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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찬양예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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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Sep 2026 18:31: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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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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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대주의(01)] 세대주의란 무엇이며, 그들의 성경해석법, 무엇이 문제인가?(엡2:11~22)_2026-09-06(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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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6-09-06(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세대주의(01)] 세대주의란 무엇이며, 그들의 성경해석법, 무엇이 문제인가?(엡2:11~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3Wr6WnpRD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3Wr6WnpRD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 요지를 파악하기 위한 7가지 핵심 질문 7가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br /&gt; &amp;nbsp; 1.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어 미국과 한국 교회에 전해졌는가?&lt;br /&gt; &amp;nbsp; 2. 스코필드 관주성경과 초기 선교운동이 남긴 공과는 무엇인가?&lt;br /&gt; &amp;nbsp; 3. 고전적 세대주의의 일곱 세대는 구원을 어떻게 나누는가?&lt;br /&gt; &amp;nbsp; 4. 형제교회와 지방교회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별하는가?&lt;br /&gt; &amp;nbsp; 5. 성경은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과 행위의 열매를 어떻게 연결하는가?&lt;br /&gt; &amp;nbsp; 6. 세대주의는 휴거&amp;middot;대환난&amp;middot;천년왕국을 어떤 시간표로 설명하는가?&lt;br /&gt; &amp;nbsp; 7. 세대주의 성경해석의 여섯 가지 문제와 바른 방향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세대주의(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세대주의란 무엇이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들의 성경해석법, 무엇이 문제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엡 2:11-2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한국 교회의 구원론(救援論, soteriology)과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를 꼭 한 번쯤은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성도는 세대주의라는 말을 낯설게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7년 대환난(大患難, Great Tribulation), 환난 전 휴거(携擧, rapture), 공중 혼인 잔치, 지상 재림, 지상의 천년왕국(千年王國, millennial kingdom) 같은 시간표가 그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용어들이다. 그리고 장로교의 역사적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과 순복음 교회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도 그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는 일부 신학교의 이론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성경 읽기와 신앙생활에까지 들어와 있는 중요한 신학 사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영국에서 시작된 세대주의는 존 넬슨 다비에 의해 미국 기독교 역사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읽도록 도왔고, 평신도도 관주와 해설을 통해 말씀의 큰 틀을 파악하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종말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으며,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긴박감으로 세계 선교를 촉진했다. 우리나라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이러한 선교 열정의 영향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한글 성경을 보급하며 이 민족을 섬겼다. 우리는 이러한 열매를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헌이 크다고 해서 모든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영원히 분리하고, 구약의 예언을 신약과 따로 떼어 문자적으로만 읽으며, 구원의 방법이 시대마다 달랐던 것처럼 말한다면 성경 전체의 증언과 충돌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지나치게 여러 단계로 나누고, 성경에 없는 시간표를 확정하며, 오늘의 정치적 이스라엘을 곧바로 예언의 완성으로 동일시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어느 학파를 따르는 사람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만 붙들거나 요한복음만 붙들고, 바울만 따르거나 야고보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찾아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그 믿음은 삶의 열매로 확인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고, 성령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거처로 지어져 간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세대주의가 어떻게 시작되고 전파되었으며, 그 성경해석법(聖經解釋法, biblical hermeneutics)이 구원과 종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 공헌과 문제점을 분별하여 성경적인 길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어 미국과 한국 교회에 전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의 역사적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19세기 &lt;strong&gt;영국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lt;/strong&gt;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제도와 직분을 앞세우면서도 부패와 권력 남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lt;strong&gt;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lt;/strong&gt;이 등장했다. 그들은 성도를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처럼 나누는 구조를 거부하고, 믿는 이들을 모두 형제와 자매로 부르며 성경대로 모이고자 했다. 다비는 이 형제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비는 성경의 역사를 여러 시대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스리는 방식과 맡기신 책임이 다르다고 보았다. 이 관점은 세대주의 성경해석법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19세기 후반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했고, 그 가르침은 미국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안에 빠르게 퍼졌다. 처음에는 그가 주장했던 것을 &amp;#39;고전적 세대주의&amp;#39;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세대주의는 처음엔 급진적이고 분명하게 구획된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 세대주의와 점진적 세대주의로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미국에서 세대주의가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lt;strong&gt;1909년에 발간된 스코필드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lt;/strong&gt;이었다. 이전에도 주석서는 있었지만, 성경 본문 곁에 체계적인 관주와 해설을 붙여 일반 성도가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이 성경은 획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의 도표와 시간표 안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스코필드의 해설은 단순한 참고를 넘어 성경 본문처럼 강한 권위를 갖게 되었고, 약 한 세기 동안 미국 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영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세대주의의 흐름은 두 방향으로 넓혀졌다. 하나는 &lt;strong&gt;미국&lt;/strong&gt;으로 건너가 &lt;strong&gt;스코필드와 달라스 신학교&lt;/strong&gt; 등을 통해 &lt;strong&gt;근본주의적 세대주의&lt;/strong&gt;로 발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lt;strong&gt;중국&lt;/strong&gt;으로 건너가 &lt;strong&gt;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lt;/strong&gt;의 가르침을 거쳐 &lt;strong&gt;지방교회 운동&lt;/strong&gt;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 흐름은 모습이 달라도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고, 지상의 백성과 하늘의 백성을 나누며, 미래의 천년왕국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다 같이 가지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크게 확산되던 때에 놀라운 일이 한국 땅에 일어났다. 그들은 곧 주님이 오신다는 것 때문에 당시 알려지지 않는 나라 &lt;strong&gt;대한민국으로 여러 선교사들&lt;/strong&gt;이 떠났기 때문이다. 종말이 가까웠으니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로 가야 한다는 긴박감이 젊은 선교사들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일행이 제물포에 도착한 일은 그 대표적인 결과이다. 그들은 힘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섬겼고,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가르쳐 백성을 깨웠다. 선교사들은 재능 있는 한국인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신학과 의학과 교육을 배우게 했고, 그들이 돌아와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도록 도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과정에서 &lt;strong&gt;미국의 세대주의적 종말론&lt;/strong&gt;도 한국 교회에 들어왔다. 순복음교단은 7년 대환난과 환난 전 휴거를 포함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받아들였다. 장로교 합동 측에서는 이를 수정한 역사적 전천년설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통합 측에서는 무천년설(無千年說, amillennialism)이 널리 자리 잡았다. 나는 어느 학파의 이름보다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천년을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굳이 표현한다면 성경적 천년설, 곧 예수 천년설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스코필드 관주 성경과 초기 선교운동이 남긴 공과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를 바르게 평가하려면 그들이 끼친 &lt;strong&gt;공헌과 한계&lt;/strong&gt;를 함께 보아야 한다. 세대주의의 가장 큰 공헌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주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육십육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대와 저자와 문학 형식이 다양하다. 초신자가 아무 도움 없이 읽으면 사건의 순서와 예언의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스코필드 관주 성경은 시대 구분과 관련 성구를 제시하여 평신도도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게 했다. 성경 공부가 목회자나 학자만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일이 되도록 문을 열어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종말론에 대한 관심&lt;/strong&gt;을 크게 일으켰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이 살아나자 성도들은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민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종말이 올 것이라는 계산은 옳지 않았지만, 그 긴박감은 수많은 젊은이를 외국의 선교지로 보냈다. 자신의 학문과 직업과 젊음을 복음 전파를 위해 내놓은 헌신은 귀한 열매였다. 잘못된 시간 계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헌신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은 그 선교 열정의 큰 혜택을 받았다.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을 말로 전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고 학교를 세우며 백성을 가르쳤다. 조선 사회에서 언문이라 낮추어 부르던 한글을 사용하여 성경을 번역했고,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했다. 성경을 읽기 위해 글을 배우면서 백성의 의식이 깨어났고, 교회와 교육과 의료가 함께 성장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비교적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섬김으로 들어온 선교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세대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 모든 열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lt;strong&gt;스코필드 관주 성경&lt;/strong&gt;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까이하도록 도왔고, &lt;strong&gt;종말 신앙&lt;/strong&gt;은 세계 선교를 촉진했다. &lt;strong&gt;형제교회와 지방교회&lt;/strong&gt;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모든 신자가 말씀을 배우게 한다는 점에서 배울 것이 많다. 기존 교회에서 오랫동안 배우고도 얻기 어려운 성경 지식과 훈련이 그 안에 축적되어 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관주와 해설은 성경 본문 자체가 아니다. 해설이 본문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사람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해설자의 틀을 성경 속에 집어넣게 된다. 어떤 주석이 아무리 정교해도 계시의 전체 흐름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성경 본문을 읽을 때에는 먼저 문자적 뜻을 살피되, 구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신약의 해석을 따라가야 한다. 예언을 도표에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만들어 놓은 교리를 지키기 위해 본문의 뜻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종말의 긴박감은 날짜 계산이 아니라 &lt;strong&gt;회개와 충성으로 나타나야&lt;/strong&gt; 한다. 1992년 10월 28일에 주님이 오신다는 주장처럼 날짜를 확정하고 기다리는 일은 성경적인 준비가 아니다. 흰옷을 입고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준비가 아니라, 자기 두루마기를 빨고 거룩한 삶을 살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말론의 공헌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는 데 있고, 그 위험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간표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고전적 세대주의의 일곱 세대는 구원을 어떻게 나누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고전적 세대주의&lt;/strong&gt;는 &lt;strong&gt;인류 역사를 일곱 세대&lt;/strong&gt;로 구분한다. 첫째는 아담의 타락 전까지의 무죄 시대다. 둘째는 타락 이후 노아 때까지의 양심 시대다. 셋째는 노아 이후의 인간정부 시대다. 넷째는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의 약속 시대다. 다섯째는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율법 시대다. 여섯째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은혜 또는 교회 시대다. 일곱째는 장차 유대인 중심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대를 나누어 성경의 흐름을 살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시대마다 구원의 원리가 달랐던 것처럼 설명하는 데 있다&lt;/strong&gt;. 무죄 시대에는 죄가 없으므로 살고, 양심 시대에는 양심을 따라 살며, 인간정부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세운 정부에 순종하고, 약속 시대에는 약속을 믿으며, 율법 시대에는 율법을 지키고, 교회 시대에는 은혜로 믿어 구원받으며, 천년왕국 시대에는 다시 유대인의 제사장 나라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구획하면 구원의 길이 여러 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초기의 고전적 세대주의&lt;/strong&gt;는 유대인이 율법을 지켜 구원받고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강했다. &lt;strong&gt;후대의 수정 세대주의와 점진적 세대주의&lt;/strong&gt;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다고 고쳤다. 그러나 &lt;strong&gt;이스라엘과 교회&lt;/strong&gt;를 서로 다른 두 백성으로 영구히 나누는 기본 틀은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이 틀이 구원론과 종말 시간표 전체에 영향을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구약의 성도도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의로 여겨졌다. 율법과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그림자였다. 짐승의 피 자체가 사람의 죄를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속죄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했다. 신약의 성도도 믿는다고 말만 하면 행위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낳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믿는 자가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다(요 5: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주여 주여 부른다고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하며(마 5:20),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낮아져야 하고(마 18:3),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불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다(마 7:19-20). 믿음과 행함은 서로 다른 시대의 구원법이 아니다. 하나의 구원이 시작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함께 붙들어야 할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형제교회와 지방교회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amp;#39;형제교회&amp;#39;&lt;/strong&gt;는 &lt;strong&gt;영국 국교회의 부패와 계급 구조에 대한 반작용&lt;/strong&gt;으로 시작되었다. 목사라는 직함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신자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며, 말씀을 깨달은 형제가 모임에서 가르치도록 했다. 제도보다 성경을 앞세우고 모든 성도가 직접 말씀을 연구하게 했다는 점은 귀하다. 그러나 제도를 거부한 공동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해석과 지도자를 절대화하는 또 다른 제도가 될 수 있다. 직함을 없앴다고 권위주의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중국으로 건너간 흐름&lt;/strong&gt;은 &lt;strong&gt;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거쳐 지방교회&lt;/strong&gt;로 발전했다. 지방교회는 신약에서 예루살렘 교회,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처럼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가 언급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만 있어야 하며, 사람이 많으면 제1집회소와 제2집회소로 나눌 수는 있어도 서로 다른 교회 이름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므로 지방에서도 하나여야 한다는 논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하나 됨은 반드시 지켜야 할 진리다. 그러나 한 지역에 조직적으로 하나의 교회만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은 성경이 명령한 보편적 규칙이 아니다. 그 원칙을 절대화하여 자기 공동체 밖의 신자를 낮게 보거나, 지도자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을 배척한다면 몸의 하나 됨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더 강한 울타리를 만드는 셈이다. 계시의 조명을 따라 성경을 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데도 이미 정해 놓은 해석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 교단주의를 거부하다가 또 다른 교단주의에 갇히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대주의적 형제교회와 지방교회&lt;/strong&gt;는 &amp;#39;이스라엘&amp;#39;을 &lt;strong&gt;땅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lt;/strong&gt;으로, &amp;#39;교회&amp;#39;를 &lt;strong&gt;하늘에 속한 백성&lt;/strong&gt;으로 구별한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늘의 기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래 구약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교회 시대를 중간에 삽입하셨고, 교회 시대가 끝나 휴거가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유대인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신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에베소서 2장&lt;/strong&gt;은 &lt;strong&gt;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lt;/strong&gt;가 되었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며,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 이제 이방인은 외인도 나그네도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여 함께 성전이 되어 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혈통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존재&lt;/strong&gt;한다. 그러나 &lt;strong&gt;구원과 신앙의 길에서는 더 이상 두 종류의 백성이 아니다.&lt;/strong&gt; &lt;strong&gt;유대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이방인 신자와 똑같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하늘의 백성&lt;/strong&gt;이 된다. &lt;strong&gt;이방인이라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lt;/strong&gt;가 된다(갈 3:29). 하나님께서 참감람나무의 일부 가지를 꺾고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을 접붙이셨지만, 뿌리는 하나이며 구원의 은혜도 하나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성경은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과 행위의 열매를 어떻게 연결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성경의 구원관&lt;/strong&gt;은&amp;nbsp;&lt;strong&gt;믿음과 행함 가운데 하나를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lt;/strong&gt;. &lt;strong&gt;사도 바울&lt;/strong&gt;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이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엡 2:8-9).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이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할례를 받고 음식 규례와 절기를 지켜야 구원의 문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시작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주의 동생&amp;nbsp;야고보&lt;/strong&gt;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며,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묻는다(약 2:14). 바울과 야고보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구원의 출발점에서 인간의 공로를 배제했고, 야고보는 신앙의 끝에서 그 믿음이 살아 있는지를 열매로 점검했다. 시작은 믿음이고 끝에는 열매가 나타난다. 행위가 믿음을 대신하지 않으며, 믿음도 행위 없는 말로 남아서는 안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말씀을 한데 모으면 더욱 분명해진다. 요한복음에서는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고(요 5:24), 마태복음에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믿음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문이고, 순종은 그 생명이 실제로 살아 있다는 표지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령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회개하고 변화되며 선한 열매를 맺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필자는 요한복음파도, 마태복음파도, 바울파도, 야고보파도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어느 한 구절만 붙들고 다른 말씀을 밀어내면 구원론이 비뚤어진다. &lt;strong&gt;믿음만 말하면서 죄를 계속 짓는 삶을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되고, 행위를 강조하다가 자기 의로 구원을 사려 해서도 안 된다. 은혜로 믿고, 죄를 회개하며, 성령을 따라 순종하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변화가 없고 죄를 가볍게 여기며 사랑과 충성과 섬김의 열매가 없다면 믿음을 점검해야&lt;/strong&gt; 한다. 입술로 주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생명책에 이름이 끝까지 남는 것은 저절로 동일해지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은 사람은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씻어야 한다. 넘어졌다면 변명하지 말고 회개하여 다시 일어나야 한다. 행함은 구원의 값을 치르는 공로가 아니라 받은 생명이 밖으로 나타나는 증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알면 시대마다 구원법이 달랐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lt;strong&gt;구약에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과 제사를 통해 믿었고, 신약에서는 이미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는다.&lt;/strong&gt; 계시의 밝기와 역사적 위치는 다르지만 구원의 근원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응답은 믿음과 회개와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도 죄를 의롭다 하지 않으셨고, 어느 시대에도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사게 하지 않으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세대주의는 휴거&amp;middot;대환난&amp;middot;천년왕국을 어떤 시간표로 설명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전적 세대주의의 &lt;strong&gt;종말 시간표는 매우 구체적&lt;/strong&gt;이다. 먼저 &lt;strong&gt;교회의 알곡 성도들&lt;/strong&gt;이 7년 대환난 전에 &lt;strong&gt;공중으로 휴거&lt;/strong&gt;된다. 그들은 공중에서 7년 동안 &lt;strong&gt;어린양의 혼인 잔치&lt;/strong&gt;에 참여한다. 같은 기간 지상에서는 &lt;strong&gt;7년 대환난&lt;/strong&gt;이 일어난다. 대환난이 끝나면 예수께서 &lt;strong&gt;지상에 재림&lt;/strong&gt;하시고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멸하신다. 그 뒤 살아남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지상의 &lt;strong&gt;천년왕국&lt;/strong&gt;이 시작되고, 천 년이 끝날 무렵 &lt;strong&gt;곡과 마곡의 전쟁&lt;/strong&gt;이 일어난 후 &lt;strong&gt;백보좌 심판&lt;/strong&gt;과 &lt;strong&gt;새 하늘과 새 땅&lt;/strong&gt;이 도래한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시간표에서 &lt;strong&gt;7년이라는 기간은 다니엘서 9장의 칠십 이레 해석&lt;/strong&gt;에서 나온 것이다. 세대주의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부터 메시아가 끊어질 때까지의 육십구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긴 교회 시대를 끼워 넣는다. 육십구 이레가 끝난 뒤 하나님의 예언 시계가 멈추었고, 교회가 휴거된 뒤 마지막 한 이레가 다시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마지막 한 이레를 7년 대환난으로 해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은 &lt;strong&gt;마지막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lt;/strong&gt;가 &lt;strong&gt;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lt;/strong&gt;을 맺고 &lt;strong&gt;제3성전을 지어 준다&lt;/strong&gt;고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처럼 환영하지만, 그는 3년 반이 지나면 돌변하여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한다. 그제야 유대인들이 속았음을 깨닫고,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께서 참 메시아였음을 인정하여 통곡하며 회개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순교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재림하신 예수님의 보호를 받아 천년왕국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구약의 &lt;strong&gt;에스겔 성전과 제사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lt;/strong&gt;되어야 하므로 &lt;strong&gt;지상 천년왕국&lt;/strong&gt;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을 온전히 차지하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며, 이방 민족을 가르치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 구약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땅과 성전과 절기에 대한 약속을 천년왕국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니엘의 칠십 이레를 육십구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로 나눈 뒤 그 사이에 성경이 말하지 않은 &lt;strong&gt;긴 교회 시대&lt;/strong&gt;를 삽입할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는 이를 무조건 적그리스도로 볼 필요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삼 년 반 뒤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짐승 제사를 그치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와 맞기 때문이다. 그분이 한 번의 제사로 죄를 속하셨으므로 더 이상 구약의 희생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성도들의 휴거와 주님의 재림을 말하지만, 이를 반드시 &lt;strong&gt;7년 간격의 두 재림&lt;/strong&gt;으로 나누라고 하지 않는다.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고 이기는 자를 먼저 취하시는 역사는 있을 수 있으나, 성경에 없는 기간과 순서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도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마지막 영적 전쟁을 서로 다른 장면에서 보여 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 천 년 간격의 두 전쟁으로 억지로 벌려 놓으면 계시록의 반복 구조를 놓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세대주의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문제와 바른 방향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문제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지나치게 분리하는 것&lt;/strong&gt;이다. 혈통적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역사적으로 구별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의 구원 공동체가 된다. 십자가는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는 땅의 구원을, 교회에는 하늘의 구원을 따로 주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문제는 구약을 신약과 독립적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구약의 땅과 성전과 제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충만하게 성취된다. 예수께서 참 성전이시며 믿는 자들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다. 새 예루살렘은 혈통적 유대인만 들어가는 성이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성도가 들어가는 하늘의 도성이다. 문자적 출발점을 살피되 신약이 밝혀 준 영적 성취까지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문제는 휴거와 재림을 과도하게 분리하는 것&lt;/strong&gt;이다.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 반드시 7년이 있으며 그 기간 교회가 하늘에서 혼인 잔치를 한다는 도식은 성경의 직접적인 선언이 아니다. 주님의 오심은 성도에게 구원과 영광의 날이며 악한 세력에는 심판의 날이다. 우리는 복잡한 시간표를 맞히는 데 힘을 쓰기보다 언제 오셔도 맞이할 수 있도록 회개하고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문제는 미래의 성전과 제사를 문자적으로 되살리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께서 완전한 속죄제물이 되셨는데 다시 짐승을 잡아 제사하는 시대를 하나님의 최종 계획으로 세울 수 없다. 에스겔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완전한 임재를 보여 준다. 그 실체는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이며,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된다. 그림자가 실체를 대신하여 다시 중심에 설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문제는 지나치게 정교한 종말 시간표를 만들어서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것&lt;/strong&gt;이다. 7년 대환난, 전 삼 년 반과 후 삼 년 반, 두 단계의 재림, 지상 천년왕국, 그 뒤의 또 다른 전쟁을 도표로 확정하면 성경보다 체계를 더 신뢰하게 된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고, 악한 세력이 심판받으며, 이기는 성도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을 하고 마지막에 영원한 나라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굳게 붙들고 불분명한 것은 함부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문제는 현재의 정치와 성경 예언을 혼합하는 것&lt;/strong&gt;이다. 1948년 5월 14일 세워진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곧바로 모든 구약 예언의 완성으로 보면, 그 나라의 정치적 선택까지 무조건 지지하게 된다. 오늘의 이스라엘 안에도 세속주의와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이 있으며, 종교적 복장과 혈통만으로 하나님을 참되게 섬긴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라는 말씀을 현대 국가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라는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고로 올바른 방향은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구약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된다. 이스라엘과 교회,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함, 땅과 하늘을 서로 싸우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로 완성되는지를 보아야 한다. 원문과 문맥을 살피고, 앞선 계시를 뒤에 주어진 더 밝은 계시로 해석하며, 성경 전체의 구원 경륜 안에서 부분을 읽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실제로 들어갈 장소적 천국도 있다(딤후 4:18)&lt;/strong&gt;. 성도는 죽은 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며, 그곳에서 기업과 면류관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상태적 천국만 강조하여 장소적 천국을 지워서도 안 되고, 미래의 장소만 바라보며 오늘의 통치와 순종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장차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4:18&amp;nbsp;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우리는 세대주의의 역사와 공헌, 일곱 세대의 구분,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 믿음과 행함의 연결, 휴거와 대환난과 천년왕국의 시간표, 그리고 성경해석에 나타난 여섯 가지 문제를 살펴보았다. 세대주의는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종말에 대한 관심과 선교의 열정을 일으켰다. 한국 교회도 그 열매를 크게 받았다. 그러므로 그 공헌은 인정하고 감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lt;strong&gt;잘못된 부분&lt;/strong&gt;까지 붙들 필요는 없다. &lt;strong&gt;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을 영원히 분리하고, 구약을 신약과 떼어 읽으며, 시대마다 구원의 길이 달랐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lt;/strong&gt;.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lt;strong&gt;7년 시간표를 절대화&lt;/strong&gt;하거나, &lt;strong&gt;현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lt;/strong&gt;. 이미 만들어진 체계를 지키기 위해 말씀을 억지로 맞추기보다 말씀 앞에서 체계를 고쳐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회개와 순종의 열매로 살아 있는 믿음이 확인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며,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 구약의 성전과 제사와 땅의 약속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실체를 만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학파와 교단의 도표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높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날짜를 계산하고 사건의 순서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죄를 회개하고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며,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고, 천국 복음을 전하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lt;/strong&gt;이다. 기왕 천국에 들어갈 바에는 겨우 문 안에 들어가는 데 머물지 말고, 면류관을 쓰고 기업을 차지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른 천년설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공동체에서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어떤 종말의 도식을 따르느냐가 그 자체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붙들면 귀한 시간과 물질과 충성을 허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을 구하고 성경 원문과 문맥을 충실히 살피며, 어떤 전통의 장점도 배우되 그리스도의 말씀과 맞지 않는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이 오실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사람의 시간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가야 한다.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날마다 회개하며, 아름다운 행위의 열매를 맺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몸으로 만드신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경을 바르게 분별하고 끝까지 주님께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면류관과 기업을 받을 준비를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6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세대주의(Dispensationalism)&lt;/strong&gt;&amp;nbsp;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그 성경 해석 방식이 현대 교회에 미친 영향 및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합니다.정보배 목사는 세대주의가 19세기&amp;nbsp;&lt;strong&gt;존 넬슨 다비&lt;/strong&gt;를 통해 체계화되어 미국과 한국 교회의&amp;nbsp;&lt;strong&gt;전천년설&lt;/strong&gt;과 종말론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특히&amp;nbsp;&lt;strong&gt;스코필드 관주 성경&lt;/strong&gt;의 보급으로 성경 공부의 대중화를 이끌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amp;nbsp;&lt;strong&gt;유대인과 교회를 과도하게 분리&lt;/strong&gt;하고, 구약의 예언을 지나치게&amp;nbsp;&lt;strong&gt;문자주의&lt;/strong&gt;로 해석함으로써 신구약의 영적 통일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정보배 목사는 세대주의가 지닌&amp;nbsp;&lt;strong&gt;종말론적 오류&lt;/strong&gt;와 상태적 천국에만 치우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amp;nbsp;&lt;strong&gt;회개와 성경적 구원관&lt;/strong&gt;을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eef8d8c5e98e96d6288f0efe57a944d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ab72d1462f3ab5bb0c7a2331108ba2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9e4cf6fafed25ea950934815e7e9ee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d70386e2b4056eaddb7562a070b9d8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9ab09dd3350c76aa003b5c628ff9d1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19518d151431daa3a85efcaa0c2f7c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608b9d1f50d36a0871b27340e5513e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c49a586fe597efe615f7e6a307b969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17a056008e773e6193c0f465aa1af3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17d42edb6f4af59f2f10b4602de0f8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f6ba4482db015b3321d7d936e3cd2b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bb4c128c56881732496169ca54b705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347453c81aba91da5b59b1a46f5d8d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13f5dfa9b8e4daccd0be516f8a44bf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issecting_Dispensationalism.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adfa04b1e45fdca2c889e51b93af405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세대주의_신학_체계와_분석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914037980324f4beb0d717ec54bc53b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52a94cf8494dedeb870762a8b64580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ee9b541cf3c557fff72be903221d20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fdfcf8f4d04cc80ae19e2407b374f5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afeb6bac9c5c6cd1f399bd258b51e0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01f74c609ff0d891e932d4e573fb4a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f0287d62b2cbb40bb6f78ef66daccd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4946e89854375835c38de165a1814d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10a149549fd4fc00930577ed3e282e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08f825279d54302d6eb4098e7a640a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c32d28ebd763d0bf2244577f322204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0a086d7d11648cc23100b5c9bb6bc70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3f9679c610d7ab17f5de4fc24417e6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9f4cd0fe14870d6edff0329cdb95f4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세대주의(01)] Deconstructing_Dispensationalism.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16/266/791fbe6229dcb07ab8766e20f737165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6016</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6016#comment</comments>			<pubDate>Tue, 08 Sep 2026 17:46:01 +0900</pubDate>
		</item><item>
			<title>질병에서의 치유, 과연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가?(약 5:14~16)_2026-08-30(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5413</link>
