 그는 더 오래 살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가장 본질적인 일은 이미 성전 건축을 통해 드러났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와도 깊이 연결된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 모든 사역의 절정은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의 보내심을 통해 교회를 산출하는 데 있었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솔로몬에게 주어진 지혜는 단순한 학문적 총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한 지혜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혜의 목적은 세상에서 이름을 내고 재물을 많이 모으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서 자신을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세우는 데 있다. 지혜가 성전 건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 해 아래의 수고로 끝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지혜 자체이시며, 참 성전을 세우시는 분이다. 솔로몬이 돌과 백향목과 금으로 성전을 지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의 보내심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세 가지 사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lt;/p&gt; &lt;h2&gt;4.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왜 교회의 비밀로 이어지는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의 성전은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 실체가 아니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고 임재를 나타내신 장소였지만,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집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다. 성전은 장차 오실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질 교회를 향해 열린 예표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amp;ldquo;내 교회&amp;rdquo;라는 표현이다. 교회는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유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낳으시고, 자신의 영으로 거하시는 처소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듯이,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성령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심으로 형성되는 하나님의 처소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한다(고전 3: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엡 2:21-2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건축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산출하시는 일을 예표한다. 다윗이 전쟁을 통해 평화의 기반을 마련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듯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원수들을 이기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흐름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성전의 깊은 의미를 전혀 모른 채 외형적 건물만 지었는가? 설교의 흐름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솔로몬은 지혜를 받은 왕이었고, 성전을 지으라고 이 땅에 보냄받은 왕이었다. 그렇다면 성전의 내적 의미,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어떻게 산출되는지를 깊이 묵상했을 것이다. 그 묵상의 최종 결산이 아가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잠언과 전도서는 지혜와 인생의 허무와 하나님 경외를 말한다. 그러나 아가서는 성전의 비밀을 사랑의 관계로 풀어 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아가서의 기록 시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가서 6장에는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아 6:8-9).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말년의 솔로몬은 왕비 칠백 명과 후궁 삼백 명을 두었다. 그렇다면 아가서는 솔로몬 말년의 타락 이후가 아니라, 비교적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솔로몬의 마음이 완전히 이방 여인들과 우상에게 빼앗기기 전, 그가 성전 건축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던 시기에 이 작품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6:8-9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에서 신랑은 많은 여인들 가운데 &amp;ldquo;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amp;rdquo;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신의 신부로 준비될 교회를 보시는 시선이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많고 많은 단체 중 하나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눈에 하나뿐인 짝이며, 그분의 피로 사신 유일한 신부다.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는 돌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으로 깨끗하게 된 신부, 곧 교회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가서는 성전의 내적 의미를 보여 주는 책이다.&lt;/p&gt; &lt;h2&gt;5. 아가서는 왜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라 가극시인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책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첫째, 누가 말하는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여인이 말하는지, 솔로몬이 말하는지, 예루살렘의 딸들이 말하는지, 합창이 말하는지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대목이 많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히 문자만 읽어서는 전체 흐름을 잡기 어렵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아가서에는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 기도, 회개, 믿음 같은 표현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나 연애 교과서로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아가서는 더 깊은 책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직접 설명문으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노래와 상징과 장면 속에 감추어 두셨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1장 1절은 이 책의 표제를 말한다(아 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1 솔로몬의 아가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amp;ldquo;아가&amp;rdquo;는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다. 히브리어 방식의 최상급 표현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노래, 가장 깊은 사랑의 노래다. 설교적 관점에서 이것은 가극시다. 가극시는 노래로 진행되는 연극적 시다. 아가서에는 대사만 남아 있고, 무대 설명과 의상 설명은 본문에 직접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등장인물과 상황과 상징을 찾아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아가서의 시작은 매우 충격적이다. 술람미 여인이 &amp;ldquo;그가 그의 입으로 내게 입맞추기를 원한다&amp;rdquo;고 말한다(아 1:2). 이것을 겉으로만 읽으면 남녀의 애정 표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신부가 신랑의 사랑과 말씀과 생명 접촉을 갈망하는 고백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큰 주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인간적 감정에 머무는 사랑이 아니다. 아가서 8장은 사랑이 죽음같이 강하고, 많은 물도 끄지 못하며, 홍수라도 삼키지 못한다고 말한다(아 8:6-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8:6-7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가장 강한 불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셨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말한다(엡 5:31-3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번역의 문제다. 어떤 단어들은 문자적으로 옮기면 사랑 노래처럼 보이지만, 히브리어의 배경과 상징을 살피면 훨씬 깊은 뜻이 열린다. 예를 들어 &amp;ldquo;침상&amp;rdquo;으로 이해되는 표현들, &amp;ldquo;입맞춤&amp;rdquo;, &amp;ldquo;포도주의 집&amp;rdquo;, &amp;ldquo;향기름&amp;rdquo;과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육체적 사랑의 장면으로만 읽으면 전체가 왜곡될 수 있다. 문학 작품은 한 장면과 한 단어와 한 색깔에도 복선을 심는다. 아가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령께서 감동하신 지혜문학이라면, 그 안의 식물 하나, 지명 하나, 색깔 하나, 대화의 순서 하나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아가서 해석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문맥을 따라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둘째,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와 성경 전체의 상징을 살펴야 한다. 셋째,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아가서는 연애시로 떨어지거나, 막연한 비유로 흐르거나, 지나친 상상으로 흩어질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다. 그것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하고, 연합하고, 새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가극시다. 아가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인 히브리 지혜자들은 이 책 안에 감추어진 영적 깊이를 보았던 것이다.&lt;/p&gt; &lt;h2&gt;6.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각각 누구를 예표하는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의 중심 인물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며 평화의 왕이다. 그러므로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신랑으로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오고,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자신의 사랑으로 이끌고, 결국 왕의 처소로 데려가려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찾아오시고, 사랑하시고, 피로 정결하게 하시고, 장차 새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이끄시는 모습과 연결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은 역사 속 특정 여인으로 보기 어렵다. 열왕기상에는 솔로몬의 왕비와 후궁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이 그 가운데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오히려 아가서 자체는 그녀를 가상의 인물처럼 제시한다. &amp;ldquo;술람미&amp;rdquo;라는 이름은 솔로몬과 같은 샬롬 계열의 여성형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솔로몬과 본래 한 짝을 이루는 존재라는 의미를 가진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 구조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게 한다.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고, 다시 아담에게로 돌아가 둘이 한 몸을 이루었다(창 2:23-2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 2:23-24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 이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로 완성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생명으로 산출되고,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그분과 연합한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단순한 시골 처녀가 아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으로 준비될 교회, 곧 신부 된 성도들을 예표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1장 6절은 술람미 여인의 처지를 보여 준다. 그녀는 햇볕에 그을렸고, 어머니의 아들들이 노하여 자신을 포도원지기로 삼았으며, 자기 포도원은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아 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설교적 해석에 따르면, 여기서 오빠들은 타락한 천사들 혹은 악한 영들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들은 인류를 죄와 수고와 억압 아래 두었다. 포도원은 생명을 산출해야 할 영역인데, 작은 여우들이 들어와 포도원을 해친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 힘으로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이 죄와 악한 영의 압제 아래서 자기 생명과 사명을 지키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술람미 여인의 이름도 중요하다. 솔로몬은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이름으로 평화와 안식을 뜻한다. 술람미도 그와 같은 어근권에서 이해될 수 있는 여성형 명칭이다. 그러므로 설교적 해석에서 술람미는 솔로몬과 전혀 무관한 여인이 아니라, 솔로몬에게 속하고 솔로몬과 짝을 이루어야 할 여인이다. 이것은 하와가 아담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과 같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 밖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생명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리스도께 다시 연합되어야 할 신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술람미가 검게 그을렸다는 고백은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본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햇볕 아래 수고하면서 검게 되었다. 이것은 타락 이후 인간이 죄와 수고와 악한 영의 억압 아래서 본래의 영광을 잃어버린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신랑은 그녀의 겉모습만 보지 않는다. 신랑은 그녀 안에 숨겨진 본래의 가치와 장차 자신의 사랑으로 회복될 아름다움을 본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눈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솔로몬이 그녀를 찾아온다. 왕이 신부를 알아본다. 사람들은 그녀를 검게 그을린 시골 처녀로 볼 수 있지만, 신랑은 그녀에게서 자기 짝을 본다. 그리스도께서도 죄와 상처와 악한 영의 억압 아래 있는 인류 가운데서 자기 피로 씻을 교회를 보신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두 인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준다.&lt;/p&gt; &lt;h2&gt;7.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1장 14절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처음 보고 고백한 말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자를 &amp;ldquo;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amp;rdquo;라고 부른다(아 1:1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 한 구절 안에는 네 가지 상징이 들어 있다. 엔게디, 포도원, 고벨화, 송이다. 이 네 가지를 정밀하게 보아야 그리스도의 비밀이 열린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첫째, 엔게디는 히브리어로 &amp;ldquo;염소의 샘&amp;rdquo;이라는 뜻을 가진다. &amp;ldquo;엔&amp;rdquo;은 샘 혹은 눈을 뜻하고, &amp;ldquo;게디&amp;rdquo;는 염소를 뜻한다. 엔게디는 광야와 사해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물이 흐르는 장소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이기도 하다. 영적으로 보면 엔게디는 생명수의 근원을 떠올리게 한다. 염소 같은 자가 생명수를 마시고 양으로 변화되는 은혜의 장소다. 그리스도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며, 죄인들을 자신의 양으로 만드시는 분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5:1-5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포도원은 생명을 산출하는 장소다. 포도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데 있다(요 12:2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셋째, 고벨화는 히브리어로 코페르, 혹은 고페르로 불린다. 문맥상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향기와 염료로 사용되던 꽃, 곧 고벨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단어는 속전과 몸값을 뜻하는 코페르라는 말과도 연결되고, 덮다, 속죄하다를 뜻하는 카파르와 신학적으로도 깊은 연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아가서 1장 14절의 고벨화는 설교적 해석에서 속죄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고벨화는 적갈색을 띠며, 그 안에는 흰색과 금빛의 이미지를 함께 품고 있다. 적갈색은 피를 떠올리게 하고, 흰색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순결을 떠올리게 하며, 금빛은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떠올리게 한다. 죄 없으신 분이 피를 흘려 우리를 속죄하시고, 마침내 성도들을 영광스러운 왕노릇의 자리로 이끄신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넷째, 송이는 열매의 풍성함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생명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피와 생명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신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이 본 솔로몬의 모습은 단순히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녀는 신랑 안에서 생명수와 포도원의 풍성함과 속죄의 피와 열매의 풍성함을 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특히 고벨화의 색은 아가서의 신학을 더 깊게 열어 준다. 겉으로 보이는 적갈색은 피의 색이다.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색이 아니라 희생의 색이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으나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안쪽의 흰색은 그분의 무죄성과 순결을 말한다. 죄 없는 분이 죄 있는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 피는 속죄의 능력을 가진다. 더 깊은 중심의 금빛은 하나님의 영광과 새 예루살렘의 왕권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단지 지옥을 피하게 하는 정도의 피가 아니라, 성도를 하나님의 상속자와 왕노릇할 자로 준비시키는 피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성도들이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대속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되었다고 말한다(벧전 1:18-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그리스도의 압축된 초상이다. 그분은 생명의 샘에서 오시고, 포도원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며, 자신의 피로 속죄하시고, 많은 자녀들을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분이다.&lt;/p&gt; &lt;h2&gt;8.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는 교회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2장 2절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그는 그녀를 &amp;ldquo;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amp;rdquo;라고 부른다(아 2: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아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백합화로 번역된 말은 흔히 흰 백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설교적 해석에서는 이것을 팔레스타인 들판에 피는 붉은 아네모네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의 색과 위치다. 그 꽃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 꽃은 붉은 빛과 흰 빛과 왕권의 색을 함께 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가시나무는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나타난 저주의 표지다. 사람이 죄를 지은 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창 3:17-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 3:17-18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꽃은 죄와 저주와 고통의 세상 속에 있는 인류를 보여 준다. 술람미 여인은 스스로 보면 검게 그을린 여인이고,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연약한 자다. 그러나 신랑은 그녀를 가시나무 가운데 핀 꽃으로 본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바라보시는 시선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본래 죄와 저주 가운데 있었다. 악한 영들의 억압 아래 있었고, 자기 포도원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성도에게 임하면 붉은 피로 덮이고, 죄 사함으로 희게 되며, 장차 왕노릇할 자로 준비된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꽃은 교회의 운명을 보여 준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는 연약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눈에는 신부요 왕비가 될 존재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말한다. 어린양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다고 한다(계 19:7-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로 표현된다(계 21:9-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아가서가 보여 주는 교회의 비밀이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처소가 되며,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가시나무 가운데 버려진 존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그분은 성도를 피로 씻을 신부로 보시고, 새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이끌 존재로 보신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가시나무와 꽃의 대비가 중요하다. 가시나무는 찌르고 상하게 한다. 죄의 세상도 그러하다. 사람은 죄로 인해 상처를 받고, 악한 영의 역사로 묶이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런데 신랑은 그 가시나무 가운데서 꽃을 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교회를 보셨다는 뜻이다. 교회는 원래 깨끗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깨끗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바깥의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피로 덮임을 말한다. 안쪽의 흰 색은 죄 사함과 정결을 말한다. 더 깊은 보라색 혹은 왕권의 색은 장차 왕노릇할 성도의 신분을 말한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현재의 모습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녀는 과정 중에 있는 신부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연약하고 부족할 수 있으나, 회개와 피의 적용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 2장 2절은 바로 이 사실을 압축한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가시나무 같은 죄와 저주 가운데 있는 신부를 보시면서도, 자신의 피와 사랑으로 변화될 교회의 영광을 미리 보신다. 그러므로 백합화, 곧 붉은 들꽃은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 주는 상징이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혜의 최종 결산으로 남긴 영적 가극시이며,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 된 교회의 관계를 상징과 노래 안에 감춘 책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 솔로몬은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성전 건축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러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외형적 성전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 성전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교회의 비밀로 이어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아가서는 바로 그 교회의 비밀을 사랑의 언어로 풀어 준다. 솔로몬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술람미 여인은 교회를 예표한다. 술람미 여인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연약한 여인이지만, 신랑은 그녀를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본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바라보시는 시선이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는 생명수와 포도원과 속죄의 피와 풍성한 열매를 품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는 죄와 저주 가운데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장차 왕노릇할 자로 준비될 교회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는 성도는 연애 감정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이 교회를 어떻게 산출하고 준비시키는지를 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도는 단순히 구원받아 천국 변두리에 들어가는 데서 멈추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기는 자로서 왕노릇할 신분까지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아가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늘의 신앙생활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회개를 통해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하며, 말씀과 성령 안에서 신부의 단장을 이루어야 한다. 주님이 자신을 위해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지 깊이 묵상해야 하고, 그 사랑에 합당한 신부로 세워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가시나무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새 예루살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ara&quot;&gt;2026년 06월 21일(일)&lt;/p&gt; &lt;p class=&quot;para&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아가서_속_그리스도의_비밀2026-06-1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f25554f936af30d5121cf747d02dc165.webp&quot; /&gt;&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ara&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bf6cbd9a74ebd72127138cba87e9d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97734219399344ab702d67ab0e296a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ee7f61215651ba9387d53d917b6f1d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ff76b41ddecdeb309477471e1ee0b7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125989775a4c0bb831de42f685eeb4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aa4edde96304f005c0ed5337e0b8db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6d8b402238cc2d6ea4bca873d5c548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352721cfa7f589562f15358b2a0448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487bc45ab7b342f092f5cb33f35769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5258a1256d10af6b28f3799e47314f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fdc564e9cef356fcc1a62cd0286bd7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8)] Song_of_Songs_The_Pinnacle_of_Wisdom.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91/260/ef3bdf04438bd1dcd9ece66851d2cca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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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60791#comment</comments>			<pubDate>Sun, 21 Jun 2026 21:22:19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21)]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7) 다윗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사무엘상 17:32~50)_2026-06-14(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6021</link>
				<description>&lt;p&gt;2026-06-14(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1)]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7) 다윗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사무엘상 17:32~5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_6UQwyW5R3c&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6UQwyW5R3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wrap&quot;&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성도는 어둠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빛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천국은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이며,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밝게 빛나는 성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부터 어둠을 사랑하는 삶을 버리고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8: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그러나 빛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방해가 있다. 죄는 사람을 어둠에 붙잡아 두고, 악한 영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한 도덕적 반성이 아니다. 회개는 어둠의 영들이 붙잡고 있던 합법적 근거를 끊고, 성도가 빛의 세계로 이동하는 영적 실제다. 회개할 때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정결해지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의 감각이 살아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번 설교는 이러한 영적 전쟁의 실제를 다윗의 생애를 통해 보여 준다. 다윗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 속의 훌륭한 왕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왕직을 수행하도록 세우신 사람이며,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예표다. 그러므로 다윗을 살피는 일은 단순한 인물 연구가 아니라, 왕직을 준비하는 성도의 영적 훈련을 살피는 일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amp;ldquo;전쟁에 능한 자&amp;rdquo;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목동 시절에는 사자와 곰과 싸웠고, 청년 시절에는 골리앗과 싸웠으며, 왕이 되기 전에는 사울과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았다. 왕이 된 뒤에는 이스보셋, 압살롬, 세바와 같은 내부 대적의 반란을 겪었고, 이어 블레셋, 아말렉, 에돔, 모압, 암몬, 소바, 아람 같은 외부 대적들과도 싸웠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증언한다(삼하8: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8: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을 정확히 알려면 사무엘상하와 역대상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역사서는 다윗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 주지만, 시편은 그때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는지를 보여 준다. 사무엘하 22장은 시편 18편과 거의 같은 노래이며, 다윗이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은 뒤 여호와를 찬양한 내용이다. 또한 역대상 16장에는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한 찬양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시편 105편, 96편, 106편과 서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다윗의 전쟁을 이해하려면 사건과 고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사건만 보면 전쟁사가 되고, 고백까지 보면 영적 전쟁의 원리가 열린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것이 통전적으로 성경을 읽는 방식이다. 성경의 한 부분만 떼어 보면 다윗은 용맹한 왕으로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편과 역사서를 함께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울고, 묻고, 회개하고, 찬양하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성도가 영적 전쟁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능력의 방법만 배우면 위험하다. 말씀의 기준, 회개의 길, 하나님의 임재, 천국의 목적, 악한 영의 실체를 함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쟁이 사람의 흥분이나 감정 싸움으로 흐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직 훈련이 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그렇다면 다윗은 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은 사람의 배짱이나 전술에만 있지 않다. 다윗의 승리는 &amp;ldquo;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amp;rdquo;는 믿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묻는 순종,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은 훈련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오늘 성도가 어떻게 영적 전쟁의 승리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2. 다윗의 전쟁은 왜 성도의 영적 전쟁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전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전쟁을 세 범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째, 목동 시절의 전쟁이 있다. 그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 싸웠다. 이것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이미 목자의 마음으로 훈련받았음을 보여 준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자일 뿐 아니라 백성을 해치는 원수와 싸우는 자다. 그러므로 목동 다윗의 전쟁은 훗날 왕 다윗의 전쟁을 미리 보여 주는 훈련장이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둘째, 이스라엘 내부의 대적과의 전쟁이 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사울이 죽은 뒤에는 이스보셋이 사울 왕가를 다시 세우려 했다. 다윗이 왕이 된 뒤에도 압살롬이 반역했고, 이어 베냐민 사람 세바가 또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성도의 영적 전쟁에도 안의 대적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 안에는 죄와 결합한 악한 영들이 역사할 수 있고, 공동체 안에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혼란과 분열의 영이 일어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셋째, 외부 대적과의 전쟁이 있다. 다윗은 블레셋과 싸웠고, 아말렉과 싸웠으며,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과도 싸웠다. 이것은 성도에게 밖의 대적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귀신론적으로 말하면 사람 안에 들어와 죄와 질병과 저주를 일으키는 영들이 있고, 동시에 사람 밖에서 죄를 짓게 만들 기회를 기다리는 세대의 영과 가문의 영들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안의 죄와 악한 영을 회개로 처리해야 하며, 밖에서 공격하는 영적 세력도 말씀과 기도로 대적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엡6:12). 이 말은 사람을 대적의 본체로 보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은 사랑과 긍휼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고 죄를 짓게 만들며 가정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구분하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악한 영과 싸우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전쟁은 바로 이 영적 원리를 역사 속 사건으로 보여 준다. 다윗은 단지 자기 원수를 이긴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대적을 물리친 사람이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도 다윗의 전쟁을 보며 자신이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단지 천국 입구에 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로 준비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배워야 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 점에서 다윗은 성도의 거울이다. 다윗의 외로움, 다윗의 믿음, 다윗의 회개, 다윗의 훈련, 다윗의 전쟁은 모두 오늘 성도에게 영적 사실을 가르쳐 준다. 성도는 다윗처럼 처음부터 완전한 자가 아니다. 다윗도 넘어졌고, 바세바 사건과 우리아 사건이라는 큰 죄를 범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뻔뻔하게 덮지 않았다. 그는 괴로워했고,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회개했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자는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깨달을 때 회개함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3. 골리앗과의 싸움은 왜 모든 승리의 전형인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이 치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성경이 가장 자세히 기록한 전쟁은 골리앗과의 싸움이다. 사무엘상 17장은 단지 어린 목동이 거인을 쓰러뜨린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장은 다윗이 앞으로 치를 모든 전쟁의 원리를 압축하여 보여 주는 대표 사건이다. 다윗이 어떻게 싸웠는지, 무엇을 의지했는지, 어떤 고백으로 나아갔는지를 보면 다윗의 모든 승리의 비결을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역사적으로 이 사건은 다윗이 약 열다섯 살 전후의 소년이었을 때 일어난 일로 이해된다. 당시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가진 강한 민족이었고,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었다. 블레셋은 가드 사람 골리앗을 앞세웠다. 골리앗은 거인이며 어려서부터 전쟁에 익숙한 용사였다. 반면 다윗은 아직 전쟁터의 군인이 아니라 양을 치던 소년이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 싸움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결정적인 것은 겉모습이 아니다.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지만, 다윗은 그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피아 식별이 일어난다. 다윗에게 이 싸움은 자기 명예를 세우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싸움이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이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근거는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라 이전의 실제 경험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 새끼를 물어가면 따라가서 그것을 쳐서 구해냈고, 그것이 자신을 해하려 하면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고 말했다(삼상17:34-3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 고백은 다윗의 전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이미 은밀한 목장에서 전쟁을 배웠다. 그곳에는 박수치는 사람이 없었고, 왕궁의 인정도 없었으며, 군대의 훈장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다윗을 훈련시키셨다. 작은 양 한 마리를 지키려는 목자의 마음이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왕의 마음으로 자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그러므로 골리앗 사건은 다윗의 모든 승리의 전형이다. 첫째, 그는 대적의 겉모습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 크게 보았다. 둘째, 그는 과거에 하나님이 도우신 경험을 현재의 싸움에 적용했다. 셋째, 그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울의 갑옷을 벗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익숙하게 훈련시키신 물매를 사용했다. 넷째, 그는 전쟁의 결과를 여호와께 맡겼다. 이 네 가지 원리는 오늘 성도의 영적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4.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믿음은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승리를 여는 핵심 문장은 사무엘상 17장 47절이다. 그는 골리앗 앞에서 &amp;ldquo;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다&amp;rdquo;고 선포했다. 이어 &amp;ldquo;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amp;rdquo;이라고 말했다. 히브리어 본문의 흐름을 따라 말하면, &amp;ldquo;참으로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다&amp;rdquo;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amp;ldquo;전쟁&amp;rdquo;은 히브리어로 &amp;lsquo;밀하마&amp;rsquo;이며, 싸움과 전투를 뜻한다. 다윗은 이 밀하마의 최종 주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여호와께 있다고 믿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 믿음은 무기를 부정하는 믿음이 아니다. 다윗은 물매를 사용했다.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나간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물매가 자신을 구원한다고 믿지 않았다. 물매는 도구였고, 승리는 여호와께 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믿음의 균형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를 성실히 준비하되, 그 도구 자체를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날 성도의 영적 전쟁도 동일하다. 회개, 말씀, 기도, 선포, 영적 무장, 은사와 분별은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성도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명령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야 하며, 말씀의 검을 붙들어야 한다. 하지만 최종 승리는 사람의 기술에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 주님께서 이기게 하시면 이기고,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많은 방법을 알아도 이길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여기서 구원론의 실제가 열린다. 구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그 승리를 믿는 자에게 적용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이름으로 싸우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싸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을 작게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골리앗은 실제로 컸고, 실제로 강했으며, 실제로 전쟁에 익숙한 용사였다. 그러나 여호와는 골리앗보다 크셨고, 여호와의 이름은 블레셋의 신들보다 강했다. 그래서 다윗은 싸울 수 있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승산 있는 싸움만 고른다. 믿음이 없으면 대적의 크기를 보고 물러선다. 믿음이 없으면 귀신을 두려워하고, 영적 공격이 있을까 겁을 먹고, 회개와 축사의 길을 중간에 포기한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끝까지 간다. 악한 영들이 두려움을 주고, 몸을 아프게 하고, 환경을 흔들어도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을 붙든다. 다윗의 믿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성도에게 길을 열어 준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5.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했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승리 비결 가운데 또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이었다. 다윗은 부모와 형제에게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막내였고, 양을 치는 자리로 밀려나 있었으며,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에도 처음부터 부름받은 아들들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시편 27편은 &amp;ldquo;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amp;rdquo;라고 고백한다(시27:10). 이 고백은 다윗의 깊은 내면을 보여 준다. 사람의 인정이 없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영접을 붙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외로움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외로움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통로가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고백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다윗은 &amp;ldquo;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amp;rdquo;라고 고백했다(시89:26). 이 고백은 단순한 신학 문장이 아니라 삶의 의지처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 확신이 있었기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편 23편은 목자의 시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시다.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다윗은 부족함이 없었고,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받을 수 있었다(시23:4-5).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자의식의 노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23:4-5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이 사자와 곰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도 이 확신 때문이었다. 사자는 사람보다 크고 강하다. 곰도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맹수다. 그러나 다윗은 양떼를 살려야 한다는 목자의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가 무모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10: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은 전쟁 후에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사무엘하 22장에서 그는 여호와를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방패, 구원의 뿔, 높은 망대, 피난처, 구원자라고 찬양했다(삼하22:2-3).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자기 실력을 자랑하는 노래가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셨다는 감사의 고백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22:2-3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은 하나님께서 위에서 손을 내미사 자신을 붙드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적들이 자신보다 강했음을 인정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자기 힘이 대적보다 강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적은 강했으나 여호와께서 의지할 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고백했다(삼하22:17-2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22:17-20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영적 전쟁에서도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악한 영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과 가문 속에서 죄의 통로를 만들고, 두려움과 질병과 정죄와 중독과 분열을 일으켜 왔다. 그러나 성도는 그들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대적이 강하더라도 여호와께서 의지가 되시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의 담대함은 대적을 모르는 무지가 아니라, 대적보다 크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에서 나왔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 성도도 이 확신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은 죄를 품고 사는 자만심이 아니다. 회개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들며,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담대함이다. 죄를 붙들고 있으면서 &amp;ldquo;주님이 함께하신다&amp;rdquo;고 말하는 것은 착각이다. 다윗도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날까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한 성도에게 임재의 담대함이 회복되고, 임재의 담대함이 회복될 때 대적 앞에서 두려움이 줄어든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6. 다윗은 왜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물었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승리는 믿음과 임재의 확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두 가지 방식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상황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배운다. 이를 헬라어 개념으로 말하면 로고스, 곧 기록되고 선포된 말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지금 올라가야 하는지, 기다려야 하는지, 정면으로 가야 하는지, 뒤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런 특정 상황에서 주시는 적용의 말씀을 레마라고 설명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은 그일라를 구할 때 하나님께 물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치고 타작마당을 탈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곧장 자기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 &amp;ldquo;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amp;rdquo;라고 물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을 때 그는 순종했다(삼상23: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시글락 사건에서도 다윗은 물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불사르고 가족들을 사로잡아 갔을 때, 다윗과 백성은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 백성은 다윗을 돌로 치려 할 만큼 격분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고, 하나님께 추격할지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추격하라고 하셨고, 반드시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삼상30: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추격하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왕이 된 뒤에도 다윗은 블레셋과 싸울 때 하나님께 물었다. 한 번은 올라가라고 하셨고, 또 한 번은 정면으로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하라고 하셨다. 같은 블레셋과의 전쟁이라도 하나님의 지시는 달랐다(삼하5:19,23-24). 