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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요강해설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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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23) 최종회] 성결법(10) 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레27:1~34)_2026-09-30(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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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30T22:49:09+09:00</published>
		<updated>2026-10-01T09:13:5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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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9-30(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3) 최종회] 성결법(10) 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레27: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7Nv23EIsGrs [설교핵심] 레위기의 마 지막 성결법 규례인 서원,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의미를 해설하는 이 설교는, 하나님께 자신과 소중한 소유를 자발적으로 바치는 행위가 어떻게 속세를 거룩한 성물로 변화시키고 하늘의 영원한 보상과 하나님의 강력한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2026-09-30(수) 수요기도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제목:&lt;/span&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23) 최종회] 성결법(10) 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레27:1~34)&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https://youtu.be/7Nv23EIsGrs&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Nv23EIsGrs?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레위기의 마&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지막 성결법 규례인 서원,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의미를 해설하는 이 설교는, &lt;strong&gt;하나님께 자신과 소중한 소유를 자발적으로 바치는 행위&lt;/strong&gt;가 어떻게 &lt;strong&gt;속세를 거룩한 성물로 변화&lt;/strong&gt;시키고 &lt;strong&gt;하늘의 영원한 보상과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lt;/strong&gt;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한 입술의 맹세를 넘어 자신의 몸과 재물을 온전히 드리는 &lt;strong&gt;헌신의 가치&lt;/strong&gt;를 강조하며, 첫 열매나 십일조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생색을 내거나 임의로 처분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가르침은 물질과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lt;strong&gt;개인의 신앙이 성화&lt;/strong&gt;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레위기의 제사법&amp;middot;정결법&amp;middot;성결법은 왜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바침의 성결례&lt;/span&gt;로 마무리되는가?&lt;br /&gt; 2.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서원&lt;/span&gt;이란 무엇이며 언제 성립하고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가?&lt;br /&gt; 3.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일반 서원&lt;/span&gt;과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온전히 바침인 헤렘&lt;/span&gt;은 무엇이 다른가?&lt;br /&gt; 4. 자신을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온전히 바친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사람&lt;/span&gt;을 하나님은 왜 지키시는가?&lt;br /&gt; 5.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lt;/span&gt;은 어&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떻게 서원하며 그 값을 어떻게 무르는가?&lt;br /&gt; 6.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처음 난 것&lt;/span&gt;과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 열매&lt;/span&gt;는 왜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br /&gt; 7.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십일조&lt;/span&gt;는 왜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드릴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3) 최종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1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7: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강해의 마지막 시간이다. 레위기 27장은 사람이 자신과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誓願, vow), 이미 하나님의 것인 첫 것, 그리고 십일조(十一條, tithe)에 대해 다룬다. 이것은 거룩함의 마지막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속죄(贖罪, atonement)받고, 부정한 것을 씻어 정결(淨潔)해지고, 말씀에 순종하여 성결(聖潔, holiness)에 이르러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마지막으로 성결에 이르는 마지막의 길로서 무엇을 더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번 말씀을 생각할 때에 노다지를 캘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기대해본다. 과거 미국 서부에서는 금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이 &amp;lsquo;노 터치&amp;rsquo;라고 외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말과 실제의 역사의 사이를 재미있게 공부했다. 만리장성과 동이족에 관해 전해지는 말도 있다. 그것은 &amp;quot;용용 죽겠지!&amp;quot;라는 말이다. 이렇게 역사를 살피는 일이 흥미롭듯, 성경 전체를 전체를 알고 보면 한 장 한 장마다 숨은 보화가 보인다. 레위기 마지막 장에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하나님께 올려 드릴지에 관한 귀중한 보화가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바침을 막연한 헌금 권유로 받아들여서는 말씀의 깊이를 놓친다. 사람이 무엇을 서원할 수 있는지, 바친 것의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다시 무를 수 있는 것과 결코 무를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첫 것과 십일조는 왜 새 서원이 될 수 없는지 차례로 살펴야 한다. 필자가 젊은 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경험도 이 말씀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의 성결법이 바침으로 어떻게 마무리되며 서원과 첫 것과 십일조를 통해 무엇이 거룩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제사법&amp;middot;정결법&amp;middot;성결법은 왜 바침의 성결례로 마무리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전체를 다시 펼쳐 보자.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의 큰 흐름이다. 1장부터 7장에는 번제&amp;middot;소제&amp;middot;화목제&amp;middot;속죄제&amp;middot;속건제의 다섯 제사와 그 부가 규례가 나온다. 8장에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위임식이 있고, 9장에서는 아론이 처음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불이 나와 제단의 제물을 사른다. 10장에서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는다. 제물과 제사장의 길을 모두 가르쳐 주신 것이다(레 1-10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음 11장부터 17장까지는 정결법이다. 11장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2장은 아이를 낳은 여인의 정결, 13장과 14장은 나병의 진단과 나은 뒤의 정결례, 15장은 남녀의 유출에 관한 규례를 다룬다. 16장의 대속죄일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위한 속죄가 행해지고, 17장은 피에 관한 규례를 가르친다(레 11-17장). 무엇을 먹고 무엇과 접촉하는지 살피며 몸과 삶을 씻고, 제사의 피로 정결례를 마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거룩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먼저 죄의 문제에는 피가 필요하다. 씻어야 할 부정에는 물이 필요하다. 시체나 부정한 짐승 등 접촉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이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이방의 풍속과 금지된 성관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필자는 몸속의 악한 영으로 고통받는 문제도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과 연결하여 살펴 왔다. 땅을 쉬게 하는 규례처럼 몸에도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 사람만이 아니라 땅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복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8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다. 개인의 성결을 다루는 18장부터 22장까지에는 백성이 이방 풍속을 따르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며 안식일과 계명을 지키는 일이 나온다. 제사장은 시체 접촉과 혼인과 제물에서 더욱 엄격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구약에서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해야 했다. 신약의 성도는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가운데 그 말씀을 따라 거룩함에 나아간다(레 18-22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23장부터는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지는 길이 이어진다.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에는 온 백성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뻐한다. 그래서 집회에 나아와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개인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공동체의 예배 가운데 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백이십 명에게 성령이 임한 일도 함께 모인 자리를 생각하게 한다(레 23장; 행 1:15, 2:1-4).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믿음이 모두 똑같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성령은 각 사람 위에 임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24장에서는 백성이 가져온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고운 가루로 진설병을 마련한다. 함께 드린 것이 성막의 섬김에 쓰인다. 성막 밖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일을 다루고 동해보복의 법도 가르친다. 25장에서는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마다 땅을 쉬게 하고 희년(禧年, jubilee)에는 기업을 돌려주게 한다. 혼자 땅을 쉬게 하면 손해를 염려하겠지만 백성이 함께 지킬 때 공동체와 땅이 쉼을 얻는다. 26장은 순종에 따른 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들려준다(레 24-26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에 왜 27장이 놓였는가? 하나님께서 제사, 씻음, 말씀에 대한 순종, 공동체의 절기와 땅의 쉼을 가르치신 뒤 마지막으로 무엇을 드릴 것인지 물으시는 것이다. 몸만 하나님의 것이고 귀하게 여기는 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amp;middot;소득은 자기 것이라고 따로 둘 수 없다. 서원으로 드리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성물(聖物)이 된다. 바침은 성결법의 끝에 덧붙은 사소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을 드러내는 마지막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순서를 거꾸로 세우지 말아야 한다. 피도 없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고, 씻어야 할 것을 품은 채 절기만 지킨다고 정결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사와 씻음만 받고 가진 것을 끝까지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성결의 마지막 자리에는 이르지 못한다. 정한 음식과 접촉의 규례에서 시작해 말씀의 순종, 함께 드리는 예배, 땅의 안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을 구별하셨다. 마지막 장은 그 모든 영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침으로 고백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서원이란 무엇이며 언제 성립하고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응답하여 자신이나 귀한 소유를 드리겠다고 입으로 약속하는 맹세다. 단지 &amp;lsquo;언젠가 드리면 좋겠다&amp;rsquo;는 생각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했고, 사무엘을 데리고 가서 그 약속을 행한 일이 그 예다(삼상 1:11, 24-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은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했다면 그 값을 정하라고 시작한다(레 27:1-2). 사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평생 그 섬김에 들어갈 수도 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무엘이나 삼손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어도 정해진 값을 드려 자신을 구별하는 길이 있다. 그 값의 표는 뒤에서 자세히 살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찌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을 하였으면 미루어서는 안 된다. 전도서는 하나님께 서원했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고,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한다.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전 5:4-5). 마음에 감동이 들었다가 형편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입으로 한 맹세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다만 당장 전액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식으로 레위기의 규정에 없는 기한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형편을 따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30장은 입으로 한 서약의 무게를 다시 들려준다. 말한 대로 행하고 파약하지 말라는 것이다(민 30:2).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에 집을 드리겠다거나 가축을 드리겠다고 말했다면 그 말의 값을 알아야 한다. 필자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까닭은 누구에게 무엇을 강요하려는 데 있지 않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무게를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서원에 관한 가족의 규례도 알아야 한다. 당시 아버지 집에 있던 어린 딸이 서원했을 때 아버지가 듣고 허락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성립하지 않았다. 결혼한 여인의 서원도 남편이 들은 날에 허락하지 않으면 무효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버지나 남편이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지켜야 했다. 과부나 이혼한 여인의 서원도 본인이 지켰다(민 30:3-16). 본문이 정한 책임의 관계를 살피지 않고 모든 서원을 한 가지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소유를 팔아 일부를 두고 나머지를 드렸으면서도 전부를 드린 것처럼 말했다.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서 한 말과 실제 바침이 달랐다는 일이 있다(행 5:1-11). 일반 서원을 했다고 이 사건의 형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온다고 쓰여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일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분명하다. 서원은 입술의 소리로 끝나지 않고 실제 바침에 이르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일반 서원과 온전히 바침인 헤렘은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는 일반적인 서원과 한층 엄중한 온전한 바침이 함께 나온다. 일반 서원으로 드린 물건은 규정에 따라 정해진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무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드린 것을 다시 쓰고 싶으면 그 값을 더 내고 되찾는 것이다(레 27:13, 15, 19). 그러나 온전히 바친 것에는 그런 길이 없다. 이것을 헤렘(חֵרֶם)이라고 한다. 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기업의 밭 가운데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은 팔지도, 무르지도 못하며 지극히 거룩하다(레 27:28-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8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지극히 거룩하다&amp;rsquo;는 말을 가볍게 읽지 말라. 지성소를 말할 때처럼 거룩함 가운데서도 특별히 구별된 것이다. 일반 서원에서도 드리는 순간 하나님께 속하지만, 헤렘으로 온전히 드린 것은 자기 뜻대로 돌려받을 수 없다. 레위기 27장 29절은 아주 바친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함부로 취하지 말라는 엄중한 선언으로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리고에서 아간이 저지른 일을 보라. 여리고의 물건은 여호와께 바쳐졌고 은과 금과 기명은 여호와의 곳간에 두어야 했다(수 6:18-19). 그런데 아간은 아름다운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를 취했다(수 7:21). 온전히 바쳐진 것에 손을 댄 것이다. 결국 아간과 그에게 속한 것들이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심판을 받았다(수 7:24-26). 이 사건은 드리기로 한 것의 일부를 나중에 바꾸는 일반 서원의 문제보다 더욱 엄중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을 드리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집이나 밭을 드리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값을 더 내어 무르는 길과, 아예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는 길을 같은 말로 뭉개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할 때에는 자신의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온전히 바쳤다고 한 뒤 다시 자기 소유처럼 취한다면 여호와의 것을 취하는 일이 된다. 필자는 아간의 일을 보며 그 엄중함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는 일이 왜 두려운지 이 말씀과 성경의 역사를 함께 놓고 살핀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신데 그분을 거절하고 죽인 이들에게 예루살렘의 심판이 닥쳤다고 전한다. 그 멸망까지 약 사십 년이 흘렀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필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업신여기는 사람의 길이 결국 심판으로 간다고 가르친다. 이 대목을 아무 목회자에게나 무조건 손대지 말라는 구호로 써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렸는지 살펴야 한다. 필자가 말하는 핵심은 직함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의 바침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을 하나님은 왜 지키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의 예물로 드리는 가축은 드릴 때 거룩해진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레 27:9). 짐승의 겉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가축을 하나님께 드리는 그 순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받아 주신다. 돈도 마찬가지다. 지갑 안의 돈에는 특별한 빛이 없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구별하면 성물이 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더 깊겠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9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스물다섯 살 무렵 군 복무를 마치고 이상관 목사님을 만났다. 그분이 인도한 집회에서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고, 그 뒤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에서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 맡은 일은 반주였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순종하여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니며 코드 반주를 익혔다. 1도&amp;middot;4도&amp;middot;5도 화음과 몇 가지 코드를 외우고 찬송가를 따라 연습하여, 한 달 뒤에는 집회의 반주를 시작했다. 잘할 수 있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주어진 섬김에 순종한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목사님의 말씀은 당시 필자가 듣지 못했던 영적 세계를 열어 주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받아 적고 밑줄을 긋고, 집에 가서는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들었다. 말씀이 알아지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컸으므로 무언가 드려 그 감사를 새기고 싶었다. 그러나 시골에서 도시로 오가며 공부하던 필자에게는 드릴 돈이 없었다. 저녁 버스를 놓치면 돌아갈 길도 막막한 형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은혜가 넘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릴 것이 없어 눈물이 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침내 봉투 하나를 가져와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고 적어 드렸다. 돈이 없어서 몸을 대신 적어 낸 장난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때 자신을 주님께 남김없이 드렸다. 지금 레위기 27장을 읽으며 그때의 바침이 헤렘이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는다. 온전히 바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다. 필자는 이후의 삶에서 그 소유를 하나님께서 지키셨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회하며 기존의 교리와 다르게 성경을 읽은 대목을 전할 때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단이라 몰고 제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영적 공격이 여섯 달 동안 계속된 때도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필자가 전한 말씀을 막으려다 위험한 일이 생길 뻔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을 지나 살아남아 지금도 말씀을 전하게 된 일을 필자는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받아들인다. 필자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드린다고 말하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핍박을 견뎌야 할 때에는 견디며, 자신의 뜻을 계속 내려놓아야 한다. 물건을 드리는 일보다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일이 더 무겁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가장 강한 보호의 길임을 경험했다. 지켜 달라는 말만 거듭하기 전에 주님께 실제로 드린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삶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쓰시고 지키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예전에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한 분 하나님에 관한 이해, 종말의 시간표 등 여러 문제를 성경 앞에서 다시 살펴 전했다. 오래 배운 교리와 다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반발했다. 그때에는 왜 필자가 살아남아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지 그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스물다섯 살 때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고 적어 올린 일이 떠오른다. 필자는 그때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지키셨다고 확신한다. 그것이 필자의 삶에서 레위기 27장의 말씀이 현실이 된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은 어떻게 서원하며 그 값을 어떻게 무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서 서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람, 가축, 집, 기업의 밭이라는 네 갈래다. 각각의 가치를 매기는 방법이 다르다. 무엇을 어떻게 드릴지 알아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한 말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다. 첫째로 사람을 드리는 경우부터 보자. 직접 섬김의 길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값을 매겨 대신 드리는 길도 있다(레 27: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값은 나이와 남녀에 따라 달리 정해졌다.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 남자는 은 오십 세겔, 여자는 삼십 세겔이다. 다섯 살부터 이십 세까지는 남자 이십 세겔, 여자 십 세겔이다. 한 달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 다섯 세겔, 여자 세 세겔이고, 육십 세가 넘으면 남자 십오 세겔, 여자 십 세겔이다(레 27:3-7). 힘이 있는 젊은 때를 하나님께 드리는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표다. 나이가 들어 몸이 힘들어졌을 때보다 힘 있게 섬길 수 있을 때 헌신하는 일이 귀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 너의 정한 값은 이십세로 육십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형편이 가난하여 정한 값을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서원한 사람을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가면, 제사장이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값을 다시 정한다(레 27:8). 그러므로 가진 돈이 적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길이 전혀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큰값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정해진 표와 가난한 사람의 형편을 함께 살피도록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가축이다. 소나 양과 같이 예물로 드릴 수 있는 가축을 서원하여 드리면 그 가축은 거룩해진다. 드린 뒤에 더 좋은 것 또는 더 나쁜 것으로 바꾸면 처음 가축과 바꾼 가축이 둘 다 거룩해진다(레 27:9-10). 한 마리를 드리기로 하고 뒤늦게 아깝다고 다른 마리를 내놓으면 둘 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처음 약속한 것을 정직하게 드리는 편이 낫다. 직접 예물로 드리지 못할 부정한 가축은 제사장이 값을 매기고 그 값으로 처리한다. 다시 무르려면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레 27:11-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는 자기 집이다. 집을 통째로 성막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다. 제사장이 집의 가치를 정하고, 주인은 그 값을 하나님께 드린다. 다시 집을 자기 소유로 무르고자 하면 정한 돈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레 27:14-15).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뒤에도 계속 그것을 사용할 길이 열려 있으나, 그 길에는 정해진 대가가 따른다. 바침을 말만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는 기업으로 받은 밭이다. 밭의 크기와 파종량을 기준으로 값을 정하고, 다음 희년까지 남은 해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계산한다. 희년이 멀면 값이 커지고 가까우면 줄어든다(레 27:16-18). 밭을 다시 무르려면 정가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 그러나 무르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면 다시 무를 수 없고, 희년에 그 밭은 여호와께 드린 성물로서 제사장의 기업이 된다(레 27:19-21). 땅은 본래 여호와의 것이며 사람이 받은 기업도 그분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까지 읽으면 바침의 규정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보인다. 사람의 나이와 가난한 형편, 가축의 정함과 부정함, 집의 값, 땅과 희년의 거리까지 살핀다. 성급히 큰말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드리는지 알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일반 서원의 무름 규정을 안다고 해서 온전히 바친 헤렘까지 값을 내고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두 바침의 차이를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밭의 가격을 계산할 때 본문은 보리 한 호멜을 뿌릴 수 있는 밭에 은 오십 세겔이라는 기준을 둔다(레 27:16). 희년이 지나 얼마 남지 않았다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의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에서 덜어 준다. 같은 넓이의 밭이라도 사용하는 시간이 다르면 값이 달라지는 것이다. 성소의 세겔은 이십 게라로 계산하도록 정했다(레 27:25). 이렇게 실제 크기와 시간과 무게를 정한 까닭은 드린다고만 말하고 형편에 따라 임의로 낮추거나 높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바침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가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처음 난 것과 첫 열매는 왜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것은 서원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처음 난 것과 첫 열매를 이미 당신의 것으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장자의 죽음이 있었을 때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신 하나님은 처음 난 것들이 당신께 속한다고 말씀하셨다(출 13:1-2, 12-15). 장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셨고, 레위인의 수보다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많았을 때에는 남는 수를 돈으로 속하게 하셨다(민 3:11-13, 40-51).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생명이기에 첫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몫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은 가축의 첫 새끼를 새롭게 구별하여 드릴 수 없다고 한다. 소든 양이든 원래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레 27:26). 부정한 짐승의 첫 것은 정한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속하거나 정한 값대로 팔 수 있다(레 27:27). 그러나 그 절차도 자기 것이던 것을 특별히 서원하여 새로 바친다는 뜻이 아니다. 처음부터 주님께 속한 것을 그분의 규정대로 처리하는 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6 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 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땅에서 얻은 첫 열매도 같은 원리로 보아야 한다. 처음 거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규례가 이미 있다(레 23:10-14). 그러면서 &amp;lsquo;필자가 이것을 드리겠다고 특별히 서원했다&amp;rsquo;고 말하면, 원래 하나님의 것을 마치 새로 내놓은 자기 소유처럼 말하는 셈이 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첫 것의 몫과,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해서 더 드리는 서원을 구별해야 한다. 첫 것을 충실히 드리는 일도 중요하고, 그 밖에 무엇을 드리기로 했다면 그 약속도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을 모르고 첫 것만 드리면서 자신의 특별한 헌신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특별한 서원을 했다는 말로 이미 하나님께 속한 첫 것을 뒤로 미룰 수도 있다. 둘 다 바른 길이 아니다. 주님께서 먼저 정하신 것은 그분의 것으로 인정하고, 자원하여 약속한 것은 별도로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 원리는 이어지는 십일조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십일조는 왜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드릴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일조도 서원으로 새로 만드는 몫이 아니다. 땅의 곡식과 나무의 열매 가운데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며 성물이라고 레위기가 정했다(레 27:30).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amp;lsquo;필자가 특별히 마음을 먹고 바칩니다&amp;rsquo;라고 하면서 자기 임의의 선물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떼어 드리는 것이 옳다. 소득을 주신 분을 알아보며 그분의 몫을 돌려 드리는 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곡식이나 열매의 십일조를 다시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라면 그 값을 무를 수 있다. 그러나 그냥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한다(레 27:31). 일반 서원 가운데 다시 무를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도 규정된 값이 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손에 두고 쓰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축의 십일조도 있다. 목자의 막대기 아래로 소나 양을 한 마리씩 지나가게 하여 열 번째 되는 것을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한다(레 27:32). 그 열 번째가 탐스럽다고 아홉 번째나 열한 번째와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 바꾼 것과 본래 열 번째 것이 둘 다 거룩해지고 무를 수 없다(레 27:33).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진 것을 드려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2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분의 일을 드리는 일을 손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은혜로 온다. 주님께서는 한 몫을 당신의 것으로 받으시면서 나머지 아홉 몫을 우리가 사용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통하여 땅의 것이 하늘의 것이 되고, 잠시 쓰고 끝날 것이 영원한 기업과 연결된다. 필자는 천국의 아름다운 집과 상급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드리는 일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감추면 손에 남긴 것 같아도 하늘의 몫을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젊은 날 은혜를 받았으나 드릴 물질이 없어 울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뒤에 드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힘껏 드렸다. 한 번은 필자가 약 이백만 원을 드린 뒤 어떤 성도가 그보다 만 원을 더 드린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남과 겨루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받은 은혜를 놓치고 싶지 않아 물질로도 응답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보여 주는 필자의 경험이다. 형편이 안 되면 억지로 드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는 기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바침은 거룩하게 되는 길이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하늘의 기업에 참여하는 길이다. 물질만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시간, 귀하게 여기는 것까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입으로만 지켜 달라고 구하면서 자신은 온전히 자기 것으로 붙잡고 있지 않은가? 십일조와 첫 것은 원래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주님께 속한 것은 주님께서 거룩하게 사용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헌금을 말할 때마다 돈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돈을 많이 내라는 경쟁이 아니다. 소가 없으면 소를 드릴 수 없고, 값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제사장이 형편을 살피도록 하셨다. 필자도 드리고 싶으나 드릴 물질이 없어 자신의 몸을 드린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바침을 물질 한 가지로 제한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것인 첫 것과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없애서도 안 된다. 드릴 수 있는 것을 정직하게 드리는 순간 세상의 것이 하나님께 속한 성물로 구별된다. 필자는 그 변화가 땅에서만 끝나지 않고 하늘의 영원한 기업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마지막 장에서 서원과 온전한 바침, 첫 것과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이 어떻게 거룩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피로 속죄받고 물로 씻으며 말씀과 공동체의 예배에 순종하는 성결의 길은, 마지막에 자신과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로 이어진다. 서원은 입으로 한 맹세를 실제로 지키는 일이고, 헤렘은 되돌릴 수 없는 온전한 바침이다. 첫 것과 십일조는 특별한 서원에 앞서 이미 여호와께 속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을 드릴지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소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형편에 따라 정한 값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속한 몫을 마음대로 바꾸지 않으며, 자신을 드린 약속을 삶으로 지켜야 한다. 필자가 젊은 날 적은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는 고백처럼, 드릴 물질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삶이 있다. 형편이 허락할 때에는 주신 것 가운데 귀한 것을 감사로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과 소유를 주님께 드리고 그분의 지키심과 하늘의 기업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30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category term="성결법"/><category term="서원"/><category term="첫열매"/><category term="십일조"/><category term="성경강해"/><category term="정보배목사"/><category term="동탄명성교회"/><category term="헌신"/><category term="거룩함"/>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_2026-09-23(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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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23T22:13:26+09:00</published>
		<updated>2026-09-25T00:33:1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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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9-23(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bcpbzHMOMM [이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들] 1. 레위기의 속죄·정결·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2.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 3.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23(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bcpbzHMOM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bcpbzHMOM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들]&lt;/strong&gt;&lt;/p&gt; &lt;p&gt;1.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lt;br /&gt; 2.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lt;br /&gt; 3.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lt;br /&gt; 4.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lt;br /&gt; 5.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lt;br /&gt; 6.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lt;br /&gt; 7.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회개&lt;/strong&gt;가 인간과 땅의 운명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순종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최고의 복을&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임재&lt;/strong&gt;로 규정하며, 반대로 불순종의 끝은 질병과 가난을 거쳐 결국&amp;nbsp;&lt;strong&gt;국가적 멸망과 땅의 황폐화&lt;/strong&gt;라는 단계별 징계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메시지는 신명기 28장과 달리&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회복의 약속&lt;/strong&gt;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벌을 달게 받는&amp;nbsp;&lt;strong&gt;겸손한 태도&lt;/strong&gt;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예수의 피와 성령&lt;/strong&gt;에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저주를 끊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복구하여&amp;nbsp;&lt;strong&gt;천국 기업&lt;/strong&gt;을 물려받는 진정한 성결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6:1-4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레위기 강해 스물두 번째이자 성결법으로는 아홉 번째 시간이다. 필자는 2010년에도 레위기를 강해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거대한 보화의 광맥을 발견하고 있다.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필자에게 레위기는 속죄(贖罪, atonement)만이 아니라 정결(淨潔)과 성결(聖潔)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백성을 잘 인도해야 하지만 백성도 제사에 참여하여 속죄받고, 더러워진 것을 씻으며,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열심을 낸다고 속죄와 정결과 성결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한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3장 13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거듭 암송하며 실천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저주에서 속량받았으며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온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귀하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 안에 더러운 것을 씻어 내는 회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몸속에 고름이 차 있는데 파스만 붙이면서 이미 나았다고 되뇌이는 것으로는 병에서 낫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회개를 통해 정결해지지도 않은 가운데 봉사하면 진실한 섬김 대신 겉모양과 외식으로 봉사할 수 있다. 필자는 그 위험을 뒤늦게 깨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어떤 길을 열어 놓으셨는가? 그것의 핵심은 정결함과 성결함에 있다. 속죄는 그 앞 단계에 있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하여 죄가 덮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결은 그 피와 물로 계속 씻음을 받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일이며, 신약의 성도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완성된다. 레위기 26장은 이 성결이 사람뿐 아니라 땅과 공동체에까지 관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이 어떻게 이어지고, 공동체가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때 사람과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나며, 회개한 백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시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 시간은 공동체의 정결로서 레위기 26장에 나오는 사람과 땅의 정결례를 살펴볼 차례다. 그런데 레위기 26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 전체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레위기는 제1장부터 제10장까지 제사와 제사장의 직무를 중심으로 속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제1장부터 제7장까지 제사법이 나오고, 제8장에는 제사장 위임식, 제9장에는 아론이 처음 드린 제사, 제10장에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나온다. 그리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법이 나오고, 제18장부터 제27장까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는 성결법이 나온다. 이 배열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정결과 성결로 나아가야 함을 그대로 가르쳐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정결법의 내용을 보자. 레위기 제11장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제12장은 출산한 여인,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제15장은 남녀의 유출병을 다룬다. 제16장의 대속죄일(大贖罪日, Day of Atonement)인데, 이는 단지 제4장에 이미 나온 속죄제를 반복하는 말씀이 아니다. 피로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의 자리로서 읽어야 한다(레 16:16-20, 33). 그리고 제17장은 피를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할 이유와 피가 속죄에 쓰인다는 사실을 가르친다(레 17:10-11). 필자는 제16장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깨닫고 나서야 가을 절기에 속하는 대속죄일을 풀어 갈 실마리를 찾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레위기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개인과 제사장의 성결을 자세히 가르친다. 제18장부터 20장까지는 개인의 성결례를 말한다. 먼저 제18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금지된 성관계와 동성 간의 성행위와 짐승과의 성행위를 멀리해야 했다(레 18:3-23). 제19장은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이웃에게 거짓과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계명을 다시 들려준다. 제20장은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지 말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따르지 말라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제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로서, 제사장이 시체와 접촉하는 일, 결혼, 몸의 흠, 드릴 제물의 흠을 다룬다. 하나님께 가까이 서서 백성을 섬기는 제사장일수록 더 철저하게 깨끗해져야 한다. 오늘 주의 종에게도 얼마나 깊은 회개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23장부터 27장까지는 온 백성이 함께 지켜야 할 단체적인 성결례가 펼쳐진다. 그중에서 제23장은 안식일과 절기의 성결례, 제24장은 성막 안에서의 제사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등잔과 진설병을 다루고, 성막 밖에서의 일반백성의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일과 그에 대한 판결과 동해보복법을 다룬다. 그리고 제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를 다룬다. 그리고 드디어 제26장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맞설 때 사람과 땅에 임할 단체적인 성결례를 다룬다. 제사장 개인의 성결과 백성 개인의 성결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한 민족이 함께 행해야 할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위한 제사를 단번에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 피를 의지하여 믿은 뒤에는 죄를 자백하는 회개로 계속 정결해져야 한다. 필자가 전하는 회개에는 죄가 행위책에 기록된 것을 씻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는 일이 포함된다. 피와 물로 씻는 정결 뒤에는 성령께 순종하는 성결의 삶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말하면서 자백을 버릴 수 없고, 회개를 말하면서 순종을 버릴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에 등장하는 정결례와 성결례를 요한일서가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음을 본다.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 물과 피와 성령이라고 말한다(요일 5:6-8). 이 세 가지를 읽을 때 필자는 레위기가 가르친 정결과 성결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려면 물과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께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킹제임스(KJV) 성경의 해당 대목을 보면, 성부&amp;middot;성자&amp;middot;성령, 이 셋이 하나라는 말씀으로 바뀌어 있다. 이는 개역개정이 말씀하는 바, &amp;lsquo;성령과 물과 피&amp;rsquo;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성경 원문에 더 가까운 대문자 사본에는 &amp;#39;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amp;#39;라고 되어 있지 않고, &amp;#39;성령과 물과 피&amp;#39;가 하나라도 되어 있다. 그러므로 후대에 나온 소문자 사본을 번역할 킹제임스 성경 우월주의에 빠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한일서에서 정결과 성결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들은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깨끗해져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경험을 보더라도, 내 몸에 있는 모든 악한 영의 집을 다 파괴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들어왔던 영은 다시 들어오려 시도하며, 사역의 자리에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날마다 회개하며 예수님의 피로 자신을 덮고, 귀와 눈을 살피며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축사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눈을 점검하면, 벌써 눈이 많이 흐려져 있음을 본다. 이것은 필자가 겪고 전하는 사역의 실제다. 무당의 신기를 지닌 사역자가 예수라는 간판만 달고서 능력을 행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능력의 겉모양보다 자백하는 회개와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자는 아침마다 귀를 비벼 보고 눌러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귀에는 제사의 영이 달라붙어 믿음을 방해하고, 의심을 갖게 하며, 불신앙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의 아픈 곳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면서 여전히 필자에게 달라붙으려고 시도하는 영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말씀을 열심히 준비하고 새벽 두 시쯤 잠자리에 들 때에 눈을 눌러 보면 밝은 빛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회색빛일 때가 많다. 이는 필자가 사역 가운데 겪은 개인적 체험이다. 그러므로 한 번 자신이 깨끗해졌다고 해서 그리고 한 번 축사를 받았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시간이 성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필자는 자신의 삶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공동체의 정결과 성결에 있어서,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안식년과 희년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알아야 왜 공동체의 정결과 성결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레 25:2-7). 해마다 안식년이 되면 그해에 저절로 자라난 것은 땅을 가진 소유주가 독점할 수 없고, 자기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품꾼과 함께 사는 사람, 가축과 들짐승도 먹게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안식년이 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어 소출을 거두어들이는데, 자기 혼자만 땅을 쉬게 한다면 손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함께 성결례를 지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땅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전체가 행동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도 자기만을 위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내 자신 안에 있던 악한 영의 집들이 파괴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다. 필자를 통해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아직 남아 있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자가 쓰러지면 양 떼가 흩어진다. 또한 일반 성도가 자기만 괜찮아졌다고 회개를 그만두거나 이웃의 짐을 외면한다면 공동체의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함께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까닭도 각자의 몸과 가정에서 시작한 회개가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를 살리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안식년과 회개가 같은 방식의 의식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태도로는 공동체의 성결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레위기 26장 1절과 2절은 이 공동체가 먼저 지켜야 할 기본을 말한다. 우상을 만들거나 석상 앞에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경외해야 한다(레 26:1-2). 하나님을 향한 관계가 무너지면 땅을 쉬게 하는 일도, 이웃을 바르게 대하는 일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3절부터는 그분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라고 한다. 순종은 예배당 안의 말에 머무르지 않고 땅을 경작하는 법, 서로를 대하는 법, 온 민족이 살아가는 법으로 확장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명기 28장도 레위기 26장과 거의 비슷하게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신명기 28장 제1절부터 제14절까지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복을 말한다. 순종하면 성읍과 들, 자녀와 가축,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 들어감과 나감에 복이 임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게 하시며, 백성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신 28:1-14). 