				<description>&lt;p&gt;2026-08-30(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질병에서의 치유, 과연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가?(약 5:14~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cAwCMgdHr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cAwCMgdHr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질병에서의 치유,&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과연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약 5:14-1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질병에서 실제로 치유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은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을 먹거나 수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회개(悔改, repentance)와 축사(逐邪, deliverance) 사역을 감당하며 살펴보니, 육체의 질병 뒤에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에는 몸의 증상만 다루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영적 치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우리가 치유를 이야기하려 할 때 &lt;strong&gt;&amp;#39;장애&amp;#39;와 &amp;#39;질병&amp;#39;은 서로 구별&lt;/strong&gt;해야 한다. &amp;#39;장애&amp;#39;는 태어날 때부터 필요한 기관이나 기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로 설명할 수 있고, &amp;#39;질병&amp;#39;은 이미 있던 기관이나 기능이 손상되어 고장 난 상태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는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창조의 기적이 필요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회복과 수리의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 다룰 중심은 장애보다 육체적인 질병이 실제로 어떻게 치유되는가 하는 문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질병은 크게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lt;/strong&gt;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필자는 축사 현장에서 조상 제사와 관련된 영들이 육체를 공격하여 병을 일으키는 경우와, 무당과 점술에 관련된 영들이 사람의 혼과 정신을 압박하여 두려움&amp;middot;불안&amp;middot;불면과 같은 고통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아 왔다. 이러한 분별은 목회적&amp;middot;영적 관찰이기 때문에 모든 질병의 의학적 원인을 다 정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병들었을 때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장로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약 5:14-16). 여기에는 &amp;#39;믿음의 기도&amp;#39;와 &amp;#39;죄의 자백&amp;#39;과 &amp;#39;공동체의 돌봄&amp;#39;이 함께 있다. 예수께서도 열병을 꾸짖고 손을 대어 일으키셨으며,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마 8:14-17; 눅 4:38-3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질병 치유에서 왜 &amp;#39;회개&amp;#39;와 &amp;#39;축사&amp;#39;와 &amp;#39;안수&amp;#39;가 함께 필요한가&lt;/strong&gt;? 귀신과 뱀은 어떻게 다르게 처리되는가? 사역자에게는 왜 성령의 불과 영적 권세와 분별의 은사가 필요한가? 치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장애와 육체적&amp;middot;정신적 질병의 구별, 육체 질병과 정신적 고통의 영적 배경,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예수님의 사역, 귀신과 뱀을 처리하는 서로 다른 방법, 치유 사역자에게 필요한 불과 권세와 은사, 회개하지 않은 채 축사와 안수를 받을 때 재발하는 이유, 그리고 실제 치유가 이루어지고 확인되는 과정과 표지&lt;/strong&gt;를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장애와 육체적&amp;middot;정신적 질병은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장애와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amp;nbsp;&lt;strong&gt;&amp;#39;장애&amp;#39;와 &amp;#39;질병&amp;#39;은 같지 않다&lt;/strong&gt;. 설교적 이해를 돕기 위해 자동차에 비유하면, 장애는 필요한 부품이 처음부터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고, 질병은 있던 부품이 고장 난 상태와 같다. 고장 난 것은 수리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장애는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장애의 치유에는 창조적인 기적이 필요하고, 질병의 치유에는 손상된 기능을 회복시키는 역사가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 제9장에는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나온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셨으며, 그가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요 9:1-7). 나는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부족하거나 작동하지 않던 시각 기능을 창조적으로 회복시킨 표적으로 이해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lt;/strong&gt;이란 무엇인가? 그것은&amp;nbsp;몸의 기관과 조직과 신경에 손상이 생긴 상태다. 암, 위장병, 신장병, 뇌혈관 질환, 파킨슨병처럼 증상과 원인이 다양하다. 회개와 기도와 축사는 의학적 치료를 밀어내는 대체물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함께 돌보는 영적 사역으로 병행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정신적인 질병과 고통&lt;/strong&gt;은 어떤 것인가?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행동의 기능에 어려움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두려움과 불안, 공황, 장기간의 불면, 우울, 환청, 현실 판단의 혼란, 조현병 증상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필자는 이것들 가운데 무당과 점술 계열의 악한 영이 사람의 머리와 심장을 압박할 때 나타나는 것을 목회 현장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한 가지 증상만으로 귀신들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뇌를 다쳐서도 마음에 상처가 깊어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중심은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다. 육체 질병은 정신 기능을 완전히 잃은 상태는 아니므로 환자 자신이 회개하고 기도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병이 깊어지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몸이 바짝 마른다. 그러면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할 힘조차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하여 질병을 치료하려면 체력이 조금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는 되도록이면 금식하지 말며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렇다. 되도록이면 건강할 때부터 회개하고, 병이 왔을 때에는 환자뿐 아니라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자.&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치유 사역을 감당하려면 &lt;strong&gt;환자뿐 아니라 사역자도 체력을 유지해야&lt;/strong&gt; 한다. 필자는 살을 빼기 위해 볶은 귀리를 두유에 타서 한 끼를 먹었다가 저녁 축사 때 배에 힘이 없어 명령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결국 충분히 식사하고서야 힘을 회복했다. 비만을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무리한 절식으로 몸을 쇠약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환자는 영양 상태를 의료진과 상의하고, 사역자도 안전하게 사역할 만큼 먹고 쉬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고통은 어떤 영적 배경에서 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는 영적 사역 현장에서 &lt;strong&gt;육체적인 질병은 조상 제사의 죄와 연결되어 나타나는 경우&lt;/strong&gt;를 엄청 많이 보아왔다. 종손 가문에서 해마다 여러 차례 제사를 드리고 제사 음식을 계속 먹어 온 경우, 머리와 위장과 오장육부에 제사의 영이 쌓여 육체를 공격하는 일이 아주 많았다. 위암&amp;middot;대장암&amp;middot;신장 질환과 같이 소화기관과 장기에 병이 나타나는 사례들을 보며 제사의 영적 영향을 살펴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면 &lt;strong&gt;정신적인 고통은 무당과 점술의 신기와 연결되어 나타나는 경우&lt;/strong&gt;가 많았다. 무당이 주로 여성이었던 까닭에 외가와 어머니 쪽 혈통을 통해 신기의 영향이 내려오는 사례가 많았고, 제사는 주로 남성이 주관했기에 친가와 아버지 쪽에서 육체 질병의 영향이 내려오는 사례가 많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무당 계열의 영은 사람을 강하게 눌러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회개를 방해한다. 그런데 관찰해 보니, 사람에게 신기가 강하게 나타나 신내림을 받기를 강요하는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년기에 그리고 청년기와 장년기 등에 서너 차례 겪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때에는 정말 의사의 도움과 축사사역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치유해야지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반면에 제사 계열의 영이 육체를 공격할 때에도 역시 위장의 기능이 약해지고 음식을 먹지 못해 몸이 마르며 회개할 기운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를 할 때에는 유산균과 영양제를 잘 복용하여, 수액이라도 맞아서 몸이 어느정도 돌아갈 수 있게 해 놓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아버지는 50대에 위암을 수술을 했는데도 술을 계속 드시다가 병이 재발하여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살이 빠져 뼈와 가죽만 남을 만큼 쇠약해졌다. 이 경험을 통해 육체 질병이 깊어진 뒤에는 회개하고 기도할 힘을 내는 일조차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므로 아직 먹고 말하고 잘 움직일 수 있을 때 회개해야 하며, 환자가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가족이 대신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가족의 역할은 환자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중보하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으로 회개하기 어려운 자녀가 있다면 부모가, 중병으로 말할 힘이 없는 배우자가 있다면 남편이나 아내가 그를 품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식사와 수면과 영양제 복용을 함께 신경을 써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어떻게 고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였다. 그의 장모가 중한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amp;nbsp; 그때 예수께서 일부러 그 집에 가서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해주셨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께서 그녀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 수종들었다고 기록하였다(마 8:14-15). 그런데 누가는 예수께서 그에게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시니 병이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4:38-39). 두 기록을 합치면,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꾸짖으시고 손을 대어 일으키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열병 자체에는 귀가 없지만 예수께서 꾸짖으셨다. 그랬더니 병이 떠나갔다. 필자는 이 말씀에서 &lt;strong&gt;질병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반응하는 영적 존재가 있다&lt;/strong&gt;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육체 &lt;strong&gt;질병을 온전히 치유하려면 증상만 잠시 제어하는 데서 끝나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까지 처리해야&lt;/strong&gt;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어서 마태복음 기자는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께 데려왔고,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며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다고 기록해 두었다. 이는 이사야가 말한 &amp;ldquo;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amp;rdquo;라는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했다(마 8:16-17; 사 53:4). 이렇듯 예수님의 치유에는 말씀의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손을 통한 접촉으로 뱀을 제거하는 일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이때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대신 것을 성령의 불을 환자의 몸에 전달하는 사역으로 이해한다. &lt;strong&gt;말씀으로 배후의 귀신을 꾸짖어 내보내고, 손을 통해 불을 넣어 질병을 일으키는 뱀들을 태우고 처리하신 것&lt;/strong&gt;이다. 이것이 &lt;strong&gt;치유 사역에서 &amp;#39;명령&amp;#39;과 &amp;#39;안수&amp;#39;가 함께 필요&lt;/strong&gt;한 이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야고보서도 병든 자가 장로들을 청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받고,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한다(약 5:14-16). 치유는 개인의 은사만 자랑하는 일이 아니다. 환자의 회개, 공동체의 중보, 사역자의 기도, 그리고 실제적인 치료와 돌봄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질병 치유에서 귀신과 뱀은 어떻게 다르게 처리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방금 앞에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사실 &lt;strong&gt;질병 치유에는 귀신과 뱀을 구별하여 사역하는 것이 필요&lt;/strong&gt;하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귀신은 하늘의 천사가 타락한 것으로서, 그것들이 사람 속에 들어오면 사람의 모양이나 짐승의 모양이나 그리고 어떤 물체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뱀은 다르다. 뱀은 땅에서 사람을 섬기도록 보냄받았던 천사들이 타락한 것이며, 사람의 성품과 육체 안에 들어가 죄의 충동과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로 본다. 그런데 귀신과 뱀은 따로 떨어져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귀신들은 뱀들에게 명령하여 특정 장기와 신경과 혈관을 공격하게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귀신들과 뱀들을 구별해야 할 이유는 &lt;strong&gt;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lt;/strong&gt;에 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어 올리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막 1:16-17). 고로 귀신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amp;ldquo;나오라, 나가라&amp;rdquo;라고 명령하고, 뱀은 손으로 집어 올리거나 성령의 불로 태우고 영적 무기로 잘라 처리해야 한다. 귀신은 말씀의 권세로, 뱀은 손과 불과 무기로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사역자가 사용하는 손은 발과 더불어 사용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으로 뱀을 집어올리라고도 말씀하셨지만 발로 뱀과 전갈을 밟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라고 하셨다(눅 10:19). 그러므로 손으로 집어 올리는 사역과 발로 밟는 사역은 같은 원칙에 따라 사역할 수 있다. 고그런데 우리 몸에 들어있는 귀신을 내보내려 할 때에는 높은 영적 권세가 필요하고, 육체 안의 뱀을 처리하는 일에는 불과 칼 같은 영적 무기가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모습을 달리하는 사람과 짐승과 물체와는 달리 똑같이 생긴 &lt;strong&gt;뱀들은 어떻게 구분&lt;/strong&gt;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영안이 열린 사람이 영분별의 은사로 보았을 때 구분이 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뱀들은 &lt;strong&gt;색깔과 머리 수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다름&lt;/strong&gt;을 알 수 있었다. 검은 뱀은 오래된 제사의 영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빨간 뱀은 질병을 일으키며, 흰 뱀은 속임과 관련 되고, 알록달록한 뱀은 음란과 관련되어 있었다. 머리가 둘인 뱀은 과거와 현재를 알아맞히는 점치는 영이며, 머리가 셋인 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하는 영이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lt;strong&gt;귀신과 뱀은 서로 떨어져 별개로 일하지 않는다. 함께 연합하여 일을 한다&lt;/strong&gt;. 즉 하늘에서 타락한 귀신들과 땅에서 타락한 뱀들은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연결되어 서로가 쫓겨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제사의 큰 귀신이 뱀들을 부려 위장과 폐와 뇌와 신경을 공격하게 하고, 뱀들은 몸 안에 감겨 실제적인 통증과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귀신만 명령하여 내보내거나 뱀만 불로 태우는 것으로는 치유가 완성되지 않으며 둘 다 처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머리에 있던 귀신의 집의 파괴의 경우를 살펴보자. 보통 귀신의 집은 센 강도에 따라 놋집, 쇠집, 기와집, 나무집, 흙집 등으로 나뉘는데, 제 머리는 놋집이 지어져 있었고 거기에는 다섯 개의 방들이 있었다. 첫째 방에는 사명대사를 비롯한 큰 대사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둘째 방에는 어린 중들의 영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셋째 방에는 여자 승려들의 영이 들어있다. 그리고 넷째 방에는 여자 무당의 영이, 다섯째 방에는 여장한 남자 무당의 영이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귀신의 집에는 귀신뿐 아니라 뱀도 방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큰 귀신이 집과 방을 만들고 여러 영을 저장하여 부리기 때문에, 질병을 온전히 치유하려면 개별적으로 영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며, 마지막에 가서는 귀신의 집과 방까지 파괴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참고로 귀신에 우리 몸에 들어온 경우, 억압과 폭력과 살인과 권력 남용의 죄가 쌓여있는 가문의 사람 중에는 도끼나 흉기 같은 것들이 몸에 박혀서 허리와 다리와 무릎과 어깨에 통증을 일으키는 사례도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억압 폭력 살인 권력남용과 관련된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이러한 죄목에 대한 회개는 &amp;#39;평생회기도문&amp;#39;(2026.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에 들어있다), 귀신을 명령으로 내보내며, 몸 안의 뱀과 영적 무기를 손과 불로 제거해야 한다. 다만 실제 골절과 관절 질환과 신경 손상은 영상검사와 의학적 치료의 도움을 함께 받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치유 사역자에게 왜 불과 권세와 영적 은사가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치유 사역자에게 필요한 은사와 영적 무기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뱀들을 처리하려면 손에서 &amp;#39;성령의 불&amp;#39;&lt;/strong&gt;이 나와야 한다.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증언했다(마 3:11). 오순절에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제자들에게 보였고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다(행 2:1-4). 나는 이 불이 악한 영을 태우고 꼼짝하지 못하게 하며 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실제적인 사역의 불이라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느날 은사가 임하자 필자의 손끝에서는 불이 레이저처럼 나가 몸 속을 뚫고 들어가거나, 손바닥에 둥근 불덩이가 형성되어 안수할 때 몸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불을 다스리는 천사에게 명했을 때에는 천사들이 용암 같은 불을 양동이로 붓는 모습도 보았다. 처음에는 빨간 불이 나와서 주로 뱀을 태웠고, 뒤에는 코발트색의 파란 불이 귀신을 제압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손에서 불이 나오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손가락 끝마디가 다른 두 마디에 비해서 붉게 보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원래 치유사역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회개하고 귀신이 집이 파괴되자 은사가 임했다. 그러자 2024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축사와 질병 치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6년 8월 현재까지 약 이 년 삼 개월을 이 사역을 감당했다. 특히 사역하면서 강한 영을 만날 때에는 필자의 가슴과 머리와 온몸이 뜨거워지고 땀에 젖을 만큼 불이 올라온다. 특히 약한 영을 처리할 때보다 강한 영을 만날 때 더 강한 불이 나왔다. 이는 사역자의 힘으로 억지로 열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몸 안의 성령께서 불을 지피고 천사들이 도우시는 역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귀신을 처리하려면 강력한 영적 권세가 필요&lt;/strong&gt;하다. 귀신의 세계는 일종의 조폭이나 군대와 같다. 계급이 있고 상명하복이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영적 계급이 높을수록 귀신들은 더 빨리 반응한다. 권세가 부족하면 한두 번의 명령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밤새도록이라도 끈질기게 명령하면 귀신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환자의 체력을 살피지 않고 무리하게 사역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사역할 때에는 환상과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 같은 은사가 필요&lt;/strong&gt;하다. 왜냐하면 환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장차 일어날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어떤 종류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으로 그 세력이 무엇이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혜의 말씀으로 그 영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불의 은사와 영적 권세 뿐만 아니라 보는 은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은사가 사역자에게 있으면 악한 영의 종류의 크기를 알 수 있고, 그들이 어디에서 들어왔으며, 그 영이 떠나가지는 그리고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가지 않는 영들을 통하여 어떤 죄를 더 회개하고 와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사역자 자신이 충분히 회개하여 깨끗한 상태가 되어 있어야&lt;/strong&gt; 한다. 회개하지 않은 사역자가 안수하면 사실 위험하다. 왜냐하면 환자에게 있던 영을 자기 속으로 끌어당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옮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진실한 회개 뒤에 사역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필자의 &amp;#39;머리&amp;#39;와 &amp;#39;배&amp;#39;와 &amp;#39;등&amp;#39;에 있던 큰 귀신의 집들과 오른쪽 어깨와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사타구니에 있는 작은 귀신의 집들을 특별 사면처럼 파괴해 주셨다. 그 뒤에는 사역 중 악한 영이 몸 안으로 들어오기보다 몸을 물고 있을 뿐이다. 요즘에는 회개하지 않는 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면 뱀들이 이빨 자국만 남기고 떠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 영적 체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치유 사역을 할 때 주의할 점은 환자의 상태를 보아가서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을 받기에 힘드는 경우는 나눠서 사역해야 한다. 무리한 사역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사역할 때 폭력적으로 눌러서 안 된다. 환자의 가슴에 올라타 누르거나, 숨이 막힐 때까지 제압하거나, 때리고 흔드는 행위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사역자는 과도한 물리적 제압으로 인하여 사람이 숨진 사건도 있었다. 사역자는 환자의 의식과 호흡과 통증을 계속 확인하고, 위험하면 즉시 멈추며,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때로 119와 의료진을 불러야 한다. 영적 권세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권한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사역자는 불의 은사만 믿고 의학적 지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심장질환과 뇌졸중과 감염과 암은 시간을 다투는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기도와 안수는 진료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의사와 약과 수술을 통해서도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영적 사역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온전히 쓰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회개 없이 축사와 안수를 받으면 왜 재발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영을 내보내기 전에 회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간 영들이 다시 들어올 근거를 없애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하면 &amp;ldquo;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amp;rdquo; 하고 돌아온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으면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므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해진다고 하셨다(마 12:43-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은 채 사역의 힘으로만 귀신을 내보내면 죄의 문이 그대로 열려 있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더구나 다시 들어올 때에는 전과 다른 종류의 영까지 데리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러면 처음보다 증상이 복잡하고 심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을 받는 것보다 먼저 자신과 조상이 지은 죄를 인정하고 눈물로 자백하여 악한 영이 다시 들어오지 못할 상태를 만든 후에 사역을 받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안수하는 사역자의 상태도 매우 중요하다. 사역자 안에 피사역자와 같은 종류의 영이 들어 있으면 피사역자의 영을 끌어당기거나 안수 과정에서 영적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로 불이 강하고 속이 정결(淨潔)한 사역자의 경우는 악한 영이 들어오려 해도 불을 뜨거워 견디지 못하므로 안으로 들어가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사역을 받는 사람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사역자도 평생 회개하며 자신을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사람에게 심각한 질병이 나타는가? 그것은 그 사람의 집안에서 내려온 영들이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하여 영이 가득차 있을 때다. 예를 들어보자.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상들로부터 계속 죄가 쌓였고 비로소 요시아의 아들 때에 끝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더이상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았다. 그들에게 형벌을 쏟아부으셨다. 그것은 그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간 일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벌의 날을 정하셨다. 그것은 70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선고된 이상 그 기간을 단축시킬 수는 없다. 질병의 경우도 마찬 가지다(렘 29:10). 결국 내가 중한 중병이 찾아왔다면 몇 번 회개한 것으로 병이 낫지를 않는다. 주님께 진심을 담아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도 형벌의 날을 단축시켜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러한 영적 해석을 가지고서 자식이 조상들을 향해 &amp;ldquo;당신들의 죄 때문에 내가 암에 걸렸다&amp;rdquo;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병의 의학적 원인은 의료진이 검사하여 판단해야 한다. 회개는 환자를 탓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고 은혜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도 죄가 생각나면 자백하고, 조상의 우상숭배가 생각나면 내 죄처럼 애통하며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환자가 질병으로 인하여 너무 쇠약하거나 정신적 고통 때문에 회개하기 어려우면, 가족이 대신하여 함께 회개해야 한다.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가 환자를 가운데 두고 기도할 때 혼자 감당하지 못한 짐을 함께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역에서 환자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이 간절히 회개했을 때 영들이 떠나고 치유의 길이 열리는 사례를 보았다. 가족의 기도는 환자를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는 중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조상들과 내가 지은 죄가 많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회개의 횟수를 기계적으로 채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천 번이나 이천 번을 회개했다는 분량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마음을 찢으며 돌이키는 진실함이 더 중요하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 자신에게 눈물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회개의 분량을 채워 가기를 바란다. 그러면 주께서 그 회개를 받으실 날이 올 것이고, 떠날 영들을 불러 올려 내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교회에서는 적어도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천 번 이상 회개한 사람에게는 귀신의 집을 파괴할 단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러나 회개가 충분하지 않으면 떠날 영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특히 회개기도문으로 1,000번 이상 회개한 사람의 경우 사역하면 귀신의 집이 파괴되면서 아름다운 꽃들이 핀다. 이는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이 파괴되어 더 이상 영들이 그 장소에 없다는 뜻이다. 그때를 보면, 각종 꽃들(개나리꽃, 코스모스, 도라지꽃 등)이 피어나면서 아름다운 대지와 자연과 시냇물이 조성되는 것을 본다. 그렇다고 천 번이라는 숫자가 자동으로 한 사람의 치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죄의 분량이 다르고 회개의 진실함도 다르므로, 횟수를 채우면서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까지 겸손히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실제 치유는 어떤 과정과 표지를 거쳐 확인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실제 치유는 어떤 과정을 겪게 되면 어떤 표지를 통해 확인이 되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환자와 가족이 충분히 회개하는 데서 치유는 시작&lt;/strong&gt;한다. 회개하면 그날 떠나게 될 악한 영들이 몸의 표면으로 올라오거나, 환상 가운데 동물과 물건과 건물의 모습으로 보인다. &lt;strong&gt;둘째로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내보내고, 뱀은 손과 불과 영적 무기로 끊고 긁어내며 태운&lt;/strong&gt;다. &lt;strong&gt;셋째로 귀신의 집과 방을 파괴하고 그 자리를 성령의 영역으로 바꾼&lt;/strong&gt;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안수했던 한 암 환자의 폐에는 오래된 검은 뱀들이 모든 신경줄마다 다 검게 감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는 제사의 영들이 많았고, 회개와 축사를 통해 조상 제사의 큰 영들을 먼저 내보냈다. 그 뒤 온몸을 감고 있던 &amp;#39;검은 뱀들&amp;#39;을 영적 칼과 갈퀴로 사옹해 긁어내고 불로 태웠다. 환자는 큰 통증을 느꼈지만 견디며 사역을 받았고, 뱀들이 사라진 자리에 꽃이 피는 환상이 나타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그의 머리에서는 다보탑과 절의 모습도 있었고, 그것들이 환자와 세 겹의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분이 과거 원불교와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다. 줄을 끊고 다보탑을 들어내며 절을 폭파하는 영적 사역을 하자, 개나리꽃이 피어났고 생명수가 흐르는 환상이 나타났다. 그분이 과거에&amp;nbsp; 절을 다니며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아카시아 가시덤불과 흰 구름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자 이번에는 코스모스가 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폐 전체를 감고 있는 제사의 검은 영적인 칼로 제거하자, 뱀을 제거한 그 자리에 보라색 도라지꽃이 피었다. 필자는 꽃이 피고 시냇물이 흐르며 산이 조성되는 환상을 그 영역의 귀신 집이 파괴되고 악한 영이 떠났다는 표지로 받아들인다. 우리 교회 사역자들에게 주신 이러한 꽃의 표지는 다른 곳에서 쉽게 듣지 못했던 특별한 은사인 것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틀히 사역을 시작할 때 보는 환상은 그날 사역에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지난 번에는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니, 환자를 가운데 두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빙 둘러서 손을 뻗치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통해 이번 치유는 환자 혼자의 힘이 아니라 가족의 중보를 통해 역사할 것을 미리 알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환자의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 회개하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환자의 머리와 폐와 온몸의 영들을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자의 머리와 가슴에서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났고, 시냇물이 졸졸 흐라는 환상으로 사역을 마칠 수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어떤 분은 1,000번 이상 회개하고 사역을 받았는데, 올 때에는 이미 의사로부터 석 달 정도만 산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왔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쇠약한 중에도 힘을 다해 진실로 회개했고, 사역 현장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생각나는 죄를 눈물로 고백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경우처럼 그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겠다고 하는 예언을 하게 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고 영적인 환상만으로 의학적 완치라고 선언해서는 안 된다. 꽃과 생명수의 환상은 영적 사역의 표지로 분별할 수 있지만, 암이 사라졌는지 장기 기능이 회복되었는지는 혈액검사와 영상검사와 조직검사 등 담당 의료진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증상이 좋아져도 약을 임의로 끊지 말고 추적검사를 계속해야 한다. 영적 확인과 의학적 확인이 함께 이루어질 때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실제 치유의 목표는 병 하나가 낫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가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 되며, 자녀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amp;ldquo;나는 죽을 병에 걸렸지만 이렇게 회개하고 주님의 긍휼을 입었다. 그러니 너도 살아계신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amp;rdquo;고 전할 수 있다면 육체의 회복이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증거가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장애와 육체적&amp;middot;정신적 질병의 구별, 육체 질병과 정신적 고통의 영적 배경,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예수님의 사역, 귀신과 뱀을 처리하는 서로 다른 방법, 치유 사역자에게 필요한 불과 권세와 은사, 회개하지 않은 채 축사와 안수를 받을 때 재발하는 이유, 그리고 실제 치유가 이루어지고 확인되는 과정과 표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장애와 질병, 육체 질병과 정신적 고통을 구별해야&lt;/strong&gt; 한다. 장애에는 창조적 회복이 필요할 수 있고 질병에는 손상된 기능을 고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신적 고통은 육체 질병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므로 영적 분별과 함께 전문적인 정신건강 평가와 안전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예수님의 치유에는 말씀의 권세와 손을 통한 사역이 함께&lt;/strong&gt; 있었다. 예수께서는 열병을 꾸짖고 환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으며,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 치유 사역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명령하여 내보내고, 손과 성령의 불로 육체 안의 뱀을 처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사역자는 충분히 회개하여 정결해야 하며 성령의 불과 영적 권세와 분별의 은사를 갖추어야&lt;/strong&gt; 한다. 환자의 영을 끌어당기지 않을 만큼 속이 깨끗해야 하고, 환상의 은사와 영분별과 지식과 지혜를 통해 무엇을 언제까지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환자와 가족의 회개가 치유의 기초가 되어야 &lt;/strong&gt;한다. 죄의 문을 닫지 않은 채 악한 영만 억지로 내보내면 더 악한 영들과 함께 돌아와 나중 형편이 더 심해질 수 있다. 횟수만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죄처럼 애통하며 회개하고, 환자가 할 수 없을 때에는 가족이 사랑으로 대신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영적 치유와 의학적 치료를 서로 대립시켜서는 안&lt;/strong&gt; 된다. 회개와 축사와 안수를 받으면서도 의사의 진단과 약물과 수술과 재활을 계속해야 한다. 정신적 위기와 고열과 의식 저하와 호흡곤란과 심한 통증은 즉시 응급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영적인 꽃과 생명수의 환상도 의학적 완치를 대신하지 않으며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질병의 치유는 사역자의 능력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을 살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언하는 일이다. 우리는 건강할 때부터 회개하고, 병이 왔을 때에는 믿음의 기도와 안전한 치료를 함께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을 끝까지 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와 믿음과 지혜로운 치료를 통해 몸과 영혼이 회복되고 자녀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30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에서 정보배 목사는 질병의 근원적 원인을 영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치유의 실제적인 과정&lt;/strong&gt;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질병을 정신적 문제와 육체적 질병으로 구분하며, 전자는 주로&amp;nbsp;&lt;strong&gt;무속 신앙과 관련된 가계의 내력&lt;/strong&gt;에서, 후자는&amp;nbsp;&lt;strong&gt;우상 숭배나 제사 문제&lt;/strong&gt;에서 비롯된다고 통찰합니다. 특히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한 증상 완화를 넘어&amp;nbsp;&lt;strong&gt;성령의 불과 영적 권세&lt;/strong&gt;를 통해 질병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축사하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치유 사역자는 강력한 영적 무기를 갖추어야 하며, 환자 본인은&amp;nbsp;&lt;strong&gt;철저하고 간절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영적 공간을 깨끗이 비워내야만 재발 없는 온전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질병을 죄의 결과로 인식하고,&amp;nbsp;&lt;strong&gt;지속적인 회개와 성령의 역사&lt;/strong&gt;를 통해 영육의 자유함을 얻을 것을 권면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ChatGPT Image 2026년 8월 31일 오후 04_44_2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3284d66e939795ec19099c19ef3c283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aef0f1e6c98ecc8618eaadbe56de3b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416d1c76cf45c5f2e8fdf3a4688fd9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7a2d2cb3a96e206b374bbf5c6f5736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033de7da734f5bd61f8a8490ecea01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7cda3458225c95fbddf804f2a01e73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a71bee8d474e112e556dee9a7f4f65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c43f60597c602b7a103d470fcfffdf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c50c86b8098099c5e12495af91cace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1d6b39081dff06ac8de9fe0fa058d8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9ff09c24cd650c9f5d91c9b07e1c86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d9b07b72d3d9c86ede5f9fb7be1518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889eafc6b42630a7fbc1129623f83d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393844490b7419a8abbb78293eac8ea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11de7a5b4a2711306d1c58d334ec1c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Divine_Healing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75cce66b868bc98e5475b51bfaae970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질병_치유_및_영적_회복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84f5f0ac83864360298ab5172a5d8f1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6a769df76de96b493445b265e8d6b4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94756d44174b40b063c76937d46687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bfb6010abb8d967ffe9c1956333c52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327ba5c5f0404176c309fd745073ec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e48fbc66e1a1c2de43fa3dd3bfd7e84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b0f595875160063f364fba7c85a99a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61a7a50141f1ddda17aa6d75e47aaa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95a207a9590f61b165c6cae2645818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5646893e1b7b1e22dc9dfa7b77c8e6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d905744fc3e6b86441fcda657a4984b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b574084282a6bbd9c37ab5ef0a89bc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Spiritual_Restora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70db2aa1416f329f9286ea02f9c708a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질병_치유의_원리와_과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55d49e77ea48d311f510324d52003d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Anatomy_of_Spiritual_Heal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90e4e16226ad4ea7bc7b47769baeb3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Anatomy_of_Spiritual_Heal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13/265/fc9187077869b95298f6959a19e0c9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질병치유법] Anatomy_of_Spiritual_Healing.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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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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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예레미야 20:9)_2026-08-23(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4921</link>
				<description>&lt;p&gt;2026-08-23(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예레미야 20: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q3dTYiU_-M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3dTYiU_-M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0: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한마디로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주전 627년경 요시야 왕 제13년에 사역을 시작하여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다(렘 1:1-3). 나라와 성전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했으므로, 구약에서 회개의 선지자를 꼽는다면 예레미야를 빼놓을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선지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다. 하나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를 말로 예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삶으로 메시아의 길을 미리 살아 내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와 새 언약의 중보자와 새 출애굽의 인도자가 오실 것을 예언했다. 이것은 다음에 살펴볼 예언론적 측면이다. 이번에는 그가 고난받는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미리 보여 주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예표적 삶은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멸망하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둘째, 제사장과 선지자와 정치 지도자와 고향 사람들에게 거절당했다. 셋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해를 당하면서도 보복하지 않았다. 넷째, 타락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책망하며 거룩함을 회복하려 했다. 다섯째, 결혼하지 않은 채 사명의 짐을 홀로 담당했다. 여섯째, 오랜 세월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길은 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회개를 외치고 진리를 전하며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길에는 외로움과 반대와 오해가 따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라면 사람의 인정이 없더라도 준비하고 견뎌야 한다. 또한 주의 종 혼자서는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으므로 성도들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의 삶이 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지와 그의 눈물&amp;middot;거절&amp;middot;온유&amp;middot;성전 책망&amp;middot;고독&amp;middot;고난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의 삶은 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예표&amp;#39;란 훗날 나타날 더 완전한 실체를 앞서 보여 주는 인물이나 사건을 가리킨다. 예레미야가 곧 그리스도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사명과 고난 가운데 장차 오실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 주는 모습이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회개를 외쳤고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했으며 홀로 고난을 감당했다. 예수님께서도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rdquo;라고 선포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한 뒤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마 4:17; 요 1: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다. 예레미야가 회개를 외친 것처럼 필자도 회개를 외치는 사람에 속한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회개를 외친 기간은 짧게 보면 6년이요, 길게 보면 약 13년 정도 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과 비교하면 아주 짧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고 악한 영과 싸우는 자로서 필자를 부르셨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 필자는 세례 요한 마을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졌다. 세례 요한처럼 회개를 외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4년경 천국의 집이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았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사용했다는 칼을 받는 체험을 했다. 그때부터 회개를 넘어 악한 영과 싸우는 영적 전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가 비교적 초기에 썼던 『회개와 천국복음』(2017년 발행)이라는 책은 회개를 통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데 중심을 두었다. 이 책에서는 저주에서 해방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구체적인 영적 전쟁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한 영혼을 돕는 과정에서 귀신과 뱀과 귀신의 집에 관한 영적 세계가 열리면서 사역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래서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일 뿐 아니라 더욱이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법적 근거를 없애고 실제로 내보내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필자가 받은 3개월의 기초 훈련 뒤에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장교의 첫 계급에 해당하는 소위 계급을 달아 주셨다. 지금 별 네 개에 해당하는 단계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인가? 회개 없이 영적 전쟁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 시작하는 전쟁터에서 오래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전사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해 회개를 할 때에 과연 얼마만큼 회개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보니 그들에게는 그들이 쌓은 죄악에 따라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정해졌다. 이는 죄의 분량에 따라 형벌의 시간과 양도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도 예레미야의 이러한 예언을 확인한 뒤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기 죄처럼 고백하며 회개했다(렘 25:11-12; 단 9:1-19).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가문과 민족의 죄를 공의롭게 다루신다. 그러나 진실한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에는 정해진 분량을 다 채우기 전에 특별한 긍휼을 베푸시는 경우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필자는 회개의 횟수를 충분히 채워 자기 안의 모든 영을 내보낸 경우가 아니라, 진실한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귀신의 집을 파괴해 주신 특별한 긍휼을 입은 경우다. 이것은 형벌을 면제받은 특사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회개의 분량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각 사람은 자기와 조상에게서 내려온 죄들을 진실하게 자백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큼 꾸준히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죄의 분량이 가득히 차서 심판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조차 받지 않으시는 때가 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도 역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부르짖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심판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개인의 죄에 따른 영적 영향은 주로 혈통과 가문을 따라 내려오지만, 민족적 심판이 임하면 의인도 공동체의 고난을 함께 겪아야 한다. 고로 에스겔과 다니엘도 포로가 되었고 예레미야도 예루살렘의 고통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필자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종들을 해하지 말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에는 특별한 보호의 약속이 있다고 본다(계 7:1-3; 9:4).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회개할 수 있을 때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위해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족은 운명 공동체다. 가문의 죄에 따른 형벌은 혈통을 중심으로 나타나지만 전쟁과 기근과 국가적 심판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함께 닥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개인의 저주만 해결하는 사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죄악이 가득 차기 전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나라를 살리는 중보 사역이다. 하나님께서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무리를 보시고 이 민족을 마지막 시대의 복음 전파자로 사용하시기를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레미야는 멸망할 백성을 위해 어떻게 눈물을 흘렸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모형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모습은 약 6가지 정도 된다.&amp;nbsp; &lt;strong&gt;그중에 첫째 모습은 멸망할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는 것&lt;/strong&gt;이다(렘 9:1). 그는 자기 백성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며 머리가 물이 되고 눈이 눈물의 근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한두 번 감정에 북받쳐 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때까지 주야로 울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9:1 어찌하면 나의 머리는 물이 되고 나의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더 큰 아픔은 41년 동안 말씀을 전했는데도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며 함께 회개하는 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렘 5:1).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그런 사람 하나만 찾아도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지만, 백성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다(렘 5:1).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멸망을 내다보며 울어야 했으니 그의 외로움은 더욱 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애가는 그의 눈물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밤에 슬피 울어 눈물이 뺨에 흐른다고 했고, 백성의 파멸 때문에 눈이 눈물에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기절하고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애 1:2; 2:11). 또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실 때까지 자기에게서 눈물이 시내처럼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3:48-50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물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눅 19:41-44).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백성을 모으려 하셨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고, 마침내 집이 황폐해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자기 백성의 멸망을 슬퍼하신 예수님의 눈물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이렇듯 멸망으로 치닫는 자기 백성을 살리고자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렘 7:25-26).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amp;ldquo;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amp;rdquo;라고 말씀하신다(마 23:34). 