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version="2.0">
	<channel>
		<title>주일찬양예배</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link>
		<description></description>
		<atom:link href="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rss"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26 Jun 2026 18:31:28 +0900</pubDate>
		<generator>Rhymix</generator>
	<copyright>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copyright>	<image>
			<url>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rss/market_icon.png</url>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link>https://dongtanms.kr/</link>
		</image>	<item>
			<title>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_2026-06-2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841</link>
				<description>&lt;p&gt;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투박한 요약 정리)&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1AGvfBxVI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1AGvfBxVI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Nanum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 color: #222; line-height: 1.65; } .content { margin: 0; padding: 0; } h1 { margin: 0 0 1.2em 0; padding: 0; font-size: 20px; font-weight: 700; color: #222; } h2 { margin: 2.4em 0 0.9em 0; padding: 0; font-size: 17px; font-weight: 700; color: #38688c; } p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scripture {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footer { margin-top: 1.4em; } &lt;/style&gt; &lt;div class=&quot;content&quot;&gt; &lt;h1&gt;&amp;nbsp;&lt;/h1&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성도라면 누구나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기 원한다. 예배 시간에 들은 말씀이 은혜로웠고, 설교 중에 마음이 뜨거워졌으며, 성경 구절이 분명히 귀에 들어온 것 같은데도 시간이 지나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막상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시험과 환난 앞에서 말씀으로 자신을 붙들어야 할 때, 혹은 귀신을 대적하고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 마음속에 있던 말씀이 쉽게 꺼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머리가 나쁜 문제만이 아니다.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 말씀을 저장하는 기억 장치, 말씀을 다시 꺼내 쓰는 훈련, 그리고 말씀을 방해하는 영적 세력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문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이라고 고백하였다(시 119:105). 말씀은 어두운 길을 밝혀 주는 빛이다. 그런데 등불이 있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길을 보지 못한다. 빛이 있어도 귀와 마음과 생각이 막혀 있으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길이 되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일은 신앙생활의 출발이다. 그러나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며, 삶의 결정과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은 단지 좋은 말씀이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하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하나님의 빛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설교의 출발점은 매우 실제적이다. 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성경 주소와 내용을 자유롭게 꺼내어 말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타고난 지능이 매우 뛰어나지 않아도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듯 사용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 영적 방해의 처리, 마음의 상처 치유, 해마를 통한 기억의 저장과 회상, 그리고 반복적으로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암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문제이며,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의 방해를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하는 영적 문제이고, 마음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용서로 치유하는 내면의 문제이며,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말함으로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생활 훈련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 말씀이 왜 쉽게 잊히며,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처럼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왜 성경 말씀은 듣고도 쉽게 잊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성경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히는 첫 번째 이유는 영적 방해 때문이다. 말씀은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귀에 소리로 들려도, 실제로는 영과 혼과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듣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하며, 깨달았다 해도 곧 빼앗기도록 방해한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말씀을 사탄이 즉시 와서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막 4:1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 4: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다고 했다(마 13:19).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빼앗기는 장소가 귀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귀로 들었으나 마음에 심기지 못하면 말씀은 오래가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적 방해를 매우 실제적으로 설명한다. 제사 계열의 영, 의심하게 만드는 영, 불신앙의 영,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들이 귀와 생각을 막는다. 특히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들어온 영들은 말씀을 들을 때 졸리게 하고, 다른 생각이 나게 하며, 말씀에 의심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의 첫 단계는 단순히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막는 영적 통로를 회개로 처리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두 번째 이유는 육체의 피곤이다. 육체가 피곤하면 영적 집중력이 떨어진다. 토요일 밤에 늦게 자고 주일 예배에 오면,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몸이 먼저 잠을 청한다. 몸이 잠들면 귀도 닫히고, 귀가 닫히면 마음에 말씀이 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려면 몸도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것은 육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경적 균형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졸고 있을 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마 26:4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세 번째 이유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amp;ldquo;좋은 말씀이었다&amp;rdquo;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말씀이라고 말한 뒤 곧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도 좋은 말씀을 듣고, 또 잊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말씀은 축적되지 않는다. 말씀을 정보처럼 소비하면 해마는 그 말씀을 오래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말씀을 죽을 때까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면, 들을 때부터 태도가 달라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쉽게 잊히는 이유는 지능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악한 영이 말씀을 빼앗는 영적 방해, 육체의 피곤, 마음의 준비 부족, 그리고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함께 작동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면 먼저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 하나의 방해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 생기는 의심이다. 의심은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amp;lsquo;정말 그럴까&amp;rsquo;, &amp;lsquo;나에게도 해당될까&amp;rsquo;, &amp;lsquo;저 말씀은 나를 공격하는 말이 아닐까&amp;rsquo;라는 생각이 반복되면, 말씀은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질문과 다르다. 진리를 더 알기 위한 질문은 유익하지만, 말씀을 밀어내기 위한 의심은 악한 영들이 즐겨 사용하는 통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들을 때 판단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말씀 앞에 판단받는 자리에 서야 한다.&lt;/p&gt; &lt;h2&gt;3.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은 어떤 사람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말씀하셨다. 여기서 서기관은 헬라어로 &amp;lsquo;그람마튜스&amp;rsquo;(grammateus)이다. 이 단어는 문자와 기록을 다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은 단순한 율법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사람이며, 말씀을 자기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새것과 옛것을 꺼내는 사람이다(마 13:5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말씀에서 중요한 표현은 &amp;lsquo;곳간에서 내온다&amp;rsquo;는 것이다. 곳간에 없는 것은 꺼낼 수 없다. 저장하지 않은 것은 사용할 수 없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도, 내 속에 저장된 말씀이 없으면 꺼내 쓸 재료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듣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자기 안에 곳간처럼 저장해 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새것과 옛것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고 예수께서 성취하신 복음의 실체가 함께 꺼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 24:4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말씀을 단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연결하여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아브라함, 야곱, 유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을 따로따로 흩어진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그는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성도들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런 사람은 설교 현장에서도 다르다. 원고를 준비했더라도 성령께서 그 순간에 더 세밀한 말씀을 주시면,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꺼내어 보여 줄 수 있다. 로고스, 곧 기록된 말씀을 평소에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때그때 레마처럼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다. 로고스(logos)는 기록되고 선포된 말씀의 객관적 토대이고, 레마(rhēma)는 그 말씀이 특정 상황 속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된다는 것은 성경 지식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다. 누군가 낙심했을 때 위로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책망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귀신의 억압 가운데 있을 때 예수 이름과 십자가의 권세를 선포하며, 누군가 천국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심판과 상급의 말씀을 꺼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자기만 간직하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서기관은 자기 곳간의 주인이기도 하다. 곳간은 아무 물건이나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먹을 양식과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다. 성도 안에도 말씀의 곳간이 있어야 한다. 어떤 성도는 세상 정보는 많지만 말씀의 곳간은 비어 있다. 어떤 성도는 찬양 가사는 많이 알지만, 정작 영혼을 살릴 성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세상 뉴스와 정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저장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이 아니라 말씀을 꺼낼 수 있다.&lt;/p&gt; &lt;h2&gt;4. 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무엇에 달려 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 목사님은 자신의 지능이 특별히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었다. 성경 말씀을 자유롭게 꺼내 쓰게 된 비결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반복적인 축적의 습관이었다. 이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소망을 준다. 말씀 기억은 소수의 천재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듣고, 찾아보고, 기록하고, 다시 꺼내 쓰면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이상관 목사님, 곧 &amp;lsquo;이석&amp;rsquo;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영적 스승과의 만남이었다. &amp;lsquo;이석&amp;rsquo;은 말씀을 돌에 새기듯 새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마음판에 새기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잠언의 권면과도 맞닿아 있다. 잠언은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에 두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잠 22:17-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잠 22:17-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목사님은 그분의 설교를 들은 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는 연습을 했다.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되면 성경에서 직접 찾아 밑줄을 그었고, 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앞뒤 문맥을 읽었다. 한 구절을 읽다가 한 장을 읽고, 한 장을 읽다가 앞뒤 장을 읽었다. 이렇게 말씀이 점점 확장되었다. 이것이 성경 기억의 실제적 방법이다. 들은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문맥 안에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리도 동일하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수 1:8).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amp;lsquo;하가&amp;rsquo;(hāg&amp;acirc;)와 연결되며,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되새기는 의미를 가진다. 성경적 묵상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입과 마음과 행동이 함께 참여하는 반복적 되새김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말한다(시 1:2). 여기서도 핵심은 즐거움과 반복이다. 억지로 외우는 지식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말씀은 마음속 깊이 들어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가치 부여에 달려 있다. 내가 그 말씀을 중요하다고 여기면, 다시 찾아보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게 된다. 그러면 기억 장치는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다. 그러나 말씀을 예배 시간의 감동으로만 여기면,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성경 기억의 비결은 타고난 머리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기록하는 습관, 반복하여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 기억의 또 다른 비결은 &amp;lsquo;중요한 말씀을 중요하게 표시하는 것&amp;rsquo;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뇌에게 &amp;lsquo;이 말씀은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amp;rsquo;라고 알려 주는 행위다. 성경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날짜를 적고,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는 순간, 말씀은 나와 관련된 기억이 된다. 남의 설교 속에 있던 말씀이 내 성경 속으로 들어오고, 내 성경 속에 있던 말씀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lt;/p&gt; &lt;h2&gt;5. 마음의 상처는 왜 말씀 기억을 방해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을 방해하는 중요한 내적 요인 가운데 하나는 마음의 상처다. 설교 원고에서는 뇌의 편도체를 상처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편도체는 감정적 충격과 두려움, 상처의 기억과 관련된 영역으로 설명된다. 목회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그 상처의 렌즈를 통해 듣기 쉽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책망도 자신을 찌르는 비수처럼 느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왕따를 경험한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모든 상황을 &amp;lsquo;나를 밀어내는가&amp;rsquo;라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 잠시 말이 없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공동체에서 작은 오해가 생겨도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설교자가 죄를 책망하면 성령의 수술 칼로 받아야 하는데, 상처가 강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말씀은 기억으로 남기보다 방어와 분노의 감정으로 남는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바르게 사용하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그 치유의 길은 용서와 회개다.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8:21-2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용서는 가해자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마음을 묶고 있는 상처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주님의 심판과 긍휼에 맡기는 것이다. 바울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엡 4:31-3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자는 특히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말씀의 칼이 사람을 살리는 수술 칼이 아니라 사람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다. 같은 진리를 말하더라도 상처에서 말하면 정죄가 되고,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말하면 회복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기억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상처를 회개와 용서로 처리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권면한다(히 12:15). 마음의 상처가 쓴 뿌리로 자라면 말씀을 왜곡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서가 그 상처를 씻으면 마음은 다시 공평하게 말씀을 받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lt;/p&gt; &lt;p&gt;&amp;nbsp;&amp;nbsp;결국 말씀 기억은 머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문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할 때, 마음은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회복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될 때 말씀의 해석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책망으로만 들리던 말씀이 사랑의 권면으로 들리고, 이전에는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헌신의 말씀이 은혜의 초청으로 들린다.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은 기억력 훈련 이전에 마음의 토양을 고르는 일과 관련된다. 마음 밭이 돌밭과 가시밭으로 남아 있으면 말씀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회개와 용서로 마음 밭이 부드러워질 때, 말씀은 오래 머물 수 있다.&lt;/p&gt; &lt;h2&gt;6. 해마는 말씀을 어떻게 저장하고 가지치기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는 말씀 기억을 설명하면서 해마를 중요하게 다룬다. 해마는 뇌 안에서 기억과 관련된 중요한 구조로 설명된다. 목사님은 해마가 정보를 저장하고, 과거의 기억을 꺼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목회적 적용은 분명하다. 해마는 모든 정보를 영원히 붙들고 있지 않는다.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가지치기하듯 쳐낸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사람은 방금 본 것과 들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면 많은 기억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해마가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정보로 판단하여 정리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고도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그 말씀을 일시적 정보로 취급한다. 그러나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다시 말하고, 다시 묵상하면, 해마는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여 오래 남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9편 11절은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amp;lsquo;두다&amp;rsquo;는 단순히 보관한다는 뜻을 넘어, 귀한 것을 숨겨 간직하는 의미를 가진다. 히브리어 &amp;lsquo;차판&amp;rsquo;(tsāphan)은 감추다, 저장하다, 소중히 간직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잠시 듣고 흘려보낼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 두어야 할 보화다(시 119: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마리아도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다(눅 2:19). 이것이 말씀 기억의 중요한 원리다.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순히 감탄하고 끝내지 않고, 그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속에서 돌이켜 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 해마는 기억의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미래 예측의 도구로 설명된다. 과거에 저장된 말씀들이 서로 연결될 때, 성도는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말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전쟁을 기억하고, 야곱이 이긴 자가 된 사건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와 요한계시록의 이기는 자 약속을 함께 기억하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말씀 기억은 낱개의 구절 암송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물론 성경 구절을 외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깊은 단계는 구절과 구절, 사건과 사건,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해마가 저장한 말씀을 성령 안에서 연결하여 사용하는 삶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들을 때 &amp;lsquo;문 밖에 나가면 잊어버릴 말씀&amp;rsquo;이라고 여기면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amp;lsquo;이 말씀은 죽을 때까지 붙들 말씀&amp;rsquo;이라고 듣는다면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해마가 가지치기하기 전에 다시 꺼내어 쓰면, 그 말씀은 중요한 것으로 각인된다. 말씀 기억의 실제 비밀은 여기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는 치매의 예도 함께 언급된다. 해마와 기억 기능이 약해지면 가까운 기억부터 흐려진다. 방금 들은 말, 방금 한 일, 오늘 먹은 식사부터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말씀 기억에도 경고가 된다. 평소에 머리를 쓰지 않고, 말씀을 꺼내 쓰지 않고, 모든 것을 검색과 기계에만 맡기면 기억의 근육은 약해질 수 있다. 성도는 성경 주소를 찾고, 본문을 직접 펼치고, 말씀의 앞뒤 문맥을 읽는 수고를 통해 기억의 길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해마가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게 하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같은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다시 적용하고, 어제의 경험과 연결하며, 내일의 결단으로 가져가는 반복이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은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현재의 빛이 된다. 주의 말씀은 한 번 비추고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날마다 내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다.&lt;/p&gt; &lt;h2&gt;7.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어떻게 꺼내 써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꺼내 쓰는 것이다. 설교를 다시 듣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더 강력한 방법은 설교를 듣고 난 뒤, 기억나는 내용을 스스로 글로 써 보는 것이다. 다시 듣는 것은 외부에서 정보를 한 번 더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것은 내부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방식이다. 해마는 꺼내 쓸 때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인식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박국에서 하나님은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하셨다(합 2:2). 기록은 기억의 보조 장치일 뿐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행위다. 기록하면 모호하던 생각이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장으로 정리된 말씀은 다시 기억되기 쉽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내 쓰는 첫 번째 훈련은 설교 요약이다. 오늘 들은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설교자가 반복해서 강조한 성경 구절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처음에는 한 줄만 써도 된다.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며,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이것이 말씀을 저장하는 실제적인 훈련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두 번째 훈련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말하라고 한다(신 6:6-7). 말씀은 말할 때 다시 살아난다. 가족과 식탁에서 말씀을 나누고, 성도들과 대화 속에서 오늘 들은 말씀을 설명하며, 누군가 질문할 때 성경으로 대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lt;/p&gt; &lt;p&gt;&amp;nbsp;&amp;nbsp;베드로도 성도들에게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했다(벧전 3:15). 준비되지 않은 말씀은 꺼내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에 말씀을 기록하고 말로 설명해 본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lt;/p&gt; &lt;p&gt;&amp;nbsp;&amp;nbsp;목사님의 설교 준비 과정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먼저 설교 주제가 정해지면 개요를 쓴다. 그 다음 관련 본문과 자료를 찾아본다. 주보 요약을 쓰고, 다시 원고를 작성한다. 설교를 한 뒤에도 다시 요약한다. 이런 과정은 모두 기억을 꺼내 쓰는 과정이다. 한 번 들은 것을 다섯 번 이상 다른 방식으로 꺼내 쓰면, 말씀은 단순 정보가 아니라 몸에 익은 도구가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내 쓰는 훈련은 설교자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설명하려면 꺼내 써야 한다. 직장에서 누군가 믿음에 대해 물으면 꺼내 써야 한다. 귀신의 공격이 있을 때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려면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으려면 약속의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비결은 다시 듣기만이 아니다. 기억해서 써 보고, 기억해서 말해 보고, 기억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실제 훈련은 아주 작게 시작할 수 있다.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성경 본문을 먼저 떠올린다. 그 다음 설교 제목을 떠올린다. 그리고 핵심 단어 세 개를 적는다. 예를 들어 &amp;lsquo;말씀, 해마, 꺼내 쓰기&amp;rsquo;와 같이 적는 것이다. 그 다음 그 세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든다. &amp;lsquo;말씀은 해마가 중요하다고 여기도록 계속 꺼내 써야 한다.&amp;rsquo; 여기서부터 설교 요약이 시작된다. 작은 문장 하나가 기억의 씨앗이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로 설명할 때도 원리가 있다. 단순히 &amp;ldquo;은혜로웠다&amp;rdquo;고 말하면 기억은 깊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은혜로웠는지, 어떤 성구가 마음에 남았는지,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말씀은 감정의 흔적에서 생각의 구조로 바뀐다. 생각의 구조로 바뀐 말씀은 다시 꺼내 쓰기 쉬워진다.&lt;/p&gt; &lt;h2&gt;8. 말씀 기억을 돕는 보조 원리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는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로 상처 치유와 기억 꺼내 쓰기를 말한 뒤, 몇 가지 보조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쁨과 보상의 원리다. 목사님은 이것을 도파민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보상이 있으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기억과 훈련이 더 잘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세속적 욕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씀을 붙든 결과로 얻게 될 영적 유익, 사역의 열매, 사역자의 도움, 회개의 진전,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도 거룩한 동기가 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한다(고전 9:25). 운동선수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절제한다면, 성도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훈련도 마찬가지다. 즉각적인 편안함보다 장차 얻게 될 영적 유익을 바라볼 때 지속할 힘이 생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lt;/p&gt; &lt;p&gt;&amp;nbsp;&amp;nbsp;둘째는 자기 암시, 더 정확히 말하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다. 단순한 긍정 심리가 아니다. 성도는 &amp;lsquo;나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amp;rsquo;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빌 4: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자신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그도 할 것이며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근거로 자신에게 믿음의 말을 들려줄 수 있다. &amp;lsquo;나는 어제보다 오늘 말씀을 더 잘 붙들 수 있다.&amp;rsquo; &amp;lsquo;성령께서 내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나는 더 깊이 저장할 수 있다.&amp;rsquo; &amp;lsquo;나는 주님의 말씀을 꺼내어 사람을 살리는 자로 세워질 수 있다.&amp;rsquo; 이런 고백은 허공에 던지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 위에 서는 신앙적 자기 암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셋째는 몸의 훈련이다. 육체와 기억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말씀을 듣기 어렵고, 몸이 지나치게 무기력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도 어렵다. 그래서 적절한 운동과 수면, 규칙적 생활은 말씀 기억에도 도움을 준다. 영적인 사람은 육체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체를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잘 관리하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넷째는 회개와 축사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 의심하게 하는 영, 귀를 막는 영, 생각을 흐리게 하는 영은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해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귀신론의 관점에서 보면, 말씀 기억의 문제는 단지 뇌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통로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말씀을 막는다면, 성도는 그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름으로 그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모든 보조 원리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보상도 말씀을 위해 있고, 자기 암시도 말씀의 약속 위에 있어야 하며, 운동도 말씀을 듣고 섬기기 위한 몸의 관리가 되어야 한다. 회개와 축사도 결국 말씀을 더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한 길이다. 말씀 기억의 목적은 암기력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알고, 교회를 세우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준비되는 데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보상의 원리는 체크리스트와도 연결된다. 회개기도를 몇 번 했는지 표시하고, 성경 읽기와 설교 요약을 했는지 표시하면 뇌는 진행 상황을 본다. 진행 상황이 보이면 의욕이 생긴다. 어린아이에게 스티커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어른에게도 작은 표시와 확인은 지속의 힘을 준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훈련의 지혜다. 영적 삶에도 질서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는 성도는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몸이 너무 무너지면 예배 자리에서도 집중하기 어렵고, 기도 자리에서도 금방 지친다. 가볍게 걷고, 숨을 고르고, 몸을 움직이는 일은 말씀을 담는 그릇을 관리하는 일이다. 몸을 우상으로 삼으면 안 되지만, 몸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고전 6: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성경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과 몸이 준비되어야 한다. 악한 영의 방해를 회개로 처리해야 하고, 육체의 피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말씀을 좋은 말씀으로만 듣고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들은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앞뒤 문맥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 글로 쓰고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 해마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쳐내기 전에, 성도는 그 말씀을 다시 꺼내어 중요한 것으로 각인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마음의 상처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을 삐뚤게 듣게 되고, 책망의 말씀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공평하게 듣고, 생명을 살리는 말씀으로 전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의 문제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꺼내 쓰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기쁨과 보상,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 몸의 관리, 회개와 축사의 실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말씀을 자기 안에 보화처럼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기만을 위해 붙들 것이 아니라, 가족과 교회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최종 목적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으로 삼고,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6월 21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말씀_기억_천국의_서기관_인포그래픽2026-06-1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edca401d7d7c92bb2c71e41039779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2e18853e9d948a26a0bca528f1578a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ac2d5181e9e11d97d61904df74c59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59c278b4d2070378cdfdf16ed2fbe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d637dabb2100ee93fe9a95a52806d2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61033c3d904fb4f3d882ac438ac8e4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7c9f176e674f22fff1404a0370127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d30e3d124633ed6e631484ff2baf29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6447b30f0588fdee5740de19ff4722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249aed5a515067509a6d5890c2a6e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25d6f4d3a8998ceefa44e1c2ec330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6abe1646ef6ee93c6fee07d6b5dd9c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e1bd833ec09d7263bf935a197fd77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07c405f1ab73ec05599cf00a3739adb9.webp&quot; /&gt;&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또 다른 요약입니다]&lt;/p&gt; &lt;p&gt;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정제된 요약 정리)&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1AGvfBxVI8&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1AGvfBxVI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 { margin: 0; padding: 0; box-sizing: border-box;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보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은혜로운 설교를 들었고, 그 순간에는 마음이 뜨거웠는데, 하루가 지나면 절반이 사라지고 사흘이 지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다음 주가 되면 지난 주에 들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amp;quot;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amp;quot;라는 자책이 생기고, 급기야 &amp;quot;성경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amp;quot;이라는 체념에 이르게 된다.&amp;nbsp;그러나 이것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lt;strong&gt;우리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씀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 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적인 방해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기억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사실&lt;/strong&gt;도 간과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손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한다(신 6:6-7). 신명기는 이 명령을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언제든지 강론하라고 덧붙인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말씀이 머릿속 어딘가에 단단히 새겨져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은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 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3:52). 언제든지 필요한 말씀을 꺼내 쓸 수 있는 자, 그것이 천국의 서기관이다. 이 서기관은 특별히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소수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원리와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왜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살피고, 뇌의 기억 장치인 해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며,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기억을 방해하고 용서를 통해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함께 살핀 다음,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통해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서기관으로 서는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훈련을 통해 어떻게 말씀을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 모두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성경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 시간에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영적인 방해이고, 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그러나 이 둘보다 더 근본적인 세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들은 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영적인 방해부터 살펴보자. 성경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들을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고 분명히 경고한다(마 13:19). 귀신은 말씀이 들려지는 예배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역사하며, 듣는 자로 하여금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며, 마음에 뿌려진 씨앗을 순식간에 빼앗아 간다. 이것이 영적 방해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임하기 전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 자리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악한 자의 방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영적 자세가 필요하다.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했다(벧전 1:13).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 방심한 채로 예배에 앉아 있으면 귀신은 어렵지 않게 역사한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하고 영적으로 경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깊이 뿌리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몸이 지쳐 있으면 예배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고, 졸면 당연히 듣지 못한다. 피곤한 육체는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앞둔 토요일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한 영적 준비의 일환이다. 피곤함을 핑계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인 동시에 생활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일 전날 저녁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다음 날 예배에서 말씀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두 가지 원인을 넘어, 말씀이 기억에 남지 않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서 &amp;quot;오늘 말씀 참 좋았어요&amp;quot;라는 감상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 또 듣고, 또 좋은 말씀이야, 그리고 또 잊어버린다. 이렇게 반복되면 말씀이 축적되지 않는다. 수년째 예배를 드려도 누군가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답할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검색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생각해 보라. 지금 이 순간,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는가? 아마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사흘 전 아침은 어떤가?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주일 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억이란 그것을 꺼내 보지 않으면 빠르게 희미해진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라도 한 번 듣고 그냥 두면, 뇌는 그것을 불필요한 정보로 분류하여 지워 버린다. 이것은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뇌가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는 자주 사용되는 정보를 강화하고, 사용되지 않는 정보는 삭제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말씀 축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의 뇌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면 누구든지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IQ가 아니라 습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뇌의 기억 구조에서 해마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핵심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의 비결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크게 대뇌, 소뇌, 간뇌, 중뇌, 교뇌, 연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전체를 뇌간이 뿌리처럼 지탱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간뇌이다. 간뇌는 뇌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외부 충격으로 다른 부분이 손상되더라도 마지막까지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다. 그만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의 겉껍질 부분이며, 네 영역으로 나뉜다. 뒤통수 쪽에 있는 후두엽은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처리하여 간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머리 위쪽의 두정엽은 운동 감각을 담당하는데,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오랫동안 탈 수 있는 것은 이 두정엽이 운동 감각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정엽이 손상되면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마 쪽의 전두엽은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해 주는 기관이다. 귀 주변에 위치한 측두엽은 귀로 들어온 청각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네 영역으로 들어온 모든 정보가 간뇌로 흘러들어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간뇌 안에는 두 가지 핵심 기관이 있다. 하나는 편도체이고, 다른 하나는 해마이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하며, 정서적 충격과 상처를 저장하는 장치이다. 해마는 간뇌 뒤쪽 부분에 위치하며, 일반적인 정보와 경험을 기억하는 장치이다. 이 두 기관이 각각 &amp;quot;상처의 기억&amp;quot;과 &amp;quot;일반적 기억&amp;quot;을 담당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해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뇌 속에 좌우 두 개가 한 쌍으로 존재한다. 생김새가 바다에 사는 해마와 닮아서 해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약 5cm 정도이며, 귀 위쪽에서 약 5cm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작은 기관이 우리 기억 전체를 주관하는 핵심 장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의 기능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해마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몸으로 느낀 것 등 모든 감각 정보를 받아서 잘게 분해한 뒤 각 파트별로 분류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때, 저장해 둔 조각들을 다시 모아 &amp;quot;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amp;quot;를 예측하게 해 준다. 쉽게 말해 해마는 우리 몸 안의 일기 예보관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가 단순한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더 지혜롭게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마에 풍성한 말씀이 쌓여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말씀을 꺼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인간의 해마는 인공지능(AI)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AI가 어떤 동물을 식별하려면 수십만 장의 사진을 반복 학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한 번만 보면 즉시 기억한다. 아침 식사 때 옆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우리는 별다른 노력 없이 기억한다. 이것이 해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AI보다 천만 배 뛰어난 기억 장치를 이미 몸 안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탁월한 기억 장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모든 정보를 무한정 보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amp;quot;쓸모없다&amp;quot;고 판단한 정보를 가지쳐 삭제해 버린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듯이, 해마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기억을 조용히 지워 버린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은 기억나지만, 사흘 뒤에는 대부분 사라진다. 해마가 &amp;quot;그 정보는 더 이상 필요 없다&amp;quot;고 판단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가 기억을 분해하여 파트별로 저장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패턴을 추출하여 미래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다윗의 시편, 바울의 서신,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각각 파트별로 해마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예측하여 꺼내 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폭넓게 아는 사람은 삶의 어떤 자리에서도 적절한 말씀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해마에 저장된 말씀의 양과 질이 그 사람의 영적 대응력을 결정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분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억을 꺼내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꺼내서 쓰면 해마는 &amp;quot;아, 이 정보는 계속 필요하구나&amp;quot;라고 인식하여 삭제하지 않고 더 깊이 저장한다. 반대로 한 번 듣고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미련 없이 그 말씀을 삭제해 버린다. 이것이 기억의 법칙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편 치매는 이 해마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방금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수십 년 전의 오래된 기억은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오래된 기억은 이미 해마가 건강하던 시절에 단단히 저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치매를 예방하는 핵심은 바로 이 해마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뇌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를 짚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가 크면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라 해마를 얼마나 발달시켰는가이다. &amp;quot;우리는 뇌의 10%만 쓰고 나머지 90%는 잠을 잔다&amp;quot;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할 때 뇌의 모든 영역에 불이 들어온다. 뇌 전체가 협력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amp;quot;호두를 먹으면 뇌가 좋아진다&amp;quot;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호두의 모양이 뇌를 닮아서 뇌에 좋은 것이 아니라, 호두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성분이 실제로 뇌의 신경전달 기능을 돕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영국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는데,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여 운전한 그룹과 20만 개 이상의 골목길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며 운전한 그룹 사이에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달랐다. 머리로 길을 기억하며 운전한 기사들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가 더욱 발달하여, 일부 신경이 손상되어도 다른 경로로 우회하며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복적인 패턴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을 꺼내 쓰는 활동이 해마를 살아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화투나 단순 반복 게임보다 요리나 일기 쓰기가 해마 발달에 훨씬 더 유익한 이유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마음의 상처가 기억력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받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39;해마&amp;#39;가 기억을 담당한다면, &amp;#39;편도체&amp;#39;는 감정이나 상처를 담당한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한 작은 기관으로, 정서적 충격과 두려움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이다. 편도체는 마음을 주관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심장은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펌프일 뿐이며, 정서와 감정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이 편도체임이 밝혀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번 극심한 상처를 입으면 편도체는 그 충격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이후 모든 상황을 그 상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왕따를 경험한 사람은, 이미 그런 환경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무의식적으로 &amp;quot;나를 또 왕따시키려는 것이 아닐까&amp;quot;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수가 줄어들고, 관계에서 자꾸 움츠러든다. 편도체에 새겨진 상처의 기억이 현재의 모든 관계를 왜곡하여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공평하고 열린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상처가 기억 전체를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 심각한 문제는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설교자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 강단에 서면, 그 설교는 말씀의 칼이 아니라 상처에서 나온 칼이 된다. 의사가 메스를 들면 사람을 살리지만, 도둑이 칼을 들면 사람을 해치듯, 동일한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도 상처가 치유된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고, 상처가 남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사람을 찌른다. 어떤 설교자들이 책망의 말씀을 전할 때 &amp;quot;당신은 저주받을 것이다&amp;quot;라는 식의 비수 같은 말을 던지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가 강단 위에서 터지는 것이다. 말씀을 증언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의 상처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받는가? 그 답은 용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amp;quot;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amp;quot;라고 물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8:21-22). 490번이라는 숫자는 회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용서를 통해 편도체에 깊이 박힌 상처의 기억이 해방되고, 그 지배력이 끊어지는 영적이고 과학적인 원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amp;quot;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한다&amp;quot;는 고백이 편도체를 옥죄던 사슬을 끊어 낸다. 상처가 사라지면 비로소 외부의 정보를 왜곡 없이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연약함과 아픈 과거를 담담히 꺼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상처를 남 앞에서 꺼내 놓지 못한다. 그 상처를 건드리는 말 한마디에도 방어적 반응이 일어난다. 반면에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담담히 드러내며 오히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되면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말씀을 들을 때 편도체의 방해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말씀이 해마에 또렷이 새겨진다. 또한 설교자가 강한 어조로 책망하더라도 그것이 비수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수술의 메스로 들린다. 상처 치유가 말씀 암송의 첫 번째 조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용서하라. 그러면 기억의 문이 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인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귀신이 그 상처를 틈타 더욱 강하게 역사한다. 상처는 어둠이 들어오는 틈새이다. 그러나 용서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면 그 틈새가 막히고, 귀신이 역사할 빌미가 사라진다. 마음이 자유롭게 되면 예배 자리에서도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잡념이 줄고, 집중이 깊어지며, 말씀이 마음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온다. 이것이 용서가 가져오는 기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허물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내어 놓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받는다. 상처 속에 갇혀 있을 때는 자신을 보호하느라 마음의 문을 닫게 되지만, 상처가 치유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상처 없는 마음이 말씀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토양이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마 13:23). 좋은 땅이란 상처 없이 준비된 마음이다. 용서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의 마음이 바로 그 좋은 땅이다. 그 땅에 말씀이 뿌려질 때, 해마는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해마를 발달시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된 이후에는 해마를 적극적으로 발달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는 단 하나이다. 기억을 꺼내 쓰는 것이다. 해마는 사용할수록 더욱 강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자신이 저장한 정보를 누군가 꺼내어 사용할 때마다,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받는다. 그러면 해마는 그 기억을 더 단단히 저장하고, 주변의 신경세포들을 연결하여 더욱 풍성한 기억망을 형성한다.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고리인 시냅스가 더욱 촘촘해지고 강해진다. 반대로 저장해 두었어도 꺼내어 쓰지 않으면, 해마는 &amp;quot;이 정보는 필요 없다&amp;quot;고 판단하여 지워 버린다. 기억은 냉장고 속 음식과 같다. 꺼내어 먹어야 신선하게 유지되고, 방치하면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낼 때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서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설교를 또 들어 복습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 행위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을 끌어내어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해마를 능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극이다. 이 차이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 오늘 들은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한 줄이라도 적어 보라.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amp;quot;오늘 목사님이 해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기억을 꺼내 써야 해마가 발달한다고 하셨다.&amp;quot; 이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한다. 그 한 줄이 내일은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고,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말씀이 쌓이는 것이 이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누군가에게 전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amp;quot;오늘 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어&amp;quot;라고 이야기해 보라. 그 순간 해마는 저장해 두었던 말씀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야기를 들은 가족도 유익을 얻고, 말한 사람의 기억은 더욱 오래 남는다. &amp;quot;여보,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알고 있었어요?&amp;quot; 하고 꺼내는 그 순간, 해마에 불이 켜지면서 그 말씀이 영구 저장 영역으로 넘어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말씀을 기억해서 꺼내 쓰는 것, 기억해서 글로 쓰는 것, 이것이 해마 활성화의 핵심&lt;/strong&gt;이다. 요리가 해마 발달에 탁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리는 재료를 보고, 냄새를 맡고, 간을 조절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활동이다. 이것이 해마를 자극한다. 반면에 화투치기나 단순 반복 게임처럼 동일한 패턴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활동은 해마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규칙이 고정되어 있으면 뇌는 그 규칙을 한 번 익힌 뒤 자동으로 처리하므로, 해마는 잠을 자게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이 해마에 탁월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있었던 일을 기억으로 끌어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해마를 매일 활성화시킨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일기를 쓰는 것, 오늘 들은 말씀 한 가지를 기억으로 적는 것, 이 작은 습관이 세월이 쌓이면 엄청난 말씀의 보고를 만들어 낸다. 이 원리를 깨닫는 것이 말씀 암송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꺼내는 것이다. 이 차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필자는 어떤 습관으로 수십 년간 말씀을 기억하고 설교해 왔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필자(정보배 목사는 IQ 106, 한국인 평균 수준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 천재적인 암기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18살에 예수님을 믿고, 25살 때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이상관 목사를 만나면서 그의 신앙과 말씀에 대한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상관 목사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수십 개의 장절을 막힘없이 인용하며 한 시간 이상 설교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 &amp;#39;이석(李石)&amp;#39;은 스스로 지은 것으로, &amp;quot;하나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돌에 새기듯 새겨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amp;quot;는 결단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정보배 목사는 그 부흥회를 2년 동안 보좌하며 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연구했다. 3일짜리 부흥회와 5일짜리 부흥회의 레퍼토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메모해 두고 집에 돌아와 성경을 직접 찾아 확인했다. 앞뒤 구절을 함께 읽으며 문맥을 이해해 나갔고, 한 절이 한 장이 되고, 한 장이 다음 장으로 이어지며 성경 전체로 확장되어 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신약 성경 대부분에 밑줄이 그어지는 날이 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후 신학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는 아무도 밀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성경을 공부했다. 당시 시험에는 성경, 영어, 세계사, 상식 등 다양한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러 번 낙방한 수험생들이 모인 스터디 그룹에서 그는 의외로 성경 과목을 맡게 되었다. 성경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장에 있는지 막힘없이 말하는 그를 보고, 2년 이상 준비한 이들도 놀라워했다. 이것은 단지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꾸준히 말씀을 꺼내고 되새기는 습관이 쌓인 결과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목사가 된 이후 그가 설교를 준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주에 어떤 말씀을 전할지 기도하며 주제를 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노트에 개요를 쓴다. 서론, 본론, 결론의 뼈대를 잡는다. 둘째, 컴퓨터를 열어 관련 자료를 찾는다. 주석, 성경 사전, 요즘에는 AI 자료 등을 두루 살핀다. 셋째, 충분히 자료를 습득한 뒤 그것을 전부 기억에서 꺼내어 다시 쓴다. 자료를 보지 않고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보에 실리는 설교 요약이 되며, 예배에서 전하는 설교문의 기초가 된다. 넷째, 설교를 한다. 다섯째, 귀가하여 그날 설교했던 내용을 다시 원고를 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요약한다. 이것을 무려 약 28년간 지속해 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렇게 하면 설교 하나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다섯 번 이상 기억으로 꺼내 쓰는 셈이다. 개요를 쓸 때, 자료를 볼 때,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할 때, 설교를 전할 때, 귀가 후 요약할 때이다. 이 다섯 번의 반복이 말씀을 뇌에 깊이 새겨 넣는다&lt;/strong&gt;. &lt;strong&gt;한 편의 설교에 이 과정을 8,600번 이상 반복한 결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자유자재로 꺼내 쓰는 목사가 된 것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는 주일 예배 설교에서 과거의 말씀을 자주 반복한다. 이것은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중요한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꺼내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amp;quot;이기는 자&amp;quot;, &amp;quot;창세기 32장&amp;quot;, &amp;quot;아브라함의 믿음&amp;quot; 등의 핵심 주제를 반복할 때마다 성도들의 해마도 &amp;quot;아, 이것이 중요하구나&amp;quot;라고 인식하여 더 깊이 저장하게 된다. 설교자의 반복은 게으름이 아니라, 말씀이 성도들의 기억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려는 목양의 지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 말씀을 들을 때부터 다른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amp;quot;문 나가면 잊어버린다&amp;quot;는 생각으로 말씀을 듣는 반면에, 그는 &amp;quot;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amp;quot;는 결단으로 말씀을 받는다. 이 자세 하나가 해마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amp;quot;이 정보는 중요하다. 절대 삭제하지 말라.&amp;quot; 해마가 그 신호를 받고 말씀을 더 깊은 영역에 저장하는 것이다. 결단이 기억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배를 드릴 때 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릴 테니 들리는 만큼만 듣자는 마음과, 오늘 이 말씀을 내 삶에 새기겠다는 마음은, 동일한 설교를 들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 하나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밑줄을 긋는 그 행위 자체가 해마에게 이것은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중에 성경을 펼쳐 밑줄 그은 구절을 다시 볼 때마다 해마는 그 기억을 재강화한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깊이이다. 천 구절을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열 구절을 반복해서 꺼내 쓰는 것이 훨씬 더 강한 기억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도파민 분비와 자기 암시는 말씀 암송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를 더 효과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한 &lt;strong&gt;보조적인 방법들&lt;/strong&gt;이 있다. &lt;strong&gt;그 첫 번째가 도파민 분비를 활용하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보상을 받을 때 집중적으로 분비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가 활성화되고, 의욕이 생기며, 해마의 활동도 더욱 왕성해진다. 도파민이 해마에 기름을 치고 비료를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원리를 말씀 암송에 적용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에 작은 보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말씀을 일정 횟수 암송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겠다거나, 목표를 이루면 원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보상 약속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회개 기도를 가르칠 때 스티커를 붙여 주고, 일정 개수가 모이면 좋아하는 음식점에 데려가는 방식이 바로 이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스티커 하나하나를 붙이는 그 순간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며, 다음 스티커를 향한 의욕이 솟아오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중요한 것은 이 보상이 예측 가능하되 완전히 규칙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매번 동일한 보상이 주어지면 뇌는 익숙해져서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다. 그러나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보상이 찾아올 때, 뇌는 더 강렬한 도파민을 분비하며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불규칙적 보상의 원리이다. 언제 오라고 정해 놓지 않다가 갑자기 &amp;quot;오늘 와서 기도받아요&amp;quot;라는 연락을 받을 때, 사람들이 더 기쁘게 달려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체크리스트도 강력한 도구이다. 말씀 암송이든 기도든, 목표를 항목별로 나누고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체크하는 행위가 해마를 자극한다. 체크 표시를 하는 그 순간 뇌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도파민을 분비하고, 다음 항목을 향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체크리스트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뇌를 움직이는 동기 부여 장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보조적 방법은 &amp;#39;자기 암시&amp;#39;&lt;/strong&gt;이다. 자기 암시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반복함으로써 뇌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기술이다. &amp;quot;나는 더 잘할 수 있다&amp;quot;, &amp;quot;나는 오늘도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amp;quot;는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면, 뇌는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심리학적 원리인 동시에 신앙적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보배 목사의 어머니는 그에게 어릴 때부터 이 자기 암시를 심어 주었다. &amp;quot;너는 백두산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살아서 나올 아이다&amp;quot;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그 말이 뼈에 사무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헤쳐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개척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고 그 시간을 준비의 시간으로 삼아 설교를 연구하고 성경을 팔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심어 준 자기 암시의 열매였다. &amp;quot;언젠가는 쓸 날이 올 것이다&amp;quot;는 믿음으로 10년 동안 성경을 팠고, 지금 그 기간에 쌓인 말씀이 매주 강단 위에서 흘러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자기 암시는 마음속으로만 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말할 때 더 강하게 뇌에 각인된다.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뇌의 측두엽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기억 장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amp;quot;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amp;quot;, &amp;quot;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amp;quot;고 소리 내어 말하라. 이미 최고다, 다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성장은 멈춘다. 