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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요강해설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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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14)] 성결법(01)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1) 이방풍속 금지와 성윤리(레위기18:1~19:4)_2026-07-1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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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15T22:32:38+09:00</published>
		<updated>2026-07-16T09:19:5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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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7-15(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4)] 성결법(01)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1) 이방풍속 금지와 성윤리(레위기18:1~19: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c8VZKEsNL8 레위기강해 14 성결법(01) 이방 풍속 금지와 성 윤리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흔히 제사와 피와 속죄만을 다루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레위기를 끝까지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7-15(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레위기강해(14)] 성결법(01)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윤리규범(01) 이방풍속 금지와 성윤리(레위기18:1~19:4)&lt;/span&gt;&lt;/strong&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c8VZKEsNL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c8VZKEsNL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 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1) 이방 풍속 금지와 성 윤리&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흔히 제사와 피와 속죄만을 다루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레위기를 끝까지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은 죄를 덮는 속죄에만 머물지 않는다. 속죄받은 백성은 더러움을 씻어 정결해져야 하고, 그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중심 구조는 속죄, 정결, 성결이라는 세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와 제사장 제도를 중심으로 속죄의 길을 보여 준다. 죄인은 피 없이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 제물의 피가 죄를 덮고,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죄가 덮였다고 해서 사람의 내면과 생활이 자동으로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는 부정한 음식, 시체, 해산, 피부병, 유출병, 성소와 제단의 정결, 피의 사용을 다루며 더러움을 씻어 내는 정결의 과정을 가르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어지는 레위기 18장부터 27장까지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여기서는 단순히 더러움을 씻는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지 곧 성결의 과정을 가르친다. 성결은 소극적으로 죄를 피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함께 포함한다. 우상숭배와 음행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며, 땅과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어 칭의를 받았으니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출발이지 완성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가 덮여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 안에는 여전히 더러운 성향과 악한 영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하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우리는 거룩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 거룩함은 깨끗함과 구별됨이 함께 있는 상태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 똑같이 살지 않는 것이 성결이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시간과 장소와 물질과 몸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거룩한 삶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가 왜 속죄뿐 아니라 정결과 성결까지 요구하는지,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왜 칭의만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지, 하나님의 백성은 왜 반드시 거룩해야 하는지, 왜 이방 풍속의 핵심이 우상숭배와 음행인지, 성결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구별된 삶이 천국의 상과 신부의 단장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는 왜 속죄뿐 아니라 정결과 성결까지 요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lt;strong&gt;첫 번째 주제는 속죄&lt;/strong&gt;다. 속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카파르&amp;#39;는 기본적으로 &amp;#39;덮는다&amp;#39;는 뜻을 가진다. 죄인이 제물을 가져오고 제물의 피가 제단에 뿌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죄를 덮어 주셨다. 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심판하지 않으시도록 그 죄를 덮어 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 죄 사함에 사용되는 헬라어 &amp;#39;아피에미&amp;#39;도 역시 &amp;#39;보내 버리다&amp;#39;, &amp;#39;내버려 두다&amp;#39;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은 죄를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근거로 심판의 요구를 내려놓으시고 죄인을 받아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속죄는 법적 관계의 회복이며 구원의 문을 여는 사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속죄만으로 믿게 된 사람의 생활 전체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부정한 음식과 죽은 시체와 피부병과 유출병을 통하여 더러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죄받은 백성에게 정결례를 행하게 하셨다. 물로 몸과 옷을 씻고, 일정한 기간 진 밖에 머물며, 필요할 경우 다시 피의 제사를 드리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정결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성결이 필요하다. 정결이 이미 묻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라면, 성결은 더 이상 더러운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정결이 소극적이라면 성결은 소극성과 적극성을 함께 가진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피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가 속죄보다 정결과 성결에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죄 사함은 시작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의 완성이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이 계속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라 산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준비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분량 자체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제사와 제사장에 관한 속죄의 규례는 1장부터 10장까지이지만, 정결과 성결에 관한 규례는 11장부터 27장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은 죄인이 어떻게 용서받는지만큼이나, 용서받은 사람이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다루셨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을 한 번의 믿음 고백에만 두고 이후의 정결과 성결을 생략하는 것은 레위기의 계시를 절반 이상을 버리는 것과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예표한다. 그러나 영원한 제사가 드려졌다고 해서 정결과 성결의 요구가 폐지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피로 더 큰 은혜를 받은 신약의 성도는 더 분명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은혜는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라, 죄를 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주어진 능력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amp;#39;속죄&amp;#39;는 피로 죄를 덮는 것이고, &amp;#39;정결&amp;#39;은 물과 피로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며, &amp;#39;성결&amp;#39;은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세 단계를 혼동하면 신앙생활의 목표가 흐려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amp;#39;속죄&amp;#39;(贖罪, atonement)는 하늘의 법정과 관련된다. 죄인은 행위책에 기록된 죄 때문에 심판받아야 하지만, 예수님의 피가 그 기록을 덮어 주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 이것이 &amp;#39;칭의(稱義, justification)&amp;#39;다. 칭의는 죄인이 실제로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근거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정결&amp;#39;(淨潔, purity)은 사람 안과 생활에 남아 있는 더러움과 관련된다. 요한일서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증언한다(요일 1:7, 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기록을 덮는 것이라면, &amp;#39;정결&amp;#39;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더러운 영과 습관과 욕망을 씻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결에는 반드시 자백과 회개가 필요하다. 죄가 무엇인지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해야 사람 안의 더러움이 제거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성결&amp;#39;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성결은 깨끗해진 사람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단지 음행하지 않고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레 19:3),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을 기억하고(레 23장과 25장), 십일조와 첫 열매(레 27장)를 하나님께 드리는 적극적인 순종이 포함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속죄&amp;#39;는 시작이고, &amp;#39;정결&amp;#39;은 씻음이며, &amp;#39;성결&amp;#39;은 구별된 삶의 열매다. 속죄 없이 정결과 성결로 나아갈 수 없고, 정결과 성결 없이 속죄의 목적이 완성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에 물과 피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정한 것을 만진 사람은 물로 씻어야 했고, 중대한 부정은 피의 제사를 통하여 다시 정결하게 해야 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사건은 단지 죽음을 확인하는 의학적 표지가 아니다(요 19:34). 그러므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는 속죄받은 백성을 실제로 깨끗하게 하시는 정결의 근거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성결에는 여기에다가 성령의 역사가 더해진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방식으로 거룩함이 표현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양심을 깨우며 구체적인 행동을 책망하신다. 성도는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멈추고, 행하라고 하시는 것을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성결례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왜 칭의만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으면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가르치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결코 말하지 않는다. 구원의 여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칭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출발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후의 삶에 대한 심판이 남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가 영생을 가지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다(요 5: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가지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바울은 모든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된다고 말했다(고후 5: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 두 말씀은 모순되지 않는다. 믿는 자는 둘째 사망의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자신의 행위와 충성과 거룩함을 재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것과 천국의 상속과 상급을 온전히 받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신약시대에 예수께서도 주님더러 &amp;quot;주여, 주여&amp;quot;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 7: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칭의&amp;#39;만 강조하다 보면 성도는 회개와 순종과 성결을 불필요하게 여기게 된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교회에 나올 필요도, 헌신할 필요도, 죄와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린양과 약혼한 것과 같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부의 깨끗하고 거룩한 옷을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칭의&amp;#39;는 구원의 출발이며,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성도는 최소한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해야 하고, 성령의 책망에 순종해야 하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구원을 우리는 결혼의 비유로도 설명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것은 어린양과 약혼한 것과 같다. 그러나 약혼했다고 해서 혼인잔치가 이미 끝난 것은 아니다. 신부는 혼인날까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예복을 준비해야 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비유의 말씀처럼 등과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들이 성 문 밖에 남겨진 비유는 무엇인가?(마 25:1-13) 그것은 최초의 믿음만으로 마지막 혼인잔치의 참여가 자동 보장되지 않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그리스도의 심판대&amp;#39;는 믿지 않는 자만을 위한 심판이 아니다. 이미 주님을 믿는 자들이 몸으로 행한 일을 드러내고, 충성과 불충성과 선악을 평가받는 자리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처럼 부끄럽게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충성과 순종의 열매에 따라 왕권과 상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만 묻지 말고, 어떤 신분과 상급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레위기의 성결법은 오늘의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이다. 성결은 추상적인 신학 용어가 아니라, 마지막 심판과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생활 규범이다. 무엇을 보고 듣는지, 누구와 교제하는지, 어떤 욕망을 허용하는지, 재산과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는지가 모두 영원한 결과와 연결된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몸으로 행한 삶을 보시기 때문에, 믿음은 반드시 회개와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의 백성은 왜 반드시 거룩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amp;quot;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amp;quot;고 말씀하셨다(레 19: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amp;#39;카도쉬&amp;#39;는 &amp;#39;구별되다&amp;#39;, &amp;#39;분리되다&amp;#39;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죄와 악과 피조물의 한계에서 완전히 구별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속한 백성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함은 단순히 외형적인 금욕이 아니다. 깨끗함과 구별됨이 함께 있어야 한다. 더러운 죄를 씻어 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레위기 11장 45절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목적을 거룩함과 연결한다(레 11: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다(레 20:2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별된 백성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거룩함은 단지 죄를 피하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적극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성결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루어진다. 신약시대에는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사람 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의 책망을 반복해서 무시하면 양심이 화인 맞고, 거짓말과 죄를 지어도 얼굴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삶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거룩한 신부에게는 아가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나야 한다. 첫째, 백합화처럼 정결해야 한다. 둘째,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군대처럼 악한 영과 싸워 이겨야 한다. 셋째, 자신만 준비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해야 한다. 죄를 씻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복음을 전하여 다른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삶이 성결의 완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목적도 단순히 노예생활을 끝내는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을 자기 소유의 백성,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목적도 편안한 삶만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닮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백성으로 빚으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왜 이방 풍속의 핵심은 우상숭배와 음행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은 애굽 땅의 풍속과 가나안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한다(레 18: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에서는 이방 풍속의 핵심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서, &amp;#39;우상숭배&amp;#39;와 &amp;#39;음행&amp;#39;을 가리킨다. 우상숭배는 영이 범죄하는 것이고, 음행은 몸이 범죄하는 것이다. 십계명도 전반부는 하나님 아닌 존재를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었고, 후반부는 이웃과 몸과 관계를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으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레위기 18장과 20장은 근친상간&lt;span style=&quot;text-autospace:none&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함초롬바탕&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近親相姦&lt;/span&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5pt&quot;&gt;)&lt;/span&gt;&lt;/span&gt;, 월경 중인 여인과의 관계, 간음, 동성애, 수간(獸姦)을 단호하게 금지한다. 이러한 행위는 단지 고대 사회의 위생 규정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땅을 더럽히는 영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약 사람이 자신의 몸과 땅을 더럽히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땅이 그곳에 사는 사람을 토해버린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이 이런 죄로 인하여 가나안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가나안 땅도 그들을 토해 냈다고 말씀하셨다(레 18:24-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24-25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동성애와 수간과 근친상간은 성경이 &amp;#39;가증한 일&amp;#39;이라고 부르는 행위다. 가증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만큼 심각하게 더럽혀진 상태를 뜻한다. 요한계시록은 속된 것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가 거룩한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경고한다(계 21: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우상숭배는 또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우상숭배의 극단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몰렉 신에게 자신의 자녀를 불로 통과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행위를 성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영적 음행으로 규정하셨다(레 18:21, 20: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방 사회의 문화와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끊어야 하며, 몸과 영을 더럽히는 풍속에서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고후 7: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amp;#39;음행&amp;#39;(淫行)은 단지 육체의 쾌락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함으로 장자의 권리를 잃었다(대상 5:1). 