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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일찬양예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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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6 Aug 2026 09:35: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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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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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6-08-02(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57)] 이사야의 예언(17)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이사야 7: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CLeC3sFTao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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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6-08-02(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57)] 이사야의 예언(17)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lt;/strong&gt;&lt;/span&gt;(이사야 7: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LeC3sFTao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LeC3sFTao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5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가 예언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아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심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세상 이야기와 철학과 예화만 듣고 정작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믿음의 대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 예수님을 알아야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분의 이름과 권세로 악한 영을 대적할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그분 안에 있는 구원의 풍성함을 실제로 누리며 감사와 헌신도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들을 때에는 귀를 막고 의심과 불신을 일으키는 영을 내보내야 한다. 손을 귀에 대고 성령의 불로 태워 달라고 선포하며 &amp;ldquo;뚫릴지어다&amp;rdquo;라고 명령하는 것도 실제적인 영적 훈련이다. 회개가 쌓일수록 성령의 불이 귀를 막는 영을 태우고 말씀을 깨닫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lt;strong&gt;메시야의 신분을 아홉 가지 방면&lt;/strong&gt;으로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태어나시고, 무엇을 행하시며, 천국에 들어가신 뒤 어떤 일을 이어 가실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분에 관한 예언이 그분이 누구신지를 보여 준다면, 사역에 관한 예언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보여 준다. &lt;strong&gt;메시야의 생애는 그분 한 분의 전기가 아니라 우리의 죄 사함과 생명과 자유와 영원한 상속에 직접 연결된 구원의 역사&lt;/strong&gt;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무엇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모르면 기도와 헌신도 복을 얻기 위한 노동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행하신 일을 깨달으면 감사가 먼저 일어난다. 또한 예수께서 사탄의 일을 멸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신 일을 우리도 이어 행하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 성도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가 사람으로 나타나시기 약 칠백 년 전에 그분의 신분뿐 아니라 탄생과 공생애의 성격까지 미리 보여 예언하였다. 이 예언을 살피는 목적은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다. 메시야가 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으며, 그 사역이 우리의 믿음과 자유의지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아홉 가지 신분을 돌아보고, 메시야의 첫째와 둘째 사역 예언이 우리의 속죄와 구원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이루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그동안 함께 나눈 이사야 예언 속 메시야의 9가지 신분은 무엇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증언한 메시야의 신분은 어떠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그중에서 메시야의 &lt;strong&gt;첫째 신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43:10-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나란히 존재하던 별개의 제2의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으로 나타나신 분이다. 그분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도 아버지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다. 다만 구약 시대에는 아들로 출현하여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 감추어져 계셨고, 때가 차자 육신을 입고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요 1: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들의 탄생은 아들의 존재가 처음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아들로 출현하신 사건이다. 구약에서 아들이 이미 아버지 곁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했다고 보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존재하셨으나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비로소 보이는 아들로 나타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분의 &lt;strong&gt;둘째 신분은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lt;/strong&gt;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칭호는 역사의 시작과 끝을 홀로 붙들고 계신 여호와의 칭호다(사 41:4, 44:6, 48:12). 메시야는 단지 역사 중간에 등장한 위대한 교사가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계시고 모든 경륜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메시야 &lt;strong&gt;셋째 신분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희년을 선포하시는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61:1-4). 인간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건질 구원자는 피조물 가운데 나올 수 없다. 여호와께서 친히 구원자로 오셔서 이전에 없던 새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래서 그분은 희년의 선포자로 오신다고 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그분의 &lt;strong&gt;넷째 신분은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lt;/strong&gt;이다(사 9: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예언은 연약한 육신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다섯째 신분은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오신 분&lt;/strong&gt;이다(사 9:7, 11:1).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셔서 약속된 왕권을 잇지만, 그분의 통치는 인간 왕들의 불의와 달리 의와 공의로 세워진다. 그분은 다윗 왕의 계보를 완성하는 참된 왕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그분의 &lt;strong&gt;여섯째 신분은 고난받는 의로운 여호와의 종&lt;/strong&gt;이다(사53장). 그분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허물과 질고를 담당하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고난받으신다.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일곱째 신분은 참된 목자&lt;/strong&gt;이시다(사40:11). 삯꾼처럼 양을 버리지 않고 잃은 양을 찾아 품에 안으며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다. 그리고 그분의 &lt;strong&gt;여덟째 신분은 다시 오실 재림주이자 심판자로서 만왕의 왕이자 만 주의 주&lt;/strong&gt;이시다(사 3:13, 4:4, 11:3-4, 63:1-6, 66:16). 초림 때에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낮아지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과 권세 가운데 나타나신다. 마지막으로 &lt;strong&gt;아홉째 신분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이&lt;/strong&gt;이시다(사 65:17-25, 66:22-24). 재림주는 악을 그대로 두지 않고 사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며 의로운 나라를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아홉 가지는 서로 떨어진 칭호가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기와 아들로 오시고, 다윗의 후손인 의로운 왕과 고난받는 종과 참된 목자로 사시며, 마침내 재림주와 심판자로 나타나시는 하나의 구원 경륜이다. 메시야의 신분을 바르게 알아야 그분의 사역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신 예수만 보면 그분의 속죄 능력을 놓치고, 하나님이신 예수만 말하면서 그분이 실제 육체로 고난받으신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이 모든 신분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성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이어서 이사야는 메시야가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과 더불어 그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서도 풍성하게 예언을 하였다. 메시야는 이 땅에 태어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 또한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속죄를 이루고,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부활과 승천 뒤에도 구원의 일을 계속하신다. 그리고 재림하시어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가실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 및 성경 전체의 예언을 쭉 살펴보면, &lt;strong&gt;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모든 사역&lt;/strong&gt;은 크게 두 방향으로 모인다. &lt;strong&gt;하나는 하늘의 반역자인 사탄 마귀를 처단하는 일&lt;/strong&gt;이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일&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메시야는 사탄을 멸하러 이 땅에 오신다&lt;/strong&gt;. 사탄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을 죄와 사망 아래 묶어 놓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단지 좋은 교훈을 들려주는 선생으로 오실 수 없었다. 그분에게는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리고 포로 된 자를 풀어 주는 왕의 권세가 필요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 것은 주변적인 기적이 아니라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는 메시야 사역의 본질이다. 이 일을 위하여 그분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사 61:1, 행10:3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 이어서 메시야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오신다&lt;/strong&gt;. 이때 메시야는 인류 구원을 위해 또 다시 2가지 일을 하시는데, 하나는 속죄 사역이요 또 하나는 생명 분배다. 먼저 속죄는 아담의 타락 이후 죄와 사망 아래 놓인 인간을 죄짓기 전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가리킨다. 이 일을 위해 죄 없는 메시야가 흠 없는 어린양으로 되셔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담당하셔야 했다. 그러나 죄를 없애는 것만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모두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그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영생해야 했던 목적도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믿는 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 주시고 있다(고전 15: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amp;#39;속죄&amp;#39;는 빚을 없애는 일이고 &amp;#39;생명 분배&amp;#39;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단지 벌을 면한 죄인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자녀가 되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상속자가 된다.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신 까닭은 우리를 타락 이전의 상태로 복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처음 창조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생명과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함이다. 메시야의 생애와 사역이 곧 우리의 밝은 미래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말씀에서 살펴보는 메시야의 열 가지 사역 예언 가운데 &lt;strong&gt;첫째는 처녀의 몸에서 죄 없이 태어나시는 것&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행하시는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첫째는 인류를 위한 흠 없는 속죄 제물의 자격과 연결&lt;/strong&gt;되고, &lt;strong&gt;둘째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능력과 연결&lt;/strong&gt;된다. 나머지 사역들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먼저 이 두 예언만 바르게 알아도 메시야의 탄생과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 구원과 얼마나 직접 연결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첫 번째 사역 예언에서 메시야는 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는가?(사 7:14)&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첫 번째 예언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이다(사 7:14). 그래서 진짜 메시야는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메시야의 처녀 탄생은 우연한 것도 아니며 뭇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만든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할 흠 없고 점 없는 속죄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필연적이고도 부득이한 조치였다(벧전 1:18-19). 죄인이 다른 죄인의 죗값을 대신 담당할 수 없으므로, 메시야는 참사람으로 태어나시되 죄가 없는 분이어야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뱀을 심판하시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메시야는 남자의 씨가 아니라 여자의 씨로 오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사야 7장 14절은 그 여자가 바로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라고 추가적으로 에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갑자기 만들어진 어떤 교리가 아니라 창세기의 최초 약속을 이루고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구원자가 오시는 길로 준비된 것이었다(창 3: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실제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마리아가 적임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곘느냐고 천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이 그녀 위에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없던 사람도 만드시는 전능자의 초자연적인 창조 능력이라면 처녀의 태중에 거룩한 몸을 조성하는 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잉태는 남자의 씨가 들어가서 된 자연적인 수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의 역사였다(눅 1: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사람이 죄인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 죄라는 어떤 것이 사람의 육체의 DNA 속에 들어가서 유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역사적 사실인 것이지 몸에서 떼어 내거나 장소를 옮길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된 본성이 유전자 속에 들어감으로 죄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어거스틴이다. 그런데 그의 원죄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마리아의 육체를 취하신 예수님도 결국 죄의 DNA를 물려받았다고 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만다. 고로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바, 죄의 유전이라는 방식으로는 예수님의 무죄한 잉태를 설명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사람은 어떻게 죄인으로 태어나는가? 그것은 생명이 잉태되어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에 악한 영들이 침투해서 들어간 후에, 그 영들의 유혹을 따라 자기가 스스로 자유 의지로 죄를 지음으로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예수님에게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임하여 뱀들과 귀신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된 상태였다. 고로 아기 예수께서는 마리아로부터 육체를 취하셨지만 악한 영으로부터 보전되셨고, 태어나신 뒤에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죄를 짓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 끝까지 흠 없이 사신 것이다(고후 5: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참고로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아이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스스로 죄를 선택할 기회 없이 죽은 아이는 어머니의 믿음에 따라 그 다음에 들어갈 장소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믿는 어머니의 아이는 천국의 양육 처소에서 자라지만, 불신자의 아이는 생명을 받지 못한 상태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믿음과 가족 전도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께서는 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서야 했는가? 베드로는 이에 대해 사람이 은이나 금으로 대속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속죄는 피로 이루어지고, 그 피를 드릴 어린양에게는 흠이 없어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죄 없이 잉태되셨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서&amp;nbsp;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없이 보호받고 사셨다. 그래야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할 자격을 가질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기독교를 신비하게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어떤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실제로 구원할 대속자의 자격을 갖추게 한 하나님의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아야 한다(벧전 1: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1:18-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두 번째 사역 예언에서 메시야는 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는가?(사 61:1-4)&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다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마 3:16-17, 눅 4:16-21). 성령은 한 번 받으면 다시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잉태와 성장의 과정에서 성령의 보호와 충만을 입으셨지만, 다시 서른 살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공적인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고로 우리도 한때 성령을 받고 방언했던 과거의 신앙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1장에서 메시야에게 임한 기름부음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다(사 61:1-4). 또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과 기쁨의 기름과 찬송의 옷을 주며, 오래 황폐했던 곳을 다시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 성령의 기름부음은 개인의 황홀한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치유와 자유와 회복을 실제로 이루기 위한 능력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1:1-4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께서 공생애 전에도 과연 귀신을 쫓아내셨을까? 그러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두루 다니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행 10:38).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적인 축사 사역은 아마도 요단강의 기름부음을 받은 뒤에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 사역은 성육신하셨다는 신분만으로 자동 실행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과 함께 펼쳐졌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예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행하신 일들을 보면, 먼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셨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내적 치유를 가리킨다. 그리고 포로 된 자와 갇힌 자를 놓아주는 것은 사탄과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질병과 억압과 결박 뒤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꼬부라져 펴지 못하던 여자를 사탄에게 매인 자라고 언급하신 뒤에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 주신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주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눅 13:10-17). 더욱이 설교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하셨다(마 12:28). 그러므로 귀신을 쫓는 일을 복음과 떼어 내서도 안 되고, 축사가 빠진 반쪽 복음을 가리켜 온전한 복음이라고 말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는 왕으로서 사탄의 포로를 해방하고, 선지자로서 복음을 가르치며, 제사장으로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신다. 우리도 먼저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이 사역을 이어 가며 정품 복음을 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사역을 갈릴리에서 하셨을까? 보통 성공을 위해서 일을 시작한다면 예수께서도 역시 예루살렘의 중심부로 가셔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사역의 주된 장소로 선택하지 않으시고 멸시받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곧 이방의 갈릴리로 가셔서 사역하셨다. 그런데 이것도 이사야의 예언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시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사 9:1-2).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귀신에게 눌린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의 길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고 있는 지역으로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 역시 돈과 지위 혹은 가문을 보고 사람을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주의 종들은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고 아무 배경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며 주께 나오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찾아오는 사람을 결코 내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유명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능력이 아니라 흑암에 앉은 사람에게 빛을 비추고, 상한 사람을 일으키며,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메시야에게 임할 성령의 일곱 가지 방면은 무엇인가?(사 11:1-2)&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1). 고로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오는 가지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다. 그리고 그분 위에는 여호와의 영이 강림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2). 고로 이 한 구절 안에는 메시야의 인격과 사역을 충만하게 하는 성령의 일곱 가지 방면이 들어 있다. 곧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총명의 영, 모략의 영, 재능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장차 태어날 메시야 위에 부어지는 것이다. 그럼, 각각의 7가지 성령의 특징은 무엇인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는 그 영은 여호와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나머지 모든 역사의 근원은 여호와 자신에게서 나온다. 메시야는 자기 생각과 인간적인 재능으로 사역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이 임한 가운데 말씀하고 행동하신다. &lt;strong&gt;둘째는 그 영은 지혜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 경륜을 바르게 보고 여러 사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결하게 한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면 기록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시대를 향한 뜻을 발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그 영은 총명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총명은 들은 말씀을 이해하고 복잡한 영적 원리를 분별하여 다른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다. 성령께서 총명을 주시면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사건과 영적 현상을 연결하여 그 작동 원리를 밝힐 수 있다. 필자가 제사 때마다 졸았던 경험을 돌아보며 제사의 영이 사람에게 졸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아 설명한 것도 이러한 총명의 영이었던 성령의 역사에 기인한다. 어렵게만 들리던 영의 세계를 실제 경험과 연결하면 성도들이 한 번 듣고도 기억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그 영은 모략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여기서 모략은 악한 꾀가 아니라 사람에게 하나님의 길을 조언하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상담과 지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회개하고 싸워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리고 &lt;strong&gt;다섯째는 재능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재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을 실제로 이루어 내는 능력이다. 메시야는 선한 조언만 주는 분이 아니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포로를 풀어 주는 권능으로 말씀을 실현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여섯째로 그 영은 지식의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이는 세상 정보를 많이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영적 세계를 바르게 아는 지식이다. 무엇이 하나님께 속했고 무엇이 사탄에게서 왔는지를 분별하며, 구원의 길과 천국의 실제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일곱째로 그 영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lt;/strong&gt;이라고 했다. 아무리 지혜와 총명과 능력이 많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은사는 자기 자랑과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은 모든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용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도 이 일곱 방면의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지혜가 없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며, 악한 영을 대적할 능력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외함도 없다면 충만한 기름부음이라 하기 어렵다. 한 번의 체험을 자랑하는 데 머물지 말고 계속 회개하며 성령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경외함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온전하게 이어 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가, 인간의 믿음도 필요한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간은 자기 힘과 선행만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죄와 악한 영의 세력에 눌린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결박을 끊고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육체로 오셔서 피 흘려 속죄하시고 성령으로 생명을 주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람이 자랑할 공로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이라는 말이 인간에게 믿음과 회개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여 주시는 것이고, 믿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응답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이 &amp;ldquo;믿으라&amp;rdquo;, &amp;ldquo;회개하라&amp;rdquo;고 명령하는 것은 인간에게 믿고 회개할 수 있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이다. 만약 믿음까지 하나님께서 강제로 주사하듯 넣어 주셔야 한다면 믿으라는 명령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엡 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터는 인간의 의지가 죄에 완전히 사로잡혀 악을 행할 의지만 남고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찾을 의지는 전혀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예의지론을 이어받아 칼빈의 전적 타락 교리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강제로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은 믿거나 회개할 수 없다고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을 끝까지 밀고 가면 누구든지 믿고 구원받으라는 성경의 초청과 인간의 책임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은혜지만, 영생은 그를 믿는 자가 얻는다. 예수께서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신 것도 인간의 실제적인 응답을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에게만 믿음을 강제로 넣으신다면 &amp;ldquo;누구든지&amp;rdquo;라는 복음의 초청과 인간의 책임을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lt;strong&gt;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이 만날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의 믿음은 구원의 길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이미 마련된 은혜를 누릴 수 없다&lt;/strong&gt;. 그래서 구원을 말할 때 신인협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절반 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고 회개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를 비율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구십구 퍼센트라 해도, 인간이 내놓아야 할 일 퍼센트의 믿음과 의지를 없애서는 안 된다. 그 일 퍼센트가 공로라는 뜻은 아니다. 상한 갈대처럼 거의 꺾이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희미해졌어도, 주님을 찾고 구원받기 원하는 의지를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응답을 귀하게 여기시고 큰 은혜로 붙들어 살리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언젠가 강제로 회개시키실 것이라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무엇을 들을지, 누구를 따라갈지, 무엇을 지킬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회개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믿음을 지키며, 육체를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려고 힘써야 한다. 성경의 핵심을 분별하고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에 새기며, 지금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붙들어야 한다. 은혜는 책임을 없애지 않고, 믿음은 은혜를 자랑으로 바꾸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사 42:1-4, 마 12:17-21)&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성령을 받은 여호와의 종의 활동을 예언해 놓았다. 그때 메시야는 결코 외치거나 다투지 아니하며,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사 41:1-4). 장차 도래할 메시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끝내 세상에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상한 갈대란 이미 상처받고 휘어졌지만 완전히 끊어진 갈대는 아니다. 또한 꺼져 가는 등불도 불꽃이 매우 약해졌지만 아직 완전히 꺼진 등불은 아니다. 이것이 죄로 타락한 뒤에도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고 믿고 회개할 자유의지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사 4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루터의 노예의지론처럼 인간의 선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갈대는 이미 두 동강 나 땅에 떨어졌다고 해야 하고, 등불도 이미 꺼져 차갑게 식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가리켜 &amp;ldquo;상한&amp;rdquo; 갈대와 &amp;ldquo;꺼져 가는&amp;rdquo; 등불이라고 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죄와 귀신의 역사로 의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그대로 두면 마침내 끊어지고 꺼지겠지만, 육체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향할 마지막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그 연약한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않으신다. 상한 갈대에 붕대를 감아 다시 서게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기름을 보충하여 불꽃을 살리신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갈대를 온전히 고치거나 불을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남은 의지로 주님을 찾을 때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 회복시키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구원 안에서 만나는 두 요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자신의 사역으로 직접 성취하셨다. 병든 자들을 고치시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고, 다투거나 거리에서 소리를 높여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으셨다. 연약한 자가 믿음으로 다가오면 그 믿음을 붙들어 주셨고, 죄인이 회개하면 내치지 않으셨다. 마태는 이 모습을 보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한다(마 12:17-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17-21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 성도들은 회개를 뒤로 미루며 예정된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amp;nbsp; 겨코 갈고리로 사람을 끌어다가 강제로 무릎 꿇리고 혀를 움직여 회개시키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듣고, 죄를 깨달을 때 자백하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집중하여 기도할 기회를 받았으면 스스로 참여하고, 육체의 게으름을 이기며, 구원받고 상속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놓아야 한다. 계속 미루면 상한 갈대가 마침내 끊어지고 꺼져 가는 심지가 완전히 꺼질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유의지가 조금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높이기 위한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책임을 깨우는 말씀이다. 주님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약속은 이미 꺾여 가고 있음을 인정하게 하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약속은 지금 불꽃이 약해졌음을 보게 한다.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큰 위로를 준다. 아무리 죄가 많고 귀신에게 눌렸어도 육체의 생명이 있고 주님을 찾을 마음이 남아 있다면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님은 그 작은 의지를 붙드시고 구원을 이루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아홉 가지 신분과 메시야의 첫째&amp;middot;둘째 사역 예언이 우리 구원에 어떤 은혜를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기와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며, 다윗의 후손인 의로운 왕과 고난받는 종과 참된 목자로 일하시고, 다시 오실 재림주와 심판자가 되신다. 그분의 신분은 그분의 사역을 보증하고, 그분의 사역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누려야 하는지를 밝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신화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흠 없는 속죄 제물의 자격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어 죄 없는 육체를 조성하고 악한 영의 침입을 막으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채 흠 없이 사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의 죗값을 담당하셨다. 우리는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메시야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고치며, 사탄에게 포로 되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방면으로 충만하게 역사했다. 예수께서는 이 능력으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며 흑암의 갈릴리에 큰 빛을 비추셨다. 우리도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복음과 치유와 축사 사역을 이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회개의 응답을 요구하신다. 죄로 상한 갈대가 되었지만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고, 꺼져 가는 심지가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주님은 남아 있는 작은 의지를 꺾지 않고 성령의 은혜로 붙들어 다시 살리신다.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 강제적인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믿고 회개하며 주님께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알수록 그분의 은혜가 풍성해지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수록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말씀을 막는 영을 내보내고 귀를 열어 진리를 들어야 한다.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계속 구하며,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하신 일을 이어 행하며 이기는 자가 되고 천국의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한 갈대를 살리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이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4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애&lt;/strong&gt;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은혜를 설명합니다.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amp;nbsp;&lt;strong&gt;흠 없는 제물로서 처녀의 몸&lt;/strong&gt;을 빌려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일곱 가지 영으로&amp;nbsp;&lt;strong&gt;기름 부음을 받아&lt;/strong&gt;&amp;nbsp;마귀의 권세를 멸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주님이&amp;nbsp;&lt;strong&gt;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lt;/strong&gt;&amp;nbsp;자비로운 분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연약한 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만날 때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회개와 믿음을 통해&lt;/strong&gt;&amp;nbsp;예수님의 풍성한 사역에 동참함으로써 천국의 상급을 누리고 영적인 자유를 얻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ChatGPT Image 2026년 8월 4일 오후 10_11_07.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cdfd0535f7d9920ec6f0d73b758356e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37a4a8980e39dd38eeee05561ae063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1ec38b9fc5491dbfb927027bf577f7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5302ad074f8999636813ff2b62f22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07b9e27a37d753d7a65fc2b3d6d573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a244e91793dc9cbe46c9b215fa613c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e18eed1531fa648aa1b867ec3aedf1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6622276444b185c0aebd618fc85f7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7f197d171028770d233c15eb52f20d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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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572ef6438a1b533affac3559464f71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Promised_Messiah.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067f771f57a66f9e9c0660a084b1c0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이사야_예언_메시아_신분_사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e2512588999af950792fc14ddeb34e7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ba992eb01ba61725b5b7552701d263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57f30e209849740ae5b1c9d38974ca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bf0ac7543dead5e34376b39743ad7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df7323ad55f4a47ce238e8ee2315b2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a4bfe521e7ad58ffe9dd64d64d83f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27bcce892329fa893f944b8030272d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6621c0a1bec4425619f45e62bcfbf9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48fb8932f77ada4577ef970a3e2051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a93b6bb903f73f6420d83e89f9edcd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41d57d54f698404e8d805def6bc454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98cd1708d94d007de0d95505abb411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b996659466e67e8eb70644125f268b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7)] The_Messiah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20/263/c9600de8dc85bda1cad33e4e39a2f81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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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3620#comment</comments>			<pubDate>Tue, 04 Aug 2026 21:16: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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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54)] 이사야의 예언(14)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 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 9:6~7)_2026-07-26(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3093</link>
				<description>&lt;p&gt;2026-07-26(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54)] 이사야의 예언(14)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 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 9:6~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kpQSgU8Aa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kpQSgU8Aa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5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의 예언(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다시 오실 재림주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사 9:6-7)&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 들어간 성도에게는 지위와 신분이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간 뒤 노력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사는 이 땅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다. 사람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쌓은 순종과 충성과 수고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며, 그때에는 이미 정해진 지위와 신분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드리는 한 번의 예배와 한 사람을 살리는 전도와 한 번의 회개와 영적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주일을 거듭 빠지면 천국 집의 벽돌이 빠진 것처럼 집에 부끄러운 흔적이 남는다. 이것이 구원 자체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천국에서 받을 집과 영광에는 실제적인 차이가 있게 한다. 반대로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결신하게 하면 빠진 벽돌 하나가 다시 채워지는 것과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 예배와 전도와 충성은 추상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천국의 집과 신분과 상급을 준비하는 실제적인 재료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의 신분은 크게 네 종류&lt;/strong&gt;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섬기는 자이고, 둘째는 자기 집에서 섬김을 받는 주인이며, 셋째는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이고, 넷째는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함께 수행하는 자다. 이 네 신분 안에도 세밀한 차등이 더 있지만, 성경이 보여 주는 큰 질서는 이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천국의 섬김은 이 세상의 억압적 노동이나 비굴한 종살이와 다르다. 모두가 기쁨과 자원함으로 섬기지만 지위와 맡은 직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은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lt;/strong&gt;이시다(계 17:14, 19:16). 원문의 뜻을 살려서 번역한다면 그분은 &amp;#39;주들의 주이며 왕들의 왕&amp;#39;이시다. 이는 천국에 예수님 외에는 아무런 주인과 왕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 주와 왕 위에 예수께서 최고의 주와 왕으로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와 왕권을 나누어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심판하고 통치하게 하신다. 이십사 장로는 왕 노릇과 제사장 노릇을 함께하며, 십사만 사천의 이기는 자들도 각자 받은 신분에 따라 주인과 왕으로 섬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한 아기로 오신 메시야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며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했다(사 9:6-7). 초림의 예수께서는 겸손히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지만(슥 9:9, 막 10:45), 재림의 예수께서는 심판하고 통치하며 악한 세력과 싸우는 영광의 왕으로 오신다(계 19:11-18).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천국의 지위와 신분을 왜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하며, 천국 성도들의 네 신분이 어떻게 구별되고, 주들의 주와 왕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어떤 질서를 드러내며, 보좌와 왕&amp;middot;제사장의 직분은 무엇이고, 초림과 재림의 사역은 어떻게 다르며, 재림주와 함께 다스릴 영적 전사는 어떻게 준비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천국의 지위와 신분은 왜 이 땅에서만 준비할 수 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체를 입고 사는 이 기간은 영원한 신분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천국에 들어간 뒤에는 죄와 고난을 이기며 믿음을 증명할 기회가 더 이상 없다. 이 땅에서는 피곤함과 유혹과 반대가 있어도 예배할 수 있고, 자기 시간과 물질을 드려 다른 영혼을 섬길 수 있으며, 회개하고 악한 영과 싸울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선택이 천국에서 받을 집과 면류관과 기업과 직분을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성도들이 받게 될 상급은 사실 구원과 구별해야 &lt;/strong&gt;한다. 주일예배를 한 번 빠졌다고 곧바로 구원에서 탈락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와 그곳에서 어떤 집과 신분과 영광을 받는 문제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그의 충성한 정도와 다른 영혼을 살린 수고에 따라 집과 면류관과 보좌와 기업이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mp;ldquo;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amp;rdquo;는 태도는 영원한 세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중에서도 이 땅에서의 &amp;#39;예배&amp;#39;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동시에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행위다.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본 바에 따르면, 예배와 충성을 등한히 한 흔적은 천국 집에 실제로 나타난다. 주일을 빼먹을 때마다 천국 집의 벽돌이 하나씩 빠져 잘못되면 어느날 집 안이 훤히 드러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생긴다. 그러나 전도하여 한 영혼을 결신시키면 그 손실을 메우는 재료가 된다. 고로 다른 사람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자기의 영원한 집을 세우는 일이 든든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을 섬긴 자와 대접만 받으려 한 자가 천국에서 그들의 미래가 뒤바뀔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이방의 집권자처럼 권세를 부리려 하지 말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인자가 오신 목적도 섬김을 받는 데 있지 않고 섬기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마 20:25-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단지 이 땅에서 겸손하게 살라는 윤리적 권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에 천국의 장래 신분도 담겨 있다고 본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힘써 섬긴 사람은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위치로 올라간다. 반대로 늘 대접받고 부리기만 원했던 사람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 땅의 섬김이 천국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천국에서는 각 사람의 은사와 달란트에 알맞는 일(직업)이 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므로 피곤에 짓눌리는 노동같은 일은 결코 아니다. 취미 생활처럼 즐겁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찬양하고 연주에 수고했던 사람은 찬양과 연주하는 일로 일한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쳤던 사람은 말씀 사역으로, 영적 전쟁을 수행한 사람은 받은 권세로 성밖으로 나가서 통치한다. 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곳이 아니다. 이 땅에서 은사와 달란트를 기쁨으로 사용한 만큼 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직업이 주어지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예배와 전도와 회개와 충성을 통하여 장래 천국에서 받을 영원한 직분을 잘 준비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천국 성도들의 네 가지 신분은 어떻게 구별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과연 어떤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에 따르면 크게 4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신분은 섬기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서 다른 성도의 집에 찾아가 기쁨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천국에서 이들은 이 땅의 종처럼 멸시받거나 매를 맞는 존재가 아니다. 천국은 비굴함과 억압이 없으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섬기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섬김을 받는 위치와 다른 집에 가서 섬기는 위치에는 분명한 신분 차이가 있다. 이들은 예배드릴 때에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신분은 주인 노릇 하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는 자기 집을 가지고 그 집의 주인으로서 섬김을 받는 자들이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십사만 사천의 반열에 든 자들의 집에는 아침마다 섬기러 오는 이들이 있다. 십사만 사천 안에도 등급이 있으며, 모두가 똑같은 왕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자기 집의 주인으로서 섬김을 받는 이들이 있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는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들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확인한 사도 바울의 집은 약 삼천 평의 대지에 이천 평 규모로 올라간 열여덟 층의 집이며, 아침마다 천 명이 넘는 이들이 섬기러 온다. 이는 성경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내용이지만, 이 땅에서 다른 영혼을 위해 수고한 정도가 천국의 집과 섬김의 규모로 나타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참고로 십사만 사천의 배열 가운데 앞 여섯 줄은 왕 노릇 하는 반열로 보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신분은 왕 노릇 하는 자&lt;/strong&gt;다.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에게는 전보 다 보좌가 있고,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 심판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최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기업을 얻은 자들이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전쟁을 통하여 땅을 차지했듯이, 천국의 왕권도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건져 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 자에게 주어진다. 단순히 명예로운 호칭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신분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수행하는 자&lt;/strong&gt;다. 이 계층은 이십사 장로가 대표한다. 이들은 보좌에 앉아 왕으로 다스릴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기도를 올리는 제사장의 직분도 맡는다. 십사만 사천과 이십사 장로는 같은 집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십사 장로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그 뒤에 십사만 사천의 보좌와 그 위에 앉은 자들이 있다. 이십사 장로는 천국의 질서에서 왕권과 제사장직을 함께 가진 가장 높은 반열을 대표한다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십사만 사천을 특별히 &amp;#39;하나님의 종들&amp;#39;이라고 부른다.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과 바다와 나무를 해하지 말라고 하였고, 인침을 받은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다(계 7: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7:3-4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이스라엘은 이긴 자의 성격을 나타낸다. 십사만 사천은 각 족속 가운데서 뽑힌 이기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144,000 안에 들어가는가?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핀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린다면, 대부분 예정된 자라고 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이 땅에 보낸 주의 종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반열에 드는 사람은 매우 힘들고, 목회자들 중에서도 만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왕 노릇 하는 반열에 들 가능성은 매우 약해서 약 오 퍼센트 정도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 안에서 회개하고 충성하며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신분은 사람을 낙심시키기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천국에서의 자신의 삶을 좀 더 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집이 없는 자보다 집을 가진 자가, 섬기기만 하는 자보다 섬김을 받는 자가, 주인보다 왕이, 왕보다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가진 자가 더 큰 영광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이 땅에서 낮아져 섬기고, 다른 영혼을 살리며, 악한 영과 싸우고,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주들의 주&amp;middot;왕들의 왕은 천국의 어떤 질서를 드러내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만주의 주이며 만왕의 왕이라고 선포한다. 어린양을 대적하는 세력은 패하고, 주님과 함께 있는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계 17: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만주의 주&amp;rdquo;라는 말은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 &amp;ldquo;주들의 주&amp;rdquo;이고, &amp;ldquo;만왕의 왕&amp;rdquo;은 &amp;ldquo;왕들의 왕&amp;rdquo;이다. 천국에는 자기 집에서 주인 노릇 하는 여러 주가 있고,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여러 왕이 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주 위의 주이며 모든 왕 위의 왕이시다. 이 호칭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왕권과 함께 그분이 이기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천국의 질서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유일한 중심 보좌다. 그러나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고, 그 아래에 이십사 보좌와 십사만 사천의 보좌를 두신다. 왕권을 나누어 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왕권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보좌의 권세가 예수님에게서 나오며, 모든 왕이 그분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왕들의 왕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질서는 구약의 왕국과 제사장 제도에도 모형으로 나타났다. 왕국 안에는 왕과 관리와 백성과 종이 있었고, 성전 봉사에도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허드렛일을 맡은 자가 있었다. 아가서에 나오는 왕비와 후궁과 시녀의 구별도 천국 신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예표들은 천국에서 모두가 동일한 위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충성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지위와 직분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최고의 왕이시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구약에서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로 나타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오셨다. 시편은 영광의 왕이 강하고 능한 여호와이며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선포한다(시 24: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4:7-8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초림하셨지만 본래 영광의 왕이시다. 재림 때에는 그 왕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신다. 주님이 왕들의 왕이시므로 그분과 함께 왕 노릇 할 자도 반드시 주님께 복종해야 한다. 자기 영광을 위해 권세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왕권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들의 주와 왕들의 왕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찬양의 수식어가 아니다. 천국의 집과 보좌와 직분이 어떻게 배열되는지를 보여 주는 실제적인 계시다. 주인 노릇 하는 자도 예수님을 섬기고, 왕 노릇 하는 자도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통치하며, 이십사 장로도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천국의 모든 영광은 최고의 주와 왕이신 예수님에게서 나오고 다시 그분께 돌아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한다는 것은 어떤 권세를 뜻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 노릇 한다는 것은 보좌에 앉아 심판하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보좌는 단순히 명예롭게 앉아 있는 의자가 아니다. 왕이 공의와 정의로 판결을 내리고 맡겨진 영역을 다스리는 자리다. 시편은 여호와께서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시고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신다고 말한다(시 9: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9:7-8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제자들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19: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도 보좌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를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계 20: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왕권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죄 없는 성도들을 억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성 안에는 죄성과 악한 영이 없으므로 철장으로 다스릴 반역자가 없다. 왕들은 성 밖의 만국을 맡아 통치한다. 성 밖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더라도 충분히 회개하지 못하여 거역의 본성과 죄의 성향이 남은 이들이 있다. 왕들은 그들을 공의로 다스리고, 필요한 때에는 철장 권세로 징계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예언은 장차 메시야와 이기는 자에게 이어진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고 땅끝까지 소유로 주시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게 하신다(시 2:7-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이기는 자와 끝까지 자신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주님도 아버지께 받은 권세가 그러하다고 하셨다(계 2:26-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 성 밖의 만국은 성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 다니며,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을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 안에는 밤이 없고 성문도 닫히지 않지만, 속된 것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는 들어갈 수 없고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계 21:24-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4-27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은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며, 오늘의 거리로 약 이천사백 킬로미터에 이른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등불이시므로 그 거대한 성에서 나오는 빛이 성 밖의 만국까지 비춘다. 성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약해지며, 땅의 왕들은 성 밖을 다스리다가 자기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열린 성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필자가 설명한 성 안과 성 밖의 실제 공간 질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 노릇 할 자는 이 땅에서 먼저 자기 안의 거역을 회개하고 악한 영을 이겨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지 않은 자에게 통치할 기업을 맡길 수 없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대적을 물리친 뒤 땅을 기업으로 얻었듯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천국의 보좌와 통치 영역을 받는다. 보좌는 충성과 승리의 결과이며, 심판과 통치의 책임을 맡는 자리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이십사 장로는 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맡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십사 장로는 하나님 앞에서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수행한다. 왕의 직분은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 심판하는 것이며,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들은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들고 있다. 거문고는 찬양을,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나타낸다(계 5: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5:8-10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 직분은 성 안에서 예배드릴 때 수행된다. 이십사 장로는 자신에게 속한 마을의 성도들을 이끌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모아 올린다. 필자가 본 영적 세계에서 각 장로에게 속한 마을이 있고, 장로는 그곳 성도들의 기도를 수집하여 예배 때 주님께 드린다. 이 기도 사역은 지상 교회가 존재하고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유효하며, 지상의 경륜이 마쳐지면 찬양이 영원히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의 직분은 성 밖으로 나아가 수행된다. 이십사 장로는 자기에게 맡겨진 영역을 다스리고 심판한다. 성 안에서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올리고, 성 밖에서는 왕으로 만국을 통치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은 이 두 직분의 결합을 보여 준다(계 20: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도 왕과 제사장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통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엘르아살 제사장과 함께 기업을 분배했다. 왕권을 가진 자가 전쟁하여 얻은 땅 가운데 레위 지파를 위한 마흔여덟 성읍이 주어졌다. 갈렙도 자신이 받은 헤브론을 내어 주었다. 이는 왕이 기업을 확보하고 제사장이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국 질서의 모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십사 장로는 찬양과 기도에만 머무는 존재도 아니고, 통치만 하는 존재도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피조 세계를 향한 다스림을 함께 수행한다. 하나님께 받은 권세를 자기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예배로 돌려 드리며, 예배 가운데 받은 뜻을 따라 맡겨진 영역을 공의롭게 통치한다. 왕권과 제사장직이 하나로 묶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의 예배에는 각 마을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모든 성도가 모이는 예배가 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훈련한 찬양과 악기와 공연의 달란트를 천국에서도 사용한다. 필자가 본 바에 따르면 천국에는 찬양과 공연을 준비하는 공간들이 있고, 성도들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자신의 은사를 더욱 아름답게 사용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수고는 사라지지 않고 천국에서 맡을 직분과 섬김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은 전쟁과 예배를 함께 배워야 한다. 