이것이 레마의 중요성이다. 어제의 방식이 오늘의 방식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5:23-24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반면 사울은 평소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는 위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았고, 끝내 신접한 자에게 묻는 죄를 범했다. 역대상은 사울이 죽은 이유를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신접한 자에게 묻고,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한다(대상10:13-14). 이것은 다윗과 사울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대상10:13-14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 성도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배워야 한다.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고, 음행하지 말아야 하며, 회개해야 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며,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명과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성전 건축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역자를 세워야 하는지, 어떤 영적 전쟁을 지금 감당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대적해야 하는지는 기도 가운데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성급히 움직이지 않고, 응답을 받으면 순종으로 움직인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7. 숨은 훈련은 어떻게 공개적인 승리를 만들었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의 골리앗 승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만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손을 쓰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훈련된 손을 쓰셨다. 다윗은 목동의 자리에서 지팡이와 막대기와 물매를 익혔다. 양떼를 지키려면 가까이 다가온 맹수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막아야 했고, 멀리 있는 맹수는 물매로 맞혀야 했다. 그는 수없이 연습했을 것이다. 거리, 속도, 바람, 돌의 무게, 손목의 각도까지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사람들은 공개적인 승리만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밀한 훈련을 보신다. 골리앗의 이마에 맞은 물매돌은 우연히 날아간 돌이 아니다. 목장의 외로운 시간 속에서 훈련된 손이 던진 돌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더 성실히 준비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시편 144편은 이 사실을 아름답게 고백한다. &amp;ldquo;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amp;rdquo;라고 말한다(시144:1). 여기서 손과 손가락은 실제 전투의 기술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만 훈련시키신 것이 아니라 손도 훈련시키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사무엘하 22장도 같은 고백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셨고, 그의 팔이 놋 활을 당기게 하셨다고 말한다(삼하22:35). 이것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믿음과 인간의 성실한 훈련이 서로 대립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22: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 성도에게도 숨은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담대하게 귀신을 대적할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레마를 분별하기 어렵다. 한 번의 은혜 체험이 평생의 실력을 대신하지 않는다. 성도는 날마다 말씀을 읽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작은 싸움에서 믿음을 사용해 보아야 한다. 작은 싸움에서 믿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큰 싸움 앞에서 갑자기 담대해지기 어렵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큰 용과 싸우려 하면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안의 죄를 회개하고, 작은 악한 영의 공격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정죄를 말씀으로 물리치는 훈련을 계속하면 믿음의 근육이 자란다. 다윗이 사자와 곰을 이긴 경험으로 골리앗 앞에 섰듯이, 성도도 작은 순종과 작은 승리를 통해 큰 싸움에 설 수 있는 내공을 얻게 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이때 가장 중요한 훈련은 회개다. 죄가 있으면 악한 영이 양심을 참소한다. 성도가 명령해도 마음속에서 &amp;ldquo;너도 죄를 지었지 않느냐&amp;rdquo;는 참소가 올라오면 담대함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회개는 전쟁 준비의 첫 단계다.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역사하고,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가 끊기며, 성도의 양심이 담대함을 회복한다. 회개 없는 영적 전쟁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8. 오늘 성도는 어떻게 영적 용사로 준비되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 성도가 영적 용사로 준비되려면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성도는 단지 예배당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장차 천국에서 기업과 상을 받을 상속자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이기는 자로 준비되면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막연한 위로만 받는 시간이 아니라 왕직을 준비하는 훈련의 시간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둘째, 성도는 전쟁의 대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람은 원수가 아니다.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 죄를 짓게 하는 귀신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이 대적이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나 성도나 목회자를 사람 자체로 미워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을 분별하고, 그 영이 떠나도록 회개와 기도와 사랑으로 싸워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피아 식별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에베소서 6장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종교 언어가 아니다. 영적 세계에서 성도에게 필요한 실제 무장이다. 진리가 없으면 속임수에 당하고, 의가 없으면 참소에 무너지고, 믿음의 방패가 없으면 불화살을 맞고, 말씀의 검이 없으면 대적을 찌를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넷째, 성도는 말씀과 영적 실제를 함께 알아야 한다. 말씀 없이 영적 체험만 좇으면 속기 쉽고, 영적 실제를 모른 채 문자만 붙들면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다윗을 제대로 알려면 사무엘상하와 역대상만 볼 것이 아니라 시편도 함께 보아야 한다. 역사책은 사건을 보여 주고, 시편은 다윗의 속마음과 영적 고백을 보여 준다. 이처럼 성경은 통전적으로 읽어야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은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때가 차매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으며,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시고, 성령으로 성도 안에 역사하시며, 마지막에는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신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섯째, 성도는 천국의 상과 기업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적 전쟁은 이 땅의 문제 해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악한 영을 내보내고, 죄를 이기고, 말씀에 순종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은 천국의 기업과 연결된다. 다윗이 원수들을 제압한 뒤에 솔로몬 시대의 평화가 왔듯이, 성도의 참된 평화도 영적 대적을 처리한 뒤에 깊어진다. 타협으로 얻은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오는 평화가 참된 샬롬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여섯째, 성도는 자신의 자리에서 훈련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계급과 같은 사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장군으로, 어떤 이는 용사로, 어떤 이는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세워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에게 맡겨진 싸움이 있다. 적어도 자기 영혼과 자기 가정은 지켜야 한다. 자기 안의 죄와 악한 영을 회개로 처리하고, 가족을 위해 대신 회개하며, 말씀과 기도로 가문에 흐르는 악한 흐름을 끊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일곱째, 성도는 마지막 하나님의 경륜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윗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국경 안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편 110편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시며 원수들이 발판이 되기까지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장면을 보여 준다(시110:1). 예수께서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셨기 때문에, 이 본문은 메시아의 승리와 연결된다. 결국 다윗의 왕직과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과 최종 승리를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마지막 때에 주님은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신다. 그분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이기셨고, 마지막에는 그 승리를 완전히 드러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적 전쟁은 개인의 문제 해결로만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종말의 흐름 안에 있다. 오늘 가정에서 악한 영을 대적하고, 자기 속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장차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자로 준비되는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마지막으로 성도는 끝까지 가야 한다. 회개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평안과 은혜가 임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영들이 드러날 때는 공격과 두려움과 아픔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때 중도에 멈추면 안 된다. 다윗이 사자와 곰을 이긴 뒤 골리앗 앞에 섰고, 골리앗을 이긴 뒤에도 사울의 추격과 내부 반란과 외부 전쟁을 계속 통과했듯이, 성도도 단계마다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적 용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개와 말씀과 기도와 순종과 실제 싸움을 통해 만들어진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윗의 승리는 우연한 영웅담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믿음을 가졌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붙들었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물었고, 목동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훈련을 계속했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오늘 성도도 이 원리를 붙들어야 한다. 영적 전쟁은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와 악한 영을 방치하면 어둠은 더 깊어지고, 회개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대적하면 빛의 세계가 열린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편적인 뜻을 배워야 하고, 기도 가운데 지금 주시는 주님의 인도를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또한 성도는 사람을 원수로 삼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살려야 할 대상이고,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이 구분이 분명해질 때 가정과 교회와 사역의 싸움이 달라진다. 미움과 분열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회개와 권세와 말씀으로 싸우게 된다. 이것이 다윗의 전쟁을 오늘의 영적 전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막연한 구원관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예수 믿은 이후가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서 받을 기업과 상은 이 땅에서의 믿음과 순종과 회개와 전쟁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안의 어둠을 회개로 처리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말씀과 기도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음을 믿고 끝까지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inden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14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amp;nbsp;&lt;strong&gt;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lt;/strong&gt;을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의 승리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첫째로는 그가&amp;nbsp;&lt;strong&gt;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반석이자 요새로 신뢰&lt;/strong&gt;하며 평소 찬양과 기도로 주님의 임재 안에 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amp;nbsp;&lt;strong&gt;하나님께 세밀하게 묻는 태도&lt;/strong&gt;를 견지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다윗이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 같은 맹수들과 싸웠던 것처럼&amp;nbsp;&lt;strong&gt;주어진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헌신&lt;/strong&gt;과 &lt;strong&gt;부단한 실력 연마&lt;/strong&gt;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설교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실력을 쌓을 때, 삶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골리앗과 같은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인포그래픽_다윗_전쟁_승리_이유_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f4ec2b93cb628ff3f54de4dcc64a10b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6956673d0c0954a9c05f1ab09223f5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5eba1cee70fc728ee5cdc176e1fcbd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d57f7da92c18728f0e2c57838625ca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2780ecbf244884578c74dbf8f6a144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97a5765f0483be90dc29755485d6e9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05d67e355a004d4712c75cd73f27e7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ea48d6a318435698b90cb393abb8a7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9b7e5688352c4a16165c0cb1d56103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c6081c64afc162f0348e693556d9eb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080b278cab04878a0391d3fbe7d9fc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df26e88e9efd4257a284e829e7d138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3007c96b18e50269eafc82d46ad109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7c4809a4494d8bb47cc3fb0136c25c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Spiritual_Warfare_Manual.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c32b9c30180d2a9424b4f89c1567675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또 다른 요약입니다. ]&lt;/p&gt; &lt;p&gt;2026-06-14(일) 주일낮2부예배&lt;/p&gt; &lt;/div&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1)]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7) 다윗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사무엘상 17:32~5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_6UQwyW5R3c&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6UQwyW5R3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 노릇하라고 특별히 선택하여 파송하신 사명자였다. 사울왕이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지도자에 불과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다윗의 생애를 기록한 책은 사무엘상&amp;middot;하와 역대상만이 아니다. 그의 내면 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시편까지 함께 읽어야 다윗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무엘하 22장과 시편 18편이 동일한 내용의 시이고, 역대상 16장에 시편 96편&amp;middot;105편&amp;middot;106편의 일부가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전적으로 읽어야만 발견되는 귀한 진실이다. 시편에 작자 미상으로 분류된 많은 시들이 사실은 다윗이 지은 것이며, 아삽과 헤만과 에단 같은 찬양 대장들에게 맡겨 공연하게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을 때 비로소 다윗의 진면목이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amp;#39;전쟁에 능한 자&amp;#39;다. 그는 맹수와 싸웠을 때도, 사울왕과 그의 세력에 맞섰을 때도, 블레셋&amp;middot;아말렉&amp;middot;에돔&amp;middot;모압&amp;middot;암몬&amp;middot;소바&amp;middot;아람 등 주변 열방과 싸웠을 때도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다. 이 놀라운 전쟁 불패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그 답은 골리앗과 싸우던 날 다윗의 입에서 터져 나온 선언, 곧 &amp;quot;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amp;quot;(삼상 17:47)이라는 한 문장에 담겨 있다. 이 시간에는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근본 비결은 무엇이며, 그 비결이 오늘날 우리의 영적 전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신자에게도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안팎에는 강한 귀신과 수천 년 된 악한 영들, 그리고 몸 안에 뿌리내린 뱀들이 있다. 처음 회개를 시작할 때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부터 공격이 시작된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사고가 나고, 주변 사람들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끝까지 가야 한다. 이것들을 내보내지 않으면 죄를 계속 짓게 되고, 천국에서 받을 기업이 줄어든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윗의 생애가 바로 그 비결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이다. 우리가 다윗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기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2.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근본 비결은 무엇인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치른 전쟁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amp;nbsp;&lt;strong&gt;첫째는 양떼를 칠 때 사자와 곰 같은 맹수와 싸운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소년 다윗이 들판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싸움이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싸우고 이겼다. &lt;strong&gt;둘째는 이스라엘 내부의 적들과 싸운 것&lt;/strong&gt;으로, 자신을 해하려 했던 사울왕과 사울 사후에 왕국을 복원하려 했던 이스보셋,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과 베냐민 지파 세바까지 내부 반란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lt;strong&gt;셋째는 외부 열방과의 전쟁&lt;/strong&gt;으로, 블레셋&amp;middot;아말렉&amp;middot;에돔&amp;middot;모압&amp;middot;암몬&amp;middot;소바&amp;middot;아람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조공을 받게 만들었다. 이 모든 싸움에서 다윗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그 이유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여 기록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8:6 다윗이 또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고 여호와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8:14 다윗이 에돔 온 땅에 수비대를 두되 에돔의 모든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 여호와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여호와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amp;quot; 이 표현의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다윗의 전쟁 승리의 원천이 오직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것이다. 사무엘하 5장 10절도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5:10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 이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음이더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점점 강성해졌다. 이것이 불패의 근본 비결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자기 삶을 유지한 것이 다윗의 탁월함이었다는 점&lt;/strong&gt;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싸움도 질 수 없다. 문제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여부이지, 내가 얼마나 강한가 여부가 아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다윗은 온 생애를 통해 증명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수행한 전쟁 중에서 성경이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는 전쟁이 바로 골리앗과의 싸움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전쟁들은 대부분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lt;strong&gt;골리앗과의 싸움은 사무엘상 17장 전체&lt;/strong&gt;를 할애할 만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이 싸움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lt;strong&gt;다윗의 모든 전쟁 승리의 원리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전형적 사건&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면 다윗이 왜 어디서나 이겼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삶을 유지했는가 하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이 시간에 살펴볼 핵심 주제들이다. 골리앗과의 싸움이 담긴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의 모든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작동한 원리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이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원리를 한 편의 이야기로 압축해 놓은 귀한 기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전쟁 불패의 비결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무엘상 17장 47절이다. &amp;quot;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amp;quot;&lt;/strong&gt; 이것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amp;quot;참으로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amp;quot;라고 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면 이기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지게 하시면 지는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다윗은 어떤 전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의 불패 신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면 이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 믿음을 어떻게 유지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3.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은 왜 그를 왕으로 세우셨는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울왕과 다윗왕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사울은 백성들이 왕을 원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도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만드신 게 아니라 요구에 응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은 왕답게 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반면 다윗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왕 노릇하라고 특별히 선택하고 파송하신 사명자였다. 그가 왕답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그런데 실제는 다윗은 그러한 삶을 살아냈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항상 전쟁에 이기었던 다윗이 다른 이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신의 시선을 두었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항상 추구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셨고, 그에게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 다윗이 쏟아낸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보다도 더 방대하고 강력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도 약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약한 면이 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고, 그 죄를 덮으려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은 범죄 이후의 태도였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오기까지 열 달 동안 다윗은 밥맛도 잃어버리고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온통 괴로움의 밤을 보냈다. 죄를 짓고 뻔뻔스러운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자신이 먼저 괴로워해야 한다. 그런데 다윗은 뼈까지 흔들릴 만큼 바짝 말랐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죄를 시인하고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용서를 받고 회복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51편은 그 진정한 회개의 기록이다. &amp;quot;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amp;quot;(시 51:1)라는 절규는 다윗이 자기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amp;quot;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amp;quot;(시 51:11)라는 간구는, 다윗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적이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 회개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였고, 다시 왕으로서 싸우는 자로 일어설 수 있었다. 넘어진 자였지만 다시 일어섰고, 그의 생애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amp;#39;전쟁에 능한 자&amp;#39;이며, 그 능함의 뿌리는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과 진정한 회개의 삶에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는 찬양과 시를 올려드렸다는 점이다. 그는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를 지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던 날, 아삽과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부르게 한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 노래가 시편 105편과 96편과 106편의 일부와 일치한다. 이것은 시편에 표제가 없어 작자 미상으로 분류된 시편들이 사실 다윗이 지은 것임을 보여 준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노래를 아삽과 헤만과 에단 같은 찬양 대장들에게 맡겨 공연하게 하였다. 이렇게 그는 평생 하나님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또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최우선순위로 삼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지만, 다윗은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민족에게 모욕당할 때 분노했고, 하나님의 군대가 조롱당할 때 홀로 나섰다. 이것이 골리앗 앞에 나서게 된 진짜 이유였다. 다윗이 한 말을 다시 들어보라. &amp;quot;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amp;quot;(삼상 17:36). 자기 목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먼저였다.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나서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지켜 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다윗을 제대로 알려면 사무엘상&amp;middot;하와 역대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내면세계를 담은 시편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 역사책이 다윗의 외면을 보여 준다면, 시편은 다윗의 속내를 보여 준다. 사무엘하 22장의 노래와 시편 18편이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 시편의 저주 시편들이 다윗이 얼마나 깊은 박해와 고난을 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메시아가 받을 저주와 고난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4. 골리앗과의 싸움은 어떤 상황에서 벌어졌으며, 다윗은 어떻게 담대히 나설 수 있었는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건은 &lt;strong&gt;BC 1025년경, 다윗의 나이가 15세 무렵&lt;/strong&gt;에 일어났다. 사울왕은 65세로 재위 중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이방 민족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다. 당시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보유한 강력한 군사 세력이었다.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 있어서 농기구나 무기를 만들려면 블레셋 땅으로 가서 돈을 내고 날을 세워야 했을 정도였다. 군사적 기술의 격차가 현저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음을 잘 아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노략질하였다. 사울이 왕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다. 왕을 세워 자신들에게 대항하려는 이스라엘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강력한 전략 무기인 골리앗을 앞세웠다. 그런데 당시에는 온 나라의 승패를 대표 전사 한 명의 싸움으로 결정짓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다. 그러니 사울왕 입장에서는 자기편 가운데 누군가 골리앗과 싸워 이겨야만 했는데, 그럴 자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때 블레셋 진영에서 앞에 나선 자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었다. 키가 대략 2m 50cm에 달하는 거인이었다. 성경은 그의 장비를 상세히 기록한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놋으로 된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 약 57kg이었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에는 놋 단창이 있었으며,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었다. 그야말로 철기 시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의 전사였다. 이런 골리앗이 날마다 이스라엘 진영 앞에 나서서 싸울 자를 내보내라고 외쳤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가 두려워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전쟁에 능하다는 사울왕도, 용맹하기로 소문난 요나단도 끽소리 못 하고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바로 그 자리에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이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왔다가 골리앗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나아가 말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상 17: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아무도 낙심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울왕은 만류했다. &amp;quot;너는 소년이고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다.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느냐?&amp;quot; 그러자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담대히 말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상 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되리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이미 사자와 곰을 쳐죽인 경험이 있었다. 사자는 성인 남자보다도 훨씬 크고, 발톱 하나가 쓸리기만 해도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는 맹수다. 그 사자의 수염을 잡고 쳐죽인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도 그 짐승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이길 수 없는 싸움 앞에서 미리 포기하거나 도망가지만, 다윗은 골리앗의 큰 소리를 듣고도 오히려 나아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다윗은 물매돌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뜨렸다. 칼이 없었지만 골리앗의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이 광경을 본 블레셋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자기 고을 경계까지 쫓아가 대승을 거두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상 17:50 다윗이 블레셋 사람보다 강하여 물매와 돌로 그를 쳐죽였고 자기 손에 칼이 없었더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없으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지 않는다. 믿음이 없으면 미리 계산해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선다. 믿음이 없으면 적장의 위협만 보고 두려워하여 전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담대히 나서서 큰 소리를 쳤다. 그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것은 다음 두 장에서 살펴볼 &amp;#39;전쟁은 여호와의 것&amp;#39;이라는 믿음과,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깊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과정에서, 그는 사울왕이 입혀 준 군복과 투구와 갑옷을 결국 벗어 버렸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사울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방식으로 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너무 커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익숙한 방법으로 싸웠다.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물매에 넣고 나아갔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내가 익숙한 도구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lt;strong&gt;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무기와 갑옷이 있어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물매 하나로도 거인을 이길 수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가 다윗의 담대함을 가능하게 했다&lt;/strong&gt;. 하나님이 없으면 사울의 갑옷도, 블레셋의 철기 무기도 소용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소년의 물매 하나로도 거인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다윗이 평생 살아낸 진리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5. &amp;quot;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amp;quot;이라는 고백은 어떤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외친 말은 단순한 격려사가 아니었다. 다윗의 전쟁 신학 전체를 담은 핵심 선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amp;quot;참으로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amp;quot;이다. 이 고백의 핵심은 전쟁의 승패가 칼과 창, 곧 인간의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서 소유하신 것이며,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면 이기고 지게 하시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대적을 만나도 &amp;quot;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반드시 이긴다&amp;quot;는 믿음이 있으면 두렵지 않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고백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었다. 다윗은 이것을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했다. 양떼를 지키며 사자와 곰을 이겼을 때, 그 힘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그는 분명히 알았다. 그 앎이 쌓이고 쌓여 골리앗 앞에서의 담대한 선언이 된 것이다. 양떼를 지키던 시절, 자신보다 훨씬 강한 사자와 곰을 대면했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 체험적 확신이 골리앗 앞에서의 담대한 고백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믿음은 경험 없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싸움을 통해 검증된 살아 있는 신앙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믿음이 있으면 오늘날 영적 전쟁에서도 두려움이 사라진다. 수천 년 된 악한 영을 만날 때, 계급이 높은 귀신을 대면할 때도 &amp;quot;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면 이기는 것이다&amp;quot;라는 믿음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귀신이 주는 무서움증, 오싹한 두려움도 &amp;quot;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영과 십자가 세운다&amp;quot;는 명령 앞에 물러간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신다는 믿음이 마음 깊이 자리 잡으면 어떤 대적 앞에서도 담대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이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그 실례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실제적인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골리앗의 위협만 보고 자기 힘으로 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울왕이 그 반면교사다. 사울은 평소에 하나님께 묻지도, 찬양하지도 않다가 블레셋이 쳐들어와 위급해지자 하나님을 찾았지만 응답이 없었다. 역대상은 그 이유를 명확히 기록한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평소에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는 갑자기 쌓이지 않는다. 평소에 날마다 그 관계를 쌓아 두어야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 날마다 드리는 경배, 말씀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모두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쌓는 과정이다.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다가 위급할 때만 찾는 신앙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 사울의 실패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다. 예배드릴 때만, 기도 제목이 생겼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신앙은 사울의 신앙이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날마다 그분을 높이며, 날마다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이 다윗의 신앙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달랐다. &amp;quot;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다&amp;quot;라는 고백이 입술의 말이 아니라 실제적 삶의 원리로 작동하였다. 그것이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한 핵심 믿음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믿음은 또한 사무엘하 22장에서 다윗이 직접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싸워 주신다는 확신이기도 하다. 17절부터 20절까지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22:17-20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하였나이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높은 곳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amp;quot;&amp;mdash;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내미셔서 다윗을 붙드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경험한 전쟁의 실상이었다. 적들이 나보다 강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보다 더 강하시므로 결국 이길 수밖에 없다는 믿음, 이것이 &amp;quot;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다&amp;quot;라는 고백의 실체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믿음이 없으면 적의 강함만 보고 도망가지만, 믿음이 있으면 적의 강함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나아간다.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골리앗의 위협 앞에서 두 달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윗 혼자 골리앗의 목을 베었다. 군중과 영웅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믿음의 차이다. 누가 하나님을 더 실제적으로 신뢰하는가,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20편 7절은 이 신앙을 이렇게 압축한다. &amp;quot;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amp;quot; 병거와 말, 곧 첨단 무기와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가 이긴다. 다윗은 이것을 지식으로 안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냈다. 그 삶이 모든 전쟁에서의 불패로 이어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6. 다윗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한 믿음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새의 아들 여덟 명 가운데 막내였던 그는 부정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의혹 때문에 집안에서 홀대를 받았다. 아버지 이새는 사무엘 선지자가 왕에게 기름 부을 아들을 보러 왔을 때조차 다윗을 그냥 들판에 내버려 두었다. 형들은 그를 무시했고, 어머니는 그를 버린 것 같았다. 시편 27편 10절은 그 상처를 담담하게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외로움과 멸시 속에서 보낸 들판의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는 시간이 되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amp;quot;부모는 나를 버렸어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amp;quot;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래서 그는 구약 시대에 매우 드문 일이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시편 89편 26절은 이 신뢰를 노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시 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다. 아버지께서 함께하신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시편 23편은 양치기 다윗이 온몸으로 살았던 체험적 신앙의 고백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시 23:4-5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사자와 곰이 출몰하는 위험한 들판&lt;/strong&gt;이었다. 홀로 그 들판을 헤치며 양떼를 돌봐야 했던 소년 다윗에게 이 고백은 관념이 아니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달려드는 사자의 수염을 잡고 쳐죽이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양떼를 치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과 함께한 실제적 경험이 쌓이면서 단련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니 나는 어떤 위험에서도 안전하다는 확신,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믿음의 뿌리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모든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찬양의 노래로 고백했다. 사무엘하 22장이 그 노래다. 이 노래는 시편 18편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22:2-3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날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반석, 요새, 방패, 구원의 뿔이라 노래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다윗의 찬양이 하늘에 올라갈 때마다 하나님은 그 찬양을 받으시며 그를 더욱 강하게 하셨다. 이렇게 형성된 믿음이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한 믿음은 그가 어릴 때 들판에서 혼자 양떼를 치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 아무도 돌봐 주는 이 없는 들판에서 홀로 맹수를 대면해야 했던 그 고독한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다른 형제들이 집에서 교육을 받고 인정을 받을 때, 다윗은 들판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었다. 그 시간이 그를 만들었다. 사람에게 외면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발견한 자는 이 세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그 믿음이 바로 다윗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자에게는 어떤 강한 대적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강한 대적을 만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그 의지 속에서 하나님이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 수천 년 된 귀신을 만났을 때도, 계급이 높은 악한 영을 대면했을 때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amp;quot;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amp;quot;(시 23:4)는 고백이 자신의 것이 된 자는 영적 전쟁에서 지지 않는다. 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그분이 실제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하 22장 4절도 이 신뢰를 잘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22:4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위험이 닥치기 전에 이미 &amp;quot;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amp;quot;라고 고백했다. 위기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뢰 관계를 쌓아 두었기 때문에, 위기가 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그분을 나의 반석과 요새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는 통로다. 찬양 속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럴 때 영적 전쟁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재를 누릴 수 있다. 이 임재가 있을 때 어떤 강한 대적도 우리 앞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7.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했으며, 물어보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단 한 번도 전쟁에서 지지 않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모든 중요한 결정에 앞서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보았다는 데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건의 습관이 아니라, 전쟁의 승패를 직결하는 실질적인 행동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성경 전체를 통해 알 수 있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을 로고스(logos)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나에게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다. 이것을 레마(rhema)라고 한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영적 분별이 흐려진다. 특수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하며 구체적으로 여쭈어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추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확하게 행동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실천했는지 성경이 잘 보여 준다. 시글락이 아말렉에게 불태워졌을 때, 다윗은 모든 것을 잃고 군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기까지 처했음에도 여호와께 여쭤 보았다. 위기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다윗의 방식이었다. 추격하리이까, 따라잡으리이까 물었고 하나님은 추격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추격하여 모든 것을 되찾았다. 블레셋이 처음 쳐들어왔을 때도 먼저 물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5: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블레셋이 또 쳐들어왔을 때는 같은 상대임에도 다른 전략을 명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삼하 5:23-24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에게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에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같은 블레셋이었지만 하나님은 상황마다 다른 방법을 지시하셨다. 이것이 레마의 세계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만 알고 자기 판단대로 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언제나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사울왕은 평소에 여호와께 묻지 않다가 위급할 때만 찾았다. 응답이 없자 급기야 신접한 자에게까지 갔다. 역대상 10장은 그 결말을 분명히 기록한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며,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평소에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물어보는 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다. 