그리고 이어지는 제15절부터 제68절까지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훨씬 길게 들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성읍과 들과 몸의 소생이 저주를 받고, 질병과 빼앗김과 흩어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긴 경고 속에서 하나님이 백성의 돌아옴을 기다리시며 거듭 깨우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번 시간에 다루는 &lt;strong&gt;레위기 26장의 말씀은 신명기 28장과 맞닿으면서도 특별히 붙잡아야 할 포인트&lt;/strong&gt;가 두 가지 정도 있다. &lt;strong&gt;하나는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징계(懲戒, discipline)가 불순종할수록 단계별로 더 무거워진다&lt;/strong&gt;는 점이다. 하나님은 단번에 불순종한 사람과 민족을 끝내지 않으시고 징계 속에서도 &amp;lsquo;그렇게까지 되었는데도&amp;rsquo; 왜 순종하지 않는지 계속해서 물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레 26:18, 21, 23, 27). 그리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원수의 땅에 끌려간 백성이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출 때 언약(言約, covenant)을 기억하여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lt;/strong&gt;이 있다(레 26:40-45). 이것은 신명기 28장에는 나오지 않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야말로 정결과 성결의 문맥에 왜 레위기 26장이 들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게 해 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사람과 땅에 대한 공동체의 정결례가 함께 들어 있다.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나라가 평안을 누리고 땅도 소출을 낼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병과 패배가 오고, 땅은 비와 열매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역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그때에 땅은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쫓겨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그 땅도 기억하신다. 공동체의 운명을 한 사람의 경건이나 한 번의 행사로 줄여서는 안 된다. 제사장과 백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복은 사실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는 땅에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규례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백성에게 철을 따라 비를 주시므로 땅은 산물을 내고 나무는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레 26:3-4). 타작이 포도를 딸 때까지 이어지고, 포도 따기가 다음 파종 때까지 이어진다. 묵은 곡식을 다 먹기도 전에 새 곡식이 들어온다(레 26:5, 10). 땅의 복은 하늘의 비와 밭의 결실과 풍족한 식탁으로 드러난다. 사람이 땅을 소유했다고 해서 그 열매를 자기 힘만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주시는 복도 매우 구체적이다.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고 평화롭게 누우며, 사나운 짐승과 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26:5-6). 전쟁에서는 다섯이 백을, 백이 만을 쫓는다(레 26:7-8). 하나님이 돌보시므로 백성은 번성하고 창대해지며 언약을 누린다(레 26:9). 그러므로 순종의 복을 돈 한 가지로만 읽지 말아야 한다. 거주할 안전, 원수를 이기는 힘, 다음 세대의 번성, 하나님의 돌보심이 모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땅의 산물과 사람의 평안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이 모든 복의 끝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lt;/strong&gt;은 무엇인가? 필자는 제11절과 제12절을 읽으면서 답을 찾았다. 하나님은 성막을 백성 가운데 세우고 그들 가운데 행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레 26:11-12). 곡식이 많은 것보다 더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이 임재(臨在, presence)가 사람을 참으로 복되게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멍에의 빗장을 부수어 바로 서서 걷게 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다(레 26:13). 이것은 땅을 하나 더 얻는 복과 견줄 수 없다.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시면, 내가 하는 말과 섬김을 통하여 살아 계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악한 영을 만나도 그 앞에서 떨지 않고 사람을 해방하는 통로가 된다. 이것이 필자가 붙잡은 순종의 최고의 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집이나 땅을 샀다고 간증할 수도 있다.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그러한 소유는 몇 년 뒤 잃을 수도 있다. 소유의 많고 적음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재서는 안 된다. 필자가 이제 동탄에 있든 다른 고장에 있든,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든지 성령께서 필자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면 어디서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열매는 악한 영도 흉내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사람 안에 실제로 거하시는 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복과 땅의 복을 구하면서도 그 모든 복의 중심인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레위기 26장을 읽어보면, 순종의 복에 대한 말씀보다 불순종의 징계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순종한 백성을 처음부터 원수의 땅에 던져 없애시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규례를 멸시하며 언약을 배반할 때 징계를 시작하시고, 그 징계를 받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 더 무겁게 치시는 것이다(레 26:14-18). 본문에는 일곱 배나 더 징벌하겠다는 경고가 거듭 거듭 나온다(레 26:18, 21, 24, 28).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자들에게 여러 단계를 걸쳐서 치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고통의 자리에서도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이 순서를 읽어야 끝에 나오는 회복에 관한 약속도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징계의&amp;nbsp;첫 단계는 제14절부터 제17절까지&lt;/strong&gt;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해질 것이며, 애써 뿌린 씨의 열매를 대적이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싸움에서는 패하고 미워하는 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쫓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했다. 병에 걸리고 빼앗기며 패배하는 것이다. 필자는 신명기 28장에서도 폐병과 열병, 여러 질환이 불순종의 경고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신 28:21-22, 27).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한 자에게 내려지는 성경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단계는 제18절부터 제20절까지&lt;/strong&gt;다. 앞의 재앙을 겪고도 청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백성의 교만을 꺾으시고 하늘을 철과 같게, 땅을 놋과 같게 하신다고 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이 굳어 산물을 내지 못하며,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땀 흘려 수고했지만 거둘 것이 없는 가난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면서도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면 땅의 결실을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몸과 전쟁의 문제로 경고받다가 이제 일상의 먹을거리와 땅의 소출까지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단계는 제21절과 제22절&lt;/strong&gt;이다. 또다시 하나님을 거슬러 청종하지 않으면 들짐승이 달려들어 자녀를 움키고 가축을 멸하며 백성의 수효를 줄인다고 했다. 그러면 길마저 황폐해진다고 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곳에서는 밤에 되면 들짐승 특히 늑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들짐승의 소리를 두려워했다. 어머니와 함께 산에 갔을 때에는 호랑이 똥이라고 알려 주신 것도 보았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전기가 늦게 들어온 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으며, 물에 튀어 들어간 벼룩을 잡고 살았다. 보리밥을 먹던 때에 쌀밥을 입에 넣으면 아까워서 오래 씹었다. 필자가 겪은 그 시절의 두려움과 궁핍을 떠올리면 자녀와 가축을 들짐승에게 빼앗기는 경고가 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단계는 제23절부터 제26절&lt;/strong&gt;이다. 앞선 일을 당하고도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면 칼이 임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성읍에 모여 피하려 할 때에도 염병이 퍼진다고 했다. 양식이 끊어져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어도 배부르지 못한다(레 26:25-26)고 했다. 전쟁, 전염병, 기근이 함께 온다. 성벽 안에 숨었다고 안전하지 않고, 떡이 조금 있다고 배부른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경고를 계속 거부하면 징계가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필자가 자란 전라도에는 &amp;lsquo;단골네&amp;rsquo;라고 부르던 무당이 동네마다 있었고 외할머니의 할머니도 무당이었다. 필자는 이런 가문의 후손에게 이어진 고통을 실제로 겪어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단계는 제27절부터 제39절까지&lt;/strong&gt; 이어진다. 그래도 또다시 청종하지 않으면 포위와 기근이 극심해져 아들과 딸의 살을 먹는 참혹한 지경에 이른다(레 26:29)고 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섬기던 산당과 분향단을 부숴버리고,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신다고 했다. 땅을 황무하게 하며 백성을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신다(레 26:30-33)고 했다. 마지막 징계는 단지 개인의 질병이나 가난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땅에서 쫓겨나 원수의 땅에 살게 되는 것이다. 남은 자도 자기 죄와 조상의 죄 때문에 그곳에서 쇠잔해질 수 있다(레 26:38-39). 이것이 불순종이 끝까지 이어질 때 맞는 최악의 결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이 경고를 읽으면서 필자는 우리 민족을 돌아본다. 조선시대 적어도 350년간 조상에게 제사하는 일을 효도의 의무로 여기던 민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배 아래 넘어가 35년을 지내야 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필자는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 조상 제사를 끊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거듭 외치고 있다. 나라가 아직 있다고,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을 붙들고 미래에 닥칠 불행을 사서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려야 한다. 필자가 공산화와 동성애를 경고하고, 회개하지 않는 교회를 향하여 경고하는 까닭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 끝에 민족적 무너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말씀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순종여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6장이 특별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의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내리는 징계와 땅이 누릴 안식이 공동체가 지키는 성결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땅은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에 맡겨진 땅은 안식년이 되어도 자기 자신을 쉬게 하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달려 있어서 멀리 떠나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땅에 안식을 주려면, 사람을 그 땅에서 옮기시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 원수의 땅에 사는 동안 자기들의 땅은 황무하여 비로소 쉬게 된다(레 26:34-35). 이것은 또한 제25장에서 명령하신 안식년을 이스라엘 백성이 거역한 결과이기도 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땅의 주인이 대체 누구인지를 묻는다. 이스라엘 사람이 전쟁하여 그 땅을 차지했으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그 땅을 계속 경작하여 수확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쉬게 해 주어야 한다. 고로 제25장의 안식년에는 땅의 자생 소산을 주인만이 차지하지 말고, 종과 품꾼, 가축과 들짐승도 먹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러나 만약 주인의 욕심이 이 질서를 깨뜨린다면, 사람도 땅도 함께 손상될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람을 내보내 땅에 안식을 주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리지 못한 쉼을 땅이 황폐한 상태에서 누리게 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람과 땅의 공동체적인 성결례는 따로 떨어진 두 의식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도 제때 쉬고 열매를 낸다. 사람이 탐욕과 불순종으로 땅을 몰아붙이면 하나님은 소출을 그치게 하고 마침내 거주하는 사람을 쫓아버리신다. 레위기 26장 제34절과 제35절 뒤에는 원수의 땅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공포가 나온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며 서로 넘어진다고 나온다(레 26:36-37). 자기 땅에서는 땅을 쉬게 하지 않아 버림받고, 남의 땅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두려움 속에 쇠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순종의 최종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순종의 복에서 약속받은 평안한 거주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자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땅을 다시 얻는 길은 무엇인가? 무력으로 되돌아와 다시 그 땅을 점유하는 데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그 땅에서 옮기셨는지를 깨닫고 죄를 자복해야 한다. 땅의 문제는 사람의 마음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땅을 안식하게 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땅을 기억하시면 사람도 다시 돌아올 길을 얻는다(레 26:40-43). 안식년을 지키는 일도, 원수의 땅에서 회개하는 일도 공동체의 순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결을 개인의 마음속 문제로만 좁히면 이 장의 절반을 잃어버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원수의 땅에 끌려갔다고 모든 길이 닫힌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제40절과 제41절에 보면,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셨다. 즉 회개할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여기서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참된 회개의 네 요소가 있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회개는 자기의 죄악과 자기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는 것&lt;/strong&gt;이다. 제39절은 남은 자가 자기 죄로 쇠잔하고 조상의 죄로도 쇠잔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죄만 입에 올리고 조상에게서 이어져 온 우상숭배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 회개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죄가 후손에게 미친 영향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씻음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왜 이런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lt;/strong&gt;이다. 백성은 자기가 우연히 원수의 땅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했으므로 하나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끌어가셨음을 알아야 한다(레 26:40-41). 고통만 빨리 끝내 달라고 구하면서 그 원인을 알려 하지 않으면 같은 길로 돌아간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 하나님 말씀에 맞선 완고함을 깨닫는 것이 회개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먼저 남을 탓하거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기보다 자기 마음과 행위를 말씀 앞에 놓아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지는 것&lt;/strong&gt;이다. 자복과 깨달음이 있어도 마음속에 &amp;lsquo;충분히 회개했으니 이제 복을 내놓으셔야 한다&amp;rsquo;는 요구가 남아 있다면 아직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겸손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성도들이 회개기도문을 천 번, 이천 번 회개하면서 자신이 읽은 숫자를 하나님께 들이밀면서 왜 변화가 없느냐고 따지는 모습을 경계한다. 가문마다 쌓인 죄와 그 영향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회개했던 회개의 횟수를, 하나님께 값을 치르는 계산서처럼 내밀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낮아져야 자신의 죄를 진실로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는 것&lt;/strong&gt;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도 놀랐다. 징계가 시작되자마자 억울하다고 대항하는 사람의 태됴는 결코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개의 자세가 아니다. &amp;lsquo;저지른 죄로 이런 고통을 당해도 마땅합니다&amp;rsquo;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를 달게 받으며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 이는 형벌을 좋아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참된 회개의 기도가 된다(레 26:40-4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40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회개의 태도는 서로 바꾸거나 하나만 떼어 놓을 수 없다.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왜 왔는지 깨닫고, 마음을 낮추며, 받아야 할 형벌을 기쁘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 네 가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고, 그 뒤에는 같은 죄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회개를 지루한 반복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사람을 씻어 다시 세우시는 복된 길이 그 안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가 자신이 잘못했음을 네 가지를 통하여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그를 대하시는가? 제42절을 보니, 하나님은 자신이 야곱과 맺은 언약, 이삭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제45절에서도 애굽에서 이끌어낸 조상과 맺은 언약을 다시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기 백성을 향해 하신 약속을 다시 이행하시고 땅과 사람의 회복을 이루신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약속을 이어 가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것이다(레 26:42, 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약속했던 세 사람의 이름을 야곱, 이삭, 아브라함처럼 거꾸로 말한다. 필자는 이 거꾸로 놓인 순서를 읽으며 하나님이 회개한 자에게 넉넉히 주시려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사람, 이삭에게는 야곱 한 사람뿐이었지만 야곱에게서는 열두 아들에게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좋은 땅 비유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결실의 축복은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아니라 백 배와 육십 배와 삼십 배의 결실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마 13:8). 그렇다. 필자도 이 숫자와 이름의 순서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회개한 백성에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숫자의 크기만 붙들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회개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관한 말에만 멈추지 않는다. 백성이 원수의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리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아주 멸하지 않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26:44).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부정의 약속이 얼마나 우리에게는 큰 소망인가! 심한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에게 결코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올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먼저 언약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44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말씀 앞에서 천국의 성 밖에 이른 사람에게까지 소망을 품어본다. 성 밖에서 자기 죄의 형벌을 달게 받는 이들이 언젠가는 다시 성 안에 들어오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떤 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레위기 26장의 약속을 읽다가 &amp;lsquo;아주 멸하지 아니하리라&amp;rsquo;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필자가 품게 된 조심스러운 소망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성도들은 죽은 뒤에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미루지 말고, 지금 이 땅에 있을 때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지금 아예 눈물로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 형벌을 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뒤에 소망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그대로 믿고 걷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과 우리와 맺은 약속을 이루신다. 필자는 눈에 뚜렷한 증거가 보이지 않고 귀에 특별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에도 말씀을 믿고 걸어왔다. 돌아보니 주님이 그 말씀대로 이끄셨다. 우리도 회개하여 정결해지고 순종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기억하시고 땅을 기억하시며, 자손이 번성하도록 돌보신다. 필자는 성도들이 이 회복을 몸과 가정과 공동체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장차 천국의 기업(基業, inheritance)을 누릴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하다가 지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아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낙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자신의 형벌을 달게 받으며 이 땅에서 돌이키고, 오늘 각자에게 맡기신 사람을 위해 다시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는 성도 한 사람이 있을 때에 그것은 다른 이에게 회개의 본이 될 것이고, 그 가정과 교회가 함께 정결과 성결의 길로 나아가게 될&amp;nbsp;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레위기 26장에서 사람과 땅에 주시는 순종의 복, 불순종에 따른 다섯 단계의 징계, 땅이 누리는 안식, 네 요소를 갖춘 회개와 언약에 따른 회복을 살펴보았다. 사람의 복과 땅의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일이다. 반대로 끝까지 거역하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고 원수의 땅에서 쇠잔해지고 말 것이다. 그 사이에서 하나님은 여러 번 징계하시며 우리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 중의 복이다. 우리가 형벌을 받을 때에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계의 까닭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낮추며, 죄의 형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돌이켜 회개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정결함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3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hatGPT Image 2026년 9월 25일 오전 12_19_3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4d08594e911dc9b2dbe7ddc8eaeddf9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9df7f489e95d42a05e5c86225b4e3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3a20d31a8a0f7dd2d14c498b975ddc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04e174c5469d0bfb38ef0f2d89b60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293852864d5e819219646430f34dd8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608e6cfdbcbfd6b16c15f27f3feff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877ea3dfb338dd02229121c5a8902d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88a88a237d7e8a75a39eb1e76e25b3a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9532f24c5ab82a3a298b69af80cb0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42e079a1cd78bd745655ce04ff768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5ffb4c271a4ba4a77a7c79b33563f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fbc422d0815c9b505b4145f82120a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75c5e3f813310e553c5a7a6f5841e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레위기_26장_순종과_성결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a76705ab5972abbe0efe22eb831120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성결의_여정_순종과_회복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3a86ae9b6c42e8cd1beadf9f2843f1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fa0f51fd8ed88953522e16405fb20b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d1c8e69feeb12eee1e5db1cace8dd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b3cdc7d4283591186e3b0bf9041d5b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a4c9e4f53ca5c5e67ab9450338cc9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099e8932c32bcb54290a7440616857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f5bfb95fb14ae543e9af0d2537b7b3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ed2f5aa4b83eeeee572892b180b207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287b2c78f2be547743df1e202150d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a3846793528ecf8e72af56591a20c3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01ed4aac820e8a10d36914f3b9d874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0431b4cd7243d91dd5b76edf0f7d7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cbc685118d37daf5c3772856a9708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87ad59a7dcf31835359729c83d453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ebecb9d8ad14ddbe9aedbf1f8449f7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2dcfae13cd9fb409429bd4f6d957cd5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강해"/><category term="성결법"/><category term="순종"/><category term="회개"/><category term="정결"/><category term="속죄"/><category term="공동체성결"/><category term="하나님의언약"/><category term="동탄명성교회"/><category term="정보배목사"/>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2026-09-1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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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6T21:01:27+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17:49:1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1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J8C_9uSBuI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 4. 면제년은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kJ8C_9uSBu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J8C_9uSBu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br /&gt;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br /&gt; 4.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br /&gt; 5.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6.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7.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5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안식년과 희년&lt;/strong&gt;이 단순한 휴식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거룩함을 회복하는&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모든 땅과 인간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소유&lt;/strong&gt;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탐욕으로 잃어버린&amp;nbsp;&lt;strong&gt;자유와 기업을 원상태로 회복&lt;/strong&gt;시키는 &amp;#39;특사 조치&amp;#39;와 같은 은혜를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amp;nbsp;&lt;strong&gt;고엘(기업 무를 자)&lt;/strong&gt;&amp;nbsp;제도를 현대의&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와 연결하여, 가까운 친족이 대신 빚을 갚아주듯 우리가 조상과 자녀를 위해 대신 회개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영적인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lt;/strong&gt;을 역설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amp;nbsp;&lt;strong&gt;하늘의 가족과 기업을 되찾는 것&lt;/strong&gt;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축복임을 일깨워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5:1-5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성결법(레 18~27장)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다룬다. 먼저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각각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을 가르친다. 그러나 제23장부터 제27장까지는 온 회중이 함께 모이고 함께 순종함으로 이루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 제23장에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지킴으로 거룩해지고, 제24장에서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돌보아 거룩해지며, 제25장에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온 백성이 함께 시행함으로 거룩해짐을 말씀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것으로 온전하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안식일과 절기에는 성회를 열어 함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들어야 한다. 혼자 부르는 찬양과 온 회중이 한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은 다르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예배의 풍성함이 커지고, 천사들의 도움과 마음을 치유하는 은혜도 강하게 임한다. 개인적인 회개(悔改, repentance)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함께 모여 순종하는 단체적인 성결례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막 안에서의 봉사도 제사장만의 일이 아니었다. 백성이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으로 등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을 차렸다. 주의 종이 성령의 불을 밝히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려면 성도도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과 백성이 서로의 사명을 다할 때 공동체 전체가 빛을 받고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5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는 이 협력을 땅과 경제와 가족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추가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희년(禧年, jubilee)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原狀回復)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גֹּאֵל, go&amp;rsquo;el) 제도는 장차 우리를 되찾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규례들을 실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공동체 전체가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자유와 회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 규례의 영적 실체를 이루셨고, 지금은 회개하는 자가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이 왜 함께 필요한지, 등잔대와 진설병이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은 무엇을 선포하는지,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그리고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결례 중에서도 개인적 성결례(레 18-22장)는 각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 백성은 이방인의 음란과 우상숭배를 버려야 했고, 제사장은 죽음과 부정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거룩한 제물과 성물을 바르게 다루어야 했다(레 18:1-22:33).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성결을 대신할 수 없다. 자기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각자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동체의 성결례도 필요하다(레 23-27장). 만약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거룩함을 지키기가 어렵다. 한 사람만 안식년을 지켜 밭을 쉬게 하는데 이웃은 계속 농사를 짓는다면, 순종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계속 채무자를 독촉하고 종을 부린다면 하나님의 질서가 공동체 안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때에 함께 멈추고 함께 놓아주며 함께 회복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레위기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단체적인 성결의 첫 형태다. 백성은 정한 날에 성회로 모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다.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을 제외한 절기에는 창조와 출애굽과 추수의 은혜를 기뻐하며 축제를 누렸다.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온 공동체가 기억하고 감사할 때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예배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함께 닮아 가는 통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교회도 같다.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회개할 때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준다. 낙심한 사람은 공동체의 찬양 속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도의 간증과 순종을 보며 깨닫는다. 하나님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셨다(고전 12:12-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단체적 성결례는 획일적으로 똑같은 일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일을 하고 백성은 백성의 일을 하되, 서로의 역할이 한 목적을 향해야 한다. 백성은 기름과 곡식을 드리고 제사장은 등불과 떡을 잘 관리해야 한다. 성도는 헌신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주의 종은 기도와 연구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한 지체가 자기 역할을 버리면 공동체 전체가 약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은 결국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이 땅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질수록 천국에서도 주님 가까이에 나아갈 자로 준비된다. 한 사람만 뜨거워지고 다른 사람들은 차가운 교회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회개하고 충성하여 함께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정결(淨潔)한 마음과 공동체의 질서 있는 순종을 함께 받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4장의 &amp;#39;등잔대&amp;#39;와 &amp;#39;진설병&amp;#39;은 성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체적 성결례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등잔대의 등불을 간검하는 것부터&lt;/strong&gt; 살펴보자(레 24:1-4).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봉사해야 했지만 필요한 재료는 백성이 다 가져왔다. 백성이 감람나무를 가꾸고 감람을 찧어 순결한 기름을 드리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등잔을 살피고 심지를 손질하여 밤새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레 24:1-4). 제사장의 봉사와 백성의 헌신이 합쳐져야 성소가 밝아졌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ㄷ게 이때의 감람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등잔불은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빛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성도도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요 1:9; 8:12; 마 5:14-16). 교회가 어둠을 밝히려면 성도는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을 받아야 하고, 주의 종은 공동체 안에서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통치를 받지 않으면 세상과 구별된 빛을 낼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피땀 흘려 드린 헌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 헌금 가운데 일부로 사례를 받는다면 성도의 노동과 헌신을 기억하며 더 충성해야 한다. 백성이 힘들게 마련한 감람기름을 제사장이 허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목회자는 성도가 드린 시간과 물질을 말씀과 기도와 영혼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불을 밝히고 진리를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그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제는 진설병을 진설하는 규례를 살펴&lt;/strong&gt;보자(레 24:5-9). 등잔불의 간검 외에도 제사장이 성막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진설병을 진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등잔불과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성막 안에서 진행되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두 번째 사례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 떡을 진설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운 가루를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 첫 열매이든 십일조이든지 하나님께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열두 덩이의 떡을 만들어 두 줄로 떡상 위에 놓아야 했다. 이때 열두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상징한다. 제사장은 온 백성을 어깨에 메듯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어느 한 지파도 굶지 않도록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했다(레 24:5-9; 출 28: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묵은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진설해야 했다.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도 매주 신선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이전에 전한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간에 성도들이 먹어야 할 말씀을 기도와 연구로 새롭게 차려야 한다. 성도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이 자라지 못하고 작은 환난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명의 떡을 꾸준히 먹을 때 영적 내공이 쌓이고 가정의 파수꾼으로 담대히 설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떫은 감을 된장물에 우려 떫은 맛을 빼고 먹었다. 먹을 것이 귀했기에 그것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에게 공급하는 말씀까지 묵은 것을 계속 우려내어 먹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영원하지만 공동체가 지금 들어야 할 적용과 깨달음은 신선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의 종은 말씀의 큰 우물에서 계속 길어 올려 성도가 배불리 먹도록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물린 떡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이 거룩한 곳에서 먹게 했다. 이는 말씀을 충성스럽게 진설하는 제사장과 그 가족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원리도 함께 보여 준다. 주의 종이 세상일로 인하여 지쳐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성도도 굶고 자신도 먹을 떡을 잃는다. 반대로 성도를 살리는 생명의 떡을 풍성히 공급하면 공동체의 헌신을 통해 목회자와 가족도 돌봄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목회자 혼자 잘해서도 안 되고 성도 혼자 열심을 내서도 안 된다. 성도는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드리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소중히 받아 성령의 빛과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몫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밝아지고 자라며 거룩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성막 밖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자와 이웃의 형제를 살인을 행한 자에게는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그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죽이라&lt;/strong&gt;고 하셨다(레 24:10-24).&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은 어떤 단체적인 성결례인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들 그리고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의 성결례를 언급하신 후에, 두 가지 단체적인 성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단체로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이었다(레 25:1~2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어떻게 안식년을 지켜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육 년 동안 농사를 하고 나서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해에 땅을 쉬게 하라는 규례였다(레 25:1-7). 그러면 그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해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저절로 난 곡식과 포도는 자기 소유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레 25:1-5).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생계를 막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땅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되었고,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찬 뒤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유권 자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살면 계속해서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그 땅이 자기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 저절로 자신 소출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주인만이 그것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절로 자란 것들은 땅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의 남종과 여종, 그의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을 수 있었고, 또한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 해는 주인이 그 땅에서 농사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그 땅의 산물을 가리켜 &amp;ldquo;내가 수고해서 얻은 내 것&amp;rdquo;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경험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 규례를 한 사람에게만 지키라고 한다면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나만 밭을 놀리고 이웃은 계속 소출을 거둔다면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이 안식년이 되면 그 해에는 모두 함께 쉬라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안식년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성경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켰다는 대목을 발견하기 어렵다. 역대하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서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게 했다고 언급하였다(대하 36:21). 그리고 신약 시대가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안식년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드러내셨다. 즉 당신이 안식일의 주라는 것을 선포하시면서(마 12:8), 그날 병든 자를 고쳐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시어,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마귀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켜 주셨다(눅 13:16).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셨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1:28-3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건 &lt;strong&gt;십일조도 마찬가지다&lt;/strong&gt;.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권을 믿고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신만 드린다고 생각하면 손해처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단체적 성결은 서로의 순종을 지지하여 탐욕을 이기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땅의 소유권에 관한 말씀은 &lt;strong&gt;우리의 몸과 재물과 재능에도 적용&lt;/strong&gt;된다. 건강할 때에는 몸이 내 것처럼 보이고, 지혜와 노래와 기술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병이 들거나 힘이 사라지면 그것이 맡겨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과 시간과 지식도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기업이다. 내 것처럼 움켜쥐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성경을 연결하여 깨달은 바에 따르면 흙으로 지음받은 육체도 하나님께 속한 땅이다(창 2:7). 귀신이 죄를 틈타 사람의 몸에 들어와 괴롭힌다 해도 그 몸의 영원한 소유자가 될 수 없다. 안식년이 되면 땅을 쉬게 해야 했듯이, 하나님은 자기 소유인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악한 영의 압제에서 놓이게 하기를 원하신다. 병이 심해졌다 약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으며, 마귀가 사람을 끝없이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안식년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주인을 인정하는 데&lt;/strong&gt; 있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고, 맡기신 것을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과 은사를 주님의 뜻에 돌려 드리는 것&lt;/strong&gt;이다. 땅을 쉬게 하는 순종을 통해 온 백성은 자신들이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안식년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7년에 면제년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레위기에는 나오지 않고 신명기 15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매 칠 년 끝에 동족의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다(신 15:1-18). 안식년은 국가 전체가 같은 주기로 일곱째 해를 지키는 규례이지만, 빚과 종살이의 면제는 각 관계가 시작된 때부터 계산해서 7년째에 지키는 공동체 성결례였다. 즉 돈을 빌렸더라도 일곱째 해가 되면 채권자는 더 독촉하지 말아야 했고(신 15:1-11), 동족이 종으로 팔려 여섯 해를 섬겼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던 것이다(신 15:1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규례는 희년에도 지속되어야 했다. 형제가 가난하여 곁에 머물면 이자를 받아 이익을 남기려 하지 말고, 거류민과 동거인처럼 함께 살게 하라고 하셨다(레 25:35-37). 종을 놓아줄 때에도 빈손으로 보내지 말도록 했다. 양 떼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넉넉히 주되, 하나님께서 복 주신 만큼 나누어 새 삶을 시작하게 하라고 하셨다(신 15:13-14). 면제는 채무자를 겨우 풀어놓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반까지 마련해 주는 은혜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모든 사람은 빚을 끝까지 받아내기를 원하고, 값없이 일하는 종을 계속 붙들어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만 면제를 요구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공동체가 함께 면제년을 시행하게 하여 어느 집이나 같은 기준으로 형제를 놓아주게 하셨다. 개똥이네와 소똥이네가 면제했다면 말똥이네도 면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공동체 가운데 영구적인 종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면제년를 실시하라고 한 것인가? 그것의 근거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셨으므로 그들은 사람의 영구적인 종이 될 수 없고, 언제나 하나님의 종이었다. 채권자와 주인은 잠시 그들의 노동과 채무 관계를 맡았을 뿐 한 사람의 미래를 영원히 붙잡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동시에 마귀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붙잡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이 죄를 지어 마귀의 종이 되고 악한 영에게 시달릴 수 있지만 사람의 참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탄은 죄의 빚을 붙들고 사람을 영원한 채무자처럼 부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값을 치러 우리를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다(막 10:45; 벧전 1:18-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면제년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셨다. 즉 &amp;ldquo;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amp;rdquo;라고 번역된 말을 보면, 빚을 탕감해 주라는 뜻이다(마 6: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이 70&amp;times;7의 용서는 다니엘의 70이레가 품은 면제와 희년의 정신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용서에는 계산의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면제는 무책임과 게으름을 장려하는 제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자유를 기억하여 형제의 미래를 빚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명령이다. 나도 애굽에서 구원받은 종이었고,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탕감받았음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면제년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경제와 노동의 관계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성결례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에 의해 희년은 어떤 제도인가? 이 규례는 안식년과 면제년을 확대하여 완전한 원상회복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일곱 번의 안식년, 곧 7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뒤 오십 년째가 되면 그 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고 하셨다. 안식년은 49년째 되는 해의 일곱째 달 열흘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어 자유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amp;lsquo;요벨&amp;rsquo;(יוֹבֵל)이라는 말은 뿔나팔(쇼파르)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 수 있다(레 25: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희년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그 해에는 네 가지 일을 해야 했다. &lt;strong&gt;첫째, 49년째 안식년에 이어 50년째에도 땅을 쉬게&lt;/strong&gt; 했다. &lt;strong&gt;둘째,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lt;/strong&gt;다. &lt;strong&gt;셋째, 가난 때문에 팔았던 기업을 원래 소유자에게 되돌려&lt;/strong&gt;주어야 했다. &lt;strong&gt;넷째, 흩어진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게&lt;/strong&gt;&amp;nbsp;해야 했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휴식의 해가 아니라 땅과 신분과 기업과 가족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lt;strong&gt;자유와 해방의 해&lt;/strong&gt;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부득이 땅을 매매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희년까지 남은 햇수에 따라 값을 정하도록 했다. 