악한 영과 싸울 줄만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모르면 온전한 왕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예배만 드리고 사람을 악한 영의 손에서 건져 내는 전쟁을 외면해도 왕권을 준비할 수 없다. 이십사 장로의 직분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면서 그분의 뜻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완성된 사명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초림의 예수와 재림의 예수는 사역이 어떻게 다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초림과 재림의 두 방면으로 구별된다. 초림의 예수께서는 섬기러 오셨고, 재림의 예수께서는 심판하고 통치하러 오신다. 초림 때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낮아져 오셔서 죄인들을 품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재림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나타나 악한 세력을 심판하고, 자신과 함께 이긴 자들에게 왕권을 나누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한 아기로 태어나신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와 평강의 왕으로 불리며, 다윗의 왕좌와 나라에 군림하여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했다(사 9: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왕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 스가랴는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 겸손하여 나귀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다(슥 9: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 떼를 먹이고 어린양을 품에 안으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셨다. 그러나 같은 이사야의 예언 안에서 주 여호와는 장차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는 분이기도 하다(사 40:10-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40:10-11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의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의 예수께서는 눈과 귀에 들어오는 피상적인 정보로 판단하지 않고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신다.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며, 공의와 성실로 통치하신다(사 11: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11:3-5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3장은 에돔과 보스라에서 붉은 옷을 입고 큰 능력으로 오는 이를 보여 준다. 그는 공의를 말하고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며, 그 옷은 포도즙 틀을 밟는 자처럼 붉다(사 63: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3:1-2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고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예언은 요한계시록에서 피 뿌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오시는 재림주와 연결된다. 그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리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고,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19:11-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9:11-13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 비난과 조롱을 견디며 용서하신 것은 섬기는 종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악과 반역을 그대로 두지 않고 심판하신다. 겸손한 나귀의 왕과 백마를 탄 전쟁의 왕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역이다. 주님은 먼저 대속의 길을 여시고, 마지막에는 그 구원을 거부하며 악을 따르는 세력을 심판하여 자신의 나라를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재림주와 함께 다스릴 영적 전사는 어떻게 준비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주와 함께 왕 노릇 할 사람은 먼저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 왕권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진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기업을 얻었고 다윗이 주변 대적과 싸워 나라를 넓힌 것처럼, 오늘의 성도도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야 한다. 귀신을 쫓아낼 줄 모르고 영적 전쟁을 외면하면서 천국의 왕권만 바랄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로 묘사되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 간다(계 1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자신만 철장 권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도 그 권세를 나누어 주신다. 필자는 약 이 년 전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철장을 주시며 악한 영과 싸울 때 사용하라고 하신 영적 체험을 증언한다. 영의 세계에서 전투 사령관은 붉은 옷과 갑옷을 입고 방패와 칼과 활과 화살을 사용한다. 이는 성경의 직접 묘사와 필자의 영적 체험을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전사를 세우신다는 핵심은 분명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전사가 되려면 먼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성 밖으로 밀려나게 하는 거역의 본성과 죄성을 그대로 품은 채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 자기 안의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혈기와 불순종을 날마다 처리하고, 악한 영이 붙들 근거를 없애야 한다. 회개할수록 영혼의 빛이 밝아지고, 새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는 데 걸림이 없어지며, 주님이 맡기시는 영적 무기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깊이 배우는 일도 필수다. 이사야와 시편과 요한계시록을 따로 떼어 읽지 말고, 한 분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하여 이루시는 경륜 안에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나귀를 타신 초림주와 피 뿌린 옷을 입은 재림주, 목자와 심판자, 제사장과 왕, 성 안의 예배와 성 밖의 통치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는 사람이 마지막 전쟁에서 혼란 없이 주님의 명령을 따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자를 치면 양 떼가 흩어지므로 성도는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선 종은 악한 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함께 싸울 때 교회 전체가 전사로 세워지고, 더 많은 영혼을 악한 영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분량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목회자는 맡은 직분이 크므로 책임과 책망도 크며, 평신도는 자기 자리에서 충성할 때 칭찬과 상을 받을 수 있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은 찬양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으로, 축사 사명을 받은 사람은 영적 전쟁으로 주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언제 주님이 부르셔도 즉시 나설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 예배를 지키고 한 영혼을 결신시키며,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을 배우며, 악한 영과 싸우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천국에서 아름다운 집과 면류관과 기업을 받고, 재림주께서 아마겟돈 전쟁에 임하실 때 그분과 함께 싸워 승리하는 전사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시 오실 재림주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시며 이기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신분과 왕권을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천국의 지위와 신분은 영적 세계에 들어간 뒤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사는 지금 준비한다. 예배와 전도와 섬김과 회개와 영적 전쟁은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기업과 직분을 세우는 실제적인 재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는 섬기는 자와 주인 노릇 하는 자와 왕 노릇 하는 자와 왕&amp;middot;제사장 노릇 하는 자의 신분이 있다. 십사만 사천은 이기는 하나님의 종들이며, 이십사 장로는 별도의 높은 보좌에서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을 함께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주와 왕과 장로 위에는 주들의 주이며 왕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왕 노릇 한다는 것은 보좌에 앉아 심판하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왕들은 성 밖의 만국을 다스리며 주님께 받은 철장 권세를 사용한다. 제사장들은 성 안에서 찬양과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이 두 직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그분의 뜻으로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일이 하나임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의 예수께서는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오셔서 양 떼를 품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재림의 예수께서는 피 뿌린 옷을 입고 백마를 타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는 영광의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가 예언한 다윗의 왕좌와 영원한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요한계시록의 만왕의 왕 안에서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한다. 자기 죄와 거역의 본성을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며, 다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전도하고 섬겨야 한다.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건져 내는 영적 전사가 되고, 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협력하여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 이기고 그분의 나라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6일(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기독론의 관점에서&amp;nbsp;&lt;strong&gt;천국 내 지위와 신분&lt;/strong&gt;의 결정 원리를 다루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amp;nbsp;&lt;strong&gt;만왕의 왕이자 심판자&lt;/strong&gt;로 정의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신자들이 육체를 입고 있는 현세의 삶이 내세의 영원한 영광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역설하며, 천국의 계급을&amp;nbsp;&lt;strong&gt;섬기는 자, 주인 노릇 하는 자, 왕 노릇 하는 자, 그리고 왕과 제사장&lt;/strong&gt;의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영적 전쟁&lt;/strong&gt;에서 승리하여 악한 영을 제압하는 능력을 갖춘 자만이 천국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상위 신분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철장 권세&lt;/strong&gt;를 가진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나, 심판주로 재림하실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amp;nbsp;&lt;strong&gt;이기는 자&lt;/strong&gt;의 반열에 들 것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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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3093#comment</comments>			<pubDate>Mon, 27 Jul 2026 01:10: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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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8)] 이사야의 예언(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이사야 8:14, 28:16)_2026-07-19(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656</link>
				<description>&lt;p&gt;2026-07-19(일) 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48)] 이사야의 예언(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이사야 8:14, 28: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fuyFPywujH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uyFPywujH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 148 &amp;middot; 이사야의 예언 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이 질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성경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증언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별히 이사야서는 구약성경 가운데서도 가장 풍성하게 메시아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그분의 신분, 사역, 고난, 죽음, 부활, 승리, 재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까지 바라보며 예언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사야서는 흔히 &amp;lsquo;구약의 복음서&amp;rsquo;라고 불린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기록한다면, 이사야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미리 보여 준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또한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희년을 선포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의로운 왕이시다. 또한 고난받는 의로운 종이시며, 자데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시며 동시에 &amp;lsquo;깨뜨리는 바위&amp;rsquo;가 되신다&lt;/strong&gt;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돌&amp;#39;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다. 성경에서 돌은 기초, 견고함,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상징한다.&amp;nbsp;예수님께서도 자신을 &amp;#39;돌&amp;#39;에 비유하셨고(마21:42), 사도들도 예수님을 &amp;#39;돌&amp;#39;이라고 증언하였다(행4:11, 벧전2:6-8, 롬9:33, 엡2:20).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며,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위에 세워져야 할 영원한 기초가 되신다는 의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같은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초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과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는 것이다.&amp;nbsp;왜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돌이 되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신앙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시험한 돌이자,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돌을 믿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amp;nbsp;&amp;nbsp;그렇지만 이 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왜 예수님은 &amp;lsquo;돌&amp;rsquo;로 예언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amp;#39;돌&amp;#39;은 매우 특별한 상징성을 가진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썩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을 돌에 비유한다.&amp;nbsp;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돌은 건축물의 기초가 된다.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져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철학이나 종교 위에 세워지는 분이 아니라, 모든 구원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건축물의 재료가 되는 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기초라는 의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가장 귀한 보배로운 돌로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amp;nbsp;사람들은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고,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확증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구원의 기초이며, 모든 인생이 반드시 만나야 할 생명의 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왜 예수님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 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돌이시라는 표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표현은 &amp;lsquo;모퉁이의 돌&amp;rsquo;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모퉁이의 돌은 단순히 건물 한쪽에 놓이는 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건물 전체의 방향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석을 의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대 건축에서 모퉁이의 돌은 특별한 역할을 했다.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놓는 돌이며, 두 벽이 만나는 기준점이 되는 돌이다. 이 돌이 바르게 놓이면 건물 전체가 균형을 이루지만, 이 돌이 잘못 놓이면 건물 전체가 기울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돌이 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구원의 기준이 되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사상, 철학, 종교, 경험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신다는 의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돌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기초의 모퉁이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서두르게, 재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squo;기초돌&amp;rsquo;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amp;lsquo;핀나(פִּנָּה)&amp;rsquo;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이 단어는 모퉁이, 모퉁이 돌이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단순한 장식용 돌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탱하는 중심 돌로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신앙은 결국 흔들린다. 인간의 감정, 환경, 성공, 능력 위에 세워진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신앙은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amp;nbsp;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지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의 차이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건축물의 기초가 되신다. 그분 위에 세워진 삶만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라는 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돌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돌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집을 세우지만 어떤 사람은 그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amp;nbsp;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그 돌이라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건축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돌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amp;nbsp;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체계와 전통을 붙잡았고, 그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장 귀한 돌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경험, 지식, 교만한 생각을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면 결국 생명의 돌을 버리게 된다.&amp;nbsp;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가장 귀한 보배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amp;lsquo;깨뜨리는 바위&amp;rsquo;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amp;#39;모퉁이의 돌&amp;#39;이실 뿐만 아니라 &amp;#39;깨뜨리는 바위&amp;#39;가 되신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같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바위가 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이미 이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8: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squo;거치는 돌&amp;rsquo;과 &amp;lsquo;걸리는 반석&amp;rsquo;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말한다.&amp;nbsp;예수님은 본래 구원자로 오셨다. 그러나 사람이 그 구원자를 거부하면 그분은 오히려 심판의 기준이 된다.&amp;nbsp;빛이 찾아왔는데도 어둠을 사랑하면 그 빛은 자신을 정죄하는 증거가 된다. 의사가 찾아왔는데도 치료를 거부하면 병이 더 깊어지는 것과 같다.&amp;nbsp;예수님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완고함이 문제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이사야와 시편의 예언을 연결하여 예수님을 설명하였다.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보배로운 돌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은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amp;nbsp;결국 예수님 자체가 두 가지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한 구원자이시다. 다만 사람이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자신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있는지, 아니면 내 생각과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고백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amp;#39;돌&amp;#39;로 표현한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사도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표현하였다(벧전 2:5).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베드로 자신의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고백이었다.&amp;nbsp;베드로는 원래 &amp;#39;시몬&amp;#39;(들으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amp;#39;베드로&amp;#39;였다(요 1:4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헬라어로 베드로는 &amp;lsquo;페트로스(&amp;Pi;έ&amp;tau;&amp;rho;&amp;omicron;&amp;sigmaf;)&amp;rsquo;이다. 그리고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amp;lsquo;페트라(&amp;pi;έ&amp;tau;&amp;rho;&amp;alpha;)&amp;rsquo;이다(마 16:18). 두 단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amp;#39;페트라&amp;#39;는 크고 견고한 바위를 의미하고, &amp;#39;페트로스&amp;#39;는 그 바위에서 나온 작은 돌을 의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름을 주시면서 그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베드로 자신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16~1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고백, 곧 &amp;ldquo;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amp;rdquo;라는 고백이다.&amp;nbsp;교회는 사람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 훌륭한 지도자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반석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훗날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amp;lsquo;산 돌&amp;rsquo;이라고 증언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가 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기초가 되는 산 돌이시고, 성도는 그 돌 위에 연결되어 세워지는 살아 있는 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무할례자의 사도였던 바울도 역시 예수께서 한 편으로 구원얻는 이방인들에게는 교회를 건축하는 모퉁이 돌이 되셨지만(엡 2:20), 동시에 예수님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부딛히는 돌이자 거치는 바위가 되셨다고 언급하였다(롬 9:33).&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amp;nbsp; &lt;p&gt;롬 9:32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amp;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건물은 하나의 돌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기초석 위에 수많은 돌이 연결될 때 아름다운 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가 연결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건물, 조직, 프로그램, 사람의 능력을 먼저 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느냐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39;음부의 권세&amp;#39;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amp;#39;음부의 문들&amp;#39;이다. 이것은 죽음과 사탄의 세력을 상징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은 교회는 죽음의 권세를 넘어선다.&amp;nbsp;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회가 진정한 능력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서야 한다. 말씀을 의심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하면 반석 위의 교회가 아니라 모래 위의 집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예수님의 말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진리이다. 인간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결국 말씀 자체가 자신을 넘어뜨리는 돌이 될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받아야 하는 존재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돌로 받아들여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amp;nbsp;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 이 차이는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반응에 있다.&amp;nbsp;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그분은 생명의 반석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결국 심판의 기준이 된다.&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내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환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한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lt;/strong&gt;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돌을 붙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버림받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lt;/strong&gt; 된다. 세상의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는 음부의 권세(문들)를 이기는 삶을 살게&lt;/strong&gt; 된다.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것은 단순한 종교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결정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lt;strong&gt;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lt;/strong&gt;이다. 그분은 모든 구원의 중심이며, 모든 성도가 세워져야 할 영원한 반석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같은 돌이 믿는 자에게는 &amp;#39;보배&amp;#39;가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amp;#39;걸림돌&amp;#39;이 된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붙드는 영원한 반석이시며,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시는 구원의 돌이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모퉁이의 돌로 삼고 그분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19일(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의 예언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amp;nbsp;&lt;strong&gt;모퉁잇돌이자 깨뜨리는 바위&lt;/strong&gt;라는 이중적 상징으로 규명하며, 신앙의 본질이 주님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을 건축의 중심인&amp;nbsp;&lt;strong&gt;기초의 모퉁잇돌&lt;/strong&gt;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구원이 보장되지만, 그분을 배척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그 존재가 오히려 자신을 부수고 넘어뜨리는&amp;nbsp;&lt;strong&gt;걸림돌과 심판의 바위&lt;/strong&gt;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사도적 권위가 바로 이 &amp;#39;반석&amp;#39;과 같은 진리 위에 세워졌음을 설명하며, 성도는 지성적 판단보다&amp;nbsp;&lt;strong&gt;초자연적인 말씀의 권위&lt;/strong&gt;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영원히 변치 않는&amp;nbsp;&lt;strong&gt;기록된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lt;/strong&gt;, 회개와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파멸의 바위가 아닌 구원의 기초석으로 삼으라는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atGPT Image 2026년 7월 20일 오후 10_13_09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34f5073d000a12664e509319cff800b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atGPT Image 2026년 7월 20일 오후 07_54_26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178fdd09725e7abcea55d6be39a43e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d61b20677f3cad9173a9985f076a50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b0a7a8eb10e4766a6dad731420805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2a31d9ee89187ccada1f6ccd1cbc40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88fe23fbbb0eb14b1c7524c892f55b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e6b38d260b4c9e4ed5157c8dbc7661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3cccdb558b53970e7bb7f25b579175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94a54acefeecab40a5f18f2e4b43d5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504c8eda94e26fd7998e8622b88a48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4d9f87e700ed5d17cbcaae2ef3abfc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The_Eternal_Cornerston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8966868540c4c39814337308b225c20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예수_그리스도_구원과_심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cc9f014306d112b9b820e8d02b04a6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4bc5c3aa2e32fd52494424af1a37f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ba19f4108ae68eeaa5e0032659e104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b624d0989ec17f23ac4f102b6c9e35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6eb82916e6d8cfc89536b4550e6cde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d8bd23203f0aff28f7146f4f928018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f8400c86749c30efb8758e1e064f10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2214d92a5f785effa16706385c0d10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5a0a9bda7f2da72652489c620714d1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ab25a3a7c38bdcc896c00d0e8e757a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8)] Christ_the_Cornerston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656/262/f32007ab2734c5680f008958bad747ea.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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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42)]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주는 교훈(이사야 61:1~3)_2026-07-12(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link>
				<description>&lt;p&gt;2026-07-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42)]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주는 교훈(이사야 61: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UWJR1BjwG2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WJR1BjwG2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width: 100%;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나눔고딕, sans-serif; font-size: 10pt; line-height: 1.8; word-break: keep-all; overflow-wrap: break-word; } .article-title { font-size: 12pt; font-weight: 700; text-align: center; margin: 0 0 1.2em 0; padding: 0; } .section-title { font-size: 11pt; font-weight: 700; color: #38688c; margin: 0 0 0 0; padding: 0; } .body-paragraph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date, .author, .count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div class=&quot;article-title&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의 구속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빼앗긴 것을 되돌려 주며, 종이 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은 창조될 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며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죄가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기 시작했으며,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 아래에서 인류가 종노릇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자유와 기업을 잃었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되찾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영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과 아기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우리의 친족이 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단지 &amp;ldquo;죽기 위한 몸을 입으신 사건&amp;rdquo;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lt;strong&gt;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속죄제물이 되셨고, 동시에 잃어버린 자유와 기업과 이름을 회복시킬 친족 구속자, 곧 고엘이 되셨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 비밀을 이해하려면 &lt;strong&gt;구약의 희년 제도와 기업 무름의 법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레위기의 희년은 종을 풀어 주고, 팔린 기업을 원래 가문으로 돌려주며, 땅을 쉬게 하는 하나님의 리셋&lt;/strong&gt;이었다(레 25:10-11). 룻기의 보아스는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과 이름을 회복한 고엘이었다(룻 3:9, 12-13). 이사야는 장차 기름부음 받은 이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61:1-3). 그리고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그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눅 4:18-21).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이 어떻게 다르며, 한 분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고, 예수께서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2. 구원자&amp;middot;구속자&amp;middot;고엘은 어떻게 다른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이사야는 &lt;strong&gt;여호와를 &amp;ldquo;구원자&amp;rdquo;와 &amp;ldquo;구속자&amp;rdquo;라고 함께&lt;/strong&gt; 부른다(사 60:16). 우리말에서는 두 말이 비슷하게 들리지만 히브리어의 초점은 다르다.&lt;strong&gt; &amp;ldquo;구원하다&amp;rdquo;라는 동사는 &amp;lsquo;야샤&amp;rsquo;(יָשַׁע)&lt;/strong&gt;이며, 여기에서 &lt;strong&gt;구원자 또는 구출자&lt;/strong&gt;를 뜻하는&lt;strong&gt; &amp;lsquo;모쉬아&amp;rsquo;(מוֹשִׁיעַ)&lt;/strong&gt;가 나온다. 야샤는 위험과 죽음과 압제 속에 빠진 자를 건져 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자를 끌어 올리고, 적의 손에 붙잡힌 자를 구출하며, 패망의 자리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야샤의 그림이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사 60: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반면 &lt;strong&gt;&amp;ldquo;구속하다&amp;rdquo;라는 동사는 &amp;lsquo;가알&amp;rsquo;(גָּאַל)&lt;/strong&gt;이다. 이 동사의 &lt;strong&gt;분사형이자 명사형인 &amp;lsquo;고엘&amp;rsquo;(גֹּאֵל)&lt;/strong&gt;은 &lt;strong&gt;값을 지불하여 친족의 잃어버린 소유와 자유와 이름을 되찾아 주는 사람&lt;/strong&gt;을 뜻한다. 고엘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제삼자가 아니다. 그는 가까운 친족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개입한다. 친족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때 그 땅을 되사고, 친족이 종이 되었을 때 속전을 지불하여 풀어 주며, 억울하게 죽임당했을 때 가문의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 고엘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구원자가 &amp;ldquo;건져 내는 분&amp;rdquo;&lt;/strong&gt;을 강조한다면, &lt;strong&gt;고엘은 &amp;ldquo;값을 치르고 자기 친족의 것을 회복하는 분&amp;rdquo;&lt;/strong&gt;을 강조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신약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lt;strong&gt;&amp;lsquo;뤼트론&amp;rsquo;(&amp;lambda;ύ&amp;tau;&amp;rho;&amp;omicron;&amp;nu;)&lt;/strong&gt;, 곧 &lt;strong&gt;&amp;#39;속전&amp;#39;&lt;/strong&gt;으로 주셨다고 말한다(마 20:28). 뤼트론은 &lt;strong&gt;종이나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르는 몸값&lt;/strong&gt;을 뜻한다. &lt;strong&gt;디모데전서 2장 6절의 &amp;lsquo;안틸뤼트론&amp;rsquo;(ἀ&amp;nu;&amp;tau;ί&amp;lambda;&amp;upsilon;&amp;tau;&amp;rho;&amp;omicron;&amp;nu;)&lt;/strong&gt;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상응하는 값을 내어 준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내어 주신 속전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죄 없으신 자신의 생명이었다. 그분은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피값을 지불하셨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lt;/div&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딤전 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 내시는 구원자이시며,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 주신 구속자이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 주신 고엘이시다. 세 개념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의 구원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구원은 위험에서의 건짐을 말하고, 구속은 값을 치른 해방을 말하며, 고엘은 친족이 되어 책임지고 회복시키는 언약적 사랑을 말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3. 한 분 하나님은 왜 우리의 친족(고엘)이 되셨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명령 한마디로 마귀를 심판하고 인간을 구출하실 수 있다. 그런데도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사람이 되심으로), 배고픔과 피곤과 눈물과 고통을 경험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말씀과 공의와 율법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생명의 피가 요구되었다(레 17:11). 그런데&lt;strong&gt; 영이신 하나님은 피 흘릴 수 없으시므로, 아들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으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첫 번째 목적&lt;/strong&gt;이었다.&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성육신에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실제로 연대하는 친족이 되어야 했기 때문&lt;/strong&gt;이다. 히브리서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으므로 예수께서도 혈과 육을 함께 가지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무력하게 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평생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주셨다(히 2:14~17).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신 사건이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히 2:14~17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은 서로 분리된 두 하나님이 아니다. &lt;strong&gt;이사야가 &amp;ldquo;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amp;rdquo;라고 선포한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따로 보내어 자신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와 죽음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은 타인의 희생을 요구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구원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고엘은 친족의 형편을 밖에서 구경하지 않는다. 그의 빚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의 종살이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그의 끊어진 이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값을 치른다. 예수께서도 우리의 죄를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다. 죄는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저주받은 자의 죽음을 담당하셨으며, 사망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사망이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자신과 연합한 자들에게 생명과 부활의 길을 여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친족 구속자의 사랑이다. 구약이 말하는 &amp;lsquo;헤세드&amp;rsquo;(חֶסֶד)는 단순한 감정적 호감이 아니라 언약 관계 안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과 자비와 신실함을 뜻한다.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친족이 되어 값을 치르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셨다. 성육신은 헤세드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한 사건이며, 십자가는 그 언약적 사랑이 지불한 속전&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4. 보아스는 어떻게 예수님의 고엘을 예표하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룻기&lt;/strong&gt;는 한 가정의 비극과 회복을 통하여 &lt;strong&gt;고엘의 역할을 선명하게 &lt;/strong&gt;보여 준다. 유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은 흉년을 피하여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었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았다. 이제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할 때, 맏며느리 룻은 자기 백성과 신들(그모스)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룻 1:16-17). 룻의 선택은 편안함보다 참하나님을 택한 믿음의 결단이었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웠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 보아스는 룻이 부모와 고국을 떠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사실을 들었다(룻 2:11-12). 그는 룻을 단지 불쌍한 이방 여인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친절은 감정적 동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에서 책임을 지려는 헤세드였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2:11~12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아야 할 형편에 놓였다는 데 있었다. 율법에 따르면 가난하여 팔린 토지는 가까운 친족이 값을 치르고 무를(되살) 수 있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먼저 있었지만, 그는 그 기업을 무를 경우 자기 기업에 손해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권리를 포기했다. 그때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나오미에게서 사고, 말론의 아내 룻을 아내로 맞아 죽은 자의 이름을 그의 기업 위에 세우겠다고 선언했다(룻 4:9~10).&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룻 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보아스는 값을 지불했고, 기업을 회복했으며, 룻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고, 끊어질 가문의 이름을 다시 이어 주었다. 그래서 보아스가 그녀에게서 낳은 오벳은 혈통과 족보상 보아스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엘리멜렉과 말론의 가문과 기업을 이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 오벳에게서 이새가 나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나왔으며, 다윗의 계보를 따라 예수께서 오셨다(룻 4:21-22).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 룻을 메시아의 족보 안에 넣으심으로 믿음으로 여호와의 날개 아래 들어오는 자가 언약의 기업에 참여하게 됨을 보여 주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보아스는 예수님의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예표다. &lt;strong&gt;보아스는 자기 재산으로 한 가정의 기업을 무렀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모든 족속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셨다. 보아스는 룻을 자기 집에 받아들였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다. 보아스는 끊어질 이름을 이스라엘 족보 안에 세웠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새 이름과 영원한 신분을 주셨다&lt;/strong&gt;. 그러므로 룻기는 단순한 아름다운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오실 친족 구속자의 사랑과 책임과 값을 보여 주는 구속사의 책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5. 희년이 회복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희년(禧年, 영어: jubilee, 히브리어: יובל, yobel)은 &lt;strong&gt;레위기 25장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특별한 해&lt;/strong&gt;다.&amp;nbsp; 이 희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amp;nbsp;&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B%9D%EB%85%84&quot; id=&quot;mwCA&quot; rel=&quot;mw:WikiLink&quot; title=&quot;안식년&quot;&gt;안식년&lt;/a&gt;이 일곱 번 지나고 난 다음헤 곧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여섯 해 동안 밭을 갈고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해야 했다. 이것을 &amp;#39;안식년&amp;#39;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한 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 자유를 공포해야 했다.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amp;lsquo;요벨&amp;rsquo;(יוֹבֵל)은 뿔나팔(쇼파르)과 관련된 말이다. 대속죄일에 요벨의 나팔이 울리면 새로운 자유와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25:8~10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희년에 선포되는 자유는 히브리어로 &amp;lsquo;드로르&amp;rsquo;(דְּרוֹר)&lt;/strong&gt;다. 이 말은&lt;strong&gt; 억눌린 자를 풀어 보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해방&lt;/strong&gt;을 뜻한다. 희년은 추상적인 기쁨의 해가 아니었다. &lt;strong&gt;종이 된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고, 팔린 땅이 본래의 가문으로 돌아가며, 땅이 사람의 탐욕스러운 경작에서 벗어나 안식하는 실제적인 회복의 해&lt;/strong&gt;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희년에 실행해야 할 사항을 살펴보자.&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희년은 종을 해방해야&amp;nbsp;&lt;/strong&gt;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사람들이므로, 동족을 영원한 노예로 소유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 종이 되었더라도 희년이 오면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을 다른 인간이 영구히 지배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영적으로 보면 죄와 사망과 마귀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희년은 기업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해였&lt;/strong&gt;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었고, 각 지파와 가문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땅을 기업으로 맡았다. 가난하여 토지를 팔 수는 있었지만 영구히 팔 수는 없었다. 가까운 친족이 중간에 무르거나 희년이 되면 원래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부자가 돈으로 땅을 끝없이 사들여 다른 가문의 기업을 영구히 삼키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레 25:23~24).&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25:23~24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희년은 땅에 안식을 주서 쉬게 해야 했&lt;/strong&gt;다. 희년에는 파종하지 않고 스스로 난 것을 자기 소유처럼 거두지 않아야 했다. 사람은 경작과 소유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했다. 이것은 땅을 혹사시키지 않는 농경 규정인 동시에, 생존과 번영이 인간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교만을 꺾는 믿음의 훈련이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전국적으로 희년을 충실히 시행했다는 사례를 뚜렷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만큼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일은 어려웠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희년의 세 회복은 모두 소유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며, 시간과 소출도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다. 희년은 부자의 것을 임의로 빼앗는 제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던 자유와 기업과 안식을 하나님의 질서대로 되돌려 놓는 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키기 어려워한 이 희년의 약속을 장차 친히 성취하시기 위해 율법 속에 미리 기록해 두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6. 이사야의 희년 예언은 예수님께 어떻게 성취됐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사야 61장은 장차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가 나타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lt;/strong&gt;한다. 여기서&lt;strong&gt; &amp;ldquo;은혜의 해&amp;rdquo;는 레위기의 희년을 가리키는 예언적 표현&lt;/strong&gt;이다. 희년에 울렸던 자유의 나팔이 장차 메시아의 입술을 통하여 영적 실체로 선포될 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읽으셨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말아 맡은 자에게 주신 뒤 &amp;ldquo;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amp;rdquo;고 선언하셨다(눅 4:18~21). 예수님은 희년을 설명한 율법학자가 아니라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신 성취자다. 그분이 오심으로 구약의 요벨 나팔이 가리키던 실체가 역사 안에 들어왔다.&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눅 4:18~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누가복음에서 &amp;#39;자유&amp;#39;와 &amp;#39;놓임&amp;#39;을 뜻하는 단어는 &amp;lsquo;아페시스&amp;rsquo;(ἄ&amp;phi;&amp;epsilon;&amp;sigma;&amp;iota;&amp;sigmaf;)&lt;/strong&gt;다. 아페시스는 포로의 석방과 빚의 면제뿐 아니라 죄의 용서를 뜻한다. 이것은 희년의 해방과 복음의 죄 사함이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감옥 문만 여는 정치적 해방자로 오신 것이 아니다. 죄 때문에 마귀에게 틈을 내주고 사망의 권세 아래 갇힌 사람을 죄 사함으로 풀어 주기 위해 오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희년 사역은 세 방향으로 나타난다. &lt;strong&gt;첫째, 말씀과 복음으로 영적 눈을 열어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깨닫게 &lt;/strong&gt;하신다. &lt;strong&gt;둘째, 십자가의 피로 죄값을 담당하여 정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놓아&lt;/strong&gt;주신다. &lt;strong&gt;셋째,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게 &lt;/strong&gt;하신다. 그러므로 참된 희년은 단지 빚을 없애고 경제 구조를 다시 짜는 사회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존재 전체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통치로 옮겨지는 구원의 사건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lt;strong&gt;희년의 성취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lt;/strong&gt;고 했다. 여기서 가난은 물질적 궁핍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심령의 가난, 죄와 저주와 억압 아래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가난까지 포함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 &amp;ldquo;너의 포로 상태가 끝날 수 있고, 잃어버린 기업이 회복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갈 길이 열렸다&amp;rdquo;는 좋은 소식을 전하신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사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함께 말한다. 희년의 복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영원히 무조건 연장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초림은 은혜의 문을 열었고, 다시 오심은 회개하지 않은 죄와 마귀의 세력을 심판한다. 종말론적으로 희년은 재림과 최후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지금은 고엘이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선포하는 은혜의 때이므로, 사람은 그 부르심을 듣고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7. 대속죄일과 희년은 왜 회개&amp;middot;정결과 연결되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희년의 나팔은 민간 달력의 첫날이나 추수 축제 때 울리지 않았다. 일곱째 달 열흘인 대속죄일&lt;/strong&gt;에 울렸다9레 25:9). 이것은 자유와 기업의 회복이 속죄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죄가 해결되지 않은 채 주어지는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악한 영은 다시 틈을 얻고, 사람은 다시 정죄와 속박과 파괴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 해마다 대속죄일(7월 10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자신과 백성과 성소를 위하여 속죄 의식을 행했다. 그날에는 제물의 피가 지성소까지 들어갔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부정이 처리되었다. 레위기 16장은 속죄와 정결을 함께 말한다. 속죄는 하나님 앞에서 죄값이 처리되는 측면이고, 정결은 죄로 말미암아 사람과 공동체와 성소에 묻은 더러움이 제거되는 측면이다(레 16:30).&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영원한 속죄의 근거를 마련하셨다. 그분의 피는 다시 흘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피의 효력을 실제 삶에 적용받기 위해 성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7~9).&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 우리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회개는 막연히 &amp;ldquo;나는 죄인이다&amp;rdquo;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죄를 성경의 빛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며,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통로를 닫는 회개다. 죄는 악한 영에게 합법적 틈을 제공하지만, 회개는 그 권리를 무효화한다. 회개가 진행될수록 더러운 영의 영향이 제거되고 성령께서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더 온전히 다스리게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이 회개를 완벽히 마친 뒤에야 예수께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부르고, 사람은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다. 그 후에는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며 실제적인 정결을 이루어 가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오해하여 회개를 중단해서도 안 되고, 자기 회개 행위를 구원의 값을 치르는 공로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속전은 오직 예수께서 지불하셨고, 회개는 그 속전의 효력을 받아 누리는 믿음의 응답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은 &amp;ldquo;회개 없는 번영&amp;rdquo;과 &amp;ldquo;정결 없는 자유&amp;rdquo;가 성경적 희년이 아님을 가르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병이 잠시 나았더라도 죄와 악한 영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참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외적 형편이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더라도, 죄를 자백하고 성령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와 마귀의 권리를 끊어 가고 있다면 희년의 능력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참된 희년은 먼저 영과 혼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육체와 관계와 물질의 영역까지 회복을 확장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회개를 일회적 행사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를 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지을 수 있고, 분노와 음란과 탐욕과 교만과 미움이 다시 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고, 죄를 자백하며,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희년을 사는 사람의 호흡이며, 고엘이신 예수께서 주신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8. 참된 희년은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무엇을 주는가?&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예수께서 성취하신 희년은 성도의 현재 삶과 영원한 미래를 함께 바꾼다. &lt;strong&gt;그 첫 번째 열매는 신분의 변화&lt;/strong&gt;다. 죄 아래 있던 사람은 종의 영을 받은 존재였지만, 그리스도의 속전으로 구속받은 사람은 양자의 영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권리가 없지만 아들은 상속자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단지 감옥에서 꺼내 놓고 떠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속에 참여하게 하셨다(롬 8:15~17).&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두 번째 열매는 소유관의 변화&lt;/strong&gt;다. 희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한다. 성도는 집과 토지와 돈과 재능을 &amp;ldquo;영원한 내 것&amp;rdquo;으로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은 교만과 탐욕을 경계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가난이 자신의 영원한 신분이라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므로 부와 가난은 절대적 운명이 아니며, 그분은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고 옮기시고 회복하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세 번째 열매는 저주의 영속성에 대한 거절&lt;/strong&gt;이다. 가난과 질병과 실패와 우상숭배의 되물림이 오랫동안 한 가문을 붙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고엘이신 예수보다 강한 영원한 주인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의 권세를 끊을 길을 여셨다. 성도는 현재의 형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죄의 통로를 찾아 회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노동과 섬김으로 삶을 새롭게 세워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이 말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즉시 물질적 부자가 되고 모든 질병이 곧바로 사라진다는 기계적 공식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의 희년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며, 회복의 방식과 시기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죄와 두려움의 지배에서 먼저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이 성도의 영원한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희년은 부활과 천국에서 완전해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네 번째 열매는 사명의 회복이다. 기업은 단지 땅이나 재산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과 천국의 지위와 상급도 영적 기업이다. 마귀는 죄와 낙심과 미혹을 통하여 성도가 자기 사명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고엘이신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다시 일으켜 본래의 부르심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희년을 믿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만 바라보지 않고, 남은 시간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다섯 번째 열매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이다. 이 땅의 안식년과 희년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안식은 천국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으며, 마귀와 귀신의 침입도 없다. 성도는 그곳에서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녀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과 기업을 누린다(계 21:3~4).&lt;/p&gt; &lt;div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lt;/div&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회복만을 희년의 전부로 삼지 말아야 한다.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구하되 그것을 천국보다 앞세우지 않아야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더라도 자기만을 위해 쌓아 두지 말고 복음과 구제와 교회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희년의 부요는 소유를 우상으로 만드는 부요가 아니라, 주신 분께 기쁘게 돌려드릴 수 있는 자유로운 부요다. 참된 희년을 누리는 사람은 &amp;ldquo;땅도, 물질도, 건강도, 사명도 주님의 것&amp;rdquo;이라고 고백하며 청지기로 살아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희년은 한 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심을 선포한다. 마귀는 불법적으로 사람을 속여 종으로 만들었지만, 예수께서는 합법적인 속전과 승리의 부활로 그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제 성도는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는 세상과 죄와 귀신에게 자신을 다시 내어주지 않고, 말씀과 회개와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고엘이신 예수만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는 잃어버린 에덴을 넘어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기업이 기다리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ection-titl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9. 나오며&lt;/span&gt;&lt;/div&gt; &lt;p&gt;&amp;nbsp;&amp;nbsp;지금까지 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의 차이,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의 친족이 되신 이유, 보아스가 보여 준 기업 무름의 모형, 희년이 회복하는 자유와 기업과 안식,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과정, 대속죄일과 회개와 정결의 관계, 그리고 참된 희년이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주는 복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기에서 한 번 건져 주는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지불하여 우리를 사신 구속자요 우리의 잃어버린 기업과 이름을 되찾아 주는 고엘로 알아야 한다. 또한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친히 혈과 육을 취하고 형제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모든 땅과 물질과 재능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많이 가졌을 때에는 탐욕과 교만을 경계해야 하고, 부족할 때에는 가난과 실패를 영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고엘이신 예수께서 자유와 회복의 길을 여셨으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보며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평생 회개와 정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끝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날마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악한 영이 붙잡을 통로를 닫아야 한다. 예수의 피를 의지한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더 온전히 받아야 하며, 받은 자유를 다시 죄에게 내어주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 땅에서 주어지는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회복을 감사히 구해야 하지만, 그것을 희년의 최종 목적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희년의 완성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마귀가 영원히 제거된 천국에 있으므로, 현재의 축복을 천국의 기업과 연결하여 사용해야 한다. 부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복음과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넉넉히 섬겨야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graph&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은혜의 해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열려 있는 구원의 초청에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참된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엘이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며, 회개로 정결함을 받아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date&quot;&gt;2026년 07월 12일(일)&lt;/div&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count&quot;&gt;&amp;nbsp;&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이사야 61장에 예언된&amp;nbsp;&lt;strong&gt;참된 희년의 성취자&lt;/strong&gt;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적 의미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amp;nbsp;&lt;strong&gt;고엘(기업 무를 자)&lt;/strong&gt;&amp;nbsp;제도를 성취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amp;nbsp;&lt;strong&gt;친족 구속자&lt;/strong&gt;가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희년의 핵심 원리인&amp;nbsp;&lt;strong&gt;죄의 종노릇에서의 해방, 잃어버린 기업의 회복, 그리고 땅의 안식&lt;/strong&gt;이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가난과 질병의 저주를 끊어내는 실제적인 능력이 됨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amp;nbsp;&lt;strong&gt;대속죄일의 영적 의미&lt;/strong&gt;를 따라 회개를 통해 자신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주님이 선포하신 희년의 축복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 기업을 소유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인포_ChatGPT Image 2026년 7월 13일 오후 11_01_20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68f459e50b216e203d10bbdd1179c8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8815c8b87dece852237be85c9672a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e754d0810bfd1047733d74e2af4ce9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c1b9db6eb98a70e3fc65eabb205e4c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16eab1fafb12c7820d5fed83c00838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d67cff1b501236702fb9117fb6dbe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9b4defe7523fd4a00db950263a3ef8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2caffe19be994832575c9e61ca3da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42188a4755d7c3e23c66585bc6a5d1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19eabfcd34aa92d4ec19344a50f7f3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37bd3819b318c2528e28e1dea0579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4a2216a96c04dc50b4e16a736c7d12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ad555ac94e0c32a263dace68c2edf3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7a470593b1247679f0b42fc34d6538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The_Jubilee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ac450995252b95aa3a8c07b5e1b4150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참된_희년의_성취자_예수_그리스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35029b2ae584d41e3593759e4e4f6d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546545a80c6621071d739a154fe08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986490a603ca945a945b97c9776d9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cede8af863ee0101a177360b570be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9bb60da02ee4aee727f820800d4e8c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6efe3e656fcb4c071743efd64d7e96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f5e9d8b0b13f11cf77a6b2be55fa87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cb0dd88e6ca5629c2779176f974022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017e1656a08aada7a4fccb6b1f904d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b5c6fafc710cdee51835de6400e6c4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560ec73a2302549938a207f7497170b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42)] Christ_the_True_Jubile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75/262/f3e1761114b0f85cd2cf2726fa33afb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guid>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2175#comment</comments>			<pubDate>Sun, 12 Jul 2026 23:37:06 +0900</pubDate>