항상 &amp;quot;나는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다&amp;quot;는 고백을 지속하는 사람이 계속 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 기도도 마음으로만 하는 것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고백할 때 훨씬 깊이 새겨진다. 이것이 말로 고백하는 신앙의 원리이기도 하다. 빌립보서는 이 원리를 이렇게 선포한다(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자기 암시의 최고 형태이며, 성령께서 능력을 부어 주시는 통로이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할 때, 뇌는 그 고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실제로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고 더 잘 전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보조적 방법은 &amp;#39;유산소 운동&amp;#39;&lt;/strong&gt;이다. 몸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몸을 움직이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되어 해마의 기능이 더욱 선명해진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먼저 5분만 하기로 결심하고 시작하면 된다. 5분이라는 낮은 문턱이 시작의 장벽을 허물고, 일단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영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는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한다(고전 6:19). 성령의 전을 잘 관리하는 것, 즉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명확한 정신으로 말씀을 받고 기억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살펴본 원리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말씀을 오래 기억하여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첫째로, 상처를 치유받아야&lt;/strong&gt;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기초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해마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편도체가 모든 것을 상처의 관점으로 걸러 내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라. &amp;quot;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합니다&amp;quot;라는 고백을 날마다 반복하라. 이 용서가 편도체의 사슬을 끊고, 해마가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말씀을 들을 때부터 결단을 가지고 들어야&lt;/strong&gt; 한다. &amp;quot;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amp;quot;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과 &amp;quot;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리겠지&amp;quot;라는 마음으로 듣는 것은,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해마는 우리의 태도를 알아챈다. 중요하다고 결단하면 해마는 더 깊이 저장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 빠르게 삭제한다. 예배에 임하기 전 &amp;quot;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평생 새기겠습니다&amp;quot;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억의 토양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예배 후 반드시 기억을 꺼내 써야&lt;/strong&gt; 한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 들은 말씀을 노트나 메모장에 기억으로 적어 보라.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하여 써 내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하고, 다음 번에는 두 줄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세 줄이 나온다. 가족에게 오늘 들은 말씀을 이야기해 주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amp;quot;오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해마라는 기억 장치가 있는데&amp;hellip;&amp;quot; 하고 꺼내 말하는 그 순간, 해마는 그 말씀을 더 단단히 기억으로 새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보상을 활용하여 동기를 유지해야&lt;/strong&gt; 한다. 말씀 암송이나 기도를 일정 목표만큼 이루면,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약속하라. 그 보상 약속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도파민은 해마를 더욱 활성화시킨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표시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규칙적인 보상과 함께 때때로 예상치 못한 보상을 더할 때, 동기는 더욱 강하게 유지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로, 자기 암시를 날마다 실천해야 &lt;/strong&gt;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샤워를 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내어 고백하라. &amp;quot;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amp;quot; 이 고백이 뇌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충분하다는 교만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겸손한 기대가 해마를 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성령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 이상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선포이다. 이 말씀을 자기 암시로 삼아 날마다 고백하라. 나는 오늘도 말씀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 성령께서 나를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이 고백이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저장된 정보를 동원하기 시작한다. 믿음의 고백과 뇌의 기억 장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로, 몸을 움직여야&lt;/strong&gt; 한다. 유산소 운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하고 해마의 건강을 유지시킨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amp;quot;오늘 5분만 운동하자&amp;quot;고 결심하고 나서면 된다. 5분 뒤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로, 말씀을 들은 즉시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를 가져야&lt;/strong&gt; 한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내려 할 때, 해마는 그 말씀을 훨씬 더 강하게 기억한다.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면 집에 돌아가서 실제로 용서해야 할 사람을 떠올리고 용서를 실천해 보라. 그 경험이 해마 속에 말씀과 함께 저장되어, 그 말씀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말씀은 삶에서 실천될 때 가장 깊이 새겨진다.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다(약 1:22). 행함이 기억을 강화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이 현실이 되려면,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쌓여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이미 쌓아 둔 말씀이 있어야 그것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구하는 것은 빈 곳간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과 같다. 곳간에 채워 두어야 꺼낼 수 있다. 채워 두는 것은 사람의 몫이고, 꺼내어 쓰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몫이다. 성령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때를 따라 일깨워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4:26). 생각나게 하려면 먼저 들어야 한다. 들어야 저장이 되고, 저장이 되어야 성령이 생각나게 하실 수 있다.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쓰고, 외우고, 이야기하며 해마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이 성령의 역사와 협력하는 삶이다. 씨앗을 심지 않고 추수를 기다릴 수 없듯, 말씀을 쌓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바랄 수는 없다. 씨앗을 심는 자에게 성령이 성장시켜 주신다. 말씀을 꾸준히 쌓아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라. 해마는 쌓이는 곳간이다. 한 알 한 알 말씀이 쌓일 때, 어느 날 그 곳간이 가득 차서 넘치는 날이 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영적 방해와 육체적 피곤함이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장벽이며, 마음의 상처가 뇌의 기억 장치 전체를 왜곡하는 두 번째 장벽임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뇌 속에 탁월한 기억 장치인 해마가 있으며, 그것을 발달시키는 핵심이 기억을 꺼내 쓰는 반복적 훈련에 있음을 확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용서로 치유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편도체가 기억의 문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상처가 풀려야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한다. 그다음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결단으로 받아야 한다. 그 결단이 해마에게 &amp;quot;이것은 중요한 정보다&amp;quot;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후에는 반드시 기억을 꺼내 글로 쓰거나 말로 전해야 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만으로 한 줄이라도 써 내려가는 그 행위가 해마를 살리고, 말씀을 뇌에 영구적으로 새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보상의 원리와 자기 암시의 힘, 그리고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도 해마를 돕는 보조적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자기 암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의 고백과 직결된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하는 것이 신앙의 자기 암시이다. 이 고백이 우리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신앙과 뇌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뇌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바르게 사용할 때 신앙의 성장과 기억력의 발달이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가 말씀을 꺼내 쓸수록 해마가 발달하고, 해마가 발달할수록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게 되며, 더 많은 말씀이 쌓일수록 성령께서 더욱 풍성하게 역사하신다. 이 선순환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 속에 담긴 기억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풍성히 알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섬기는 서기관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미 우리 안에 탁월한 기억 장치를 넣어 두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장치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반복 훈련을 통해 성경 전체를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면, 이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다. 천재만이 말씀을 암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습관을 가진 사람, 상처를 용서로 치유한 사람, 들은 말씀을 꾸준히 꺼내어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길의 끝에는 새것과 옛것을 언제든지 곳간에서 꺼내 오는 천국의 서기관이 서 있다. 날마다 말씀을 꺼내 쓰고,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현실이 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히브리서는 선언한다(히 4:12). 이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해마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 그 말씀은 때를 따라 꺼내어져 삶의 현장에서 날선 검처럼 역사한다. 우리는 말씀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곳간에 쌓인 곡식이 꺼내어 먹혀야 생명을 살리듯, 해마에 저장된 말씀이 꺼내어 선포될 때 비로소 그 말씀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 이것이 천국의 서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6월 21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성경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amp;nbsp;&lt;strong&gt;영적, 과학적 비결&lt;/strong&gt;을 제시하며 성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신경전문가의 도움을 힘입어 뛰어난 지능보다 중요한 것은&amp;nbsp;&lt;strong&gt;마음의 상처 치유&lt;/strong&gt;와&amp;nbsp;&lt;strong&gt;해마의 활성화&lt;/strong&gt;라고 강조하며, 특히 타인을 용서하여 뇌 속의 편도체에 쌓인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기억의 첫걸음임을 설명합니다. 또한, 학습한 내용을 단순히 반복해서 읽기보다는&amp;nbsp;&lt;strong&gt;스스로 인출하여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습관&lt;/strong&gt;이 뇌 세포를 자극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핵심 기제임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amp;nbsp;&lt;strong&gt;도파민 분비를 돕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lt;/strong&gt;와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누구나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지혜를 축적하고&amp;nbsp;&lt;strong&gt;말씀을 자유자재로 선포하는 서기관&lt;/strong&gt;이 될 수 있다는 실천적 교훈을 제공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449935b9202f748a11b740d9d1926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ad108b023ef1037667ff9a0fd6ae71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70e9b6446bf007496820a1858843c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e4b2dd09575c07ac1e7d3b920dcf6c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356188d35878dd71026575c57e7091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17fb662fe11ff3144899ea001a0a1e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c2ad7140cd75f88d469a5b59798f4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f90a632e8ea94903e284d5c1509e02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a003e19962f77138c37ed465f88321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1a02d0946cfec9a22fcb416662492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56a6ffd27bb6319b457db0eaa142db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120506956d7e3a4902780f3bb4125195.webp&quot; /&gt;&lt;/p&gt; &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841</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841#comment</comments>			<pubDate>Mon, 22 Jun 2026 08:59:40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역대상 29:1~19)_2026-06-14(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372</link>
				<description>&lt;p&gt;2026-06-14(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역대상 29: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M6dQDuqgb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M6dQDuqgb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0&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85; } .title { font-weight: 700; font-size: 18px; margin: 0 0 1.2em 0; } .subtitle { font-weight: 700; font-size: 17px; color: #38688c; margin: 0 0 0.8em 0; } p { margin: 0 0 1em 0; } .scripture {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date, .author { margin: 0 0 0.2em 0; } &lt;/style&gt; &lt;p class=&quot;title&quot;&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1. 들어가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살피다 보면, 우리는 한 가지 뜻밖의 사실 앞에 선다. 다윗은 분명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지만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흠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으며, 메시아에 관한 깊은 예언을 쏟아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넘어졌던 사람이었다. 밧세바와 간음했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아를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었다. 말년에는 인구 조사를 통해 왕국의 힘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는 교만에도 빠졌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지막을 살핀다는 것은 그의 업적만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넘어진 자를 다시 세우셨는지를 보는 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앙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자랑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다. 성도도 실수할 수 있고, 지도자도 범죄할 수 있으며, 왕으로 세움받은 자도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실패 이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사람의 마지막을 결정한다. 사울도 넘어졌고 다윗도 넘어졌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죄를 변명하고 체면을 지키려 했으며, 다윗은 죄의 고통 속에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갔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갈라놓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성공 이후의 태도도 중요하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만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성공했을 때 더 큰 시험을 받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왕국이 든든해지고, 백성이 자기를 칭송할 때, 사람은 그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기 쉽다. 사울은 승전 기념비를 세웠고, 솔로몬은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과 영광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고, 참 왕은 하나님이심을 찬양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피 흘리셨다. 그러나 그 구원은 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허락하는 면허장이 아니다. 예수의 피는 하늘의 행위책에 있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동시에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자 안에 역사하여 악한 영을 밖으로 내어쫓는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했을 때 회개할 줄 알아야 하고, 성공했을 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넘어진 다윗이 어떻게 다시 쓰임받고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2. 다윗은 왜 넘어졌지만 버림받지 않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이유를 알려면 먼저 사울과 다윗을 함께 보아야 한다. 사울도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움을 받았고, 백성 앞에 서는 지도자의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울은 말씀 앞에서 자기 뜻을 꺾지 않았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좋은 양과 소를 남겨 두었고, 책망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것보다 백성 앞에서 체면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도 역시 죄를 지었다. 더구나 다윗의 죄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왕의 권력을 자기 정욕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밧세바를 범한 죄는 음란의 죄였고, 우리아를 죽인 죄는 피 흘린 죄였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권세는 백성을 살리고 원수를 막으라고 주신 것이지, 자기 욕망을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는 개인적인 실수만이 아니라 왕직의 목적을 어긴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책망을 받았을 때 즉시 죄를 시인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의 죄를 드러냈을 때,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다. 왕권을 이용해 선지자를 누르지도 않았다. 그는 &amp;lsquo;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rsquo;고 고백했다(삼하 12:13). 이 고백이 다윗을 다시 살리는 출발점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아니다. 히브리어로 회개와 연결되는 말은 &amp;lsquo;슈브&amp;rsquo;다. 슈브는 &amp;#39;돌아가다, 돌이키다&amp;#39;라는 뜻을 가진다. 신약의 헬라어 &amp;lsquo;메타노이아&amp;rsquo;는 마음과 생각의 방향 전환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다윗은 이 방향 전환을 실제로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amp;lsquo;멜레크&amp;rsquo;이다. 멜레크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지배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받은 통치자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백성을 돌보고 원수를 막아야 한다. 그러므로 왕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더 엄격하게 보신다. 그럼에도 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것은 죄가 작아서가 아니라,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신다.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속을 감찰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회개하지 않으면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하셨다(계 2:21~23). 이것은 신약의 주님도 죄를 대충 덮어 주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편애 때문이 아니다&lt;/strong&gt;.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모르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꽃 같은 눈으로 다 보셨다. 그러나 &lt;strong&gt;다윗은 책망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께로 돌이켰으며, 다시 쓰임받을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갔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구원론의 균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의 길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회개를 낳고, 회개는 삶의 열매를 요구한다. &amp;lsquo;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amp;rsquo;는 생각은 다윗의 회개와도 맞지 않고,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행위대로 갚겠다고 말씀하신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구원은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주신 은혜의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자는 빛 가운데서 자기 죄를 계속 처리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회복은 자동 회복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므로 아무 조건 없이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 다윗을 사랑하시므로 죄를 드러내셨고, 다윗이 그 책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회복의 길이 열린 것이다. 사랑은 죄를 방치하지 않는다. 참된 사랑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3. 다윗의 죄는 왜 열 달 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했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밧세바 사건 이후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오기까지 약 열 달의 시간이 흘렀다. 겉으로 보면 다윗은 왕궁에 있었고, 왕권도 유지했으며, 아무 일 없는 듯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시편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 편안히 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수척해졌고, 뼈가 떨렸으며, 영혼이 심히 떨리는 고통 속에 있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죄는 단순히 법적인 위반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과의 임재 관계를 흔든다. 하나님의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혼이 어두워지고, 양심이 참소하며, 악한 영들이 합법적인 근거를 붙잡고 역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양심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죄 때문에 고통한다. 이 고통은 저주만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6편은 다윗이 죄의 징계와 하나님의 떠나심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주의 분노로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었고, 자신의 뼈와 영혼이 떨린다고 고백했다(시 6:1~4). 죄는 육체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마음의 죄가 영혼을 흔들고, 영혼의 흔들림이 몸까지 수척하게 만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6:1~4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amp;lsquo;여호와여 돌아오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가 멀어진 것을 느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완전히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인해 친밀한 임재가 가려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사람들의 비난이 아니다. 하나님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죄를 지은 뒤 열 달 동안 다윗이 겪은 고통은 참된 회개의 밭을 갈아엎는 시간이었다. 그는 겉으로 왕좌에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왕궁에서 살았지만 영혼은 스올의 문턱에 선 것처럼 떨고 있었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다윗이 죄를 편안하게 즐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뼈가 떨리게 하셨고, 영혼이 떨리게 하셨고, 결국 나단을 보내 죄를 드러내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도 마찬가지다. 죄를 지었을 때 불편함이 온다면 아직 소망이 있다. 말씀을 들을 때 찔림이 있다면 아직 은혜의 문이 열려 있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그것은 죽이려는 책망이 아니라 살리려는 책망이다. 다윗은 이 책망을 밀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4. 시편 51편은 참된 회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를 가장 깊이 보여 주는 시편이다. 여기서 다윗은 단지 &amp;lsquo;내가 잘못했습니다&amp;rsquo;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죄의 행위뿐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뿌리까지 본다. &amp;lsquo;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amp;rsquo;는 고백은 매우 깊다(시 51:5). 그는 자신의 범죄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던 죄성이 때가 되어 폭발한 것임을 보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지점에서 회개론은 귀신론과 연결된다. 죄는 행위로 드러나지만, 그 배후에는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들의 역사와 죄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죄를 지은 후에는 그 사람 속에 음란의 죄를 짓게 하는 영, 살인의 죄를 부추기는 영, 혈기와 분노를 일으키는 영, 교만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하는 영들이 사람 속으로 들어와 역사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의 길 안에 들어왔어도, 자백하지 않은 죄와 처리되지 않은 영들이 자기 속에 남아 있으면 삶의 저주는 계속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죄를 덮어 달라고만 하지 않았다. 그는 씻어 달라고 했다. 지워 달라고 했다.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했다. 이것은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기록이 지워지는 차원과, 자기 속에 있는 더러운 죄의 세력이 씻겨 나가는 차원을 함께 보여 준다. 회개는 법정적 용서와 내적 정결을 함께 요구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또한 다윗은 이어서 &amp;lsquo;정한 마음&amp;rsquo;과 &amp;lsquo;정직한 영&amp;rsquo;을 구했다(시 51:10). 정한 마음은 단지 기분이 좋아진 마음이 아니다. 더러운 영과 죄의 욕망이 처리된 마음이다. 정직한 영은 하나님 앞에서 숨지 않는 영이다. 죄를 합리화하지 않고, 자기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고 고백하는 영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특히 다윗은 자신의 살인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amp;lsquo;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시 51:14). 그는 우리아의 죽음을 정치적 사고나 전쟁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피 흘린 죄였다. 참된 회개는 죄의 이름을 바르게 부른다. 음란은 음란이고, 살인은 살인이며, 교만은 교만이다. 죄의 이름을 흐리게 만들면 회개도 흐려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고 말한다(계 22:14). 이것은 마지막 때의 성도에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믿음은 회개를 폐기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회개를 낳고, 회개는 두루마기를 빠는 삶으로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편 51편의 회개는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수술이다. 죄의 기록이 지워지고, 악한 영의 근거가 무너지고,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기를 구하는 깊은 회개다. 다윗이 다시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바로 이 회개의 자리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회개에는 하늘의 기록을 의식하는 마음도 들어 있다. 그는 &amp;lsquo;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 죄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는 행위가 기록된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 앞의 기록이 처리되는 일이다. 예수의 피가 그 기록 위에 적용될 때, 성도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얻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회개는 악한 영의 실제와 분리될 수 없다. 죄를 짓게 하는 영들이 사람 안에 들어와 자리 잡으면, 사람은 자기 의지만으로 반복되는 죄를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예수의 피를 적용할 때, 그 영들은 붙잡고 있던 근거를 잃는다. 그래서 회개는 천국복음의 중심이고, 축사의 통로이며, 성도가 마지막 때에 정결한 옷을 입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도록 준비시키는 실제적인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5. 다윗은 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참된 회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데서 열매를 맺는다. 물론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회개했다고 말하면서 같은 죄를 가볍게 반복한다면, 그것은 아직 죄의 무게를 모르는 것이다.&lt;strong&gt; 다윗의 회개가 진실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는 그가 같은 죄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 했다는 데 있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다윗은 회개 후 결호 살인의 죄를 짓지 않는다&lt;/strong&gt;. 다윗은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칼을 직접 든 살인은 아니었지만, 왕권을 사용하여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인 죄였다. 그러나 그 후 다윗의 태도는 달라졌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에게 돌아왔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끝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다윗의 뜻이 아니었다.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다윗은 압살롬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마사가 압살롬 진영의 군대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또한 요압이 그를 죽였다. 왜냐하면 요압에게 그들은 경쟁상대로 보였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한편 시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시므이는 그를 저주했다. 그 자리에서 아비새는 시므이를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자신을 책망하시는 것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떨어지면 그대로 시행되는 왕권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욕한 자를 죽이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죄없는 사람의 피 흘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의 생명을 자기 감정으로 다루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또한, 다윗은 음란의 죄도 반복하지 않았다&lt;/strong&gt;. 말년에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수넴 여자 아비삭이 곁에 있게 되었지만, 성경은 왕이 그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왕상 1:4). 밧세바 사건 이후 다윗은 여자와 관련된 죄를 다시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왕상 1:4 이 소녀는 심히 아름다웠더라 그가 왕을 받들어 섬겼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부분은 오늘 성도에게 매우 중요하다. 회개는 눈물만이 아니다. 회개는 습관이 바뀌는 것이다. 음란을 회개했다면 음란을 부추기는 길을 끊어야 한다. 혈기와 분노를 회개했다면 같은 말과 같은 폭발을 당연하게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탐욕을 회개했다면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다윗은 살인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려 했고, 간음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다시 그 길로 가지 않으려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영적 세계에서도 이것은 중요하다. 죄를 자백하면 악한 영은 합법적 근거를 잃고 약해진다. 그러나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같은 종류의 영들이 다시 들어올 문을 얻게 된다. 그래서 회개 후의 삶은 더욱 중요하다. 회개는 문을 닫는 것이고, 순종은 그 문을 계속 닫아 두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어서 다시 쓰임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이 되었고, 같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배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사용하셨다. 넘어졌지만 배우는 사람이 있고, 넘어졌지만 배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실패를 통해 더 성숙한 왕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6. 다윗은 어떻게 자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성공 이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데 &lt;/strong&gt;있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찾다가도, 성공하면 자신을 높이기 쉽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왕국이 안정되고, 백성이 칭송하면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사울은 전쟁에서 이긴 뒤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부귀와 영광을 누렸으나, 결국 그 영광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왕이지만 하나님이 참 왕이심을 고백했다. 시편 145편에서 그는 &amp;lsquo;왕이신 나의 하나님&amp;rsquo;이라고 찬양한다(시 145:1~2). 왕이 왕을 찬양한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그는 자신이 대리자일 뿐임을 알았다. 왕권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받은 직분이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amp;#39;영광&amp;#39;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amp;lsquo;카보드&amp;rsquo;와 연결된다. 카보드는 무게, 중량, 존귀를 뜻한다. 사람이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무게가 그에게 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승리의 무게, 모든 업적의 무게, 모든 열매의 무게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다윗은 그 무게를 자기에게 붙잡아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 돌려드렸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역대상 16장에서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이룬 일을 자기 업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amp;lsquo;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리라&amp;rsquo;고 노래하게 했다(대상 16:8~11). 역사적으로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다윗이 블레셋과 아말렉,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을 물리쳤다. 그러나 다윗의 찬양은 그것을 &amp;lsquo;하나님이 행하신 일&amp;rsquo;이라고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16:8~11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말씀하시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그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하셨다(마 6:29). 솔로몬의 영광은 대단했지만, 그 영광을 자기에게 집중시킨 삶은 천국의 영광을 흐리게 만든다. 반대로 &lt;strong&gt;다윗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과 전쟁을 겪었지만,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기 때문에 천국에서 빛나는 왕직과 받았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사실 성공 이후에 영광을 처리하는 방식은 곧 그것이 천국의 상급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박수받으려고 일한 것은 사람에게서 이미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추어진 자리에서 충성한 것은 하늘에 기록된다. 다윗은 자기 흉상을 세우지 않았다. 자기 승전 기념비를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을 높였고, 모든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성공했을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은사가 나타났을 때, 사역이 열매를 맺을 때, 사람들이 칭찬할 때, 물질이 들어올 때, 그 모든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아야&lt;/strong&gt; 한다. 다윗은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왕으로 높였다. 이것이 그를 마지막까지 다윗답게 만든 비밀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찬양을 개인의 감정 표현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삽과 해만과 여두둔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 이것은 왕직과 제사장직이 만나는 지점이다. 왕은 백성을 보호하고 원수를 물리치는 자이지만, 왕 같은 제사장은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올려 드리는 자다. 다윗은 전쟁의 사람인 동시에 찬양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왕직은 단지 군사적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의 질서로 완성되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점에서 다윗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며, 동시에 죽임당한 어린양이시다. 그분은 원수를 멸하시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백성을 사시는 대제사장이시다&lt;/strong&gt;. 다윗은 완전한 그리스도가 아니었지만, 전쟁과 찬양, 왕직과 예배가 어떻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만나는지를 보여 주는 그릇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7. 성전 건축을 위한 헌신은 왜 왕직의 마지막 열매인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역대상 29장은 다윗의 마지막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본문이다. 그는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다. 그가 피를 많이 흘린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lt;strong&gt;그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과 자신이 소유한 금과 은과 보석과 재료들을 성전 건축을 위해 힘을 다해 준비했다&lt;/strong&gt;. 그리고 온 회중 앞에서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했다(대상 29: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1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고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고백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큰 일을 이룬 뒤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교회를 세워도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고, 헌신을 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왕국을 세운 마지막 목적이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있지 않음을 알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이미 성전을 위해 힘을 다해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개인 소유의 금과 은도 드렸다고 고백한다(대상 29:2~3). 설교 원고의 흐름대로 계산하면, 금 삼천 달란트는 약 102톤에 해당하고, 순은 칠천 달란트는 약 238톤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윗이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물질의 방향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3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먼저 드리자 지도자들과 백성도 즐거이 드렸다. 참된 헌신은 강요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먼저 자기 것을 드릴 때,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의 흐름 안으로 들어온다. 역대상 29장은 백성이 자원하여 드릴 때 크게 기뻐했다고 말한다(대상 29: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헌신은 왕직의 마지막 열매였다. 왕은 전쟁에서 이겨 백성을 평안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평안의 목적은 단지 잘 먹고 잘사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중심을 세우는 데 있다&lt;/strong&gt;. &lt;strong&gt;다윗은 전쟁의 전리품을 자기 궁궐을 꾸미는 데만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드렸다. 이것이 전쟁에 능한 왕의 마지막 열매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기도는 더 깊다. 그는 자신과 백성이 드린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대상 29:14). 사람은 드리면서도 자기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드리는 행위조차 자기 공로로 삼지 않았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뿐이라고 고백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천국 상급의 원리와 연결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자기 육체와 자기 이름을 위해 쓰면 그 열매는 땅에서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성전과 복음과 영혼을 위해 드리면 그 열매는 하늘에 올라간다. 성전에 들어와 기도하고 은혜받는 사람들이 생길 때, 그 성전을 위해 준비하고 드린 자의 상도 하늘에서 함께 기억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마지막 헌신은 단순한 건축 헌금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왕직의 완성이다. 그는 싸워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자기가 받을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예배의 길을 준비했다.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 다윗 안에서 함께 드러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전 건축을 위해 드린 다윗의 헌신은 물질의 방향성을 보여 준다. 물질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디에 드려지느냐에 따라 영적 열매가 달라진다. 우상에게 바쳐진 물질은 우상숭배의 통로가 되고,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된 물질은 교만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려진 물질은 기도와 예배와 복음의 열매로 바뀐다. 다윗은 전쟁의 피와 땀으로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재료로 바꾸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은 오늘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받은 은사, 받은 지식, 받은 물질, 받은 시간, 받은 건강은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그것을 자기 자랑과 자기 편안함만을 위해 쓰면 땅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과 복음과 영혼 구원을 위해 드리면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윗의 성전 준비는 땅의 건축을 넘어 하늘의 기억으로 올라간 헌신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8.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와 성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마지막은 오늘 성도가 실패와 성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lt;/strong&gt; 준다. 실패했을 때 성도는 숨지 말아야 한다. 죄를 작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음란은 음란이라고 해야 하고, 살인은 살인이라고 해야 하며, 교만은 교만이라고 해야 한다. 죄의 이름을 정확히 부를 때 회개가 정확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회개는 죄의 뿌리까지 내려가야&lt;/strong&gt; 한다. 다윗은 자기 행위만 보지 않았다. 자기 안의 죄성까지 보았다. 오늘 성도도 자기가 왜 같은 죄에 반복해서 넘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우상숭배, 제사, 무당, 불교, 음란, 살인, 혈기, 분노, 탐욕의 죄들이 악한 영의 통로가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자백을 통해 예수의 피가 역사할 때, 그 영들은 합법적인 근거를 잃는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받은 뒤에 불필요해지는 부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계속 필요한 정결의 과정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회개한 뒤에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삶으로 가야&lt;/strong&gt; 한다. 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회개가 문을 닫는 것이라면, 순종은 닫힌 문을 지키는 것이다. 다윗은 살인의 죄를 회개한 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려 했고, 간음의 죄를 회개한 후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공했을 때 성도는 더 조심해야 한다. 실패는 사람을 낮추지만, 성공은 사람을 높인다. 사역이 열리고, 은사가 나타나고, 물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칭찬할 때, 성도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다. 이것은 성공의 열매를 하나님 나라로 보내는 삶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갈라디아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한다(갈 6:7). 이것은 땅의 원리만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원리다. 우상에게 심으면 저주를 거두고, 자기 육체에게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며, 성령과 하나님 나라에 심으면 영원한 열매를 거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에서의 왕직은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땅에서 회개한 만큼 정결해지고, 싸운 만큼 기업을 얻고, 드린 만큼 하늘에 쌓인다&lt;/strong&gt;. 생명책과 행위책은 허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기억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념관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의 방이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기도의 방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전을 위해 드린 헌신의 흔적이 있다. 이것은 모두 이 땅에서 무엇을 심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기 공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의 일을 멸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며,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는 경륜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도는 그 경륜 안에서 회개하고, 싸우고, 드리고, 찬양하며 준비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 이후와 성공 이후를 모두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실패했을 때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성공했을 때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실패를 통해 더 정결해지고, 성공을 통해 더 겸손해지는 사람이 천국의 왕직에 가까이 간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경륜에는 분명한 시간표가 있다. 창조 이후 인간은 타락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다윗의 왕국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셨으며, 마침내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리고 지금은 성도들이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정결하게 준비되는 때다.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악한 영들의 세력이 심판을 받으며, 새 예루살렘의 왕직과 상급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오늘의 회개와 헌신은 미래의 왕직과 분리되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는 이 시간표 안에서 성도의 준비를 보여 주는 예표다. 목동의 숨은 시간, 사자와 곰과 싸운 시간, 골리앗 앞에 선 시간, 죄로 무너진 시간, 회개로 다시 일어난 시간, 전리품을 성전에 드린 시간이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은 한 사건만 보지 않으신다. 전체 생애의 방향을 보신다. 다윗의 방향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방향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9. 나오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우리는 넘어진 다윗이 어떻게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lt;strong&gt;다윗은 죄가 없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lt;/strong&gt; 그는 넘어졌으나 죄를 덮지 않았고, 책망 앞에서 무너졌으며, 시편 6편과 시편 51편이 보여 주듯 죄의 고통과 회개의 깊이를 통과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실패했을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죄의 행위만이 아니라 죄의 뿌리까지 보아야 하고, 자백을 통해 예수의 피가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회개가 말에 머물지 않고 습관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성공했을 때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물질과 기회와 승리의 열매를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받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왕 노릇할 사람은 실패를 회개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고, 성공을 헌신의 제단으로 삼아야 한다. 넘어짐은 끝이 아니어야 하고, 성공은 자기 영광의 시작이 아니어야 한다. 실패 이후에는 더 정결해져야 하고, 성공 이후에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넘어짐 이후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성공 이후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15일(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다윗 왕의 생애를 통해&amp;nbsp;&lt;strong&gt;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의 핵심 자질&lt;/strong&gt;을 조명하며, 그가 큰 범죄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실수한 직후&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amp;nbsp;&lt;strong&gt;진정한 성숙&lt;/strong&gt;을 보여주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은 평생의 전리품과 승리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성전 건축을 위해 모두 봉헌함으로써&amp;nbsp;&lt;strong&gt;모든 성취의 근원이 하나님&lt;/strong&gt;임을 고백하는 겸손의 본을 보였습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과&amp;nbsp;&lt;strong&gt;인생의 마지막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세&lt;/strong&gt;가 내세의 상급을 결정짓는다는 영적 교훈을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2)] 인포그래픽_넘어진_다윗_왕노릇_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f702ff0b49249a6dfbbf0c7d31ddb50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03ae7997366651c91382134fb43941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42a6b9d782e076d736a6827d1c83e4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87902cbb26b9ba4257a12a4a755da7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22cc96b859c64b96e2fe5afe6a8a0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3302ff9f152bfb5c7e5b0a86420303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597b2996eff7ff495e55c73a8cb2f9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d85daa7d7e68e76a8eb34d5a55bed7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f771774ae89d0943af97ab3c281e51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741ff2c0f1db38e5eafc2c9f40f14a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d8b70720fc0f19c4d2c805a283318d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1e8ec5e553bc70df0c3a671814d416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6a92893bcd614eb56eab3f6259305c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2d06d4c35527c39416dc1bfe29f929c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다른 요약입니다.]&lt;/p&gt; &lt;p&gt;2026-06-14(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역대상 29: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M6dQDuqgbo&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M6dQDuqgb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 .sermon-body { font-size: 15px;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line-height: 1.8; margin: 0;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line-height: 1.8; margin: 0.5em 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윗은 성경이 증언하는 왕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은 완벽한 도덕적 흠결 없음에 있지 않다. 그는 분명히 넘어졌고, 분명히 범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고, 결국 천국에서 왕 중의 왕으로 세우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인생은 항상 성공의 길만 가지 않는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잘 되다가 실수하다가,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진보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다. 다윗은 전자(前者)였다. 그는 실수 속에서도 더 성숙한 사람으로 올라갔고, 결국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최고봉의 위치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잘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칭찬을 받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을 보신다. 사울도 실수했고 다윗도 실수했다. 그런데 사울은 버림받았고 다윗은 다시 쓰임 받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면, 우리도 혹시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다윗은 &amp;quot;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quot;(행 13:22)이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유일한 왕이다. 그러나 이 평가가 그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넘어진 후에 어떻게 반응하였느냐에 대한 평가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범한 두 가지 큰 실수가 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말년에 인구 조사를 행한 일이다. 이 두 가지 실수를 그는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또한 25년간의 전쟁을 통해 이룬 태평성대의 영광을 그는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은 실패했으나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사람이다. 우리가 다윗의 실수를 잘 이해하고, 그가 어떻게 그것을 이겨 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들도 혹시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을 통해 다윗의 생애를 배움으로써 우리도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다윗은 범죄 후 열 달 동안 정말 태평하게 살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인 것은 열왕기와 사무엘서가 공히 기록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범죄한 뒤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책망하기까지의 기간이 대략 열 달 남짓이었다. 그 기간 동안 다윗은 어떻게 살았을까? 겉으로 보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왕궁에서 생활하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 다리 뻗고 편안히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내면의 실상은 전혀 달랐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6편은 다윗이 이 고통의 시간 동안 쓴 시편이다. 첫 절부터 절규가 터져 나온다(시 6: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1-5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수척하였사오니&amp;quot;라는 표현은 단순한 몸의 피로가 아니다. 영혼이 쇠약해져서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상태를 가리킨다. 뼈가 떨린다고 했다. 뼈가 떨릴 정도면 이미 전신이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amp;quot;여호와여 돌아오시라&amp;quot;는 간구이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전쟁마다 이기던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사실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래서 5절에서 &amp;quot;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amp;quot;라고 한 것은 &amp;quot;저는 지금 죽게 생겼습니다&amp;quot;라는 절규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겉으로는 왕좌에 앉아 있었으나 속으로는 뼈가 떨리고 영혼이 무너지는 열 달을 보낸 것이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amp;quot;왕은 태평하다&amp;quot;고 보였겠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의 깊은 아픔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니나노 즐기는 것 같아 보여도, 안에서는 날마다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범죄한 자의 실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화인 맞은 것이요, 회개가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이다. 반면에 죄를 짓고 뼈가 떨리는 고통을 느꼈다는 것은, 다윗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민감함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 고통이 결국 그를 철저한 회개로 이끌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그 고통 중에 한 가지 주목할 행동을 하였다. 흥미롭게도 &amp;quot;왕은 나라도 지키고 전쟁도 나가야 하니 어떻게 왕이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을 수 있는가&amp;quot; 하고 억지로 태연한 척 살아갔다는 것이다. 신하들에게 명령하고, 국사를 처리하고, 왕으로서의 외적인 역할은 다 하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날마다 무너지고 있었다. 겉과 속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죄의 참혹한 결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편안하다면 이것은 심각한 영적 위기의 신호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다면, 죄를 지을 때 반드시 그 성령이 근심하신다(엡 4:30). 그 근심이 우리 양심에 전달되어 불편함과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속담에 &amp;quot;도둑질한 사람은 편히 못 잔다&amp;quot;는 말이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편히 자기 어렵다. 다윗은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시편에 그대로 쏟아냈다. 고통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러냈을 때, 회개의 문이 열렸다. 그러니 혹시 우리 가운데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은 오히려 은혜이다. 그 불편함이 결국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죄를 지을 때 양심이 불편한 것이 정상이다. 그 불편함이 사라진다면, 즉 무감각해진다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이다. 양심이 마비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고통이 없었다면 회개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앞으로 이끄신다. 이것이 징계의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다윗이 죄의 근원을 깨달은 것이 회개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회개를 담은 시편 51편은 단순히 행위의 잘못을 고백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자신이 &amp;quot;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amp;quot;고 고백한다(시 5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 안에 이미 태중에서부터 죄성이 심겨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다윗의 계보를 살펴보면, 그의 누나들로 추정되는 스루야는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을 낳았고,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다. 모두 탁월한 장수들이다. 이 혈통 안에는 전쟁과 피의 기운이 흘렀고, 그것이 다윗 안에서도 발현될 수밖에 없는 죄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대로, 조상의 죄악은 자녀에게 이어진다(출 20: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20:5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단지 도덕적 습성이 유전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amp;quot;죄를 갚되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amp;quot;라고 하셨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조상의 죄악은 자녀와 손자와 증손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음란의 죄를 지으면 그 영이 자녀에게도 들어온다. 부모가 살인의 죄를 지으면 혈기의 영이 자녀에게 전달된다. 이것을 깨달아야 우리 자녀의 신앙을 위하여 먼저 부모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상이 짓는 죄는 그 안에 들어온 악한 영을 통해 자녀 세대에 전해진다. 음란의 영, 혈기의 영, 살인의 영이 이미 모태에서부터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어느 순간 상황이 맞으면 폭발하듯 발현된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의 충동을 느꼈던 그 순간, 그 안에 있던 음란의 영이 발현된 것이다. 단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흔히 &amp;quot;내가 나쁜 사람이라서&amp;quot;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amp;quot;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amp;quot;라고 합리화하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더 깊이 들어갔다. &amp;quot;내 안에 그 죄를 짓게 하는 뿌리가 있다&amp;quot;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 행위만 고치려 하면 뿌리를 남겨 두는 것이다. 마치 뚜껑으로 덮어 놓은 오물처럼, 표면은 가렸으나 냄새는 여전히 나고 파리는 여전히 꼬인다. 그 오물을 치워 버려야 한다. 즉 속에 있는 악한 영을 하나님의 보혈로 씻고 내보내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편 51편 9-10절에서 이렇게 기도한다(시 51:9-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9-10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지워 주소서&amp;quot;는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기를 구하는 것이요, &amp;quot;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amp;quot;는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나가고 성령으로 채워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즉 행위책에서 지워짐과 내면의 악한 영이 나감, 이것이 다윗이 이해한 온전한 회개의 내용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할 때 &amp;quot;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amp;quot;라는 말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의 회개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amp;quot;내 속에 있는 그 더러운 영을 없애 주시고, 그 자리에 정직한 영으로 채워 주소서&amp;quot;라고 기도한 것이다. 행위의 죄만 용서받으면 뿌리가 남아 있어 다시 같은 죄를 범한다. 그 뿌리, 즉 악한 영까지 나가야 한다. 또한 7절에서는 &amp;quot;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amp;quot;라고 하였다. 우슬초는 레위기에서 속죄 제사 때 피를 뿌리는 데 쓰이던 도구이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이 씻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깊이는 죄의 근원을 얼마나 깊이 깨달았느냐에 달려 있다. 행위만 고치려는 회개는 마치 잡초의 줄기만 잘라내는 것과 같다. 줄기를 잘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란다. 그러나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는 그 죄가 다시 발현될 토양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다윗은 뿌리를 보았기 때문에 근원에서부터 회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회개 이후의 삶이 실제로 달라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12장 43-45절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준다(마 12:43-4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쉬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나쁘게 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귀신이 집이라 부르는 곳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귀신의 집으로 사용되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을 때, 그 자리에 성령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더 강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고 하였다. 회개만 하고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나중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반드시 성령 충만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육체는 성령의 전이 될 수도 있고 귀신의 집이 될 수도 있다. 귀신이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지지 않으면 더 강한 귀신이 돌아온다. 그래서 회개는 단지 빼내는 것만이 아니라, 빼낸 자리를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는 것까지 포함한다. 다윗은 &amp;quot;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amp;quot;라는 기도로 그것을 구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참된 회개와 단순한 후회는 결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후회는 결과가 나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사울도 후회하였다. 그러나 그 후회는 자신의 처지가 불리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지,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돌이킴이 아니었다. 반면에 다윗의 회개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달랐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다윗의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것&lt;/strong&gt;이었다. 시편 51편 4절은 이렇게 고백한다(시 5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은 것은 분명 사람에게 저지른 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윗은 그 죄의 궁극적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왕이 권력을 남용한 것은 하나님이 왕에게 그 권력을 위탁하신 목적을 배신한 것이다. 권력은 원래 백성들, 즉 양 떼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자와 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 권력을 자기의 정욕을 채우는 데 썼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위탁을 배반한 것이다. 이 깨달음이 있어야 회개가 온전해진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인식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용서하는 순간 죄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인식할 때, 그 회개는 더 깊고 지속적인 돌이킴으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다윗의 회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lt;/strong&gt;이었다. 형식적인 고백으로는 악한 영이 나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고 상한 심령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시편 51편 17절은 이것을 명확히 말한다(시 51:1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황소 천 마리를 바치는 것보다 상한 심령 하나가 더 하나님 앞에 귀하다. 이것이 제사의 본질이다. 다윗은 열 달 동안의 내면의 뼈아픈 고통을 통하여 이미 그 상한 심령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단의 책망이 오자 즉각적으로 통회의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회개할 때 진심이 아닌 숫자 채우기식으로 하면 영이 잘 나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해야 한다. 진심이 담긴 회개만이 악한 영이 나가는 통로가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단순한 후회는 환경이 바뀌면 사라지지만, 참된 회개는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꾼다&lt;/strong&gt;. 회개(回改)란 돌이키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방향을 돌려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이 나올 때까지 한 곳을 파야지, 조금 팠다가 안 나오면 저기로 옮기고, 또 조금 팠다가 안 나오면 또 옮기면 결코 물이 나오지 않는다. 회개도 마찬가지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다윗은 회개 후 실제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 증거가 이후의 삶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참된 회개는 감정의 사건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가, &lt;strong&gt;참된 회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완성된다&lt;/strong&gt;. 회개를 해 놓고 또 동일한 죄를 범한다면, 그 회개는 불완전하다. 악한 영이 실제로 나가야 하고,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동일한 유혹이 와도 그 힘이 발현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계 22: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두루마기를 빤다&amp;quot;는 것은 회개를 통해 죄의 오염을 씻는 것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영적 세탁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참된 회개와 단순한 후회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amp;quot;회개한 후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줄어드는가&amp;quot;이다.