희년이 오래 남았으면 여러 해의 소출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값을 많이 받고, 희년이 가까우면 적게 받아야 했다(레 25:14-17). 땅 자체를 영원히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다음 희년까지 얻을 소출의 권리를 거래한 셈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 많은 땅을 사들여도 희년이 되면 원래 기업을 받은 가문으로 돌려주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을 지켰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희년도 역시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사렛 회당에서의 첫 공생애 취임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게 하셨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게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날 듣는 사람의 귀에 응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돌아보면 그분이 희년을 실제로 시행하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랬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몸을 고쳐 육체라는 땅에 안식을 주셨다. 죄의 빚을 자기 피로 갚아 마귀의 종을 자유롭게 하셨다.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다시 차지할 길을 여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값을 치르셨기에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실제로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 규례가 선포될 때 땅은 쉬고 종은 풀려났을 것이며, 기업과 가족은 원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영적 원리에 따르면, 그렇게 되었다면 귀신도 일곱째 해마다 사람의 몸을 놓아주어야 했고, 희년에는 사람이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규례를 행하지 않았기에 그 회복이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희년을 강제로 시행하셨다. 희년이란 우리가 아무리 갚아야 할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값을 해결하고 본래 자리로 돌려놓으시는 특별사면과 같은 것이다. 다만 지금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적용된다.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며, 하나님 가족의 신분과 하늘 기업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혜택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희년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민족이므로, 그들을 위한 선교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순종한 육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물질적 성전만을 위해 성도의 피땀 어린 물질을 쏟아야 한다는 세대주의적 선교는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민족에게 열어 놓으신 희년의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영혼을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그들이 하늘 기업을 얻도록 돕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만 탓할 수 없다. 우리가 채권자와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빚을 없애 주고 종을 놓아주며 산 땅을 돌려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같은 아담의 후손이며 탐욕에 기울어진 죄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부지런히 회개하여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제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돌아오기 전에 팔아서 잃어버린 토지와 가옥(집)과 종살이는 어떻게 되물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희년이 오기 전에도 무르기(히브리어로, &amp;#39;게울라&amp;#39;)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팔어버린 토지도 가능했고, 팔아버린 가옥도 가능했다. 심지어 팔아버린 사람(노예)도 가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토지 무르기&lt;/strong&gt;를 보자(레 25:23-28).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가 가난하게 됨으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았다고 치자. 그것을 자신이 다시 되돌려받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 그때에는 그 땅을 판 자기가 부유해져서 그 값을 치를 수 있다면,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을 치르고 다시 토지 무르기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에게 만약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 값을 치러 주고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 팔렸던 토지를 다시 사서 되찾아 줄 자 곧 기업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amp;lsquo;고엘&amp;rsquo;이라고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를 들어,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대표적인 고엘제도의 실행의 예인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맏며느리 룻은 아무 기업도 없는 이방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며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바로 그녀의 전남편의 기업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룻 3:9; 4:9-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사람이 종으로 팔린 사람을 무르는 경우를 보자&lt;/strong&gt;.(레 25:39-55) 이때에는 가까운 혈족이 와서 종의 값을 치르고 놓아주라고 하셨다. 먼저 형제가 무를 수 있는 것이 제일 우선 순위이고, 그다음에는 삼촌이나 삼촌의 아들, 곧 사촌이 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가까운 살붙이도 무를 수 있었다(레 25:47-49). 그러나 팔린 종에게 고엘이 되어 주려면 혈연적으로 가까워야 하고, 값을 치를 능력이 있어야 하며, 기꺼이 무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예수님이야말로 이 세 조건을 완전히 갖춘 우리의 고엘(기업무를 자)&lt;/strong&gt;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기꺼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같이 피와 살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14). 그런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우리의 죄값을 치를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보아스가 룻을 덮고 기업을 되찾아 주었듯이 예수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회복하셨던&amp;nbsp;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가옥을 무르는 규례&lt;/strong&gt;를 보자(레 25:29-34). 이때에는 집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집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 없는 마을 안쪽의 집의 경우는 토지처럼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지만, 만약 성벽 있는 성읍의 집은 판 뒤 일 년 안에 무르지 않으면 산 사람의 영구적인 소유가 된다고 하셨다(레 25:29-31). 필자는 성벽에 붙은 집을 기생 라합의 집과 같이 멀리 내다보는 파수꾼의 사명을 가진 자와 연결하여 이해한다(수 2:15). 시대를 먼저 보고 경고해야 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사명을 팔아 버렸다면 지체하지 말고 빨리 회개하여 그 사명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한 때를 넘기면 그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경우는 레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옥을 무를 수 있었다. 혹시 물어줄 사람이 없으면 희년이 되면 응당 레위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레 25:32-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고엘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필자가 교회 건물을 마련할 힘이 없었을 때 누나와 매형이 동생의 사명을 알아보고 자기 재산을 드려 교회 명의로 마련하도록 도왔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어두운 부엌에서 설거지할 때 필자가 늑대 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곁을 지켜 주었다. 혈육이 서로를 지킨 작은 사랑이 세월 뒤에는 사명을 살리는 큰 헌신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친족은 어려움에 빠진 가족의 기업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매형과 누님 가족은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어떤 인간 친족도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줄 수는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를 수 있는 참된 고엘이시다. 성도는 그분의 속량(贖良, redemption)을 받아 자유인이 되고, 이어 가족을 위해 값을 치르는 사랑과 회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고엘 제도는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속한 가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되기 전에 땅과 집과 종을 되돌려주는 고엘 제도는 자신의 혈통과 관계없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자기와 피를 나눈 가까운 친족만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lt;strong&gt; 가족을 위한 회개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것인지&lt;/strong&gt;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즉 자기 조상이 지은 우상숭배와 음란과 살인과 무속의 죄로 인하여 나와 내 후손에게 악한 영이 내려왔다면, 누가 그것을 끊어 주어 자유롭게 놓아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나의 혈통에 속한 자여야 한다. 나와 피를 나눈 가까운 사람이 내 조상의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써 저주의 사실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부모가 회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자녀가 그 죄를 찾아 회개함으로 내려온 영을 내보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녀를 위한 회개도 마찬가지다. &lt;strong&gt;자녀가 영적으로 어리고 죄에 묶여 스스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자녀의 사슬을 풀어줄 수 있다&lt;/strong&gt;.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부모가 깨끗해진 뒤 자녀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불러내어 예수 이름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의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자기 속의 영을 뽑을 때보다 자녀에게서 불러온 영을 뽑을 때 더 큰 고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 이는 가까운 혈육을 살리는 일에는 그만큼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자녀의 책임을 아예 삭제해 준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을 위한 대신 회개는 악한 영이 붙잡은 혈통의 근거를 제거하고 회개할 길을 열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후에 자녀가 깨닫고 자기 죄를 직접 회개하고 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에게 드리워진 저주의 사슬을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본인이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고엘처럼 앞서 값을 치르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찾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그 죄와 관계된 우상과 물건과 습관을 끊으며, 악한 영에게 떠나갈 것을 명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먼저 정결해져야 가족의 영을 받아서 쫓아낼 힘이 생긴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자녀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싸움을 감당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가족을 위한 회개는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을 가져오게 한다. 육체라는 땅이 안식을 얻게 하고, 마귀의 종 된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며,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주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자매가 함께 회개한다면, 한 사람만의 회복을 넘어 가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는 단체적인 성결이 일어날 수 있다. 자녀가 부모와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 부모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길이 열리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회개하면 자녀가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알면 가족이 완고하다고 해서 가족 전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자녀가 회개하지 않고 방황한다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더 깊이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원망하기보다, 나를 통하여 그 죄의 사슬을 끊으시려는 통로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먼저 구원받고 회개의 길을 알게 된 것은 가족 전체를 천국으로 이끄는 파수꾼이 되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족을 무르는(되돌리는, 회복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능력은 예수님의 피에 있다. 우리의 회개가 값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족에게 적용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참된 고엘로서 우리를 덮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여 부모와 자녀와 형제의 영적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믿은 자가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악한 영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회개가 가정으로 번지고 가정의 회개가 교회 공동체의 성결로 이어질 때 희년의 원상회복이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 그리고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가 단체적인 성결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사장과 백성, 채권자와 채무자, 주인과 종,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등잔대와 진설병은 교회의 협력을 보여 준다. 성도는 순결한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받아 성령의 빛과 신선한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면제년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희년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희년과 고엘로 오셔서 자기 피로 죄의 빚을 갚고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하늘 기업과 하나님 가족을 되찾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 적용된다.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가까운 가족을 위한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부터 정결해지고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 사람의 자유가 온 가문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맡기신 몸과 재물과 은사와 사명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아니다. 청지기로서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의 자유와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고 온 가정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후 04_59_2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ffea5128d8fe265d30b058625237fdc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a1d6a3bf2445af6f072ff5c10c326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c8490b88a7a9101efb417fe6c47e5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619926d28168a500708e3b5984343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171f08026c703a26a5ba1ea73e3fa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b7582e3633bb7e2c31d7fb79f8395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db42f0c1eb1843117db52e06727f4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c29c8bf4a05e516f7ea9bc3e895ff8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a783046b00a0ad7cd00a2c1faadf0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1a34c69ea642470058f4d9281a96c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06fa962f852c83b52512fd27faa4f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9df974ebb28d31596275cdb240cfc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fddbbe9b4f9a5790efa81a3879bce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55120bff113e94fa0500d42a68c8a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c5173d27e5693307ba990834ced92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1c26d7e8a2fe034862a2351a7f5baf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_희년_고엘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9bbf470919426a9b4cbb8b6350cf0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과_희년의_성경적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6f79de2c33fcbde0342301e5e7a42e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b14c68d460ef554af2867eb6cf2f6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5ce651205af0371c07ba8cc3294b3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76acbc70c98baf64b9ea09e1c065e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9c4eb42c8b352f576d9f4ac04382d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8d6bfc0f8803c7a07dd715208ff2f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00fc8d0ba1cda6ca92e02634a0678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f74b9e50696c50bcc39b8d05e01c8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13f25ef029af58f86f62ec2576025d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282daad3f16d472aa374821d4b124b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e108f9bdb4a53bfd0049a391368f3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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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20)] 성결법(07) 성막 안팎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레24:1~25:22)_2026-09-09(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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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09T23:25:44+09:00</published>
		<updated>2026-09-10T17:04:4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09(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0)] 성결법(07) 성막 안팎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레24:1~25: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CAZGdKPul0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정결법과 성결법은 무엇이 다르며 단체적 성결은 왜 필요한가? 2. 회개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3. 성막의 등잔불은 교회의 성령 충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4.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09(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20)] 성결법(07) 성막 안팎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레24:1~25: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oCAZGdKPul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CAZGdKPul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br /&gt; &amp;nbsp; 1. 정결법과 성결법은 무엇이 다르며 단체적 성결은 왜 필요한가?&lt;br /&gt; &amp;nbsp; 2. 회개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lt;br /&gt; &amp;nbsp; 3. 성막의 등잔불은 교회의 성령 충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4. 열두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과 제사장의 책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5.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은 공동체의 성결을 어떻게 지켰는가?&lt;br /&gt; &amp;nbsp; 6. 예수님의 원수 사랑은 보복의 악순환을 어떻게 끝내는가?&lt;br /&gt; &amp;nbsp; 7. 안식년은 희년을 향해 땅&amp;middot;몸&amp;middot;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7) 성막 안팎&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4:1-25:2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를 깊이 공부할수록 이전에 보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가 보인다. 필자에게 특별히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회개(悔改, repentance)를 계속한 뒤였다. 성경과 교회사와 여러 교단의 신학을 공부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해 왔지만, 회개하기 전의 눈으로 보던 성경과 내 속의 악한 영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는 성경은 달랐다. 말씀이 서로 연결되고, 절기의 의미와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의 비밀이 한순간에 열리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회개가 되어 깨끗한 사람이 되니 책상에서만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쉬거나 밥을 먹을 때, 일상의 한순간에 여러 말씀이 빠르게 연결되어 지나갔다. 이는 성령의 조명(聖靈의照明,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이었다. 필자의 지능이나 연구 경력만으로 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명철과 지혜를 주시고 환상과 꿈을 깨닫게 하셨듯이, 회개하여 마음이 깨끗해질 때 말씀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올라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먼저 목숨을 걸고 회개해야 한다.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이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회개하고 그리고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럼 반대로 말씀을 듣는 성도는 어떻해야 하는가? 이들에게도 역시 회개가 필요하다. 귀를 막고 졸게 하며 말씀을 길다고 불평하게 하는 영을 제거할 때에 집중하여 들을 수 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깨끗해질 때 하나님께서 차려 주신 영의 양식을 온전히 먹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4장과 25장은 대체 어떤 말씀인가? 이 말씀은 단체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의 한 부분이다. 레위기 18장에서 22장까지가, 개인적인 백성과 제사장의 성결을 가르쳤다면, 레위기 23장부터 27장까지는 단체적인 성결례 곧 온 회중이 지켜야 할 성결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 24장에서 어떤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말 밖에서의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성막 안에서는 순결한 기름으로 등잔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陳設餠, Bread of the Presence)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성막 밖에서는 신성모독(神聖冒瀆, blasphemy)을 금하고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lex talionis)으로 공의로운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위기 25장에서는 약속의 땅에서 온 백성이 함께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과 희년(禧年, Jubilee)을 지켜서 성결례를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단체적인 성결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혼자서는 온전히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래야 감사의 축제가 된다. 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희년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만 밭을 쉬게 하고 이웃은 계속 경작한다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동체가 함께 멈추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오늘날 교회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도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했음을 나타내는 공동체적 행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단체적인 성결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원받은 사람을 통하여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출생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만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으로 맺어진 배우자와 사돈의 집까지 복음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의 범위가 넓혀질 것이다(행 1:8).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정결(淨潔, purification)과 성결의 차이와 단체적인 성결의 필요성, 성막 안팎에서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례, 그리고 안식년이 희년을 향하여 땅과 몸과 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정결법과 성결법은 무엇이 다르며 단체적 성결은 왜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서로 연결되지만 강조점이 좀 다르다. &amp;#39;정결&amp;#39;은 부정해진 사람과 사물을 물과 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amp;#39;성결&amp;#39;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방인의 풍속과 구별된 삶을 살아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amp;#39;정결&amp;#39;이 더러움을 씻는 데 초점을 둔다면, &amp;#39;성결&amp;#39;은 깨끗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어 사는 단계까지 나아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전체의 흐름을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먼저 제사법이 1장부터 10장까지 나온다. 그중에서 제1장부터 제7장까지는 번제&amp;middot;소제&amp;middot;화목제&amp;middot;속죄제&amp;middot;속건제라는 오대 제사(五大祭祀, five major offerings)를 가르친다. 그리고 제8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장과 관련된 것으로, 제8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이며, 제9장은 아론이 처음으로 집례한 제사다. 그리고 제10장은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을 통하여 제사장이 얼마나 거룩해야 하는지를 경고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주로 정결법에 관한 말씀이다. 제11장은 음식과 부정한 짐승의 사체, 제12장은 해산한 여인,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제15장은 유출병의 정결을 다룬다. 제16장은 속죄일에 지성소와 성막과 분향제단을 속죄하는 규례이며, 제17장은 피를 거룩하게 다루는 법이다. 물로 몸과 옷을 씻고 피의 제사로 속죄(贖罪, atonement)하여 부정에서 깨끗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제18장부터는 성결법으로 넘어간다.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일반 백성이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할 성결을 가르친다. 우상과 무당을 따르지 않는 영적 순결과 근친상간&amp;middot;동성애&amp;middot;수간을 금하는 육체적 순결이 함께 나온다.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성결을 다룬다. 제사장은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고, 특히 대제사장은 부모가 죽어도 성소의 직무를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23장부터는 개인을 넘어 단체적인 성결로 나아간다. 제23장에 나오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온 회중이 정해진 때에 함께 모여 지키라고 하였다. 그중에 일곱 절기들은 속죄일을 제외하고는 다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절기 가운데에도 일곱 번의 안식일을 두어 일을 멈추고 함께 예배하게 하셨다. 혼자 기뻐하는 것으로는 공동체의 절기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어지는 제24장은 성막 안팎의 성결법을 다룬다. 즉 성막 안에서 등잔대와 진설병을 통한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을 통한 성결례를 다룬다. 이어지는 제25장은 온 민족이 함께 지켜야 할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정결레를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 제26장과 제27장은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복과 징계와 서원과 십일조(十一條, tithe) 등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므로 성결례를 행할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 이렇듯 레위기의 성결은 개인의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예배와 가정과 재판과 토지와 재물까지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개인적인 성결례에서만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단체적인 성결례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사람이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면 오래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날 일을 멈추고,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떡을 먹고, 함께 죄를 경계하며, 함께 땅을 쉬게 하셨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 한 사람의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을 전하는 제사장과 기름을 가져오는 백성과 함께 예배하는 회중이 모두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회개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지 이미 지은 죄를 용서받는 절차가 아니다. 회개하면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고, 마음과 생각을 가리던 장막이 걷히며, 성령께서 말씀을 비추어 주시는 통로가 넓어진다. 필자는 회개를 계속하면서 전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lt;strong&gt;가을 절기와 속죄일의 의미&lt;/strong&gt;가 분명하게 다가왔다. 같은 성경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내면의 상태에 따라 깨닫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회개가 중요한 까닭은 한 사람의 깨달음이 공동체 전체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성막의 등잔불을 관리하고 진설병을 차렸듯이,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은 성령의 빛을 밝히고 생명의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이 세상의 욕심과 죄에 사로잡혀 있다면 백성에게 맑은 빛과 신선한 떡을 공급할 수 없다. 먼저 자신이 깨끗해지고 성령께 붙들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를 위해 말씀을 맡은 주의 종들은 공부와 기도에 전념해야 한다. &lt;strong&gt;성경 원문과 역사와 교리&lt;/strong&gt;를 깊이 연구하고, 밤늦도록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이라고 하시는지 물어야 한다. 필자는 성도들에게 한 끼의 영적 양식이라도 온전히 공급하기 위하여 밤이 깊도록 연구한다. 이것이 제사장으로 받은 사명이며, 말씀을 준비하는 수고 자체가 공동체를 위한 섬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성도는 자신이 모든 분야를 다 연구하지 못한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가정과 직장과 시장의 일을 감당하면서 &lt;strong&gt;히브리어와 헬라어,&lt;/strong&gt;&amp;nbsp;&lt;strong&gt;교회사와 모든 교단의 신학&lt;/strong&gt;을 다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신 주의 종이 충성스럽게 차려 놓은 밥상을 분별하여 잘 먹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은사와 달란트와 시간과 물질로 충성할 때 하늘의 집과 승리의 면류관과 충성의 면류관이 준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악한 영이 귀와 생각을 붙들면 설교가 길다고 불평하고 중요한 순간에 졸게 된다. 그리고 들은 말씀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나 회개하여 방해하는 영을 제거하면 집중력이 살아나고, 한 말씀을 들어도 여러 의미를 깨닫게 된다. 성령께서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명철과 분별력을 주시며,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제 삶으로 옮기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는 전하는 자를 겸손하게 한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깨달음이 전적으로 성령께서 주신 은혜임을 인정하게 한다. 또한 듣는 자를 순종하게 한다. 사람의 말처럼 가볍게 듣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주시는 양식으로 받는다. 전하는 자는 더 깊이 회개하고 준비하며, 듣는 자는 귀를 열고 순종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튼튼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성막의 등잔불은 교회의 성령 충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제사장이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 등장불을 정리하는 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결을 유지하게 해주는가? 성막의 성소 안에는 금등잔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뚜껑인 속죄소 위에 두 그룹이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성막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피의 제사를 드린 뒤 물두멍에서 몸을 씻고 성소로 들어갔다. 거룩한 성막을 부정하게 하지 않도록 피와 물로 깨끗하게 된 뒤 봉사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4장에서는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가장 먼저 등잔불의 규례를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감람을 찧어 만든 순결한 기름을 가져와야 했고, 아론은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정리하여야 했다. 이때 제사장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채우고 심지를 손질하여 일곱 등잔의 빛이 계속 밝게 타오르게 해야 했다(레 24: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lt;strong&gt;감람기름은 &amp;#39;성령&amp;#39;을 상징&lt;/strong&gt;하고, &lt;strong&gt;일곱 금등잔대는 &amp;#39;교회&amp;#39;&lt;/strong&gt;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이며, 인자 같은 이가 그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 주님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계신다(계 1:12-13, 16, 20). 그러므로 &lt;strong&gt;교회의 단체적인 성결은 성령의 불이 공동체 가운데 얼마나 밝고 뜨겁게 타오르느냐와 깊이 연결&lt;/strong&gt;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제사장이 등잔대를 정리하는 것이 왜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가? 그것은 &lt;strong&gt;등잔대를 정리하는 것이 제사장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백성도 공동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감람나무를 재배하고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는 일은 백성이 해야 했고, 그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정리하는 일은 제사장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도 각자가 성령을 받고 충만해야 하지만, 말씀을 맡은 종은 그 성령의 불이 공동체 가운데 활활 타오르도록 깨우치고 책망하며 인도해야 한다. 제사장 혼자서 기름을 만들 수 없지만, 백성도 기름은 가졌어도 일곱 금촛대의 등불을 관리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은 성도를 세상의 빛으로 살게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amp;#39;세상의 빛&amp;#39;이라 하시고, 그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마 5:14-16). 고로 빛을 비춘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된 착한 행실을 살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성도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amp;#39;참빛&amp;#39;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려주셨다. 당시 초막절에 큰 횃불을 밝히는 의식이 있었지만, 그 불은 영원한 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amp;#39;세상의 빛&amp;#39;이라 선언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요 8:12). 참빛이신 예수님에게서 빛을 받은 성도가 세상에 그 빛을 비춘다. 장차 들어갈 천국에는 주님의 영광이 비치므로 해와 달도 필요하지 않다(계 2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의 종이 세상일에 지쳐 말씀과 기도를 준비하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는 말씀을 맡은 종이 성경 연구와 기도와 성도 돌봄에 전념하도록 함께 책임져야 한다. 주의 종은 자기 속에 성령의 불이 먼저 타오르게 해야 하며, 살아 있는 동안 성도들의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와 천국 준비를 끝까지 돕겠다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앞장 선 한 사람의 불이 공동체 전체를 밝힌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열두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과 제사장의 책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소의 두 번째 단체적 성결례로서, 성막의 떡상에 항상 12덩이의 떡이 진설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제사장은 이러한 진설병의 규례에 따라 항상 떡상에 떡이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떡상의 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사장은 고운 가루로 떡 열두 덩이를 만들어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놓되, 각 줄에 여섯 덩이씩 진설했다. 각 줄 위에는 정결한 유향을 두어 기념물로 삼고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 열두 덩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하나님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레 24: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제사장의 에봇 어깨받이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호마노 두 개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겨 양어깨에 메었다(출 28:9-12). 이는 제사장이 백성 전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떡상의 열두 떡은 어느 한 지파도 빠지지 않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떡은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해야 했다. 묵은 떡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고, 새 떡을 다시 여호와 앞에 놓았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영원한 언약이었다(레 24:8-9). 교회도 매주 성도에게 신선한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전에 전했던 내용을 반복하여 때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연구를 통해 그 주간에 공동체가 먹어야 할 양식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설병은 &lt;strong&gt;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lt;/strong&gt;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자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요 6:35).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 4:4).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듯이 영혼도 살아 있는 말씀을 먹어야 성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가 말씀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환난과 풍파가 닥칠 때 쉽게 흔들리게 된다. 영이 자란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영이 마른 사람은 작은 충격에도 넘어간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우유처럼 삼키기 쉬운 말씀만 줄 것이 아니라, 영을 강하게 하고 귀신과 싸울 수 있게 하는 단단한 양식도 공급해야 한다. 성도는 말씀을 씹고 순종함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감람유와 마찬가지로 떡을 만드는 재료 역시 백성이 드린 곡식에서 나왔고(레 24:8, 민 7:13), 레위인들이 진설병을 준비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도왔다. 말씀 사역 역시 한 사람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십일조와 첫 열매(初實, firstfruits)와 헌신을 드리고, 여러 일꾼이 봉사하며, 말씀을 맡은 종이 연구하여 생명의 떡을 진설한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열두 지파와 같은 교회 전체가 배불리 먹고 거룩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등잔대와 떡상 사이에 있던 &amp;#39;분향단&amp;#39;이 이 제사장의 단체적 규례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은 데에도 의미가 있다. 기도는 제사장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기도 제목을 맡기고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 태도는 옳지 않다. 성도도 먼저 자기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하며, 결정적인 싸움의 때에 주의 종과 함께 중보해야 한다. 빛과 말씀을 맡은 종의 책임이 특별하지만, 기도에는 온 성도가 참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은 공동체의 성결을 어떻게 지켰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제 레위기 24장의 후반부는 &lt;strong&gt;성막 밖에서 지켜야 할, 일반 백성의 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2가지가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사건은 신성모독에 대한 처벌&lt;/strong&gt;이다. 이스라엘 여인 슬로밋과 애굽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한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했다. 그의 어머니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다(레 24:10-11). 이 사건은 가정에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신다(출 20:7). 삶이 아무리 어렵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도 &amp;ldquo;하나님이 어디 있느냐&amp;rdquo;라고 대들거나 그 이름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저주하면 마음이 강퍅해져 주님께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독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의 머리에 안수한 뒤 온 회중이 돌로 치라고 하셨다. &lt;strong&gt;본토인이든 거류민이든&lt;/strong&gt; 같은 법을 적용했다(레 24:14-16). 한 사람의 범죄를 온 공동체가 함께 처리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경고를 받고 같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막 밖에서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군 복무 중 교회에 가는 것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매일 직면해야 했다. 고참들이 저녁마다 필자를 무 저장창고로 불러내어 구타를 하였다. 그러므로 밤 12시경, 고참들에 의해 불려 갈 때마다 손과 발이 떨리는 두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의심하거나 주님께 대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이며, 이 시간을 통하여 내가 주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변함없는 신앙의 정절을 보시고 오늘날에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규례는 동해보복법의 준수&lt;/strong&gt;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짐승을 죽인 자는 짐승으로 갚으며, 이웃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그가 행한 것과 같은 정도로 갚게 했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게 한 것이다(레 24:17-22). 여기에서도 거류민과 본토인에게 동일한 법을 적용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법의 목적은 복수를 부추기는 데 있지 않았다.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마음대로 때리고 빼앗지 못하도록 형벌의 한계를 정하고 공의를 세우는 데 있었다. 지위와 힘이 있는 사람도 자신이 가한 만큼의 책임을 져야 했기에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동일한 해에는 동일한 보상이 따르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질서와 약자의 생명을 보호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수님의 원수 사랑은 보복의 악순환을 어떻게 끝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동해보복법은 죄를 억제하고 공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죄악 된 인간은 한 번 당하면 같은 만큼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크게 보복하려 한다. 그러면 상대편도 다시 보복하고, 두 집안과 두 공동체의 원한이 세대를 이어 간다. 서로 원수가 된 두 가문의 자녀가 사랑했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처럼, 보복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결국 모두를 파괴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 악순환을 끝내는 길을 가르치셨다. &amp;ldquo;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amp;rdquo;는 말을 들었으나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마 5:38-44).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응답할 때 원한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그 길을 걸으셨다. 죄 없는 분이 죄인들의 보복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셨다(눅 23:34).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셨지만, 그 형벌을 독생자에게 담당하게 하심으로 원수를 자녀로 받아들이는 길을 여셨다. 예수님의 희생이 보복의 사슬을 끊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우자가 상처를 주었다고 똑같이 상처를 돌려주거나, 가족이 나를 무시했다고 더 심한 말로 갚아서는 안 된다. 내가 희생하고 용서함으로 그 자리에서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이는 불의를 선이라고 부르라는 뜻이 아니다. 공의로운 질서를 세우되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를 내려놓고, 회개할 기회를 주며,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원수 사랑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세상의 공동체는 편을 가르고 배척하지만, 교회는 회개한 자를 용서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직분과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공의를 지키면서도, 잘못한 이를 파멸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회복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의와 사랑이 십자가 안에서 만날 때 공동체는 세상과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안식년은 희년을 향해 땅&amp;middot;몸&amp;middot;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곻 이어지는 &lt;strong&gt;레위기 25장의 안식년은 이스라엘 온 민족이 함께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대표적인 명령&lt;/strong&gt;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육 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하여 여호와께 안식하게 해야 했다. 밭에 파종하지 않고 포도원을 가지치지 않으며, 저절로 난 것을 자기 소유로 거두어들이지 말아야 했다(레 25: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안식년이 되다고 할지라도 먹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해에 떨어진 씨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과 손대지 않은 포도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땅 주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땅에서 나오는 것은 주인을 비롯하여, 그의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도 다 같이 먹을 수 있었고,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었다(레 25:6-7). 주인도 먹을 수 있지만 여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먹었다. 누구도 그 소출을 독점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년을 꼭 지키어, 그 해에는 땅을 쉬게 하라고 하신 것일까? 그리고 그 땅의 소산은 누구나 먹게 하신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규례의 핵심은 &lt;strong&gt;&amp;ldquo;땅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amp;rdquo;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에 있다(레 25:23)&lt;/strong&gt;.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주셨지만, 소유권까지 넘겨 주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사람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lt;/strong&gt;다. 육 년 동안 경작하면서 자기 땅으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일곱째 해마다 경작을 멈추고 원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셨던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23&amp;nbsp;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안식년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자기 땅을 놀리고 다른 사람이 그 소출을 먹게 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아(B.C.1399~1391년) 그땅에서 쫓겨나던 날까지(B.C.586년) 약 813~805년간 계속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땅에서 뽑아 바벨론으로 보내셨고, 그들이 떠난 동안 땅이 70년의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대하 36:20-21). 온 백성이 함께 지켜야 할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에 온 민족이 함께 포로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땅을 더럽혔기에 땅이 그 주민을 토해 낸 것이다(레 18:24-25). 둘째, 그들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옮겨 그 땅이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70년 동안 땅을 비우게 하여 밀린 안식을 되찾으시고, 가나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나타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의 몸(육체)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지으셨다(창 2:7). 필자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사람의 육체라는 땅에 악한 영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실은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는 일이다. 그러나 악한 영은 죄를 통하여 합법적인 근거로 들어오므로, 사람이 악한 영을 추방하려면 죄를 회개한 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쫓아내야 한다. 축사는 내 몸이 귀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하고 주님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행위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귀신이 나간 뒤에는 자기의 몸을 다시 쾌락만을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 의의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롬 6:13, 12:1). 