		</item><item>
			<title>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_2026-07-05(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1843</link>
				<description>&lt;p&gt;2026-07-05(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fUkXniVcx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fUkXniVcx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container { margin:0; padding:0; 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15px; line-height: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0;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class=&quot;sermon-container&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예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2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특별히 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압축하여 보여 주는 말씀이다. 사명자의 길은 엄청나게 보람되고 감격스러우며 소망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영광스러운 길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갈 때에는 결단코 쉬운 길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이 길을 걸어가려는 자는 어떤 각오와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사명자란 누구이며 특별 사명과 일반 사명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란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명에는 크게 특별 사명과 일반 사명이 있다. 특별 사명을 받은 자를 가리켜 사명자라고 부르는 것이요, 일반 사명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일반 사명의 원칙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행 1:8). 곧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곳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교회에서 지체로서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 일반 사명자의 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명자는 꼭 주의 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사역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걸어가는 자세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가족을 구원으로 이끈 사람들이 나온다. 구약에서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이 멸망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어 자기의 온 가족을 구원하였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믿고 그 온 집이 구원을 받았으며, 고넬료도 온 집안과 함께 믿음에 이르렀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하였다(행 16:3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 가족의 구원은 먼저 믿은 자의 믿음에 따라서 결정된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먼저 간 사람이 어떤 믿음의 길을 가느냐에 따라서 온 가족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자는 절대로 후퇴하면 안 된다. 신앙의 길은 정도의 길을 가야 한다. 약간이라도 삐뚤어진 길을 가게 되면 가족들은 &amp;quot;너 지난번에도 그랬잖아&amp;quot; 하며 마음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일 성수를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온 다음부터 가족의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에 대하여 아주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고, 나를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회갑 날에도 나만 가지 못하였다. 교회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맡기고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성경을 보니 대제사장은 자기의 부모가 죽어도 그 시체를 만질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레 21:11). 너는 구별되어 내게 속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21: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처음에는 가족들이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셋째 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리고 장례식을 치렀고, 어머니의 눈도 내가 감겨 드리고 장례식을 치렀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집안에 혈통적 장자가 있다면 신앙적 장자도 있는 것이다. 그 신앙적 장자가 그 길을 올바로 걷지 않으면 온 가족이 흔들려 버린다. 그러므로 누군가 하나는 정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길을 보시고 나중에 인증해 주시는 날이 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사명자의 길은 누가 걸어가는가, 예정이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누가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가. 내가 볼 때 구십 퍼센트는 예정된 자가 걸어간다. 아무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예정자들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은 그 예정자들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사와 달란트를 주신다. 그것이 없이 나실인처럼 자기가 하겠다고 선택하고 결정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십 퍼센트쯤 있을 수 있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고 엄청나게 어렵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대표적인 예로 예레미야를 보자.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모태에 짓기도 전에 이미 알았고 성별하였고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하셨다(렘 1:5-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렘 1:5-7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이사야 6장을 이사야의 소명장이라고 부른다. 이사야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 앞에 올라갔을 때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음성을 듣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에 갑자기 이사야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이사야는 이미 태에서부터 부름을 받았고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그 이름이 기억된 사람이었다(사 49: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하였다(갈 1:15-1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1:15-17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사명자는 태로부터 정해져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자에게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고난에도 환난에도 핍박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일반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와 같이 길을 걸어가면 같이 복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4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쓰시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면 그 상이 함께 떨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갈 때에 디모데가 따라갔고 누가도 따라가서 엄청난 상을 받았다. 모세를 따라간 여호수아는 하늘의 이십사 장로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가랑이를 찢을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는 피만 흘린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명자와 협력하여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부교역자 시절에 담임 목사님이 시키시면 백이십 퍼센트를 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면 새벽 네 시에야 집에 들어가는 날도 있어서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나중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도는 자기의 영혼을 맡길 주의 종이 과연 참된 사명자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영혼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참된 사명자에게는 표가 있다. 설교에 가식이 없이 진심과 성실함으로 말씀을 전하며,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를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그리고 말씀만 아니라 직접 주님을 만난 실제적인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자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의 종을 만나야 우리의 영혼이 제대로 인도를 받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하나님은 영혼을 어떻게 창조하시고 어느 가문에 보내시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람의 육체는 부모에게서 온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스물세 개씩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를 물려받아서 생김새와 모양과 성품과 달란트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은 또 다른 것이다. 영은 부모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가리켜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라고 증언한다(슥 1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슥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천국의 낙원에서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셔서 자라게 하신다. 영혼도 자라며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라고 있는 그 영혼을 불러다가 어느 나라에 보낼 것인가, 어느 가문에 보낼 것인가, 남자로 보낼 것인가 여자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신다. 삼대째 믿는 집안에 보낼 것인가, 우상숭배에 찌든 가정에 보낼 것인가도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결정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리고 잉태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을 그 아이 속에 넣어 주시는 것이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쓰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믿음의 집안에 보내신다. 신앙이 전혀 없는 집안에 보내면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그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우상숭배에 찌든 집안에 태어나려면, 그 집안의 우상숭배의 죄를 끊어 내려는 특별한 뜻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께서는 중차대한 일을 맡기실 때에 영의 나이가 성숙한 영혼을 보내신다. 영의 나이가 어리면 바다 물결같이 자꾸 흔들리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킬 사람이라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누구나 영 한 살로 태어난다. 천국에서 열두 살까지 자란 영혼이라도 이 땅에 보내질 때에는 한 살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이 좋으면 보내진 나이까지는 쑥쑥 자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리 잘해도 십 년에 한 살을 자랄까 말까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영의 나이가 많게 보내진 사람이라야 큰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정되어 보내진 사명자 가운데 평균적으로 약 오 퍼센트는 그 길이 힘들다고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만 살아가지는 않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사명자인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그를 깨워서 부르시며 알게 하신다. 나도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알게 해 주셔서 쉰다섯 살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한 말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하였다(딤후 2:20-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가 많아서 악한 영이 많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회개하여 주님이 쓰실 준비가 되면 그때에 부어 주신다. 나도 회개하기 전에는 아무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직분을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었다 하시며 능력과 은사와 영적인 복을 부어 주셨다. 이것이 정상적인 순서다. 그러므로 쓰임받는 것은 둘째 문제요, 우선 나부터 회개하여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갈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먼저 회개부터 해 보아야 한다. 회개도 하지 않은 채 자기의 사명을 물으면 악한 영에 가려서 분별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회개하여 깨끗해질수록 자기의 사명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의 예는 예정된 사명자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정에 대한 좋은 예표가 다윗과 사울이다. 다윗은 왕으로 예정된 자였고, 사울은 지도자로만 예정된 자였지 왕으로 예정된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백성이 하도 원하여 사울이 왕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사울이 그 왕직을 제대로 수행하였는가. 하지 못하였다. 수십 년 동안 다윗 하나를 쫓아다니면서, 자기의 충성된 부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죽이려고 일평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다윗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평화의 나라로 만들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 성전을 지으려면 먼저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 사명을 감당할 은사와 달란트를 함께 주신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야생에서 강인하게 자랐고, 사자와 곰이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으며, 일어나 달려들면 그 수염을 잡고 쳐죽였다(삼상 17:34-35). 곰과 사자를 일대일로 마주치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데 그 입을 벌려서 양을 꺼내 오는 그 용기가 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7:34-35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그것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역대상 2장을 보자.&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13-17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 형제요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었으나 형 가운데 하나가 죽은 것으로 보여 여기에서는 일곱째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보라. 스루야와 아비가일을 가리켜 &amp;#39;이새의 딸들&amp;#39;이라 하지 않고 &amp;#39;그들의 자매&amp;#39;라고 하였다. 왜 그렇게 표현하였는가.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전남편 나하스와의 사이에서 스루야와 아비가일 두 딸을 낳았고, 남편이 죽자 두 딸을 데리고 이새에게로 와서 다윗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아비가일은 나하스의 딸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삼하 17:25). 그러므로 스루야와 아비가일은 이새의 딸이 아니라 다윗의 자매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 어머니가 낳은 딸들이 어떤 자들을 낳았는가.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 형제인데,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고 아비새도 용사였으며 아사헬은 노루처럼 빨랐다. 아비가일이 낳은 아마사도 후에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윗의 어머니는 전쟁에 능한 자를 생산하는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가 이새에게 와서 낳은 아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윗은 씨부터가 전쟁에 능한 자였다. 그래서 어릴 때에도 사자와 곰이 두렵지 않았고 골리앗도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다윗이 사모한 영광의 왕은 곧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다(시 24:7-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이지, 이 땅에서 수십만 명을 목회하였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영의 나이가 성숙한 자로 보내셨고,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은사와 능력과 달란트를 주어 보내셨으며, 없으면 필요할 때에 공급하시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은 어떤 각오로 걸어가야 하는가. 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사명자들의 삶과 내가 지나온 삶을 비교해 보면서 네 가지 질문을 얻었다. 이 네 가지 질문에 합격하면 그 길을 가도 된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서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막 10:29-3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운동이 좋아서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운동이든 요리든 골프든 노래든, 잠을 안 자고도 재미있어 환장하는 그것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험이 있었다. 나는 교사의 길을 갈 것인가 주의 종의 길을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는데, 그렇게도 교사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대학까지 둔 유명한 기독교 학교 재단에서 교목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생 실습을 해 보니 아이들이 얼마나 잘 믿는지 한 달 동안에 여러 명을 전도하였던 터라, 교목이 되면 학교 전체를 바꿀 수 있겠고 해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들어오니 전도가 저절로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원서를 썼고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최종 세 명 안에 들어 면접까지 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날 아침에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오늘 그들이 사택을 준다고 하면 교목이 나의 길인 줄 알겠고, 사택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두 번 다시 이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면접장에서 말하였다. 제가 교육자의 길만 오래 걸어와서 집을 장만하지 못하였으니 사택을 주시면 이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만들겠고, 사택을 주지 않으시면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나를 탐내는 눈치였으나 교장과 교감까지 불러 의논하더니 결국 떨어뜨렸다. 그래서 나는 그날로 교목의 꿈을 접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지금의 성도들을 만나게 하시려고 그 문을 닫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가족이다. 집과 전토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가족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베드로를 보라. 베드로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장모가 있었으며 그는 그 집의 가장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갔다. 내가 떠나면 누가 아내를 먹이고 누가 장모를 봉양하는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나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마음을 드렸다. 하나님, 내가 이 사역을 하다가 내 자식이 죽는다 할지라도 저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이 사역은 엄청나게 센 악한 영들을 다루는 사역이라 원수가 가족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죽을 뻔한 자식을 데려가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나를 위하여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때에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칠십오 세 때에 그를 부르시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3). 참고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간 것은 칠십육 세 때였다.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부름을 받고 길을 떠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땅인지 말씀해 주지 않으시고 그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증언한다(히 11: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점차적으로 약속을 구체화해 주셨다. 세겜 땅에 이르렀을 때에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고(창 12:7), 롯과 헤어진 후에는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땅을 다 주고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창 13:14-1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아브라함은 살아생전에 그 약속을 얼마나 누렸는가. 티끌같이 많은 자손을 준다고 하셨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얻은 아들은 이스마엘과 이삭 둘뿐이었다.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땅을 다 준다고 하셨는데 그가 실제로 소유한 땅은 아내 사라를 장사한 막벨라 굴 하나뿐이었고, 그것도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자기 돈으로 산 것이었다(창 23:16-18). 약속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눈에 보이는 성취는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삐치지 않았고 제 마음대로 가 버리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그 약속을 차지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혹시 내가 이 길을 걸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내 시대에 번성과 영광을 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오늘도 시골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하여 고생하면서 헌신하는 목사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영광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천국에 높은 처소를 예비해 두셨다. 우리는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다윗도 소년 시절에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얼마나 고생하였는가.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을 것이나 끝까지 갔더니 진짜 왕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위인들은 대부분 다 고난을 겪었다. 예레미야를 보라.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고 나무 고랑에 채워 두었다(렘 20:1-2). 사명자의 길을 가면 모함도 당하고 매도 맞고 감옥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렘 20:1-2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완전히 뒤집어진 사람이다. 그날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20), 유대인들은 자기 편인 줄 알았던 그가 완전히 예수의 편이 된 것을 보고 그를 죽이려고 사십여 명이 당을 지어 맹세까지 하였다(행 23:13).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고(행 14:19),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하였다(고후 11:2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직접 만났다고 하면 직통 계시 이단이라고 하고, 회개를 외친다고 교단에서도 나를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이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할 것이다. 누가 나를 죽인다 하여도 그만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과 환난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사명자의 특징이다. 또한 사명자의 길은 잠을 좀 못 자는 길이기도 하다. 나도 밤늦게까지 사역을 하고 새벽 한 시 반에야 돌아가는 날들이 있다. 결단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보람되고 감격스러우며 소망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주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네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주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도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였다(행 20:23-2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을 보라. 다니엘은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구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단 6: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주님, 저 법이 통과되지 않게 하시고 그 조서를 불태워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않았다. 나라의 법도를 어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면 받겠다는 것이다. 알고도 기도하였고 실제로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그를 건지신 것이다.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던 사람이다(단 1:8). 이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사는 자의 모습을 주님은 기억하고 계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어떠하였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고, 이사야는 그대로 하여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한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사 20:2-3). 몸을 드러내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기던 이스라엘에서, 언제까지라는 기한도 알지 못한 채 선지자가 벗은 몸으로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이사야는 그대로 순종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0:2-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어다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이사야의 마지막은 어떠하였는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고난을 열거하면서 톱으로 켜는 것을 말한다(히 11:36-37). 역사적 전승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가 회개를 외치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한다. 메시야에 대한 가장 놀라운 예언들을 남긴 이사야, 천국에서 가장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이사야가 걸어간 길이 바로 이런 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도 이 길을 걸으면서 순교에 대하여 주님께 물은 적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 최고의 복인데 나는 순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훗날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이미 목숨을 내놓았다고 확인해 주셨다. 죽을 각오가 이미 되어 있는 자로 여겨 주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영광만을 바라보고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주님은 영광의 길을 걷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길을 걸어갈 때에 주님이 보시고 합격점을 주시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변함없이 쓰시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창 22장), 그 후에는 다시 시험이 없고 평탄한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었느냐는 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자라야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시간에는 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살펴보았다. 사명자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예레미야도 이사야도 바울도 모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았듯이, 사명자의 길은 구십 퍼센트가 예정된 자들이 걸어가며,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감당할 은사와 달란트를 주어 보내신다. 하나님은 낙원에서 영혼을 창조하셔서 자라게 하시고, 어느 나라 어느 가문에 보낼지를 정하시며, 중차대한 일을 맡기실 영혼은 영의 나이가 성숙한 자로 보내신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그 어머니의 혈통에서부터 준비된 것이 그 증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려는 자는 네 가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합격한다면 그는 사명자요, 그 사명자의 길에는 엄청난 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혹시 그 복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절대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눈으로 다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천국에서 큰 상급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모든 성도가 특별 사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 사명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일반 사명자로서 가족에서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명자와 협력하여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선지자를 돕는 자는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는다고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며, 주의 종과 협력하여 천국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7월 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fe4d12d6d413c5a5e069f04a376515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27eba47c934a99f3710d2f8722e11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93cab7463b6ab6df4296a55c49003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aa422c6952e0fa1e067842205e18f9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fd2dd87216e4f910cc0a596e9d03b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36eac014b49a7063c67dde6ac0c3f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0e4449668e8f723e559a8776020c25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9566ae436429de6fb228c9a02f73e4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1f5f68b4cc8c86362b2243cba668d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8429b3a246ab93e22ad6d5a5179de4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00548243c98c5c2cfe587dbaff68bad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be621a7c01334cff191b7770e4fd53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f03d951bebe13c53ecc9fbb72d2ec9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3c93fe331be5541f6675c60b87d203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9aaf1fc05b0298bc98f2add595dd4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 The_Path_of_Divine_Miss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cf630e151d15477954aee09e832292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특별한 소명&lt;/strong&gt;을 받은&amp;nbsp;&lt;strong&gt;사명자&lt;/strong&gt;들이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와 그들이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을 신학적 성찰과 개인적 경험을 담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사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amp;nbsp;&lt;strong&gt;사랑하는 것을 포기&lt;/strong&gt;하고 하나님의&amp;nbsp;&lt;strong&gt;시간표를 인내&lt;/strong&gt;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amp;nbsp;&lt;strong&gt;목숨까지 내놓을 각오&lt;/strong&gt;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이나 이사야 같은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사명자에게 약속된 영광은 당대의 보상이 아닌&amp;nbsp;&lt;strong&gt;천국의 상급&lt;/strong&gt;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청중에게&amp;nbsp;&lt;strong&gt;영적 장자&lt;/strong&gt;로서의 사명을 일깨우며, 지도자와 협력하여&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을 전파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07-05(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5; } h1 { font-size: 18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1.5em 0; padding: 0; } h2 { font-size: 15px; color: #38688c; font-weight: bold; margin: 0 0 0.8em 0; padding: 0; } p.body { margin: 0 0 0 0; padding: 0; } p.scripture { margin: 0 0 0 0; padding: 0;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p.footer { margin: 0; padding: 0; } &lt;/style&gt; &lt;h1&gt;1. 들어가며&lt;/h1&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람은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육체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보냄이 있고, 부르심이 있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앙생활은 쉽게 흔들린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금방 다른 길로 옮겨 가고, 사람의 말에 흔들리며, 고난이 오면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에, 왜 이 가정에, 왜 이 교회와 말씀 앞에 세우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인생이 하늘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다(벧후1:10~11). 여기서 &amp;lsquo;부르심&amp;rsquo;은 헬라어로 클레시스, &amp;lsquo;택하심&amp;rsquo;은 에클로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목적 있게 불러내신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굳게 한다는 것은 막연한 신앙 감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리와 길을 확인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벧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번 말씀에서 다루려는 핵심은 사명자의 길이다. 사명자는 단지 직분을 가진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셨고, 때가 되어 불러내셨으며, 그분의 경륜을 이루도록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다. 물론 모든 성도에게는 일반적인 사명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가족과 주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특별한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선포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길은 가벼운 길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에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으며,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고,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내놓는 순종이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영광의 길이지만 동시에 십자가의 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2. 사명자는 누구이며 사명은 어떻게 나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이고, 또 하나는 특별히 보냄받은 자에게 주어진 특별 사명이다. 일반 사명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과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 안에서 주어진 섬김을 감당하는 것이다. 특별 사명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보내시고, 그를 통해 특별한 말씀과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일반 사명은 주님의 지상명령과 연결된다(행1:8).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기본 사명이다. 신앙은 자기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를 통해 내 집과 내 주변이 구원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의 멸망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보고 자기 가족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신약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자기 집과 함께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행16:31). 고넬료도 자기 집과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베드로의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일반 사명의 출발점이다. 믿는 자가 먼저 믿었다는 것은 먼저 책임을 맡았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경에는 일반 사명과는 구별되는 특별 사명도 있다. 예레미야는 모태에서 짓기 전부터 하나님께 알려졌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되었으며,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졌다(렘1:5).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고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갈1:15~16). 이러한 부르심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계획하시고 정하신 부르심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같은 모양으로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성도로서 충성하면 된다. 어떤 이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어떤 이는 교회를 섬겨야 한다. 어떤 이는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부르심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부르심을 모르면 허황된 꿈을 꾸거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두려워하여 피하게 된다.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3. 하나님은 사명자를 어떻게 예정하시고 보내시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람을 목적 없이 보내지 않으신다. 육체적으로 사람은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난다. 어떤 이는 가르치는 달란트를, 어떤 이는 음악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운동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섬김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사명은 육체의 달란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영적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부르심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 어느 나라에, 어느 가문에, 어떤 성별로 보낼 것인지를 아시고 보내신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정과 고정을 구별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떤 사명으로 보내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반드시 그 길을 끝까지 간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보내셨더라도 사람이 게으르고, 회개하지 않고, 고난을 싫어하고, 세상과 타협하면 그 사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약하고 부족해도 회개하고 순종하며 끝까지 주님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 귀하게 쓰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특별 사명자에게는 대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다. 사무엘은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태에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쓰실 종을 보내실 때는 기도하는 가정, 믿음의 환경, 혹은 특별한 영적 이유를 가진 가정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환경에만 사람을 보내시는 것은 아니다. 우상숭배가 깊은 가문에도 사람을 보내실 수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기 가문과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많은 사람을 깨우는 특별한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바울의 사례는 특별 사명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욕망으로 사명자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때가 되어 부르셨다. 다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준비되어야 한다. 말씀을 배워야 하고, 회개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부르심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씨앗이고, 순종은 그 씨앗을 열매 맺게 하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나실인의 원리도 중요하다. 히브리어 나지르는 &amp;lsquo;구별된 자&amp;rsquo;라는 뜻을 갖는다. 어떤 사람은 태에서부터 나실인처럼 구별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원하여 구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원하여 걷는 길은 더 큰 각오가 필요하다. 예정된 사명이 없는데도 사명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자기 부르심을 분별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준비와 헌신을 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상상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amp;ldquo;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실 것이다&amp;rdquo;라는 말만 붙들고 준비하지 않는다. 말씀도 배우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질서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사명이 아니라 자기 욕망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반드시 다듬어진다. 하나님은 쓰시기 전에 낮추시고, 회개시키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4. 일반 성도에게 맡겨진 사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모든 성도에게는 일반 사명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가볍게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행16:31). 먼저 믿은 자는 집안의 신앙적 장자가 되어야 한다. 혈통적 장자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영적으로 먼저 믿은 자가 그 집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 구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가족 구원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믿은 사람이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일을 가볍게 여기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가족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가족은 먼저 믿은 자의 삶을 본다. 처음에는 반대할 수 있다.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믿음의 지조와 일관성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사람은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일반 성도의 사명은 교회 안에서도 이어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각 지체에게는 맡겨진 기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섬기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돕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어떤 사람은 성도를 돌본다. 사명은 모두 강단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지체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도 사명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특별 사명자를 돕는 것도 일반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귀한 사명이다. 주께서는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0:40~42).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도 상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사역을 직접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을 알아보고, 기도와 섬김과 물질과 순종으로 협력하면 그 일의 열매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일반 성도는 &amp;ldquo;나는 특별 사명자가 아니니 할 일이 없다&amp;rdquo;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길을 돕고, 보냄받은 종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일반 성도의 길이다. 이 길을 충성스럽게 걷는 자에게도 하늘의 상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5. 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사명자의 길은 곧 막히게 된다. 사명자는 자기 취미, 자기 꿈, 자기 직업, 자기 명예, 자기 가족까지도 주님의 손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가족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에게 현세에서도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막10:29~30). 여기서 &amp;lsquo;버리다&amp;rsquo;라는 말은 헬라어 아피에미와 관련하여 &amp;lsquo;놓아두다, 떠나보내다, 내려놓다&amp;rsquo;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명자의 내려놓음은 무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 최종 소유권을 넘겨 드리는 믿음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도 가족이 있었다. 장모가 있었다. 그는 가장이었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은 언제나 &amp;ldquo;나의 것&amp;rdquo;과 &amp;ldquo;주의 것&amp;rdquo; 사이에서 결정을 요구한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무리 소중해도 주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내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자기 생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사명자의 길에서도 같은 질문이 온다.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 안정된 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자신이 원하던 직업이나 꿈이 있어도 주님께서 다른 길로 부르시면 따를 수 있는가? 자기 자녀와 가족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사명에서 물러서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정직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가족을 버려야 사명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 때문에 가족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면 사명이 무너진다. 사명자는 가족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사용하여 가족까지도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 신앙의 장자는 이렇게 서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6.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더디 와도 기다릴 수 있는가? 사람은 빨리 열매를 보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곧바로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역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사명자들은 대부분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했다. 하나님의 때는 사람의 조급함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창12:1~3). 그러나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과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의 생전에는 그 약속의 완성을 다 보지 못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받았으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말한다(히11:13). 이것이 사명자의 믿음이다. 사명자는 자기 시대에 모든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땅에서 다 보지 못해도 하늘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즉각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도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 곧장 왕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에게 쫓기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원수에게 보복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사명자의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릇을 빚으시는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려 한다. 그러면 사명이 오염된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해 제사장의 영역을 침범했고, 결국 왕의 길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다윗은 기회가 있어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두려워했다. 이것이 기다림의 영성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기다림 속에서도 회개와 준비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배우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카이로스, 곧 정하신 때가 온다. 그때 사명자는 흔들림 없이 들어가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7. 사명자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세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사명자는 사람들에게 늘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참된 말씀은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의 거짓과 악한 영의 속임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반드시 반대와 핍박을 만난다. 고난이 없는 사명은 거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다가 바스훌에게 맞고 목에 고랑이 채워졌다(렘20:1~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고 때리고 가두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멈추지 않았다. 말씀은 그의 속에서 불붙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명자의 마음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렘20:1~2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들을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마찬가지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20:24).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고난은 사명자를 검증한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사명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손해가 오고, 오해가 오고, 가족의 반대가 오고, 몸의 고통이 오고, 사람들이 떠나갈 때도 그 길을 가는지는 다른 문제다. 고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크게 본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영적 전쟁도 중요하다. 사명자의 길에는 악한 영들의 공격이 있다. 귀신들은 사명을 막기 위해 두려움, 낙심, 분노, 혈기, 음란, 시기, 질투, 교만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에게 틈을 주고, 사명은 흔들린다. 회개는 사명자의 방어선이다. 예수의 피로 속죄를 받고,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사람을 원수로 삼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엡6:12).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사명자는 곧 무너진다. 악한 영을 대적하되 사람은 살려야 한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 배우는 전쟁의 길이며, 예수께서 완성하신 영적 전쟁의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8.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의 길에서 네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은 가장 마지막 질문이자 가장 깊은 질문이다. 사명자의 길은 말로만 가는 길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생명을 요구받을 수 있다. 주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16:24~25). 여기서 자기 부인은 자기 욕망의 포기가 아니라 자기 주권의 포기다. &amp;ldquo;내가 주인이다&amp;rdquo;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amp;ldquo;주님이 주인이시다&amp;rdquo;라고 고백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그는 법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켰다. 이사야는 전승에 따르면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히11:37). 사명자의 길에는 이런 각오가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물론 모든 사명자가 실제로 순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명자는 순교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으면 작은 손해 앞에서도 무너진다. 사람의 비난 앞에서 물러서고, 물질의 손해 앞에서 타협하며, 가족의 반대 앞에서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미리 마음을 정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 손해도 감당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결단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가능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다. 주님은 먼저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기 목숨을 주께 드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의 삶에서도 실천된다. 자기 편안함을 내려놓고, 말씀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고, 맡겨진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작은 순교의 삶이다. 매일 자기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사명자의 길이다.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목숨을 내놓는 사명은 반드시 천국의 상과 연결된다.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셨다(계22: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가 구원의 공로라는 뜻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주님께서 보신다는 뜻이다. 믿음이 참되면 순종으로 나타나고, 사명이 참되면 충성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기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명자의 길은 혼자 걷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고,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 승천 후에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돕고 이끄신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힘만 바라보면 쓰러지지만, 주님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을 붙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은 단지 종교적 구호가 아니다.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이며, 영적 전쟁에서 악한 영을 물리치는 전능자의 이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명자는 마지막까지 충성해야 한다. 바울은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라고 했다(고전15:58). 사명자는 당장 보이는 열매가 적어도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 땅에서 박수를 받지 못해도 하늘은 기록하고 있으며,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큰 위로는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사실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명에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과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목적을 위해 주신 특별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자신과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끌고, 교회를 섬기며, 보냄받은 종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한다. 특별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말씀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전토와 자기 꿈까지 주님의 손에 올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아야 한다. 사명자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반대와 조롱과 핍박이 와도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또한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 주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자기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특별 사명자가 아니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자기 집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맡겨진 일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과 함께 복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길에도 상이 있다.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사명자는 회개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회개가 없으면 사명이 오염되고, 악한 영의 공격에 흔들리며,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게 된다. 회개하는 자는 깨끗해지고, 깨끗해진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자기 부르심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말씀과 회개와 순종으로 걸어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허황된 영광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영광의 길에는 십자가가 있고, 왕권의 길에는 영적 전쟁이 있으며, 천국의 상에는 이 땅에서의 충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일반 사명자는 일반 사명에 충성해야 하고, 특별 사명자는 특별 사명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7월 05일(일)&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37050305f339afb96d2365937837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cfe3b43a08bcc94e2ef1778bffc2f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565efb34989e23c46f2eae24e2f0f4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8d5d9a99d435aa3457b461d211a8f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f50302b14ff3f1c235771120d87f5a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935361523a8d0ab432831ebde0db2a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815599aa56547fa7078bfbe9ed6dd2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e3c7c4c8234d3898d86032e9e2a8eb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78b4a78db964485dd88ce31eef8011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dc3d648b86d933443c28cb3c89c624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주일오후(26.07.05)] 사명자의_길과_4가지_결단The_Path_of_Call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3/261/c96a2f29a150a51342d2e1594d89db5d.webp&quot; /&gt;&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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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1843#comment</comments>			<pubDate>Mon, 06 Jul 2026 01:35:17 +0900</pubDate>
		</item><item>
			<title>[주일찬양예배] 인류에게 파킨슨 병이란 어떤 질병이며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신28:27~34)_2026-06-28(주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1308</link>