필자는 두 말씀을 연결하여 구약에 선지자들을 보내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며,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의 구원 경륜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예레미야의 눈물과 예수님의 눈물은 한 분 하나님의 긍휼을 그대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삶도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어릴 때에는 무당 계열의 영이 역사하며 외로움이 많았다. 그래서 혼자 시골 수로에 가서 울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에는 약 2년 동안 예배당에 가서 예배하기만 드리면 폭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다시 4년 뒤에 군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역시 교회만 가면 눈물이 쏟아졌다. 이것은 내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자복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눈물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주의 종의 자격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이 멸망하는데도 아무런 아픔이 없고, 성도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품지 못한다면 목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말씀을 전하는 지식과 함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감상적인 슬픔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41년 동안 회개를 외치게 한 사명의 동력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에게 눈물이 필요한 까닭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고난이 올 때 사명을 포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씀을 거절하고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볼 때 가슴 아파하며 울 수 있어야 한다. 오늘 필자는 이렇게 선지자의 외침이 외면받을 수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말씀을 듣고 함께 따라오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나 감사한다. 특히 2024년 5월경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회개와 천국 복음이 널리 알려지가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기도문을 찾게 되었고, 오랫동안 준비한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여시는 것을 직접 보면서 감격하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예레미야는 누구에게 거절과 박해를 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둘째 모습은 자기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거절당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는 적어도 네 부류 종류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lt;strong&gt;첫째는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에게서&lt;/strong&gt;다. 바스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를 때리고 성전 베냐민 문 위층에 있는 나무 고랑에 채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도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었지만, 선배 제사장은 그가 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렘 1:1-2). 언약 백성과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으므로 예루살렘은 절대 망할 수 없다는 기존의 생각을 예레미야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일이 오히려 맞고 결박당할 죄처럼 취급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산다는 뜻으로 목에 나무 멍에를 메었다. 그러나 하나냐는 모든 포로가 2년 안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며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 멍에를 꺾은 대신 쇠 멍에를 메우겠다고 말씀하셨다(렘 28:10-14). 듣기 좋은 거짓 예언이 참된 경고를 배척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정치 지도자들과 시드기야 왕이&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세우신 바벨론에 항복해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은 이를 매국적인 말로 규정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 결국 지도자들은 왕의 허락을 받아 예레미야를 물 없는 구덩이에 던졌고, 그는 진창 속에 빠졌다(렘 38:4-6). 만약 그때 왕궁 내시인 구스인이었던 에벳멜렉이 그를 건져내어 시위대 뜰에 있지 않게 했다면 계속 예레미야는 진창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자신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lt;/strong&gt;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보호하기는커녕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며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1: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예수님도 역시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배척당했고, 빌라도와 헤롯 같은 정치 지도자에게 넘겨졌으며, 고향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셨다&lt;/strong&gt;(막 6:1-6; 15:1-15).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요 1:11). 예레미야가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과 고향 사람에게 거절당한 모습은 예수님의 배척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회개와 귀신론과 기존 신학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전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만류를 받았다. 방송하지 말고 자기 교회 안에서만 가르치라는 권고도 들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출신 지역이나 부모의 신분 같은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이유로 말씀을 못 듣게 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언제든지 생명의 말씀과 천국의 비밀은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예레미야는 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셋째 모습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잠잠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음모를 알려 주시기 전까지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나무와 그 열매와 함께 멸하고 이름까지 지워 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뒤에도 그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1:19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모습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과 이어진다. 왜냐하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 곤욕을 당하고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않아았으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행동하셨기 때문이다(사 5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거짓 고발과 조롱과 십자가형을 받으면서도 개인적인 보복을 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눅 23:34).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행 7:60).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해치려했던 이들을 보복하지 말고 그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가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잠잠함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 비겁함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모욕과 억울함을 갚기 위해 고소와 보복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공적인 진리는 담대하게 증언하되 사적인 상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어린양의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를 두고, 행위구원론자라고 비판하는 글을 쓰고 사역을 공격한 이가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나중에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사역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필자는 그 비판 글을 돈으로 내리게 하거나 법적 보복을 선택하지 않았다. 연락을 이어 가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을 응징하는 데 사명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억울함을 품고도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반드시 굴복시켜야 마음이 풀린다면 아직 십자가의 온유를 더 배워야 한다. 용서는 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최종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순한 어린양처럼 고난을 감당한 삶은 원수까지 용서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레미야는 타락한 성전을 어떻게 책망하고 깨끗하게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넷째 모습은 타락한 성전을 정결하게 하려 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당시 백성은 성전이 있으니 안전하다고 말하면서도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거짓 맹세와 우상숭배를 계속했다(렘 7:4-10). 성전 안팎에서는 태양과 여러 우상을 섬기는 일이 벌어졌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성전 기물을 직접 뒤엎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전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함으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려 했다. 성전이라는 건물이 죄를 가려 주는 부적이 될 수 없으며, 예배하는 백성의 삶이 거룩해야 하나님께서 그곳을 받으신다고 선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마 21:13). 그리고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함께 인용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말씀으로 책망했던 성전의 타락을 예수님은 행동으로 심판하셨다. 두 사람 모두 성전의 외형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와 거룩한 삶을 요구했다. 이 점에서 예레미야의 성전 책망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교회도 사람을 돈 버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다단계 사업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성도 관계를 이용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성도는 서로에게서 이익을 얻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섬기고 구제하며 천국을 준비하도록 돕는 지체들이다. 교회는 기도와 말씀과 회개와 사랑이 흐르는 집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도 헌금과 직분을 자기 권력과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도 역시 교회를 세상 사업의 시장으로 바꾸지 않아야 한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이 성전의 타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듯이,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레미야는 왜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명의 짐을 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다섯째 모습은 사명의 짐을 홀로 담당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거나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 곧 닥칠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부모와 자녀가 죽고 장사조차 지내지 못한 채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렘 16: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6: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독신은 결혼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가올 심판의 참혹함을 그의 삶으로 보여 주고, 가족에게 임할 고통까지 더하지 않기 위한 특별한 명령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의 위로 없이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말씀을 홀로 품어야 했다. 지도자는 때때로 아무도 대신 내려줄 수 없는 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홀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결혼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이 곁에 있었지만 십자가의 짐은 홀로 지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8:20). 아무도 예수님의 마음과 사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복음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으로 살았다(고전 7:7-8, 32-35). 그러나 모든 주의 종이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과 바울에게는 각자의 사명에 맞는 길이 주어졌다. 중요한 것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감당하는 충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배우자가 곁에서 생활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 주는 은혜에 감사한다. 설교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옷과 식사와 가정을 돌보아 주기 때문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처럼 홀로 살아야 했던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가족의 도움을 받는 주의 종은 그 섬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배우자와 동역자가 있어도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홀로 결정해야 할 순간은 남아 있다. 모두가 반대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사람의 인기와 다수의 의견에 끌려가게 된다. 예레미야의 고독은 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예레미야의 고난은 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여섯째 모습은 오랜 고난을 받으면서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는 맞고 결박당했으며 감옥과 진창 구덩이에 던져졌고, 죽음의 위협과 조롱을 반복해서 받았다. 한때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불붙는 것 같고 골수에 사무쳐 견딜 수 없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된 소명은 박수가 없을 때 드러난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때만 전하는 말씀이라면 고난이 오면 멈추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이 된다. 예레미야가 41년 동안 회개를 외칠 수 있었던 힘은 성격의 강함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사명에는 홀로 준비하는 기간이 있다. 필자도 2013년부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준비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24년 5월경부터였다. 오랜 기간 말씀을 연구하고 회개하며 방송을 계속한 뒤에야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말씀이 전달되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한순간을 위해 외로운 준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예레미야는 이 땅의 주의 종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교리가 아니라 필자가 받은 영적 체험의 내용이다. 그 체험은 주의 종의 눈물과 고난과 충성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들의 작은 섬김도 헛되지 않다. 필자는 예배와 전도와 찬양과 기도와 식당 봉사 같은 수고가 천국에서 꽃과 물고기와 새와 보석과 같은 상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아 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줄 근거를 마련하시려고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듣기만 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은사와 물질과 수고로 복음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전쟁에서는 지휘관의 판단과 군사들의 순종이 함께 중요하다. 지휘관이 어떤 작전을 세우느냐에 따라 부하들의 생명과 승패가 달라지듯이, 주의 종은 성령의 음성을 정확히 듣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성도들은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옳은지 분별하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회개로 정결해진 성도들이 함께 설 때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강한 영적 군대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도 혼자서는 마지막 사명을 완성할 수 없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주의 종은 더 정결하게 다듬어지고 말씀과 영적 싸움에 집중할 힘을 얻는다. 필자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고 영적 전사들을 세우는 길을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성도들의 중보가 있었다. 지도자는 성도를 섬기고 성도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사람이면 패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 예레미야 시대에는 그와 함께 회개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마지막 시대에는 말씀을 알아듣고 함께 회개하며 싸우는 한 무리가 세워져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그 무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과 열방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의 길은 편안함을 보장받는 길이 아니다. 눈물과 거절과 억울함과 외로움과 고난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말씀의 불을 품고, 예수님처럼 원수를 용서하며, 성전을 거룩하게 하고, 성도들과 협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삶으로 미리 보여 준 그리스도의 여섯 가지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는 멸망할 백성을 위해 울었고,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와 정치 지도자와 고향 사람들에게 거절당했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보복하지 않았다. 또한 타락한 성전을 책망하고, 결혼하지 않은 채 사명의 짐을 홀로 지며, 약 41년 동안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눈물은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예수님의 긍휼을 보여 준다. 여러 지도자와 자기 고향에게 거절당한 모습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하신 예수님을 보여 주며, 어린양처럼 잠잠했던 태도는 십자가에서 원수까지 용서하신 예수님을 보여 준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책망한 말씀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의 행동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독신과 고독은 십자가의 짐을 홀로 지신 예수님의 길을 바라보게 한다. 그의 오랜 고난과 마음속 말씀의 불은 참된 주의 종이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개인적인 영적 체험과 계급과 천국의 상급에 관한 내용은 성경의 직접 진술과 구별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개와 충성과 섬김을 기억하신다는 목회적 교훈을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도 눈물과 담대함과 온유와 거룩함과 인내가 필요하다. 진리를 전할 때에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지만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보복해서는 안 된다. 교회를 사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고독과 준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 영적 전쟁에 앞서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사명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주의 종은 성도를 생명 다해 섬기고, 성도는 기도와 봉사와 물질과 은사로 함께해야 한다. 각자의 작은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대한민국과 열방을 살리는 회개와 천국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불로 품고 예수님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서로 협력하여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눈물과 회개와 충성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열방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amp;nbsp;&lt;strong&gt;예레미야 선지자&lt;/strong&gt;가 고난 가득한 삶을 통해 어떻게 장차 오실&amp;nbsp;&lt;strong&gt;메시야의 삶을 예표&lt;/strong&gt;했는지 고찰하는 설교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를 &amp;#39;눈물과 회개의 선지자&amp;#39;로 정의하며, 그가 멸망해가는 민족을 보며 흘린&amp;nbsp;&lt;strong&gt;눈물&lt;/strong&gt;, 동족으로부터 당한&amp;nbsp;&lt;strong&gt;거절과 핍박&lt;/strong&gt;,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amp;nbsp;&lt;strong&gt;인내&lt;/strong&gt;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평행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성전을 정화하려 했던 외침이나 고독한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행적을 통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모형&lt;/strong&gt;으로서의 선지자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 오늘날의 사역자들 또한 이러한&amp;nbsp;&lt;strong&gt;회개의 사명&lt;/strong&gt;을 이어받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족을 살리는&amp;nbsp;&lt;strong&gt;영적 전사&lt;/strong&gt;의 길을 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ChatGPT Image 2026년 8월 24일 오후 03_50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d4a1f22c78fb05c5cd81712f37c3bf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542f9ba1ee5670ead7577b98d47fe5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04f2520f6d671ab49582b0caca5ef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4cc0db122986b23e03dcf9d604af55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b69cd1c23f678ffc34df40d26d51ca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fda48e77a177b2c734e58f60beebb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09ad2b0ad1037f939ccb9e889009ca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38d1ecb54999c30434e35b629d2f3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2692d4aec3e05617eed66fcf438403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46007a133e222cc5b11a8cdf1a9201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a88954311a2de7467f4ec22c3c314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171fe3aa3e257fef7e24f263564f81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64d54c627584ce7712190ec2fae19e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의메시야적인삶] 메시야를_예표하는_선지자_예레미야의_삶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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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6667145050ca4babb693b9e6aa1ab9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087da5aedcb2271d45309811acb47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be2d133bd3ea242387682ec523961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2bf325830436926c951f26e57a5a6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a9590e7a1686dbf85396e8ade0123b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eb832fde20e87aa59c955f90da133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923acad44a0b8a6b64c5b2c5774909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713441eec303dd087872dac293ce6d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a1a9736e8da2b6ec79faf752f87bd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e1f7106b6e7f33a94f47dbe7899e11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4921</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4921#comment</comments>			<pubDate>Mon, 24 Aug 2026 01:34:56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66)] 에스겔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그는 대체 누구신가? (에스겔 34:11~31)_2026-08-1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4484</link>
				<description>&lt;p&gt;2026-08-16(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66)] 에스겔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그는 대체 누구신가? (에스겔 34:11~3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LAk9AZfKr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LAk9AZfKr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6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에스겔서에 나오는 그리스도,&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는 대체 누구신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34:11-3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매우 풍성하게 예언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열 가지, 사역에 관하여도 열 가지가량을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에스겔서에서 확인되는 그리스도의 인격은 네 가지 정도다.&amp;nbsp; 물론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숫자는 비록 적지만 이사야가 자세히 말하지 않은 영역을 압도적인 분량과 깊이로 보여 주므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를 공부할 때에는 그분이 누구신가 하는 인격과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는 사역을 구별해야 한다. 이번에는 사역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에 집중하여 살펴볼 것이다. 에스겔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lt;strong&gt;참목자, 다윗 왕,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 참성전&lt;/strong&gt;으로 계시한다. 이 네 모습은 서로 떨어진 항목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와 통치와 임재를 단계적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그리스도는 흩어진 양을 찾고 먹이며 지키는 참목자&lt;/strong&gt;이시다. &lt;strong&gt;둘째, 그 목자는 다윗처럼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고 만물을 다스리는 영원한 왕&lt;/strong&gt;이시다. &lt;strong&gt;셋째,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하나님의 형상&lt;/strong&gt;이시다. &lt;strong&gt;넷째, 하나님이 실제로 거하시는 참성전&lt;/strong&gt;이시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한 일이 신약의 예수님에게서 성취되는 것을 보면, 여호와와 예수님이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진리는 성도의 신분과 삶에도 직접 연결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양이면서 동시에 다른 영혼을 돌보는 목자로 부름받을 수 있고, 끝까지 이기면 왕과 제사장의 신분을 얻는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안다는 것은 교리 지식을 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의 생명을 받고, 그분의 성품과 사역을 따라가며,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성전으로 자신을 준비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심판 한가운데에서 회복의 길을 연다. 거짓 목자들이 양 떼를 버려 흩어지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을 찾고 한 목자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죄악으로 가득한 성전을 떠났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임하여 그 성읍을 &amp;lsquo;여호와 삼마&amp;rsquo;라고 부르게 하신다. 심판에서 목자와 왕과 영광과 성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에스겔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의 네 가지 인격이 우리의 구원과 천국 준비에 무엇을 요구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에스겔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신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는 크게 &lt;strong&gt;심판과 회복&lt;/strong&gt;으로 나눌 수 있다. &lt;strong&gt;1장부터 3장까지는 에스겔의 소명&lt;/strong&gt;이고, &lt;strong&gt;4장부터 24장까지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lt;/strong&gt;이며, &lt;strong&gt;25장부터 32장까지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일곱 이방 나라의 심판&lt;/strong&gt;이다. 이어 &lt;strong&gt;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lt;/strong&gt;을 다룬다. 그중 &lt;strong&gt;33장부터 39장까지는 민족의 회복&lt;/strong&gt;을 말하고, &lt;strong&gt;40장부터 48장까지는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lt;/strong&gt;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에는 한 목자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양들을 찾아 본토로 데려오고 좋은 꼴을 먹이며 안전히 눕게 하겠다고 하셨다(겔 34:11-16). 그리고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할 것인데 그가 하나님의 종 다윗이라고 말씀하셨다(겔 34:11-15, 23). 역사적인 다윗은 이미 죽었고 인간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환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차 올 다윗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 10: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목자는 단지 양 떼를 돌보는 종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은 &amp;ldquo;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amp;rdquo;라고 하셨고, 그가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겔 34:24, 37:24-25).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육신으로 오셨으나 동시에 다윗의 뿌리이시다. 그분은 다윗 이후에 태어난 자손이면서 다윗을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이므로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는 두 신분을 함께 가지신다(계 2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7:24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6&amp;nbsp;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처음 소명을 받을 때 본 보좌 환상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네 생물과 바퀴와 궁창 위에 보좌가 있었고, 그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이 앉아 있었다. 그의 허리 위와 아래에서는 불과 광채가 나타났고 사방에는 무지개 같은 빛이 있었다. 에스겔은 이를 &amp;ldquo;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amp;rdquo;이라고 기록하였다(겔 1:26-28).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사람 같은 형상으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의 표현으로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에스겔은 새 성전의 환상을 보았다.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장소다. 에스겔서의 마지막은 새 성읍의 이름을 &amp;lsquo;여호와 삼마&amp;rsquo;,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고 부르며 끝난다(겔 48:35).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하셨고, 성령을 받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며,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어린양 자체가 성전이 된다(요 2:21, 고전 3:16, 계 21:2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에스겔이 계시한 네 모습은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lt;strong&gt;예수님은 양을 찾고 먹이며 목숨을 버리는 참목자&lt;/strong&gt;이시고, &lt;strong&gt;다윗의 왕권을 완성하는 영원한 왕&lt;/strong&gt;이시며, &lt;strong&gt;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분&lt;/strong&gt;이시고, &lt;strong&gt;하나님이 실제로 거하시는 참성전&lt;/strong&gt;이시다. 이 네 인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인간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자는 그분의 사랑과 돌봄을, 왕은 통치와 권세를, 영광의 형상은 신적 존재와 계시를, 성전은 임재와 생명의 나눔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어느 한 면만 붙들어서는 그분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우리를 품으시는 목자를 믿는 동시에 우리를 다스리는 왕께 순종하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왜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는 참목자이신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4장은 먼저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을 책망한다. 그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만 먹었으며,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고 상한 자를 싸매지 않았다.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거나 잃어버린 자를 찾지도 않았다. 그 결과 양들은 목자가 없어 흩어졌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겔 34:2-6). 하나님은 이러한 목자들에게서 양들을 건져 내겠다고 선언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목자가 하시는 &lt;strong&gt;첫째 일은 잃은 양을 찾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목자가 흩어진 양 가운데서 자기 양을 찾듯 흐리고 캄캄한 날에 흩어진 모든 곳에서 양들을 찾아 건져 내겠다고 하셨다(겔 34:11-12). 예수님은 이 약속을 잃은 양의 비유로 풀어 주셨다. 양 백 마리 가운데 하나를 잃은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찾을 때까지 다니며, 찾은 뒤에는 어깨에 메고 돌아와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한다(눅 15:4-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영혼을 찾는 기쁨은 그 양의 물질적 값보다 크다. 잃은 양 하나를 찾고 잔치를 벌이면 잔치 비용이 양의 값보다 더 들 수 있지만 목자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상과 무당과 세상을 좇아 주님을 떠난 한 사람을 찾아 돌아오게 하실 때 크게 기뻐하신다. 구원은 사람을 숫자로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잃은 자를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일은 양을 좋은 꼴로 먹이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아 본토로 데려오고, 이스라엘 산 위의 좋은 꼴과 살진 꼴을 먹이겠다고 하셨다(겔 34:13-14). 참목자는 말씀의 생명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하여 양들이 영적으로 마르지 않게 한다. 얕고 반복적인 말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어떻게 구원받고 회개하며 천국을 준비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일은 양을 안전히 눕게 하고 보호하는 것&lt;/strong&gt;이다. 푸른 풀과 물을 충분히 먹은 양이 안심하고 눕는 것은 목자가 주변의 위험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신다고 노래하였다(시 23:1-4). 참목자는 이리와 사자가 양을 물어 가려 할 때 달아나지 않고 맞서 싸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일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삯꾼은 양이 자기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면 버리고 달아나지만, 예수님은 양을 알고 양도 그분을 알며 끝까지 지키신다(요 10:11-15). 십자가는 참목자의 사랑이 말에 머물지 않고 생명을 내어 준 사건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도 이 참목자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각오 없이 직업처럼 사역하면 이리가 올 때 도망하는 삯꾼이 된다. 말씀으로 양을 먹이고, 악한 영에게 붙잡힌 자를 건져 내며, 병들고 상한 영혼을 돌보고, 자기의 편안함보다 양 떼의 생명을 앞세워야 한다. 목자의 크기는 교회의 외형이 아니라 양을 위하여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느냐로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왜 예수님은 다윗으로 오신 영원한 왕이신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흩어진 양들을 위하여 세울 한 목자를 &lt;strong&gt;&amp;lsquo;내 종 다윗&amp;rsquo;이라고 부르셨고, 그가 그들 가운데 왕이 될 것&lt;/strong&gt;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에스겔 37장에서는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고 모두가 한 목자에게 속하며, 그와 그의 자손이 땅에 영원히 거하고 다윗이 영원히 왕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겔 37:24-25). 이는 죽은 다윗이 환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언약을 완성할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다윗 시대에 주변의 대적을 이기고 태평성대를 누렸다. 다윗 이후 나라가 분열되고 멸망하자 백성은 다시 다윗 같은 왕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세 차례에 걸쳐 귀환한 뒤에도 에스겔의 약속을 완성할 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말라기 이후 오랜 침묵을 지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태복음은 그분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고, 족보를 다윗과 연결하여 메시야 왕의 도래를 증언한다(마 1: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면서 다윗의 뿌리다(계 22:16).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셨지만 존재로는 다윗보다 먼저 계셨고 다윗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amp;ldquo;다윗의 뿌리요 자손&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의 언약이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왕권으로 완성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왕은 누구인가? 그는 다스리는 존재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과 영적 세계뿐 아니라 자연계까지 다스리셨다. 귀신에게 명령하여 떠나가게 하셨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으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씀으로 마르게 하셨다(막 1:25-27, 4:39-41, 11:20-21). 그분은 한 나라의 정치적 왕이 아니라 영계와 자연계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다윗 왕의 위대함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놓은 데에도 있다. 인구 조사 뒤 전염병으로 백성이 죽어 갈 때 다윗은 죄를 범한 사람은 자신이니 자기와 아버지의 집을 치고 양 같은 백성은 살려 달라고 간구하였다(삼하 24:17). 참된 왕은 백성을 착취하여 자기를 높이지 않고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예수님은 이 다윗의 마음을 완전하게 이루어 자기 생명을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기는 자도 장차 천국에서 왕의 직분을 받게 될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섬기는 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상속자가 된다(히 1:5, 14, 롬 8:15-17). 천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되었고 성도는 아들의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을 자로 부름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왕이 되려는 사람은 이 땅에서 먼저 종처럼 섬겨야 한다. 교만하여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이면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한 길을 반복하게 된다. 생명을 받은 뒤에도 죄와 교만을 붙들고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성도는 높은 지위보다 희생과 섬김을 먼저 배우고, 날마다 회개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며, 작은 일에 충성함으로 왕의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보좌 위 사람 같은 형상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계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소명을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네 생물과 바퀴와 궁창이 나타났다. 네 생물의 머리 위 궁창에는 남보석 같은 보좌의 형상이 있었고, 그 보좌 위에는 &lt;strong&gt;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lt;/strong&gt;이 앉아 있었다. 그의 허리 위는 단 쇠 곧 불 가운데 빛나는 금속 같았고, 허리 아래는 불 같았으며, 사방에는 비 오는 날 구름 속 무지개 같은 광채가 있었다(겔 1:26-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그 모습을 여호와 자체를 완전히 보았다고 표현하지 않고&lt;strong&gt; &amp;lsquo;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amp;rsquo;&lt;/strong&gt;이라고 기록한다. &lt;strong&gt;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형상과 광채로 당신을 나타내신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두 천사와 함께 음식을 드신 적도 있다(창 18장).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사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내시는 것은 성육신을 미리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은 그리스도를 &amp;#39;하나님의 형상&amp;#39;이라고 선언한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고후 4: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며, 그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요 14:9, 고후 4: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본 허리 아래의 불은 심판의 성격을 드러낸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은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들여놓고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불 심판을 앞두고 있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피 흘릴 어린양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악을 심판하는 왕으로 오신다.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회개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구원이 되지만, 끝까지 거역하는 자에게는 불의 심판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도 요한도 에스겔과 비슷한 하늘 보좌 환상&lt;/strong&gt;을 보았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 주위의 무지개, 눈이 가득한 네 생물, 보좌 앞에 엎드리는 스물네 장로가 나타난다(계 4:2-11). 에스겔의 네 생물은 그룹으로 확인되며 네 날개를 지녔지만,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은 여섯 날개를 가진다(겔 10:20-21, 계 4:8). 필자는 신약 시대에 악한 세력들과 맞서도록 이 생물들의 권세를 하나님께서 더 높여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중요한 것은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보좌에 앉으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를 경배한다는 사실이다. 보좌는 온 우주를 다스리고 심판하는 자리이며, 그 위의 사람 같은 형상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심판권을 행사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에스겔의 환상은 예수님이 단지 땅에 오신 사람이 아니라 하늘 보좌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여호와와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신 근거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4장에서 여호와는 &amp;ldquo;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amp;rdquo;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같은 장에서 하나님은 한 목자 곧 다윗을 세워 양들을 먹이게 하겠다고 하신다.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amp;ldquo;나는 선한 목자라&amp;rdquo;라고 선언하신다(겔 34:15, 23, 요 10:11). 구약에서 여호와가 하시겠다고 한 목자의 일을 신약에서 예수님이 행하셨다. 이는 두 분이 따로 목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고, 신약에 사람으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다. 여호와를 아버지 한 분의 이름으로, 예수를 그와 분리된 아들 한 분의 이름으로만 나누면 에스겔의 예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친히 목자가 되신다는 말씀과 다윗 같은 목자가 오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보좌 환상도 같은 사실을 증언한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amp;#39;보좌에 앉으신 이&amp;#39;는 스물네 장로의 경배를 받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크고 흰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이 나온다. 그때 죽은 자들이 그에게 심판을 받는다. 그럼, 이때 보좌에 앉으신 이는 누구인가?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며, 인자됨으로 심판하는 권한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요 5:22, 27). 그러므로 백보좌에서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원래 주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에 이기신 예수님이 앉아 심판하신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기는 자가 되셨고,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완성하신 뒤 보좌의 통치와 심판을 수행하신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께 &amp;ldquo;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amp;rdquo;라고 고백한 것도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요 20: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스가랴는 여호와께서 성도들과 함께 오실 것을 예언하지만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말한다(슥 14:5, 살전 3:13). 구약에서 여호와의 재림으로 약속된 사건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여호와는 창조주와 목자와 왕과 심판자이신데, 예수님도 창조주와 목자와 만왕의 왕과 심판자로 나타난다. 동일한 신적 사역과 이름과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피조된 천사나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로 믿지 않는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어 오셨고, 자기 피로 죄를 속량하셨으며, 부활하고 승천하여 보좌에 앉으셨다(계 3:2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자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해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의 속죄와 통치와 재림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참성전은 예수님과 교회와 새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며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장소다. 모세 시대에는 하늘의 모형을 따라 성막을 지었고,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다(출 25:8-9, 40). 성전의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악을 행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났고, 바벨론 군대가 B.C.586년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였다(겔 10:18-19, 왕하 25:8-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바벨론이 가져간 성전 기물의 목록에는 언약궤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약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있다. 에티오피아에 보존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멸망 전에 골고다 아래로 전해지는 예레미야 동굴에 감추었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지만, 성경은 언약궤의 최종 위치를 직접 밝히지 않으므로 이를 확정된 교리로 단정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 뒤 B.C.516년 스룹바벨 성전이 지어졌고, 헤롯 대왕이 이를 크게 증축하여 예수님 시대의 헤롯 성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성전 지성소에 옛 언약궤가 있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건물 성전을 무시하지 않으셨지만, 성전의 참된 실체가 자신임을 밝히셨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성전 된 자기 육체와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 말씀이었다(요 2:19-2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셨다. 