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남을 쉽게 정죄하지 못한다. &amp;quot;나도 그런 죄인이었는데&amp;quot;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회만 하고 진정한 회개를 못한 사람은 여전히 남을 정죄한다.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를 들었을 때 &amp;quot;내가 그럴 만한 자이다&amp;quot;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자기 죄의 깊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어떤 교단에서는 &amp;quot;예수를 믿었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amp;quot;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성도를 평생 저주 가운데 살게 만든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그 안에 들어온 악한 영이 합법적으로 거하면서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지지 않으니 전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참된 회개야말로 그 삶을 바꾸는 유일한 통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은 어떻게 살인죄와 간음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의 진정성은 결국 이후의 삶에서 검증&lt;/strong&gt;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첫째, 다윗의 우리아 장수를 죽인 이후 다른 장수를 죽였는지 살펴보자. 다윗은 시편 51편 14절에서 자신이 우리아 장수를 죽였음을 고백하였다. 그는 피흘린 죄, 즉 살인죄에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기 때문이다(시 51: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도 이후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단 한 사람의 장수도 죽이지 않았다. 그 실례들이 역사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울이 죽은 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사울 왕국을 재건하려 할 때 사울의 군장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도왔다. 그러나 아브넬과 이스보셋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투항하겠다고 찾아왔다. 다윗은 아브넬을 죽이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군장 요압이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려 아브넬을 죽여 버렸다. 요압이 그를 죽인 것이지 다윗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아브넬이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라는 것을 요압이 알았기 때문에, 다윗의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를 제거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므이가 뒤쫓아 오며 저주를 퍼부었다. 아비새가 &amp;quot;단칼에 저 자의 목을 베겠습니다&amp;quot;라고 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막았다. &amp;quot;하나님이 저를 통해 나를 저주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amp;quot;고 하면서 시므이를 살려 두었다. 동시에 압살롬에 대해서도 다윗은 &amp;quot;죽이지 말라&amp;quot;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죽인 것은 요압이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장 아마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압살롬의 반역 당시 아마사는 압살롬 편에서 군장을 맡았는데, 반역이 진압된 뒤 다윗은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압은 아마사마저 죽여 버렸다. 다윗은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장수를 죽이지 않았다. 살인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둘째, 밧세바와와 간음을 회개하고 난 후 어떻게 지냈는지를 살펴보자. 그런데 놀랍게도 간음죄에 대해서도 다윗은 두 번 다시 간음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았다. 다윗이 나이가 들었을 때다. 자신의 몸이 차가워지자 신하들이 수넴 여인 아비삭을 데려다 다윗의 곁에 두었다(왕상 1:3-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상 1:3-4 이에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처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그녀가 왕을 섬겼으나 왕이 그녀를 알지 못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왕이 그녀를 알지 못하였더라&amp;quot;는 표현은 왕이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히 아리따운 처녀가 곁에 있었음에도 다윗은 그녀를 알지 못하였다. 간음죄를 회개한 다윗은 이후 동일한 음욕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열매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지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이 실제로 나가야 하고,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져야 한다. 그 결과는 이후의 삶에서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윗이 바로 그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다시 쓰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를 회개해 놓고 또 그 죄를 범한다면 주님은 그를 버리신다. 그러나 회개하고 두 번 다시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쓰신다. 다윗은 그것을 몸으로 증명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기억하셨다. 이 원리를 다윗의 생애가 증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두 가지 사례, 즉 살인죄와 간음죄를 반복하지 않은 것은 단지 다윗의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살인의 영과 음란의 영이 실제로 나갔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이 나가고 성령이 채워지면, 동일한 유혹이 와도 그 충동이 현저히 약해진다. 이것이 회개의 실제적인 효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혹시 넘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두 번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쓰시는 조건이다. 지도자가 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한 번 범한 죄를 회개했으면, 그 죄가 유혹해 와도 이제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 결단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더 높은 곳으로 이끄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솔로몬과 다윗의 영광이 천국에서 왜 그토록 달랐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6장은 들의 백합화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마 6:2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비할 데 없는 것이었다. 지혜도 최고요, 부귀도 최고요, 명성도 최고였다. 온 나라가 진귀한 것으로 가득 찼고, 주변 나라의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광이 들꽃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왜인가? 솔로몬의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지만, 솔로몬은 그 영광을 자신이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부귀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였다.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첩으로 들였고, 그들을 따라 이방 신들을 섬겼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과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썼다. 사울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자기를 위한 승전 기념비를 세우고 다닌 것처럼(삼상 15:12), 솔로몬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결과 천국에서 솔로몬의 왕복은 빛이 나지 않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닌다. 왕은 왕이었으나, 그 빛이 달랐다. 반면에 다윗은 빛나는 왕복을 입고 있다. 둘 다 이 땅에서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었으나, 천국에서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하여 얻은 영광을 자신이 차지해 버리면, 천국에서 받을 영광이 없어진다. 마태복음 6장의 논리는 분명하다.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영광을 받는 자는 이미 그 상을 받은 것이다(마 6: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자기 상을 이 땅에서 이미 받아 버렸다. 그래서 천국에서의 상이 초라하다. 다윗은 자기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천국에서 하나님이 그를 빛나게 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과 솔로몬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으나 짓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amp;quot;너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amp;quot;(대상 22:8)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짓지 못한다면 아들이 짓도록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성전 건축이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자세,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의 결정적 차이였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으나 마음은 자신의 영광과 쾌락을 향하였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였으나 마음은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다윗과 솔로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내 영광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릴 것인가, 이 선택이 천국에서의 결과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루어 낸 것에 대해 자신의 흉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능도, 기회도, 건강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내 영광을 내가 받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옳은가. 이 땅에서 사람의 칭찬을 얻으려 살면 그것이 상의 전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직접 갚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전 3:12-1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그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각 그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로 시험받는 날이 온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공력은 남고,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은 불에 타 버린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금과 은과 보석이고, 자신의 욕망과 영광을 위한 것이 나무와 풀과 짚이다. 우리가 오늘 하는 모든 수고가 어떤 재료로 쌓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영광을 어떻게 하나님께 돌렸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약 25년간 전쟁을 하였다.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 아람, 소바, 아말렉을 비롯한 열방의 연합군을 정복하였고, 단 한 번도 진 일이 없었다. 그 전쟁마다 엄청난 전리품이 쌓였다. 금과 은과 청동과 보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이다. 2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잔뼈가 굵어가며,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이룬 전쟁의 결과였다. 전쟁의 시작은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나아갔다. 그 믿음이 25년의 승리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승리의 영광을 다윗은 자신이 취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부하들이 &amp;quot;왕이시여, 이제는 전쟁에 나가지 마소서. 왕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사울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자신을 위한 승전 기념비를 세운 것과 달리(삼상 15:12), 다윗은 달랐다. 그는 그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아삽은 시편에 열두 편의 시를 남겼고, 헤만은 사무엘의 친손자로서 고라 자손의 찬양자였으며, 여두둔은 에단이라고도 불리는 탁월한 찬양 인도자였다. 다윗은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지은 찬양시를 맡겨 하나님을 높이게 하였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날에 아삽의 손에 맡긴 감사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대상 16:8-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16:8-11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파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골리앗을 죽인 것은 다윗이었다. 사자와 곰을 죽인 것도 다윗이었다. 열방의 연합군을 정복한 것도 다윗이었다. 그러나 그는 &amp;quot;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amp;quot;라고 노래하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하였다. &amp;quot;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amp;quot;라는 구절은 다윗 자신이 그렇게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항상 그의 능력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전쟁마다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다윗의 시편은 단 두 편인데, 사무엘하 22장과 역대상 16장이다. 두 편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내용이다. 다윗은 역사서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높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145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시 145: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amp;quot;라는 고백이 핵심이다. 다윗은 스스로를 왕이라 하지 않았다. 진짜 왕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그 왕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고백하였다. 이 겸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 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왕이다. 아닌데도 바위라고, 요새라고, 나의 피난처라고 자꾸 그렇게 고백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amp;quot;그래, 내가 그런 자가 되어 주마&amp;quot;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꾸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이 실제로 그 높임받으심을 이루어 가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뿐만 아니라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성전 건축을 위해 쌓아 두었다. 자신은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그는 성전 건축 재료를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역대상 29장에는 다윗이 회중을 모아 놓고 성전 건축을 위해 헌납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대상 29:2-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9:2-4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색 보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준비할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 내가 사유한 금은으로 내 하나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금 3,000달란트는 약 102톤에 해당하고, 은 7,000달란트는 약 238톤에 해당한다. 이것은 왕의 사유 재산에서 드린 것이요, 전쟁 전리품으로 이미 드린 것과는 별도이다. &amp;quot;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amp;quot;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재정적 의무감이 아니라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드린 것이다. 다윗이 모범을 보이자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렸다(대상 29:6-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9:6-9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과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또 보석이 있는 자는 여호사밧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 백성이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크게 기뻐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백성이 드린 금만 해도 5,000달란트가 넘었고, 은은 10,000달란트에 달하였다.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자원하여 드리니 백성도 기뻐하며 드렸다. 성전 공사에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리더십의 열매이다.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지도자가 백성도 그렇게 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받은 물질과 달란트와 성취를 어디에 쓰느냐가, 결국 우리의 천국에서의 상을 결정한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원리대로,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갈 6: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악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자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거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심으면 자기 자신에게서 거둔다. 다윗은 25년의 전쟁 수고를 성전 건축에 심었다. 그 씨가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으로 열매 맺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을 심고, 마음을 심고, 정성을 심고, 찬양을 심을 때,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신다. 자식에게만 쓰면 자식이 잘된 것으로 복을 조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드리면, 성전에 와서 기도받고 복을 받는 모든 사람의 복이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이것이 다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하나님이 다윗을 천국에서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요약하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철저한 회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삶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하나님이 그를 천국에서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측면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성을 깊이 깨달았고, 진심으로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며, 회개한 이후에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울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사울은 회개의 흉내는 냈으나 삶이 바뀌지 않았다. 다윗은 회개 후에 실제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오뚝이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다윗의 특징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갈라디아서 6장 7절의 원리는 무서운 원리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 회개의 씨를 심으면 용서의 열매를 거두고, 고집의 씨를 심으면 심판의 열매를 거둔다. 영광 돌림의 씨를 심으면 천국에서의 영광을 거두고, 자기 영광의 씨를 심으면 이 땅에서 잠깐의 칭찬을 거두고 만다. 다윗은 평생 동안 회개와 영광 돌림의 씨를 부지런히 심었다. 그 씨가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과 최고의 왕의 자리로 열매 맺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광을 돌리는 측면에서, 다윗은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으로 고백하였다. 찬양을 통해, 시편을 통해, 성전 건축 헌납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amp;quot;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amp;quot;라고 선포하였다. 사무엘하 22장과 역대상 16장에 역사서에 기록된 단 두 편의 시편이 실려 있는데, 두 편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사무엘하 22장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요, 역대상 16장은 법궤를 옮겨 오면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만민에게 선포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다윗의 생애가 사파이어에 새겨진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말을 타고 유다 지파의 사자 깃발을 든 모습이라 한다. 유다 지파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계 5: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그리스도를 닮은 왕이었다. 왕이면서 찬양하는 자였고, 전사이면서 예배자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의 완성된 모습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신약의 성도를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으로 부른다(벧전 2: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구약에서 이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의 특징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 인물이었다.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전쟁에서 이겼으며,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세 사람에게 성전 음악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헤만은 사무엘의 친손자였다. 사무엘이 아들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얻지 못하였으나, 손자 헤만을 통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찬양자를 얻었다. 신앙의 유산은 아들을 건너 손자에게로 흘러가기도 한다. 복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이 불량자여서 복을 받지 못하면 손자에게 넘어간다. 믿음이 강하면 신기(神氣)도 넘어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회개가 철저하면 그 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독론 강해를 통해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길게 살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배움으로써 우리도 그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길은 다윗이 이미 보여 주었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회개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을 남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서인 사무엘서는 사무엘이 남겼고, 역대서는 에스라가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편은 다윗 자신이 직접 남긴 것이다. 그는 단지 왕으로 살다 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왕으로 설 수 있는지를 시편을 통해 후대에 전하였다.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이룬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며,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역대상 29장 1절에서 다윗은 회중 앞에 이렇게 고백하였다. &amp;quot;내 아들 솔로몬이 이 성전 공사를 맡았으나 그는 아직 어리고 연약하며 이 성전은 지극히 커야 할지라 이 공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이다.&amp;quot; 이 고백이 다윗의 마음을 보여 준다.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 명확한 인식이 다윗의 헌신을 끝까지 지탱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을 읽는 사람마다 다윗의 회개와 찬양을 만난다. 그 시편이 성전에서 불릴 때마다, 예배당에서 찬양될 때마다, 다윗의 상은 더해진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헌납한 금과 은이 성전에 드려진 기도의 수만큼 다윗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그가 남긴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다윗의 영광은 천국에서 더해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훌륭한 사람들에게는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찬양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악기들로 가득 찬 방이,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기도실이, 교회를 지은 사람에게는 교회 모형이 기념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한 모든 대로 하나님은 갚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철저한 회개이며, 둘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삶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범죄 후 열 달 동안 뼈가 떨리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였다. 그는 죄를 짓고도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고통이 그를 진정한 회개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 안에 죄성의 뿌리가 있음을 깨달았고, 그 뿌리를 뽑아내는 회개를 하였다. 그리고 회개 이후에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살인죄를 회개한 후에는 아무리 자신을 위협하는 장수라도 죽이지 않았고, 간음죄를 회개한 후에는 수넴 여인 아비삭이 곁에 있어도 동침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25년간의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성전 건축에 내놓았고,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으며, 시편을 지어 &amp;quot;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amp;quot;라고 끊임없이 선포하였다. 이 땅에서 받을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국에서 그를 빛나는 왕복을 입은 왕으로 세우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살면서 반드시 넘어질 때가 있다. 그 넘어짐이 우리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넘어졌을 때 철저히 회개하되, 죄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쓰실 수 있는 조건이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여 이룬 모든 것을 내 영광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 땅에서 받는 영광은 반드시 천국에서의 영광과 맞바꾸어지기 때문이다. 다윗이 빛나는 왕복을 입었고 솔로몬이 허름한 왕복을 입었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 땅에서 좀 더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천국에서 빛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선택이 오늘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앞으로 실수한다 할지라도, 그 실수가 우리의 진보를 위한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넘어진 채로 있지 말고 속히 일어나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기뻐하신다. 철저히 회개하고, 그 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며, 모든 수고한 것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기독론적 의미는 단지 역사적 왕의 생애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였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사자 깃발 아래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이 천국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가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은 성도들이 &amp;quot;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amp;quot;라고 하였다. 다윗처럼 회개하고 다윗처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은 천국에서 다윗처럼 왕 노릇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론을 배우는 궁극적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 마음속에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지 않은가? 그 죄를 덮어 두고 지나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힌다. 용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죄를 드러내고,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를 해야 한다. 또한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붙들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물질로, 찬양으로, 헌신으로, 그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은 천국에서 그것을 빛나게 돌려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받은 평가를 기억하라. &amp;quot;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quot;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최고의 평가이다. 재능이 많아서가 아니요, 실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린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다.&amp;nbsp;그리하여 실수와 넘어짐을 기꺼이 딛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신앙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br /&gt; 2026년 06월 14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372</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372#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Jun 2026 08:43:53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15)]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1)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3) (시편32:1~11)_2026-06-07(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544</link>
				<description>&lt;p&gt;2026-06-07(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15)]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1)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3)(시편32:1~1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nxSJCvdRCl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xSJCvdRCl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padding:0;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font-size:15px;line-height: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39;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amp;#39;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다윗이다. 그런데 다윗의 일대기를 살펴보니, 그에게는 어떤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서 왕으로 이땅에 보내어진 자였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왕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과 은사(영 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도 같이 주셨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넷째,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로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린 자였다는 것이다. 다섯째, 그는 진실로 회개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진정 자신의 죄를 시인한 후에 즉시 죄사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사실 그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이후부터 열 달 동안 엄청난 육체적&amp;middot;영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범죄 후에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범죄후 열 달동안 다윗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가 쓴 참회시의 하나인 시편 6편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이 어떻게 회개했기에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사울왕은 자기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왕위를 빼앗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하자 나단 선지자가 즉시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열 달 동안 처절한 고통의 세월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무엘하는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편은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 열 달의 과정을 쭉 전부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든다.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특징을 살펴보되,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서 그의 회개에 대한 진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그가 했던 회개의 진정성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의 뿌리와 의미를 짚어볼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회개의 대명사인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를 비교해 가면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회개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해야만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떠나보낼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 없는 신앙생활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즉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해도, 내 속의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회개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회개가 과연 진정한 회개인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하나님이 사울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다윗은 용서하신 것이 불공평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오해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하 11장과 12장만에 나오는 내용만 읽으면, 다윗의 용서가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단이 &amp;quot;당신이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했을 때에 다윗이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했는데, 그 즉시 나단이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응답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다윗의 한 마디 고백에 즉시 용서가 그에게 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사울왕의 경우를 보면 사뭇 다르다. 사울도 사무엘에게로부터 책망을 들었을 때에 즉시 자기의 잘못을 인정했다.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삼상 15:24)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울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에게서 왕위를 빼앗으신다. 이것을 보면 두 사람의 처우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사울은 안 되고 다윗은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것은 &lt;strong&gt;회개의 진정성에 있어서 두 사람이 차이를 보인다&lt;/strong&gt;는 것이다. 사울의 고백에는 진정한 통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울이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통회가 아니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고백이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듯이(삼상 16:7), 하나님은 사울의 입술이 아닌 그 마음을 보시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가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라고 했지만 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amp;quot;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amp;quot;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백성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사무엘에게 &amp;quot;청하건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amp;quot;여 주십사(삼상 15:30)고 부탁한다. 자기 체면을 세워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고로 죄에 대해 책망을 듣고 있었던 그 순간에도 그의 관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백성 앞에서의 체면이 중요했다. 이것이 그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다윗의 회개는 이와 달랐다. 사무엘하의 기록만 보면 그가 단 한 마디로 회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니다. 다윗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시편 5편들 곧 시편 6편과 32편, 38편과 51편 그리고 143편을 통해 보면 그 열 달 동안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받으면서 통회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뼈가 흔들리고, 몸이 수척해지고,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기도의 막힘 속에서 그는 무려 열 달을 보냈다. 고로 그것은 이미 깊은 회개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더 나아가, 두 사람이 지은 죄의 본질도 다르다&lt;/strong&gt;. 사울의 죄는 하나님을 직접 거역한 것이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좋은 짐승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눈치를 더 중시한 것이다. 반면 다윗의 죄는 사람에 대한 자범죄였다.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심각한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거역하는 죄를 더 엄중히 다루시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실 공평하시다. 다윗이 즉시 용서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열 달의 고통이 들어있었고, 용서받은 후에도 아들 네 명을 잃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기 입술로 &amp;quot;마땅히 죽을 자요 네 배나 갚아야 한다&amp;quot;(삼하 12:5-6)고 선고했던 그의 말대로, 밧세바가 낳은 첫째 아이가 죽었고, 첫째 아들 암논이 죽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죽으며,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죽었다. 죄의 결과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비록 사울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다윗에게도 온전히 시행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에서 배워야 한다. &lt;strong&gt;하나님의 용서는 죄의 결과까지 다 없애 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인 것이지, 결과의 소멸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를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죄를 지었다면 즉시 자복하여 더 이상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어디이며,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하다&amp;#39;라는 표현이 한국어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놀랍게도 그것은 욥기 42장 6절에 처음 나온다. 욥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amp;quot;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amp;quot;라고 한 것이 구약 성경에서 한국어로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amp;#39;회개하나이다&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amp;#39;슈브&amp;#39; 가 아니라, &amp;#39;나함&amp;#39;이라는 단어이다. &amp;#39;나함&amp;#39;은 &amp;#39;뉘우치다&amp;#39;, &amp;#39;후회하다&amp;#39;의 뜻에 가까운 단어이다. 반면 구약 성경에서 회개의 뜻으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amp;#39;나함&amp;#39;이 아니라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amp;#39;슈브&amp;#39;는 &amp;#39;돌이키다&amp;#39;, &amp;#39;돌아오다&amp;#39;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이 &amp;quot;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amp;quot;라고 하실 때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가 나온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도 &amp;quot;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amp;quot;고 하실 때도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리고 신약에서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마 4:17)에서 &amp;#39;회개하라&amp;#39;는 단어는 헬라어어 &amp;#39;메타노에오&amp;#39;이다. 이는 &amp;#39;마음을 바꾸다&amp;#39;, &amp;#39;생각을 돌이키다&amp;#39;는 뜻으로, 구약의 &amp;#39;슈브&amp;#39;와 의미상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회개하고 있어라) [이는]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느니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2장 12절에서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기를 원하시는지가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여기서 &amp;quot;너희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amp;quot; 옷을 찢는 것은 외형적인 슬픔의 표시이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옷을 찢는 것은 큰 슬픔이나 충격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실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보다 마음의 진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회개 기도 모임에 나오는 것,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면서 진정으로 마음을 찟는 기도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lt;strong&gt; &amp;#39;나함&amp;#39;과 &amp;#39;슈브&amp;#39;의 차이이다. &amp;#39;나함&amp;#39;은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회개의 일부이지만 실은 회개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lt;/strong&gt;. 가룟 유다도 자신이 죄 없는 피를 팔았다고 뉘우쳤다(마 27:3). 그러나 그 뉘우침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죄값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스스로 자살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그에게도 스승을 팔아먹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후회(&amp;#39;나함&amp;#39;)는 있었지만, 돌이킴(&amp;#39;슈브&amp;#39;)이 없었던 것이다. 즉 그에게는 &amp;#39;유턴&amp;#39;이 없었던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7:3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lt;/strong&gt;이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단순히 잘못했다는 감정적 느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뉘우침은 있는데 돌이킴이 없는 회개는 반쪽짜리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욥은 죄를 지었는가, 짓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욥기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욥기의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욥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즉 독자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화를 알고 있고, 욥이 왜 시험을 받는지를 안다. 그러나 욥 자신은 끝까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그에게는 사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갑자기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그럼, 욥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욥기 1장 1절에서 욥의 인물됨은 이렇게 정의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는 욥을 노아, 다니엘과 함께 의인의 대표로 언급한다(겔 14:14). 그래서인지 욥기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직접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럼, &lt;strong&gt;욥은 언제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는가?&lt;/strong&gt; 구약의 헬라어역인 70인역 성경에 따르면, 욥이 시험을 받을 때는 70세였고, 그 시험을 30년 동안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lt;strong&gt;그는 70세부터 100세가 되기까지&lt;/strong&gt; 종기와 구더기, 친구들의 비난, 아내의 조롱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아내마저 &amp;quot;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amp;quot;(욥 2:9)고 했을 만큼 극한의 고통의 시험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한 사람도 30년의 극한 고통 앞에서는 불평하고 원망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럼, 욥은 언제적 사람인가? 그는 율법이 아직 명시되지 않았던 아브라함 시대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 자녀들의 생일 잔치 후에도 혹시 그들이 죄를 지었을까 하여 아침마다 번제를 드릴 만큼 죄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처럼 의로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10-11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진심에서가 아니라 복을 받기 때문이라고 참소했다. 하나님이 울타리로 둘러 보호하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울타리를 걷어내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의 도전을 허용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이유&lt;/strong&gt;는 무엇인가? &lt;strong&gt;첫째, 스스로 의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욥 스스로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lt;/strong&gt;이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때문에 복을 받고 잘 산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울타리로 그를 보호하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울타리가 없었다면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하나님이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욥의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욥 자신이 인정하게 하려는 것&lt;/strong&gt;이었다. 욥은 시험받는 날 동안 내내 자신은 의롭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속에도 죄된 본성인 불평, 원망, 낙심, 교만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평온한 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 씨앗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온한 삶을 살 때는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인 것 보인다. 그러나 극한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평소에 숨어 있던 죄성이 드러난다.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내가 죄를 적게 짓는 것이 내가 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울타리로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욥이 시험 가운데 지은 죄는 무엇이며, 욥이 회개한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사탄이 준 1차 시험에서 욥은 자녀들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때 욥은 &amp;quot;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amp;quot;(욥 1:21)라고 고백하며 인내하였다. 성경은 &amp;quot;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amp;quot;(욥 1:22)고 기록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2차 시험이 그에게 허락되어졌다. 그러자 그의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종기가 나서 구더기가 생겼다. 이에 아내마저 그를 버렸고,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와서 날마다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난했다. 그리하여 종기로 고통받고 있은지 여러 달이 지났을 때 드디어 욥에게도 변화가 생겼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욥기 7장 11절을 보면, 그때부터 욥은 &amp;quot;나는 불평하겠습니다&amp;quot;라고 선언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욥기 10장 1절에서도 &amp;quot;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amp;quot;고 말했다. 불평과 원망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이미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amp;quot;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amp;quot;이라고 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3:1-3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욥기 34장 5절에서 6절에 보면, 그는&amp;quot;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였다&amp;quot;고까지 말한다.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다. 30년에 걸친 극한의 고통이 결국 교만의 죄, 불평의 죄, 원망의 죄를 끌어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34:5-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지만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 하는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욥은 훗날 과연 무엇을 회개한 것인가? 욥기 42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lt;strong&gt;욥은 다음의 두 가지를 고백&lt;/strong&gt;한다. &lt;strong&gt;첫째는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했다&lt;/strong&gt;. 자기에게 어려움이 불어닥친 것은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자신이 그것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했다. &amp;quot;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amp;quot;고 말한 것이다. 즉 자신이 잘서 잘 살고 있었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울타리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 있던 죄성을 인정했다&lt;/strong&gt;.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미워했던 것,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들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번제를 드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욥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잃었던 것의 두 배를 돌려주셨고, 새로운 10남대의 자녀들을 허락하셨으며, 170년을 더 살아 총 240세에 향수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10 여호와께서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 욥의 회복시켜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욥이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였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완성이었다. 왜냐하면 그들고 자기처럼 모른 채 말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용서받은 자라면 그는 남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주기도문에서도 &amp;quot;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amp;quot;라고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렇다. 회개의 측면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회복으로도 이어져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왜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욥도 회개했고 다윗도 회개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회개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아는 데 중요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욥의 회개는 인간의 의로움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앞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lt;/strong&gt;이었다는 사실이다. 욥은 실제로 죄를 저질러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lt;strong&gt;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개한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그리고 극한의 고통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을 회개한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회개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죄악을 저지르고 그것을 자백하는 회개와는 다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lt;strong&gt;다윗의 회개는 구체적인 죄악 앞에서 이루어진 회개&lt;/strong&gt;였다. 간음죄, 살인죄, 도둑질의 죄, 탐욕의 죄, 이 모든 것을 명백히 알면서 그 죄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 회개였다.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욥기서에 처음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의 온전한 모습, 즉 죄를 명백히 인정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진정한 회개의 전형은 다윗에게서 발견된다. 다윗의 참회 시편들, 특히 시편 51편은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장 완전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둘째로,&amp;nbsp;욥의 회개는 30년의 고통 끝에 이루어진 것&lt;/strong&gt;이었다. 처음에는 &amp;quot;내가 의롭다&amp;quot;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붙잡다가, 결국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후에야 회개에 이르렀다. 반면 &lt;strong&gt;다윗의 회개는 나단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지적받는 순간 즉시 이루어졌다&lt;/strong&gt;. 비록 열 달의 고통이 있었지만, 그 고통 자체가 이미 회개의 과정이었고, 나단이 &amp;quot;당신이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는 순간 즉시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자복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셋째로, 무엇보다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이 되는 이유는, 그의 회개가 하나님의 용서라는 명확한 약속을 이끌어 냈기 때문&lt;/strong&gt;이다. 나단이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즉시 선언한 것은,&lt;strong&gt;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회개였음&lt;/strong&gt;을 보여 준다. &lt;strong&gt;욥의 회개가 회개의 물꼬를 튼 것이라면, 다윗의 회개는 회개의 진면목을 완성한 것&lt;/strong&gt;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리려면, 다윗의 회개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우리에게 남겨 준 참회 시편들,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죄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의 교과서이다. 어떻게 자복하고, 어떻게 통회하며,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새 마음을 간구하는지를 보여 준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윗의 참회 시편을 읽어야 한다. 이 참회 시편들이 성경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이것을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배우도록 보존하신 것이다. 다윗의 수치스러운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기록을 감추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회개의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amp;mdash;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데는 세 가지 특징&lt;/strong&gt;이 있다.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lt;strong&gt;상하고 통회하는 심령&lt;/strong&gt;으로 회개했다는 것이다.&amp;nbsp;다윗은 시편 51편 16절에서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amp;quot; &amp;#39;상한&amp;#39;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amp;#39;샤바르&amp;#39;로, &amp;#39;부서지다&amp;#39;, &amp;#39;깨어지다&amp;#39;는 뜻이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를 가리킨다. &amp;#39;통회&amp;#39;는 &amp;#39;닥카&amp;#39;로, &amp;#39;짓눌리다&amp;#39;, &amp;#39;으깨어지다&amp;#39;는 의미이다. &lt;strong&gt;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물이나 번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린 상태에서 드리는 회개라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그것은 다윗이 저지른 죄는 구약의 율법 체계 안에서는 제사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기 때문이다. 고의적 살인죄는 반드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죄를 지으면 짐승을 끌고 와서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처럼 고의적으로 간음하고 살인한 것은 제사의 범위를 넘어선 죄였다. 제물을 드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다 죽이라고 했다(레20:10). 그리고 &amp;quot;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amp;quot;(민 35:16)고 율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범한 죄들은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용서를 받았다. 왜인가? 그가 제사의 형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산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민 35: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이 결코 받지 않으신다. 여기서 형식적인 제사라는 것은, 마음은 없이 의무를 이행하듯이 제물을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로 말하면, 죄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은 채 입으로만 &amp;quot;잘못했습니다&amp;quot;를 반복하거나, 혹은 마음의 회개는 없이 예물만 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회개 기도를 할 때에도 역시 숫자만 채우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회개 기도문을 읽으면서 몇 번 했는지 동그라미만 치고 계산할 뿐이다. 그렇다고 회개의 숫자를 채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아니 된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없이 입술로만 하는 회개는 형식적 회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요를 띄울 만큼 많이 울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마음이 진정으로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34편 18절도 이와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 &amp;quot;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amp;quot; 마음이 상한 자, 영 안에서 통회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나 진술들은 우리의 죄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문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의 간음죄, 살인죄, 탐욕죄, 교만죄, 거짓말의 죄가 그분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마음으로 느끼는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주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 아픔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원천이다. 단순히 &amp;quot;내가 잘못했습니다&amp;quot;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눈물로 통회자복을 할 때 진정한 회개의 제사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바로 그것을 알았다.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자신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님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다. 그러자 그 진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다윗이 회개할 때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울었다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 15~18살 정도밖에 안 되었을 밧세바를 유린하고,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를 죽게 만들고,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그 죄에 대해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는지가 바로 그의 날마다 흘리는 눈물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형식적 제사(예물)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회개를 실천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제는 형&lt;strong&gt;식적 제사와 진정한 회개의 차이&lt;/strong&gt;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죄를 지으면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도록 명령받았다. 속죄제는 죄 자체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레위기에 자세히 기록된 이 제사 제도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이 저지른 간음죄와 살인죄는 이 제사 체계 안에서 단순히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의 죄가 아니었다. 고의적 살인은 율법상 반드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윗이 용서를 받으려면 단순히 황소를 끌고 와서 제단에 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 죄에 상응하는 철저하고 진심 어린 회개가 필요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형식적 제사의 문제는 마음 없이 행위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기가 싫은데 회개는 해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예물을 더 드리는 것으로 회개를 대신하려 한다. 물론 회개와 함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그렇지 않고 회개하는 것보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회개하는 마음 없이 예물만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지, 물질로 자신의 회개를 무마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lt;strong&gt;진정한 회개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에서 시작&lt;/strong&gt;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lt;strong&gt;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회개를 실천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회개하는 것이 입술로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그 죄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주님께 죄송한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내가 진정한 회개를 실천하는 것을 도와주는 방법들이 있다. &lt;strong&gt;첫째, 구체적으로 지은 죄를 떠올려서 회개하는 것이다&lt;/strong&gt;. 막연하게 &amp;quot;나는 죄인입니다&amp;quot;가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조상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하나씩 떠올린다. 우상숭배의 조상죄, 제사의 죄, 억압과 폭력의 죄, 음행의 죄, 혈기 분노의 죄, 거짓말의 죄를 하나씩 떠올리며 그것이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 죄가 얼마나 주님을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했는지&lt;/strong&gt;를 생각한다. 내가 지은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내가 지은 죄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식으로 태어나, 나 또한 부모님과 선조들의 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통회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과 통회를 하나님께&lt;/strong&gt; 드린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이다.&amp;nbsp;다윗은 말년에 아비삭이라는 아름다운 수냄 여인을 곁에 두었다. 하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않은 것(왕상 1:1-4)은 그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다는 증거가 나이었겠는가!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그에게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회개하고 나서 또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그 회개가 얼마나 깊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는 신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상 1:1-4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한 명을 구하여 그 아이가 왕을 모시고 또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소서 하고 이스라엘 사방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에게 데려왔으나 왕이 그를 알지 못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 기도를 할 때 숫자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꾸준히, 그리고 많이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 채우기가 목적이 되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아니 된다. 진심 어린 회개 한 번이 입술만 움직이는 천 번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닿기 때문이다. 오늘 회개 기도를 마치고 나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팠는가를 점검해 보라! 그 죄에 대해 내 마음에서 무언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는가? 주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느낌이 들었는가? 그것이야말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다.&amp;nbsp;그러므로 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그 죄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해야 한다. 주님이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드리는 눈물 어린 회개, 그것이 다윗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정한 회개의 첫 번째 특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회개의 참 뜻,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의 차이 그리고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에 대해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순한 어떤 행위가 아니다. 확실한 돌이킴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후회(뉘우침)는 있었지만 돌이킴이 없었던 가룟 유다의 회갤르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리는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죄가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할 수 있다. 그때 흘러내린 눈물과 통회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탄의 시험을 통해 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30년의 고통 끝에 가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무지와 죄성을 인정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윗은 간음, 살인, 도둑질, 탐욕이라는 구체적인 죄를 저지르고 열 달의 처절한 고통 끝에 나단이 찾아오자 즉시 자복했다. 그런데 그 자복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터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34편 18절의 약속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amp;quot;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amp;quot; 하나님은 화려한 예물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지금도 원하신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것은, 그 부서진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온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숫자를 채우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먼저 마음이 부서져야 함을 알라.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이 뼈져리게 느낄 수 있을 때, 그는 눈물과 통회로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어렵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면 된다. 가룟 유다처럼 뉘우치기만 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욥처럼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반드시 &amp;quot;네 죄를 사하였다&amp;quot;고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사함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7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amp;nbsp;&lt;strong&gt;회개하는 왕&lt;/strong&gt;으로서 다윗이 지닌 영적 특징을 조명하며, 구약의 인물인 욥과 사울의 사례를 대조하여&amp;nbsp;&lt;strong&gt;참된 회개의 본질&lt;/strong&gt;을 규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사울과 달리 즉각적인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회개는 단순한 후회나 뉘우침을 넘어&amp;nbsp;&lt;strong&gt;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전인격적 변화&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의 회개가 지닌 핵심 가치는 형식적인 제사나 예물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처절히 아파하며 낮아진&amp;nbsp;&lt;strong&gt;상하고 통회하는 심령&lt;/strong&gt;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학습자들에게 입술의 고백을 넘어&amp;nbsp;&lt;strong&gt;부서진 마음의 제사&lt;/strong&gt;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574af8d5481c480c7ffe8ce5154c15a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89de990a1e8f4cda0e29ee3b44736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32a5542fde809a11cdac3c777948d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6ef4077d13073daa1e204e9ad61d4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9110d386c32035efc6de8cdb71c41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516e99f452469d636ca4e6fcbf463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c465a09482ab23f5392f8108cfb5fb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0a490b65632ca689160361e116f83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f43eebe7b12e76b0d85f57c6f43f4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7a58e985b68baf6ad1e9f698d89e1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c7ef6795e8c6da4a40b62b1ba30358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730ffcd77ceaa2f3fdbc8eb80e185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de9b2a5460c924b5a4d557658b4d2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e39f2389a3cbf3d73a8ebeed4f8be1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7d1792b56489955b3c6b3e901b90c6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인포그래픽_진정한_회개_다윗의_상한_심령.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10030b83689db0bba570682cdb48e0a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4e9d317dd6cb355fbbb211d97d154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656eeafb3e375f8b28ecedd2b179d3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7da96b57ed8382fa48eba5e61e51e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84e7cb8e517c6c9a1b29ed51ab3bfe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b9fb74c1bd5316397d321345f38406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b6a6e12d57cd90c1f3a6a5e3499f44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97b5c110a2bfd83d60901820bfb51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0ed770a6f84ecc5d7d2f4a0f3355af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51a56ef04d892942a3d60aef3881e9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6757a9a1ea5d15bc31432e9606bef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fd96f685a3f89e91d58e138cbbed9a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03c4dde4c18f1fa3f14c43f92cf8a3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1dd12fd570548fec22894c80ab1b37b1.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544</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544#comment</comments>			<pubDate>Sun, 07 Jun 2026 21:20:45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08)]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4)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1)(시편 22:1~21)_2026-05-3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128</link>
