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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언과예언과방언통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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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언의 은사] 이렇게 하면 누구든지 방언으로(방언을) 말할 수 있다(방언 및 방언찬양 열기 실습)_2023-09-22(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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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9-23T11:24:24+09:00</published>
		<updated>2023-09-23T11:32:5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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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3-09-22(금) 금요기도회 제2부 순서 제목: [방언의 은사] 이렇게 하면 누구든지 방언으로(방언을) 말할 수 있다(방언 및 방언찬양 열기 실습)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RbsqMJXVOnk 1. 들어가며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있는 영(spirit)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에게는 겉사람돠 속사람이 있다. 겉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따라가는 사람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3-09-22(금) 금요기도회 제2부 순서&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방언의 은사] 이렇게 하면 누구든지 방언으로(방언을) 말할 수 있다(방언 및 방언찬양 열기 실습)&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RbsqMJXVOnk&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bsqMJXVOnk&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있는 영(spirit)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에게는 겉사람돠 속사람이 있다. 겉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따라가는 사람을 가리키고, 속사람은 자신의 영을 따라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amp;nbsp;겉사람은 죄된 본성과 하나가 육체라고 말할 수 있고, 속사람은 성령과 하나된 나의 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영을 사용하는가? 그 시간은 예배하는 시간이요, 기도하는 시간이요, 찬양하는 시간이다. 그중에서 기도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자기 말로 기도를 하면 혼이 자꾸 끼어들어 세상적인 욕심을 간구하게 된다. 하지만 영이 기도할 때에는 세속적인 욕심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고 그 뜻대로 되어주기를 갈망하는 자신의 기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와은 달리 같은 영물이지만 육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일용할 양식을 비롯하여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영은 결코 육체의 욕심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amp;#39;방언기도&amp;#39;라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4:14).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실제로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방언으로 찬양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9월 22일(금)&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방언의 은사] 사도행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방언을 하라(행2:1~4)_2023-09-22(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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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9-23T11:13:27+09:00</published>
		<updated>2023-09-25T09:47:0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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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3-09-22(금) 금요기도회 제목: [방언의 은사] 사도행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방언을 하라(행2: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KBf_xZ8I9g 1. 들어가며 예수님의 수제자는 베드로다. 그는 공생애 초기에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로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특히 그는 &#039;고기잡는 어부&#039;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성령받고 복음을 전해주었던 사도행전의 기록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3-09-22(금) 금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방언의 은사] 사도행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방언을 하라(행2: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HKBf_xZ8I9g&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HKBf_xZ8I9g&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님의 수제자는 베드로다. 그는 공생애 초기에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로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특히 그는 &amp;#39;고기잡는 어부&amp;#39;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amp;nbsp;그가 성령받고 복음을 전해주었던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말씀처럼 그는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 그래서 한 번에 3,000명과 5,0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 한편&amp;nbsp;공관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성령받기 전까지는 그 에게 능력이 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열심은 있어으나 오히려&amp;nbsp;주님께서 책망드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약했던 베드로는&amp;nbsp;성령을 받은 이후부터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 시작한다.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는가 하면,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죽은 다비다마마저&amp;nbsp;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lt;strong&gt;베드로에게&amp;nbsp;성령받기 전과 성령받은 이후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amp;nbsp;달라졌는가? 그것은 기도할 때에&amp;nbsp;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방언이 무엇이길래 베드로는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amp;nbsp;말인가? 그것은 그가 영으로 기도하는 것에 었다. 곧 방언을 말하는 것&lt;/strong&gt;이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이란 애체 무엇을&amp;nbsp;가리키며, 그 오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방언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방언을 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방언에 대한 논란은 무엇이며, 방언의 실체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이란 무엇인가? &lt;strong&gt;방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amp;#39;외국어&amp;#39;다. 어떤 사람은 &amp;#39;고린도현상&amp;#39;이다. 어떤 사람은 &amp;#39;마귀(귀신)이 지껄이는 말&amp;#39;이라고 말하기도 한다&lt;/strong&gt;.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amp;nbsp;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amp;nbsp;것이 아니라, &lt;strong&gt;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아야&lt;/strong&gt;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역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쓰임받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언에 관한 말씀도 헬라어원문으로 보아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strong&gt; 방언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사실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lt;/strong&gt;에 있었다. 그것은 믿는 자는 누구든지 방언을 말하게 된다고 하셨다(막16:17). 그리고 방언은&amp;nbsp;일종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막16:17).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인 고린도전서에서, &lt;strong&gt;방언은&amp;nbsp;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 곧 신령한 은사&lt;/strong&gt;라고 언급하고&amp;nbsp;있다(고전12:10). 누구의 말이 맞는가?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헬라어 워문으로 보았을 때에, 예수님의 말씀(막16:17)과 사도바울의 증언(고전14:5)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 다 &amp;quot;방언들(&amp;#39;글로싸이&amp;#39;, 복수)로&amp;nbsp;발언하는 것(&amp;#39;랄레오&amp;#39;, 동사)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나오기&amp;nbsp;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사도행전에 2장에 나오는 방언(&amp;#39;글로싸&amp;#39;, 단수)은 단지 &amp;#39;외국어&amp;#39;였을 뿐이고,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글로싸)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말하는 고린도현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헬라어를 보라. 단어철자 하나도 틀리지 않는&amp;nbsp;똑같은 말인 것이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방언은 이 세상에서 발언되고 있는 언어인가 천상의 언어인가?&amp;nbsp;예수께서 최초로 언급하셨던 &amp;#39;방언&amp;#39;(글로싸)를 보면, 그것이 어떤 말이었는지를 사실 정확히 알 수&amp;nbsp;없다. 그것에 대해서&amp;nbsp;주님의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사도바울이 말한 정의에서&amp;nbsp;그 뜻이 나온다(고전14:2).&lt;strong&gt; 그것은 결국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특수한 말&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lt;strong&gt;것은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 도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을 공중에서 예배에서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고 하였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사실은&amp;nbsp;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방언(&amp;#39;글로싸&amp;#39;)(막16:17)이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amp;#39;글로싸&amp;#39;)(행2:6,8 10:46, 19:6)이나 그리고&amp;nbsp;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언급하고 있는 방언(고전12장, 13장, 14장)은&amp;nbsp;다 똑같은 단어 곧 &amp;#39;글로싸&amp;#39;라고 쓰였다는 사실이이다. 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언(막16:17)과&amp;nbsp;사도행전 2장에서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의 방언(행2:4),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집안의 방언(행10:46)과&amp;nbsp;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사울이 가서 안수함으로 에베소 성도들이 받았던 방언(행19:6)은 다 똑같은 방언이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방언이란 어떤 종류의 것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방언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예수님의 언급과 사도행전의 기록과 사도바울의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t;/p&gt; &lt;p&gt;&amp;nbsp; &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첫째, 방언은 새 언이며, 딴 언어&lt;/strong&gt;&lt;/span&gt;라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방언에 대해 예수께서는 그때 제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람어가 아니라 새로운 말(정확히는 &amp;#39;혀&amp;#39;의 발성기관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라고 말씀하셨다(막16:17). &amp;quot;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곧 그들이 새 방언[들]을 말하며(발성하며)&amp;quot;(막16:17). 고로 우리는 제자들이 사용하던 언어 곧 아람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방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 의사 누가는 그것을 &amp;#39;다른 언어들&amp;#39;이라고 언급했다(행2:4). 그런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그것은 &amp;#39;딴 언어들&amp;quot;이라고도 번역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amp;#39;다른&amp;#39;이라는 단어가,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을 언급하는 &amp;#39;다른&amp;#39;이라는 뜻의 &amp;#39;알로스(other, another)&amp;#39;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다른 것 곧 딴이라는 의미의 &amp;#39;헤테로스(different)&amp;#39;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4에 나오는 &amp;#39;헤테로스&amp;#39;를 NIV성경은 &amp;#39;other(다른)&amp;#39;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우리말 개역개정성경 역시 &amp;#39;다른&amp;#39;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니다. 방언은 이 세상에 속한 언어가 아니다. 딴 종류의 언어인 것이다. 즉 천사의 언어처럼 하늘에 속한 언어, 영이 말하는 언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방언은&amp;nbsp;표적으로 주어진 말이지만&amp;nbsp;또한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여러가지 종류의 언어가 주어지기도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두번째로 방언은 &amp;#39;표적&amp;#39;으로 주어지는 방언이면서 동시에 &amp;#39;초자연적인 은사&amp;#39;로서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방언이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 방언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불신자가 거듭날 때 자기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새 생명인 저 아버지의 생명을 아들을 통해서 자기 안에 생명을 분배해줌으로 그 영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기가 태어나면 말을 하듯이, 영도 새로 거듭 태어나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일종의 표적인 것이다. 특히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말하는 있는 방언을 가리켜,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amp;nbsp;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방언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고전14:22). 그런데 사도바울은 방언이 표적이지만 또한 은사로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것은 고전12:10에 나오는데, 그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amp;#39;게네 글로쏜&amp;#39;이다. 이 말은 &amp;#39;방언들의 종류들&amp;#39;이라는 말이지만, 좀 더 정확히 번역하면, &amp;quot;방언들의 다른 출생&amp;#39;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며, 하늘에 속한 초자연적인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해보면 엄청 다른 종류의 말이 나온다. 수 백가지라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중에는 진짜 자신이 배우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어떤 방언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 곧 성령강림을 기다리면서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이들에게 주어진 방언은 어떤 방언이었을까? 그들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사실&amp;nbsp;구약시대에 이미 약속된&amp;nbsp;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성령세례에 관한 약속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거룩한 영을 맞아들이기 위해 회개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성령이 오시기까지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것이다. 그러자 그때로부터 10일뒤인&amp;nbsp; &lt;strong&gt;오순절날이 이르자, 아침 9경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다. 그러자 그들&amp;nbsp;각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말하기 하심을 따라 &amp;quot;딴 언어들&amp;quot;로 말하기를 시작한다&lt;/strong&gt;. 그렇다면 그들이 말했던 방언이란 대체 어떤 방언이었을까?&lt;/p&gt; &lt;p&gt;&amp;nbsp; 문제는 이때 120명의 성도들이 말하는그 방언을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반응이다. 놀랍게도 그들은&amp;nbsp;각자가 자기들의 언어(&amp;#39;디아레크토&amp;#39;,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당시 120명의 사람들은&amp;nbsp;갈릴리 촌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했다.&amp;nbsp;&amp;nbsp;갈릴리&amp;nbsp;사람들이&amp;nbsp;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amp;nbsp;보면,&amp;nbsp;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외국어를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이 100%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날 그들이 말한 방언이 고린도전서 12:10에 언급된 &amp;#39;각종 방언들 말함&amp;#39;으로서, 자신들도 배우지 않은 언어인 &amp;#39;외국어&amp;#39;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하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 11절의 말씀이다.