그분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요 14:6, 9-10). 그러므로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을 만나려면 건물만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와야 했다. 에스겔이 마지막에 말한 &amp;lsquo;여호와 삼마&amp;rsquo;,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는 성전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속죄 제사를 드리고 부활하신 뒤에는 성령을 보내어 믿는 자들 안에 거하게 하셨다. 이제 성도의 몸과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가 특정 건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 안으로 확장되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므로 우리도 &amp;lsquo;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는&amp;rsquo; 여호와 삼마의 성전이 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교회&amp;#39;는 참성전의 일시적인 맛보기이며 완전한 성취는 &amp;#39;새 예루살렘&amp;#39;에서 나타난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 안에서 별도의 성전을 보지 못했는데,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기 때문이다(계 21:22). 모형의 성막과 건물 성전은 사라지고 하나님과 어린양 자체가 영원한 성전이 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과 아픔과 눈물 없이 영원히 살아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lt;strong&gt;참성전은 세 단계로&lt;/strong&gt; 드러난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lt;/strong&gt;가 성전이다. &lt;strong&gt;둘째,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신 성령을 모신 성도와 교회&lt;/strong&gt;가 성전이다. &lt;strong&gt;셋째,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주 하나님과 어린양&lt;/strong&gt;이 영원한 성전이다. 에스겔의 새 성전 예언도 지상의 건축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 천국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성전 된 우리는 어떻게 거룩함과 천국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을 모신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자기 몸과 영혼을 &lt;strong&gt;죄에게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lt;/strong&gt;.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므로 성도도 거룩해야 한다(고전 3:16-17). 예수님을 한 번 믿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계속 죄를 지으면서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도 교만과 죄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계 3:5, 22:15)&lt;/strong&gt;. 천사장도 자유의지로 교만을 선택하여 타락하였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 자유의지로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성령과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다시 일어날 길을 열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날마다 회개하여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께서 몸과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다스리게 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가 회개하지 않은 채 큰 권세와 명성을 얻으면 악한 영이 주는 교만에 빠져 자기를 높이고 양 떼를 자기 소유처럼 다룰 수 있다. 참목자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amp;nbsp;&lt;strong&gt;주의 종은 양 떼를 먹이고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lt;/strong&gt; 한다. 말씀을 준비하고 영혼을 돌보고 악한 영과 싸우며 필요한 모든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피곤함과 편안함을 앞세워 양을 버리면 삯꾼이 된다. 필자는 말씀과 축사와 책 집필과 영상 사역을 감당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고, 많은 성도와 외부의 동역자들이 기도와 물질로 이를 돕고 있다. 이러한 사랑과 중보를 힘입어 회개와 천국복음을 끝까지 전하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지금 우리 동탄명성교회에 맡겨진 촛대도 귀하게 지켜야 한다. 에스겔 성전의 예언이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지상의 건물로 완성되지 못했듯,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도 합당하게 감당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교회로 옮겨질 수 있다. 동탄명성교회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도록 받은 사명을 두려움 때문에 감추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전하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 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의 복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대가로 마련되어 있다. 배표에 선상 식사 비용까지 포함된 줄 모르고 크루즈 안에서 굶은 사람처럼, 예수님이 값 주고 마련하신 천국의 풍성함을 알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성에 들어가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두루마기를 빨며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 안에는 근심과 눈물과 아픔이 없고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양으로서 참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로 부름받은 자리에서는 영혼을 먹이고 보호해야 한다. 또한 다윗 왕이신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을 따라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성령이 거하시는 몸을 죄로 더럽히지 않으며, 회개와 충성으로 천국의 왕과 제사장 직분을 준비해야 한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네 가지 풍성한 인격이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가 &lt;strong&gt;참목자와 다윗 왕과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과 참성전&lt;/strong&gt;이심을 살펴보았다. 에스겔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네 가지로 계시하였고, 신약은 그 모든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친히 하겠다고 하신 목양과 통치와 심판과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고 좋은 꼴로 먹이며 안전하게 지키고 마침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참목자이시다. 또한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오셔서 영계와 자연계와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영원한 왕이시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도 이 땅에서 섬기고 충성하여 이기는 자가 될 때 천국에서 왕과 제사장의 신분과 기업을 받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여호와의 영광을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분이다. 주 하나님의 보좌에서 심판권을 행사하시는 분도 예수님이다.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는 서로 분리된 두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자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참성전의 실체도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었고, 성령을 받은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며, 새 예루살렘에서는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영원한 성전이 된다&lt;/strong&gt;. 건물의 화려함보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지가 중요하다. 성전 된 우리는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통치를 받아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네 이름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참목자의 사랑으로 영혼을 돌보고, 다윗 왕의 희생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삶으로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거하실 성전으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 분 하나님으로 온전히 믿고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업을 누리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7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에스겔서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네 가지 핵심 영역으로 분석하여 그 영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본문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잃어버린 양을 찾아 풍성히 먹이고 보호하는&amp;nbsp;&lt;strong&gt;참된 목자&lt;/strong&gt;이자,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통치하는&amp;nbsp;&lt;strong&gt;다윗왕&lt;/strong&gt;으로 정의합니다. 또한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보좌의 형상을 통해 그리스도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영광을 가시적으로 표현&lt;/strong&gt;하는 분임을 강조하며, 구약의 여호와가 곧 신약의 예수라는 일체성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amp;nbsp;&lt;strong&gt;참된 성전&lt;/strong&gt;의 실체이며, 이 성전 개념이 오늘날의 교회와 미래의 천국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삶을 회복하고&amp;nbsp;&lt;strong&gt;하늘의 생명&lt;/strong&gt;을 풍성히 누리도록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ChatGPT Image 2026년 8월 17일 오후 09_59_2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f1bec880d257a32a6b343d510e17721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a1053cc3e286978753c4ef820ae04e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e112bf87d4f51788c40f59b7949ab9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a3a0009ab40aacaeffcbe8da120481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7578d142ffa84f91a561124245cea2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e1a3cf20ae2b5ae130b444240a91f7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0ee52d283bdf953bc6bcaaf9324ec6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6f2e20d26429b7558cb7790e0d6fa9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8b1e8d82db71c761bdad987f5edbe4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49bc439cd08e539d570021531ff6673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9d21226ea080f5c24150035a5ed055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92cf85817d3014b7793fa0a85213e0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da7d65ad529adf555a5edc115f3828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d2fe52a478d0c9b584d857d6c1f831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f43236773b7ba8ed5326f6321fccbbd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_s_Divine_Blueprint_of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317aa0439bf72cf1409ae4b240f5c9e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에스겔서_속_예수의_4가지_인격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c0bd029ec17c57259449d7190fe22eb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s_Divin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15a6725dc3609cbdaeefa5d3b314f1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s_Divin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951bf1f9e5db9628dcd23e4fae2c26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s_Divin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5ce47bd0b93d4d3923743dc94f9156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s_Divin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484/264/7696004e8a0c44f531384431c6aca2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6)] Ezekiel’s_Divin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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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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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item>
			<title>[기독론(159)] 이사야의 예언(19)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2)(사35:5~10)_2026-08-0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4007</link>
				<description>&lt;p&gt;2026-08-09(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59)] 이사야의 예언(19)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2)(사35:5~1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ZhQjBxs6clQ&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hQjBxs6cl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5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사 35:5-10)&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놀랍도록 풍성하게 예언하였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사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다. 둘째,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다. 셋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 넷째,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하신다. 다섯째,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 여섯째, 인류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다. 일곱째, 죽으시고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가신다. 여덟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다. 아홉째, 성령을 보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신다. 열째,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영원한 왕국을 세우신다. 이 열 가지는 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경륜을 완성하는 메시야의 연속된 사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사역은 단지 이천 년 전 한 인물이 행한 위대한 업적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 7:24-25). 세상의 위인들은 교훈을 남기지만 그들의 인격 자체가 오늘 우리 안에 들어와 동시에 역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배울수록 그분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는 교회에서 많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예수님 자체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한이 있었다. 어떤 사건을 놓고 열심히 기도하여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목회자를 잘 대접하여 형통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시는지는 충분히 듣지 못했다. 사실 세상적인 성공을 이룬다고 해서 내 삶에 저주를 주고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하늘에 보화가 쌓이는 참된 복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고 반복해서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 채워진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분노가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예수께서 친히 일하시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임을 확인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자기 혈기와 분노부터 쏟아내지 않는다. 그의 안에 가득한 예수님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하신다. 잘 차려진 음식을 잠시 먹듯 남이 받은 은혜만 소비해서는 말씀이 삶의 좌표가 되기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직접 배우고 믿어야 그 말씀이 내 것이 되고, 내 인격과 선택을 움직이는 실제가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를 주며, 그 은혜를 어떻게 실제로 누려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처녀 탄생과 성령의 기름부음은 어떤 은혜를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첫째 사역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징조를 선포하면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마 1:22-23). 장차 태어날 아기는 단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까닭은 &lt;strong&gt;인류의 속죄를 위한 흠 없는 제물이 되시기 위함&lt;/strong&gt;이다(벧전 1:18-19). 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 아래 태어나 죄의 영향을 받지만, 예수께서는 남자의 씨를 통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리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수 있었다. 석가모니나 무함마드나 공자나 간디와 예수님을 같은 차원의 스승으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훌륭한 교훈을 남긴 인간이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오신 임마누엘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둘째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영은 여호와의 영이요,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사 11:1-2). 이는 한 성령께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 경외의 풍성한 능력으로 메시야 위에 임하신다는 뜻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예언은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취되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고,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마 3:16, 행 10:38). 그 뒤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메시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나타내기 위한 능력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복음 전파와 마귀에게서의 해방은 무엇을 이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셋째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신 종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61:1-2).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신 뒤 &amp;ldquo;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amp;rdquo;라고 선포하셨다(눅 4:16-21).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희년의 선포자요 은혜의 해를 가져온 메시야임을 밝히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복음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형통하는 방법만을 전하는 소식이 아니다. 악한 영이 떠나가고, 하늘에 보화가 쌓이며, 예수께서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는 소식이다. 복음은 죄 사함을 주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은 사람은 잠시 감동하여 눈물만 흘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좌표로 삼아야 한다. 그때 복음은 이미 요리된 음식을 한 번 받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영혼을 살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생명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넷째 사역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는 것&lt;/strong&gt;이다. 성경의 큰 흐름에는 세 번의 탈출이 있다. 첫째는 바로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사건이다. 둘째는 느부갓네살과 바벨론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건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과 마귀의 권세에서 탈출하는 사건이다. 구약의 두 탈출은 신약에서 이루어질 영적 해방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다. 예수님은 사탄 자체로부터 사람을 풀어 주시는 참된 해방자로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가 눈먼 자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고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42:7). 이는 정치적 포로의 석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죄와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영적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을 빛으로 이끌어 내는 사역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치신 사건은 이러한 해방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성경은 그 여인을 &amp;ldquo;귀신 들려 앓으며&amp;rdquo;라고 기록하고, 예수께서는 그가 &amp;ldquo;사탄에게 매인 바&amp;rdquo; 되었다고 밝히셨다(눅 13:11,16). 예수께서 &amp;ldquo;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amp;rdquo;라고 선포하시고 안수하시자 여인이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노했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이야말로 사탄의 매임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풀어 주는 날임을 가르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3: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허리 질환이나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여인의 경우에는 성경 자체가 사탄의 매임을 원인으로 밝힌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증상만 다루어서는 해결되지 않는 영적 원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을 억압하는 악한 영을 끊어 내고 몸까지 온전하게 하신다. 복음 전파와 귀신으로부터의 해방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선포되는 곳에서 포로가 자유를 얻고, 흑암에 앉은 자가 빛으로 나오며, 하나님의 자녀가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메시아는 병든 자를 어떻게 치료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다섯째 사역은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오실 때 맹인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뛰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35:5-6). 이는 구원이 영혼의 죄 사함에만 머물지 않고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는 육체에도 하나님의 회복이 임한다는 약속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amp;ldquo;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amp;rdquo;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논쟁적인 설명보다 자신을 통하여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전하게 하셨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못 듣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이다(마 11:4-5). 이 답변은 이사야 35장과 61장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사야의 목록에 나병 환자의 정결과 죽은 자의 살아남까지 더해져 메시야의 치료 사역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났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렇듯 예수님의 치료에는 육체와 영혼과 영적 세계를 함께 보는 통전성이 있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직접 고치셨으며, 어떤 경우에는 먼저 귀신을 쫓아내신 뒤 병을 치료하셨다(마 8:16-17). 그러므로 병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붙잡지 말고, 회개해야 할 죄가 있는지 살피며, 질병에 영향을 주는 악한 영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가게 해야 한다. 다만 모든 질병을 귀신 들림이라고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구별하듯 육체의 연약함과 영적 억압을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병 고침은 사람의 능력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치료를 구할 때에는 병만 바라보지 말고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와 회개와 죄 사함과 악한 영으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 은혜는 어떻게 누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여섯째 사역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는 것&lt;/strong&gt;이다. 모든 사람은 양처럼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6).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죄의 책임은 죄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셔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만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도 담당하셨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으며, 우리의 범죄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았다고 예언하였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는다(사 53:4-5).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것에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앞길 막힘과 정신적인 상처를 포함한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은 우연한 처형 방식이 아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말한다(신 21:2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옷 벗김과 조롱을 당하시고, 모든 제자에게 버림받으신 고난에는 우리의 범죄와 질병과 가난과 수치와 막힘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는 뜻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께서 저주를 담당하셨는데도 믿는 사람에게 질병과 가난과 여러 막힘이 남아 있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믿고 있다고 반복해서 선포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차려진 밥도 사람이 떠먹어야 자기 몸의 영양이 된다. 이와 같이 십자가에서 완성된 은혜가 &lt;strong&gt;삶의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lt;/strong&gt;하다. 예수의 피는 죄를 깨끗하게 하며,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한다(요일 1:7,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한때 &amp;ldquo;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는 나음을 받았다&amp;rdquo;, &amp;ldquo;나는 병에서 놓임을 받았다&amp;rdquo;라고 거듭 선포하였다. 말씀을 믿고 환경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선포만으로 병과 가난의 문제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회개기도문을 만나 죄를 자백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악한 영이 붙어 있을 근거를 예수의 피로 처리한 뒤 그 영을 내보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회개를 실천하면서 피곤할 때에도 예전처럼 병에 쉽게 붙잡히지 않는 실제적인 변화를 확인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며, 죄를 통하여 악한 영이 사람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근거를 얻는다(요일 3:8). 조상의 우상숭배와 개인이 지은 죄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에 영향을 주는 악한 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악한 영에게 무조건 나가라고 명령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들어올 때 죄라는 합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들어왔으므로, 나갈 때에도 그 근거가 예수의 피로 처리되어야 한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악한 영이 붙어 있을 법적 근거가 제거된다. 그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병을 놓고 떠나가라고 명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죄의 담당과 저주의 제거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속죄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백 퍼센트 이루신다. 인간은 자기 공로로 죄값을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로 들어온 저주가 실제로 떠나가게 하는 과정에는 믿는 자의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이는 십자가의 완전성을 보충하는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준비된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통로다. 그러므로 &amp;ldquo;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다&amp;rdquo;는 말씀을 믿고 선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회개기도문을 통하여 실제로 질병과 저주의 세력이 약해지고 떠나가는 원리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죽음&amp;middot;음부&amp;middot;부활&amp;middot;승천은 무엇을 성취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일곱째 사역은 죽으시고 장사되어(무덤에 묻히시어) 음부까지 내려가시는 것&lt;/strong&gt;이며, &lt;strong&gt;여덟째 사역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한 죽음이 아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받을 사망의 값을 지불하신 죽음이다(고후 5:14). 장사되었다는 것은 그 죽음이 실제였음을 보여 주며,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죄의 삯인 사망을 끝까지 담당하셨음을 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이 죄 가운데 죽으면 사망 뒤에 음부가 따라와 그 영혼을 삼킨다(계 6:8). 예수님도 실제로 죽으셨으므로 음부가 삼켰다. 그러나 음부는 예수님을 계속 붙들어 둘 수 없었다. 음부가 붙들 수 있는 근거는 죄인데, 예수님에게는 자기 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한 죽음이었고, 그분 자신은 거룩하고 흠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음부는 사흘 만에 예수님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6: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도 하나님께서 주의 거룩한 자를 음부에 버리지 않고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예언하였다(시 16:10-11). 베드로는 오순절에 이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에 적용하였다(행 2:25-32).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기 때문이다(마 16: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6:10-11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은 예수께 죄가 없었다는 하나님의 확증이며, 그 죽음이 우리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 15: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밝힌다(고후 5: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곧바로 하늘로 떠나지 않고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셨다(행 1:3). 도마에게는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믿으라고 하셨다(요 20:24-29). 제자들이 본 분은 영으로만 나타난 환상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몸으로 살아나신 바로 그 예수님이었다. 여러 차례 나타나신 부활의 증언은 우리가 믿는 복음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확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형통하며 받들어 높이 들려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2:13). 이는 고난받는 종이 죽음에 머물지 않고 부활하여 승천하며 높임받을 것을 가리킨다.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 보좌에 앉아 왕으로 다스리시고,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믿는 자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2: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승천의 능력은 장차 하늘에 올라갈 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지금 우리를 현실의 웅덩이와 사탄의 억압 위로 끌어올리는 능력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높은 곳에 세우신다고 고백하였다(시 18:33). 사탄이 공격하고 환경이 어려워도 거기에 매여 좌절과 낙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소망을 품고 다시 뛰어오르게 하는 것이 부활과 승천의 능력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8: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성령으로 창조된 새로운 백성은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아홉째 사역은 부활하고 승천한 뒤 성령을 보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모든 자녀가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며 그들에게 큰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4:13). 이 약속은 혈통으로만 구별되는 한 민족을 넘어, 성령께서 안에 거하시고 직접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본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amp;ldquo;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amp;rdquo;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요 20:19-22). 승천하시기 전에는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육체로 계시는 예수님은 한 장소에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만, 보혜사 성령으로 오시면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동시에 그분을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요 16:7). 예수님은 승천하신 뒤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사람을 산출하신다(고전 15: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가 교회다. 교회는 건물이나 종교 조직이기 전에 예수의 생명을 받고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 믿는 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4:26, 16:8-13).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은 사람의 지혜나 제도에 있지 않고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오시기 전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언약 밖에 있었고 유대인에게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막힌 담을 허무셨고, 부활하신 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엡 2:14-19, 마 28:18-20).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한계, 남자와 여자의 차별, 신분과 민족의 장벽은 구원의 자격을 결정하지 못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이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로운 백성에게는 새로운 사명도 주어진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자신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 28:18-20). 처음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셨던 단계에서 이제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 선교가 열린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장벽이 철폐되었기에 우리 같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다시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백성은 단지 천국에 들어갈 자격만 얻은 사람들이 아니다. 성령의 교훈을 받고 큰 평안을 누리며,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말씀이 삶의 좌표가 되고 예수님이 인격의 주체가 될 때,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주님의 사역에 참여한다. 예수께서 한 몸으로 계실 때 행하셨던 일을 이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를 통하여 계속 행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재림하신 예수께서는 어떤 심판과 왕국을 이루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의 &lt;strong&gt;열째 사역은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것&lt;/strong&gt;이다. 초림하신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체를 입고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다(사 53:5-6). 재림하시는 예수께서는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다스리시며,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주와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는 그의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다고 예언하였다(사 40: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의 심판에는 두 방향이 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충성한 종들에게는 상을 주시고(사 40:10), 악인과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멸망을 내리신다(사 11:4). 이사야는 메시야가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를 판단하며,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11:4).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보상의 날이지만 회개하지 않은 악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사람이 지금 죽으면 그의 영혼은 즉시 &amp;#39;낙원&amp;#39;이나 &amp;#39;음부&amp;#39;로 간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성도는 주께서 세상에 보내실 때 맡기신 사명을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했는지에 따라 상급의 심판을 받는다. 주님은 잘한 종에게 면류관을 씌우시고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과 거처를 정하신다. 충성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 사랑과 섬김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과 시들지 않는 면류관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충성한 삶이 영원한 나라에서 결코 잊히지 않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동시에 우리는 마지막 대환난의 시간표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나팔이 울리면 무저갱에 갇혀 있던 사탄의 세력이 풀려나고,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의 환난이 진행될 것이다(계 9:1-21). 이때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종들은 특별한 보호를 받지만, 많은 성도가 핍박 가운데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 예수께서 공중에 임하시고 알곡과 같은 성도들을 거두시는 휴거가 일어난다(계 11:15, 14:14-16). 이때 그 환난 기간에 죽어 주님을 기다리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살전 4: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일곱째 나팔 뒤에는 땅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쏟아지고,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동시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계 11:18). 그러므로 재림은 막연한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위와 충성을 드러내고, 악의 역사를 끝내며,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는 날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최종적인 백보좌 심판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시므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65:17-18). 요한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은 새 창조를 보았으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계 21:1-2). 구원받은 백성은 그 영원한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불신앙과 죄를 끝까지 붙든 자들은 불못의 심판을 받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17-18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amp;ldquo;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계 22:12). 상은 구원을 돈으로 사듯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주께서 맡기신 사명에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주님이 영원히 기억하고 갚아 주시는 것이다. 과거에 충성하지 못한 시간을 붙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가장 빠른 시작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회개하고, 지금 천국 복음을 전하며, 지금 맡겨진 영혼과 사명을 섬겨야 한다. 나팔이 울리는 날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과 그것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를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셨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하며, 병든 자를 치료하셨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죽어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가셨으나, 죄가 없으셨기에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하늘로 승천하여 왕과 대제사장이 되셨고, 성령을 보내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새로운 백성인 교회를 창조하셨다. 마지막에는 다시 오셔서 악인을 심판하고 충성한 성도에게 상을 주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일은 단순히 교리를 많이 쌓는 공부가 아니다. 항상 살아 계신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오늘 내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생명의 공부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죄와 저주의 세력이 실제로 떠나가도록 구체적으로 자백하는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병과 약함 가운데서는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영적 억압 가운데서는 해방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환경이 어렵고 사탄이 공격할 때에는 부활과 승천의 능력으로 다시 높은 곳을 향해 일어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령으로 지음 받은 새로운 백성답게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좌표로 삼아야 한다. 남이 받아 전해 주는 은혜에만 머물지 말고 말씀을 직접 먹고, 예수님으로 충만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무신 주님의 뜻을 따라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의 날은 반드시 온다. 그날 예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오늘부터 회개하고 충성할 수는 있다.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의 환난을 지나 일곱째 나팔과 함께 주님을 맞이할 날을 바라보며,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을 믿음으로 누리고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0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는 열 가지 사역&lt;/strong&gt;을 신학적으로 풀이하며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가 단순한 성인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살아 계신 하나님&lt;/strong&gt;으로서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고&amp;nbsp;&lt;strong&gt;마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lt;/strong&gt;시키는 실질적인 권능을 가졌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십자가 사건이 죄 사함을 넘어 삶의 모든&amp;nbsp;&lt;strong&gt;저주를 담당&lt;/strong&gt;한 사건임을 역설하며, 이러한 은혜가 개인의 삶에 실재가 되기 위해서는&amp;nbsp;&lt;strong&gt;철저한 자백과 회개&lt;/strong&gt;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사역의 흐름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지나&amp;nbsp;&lt;strong&gt;재림과 심판&lt;/strong&gt;으로 이어지며,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amp;nbsp;&lt;strong&gt;하늘의 상급&lt;/strong&gt;을 얻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20260810_22303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272729de8fcba5d6f71b78546ca1736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585caeb375432c05a8bd35c3bc7e20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0f164a323a83b886be5c362122e1e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736d2851bd16fadf8e8b6ad4311226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a6a7a5a649f3c703f8cade6e6aa1fa1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c7681502e310cf5947c3a364df99d2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a26bd4e982b07fe01de0f1b5f410d1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5b72f95aff67d64b662b971f9b1ce7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ddeb5842886622dad45467ee93f554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99b76b144efeb25ca4e2cc68aaedff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9cafaa3ac615812a9703e05abb68c2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8a4be1bb64b500374bb7c8c9f99ef7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12-repaint-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5605538aae2c7fdf645c8c43fe522c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13-repaint-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32bba2a99a649cd4a04e99ea132b60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he_Messiah_s_Tenfold_Prophetic_Mission-p14-repaint-1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cffcc9ca94596ab058f124d72ca32ca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이사야가_예언한_메시아의_6가지_사역-repaint.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9f6fab8badeeda28ae307d5e1c911b9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7fbb48920e579fa7f49f5fe0c61fbf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84269cc3793bf689a74eaa3997d0b2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fe8143f78cb1846ae4c7c116c1dc64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d5e14d0a344541e1c6abfaf2314713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6757a2c9f7d5ee3853169e36d9bd04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d16574c3313a29fb13377c33fc0a37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6e452b0bf14f0b50632a8fc15d414f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c48f47f987cd9c7d50510612395b36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b428c5430df57b88ea637066b9de2e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5b7923cb2cd3ae8133ec72ede0a641a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2ca422ca6386578d8a2cc1db3cfe3d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2-repaint-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f639eacfedf5785a18a7513500b968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3-repaint-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20eb552b6d34162650c1b56f6e715e1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4-repaint-1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bfd6eba55eb7437fa5e3d3e90ca10c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9)] Ten_Golden_Messianic_Works-p15-repaint-1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7/264/12a01bfe6030a631d9590ea3766e285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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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57)] 이사야의 예언(17)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이사야 7:14)_2026-08-02(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3620</link>