원래 내 몸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주어진 시간과 건강, 지혜와 재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며 성도를 살리는 데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 실제 봉사와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드리는 십일조와 첫 열매도 이와 같은 주권적인 고백에 해당한다. 모든 소득과 소출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처음 것과 십분의 일을 먼저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레 27:30). 십일조는 단지 번 돈의 일부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시간과 재능과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를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흐리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면제년과 연결되고 마침내 희년의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간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며, 종을 놓아주고, 잃었던 기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그 방향이다. 이번 본문에서는 먼저 안식년의 원리를 분명히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희년의 회복을 준비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정결법과 성결법의 차이, 회개와 말씀의 조명,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 성막 밖의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 예수님의 원수 사랑, 그리고 안식년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을 살펴보았다. 레위기의 성결은 개인이 마음으로만 거룩해지는 일이 아니다. 제사장과 백성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토지와 재물까지 함께 하나님께 구별되어야 하는 단체적인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하면 말씀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린다. 말씀을 맡은 종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성령의 불을 밝히며, 매주 신선한 생명의 떡을 준비해야 한다. 성도는 순결한 기름과 곡식을 가져오듯 자신의 은사와 시간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준비된 양식을 잘 먹어야 한다. 그렇게 제사장과 백성이 함께 충성할 때 교회 전체가 세상의 빛이 되고 환난을 이기는 강한 공동체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막 밖에서도 거룩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않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짓밟지 못하도록 공의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같은 해로 보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끝내셨듯이, 우리도 용서와 희생으로 가정과 교회의 원한을 끊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로 보내고 땅이 70년 동안 쉬게 하셨다. 우리의 몸도 흙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며, 재물과 시간과 재능도 주님에게서 왔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을 쫓아내며, 몸을 의의 무기로 드리고, 십일조와 첫 열매와 봉사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혼자만 거룩해지려 하지 말고 공동체가 함께 성결해져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성령의 불을 밝히며, 함께 말씀을 먹고, 함께 공의를 지키며,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와 성령과 생명의 말씀으로 교회를 밝히고 몸과 재물과 모든 기업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봉헌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4장과 25장을 바탕으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의 중요성과 그 영적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관리하는 제사장의 직무가 성령의 역사와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여&amp;nbsp;&lt;strong&gt;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유지&lt;/strong&gt;하는 핵심 사역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막 밖의 신성모독 처벌과 안식년 제도를 통해 모든 삶의 터전과 인간의 육체가 본래&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소유&lt;/strong&gt;임을 인정하는 것이 성결의 본질임을 설명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를 통해 영적 통찰력을 얻어야만 성경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으며, 성도는 이러한 구별된 삶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이 모든 규례는 인간이 탐욕을 내려놓고 창조주께 온전히 복종함으로써&amp;nbsp;&lt;strong&gt;하늘의 복과 구원&lt;/strong&gt;에 참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설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hatGPT Image 2026년 9월 10일 오후 04_46_3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15fb7b048e000f197bda1d568c65689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7207f2be18a6d51db0f639d061e9a1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df354fd419560f45cdd53b86350159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a8b3c370f017fc4598838a73cdeee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e72fffb59bce05892a2ddc65f7a27a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daac5fc648a75bff6c3ca33360043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b4d13e55508be16162b6583271d541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7a65d3c327d9f85c766a7bf3d33b4b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f1cc4be91d50899e66e5dc2ed4f36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e1b59d394dcfa237fda01aca275207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450c8144e4400921af1cc1eb0e15bba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503293a7642c675688bbbe4b8e5332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47cfc5b3d3b3ef44de845dcccda629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3f978b903fb6904c25338e43602d3f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c8b5cd94027e32b34cd14b21b4e3cd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a052706d521c63541d0c7faa9bb7d92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단체적_성결_공동체의_거룩한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96fcf1c7b841191a68d2136f040d6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단체적_성결과_공동체_질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197d9c73a3439b748b2746a7bdd8f41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0f422188c26c19c8f917ac7cbe146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19782426c3146c5a36320b7816b551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0c4748cbf6f89ae27e6f808847679e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06654c1ae4c2f0e92081ac7be208dc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21a2c01762dfc9ad844249e2a52377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46c3d22d32c6ccf6365caceceaf9e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98d933c6eb7ddf5ef1f47acceafbe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44cd644576156e4231b5790b4d41e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7d6ee592ff51e10a55a572ca20fd76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4419f015634feb26b31fa9b6df34e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5b97c2a11ffc0d77694338932c49b01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강해"/><category term="성결법"/><category term="단체적성결"/><category term="안식년"/><category term="희년"/><category term="성막"/><category term="회개"/><category term="성령충만"/><category term="공동체"/><category term="동탄명성교회"/>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레23:1~44)_2026-09-02(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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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02T23:46:59+09:00</published>
		<updated>2026-09-03T09:40:0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0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레23:1~4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KSO35POlVE 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 - 가을 절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과 어린양의 혼인잔치 - (레 23:1-4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받아 주시고, 받아 주신 백성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02(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KSO35POlV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KSO35POlV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 가을 절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과 어린양의 혼인잔치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받아 주시고, 받아 주신 백성을 어떻게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드시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다. 대부분의 성도는 예수를 믿어 속죄받고 구원(救援, salvation)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그러나 속죄(贖罪, atonement)는 신앙의 끝이 아니라 출발이다. 속죄를 통해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고 중생(重生, regeneration)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은 계속 정결해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의 핵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서의 구성을 보면, 제1장부터 제10장까지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제사와 제사장 직무를 다루는 속죄법을 다루고 있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부정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법을 다룬다. 그리고 제18장부터 제27장까지는 거룩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성결법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제23장은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통하여 온 회중이 함께 거룩해지는 단체적인 성결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결례에는 절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지나간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면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예표라 할 수 있다. 고로 봄의 네 절기는 초림(初臨, first coming)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復活, resurrection)과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야 한다.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실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과 성도들의 소집, 그리고 지상 강림과 아마겟돈 전쟁을 통한 악한 자들의 청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해석하는 중요한 기준은 2가지다. 하나는 절기를 포함한 의식법 전체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것이며(요 5:39, 눅 24:44), 또 하나는 절기가 개인적인 경건 행위가 아니라 단체적인 성결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중절기 가운데 가을의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팔절에는 회중을 모으고, 속죄일에는 성소와 백성을 깨끗하게 하며, 초막절에는 추수를 마친 온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 아래 함께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구원도 혼자만 살아남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익은 곡식들이 함께 소집되고, 그리스도의 군대로 악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장막에서 함께 안식하는 사건으로 연결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 안에서 어떻게 배열되는가? 안식일은 왜 절기 목록에 포함되며,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봄과 가을의 일곱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와 레위기의 배열, 절기와 안식일이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 이유, 절기의 안식일과 주일 예배의 관계, 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성취된 과정,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가 보여 주는 구원의 추수,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의 가을 절기 해석, 그리고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는 이를 어떻게 배열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는 이를 어떻게 배치하고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속죄(贖罪, atonement)란 깨끗한 피로 죄값을 처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lt;/strong&gt;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희생에 근거한다(히 9:12; 10:10-14). 그러나 속죄받았다고 해서 몸과 마음과 생활에 묻은 모든 부정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믿은 뒤에도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계속 깨끗해져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정결(淨潔, purification)은 물과 피를 통해 부정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과정&lt;/strong&gt;이다. 레위기 제11장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제12장은 출산한 여인의 정결을,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환자와 집의 정결을, 제15장은 유출병의 정결을 다룬다. 제16장의 대속죄일도 이 정결법 안에 들어 있다. 대속죄일에는 백성의 속죄만 행한 것이 아니라 피를 지성소와 회막과 분향단에 뿌리고 발라 성막의 기구와 제단을 정결하게 했다(레 16:16-20, 33). 이 의식은 장차 하늘의 지성소를 청소하고 정결하게 하는 일을 예표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레위기에서 발견하는 중요한 열쇠다. 대속죄일 제사에는 속죄가 포함되지만 초점은 더럽혀진 성소와 제단과 회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 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가을 절기의 속죄일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가 다시 반복되는 날처럼 잘못 풀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유월절에 단번에 이루어졌고, 가을 속죄일의 예표는 마지막 때 악을 제거하고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는 일로 풀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성결(聖潔, holiness)은 깨끗해진 사람이 행위와 생활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lt;/strong&gt;이다.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성적인 부정과 몰렉 숭배와 무당을 멀리하라는 개인적 성결을 가르친다.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결혼과 장례와 제물에 관한 성결을 다룬다. 제23장과 제25장은 온 민족이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을 함께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이해할 때에는 속죄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정결로 더러움을 씻으며, 성결로 구별된 삶을 사는 순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절기와 안식일은 왜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제23장의 절기는 개인이 편리한 때에 혼자 지키는 행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온 회중이 성회로 모여 함께 예배하고 쉬며 제물을 드리는 &amp;#39;거룩한 소집&amp;#39;(성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기 목록의 첫머리에 매주 지키는 안식일까지 포함하셨다(레 23:1-3).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간의 절기이고, 일곱 절기는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연중절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결례에는 개인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이 같이 있다. 그러므로 성결은 혼자 죄를 짓지 않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공동체 전체에 임한다. 그래서 말세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따르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 10:24-25). 개인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모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해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 세 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다(출 23:14-17; 34:22-23). 고로 온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고, 예루살렘에 마련된 각 지역에서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 회당에 가서 말씀을 배웠다. 오순절에도 여러 나라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기에,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과 방언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행 2:1-11, 37-42). 단체적인 절기 소집이 초대교회 탄생의 현장이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처음으로 탄생한 예루살렘 교회는 본토의 히브리파 유대인과 이방 지역에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2사도들은 전부 다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그러자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는 문제로 인해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워 공동체를 섬기게 했는데(행 6:1-6), 이때 세워진 집사들은 전부 다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해소되었다.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렇듯 갈등도 나타나지만, 그 문제를 말씀과 성령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더욱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체적인 성결례의 실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절기의 안식일은 왜 그림자이며 주일 예배와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로 지키라고 명한 안식일에는 사실 두 개의 층위가 있다. 그것은 그것이 도덕법인 십계명에도 속해 있고(출 20:8-11), 의식법인 절기법에도 속해 있다는 것이다(레 23: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 명령(출 20:8-11)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쉼을 누리라는 도덕적 뜻을 지닌다(출 20:8-11). 그러나 레위기 제23장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 준수 명령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절기법에 포함되어 있다. 예표란 실체가 오기 전까지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델하우스가 실제 집이 완성되기까지 집의 모습을 보여 주듯이, 절기는 그리스도께서 주실 참 안식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가 오면 모형은 없어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 자신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안식을 주는 분이라고 선포하셨다(마 11:28-29; 12:8).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짐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날짜 자체를 구원의 조건으로 붙들 것이 아니라 실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절기와 초하루와 안식일이 장래 일의 그림자이고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인 안식일을 붙들 것이 아니라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말한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전부 다 유대인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안식일에 모였다. 그러나 점차 이방인 성도가 많아지고 이방인 교회가 세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수께서 주간의 첫날 부활하신 사실을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주일에 예배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요 20:1, 19; 행 20:7; 고전 16:2). 그러다가 주후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한 뒤에는 주일 예배가 사회적으로도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태양신 문화가 섞여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가 붙드는 실체는 태양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안식일이나 주일을 이유로 서로간에 정죄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지만, 각자 주를 위하여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롬 14:5-6). 지하철 기관사와 소방관처럼 주일 근무가 필요한 사람은 맡은 일을 버려 가족을 굶게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다른 시간에 예배해야 한다. 날이 주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의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안식일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함께 지키는 자신들만이 마지막에 남은 자라고 주장하며 주일 예배를 짐승의 표와 연결한다(계 12:17). 그러나 안식일을 절대적인 구원 조건으로 삼으려면, 초하루와 나팔절과 초막절 같은 다른 절기법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할례도 받아야 한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안식교인 가운데도 구원받은 사람이 적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교리는 천국에서 받을 상을 크게 잃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지옥 간다고 단정하지는 않되 그림자와 실체를 분명히 구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봄의 네 절기는 초림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먼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간의 절기로서 안식일이 있다. 그리고 연중 절기로서 일곱 절기들이 있다. 그중에서 봄 절기는 4가지로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이 있다(레 23:4-21). 유월절은 첫째 달 열나흗날이고, 무교절은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이어진다. 초실절에는 안식일 이튿날 첫 보리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드리고, 칠칠절은 일곱 안식일을 채운 뒤 오십 일째 되는 날 지킨다(레 23:5-21). 이 네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으로 차례대로 성취되었다. 자, 이제는 조금씩 그 세부사항을 살펴보자.&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유월절(1.14)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속죄를 예표&lt;/strong&gt;한다. 애굽의 장자가 죽임당할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심판이 넘어갔다.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셨다(출 12장; 요 1:29).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고 선언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무교절(1.15-21)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묻혀 정결을 이루신 기간을 보여 준다&lt;/strong&gt;. 누룩은 부패와 죄를 상징하므로 무교병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전 5: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초실절(1.17)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lt;/strong&gt;. 첫 보리 이삭 한 단이 전체 추수의 시작을 알리듯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칠칠절(약3.5) 곧 오순절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신 사건으로 성취되었다&lt;/strong&gt;(행 2:1-4, 33). 이때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흔들어 드렸는데, 이는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각각 불완전함을 지녔어도 성령 안에서 한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여 준다(레 23: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유월절 어린양으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구속을 보며, 초실절의 첫 열매로는 그분의 부활 생명과 장차 있을 성도의 부활을 본다. 예수께서는 동물의 희생과 식물의 첫 열매라는 두 상징을 모두 성취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는 구원의 추수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렇듯 봄의 네 절기가 성취된 뒤에는 약 &lt;strong&gt;넉 달 동안 농사(3-6월)&lt;/strong&gt;가 계속된다(요 4:35). 초실절(1.17)에 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주님께 드림으로 추수가 시작되고, 칠칠절(약3.5)에 보리 추수가 마무리되면서 밀 추수가 이어진다. 여름 동안 밀과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 열매가 익고, 일곱째 달 초막절(7.15-22) 무렵 모든 토지 소산을 거두어 저장한다(레 23:39). 그러므로 이 넉 달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재림 직전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구원 추수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른다고 말하지 말고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다.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요 4:35-38).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복음의 씨를 뿌리고 익은 영혼을 거두어 오셨다. 지금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계속되는 추수의 때다(롬 11:25). 봄 절기와 가을 절기 사이의 긴 공백은 교회가 복음을 전해 알곡을 준비하는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첫 절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 일곱째 달 첫날에 지키는 나팔절(7.1)&lt;/strong&gt;이 있다. 이스라엘은 양이나 염소의 뿔로 만든 쇼파르를 불어 새해를 알리고 회중을 소집한다(레 23:23-25). 나팔은 사람들을 모으고 진영을 출발시키며 전쟁에 나아가게 하는 신호였다(민 10:1-10).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지키며 다가올 속죄일을 준비해 회개하도록 서로를 깨운다. 나팔절은 흩어진 백성을 한데 모으는 절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일곱째 달 열흘의 속죄일(7.10)&lt;/strong&gt;이다. 이 날에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며 성회로 모인다(레 23:26-32). 성전이 없는 오늘날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릴 수 없으므로 금식과 회개로 이 날을 지킨다. 그러나 레위기 제16장이 보여 주듯이 대속죄일의 초점은 이미 속죄받은 공동체와 성소를 피로 정결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가을 속죄일은 유월절의 십자가를 반복하는 절기가 아니라 마지막 때 악을 청소하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예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지키는 초막절(7.15-22)&lt;/strong&gt;이다. 이때는 첫날부터 일곱 날을 지킨 뒤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인다(레 23:33-36, 39). 토지 소산을 모두 거두어 저장했기 때문에 &amp;#39;수장절&amp;#39;이라고도 하고(출 23:16; 34:22), 광야에서 초막에 살던 구속의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amp;#39;초막절&amp;#39;(레 23:15) 또는 &amp;#39;장막절&amp;#39;(출 19:2)이라고도 한다. 창조의 열매를 감사하는 &amp;#39;수장절&amp;#39;과 애굽에서 구출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amp;#39;초막절&amp;#39;의 두 의미가 한 절기 안에 합쳐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아름다운 나무의 열매인 에트로그와 종려나무 가지인 룰라브, 무성한 나무인 하다스, 시내 버들인 아라바를 취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였다(레 23:40). 그들은 집 마당과 지붕과 광장에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거주했으며, 지붕 사이로 별이 보이도록 초막을 덮었다. 밤에는 자녀들과 별을 보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가르쳤다. 초막절은 추수를 마친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뻐하는 큰 축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lt;strong&gt; 가을에 지키는 이 세 절기는 추수의 마지막 순서&lt;/strong&gt;를 보여 준다. 나팔절에는 익은 알곡을 소집하고, 속죄일에는 악한 세력을 제거하여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며, 초막절에는 거두어진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가 잔치를 누린다. 따라서 가을 절기를 민족적 달력의 반복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봄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구원이 교회의 넉 달 추수를 지나 마지막에 완성되는 시간표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절기의 핵심은 안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주간의 안식일도 안식하는 날이요, 일곱 절기에도 일곱 개의 안식일(절기의 안식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백성이 쉬라는 안식 명령이 없는데, 이는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안식을 마련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고 하신 예수께서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쉰다(요 5:17). 그리고 초막절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히 4:9-11). 고로 봄부터 가을까지의 추수는 죄인을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가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救援經綸)이라고 말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는 가을 절기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교회사를 살펴보면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1800년대 초기 세대주의자들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봄의 절기보다 가을의 절기를 일관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초기 교부 이레네우스(A.D.130년경-202년)&lt;/strong&gt;는 나팔절과 속죄일에 뚜렷한 종말론적 대응을 제시하지 않았고, 초막절을 장차 올 지상 왕국과 연결했다. 그리고 &lt;strong&gt;오리게네스(A.D.185년경-253년경)&lt;/strong&gt;는 나팔절을 영적인 교훈으로, 속죄일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으로, 초막절을 알레고리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lt;strong&gt;아우구스티누스(A.D.354-430)&lt;/strong&gt;도 나팔절의 시간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속죄일을 단지 그리스도의 속죄라고 했고, 초막절을 광야 같은 교회 생활로 이해했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지는 종교개혁자들도 가을의 세 절기를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연속된 사역으로 풀지는 못했다. &lt;strong&gt;칼빈(A.D.1509‑1564)&lt;/strong&gt;은 나팔절을 회개와 소집, 속죄일을 속죄와 회개, 초막절을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와 안식의 기념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해석에는 부분적인 통찰이 있지만, 유월절부터 초막절까지 일곱 절기 전체를 초림과 재림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시간표로 연결하지는 못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오랫동안 레위기를 연구하고 천국에서 확인한 상황과 대조하며 이 문제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초대교회 교부와 종교개혁자와 현대 신학자의 해석을 폭넓게 조사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자료를 신속하게 찾아 비교해 주는 유익한 비서이기는 하지만, 기존 자료에 없는 영적인 깨달음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성령의 조명을 대신하지 못한다. 때로는 사용자가 원하는 답을 맞추려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만들어 내므로 반드시 원자료와 성경으로 재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19세기의 존 넬슨 다비(A.D.1800-1882)&lt;/strong&gt;는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는 길을 새롭게 열었다. 그는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는 데서 출발해 봄 절기를 초림의 사건으로 체계화했고, 그의 세대주의는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통해 널리 퍼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앞선 시대에 없던 성경의 연결을 시도했다는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인류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고,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원 경륜을 지나치게 분리하면서 많은 오류도 낳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초기 세대주의를 열었던 존 넬슨 다비였지만 가을의 절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중심적으로 풀었다. 즉 나팔절을 흩어진 이스라엘의 민족적 재소집으로, 속죄일을 환난 중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회개로, 초막절을 회복된 이스라엘과 왕국의 기쁨으로 풀었다. 그는 나팔절을 비롯한 가을의 절기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하지는 못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lt;strong&gt;후기 세대주의&lt;/strong&gt;가 되면서, 가을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연결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후기 세대주의자들은 나팔절을 교회의 휴거로, 속죄일은 지상의 칠 년 환난으로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개 기간으로, 교회는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특히 속죄일은 유대인들의 회개로 풀었으니, 그때에 비로소 유대인들이 새 성전을 다시 짓고 제사를 드리다가 전 삼 년 반 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깨닫고, 후 삼 년 반 동안 큰 환난을 통과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7년 대환난 전에 이방인 교회는 휴거(携擧, rapture)되어 공중에 있고, 지상에서만 이스라엘이 구원되는 별도의 경륜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막절은 환난을 통과한 유대인들이 드디어 천년왕국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어 온 세계를 하나님께 인도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알고 있는 환난 전 휴거와 지상 천년왕국의 구도가 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다른 구원의 길을 걷지 않는다. 육신의 혈통이 유대인이라고 자동으로 우월한 자리를 얻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나 무당의 후손이라고 뒤로 밀리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한 새 사람과 한 몸을 이룬다(엡 2:14-18). 지금은 혈통보다 누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끝까지 충성하는가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세대주의가 일곱 절기를 그리스도와 종말의 시간표로 바라보게 했던 공헌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세대주의가 이스라엘과 교회를 끝까지 두 구원 집단으로 나누는 틀은 결코 따르지 말아야 한다. 봄의 절기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한 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듯이, 가을의 절기도 한 교회와 한 성도를 소집하고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장막으로 인도하는 재림의 사건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그리스도 중심으로 볼 때 가을의 세 절기는 무엇을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그것은 최소 두 가지다. 첫째, 봄의 네 절기가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으므로 가을의 세 절기도 재림하실 그리스도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의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이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그분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둘째, 레위기 제23장의 절기는 온 회중이 함께 거룩해지는 단체적인 성결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세 절기를 해석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 기준을 함께 붙들어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을 제대로 풀 수가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푼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가? 필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과 익은 곡식의 휴거를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은 가장 기본적으로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시키기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은 나팔 둘을 만들어 회중을 모으고 전쟁에 나아갈 때 불었다(민 10:2-9). 마지막 때에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터인데, 그때에 &amp;#39;큰 나팔&amp;#39;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신다고 하셨다(마 24:30-3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amp;#39;하나님의 나팔&amp;#39; 소리로 하늘에서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주를 영접한다고 했다(살전 4:16-17). 또한 &amp;#39;마지막 나팔&amp;#39;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성도들이 변화된다(고전 15:51-52).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amp;#39;일곱째 나팔&amp;#39; 때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하였다(계 11: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곡식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요한계시록 제14장을 보면,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둘 때 추수할 곡식은 충분히 익어 있는 곡식뿐이었다(계 14:14-16). 고로 나팔절의 소집에 참여하는 사람은 회개로 정결해지고 믿음이 익은 알곡들임을 알 수 있다. 아직 익지 않은 곡식과 쭉정이는 땅에 남아 환난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를 날짜 계산으로만 기다리지 말고 오늘 회개하여 익은 곡식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나팔절의 소집에는 전쟁의 목적도 있었다. 민수기의 나팔은 진영을 출발시키고 대적을 치러 나갈 때 울렸다(민 10:5-9). 공중으로 올라간 성도는 자기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주님의 군대로 준비되기 위해 올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어 지상으로 강림하여 악한 세력을 심판하실 때에 그분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가 함께 내려올 것이다(계 19:11-14). 나팔은 혼인 잔치의 초청이자, 마지막 전쟁을 위한 군대의 소집의 나팔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과 아마겟돈 심판을 통한 단체적인 정결을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유월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인류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으므로 속죄일에 그분이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 특히 레위기 제16장을 보면, 대속죄일의 피가 성소와 제단에 발라져 그곳에 쌓인 부정을 청소했듯이,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땅을 더럽힌 사탄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악한 군대를 제거하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요한계시록 제19장은 백마를 타신 충신과 진실로 오신 예수께서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때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군대가 예수님과 싸우려고 모이지만,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사탄마귀가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 19:11-21). 필자는 이 아마겟돈 전쟁과 요한계시록 제20장의 곡과 마곡 전쟁을 같은 마지막 전쟁으로 본다(계 20:7-10). 이 전쟁을 통해 악의 무리가 청소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그 날의 청소에 참여하기 전에 지금 자기 안의 악한 영부터 내보내야 한다. 회개로 죄를 자백하면 악한 영이 붙들 근거가 제거되고, 예수 이름으로 그 영들을 쫓아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정결해질수록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마지막 전쟁에서 주님의 군사로 쓰임받을 준비가 이루어진다. 속죄일을 단순히 과거의 죄 사함으로만 보지 말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함께 악을 제거하는 단체적인 성결의 날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초막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베풀어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초막절에는 모든 추수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동한 이기는 알곡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 아래 모이는 날이다. 요한계시록은 보좌에 계신 이가 구원받은 무리 위에 장막을 치시며,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계 7:15; 21:3). 고로 광야의 임시 초막은 장차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처소를 보여 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펼쳐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계 19:6-9). 특별히 이 잔치는 간신히 천국 문턱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누리는 잔치 자리가 아니다. 오직 회개와 충성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한 이기는 자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리이다. 고로 초막절을 설명할 때에는 지상에서 다시 동물 제사를 드리는 민족적인 천년왕국의 생활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가 함께 누리는 추수 잔치로 풀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렇게 가을의 세 절기는 하나의 연속된 재림 시간표를 이룬다&lt;/strong&gt;. 일곱째 달 첫날 나팔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여 익은 성도를 나팔로 소집하신다. 열흘째 속죄일에는 그들과 함께 지상으로 강림하여 아마겟돈에서 악한 세력을 제거하고 땅을 정결하게 하신다. 열닷샛날 시작되는 초막절에는 추수가 끝난 백성을 하나님의 장막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인도하신다. 소집, 정결, 안식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날마다 회개하여 몸과 마음에서 악한 영을 내보내고, 말씀과 기도로 익은 알곡이 되어야 한다. 혼자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도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찬에 참여하며 공동체적인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할 때 공중 강림의 나팔 소리에 소집되고, 주님의 군사로 악을 무찌르며, 마침내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와 레위기의 배열, 절기와 안식일이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 이유, 절기의 안식일과 주일 예배의 관계, 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성취된 과정,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가 보여 주는 구원의 추수,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의 해석, 그리고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푸는 원리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이루어졌지만 정결과 성결은 믿은 뒤에도 계속 이루어 가야 한다. 대속죄일이 정결법 안에 놓인 사실은 가을 속죄일의 비밀을 여는 열쇠다. 가을 속죄일은 십자가의 반복이 아니라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악을 제거하여 공동체를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봄 절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 넉 달 동안 교회의 추수가 계속된 뒤 가을 절기에는 나팔절의 공중 소집, 속죄일의 지상 심판과 정결, 초막절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이 이어질 것이다. 절기의 모든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우리는 날이나 혈통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지 말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동시에 모이기를 힘쓰며 단체적인 성결에 참여하고, 철저한 회개로 악한 영을 내보내며, 다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 익은 알곡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나팔소리에 함께 소집되고 주님의 군사로 악을 이기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2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3장의 절기법을&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lt;/strong&gt;이자&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며, 구약의 절기가 신약의 구속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의 봄 절기를&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초림&lt;/strong&gt;으로 보고, 나팔절부터 초막절까지의 가을 절기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천국 혼인 잔치&lt;/strong&gt;라는 종말론적 성취로 연결합니다. 특히 대속죄일을 단순한 속죄가 아닌 아마겟돈전쟁으로 &lt;strong&gt;우주를&amp;nbsp;정결케 하는 행위&lt;/strong&gt;로 정의하며,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amp;nbsp;&lt;strong&gt;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lt;/strong&gt;을 동시에 이루어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인공지능 등 현대적 도구를 활용하여 기존 신학적 한계를 보완하고,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알곡 신앙&lt;/strong&gt;을 갖추어 영원한 안식인 천국에 입성하도록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lt;strong&gt;제목: 이스라엘의 7절기에 대한 그리스도 예표론적 성경해석&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rong&gt;1. 봄의 절기&lt;/strong&gt;&lt;br /&gt; 1)유월절(1.14): 그리스도의 죽음(속죄)(고전5:7)&lt;br /&gt; 2)무교절(1.15-21): 그리스도의 묻히심(죄를 정결케 함)(고전 5:8)&lt;br /&gt; 3)초실절(1.17): 그리스도의 부활(고전15:20)&lt;br /&gt; 4)오순절(칠칠절)(3.5): 그리스도의 성령보내심(고전15:45, 행2:1-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중간: 넉달농사&lt;/strong&gt;(3-6월)(요4:35): 교회의 추수기간(이방인의 충만한 때)(롬11:2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2. 가을의 절기&lt;/strong&gt;&lt;br /&gt; 5)나팔절(7.1):그리스도의 공중재림(알곡성도의 휴거)(마 24:30-31, 살전4:16-17, 고전15:51-53, 계11:15, 계14:14-16)&lt;br /&gt; 6)속죄일(7.10):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단체적인 정결례(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계19:11-21, 계20:7-10)&lt;br /&gt; 7)초막절(장막절,수장절)(7.15-22): 그리스도의 추수잔치(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치르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계7:15, 19:6-9, 21:3)&lt;br /&gt; &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ChatGPT Image 2026년 9월 3일 오전 12_22_3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429bdb285aac00533043dea0e2a46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247b64e062a08e8502724f3bd6769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6127fb58ad1bf75346d2fa5a00e8d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538bed655ebb4c987f09c706c1fc7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04ff4a37fe401030d141b810652747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ae06e6c80a6afc2277deefb0c345f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ee6daf83a36c328087cc609381cda1b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403b7872044625d9fbb4852a3c3cbf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d47919f63c2c5cc6eab84dc94d805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811ef9310c823d5ef1b57f52e0c52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38033978e01e3c0ff66674b2e93cc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db974b8fe7171b65e26f1637283d5e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7211165c356274ee013d80339e32e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1e926d236d1d6c2a2e6fea942ceaa8f.webp&quot; /&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76b1359b173e850148de4785deaa7d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9c1f964187a3a6c5d0a4690d15ef7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01c4b35535cb16127be3cc41eb8c0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4feca118a9bbbba046c0d789082bd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99e947c747c5d248d8d2364d8467a9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a7dea8b94b495516d7b0eec3794cd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dc31acb5e6fae8adeda43ec38b2bb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5da08a4808495fd83fe456f333de8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3e9d85b7b53eee484d9299ff327fe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47d96602ca6ea76e91575d1477d73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f0eea11307e14e46b8d51506432991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048cd792bc5b5160c36305afb9bef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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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ae56c5175b32a731d3c9dc952a8bdc9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13589231ee7ec255060ac51b0f048f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04b89563a5af04d21e2e1ff473c036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d60338c7a4356debb892ec75c99b7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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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9ae5131bd39e3110526f7c9f84740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fa929c34c6d3fb23c48f6be7fe4bc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1497eb257b213ab2bd4632866e660c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f33b43d81ffe49bfacbb0460f19b6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f34faadb552ad659ba5f4295931533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c463c74d25653ed68d4a578838d5d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cb95feaa013051b844cac07628da4d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강해"/><category term="성결법"/><category term="절기"/><category term="그리스도"/><category term="재림"/><category term="속죄"/><category term="정결"/><category term="성결"/><category term="안식일"/><category term="주일예배"/>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_2026-08-2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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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6T23:35:29+09:00</published>