장자에게는 축복할 권리와 두 몫의 기업과 가문의 대표권이 있었지만, 한 번의 음행이 그 모든 권리를 무너뜨렸다. 히브리서는 음행하는 자와 한 그릇의 음식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를 함께 경고하고 있다(히 12: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음행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미 범죄했다면 말 한마디로 형식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죄의 뿌리와 악한 영의 통로가 닫힐 때까지 깊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받아 주시지만, 회개하지 않은 채 죄를 정상적인 생활방식으로 인정하는 태도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성결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레위기 18장부터 22장까지는 주로 금지 명령을 다루고, 23장부터 27장까지는 적극적인 순종에 대해 다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우상숭배와 음행뿐 아니라, 점술과 술법과 신접한 자를 따르는 일(레 19:26, 31, 20:6, 17), 피째 먹는 일(레 19:26), 부정한 상태에서 성물을 만지는 일(레 22:1-7), 제사장이 시체를 가까이하는 일(레 21장) 등이 포함된다. 또한 하나님은 우상에게 향하지 말고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레 19:4).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영과 몸과 성소를 더럽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4 너희는 헛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 반면 행해야 할 일에는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있다(레 19: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은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라고 명한다. 이는 시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러나 직업상 주일에 일해야 하는 소방관, 의료인, 운전기사처럼 부득이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로마서 14장은 어떤 사람은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길 수 있으므로 각자 마음에 확정하라고 말한다(롬 1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4: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중요한 것은 형식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이다. 부득이하게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른 날을 구별하여 예배하고, 자신의 시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라고 말씀한다. 땅을 쉬게 하고, 종을 자유롭게 하며, 잃어버린 기업을 원상 회복시킨다. 이는 장소와 사회관계까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레위기 27장은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리는 물질의 성결에 대해서도 다룬다. 성도는 자신의 소득과 재산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물질을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구별해 드려야 한다. &lt;strong&gt;시간과 장소와 물질을 구별하는 적극적인 순종&lt;/strong&gt;이 거룩한 삶을 이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시간의 성결&lt;/strong&gt;은 하나님께서 모든 시간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죄로 인해 평생 땀 흘려 수고해야 하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하루를 쉬게 하시고, 창조주와 구속주를 기억하게 하신 선물이다. 절기는 창조의 은혜와 구속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게 하는 하나님의 시간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 둘째, 장소의 성결&lt;/strong&gt;은 땅도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해야 했고, 희년에는 종을 놓아주고 잃은 기업을 원상 회복시켜야 했다. 하나님이 주신 땅과 사람을 탐욕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회복시키는 것이 장소와 관계의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 셋째, 물질의 성결&lt;/strong&gt;은 십일조와 첫 열매로 나타난다. 십일조는 돈이 아까워도 의무적으로 떼어 내는 세금이 아니라, 모든 소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다. 첫 열매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먼저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다. 하나님께 물질을 구별해 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구별된 삶은 천국의 상과 신부의 단장에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더러운 것을 씻는 정결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천국의 상이 되지는 않는다. 죄를 씻는 것은 원래 있어야 할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헌신하는 것은 천국의 상으로 기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고,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를 경외하며,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행위는 신부의 옷을 장식하는 보석이 된다. 성도는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린양의 신부로 합당하게 단장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칭찬과 상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자고 권면한다(고후 7: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의 더러움은 음행과 탐욕과 폭력과 부정한 행위로 나타나고, 영의 더러움은 우상숭배와 점술과 신접과 거짓 영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도는 이 두 영역을 모두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적극적인 삶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회개로 내보내야 한다. 악한 영들은 사람을 세상에 눈 돌리게 하고, 헌신을 외식으로 만들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로 바꾸려 한다. 날마다 회개하여 이러한 영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께 드린 수고가 고스란히 천국의 상으로 남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룩한 신부는 단지 민무늬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다. 순종과 충성과 헌신의 보석으로 빛나는 옷을 입은 사람이다. 성도는 죄를 씻는 데서 멈추지 말고, 적극적인 선행과 헌신으로 신부의 옷을 단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별된 삶은 일상에서 드러나야 한다. 예배 시간에만 거룩한 표정을 짓고 가정과 직장에서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거짓말하고 분노하고 탐욕을 따라 산다면 성결이라고 할 수 없다.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를 대하는 태도, 돈을 사용하는 방식, 시간을 배분하는 선택, 약한 사람을 대하는 말과 행동까지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달라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성결은 지속성이 중요하다. 한두 번 감동을 받아 순종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이 더 귀하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서 드러난 큰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직을 지키고 유혹을 거절하며 작은 약속을 지키는 충성을 보신다. 이러한 일상의 순종이 신부의 옷을 촘촘히 짜고 보석을 하나씩 더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신부의 옷에 붙는 보석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순종과 헌신의 열매를 상징한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아 들어가지만 옷에 장식이 거의 없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가슴과 목과 온몸에 보석이 빛나는 옷을 입을 수 있다. 그 차이는 이 땅에서 무엇을 회개했고 무엇을 순종했으며, 복음과 이웃을 위해 무엇을 드렸는가에 따라 생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적극적인 헌신이 상으로 남기 위해서는 동기도 정결해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외식과 자기 영광을 위한 봉사는 하늘의 상이 되기 어렵다. 악한 영들은 봉사와 헌신 속에도 자랑과 경쟁과 인정욕구를 섞으려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헌신하기 전과 후에도 회개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체가 있는 동안에만 행함의 상을 준비할 수 있다. 천국에 들어간 뒤에는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물질을 드리고, 원수를 사랑하고, 고난을 견디는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간과 몸과 물질은 영원한 상급을 준비하는 가장 귀한 기회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레위기 성결법이 가르치는 속죄와 정결과 성결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속죄는 피로 죄를 덮는 것이며, 정결은 물과 피로 더러움을 씻는 것이고, 성결은 말씀과 성령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임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칭의는 구원의 출발이지 완성이 아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뒤에도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함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 거룩함은 세상에서 분리되어 산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의 우상숭배와 음행과 탐욕과 거짓을 따르지 않는 구별된 삶을 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방 풍속의 핵심인 우상숭배와 음행을 철저히 끊어야 한다. 몸과 영을 더럽히는 행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가증한 일을 반복하면서도 어린양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결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피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부모를 경외하고, 하나님께 시간을 구별하며, 절기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물질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웃과 복음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헌신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육과 영의 더러운 것을 씻어 내야 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단호히 끊고, 명하신 것은 작은 일이라도 충성스럽게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어린양의 신부로서 보석으로 빛나는 옷을 입게 된다. 이 준비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으므로 각자가 꼭 믿음과 순종으로 끝까지 이루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속죄의 은혜에 머물지 않고 정결과 성결을 온전히 이루며,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15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레위기에 나타난&amp;nbsp;&lt;strong&gt;속죄, 정결, 성결&lt;/strong&gt;의 단계를 구분하며, 특히 18장부터 시작되는&amp;nbsp;&lt;strong&gt;성결법&lt;/strong&gt;의 핵심 가치를&amp;nbsp;&lt;strong&gt;구별된 삶&lt;/strong&gt;으로 정의합니다. 정결이 이미 더러워진 것을 씻어내는 소극적 정화라면, 성결은&amp;nbsp;&lt;strong&gt;이방 풍속&lt;/strong&gt;인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멀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법도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여&amp;nbsp;&lt;strong&gt;거룩함&lt;/strong&gt;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속죄를 구원의 완성이 아닌 출발로 보며, 신자들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심판대&lt;/strong&gt;&amp;nbsp;앞에서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amp;nbsp;&lt;strong&gt;시간, 장소, 물질&lt;/strong&gt;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실천적 신앙과 철저한&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를 통해, 천국에서 빛나는 보석 옷을 입는&amp;nbsp;&lt;strong&gt;거룩한 신부&lt;/strong&gt;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ChatGPT Image 2026년 7월 16일 오전 08_57_48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bf4f75de7b85c9b637613fdd4131a1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4951b8e0a23bbc4763004ebf0a5738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bafbe0ac4f954c9c1ec425b5dfd5eb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ce37391d4280972e954b5a90d68d3f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c21697565eb40c8d78f5db073fed02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4cb9780f34bc659285970ab0f29dbf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9b60a556e86cb07170d37cf2a3cacb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7a18f5ac9957042e0c584e3a7dd6f6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6a80285107453d901215f2f31da5f9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9918ac60349d1db654219a7d8878966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0ac73a4580cfb4cf757bdf23a6e7df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5016f7010d269cafe8235686a41dcd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595b12a58b161dc1f8d2b96f4d7f53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cfc71c9fcf69031b9652863917109a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6a374c199dba129f576baecec4599a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Blueprint_of_Sanctific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2fae998e8fc97de07e841493483466e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레위기의_거룩한_삶_3단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291a7d27795c6bb73b60e754c406d2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8f4b29b0cf96ca7c273c47e2cb73bb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5d4ea7302b5b0c0b6e3194aa76a359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498accd51234b3c15ac7f2fff63a28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640aa8f4bc257c5cd0b4940bbaa601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d0fb99da4bad4b94ad27fce81bab48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f58b09028452d7013156b3ef96ff24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bc2dd560435debabc1170c40645a55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20b162a93dabc4db8688a0982258b8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4)] The_Ethics_of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389/262/745b1e892ccb945c4c8928f9019dcca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04)] 내게 은사가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며,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딤후1:3~6)_2026-07-08(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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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09T00:05:52+09:00</published>
		<updated>2026-07-09T00:25:1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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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온라인수요기도회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4)] 내게 은사가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며,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딤후1:3~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0NP09Aynq0 1. 들어가며 사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내게 어떤 은사가 있는가?”가 아니다.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께 쓰임받을 그릇으로 다듬어지고 있는가?”이다. 은사는 귀한 것이지만, 다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온라인수요기도회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04)] 내게 은사가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며,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딤후1:3~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0NP09Aynq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0NP09Aynq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5; } h1 { font-size: 18px; color: #3868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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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본문은 은사를 확인하고 받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amp;ldquo;내게 무엇이 보이는가?&amp;rdquo; 혹은 &amp;ldquo;내 손에서 무엇이 나가는가?&amp;rdquo;라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역자는 먼저 자질과 훈련과 지도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이미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를 살펴야 한다. 또한 직임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께 사모해야 한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주와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역자가 왜 먼저 다듬어져야 하며, 내게 은사가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하고, 필요한 은사를 어떻게 사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2. 사역자는 왜 먼저 다듬어지고 점검받아야 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곧바로 안전한 사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시작할 수는 있다. 어떤 경우에는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사역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오래 사역하면 반드시 문제가 드러난다. 가장 위험한 문제는 교만이다. 은사나 체험이 조금 나타나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윗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이것이 영적 사역자의 가장 큰 위험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말세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딤전4:1).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불신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때 믿음의 길 안에 있었으나, 어느 순간 믿음에서 떠났다. 영적 세계에서는 어제 맞았다고 오늘도 반드시 맞는 것이 아니다. 어제 보았던 것이 성령의 조명이었다고 해도, 오늘 회개하지 않고 교만해지면 귀신이 보여 주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오해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역자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질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임을 감당할 은사와 달란트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훈련이다. 훈련받지 않은 은사는 날것의 칼과 같아서 사람을 살리기보다 상하게 할 수 있다. 셋째는 좋은 지도자의 점검이다. 영적 스승 없이 혼자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영적 계보와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 디모데가 바울에게 배웠듯이,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그 가르침 안에 머물러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자기를 늘 점검해야 한다. &amp;ldquo;나는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회개를 멈추지 않았는가? 나는 은사를 사람을 세우는 데 쓰고 있는가, 아니면 내 이름을 세우는 데 쓰고 있는가? 나는 지도자의 책망을 받을 수 있는가?&amp;rdquo; 이런 질문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지도자의 책망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직접 얻어맞을 수 있다. 사람을 통해 교정받는 것이 은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은사를 말하기 전에 먼저 그릇을 말해야 한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다. 그러나 귀히 쓰이는 그릇은 재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자가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된다(딤후2:20~21). 