				<description>&lt;p&gt;2026-08-02(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57)] 이사야의 예언(17)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lt;/strong&gt;&lt;/span&gt;(이사야 7: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LeC3sFTao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LeC3sFTao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5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가 예언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아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심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세상 이야기와 철학과 예화만 듣고 정작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믿음의 대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 예수님을 알아야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분의 이름과 권세로 악한 영을 대적할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그분 안에 있는 구원의 풍성함을 실제로 누리며 감사와 헌신도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들을 때에는 귀를 막고 의심과 불신을 일으키는 영을 내보내야 한다. 손을 귀에 대고 성령의 불로 태워 달라고 선포하며 &amp;ldquo;뚫릴지어다&amp;rdquo;라고 명령하는 것도 실제적인 영적 훈련이다. 회개가 쌓일수록 성령의 불이 귀를 막는 영을 태우고 말씀을 깨닫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lt;strong&gt;메시야의 신분을 아홉 가지 방면&lt;/strong&gt;으로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태어나시고, 무엇을 행하시며, 천국에 들어가신 뒤 어떤 일을 이어 가실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분에 관한 예언이 그분이 누구신지를 보여 준다면, 사역에 관한 예언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보여 준다. &lt;strong&gt;메시야의 생애는 그분 한 분의 전기가 아니라 우리의 죄 사함과 생명과 자유와 영원한 상속에 직접 연결된 구원의 역사&lt;/strong&gt;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무엇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모르면 기도와 헌신도 복을 얻기 위한 노동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행하신 일을 깨달으면 감사가 먼저 일어난다. 또한 예수께서 사탄의 일을 멸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신 일을 우리도 이어 행하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 성도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가 사람으로 나타나시기 약 칠백 년 전에 그분의 신분뿐 아니라 탄생과 공생애의 성격까지 미리 보여 예언하였다. 이 예언을 살피는 목적은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다. 메시야가 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으며, 그 사역이 우리의 믿음과 자유의지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아홉 가지 신분을 돌아보고, 메시야의 첫째와 둘째 사역 예언이 우리의 속죄와 구원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이루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그동안 함께 나눈 이사야 예언 속 메시야의 9가지 신분은 무엇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증언한 메시야의 신분은 어떠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그중에서 메시야의 &lt;strong&gt;첫째 신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43:10-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나란히 존재하던 별개의 제2의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으로 나타나신 분이다. 그분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도 아버지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다. 다만 구약 시대에는 아들로 출현하여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 감추어져 계셨고, 때가 차자 육신을 입고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요 1: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들의 탄생은 아들의 존재가 처음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아들로 출현하신 사건이다. 구약에서 아들이 이미 아버지 곁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했다고 보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존재하셨으나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비로소 보이는 아들로 나타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분의 &lt;strong&gt;둘째 신분은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lt;/strong&gt;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칭호는 역사의 시작과 끝을 홀로 붙들고 계신 여호와의 칭호다(사 41:4, 44:6, 48:12). 메시야는 단지 역사 중간에 등장한 위대한 교사가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계시고 모든 경륜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메시야 &lt;strong&gt;셋째 신분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희년을 선포하시는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61:1-4). 인간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건질 구원자는 피조물 가운데 나올 수 없다. 여호와께서 친히 구원자로 오셔서 이전에 없던 새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래서 그분은 희년의 선포자로 오신다고 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그분의 &lt;strong&gt;넷째 신분은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9: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예언은 연약한 육신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다섯째 신분은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오신 분&lt;/strong&gt;이다(사 9:7, 11:1).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셔서 약속된 왕권을 잇지만, 그분의 통치는 인간 왕들의 불의와 달리 의와 공의로 세워진다. 그분은 다윗 왕의 계보를 완성하는 참된 왕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그분의 &lt;strong&gt;여섯째 신분은 고난받는 의로운 여호와의 종&lt;/strong&gt;이다(사53장). 그분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허물과 질고를 담당하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고난받으신다.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일곱째 신분은 참된 목자&lt;/strong&gt;이시다(사40:11). 삯꾼처럼 양을 버리지 않고 잃은 양을 찾아 품에 안으며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다.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여덟째 신분은 다시 오실 재림주이자 심판자로서 만왕의 왕이자 만 주의 주&lt;/strong&gt;이시다(사 3:13, 4:4, 11:3-4, 63:1-6, 66:16). 초림 때에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낮아지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과 권세 가운데 나타나신다. 마지막으로 &lt;strong&gt;아홉째 신분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이&lt;/strong&gt;이시다(사 65:17-25, 66:22-24). 재림주는 악을 그대로 두지 않고 사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며 의로운 나라를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아홉 가지는 서로 떨어진 칭호가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기와 아들로 오시고, 다윗의 후손인 의로운 왕과 고난받는 종과 참된 목자로 사시며, 마침내 재림주와 심판자로 나타나시는 하나의 구원 경륜이다. 메시야의 신분을 바르게 알아야 그분의 사역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신 예수만 보면 그분의 속죄 능력을 놓치고, 하나님이신 예수만 말하면서 그분이 실제 육체로 고난받으신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이 모든 신분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성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이어서 이사야는 메시야가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과 더불어 그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서도 풍성하게 예언을 하였다. 메시야는 이 땅에 태어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 또한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속죄를 이루고,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부활과 승천 뒤에도 구원의 일을 계속하신다. 그리고 재림하시어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가실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 및 성경 전체의 예언을 쭉 살펴보면, &lt;strong&gt;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모든 사역&lt;/strong&gt;은 크게 두 방향으로 모인다. &lt;strong&gt;하나는 하늘의 반역자인 사탄 마귀를 처단하는 일&lt;/strong&gt;이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일&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메시야는 사탄을 멸하러 이 땅에 오신다&lt;/strong&gt;. 사탄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을 죄와 사망 아래 묶어 놓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단지 좋은 교훈을 들려주는 선생으로 오실 수 없었다. 그분에게는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리고 포로 된 자를 풀어 주는 왕의 권세가 필요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 것은 주변적인 기적이 아니라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는 메시야 사역의 본질이다. 이 일을 위하여 그분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사 61:1, 행10:3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 이어서 메시야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오신다&lt;/strong&gt;. 이때 메시야는 인류 구원을 위해 또 다시 2가지 일을 하시는데, 하나는 속죄 사역이요 또 하나는 생명 분배다. 먼저 속죄는 아담의 타락 이후 죄와 사망 아래 놓인 인간을 죄짓기 전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가리킨다. 이 일을 위해 죄 없는 메시야가 흠 없는 어린양으로 되셔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담당하셔야 했다. 그러나 죄를 없애는 것만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모두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그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영생해야 했던 목적도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믿는 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 주시고 있다(고전 15: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amp;#39;속죄&amp;#39;는 빚을 없애는 일이고 &amp;#39;생명 분배&amp;#39;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단지 벌을 면한 죄인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자녀가 되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상속자가 된다.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신 까닭은 우리를 타락 이전의 상태로 복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처음 창조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생명과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함이다. 메시야의 생애와 사역이 곧 우리의 밝은 미래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말씀에서 살펴보는 메시야의 열 가지 사역 예언 가운데 &lt;strong&gt;첫째는 처녀의 몸에서 죄 없이 태어나시는 것&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행하시는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첫째는 인류를 위한 흠 없는 속죄 제물의 자격과 연결&lt;/strong&gt;되고, &lt;strong&gt;둘째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능력과 연결&lt;/strong&gt;된다. 나머지 사역들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먼저 이 두 예언만 바르게 알아도 메시야의 탄생과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 구원과 얼마나 직접 연결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첫 번째 사역 예언에서 메시야는 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는가?(사 7:14)&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첫 번째 예언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이다(사 7:14). 그래서 진짜 메시야는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메시야의 처녀 탄생은 우연한 것도 아니며 뭇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만든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할 흠 없고 점 없는 속죄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필연적이고도 부득이한 조치였다(벧전 1:18-19). 죄인이 다른 죄인의 죗값을 대신 담당할 수 없으므로, 메시야는 참사람으로 태어나시되 죄가 없는 분이어야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뱀을 심판하시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메시야는 남자의 씨가 아니라 여자의 씨로 오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사야 7장 14절은 그 여자가 바로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라고 추가적으로 에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갑자기 만들어진 어떤 교리가 아니라 창세기의 최초 약속을 이루고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구원자가 오시는 길로 준비된 것이었다(창 3: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실제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마리아가 적임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곘느냐고 천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이 그녀 위에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없던 사람도 만드시는 전능자의 초자연적인 창조 능력이라면 처녀의 태중에 거룩한 몸을 조성하는 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잉태는 남자의 씨가 들어가서 된 자연적인 수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의 역사였다(눅 1: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사람이 죄인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 죄라는 어떤 것이 사람의 육체의 DNA 속에 들어가서 유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역사적 사실인 것이지 몸에서 떼어 내거나 장소를 옮길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된 본성이 유전자 속에 들어감으로 죄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어거스틴이다. 그런데 그의 원죄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마리아의 육체를 취하신 예수님도 결국 죄의 DNA를 물려받았다고 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만다. 고로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바, 죄의 유전이라는 방식으로는 예수님의 무죄한 잉태를 설명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사람은 어떻게 죄인으로 태어나는가? 그것은 생명이 잉태되어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에 악한 영들이 침투해서 들어간 후에, 그 영들의 유혹을 따라 자기가 스스로 자유 의지로 죄를 지음으로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예수님에게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임하여 뱀들과 귀신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된 상태였다. 고로 아기 예수께서는 마리아로부터 육체를 취하셨지만 악한 영으로부터 보전되셨고, 태어나신 뒤에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죄를 짓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 끝까지 흠 없이 사신 것이다(고후 5: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참고로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아이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스스로 죄를 선택할 기회 없이 죽은 아이는 어머니의 믿음에 따라 그 다음에 들어갈 장소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믿는 어머니의 아이는 천국의 양육 처소에서 자라지만, 불신자의 아이는 생명을 받지 못한 상태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믿음과 가족 전도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께서는 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서야 했는가? 베드로는 이에 대해 사람이 은이나 금으로 대속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속죄는 피로 이루어지고, 그 피를 드릴 어린양에게는 흠이 없어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죄 없이 잉태되셨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서&amp;nbsp;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없이 보호받고 사셨다. 그래야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할 자격을 가질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기독교를 신비하게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어떤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실제로 구원할 대속자의 자격을 갖추게 한 하나님의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아야 한다(벧전 1: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1:18-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두 번째 사역 예언에서 메시야는 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는가?(사 61:1-4)&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다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마 3:16-17, 눅 4:16-21). 성령은 한 번 받으면 다시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잉태와 성장의 과정에서 성령의 보호와 충만을 입으셨지만, 다시 서른 살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공적인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고로 우리도 한때 성령을 받고 방언했던 과거의 신앙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1장에서 메시야에게 임한 기름부음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다(사 61:1-4). 또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과 기쁨의 기름과 찬송의 옷을 주며, 오래 황폐했던 곳을 다시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 성령의 기름부음은 개인의 황홀한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치유와 자유와 회복을 실제로 이루기 위한 능력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1:1-4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께서 공생애 전에도 과연 귀신을 쫓아내셨을까? 그러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두루 다니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행 10:38).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적인 축사 사역은 아마도 요단강의 기름부음을 받은 뒤에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 사역은 성육신하셨다는 신분만으로 자동 실행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과 함께 펼쳐졌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예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행하신 일들을 보면, 먼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셨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내적 치유를 가리킨다. 그리고 포로 된 자와 갇힌 자를 놓아주는 것은 사탄과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질병과 억압과 결박 뒤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꼬부라져 펴지 못하던 여자를 사탄에게 매인 자라고 언급하신 뒤에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 주신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주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눅 13:10-17). 더욱이 설교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하셨다(마 12:28). 그러므로 귀신을 쫓는 일을 복음과 떼어 내서도 안 되고, 축사가 빠진 반쪽 복음을 가리켜 온전한 복음이라고 말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는 왕으로서 사탄의 포로를 해방하고, 선지자로서 복음을 가르치며, 제사장으로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신다. 우리도 먼저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이 사역을 이어 가며 정품 복음을 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사역을 갈릴리에서 하셨을까? 보통 성공을 위해서 일을 시작한다면 예수께서도 역시 예루살렘의 중심부로 가셔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사역의 주된 장소로 선택하지 않으시고 멸시받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곧 이방의 갈릴리로 가셔서 사역하셨다. 그런데 이것도 이사야의 예언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시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사 9:1-2).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귀신에게 눌린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의 길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고 있는 지역으로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 역시 돈과 지위 혹은 가문을 보고 사람을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주의 종들은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고 아무 배경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며 주께 나오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찾아오는 사람을 결코 내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유명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능력이 아니라 흑암에 앉은 사람에게 빛을 비추고, 상한 사람을 일으키며,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메시야에게 임할 성령의 일곱 가지 방면은 무엇인가?(사 11:1-2)&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1). 고로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오는 가지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다. 그리고 그분 위에는 여호와의 영이 강림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2). 고로 이 한 구절 안에는 메시야의 인격과 사역을 충만하게 하는 성령의 일곱 가지 방면이 들어 있다. 곧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총명의 영, 모략의 영, 재능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장차 태어날 메시야 위에 부어지는 것이다. 그럼, 각각의 7가지 성령의 특징은 무엇인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는 그 영은 여호와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나머지 모든 역사의 근원은 여호와 자신에게서 나온다. 메시야는 자기 생각과 인간적인 재능으로 사역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이 임한 가운데 말씀하고 행동하신다. &lt;strong&gt;둘째는 그 영은 지혜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 경륜을 바르게 보고 여러 사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결하게 한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면 기록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시대를 향한 뜻을 발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그 영은 총명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총명은 들은 말씀을 이해하고 복잡한 영적 원리를 분별하여 다른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다. 성령께서 총명을 주시면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사건과 영적 현상을 연결하여 그 작동 원리를 밝힐 수 있다. 필자가 제사 때마다 졸았던 경험을 돌아보며 제사의 영이 사람에게 졸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아 설명한 것도 이러한 총명의 영이었던 성령의 역사에 기인한다. 어렵게만 들리던 영의 세계를 실제 경험과 연결하면 성도들이 한 번 듣고도 기억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그 영은 모략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여기서 모략은 악한 꾀가 아니라 사람에게 하나님의 길을 조언하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상담과 지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회개하고 싸워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리고 &lt;strong&gt;다섯째는 재능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재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을 실제로 이루어 내는 능력이다. 메시야는 선한 조언만 주는 분이 아니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포로를 풀어 주는 권능으로 말씀을 실현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여섯째로 그 영은 지식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이는 세상 정보를 많이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영적 세계를 바르게 아는 지식이다. 무엇이 하나님께 속했고 무엇이 사탄에게서 왔는지를 분별하며, 구원의 길과 천국의 실제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일곱째로 그 영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아무리 지혜와 총명과 능력이 많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은사는 자기 자랑과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은 모든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용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도 이 일곱 방면의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지혜가 없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며, 악한 영을 대적할 능력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외함도 없다면 충만한 기름부음이라 하기 어렵다. 한 번의 체험을 자랑하는 데 머물지 말고 계속 회개하며 성령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경외함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온전하게 이어 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가, 인간의 믿음도 필요한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간은 자기 힘과 선행만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죄와 악한 영의 세력에 눌린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결박을 끊고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육체로 오셔서 피 흘려 속죄하시고 성령으로 생명을 주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람이 자랑할 공로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이라는 말이 인간에게 믿음과 회개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여 주시는 것이고, 믿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응답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이 &amp;ldquo;믿으라&amp;rdquo;, &amp;ldquo;회개하라&amp;rdquo;고 명령하는 것은 인간에게 믿고 회개할 수 있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이다. 만약 믿음까지 하나님께서 강제로 주사하듯 넣어 주셔야 한다면 믿으라는 명령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엡 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터는 인간의 의지가 죄에 완전히 사로잡혀 악을 행할 의지만 남고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찾을 의지는 전혀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예의지론을 이어받아 칼빈의 전적 타락 교리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강제로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은 믿거나 회개할 수 없다고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을 끝까지 밀고 가면 누구든지 믿고 구원받으라는 성경의 초청과 인간의 책임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은혜지만, 영생은 그를 믿는 자가 얻는다. 예수께서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신 것도 인간의 실제적인 응답을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에게만 믿음을 강제로 넣으신다면 &amp;ldquo;누구든지&amp;rdquo;라는 복음의 초청과 인간의 책임을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lt;strong&gt;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이 만날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의 믿음은 구원의 길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이미 마련된 은혜를 누릴 수 없다&lt;/strong&gt;. 그래서 구원을 말할 때 신인협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절반 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고 회개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를 비율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구십구 퍼센트라 해도, 인간이 내놓아야 할 일 퍼센트의 믿음과 의지를 없애서는 안 된다. 그 일 퍼센트가 공로라는 뜻은 아니다. 상한 갈대처럼 거의 꺾이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희미해졌어도, 주님을 찾고 구원받기 원하는 의지를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응답을 귀하게 여기시고 큰 은혜로 붙들어 살리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언젠가 강제로 회개시키실 것이라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무엇을 들을지, 누구를 따라갈지, 무엇을 지킬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회개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믿음을 지키며, 육체를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려고 힘써야 한다. 성경의 핵심을 분별하고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에 새기며, 지금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붙들어야 한다. 은혜는 책임을 없애지 않고, 믿음은 은혜를 자랑으로 바꾸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사 42:1-4, 마 12:17-21)&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성령을 받은 여호와의 종의 활동을 예언해 놓았다. 그때 메시야는 결코 외치거나 다투지 아니하며,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사 41:1-4). 장차 도래할 메시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끝내 세상에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상한 갈대란 이미 상처받고 휘어졌지만 완전히 끊어진 갈대는 아니다. 또한 꺼져 가는 등불도 불꽃이 매우 약해졌지만 아직 완전히 꺼진 등불은 아니다. 이것이 죄로 타락한 뒤에도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고 믿고 회개할 자유의지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사 4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터의 노예의지론처럼 인간의 선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갈대는 이미 두 동강 나 땅에 떨어졌다고 해야 하고, 등불도 이미 꺼져 차갑게 식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가리켜 &amp;ldquo;상한&amp;rdquo; 갈대와 &amp;ldquo;꺼져 가는&amp;rdquo; 등불이라고 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죄와 귀신의 역사로 의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그대로 두면 마침내 끊어지고 꺼지겠지만, 육체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향할 마지막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그 연약한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않으신다. 상한 갈대에 붕대를 감아 다시 서게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기름을 보충하여 불꽃을 살리신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갈대를 온전히 고치거나 불을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남은 의지로 주님을 찾을 때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 회복시키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구원 안에서 만나는 두 요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자신의 사역으로 직접 성취하셨다. 병든 자들을 고치시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고, 다투거나 거리에서 소리를 높여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으셨다. 연약한 자가 믿음으로 다가오면 그 믿음을 붙들어 주셨고, 죄인이 회개하면 내치지 않으셨다. 마태는 이 모습을 보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한다(마 12:17-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17-21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 성도들은 회개를 뒤로 미루며 예정된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amp;nbsp; 겨코 갈고리로 사람을 끌어다가 강제로 무릎 꿇리고 혀를 움직여 회개시키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듣고, 죄를 깨달을 때 자백하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집중하여 기도할 기회를 받았으면 스스로 참여하고, 육체의 게으름을 이기며, 구원받고 상속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놓아야 한다. 계속 미루면 상한 갈대가 마침내 끊어지고 꺼져 가는 심지가 완전히 꺼질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유의지가 조금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높이기 위한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책임을 깨우는 말씀이다. 주님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약속은 이미 꺾여 가고 있음을 인정하게 하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약속은 지금 불꽃이 약해졌음을 보게 한다.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큰 위로를 준다. 아무리 죄가 많고 귀신에게 눌렸어도 육체의 생명이 있고 주님을 찾을 마음이 남아 있다면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님은 그 작은 의지를 붙드시고 구원을 이루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아홉 가지 신분과 메시야의 첫째&amp;middot;둘째 사역 예언이 우리 구원에 어떤 은혜를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기와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며, 다윗의 후손인 의로운 왕과 고난받는 종과 참된 목자로 일하시고, 다시 오실 재림주와 심판자가 되신다. 그분의 신분은 그분의 사역을 보증하고, 그분의 사역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누려야 하는지를 밝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신화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흠 없는 속죄 제물의 자격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어 죄 없는 육체를 조성하고 악한 영의 침입을 막으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채 흠 없이 사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의 죗값을 담당하셨다. 우리는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고치며, 사탄에게 포로 되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방면으로 충만하게 역사했다. 예수께서는 이 능력으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며 흑암의 갈릴리에 큰 빛을 비추셨다. 우리도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복음과 치유와 축사 사역을 이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회개의 응답을 요구하신다. 죄로 상한 갈대가 되었지만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고, 꺼져 가는 심지가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주님은 남아 있는 작은 의지를 꺾지 않고 성령의 은혜로 붙들어 다시 살리신다.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 강제적인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믿고 회개하며 주님께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알수록 그분의 은혜가 풍성해지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수록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말씀을 막는 영을 내보내고 귀를 열어 진리를 들어야 한다.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계속 구하며,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하신 일을 이어 행하며 이기는 자가 되고 천국의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한 갈대를 살리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이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4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애&lt;/strong&gt;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은혜를 설명합니다.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amp;nbsp;&lt;strong&gt;흠 없는 제물로서 처녀의 몸&lt;/strong&gt;을 빌려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일곱 가지 영으로&amp;nbsp;&lt;strong&gt;기름 부음을 받아&lt;/strong&gt;&amp;nbsp;마귀의 권세를 멸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주님이&amp;nbsp;&lt;strong&gt;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lt;/strong&gt;&amp;nbsp;자비로운 분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연약한 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만날 때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회개와 믿음을 통해&lt;/strong&gt;&amp;nbsp;예수님의 풍성한 사역에 동참함으로써 천국의 상급을 누리고 영적인 자유를 얻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ChatGPT Image 2026년 8월 4일 오후 10_11_07.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cdfd0535f7d9920ec6f0d73b758356e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37a4a8980e39dd38eeee05561ae063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1ec38b9fc5491dbfb927027bf577f7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5302ad074f8999636813ff2b62f22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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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ee0484a56c6e02da314f5c83879d50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0ec4be5f1fb0c82fff70162fa2a2a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e92a7b7969e3ab4841559748fba030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6c979c7d9c111b3ad75278075c7816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6f17782b16d04c5171dbe4034dd60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572ef6438a1b533affac3559464f71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067f771f57a66f9e9c0660a084b1c0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이사야_예언_메시아_신분_사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e2512588999af950792fc14ddeb34e7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ba992eb01ba61725b5b7552701d263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57f30e209849740ae5b1c9d38974ca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bf0ac7543dead5e34376b39743ad7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f7323ad55f4a47ce238e8ee2315b2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a4bfe521e7ad58ffe9dd64d64d83f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7bcce892329fa893f944b8030272d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6621c0a1bec4425619f45e62bcfbf9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48fb8932f77ada4577ef970a3e2051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a93b6bb903f73f6420d83e89f9edcd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41d57d54f698404e8d805def6bc454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98cd1708d94d007de0d95505abb411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b996659466e67e8eb70644125f268b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c9600de8dc85bda1cad33e4e39a2f81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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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54)] 이사야의 예언(14)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 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 9:6~7)_2026-07-2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3093</link>