		<updated>2026-08-27T20:01:3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u0vBbOTbYA [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질문 7가지 ] 1.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2.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 3.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 4. 초실...</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6(수) 수요기도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Ru0vBbOTbY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u0vBbOTbY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질문 7가지 ]&lt;/strong&gt;&lt;br /&gt; &amp;nbsp; 1.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br /&gt; &amp;nbsp; 2.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br /&gt; &amp;nbsp; 3.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4.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br /&gt; &amp;nbsp; 5.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amp;nbsp; 6.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7.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어떻게 더러움에서 씻음을 받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짐승의 피를 중심으로 한 속죄(贖罪, atonement)의 법을, 11장부터 17장까지는 물로 씻는 일을 중심으로 한 정결(淨潔)의 법을, 18장부터 27장까지는 구별된 삶을 요구하는 성결(聖潔)의 법을 다룬다. 속죄가 죄를 덮고 용서받게 하는 일이라면, 정결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일이며,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결법 안에도 개인적인 성결법과 단체적인 성결법이 있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일반 백성이 지켜야 할 개인적 성결을, 21장과 22장은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을 다룬다. 이어지는 23장은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을,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공동체의 성결을 보여 준다. 거룩함은 혼자만의 경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누릴 때 공동체 전체가 거룩해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3장을 보면, 절기들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주간의 절기인 안식일과 일곱 번의 연중 절기가 나온다. 봄 절기에는 유월절&amp;middot;무교절&amp;middot;초실절&amp;middot;오순절이 들어있고, 가을 절기에는 나팔절&amp;middot;속죄일&amp;middot;초막절이 들어있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과 구원의 역사를 함께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분의 죄 없으심을, 초실절은 그분의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오순절은 생명 주는 성령의 강림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 절기가 주님의 초림(初臨, first coming)을 보여 주고 있다면,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과 연결된다고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레위기 23장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가지 질문에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절기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둘째, 초실절의 날짜를 결정하는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 셋째, 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왜 죄를 지닌 두 무리를 가리키는가? 넷째, 무엇보다 다른 절기에는 노동을 금하면서도 왜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그러한 명령이 없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절기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성결하게 하며, 일곱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고, 그 안에 담긴 안식과 교회와 구원의 비밀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 나타나 있는 세 개의 법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구원의 한 과정을 이루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속죄법&lt;/strong&gt;이 있다. 죄인은 누구나 먼저 피로 속죄받아야 한다. 그리고 &lt;strong&gt;둘째, 정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물로 씻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셋째, 성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는 짐승의 피가 중심인 &amp;#39;속죄법&amp;#39;, 물로 씻는 &amp;#39;정결법&amp;#39;, 말씀을 지켜 행하는 &amp;#39;성결법&amp;#39;이 이 순서로 놓여 있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속죄를 통하여 죄 사함만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생활과 성품까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깨끗하고 거룩해지려면 씻음과 순종의 성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백성에게 없었던 큰 은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 주는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영 속에 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는 하나님의 법을 밖에서만 듣게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결은 자기 힘으로 율법 조항을 붙드는 생활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라 구별되게 살아가는 생활이다. 그렇다고 성도의 순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깨우치실 때 자유의지로 그 말씀을 선택하고 뒤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결법이 있는데, &lt;strong&gt;성결법에는 다시 개인의 성결법과 공동체의 성결법으로&lt;/strong&gt; 나뉜다. 개인의 성결법은 레위기 18장부터 22장까지 나오는데, 그중에서 18장에서 20장까지는 음행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반 백성의 성결법이 나온다. 그리고 21장과 22장은 거룩한 직무를 맡은 제사장에게 더 엄격한 성별을 요구함을 본다. 그리고 23장에 이르면 시선이 이제는 온 회중에게로 넓어진다. 한 사람만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가 같은 날, 같은 사건, 같은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모여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주어진 성결법이 단체적인 성결법이다. 이러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레위기 23장과 25장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특별히 레위기 23장은 단체적인 성결법으로서 &amp;#39;안식일&amp;#39;과 &amp;#39;절기&amp;#39;를 다룬다. 이때 절기는 어떤 개인이 임의로 정하는 날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하는 날이다. 안식년과 희년도 어느 한 사람만 쉬고 빚을 면제해서는 그 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온 땅과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양심만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과 경제와 공동체의 관계까지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은 성결법의 부록이 아니다. 개인의 성결을 공동체의 성결로 확장하는 핵심 장이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개인들이 저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정한 때에 한 백성으로 모여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함께 누리게 하셨다. 이 질서를 통해 개인의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고, 공동체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서 반복되는 핵심 표현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amp;lsquo;성회&amp;rsquo;, 곧 거룩한 모임&lt;/strong&gt;이라는 단어인데, 무려 열한 번에 걸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절기들을 선포하시면서 그것들을 여호와의 &amp;#39;절기&amp;#39;(모에드=정한 때, 명절, 기한, 계절)요 &amp;#39;성회&amp;#39;(거룩한 소집)라고 말씀하셨다. 절기는 쉬는 날이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함께 모이는 날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이 깨끗하게 거룩해지는 데에 있어서 개인의 경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서라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죄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경건만으로 신앙의 전부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와 들어맞지 않는다. 한때 자기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중시하는 경건주의가 힘을 얻기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한몸 된 백성이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거룩함에는 개인적인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방면도 동시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단체적인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한 사람이 받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약한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에게 붙들리며,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배우게 된다. 유월절을 가정과 민족이 함께 지켰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마다 성회가 선포되었다. 함께 모이는 행위 자체가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자리에 자신을 두는 순종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이어진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고 서로 권하며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라고 권한다(히 10:24-25). 고로 오늘날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lt;strong&gt;주일예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단체적인 성결의 자리&lt;/strong&gt;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부득이한 형편이 아니라면 주일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혹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다면 그는 다른 예배의 자리라도 찾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기독교의 절기는 어떠한가? &lt;strong&gt;기독교의 절기&lt;/strong&gt;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공동체가 기억하게 하는 절기들이다. 그러한 절기에는 &lt;strong&gt;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lt;/strong&gt;이 있다. 이것들 중에서 성탄절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신 주님의 오심을, 사순절은 그분의 고난을, 부활절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성령강림절은 보혜사 성령의 오심을 기념한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도 있기는 있지만 이것들은 창조의 절기를 기념하는 것들이다. 이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은총을 감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 찬양하며 실제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혼자서는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면 믿음이 교정되고 굳세어진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거룩함뿐 아니라 한 몸의 거룩함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회는 신앙의 부차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는 통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는&lt;strong&gt;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과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 동시에 함께 등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은 엿새 동안 일한 뒤 맞는 일곱째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은 연중 절기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노동을 금하신 날을 가리킨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안식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실절의 날짜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시간표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일곱 절기들 가운데 &lt;strong&gt;노동을 쉬라는 명령&lt;/strong&gt;은 언제인가? 모두 &lt;strong&gt;일곱 번&lt;/strong&gt; 있다.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에 두 번, 오순절에 한 번, 나팔절에 한 번, 속죄일에 한 번,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 두 번이 있다(레 23:7-8, 21, 24-25, 27-32, 35-36).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일곱 종류인데 무교절과 초막절에는 각각 두 번씩 절기의 안식일이 있어서 일곱 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절기들 중에 &lt;strong&gt;안식일이 없는 절기&lt;/strong&gt;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lt;/strong&gt;이다. 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별도의 노동 금지 명령이 없다. 이를 잘 모르면 일곱 절기가 다 일곱 개의 절기의 안식일인 줄 착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절기들 가운데 무교절과 초막절은 하루만 지키는 절기가 아니라 일주일과 여드레를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절과 초막절은 첫날도 아무 노동하지 않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요, 마지막도 역시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일곱 절기들 모두를 다 안식일로 계산한다면 그날은 총 9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절기의 안식일은 9일이 아니라 7일이다. 그럼 어떤 절기가 절기의 안식일에서 빠져있는가? 그것은 바로, 유월절과 초실절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주간의 안식일이 되었든지 또한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는지 상관없이 &lt;strong&gt;안식일의 근본적인 뜻&lt;/strong&gt;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 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 그 일을 그치셨다는 데서 안식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창 2: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목적한 일들을 다 이루셨으므로 그 일을 그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기뻐하며 누리도록 시간을 주셨다. 그것이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이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하는 명령인 것이지 안식의 최종 목적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본질을 놓치면 안식일 규정이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억누르는 짐으로 변할 수 있다. 어느날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시자 유대인들은 그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문제 삼았다(요 5:1-16). 그들의 기준으로는 계란 하나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 안식일을 어긴 것이라고 계산하려 했지만, 정작 한 병자가 오랜 속박에서 풀려 참된 안식을 얻은 일은 전혀 보지 못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해 일해도 죄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날에 그들이 백성에게 속죄와 안식의 은혜를 누리게 하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란 &lt;strong&gt;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기뻐하는 날&lt;/strong&gt;이다. 무교절에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순절에는 성령의 강림을,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에는 장차 주의 재림으로 완성하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려야 한다. 그날에 일을 쉬는 것만 남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사라진다면, 안식의 껍데기만 붙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같은 잘못에 빠질 수 있다. 주일에 직장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몸은 쉬면서 마음은 세상일에 빼앗길 수도 있고,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전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참된 안식은 창조주께서 생명과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을 감사하고, 구속주께서 죄와 죽음의 멍에를 끊으셨음을 찬양하는 데 있다. 노동의 중단은 그 은혜에 집중하기 위한 울타리다. 울타리만 지키고 그 안의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날짜가 언제인지를 정하는 열쇠는 레위기 23장 11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이라는 표현에 서 시작된다. 여기에 나오는 &amp;#39;안식일&amp;#39;을 무교절 첫날인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매주 돌아오는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를 두고 유대교 안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바리새파와 후대 랍비들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인 첫째 달 16일로 보았다. 반면 사두개파 제사장들과 보에투스파는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로 해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시간표&lt;/strong&gt;를 통해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는 오늘날에 알려진 것처럼 성금요일에 돌아가셨다가 주일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삼일삼야를 땅 속에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2:4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인 첫째 달 14일 수요일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셨고, 해가 지기 전에 무덤에 장사되셨다. 날짜과 요일로 보면 수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유월절은 이제 오후6시가 되면서 무교절의 첫날이자 절기 안식일이 된다. 금요일은 향품을 준비할 수 있는 평일이었고, 토요일은 주간의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직접 말씀하신 대로 사흘 밤낮을 땅 속에서 채우신 뒤 토요일 오후 3시가 지난 때에 부활하셨다(마 12:40). 여인들이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무덤에 갔을 때에는 이미 무덤이 비어 있었다(마 28: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이 아니라,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킨&lt;/strong&gt;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실절의 예표를 정확히 성취했다.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교회는 주간의 첫날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초실절에 드려진 첫 곡식은 이삭 하나가 아니라 첫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바쳐야 했다. 이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과 함께 일어난 성도들의 몸까지 한 묶음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마 27:52-53).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을 보증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날 초실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온전히 세고 그 이튿날까지 합하면 오십 일이 된다. 이날이 바로 &amp;#39;오순절&amp;#39;이다(레 23:15-16). 따라서 초실절의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단순한 달력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연결을 푸는 시간표의 열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절기는 농사의 주기와 출애굽의 기억을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그러므로 절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 예표(豫表, type)의 문을 열어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유대인들은 절기를 계속 지키면서도 그것을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지 않는다. 유월절에는 출애굽을 기억하고 초막절에는 광야 생활을 기념하지만,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그 절기의 실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형만 붙들고 있을 뿐 실체는 놓치고 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속 명절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기를 문자적인 의식으로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말고, 각 절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일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7절기를 이해하는데 무엇이 도움이 될까? 사복음서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요한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절기의 책이라 할 만큼 절기와 예수님의 사역을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신 장막절(초막절)을 보여 준다(요 1:14).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고, 또 다음 해 유월절 무렵에는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밝히셨다(요 2:13-22; 6:4, 35). 그리고 초막절에는 목마른 자가 자신에게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으며, 수전절에도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증언하셨다(요 7:2, 37-39; 10:22-30). 절기의 모형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실체를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는 무엇을 예표하는 절기들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lt;/strong&gt;을 예표한다. 이스라엘은 흠 없는 어린양을 첫째 달 14일 해 질 때에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죽음의 사자가 피를 보고 넘어갔고, 백성은 애굽의 속박에서 나왔다(출 12:1-14). 신약의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의 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救援, salvation)을 얻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lt;/strong&gt;을 예표한다. 누룩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을 나타낸다(고전 5:8).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덤과 음부(하데스)에 내려가셨지만 음부의 권세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음부는 최후 심판 전까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임시 처소로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으므로 그곳의 어떤 악한 영도 그분을 건드릴 수 없었고 사흘 동안 그곳을 둘러보신 뒤 나오셨다. 무교절은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에 매이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lt;/strong&gt;을 예표한다. 첫 이삭 한 단이 이후에 거둘 모든 곡식의 시작이듯, 예수님의 부활은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의 부활을 보증한다(고전 15:20-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오순절은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사건&lt;/strong&gt;을 예표한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다(고전 15:45; 행 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역사도 이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간 것은 모세에게 속하여 받은 집단적인 세례였고,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반석에서 마신 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보여 주었다. 그들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다(고전 10:1-4). 이처럼 절기와 출애굽의 사건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면, 가을의 세 절기는 아마도 재림으로 완성하실 일을 보여 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지만 가을의 세 절기를 해석한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나팔절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되는 사건&lt;/strong&gt;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전 15:50-53). 예수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며,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가운데 강림하신다(마 24:30-31; 살전 4:16-17).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계 11:15). 속죄일과 초막절이 보여 주는 재림 이후의 의미는 다음 말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참고로, 오순절(3월 5일경)과 나팔절(7월 1일) 사이에는 약 넉 달의 추수 기간이 놓인다. 보리 추수가 초실절에 시작되어 오순절에 마쳐지고, 밀 추수는 오순절부터 나팔절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이미 희어진 밭을 보라고 하셨다(요 4:35-36). 지금은 복음으로 영혼을 거두는 교회의 시대다.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씨를 뿌리고, 어떤 사람은 다 익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한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함께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같은 상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7개의 절기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연결하여 체계적으로 해석한 시도는 종교개혁자들과 그 이전의 세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19세기 존 넬슨 다비(1800-1882)에게서 이러한 해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영국 성공회 신부 출신으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기초를 놓았고, 그 영향은 미국의 스코필드 성경으로 이어졌다. 그 흐름의 끝자락인 1900년 무렵 미국에서는 방언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나 세대주의가 제시한 가을 절기의 해석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절기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되, 성경 전체가 보여 주는 구원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은 초실절부터 날짜를 계산하여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인 오십 일째 되는 날을 계수하여 지켰다. 이날에는 고운 가루로 만든 떡 두 개를 흔들어 첫 요제로 드렸는데, 특별히 누룩을 넣어 구우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소제에는 누룩이 금지되지만 오순절의 두 떡에는 누룩이 허용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amp;#39;누룩&amp;#39;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령이 강림하는 오순절에 왜 누룩이 들어간 떡을 드리라고 했을까? 이는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아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죄가 없는 자처럼 여겨 주시고, 그 상태에서 생명을 분배하여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까지 하루아침에 완전해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두 개의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들을 주셨기 때문이다(마 16:19). 베드로는 오순절에 첫째 열쇠를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다(행 2:14-42). 이어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으며, 이방인 교회의 문이 열렸다(행 10:34-48).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무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두 떡 모두에 누룩이 들어 있었다. 유대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고 이방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다. 예수를 믿을 때 과거의 모든 죄가 자동으로 사라지고 몸 안에 들어온 악한 영까지 즉시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였고 생명의 성령은 영 안에 들어왔지만, 육체에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과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유혹을 받고 혈기와 분노 그리고 음란에 넘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와 생명주는 영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때부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amp;nbsp;&lt;strong&gt;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悔改, repentance)&lt;/strong&gt;다. 회개는 이미 받은 속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실제로 깨끗하게 하도록 그 죄를 빛 가운데 내놓는 일이다(요일 1:7-9). 왜냐하면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을 받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회개기도문을 따라 자신과 조상의 우상숭배와 자범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도록 가르친다. 속죄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의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놀라운 은혜와 엄중한 책임을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누룩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교회의 지체로 받아 주신다. 그러나 &lt;strong&gt;누룩을 그대로 품고 살아도 된다고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품과 행실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그렇게 하여 내가 정결해질수록 죄의 충동과 저주의 힘은 약해지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도 우리가 거듭난 이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산다면, 자신은 겨우 구원을 받더라도 준비된 신부와 충성된 종의 상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훗날 &amp;lsquo;그때 회개할 걸, 그때 말씀을 들을 걸&amp;rsquo; 하고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들을 때 회개하고, 지금 씻을 때 정결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으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성회와 제물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amp;lsquo;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amp;rsquo;는 명령이 없다. 왜 그럴까?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는 분명히 노동 금지 명령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그 명령이 빠져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필자는 이 질문을 인공지능(AI)에게 던져 초대교부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온 해석을 찾아보게 했다. 그 답은 &lt;strong&gt;절기들의 짝에서 이유를 찾는 것&lt;/strong&gt;이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그 해의 첫째 달 14일부터 이어지는 한 묶음이므로, 유월절(1월 14일)에 이루어진 일을 그다음 날인 무교절 첫날(1월 15일) 쉬면서 기념한다는 것이다. 초실절(1월 18일)과 오순절(3월 5일경)도 첫 이삭을 거두기 시작한 날부터 오십 일을 세어 추수를 마치는 한 묶음이므로, 초실절에 시작된 일을 오순절에 쉬면서 기념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두 절기가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필자는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의 은혜는 그날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고, 부활하신 날의 기쁨도 그날 누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생일을 두 달 뒤에 축하하는 것보다 당일에 축하하는 것이 합당하듯,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각각 유월절과 초실절 당일에 기념해야 한다. 더욱이 이 두 사건은 나머지 모든 구원 사건들의 근간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답의 실마리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논쟁 가운데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신 뒤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자신이 일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 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버지께서는 창조를 위하여 일하셨고, 아들은 구속을 위하여 일하셨다.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죄인이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안식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식이 주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이 말씀에 비추어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 이유&lt;/strong&gt;를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유월절은 아들이 구속을 위하여 일하신 날이며, 초실절은 아버지의 창조 능력으로 새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다. 고로 두 날에 노동 금지 명령을 두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일하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려는 뜻일 수 있다. 그날에도 성회로 모여야 하지만, 그 모임의 초점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바라보는 데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내가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생각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정확한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야 할 부분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안식 앞에 하나님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초실절을 지킬 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만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의 일곱 절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구원의 서로 다른 방면이며, 개인적인 성결은 거룩한 모임을 통한 공동체적 성결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주간의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을 주셔서 그분이 완성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이며, 예수님은 그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 무교절의 무교병, 초실절의 첫 이삭 한 단,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마지막 나팔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게 한다.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넉 달은 교회가 복음으로 영혼을 추수해야 할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키며, 성령을 받은 교회 안에도 아직 죄된 본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칭의를 받고 생명을 얻는 것은 시작이다.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개인이 정결해지고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 단체적인 성결이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유월절&amp;#39;과 &amp;#39;초실절&amp;#39;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었던 까닭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하셨고 아들께서 구속의 일을 하셨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예배와 절기를 형식으로만 지킬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께서 이루신 일을 알고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혼자만의 경건에 머물지 않고 거룩한 모임을 소중히 여기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한다. 또한 희어진 밭을 바라보며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복음의 추수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찬양하고, 정결한 공동체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3장에 나타난&amp;nbsp;&lt;strong&gt;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을 주제로, 구약의 절기가 어떻게&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인도&lt;/strong&gt;로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결이 개인의 경건을 넘어 공동체적 소집(성회)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의 봄 절기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죽음, 무죄함,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lt;/strong&gt;의 예표로 분석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규정과 초실절 날짜에 관한 신학적 논란을 다루면서도, 결국 절기의 핵심 목적은 하나님이 행하신&amp;nbsp;&lt;strong&gt;창조와 구속의 은총&lt;/strong&gt;을 기억하고 누리는 것임을 명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문법적 준수를 넘어&amp;nbsp;&lt;strong&gt;회개와 성령의 역사&lt;/strong&gt;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결의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ChatGPT Image 2026년 8월 27일 오후 07_40_3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838589f3b26777c0f1b725183ccd15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4452c50e71b2c39c4a5c2c61ead188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edbee022b513ed64c97716b8c5a470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06efdcc629baacced2015d9116592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ab7248a412ecd0d2a9c4dcacffb58b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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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이스라엘_일곱_절기와_그리스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d8761031f3ba670b175ef5f8befcb2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c8aa233b988d05ca824584d61aeae3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735e66dd704847cb8ff3ed1ef89b49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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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레23:1~44)_2026-08-19(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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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19T20:46:20+09:00</published>
		<updated>2026-08-20T08:32:1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19(수) 수요예배 제목:[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레23:1~4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5hgyeBkOMeQ 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 (레 23:1-4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는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깨끗함을 얻은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19(수) 수요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5hgyeBkOMe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5hgyeBkOMe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성결법(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깨끗함을 얻은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amp;#39;제사법&amp;#39;을 다룬다. 소제처럼 피 흘림이 없는 제사도 있지만, 중심은 제물의 희생과 피를 통한 속죄다. 죄인은 자기 힘으로 죄값을 없앨 수 없기에 흠 없는 제물이 대신 죽고 피를 흘려야 했다. 이 제사는 장차 세상 죄를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는 &amp;#39;정결법&amp;#39;을 다룬다.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옷을 물로 씻고 정해진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해산한 여인과 나병에서 깨끗해진 사람에게도 씻음이 요구되었다(레 12:6-8, 14:8-9). 그러므로 정결의 핵심에는 피와 물이 함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찔리실 때 피와 물이 나온 사건은 신약의 성도에게 속죄와 씻음이 모두 필요함을 보여 준다(요 19: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부터 27장까지는 &amp;#39;성결법&amp;#39;을 다룬다. &amp;ldquo;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amp;rdquo;는 명령 아래, 하나님의 백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레 19:2). 속죄와 정결이 죄와 부정을 처리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게 한다면,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실을 바꾸어 그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과정이다. 신약에서는 거룩하신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이 길을 걷게 하신다(요 14:26, 16:8, 16: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거룩함은 천국에서 내가 받을 신분과 내가 받을 상급과 연결된다.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지는 일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과 관계되는 것이지만,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말씀대로 살았는지는 천국에서의 나의 위치와 상급에 관계되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정결과 성결의 필요성을 치워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정결화 성결을 위해 회개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면 성품과 행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과 삶의 저주에서도 온전히 벗어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에 다루게 될 레위기 23장은 이 성결을 개인의 차원에서 공동체의 차원으로 넓혀 준다. 한 사람이 홀로 지킬 수 없는 절기를 온 회중이 함께 지키며 거룩함을 입는 단체적인 성결례가 바로 이러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과 해마다 돌아오는 일곱 절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함께 모여,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한 민족과 공동체를 거룩하게 만들어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거룩한 소집을 통하여 백성을 반복해서 자기 임재 앞으로 부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3장의 절기의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대부분 성취되었으므로 신약의 성도가 구약의 달력과 제사를 문자적으로 되풀이해서 실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절기에 담긴 영적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을 받고 자신을 바로잡을 때 공동체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의 관계, 모에드와 성회의 뜻, 안식일의 창조와 구속의 의미, 절기 안식일과 예수님의 죽음&amp;middot;부활 시간표, 그리고 신약 성도가 절기의 영적 원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어떻게 구별되며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는 죄의 값을 처리하는 일이다. 레위기의 제사에서 흠 없는 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고 피를 흘렸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하나님은 피를 제단에 뿌려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셨다(레 17:11). 특히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은 죄의 삯이 사망이며 죄 사함에는 생명의 대가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모든 제사는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일을 예표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정결&amp;#39;은 부정하게 된 사람을 씻어 공동체와 성소에 다시 나아오게 하는 일이다. 음식과 출산과 피부병과 유출과 시체 접촉에 관한 규례에서 물로 씻는 행동이 반복된다(레 11:24-25, 12:2-8, 14:8-9, 15:5-13). 피가 죄의 값을 담당한다면 물은 오염을 씻어내는 대포적인 표지다. 물론 물 자체가 마음의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죄와 부정이 씻기는 신약의 실체를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성결&amp;#39;은 속죄와 정결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단계다. 레위기 18장 이후에는 &amp;ldquo;하지 말라&amp;rdquo;와 &amp;ldquo;지키라&amp;rdquo;는 명령이 집중된다. 거룩함은 머리로 아는 교리가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구별이다. 십계명을 지키고,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으며, 성적인 죄와 우상숭배와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레 18:3-5, 19:3-18, 20:7-8). 행실이 바뀌지 않으면 거룩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단계는 서로 대체할 수 없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고백이 물과 말씀의 씻음이나 거룩한 행실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선한 행동만으로 그리스도의 피 없이 속죄받을 수도 없다. 먼저 죄값이 처리되고, 더러움이 씻기며, 그 뒤에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이 구별되어야 한다. 속죄와 정결과 성결을 함께 붙들 때 레위기의 구원 교육이 온전하게 보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신약 시대에 성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러한 한마디로 성결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이끌며, 죄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는 사람의 순종을 없애지 않는다. 책망을 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말씀대로 행실을 고쳐야 한다. 거룩한 영을 모시고도 그 음성을 거슬러 계속 옛 습관을 따른다면 거룩의 열매가 나타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과정에서는 영적 싸움도 일어난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르던 악한 영들이 진실한 회개가 시작되면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더 강하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회개를 시작했더니 오히려 힘들어졌다고 포기하면 정결과 성결의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 죄를 합리화하지 말고 끝까지 회개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죄의 지배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품과 생활이 실제로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결법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필요 없는 부록이 아니다. 속죄는 출발이고, 정결은 씻음이며, 성결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과정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쓰임받는 자가 되려면 죄 사함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행실이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거룩의 분량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성결례를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레위기에서 성결례는 18장에서 시작하여 27장으로 끝난다. &lt;strong&gt;그중에서 18장부터 20장까지의 말씀은 일반 백성이 지켜야 할 &amp;#39;개인적인 도덕적 성결&amp;#39;을 가르친다&lt;/strong&gt;. 그 핵심은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살던 방식과 가나안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아야 했다.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우상을 만들지 않고, 도둑질과 거짓말과 압제를 버리며,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했다(레 19:3-4, 11-18). 특히 친족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규례를 상세히 주어 성적 성결을 지키게 하셨다(레 18:6-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리고 이어서 21장과 22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를 다룬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는 더 엄격한 성결을 요구하셨다. 제사장은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고, 결혼에서도 배우자에게 있어서 어떤 제한을 받어야 했다. 대제사장은 자기 부모의 시체로도 몸을 더럽히지 말고, 오직 처녀를 아내로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레 21:1-15). 몸에 흠이 있는 제사장은 제사장의 음식은 먹을 수 있었지만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레 21:16-23). 이는 사람의 가치가 낮다는 뜻이 아니라 제사장 직무가 지닌 상징성과 실제 수행 능력을 구별한 규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사실 제사장의 혼인과 시체 접촉 규례에서 사역자를 악한 영의 침입에서 보호하려는 영적 의미도 있는 것이다. 특히 성적인 결합을 통하여 상대에게 있던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많은 영혼을 섬겨야 할 제사장은 처음부터 자신을 더욱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도 흠이 없어야 했다.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가 더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되었다(레 22:17-25). 제사장만 거룩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하나님께 올리는 예물과 태도를 거룩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께 남은 것이나 쓸 수 없는 것을 내어놓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동이다.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행위가 거룩함의 일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제 &lt;strong&gt;레위기 23장부터는 개인이 혼자 수행할 수 없는 공동체적 성결이 본격적으로&lt;/strong&gt; 나타난다. 23장의 절기들, 25장의 안식년과 희년은 온 백성과 나라가 함께 지켜야 한다. 24장에는 등잔과 진설병과 신성모독에 관한 보충 규례가 배치되어 있다.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은 한 사람만 쉬거나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러한 단체적인 성결의 절정은 희년에 나타난다. 희년에는 각 사람이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고, 종이 자유를 얻으며, 속박에서 풀려나야 했다(레 25:8-17, 39-55).