				<description>&lt;p&gt;2026-05-31(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8)]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4)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1)(시편 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IGd3d4_Owc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Gd3d4_Owc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 padding: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은 기독교 예배의 찬양집이다. 그러나 시편은 단순한 찬송가 모음집이 아니다. 시편에는 수천 년의 신앙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안에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예언의 형태로 가득 담겨 있다.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내용이 단순히 자신의 감정과 신앙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 안에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특히 73편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그가 경험한 삶의 고통과 기쁨, 배신과 신뢰, 절망과 소망을 노래하면서 자신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생애를 예언하고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기독론 107강)에는 다윗이 받은 고난을 통해 메시아를 알아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으며, 가장 가까운 벗에게조차 배신당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까닭없이 자기를 죽이려하는 자들을 향해 저주의 시편들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저주의 기도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예언의 언어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amp;nbsp; 시간에는 그 연장선에서, 다윗이 시편 전체에 걸쳐 예언한 메시아에 대한 풍성하고도 놀라운 예언들을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천국에서의 찬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성도들이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왜 시편을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로 읽어야 하며, 예수님 자신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많은 성도들이 시편을 찬양의 책, 혹은 기도의 책으로만 읽는다. 물론 시편은 찬양이다. 시편 150편은 &amp;quot;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amp;quot;(시 150:6)로 마무리되며, 시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편이 찬양의 책이라는 사실이 시편이 예언의 책이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시편이 자신에 관한 예언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구약 성경이 어떤 예언이었는지를 가르치신 장면을 보자.&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amp;quot;모든 성경&amp;quot;에는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비롯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전체)가 포함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만으로 설명을 끝내지 않으셨다. 이후 열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시편을 아예 따로 특정하여 언급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모세의 율법(토라)과 선지자의 글(느비임)과 시편(케투빔)&amp;quot;.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세 범주로 나눈 유대교의 전통적인 분류이다. 예수님은 이 세 범주 모두에 자신에 관한 예언이 담겨 있다고 선언하셨다. 특히 &lt;strong&gt;예수께서 시편을 따로 거명하신 것은, 시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담겨 있는지를 당신 자신이 친히 강조하신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시편을 읽는 성도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야 한다. 시편 23편 &amp;quo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amp;quot;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아름다운 시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이심을 미리 예언한 말씀&lt;/strong&gt;으로 읽어야 한다. 시편 110편 &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amp;quot;을 읽을 때도, 이것이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에 대한 예언&lt;/strong&gt;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편을 단순한 찬양의 책으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가르쳐 주는 예언의 책으로 읽어야&lt;/strong&gt; 한다. 시편의 가치는 단지 아름다운 시문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가득 담겨 있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천국에서 찬양에 계급이 있다면, 성도는 어떤 찬양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이 찬양의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찬양은 지금 이 땅에서 드리는 찬양처럼 모든 이가 동일하게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의 찬양이 참여 주체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아무나 아무 찬양이나 부를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는 &lt;strong&gt;천국에서 드려지는 찬양의 계층 구조&lt;/strong&gt;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첫째,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lt;strong&gt;24장로&lt;/strong&gt;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구속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드린다.&amp;nbsp;24장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최고봉이자 대표이다. 그들만이 이 찬양을 부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4: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8-10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둘째, 그 다음으로는 모든&amp;nbsp;&lt;strong&gt;천사들의 찬양&lt;/strong&gt;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셋째, 천사들의 대표인 &lt;strong&gt;네 생물 역시&lt;/strong&gt;&amp;nbsp;또 그들만이 드리는 찬양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amp;quot;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amp;quot;는 이사야 6장에서 이미 나온 찬양이다. 이사야가 주님을 뵈었을 때 스랍들(세라핌)이 같은 찬양을 불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넷째, 인간 중에서도 오직 이기는 자들, 곧 &lt;strong&gt;십사만 사천 명만&lt;/strong&gt;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가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섯째, 모든 피조물도 함께 부르는 찬양도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5:13&amp;nbsp;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amp;nbsp;&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렇게 천국에는 찬양의 계층이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고, 천사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 중에서도 십사만 사천 명만 부르는 찬양이 있으며, 스물네 장로만 부르는 찬양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사실 &lt;strong&gt;천국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천국은 엄격한 질서와 계층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lt;/strong&gt;이다. 누가 어느 찬양을 부를 수 있는가는 이 땅에서 얼마나 깊이 회개하고, 얼마나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으며,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공산주의가 평등을 내세워 모든 계층을 없애려는 체제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탄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지 않도록 성도들은 기도해야 한다. 천국에서의 찬양 총지휘자는 다윗이다.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체계를 세운 자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천국에서의 영원한 찬양의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예언한 메시아의 핵심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가장 풍성하게 남긴 사람은 누굴까? 그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 부르는 이유는 예언의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언의 내용이 방대할수록 대선지자라 불렀고, 내용이 적을수록 소선지자라 불렀다. 그 대선지자 가운데 가장 많은 메시아 예언을 쏟아낸 사람이 이사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이토록 풍성한 예언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순종의 삶이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삼 년 동안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예언하라고 명령하셨다(사 20:3). 남 앞에 알몸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그 순종에 응하여 이사야에게 메시아에 관한 놀라운 계시를 부어 주셨다. 천국에서 이사야를 만나고 싶다면 어렵지 않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이사야이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벗고 다닌 수치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영원한 영광의 옷이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lt;strong&gt;메시아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정체에 관한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다른 누구도 발설하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였다. &lt;strong&gt;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이 땅에 오실 것&lt;/strong&gt;이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선언은 이사야서에 세 번 반복된다. 그런데 이 선언이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충격적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것이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부터 나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예수께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라고 스스로 선언하셨다면,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라고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기꾼이 아니시다. &amp;quot;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quot;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분이 아기로 태어나 아들로 오신다는 충격적인 계시를 전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죽으실 수 없다(요 4:24). 그러나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 죽어야 한다(막 10:45, 히9:22, 레17:11).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으나(시 2:6-7), 이사야는 그 아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더 분명하게 계시한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어떻게 예언했으며, 신분&amp;middot;출생&amp;middot;공생애&amp;middot;수난&amp;middot;부활&amp;middot;재림의 순서로 무엇을 기록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계시뿐 아니라, &lt;strong&gt;그분의 구체적인 생애 전체를 예언&lt;/strong&gt;하였다. &lt;strong&gt;출생부터 재림까지, 그분의 삶의 모든 주요 단계가 이사야서 안에 기록되어&lt;/strong&gt;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amp;#39;출생&amp;#39;에 관해서이다. 이사야는 처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분이 이새의 혈통, 곧 유다 지파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것도 예언하였다(사 11:1-2). 그리고 그분이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공생애를 사실 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1-2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는가? 그것은 이사야가 이미 예언해 놓았기 때문이다. 나사렛이 스불론 지파에 속하고, 가버나움이 납달리 지파에 속해 있었으며, 이곳을 갈릴리라고 불렀다. 고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주요 무대가 갈릴리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예언의 성취였다(마 4:13).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전세를 얻어 사셨는데,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지붕을 뜯어 내려보낸 것도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이 그 집에 계셨기 때문에 뜯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생애 중 행하신 이적들도 이미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35:5-6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눈먼 자를 고치고, 귀먹은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벙어리의 입을 여신 것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선구자가 나타나 그분을 소개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말라기도 같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실 세례 요한이 나타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한 것은 이 모든 예언의 성취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예언이 이사야 53장에 집중되어 있다.&amp;nbsp;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유월절에 어린 양은 흠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채찍으로 두들겨 맞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이시다. 흠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채찍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장차 올 메시아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도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어 있었다.&amp;nbsp;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의 묘실을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내어 드린 것은(마 27:57-60)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사야는 또한 사람의 부활에 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놓으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이사야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까지도 예언하였다(사 66:15-16, 65:17-18). 출생에서 재림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lt;strong&gt;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풍성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예언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의 최고봉인가?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이 시편에 남긴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보다 두 배, 세 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왜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토록 풍성할 수 있었는가. 그 뿌리는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었다&lt;/strong&gt;.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은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쏟아 내었다. 그 절규와 탄원의 언어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언어가 되었다. 다윗이 더 많이 고통받을수록, 더 많은 배신과 조롱과 수치를 당할수록, 그의 시편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관한 더 구체적인 예언들이 새겨졌다. 고난이 예언의 원천이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lt;strong&gt;메시아의 신분에 대한 내용은 크게 여섯 가지&lt;/strong&gt;로 정리된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의 아들(시 2:6-7)&lt;/strong&gt;. &lt;strong&gt;둘째,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시 2:2)&lt;/strong&gt;. &lt;strong&gt;셋째, 목자(시 23편&lt;/strong&gt;). &lt;strong&gt;넷째, 왕(시 110:1)&lt;/strong&gt;. &lt;strong&gt;다섯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시 110:4)&lt;/strong&gt;. &lt;strong&gt;여섯째, 고난받는 종(시 22편)&lt;/strong&gt;. 이 여섯 가지 정체성이 다윗의 시편 속에 고루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신분에 관해 다윗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 곧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신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계시를 선포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러나 &lt;strong&gt;예수님의 구체적인 삶, 고난의 세부 내용, 죽음의 방식, 부활의 영광, 승천 후의 사역에 관해서는 다윗의 예언이 이사야를 훨씬 능가&lt;/strong&gt;한다. &lt;strong&gt;다윗은 이사야보다 약 300년 앞서 살았으나, 그의 시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인 메시아 예언을 담고&lt;/strong&gt;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특히 다윗이 저주의 시편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고통, 그 고통의 언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하는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서 제거하지 않으셨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구약을 최종 편집할 때도 저주의 시편을 삭제하지 않았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하여 그것을 보존하셨다. 이것이 저주의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남겨진 결정적인 이유이며, 동시에 다윗이 시편 22편을 비롯한 수많은 메시아 예언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십자가 수난까지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번에 다루는 &lt;strong&gt;시편 22편&lt;/strong&gt;은 다윗의 메시아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본문 중 하나이다. 이 시편은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십자가 수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으로 예언&lt;/strong&gt;하고 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한 것은 그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젊은 시절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보다 적어도 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첫째로,&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아기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9-10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다윗 자신의 경험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의 젖을 먹으며 자라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분도 갓난아기처럼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으셨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amp;quot;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amp;quot;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어서 &lt;strong&gt;둘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수치와 조롱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져내실 걸 하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7장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amp;quot;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다고 했으니 구원해 보시지&amp;quot;라며 조롱하였다(마 27:43). 이것이 바로 시편 22편 6-8절의 성취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비방당하던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였지만, 그 언어는 정확히 천 년 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실 조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시편 22:1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친히 외치신 말씀이다(마 27:4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7:46은 &amp;quot;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quot;라는 예수님의 절규를 기록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1을 인용하심으로써, 이 시편이 자신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예언임을 친히 증언하셨다. 예수님이 &amp;quot;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amp;quot;를 외치신 것은 즉흥적인 절규가 아니라, 다윗의 예언을 성취하는 선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셋째로, 십자가 처형의 장면과 속옷을 제비뽑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예언&lt;/strong&gt;이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6-18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사실 로마시대에 활용되었던 죄수의 십자가 처형 방식은 다윗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윗은 수족이 찔리는 처형 방식과 옷을 나누는 장면을 예언하였다. 요한복음 19:23-24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아 가진 것을 기록하며, 이것이 시편의 성취임을 명시한다. &amp;quot;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amp;quot;라는 표현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모든 뼈가 드러나는 처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천 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보고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예언대로 겉옷이 나뉘어지고, 예언대로 조롱을 받으셨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이 예언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그 예언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시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예언임을 증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재림&amp;middot;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lt;strong&gt;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이어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 재림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왕국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예언&lt;/strong&gt;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첫째로, 그분의 부활에 관한 예언&lt;/strong&gt;을 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신다&amp;quot;는 것은 죽은 상태로 음부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부활을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시편 16:10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행 2:27). 다윗 자신은 결국 죽어 무덤에 묻혔으므로, 이 예언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이사야는 부활을 간접적으로 예언하였으나, 다윗은 직접적인 언어로 부활을 선포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로, 그분의 승천&lt;/strong&gt;에 관해서는 시편 24편이 웅장하게 노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amp;quot;셀라&amp;quot;는 히브리 예배의 추임새로, 감탄과 강조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웅장한 찬양은 예수님의 승천을 천 년 전에 미리 노래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셋째로, 승천 후 성령과 은사를 주실 것&lt;/strong&gt;도 다윗이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8:17-18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이끌어 올리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받으시며 반역자들에게서도 받으사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게 하려 하심이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8에서 이 시편 68편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의 은사 부여를 설명하였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교회에 주신 것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로, 그분의 왕권과 우편에 좌정하심&lt;/strong&gt;에 관해서는 시편 110편 1절이 핵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보좌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승리와 왕권과 영광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천국의 보좌는 하나뿐이며, 예수님이 거기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심판의 모든 권세를 갖게 되셨다는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다섯째로, 부활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중보사역&lt;/strong&gt;도 같은 시편에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한다. 예수님은 왕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영원히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왕이면서 제사장이신 분은 구약에서 멜기세덱 외에는 없었다. 예수님은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마지막으로 여섯째로,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시편 110편 5-7절에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5-7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들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들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아마겟돈에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시고 왕들을 쳐부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의 예언이 이미 시편에 담겨 있었다. &amp;quot;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amp;quot;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개선장군으로서 머리를 드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처럼 다윗의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승천과 왕권, 재림과 심판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파노라마를 담고 있다. 시편 145편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찬양한다(시 145:1-2, 12-13). 다윗은 실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은&lt;strong&gt; 다윗이 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시편이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임을 예수님 자신이 누가복음 24장에서 친히 증언하셨다는 것, 천국의 찬양이 계층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성도는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 자리를 준비한다는 것,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와 그가 선포한 놀라운 계시 곧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진리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부터 재림까지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과,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이며 그 원천이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시편 22편이 천 년 전에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수난을 정밀하게 예언했다는 것, 다윗이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재림&amp;middot;심판에 관한 예언도 시편에 풍성하게 남겨 두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쏟아 낸 절규가, 가장 가까운 벗에게 배신당하며 흘린 눈물이, 까닭 없이 당한 수치와 조롱이 단순한 인생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예언이 되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고통을 헛되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다윗의 삶을 통해 수천 년의 구원 역사를 예언하게 하셨고, 그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오늘날 성도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이 하나님의 더 깊은 경륜 안에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당하는 억울함과 배신과 수치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언젠가 더 큰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는 그 안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다윗의 탄원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다윗의 찬양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며, 다윗의 왕권 찬양 속에서 재림하실 만왕의 왕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lt;/strong&gt; 한다. 그리하여 &lt;strong&gt;시편 한 편 한 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책으로 읽으며, 그 예언이 이루어진 복음의 감격 안에서 더욱 깊이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lt;/strong&gt;를 바란다.&lt;/p&gt; &amp;nbsp;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1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윗이 지은 시편 속에 투영된&amp;nbsp;&lt;strong&gt;메시아 예언자&lt;/strong&gt;로서의 위대한 면모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을 이사야보다 더 풍부한 예언적 기록을 남긴&amp;nbsp;&lt;strong&gt;최고의 예언자&lt;/strong&gt;로 규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고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이르는&amp;nbsp;&lt;strong&gt;구속사적 생애&lt;/strong&gt;가 시편에 정밀하게 예고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인간적인 결함과 억울한 상황 속에서 쏟아낸 다윗의&amp;nbsp;&lt;strong&gt;저주와 탄식&lt;/strong&gt;마저도 메시아가 겪을 고통을 예표하는 도구로 승화되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시편을 통해&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lt;/strong&gt;을 온전히 발견하고, 다윗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amp;nbsp;&lt;strong&gt;신앙적 결단&lt;/strong&gt;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ed17dd7a71fc1ff5b4bc3968b0d436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6b600c8c166e21bb1e02c9f3c639d7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784977a0158375cd0a813aa454990a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ed3d9eb2f91a25908a3e625829f8a4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e7842dcfe214c91af34cda8a52a3d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ac50b4055f84770b705da181b500f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e241be0fcc13bf8a996aea905480af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6600c0bf32a71da6b8ba7227e3f1ac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fcaf4f15462d7752eac97ca0a35ab0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2b5e53a5b6158f1c86fec556622d60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514296d0adb661e186c501cff04e7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d7161970a04045b7f276fe6116cbaf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8c4f7e728133d834ab243256753ad4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44411ce163447f1cec7d5bb0a74af6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b35db8e80808d99c11208fb629a9fe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69e499232bb297389f2a3acbec93f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시편과_이사야의_메시아_예언.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91cad658ae27dfa08287af155e737b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128</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128#comment</comments>			<pubDate>Sun, 31 May 2026 20:45:23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01)] &quot;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7) 그는 예수께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시편 2:7~9)_2026-05-24(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3926</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24(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101)] &amp;quot;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7) 그는 예수께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amp;rdquo;(시편 2:7~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oUIAYxAEZyg&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UIAYxAEZy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 [if !mso]&gt; &lt;style&gt;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lt;/style&gt; &lt;![endif] --&gt;&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lt;!--p.0 {mso-style-name:&quot;바탕글&quot;;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90%;letter-spacing:-0.5pt;mso-text-raise:0pt;font-size:11.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gt; &lt;/style&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1. &lt;/span&gt;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복음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복음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증언하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복음서가 붙들고 있는 뿌리는 구약의 약속에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특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려면 다윗을 보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단지 이스라엘 역사 속의 두 번째 왕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trong&gt; 다윗은&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표본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장차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고 소개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마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 &lt;/span&gt;&lt;span&gt;아브라함은 약속과 믿음의 조상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왕권과 나라의 조상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씨로 오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다윗에게 약속된 왕의 씨로 오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1:1 &lt;/span&gt;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 사람이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감동 가운데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께서도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이 자신을 가리켜&amp;nbsp;&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고 불렀다고 말씀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마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2:43-45). &lt;/span&gt;&lt;span&gt;곧 다윗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22:43-45 &lt;/span&gt;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번 말씀의 본문인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도 바로 그리스도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는 말씀은 다윗 자신에게만 갇힌 말씀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왕이요&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사실을 영적으로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왕이었기에 왕직의 무게를 알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고난을 통과한 사람이었기에 장차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감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목자였기에 선한 목자를 노래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바라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사람이었기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장차 오실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시편 곳곳에 예언으로 남길 수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오늘날 성도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을 단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만 알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구주이시며 동시에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분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려는 성도는 왕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윗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미리 알았으며&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오늘의 성도가 어떻게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lt;/strong&gt;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2. &lt;/span&gt;왜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태복음은 &amp;#39;왕의 복음서&amp;#39;라고 불릴 만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족보를 제시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그 족보의 첫 문장은 매우 의도적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 &lt;/span&gt;&lt;span&gt;수많은 구약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이 대표로 언급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성취자이시며 왕권의 완성자이심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아브라함에게는 씨(히, &amp;#39;제라&amp;#39;)의 약속이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22: 17-18)&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도 씨의 약속이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씨를 세우시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삼하 7:12-13)&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이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씨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이어 오신 구속 경륜은 아브라함의 약속과 다윗의 왕권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lt;span lang=&quot;EN-US&quot;&gt;7:12-13 &lt;/span&gt;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태복음의 족보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윗에게만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왕&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는 직분이 붙는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른 인물들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낳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는 표현으로 이어지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다윗 왕&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는 칭호가 붙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다윗이 예수님의 왕적 신분을 이해하는 열쇠임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1:6 &lt;/span&gt;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마태복음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lt;/span&gt;&lt;span&gt;장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7&lt;/span&gt;&lt;span&gt;절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lt;/span&gt;&lt;span&gt;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lt;/span&gt;&lt;span&gt;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바벨론 포로부터 그리스도까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lt;/span&gt;&lt;span&gt;대로 정리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어에서 다윗이라는 이름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다웨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 &lt;/span&gt;&lt;span&gt;곧 &lt;/span&gt;&lt;span&gt;דוד&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DWD, 달렛 와우 달렛)&lt;/span&gt;&lt;span&gt;로 쓰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 문자 숫자값으로 계산하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lt;/span&gt;&lt;span&gt;가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마태복음이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다윗 왕권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1:17 &lt;/span&gt;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태복음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장에서도 예수님은 왕으로 소개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찾은 분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들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를 찾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의 탄생은 왕의 탄생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2:2 &lt;/span&gt;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을 모르면 예수님의 왕권을 깊이 알 수 없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혈통적 의미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amp;#39;왕의 표본&amp;#39;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lt;strong&gt;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고&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전쟁과 고난을 통과한 왕이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온을 사모한 왕&lt;/strong&gt;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lt;strong&gt;그는 완전한 왕은 아니었다&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완전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예표한 왕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예수님은 다윗 왕권의 완전한 성취&lt;/strong&gt;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것이 마태복음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이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다윗처럼 왕으로 오셨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보다 크신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열방과 만국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예표였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실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3. &lt;/span&gt;다윗은 어떻게 자기 자손을 주라 불렀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은 기독론의 핵심을 찌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 &lt;/span&gt;&lt;span&gt;그들은 곧바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다윗의 자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고 대답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틀린 대답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 불렀다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스도는 어떻게 단지 다윗의 자손이기만 하겠느냐고 물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22:41-42 &lt;/span&gt;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은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lt;/span&gt;&lt;span&gt;절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고 노래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내 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가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이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다윗이 주라 부른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10:1 &lt;/span&gt;여호와께서 내 주(아도나이=my Lord)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중 신분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참 사람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참 하나님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이 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다윗의 자손이 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본래의 신적 권세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이 필요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다윗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성령에 감동되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 &lt;/span&gt;&lt;span&gt;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다고 말씀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이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추론이나 문학적 상상 때문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셨기 때문이다(삼하 16:13)&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lt;span lang=&quot;EN-US&quot;&gt;16:13 &lt;/span&gt;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구약 시대에 성령은 신약 성도처럼 내주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람 위에 임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단순한 &amp;#39;정치적 왕&amp;#39;이 아니라 &amp;#39;예언적 왕&amp;#39;이 되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의 시편은 개인의 감정 노래에 머물지 않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용되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그 대표적인 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을 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오른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은 히브리어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야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39;&lt;/span&gt;&lt;span&gt;권세&amp;#39;와 &amp;#39;영광&amp;#39;과 &amp;#39;승리&amp;#39;의 자리를 뜻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메시아는 원수들이 발판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왕권의 승리를 미리 보여 준 말씀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신약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부활하신 후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막 16:1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보좌가 세 개라는 뜻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는 하나다(계 22:1-2)&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왕권을 가지신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히 &lt;span lang=&quot;EN-US&quot;&gt;1:3 &lt;/span&gt;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비밀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그는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내 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고 불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신의 왕권보다 더 크신 왕권을 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기 집안에서 태어날 후손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보다 크신 주님을 경배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는 반드시 이 태도를 가져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왕권을 붙들려는 자가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는 자가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4. &lt;/span&gt;다윗은 왜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번 본문의 중심은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7&lt;/span&gt;&lt;span&gt;절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 &lt;/span&gt;&lt;span&gt;이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왕의 즉위와 관련된 말씀처럼 보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단순한 왕권 시가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메시아의 신분과 통치를 예언하는 말씀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7 &lt;/span&gt;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아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들은 아버지의 생명과 권위를 이어받는 자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낳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는 말은 히브리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얄라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와 관련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존재의 출현과 관계의 선언을 함께 담고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에서 이 말씀은 메시아가 하나님께 속한 독특한 아들의 신분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어느 천사에게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너는 내 아들이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고 말씀하지 않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히 &lt;span lang=&quot;EN-US&quot;&gt;1:5 &lt;/span&gt;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하나님의 아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는 표현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어떤 다른 신적 존재를 따로 낳으셨다는 뜻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방식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신분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 안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영원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lt;span lang=&quot;EN-US&quot;&gt;1:14 &lt;/span&g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사랑받는 존재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열방을 유업으로 받는 왕으로 오신다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땅끝까지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8 &lt;/span&gt;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이스라엘 안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lt;strong&gt;유대인의 왕&lt;/strong&gt;으로 나셨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유대인만의 왕이 아니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lt;strong&gt;열방의 왕&lt;/strong&gt;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lt;strong&gt;만국을 다스리실 왕&lt;/strong&gt;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 아들의 왕권은 온 세상을 향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또한 메시아의 심판 권세를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 &lt;/span&gt;&lt;span&gt;철장은 흔들리지 않는 왕적 권세를 뜻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9 &lt;/span&gt;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이것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도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참된 왕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도 열방과 싸웠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참된 왕은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도 원수들을 상대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참된 왕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다윗의 왕권을 넘어 예수님의 왕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열방의 상속자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심판과 통치의 왕&lt;/strong&gt;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오늘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lt;strong&gt;나의 주님이며&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나의 왕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만국을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lt;/strong&gt;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5. &lt;/span&gt;기름부음 받은 자는 어떤 사명을 가진 분인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메시아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기름부음 받은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로 부른다(시 2:2)&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기름부음 받은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가 바로 &amp;#39;메시아&amp;#39;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어로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마쉬아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헬라어로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크리스토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우리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그리스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고 부르는 말은 이름이 아니라 직분과 신분을 담은 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2 &lt;/span&gt;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기름은 하나님의 선택과 위임과 성령의 능력을 상징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도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날 이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강하게 임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 때문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장차 오실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lt;span lang=&quot;EN-US&quot;&gt;16:13 &lt;/span&gt;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lt;/span&gt;&lt;span&gt;예수님도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오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예수님의 기름부음은 단지 의식적 기름부음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행 10:38)&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결과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lt;span lang=&quot;EN-US&quot;&gt;10:38 &lt;/span&gt;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며 자신의 사명을 밝히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선포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기름부음의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눅 4:18-1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lt;span lang=&quot;EN-US&quot;&gt;4:18-19 &lt;/span&gt;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우리는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예수님은 단지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포로 된 자를 풀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포로 됨은 정치적 속박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에 묶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마귀에게 눌리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조상과 자신의 죄로 인해 악한 영의 압박을 받는 모든 상태를 포함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메시아&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명에는 구원론과 귀신론이 함께 들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 사함만 있고 악한 영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없다면 복음의 실제가 약해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반대로 귀신을 쫓는 체험만 있고 회개와 보혈의 정결이 없다면 그것도 위험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죄인을 용서하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이 완전한 메시아가 아님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죄를 지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해야 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약점도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기름부음은 장차 오실 완전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가리켰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으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선지자로 말씀을 선포하셨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제사장으로 자신의 피를 드리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이 완전하게 성취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도 이 기름부음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은사는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직분도 높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영혼을 살리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 임한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구할 때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을 붙들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6. &lt;/span&gt;예수님은 어떻게 만왕의 왕으로 보좌에 앉으셨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왕권의 최종 완성은 요한계시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어린양이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계 17:14)&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린양은 죽임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말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만왕의 왕은 그분의 승리와 통치를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고난을 통과하여 승리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승리로 왕권을 받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17:14 &lt;/span&gt;그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님이 왕으로 보좌에 앉으신 길은 세상의 왕들이 권력을 얻는 방식과 다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상의 왕들은 힘으로 올라가고 사람을 짓누르며 자기 자리를 지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왕이 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승천하여 보좌에 앉으셨다(빌 2:8-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빌 &lt;span lang=&quot;EN-US&quot;&gt;2:8-9 &lt;/span&gt;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하늘 보좌는 원래 한 분 하나님의 통치 자리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편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시 103:1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한 분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도 하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한 보좌에서 만유가 다스림을 받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03:19 &lt;/span&gt;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런데 예수님은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lt;/span&gt;&lt;span&gt;장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1&lt;/span&gt;&lt;span&gt;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이기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두 보좌에 따로 앉아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간으로 승리하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승리의 몸으로 보좌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3:21 &lt;/span&gt;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말씀에는 성도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도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모든 신자가 아무렇게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ldquo;&lt;/span&gt;&lt;span&gt;이기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에게 주시는 약속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도 이기는 자가 되어야 보좌에 참여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여기서 &amp;#39;&lt;/span&gt;&lt;span&gt;이긴다&amp;#39;는 것은 무엇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이기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기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회개와 충성과 인내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구원론의 핵심이 드러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칭의를 얻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날마다 회개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도록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구원받은 자가 모두 같은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기는 자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후 &lt;span lang=&quot;EN-US&quot;&gt;5:10 &lt;/span&gt;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왕권의 원리를 삶으로 배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사울을 억지로 끌어내리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의 힘으로 왕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도망하고 고난받는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참 왕권은 사람이 빼앗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이셔서 주시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그 길을 완전하게 걸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보좌를 탐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과 회개의 길과 충성의 길을 배워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7. &lt;/span&gt;선한 목자는 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을 이해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신분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왕이기 전에 목자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들에서 양을 지키던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가려 할 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도망하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양을 위해 싸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목자의 경험이 다윗의 영성에 깊이 새겨졌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그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3:1-3 &lt;/span&g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3&lt;/span&gt;&lt;span&gt;편은 단순한 위로의 시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목자는 양을 먹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쉬게 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인도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호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때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키고 바로잡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양을 돌보며 이것을 배웠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을 그런 목자로 경험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3:4 &lt;/span&gt;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요 10:11)&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선한 목자는 삯꾼과 다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사자와 곰 앞에서 양을 버리지 않았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사망과 마귀 앞에서 자기 양들을 버리지 않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양들을 살리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lt;span lang=&quot;EN-US&quot;&gt;10:11 &lt;/span&gt;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왕과 목자는 하나로 만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참 왕은 백성을 짓누르는 왕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그는 백성을 먹이고 보호하는 목자 같은 왕&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상의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바로 그런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면서 동시에 선한 목자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성도들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한다(계 7:17)&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놀라운 표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린양이 목자가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죽임당하신 어린양이 이제 보좌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십자가의 희생과 보좌의 통치가 하나로 연결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7:17 &lt;/span&gt;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예수님의 목자 되심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양을 사랑했던 목자였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스라엘을 맡은 왕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다윗도 완전하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녀 문제에서 약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지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해야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렇지만 그의 목자의 마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선한 목자 되심을 예표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오늘날 목회자와 사역자와 왕 노릇할 자는 이 목자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은사가 있어도 목자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직분이 있어도 양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는 먼저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모든 성도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인도받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뜻대로 걷는 양은 길을 잃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만 생명수 샘으로 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왕으로 경외하면서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목자로 신뢰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그리고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왕이실 뿐만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다(시 110:4).