				<description>&lt;p&gt;2026-07-26(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54)] 이사야의 예언(14)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 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 9:6~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kpQSgU8Aa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kpQSgU8Aa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5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의 예언(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사 9:6-7)&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 들어간 성도에게는 지위와 신분이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간 뒤 노력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사는 이 땅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다. 사람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쌓은 순종과 충성과 수고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며, 그때에는 이미 정해진 지위와 신분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드리는 한 번의 예배와 한 사람을 살리는 전도와 한 번의 회개와 영적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주일을 거듭 빠지면 천국 집의 벽돌이 빠진 것처럼 집에 부끄러운 흔적이 남는다. 이것이 구원 자체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천국에서 받을 집과 영광에는 실제적인 차이가 있게 한다. 반대로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결신하게 하면 빠진 벽돌 하나가 다시 채워지는 것과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 예배와 전도와 충성은 추상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천국의 집과 신분과 상급을 준비하는 실제적인 재료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의 신분은 크게 네 종류&lt;/strong&gt;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섬기는 자이고, 둘째는 자기 집에서 섬김을 받는 주인이며, 셋째는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이고, 넷째는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함께 수행하는 자다. 이 네 신분 안에도 세밀한 차등이 더 있지만, 성경이 보여 주는 큰 질서는 이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천국의 섬김은 이 세상의 억압적 노동이나 비굴한 종살이와 다르다. 모두가 기쁨과 자원함으로 섬기지만 지위와 맡은 직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은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lt;/strong&gt;이시다(계 17:14, 19:16). 원문의 뜻을 살려서 번역한다면 그분은 &amp;#39;주들의 주이며 왕들의 왕&amp;#39;이시다. 이는 천국에 예수님 외에는 아무런 주인과 왕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 주와 왕 위에 예수께서 최고의 주와 왕으로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와 왕권을 나누어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심판하고 통치하게 하신다. 이십사 장로는 왕 노릇과 제사장 노릇을 함께하며, 십사만 사천의 이기는 자들도 각자 받은 신분에 따라 주인과 왕으로 섬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한 아기로 오신 메시야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며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했다(사 9:6-7). 초림의 예수께서는 겸손히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지만(슥 9:9, 막 10:45), 재림의 예수께서는 심판하고 통치하며 악한 세력과 싸우는 영광의 왕으로 오신다(계 19:11-18).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천국의 지위와 신분을 왜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하며, 천국 성도들의 네 신분이 어떻게 구별되고, 주들의 주와 왕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어떤 질서를 드러내며, 보좌와 왕&amp;middot;제사장의 직분은 무엇이고, 초림과 재림의 사역은 어떻게 다르며, 재림주와 함께 다스릴 영적 전사는 어떻게 준비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천국의 지위와 신분은 왜 이 땅에서만 준비할 수 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체를 입고 사는 이 기간은 영원한 신분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천국에 들어간 뒤에는 죄와 고난을 이기며 믿음을 증명할 기회가 더 이상 없다. 이 땅에서는 피곤함과 유혹과 반대가 있어도 예배할 수 있고, 자기 시간과 물질을 드려 다른 영혼을 섬길 수 있으며, 회개하고 악한 영과 싸울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선택이 천국에서 받을 집과 면류관과 기업과 직분을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성도들이 받게 될 상급은 사실 구원과 구별해야 &lt;/strong&gt;한다. 주일예배를 한 번 빠졌다고 곧바로 구원에서 탈락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와 그곳에서 어떤 집과 신분과 영광을 받는 문제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그의 충성한 정도와 다른 영혼을 살린 수고에 따라 집과 면류관과 보좌와 기업이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mp;ldquo;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amp;rdquo;는 태도는 영원한 세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중에서도 이 땅에서의 &amp;#39;예배&amp;#39;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동시에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행위다.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본 바에 따르면, 예배와 충성을 등한히 한 흔적은 천국 집에 실제로 나타난다. 주일을 빼먹을 때마다 천국 집의 벽돌이 하나씩 빠져 잘못되면 어느날 집 안이 훤히 드러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생긴다. 그러나 전도하여 한 영혼을 결신시키면 그 손실을 메우는 재료가 된다. 고로 다른 사람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자기의 영원한 집을 세우는 일이 든든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을 섬긴 자와 대접만 받으려 한 자가 천국에서 그들의 미래가 뒤바뀔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이방의 집권자처럼 권세를 부리려 하지 말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인자가 오신 목적도 섬김을 받는 데 있지 않고 섬기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마 20:25-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단지 이 땅에서 겸손하게 살라는 윤리적 권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에 천국의 장래 신분도 담겨 있다고 본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힘써 섬긴 사람은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위치로 올라간다. 반대로 늘 대접받고 부리기만 원했던 사람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 땅의 섬김이 천국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천국에서는 각 사람의 은사와 달란트에 알맞는 일(직업)이 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므로 피곤에 짓눌리는 노동같은 일은 결코 아니다. 취미 생활처럼 즐겁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찬양하고 연주에 수고했던 사람은 찬양과 연주하는 일로 일한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쳤던 사람은 말씀 사역으로, 영적 전쟁을 수행한 사람은 받은 권세로 성밖으로 나가서 통치한다. 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곳이 아니다. 이 땅에서 은사와 달란트를 기쁨으로 사용한 만큼 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직업이 주어지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예배와 전도와 회개와 충성을 통하여 장래 천국에서 받을 영원한 직분을 잘 준비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천국 성도들의 네 가지 신분은 어떻게 구별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과연 어떤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에 따르면 크게 4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신분은 섬기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서 다른 성도의 집에 찾아가 기쁨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천국에서 이들은 이 땅의 종처럼 멸시받거나 매를 맞는 존재가 아니다. 천국은 비굴함과 억압이 없으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섬기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섬김을 받는 위치와 다른 집에 가서 섬기는 위치에는 분명한 신분 차이가 있다. 이들은 예배드릴 때에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신분은 주인 노릇 하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는 자기 집을 가지고 그 집의 주인으로서 섬김을 받는 자들이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십사만 사천의 반열에 든 자들의 집에는 아침마다 섬기러 오는 이들이 있다. 십사만 사천 안에도 등급이 있으며, 모두가 똑같은 왕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자기 집의 주인으로서 섬김을 받는 이들이 있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는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들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확인한 사도 바울의 집은 약 삼천 평의 대지에 이천 평 규모로 올라간 열여덟 층의 집이며, 아침마다 천 명이 넘는 이들이 섬기러 온다. 이는 성경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내용이지만, 이 땅에서 다른 영혼을 위해 수고한 정도가 천국의 집과 섬김의 규모로 나타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참고로 십사만 사천의 배열 가운데 앞 여섯 줄은 왕 노릇 하는 반열로 보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신분은 왕 노릇 하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에게는 전보 다 보좌가 있고,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 심판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최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기업을 얻은 자들이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전쟁을 통하여 땅을 차지했듯이, 천국의 왕권도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건져 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 자에게 주어진다. 단순히 명예로운 호칭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신분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수행하는 자&lt;/strong&gt;다. 이 계층은 이십사 장로가 대표한다. 이들은 보좌에 앉아 왕으로 다스릴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기도를 올리는 제사장의 직분도 맡는다. 십사만 사천과 이십사 장로는 같은 집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십사 장로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그 뒤에 십사만 사천의 보좌와 그 위에 앉은 자들이 있다. 이십사 장로는 천국의 질서에서 왕권과 제사장직을 함께 가진 가장 높은 반열을 대표한다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십사만 사천을 특별히 &amp;#39;하나님의 종들&amp;#39;이라고 부른다.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과 바다와 나무를 해하지 말라고 하였고, 인침을 받은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다(계 7: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7:3-4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이스라엘은 이긴 자의 성격을 나타낸다. 십사만 사천은 각 족속 가운데서 뽑힌 이기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144,000 안에 들어가는가?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핀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린다면, 대부분 예정된 자라고 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이 땅에 보낸 주의 종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반열에 드는 사람은 매우 힘들고, 목회자들 중에서도 만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왕 노릇 하는 반열에 들 가능성은 매우 약해서 약 오 퍼센트 정도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 안에서 회개하고 충성하며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신분은 사람을 낙심시키기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천국에서의 자신의 삶을 좀 더 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집이 없는 자보다 집을 가진 자가, 섬기기만 하는 자보다 섬김을 받는 자가, 주인보다 왕이, 왕보다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가진 자가 더 큰 영광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이 땅에서 낮아져 섬기고, 다른 영혼을 살리며, 악한 영과 싸우고,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주들의 주&amp;middot;왕들의 왕은 천국의 어떤 질서를 드러내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만주의 주이며 만왕의 왕이라고 선포한다. 어린양을 대적하는 세력은 패하고, 주님과 함께 있는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계 17: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만주의 주&amp;rdquo;라는 말은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 &amp;ldquo;주들의 주&amp;rdquo;이고, &amp;ldquo;만왕의 왕&amp;rdquo;은 &amp;ldquo;왕들의 왕&amp;rdquo;이다. 천국에는 자기 집에서 주인 노릇 하는 여러 주가 있고,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여러 왕이 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주 위의 주이며 모든 왕 위의 왕이시다. 이 호칭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왕권과 함께 그분이 이기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천국의 질서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유일한 중심 보좌다. 그러나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고, 그 아래에 이십사 보좌와 십사만 사천의 보좌를 두신다. 왕권을 나누어 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왕권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보좌의 권세가 예수님에게서 나오며, 모든 왕이 그분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왕들의 왕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질서는 구약의 왕국과 제사장 제도에도 모형으로 나타났다. 왕국 안에는 왕과 관리와 백성과 종이 있었고, 성전 봉사에도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허드렛일을 맡은 자가 있었다. 아가서에 나오는 왕비와 후궁과 시녀의 구별도 천국 신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예표들은 천국에서 모두가 동일한 위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충성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지위와 직분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최고의 왕이시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구약에서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로 나타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오셨다. 시편은 영광의 왕이 강하고 능한 여호와이며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선포한다(시 24: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4:7-8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초림하셨지만 본래 영광의 왕이시다. 재림 때에는 그 왕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신다. 주님이 왕들의 왕이시므로 그분과 함께 왕 노릇 할 자도 반드시 주님께 복종해야 한다. 자기 영광을 위해 권세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왕권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들의 주와 왕들의 왕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찬양의 수식어가 아니다. 천국의 집과 보좌와 직분이 어떻게 배열되는지를 보여 주는 실제적인 계시다. 주인 노릇 하는 자도 예수님을 섬기고, 왕 노릇 하는 자도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통치하며, 이십사 장로도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천국의 모든 영광은 최고의 주와 왕이신 예수님에게서 나오고 다시 그분께 돌아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한다는 것은 어떤 권세를 뜻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 노릇 한다는 것은 보좌에 앉아 심판하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보좌는 단순히 명예롭게 앉아 있는 의자가 아니다. 왕이 공의와 정의로 판결을 내리고 맡겨진 영역을 다스리는 자리다. 시편은 여호와께서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시고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신다고 말한다(시 9: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9:7-8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제자들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19: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도 보좌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를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계 20: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왕권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죄 없는 성도들을 억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성 안에는 죄성과 악한 영이 없으므로 철장으로 다스릴 반역자가 없다. 왕들은 성 밖의 만국을 맡아 통치한다. 성 밖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더라도 충분히 회개하지 못하여 거역의 본성과 죄의 성향이 남은 이들이 있다. 왕들은 그들을 공의로 다스리고, 필요한 때에는 철장 권세로 징계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예언은 장차 메시야와 이기는 자에게 이어진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고 땅끝까지 소유로 주시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게 하신다(시 2:7-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이기는 자와 끝까지 자신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주님도 아버지께 받은 권세가 그러하다고 하셨다(계 2:26-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 성 밖의 만국은 성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 다니며,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을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 안에는 밤이 없고 성문도 닫히지 않지만, 속된 것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는 들어갈 수 없고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계 21:24-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4-27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은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며, 오늘의 거리로 약 이천사백 킬로미터에 이른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등불이시므로 그 거대한 성에서 나오는 빛이 성 밖의 만국까지 비춘다. 성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약해지며, 땅의 왕들은 성 밖을 다스리다가 자기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열린 성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필자가 설명한 성 안과 성 밖의 실제 공간 질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 노릇 할 자는 이 땅에서 먼저 자기 안의 거역을 회개하고 악한 영을 이겨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지 않은 자에게 통치할 기업을 맡길 수 없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대적을 물리친 뒤 땅을 기업으로 얻었듯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천국의 보좌와 통치 영역을 받는다. 보좌는 충성과 승리의 결과이며, 심판과 통치의 책임을 맡는 자리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이십사 장로는 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맡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십사 장로는 하나님 앞에서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수행한다. 왕의 직분은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 심판하는 것이며,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들은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들고 있다. 거문고는 찬양을,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나타낸다(계 5: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5:8-10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 직분은 성 안에서 예배드릴 때 수행된다. 이십사 장로는 자신에게 속한 마을의 성도들을 이끌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모아 올린다. 필자가 본 영적 세계에서 각 장로에게 속한 마을이 있고, 장로는 그곳 성도들의 기도를 수집하여 예배 때 주님께 드린다. 이 기도 사역은 지상 교회가 존재하고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유효하며, 지상의 경륜이 마쳐지면 찬양이 영원히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의 직분은 성 밖으로 나아가 수행된다. 이십사 장로는 자기에게 맡겨진 영역을 다스리고 심판한다. 성 안에서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올리고, 성 밖에서는 왕으로 만국을 통치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은 이 두 직분의 결합을 보여 준다(계 20: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도 왕과 제사장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통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엘르아살 제사장과 함께 기업을 분배했다. 왕권을 가진 자가 전쟁하여 얻은 땅 가운데 레위 지파를 위한 마흔여덟 성읍이 주어졌다. 갈렙도 자신이 받은 헤브론을 내어 주었다. 이는 왕이 기업을 확보하고 제사장이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국 질서의 모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십사 장로는 찬양과 기도에만 머무는 존재도 아니고, 통치만 하는 존재도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피조 세계를 향한 다스림을 함께 수행한다. 하나님께 받은 권세를 자기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예배로 돌려 드리며, 예배 가운데 받은 뜻을 따라 맡겨진 영역을 공의롭게 통치한다. 왕권과 제사장직이 하나로 묶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의 예배에는 각 마을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모든 성도가 모이는 예배가 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훈련한 찬양과 악기와 공연의 달란트를 천국에서도 사용한다. 필자가 본 바에 따르면 천국에는 찬양과 공연을 준비하는 공간들이 있고, 성도들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자신의 은사를 더욱 아름답게 사용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수고는 사라지지 않고 천국에서 맡을 직분과 섬김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은 전쟁과 예배를 함께 배워야 한다. 악한 영과 싸울 줄만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모르면 온전한 왕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예배만 드리고 사람을 악한 영의 손에서 건져 내는 전쟁을 외면해도 왕권을 준비할 수 없다. 이십사 장로의 직분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면서 그분의 뜻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완성된 사명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초림의 예수와 재림의 예수는 사역이 어떻게 다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초림과 재림의 두 방면으로 구별된다. 초림의 예수께서는 섬기러 오셨고, 재림의 예수께서는 심판하고 통치하러 오신다. 초림 때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낮아져 오셔서 죄인들을 품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재림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나타나 악한 세력을 심판하고, 자신과 함께 이긴 자들에게 왕권을 나누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한 아기로 태어나신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와 평강의 왕으로 불리며, 다윗의 왕좌와 나라에 군림하여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했다(사 9: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왕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 스가랴는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 겸손하여 나귀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다(슥 9: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 떼를 먹이고 어린양을 품에 안으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셨다. 그러나 같은 이사야의 예언 안에서 주 여호와는 장차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는 분이기도 하다(사 40:10-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0:10-11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의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의 예수께서는 눈과 귀에 들어오는 피상적인 정보로 판단하지 않고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신다.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며, 공의와 성실로 통치하신다(사 11: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3-5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3장은 에돔과 보스라에서 붉은 옷을 입고 큰 능력으로 오는 이를 보여 준다. 그는 공의를 말하고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며, 그 옷은 포도즙 틀을 밟는 자처럼 붉다(사 63: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3:1-2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고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예언은 요한계시록에서 피 뿌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오시는 재림주와 연결된다. 그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리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고,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19:11-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9:11-13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 비난과 조롱을 견디며 용서하신 것은 섬기는 종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악과 반역을 그대로 두지 않고 심판하신다. 겸손한 나귀의 왕과 백마를 탄 전쟁의 왕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역이다. 주님은 먼저 대속의 길을 여시고, 마지막에는 그 구원을 거부하며 악을 따르는 세력을 심판하여 자신의 나라를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재림주와 함께 다스릴 영적 전사는 어떻게 준비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주와 함께 왕 노릇 할 사람은 먼저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 왕권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진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기업을 얻었고 다윗이 주변 대적과 싸워 나라를 넓힌 것처럼, 오늘의 성도도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야 한다. 귀신을 쫓아낼 줄 모르고 영적 전쟁을 외면하면서 천국의 왕권만 바랄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로 묘사되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 간다(계 1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자신만 철장 권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도 그 권세를 나누어 주신다. 필자는 약 이 년 전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철장을 주시며 악한 영과 싸울 때 사용하라고 하신 영적 체험을 증언한다. 영의 세계에서 전투 사령관은 붉은 옷과 갑옷을 입고 방패와 칼과 활과 화살을 사용한다. 이는 성경의 직접 묘사와 필자의 영적 체험을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전사를 세우신다는 핵심은 분명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전사가 되려면 먼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성 밖으로 밀려나게 하는 거역의 본성과 죄성을 그대로 품은 채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 자기 안의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혈기와 불순종을 날마다 처리하고, 악한 영이 붙들 근거를 없애야 한다. 회개할수록 영혼의 빛이 밝아지고, 새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는 데 걸림이 없어지며, 주님이 맡기시는 영적 무기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깊이 배우는 일도 필수다. 이사야와 시편과 요한계시록을 따로 떼어 읽지 말고, 한 분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하여 이루시는 경륜 안에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나귀를 타신 초림주와 피 뿌린 옷을 입은 재림주, 목자와 심판자, 제사장과 왕, 성 안의 예배와 성 밖의 통치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는 사람이 마지막 전쟁에서 혼란 없이 주님의 명령을 따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자를 치면 양 떼가 흩어지므로 성도는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선 종은 악한 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함께 싸울 때 교회 전체가 전사로 세워지고, 더 많은 영혼을 악한 영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분량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목회자는 맡은 직분이 크므로 책임과 책망도 크며, 평신도는 자기 자리에서 충성할 때 칭찬과 상을 받을 수 있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은 찬양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으로, 축사 사명을 받은 사람은 영적 전쟁으로 주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언제 주님이 부르셔도 즉시 나설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 예배를 지키고 한 영혼을 결신시키며,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을 배우며, 악한 영과 싸우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천국에서 아름다운 집과 면류관과 기업을 받고, 재림주께서 아마겟돈 전쟁에 임하실 때 그분과 함께 싸워 승리하는 전사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시 오실 재림주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시며 이기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신분과 왕권을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천국의 지위와 신분은 영적 세계에 들어간 뒤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사는 지금 준비한다. 예배와 전도와 섬김과 회개와 영적 전쟁은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기업과 직분을 세우는 실제적인 재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는 섬기는 자와 주인 노릇 하는 자와 왕 노릇 하는 자와 왕&amp;middot;제사장 노릇 하는 자의 신분이 있다. 십사만 사천은 이기는 하나님의 종들이며, 이십사 장로는 별도의 높은 보좌에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함께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주와 왕과 장로 위에는 주들의 주이며 왕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 노릇 한다는 것은 보좌에 앉아 심판하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왕들은 성 밖의 만국을 다스리며 주님께 받은 철장 권세를 사용한다. 제사장들은 성 안에서 찬양과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이 두 직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그분의 뜻으로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일이 하나임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는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오셔서 양 떼를 품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재림의 예수께서는 피 뿌린 옷을 입고 백마를 타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는 영광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가 예언한 다윗의 왕좌와 영원한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요한계시록의 만왕의 왕 안에서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한다. 자기 죄와 거역의 본성을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며, 다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전도하고 섬겨야 한다.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건져 내는 영적 전사가 되고, 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협력하여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 이기고 그분의 나라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6일(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기독론의 관점에서&amp;nbsp;&lt;strong&gt;천국 내 지위와 신분&lt;/strong&gt;의 결정 원리를 다루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amp;nbsp;&lt;strong&gt;만왕의 왕이자 심판자&lt;/strong&gt;로 정의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신자들이 육체를 입고 있는 현세의 삶이 내세의 영원한 영광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역설하며, 천국의 계급을&amp;nbsp;&lt;strong&gt;섬기는 자, 주인 노릇 하는 자, 왕 노릇 하는 자, 그리고 왕과 제사장&lt;/strong&gt;의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영적 전쟁&lt;/strong&gt;에서 승리하여 악한 영을 제압하는 능력을 갖춘 자만이 천국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상위 신분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철장 권세&lt;/strong&gt;를 가진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나, 심판주로 재림하실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amp;nbsp;&lt;strong&gt;이기는 자&lt;/strong&gt;의 반열에 들 것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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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8)] 이사야의 예언(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이사야 8:14, 28:16)_2026-07-1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656</link>
				<description>&lt;p&gt;2026-07-19(일) 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48)] 이사야의 예언(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이사야 8:14, 28: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fuyFPywujH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uyFPywujH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48 &amp;middot; 이사야의 예언 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이 질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성경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증언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별히 이사야서는 구약성경 가운데서도 가장 풍성하게 메시아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그분의 신분, 사역, 고난, 죽음, 부활, 승리, 재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까지 바라보며 예언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사야서는 흔히 &amp;lsquo;구약의 복음서&amp;rsquo;라고 불린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기록한다면, 이사야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미리 보여 준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또한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희년을 선포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의로운 왕이시다. 또한 고난받는 의로운 종이시며, 자데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시며 동시에 &amp;lsquo;깨뜨리는 바위&amp;rsquo;가 되신다&lt;/strong&gt;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돌&amp;#39;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다. 성경에서 돌은 기초, 견고함,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상징한다.&amp;nbsp;예수님께서도 자신을 &amp;#39;돌&amp;#39;에 비유하셨고(마21:42), 사도들도 예수님을 &amp;#39;돌&amp;#39;이라고 증언하였다(행4:11, 벧전2:6-8, 롬9:33, 엡2:20).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며,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위에 세워져야 할 영원한 기초가 되신다는 의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같은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초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과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는 것이다.&amp;nbsp;왜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돌이 되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신앙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시험한 돌이자,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돌을 믿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amp;nbsp;&amp;nbsp;그렇지만 이 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왜 예수님은 &amp;lsquo;돌&amp;rsquo;로 예언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amp;#39;돌&amp;#39;은 매우 특별한 상징성을 가진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썩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을 돌에 비유한다.&amp;nbsp;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돌은 건축물의 기초가 된다.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져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철학이나 종교 위에 세워지는 분이 아니라, 모든 구원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건축물의 재료가 되는 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기초라는 의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가장 귀한 보배로운 돌로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amp;nbsp;사람들은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고,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확증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구원의 기초이며, 모든 인생이 반드시 만나야 할 생명의 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왜 예수님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 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돌이시라는 표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표현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모퉁이의 돌은 단순히 건물 한쪽에 놓이는 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건물 전체의 방향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석을 의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대 건축에서 모퉁이의 돌은 특별한 역할을 했다.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놓는 돌이며, 두 벽이 만나는 기준점이 되는 돌이다. 이 돌이 바르게 놓이면 건물 전체가 균형을 이루지만, 이 돌이 잘못 놓이면 건물 전체가 기울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돌이 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구원의 기준이 되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사상, 철학, 종교, 경험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신다는 의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돌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기초의 모퉁이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서두르게, 재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squo;기초돌&amp;rsquo;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amp;lsquo;핀나(פִּנָּה)&amp;rsquo;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이 단어는 모퉁이, 모퉁이 돌이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단순한 장식용 돌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탱하는 중심 돌로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신앙은 결국 흔들린다. 인간의 감정, 환경, 성공, 능력 위에 세워진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신앙은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amp;nbsp;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지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의 차이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건축물의 기초가 되신다. 그분 위에 세워진 삶만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라는 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돌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돌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집을 세우지만 어떤 사람은 그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amp;nbsp;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그 돌이라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건축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돌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amp;nbsp;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체계와 전통을 붙잡았고, 그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장 귀한 돌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경험, 지식, 교만한 생각을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면 결국 생명의 돌을 버리게 된다.&amp;nbsp;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가장 귀한 보배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amp;lsquo;깨뜨리는 바위&amp;rsquo;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amp;#39;모퉁이의 돌&amp;#39;이실 뿐만 아니라 &amp;#39;깨뜨리는 바위&amp;#39;가 되신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같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바위가 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이미 이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8: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squo;거치는 돌&amp;rsquo;과 &amp;lsquo;걸리는 반석&amp;rsquo;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말한다.&amp;nbsp;예수님은 본래 구원자로 오셨다. 그러나 사람이 그 구원자를 거부하면 그분은 오히려 심판의 기준이 된다.&amp;nbsp;빛이 찾아왔는데도 어둠을 사랑하면 그 빛은 자신을 정죄하는 증거가 된다. 의사가 찾아왔는데도 치료를 거부하면 병이 더 깊어지는 것과 같다.&amp;nbsp;예수님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완고함이 문제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이사야와 시편의 예언을 연결하여 예수님을 설명하였다.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보배로운 돌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은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amp;nbsp;결국 예수님 자체가 두 가지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한 구원자이시다. 다만 사람이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자신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있는지, 아니면 내 생각과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고백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amp;#39;돌&amp;#39;로 표현한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사도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벧전 2:5).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베드로 자신의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고백이었다.&amp;nbsp;베드로는 원래 &amp;#39;시몬&amp;#39;(들으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amp;#39;베드로&amp;#39;였다(요 1:4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헬라어로 베드로는 &amp;lsquo;페트로스(&amp;Pi;έ&amp;tau;&amp;rho;&amp;omicron;&amp;sigmaf;)&amp;rsquo;이다. 그리고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amp;lsquo;페트라(&amp;pi;έ&amp;tau;&amp;rho;&amp;alpha;)&amp;rsquo;이다(마 16:18). 두 단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amp;#39;페트라&amp;#39;는 크고 견고한 바위를 의미하고, &amp;#39;페트로스&amp;#39;는 그 바위에서 나온 작은 돌을 의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름을 주시면서 그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베드로 자신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16~1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고백, 곧 &amp;ldquo;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amp;rdquo;라는 고백이다.&amp;nbsp;교회는 사람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 훌륭한 지도자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반석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훗날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증언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가 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기초가 되는 산 돌이시고, 성도는 그 돌 위에 연결되어 세워지는 살아 있는 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무할례자의 사도였던 바울도 역시 예수께서 한 편으로 구원얻는 이방인들에게는 교회를 건축하는 모퉁이 돌이 되셨지만(엡 2:20), 동시에 예수님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부딛히는 돌이자 거치는 바위가 되셨다고 언급하였다(롬 9:33).&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amp;nbsp; &lt;p&gt;롬 9:32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amp;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건물은 하나의 돌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기초석 위에 수많은 돌이 연결될 때 아름다운 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가 연결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건물, 조직, 프로그램, 사람의 능력을 먼저 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느냐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39;음부의 권세&amp;#39;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amp;#39;음부의 문들&amp;#39;이다. 이것은 죽음과 사탄의 세력을 상징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은 교회는 죽음의 권세를 넘어선다.&amp;nbsp;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회가 진정한 능력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서야 한다. 말씀을 의심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하면 반석 위의 교회가 아니라 모래 위의 집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예수님의 말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진리이다. 인간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결국 말씀 자체가 자신을 넘어뜨리는 돌이 될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받아야 하는 존재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돌로 받아들여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amp;nbsp;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 이 차이는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반응에 있다.&amp;nbsp;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그분은 생명의 반석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결국 심판의 기준이 된다.&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내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환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한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lt;/strong&gt;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돌을 붙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버림받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lt;/strong&gt; 된다. 세상의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는 음부의 권세(문들)를 이기는 삶을 살게&lt;/strong&gt; 된다.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것은 단순한 종교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결정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lt;strong&gt;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lt;/strong&gt;이다. 그분은 모든 구원의 중심이며, 모든 성도가 세워져야 할 영원한 반석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같은 돌이 믿는 자에게는 &amp;#39;보배&amp;#39;가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amp;#39;걸림돌&amp;#39;이 된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붙드는 영원한 반석이시며,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시는 구원의 돌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모퉁이의 돌로 삼고 그분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19일(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의 예언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amp;nbsp;&lt;strong&gt;모퉁잇돌이자 깨뜨리는 바위&lt;/strong&gt;라는 이중적 상징으로 규명하며, 신앙의 본질이 주님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을 건축의 중심인&amp;nbsp;&lt;strong&gt;기초의 모퉁잇돌&lt;/strong&gt;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구원이 보장되지만, 그분을 배척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그 존재가 오히려 자신을 부수고 넘어뜨리는&amp;nbsp;&lt;strong&gt;걸림돌과 심판의 바위&lt;/strong&gt;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사도적 권위가 바로 이 &amp;#39;반석&amp;#39;과 같은 진리 위에 세워졌음을 설명하며, 성도는 지성적 판단보다&amp;nbsp;&lt;strong&gt;초자연적인 말씀의 권위&lt;/strong&gt;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영원히 변치 않는&amp;nbsp;&lt;strong&gt;기록된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lt;/strong&gt;, 회개와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파멸의 바위가 아닌 구원의 기초석으로 삼으라는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atGPT Image 2026년 7월 20일 오후 10_13_09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34f5073d000a12664e509319cff800b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atGPT Image 2026년 7월 20일 오후 07_54_26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178fdd09725e7abcea55d6be39a43e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d61b20677f3cad9173a9985f076a50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b0a7a8eb10e4766a6dad731420805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2a31d9ee89187ccada1f6ccd1cbc40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88fe23fbbb0eb14b1c7524c892f55b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e6b38d260b4c9e4ed5157c8dbc7661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3cccdb558b53970e7bb7f25b579175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94a54acefeecab40a5f18f2e4b43d5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504c8eda94e26fd7998e8622b88a48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4d9f87e700ed5d17cbcaae2ef3abfc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8966868540c4c39814337308b225c20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예수_그리스도_구원과_심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cc9f014306d112b9b820e8d02b04a6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4bc5c3aa2e32fd52494424af1a37f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ba19f4108ae68eeaa5e0032659e104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b624d0989ec17f23ac4f102b6c9e35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6eb82916e6d8cfc89536b4550e6cde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d8bd23203f0aff28f7146f4f928018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f8400c86749c30efb8758e1e064f10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2214d92a5f785effa16706385c0d10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5a0a9bda7f2da72652489c620714d1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b25a3a7c38bdcc896c00d0e8e757a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f32007ab2734c5680f008958bad747ea.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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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2)]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주는 교훈(이사야 61:1~3)_2026-07-12(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link>