하나님은 더러운 그릇에 거룩한 일을 오래 맡기지 않으신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3. 은사와 달란트는 그 사람의 쓰임새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아무렇게나 쓰지 않으신다. 목수가 집을 지으려면 연장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그 일에 맞는 은사와 달란트가 필요하다. 달란트는 넓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자연적 재능과 삶의 역량이다. 부모의 육적 DNA를 통해 내려오는 성향과 능력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음악에 강하며, 어떤 사람은 운동이나 음식이나 행정에 강하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기신 일반 은사의 영역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영적 은사는 단순한 재능과 다르다. 영적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사람의 기술과 훈련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적 세계에서 통하는 능력을 육신을 가진 성도에게 맡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와 달란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쓰임받을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크게 쓰임받을 사람에게는 더 많은 분량과 더 넓은 도구가 맡겨지고, 작은 일에 충성할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분량이 맡겨진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는 이 원리를 보여 준다(마25:15).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다. 여기서 핵심은 모두에게 똑같이 맡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각 사람의 그릇과 분량을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분량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게 맡겨진 분량을 확인해야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충성할 사람도 있고, 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충성할 사람도 있다. 문제는 한 달란트를 받은 것이 아니다. 문제는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amp;ldquo;나는 무엇을 맡았는가? 내게 이미 주어진 달란트는 무엇인가? 내게 나타나는 영적 은사는 어떤 방면인가? 내가 감당해야 할 직임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amp;rdquo; 이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허황된 꿈만 꾸거나, 반대로 받은 것을 묻어 두고 게으른 종이 되기 쉽다. 은사와 달란트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사명 확인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와 달란트를 확인하는 일은 겸손을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한 은사를 탐내다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놓친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은사를 작게 여기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묻어 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을 토기장이처럼 빚으신다. 큰 그릇도 있고 작은 그릇도 있으며, 공개적으로 쓰이는 그릇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이는 그릇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크기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4. 영적인 은사는 어떤 통로를 통해 사람에게 주어지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인 은사는 여러 통로를 통해 주어진다. 첫째, 태어날 때부터 갖고 오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영성이 깊고 기도를 많이 하며, 믿음의 계보 안에 있을 때 자녀에게 영적 민감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육적 DNA와는 다른 영적 흐름의 문제다. 물론 부모가 믿음이 좋다고 해서 자녀가 자동으로 훌륭한 사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도와 믿음의 환경은 은사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을 때 은사가 주어진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말했다(행2:38). 여기서 &amp;lsquo;선물&amp;rsquo;은 헬라어로 &amp;lsquo;도레아&amp;rsquo;이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방언이 터지기도 하고, 예언이 나타나기도 하며, 영적 민감성이 열리기도 한다. 모태신앙이 아닌 사람이라도 성령세례를 받을 때 은사를 받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직임을 위해 안수를 받을 때 은사가 임한다.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가 자신의 안수를 통해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딤후1:6). 안수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영적 전달과 위임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특히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 세움을 받을 때, 그 직임에 필요한 은사가 기름 부어지듯 흘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안수를 받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은사도 영적 계보를 통해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사모함과 간구를 통해 더 큰 은사가 주어질 수 있다.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고전12:31). 여기서 사모함은 호기심이 아니다. &amp;ldquo;나도 신기한 체험을 하고 싶다&amp;rdquo;는 마음이 아니다.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마음이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병든 자들이 많다면 치유의 은사를 구해야 하고, 귀신에게 눌린 자들이 많다면 축사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데 깨달음이 부족하다면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회개를 통해 은사가 담길 공간이 생긴다. 은사가 와도 악한 영이 가득하면 붙지 못하거나 막힐 수 있다. 특히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 무당 계열, 음란, 혈기, 탐욕, 거짓의 영들이 많으면 성령의 나타남을 흐리게 한다. 그러므로 은사를 구하는 사람은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 없이 은사만 구하면 위험하다. 회개 없는 은사는 귀신의 가르침과 혼합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은사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세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사명을 먼저 붙들어야 한다. 은사는 사명을 따라 오는 도구이지, 은사가 사명을 대신하지 않는다. 둘째, 회개로 그릇을 비워야 한다. 더러운 물이 가득한 그릇에 새 물을 부을 수 없듯이, 죄와 귀신의 합법적 근거가 가득한 상태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깨끗하게 담기기 어렵다. 셋째, 좋은 영적 지도자의 안에서 훈련받아야 한다. 영적 은사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작은 구름처럼 시작되기도 하고, 작은 불씨처럼 시작되기도 한다. 그것을 말씀과 회개와 순종으로 키워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은사를 구할 때에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병든 자를 살리기 위해 치유의 은사를 구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치유의 은사를 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려고 축사의 은사를 구하는 것과, 자기 권세를 과시하려고 축사의 은사를 구하는 것도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 그러므로 은사를 구하는 기도는 언제나 이렇게 정리되어야 한다. &amp;ldquo;주님, 주님의 양 떼를 살리기 위해,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 필요한 은사를 주옵소서.&amp;rdquo; 이것이 바른 간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5. 내게 있는 은사는 말&amp;middot;행함&amp;middot;앎으로 어떻게 확인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내게 있는 은사를 확인하려면 먼저 은사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첫 번째 큰 분류는 말의 은사, 행함의 은사, 앎의 은사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기능적으로 살피는 방법이다(고전12:8~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말의 은사에는 방언, 방언 통역, 예언이 있다.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은사다. 방언 통역은 방언의 내용을 알아듣게 하여 공동체를 세우는 은사다. 예언은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다. 말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말로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언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겁주거나 조종하면 그것은 성령의 질서가 아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행함의 은사에는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이 있다. 믿음의 은사는 구원받는 믿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선포하는 초자연적 믿음이다. 병 고침의 은사는 고장 난 몸과 정신과 마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시키는 은사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귀신을 쫓아내고, 악한 영의 진을 깨뜨리며,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는 역사와 관련된다. 축사의 은사는 이 영역과 깊이 연결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앎의 은사에는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영들 분별이 있다. 지식의 말씀은 감추어진 사실이나 과거의 일을 알게 하는 은사다. 지혜의 말씀은 현재의 영적 상태와 앞으로 되어질 일을 깨닫고 해석하게 하는 은사다. 영들 분별은 그 역사하는 영이 성령께 속한 것인지, 귀신에게 속한 것인지, 사람의 혼적인 작용인지 분별하게 하는 은사다. 헬라어로 &amp;lsquo;분별&amp;rsquo;은 &amp;lsquo;디아크리시스&amp;rsquo; 계열의 말로서, 갈라서 판단한다는 뜻을 가진다. 영적 사역에서 이 은사는 매우 중요하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내게 말의 은사가 있는지 보려면, 내 말이 사람을 세우는지 무너뜨리는지를 보아야 한다. 내게 행함의 은사가 있는지 보려면, 기도와 선포와 안수 가운데 실제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게 앎의 은사가 있는지 보려면, 내가 보거나 느끼는 것이 말씀과 실제 열매로 검증되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혼자 확정하면 안 된다. 영적 지도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속기 쉽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6.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는 어떻게 분류하고 분별하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는 기본 은사다. 그러나 이 은사들은 각각 따로 놀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어 작동한다. 예를 들어 병 고침이 일어나려면 믿음의 은사가 함께 필요할 수 있고, 축사가 일어나려면 영들 분별과 능력 행함이 함께 필요할 수 있다. 예언이 바르게 쓰이려면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고, 방언이 공동체를 세우려면 방언 통역이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를 분류할 때 또 하나의 관점은 빛의 은사, 불의 은사, 말의 은사다. 빛의 은사는 보게 하고 알게 하는 영역이다.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영들 분별이 여기에 속한다. 불의 은사는 실제 능력이 역사하는 영역이다.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이 여기에 연결된다. 말의 은사는 방언, 방언 통역, 예언처럼 입을 통해 나타나는 영역이다. 이 구분은 은사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은사를 분별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이다. 아무리 환상이 선명해도 성경을 벗어나면 따를 수 없다. 아무리 예언이 강하게 들려도 교회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면 점검해야 한다. 아무리 치유가 나타나도 그 사람이 회개와 천국복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은사의 목적이 흐려질 수 있다.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주어진다(고전12: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 분별에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열매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예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한다. 회개하게 하고, 말씀을 사랑하게 하며, 교회를 세우게 한다. 반면 귀신의 역사는 신기함은 줄 수 있으나 결국 사람을 자랑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지도자를 무시하게 하며, 돈과 명예를 탐하게 한다. 사탄도 보여 줄 수 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탄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었다(마4:8). 그러므로 보인다고 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amp;ldquo;어제 맞았으니 오늘도 맞다&amp;rdquo;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늘도 회개해야 하고, 오늘도 말씀 앞에서 점검받아야 한다. 은사가 커질수록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큰 은사가 큰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은사는 큰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욱 지도자의 점검을 받아야 하며, 자기 마음을 계속 낮추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를 확인할 때에는 &amp;ldquo;나에게 나타나는 현상&amp;rdquo;만 보지 말고 &amp;ldquo;그 현상이 낳는 결과&amp;rdquo;를 보아야 한다. 방언을 많이 해도 삶이 거칠고 교만하다면 자기 건축이 바르게 이루어졌는지 점검해야 한다. 예언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주님께로 이끄는 대신 자기에게 묶어 둔다면 그 예언은 위험하다. 병 고침이 나타난다고 해도 회개와 천국복음이 빠지면 사람은 잠시 편안해질 수는 있으나 영원한 길을 놓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의 참된 분별은 현상이 아니라 목적과 열매에서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했다(고전14:40). 은사는 질서 안에서 안전하다. 질서가 무너지면 은사가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혼란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언제나 말씀의 질서, 교회의 질서, 영적 지도자의 질서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7. 꿈&amp;middot;환상&amp;middot;영안 열림의 은사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의 또 다른 분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꿈과 환상의 은사, 영안 열림의 은사다.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에 직접 열거된 기본 은사들이다. 그러나 실제 사역 현장에서는 꿈과 환상, 영안 열림이 보조적으로 작동하여 그 은사들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꿈은 잠자는 동안 영적 세계의 어떤 장면이나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말씀하신 예가 있다. 요셉에게도 꿈을 통해 말씀하셨고, 신약의 요셉에게도 꿈으로 지시하셨다. 그러나 꿈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모든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몸의 피곤함에서 온 꿈도 있고, 마음의 염려에서 온 꿈도 있으며, 귀신이 보여 주는 꿈도 있다. 그러므로 꿈은 말씀과 열매와 영적 지도자의 점검으로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환상은 깨어 있을 때 혹은 기도 가운데 영적 장면이 보여지는 것이다. 환상은 가슴으로 보는 듯한 방식으로 올 수 있다. 특히 마음의 상처와 독이 회개와 눈물로 빠져나가면 환상이 더 깨끗하게 열릴 수 있다. 상처가 많고 분노가 많은 사람은 환상이 자기감정과 섞일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환상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회개와 내면의 정결을 추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영안 열림은 영적 세계의 실제를 더 직접적으로 보는 영역이다. 귀신이나 천사, 영적 상태, 하늘의 장면, 영적 무기나 불의 역사 등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역은 가장 조심해야 한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무당 계열의 영들이 있는 사람은 귀신 쪽으로 열린 것을 성령의 영안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안 열림은 반드시 회개와 말씀과 성령의 질서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영안이 열릴 때 귀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뱀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짐승으로 보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의 모습이나 색깔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혈기의 영, 살인의 영, 음란의 영, 가난의 영 등은 각기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절대화하면 안 된다. 영적 장면은 사역을 돕는 자료이지, 성경보다 높은 기준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꿈과 환상과 영안 열림은 모두 &amp;ldquo;보는 은사&amp;rdquo;와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는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과거를 보았다면 회개로 인도해야 하고, 현재 영적 상태를 보았다면 치유와 축사와 말씀으로 세워야 하며, 미래를 보았다면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준비하게 해야 한다. 보았다고 자랑하면 그 은사는 흐려진다. 보았으니 더 낮아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꿈과 환상과 영안 열림을 받는 사람은 특히 &amp;ldquo;상상&amp;rdquo;과 &amp;ldquo;성령의 조명&amp;rdquo;과 &amp;ldquo;귀신의 속임&amp;rdquo;을 구별해야 한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절대화하면 안 된다. 더 기도하고, 말씀에 비추고, 열매를 보고, 앞선 지도자에게 점검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회개가 깊어질수록 보는 것이 깨끗해진다. 회개가 얕으면 자기 상처와 욕망과 두려움이 섞일 수 있다. 그러므로 보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이 울어야 하고, 더 많이 자백해야 하며, 더 많이 낮아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보는 은사가 없는 사람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방식으로 쓰임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보는 은사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섬기며, 어떤 사람은 기도로 섬긴다. 어떤 사람은 치유와 축사 현장에서 쓰임받고, 어떤 사람은 행정과 물질과 섬김으로 복음을 받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분량 안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다만 영적 사역을 직접 감당해야 할 사람이라면, 보는 은사와 분별의 은사를 사모하고 훈련해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적을 분별하지 못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8. 빛&amp;middot;불&amp;middot;피&amp;middot;생수&amp;middot;에너지의 은사는 무엇을 가리키는가?&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손을 통해 나타나는 은사를 보면, 영적 사역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분별할 수 있다. 설교 원고는 손에서 나가는 영적 흐름을 빛, 불, 피, 생수, 에너지로 설명한다. 이것은 성경의 단어를 기계적으로 분류한 교리가 아니라, 실제 사역 현장에서 나타나는 영적 작용을 설명하는 언어다. 그러므로 이 부분도 반드시 말씀과 회개와 지도자의 점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 빛의 은사는 보게 하는 은사다.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물러가고, 영적 상태를 보거나 깨닫는 일이 일어난다. 영안 열림,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영들 분별과 연결된다. 빛은 어둠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빛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감추어진 것을 보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빛의 은사는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빛 되신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 불의 은사는 능력 행함과 축사에 연결된다. 불은 태우고 뚫고 정결하게 한다. 악한 영의 진을 깨뜨리고,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불의 은사는 단순한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이 실제로 역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후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셨다(행10:3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셋째, 피의 은사는 치유와 정결에 깊이 관련된다. 예수의 피는 죄 사함과 정결의 근거다. 회개할 때 예수의 피가 역사하고, 악한 영이 붙들고 있던 합법적 근거가 제거된다. 설교 원고는 회개를 많이 하면 예수의 피가 손에 맺히고 흘러나와 치유와 정결의 사역에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의 보혈이 단지 교리적 문장이 아니라 영적 실제로 역사한다는 강조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넷째, 생수의 은사는 마음의 상처와 내면의 회복에 관련된다. 생수가 들어가면 시원함과 평안과 기쁨이 찾아온다. 마음의 질병, 가슴의 답답함, 오래된 상처의 치유에는 생수의 역사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다(요7:38~39). 이것은 성령의 내적 역사와 관련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에너지의 은사는 사람을 쓰러뜨리거나 강한 영적 충격을 주는 작용과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가장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쓰러졌다고 해서 반드시 귀신이 나간 것은 아니다. 쓰러짐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속기 쉽다. 