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주의 은혜의 해가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필자는 이 말씀을 예수께서 희년의 선포자이자 집행자로 오셨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자기 백성을 풀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은 결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십계명을 어기면서 예배 모임에 참석한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바르게 산다고 공동체 예배를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생활을 거룩하게 하시며 동시에 백성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하신다. 개인의 순종이 모여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의 예배는 다시 개인을 깨우고 바로 세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lsquo;모에드&amp;rsquo;는 무엇이며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어떻게 구성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서 &amp;lsquo;절기&amp;rsquo;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amp;lsquo;모에드&amp;rsquo;(מוֹעֵד)다. 이 말은 &amp;#39;정해진 때&amp;#39;, &amp;#39;약속된 시기&amp;#39;, &amp;#39;회합의 시간&amp;#39;을 뜻하며 문맥에 따라 &amp;#39;절기(명절)&amp;#39;나 &amp;#39;계절&amp;#39;이나 &amp;#39;기한(시기, 때)&amp;#39;로 번역된다. 이는 하나님이 임의로 바뀌는 인간의 일정에 맞추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때를 정하시고 그때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절기는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도록 지정된 시간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에드는 창세기 1장 14절에서 광명체가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한다는 말씀의 &amp;lsquo;계절&amp;rsquo;에 처음 사용되었다. 계절이 정해진 순서대로 되돌아오듯 절기도 반복하여 돌아온다. 아브라함에게 정한 때에 다시 와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에도 약속된 시기의 개념이 나타난다(창 18:10, 14). 회막을 가리키는 &amp;lsquo;오헬(텐트) 모에드&amp;rsquo;는 하나님과 만나는 지정된 만남의 장막이라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 23장은 어떤 모에드를 말하는 것일까? 우선 레위기 23장에서는 연중 일곱 절기에 앞서, &lt;strong&gt;매주 돌아오는 안식일&lt;/strong&gt;부터 말한다. &lt;strong&gt;매주간의 절기를 맨 처음 말씀하신 것&lt;/strong&gt;이다. 이는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며 성회로 모이는 안식일이 절기 체계의 기초다(레 23:3).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lt;strong&gt;절기는 매주의 안식일 하나와 연중 일곱 절기를 합하여 모두 여덟 가지&lt;/strong&gt;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매주 백성을 부르시고, 해마다 구원 역사의 특별한 장면들을 반복하여 기억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연중 절기가 있다. &lt;strong&gt;연중 절기는 봄의 네 절기와 가을의 세 절기로&lt;/strong&gt; 나뉜다. 봄에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곧 오순절이 있다(레 23:5-22). 가을에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있다(레 23:23-43). 봄의 네 절기는 씨를 뿌리고 첫 열매를 거두는 계절에 있으며, 이는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 강림을 예표한다. 가을의 세 절기는 추수를 마치는 계절에 있으며, 마지막 때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과 정결과 혼인 잔치 곧 회개와 심판과 거두어 들임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성경에서 일곱이 자주 넷과 셋으로 구성되는 법칙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 가운데 먼저 네 말 탄 자가 나오고, 뒤의 세 인에서 순교자의 호소와 천체의 큰 변동과 일곱 나팔로의 전환이 이어진다(계 6:1-17, 8:1-2). 일곱 나팔도 앞의 네 나팔은 땅과 바다와 강과 천체를 치고, 뒤의 세 나팔은 화화화로 선언되며 사람에게 더 직접적인 심판을 가져온다(계 8:7-13, 9:1-21, 11:15-19). 봄의 네 절기와 가을의 세 절기도 이 넷과 셋의 구조를 따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구조를 아는 목적은 숫자 자체를 신비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구원 경륜을 질서 있게 계획하셨고, 구약의 절기와 신약의 성취가 서로 연결됨을 보는 데 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초실절은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되신 부활을, 오순절은 성령 강림을 바라본다(고전 5:7, 15:20, 행 2:1-4). 이미 이루어진 절기를 다시 되풀이하려 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모에드라고 하신 것인가? 즉 절기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지키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반복적인 기억과 순종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예배드렸다고 이번 주의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생각과 행실이 흐려지기 쉬우므로 정한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행위가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amp;lsquo;성회&amp;rsquo;는 왜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소집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레위기 23장을 보면, &amp;#39;성회&amp;#39;라는 말이 무려 11번 나온다. &amp;lsquo;성회&amp;rsquo;는 히브리어로 &amp;lsquo;미크라 코데쉬&amp;rsquo;(מִקְרָא־קֹדֶשׁ)라는 말인데, 이는 &amp;#39;거룩한 소집&amp;#39; 또는 &amp;#39;거룩하게 부름받은 모임&amp;#39;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흩어진 생활에서 불러내어 자기 앞에 모으시는 것이다. 레위기 23장에는 성회라는 표현이 열한 번 나오는데, 실제로 노동을 멈추고 모이는 절기의 날들은 주간 안식일과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 등으로 배열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 &lt;p&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lt;u&gt;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u&gt;&lt;/p&gt; &lt;p&gt;레 23:3[안식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의 날이라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일도 하지 말라&lt;/span&gt;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lt;/p&gt; &lt;p&gt;레 23:4 이것이 &lt;u&gt;너희가 그 정한 때에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u&gt;&lt;/p&gt; &lt;p&gt;레 23:7[무교절의 첫 날] 그 첫 날에는 너희가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이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lt;/span&gt;&lt;/p&gt; &lt;p&gt;레 23:8[무교절의 마지막 날]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이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lt;/span&gt;&lt;/p&gt; &lt;p&gt;레 23:21[오순절]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공포하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lt;/span&gt;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p&gt; &lt;p&gt;레 23:24-25[나팔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쉬는 날이 될지니 &lt;/span&gt;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라.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lt;/span&gt;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lt;/p&gt; &lt;p&gt;레 23:27-28[속죄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lt;/span&gt;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lt;/p&gt; &lt;p&gt;레 23:35[초실절의 첫 날] 첫 날에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일지니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lt;/span&gt;&lt;/p&gt; &lt;p&gt;레 23:36[초설절의 마지막 날]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lt;/span&gt;&lt;/p&gt; &lt;p&gt;레 23:37 &lt;u&gt;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열고&lt;/u&gt;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lt;/p&gt; &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 3절의 &amp;lsquo;쉴 안식일&amp;rsquo;은 히브리어로 &amp;lsquo;샤바트 샤바톤&amp;rsquo;(שַׁבַּת שַׁבָּתוֹן)이라고 하여 온전한 쉼을 강조한다.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개인 예배와 다른 거룩의 힘이 나타난다. 혼자 신앙생활하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보기 어렵다. 다른 성도가 회개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말씀을 함께 들으며 생각과 삶을 바로잡게 된다. 한 사람의 간구와 찬양이 다른 사람을 깨우며,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거룩함이 공동체 안에 집약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받는 것이 함께 있는 자리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축복과 성찬의 은혜를 주신다. 이 주고받음은 거래가 아니라 언약적 교제다.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을 드리고, 다시 말씀과 은혜를 받아 다음 한 주를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물을 드리는 일도 결코 성결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음을 인정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인색함과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훈련이 된다. 찬송과 기도와 예물과 말씀과 축복과 성찬이 조화를 이룰 때 예배 전체가 성도를 하나님께 맞추는 거룩한 통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한 때의 예배를 가볍게 여기면 거룩함도 약해진다. 한 달 동안 세상 속에서만 살며 말씀과 기도와 회개의 자리를 떠나 있으면 생각과 욕망이 세상의 방식으로 굳어진다. 매일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고, 적어도 매주 공동체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반복하여 부르시는 것은 그분께서 모임의 수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적으로 말씀 앞에서 씻기고 바로잡혀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배의 내용도 중요하다. 세상 이야기로만 채우면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경륜을 배우기 어렵다. 창조주께서 무엇을 지으셨고, 구속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으며, 앞으로 어떤 나라로 이끄시는지를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그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지는 것이 성회의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늘나라에서 성도가 영원히 행할 중요한 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계 4:8-11, 7:9-12). 이 땅의 공동체 예배는 하늘의 거룩한 모임을 미리 배우고 참여하는 시간이다. 예배를 귀히 여기고 정한 때에 기쁨으로 모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을 더욱 깊이 경험한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단순한 출석 규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거룩함을 유지하는 평생의 중요한 행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안식일은 왜 창조와 구속을 함께 기념하는 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제시한다. 먼저 출애굽기 20장은 출애굽 1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게 하지만, 이어 신명기 5장은 출애굽 2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는 육적인 삶과 만물을 주신 창조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종의 속박에서 해방하신 구속의 은혜다. 고로 우리의 예배에는 이 두 감사가 함께 있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셨으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피곤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이 안식일에 쉬셨다고 하는 말씀은 그분이 피곤하여 쉬어서 힘을 회복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의 육체처럼 산소와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하다 즉 쉬다는 말의 근원적인 뜻부터 살펴야 한다. 안식일을 뜻하는 &amp;lsquo;샤바트&amp;rsquo;(שַׁבָּת)는 일을 &amp;#39;그치다&amp;#39; 혹은 &amp;#39;그만두다(멈추다)&amp;#39;는 뜻의 동사 &amp;lsquo;샤바트&amp;rsquo;(שָׁבַת)에서 시작된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 하나 더 추가되어 &amp;#39;안식하다&amp;#39;, &amp;#39;쉬다&amp;#39;라는 뜻도 생겨났다. 고로 창세기 2장 2절은 하나님이 피곤해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이 아니라 창조사역을 끝마치시고 하시던 일을 그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출애굽기 20장 11절의 &amp;lsquo;쉬셨다&amp;rsquo;는 말에는 역시 &amp;#39;샤바트&amp;#39;와 동일한 뜻을 가진 &amp;lsquo;누아흐&amp;rsquo;(נוּחַ) 계열의 동사가 사용된다. 두 표현 모두 문맥상 피로 회복을 위해 쉬셨다는 뜻보다 창조를 완성하고 일을 그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마지막으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뒤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으셨다고 말씀하셨다(창 1:26-31). 해와 달과 별과 땅과 바다와 생물을 사람이 누리도록 마련하신 뒤에 만족하신 것이다. 그리고 창조 사역을 끝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에는 먼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를 바라보며 창조주를 찬양하고 기뻐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이 창조한 별들의 수를 세시고 그 이름을 부르고 계신다. 이러한 위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상심한 자를 고쳐 주시고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시 147: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이어서 우리는 안식일에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해야&lt;/strong&gt; 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이끌어내셨다. 신약의 성도도 죄와 마귀의 종노릇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누리도록 주신 은혜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은혜도 함께 찬송해야 한다. 이처럼 창조주와 구속주는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두 가지 사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는 창조의 하나님 곧 여호와를 특히 강조하고 신약 시대에는 구원의 하나님 곧 예수님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호와와 예수님은 두 분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한 분 하나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신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 대신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을 경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로 필자는 우리 민족이 오천 년 이상 해와 달과 별과 나무와 돌, 그리고 무당과 점쟁이, 그리고 천 년 이상 석가모니를 그리고 오백 년 이상 공자와 조상을 숭배해 온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인간이나 자연만물인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할 때에는 바로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누리되 그것에 절하지 않고, 조상이나 부모는 공경하되 조상을 하나님이나 구원자로 섬기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안식일의 쉼은 단순히 노동을 하지 않는 소극적 휴식이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뻐하며, 창조와 구속을 찬양하는 적극적인 거룩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그날에 자신의 몸을 쉬게 함으로 창조의 선물을 누리고, 말씀과 예배 안에서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얻은 영적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두 의미를 붙들 때 오늘날 주일 예배는 의무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의 날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어떻게 밝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하루는 어떻게 계산하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기준과는 달리 저녁(오후 6시)부터 다음 저녁(오후 6시)까지 계산되었다. 창세기 1장이 &amp;ldquo;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amp;rdquo;라고 날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고로 주간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레위기 23장에는 매주 돌아오는 주간의 안식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절기 가운데 노동을 멈추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레위기 23장에는 절기의 안식일도 있었던 것이다.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 절기 안식일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시간표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절기의 첫 번째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이다(1월 15일). 이때 무교절은 일주일 동안 지켰으며 첫날(1월 15일)과 일곱째 날(1월 21일)에 각각 성회로 모였으며 이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았다(레 23:6-8). 이와 마찬가지로 초막절에도 첫날(7월 15일)에 성회로 모이고, 칠 일 뒤 하루 더 지난 여덟째 날(7월 22일)에 다시 거룩한 대회로 모였다(레 23:34-36, 39). 유월절 당일의 규정에는 노동 금지가 직접 적혀 있지 않지만, 다음 날인 무교절 첫날에는 분명히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교절 첫날은 절기의 안식일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선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헬라어 표현은 직역하면 &amp;lsquo;땅의 마음 안에&amp;rsquo;이며 문맥상 땅속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흘 동안이다. 이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낮들과 세 번의 밤들, 곧 72시간의 온전한 사흘이다. 전통적인 성금요일 오후의 죽음과 일요일 새벽의 부활로는 낮 한 번과 밤 두 번 정도만 계산되므로, 3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통적인 견해는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과 맞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사실은 공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운명하신 날이 준비일이었다고 말하고, 뒤이어 오는 안식일이 큰 날이었다고 기록한다(요 19:30-31).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은 준비일이었고, 그 다음날이 안식일 중의 큰 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안식일 중의 큰 날이라고 함은 그날이 절기의 안식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돌아가셨던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이었고, 준비일은 유월절 날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유월절 날 오후 해질 무렵 곧 오후 3시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무교절의 첫날인 큰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는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하길 원하였다. 왜냐하면 시체와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기의 안식일이 되기 전에 시체를 처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때였다. 산헤드린 공회원의 한 사람이었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주었다. 이때 산헤드린 공회원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침향(알로에) 섞은 것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둘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향품과 세마포로 싸서, 골고다에 가까이에 있는 바, 아리마대 요셉이 장차 죽으면 들어가려고 파 놓은 새 무덤에 장사하였다(요 19:38-4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결국 이 해석에 따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순서는 이렇다. 예수님은 유월절인 수요일 오후 세 시 무렵에 돌아가셨다. 수요일 해질 때부터 목요일 해질 때까지는 무교절 첫날인 절기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에 모두가 쉬었다. 그리고 금요일은 다시 평일이었기에 여인들이 가서 향품을 사서 장만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는 주간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쉬었다(막 16:1, 눅 23:5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요일 밤&amp;middot;목요일 밤&amp;middot;금요일 밤(삼일밤)과 목요일 낮&amp;middot;금요일 낮&amp;middot;토요일 낮(삼일낮)을 채운 뒤 토요일 해질 무렵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간법에 따르면 오늘날 토요일 저녁 시간부터는 주일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8장 1절을 보라.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는 &amp;#39;안식일&amp;#39;이 아니다. &amp;lsquo;안식일들&amp;rsquo;이라는 복수형 &amp;lsquo;사바톤&amp;rsquo;(&amp;sigma;&amp;alpha;&amp;beta;&amp;beta;ά&amp;tau;&amp;omega;&amp;nu;)이 나온다. 이 형태는 문맥에 따라 한 주를 가리키는 관용 표현으로도 쓰이지만, 분명히 &amp;#39;안식일들&amp;#39;이라고 하는 복수명사가 나온다. 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의 절기 안식일과 주간 안식일을 함께 놓고 보면, 여인들은 절기의 안식일(무교절의 첫 날)이 지나고 평일에 향품을 준비하고 다시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뒤에, 무덤에 찾아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인들은 일요일 새벽에 무덤으로 갔을 때 이미 돌이 옮겨져 있었고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마 28:1-6, 요 20:1). 성경은 그들이 새벽에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지, 바로 그 순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식 날짜로 토요일 해질 뒤는 이미 안식 후 첫날이 시작된 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토요일 늦은 오후 곧 해질 무렵에 온전한 사흘을 채우신 후에 부활하셨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필자는 당시 유월절의 요일을 역사적으로 대조한 계산도 참고해 보았다. 그래서 주후 28년부터 34년 사이의 유월절 날짜들을 살펴본 결과, 주후 30년 유월절만이 수요일에 해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A.D.30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고로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 있던 전통만을 주장하지 말고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을 모두 고려하여 성경의 시간 표현을 면밀히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절기의 안식일(무교절의 첫 날로서 수요일)과 주간의 안식일(그 주간의 토요일)이 지난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신약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기의 영적 원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절기를 구원을 얻기 위한 의식으로 다시 지킬 의무는 없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고전 5:7, 15:20, 행 2:1-4). 이미 실체가 이루어졌는데 다시 유월절 어린양을 잡거나, 예루살렘 성전을 세워 동물 제사를 드리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거꾸로 돌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절기의 영적 원리는 우리가 간직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으므로 묵은 누룩과 악의 누룩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명절을 지키자고 말했다. 이는 구약 달력을 의무로 되돌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은 사람이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절기의 성취를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와 성결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가장 기본적인 적용은 정한 때에 함께 예배하는 것&lt;/strong&gt;이다.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 성도들은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 규정 아래 있지 않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에 함께 모이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리고 개혁교회 성도들이 성탄절이나 부활절처럼 특별히 주님을 기념하는 날에 함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을 공동체적으로 기억하는 절기의 원리를 그대로 보여 준다. 날짜 자체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때 하나님 앞에 모여 말씀과 은혜를 받는다면 그날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기념의 날 혹은 주일에 예배에 참석할 때는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한다. 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그것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찬송해야 한다. 그래서 주일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께 &amp;#39;기도&amp;#39;와 &amp;#39;찬송&amp;#39;과 &amp;#39;예물&amp;#39;을 드리고,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amp;#39;말씀&amp;#39;과 &amp;#39;축복&amp;#39;과 &amp;#39;성찬&amp;#39;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온몸으로 익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공동체 예배가 개인의 회개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주일마다 모이면서도 십계명을 어기고 이방 풍속과 음란과 탐욕을 따랐는데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그에게서 거룩한 열매는 맺히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개인 기도만으로 공동체의 모임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정한 때 성회에 참여하여 다른 성도들과 함께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의 성결과 더불어 단체적인 성결도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 교회는 과연 성경의 절기 구조와 영적 원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성도가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의 차이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단 하나님의 교회나 그리고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안식일에 관한 낯선 지식을 우리에게 제시할 때, 그것을 새로운 진리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끌려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아니, 지도자는 그것을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성도들도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문자적인 절기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혹 어떤 주장도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분별하고 멀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배를 빠뜨리지 않는 것에만 목표로 두지 말고, 예배를 통하여 실제로 거룩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시 찬송할 때에는 창조와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는 자신의 죄와 잘못된 생각을 발견하며, 새로운 영적인 진리의 말씀을 따라 회개와 순종으로 행실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반복하여 돌아오는 모에드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의 때가 벗겨지고 천국의 성품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가 신약의 성도에게 가르치는 영적 원리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레위기의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이 서로 어떻게 구별되고 연결되며,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제사는 피를 통한 &amp;#39;속죄&amp;#39;를, 11장부터 17장까지의 규례는 물과 피를 통한 &amp;#39;정결&amp;#39;을, 18장부터 27장까지의 법은 말씀을 지키는 행실의 &amp;#39;성결&amp;#39;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죄 사함을 출발점으로 삼되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개인의 성결은 십계명과 성윤리와 제사장의 규례와 흠 없는 예물에서 나타나야 하며, 공동체적 성결은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처럼 온 백성이 함께 순종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희년은 속박에서 놓아주는 해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희년의 선포자이자 집행자로 오셨음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모에드&amp;#39;(정한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만남의 때이고, 성회는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는 소집이다. 주간의 안식일과 연중 일곱 절기는 반복하여 실행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불러내신다. 그중에서 봄의 네 절기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 강림을 보여주고 있고, 가을의 세 절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와 더불어 마지막 거두어 들임을 바라보게 한다. 이제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절기를 문자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을 영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안식일에는 &amp;#39;창조&amp;#39;와 &amp;#39;구속&amp;#39;이라는 두 감사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물을 창조하시어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시간표에 대해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성경의 직접 진술과 해석을 살펴보면서, 익숙한 전통보다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정한 때인 주일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와 찬송과 예물을 드리고, 말씀과 축복과 성찬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더욱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단체적인 성결례를 집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개인의 회개와 더불어 공동체 예배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예배 시에 받은 말씀을 실제 행실로 옮겨 열매를 맺는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예배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는 삶을 실천하여 복된 성도가 되어 장차 도래할 천국의 혼인잔치에 꼭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레위기 23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의 의미와&amp;nbsp;&lt;strong&gt;절기&lt;/strong&gt;&amp;nbsp;속에 감춰진 영적 법칙을 강해한 자료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결을 개인적 도덕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정한 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완성되는 상태로 정의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안식일&lt;/strong&gt;을 모든 절기의 기초이자 성결의 핵심 수단으로 강조합니다. 이 설교의 구조적 핵심은 성경 속&amp;nbsp;&lt;strong&gt;&amp;lsquo;4대 3&amp;rsquo;의 법칙&lt;/strong&gt;을 통해 봄 절기는 예수의 초림을, 가을 절기는 재림과 천국 소망을 상징한다는 논리적 체계입니다. 또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단순한 주간 안식일이 아닌&amp;nbsp;&lt;strong&gt;절기 안식일&lt;/strong&gt;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히며, 이를 통해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창조와 구속의 은총&lt;/strong&gt;을 기억하는 예배의 삶을 회복할 것을 독려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목적은 절기에 담긴 하나님의 정한 때(모에드)를 준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더욱 거룩한 존재로 빚어가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일깨우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ChatGPT Image 2026년 8월 20일 오전 12_51_2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c6e6c3d1ab38494babf87426a9b95eb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5a1698266affd513dd39b47b229cf8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e8da956dbb567d6a29eceba8310e23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ab1e5cb141ad31b5412ac8da93671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83f880e2de289051dd71d0daffdd76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390407e0c4d643f947efa95a1eda7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1264e04661c07714053dae58f0a3d5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c2d7ae7bc61106b80ec75627909894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56a038aecea1d8fd22afb63759a39b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0bf0aef1116393ae9d1dbf3091b2f4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b0695062973ff7a648c2d90185de94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7cbd711c74fb66b13953e562cdc63e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b9e1f2d21bac3f644fe56983329e54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7ba496e85d02591f5dcb264f7ac39ac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하나님이_정하신_거룩한_시간_모에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6fea31878bad5662e152e54910da065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a960661aff7e249ea452d7423bffa8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6aa93baf197ae99a046fcdbb1ef7f2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85c236563b8490f17887c526f94da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dea6a9b9a6db457f2f43f3867b1037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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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레위기 21:1~22:33)_2026-08-12(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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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12T21:53:39+09:00</published>
		<updated>2026-08-13T23:57:2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1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레위기 21:1~22:3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3yLP-W86vg 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 (레 21:1-22:3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를 구별하시고, 그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8-12(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레위기 21:1~22:3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_3yLP-W86v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3yLP-W86v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1:1-22:3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를 구별하시고, 그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주신 후에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사장들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부정해진 것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단지 제사의 절차를 기록한 옛 율법이 아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속죄받은 백성이 어떻게 깨끗해지고, 마침내 어떻게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큰 구조도 이 세 단계를 보여 준다. &lt;strong&gt;1장부터 10장까지&lt;/strong&gt;는 제사와 제사장 위임을 통하여 속죄의 길을 다루고, &lt;strong&gt;11장부터 17장까지&lt;/strong&gt;는 음식과 출산과 나병과 유출병과 대속죄일과 피의 규례를 통하여 정결의 길을 다룬다. 이어 &lt;strong&gt;18장부터 27장까지&lt;/strong&gt;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lt;strong&gt;18장부터 20장까지&lt;/strong&gt;가 일반 백성의 성결례라면, &lt;strong&gt;21장과 22장&lt;/strong&gt;은 제사장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lt;/strong&gt;은 서로 이어지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amp;#39;속죄&amp;#39;는 피로 죄를 덮어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자처럼 여김받게 하는 것이고, &amp;#39;정결&amp;#39;은 물과 피로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다. &amp;#39;성결&amp;#39;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실제로 살아 내는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성결을 &amp;ldquo;하지 말라&amp;rdquo;는 명령을 버리고 &amp;ldquo;하라&amp;rdquo;는 명령을 행함으로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렇지만 신약시대 들어와서는 거룩한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며 그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달랐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제사장에게는 일반 백성보다 더 엄격한 성결이 요구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 앞에 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며, 거룩한 성물과 제물을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 자신이 더러우면 그가 전하는 말씀과 그가 드리는 제사까지 욕되게 보일 수 있었다. 오늘날 영적 지도자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많이 알고 많이 맡은 자일수록 더 철저히 회개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눅 12:47-4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과 성물 및 제물에 관한 성결례로서, 시체 접촉과 애도의 관습, 혼인, 육체의 흠, 성물의 취급과 제물의 조건까지 세밀하게 규정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겉모습만 보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속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규례로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의 속죄와 정결과 성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왜 더 높은 성결이 요구되었는지, 시체와 혼인과 육체의 흠에 관한 규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를 오늘날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서로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amp;#39;속죄&amp;#39;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죄를 가리는 일이다. &lt;strong&gt;레위기 1장부터 7장까지&lt;/strong&gt;의 다섯 제사와 8장부터 10장까지의 제사장 위임 규례는 피 흘림을 통하여 죄인이 용서받는 길을 보여 준다. 짐승의 피는 장차 흠 없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단번에 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속죄가 없다면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속죄는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죄가 덮였다고 해서 삶에 묻은 모든 더러움이 저절로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lt;strong&gt;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lt;/strong&gt;는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해산한 여인, 나병과 유출병, 시체 접촉, 대속죄일과 피의 규례를 다룬다. 부정해진 사람은 물로 씻고 정해진 기간을 기다리며, 필요한 경우 피의 속죄를 받아야 했다. 정결은 죄와 부정으로 더러워진 것을 씻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상태로 회복하는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은 깨끗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별되어 사는 단계다. &lt;strong&gt;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lt;/strong&gt;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우상숭배와 음행과 근친상간과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버리며, 십계명에 순종하라고 명한다. 성결에는 금지와 명령이 함께 있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끊는 소극적 순종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과 예물을 지키는 적극적 순종이 함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레위기의 중심 명령&lt;/strong&gt;은 &amp;ldquo;거룩하라&amp;rdquo;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그분의 백성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말씀을 행하여 거룩해야 한다(레 19:2, 20:7-8). 거룩함은 막연한 감정이나 종교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며,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그분께 드리는 구별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0:7-8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속죄만 강조하고 삶의 더러움을 그대로 두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정결만 추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없다면 다시 세상의 풍속에 물들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행위로 거룩해지려 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죄 사함의 기초가 없다. 예수의 피로 속죄받고, 죄를 자백하여 깨끗해지며, 말씀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온전한 흐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목적도 단지 종살이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사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시려고 불러내셨다(레 22:32-33).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도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러움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구약의 성결법과 신약의 성령&amp;middot;회개를 통한 성결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백성은 돌판과 두루마리에 기록된 &amp;#39;율법&amp;#39;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다. &amp;ldquo;하지 말라&amp;rdquo;는 명령 앞에서 멈추고 &amp;ldquo;하라&amp;rdquo;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백성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신 것은 아니었으므로, 말씀을 깨닫고 끝까지 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율법은 거룩함의 기준을 제시했지만 사람의 내면을 새롭게 하여 그 기준을 이루는 생명까지 공급하지는 못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의 성도에게는 거룩한 성령께서 내주하신다(요 14:16). 성도 개인과 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깨우치실 때 멈추고, 행하라고 이끄실 때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서도 구원받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전은 거룩하므로 성령을 모신 성도도 거룩해야 한다(고전 3: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도를 해방한다고 말했다(롬 8:2). 생명의 성령의 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우리를 이끌지만, 죄와 사망의 법은 육신과 악한 영을 통하여 죄의 충동으로 끌고 간다. 성도는 중립적인 존재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느 법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지를 날마다 선택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실제로 영적인 삶에서 씨름하며 깨달은 것은 &amp;ldquo;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amp;rdquo;라고 선포하는 것만으로 죄의 충동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갈 2:20). 이 믿음의 고백은 중요하지만, 이미 죄를 통하여 들어와 몸과 혼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그대로 두면 같은 유혹과 성질이 또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용서받고, 악한 영이 머물 근거를 제거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그 영을 내보내는 회개가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악한 영을 밀어내는 힘도 주신다. 필자가 축사 사역을 하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듭나 성령을 모신 사람 안에서는 성령께서 악한 영을 밖으로 밀어내시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내적인 힘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체험은 성령의 내주와 회개가 실제적인 정결과 축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약 시대에는 주로 죄를 따라 들어온 뱀들이 사람 안에서 역사했고, B.C.400년경 말라기 선지자 이후 B.C.4년 예수님의 탄생 전후에 악한 영들이 하늘에서 집단적으로 쫓겨나면서 신약 시대에는 더 큰 귀신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파악하고 있다. 고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뒤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도 이러한 영적 전쟁의 순서를 보여 준다(마 4:1-11, 12:25-29). 예수께서는 강한 자를 결박하시고 그의 졸개들을 내보내셨으며, 승천하신 뒤 보혜사 성령을 보내 각 성도가 악한 영을 이기도록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신약의 성결은 율법을 폐기하고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마음에 새기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모두 자동으로 처리되었다고 여기며 회개를 버려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죄를 지었으면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하며(요일 1:9), 회개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법이 역사할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구체적인 회개가 함께 갈 때 성도는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더 높은 성결이 요구된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과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구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고, 제사를 집례하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고, 백성을 축복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제사장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백성 앞에서 보이도록 드러내는 대표자였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에게 요구되는 &lt;strong&gt;십계명의 성결 위에 직분자로서 지켜야 할 더 엄격한 규례&lt;/strong&gt;가 더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이 더러우면 백성은 &amp;ldquo;당신부터 바로 사시오&amp;rdquo;라고 말하게 된다. 그의 말과 삶이 다르면 하나님 말씀의 권위까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 거룩해야 한다고 명하셨다.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들이었으므로 생활과 몸과 관계를 구별해야 했다(레 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1:6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직분이 높아질수록&lt;/strong&gt; 자유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lt;strong&gt;책임이 무거워진다&lt;/strong&gt;. 예수께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고, 알지 못하고 잘못한 종은 적게 맞는다고 하셨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신다(눅 12:47-48). 영적인 지식과 은사와 권세를 받았다는 사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더 철저히 자신을 살펴야 할 이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와 아론의 사건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므리바에서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하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백성에게 분노하며 반석을 두 번 쳤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책망하셨고, 약속의 땅으로 회중을 인도해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민 20:7-12). 오랜 세월 충성한 지도자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잘못 드러내면 엄중한 책임을 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한 사람들을 향하여 평소에 하지 않던 거친 말을 한 뒤 깊이 참회했다. 귀신의 집을 많이 파괴하고 오랫동안 회개했더라도 순간의 분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릴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상처와 억울함을 앞세우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입술과 감정을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지도자의 길은 외롭다. 가족의 요구와 성도의 필요가 동시에 놓일 때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를 먼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의 인정과 인간적인 즐거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오직 주님과의 관계로 외로움을 이겨야 한다.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직분의 명예보다 심판과 책임을 먼저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영적 지도자는 회개를 통하여 자기 안의 귀신의 집을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사람 안에는 여러 귀신의 집이 형성될 수 있고, 사역자가 정결하지 않으면 자기 안의 영을 다시 불러들이거나 성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외부 사역을 하다가 일시적으로 붙은 영은 권세 있는 축사로 떠날 수 있지만, 조상 때부터 죄를 따라 합법적으로 내려와 자리 잡은 영은 본인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기 쉽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될수록 더 오래, 더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시체 접촉과 혼인 규례는 어떤 영적 원리를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를 다룬다. 레위기 21장은 가장 먼저 제사장에게&lt;strong&gt; 죽은 자와의 접촉을 제한&lt;/strong&gt;한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백성 중의 시체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지만, 부모와 자녀와 형제 그리고 아직 출가하지 않은 자매 같은 가까운 혈족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레 21:1-4). 또한 이방인의 애도 풍습처럼, 머리털을 깎고 수염 가장자리를 밀며 몸을 베어서는 안 되었다(레 21:5). 슬픔을 표현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의 주술적 관습을 따라서는 안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대제사장에게는 죽은 자에 대하여 더 엄격한 규례가 적용되었다. 그는 부모가 죽었을 때에도 시체를 가까이하거나 성소에서 나가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의 관유가 그의 머리 위에 있었고, 그는 온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유일한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레 21:10-12). 