다윗이 하나님께 여쭤볼 때 하나님은 언제나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 주셨다. &amp;quot;올라가라&amp;quot;, &amp;quot;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가라&amp;quot;, &amp;quot;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소리가 들릴 때 공격하라&amp;quot;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시를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따라 행동할 때 승리가 보장된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고, 특수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구체적으로 여쭈어보고, 들은 대로 순종하는 삶, 이것이 다윗의 불패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핵심 비결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하나님께 물어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다윗은 자기 생각이 없어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모든 전쟁과 중요한 결정 앞에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자기 지혜가 있어도 그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먼저 구하는 겸손이 그를 이기는 자로 만들었다.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이 겸손함이 그를 불패의 장수로 만든 것이다. 우리도 어떤 영적 전쟁에 임할 때,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 한다. 이때 싸워도 되는가,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싸움이 있다. 그런 싸움에 자기 판단으로 뛰어들면 지고 만다.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 싸울 때에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8. 오늘날 우리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다윗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전쟁 비결은 오늘날 영적 전쟁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앞에도 다윗이 만났던 골리앗 같은 강한 대적들이 있다. 수천 년 된 악한 영, 계급이 높은 귀신, 우리 안팎에 뿌리내린 뱀들이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다윗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전쟁의 출발점이다. 다윗이 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였기 때문이다. &amp;quot;여호와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방패&amp;quot;라는 고백이 날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갔고, 하나님은 그 찬양을 받으시며 다윗을 더욱 강하게 하셨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외면하다가 위급할 때만 찾는 신앙에는 응답이 없다. 날마다 찬양하고, 날마다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도록 하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죄가 있으면 주님이 떠나신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범죄한 후 가장 두려워한 것이 무엇인가? 적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편 51편에서 그는 &amp;quot;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amp;quot;라고 절규하였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회개를 통해 내 안의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양심의 참소가 없어야 영적 전쟁에서 담대함이 생긴다. 내 안에 악한 영이 있으면 그 영이 양심을 참소하여 힘을 빼앗고, 결국 전쟁에서 패하게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첫 번째 물매돌을 정확히 명중시킨 것은, 그 자리에서 갑자기 기적이 일어난 것만이 아니었다. 양떼를 치던 시절부터 물매질의 기술을 수없이 연습했기 때문이다. 강도와 속도와 바람의 방향을 계산하며 물매돌을 던지는 연습을 오랫동안 반복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시편 144편 1절이 이를 확인한다. 이 시편의 표제는 헬라어 성경(70인역)에 &amp;quot;다윗의 시, 골리앗에 관하여&amp;quot;로 되어 있다. 즉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쓴 시라는 것이다. 이 시가 골리앗과의 싸움을 앞두고 쓰인 것이라면, 하나님이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고백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lt;strong&gt;시 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어떻게 싸우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사무엘하 22장 35절도 같은 고백을 담는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열심히 훈련하고 익혀야 한다. 한 번의 성령의 역사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꾸준히 말씀을 연구하고 훈련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영적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한 번 성령이 깨우쳐 줄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계속해서 이길 수 없다. 실력을 키워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실력에는 성경 지식만이 아니라 영적 싸움의 경험도 포함된다. 다윗이 사자를 이기고, 곰을 이기고, 그 경험 위에서 골리앗을 이겼듯이, 우리도 작은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경험이 쌓여야 더 큰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 처음에는 두렵고 무서웠던 싸움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하나님이 더 강한 은사와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보여 준 영적 전쟁의 방식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회개하고 다시 싸우고, 그 반복 속에서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이야기는 단순히 &amp;quot;열심히 하면 된다&amp;quot;는 교훈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는 반드시 이긴다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싸워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약할수록 하나님은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 다윗이 15세 소년이었을 때, 그 약한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이기셨다. 우리도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공개적인 승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 숨겨진 노력의 결정품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반복된 훈련,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말씀 연구와 기도, 그것이 쌓여 전쟁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거룩한 삶과, 피나는 말씀 훈련을 통해 쌓인 실력,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추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amp;quot;어디로 가든지 이기게&amp;quot; 하시는 진정한 영적 용사로 세워 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먼저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안에 악한 영이 있으면 그 영이 양심을 참소하여 담대함을 빼앗는다. &amp;quot;네가 무슨 자격으로 귀신과 싸우느냐&amp;quot;고 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 내 안의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만 외부의 악한 영들과 싸울 때 담대함이 생긴다.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이기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순결하게 유지했던 것은 이 원리와 같다. 내 안을 먼저 청결히 해야 밖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평소에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 것도 영적 전쟁 준비의 일환이었다. 찬양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불러오는 행위이다. 시편 22편 3절은 &amp;quot;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amp;quot;라고 한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신다. 다윗이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 찬양을 받으시며 임재하셨다. 그 임재 속에서 다윗은 점점 강해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임재를 불러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러 전쟁을 통해 실력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용사가 된다. 처음에는 두렵고 떨렸던 싸움이 점점 익숙해지고, 담대함이 자라나고, 하나님이 더 강한 은사와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 다윗이 사자와 곰을 이기고 골리앗을 이기고, 이후의 모든 열방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작은 싸움에서 이기는 경험이 쌓일 때 더 큰 싸움에서도 이기는 자로 세워진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늘 찬양하고, 그분께 늘 여쭈어보고, 말씀으로 믿음을 키우며, 회개로 임재를 유지하는 삶이 바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근본 비결과, 그 비결이 오늘날 우리의 영적 전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교과서다. 그는 단순한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수행하며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 준 예표였다. 그의 전쟁 비결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우리의 영적 전쟁도 반드시 승리로 이어질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하나님께서 왕 노릇하도록 특별히 파송하신 사명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신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실수가 있었을 때는 열 달의 고통 끝에 진정한 회개로 다시 회복되었다. 그의 전쟁 비결의 핵심은 &amp;quot;참으로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amp;quot;라는 살아 있는 믿음이었다(삼상 17:47). 이 믿음은 양떼를 치던 시절 사자와 곰을 물리친 체험 위에 쌓인 것이었다. 그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발견했고, &amp;quot;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amp;quot;(시 27:10)라는 신뢰 위에 서서, 어떤 강한 대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전쟁에 앞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여, 들은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의 영적 전쟁도 다르지 않다. 회개로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고, 날마다 찬양으로 그분을 높이며, 말씀으로 믿음을 키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이것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가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삶이 쌓일 때 여호와께서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신다. 죄가 있으면 회개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또 읽어 말씀으로 믿음을 키워야 한다. 모든 중요한 결정 앞에서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어떤 어둠의 세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기는 자로 서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땅에서의 영적 전쟁은 우리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도망간다고 해서 천국에서 기업이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천국에서 받을 상이 있다. 다윗이 이 땅에서 전쟁에 능한 자로 살았기에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오늘 우리도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회개로 임재를 지키고,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말씀으로 믿음을 키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amp;quot;여호와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amp;quot;는 말씀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며, 다윗처럼 모든 결정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다윗처럼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 가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천국에서 받을 상과 기업은 이 땅에서의 영적 전쟁 승리와 직결되어 있다. 싸우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다. 그리하여 어떤 어둠의 세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기는 자로 서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14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다윗의_무패_비결_승리_원칙.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2d36dea0a2e776932f3786ad0009be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644b523478d9ee484259d1ba7a2e02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4e12962186256dbd1de7adf74381b4a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f2f52b53e036c03c44dc1ebb299140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5c1f6395930ca9560a14fb6cc706fa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8bc1249317d2e579392fd5277c4dcd3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4b735012ac2128776bab23125f64256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ffa687663062d1748854165fe874e11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882b7b0be6b8799fd06c9ba3e6d7d4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39cf6a135735475d07756734bcf59a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caa9bce0d7bba85d3577f8a78a7f4d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Victory_Formula.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a0c655907cbd516e66f513f5f1c9ade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ad001635632a8c1bdc5c9acfb54584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2eb18e493cff007332eda1fd51d3bf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b56e16d7bb4695880a529854136410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b7a7de26bf8bddd14ea45880d7c081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8bd30da64cf8cbf3757dec2e19a714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fbd0bff29a12c3c88da243a32b956f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f02a990ea00fa5d14f7f906e078b8d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b30bb5baaba243170608ac10858d72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983138e566c9ece58a50519e09058d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02a7f47a2b8bfdba728384994bf588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284168fb91c33025009270f3c9cf13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1)] David_s_Invincible_Architectur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021/256/3703232d7140b0e8275295cb5e189d0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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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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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0)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2)(시편6:1~7)_2026-06-07(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5543</link>
				<description>&lt;p&gt;2026-06-07(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0)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2)(시편6: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6GQEGXDhz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6GQEGXDhz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padding:0;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font-size:15px;line-height: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성경이 증언하는 이스라엘 역사 최고의 왕이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amp;quot;내 마음에 합한 사람&amp;quot;(행 13:22)이라고 부르신 인물이었으며, 사울왕이 폐위된 자리를 채울 유일한 적임자로 선택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은 남의 아내를 빼앗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계획적으로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기도 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감추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3:22 하나님이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그 죄의 뿌리와 네 가지 원인을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그 죄를 지은 이후 열 달 동안 다윗의 몸과 영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들여다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하는 일종의 역사책이다. 그래서 사무엘하는 다윗이 죄를 지은 후의 내면 상태를 기록하지 않는다. &amp;quot;아내를 취하여 열 달 후 아이를 낳았다&amp;quot;는 사실만 기록하고, 그 열 달 사이에 다윗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침묵한다. 역대상하는 그보다 더 좋은 일만 기록한 것이어서 다윗의 범죄 장면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침묵을 채워 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시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으로 구성된, 다윗이 쓴 일곱 편의 참회의 시편들은, 다윗이 범죄한 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뼈저리게 증언한다. 특히 시편 6편은 그가 나단 선지자를 만나기 직전이나 직후의 심경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죄를 지은 후 인간의 몸과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윗은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그도 실수했다. 사람은 완전히 온전할 수 없고 언제든지 잘못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잘못된 것을 어떻게 교정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윗의 범죄와 회개는 우리에게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가르쳐 준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잘못된 방향을 교정하고, 다윗의 참회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다윗이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왕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윗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흠과 실수를 살피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가 얼마나 탁월하게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동시에 그의 회개가 얼마나 깊고 진정성 있는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왕이었다는 &lt;strong&gt;첫 번째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lt;/strong&gt;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압축하여 설명하면서 다윗에 대해 하나님이 &amp;quot;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amp;quot;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다는 것이다. 버림받고 홀대받았던 어린 시절, 아버지 이새조차 선지자 사무엘 앞에 그를 데려오지 않을 만큼 무시당했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여기며(시 89:26) 그 사랑에 의지하여 성장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증거는 그가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이었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오벳에돔의 집에 임시로 보관되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면서, 그는 레위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도록 하고 아삽, 헤만, 여두둔을 찬양 대장으로 삼아 행렬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 자신은 왕복을 벗고 에봇만 걸친 채 법궤 앞에서 기뻐 뛰며 춤을 추었다. 그것을 창문에서 내려다보던 사울의 딸 미갈이 그 모습을 업신여겼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이 왕의 체면보다 훨씬 중요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증거는 성전 건축에 대한 간절한 열망&lt;/strong&gt;이다.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나단 선지자를 불러 성전 건축의 뜻을 밝혔다. 그때 하나님의 반응이 사무엘하 7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지금까지 내내 텐트와 휘장 가운데 계셨지만 단 한 번도 당신의 집을 지어 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는데, 다윗이 자신을 위해 집을 지으려 한다고 오히려 말씀하신다. 그 마음이 갸륵하다는 것이다. 비록 다윗이 전쟁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직접 성전을 짓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다윗은 좌절하지 않고 그때부터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것을 위해 자신의 전리품, 목숨 걸고 전쟁에서 얻어 온 모든 금은을 성전 건축을 위해 내놓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네 번째 증거는 메시아 예언&lt;/strong&gt;이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누구인가? 놀랍게도 그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가 아니라 다윗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시편 2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였고, 시편 22편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할 고난받는 종, 시편 23편에서 선한 목자로서 양 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분, 시편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요 원수 위에 앉으실 왕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탁월하고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으나, 그도 죄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다윗은 왜 밧세바 사건이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저지른 죄는 단순한 그런 실수가 아니었다. 남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였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전장 최전선에 세워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죄는 간음죄, 살인죄, 도둑질의 죄, 탐욕의 죄가 한꺼번에 중첩된 중대한 범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우리는 그 이유를 지난 시간에 네 가지로 살펴보았다.&lt;strong&gt; 첫째는 내면에 이미 죄성이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은 &amp;quot;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amp;quot;라고 고백했다. 어머니가 부정한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 음란의 속성이 대물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거짓말의 속성이 이삭, 야곱에게 대물림된 것처럼, 다윗에게도 어머니로부터 음란의 속성이 전해졌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육체와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된다. 보는 순간 소유하고 싶은 육체와 안목의 정욕이 발동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 말하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그 첫 번째 문을 연 것이다. 그것은 그가 요셉처럼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신하가 &amp;quot;그 여인이 우리아의 아내가 아니니이까&amp;quot;라고 분명히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범죄를 멈추지 않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정신적 해이가 찾아왔기 때문&lt;/strong&gt;이다. 당시 요압 장군과 군대는 암몬 족속의 랍바 성을 공격하는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부하 장수들은 부왕의 등불이 꺼지지 말라며 다윗을 예루살렘에 남겨 두었는데, 전장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부하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야 했던 다윗은 낮잠을 잔 후 저녁에 일어나 옥상에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목욕하고 있는 여인을 본 것이다. 그러자 그는 범죄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에 대한 사명감이 흐려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 순간, 죄가 그에게 파고들어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그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사탄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역대상 21장을 보면,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에 대해 &amp;quot;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였다&amp;quot;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일수록 사탄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다. 다윗이 해이해진 그 순간을 사탄은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네 가지 이유가 맞물리면서 다윗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다. &lt;strong&gt;아무리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도, 메시아를 예언한 선지자적 인물이라도, 영분별의 은사를 받은 신앙인이라도 이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무너질 수 있는 것&lt;/strong&gt;이다. 신앙의 경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죄 앞에서는 안전 지대가 없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amp;quot;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amp;quot; 이것이 다윗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엄중한 교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아를 불러 귀가시키는 방법으로 은폐하려 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장에 있는데 자신만 집에 들어갈 잘 수 없다며 왕궁 문 앞에서 잠을 잔다. 결국 다윗은 요압에게 우리아를 최전선에 세우고 물러나도록 지시하는 편지를 써 보냈고, 그 편지를 우리아 자신이 들고 전장으로 갔다. 자신의 사형선고문을 손수 들고 간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저지른 죄의 전말이다. 고로 사무엘하 11장 27절에는 &amp;quot;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amp;quot;는 한 줄의 평가가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이 한 줄 속에는 다윗의 모든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그 일을 다 보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그 죄를 묻겠다는 의지가 이 짧은 문장 안에 모두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1:27 그 애도하는 기한이 지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자기 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다윗은 왜 즉시 자복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가서 &amp;quot;당신이 죄를 범하였소&amp;quot;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한 비유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부유한 자가 넘치는 양 떼가 있으면서도 가난한 자의 단 하나뿐인 어린 암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것은 지혜로운 접근이었다. 왕에게 직접 &amp;quot;잘못했다&amp;quot;고 하면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 있겠지만, 비유를 통해 스스로 판결을 내리게 함으로써 그 양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하며 즉시 판결을 내렸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2:5-6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암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마땅히 죽을 자라&amp;quot;, &amp;quot;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amp;quot;는 선고가 자기 자신의 죄를 향한 것임을 다윗은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나단이 &amp;quot;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다윗은 즉시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이때 다윗의 자복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다윗은 그순간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호위대장을 불러 나단을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왜인가? 그것은&amp;nbsp;열 달 동안 그에 겪어야 했던 고통 때문이었다. 다윗은 그 범죄 이후 열 달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영적&amp;middot;육체적 고통 속에 있었다. 몸은 말라가고 있었고, 뼈는 흔들렸으며, 눈은 흐려지고 있었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 자체가 다윗에게는 이미 깊은 회개의 몸부림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나단이 &amp;quot;당신이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는 순간, 다윗은 오히려 감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10달동안 나를 떠나계시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나를 찾아오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야말로 하나님께 자신의 허물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지적에 매우 감사했을 것이다. 입으로는 말하기가 너무 부끄러웠던 자신의 죄를, 나단이 대신 들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시 엎드려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즉각적인 자복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나단의 응답에서 확인된다.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 자복하는 순간, 그의 죄가 사해졌다. 열 달의 고통이 그 한 마디 자복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죄를 숨기면 고통이 길어지고, 자백하면 즉시 용서가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백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자백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가 죄 가운데서 수척해지고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 달을 기다리신 것은 다윗을 포기하셔서가 아니라, 다윗이 스스로 나아오기를 기다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복 이후에도 자신의 범죄에 대한 결과는 그를 따라왔다. 왜냐하면 자기 입술로 &amp;quot;네 배나 갚아야 한다&amp;quot;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었고, 첫째 아들 암논이 죽었으며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다가 죽었고,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다가 죽는다. 그리하여 정말 네 명의 아들이 죽는 것으로 다윗의 선고가 그대로 이행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죄를 짓고 난 후 다윗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1)&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 이후 열 달 동안 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데 사무엘하는 그것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편은 달랐다. 시편 말씀 가운데,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을 통해 그때의 다윗의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윗이 죄를 지은 후 다윗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그를 누르고&lt;/strong&gt; 있었다. 시편 6편 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이미 책망과 징계가 그에게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미 주님의 진노가 다윗 위에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에게서 이미 진액이 빠져 나가고 있었으며(시32:4), 그러자 주님 앞에 제대로 설 수도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다(시102:2).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겨버렸기 때문에, 그아 아무리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응답이 없게되었다고도 말했다(시102:2).&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는 무척 수척해졌다&lt;/strong&gt;는 것이다. 시편 6편 2절에서 &amp;quot;내가 수척하오니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amp;quot;라고 한다.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눈이 움푹 들어갔다(시6:7). 음식도 맛이 없었다(시102:4)&amp;rdquo;. 또한 그의 머리는 무거웠고(시38:4), 몸이 아파왔다(시38:5-6). 온 몸이 몹시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있었으며(시38:8, 143:7), 그럴수록 심장박동은 빨라졌고(시 38:10), 허리에 열이 나고 몸은 성한 곳이 없어졌다(시38:7). 그리고 마침내 그의 기력은 완전히 쇠하여졌으며(시38:10),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나지 않았다(시38:10). 눈빛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편 6편 7절에서 &amp;quot;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amp;quot;라고 한다. 죄를 지으면 눈빛이 흐려진다. 동태 눈처럼 초점을 잃어버린다. 주님과 친밀한 사람의 눈에서는 빛이 나지만,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의 눈에서는 그 빛이 사라진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을 받은 직전의 눈빛이 얼마나 흐려져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나중에는 뼈까지 흔들리게 되었다고 말했다(시6:2).&amp;nbsp;시편 6편 2절에서 &amp;quot;나의 뼈가 떨리나이다&amp;quot;라고 했고, 시편 32편 3절에서 4절은 더욱 생생하게 그 상태를 묘사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8:5-6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니 내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음이로소이다 내가 구부러지고 심히 낮아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 &amp;quot;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amp;quot;고 했다. 이는 온몸의 생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말라비틀어진 상태를 말해준다. 그렇다. 그것이 열 달 동안 죄를 은폐하며 살아간 다윗의 육체적 상태였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그는 자신의 눈물이 그의 침상을 적셨다고 말했다. 시편 6편 6절에서 &amp;quot;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amp;quot;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amp;#39;띄운다&amp;#39;는 표현이 주목된다. 적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물이 고인다는 뜻이고, 띄운다는 것은 침상이 눈물 위에 뜰 정도로 많이 흘렸다는 과장적 표현이다. 이처럼 다윗이 밤마다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낮에는 왕의 위엄을 지키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겠지만, 밤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는 그가 침상을 적실 정도가 아니라 침상을 띄울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열 달 동안 겪어 낸 육체적 고통의 실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죄를 짓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그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죄를 짓고 난 후 다윗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2)&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죄를 지은 다윗에게는 육체의 고통만이 그에게 있지 않았다. &lt;strong&gt;그의 영혼과 내면 세계 더욱 깊은 곳에서부터 또한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lt;/strong&gt;. 시편 6편 3절에서 &amp;quot;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amp;quot;라고 했다. 영혼이 떨린다는 것은 존재의 가장 깊은 층에서 불안과 공포가 밀려온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래서 &lt;strong&gt;첫째,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졌다&lt;/strong&gt;. 시편 38편 8절에서 &amp;quot;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amp;quot;라고 한다.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평안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해도, 하나님이 알고 계심을 그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 우리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끊임없이 그를 짓눌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8: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우울과 혼돈이 몰려왔다&lt;/strong&gt;. 시편 143편 4절에서 &amp;quot;그러므로 내 심령이 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황폐하여지나이다&amp;quot;라고 한다. 시편 38편 6절에서는 &amp;quot;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amp;quot;라고 했다. 마음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삶의 의욕과 기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날마다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안 되고,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43:4 그러므로 내 심령이 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황폐하여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죄는 기쁨을 앗아간다. 날마다 찬양을 불러도 감격이 없고,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구원의 기쁨이 사라진다. 살아 있지만 사는 것 같지 않은 상태가 된다. 다윗이 시편 51편 12절에서 &amp;quot;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amp;quot;라고 간구한 것은, 그 즐거움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도가 막혔다&lt;/strong&gt;. 시편 102편 2절에서 &amp;quot;나의 고통의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amp;quot;라고 간구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고 계심을 전제로 한 기도이다.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얼굴이 이미 숨겨진 상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열 달 동안 기도해도 하늘이 닫혀 있는 것 같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2:2 나의 고통의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떠나버리신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lt;/strong&gt;. 시편 6편 4절에서 &amp;quot;여호와여 돌아오사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amp;quot;라고 한다. &amp;quot;돌아오사&amp;quot;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미 떠나버리셨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육체의 방법으로 아이를 얻은 후 13년 동안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던 것처럼, 다윗에게서도 하나님이 침묵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3-4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오사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성령마저 떠나갈까 두려워했다&lt;/strong&gt;. 시편 51편 11절에서 &amp;quot;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amp;quot;라고 한다. 사울왕에게서 성령이 떠나갔던 것을 다윗은 직접 목격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도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밤마다 그를 사로잡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악한 영들이 그를 비방하고 공격했다&lt;/strong&gt;. 시편 102편 8절에서 &amp;quot;나의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amp;quot;라고 한다. 죄를 지으면 악한 영들이 그것을 구실 삼아 더욱 가중하게 공격한다. 잘됐다며 비방하고 압박해 온다. 그 영적 공격이 더해지면서 다윗의 내면은 더욱 피폐해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처럼 죄는 이처럼 몸과 영혼과 영 모든 차원에서 동시에 파괴를 일으킨다. 육체의 병, 마음의 불안, 영적 침묵, 성령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 악한 영들의 공격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온다. 죄를 짓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환상에 불과하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다윗의 증언이 그것을 증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은 열 달 동안 왜 즉시 회개하지 못했는가? &amp;mdash; 죄의 무게와 침묵의 고통&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우리가 다윗의 참회의 시편을 읽을 때에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다윗이 이처럼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왜 열 달 동안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복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다윗은 왜 자신의 죄를 입으로 고백하지 못한 채 홀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lt;strong&gt;다윗이 저지른 죄의 무게는 다른 사람이 죄를 지은 무게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다윗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사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친히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부르신 자였고, 영분별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할 정도로 깊은 영성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이렇듯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사명이 클수록,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도도 그만큼 더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사실 다윗이 아히도벨의 손녀인 밧세바의 육체를 취했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의 가족을 범한 것이었다. 헷 사람 우리아는 이방인 출신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다윗의 37인 용사 중 하나가 된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그런 사람의 아내를 그가 빼앗았고 그를 죽게 만들었다. 고로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lt;strong&gt;오히려 그 무게 앞에서 입을 열기가 힘들었던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그런데 시편 32편 3절의 말씀은 다윗이 그때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amp;quot;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amp;quot; 그렇다. 그는 자신의 범죄를 하나님께 말하고 싶어 했으나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lt;strong&gt;하나님이 너무 크게 실망하셨을 것 같아서,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말해야지 하다가 그만 한 달이 지나가고 또 한 달이 지나가서 열 달이 되어버린 것&lt;/strong&gt;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러한 침묵은 다윗에게 더 큰 고통을 불러들였다. 주의 손이 주야로 그를 눌렀기 때문이며,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의 마름같이 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바로 그가 죄를 은폐한 것에 대한 결과다. 죄를 숨기면 이처럼 고통은 더 길어진다. 죄는 결코 침묵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몸은 더 상해 가며, 영혼은 더 황폐해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이 열 달을 침묵 속에 고통당한 것은, 우리더러 죄를 지었을 때에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자백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는 산 교훈&lt;/strong&gt;인 셈이다. 그렇다. 죄를 은폐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는 계획을 요압에게 맡김으로써, 이후 요압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훗날 다윗이 요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죄를 감추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더 큰 문제가 터져 나온다. 그러므로 죄는 지은 즉시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lt;strong&gt; 이 침묵의 열 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다윗에게는 그 고통 자체가 이미 깊은 회개의 과정이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죄가 너무 무거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 그것이 고통이 되어 몸과 영혼을 찌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다윗이 그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나단이 왔을 때 즉시 자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열 달의 고통으로 마음이 충분히 상하고 통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열 달의 고통을 보시면서, 다윗이 그 죄로 인해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단이 자복을 끌어낸 그 순간, 즉시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amp;quot;고 응답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죄를 지은 후 즉시 자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경험은 죄를 지은 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그 교훈은 단순하다. 죄를 지으면 즉시 자백하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시편 32편 5절이 그 답을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amp;quot; 자복하는 즉시, 하나님이 사하신다. 열 달의 고통이 자복하는 그 순간에 끝났던 것이다. 자백은 이처럼 죄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는 문을 여는 열쇠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 약속을 분명히 선포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반드시 용서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조건부 약속이 아니다.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즉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단순히 &amp;quot;잘못했습니다&amp;quot;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회개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하나님 앞에서의 자복&lt;/strong&gt;이어야 한다. 사무엘하 12장 13절에서 다윗은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했다. 나단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둘째, 구체적인 자복&lt;/strong&gt;이 있어야 한다. 시편 51편은 매우 구체적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내용을 분명히 인정하며 정결하게 씻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막연하게 &amp;quot;나는 죄인입니다&amp;quot;가 아니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분명히 아뢰어야 한다. 조상의 죄도, 나 자신의 죄도 구체적으로 하나씩 아뢰어야 한다. 우상숭배의 조상죄도, 억압과 폭력의 죄도, 음란의 죄도, 혈기 분노의 죄도 모두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그 죄를 근거로 들어와 있던 악한 영들이 합법적 근거를 잃고 떠나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2 나의 죄악을 깨끗이 씻으시며 나의 죄를 정결하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lt;/strong&gt;이 있어야 한다. 시편 51편 17절에서 &amp;quot;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amp;quot;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번제가 아니라 상한 심령이다. 단지 의무를 이행하듯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고 상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에 근거한 간구&lt;/strong&gt;이다. 시편 51편 1절에서 다윗은 &amp;quot;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amp;quot;라고 한다. 자신의 노력이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호소한다.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져도, 하나님의 자비가 죄의 크기보다 크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은 회개의 시대이다. 어떤 죄든지간에 회개하면 용서가 임한다. 다윗의 그 무거운 죄도 용서받았다면, 우리의 죄도 반드시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되면 열 달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자백해야 한다. 죄를 지을 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악한 영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에 회개로 그 근거를 없애버리면, 들어오다가도 돌아서게 된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지은 죄를, 저녁에 자리에 누우며 그날 지은 죄를 하나님께 아뢰는 습관이 신앙을 지키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범죄한 후 열 달 동안 겪은 고통, 나단이 찾아왔을 때의 즉각적인 자복,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다윗의 경험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자백이 얼마나 빠르고 확실하게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지으면 마음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다윗의 증언은 정반대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가 지은 죄를 비밀스럽게 감추고 있어도, 몸은 수척해지고, 뼈는 흔들리고, 눈은 흐려지고, 밥이 들어가지 않으며, 괴로움에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는 멀어지고, 기도는 막히고, 악한 영들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것이 죄를 품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의 실상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죄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자백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시편 32편 5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amp;quot;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amp;quot; 즉각적인 용서가 임한다. 밤마다 눈물로 적시던 침상이 기쁨의 눈물로 바뀐다. 이것이 자백의 능력이며,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실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죄를 범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린 사람도 죄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죄를 지었을 때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 자백하는 것이다. 열 달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자백해야 한다. 죄를 지은 그날 회개하면, 그날로 용서가 임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백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그 죄로 인해 수척해지고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51편 12절에서 다윗은 용서받은 이후의 소망을 이렇게 고백한다. &amp;quot;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amp;quot; 범죄 전에 누렸던 하나님과의 친밀함, 구원의 기쁨, 자원하는 헌신의 마음이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자백하면 이 모든 것이 돌아온다. 흐려졌던 눈빛이 맑아지고, 멈췄던 기도가 열리고, 멀어졌던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죄 앞에 솔직하게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 안에서 다시 힘차게 일어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7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의 결정적 특징을&amp;nbsp;&lt;strong&gt;회개하는 자&lt;/strong&gt;로 정의하며, 그가 범죄 이후 겪었던&amp;nbsp;&lt;strong&gt;처절한 영적&amp;middot;육체적 고통&lt;/strong&gt;과 회복의 과정을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기까지의 열 달 동안,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라도 실제로는&amp;nbsp;&lt;strong&gt;뼈가 깎이는 듯한 고통과 하나님과의 단절&lt;/strong&gt;로 인해 수척해진 상태였음을 시편의 고백을 통해 입증합니다. 이 설교는 죄를 숨기는 것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amp;nbsp;&lt;strong&gt;영적 징벌&lt;/strong&gt;임을 경고하며, 다윗이 지적을 받는 즉시 자신의 과오를&amp;nbsp;&lt;strong&gt;자복하고 통회&lt;/strong&gt;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복구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이 죄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해 거룩한 신분을 회복&lt;/strong&gt;하여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도록 독려하는 데 있습니다.&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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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07)]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3)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메시야를 알았다(시편69:19~28)_2026-05-3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5127</link>