귀신은 고문받고, 결박되고, 회개로 합법적 근거가 제거될 때 떠난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나타남만으로 사역의 열매를 판단하면 안 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결국 빛은 보게 하고, 불은 태우고 싸우게 하며, 피는 정결과 치유를 이루고, 생수는 마음을 회복시키며, 에너지는 강한 영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와 복음 전파를 위해 쓰실 때 의미가 있다. 은사는 천국복음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 회개하고, 더 겸손히 쓰임받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까지 내게 은사가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며 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역자는 은사만 찾기 전에 먼저 자질과 훈련과 지도자의 점검을 갖추어야 한다. 은사는 좋은 것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나타나면 교만과 미혹과 혼합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말씀 안에서 검증받아야 하며, 영적 질서 안에 머물러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은사와 달란트는 그 사람의 쓰임새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분량과 도구를 맡기신다. 그러므로 남의 은사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미 받은 것을 묻어 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아야 하고, 받지 않은 것을 받은 것처럼 꾸미는 교만한 종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을 알고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영적인 은사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질 수도 있고, 성령세례를 받을 때 임할 수도 있으며, 직임을 위해 안수받을 때 주어질 수도 있다. 또한 직임을 감당하기 위해 사모하고 간구할 때 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와 정결을 앞세워야 한다. 악한 영들이 가득한 상태에서 은사를 구하면 성령의 역사와 귀신의 속임이 혼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내게 있는 은사는 말과 행함과 앎의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와 꿈과 환상, 영안 열림의 은사로도 살필 수 있다. 손에서 나가는 영적 작용으로는 빛과 불과 피와 생수와 에너지의 은사를 분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느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은사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며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가 하는 점이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사역자는 은사를 액세서리처럼 구하지 않아야 한다. 은사는 직임을 수행하고, 주와 복음 전파를 감당하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병든 자와 상처 입은 자를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으려는 성도는 먼저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하며, 필요한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또한 받은 은사를 훈련하고 점검받아 주님의 뜻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어진 은사를 주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값지게 사용하며 교회를 세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2026년 07월 08일(수)&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foo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자질과&amp;nbsp;&lt;strong&gt;은사의 체계적인 종류 및 확인 방법&lt;/strong&gt;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사역의 성공과 타락 방지를 위해&amp;nbsp;&lt;strong&gt;훈련, 자질, 그리고 지도자의 점검&lt;/strong&gt;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특히 성경적 기준과 영적 계보 안에서 자신을 살피는 겸손한 태도를 촉구합니다. 은사의 분류에 있어서는 말과 행함과 앎이라는&amp;nbsp;&lt;strong&gt;기능적 구분&lt;/strong&gt;뿐만 아니라, 손에서 나가는 에너지의 형태(빛, 불, 피, 생수, 에너지)에 따른&amp;nbsp;&lt;strong&gt;다섯 가지 치유 및 능력의 양상&lt;/strong&gt;을 독창적으로 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사역자가 자신의&amp;nbsp;&lt;strong&gt;은사와 분수를 정확히 파악&lt;/strong&gt;하여 악한 영의 미혹을 물리치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섬기는&amp;nbsp;&lt;strong&gt;상속자로 세우는 것&lt;/strong&gt;을 핵심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ChatGPT Image 2026년 7월 9일 오전 12_22_05[포맷변환].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a2c226c67f54d135a9389314926fcda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9ed0e7d66c9040aae6802decd90e765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2e06a2bc345e8b4c738637b6402434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d992a73bf1c63fe71d9704a24c0ae0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c50395d9cc22217c230e0f340effd4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2d8da64fddaaa7965c4cadc80aa1c3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539ab8e1a83988c8a50007bc8738fa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48e8fd2950d1455755bd7997809384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906260b56c4d517293e20695f95db9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cd35fae446e0b8a2cdd42f1d86ed03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30cfd3499256e9004f5a7f8b2a2c59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bc449756d300e460f52825a46348b1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f7e5f3680c8ee2f4264941cdd675d5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3c0b9e7e12dc65f7d7c085344bde1c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Divine_Order_of_Spiritual_Gift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0e30d3fa6f79b80732fb4594111f4d6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사역자의_은사와_자질_안내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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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dc166a377c9220734d477f01e2625b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936a1972f78b6106a8d089235c5919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5fb778591f036abed70b3535808e15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d9065d481b3b6f30aaa763deec5dac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fc7202ea6aee618a15cf7d4613be75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e2eb635f8255a3cdffa1a25f385b1d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3b85fb9ea190ac50c768a7884ab8c5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b313dc7ee05083bf5942b7ea72636c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4)] Spiritual_Gifts_and_Divine_Order.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2/261/5f685e368ed663dcaef54b74f76fb56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_2026-07-01(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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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02T00:20:12+09:00</published>
		<updated>2026-07-14T22:15:4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7-01(수) 수요기도회(정제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GJ8ydeVDaU 부제: 피는 어떻게 생명과 그리스도를 계시하는가? 1. 들어가며 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레위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속죄받고, 어떻게 정결하게 되며,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를 단지...</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7-01(수) 수요기도회(정제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NGJ8ydeVDa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GJ8ydeVDa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4px; line-height: 1.8; color: #222; } .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222; margin: 0 0 1.2em 0; } .subtitl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 0.2em 0 0.8em 0; } .normal { margin: 0 0 0.8em 0; } .noindent { margin: 0 0 0.4em 0; } .verse { margin: 0.2em 0 1em 0;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class=&quot;title&quot;&gt;부제: 피는 어떻게 생명과 그리스도를 계시하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1. 들어가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레위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속죄받고, 어떻게 정결하게 되며,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를 단지 제사 규정의 모음으로 읽으면 그 깊이를 놓친다. 레위기 안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는 길, 더러워진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는 길, 그리고 깨끗하게 된 사람을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는 길이 들어 있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amp;#39;제사법&amp;#39;&lt;/strong&gt;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은 &amp;#39;속죄&amp;#39;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나오지만, 이러한 제사들의 핵심은 속죄제와 속건제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죄가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죄가 처리되는 방식은 피 흘림에 의한 용서이다. 짐승이 대신 죽고, 그 피가 제단에 뿌려지며, 죄인은 그 피 아래에서 사함을 받는 것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 그리고 이어지는&lt;strong&gt; 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는 &amp;#39;정결법&amp;#39;&lt;/strong&gt;으로 볼 수 있다. 음식으로 더럽혀지는 문제(11장), 해산한 여인의 정결(12장), 나병의 진단과 정결(13-14자), 유출병의 정결(15장), 대속죄일의 정결(16장), 그리고 피의 규례(17장)가 차례로 나온다. 여기서는 제사장만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도 자기 몸과 옷을 씻고, 더러움에서 떠나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결법의 핵심은 &amp;ldquo;무엇이 나를 더럽히며, 내가 어떻게 깨끗하게 되는가&amp;rdquo;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레위기 18장부터 27장까지는 &amp;#39;성결법&amp;#39;&lt;/strong&gt;으로 볼 수 있다. 성결은 정결보다 더 나아간다. 정결은 더러움을 씻는 것이지만, 성결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답게 구별되어 사는 것이다. 성결은 단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성결법은 &lt;strong&gt;성생활, 가정질서, 절기, 십일조, 서원, 사회적 정의, 우상숭배 금지와 같은 구별된 삶의 문제&lt;/strong&gt;로 이어진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이 흐름 속에서 &lt;strong&gt;레위기 17장&lt;/strong&gt;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장은&lt;strong&gt; 정결법의 마지막이면서 성결법으로 넘어가는 문턱&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amp;#39;피&amp;#39;를 다루신다. 왜냐하면 &amp;#39;피&amp;#39;는 제사법에도 필요하고, 정결법에도 필요하며, 성결법으로 나아가는 백성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거룩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amp;#39;피&amp;#39;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속죄와 연결되어 있으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lt;strong&gt; 레위기 17장의 피 규례가 왜 정결법의 마지막에 놓였으며, 생명과 피와 그리스도의 보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2. 레위기 17장은 왜 정결법의 마지막에 놓였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앞쪽으로는 제사법과 정결법을 돌아보게 하고, 뒤쪽으로는 성결법을 열어 준다. 이 장이 피를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amp;nbsp;먼저 제사법에서 피는 죄를 덮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정결법에서 피는 더러움을 씻고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결법으로 넘어가면 사람은 이제 피로 속죄받고 물로 씻김받은 자답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레위기 17장의 첫 부분인 제사법에서는&lt;/strong&gt;&amp;nbsp;말씀을 받을 대상이 누군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면서 &amp;ldquo;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amp;rdquo;에게 말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17:1~2). 여기에는 두 부류가 있다. 고로 제사법을 받을 대상은 하나는 제사장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다. 이는 레위기 전체의 흐름과 맞물린다. 제사장은 제사를 집례하는 자이고, 백성은 그 제사와 정결의 법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17장은 제사장만을 위한 규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도 역시 알아야 할 규례인 것이다. 피를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는 제사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백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백성이 짐승을 잡을 때도 피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도 피를 제단의 질서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과 속죄를 동시에 가리키기 때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의 정결법&lt;/strong&gt;은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접촉으로 더러워진 자는 물로 몸을 씻고 옷을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자는 물과 피와 제사를 통해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출병도 물로 씻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들어가 성소와 회막과 제단과 백성을 정결하게 한다. 그런데 레위기 17장은 그 모든 정결의 절차에서 핵심이 되는 피 자체를 다룬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lt;strong&gt;레위기 17장은 정결법의 결론&lt;/strong&gt;이다. 피가 무엇인지 모르면 정결법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피가 왜 소중한지 모르면 제사도 형식이 되고, 정결도 의식에 머문다.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단지 식생활을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가 생명과 속죄를 대표하기 때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또한&lt;strong&gt; 레위기 17장은 성결법의 출입문&lt;/strong&gt;이다. 성결은 깨끗함에서 출발하지만 깨끗함에 머물지 않는다. 성결은 하나님께 구별되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성령의 사역이 신약처럼 풍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신약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된다. 거룩한 삶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5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오셨고, 성령께서 이러한 사실을 증언하신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레위기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꿰뚫는다. 피는 속죄를 말하고, 물은 정결을 말하며, 성령은 성결을 말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17장은 피를 통하여 &lt;strong&gt;레위기의 세 큰 흐름&lt;/strong&gt;을 하나로 묶는다. &lt;strong&gt;죄인은 피로 속죄받고, 더러워진 자는 물과 피로 정결하게 되며, 깨끗하게 된 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아야&lt;/strong&gt; 한다. 이것이 레위기 17장이 정결법의 마지막에 놓인 이유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3. 하나님은 왜 짐승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게 하셨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의 첫 명령은 이스라엘 사람이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 진영 안에서 잡든 진영 밖에서 잡든 회막 문 앞으로 가져오라는 것이다(레 17:3~4). 이것은 얼핏 보면 도살 장소에 관한 규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를 보호하고 우상숭배를 차단하기 위한 규례다.&lt;/p&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3~4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언급되는 짐승은 소, 어린양, 염소다. 이들은 레위기 3장에서 화목제의 제물로 드릴 수 있는 대표적인 깨끗한 짐승들이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제사를 드린 사람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제사다. 그러나 화목제에서도 기름과 피는 먹을 수 없었다.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고, 피는 생명과 속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3:16~17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스라엘 백성이 집이나 들에서 마음대로 짐승을 잡으면 피를 함부로 먹을 가능성이 생긴다. 또한 애굽에서 배운 방식대로 들에서 숫염소에게 제사하는 우상숭배 습관이 되살아날 수 있다&lt;/strong&gt;. 그러므로 레위기 17장 7절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는 제사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히 도살법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애굽적 우상숭배의 흔적을 끊게 하신 것이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들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회막 앞으로 소와 양을 가져오라는 명령&lt;/strong&gt;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lt;strong&gt;첫째,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라&lt;/strong&gt;는 뜻이다. 짐승의 생명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다뤄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lt;strong&gt;둘째, 피를 먹지 못하게 하려는 뜻에서&lt;/strong&gt;다. 회막 앞에서 잡으면 피를 제단의 질서 안에서 처리하게 된다. &lt;strong&gt;셋째, 우상에게 피를 바치는 행위를 끊게 하려는 의도에서&lt;/strong&gt;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피를 들의 우상에게 바치면 그것은 영적 음행이 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이 규례는 오늘날에도 영적 원리를 말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세상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내 생명, 내 몸, 내 물질, 내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야 한다. 특히 피는 장차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피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하셨다. 피를 함부로 먹고, 피를 들에 쏟고, 피를 우상에게 바치는 습관을 그대로 두면, 장차 예수의 피도 흔한 것으로 여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레위기 17장의 회막 명령은 예배의 회복이다. 생명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라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라는 뜻이다. 피를 하나님 앞에서 다루라는 것은 생명과 속죄를 사람의 욕망이나 우상에게 넘기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는 오늘도 자기 삶의 중심을 회막 앞으로 옮겨야 한다. 곧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판단하고, 그분의 피 앞에서 다루어야 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4.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가르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의 가장 반복되는 명령은 &amp;ldquo;피를 먹지 말라&amp;rdquo;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도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레 17:10). 그리고 피를 먹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명령이다.&lt;/p&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10 이스라엘 집의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왜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라고 그렇게 엄중하게 명령하시는가? 