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섬기는 공적인 직무가 개인의 슬픔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1:12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사실은 영적으로 풀면 이해가 훨씬 더 잘 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때 그 몸과 주변에는 수많은 악한 영이 자신이 머물 곳을 찾는 시간이기 때문에 장례식장과 시체 접촉은 영적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혈기와 분노를 내는 일과 시체가 있는 장소에 오래 머무는 일은 악한 영이 많이 달라붙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장례식장에 갈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며, 돌아온 뒤에도 철저히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죽은 자를 위한 예배를 성경이 명한 적이 없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amp;ldquo;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amp;rdquo;고 하셨다(눅 9:60). 그러므로 장례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는 있지만, 죽은 사람에게 예배를 드리듯 입관예배&amp;middot;발인예배&amp;middot;장례예배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25년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조문과 기도로 장례를 마쳤다. 이는 레위기의 시체 접촉 규례를 오늘날에 적용한 목회적 판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두 번째로 제사장은 혼인 규례도 제한받았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창녀나 이혼당한 여인과 결혼해서는 안 되었지만 과부와의 결혼은 허용되었다(레 21:7). 그러나 대제사장만큼은 자기 백성 가운데 처녀를 아내로 맞아야 했고, 과부와 이혼당한 여인과 창녀를 아내로 절대 맞이할 수 없었다(레 21:13-15).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혼인에서도 더 엄격한 구별을 요구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1:13-14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그런가? 필자는 이 규례를 성관계를 통한 영의 교류라는 원리라고 본다. 부부가 한 몸이 될 때 서로의 가문과 삶을 따라온 영들도서로 오갈 수 있으므로, 여러 남자와 관계한 사람과의 혼인은 제사장의 성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혼인에 구약의 신분 규정을 문자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믿음과 회개의 상태를 보지 않고 외모와 조건만 따라 배우자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배우자를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제사장에게 있어서 시체와 혼인의 규례의 핵심은 &lt;strong&gt;접촉과 연합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lt;/strong&gt;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와 무엇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영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섬김받을 성도들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분별하고, 부정한 풍속과 음행을 끊으며, 예수의 피와 회개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흠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을 오늘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아론의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제사장 신분을 가진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맹인이나 다리를 저는 자, 코가 불완전한 자, 손발이 부러진 자, 꼽추나 키가 지나치게 작은 자, 눈에 백막이 있는 자, 피부병이 있는 자, 고환이 상한 자처럼 육체에 흠이 있는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제단과 성소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말라고 하셨다(레 21:16-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규례는 흠 있는 사람의 생존권이나 제사장 가문의 신분을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라도 다른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지성물과 성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휘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제단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직무는 맡지 못하게 했다(레 21:22-23).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함을 돌보시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성소가 흠 없는 거룩함을 상징하도록 직무를 구별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1:22-23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이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구약에서 제사장과 제물의 외적인 흠 없음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지였다. 예수님은 죄가 없고 흠이 없는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제물이시다(히 7:26-27, 벧전 1:18-19). 그러므로 육체의 흠이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은 그 사람의 영혼이 덜 귀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의 시대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한 규례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는 이 규례를 근거로 장애인은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구약에 여자 제사장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구원의 차별이 철폐되었고 모두 하나가 되었다(갈 3:28). 성령께서는 남종과 여종에게 함께 부어지시며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행 2:17-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신약이 육체와 성별의 장벽을 넘었다고 해서 지도자의 성결 기준까지 낮아진 것은 아니다&lt;/strong&gt;. 오히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와 상처와 영적 문제를 더 철저히 다루어야 한다. 필자는 장애가 조상의 죄를 통하여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과 관련될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경우 당사자가 회개를 통하여 그 영적 배후를 보다 더 철저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장애를 당사자의 죄나 귀신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요 9:1-3), 영적인 원인이 확인된다면 외면해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성이나 장애인이 목회자가 될 때에도 핵심은 성령의 부르심과 철저한 회개와 거룩한 열매다. 사실 남성이나 비장애인도 자기 안의 혈기와 교만과 음행과 탐욕을 처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외형적 조건을 자랑하는 대신 누구든지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규례는 교회가 약한 사람을 밀어내라는 말씀이 아니다. 공동체는 육체의 약함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물을 함께 누리게 하고, 그의 생계와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는 감정이나 인간관계로 정하지 말고 부르심과 성품과 정결함과 은사와 열매를 분별하여 맡겨야 한다. 긍휼과 거룩함을 함께 지키는 것이 레위기 21장의 균형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제사장은 성물과 제물을 어떻게 거룩하게 다루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 22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레위기 22장은 제사장 자신을 넘어 그가 다루는 성물과 제물의 거룩함에 대해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나병이나 유출병에 걸렸거나, 시체로 부정해진 사람과 접촉했거나, 설정했거나, 부정한 벌레나 사람과 접촉했다면 정결해질 때까지 성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먼저 몸을 물로 씻고 해가 진 뒤에야 정하게 되어 성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레 22:3-7). 성물이 제사장의 음식이라고 해서 아무 상태에서나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일상적인 물건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제사장이 자신의 부정을 무시한 채 성물에 손을 대면 성물을 욕되게 하고, 그 죄로 죽을 수도 있었다(레 22:9). 거룩한 직분이 성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다룰 책임을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물은 아무나 먹을 수도 없었다. 제사장의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산 종은 먹을 수 있었지만, 외국인이나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은 먹을 수 없었다.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성물을 먹지 못했고, 자녀 없이 과부나 이혼한 여인이 되어 친정으로 돌아오면 다시 먹을 수 있었다(레 22:10-13). 이는 성물이 혈통과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언약 공동체와 질서 안에서만 나누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lt;strong&gt;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lt;/strong&gt; 했다. 번제와 화목제 가운데 서원제와 자원제를 드릴 때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중에서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했다. 눈이 멀거나 상하거나 지체가 불완전하거나 종기와 습진이 있는 짐승은 제단에 올릴 수 없었다(레 22:18-25). 자신도 함께 먹는 화목제라고 해서 낮은 품질의 짐승을 골라서는 안 되었다. 언제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것을 준비해야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2:19-20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제물의 출처도 중요&lt;/strong&gt;하다. 죄를 짓게 하는 사업으로 번 돈을 십일조로 많이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술 취함과 음행을 조장하는 업종으로 돈을 벌면서 사업이 잘되도록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없다. 먼저 직업과 수입의 길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예물의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얻은 과정과 드리는 사람의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상에게 바쳐졌거나 무당의 의식에 사용된 음식을 교회에 가져와 나누는 일도 피해야 한다. 필자가 들은 사례 가운데 무당의 신내림 의식에 쓰고 남은 음식을 교회에 계속 가져온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풍성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음식에 악한 영들을 붙어 있다. 그러므로 음식의 배후에 우상숭배와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성도의 공동체에 제사음식을 들여놓아서는 아니 된다(고전 10:19-21, 계 2:20). 혹 자신이 모르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그 음식으로 들어온 영을 추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이 오래 입은 옷이나 사용한 물건에도 그 사람을 따라다니던 악한 영들이 묻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다른 사람이 오래 사용한 옷보다 깨끗한 새 옷을 사용하고, 물려받은 물건을 쓸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악한 영의 영향을 끊는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레위기의 직접 명령이 아니라 접촉을 통하여 부정이 옮겨진다는 원리를 오늘의 생활에 적용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온전함뿐 아니라 짐승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요구하셨다. 갓 태어난 소나 양이나 염소는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덟째 날부터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아서도 안 되었다(레 22:26-28). 감사제의 제물은 그날에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서는 안 되었다(레 22:29-30). 거룩함은 차갑고 잔인한 완벽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긍휼을 함께 따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속죄받은 성도는 어떻게 성결한 삶과 천국 상급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이미 속죄받은 성도는 어떻게 자신을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속죄를 신앙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알아야&lt;/strong&gt; 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가장 큰 은혜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목적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는 데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말씀을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야 했듯이, 구원받은 성도도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2:31-33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날마다 구체적으로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만 막연히 인정하지 말고 어떤 죄를 지었으며 어떤 영을 받아들였는지를 자백해야 한다. 혈기와 분노, 교만과 판단, 음행과 탐욕,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회개하고,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명령해야 한다. 회개의 분량이 채워질수록 죄와 사망의 법이 역사할 근거가 약해지고 성령의 인도에 더 민감하게 순종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접촉과 관계를 조심해야&lt;/strong&gt; 한다. 장례식장과 우상숭배의 장소에 갈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며, 음행과 술 취함과 점술을 조장하는 환경을 멀리해야 한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때에도 세상의 조건보다 믿음과 회개의 상태를 먼저 보아야 한다. 무엇을 먹고 누구와 가까이하며 어떤 물건을 받아들이는지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지도자는 더 철저히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말씀을 전하고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 혈기와 교만과 음행을 품고 있으면 그 더러움이 사역을 통하여 묻어날 수 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직분과 능력을 구하기 전에 회개하여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상처와 억울함을 십자가에 내려놓으며,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예배와 헌금과 봉사와 찬양을 남는 시간과 남는 물질로 대충 드려서는 안 된다. 깨끗한 직업과 정직한 수입으로 얻은 것을 기쁘게 드리고, 교회에 가져오는 음식과 물품도 그 출처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가장 좋은 것, 흠이 없는 것, 감사와 믿음이 담긴 것을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말씀에 순종하는 적극적인 성결의 열매를 맺어야&lt;/strong&gt; 한다. 회개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고 섬겨야 한다. 필요할 때에는 한 영혼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고 해야 할 것을 행할 때 성결이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천국의 지위와 상급을 바라보아야&lt;/strong&gt; 한다. 속죄만 받고 아무 열매 없이 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적다. 그러나 회개를 통하여 깨끗해지고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여 충성한 사람은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면류관과 상급을 얻는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사는 것이 아니지만, 구원받은 뒤 어떻게 살았는지는 주님 앞에서 분명히 평가받는다(고전 3:12-15, 계 22: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성결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속죄받고, 계속되는 회개로 더러움을 제거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주어진 작은 순종 하나가 천국의 영원한 상급을 준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간신히 심판만 피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영원한 나라에서 귀하게 쓰임받게 하려고 부르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왜 더 엄격한 성결이 요구되었는지, 시체 접촉과 혼인과 육체의 흠에 관한 규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가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는 죄를 덮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더러움을 씻으며,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도록 이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지는 은혜의 출발점이다. &amp;#39;정결&amp;#39;은 죄와 부정으로 더러워진 것을 씻어 내는 과정이며, &amp;#39;성결&amp;#39;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행하는 삶이다. 이 세 단계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속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회개로 깨끗해지고 순종으로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제사장과 대제사장&lt;/strong&gt;은 하나님을 대표했기에 일반 백성보다 더 엄격한 성결을 지켜야 했다. 시체와 혼인의 규례는 접촉과 연합의 영적 영향을 분별하게 하며, 육체에 흠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은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과 장차 오실 흠 없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 신약에서는 장애나 성별로 직분을 기계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지도자는 더 철저한 회개와 거룩한 열매로 부르심을 증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성물과 제물&lt;/strong&gt;도 속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부정해진 제사장은 정결해질 때까지 성물을 먹지 못했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제물을 드려야 했다. 예물의 출처와 드리는 사람의 상태도 중요하다. 죄를 조장하여 얻은 물질이나 우상숭배에 사용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깨끗하고 온전하며 긍휼과 감사가 담겨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성도는 거룩한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용서와 깨끗함을 받고, 그 죄로 들어온 악한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내보내야 한다. 혈기와 분노와 교만을 버리고, 접촉과 관계를 분별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특히 많이 알고 많이 맡은 지도자일수록 더 엄중하게 자신을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lt;strong&gt;성결&amp;#39;&lt;/strong&gt;은 단지 더러운 것을 피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전도와 예배와 찬송과 기도와 구제와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삶의 열매로 드러내고, 천국에서 주실 지위와 면류관과 상급을 바라보며 오늘의 작은 순종에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고 날마다 회개하여 정결해지며, 성령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상급을 얻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2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1장과 22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제사장과 성물 및 제물의 성결&lt;/strong&gt;에 관한 핵심 원리를 다룹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이 단순한 죄의 사함을 넘어&amp;nbsp;&lt;strong&gt;거룩하게 구별된 삶&lt;/strong&gt;을 살게 하려 함임을 강조하며,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인 제사장은 시체 접촉 금지와 엄격한 결혼 규례를 통해&amp;nbsp;&lt;strong&gt;자신을 성결하게 유지&lt;/strong&gt;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은&amp;nbsp;&lt;strong&gt;흠이 없는 온전한 것&lt;/strong&gt;이어야 하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성령의 인도하심과 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내면의 부정함을 씻어내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드려야 함을 시사합니다. 결국 성결의 본질은 외적인 형식을 넘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lt;/strong&gt;으로써 천국 시민으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 가는 과정임을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6)] ChatGPT Image 2026년 8월 13일 오후 11_53_4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bde42a6812312dbfbf9641bc36833a5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db065d2af0741e253e1a861ca8cc7a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dae87e40540fc40fbee7a5d5aa4749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5c816edd742b6d959a2744c7cfcf89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9f9d6288a87af221eaa59a2d17dacc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a687a2b8ff461dc72748858acf7c61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e75b846f40cb85db241e4c3874c223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3dfa398f1fa7483efd1c261d78d0da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6aa359bbd075c651b2023d66fba698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7ceae714a88377f583430c471f7829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7d7831f0663eccaeecd70a2ab7532b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bb043bb80d201f162ba7efc6330d98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dabfd333ad96ad910e5b14174b351ca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108f54698bfcd7c554bb015b38d9bb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ba308d728c86b8ba574acdc881f1e2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The_Journey_to_Holines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4f0e65bb3fed3600105b295e1a188a3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6)] 거룩의_여정_속죄에서_성결까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34ff4c603d6a6685cc21502d9582f8a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 Holines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fa36c5babd7e95f99d1faf2444eb59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 Holines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9/264/0ad2eecae6fa4e8824fcf82034ed6e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16)] Holines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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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역자론(13)]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출32:30~35)_2026-08-0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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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5T09:03:28+09:00</published>
		<updated>2026-08-07T23:57:5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05(수) 수요기도회 제목: [온라인수요기도회(2026.08.05/수,오전11시)] [사역자론(13)]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출32:30~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cBuwid4xbXA 사역자론(13)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 (출애굽기 32:30~35)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역자와 일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039;준비성&#039;이다. 지도자가 되려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8-05(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온라인수요기도회(2026.08.05/수,오전11시)]&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3)]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출32:30~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Buwid4xbX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Buwid4xbX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출애굽기 32:30~35)&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역자와 일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amp;#39;준비성&amp;#39;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지도자로서 준비되어야 한다. 자신이 준비되지도 않은 채 큰 직분과 능력만 탐내서는 안 된다. 그럼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amp;#39;회개&amp;#39;라고 단언할 수 있다. 회개하여 악한 영이 떠나야 다음의 영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성령의 불과 보혈의 능력과 영적 계급도 더 충만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가 영적 진보의 출발점인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 곳을 찾아다니고 강한 안수를 받아도 같은 문제를 반복할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경험한 한 성도의 사례가 있다. 축사를 받을 때마다 목매달아 죽은 언니의 영이 나오더니 자신도 그 동생을 목매달아 죽이려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주간에 그 영을 내보냈는데 다음 주간에 다시 와서 사역을 받는데 같은 언니의 영이 나왔다. 그런데 언니는 여러 명이 있지 않았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아 나갔던 악한 영이 다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회개 없이 귀신만 뽑아 달라고 하면 매주 돈과 시간만 들어갈 뿐 영의 완전한 퇴치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회개 없이 예수님의 피를 외치거나 단순한 구호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역시 뿌리가 해결되지 않는다. 죄를 회개한 다음에 축사를 받아야 실제적인 진보가 일어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런 영적 원리를 정확히 가르쳐 줄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니 큰 복이다.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면 오랜 시간과 재물을 쓰고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당의 영이 섞인 상태에서 열심히 수고해봤자 그 수고를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무당의 영에게 쓰임받다가 그만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고 천국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반대로 바른 지도자를 만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수고가 천국의 집과 상급으로 연결되는 길을 배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진리를 찾기 위하여 수십 년 동안 여러 전문가의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날마다 그것들을 성경과 대조했다. 그런데 영적 세계를 잘 안다는 사람도 역시 잘못된 교리와 또한 체험도 섞여 있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반복하여 확인하고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했다. 회개가 쌓여 어느날 거짓의 영이 떠나자 사람들도 필자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바른 교사는 자기 삶으로 진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에게 주어진 교사는 누구인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영적 지도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여호수아가 평생 모세를 따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며, 모세는 부르심과 희생과 기도와 온유와 순종과 겸손을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 오늘날 우리가 따를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부족한 지도자를 위하여 성도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래서 &lt;strong&gt;이 시간에는 성도에게 주신 세 가지 교사와 영적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준비를 살펴보고,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성도에게 세 가지 교사는 누구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에게는 세 가지 교사가 있다. &lt;strong&gt;첫째는 &amp;#39;성경&amp;#39;&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amp;#39;성령&amp;#39;&lt;/strong&gt;이며, &lt;strong&gt;셋째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amp;#39;목사와 교사&amp;#39;&lt;/strong&gt;다. 이 셋의 관계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성경과 성령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이때 사람인 지도자는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 아래에서 성도를 온전하게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완전한 스승이시고, 모든 인간 지도자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교사는 &amp;#39;성경&amp;#39;&lt;/strong&gt;이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성경을 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성경 전체를 읽으며, 모든 환상과 음성과 체험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딤후 3:1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특히 구원에 있어서 완전하다. 이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며,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살게 한다(롬 1:16-17). 이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속하게 되고 성령께서 생명을 우리에게 분배해 주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amp;#39;속죄&amp;#39;와 &amp;#39;생명 분배&amp;#39;가 구원의 두 방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길과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성경 밖의 환상이나 개인 체험에서 찾으면 안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만 성경에는 사람의 눈이나 목이나 갑상선에 어떤 종류의 악한 영이 붙어 있는지, 목매달아 죽게 하는 영이 어떤 계통에 속하는지와 같은 사례들 모두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구원 진리는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축사 현장의 세부는 다양한 사례를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배워야 할 영역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성경의 큰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성경을 모른 채 영안과 환상만 따라가면 귀신의 속임에 빠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교사는 &amp;#39;성령&amp;#39;&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요 14:26). 성경을 읽을 수 없거나 공개적으로 예배하고 가르침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령은 믿는 자 안에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자기 생각과 기존 지식을 내려놓고, 말씀하시면 순종하겠다는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하지 않아 귀신이 가득하고 자기주장과 거짓이 강하면 성령의 음성과 악한 영의 음성을 구별하기 어렵다. 성령께서 말씀하셔도 순종할 생각이 없으면 그분은 더 말씀하지 않으실 수 있다. 성령을 무시하지 말고 &amp;ldquo;종이 듣겠나이다&amp;rdquo;라는 자세로 존중해야 한다. 주께 받은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여 모든 것을 가르치며 참되고 거짓이 없다는 말씀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주 안에 거해야 한다(요일 2: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교사는 교회에 세우신 &amp;#39;목사와 교사&amp;#39;&lt;/strong&gt;다. 주님은 어떤 사람을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을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엡 4:11-12). 오늘날 목사인 교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가르친다.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는 영적 지도자가 있으면 혼자 헤매지 않고 더 빠른 길로 갈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인간 지도자는 완전하지 않으며 한 분야의 전문가도 다른 분야에서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말을 성경과 성령 안에서 분별하되, 부족함만 보고 바른 가르침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종 기준으로 삼고 성도를 천국으로 이끄는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적 지도자가 되려면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적 지도자에게는 &lt;strong&gt;세 가지가 준비되어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첫째는 맡은 일을 감당할 자질과 능력&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성품과 인격&lt;/strong&gt;이며, &lt;strong&gt;셋째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 뜻을 내려놓는 순종&lt;/strong&gt;이다. 능력만 있고 성품이 무너지면 오래 쓰임받기 어렵고, 은사가 많아도 불순종하면 맡은 사명을 끝까지 이룰 수 없다. 반대로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계속 회개하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더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첫째로,&amp;nbsp;&lt;strong&gt;자신이 섬길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어야&lt;/strong&gt; 한다. 성경을 가르칠 사람은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하고, 영적 전쟁을 지도할 사람은 악한 영의 작동 방식과 회개와 축사의 실제를 익혀야 한다. 필자도 역시 성경의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가 십 년 이상 배웠고, 그들의 가르침을 다시 성경과 영적 체험에 비추어 확인했다. 천년왕국과 휴거, 구원론과 천국의 상태에 관하여 섞여 있는 수많은 오류들을 걸러 내면서 진리를 깨우쳐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영적 지도자는 &lt;strong&gt;능력과 은사도 실제로 훈련해야&lt;/strong&gt; 한다. 필자 자신은 과거에 나 자신이 영적 스승으로부터 안수를 받고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나에게 안수만 받으면 다 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안수해 보았지만 실제로 불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 영적 스승에게 물어보니, 성령의 불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이며 누구나 안수만 받는다고 자동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고로 능력과 은사에 있어서는 올바른 영적 스승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한 스승을 만날 수만 있다면, 많은 시행착오와 수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같은 집회에서 안수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때 불이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역자는 집회 장소에서는 불이 강하게 역사했는데, 자기 교회로 돌아가면 같은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적 세계에는 아직 더 분별해야 할 일과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고로 지도자라 할지라도 한 번의 체험을 보편적인 공식을 찾아내기 어렵다. 다양한 사례를 쌓으며 성경과 성령께 물어 보면서 익혀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영적 지도자는 둘째, 성품과 인격을 제대로 갖추어야&lt;/strong&gt; 한다. 특별히 성품과 인격은 능력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러나 한 번 닦아지면 사역을 많이 지탱해준다. 아무리 진리를 잘 전해도 어느 날 혈기와 욕설을 쏟거나 음란과 교만에 넘어지는 사역자라면, 자신뿐 아니라 주님의 거룩함까지 가리게 된다. 성도는 지도자가 교만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이성과 물질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 사역에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므로 지도자 자신도 죽는 날까지 육체의 정욕을 경계하고, 항상 배우자와 동행하며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로, 예수님은 완전한 영적 지도자의 순종의 길을 보여 주셨다&lt;/strong&gt;. 사람으로 태어나 자라며 성경을 배우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추셨다. 겟세마네에서는 &amp;ldquo;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amp;rdquo;라고 기도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예수께서 준비된 뒤 제자들을 훈련하고 권세를 나누어 주셨듯이, 모세도 먼저 하나님께 훈련받고 여호수아를 제자로 세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죄인된 우리들은 무엇보다 회개가 준비의 토대다. 거짓과 교만과 혈기와 음란의 영을 뽑지 않은 채 은사와 권세만 구하면 능력이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의 피가 죄를 씻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며,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더 분명히 듣고 주님의 능력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 준비된 지도자는 자기 전문성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깨끗한 통로가 된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과연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에게 모세는 말로만 가르친 스승은 아니었다. 모세는 자기 삶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평생 따를 수 있었던 까닭은&lt;strong&gt; 모세가 그에게 적어도 여섯 가지 지도자상&lt;/strong&gt;을 실제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기 부르심의 길을 끝까지 갔고,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으며, 맡긴 사람을 기도로 책임졌다. 또한 비방 앞에서 온유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존귀와 권한을 후계자에게 넘겼으며, 자기 자랑 없이 인내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로 모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바꾸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며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하셨다. 또한 백성을 호렙산으로 데려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모세의 큰 사명은 바로 앞에 서서 백성을 구출하고, 시내산에서 율법과 성막의 법도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길을 가르치는 것이었다(출 3:9-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9-12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로에게 맞서려면 담대함과 말과 일에 능한 자질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사십 년 동안 왕자 교육을 받게 하시고, 광야에서 또 사십 년 동안 자기 힘을 비우게 하셨다. 그 준비를 거친 뒤 모세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며 백성을 광야로 이끌었다. 백성이 반복하여 원망하고 반역해도 그는 새로운 유행과 사역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하나님께서 처음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의 사명은 모세와 달랐다. 그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발로 밟는 땅을 차지하며, 그 땅을 각 지파에 기업으로 나누어 주어야 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는 모습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일이 아니었다. 모세가 자기 길을 끝까지 가는 것을 보며 여호수아도 &amp;ldquo;나의 길은 전쟁이다&amp;rdquo;라고 깨닫고 전사의 길에 집중했다. 좋은 지도자는 제자에게 자신의 일을 흉내 내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제자에게 주신 고유한 길을 발견하고 가도록 돕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lt;/strong&gt;했고, &lt;strong&gt;셋째로 맡긴 사람을 끝까지 책임졌&lt;/strong&gt;으며, &lt;strong&gt;넷째로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lt;/strong&gt;다. &lt;strong&gt;다섯째로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에 순종했&lt;/strong&gt;고, &lt;strong&gt;여섯째로 자기 공적을 자랑하지 않고 오래 참았&lt;/strong&gt;다. 이 여섯 특징은 각각 떨어진 기술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살리려는 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참된 지도자의 인격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참된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 까닭은 성경과 영적 세계와 성품과 순종을 함께 갖춘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은 많이 알지만 영적 세계를 모르고, 어떤 사람은 예언과 방언과 축사는 하지만 성경과 구원론이 잘못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인격과 물질과 이성 문제에서 무너진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인간을 찾기보다, 분명한 사명을 따라 회개하며 성장하고 성도를 천국으로 이끄는 지도자를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스승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어떤 부르심의 길과 희생을 보여 주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가 보여 준 부르심의 길은 &lt;strong&gt;처음 받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길&lt;/strong&gt;이었다. 그는 바로의 위협과 백성의 불평과 광야의 결핍 속에서도 애굽으로 돌아감으로 자기 삶을 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시내산까지 데려오고, 율법과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쳤다. 여호수아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지도자는 유행을 좇아 이 일 저 일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맡은 길을 오래 걸어가는 사람임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희생은 금송아지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하여 새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다. 모세가 자기 성공만 생각했다면 그 제안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할 능력이 없어 광야에서 죽였다고 비방할 것을 염려하며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레위 자손에게 칼을 차고 우상숭배에 참여한 자들을 치게 했고 그날 약 삼천 명이 죽었다. 이 사건은 주의 종을 통한 책망과 징계가 하나님의 더 큰 진노를 막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의 책망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책망을 받아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멸망을 피할 기회를 얻는다. 책망은 미움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튿날 모세는 백성이 큰 죄를 지었다고 선언하고 하나님께 올라가 속죄를 구했다. 그는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며, 용서하지 않으시려거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까지 지워 달라고 했다. 자기 생명과 영원한 운명을 내놓아서라도 백성을 살리겠다는 중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의 이름을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시면서도 모세에게 백성을 약속의 장소로 계속 인도하라고 명하셨다(출 32:30-3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0-35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 1세대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졌다고 해서 모두 같은 영원한 운명을 맞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히브리서는 불순종하고 믿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에 내놓지 않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은과 금과 패물을 성막 건축에 드리며 돌이킨 사람들도 있었다. 필자가 영적 스승에게 생명책의 상태를 물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광야에서 죽은 사람 대부분은 지옥에 갔지만 회개하여 구원받은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구든지 범죄했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회개하면 다시 살 기회를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모세의 이런 중보와 희생을 보았다. 참된 지도자는 위기가 오면 자기만 살려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유익과 안전을 내려놓고, 필요하면 자기 생명까지 내놓는 사람이다. 모세의 희생은 여호수아에게 지도자는 남을 희생시키는 자가 아니라 먼저 자신을 희생하는 자임을 가르쳤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여호수아에게 비친 모세의 기도의 영성과 성품은 어떠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모세는 일을 맡긴 뒤 결과를 부하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 싸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자신은 편히 쉬지 않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중보하였다. 그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다(출 17:9-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17:9-12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책임지는 지도자의 기도다. 여호수아가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모세는 하늘의 도움을 구했고, 아론과 훌은 그 기도가 멈추지 않도록 동역했다. 지도자는 &amp;ldquo;가서 잘 싸우라&amp;rdquo;고 말한 뒤 결과만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맡긴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손을 들고, 힘이 빠질 때까지 &lt;strong&gt;중보하며, 필요한 동역자를 붙여 주는 사람&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성품에서 &lt;strong&gt;가장 두드러진 것은 &amp;#39;온유함&amp;#39;&lt;/strong&gt;이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만 하나님과 말하느냐고 비방했을 때 그는 혈기를 내며 자기 권위를 변호하지 않았다. 성경은 이때 모세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다고 증언한다. 모세가 침묵하자 하나님께서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한 종이며 하나님께서 그와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신다고 직접 변호하셨다(민 12:3-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2:3-8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동조한 배경에 관하여 성경은 모든 세부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세가 산에 있을 때 백성은 먼저 훌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훌은 절대 안 된다고 막았다. 그러자 격분한 무리들이 그를 돌로 쳐 죽였고, 그다음 아론에게 요구했다. 아론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백성의 요구를 막지 못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lt;strong&gt;자기 힘과 혈기를 비우는 훈련&lt;/strong&gt;을 받았다. 젊을 때에는 애굽 사람을 쳐 죽였지만, 지도자가 된 뒤에는 반역하는 백성 앞에서 맞서 싸우기보다 엎드려 하나님께 문제를 맡겼다. 다윗도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해칠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운 왕에게 손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호하시고 판단하시도록 맡기는 온유함이 지도자를 오래 쓰임받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해 보면 교만과 음란과 혈기&amp;middot;분노의 영이 끝까지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 부류는 특별히 오래 싸워야 하는 영이다. 지도자는 말하고 싶을 때 입을 다물고, 혈기가 올라올 때 엎드리며,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기도와 온유함을 곁에서 보았기에 그를 평생 존경할 영적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모세는 왜 살아 있을 때 존귀와 권한을 여호수아에게 넘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된 지도자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lt;strong&gt;자기 지위와 권한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바림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바라본 뒤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백성 앞에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에게도 혈기와 분노의 약점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민 27:1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7:12-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은 뒤에도 자기 체면이나 억울함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께 한 사람을 회중 위에 세워 백성을 인도하게 해 달라고 구했다. 백성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관심이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백성이 바른 인도를 받도록 후계자를 요청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고 하시며, 그를 데려다가 안수하고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라고 명하셨다. 또한 모세의 존귀를 여호수아에게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죽은 뒤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을 때 위탁과 안수와 권한 이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민 27:15-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7:15-20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권력과 명예를 가져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내려놓는 어려움을 잘 모를 수 있다. 오래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사역의 때가 끝났어도 영향력과 물질과 결정권을 붙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amp;ldquo;너는 여기까지다&amp;rdquo;라고 말씀하실 때 순종했다. 자기 영광을 보존하려고 후계자를 가리지 않았고, 자신이 받은 존귀를 여호수아에게 공개적으로 돌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지도자의 순종은 시작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받을 때 나아가는 순종도 필요하지만, 그만두라고 하실 때 멈추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순종도 필요하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쓰시는 시기와 분량을 다르게 정하신다. 참된 지도자는 자기 욕심으로 자리를 연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며, 후계자가 자기보다 더 잘하도록 축복하고 권한을 넘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모세의 이 모습을 보며 영적 권위가 자기 소유가 아님을 배웠다. 지도자의 존귀는 하나님께서 사명을 위하여 잠시 맡기신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이 오면 기꺼이 다음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모세가 살아 있을 때 자신에게 안수하고 온 회중 앞에서 세워 준 일은 여호수아가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백성을 인도하는 토대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모세는 어떻게 자기 자랑 없이 인내하며 참된 스승이 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며 반석에서 물을 내고 사십 년 동안 백성을 인도했지만 &lt;strong&gt;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lt;/strong&gt;.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반복되는 원망과 반역 속에서도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었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lt;strong&gt;오래 참는 인내&lt;/strong&gt;가 모세를 여호수아가 존경할 참된 스승으로 만들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딘다. 모세가 보여 준 온유와 희생과 인내는 사랑의 성품과 맞닿아 있다. 지도자는 능력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오래 견디며 백성을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전 13:4-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행한 일과 받은 은사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 자랑하여 칭찬을 받으면 이미 그 상을 받은 것이 되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줄어든다. 