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깊이 다룰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8. &lt;/span&gt;왕 노릇할 자는 왜 회개와 거룩을 갖추어야 하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직분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직분 뒤에 오는 심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높은 자리에 설수록 책임은 무겁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왕에게 권세를 주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권세를 함부로 쓰면 더 엄중하게 심판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이것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신의 죄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상한 심령으로 회개할 줄 알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7&lt;/span&gt;&lt;span&gt;편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하지 않으면 칼을 가신다(시 7:11-12)&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왕 노릇할 자에게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다스리는 권세만이 아니라 심판의 공의와도 관련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7:11-12 &lt;/span&gt;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믿는 성도에게도 필요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의 피로 칭의를 받았다고 해서 죄의 기록과 죄의 영향이 자동으로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행위는 하나님 앞에 기록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백과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적용될 때 그 죄는 씻기고 지워진다(요일 1: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lt;span lang=&quot;EN-US&quot;&gt;1:9 &lt;/span&gt;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lt;strong&gt;왕 노릇할 자는 회개하는 사람이어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감추는 왕은 타락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역자는 무너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은사가 크고 직분이 높아도 회개가 없으면 위험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는 단지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의 근거를 끊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헬라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메타노이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가 말하듯&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의 조건을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아야 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시 24:3-4)&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왕 노릇할 자의 조건이기도 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산에 오르려는 자는 깨끗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4:3-4 &lt;/span&gt;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거룩은 단순한 도덕적 품위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카도쉬&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는 구별됨을 뜻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헬라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하기오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도 하나님께 따로 구별된 상태를 뜻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는 세상과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사람과 자기 영광을 위해 쓰는 사람은 길이 다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왕 노릇할 자는 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혈기와 분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미움과 시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음란과 탐욕&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교만과 불순종은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이유로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오히려 믿었기 때문에 더 회개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lt;span lang=&quot;EN-US&quot;&gt;6:19 &lt;/span&gt;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는 데 있지 않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죄를 지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회개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울은 책망을 들어도 변명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책망을 듣고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회개하는 사람을 쓰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는 죄를 안 짓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발견할 때 즉시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사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지막으로 왕 노릇할 자는 &lt;strong&gt;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계 22:14)&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두루마기를 빠는 삶은 회개의 삶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권은 더러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정결한 신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기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충성한 종에게 주어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22:14 &lt;/span&gt;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왕권을 사모하되 회개 없는 왕권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를 사모하되 십자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이 이기시고 보좌에 앉으셨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도 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9. &lt;/span&gt;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우리는 &lt;strong&gt;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어떻게 미리 알고 증언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단순한 역사적 왕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장차 오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lt;strong&gt;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시 2:7)&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기름부음 받은 자이며(시 2:2)&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만왕의 왕이며(시110:1, 2:7-9)&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선한 목자(시 23:1)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시110:4)&lt;/strong&gt;이심을 시편 가운데 예언적으로 드러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마 1:1)&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씨요 왕권의 완성자라는 뜻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다윗이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주라 부른 이유를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편은 그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열방을 유업으로 받을 왕임을 증언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그분이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그분이 이기신 후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임을 밝힌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예수님을 부분적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이시며 동시에 만국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시며 동시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심판의 &lt;/strong&gt;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낮아지셨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주로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데서 멈추지 말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고로 저 천국에 들어가서&amp;nbsp;&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gt;다윗은 기름부음 받았지만 자기 힘으로 왕권을 빼앗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고난을 통과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의 죄 앞에서는 회개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왕 노릇할 자의 길이다&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도 보좌를 사모한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거룩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맡겨진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성도는 은사와 직분을 자기 자랑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회개와 사랑과 섬김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마지막으로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믿음은 시작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와 충성과 거룩은 그 믿음이 열매 맺는 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행위 심판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서는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세워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기는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 노릇할 자답게 준비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lt;/span&gt;&lt;span&gt;그리하여 다윗처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2026년 05월 24일(주일)&lt;/p&gt; &lt;p class=&quot;0&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76952&quot;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gt;&lt;!--[data-hwpjson]{ &quot;documentPr&quot;: { &quot;di&quot;: &quot;&quot;, &quot;dp&quot;: { &quot;dn&quot;: &quot;test.hwp&quot;, &quot;ta&quot;: 1, &quot;d1&quot;: 5, &quot;d2&quot;: 1, &quot;dv&quot;: 0, &quot;dr&quot;: 1, &quot;do&quot;: 1, &quot;vj&quot;: &quot;1.1&quot;, &quot;an&quot;: &quot;Hancom Office Hangul&quot;, &quot;av&quot;: &quot;10, 0, 0, 13462&quot;, &quot;ao&quot;: &quot;WIN&quot;, &quot;ab&quot;: &quot;32&quot;, &quot;ar&quot;: &quot;LE&quot;, &quot;as&quot;: &quot;Windows_8&quot; }, &quot;dis&quot;: false, &quot;ds&quot;: { &quot;ti&quot;: &quot;&quot;, &quot;la&quot;: &quot;ko&quot;, &quot;cr&quot;: &quot;&quot;, &quot;su&quot;: &quot;&quot;, &quot;de&quot;: &quot;&quot;, &quot;cd&quot;: &quot;2026-05-24T21:45:41.119Z&quot;, &quot;m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p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ke&quot;: &quot;&quot; } }, &quot;dh&quot;: { &quot;do&quot;: { &quot;pa&quot;: 1, &quot;fo&quot;: 1, &quot;en&quot;: 1, &quot;pi&quot;: 1, &quot;tb&quot;: 1, &quot;eq&quot;: 1 }, &quot;fo&quot;: [ ], &quot;cd&quot;: { &quot;tp&quot;: 0, &quot;lc&quot;: { &quot;af&quot;: false, &quot;ui&quot;: false, &quot;fu&quot;: false, &quot;dn&quot;: false, &quot;ul&quot;: false, &quot;el&quot;: false, &quot;at&quot;: false, &quot;tq&quot;: false, &quot;da&quot;: false, &quot;dw&quot;: false, &quot;dj&quot;: false, &quot;bc&quot;: false, &quot;bu&quot;: false, &quot;al&quot;: false, &quot;ab&quot;: false, &quot;ap&quot;: false, &quot;an&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ds&quot;: false, &quot;de&quot;: false, &quot;as&quot;: false, &quot;cp&quot;: false, &quot;ao&quot;: false, &quot;et&quot;: false, &quot;ay&quot;: false, &quot;am&quot;: false, &quot;a1&quot;: false, &quot;bt&quot;: false, &quot;av&quot;: false, &quot;dh&quot;: false, &quot;dp&quot;: false, &quot;d1&quot;: false, &quot;mf&quot;: false, &quot;bl&quot;: false, &quot;ag&quot;: false, &quot;dg&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df&quot;: false, &quot;do&quot;: false, &quot;dl&quot;: false, &quot;di&quot;: false, &quot;d2&quot;: false, &quot;d3&quot;: false, &quot;ob&quot;: false, &quot;d4&quot;: false, &quot;ev&quot;: false, &quot;d5&quot;: false, &quot;d6&quot;: false, &quot;a2&quot;: false, &quot;dc&quot;: false } }, &quot;ld&quot;: { &quot;pa&quot;: &quot;&quot;, &quot;pi&quot;: true, &quot;fo&quot;: false } }, &quot;bf&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 &quot;id&quot;: 1,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10&quot;: { &quot;id&quot;: 2,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quot;wb&quot;: { &quot;fc&quot;: 4294967295, &quot;hc&quot;: 10066329, &quot;al&quot;: 0, &quot;hs&quot;: -1 } } } }, &quot;cp&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1&quot;: { &quot;id&quot;: 0, &quot;he&quot;: 1000, &quot;tc&quot;: 0, &quot;sc&quot;: 4294967295, &quot;uf&quot;: false, &quot;uk&quot;: false, &quot;sm&quot;: 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quot;f1&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1&quot;: 1, &quot;f2&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2&quot;: 1, &quot;f3&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3&quot;: 1, &quot;f4&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4&quot;: 1, &quot;f5&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5&quot;: 1, &quot;f6&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6&quot;: 1, &quot;f7&quot;: &quot;한컴바탕&quot;, &quot;t7&quot;: 1, &quot;r1&quot;: 100, &quot;r2&quot;: 100, &quot;r3&quot;: 100, &quot;r4&quot;: 100, &quot;r5&quot;: 100, &quot;r6&quot;: 100, &quot;r7&quot;: 100, &quot;s1&quot;: 0, &quot;s2&quot;: 0, &quot;s3&quot;: 0, &quot;s4&quot;: 0, &quot;s5&quot;: 0, &quot;s6&quot;: 0, &quot;s7&quot;: 0, &quot;e1&quot;: 100, &quot;e2&quot;: 100, &quot;e3&quot;: 100, &quot;e4&quot;: 100, &quot;e5&quot;: 100, &quot;e6&quot;: 100, &quot;e7&quot;: 100, &quot;o1&quot;: 0, &quot;o2&quot;: 0, &quot;o3&quot;: 0, &quot;o4&quot;: 0, &quot;o5&quot;: 0, &quot;o6&quot;: 0, &quot;o7&quot;: 0, &quot;it&quot;: false, &quot;bo&quot;: false, &quot;ut&quot;: 0, &quot;us&quot;: 1, &quot;uc&quot;: 0, &quot;st&quot;: false, &quot;ss&quot;: 1, &quot;so&quot;: 0, &quot;ot&quot;: 0, &quot;ht&quot;: 0, &quot;hc&quot;: 0, &quot;hx&quot;: 0, &quot;hy&quot;: 0, &quot;em&quot;: false, &quot;en&quot;: false, &quot;su&quot;: false, &quot;sb&quot;: false },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 &quot;id&quot;: 1, &quot;he&quot;: 1100, &quot;tc&quot;: 0, &quot;sc&quot;: 4294967295, &quot;uf&quot;: false, &quot;uk&quot;: false, &quot;sm&quot;: 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0&quot;, &quot;f1&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1&quot;: 1, &quot;f2&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2&quot;: 1, &quot;f3&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3&quot;: 1, &quot;f4&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4&quot;: 1, &quot;f5&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5&quot;: 1, &quot;f6&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6&quot;: 1, &quot;f7&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7&quot;: 1, &quot;r1&quot;: 90, &quot;r2&quot;: 90, &quot;r3&quot;: 90, &quot;r4&quot;: 90, &quot;r5&quot;: 90, &quot;r6&quot;: 90, &quot;r7&quot;: 90, &quot;s1&quot;: -5, &quot;s2&quot;: -5, &quot;s3&quot;: -5, &quot;s4&quot;: -5, &quot;s5&quot;: -5, &quot;s6&quot;: -5, &quot;s7&quot;: -5, &quot;e1&quot;: 100, &quot;e2&quot;: 100, &quot;e3&quot;: 100, &quot;e4&quot;: 100, &quot;e5&quot;: 100, &quot;e6&quot;: 100, &quot;e7&quot;: 100, &quot;o1&quot;: 0, &quot;o2&quot;: 0, &quot;o3&quot;: 0, &quot;o4&quot;: 0, &quot;o5&quot;: 0, &quot;o6&quot;: 0, &quot;o7&quot;: 0, &quot;it&quot;: false, &quot;bo&quot;: false, &quot;ut&quot;: 0, &quot;us&quot;: 1, &quot;uc&quot;: 0, &quot;st&quot;: false, &quot;ss&quot;: 1, &quot;so&quot;: 0, &quot;ot&quot;: 0, &quot;ht&quot;: 0, &quot;hc&quot;: 0, &quot;hx&quot;: 0, &quot;hy&quot;: 0, &quot;em&quot;: false, &quot;en&quot;: false, &quot;su&quot;: false, &quot;sb&quot;: false } }, &quot;tp&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3&quot;: { &quot;id&quot;: 0, &quot;al&quot;: false, &quot;ar&quot;: false, &quot;tp&quot;: [ ] } }, &quot;nu&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4&quot;: { &quot;id&quot;: 1, &quot;sn&quot;: 0, &quot;ph&quot;: [ { &quot;le&quot;: 1,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1.&quot; }, { &quot;le&quot;: 2,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8, &quot;st&quot;: 1, &quot;sf&quot;: &quot;^2.&quot; }, { &quot;le&quot;: 3,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3)&quot; }, { &quot;le&quot;: 4,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8, &quot;st&quot;: 1, &quot;sf&quot;: &quot;^4)&quot; }, { &quot;le&quot;: 5,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5)&quot; }, { &quot;le&quot;: 6,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8, &quot;st&quot;: 1, &quot;sf&quot;: &quot;(^6)&quot; }, { &quot;le&quot;: 7, &quot;al&quot;: 0, &quot;ui&quot;: tru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1, &quot;st&quot;: 1, &quot;sf&quot;: &quot;^7&quot; }, { &quot;le&quot;: 8, &quot;al&quot;: 0, &quot;ui&quot;: fals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quot; }, { &quot;le&quot;: 9, &quot;al&quot;: 0, &quot;ui&quot;: fals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quot; }, { &quot;le&quot;: 10, &quot;al&quot;: 0, &quot;ui&quot;: false, &quot;ai&quot;: true, &quot;wa&quot;: 0, &quot;tt&quot;: 0, &quot;to&quot;: 50, &quot;cp&quot;: &quot;&quot;, &quot;uf&quot;: 0, &quot;st&quot;: 1, &quot;sf&quot;: &quot;&quot; } ] } }, &quot;bu&quot;: { }, &quot;pp&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5&quot;: { &quot;id&quot;: 0, &quot;ah&quot;: 0, &quot;av&quot;: 0, &quot;ht&quot;: 0, &quot;hi&quot;: &quot;&quot;, &quot;hl&quot;: 0, &quot;t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3&quot;, &quot;kb&quot;: 0, &quot;kn&quot;: true, &quot;ko&quot;: false, &quot;kk&quot;: false, &quot;kl&quot;: false, &quot;kp&quot;: false, &quot;kw&quot;: 0, &quot;co&quot;: 0, &quot;fl&quot;: false, &quot;st&quot;: true, &quot;sl&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mi&quot;: 0, &quot;ml&quot;: 0, &quot;mr&quot;: 0, &quot;mp&quot;: 0, &quot;mn&quot;: 0, &quot;lt&quot;: 0, &quot;lv&quot;: 16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quot;bl&quot;: 0, &quot;br&quot;: 0, &quot;bt&quot;: 0, &quot;bb&quot;: 0, &quot;bc&quot;: false, &quot;bi&quot;: false },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 &quot;id&quot;: 1, &quot;ah&quot;: 0, &quot;av&quot;: 0, &quot;ht&quot;: 0, &quot;hi&quot;: &quot;&quot;, &quot;hl&quot;: 0, &quot;t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3&quot;, &quot;kb&quot;: 0, &quot;kn&quot;: true, &quot;ko&quot;: false, &quot;kk&quot;: false, &quot;kl&quot;: false, &quot;kp&quot;: false, &quot;kw&quot;: 0, &quot;co&quot;: 0, &quot;fl&quot;: false, &quot;st&quot;: true, &quot;sl&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mi&quot;: 0, &quot;ml&quot;: 0, &quot;mr&quot;: 0, &quot;mp&quot;: 0, &quot;mn&quot;: 0, &quot;lt&quot;: 0, &quot;lv&quot;: 16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0&quot;, &quot;bl&quot;: 0, &quot;br&quot;: 0, &quot;bt&quot;: 0, &quot;bb&quot;: 0, &quot;bc&quot;: false, &quot;bi&quot;: false }, &quot;01DCEB7B3ADB081000000C17&quot;: { &quot;id&quot;: 2, &quot;ah&quot;: 0, &quot;av&quot;: 0, &quot;ht&quot;: 0, &quot;hi&quot;: &quot;&quot;, &quot;hl&quot;: 0, &quot;t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3&quot;, &quot;kb&quot;: 0, &quot;kn&quot;: true, &quot;ko&quot;: false, &quot;kk&quot;: false, &quot;kl&quot;: false, &quot;kp&quot;: false, &quot;kw&quot;: 0, &quot;co&quot;: 0, &quot;fl&quot;: false, &quot;st&quot;: true, &quot;sl&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mi&quot;: 0, &quot;ml&quot;: 0, &quot;mr&quot;: 0, &quot;mp&quot;: 0, &quot;mn&quot;: 0, &quot;lt&quot;: 0, &quot;lv&quot;: 16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0&quot;, &quot;bl&quot;: 0, &quot;br&quot;: 0, &quot;bt&quot;: 0, &quot;bb&quot;: 0, &quot;bc&quot;: false, &quot;bi&quot;: false } }, &quot;st&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 &quot;id&quot;: 0, &quot;ty&quot;: 0, &quot;na&quot;: &quot;바탕글&quot;, &quot;en&quot;: &quot;Normal&quot;,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7&quot;,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ns&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li&quot;: 1042, &quot;lf&quot;: false } }, &quot;mp&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C19&quot;: { &quot;id&quot;: 1, &quot;wi&quot;: 15591, &quot;lw&quot;: 1, &quot;lt&quot;: 1, &quot;lc&quot;: 0, &quot;fc&quot;: 10092492, &quot;ac&quot;: 10092543, &quot;mt&quot;: 0 } }, &quot;ro&quot;: { &quot;h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D&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E&quot;, &quot;id&quot;: 0,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3,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co&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B&quot; } ,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co&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C&quot; } , { &quot;t&quot;: &quot;1. 들어가며&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8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8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복음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증언하지만, 그 복음서가 붙들고 있는 뿌리는 구약의 약속에 있다. 특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려면 다윗을 보아야 한다. 다윗은 단지 이스라엘 역사 속의 두 번째 왕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표본이며, 장차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8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한다(마 1:1). 아브라함은 약속과 믿음의 조상이고, 다윗은 왕권과 나라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씨로 오셨고, 동시에 다윗에게 약속된 왕의 씨로 오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 사람이었지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고 말씀하셨다(마 22:43-45). 곧 다윗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번 말씀의 본문인 시편 2편도 바로 그리스도의 신분을 보여 준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은 다윗 자신에게만 갇힌 말씀이 아니다.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왕이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이 사실을 영적으로 알았다. 그는 왕이었기에 왕직의 무게를 알았고,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었기에 장차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감했다. 그는 목자였기에 선한 목자를 노래했고,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사람이었기에, 장차 오실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시편 곳곳에 예언으로 남길 수 있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오늘날 성도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단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만 알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동시에 왕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려는 성도는 왕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미리 알았으며, 오늘의 성도가 어떻게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2. 왜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하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족보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 족보의 첫 문장은 매우 의도적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수많은 구약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이 대표로 언급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성취자이시며 왕권의 완성자이심을 보여 준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아브라함에게는 씨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에게도 씨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씨를 세우시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이시고, 다윗의 씨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이어 오신 구속 경륜은 아브라함의 약속과 다윗의 왕권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삼하 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직분이 붙는다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은 “낳고”라는 표현으로 이어지지만, 다윗에게는 “다윗 왕”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이것은 다윗이 예수님의 왕적 신분을 이해하는 열쇠임을 보여 준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9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또한 마태복음 1장 17절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바벨론 포로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로 정리한다. 히브리어에서 다윗이라는 이름은 ‘다웨드’, 곧 דוד(DWD)로 쓰이며, 히브리 문자 숫자값으로 계산하면 14가 된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다윗 왕권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9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1:17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태복음 2장에서도 예수님은 왕으로 소개된다.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찾은 분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다. 예수님의 탄생은 왕의 탄생이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다윗을 모르면 예수님의 왕권을 깊이 알 수 없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혈통적 의미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왕의 표본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고, 전쟁과 고난을 통과한 왕이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온을 사모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왕은 아니었다. 완전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윗은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예표한 왕이고, 예수님은 다윗 왕권의 완전한 성취이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것이 마태복음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이유다. 예수님은 다윗처럼 왕으로 오셨지만, 다윗보다 크신 왕이시다. 다윗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예수님은 열방과 만국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다윗은 예표였고, 예수님은 실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3. 다윗은 어떻게 자기 자손을 주라 불렀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은 기독론의 핵심을 찌른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곧바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틀린 대답이 아니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셨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다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단지 다윗의 자손이기만 하겠느냐고 물으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마 22:41-42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노래했다. 다윗에게 “내 주”가 있었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이시지만, 동시에 다윗이 주라 부른 분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중 신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참 하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다윗의 자손이 되셨고, 본래의 신적 권세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다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이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추론이나 문학적 상상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셨기 때문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A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구약 시대에 성령은 신약 성도처럼 내주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람 위에 임하셨다.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자, 그는 단순한 정치적 왕이 아니라 예언적 왕이 되었다. 그의 시편은 개인의 감정 노래에 머물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용되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A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110편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을 보았다. 여기서 “오른편”은 히브리어로 ‘야민’이며, 권세와 영광과 승리의 자리를 뜻한다. 메시아는 원수들이 발판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왕권의 승리를 미리 보여 준 말씀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신약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후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보좌가 세 개라는 뜻이 아니다. 보좌는 하나다.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왕권을 가지신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이 비밀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내 주”라고 불렀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그는 자신의 왕권보다 더 크신 왕권을 보았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 태어날 후손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주님을 경배했다. 왕 노릇할 자는 반드시 이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기 왕권을 붙들려는 자가 아니라,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는 자가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4. 다윗은 왜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번 본문의 중심은 시편 2편 7절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왕의 즉위와 관련된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단순한 왕권 시가 아니라, 메시아의 신분과 통치를 예언하는 말씀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아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과 권위를 이어받는 자다. “낳았다”는 말은 히브리어 ‘얄라드’와 관련되며, 존재의 출현과 관계의 선언을 함께 담고 있다. 시편 2편에서 이 말씀은 메시아가 하나님께 속한 독특한 아들의 신분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 준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시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히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어떤 다른 신적 존재를 따로 낳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방식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신분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 안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셨고, 영원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사랑받는 존재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유업으로 받는 왕으로 오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 땅끝까지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신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B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B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이스라엘 안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지만,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시다. 그분은 열방의 왕이시며, 만국을 다스리실 왕이시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 아들의 왕권은 온 세상을 향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2편은 또한 메시아의 심판 권세를 말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철장은 흔들리지 않는 왕적 권세를 뜻한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왕이시다.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이것을 알았다. 자신도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참된 왕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열방과 싸웠지만, 참된 왕은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원수들을 상대했지만, 참된 왕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시편 2편은 다윗의 왕권을 넘어 예수님의 왕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열방의 상속자이시며, 심판과 통치의 왕이시다. 오늘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며, 나의 왕이며, 만국을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5. 기름부음 받은 자는 어떤 사명을 가진 분인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2편은 메시아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부른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바로 메시아다.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이며,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다.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말은 이름이 아니라 직분과 신분을 담은 말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았다. 기름은 하나님의 선택과 위임과 성령의 능력을 상징한다. 다윗도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날 이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강하게 임하셨다. 다윗은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 때문에, 장차 오실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님도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름부음은 단지 의식적 기름부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며 자신의 사명을 밝히셨다. 주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선포하셨다. 그 기름부음의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C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C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우리는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본다. 예수님은 단지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포로 된 자를 풀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 여기서 포로 됨은 정치적 속박만이 아니다. 죄에 묶이고, 마귀에게 눌리고, 조상과 자신의 죄로 인해 악한 영의 압박을 받는 모든 상태를 포함한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메시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명에는 구원론과 귀신론이 함께 들어 있다. 죄 사함만 있고 악한 영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없다면 복음의 실제가 약해진다. 반대로 귀신을 쫓는 체험만 있고 회개와 보혈의 정결이 없다면 그것도 위험하다.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신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 자신이 완전한 메시아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죄를 지었고, 회개해야 했으며, 약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기름부음은 장차 오실 완전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가리켰다. 예수님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으셨고, 선지자로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제사장으로 자신의 피를 드리셨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이 완전하게 성취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성도도 이 기름부음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직분도 높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영혼을 살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 다윗에게 임한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구할 때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을 붙들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6. 예수님은 어떻게 만왕의 왕으로 보좌에 앉으셨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왕권의 최종 완성은 요한계시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시지만, 동시에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 어린양은 죽임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말하고, 만왕의 왕은 그분의 승리와 통치를 말한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과하여 승리하셨고, 그 승리로 왕권을 받으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계 17:14 그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님이 왕으로 보좌에 앉으신 길은 세상의 왕들이 권력을 얻는 방식과 다르다. 세상의 왕들은 힘으로 올라가고 사람을 짓누르며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왕이 되셨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승천하여 보좌에 앉으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빌 2:8-9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하늘 보좌는 원래 한 분 하나님의 통치 자리다. 시편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보좌도 하나다. 그 한 보좌에서 만유가 다스림을 받는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런데 예수님은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이기셨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두 보좌에 따로 앉아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간으로 승리하시고, 그 승리의 몸으로 보좌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D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 말씀에는 성도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도 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신자가 아무렇게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듯이, 성도도 이기는 자가 되어야 보좌에 참여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D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이기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이기는 것이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기셨고, 성도는 회개와 충성과 인내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구원론의 핵심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칭의를 얻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 그러나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고,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도록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하며,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가 모두 같은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며, 이기는 자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이 왕권의 원리를 삶으로 배웠다. 그는 사울을 억지로 끌어내리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왕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도망하고 고난받는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 왕권은 사람이 빼앗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이셔서 주시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길을 완전하게 걸으셨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보좌를 탐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과 회개의 길과 충성의 길을 배워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7. 선한 목자는 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을 이해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신분이 있다. 그는 왕이기 전에 목자였다. 그는 들에서 양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가려 할 때, 그는 도망하지 않았다. 양을 위해 싸웠다. 이 목자의 경험이 다윗의 영성에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23편은 단순한 위로의 시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준다. 목자는 양을 먹이고, 쉬게 하고, 인도하고, 보호한다. 때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키고 바로잡는다. 다윗은 양을 돌보며 이것을 배웠고, 하나님을 그런 목자로 경험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목자는 삯꾼과 다르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다윗은 사자와 곰 앞에서 양을 버리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사망과 마귀 앞에서 자기 양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양들을 살리셨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왕과 목자는 하나로 만난다. 하나님이 세우신 참 왕은 백성을 짓누르는 왕이 아니다. 그는 백성을 먹이고 보호하는 목자 같은 왕이다. 세상의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준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왕이시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면서 동시에 선한 목자이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요한계시록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성도들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한다. 이것은 놀라운 표현이다. 어린양이 목자가 된다.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이제 보좌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십자가의 희생과 보좌의 통치가 하나로 연결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E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E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은 이 예수님의 목자 되심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다. 그는 양을 사랑했던 목자였고, 이스라엘을 맡은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도 완전하지 않았다. 자녀 문제에서 약했고, 죄를 지었으며, 회개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의 목자의 마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선한 목자 되심을 예표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오늘날 목회자와 사역자와 왕 노릇할 자는 이 목자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은사가 있어도 목자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직분이 있어도 양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권이 아니다. 왕 노릇할 자는 먼저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또한 모든 성도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인도받아야 한다. 자기 뜻대로 걷는 양은 길을 잃는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만 생명수 샘으로 간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왕으로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목자로 신뢰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8. 왕 노릇할 자는 왜 회개와 거룩을 갖추어야 하는가?&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왕 노릇할 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직분이 아니다. 직분 뒤에 오는 심판이다. 높은 자리에 설수록 책임은 무겁다. 하나님은 왕에게 권세를 주시지만, 그 권세를 함부로 쓰면 더 엄중하게 심판하신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할 줄 알았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7편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칼을 가신다. 이것은 왕 노릇할 자에게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다스리는 권세만이 아니라 심판의 공의와도 관련된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믿는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예수님의 피로 칭의를 받았다고 해서 죄의 기록과 죄의 영향이 자동으로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행위는 하나님 앞에 기록된다. 자백과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적용될 때 그 죄는 씻기고 지워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회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죄를 감추는 왕은 타락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역자는 무너진다. 은사가 크고 직분이 높아도 회개가 없으면 위험하다. 회개는 단지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라, 죄의 근거를 끊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헬라어 ‘메타노이아’가 말하듯,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시편 24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의 조건을 말한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아야 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왕 노릇할 자의 조건이기도 하다. 주님의 산에 오르려는 자는 깨끗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시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여기서 거룩은 단순한 도덕적 품위가 아니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됨을 뜻하고, 헬라어 ‘하기오스’도 하나님께 따로 구별된 상태를 뜻한다. 왕 노릇할 자는 세상과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사람과 자기 영광을 위해 쓰는 사람은 길이 다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E&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BFF&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또한 왕 노릇할 자는 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어야 한다. 혈기와 분노, 미움과 시기, 음란과 탐욕, 교만과 불순종은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이유로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믿었기 때문에 더 회개해야 한다. 성령의 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FF&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0&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0&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1&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회개했다. 사울은 책망을 들어도 변명했고, 다윗은 책망을 듣고 무너졌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회개하는 사람을 쓰신다. 왕 노릇할 자는 죄를 안 짓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발견할 때 즉시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사람이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1&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지막으로 왕 노릇할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삶은 회개의 삶이다. 왕권은 더러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정결한 신부, 이기는 자, 충성한 종에게 주어진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2&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3&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성도는 왕권을 사모하되 회개 없는 왕권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보좌를 사모하되 십자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이기시고 보좌에 앉으셨듯이, 성도도 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4&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5&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6&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9. 나오며&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7&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우리는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어떻게 미리 알고 증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단순한 역사적 왕이 아니라, 장차 오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 그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만왕의 왕이며, 선한 목자이심을 시편 가운데 예언적으로 드러냈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8&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9&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씨요 왕권의 완성자라는 뜻이다. 시편 110편은 다윗이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주라 부른 이유를 보여 준다. 시편 2편은 그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열방을 유업으로 받을 왕임을 증언한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그분이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그분이 이기신 후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임을 밝힌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9&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성도는 예수님을 부분적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이시며 동시에 만국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시며 동시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심판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낮아지셨지만, 다윗의 주로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데서 멈추지 말고,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A&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왕 노릇할 자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한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았지만 자기 힘으로 왕권을 빼앗지 않았다. 그는 고난을 통과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으며, 자신의 죄 앞에서는 회개했다. 이것이 왕 노릇할 자의 길이다. 성도도 보좌를 사모한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 거룩해야 한다. 맡겨진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B&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또한 성도는 은사와 직분을 자기 자랑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다윗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회개와 사랑과 섬김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C&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마지막으로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믿음은 시작이고, 회개와 충성과 거룩은 그 믿음이 열매 맺는 길이다. 행위 심판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서는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고, 성령의 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세워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왕 노릇할 자답게 준비해야 한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D&quot;: { &quot;n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6&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2&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리하여 다윗처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quot; }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C0E&quot;: { &quot;np&quot;: &quot;&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5&quot;, &quot;si&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8&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1&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 &quot;sl&quot;: { }, &quot;cs&quot;: { &quot;01DCEB7B3ADB081000000B8B&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td&quot;: 0, &quot;tv&quot;: false, &quot;sc&quot;: 1134, &quot;ts&quot;: 8000, &quot;ms&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9&quot;, &quot;os&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14&quot;, &quot;gl&quot;: 0, &quot;gc&quot;: 0, &quot;gw&quot;: false, &quot;ns&quot;: 0, &quot;np&quot;: 0, &quot;ni&quot;: 0, &quot;nt&quot;: 0, &quot;ne&quot;: 0, &quot;hh&quot;: false, &quot;hf&quot;: false, &quot;hm&quot;: false, &quot;fb&quot;: false, &quot;hb&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hi&quot;: false, &quot;hp&quot;: false, &quot;he&quot;: false, &quot;sl&quot;: false, &quot;lr&quot;: 0, &quot;lc&quot;: 0, &quot;ld&quot;: 0, &quot;ls&quot;: 0, &quot;pp&quot;: { &quot;ls&quot;: false, &quot;wi&quot;: 59528, &quot;he&quot;: 84186, &quot;gt&quot;: 0, &quot;ml&quot;: 8504, &quot;mr&quot;: 8504, &quot;mt&quot;: 5668, &quot;mb&quot;: 4252, &quot;mh&quot;: 4252, &quot;mf&quot;: 4252, &quot;mg&quot;: 0 }, &quot;f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1,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283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e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14692344,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0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pb&quot;: [ { &quot;ty&quot;: 0,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1,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2, &quot;bf&quot;: &quot;01DCEB7B3ADB081000000C0F&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mp&quot;: [ ] } , &quot;01DCEB7B3ADB081000000B8C&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ty&quot;: 0, &quot;la&quot;: 0, &quot;co&quot;: 1, &quot;ss&quot;: true, &quot;sg&quot;: 0,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cs&quot;: [ ] } }, &quot;bi&quot;: [ ], &quot;bidt&quot;: { } }--&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다윗 왕이 예수 그리스도의&amp;nbsp;&lt;/span&gt;&lt;strong&gt;왕적 신분과 사역을 미리 내다본 가장 완벽한 모형&lt;/strong&gt;&lt;span&gt;임을 강조하며, 그가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통해&amp;nbsp;&lt;/span&gt;&lt;strong&gt;메시아의 생애와 고난을 구체적으로 예언&lt;/strong&gt;&lt;span&gt;했음을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족보에서 유일하게 &amp;#39;왕&amp;#39;으로 칭호된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amp;nbsp;&lt;/span&gt;&lt;strong&gt;하나님의 아들이자 선한 목자&lt;/strong&gt;&lt;span&gt;임을 깊이 통찰했으며, 자신이 겪은 고난을 왕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며 인내했습니다. 특히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가 승천하여&amp;nbsp;&lt;/span&gt;&lt;strong&gt;하나님 우편 보좌&lt;/strong&gt;&lt;span&gt;에 앉으실 것까지 환상으로 본 다윗의 지식은 오늘날 성도들이 천국에서&amp;nbsp;&lt;/span&gt;&lt;strong&gt;왕 노릇 하는 자&lt;/strong&gt;&lt;span&gt;로 준비되기 위한 핵심적인 지침이 됩니다. 따라서 설교는 다윗의 삶을 본받아 철저한&amp;nbsp;&lt;/span&gt;&lt;strong&gt;회개와 거룩함&lt;/strong&gt;&lt;span&gt;을 유지함으로써, 장차 주님과 함께 통치할&amp;nbsp;&lt;/span&gt;&lt;strong&gt;이기는 자의 반열&lt;/strong&gt;&lt;span&gt;에 올라설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strong&gt;[설교교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이신지를 성령 안에서 미리 보았고 알았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왕이시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요, 만왕의 왕이요, 선한 목자요, 장차 왕 노릇하는 자들의 완전한 본이 되실 분임을 시편을 통해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도 다윗처럼 그리스도를 알고, 회개와 거룩과 충성을 통해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lt;!--EndFragme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주일오후찬양예배 #기독론 #하나님께서세우신왕의특징 #시편2편7절9절 #다윗왕 #예수그리스도 #메시아 #왕위 #성령의임재 #예언 #마태복음족보 #하나님의아들 #선한목사 #고난 #필수과정 #인내 #시편 #그리스도승천&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7dc3047e0e8a65953719911481ffc74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74d873af99e5fa429ea010814ba23a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d6dc872363d8798d9b6317c593ef0d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afeca39990785d7595364267566718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c104adad51227c7040051fb5f189b9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5ae287200bc385fbe8241fb7f7b8a9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9bae82a11181eb11fa1b7c5c42ca4f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a2d3b84a635188ad0f0d53a275aeec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b654e5d2c8e3a61e862f2469d3c3b9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1277d97ee9518c2a316837b1e212b1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3f12952dc001d7e8c42bb4393e808a1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f0868ceb6cf148c2e2f094ef4d26781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de18a3f1b1a8dd89ee53d3fc0bf65f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b15b1e42ba19d43f947b77380c2808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e1974bc64a1b30b85865886534fbd7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The_True_King_Jesu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50bcae2c28999ddf035d592b7b2a888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5906dda500ee71e447f8abf5b64ac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6e409ffd6ff0a9675c79b2ab8ded92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55cc2f3ec222a281b955c2796ae667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1f62110dd9a9bed818d8be4ba211fb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883c6325ce46de8efcc3432298f2c0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3fa4778eb9adaebdc9b703f9dfbe84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7c725154752006249ceea6f5197d4f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d87168778f5636d1f791618dcadfd2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1fdf2b9792cb015c875cae6b092420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1)] Blueprint_of_the_Kingdom.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6/253/008e7b872ff0498ee64f460444266db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주일오후찬양예배</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하나님께서세우신왕의특징</category><category>시편2편7절9절</category><category>다윗왕</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메시아</category><category>왕위</category><category>성령의임재</category><category>예언</category><category>마태복음족보</category><category>하나님의아들</category><category>선한목사</category><category>고난</category><category>필수과정</category><category>인내</category><category>시편</category><category>그리스도승천</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3926</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3926#comment</comments>			<pubDate>Sun, 24 May 2026 20:40:55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94)] 다윗의 평생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준 힘은 바로 그의 출생의 비밀에 있었다(삼상 18:20~24)_2026-05-17(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2002</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17(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기독론(94)] 다윗의 평생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준 힘은 바로 그의 출생의 비밀에 있었다(삼상 &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18:20&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2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S5SJlQXJh00&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5SJlQXJh00?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한 사람의 일생을 한 마디 고백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다윗에게 있어 그 한 마디는 무엇이겠는가?