그 &lt;strong&gt;첫째 이유는 피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레위기 17장 11절은 &amp;ldquo;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amp;rdquo;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피는 담이고, 생명은 네페쉬다. 네페쉬는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와 연결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피가 속죄의 수단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제단에 주어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셨다. 피가 죄를 속한다. 여기서 속죄와 관련된 히브리어는 카파르다. 카파르는 덮다, 가리다, 속죄하다의 의미와 연결된다. 죄인이 죄값대로 즉시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피가 그 죄를 덮기 때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피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구약의 짐승 피는 본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림자다.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피도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장차 사람으로 오셔서 흘리실 하나님의 피가 얼마나 귀한지를 미리 가르치기 위함이다. 짐승의 피를 흔하게 여기면 그 피가 가리키는 예수의 피도 흔하게 여길 수 있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피 금지 규례는 단순한 식생활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 경외의 규례요, 속죄 교육의 규례요, 그리스도의 피를 예비하는 예표적 규례다. 하나님은 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amp;ldquo;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속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피를 흔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amp;rdquo;&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냥하여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잡았을 때도 그 피를 땅에 쏟고 흙으로 덮으라고 하셨다(레 17:13). 이는 피를 음식처럼 취하지 말고, 생명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이다. 피를 땅에 덮는 행위는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레 17:13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성도도 이 원리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남을 해치는 말, 분노, 살인적인 미움, 영혼을 죽이는 거짓말도 피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피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보혈은 찬송가의 표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혈은 속죄와 정결과 보호와 승리를 이루는 하나님의 실제 능력이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5. 피와 생명과 속죄는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의 중심 문장은 11절이다. 이 한 절 안에 피와 생명과 속죄가 모두 들어 있다. &amp;ldquo;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amp;rdquo; &amp;ldquo;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amp;rdquo; &amp;ldquo;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amp;rdquo; 이 세 문장은 피의 신학을 완성한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피는 생명&lt;/strong&gt;이다. 성경은 피를 단순한 신체의 액체로만 보지 않는다. 피는 생명의 표지다. 피가 흘러 나가면 생명이 떠난다. 그래서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생명을 먹지 말라는 명령이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라는 명령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피는 대신 대속하는 죽음을 보여 준다&lt;/strong&gt;.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죄를 지은 자가 죽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 제도 안에서 죄인 대신 흠 없는 짐승을 죽게 하셨다. 죄인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자기 죄를 전가하고, 제물이 죽는다. 피가 흘려진다. 그 피가 제단에 뿌려진다. 이것은 죄인의 죽음을 대신하는 죽음이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피는 속죄&lt;/strong&gt;한다. 카파르, 곧 속죄는 덮는 것이다. 죄를 덮는다는 것은 죄를 대충 넘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죄의 값을 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죄는 반드시 죽음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피를 통해 그 죽음의 값을 보게 하셨다. 그러므로 피가 없는 제사는 속죄의 중심을 잃어버린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구약의 짐승 피는 완전한 속죄를 이루는 본체가 아니었다. 히브리서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 것이다. 예수님의 피만이 죄를 실제로 사하고,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의 원리를 신약적으로 결론짓는다. &amp;ldquo;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amp;rdquo; 율법 아래에서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 정결하게 되었다. 이것은 구약 제사의 핵심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예언이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주시며 &amp;ldquo;이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마 26:27~28). 레위기 17장의 피 규례가 가리키던 본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다. 예수님의 피는 언약의 피요, 죄 사함의 피요, 생명을 주는 피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피와 생명과 속죄는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 피 안에 생명이 있고, 피 흘림이 죽음을 말하며, 그 피가 죄인을 위하여 속죄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된다. 성도는 예수의 피를 믿음의 출발점으로만 보지 말고, 신앙생활 전체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6. 예수님은 어떻게 물과 피와 성령으로 레위기를 완성하셨는가?&lt;/div&gt; &lt;p&gt;&amp;nbsp;&lt;strong&gt;&amp;nbsp;레위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읽으면, 세 단어가 선명&lt;/strong&gt;하게 보인다.&lt;strong&gt; 피, 물, 성령&lt;/strong&gt;이다. &lt;strong&gt;피는 제사법의 중심&lt;/strong&gt;이고,&lt;strong&gt; 물은 정결법의 중요한 수단&lt;/strong&gt;이며,&lt;strong&gt; 성령은 성결법의 완성&lt;/strong&gt;을 보여 준다. 구약의 레위기는 이 세 흐름을 예표로 보여 주고, 신약의 그리스도는 이 세 흐름을 실제로 완성하신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고로 &lt;strong&gt;예수께서 물과 피를 가진 육체로서 이 땅 안에서 탄생&lt;/strong&gt;하셨다. 요한일서 5장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성령과 물과 피라고 말한다(요일 5:6~8).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세례와 십자가만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물과 피와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구원의 세 증거다. 그분은 피로 속죄하시고, 물과 피로 정결하게 하시며, 성령으로 거룩한 삶을 이루게 하신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일 5:7~8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 19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군인이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나왔다고 말한다(요 19:34). 그분의 육체는 죽으셨지만, 그 죽음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 이는 교회의 탄생과도 연결된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와 신부인 교회가 산출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피는 속죄를 이룬다.&lt;/strong&gt;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그 피 아래 들어간다. 죄가 덮인다. 하나님은 예수의 피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이것이 칭의다. 그러나 신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믿은 후에도 우리는 더러워질 수 있다. 말로 죄를 짓고, 생각으로 죄를 짓고, 몸으로 죄를 짓고, 조상들의 죄로 들어온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 &lt;strong&gt;우리가 만일 죄들을 자백한다면, 2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는 죄 사함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하게 하심&lt;/strong&gt;이다. 구약의 말로 하면 속죄와 정결이다. 믿음으로 예수의 피 아래 들어갈 때 죄가 덮인다. 그러나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그 더러움이 씻겨 나간다. 그러므로 &amp;ldquo;예수 믿었으니 다 끝났다&amp;rdquo;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의 피는 믿는 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 가운데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피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성령은 성결을 이루신다. 깨끗하게 된 사람이 거룩하게 살려면 성령을 따라가야 한다. 성결은 단지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구별되어 사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며, 육체의 욕망을 이기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도록 이끄신다. 그러므로 성결법의 신약적 완성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다. 그분은 피를 흘려 속죄하셨고, 물과 피를 통하여 우리를 정결하게 하셨으며,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제사법은 십자가의 피로 완성되고, 정결법은 물과 피의 씻음으로 완성되며, 성결법은 성령을 따르는 거룩한 삶으로 완성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7. 예수의 피는 성도에게 어떤 일곱 가지 유익을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예수의 피는 교리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lt;strong&gt;예수의 피는 실제 능력&lt;/strong&gt;이 되기 때문이다. 레위기 17장이 피를 먹지 말라고 엄중히 명한 이유도 피가 장차 예수의 피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lt;strong&gt;예수의 피는 성도에게 최소 일곱 가지 유익&lt;/strong&gt;을 준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예수의 피는 속죄한&lt;/strong&gt;다. 속죄는 죄를 덮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이유는 죄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피가 죄를 덮는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가 죄 사함을 이루신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예수의 피는 의롭다 하신&lt;/strong&gt;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은혜다. 이 선언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 때문이다. 그 피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근거가 없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예수의 피는 보호한다&lt;/strong&gt;.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다. 그 피를 볼 때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다. 이것이 유월절, 곧 넘어감의 은혜다. 오늘도 성도는 예수의 피가 영적 재앙과 악한 영의 공격에서 보호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예수의 피는 정결하게 한다&lt;/strong&gt;.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이 정결은 자백하는 회개와 연결된다. 죄를 숨기면 더러움이 남는다. 죄를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그 더러움을 씻는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예수의 피는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데도 쓰인다&lt;/strong&gt;. 귀신과 뱀들과 악한 영들은 죄를 근거로 들어온다. 죄가 자백되고 예수의 피가 적용될 때, 그들이 붙들고 있던 합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그러므로 회개와 예수의 피는 축사 사역에서 매우 중요하다. 피는 더러운 영과 우리 사이를 떼어 내고, 그들이 붙어 있던 자리를 씻어 낸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예수의 피는 생명과 치유를 공급한다&lt;/strong&gt;. 예수님은 자기 살을 참된 양식이라 하셨고, 자기 피를 참된 음료라 하셨다. 피 안에 생명이 있듯, 예수의 피에는 생명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피가 들어갈 때 죽어 가던 영혼이 살아나고, 더러워진 곳이 씻기며, 상한 곳이 회복된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예수의 피는 사탄을 이기게&lt;/strong&gt; 한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성도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탄을 이겼다고 말한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다. 그는 죄를 근거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는 그 참소를 무너뜨린다. 예수의 피 아래 있는 자는 사탄의 참소에 굴복하지 않는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계 12:10~11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예수의 피는 속죄의 피요, 칭의의 피요, 보호의 피요, 정결의 피요, 축사의 피요, 생명과 치유의 피요, 승리의 피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를 막연한 종교 언어로만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피를 믿고, 고백하고, 회개 가운데 적용하며, 영적 싸움에서 의지해야 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8. 성도는 오늘 예수의 피를 어떻게 믿고 적용해야 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의 피 규례는 오늘 성도에게 실제적인 적용을 요구한다. 구약 백성은 짐승의 피를 먹지 말아야 했다. 오늘 성도는 예수의 피를 흔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져서는 아니 된다. 구약 백성은 피를 회막 앞에서만 다루어야 했다. 오늘 성도는 예수의 피를 십자가와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구약 백성은 피를 생명과 속죄의 표지로 보아았다. 그러나&lt;strong&gt; 오늘날 성도는 예수의 피를 생명과 속죄와 정결과 승리의 실제 능력으로 믿어야&lt;/strong&gt; 한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성도는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lt;/strong&gt; 한다. 예수의 피는 나의 죄를 덮는 피다. 내 행위가 아니라 예수의 피가 나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하지 말고,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성도는 자백하는 회개로 예수의 피를 적용해야&lt;/strong&gt; 한다. 죄를 감추면 피의 정결이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다. 죄를 자백할 때 피가 씻는다. 회개는 천국 가기 위한 형식이 아니다. 회개는 예수의 피가 내 행위책의 죄를 지우고, 내 속에 들어온 악한 영들의 근거를 제거하게 하는 통로다. 그러므로 회개 없는 신앙은 정결 없는 신앙이 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성도는 예수의 피를 보호의 능력으로 사용해야&lt;/strong&gt; 한다. 유월절 피가 죽음의 재앙을 넘어가게 했듯이, 예수의 피는 오늘 성도의 삶 속에서 보호의 표가 된다. 장례식장이나 병든 자리나 어둠의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서도 성도는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 이는 미신적 주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영적 세계에서 실제 권세를 가진다는 믿음의 적용이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성도는 예수의 피를 영적 전쟁의 무기로 알아야&lt;/strong&gt; 한다. 사탄은 참소한다. 귀신들은 죄의 근거를 붙잡는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는 그 근거를 무너뜨린다. 성도는 &amp;ldquo;예수의 피를 뿌리고 바르고 덮는다&amp;rdquo;는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자기 영혼과 가정과 사역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적용해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성도는 예수의 피를 생명 공급으로 받아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은 자기 피를 참된 음료라고 하셨다. 이는 육체적으로 피를 마시라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과 생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성찬은 이 사실을 계속 기억하게 한다.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가 없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성도는 예수의 피를 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lt;/strong&gt; 한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에게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경고한다. 예수의 피를 알고도 죄를 가볍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고, 보혈을 자기 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lt;/div&gt; &lt;div class=&quot;verse&quot;&gt;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성도는 피와 물과 성령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lt;/strong&gt; 한다. 피로 속죄받고, 물과 피로 정결하게 되며, 성령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속죄만 말하고 정결을 말하지 않으면 신앙은 더러움 가운데 머문다. 정결만 말하고 성령을 따르지 않으면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와 회개와 성령의 인도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은 피를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끝나는 장이 아니다. 이 장은 피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장이다. 생명은 피에 있고, 피가 속죄를 이루며,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실제로 살린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예수의 피 아래 살아야 한다. 그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그 피로 정결하게 되고, 그 피로 악한 영을 이기고, 그 피로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9. 나오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이 생명과 피와 그리스도의 보혈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 17장은 정결법의 마지막에 놓여 있으면서 성결법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이 장은 피를 통하여 제사법의 속죄와 정결법의 씻음과 성결법의 거룩함을 하나로 묶어 준다.&lt;/p&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피를 먹지 말라는 구약의 명령을 단순한 음식 금지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 명령 안에는 생명을 경외해야 한다는 뜻이 있고, 피가 속죄를 이룬다는 뜻이 있으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소중히 여기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의 피를 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예수의 피는 죄를 덮는 속죄의 피이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시는 칭의의 피이며, 유월절 어린양의 피처럼 보호하는 피다. 또한 자백하는 회개 가운데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의 피이며, 악한 영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축사의 피이고, 생명과 치유를 공급하는 피이며, 사탄의 참소를 이기게 하는 승리의 피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피와 물과 성령의 흐름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피 없이 속죄가 없고, 자백 없는 정결이 없으며, 성령의 인도 없는 성결이 없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예수의 피 아래 들어가야 하고, 날마다 회개함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하며, 성령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의 피 규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을 다시 보게 한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피도 함부로 먹지 말라고 하셨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얼마나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성도는 그 피를 믿고, 고백하고, 적용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amp;nbsp;예수의 피는 지금도 살아 있는 피다. 