				<description>&lt;p&gt;2026-07-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2)]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주는 교훈(이사야 61: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UWJR1BjwG2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WJR1BjwG2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width: 100%;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나눔고딕, sans-serif; font-size: 10pt; line-height: 1.8; word-break: keep-all; overflow-wrap: break-word; } .article-title { font-size: 12pt; font-weight: 700; text-align: center; margin: 0 0 1.2em 0; padding: 0; } .section-title { font-size: 11pt; font-weight: 700; color: #38688c; margin: 0 0 0 0; padding: 0; } .body-paragraph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date, .author, .count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div class=&quot;article-title&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의 구속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빼앗긴 것을 되돌려 주며, 종이 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은 창조될 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며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죄가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기 시작했으며,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 아래에서 인류가 종노릇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자유와 기업을 잃었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되찾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영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과 아기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우리의 친족이 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단지 &amp;ldquo;죽기 위한 몸을 입으신 사건&amp;rdquo;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lt;strong&gt;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속죄제물이 되셨고, 동시에 잃어버린 자유와 기업과 이름을 회복시킬 친족 구속자, 곧 고엘이 되셨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 비밀을 이해하려면 &lt;strong&gt;구약의 희년 제도와 기업 무름의 법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레위기의 희년은 종을 풀어 주고, 팔린 기업을 원래 가문으로 돌려주며, 땅을 쉬게 하는 하나님의 리셋&lt;/strong&gt;이었다(레 25:10-11). 룻기의 보아스는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과 이름을 회복한 고엘이었다(룻 3:9, 12-13). 이사야는 장차 기름부음 받은 이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61:1-3). 그리고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그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눅 4:18-21).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이 어떻게 다르며, 한 분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고, 예수께서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2. 구원자&amp;middot;구속자&amp;middot;고엘은 어떻게 다른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는 &lt;strong&gt;여호와를 &amp;ldquo;구원자&amp;rdquo;와 &amp;ldquo;구속자&amp;rdquo;라고 함께&lt;/strong&gt; 부른다(사 60:16). 우리말에서는 두 말이 비슷하게 들리지만 히브리어의 초점은 다르다.&lt;strong&gt; &amp;ldquo;구원하다&amp;rdquo;라는 동사는 &amp;lsquo;야샤&amp;rsquo;(יָשַׁע)&lt;/strong&gt;이며, 여기에서 &lt;strong&gt;구원자 또는 구출자&lt;/strong&gt;를 뜻하는&lt;strong&gt; &amp;lsquo;모쉬아&amp;rsquo;(מוֹשִׁיעַ)&lt;/strong&gt;가 나온다. 야샤는 위험과 죽음과 압제 속에 빠진 자를 건져 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자를 끌어 올리고, 적의 손에 붙잡힌 자를 구출하며, 패망의 자리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야샤의 그림이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사 60: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반면 &lt;strong&gt;&amp;ldquo;구속하다&amp;rdquo;라는 동사는 &amp;lsquo;가알&amp;rsquo;(גָּאַל)&lt;/strong&gt;이다. 이 동사의 &lt;strong&gt;분사형이자 명사형인 &amp;lsquo;고엘&amp;rsquo;(גֹּאֵל)&lt;/strong&gt;은 &lt;strong&gt;값을 지불하여 친족의 잃어버린 소유와 자유와 이름을 되찾아 주는 사람&lt;/strong&gt;을 뜻한다. 고엘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제삼자가 아니다. 그는 가까운 친족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개입한다. 친족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때 그 땅을 되사고, 친족이 종이 되었을 때 속전을 지불하여 풀어 주며, 억울하게 죽임당했을 때 가문의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 고엘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구원자가 &amp;ldquo;건져 내는 분&amp;rdquo;&lt;/strong&gt;을 강조한다면, &lt;strong&gt;고엘은 &amp;ldquo;값을 치르고 자기 친족의 것을 회복하는 분&amp;rdquo;&lt;/strong&gt;을 강조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신약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lt;strong&gt;&amp;lsquo;뤼트론&amp;rsquo;(&amp;lambda;ύ&amp;tau;&amp;rho;&amp;omicron;&amp;nu;)&lt;/strong&gt;, 곧 &lt;strong&gt;&amp;#39;속전&amp;#39;&lt;/strong&gt;으로 주셨다고 말한다(마 20:28). 뤼트론은 &lt;strong&gt;종이나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르는 몸값&lt;/strong&gt;을 뜻한다. &lt;strong&gt;디모데전서 2장 6절의 &amp;lsquo;안틸뤼트론&amp;rsquo;(ἀ&amp;nu;&amp;tau;ί&amp;lambda;&amp;upsilon;&amp;tau;&amp;rho;&amp;omicron;&amp;nu;)&lt;/strong&gt;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상응하는 값을 내어 준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내어 주신 속전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죄 없으신 자신의 생명이었다. 그분은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피값을 지불하셨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딤전 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 내시는 구원자이시며,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 주신 구속자이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 주신 고엘이시다. 세 개념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의 구원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구원은 위험에서의 건짐을 말하고, 구속은 값을 치른 해방을 말하며, 고엘은 친족이 되어 책임지고 회복시키는 언약적 사랑을 말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3. 한 분 하나님은 왜 우리의 친족(고엘)이 되셨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명령 한마디로 마귀를 심판하고 인간을 구출하실 수 있다. 그런데도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사람이 되심으로), 배고픔과 피곤과 눈물과 고통을 경험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말씀과 공의와 율법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생명의 피가 요구되었다(레 17:11). 그런데&lt;strong&gt; 영이신 하나님은 피 흘릴 수 없으시므로, 아들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으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첫 번째 목적&lt;/strong&gt;이었다.&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성육신에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실제로 연대하는 친족이 되어야 했기 때문&lt;/strong&gt;이다. 히브리서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으므로 예수께서도 혈과 육을 함께 가지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무력하게 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평생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주셨다(히 2:14~17).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신 사건이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히 2:14~17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은 서로 분리된 두 하나님이 아니다. &lt;strong&gt;이사야가 &amp;ldquo;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amp;rdquo;라고 선포한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따로 보내어 자신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와 죽음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은 타인의 희생을 요구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구원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고엘은 친족의 형편을 밖에서 구경하지 않는다. 그의 빚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의 종살이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그의 끊어진 이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값을 치른다. 예수께서도 우리의 죄를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다. 죄는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저주받은 자의 죽음을 담당하셨으며, 사망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사망이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자신과 연합한 자들에게 생명과 부활의 길을 여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친족 구속자의 사랑이다. 구약이 말하는 &amp;lsquo;헤세드&amp;rsquo;(חֶסֶד)는 단순한 감정적 호감이 아니라 언약 관계 안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과 자비와 신실함을 뜻한다.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친족이 되어 값을 치르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셨다. 성육신은 헤세드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한 사건이며, 십자가는 그 언약적 사랑이 지불한 속전&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4. 보아스는 어떻게 예수님의 고엘을 예표하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룻기&lt;/strong&gt;는 한 가정의 비극과 회복을 통하여 &lt;strong&gt;고엘의 역할을 선명하게 &lt;/strong&gt;보여 준다. 유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은 흉년을 피하여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었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았다. 이제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할 때, 맏며느리 룻은 자기 백성과 신들(그모스)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룻 1:16-17). 룻의 선택은 편안함보다 참하나님을 택한 믿음의 결단이었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웠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 보아스는 룻이 부모와 고국을 떠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사실을 들었다(룻 2:11-12). 그는 룻을 단지 불쌍한 이방 여인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친절은 감정적 동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에서 책임을 지려는 헤세드였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2:11~12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아야 할 형편에 놓였다는 데 있었다. 율법에 따르면 가난하여 팔린 토지는 가까운 친족이 값을 치르고 무를(되살) 수 있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먼저 있었지만, 그는 그 기업을 무를 경우 자기 기업에 손해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권리를 포기했다. 그때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나오미에게서 사고, 말론의 아내 룻을 아내로 맞아 죽은 자의 이름을 그의 기업 위에 세우겠다고 선언했다(룻 4:9~10).&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보아스는 값을 지불했고, 기업을 회복했으며, 룻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고, 끊어질 가문의 이름을 다시 이어 주었다. 그래서 보아스가 그녀에게서 낳은 오벳은 혈통과 족보상 보아스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엘리멜렉과 말론의 가문과 기업을 이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 오벳에게서 이새가 나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나왔으며, 다윗의 계보를 따라 예수께서 오셨다(룻 4:21-22).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 룻을 메시아의 족보 안에 넣으심으로 믿음으로 여호와의 날개 아래 들어오는 자가 언약의 기업에 참여하게 됨을 보여 주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보아스는 예수님의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예표다. &lt;strong&gt;보아스는 자기 재산으로 한 가정의 기업을 무렀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모든 족속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셨다. 보아스는 룻을 자기 집에 받아들였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다. 보아스는 끊어질 이름을 이스라엘 족보 안에 세웠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새 이름과 영원한 신분을 주셨다&lt;/strong&gt;. 그러므로 룻기는 단순한 아름다운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오실 친족 구속자의 사랑과 책임과 값을 보여 주는 구속사의 책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5. 희년이 회복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희년(禧年, 영어: jubilee, 히브리어: יובל, yobel)은 &lt;strong&gt;레위기 25장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특별한 해&lt;/strong&gt;다.&amp;nbsp; 이 희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amp;nbsp;&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B%9D%EB%85%84&quot; id=&quot;mwCA&quot; rel=&quot;mw:WikiLink&quot; title=&quot;안식년&quot;&gt;안식년&lt;/a&gt;이 일곱 번 지나고 난 다음헤 곧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여섯 해 동안 밭을 갈고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해야 했다. 이것을 &amp;#39;안식년&amp;#39;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한 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 자유를 공포해야 했다.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amp;lsquo;요벨&amp;rsquo;(יוֹבֵל)은 뿔나팔(쇼파르)과 관련된 말이다. 대속죄일에 요벨의 나팔이 울리면 새로운 자유와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25:8~10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희년에 선포되는 자유는 히브리어로 &amp;lsquo;드로르&amp;rsquo;(דְּרוֹר)&lt;/strong&gt;다. 이 말은&lt;strong&gt; 억눌린 자를 풀어 보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해방&lt;/strong&gt;을 뜻한다. 희년은 추상적인 기쁨의 해가 아니었다. &lt;strong&gt;종이 된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고, 팔린 땅이 본래의 가문으로 돌아가며, 땅이 사람의 탐욕스러운 경작에서 벗어나 안식하는 실제적인 회복의 해&lt;/strong&gt;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희년에 실행해야 할 사항을 살펴보자.&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희년은 종을 해방해야&amp;nbsp;&lt;/strong&gt;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사람들이므로, 동족을 영원한 노예로 소유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 종이 되었더라도 희년이 오면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을 다른 인간이 영구히 지배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영적으로 보면 죄와 사망과 마귀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희년은 기업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해였&lt;/strong&gt;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었고, 각 지파와 가문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땅을 기업으로 맡았다. 가난하여 토지를 팔 수는 있었지만 영구히 팔 수는 없었다. 가까운 친족이 중간에 무르거나 희년이 되면 원래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부자가 돈으로 땅을 끝없이 사들여 다른 가문의 기업을 영구히 삼키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레 25:23~24).&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25:23~24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희년은 땅에 안식을 주서 쉬게 해야 했&lt;/strong&gt;다. 희년에는 파종하지 않고 스스로 난 것을 자기 소유처럼 거두지 않아야 했다. 사람은 경작과 소유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했다. 이것은 땅을 혹사시키지 않는 농경 규정인 동시에, 생존과 번영이 인간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교만을 꺾는 믿음의 훈련이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전국적으로 희년을 충실히 시행했다는 사례를 뚜렷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만큼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일은 어려웠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희년의 세 회복은 모두 소유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며, 시간과 소출도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다. 희년은 부자의 것을 임의로 빼앗는 제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던 자유와 기업과 안식을 하나님의 질서대로 되돌려 놓는 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키기 어려워한 이 희년의 약속을 장차 친히 성취하시기 위해 율법 속에 미리 기록해 두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6. 이사야의 희년 예언은 예수님께 어떻게 성취됐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사야 61장은 장차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가 나타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lt;/strong&gt;한다. 여기서&lt;strong&gt; &amp;ldquo;은혜의 해&amp;rdquo;는 레위기의 희년을 가리키는 예언적 표현&lt;/strong&gt;이다. 희년에 울렸던 자유의 나팔이 장차 메시아의 입술을 통하여 영적 실체로 선포될 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읽으셨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말아 맡은 자에게 주신 뒤 &amp;ldquo;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amp;rdquo;고 선언하셨다(눅 4:18~21). 예수님은 희년을 설명한 율법학자가 아니라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신 성취자다. 그분이 오심으로 구약의 요벨 나팔이 가리키던 실체가 역사 안에 들어왔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눅 4:18~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누가복음에서 &amp;#39;자유&amp;#39;와 &amp;#39;놓임&amp;#39;을 뜻하는 단어는 &amp;lsquo;아페시스&amp;rsquo;(ἄ&amp;phi;&amp;epsilon;&amp;sigma;&amp;iota;&amp;sigmaf;)&lt;/strong&gt;다. 아페시스는 포로의 석방과 빚의 면제뿐 아니라 죄의 용서를 뜻한다. 이것은 희년의 해방과 복음의 죄 사함이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감옥 문만 여는 정치적 해방자로 오신 것이 아니다. 죄 때문에 마귀에게 틈을 내주고 사망의 권세 아래 갇힌 사람을 죄 사함으로 풀어 주기 위해 오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희년 사역은 세 방향으로 나타난다. &lt;strong&gt;첫째, 말씀과 복음으로 영적 눈을 열어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깨닫게 &lt;/strong&gt;하신다. &lt;strong&gt;둘째, 십자가의 피로 죄값을 담당하여 정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놓아&lt;/strong&gt;주신다. &lt;strong&gt;셋째,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게 &lt;/strong&gt;하신다. 그러므로 참된 희년은 단지 빚을 없애고 경제 구조를 다시 짜는 사회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존재 전체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통치로 옮겨지는 구원의 사건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lt;strong&gt;희년의 성취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lt;/strong&gt;고 했다. 여기서 가난은 물질적 궁핍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심령의 가난, 죄와 저주와 억압 아래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가난까지 포함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 &amp;ldquo;너의 포로 상태가 끝날 수 있고, 잃어버린 기업이 회복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갈 길이 열렸다&amp;rdquo;는 좋은 소식을 전하신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함께 말한다. 희년의 복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영원히 무조건 연장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초림은 은혜의 문을 열었고, 다시 오심은 회개하지 않은 죄와 마귀의 세력을 심판한다. 종말론적으로 희년은 재림과 최후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지금은 고엘이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선포하는 은혜의 때이므로, 사람은 그 부르심을 듣고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7. 대속죄일과 희년은 왜 회개&amp;middot;정결과 연결되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희년의 나팔은 민간 달력의 첫날이나 추수 축제 때 울리지 않았다. 일곱째 달 열흘인 대속죄일&lt;/strong&gt;에 울렸다9레 25:9). 이것은 자유와 기업의 회복이 속죄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죄가 해결되지 않은 채 주어지는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악한 영은 다시 틈을 얻고, 사람은 다시 정죄와 속박과 파괴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 해마다 대속죄일(7월 10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자신과 백성과 성소를 위하여 속죄 의식을 행했다. 그날에는 제물의 피가 지성소까지 들어갔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부정이 처리되었다. 레위기 16장은 속죄와 정결을 함께 말한다. 속죄는 하나님 앞에서 죄값이 처리되는 측면이고, 정결은 죄로 말미암아 사람과 공동체와 성소에 묻은 더러움이 제거되는 측면이다(레 16:30).&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영원한 속죄의 근거를 마련하셨다. 그분의 피는 다시 흘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피의 효력을 실제 삶에 적용받기 위해 성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7~9).&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 우리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회개는 막연히 &amp;ldquo;나는 죄인이다&amp;rdquo;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죄를 성경의 빛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며,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통로를 닫는 회개다. 죄는 악한 영에게 합법적 틈을 제공하지만, 회개는 그 권리를 무효화한다. 회개가 진행될수록 더러운 영의 영향이 제거되고 성령께서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더 온전히 다스리게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이 회개를 완벽히 마친 뒤에야 예수께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부르고, 사람은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다. 그 후에는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며 실제적인 정결을 이루어 가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오해하여 회개를 중단해서도 안 되고, 자기 회개 행위를 구원의 값을 치르는 공로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속전은 오직 예수께서 지불하셨고, 회개는 그 속전의 효력을 받아 누리는 믿음의 응답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은 &amp;ldquo;회개 없는 번영&amp;rdquo;과 &amp;ldquo;정결 없는 자유&amp;rdquo;가 성경적 희년이 아님을 가르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병이 잠시 나았더라도 죄와 악한 영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참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외적 형편이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더라도, 죄를 자백하고 성령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와 마귀의 권리를 끊어 가고 있다면 희년의 능력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참된 희년은 먼저 영과 혼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육체와 관계와 물질의 영역까지 회복을 확장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회개를 일회적 행사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를 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지을 수 있고, 분노와 음란과 탐욕과 교만과 미움이 다시 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고, 죄를 자백하며,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희년을 사는 사람의 호흡이며, 고엘이신 예수께서 주신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8. 참된 희년은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무엇을 주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성취하신 희년은 성도의 현재 삶과 영원한 미래를 함께 바꾼다. &lt;strong&gt;그 첫 번째 열매는 신분의 변화&lt;/strong&gt;다. 죄 아래 있던 사람은 종의 영을 받은 존재였지만, 그리스도의 속전으로 구속받은 사람은 양자의 영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권리가 없지만 아들은 상속자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단지 감옥에서 꺼내 놓고 떠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속에 참여하게 하셨다(롬 8:15~17).&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두 번째 열매는 소유관의 변화&lt;/strong&gt;다. 희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한다. 성도는 집과 토지와 돈과 재능을 &amp;ldquo;영원한 내 것&amp;rdquo;으로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은 교만과 탐욕을 경계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가난이 자신의 영원한 신분이라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므로 부와 가난은 절대적 운명이 아니며, 그분은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고 옮기시고 회복하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세 번째 열매는 저주의 영속성에 대한 거절&lt;/strong&gt;이다. 가난과 질병과 실패와 우상숭배의 되물림이 오랫동안 한 가문을 붙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고엘이신 예수보다 강한 영원한 주인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의 권세를 끊을 길을 여셨다. 성도는 현재의 형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죄의 통로를 찾아 회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노동과 섬김으로 삶을 새롭게 세워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 말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즉시 물질적 부자가 되고 모든 질병이 곧바로 사라진다는 기계적 공식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의 희년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며, 회복의 방식과 시기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죄와 두려움의 지배에서 먼저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이 성도의 영원한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희년은 부활과 천국에서 완전해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네 번째 열매는 사명의 회복이다. 기업은 단지 땅이나 재산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과 천국의 지위와 상급도 영적 기업이다. 마귀는 죄와 낙심과 미혹을 통하여 성도가 자기 사명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고엘이신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다시 일으켜 본래의 부르심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희년을 믿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만 바라보지 않고, 남은 시간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다섯 번째 열매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이다. 이 땅의 안식년과 희년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안식은 천국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으며, 마귀와 귀신의 침입도 없다. 성도는 그곳에서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녀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과 기업을 누린다(계 21:3~4).&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회복만을 희년의 전부로 삼지 말아야 한다.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구하되 그것을 천국보다 앞세우지 않아야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더라도 자기만을 위해 쌓아 두지 말고 복음과 구제와 교회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희년의 부요는 소유를 우상으로 만드는 부요가 아니라, 주신 분께 기쁘게 돌려드릴 수 있는 자유로운 부요다. 참된 희년을 누리는 사람은 &amp;ldquo;땅도, 물질도, 건강도, 사명도 주님의 것&amp;rdquo;이라고 고백하며 청지기로 살아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희년은 한 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심을 선포한다. 마귀는 불법적으로 사람을 속여 종으로 만들었지만, 예수께서는 합법적인 속전과 승리의 부활로 그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제 성도는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는 세상과 죄와 귀신에게 자신을 다시 내어주지 않고, 말씀과 회개와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고엘이신 예수만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는 잃어버린 에덴을 넘어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기업이 기다리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9. 나오며&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지금까지 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의 차이,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의 친족이 되신 이유, 보아스가 보여 준 기업 무름의 모형, 희년이 회복하는 자유와 기업과 안식,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과정, 대속죄일과 회개와 정결의 관계, 그리고 참된 희년이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주는 복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기에서 한 번 건져 주는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지불하여 우리를 사신 구속자요 우리의 잃어버린 기업과 이름을 되찾아 주는 고엘로 알아야 한다. 또한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친히 혈과 육을 취하고 형제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모든 땅과 물질과 재능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많이 가졌을 때에는 탐욕과 교만을 경계해야 하고, 부족할 때에는 가난과 실패를 영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고엘이신 예수께서 자유와 회복의 길을 여셨으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보며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평생 회개와 정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끝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날마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악한 영이 붙잡을 통로를 닫아야 한다. 예수의 피를 의지한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더 온전히 받아야 하며, 받은 자유를 다시 죄에게 내어주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 땅에서 주어지는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회복을 감사히 구해야 하지만, 그것을 희년의 최종 목적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희년의 완성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마귀가 영원히 제거된 천국에 있으므로, 현재의 축복을 천국의 기업과 연결하여 사용해야 한다. 부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복음과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넉넉히 섬겨야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은혜의 해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열려 있는 구원의 초청에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참된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엘이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며, 회개로 정결함을 받아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date&quot;&gt;2026년 07월 12일(일)&lt;/div&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count&quot;&gt;&amp;nbsp;&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 61장에 예언된&amp;nbsp;&lt;strong&gt;참된 희년의 성취자&lt;/strong&gt;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적 의미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amp;nbsp;&lt;strong&gt;고엘(기업 무를 자)&lt;/strong&gt;&amp;nbsp;제도를 성취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amp;nbsp;&lt;strong&gt;친족 구속자&lt;/strong&gt;가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희년의 핵심 원리인&amp;nbsp;&lt;strong&gt;죄의 종노릇에서의 해방, 잃어버린 기업의 회복, 그리고 땅의 안식&lt;/strong&gt;이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가난과 질병의 저주를 끊어내는 실제적인 능력이 됨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amp;nbsp;&lt;strong&gt;대속죄일의 영적 의미&lt;/strong&gt;를 따라 회개를 통해 자신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주님이 선포하신 희년의 축복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 기업을 소유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인포_ChatGPT Image 2026년 7월 13일 오후 11_01_20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68f459e50b216e203d10bbdd1179c8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8815c8b87dece852237be85c9672a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e754d0810bfd1047733d74e2af4ce9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c1b9db6eb98a70e3fc65eabb205e4c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16eab1fafb12c7820d5fed83c00838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d67cff1b501236702fb9117fb6dbe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9b4defe7523fd4a00db950263a3ef8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2caffe19be994832575c9e61ca3da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42188a4755d7c3e23c66585bc6a5d1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19eabfcd34aa92d4ec19344a50f7f3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37bd3819b318c2528e28e1dea0579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4a2216a96c04dc50b4e16a736c7d12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ad555ac94e0c32a263dace68c2edf3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a470593b1247679f0b42fc34d6538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ac450995252b95aa3a8c07b5e1b4150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참된_희년의_성취자_예수_그리스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35029b2ae584d41e3593759e4e4f6d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546545a80c6621071d739a154fe08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986490a603ca945a945b97c9776d9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cede8af863ee0101a177360b570be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9bb60da02ee4aee727f820800d4e8c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6efe3e656fcb4c071743efd64d7e96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f5e9d8b0b13f11cf77a6b2be55fa87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cb0dd88e6ca5629c2779176f974022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17e1656a08aada7a4fccb6b1f904d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5c6fafc710cdee51835de6400e6c4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560ec73a2302549938a207f7497170b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f3e1761114b0f85cd2cf2726fa33afb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comment</comments>			<pubDate>Sun, 12 Jul 2026 23:37:06 +0900</pubDate>
		</item><item>
			<title>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_2026-07-0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1843</link>
				<description>&lt;p&gt;2026-07-05(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fUkXniVcx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fUkXniVcx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container { margin:0; padding:0; 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15px; line-height: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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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사명자란 누구이며 특별 사명과 일반 사명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란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명에는 크게 특별 사명과 일반 사명이 있다. 특별 사명을 받은 자를 가리켜 사명자라고 부르는 것이요, 일반 사명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일반 사명의 원칙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행 1:8). 곧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곳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교회에서 지체로서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 일반 사명자의 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명자는 꼭 주의 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사역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걸어가는 자세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가족을 구원으로 이끈 사람들이 나온다. 구약에서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이 멸망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어 자기의 온 가족을 구원하였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믿고 그 온 집이 구원을 받았으며, 고넬료도 온 집안과 함께 믿음에 이르렀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하였다(행 16:3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 가족의 구원은 먼저 믿은 자의 믿음에 따라서 결정된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먼저 간 사람이 어떤 믿음의 길을 가느냐에 따라서 온 가족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자는 절대로 후퇴하면 안 된다. 신앙의 길은 정도의 길을 가야 한다. 약간이라도 삐뚤어진 길을 가게 되면 가족들은 &amp;quot;너 지난번에도 그랬잖아&amp;quot; 하며 마음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일 성수를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온 다음부터 가족의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에 대하여 아주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고, 나를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회갑 날에도 나만 가지 못하였다. 교회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맡기고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성경을 보니 대제사장은 자기의 부모가 죽어도 그 시체를 만질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레 21:11). 너는 구별되어 내게 속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21: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처음에는 가족들이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셋째 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리고 장례식을 치렀고, 어머니의 눈도 내가 감겨 드리고 장례식을 치렀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집안에 혈통적 장자가 있다면 신앙적 장자도 있는 것이다. 그 신앙적 장자가 그 길을 올바로 걷지 않으면 온 가족이 흔들려 버린다. 그러므로 누군가 하나는 정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길을 보시고 나중에 인증해 주시는 날이 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사명자의 길은 누가 걸어가는가, 예정이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누가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가. 내가 볼 때 구십 퍼센트는 예정된 자가 걸어간다. 아무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예정자들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은 그 예정자들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사와 달란트를 주신다. 그것이 없이 나실인처럼 자기가 하겠다고 선택하고 결정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십 퍼센트쯤 있을 수 있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고 엄청나게 어렵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대표적인 예로 예레미야를 보자.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모태에 짓기도 전에 이미 알았고 성별하였고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하셨다(렘 1:5-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렘 1:5-7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이사야 6장을 이사야의 소명장이라고 부른다. 이사야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 앞에 올라갔을 때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음성을 듣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에 갑자기 이사야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이사야는 이미 태에서부터 부름을 받았고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그 이름이 기억된 사람이었다(사 49: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하였다(갈 1:15-1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1:15-17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사명자는 태로부터 정해져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자에게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고난에도 환난에도 핍박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일반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와 같이 길을 걸어가면 같이 복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4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쓰시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면 그 상이 함께 떨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갈 때에 디모데가 따라갔고 누가도 따라가서 엄청난 상을 받았다. 모세를 따라간 여호수아는 하늘의 이십사 장로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가랑이를 찢을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는 피만 흘린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명자와 협력하여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부교역자 시절에 담임 목사님이 시키시면 백이십 퍼센트를 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면 새벽 네 시에야 집에 들어가는 날도 있어서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나중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도는 자기의 영혼을 맡길 주의 종이 과연 참된 사명자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영혼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참된 사명자에게는 표가 있다. 설교에 가식이 없이 진심과 성실함으로 말씀을 전하며,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를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그리고 말씀만 아니라 직접 주님을 만난 실제적인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자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의 종을 만나야 우리의 영혼이 제대로 인도를 받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하나님은 영혼을 어떻게 창조하시고 어느 가문에 보내시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람의 육체는 부모에게서 온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스물세 개씩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를 물려받아서 생김새와 모양과 성품과 달란트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은 또 다른 것이다. 영은 부모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가리켜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라고 증언한다(슥 1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슥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천국의 낙원에서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셔서 자라게 하신다. 