				<description>&lt;p&gt;2026-05-31(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7)]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3)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메시야를 알았다(시편69:19~2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i5ukZCWp4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i5ukZCWp4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 padding: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은 기독교 예배의 핵심에 자리 잡은 책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전통 속에서 예배마다 토라(모세오경), 선지서, 그리고 시편을 반드시 낭독해 왔으며, 오늘날 기독교 예배에서도 시편은 빠질 수 없는 필수 본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 인생의 깊은 고통 속에서 쏟아 낸 탄원,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절박한 부르짖음. 시편은 이처럼 인간 영혼의 모든 결을 담고 있다. 그 문학적 아름다움과 신학적 깊이로 인해 시편은 수천 년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많이 읽고 암송하는 성경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시편 속에는 오늘날&lt;strong&gt; 많은 설교자들을 심각하게 당혹스럽게 만드는 본문들&lt;/strong&gt;이 있다. 바로 &lt;strong&gt;&amp;#39;저주의 시편(imprecatory psalm)&amp;#39;이라 불리는 시편들&lt;/strong&gt;이다. 원수에게 저주를 퍼붓고, 그들의 자녀가 고아가 되기를 기원하며, 그들을 산 채로 지옥에 보내 달라고 간구하는 이 본문들은 &amp;quot;원수를 사랑하라&amp;quot;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이 시편들의 표제어에는 &amp;quot;다윗의 시&amp;quot;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귀신을 쫓고 장차 올 메시아의 시대를 예언적으로 노래했던 다윗이 이러한 저주의 기도를 드렸단 말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울의 악한 영이 떠날 때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여 그 영을 물리쳤고, 구약 시대에 귀신을 쫓아낸 단 한 번의 기록이 바로 그 사건이다. 그는 영 분별의 은사를 통해 귀신을 보았고,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장차 천 년 뒤에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보았다. 이처럼 영적으로 성숙한 다윗이 어떻게 그토록 과격한 저주의 기도를 드렸단 말인가! 이것이 설교자들이 시편 강해를 꺼리며 오랜 세월 붙들고 씨름해 온 핵심 물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 시편 69:19-28의 말씀은 이 오랜 신학적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는 본문이다. 다윗은 까닭 없이 자신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자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서 지워지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왜 다윗이 이러한 기도를 드렸는지, 그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저주의 시편들 속에 숨겨진 놀라운 메시아 예언은 무엇인지를, 나아가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오늘날 설교자들이 시편 강해를 가장 어려워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걸림돌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은 기록 시기, 저자, 편집 과정 모두에서 성경 중 가장 복잡한 책 중 하나이다. 시편의 기록 기간은 모세 시대(약 기원전 1406년)부터 바빌론 포로 귀환기(약 기원전 391년)까지 천여 년에 걸쳐 있다. 저자도 다양하다. 모세가 한 편(90편), 솔로몬이 두 편(72편, 127편), 아삽이 12편, 고라 자손이 11편을 기록하였으며, 다윗이 가장 많은 73편을 썼다. 이 시편들은 히스기야 왕 시대에 1차로 편집되었고, 포로 귀환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최종 편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빌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는 장면을 노래하는 시편 126편과 137편이 후기 편집에 포함된 것이 그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은 모세오경의 구조를 반영하여 다섯 권으로 나뉜다. 1권(1-41편), 2권(42-72편), 3권(73-89편), 4권(90-106편), 5권(107-150편)이 그것이다. 마지막 5권은 특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며,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각 편이 &amp;#39;할렐루야&amp;#39;로 시작하여 &amp;#39;할렐루야&amp;#39;로 끝나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22개 알파벳의 첫 글자를 차례로 각 단락의 첫 단어로 삼아 지은 알파벳 시(acrostic poem)로, 히브리어 원어를 아는 자에게만 그 의도적인 아름다움이 온전히 드러난다. 이처럼 시편은 단순한 기도 모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님의 말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설교자들이 시편 강해를 기피하거나 어려워하는 이유가 있다. 그 핵심적인 걸림돌은 바로 &amp;#39;저주의 시편&amp;#39;이다. 학자에 따라 저주의 언어가 포함된 시편을 28편까지 분류하기도 하지만, 저주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시편은 약 열 편 정도이다. 시편 7편, 35편, 55편, 58편, 69편, 109편이 대표적인 저주의 시편으로 꼽힌다. 10개의 저주시 가운데 두 편(79편, 83편)은 아삽의 작품으로 전해지지만, 나머지 여섯 편 이상은 명백히 다윗의 이름이 표제어에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시편들이 &lt;strong&gt;설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유&lt;/strong&gt;는 &lt;strong&gt;내용의 과격함 때문&lt;/strong&gt;이다. 이제 시편 109:7-10을 보자.&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9:7-10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으로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소서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시고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도를 오늘날 성도들이 그대로 따라 드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원수가 밉다 해도 그의 자녀가 고아가 되기를,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기를, 그들이 거리에서 빌어먹기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시편의 표제어는 &amp;quot;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amp;quot;라고 되어 있다. 이번에 함께 나누고 있는 시편 69편의 표제어도 마찬가지이다. &amp;quot;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사님에 맞춘 노래&amp;quot;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amp;#39;소사님&amp;#39;은 백합화 곡조에 맞춘 음악 형식을 가리킨다. 다윗은 이 저주의 기도를 단지 혼자 속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악단을 시켜 음악으로 연주하게 하고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노래하게 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저주시의 대표작인 시편 55편에는 &amp;quot;그들의 혀를 잘라버리소서&amp;quot;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시편 58편에는 &amp;quot;불의한 재판관들의 이빨을 꺾어 버리소서&amp;quot;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과격한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보존되었다는 것이 설교자들로 하여금 선뜻 이 본문 앞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 걸림돌 뒤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저주의 시편이란 무엇이며, 성경은 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겨 놓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저주의 시편(imprecatory psalm)&lt;/strong&gt;은 &lt;strong&gt;기도의 형식을 통해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는 시편&lt;/strong&gt;이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는 자가 하나님께 그 심판을 위탁하는 신앙의 행위이기도 하다. 즉, 직접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오늘 본문인 시편 69:25-28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25-28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되며 그들의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주께서 치신 자를 그들이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들의 슬픔을 그들이 말하나이다 그들의 죄악 위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수록된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 실존을 가감 없이 기록&lt;/strong&gt;한다. 창세기 38장에는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 다말을 취하여 자식을 낳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믿음의 조상 유다의 이 허물이 성경에 남겨진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완전한 인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최종 편집자로서 다윗의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서 제거하지 않고 보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음을 알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믿음이 있어도 까닭 없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는 절규할 수 있다&lt;/strong&gt;는 사실을 성경은 인정한다. 믿음이 있어도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면 사람은 절규한다. 믿음이 있어도 억울함이 극에 달하면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믿음이 있어도 홀로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그 원인 제공자를 향해 분노를 쏟아 낼 수 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을 까닭 없이 죽이려는 자들이 강하고 자신은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구체적으로 그 심판을 요청할 수 있다. 성경은 이 인간적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가장 중요하게, 저주의 시편들은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예언을 담고&lt;/strong&gt; 있다. 이것이 저주의 시편이 단순한 감정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보존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다. 다윗이 자신의 억울한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가 당하실 고난이 예언적으로 선포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저주의 시편은 영원히 걸림돌로 남겠지만, 이 비밀을 알면 저주의 시편은 복음의 핵심을 담은 예언의 노래가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 보존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향한 믿음 안에서 그 심판을 구하는 기도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보여 주시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수 사랑의 계명 안에서, 이제 성도들은 그 기도를 심판이 아닌 회개와 구원을 향해 돌리도록 부름 받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다윗은 생애 어느 시기에, 누구를 향해 저주의 시편을 기록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기록한 저주의 시편은 &lt;strong&gt;최소 여섯 편에서 여덟 편&lt;/strong&gt;에 이른다. &lt;strong&gt;이 시편들은 다윗의 생애 전체에 고르게 분포된 것이 아니라, 초기와 중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말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lt;/strong&gt;. 이것은 다윗이 고통의 경험을 통해 점차 성숙해 갔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번에 나누고 있는 본문인 &lt;strong&gt;시편 69편&lt;/strong&gt;은 &lt;strong&gt;다윗이 생애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될 것으로 추정되는 저주의 시편&lt;/strong&gt;이다. 이 시편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윗은 15세 무렵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고, 20세 전후에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 승리가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amp;quot;사울은 천천을 죽이고 다윗은 만만을 죽였다&amp;quot;(삼상 18:7)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울은 깊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결국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역적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8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어머니의 자녀에게 이방인이 되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왕이 공적인 원수로 지목한 다윗을 돕는 것은 곧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조차 그를 외면하였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평소에도 다윗을 홀대하였고, 형제들도 그가 도망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윗의 어머니는 이름조차 성경에 기록되지 않을 만큼 이른 시기에 그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amp;quot;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amp;quot;(시 27:10)라고 고백하였다. 온 세상이 자신을 버렸지만 하나님만은 자신의 편이라는 믿음으로 버텨 낸 것이다. 시편 29절에는 &amp;quot;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amp;quot;라고 고백하여, 이 시편이 그의 초기 도망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오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시편 69편은 &lt;strong&gt;사울 왕과 그를 추종하던 세력을 향한 다윗의 최초 저주의 시편&lt;/strong&gt;이다. 그 후 다윗의 생애를 따라가면 각 시기별로 저주의 시편이 등장하는데, 각각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결된다. 그중에 &lt;strong&gt;시편 7편과 35편&lt;/strong&gt;은 &lt;strong&gt;십 황무지 사람들이 다윗의 위치를 사울에게 밀고한 사건을 배경으로&lt;/strong&gt; 한다. 같은 유다 지파이면서도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될 다윗을 배반하여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빠뜨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구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5:8 그가 생각하지 못한 때에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그가 숨긴 올무에 자기가 잡히게 하사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시편 109편&lt;/strong&gt;은&lt;strong&gt; 놉 땅 제사장들의 참혹한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lt;/strong&gt; 한다. 다윗이 도망칠 때 놉의 대제사장 아히멜렉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배고픈 다윗에게 제단의 떡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에돔 사람 도엑을 시켜 아히멜렉을 포함한 제사장 85명을 학살하고, 나아가 놉 땅의 남녀와 아이들, 소와 양까지 모두 진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처참한 소식을 접한 다윗이 극도의 분노와 비통함 속에서 쓴 것이 시편 109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9:9-10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55편&lt;/strong&gt;은 다윗의 아들 &lt;strong&gt;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때 그의 가장 가까운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으로 돌아선 사건을 배경으로&lt;/strong&gt; 한다.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로, 다윗과 함께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 인물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5:12-14 나를 책망하는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장 가까운 벗에게 배신당한 다윗의 상처는 깊었다. 그는 이 원수의 혀를 잘라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산 채로 스올(음부)에 내려가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히도벨은 이 기도대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며(삼하 17:23), 압살롬도 요압 장군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이 저지른 세 가지 실수는 무엇이며, 그것이 그의 인격 평가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로 불렸고, 성령의 강한 임재를 받아 귀신 들린 사울 왕에게서 악한 영을 물리치는 역사를 행하였으며,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수백 년, 아니 천 년 뒤의 메시아를 환상으로 보고 예언하였다(시 110:1,4).&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다. 성경은 그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기록한다. 크게 세 가지 주요한 실수가 그의 생애에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첫 번째 실수는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 헷 사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은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간음과 살인 교사라는 이중적 죄악이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 이 죄를 지적하셨고, 다윗은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중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2:10 이제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음이라 하셨나이다 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하나님의 선언은, 이후 압살롬의 반란과 아도니야의 반역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다. &lt;strong&gt;다윗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실수는 신명기 17장의 왕에 관한 세 가지 규정과 연결&lt;/strong&gt;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신 17:16-17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왕에 대한 세 가지 규정, 즉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중에서 다윗은 마지막 하나만 온전히 지켰다. 그는 모든 전쟁의 전리품을 자신을 위해 쌓지 않고 장차 세워질 성전 건축 자금으로 헌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두 규정은 지키지 못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래서 다윗은 군사력을 알아보려고&amp;nbsp;&lt;strong&gt;인구 조사&lt;/strong&gt;를 실시한다. 다윗이 노년에 왕위를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면서, 요압 장군을 시켜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들을 계수하게 하였다. 요압이 &amp;quot;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백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amp;quot;(삼하 24:3)라며 만류했음에도 다윗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군사력을 믿으려 한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다윗은&amp;nbsp;&lt;strong&gt;많은 아내를 둔 실수를 범했&lt;/strong&gt;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다윗의 아내는 최소 여덟 명이다. 첫 번째 아내 미갈(사울의 딸)부터 시작하여 아히노암, 아비가일,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에 이어 일곱 번째가 밧세바이며, 그 이후에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아내들이 여럿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다윗의 세 번째 실수는 저주의 시편을 기록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연주하게 한 것&lt;/strong&gt;이다.아무리 억울한 처지라 해도, 원수의 자녀가 고아가 되게 해달라거나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기도는 지나쳤다. 그러나 이 실수가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경륜 안에서 메시아 예언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역설이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럼에도 분명하다. 그는 저주의 시편을 썼지만, 실제로 원수를 직접 보복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손대지 않았고, 압살롬도, 아히도벨도, 시므이도 그의 손으로 직접 해하지 않았다. 다윗은 분노를 하나님께 쏟아 냈지만 복수는 하나님께 맡겼다. 그것이 다윗의 위대한 신앙이었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불린 이유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저주의 시편 속에 숨겨진 메시아 예언은 무엇이며, 다윗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저주의 시편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안에 단순한 감정의 분출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음&lt;/strong&gt;을 발견한다. 그것은 &lt;strong&gt;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예언&lt;/strong&gt;이다. &lt;strong&gt;다윗이 자신의 억울한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가 당하실 처참한 고난이 예언적으로 선포된 것&lt;/strong&gt;이다. 이것이 저주의 시편들이 성경에서 제거되지 않고 반드시 보존되어야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 본문인 시편 69편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들이 다 주 앞에 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구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당한 비방과 수치를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비방과 수치와 능욕의 예언이기도 하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강도들 사이에 달리시고 지나가는 자들에게 조롱당하시며, 종교 지도자들에게 능욕당하시던 그 장면이 이미 이 구절 속에 담겨 있다. 21절은 더욱 분명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 식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마태복음 27:34은 &amp;quot;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amp;quot;했다고 기록하며, 요한복음 19:29은 &amp;quot;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amp;quot;라고 기록한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그 언어가 정확히 천 년 뒤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시편 109편에도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9:24-25 나의 무릎은 금식으로 약하여지고 내 육체는 기름기가 없어 수척하오며 나는 그들에게 욕거리가 되었으며 그들이 나를 보고 머리를 흔드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마지막 길에서 굶주리고 수척한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분을 향해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였다(마 27:39). &lt;strong&gt;다윗의 고통의 언어가 메시아의 고통을 예언하는 언어가 된 것&lt;/strong&gt;이다. 시편 55편은 또 다른 면을 보여 준다. 가장 가까운 벗 아히도벨에게 배신당한 다윗의 경험은, 가장 가까운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신 예수님의 경험의 예표이다. 다윗이 느낀 배신의 아픔, 그 깊은 울분이 예수님이 유다에게 팔리실 때의 처참함을 미리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이 걸어가실 십자가의 길을 미리 노래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처음에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악단이 이 노래를 반복하여 연주하고, 회중이 거듭 부르는 가운데, 그는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 점차 깨닫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lt;strong&gt;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억울한 고통, 이 비방과 수치와 능욕, 이 배신의 아픔이 단순한 나의 불행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당하실 고난의 미리 그림자였구나. 나의 절규가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의 노래였구나&lt;/strong&gt;. 이 깨달음이 다윗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가 원수를 향한 저주의 기도를 멈추고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 남겨 두신 이유이다. 그것은 &lt;strong&gt;단순한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메시아의 고난을 미리 알리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경륜&lt;/strong&gt;이 담긴 예언의 노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신약의 예수님과 스데반, 사도 바울은 원수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다윗과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원수를 향해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원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이 비교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계시의 진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trong&gt;&amp;nbsp;첫째,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원수에 대한 태도를&lt;/strong&gt; 어떻게 분명하게 가르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다윗의 저주의 시편과 정반대의 입장이다. 다윗이 &amp;quot;저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소서&amp;quot;라고 기도했다면, 예수님은 그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명령을 가르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실천하셨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붙잡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군사들은 그분을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관을 씌웠으며 조롱하였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도는 단순한 관용이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 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얻기를 원하셨고, 그 기회를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유예해 달라고 간구하셨다. 그 결과 예루살렘의 멸망은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서기 70년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첫 순교자였던 스데반의 태도&lt;/strong&gt;는 어떠하였는가? 그런데 그도 예수님과 같았다. 유대인들이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이는 그 순간, 그도 역시 예수님처럼 기도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도가 얼마나 큰 역사를 만들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사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서던 사울이 이날도 증인들의 옷을 맡아 보며 스데반의 죽음을 기뻐하였다(행 7:58). 그런데 만약 스데반이 그날 다윗처럼 &amp;quot;주님, 저 사람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소서&amp;quot;라고 기도했다면, 사울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얼마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은 &amp;quot;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amp;quot;라고 기도하였고, 그 덕분에 사울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사울이 훗날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다. 스데반의 기도 하나가 신약 성경의 절반을 쓴 사도 바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로마서에서 이렇게 정리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이 직접 보복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맡겨 두는 것이 신약 성도의 길이다. 오히려 원수에게 선을 베풂으로써 그가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가장 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는 것&lt;/strong&gt;이 신약의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이다. 엘리사가 도단 성에서 아람 군대를 이기고도 적군 병사들을 오히려 먹이고 입혀서 돌려보냈던 것처럼(왕하 6:22-23),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왜 다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다윗과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lt;/strong&gt; 있다. 다윗은 성령의 특별한 임재와 은사를 통해 예언하고 이적을 행하였으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시며 영구히 함께하신다. &lt;strong&gt;내주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고, 원수를 향해서도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성도가 다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이유&lt;/strong&gt;는,&lt;strong&gt;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사도 바울이 그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던 자였다. 그러나 회개한 후 그는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만약 누군가 &amp;quot;저 사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소서&amp;quot;라고 기도했더라면, 우리는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들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발 사건은 다윗 자신이 이 진리를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윗의 부하들이 갈멜 사람 나발의 양 떼를 보호해 주었는데,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문전박대하며 홀대하였다. 이에 분노한 다윗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나발을 치러 가는 순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급히 달려와 다윗 앞에 엎드리며 말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25:30-31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까닭 없이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원수를 갚으셨다든지 하는 것이 내 주에게 걸림이 되지 아니하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을 들은 다윗은 번쩍 깨달았다.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텐데, 내가 직접 보복에 나선다면 그것이 훗날 내게 걸림이 될 것이다. &lt;strong&gt;판단은 하나님께 맡기자&lt;/strong&gt;. 그는 군사를 돌이켰고, 나발은 얼마 후 하나님의 치심으로 죽었다.&lt;strong&gt; 다윗이 배운 교훈은 분명하였다. 내가 보복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된다. 이 경험이 쌓여 갔기에, 다윗의 생애 말기에는 저주의 시편이 등장하지 않는다.&lt;/strong&gt;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져도 손대지 않았고,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도 그를 직접 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시므이가 자신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해도 &amp;quot;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을 것이니 그를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amp;quot;(삼하 16:10)고 말하며 감내하였다. 다윗은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워 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같다.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에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나를 비방하는 그 사람이 회개하면 또 다른 사도 바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신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기를 주님은 원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번 시간에 우리는 시편 69:19-28을 중심으로 저주의 시편에 얽힌 여러 물음들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시편 강해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걸림돌인 저주의 시편이 무엇인지, 성경이 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겨 놓았는지, 다윗이 생애 어느 시기에 누구를 향해 이 시편들을 기록하였는지, 그의 생애에서 드러난 세 가지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그 저주의 시편들 속에 어떠한 메시아 예언이 숨겨져 있었는지, 그리고 예수님과 스데반과 사도 바울이 원수를 향해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지,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였다. 그래서 그는 억울한 고통 앞에서 절규하였고, 원수가 미울 때 저주를 쏟아 냈으며, 욕정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함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연약함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lt;strong&gt; 다윗의 고통이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노래가 되었고, 다윗의 배신 경험이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실 처참함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 되었으며, 다윗의 수치와 능욕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당하실 비방과 능욕의 예언&lt;/strong&gt;이 되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처럼 깊고 오묘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신약 시대를 사는 성도는 다윗이 말기에 도달했던 자리보다 훨씬 더 높은 자리에서 이미 출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이미 받았고, 성령이 이미 내주하시며,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이미 주어져 있다. 그 명령은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 안에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며, 그 사이에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도, 나를 비방하는 그 사람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이 고통 속에서 점차 배워 갔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는 이미 주어진 은혜 안에서 온전히 살아 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amp;nbsp;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5월 31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amp;nbsp;&lt;strong&gt;저주 시편&lt;/strong&gt;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연단 과정과 그 속에 감추어진&amp;nbsp;&lt;strong&gt;메시아적 예표&lt;/strong&gt;를 탐구합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성군으로 알려진 다윗이 원수들을 향해 가혹한 저주를 퍼부은 이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장차 인류의 죄를 위해&amp;nbsp;&lt;strong&gt;무고한 고난&lt;/strong&gt;을 겪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미리 체험하고 예언하기 위함이었음을 역설합니다. 다윗은 초기의 혈기 어린 저주를 넘어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는&amp;nbsp;&lt;strong&gt;성숙한 신앙&lt;/strong&gt;으로 나아갔으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amp;nbsp;&lt;strong&gt;신약적 용서&lt;/strong&gt;의 교훈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이설교는 고난의 현장 속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던 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고&amp;nbsp;&lt;strong&gt;찬양의 사명&lt;/strong&gt;을 완수하는 왕으로 세워졌는지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7b525a05b5fce88dba26f59bdfaf36e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aa85a0b485cf7543258495c49a33c84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23680f785ada46fbb1c54bb35b553d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f118c08f659949ead9950b6914932b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ca73c4606522258b22a871a2ecab9c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5c1fd1da57b801c480b1a5caa5d882d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5ca7e37c43eb5f0447ce168c52da1e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d261c68db5ab8563f25036d13319d2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10c41b8a89436579cbd17bcbcb4612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750f5b21411843b0778ef3b1bfa7a6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692971a156bce78fbfcb32744bbe0c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2f1de55e61ecb34ad54cd9f14f9bd3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From_David_s_Lament_to_Christ_s_Lov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34dd2c545f83288491bdf07e8a089dd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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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7409274797c9b597a2fbd80cc60c5e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2942827e10889083ca6446d8ded970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9d29a89188f02413e80e1dc18a9f0b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89160604f46e5ed18a5696ccea6a51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10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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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7)] Messianic_Secrets_in_David_s_Curse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27/255/8c763fc818bbab5c112408352e171375.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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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00)] &quot;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6) 그는 항상 배우는 자였다&quot;(시편 97:1~3)_2026-05-24(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3908</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24(일) 주일낮1부예배&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100)] &amp;quot;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6) 그는 항상 배우는 자였다&amp;quot;(시편 97: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amp;nbsp;&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LUdSE8awYsw&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UdSE8awYs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성도는 이 땅에서 단지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이며,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분과 지위와 영광을 얻을 것인지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단지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왕 노릇할 권세를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lt;br /&gt; &amp;nbsp; 시편 97편은 바로 그 배움의 출발점이 되는 말씀이다. 이 시는 &amp;ldquo;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amp;rdquo;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우주를 감정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며, 사람을 임의로 편애하거나 미워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법과 말씀을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게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만날 때 먼저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말씀 앞에서 자신과 자기 가문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길도 말씀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원리도 말씀 안에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시 97:1-3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하나님의 경륜은 사람을 단순히 죄에서 건져 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시며, 그 사람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어떤 존재로 서게 될지를 준비시키신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만 보여 주지 않는다. 상속자의 길을 보여 주는 야곱도 보여 주고, 민족을 이끄는 모세와 여호수아도 보여 주며, 마침내 왕 노릇할 자의 예표로 다윗을 보여 준다. &lt;strong&gt;이 시간에 다윗을 공부하는 것은 한 인물을 존경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어떤 사람에게 왕직을 맡기시는지를 배우기 위해서&lt;/strong&gt;다.&lt;br /&gt; &amp;nbsp; &lt;strong&gt;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대표적인 예표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왕이 아니었다&lt;/strong&gt;. 그는 사명으로 보냄받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였으며,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다윗도 배워야 했다. 그는 사울을 통해 잘못된 왕직을 배웠고, 자신의 죄와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배웠으며, 하늘 보좌의 계시를 통해 의와 공평과 거룩을 배웠다.&lt;br /&gt; &amp;nbsp; &lt;strong&gt;고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이 땅에서 왕직을 배워야 한다&lt;/strong&gt;. 직분을 가졌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위에 군림한다고 왕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하나님 앞에서 배우는 자이며, 말씀으로 자신을 교정받는 자이며, 죄를 책망받을 때 즉시 엎드리는 자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윗이 어떻게 왕직을 배웠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무엇을 배워야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왜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배워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배워야 한다. 다윗이 바로 그 증거다. 다윗은 평범한 목동으로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그 순간 곧바로 완성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고, 고난을 통과했으며,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에서 훈련받으며 왕직의 본질을 배웠다.&lt;br /&gt; &amp;nbsp;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던 다윗에게서 발견되는 &lt;strong&gt;첫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온 자라는 사실&lt;/strong&gt;이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왕권을 빼앗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람들은 장자 엘리압을 먼저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셨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보고 계셨다(삼상 16:7, 1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 &amp;ldquo;크게 감동되었다&amp;rdquo;는 표현은 히브리어 동사 &amp;lsquo;찰라흐&amp;rsquo;와 연결된다. 이 말은 단순히 조용히 임했다는 뜻만이 아니다. 강하게 임하다, 돌진하다, 세차게 역사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강하게 임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주로 사람 위에 임하여 직무를 수행하게 하셨고, 그 결과로 은사와 능력이 나타났다. 다윗은 바로 그런 성령의 감동을 입은 왕이었다.&lt;br /&gt; &amp;nbsp; 그렇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배워야 한다. 사명으로 보냄받은 사람도 배워야 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도 배워야 하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도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는 은사는 위험해질 수 있다. 배우지 않는 직분은 자기 과시가 될 수 있다. 배우지 않는 왕권은 군림과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lt;br /&gt; &amp;nbsp; 다윗의 &lt;strong&gt;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였다&lt;/strong&gt;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신 후, &amp;ldquo;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rdquo;을 찾으셨다고 말씀하셨다(삼상 13:14). 