그 피는 과거 십자가에서 흘려진 역사적 피일 뿐 아니라, 오늘도 믿는 자에게 속죄와 정결과 생명과 승리로 역사하는 영적 실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이기고, 귀신을 이기고, 사탄의 참소를 이기며, 천국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의 피로 속죄받고 정결케 되며 성령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div&gt; &lt;div class=&quot;normal&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normal noindent&quot;&gt;2026년 07월 01일(수)&lt;/div&gt; &lt;div class=&quot;normal noindent&quot;&gt;정보배 목사&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17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생명과 피의 신성함&lt;/strong&gt;, 그리고 이것이&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대속&lt;/strong&gt;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제사법과 정결법이 궁극적으로&amp;nbsp;&lt;strong&gt;인류를 정결케 하는 물과 피&lt;/strong&gt;를 남기신 예수의 사역을 예표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피가 곧 생명&lt;/strong&gt;이기에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amp;nbsp;&lt;strong&gt;죄 사함과 사탄의 참소를 이기는 실제적인 영적 권세&lt;/strong&gt;임을 강조하며, 신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이&amp;nbsp;&lt;strong&gt;보혈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선포할 것&lt;/strong&gt;을 권면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인포그래픽_ChatGPT Image 2026년 7월 2일 오전 08_56_232026-06-2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a20618843b7340b5057d7fbef8bad77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24604cebef1699062bd3430857f20a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6c4a6dee3bb68c5c8de69136de7b8a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2ab5285b70f26710641f164554289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4bcae0c7a25d8d24a9234612283716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f4d6e35dc2e6e5413b8f82c61cca1d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7ec09d61902f0b69c1f5bbbbb36e29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1c87492c309f33cb912ff4f0d1bfd5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9580d0cfe8b082a847a6732bf2e54205.webp&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94ceb8e15cded681b7a0033108b43b7e.webp&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ede0a868520afa97bc9a4aecde3dc02f.webp&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35ad2a3061e225da0ba843b93a428cd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gt;2026-07-01(수) 수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강해도 어느덧 열세 번째 시간에 이르렀다. 이 시간에 다룰 본문은 정결법의 마지막 부분, 곧 레위기 17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이다. 이 본문의 핵심은 &amp;quot;피&amp;quot;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amp;quot;생명과 피&amp;quot;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레위기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amp;quot;깨끗하게 하는 것&amp;quot;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하게 하는 방식이 누가 무엇을 주관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제사장이 주관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죄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 각자가 스스로 정한 절차를 따라 몸과 옷을 씻어 깨끗하게 되는 방식이다. 앞의 것을 &amp;#39;제사법&amp;#39;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amp;#39;정결법&amp;#39; 혹은 &amp;#39;성결법&amp;#39;이라 부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레위기 17장은 바로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본문이다. 짐승을 잡아 먹으려 할 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할 때에도 반드시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피에 관한 규례 속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흘리실 피에 대한 예표가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lt;strong&gt; 레위기 17장에 나타난 물과 피의 원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되며, 그 피가 오늘의 성도들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레위기가 나누는 제사법과 정결법&amp;middot;성결법의 차이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 책 전체를 그저 &amp;quot;제사에 관한 규례집&amp;quot;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쉽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레위기의 원제목은 &amp;quot;그리고 그가 부르셨다&amp;quot;라는 뜻을 지니는데, 이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구체적인 삶의 규례를 세세히 일러 주셨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이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법과 성결법이다. 제사법의 핵심은 속죄에 있다. 물론 제사 가운데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처럼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가 아닌 것들도 있지만, 속죄제와 속건제처럼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제사, 곧 드리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제사가 이 부분의 핵심을 이룬다. 반면 11장부터는 성격이 달라진다. 정결하게 되는 것, 곧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핵심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의무제와 자원제의 차이를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4:2 누구든지 부지중에 죄를 범하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어겨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면&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를 범한 자라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다.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 죄가 그대로 남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이와 다르다. 이 제사들은 드리고 싶은 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즉각적인 심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제사법의 진짜 핵심은 번제나 화목제 같은 자원제가 아니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은 의무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속죄, 곧 죄사함을 받기 위함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두 부분을 나누는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주석가들이 11장부터 27장까지를 통째로 성결법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통째로 정결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구분의 실마리가 바로 레위기 17장 1절과 2절에 나타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 부류로 나누신다. 하나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 곧 일반 백성이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이다. 제사장이 주관이 되어 드리는 일을 다룬다는 뜻이다. 그러나 11장부터 27장까지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주신 명령이다. 백성 각자가 스스로 부정하게 되었을 때, 곧 무엇을 먹어서든 무엇에 접촉해서든 부정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씻고 옷을 빨고 필요하면 속죄제나 번제를 드려 나아가는 절차를 규정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제사법과 정결법을 나누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제사장이 주관적으로 드리는 것이 제사법이고, 일반 백성이 스스로 부정을 처리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이 정결법이다. 이렇게 구분하면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는 11장 이후의 본문을 훨씬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정결법과 성결법은 어떻게 다르며 그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11장부터 27장까지를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 11장부터 17장까지, 곧 이 시간에 다루는 본문까지는 정결법이라 부르고, 18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라 부른다. 정결법이라는 말은 &amp;quot;깨끗하게 하다&amp;quot;는 뜻이고, 성결법이라는 말은 &amp;quot;거룩하게 하다&amp;quot;는 뜻이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법에 속한 본문들을 살펴보면 그 방법이 대체로 물로 씻고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필요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장은 음식법으로서 부정한 짐승에 접촉하지 말라는 규례를 담고 있고, 12장은 해산 후 여인이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지를 다루며, 13장과 14장은 나병에 관한 규례, 15장은 유출병에 관한 규례를 담고 있다. 나병에 관한 규례를 보면 그 절차가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는 혼자 살되 진영 밖에 살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병에 걸린 사람은 진영 밖으로 나가 홀로 지내야 했고, 제사장의 검사를 거쳐 병이 나은 것이 확인되어야만 다시 물로 씻고 정결 예식을 통해 진영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처럼 11장부터 16장까지 이어지는 정결법은 각기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그 처리 방식은 한결같이 물로 씻거나 피를 드리는 절차로 귀결된다. 16장은 대속죄일 제사로서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소라는 장소까지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다룬다. 이 모든 경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물과 피다. 몸을 씻고 옷을 빨 때는 물이 필요하고, 제사를 드릴 때는 피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결법의 핵심 도구는 물과 피라고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반면 18장부터 시작되는 성결법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18장에서는 가족 간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규례, 곧 가족 간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는 규례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몸을 씻으라거나 제사를 드리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인륜의 도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결법에서는 물로 씻거나 제사를 드리는 절차 대신, 보다 적극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거룩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구별되었다는 뜻이고, 둘째는 깨끗하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성결이다. 예를 들어 재물을 벌어도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겨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그러하다. 레위기는 이 원리를 이렇게 명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27:30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니 땅의 소산물이든지 나무의 열매든지 여호와의 성물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태도, 그것이 곧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이다. 세상 사람은 자기가 번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만, 성결한 백성은 자기 소유조차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린다.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역시 성결법에 속한 삶의 방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결법의 범위 안에는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규례도 포함되어 있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를 지키는 것,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을 지키는 것, 오십 년마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희년을 지키는 것은 모두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사람은 시간을 오직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지만, 구별된 백성은 시간의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이 역시 성결의 한 단면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됨의 원리는 한 민족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가서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신부의 고백을 이렇게 노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론의 수선화는 흔히 무궁화와 연결되어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는 세상과 구별되어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백성은, 마치 꺾으려 해도 쉽게 꺾이지 않는 무궁화의 줄기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술을 마셔도 확실히 마시고 죄를 지어도 확실히 짓듯이, 한번 예수를 믿으면 죽기까지 붙드는 신앙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질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그 기질이 온전히 주님을 향해 쓰일 때 세상과 구별된 성결한 백성이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예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이 이 땅을 자연재해로부터 지켜 주시는 것 역시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은혜의 한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큰 지진이나 태풍이 인접한 지역을 덮쳐도 유독 이 땅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은, 감사를 모르는 자리에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되새기게 한다. 감사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구별된 백성은 이러한 보호하심 앞에서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결국 정결법이 물과 피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면, 성결법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살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레위기 17장에서 물과 피는 무엇을 예표하고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법의 핵심 도구가 물과 피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예표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신약에서 분명하게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셔서 육신을 입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그 육신은 가지고 가셨지만, 이 땅에 남기고 가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물과 피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내셨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며 온몸으로 피를 흘리셨고, 마지막에는 창에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가 함께 흘러나왔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에는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가고 뼈만 남아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복음서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9:34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지만, 군인의 창이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함께 흘러나왔다. 이는 우연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레위기가 정결법을 통해 예비해 온 물과 피의 원리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건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사법에서는 주로 짐승의 피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소제처럼 피가 사용되지 않는 제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제사법의 핵심 도구는 피다. 그런데 정결법에서는 물과 피가 함께 사용된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제사법의 피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죄하실 피를 예표한다면, 정결법의 물과 피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우리를 속죄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도 그 피가 사용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언급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이는 곧 &amp;quot;속죄하며 정결하게 한다&amp;quot;는 뜻이다. 다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죄는 덮인다. 그러나 실제로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죄를 자백하는 절차, 곧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편 왜 하필 물과 피가 선택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값을 이렇게 설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은이나 금은 아무리 값비싸도 결국 없어질 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레위기가 짐승의 피 하나하나를 그토록 소중히 다루도록 규정한 것은, 장차 이 보배로운 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예비하시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와 함께 물이 상징하는 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신약은 물로 씻는 예식, 곧 세례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표징으로 제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물이 몸을 씻어 정결하게 하듯,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나타내는 표다. 레위기의 정결법이 물로 몸을 씻게 한 것과, 신약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같은 흐름 위에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하나님은 왜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실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레위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시면서도 이 명령을 함께 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노아의 언약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7장의 규례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창세기 이래로 이어져 온 원리를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절차로 세밀하게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7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절부터 9절까지는 짐승을 잡을 때 그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다루고, 1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amp;nbsp;먼저 3절과 4절을 보면, 음식으로 취하기 위해 짐승을 잡을 때에 관한 규례가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7:3-4 이스라엘 집의 그 어떤 사람이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그것을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피를 흘린 자로 여겨질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그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라는 세 짐승이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세 짐승은 레위기 3장과 7장에서 이미 화목제물로 규정된 짐승들이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헌제자 자신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다. 그런데 레위기 3장은 화목제를 드릴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를 이렇게 명시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3:16-17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기름과 피는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곧 화목제를 드릴 때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흔든 가슴과 오른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며, 나머지 고기만 헌제자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위기 7장은 이 화목제의 규례를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7:30-32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로 삼고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로 삼을지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화목제 가운데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와 서원이나 자원함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한이 서로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7:15-17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의 고기는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제물이면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날 안에 다 먹어야 하고, 서원이나 자원하는 제사는 이튿날까지는 먹을 수 있으나 셋째 날까지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밀한 규정을 두신 것은 화목제물조차 함부로 여기지 않도록 하시려는 뜻이었다. 