				<description>&lt;p&gt;2026-06-28(주일) 주일찬양예배(투박한 글 요약)&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인류에게 파킨슨 병이란 어떤 질병이며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신28:27~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RtTHLe-dSA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tTHLe-dSA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0; padding: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상에 사람치고 걸리고 싶은 병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두려운 병들이 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원인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치료 방법도 없으며, 일단 걸리면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병들이 있다. &lt;strong&gt;치매와 파킨슨 병&lt;/strong&gt;이 바로 그런 병이다. &lt;strong&gt;두 병은 모두 머리에서 비롯되고, 둘 다 불치병이라는 공통점&lt;/strong&gt;이 있다. &lt;strong&gt;그러나 성격은 다르다. 치매는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무너지는 병이지만, 파킨슨 병은 기억력은 멀쩡한 채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병&lt;/strong&gt;이다. 자기 정신은 또렷하고 하고 싶은 말도 다 있는데,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파킨슨 병이 더 무서운 병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현재 우리나라에만 파킨슨 병 환자가 14만 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 숫자는 빠른 속도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신경과 전문의들은 경고한다. 이 병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어느 날 나 자신이나 내 가족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파킨슨 병을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lt;/strong&gt;는 &lt;strong&gt;신체의 반응 속도와 동작의 크기를 보는 것&lt;/strong&gt;이다. 엄지와 검지를 크게 벌렸다 모으는 동작을 빠르게 10번 해 보는 것이다. 이 동작이 일정한 속도와 크기로 이루어지면 정상이다. 그러나 동작이 점점 느려지거나 작아진다면 파킨슨 병을 의심해야 한다. 파킨슨 병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모든 것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보폭이 작아지고, 동작이 작아지고, 글씨까지 작아진다. 이 자가 진단을 통해 초기에 이상을 발견한다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lt;strong&gt;의학적 관점과 영적 관점&lt;/strong&gt;, 이 두 가지로 파킨슨 병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학이 이 병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성경적 관점과 실제 임상의 경험에서 이 병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amp;quot;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amp;quot; (마 9:12).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하셨다. 의학적 도움도 귀히 여기되, 영적 근원을 함께 다루어야 진정한 치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이 시간의 핵심 메시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 이 시간의 말씀이 &lt;strong&gt;파킨슨 병과 싸우고 있는 모든 분들, 그리고 이 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영적 지침이 되기를&lt;/strong&gt; 바란다. 또한 이 자가 진단에서 손가락 동작이 점점 작아지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글씨가 갈수록 작아지는 경우도 파킨슨 병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병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킨슨 병에 걸린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함께 고통받는다.&lt;strong&gt; 점점 굳어가는 몸, 넘어짐의 위험, 끊임없이 필요한 돌봄과 치료비&lt;/strong&gt;는 가족 전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병을 미리 알고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리고 예방과 치유의 길은 의학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영적 근원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파킨슨 병은 어떤 질병이며, 치매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과 치매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질병이다. 둘 다 머리에서 비롯되고 둘 다 불치병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전혀 다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치매는 뇌의 한가운데 있는 해마와 편도체에 문제가 생기는 병&lt;/strong&gt;이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이고, 편도체는 감정과 마음을 관장하는 부위이다. 이 부위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악한 영들이 가득 들어와 신경을 짓누르면 기억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가족도 못 알아보게 된다. 정신 자체가 흐려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파킨슨 병은 다르다. &lt;strong&gt;파킨슨 병은 뇌의 뒤쪽 아랫부분, 곧 중뇌의 흑질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이 부위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도파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온몸의 운동 기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lt;/strong&gt;. 파킨슨 병은 기억력과 인지 기능은 멀쩡하다. 말하고 싶은 것도 다 있고, 생각도 또렷하다. 그런데 &lt;strong&gt;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걷고 싶은데 발이 안 떨어지고, 손을 뻗고 싶은데 느리게 움직인다. 정신은 온전한데 육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파킨슨 병 환자는&lt;strong&gt;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lt;/strong&gt;.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을 스스로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몸이 점점 굽어지고, 동작이 느려지고, 글씨도 작아지고, 발걸음도 종종걸음이 되어 가는 자기 자신을 또렷한 정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치매와 다른 파킨슨 병만의 비극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간단한 자가 진단 방법이 있다. 두 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다 떼는 동작을 크고 빠르게 열 번 해 보는 것이다. 이 동작이 빠르고 크게 이루어지면 정상이다. 그런데 속도가 느려지거나, 동작이 점점 작아지거나, 잘 안 되는 느낌이 든다면 파킨슨 병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파킨슨 병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동작도, 보폭도, 글씨도 다 작아진다. 이 점이 치매와 파킨슨 병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 &lt;strong&gt;환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lt;/strong&gt;도 매우 심각하다. 치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본인은 고통을 덜 느낀다. 그러나 파킨슨 병 환자는 자신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온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겹치면서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어진다. 파킨슨 병은 몸의 병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병이기도 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실제로 파킨슨 병을 가까이서 목격한 경험이 필자에게 있다. 평소 매우 강직하고 엄하셨던 작은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몸이 둔해지셨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기분 나빠하셨다. 그러나 1년 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종종걸음으로 겨우 걸으시는 상태가 되어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분은 발병 후 2년 남짓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처럼 파킨슨 병은 어떤 사람에게는 빠르게 진행되어 짧은 시간 안에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파킨슨 병이 발생하는 뇌의 구조&lt;/strong&gt;를 더 살펴보자. 치매는 뇌의 한가운데 위치한 해마와 편도체가 문제인 반면, &lt;strong&gt;파킨슨 병은 중뇌의 흑질이라는 부위가 문제&lt;/strong&gt;이다. &lt;strong&gt;흑질은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신경 세포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lt;/strong&gt;이다. &lt;strong&gt;이 흑질의 신경 세포가 손상되면 도파민 생성이 줄어들고, 도파민이 줄어들면 뇌에서 몸으로 내려가는 운동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lt;/strong&gt;결국 뇌가 손에게 &amp;quot;움직여라&amp;quot;라고 명령해도 그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손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굳어버리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이해하면 왜 파킨슨 병을 영적으로 접근할 때 &lt;strong&gt;머리와 뇌하수체 부위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야&lt;/strong&gt;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lt;strong&gt;악한 영들이 바로 이 도파민 분비 부위와 신경 전달 경로를 막고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lt;strong&gt;그리고 그 영들을 내보내는 열쇠가 회개&lt;/strong&gt;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파킨슨 병과 치매는 동시에 오는 경우도 있다. 파킨슨 병이 진행되면서 일부 환자에게는 치매 증상도 함께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는 더욱 힘들어진다. 이것은 머리에 쌓인 악한 영들이 한 부위만이 아니라 여러 부위를 동시에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어떤 한 가지 병만을 대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영이 들어오게 된 모든 원인, 곧 제사, 우상숭배, 억압과 폭력의 죄 전체를 포괄적으로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신 28:28 여호와께서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 혼미한 것으로 치시리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파킨슨 병의 의학적 원인과 증상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의학은 파킨슨 병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 신경과 전문의의 설명에 따르면, 파킨슨 병은 중뇌의 흑질에 있는 도파민 신경 세포가 손상되면서 운동 장애가 발생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핵심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으로, 운동 기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도파민의 분비가 점점 줄어들면서 온몸의 운동 기능이 무너지는 것이 파킨슨 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인간의 몸에는 약 50가지 이상의 호르몬이 분비된다. 뇌하수체 호르몬, 갑상선 호르몬, 부신 피질 호르몬, 성 호르몬, 인슐린, 아드레날린, 엔도르핀 등이 그것이다. &lt;strong&gt;도파민은 그 가운데 하나로, 뇌 깊숙한 곳에서 분비되어 신경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 도파민이 부족하면 운동 기능이 저하되는 파킨슨 병이 오고, 반대로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조현증이 온다. &lt;/strong&gt;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파킨슨 병의 증상&lt;/strong&gt;은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난다.&lt;strong&gt; 첫째는 서동증&lt;/strong&gt;이다. 모든 동작이 느려지는 것이다. 물건을 잡으려 해도 마치 슬로 비디오를 보듯 천천히 움직인다.&lt;strong&gt; 둘째는 근육 경직&lt;/strong&gt;이다. 근육이 굳어지면서 몸이 점점 구부정해진다. &lt;strong&gt;셋째는 안정 시 떨림&lt;/strong&gt;이다. 이것이 파킨슨 병 특유의 증상인데, 일반적인 떨림과 반대이다. 보통 사람은 가만히 있을 때 안 떨다가 물건을 잡을 때 떨리지만, 파킨슨 병 환자는 가만히 있을 때 손이 떨리다가 물건을 잡을 때는 오히려 떨림이 멈춘다. 거꾸로 되는 것이다. &lt;strong&gt;넷째는 자세 불안정&lt;/strong&gt;이다. 균형 감각이 무너지면서 쉽게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파킨슨 병 환자는 넘어져서 골절이 생기거나 머리를 다치는 합병증으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의학은 파킨슨 &lt;strong&gt;병의 원인&lt;/strong&gt;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호르몬 분비 이상, 스트레스, 영양 부족,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의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다. 결국 &lt;strong&gt;복합적으로 작용한다&lt;/strong&gt;는 것이 가장 솔직한 답이다. &lt;strong&gt;원인을 모르니 근본적인 치료도 없다. 현재 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레보도파 같은 도파민 관련 약물을 투여하여 증상을 완화하고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뿐&lt;/strong&gt;이다. 그러나 이 약물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떨어지고, 결국 몸 스스로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더 약해진다. 살이 쭉 빠지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이며, 그때부터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lt;strong&gt;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lt;/strong&gt;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lt;strong&gt;전조 증상들&lt;/strong&gt;이 몸 안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전조 증상들을 알고 있으면 조기에 발견하고 대비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후각 감소&lt;/strong&gt;이다. 냄새를 맡는 기능이 수년에 걸쳐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파킨슨 병의 대표적인 전조 증상이다. 5년에서 10년에 걸쳐 냄새를 점점 못 맡게 된다면 파킨슨 병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오래전부터 냄새를 못 맡았다고 가볍게 넘기기 쉬운 증상이지만, 파킨슨 병의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변비&lt;/strong&gt;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변비가 이어진다면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장의 기능도 자율 신경계의 영향을 받는데, 도파민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면 장 운동도 느려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렘수면 행동 장애&lt;/strong&gt;이다. 이것이 파킨슨 병 전조 증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잠을 잘 때 꿈을 꾸면서 실제로 소리를 내거나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꿈속에서 누군가와 싸우는 장면을 꾸면서 실제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침대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기도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렘수면 상태에서는 몸의 움직임이 억제되어야 하는데 그 억제 기능이 고장 난 것이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이미 파킨슨 병 방향으로 신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의 분비 이상은 파킨슨 병 외에도 &lt;strong&gt;다양한 문제&lt;/strong&gt;를 일으킨다. 도파민이 점점 줄어들면 &lt;strong&gt;중독에 빠지기도&lt;/strong&gt; 한다. 항상성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lt;strong&gt;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쇼핑 중독&lt;/strong&gt; 같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쇼핑 채널을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충동 구매를 반복한다면, 이것도 도파민 분비가 저하되어 가는 신호일 수 있다. 도파민이 너무 많아지면 조현증이 오고, 도파민이 너무 부족해지면 파킨슨 병과 중독이 온다. 도파민 하나의 이상이 이처럼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 전조 증상은 공통적으로 운동 기능 이외의 영역에서 나타나는&lt;strong&gt; 비운동성 전조 증상들&lt;/strong&gt;이다. &lt;strong&gt;운동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뇌의 도파민 신경 세포의 상당 부분이 손상된 이후&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이 전조 증상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이 있다면 빠르게 영적 점검과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면 파킨슨 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파민은 뇌 깊숙한 곳, 곧 뇌하수체 아랫부분에서 분비되어 신경 다발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것이 손끝과 발끝까지 전달되어야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신경 전달 경로 어딘가가 막히거나 끊어지면, 뇌의 명령이 몸 끝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고, 잡고 싶어도 느리게만 잡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은 또한 &lt;strong&gt;정신적 보상과 쾌감에도 관여&lt;/strong&gt;한다.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뿌듯함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이 도파민이 분비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도파민이 적어지면 기분이 가라앉고, 무기력해지며, 우울증이 오기 쉽다. 파킨슨 병 환자에게 우울증이 자주 동반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몸이 안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도파민 자체가 줄어들면서 정신적인 활력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도파민 &lt;strong&gt;하나의 이상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광범위한 영향&lt;/strong&gt;을 미친다. 그래서 파킨슨 병은 단순히 운동 장애가 아니라 삶 전체를 잠식하는 병이다. 이 병에 걸렸을 때 얼마나 힘들고 처참한 상황이 오는지를 알기 때문에, 지금 건강할 때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전조 증상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lt;strong&gt;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lt;/strong&gt;이 중요하다. &lt;strong&gt;조기에 발견할수록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lt;/strong&gt;. 그러나&amp;nbsp;&lt;strong&gt;의학적 관리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영적 접근&lt;/span&gt;도 병행해야 한다&lt;/strong&gt;.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이 있다는 것은 이미 뇌의 도파민 신경계에 어느 정도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이다. &lt;strong&gt;이때부터 집중적으로 회개 기도를 시작하면 병의 진행을 영적으로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렘수면 행동 장애가 있는 경우는 시급하다.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파킨슨 병 발생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이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의사와 상담하고, 동시에 머리에 쌓인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영적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 세계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 몸으로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반대로 영적으로 회복하는 것도 즉시 시작해야 몸에 나타나기 전에 막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은 발병 이후 &lt;strong&gt;잘 관리하면 20년 30년까지 진행을 늦출 수 있다&lt;/strong&gt;고 한다. &lt;strong&gt;그러나 그 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도파민 관련 약물, 비타민 C 주사 치료, 각종 재활 치료 등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 들 수 &lt;/strong&gt;있다. 그러므로 병이 오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영적 관점에서 파킨슨 병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의학은 파킨슨 &lt;strong&gt;병의 원인&lt;/strong&gt;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lt;strong&gt;임상 사역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 것&lt;/strong&gt;이 있다. 파킨슨 병은&lt;strong&gt; 영적 세계에서 비롯된 병&lt;/strong&gt;이다. &lt;strong&gt;그 영적 원인을 두 가지로 정리&lt;/strong&gt;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첫째로, 제사와 우상숭배로 머리에 들어온 악한 영들&lt;/strong&gt;&lt;/span&gt;이다.&lt;strong&gt;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고, 부처를 믿으며 절을 하는 행위를 통해&lt;/strong&gt; 머리에 악한 영들이 들어온다. 이 영들이 &lt;strong&gt;뇌하수체와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아 버린다. &lt;/strong&gt;실제 축사 사역 현장에서 파킨슨 병 환자를 살펴보니, 도파민이 분비되는 통로가 마치 바늘로 꿰매어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또한 도파민이 분비된 호르몬이 지나가는 신경 다발 전체를,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악한 영들이 꽉 잡고 막고 있었다. 족보상 내 위로 12대에서 16대 조상까지 올라가는 영들이 그 분비 통로를 막고 있었다. 제사와 우상숭배로 대대로 쌓여 온 영들이 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도파민 분비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둘째로, 무당 신기가 만들어내는 영적 원인&lt;/strong&gt;&lt;/span&gt;이다. 무당은 신이 내리기 위해 극도로 흥분 상태를 만든다. 징을 치고 북을 치며 춤을 추면서 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한다. 이것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면 &lt;strong&gt;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는 &amp;#39;조현증&amp;#39;으로&lt;/strong&gt; 나타난다. &lt;strong&gt;제사의 영이 도파민을 막아 파킨슨 병을 일으킨다면, 무당의 영은 도파민을 과잉으로 만들어 조현증을 일으키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영적 세계에서 파킨슨 병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단순히 몸에서 갑자기 호르몬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신경 전달 물질이 나오는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에 몸 끝까지 도파민이 전달되지 못하여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들은 제사와 절을 통해 대대로 들어온 것들이다. 조상 대대로 제사를 많이 지낸 가문, 부처를 열심히 섬긴 가문에서 파킨슨 병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경고를 준다. &lt;strong&gt;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 임하는 저주들&lt;/strong&gt;이 나열되어 있다. &lt;strong&gt;그 가운데는 다양한 질병들이 포함&lt;/strong&gt;되어 있다 (신 28:27). &lt;strong&gt;파킨슨 병과 같이 현대 의학이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질병들이 왜 특정 사람에게 오는지, 왜 특정 가문에서 계속 나오는지를 의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영적 세계를 통해 보면 분명한 원인이 보인다. 그것은 죄이며,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의 역사&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고 착취한 죄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당대에, 때로는 자손 대대로 그 대가가 내려온다. 출애굽기 20장 5절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한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법칙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후손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20:5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으로 이 병의 원인을 알 때, 비로소 올바른 치유의 방향도 보인다. 원인이 악한 영에게 있다면, 그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 치유의 길이다. 그리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그 영들이 들어오게 된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조상의 어떤 죄들이 파킨슨 병을 불러오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킨슨 병이 &lt;strong&gt;단순히 제사를 지낸 죄만으로 오는 병이 아니라는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제사를 많이 지낸 죄만으로는 주로 치매가 온다&lt;/strong&gt;. &lt;strong&gt;파킨슨 병에는 반드시 또 다른 요인, 곧 플러스 알파&lt;/strong&gt;가 있다. 임상을 통해 파킨슨 병 환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본 결과, 거의 &lt;strong&gt;예외 없이 확인된 것&lt;/strong&gt;이 있다.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억압, 폭력, 살인, 권력 남용, 수탈, 착취의 죄를 조상이 심각하게 저질렀다는 것&lt;/strong&gt;&lt;/span&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체적으로 어떤 죄들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당파 싸움을 통한 정치 보복의 죄&lt;/strong&gt;이다. 조선 시대 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에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인 죄가 대표적이다. 없던 죄를 만들어 집안 전체를 멸문하고,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아버리는 잔인한 일들을 저질렀다. 사화(士禍)들, 곧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에서 반대파를 정치 보복으로 유배 보내고 처형하고 숙청한 죄들이 그 후손에게 내려와 파킨슨 병을 일으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신분 제도를 이용한 착취와 인권 유린의 죄&lt;/strong&gt;이다. 양반이 소작농을 부리면서 억울한 누명을 씌워 재산을 빼앗고, 관아에 고소하여 몽둥이로 때려 죽이거나, 굶겨 죽이거나, 딸을 성노예로 삼는 등의 잔인한 행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억울하게 죽은 자들 속에 있던 영이 그 양반의 후손에게 내려와 파킨슨 병을 일으킨다. 허리 통증이 심한 사람들 중 상당수도 조상이 하인을 몽둥이로 허리를 때려 죽인 죄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일제강점기 친일 부역의 죄&lt;/strong&gt;이다. 일본 편에 서서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죽인 조상이 있다면, 그 죄로 인한 악한 영들이 후손에게 내려와 파킨슨 병을 일으킨다. 실제 사역 현장에서 일제 순사가 환상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죽인 조상의 죄를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태극기를 보여 주시며 응답하신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들의 한이 맺힌 영&lt;/strong&gt;이다. 억울하게 수탈당하고 죽임당한 자들 속에 있던 영이 그 죄를 저지른 양반의 후손에게 들어가 파킨슨 병을 일으킨다. 이 영들은 단순한 영이 아니라 자신을 죽인 자의 정보를 알고 그 후손을 찾아가 복수하듯 역사한다. 때로는 12대에서 16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죄들이 이렇게 후손의 몸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구체적인 질병으로 나타나는 실례를 사역 현장에서 많이 보았다. 허리가 아픈 사람의 약 50%는 조상이 하인을 몽둥이로 허리를 때려 죽인 죄가 원인인 경우가 있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그 사람 속에 있던 영이 그 양반의 후손에게 내려와서 허리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병원에 가도 치료가 되지 않는 허리 통증의 경우, 그 영적 원인을 회개하고 영을 제거할 때 비로소 나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조상이 지은 죄의 내용에 따라 어떤 병이 오는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조상이 음식으로 죄를 지은 경우에는 위장이나 대장, 소장의 문제가 오고, 더 내려가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 문제나 신장 투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억울하게 사람을 죽인 죄의 경우에는 난치병, 희귀병, 불치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들은 모두 오랜 세월 쌓여 온 죄의 결과로 악한 영들이 몸 안에 들어와 역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내 몸에 원인 모를 질병이 있다면, 단순히 의학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 관점에서 어떤 죄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조상의 족보를 확인하고, 어떤 죄들이 있었는지를 파악하여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인도하심과 함께하심이 있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이 걸린 사람의 가계를 살펴보면 대부분 아주 좋은 집안, 사대부 집안, 권력을 가진 집안에서 나온다. 권력 남용과 수탈의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후손에게 남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병은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이며, 그 죄에 대한 회개가 치유의 핵심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파킨슨 병의 영적 원인을 알고 나면, 왜 이 병이 특정 가문에서 많이 나오는지가 이해된다. 명문 가문, 권력을 가진 집안, 사대부 집안에서 파킨슨 병 환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권력으로 아랫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억울하게 죽인 죄가 대대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남을 억울하게 하는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재산을 빼앗거나, 남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거나, 거짓으로 속여 남을 죽이거나 망하게 하는 일은 자기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저주를 불러오는 것이다. 반대로 선을 많이 베풀고 약한 자를 도우며 정직하게 사는 삶은 그 선함이 후손에게까지 복으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의학적 치료의 한계와 영적 치유의 가능성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의학은 파킨슨 병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현재 의학의 치료 방향은 도파민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다. 레보도파라는 도파민 전구물질을 하루 세 번 복용하게 하여 도파민 부족 상태를 채워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초기에는 증상이 완화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문제가 있다. 외부에서 도파민을 계속 공급해 주면, 몸 스스로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더욱 저하된다. 약에 의존하게 되면서 몸의 자생 능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약의 효과가 떨어지고, 더 많은 양을 써도 효과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또한 살이 쭉 빠지기 시작하면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체중이 급격히 감소할 때 적극적으로 단백질과 비타민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비타민 C 주사가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영양 공급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 치유의 가능성은 어떠한가? 임상 사역에서 파킨슨 병 환자를 대상으로 축사를 시행했을 때,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 바늘로 꿰매진 분비 통로, 신경 다발을 잡고 있는 영들,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들어차 있는 영들을 뽑아내는 작업을 했다. 30분 이상을 집중해서 뜯어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대에 걸쳐 겹겹이 쌓인 영들이기 때문에, 뽑아내도 또 있고 또 있는 것이 현실이다. 12대에서 16대 조상까지 연결된 죄의 사슬을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 스승에게 조현증과 파킨슨 병을 축사로 고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이러했다. 고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쳐 하나님께서 그 죄값을 묻고 계시는데, 죄를 회개하지 않는 한 다 뜯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가능성은 있다. 회개를 너무나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특사 조치를 내리신다는 것이다. 마치 대통령이 특별 사면령을 내리듯이, 진실된 회개가 쌓이면 어느 날 하나님이 됐다고 하시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해방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과 중독의 연관성도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도파민이 적어지면 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쇼핑 중독, 도박 중독 등이 모두 도파민 분비 저하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주변에 중독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도파민 분비 이상의 영적 원인을 다루어야 중독에서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회개를 통해 머리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면 도파민 분비가 정상화되면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능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희망이다. 의학은 포기하고 늦출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회개를 통한 영적 접근은 근본 원인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임상 사역이 진행 중이며, 회개와 영적 치유를 통해 이 병에 도전하고 있다. 의학이 불치라고 선언한 병 앞에서도 하나님의 특사 조치를 믿고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의사가 포기했다고 우리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의사가 못 하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다만 그 길은 회개라는 좁은 문을 통해야 한다. 죄를 진실되게 고백하고, 그 영들을 떠나보내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그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분이 주변에 있다면, 의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동시에 회개 기도를 함께 시작하도록 인도하라.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회개 기도를 함께 해 드리고, 나라와 민족 회개 기도문으로 이끌어 드리는 것이 가장 귀한 도움이다. 그리하여 의학이 포기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함께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현재 임상 사역이 진행 중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회개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단순히 &amp;quot;죄를 지었습니다&amp;quot;라고 막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죄가 이 병의 원인인지를 알고 그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질병 치유 회개 기도문은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파킨슨 병과 관련하여 회개 기도문의 4번, 5번, 6번 항목을 집중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권력 남용, 억압, 착취, 수탈의 죄, 신분 제도로 인한 차별과 인권 유린의 죄, 전쟁과 살인과 학살과 폭력의 죄가 바로 그 내용이다. 이 죄들을 진실되게 회개할 때, 그 죄로 인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나기 시작하고,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고 있던 영들이 제거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크다.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집중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전조 증상조차 없는 사람도, 조상 중에 권력을 가진 집안이었거나 사대부 가문이었거나, 억압과 폭력의 역사가 있는 가문이라면 예방 차원에서 이 회개 기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 회개는 예방이자 치유이며, 후손을 향한 사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파킨슨 병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파킨슨 병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로, 지금 당장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병이 오기 전에 회개하는 것이 최선이다. 병이 들어 버리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의지가 꺾이고, 지쳐서 회개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지금 이 순간 의지가 살아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머리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회개하는 사람은 치매에도, 파킨슨 병에도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이것이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예방이다. 파킨슨 병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이 말씀이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어 주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불치병이라 포기한 그 자리에서 일하시는 분이시다. 회개하는 자에게 반드시 길을 여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로, 축사 사역 현장에서 경험한 일을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다. 파킨슨 병 환자에게 장기간 축사를 시행하면서 그 내부를 살펴보았을 때, 도파민이 나오는 호수 같은 공간이 있는데 그 관이 바늘로 꿰매어져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풀어 통로를 열어주는 작업을 했는데, 그 통로를 막고 있는 영들이 12대에서 16대 조상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16대 조상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3대만 지나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16대 조상까지의 죄가 아직도 그 후손의 몸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죄의 영향은 이처럼 오래되고 깊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짓는 죄가 우리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제사의 죄와 우상숭배의 죄를 집중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파킨슨 병이나 치매와 관련하여 집중해야 할 회개의 내용은 제사지낸 죄, 부처에게 절한 죄이다. 이 죄들이 머리에 영이 쌓이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amp;quot;제사의 죄를 회개합니다&amp;quot;라고 막연하게 하는 것보다, 조상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4대까지 족보를 찾아 이름을 기록하고 한 대씩 불러가며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로, 억압과 폭력과 살인과 권력 남용의 죄를 집중 회개해야 한다. 파킨슨 병의 플러스 알파, 곧 제사에 더해 이 병을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바로 이 죄들이다. 질병 치유를 위한 나라와 민족 회개 기도문 4번, 5번, 6번이 이 내용을 담고 있다. 권력 남용, 억압, 착취, 수탈의 죄, 신분 제도를 통한 인권 유린의 죄, 전쟁과 살인과 학살의 죄가 그것이다.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이 보인다면 이 항목들을 집중적으로 반복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야 한다. 회개 기도를 천 번, 이천 번, 삼천 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16대 조상까지 연결된 죄의 사슬은 하루아침에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진실되게 회개를 거듭하면, 어느 날 하나님이 특사 조치를 내리시는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해방이 된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노력과 함께, 주변에 파킨슨 병 환자가 있다면 의학적 도움도 병행해야 한다. 마태복음 9장 12절에 나타난 바, 예수님도 병든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있음을 인정하셨다. 영적 치유와 의학적 관리를 함께 진행하되, 근본 원인인 영적 문제를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길이며, 후손에게 더 이상 이 저주의 사슬을 물려주지 않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은 의학이 원인도, 치료법도 알지 못하는 무서운 불치병이다. 뇌의 흑질에 있는 도파민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운동 기능이 무너지는 이 병은, 정신은 온전한 채로 몸이 점점 굳어지는 고통을 안겨 준다. 의학은 도파민 약물로 증상을 늦출 수 있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없다고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영적 관점에서 보면 이 병의 원인이 보인다.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대대로 머리에 들어온 악한 영들이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고 신경 다발 전체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억압, 폭력, 살인, 권력 남용, 수탈, 착취의 죄로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들의 영이 더해져 파킨슨 병이 만들어진다. 12대에서 16대까지 올라가는 이 죄의 사슬은 겹겹이 쌓여 있어 쉽게 풀리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진실된 회개가 쌓이면 특사 조치를 내리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면, 어느 날 하나님이 됐다고 하시는 날이 온다. 회개를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병이 오기 전에 회개하면 예방이 되고, 병이 온 이후에도 회개를 멈추지 않으면 치유의 문이 열린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질병 치유 회개 기도문을 통해 제사의 죄와 억압, 폭력, 살인, 권력 남용의 죄를 집중적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 기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몇 가지 실제적인 방법을 소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철저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실제 경험이 있다. 족보를 찾아 24대까지 모든 이름을 기록하고, 각 세대의 조상 이름을 부르면서 그 조상이 지은 죄를 하나씩 회개한 것이다. 부인의 이름까지 기록하여 함께 회개하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다 보면 환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환상 속에서 조상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가 드러나고,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것이 확인된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능력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조상의 족보를 최대한 찾아 1대부터 20대 이상까지 이름을 기록한다. 이름을 모르면 몇 대 조상이라는 것만으로도 회개할 수 있다. 알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각 세대의 조상에 대해 알려진 죄가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고백한다. 제사를 지낸 죄, 부처에게 절한 죄, 권력을 남용한 죄, 착취하고 억압한 죄, 억울하게 사람을 죽인 죄 등을 항목별로 회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질병 치유 회개 기도문을 꾸준히 반복한다. 특히 파킨슨 병과 관련된 4번, 5번, 6번 항목을 집중적으로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의 특사가 임하는 날이 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회개를 마친 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그 죄로 인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나가기를 선포한다. 회개만 하고 영을 내보내는 선포를 하지 않으면 영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다. 회개와 선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과정이 쉽지 않고 오래 걸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이 온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진실된 회개가 쌓일 때, 그 죄로 인해 들어온 영들이 하나씩 떠나가고,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파킨슨 병을 비롯한 불치병 앞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섯째로, 회개와 함께 삶의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죄를 짓는다면 효과가 반감된다. 회개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남을 억울하게 하는 일, 거짓말로 남을 해치는 일, 권력을 남용하여 약자를 착취하는 일을 삶에서 끊어야 한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선을 베풀며 정직하게 사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과거의 죄값을 씻어나가면서, 동시에 미래의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섯째로,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 관리도 함께 해야 한다. 회개와 영적 치유가 중심이지만, 육체적 관리도 병행해야 한다. 파킨슨 병의 전조 증상이 있는 분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근육과 신경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식단을 잘 조절하고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적 치유와 육체적 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때, 가장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이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파킨슨 병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머리에 악한 영이 가득 들어올 때 이런 병들이 찾아오는데, 회개를 통해 그 영들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면 영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영적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파킨슨 병을 비롯한 모든 불치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개이다. 회개를 통해 머리에 쌓인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도파민 분비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영들을 끊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나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내 후손에게 더 이상 이 저주의 사슬을 물려주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말씀이 그 복된 삶을 향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은 현대 의학이 한계를 인정한 병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의학 너머의 길이 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다. 그 길은 좁고 오래 걸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열린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파킨슨 병의 영적 원인과 치유의 방향을 알게 된 모든 분들이, 담대하게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의 특사 조치를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허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운 것, 손발이 저리고 느려지는 것, 냄새를 못 맡고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 이 모든 증상들이 단순한 노화나 피로가 아닐 수 있다. 대대로 내려온 죄의 결과로 악한 영들이 몸 안에서 역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먼저 회개하면 나도 살고 내 자녀도 산다. 그 저주의 사슬을 내 세대에서 끊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파킨슨 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사역의 경험에서 배운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악한 영을 뽑아낼 때, 한 번에 다 뽑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뽑고 나면 또 있고, 또 뽑으면 또 있다. 이것이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겹겹이 쌓인 죄의 영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사역자 혼자서 뽑아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환자 자신이 회개를 통해 스스로 그 죄들을 고백하고 영들을 내보내는 협력이 있어야 한다. 회개 없이 사역자가 강제로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지속적인 치유가 어렵다. 회개와 사역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가 가능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다. 의학은 원인도 치료법도 없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원인이 보이고, 해결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 쉽지 않고 오래 걸리지만, 진실된 회개와 끊임없는 간구 앞에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 날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오늘도 회개의 자리에 서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통해 머리에서 악한 영들을 뽑아내고,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고 있는 영들을 끊어낼 때,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세포가 살아나고, 신경이 회복되며, 호르몬 분비가 정상화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회개에 응답하시는 방식이다. 의학은 불치병이라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치유하신다. 그 믿음을 붙들고, 오늘부터 회개를 시작하는 모든 분들이 이 땅에서 건강하고 복된 삶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자. 파킨슨 병은 뇌의 도파민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운동 기능이 무너지는 불치병이다. 의학은 도파민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고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적 관점에서 보면, 이 병은 제사와 우상숭배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도파민 분비 통로를 막고, 여기에 억압, 폭력, 살인, 권력 남용의 죄로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들의 영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죄들을 진실되게 회개할 때, 그 영들이 떠나고, 분비 통로가 열리며, 몸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 전조 증상이 있는 분, 가족 중에 파킨슨 병 환자가 있는 분, 조상 중에 권력 남용과 억압의 죄가 있었던 집안의 분들, 모두 지금 이 순간부터 회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병이 오기 전에 예방하고, 병이 왔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며 하나님의 특사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다. 회개를 통해 우리 자신만 치유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회개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세대에서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면, 내 자녀와 손자들에게 내려갈 영들의 사슬이 끊어진다. 파킨슨 병이 조상의 죄로 인해 대대로 내려오는 것처럼, 회개를 통한 치유도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회개하면 내 자녀가 그 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이 회개가 단순히 개인의 영적 행위를 넘어 가문 전체를 바꾸는 능력이 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회개를 시작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내 후손을 위한 것이기도 한 귀한 선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신 28: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받지 못할 것이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28일(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현대 의학에서 불치병으로 간주되는&amp;nbsp;&lt;strong&gt;파킨슨병을 영성학적 관점과 성경적 원리&lt;/strong&gt;를 통해 분석하고 그 치유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이 질병의 근본 원인을 단순한 도파민 결핍이 아닌,&amp;nbsp;&lt;strong&gt;조상들이 저지른 억압, 살인, 권력 남용 등 &amp;#39;한 맺힌 죄&amp;#39;의 역사&lt;/strong&gt;가 후손의 뇌 신경 통로를 물리적으로 장악한 결과라고 진단합니다.이 설교는 의학적인 약물 치료의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 기도&lt;/strong&gt;를 통해 대물림된 악한 영의 결박을 풀어내면 하나님의 &amp;#39;특별 사면&amp;#39;과 같은 초자연적인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메시지는 질병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amp;nbsp;&lt;strong&gt;영적 회개를 통한 근원적인 생명 연장과 치유의 소망&lt;/strong&gt;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인포그래픽_ChatGPT Image 2026년 6월 29일 오전 08_34_11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02e8b649795478cfd1444a1066b3254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52085492fcae621235412f627de019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1808fb2e5dc5fd5959e873da9d3e7b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8ce052613c70d27b677f1b21bf8074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463adeac5fe8cd9b31e0dabdc43423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44d01d13dedacb4eb9e681246a9322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874ea29cff1c1390061b4ec17fcce7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48aca94a1b5e750fd13cf1e3f5b340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072b2cf11ed1da13fe5d25d98b6057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94f60a1ee948dcd695743d0f342c18b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52d6660327fbfa09f39a409dbafa6b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ac283953201ea4b0b49c2344661d6b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b8bbe1cc3bd4c3c7dcd07fc66ebaea7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1f41f0dc7fa70ad62e54b5cfff1a1f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ac81a360dea9d3e68962446215c24b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Spiritual_Liberation_from_Parkinson_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edd1e8588a82d459a853eb437f9fd4a2.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2026-06-2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정제된 글 요약)&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인류에게 파킨슨 병이란 어떤 질병이며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신28:27~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은 사람을 두렵게 하는 질병이다. 치매가 기억과 인지의 영역을 무너뜨린다면, 파킨슨병은 몸의 움직임과 균형과 일상생활의 능력을 점점 무너뜨린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파킨슨병 환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음에도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고통을 겪는다. 걷고 싶어도 보폭이 작아지고, 손을 움직이고 싶어도 동작이 늦어지고, 얼굴 표정도 굳어지며, 몸이 앞으로 굽어 간다. 그러므로 파킨슨병은 단지 신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드는 질병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병을 말할 때에는 두 가지 관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는 의학적 관점이다.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병이 왔을 때 의학적 진단과 치료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운동 조절과 관련된 신경계 이상으로 설명되며, 특히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 의학은 약물, 재활, 운동, 영양 관리, 낙상 예방 등을 통해 증상을 조절하고 진행 속도를 늦추도록 돕는다. 이것은 분명히 필요한 영역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의학적 설명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영역도 있다. 성경은 질병의 깊은 뿌리가 죄와 저주와 악한 영의 역사와 연결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모든 병자를 정죄하라는 말이 아니라, 질병의 배후에 죄와 영적 원인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파킨슨병을 다룰 때에는 의학적 관리와 영적 정결을 함께 보아야 한다. 의학은 몸의 증상을 관리하고 진행을 늦추도록 돕지만, 회개와 축사는 죄의 뿌리와 악한 영의 역사를 처리하는 길을 열어 준다. 특히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회개와 축사의 관점에서는, 파킨슨병을 단순한 신경계 질환으로만 보지 않고 조상 제사와 절의 죄, 그리고 억압과 폭력과 살인과 권력 남용의 죄가 몸과 뇌와 신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파킨슨병이 무엇이며, 그것의 의학적 설명과 영적 원인은 무엇이고, 성도는 어떻게 회개와 축사와 의학적 관리를 병행하여 치료의 길을 열어 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파킨슨병은 왜 치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을 이해하려면 먼저 치매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치매와 파킨슨병은 모두 뇌와 관련된 질병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둘 다 노년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본인과 가족에게 큰 부담을 준다. 또한 영적 관점에서 볼 때 둘 다 머리에 들어온 악한 영들, 특히 조상 제사와 절을 통해 들어온 영들과 관련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질병은 머리와 뇌와 신경의 문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둘은 분명히 다르다. 치매는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무너지는 병이다.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지고, 방금 한 말과 행동을 잊어버리며, 나중에는 가족도 몰라볼 수 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무엇을 잊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들이 더 힘들어한다. 치매가 깊어지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집을 찾지 못하고, 때로는 폭력성까지 나타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반면 파킨슨병은 정신은 비교적 또렷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병이다. 환자는 자신이 걷고 싶다는 것을 안다. 손을 움직이고 싶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몸이 느려지고 굳어지며, 손발의 움직임이 작아진다. 보폭이 좁아지고,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몸이 앞으로 굽어지며, 균형을 잃고 넘어질 위험이 커진다. 그러므로 파킨슨병은 본인에게 더 큰 좌절과 우울을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은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의 초기 징후는 운동 증상만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후각이 점점 떨어지고, 변비가 오래 지속되며, 잠을 자면서 꿈속 행동을 실제로 말하거나 몸으로 표현하는 렘수면 행동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손발을 휘두르거나, 침대에서 떨어질 정도로 몸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들이 모두 파킨슨병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반복된다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런 증상을 두려움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몸에 주신 신호로 보고, 의학적 검사를 받아야 하며, 동시에 영적으로도 점검해야 한다. 특히 머리와 뇌와 신경을 막는 악한 영들이 있는지, 조상 제사와 절의 죄가 있는지,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억압한 조상의 죄가 있는지를 깊이 살펴야 한다. 질병은 단순히 몸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죄와 영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lt;/p&gt; &lt;h2&gt;3. 의학은 파킨슨병을 어떻게 설명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을 의학적으로 말하면, 뇌의 깊은 부분에서 운동을 조절하는 신경 체계가 약해지는 질병이다. 특별히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운동 조절에 문제가 생긴다. 도파민은 몸의 움직임, 의욕, 균형, 동작의 크기와 속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도파민 체계가 약해지면 몸이 느려지고, 근육이 굳어지고, 손이 떨리고, 자세가 불안정해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파킨슨병을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손가락 운동이다. 엄지와 검지를 크게 벌렸다 닫는 동작을 빠르게 반복해 볼 때, 동작이 점점 작아지거나 느려지거나 규칙적으로 잘 되지 않으면 운동 기능의 저하를 의심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몸의 동작이 작아지는 현상은 파킨슨병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글씨가 작아지고, 걸음걸이가 짧아지고, 표정이 줄어드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의학에서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도파민을 보충하거나 도파민 작용을 돕는 약을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레보도파 계열의 약물이 쓰인다. 이 약은 부족한 도파민 기능을 보완하여 움직임을 돕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줄어들거나,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 또한 약물만으로 병의 근본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운동, 재활, 영양, 수면, 우울 관리, 낙상 예방이 함께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성도는 균형을 가져야 한다. 의학적 치료를 무시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있다고 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의사가 하는 검진, 약물 조절, 운동 처방, 영양 관리, 안전 관리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특히 파킨슨병은 넘어짐이 큰 위험이 된다. 균형이 무너지면 넘어져서 머리나 허리나 고관절을 다칠 수 있다. 그러므로 생활환경을 안전하게 정리하고, 체중이 급격히 줄지 않도록 영양을 관리하며, 규칙적인 운동과 재활을 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한 가지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도파민은 단순히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물질만이 아니다. 의욕, 보상, 즐거움, 집중과도 연결된다. 도파민 체계가 흔들리면 몸의 움직임만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가라앉고, 삶의 의욕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파킨슨병 환자에게 &amp;ldquo;왜 그렇게 느리냐&amp;rdquo;, &amp;ldquo;왜 그렇게 힘이 없냐&amp;rdquo;고 책망해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의 전달 체계가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교회는 병자를 정죄하지 말고, 병든 자에게 필요한 의학적 도움과 영적 도움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의학이 설명하는 것은 주로 결과와 현상이다. 도파민이 부족하다, 신경세포가 손상되었다, 운동 기능이 느려졌다는 설명은 맞다. 그러나 영적 관점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왜 도파민 통로가 막혔는가? 왜 신경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가? 왜 뇌와 신경에 그런 장애가 생겼는가? 여기에서 회개와 축사의 관점이 필요하다. 의학은 몸을 보고, 성경은 죄와 영을 보게 한다. 두 관점을 함께 보아야 전체가 보인다.&lt;/p&gt; &lt;h2&gt;4. 파킨슨병의 영적 뿌리는 무엇인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질병의 깊은 배후에 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죄를 지으면 악한 영이 들어온다. 창세기에서 뱀은 흙을 먹고 살라는 말씀을 받았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사람 속에 뱀이 들어와 역사할 수 있다. 신약에서는 귀신도 사람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다시 들어가려 한다고 말씀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의 영적 뿌리를 볼 때 첫 번째로 살펴야 할 것은 조상 제사와 절의 죄다. 제사는 죽은 자에게 절하고 음식을 차려 올리는 행위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배가 죽은 자와 우상에게 향하게 되는 것이다. 절을 하면 머리로 영들이 들어온다. 특히 제사를 반복적으로 지낸 집안, 종손 가문, 제사를 많이 지낸 가문일수록 머리에 영이 많이 들어올 수 있다. 치매와 파킨슨병은 모두 머리와 뇌와 신경의 질병이므로, 제사와 절의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로 살펴야 할 것은 부처와 불교적 절의 죄다. 부처 앞에 108배, 천 배, 삼천 배를 하며 절했다면, 그 절도 머리에 영들을 불러들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절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경배의 행위다. 그러므로 절을 많이 한 조상, 부처를 깊이 섬긴 조상이 있다면 그 죄도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파킨슨병에는 더 깊은 뿌리가 있다. 설교의 임상적 관점에서 보면, 파킨슨병은 단순히 제사의 죄만으로 오는 경우보다 제사의 죄 위에 억압과 폭력과 살인과 권력 남용의 죄가 겹쳐 있을 때 더 많이 나타난다. 조상 가운데 권력을 가진 자가 약한 자를 억울하게 죽였거나, 누명을 씌웠거나, 종을 때려 죽였거나, 재산을 빼앗았거나, 여인의 인권을 유린했거나, 전쟁과 사화와 당파 싸움 속에서 많은 사람을 죽게 했을 때, 그 한 맺힌 영들이 후손에게 내려와 깊은 질병으로 역사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파킨슨병은 머리와 신경의 질병이면서 동시에 억울한 피와 한의 문제를 품고 있을 수 있다. 성도는 자기 자신만 정죄해서도 안 되고, 단순히 조상을 탓하고 끝내서도 안 된다. 조상의 죄를 자기 앞에 가져와 자백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amp;ldquo;내 조상들이 제사 지낸 죄, 부처에게 절한 죄, 사람을 억압하고 죽이고 착취한 죄를 회개합니다&amp;rdquo;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그때 그 죄를 근거로 붙어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날 길이 열린다.&lt;/p&gt; &lt;h2&gt;5. 왜 도파민 통로를 막는 영을 보아야 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의학은 파킨슨병을 도파민 부족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영적 관점에서는 그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도파민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가? 왜 도파민이 몸의 끝까지 전달되지 않는가? 무엇이 그 통로를 막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영안과 축사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실제 사역을 해 보면, 파킨슨병과 관련된 영들은 뇌 깊은 곳과 신경 통로를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도파민이 흘러야 할 통로가 실로 꿰매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영들이 그 관을 움켜쥐고 있기도 하며, 신경 다발을 묶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손가락 끝, 발끝,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말단까지 영들이 붙어 있어 운동 기능을 방해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안이다. 축사는 보이지 않아도 말의 권세와 불의 은사로 악한 영을 압박하고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질병 치유는 어떤 영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붙어 있는지를 보면 훨씬 정확해진다. 칼처럼 박힌 영인지, 뱀처럼 감고 있는 영인지, 조상의 한 맺힌 영인지, 권력 남용의 영인지, 무당과 제사의 영인지가 드러나면 그 죄를 정확히 회개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본 뒤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영들이 들어온 합법적 근거가 죄라면, 그 죄를 자백하지 않고는 완전한 처리가 어렵다. 요한일서는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회개 후에는 축사가 필요하다. &amp;ldquo;도파민 통로를 막고 있는 영들은 떠나라&amp;rdquo;, &amp;ldquo;뇌와 신경을 묶고 있는 영들은 풀어져라&amp;rdquo;, &amp;ldquo;손발의 운동을 방해하는 영들은 떠나라&amp;rdquo;, &amp;ldquo;제사와 절로 들어온 영들은 나가라&amp;rdquo;, &amp;ldquo;억압과 폭력과 살인의 죄를 근거로 들어온 영들은 음부로 내려가라&amp;rdquo;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이때 사역자는 성령의 불과 영적 무기로 그 영들을 태우고 끊고 내보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회개는 단순히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죄의 기록과 영의 통로가 실제로 작동한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죽인 조상은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그 죄의 결과로 들어온 영들은 후손의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질병은 개인의 생활습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해도 잘 해결되지 않는 병,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병, 약을 먹어도 뿌리가 계속 남아 있는 병은 반드시 조상의 죄와 민족의 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영적 팩트 기반의 질병 해석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은 한 번의 기도로 단숨에 끝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질병이다. 조상 대대로 쌓인 죄와 영들이 신경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사역, 회개, 축사, 의학적 관리가 함께 가야 한다. 성도는 조급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한 겹씩 벗겨 내고 한 통로씩 열어 가야 한다.