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amp;quot;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들(글로싸)로 말하는 것을 듣는도다&amp;quot;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만약 120명의 성도들이 진짜 15개국 나라의 말로 말했다면, 15개국에서 온 유대인들은&amp;nbsp;&amp;quot;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들(디아레크노)로 말하는 것을 듣는다도&amp;quot;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의 언어들(&amp;#39;글로싸이스&amp;#39;)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lt;/p&gt; &lt;p&gt;&amp;nbsp;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날은 다른 무리들도 그들 중에 있었다. 그들은 120명의 성도들의 방언을 &amp;#39;디아레크토&amp;#39;로 듣지 못했던 자들이다. 누가복음의 기자는 그들을 딴(&amp;#39;헤테로스&amp;#39;)&amp;nbsp;종류의 사람들이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게 그들의&amp;nbsp;반응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이은 아침부터 120명의 성도들이 술취한 것이라고 조롱했다(행2:13). 그러므로 120명의 성도들이 딴 무리들도&amp;nbsp;똑똑히 들리는 외국어로 말했다면, 그들은 결코 120명이 말하는 방언을 듣고 술취한 것이라고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귀에 120명 성도들의 방언은 술취한 이듯&amp;nbsp;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amp;nbsp;것이다.&amp;nbsp; 딴 무리들은 성령의 역사에 전혀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거나 불신앙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귀에는 자기들이&amp;nbsp;사용하는 모국어로 들린 것이 아니라, 미친 사람들의 흥얼거림으로 들렸던&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결론적으로 &lt;strong&gt;오순절 성령강림의 날에,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성도들은 그날 표적으로서의 방언(글로싸) 곧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한 것&lt;/strong&gt;이다.&amp;nbsp; &lt;strong&gt;그리고 15개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사로서의 방언을 같이 한 것이다&lt;/strong&gt;. 그랬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15개국 사람들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amp;nbsp;되고&amp;nbsp;구원을 받아서&amp;nbsp;교회가 탄생할 수 있도록,&amp;nbsp; 자기들에게는 120명 성도들이 말하고 있는&amp;nbsp;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amp;#39;글로싸&amp;#39;)가 자기들이 사용하는 모국어(&amp;#39;디아레크토&amp;#39;)로 들리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무릳르의 귀에근 그 방언이&amp;nbsp;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던&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터진 방언은 &amp;#39;표적&amp;#39;으로서의 방언임과 동시에 &amp;#39;은사로서의 방언&amp;#39;이었던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터진 방언을 가리켜, 은사로서의 방언 중에 &amp;#39;대국방언&amp;#39;이라고 부르는&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는 방언에는 &amp;#39;표적으로서의 방언&amp;#39;과 &amp;#39;은사로서의 방언&amp;#39;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거듭난 성도들은&amp;nbsp;누구든지 표적으로서의 방언 곧 알아들을 수 없는 딴 언어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에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은사로서의 방언을 받아서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다른 출생을 갖는 새로운 방언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전12:10). 그래서 &lt;strong&gt;여러가지&amp;nbsp;방언을 할 수 있는데, 먼저는 말을 하는 대상에 따라 &amp;#39;대신방언&amp;#39;, &amp;#39;대인방언&amp;#39;, &amp;#39;대물방언&amp;#39;, &amp;#39;대국방언&amp;#39;&lt;/strong&gt;이 있다. 즉&amp;nbsp; 은사로서의 방언에는&amp;nbsp;하나님께 말하는 방언이 &amp;nbsp;&amp;#39;대신방언&amp;#39;이 있다. 그리고 &amp;#39;대인방언&amp;#39;도&amp;nbsp;있다. 어떤 개인에게 말하는데 그 사람이 그 방언을 알아듣는 방언인 것이이다. 또한 &amp;#39;대물방언&amp;#39;도&amp;nbsp;있다. 이는 새들과 꽃들과 대화를 하는 방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mp;#39;대국방언&amp;#39;이라는 것도&amp;nbsp;있다. 그러면 듣는 자가 각기 자기나라의 말로 방언을 알아듣는&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런데&amp;nbsp;&lt;strong&gt;방언을&amp;nbsp;발음이 나오는 소리에 따라 구분하면 소위 &amp;quot;애기방언&amp;#39;, &amp;#39;언어방언&amp;#39;, 대적방언&amp;#39;&lt;/strong&gt;이 있다.&amp;nbsp;&amp;#39;애기방언&amp;#39;이라 함은 주로 &amp;#39;랄랄라&amp;#39;는 말로 방언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좀 더 유창하게 언어적으로 나오는 &amp;#39;언어 방언&amp;#39;도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 &amp;#39;언어방언&amp;#39;이라고 한다. 그리고 귀신을 쫓을 때에는 &amp;#39;단파방언&amp;#39;(능력방언, 대적방언)을 사용한다. 이때 방언은 주로 단파로 딱딱딱 끊어져&amp;nbsp;나오는데, &amp;quot;다다다, 두두두, 파파파&amp;quot; 이런 식으로 나온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방언은 그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도 있으니, &amp;#39;대화방언&amp;#39;, &amp;#39;방언기도&amp;#39;, &amp;#39;방언찬양&amp;#39;, &amp;#39;축복방언(혹은 책망방언&amp;#39;)&lt;/strong&gt;도 있다. 다시 말해, 방언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언이 있고(대화방언, 고전14:2),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언도 있는 것이다(고전14:14, 방언기도). 그리고 찬양하는 방언도 있으며(고전14:15, 방언찬양), 다른 사람을 주께서 직접 축복하는 방언(고전14:15, 축복방언)도&amp;nbsp;있다. 그런데 실제로 방언을 통역해보면, 주님께서 그 성도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하는 축복방언(반대로는 책망방언)이 한 90%가량 나오고, 나머지가 자기가 하나님께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나온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방언의 유익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방언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는가? 그것은 이전에 전했던 메시지들을 씨리즈로 정리해놓았으니 그것을 동탄명성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오늘은 그것에다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것을 더 말씀드리겨고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먼저,&lt;strong&gt;&amp;nbsp;기존에 말씀드셨던&amp;nbsp;방언의 유익은 다음&lt;/strong&gt;과 같다.&lt;/p&gt; &lt;p&gt;&amp;nbsp;&lt;strong&gt; 첫째, 주님과 더욱도 친밀하게 대화하고 주님을 찬양하되 영으로 찬양할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주님과 영으로 직접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lt;strong&gt; 둘째, 방언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틀린 기도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가 하나도 없다&lt;/strong&gt;&amp;nbsp;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말로 드리는 기도는 벌써 우리의 개인적인 욕심과 세상의 욕망이 섞여 들여간다. 그러나 방언은 절대 그러한 기도가 단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lt;strong&gt;셋째, 방언은&amp;nbsp;영권을 강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도구라는 것&lt;/strong&gt;이다. 영권이 강해지려면 영이 강해져야 한다. 방언은 영을 강해지도록 담금질하는 거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말할수록 영이 강해진다. &lt;strong&gt;넷째, 방언은 다른 은사를 가져오는 통로역할을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amp;nbsp;방언을 하지 않는데,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환상이나 꿈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귀신쫓는 것이나 병자를 치유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lt;strong&gt;다섯째, 방언은 오래동안 기도할 수 있다는 것&lt;/strong&gt;이다. 자기가 알아듣는 말로 기도하면 조금만 기도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방언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려 10시간 이상도 기도할 수 있다. &lt;strong&gt;여섯째, 방언은 통역이 가능하다면 지금 나에게 혹은 다른 대상(개인, 교회, 국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내 영이&amp;nbsp;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일곱째, 방언이 은사방언으로 나타나 대인방언과 대국방언으로 나타난다면, 전혀 언어가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가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마지막으로 오늘 처음으로 말씀하는 방언의 효능에 대해 추가로 더 말씀드리고자&lt;/strong&gt; 한다. 그것은 &lt;strong&gt;한 마디로 방언은 나에게 능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lt;/strong&gt;이다. 이는 방언이 곧 내게 능력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언이 곧 능력이라는 도식이 직접적으로 성립하는&amp;nbsp;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언이 능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차례대로 살펴보면&amp;nbsp;금방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 자, 방언은 어떤 상태에서 할&amp;nbsp;수 있는가? 그것은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다(행2:1~4). 성령이 그를 사로잡아 장악하게 되면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amp;nbsp;성령세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부어지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행1:8).그런데&amp;nbsp;성령께서 오실 때에는 천사들을 데리고 온다.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모인&amp;nbsp;모든 성도들의 머리 위에 각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었는데, 사실 그 실체를 살펴보면 불을 다스리는 천사들이다(행2:3, 히1:7). 천국에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있기 때문이다(계14:18). 그리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실 때,&amp;nbsp;달랑&amp;nbsp;성령 혼자만&amp;nbsp;보내신 것이 아니다. 당연히 천사들이 같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성령님과 동행한 천사들은&amp;nbsp;성령의 지시를 받는 천사들이요,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천사들이다. 그러므로&amp;nbsp;성령의 선물을 자세히 보면,&amp;nbsp;천사들로 통하여 주어지는&amp;nbsp;것이다. 고로 귀신을 축사하고 병든 자를 고칠 때에는 천사들이 와서 일한다. 즉 하늘에서 귀신잡는 군대천사가 내려와서 귀신을 결박하여 끌고가며, 병든 자를 고칠 때에는 병을 치료하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병을 고친다.&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천사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따고 말한다. 예수께서도&amp;nbsp;하나님의 손 곧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셨다고 하셨다. 이때 예수께도 천사들이 붙어서 일을 한 것이다. 시편말씀을 보라.&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103:20-22&amp;nbsp;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 천사들은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사람이 능력을 받았다는 것은 능력의 천사를 부릴 수 있는 더 큰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lt;/strong&gt;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천사들을&amp;nbsp;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면,&amp;nbsp; 다른 말로, 천사를 부릴 수 있는 은사가 그에게 주어졌다면 그에게서 더 크고 많은 능력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은&amp;nbsp;그의 영적 계급과 비례한다. 그러니까 영권이란 그가 얼마나 천사를 부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어떻게 하면&amp;nbsp;우리에게 더 크고 더 많은 천사들이&amp;nbsp;많이 파송되는가? 그것은 기도에 전념할&amp;nbsp;때다.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파송되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도 이러한 사실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이 되었을 때,&amp;nbsp;120명의 성도들은&amp;nbsp;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그랬더니 오순절날에 그들에게 성령과 함께 천사들이 불처럼 바람처럼 내려왔다(행2:2~3, 히1:7). 기도하면 천사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보니,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했다(행12:5). 그러자 주님께서 보낸 천사가 베드로를 구출하려고 왔다(행12:7).&amp;nbsp;그렇다.&amp;nbsp;&lt;strong&gt;기도하면 이처럼 천사가 파송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사는 능력을&amp;nbsp;갖고 있는 천사다. 그리고 천사가 오면 능력이 나타나는 것&lt;/strong&gt;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방언기도란&amp;nbsp;무엇인가? 이것도 일종의 기도다. 그러므로 &lt;strong&gt;방언으로 기도해도&amp;nbsp;천사가 파송되는 것&lt;/strong&gt;이다. 그런데 &lt;strong&gt;방언기도는 일반기도에 비해 더 강력한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파송된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기도&lt;/strong&gt;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방언으로 기도하면 능력의 천사들이 오는데, 더 강력하고 더 많은 천사들이 파송되는 것&lt;/strong&gt;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파송하시는 천사들이다. 그리고 천사들은 구원얻을 상속자로 섬기도록 파송되는 존재들이므로(히1:14),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면서 때로는 그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amp;nbsp;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것에는 기도가 있고, 또한 기도 중에는 방언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하되 방언기도를 통하여, 더큰 천사들과&amp;nbsp;더 많은 천사들을 파송받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방언기도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누군가가 방언을 기도한다고 해서 다 똑같은 방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영권을 더 가진 자의 기도와 방언기도는 더 큰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의 기도와 명령은 더 크고 더 많은 천사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방언기도의 능력이다. 그러나 한 술에 배부를 사람이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한 번에 큰 능력을 발취하는 사람은 없다. 아직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회개하고, 더 많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영권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언을 많이 해야 영권이 올라간다. 그리고 영권이 올라갈수록 능력은 더 많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더 큰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파송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더 많은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방언을 하라. 사도행전에 나온 것처럼 방언을 하라. 사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제자들에게는 거의 능력이 없었다. 파송된 천사들이 적었고 또한 큰 천사들도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전부터 그들은 전념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강력한 기도를 해야만 했다. 특히 &lt;strong&gt;방언기도는 오순절 이후에 덧붙혀진 놀라운 기도가 되었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더 큰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내려와서 일을 해 주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에게 있어서 방언받기 전의 기도와 방언을 받은 후의 기도는 그 양상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lt;strong&gt;우리들도 더 큰 능력을 맛보기 원한다면, 더 많이 더 자주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이고, 많게는 5~6시간, 10시까지도 방언으로 기도해야&lt;/strong&gt; 한다.&lt;strong&gt; 그러면 자동적으로 놀라운 능력들이 자기에게 나타나하게 &lt;/strong&gt;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9월 22일(금)&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영권시리즈(2)]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2)(행2:1~8)_2023-07-06(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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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7-06T09:06:04+09:00</published>