사도 바울도 안디옥 비시디아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며 다윗을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게 할 사람으로 설명했다(행 13:2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천국에서 큰 자는 단순히 능력이 많은 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며, 어떤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어떤 자를 책망하시는지를 아는 자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직분은 외식이 되고, 왕직은 억압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권세는 섬김이 되고, 왕직은 목양이 된다.&lt;br /&gt; &amp;nbsp; 다윗의 &lt;strong&gt;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lt;strong&gt;그에게는 성령의 감동과 은사&lt;/strong&gt;다. 다윗은 단순히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어 찬양하고 예언하고 영적 세계를 본 사람이었다. 그는 시편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와 심판, 생명책과 의인의 길, 악인의 멸망과 하늘의 영광을 노래했다. 그러므로 다윗을 알려면 사무엘상하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도 바울을 알려면 사도행전뿐 아니라 바울서신을 읽어야 하듯, 다윗을 알려면 사무엘상하와 더불어 시편을 읽어야 한다.&amp;nbsp;&lt;br /&gt; &amp;nbsp; 배움은 언제나 낮아짐을 요구한다. &lt;strong&gt;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을 완성된 사람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며 배웠고, 광야에서 도망 다니며 배웠으며, 책망을 들으며 배웠고, 시편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배웠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끝까지 배우는 사람&lt;/strong&gt;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은 사명과 마음과 성령의 감동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왕직을 실제로 배워야 했다. 그 배움이 없었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예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3. 사울은 어떤 잘못된 왕직을 보여 주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이 &lt;strong&gt;왕직을 배운 첫 번째 교실은 사울 왕에게서&lt;/strong&gt;였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났으며, 백성의 눈에는 왕으로 보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왕직을 바르게 감당하지 못했다. 다윗은 사울을 보며 &amp;ldquo;왕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amp;rdquo;를 배웠다.&lt;br /&gt; &amp;nbsp; 사울의 &lt;strong&gt;첫 번째 실패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을 살려 두고, 좋은 양과 소도 남겨 두었다.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들었다고 고백했다(삼상 15:2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왕은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의 요구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사울은 사람 앞에서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오늘의 사역자도 마찬가지다. 성도를 사랑해야 하지만 성도의 비위만 맞추면 안 된다. 교단과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면, 그는 사울의 길을 걷는 것이다.&lt;br /&gt; &amp;nbsp; 다윗은 사울에게서 이 점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왕이 되어야 함을 알았다. 사무엘하 5장 12절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워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줄을 알았다고 말한다. 왕직의 출처를 알았다는 뜻이다. 왕직은 백성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5: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사울의 &lt;strong&gt;두 번째 실패는 공적 권세를 사적 욕망에 사용한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대적을 막으라고 세우셨다. 그런데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러 다녔다. 블레셋과 싸우라고 맡겨진 군사력을 자기 질투와 왕권 유지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lt;br /&gt; 이것은 왕직의 타락이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자기 욕망을 위해 쓰면 그 권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다. 목회자도, 장로도, 교사도, 부모도,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세를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는 데 쓰지 않고 자기 체면과 욕망과 분노를 위해 사용하면, 그는 사울의 길을 걷는 것이다.&lt;br /&gt; &amp;nbsp; 사울의 &lt;strong&gt;세 번째 실패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보지 못한 것&lt;/strong&gt;이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울이 비록 버림받는 길에 들어섰더라도 한때 여호와께 기름부음받은 왕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심판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는 하나님이 처리하신다는 질서를 배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다윗이 사울에게서 배운 왕직은 역설적이다. 사울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다윗에게 교훈이 되었다. &lt;strong&gt;다윗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고, 권세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lt;/strong&gt;.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잘못된 사람에게서도 배운다. 사울처럼 살지 않기 위해 사울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4. 다윗은 부하의 생명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은 사울에게서만 왕직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곁의 부하들을 통해서도 왕직을 배웠다. 왕은 사람을 부리는 자가 아니다. 왕은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 앞에서 귀히 여기는 자다. 이 진리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베들레헴 우물물 사건이다.&lt;br /&gt; &amp;nbsp; 다윗이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을 때, 블레셋 군대는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었다. 다윗은 문득 &amp;ldquo;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amp;rdquo;라고 말했다. 그러자 세 용사가 블레셋 진영을 돌파하여 그 우물물을 길어 다윗에게 가져왔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삼하 23:15-17).&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23:15-17 다윗이 사모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다윗은 자기 말 한마디가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왕의 말은 가볍지 않다. 지도자의 말은 누군가에게 생명과 죽음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물을 자기 목마름을 채우는 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렸다.&lt;br /&gt; &amp;nbsp; &lt;strong&gt;사울은 군사를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의 생명을 자기 사사로운 소원보다 귀히 여겼다. 여기서 왕직의 차이가 드러난다&lt;/strong&gt;. &lt;strong&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지 않는다. 그는 사람을 사병처럼 부리지 않는다. 그는 자기 기분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lt;/strong&gt;&lt;br /&gt; &amp;nbsp;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 원리는 중요하다. 직분자는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자기 사역의 도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부모도 자녀를 자기 욕망의 연장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피 값으로 산 생명이다. 그 생명을 함부로 다루면 하나님께서 물으신다.&lt;br /&gt; &amp;nbsp;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왕이 무엇을 삼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왕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자이지, 백성의 목숨을 자기 만족을 위해 쓰는 자가 아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참 왕,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동원하여 자기 왕국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왕직은 섬김 없는 권세가 아니다. 왕직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 책임이다. 다윗은 베들레헴 우물물 앞에서 이것을 배웠다. 그는 자기 목마름보다 부하들의 피를 보았고, 자기 욕망보다 하나님 앞의 두려움을 보았다. 이것이 사울과 다른 다윗의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5. 다윗은 자기 죄와 징계에서 무엇을 배웠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은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만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lt;strong&gt; 자기 자신의 실패에서도 배웠다&lt;/strong&gt;. 사실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아픈 사건은 밧세바와 우리아 사건이다. 그는 이미 왕권이 안정된 시기에 영적으로 느슨해졌다. 전쟁터에 나가야 할 때 왕궁에 머물렀고, 옥상에서 한 여인을 보고 정욕에 끌려 죄를 범했다.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lt;br /&gt; &amp;nbsp; &lt;strong&gt;다윗의 죄는 단순한 개인적 실수가 아니었다. 그는 왕의 권세를 사용하여 남의 아내를 데려왔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성된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선에 세워 죽게 만들었다. 이것은 간음죄이며 살인죄이고, 동시에 왕권 남용의 죄다.&lt;/strong&gt;&lt;br /&gt; &amp;nbsp;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책망 앞에서 드러났다. 사울은 책망을 들었을 때 변명하고 체면을 구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즉시 고백했다. &amp;ldquo;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rdquo;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죄를 책망받았을 때 즉시 엎드렸기 때문에 다윗은 다시 세워질 수 있었다(삼하 12:1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사하셨지만, 죄의 결과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칼이 다윗의 집에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주어졌고, 다윗의 집안에는 비극이 이어졌다. 간음과 살인의 죄가 가정 안에서 고통스러운 징계로 돌아온 것이다(삼하 12:10-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12:10-12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배워야 한다. 회개는 죄사함의 길이지만,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죄를 용서하시되 죄를 미워하신다. 회개하는 자를 살리시되, 죄가 남긴 결과를 통해 두려운 교훈을 주신다.&lt;br /&gt; &amp;nbsp; 다윗은 이 사건 이후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시편 7편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말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칼과 활이 예비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추상적 신학이 아니다. 다윗이 자기 죄와 징계를 통과하며 알게 된 하나님의 모습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7:11-13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다윗은 자기 실패에서 배웠다. 그는 한 번 크게 넘어졌지만, 그 죄를 가슴에 새겼고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실패하지 않는 자가 아니다. 실패했을 때 배우는 자다. 책망받을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며, 회개로 다시 정결해지는 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6. 하늘 보좌는 왕직의 어떤 기준을 보여 주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이 배운 &lt;strong&gt;세 번째 교실은 그가 받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하여 환상을 본 것&lt;/strong&gt;이다. 이번 설교의 본문인 시편 97편도 역시은 하나님의 통치와 보좌를 환상으로 본 것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선포하며, 그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라고 말한다. 왕직을 배워야 할 사람에게 이것보다 중요한 기준은 없다.&amp;nbsp;&lt;br /&gt; &amp;nbsp; 시편 97편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서는 표제가 없어 작자 미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70인역 전승에서는 이 시가 다윗과 연결되어 전해진다. 신약 성경이 구약을 인용할 때 많은 경우 70인역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편 97편을 다윗의 왕직 이해와 연결하여 묵상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저자 논쟁 자체가 아니라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보좌다.&lt;br /&gt; &amp;nbsp;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평의 보좌다. 여기서 &amp;ldquo;의&amp;rdquo;는 히브리어로 &amp;lsquo;체데크&amp;rsquo; 계열의 말과 연결되며,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바름을 가리킨다. &amp;ldquo;공평&amp;rdquo;은 &amp;lsquo;미쉬파트&amp;rsquo; 계열의 말과 연결되며, 재판과 판결과 질서 있는 통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는 감정적 통치가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편드는 통치도 아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판결하시고 공평하게 다루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97:2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왕 노릇할 자는 이 보좌를 배워야 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모르면 왕직을 잘못 사용할 수 있다. 은사가 있어도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면 사람을 함부로 다루게 된다. 직분이 있어도 하나님의 보좌를 배우지 못하면, 그는 자기 보좌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은 자기 보좌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본다.&lt;br /&gt; &amp;nbsp; 시편 9편도 이 사실을 증언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앉으시며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신다. 그리고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신다(시 9:7-8).&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9:7-8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하늘 보좌는 하나님의 통치 기준을 보여 준다. 그 보좌 앞에서는 외모가 통하지 않는다. 직분도 가면이 될 수 없다. 목사라는 이름, 장로라는 이름, 권사라는 이름, 왕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을 세워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의와 공평으로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맡겨진 권세를 가진 사람은 늘 물어야 한다. 나는 공평한가. 나는 의로운가.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lt;br /&gt; &amp;nbsp; 동시에 시편 97편은 불의 심판도 말한다.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대적들을 사른다. 구약에서 불은 하나님의 거룩과 심판을 자주 나타낸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렸을 때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고, 고라의 무리가 반역했을 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의 심판을 받았다. 이것은 왕직을 받은 자에게 매우 두려운 경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97:3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나 신약의 완성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요한계시록 22장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심판의 불과 생명의 물은 서로 다른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불로, 회개하고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생명수로 나타나시는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 한 분 하나님 신앙이 분명해진다. 하늘 보좌는 나뉜 보좌가 아니다. 만유를 다스리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께서 경륜 가운데 아들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는 왕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므로 다윗이 배운 하늘 보좌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왕직의 기준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7. 왕은 왜 거룩함을 배워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왕직은 권세만의 문제가 아니다. 왕직은 거룩함의 문제다. 왕이 손은 더럽고 마음은 부정한데 보좌에 앉으면, 그 보좌는 백성을 살리는 자리가 아니라 백성을 해치는 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은 왕이 되면서 점점 더 거룩함을 배워야 했다&lt;/strong&gt;.&lt;br /&gt; &amp;nbsp; 시편 24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답은 분명하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다. 이것은 단순히 일반 성도에게만 요구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하늘 시온산에 서고, 왕 노릇할 자에게 필요한 조건이다(시 24:3-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 말씀은 오늘의 교회에도 날카롭게 적용된다. 사람은 겉모습을 꾸밀 수 있다. 직분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고, 말로 경건을 가장할 수 있으며, 사람들 앞에서는 충성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민낯이 드러난다. 화장한 얼굴이 아니라 씻긴 얼굴이어야 하고, 포장된 경건이 아니라 회개로 정결해진 심령이어야 한다. 왕 노릇할 자는 사람 앞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lt;br /&gt; &amp;nbsp;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행위가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는 것은 내면의 동기와 생각이 정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이 세상 헛된 것에 붙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거짓 맹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는 뜻이다.&lt;br /&gt; &amp;nbsp; 왕 노릇할 자는 이 네 가지를 배워야 한다. 손이 더러운 자가 권세를 잡으면 약한 자를 압제한다. 마음이 부정한 자가 직분을 얻으면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한다. 뜻을 허탄한 데 둔 자가 지도자가 되면 성도를 세상 성공의 도구로 만든다. 거짓말하는 자가 보좌에 앉으면 공동체는 무너진다.&lt;br /&gt; &amp;nbsp; 시편 29편도 왕에게 필요한 거룩함을 말한다. 권능 있는 자들은 여호와께 영광과 능력을 돌려야 하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해야 한다(시 29: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29:1-2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거룩한 옷은 외적인 예복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상태를 말한다. 피 묻은 옷, 강포의 옷, 착취의 옷, 외식의 옷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왕직을 맡은 자일수록 더 정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죄는 개인의 죄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를 더럽히기 때문이다.&lt;br /&gt; &amp;nbsp; 이 지점에서 회개가 중요하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는 문일 뿐 아니라, 왕 노릇할 자가 거룩하게 준비되는 길이다. 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몸과 마음과 생각을 더럽히고, 악한 영이 역사할 자리를 남긴다. 그러므로 왕직을 사모하는 자는 먼저 회개를 배워야 한다.&lt;br /&gt; &amp;nbsp; 다윗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했다. 그리고 그 회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웠다. 사울은 왕직을 붙들려고 했지만 회개를 배우지 못했다. 다윗은 왕직보다 하나님 앞의 정결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차이다.&lt;br /&gt; &amp;nbsp;그렇다. 왕은 거룩함을 배워야 한다. 거룩하지 않은 권세는 위험하다. 정결하지 않은 은사는 위험하다. 회개 없는 직분은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날마다 자신을 씻고, 손과 마음과 옷을 정결하게 하며, 하늘 시온산에 설 수 있는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왕은 왜 군림자가 아니라 목자여야 하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이 마지막으로&lt;strong&gt; 배운 왕직의 본질은 목양 곧 목자적인 왕직&lt;/strong&gt;이다. 왕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목자다. 다윗은 어린 시절 목동이었다. 그는 양을 치며 왕직의 가장 깊은 원리를 배웠다. 양은 약하다. 양은 방향을 잘 잃는다. 양은 맹수에게 쉽게 찢길 수 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며, 양을 해치는 존재와 싸워야 한다.&lt;br /&gt; &amp;nbsp; 시편 23편은 다윗이 깨달은 목자적 왕직의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을 &amp;ldquo;나의 목자&amp;rdquo;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양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신다(시 23:1-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 지팡이와 막대기는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도구다. 길을 잃은 양을 방향으로 이끌고, 위험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한다. 반면 막대기는 양을 해치는 짐승을 대적하는 도구다.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가면 목자는 막대기로 싸워야 한다.&lt;br /&gt; &amp;nbsp; 이 원리를 거꾸로 사용하면 사역이 무너진다. 지팡이로 성도를 때리고, 막대기로 악한 영을 대적하지 못하면 목양이 아니다. 성도를 억압하고 조종하고 군림하면서도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다윗의 길이 아니라 사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참된 왕은 성도를 살리고, 성도를 인도하며, 성도를 괴롭히는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lt;br /&gt; &amp;nbsp; 목양의 왕직은 약한 자를 먹이로 삼지 않는다. 세상 왕들은 자주 힘없는 사람을 밟고 올라서며, 권세를 자기 안전을 지키는 성벽으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반대로 약한 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 힘을 사용한다. 그래서 목자의 왕직은 십자가의 왕직과 연결된다. 십자가는 군림하는 왕의 의자가 아니라 자기 생명을 내어 주는 왕의 보좌다.&lt;br /&gt; &amp;nbsp; 이것이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귀신론과도 연결된다. 성도를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심리 문제만이 아니다. 죄와 상처와 조상들의 죄를 통해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다. 목자는 양을 책망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양을 묶고 있는 악한 영의 역사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사람을 향한 폭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회개와 말씀을 통한 영적 전투여야 한다.&lt;br /&gt; &amp;nbsp; 예수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주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공생애 동안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다.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amp;ldquo;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amp;rdquo;고 말씀하신 장면을 기록한다(눅 13:3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13: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의 왕직은 목자적 왕직이었다. 주님은 철장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시지만, 그 다스림은 양을 멸망시키는 폭정이 아니다. 헬라어 요한계시록 2장 27절의 &amp;ldquo;다스리다&amp;rdquo;에는 &amp;lsquo;포이마이노&amp;rsquo;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이는 목양하다, 양을 치다는 뜻을 가진다. 주님의 통치는 목양의 통치다. 그분은 악을 심판하시지만, 자기 양은 생명으로 인도하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성도도 왕직을 탐내기 전에 목양을 배워야 한다.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 직분으로 누르려는 마음,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대신 양을 살리고, 양을 인도하고, 양을 해치는 악한 영을 대적하며, 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을 배워야&lt;/strong&gt; 한다. 이것이 다윗이 목동 시절부터 배운 왕직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참된 왕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왕직을 배웠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사명으로 보냄받은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울의 실패를 통해 잘못된 왕직을 배웠고, 베들레헴 우물물 사건을 통해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왕직을 배웠으며, 자기 죄와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배웠고, 하늘 보좌를 통해 의와 공평의 통치를 배웠으며, 목동의 삶을 통해 군림이 아니라 목양이 왕직의 본질임을 배웠다.&lt;br /&gt; &amp;nbsp; 성도도 이 길을 배워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는 믿음과 회개의 문제이지만, 천국에서 어떤 신분과 영광으로 사는가는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하느냐와 깊이 연결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직분을 자랑해서는 안 되고, 외적인 성공으로 자신을 판단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배우고 있는가, 회개하고 있는가, 의와 공평을 따라 살고 있는가, 양을 살리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lt;br /&gt; &amp;nbsp; 하나님은&lt;strong&gt; 공의와 공평의 하나님&lt;/strong&gt;이시다. 그분의 보좌는 의와 공평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불의와 편파와 거짓을 버려야 한다. 사람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이 맡기신 권세를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울의 실패를 보면서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성도는 또한 &lt;strong&gt;자기 실패에서도 배워야&lt;/strong&gt; 한다. 다윗처럼 죄를 책망받을 때 즉시 엎드려야 한다. 회개는 죄사함의 길이며, 정결의 길이다. 그러나 회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면허가 아니므로, 죄의 결과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왕직을 사모하는 사람일수록 죄 앞에서 더 민감해야 하고, 날마다 자신을 씻어 거룩함을 배워야 한다.&amp;nbsp; 성도는 &lt;strong&gt;마지막으로 목자적 왕직을 배워야&lt;/strong&gt; 한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막대기는 양을 해치는 악한 영을 대적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사람을 억압하고 군림하는 방식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방식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선한 목자이신 것처럼, 왕 노릇할 자도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목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왕직만 사모할 것이 아니라 왕직에 합당한 삶을 배워야 한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실패에서 배우고, 하늘 보좌를 바라보며, 의와 공평과 거룩과 목양을 익혀야 한다. 하나님께서 &amp;ldquo;그만하면 되었다. 너는 왕직을 받을 만하다&amp;rdquo;라고 하실 때까지, 성도는 배우는 자로 서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늘 배우고 회개하며 의와 공평과 거룩과 목양의 왕직을 준비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년 05월 24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다윗 왕&lt;/strong&gt;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지도자의 자질&lt;/strong&gt;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며,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기 위해 성도가 갖춰야 할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 정보배 목사는 다윗을&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평생 배우는 자&lt;/strong&gt;로 정의하며, 그가 사울 왕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자신의 뼈아픈 실수를&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회개&lt;/strong&gt;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공의로운 통치력을 학습했음을 설명합니다. 특히 성령의 감동으로&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하늘의 보좌&lt;/strong&gt;를 목격한 다윗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의와 공평&lt;/strong&gt;을 깨닫고,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목자형 왕&lt;/strong&gt;으로 변화된 점을 핵심 교훈으로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날마다 자신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는&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회개의 삶&lt;/strong&gt;을 실천함으로써, 죽음 이후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수 있는&lt;span&gt;&amp;nbsp;&lt;/span&gt;&lt;strong&gt;거룩한 성품&lt;/strong&gt;을 예비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strong&gt;[설교요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amp;nbsp;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처음부터 완성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계속 배우는 자다. 다윗은 하나님께 왕직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람이었지만, 왕직을 실제로 배워야 했다. 그는 사울의 실패를 통해 잘못된 왕직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자신의 간음과 살인죄와 그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값을 반드시 물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배웠으며, 하늘 보좌의 계시를 통해 왕의 보좌는 의와 공평 위에 세워져야 함을 배웠다. 또한 그는 시편 23편의 목자 경험을 통해 왕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양을 인도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목자적 왕이어야 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도 다윗처럼 회개하고 배우며, 하나님 앞에서 의와 공평과 거룩과 목양의 삶을 익혀야 한다.&lt;!--EndFragme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기독론 #하나님께서세우신왕 #배우는자 #다윗왕 #천국 #영광 #성도의자세 #반면교사 #회개 #공의 #공평 #목자형왕 #거룩한성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인포그래픽.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a04c6f5a748f1367a12dabbcb5129d8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Royal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2350b94dcff030567547f830443e541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Royal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b8363cb2da160ffcc86f051e56a52f4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Royal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a7573a82bc7838fafd1d10a223768a8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Royal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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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88c660a8112fa44eeccabfc928fe1d1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b0b2997feab24ffaf37102a4b9becda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34c5a89a31ccbc805b4d866fd8b77fe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7b1a10bf20f9b02cfb6cd08a5afcdef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54bc4ef9f880999d012877a5ada3f06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493fda87a07ce50c7dbea235cab434a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771293be4237fd7e7171dd6bd0b48ed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114d63e3db9cda907eef94e21e23f4c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5b6e920a21c45db12032d4bd03ef9e0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0)] The_Learner_Protocol.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08/253/623fb058bf43c23e63004fef5fabf9c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_ngcontent-ng-c247703885=&quot;&quot; class=&quot;key-topics-container ng-star-inserted&quot;&gt; &lt;div class=&quot;mdc-evolution-chip-set__chips&quot; role=&quot;presentation&quot;&gt;&lt;span class=&quot;mat-mdc-chip-focus-overlay&quot;&gt;&amp;nbsp;&lt;/span&gt;&lt;span class=&quot;mat-mdc-chip-focus-overlay&quot;&gt;&amp;nbsp;&lt;/span&gt;&lt;span class=&quot;mat-mdc-chip-focus-overlay&quot;&gt;&amp;nbsp;&lt;/span&gt;&lt;mat-chip-option _ngcontent-ng-c247703885=&quot;&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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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하나님께서세우신왕</category><category>배우는자</category><category>다윗왕</category><category>천국</category><category>영광</category><category>성도의자세</category><category>반면교사</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공의</category><category>공평</category><category>목자형왕</category><category>거룩한성품</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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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93)]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진정한 왕 다윗, 그는 누구인가?(사무엘상 13:13~14)_2026-05-17(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1979</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17(주일) 1부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93)]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진정한 왕 다윗, 그는 누구인가?(사무엘상 &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13:13&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iDOMukBz658&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DOMukBz658?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누리도록 우리 인생에게 베푸셨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분명한 세 단계의 부르심이 자리잡고 있다.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039;자녀&#039;가 되는 부르심, 그 자녀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039;상속자&#039;가 되는 부르심, 그리고 상속자의 자리에서 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가 &#039;왕 노릇 하는 자&#039;의 반열에 서는 부르심이 그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단계의 흐름을 명료하게 정리했다(롬 8:17, 딤후 2:11-1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lt;br&gt;딤후 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lt;br&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세 단계의 부르심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왕 노릇 하는 자의 자리이다(계 3:21). 구약 성경은 이 왕직의 자리를 누가 어떻게 차지하게 되는지를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하여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니, 그 인물이 바로 &#039;다윗&#039;이다. 그러나 다윗에 앞서 한 왕이 있었으니 그는 &#039;사울&#039;이다. 사울은 인격적으로 결코 부족하지 않았고 전쟁 수행 능력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같은 시대에 한 왕은 세움을 받고 한 왕은 폐위되었으니, 그 차이는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진정 세우시고자 했던 왕은 어떤 자였는가?&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것은 단순히 한 옛 왕의 전기를 들여다보는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다.&lt;strong&gt;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 다윗의 일대기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거울&lt;/strong&gt;이 된다. 우리가 다윗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결국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진정한 왕 다윗 그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며, 다윗에 관한 가르침의 그 첫 번째 시간을 갖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하나님이 인생에게 바라시는 세 단계의 부르심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베푸시는 부르심에는 분명한 세 단계가 있다. 이 세 단계를 정확히 아는 일은 모든 신앙 여정의 토대가 된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고 어디까지 부름받았는지를 알아야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단계는 &#039;하나님의 자녀(아들들)&#039;가 되는 단계&lt;/strong&gt;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신앙의 출발점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둘째 단계는 &#039;하나님의 상속자&#039;가 되는 단계&lt;/strong&gt;이다.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누구나 자동으로 상속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라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분명히 단서를 달았다.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자녀는 상속자의 자리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 상속자의 예표로 우뚝 선 인물이 바로 &#039;야곱&#039;이다. 야곱은 자기 한 사람만이 아니라 자기의 열두 아들을 모두 상속자가 되게 함으로써 &#039;이긴 자&#039;라는 칭호를 처음 받았고, 그 결과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lt;!--StartFragment--&gt;(창 32:28)&lt;!--EndFragment--&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셋째 단계는 &#039;왕 노릇 하는 자&#039;가 되는 단계&lt;/strong&gt;이다. 상속자의 자리에 머무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서는 부르심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이 마지막 단계의 부르심을 분명히 약속하셨다(계 3:21).&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왕 노릇 하는 자의 자리는 구약의 야곱이 보여 준 상속자의 자리를 다시 한 단계 넘어서는 자리이다. 야곱의 두 아들 유다와 요셉에게 왕직에 관한 예언이 주어졌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사 시대를 거치며 왕직의 맛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완전한 성취는 아니었다. 마침내 한 왕이 세워졌는데, 백성의 요구로 세워진 사울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여 보내신 다윗이 그 진정한 성취였다. 그러므로 구약의 거대한 영적 서사는 결국 다윗이라는 한 인물을 향해 흘러간 셈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우리는 왜 이 세 단계의 부르심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모르면 자신에게 합당치 않은 헛된 꿈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lt;/strong&gt;이다. 60세, 70세가 가까워졌음에도 자기 안의 악한 영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에게 너는 장차 주의 종이 될 자라는 잘못된 예언이 주어졌다면, 그 사람은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허비하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분별하지 못한 자의 비극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그릇으로 빚으셨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모두 한 집안에 있어 각기 쓰임을 받는다(딤후 2:20-21). 중요한 것은 그릇의 종류가 아니라 그 그릇이 깨끗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단계를 정확히 분별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보신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딤후2:20-21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왕직은 사사·영도자직과 어떻게 구별되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심의 세 단계를 보이셨다면, &lt;strong&gt;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지도자들 사이에도 분명한 직분의 구별이 있음&lt;/strong&gt;을 알아야 한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039;인도자&#039; 혹은 &#039;영도자&#039;라 불렸고, 사사들은 &#039;재판장&#039;이라 불렸다. 그리고 사울과 다윗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039;왕&#039;이라는 직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lt;strong&gt; 왕직과 일반 지도자 직분의 차이&lt;/strong&gt;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lt;strong&gt;왕의 제도&lt;/strong&gt;를 미리 알려 주셨다(삼상 8:11~17). 사무엘은 왕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게 될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8:11~17 그가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의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말씀에서 왕의 제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왕은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와 말을 부리게 하고, 천부장과 오십부장의 군사 조직을 세우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무기와 병거 장비를 만들게 한다. 또 백성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고 요리하며 떡을 굽게 한다. 백성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소산을 가져다가 자기 신하들에게 주며,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관리에게 준다. 백성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까지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왕직의 본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lt;strong&gt;왕직은 단순한 지도자 직분이 아니라 그 아래에 신하와 백성과 종이라는 신분 구조가 형성되는 통치 직분&lt;/strong&gt;이라는 점이다. &lt;strong&gt;왕이 있고, 그 아래에 신하가 있으며, 그 아래에 백성이 있고, 또 그 아래에 종이 있다. 이 네 신분의 구조는 하늘나라의 직분 구조와도 정확히 상응&lt;/strong&gt;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십사 장로와 십사만 사천 명, 종려나무 가지 들고 보좌 뒤에 서 있는 큰 무리, 그리고 변두리에 사는 자들의 구조가 곧 그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이러한 &lt;strong&gt;왕직이 잘못 사용되면 권력 남용과 착취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 시대(B.C.1407년경)에 왕의 제도에 관한 명령을 미리 알려주셨다(신 17:14~1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신 17:14~1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결정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039;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039;라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보내신 자를 왕으로 세우지 않으면 백성은 결국 그 왕에게 일평생 착취당하다 끝날 수밖에 없다. 왕직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닌 자가 왕직을 수행할 때 그 왕직이 권력 남용의 도구로 변질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참고할 것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039;왕&#039;은 &#039;멜레크&#039;라 부르며, &#039;지도자&#039;는 &#039;나기드&#039;라 부른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시겠다고 했던 직분은 멜레크가 아니라 나기드였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며 했던 표현이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삼상 9:16). &lt;!--StartFragment--&gt;사울의 본래 사명은 &#039;지도자(나기드)&#039;로서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백성의 요구에 따라 그는 그 본래의 직분을 넘어 &#039;왕(멜레크)&#039;의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본래 보냄받지 않은 자리에 올라간 자, 그것이 오히려 사울의 비극의 출발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lt;!--EndFragment--&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9: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사울왕은 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은 본래 하나님께서 왕직을 부여하여 이 땅에 보내신 자가 아니었다. 그는 주전 1,090년에 태어났고 40세(B.C.1,050년)에 왕이 되었다. 백성들은 주변 나라들처럼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고, 그 요구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가장 쓸 만한 자를 골라 사울을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백성의 요구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통치자였을 뿐, 본래의 직분은 &#039;지도자(나기드)&#039;였고 그 사명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데 있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지만 사울의 초기 모습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인격은 훌륭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늦어지자 아버지가 걱정하실까 봐 돌아가자고 한 효심 깊은 모습, 함께한 사환의 말을 경청할 줄 알던 겸손, 사무엘을 만나러 갈 때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예물을 챙기던 예의 바름이 그것이다. 또한 그는 제비뽑기로 왕이 결정되었을 때 행구 사이에 숨어 있을 만큼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다. 전쟁 수행 능력 또한 탁월하여 암몬 사람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만큼 유능한 자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lt;strong&gt;결정적인 한 가지가 사울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그는 왕직을 감당할 표준에 한참 모자라는 상태에서 이 땅에 태어났고,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는 다른 자보다 열 배, 스무 배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lt;strong&gt;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왕직이 과분한 직분임을 깨닫지 못했고, 그 직분을 감당할 합당한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께 간구하지도 않았다&lt;/strong&gt;. 그가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마땅히 했어야 할 것은 즉시 제사장을 불러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으나, 그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를 위한 전승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더 분주했다(삼상 15:1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고 사울 왕의 결정적인 두 가지 죄가 사무엘상 13장과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죄는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먼저 제사를 드린 후 전쟁에 임하도록 명하셨고, 그 제사를 드릴 자는 당시 사사이자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던 사무엘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이 일주일이 되도록 오지 않자 사울은 조급함에 휩싸였다. 백성은 흩어지고 있었고 자신의 군사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사울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자기가 직접 번제와 화목 제사를 드린 것이다. 왕직과 제사장직이 본래 구별되어 있음에도 그는 자기 직분의 경계를 넘어 버렸고, 제사를 드리고 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다. 그러자 사무엘은 그에게 엄중히 선포했다(삼상 13:13~14).