&lt;/p&gt; &lt;h2&gt;6. 왜 나라와 민족의 죄까지 회개해야 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을 다룰 때 개인 회개만으로 끝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이 병의 영적 배후에는 개인의 죄만이 아니라 조상과 가문과 민족의 죄가 깊이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억울한 죽음과 폭력의 죄는 한 개인의 기억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가문과 땅과 역사 속에 한으로 남는다. 그 한을 타고 악한 영들이 후손에게 내려올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나라와 민족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첫째, 당파 싸움과 사화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조선 시대에 권력을 잡은 자들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누명을 씌우고, 유배 보내고, 처형하고, 가문을 몰락시킨 죄가 많았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한은 가볍지 않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신분 제도와 수탈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양반과 상민,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서 약한 자를 괴롭히고, 재산을 빼앗고, 종을 굶겨 죽이고, 여인을 짓밟고, 억울한 누명을 씌운 죄가 있었다. 이런 죄는 단지 역사책 속의 일이 아니다. 그 영적 결과가 후손의 몸에 나타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셋째,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일본에 부역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잡아가고, 고문하고, 죽인 죄가 있다. 또한 전쟁과 이념 대립 속에서 죽창으로 사람을 찌르고, 무고한 자를 죽이고, 보복 학살을 한 죄도 있다. 이런 죄들은 피의 죄이며 한의 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넷째, 권력 남용과 폭력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권세를 가진 사람이 그 권세를 하나님께 받은 책임으로 사용하지 않고, 약한 자를 누르고 죽이는 데 사용했다면 그 죄는 매우 무겁다. 파킨슨병과 같은 깊은 질병은 이런 권력 남용의 죄와 연결되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에는 &amp;ldquo;조상들이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습니다&amp;rdquo;라고 막연히 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amp;ldquo;권력을 남용했습니다. 누명을 씌웠습니다. 약한 자를 착취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에 가담했습니다. 하인과 종과 여인들의 인권을 유린했습니다&amp;rdquo;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단 9:5 우리가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자기가 직접 저지르지 않은 조상과 민족의 죄를 자기 죄처럼 품고 회개했다. 이것이 민족 회개다. 오늘 성도도 자기 안에 내려온 질병과 저주의 뿌리를 끊기 위해 조상과 민족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과거를 탓하는 행위가 아니라, 과거의 죄가 더 이상 현재와 후손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 정리다.&lt;/p&gt; &lt;h2&gt;7. 파킨슨병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가장 좋은 치료는 병이 오기 전에 막는 것이다. 파킨슨병이 깊어지고 몸이 약해진 뒤에는 회개도 어렵고 축사도 어렵고 운동도 어렵다. 그러므로 아직 몸이 움직이고 정신이 또렷할 때 회개해야 한다. 의지가 있을 때, 기도할 힘이 있을 때,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첫째, 제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조상들이 죽은 자에게 절하고 음식을 바치고 향을 피운 죄를 자백해야 한다. 종손 가문, 제사를 많이 지낸 가문, 명절마다 절을 반복한 가문일수록 이 회개가 중요하다. &amp;ldquo;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이 아닌 죽은 자 앞에 절했습니다. 죽은 자에게 음식을 바치고 섬겼습니다. 그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amp;rdquo;라고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부처와 우상에게 절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불교적 절, 108배, 천 배, 삼천 배, 부처와 산신과 잡신에게 절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머리로 들어온 영들은 단순히 생각만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혈관과 신경과 호르몬의 흐름까지 방해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셋째, 억압과 폭력과 살인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파킨슨병의 깊은 뿌리에는 억울한 죽음과 한의 영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라와 민족 회개기도, 조상 죄 회개, 권력 남용과 착취와 수탈의 죄 회개를 꾸준히 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넷째, 머리와 신경을 향해 영적 명령을 해야 한다. 회개한 뒤에는 &amp;ldquo;머리 속에 있는 제사의 영들은 떠나라&amp;rdquo;, &amp;ldquo;뇌와 신경망을 묶고 있는 영들은 풀어져라&amp;rdquo;, &amp;ldquo;도파민 통로를 막는 영들은 떠나라&amp;rdquo;, &amp;ldquo;혈관을 누르고 막는 영들은 떠나라&amp;rdquo;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문지르며 기도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회개와 예수 이름의 권세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특별히 파킨슨병을 예방하려면 &amp;ldquo;작아지는 현상&amp;rdquo;을 영적으로도 주목해야 한다. 걸음이 작아지고, 글씨가 작아지고, 손동작이 작아지고, 목소리가 작아지고, 표정이 줄어드는 것은 몸의 운동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믿음이 작아지고, 기도가 작아지고, 말씀을 붙드는 힘이 작아지고, 담대함이 작아지면 원수에게 밀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몸의 작은 변화도 살피고, 영혼의 작은 변화도 살펴야 한다. 작은 신호를 무시하면 큰 질병으로 번질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의학적 관리도 병행해야 한다. 후각 저하, 변비, 수면 중 이상 행동, 손 떨림, 움직임의 느려짐, 보폭 감소, 균형 장애가 지속되면 전문의에게 상담해야 한다. 약물 치료, 운동, 영양, 수면 관리, 낙상 예방은 필요하다. 신앙은 의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학을 넘어 영적 뿌리까지 함께 다루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섯째,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줄어들수록 몸은 더 굳어진다. 규칙적인 걷기, 스트레칭, 근력 운동, 균형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단순한 건강관리만이 아니라, 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는 청지기적 순종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몸을 함부로 방치하면 안 된다. 몸은 성령의 전이다. 그러므로 회개로 영을 내보내고, 의학적 관리로 몸을 돌보며, 운동과 말씀과 기도로 신경과 마음을 깨워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후손도 산다.&lt;/p&gt; &lt;h2&gt;8. 이미 병이 왔다면 어떻게 치료의 길을 열어야 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미 파킨슨병이 왔다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된다. 파킨슨병은 깊은 질병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죄와 영이 신경과 뇌와 몸에 깊이 쌓여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단번에 해결된다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그러나 회개의 길은 열려 있다. 예수의 피는 지금도 죄를 씻고, 예수 이름의 권세는 지금도 악한 영을 내보낸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첫째, 의학적 진단을 받아야 한다. 파킨슨병인지, 다른 신경계 질환인지, 약물의 부작용인지, 갑상선이나 영양 문제인지 확인해야 한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있다고 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진단을 피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대응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둘째, 약물과 재활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도파민 보충 약물이 증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운동과 재활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식사와 영양도 중요하다. 체중이 급격히 줄면 몸이 더 약해지고 넘어짐과 합병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관리는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셋째, 회개기도를 깊이 해야 한다. 파킨슨병이 왔다면 제사의 죄, 부처에게 절한 죄, 조상들의 억압과 폭력과 살인의 죄, 권력 남용과 수탈의 죄를 집중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한두 번의 회개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겹겹이 쌓인 죄라면 겹겹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amp;ldquo;이제 됐다&amp;rdquo; 하실 때까지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넷째, 사역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아야 한다. 영안이 열린 사역자는 어떤 영이 어디를 막고 있는지 볼 수 있다. 불의 은사가 있는 사역자는 그 영들을 태우고 자르고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사역을 받는 사람도 준비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사역만 받으려고 하면, 합법적으로 들어온 영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회개가 먼저이고 축사는 그다음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병이 왔다고 자신을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병은 죄의 결과와 연결될 수 있지만, 그 병을 가진 사람을 정죄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은 회개와 정결과 하나님께 돌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본인과 가족은 서로를 탓하지 말고, 함께 회개하고 함께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사역을 받을 때에도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죄를 인정해야 한다. 그다음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 그다음 악한 영을 향해 명령해야 한다. 죄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만 강제로 빼내려 하면, 그 영들은 &amp;ldquo;합법적 권리&amp;rdquo;를 주장하며 다시 들어오려 한다. 그러므로 파킨슨병 치유 사역은 단순한 명령 사역이 아니라 회개 사역이며, 정결 사역이며, 신경과 뇌와 몸의 회복을 함께 바라보는 통합 사역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섯째, 후손을 위해 회개해야 한다. 내가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회개는 헛되지 않다. 내가 회개하면 후손에게 내려갈 영들이 끊어진다. 내가 머리와 신경의 영들을 처리하면 내 자녀와 손주에게 같은 저주가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파킨슨병을 다루는 회개는 나 하나의 건강 문제를 넘어 가문의 정결과 후손의 자유와 연결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약 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또한 가족도 함께 배워야 한다. 환자 한 사람만 회개하게 하고 가족은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파킨슨병은 가족 전체의 돌봄을 요구하는 병이며, 영적으로도 가문 전체의 죄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녀와 배우자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amp;ldquo;우리 가문에 제사 지낸 죄가 있었습니다. 약한 자를 억울하게 한 죄가 있었습니다. 폭력과 살인과 착취의 죄가 있었습니다&amp;rdquo;라고 함께 고백할 때, 환자에게 붙어 있는 짐도 가벼워질 수 있다. 가족의 회개와 사랑은 환자의 마음을 살리고, 마음이 살아나면 몸을 관리할 힘도 다시 생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병과 기도와 죄의 고백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죄가 있으면 고백해야 하며,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이미 병이 왔다면 더 간절히 회개해야 한다. 더 진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의학적 도움을 받으면서도 예수의 피와 예수 이름의 권세를 붙들어야 한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인류에게 파킨슨병이란 어떤 질병이며 과연 치료가 가능한가를 의학적 관점과 성경적&amp;middot;영적 관점에서 함께 살펴보았다. 파킨슨병은 의학적으로 도파민 신경전달 체계의 이상과 관련된 진행성 신경계 질병이며, 느린 움직임, 떨림, 경직, 자세 불안정, 후각 저하, 변비, 렘수면 행동장애, 우울 등의 증상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 약물, 운동, 재활, 영양 관리, 낙상 예방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의학적 관리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성도는 영적 뿌리도 보아야 한다. 파킨슨병은 설교의 영적 관점에서 볼 때 조상 제사와 절의 죄, 부처와 우상에게 절한 죄, 그리고 억압과 폭력과 살인과 권력 남용과 착취와 수탈의 죄와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제사의 영은 머리와 뇌와 혈관과 신경을 막을 수 있고, 억울한 피와 한의 영들은 몸의 운동 기능과 신경 통로를 붙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는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되고, 제사의 죄와 조상의 폭력의 죄와 나라와 민족의 죄까지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병이 오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아직 정신이 맑고 몸이 움직일 때 회개해야 한다. 머리에 들어온 영을 내보내고, 도파민 통로를 막는 영을 처리하고, 혈관과 신경을 누르는 영을 끊어 내야 한다. 이미 병이 왔다면 낙심하지 말고 의학적 치료와 회개와 축사를 병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사 조치처럼 긍휼을 베푸실 때까지 진실한 회개를 쌓아 가야 한다. 그리고 나의 회개가 나 하나의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와 후손에게 내려갈 질병과 저주를 끊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파킨슨병은 두려운 병이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씻고, 예수 이름의 권세는 악한 영을 내보낸다. 성령께서 주시는 빛의 은사는 원인을 보게 하고, 불의 은사는 악한 영을 태우고 내보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회개와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의학적 지혜를 존중하면서도 영적 원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머리와 신경의 저주를 끊고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28일(일)&lt;/p&gt; &lt;p class=&quot;autho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author&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파킨슨병_의학적_영적_치유_조화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b1f98ade8b09b1830029ee359a0ac70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318106dce23b8c7c943f72ee34bc42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1c165708baa9c3927aea47cf3b6a97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a858d3a7564914f6036946f5b82690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77a57fb427846cd1b2803984aca3c0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113ba4f438d9228e54c6f768bd8a5d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b4d8544ca576387c8c46fd5f15ca8e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4770046d51c6cf0adbef25e5dbc0e9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1a943a09bfadf6aa620785660581a3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7a5ae953236a424bc24434e1fba2a9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66ab9cc457a193abef71b1cbc21ccc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93c5d271f5b0acf9ed3c1efdd1c032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8e8c1a784ae6241f68d34bfe65d105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35)] The_Parkinson_Healing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08/261/7977af74f0450eae3c7582e60a0aad1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0; padding:0; } body { 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Arial,sans-serif; font-size:10pt; line-height:1.65; color:#111; } h1 { font-size:12pt; font-weight:bold; color:#111; margin:0 0 1.2em 0; padding:0; } h2 { font-size:11pt; font-weight:bold; color:#38688c; margin:2.4em 0 0.8em 0; padding:0; } p { margin:0 0 0.9em 0; padding:0; } p.bodypara { text-indent:0; } p.scripture { font-weight:bold; color:#854ba0; text-indent:0; } p.date, p.author { text-ind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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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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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1308#comment</comments>			<pubDate>Sun, 28 Jun 2026 22:27: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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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_2026-06-2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841</link>
				<description>&lt;p&gt;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투박한 요약 정리)&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1AGvfBxVI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1AGvfBxVI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Nanum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 color: #222; line-height: 1.65; } .content { margin: 0; padding: 0; } h1 { margin: 0 0 1.2em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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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amp;nbsp;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일은 신앙생활의 출발이다. 그러나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며, 삶의 결정과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은 단지 좋은 말씀이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하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하나님의 빛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설교의 출발점은 매우 실제적이다. 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성경 주소와 내용을 자유롭게 꺼내어 말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타고난 지능이 매우 뛰어나지 않아도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듯 사용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 영적 방해의 처리, 마음의 상처 치유, 해마를 통한 기억의 저장과 회상, 그리고 반복적으로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암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문제이며,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의 방해를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하는 영적 문제이고, 마음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용서로 치유하는 내면의 문제이며,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말함으로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생활 훈련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 말씀이 왜 쉽게 잊히며,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처럼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왜 성경 말씀은 듣고도 쉽게 잊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성경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히는 첫 번째 이유는 영적 방해 때문이다. 말씀은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귀에 소리로 들려도, 실제로는 영과 혼과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듣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하며, 깨달았다 해도 곧 빼앗기도록 방해한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말씀을 사탄이 즉시 와서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막 4:1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막 4: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다고 했다(마 13:19).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빼앗기는 장소가 귀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귀로 들었으나 마음에 심기지 못하면 말씀은 오래가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적 방해를 매우 실제적으로 설명한다. 제사 계열의 영, 의심하게 만드는 영, 불신앙의 영,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들이 귀와 생각을 막는다. 특히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들어온 영들은 말씀을 들을 때 졸리게 하고, 다른 생각이 나게 하며, 말씀에 의심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의 첫 단계는 단순히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막는 영적 통로를 회개로 처리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두 번째 이유는 육체의 피곤이다. 육체가 피곤하면 영적 집중력이 떨어진다. 토요일 밤에 늦게 자고 주일 예배에 오면,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몸이 먼저 잠을 청한다. 몸이 잠들면 귀도 닫히고, 귀가 닫히면 마음에 말씀이 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려면 몸도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것은 육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경적 균형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졸고 있을 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마 26:4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세 번째 이유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amp;ldquo;좋은 말씀이었다&amp;rdquo;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말씀이라고 말한 뒤 곧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도 좋은 말씀을 듣고, 또 잊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말씀은 축적되지 않는다. 말씀을 정보처럼 소비하면 해마는 그 말씀을 오래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말씀을 죽을 때까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면, 들을 때부터 태도가 달라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쉽게 잊히는 이유는 지능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악한 영이 말씀을 빼앗는 영적 방해, 육체의 피곤, 마음의 준비 부족, 그리고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함께 작동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면 먼저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 하나의 방해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 생기는 의심이다. 의심은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amp;lsquo;정말 그럴까&amp;rsquo;, &amp;lsquo;나에게도 해당될까&amp;rsquo;, &amp;lsquo;저 말씀은 나를 공격하는 말이 아닐까&amp;rsquo;라는 생각이 반복되면, 말씀은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질문과 다르다. 진리를 더 알기 위한 질문은 유익하지만, 말씀을 밀어내기 위한 의심은 악한 영들이 즐겨 사용하는 통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들을 때 판단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말씀 앞에 판단받는 자리에 서야 한다.&lt;/p&gt; &lt;h2&gt;3.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은 어떤 사람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말씀하셨다. 여기서 서기관은 헬라어로 &amp;lsquo;그람마튜스&amp;rsquo;(grammateus)이다. 이 단어는 문자와 기록을 다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은 단순한 율법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사람이며, 말씀을 자기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새것과 옛것을 꺼내는 사람이다(마 13:5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말씀에서 중요한 표현은 &amp;lsquo;곳간에서 내온다&amp;rsquo;는 것이다. 곳간에 없는 것은 꺼낼 수 없다. 저장하지 않은 것은 사용할 수 없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도, 내 속에 저장된 말씀이 없으면 꺼내 쓸 재료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듣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자기 안에 곳간처럼 저장해 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새것과 옛것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고 예수께서 성취하신 복음의 실체가 함께 꺼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 24:4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말씀을 단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연결하여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아브라함, 야곱, 유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을 따로따로 흩어진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그는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성도들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런 사람은 설교 현장에서도 다르다. 원고를 준비했더라도 성령께서 그 순간에 더 세밀한 말씀을 주시면,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꺼내어 보여 줄 수 있다. 로고스, 곧 기록된 말씀을 평소에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때그때 레마처럼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다. 로고스(logos)는 기록되고 선포된 말씀의 객관적 토대이고, 레마(rhēma)는 그 말씀이 특정 상황 속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된다는 것은 성경 지식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다. 누군가 낙심했을 때 위로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책망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귀신의 억압 가운데 있을 때 예수 이름과 십자가의 권세를 선포하며, 누군가 천국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심판과 상급의 말씀을 꺼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자기만 간직하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서기관은 자기 곳간의 주인이기도 하다. 곳간은 아무 물건이나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먹을 양식과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다. 성도 안에도 말씀의 곳간이 있어야 한다. 어떤 성도는 세상 정보는 많지만 말씀의 곳간은 비어 있다. 어떤 성도는 찬양 가사는 많이 알지만, 정작 영혼을 살릴 성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세상 뉴스와 정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저장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이 아니라 말씀을 꺼낼 수 있다.&lt;/p&gt; &lt;h2&gt;4. 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무엇에 달려 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 목사님은 자신의 지능이 특별히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었다. 성경 말씀을 자유롭게 꺼내 쓰게 된 비결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반복적인 축적의 습관이었다. 이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소망을 준다. 말씀 기억은 소수의 천재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듣고, 찾아보고, 기록하고, 다시 꺼내 쓰면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이상관 목사님, 곧 &amp;lsquo;이석&amp;rsquo;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영적 스승과의 만남이었다. &amp;lsquo;이석&amp;rsquo;은 말씀을 돌에 새기듯 새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마음판에 새기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잠언의 권면과도 맞닿아 있다. 잠언은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에 두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잠 22:17-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잠 22:17-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목사님은 그분의 설교를 들은 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는 연습을 했다.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되면 성경에서 직접 찾아 밑줄을 그었고, 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앞뒤 문맥을 읽었다. 한 구절을 읽다가 한 장을 읽고, 한 장을 읽다가 앞뒤 장을 읽었다. 이렇게 말씀이 점점 확장되었다. 이것이 성경 기억의 실제적 방법이다. 들은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문맥 안에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리도 동일하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수 1:8).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amp;lsquo;하가&amp;rsquo;(hāg&amp;acirc;)와 연결되며,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되새기는 의미를 가진다. 성경적 묵상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입과 마음과 행동이 함께 참여하는 반복적 되새김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말한다(시 1:2). 여기서도 핵심은 즐거움과 반복이다. 억지로 외우는 지식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말씀은 마음속 깊이 들어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가치 부여에 달려 있다. 내가 그 말씀을 중요하다고 여기면, 다시 찾아보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게 된다. 그러면 기억 장치는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다. 그러나 말씀을 예배 시간의 감동으로만 여기면,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성경 기억의 비결은 타고난 머리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기록하는 습관, 반복하여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 기억의 또 다른 비결은 &amp;lsquo;중요한 말씀을 중요하게 표시하는 것&amp;rsquo;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뇌에게 &amp;lsquo;이 말씀은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amp;rsquo;라고 알려 주는 행위다. 성경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날짜를 적고,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는 순간, 말씀은 나와 관련된 기억이 된다. 남의 설교 속에 있던 말씀이 내 성경 속으로 들어오고, 내 성경 속에 있던 말씀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lt;/p&gt; &lt;h2&gt;5. 마음의 상처는 왜 말씀 기억을 방해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을 방해하는 중요한 내적 요인 가운데 하나는 마음의 상처다. 설교 원고에서는 뇌의 편도체를 상처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편도체는 감정적 충격과 두려움, 상처의 기억과 관련된 영역으로 설명된다. 목회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그 상처의 렌즈를 통해 듣기 쉽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책망도 자신을 찌르는 비수처럼 느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왕따를 경험한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모든 상황을 &amp;lsquo;나를 밀어내는가&amp;rsquo;라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 잠시 말이 없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공동체에서 작은 오해가 생겨도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설교자가 죄를 책망하면 성령의 수술 칼로 받아야 하는데, 상처가 강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말씀은 기억으로 남기보다 방어와 분노의 감정으로 남는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바르게 사용하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그 치유의 길은 용서와 회개다.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8:21-2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용서는 가해자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마음을 묶고 있는 상처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주님의 심판과 긍휼에 맡기는 것이다. 바울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엡 4:31-3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자는 특히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말씀의 칼이 사람을 살리는 수술 칼이 아니라 사람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다. 같은 진리를 말하더라도 상처에서 말하면 정죄가 되고,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말하면 회복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기억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상처를 회개와 용서로 처리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권면한다(히 12:15). 마음의 상처가 쓴 뿌리로 자라면 말씀을 왜곡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서가 그 상처를 씻으면 마음은 다시 공평하게 말씀을 받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lt;/p&gt; &lt;p&gt;&amp;nbsp;&amp;nbsp;결국 말씀 기억은 머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문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할 때, 마음은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회복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될 때 말씀의 해석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책망으로만 들리던 말씀이 사랑의 권면으로 들리고, 이전에는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헌신의 말씀이 은혜의 초청으로 들린다.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은 기억력 훈련 이전에 마음의 토양을 고르는 일과 관련된다. 마음 밭이 돌밭과 가시밭으로 남아 있으면 말씀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회개와 용서로 마음 밭이 부드러워질 때, 말씀은 오래 머물 수 있다.&lt;/p&gt; &lt;h2&gt;6. 해마는 말씀을 어떻게 저장하고 가지치기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는 말씀 기억을 설명하면서 해마를 중요하게 다룬다. 해마는 뇌 안에서 기억과 관련된 중요한 구조로 설명된다. 목사님은 해마가 정보를 저장하고, 과거의 기억을 꺼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목회적 적용은 분명하다. 해마는 모든 정보를 영원히 붙들고 있지 않는다.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가지치기하듯 쳐낸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사람은 방금 본 것과 들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면 많은 기억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해마가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정보로 판단하여 정리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고도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그 말씀을 일시적 정보로 취급한다. 그러나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다시 말하고, 다시 묵상하면, 해마는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여 오래 남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9편 11절은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amp;lsquo;두다&amp;rsquo;는 단순히 보관한다는 뜻을 넘어, 귀한 것을 숨겨 간직하는 의미를 가진다. 히브리어 &amp;lsquo;차판&amp;rsquo;(tsāphan)은 감추다, 저장하다, 소중히 간직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잠시 듣고 흘려보낼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 두어야 할 보화다(시 119: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마리아도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다(눅 2:19). 이것이 말씀 기억의 중요한 원리다.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순히 감탄하고 끝내지 않고, 그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속에서 돌이켜 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 해마는 기억의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미래 예측의 도구로 설명된다. 과거에 저장된 말씀들이 서로 연결될 때, 성도는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말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전쟁을 기억하고, 야곱이 이긴 자가 된 사건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와 요한계시록의 이기는 자 약속을 함께 기억하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말씀 기억은 낱개의 구절 암송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물론 성경 구절을 외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깊은 단계는 구절과 구절, 사건과 사건,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해마가 저장한 말씀을 성령 안에서 연결하여 사용하는 삶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들을 때 &amp;lsquo;문 밖에 나가면 잊어버릴 말씀&amp;rsquo;이라고 여기면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amp;lsquo;이 말씀은 죽을 때까지 붙들 말씀&amp;rsquo;이라고 듣는다면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해마가 가지치기하기 전에 다시 꺼내어 쓰면, 그 말씀은 중요한 것으로 각인된다. 말씀 기억의 실제 비밀은 여기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에서는 치매의 예도 함께 언급된다. 해마와 기억 기능이 약해지면 가까운 기억부터 흐려진다. 방금 들은 말, 방금 한 일, 오늘 먹은 식사부터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말씀 기억에도 경고가 된다. 평소에 머리를 쓰지 않고, 말씀을 꺼내 쓰지 않고, 모든 것을 검색과 기계에만 맡기면 기억의 근육은 약해질 수 있다. 성도는 성경 주소를 찾고, 본문을 직접 펼치고, 말씀의 앞뒤 문맥을 읽는 수고를 통해 기억의 길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해마가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게 하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같은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다시 적용하고, 어제의 경험과 연결하며, 내일의 결단으로 가져가는 반복이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은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현재의 빛이 된다. 주의 말씀은 한 번 비추고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날마다 내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다.&lt;/p&gt; &lt;h2&gt;7.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어떻게 꺼내 써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꺼내 쓰는 것이다. 설교를 다시 듣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더 강력한 방법은 설교를 듣고 난 뒤, 기억나는 내용을 스스로 글로 써 보는 것이다. 다시 듣는 것은 외부에서 정보를 한 번 더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것은 내부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방식이다. 해마는 꺼내 쓸 때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인식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박국에서 하나님은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하셨다(합 2:2). 기록은 기억의 보조 장치일 뿐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행위다. 기록하면 모호하던 생각이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장으로 정리된 말씀은 다시 기억되기 쉽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내 쓰는 첫 번째 훈련은 설교 요약이다. 오늘 들은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설교자가 반복해서 강조한 성경 구절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처음에는 한 줄만 써도 된다.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며,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이것이 말씀을 저장하는 실제적인 훈련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두 번째 훈련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말하라고 한다(신 6:6-7). 말씀은 말할 때 다시 살아난다. 가족과 식탁에서 말씀을 나누고, 성도들과 대화 속에서 오늘 들은 말씀을 설명하며, 누군가 질문할 때 성경으로 대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lt;/p&gt; &lt;p&gt;&amp;nbsp;&amp;nbsp;베드로도 성도들에게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했다(벧전 3:15). 준비되지 않은 말씀은 꺼내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에 말씀을 기록하고 말로 설명해 본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lt;/p&gt; &lt;p&gt;&amp;nbsp;&amp;nbsp;목사님의 설교 준비 과정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먼저 설교 주제가 정해지면 개요를 쓴다. 그 다음 관련 본문과 자료를 찾아본다. 주보 요약을 쓰고, 다시 원고를 작성한다. 설교를 한 뒤에도 다시 요약한다. 이런 과정은 모두 기억을 꺼내 쓰는 과정이다. 한 번 들은 것을 다섯 번 이상 다른 방식으로 꺼내 쓰면, 말씀은 단순 정보가 아니라 몸에 익은 도구가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내 쓰는 훈련은 설교자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설명하려면 꺼내 써야 한다. 직장에서 누군가 믿음에 대해 물으면 꺼내 써야 한다. 귀신의 공격이 있을 때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려면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으려면 약속의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비결은 다시 듣기만이 아니다. 기억해서 써 보고, 기억해서 말해 보고, 기억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실제 훈련은 아주 작게 시작할 수 있다.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성경 본문을 먼저 떠올린다. 그 다음 설교 제목을 떠올린다. 그리고 핵심 단어 세 개를 적는다. 예를 들어 &amp;lsquo;말씀, 해마, 꺼내 쓰기&amp;rsquo;와 같이 적는 것이다. 그 다음 그 세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든다. &amp;lsquo;말씀은 해마가 중요하다고 여기도록 계속 꺼내 써야 한다.&amp;rsquo; 여기서부터 설교 요약이 시작된다. 작은 문장 하나가 기억의 씨앗이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로 설명할 때도 원리가 있다. 단순히 &amp;ldquo;은혜로웠다&amp;rdquo;고 말하면 기억은 깊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은혜로웠는지, 어떤 성구가 마음에 남았는지,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말씀은 감정의 흔적에서 생각의 구조로 바뀐다. 생각의 구조로 바뀐 말씀은 다시 꺼내 쓰기 쉬워진다.&lt;/p&gt; &lt;h2&gt;8. 말씀 기억을 돕는 보조 원리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설교 원고는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로 상처 치유와 기억 꺼내 쓰기를 말한 뒤, 몇 가지 보조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쁨과 보상의 원리다. 목사님은 이것을 도파민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보상이 있으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기억과 훈련이 더 잘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세속적 욕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씀을 붙든 결과로 얻게 될 영적 유익, 사역의 열매, 사역자의 도움, 회개의 진전,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도 거룩한 동기가 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한다(고전 9:25). 운동선수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절제한다면, 성도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훈련도 마찬가지다. 즉각적인 편안함보다 장차 얻게 될 영적 유익을 바라볼 때 지속할 힘이 생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lt;/p&gt; &lt;p&gt;&amp;nbsp;&amp;nbsp;둘째는 자기 암시, 더 정확히 말하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다. 단순한 긍정 심리가 아니다. 성도는 &amp;lsquo;나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amp;rsquo;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빌 4: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자신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그도 할 것이며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근거로 자신에게 믿음의 말을 들려줄 수 있다. &amp;lsquo;나는 어제보다 오늘 말씀을 더 잘 붙들 수 있다.&amp;rsquo; &amp;lsquo;성령께서 내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나는 더 깊이 저장할 수 있다.&amp;rsquo; &amp;lsquo;나는 주님의 말씀을 꺼내어 사람을 살리는 자로 세워질 수 있다.&amp;rsquo; 이런 고백은 허공에 던지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 위에 서는 신앙적 자기 암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lt;/p&gt; &lt;p&gt;&amp;nbsp;&amp;nbsp;셋째는 몸의 훈련이다. 육체와 기억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말씀을 듣기 어렵고, 몸이 지나치게 무기력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도 어렵다. 그래서 적절한 운동과 수면, 규칙적 생활은 말씀 기억에도 도움을 준다. 영적인 사람은 육체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체를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잘 관리하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넷째는 회개와 축사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 의심하게 하는 영, 귀를 막는 영, 생각을 흐리게 하는 영은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해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귀신론의 관점에서 보면, 말씀 기억의 문제는 단지 뇌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통로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말씀을 막는다면, 성도는 그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름으로 그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모든 보조 원리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보상도 말씀을 위해 있고, 자기 암시도 말씀의 약속 위에 있어야 하며, 운동도 말씀을 듣고 섬기기 위한 몸의 관리가 되어야 한다. 회개와 축사도 결국 말씀을 더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한 길이다. 말씀 기억의 목적은 암기력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알고, 교회를 세우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준비되는 데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보상의 원리는 체크리스트와도 연결된다. 회개기도를 몇 번 했는지 표시하고, 성경 읽기와 설교 요약을 했는지 표시하면 뇌는 진행 상황을 본다. 진행 상황이 보이면 의욕이 생긴다. 어린아이에게 스티커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어른에게도 작은 표시와 확인은 지속의 힘을 준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훈련의 지혜다. 영적 삶에도 질서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는 성도는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몸이 너무 무너지면 예배 자리에서도 집중하기 어렵고, 기도 자리에서도 금방 지친다. 가볍게 걷고, 숨을 고르고, 몸을 움직이는 일은 말씀을 담는 그릇을 관리하는 일이다. 몸을 우상으로 삼으면 안 되지만, 몸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고전 6: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성경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과 몸이 준비되어야 한다. 악한 영의 방해를 회개로 처리해야 하고, 육체의 피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말씀을 좋은 말씀으로만 듣고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들은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앞뒤 문맥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 글로 쓰고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 해마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쳐내기 전에, 성도는 그 말씀을 다시 꺼내어 중요한 것으로 각인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마음의 상처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을 삐뚤게 듣게 되고, 책망의 말씀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공평하게 듣고, 생명을 살리는 말씀으로 전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의 문제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꺼내 쓰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기쁨과 보상,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 몸의 관리, 회개와 축사의 실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말씀을 자기 안에 보화처럼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기만을 위해 붙들 것이 아니라, 가족과 교회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최종 목적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으로 삼고,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6월 21일(일)&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말씀_기억_천국의_서기관_인포그래픽2026-06-1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edca401d7d7c92bb2c71e41039779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2e18853e9d948a26a0bca528f1578a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ac2d5181e9e11d97d61904df74c59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59c278b4d2070378cdfdf16ed2fbe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d637dabb2100ee93fe9a95a52806d2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61033c3d904fb4f3d882ac438ac8e4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7c9f176e674f22fff1404a0370127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d30e3d124633ed6e631484ff2baf29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6447b30f0588fdee5740de19ff4722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b249aed5a515067509a6d5890c2a6e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25d6f4d3a8998ceefa44e1c2ec330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6abe1646ef6ee93c6fee07d6b5dd9c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8e1bd833ec09d7263bf935a197fd77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Neuroscience_of_Scriptural_Memor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07c405f1ab73ec05599cf00a3739adb9.webp&quot; /&gt;&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또 다른 요약입니다]&lt;/p&gt; &lt;p&gt;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정제된 요약 정리)&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1AGvfBxVI8&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1AGvfBxVI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 { margin: 0; padding: 0; box-sizing: border-box;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보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은혜로운 설교를 들었고, 그 순간에는 마음이 뜨거웠는데, 하루가 지나면 절반이 사라지고 사흘이 지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다음 주가 되면 지난 주에 들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amp;quot;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amp;quot;라는 자책이 생기고, 급기야 &amp;quot;성경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amp;quot;이라는 체념에 이르게 된다.&amp;nbsp;그러나 이것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lt;strong&gt;우리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씀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 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적인 방해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기억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사실&lt;/strong&gt;도 간과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손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한다(신 6:6-7). 신명기는 이 명령을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언제든지 강론하라고 덧붙인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말씀이 머릿속 어딘가에 단단히 새겨져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은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 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3:52). 언제든지 필요한 말씀을 꺼내 쓸 수 있는 자, 그것이 천국의 서기관이다. 이 서기관은 특별히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소수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원리와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왜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살피고, 뇌의 기억 장치인 해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며,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기억을 방해하고 용서를 통해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함께 살핀 다음,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통해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서기관으로 서는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훈련을 통해 어떻게 말씀을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 모두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성경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 시간에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영적인 방해이고, 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그러나 이 둘보다 더 근본적인 세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들은 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영적인 방해부터 살펴보자. 성경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들을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고 분명히 경고한다(마 13:19). 귀신은 말씀이 들려지는 예배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역사하며, 듣는 자로 하여금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며, 마음에 뿌려진 씨앗을 순식간에 빼앗아 간다. 이것이 영적 방해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임하기 전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 자리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악한 자의 방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영적 자세가 필요하다.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했다(벧전 1:13).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 방심한 채로 예배에 앉아 있으면 귀신은 어렵지 않게 역사한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하고 영적으로 경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깊이 뿌리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몸이 지쳐 있으면 예배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고, 졸면 당연히 듣지 못한다. 피곤한 육체는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앞둔 토요일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한 영적 준비의 일환이다. 피곤함을 핑계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인 동시에 생활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일 전날 저녁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다음 날 예배에서 말씀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두 가지 원인을 넘어, 말씀이 기억에 남지 않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서 &amp;quot;오늘 말씀 참 좋았어요&amp;quot;라는 감상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 또 듣고, 또 좋은 말씀이야, 그리고 또 잊어버린다. 이렇게 반복되면 말씀이 축적되지 않는다. 수년째 예배를 드려도 누군가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답할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검색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생각해 보라. 지금 이 순간,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는가? 아마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사흘 전 아침은 어떤가?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주일 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억이란 그것을 꺼내 보지 않으면 빠르게 희미해진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라도 한 번 듣고 그냥 두면, 뇌는 그것을 불필요한 정보로 분류하여 지워 버린다. 이것은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뇌가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는 자주 사용되는 정보를 강화하고, 사용되지 않는 정보는 삭제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말씀 축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의 뇌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면 누구든지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IQ가 아니라 습관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뇌의 기억 구조에서 해마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핵심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 기억의 비결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크게 대뇌, 소뇌, 간뇌, 중뇌, 교뇌, 연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전체를 뇌간이 뿌리처럼 지탱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간뇌이다. 간뇌는 뇌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외부 충격으로 다른 부분이 손상되더라도 마지막까지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다. 그만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의 겉껍질 부분이며, 네 영역으로 나뉜다. 뒤통수 쪽에 있는 후두엽은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처리하여 간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머리 위쪽의 두정엽은 운동 감각을 담당하는데,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오랫동안 탈 수 있는 것은 이 두정엽이 운동 감각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정엽이 손상되면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마 쪽의 전두엽은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해 주는 기관이다. 귀 주변에 위치한 측두엽은 귀로 들어온 청각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네 영역으로 들어온 모든 정보가 간뇌로 흘러들어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간뇌 안에는 두 가지 핵심 기관이 있다. 하나는 편도체이고, 다른 하나는 해마이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하며, 정서적 충격과 상처를 저장하는 장치이다. 해마는 간뇌 뒤쪽 부분에 위치하며, 일반적인 정보와 경험을 기억하는 장치이다. 이 두 기관이 각각 &amp;quot;상처의 기억&amp;quot;과 &amp;quot;일반적 기억&amp;quot;을 담당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해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뇌 속에 좌우 두 개가 한 쌍으로 존재한다. 생김새가 바다에 사는 해마와 닮아서 해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약 5cm 정도이며, 귀 위쪽에서 약 5cm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작은 기관이 우리 기억 전체를 주관하는 핵심 장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의 기능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해마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몸으로 느낀 것 등 모든 감각 정보를 받아서 잘게 분해한 뒤 각 파트별로 분류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때, 저장해 둔 조각들을 다시 모아 &amp;quot;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amp;quot;를 예측하게 해 준다. 쉽게 말해 해마는 우리 몸 안의 일기 예보관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가 단순한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더 지혜롭게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마에 풍성한 말씀이 쌓여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말씀을 꺼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인간의 해마는 인공지능(AI)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AI가 어떤 동물을 식별하려면 수십만 장의 사진을 반복 학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한 번만 보면 즉시 기억한다. 아침 식사 때 옆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우리는 별다른 노력 없이 기억한다. 이것이 해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AI보다 천만 배 뛰어난 기억 장치를 이미 몸 안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탁월한 기억 장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모든 정보를 무한정 보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amp;quot;쓸모없다&amp;quot;고 판단한 정보를 가지쳐 삭제해 버린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듯이, 해마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기억을 조용히 지워 버린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은 기억나지만, 사흘 뒤에는 대부분 사라진다. 해마가 &amp;quot;그 정보는 더 이상 필요 없다&amp;quot;고 판단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가 기억을 분해하여 파트별로 저장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패턴을 추출하여 미래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다윗의 시편, 바울의 서신,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각각 파트별로 해마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예측하여 꺼내 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폭넓게 아는 사람은 삶의 어떤 자리에서도 적절한 말씀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해마에 저장된 말씀의 양과 질이 그 사람의 영적 대응력을 결정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분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억을 꺼내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꺼내서 쓰면 해마는 &amp;quot;아, 이 정보는 계속 필요하구나&amp;quot;라고 인식하여 삭제하지 않고 더 깊이 저장한다. 반대로 한 번 듣고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미련 없이 그 말씀을 삭제해 버린다. 이것이 기억의 법칙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편 치매는 이 해마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방금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수십 년 전의 오래된 기억은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오래된 기억은 이미 해마가 건강하던 시절에 단단히 저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치매를 예방하는 핵심은 바로 이 해마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뇌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를 짚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가 크면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라 해마를 얼마나 발달시켰는가이다. &amp;quot;우리는 뇌의 10%만 쓰고 나머지 90%는 잠을 잔다&amp;quot;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할 때 뇌의 모든 영역에 불이 들어온다. 뇌 전체가 협력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amp;quot;호두를 먹으면 뇌가 좋아진다&amp;quot;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호두의 모양이 뇌를 닮아서 뇌에 좋은 것이 아니라, 호두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성분이 실제로 뇌의 신경전달 기능을 돕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영국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는데,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여 운전한 그룹과 20만 개 이상의 골목길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며 운전한 그룹 사이에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달랐다. 