		<updated>2023-07-23T15:46:3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영권시리즈(2)]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2)(행2:1~8)_2023-07-06(목) https://youtu.be/5SRUTnM_sE0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32] 1. 영권을 올리는 3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영권은 영의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리킨다. 고로 영권이 있다고 함은 귀신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고, 천사를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 만물에게 명령했을 때 에 그들이 복종...</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영권시리즈(2)]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2)(행2:1~8)&lt;/strong&gt;&lt;/span&gt;_2023-07-06(목)&lt;/p&gt; &lt;p&gt;https://youtu.be/5SRUTnM_sE0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32]&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5SRUTnM_sE0&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lt;strong&gt;1. 영권을 올리는 3가지 방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영권은 영의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리킨다. 고로 영권이 있다고 함은 귀신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고, 천사를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 만물에게 명령했을 때&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에 그들이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러한 권세를 가진 자는 없겠지만 이러한 권세가 점점 더 세지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영권이 올라가게 되는 것일까? 정도는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에 주의한다면 영권을 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amp;nbsp;&lt;strong&gt;첫째는 회개하는 것&lt;/strong&gt;이다(요일1:9). 자신이 지은&amp;nbsp; 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잃어버렸거나 제거되었던 권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죄를 회개할수록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strong&gt;둘째, 귀신과의 싸움을 하는&amp;nbsp;것&lt;/strong&gt;이다. 귀신과 싸우다가 혹 얻어터진다고 할지라도 귀신과의 싸움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귀신과 싸워서 얻어터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 다음번에는 이길 수 있도록 영적인 권세를 보태 주시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셋째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lt;/strong&gt;이다. 방언기도 가운데서도 대적하는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적하는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확실히 영권이 올라가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lt;strong&gt;2. 방언이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왜 방언을 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언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첫째,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이란 헬라어로 &amp;#39;글로싸&amp;#39;(혀)라는 단어이다. 사실&amp;nbsp;사람이 믿음과 회개를 통해 자신의 영 속에 성령을 모시게 되면, 믿는 이들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amp;nbsp;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그가 거듭나게 된다. 그때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amp;nbsp;해 주는 가장 중요한 표적이 바로 &amp;#39;방언&amp;#39;이다. 이 방언은 혀로서 말을 하는 것인데, 일종의 언어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언어가 아니어서 그것을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전14:2). 어떤 사람은 방언이 마귀(귀신)의 언어 혹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치부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겠다고 하는 사람더러 그것이 잘못 되었으니 그것을 고치시오 한다고 해서 고칠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amp;nbsp;그냥 그대로 가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영적인 사람으로서 영적인 진보를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언어로서, 이 세상에 속한 언어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의 언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방언을 &amp;#39;다른 언어&amp;#39;라고 표현했다. 이는 헬라어로 &amp;#39;헤테로스 글로싸&amp;#39;라는 표현으로서, 다른 종류의 언어 곧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언어인 것을 말했다. 만약 우리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외국어인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같은 언어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면, &amp;#39;헤테로스&amp;nbsp;글로싸&amp;#39;라고 사용해서는 아니되며, 같은 종류의 언어를 뜻하는 &amp;#39;알로스 글로싸&amp;#39;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amp;#39;헤테로스&amp;nbsp;글로싸&amp;#39; 전혀 다른 언어로서,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언어라고 말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lt;strong&gt;3. 방언은 대체 어떤&amp;nbsp;내용을 가진 말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이 영권을 올리는 중요한 통로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는 방언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amp;nbsp;두 번째로, 방언은 대체 어떤 내용의 말인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방언이 어떤 내용의 말인지를 알게 되면, 왜 방언이 영권을 올리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방언을 통역해 보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딱 2가지다. 하나는 기도다. 방언을 하고 있는 자의 기도가 방언인 것이다(고전14:14). 왜냐하면 방언은&amp;nbsp;자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고전14:14).&amp;nbsp;그런데 실제로 방언에 자신의 기도가 나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방언 가운데 많아야&amp;nbsp;20%&amp;nbsp;정도이며, 대부분은 주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80~95%가&amp;nbsp;그렇다. 그러므로 방언이란 곧 주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로서 어떤 것을 명령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첫째, 귀신들이 복종했다. 둘째, 질병이&amp;nbsp;떠나갔다. 셋째, 만물이 복종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말하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amp;nbsp;사람의 입에서 많이 나오는 것이므로, 귀신들은 복종하게 될 것이며, 질병은 떠나가고, 만물이 그 사람의 말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처음으로 말하는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하신 말씀은 어떤 것을 실현되게 하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방언이 곧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의 말씀이 방언을 통해 풀어질 때, 그것이&amp;nbsp;귀신을 대상하는 하는 말이었다면, 엄청난 효과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lt;strong&gt;4.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떤 방언이 영권을 올려주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에는 여러 종류의 방언이 있다.&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 첫째로, 소위&amp;nbsp;&amp;#39;애&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기방언&amp;#39;&lt;/strong&gt;&lt;/span&gt;이라고 말하는 &amp;#39;랄랄라&amp;#39; 방언이 있다.&lt;strong&gt; 둘째로, 언어방언&lt;/strong&gt;이 있다. 방언이 언어처럼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방언에는 다시 5가지 방언이 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 &lt;strong&gt;1)대신방언&lt;/strong&gt;이 있다. 하나님께 영으로 올려 드리는 기도가 이 방언이다(고전14:2,14).&lt;strong&gt; 2)대인방언&lt;/strong&gt;이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으로서, 방언은 방언이지만&amp;nbsp;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방언이다. 그런데 이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듣는 자들에게&amp;nbsp;바로&amp;nbsp;통역이 되어 자기 나라의 모국어로 들리는 것이다. 그래야 언어가 다른 각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러한 방언을 허락하시는 것이다.&lt;strong&gt; 3)대물방언&lt;/strong&gt;이 있다. 이는 식물의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동물들과 방언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lt;strong&gt;4)대국방언&lt;/strong&gt;이 있다. 이는 자신이 방언을 하기는 하는데, 자신이&amp;nbsp;한 번도 말해 보지 못한 외국어를 직접 자신의 입술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언을 말하는데, 영어가 유창하게 나오고 독일어가 유창하게 나오는 것이다. 5)마지막으로 &lt;strong&gt;&amp;#39;전투방언&amp;#39;&lt;/strong&gt; 혹은 &lt;strong&gt;&amp;#39;능력방언&amp;#39;&lt;/strong&gt; 혹은 &lt;strong&gt;&amp;#39;단파방언&amp;#39;&lt;/strong&gt;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권세가 있는 방언을 가리키는데, 악한 영들과 싸울 때에 사용하는 방언이다. 이것은 일반 방언하고는 그 음성이 상당히&amp;nbsp;다르다. 그러면 이 방언을 들은 귀신들은 떠나가거나 숨거나 어떤 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권이 있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전투방언(=능력방언, 단파방언)을 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방언을 단파방언이라고 함은 귀신과 대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언은 단파로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mp;quot;다다다&amp;quot;, &amp;quot;두두두&amp;quot;, &amp;quot;파파파&amp;quot; 등으로 나온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lt;strong&gt;5. 왜 전투방언(능력방언, 단파방언)을 하면&amp;nbsp;영권이 올라가게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좀 전에서처럼, 방언의 종류를 방언을 하는&amp;nbsp;대상에&amp;nbsp;따라 분류해 보면,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방언이 있고, 사람에게 하는 방언이 있으며,&amp;nbsp;살아 있는 자연 만물에 대해 하는 방언이 있다. 그런데 어떤 방언은 귀신에게&amp;nbsp;하는 방언도&amp;nbsp;있다. 이러한 방언을 가리켜 &amp;#39;전투방언&amp;#39; 혹은 &amp;#39;능력방언&amp;#39; 혹은 &amp;#39;단파방언&amp;#39;이라고 한다. 그런데 귀신과 싸울 때에 전투방언으로 방언을 말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그러면 귀신이 도망을 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에게 어떤 고통이나&amp;nbsp;해로움이&amp;nbsp;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전투방언을 매우 싫어한다. 그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짐으로 자기들이&amp;nbsp;불에 탄다든지, 결박을 받아 음부로 끌려간다든지, 창이나 칼, 화살에 맞아&amp;nbsp;피 흘리며 고통을 받는다든지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투방언을 하게 될 때에 귀신에게 가해지는 타격이다. 그러므로&amp;nbsp;&lt;strong&gt;귀신들을 내보내거나 귀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하도록 고통을 주려면, 반드시 전투방언 곧 능력방언을 해야 하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왜 귀신들은 전투방언을 하면 고통스러워할까? 그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우선적으로&amp;nbsp;가설적인&amp;nbsp;이유가&amp;nbsp;하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진실에 속한&amp;nbsp;이유가 있다. 먼저, 가설적인 이유를&amp;nbsp;살펴보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말을 하지만, 그것을 듣는 자들 중에는 자기 자신이 사용하던&amp;nbsp;언어로 들렸던&amp;nbsp;것처럼(행2:6), 귀신에게 명령할 때 전투방언을 하게 되면, 귀신도 그 말이 통역되어서 알아들을 수 있어, 무서워하지&amp;nbsp;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가설이다.&amp;nbsp;&lt;strong&gt;둘째는 진실이요 실제 때문&lt;/strong&gt;이다. 우리가 귀신에게 단파방언을 날리면, 귀신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amp;nbsp;것이다. 왜냐햐면 방언은 대부분 주님의 말씀이자 명령이기에, 우리가 능력방언을 하면 귀신들에게 어떤 명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칼이나 창이나 화살이 귀신들에게 박히거나 그들을 잘라 버린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제인데 그것은 귀신들이 방언이 시작됨과 동시에 칼에 찔리고 창을 맞고, 화살을 맞아&amp;nbsp;피 흘리며 고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에 타서 재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나 바다에 쓸려 어디론가 떠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귀신을 황금 쇠사슬로 결박하여 음부로 끌어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방언기도 중에서 전투방언 곧 능력방언은 영권을 올리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신 앞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투방언을 많이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귀신이 안 달라붙기에, 그때에는 주님이 주시는 진짜 평안과 기쁨이 넘치며&amp;nbsp;감사가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7월 06일(목)&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영권시리즈(1)]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1)(고전14:4)_2023-07-0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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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7-05T08:59:20+09:00</published>
		<updated>2023-09-08T17:49:0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영권시리즈(1)]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1)(고전14:4)_2023-07-05(수) https://youtu.be/GtNuIh_QlfM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23] 1. 영권(靈權)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영권(靈權)이란 영적인 권세를 가리킨다. 즉 영권이란 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권세로서, 천사들과 귀신들 그리고 자연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영권이란 천사를 부릴 수 있어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영권시리즈(1)] 왜 방언으로 말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1)(고전14:4)&lt;/strong&gt;&lt;/span&gt;_2023-07-05(수)&lt;/p&gt; &lt;p&gt;https://youtu.be/GtNuIh_QlfM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23]&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tNuIh_QlfM&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영권(靈權)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영권(靈權)이란&amp;nbsp;&lt;strong&gt;영적인 권세&lt;/strong&gt;를 가리킨다. 즉 영권이란 &lt;strong&gt;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권세&lt;/strong&gt;로서,&lt;strong&gt; 천사들과 귀신들 그리고 자연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lt;/strong&gt;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영권이란 &lt;strong&gt;천사를 부릴 수 있어야 &lt;/strong&gt;하고(히1:14), &lt;strong&gt;귀신을 대적하여 쫓아낼 수 있어야 &lt;/strong&gt;하며(막16:17~18), &lt;strong&gt;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으로&amp;nbsp;나타내야&lt;/strong&gt; 한다. 고로 누군가에게 영권이 있다는 말은 그가 천사와 귀신에게 명령했을 때에&amp;nbsp;그것들이 복종하는 것을 가리키며, 또한 자연 만물에게 명령했을 때에도 그들이&amp;nbsp;복종하는 것을&amp;nbsp;가리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귀신더러 가버나움 회당에 있던 귀신들린 자에게&amp;nbsp;&amp;quot;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amp;quot;고 했을 때에&amp;nbsp;어떻게 되었는가? 귀신이 복종하여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게 되었다(막1:25). 그리고&amp;nbsp;어느 날&amp;nbsp;예수께서는 풍랑이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면서&amp;nbsp;&amp;quot;잠잠하라,&amp;nbsp;고요하라&amp;quot;고 하셨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막4:39).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 가지신&amp;nbsp;영권이란&amp;nbsp;창조주 하나님의 영권이며, 전능자의 영권으로 최고의 영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어떻게 하면 영권이 올라갈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amp;nbsp;우리가&amp;nbsp;어떻게 하면 영권이 올라갈 수 있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lt;strong&gt;여기에서는 3가지로&lt;/strong&gt; 본다. 이 세 가지만 잘 갖추면 영권이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니 말이다.&lt;strong&gt; 첫째는 회개하면 할수록&lt;/strong&gt; 영권이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lt;strong&gt; 둘째는 귀신과 영적 싸움을 하면 할수록 &lt;/strong&gt;영권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lt;strong&gt;셋째는 방언을 많이 말할수록&lt;/strong&gt; 영권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회개와 축사 그리고 방언이 영권을 올려 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들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왜 회개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왜 성도가 회개하면 회개할수록 영권이 올라가는가? 