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광의 순간도, 시편 23편의 깊고 맑은 찬양도,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흘린 회개의 눈물도 모두 다윗의 일생을 채운 그 풍성한 색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모든 색채를 가능하게 한 어떤 깊은 토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윗 자신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온 한 마디 고백이다(삼상 18:23).&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8:23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말하기를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가 작고 가벼운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하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quot;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quot;는 이 한 마디가 다윗의 일생을 평생토록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준 영적 토대였다. 사울왕의 사위가 되는 영광의 자리 앞에서 한 사람은 도리어 자신을 이렇게 낮추었다. 인사치레의 겸손이 아니었다. 단순한 수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출생과 신분에 대한 정확한 자기 인식이었으며, 그 자기 인식이 곧 그를 일평생 사울의 길이 아닌 다윗의 길로 걷게 한 비밀의 열쇠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아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일평생 발버둥쳤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 자리를 비우라 하시면 언제든 비울 줄 알았다. 두 왕의 운명을 가른 것은 능력의 차이도 아니었고 환경의 차이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느냐는 그 한 가지 자기 인식의 차이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다윗은 무엇을 보았기에 자신을 그토록 낮은 자로 인식했는가? 단지 영적 미덕으로서의 겸손인가, 아니면 그의 출생 자체에 어떤 무거운 비밀이 자리잡고 있었는가? 성경은 그 비밀을 정면으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지만, 곳곳에 흩어 놓은 미세한 단서들을 통해 그 비밀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lt;strong&gt; 다윗의 평생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준 힘이 과연 그의 출생의 비밀에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다윗은 왜 스스로를 &#039;가난하고 천한 사람&#039;이라 고백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이 자신을 &#039;가난하고 천한 사람&#039;이라 고백한 그 본문의 맥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 다윗은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였고,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로부터도 합당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 여인들이 부른 한 노래가 사울의 마음에 깊은 칼을 찔러 넣었다(삼상 18:7~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8:7~8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039;천천&#039;과 &#039;만만&#039;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곱절의 강조 표현이었다. 백성의 입에서 자기보다 훨씬 더 큰 영웅으로 다윗이 칭송받자 사울의 시기심은 활활 타올랐다.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했으나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울은 한 가지 교묘한 함정을 꾸몄다. 자신의 딸을 아내로 줄 테니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에 나가라는 제안이었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블레셋의 손을 빌려 다윗을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삼상 18: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8: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지만 사울의 맏딸 메랍은 끝내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졌다. 그러나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들렸고, 사울은 그것을 더 좋은 기회로 여겼다. 이번에는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요구했다.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이지 않고는 가져올 수 없는 잔혹한 조건이었다. 그 함정의 중심에서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 제안을 전했을 때, 다윗이 응답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한 마디였다. 왕의 사위가 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닌데, 자신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039;가난&#039;은 단순히 경제적인 빈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갔던 장면을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해진다(삼상 17:17~1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7:17~18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또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볶은 곡식 한 에바는 약 23리터에 해당하는 분량이며, 떡 열 덩이와 치즈 열 덩이는 각각 열 사람분의 식량이다. 치즈 열 덩이는 천부장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기 위한 일종의 보급용 선물이었다. 이만한 분량을 형들에게 보낼 수 있을 정도라면 이새의 집안은 결코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빈곤한 가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이 자신을 &#039;가난하다&#039;고 말한 것은 물질적 빈곤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보다 깊은 신분적 빈약함을 가리키는 표현&lt;/strong&gt;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더욱 결정적인 것은 &#039;천한 사람&#039;이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단어(&#039;칼라&#039;)는 단순히 비천하다는 의미를 넘어 불명예스럽다, 모욕스럽다, 치욕스럽다, 멸시받는다는 의미까지 포괄한다. 신분이 천하다는 표현은 우리 옛 사회에서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던 그 천한과 같은 맥락에 가깝다. 그러므로&lt;strong&gt; 다윗이 자신을 천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단지 자기를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신분적 위치를 정직하게 드러낸 표현&lt;/strong&gt;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다윗은 정말로 천한 신분이었는가? 이새의 아들로서 베들레헴의 한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자가 어찌하여 자신을 그렇게 낮추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윗의 출생과 형제 관계를 둘러싼 성경의 미세한 단서들을 차분히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다윗의 형제 족보에 어떤 모순과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의 출생지와 가문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베들레헴 출신이며 이새의 아들이었다. 베들레헴은 &#039;떡집&#039;이라는 뜻으로, &#039;베들(집)&#039;과 &#039;레헴(떡)&#039;이 합쳐진 이름이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호적을 위해 다윗의 동네라 일컬어지는 베들레헴으로 올라간 것도 이 같은 가문의 계보 때문이었다(눅 2:4).&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떠나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이새는 보아스와 룻의 손자 오벳의 아들로서 다윗을 낳은 자이다(룻 4:22).&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룻 4: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하며 다윗 가문을 &#039;이새의 줄기&#039;라 칭하였다(사 11:1~2).&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까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lt;strong&gt;이새가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lt;/strong&gt;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왕이 될 자를 찾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삼상 16:10~11).&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10~11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본문에 따르면 이새의 일곱 아들이 먼저 사무엘 앞을 지나간 후 막내인 다윗이 따로 불려 왔다. 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라는 것이 사무엘서의 분명한 진술이다. &lt;/strong&gt;그런데 역대상의 족보는 이와 다르게 기록한다(대상 2:13~1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대상 2:13~15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역대상은 다윗을 일곱째 아들로 기록&lt;/strong&gt;한다. 사무엘서는 다윗을 여덟째로, 역대상은 일곱째로 기록하니 이는 명백한 차이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이를 풀어내기 위해 학자들이 오래 연구해 온 끝에 도달한 합리적 해석이 있다.&lt;strong&gt; 이새에게는 본래 여덟 아들이 있었으나 그 중 하나가 어릴 때 일찍 세상을 떠났고, 후대의 역대상 기록자가 족보를 정리할 때는 그 일찍 죽은 아들을 빼고 일곱 아들로 기록했다&lt;/strong&gt;는 것이다. 사무엘서는 그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현장 기록이므로 여덟 아들로 기록했고, 역대상은 수백 년 후 에스라가 정리한 족보이므로 일곱 아들로 기록했다는 해석이다. 두 본문이 모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사실을 바라본 것이라는 결론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이 정도의 해석만으로 끝내기에는 본문이 제기하는 더 깊은 물음이 남는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막내 다윗이 형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장면이 있다. 다윗이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려고 전쟁터에 갔을 때, 큰형 엘리압이 그에게 보인 반응이 그 단서이다(삼상 17:2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동생이 음식을 가져온 일에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노를 발하며 너의 교만과 완악함을 안다고 책망하는 형의 태도, 동생을 양치는 일이나 하는 천한 자로 여기는 듯한 그 말투에는 단순한 큰형의 권위 의식 이상의 무엇이 깃들어 있다. 또한 이새 자신도 사무엘이 왕이 될 자를 찾으러 왔을 때 일곱 아들만 데려오고 막내 다윗은 아예 부르지조차 않았다. 양치는 일을 시키며 잊혀진 자처럼 두었던 것이다. &lt;strong&gt;한 가정 안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막내가 차별받았다는 것은 단지 막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차별의 뿌리에는 가족 모두가 알고 있되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던 어떤 비밀이 자리잡고 있었으리라는 추정&lt;/strong&gt;이 자연스럽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스루야와 아비가일은 왜 이새의 딸이 아니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새 집안의 비밀을 풀어 주는 결정적 열쇠는 다윗의 가까운 친족 가운데 한 무리, 곧 다윗의 군대 안에서 가장 용맹한 세 용사로 이름을 떨친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에게 있다. 이 세 사람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을 비롯하여 사울의 진영에 몰래 들어가 창과 물병을 가져온 아비새, 그리고 노루같이 발이 빠른 용사로 유명한 아사헬이다(삼하 2:1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2:18 그 곳에는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이 세 용사 곧 &lt;strong&gt;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의 어머니가 바로 &#039;스루야&#039;&lt;/strong&gt;이다. 그리고 또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lt;strong&gt;스루야의 여동생이면서, 아마사의 어머니인 &#039;아비가일&#039;&lt;/strong&gt;이다. 아마사는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 군대 장관으로 세워졌다가 후일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스루야와 아비가일은 자매 관계이며, 다윗과는 흔히 누이로 일컬어진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은 누이의 아들들, 곧 외조카들인 셈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여기에서 본문이 던지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역대상 2장이 이새의 족보를 정리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대상 2:16).&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대상 2:16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 형제요&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주의 깊게 보아야 할 표현은 &#039;그들의 자매&#039;라는 한 마디이다. 만약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이새의 친딸이라면 본문은 &#039;이새의 딸들&#039;이라고 기록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039;이새의 아들들의 자매&#039;라고만 기록할 뿐, 그들이 이새의 딸이라고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이는 우연한 표현이 아니라 의도적인 정확성이다. 곧 스루야와 아비가일은 이새의 아들들과 자매 관계에 있되, 이새의 친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미세한 단서를 결정적으로 확증해 주는 본문이 사무엘하에 등장한다(삼하 17:2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17:25 압살롬이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 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 곧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결정적인 한 마디가 등장한다. 아비가일이 &#039;나하스의 딸&#039;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아버지는 이새가 아니라 &#039;나하스&#039;이다. 그러나 본문은 동시에 그 둘이 이새의 아들들과 자매 관계임을 분명히 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하스의 딸이면서 동시에 이새의 아들들의 자매가 될 수 있는가? 답은 한 가지이다. 그들 사이에 어머니가 공통되는 것이다. 곧 다윗의 어머니가 곧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어머니이며, 그 어머니는 본래 나하스와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고, 그 후 어떤 경로를 거쳐 이새에게로 와서 다윗을 낳았다는 결론에 이른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성경은 다윗의 어머니의 이름을 끝내 한 번도 밝히지 않는다. 이새의 아내가 누구였는지, 그 여인이 어떤 경로로 이새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본문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그 침묵 자체가 어쩌면 한 가지 사실을 가장 크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큰 비밀은 흔히 가장 큰 침묵 안에 담기는 법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다윗의 출생에 관해 성경은 어떤 단서들을 남기고 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아버지가 나하스라는 사실, 그리고 그 둘이 이새의 아들들의 자매라는 사실이 모순 없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가설은 모두 다윗이 평범한 적자로서 출생하지 않았음을 가리키지만, 그 윤리적 무게는 사뭇 다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가설은 다윗의 모친의 &#039;재혼설&#039;&lt;/strong&gt;이다. 다윗의 어머니가 본래 나하스의 아내였고 그 사이에서 스루야와 아비가일을 낳았는데, 나하스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두 딸을 데리고 이새에게로 시집을 와서 다윗을 낳았다는 가설이다. 이 경우 다윗의 어머니는 정숙한 과부였고, 다윗은 재혼 가정의 막내아들이 된다. 비교적 명예로운 해석이며 윤리적 흠결이 없다. 다만 이 가설로는 이새가 다윗을 노골적으로 차별한 정황이나 다윗 자신이 자기를 &#039;천한 사람&#039;이라 부른 깊은 자기 인식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남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둘째 가설은 더 무거운 것으로서 다윗의 사생자라는 것이다&lt;/strong&gt;. 다윗의 어머니가 본래 나하스의 아내였고 스루야와 아비가일을 그와의 사이에서 낳았는데, 어느 시점에 이새와의 사이에서 다윗을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곧 다윗이 합법적 혼인의 자녀가 아닌 자로 태어났다는 해석이다. 이 가설은 윤리적으로 매우 무거우나, 그 무게만큼 본문이 남긴 여러 단서들을 가장 정확히 설명해 주는 측면이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단서는 다윗 자신의 시편 고백&lt;/strong&gt;이다(시 51: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시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일을 회개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그 회개의 자리에서 다윗이 자기 잉태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039;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다&#039;고 고백한 것이다. 이는 원죄 일반의 신학적 진술로만 읽어도 큰 무리는 없으나, 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잉태가 죄의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자기 인식의 토로로 읽을 때 본문의 무게가 가장 자연스러워진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 둘째 단서는 같은 다윗의 또 다른 시편 고백&lt;/strong&gt;이다(시 27:1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039;내 부모가 나를 버렸다&#039;는 이 한 마디는 비유적 강조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새가 사무엘 앞에서 다윗을 떠올리지조차 않은 사실, 그를 일곱 형제와 분리하여 양치는 일로 멀리 둔 사실, 큰형 엘리압이 동생을 보자마자 노를 발한 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다윗이 가족 안에서 실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랐음을 시사하는 표현으로 읽기에 충분한 무게가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셋째 단서는 후일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을 책망할 때 사용한 표현&lt;/strong&gt;이다(삼상 20:3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삼상 20:30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표현은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던진 욕설이며, 다윗에게 직접 던진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울이 요나단을 향해 &#039;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039;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한 그 맥락이, 요나단이 다윗을 옹호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본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울이 다윗 가문 전체에 대해 가지고 있던 깊은 모욕감이 그 욕설의 강도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러한 여러 단서를 종합해 볼 때, 다윗의 출생이 단순한 정상 출생이 아니었음은 충분히 추정할 만한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어느 가설을 단정적으로 결론내리기보다 본문이 남긴 침묵의 무게를 그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lt;strong&gt;어느 가설을 따르더라도 다윗 자신은 자기의 출생을 결코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자리에서 자라났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그리고 &lt;strong&gt;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일생을 지탱한 영적 토대가 형성&lt;/strong&gt;되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자신의 비천함을 아는 인식이 다윗을 어떻게 빚어 갔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의 이러한 자기 인식은 그의 일생을 결정한 영적 토대였다. 그가 자기를 &#039;가난하고 천한 사람&#039;이라 고백한 것은 단지 한 순간의 입술 겸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정체성이었으며, 그 정체성이 그를 일평생 사울의 길이 아닌 다윗의 길로 걷게 한 영적 안전판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 대비가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난다. 사울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을 자기가 가진 본래 자격으로 여겼다. 백성이 자기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그 왕직은 곧 자기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사명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자기 왕좌를 위협하는 자라고 판단한 순간부터 일생을 다윗을 죽이는 데 쏟아부었다. 삼천 명의 군대를 끌고 엔게디 광야와 십 광야를 누비며 다윗을 추격한 것은 그가 왕직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은 결과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반면 &lt;strong&gt;다윗은 자기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아들였다&lt;/strong&gt;. 그는 자기 손으로 사울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으나 끝내 손을 대지 않았다. 굴 속에서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어내며 그 자체로도 마음에 찔린 다윗, 사울이 깊이 잠든 진영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창과 물병만 가져온 다윗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는 사울이 비록 폐위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일찍이 기름부으셨던 자라는 사실을 끝까지 존중했다. &lt;strong&gt;자기 손으로 왕좌를 빼앗지 않은 그 자제력의 뿌리에는 &#039;나는 본래 아무것도 아니었다&#039;는 자기 인식이 깊이 자리잡고&lt;/strong&gt; 있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러한 다윗의 자기 인식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자리는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이다(삼하 15:13~14).&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15:13~14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복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자기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군대 장관 요압이 곁에 있었고 다윗을 따르던 충성스러운 신복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왕좌를 기꺼이 내어주듯이 예루살렘을 비웠다. 기드론 시내를 울며 건너는 그 도망의 길은 사실 자기 왕직을 비우는 길이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사울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울은 왕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기 친아들 요나단까지 죽이려 했던 자가 아닌가! 그러나 다윗은 정반대였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한 가지 인식 때문이었다.&lt;strong&gt; &#039;나는 원래 비천한 자였다. 본래 왕이 될 만한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왕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거두시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lt;/strong&gt;.&#03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이 인식이 바로 다윗을 일평생 사울의 길로 가지 않게 한 영적 안전판&lt;/strong&gt;이었다. 한 시인은 일찍이 자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가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였다고 노래했다. 다윗의 자기 인식이 정확히 그러했다. 주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주시기 전 그는 다만 하나의 비천한 몸짓에 불과한 자였다. 그러므로 주님이 자기를 부르신 그 은혜를 그는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다. 사울이 망각했던 바로 그 자리를, 다윗은 평생토록 기억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다윗을 평생 넘어지지 않게 한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 다윗의 일생을 평생토록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준 힘&lt;/strong&gt;은 단지 그의 출생의 비밀 그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lt;strong&gt;출생의 비밀을 둘러싸고 함께 작동한 세 가지 영적 차원이 그를 끝까지 붙들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보아야 다윗의 비밀이 온전히 드러난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는 &#039;비천한 자기 인식&#039;&lt;/strong&gt;이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그대로이다. 자기의 출생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사실, 자기는 본래 형들과 같은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막내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자기를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들어 쓰셨다는 사실에 대한 깊고 정직한 자기 인식이다. 이 자기 인식이 없는 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를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게 되며, 그 순간부터 사울의 길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다윗을 일생토록 사울의 길에서 멀리 둔 첫 번째 비밀이 곧 이 자기 인식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둘째는 &#039;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사의 기질&#039;&lt;/strong&gt;이다.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었는지, 어떻게 블레셋 사람의 포피 이백 개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어떻게 어린 시절 양 떼를 지키다가 사자와 곰의 입을 벌려 새끼를 꺼낼 수 있었는지를 단지 영적 용기만으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삼상 17:34~3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7:34~35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같은 어머니의 자녀들이 어떠한지를 보면 그 단서가 한층 분명해진다.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은 모두 다윗 군대의 가장 용맹한 장수들이었다.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녀들이 모두 한결같은 전사의 기질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 어머니의 혈통이 본래 전사의 자질을 짙게 품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다윗 역시 그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니 같은 기질을 함께 물려받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왕직을 감당할 자임을 미리 아시고, 그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전쟁 수행의 기본적 자질을 그의 출생 자체를 통하여 이미 부여하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셋째는 &#039;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은사들&#039;&lt;/strong&gt;이다. 다윗을 단순한 어린 소년으로 보는 것은 그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다. 영의 나이로 본다면 다윗은 결코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천국에서 이 땅에 보냄받았을 때 그의 영의 나이는 약 열여섯 살이었으며, 이는 사무엘 선지자가 이 땅에 보냄받았을 때의 영의 나이와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다윗의 어린 외모 안에는 이미 한 사람의 왕이 될 만한 영적 무게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하며 이새의 줄기에 임할 여호와의 영을 노래한 그 본문이 이를 명료하게 증언한다(사 11: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함이라는 여섯 가지 영적 충만함이 다윗에게 임하였다. 그는 또한 &#039;앎의 은사 계열&#039;인 &lt;strong&gt;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모두 가지고&lt;/strong&gt; 있었다.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 다윗이 수금을 타기만 하면 그 악령이 떠나갔다는 사실은 다윗이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영을 분별하고 다룰 줄 아는 영적 무장이 된 자였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삼상 16:23).&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 더하여 &lt;strong&gt;그에게는 &#039;사랑의 은사&#039;, &#039;찬양의 은사&#039;, &#039;열정의 은사&#039;, &#039;겸손의 은사&#039;가 함께 부여되어&lt;/strong&gt; 있었다. 시편의 절반에 가까운 노래들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것은 단순한 음악적 재능 때문이 아니라 찬양의 은사가 그에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양 떼를 사자에게서 입을 벌려 꺼내올 만큼의 헌신이 가능했던 것은 사랑과 열정의 은사가 그를 빚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일평생 비천한 자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한 그 겸손이 곧 겸손의 은사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렇게 세 가지 차원, 곧 출생의 비밀에서 비롯된 비천한 자기 인식,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사의 기질,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영적 은사들이 한 인격 안에서 결합하여 다윗을 평생 넘어지지 않는 자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것이 첫째 차원, 곧 출생의 비밀에서 비롯된 자기 인식이었다. 다른 둘은 그 위에서 비로소 온전히 작동하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다윗의 출생 비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윗의 출생의 비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두 가지 자리에서 빛난다. 직분에 대한 자세와 물질에 대한 자세가 그것이다. 이 두 자리에서 다윗이 보여 준 모습이 곧 자신을 비천한 자로 아는 인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생을 빚어 가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 먼저 직분에 대한 다윗의 자세&lt;/strong&gt;이다. 그는 왕직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언제든 비울 수 있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는 자기 군대로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의 길을 택했다. 자기 자식을 죽이는 자리에 서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했지만, 더 깊은 자리에는 자기가 본래 비천한 자였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왕직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거두시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었다. 후일 압살롬이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때 다윗이 부른 통곡, 곧 &#039;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039; 하는 그 통곡은 자기 왕직을 지키기 위해 자식의 죽음마저 도구로 삼는 자의 통곡이 아니었다. 자기 직분보다 한 영혼을 더 무겁게 여기는 자의 통곡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이 다윗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것은 그가 직분을 자기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자기 친아들 요나단조차 다윗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창을 던져 죽이려 했고, 삼천 명의 군대를 십 년 가까이 끌고 다니며 다윗 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 그 모든 것이 자기 왕직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직분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그 직분이 곧 우상이 되며, 그 우상을 지키는 데 자기 인생을 다 소진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다음으로 물질에 대한 다윗의 자세&lt;/strong&gt;이다. 다윗은 왕이 된 후 수많은 전쟁에서 풍성한 전리품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전리품을 자기를 위해 쌓아 두지 않았다. 자기를 왕으로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는 잊지 않았기에, 그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한 예물로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두로 왕 히람이 보내 준 백향목으로 자기 왕궁을 짓고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 다윗은 그 왕궁의 안락함이 도리어 자기 양심을 찔렀음을 나단 선지자 앞에 고백했다(삼하 7:5~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7:5~7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중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 자체를 받으셨다. 비록 다윗은 피를 많이 흘린 자였기에 직접 성전을 짓지는 못하게 하셨으나, 다윗은 그 결정을 듣고도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일평생 모은 모든 전리품과 재산을 솔로몬에게 유산으로 남겼고, 솔로몬은 그 유산으로 위대한 성전을 짓되 다 쓰고도 남길 정도였다. 자기를 위해 모은 자와 하나님을 위해 모은 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는다. &lt;strong&gt;받은 직분도, 모은 물질도 본래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깊은 자만이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비울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자기 자신의 본래 자리에 대한 정직한 인식에서 온다. 자기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잊지 않은 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 위에서 결코 교만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다윗의 출생의 비밀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lt;strong&gt; &#039;나는 내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본래 내 것이 아님을 정직하게 아는가?&#039; &lt;/strong&gt;이 질문 앞에 정직한 자만이 다윗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사역자도, 직분자도, 평신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본래 비천한 자였음을 잊는 순간, 그 자리는 사울의 자리가 된다. 자기가 본래 비천한 자였음을 끝까지 기억하는 자만이 그 자리에서 다윗처럼 일생을 마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의 평생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준 힘이 과연 그의 출생의 비밀에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이 스스로를 &#039;가난하고 천한 사람&#039;이라 고백한 그 한 마디의 무게와, 그 형제 족보에 숨겨진 일곱째와 여덟째 사이의 미세한 모순과,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이새의 딸로 호명되지 않는 본문적 단서와, 다윗의 출생을 둘러싼 두 가지 가설과, 그 비천한 자기 인식이 그를 어떻게 빚어 갔는지와, 그를 평생 넘어지지 않게 한 세 가지 영적 차원과, 그 비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모든 가르침의 결론은 한 가지로 모인다. &lt;strong&gt;우리는 자기 자신의 본래 자리를 정직하게 기억해야 한다. 자기가 본래 누구였는지, 어떤 자리에서 출발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lt;/strong&gt;이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 우리는 사울의 길로 들어서게 되며, 이 기억이 선명한 한 우리는 다윗의 길에서 결코 떠나지 않게 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자신을 비천한 자로 아는 정직한 자기 인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정직한 영적 시선이다. &lt;strong&gt;다윗이 자기를 &#039;가난하고 천한 사람&#039;이라 고백한 것은 자기 자신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의 광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정직함이었다&lt;/strong&gt;. 우리 또한 그러한 정직함 위에 서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직분에 대해 다윗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정한 때 일정한 사명을 위해 맡기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거두시면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자세, 자기 직분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지 않는 자세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 자세를 잃은 자는 결국 자기 직분을 우상으로 삼게 되며, 그 우상이 자기 영혼을 갉아먹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또한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도 다윗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물질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기회를 주셔서 모이게 하신 것임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물질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자리에 부어져야 할 때가 오면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위해 모은 자에게는 그 모은 것이 결국 짐이 되지만, 하나님을 위해 모은 자에게는 그 모은 것이 영원한 영광이 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lt;strong&gt;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은사를 함께 감사로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기질이 있다면 그것이 본래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 함께 딸려 보내신 선물임을 알아야 &lt;/strong&gt;한다. 우리에게 어떤 은사가 임하였다면 그 또한 우리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일방적인 은혜의 부으심임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 위에서 우리는 결코 우쭐해지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일생 동안 그 비천한 자기 인식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이 그러했듯이 첫날의 비천함을 마지막 날까지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선명한 한 우리의 직분도,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은사도 결국 다 하나님께로 돌려질 것이며,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천국의 상속자와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합당하게 설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본래 자리를 끝까지 정직하게 기억하며, 직분과 물질과 은사 위에서 결코 우쭐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평생토록 자기 인생의 한 가지 자랑으로 삼아,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 곁에 함께 앉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2026년 05월 17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 설교는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이 평생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그의 &lt;/span&gt;&lt;strong&gt;비천한 출생의 비밀과 겸손한 자기 인식&lt;/strong&gt;&lt;span&gt;에서 찾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족보와 시편 구절들을 대조하며 다윗이 친부모에게조차 소외당했던 &lt;/span&gt;&lt;strong&gt;사생아이거나 재혼 가정의 자녀였을 가능성&lt;/strong&gt;&lt;span&gt;을 제기하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배경이 오히려 그를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든 힘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원래 왕이 될 자격이 없는 &lt;/span&gt;&lt;strong&gt;낮은 자라는 철저한 인식&lt;/strong&gt;&lt;span&gt;을 가졌기에, 왕위에 오른 후에도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는 &lt;/span&gt;&lt;strong&gt;영적 겸손과 비움의 태도&lt;/strong&gt;&lt;span&gt;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설교는 다윗의 위대함이 화려한 업적보다 자신의 미천함을 잊지 않고 &lt;/span&gt;&lt;strong&gt;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신뢰&lt;/strong&gt;&lt;span&gt;하며 그 마음의 합함을 유지한 데 있음을 강조하며, 현대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신앙의 자세를 촉구합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다윗 #출생의비밀 #신앙 #겸손 #자기인식 #하나님은혜 #영적겸손 #마음의합함 #신앙의자세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기독론&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e1664fe37e80d1e8ecf8c3ba660bd97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e1664fe37e80d1e8ecf8c3ba660bd975.webp&quot; alt=&quot;[기독론(94)] 인포그래픽_214025[크기변환].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a18499e7bed73c13e9b4b8f5ac1252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a18499e7bed73c13e9b4b8f5ac12527.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9fada89fa751e4996772e78c2b096e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9fada89fa751e4996772e78c2b096ee.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786fbba04118e4e850333400e9526cd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786fbba04118e4e850333400e9526cd4.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5f3b12b918005810fac45f5391d76b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5f3b12b918005810fac45f5391d76bb.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04d6e837f0f50dffd7aa1ba02b87cb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04d6e837f0f50dffd7aa1ba02b87cb8.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7c1779f32c5089de48259dee244624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7c1779f32c5089de48259dee2446249.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8d4dbcdf2bc8f80a7a1e61d33b0da76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8d4dbcdf2bc8f80a7a1e61d33b0da764.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2c767341b2d62ffb2960d9ca5c95cc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2c767341b2d62ffb2960d9ca5c95ccd.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6cc6858484df03be5ce2ff6add9b7e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6cc6858484df03be5ce2ff6add9b7eb.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2c9b836574e34194bd13216673065b0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2c9b836574e34194bd13216673065b00.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12b7d28461703ecaa5893084d5328e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12b7d28461703ecaa5893084d5328eb.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a9abe63942fdcd499a2b709d4cb638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a9abe63942fdcd499a2b709d4cb6382.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a6eaceae03754d8229ef680a890c1f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a6eaceae03754d8229ef680a890c1f4.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aec9c452a7122788ab770cfd69bfcb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aec9c452a7122788ab770cfd69bfcbf.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e9b92332b427a43d8dd54a2ea18f3d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e9b92332b427a43d8dd54a2ea18f3d9.webp&quot; alt=&quot;[기독론(93)] 중고등부용_하트_싱크_다윗_프로젝트.pdf_1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f5c1510ca40e527b7f8653c416bebff6.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f5c1510ca40e527b7f8653c416bebff6.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db234244d84519fa46d43fc84074a8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4db234244d84519fa46d43fc84074a89.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80ef05ad4ff6934791acf4910f6e52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080ef05ad4ff6934791acf4910f6e521.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cc4ba20df89743edc54db3e2fdf687b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cc4ba20df89743edc54db3e2fdf687b9.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ab6e7e9e4aad1b11af8d036b39b558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3ab6e7e9e4aad1b11af8d036b39b5587.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24f3cc6142171cfe2430576feffcb836.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24f3cc6142171cfe2430576feffcb836.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7302b9e8053aca975736e11695b7beb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7302b9e8053aca975736e11695b7beb3.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a9bcee845e8a9042e5915d8934efd32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a9bcee845e8a9042e5915d8934efd321.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e4dee34cdbb8f365763e0521a9295d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de4dee34cdbb8f365763e0521a9295db.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a62275bdfd0a1f4ecbf05e05659fd9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a62275bdfd0a1f4ecbf05e05659fd9b.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28879a10c5da3d20dc9ba4900f628e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528879a10c5da3d20dc9ba4900f628e7.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9882fd8a2388e93a43aacdfde9cc249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9882fd8a2388e93a43aacdfde9cc249b.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86a7adffcfa7047b7c48a627a193740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002/252/86a7adffcfa7047b7c48a627a193740e.webp&quot; alt=&quot;[기독론(94)] David_s_Secret_Strength.pdf_1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다윗</category><category>출생의비밀</category><category>신앙</category><category>겸손</category><category>자기인식</category><category>하나님은혜</category><category>영적겸손</category><category>마음의합함</category><category>신앙의자세</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2002</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2002#comment</comments>			<pubDate>Sun, 17 May 2026 21:47:30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21:25)_2026-05-10(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0528</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10(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21:25&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4kIdZFz_VcI&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4kIdZFz_VcI?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 여호수아가 110세의 나이로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의 한 자락에 묻히던 그날, 한 시대는 영원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새로 열린 다음 시대는 영광이 아니라 혼돈과 타락으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권위를 이어받을 명확한 후계자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 12지파를 한 몸처럼 이끌어 가던 통일된 영적 지도력이 그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마치 중심을 잃은 진영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각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들고 흩어졌고, 그 흩어짐의 끝자락에는 가나안의 음란 문화가, 주변 이방 민족의 칼날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350년의 긴 시간을 성경은 사사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두었다.&lt;/p&gt; &lt;p&gt; 사사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039;왕이 없었다&#039;는 것이다. 이 문장은 사사기 전체를 관통하며 네 번이나 반복된다. 왕이 없었기에 우상이 횡행했고, 악행이 처벌되지 못했으며, 한 지파가 멸문 직전까지 내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길고 어두운 350년을 단순한 흑역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사사기는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백성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진정한 왕을 향한 절박한 &#039;갈망&#039;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 다윗 왕이 서 있고, 다윗 왕의 등 뒤에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 현재 사탄 마귀의 우두머리는 무저갱에 철저히 결박되어 있고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진행 중이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과 무당 귀신들이 우리 육체 속에 파고들어 왕 노릇을 하려 든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국의 4대 계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참다운 영적 지도자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여호수아 사후의 350년이 왜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미가의 산당과 첩 사건이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 무엇이며,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차이를 통해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 필요한 참다운 왕적 지도자의 사명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사사 시대 350년의 반복된 타락과 징계의 굴레를 낳은 근본적인 영적 원인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의 주요 거점을 장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에서 잔존하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기를 포기했다. 골짜기 주민들이 철 병거를 가졌다는 핑계로 두려워했고, 편안함을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으며, 결국 그들의 음란한 우상 문화(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깊게 물들어 버렸다.&lt;/p&gt; &lt;p&gt; 우상을 숭배하는 순간, 하나님의 보호막은 걷히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곡식과 재산을 약탈하며 자녀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옷니엘, 기드온, 삼손 등 12명의 사사(재판관)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그들은 어김없이 다시 우상을 숭배했다.&lt;/p&gt; &lt;p&gt; 이 징그럽고 &lt;strong&gt;고통스러운 타락과 징계의 굴레가 350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하다. 죄를 단호하게 징벌하고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도록 강력하게 이끌어 줄 &#039;참된 영적 왕&#039;이 없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지도자가 부재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란 속에서 각자 살길을 도모하다 보니(각자도생), 결국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마귀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것이다(삿 2:10).&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3. 사사 시대의 &#039;왕&#039;은 인도자(영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왕과 인도자는 종종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는 듯 보이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들려준 한 단락에서 이전에 살았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인도자와 앞으로 세워질 왕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삼상 8:11~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gt;&lt;strong&gt;삼상 8: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039;왕&#039;이라는 자리는 곧 하나의 거대한 행정 체계의 정점을 의미한다. 왕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를 보위하는 &#039;신하&#039;가 있어야 하고, 그의 식탁을 차리는 &#039;궁중 상궁&#039;이 있어야 하며, 그를 호위할 &#039;군사&#039;와 그의 병거를 끌 말과 그 말을 먹일 여물을 운반할 &#039;종&#039;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왕에게 바쳐지는 공물과 십일조와 가장 좋은 곡식과 포도원의 첫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곧 한 나라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그 한 사람의 사명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결코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자기 시중을 들 종이 없었고, 자기 병거를 위해 백성의 자식을 끌어다 군역을 시키는 일도 없었으며, 백성의 밭에서 제일 좋은 곡식을 거두는 제도도 없었다. 이는 여호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인도자였고 영도자였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영적 사명자였지만, 행정과 군제와 재정을 통째로 자기 사명에 묶어 두는 왕이 아니었다.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사사들은 어떠하였는가?&lt;/strong&gt; 사사라는 말의 원어적 무게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히브리어 &quot;샤파트(שָׁפַט)&quot;에서 파생된 그 호칭은 단순히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039;재판관&#039;을 가리킨다. 곧 정의를 분별하고 죄를 가려내는 자, 그러면서 동시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자가 사사이다. 사사기 1장부터 21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사는 옷니엘과 기드온과 삼손을 중심으로 모두 열두 명에 이르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포함한다면 열셋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사는 어디까지나 한 지역, 한 시기에 국한된 임시적 구원자였을 뿐, 12지파 전체를 한 호흡으로 통치하는 왕적 사명자는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직무를 감당한 인물이 사실은 엘리 제사장이라는 점이다. 본문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삼상 4:1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gt;&lt;strong&gt;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엘리 제사장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하였다. 그가 50세에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대제사장직을 위임한 뒤, 58세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아 98세에 그 목숨이 다하기까지 사사로서 40년간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사사기 본문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사사에 엘리를 더하면 사실상 열세 명이 된다. 더 나아가 엘리의 뒤를 이은 사무엘 또한 사사 직무를 감당하였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사무엘을 사사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분류하기도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사사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났다 한들,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lt;strong&gt;사사들은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처단할 권위가 없었고, 우상이 횡행하여도 그것을 부수어 버릴 명령이 없었으며, 외적이 침입하여도 12지파를 한 호흡으로 묶어 낼 통일된 군세가 없었다&lt;/strong&gt;. 사사 시대 350년의 비극은 사실상 이 한 가지 결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왕이 없었다는 결핍 — 그것은 단지 정치의 결핍이 아니라 영적 통치의 결핍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4. 여섯 번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은 무엇을 폭로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이르는 본문을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lt;strong&gt; 한 가지 패턴이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음&lt;/strong&gt;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렇다. &quot;백성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붙이신다.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백성을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quot; 그리고 이 거대한 영적 순환이 여섯 차례에 걸쳐 정확히 반복된 것이 사사기 시대의 역사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이 끔찍한 반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단서가 사사기 2장에 분명히 나와 있다(삿 2:1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gt;&lt;strong&gt;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수아와 동시대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 세대가 다 흙으로 돌아가고 그 뒤를 잇는 새 세대가 일어났을 때,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전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홍해의 갈라짐을 본 적이 없고,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다. 영적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갈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희미해져 갔고, 그 빈 자리를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가 빠르게 채워 들어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가나안 정복의 세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단계는 여호수아 1장부터 12장에 이르는 시기로, 12지파의 약 이십만 연합군이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려 31명의 왕을 처단하던 시기이다. 둘째 단계는 여호수아 13장부터 24장에 이르는 시기로, 각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된 뒤 각자 자기 영토 안의 잔존 세력을 처리하는 개별 전투의 시기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여호수아 사후, 곧 사사기 1장에 등장하는 시기로, 각 지파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원주민과 동거하기 시작한 시기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문제는 바로 이 셋째 단계에서 발생하였다. 사사기 1장은 각 지파별로 &quot;쫓아내지 못하였다&quot;는 구절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는 산지의 주민은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은 그들의 철 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삿 1:19, 21)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gt;&lt;strong&gt;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gt;&lt;strong&gt;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럼,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그들과 화친하는 것이었다. 평화롭게 동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동거의 끝에는 동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는 단순한 신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농경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음란의 영적 체계였다. 농사의 신인 바알과 그의 짝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해야 비가 내린다는 그 끔찍한 신학은, 인간의 육체적 정욕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가장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였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정욕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래서 한 세대가 지날수록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 갔고, 두 세대가 지날수록 바알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으며, 세 세대가 지날수록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quot;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여호와다&quot;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죄가 깊어지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붙이셔서 그 진영을 흔드신다. 흔들린 백성은 부르짖는다.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한 시대를 잠시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이 거대한 순환이 여섯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적 부패가 결코 일시적 처방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그대로 폭로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한 가지 명료한 영적 원리가 떠오른다. &lt;strong&gt;나라의 멸망은 영적 지도자의 타락에서 시작된다는 원리&lt;/strong&gt;이다. 영적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무너진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큰 교회들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한 나라의 영적 흔들림으로 번진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정치 지도자보다 먼저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그 회복의 무게로 나라의 지도자를 친히 바꾸어 주신다. 이것이 사사기 350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묵직한 영적 진실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5. 미가의 신당과 단 지파가 보여준 종교 지도자의 타락과 우상숭배의 영적 실체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사기의 후반부(삿17~21장)에는 2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먼저 &lt;strong&gt;첫번째의 에피소드로서 미가라는 사람의 신당 사건&lt;/strong&gt;이 등장한다(삿 17-18장).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가 은을 훔쳤다가 자기 어머니에게 돌려주지, 그의 어머니는 은으로 신상을 새기고 자기 집에 개인 신당을 차린다. 그리고 떠돌아다니던 한 레위인 청년을 붙잡아 그에게 돈과 옷,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직무를 감당해야 할 레위인이 먹고살기 위해 한 개인의 세습 무당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lt;/p&gt; &lt;p&gt; 더 충격적인 것은 땅을 찾아 헤매던 단 지파가 이 미가의 신당을 지나가다가, 그 레위인 제사장에게 &quot;한 사람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quot;며 그를 회유하여 신상과 함께 데려가 버린 사건이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와 돈을 따라 움직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 그리고 여호와가 아닌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어 섬기며 복을 구하는 백성들의 기복 신앙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끔찍한 우상숭배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lt;/p&gt; &lt;p&gt; 이 사건은 &lt;strong&gt;영적 지도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과 권력에 타협할 때 공동체 전체가 마귀의 밥이 됨&lt;/strong&gt;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lt;strong&gt;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할 제사장이 스스로 우상을 지키는 자로 타락&lt;/strong&gt;했으니, 단 지파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영적 지도자의 타락은 곧 영혼들의 영원한 지옥행을 의미하는 무서운 영적 재앙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6.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통해 드러난 참된 왕이 없는 시대의 비극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이제는 사사기 19장에서 21장에 이르는 &lt;strong&gt;두번째 에피소드로서 인간의 죄악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극&lt;/strong&gt;이다. 이 야기도 역시 어떤 레위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가 그녀를 찾으러 가는 길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읍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레위인과 동성애를 하겠다며 문을 두드렸고, 결국 레위인은 살기 위해 자기 첩을 내어준다. 밤새도록 무참히 윤간당한 첩이 죽자, 레위인은 시신을 12토막으로 잘라 이스라엘 전역에 보낸다.&lt;/p&gt; &lt;p&gt;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 11지파의 40만 대군이 모여 베냐민 지파에게 범죄자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lt;strong&gt;악을 징벌하기는커녕 자기 지파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며 오히려 전쟁을 선포&lt;/strong&gt;했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 끝에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만 남고 씨가 마를 뻔한 참사를 겪는다.&lt;/p&gt; &lt;p&gt; &lt;strong&gt;이 소름 끼치는 살육전의 근본 원인 역시 단 하나, 악행을 단호하게 징벌할 &#039;왕&#039;이 없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lt;strong&gt;참된 왕적 권위가 사라지자 동성애와 살인, 강간과 같은 마귀적 범죄가 일상화되었고, 죄인을 처벌하는 공의로운 심판 기능마저 완전히 마비되었다&lt;/strong&gt;. 영적 질서가 무너진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공산주의의 방종은, 이처럼 서로를 물고 뜯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탄의 가장 교묘한 지배 방식이다(삿 21:2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7. 백성들이 구했던 세상적인 왕과, 하나님이 진정으로 세우고자 하셨던 다윗 왕의 팩트 차이는?&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사 시대의 비극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사무엘에게 &quot;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quot;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왕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백성을 진리로 이끄는 영적 통치자가 아니었다. 단지 주변 강대국들처럼 전쟁에 앞장서서 자신들의 곡식을 뺏기지 않게 지켜주고, 육신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 줄 &#039;정치적 군사 지도자&#039;를 원했다. 그래서 세워진 왕이 사울이었고,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백성의 눈치만 바라보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만다.&lt;/p&gt; &lt;p&gt; 그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세우고자 했던 왕은 누구였는가? 그 모델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David)이었다. 다윗은 외부의 적(이방 민족)으로부터 나라를 완벽하게 지켜낸 위대한 전사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도록 영적으로 이끈 참된 목자였기 때문이다.&lt;/p&gt; &lt;p&gt; 다윗은 우상숭배를 철저히 척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모셔 오며 온 백성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진짜 왕의 모습이다. 다윗은 이 땅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고 마귀의 권세를 짓부수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완벽한 예표로 쓰임 받았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8. 성도들을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하고 천국 상속자로 세우는 참된 영적 지도자의 사명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참된 왕, 즉 참된 영적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영적 세계의 타임라인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 이후, 사탄 마귀의 우두머리는 무저갱에 완전하게 결박되어 있고, 현재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돌아가고 있다.&lt;/p&gt; &lt;p&gt;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수천 년간의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과 수많은 무당 귀신들이 우리 육체 속에 파고들어와 살고 있다. 이 악한 영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에 가난을 주고 조현병과 우울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며 가정을 파탄 내는 실제적인 원흉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이 시대의 참된 영적 지도자(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달콤한 위로의 말만 전하는 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적 지도자는 성도들의 육체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의 실체를 정확히 폭로하고, 철저한 회개와 영적 전쟁으로 그들을 쫓아줄 수 있는 권세 있는 자여야 한다. 죄를 책망하고 귀신이 들어오는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여, 성도들이 지옥이나 성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국의 찬란한 상속자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 이것이 목숨을 걸고 감당해야 할 참된 주의 종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는 지금까지 사사 시대의 혼란과 타락의 굴레, 종교 지도자의 부패와 악행이 낳은 참혹한 비극, 참된 영적 지도자의 사명과 귀신을 몰아내는 정확한 축사의 메커니즘, 그리고 천국의 4대 계급과 성 밖의 비참한 팩트를 낱낱이 살펴보았다.&lt;/p&gt; &lt;p&gt; 천국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평등한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다. 이 땅에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더러운 영들과 피 터지게 싸우며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 분량만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량만큼 영원한 집의 층수와 땅의 평수, 그리고 보좌의 영광이 완벽하게 1:1로 결정되는 철저한 공의의 세계다.&lt;/p&gt; &lt;p&gt; 그러므로 더 이상 썩어질 육신의 편안함과 세상의 보호막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오늘 당장 눈물로 무릎을 꿇고 뼈를 깎는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낼 때까지, 그리고 성령 사역자들을 통해 성령의 불과 칼이 작동되어 그 잔재와 영적 쓰레기를 태우고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낼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과 상처가 가득한 성 밖으로 쫓겨나 통곡하는 비참한 자가 아니라, 천국의 4대 계급 속에서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히 다스리는 영광스럽고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11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이스라엘의 &lt;/span&gt;&lt;strong&gt;사사기 350년 역사&lt;/strong&gt;&lt;span&gt;가 결국 무엇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며, 그 핵심 결론으로 &lt;/span&gt;&lt;strong&gt;참된 왕의 필요성&lt;/strong&gt;&lt;span&gt;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여호수아 사후 이스라엘이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면서 &lt;/span&gt;&lt;strong&gt;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lt;/strong&gt;&lt;span&gt;이라는 반복적인 악순환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이를 다스릴 왕이 부재했기에 각자 &lt;/span&gt;&lt;strong&gt;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lt;/strong&gt;&lt;span&gt; 행하며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미가의 신상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통해 종교적 부패와 사회적 무질서를 고발하며, 단순히 외적 침입을 막는 군주가 아니라 &lt;/span&gt;&lt;strong&gt;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징벌하는 영적 지도자&lt;/strong&gt;&lt;span&gt;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사기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lt;/span&gt;&lt;strong&gt;다윗왕&lt;/strong&gt;&lt;span&gt;과 더불어 만왕의 왕이신 &lt;/span&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lt;/strong&gt;&lt;span&gt;를 대망하게 만드는 구속사적 준비 과정임을 역설합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사사기 #이스라엘 #영적지도력 #우상숭배 #타락 #왕의부재 #십자가 #예수그리스도 #하나님나라 #회개 #정결 #영적전쟁 #정보배목사 #동탄명성교회&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cce50398c6ad1028e51d923b2337cc7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cce50398c6ad1028e51d923b2337cc72.webp&quot; alt=&quot;[크기변환][기독론(87)] 인포그래픽_205446.