머리로 길을 기억하며 운전한 기사들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가 더욱 발달하여, 일부 신경이 손상되어도 다른 경로로 우회하며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복적인 패턴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을 꺼내 쓰는 활동이 해마를 살아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화투나 단순 반복 게임보다 요리나 일기 쓰기가 해마 발달에 훨씬 더 유익한 이유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마음의 상처가 기억력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받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39;해마&amp;#39;가 기억을 담당한다면, &amp;#39;편도체&amp;#39;는 감정이나 상처를 담당한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한 작은 기관으로, 정서적 충격과 두려움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이다. 편도체는 마음을 주관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심장은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펌프일 뿐이며, 정서와 감정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이 편도체임이 밝혀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번 극심한 상처를 입으면 편도체는 그 충격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이후 모든 상황을 그 상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왕따를 경험한 사람은, 이미 그런 환경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무의식적으로 &amp;quot;나를 또 왕따시키려는 것이 아닐까&amp;quot;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수가 줄어들고, 관계에서 자꾸 움츠러든다. 편도체에 새겨진 상처의 기억이 현재의 모든 관계를 왜곡하여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공평하고 열린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상처가 기억 전체를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 심각한 문제는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설교자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 강단에 서면, 그 설교는 말씀의 칼이 아니라 상처에서 나온 칼이 된다. 의사가 메스를 들면 사람을 살리지만, 도둑이 칼을 들면 사람을 해치듯, 동일한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도 상처가 치유된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고, 상처가 남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사람을 찌른다. 어떤 설교자들이 책망의 말씀을 전할 때 &amp;quot;당신은 저주받을 것이다&amp;quot;라는 식의 비수 같은 말을 던지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가 강단 위에서 터지는 것이다. 말씀을 증언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의 상처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받는가? 그 답은 용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amp;quot;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amp;quot;라고 물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8:21-22). 490번이라는 숫자는 회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용서를 통해 편도체에 깊이 박힌 상처의 기억이 해방되고, 그 지배력이 끊어지는 영적이고 과학적인 원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amp;quot;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한다&amp;quot;는 고백이 편도체를 옥죄던 사슬을 끊어 낸다. 상처가 사라지면 비로소 외부의 정보를 왜곡 없이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연약함과 아픈 과거를 담담히 꺼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상처를 남 앞에서 꺼내 놓지 못한다. 그 상처를 건드리는 말 한마디에도 방어적 반응이 일어난다. 반면에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담담히 드러내며 오히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되면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말씀을 들을 때 편도체의 방해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말씀이 해마에 또렷이 새겨진다. 또한 설교자가 강한 어조로 책망하더라도 그것이 비수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수술의 메스로 들린다. 상처 치유가 말씀 암송의 첫 번째 조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용서하라. 그러면 기억의 문이 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인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귀신이 그 상처를 틈타 더욱 강하게 역사한다. 상처는 어둠이 들어오는 틈새이다. 그러나 용서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면 그 틈새가 막히고, 귀신이 역사할 빌미가 사라진다. 마음이 자유롭게 되면 예배 자리에서도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잡념이 줄고, 집중이 깊어지며, 말씀이 마음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온다. 이것이 용서가 가져오는 기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허물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내어 놓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받는다. 상처 속에 갇혀 있을 때는 자신을 보호하느라 마음의 문을 닫게 되지만, 상처가 치유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상처 없는 마음이 말씀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토양이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마 13:23). 좋은 땅이란 상처 없이 준비된 마음이다. 용서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의 마음이 바로 그 좋은 땅이다. 그 땅에 말씀이 뿌려질 때, 해마는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해마를 발달시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상처가 치유된 이후에는 해마를 적극적으로 발달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는 단 하나이다. 기억을 꺼내 쓰는 것이다. 해마는 사용할수록 더욱 강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는 자신이 저장한 정보를 누군가 꺼내어 사용할 때마다,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받는다. 그러면 해마는 그 기억을 더 단단히 저장하고, 주변의 신경세포들을 연결하여 더욱 풍성한 기억망을 형성한다.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고리인 시냅스가 더욱 촘촘해지고 강해진다. 반대로 저장해 두었어도 꺼내어 쓰지 않으면, 해마는 &amp;quot;이 정보는 필요 없다&amp;quot;고 판단하여 지워 버린다. 기억은 냉장고 속 음식과 같다. 꺼내어 먹어야 신선하게 유지되고, 방치하면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꺼낼 때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서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설교를 또 들어 복습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 행위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을 끌어내어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해마를 능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극이다. 이 차이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 오늘 들은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한 줄이라도 적어 보라.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amp;quot;오늘 목사님이 해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기억을 꺼내 써야 해마가 발달한다고 하셨다.&amp;quot; 이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한다. 그 한 줄이 내일은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고,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말씀이 쌓이는 것이 이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누군가에게 전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amp;quot;오늘 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어&amp;quot;라고 이야기해 보라. 그 순간 해마는 저장해 두었던 말씀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야기를 들은 가족도 유익을 얻고, 말한 사람의 기억은 더욱 오래 남는다. &amp;quot;여보,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알고 있었어요?&amp;quot; 하고 꺼내는 그 순간, 해마에 불이 켜지면서 그 말씀이 영구 저장 영역으로 넘어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말씀을 기억해서 꺼내 쓰는 것, 기억해서 글로 쓰는 것, 이것이 해마 활성화의 핵심&lt;/strong&gt;이다. 요리가 해마 발달에 탁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리는 재료를 보고, 냄새를 맡고, 간을 조절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활동이다. 이것이 해마를 자극한다. 반면에 화투치기나 단순 반복 게임처럼 동일한 패턴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활동은 해마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규칙이 고정되어 있으면 뇌는 그 규칙을 한 번 익힌 뒤 자동으로 처리하므로, 해마는 잠을 자게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이 해마에 탁월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있었던 일을 기억으로 끌어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해마를 매일 활성화시킨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일기를 쓰는 것, 오늘 들은 말씀 한 가지를 기억으로 적는 것, 이 작은 습관이 세월이 쌓이면 엄청난 말씀의 보고를 만들어 낸다. 이 원리를 깨닫는 것이 말씀 암송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꺼내는 것이다. 이 차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필자는 어떤 습관으로 수십 년간 말씀을 기억하고 설교해 왔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필자(정보배 목사는 IQ 106, 한국인 평균 수준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 천재적인 암기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18살에 예수님을 믿고, 25살 때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이상관 목사를 만나면서 그의 신앙과 말씀에 대한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상관 목사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수십 개의 장절을 막힘없이 인용하며 한 시간 이상 설교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 &amp;#39;이석(李石)&amp;#39;은 스스로 지은 것으로, &amp;quot;하나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돌에 새기듯 새겨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amp;quot;는 결단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정보배 목사는 그 부흥회를 2년 동안 보좌하며 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연구했다. 3일짜리 부흥회와 5일짜리 부흥회의 레퍼토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메모해 두고 집에 돌아와 성경을 직접 찾아 확인했다. 앞뒤 구절을 함께 읽으며 문맥을 이해해 나갔고, 한 절이 한 장이 되고, 한 장이 다음 장으로 이어지며 성경 전체로 확장되어 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신약 성경 대부분에 밑줄이 그어지는 날이 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후 신학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는 아무도 밀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성경을 공부했다. 당시 시험에는 성경, 영어, 세계사, 상식 등 다양한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러 번 낙방한 수험생들이 모인 스터디 그룹에서 그는 의외로 성경 과목을 맡게 되었다. 성경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장에 있는지 막힘없이 말하는 그를 보고, 2년 이상 준비한 이들도 놀라워했다. 이것은 단지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꾸준히 말씀을 꺼내고 되새기는 습관이 쌓인 결과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목사가 된 이후 그가 설교를 준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주에 어떤 말씀을 전할지 기도하며 주제를 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노트에 개요를 쓴다. 서론, 본론, 결론의 뼈대를 잡는다. 둘째, 컴퓨터를 열어 관련 자료를 찾는다. 주석, 성경 사전, 요즘에는 AI 자료 등을 두루 살핀다. 셋째, 충분히 자료를 습득한 뒤 그것을 전부 기억에서 꺼내어 다시 쓴다. 자료를 보지 않고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보에 실리는 설교 요약이 되며, 예배에서 전하는 설교문의 기초가 된다. 넷째, 설교를 한다. 다섯째, 귀가하여 그날 설교했던 내용을 다시 원고를 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요약한다. 이것을 무려 약 28년간 지속해 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렇게 하면 설교 하나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다섯 번 이상 기억으로 꺼내 쓰는 셈이다. 개요를 쓸 때, 자료를 볼 때,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할 때, 설교를 전할 때, 귀가 후 요약할 때이다. 이 다섯 번의 반복이 말씀을 뇌에 깊이 새겨 넣는다&lt;/strong&gt;. &lt;strong&gt;한 편의 설교에 이 과정을 8,600번 이상 반복한 결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자유자재로 꺼내 쓰는 목사가 된 것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는 주일 예배 설교에서 과거의 말씀을 자주 반복한다. 이것은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중요한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꺼내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amp;quot;이기는 자&amp;quot;, &amp;quot;창세기 32장&amp;quot;, &amp;quot;아브라함의 믿음&amp;quot; 등의 핵심 주제를 반복할 때마다 성도들의 해마도 &amp;quot;아, 이것이 중요하구나&amp;quot;라고 인식하여 더 깊이 저장하게 된다. 설교자의 반복은 게으름이 아니라, 말씀이 성도들의 기억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려는 목양의 지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 말씀을 들을 때부터 다른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amp;quot;문 나가면 잊어버린다&amp;quot;는 생각으로 말씀을 듣는 반면에, 그는 &amp;quot;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amp;quot;는 결단으로 말씀을 받는다. 이 자세 하나가 해마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amp;quot;이 정보는 중요하다. 절대 삭제하지 말라.&amp;quot; 해마가 그 신호를 받고 말씀을 더 깊은 영역에 저장하는 것이다. 결단이 기억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배를 드릴 때 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릴 테니 들리는 만큼만 듣자는 마음과, 오늘 이 말씀을 내 삶에 새기겠다는 마음은, 동일한 설교를 들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 하나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밑줄을 긋는 그 행위 자체가 해마에게 이것은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중에 성경을 펼쳐 밑줄 그은 구절을 다시 볼 때마다 해마는 그 기억을 재강화한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깊이이다. 천 구절을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열 구절을 반복해서 꺼내 쓰는 것이 훨씬 더 강한 기억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도파민 분비와 자기 암시는 말씀 암송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를 더 효과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한 &lt;strong&gt;보조적인 방법들&lt;/strong&gt;이 있다. &lt;strong&gt;그 첫 번째가 도파민 분비를 활용하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보상을 받을 때 집중적으로 분비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가 활성화되고, 의욕이 생기며, 해마의 활동도 더욱 왕성해진다. 도파민이 해마에 기름을 치고 비료를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원리를 말씀 암송에 적용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에 작은 보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말씀을 일정 횟수 암송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겠다거나, 목표를 이루면 원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보상 약속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회개 기도를 가르칠 때 스티커를 붙여 주고, 일정 개수가 모이면 좋아하는 음식점에 데려가는 방식이 바로 이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스티커 하나하나를 붙이는 그 순간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며, 다음 스티커를 향한 의욕이 솟아오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중요한 것은 이 보상이 예측 가능하되 완전히 규칙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매번 동일한 보상이 주어지면 뇌는 익숙해져서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다. 그러나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보상이 찾아올 때, 뇌는 더 강렬한 도파민을 분비하며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불규칙적 보상의 원리이다. 언제 오라고 정해 놓지 않다가 갑자기 &amp;quot;오늘 와서 기도받아요&amp;quot;라는 연락을 받을 때, 사람들이 더 기쁘게 달려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체크리스트도 강력한 도구이다. 말씀 암송이든 기도든, 목표를 항목별로 나누고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체크하는 행위가 해마를 자극한다. 체크 표시를 하는 그 순간 뇌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도파민을 분비하고, 다음 항목을 향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체크리스트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뇌를 움직이는 동기 부여 장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보조적 방법은 &amp;#39;자기 암시&amp;#39;&lt;/strong&gt;이다. 자기 암시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반복함으로써 뇌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기술이다. &amp;quot;나는 더 잘할 수 있다&amp;quot;, &amp;quot;나는 오늘도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amp;quot;는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면, 뇌는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심리학적 원리인 동시에 신앙적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보배 목사의 어머니는 그에게 어릴 때부터 이 자기 암시를 심어 주었다. &amp;quot;너는 백두산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살아서 나올 아이다&amp;quot;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그 말이 뼈에 사무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헤쳐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개척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고 그 시간을 준비의 시간으로 삼아 설교를 연구하고 성경을 팔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심어 준 자기 암시의 열매였다. &amp;quot;언젠가는 쓸 날이 올 것이다&amp;quot;는 믿음으로 10년 동안 성경을 팠고, 지금 그 기간에 쌓인 말씀이 매주 강단 위에서 흘러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자기 암시는 마음속으로만 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말할 때 더 강하게 뇌에 각인된다.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뇌의 측두엽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기억 장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amp;quot;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amp;quot;, &amp;quot;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amp;quot;고 소리 내어 말하라. 이미 최고다, 다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성장은 멈춘다. 항상 &amp;quot;나는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다&amp;quot;는 고백을 지속하는 사람이 계속 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 기도도 마음으로만 하는 것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고백할 때 훨씬 깊이 새겨진다. 이것이 말로 고백하는 신앙의 원리이기도 하다. 빌립보서는 이 원리를 이렇게 선포한다(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자기 암시의 최고 형태이며, 성령께서 능력을 부어 주시는 통로이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할 때, 뇌는 그 고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실제로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고 더 잘 전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보조적 방법은 &amp;#39;유산소 운동&amp;#39;&lt;/strong&gt;이다. 몸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몸을 움직이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되어 해마의 기능이 더욱 선명해진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먼저 5분만 하기로 결심하고 시작하면 된다. 5분이라는 낮은 문턱이 시작의 장벽을 허물고, 일단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영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는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한다(고전 6:19). 성령의 전을 잘 관리하는 것, 즉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명확한 정신으로 말씀을 받고 기억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살펴본 원리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말씀을 오래 기억하여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첫째로, 상처를 치유받아야&lt;/strong&gt;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기초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해마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편도체가 모든 것을 상처의 관점으로 걸러 내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라. &amp;quot;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합니다&amp;quot;라는 고백을 날마다 반복하라. 이 용서가 편도체의 사슬을 끊고, 해마가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을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말씀을 들을 때부터 결단을 가지고 들어야&lt;/strong&gt; 한다. &amp;quot;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amp;quot;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과 &amp;quot;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리겠지&amp;quot;라는 마음으로 듣는 것은,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해마는 우리의 태도를 알아챈다. 중요하다고 결단하면 해마는 더 깊이 저장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 빠르게 삭제한다. 예배에 임하기 전 &amp;quot;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평생 새기겠습니다&amp;quot;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억의 토양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예배 후 반드시 기억을 꺼내 써야&lt;/strong&gt; 한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 들은 말씀을 노트나 메모장에 기억으로 적어 보라.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하여 써 내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하고, 다음 번에는 두 줄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세 줄이 나온다. 가족에게 오늘 들은 말씀을 이야기해 주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amp;quot;오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해마라는 기억 장치가 있는데&amp;hellip;&amp;quot; 하고 꺼내 말하는 그 순간, 해마는 그 말씀을 더 단단히 기억으로 새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로, 보상을 활용하여 동기를 유지해야&lt;/strong&gt; 한다. 말씀 암송이나 기도를 일정 목표만큼 이루면,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약속하라. 그 보상 약속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도파민은 해마를 더욱 활성화시킨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표시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규칙적인 보상과 함께 때때로 예상치 못한 보상을 더할 때, 동기는 더욱 강하게 유지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로, 자기 암시를 날마다 실천해야 &lt;/strong&gt;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샤워를 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내어 고백하라. &amp;quot;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amp;quot; 이 고백이 뇌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충분하다는 교만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겸손한 기대가 해마를 살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성령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 이상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선포이다. 이 말씀을 자기 암시로 삼아 날마다 고백하라. 나는 오늘도 말씀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 성령께서 나를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이 고백이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저장된 정보를 동원하기 시작한다. 믿음의 고백과 뇌의 기억 장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로, 몸을 움직여야&lt;/strong&gt; 한다. 유산소 운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하고 해마의 건강을 유지시킨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amp;quot;오늘 5분만 운동하자&amp;quot;고 결심하고 나서면 된다. 5분 뒤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로, 말씀을 들은 즉시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를 가져야&lt;/strong&gt; 한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내려 할 때, 해마는 그 말씀을 훨씬 더 강하게 기억한다.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면 집에 돌아가서 실제로 용서해야 할 사람을 떠올리고 용서를 실천해 보라. 그 경험이 해마 속에 말씀과 함께 저장되어, 그 말씀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말씀은 삶에서 실천될 때 가장 깊이 새겨진다.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다(약 1:22). 행함이 기억을 강화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이 현실이 되려면,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쌓여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이미 쌓아 둔 말씀이 있어야 그것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구하는 것은 빈 곳간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과 같다. 곳간에 채워 두어야 꺼낼 수 있다. 채워 두는 것은 사람의 몫이고, 꺼내어 쓰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몫이다. 성령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때를 따라 일깨워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4:26). 생각나게 하려면 먼저 들어야 한다. 들어야 저장이 되고, 저장이 되어야 성령이 생각나게 하실 수 있다.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쓰고, 외우고, 이야기하며 해마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이 성령의 역사와 협력하는 삶이다. 씨앗을 심지 않고 추수를 기다릴 수 없듯, 말씀을 쌓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바랄 수는 없다. 씨앗을 심는 자에게 성령이 성장시켜 주신다. 말씀을 꾸준히 쌓아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라. 해마는 쌓이는 곳간이다. 한 알 한 알 말씀이 쌓일 때, 어느 날 그 곳간이 가득 차서 넘치는 날이 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영적 방해와 육체적 피곤함이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장벽이며, 마음의 상처가 뇌의 기억 장치 전체를 왜곡하는 두 번째 장벽임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뇌 속에 탁월한 기억 장치인 해마가 있으며, 그것을 발달시키는 핵심이 기억을 꺼내 쓰는 반복적 훈련에 있음을 확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용서로 치유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편도체가 기억의 문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상처가 풀려야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한다. 그다음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결단으로 받아야 한다. 그 결단이 해마에게 &amp;quot;이것은 중요한 정보다&amp;quot;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후에는 반드시 기억을 꺼내 글로 쓰거나 말로 전해야 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만으로 한 줄이라도 써 내려가는 그 행위가 해마를 살리고, 말씀을 뇌에 영구적으로 새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보상의 원리와 자기 암시의 힘, 그리고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도 해마를 돕는 보조적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자기 암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의 고백과 직결된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하는 것이 신앙의 자기 암시이다. 이 고백이 우리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신앙과 뇌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뇌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바르게 사용할 때 신앙의 성장과 기억력의 발달이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가 말씀을 꺼내 쓸수록 해마가 발달하고, 해마가 발달할수록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게 되며, 더 많은 말씀이 쌓일수록 성령께서 더욱 풍성하게 역사하신다. 이 선순환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 속에 담긴 기억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풍성히 알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섬기는 서기관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미 우리 안에 탁월한 기억 장치를 넣어 두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장치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반복 훈련을 통해 성경 전체를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면, 이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다. 천재만이 말씀을 암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습관을 가진 사람, 상처를 용서로 치유한 사람, 들은 말씀을 꾸준히 꺼내어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길의 끝에는 새것과 옛것을 언제든지 곳간에서 꺼내 오는 천국의 서기관이 서 있다. 날마다 말씀을 꺼내 쓰고,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현실이 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히브리서는 선언한다(히 4:12). 이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해마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 그 말씀은 때를 따라 꺼내어져 삶의 현장에서 날선 검처럼 역사한다. 우리는 말씀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곳간에 쌓인 곡식이 꺼내어 먹혀야 생명을 살리듯, 해마에 저장된 말씀이 꺼내어 선포될 때 비로소 그 말씀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 이것이 천국의 서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6월 21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성경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amp;nbsp;&lt;strong&gt;영적, 과학적 비결&lt;/strong&gt;을 제시하며 성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신경전문가의 도움을 힘입어 뛰어난 지능보다 중요한 것은&amp;nbsp;&lt;strong&gt;마음의 상처 치유&lt;/strong&gt;와&amp;nbsp;&lt;strong&gt;해마의 활성화&lt;/strong&gt;라고 강조하며, 특히 타인을 용서하여 뇌 속의 편도체에 쌓인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기억의 첫걸음임을 설명합니다. 또한, 학습한 내용을 단순히 반복해서 읽기보다는&amp;nbsp;&lt;strong&gt;스스로 인출하여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습관&lt;/strong&gt;이 뇌 세포를 자극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핵심 기제임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amp;nbsp;&lt;strong&gt;도파민 분비를 돕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lt;/strong&gt;와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누구나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지혜를 축적하고&amp;nbsp;&lt;strong&gt;말씀을 자유자재로 선포하는 서기관&lt;/strong&gt;이 될 수 있다는 실천적 교훈을 제공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449935b9202f748a11b740d9d1926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ad108b023ef1037667ff9a0fd6ae71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70e9b6446bf007496820a1858843c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e4b2dd09575c07ac1e7d3b920dcf6c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356188d35878dd71026575c57e7091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17fb662fe11ff3144899ea001a0a1e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9c2ad7140cd75f88d469a5b59798f4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f90a632e8ea94903e284d5c1509e02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a003e19962f77138c37ed465f88321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71a02d0946cfec9a22fcb416662492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56a6ffd27bb6319b457db0eaa142db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해마_기억력촉진법] The_Golden_Vault_of_Sacred_Memo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841/260/120506956d7e3a4902780f3bb4125195.webp&quot; /&gt;&lt;/p&gt; &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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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역대상 29:1~19)_2026-06-14(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372</link>
				<description>&lt;p&gt;2026-06-14(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역대상 29: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M6dQDuqgb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M6dQDuqgb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0&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85; } .title { font-weight: 700; font-size: 18px; margin: 0 0 1.2em 0; } .subtitle { font-weight: 700; font-size: 17px; color: #38688c; margin: 0 0 0.8em 0; } p { margin: 0 0 1em 0; } .scripture { font-weight: 700; color: #854ba0; } .date, .author { margin: 0 0 0.2em 0; } &lt;/style&gt; &lt;p class=&quot;title&quot;&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1. 들어가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살피다 보면, 우리는 한 가지 뜻밖의 사실 앞에 선다. 다윗은 분명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지만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흠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으며, 메시아에 관한 깊은 예언을 쏟아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넘어졌던 사람이었다. 밧세바와 간음했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아를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었다. 말년에는 인구 조사를 통해 왕국의 힘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는 교만에도 빠졌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지막을 살핀다는 것은 그의 업적만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넘어진 자를 다시 세우셨는지를 보는 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앙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자랑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다. 성도도 실수할 수 있고, 지도자도 범죄할 수 있으며, 왕으로 세움받은 자도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실패 이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사람의 마지막을 결정한다. 사울도 넘어졌고 다윗도 넘어졌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죄를 변명하고 체면을 지키려 했으며, 다윗은 죄의 고통 속에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갔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갈라놓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성공 이후의 태도도 중요하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만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성공했을 때 더 큰 시험을 받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왕국이 든든해지고, 백성이 자기를 칭송할 때, 사람은 그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기 쉽다. 사울은 승전 기념비를 세웠고, 솔로몬은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과 영광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고, 참 왕은 하나님이심을 찬양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피 흘리셨다. 그러나 그 구원은 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허락하는 면허장이 아니다. 예수의 피는 하늘의 행위책에 있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동시에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자 안에 역사하여 악한 영을 밖으로 내어쫓는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했을 때 회개할 줄 알아야 하고, 성공했을 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넘어진 다윗이 어떻게 다시 쓰임받고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2. 다윗은 왜 넘어졌지만 버림받지 않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이유를 알려면 먼저 사울과 다윗을 함께 보아야 한다. 사울도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움을 받았고, 백성 앞에 서는 지도자의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울은 말씀 앞에서 자기 뜻을 꺾지 않았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좋은 양과 소를 남겨 두었고, 책망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것보다 백성 앞에서 체면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도 역시 죄를 지었다. 더구나 다윗의 죄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왕의 권력을 자기 정욕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밧세바를 범한 죄는 음란의 죄였고, 우리아를 죽인 죄는 피 흘린 죄였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권세는 백성을 살리고 원수를 막으라고 주신 것이지, 자기 욕망을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는 개인적인 실수만이 아니라 왕직의 목적을 어긴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책망을 받았을 때 즉시 죄를 시인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의 죄를 드러냈을 때,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다. 왕권을 이용해 선지자를 누르지도 않았다. 그는 &amp;lsquo;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rsquo;고 고백했다(삼하 12:13). 이 고백이 다윗을 다시 살리는 출발점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아니다. 히브리어로 회개와 연결되는 말은 &amp;lsquo;슈브&amp;rsquo;다. 슈브는 &amp;#39;돌아가다, 돌이키다&amp;#39;라는 뜻을 가진다. 신약의 헬라어 &amp;lsquo;메타노이아&amp;rsquo;는 마음과 생각의 방향 전환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다윗은 이 방향 전환을 실제로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amp;lsquo;멜레크&amp;rsquo;이다. 멜레크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지배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받은 통치자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백성을 돌보고 원수를 막아야 한다. 그러므로 왕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더 엄격하게 보신다. 그럼에도 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것은 죄가 작아서가 아니라,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신다.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속을 감찰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회개하지 않으면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하셨다(계 2:21~23). 이것은 신약의 주님도 죄를 대충 덮어 주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다윗이 버림받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편애 때문이 아니다&lt;/strong&gt;.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모르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꽃 같은 눈으로 다 보셨다. 그러나 &lt;strong&gt;다윗은 책망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께로 돌이켰으며, 다시 쓰임받을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갔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구원론의 균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의 길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회개를 낳고, 회개는 삶의 열매를 요구한다. &amp;lsquo;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amp;rsquo;는 생각은 다윗의 회개와도 맞지 않고,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행위대로 갚겠다고 말씀하신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구원은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주신 은혜의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자는 빛 가운데서 자기 죄를 계속 처리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회복은 자동 회복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므로 아무 조건 없이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 다윗을 사랑하시므로 죄를 드러내셨고, 다윗이 그 책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회복의 길이 열린 것이다. 사랑은 죄를 방치하지 않는다. 참된 사랑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3. 다윗의 죄는 왜 열 달 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했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밧세바 사건 이후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오기까지 약 열 달의 시간이 흘렀다. 겉으로 보면 다윗은 왕궁에 있었고, 왕권도 유지했으며, 아무 일 없는 듯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시편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 편안히 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수척해졌고, 뼈가 떨렸으며, 영혼이 심히 떨리는 고통 속에 있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죄는 단순히 법적인 위반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과의 임재 관계를 흔든다. 하나님의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혼이 어두워지고, 양심이 참소하며, 악한 영들이 합법적인 근거를 붙잡고 역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양심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죄 때문에 고통한다. 이 고통은 저주만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6편은 다윗이 죄의 징계와 하나님의 떠나심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주의 분노로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었고, 자신의 뼈와 영혼이 떨린다고 고백했다(시 6:1~4). 죄는 육체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마음의 죄가 영혼을 흔들고, 영혼의 흔들림이 몸까지 수척하게 만들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6:1~4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amp;lsquo;여호와여 돌아오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가 멀어진 것을 느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완전히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인해 친밀한 임재가 가려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사람들의 비난이 아니다. 하나님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죄를 지은 뒤 열 달 동안 다윗이 겪은 고통은 참된 회개의 밭을 갈아엎는 시간이었다. 그는 겉으로 왕좌에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왕궁에서 살았지만 영혼은 스올의 문턱에 선 것처럼 떨고 있었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다윗이 죄를 편안하게 즐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뼈가 떨리게 하셨고, 영혼이 떨리게 하셨고, 결국 나단을 보내 죄를 드러내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도 마찬가지다. 죄를 지었을 때 불편함이 온다면 아직 소망이 있다. 말씀을 들을 때 찔림이 있다면 아직 은혜의 문이 열려 있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그것은 죽이려는 책망이 아니라 살리려는 책망이다. 다윗은 이 책망을 밀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4. 시편 51편은 참된 회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를 가장 깊이 보여 주는 시편이다. 여기서 다윗은 단지 &amp;lsquo;내가 잘못했습니다&amp;rsquo;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죄의 행위뿐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뿌리까지 본다. &amp;lsquo;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amp;rsquo;는 고백은 매우 깊다(시 51:5). 그는 자신의 범죄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던 죄성이 때가 되어 폭발한 것임을 보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지점에서 회개론은 귀신론과 연결된다. 죄는 행위로 드러나지만, 그 배후에는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들의 역사와 죄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죄를 지은 후에는 그 사람 속에 음란의 죄를 짓게 하는 영, 살인의 죄를 부추기는 영, 혈기와 분노를 일으키는 영, 교만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하는 영들이 사람 속으로 들어와 역사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의 길 안에 들어왔어도, 자백하지 않은 죄와 처리되지 않은 영들이 자기 속에 남아 있으면 삶의 저주는 계속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죄를 덮어 달라고만 하지 않았다. 그는 씻어 달라고 했다. 지워 달라고 했다.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했다. 이것은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기록이 지워지는 차원과, 자기 속에 있는 더러운 죄의 세력이 씻겨 나가는 차원을 함께 보여 준다. 회개는 법정적 용서와 내적 정결을 함께 요구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또한 다윗은 이어서 &amp;lsquo;정한 마음&amp;rsquo;과 &amp;lsquo;정직한 영&amp;rsquo;을 구했다(시 51:10). 정한 마음은 단지 기분이 좋아진 마음이 아니다. 더러운 영과 죄의 욕망이 처리된 마음이다. 정직한 영은 하나님 앞에서 숨지 않는 영이다. 죄를 합리화하지 않고, 자기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고 고백하는 영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특히 다윗은 자신의 살인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amp;lsquo;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시 51:14). 그는 우리아의 죽음을 정치적 사고나 전쟁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피 흘린 죄였다. 참된 회개는 죄의 이름을 바르게 부른다. 음란은 음란이고, 살인은 살인이며, 교만은 교만이다. 죄의 이름을 흐리게 만들면 회개도 흐려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고 말한다(계 22:14). 이것은 마지막 때의 성도에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믿음은 회개를 폐기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회개를 낳고, 회개는 두루마기를 빠는 삶으로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편 51편의 회개는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수술이다. 죄의 기록이 지워지고, 악한 영의 근거가 무너지고,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기를 구하는 깊은 회개다. 다윗이 다시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바로 이 회개의 자리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회개에는 하늘의 기록을 의식하는 마음도 들어 있다. 그는 &amp;lsquo;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amp;rsquo;라고 기도했다. 죄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는 행위가 기록된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 앞의 기록이 처리되는 일이다. 예수의 피가 그 기록 위에 적용될 때, 성도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얻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회개는 악한 영의 실제와 분리될 수 없다. 죄를 짓게 하는 영들이 사람 안에 들어와 자리 잡으면, 사람은 자기 의지만으로 반복되는 죄를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예수의 피를 적용할 때, 그 영들은 붙잡고 있던 근거를 잃는다. 그래서 회개는 천국복음의 중심이고, 축사의 통로이며, 성도가 마지막 때에 정결한 옷을 입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도록 준비시키는 실제적인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5. 다윗은 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참된 회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데서 열매를 맺는다. 물론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회개했다고 말하면서 같은 죄를 가볍게 반복한다면, 그것은 아직 죄의 무게를 모르는 것이다.&lt;strong&gt; 다윗의 회개가 진실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는 그가 같은 죄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 했다는 데 있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다윗은 회개 후 결호 살인의 죄를 짓지 않는다&lt;/strong&gt;. 다윗은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칼을 직접 든 살인은 아니었지만, 왕권을 사용하여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인 죄였다. 그러나 그 후 다윗의 태도는 달라졌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에게 돌아왔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끝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다윗의 뜻이 아니었다.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다윗은 압살롬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마사가 압살롬 진영의 군대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또한 요압이 그를 죽였다. 왜냐하면 요압에게 그들은 경쟁상대로 보였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한편 시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시므이는 그를 저주했다. 그 자리에서 아비새는 시므이를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자신을 책망하시는 것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떨어지면 그대로 시행되는 왕권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욕한 자를 죽이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죄없는 사람의 피 흘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의 생명을 자기 감정으로 다루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또한, 다윗은 음란의 죄도 반복하지 않았다&lt;/strong&gt;. 말년에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수넴 여자 아비삭이 곁에 있게 되었지만, 성경은 왕이 그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왕상 1:4). 밧세바 사건 이후 다윗은 여자와 관련된 죄를 다시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왕상 1:4 이 소녀는 심히 아름다웠더라 그가 왕을 받들어 섬겼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부분은 오늘 성도에게 매우 중요하다. 회개는 눈물만이 아니다. 회개는 습관이 바뀌는 것이다. 음란을 회개했다면 음란을 부추기는 길을 끊어야 한다. 혈기와 분노를 회개했다면 같은 말과 같은 폭발을 당연하게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탐욕을 회개했다면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다윗은 살인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려 했고, 간음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다시 그 길로 가지 않으려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영적 세계에서도 이것은 중요하다. 죄를 자백하면 악한 영은 합법적 근거를 잃고 약해진다. 그러나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같은 종류의 영들이 다시 들어올 문을 얻게 된다. 그래서 회개 후의 삶은 더욱 중요하다. 회개는 문을 닫는 것이고, 순종은 그 문을 계속 닫아 두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어서 다시 쓰임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이 되었고, 같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배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사용하셨다. 넘어졌지만 배우는 사람이 있고, 넘어졌지만 배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실패를 통해 더 성숙한 왕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6. 다윗은 어떻게 자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성공 이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데 &lt;/strong&gt;있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찾다가도, 성공하면 자신을 높이기 쉽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왕국이 안정되고, 백성이 칭송하면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사울은 전쟁에서 이긴 뒤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부귀와 영광을 누렸으나, 결국 그 영광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왕이지만 하나님이 참 왕이심을 고백했다. 시편 145편에서 그는 &amp;lsquo;왕이신 나의 하나님&amp;rsquo;이라고 찬양한다(시 145:1~2). 왕이 왕을 찬양한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그는 자신이 대리자일 뿐임을 알았다. 왕권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받은 직분이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시 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amp;#39;영광&amp;#39;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amp;lsquo;카보드&amp;rsquo;와 연결된다. 카보드는 무게, 중량, 존귀를 뜻한다. 사람이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무게가 그에게 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승리의 무게, 모든 업적의 무게, 모든 열매의 무게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다윗은 그 무게를 자기에게 붙잡아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 돌려드렸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역대상 16장에서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이룬 일을 자기 업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amp;lsquo;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리라&amp;rsquo;고 노래하게 했다(대상 16:8~11). 역사적으로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다윗이 블레셋과 아말렉,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을 물리쳤다. 그러나 다윗의 찬양은 그것을 &amp;lsquo;하나님이 행하신 일&amp;rsquo;이라고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16:8~11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말씀하시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그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하셨다(마 6:29). 솔로몬의 영광은 대단했지만, 그 영광을 자기에게 집중시킨 삶은 천국의 영광을 흐리게 만든다. 반대로 &lt;strong&gt;다윗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과 전쟁을 겪었지만,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기 때문에 천국에서 빛나는 왕직과 받았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사실 성공 이후에 영광을 처리하는 방식은 곧 그것이 천국의 상급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박수받으려고 일한 것은 사람에게서 이미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추어진 자리에서 충성한 것은 하늘에 기록된다. 다윗은 자기 흉상을 세우지 않았다. 자기 승전 기념비를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을 높였고, 모든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성공했을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은사가 나타났을 때, 사역이 열매를 맺을 때, 사람들이 칭찬할 때, 물질이 들어올 때, 그 모든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아야&lt;/strong&gt; 한다. 다윗은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왕으로 높였다. 이것이 그를 마지막까지 다윗답게 만든 비밀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찬양을 개인의 감정 표현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삽과 해만과 여두둔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 이것은 왕직과 제사장직이 만나는 지점이다. 왕은 백성을 보호하고 원수를 물리치는 자이지만, 왕 같은 제사장은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올려 드리는 자다. 다윗은 전쟁의 사람인 동시에 찬양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왕직은 단지 군사적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의 질서로 완성되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점에서 다윗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며, 동시에 죽임당한 어린양이시다. 그분은 원수를 멸하시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백성을 사시는 대제사장이시다&lt;/strong&gt;. 다윗은 완전한 그리스도가 아니었지만, 전쟁과 찬양, 왕직과 예배가 어떻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만나는지를 보여 주는 그릇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7. 성전 건축을 위한 헌신은 왜 왕직의 마지막 열매인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역대상 29장은 다윗의 마지막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본문이다. 그는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다. 그가 피를 많이 흘린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lt;strong&gt;그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과 자신이 소유한 금과 은과 보석과 재료들을 성전 건축을 위해 힘을 다해 준비했다&lt;/strong&gt;. 그리고 온 회중 앞에서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했다(대상 29: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1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고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고백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큰 일을 이룬 뒤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교회를 세워도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고, 헌신을 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왕국을 세운 마지막 목적이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있지 않음을 알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이미 성전을 위해 힘을 다해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개인 소유의 금과 은도 드렸다고 고백한다(대상 29:2~3). 설교 원고의 흐름대로 계산하면, 금 삼천 달란트는 약 102톤에 해당하고, 순은 칠천 달란트는 약 238톤에 해당한다. 이것은 다윗이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물질의 방향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3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먼저 드리자 지도자들과 백성도 즐거이 드렸다. 참된 헌신은 강요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먼저 자기 것을 드릴 때,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의 흐름 안으로 들어온다. 역대상 29장은 백성이 자원하여 드릴 때 크게 기뻐했다고 말한다(대상 29: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헌신은 왕직의 마지막 열매였다. 왕은 전쟁에서 이겨 백성을 평안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평안의 목적은 단지 잘 먹고 잘사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중심을 세우는 데 있다&lt;/strong&gt;. &lt;strong&gt;다윗은 전쟁의 전리품을 자기 궁궐을 꾸미는 데만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드렸다. 이것이 전쟁에 능한 왕의 마지막 열매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기도는 더 깊다. 그는 자신과 백성이 드린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대상 29:14). 사람은 드리면서도 자기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드리는 행위조차 자기 공로로 삼지 않았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뿐이라고 고백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대상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천국 상급의 원리와 연결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자기 육체와 자기 이름을 위해 쓰면 그 열매는 땅에서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성전과 복음과 영혼을 위해 드리면 그 열매는 하늘에 올라간다. 성전에 들어와 기도하고 은혜받는 사람들이 생길 때, 그 성전을 위해 준비하고 드린 자의 상도 하늘에서 함께 기억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마지막 헌신은 단순한 건축 헌금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왕직의 완성이다. 그는 싸워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자기가 받을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예배의 길을 준비했다.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 다윗 안에서 함께 드러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전 건축을 위해 드린 다윗의 헌신은 물질의 방향성을 보여 준다. 물질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디에 드려지느냐에 따라 영적 열매가 달라진다. 우상에게 바쳐진 물질은 우상숭배의 통로가 되고,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된 물질은 교만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려진 물질은 기도와 예배와 복음의 열매로 바뀐다. 다윗은 전쟁의 피와 땀으로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재료로 바꾸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은 오늘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받은 은사, 받은 지식, 받은 물질, 받은 시간, 받은 건강은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그것을 자기 자랑과 자기 편안함만을 위해 쓰면 땅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과 복음과 영혼 구원을 위해 드리면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윗의 성전 준비는 땅의 건축을 넘어 하늘의 기억으로 올라간 헌신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8.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와 성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마지막은 오늘 성도가 실패와 성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lt;/strong&gt; 준다. 실패했을 때 성도는 숨지 말아야 한다. 죄를 작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음란은 음란이라고 해야 하고, 살인은 살인이라고 해야 하며, 교만은 교만이라고 해야 한다. 죄의 이름을 정확히 부를 때 회개가 정확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회개는 죄의 뿌리까지 내려가야&lt;/strong&gt; 한다. 다윗은 자기 행위만 보지 않았다. 자기 안의 죄성까지 보았다. 오늘 성도도 자기가 왜 같은 죄에 반복해서 넘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우상숭배, 제사, 무당, 불교, 음란, 살인, 혈기, 분노, 탐욕의 죄들이 악한 영의 통로가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자백을 통해 예수의 피가 역사할 때, 그 영들은 합법적인 근거를 잃는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받은 뒤에 불필요해지는 부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계속 필요한 정결의 과정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회개한 뒤에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삶으로 가야&lt;/strong&gt; 한다. 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회개가 문을 닫는 것이라면, 순종은 닫힌 문을 지키는 것이다. 다윗은 살인의 죄를 회개한 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려 했고, 간음의 죄를 회개한 후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공했을 때 성도는 더 조심해야 한다. 실패는 사람을 낮추지만, 성공은 사람을 높인다. 