그것은 아담의 타락 전후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그는 보이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창1:26~28). 그런데 그가 피조물인 뱀의 말을 들었을 때, 뱀의 종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뱀이란 사탄이 썼던 동물로서, 사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계12:9).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면 그는 그 순종함을 받는&amp;nbsp;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롬6:16).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하고 나자&amp;nbsp;귀신들이 아담 속에&amp;nbsp;치고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만물들은&amp;nbsp;더 이상&amp;nbsp;아담의 말에 복종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만물은 가시덤불과&amp;nbsp;엉겅퀴를 내게 되었다(창3:18). 이는 자연 만물이&amp;nbsp;더 이상 아담의 말에 복종하지 않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담이 영물인 뱀에게 졌으니 아담의 권세는 이제 뱀보다 계급이 더 낮게 되었다. 고로 &lt;strong&gt;사람이 다시 영권을 되찾고 영권을 위로 올리려면 필수적으로 죄를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그래서&amp;nbsp;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amp;nbsp;내보내야&lt;/strong&gt; 한다. 그래서 &lt;strong&gt;자신&amp;nbsp;속에서부터 악한 영을 내보낸 만큼 그 사람의 영권은 회복되는 것&lt;/strong&gt;이다. 사실 사탄이 뱀의 모습을 하고&amp;nbsp;아담에게 찾아왔을 때에 아담은 그때 뱀으로 온&amp;nbsp;귀신을 자신에게 복종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아담은&amp;nbsp;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러자&amp;nbsp;그날 선악과에 붙어 있던 악한 영들이&amp;nbsp;아담&amp;nbsp;속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아담의 영권은 그만 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왜 귀신과 싸움을 많이 하면 영권이 올라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영권 곧 영적 권세는 사실 일반적으로&amp;nbsp;귀신을 물리치고 귀신집을 파괴하는 데에 활용된다&lt;/strong&gt;. 궁극적으로 &lt;strong&gt;귀신에게 속해 있는 자들을 구출하는 데&lt;/strong&gt;에 영권이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권을 올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귀신과 싸워야 한다. 귀신의 계급이 자기보다 높다고 하여, 귀신과 싸우지 않는다면 결코 영권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lt;strong&gt;비록 귀신이 나의 영적&amp;nbsp;계급보다 높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귀신들과 싸워야&lt;/strong&gt; 한다.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갔을 때에 그냥 들어가지 않고 합법적으로 들어간 것이니까, 귀신에게 명령하여 나오라고 하려면 우선적으로 축사받을 사람은&amp;nbsp;자신의 죄를 진실로 회개해서 귀신이 자기&amp;nbsp;몸속에 있을 근거를 상실케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한 사람에게 귀신이 떠나갈 것을 명령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 그런데 문제는 귀신의 계급이 자신의 계급보다 높을 경우다. 귀신의 계급이 나보다 낮다면 금방 그들을 제압할 수가 있어서 그들을 쫓아낼 수 있지만 나보다 영적 계급이 높은 귀신은 우리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귀신들린 사람이 많이 회개를 했다면, 귀신이 나보다 더 높은 계급이라 할지라도 귀신더러 나갈 것을 명령하면 그들은 조금이나마 말을 잘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회개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귀신더러 나가라고 하면 귀신은 버틴다. 그리고 계급이&amp;nbsp;높을 경우에는 공격하며 치고들어온다. 그래서 귀신을 쫓다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lt;/p&gt; &lt;p&gt;&amp;nbsp;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을 쫓지 않고 그냥 지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amp;nbsp;온전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어렵다. 즉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amp;nbsp;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자신의&amp;nbsp;영적&amp;nbsp;계급을 높이기 원하는 자는 귀신과 자주 싸워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자기보다 높은 계급을 가진 귀신이더라도 그에게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해서&amp;nbsp;나갈 것을 명령하라&lt;/strong&gt;. 그러다가 내가 얻어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amp;nbsp;가만 놔두지 않으신다. 자신의 백성이 귀신에게 얻어터지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좌시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lt;strong&gt;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급을 높여 주시어 문제를 해결해 주시거나, 귀신을&amp;nbsp;그 순간 내쫓아버리신다&lt;/strong&gt;. 그러므로 자신의 영적인 계급을 높이려면 반드시 귀신&amp;nbsp;쫓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귀신을 축사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도 모르게 높은 계급의 사람으로 변모되어 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amp;nbsp;영권을 올리려면&amp;nbsp;왜&amp;nbsp;방언을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귀신을 내쫓을 때에 &lt;strong&gt;방언 중에서도 대적하는 방언(전투 방언)을 하면 귀신이 쉽게 잘&amp;nbsp;쫓겨난다&lt;/strong&gt;는 것이다. 무슨 원리로 인해&amp;nbsp;그렇게 되는지는 다음&amp;nbsp;시간에 자세히&amp;nbsp;설명하겠지만 실제 임상실험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기&amp;nbsp;바란다. 그러므로 &lt;strong&gt;성도가 영권을 올려 귀신을 쫓아내려면, 그는 반드시 방언을 말해야&lt;/strong&gt; 한다. 즉 내가 영권을 높이려면&lt;strong&gt; 방언으로 말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양도&amp;nbsp;해야 하는 것&lt;/strong&gt;이다. 왜 그런가? 고전14:4에 따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amp;quot;방언을 말하고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을 건축하는 것이다&amp;quot;고 되어 있다. 즉 &lt;strong&gt;방언을 말하면 자기 자신을 새롭게 건축하는 것&lt;/strong&gt;이 되기 때문이다.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러다가 어느 날&amp;nbsp;귀신집도 파괴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amp;nbsp;그때에는 하늘에 있는 청소 담당 천사들이 내려와서 영의 더럽혀진 공간을 깨끗이&amp;nbsp;청소를&amp;nbsp;해 준다. 그러면&amp;nbsp;거기에 성령의 좌소가 마련되며,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진정한 집이 지어진다. 이건 다 천사가 내려와서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권을 올려 악한 영들로부터 공격을 덜 받는다거나 혹은 안 받는 자가 되려면 그는 반드시 방언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방언에 대한 핵심적인 정의와 그 목적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함께 나누며, 방언을 말하면 왜 영권이 올라가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7월 05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성령강림절(9)] 방언의 다양한 종류에 따른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고전14:18)_2025-05-28(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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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5-28T23:40:57+09:00</published>
		<updated>2023-06-07T18:28:5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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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5-05-2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방언의 다양한 종류에 따른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고전14: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bBX7GgpKbG4 [또는 https://tv.naver.com/v/36741616] 1. 들어가며 방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다. &quot;외국어다. 귀신들림 현상이다. 고린도 지역의 특수한 현상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다.&quot; 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보면 방언...</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5-05-2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방언의 다양한 종류에 따른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고전14:1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BX7GgpKbG4 [또는 https://tv.naver.com/v/36741616]&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BX7GgpKbG4&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nbsp;방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다. &amp;quot;외국어다. 귀신들림 현상이다. 고린도 지역의 특수한 현상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다.&amp;quot; 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amp;nbsp;실제로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보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로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영적&amp;nbsp;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수 교단에서는 오늘날 성도들이 말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amp;#39;방언&amp;#39;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행전&amp;nbsp;2장에 나오는 첫&amp;nbsp;방언이 외국어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시각을 갖고 있든지&amp;nbsp;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다면 그는&amp;nbsp;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이&amp;nbsp;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라는&amp;nbsp;것을 믿지 않는다고 그들을&amp;nbsp;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방언의 은사를 인정하고 방언을 통해 주실&amp;nbsp;은혜를&amp;nbsp;사모하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방언을 통해서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의 은사가 주는 실제적인 유익이 무엇인지를&amp;nbsp;여러 가지 방언의 종류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왜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방언을 말하는 것에 감사했던 것일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amp;nbsp;개척했던 고린도에 보냈던 첫 번째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방언을 더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전14:18). 이는 바울이 방언을 말함으로 얻고 있는 어떤 유익이 분명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했겠는가? 그리고 바울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고전14:39). 그렇다. 방언은 교회에서 금해서 될 사항이 아니라 더 말해야 되는 은사인 것이다. 다만 예배시간에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공중 앞에 말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말하려면 통역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것은 금하지도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말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면 어떤 영적인 유익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고전12:7).&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울이 방언을 더 말한다고 했을 때, 방언이 한 가지 종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사용한 방언이라는 말이 단수(글로싸)가 아니라 복수(글로싸이스)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울은 한 가지 종류의 방언만을 많이 말한 것이 아니라,&amp;nbsp;다양한 종류의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울의 성령의 신령한 9가지 은사를 언급할 때부터 이미 말했던 것이다. 즉 성령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 가운데 방언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는 &amp;#39;방언들의 종류들&amp;#39;(헬라어 원문 참조)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고전12:10).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에는 여러 가지 종류들이 있다는 것과 그 종류에 따라 영적인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이지만 방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전12;10).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방언의 종류를 언급하고 있을까? 성경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면,&lt;strong&gt;&amp;nbsp;크게는 3가지 유형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lt;/strong&gt;이다.&amp;nbsp;&lt;strong&gt;첫째는 발음소리에 따라&lt;/strong&gt;&amp;nbsp;단방언(단파방언), 언어방언 등으로 나눌 수 있다.&amp;nbsp;&lt;strong&gt;둘째는 방언을 하는 대상에 따라&lt;/strong&gt;,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국방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amp;nbsp;셋째는 방언을 하는 방법에 따라&lt;/strong&gt;&amp;nbsp;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대적방언 등이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방언의 종류에 따른 유익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은 방언을 종류에 따라 더 말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라고 했다. 고로 방언의 종류에 따라 어떤 영적인 유익이 있는지를 알고 방언을 말한다면 더 많은 영적인 진보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방언의 종류에 따른 영적인 유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발음소리에 따른 방언의&amp;nbsp;종류와 유익&lt;/strong&gt;을&amp;nbsp;살펴보자. 먼저 &amp;#39;단방언(단파방언)&amp;#39;이란 외마디나 몇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는 방언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amp;quot;랄랄랄랄&amp;quot;, &amp;quot;다다다다&amp;quot;, &amp;quot;두두두두&amp;quot;, &amp;quot;파파파파&amp;quot; 등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이 &amp;quot;랄랄랄랄&amp;quot;이라고 하는 방언을 두고 애기 방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처음으로 방언이 터질 때에 이런 방언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언이든지 단파로 나오는 방언이 있다면 그것은&amp;nbsp;권세 있는 방언으로서,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이러한 방언이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amp;#39;언어방언&amp;#39;이 있는데,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언어처럼 들리는 방언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방언을 고급방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단파방언이든 언어방언이든 통역해 보면 아주 유창한 방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방언을 하는 대상에 따른 방언의 종류와 유익&lt;/strong&gt;을 살펴보자. 첫째로는 &amp;#39;대신방언&amp;#39;이 있다(고전14:2). 이것은 방언을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방언이다. 모든 방언은 이것이 기본이 된다. 그러므로 방언은 하나님만 알아듣는다. 그러므로 귀신들은&amp;nbsp;방언을 싫어한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하는 자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했는지 알 수 없기에 귀신들이&amp;nbsp;무서워하는 것이다. 둘째는 &amp;#39;대인방언&amp;#39;이 있다(행2:4,6~8,11).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방언을 말하고 있는데, 듣는 자가 자기들이 사용하는&amp;nbsp;언어로 듣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마가 다락방의 120명 성도들의 방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도 처음에는 대신방언을 했겠지만, 이윽고 방언소리를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하여 방언으로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15개국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그들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언의 유익은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 할&amp;nbsp;사람들의 언어를 모르고, 자신도 그 말을 할 줄 모르지만 방언으로 말했을 때 그 나라 사람이 알아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언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유익하다. 셋째로는 &amp;#39;대물방언&amp;#39;이 있다(롬8:19~20). 이것은 타락하기 전의 상태에서 아담이 살아 있는 동물들 및&amp;nbsp;식물들과 대화를 나눈 것과 같은 종류의 방언을 가리킨다. 그러면 새와 나무 그리고 꽃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이것은 동물물과 식물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넷째로는 &amp;#39;대국방언&amp;#39;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다른 나라의 말을 모르는데, 갑자기 그 나라의 말로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영어나 독일어, 중국어를 배우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모르는데, 갑자기&amp;nbsp;그 나라의 언어들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할 때에 매우 유용한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방언을 하는 방법에 따른 방언의 종류와 유익&lt;/strong&gt;을 살펴보자. 