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920bc2bab33f977eb377036ccec0cc0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920bc2bab33f977eb377036ccec0cc0f.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6d6c11128e71e2b4f42f66f1769df8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6d6c11128e71e2b4f42f66f1769df84.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6e3e23c12a3770a5b3102b51e6edaeb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6e3e23c12a3770a5b3102b51e6edaeb0.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9edc2a282e7dbf1f2398ba46d7aeb5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9edc2a282e7dbf1f2398ba46d7aeb57.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2f79af06f36ba2425964a0a9068e7d5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2f79af06f36ba2425964a0a9068e7d58.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53eed2d5dae0095212b4b74dfc1626e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53eed2d5dae0095212b4b74dfc1626ee.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cacdd2e56fd0c566e618229810bdbe8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cacdd2e56fd0c566e618229810bdbe82.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4e76f29215f13f04e0913474f9bd1cb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4e76f29215f13f04e0913474f9bd1cb4.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19330c844d1a28812cb7df4f5c8824e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19330c844d1a28812cb7df4f5c8824e8.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57a619641532c88e3088d3deeaa225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57a619641532c88e3088d3deeaa225d.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4ebfdea81bbf29de6679e5616752aa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4ebfdea81bbf29de6679e5616752aaa.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206394be048441322e184ab26851f7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206394be048441322e184ab26851f7b.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1f35c7611e25dba0c2497e53e271ae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1f35c7611e25dba0c2497e53e271aec.webp&quot; alt=&quot;[기독론(87)] Restoring_the_True_King.pdf_1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 &lt;/p&gt; &lt;p&gt; &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p&gt;&lt;strong&gt;[참고] 좀 더 긴 글입니다. &lt;/strong&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2026-05-10(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lt;strong&gt;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기독론(87)]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사사기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21:25&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4kIdZFz_VcI&lt;/span&gt;&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수아가 110세의 나이로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의 한 자락에 묻히던 그 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새로 열린 다음 시대는 영광이 아니라 혼돈으로 시작되었다. 후계자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 12지파를 한 몸처럼 이끌어 가던 통일된 영적 지도력이 그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마치 중심을 잃은 진영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각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들고 흩어졌고, 그 흩어짐의 끝자락에는 가나안의 음란 문화가, 주변 이방 민족의 칼날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350년의 긴 시간을 성경은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두었다. 그것이 사사기이다. 사사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사사시대였던 것이라(삿 21:2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문장은 사사기 17장 6절을 포함하여 도합 네 번 반복된다(삿 17:6, 18:1, 19:1, 21:25). 한 번이 아니라 네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사사기 저자가 이 시대의 모든 비극이 결국 한 가지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끈질기게 증언하려 했다는 뜻이다. 왕이 없었다. 그래서 우상이 횡행하였고, 악행이 처벌되지 못하였으며, 한 지파가 멸문 직전까지 내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하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이 길고 어두운 350년을 단순한 흑역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 시대 전체가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영적 부르짖음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사기는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갈망의 기록이다. 그것도 보통의 갈망이 아니라, 백성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진정한 왕을 향한 절박한 갈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 다윗 왕이 서 있고, 그 다윗 왕의 등 뒤에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 사후의 350년이 왜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본질적으로 구분되는지, 여섯 차례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이 무엇을 폭로하고 있는지,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 무엇이며,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 멸문 위기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떻게 갈라지며,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참다운 왕적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여호수아 사후 350년은 왜 &#039;왕&#039;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수아의 생애는 두 단계의 정복 사역으로 압축된다. 그가 95세에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을 건넌 뒤 첫 7년은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리는 정복 전쟁의 시기였고, 이어진 8년은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15년의 사역을 마친 그가 110세에 흙으로 돌아갔을 때, 이스라엘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공백이 남았다. 후계자를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자신의 권위를 이어받을 한 사람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마치 중국 역사의 춘추전국시대처럼, 각 지파가 자기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12지파의 영역을 한 눈에 굽어보면 그 곤경이 단숨에 드러난다. 남쪽으로는 아말렉과 에돔이 호시탐탐 노렸고, 동쪽으로는 모압과 암몬, 그 위로는 아람 족속이 칼을 갈고 있었으며, 서편 해안에는 블레셋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위협을 가하였다. 변방의 지파일수록 풍성한 곡식과 과실이 곧 약탈의 표적이 되었고, 그 손실은 매 절기마다 백성의 살갗을 베어 내듯 깊어 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파는 이웃 지파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옛 농촌에서 모내기 철에 일손을 빌리던 품앗이의 모습처럼, 한 지파가 다른 지파를 청하여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나 이 협력의 끈은 결코 단단하지 않았다. 감정이 상하면 외면받기 일쑤였고, 위기는 그 자리에서 더 깊은 위기를 낳았다. 결국 백성의 입에서 한 가지 외침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quot;우리에게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이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 앞에 나가서 싸워 주었으면 좋겠다.&quot; 이것이 바로 사사기 1장부터 16장까지의 표면적 줄거리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하여 이 350년은 결국 한 사람의 왕을 향해 흘러간다. 사사기의 모든 페이지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백성이 갈망한 왕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결코 같은 실체가 아니었다. &lt;strong&gt;백성이 원한 왕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기 재산과 자식을 지켜 줄 군사적 보호자&lt;/strong&gt;였다. 반면에 &lt;strong&gt;하나님이 예비하신 왕은 백성을 우상의 그림자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여호와 앞으로 데려갈 영적 사명자&lt;/strong&gt;였다. 이 두 갈망의 거리가 곧 사울과 다윗 사이의 거리이며, 사사 시대의 비극과 다윗 왕국의 영광 사이의 거리이다. 성경은 이 거리를 한 절로 압축하여 후세에 새겨 두었다(삿 17:6).&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7:6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왕이 없는 시대는 단지 정치가 불안정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분별이 사라진 시대이며, 우상을 처단할 자가 없는 시대이고, 회개를 외칠 입이 막혀 버린 시대이다. 그래서 이 350년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단 한 곳뿐이었다. 백성을 회개시키며 우상을 무너뜨리고 악한 영을 그 진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진정한 왕,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의 출현 — 그곳을 향해 사사기 전체는 한 호흡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3. 사사 시대의 &#039;왕&#039;은 인도자(영도자)와 어떻게 구분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왕과 인도자는 종종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는 듯 보이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들려준 한 단락에서 이전에 살았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인도자와 앞으로 세워질 왕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삼상 8:11~1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8: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039;왕&#039;이라는 자리는 곧 하나의 거대한 행정 체계의 정점을 의미한다. 왕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를 보위하는 &#039;신하&#039;가 있어야 하고, 그의 식탁을 차리는 &#039;궁중 상궁&#039;이 있어야 하며, 그를 호위할 &#039;군사&#039;와 그의 병거를 끌 말과 그 말을 먹일 여물을 운반할 &#039;종&#039;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왕에게 바쳐지는 공물과 십일조와 가장 좋은 곡식과 포도원의 첫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곧 한 나라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그 한 사람의 사명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결코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자기 시중을 들 종이 없었고, 자기 병거를 위해 백성의 자식을 끌어다 군역을 시키는 일도 없었으며, 백성의 밭에서 제일 좋은 곡식을 거두는 제도도 없었다. 이는 여호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인도자였고 영도자였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영적 사명자였지만, 행정과 군제와 재정을 통째로 자기 사명에 묶어 두는 왕이 아니었다.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사사들은 어떠하였는가?&lt;/strong&gt; 사사라는 말의 원어적 무게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히브리어 &quot;샤파트(שָׁפַט)&quot;에서 파생된 그 호칭은 단순히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039;재판관&#039;을 가리킨다. 곧 정의를 분별하고 죄를 가려내는 자, 그러면서 동시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자가 사사이다. 사사기 1장부터 21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사는 옷니엘과 기드온과 삼손을 중심으로 모두 열두 명에 이르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포함한다면 열셋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사는 어디까지나 한 지역, 한 시기에 국한된 임시적 구원자였을 뿐, 12지파 전체를 한 호흡으로 통치하는 왕적 사명자는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직무를 감당한 인물이 사실은 엘리 제사장이라는 점이다. 본문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삼상 4:1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엘리 제사장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하였다. 그가 50세에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대제사장직을 위임한 뒤, 58세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아 98세에 그 목숨이 다하기까지 사사로서 40년간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사사기 본문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사사에 엘리를 더하면 사실상 열세 명이 된다. 더 나아가 엘리의 뒤를 이은 사무엘 또한 사사 직무를 감당하였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사무엘을 사사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분류하기도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사사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났다 한들,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lt;strong&gt;사사들은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처단할 권위가 없었고, 우상이 횡행하여도 그것을 부수어 버릴 명령이 없었으며, 외적이 침입하여도 12지파를 한 호흡으로 묶어 낼 통일된 군세가 없었다&lt;/strong&gt;. 사사 시대 350년의 비극은 사실상 이 한 가지 결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왕이 없었다는 결핍 — 그것은 단지 정치의 결핍이 아니라 영적 통치의 결핍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236fa1;&quot;&gt;&lt;strong&gt;4. 여섯 번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은 무엇을 폭로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이르는 본문을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lt;strong&gt; 한 가지 패턴이 마치 거대한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음&lt;/strong&gt;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렇다. &quot;백성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붙이신다.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백성을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quot; 그리고 이 거대한 영적 순환이 여섯 차례에 걸쳐 정확히 반복된 것이 사사기 시대의 역사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이 끔찍한 반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단서가 사사기 2장에 분명히 나와 있다(삿 2:1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호수아와 동시대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 세대가 다 흙으로 돌아가고 그 뒤를 잇는 새 세대가 일어났을 때,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전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홍해의 갈라짐을 본 적이 없고,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다. 영적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갈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희미해져 갔고, 그 빈 자리를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가 빠르게 채워 들어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가나안 정복의 세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단계는 여호수아 1장부터 12장에 이르는 시기로, 12지파의 약 이십만 연합군이 가나안 땅의 중요 거점을 무너뜨려 31명의 왕을 처단하던 시기이다. 둘째 단계는 여호수아 13장부터 24장에 이르는 시기로, 각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된 뒤 각자 자기 영토 안의 잔존 세력을 처리하는 개별 전투의 시기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여호수아 사후, 곧 사사기 1장에 등장하는 시기로, 각 지파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원주민과 동거하기 시작한 시기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문제는 바로 이 셋째 단계에서 발생하였다. 사사기 1장은 각 지파별로 &quot;쫓아내지 못하였다&quot;는 구절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는 산지의 주민은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은 그들의 철 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삿 1:19, 21)고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럼,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그들과 화친하는 것이었다. 평화롭게 동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동거의 끝에는 동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는 단순한 신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농경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음란의 영적 체계였다. 농사의 신인 바알과 그의 짝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해야 비가 내린다는 그 끔찍한 신학은, 인간의 육체적 정욕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가장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였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정욕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래서 한 세대가 지날수록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 갔고, 두 세대가 지날수록 바알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으며, 세 세대가 지날수록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quot;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여호와다&quot;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죄가 깊어지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붙이셔서 그 진영을 흔드신다. 흔들린 백성은 부르짖는다.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가 한 시대를 잠시 구원한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이 거대한 순환이 여섯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적 부패가 결코 일시적 처방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그대로 폭로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한 가지 명료한 영적 원리가 떠오른다. &lt;strong&gt;나라의 멸망은 영적 지도자의 타락에서 시작된다는 원리&lt;/strong&gt;이다. 영적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무너진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큰 교회들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한 나라의 영적 흔들림으로 번진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정치 지도자보다 먼저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그 회복의 무게로 나라의 지도자를 친히 바꾸어 주신다. 이것이 사사기 350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묵직한 영적 진실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5.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드러내는 영적 실체는?&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사기 17장과 18장에 이르면, &lt;strong&gt;사사기 전체의 무게중심&lt;/strong&gt;이 바뀐다. 그 전까지가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백성의 부르짖음이었다면, 17장 이후는 &lt;strong&gt;백성 내부의 영적 부패가 어떻게 한 사람의 가정에서 한 지파의 우상숭배로 번져 가는지&lt;/strong&gt;를 끔찍하리만치 정밀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의 첫머리에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신이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은 천백 개로 한 신상을 새기고 또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다(삿 17:3~4).&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7:3~4 그가 그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하여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하니라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그의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가 은 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주목해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가 만든 신상을 향해 &quot;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quot;고 선언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여호와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가장 교활한 우상숭배의 형태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 손으로는 신상을 부어 만들고, 그 신상에 여호와의 이름을 붙여 가정 안에 세워 두는 것이다. 라반의 집에 있던 가정 수호신 드라빔이 그러하였고, 그 드라빔을 훔쳐 자기 가문으로 들고 들어간 라헬이 그러하였다(창 31:1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창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라헬은 그 드라빔을 가지고 야곱의 진영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그 길에서 죽었다. 가정 안에 우상을 숨기는 자는 결국 그 우상에게 자기 생명을 내어 주게 된다는 영적 사실이 거기에 박혀 있다. 우상은 한 가정 안으로 들어와 그 가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일단 들어와 집을 짓고 나면, 그 자손에까지 그 영의 영향이 흘러 내려간다. 이것이 우상의 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미가의 가정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미가는 자기 아들 가운데 하나를 세워 자기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자기 아들은 아론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산당을 짓고 신상을 세웠어도, 그 산당의 제사장 자격에는 여전히 결격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미가의 집을 찾아온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거할 곳을 찾아 떠도는 한 레위인이었다(삿 17:9~1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7:9~10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음식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거래에 담긴 영적 비극을 놓쳐서는 안 된다. 레위인은 본래 12지파에게 흩어진 48개 성읍에서 백성의 십일조와 첫 열매와 제물의 분깃을 받아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350년 동안 백성이 실로에 있는 중앙 성소에 올라가는 발걸음을 줄이고, 자기 지파의 땅 안에서 각자 신을 만들어 살기 시작하자, 레위인이 받을 식량 줄이 끊어지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진 레위인은 거할 곳을 찾아 떠돌게 되었고, 그 떠돎의 끝에서 미가의 산당에 안착하게 된 것이다. 한 해에 은 열, 의복 한 벌, 그리고 끼니. 그것이 그의 거래 조건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영적 지도자가 자신의 사명을 돈을 따라 거래하기 시작할 때, 그 영적 지도자는 더 이상 영적 지도자가 아니다. 미가의 산당의 레위인 제사장, 그것은 한 시대의 영적 지도력이 어떻게 사유화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적나라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곧 한 지파의 운명으로 번져 간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어느날 자기 기업의 땅을 찾아 헤매던 단지파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들렀다가 그 레위인 제사장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를 자기 지파로 데려가기로 결심하였다. 한 집의 제사장이 되겠는가,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그 레위인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미가의 신상까지 함께 들고 단지파의 지경으로 옮겨 갔다. 한 가정의 우상이 한 지파의 우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단지파의 우상숭배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는 그 영적 토양이 되었다(왕상 12:28~2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왕상 12:28~29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더니&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한 사람의 가정에 들어온 영은 한 지파의 영토 안에 집을 짓고, 그 지파의 영토 안에 집을 지은 영은 한 나라의 우상 체계로 자라난다. 이것이 우상의 영의 확장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명료하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6.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멸문 위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사기 17장과 18장이 우상숭배의 확산을 보여 주는 첫 번째 에피소드라면, 19장에서 21장에 걸쳐 펼쳐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그것보다 한층 더 끔찍하다. 그것은 &lt;strong&gt;악행을 처단할 자가 없을 때 한 공동체가 어떻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내몰리는지&lt;/strong&gt;를 보여 주는 살벌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시작점에도 한 사람의 레위인이 서 있다. 본래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결혼의 원형으로 세우셨다(창 2:24).&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부부는 둘이지 결코 셋이 될 수 없다. 한 남자에 한 여자이지, 한 남자에 한 아내와 더불이 한 첩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조차 이 원형에서 자주 벗어났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가 이스마엘이 태어나면서 13년의 그늘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윗은 여러 아내를 두었다가 자식들 사이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의 자식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는 그 끔찍한 장면이 그 결과다. 솔로몬은 천 명의 아내와 첩을 두었다가 결국 그 아내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에 무릎을 꿇는 노년을 맞이하였다. 첩을 두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명령하신 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정욕을 따라 만든 길이고, 그 길의 끝은 언제나 무너짐이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사사기 19장의 한 레위인이 바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다(삿 19:1~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9:1~2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첩이 행음하고 친정으로 돌아가자, 레위인은 그 첩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길을 나섰고,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라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성읍에 머문 그 밤에 한 가지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성읍의 사람들이 동성애의 영에 사로잡혀 그 집을 둘러싸고 그 레위인을 자기들에게 내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삿 19:2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구절의 무게를 가볍게 읽어서는 안 된다.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 전체가 이미 동성애의 영에 빠져 있었다는 영적 사실을 본문은 가감 없이 증언하고 있다. 한 지파의 한 성읍이 그 지경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영이 이미 들어와서 그 성읍에 집을 짓고 자손에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뜻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레위인의 반응이었다. 그는 자기 첩을 그 불량배들에게 내어 주었다. 자기 책임 아래 있던 한 여인을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내던진 것이다. 영적 지도자라는 자가 그 정도 책임감조차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더 큰 비극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그 여인은 밤새 윤간을 당하고 새벽에 그 집의 문지방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레위인은 그 시체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 열두 토막으로 잘라 12지파에게 보냈다. 12지파의 사십만 명이 모여 그 베냐민 성읍의 죄를 묻기 위해 진영을 갖추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그 죄인들을 내어 주지 않았다. 같은 지파라는 이유로 죄인을 비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죄를 처단해야 할 자리에서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죄를 감싸 안는 그 행위, 그것이 바로 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깊은 영적 부패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전쟁이 벌어졌고, 베냐민 지파의 육백 명의 왼손잡이 물맷군들이 그 사십만 대군을 두 차례나 격퇴하였다. 마치 훗날 몽골 제국의 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 뒤를 돌아 활을 쏘는 그 정밀한 살상의 기술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세 번째 전투에서 12지파는 마침내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기에 이르렀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다 죽였다. 한 지파가 그렇게 멸문의 직전에까지 내몰렸다. 살아남은 자는 오직 도망친 남자 육백 명뿐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뒤늦게 12지파가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한 지파의 씨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성읍의 처녀 사백 명을 데려와 베냐민의 남은 자들에게 아내로 주었고, 부족한 이백 명은 실로의 절기에 춤추는 처녀들을 보쌈하여 채워 주었다. 한 지파가 멸절의 자리에서 가까스로 회복되었으나, 그 회복은 결코 영광스러운 회복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사기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 결론의 못을 박는다(삿 21:2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왕이 없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lt;strong&gt; 왕이 없으면 죄를 처단할 수 없다. 왕이 없으면 같은 지파라는 이유로 죄인을 감싸 안는 일이 벌어진다. 왕이 없으면 한 여인이 윤간당해 죽어도 그 책임을 물을 자가 없다. 왕이 없으면 한 지파가 멸절의 자리에까지 내몰린다. &lt;/strong&gt;그러므로 &lt;strong&gt;사사기가 가리키는 &#039;왕&#039;은 단지 군사적 보호자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죄로 가려내고 의를 의로 세우며 한 공동체의 영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진정한 통치자,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7.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떻게 갈라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사기 350년의 끝자락에서 백성의 입에서 마침내 한 가지 요구가 터져 나왔다. 우리에게 왕을 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 외침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영적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다(삼상 8:19~20).&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위에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백성이 원한 왕은 두 가지를 해 줄 자였다. 다스려 줄 자와 싸워 줄 자였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어디에도 &quot;우리를 회개시켜 줄 자&quot;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디에도 &quot;우리의 우상을 부수어 줄 자&quot;는 들어 있지 않았다&lt;/strong&gt;. 백성은 자기 재산을 지켜 줄 보호자를 원했지, 자기 영혼을 우상에서 끌어내 줄 영적 사명자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대의 사울 왕이 세워진 영적 토양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울은 결코 하나님이 예정에서 보내신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세워 주신 왕이었다. 백성의 요구가 너무 거셌기에, 하나님은 그 요구에 응답하시는 형식으로 사울을 세우셨다. 그래서 사울 왕의 통치 안에는 처음부터 한 가지 결정적 결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적 분별의 결핍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그 승리의 끝자락에서 늘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 앞에서 그는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겼고, 사무엘의 책망 앞에서도 자기 변명에만 매달렸다. 그의 마지막은 더욱 처참하였다.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 엔돌의 신당에 무릎을 꿇었다(삼상 28:7).&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상 28: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에게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전쟁에서 백성을 지키겠다며 세워진 왕이, 결국 죽은 자의 영을 부르는 우상숭배의 자리에까지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었다. 백성이 구한 왕의 종착지가 바로 그 자리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와 정확하게 대조되는 자리에 다윗이 서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로 친히 골라 세우신 왕이었다. 그가 베들레헴의 들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어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다윗은 분명히 죄를 지었다. 밧세바의 사건은 그의 일생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그러나 &lt;strong&gt;다윗에게는 사울에게 없던 한 가지가 있었다. 회개였다. 그는 자기 죄를 자각하는 순간 즉시 회개의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결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quot;내 마음에 맞는 사람&quot;이라 부르셨다(행 13:22).&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한 가지 영적 구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lt;strong&gt;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가 한 사람 안에 통합되어&lt;/strong&gt; 있었다. 그러나 &lt;strong&gt;사울 왕의 시대에 이르러 그 둘은 분리되었다. 정치 지도자는 사울이었고, 종교 지도자는 사무엘이었다&lt;/strong&gt;. 두 사람의 권위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lt;strong&gt;다윗 왕에 이르러 이 두 권위는 다시 한 사람 안에서 만나게&lt;/strong&gt; 되었다. 다윗은 정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영적 사명자였다. 그는 시편을 노래하는 자였고, 법궤를 친히 모셔 오는 자였으며, 자기 영혼의 죄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가 &quot;왕의 제사장 체계&quot;라고 불리는 이유이다(벧전 2: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왕의 제사장 체계)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어두운 데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한국어 성경이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으로 옮긴 이 구절은, 원어로는 &quot;왕의 제사장 체계&quot;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체계 안에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남은 무리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 체계 안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는 다윗처럼 왕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윗이 받은 그 칭송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백성이 구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윗의 등 뒤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신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8.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039;참다운 왕적 지도자&#039;는 누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사사기 350년의 끝자락에서 백성이 갈망한 그 진정한 왕은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출현으로 한 차례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다윗 또한 그림자였다. 그가 가리키고 있던 그 본체이신 분이 따로 계셨으니, 곧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lt;/strong&gt;이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자신을 가리켜 거듭 &quot;다윗의 자손&quot;이라 불리신 그 사실은, 다윗이 그림자였고 예수님이 실체였음을 가장 명료하게 증언한다(마 1:1).&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다윗의 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도래한 신약의 시대에, 그리고 그 신약의 시대마저도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왕적 지도자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는 자인가. 그 답은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마 12:28).&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영적 메커니즘이 거기에 박혀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한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있던 악한 영이 그 자리에서 떨려 나가고, 그 자리를 성령께서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한 왕적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자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백성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있는 우상의 영을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짚어 내는 자&lt;/strong&gt;이다. 어떤 가문에서 어떤 우상이 들어왔는지, 그 영이 자손에까지 어떻게 흘러 내려와 있는지를 영적 분별로 가려내는 자이다. &lt;strong&gt;둘째, 그 백성을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는 자&lt;/strong&gt;이다. 회개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떼어내어 이격시키고 녹여 버린다. 그리고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가 그 잔재를 태우고 자른다. 이 회개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가르치는 자가 곧 왕적 지도자이다. &lt;strong&gt;셋째, 백성을 다시 우상으로 끌어가려는 외부의 영적 세력으로부터 그 진영을 지켜 내는 자&lt;/strong&gt;이다. 무당과 점쟁이와 사주와 풍수와 신접한 자에게로 흘러가려는 백성의 발걸음을 정확히 막아 세우는 자이다. &lt;strong&gt;넷째, 자범죄 19가지와 우상숭배의 죄 4가지를 끝까지 회개하도록 백성의 등을 떠밀어 주는 자&lt;/strong&gt;이다. 그렇게 정결한 신부로 빚어 내는 자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일을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단지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사명자였다. 그러나 사사 시대의 사사들에게는 그 일을 할 권위가 없었다. 그래서 사사 시대는 결국 갈망의 시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갈망은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온전한 응답을 받았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 또한 어느 면에서는 사사기의 또 다른 판본이다. 영적 지도자가 부패하고, 죄가 처단되지 않으며, 음란의 영이 한 가정에서 한 사회로 번져 가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분의 다스림을 이 땅에 매개하는 진정한 왕적 지도자의 사명에 우리 자신을 정렬시키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영적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우리 스스로 알아내기 어렵고, 우리 스스로 떼어내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하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분과 함께할 때, 우리는 자범죄를 회개하면서 그 회개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그 영적 메커니즘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우리의 몸이 정결하게 빚어지면서 마지막 시대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 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에 한 가지 영적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천국에서 가장 높이 칭송받는 자가 누구인가. 그는 단지 우상을 멀리한 자가 아니다. 그는 다른 영혼을 회개시킨 자이다. 다른 영혼을 회개시켜 그 사람의 몸 안에서 악한 영이 떠나가도록 만든 자이다. 그렇게 한 영혼이 정결한 신부로 빚어지는 그 과정에 자기 자신을 던진 자이다. 천국에서는 그런 자가 높은 지위의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 자리는 영혼을 회개시키는 일에 자기 평생을 던진 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진정한 왕적 지도자는 외적의 칼을 막아 주는 자가 아니다. 그는 백성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우상의 영을 떼어내어 그 영혼을 정결한 신부로 빚어 내는 자이다. 그가 곧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이 마지막 시대에 매개하는 자이다. 사사기 350년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 진정한 왕의 모습이, 마침내 이 마지막 시대의 영적 지형도 위에 다시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금까지 사사기 시대 350년의 총결산이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여호수아 사후 350년이 왜 한 사람의 왕을 향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사 시대의 왕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인도자와 어떻게 본질적으로 구분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사기 1장부터 16장에 걸쳐 여섯 차례 반복된 죄와 회복의 순환이 인간의 영적 부패의 깊이를 어떻게 폭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의 우상숭배가 한 가정의 우상이 어떻게 한 지파의 우상으로, 또 한 나라의 우상 체계로 번져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레위인의 첩 사건과 베냐민 지파의 멸문 위기가 왕이 없을 때 죄가 처단되지 못하고 한 공동체가 어떻게 동족상잔의 자리로 내몰리는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백성이 구한 왕인 사울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다윗이 어떤 영적 간격을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시대에 진정 필요한 왕적 지도자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다스림을 이 땅에 매개하는 영적 사명자가 어떤 일을 하는 자인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사사기의 그 끔찍한 순환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그 길을 거절해야 한다. 한 세대의 영적 기억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끊겨 버리는 그 비극을 우리 가정 안에서 다시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치고, 자녀의 몸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조상의 영을 회개로 떼어내며, 가정 안에 한 가지 우상도 남겨 두지 않는 영적 청소의 자리에 우리 자신이 먼저 서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미가의 산당이 우리 가정 안에 세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손으로는 자기 신을 부어 만드는 그 교묘한 우상숭배의 형태가 우리 신앙 안에 자리 잡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통치하면서 그 통치의 이름을 &quot;여호와&quot;라고 부르는 모든 형태의 자기 종교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레위인의 첩 사건과 같은 영적 부패가 우리 영혼에 자리 잡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자기 책임 아래 있는 자를 자기 안전을 위해 내어 주는 그 비겁한 자리, 그 영적 무책임의 자리에 결코 서서는 안 된다.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같은 무리라는 이유로, 같은 교회 식구라는 이유로 죄를 감싸 안는 그 영적 부패의 자리에도 결코 동조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백성이 구한 왕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 재산을 지켜 주고, 내 자식을 보호해 주며, 내 사업을 형통하게 해 주는 그 표면적 보호자의 그림자를 향해서만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윗이 받은 그 칭송 곧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자리를 향해 우리 영혼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그것은 곧 우상의 그림자에서 영혼이 완전히 이격되는 자리이며,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 안에 들어와 모든 악한 영을 떼어내고 녹여 버리는 자리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정결한 신부로 빚어져야 한다.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자범죄의 항목 19가지를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 우상숭배의 네 가지 죄를 한 가지도 남김없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 가문에 들어와 자손에까지 흘러 내려온 조상의 영을 끝까지 떼어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사기 350년의 그 끔찍한 갈망이 우리 안에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아니하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온전히 들어가, 그분의 신부로 정결하게 준비되어 마지막 날에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며 주님께 칭찬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10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참고할 내용] &lt;/strong&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육체를 장악한 귀신을 뽑아내는 예수 피와 성령 사역자의 불과 칼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 몸과 가문에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들어와 뇌와 장기에 찰거머리처럼 견고하게 집을 지은 조상 귀신과 뱀들을 몰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결코 우리의 감정적인 호소만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영계의 법칙을 따라 강력한 축사 메커니즘을 가동시켜야 한다. 그 유일하고 절대적인 무기가 바로 자백하는 &#039;회개&#039;다.&lt;/p&gt; &lt;p&gt; 그렇다. 우리가 피를 토하며 우상숭배와 음란, 혈기의 죄를 자백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린다. 그때 &#039;예수님의 피&#039;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피라도 회개가 깊어질수록 내 몸 안으로 점진적으로 밀려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낼 것이다.&lt;/p&gt; &lt;p&gt; 예수님의 피로 뱀들이 이격되고 녹아내려 비명을 지른 후에 성령 사역자들에 의해 &#039;성령의 불과 칼&#039;이 작동되면 더 강력하게 뱀과 귀신들을 내보낼 수가 있다. 이때 사역자들이 사용하는 &#039;성령의 불&#039;은 이격된 귀신들의 잔재와 그들이 지어놓은 영적 쓰레기(저주와 질병의 집)를 흔적도 없이 불태워 소멸시키고, &#039;성령의 칼&#039;은 귀신들이 가문과 엮어놓은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버릴 수 있다. 예수님의 피가 이격시키고 녹이며, 성령의 불과 칼이 태우고 자르는 이 완벽한 이중 타격이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질 때 뱀과 귀신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육체를 성령의 통치 공간으로 바꿀 수가 있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천국의 4대 계급 실상과 성 밖의 비참함 속에서, 우리가 왕 노릇 하기 위해 취할 결단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회개의 피와 성령의 불로 영혼을 정결케 한 성도들은 장차 천국에서 4대 계급(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물 긷는 자)의 철저한 질서 속에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lt;/p&gt; &lt;p&gt; 첫째, &lt;strong&gt;대제사장(24장로)&lt;/strong&gt; 계급이다. 이들은 왕 노릇 하는 자들 중의 왕 노릇을 하는 자들로, 2천 년 전에 이미 거의 확정되어 현재 성도들이 이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들은 천국에서 10층 이상의 초고층 천국 집과 1,000평 이상의 광활한 땅을 소유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연회를 베풀고, 성 밖으로 나가 열국 위에 그리고 온 은하계의 별들 위에서 절대적인 왕 노릇을 한다.&lt;/p&gt; &lt;p&gt; 둘째, &lt;strong&gt;제사장(144,000명)&lt;/strong&gt; 계급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 보내신 사명자들로, 일부는 왕 노릇 하나 대부분 천국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자들이다. 천국 예배 시 14만 4천 석의 전용 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며, 고급스러운 예복과 보석으로 치장된 여러 개의 면류관을 겹쳐 쓰나 전혀 무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3~10층 규모의 집과 500~1,000평 정도의 땅을 소유하여 자기 집에서 풍성한 연회를 베풀 수 있다.&lt;/p&gt; &lt;p&gt; 셋째, &lt;strong&gt;레위인&lt;/strong&gt; 계급이다. 사역자로 보냄받지 않았으나 피 튀기는 영적 전쟁을 치러 스스로 &#039;이기는 자&#039;가 되어 천국에 입성한 성도들이다. 이들은 보좌는 없지만 14만 4천 명의 보좌 뒤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1개에서 여러 개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쓴다. 천국에서 자기 소유의 기업(땅) 50~500평을 차지하고 1~3층(많게는 5층) 규모의 천국 집을 가지고 살아간다. 헌신에 따라 가끔 더 큰 집을 소유하기도 한다.&lt;/p&gt; &lt;p&gt; 넷째, &lt;strong&gt;느디님 사람(나무 패며 물 긷는 자)&lt;/strong&gt; 계급이다. 이들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어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섬기는 자들이다. 집이 없기에 연회를 열 수 없고, 천국 변두리의 꽃밭에 돗자리 하나 펴고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땅만을 소유한다. 평소에는 왕 노릇 하는 이들의 대저택으로 출근하여 일상생활을 돕지만, 이 땅처럼 모욕적인 삶을 살거나 땀 흘리는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주인에게 야단을 맞는 비굴함도 없이 오직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기쁘게 섬긴다.&lt;/p&gt; &lt;p&gt; 그러나 &quot;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quot;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있었으나, 대부분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몇몇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성 밖 거주자들은 여전히 땀 흘려 노동해야 하고, 다치면 생명나무 잎사귀로 치유받아야 하며,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가면 무서운 형벌도 받는다. 영원한 신분이 결정되는 이 절대적인 팩트 앞에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회개하여 반드시 천국 성 안의 아름다운 기업을 차지해야만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 감사합니다.&lt;/p&gt; &lt;p&gt; &lt;/p&gt; &lt;p&gt;#사사기 #이스라엘 #영적지도력 #우상숭배 #타락 #왕의부재 #결정 #회개 #정결 #영적전쟁 #정보배목사 #동탄명성교회 #십자가 #예수그리스도 #하나님나라 #다윗왕 #율법 #공의 #죄 #가나안&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0ff634a5d3f6d2769513c4033797022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0ff634a5d3f6d2769513c40337970221.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4cb9fadbc2df2517cff52d8b964db2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4cb9fadbc2df2517cff52d8b964db28.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2c9008a4e820f5159dcb2dcd26dc16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2c9008a4e820f5159dcb2dcd26dc16d.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7221b1039de3db793c9993676fef7b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87221b1039de3db793c9993676fef7b7.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2b338d4c7843f96392b6efc2a9df1c4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2b338d4c7843f96392b6efc2a9df1c47.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e6c688301877093f3917f5d5380d974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e6c688301877093f3917f5d5380d9745.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47ad590506e5fc9ed1bfa55f5bb68e7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47ad590506e5fc9ed1bfa55f5bb68e72.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b312b62fd7ac6272af8ac53bf085e0c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b312b62fd7ac6272af8ac53bf085e0c4.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d7be3bbd6cd762e459a859a9e9cfad8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d7be3bbd6cd762e459a859a9e9cfad80.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a8c6b2040ad67f4a4b743302324676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fa8c6b2040ad67f4a4b7433023246765.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1508cbe64a2f1d9619c5101929566c2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28/250/1508cbe64a2f1d9619c5101929566c20.webp&quot; alt=&quot;[기독론(87)] The_True_King_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사사기</category><category>이스라엘</category><category>영적지도력</category><category>우상숭배</category><category>타락</category><category>왕의부재</category><category>결정</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정결</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십자가</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하나님나라</category><category>다윗왕</category><category>율법</category><category>공의</category><category>죄</category><category>가나안</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0528</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0528#comment</comments>			<pubDate>Mon, 11 May 2026 16:57:44 +0900</pubDate>
		</item><item>
			<title>악한 영들은 주로 언제 공격해 들어오는가?(마12:43~45)_2026-05-03(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8834</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03(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악한 영들은 주로 언제 공격해 들어오는가?(마&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12:43~45)&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RsSTRvQEYRA &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sSTRvQEYRA?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2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gt; 우리가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그럴려면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들이 일하는 타임라인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파악한 성경의 명확한 종말론적 타임라인에 비추어 보면, 거대한 용이자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 마귀 본체는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이미 무저갱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첫째 부활자들의 웅장한 천년왕국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육체를 갉아먹고 끔찍한 저항을 일삼는 놈들은 사탄 본체가 아니라, 무당과 제사를 타고 핏줄로 내려와 역사하는 조상의 영들과 비루한 하급 귀신들에 불과하다. 이 쫄개 귀신들은 우리가 어떤 통로로 틈을 보였는지 치밀하게 엿보다가 일상 속에 교묘히 스며들어와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유린한다. 그렇지만 악한 영들이라도 아무 때나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기습하는 8가지 구체적인 시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첫째 신내림을 받을 때, 둘째 육체가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셋째 긴장의 끈을 풀었을 때, 넷째 회개치 않은 자를 사역할 때, 다섯째 큰 영을 축사할 때, 여섯째 밤 11시부터 새벽 5시 사이의 심야 시간에, 일곱째 영적으로 오염된 자와 접촉했을 때, 여덟째 귀신을 쫓아낸 뒤 말씀과 기도로 채우지 않은 빈집일 때다. 그러므로 이러한 적의 침투 경로를 잘 모르면 결코 그것들을 잘 방어할 수도 없고, 반격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귀신들이 주로 언제 공격해 들어오며, 이 치명적인 기습을 어떻게 막아내고 물리쳐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무당의 핏줄을 탄 신내림의 때와 육체가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귀신은 어떻게 침투하는가?&lt;/span&gt;&lt;/h2&gt; &lt;p&gt; 악한 영들이 사람을 향해 가장 맹렬하고 노골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lt;strong&gt;첫 번째 시기는 바로 조상 중에 무당이 있어 그 후손에게 &#039;신내림&#039;을 강요할 때&lt;/strong&gt;다. 무당의 핏줄을 탄 자에게 일평생 보통 네 번 정도의 신내림 고비가 찾아온다. 이때 귀신들은 자신이 섬김을 받을 무당을 세우기 위해 그 사람의 일상을 철저히 파괴한다. 귀에서 꽹과리 소리, 방울 소리,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리게 하고, 극심한 통증과 불면증으로 고통을 주어 결국 신을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신을 받지 않으면 딸에게 들어가겠다고 협박하며 거센 공격을 가해오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악한 영이 총공세를 펼치는 시기다.&lt;/p&gt; &lt;p&gt; &lt;strong&gt;두 번째로 귀신들이 침투하는 시기는 우리의 신체적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039;육체가 쇠약해졌을 때&#039;&lt;/strong&gt;다. 육신이 건강하고 활력이 넘칠 때는 귀신들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피로가 누적되고 영양분이 부족하여 시들시들해질 때, 이 악한 영들은 우리의 가장 약한 신체 부위를 정확히 파고든다. 위장이 약한 자에게는 제사의 영이 뱀으로 들어와 위장을 뒤집어 놓으며, 심장이 약한 자에게는 무당의 영이 파고들어 숨을 멎게 할 듯한 극심한 두려움과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우리의 육체적 약점은 곧 귀신들의 가장 완벽한 침투로가 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영적 사령관도 긴장을 풀었을 때, 우상이 가득한 지역의 귀신들은 어떻게 기습하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trong&gt;세 번째로 귀신이 치고 들어오는 가장 치명적인 순간은 영적으로 무장된 자라 할지라도 &#039;긴장의 끈을 풀었을 때&#039;&lt;/strong&gt;다. 필자가 목회자들과 함께 제주도로 수련회를 갔을 때 겪은 뼈아픈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평소 강단에서는 맹렬한 불을 뿜으며 축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지만,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관광을 다니며 십자가를 세우는 기도를 잊고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그랬더니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lt;/p&gt; &lt;p&gt; 제주도는 어떠한 곳인가? 무당 문화와 바다의 용왕신 숭배가 꽃을 피우고 있는,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지역이다. 가는 곳마다 돌하르방, 지하 여장군, 천하 대장군과 같은 우상들이 즐비해 서 있고, 사진을 찍는 굿판 자리 주변에는 악령들이 득실거린다. 긴장을 풀고 돌아다닌 결과, 새벽기도 중 갑자기 하체 전체가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려 숨조차 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식당 입구의 천하 대장군을 무시하고 오겹살을 먹은 다음 날에는 위장이 꽉 막혀버렸다. 아내인 조경미 사모의 30분에 걸친 불 안수가 없었다면 응급실로 실려 갔을 아찔한 상황이었다.&lt;/p&gt; &lt;p&gt; 여기서 명심해야 할 영적 팩트가 있다. 내가 스스로 죄를 지어서 귀신이 들어온 것과, 죄를 짓지 않았으나 우상의 진영에서 기습을 당한 것은 침투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귀신은 내 육체 깊숙한 내장까지 뚫고 들어오지만, 긴장을 푼 틈을 타 공격하는 귀신들은 내 몸 겉면에 자석의 거머리처럼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 근육과 혈관을 굳어버리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혼탁한 장소를 갈 때나,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만날 때에는 결코 긴장을 늦추지 말고 속으로 십자가를 세우며 방어막을 쳐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회개치 않은 자를 사역할 때와 뼛속의 &#039;큰 영&#039;을 건드릴 때 귀신은 어떻게 반격하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trong&gt;네 번째로 귀신이 맹렬하게 반격하는 시기는 &#039;철저한 회개 없이 축사 사역을 하거나 받을 때&#039;&lt;/strong&gt;다.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병만 고쳐달라고 사역자에게 머리를 들이미는 자들을 안수하면, 그 속에 있던 귀신들은 사역자를 향해 거세게 반격한다. 이놈들은 화가 나면 사역자의 몸에 달라붙어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뱀이빨 자국 두 개를 선명하게 남기며 물어뜯는다. 심지어 신기가 충만하여 자살 충동을 느끼는 자가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무리하게 사역하면, 귀신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기절시켜 버려 사역자를 감옥에 가게 만들려는 교활한 덫을 놓기도 한다. 사역자를 물어뜯는 것으로 분이 안 풀리면, 사역자의 자녀를 공격하여 고열에 시달리게 하거나 불안증세를 보이게 하는 등의 악랄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회개 없는 축사는 양쪽 모두를 사지로 모는 위험천만한 행위다.&lt;/p&gt; &lt;p&gt; &lt;strong&gt;다섯 번째 시기는 우리 뼛속 깊이 묻혀 있는 수천 년 된 &#039;큰 영&#039;을 건드려 축사할 때&lt;/strong&gt;다. 최근에 들어온 작은 영들은 손만 대어도 무서워 도망치지만, 3,000년, 5,000년 동안 조상 대대로 내려와 거대한 집을 짓고 있는 대장 귀신들은 호락호락하게 나가지 않는다. 이 거대한 영들을 한 번에 잡으려고 무리하게 달려들면, 놈들은 사생결단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큰 영들은 회개의 분량에 따라 조금씩 힘을 빼고 점진적으로 떼어내어 소멸시켜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영적으로 오염된 자와의 접촉과 심야 시간에 악령들이 맹렬하게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lt;strong&gt;여섯 번째로 악령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바로 &#039;밤 시간&#039;, 특히 밤 11시부터 새벽 5시 사이의 심야 시간이다&lt;/strong&gt;.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인 귀신들은 이 칠흑 같은 시간에 사람들의 신체를 가장 거세게 억누르고 고통을 주어 응급실에 실려 가게 만든다.&lt;/p&gt; &lt;p&gt; &lt;strong&gt;일곱 번째로 귀신이 치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경로는 &#039;영적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자와의 접촉&#039;할 때&lt;/strong&gt;다. 신기가 충만하여 신내림을 받아야 할 사람이나 조현병에 시달리는 등 악한 영이 머리끝까지 가득 찬 사람과는 단순히 대화를 나누거나 눈만 쳐다보아도 귀신이 옮겨붙는다. 전화 통화만 해도 귀밑이 찌릿찌릿하며 악령이 전파를 타고 넘어와 들러붙는 것을 영적으로 예민한 자들은 즉각 느낄 수 있다. 특히 자기 속에 그들과 비슷한 성향의 영이 있다면 자석처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lt;/p&gt; &lt;p&gt; 마사지 숍, 중환자실, 창문이 없고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 역시 영적인 오염이 극에 달해있는 사각지대다. 마사지를 받을 때 시원한 것은 잠시뿐, 마사지사의 손을 타고 수많은 사람의 몸을 있던 악귀들이 내 몸속 깊숙이 파고든다. 죽음의 영이 구들구들하게 뭉쳐 있는 중환자실이나, 바람조차 통하지 않아 귀신들이 바글거리는 장례식장 지하는 특별한 무장이 없다면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마귀의 소굴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귀신을 쫓아낸 육체를 말씀과 기도로 채우지 않으면 일곱 귀신이 들어오는 영적 원리는?&lt;/span&gt;&lt;/h2&gt; &lt;p&gt; &lt;strong&gt;여덟 번째로 귀신이 다시 역습해 들어오는 가장 안타까운 시기는, 귀신을 쫓아내어 육체를 깨끗하게 비워놓고도 그곳을 &#039;말씀과 기도로 채우지 않은 빈집일 때&#039;&lt;/strong&gt;다. 예수님께서는 이 무서운 영적 원리를 명확하게 경고하셨다(마 12:43-4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고로 사역자에게 기도를 받고 악한 영이 떠나가서 몸이 가벼워지고 질병이 나았다고 &quot;할렐루야&quot;를 외치며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영적인 공간은 결코 진공 상태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쫓은 자리에 하나님의 신선한 말씀과 성령의 생수를 쏟아붓지 않고, 방언 기도와 전투 기도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은 채, 다시 세속적인 삶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 없는 곳을 헤매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독하고 악한 딴 귀신 일곱 마리를 데리고 다시 그 빈집으로 쳐들어온다. 회개와 축사 이후에는 반드시 예배의 자리에 나아와 생수 같은 말씀을 마시고, 영적 무장을 단단히 하여 마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룩한 성전으로 굳혀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악령의 기습을 박살 내는 &#039;십자가 세우기, 보혈 바르기, 군대 천사 파송 명령하기&#039;의 실전 영적 전투법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우리 몸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기습하는 악령들을 박살 내고 떼어내는 실전 영적 전투법은 명확하다. 어쩔 수 없이 장례식장이나 오염된 장소에 가야만 한다면, 들어서기 전부터 속으로 &quot;여기에 있는 모든 영과 나 사이에 십자가 세운다!&quot;라고 선포하며 영적 방어막을 쳐야 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오염되었다고 느껴질 때는 즉시 화장실이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quot;주 예수의 피! 주 예수의 피!&quot;를 외치며 내 몸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어서 &quot;하늘의 군대 천사들은 내 몸에 들러붙은 모든 악한 영을 결박하여 음부로 끌고 갑니다!&quot;라고 군대 천사를 파송하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lt;/p&gt; &lt;p&gt; 만약 겉에 달라붙은 귀신 때문에 근육이 굳고 찌릿찌릿하다면, 그 부위에 손을 대고 &quot;주님, 제 손에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불! 불! 불!&quot; 하며 강력하게 100번만 두드리고 때려보라. 겉에 달라붙어 근육을 마비시키던 악령들은 성령의 맹렬한 불을 견디지 못하고 모조리 타버려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새 들러붙은 귀신들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양쪽 귀를 부여잡고 사정없이 비비며 돌려서 &#039;아작을 내버리는&#039; 것도 영육을 깨우는 탁월한 실전 전투법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귀신의 침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육체를 관리하고 매일 회개 기도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는?&lt;/span&gt;&lt;/h2&gt; &lt;p&gt; 귀신의 침투를 원천 차단하는 가장 완벽한 방어는 육체의 건강을 지키고 매일 회개로 영을 맑게 하는 것이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죄를 지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그 자리에서 즉시 자백하여 행위책에 기록되기 전에 지워버려야 한다(엡 4:26-27).&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엡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또한 육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50세가 넘었다면 자신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피를 깨끗하게 하는 청혈제, 염증을 가라앉히는 진도 울금환과 양배추환, 장을 튼튼하게 하는 유산균, 피로를 회복시키는 비타민 D와 아연(굴) 등을 적극적으로 섭취하여 육체의 장벽을 튼튼히 세우기를 바란다. 육신이 무너지면 마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심장마비나 뇌출혈, 교통사고를 일으켜 우리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가려 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리고 영적 무장의 최고봉인 &#039;회개 기도문&#039;을 매일 아침 단 한 번이라도 꼭 정독하며 기도하라. 회개 기도문은 마귀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최고의 보약 중의 보약이다. 영안이 어두운 자들을 멀리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과 영적 교제를 나누라. 내 몸과 영혼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회개로 무장할 때, 어떤 악한 영도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 지금까지 귀신들이 우리의 약점과 틈을 노리고 맹렬히 기습해 들어오는 8가지 구체적인 시기와, 이를 박살 내는 실전 영적 전투법에 대하여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악한 영들은 결코 우연히 다가오지 않는다. 