사역이 열리고, 은사가 나타나고, 물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칭찬할 때, 성도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다. 이것은 성공의 열매를 하나님 나라로 보내는 삶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갈라디아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한다(갈 6:7). 이것은 땅의 원리만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원리다. 우상에게 심으면 저주를 거두고, 자기 육체에게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며, 성령과 하나님 나라에 심으면 영원한 열매를 거둔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trong&gt;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lt;/strong&gt;&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에서의 왕직은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땅에서 회개한 만큼 정결해지고, 싸운 만큼 기업을 얻고, 드린 만큼 하늘에 쌓인다&lt;/strong&gt;. 생명책과 행위책은 허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기억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념관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의 방이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기도의 방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전을 위해 드린 헌신의 흔적이 있다. 이것은 모두 이 땅에서 무엇을 심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기 공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의 일을 멸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며,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는 경륜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도는 그 경륜 안에서 회개하고, 싸우고, 드리고, 찬양하며 준비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실패 이후와 성공 이후를 모두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실패했을 때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성공했을 때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실패를 통해 더 정결해지고, 성공을 통해 더 겸손해지는 사람이 천국의 왕직에 가까이 간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경륜에는 분명한 시간표가 있다. 창조 이후 인간은 타락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다윗의 왕국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셨으며, 마침내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리고 지금은 성도들이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정결하게 준비되는 때다.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악한 영들의 세력이 심판을 받으며, 새 예루살렘의 왕직과 상급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오늘의 회개와 헌신은 미래의 왕직과 분리되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는 이 시간표 안에서 성도의 준비를 보여 주는 예표다. 목동의 숨은 시간, 사자와 곰과 싸운 시간, 골리앗 앞에 선 시간, 죄로 무너진 시간, 회개로 다시 일어난 시간, 전리품을 성전에 드린 시간이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은 한 사건만 보지 않으신다. 전체 생애의 방향을 보신다. 다윗의 방향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방향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9. 나오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우리는 넘어진 다윗이 어떻게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lt;strong&gt;다윗은 죄가 없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lt;/strong&gt; 그는 넘어졌으나 죄를 덮지 않았고, 책망 앞에서 무너졌으며, 시편 6편과 시편 51편이 보여 주듯 죄의 고통과 회개의 깊이를 통과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실패했을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죄의 행위만이 아니라 죄의 뿌리까지 보아야 하고, 자백을 통해 예수의 피가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회개가 말에 머물지 않고 습관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성공했을 때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물질과 기회와 승리의 열매를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받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왕 노릇할 사람은 실패를 회개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고, 성공을 헌신의 제단으로 삼아야 한다. 넘어짐은 끝이 아니어야 하고, 성공은 자기 영광의 시작이 아니어야 한다. 실패 이후에는 더 정결해져야 하고, 성공 이후에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넘어짐 이후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성공 이후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15일(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다윗 왕의 생애를 통해&amp;nbsp;&lt;strong&gt;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의 핵심 자질&lt;/strong&gt;을 조명하며, 그가 큰 범죄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실수한 직후&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amp;nbsp;&lt;strong&gt;진정한 성숙&lt;/strong&gt;을 보여주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은 평생의 전리품과 승리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성전 건축을 위해 모두 봉헌함으로써&amp;nbsp;&lt;strong&gt;모든 성취의 근원이 하나님&lt;/strong&gt;임을 고백하는 겸손의 본을 보였습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과&amp;nbsp;&lt;strong&gt;인생의 마지막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세&lt;/strong&gt;가 내세의 상급을 결정짓는다는 영적 교훈을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22)] 인포그래픽_넘어진_다윗_왕노릇_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f702ff0b49249a6dfbbf0c7d31ddb50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03ae7997366651c91382134fb43941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42a6b9d782e076d736a6827d1c83e4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87902cbb26b9ba4257a12a4a755da7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22cc96b859c64b96e2fe5afe6a8a0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3302ff9f152bfb5c7e5b0a86420303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597b2996eff7ff495e55c73a8cb2f9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d85daa7d7e68e76a8eb34d5a55bed7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f771774ae89d0943af97ab3c281e51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741ff2c0f1db38e5eafc2c9f40f14a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d8b70720fc0f19c4d2c805a283318d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1e8ec5e553bc70df0c3a671814d416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6a92893bcd614eb56eab3f6259305c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슬라이드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372/260/2d06d4c35527c39416dc1bfe29f929c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다른 요약입니다.]&lt;/p&gt; &lt;p&gt;2026-06-14(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22)]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8)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역대상 29: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M6dQDuqgbo&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M6dQDuqgb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 .sermon-body { font-size: 15px;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line-height: 1.8; margin: 0;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font-family: &quot;Nanum Gothic&quot;,&quot;나눔고딕&quot;,sans-serif; line-height: 1.8; margin: 0.5em 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윗은 성경이 증언하는 왕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은 완벽한 도덕적 흠결 없음에 있지 않다. 그는 분명히 넘어졌고, 분명히 범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고, 결국 천국에서 왕 중의 왕으로 세우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인생은 항상 성공의 길만 가지 않는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잘 되다가 실수하다가,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진보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다. 다윗은 전자(前者)였다. 그는 실수 속에서도 더 성숙한 사람으로 올라갔고, 결국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최고봉의 위치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잘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칭찬을 받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을 보신다. 사울도 실수했고 다윗도 실수했다. 그런데 사울은 버림받았고 다윗은 다시 쓰임 받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면, 우리도 혹시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다윗은 &amp;quot;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quot;(행 13:22)이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유일한 왕이다. 그러나 이 평가가 그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넘어진 후에 어떻게 반응하였느냐에 대한 평가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범한 두 가지 큰 실수가 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말년에 인구 조사를 행한 일이다. 이 두 가지 실수를 그는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또한 25년간의 전쟁을 통해 이룬 태평성대의 영광을 그는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은 실패했으나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사람이다. 우리가 다윗의 실수를 잘 이해하고, 그가 어떻게 그것을 이겨 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들도 혹시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을 통해 다윗의 생애를 배움으로써 우리도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다윗은 범죄 후 열 달 동안 정말 태평하게 살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인 것은 열왕기와 사무엘서가 공히 기록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범죄한 뒤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책망하기까지의 기간이 대략 열 달 남짓이었다. 그 기간 동안 다윗은 어떻게 살았을까? 겉으로 보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왕궁에서 생활하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 다리 뻗고 편안히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내면의 실상은 전혀 달랐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6편은 다윗이 이 고통의 시간 동안 쓴 시편이다. 첫 절부터 절규가 터져 나온다(시 6: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1-5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수척하였사오니&amp;quot;라는 표현은 단순한 몸의 피로가 아니다. 영혼이 쇠약해져서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상태를 가리킨다. 뼈가 떨린다고 했다. 뼈가 떨릴 정도면 이미 전신이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amp;quot;여호와여 돌아오시라&amp;quot;는 간구이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전쟁마다 이기던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사실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래서 5절에서 &amp;quot;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amp;quot;라고 한 것은 &amp;quot;저는 지금 죽게 생겼습니다&amp;quot;라는 절규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겉으로는 왕좌에 앉아 있었으나 속으로는 뼈가 떨리고 영혼이 무너지는 열 달을 보낸 것이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amp;quot;왕은 태평하다&amp;quot;고 보였겠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의 깊은 아픔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니나노 즐기는 것 같아 보여도, 안에서는 날마다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범죄한 자의 실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화인 맞은 것이요, 회개가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이다. 반면에 죄를 짓고 뼈가 떨리는 고통을 느꼈다는 것은, 다윗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민감함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 고통이 결국 그를 철저한 회개로 이끌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그 고통 중에 한 가지 주목할 행동을 하였다. 흥미롭게도 &amp;quot;왕은 나라도 지키고 전쟁도 나가야 하니 어떻게 왕이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을 수 있는가&amp;quot; 하고 억지로 태연한 척 살아갔다는 것이다. 신하들에게 명령하고, 국사를 처리하고, 왕으로서의 외적인 역할은 다 하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날마다 무너지고 있었다. 겉과 속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죄의 참혹한 결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편안하다면 이것은 심각한 영적 위기의 신호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다면, 죄를 지을 때 반드시 그 성령이 근심하신다(엡 4:30). 그 근심이 우리 양심에 전달되어 불편함과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속담에 &amp;quot;도둑질한 사람은 편히 못 잔다&amp;quot;는 말이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편히 자기 어렵다. 다윗은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시편에 그대로 쏟아냈다. 고통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러냈을 때, 회개의 문이 열렸다. 그러니 혹시 우리 가운데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은 오히려 은혜이다. 그 불편함이 결국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죄를 지을 때 양심이 불편한 것이 정상이다. 그 불편함이 사라진다면, 즉 무감각해진다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이다. 양심이 마비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고통이 없었다면 회개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앞으로 이끄신다. 이것이 징계의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다윗이 죄의 근원을 깨달은 것이 회개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회개를 담은 시편 51편은 단순히 행위의 잘못을 고백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자신이 &amp;quot;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amp;quot;고 고백한다(시 5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 안에 이미 태중에서부터 죄성이 심겨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다윗의 계보를 살펴보면, 그의 누나들로 추정되는 스루야는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을 낳았고,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다. 모두 탁월한 장수들이다. 이 혈통 안에는 전쟁과 피의 기운이 흘렀고, 그것이 다윗 안에서도 발현될 수밖에 없는 죄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대로, 조상의 죄악은 자녀에게 이어진다(출 20: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20:5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단지 도덕적 습성이 유전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amp;quot;죄를 갚되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amp;quot;라고 하셨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조상의 죄악은 자녀와 손자와 증손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음란의 죄를 지으면 그 영이 자녀에게도 들어온다. 부모가 살인의 죄를 지으면 혈기의 영이 자녀에게 전달된다. 이것을 깨달아야 우리 자녀의 신앙을 위하여 먼저 부모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상이 짓는 죄는 그 안에 들어온 악한 영을 통해 자녀 세대에 전해진다. 음란의 영, 혈기의 영, 살인의 영이 이미 모태에서부터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어느 순간 상황이 맞으면 폭발하듯 발현된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의 충동을 느꼈던 그 순간, 그 안에 있던 음란의 영이 발현된 것이다. 단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흔히 &amp;quot;내가 나쁜 사람이라서&amp;quot;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amp;quot;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amp;quot;라고 합리화하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더 깊이 들어갔다. &amp;quot;내 안에 그 죄를 짓게 하는 뿌리가 있다&amp;quot;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 행위만 고치려 하면 뿌리를 남겨 두는 것이다. 마치 뚜껑으로 덮어 놓은 오물처럼, 표면은 가렸으나 냄새는 여전히 나고 파리는 여전히 꼬인다. 그 오물을 치워 버려야 한다. 즉 속에 있는 악한 영을 하나님의 보혈로 씻고 내보내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편 51편 9-10절에서 이렇게 기도한다(시 51:9-10).&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9-10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지워 주소서&amp;quot;는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기를 구하는 것이요, &amp;quot;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amp;quot;는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나가고 성령으로 채워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즉 행위책에서 지워짐과 내면의 악한 영이 나감, 이것이 다윗이 이해한 온전한 회개의 내용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할 때 &amp;quot;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amp;quot;라는 말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의 회개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amp;quot;내 속에 있는 그 더러운 영을 없애 주시고, 그 자리에 정직한 영으로 채워 주소서&amp;quot;라고 기도한 것이다. 행위의 죄만 용서받으면 뿌리가 남아 있어 다시 같은 죄를 범한다. 그 뿌리, 즉 악한 영까지 나가야 한다. 또한 7절에서는 &amp;quot;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amp;quot;라고 하였다. 우슬초는 레위기에서 속죄 제사 때 피를 뿌리는 데 쓰이던 도구이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이 씻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깊이는 죄의 근원을 얼마나 깊이 깨달았느냐에 달려 있다. 행위만 고치려는 회개는 마치 잡초의 줄기만 잘라내는 것과 같다. 줄기를 잘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란다. 그러나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는 그 죄가 다시 발현될 토양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다윗은 뿌리를 보았기 때문에 근원에서부터 회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회개 이후의 삶이 실제로 달라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12장 43-45절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준다(마 12:43-4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쉬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나쁘게 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귀신이 집이라 부르는 곳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귀신의 집으로 사용되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을 때, 그 자리에 성령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더 강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고 하였다. 회개만 하고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나중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반드시 성령 충만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육체는 성령의 전이 될 수도 있고 귀신의 집이 될 수도 있다. 귀신이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지지 않으면 더 강한 귀신이 돌아온다. 그래서 회개는 단지 빼내는 것만이 아니라, 빼낸 자리를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는 것까지 포함한다. 다윗은 &amp;quot;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amp;quot;라는 기도로 그것을 구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참된 회개와 단순한 후회는 결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후회는 결과가 나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사울도 후회하였다. 그러나 그 후회는 자신의 처지가 불리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지,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돌이킴이 아니었다. 반면에 다윗의 회개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달랐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다윗의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것&lt;/strong&gt;이었다. 시편 51편 4절은 이렇게 고백한다(시 5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은 것은 분명 사람에게 저지른 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윗은 그 죄의 궁극적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왕이 권력을 남용한 것은 하나님이 왕에게 그 권력을 위탁하신 목적을 배신한 것이다. 권력은 원래 백성들, 즉 양 떼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자와 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 권력을 자기의 정욕을 채우는 데 썼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위탁을 배반한 것이다. 이 깨달음이 있어야 회개가 온전해진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인식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용서하는 순간 죄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인식할 때, 그 회개는 더 깊고 지속적인 돌이킴으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다윗의 회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lt;/strong&gt;이었다. 형식적인 고백으로는 악한 영이 나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고 상한 심령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시편 51편 17절은 이것을 명확히 말한다(시 51:1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황소 천 마리를 바치는 것보다 상한 심령 하나가 더 하나님 앞에 귀하다. 이것이 제사의 본질이다. 다윗은 열 달 동안의 내면의 뼈아픈 고통을 통하여 이미 그 상한 심령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단의 책망이 오자 즉각적으로 통회의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회개할 때 진심이 아닌 숫자 채우기식으로 하면 영이 잘 나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해야 한다. 진심이 담긴 회개만이 악한 영이 나가는 통로가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단순한 후회는 환경이 바뀌면 사라지지만, 참된 회개는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꾼다&lt;/strong&gt;. 회개(回改)란 돌이키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방향을 돌려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이 나올 때까지 한 곳을 파야지, 조금 팠다가 안 나오면 저기로 옮기고, 또 조금 팠다가 안 나오면 또 옮기면 결코 물이 나오지 않는다. 회개도 마찬가지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다윗은 회개 후 실제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 증거가 이후의 삶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참된 회개는 감정의 사건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가, &lt;strong&gt;참된 회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완성된다&lt;/strong&gt;. 회개를 해 놓고 또 동일한 죄를 범한다면, 그 회개는 불완전하다. 악한 영이 실제로 나가야 하고,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동일한 유혹이 와도 그 힘이 발현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계 22: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두루마기를 빤다&amp;quot;는 것은 회개를 통해 죄의 오염을 씻는 것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영적 세탁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참된 회개와 단순한 후회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amp;quot;회개한 후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줄어드는가&amp;quot;이다.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남을 쉽게 정죄하지 못한다. &amp;quot;나도 그런 죄인이었는데&amp;quot;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회만 하고 진정한 회개를 못한 사람은 여전히 남을 정죄한다.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를 들었을 때 &amp;quot;내가 그럴 만한 자이다&amp;quot;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자기 죄의 깊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어떤 교단에서는 &amp;quot;예수를 믿었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amp;quot;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성도를 평생 저주 가운데 살게 만든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그 안에 들어온 악한 영이 합법적으로 거하면서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지지 않으니 전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참된 회개야말로 그 삶을 바꾸는 유일한 통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은 어떻게 살인죄와 간음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의 진정성은 결국 이후의 삶에서 검증&lt;/strong&gt;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첫째, 다윗의 우리아 장수를 죽인 이후 다른 장수를 죽였는지 살펴보자. 다윗은 시편 51편 14절에서 자신이 우리아 장수를 죽였음을 고백하였다. 그는 피흘린 죄, 즉 살인죄에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기 때문이다(시 51: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도 이후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단 한 사람의 장수도 죽이지 않았다. 그 실례들이 역사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울이 죽은 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사울 왕국을 재건하려 할 때 사울의 군장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도왔다. 그러나 아브넬과 이스보셋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투항하겠다고 찾아왔다. 다윗은 아브넬을 죽이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군장 요압이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려 아브넬을 죽여 버렸다. 요압이 그를 죽인 것이지 다윗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아브넬이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라는 것을 요압이 알았기 때문에, 다윗의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를 제거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므이가 뒤쫓아 오며 저주를 퍼부었다. 아비새가 &amp;quot;단칼에 저 자의 목을 베겠습니다&amp;quot;라고 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막았다. &amp;quot;하나님이 저를 통해 나를 저주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amp;quot;고 하면서 시므이를 살려 두었다. 동시에 압살롬에 대해서도 다윗은 &amp;quot;죽이지 말라&amp;quot;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죽인 것은 요압이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장 아마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압살롬의 반역 당시 아마사는 압살롬 편에서 군장을 맡았는데, 반역이 진압된 뒤 다윗은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압은 아마사마저 죽여 버렸다. 다윗은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장수를 죽이지 않았다. 살인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둘째, 밧세바와와 간음을 회개하고 난 후 어떻게 지냈는지를 살펴보자. 그런데 놀랍게도 간음죄에 대해서도 다윗은 두 번 다시 간음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았다. 다윗이 나이가 들었을 때다. 자신의 몸이 차가워지자 신하들이 수넴 여인 아비삭을 데려다 다윗의 곁에 두었다(왕상 1:3-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상 1:3-4 이에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처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그녀가 왕을 섬겼으나 왕이 그녀를 알지 못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왕이 그녀를 알지 못하였더라&amp;quot;는 표현은 왕이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히 아리따운 처녀가 곁에 있었음에도 다윗은 그녀를 알지 못하였다. 간음죄를 회개한 다윗은 이후 동일한 음욕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열매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지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이 실제로 나가야 하고, 나간 자리에 성령이 채워져야 한다. 그 결과는 이후의 삶에서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윗이 바로 그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다시 쓰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를 회개해 놓고 또 그 죄를 범한다면 주님은 그를 버리신다. 그러나 회개하고 두 번 다시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쓰신다. 다윗은 그것을 몸으로 증명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기억하셨다. 이 원리를 다윗의 생애가 증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두 가지 사례, 즉 살인죄와 간음죄를 반복하지 않은 것은 단지 다윗의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살인의 영과 음란의 영이 실제로 나갔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이 나가고 성령이 채워지면, 동일한 유혹이 와도 그 충동이 현저히 약해진다. 이것이 회개의 실제적인 효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혹시 넘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두 번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쓰시는 조건이다. 지도자가 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한 번 범한 죄를 회개했으면, 그 죄가 유혹해 와도 이제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 결단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더 높은 곳으로 이끄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솔로몬과 다윗의 영광이 천국에서 왜 그토록 달랐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6장은 들의 백합화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마 6:2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비할 데 없는 것이었다. 지혜도 최고요, 부귀도 최고요, 명성도 최고였다. 온 나라가 진귀한 것으로 가득 찼고, 주변 나라의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광이 들꽃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왜인가? 솔로몬의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지만, 솔로몬은 그 영광을 자신이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부귀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였다.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첩으로 들였고, 그들을 따라 이방 신들을 섬겼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과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썼다. 사울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자기를 위한 승전 기념비를 세우고 다닌 것처럼(삼상 15:12), 솔로몬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결과 천국에서 솔로몬의 왕복은 빛이 나지 않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닌다. 왕은 왕이었으나, 그 빛이 달랐다. 반면에 다윗은 빛나는 왕복을 입고 있다. 둘 다 이 땅에서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었으나, 천국에서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하여 얻은 영광을 자신이 차지해 버리면, 천국에서 받을 영광이 없어진다. 마태복음 6장의 논리는 분명하다.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영광을 받는 자는 이미 그 상을 받은 것이다(마 6: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솔로몬은 자기 상을 이 땅에서 이미 받아 버렸다. 그래서 천국에서의 상이 초라하다. 다윗은 자기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천국에서 하나님이 그를 빛나게 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과 솔로몬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으나 짓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amp;quot;너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amp;quot;(대상 22:8)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짓지 못한다면 아들이 짓도록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성전 건축이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자세,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의 결정적 차이였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으나 마음은 자신의 영광과 쾌락을 향하였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였으나 마음은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다윗과 솔로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내 영광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릴 것인가, 이 선택이 천국에서의 결과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루어 낸 것에 대해 자신의 흉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능도, 기회도, 건강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내 영광을 내가 받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옳은가. 이 땅에서 사람의 칭찬을 얻으려 살면 그것이 상의 전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직접 갚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전 3:12-1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그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각 그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로 시험받는 날이 온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공력은 남고,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은 불에 타 버린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금과 은과 보석이고, 자신의 욕망과 영광을 위한 것이 나무와 풀과 짚이다. 우리가 오늘 하는 모든 수고가 어떤 재료로 쌓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영광을 어떻게 하나님께 돌렸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약 25년간 전쟁을 하였다.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 아람, 소바, 아말렉을 비롯한 열방의 연합군을 정복하였고, 단 한 번도 진 일이 없었다. 그 전쟁마다 엄청난 전리품이 쌓였다. 금과 은과 청동과 보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이다. 2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잔뼈가 굵어가며,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이룬 전쟁의 결과였다. 전쟁의 시작은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나아갔다. 그 믿음이 25년의 승리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승리의 영광을 다윗은 자신이 취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부하들이 &amp;quot;왕이시여, 이제는 전쟁에 나가지 마소서. 왕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amp;quot;라고 말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사울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자신을 위한 승전 기념비를 세운 것과 달리(삼상 15:12), 다윗은 달랐다. 그는 그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아삽은 시편에 열두 편의 시를 남겼고, 헤만은 사무엘의 친손자로서 고라 자손의 찬양자였으며, 여두둔은 에단이라고도 불리는 탁월한 찬양 인도자였다. 다윗은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지은 찬양시를 맡겨 하나님을 높이게 하였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날에 아삽의 손에 맡긴 감사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대상 16:8-1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16:8-11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파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골리앗을 죽인 것은 다윗이었다. 사자와 곰을 죽인 것도 다윗이었다. 열방의 연합군을 정복한 것도 다윗이었다. 그러나 그는 &amp;quot;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amp;quot;라고 노래하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하였다. &amp;quot;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amp;quot;라는 구절은 다윗 자신이 그렇게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항상 그의 능력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전쟁마다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다윗의 시편은 단 두 편인데, 사무엘하 22장과 역대상 16장이다. 두 편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내용이다. 다윗은 역사서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높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145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시 145:1-2).&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amp;quot;라는 고백이 핵심이다. 다윗은 스스로를 왕이라 하지 않았다. 진짜 왕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그 왕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고백하였다. 이 겸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 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왕이다. 아닌데도 바위라고, 요새라고, 나의 피난처라고 자꾸 그렇게 고백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amp;quot;그래, 내가 그런 자가 되어 주마&amp;quot;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꾸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이 실제로 그 높임받으심을 이루어 가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뿐만 아니라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성전 건축을 위해 쌓아 두었다. 자신은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그는 성전 건축 재료를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역대상 29장에는 다윗이 회중을 모아 놓고 성전 건축을 위해 헌납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대상 29:2-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9:2-4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색 보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준비할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 내가 사유한 금은으로 내 하나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금 3,000달란트는 약 102톤에 해당하고, 은 7,000달란트는 약 238톤에 해당한다. 이것은 왕의 사유 재산에서 드린 것이요, 전쟁 전리품으로 이미 드린 것과는 별도이다. &amp;quot;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amp;quot;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재정적 의무감이 아니라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드린 것이다. 다윗이 모범을 보이자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렸다(대상 29:6-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29:6-9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과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또 보석이 있는 자는 여호사밧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 백성이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크게 기뻐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백성이 드린 금만 해도 5,000달란트가 넘었고, 은은 10,000달란트에 달하였다.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자원하여 드리니 백성도 기뻐하며 드렸다. 성전 공사에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리더십의 열매이다.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지도자가 백성도 그렇게 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받은 물질과 달란트와 성취를 어디에 쓰느냐가, 결국 우리의 천국에서의 상을 결정한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원리대로,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갈 6:7).&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악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자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거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심으면 자기 자신에게서 거둔다. 다윗은 25년의 전쟁 수고를 성전 건축에 심었다. 그 씨가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으로 열매 맺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을 심고, 마음을 심고, 정성을 심고, 찬양을 심을 때,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신다. 자식에게만 쓰면 자식이 잘된 것으로 복을 조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드리면, 성전에 와서 기도받고 복을 받는 모든 사람의 복이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이것이 다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하나님이 다윗을 천국에서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요약하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철저한 회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삶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하나님이 그를 천국에서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측면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성을 깊이 깨달았고, 진심으로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며, 회개한 이후에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울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사울은 회개의 흉내는 냈으나 삶이 바뀌지 않았다. 다윗은 회개 후에 실제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오뚝이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다윗의 특징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갈라디아서 6장 7절의 원리는 무서운 원리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 회개의 씨를 심으면 용서의 열매를 거두고, 고집의 씨를 심으면 심판의 열매를 거둔다. 영광 돌림의 씨를 심으면 천국에서의 영광을 거두고, 자기 영광의 씨를 심으면 이 땅에서 잠깐의 칭찬을 거두고 만다. 다윗은 평생 동안 회개와 영광 돌림의 씨를 부지런히 심었다. 그 씨가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과 최고의 왕의 자리로 열매 맺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영광을 돌리는 측면에서, 다윗은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으로 고백하였다. 찬양을 통해, 시편을 통해, 성전 건축 헌납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amp;quot;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amp;quot;라고 선포하였다. 사무엘하 22장과 역대상 16장에 역사서에 기록된 단 두 편의 시편이 실려 있는데, 두 편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사무엘하 22장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요, 역대상 16장은 법궤를 옮겨 오면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만민에게 선포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다윗의 생애가 사파이어에 새겨진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말을 타고 유다 지파의 사자 깃발을 든 모습이라 한다. 유다 지파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계 5: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그리스도를 닮은 왕이었다. 왕이면서 찬양하는 자였고, 전사이면서 예배자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의 완성된 모습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신약의 성도를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으로 부른다(벧전 2:9).&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구약에서 이 &amp;quot;왕 같은 제사장&amp;quot;의 특징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 인물이었다.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전쟁에서 이겼으며,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세 사람에게 성전 음악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헤만은 사무엘의 친손자였다. 사무엘이 아들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얻지 못하였으나, 손자 헤만을 통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찬양자를 얻었다. 신앙의 유산은 아들을 건너 손자에게로 흘러가기도 한다. 복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이 불량자여서 복을 받지 못하면 손자에게 넘어간다. 믿음이 강하면 신기(神氣)도 넘어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회개가 철저하면 그 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기독론 강해를 통해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길게 살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배움으로써 우리도 그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길은 다윗이 이미 보여 주었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회개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을 남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서인 사무엘서는 사무엘이 남겼고, 역대서는 에스라가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편은 다윗 자신이 직접 남긴 것이다. 그는 단지 왕으로 살다 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왕으로 설 수 있는지를 시편을 통해 후대에 전하였다.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이룬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며,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역대상 29장 1절에서 다윗은 회중 앞에 이렇게 고백하였다. &amp;quot;내 아들 솔로몬이 이 성전 공사를 맡았으나 그는 아직 어리고 연약하며 이 성전은 지극히 커야 할지라 이 공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이다.&amp;quot; 이 고백이 다윗의 마음을 보여 준다.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 명확한 인식이 다윗의 헌신을 끝까지 지탱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을 읽는 사람마다 다윗의 회개와 찬양을 만난다. 그 시편이 성전에서 불릴 때마다, 예배당에서 찬양될 때마다, 다윗의 상은 더해진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헌납한 금과 은이 성전에 드려진 기도의 수만큼 다윗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그가 남긴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다윗의 영광은 천국에서 더해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결정적 이유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훌륭한 사람들에게는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찬양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악기들로 가득 찬 방이,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기도실이, 교회를 지은 사람에게는 교회 모형이 기념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한 모든 대로 하나님은 갚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넘어졌으나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철저한 회개이며, 둘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삶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범죄 후 열 달 동안 뼈가 떨리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였다. 그는 죄를 짓고도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고통이 그를 진정한 회개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 안에 죄성의 뿌리가 있음을 깨달았고, 그 뿌리를 뽑아내는 회개를 하였다. 그리고 회개 이후에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살인죄를 회개한 후에는 아무리 자신을 위협하는 장수라도 죽이지 않았고, 간음죄를 회개한 후에는 수넴 여인 아비삭이 곁에 있어도 동침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25년간의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성전 건축에 내놓았고,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으며, 시편을 지어 &amp;quot;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amp;quot;라고 끊임없이 선포하였다. 이 땅에서 받을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국에서 그를 빛나는 왕복을 입은 왕으로 세우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살면서 반드시 넘어질 때가 있다. 그 넘어짐이 우리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넘어졌을 때 철저히 회개하되, 죄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쓰실 수 있는 조건이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여 이룬 모든 것을 내 영광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 땅에서 받는 영광은 반드시 천국에서의 영광과 맞바꾸어지기 때문이다. 다윗이 빛나는 왕복을 입었고 솔로몬이 허름한 왕복을 입었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 땅에서 좀 더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천국에서 빛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선택이 오늘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앞으로 실수한다 할지라도, 그 실수가 우리의 진보를 위한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넘어진 채로 있지 말고 속히 일어나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기뻐하신다. 철저히 회개하고, 그 죄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며, 모든 수고한 것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기독론적 의미는 단지 역사적 왕의 생애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였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사자 깃발 아래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이 천국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가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은 성도들이 &amp;quot;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amp;quot;라고 하였다. 다윗처럼 회개하고 다윗처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은 천국에서 다윗처럼 왕 노릇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론을 배우는 궁극적 목적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 마음속에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지 않은가? 그 죄를 덮어 두고 지나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힌다. 용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죄를 드러내고, 뿌리까지 뽑아내는 회개를 해야 한다. 또한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붙들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물질로, 찬양으로, 헌신으로, 그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은 천국에서 그것을 빛나게 돌려주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받은 평가를 기억하라. &amp;quot;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quot;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최고의 평가이다. 재능이 많아서가 아니요, 실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린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다.&amp;nbsp;그리하여 실수와 넘어짐을 기꺼이 딛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신앙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br /&gt; 2026년 06월 14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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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60372#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Jun 2026 08:43:53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115)]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1)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3) (시편32:1~11)_2026-06-07(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544</link>
				<description>&lt;p&gt;2026-06-07(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15)]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1)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3)(시편32:1~1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nxSJCvdRCl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xSJCvdRCl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padding:0;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font-size:15px;line-height: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amp;#39;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amp;#39;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다윗이다. 그런데 다윗의 일대기를 살펴보니, 그에게는 어떤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서 왕으로 이땅에 보내어진 자였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왕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과 은사(영 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도 같이 주셨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넷째,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로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린 자였다는 것이다. 다섯째, 그는 진실로 회개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진정 자신의 죄를 시인한 후에 즉시 죄사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사실 그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이후부터 열 달 동안 엄청난 육체적&amp;middot;영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범죄 후에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범죄후 열 달동안 다윗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가 쓴 참회시의 하나인 시편 6편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이 어떻게 회개했기에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사울왕은 자기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왕위를 빼앗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하자 나단 선지자가 즉시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열 달 동안 처절한 고통의 세월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무엘하는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편은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 열 달의 과정을 쭉 전부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든다.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특징을 살펴보되,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서 그의 회개에 대한 진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그가 했던 회개의 진정성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의 뿌리와 의미를 짚어볼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회개의 대명사인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를 비교해 가면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회개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해야만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떠나보낼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 없는 신앙생활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즉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해도, 내 속의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회개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회개가 과연 진정한 회개인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하나님이 사울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다윗은 용서하신 것이 불공평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오해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하 11장과 12장만에 나오는 내용만 읽으면, 다윗의 용서가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단이 &amp;quot;당신이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했을 때에 다윗이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고백했는데, 그 즉시 나단이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응답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다윗의 한 마디 고백에 즉시 용서가 그에게 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사울왕의 경우를 보면 사뭇 다르다. 사울도 사무엘에게로부터 책망을 들었을 때에 즉시 자기의 잘못을 인정했다.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삼상 15:24)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울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에게서 왕위를 빼앗으신다. 이것을 보면 두 사람의 처우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사울은 안 되고 다윗은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것은 &lt;strong&gt;회개의 진정성에 있어서 두 사람이 차이를 보인다&lt;/strong&gt;는 것이다. 사울의 고백에는 진정한 통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울이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통회가 아니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고백이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듯이(삼상 16:7), 하나님은 사울의 입술이 아닌 그 마음을 보시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가 &amp;quot;내가 범죄하였나이다&amp;quot;라고 했지만 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amp;quot;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amp;quot;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백성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사무엘에게 &amp;quot;청하건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amp;quot;여 주십사(삼상 15:30)고 부탁한다. 자기 체면을 세워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고로 죄에 대해 책망을 듣고 있었던 그 순간에도 그의 관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백성 앞에서의 체면이 중요했다. 이것이 그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다윗의 회개는 이와 달랐다. 사무엘하의 기록만 보면 그가 단 한 마디로 회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니다. 다윗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시편 5편들 곧 시편 6편과 32편, 38편과 51편 그리고 143편을 통해 보면 그 열 달 동안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받으면서 통회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뼈가 흔들리고, 몸이 수척해지고,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기도의 막힘 속에서 그는 무려 열 달을 보냈다. 고로 그것은 이미 깊은 회개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더 나아가, 두 사람이 지은 죄의 본질도 다르다&lt;/strong&gt;. 사울의 죄는 하나님을 직접 거역한 것이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좋은 짐승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눈치를 더 중시한 것이다. 반면 다윗의 죄는 사람에 대한 자범죄였다.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심각한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거역하는 죄를 더 엄중히 다루시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실 공평하시다. 다윗이 즉시 용서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열 달의 고통이 들어있었고, 용서받은 후에도 아들 네 명을 잃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기 입술로 &amp;quot;마땅히 죽을 자요 네 배나 갚아야 한다&amp;quot;(삼하 12:5-6)고 선고했던 그의 말대로, 밧세바가 낳은 첫째 아이가 죽었고, 첫째 아들 암논이 죽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죽으며,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죽었다. 죄의 결과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비록 사울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다윗에게도 온전히 시행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에서 배워야 한다. &lt;strong&gt;하나님의 용서는 죄의 결과까지 다 없애 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인 것이지, 결과의 소멸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를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죄를 지었다면 즉시 자복하여 더 이상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어디이며,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하다&amp;#39;라는 표현이 한국어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놀랍게도 그것은 욥기 42장 6절에 처음 나온다. 욥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amp;quot;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amp;quot;라고 한 것이 구약 성경에서 한국어로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amp;#39;회개하나이다&amp;#39;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amp;#39;슈브&amp;#39; 가 아니라, &amp;#39;나함&amp;#39;이라는 단어이다. &amp;#39;나함&amp;#39;은 &amp;#39;뉘우치다&amp;#39;, &amp;#39;후회하다&amp;#39;의 뜻에 가까운 단어이다. 반면 구약 성경에서 회개의 뜻으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amp;#39;나함&amp;#39;이 아니라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amp;#39;슈브&amp;#39;는 &amp;#39;돌이키다&amp;#39;, &amp;#39;돌아오다&amp;#39;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이 &amp;quot;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amp;quot;라고 하실 때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가 나온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도 &amp;quot;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amp;quot;고 하실 때도 &amp;#39;슈브&amp;#39;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리고 신약에서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quot;(마 4:17)에서 &amp;#39;회개하라&amp;#39;는 단어는 헬라어어 &amp;#39;메타노에오&amp;#39;이다. 