이어서 7장은 기름과 피를 먹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엄히 경고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7:23, 26-27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조금도 먹지 말 것이요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든지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화목제물을 드릴 때든 그저 고기를 먹기 위해 짐승을 잡을 때든, 기름과 피만큼은 절대로 사람이 취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백성이 그저 고기를 먹고자 짐승을 잡을 때에도 반드시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와서 잡아야 한다. 그래야 피가 하나님께 돌려지고, 백성은 피를 먹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 진영이나 집에서 사사로이 잡는다면 그 피를 함께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선짓국을 먹는 문화가 남아 있듯이, 옛사람들도 짐승을 잡으면 그 피를 국으로 끓여 먹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어지는 5절부터 7절은 들에서 제사를 드리던 옛 습관을 다룬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7:5-7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하며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그들이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는 제물을 드리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들에서 숫염소나 송아지 같은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던 습관에 젖어 있었다. 애굽에는 숫염소를 신격화하여 섬기는 신앙이 있었고, 무엇보다 송아지를 신 가운데 최고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사건 역시 바로 이 애굽에서부터 몸에 밴 우상숭배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의 신들을 섬기던 그 습관이 광야에 나와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회막 문 앞으로 제물을 가져오도록 규정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결국 음식으로 취하기 위해서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든, 짐승을 잡는 자리는 반드시 여호와의 성막 앞이어야 했다. 이는 피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경외함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피를 계속해서 흘리는 것을 지켜보면 사람의 마음은 점점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피를 보면 사람은 흥분하게 되어 있고, 그 흥분은 더 큰 폭력을 낳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를 다루는 자리와 절차를 엄격히 제한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피 속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10절부터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제시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7:10-12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누구든지 무슨 피든지 먹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자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어느 누구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의 핵심은 분명하다. 피에는 생명이 있고, 피를 흘리면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살생, 곧 생명을 해치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이어지는 13절과 14절은 스스로 죽었거나 다른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17:13-14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사냥하여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잡으면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어떤 육체의 피든지 너희는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것을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냥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그 피는 반드시 땅에 흘려 흙으로 덮어야 했다. 이는 피 안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생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를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단지 위생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계 여러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상대방을 죽인 뒤 그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풍습을 지녔던 부족들이 있었다. 이는 자신들이 용맹한 부족임을 과시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피를 먹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생명체를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피만 뽑아내고 생명은 살려 주는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살생과 살인의 죄를 전제하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피를 먹지 말라는 계명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기에,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것을 엄격히 금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원리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원리를 그리스도의 피와 직접 연결시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히브리서는 짐승의 피로는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같은 히브리서는 율법 전체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가 짐승의 피를 두고 그토록 세밀하게 규정한 모든 절차는, 결국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오시기까지 그 그림자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짐승의 피는 예행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지점에서 짐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를 짚어야 한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다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해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짐승의 피는 그 자체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피 흘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셨다. 이 사실은 오늘의 성도가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할 때, 그 속죄의 효력 자체는 이미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다만 성도가 매일의 삶 속에서 그 피의 은혜를 붙들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은, 속죄가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힘입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 사실을 친히 선언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구약에서부터 짐승의 피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명하신 것은, 결국 장차 흘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미리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참된 속죄와 정결과 거룩을 이루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에게 어떤 효능을 가져다주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효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는 속죄의 효능&lt;/strong&gt;이다. 속죄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파르에서 왔는데, 이는 본래 &amp;quot;덮다&amp;quot;라는 뜻이다. 아가서에는 이 단어와 어원이 닿아 있는 표현이 나온다(아 1:14). 또한 창세기에서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사용한 재료를 가리키는 말에도 같은 어원이 등장한다(창 6:14). 방주 안팎에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덮은 것처럼, 속죄란 죄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덮어 물이 새어 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에스겔서에는 이 단어가 그룹 천사를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창 6:1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겔 28:13-14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 사이에 왕래하였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quot;지키는 그룹&amp;quot;으로 번역된 표현은 원어의 뜻을 살리면 &amp;quot;덮는 그룹&amp;quot;이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에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데, 그 십계명이 드러나면 죄가 정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속죄소를 피로 덮어야 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14 아론은 그 피로 손가락에 찍어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속죄소를 피로 덮음으로써 십계명이 드러나 정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속죄, 곧 덮음의 원리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칭의의 효능&lt;/strong&gt;이다. 죄를 덮어 버리시니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이 칭의의 은혜를 다른 곳에서 이렇게도 표현한다(고후 5:21).&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스스로 다 씻어 낸 다음에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죄가 덮이고, 그 위에 생명이 심겨져 거듭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보호의 효능&lt;/strong&gt;이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에서 보호를 받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죄에서 깨끗하게(정결케) 하는 효능&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정결의 효능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이 아니라 양심 깊은 곳까지 미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짐승의 피가 몸을 씻어 겉을 정결하게 했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씻어 속사람을 정결하게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는 악한 영을 쫓아내는 축사의 효능&lt;/strong&gt;이다. 성경은 사람을 괴롭히는 영을 가리켜 더러운 영이라 부르는데, 예수의 피는 이 더러운 영을 물리치는 데 능력이 있다. 다만 이 효능은 회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실한 회개 없이 예수의 이름만 외운다고 해서 악한 영이 순순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에게 예수의 피가 임하면 악한 영과 그 사람 사이의 결속이 끊어지고, 그 영을 몰아내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러한 권세로 더러운 영을 명하여 나가게 하신 사건을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는 치유와 생명력의 효능&lt;/strong&gt;이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상한 마음과 상한 몸이 회복되는 은혜가 함께 임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치유의 근거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마련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의 상함과 아픔까지도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자는 영적인 회복만이 아니라 육신의 회복까지도 구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가운데 하나로 이렇게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16: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는 예수의 생명이 성도 안에 거하실 때, 육신에 가해지는 위협조차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생명력이 부어짐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일곱째는 사탄을 이기는 능력&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20:11-12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와 칭의와 보호와 정결과 축사와 치유와 승리라는 일곱 가지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짐승의 피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도록 명하신 것은, 바로 이 놀라운 효능을 지닌 그리스도의 피를 미리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예수의 피를 오늘의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실제로 활용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육신은 가지고 가셨지만 물과 피를 남기고 가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피를 일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피를 힘입어 나아가라고 권면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0:19, 22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도 물과 피가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음은 피 뿌림으로 깨끗하게 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언약의 피를 부활의 소망과도 연결시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그 피는 곧 영원한 언약의 피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피를 붙들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는 차원을 넘어 부활의 소망까지 붙드는 것이다. 다만 그 전제는 언제나 회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자백하지 않은 채로 예수의 이름과 피를 형식적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는 실제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그 피가 실제적인 능력으로 역사한다.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이 피를 &amp;quot;뿌리고 바르고 덮습니다&amp;quot;라는 표현으로 선포하며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처럼 악한 영의 활동이 짙은 장소에 들어갈 때 이렇게 선포하며 들어가면, 그 효력이 두세 시간가량 지속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 자리를 옮기거나 다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면, 또다시 예수의 피를 뿌리고 바르고 덮는다고 선포해야 한다. 한 번 선포했다고 해서 평생 유효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시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정이나 자녀의 방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질 때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자녀가 방문을 닫아 놓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색을 보이거나, 세상을 떠난 가족이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위험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속히 교회에 알리고 그 자리에 예수의 피를 선포하며 처리해야 한다. 또한 공동묘지였던 땅 위에 세워진 집이나, 이전 거주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우상숭배 행위를 많이 행했던 장소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장소를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꿈속에서 두려운 영적 존재를 마주하거나 영적으로 눌리는 일이 있을 때에도, 예수의 피를 부르며 그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만약 꿈속에서 예수의 피를 선포하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아직 믿음이 온전히 서지 못했거나 회개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신호이므로 속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이 증언하는 것처럼 어린 양의 피가 실제로 참소하는 자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리는 첫 계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피를 함부로 대하는 문화, 피를 보고 흥분하는 문화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반대로 예수의 피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 피가 지닌 속죄와 정결과 보호와 치유와 축사와 승리의 능력을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붙들어야 한다. 결국 레위기 17장이 짐승의 피를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그토록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오늘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를 미리 가르쳐 주는 그림자였던 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레위기 17장에 나타난 생명과 피의 원리를 통해 제사법과 정결법의 구분, 정결법과 성결법의 차이, 물과 피가 예표하는 그리스도, 피를 먹지 말라는 규례의 이유,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일곱 가지 효능을 살펴보았다. 레위기는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법과, 백성 스스로 깨끗함을 이루어 가는 정결법,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사는 성결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정결법의 핵심 도구인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남기고 가신 물과 피를 예표하며,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속죄와 정결을 이루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노아 시대부터 이어져 온 피에 관한 원리는 레위기에 이르러 회막 문 앞이라는 구체적인 자리와 절차로 세밀하게 규정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그림자가 실체로 완성되었다. 짐승의 피가 해마다 반복되어야 했던 것과 달리, 그리스도의 피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가 날마다 그 피를 붙드는 것은 속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짐승의 피조차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시고 반드시 회막 문 앞에서 처리하도록 엄격히 규정하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시려는 뜻과 더불어 장차 흘리실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성도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속죄와 칭의와 보호와 정결과 축사와 치유와 승리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날마다 붙들어야 한다. 또한 회개 없이 그 피를 형식적으로만 의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죄를 자백하는 삶을 통해 실제로 깨끗해지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고 가신 물과 피의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붙들며, 속죄와 정결과 거룩함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7월 01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레위기_17장과_그리스도의_보혈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49dacadd9b38f96f85d5cc32ca07ea3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c1e072095ddc0e454e7d776efed909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dc7d79c6621370e309da9b488d47d4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96d66da368f8d185d30fd5326b3801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1d3ff55db245a486e4c652862901736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b731659888015a4fa07a49803093d8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df3f1388b914a8398301924914bf71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96671397360654021fd63d0f72eb79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95fa2a8d400b13bbd93a7f0b074f53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17b69c84a24735513b3e7da31ae035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3)] Life_Blood_and_Christ (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61/18a145ccd6c5d64c95b8016c672cc9ad.webp&quot; /&gt;&lt;/p&gt; &lt;p&gt;&lt;iframe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id=&quot;opencvFrame&quot; name=&quot;opencvFrame&quot; src=&quot;chrome-extension://hmigninkgibhdckiaphhmbgcghochdjc/opencvHandler.html&quot; style=&quot;width: 1px; height: 1px; pointer-events: none; opacity: 0;&quot;&gt;&lt;/iframe&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_2026-06-2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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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24T23:46:34+09:00</published>