조상의 죄악을 타고 내려와 신내림으로 압박하고, 육체가 쇠약해진 틈을 파고들며, 우리가 긴장을 푼 순간 여지없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피 튀기는 회개 없이 사역의 자리에 나서거나 뼛속의 큰 영을 함부로 건드리는 자만심은 본인과 가족의 생명까지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 됨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심야 시간과 우상이 가득한 영적 사각지대를 거닐 때마다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의 피를 뿌리며 천사들을 파송하는 영적 사령관의 전술을 맹렬하게 가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귀신을 쫓아낸 빈집에 성령의 생수와 진리의 말씀을 가득 채우고, 매일 회개 기도문으로 무장하여 단 한 치의 틈도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귀의 어떠한 기습 공격 앞에서도 오금을 저리며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예수의 이름으로 적들을 진멸하며 천국의 영광스러운 상급을 쟁취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2026년 05월 03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lt;/span&gt;&lt;strong&gt;정보배 목사&lt;/strong&gt;&lt;span&gt;가 악한 영의 공격 시점과 그 대처법에 대해 설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lt;/span&gt;&lt;strong&gt;신기가 올 때&lt;/strong&gt;&lt;span&gt;, &lt;/span&gt;&lt;strong&gt;신체가 약해졌을 때&lt;/strong&gt;&lt;span&gt;, 그리고 &lt;/span&gt;&lt;strong&gt;영적 긴장을 풀었을 때&lt;/strong&gt;&lt;span&gt; 악한 영이 주로 틈탄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제주도 방문 경험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합니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으면 &lt;/span&gt;&lt;strong&gt;근육 마비나 통증&lt;/strong&gt;&lt;span&gt;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lt;/span&gt;&lt;strong&gt;철저한 회개와 영양 섭취&lt;/strong&gt;&lt;span&gt;, 그리고 &lt;/span&gt;&lt;strong&gt;영적 사역자의 도움&lt;/strong&gt;&lt;span&gt;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또한 일상에서 &lt;/span&gt;&lt;strong&gt;십자가 세우기와 보혈 바르기, 군대천사 부르기&lt;/strong&gt;&lt;span&gt;를 실천하고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영적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lt;/span&gt;&lt;strong&gt;영적 민감성&lt;/strong&gt;&lt;span&gt;을 갖추어 악한 영의 방해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지키는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정보배목사 #동탄명성교회 #영적전쟁 #악한영 #귀신 #신내림 #육체쇠약 #긴장풀때 #회개치않은자 #큰영축사 #심야시간 #영적타락 #빈집 #십자가세우기 #보혈바르기 #군대천사 #회개기도 #육체관리 #예배&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af0d87e670cfe442ba34213c3a64d0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af0d87e670cfe442ba34213c3a64d08.webp&quot; alt=&quot;[포맷변환][악한 영들의 공격시기(1)].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d3a29ef3ac0ba98d0489048dbf9a66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d3a29ef3ac0ba98d0489048dbf9a669.webp&quot; alt=&quot;[포맷변환][악한 영들의 공격시기(2)].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e738d98c4cd766232957ddff10a702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e738d98c4cd766232957ddff10a7020.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7601428c55ab6c5375508dbe25cec8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7601428c55ab6c5375508dbe25cec82.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d0839b16a4cb861a5f0c1a59e5f29f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cd0839b16a4cb861a5f0c1a59e5f29fd.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6b3a796d8eef470f2b4d2c602dac56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6b3a796d8eef470f2b4d2c602dac56d.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2ce736bc2e09939461e2c166368f31d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2ce736bc2e09939461e2c166368f31d7.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d341af26e994b3fe4119edd8c13bbb9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d341af26e994b3fe4119edd8c13bbb91.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d4e4ba1826c10c7c7d23313e56c5d596.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d4e4ba1826c10c7c7d23313e56c5d596.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2c950242d7cac80de3d0793d8592ed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2c950242d7cac80de3d0793d8592edb.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3eb689e4c4c18ad36e0e3ffcd9dc0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3eb689e4c4c18ad36e0e3ffcd9dc00.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7ef0cf2887d5cfac5354f48fc9807b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7ef0cf2887d5cfac5354f48fc9807ba.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e45e7776fbba56f5a6f785e7bf5e11d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e45e7776fbba56f5a6f785e7bf5e11dc.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68bc45f11486fcf0ae37a70a2ab6759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68bc45f11486fcf0ae37a70a2ab6759c.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Warfar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7fd63623c9ffe951796939d070f782f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7fd63623c9ffe951796939d070f782f4.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708b364e27bdb5c2a338586a3c2ab1d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708b364e27bdb5c2a338586a3c2ab1d4.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afcdeeca428cc85ee136b6068d45e7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afcdeeca428cc85ee136b6068d45e7a.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f8d3915dbd74f96428317dfce843d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f8d3915dbd74f96428317dfce843d4.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1b6932491ed0e4b87db976d09c62ee6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1b6932491ed0e4b87db976d09c62ee6b.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9d3c1b6875d3dbfbaf84024e0cca6a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9d3c1b6875d3dbfbaf84024e0cca6ab.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b9cf6e5b016b6d43044419b83aac1d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b9cf6e5b016b6d43044419b83aac1de.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55aded62cfc2aa1ee61378f74905a5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b55aded62cfc2aa1ee61378f74905a54.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1b5bb897d0d807f55408164feda3c6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81b5bb897d0d807f55408164feda3c67.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cc72eb148a4a7d29c01ff88e06752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97cc72eb148a4a7d29c01ff88e067522.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a2a66c54062cb1a9dce49036ecb6b59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a2a66c54062cb1a9dce49036ecb6b591.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7f510cb9c56ac01fcd2948bee3be4f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07f510cb9c56ac01fcd2948bee3be4f0.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f875079bca8e9a7b12263e001b8953b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34/248/f875079bca8e9a7b12263e001b8953b2.webp&quot; alt=&quot;[악령공격시기] Spiritual_Combat_Manual.pdf_1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악한영</category><category>귀신</category><category>신내림</category><category>육체쇠약</category><category>긴장풀때</category><category>회개치않은자</category><category>큰영축사</category><category>심야시간</category><category>영적타락</category><category>빈집</category><category>십자가세우기</category><category>보혈바르기</category><category>군대천사</category><category>회개기도</category><category>육체관리</category><category>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8834</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8834#comment</comments>			<pubDate>Sun, 03 May 2026 22:38:48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78)]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3)(여호수아 23:6~16)_2026-04-26(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7749</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4-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78)]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3)(여호수아 23:6~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pL6YbH2Q39o&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L6YbH2Q39o?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2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gt;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는 자신이 매일같이 맞서 싸워야 할 대적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lt;strong&gt;지난 시간&lt;/strong&gt;에 우리는 &lt;strong&gt;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특징 중 여섯 가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우리 육체를 장악한 귀신들은 결코 단번에 나가지 않으며, 철저히 흩어지고 뭉쳐서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는 참혹한 영적 현실을 마주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회개의 검을 빼들 때 하늘의 군대가 파송되어 이 대적들을 초자연적으로 진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영적 전투를 완수하기 위해 우리가 추가로 알아야 할 적들의 은밀한 전술은 무엇인가? 이들은 과연 불 안수 한 번에 깨끗이 항복하고 사라지는 존재들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 중 나머지 네 가지, 곧 일곱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의 핵심적인 부분들&lt;/strong&gt;을 심도 있게 살펴 보도록 하자.&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가나안 일곱 족속의 숫자에 담긴 영적 비밀과 우리 몸을 장악한 죄의 영역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본격적인 전투의 특징을 파악하기 전에, &lt;strong&gt;우리가 상대하는 가나안 족속의 규모에 담긴 영적 팩트&lt;/strong&gt;부터 정리해야 한다. 모세가 출애굽 1세대에게 약속의 땅을 설명할 때, 하나님은 헷, 아모리, 브리스, 가나안, 히위, 여부스라는 여섯 족속만을 언급하셨다(출 3:8).&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러나 광야 40년이 지나고 출애굽 2세대를 향한 신명기 말씀에서는 기르가스 족속이 추가되어 비로소 &#039;일곱 족속&#039;으로 명명된다(신 7: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실 생각해보라. 왜 6족속에서 7족속으로 늘어났는가? 7은 성경에서 완전수이자 충만함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지상의 모든 교회를 상징하듯, &lt;strong&gt;가나안 일곱 족속은 우리 육체 속에 침투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죄의 영역에 귀신들이 완벽하게 포진해 있다는 영적 실체를 증명&lt;/strong&gt;한다. 제사의 영, 무당의 영, 부처의 영, 미신 잡신의 영을 비롯하여 교만, 음란, 거짓, 혈기, 분노, 시기, 살인의 영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범죄하는 모든 구석구석에 이 일곱 족속으로 예표되는 귀신들이 꽉 들어차서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영적 전투 시, 아낙 자손처럼 강력하고 큰 대장 귀신은 도망치는가, 교묘하게 숨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일곱 번째로 드러나는 귀신들의 교활한 특징은, 맹렬한 공격을 받으면 큰 놈들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척하며 깊숙이 숨어버린다&lt;/strong&gt;&lt;/span&gt;는 점이다. 여호수아 10장을 보면, 여호수아 군대가 남부 연합군을 칠 때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함께 헤브론 왕 호암을 죽이고 그 성읍의 사람을 다 진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수 10:36-37).&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0:36-37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에 올라가서 싸워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러나 영적 팩트를 더 깊이 파고들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헤브론의 본래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며, 아르바는 거인족인 아낙 자손의 조상이었다. 놀랍게도 남부 전쟁 당시 작은 왕 호암은 칼에 죽었지만, 그곳에 살던 거대한 아낙 자손들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여호수아의 칼날을 피해 깊은 산지로 교묘히 숨어버렸다(수 15:13-14). 결국 85세의 노장 갈렙이 나서서 산지를 파헤친 후에야 그 거인들을 완전히 쫓아낼 수 있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15:13-1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사역자에게 기도를 받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잔챙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면, 스스로 이제 내 속에 귀신은 깨끗이 다 나갔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낙 자손처럼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타고 내려온 강력한 대장 귀신들은 자신을 향한 타격이 거세질 때 육체 가장 깊은 곳에 없는 것처럼 납작 엎드린다. 당장 눈앞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축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내 속에 숨어 있는 가장 크고 지독한 대장 귀신이 완전히 뿌리 뽑힐 때까지 끈질기게 파고들어 회개의 칼날을 휘둘러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다 쫓아냈다고 착각하지 말라! 아셀 지파가 남겨둔 시돈의 불씨가 어떤 비극을 낳았는가?&lt;/span&gt;&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여덟 번째 특징은, 귀신을 아무리 많이 쫓아냈다 할지라도 불씨와 같은 잔존 세력들이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다&lt;/strong&gt;&lt;/span&gt;는 무서운 사실이다.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사기 1장을 보면 므낫세,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지파 등이 끝까지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않고 남겨둔 뼈아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아셀 지파는 악고, 시돈, 알랍, 악십 등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방치했다(삿 1:3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삿 1: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이때 그 시돈 사람을 남겨둔 것이 왜 그토록 치명적이 되었는가? 훗날 북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에게 시집와서 나라 전체를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쑥대밭으로 만든 희대의 악녀 이세벨이 바로 이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기 때문이다(왕상 16:31-33). 여호수아의 정복 당시 남겨둔 작은 불씨 하나가 수백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전체의 영맥을 끊어놓을 뻔한 무서운 대화재로 번진 것이다. 심지어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남유다의 여호사밧 가문으로 시집가서 다윗의 씨를 말살하려는 끔찍한 살육까지 자행한다(대하 22:10). 내 몸속에 적당히 쫓아내고 남겨둔 귀신의 불씨 하나가 당장은 얌전해 보일지라도, 훗날 내 자녀와 후손들의 신앙과 생명까지 잔혹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이 무서운 영적 현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5. 타협하여 남겨둔 귀신의 잔존 세력은 우리 삶에 어떤 끔찍한 올무와 가시가 되는가?&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아홉 번째 특징은, 우리가 적당히 타협하여 끝까지 진멸하지 않은 귀신들은 결국 우리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는 잔혹한 도구로 돌변한다&lt;/strong&gt;&lt;/span&gt;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이 남아있는 가나안 민족들과 혼인하거나 왕래하며 타협할 경우,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서릿발 같이 경고하셨다(수 23:12-1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23:12-13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 성도들이 일평생 치열하게 회개하며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육체 속에 숨어 있는 음란의 영, 혈기의 영, 불평의 영들을 쫓아내지 않고 적당히 달래며 살려고 하는 자는 결국 그 악한 영들에게 발목을 잡힌다. 그놈들은 우리 영혼을 죄악으로 옭아매는 올무와 덫이 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옆구리의 채찍과 눈의 가시가 되어 끝내 우리를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는다. 한 번 칼을 빼들었으면 적당한 선에서 절대 물러서지 말고, 우리 육체에 숨어든 귀신들의 씨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끝장을 보아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기브온 거민의 항복이 보여주는 영적 팩트, 곧 귀신의 본질적인 신분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e67e23;&quot;&gt;&lt;strong&gt;열 번째 마지막 특징은, 영적 세계의 본질적 위계와 창조 질서에 관한 것&lt;/strong&gt;&lt;/span&gt;이다.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히위 족속이었던 기브온 거민들은 왕도와 같은 큰 성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온 여행객으로 위장하여 이스라엘 앞에 엎드려 스스로 종이 되기를 청했다(수 9:1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수 9: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결국 그들은 여호와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허드렛일을 하는 성전의 종으로 편입되었다. 사실 이 사건 속에는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의 본질적인 신분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계시되어 있다. 성경은 모든 천사들을 구원받은 상속자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부리는 영이라고 선언한다(히 1:1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천사들은 본래 하나님의 상속자인 우리를 섬기도록 창조된 영적 하인이다. 비록 그들 중 일부가 사탄과 함께 타락하여 귀신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 육체 속에 몰래 숨어들어 상전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본질적인 신분은 여전히 피조물인 &#039;종&#039;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귀신을 향해 축사할 때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lt;strong&gt; &quot;너는 나를 섬기라고 창조된 종이다. 어디 감히 주인의 몸에 들어와 해악을 끼치느냐!&quot;&lt;/strong&gt;라는 창조 질서의 주권을 당당히 선포하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의 권세로 단호하게 호령하여 내쫓아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사역자에게 성령의 불이 필수적인 이유와 영안보다 더 중요한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lt;/span&gt;&lt;/h2&gt; &lt;p&gt;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단지 신비한 영안이 열리기만을 구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제사의 영은 깊이 숨어버리는 데 능숙하고, 무당의 영은 환상과 거짓 계시로 영안을 조작하여 사역자를 속이는 데 탁월하다. 섣부르게 열린 영안은 귀신이 다 나갔다는 거짓 정보에 속아 성도를 방심하게 만든다. &lt;strong&gt;오히려 영안이 당장 열리지 않더라도, 내 속에 쫓아내야 할 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제하고 피를 토하며 회개하는 것이 수백 배 더 안전하고 강력한 전투 방식&lt;/strong&gt;이다.&lt;/p&gt; &lt;p&gt;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진정한 영적 사령관들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불이 동반되어야 한다. 사역을 할 때 성령의 맹렬한 불이 사역자의 육체와 영혼을 감싸고 있어야만, 축사 시에 악한 귀신들이 반발하여 거꾸로 사역자에게 치고 들어오는 것을 방어할 수 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임했던 그 성령의 불과 말씀의 채워짐이 없다면 빈집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오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마 12:43-45).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텅 빈 심령을 진리로 가득 채우는 것만이 최후의 승리를 보장하는 비결이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무저갱이 열릴 마지막 때, 하나님은 왜 악령을 쳐부술 &#039;여호수아 군대&#039;를 소집하시는가?&lt;/span&gt;&lt;/h2&gt; &lt;p&gt; 우리가 내 육체 속에 기생하는 귀신의 잔존 세력과 불씨를 샅샅이 찾아내 멸절시켜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치열한 전투는 단지 개인의 육체적 치유나 질병의 해방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우주적이고 종말론적인 타임라인과 직결된다.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들이 동성애와 타협하며 영적 패권을 잃어가는 지금, 머지않아 적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위장하여 666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전 세계의 숨통을 무자비하게 틀어쥘 것이다.&lt;/p&gt; &lt;p&gt; 더욱 두려운 팩트는, 요한계시록 9장에 예언된 대로 장차 다섯째 나팔이 불리고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을 열어젖힐 때 발생한다.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던 수억 마리의 황충, 즉 귀신 군단이 연기처럼 솟아올라 전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다. 영적 무장을 해제당한 채 내 속의 귀신과 적당히 타협하던 수많은 거짓 신자들은 이 끔찍한 악의 쓰나미에 휩쓸려 무참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lt;strong&gt; 바로 이 절체절명의 시기를 대비하여, 하나님께서는 전투 방언 기도로 무장한 동탄명성교회와 같은 교회를 영적 야전 기지로 삼으시고 &#039;마지막 여호수아 군대&#039;를 맹렬하게 훈련시키고 계신다&lt;/strong&gt;. 장차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살아서 들림을 받고, 다시 주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지상에 내려와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을 전멸시킬 선봉장들을 소집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의 지독한 회개와 귀신 축출은 마지막 때 우주의 전위대로 쓰임 받기 위한 필수적인 특수 군사 훈련임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 지금까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 중 마지막 네 가지를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우리는 맹렬한 기도의 타격 앞에서 아낙 자손처럼 깊이 숨어버리는 대장 귀신의 교활함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시돈 사람을 남겨두어 온 이스라엘을 파멸의 위기로 몰고 간 아셀 지파의 뼈아픈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내 몸속에 적당히 남겨둔 귀신의 불씨는 결국 내 삶을 찌르는 가시와 올무가 되어 영혼을 갉아먹을 뿐이다. 우리를 섬기도록 지음 받은 비루한 종들이 감히 주인의 육체를 점령하고 있음을 깨닫고, 맹렬한 회개의 불을 토해내어 그 씨를 완전히 말려버려야 한다. 이 영적 전투는 나 개인의 평안을 넘어,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와 무저갱에서 올라올 수억의 악령들을 쳐부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사령관으로 훈련하시는 우주적인 프로젝트다. 한 번 잡은 회개의 검을 결코 멈추지 말고 내 육체의 모든 성읍에서 귀신의 잔존 세력을 완전히 진멸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열릴 아마겟돈의 대전투에서 주님과 함께 선봉에 서서 악의 무리를 궤멸하고 새 예루살렘 성의 온전한 상속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2026년 04월 26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fixed-container&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ource-guide-container ng-star-inserted&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ource-guide-rows ng-star-inserted&quot; jslog=&quot;189021;track:impression&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ummary-container&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ummary ng-star-inserted&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mat-body-medium ng-star-inserted&quot;&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lt;span&gt; &lt;/span&gt;&lt;strong&gt;가나안 정복 전쟁&lt;/strong&gt;을 성도가 내면의 악한 영과 싸우는&lt;span&gt; &lt;/span&gt;&lt;strong&gt;영적 전쟁의 모형&lt;/strong&gt;으로 제시하며, 귀신들의 구체적인 속성과 대응 전략을 설명합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인간의 몸과 마음 곳곳에 포진한&lt;span&gt; &lt;/span&gt;&lt;strong&gt;우상숭배와 죄악의 영들&lt;/strong&gt;을 상징한다고 정의한 후, 이들이 한꺼번에 물러가지 않고&lt;span&gt; &lt;/span&gt;&lt;strong&gt;조금씩 쫓겨나며&lt;/strong&gt;&lt;span&gt; &lt;/span&gt;때로는 강한 세력이&lt;span&gt; &lt;/span&gt;&lt;strong&gt;교묘히 숨어버린다&lt;/strong&gt;는 점을 경고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귀신이 빈자리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lt;span&gt; &lt;/span&gt;&lt;strong&gt;회개와 말씀 채우기&lt;/strong&gt;를 병행해야 함을 역설하며, 특히 잔존하는&lt;span&gt; &lt;/span&gt;&lt;strong&gt;불씨 같은 세력&lt;/strong&gt;이 훗날 큰 올무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가 천사라는 존재의 본래 목적이&lt;span&gt; &lt;/span&gt;&lt;strong&gt;인간을 섬기는 종&lt;/strong&gt;임을 자각하고, 영적 권세를 사용하여&lt;span&gt; &lt;/span&gt;&lt;strong&gt;가계의 저주와 악한 영&lt;/strong&gt;으로부터 완전히 승리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 &lt;/p&gt; &lt;p&gt; &lt;span class=&quot;mat-mdc-chip-focus-overlay&quot;&gt; &lt;/span&gt;&lt;span class=&quot;mat-mdc-chip-focus-overlay&quot;&gt; &lt;/span&gt;&lt;/p&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croll-container ng-star-inserted&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scroll-area ng-star-inserted&quot;&gt; &lt;div _ngcontent-ng-c1065957502=&quot;&quot; class=&quot;youtube-container mat-body-medium ng-star-inserted&quot;&gt; &lt;p&gt; &lt;/p&gt; &lt;p&gt;#주일오후찬양예배 #기독론 #가나안정복전쟁 #귀신의특징 #여호수아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영적전투 #죄의영역 #아낙자손 #거인귀신 #잔존세력 #시돈 #이세벨 #타협 #올무 #가시 #기브온거민 #천사의신분 #성령의불&lt;/p&gt; &lt;/div&gt; &lt;/div&gt; &lt;/div&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b2e80488dadb0b42cbb68d4a7e10257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b2e80488dadb0b42cbb68d4a7e102575.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ed7f86714e17290c5d909642870058c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ed7f86714e17290c5d909642870058cc.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82df3e986454209714f0a808b8de4dc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82df3e986454209714f0a808b8de4dcf.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1660bb27a6482223893591896f5e551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1660bb27a6482223893591896f5e5517.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17d1b5f0a363a3d5823c62c6a6ad57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17d1b5f0a363a3d5823c62c6a6ad57c.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0665b4bd6d304b4ec2746b9bdbd2cf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0665b4bd6d304b4ec2746b9bdbd2cf0.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7defa299e32c3da3d61e5e216f75ca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97defa299e32c3da3d61e5e216f75ca4.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40b8ab169951498d13a01c0aa6ca3f8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40b8ab169951498d13a01c0aa6ca3f80.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1b089068e5066b383004f2876032de0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1b089068e5066b383004f2876032de03.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f8e8ab09921132f4d8255211e430ebdf.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f8e8ab09921132f4d8255211e430ebdf.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2c405c299838d81aca3c528d98cb113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749/247/2c405c299838d81aca3c528d98cb1131.webp&quot; alt=&quot;[기독론(78)] Canaan_Conquest_Tactical_Brief.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주일오후찬양예배</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가나안정복전쟁</category><category>귀신의특징</category><category>여호수아</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영적전투</category><category>죄의영역</category><category>아낙자손</category><category>거인귀신</category><category>잔존세력</category><category>시돈</category><category>이세벨</category><category>타협</category><category>올무</category><category>가시</category><category>기브온거민</category><category>천사의신분</category><category>성령의불</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7749</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7749#comment</comments>			<pubDate>Mon, 27 Apr 2026 01:07:38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71)]  예수께서는 어떻게 인류를 위한 속건제물이 되셨는가?(레위기 5:14~6:7)_2026-04-1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6341</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4-19(주일) 오후찬양예배&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기독론(71)] 예수께서는 어떻게 인류를 위한 속건제물이 되셨는가?(레위기 &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5:14&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6: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JyA_KxutT2o&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yA_KxutT2o?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h3 data-path-to-node=&quot;1&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2&quot;&gt; 우리가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성경을 어떠한 영적 안목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캐낼 수 있는 생명의 깊이는 &lt;!-- [if !mso]&gt; &lt;style&gt;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lt;/style&gt; &lt;![endif] --&gt;&lt;span&gt;천양지차&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天壤之差&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EndFragment--&gt;로 달라진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모든 기록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 구속사의 초점을 맞추어 놓으셨다. 그중에서도 구약의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법은 단순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가장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설계도라 할 수 있다.&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lt;!--p.0 {mso-style-name:&quot;바탕글&quot;;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90%;letter-spacing:-0.5pt;mso-text-raise:0pt;font-size:11.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gt;&lt;/style&gt; &lt;p data-path-to-node=&quot;2&quot;&gt;&lt;!--StartFragment--&gt;&lt;/p&gt; &lt;div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5426&quot;&gt;&lt;!--[data-hwpjson]{ &quot;documentPr&quot;: { &quot;di&quot;: &quot;&quot;, &quot;dp&quot;: { &quot;dn&quot;: &quot;test.hwp&quot;, &quot;ta&quot;: 1, &quot;d1&quot;: 5, &quot;d2&quot;: 1, &quot;dv&quot;: 0, &quot;dr&quot;: 1, &quot;do&quot;: 1, &quot;vj&quot;: &quot;1.1&quot;, &quot;an&quot;: &quot;Hancom Office Hangul&quot;, &quot;av&quot;: &quot;10, 0, 0, 13462&quot;, &quot;ao&quot;: &quot;WIN&quot;, &quot;ab&quot;: &quot;32&quot;, &quot;ar&quot;: &quot;LE&quot;, &quot;as&quot;: &quot;Windows_8&quot; }, &quot;dis&quot;: false, &quot;ds&quot;: { &quot;ti&quot;: &quot;&quot;, &quot;la&quot;: &quot;ko&quot;, &quot;cr&quot;: &quot;&quot;, &quot;su&quot;: &quot;&quot;, &quot;de&quot;: &quot;&quot;, &quot;cd&quot;: &quot;2026-04-20T19:45:45.366Z&quot;, &quot;m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p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ke&quot;: &quot;&quot; } }, &quot;dh&quot;: { &quot;do&quot;: { &quot;pa&quot;: 1, &quot;fo&quot;: 1, &quot;en&quot;: 1, &quot;pi&quot;: 1, &quot;tb&quot;: 1, &quot;eq&quot;: 1 }, &quot;fo&quot;: [ ], &quot;cd&quot;: { &quot;tp&quot;: 0, &quot;lc&quot;: { &quot;af&quot;: false, &quot;ui&quot;: false, &quot;fu&quot;: false, &quot;dn&quot;: false, &quot;ul&quot;: false, &quot;el&quot;: false, &quot;at&quot;: false, &quot;tq&quot;: false, &quot;da&quot;: false, &quot;dw&quot;: false, &quot;dj&quot;: false, &quot;bc&quot;: false, &quot;bu&quot;: false, &quot;al&quot;: false, &quot;ab&quot;: false, &quot;ap&quot;: false, &quot;an&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ds&quot;: false, &quot;de&quot;: false, &quot;as&quot;: false, &quot;cp&quot;: false, &quot;ao&quot;: false, &quot;et&quot;: false, &quot;ay&quot;: false, &quot;am&quot;: false, &quot;a1&quot;: false, &quot;bt&quot;: false, &quot;av&quot;: false, &quot;dh&quot;: false, &quot;dp&quot;: false, &quot;d1&quot;: false, &quot;mf&quot;: false, &quot;bl&quot;: false, &quot;ag&quot;: false, &quot;dg&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df&quot;: false, &quot;do&quot;: false, &quot;dl&quot;: false, &quot;di&quot;: false, &quot;d2&quot;: false, &quot;d3&quot;: false, &quot;ob&quot;: false, &quot;d4&quot;: false, &quot;ev&quot;: false, &quot;d5&quot;: false, &quot;d6&quot;: false, &quot;a2&quot;: false, &quot;dc&quot;: false } }, &quot;ld&quot;: { &quot;pa&quot;: &quot;&quot;, &quot;pi&quot;: true, &quot;fo&quot;: false } }, &quot;bf&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5&quot;: { &quot;id&quot;: 1,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 }, &quot;01DCD0B2D7CA55B000000D66&quot;: { &quot;id&quot;: 2,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quot;wb&quot;: { &quot;fc&quot;: 4294967295, &quot;hc&quot;: 10066329, &quot;al&quot;: 0, &quot;hs&quot;: -1 } } } }, &quot;cp&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7&quot;: { &quot;id&quot;: 0, &quot;he&quot;: 1100, &quot;tc&quot;: 0, &quot;sc&quot;: 4294967295, &quot;uf&quot;: false, &quot;uk&quot;: false, &quot;sm&quot;: 0, &quot;bf&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6&quot;, &quot;f1&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1&quot;: 1, &quot;f2&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2&quot;: 1, &quot;f3&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3&quot;: 1, &quot;f4&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4&quot;: 1, &quot;f5&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5&quot;: 1, &quot;f6&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6&quot;: 1, &quot;f7&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7&quot;: 1, &quot;r1&quot;: 90, &quot;r2&quot;: 90, &quot;r3&quot;: 90, &quot;r4&quot;: 90, &quot;r5&quot;: 90, &quot;r6&quot;: 90, &quot;r7&quot;: 90, &quot;s1&quot;: -5, &quot;s2&quot;: -5, &quot;s3&quot;: -5, &quot;s4&quot;: -5, &quot;s5&quot;: -5, &quot;s6&quot;: -5, &quot;s7&quot;: -5, &quot;e1&quot;: 100, &quot;e2&quot;: 100, &quot;e3&quot;: 100, &quot;e4&quot;: 100, &quot;e5&quot;: 100, &quot;e6&quot;: 100, &quot;e7&quot;: 100, &quot;o1&quot;: 0, &quot;o2&quot;: 0, &quot;o3&quot;: 0, &quot;o4&quot;: 0, &quot;o5&quot;: 0, &quot;o6&quot;: 0, &quot;o7&quot;: 0, &quot;it&quot;: false, &quot;bo&quot;: false, &quot;ut&quot;: 0, &quot;us&quot;: 1, &quot;uc&quot;: 0, &quot;st&quot;: false, &quot;ss&quot;: 1, &quot;so&quot;: 0, &quot;ot&quot;: 0, &quot;ht&quot;: 0, &quot;hc&quot;: 0, &quot;hx&quot;: 0, &quot;hy&quot;: 0, &quot;em&quot;: false, &quot;en&quot;: false, &quot;su&quot;: false, &quot;sb&quot;: false } }, &quot;tp&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8&quot;: { &quot;id&quot;: 0, &quot;al&quot;: false, &quot;ar&quot;: false, &quot;tp&quot;: [ ] } }, &quot;nu&quot;: { }, &quot;bu&quot;: { }, &quot;pp&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9&quot;: { &quot;id&quot;: 0, &quot;ah&quot;: 0, &quot;av&quot;: 0, &quot;ht&quot;: 0, &quot;hi&quot;: &quot;&quot;, &quot;hl&quot;: 0, &quot;t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8&quot;, &quot;kb&quot;: 0, &quot;kn&quot;: true, &quot;ko&quot;: false, &quot;kk&quot;: false, &quot;kl&quot;: false, &quot;kp&quot;: false, &quot;kw&quot;: 0, &quot;co&quot;: 0, &quot;fl&quot;: false, &quot;st&quot;: true, &quot;sl&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mi&quot;: 0, &quot;ml&quot;: 0, &quot;mr&quot;: 0, &quot;mp&quot;: 0, &quot;mn&quot;: 0, &quot;lt&quot;: 0, &quot;lv&quot;: 160, &quot;bf&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6&quot;, &quot;bl&quot;: 0, &quot;br&quot;: 0, &quot;bt&quot;: 0, &quot;bb&quot;: 0, &quot;bc&quot;: false, &quot;bi&quot;: false } }, &quot;st&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A&quot;: { &quot;id&quot;: 0, &quot;ty&quot;: 0, &quot;na&quot;: &quot;바탕글&quot;, &quot;en&quot;: &quot;Normal&quot;, &quot;p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9&quot;, &quot;c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7&quot;, &quot;ns&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A&quot;, &quot;li&quot;: 1042, &quot;lf&quot;: false } }, &quot;mp&quot;: { }, &quot;ro&quot;: { &quot;h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4&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4&quot;: { &quot;np&quot;: &quot;&quot;, &quot;id&quot;: 0, &quot;p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9&quot;, &quot;si&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A&quot;, &quot;bf&quot;: 3,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7&quot;, &quot;ch&quot;: [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co&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2&quot; } ,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co&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3&quot; } , { &quot;t&quot;: &quot;천양지차(天壤之差)&quot; } ] } ] } }, &quot;sl&quot;: { }, &quot;cs&quot;: { &quot;01DCD0B2D7CA55B000000D62&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td&quot;: 0, &quot;tv&quot;: false, &quot;sc&quot;: 1134, &quot;ts&quot;: 8000, &quot;ms&quot;: &quot;&quot;, &quot;os&quot;: &quot;&quot;, &quot;gl&quot;: 0, &quot;gc&quot;: 0, &quot;gw&quot;: false, &quot;ns&quot;: 0, &quot;np&quot;: 0, &quot;ni&quot;: 0, &quot;nt&quot;: 0, &quot;ne&quot;: 0, &quot;hh&quot;: false, &quot;hf&quot;: false, &quot;hm&quot;: false, &quot;fb&quot;: false, &quot;hb&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hi&quot;: false, &quot;hp&quot;: false, &quot;he&quot;: false, &quot;sl&quot;: false, &quot;lr&quot;: 0, &quot;lc&quot;: 0, &quot;ld&quot;: 0, &quot;ls&quot;: 0, &quot;pp&quot;: { &quot;ls&quot;: false, &quot;wi&quot;: 59528, &quot;he&quot;: 84188, &quot;gt&quot;: 0, &quot;ml&quot;: 8504, &quot;mr&quot;: 8504, &quot;mt&quot;: 5668, &quot;mb&quot;: 4252, &quot;mh&quot;: 4252, &quot;mf&quot;: 4252, &quot;mg&quot;: 0 }, &quot;f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1,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283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e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4,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0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pb&quot;: [ { &quot;ty&quot;: 0, &quot;bf&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5&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1, &quot;bf&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5&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2, &quot;bf&quot;: &quot;01DCD0B2D7CA55B000000D65&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mp&quot;: [ ] } , &quot;01DCD0B2D7CA55B000000D63&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ty&quot;: 0, &quot;la&quot;: 0, &quot;co&quot;: 1, &quot;ss&quot;: true, &quot;sg&quot;: 0,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cs&quot;: [ ] } }, &quot;bi&quot;: [ ], &quot;bidt&quot;: { } }--&gt;&lt;/div&gt; &lt;p data-path-to-node=&quot;3&quot;&gt;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lt;strong&gt;예수님을 단순히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해주는 속죄 제물로만 이해&lt;/strong&gt;할 뿐, 그분이 &lt;strong&gt;우리를 위해 어떠한 희생과 배상의 제물이 되셨는지&lt;/strong&gt;는 깊이 알지 못한다. 구약의 5대 제사는 크게 의무제와 자원제로 나뉘며, 그중에서도 남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하는 속건제의 영적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일평생 질병과 가난이라는 끔찍한 저주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lt;strong&gt;우리 삶의 모든 억압을 풀어내는 절대적인 능력&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현대 교인들의 율법주의적 맹신을 타격하고, 속건제의 영적 원리를 통해 우리 삶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가난과 질병의 저주를 완벽하게 끊어내도록 이끄는 영적 진리&lt;/strong&gt;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lt;/p&gt; &lt;p data-path-to-node=&quot;3&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4&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2. 구약의 5대 제사 중 의무제와 자원제의 궁극적인 영적 차이와 목적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5&quot;&gt; 레위기에 기록된 5대 제사는 그 성격과 영적 목적에 따라 크게 &#039;의무제&#039;와 &#039;자원제&#039;라는 두 가지 뚜렷한 축으로 구분된다. 이 두 제사의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는 과정에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6&quot;&gt; 먼저 레위기에 나오는 &#039;속죄제&#039;와 &#039;속건제&#039;는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강제성을 띤 &#039;의무제&#039;다. 인간이 십계명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성물에 손해를 끼쳤을 때, 이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형벌, 즉 지옥의 둘째 사망과 이 땅에서의 끔찍한 저주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의무제는 영원한 멸망을 면하고 천국의 문턱을 넘어서기 위한 절대적인 생존의 조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려 이 의무제의 요구를 완벽하게 성취하셨다(히 9:26).&lt;/p&gt; &lt;p data-path-to-node=&quot;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히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8&quot;&gt; 반면 레위기에 나오는 &#039;번제&#039;와 &#039;소제&#039;, &#039;화목제&#039;는 지옥을 면하기 위해 억지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워 자발적인 기쁨과 헌신으로 올려드리는 &#039;자원제&#039;다. 의무제가 천국 입성을 위한 속죄를 담당한다고 한다면, 자원제는 천국에 들어간 이후 우리가 거주하게 될 영광스러운 대저택을 짓고, 이기는 자의 높은 신분과 상급을 결정짓는 헌신의 재료가 된다. 이 엄격한 영적 질서를 깨닫지 못하면 신앙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8&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9&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3. 온전한 믿음 없이 행위와 봉사로 구원의 확신을 대체하려는 신앙은 왜 위험한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10&quot;&gt;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제와 속건제의 완벽한 대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한 구원을 인간적인 행위로 채우려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예수의 피가 내 모든 죄와 저주를 씻어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 헌금을 남들보다 과도하게 바치거나 주방 봉사, 차량 안내 등 육신적인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환심을 사서 천국행 티켓을 얻어내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1&quot;&gt; 그러나 이것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가 그토록 맹렬하게 정죄했던 율법주의적 행위구원론의 전형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 주신 의무제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의 알량한 행위로 천국 문을 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십자가의 숭고한 보혈을 모독하는 행위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2&quot;&gt; 자원제에 해당하는 우리의 봉사와 헌신은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구원받기 위해 억지로 하는 봉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없다. 온전한 믿음 없이 행위로 구원을 때우려는 자는 결국 구원이라는 본질도 놓치고 천국의 상급조차 쌓지 못하는 비참한 영적 파산자가 되고 만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뼈저리게 고백하며, 그 은혜에 빚진 자로서 기쁨으로 자원제를 올려드리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2&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1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4. 죄를 사함 받는 속죄제와 배상을 요구하는 속건제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14&quot;&gt;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무제인 속죄제와 속건제는 그 영적 적용에 있어서 명확한 차이를 지닌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4&quot;&gt; 먼저 &#039;속죄제&#039;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원죄와 자범죄를 짐승의 피로 덮어, 죄의 삯인 사망 즉 지옥의 둘째 사망을 면제받게 하는 제사다(계 2:11). 속죄 제물이 죽음으로써 헌제자의 죗값이 탕감되는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5&quot;&gt; 그러나 &#039;속건제&#039;는 단순한 죽음과 피 흘림으로 끝나지 않는다&lt;strong&gt;. 속건제는 속죄제에다가 배상을 더한 제사이다. 즉 속건제는 이웃의 물건을 훔치거나 착취했을 때, 혹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성물(십일조나 첫 열매 등)을 도둑질했을 때 드리는 철저한 배상의 제사를 가리킨다&lt;/strong&gt;. 율법은 이 죄를 범했을 때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제물로 바칠 뿐만 아니라, 본래 끼친 손해액에 5분의 1, 즉 20퍼센트의 이자를 더하여 당사자나 제사장에게 직접 변상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규정한다(레 6:4-5).&lt;/p&gt; &lt;p data-path-to-node=&quot;16&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레 6:4-5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lt;/span&gt;&lt;/strong&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17&quot;&gt; &lt;strong&gt;&#039;속죄제&#039;가 생명을 살리는 사면장이라면, &#039;속건제&#039;는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실질적인 저주와 고통을 끊어내는 배상 청구서의 지불&lt;/strong&gt;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이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해놓고도 입술로만 회개했다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물리적인 배상을 하려는 속건제의 정신이 결여된 회개는, 영적 세계에서 결코 온전한 죄 사함의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반쪽짜리 기만에 불과하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17&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18&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5. 신약의 삭개오 사건은 구약의 속건제 영적 원리와 어떻게 완벽하게 연결되는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19&quot;&gt; 구약에 명시된 &lt;strong&gt;이 속건제의 율법적 원리가 신약 시대에 와서 폐지된 것이 아님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사건&lt;/strong&gt;이 바로 &lt;strong&gt;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회심&lt;/strong&gt;이다(눅 19:1-10).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개오는 로마 제국의 권력을 등에 업고 동족들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매국노이자 죄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날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집에 주님을 모셔 들인 후, 군중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0&quot;&gt; 그는 &quot;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quot;(눅 19:8-9)라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의 속건제가 요구하는 배상의 원리를 자신의 삶에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적용한 것이다. 말로만 주님께 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착취한 자들에게 직접 재물을 털어 변상하겠다는 속건제의 영적 헌신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1&quot;&gt; 이 처절한 배상의 선언을 들으신 직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참된 생명의 구원이 임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셨다(눅 19:8-9). 이것은 &lt;strong&gt;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억울하게 만든 죄에 대해, 철저한 배상과 돌이킴이 없이는 참된 영적 해방과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엄중한 진리를 신약의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위대한 구속사의 명장면&lt;/strong&gt;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2&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19:8-9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22&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2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참히 채찍에 맞고 고난당하셔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24&quot;&gt; 여기서 우리는 &lt;strong&gt;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 지닌 거대한 비밀 하나&lt;/strong&gt;를 마주하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지옥 형벌을 면하게 하시는 속죄 제물로만 오셨다면, 그분은 그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사명을 완성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구약의 어떤 속죄 제물도 제단에 바쳐지기 전에 수십 대의 채찍에 맞거나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문을 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골고다를 오르시기 전 로마 병정들에게 120대의 가혹한 채찍을 맞으시며 온몸이 걸레 자락처럼 찢기시는 고난을 당하셔야만 했는가?&lt;/p&gt; &lt;p data-path-to-node=&quot;25&quot;&gt; 그 해답은&lt;strong&gt; 예수님이 속죄 제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를 갚아주시는 완벽한 속건 제물로 오셨기 때문&lt;/strong&gt;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라고 명확히 예언했다(사 53:10).&lt;/p&gt; &lt;p data-path-to-node=&quot;26&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27&quot;&gt;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범죄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육신의 질병과 가난, 삶의 무서운 징계라는 빚을 예수님이 당신의 살을 찢어가며 대신 변상해 주신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처럼, 주님의 무참한 채찍질과 고난은 철저히 내가 치러야 할 속건제의 배상금을 당신의 피와 땀으로 지불하신 창조주의 숭고한 자기희생이었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27&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28&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7. 예수님이 저주를 담당하셨음에도 성도들의 삶에 질병과 가난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29&quot;&gt;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토록 철저하게 속건 제물이 되사 우리의 질병과 가난의 저주를 모두 담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이 여전히 파킨슨병, 조현병, 암과 같은 불치병에 시달리며 극심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속건제의 배상금이 십자가에서 지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그 은혜를 자신의 현실로 끌어오는 합법적인 영적 스위치를 켜지 않았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30&quot;&gt; &lt;strong&gt;그 스위치는 바로 &#039;자백과 회개&#039;&lt;/strong&gt;다. 우리의 조상들은 과거 양반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수많은 소작농을 착취했고, 여종들을 성적으로 유린했으며,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성물을 도둑질하여 우상 앞에 바쳤다. 이러한 무자비한 착취와 폭력의 죄악은 억울하게 죽어간 원귀들과 악한 영들이 우리 가문과 육체 속에 합법적으로 진을 치고 들어오게 만든 거대한 영적 파이프 라인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31&quot;&gt; 고로 예수의 피가 내 몸에 적용어 악한 영들을 쫓아내려면 반드시 내가 입술을 열어 과거의 지은 죄악들을 낱낱이 시인하고 회개해야만 한다(요일 1:9). 내가 입을 닫고 조상들의 죄를 방관하고 있으면, 내 몸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가난과 질병의 영들은 쫓겨날 이유가 없다며 완강하게 버티고 서서 계속해서 내 인생을 갉아먹는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십자가의 치유는 결코 자동 반사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32&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32&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3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8. 가문에 흐르는 끔찍한 저주를 끊어내고 참된 회복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34&quot;&gt; 수백 년간 내려와 내 뼈와 혈관 속에 들어있는 끔찍한 질병과 가난의 저주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당장 영적인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입술의 반성이나 넋두리 같은 기도만으로는 내 몸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거대한 귀신들의 군대를 절대 쫓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35&quot;&gt; 이를 위해서는 &lt;strong&gt;가장 먼저, 내가 이웃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착취한 죄를 기억해내고, 당장 그 당사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내가 입힌 물리적인 손해를 배상해야&lt;/strong&gt; 한다. 이것이 삭개오가 보여준 참된 속건제의 영성이다. 그러나 만약 조상들이 지은 죄악이거나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나 배상할 길이 막막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약의 율법은 배상할 &#039;당사자&#039;나 &#039;친척&#039;이 없으면 그 죗값을 &#039;여호와&#039;께 드려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명시하고 있다(민 5:8).&lt;/p&gt; &lt;p data-path-to-node=&quot;36&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5:8 만일 죗값을 받을 만한 친척이 없으면 그 죗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숫양과 함께 돌릴 것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data-path-to-node=&quot;37&quot;&gt;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가 취해야 할 결단은 분명하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피 토하는 심정으로 회개 기도문을 읽으며 가문의 죄악을 씻어내야 한다. 당사자에게 배상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내 눈물과 정성을 담은 속건의 예물을 올려드리며 주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속건의 회개 제단이 온전히 쌓아질 때, 내 삶을 옥죄던 질병의 영과 가난의 영은 비명을 지르며 떠나가고, 닫혀 있던 하늘의 축복과 형통의 문이 폭발적으로 열리게 될 것이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37&quot;&gt; &lt;/p&gt; &lt;h3 data-path-to-node=&quot;38&quot;&gt;&lt;span style=&quot;color: #34495e;&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 data-path-to-node=&quot;39&quot;&gt; 우리는 구약의 5대 제사 중 의무제와 자원제의 궁극적인 차이를 깨닫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건 제물로 고난당하심으로써 우리의 육신적 저주와 가난을 완벽하게 탕감해 주셨다는 가슴 벅찬 진리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지옥을 면하게 하시는 속죄 제물이심과 동시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채찍과 징계를 당신의 온몸으로 받아내어 우리에게 평화와 치유를 안겨주신 영원한 속건 제물이셨다. 이 거대한 십자가의 은혜를 값싼 종교적 수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lt;/p&gt; &lt;p data-path-to-node=&quot;40&quot;&gt; 신앙은 율법적 행위로 구원을 얻어내려는 헛된 발버둥이 아니며, 입술로만 믿는다고 떠들며 삶의 빚을 갚지 않는 뻔뻔한 위선도 아니다. 우리를 위해 살점 하나까지 다 내어주신 주님의 속건제 사랑 앞에 엎드려, 매일매일 내 혈관 속에 흐르는 조상들의 우상 숭배와 착취의 영들을 가차 없이 씻어내야 한다.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배상의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 앞에 정성 다한 눈물과 회개의 예물을 올려드려 끈질긴 질병과 가난의 사슬을 영원히 끊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가올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짓밟고, 새 예루살렘 성의 눈부신 보좌 곁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찬란한 이기는 자로 우뚝 서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4월 19일(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구약의 &lt;/span&gt;&lt;strong&gt;속건제&lt;/strong&gt;&lt;span&gt; 개념을 통해 &lt;/span&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lt;/strong&gt;&lt;span&gt;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lt;/span&gt;&lt;strong&gt;참된 회개와 보상&lt;/strong&gt;&lt;span&gt;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일반적인 속죄제가 죄 자체를 사함 받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타인에게 입힌 &lt;/span&gt;&lt;strong&gt;실질적인 손해를 배상&lt;/strong&gt;&lt;span&gt;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하는 의무제임을 설명합니다. 특히 이사야서 예언을 근거로 예수께서 단순한 죽음을 넘어 &lt;/span&gt;&lt;strong&gt;채찍에 맞으심&lt;/strong&gt;&lt;span&gt;으로써 인류의 질병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lt;/span&gt;&lt;strong&gt;완전한 속건 제물&lt;/strong&gt;&lt;span&gt;이 되셨음을 역설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은 입술의 고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착취나 잘못을 &lt;/span&gt;&lt;strong&gt;물질적·심령적으로 보상&lt;/strong&gt;&lt;span&gt;하려는 구체적인 행위가 뒤따를 때 비로소 삶의 저주가 끊어지고 온전해질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예수님 #속건제 #대속 #레위기 #예배 #기독론 #은혜 #구원 #회개 #배상 #저주 #질병 #가난 #교회 #믿음 #십자가 #삭개오 # isaiah53 #인류&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f51b98c133a6f2f9fd4b6b5cae37c9f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f51b98c133a6f2f9fd4b6b5cae37c9f0.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b53d1f135a1cb09b1295840301af1b5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b53d1f135a1cb09b1295840301af1b52.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57bdb67c26a21ff7a80dfdec5df219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57bdb67c26a21ff7a80dfdec5df2194.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0f453fff4ccff896eaf4d8aee627bd4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0f453fff4ccff896eaf4d8aee627bd4e.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813553c0d7eca6040b65f428166af82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813553c0d7eca6040b65f428166af829.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72e791aca83227ab804571ecf66049a6.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72e791aca83227ab804571ecf66049a6.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ebb7c6e169f8833c8c6e9aa4b9113db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ebb7c6e169f8833c8c6e9aa4b9113dbb.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0ddcf6a80274f2e314ea31b7b3e9b091.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0ddcf6a80274f2e314ea31b7b3e9b091.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86202f37195567907fec3d1a67c4b14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86202f37195567907fec3d1a67c4b143.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4a7d25bb8ee5db7c0afaf3cdb6c3bf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4a7d25bb8ee5db7c0afaf3cdb6c3bf5.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e241b604ca0f3c8b9fc2b08edcdc1d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e241b604ca0f3c8b9fc2b08edcdc1d8.webp&quot; alt=&quot;The_Guilt_Offering_Mystery_(2).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d4e8a5a37328fb725f42bd406b55be6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d4e8a5a37328fb725f42bd406b55be69.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b711b796b062d19b51e034a8d818b08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b711b796b062d19b51e034a8d818b08e.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80a345f22bf65b3129474d9a89d518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80a345f22bf65b3129474d9a89d5189.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1838aa34f691c496778cdbfd4a98c4ba.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1838aa34f691c496778cdbfd4a98c4ba.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20c74fab8af5d39ff8816668171d55fc.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20c74fab8af5d39ff8816668171d55fc.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f8eb370857cf618dda81e015fc3ae4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f8eb370857cf618dda81e015fc3ae4d.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a438c31e0da565607dad37facad996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a438c31e0da565607dad37facad9963.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7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61b4fb90263d5e3cbd41feeaad6738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a61b4fb90263d5e3cbd41feeaad6738e.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8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91f8c38a52b3861b269113b5149c3d32.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91f8c38a52b3861b269113b5149c3d32.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9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365a997c72ffc6cbcabbbcfed5f1de5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365a997c72ffc6cbcabbbcfed5f1de50.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10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2cffd8f32a6fabd460de2d7b189156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41/246/c2cffd8f32a6fabd460de2d7b189156d.webp&quot; alt=&quot;Jesus_the_Guilt_Offering.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category>예수님</category><category>속건제</category><category>대속</category><category>레위기</category><category>예배</category><category>기독론</category><category>은혜</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배상</category><category>저주</category><category>질병</category><category>가난</category><category>교회</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십자가</category><category>삭개오</category><category>isaiah53</category><category>인류</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6341</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46341#comment</comments>			<pubDate>Mon, 20 Apr 2026 19:58:59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