필자도 아직 입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모세의 수준에 이르려면 더 오래 회개하고 훈련받아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자기 명성을 세우기보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맡은 길을 계속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은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시대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 시대처럼 진리와 체험이 흩어져 있고, 어느 한 분야만 아는 사람이 전체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 가치를 알아야 하고, 지도자가 성경과 성령 안에서 더 정확한 말씀을 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간 지도자는 부족하고 실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아직도 배우고 회개해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성도는 지도자가 교만하거나 악해지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으며, 이성과 물질과 권력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지도자도 성도의 기도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혼신을 다해 섬기며,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고치고 진리를 더 정확히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가 참된 스승이 된 것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혈기로 반석을 치는 잘못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판정을 받아들였고, 맡은 사명의 끝까지 충성했으며, 후계자에게 자신의 권한을 기꺼이 넘겼기 때문이다. 자기 자랑 없이 인내한 삶 전체가 여호수아에게는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가르침이 되었다. 말보다 삶이 제자를 만들고, 오래된 충성이 다음 세대의 길을 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에게 주신 세 가지 교사와 영적 지도자가 준비해야 할 조건,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어떤 영적 지도자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완전한 표준이고, 성령은 믿는 자 안에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교사이며, 목사와 교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더 빠른 길로 인도하는 인간 지도자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완전하시므로 모든 인간의 가르침은 성경과 성령 안에서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는 자질과 능력, 성품과 인격,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준비해야&lt;/strong&gt; 한다. &lt;strong&gt;이 모든 준비의 토대는 회개&lt;/strong&gt;다. 거짓과 교만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의 영을 제거해야 성령의 음성을 바르게 듣고 능력을 거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회개 없이 안수와 축사만 반복하면 같은 영이 다시 들어오지만,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를 만들면 실제적인 진보가 시작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여호수아에게 &lt;strong&gt;여섯 가지 지도자상&lt;/strong&gt;을 보여 주었다. 그는 자기 부르심의 길을 끝까지 걸었고, 금송아지를 숭배한 백성을 살리려고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기도할 만큼 희생했다. 여호수아를 전쟁터에 보낸 뒤에는 산에서 손을 들어 끝까지 책임졌고,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 앞에서는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온유함을 보였다. 또한 살아 있을 때 존귀와 권한을 여호수아에게 넘겼고, 자기 자랑 없이 오래 참으며 사명을 완수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시간과 재물을 아끼고 천국의 길을 바르게 가게 하는 큰 복&lt;/strong&gt;이다. 동시에 그런 지도자가 세워지는 일은 쉽지 않으므로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지도자가 실수하지 않고 교만과 음란과 물질과 권력의 유혹을 이기며, 자기 유익보다 성도와 시대의 사명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지도자도 성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맡긴 사람을 기도로 책임지며, 하나님의 때에 기꺼이 권한을 넘길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성경을 날마다 읽고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바른 지도자의 삶과 말씀을 배워야 한다. 지도자의 부족함을 발견하면 정죄만 하지 말고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며, &lt;strong&gt;각자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lt;/strong&gt; 한다. 그리하여 모세처럼 맡은 사명에 충성하고 여호수아처럼 좋은 영적 스승의 삶을 본받아 다음 세대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5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성공적인 사역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amp;nbsp;&lt;strong&gt;준비성&lt;/strong&gt;과&amp;nbsp;&lt;strong&gt;영적 지도자의 자질&lt;/strong&gt;을 여호수아의 스승이었던 모세의 사례를 통해 조명합니다. 장보배 목사는 영적 진보를 방해하는 악한 영을 축출하기 위해&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가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며, 성경과 성령 그리고 올바른 지도자를 신앙의 세 가지 스승으로 제시합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바라본 모세의 모습에서&amp;nbsp;&lt;strong&gt;사명에 대한 일관성&lt;/strong&gt;,&amp;nbsp;&lt;strong&gt;자기희생&lt;/strong&gt;,&amp;nbsp;&lt;strong&gt;책임감&lt;/strong&gt;,&amp;nbsp;&lt;strong&gt;온유함&lt;/strong&gt;,&amp;nbsp;&lt;strong&gt;순종&lt;/strong&gt;, 그리고&amp;nbsp;&lt;strong&gt;겸손&lt;/strong&gt;이라는 여섯 가지 핵심 덕목을 도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료는 성도들이 분별력을 갖추어 참된 진리를 전하는 지도자를 만나고, 그 지도자가 타락하지 않도록 기도로 협력해야 한다는&amp;nbsp;&lt;strong&gt;영적 연대&lt;/strong&gt;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ChatGPT Image 2026년 8월 7일 오후 10_58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6c787825b06d19c74b962c33ea80bb2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3514545a420d4d57fbce9611a63092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12785286f0b5e8b800ed48ecce2455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07f5cd245c38b9c7ea609a2d664008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273aa1a36877a2714143a1f45cbc94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aff9eb2036810505966fa8e1d9dede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7e7129b8a1b33f71f3ed14dbb18938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a25b45c00003e139eb4485062fba8a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2cc6bcc21b6ee650101fc39c0b2d0f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040e288cfbe118bc712cf4bac3793e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8df1c5922f0829ca692a0e272016a0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de1eb258f7d8f2a5cd3c7a4c3e89fc6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모세에게_배우는_영적_지도자_자질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79c7357165a54ff22721c4d28dbedb5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1d76f25543047005741c2c05b072d1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c74a9d4bec8717455724b3860887f4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a9fdc1ddac853c219aabce4b9da43f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2705fcbe9876b2e318e59bb0f99216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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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c4f992b97dcd3025741f7f83bf5966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778f370bb89dc92d0f0bfc88c25adf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75cf41985526774b2ff5b332d55412a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ab9acc78c54eb1bbc2cfeded1b67cc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3)] The_Path_of_Spiritual_Leadership.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61/263/6ed46d01c8893687fccd224955d0009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사역자론"/><category term="영적지도자"/><category term="모세와여호수아"/><category term="회개"/><category term="성경"/><category term="성령"/><category term="목사와교사"/><category term="영적준비"/><category term="순종"/><category term="동탄명성교회"/>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5)] 성결법(02)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2) 십계명 준수와 특별규례(레위기19:1~20:27)_2026-07-22(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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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22T23:02:25+09:00</published>
		<updated>2026-07-23T08:48:1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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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7-2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5)] 성결법(02)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2) 십계명 준수와 특별규례(레위기19:1~20: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w5XwHQKP9s 레위기강해 15 성결법(02)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2) - 십계명 준수와 특별규례 - (레위기 19:1-20:2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원문 영상: https://youtu.be/Kw5XwHQKP9s 1. 들어가며 레위기는 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7-22(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15)] 성결법(02)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2) 십계명 준수와 특별규례(레위기19:1~20: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Kw5XwHQKP9s&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w5XwHQKP9s?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 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 십계명 준수와 특별규례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레위기 19:1-20:27)&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12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7a5c34;font-size:13px;margin:0 0 40px;word-break:break-all;&quot;&gt;원문 영상: https://youtu.be/Kw5XwHQKP9s&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레위기는 과연 어떤 책인가? 단순히 옛 이스라엘의 제사 절차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높고 깊다. 왜냐하면 제사로 속죄받고 물과 피로써 정결하게 된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성결의 책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성막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출 40:17).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목적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을 세우고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성막은 오늘날 교회를 예표한다(고전 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신 것도 혼자 구원받았다고 만족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게 하려는 것이다(고전 3: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 찬양하고 성가대로 섬기는 사람, 안내하고 차량을 운행하는 사람, 음식을 만들고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성도는 서로 섬기고 도움을 주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때에 천국 집에 재료가 쌓인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은 섬길 대상과 공동체의 훈련을 잃게 하므로 위험한 생각이다. 교회로 모이는 것 자체가 목적의 전부는 아니지만, 성도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독선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사랑과 충성을 배울 수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친목 모임과 다른 까닭은 바로 &amp;#39;거룩함&amp;#39;에 있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과 욕망을 따라간다면 세상의 모임과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은 교회가 자신처럼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믿을 때에 경험하는 속죄(贖罪, atonement)와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신앙의 시작인 것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고 더러움을 씻어 주시는 까닭은 주님과 합한 거룩한 신부로 세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출애굽과 교회를 통하여 이루려는 거룩함이 무엇이며,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어떻게 연결되고, 십계명과 특별 규례를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성막과 교회를 세우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데에 있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에서 성막이 완성되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출 40:33-35). 애굽의 억압에서 풀려난 백성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목적을 명확하게 밝힌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룩하게 함을 받으시며, 동시에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레 22:31-3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2:31-33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하나님의 속성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사람이 더럽다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다. 마귀의 속성을 붙든 사람은 결국 마귀가 가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예수 믿게 하신 목적은 죄를 덮어 준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려는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목적은 교회의 의미와도 직결된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름만 올리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맛보고 경험하며 거룩함을 훈련하는 공동체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섬기며 자기중심성을 깨뜨린다. 찬양과 안내와 교육과 식사 봉사와 차량 운행 같은 작은 수고도 하나님 앞에 다 보고되고 또한 자신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교회 공동체를 무시하고 혼자서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섬기며 어떻게 충성을 배울 것인지 어럽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교회 생활은 천국의 지위와 상급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이 된다. 천국에서 예배드리는 자리와 주님과의 가까움은 이 땅에서 얼마나 정결하고 충성되게 살았는가와 고스란히 연결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간절히 회개하고 맡은 바 사역에 충성해야만이 한 칸이라도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다. 구원받았으니 교회에 나올 필요도, 물질과 시간을 드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만약 십일조와 헌신이 아까워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탐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구원하시고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상을 주실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더 받을 것인가보다 무엇으로 하나님께 보답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억지로 재물을 빼앗는 분이 결코 아니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를 늘 생각하고 또한 기쁨으로 드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과 성막, 교회와 섬김은 모두 거룩함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향한다. 하나님은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백성을 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거룩함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가 레위기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한다는 우리는 구원의 목적을 분명히 알게 된다. 레위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주로 제사를 &amp;#39;속죄법&amp;#39;을 다루고, 11장부터 17장까지는 &amp;#39;정결법&amp;#39;을 다루며, 18장부터 27장까지는 &amp;#39;성결법&amp;#39;을 다룬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피를 통한 속죄가 필요하고, 부정한 것에 접촉하거나 섭취하여 더러워진 사람에게는 씻음과 정결이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다시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결의 삶이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는 죄의 값을 해결하는 일이며, &amp;#39;정결&amp;#39;은 더러움을 씻는 일이다. 그렇다면 성결은 어떤 것인가? 성결(聖潔, holiness)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러움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킨다. 고로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계속 죄를 사랑하거나 짓고 있다면 그는 속죄의 목적을 상실하고 만다. 하나님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죄에서 떠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려고 구원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레위기 19장은 &amp;ldquo;너희는 거룩하라&amp;rdquo;는 명령에 이어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거룩함은 흰옷을 입거나 외형을 특별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주께서 재림하신다고 믿으며 흰옷을 입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임박한 종말론을&amp;nbsp; 믿고 그들이 흰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영혼을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영적인 흰옷은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씻는 삶과 연결된다(레 19: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2-4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믿음과 칭의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 공로를 감사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만을 최종 기준으로 삼아 속죄가 구원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과 레위기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불러내셨다고 증언한다(출 19:23, 레 11:25, 19:2, 20:26). 이신칭의를 고백하면서도 음란과 탐욕과 미움 속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목적을 놓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날마다 외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주님 곁에 가까이 서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주님이 거룩하시므로 그분 가까이 있을 사람도 정결하고 충성된 사람이어야 한다. 고로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참으로 회개하고 거룩함을 이루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 아니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2장은 거룩하게 되려면 계명을 지켜 행하라고 말한다(레 22:31-33). 죄를 짓고 난 뒤 속죄 제사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럽혀졌다면 속죄하고 씻어야 하지만, 그 뒤에는 더 이상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삶이 뒤따라와야 한다. 성결은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생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amp;#39;속죄&amp;#39;(레 1-10장)와 &amp;#39;정결&amp;#39;(레 11-17장)과 &amp;#39;성결&amp;#39;(레 18-27장)은 서로 경쟁하는 교리가 아니다. &amp;#39;속죄&amp;#39;가 죄의 값을 해결하고 &amp;#39;정결&amp;#39;이 더러움을 씻는다면, &amp;#39;성결&amp;#39;은 구원받고 깨끗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단계다. 이 셋을 분리하면 한쪽에서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은혜를 죄의 구실로 바꾸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을 용서할 뿐 아니라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을 어떻게 생활윤리로 풀어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십계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먼저 밝히시고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구원이 먼저이고 계명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삶의 법도에 주어진 것이다(출 20: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1-3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19장은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일상의 윤리로 풀어 주는 말씀이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헛된 것들에게 향하지 말고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는 명령에서 나타난다(레 19:4). 그리고 셋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여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하나님의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설명된다(레 19:12, 22: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는 부모를 경외하라는 다섯째 계명과 함께 나온다(레 19:3). 하나님은 다시 성소를 귀히 여기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레 19:30). 거룩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과 부모를 대하는 태도에서 함께 드러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부모를 멸시할 수 없고, 세상일만 좇으면서 영혼을 위한 시간을 전혀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섯째 계명은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된다(레 19:16). 사람을 비방하고 미워하는 것도 살인의 뿌리를 품는 일이다. 일곱째 계명으로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레20:10)은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지 말라는 명령과 정혼한 여종과 동침한 경우의 규례에서 구체화된다(레 18:20, 19:20). 우리 주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까지 마음의 간음이라고 밝히셨다(마 5:27-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덟째와 아홉째 계명은 도둑질하지 말고 속이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레 19:11). 열째 계명은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고 원수를 갚지 않으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삶과 연결된다(레 19:18). 그런데 탐심은 우상숭배에 해당하므로 마음에 세상 욕심을 가득 품은 사람도 십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골 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십계명은 구약의 낡은 규칙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더라도 미워하면 살인의 죄를 저지른 것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며, 탐심을 붙들면 우상숭배한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셨으니 자신은 어떤 계명일지라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교회 안에 음란과 거짓과 탐욕이 가득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또한 교회 직분자가 되었지만 맨날 직장과 사회에서 부정한 행동을 하면서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경건한 사람처럼 기도한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십계명들 중에서도 안식일 준수 계명(제4계명)은 도덕법과 의식법의 성격을 함께 지닌 독특한 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안식일에는 노동을 멈추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음식을 사 먹지 말라고 하는 문장 자체가 계명의 핵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은 있었지만 음식을 먹었다고 죽임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민 15:32-36). 예수님은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옳다고 가르치셨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막 2:27-28, 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성도가 토요일의 의식 규정을 그대로 지키지 않고 주일에 예배드리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신 도덕적 목적을 붙들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쉼과 자유를 얻고,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마 11:28-29).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살듯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산다. 엿새 동안 삶을 위하여 일하되 하루는 영혼을 살리는 날로 구별하는 것이 안식일 계명의 근본 의도이기에, 오늘날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하면서 예배를 드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율법에는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명령이 함께 있다고 정의한다. 전통적으로 볼 때, &amp;#39;하라&amp;#39;고 하는 명령을 248개로 분류하고, &amp;#39;하지 말라&amp;#39;고 하는 명령을 365개로 분류하여, 모두 613개라고 말한다. 특히 율법의 규례들 가운데, 레위기 18장은 이방 풍속과 음행을 하지 말라는 소극적 금지를 강조하고 있고,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생활을 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악을 피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사랑과 정직과 예배를 실제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성도는 죄의 세력을 이기고 실제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명이 거룩한 삶의 기준이라 해도 인간의 힘만으로 모든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기는 어렵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계속 사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요일 2:16). 바울도 선을 행하려는 원함은 있으나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문제를 자기 속에 거하는 &amp;#39;죄&amp;#39;라고 불렀다(롬 7: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내 속에 거하는 죄를 깊이 살펴보면 사실 악한 영들이 사람 안에 들어와 정욕과 혈기와 탐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로 내 속에 들어있는 뱀들과 귀신들이 낱낱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자신은 날마다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뿐만 아니라 수 백 수 천 개의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된다. 악한 영을 그대로 둔 채 좋은 말씀만 계속 먹는 것은 몸에 붙은 거머리를 떼지 않고 보약만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영양이 들어올수록 거머리만 더 힘을 얻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오랫동안 &amp;ldquo;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amp;rdquo;(갈 2:20)는 말씀을 붙들고 화를 내지 않으려고 훈련했다. 겉으로는 거의 화를 내지 않았지만 혈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환경이 맞으면 터질 시한폭탄처럼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 년 전부터 회개기도를 하며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기 시작한 뒤, 실제로 죄를 짓지 않고 있는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이전보다 더 가능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lt;/strong&gt;이 함께 필요하다. &lt;strong&gt;먼저 회개하여 더러운 영을 내보내야&lt;/strong&gt; 하고, 동시에 &lt;strong&gt;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힘써야&lt;/strong&gt; 한다. 악한 영을 내보내지 않고 의지만으로 계명을 지키려 하면 실패가 반복되기 쉽다. 반대로 악한 영만 꾸짖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거룩한 성품이 세워지지 않는다. &lt;strong&gt;회개와 순종이 함께 가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주로 속죄와 정결과 계명 준수를 가르치지만,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사람에게서 나가게 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다(막 1:25-27, 눅 10:17-20). 그러므로 성도는 죄를 단지 습관이나 성격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도 대적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율법 조항을 문자적으로 과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과거 보수적인 신앙에서는 주일에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사 먹는 행위 자체를 안식일 위반으로 정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목적이 사람을 살리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막 3:4, 눅 6:9). 규정의 외형만 붙들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 의도를 깨닫고 영혼을 살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성결&amp;#39;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완벽해졌다고 자랑하는 상태가 결코 아니다. 날마다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을 의지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나타는 열매다. 실패했을 때에는 속죄의 은혜로 돌아가 다시 씻고, 같은 죄의 통로를 끊으며,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칭의로 시작된 구원은 실제적인 거룩함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몰렉&amp;middot;점술&amp;middot;제사&amp;middot;음행을 금하신 이유와 심판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에게 &lt;strong&gt;가나안과 애굽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lt;/strong&gt;고 명령하셨다(레 18:3). 그것들 가운데 &lt;strong&gt;가나안 풍속의 대표적인 죄는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일&lt;/strong&gt;이었다. 몰렉 우상을 불로 달군 뒤 살아 있는 아이를 그 팔 위에 올려놓는 행위는 우상에게 승리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희생시키는 극악한 죄였다(레 18:21). 하나님은 자녀를 몰렉에게 주는 자를 반드시 죽이고 백성 중에서 끊으라고 명령하셨다(레 20: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0:2-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애굽의 풍속&lt;/strong&gt;이란 무엇인가? 애굽의 풍속과 연결되어 있는 죄에는 &lt;strong&gt;점술과 주술과 신접 행위&lt;/strong&gt;가 있었다. 하나님은 점을 치거나 술법을 행하지 말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다(레 19:26, 31).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게 하는 자,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하는 자, 무당, 진언자, 신접한 자와 초혼자를 용납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신 18:10-11). 무당을 살려 두지 말고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자를 멸하라는 말씀도 있다(출 22: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무속과 불교와 조상 제사의 영향을 받아 살아왔다. 특히 조신시대에 활성화되었던 조상 제사 제도는 효도와 결합되어 모든 가정이 거부하기 어려운 의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제사를 받으러 오는 존재는 죽었던 자기의 조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그 사람의 조상의 모습을 흉내 내고 오는 것이다.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며 절하는 의식은 하늘과 땅에 있는 귀와 신을 부르고 섬기는 통로가 된다. 국화를 바치는 행위도 제사의 향을 대신하는 의식에서 나왔으므로 성도는 그 영적인 의미를 분별하고 금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가문에도 나라에서 삼강문을 만들어 주어 해마다 그곳에서 여러 차례 제사를 지냈다. 예수 믿기 전에 그곳에 들어갔을 때에는 언제나 차가운 기운과 두려움을 많이 느꼈다. 거기에는 조상을 가장한 엄청난 영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조상신을 섬기는 의식이 가문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짜 신을 버리고 참 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되었다면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신을 찾아가 그에게 묻거나 점술과 제사의식을 행해서는 아니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묻고 그분만을 따라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있어서 매우 치명적인 우상숭배는 역시 한일합방 후에 실행된 신사참배와 동방요배이다. 그때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에 굴복했다. 그런데 그때에도 주기철 목사와 일부 목회자는 목숨을 걸고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해방 뒤 교회는 신사참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고 가결했으나 자기 합리화로 유야무야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가볍게 여기면 나라와 교회가 징계를 받는다. 그래서 해방 후에 6.25 전쟁이 터진 것이다. 오늘의 교회도 다른 신과 타협하지 않고 구약의 여호와이시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한 분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amp;#39;우상숭배&amp;#39;뿐 아니라 &amp;#39;음행&amp;#39;도 엄중히 금하셨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은 간음, 근친상간, 월경 중인 여인과의 동침, 동성 간 성행위, 짐승과의 성행위를 금하고 있다(레 18:6-23, 20:10-21). 간음한 자와 근친상간한 자에게 죽음과 끊어짐의 형벌을 선고하신 것은 성적인 죄가 개인의 쾌락으로 끝나지 않고 가정과 공동체와 후손을 파괴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것들 중에 &amp;#39;근친상간&amp;#39;은 열성 유전자를 겹치게 하여 후손에게 심각한 유전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을 높인다. 지적 장애, 백색증, 다지증과 합지증, 색맹과 조로증 같은 사례가 나타난다. 이를 통하여 근친상간이 후손에게 미치는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적 사례를 모든 환자의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가까운 혈족 간 출산이 유전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는 경고는 분명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amp;#39;동성 간 성행위&amp;#39;는 구약에서만 금지된 것이 아니다(레 18:22, 20:13). 바울은 여자와 남자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를 따르는 행위를 부끄러운 욕심이라로 설명했다(롬 1:26-27). 교회는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압력을 두려워하여 성경이 죄라고 한 것을 죄가 아니라고 바꾸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사람을 미워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의 길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악한 풍속과 성적 타락을 법과 문화로 보호하면 영적인 어둠이 깊어진다. 공산주의적 통제나 권력 집중을 막고 자유로운 신앙과 양심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리의 구호만으로 나라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먼저 우상숭배와 음행과 탐욕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려야 한다. 회개 복음이 교회와 나라를 살리는 출발점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노인&amp;middot;약자 보호와 혼합&amp;middot;과목 규례는 무엇을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법은 하라 그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특별 규례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를 들어,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고, 가난한 자와 장애인을 돌보며,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땅과 사람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러한 특별 규례는 거룩함이 예배당 안의 경건한 모습이 아니라 약한 이웃과 피조물을 대하는 생활윤리인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부모를 경외하고 노인을 공경해야&lt;/strong&gt; 한다(레 19:3, 32, 20:9). 하나님은 늙고 약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부모를 업신여기고 늙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가치하게 취급하면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른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백발 앞에서 일어나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장애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lt;/strong&gt; 한다. 곡식을 거둘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과 포도 열매를 남겨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이 먹게 해야 했다(레 19:9-10). 보아스가 룻을 위하여 이삭을 일부러 흘려 두게 한 것도 이 규례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룻 2: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9-10 너희가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품꾼의 삯을 미루거나 이웃을 착취해서도 안 된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뒤에서 저주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 앞에 장애물을 놓는 일은 약점을 악용하는 잔인한 죄다. 하나님은 장애인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속이는 행동까지 보고 계신다(레 19: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13-14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도 한때 애굽에서 종과 나그네로 살았다. 자신이 약했을 때 도움받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병들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 낯선 환경에 들어온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가장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서로 다른 종류를 함부로 섞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거나 한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거나 두 재료로 짠 옷을 입지 말라는 규례가 있다(레 19:19).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종류와 경계를 존중하라는 원리를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으로도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어 신앙을 타협하면 양쪽이 함께 더러워질 수 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하나가 될 수 없다(고후 6:14-18). 성도는 무당과 점술과 다른 신앙을 섞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섬겨야 한다.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따를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파괴된 땅도 조금 안식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게서는 가나안 땅에 과목을 심으면 처음 삼 년 동안 그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고, 넷째 해의 열매는 여호와께 드리며, 다섯째 해부터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lt;/strong&gt;(레 19:23-25). 곡식이 아니라 과목에 주신 규례이므로 당장 굶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더럽혀져 사람을 토해 낸 땅이 새 백성을 받아들이며 회복할 시간을 주라는 뜻이 담겨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23-25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기다림의 원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도 적용된다. 새 가족이 교회에 들어오면 과거의 상처와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실수하더라도 정죄하여 내쫓지 말고 적응하고 자랄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필자도 성도의 잘못을 알면서 즉시 공개하거나 수치스럽게 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가 연약한 사람을 견디지 못하고 규칙만 들이대면 상처를 더하고 공동체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되 사람이 회개하고 이해하고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새 땅이 쉼을 얻고 과목이 열매 맺을 때를 기다리듯, 성도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거룩한 교회는 연약한 성도와 나라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한 교회는 십계명을 입으로만 가르치는 공동체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공동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예배의 날을 구별해야 한다.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고, 사람을 미워하거나 음욕을 품지 않으며, 도둑질과 거짓과 탐심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생활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도덕적 거룩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사람을 무자비하게 내치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이삭을 남겨 두고, 품꾼의 삯을 제때 주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새로 들어온 성도가 실수할 때에도 그가 말씀에 적응하고 상처가 아물도록 기다려야 한다. 거룩함과 자비는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회자는 성도의 죄를 안다고 해서 함부로 공개하거나 수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진리를 가르치고 필요한 권면을 하되, 성령께서 그 사람을 깨닫게 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성도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곧바로 공동체를 떠나거나 목회자가 하지 않은 말을 만들어 비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말씀 안에 머물면 어느 날 이해하고 변화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를 세우는 일도 교회의 회개에서 시작된다. 우리 역사는 무속과 제사와 신사참배를 통하여 다른 신을 섬긴 죄가 깊었다. 해방 뒤에도 교회가 우상숭배의 죄를 충분히 회개하지 않고 자기 의를 주장한 부분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성적 타락과 탐욕과 권력 숭배가 나라를 어둡게 한다. 교회가 먼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고 긍휼을 베푸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유와 삼권분립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행동만으로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로 악한 통치자를 허락하실 수 있으므로, 성도는 나라를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자신과 교회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한 교회가 진리를 말하고 약자를 돌보며 정직하게 살 때 나라를 살리는 빛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한 교회는 다른 신앙과 진리를 섞지 않는다. 무당과 점술과 조상 제사와 타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섬겨야 한다. 동시에 교회 안의 연약한 사람을 품고 기다리며,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과 노인을 돌보고,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십계명의 생활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진리에 대한 단호함과 사람을 향한 오래 참음이 함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 개인도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미움과 음욕과 탐심을 회개하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다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실제로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예배를 지켜야 한다. 말로만 거룩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구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거룩함을 회복하면 세상 모임과 분명히 달라진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상처 입은 사람을 버리지 않고,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약자를 돌보며,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회개한다. 이런 교회가 하나님께서 출애굽과 성막을 통하여 세우고자 하신 거룩한 공동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성막과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신 목적과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관계, 십계명 준수와 특별 규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는 데서 일을 끝내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다. 속죄는 죄의 값을 해결하고 정결은 더러움을 씻으며,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삶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9장은 십계명을 부모 공경과 안식일 준수, 우상 금지, 정직과 이웃 사랑이라는 생활윤리로 풀어 준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고백에 머물지 않고 미움과 음욕과 탐심을 버리며 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지만 의지하지 말고 회개하여 속에 역사하는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몰렉 숭배와 점술과 조상 제사와 음행을 엄중히 금하신다. 교회와 나라는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먼저 회개해야 한다. 동시에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와 장애인을 돌보며, 창조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거룩함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 일과 약한 사람을 자비롭게 돌보는 일을 함께 포함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로운 땅과 과목에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듯 새로 믿은 성도에게도 적응하고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교회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되지만 실수한 사람을 즉시 정죄하여 버려서도 안 된다.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며 기도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하여 십계명을 지키고 약자를 돌보며, 회개와 오래 참음으로 교회와 나라를 거룩하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2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19장에서 20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성결법과 도덕적 윤리 규범&lt;/strong&gt;을 강해하며, 구원의 목적이 단순한 죄 사함을 넘어&amp;nbsp;&lt;strong&gt;거룩한 삶의 실천&lt;/strong&gt;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출애굽의 본질을&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거룩함&lt;/strong&gt;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amp;nbsp;&lt;strong&gt;십계명 준수&lt;/strong&gt;와 이방 풍속인&amp;nbsp;&lt;strong&gt;우상숭배 및 음행의 금지&lt;/strong&gt;를 강조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은 혼자가 아닌&amp;nbsp;&lt;strong&gt;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김&lt;/strong&gt;을 통해 완성되며, 내면의 악한 영을 몰아내는&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가 동반될 때 비로소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신칭의의 교리에만 머물지 말고,&amp;nbsp;&lt;strong&gt;약자를 배려하고 구별된 삶&lt;/strong&gt;을 사는 진정한 성결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ChatGPT Image 2026년 7월 23일 오전 08_25_06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c897b63abbbc4f1ca84b0b66af8962f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382eee1d56170e4e18253a2f487054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2760f8b3b8298a8c1e97ce019ac66a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d6840aa84c2d2eb1d32cbcef9dd0d3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4f90e4e54b26f60371533b38afc585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2a1e5f15ae2e076f75baf07a848790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2d335a3d665ae1b890b176a9d606e4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2c7695e239ff0fe794a6f2c923c6c59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c906890a2a5008b5ee8930fe2d7fa9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The_Blueprint_of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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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c5860f8b97d44b1f2c4c607ff9b005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ab87f3dbc9564b8d97d4033cccd60e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b1dd537490c4a0490627799acc9381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de3aa7365595d6cb9f7baba15ef076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874f2d68700af357abf499dfde1c81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f6be26472f970a108934c4485407fa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6362f7ee788afa424dbcee48da54c78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bd5c62ca95c7c93a52e3a2d1b8d160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b8aed9272650db16a8a4b0ab37896d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5)] Architecture_of_Holine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836/262/b7dc03588edd430fb30a58b3d9725a81.webp&quot; /&gt;&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category term="성결법"/><category term="거룩함"/><category term="십계명"/><category term="생활윤리"/><category term="속죄"/><category term="정결"/><category term="교회공동체"/><category term="하나님의백성"/><category term="성경강해"/>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