&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이는 왕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둘째 죄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주었고, 소 떼와 양 떼 가운데 기름지고 좋은 것을 살려 두었다(삼상 15:9). 사무엘이 그 사실을 책망하자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남겨 둔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사무엘의 응답은 단호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이었다(삼상 15:. 사울이 행한 거역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함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는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므로 사울의 비극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039;조급(焦急)&#039;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울은 끝내 조급의 영을 떨쳐 내지 못했다. 일주일을 기다리지 못해 제사를 직접 드린 것도 조급이었고, 자기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을 삼천 명의 군대를 끌고 다니며 죽이려 한 것도 조급함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기 친아들 요나단이 다윗 편에 서 있다고 여겨 요나단까지 죽이려 한 것 또한 조급이었다. 조급은 영적으로 사람 몸에서 가장 끈질기게 붙어있는 영 가운데 하나로, 회개의 자리에서 끝까지 붙들고 싸워야 할 영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기 직분의 합당한 은사를 구하기보다, 자기 손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 그 조급함이 결국 한 왕을 무너뜨렸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039;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039;이란 진정 어떤 사람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위하시며 친히 선포하신 한 마디 표현이 있다. &#039;여호와께서 &lt;strong&gt;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lt;/strong&gt;을 구하여&#039;라는 표현이다(삼상 13:14). 이 표현은 사울을 버리시는 자리에서 한 번 사용되었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을 보내실 때 다시 한 번 사용되었다. 단 두 번 사용되었으나 그 무게는 구약 전체의 무게에 맞먹는다. &lt;strong&gt;왕직을 수행할 자,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설 자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lt;/strong&gt;이 이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우리말 성경의 &#039;마음에 맞는 사람&#039;이라는 번역은 원문의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면 &#039;맞는다&#039;에 해당하는 동사가 본래 없다. 직역하면 &#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 혹은 &#039;하나님의 마음을 따른 사람&#039;에 가깝다. &#039;마음에 맞는 사람&#039;이라는 번역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가장 정확한 의미는 &#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이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사실은 사무엘상 16장에서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확증된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아들들을 화목제사에 초대했을 때, 큰아들 엘리압이 들어오자 그 준수한 용모와 큰 키를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분명히 답하셨다(삼상 16: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우리말로 &#039;중심&#039;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바로 앞서 살펴본 &#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에 사용된 그 &#039;마음&#039;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히브리어 &#039;레바브(לֵבָב)&#039;이며, 이는 &#039;마음(heart)&#039;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3:14의 &#039;마음에 맞는 사람&#039;과 사무엘상 16:7의 &#039;중심&#039;은 본래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두 본문에서 동일한 영적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두 본문을 종합하면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 왕직을 부여하실 자의 기준이 분명해진다. 그 사람은 외모로 판별되는 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판별되는 자이며,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어야&lt;/strong&gt;&lt;/span&gt; 한다. 이는 단순히 사람이 선하거나 도덕적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표현이다. &lt;strong&gt;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사랑하시며 무엇을 미워하시는지를 자기 안에 그대로 품고 있는 자, 그래서 자기의 사랑과 미워함이 곧 하나님의 사랑과 미워함과 일치하는 자&lt;/strong&gt;를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에게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의 인격은 훌륭했고 그의 능력은 탁월했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자기의 권력을 붙들고자 자기의 군사들로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이려 쫓아다닌 것이 그 증거이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응답이 없자 금식하며 부르짖어야 마땅했음에도, 그는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라면 결코 그렇게 행하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반면 다윗에게는 이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십여 년 이상 지켜보신 끝에 더 이상 안 되겠다고 결단하시며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신 것이다. 이때는 사울왕이 왕위에 오른지 15년이 되는 시점이요, 다윗의 나이가 15세 정도 되었을 때다. 그리고 화목제의 초대자리에서 선택된 다윗이 곧 &#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이었으며, 이 한 마디 표현이 다윗의 일생 전부를 한 줄로 요약하는 표제가 되기에 이른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서기를 사모한다면,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039;나는 어떤 능력을 가졌는가?&#039;가 아니다. &#039;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가?&#039;이다. 능력은 부족해도 채워질 수 있으나, 마음이 어긋난 자에게는 그 어떤 능력도 결국 양신의 역사로 흐를 뿐이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다윗은 어떤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였던 다윗은 단지 마음의 차원에서만 사울과 달랐던 것이 아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사울과 달랐다.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왕직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을 함께 딸려 보내셨다. 반면 사울은 본래 왕직을 부여받고 보냄받은 자가 아니었기에 그러한 은사가 처음부터 결여된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났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약 15세였다. 그때 사울은 약 65세였으니,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정확히 50년 차이가 난다. 50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진정한 왕이 등장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등장한 그 소년은 결코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왕이 갖추어야 할 영적 무기로 무장된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났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다윗이 가지고 태어났던 첫 번째 은사들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로서 &#039;앎의 은사 계열&#039;&lt;/strong&gt;이다. 그는 &#039;&lt;strong&gt;영분별의 은사&#039;, &#039;지식의 말씀의 은사&#039;, &#039;지혜의 말씀의 은사&#039;&lt;/strong&gt;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은사는 하나님께서 왕직을 수행할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은사들인데, 그 이유는 왕직의 본질적 사명이 주변 우상숭배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영적 싸움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못하게 하는 일, 곧 악한 영을 분별하고 떠나보내는 일은 영분별의 은사 없이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러한 다윗에게 영분별의 은사와 능력 행함의 은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청소년 시절의 한 장면이 분명히 증명한다.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 사람들은 수금을 잘 타는 자를 찾았고, 그 자리에 부름받은 자가 다윗이었다(삼상 16:23).&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소년 다윗이 수금을 타는 것만으로도 사울을 괴롭히던 악령이 떠나갔다는 사실은, 그 안에 이미 영분별의 은사와 능력 행함의 은사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영을 분별할 줄 모르고 영을 다룰 줄 모르는 자가 단지 음악으로 악령을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다윗이 가지고 있던 두 번째 은사들은 일반 은사로서 왕의 성품을 이루는 은사들&lt;/strong&gt;이다. 그에게는&lt;strong&gt; &#039;겸손의 은사&#039;, &#039;열정의 은사&#039;, &#039;사랑의 은사&#039;, &#039;찬양의 은사&#039;&lt;/strong&gt;가 있었다. 그가 시편의 절반 가까이를 직접 지을 만큼 찬양에 능했던 것은 단순한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어 주신 찬양의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양 떼 가운데 사자나 곰이 들이닥쳤을 때 입을 벌려 양을 꺼내 올 만큼 용맹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담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열정의 은사 때문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세 번째로 다윗에게는 전쟁 수행 능력이 태생적으로 부여되어&lt;/strong&gt; 있었다.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가 보여 준 전쟁의 직관과 담력, 군사를 이끌고 사울의 추격을 피하며 광야를 누비던 지혜, 마침내 통일 왕국을 세운 통치력은 모두 하나님께서 왕직 수행자에게 부여하신 은사의 흐름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모든 것이 다윗에게는 이미 장착되어 있었다. 반면 사울에게는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 은사가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사울이 가졌던 은사들은 강한 의지력의 은사, 강한 추진력의 은사, 자신감의 은사, 외모의 빛남 같은 일반 은사들뿐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왕직을 수행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했던 일은, 자신에게 결여된 성령의 특별 은사들을 하나님께 백 배 더 부르짖어 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마나욧에서 성령의 기름이 부어져 예언까지 하게 되었음에도 그 성령의 은사에 끝까지 무관심했다(삼상 19:23).&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대비는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준다.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직분으로 부르셨다면,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와 능력을 함께 주시거나, 우리가 구할 때 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직분에 합당한 은사를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구해야&lt;/strong&gt; 한다.&lt;strong&gt; 직분만 탐하고 은사를 구하지 않는 자는 결국 사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 자였다는 증거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 함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lt;strong&gt;두 가지 사랑을 자기 안에 품은 자&lt;/strong&gt;이다. &lt;strong&gt;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사랑하는 사랑&lt;/strong&gt;이다. &lt;strong&gt;이 두 사랑이 한 인격 안에서 흐를 때, 그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가 된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자&lt;/strong&gt;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먼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 자였음은 그의 일대기에 흐르는 일관된 한 가지 신뢰에서 드러난다. 그는 어떤 적 앞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소년의 몸으로 골리앗 앞에 섰을 때 한 말은 그 신뢰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삼상 17:4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게 강한 사울왕도 골리앗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사울의 군사들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담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들은 이 신뢰가 결코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정서였음을 증언한다(시 23:1, 4~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23:1, 4~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고백하는 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는 자, 원수의 목전에서도 잔치를 누리는 자, 이것이 다윗이다. 그가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머리로 안 자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 자였음을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또 있다. 그는 왕이 된 후 시온 산성에 자리잡고 두로 왕 히람이 보내 준 백향목으로 자신의 왕궁을 짓게 되었다(삼하 5:11). 그런데 왕궁에 들어가 살면서 그의 마음에 깊은 자책이 일어났다. 자기는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여전히 휘장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양심을 찔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단 선지자를 찾아가 자기 마음을 털어놓았고,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리고자 하는 그 거룩한 욕망을 표현했다(삼하 7: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의 마음에 깊이 감동하셨다. 광야 시절부터 그때까지 천막에 다니며 살아오시던 하나님께서 한 번도 누구에게도 당신의 집을 지어 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다윗이 스스로 그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결국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사울에게서 빼앗은 것처럼 다윗의 왕조에서는 왕직을 빼앗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다윗의 왕직이 영원토록 이어지게 하시는 거대한 약속, 곧 메시아 약속의 출발점이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되었다(삼하 7:8-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 자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을 위한 전승 기념비를 세우는 데 분주했다면, 다윗은 왕궁에서 안락을 누리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집을 먼저 떠올렸다. 그 한 가지 차이가 두 왕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영적 분기점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 자였다는 증거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의 두 번째 표지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lt;/strong&gt;이다. 다윗에게는 이 사랑이 자신의 목숨을 능가할 만큼 깊었다. 그는 백성을 자기 양 떼처럼 여기는 목자였고, 자기 부하 한 사람의 목숨도 자기 만족을 위해 가볍게 쓰지 않는 왕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사랑을 가장 인상 깊게 보여 주는 사건이 다윗의 세 용사 이야기이다.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한번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한 적이 있다.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은 당시 블레셋의 영채 안에 있었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부하 장수 세 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 그 우물물을 길어 왔다. 그들이 물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다윗이 보인 반응이 그의 인격을 가장 또렷이 드러낸다(삼하 23:16~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23:16~17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은 그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을 하나님께 부어 드리며, 이는 자기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고백했다. 자기를 위해 부하의 피를 마실 수 없다는 그 거룩한 거절, 부하의 헌신을 자기 입맛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는 그 마음, 그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또한 다윗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인구 조사 사건에서도 다시 한 번 강렬하게 드러난다. 다윗은 통치 후반기에 인구 조사를 행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고, 그 결과 전염병으로 칠만 명의 백성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 비참한 광경을 보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은 기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그의 진심의 표현이었다(삼하 24: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죄는 자기와 자기 집안이 범했는데 왜 백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는 그의 절규,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백성은 살려 달라는 간구는 한 왕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준다.&lt;strong&gt; 자기 백성을 자기 목숨과 바꿀 만큼 사랑&lt;/strong&gt;하지 않는 자에게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기도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고 다윗이 백성을 사랑한 자였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므비보셋 이야기이다. 사울은 일평생 다윗을 죽이려 쫓아다녔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조차 본래라면 왕위를 이을 자였다. 인간적 관점으로 보면 사울 가문은 다윗의 가장 무서운 정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자기 왕궁의 식탁에 함께 앉히고 친아들처럼 대했다(삼하 9:13).&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9: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자기를 죽이려 한 자의 손자를 자기 식탁에 앉히는 일은 인간의 사랑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가능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친구 요나단과의 언약을 끝까지 기억한 자였기 때문이며, &lt;strong&gt;무엇보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결국 사람을 살리시는 마음이지 사람을 죽이시는 마음이 아니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모든 사건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다윗은 양 떼의 목숨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목자였고, 그 모습이 바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가리켜 선포하신 선한 목자의 예표였다(요 10:11). &lt;!--StartFragment--&gt;다윗은 그 마음의 그릇 안에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가리켜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 부르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lt;!--EndFragme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진정한 왕 다윗 그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시는 자녀와 상속자와 왕 노릇 하는 자의 세 단계 부르심과, 왕직과 사사·영도자직의 신분적 구별과,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와, &#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이라는 한 마디 표현에 담긴 영적 진리와, 다윗이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은사와 능력과,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 자였다는 사실과,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 자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모든 가르침의 결론은 한 가지로 모인다. &lt;strong&gt;우리는 자녀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녀가 된 자는 마땅히 상속자의 자리를 사모해야 하며, 상속자가 된 자는 다시 왕 노릇 하는 자의 자리를 사모해야&lt;/strong&gt; 한다. 이는 분에 넘치는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약속하신 부르심이므로,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자신을 빚어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정확히 분별해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모든 사람이 같은 자리에 부름받은 것이 아니므로,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헛된 꿈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어떤 그릇으로 빚어졌는지를 알고, 그 그릇이 깨끗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는 일에 자기 인생의 무게를 두어야&lt;/strong&gt; 한다. 또한 우리는 사울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사울처럼 인격과 능력에 부족함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내신 자의 자리에 합당한 은사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기 권력을 지키는 데에 일생을 허비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의 영을 끝까지 떨쳐 내야 하며, 회개의 자리에서 그 영과 끝까지 붙들고 싸워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무엇보다 &lt;strong&gt;&#039;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람&#039;이 되어야&lt;/strong&gt; 한다.&lt;strong&gt;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의 문제&lt;/strong&gt;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사랑하시며 무엇을 미워하시는지를 자기 안에 그대로 품은 자, 그래서 자기의 사랑과 미워함이 곧 하나님의 사랑과 미워함과 일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처럼 두 사랑을 자기 안에 품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사랑하는 사랑이다. 어떤 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그 사랑, 자신의 안락보다 하나님의 집을 먼저 생각하는 그 사랑, 그리고 자기 부하의 피를 자기 입맛에 쓰지 않고 백성의 목숨을 자기 목숨과 바꿀 만큼 아끼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로 빚어지며, 자녀의 자리에서 상속자의 자리로, 상속자의 자리에서 왕 노릇 하는 자의 자리로 나아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 곁에 함께 앉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17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 설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lt;/span&gt;&lt;strong&gt;진정한 왕의 자질&lt;/strong&gt;&lt;span&gt;을 다윗의 생애를 통해 조명하며, 성도가 천국에서 누릴 &lt;/span&gt;&lt;strong&gt;상속자와 왕 노릇 하는 권세&lt;/strong&gt;&lt;span&gt;의 자격에 대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인간의 요구로 세워진 사울 왕이 &lt;/span&gt;&lt;strong&gt;조급함과 불신앙&lt;/strong&gt;&lt;span&gt;으로 인해 실패한 사례를 대조하며, 겉모습이 아닌 &lt;/span&gt;&lt;strong&gt;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중심&lt;/strong&gt;&lt;span&gt;을 보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강조합니다. 다윗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lt;/span&gt;&lt;strong&gt;영 분별의 은사&lt;/strong&gt;&lt;span&gt;와 하나님을 향한 &lt;/span&gt;&lt;strong&gt;절대적인 사랑&lt;/strong&gt;&lt;span&gt;, 그리고 양 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lt;/span&gt;&lt;strong&gt;희생적 사랑&lt;/strong&gt;&lt;span&gt;을 통해 진정한 왕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 메시지는 성도들이 자신의 지위와 사명을 깨달아 &lt;/span&gt;&lt;strong&gt;회개와 연단&lt;/strong&gt;&lt;span&gt;을 거쳐 주님의 마음에 맞는 &lt;/span&gt;&lt;strong&gt;준비된 그릇&lt;/strong&gt;&lt;span&gt;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기독론 #사무엘상 #다윗 #진정한왕 #하나님의마음 #왕의자질 #성도의신분 #상속자 #천국 #조급함 #불신앙 #사울왕 #믿음 #영분별 #희생적사랑 #목사 #설교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회개&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8a5b567011fcd60ed43275e4f4b04a41.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8a5b567011fcd60ed43275e4f4b04a41.jpg&quot; alt=&quot;[기독론(93)] 인포그래픽_223140_vora.jpg&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66e99783794ee8854ca1f54f1a1c7fe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66e99783794ee8854ca1f54f1a1c7fe4.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6cb92d146d9e08de84e59203b58a2b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6cb92d146d9e08de84e59203b58a2b1.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8ff011c4bc0a8977530354f06711e0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8ff011c4bc0a8977530354f06711e0d.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45f0e8e78c95f890a822dedd8939080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45f0e8e78c95f890a822dedd89390805.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7058e968e5a7906246b904fe63b6268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7058e968e5a7906246b904fe63b6268a.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2828305a709419b77274a24016120e6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2828305a709419b77274a24016120e6e.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572e8374fd017678db8734ccbfb031d6.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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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627d8cc8695cb5284a43fb2b6527b02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627d8cc8695cb5284a43fb2b6527b02e.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2a5c86d56fd7b0a5178ae12fc4138cd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2a5c86d56fd7b0a5178ae12fc4138cd9.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ca82276bb35e4e504c13c62ea50907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1ca82276bb35e4e504c13c62ea50907b.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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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fd8d769db884832e4a11929478ccfae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fd8d769db884832e4a11929478ccfaee.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Heart_of_the_True_King.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78022eb43549e75630d2c97ddb9ce2c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78022eb43549e75630d2c97ddb9ce2cc.webp&quot; alt=&quot;[기독론(93)] The_Heart_of_the_True_King.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0e400022d75289b8e3efdc138d68a8b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979/251/0e400022d75289b8e3efdc138d68a8b1.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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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사무엘상</category><category>다윗</category><category>진정한왕</category><category>하나님의마음</category><category>왕의자질</category><category>성도의신분</category><category>상속자</category><category>천국</category><category>조급함</category><category>불신앙</category><category>사울왕</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영분별</category><category>희생적사랑</category><category>목사</category><category>설교</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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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1979#comment</comments>			<pubDate>Sun, 17 May 2026 21:29: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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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1부] 천국에서 성도들이 실제로 갖게 될 4가지 신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한계시록 1:5~6)_2026-05-10(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50363</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10(일) 주일1부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천국에서 성도들이 실제로 갖게 될 4가지 신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한계시록 1:5~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l4PFQBkudm8&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4PFQBkudm8?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2&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1. 들어가며&lt;/b&gt;&lt;/span&gt;&lt;/p&gt; &lt;p&gt;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품고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다 천국에 들어가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 노릇을 하며 평등하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영적 세계와 천국의 실상은 철저한 계급 사회요, 행정 국가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천국에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으며,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열 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있는 반면, 아무 상급 없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자도 존재한다.&lt;/p&gt; &lt;div _ngcontent-ng-c1491667942=&quot;&quot; class=&quot;container&quot;&gt; &lt;div _ngcontent-ng-c1636171768=&quot;&quot; inline-copy-host=&quot;&quot; class=&quot;markdown markdown-main-panel stronger enable-updated-hr-color&quot; id=&quot;model-response-message-contentr_4495e5e95549ceb4&quot; aria-live=&quot;polite&quot; aria-busy=&quot;false&quot; dir=&quot;ltr&quot;&gt; &lt;p data-path-to-node=&quot;1&quot;&gt;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며, 얼마만큼의 땅과 집을 차지하게 될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구약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과 땅 분배 역사 속에 그 1:1 팩트를 완벽하게 감추어 두셨다. 무저갱에 사탄 마귀가 결박되어 있고 하늘에서 천년왕국이 진행 중인 지금, 이 땅에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 귀신들과 피 튀기게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천국의 아름다운 기업을 차지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천국에서 성도들이 실제로 갖게 될 4가지 신분과 상급의 1:1 팩트는 무엇이며, 내 육체를 장악한 악한 영들을 몰아내는 정확한 축사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quot;&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천국이 공산주의적 평등사회가 아니라, 철저한 4대 계급과 차등 상급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성경적 팩트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천국의 상급과 지위를 평등하게 뭉뚱그려버린 얄팍한 교리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은혜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천국의 상급을 철저히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공생애 내내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와 천국에서의 상을 받는 문제를 분명하게 다르게 언급하셨으며, 천국에서 상을 받는 것에 있어서도 철저한 차등 상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마 18:4, 20:27-28).&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국에는 명백히 &#039;큰 자&#039;와 &#039;작은 자&#039;가 존재한다. 첫째가 되기를 원하면서 세상적 가치관으로 군림하기를 애셨던 자는 천국에 들어가면 남을 수종 드는 &#039;종(섬기는 자)&#039;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lt;/p&gt; &lt;p&gt; 그리고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를 보라.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으나 열 므나를 남긴 종은 열 고을을 차지하는 통치권을 얻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은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다. 그리고 하나도 남기지 못한 종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이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천국에서 벌어질 영원한 지위와 영토의 차이를 보여주는 팩트인 것이다.&lt;/p&gt; &lt;p&gt;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열 처녀 비유 역시 동일한 영적 법칙을 증언한다. 충성도에 따라 기업의 크기가 달라지며, 여분의 기름(성령과 회개)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성문 밖으로 내쳐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고 목숨을 걸고 충성한 자들에게는 그 분량만큼 정확한 지위와 영토가 계산되여 보상이 되는 완벽한 공의의 나라인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2&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3. 창세기 족장들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039;이기는 자&#039;의 영적 팩트와 천국 왕권의 예표는 무엇인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3&quot;&gt; 천국에서 우리가 얻을 영원한 기업의 예표는 &lt;strong&gt;B.C. 2031년 아브라함의 소명에서부터 시작&lt;/strong&gt;된다. 하나님은 천국 기업을 상징하는 &#039;가나안 땅&#039;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이삭의 시대에는 장차 인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예표되었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4&quot;&gt; 그리고 &lt;strong&gt;야곱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039;이기는 자&#039;의 진정한 의미가 계시&lt;/strong&gt;된다. 천국 상급을 차지하는 이기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얍복강에서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기도에 전념하여 악한 영들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야곱은 장자의 축복(기업계승, 가정의 제사장직)을 자기 혼자만 누리지 않고 12명의 아들 모두에게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을 귀히 보시고 &#039;이긴 자&#039;라는 뜻의 &#039;이스라엘&#039;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신 것이다. 나아가 B.C. 1876년 야곱의 유언을 통해성도, 넷째 아들 유다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게 &#039;통치자의 지팡이&#039;(창 49:10)와 &#039;뛰어난 자의 정수리&#039;(창 49:22-25)라는 강력한 왕의 축복이 선포되었는데, 이는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들의 꽃과 열매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4&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5&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5&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4. 이스라엘 12지파의 가나안 땅 분배는 우리가 천국에서 얻게 될 영토와 어떻게 1:1로 매칭되는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6&quot;&gt;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마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격했다. 7년간의 피 튀기는 정복 전쟁을 치른 후, 8년에 걸쳐 가나안 땅을 분배받게 되는데, 이 과정은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서 배정받을 땅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신분을 1:1로 완벽하게 보여주는 시청각 교재와 같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7&quot;&gt; 이때 땅을 분배받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lt;strong&gt;첫째, 끝까지 긍정적인 믿음을 지켰던 2인자 갈렙과 여호수아는 제비뽑기를 거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요청한 핵심 요새를 특별 기업으로 하사&lt;/strong&gt;받았다는 것이다. 이때 최고의 영도자 여호수아는 딤낫세라를 받았고, 2인자 갈렙은 헤브론을 자기의 특별기업으로 하사받는다. &lt;strong&gt;둘째, 전쟁에 가장 많은 군사를 보내고 선두에서 목숨 걸고 맹렬히 싸웠던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가장 넓은 땅을 제비 뽑아 얻었&lt;/strong&gt;다는 것이다. &lt;strong&gt;셋째, 전쟁을 미적거리며 눈치만 보던 나머지 7지파는 가나안의 변두리 지역을 작게 분배&lt;/strong&gt;받고 말았다는 것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8&quot;&gt; 이것은 정확한 천국의 실상이다. 천국 영토의 분배는 결코 우연이 일어나지 않는다. &lt;!--StartFragment--&gt;사실 가나안 땅 분배 원칙으로 작동된 &#039;제비뽑기&#039;는 인간의 눈에는 우연 같지만 영계에서는 &#039;우연으로 위장된 하나님의 불꽃 같은 저울&#039;인 것이다. &lt;!--EndFragment--&gt;이 땅에서 우상숭배를 통해 내려와 내 육체 속에 둥지를 튼 귀신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쫓아낸 분량만큼 천국의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던진 분량만큼 천국에서 자신이 받을 땅의 크기와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쟁을 회피한 자에게 천국의 중심부 노른자 땅은 결단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8&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9&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9&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5.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에서 성도들을 &#039;왕과 제사장&#039;이 아닌 &#039;왕국과 제사장들&#039;로 기록한 영적 팩트는 무엇인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10&quot;&gt;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대한 오역 때문에 자신이 천국에 가면 무조건 &#039;왕 같은 제사장&#039;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헬라어 원문에서 &#039;히에라튜마(hierateuma)&#039;는 개별적인 제사장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039;제사장 체계(priesthood)&#039;를 의미한다. 사도 요한 역시 천국의 정확한 계급 체계를 요한계시록 1장에서 팩트 그대로 증언했다(계 1:5-6).&lt;/p&gt; &lt;p data-path-to-node=&quot;11&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1:5-6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12&quot;&gt;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우리를 &#039;왕과 제사장&#039;으로 만드셨다고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헬라어 원문은 말한다. 분명히 우리를 &#039;왕국(나라, basileia)&#039;과 &#039;제사장들(hiereus)&#039;로 만드셨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천국이라는 왕국 안에는 절대적인 왕 노릇을 하는 소수의 통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돕는 장관이 있고, 다수의 일반 백성이 있으며, 섬기는 종들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들로 철저히 나뉘어 있다. 성도라고 해서 모두가 평등하게 제사장과 왕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성경 원어는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의 체계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계급도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과 나무패며 물긷는 자(나중에는 느디님 사람들)으로 나눠어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2&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3&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13&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6.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대제사장(24장로)과 제사장(144,000명) 계급이 천국에서 누리는 압도적인 실상은 무엇인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14&quot;&gt;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12지파와 레위인의 분배 방식에 따라 명확한 4가지 신분 계급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계급은 그들이 사는 장소가 어떻게 다르며, 예배드릴 때에 어디서 예배드리는지를 통해서 확인이 된다. 이들을 실제로 천국에서의 4대 계급 체계로 구분이 되는데, &#039;24장로들&#039;과 &#039;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039; 그리고 &#039;평신도로서 땅과 집을 가진 자들&#039;과 &#039;변두리에 사는 자들&#039;로 구분되어 있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4&quot;&gt; 이제는 &lt;strong&gt;이들이 살아갈 때의 모습을 가지고 이들을 구분해보면&lt;/strong&gt; 다음과 같다. 이들이 천국에서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계신 셋째 하늘이 아니라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둘째 하늘 아래에 마련된 시온산(원뿔형처럼 생겨서 아래쪽은 넓은데, 위로 갈수록 좁다)에 거주하는데, 이들이 사는 장소는 정확히 &#039;왕의 계급 체계&#039;를 따른다. 하나님의 보좌가 가장 가까운 맨 꼭대기에는 &#039;24장로들&#039;이 살고 있고, 바로 그 아래에는 &#039;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039;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서부터 맨 아래까지는 &#039;평신도서 땅과 집을 가진 자들&#039;이 살고 있으며, 이 성의 평평한 변두리 지역 즉 꽃밭에서는 간신히 턱걸이로 올라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4&quot;&gt; 그런데 &lt;strong&gt;이들이 예배드릴 때의 모습으로 구분해보면&lt;/strong&gt; 다음과 같다. 이때는 이들이 &#039;제사장 계급 체계&#039;를 따른 순서대로 앉고 서서 예배를 드린다. 이러한 제사장 계급의 정점에 있는 첫 번째 계급은 바로 &lt;b data-path-to-node=&quot;14&quot; data-index-in-node=&quot;77&quot;&gt;대제사장(24장로) 계급&lt;/b&gt;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명을 주어 파송하신 최고의 종들로서, 왕 노릇 하는 자들 중의 왕 노릇을 하는 절대자들이다. 이들은 예배드릴 때면 24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24장로의 자리는 이미 2천 년 전 경에 거의 확정되었기에 현재의 성도들이 차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여진다(물론 유동성은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예배 시 가장 앞에 마련된 24보좌에 앉아서 자기 마을(24개의 마을들 중에 하나)의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천국에서 행하는 대제사장인 직무이다. 즉 읻르은 자기가 들고 있는 수금으로 찬양함으로 주 예수님을 기쁘게 한 다음, 자기 마을 내의 성도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담아 주님께 올리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보면, 10층 이상의 초고층 저택에 살고 있고 1,000평 이상의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저택은 매우 커서 영광스러운 연회를 늘 베풀며 살아간다. 또한 이들은 성문 밖으로 나가 성밖 거주자들인 열국 위에 왕으로 통치할 뿐만 아니라, 온 은하계의 별들 위에서 왕 노릇 하며, 그들의 머리에는 수 개에서 10개 이상의 찬란한 면류관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5&quot;&gt; 두 번째 계급은 &lt;b data-path-to-node=&quot;15&quot; data-index-in-node=&quot;9&quot;&gt;제사장(144,000명) 계급&lt;/b&gt;이다. 이들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사역적 예정을 입고 이 땅에 파송된 사명자들이다. 이들 중 소수는 성밖으로 나가서 왕 노릇을 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천국에서 막강한 &#039;주인 노릇&#039;을 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자기 저택에 매일 경호원들과 일꾼들을 출근하여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lt;!--EndFragment--&gt;천국에서 예배드릴 때면 14만 4천 석의 자기 전용 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며, 대제사장 다음으로 고급스러운 예복을 입고 다양한 보석으로 치장된 면류관을 쓴 채 예배드리는데, 면류관은 전혀 무겁지 않다. 참고고 이들이 살고있는 곳을 보면, 이들은 최소 500평에서 1,000평 정도의 넓은 땅에서 살고 있으며, 3~10층 규모의 화려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도 역시 자기 집에서 풍성한 연회를 베푸는 것을 볼 수 있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5&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16&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7. 사역적 부르심이 없어도 치열한 영적 전쟁으로 승리한 자들이 오르는 &#039;레위인 계급&#039;의 영광은 어떠한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17&quot;&gt; 천국에서 세 번째 계급은 &lt;b data-path-to-node=&quot;17&quot; data-index-in-node=&quot;9&quot;&gt;레위인 계급&lt;/b&gt;이다. 이들은 144,000명처럼 창세 전부터 지명된 사명자로 파송된 것은 아니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피 튀기는 영적 전쟁을 치러 귀신들을 몰아내고 진리를 사수함으로써 스스로 &#039;이기는 자&#039;가 되어 천국에 입성한 위대한 성도들이다. 예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기본적으로 영적으로 레위인의 신분이 주어진다. 하지만 레위인 계급에 속한 자는 많지 않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8&quot;&gt; 이들이 예배드릴 때의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 개인 보좌는 주어지지 않았만, 14만 4천 명의 보좌 바로 뒤에 서서 종려나무를 들고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렇지만 이들도 영적 전쟁의 승리자이기에 1개에서 5개 이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데, 이들은 천국에서 약 50평에서 500평 정도의 자기 소유의 땅(기업)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1~5층(보통 1~3층) 규모의 천국 집을 가지고 살고 있다. 물론 이 땅에서 주를 위해 바친 헌신과 눈물의 분량이 크다면, 레위인 계급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소유하기도 한다.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육체를 쳐 복종시키고 주님을 섬긴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영광이 바로 이 계급인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8&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19&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19&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8. 간신히 천국에 입성한 &#039;느디님&#039; 계급의 삶과, 회개치 않아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들의 팩트는 무엇인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20&quot;&gt; 네 번째 계급은 &lt;b data-path-to-node=&quot;20&quot; data-index-in-node=&quot;9&quot;&gt;느디님 사람(나무 패며 물 긷는 자) 계급&lt;/b&gt;이다. 여호수아 정복 당시 히위 족속이었던 기브온 거민들이 스스로 항복하여 성막의 허드렛일을 자처했던 것처럼, 이들은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이었으나 주님의 은혜로 간신히 턱걸이하여 천국에 들어간 섬기는 자들을 예표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헌신한 공로가 거의 없기에 이들은 천국에 자기의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집이 없으니 주님을 초대할 수도 없고, 자기 집에서 연회를 열 수도 없다. 