이는 &amp;#39;마음을 바꾸다&amp;#39;, &amp;#39;생각을 돌이키다&amp;#39;는 뜻으로, 구약의 &amp;#39;슈브&amp;#39;와 의미상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회개하고 있어라) [이는]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느니라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엘서 2장 12절에서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기를 원하시는지가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여기서 &amp;quot;너희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amp;quot; 옷을 찢는 것은 외형적인 슬픔의 표시이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옷을 찢는 것은 큰 슬픔이나 충격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실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보다 마음의 진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회개 기도 모임에 나오는 것,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면서 진정으로 마음을 찟는 기도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lt;strong&gt; &amp;#39;나함&amp;#39;과 &amp;#39;슈브&amp;#39;의 차이이다. &amp;#39;나함&amp;#39;은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회개의 일부이지만 실은 회개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lt;/strong&gt;. 가룟 유다도 자신이 죄 없는 피를 팔았다고 뉘우쳤다(마 27:3). 그러나 그 뉘우침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죄값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스스로 자살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그에게도 스승을 팔아먹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후회(&amp;#39;나함&amp;#39;)는 있었지만, 돌이킴(&amp;#39;슈브&amp;#39;)이 없었던 것이다. 즉 그에게는 &amp;#39;유턴&amp;#39;이 없었던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7:3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lt;/strong&gt;이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단순히 잘못했다는 감정적 느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뉘우침은 있는데 돌이킴이 없는 회개는 반쪽짜리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욥은 죄를 지었는가, 짓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욥기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욥기의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욥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즉 독자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화를 알고 있고, 욥이 왜 시험을 받는지를 안다. 그러나 욥 자신은 끝까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그에게는 사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갑자기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그럼, 욥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욥기 1장 1절에서 욥의 인물됨은 이렇게 정의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는 욥을 노아, 다니엘과 함께 의인의 대표로 언급한다(겔 14:14). 그래서인지 욥기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직접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럼, &lt;strong&gt;욥은 언제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는가?&lt;/strong&gt; 구약의 헬라어역인 70인역 성경에 따르면, 욥이 시험을 받을 때는 70세였고, 그 시험을 30년 동안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lt;strong&gt;그는 70세부터 100세가 되기까지&lt;/strong&gt; 종기와 구더기, 친구들의 비난, 아내의 조롱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아내마저 &amp;quot;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amp;quot;(욥 2:9)고 했을 만큼 극한의 고통의 시험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한 사람도 30년의 극한 고통 앞에서는 불평하고 원망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럼, 욥은 언제적 사람인가? 그는 율법이 아직 명시되지 않았던 아브라함 시대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 자녀들의 생일 잔치 후에도 혹시 그들이 죄를 지었을까 하여 아침마다 번제를 드릴 만큼 죄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처럼 의로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10-11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진심에서가 아니라 복을 받기 때문이라고 참소했다. 하나님이 울타리로 둘러 보호하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울타리를 걷어내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의 도전을 허용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이유&lt;/strong&gt;는 무엇인가? &lt;strong&gt;첫째, 스스로 의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욥 스스로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lt;/strong&gt;이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때문에 복을 받고 잘 산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울타리로 그를 보호하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울타리가 없었다면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하나님이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욥의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욥 자신이 인정하게 하려는 것&lt;/strong&gt;이었다. 욥은 시험받는 날 동안 내내 자신은 의롭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속에도 죄된 본성인 불평, 원망, 낙심, 교만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평온한 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 씨앗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온한 삶을 살 때는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인 것 보인다. 그러나 극한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평소에 숨어 있던 죄성이 드러난다.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내가 죄를 적게 짓는 것이 내가 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울타리로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욥이 시험 가운데 지은 죄는 무엇이며, 욥이 회개한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사탄이 준 1차 시험에서 욥은 자녀들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때 욥은 &amp;quot;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amp;quot;(욥 1:21)라고 고백하며 인내하였다. 성경은 &amp;quot;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amp;quot;(욥 1:22)고 기록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2차 시험이 그에게 허락되어졌다. 그러자 그의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종기가 나서 구더기가 생겼다. 이에 아내마저 그를 버렸고,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와서 날마다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난했다. 그리하여 종기로 고통받고 있은지 여러 달이 지났을 때 드디어 욥에게도 변화가 생겼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욥기 7장 11절을 보면, 그때부터 욥은 &amp;quot;나는 불평하겠습니다&amp;quot;라고 선언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욥기 10장 1절에서도 &amp;quot;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amp;quot;고 말했다. 불평과 원망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이미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amp;quot;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amp;quot;이라고 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3:1-3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욥기 34장 5절에서 6절에 보면, 그는&amp;quot;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였다&amp;quot;고까지 말한다.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다. 30년에 걸친 극한의 고통이 결국 교만의 죄, 불평의 죄, 원망의 죄를 끌어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34:5-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지만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 하는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욥은 훗날 과연 무엇을 회개한 것인가? 욥기 42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lt;strong&gt;욥은 다음의 두 가지를 고백&lt;/strong&gt;한다. &lt;strong&gt;첫째는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했다&lt;/strong&gt;. 자기에게 어려움이 불어닥친 것은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자신이 그것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했다. &amp;quot;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amp;quot;고 말한 것이다. 즉 자신이 잘서 잘 살고 있었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울타리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 있던 죄성을 인정했다&lt;/strong&gt;.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미워했던 것,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들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번제를 드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욥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잃었던 것의 두 배를 돌려주셨고, 새로운 10남대의 자녀들을 허락하셨으며, 170년을 더 살아 총 240세에 향수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42:10 여호와께서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 욥의 회복시켜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욥이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였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완성이었다. 왜냐하면 그들고 자기처럼 모른 채 말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용서받은 자라면 그는 남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주기도문에서도 &amp;quot;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amp;quot;라고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렇다. 회개의 측면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회복으로도 이어져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왜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욥도 회개했고 다윗도 회개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회개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아는 데 중요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욥의 회개는 인간의 의로움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앞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lt;/strong&gt;이었다는 사실이다. 욥은 실제로 죄를 저질러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lt;strong&gt;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개한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그리고 극한의 고통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을 회개한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회개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죄악을 저지르고 그것을 자백하는 회개와는 다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lt;strong&gt;다윗의 회개는 구체적인 죄악 앞에서 이루어진 회개&lt;/strong&gt;였다. 간음죄, 살인죄, 도둑질의 죄, 탐욕의 죄, 이 모든 것을 명백히 알면서 그 죄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 회개였다. 구약 성경에서 &amp;#39;회개&amp;#39;라는 단어가 욥기서에 처음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의 온전한 모습, 즉 죄를 명백히 인정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진정한 회개의 전형은 다윗에게서 발견된다. 다윗의 참회 시편들, 특히 시편 51편은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장 완전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둘째로,&amp;nbsp;욥의 회개는 30년의 고통 끝에 이루어진 것&lt;/strong&gt;이었다. 처음에는 &amp;quot;내가 의롭다&amp;quot;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붙잡다가, 결국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후에야 회개에 이르렀다. 반면 &lt;strong&gt;다윗의 회개는 나단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지적받는 순간 즉시 이루어졌다&lt;/strong&gt;. 비록 열 달의 고통이 있었지만, 그 고통 자체가 이미 회개의 과정이었고, 나단이 &amp;quot;당신이 그 사람이라&amp;quot;고 하는 순간 즉시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자복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셋째로, 무엇보다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이 되는 이유는, 그의 회개가 하나님의 용서라는 명확한 약속을 이끌어 냈기 때문&lt;/strong&gt;이다. 나단이 &amp;quot;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amp;quot;라고 즉시 선언한 것은,&lt;strong&gt;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회개였음&lt;/strong&gt;을 보여 준다. &lt;strong&gt;욥의 회개가 회개의 물꼬를 튼 것이라면, 다윗의 회개는 회개의 진면목을 완성한 것&lt;/strong&gt;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리려면, 다윗의 회개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우리에게 남겨 준 참회 시편들,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죄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의 교과서이다. 어떻게 자복하고, 어떻게 통회하며,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새 마음을 간구하는지를 보여 준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윗의 참회 시편을 읽어야 한다. 이 참회 시편들이 성경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이것을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배우도록 보존하신 것이다. 다윗의 수치스러운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기록을 감추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회개의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amp;mdash;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데는 세 가지 특징&lt;/strong&gt;이 있다.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lt;strong&gt;상하고 통회하는 심령&lt;/strong&gt;으로 회개했다는 것이다.&amp;nbsp;다윗은 시편 51편 16절에서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amp;quot; &amp;#39;상한&amp;#39;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amp;#39;샤바르&amp;#39;로, &amp;#39;부서지다&amp;#39;, &amp;#39;깨어지다&amp;#39;는 뜻이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를 가리킨다. &amp;#39;통회&amp;#39;는 &amp;#39;닥카&amp;#39;로, &amp;#39;짓눌리다&amp;#39;, &amp;#39;으깨어지다&amp;#39;는 의미이다. &lt;strong&gt;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물이나 번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린 상태에서 드리는 회개라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그것은 다윗이 저지른 죄는 구약의 율법 체계 안에서는 제사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기 때문이다. 고의적 살인죄는 반드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죄를 지으면 짐승을 끌고 와서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처럼 고의적으로 간음하고 살인한 것은 제사의 범위를 넘어선 죄였다. 제물을 드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다 죽이라고 했다(레20:10). 그리고 &amp;quot;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amp;quot;(민 35:16)고 율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범한 죄들은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용서를 받았다. 왜인가? 그가 제사의 형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산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민 35: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이 결코 받지 않으신다. 여기서 형식적인 제사라는 것은, 마음은 없이 의무를 이행하듯이 제물을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로 말하면, 죄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은 채 입으로만 &amp;quot;잘못했습니다&amp;quot;를 반복하거나, 혹은 마음의 회개는 없이 예물만 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회개 기도를 할 때에도 역시 숫자만 채우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회개 기도문을 읽으면서 몇 번 했는지 동그라미만 치고 계산할 뿐이다. 그렇다고 회개의 숫자를 채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아니 된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없이 입술로만 하는 회개는 형식적 회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요를 띄울 만큼 많이 울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마음이 진정으로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34편 18절도 이와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 &amp;quot;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amp;quot; 마음이 상한 자, 영 안에서 통회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나 진술들은 우리의 죄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문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의 간음죄, 살인죄, 탐욕죄, 교만죄, 거짓말의 죄가 그분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마음으로 느끼는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주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 아픔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원천이다. 단순히 &amp;quot;내가 잘못했습니다&amp;quot;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눈물로 통회자복을 할 때 진정한 회개의 제사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바로 그것을 알았다.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자신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님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다. 그러자 그 진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다윗이 회개할 때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울었다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 15~18살 정도밖에 안 되었을 밧세바를 유린하고,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를 죽게 만들고,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그 죄에 대해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는지가 바로 그의 날마다 흘리는 눈물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형식적 제사(예물)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회개를 실천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제는 형&lt;strong&gt;식적 제사와 진정한 회개의 차이&lt;/strong&gt;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죄를 지으면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도록 명령받았다. 속죄제는 죄 자체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레위기에 자세히 기록된 이 제사 제도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이 저지른 간음죄와 살인죄는 이 제사 체계 안에서 단순히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의 죄가 아니었다. 고의적 살인은 율법상 반드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윗이 용서를 받으려면 단순히 황소를 끌고 와서 제단에 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 죄에 상응하는 철저하고 진심 어린 회개가 필요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형식적 제사의 문제는 마음 없이 행위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기가 싫은데 회개는 해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예물을 더 드리는 것으로 회개를 대신하려 한다. 물론 회개와 함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그렇지 않고 회개하는 것보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회개하는 마음 없이 예물만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지, 물질로 자신의 회개를 무마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lt;strong&gt;진정한 회개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에서 시작&lt;/strong&gt;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lt;strong&gt;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회개를 실천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회개하는 것이 입술로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그 죄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주님께 죄송한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러므로 내가 진정한 회개를 실천하는 것을 도와주는 방법들이 있다. &lt;strong&gt;첫째, 구체적으로 지은 죄를 떠올려서 회개하는 것이다&lt;/strong&gt;. 막연하게 &amp;quot;나는 죄인입니다&amp;quot;가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조상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하나씩 떠올린다. 우상숭배의 조상죄, 제사의 죄, 억압과 폭력의 죄, 음행의 죄, 혈기 분노의 죄, 거짓말의 죄를 하나씩 떠올리며 그것이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 죄가 얼마나 주님을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했는지&lt;/strong&gt;를 생각한다. 내가 지은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내가 지은 죄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식으로 태어나, 나 또한 부모님과 선조들의 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통회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과 통회를 하나님께&lt;/strong&gt; 드린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이다.&amp;nbsp;다윗은 말년에 아비삭이라는 아름다운 수냄 여인을 곁에 두었다. 하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않은 것(왕상 1:1-4)은 그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다는 증거가 나이었겠는가!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그에게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회개하고 나서 또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그 회개가 얼마나 깊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는 신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상 1:1-4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한 명을 구하여 그 아이가 왕을 모시고 또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소서 하고 이스라엘 사방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에게 데려왔으나 왕이 그를 알지 못하였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 기도를 할 때 숫자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꾸준히, 그리고 많이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 채우기가 목적이 되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아니 된다. 진심 어린 회개 한 번이 입술만 움직이는 천 번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닿기 때문이다. 오늘 회개 기도를 마치고 나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팠는가를 점검해 보라! 그 죄에 대해 내 마음에서 무언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는가? 주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느낌이 들었는가? 그것이야말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다.&amp;nbsp;그러므로 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그 죄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해야 한다. 주님이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드리는 눈물 어린 회개, 그것이 다윗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정한 회개의 첫 번째 특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회개의 참 뜻,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의 차이 그리고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에 대해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순한 어떤 행위가 아니다. 확실한 돌이킴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후회(뉘우침)는 있었지만 돌이킴이 없었던 가룟 유다의 회갤르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리는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죄가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할 수 있다. 그때 흘러내린 눈물과 통회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탄의 시험을 통해 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30년의 고통 끝에 가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무지와 죄성을 인정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윗은 간음, 살인, 도둑질, 탐욕이라는 구체적인 죄를 저지르고 열 달의 처절한 고통 끝에 나단이 찾아오자 즉시 자복했다. 그런데 그 자복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터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34편 18절의 약속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amp;quot;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amp;quot; 하나님은 화려한 예물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지금도 원하신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것은, 그 부서진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온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숫자를 채우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먼저 마음이 부서져야 함을 알라.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이 뼈져리게 느낄 수 있을 때, 그는 눈물과 통회로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어렵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면 된다. 가룟 유다처럼 뉘우치기만 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욥처럼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반드시 &amp;quot;네 죄를 사하였다&amp;quot;고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사함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7일(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amp;nbsp;&lt;strong&gt;회개하는 왕&lt;/strong&gt;으로서 다윗이 지닌 영적 특징을 조명하며, 구약의 인물인 욥과 사울의 사례를 대조하여&amp;nbsp;&lt;strong&gt;참된 회개의 본질&lt;/strong&gt;을 규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사울과 달리 즉각적인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회개는 단순한 후회나 뉘우침을 넘어&amp;nbsp;&lt;strong&gt;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전인격적 변화&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의 회개가 지닌 핵심 가치는 형식적인 제사나 예물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처절히 아파하며 낮아진&amp;nbsp;&lt;strong&gt;상하고 통회하는 심령&lt;/strong&gt;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학습자들에게 입술의 고백을 넘어&amp;nbsp;&lt;strong&gt;부서진 마음의 제사&lt;/strong&gt;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574af8d5481c480c7ffe8ce5154c15a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89de990a1e8f4cda0e29ee3b44736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32a5542fde809a11cdac3c777948d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6ef4077d13073daa1e204e9ad61d4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9110d386c32035efc6de8cdb71c41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516e99f452469d636ca4e6fcbf463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c465a09482ab23f5392f8108cfb5fb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d0a490b65632ca689160361e116f83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f43eebe7b12e76b0d85f57c6f43f4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7a58e985b68baf6ad1e9f698d89e1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c7ef6795e8c6da4a40b62b1ba30358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730ffcd77ceaa2f3fdbc8eb80e185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de9b2a5460c924b5a4d557658b4d2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e39f2389a3cbf3d73a8ebeed4f8be1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Golden_Fractures_of_Grace.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47d1792b56489955b3c6b3e901b90c6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인포그래픽_진정한_회개_다윗의_상한_심령.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10030b83689db0bba570682cdb48e0a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94e9d317dd6cb355fbbb211d97d154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656eeafb3e375f8b28ecedd2b179d3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27da96b57ed8382fa48eba5e61e51e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84e7cb8e517c6c9a1b29ed51ab3bfe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b9fb74c1bd5316397d321345f38406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b6a6e12d57cd90c1f3a6a5e3499f44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97b5c110a2bfd83d60901820bfb51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0ed770a6f84ecc5d7d2f4a0f3355af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51a56ef04d892942a3d60aef3881e9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36757a9a1ea5d15bc31432e9606bef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fd96f685a3f89e91d58e138cbbed9a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03c4dde4c18f1fa3f14c43f92cf8a3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5)] True_Repentance_Decoded.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544/255/1dd12fd570548fec22894c80ab1b37b1.webp&quot; /&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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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08)]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4)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1)(시편 22:1~21)_2026-05-31(일)</title>
			<link>https://dongtanms.kr/sunday_worship_praise/255128</link>
				<description>&lt;p&gt;2026-05-31(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8)]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4)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1)(시편 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IGd3d4_Owc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Gd3d4_Owc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 padding: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은 기독교 예배의 찬양집이다. 그러나 시편은 단순한 찬송가 모음집이 아니다. 시편에는 수천 년의 신앙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안에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예언의 형태로 가득 담겨 있다.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내용이 단순히 자신의 감정과 신앙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 안에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특히 73편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그가 경험한 삶의 고통과 기쁨, 배신과 신뢰, 절망과 소망을 노래하면서 자신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생애를 예언하고 있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기독론 107강)에는 다윗이 받은 고난을 통해 메시아를 알아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으며, 가장 가까운 벗에게조차 배신당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까닭없이 자기를 죽이려하는 자들을 향해 저주의 시편들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저주의 기도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예언의 언어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amp;nbsp; 시간에는 그 연장선에서, 다윗이 시편 전체에 걸쳐 예언한 메시아에 대한 풍성하고도 놀라운 예언들을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천국에서의 찬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성도들이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왜 시편을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로 읽어야 하며, 예수님 자신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많은 성도들이 시편을 찬양의 책, 혹은 기도의 책으로만 읽는다. 물론 시편은 찬양이다. 시편 150편은 &amp;quot;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amp;quot;(시 150:6)로 마무리되며, 시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편이 찬양의 책이라는 사실이 시편이 예언의 책이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시편이 자신에 관한 예언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구약 성경이 어떤 예언이었는지를 가르치신 장면을 보자.&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amp;quot;모든 성경&amp;quot;에는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비롯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전체)가 포함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만으로 설명을 끝내지 않으셨다. 이후 열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시편을 아예 따로 특정하여 언급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모세의 율법(토라)과 선지자의 글(느비임)과 시편(케투빔)&amp;quot;.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세 범주로 나눈 유대교의 전통적인 분류이다. 예수님은 이 세 범주 모두에 자신에 관한 예언이 담겨 있다고 선언하셨다. 특히 &lt;strong&gt;예수께서 시편을 따로 거명하신 것은, 시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담겨 있는지를 당신 자신이 친히 강조하신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시편을 읽는 성도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야 한다. 시편 23편 &amp;quo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amp;quot;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아름다운 시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이심을 미리 예언한 말씀&lt;/strong&gt;으로 읽어야 한다. 시편 110편 &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amp;quot;을 읽을 때도, 이것이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에 대한 예언&lt;/strong&gt;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편을 단순한 찬양의 책으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가르쳐 주는 예언의 책으로 읽어야&lt;/strong&gt; 한다. 시편의 가치는 단지 아름다운 시문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가득 담겨 있다는 데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천국에서 찬양에 계급이 있다면, 성도는 어떤 찬양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이 찬양의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찬양은 지금 이 땅에서 드리는 찬양처럼 모든 이가 동일하게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의 찬양이 참여 주체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아무나 아무 찬양이나 부를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는 &lt;strong&gt;천국에서 드려지는 찬양의 계층 구조&lt;/strong&gt;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첫째,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lt;strong&gt;24장로&lt;/strong&gt;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구속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드린다.&amp;nbsp;24장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최고봉이자 대표이다. 그들만이 이 찬양을 부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4: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8-10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둘째, 그 다음으로는 모든&amp;nbsp;&lt;strong&gt;천사들의 찬양&lt;/strong&gt;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셋째, 천사들의 대표인 &lt;strong&gt;네 생물 역시&lt;/strong&gt;&amp;nbsp;또 그들만이 드리는 찬양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amp;quot;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amp;quot;는 이사야 6장에서 이미 나온 찬양이다. 이사야가 주님을 뵈었을 때 스랍들(세라핌)이 같은 찬양을 불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넷째, 인간 중에서도 오직 이기는 자들, 곧 &lt;strong&gt;십사만 사천 명만&lt;/strong&gt;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가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섯째, 모든 피조물도 함께 부르는 찬양도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5:13&amp;nbsp;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amp;nbsp;&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렇게 천국에는 찬양의 계층이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고, 천사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 중에서도 십사만 사천 명만 부르는 찬양이 있으며, 스물네 장로만 부르는 찬양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사실 &lt;strong&gt;천국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천국은 엄격한 질서와 계층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lt;/strong&gt;이다. 누가 어느 찬양을 부를 수 있는가는 이 땅에서 얼마나 깊이 회개하고, 얼마나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으며,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공산주의가 평등을 내세워 모든 계층을 없애려는 체제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탄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지 않도록 성도들은 기도해야 한다. 천국에서의 찬양 총지휘자는 다윗이다.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체계를 세운 자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천국에서의 영원한 찬양의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예언한 메시아의 핵심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가장 풍성하게 남긴 사람은 누굴까? 그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 부르는 이유는 예언의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언의 내용이 방대할수록 대선지자라 불렀고, 내용이 적을수록 소선지자라 불렀다. 그 대선지자 가운데 가장 많은 메시아 예언을 쏟아낸 사람이 이사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이토록 풍성한 예언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순종의 삶이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삼 년 동안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예언하라고 명령하셨다(사 20:3). 남 앞에 알몸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그 순종에 응하여 이사야에게 메시아에 관한 놀라운 계시를 부어 주셨다. 천국에서 이사야를 만나고 싶다면 어렵지 않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이사야이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벗고 다닌 수치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영원한 영광의 옷이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lt;strong&gt;메시아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정체에 관한 것&lt;/strong&gt;이다. 이사야는 다른 누구도 발설하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였다. &lt;strong&gt;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이 땅에 오실 것&lt;/strong&gt;이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도 내가 곧 그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는 선언은 이사야서에 세 번 반복된다. 그런데 이 선언이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충격적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것이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부터 나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예수께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라고 스스로 선언하셨다면,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라고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기꾼이 아니시다. &amp;quot;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amp;quot;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분이 아기로 태어나 아들로 오신다는 충격적인 계시를 전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죽으실 수 없다(요 4:24). 그러나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 죽어야 한다(막 10:45, 히9:22, 레17:11).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으나(시 2:6-7), 이사야는 그 아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더 분명하게 계시한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어떻게 예언했으며, 신분&amp;middot;출생&amp;middot;공생애&amp;middot;수난&amp;middot;부활&amp;middot;재림의 순서로 무엇을 기록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계시뿐 아니라, &lt;strong&gt;그분의 구체적인 생애 전체를 예언&lt;/strong&gt;하였다. &lt;strong&gt;출생부터 재림까지, 그분의 삶의 모든 주요 단계가 이사야서 안에 기록되어&lt;/strong&gt;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amp;#39;출생&amp;#39;에 관해서이다. 이사야는 처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그분이 이새의 혈통, 곧 유다 지파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것도 예언하였다(사 11:1-2). 그리고 그분이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공생애를 사실 것을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1-2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는가? 그것은 이사야가 이미 예언해 놓았기 때문이다. 나사렛이 스불론 지파에 속하고, 가버나움이 납달리 지파에 속해 있었으며, 이곳을 갈릴리라고 불렀다. 고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주요 무대가 갈릴리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예언의 성취였다(마 4:13).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전세를 얻어 사셨는데,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지붕을 뜯어 내려보낸 것도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이 그 집에 계셨기 때문에 뜯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생애 중 행하신 이적들도 이미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35:5-6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눈먼 자를 고치고, 귀먹은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벙어리의 입을 여신 것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선구자가 나타나 그분을 소개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말라기도 같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실 세례 요한이 나타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한 것은 이 모든 예언의 성취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예언이 이사야 53장에 집중되어 있다.&amp;nbsp;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유월절에 어린 양은 흠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채찍으로 두들겨 맞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이시다. 흠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채찍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장차 올 메시아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도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어 있었다.&amp;nbsp;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의 묘실을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내어 드린 것은(마 27:57-60)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사야는 또한 사람의 부활에 대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놓으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이사야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까지도 예언하였다(사 66:15-16, 65:17-18). 출생에서 재림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lt;strong&gt;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풍성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예언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의 최고봉인가?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이 시편에 남긴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보다 두 배, 세 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왜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토록 풍성할 수 있었는가. 그 뿌리는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었다&lt;/strong&gt;.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은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쏟아 내었다. 그 절규와 탄원의 언어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언어가 되었다. 다윗이 더 많이 고통받을수록, 더 많은 배신과 조롱과 수치를 당할수록, 그의 시편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관한 더 구체적인 예언들이 새겨졌다. 고난이 예언의 원천이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lt;strong&gt;메시아의 신분에 대한 내용은 크게 여섯 가지&lt;/strong&gt;로 정리된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의 아들(시 2:6-7)&lt;/strong&gt;. &lt;strong&gt;둘째,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시 2:2)&lt;/strong&gt;. &lt;strong&gt;셋째, 목자(시 23편&lt;/strong&gt;). &lt;strong&gt;넷째, 왕(시 110:1)&lt;/strong&gt;. &lt;strong&gt;다섯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시 110:4)&lt;/strong&gt;. &lt;strong&gt;여섯째, 고난받는 종(시 22편)&lt;/strong&gt;. 이 여섯 가지 정체성이 다윗의 시편 속에 고루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신분에 관해 다윗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 곧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amp;quot;이신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계시를 선포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러나 &lt;strong&gt;예수님의 구체적인 삶, 고난의 세부 내용, 죽음의 방식, 부활의 영광, 승천 후의 사역에 관해서는 다윗의 예언이 이사야를 훨씬 능가&lt;/strong&gt;한다. &lt;strong&gt;다윗은 이사야보다 약 300년 앞서 살았으나, 그의 시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인 메시아 예언을 담고&lt;/strong&gt;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특히 다윗이 저주의 시편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고통, 그 고통의 언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하는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서 제거하지 않으셨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구약을 최종 편집할 때도 저주의 시편을 삭제하지 않았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하여 그것을 보존하셨다. 이것이 저주의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남겨진 결정적인 이유이며, 동시에 다윗이 시편 22편을 비롯한 수많은 메시아 예언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십자가 수난까지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번에 다루는 &lt;strong&gt;시편 22편&lt;/strong&gt;은 다윗의 메시아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본문 중 하나이다. 이 시편은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십자가 수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으로 예언&lt;/strong&gt;하고 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한 것은 그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젊은 시절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보다 적어도 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첫째로,&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아기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9-10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다윗 자신의 경험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의 젖을 먹으며 자라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분도 갓난아기처럼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으셨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amp;quot;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amp;quot;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어서 &lt;strong&gt;둘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수치와 조롱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져내실 걸 하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7장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amp;quot;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다고 했으니 구원해 보시지&amp;quot;라며 조롱하였다(마 27:43). 이것이 바로 시편 22편 6-8절의 성취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비방당하던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였지만, 그 언어는 정확히 천 년 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실 조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시편 22:1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친히 외치신 말씀이다(마 27:46).&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7:46은 &amp;quot;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quot;라는 예수님의 절규를 기록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1을 인용하심으로써, 이 시편이 자신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예언임을 친히 증언하셨다. 예수님이 &amp;quot;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amp;quot;를 외치신 것은 즉흥적인 절규가 아니라, 다윗의 예언을 성취하는 선언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셋째로, 십자가 처형의 장면과 속옷을 제비뽑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예언&lt;/strong&gt;이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6-18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사실 로마시대에 활용되었던 죄수의 십자가 처형 방식은 다윗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윗은 수족이 찔리는 처형 방식과 옷을 나누는 장면을 예언하였다. 요한복음 19:23-24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아 가진 것을 기록하며, 이것이 시편의 성취임을 명시한다. &amp;quot;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amp;quot;라는 표현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모든 뼈가 드러나는 처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천 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보고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예언대로 겉옷이 나뉘어지고, 예언대로 조롱을 받으셨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이 예언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그 예언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시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예언임을 증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재림&amp;middot;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lt;strong&gt;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이어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 재림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왕국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예언&lt;/strong&gt;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첫째로, 그분의 부활에 관한 예언&lt;/strong&gt;을 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amp;quot;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신다&amp;quot;는 것은 죽은 상태로 음부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부활을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시편 16:10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행 2:27). 다윗 자신은 결국 죽어 무덤에 묻혔으므로, 이 예언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이사야는 부활을 간접적으로 예언하였으나, 다윗은 직접적인 언어로 부활을 선포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로, 그분의 승천&lt;/strong&gt;에 관해서는 시편 24편이 웅장하게 노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amp;quot;셀라&amp;quot;는 히브리 예배의 추임새로, 감탄과 강조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웅장한 찬양은 예수님의 승천을 천 년 전에 미리 노래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셋째로, 승천 후 성령과 은사를 주실 것&lt;/strong&gt;도 다윗이 예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8:17-18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이끌어 올리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받으시며 반역자들에게서도 받으사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게 하려 하심이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8에서 이 시편 68편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의 은사 부여를 설명하였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교회에 주신 것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로, 그분의 왕권과 우편에 좌정하심&lt;/strong&gt;에 관해서는 시편 110편 1절이 핵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보좌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승리와 왕권과 영광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천국의 보좌는 하나뿐이며, 예수님이 거기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심판의 모든 권세를 갖게 되셨다는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다섯째로, 부활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중보사역&lt;/strong&gt;도 같은 시편에 예언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한다. 예수님은 왕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영원히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왕이면서 제사장이신 분은 구약에서 멜기세덱 외에는 없었다. 예수님은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마지막으로 여섯째로,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lt;/strong&gt;이 시편 110편 5-7절에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5-7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들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들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아마겟돈에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시고 왕들을 쳐부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의 예언이 이미 시편에 담겨 있었다. &amp;quot;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amp;quot;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개선장군으로서 머리를 드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처럼 다윗의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승천과 왕권, 재림과 심판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파노라마를 담고 있다. 시편 145편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찬양한다(시 145:1-2, 12-13). 다윗은 실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은&lt;strong&gt; 다윗이 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시편이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임을 예수님 자신이 누가복음 24장에서 친히 증언하셨다는 것, 천국의 찬양이 계층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성도는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 자리를 준비한다는 것,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와 그가 선포한 놀라운 계시 곧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진리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부터 재림까지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과,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이며 그 원천이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시편 22편이 천 년 전에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수난을 정밀하게 예언했다는 것, 다윗이 부활&amp;middot;승천&amp;middot;왕권&amp;middot;재림&amp;middot;심판에 관한 예언도 시편에 풍성하게 남겨 두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쏟아 낸 절규가, 가장 가까운 벗에게 배신당하며 흘린 눈물이, 까닭 없이 당한 수치와 조롱이 단순한 인생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예언이 되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고통을 헛되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다윗의 삶을 통해 수천 년의 구원 역사를 예언하게 하셨고, 그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오늘날 성도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이 하나님의 더 깊은 경륜 안에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당하는 억울함과 배신과 수치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언젠가 더 큰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는 그 안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다윗의 탄원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다윗의 찬양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며, 다윗의 왕권 찬양 속에서 재림하실 만왕의 왕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lt;/strong&gt; 한다. 그리하여 &lt;strong&gt;시편 한 편 한 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책으로 읽으며, 그 예언이 이루어진 복음의 감격 안에서 더욱 깊이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lt;/strong&gt;를 바란다.&lt;/p&gt; &amp;nbsp;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1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윗이 지은 시편 속에 투영된&amp;nbsp;&lt;strong&gt;메시아 예언자&lt;/strong&gt;로서의 위대한 면모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을 이사야보다 더 풍부한 예언적 기록을 남긴&amp;nbsp;&lt;strong&gt;최고의 예언자&lt;/strong&gt;로 규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고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이르는&amp;nbsp;&lt;strong&gt;구속사적 생애&lt;/strong&gt;가 시편에 정밀하게 예고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인간적인 결함과 억울한 상황 속에서 쏟아낸 다윗의&amp;nbsp;&lt;strong&gt;저주와 탄식&lt;/strong&gt;마저도 메시아가 겪을 고통을 예표하는 도구로 승화되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시편을 통해&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lt;/strong&gt;을 온전히 발견하고, 다윗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amp;nbsp;&lt;strong&gt;신앙적 결단&lt;/strong&gt;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ed17dd7a71fc1ff5b4bc3968b0d436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6b600c8c166e21bb1e02c9f3c639d7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784977a0158375cd0a813aa454990a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ed3d9eb2f91a25908a3e625829f8a4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e7842dcfe214c91af34cda8a52a3d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ac50b4055f84770b705da181b500f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e241be0fcc13bf8a996aea905480af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6600c0bf32a71da6b8ba7227e3f1ac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fcaf4f15462d7752eac97ca0a35ab0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2b5e53a5b6158f1c86fec556622d60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514296d0adb661e186c501cff04e7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d7161970a04045b7f276fe6116cbaf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8c4f7e728133d834ab243256753ad4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44411ce163447f1cec7d5bb0a74af6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b35db8e80808d99c11208fb629a9fe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069e499232bb297389f2a3acbec93f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시편과_이사야의_메시아_예언.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128/255/991cad658ae27dfa08287af155e737b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일찬양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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