첫째로, &amp;#39;대화방언&amp;#39;이 있다(고전14:2). 주님과 대화하듯이 말하는 방언인데, 이때&amp;nbsp;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만약 이 방언이 통역이 된다면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예언처럼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대화방언을 잘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개인과 교회와 국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둘째로, &amp;#39;기도방언&amp;#39;이 있다(고전14:14). 주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방언이다. 그런데 이 방언이 놀라운 것은 이 기도방언에는 단 한 마디도 쓸모없는 방언이 나오지 않고,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amp;#39;찬양방언&amp;#39;이 있다(고전14:15). 방언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방언 중에서도 최고의 꼭대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방언을 하게 되면 영의 억압에서 많이 풀어진다. 고로 자신의 영을 붙잡고 있는 악한&amp;nbsp;영들로부터 억압이 풀려서 자유로운 상태에서&amp;nbsp;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찬양방언을 많이 하면 막혔던 영의 통로가 열려진다. 그러므로 방언찬양을 많이 하면 많은 다른 영적인 은사들을 받을 수 있다. 넷째로, &amp;#39;축복방언&amp;#39;이 있다. 다른 사람을 영으로 축복하는 방언이다. 주로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이 방언이 나온다. 다섯째로, &amp;#39;대적방언&amp;#39;이 있다(고전14:4). 이 방언으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언은 매우 권세 있는 방언이다. 그리고 이 방언은 주로 단파방언으로 나온다. 이 방언을 한다면 영적 계급이 올라간다. 고로 이 방언을 말하는 자는 높은 계급의 귀신들까지도&amp;nbsp;제압할 수 있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방언의 유익을 정리해 본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방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각 방언에 따라 유익한 점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방언들을 더 잘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언의 유익을 정리해 본다면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는가?&lt;/p&gt; &lt;p&gt;&amp;nbsp;&lt;strong&gt;&amp;nbsp;첫째, 모든 방언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으며, 틀린 것도 없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lt;/strong&gt;는&amp;nbsp;것이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는 혼의&amp;nbsp;기도가 아니라 영이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 욕심이나 세상 욕심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기도라는&amp;nbsp;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방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방언은 약해지고 작아진&amp;nbsp;자신의 영을 매우 강화시켜 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을 대적하게 해 준다&lt;/strong&gt;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자신의 영을 건축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방언은 어떤 귀신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단파방언을 지속해서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영적 권세와 계급을 올릴 수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방언은 다른 영적 은사들을 가져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방언 중에서도 찬양방언과 대적방언을 많이 하면 많은 다른 영적 은사들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 통로를 열어 주는 고속도로와 같기&amp;nbsp;때문이다. 그래서 방언을 하다 보면 방언통역을 하게 되고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게 되고, 능력들이 나타나고, 병고침의 은사도 나타나게 된다. 방언은 이런 은사가 나타나게 하는 기초이자 통로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방언은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워지게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방언은 복음 전파의 매우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amp;nbsp;쓰인다&lt;/strong&gt;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이 대인방언으로 나오면 다른 사람도 내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요, 대국방언으로 나오면 배우지 않고도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아직도 한국 교회 안에는 방언은사를 터부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amp;nbsp;방언을&amp;nbsp;금하거나 꺼려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교단쪽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 방언은 모든 영적 은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은사이자&amp;nbsp;다른 은사들을 가져오는 통로의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데, 영 분별의 은사가 나타났다든지 병 고침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하는&amp;nbsp;이야기는&amp;nbsp;들어볼 수가&amp;nbsp;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방언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다른 영적 은사들도 받게 되어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집중적으로 다뤄 보았지만 방언도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한 가지 은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더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다(고전12:31). 그렇다. 은사는 성령께서 나눠 주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모하는 자가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사모하는 자가 얻지 못하는&amp;nbsp;은사였다면 바울은 이러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기초 은사로서 방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고, 자신은 더 많은 종류의 방언들을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다양한 방언이 자신의 영적생활에 유익했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이것을 실행해 볼&amp;nbsp;때에 그 능력이 얼마나 유익한&amp;nbsp;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은&amp;nbsp;다양한 종류의 방언들을 말함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유익을 많이 얻게 되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5월 28일(주일)&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성령강림절(5)] 방언은 믿는 이의 &#039;표적&#039;인가 성령의 ‘은사’인가?(고전12:4~11)_2023-05-2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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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5-24T08:13:08+09:00</published>
		<updated>2023-05-25T14:38:5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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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강림절(5)] 방언은 믿는 이의 &#039;표적&#039;인가 성령의 ‘은사’인가?(고전12:4~11)_2023-05-24(수) https://youtu.be/uoeT4SdCoSY 1. 방언은 표적인가 은사인가? 성경에서는 방언을 &#039;표적&#039;이라고도 말씀하기도 하고(막16:17, 고전14:22), &#039;은사&#039;라고도 말씀하기도 한다(고전12:10, 14:2,13~14). 이는 방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방언을 지칭하는 표현들에 해당한다. 그렇...</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성령강림절(5)] 방언은 믿는 이의 &amp;#39;표적&amp;#39;인가 성령의 &amp;lsquo;은사&amp;rsquo;인가?(고전12:4~11)&lt;/strong&gt;&lt;/span&gt;_2023-05-24(수)&lt;/p&gt; &lt;p&gt;https://youtu.be/uoeT4SdCoSY&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oeT4SdCoSY&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방언은 표적인가 은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article&gt; &lt;p&gt;&amp;nbsp; 성경에서는 방언을 &amp;#39;표적&amp;#39;이라고도&amp;nbsp;말씀하기도 하고(막16:17, 고전14:22), &amp;#39;은사&amp;#39;라고도&amp;nbsp;말씀하기도 한다(고전12:10, 14:2,13~14). 이는 방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방언을 지칭하는 표현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방언을 &amp;#39;표적&amp;#39;(쎄메이온=sign)&amp;#39;이라고 언급했으며, 또한 &amp;#39;은사&amp;#39;라고 말했는가? 먼저, 방언에 대해 그것을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막16:17~18).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 후&amp;nbsp;제자들에게 방언이란&amp;nbsp;믿는 자들에게 응당 뒤따라오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amp;nbsp;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의 &amp;#39;은사&amp;#39;(카리스마=spiritual gift)라고 하였다(고전12:4~11).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방언을 &amp;#39;은사&amp;#39;라고만 말하지 않고, &amp;#39;표적&amp;#39;이라고도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전14:22). 고로 믿는 자의 표적으로 알려진 방언을 은사라고 명명한 것은 바울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예수께서 방언을 &amp;#39;표적&amp;#39;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 주 예수께서는 방언에 대해 믿는 자에게 뒤따라오는 &amp;#39;표적&amp;#39;이라고 하셨다(막16:17~18). 왜냐하면 방언이&amp;nbsp;기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이란 믿는 자들에게 뒤따라오는 기적적인 현상으로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자기 속에 성령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amp;nbsp;표시인 것이다. 고로 누군가가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신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amp;nbsp;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고로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인지 안 믿는 자인지를 구별시켜 주는 잣대가 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방언이 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39;방언&amp;#39;이 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방언이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amp;nbsp;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amp;#39;표적&amp;#39;이라는 말은 기적은 기적인데, 그것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에 붙이는&amp;nbsp;용어이다. 그러므로 방언도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적인 것이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amp;#39;표적&amp;#39;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원래 기적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기적은 전부다&amp;nbsp;예수님이 누군지를 영적으로 알려 주기 때문에 그것을 &amp;#39;기적&amp;#39;이라고 부르지 않고, &amp;#39;표적&amp;#39;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amp;#39;표적&amp;#39;이라고 하는&amp;nbsp;것은 포도주야말로&amp;nbsp;&amp;#39;생명&amp;#39;(물)을 가지신 예수께서 장차 흘리실 &amp;#39;피&amp;#39;(포도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amp;nbsp;표적이라고 하는&amp;nbsp;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으며,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분임을 오병이어의 기적이 고스란히&amp;nbsp;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방언을&amp;nbsp;표적이라고 하는 것은&amp;nbsp;방언이 어떤 기적적인 현상이기는 하나, 자기 안에 예수님을 가지고 있어서, 본인이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자임을 드러내 주는 표시(사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자신이 예수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방언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방언은 왜 &amp;#39;은사&amp;#39;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방언을 성령께서 주시는 9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의 하나로 보았다(고전12:8~10). 여기서 &amp;#39;은사&amp;#39;(카리스마)라고 하는 말은 영적인 선물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 바로 은사인 것이다(고전12:31). 이때 성령께서는 그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나눠주신다(고전12:7). 그러므로 은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amp;#39;방언&amp;#39;을&amp;nbsp;받은 자에게는 영적으로 매우 유용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고로 이 은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을 받게 되면, 그 사역자는&amp;nbsp;여러 가지 영적인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모든 믿는 자가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할 수&amp;nbsp;있지만, 모든 믿는 자가 다 은사로서 방언을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amp;#39;표적&amp;#39;과 &amp;#39;은사&amp;#39;로서 방언을 서로 비교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앞에서 살펴보았듯이&amp;nbsp;&lt;strong&gt;표적으로서의 방언&lt;/strong&gt;은 기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는 어떤 사람이 믿는 자가 되었을 때에,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은 자신이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은 &amp;#39;받는&amp;#39; 것이 아니라 &amp;#39;말하는&amp;#39;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방언은 영이 말하는 것으로서 그냥 혀를 성령께 맡기고 말하면 곧바로&amp;nbsp;나오는 쉬운 것이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나, 믿는 자가 되었다면 누구든지 이러한 방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리고&lt;strong&gt;&amp;nbsp;은사로의 방언&lt;/strong&gt;은 이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왜냐하면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영적인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기는 하지만, 사모하는 자에게&amp;nbsp;선물로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다. 방언은&amp;nbsp;성령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선물로서, 성도들끼리는&amp;nbsp;서로&amp;nbsp;조금&amp;nbsp;다른 종류의 방언을 받는 것이다. 고로 은사로서의 방언은 성도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사로의 방언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가지고&amp;nbsp;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사로서&amp;nbsp;방언의 종류를 구분해 본다면,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적방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예언방언의&amp;nbsp;종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편&amp;nbsp;&amp;#39;대신방언&amp;#39;이라 함은&amp;nbsp;기도와 찬양으로 하는 방언을 가리키고, 대인방언이라 함은 자신은&amp;nbsp;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방언을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듣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날에 120명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amp;nbsp;방언을 말했던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amp;#39;대물방언&amp;#39;이라 함은 방언하는 자가 동물이나 식물과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방언으로 새와 꽃과 대화가 가능하게 된&amp;nbsp;것이다. 그리고 &amp;#39;대적방언&amp;#39;이라 함은 귀신들에게 하는 방언으로서, 이 방언을 하게 되면 귀신들이 매우 무서워하고 또한 잘 떠나간다.&amp;nbsp;&lt;/p&gt; &lt;/article&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5월 24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20230524_075445.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516/610/112/86a1582873d7b8090c94bc91ac1819e3.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성령강림절(2)] 성도가 되었어도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고전14:1~5)_2023-05-21(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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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5-21T20:39:15+09:00</published>