이들은 천국 변두리의 꽃밭에 거주하며, 오직 돗자리 하나 펴고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땅만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평소에 하는 일을 보면, 이들은 24장로들과 144,000명의 사람들로서 왕 노릇 하거나 주인 노릇하는 이들의 대저택으로 출근하여 일상생활을 돕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천국은 세상과 달라서, 이들이 모욕적인 삶을 살거나 땀 흘리는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 주인에게 야단을 맞는 비굴함도 없이 오직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자기의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1&quot;&gt; 그러나 반면에, &quot;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quot;이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이 땅에서 죄를 짓고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회개마저도 거부한 채 편안함만 좇던 자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어찌 되는가? 그들은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아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었으나 대부분 죽을 때에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쫓겨나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이런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문 안으로 스스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 밖으로 쫓겨난 그곳 거주자들은 여전히 땀 흘려 노동해야 하고, 일하다가 다치고 상처를 입어 생명나무 잎사귀를 짓이겨 상처에 바르고 치유를 받아야만 한다. 나아가 똑같은 성 밖이라고 할지라도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자도 있는데, 그곳에서는 형벌도 받게 된다. 이것이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싸운 자와 싸우지 않은 자의 영원한 격차인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1&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2&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22&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9. 내 육체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귀신들을 뽑아내고 천국 상급을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축사 메커니즘은 무엇인가?&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23&quot;&gt; 이 엄청난 영원한 신분의 격차가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마 24:44). 예수님의 승천직후 우두머리인 사탄마귀가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기에, 우리가 지금 맞서 싸워야 할 주적은 마귀의 졸개들로서 우상숭배와 제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내게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일 뿐이다. 이 더러운 뱀들과 귀신들은 우리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내게 내려오기도 하고, 내가 직접 범죄했을 때에 합법적인 권리를 얻어서 들어오는데, 뱀은 가는 실처럼 자기의 몸의 크기를 줄여서 들어온다. 그리고 귀신들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면 보통 집을 짓는데, 이들이 모습은 어떤 짐승들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여진다. 그래서 뱀들과 귀신들은 우리 육체의 장기와 혈관 그리고 신경이나 귓바퀴 같은 곳에 들어와서 산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4&quot;&gt; 그렇다면 이 악한 영들을 내쫓고 몸의 토지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단지 감상적인 기도나 율법적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자백하는 &#039;회개&#039;만이 통하기 때문이다(요일 1:9). 우리가 피를 토하듯 자기 조상과 자기의 죄를 자백할 때, 놀라운 영적 메커니즘이 가동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 &#039;예수님의 피&#039;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한 방울씩 들어오던 피는 회개가 깊어질수록 내 육체를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뱀들이 내 몸에서 이격되고 또는 녹아내린다. 그러면 이들도 고통을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지르면서 떠나간다. 특히 성령사역자들에 의해 &#039;성령의 불과 칼&#039;이 들어와 그들을 태우고 찌르고 짜르면 더 빨리 그것들을 몸밖으로 내보낼 수가 있다. 이 때 사역자들이 사용하는 &#039;성령의 불&#039;은 이격된 귀신들의 잔재와 그들이 지어놓은 영적 쓰레기(저주와 질병의 집)를 불태워 소멸시키고, 그리고 &#039;성령의 칼&#039;은 귀신들이 가문과 엮어놓은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버린다. 예수님의 피가 이격시키고 녹이며, 성령의 불과 칼이 태우고 자르는 이 완벽한 이중적인 공격이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동안 뱀과 귀신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통치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5&quot;&gt;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6&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b data-path-to-node=&quot;26&quot; data-index-in-node=&quot;0&quot;&gt;10. 나오며&lt;/b&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27&quot;&gt; 지금까지 천국에서 성도들이 얻게 될 4가지 신분과 기업의 팩트, 그리고 영적 전쟁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8&quot;&gt; 천국은 막연하게 모두가 평등한 왕 노릇을 하는 곳이 아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사용된 정복의 원칙과 땅을 분배받았던 기업분배 원칙이 그대로 저 영원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작동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모든 성도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이라는 4대 계급의 구분되어, 그들이 거주할 땅이 결정되고, 그들이 예배할 때에는 그들이 예배하는 자리가 결정되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우리가 천국에서 기업으로 받을 땅을 더 넓게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여호수아의 군대처럼 영적 전쟁을 많이하여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영들도 내보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높은 신분을 갖기를 원하면다면,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 사실 천국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러내어 이 땅에 보낸 사명자들이기 때문에, 사명을 받아 이 땅에 온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명자가 아닌 평신도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그때에는 스스로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나실인처럼 살면 된다. 즉 자신이 비록 사명자로 보냄을 받지 않았더라도,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나실인처럼 포도주(세상 향락)를 끊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으며(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함), 시체(자신을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허무는 행동)를 멀리하고,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적어도 하나님께 항복하여 자신을 드렸던 기브온 거민들(느디딤 사람들)처럼 되어서, 자신은 성전의 문지기라도 좋사오니 주의 일만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면 된다. 자신이 선지자가 아니더라도 선지자에게 냉수 하나라도 공급하면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사명자들과 함께 그에게 협력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 data-path-to-node=&quot;29&quot;&gt; 이를 위해서는 매일의 삶 속에서 피를 토하는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보혈을 받아들여 자기 안에 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내보내야 한다. 큰 영들이 많아서 그 영들이 나가지 않으면, 은사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가진 성령의 불과 칼로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노동과 상처가 있는 성 밖으로 쫓겨난다거나 지옥 불에 떨어지는 자가 아니라, 오직 천국의 4대 계급 안에서 세탁이 필요 없는 눈부신 세마포 옷을 입고 만나와 포도주가 넘치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더 나아가서는 온 은하계의 별들 위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9&quot;&gt; &lt;/p&gt; &lt;/div&gt; &lt;message-content _ngcontent-ng-c1491667942=&quot;&quot; _nghost-ng-c1636171768=&quot;&quot; id=&quot;message-content-id-r_4495e5e95549ceb4&quot; class=&quot;ng-star-inserted&quot;&gt;&lt;/message-content&gt;&lt;!----&gt;&lt;/div&gt; &lt;p&gt;2026년 05월 10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성경의 가나안 땅 분배 사건을 예표로 삼아, &lt;/span&gt;&lt;strong&gt;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차등적인 기업과 네 가지 신분&lt;/strong&gt;&lt;span&gt;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는 통념을 깨고, 이 땅에서의 &lt;/span&gt;&lt;strong&gt;영적 싸움과 충성도&lt;/strong&gt;&lt;span&gt;에 따라 장차 거주할 땅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영원한 계급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 천국의 신분을 &lt;strong&gt;24장로(&lt;/strong&gt;&lt;/span&gt;&lt;strong&gt;대제사장), 보좌에 앉아있는 144,000명(제사장), 서서 예배드리는 허다한 무리들(레위인), 더 멀리 바깥쪽에 서 있는 사람들(느디님 사람)&lt;/strong&gt;&lt;span&gt;의 네 부류로 구분하며, 이는 구약의 직분 체계가 천국의 질서를 미리 보여주는 것임을 논증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안일한 신앙에서 벗어나 &lt;/span&gt;&lt;strong&gt;나실인과 같은 헌신과 이기는 자의 삶&lt;/strong&gt;&lt;span&gt;을 통해 하늘의 상급과 영광스러운 신분을 준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천국 #신분 #계급 #상급 #영적싸움 #주일예배 #정보배목사 #동탄명성교회 #가나안땅 #이스라엘 #야곱 #유다 #요셉 #갈렙 #여호수아 #왕국 #제사장 #24장로 #144000명 #레위인&lt;/p&gt; &lt;p&gt; &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천국</category><category>신분</category><category>계급</category><category>상급</category><category>영적싸움</category><category>주일예배</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가나안땅</category><category>이스라엘</category><category>야곱</category><category>유다</category><category>요셉</category><category>갈렙</category><category>여호수아</category><category>왕국</category><category>제사장</category><category>24장로</category><category>144000명</category><category>레위인</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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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81)] 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 나타나 있는 천국 기업 분배의 놀라운 비밀(수14:1~5)_2026-05-0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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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03(일) 주일낮1부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기독론(81)] 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 나타나 있는 천국 기업 분배의 놀라운 비밀(수14: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FPdVZKycxB0&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PdVZKycxB0?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gt;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 땅에서 잠시 육신의 배를 불리고 안락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진짜 소망은 장차 영원히 거주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입성하여 영광스러운 기업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그저 교회 마당만 밟으면 누구나 다 똑같이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부로 들어가, 으리으리한 맨션에서 예수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영원히 떵떵거리고 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영적 팩트는 참혹할 만큼 냉정하다. 천국은 결코 획일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 속에 진을 친 귀신들과 얼마나 피 튀기게 싸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의 칼날을 휘두르며 주님께 헌신했는지에 따라 우리가 들어갈 처소와 상급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역사적 사건 속에,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차지할 지위와 상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어마어마한 영적 비밀을 숨겨 놓으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 나타나 있는 천국 기업 분배의 놀라운 비밀이 무엇이며,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천국의 지위와 상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부모와 자식을 망치는 조상의 영을 차단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짜 효도와 사랑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천국의 상급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할 가장 절박한 이유인 &#039;가족 구원&#039;의 실체부터 뼈저리게 직시해야 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뼈가 부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일을 감당했던 위대한 분들이다. 그러나 영적인 무지 속에서 자식의 앞길을 열어보겠다고 4월 초파일이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칠성신에게 비나이다를 외치며, 기일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렸다. 그러나 그런 우상숭배 행위야말로 자식을 망치고 핏줄을 통해 악독한 귀신들을 합법적으로 내려가게하는 저주의 통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lt;/p&gt; &lt;p&gt; 그 결과, 지독한 우상 숭배로 인해 악한 영들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내가 낳은 자녀들의 속까지 고스란히 흘러 내려가 진을 치고 태어날 때부터 앞길을 막아버렸다. 고로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부모인 우리가 먼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상 숭배의 악령들을 초전박살 내고, 자식에게 흘러갈 영적 저주의 사슬을 원천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또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진짜 효도는 용돈을 쥐여 드리거나 효도 관광을 보내드리는 것이 아니다. 육신을 갉아먹는 귀신들을 몰아내어 질병을 고쳐드리고,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전하여 부모님의 영혼을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의 실상을 모른 채 세상의 효도방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진정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육체를 장악한 귀신의 10대 생태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3대 절대 원칙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성경에 따르면,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육체 속에 들어와 온갖 죄를 짓게 만들고 우리에게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를 주는 존재는 사탄이 아니라, 그의 하급 쫄개들인 뱀들과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이상 죄를 짓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고 저주에서 벗어나 가족과 이웃을 전도하려면 우리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악한 영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육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은 영락없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일곱족속의 속성이 비슷하다. &lt;/p&gt; &lt;p&gt;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의 육체를 장악한 악한 영들의 10가지 생태를 낱낱이 해부해 보았다. 이놈들은 한 번의 안수로 절대 다 나가는 것은 절대 아니며, 우리 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흩어져서 거대한 집을 짓고 있고, 떠나지 않으려면 맹주를 중심으로 연합 전선을 펼치며, 공격을 받으면 깊숙이 숨어버리거나 잔존 세력으로 남아 우리를 찌르는 가시와 올무가 되는 존재들이다. &lt;/p&gt; &lt;p&gt; 그러므로 이 악랄한 귀신들을 척결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여호수아가 어떻게 가나안 땅의 일곱족속을 몰아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 여호수아는 어떻게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었는가? 그것은 첫째, 모든 전쟁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니 철저히 그분의 말씀에 &#039;절대 순종&#039;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어준 대적은 유인과 매복작전 그리고 기습작전 등 &#039;영적인 지혜와 작전&#039;을 총동원하여 마귀의 허를 찔러서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아이성 전투의 참패를 거울삼아, 내 안의 숨겨진 죄악을 회개로 끊어내는 &#039;철저한 정결&#039;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즐기면서 입술로만 회개 기도문을 읊조리는 것은 결코 귀신들을 밖으로 쫓아낼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조롱거리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하게 날마다 회개하여 내 육체 속에 들어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남김없이 쫓아내어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요단 동편을 택한 두 지파 반의 실체, 왜 그곳은 끝없는 노동이 이어지는 천국 성 밖인가?&lt;/span&gt;&lt;/h2&gt; &lt;p&gt;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의 분배가 시작될 때, 가나안 서편에 있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나쎄 반 지파다. 이 두 지파 반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서편으로 건너오기 전, 요단 동편의 기름진 목초지를 보고 탐욕에 눈이 멀어 그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달라고 모세에게 떼를 썼던 지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진짜 가나안 땅은 요단강을 건너서 만나는 요단강 &#039;서편&#039;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 땅에 자신의 기업으로 달려고 요청한 것이다(민 32:4-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32:4-5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이 요단강 동편의 땅이 상징하는 영적인 사실은 무엇인가? 그곳은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야 할 새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039;성 밖&#039;이라는 장소라는 것이다. 영안이 열고 천국을 보면, 성밖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은 기록되었으나 이 땅에서 철저한 회개와 영적 전쟁을 수행하지 않은 자들이 쫓겨나서 거주하는 새 예루살렘 성밖의 지역이다. 그렇다면 성밖의 땅과 성안의 땅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요단 동편의 땅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칠 때에 그 성읍들과 우릿간을 완전히 허물어버렸기 때문에, 두 지파 반은 자신들의 손으로 땀 흘려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지어야 했고, 갓난아이들을 위한 성읍을 다시 건축해야만 했다. 그러나 성안은 그렇지 않다. 성안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 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이 있고, 그들이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이 있으며, 그들이 파지 아니한 우물이 있고, 그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가 있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거저 주신다고 하셨다(신 6:10-12. 수 24:13)&lt;/p&gt; &lt;p&gt; 그렇다. 새 예루살렘 성 안과 &#039;성 밖&#039;은 이렇듯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천국에 못 들어가고 성 밖에 거주하게 된다면 우리들도 역시 땀 흘리며 벼를 베고 노동을 해야 하는 곳이 성밖이다. 그리고 몸이 베여짐으로 피를 흘리면 상처를 싸매야 하는 곳이 바로 성밖이다. 반면 새 예루살렘 &#039;성 안&#039;은 더이상 노동의 수고가 필요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천사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서 천사들에게 일을 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의 환경은 너무나 완벽하다. 그래서 성안에서는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 필요가 없다. 적당하고 신선한 온도가 유지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장실도 필요 없는 곳이다. 음식이나 음료를 마시면 그것이 향기가 되어 배출되는 곳이다. 여기는 더이상 슬픔과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이다. 다쳐서 병원신세를 져야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혹시 턱걸이로 들어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천국에서의 일함은 종처럼 노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봉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죽어서 가야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절대 성밖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성안으로 들어가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수고 없이 누리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위한 &#039;언약&#039;과 &#039;영적 전쟁&#039;의 필수 조건은?&lt;/span&gt;&lt;/h2&gt; &lt;p&gt; 그렇다면 끝없는 노동이 이어지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 성 밖이 아니라, 찬란한 영광만이 가득찬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필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 십자가의 피로 씻음 받은 &#039;언약 백성&#039;이 되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고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에 길갈에서 모든 군대에게 할례를 행해야 했다(수 5:2-3). 왜냐하면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들은 할례를 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5:2-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여기서 남자의 포피를 베는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겠다는 표시임과 동시에 더이상 자신의 육신의 더러운 정욕대로 살지 않겠다고 하는 철저한 회개의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주 예수님만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함과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 반드시 &#039;영적 전쟁&#039;에 목숨을 걸고 참여해야&lt;/strong&gt;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던 사람치고 가나안 일곱 족속과 전쟁하지 않고 그 땅을 분배받은 자는 없었다(수 11:19). 그리고 아무리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은 두 지파 반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다른 지파의 형제들과 함께 피 흘려 싸운 후에야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수 1:14-1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14-15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하물며,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과 싸움 한 번 해보지 아니한 사람이 과연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구원파적인 이단 사상에 속아서, 자신의 육체를 점령하고 있는 귀신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는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어도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한, 그것들이 우리의 육체 속에서 죄된 유혹으로 나에게 역사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 결국 회개하지 못하게 하여 생명책에서부터 나의 이름을 지워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제비뽑기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저울, 행위와 충성에 따라 천국의 지위가 어떻게 결정되는가?&lt;/span&gt;&lt;/h2&gt; &lt;p&gt; 그렇다면 과연 새 예루살렘 성 안의 땅은 어떻게 분배받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신앙고백을 하여 구원을 받아서 귀신들과 영적 전쟁을 치렀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다 똑같은 땅을 분배받고 똑같은 크기에 저택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단강을 건너왔던 아홉지파 반은 대체 어떻게 그 땅을 분배받았던 것인가? &lt;/p&gt; &lt;p&gt; 그것은 한 마디로, 모두가 다 &#039;제비뽑기&#039;의 방식으로 그 땅을 분배받았다는 것이다(수 14: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람들은 흔히들 제비뽑기를 단순한 운이나 우연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성경은 제비에 대해 명확하게 이렇게 가르친다. 제비를 뽑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일을 작정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것이다(잠 16:3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잠 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런데 이러한 제비뽑기 속에는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불꽃 같은 저울이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누가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었는지, 누가 악한 영을 내쫓기 위해 더 많은 회개를 했는지, 누가 영혼을 살리기 위해 지독하게 헌신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천국에 입성한다면, 내가 행한 행위와 충성의 무게에 정확히 비례하여 거주할 땅의 크기와 집의 층수, 그리고 누릴 상급이 결정되고 배분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무작위로 제비 뽑아서 얻게 되는 나의 기업인 것 같지만, 영계의 팩트로 보면 철저하게 내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른 분배가 이뤄지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아낙 자손을 격파한 유다는 중심부를, 주저하던 지파들은 왜 천국 변두리 꽃밭으로 밀려났는가?&lt;/span&gt;&lt;/h2&gt; &lt;p&gt; 그러므로 가나안 땅 분배의 결과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아홉지파 반이 제비를 뽑았지만 가나안 땅의 중심부는 유다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여호수아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아홉지파 반의 족장들을 데려다가 그들로 하여금 제비를 뽑아서 자기들이 들어갈 기업을 차지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어느 지파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왜나하면 만약 자신이 뽑은 지역에 거인족인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땅을 뽑았다가는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거기에서 죽임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두려워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85세의 노장 갈렙이 전면에 나선다. 그는 당시 아홉지파 반 중에서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지휘관이었는데, 그가 먼저 제비를 뽑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지파의 대표로서 제비를 뽑기에 앞서 자신에게 가나안 땅의 가장 험지인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하였다. 왜냐하면 그 땅은 그때도 여전히 아낙자손이 살고 있었기에 아무도 제비뽑으려고 하지 않는 땅이었기 때문이다(수 14: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리고 그가 유다 지파의 대표로서 맨 처음으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 땅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와 바로 그 아래의 땅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요셉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의 대표가 제비를 뽑았는데, 에브라임은 가나안 땅의 한 중심부의 노른 자 땅을 뽑았으며, 므낫세 반 지파의 대표는 바로 가나안 땅의 중심부 위쪽의 땅을 뽑게 된다. 그리하여 유다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 땅의 한 중심부의 땅을 분배받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가나안 땅의 중심부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인가? 그것은 그 땅의 좌우 위아래에 적들이 없는 땅이 바로 그 땅인 것이고, 장차 가나안 땅의 중심부에 위치한 예루살렘이 그곳에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이때 나머지 7지파 반은 왜 이들 두 지판 반의 제비뽑기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위에서 언급한 바 대로 자기들이 제비뽑은 땅에 혹시 아낙자손이 살고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정복전쟁 당시 맨 앞에서 선봉장이 되어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들이 먼저 제비를 뽑은 것에 대해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지판 반은 가나안 땅의 가장 비옥하고 안전한 &#039;중심부&#039;를 분배받게 된 것이다.&lt;/p&gt; &lt;p&gt; 그리고 아낙 자손이 무서워 제비뽑기를 주저하던 나머지 일곱 지파 반은 결국 가나안의 &#039;변두리 외곽&#039;을 제리뽑아 분배받게 된다.&lt;/p&gt; &lt;p&gt; 그렇다. 이러한 가나안 땅의 분배는 지금의 천국의 실상과 일대일로 완벽하게 일치가 된다. 이 땅에서 목숨 걸고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위해 맹렬하게 싸운 유다 지파와 같은 전사들은, 새 예루살렘 성의 한가운데, 곧 24 장로들이 거주하고 하나님의 보좌가 가장 가까운 &#039;천국의 중심부&#039;를 당당하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적당히 눈치나 보며 회개도 대충, 영적 전쟁도 대충 피하며 살았던 일곱 지파 반과 같은 자들은 &#039;천국 변두리 꽃밭&#039;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천국의 변두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들은 우선 자신의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거주할 공간으로서 돗자리 하나 펼 정도의 땅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도 심방을 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집이 없으니 차를 대접할 공간도 없고 찻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이제는 과연 그 땅에서 어디에서 살 것인지를 말이다. 돗자리 하나 펴놓고 천국의 변두리에서 영원히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결사적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이루는 일에 충성함으로, 천국의 중심부에 살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아름다운 집을 소유한 채 살 것인지를 말이다. &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땅을 받지 못한 레위 지파의 영적 비밀, 목숨 건 헌신자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최고 상급은?&lt;/span&gt;&lt;/h2&gt; &lt;p&gt;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 하나는 &#039;레위 지파&#039;의 기업 분배다. 아홉지파 반이 모두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눌 때, 레위지파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지는데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천국에서 자신의 주거지를 분배받지 못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요단강 동편의 두 지판 반이 차지한 지역과 요단강 서편의 아홉지파 반이 제비뽑아 차지한 땅들 중에서 자신들이 살 주거지 곧 그들이 살 성읍들과 가축들에게 필요한 목초지를 분밷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12지파가 차지한 땅의 성읍들을 제비뽑아 그들의 주거지로 삼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레위지파의 사람들은 12지파가 차지한 알토란 같은 영토 안에서 가장 좋은 48개의 성읍과 성읍 동서남북으로 1천 규빗의 목초지를 징발받아 떼어갖게 되었던 것이더(수 21:2-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21:2-3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왜 레위 지파에게만 이런 파격적인 특혜가 주어졌는가?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가나안 땅 정복전쟁에 직접 싸우러 나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들의 헌신이다. 그들은 사실 출애굽 직후 하나님께 속한 지파가 되었던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레위지파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원래 애굽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다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유월절 양 피뿌리는 의식을 통해서 장자들이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지파를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성막에서 봉사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태어나면서도 레위인과 제사장이 되어 평생토록 하나님의 성소를 지키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중보자의 일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자기를 위해서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불태워 바친 자들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lt;/p&gt; &lt;p&gt; 이것은 장차 천국에서 자신의 인생을 던져 영혼을 불태운 주의 종들이나 혹은 헌신자들이 어떻게 천국기업을 받게 되는지를 알펴주는 시금석이 된다. 사실 자신이 목회자라는 신분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천국에서 그들이 거주한 성읍과 땅을 분배받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서 그들이 차지할 공간은 자신에게 맡겨준 양 떼를 위해 밤낮없이 눈물로 기도하고, 맹수 같은 귀신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 성도들을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뼈를 깎는 수고를 감당한 자들이었기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이름 없는 시골 교회라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평생을 바쳐 헌신한 목회자에게 어마어마한 평수의 땅과 7층짜리 고층의 어마어마한 멘션 저택을 지어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목회자가 되어서만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평신도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구역 식구를 내 몸처럼 돌보고 물질과 기도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때,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주셨던 그 특별한 상급과 웅장한 천국의 저택을 우리에게도 남김없이 부어주시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 지금까지 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 나타나 있는 천국 기업 분배의 놀라운 비밀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누구나 다 똑같이 천국의 화려한 맨션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마귀의 거짓말이나 달콤한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이 땅에서 귀신과 타협하며 안일하게 산 자들의 종착지는 성안이 아니다. 그곳은 끝없는 노동이 기다리는 성 밖이다. 그리고 혹시 회개하여 간신히 성안에 들어가게 된 성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성도는 주님께서 심방조차 오지 않는 성 안의 변두리 꽃밭에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국의 상급은 철저한 제비뽑기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내 육체 속에 진을 치고 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피 튀기는 회개로 토해내야 한다. 그리고 거인족인 아낙 자손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던 갈렙의 경우처럼 담대하게 귀신들과 싸워야 한다. 자신의 부모와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저주의 실체인 귀신들을 회개로 통해 몰아내고,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불태워 레위인처럼 주님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그리할 때에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부의 땅과 그 안에 있는 집을 분배받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어떤 이는 성밖과 우주로 나가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성도가 될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03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tartFragment--&gt;이 설교는 &lt;strong&gt;가나안 땅 분배 과정&lt;/strong&gt;을 통해 &lt;strong&gt;천국에서의 기업 상속 원리&lt;/strong&gt;를 설명하며, 성도들이 준비해야 할 영적 자세를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자녀를 위한 &lt;strong&gt;회개&lt;/strong&gt;와 부모를 위한 &lt;strong&gt;천국 인도&lt;/strong&gt;가 진정한 효이자 사랑임을 밝히며, 조상의 우상숭배로 인한 악한 영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파가 &lt;strong&gt;중심부의 땅&lt;/strong&gt;을 차지했듯, 천국에서도 &lt;strong&gt;영적 전쟁&lt;/strong&gt;과 사명에 헌신한 정도에 따라 상급과 거처가 결정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요단 동편과 서편의 차이를 통해 &lt;strong&gt;새 예루살렘 성 안&lt;/strong&gt;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언약 백성이 되는 것과 철저한 회개를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lt;strong&gt;하나님의 기준&lt;/strong&gt;에 합당한 준비를 하여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기업을 소유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천국기업분배 #가나안땅 #영적전쟁 #회개 #언약 #상급 #새예루살렘성 #정보배목사 #동탄명성교회 #가족구원 #우상숭배 #효도 #하나님말씀 #순종 #정결 #용서 #추수감사절 #계시록&lt;/p&gt; &lt;p&gt;&lt;span&gt;&lt;!--EndFragment--&gt;&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d4c05702fe596f69f463e585c298568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d4c05702fe596f69f463e585c298568e.webp&quot; alt=&quot;[포맷변환][기독론(81)] 인포그래픽.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99ee7d5497238c85d8dc43cbae8f32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99ee7d5497238c85d8dc43cbae8f32a.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8de427a393c963e61ede21bf189d25d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8de427a393c963e61ede21bf189d25d1.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2b86f10ff77b977139bbae4efb2597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2b86f10ff77b977139bbae4efb25975.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40fa3eb7f75f481dc010585cd390259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40fa3eb7f75f481dc010585cd390259b.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a2a63d81490c0574fb7530a88a8c947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a2a63d81490c0574fb7530a88a8c947d.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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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d531d1856e75d91f28f8059654586d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fd531d1856e75d91f28f8059654586dc.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391e4cf5d02238949a261afdc5d44dd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391e4cf5d02238949a261afdc5d44dd4.webp&quot; alt=&quot;[기독론(81)] The_Celestial_Reward_Blueprint_(2).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53ebd5494c0742d369fe9c983062e4c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53ebd5494c0742d369fe9c983062e4c3.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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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4875a0700df7c580fa3d1039038eefb6.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4875a0700df7c580fa3d1039038eefb6.webp&quot; alt=&quot;[기독론(81)] Heavenly_Inheritance_Algorithm.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9002b8228c52649b06a1f06c4ec4673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9002b8228c52649b06a1f06c4ec46735.webp&quot; alt=&quot;[기독론(81)] Heavenly_Inheritance_Algorithm.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36666df21e2be9327ec1874200da2d5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36666df21e2be9327ec1874200da2d53.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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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57855563069ec963d24233dc76e16b5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57855563069ec963d24233dc76e16b5c.webp&quot; alt=&quot;[기독론(81)] Heavenly_Inheritance_Algorithm.pdf_1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ea3cb2ea9b261574dbd2e2cd8bc724d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744/248/ea3cb2ea9b261574dbd2e2cd8bc724df.webp&quot; alt=&quot;[기독론(81)] Heavenly_Inheritance_Algorithm.pdf_1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천국기업분배</category><category>가나안땅</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언약</category><category>상급</category><category>새예루살렘성</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가족구원</category><category>우상숭배</category><category>효도</category><category>하나님말씀</category><category>순종</category><category>정결</category><category>용서</category><category>추수감사절</category><category>계시록</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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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item>