영혼도 자라며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라고 있는 그 영혼을 불러다가 어느 나라에 보낼 것인가, 어느 가문에 보낼 것인가, 남자로 보낼 것인가 여자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신다. 삼대째 믿는 집안에 보낼 것인가, 우상숭배에 찌든 가정에 보낼 것인가도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결정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리고 잉태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을 그 아이 속에 넣어 주시는 것이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쓰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믿음의 집안에 보내신다. 신앙이 전혀 없는 집안에 보내면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그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우상숭배에 찌든 집안에 태어나려면, 그 집안의 우상숭배의 죄를 끊어 내려는 특별한 뜻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께서는 중차대한 일을 맡기실 때에 영의 나이가 성숙한 영혼을 보내신다. 영의 나이가 어리면 바다 물결같이 자꾸 흔들리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킬 사람이라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누구나 영 한 살로 태어난다. 천국에서 열두 살까지 자란 영혼이라도 이 땅에 보내질 때에는 한 살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이 좋으면 보내진 나이까지는 쑥쑥 자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리 잘해도 십 년에 한 살을 자랄까 말까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영의 나이가 많게 보내진 사람이라야 큰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정되어 보내진 사명자 가운데 평균적으로 약 오 퍼센트는 그 길이 힘들다고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만 살아가지는 않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사명자인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그를 깨워서 부르시며 알게 하신다. 나도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알게 해 주셔서 쉰다섯 살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한 말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하였다(딤후 2:20-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가 많아서 악한 영이 많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회개하여 주님이 쓰실 준비가 되면 그때에 부어 주신다. 나도 회개하기 전에는 아무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직분을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었다 하시며 능력과 은사와 영적인 복을 부어 주셨다. 이것이 정상적인 순서다. 그러므로 쓰임받는 것은 둘째 문제요, 우선 나부터 회개하여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갈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먼저 회개부터 해 보아야 한다. 회개도 하지 않은 채 자기의 사명을 물으면 악한 영에 가려서 분별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회개하여 깨끗해질수록 자기의 사명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의 예는 예정된 사명자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정에 대한 좋은 예표가 다윗과 사울이다. 다윗은 왕으로 예정된 자였고, 사울은 지도자로만 예정된 자였지 왕으로 예정된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백성이 하도 원하여 사울이 왕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사울이 그 왕직을 제대로 수행하였는가. 하지 못하였다. 수십 년 동안 다윗 하나를 쫓아다니면서, 자기의 충성된 부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죽이려고 일평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다윗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평화의 나라로 만들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 성전을 지으려면 먼저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 사명을 감당할 은사와 달란트를 함께 주신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야생에서 강인하게 자랐고, 사자와 곰이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으며, 일어나 달려들면 그 수염을 잡고 쳐죽였다(삼상 17:34-35). 곰과 사자를 일대일로 마주치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데 그 입을 벌려서 양을 꺼내 오는 그 용기가 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7:34-35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그것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역대상 2장을 보자.&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13-17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 형제요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었으나 형 가운데 하나가 죽은 것으로 보여 여기에서는 일곱째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보라. 스루야와 아비가일을 가리켜 &amp;#39;이새의 딸들&amp;#39;이라 하지 않고 &amp;#39;그들의 자매&amp;#39;라고 하였다. 왜 그렇게 표현하였는가.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전남편 나하스와의 사이에서 스루야와 아비가일 두 딸을 낳았고, 남편이 죽자 두 딸을 데리고 이새에게로 와서 다윗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아비가일은 나하스의 딸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삼하 17:25). 그러므로 스루야와 아비가일은 이새의 딸이 아니라 다윗의 자매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 어머니가 낳은 딸들이 어떤 자들을 낳았는가.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 형제인데,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고 아비새도 용사였으며 아사헬은 노루처럼 빨랐다. 아비가일이 낳은 아마사도 후에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윗의 어머니는 전쟁에 능한 자를 생산하는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가 이새에게 와서 낳은 아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윗은 씨부터가 전쟁에 능한 자였다. 그래서 어릴 때에도 사자와 곰이 두렵지 않았고 골리앗도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다윗이 사모한 영광의 왕은 곧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다(시 24:7-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이지, 이 땅에서 수십만 명을 목회하였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영의 나이가 성숙한 자로 보내셨고,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은사와 능력과 달란트를 주어 보내셨으며, 없으면 필요할 때에 공급하시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은 어떤 각오로 걸어가야 하는가. 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사명자들의 삶과 내가 지나온 삶을 비교해 보면서 네 가지 질문을 얻었다. 이 네 가지 질문에 합격하면 그 길을 가도 된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서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막 10:29-3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운동이 좋아서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운동이든 요리든 골프든 노래든, 잠을 안 자고도 재미있어 환장하는 그것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험이 있었다. 나는 교사의 길을 갈 것인가 주의 종의 길을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는데, 그렇게도 교사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대학까지 둔 유명한 기독교 학교 재단에서 교목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생 실습을 해 보니 아이들이 얼마나 잘 믿는지 한 달 동안에 여러 명을 전도하였던 터라, 교목이 되면 학교 전체를 바꿀 수 있겠고 해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들어오니 전도가 저절로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원서를 썼고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최종 세 명 안에 들어 면접까지 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날 아침에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오늘 그들이 사택을 준다고 하면 교목이 나의 길인 줄 알겠고, 사택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두 번 다시 이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면접장에서 말하였다. 제가 교육자의 길만 오래 걸어와서 집을 장만하지 못하였으니 사택을 주시면 이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만들겠고, 사택을 주지 않으시면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나를 탐내는 눈치였으나 교장과 교감까지 불러 의논하더니 결국 떨어뜨렸다. 그래서 나는 그날로 교목의 꿈을 접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지금의 성도들을 만나게 하시려고 그 문을 닫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가족이다. 집과 전토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가족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베드로를 보라. 베드로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장모가 있었으며 그는 그 집의 가장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갔다. 내가 떠나면 누가 아내를 먹이고 누가 장모를 봉양하는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나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마음을 드렸다. 하나님, 내가 이 사역을 하다가 내 자식이 죽는다 할지라도 저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이 사역은 엄청나게 센 악한 영들을 다루는 사역이라 원수가 가족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죽을 뻔한 자식을 데려가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나를 위하여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때에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칠십오 세 때에 그를 부르시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3). 참고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간 것은 칠십육 세 때였다.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부름을 받고 길을 떠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땅인지 말씀해 주지 않으시고 그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증언한다(히 11: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점차적으로 약속을 구체화해 주셨다. 세겜 땅에 이르렀을 때에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고(창 12:7), 롯과 헤어진 후에는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땅을 다 주고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창 13:14-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아브라함은 살아생전에 그 약속을 얼마나 누렸는가. 티끌같이 많은 자손을 준다고 하셨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얻은 아들은 이스마엘과 이삭 둘뿐이었다.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땅을 다 준다고 하셨는데 그가 실제로 소유한 땅은 아내 사라를 장사한 막벨라 굴 하나뿐이었고, 그것도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자기 돈으로 산 것이었다(창 23:16-18). 약속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눈에 보이는 성취는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삐치지 않았고 제 마음대로 가 버리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그 약속을 차지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혹시 내가 이 길을 걸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내 시대에 번성과 영광을 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오늘도 시골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하여 고생하면서 헌신하는 목사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영광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천국에 높은 처소를 예비해 두셨다. 우리는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다윗도 소년 시절에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얼마나 고생하였는가.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을 것이나 끝까지 갔더니 진짜 왕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위인들은 대부분 다 고난을 겪었다. 예레미야를 보라.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고 나무 고랑에 채워 두었다(렘 20:1-2). 사명자의 길을 가면 모함도 당하고 매도 맞고 감옥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렘 20:1-2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완전히 뒤집어진 사람이다. 그날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20), 유대인들은 자기 편인 줄 알았던 그가 완전히 예수의 편이 된 것을 보고 그를 죽이려고 사십여 명이 당을 지어 맹세까지 하였다(행 23:13).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고(행 14:19),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하였다(고후 11:2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직접 만났다고 하면 직통 계시 이단이라고 하고, 회개를 외친다고 교단에서도 나를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이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할 것이다. 누가 나를 죽인다 하여도 그만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과 환난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사명자의 특징이다. 또한 사명자의 길은 잠을 좀 못 자는 길이기도 하다. 나도 밤늦게까지 사역을 하고 새벽 한 시 반에야 돌아가는 날들이 있다. 결단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보람되고 감격스러우며 소망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주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네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주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도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였다(행 20:23-2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을 보라. 다니엘은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구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단 6: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주님, 저 법이 통과되지 않게 하시고 그 조서를 불태워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않았다. 나라의 법도를 어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면 받겠다는 것이다. 알고도 기도하였고 실제로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그를 건지신 것이다.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던 사람이다(단 1:8). 이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사는 자의 모습을 주님은 기억하고 계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어떠하였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고, 이사야는 그대로 하여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한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사 20:2-3). 몸을 드러내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기던 이스라엘에서, 언제까지라는 기한도 알지 못한 채 선지자가 벗은 몸으로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이사야는 그대로 순종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0:2-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어다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이사야의 마지막은 어떠하였는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고난을 열거하면서 톱으로 켜는 것을 말한다(히 11:36-37). 역사적 전승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가 회개를 외치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한다. 메시야에 대한 가장 놀라운 예언들을 남긴 이사야, 천국에서 가장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이사야가 걸어간 길이 바로 이런 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도 이 길을 걸으면서 순교에 대하여 주님께 물은 적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 최고의 복인데 나는 순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훗날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이미 목숨을 내놓았다고 확인해 주셨다. 죽을 각오가 이미 되어 있는 자로 여겨 주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영광만을 바라보고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주님은 영광의 길을 걷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길을 걸어갈 때에 주님이 보시고 합격점을 주시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변함없이 쓰시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창 22장), 그 후에는 다시 시험이 없고 평탄한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었느냐는 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시간에는 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살펴보았다. 사명자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예레미야도 이사야도 바울도 모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았듯이, 사명자의 길은 구십 퍼센트가 예정된 자들이 걸어가며,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감당할 은사와 달란트를 주어 보내신다. 하나님은 낙원에서 영혼을 창조하셔서 자라게 하시고, 어느 나라 어느 가문에 보낼지를 정하시며, 중차대한 일을 맡기실 영혼은 영의 나이가 성숙한 자로 보내신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그 어머니의 혈통에서부터 준비된 것이 그 증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려는 자는 네 가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합격한다면 그는 사명자요, 그 사명자의 길에는 엄청난 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혹시 그 복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절대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눈으로 다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천국에서 큰 상급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모든 성도가 특별 사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 사명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일반 사명자로서 가족에서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명자와 협력하여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선지자를 돕는 자는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는다고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며, 주의 종과 협력하여 천국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7월 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fe4d12d6d413c5a5e069f04a376515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27eba47c934a99f3710d2f8722e11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93cab7463b6ab6df4296a55c49003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aa422c6952e0fa1e067842205e18f9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fd2dd87216e4f910cc0a596e9d03b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36eac014b49a7063c67dde6ac0c3f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0e4449668e8f723e559a8776020c25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9566ae436429de6fb228c9a02f73e4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1f5f68b4cc8c86362b2243cba668d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8429b3a246ab93e22ad6d5a5179de4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00548243c98c5c2cfe587dbaff68bad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be621a7c01334cff191b7770e4fd53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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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특별한 소명&lt;/strong&gt;을 받은&amp;nbsp;&lt;strong&gt;사명자&lt;/strong&gt;들이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와 그들이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을 신학적 성찰과 개인적 경험을 담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사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amp;nbsp;&lt;strong&gt;사랑하는 것을 포기&lt;/strong&gt;하고 하나님의&amp;nbsp;&lt;strong&gt;시간표를 인내&lt;/strong&gt;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amp;nbsp;&lt;strong&gt;목숨까지 내놓을 각오&lt;/strong&gt;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이나 이사야 같은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사명자에게 약속된 영광은 당대의 보상이 아닌&amp;nbsp;&lt;strong&gt;천국의 상급&lt;/strong&gt;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청중에게&amp;nbsp;&lt;strong&gt;영적 장자&lt;/strong&gt;로서의 사명을 일깨우며, 지도자와 협력하여&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을 전파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07-05(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5; } h1 { font-size: 18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1.5em 0; padding: 0; } h2 { font-size: 15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0.8em 0; padding: 0; } p.body { margin: 0 0 0 0; padding: 0; } p.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footer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h1&gt;1. 들어가며&lt;/h1&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람은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육체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보냄이 있고, 부르심이 있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앙생활은 쉽게 흔들린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금방 다른 길로 옮겨 가고, 사람의 말에 흔들리며, 고난이 오면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에, 왜 이 가정에, 왜 이 교회와 말씀 앞에 세우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인생이 하늘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다(벧후1:10~11). 여기서 &amp;lsquo;부르심&amp;rsquo;은 헬라어로 클레시스, &amp;lsquo;택하심&amp;rsquo;은 에클로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목적 있게 불러내신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굳게 한다는 것은 막연한 신앙 감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리와 길을 확인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벧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번 말씀에서 다루려는 핵심은 사명자의 길이다. 사명자는 단지 직분을 가진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셨고, 때가 되어 불러내셨으며, 그분의 경륜을 이루도록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다. 물론 모든 성도에게는 일반적인 사명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가족과 주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특별한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선포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길은 가벼운 길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에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으며,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고,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내놓는 순종이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영광의 길이지만 동시에 십자가의 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2. 사명자는 누구이며 사명은 어떻게 나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이고, 또 하나는 특별히 보냄받은 자에게 주어진 특별 사명이다. 일반 사명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과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 안에서 주어진 섬김을 감당하는 것이다. 특별 사명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보내시고, 그를 통해 특별한 말씀과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일반 사명은 주님의 지상명령과 연결된다(행1:8).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기본 사명이다. 신앙은 자기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를 통해 내 집과 내 주변이 구원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의 멸망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보고 자기 가족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신약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자기 집과 함께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행16:31). 고넬료도 자기 집과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베드로의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일반 사명의 출발점이다. 믿는 자가 먼저 믿었다는 것은 먼저 책임을 맡았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경에는 일반 사명과는 구별되는 특별 사명도 있다. 예레미야는 모태에서 짓기 전부터 하나님께 알려졌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되었으며,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졌다(렘1:5).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고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갈1:15~16). 이러한 부르심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계획하시고 정하신 부르심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같은 모양으로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성도로서 충성하면 된다. 어떤 이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어떤 이는 교회를 섬겨야 한다. 어떤 이는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부르심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부르심을 모르면 허황된 꿈을 꾸거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두려워하여 피하게 된다.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3. 하나님은 사명자를 어떻게 예정하시고 보내시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람을 목적 없이 보내지 않으신다. 육체적으로 사람은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난다. 어떤 이는 가르치는 달란트를, 어떤 이는 음악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운동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섬김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사명은 육체의 달란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영적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부르심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 어느 나라에, 어느 가문에, 어떤 성별로 보낼 것인지를 아시고 보내신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정과 고정을 구별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떤 사명으로 보내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반드시 그 길을 끝까지 간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보내셨더라도 사람이 게으르고, 회개하지 않고, 고난을 싫어하고, 세상과 타협하면 그 사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약하고 부족해도 회개하고 순종하며 끝까지 주님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 귀하게 쓰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특별 사명자에게는 대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다. 사무엘은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태에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쓰실 종을 보내실 때는 기도하는 가정, 믿음의 환경, 혹은 특별한 영적 이유를 가진 가정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환경에만 사람을 보내시는 것은 아니다. 우상숭배가 깊은 가문에도 사람을 보내실 수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기 가문과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많은 사람을 깨우는 특별한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바울의 사례는 특별 사명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욕망으로 사명자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때가 되어 부르셨다. 다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준비되어야 한다. 말씀을 배워야 하고, 회개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부르심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씨앗이고, 순종은 그 씨앗을 열매 맺게 하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나실인의 원리도 중요하다. 히브리어 나지르는 &amp;lsquo;구별된 자&amp;rsquo;라는 뜻을 갖는다. 어떤 사람은 태에서부터 나실인처럼 구별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원하여 구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원하여 걷는 길은 더 큰 각오가 필요하다. 예정된 사명이 없는데도 사명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자기 부르심을 분별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준비와 헌신을 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상상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amp;ldquo;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실 것이다&amp;rdquo;라는 말만 붙들고 준비하지 않는다. 말씀도 배우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질서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사명이 아니라 자기 욕망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반드시 다듬어진다. 하나님은 쓰시기 전에 낮추시고, 회개시키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4. 일반 성도에게 맡겨진 사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모든 성도에게는 일반 사명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가볍게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행16:31). 먼저 믿은 자는 집안의 신앙적 장자가 되어야 한다. 혈통적 장자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영적으로 먼저 믿은 자가 그 집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 구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가족 구원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믿은 사람이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일을 가볍게 여기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가족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가족은 먼저 믿은 자의 삶을 본다. 처음에는 반대할 수 있다.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믿음의 지조와 일관성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사람은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일반 성도의 사명은 교회 안에서도 이어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각 지체에게는 맡겨진 기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섬기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돕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어떤 사람은 성도를 돌본다. 사명은 모두 강단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지체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도 사명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특별 사명자를 돕는 것도 일반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귀한 사명이다. 주께서는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0:40~42).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도 상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사역을 직접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을 알아보고, 기도와 섬김과 물질과 순종으로 협력하면 그 일의 열매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일반 성도는 &amp;ldquo;나는 특별 사명자가 아니니 할 일이 없다&amp;rdquo;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길을 돕고, 보냄받은 종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일반 성도의 길이다. 이 길을 충성스럽게 걷는 자에게도 하늘의 상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5. 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사명자의 길은 곧 막히게 된다. 사명자는 자기 취미, 자기 꿈, 자기 직업, 자기 명예, 자기 가족까지도 주님의 손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가족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에게 현세에서도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막10:29~30). 여기서 &amp;lsquo;버리다&amp;rsquo;라는 말은 헬라어 아피에미와 관련하여 &amp;lsquo;놓아두다, 떠나보내다, 내려놓다&amp;rsquo;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명자의 내려놓음은 무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 최종 소유권을 넘겨 드리는 믿음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도 가족이 있었다. 장모가 있었다. 그는 가장이었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은 언제나 &amp;ldquo;나의 것&amp;rdquo;과 &amp;ldquo;주의 것&amp;rdquo; 사이에서 결정을 요구한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무리 소중해도 주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내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자기 생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사명자의 길에서도 같은 질문이 온다.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 안정된 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자신이 원하던 직업이나 꿈이 있어도 주님께서 다른 길로 부르시면 따를 수 있는가? 자기 자녀와 가족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사명에서 물러서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정직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가족을 버려야 사명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 때문에 가족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면 사명이 무너진다. 사명자는 가족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사용하여 가족까지도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 신앙의 장자는 이렇게 서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6.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더디 와도 기다릴 수 있는가? 사람은 빨리 열매를 보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곧바로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역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사명자들은 대부분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했다. 하나님의 때는 사람의 조급함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창12:1~3). 그러나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과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의 생전에는 그 약속의 완성을 다 보지 못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받았으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말한다(히11:13). 이것이 사명자의 믿음이다. 사명자는 자기 시대에 모든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땅에서 다 보지 못해도 하늘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즉각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도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 곧장 왕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에게 쫓기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원수에게 보복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사명자의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릇을 빚으시는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려 한다. 그러면 사명이 오염된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해 제사장의 영역을 침범했고, 결국 왕의 길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다윗은 기회가 있어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두려워했다. 이것이 기다림의 영성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기다림 속에서도 회개와 준비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배우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카이로스, 곧 정하신 때가 온다. 그때 사명자는 흔들림 없이 들어가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7. 사명자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세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사명자는 사람들에게 늘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참된 말씀은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의 거짓과 악한 영의 속임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반드시 반대와 핍박을 만난다. 고난이 없는 사명은 거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다가 바스훌에게 맞고 목에 고랑이 채워졌다(렘20:1~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고 때리고 가두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멈추지 않았다. 말씀은 그의 속에서 불붙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명자의 마음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렘20:1~2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들을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마찬가지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20:24).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고난은 사명자를 검증한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사명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손해가 오고, 오해가 오고, 가족의 반대가 오고, 몸의 고통이 오고, 사람들이 떠나갈 때도 그 길을 가는지는 다른 문제다. 고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크게 본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영적 전쟁도 중요하다. 사명자의 길에는 악한 영들의 공격이 있다. 귀신들은 사명을 막기 위해 두려움, 낙심, 분노, 혈기, 음란, 시기, 질투, 교만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에게 틈을 주고, 사명은 흔들린다. 회개는 사명자의 방어선이다. 예수의 피로 속죄를 받고,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사람을 원수로 삼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엡6:12).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사명자는 곧 무너진다. 악한 영을 대적하되 사람은 살려야 한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 배우는 전쟁의 길이며, 예수께서 완성하신 영적 전쟁의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8.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네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은 가장 마지막 질문이자 가장 깊은 질문이다. 사명자의 길은 말로만 가는 길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생명을 요구받을 수 있다. 주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16:24~25). 여기서 자기 부인은 자기 욕망의 포기가 아니라 자기 주권의 포기다. &amp;ldquo;내가 주인이다&amp;rdquo;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amp;ldquo;주님이 주인이시다&amp;rdquo;라고 고백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그는 법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켰다. 이사야는 전승에 따르면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히11:37). 사명자의 길에는 이런 각오가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물론 모든 사명자가 실제로 순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명자는 순교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으면 작은 손해 앞에서도 무너진다. 사람의 비난 앞에서 물러서고, 물질의 손해 앞에서 타협하며, 가족의 반대 앞에서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미리 마음을 정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 손해도 감당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결단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가능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다. 주님은 먼저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기 목숨을 주께 드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의 삶에서도 실천된다. 자기 편안함을 내려놓고, 말씀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고, 맡겨진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작은 순교의 삶이다. 매일 자기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사명자의 길이다.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목숨을 내놓는 사명은 반드시 천국의 상과 연결된다.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셨다(계22: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가 구원의 공로라는 뜻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주님께서 보신다는 뜻이다. 믿음이 참되면 순종으로 나타나고, 사명이 참되면 충성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기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명자의 길은 혼자 걷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고,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 승천 후에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돕고 이끄신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힘만 바라보면 쓰러지지만, 주님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을 붙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은 단지 종교적 구호가 아니다.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이며, 영적 전쟁에서 악한 영을 물리치는 전능자의 이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명자는 마지막까지 충성해야 한다. 바울은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라고 했다(고전15:58). 사명자는 당장 보이는 열매가 적어도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 땅에서 박수를 받지 못해도 하늘은 기록하고 있으며,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큰 위로는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사실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명에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과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목적을 위해 주신 특별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자신과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끌고, 교회를 섬기며, 보냄받은 종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한다. 특별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말씀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전토와 자기 꿈까지 주님의 손에 올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아야 한다. 사명자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반대와 조롱과 핍박이 와도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또한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 주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자기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특별 사명자가 아니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자기 집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맡겨진 일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과 함께 복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길에도 상이 있다.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사명자는 회개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회개가 없으면 사명이 오염되고, 악한 영의 공격에 흔들리며,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게 된다. 회개하는 자는 깨끗해지고, 깨끗해진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자기 부르심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말씀과 회개와 순종으로 걸어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허황된 영광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영광의 길에는 십자가가 있고, 왕권의 길에는 영적 전쟁이 있으며, 천국의 상에는 이 땅에서의 충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일반 사명자는 일반 사명에 충성해야 하고, 특별 사명자는 특별 사명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7월 05일(일)&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37050305f339afb96d2365937837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cfe3b43a08bcc94e2ef1778bffc2f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65efb34989e23c46f2eae24e2f0f4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8d5d9a99d435aa3457b461d211a8f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f50302b14ff3f1c235771120d87f5a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935361523a8d0ab432831ebde0db2a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815599aa56547fa7078bfbe9ed6dd2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3c7c4c8234d3898d86032e9e2a8eb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8b4a78db964485dd88ce31eef8011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dc3d648b86d933443c28cb3c89c624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96a2f29a150a51342d2e1594d89db5d.webp&quot; /&gt;&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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