		<updated>2023-05-23T10:34:2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3-05-2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성령강림절(2)] 성도가 되었어도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고전14: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LamNf2cm3Ks 1. 들어가며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최소한 몇 가지 이론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방언을 &#039;외국어&#039;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방언을 거듭난 사람이 말하는 &#039;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039;라고도 말한다....</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3-05-21(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성령강림절(2)]&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성도가 되었어도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고전14: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amNf2cm3Ks&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amNf2cm3K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최소한&amp;nbsp;몇 가지 이론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방언을 &amp;#39;외국어&amp;#39;라고 한다. 그리고&amp;nbsp;또 하나는 방언을&amp;nbsp;거듭난 사람이 말하는 &amp;#39;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amp;#39;라고도 말한다. 자신이 어떤 견해를 취하느냐에 따라 방언을 말하기도 하고,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왜 방언을 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예수께서는 방언을 믿는 자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으며(막16:17~18), 사도바울은 방언을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방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방언을 말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리고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방언을 말할 수 있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방언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에서다. &lt;strong&gt;A.D.30년 5월 28일 오전9시경에 마가다락방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lt;/strong&gt;이 성령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본 후,&amp;nbsp;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amp;nbsp;성령을 받기 위해 다락방에 모여 합심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amp;nbsp;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온 집에 가득찼다. 그리고 마치 불의 혀같은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앉았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리고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발설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것의 방언의 시작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방언이란 어떤 것인가? 방언에 대한 견해 여러가지 있다. 그중에 &lt;strong&gt;가장 많이&amp;nbsp;주장하는 것&lt;/strong&gt;을 간추려보면,&amp;nbsp;&lt;strong&gt;첫째, 방언은 외국어다. 둘째,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은 말이다. 셋째, 방언은 귀신들려서 말하는&amp;nbsp;소리다. 넷째, 방언은 고린도현상이다&lt;/strong&gt;. 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종교개혁자의 전통적인 견해는 방언은 &amp;#39;외국어&amp;#39;라고&amp;nbsp;하는&amp;nbsp;것이다. 정말 그럴까?&lt;/p&gt; &lt;p&gt;&amp;nbsp; 그럼,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외국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방언으로&amp;nbsp;말했을 때에, 그것을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이방지역에 살다가 절기를 지키려고&amp;nbsp;예루살렘 왔던&amp;nbsp;유대인들)이 각기 자기나라의 언어(&amp;#39;디아레크토&amp;#39;)로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amp;nbsp;혹 옳은 주장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120명의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들에게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말하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언이 외국어라는 견해가 맞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들과 부딪혀야 한다.&lt;/p&gt; &lt;p&gt;&amp;nbsp; 첫째,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 어떤 이는 갈릴리 사람들이 왜 아침부터 새 술에 취하여 술주정하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amp;nbsp;조롱했다는 것이다(행2:13). 만약 120명의 성도들이 진짜 외국어로 말했다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갈릴리인들을 이렇게 외국어를 잘하는지 몰라보았다면서 겸연쩍어 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둘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보고 말씀을 전한 뒤에 그들도 역시 &amp;#39;방언(글로싸)&amp;#39;을 말하게 되었는데, 고넬료 가정의&amp;nbsp;방언을 두고서 베드로도&amp;nbsp;자신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했던 바로 그 은사와 동일한 것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행11:17). 그렇다면 고넬료 가정의 사람들도 외국어를 말했다고 해야 한다. 그럼, 고넬료 가정의 사람들은 대체 누구&amp;nbsp;들으라고 외국어를 말한&amp;nbsp;것인가?&amp;nbsp;&lt;/p&gt; &lt;p&gt;&amp;nbsp; 셋째,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amp;#39;다른 언어들&amp;#39;이란 단어를&amp;nbsp;헬라어원문으로 보면, &amp;#39;헤테로스 글로싸(different tongue)&amp;#39;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전혀 다른 종류의 딴&amp;nbsp;말(혀)를 가리킨다. 만약 이날 120명의 성도들이 &amp;#39;외국어&amp;#39;를 말했다면, &amp;#39;알로스 글로싸&amp;#39;로서&amp;nbsp;같은 종류의 다른 말(혀)을 했다고 했어야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 4절에 의하면, 120명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들을&amp;nbsp;수 없는 언어로서, 전혀 다른&amp;nbsp;언어들을 말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넷째, 헬라어로 지방말을 가리키는 단어는&amp;nbsp;보통 &amp;#39;디아레크토&amp;#39;가 사용되고, 초자연적인 신령한 언어인 방언을 가리킬 때에는 &amp;#39;글로싸&amp;#39;라는 용어가 주로&amp;nbsp;사용되는데, 사도행전 2장 4절 말씀에는 &amp;#39;디아레크토&amp;#39;가 사용되지 않았고, &amp;#39;글로싸&amp;#39;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amp;nbsp;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이란 진정&amp;nbsp;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 곧 120명의 갈릴리 출신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말했던&amp;nbsp;방언이란 대체 무엇이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lt;strong&gt;&amp;#39;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이 할 수 있는&amp;nbsp;언어&amp;#39;&lt;/strong&gt;로서,&amp;nbsp;&lt;strong&gt;&amp;#39;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영의&amp;nbsp;언어&amp;#39;&lt;/strong&gt;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amp;nbsp;&lt;/p&gt; &lt;p&gt;&amp;nbsp; 그것은 기본적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말하는 언어이다. 그런데 이것이 초자연적인 영의 언어라고 말하는 것은 방언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첫째, 120명의 성도들이&amp;nbsp;말했던 방언은 그들이 &lt;strong&gt;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전혀 &amp;#39;다른 언어(헤테로스 글로싸)&amp;#39;였기 때문&lt;/strong&gt;이다(행2:4). 그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혀 딴 종류의 언어를 말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 둘째,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amp;nbsp;방언은 &lt;strong&gt;얼핏 듣기에 술취한 사람들의 언어처럼 들렸기 때문&lt;/strong&gt;이다(행2:13).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120명의 성도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것 같이 술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즉 정상적인 상태에서 말한 것인데 들리기에는 그 말이 술취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셋째,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방언은 &lt;strong&gt;고넬료의 가정에 모인 자들이 말했던&amp;nbsp;방언(글로싸)와 동일한 종류의 방언이었기 때문&lt;/strong&gt;이다(행10:46, 11:17). 고넬료가정에 모인 자들이 했던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넷째,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방언은 &lt;strong&gt;에베소에서 사도바울이 안수할 때 나타났던&amp;nbsp;방언(글로싸)과&amp;nbsp;동일한&amp;nbsp;종류의 방언&lt;/strong&gt;이기 때문이다(행19:6). 사도바울도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여 바로 그러한 종류의 방언(글로싸)을 말했다고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증언하고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다섯째, 사도바울은 &lt;strong&gt;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글로싸)은 외국어가 아니라 신령한 은사&lt;/strong&gt;라고 했으며(고전14:1~2), 이것은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외국어가 아니라 &lt;strong&gt;초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lt;/strong&gt;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고전12:8~10).&amp;nbsp;&lt;/p&gt; &lt;p&gt;&amp;nbsp; 여섯째,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글로싸)은&amp;nbsp;혼이 말하는 외국어가 아니라 &lt;strong&gt;영이 말하는 &amp;#39;영의 언어&amp;#39;&lt;/strong&gt;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고전14:2,14).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이란&amp;nbsp;다른 사람들은 &lt;strong&gt;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다&lt;/strong&gt;고 하였다(고전14:2).&lt;/p&gt; &lt;p&gt;&amp;nbsp; 그렇다. 방언은 &lt;strong&gt;성령이 임함으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초자연적인&amp;nbsp;성령의 선물로서, 사람의 영이 살아나게 되었을 때에 자연발로적으로 입으로 토해내는 영의 언어&lt;/strong&gt;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언은 &lt;strong&gt;사람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언어&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인 방언통역의 은사로 통역하지 아니하면, 도무지&amp;nbsp;해석할 수 없는 이상한 말에 해당한다. 고로 사도행전 2장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amp;nbsp;방언 역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언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그들의 방언을&amp;nbsp;듣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나라의 말(지방어)로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금도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의 오지 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amp;nbsp;방언으로 말해도 그 오지의 사람들이 자기나라의 언어로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방언은 꼭 영의 기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영이 드리는 기도 역시&amp;nbsp;방언의 한 종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고전14:14). 고로 방언에는&amp;nbsp;영이 주께 아뢰는 기도도 들어 있고(고전14:14), 영이 노래하는 찬양도 들어 있으며(고전14:15)(이것을 &amp;#39;방언찬양&amp;#39;이라고 한다), 영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축복도 들어 있다(고전14:16). 그리고 영이 하나님과 비밀스럽게 나누는 대화도 방언도 있다(고전14:13). 한 마디로 거듭난 영이&amp;nbsp;발설하는 모든 종류의 말을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고전14:13).&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왜 거듭난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왜 거듭난 성도들이&amp;nbsp;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자연적인 영의 언어인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7가지 이유들이&amp;nbsp;있다.&lt;/p&gt; &lt;p&gt;&amp;nbsp; 첫째, 방언은&lt;strong&gt; 외국어라고 하는 이론을 따라가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 둘째, 방언은 초기교회나 혹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만&amp;nbsp;있었던 은사였고,&amp;nbsp;&lt;strong&gt;성경이 기록된 후에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론을 따라가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 셋째, &lt;strong&gt;방언으로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lt;/strong&gt;이다.&amp;nbsp;&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 넷째, 방언을 하려면 &lt;strong&gt;입을 벌려서 혀로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데, 입을 벌리지 않거나, 속으로만 조근조근 기도하는&amp;nbsp;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려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다섯째, 자신의&amp;nbsp;&lt;strong&gt;혀를 성령께 맡기지 못한 채, 굳이 자신이 사용하던 언어로만 계속해서&amp;nbsp;말하려 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니까 방언은 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인데, 굳이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하려고 하니 방언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여섯째,&lt;strong&gt;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lt;/strong&gt;이기도 하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일곱째,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lt;strong&gt;귀신이 방언을 말하지 못하도록 혀를 꽉 붙잡고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혀를 보면 귀신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성령의 불을 사용할 줄 아는&amp;nbsp;은사자의 도움을 받아&amp;nbsp;혀에 붙어있는 귀신을 태워버려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고로, 사람이 초자연적인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amp;nbsp;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 방언을 외국어라고 알거나 방언은 중지되었다고 하는 이론을 믿기 때문이다. 둘째로, 방언은 혼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말하는 말의 은사인데, 영으로&amp;nbsp;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로, 귀신들이 방언을 말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바울에 따르면 &lt;strong&gt;방언으로&amp;nbsp;말하면&amp;nbsp;자신을 건축하는데 매우 유용하다&lt;/strong&gt;고 했다(고전14:4). 그리고 방언은&lt;strong&gt; [주 예수를]&amp;nbsp;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lt;/strong&gt;이라고 하였다(고전14:22). 그러므로 유대인들일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결코 방언을 말할 수 없었다. 고로 방언을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을 구분해주는 중요한&amp;nbsp;요소이기도 하였다. 또한 예수께서도 부활 후,&amp;nbsp;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방언에 대해 언급해 주셨다. 즉 모든 믿는 자들은&amp;nbsp;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켜 &amp;#39;새 방언(카이노스 글로싸)&amp;#39;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에 자신이 사용하던 언어(&amp;#39;디아레크토&amp;#39;)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다른 언어(&amp;#39;글로싸&amp;#39;)인 것이다(막16:17~18). 그렇다. 주 예수님을 믿어서&amp;nbsp;거듭난 성도들에게&amp;nbsp;성령께서 들어가셔서 그 사람 속에 내주하신다. 그때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실 때에 그냥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amp;#39;조에&amp;#39;)을 가지고 들어오신다. 그러면&amp;nbsp;죽어있던 사람의 영이 살아나게 된다. 그러면 그 영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방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의 표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이&amp;nbsp;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처음으로&amp;nbsp;성령강림이 있었을 때에 항상 방언을 말했다는 것은 방언이 모든 신령한 은사의 기초가 되는 것이고, 다른 은사들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더 약한 자신의 영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방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을 말함으로 자신에게 영적인 유익을 끼칠 수 있고, 주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3년 05월 21일(주일)&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_2022-06-17(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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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2-06-17T07:13:13+09:00</published>