			<title>[기독론(77)]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2)(여호수아 6:1~5)_2026-04-2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47642</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4-26(일) 주일낮2부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77)]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2)(여호수아 6: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zUFTZl_9PA&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UFTZl_9PA?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span&gt; &lt;/span&gt;&lt;span&gt; &lt;/span&gt;&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으며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039;가나안 땅&#039;을 죽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으로만 맹신하는 것이다. 만약 가나안 땅이 진정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 완전한 천국이라면, 그곳에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르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득실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천국은 죄악 된 마귀와 귀신들이 단 한 마리도 발붙일 수 없는 거룩한 도성이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칼을 빼 들고 진격했던 가나안 땅은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실질적이고 영적인 팩트로 보자면, 가나안 땅은 이미 영이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대적 마귀의 부하들인 귀신들이 거주하며 진을 치고 있는 우리의 &#039;육체&#039;를 가리킨다. 우리는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구원받아 홍해를 건넘으로써 이미 영혼의 구원을 얻었다. 하지만 요단강을 건너 진입한 가나안 땅, 즉 우리의 육체 속에는 여전히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려는 악한 영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특징 중 추가로 3가지를 더하여 총 6가지 핵심적인 부분들을 심도 있게 살펴 보도록 하자.&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가나안 땅은 막연한 천국인가, 아니면 귀신을 몰아내야 할 구원받은 자의 육체인가?&lt;/span&gt;&lt;/h2&gt; &lt;p&gt; 우리가 가나안 전쟁의 영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나안 땅에 대한 막연한 환상부터 수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밟았던 가나안 땅은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라는 강력한 일곱 족속이 지배하고 있던 우상숭배의 집단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나안 일곱 족속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육체 속에 숨어 들어와 거주하고 있는 악한 영들, 즉 귀신들의 세력을 정확하게 1:1로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lt;/p&gt; &lt;p&gt;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 땅 거민들을 제거하고 그 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아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자신의 육체 속에 숨어 있는 귀신들을 철저히 색출하고 섬멸하여 내 몸 전체를 온전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사실 원어적 어원을 살펴보면, &#039;가나안&#039;이라는 말은 &#039;낮은 땅&#039; 혹은 &#039;상인&#039;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039;가나안&#039;이라는 단어 자체는 영적으로 볼 때 세상의 탐욕에 찌들어 있는, 그래서 가장 낮은 육체의 정욕을 좇아 살게 만드는 마귀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들은 우리 육체의 가장 연약하고 낮은 곳을 파고들어 영적 거래를 시도하면서 우리를 죄악으로 물들게 한다. 이 족속들의 머리글자를 딴 &#039;헷가아히여브기(헷, 가나안, 아모리, 히위, 여부스, 브리스, 기르가스)&#039;의 세력을 정확히 꿰뚫어 볼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육체를 장악하려는 대적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궤멸시킬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신자가 천국 성 밖으로 밀려나는 이유와 죄를 조종하는 진짜 원흉은 누구인가?&lt;/span&gt;&lt;/h2&gt; &lt;p&gt;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살 것이라는 값싼 구원론에 속아 살아왔다. 그러나 성경의 팩트는 참혹할 만큼 냉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죄를 짓고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3번씩이나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6:9~10, 갈 5:19-21, 엡 5:5-6).&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lt;br&gt;엡 5:5-6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중한 경고는 세상 불신자들을 위한 경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연히 교회의 &#039;성도&#039;들을 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도 육체의 정욕을 따라 음행, 우상 숭배, 분쟁, 시기, 분냄, 술 취함 등의 죄를 반복하는 자들은 혹시 천국에 턱걸이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곳에 있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더욱이 그렇게 죄를 짓다가 회개하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딱 두 군데다. 하나는 새 예루살렘 성의 밖이다(계 22:15). 그리고 또 하나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불못이다(계 21: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사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그를 성 밖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하거나 심지어는 불못에 던져질 수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2:15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1:8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그러나 두려워하는(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왜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토록 지독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 그것은 단지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의 핵심은 이미 우리 육체 속에 침투해 있어서, 끊임없이 죄를 짓도록 미혹하고 충동질하고 있는 진짜 원흉, 곧 뱀과 귀신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게 된 것도 그가 단지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귀가 그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요 13:2).&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있는 혈기나 분노를 통제하지 못했던 이유를 좀 더 정밀하게 따져보자. 사실 내가 분노와 혈기를 내는 것은 내 속에 분노와 혈기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때 분노와 혈기의 영은 주로 내 머리의 귀 뒤쪽과 정수리 그리고 심장과 간에 밀집해 있다. 간은 해독 작용을 하고 비상시를 대비해 피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기에 항상 붉은색을 띠는데, 이때 악한 영들(뱀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간에 바짝 달라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색깔을 간과 똑같은 붉은색으로 위장한다. 영안이 열려 이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간에 밀착한 채 두 눈을 껌벅거리며 혈기를 충동질하는 붉은 뱀들의 소름 끼치는 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원흉들을 회개라는 영적 메스로 도려내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죄의 사슬을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2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귀신은 왜 단번에 나가지 않으며, 우리가 행한 범죄의 종류에 따라 육체 어디에 거주하는가?&lt;/span&gt;&lt;/h2&gt; &lt;p&gt;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적 사역에 대해 치명적인 착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신령하다고 하는 사역자에게 찾아가 단 한 번의 강력한 불 안수를 받으면 자기 몸속의 모든 귀신이 순식간에 다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lt;/p&gt; &lt;p&gt; &lt;strong&gt;그렇다면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은 대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lt;/strong&gt;&lt;/p&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첫째, 우리 육체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의 첫 번째 특징은 그들이 나갈 때에는 결코 한꺼번에 나가지 않는다&lt;/strong&gt;&lt;/span&gt;는 것이다(출 23:29-30). 혹시 유명한 은사 집회에 참여하여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병 고침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 속에 있는 영들은 결코 다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몸속에 들어온 귀신들은 우리가 회개한 만큼 하나님께서 내보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피를 토하는 듯한 회개를 하지 않은 채 안수를 받아 병 고침을 받았다면, 나간 귀신들이 몇 년 안에 일곱 귀신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거주함으로, 그때로부터 3년에서 5년 안에 대부분 병이 재발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땅에 진격해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일곱 족속을 1년 안에 단번에 쫓아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의 모든 땅을 다 차지할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출 23:29-30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실 생각해 보라.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타고 내려온 영들과 내가 평생 지은 각종 범죄로 인해 겹겹이 쌓인 귀신들이 우리가 한 번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짐을 싸들고 나가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이 들어온 이유와 시기와 양이 다 다른데, 어떻게 그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그것들은 우리가 나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의 목록들을 하나하나 낱낱이 자백하여 회개할 때에, 우리가 회개한 분량만큼 점진적으로 나가는 것이다.&lt;/p&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둘째,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은 결코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우리의 신체 각 부분에 흩어져 살고 있다&lt;/strong&gt;&lt;/span&gt;는 것이다(민 13:29). 먼저는 아말렉 족속은 남방에 거주하고 있고,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서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은 중앙 산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은 갈릴리 해변과 요단강가에 거주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에 들어온 귀신들은 아무 데나 들어가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범죄한 죄의 종류에 따라 우리 육체의 특정 부위에 들어와서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 이와 정확히 우리의 육체 속에 파고든 귀신들 역시 단지 머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범죄의 종류와 행위에 따라 우리 온몸의 신경과 장기 속에 들어가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lt;/p&gt; &lt;p&gt; 예를 들어 보자. 제사상에 엎드려 절하며 음식을 탐해서 들어오는 제사의 영은 주로 뇌혈관이 있는 머리 그리고 식도, 위장, 대장 등 배 부위에 거대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은 무당의 영은 교만과 신기를 부리기 위해 주로 어깨와 윗가슴을 장악해 우울증과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부처에게 절을 하고 불경을 외우던 불교의 영은 머리와 가부좌를 트는 엉덩이 속에 그리고 장딴지 속에 들어와서 게으름과 가난을 준다. 그리고 오만가지 미신 잡신에게 빌면 미신 잡신의 영은 주로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인간의 앞길과 형통의 축복을 꽉 막아버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사할 때에는 머리에만 안수하여 머리에 있는 영만을 제거할 것이 아니다. 우리 온몸에 틀어박혀 있는 영들을 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13:29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귀신들을 세력으로 본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그들은 예수 권세로 돌격하는 영적 전사 앞에서 왜 간담이 녹고 떠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셋째,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도 알고 보면, 큰 놈과 작은 놈이 있고, 많은 귀신과 적은 귀신이 있으며, 귀신들 중에는 우리 몸에 견고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놈도 있다&lt;/strong&gt;&lt;/span&gt;는 것이다(민 13:28). 내 육체 속에는 큰 영도 있고 작은 영도 있다. 또한 영들이 많아서 서로 뭉쳐있는 것도 있고, 우리 몸에 집을 짓고 그 안에 여러 종류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 거주하는 귀신들도 있다. 그렇다. &lt;!--StartFragment--&gt;내 육체를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 중에는 잠깐 들어왔다가 금방 나갈 뿐만 아니라 손만 대어도 무서워 도망치는 잔챙이 귀신들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타고 내려와 막강한 권세를 행사하는 거대한 대장 귀신들이 들어있다. 그들 중에서는 아낙 자손처럼 거인같이 강한 영들도 있다. 그러면 이러한 영들은 우리 몸을 잠시 정거장으로만 삼지 않고, 우리 신체의 각 부분에 견고한 &#039;집&#039;을 짓는다. 그들이 짓는 영적인 집은 들어온 귀신의 종류에 따라 흙집부터 나무집, 시멘트집, 철집, 심지어 놋집에 이르기까지 1개에서 7개까지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그 집 안에는 적게는 1개부터 많게는 12개까지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방마다 악한 영들을 가득가득 채워놓고 있는 영도 있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13: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0:1-2 그 때에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성의]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lt;/strong&gt;&lt;/span&gt; &lt;/p&gt; &lt;p&gt; &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넷째, 아무리 강한 귀신들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이름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전사들 앞에서는 그들도 역시 무서워하고 떤다&lt;/span&gt;&lt;/strong&gt;는 것이다(민 14:9). 사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적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성경의 정확한 종말론적 타임라인에 비추어 볼 때, 거대한 용이며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 마귀 본체는 이미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패배하여 무저갱에 결박된 채 갇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내 육체를 갉아먹고 저항하는 놈들은 사탄의 본체가 아니라, 하급 졸개들인 귀신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귀신들도 강한 주의 전사 앞에서는 두려워서 떤다. 이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외친 바대로, 그들을 지켜주던 그들의 주인이자 보호자인 마귀는 이미 그들을 떠나서 이 지상에는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5: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반면 우리 몸속에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성령으로 내주하시고 계신다. 그리고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039;예수 이름&#039;이라는 무적의 마패를 우리 손에 안겨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들 앞에서 쫄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귀신들도 우리 사람들과 똑같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적당히 회개하는 자들 앞에서는 맹수처럼 물어뜯으려고 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야성의 전사 앞에서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마는 것이다.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은 홍해를 갈라 마르게 하시고, 그렇게 강한 아모리의 두 왕을 전멸시키신 여호와의 군대에 대한 소문만 듣고도 &quot;우리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quot;(수 2:10-11)고 증언한 바 있다. 그렇다. 내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그리스도인이면서 지금도 부지런히 회개를 하고 있는 성도라면, 귀신들도 간담이 서늘해져 오금을 저리며 떨다가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귀신들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내 육체에서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가?&lt;/span&gt;&lt;/h2&gt; &lt;p&gt;&lt;strong&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다섯&lt;span style=&quot;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Nanum 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quot;&gt;째, &lt;!-- [if !mso]&gt; &lt;style&gt;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lt;/style&gt; &lt;![endif] --&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Nanum 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quot;&gt;귀신들 중의 일부는 우리 인간으로 구성된 전사들과 하늘에서 파송된 군대 천사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군대를 보면 즈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도 하지만&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90%; letter-spacing: -0.5pt; mso-text-raise: 0pt;&quot;&gt;, &lt;/span&gt;대부분은 단독적으로 하나님의 군대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끼리 한 명의 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연합전선을 펴서 저항을 한다&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lt;!--EndFragment--&gt;&lt;/strong&gt;&lt;/span&gt;는 것이다.&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lt;!--p.0 {mso-style-name:&quot;바탕글&quot;;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90%;letter-spacing:-0.5pt;mso-text-raise:0pt;font-size:11.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gt;&lt;/styl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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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사역자로부터 불 안수 기도를 받을 때면, 높은 대장 귀신은 하급 뱀들을 바깥으로 보내 자기 대신 불을 맞게 하는 교묘한 꼬리 자르기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센 영들은 사람의 육체에 영적인 갑옷을 겹겹이 입혀 성령의 불 공격을 차단해버린다. 그러므로 이렇게 치밀하게 엉겨 붙어 있는 거대한 뱀들은 결코 단 한 번의 안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피 튀기는 회개를 통해서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쓰시는 종들에게는 어떻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여 도우시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여섯째, 어떠한 강한 귀신들이라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의 종 군대 장관과 그의 군대를 막아설 수 없다&lt;/strong&gt;&lt;/span&gt;는 것이다(수10:5, 9-12). 사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의 용기와 그의 군대들의 전술이나 전략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의 힘만으로 이길 수 없는 적들을 만나게 될 때에는 &lt;strong&gt;첫째로, 천사들을 파송&lt;/strong&gt;하여 그들을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가나안의 첫 성이었던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장관을 파송하셨다(수 5:14). 그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 때마다 하늘로부터 군대를 파송하셨다. 그리하여 그 성을 겹겹이 에워싸게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 날에 크게 함성을 질렀을 때에 천사들이 공격하게 함으로 이중으로 된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lt;strong&gt;둘째로, 하나님의 군대보다 강한 적을 만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도와&lt;/strong&gt;주셨다. 예를 들어 보자. 가나안의 남부 연합군을 물리칠 때에는 여호수아 군대의 기습 작전도 중요하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박을 내려 그들을 쳤기 때문에 그들을 진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 아도니세덱의 연합군 중에는 이스라엘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큰 우박 덩이를 맞아서 죽은 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수 10:9-1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0:9-11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자 여호수아가 그들을 다 쳐부수기 위해 태양과 달에게 명령했을 때에는 하늘의 피조물도 여호수아의 말에 복종하여 태양은 기브온 골짜기에 머물러 섰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 서게 된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자연 만물을 멈추게 하셨던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고 당시 야살의 책이 증거하고 있다(수10:12-14). &lt;br&gt; 그리고 메롬 물가에 모여있던 북부의 17개국의 연합군은 어떠했는가? 그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게 되었는지 그들의 군대가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았고 말과 병거도 가득하였다. 하지만 여호수아 군대의 기습 작전에 크게 패배하여서 호흡이 있는 자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증거하고 있다(수11:7-11).&lt;/p&gt; &lt;p&gt; 그렇다. 영적 전쟁은 우리의 의지와 담대함으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전쟁의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를 대신해 싸우시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파송하시고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미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천사(왕벌)를 앞서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언약하신 바가 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출애굽기 33: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하나님은 왜 지금 &#039;여호수아 군대&#039;를 모으고 훈련시키고 있는가?&lt;/span&gt;&lt;/h2&gt; &lt;p&gt; 사실 오늘날 우리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유받고 가난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 튀기는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치열한 싸움의 이면에는 인류의 역사를 마무리 지으실 하나님의 거대한 종말론적 마스터 플랜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동성애를 합법화한 미국이 영적 패권을 잃고 트럼프와 같은 과도기적 통치자의 막이 내리고 나면, 평화의 사도로 위장한 적그리스도가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는 종신직의 권력을 행사하는 이슬람권의 배경을 업고, 인공지능(AI)과 666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전 세계의 숨통을 무자비하게 틀어쥘 것이다.&lt;/p&gt; &lt;p&gt; 가장 소름 끼치는 재앙은, &lt;strong&gt;요한계시록 9장에 예언된 대로 장차 다섯째 나팔이 불리고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을 열어젖힐 때 발생한다. 그러면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던 수억 마리의 황충, 즉 귀신 군단이 연기처럼 솟아올라 전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귀신과 적당히 동거하던 수많은 거짓 신자들은 이 끔찍한 악의 쓰나미에 휩쓸려 무참히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lt;/strong&gt;이다. &lt;/p&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바로 이 절체절명의 시기를 대비하여, 하나님께서는 전투 방언 기도로 무장한 동탄명성교회와 같은 교회를 영적 야전 기지로 삼으시고자 &#039;마지막 여호수아 군대&#039;를 맹렬하게 훈련시키고 있는 것&lt;/strong&gt;&lt;/span&gt;이다. 주님이 다시 공중 강림하실 때 살아서 들림을 받은 후, 주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을 전멸시킬 선봉장들을 지금 이 시간 소집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지독한 회개와 귀신 축출은 단순한 영적 정화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때 우주 전쟁의 전위대로 쓰시기 위한 필수적인 특수 군사 훈련임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 지금까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연합 전선과 천사들의 초자연적 개입, 그리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순히 교회 마당을 밟는 것만으로 천국 유업이 보장된다는 달콤한 망상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비록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내 육체 속에 진을 치고 있어서, 우상 숭배와 음행, 생명 경시의 죄를 조종하는 가나안 일곱 족속의 원흉들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우리도 역시 가나안 땅인 천국에서 토해냄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고로 이제는 한 번의 안수로 모든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거짓된 망상에 기대지 말고, 내 몸 구석구석 신경과 장기마다 바짝바짝 달라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빈 공간에 견고한 집을 짓고 있으며,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계속해서 기도하여 250번, 500번, 1,000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회개를 지속해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귀신들처럼 야성의 이빨을 드러내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늘에서부터 무수한 군대 장관과 천사들이 내려와 내 안의 적들을 결박하고 초토화시키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다가올 적그리스도의 폭정에 맞서 무저갱에서 올라올 수억의 악령들을 쳐부술 마지막 시대의 영적인 군대로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무장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악한 영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승리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영원히 기업을 누리고 사는 위대한 여호수아의 군대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 &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2026년 04월 26일(주일)&lt;/span&gt;&lt;/p&gt; &lt;p&gt;&lt;span&gt;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 설교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영적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lt;strong&gt;인간의 육체 속에 거주하는 악한 영들의 속성&lt;/strong&gt;과 이를 물리치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우리 몸에 숨어 죄를 유발하고 저주를 가져오는 &lt;strong&gt;귀신들의 특징&lt;/strong&gt;에 비유하며, 이들은 한꺼번에 나가지 않고 신체 곳곳에 &lt;strong&gt;집을 지어 연합 전선&lt;/strong&gt;을 구축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조급함을 버리고 &lt;strong&gt;철저한 회개 기도문&lt;/strong&gt;을 통해 영들을 낱낱이 몰아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lt;strong&gt;천사의 도움&lt;/strong&gt;을 신뢰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영적 소탕은 단순히 질병 치유나 복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도가 &lt;strong&gt;천국 유업을 상속&lt;/strong&gt;받으며 마지막 시대의 &lt;strong&gt;하나님 군사&lt;/strong&gt;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과정임을 역설합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가나안정복전쟁 #귀신축사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영적전쟁 #회개 #성경묵상 #가문의저주 #천국상속 #여호수아세대&lt;/p&gt; &lt;p&gt;&lt;span&gt;&lt;!--EndFragment--&gt;&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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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quot;[기독론(77)] Canaan_Conquest_Briefing.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42/247/4a26177b72d0b83ae3eace13f4796de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42/247/4a26177b72d0b83ae3eace13f4796dea.webp&quot; alt=&quot;[기독론(77)] Canaan_Conquest_Briefing.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42/247/63f4fe1dc8d07cb273ab9d369621ef9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642/247/63f4fe1dc8d07cb273ab9d369621ef93.webp&quot; alt=&quot;[기독론(77)] Canaan_Conquest_Briefing.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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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span&gt;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낮예배 영상</category>		<category>가나안정복전쟁</category><category>귀신축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성경묵상</category><category>가문의저주</category><category>천국상속</category><category>여호수아세대</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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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70)] 온 인류의 죄는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속죄함받게 되었을까?(레위기4:13~21)_2026-04-19(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sermon/246190</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4-19(주일) 주일낮2부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70)] 온 인류의 죄는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속죄함받게 되었을까?(레위기&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4:13&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21)&lt;/strong&gt;&lt;/span&gt;&lt;/span&gt;_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0dBkb6Ra68&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0dBkb6Ra68?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h3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3&gt; &lt;p&gt;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듣고 고백하는 진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대속의 은혜를 찬양하며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한다. 그러나 많은 성도가 이 위대한 속죄의 사건을 머리로는 믿으면서도, 그 구체적이고 합법적인 영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죽은 이스라엘 청년의 피가, 이방인인 나의 죄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으며 도대체 어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내 죄가 그분에게 넘어갔단 말인가 하고 세상 사람들이 질문할 때,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lt;/p&gt; &lt;p&gt; 기독교의 구원은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식의 맹목적인 종교적 세뇌가 결코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장 치밀하고도 완벽한 공의의 법칙을 가지고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얄팍한 신앙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나 이단들의 교묘한 공격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지한 맹신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셨기에, &lt;strong&gt;구약의 제사법이라는 완벽하고 치밀한 설계도를 통해 우리의 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영원히 속량되었는지&lt;/strong&gt;를 명확히 보여주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lt;strong&gt; 구약의 속죄제 규례와 세례 요한의 안수를 통해 온 인류의 죄가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속죄함 받게 되었는지 그 합법적인 영적 절차&lt;/strong&gt;를 깊이 살펴 보도록 하자.&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구약의 속죄제 규례에 따라 죄를 용서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적 절차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 인간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합법적인 영적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레위기에 기록된 의무제인 &#039;속죄제&#039;와 &#039;속건제&#039; 규례다. 이 제사법에 따르면, &lt;strong&gt;죄인이 용서받기 위해 치러야 할 필수적인 세 가지 과정&lt;/strong&gt;이 명시되어 있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고 시인하는 것&lt;/strong&gt;이다. 마음으로 짓는 죄, 말로 짓는 죄, 행동으로 짓는 십계명의 위반을 자신의 죄로 처절하게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사죄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 그 죄를 대신 감당할 흠 없는 희생 제물인 소나 양, 염소를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와서, 그 짐승의 머리에 헌제자가 두 손을 얹고 안수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 안수는 죄인의 모든 죗값을 제물에게 합법적으로 넘기고 전가하는 절대적인 의식이다. 안수라는 전가의 과정이 생략된다면 죄는 결코 제물에게 건너가지 않는다.&lt;/p&gt; &lt;p&gt; &lt;strong&gt;셋째, 죄를 온전히 넘겨받은 그 희생 제물을 칼로 찔러 죽이고, 제사장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거나 바르는 것&lt;/strong&gt;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반드시 생명의 피가 제단에 뿌려져야만 비로소 죄의 형벌이 소멸되고 용서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레 17:11). 인간의 도덕적 결심이나 수양, 혹은 헌금을 많이 낸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는 생명의 피가 흘려질 때에만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는 것이다.&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이스라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 백성 전체를 대표하여 희생 제물에 안수하는 자는 누구인가?&lt;/span&gt;&lt;/h3&gt; &lt;p&gt;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는 본인이 직접 짐승을 끌고 와서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넘기면 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수백만 백성이 다 함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거국적인 죄를 지었을 때는 어떻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두 범죄했을 경우, 이삼백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한 마리의 수송아지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안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려다가는 제물이 안수를 다 받기도 전에 백성들의 손에 눌려 압사하고 말 것이다.&lt;/p&gt; &lt;p&gt; 그래서 하나님은 &lt;strong&gt;이 거대한 집단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법 속에 매우 합리적이고도 치밀한 대의적 원리&lt;/strong&gt;를 마련해 두셨다. &lt;strong&gt;백성 전체가 안수하는 대신, 그들을 완벽하게 대표할 수 있는 영적이고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온 백성의 죄를 단번에 전가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lt;/strong&gt;하신 것이다(레 4:1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4:15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여기서 &#039;회중의 장로들&#039;이란 곧 &lt;strong&gt;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산헤드린 공회원과 같은 최고 의결 기구의 대표자들&lt;/strong&gt;을 뜻한다. 이 대의적 원리에 따르면, 어떤 거대한 집단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그 집단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 합법적인 대리자가 한 명만 존재하면 된다. 그 대리자가 백성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에게 안수할 때,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자의 죄가 제물에게 한꺼번에 넘어가는 완벽한 영적 전가가 합법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온 인류의 죄를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에게 합법적으로 넘긴 인류의 대표자는 누구인가?&lt;/span&gt;&lt;/h3&gt; &lt;p&gt; 구약의 이 &lt;strong&gt;대의적 속죄 원리&lt;/strong&gt;를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속사의 미스터리 앞표지에 서게 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백성도 아니며,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그곳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한 번도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내 죄를 가져가 달라고 안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lt;strong&gt;나와 당신의 죄, 나아가 온 인류의 그 시커먼 죄악은 도대체 언제, 누구를 통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가되었는가?&lt;/strong&gt; 이 엄청난 미스터리를 푸는 유일한 열쇠가 바로 신약 성경의 요단강 세례 사건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마 3:14-1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3:14-15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예수께서 30년의 사적인 생애를 마치시고 인류를 구원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이었다. 그분은 굳이 요단강으로 가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셨다. 그러자 요한은 깜짝 놀라며 극구 만류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이유는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 베풀기를 고집하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너와 내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의를 이룬다는 것은 곧 율법이 요구하는 합법적인 속죄의 절차, 즉 죄의 전가 의식을 완벽하게 치른다는 뜻이다.&lt;/p&gt; &lt;p&gt; 그리하여 &lt;strong&gt;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물속에 잠그는 세례 곧 구약의 안수를 베풀 때, 비로소 온 인류의 처참한 죄악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쏟아져 넘어가는 우주적인 전가 의식이 치러진 것&lt;/strong&gt;이다. 세례 요한은 인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죄를 넘긴 위대한 인류의 대표자요, 구약 제사법의 헌제자 역할을 수행한 구속사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 안수식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비로소 &quot;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quot;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세례 요한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예수님께 죄를 전가할 수 있었던 다섯 가지 영적 자격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 그렇다면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왜 하필 세례 요한이었는가? 그가 감히&lt;strong&gt; 온 인류를 대표하여 만왕의 왕이신 구세주의 머리에 안수할 수 있었던 영적 자격&lt;/strong&gt;은 무엇이었는가? 성경은 세례 요한이 인류의 죄를 넘기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다섯 가지의 영적 자격을 갖추고 있었음을 빈틈없이 증언한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 그는 아론의 직계 자손인 정통 제사장&lt;/strong&gt;이었다(눅 1:5). 그의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은 모두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 가문이었다. 율법에 따라 제사장의 아들은 서른 살이 되면 제사장의 거룩한 직무를 시작한다. 예수님보다 정확히 6개월 먼저 태어난 요한은, 예수님이 30세 즈음 요단강에 나오셨을 때 율법적으로 완벽하게 제사장의 자격을 갖추고 사역을 시작한 상태였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둘째, 그는 모태에서부터 구별된 거룩한 나실인&lt;/strong&gt;이었다(눅 1:15). 나실인은 평생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으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자들이다. 설령 혈통적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는 사무엘처럼 제사장의 영적 사역을 대행할 수 있는 특별한 권위를 얻는다. 하물며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나실인이었던 요한의 영적 정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셋째,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세에 보내준다고 했던 오리라 한 엘리야&lt;/strong&gt;였다(마 11:14, 눅 1:16-17, 말 4:5-6). 하나님께서는 말세가 되면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세례 요한이 와서 그 일을 하여, 이스라엘 온 백성을 요단강으로 이끌어내어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 그 일을 성취하였다.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1:14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1:16-17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말 4:5-6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넷째, 그는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을 종결짓는 구약 시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lt;/strong&gt;(마 11:9).&lt;strong&gt; &lt;/strong&gt;&lt;!--EndFragment--&gt;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오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지만 세례 요한의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로서 &quot;이분이 바로 그분이다&quot;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였으니 그떄부터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생길 수 있었다(마 11:12-13).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11:9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11:12-13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다섯째, 그는 여자가 낳은 중에 최고의 사람&lt;/strong&gt;이었다(마 11:11).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는 그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인류 최고의 선지자였고, 제사장이자 나실인이었으며, 동시에 구약 최고봉의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최고의 장엄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인류 전체를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죄를 합법적으로 전가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헌제자로 쓰임받은 것이다.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세상의 훌륭한 위인이나 순교자들의 죽음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 세례 요한의 안수로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신 예수님은, 마침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대신 치르셨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죽음을 두고,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목이 잘린 신라의 이차돈이나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분신한 전태일 열사, 혹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위인들의 고귀한 희생과 같은 선상에 놓고 칭송하기도 한다. 물론 조국과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인간들의 희생은 역사적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행위다. 그러나 아무리 숭고한 인간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피는 결코 우리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거나 단 하나의 원죄조차 사해줄 능력이 없다.&lt;/p&gt; &lt;p&gt; 인간의 숭고한 희생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으로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lt;strong&gt;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이 단순한 의인이나 성인이 아니라 바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 하나님 본체&lt;/strong&gt;이시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만진 사도 도마가 &quot;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quot;라고 고백했듯(요 20:28), &lt;strong&gt;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신 분은 바로 조물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lt;/strong&gt;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인간의 피는 피조물의 유한하고 오염된 피이기에 타인의 죗값을 대신 치를 수 없고, 스스로의 원죄조차 해결할 수 없는 깨끗하지 못한 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직 죄가 전혀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보혈만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 인류의 무한한 죄를 단번에 영원히 덮어버릴 수 있는 절대적인 속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외에 구원을 향한 다른 길을 찾거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처절한 희생을 모독하는 치명적이고도 이단적 발상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세 가지 위대한 영적 혜택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 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으로부터 죄를 넘겨받으시고 &lt;strong&gt;십자가에 달려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우주적인 혜택 세 가지를 한꺼번에 거저 받게 &lt;/strong&gt;되었다. 이 세 가지 은혜의 폭을 명확히 알아야만 우리는 사탄의 궤계를 무너뜨리고 온전한 천국 상속자의 권세를 누릴 수 있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는 예수께서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하는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lt;/strong&gt;(막 10:45). 예수님은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지옥의 형벌인 둘째 사망을 대신 받아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완벽하게 덮어주셨다. 이 대속의 은혜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둘째 사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계 2:11).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둘째는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심으로 우리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게 되었다&lt;/strong&gt;(요 6:55).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밤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사망의 사자를 피하고(출 12:13, 23, 27),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어 광야를 걸어갈 튼튼한 체력을 얻었듯(출 12:8-11), 이처럼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다(요 6:55). 그리하여 우리는 속죄를 넘어, 하나님의 생명인 생명 주는 영(고전 15:45), 곧 성령을 우리 안에 받아들임으로 우리를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요 1: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셋째는 예수께서 속건 제물로이 되심으로 우리는 질병과 가난, 신기와 막힘 같은 저주로부터 해방받게 되었다&lt;/strong&gt;(사53:10, 벧전 2:24). 구약의 제사들 중에는 속건제가 있는데, 이는 타인이나 하나님께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원금에 20퍼센트의 이자까지 더하여 변상하는 철저한 배상의 제사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무에 매달려 놋뱀처럼 철저한 저주를 받으시고, 로마 병정들에게 120대의 참혹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마땅히 당해야 할 육신의 질병과 뼈아픈 정신적 고통, 그리고 찢어지는 가난의 형벌까지 완벽하게 대신 변상해 주셨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속죄를 넘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참된 상속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 그렇다면 이토록 완벽하고 거대한 십자가의 세 가지 혜택이 이미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교인이 여전히 암과 같은 불치병에 시달리며, 가난의 굴레와 우울증의 저주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받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예수께서 속건제로서 모든 죗값을 다 치르셨다고 해서, 내 육체와 가문 속에 조상 대대로 깊이 뿌리내린 악한 영들과 자범죄로 숨어 들어온 귀신들이 자동적으로 알아서 빠져나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구원파적 맹신에 속아 속죄함과 칭의만 믿고 매일의 회개를 멈추어 버린다면, 귀신들은 합법적인 거주권을 주장하며 평생 내 삶과 자녀들의 앞길을 갉아먹을 것이다. &lt;/p&gt; &lt;p&gt; 고로 예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시며 나를 온전한 하나님의 상속자로 빚어가게 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철저한 자백과 회개라는 고통스러운 영적 청소 작업이 병행되어야만 한다(요일 1:9). 내가 스스로 입술을 열어 우상 숭배의 죄와 마음의 혈기를 낱낱이 자백하며 십자가의 보혈을 내 몸에 뿌리고 바를 때, 비로소 예수님이 속건 제물로 맞으신 그 채찍의 능력이 내 육체에 임하여 질병의 원흉인 악한 영들마저 비명을 지르며 떠나게 되는 것이다. 저주로부터의 해방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날마다 회개 기도문을 쥐고 내 안의 귀신들을 가차 없이 쫓아내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는 자에게만 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요일1:9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gt; 우리는 구약의 정교한 속죄제 규례와 세례 요한의 안수 사건을 통해, 온 인류의 시커먼 죄악이 어떻게 합법적이고도 완벽한 절차를 거쳐 대속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는지 그 웅장한 구속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은 억울한 33살의 청년의 순교가 아니다. 그것은 죄 없으신 주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사, 인류의 대표로부터 죄를 몽땅 넘겨받으시고 내 대신 지옥의 형벌과 육체의 질병, 가난의 저주를 완벽하게 변상하신 창조주의 거룩한 승리 선언이었다.&lt;/p&gt; &lt;p&gt; 이제 덮어놓고 무작정 믿는다는 어리석은 종교적 나태함을 버려야 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나를 대신해 죽으시고 처참하게 채찍에 맞으신 분이 다름 아닌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가슴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매일의 삶 속에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십계명을 어긴 죄악을 자백하여, 내 몸과 가정에 진을 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샅샅이 몰아내어야 한다. 철저한 회개로 육신과 영혼의 끈질긴 저주를 완벽하게 끊어내고, 주님이 내어주신 생명의 양식을 배불리 먹어 마귀를 제압하는 거룩한 영적 전사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차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행위책의 모든 더러운 죄악이 하얗게 씻겨지고, 새 예루살렘 성의 눈부신 보좌 곁에서 만국을 호령하는 찬란한 이기는 자로 영원히 우뚝 서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4월 19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본 설교는 &lt;/span&gt;&lt;strong&gt;레위기 제사법&lt;/strong&gt;&lt;span&gt;을 바탕으로 인류의 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lt;/span&gt;&lt;strong&gt;속죄&lt;/strong&gt;&lt;span&gt;되었는지 그 신학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속죄 제사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lt;/span&gt;&lt;strong&gt;설계도&lt;/strong&gt;&lt;span&gt; 역할을 하며, 특히 &lt;/span&gt;&lt;strong&gt;세례 요한&lt;/strong&gt;&lt;span&gt;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예수에게 안수함으로써 죄가 전가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히 &lt;strong&gt;죄들의 용서함&lt;/strong&gt;을 넘어 예수의 죽음이 우리에게 &lt;/span&gt;&lt;strong&gt;영원한 생명&lt;/strong&gt;&lt;span&gt;을 공급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까지 부여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또한 예수의 희생을 신라 시대 이차돈의 순교와 비교하며, 오직 &lt;/span&gt;&lt;strong&gt;하나님이신 예수의 피&lt;/strong&gt;&lt;span&gt;만이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복음의 정확한 절차를 깨달아 구원의 확신을 얻고 &lt;/span&gt;&lt;strong&gt;회개&lt;/strong&gt;&lt;span&gt;를 통해 삶의 저주를 끊어내길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기독론 #예수님 #속죄 #십자가 #레위기 #제사법 #안수 #전가 #세례요한 #구원 #회개 #하나님&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dbfa9bc2b8b9c421ef1d7fcbfdbcc2d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dbfa9bc2b8b9c421ef1d7fcbfdbcc2db.webp&quot; alt=&quot;[기독론(70)] 속죄제사와 세례요한과 예수그리스도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2f9cfe0dad0c33094643bff3b6b9270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2f9cfe0dad0c33094643bff3b6b92702.webp&quot; alt=&quot;The_Legal_Mechanism_of_Atonement.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cb3898805ad9dc382b1fe19ffd124c4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cb3898805ad9dc382b1fe19ffd124c4e.webp&quot; alt=&quot;The_Legal_Mechanism_of_Atonement.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469cd0e655cf5e66f744183a8eb73e6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469cd0e655cf5e66f744183a8eb73e6c.webp&quot; alt=&quot;The_Legal_Mechanism_of_Atonement.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07a405fbbe3984a22a159432c6cfb78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07a405fbbe3984a22a159432c6cfb78f.webp&quot; alt=&quot;The_Legal_Mechanism_of_Atonement.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e22fd9b564c5144365310836b48a668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e22fd9b564c5144365310836b48a668c.webp&quot; alt=&quot;The_Legal_Mechanism_of_Atonement.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190/246/b7ce04167da360138f621b1435b8ec8f.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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