		<updated>2022-06-20T17:53:2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_2022-06-17(금) https://youtu.be/Fj2qfKVFPHs [혹은 https://tv.naver.com/v/27450516 ] 1. 방언 통역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방언 통역의 은사란 남이 하는 방언을 들었을 때 그것을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킨다. 보통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국의 언어로 들린다. 하지만 그 내용의 전반적인 것이 깨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lt;/strong&gt;&lt;/span&gt;_2022-06-17(금)&lt;/p&gt; &lt;p&gt;https://youtu.be/Fj2qfKVFPHs&amp;nbsp; [혹은&amp;nbsp;https://tv.naver.com/v/27450516 ]&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j2qfKVFPH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방언 통역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방언 통역의 은사란 남이 하는 방언을 들었을 때 그것을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킨다. 보통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국의 언어로 들린다. 하지만 그 내용의 전반적인 것이 깨달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상대방이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지만 자기의 언어로 들리므로 그것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오순절날,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나타난 방언 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이었는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순수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amp;nbsp;오로지 기도에 전무하였다. 그들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남은 자들이었다. 사실 주님의&amp;nbsp;부활을 목격하였고, 또한 주님의 승천까지 보았던 자들이 적어도 성인 남자만 500여명이 넘었지만 그중에 380명은 떨어져&amp;nbsp;나갔고, 오직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amp;nbsp;되어 있는 120명의 성도들만&amp;nbsp;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amp;nbsp;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뒤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그들의 방언 소리를 듣고 몰려든 군중들의 놀라운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침 9시경에 마가 다락방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들었던 말은 자기가 태어난 곳 곧 헬라 지역의 지방말이었다. 소문을 듣기로는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고, 또한&amp;nbsp;그들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헬라 지역의 지방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20명의 성도들은&amp;nbsp;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amp;#39;글로싸&amp;#39;)을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 고국의 지방말(&amp;#39;디아레크토스&amp;#39;)로 듣고 있었던&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대체 어떤 것을 들은 것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오순절을 지키러 왔던 15개국의 사람들은 그날 갈릴리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그들이 하는 말인&amp;nbsp;자기들의 고국 언어였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이었던 것이다. 배우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입에서부터 나왔던 그들의 감탄사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amp;nbsp;&lt;/p&gt; &lt;p&gt;행2:11[직역] 그레데인들과 아라비아인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각 방언(&amp;#39;글로써&amp;#39;)로 하나님의 위대한(엄청난, 장엄한) 일들을 발설하고 있는 것을 듣는도다&lt;/p&gt; &lt;p&gt;&amp;nbsp; 그럼, 그들이 그때 들었던 방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한 계획과 섭리 그리고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과 그 의미였을 것이다.&amp;nbsp;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얼음이 되어 있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방언 통역을&amp;nbsp;해 보면 주로 어떤 내용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방언 통역을&amp;nbsp;해 보면 방언하는 자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 통역하는 분들의 수준이 너무나 낮은 탓에, 정말 영이 말하는 비밀과 영의 기도를 정확히 통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은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방언 통역의 은사를 경험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 앞에 모두가 감탄한 채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방언의 내용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주님의 신령한 말씀이요 자신의 영의 기도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방언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방언의 주된 내용은 평신도와 목회자에게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평신도는 기도하는 것이 많다면, 주의 종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예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신도의 경우에는 이렇다. 아내에게는 남편을&amp;nbsp;머리로&amp;nbsp;알고 복종하라는 통역이 많이 나온다. 자식들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나온다. 교회의 장로들에게는 목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권사들에게는 그들이 시험에 흔들리지 않고 기도해 준&amp;nbsp;것에 대해 고맙다는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amp;nbsp;기도를 들었고 보았기에 반드시 그날에 심은대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목회자에게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가? 주로, 그가 복음 전파의 길을 가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데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이 제대로 될 수만 있으면 너무나 유익하고 유익한 것이 방언 통역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방언이 어떻게 복음&amp;nbsp;전파에 활용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방언 자체는 복음 전파에 활용되기가 쉽지&amp;nbsp;않다. 왜냐하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면 자신의 영을 건축할 수 있기에 유익하지만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음에 열매를&amp;nbsp;맺을 수도&amp;nbsp;없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자는 방언 통역을 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타락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이 적은 시대가 된 까닭에&amp;nbsp;온전한 방언통역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온전한 방언 통역을 들을 수 있다면 모두들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감탄하고 순복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통역만 제대로 되면 거의 예언과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여 그 사람에게 권면하고 책망하고 폭로하고 가르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지 않는 듯&amp;nbsp;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이&amp;nbsp;방언 통역 가운데 다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불순종한 것을 책망하고 죄를 폭로하여서 방언을 하는 자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개인을&amp;nbsp;세우기 위해서, 가정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amp;nbsp;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이 온전한 방언 통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방언은 매우 유익한 성령의 은사임에 틀림없다. 특히 개인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통로가 바로 방언 통역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방언 통역을 받아 본&amp;nbsp;자들은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명자의 길과 평신도의 길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지도 알게 된다. 이처럼&amp;nbsp;방언 통역이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전달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데에는&amp;nbsp;방언 통역만큼 좋은 것이 없을 정도다.&lt;/p&gt; &lt;p&gt;&amp;nbsp; 방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비밀을 말하는 영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과연 방언 통역자가 깨끗한 상태에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말로 방언 통역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기도에 집중하되, 회개 기도를 많이 하여 방언 통로의 길을 깨끗하게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라리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받지 않는 것이 낫다. 방언이나 방언 통역의 은사는 말의 은사이자&amp;nbsp;기도하라고 주신&amp;nbsp;은사이기 때문에,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건축하는 데 유익한 은사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욱더 회개에 집중하여 자신을 깨끗이&amp;nbsp;하는 데에 더욱더&amp;nbsp;노력하자.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2년 06월 17일(금)&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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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2-06-16T07:12:02+09:00</published>
		<updated>2022-06-20T17:40:3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 https://youtu.be/Dj0meeD1FXM [혹은 https://tv.naver.com/v/27450228 ] 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순절 방언이 120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구약 시대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니까...</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br /&gt; 제목:&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lt;/strong&gt;&lt;/span&gt;_2022-06-16(목)&lt;/p&gt; &lt;p&gt;https://youtu.be/Dj0meeD1FXM&amp;nbsp; [혹은&amp;nbsp;https://tv.naver.com/v/27450228 ]&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Dj0meeD1FXM&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amp;quot;Malgun Gothic&amp;quot;,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오순절 방언이 120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져 나&lt;/span&gt;왔다. 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약 시&lt;/span&gt;대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니까 사람의 영에게 생명이 공급되고 생명이 공급되니 영이 살아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방언이 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져 나&lt;/span&gt;올 때 그 방언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종류의 전혀 딴 언어로서 영의 언어였다. 고린도전서 14:2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바로 그 &amp;#39;글로싸&amp;#39;가 터진 것이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져 나&lt;/span&gt;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언어를 알아듣게 하시는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듣는 이들이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는데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로 방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 앞에 놀라고 있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amp;quot;Malgun Gothic&amp;quot;,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2. 오늘날 방언에 대해서 어떤 주장들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방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보통 3종류다. 첫째는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지방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개국에서 찾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사용하던 언어였다는 것이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 그&lt;/span&gt;러니까 오순절날 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져 나&lt;/span&gt;온 방언(글로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은&lt;/span&gt;&amp;nbsp;처음부터 지방말(디아레크토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들어와서는&amp;nbsp;인터넷 온라인 상에서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amp;#39;마지막 사명&amp;#39;의 앤드류 강이 주장하는 바이다. 둘째는 방언은 헛소리 지껄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이것을 방언의 은사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방언은 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신 소&lt;/span&gt;리요 마&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귀 방&lt;/span&gt;언이요 고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도 현&lt;/span&gt;상이라는 것이다. 방언은 고린도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으로서 그것은 이방신의 영향으로 나타난 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신 소&lt;/span&gt;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통&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독 사&lt;/span&gt;경회를 개최하였던 우리 교회(통합측)의 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로 목&lt;/span&gt;사님의 주장이다. 그럼,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이렇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회개&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와 천&lt;/span&gt;국복음에서는 성경에 나온대로 &amp;#39;방언&amp;#39;(글로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은&lt;/span&gt;&amp;nbsp;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적이요(막16:17~18),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요 하나님과의 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화 채&lt;/span&gt;널이라고 본다. 글로&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싸&lt;/span&gt;(방언)가&amp;nbsp;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지에 관하여서는&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본 교&lt;/span&gt;회 홈페이지 &amp;quot;유튜브방송설교&amp;quot;란의 &amp;quot;성령의 은사(28강)&amp;quo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를&lt;/span&gt;&amp;nbsp;참고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기&amp;nbsp;바&lt;/span&gt;란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amp;quot;Malgun Gothic&amp;quot;,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3. 방언과 맞물려 꼭 필요한 은사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방언과 더불어 꼭 필요한 은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amp;#39;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amp;#39;의 은사다. 사도 바울은 바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통&lt;/span&gt;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말하였다(고전14:13). 방언을 하지만 만약 통역이 없다면,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은사만 못하다고 하였다(고전14:5).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영이 무슨 말로 기도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통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amp;quot;Malgun Gothic&amp;quot;,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amp;quot;Malgun Gothic&amp;quot;,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4. 방언 통역을&amp;nbsp;해 보면 그 내용을&amp;nbsp;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보&lt;/span&gt;면 어떤 내용으로 영이 말하고 있을까?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은 사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영적인 수준에 따라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제대로&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낼&lt;/span&gt;&amp;nbsp;수 있는 수준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똑같은 방언을 들려주어도 통역하는 분의 영적 수준에 따라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받으려면 제대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할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개인의 영을 건축하고 재건하고 복구하기 위해서는 방언이 참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고전14:4). 왜냐하면 방언을 하면&amp;nbsp;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사도 바울이 말했는데, 이 단어는&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nbsp;&amp;#39;오&lt;/span&gt;이코도메오&amp;#39;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amp;#39;짓다. 건축하다&amp;#39;. &amp;#39;세우다. 설립하다&amp;#39;, &amp;#39;재건하다. 다시 세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다&amp;#39;,&lt;/span&gt;&amp;nbsp;&amp;#39;복구하다. 복원하다&amp;#39;의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시대에도 온전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amp;quot;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amp;quot;는 책을 쓰신 송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근 목&lt;/span&gt;사 유순자 사모님은 2013년까지 43&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년 동&lt;/span&gt;안 약 1,000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약 20&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만 명&lt;/span&gt;&amp;nbsp;이상의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오&lt;/span&gt;신 분들이다. 이분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의&lt;/span&gt;&amp;nbsp;말에 따르면, 방언의 내용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이것은 방언의 약 10~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인데, 그때에는 주님(정확히는 &amp;#39;예수님&amp;#39;)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약 80~90%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요, 일반 평신도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의 분량이 훨씬 더 많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5.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은&amp;nbsp;어떻게 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은 일반적으로 2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는 방언하는 자가 방언을 하면 그것을 멈추게 하고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자가 방언 통역을&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nbsp;해 주&lt;/span&gt;는 것이다. 그러니까 &amp;#39;방언하고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하고&amp;#39;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는 방언을 하게 하고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자는 직독직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로&amp;nbsp;&lt;/span&gt;계속해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하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더 영적 수준이 높은 것이다. 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렇다&lt;/span&gt;면,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자들은 어떻게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하는가? 그것도 2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상대방이 방언하는 것을 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보&lt;/span&gt;면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형태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는 실수가 많다. 자기의 생각이 많이 가미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의 말이 자기의 언어로 들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그대로 말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단점은 상대방의 허물을 폭로하는 경우, 공동체가 방언하는 자의&amp;nbsp;죄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그대로 말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순자 사모님 같은 경우는 그것을 그 사람만 아는 것으로 바꿔서 통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달&lt;/span&gt;라고 요청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은 그것이 제대로 될 수 있으면, 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회 공&lt;/span&gt;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매우 유익한 채널이 될 수 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2년 06월 16일(목)&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도행전 강해(10)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행2:1~13)_2022-06-1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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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2-06-15T08:54:48+09:00</published>
		<updated>2022-06-20T17:28:4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0)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행2:1~13)_2022-06-15(수) https://youtu.be/1Ifr3WLQtHE [혹은 https://tv.naver.com/v/27449919 ] 1.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039;오순절&#039;이라는 절기는 어떤 절기이며, 그때 바치는 누룩넣은 떡 두 덩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7개 절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절기로는 유월절(1.14), 무교...</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도행전 강해(10)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행2:1~13)&lt;/strong&gt;&lt;/span&gt;_2022-06-15(수)&lt;/p&gt; &lt;p&gt;https://youtu.be/1Ifr3WLQtHE&amp;nbsp; [혹은&amp;nbsp;https://tv.naver.com/v/27449919 ]&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1Ifr3WLQtHE&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성령께서 강림하셨던&amp;nbsp;&amp;#39;오순절&amp;#39;이라는 절기는 어떤 절기이며, 그때 바치는 누룩넣은 떡 두 덩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7개 절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절기로는&amp;nbsp;유월절(1.14), 무교절(1.15~21), 초실절(1.16), 맥추절(3.5)(=칠칠절, 오순절), 나팔절(7.1), 속죄일(7.10), 초막절(7.15~21)(=장막절, 수장절)이&amp;nbsp;있다. 그런데 이러한 절기는 사실&amp;nbsp;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구원을&amp;nbsp;기념하는 절기로서&amp;nbsp;유월절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농사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초막절은 원래 구원의 절기로 시작했으나,&amp;nbsp;밀 추수와 나무 실과(포도,무화과, 석류, 감람유, 대추야자)의 추수를 마친 후에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amp;#39;수장절&amp;#39;로서 농사를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중에서 &amp;#39;오순절&amp;#39;이라는 절기는 &amp;#39;칠칠절&amp;#39;이나 &amp;#39;맥추절&amp;#39;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초실절을 지킨 후 50일째(7*7=49일 이튿날)&amp;nbsp;되는 날에 맞이하는 절기이기&amp;nbsp;때문에 다섯 &amp;#39;오(五)&amp;#39;, 열흘&amp;nbsp;&amp;#39;순(旬)&amp;#39; 자를 써서 &amp;#39;오순절(五旬節)&amp;#39;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절기는&amp;nbsp;보리의 첫 곡식을 거둔 초실절을 지키고 난 후 50일째 되는 날, 즉 보리 추수를 다 마치고&amp;nbsp;밀 추수를 시작하면서 드리는 절기다(레23:15~22). 그런데 이 절기&amp;nbsp;만큼은 좀 특별한 제사를 드린다. 그것은&amp;nbsp;보리떡 2개를 하나님께 요제를 드리게 되는데 이때에는 새 소제물로서&amp;nbsp;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떡 두 덩이를 만들어 바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amp;#39;누룩&amp;#39;이란&amp;nbsp;원래&amp;nbsp;제사에는 절대 들어가면&amp;nbsp;안되는 것이지만, 오순절 만큼은 허용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룩은 원래 &amp;#39;부패&amp;#39;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amp;#39;죄&amp;#39;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절기 때에는&amp;nbsp;누룩을 넣도록 허용했다는 말은 죄가 조금 들어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리고&amp;nbsp;이때는&amp;nbsp;떡을 두 덩이로 만들어 새 소제물을&amp;nbsp;드렸다. 이 말은&amp;nbsp;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생기게 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유대인 믿는 이들(행2:1~4)과 이방인 믿는 이들(행10:34~48)로 구성될 것임을 말해 준다(고전10:17). 그래서 사도행전 5장을 읽어 보면, 성령을 받았던&amp;nbsp;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만 성령을 속이다가 즉사하는 일이 발생하였던&amp;nbsp;것이다. 그렇지만 누룩을 좋게 해석하면, 우리 믿는 이들이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세례를 부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부터 일평생 자기에게 들어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오순절날 성령세례로 주어진 2가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오순절날에 히브리파 유대인들만 모여 있었던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amp;nbsp;강림하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령안에서&amp;nbsp;세례가 부어진 것이다. 그러자 그들에게 2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amp;#39;능력&amp;#39;의 은사가&amp;nbsp;나타났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며 그리고 능력으로&amp;nbsp;옷 입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행1:4~5,8, 눅24:49). 그런데 그때 &amp;#39;능력&amp;#39;은 좀 높은 계급의 천사들을&amp;nbsp;가리키는 것으로서(엡1:21), 하늘에서부터 안에서 밖으로 내려온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로 나타났다(행2:2~3, 시104:3~4, 히1:7, 시103:20~22). 이것은 &amp;#39;천사들&amp;#39;이 밖에 부어지는 성령세례의 표적이라는 것을&amp;nbsp;알려 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안으로 부어지는 성령세례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딴 &amp;#39;방언&amp;#39;이라는&amp;nbsp;표적들로&amp;nbsp;나타났다. 안으로 부어졌던 성령세례가&amp;nbsp;그때 120명의 성도들에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 곧&amp;nbsp;방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때&amp;nbsp;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amp;nbsp;그 방언 소리가 무엇인지를 듣는 이들로 알아듣게 했으니, 15개국에서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했던&amp;nbsp;헬라파 유대인들은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큰 일을 자기들의 모국어(지방말)로 듣는 기이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amp;nbsp;그들의 반응은 &amp;quot;하나님의 큰 일들&amp;quot;을 듣는도다고 했다(행2:11). 이는 그들에게 순간적으로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날 성령께서 주셨던 은사들로는 사실 &amp;#39;능력&amp;#39;과 &amp;#39;방언&amp;#39; 그리고 일시적이었지만 &amp;#39;방언 통역&amp;#39;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오순절날 나타난 &amp;#39;방언&amp;#39;은 대체 어떤 언어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일제히 나타났던 성령의 선물들&amp;nbsp;가운데 &amp;#39;방언&amp;#39;의 은사는 어떤 언어였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amp;#39;글로싸&amp;#39;였다. 이는 곧 방언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인 것을 말해 준다(막16:17, 행2:4, 고전14:2). 고로 은사로 주어지는 &amp;#39;방언&amp;#39;은&amp;nbsp;이 세상에 있는 어떤 종류의 언어들이&amp;nbsp;아니었던&amp;nbsp;것이다. 그것은 전혀 딴 종류의(&amp;#39;헤테로스&amp;#39;=different) 언어였기 때문이다(행2:4). 고로 이 언어가 단순히&amp;nbsp;지방말(&amp;#39;디아레크토스&amp;#39;)이었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언어이자&amp;nbsp;영의 언어로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amp;#39;글로싸&amp;#39;)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2에서 그 실체를 알려 준다. 왜냐하면 방언은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비밀의 언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고전14:2).&amp;nbsp;&lt;/p&gt; &lt;p&gt;고전14:2[개역]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amp;nbsp;&lt;/p&gt; &lt;p&gt;고전14:2[직역] 왜냐하면 방언(&amp;#39;글로싸&amp;#39;)으로 발설하고 있는 자는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영으로 비밀들을 발설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사실 고린도전서 14장을 읽어 보면, &amp;#39;글로싸(방언)&amp;#39;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위의 경우처럼 &amp;#39;영이 말하는 것&amp;#39;을 가리킨다(고전14:2).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영에게 공급됨으로&amp;nbsp;그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께&amp;nbsp;비밀들을 발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amp;#39;영의 기도&amp;#39;라는 것이다(고전14:14~15). 왜냐하면 방언 통역을&amp;nbsp;해 보면, 방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전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가운데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약 80~90%는 영이 비밀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amp;nbsp;그중에 약 20~10% 정도는 영이 하나님께&amp;nbsp;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언의 은사를 &amp;#39;외국어다&amp;#39;, &amp;#39;헛소리다&amp;#39;, &amp;#39;귀신소리다&amp;#39;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성령의 은사는 성경 기록을 끝으로 계시가 이미 끝난 상태이기에 더 이상 성령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성경의 기록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의 사례들은 몇 건이나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믿는 자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들은&amp;nbsp;총 5번 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서 있었고(행2:1~4), 둘째는 사마리아에서&amp;nbsp;있었으며(행8:14~17), 셋째는 사도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있었다(행9:17~18, 고전14:18). 넷째는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도&amp;nbsp;있었으며(행10:44~48),&am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에베소에서도 있었다. 이중에서 다섯 번째는 사도 바울이 안수함으로 성령이 오셨고 그들에게 선물로&amp;nbsp;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amp;nbsp;사도행전에 나타난&amp;nbsp;성령의 은사로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행전에는 위의 경우처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성령이 오심으로 믿는 이들에게&amp;nbsp;부어지는 역사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방언 은사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들 나타남의 특징은&amp;nbsp;다음과&amp;nbsp;같은&amp;nbsp;것들이 있다.&amp;nbsp;&lt;strong&gt;첫째, 모든 성령세례의 사건에서 &amp;#39;방언&amp;#39;의 은사가 나타났다&lt;/strong&gt;는 점이다. 이것들 중에서 사마리아의 성령세례에서는 직접적인&amp;nbsp;언급은 나오지 않지만&amp;nbsp;정황으로 봐서 하나님의 선물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들에게도 방언 은사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amp;nbsp;&lt;strong&gt;둘째, 방언의 은사가 통역이 될 때에는&amp;nbsp;복음 전파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행2:6~13). 왜냐하면 방언을 통역해 보면, 그 내용이 일부는 &amp;#39;기도&amp;#39;이고, 그 일부는 &amp;#39;예언&amp;#39;과 같아서, 그 내용이 권면(고전14:31), 교육(고전14:31), 책망(고전14:24), 판단(고전14:24), 폭로(고전14:25)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부어진 성령세례로 인하여 120명의 성도들이 각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 것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하늘의 언어였으며,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의 지방말로 그것을 알아듣는 등 방언 통역도 동시에 나타났던 놀라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자&amp;nbsp;15개국의 사람들은&amp;nbsp;이렇게 고백했다. &amp;quot;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글로싸)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는도다&amp;quot;(행1:11). 이는&amp;nbsp;방언이 통역만 될 수 있다면 놀라운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2년 06월 15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