		<updated>2026-06-25T09:31:2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6-24(수) 수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SLgNN3F9TY 1. 들어가며 레위기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을 이해하면 신앙 생활의 실제적인 비밀이 열린다. 이 책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영적 배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결례들이 단순히 위생 규...</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6-24(수) 수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vSLgNN3F9T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SLgNN3F9T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 { margin: 0; padding: 0; box-sizing: border-box; } 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을 이해하면 신앙 생활의 실제적인 비밀이 열린다. 이 책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영적 배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결례들이 단순히 위생 규정이 아니라 귀신들의 역사와 관련된 영적 실재를 다루는 것임을 알면, 레위기 전체가 살아 있는 영적 교과서로 다가온다. 왜 죄를 지으면 기도가 막히는지, 왜 예배가 무거워지는지, 왜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지, 이 모든 질문에 레위기가 답해 준다. 피 냄새 나는 제사 이야기, 부정한 음식의 목록, 피부병 환자의 진단법, 유출병의 규례 등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레위기를 바르게 읽으면 신약 성경의 절반이 새롭게 열린다. 레위기의 제사와 정결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레위기의 모든 규정들은 그림자이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를 읽을 때마다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 눈으로 읽을 때 레위기는 구약에서 가장 풍성하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책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0:1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이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법이다. 정결법은 다시 두 층위로 구분된다. 11장부터 16장까지는 정결례이고, 17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다. 정결하게 된 이후에 거룩해지는 것이 성결이다. 순서가 있다. 먼저 더러운 것을 씻어 내야 하고, 그런 다음 거룩해질 수 있다. 이 시간에 다루는 레위기 16장은 정결례의 마지막 장이다. 정결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속죄일 제사가 이 장에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정결례들을 일생 동안 지킨 것은 단순히 율법적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서기 위한 영적 훈련이었다. 접촉과 음식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알고 조심하며, 더러워지면 즉시 정결례를 행하는 이 습관이 이스라엘을 열방 가운데 거룩한 백성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회개를 통한 정결로 이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동안 정결례에서 다룬 내용은 다섯 가지였다. 첫째는 11장의 음식 정결례, 둘째는 12장의 해산 후 여인의 정결례, 셋째는 13장과 14장의 나병 환자의 진단과 정결례, 넷째는 15장의 유출병 정결례, 그리고 다섯째가 이 장의 대속죄일 정결례이다. 이 다섯 가지 정결례가 이스라엘 백성이 일생 동안 지켜야 했던 거룩한 삶의 기준이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부정한 것을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거절한 것도 이 정결법이 얼마나 깊이 그들의 삶에 각인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단순한 음식 규정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형성된 거룩함을 향한 삶의 방식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든지 내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레위기 16장은 오랫동안 제사법으로 분류되어 왔다. 대속죄일에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을 제사법으로 읽으면 그 안에 담긴 핵심 진리를 놓치게 된다. 레위기 16장은 정결법이다. 그것을 정결법으로 읽을 때, 사람과 장소와 성물이 어떻게 깨끗해지는지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열린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왜 정결법인지, 속죄와 정결의 차이는 무엇인지, 죄가 우리에게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는 무엇인지, 아사셀 염소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레위기 16장은 왜 제사법이 아니라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날인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속죄를 위해 수송아지와 두 마리의 염소를 잡는다. 대제사장이 피를 지성소에 뿌린다. 이 내용만 보면 이것은 제사법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장을 제사법의 맥락에서 해석해 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레위기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장이 정결법에 속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는 모두 정결을 다루는 단락이다. 11장은 어떤 음식이 부정한지를, 12장은 해산 후 여인의 부정을, 13장과 14장은 나병의 부정을, 15장은 유출병의 부정을 다룬다. 16장은 이 정결 단락의 결론이다. 즉 대속죄일 제사는 제사법이 아니라 정결법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제사법과 정결법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제사법은 죄를 다루는 법이고, 정결법은 더러움을 다루는 법이다. 제사법에서 핵심은 피이다. 피로 죄를 덮는다. 카파르(כָּפַר)는 히브리어로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속죄는 피로 죄를 덮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흰 눈이 쌓여 땅의 더러움을 가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어 죄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법에서 핵심은 물이다. 물로 씻는다. 부정한 것을 만지면 몸을 씻어야 하고, 옷을 빨아야 한다. 접촉으로 더러워진 것을 물로 씻어 냄으로써 깨끗하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신약에서 확인해 보면,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말씀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신다고 한다. 말씀이 물이다. 그리고 세례는 물로 씻는 정결례의 신약적 형태이다. 세례가 단순히 입교 의식이 아니라 정결례임을 레위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이 구약의 제사와 물 씻음에 해당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lt;/p&gt; &lt;p&gt;&amp;nbsp; 제사법 본문에는 물로 씻는다는 표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결법 본문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옷을 빨라는 규정이 등장한다. 이것이 제사법과 정결법을 구별하는 결정적 표시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으면 이 장의 핵심 질문이 달라진다. 제사법으로 읽으면 어떤 제물을 어떻게 드리는가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정결법으로 읽으면 무엇이 더러워졌으며, 어떻게 깨끗해지는가가 중심이 된다. 대속죄일 제사에서는 단순히 사람의 죄가 속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장소와 성물이 모두 깨끗해진다. 이것이 이 장을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제대로 깨달은 것은 근래의 일이다. 오랫동안 레위기 16장을 제사법으로 분류하고 가르쳐 왔다. 10년 이상이나 제사법의 맥락에서 이 장을 해석했다는 고백이 있다. 그러나 레위기의 전체 구조 안에서 이 장의 위치를 다시 살피면서, 이것이 정결법의 결론임이 분명해졌다. 잘못된 분류로 읽으면 잘못된 해석이 나온다. 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을 때 비로소 이 장이 선포하는 놀라운 진리들이 제자리를 찾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16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서도 그리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속죄(제사)와 정결(씻음)은 어떻게 다르며, 왜 둘 다 필요한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속죄와 정결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이다. 속죄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정결은 더러움의 문제를 다룬다. 이 둘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속죄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속죄 제사와 정결례가 함께 요구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지으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는 죄책(罪責)이 생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이것은 피로 덮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죄를 덮어 죄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로마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시편 32편을 인용하여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진 자는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가리어졌다는 것이 바로 카파르, 덮어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lt;/p&gt; &lt;p&gt;&amp;nbsp; 둘째는 더러움이 생긴다. 죄를 지을 때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선언한다. 죄는 더러운 영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이 더러움은 물로 씻어야 한다. 즉 정결례를 통해 그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더러움이 생기는 경로는 두 가지이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지어서 더러워지는 경우와, 더러운 것과 접촉하여 더러워지는 경우는 다르다. 죄를 지어서 더러워지면 속죄 제사가 필요하다. 접촉하여 더러워지면 정결례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는 함께 일어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는 접촉을 통한 더러움&lt;/strong&gt;이다. 부정한 사체를 만지거나, 유출병 환자와 접촉하거나, 나병 환자와 가까이 있으면 더러워진다. 이것은 귀신들의 접촉이 더러움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 강하게 들어 있으면,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레위기가 접촉에 의한 부정을 가르치는 영적 이유이다. 둘째는 먹음을 통한 더러움이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음식을 먹으면 더러워진다. 이것도 단순한 위생 규정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담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일서 1장 7절은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피가 단지 덮는 것만이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한다. 자백이 깨끗해지는 조건이다. 자백하지 않으면 하늘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지 않는다. 자백할 때에 그 기록이 지워지고, 동시에 들어와 있던 더러운 영들도 나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속죄와 정결은 둘 다 필요하다. 속죄는 죄의 책임을 해결하고, 정결은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실 때 물과 피를 남기신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위해서이다. 물은 정결을 위하여, 피는 속죄를 위하여 남기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함께 나왔다고 기록한다. 단순한 의학적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신학적 선언이다. 피로 속죄하고 물로 정결하게 하는, 구원의 두 차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5장 6절에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선언하는 이유이다. 물만으로도 아니고 피만으로도 아니다. 물과 피, 둘 다 필요하다. 속죄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속죄와 정결이 함께 이루어져야 완전한 구원이 된다는 것이 레위기의 핵심 선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lt;/p&gt; &lt;p&gt;&amp;nbsp; 속죄로 용서를 받고 정결례를 통해 깨끗함을 받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전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속죄만 알고 정결을 모른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으면 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위기는 속죄 이후에 정결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더럽혀진 것을 씻어야 한다. 그것이 정결례의 목적이고, 오늘날 회개 기도의 목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죄를 지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죄를 지으면 우리 내면에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이것을 알면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이 남는다&lt;/strong&gt;.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행위책을 갖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큰 자와 작은 자들이 보좌 앞에 서고, 책들이 펼쳐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책들 중에 하나가 생명책이고, 다른 것들이 행위책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가 그날 저녁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행위책에 기록된다. 그것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기록된다. 우리가 천국에서 부활의 몸을 입고 낙원에 들어갔을 때, 모세가 그 행위책을 펼쳐 보여 줄 것이다. 동영상으로 기록된 자신의 삶이 펼쳐지는 그 자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죄의 기록이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이 땅에서 부지런히 자백하고 기록을 지운다. 그날 자신의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펼쳐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그날 안에 자백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회개함으로 그 기록을 지워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조언이 아니다. 죄를 해가 지기 전에 해결하라는 영적 규례이다. 해가 지면 그 죄가 행위책에 기록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이 여기서 적용된다. 자백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그 깨끗하게 하심이 행위책의 기록을 지우는 것이다. 동영상 필름이 하얗게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는 사람은 죄를 짓는 즉시 자백하고 정결례를 행한다. 모르는 사람은 죄가 쌓이고 더러운 영들이 누적되어 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같은 교회에 다니고 같은 성경을 읽어도, 속죄만 아는 사람과 속죄와 정결 둘 다 실천하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갈수록 현격한 차이가 생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내면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속죄를 받았지만 정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덮여 있지만 지워지지는 않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lt;/strong&gt; 죄를 지을 때 죄의 성질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더러운 영이 들어온다. 분노의 죄를 지으면 분노의 영이, 시기 질투의 죄를 지으면 시기 질투의 영이, 음란의 죄를 지으면 음란의 영이 들어온다. 창세기 3장 14절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들어왔고,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분노할 때 혈기의 영이 들어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들어온 더러운 영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더러운 영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속죄 제사를 드려도 그 영들이 자동으로 나가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러운 영들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먼저 그 영들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분노의 영이 들어오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한다. 두려움의 영이 들어오면 늘 불안하고 두렵다. 상처의 영이 들어오면 모든 상황을 상처받은 눈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레위기 정결법이 가르치는 더러움의 실체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뿐만 아니라 더러운 영들이 많을수록 기억력도 방해를 받는다&lt;/strong&gt;. 우리 뇌의 깊은 곳에 있는 기억 중추와 감정 중추를 영들이 틀어쥐고 있으면, 말씀을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지난 주일 설교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일 수 있다. 더러운 영들이 기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결례가 단순히 종교 의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적 해방의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속죄는 죄의 책임을 해결하지만,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결례의 필요성이다. 구원받은 것과 정결한 것은 다르다. 구원은 죄의 결과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정결은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해 자백할 때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lt;/strong&gt;하늘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고, 들어와 있던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 이것이 요한일서 1장 9절의 정확한 의미이다.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죄책을 사하는 것뿐 아니라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도 내보내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 때 회개 기도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강력한 정결의 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회개 기도는 이단의 방법이 아니다. 레위기의 정결례가 신약에서 실현되는 방식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대로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이것이 정결의 성경적 근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4장에는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레위기 16장에는 대속죄일에 드리는 속죄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제사는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첫째, 시기가 다르다&lt;/strong&gt;. 회중 속죄 제사는 죄를 지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 드린다. 언제든지 드릴 수 있다. 1년에 한 번도 드릴 수 있고, 서른 번도 드릴 수 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일 년에 한 번, 일곱째 달 십 일에 반드시 드려야 하는 연례 행사이다. 날짜가 정해져 있고 빠질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드리는 날의 성격이 다르다&lt;/strong&gt;. 대속죄일은 절기 안식일이다. 안식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주간의 안식일이 있고, 절기 안식일이 있다. 절기 안식일은 일곱 가지 절기에 해당하는 날로, 주간의 안식일과는 별도로 지켜진다. 대속죄일은 이 절기 안식일 중 하나이다. 이 날은 금식하고, 모든 일을 멈추고, 전 백성이 제사에 나와야 한다. 특별히 중요한 날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날을 욤 키푸르(Yom Kippur)라고 부르며 한 해 가운데 가장 거룩한 날로 지킨다.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날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날의 영적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재물이 다르다&lt;/strong&gt;. 회중 속죄 제사에서는 수송아지를 드린다(레 4:13-14).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에서는 두 마리의 순한 수염소를 드린다.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드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4:13-14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드리는 제사장의 급이 다르다&lt;/strong&gt;. 회중 속죄 제사는 일반 제사장이 드린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반드시 대제사장이 드려야 한다. 더 중요한 제사는 더 높은 사람이 드리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는 회중 속죄 제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피를 뿌리는 장소가 다르다&lt;/strong&gt;. 회중 속죄 제사에서 제사장은 피를 들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내소 휘장에 일곱 번 뿌린다(레 4:16-17). 성소까지만 들어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향을 피워야 한다. 레위기 16장 12절부터 13절에서 대제사장은 향을 가득 담은 향로와 숯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그 향으로 법궤 위의 속죄소를 가린다. 왜 향을 먼저 피우는가? 대제사장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직접 서면 죽을 수 있다. 향의 연기가 그 영광을 가려 대제사장이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도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준다. 인간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보호가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 그런 보호가 필요 없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12-13 또 향로를 여호와 앞 제단의 불로 채우고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히 가져다가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향을 불에 사르되 그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릴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lt;/p&gt; &lt;p&gt;그러나 대속죄일 제사에서 대제사장은 피를 들고 휘장 안 지성소까지 들어간다. 지성소는 법궤가 있는 가장 거룩한 공간이다. 그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차이들을 종합하면, &lt;strong&gt;대속죄일 제사는 회중 속죄 제사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정결을 이루는 제사임을 알 수 있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제사, 온 이스라엘이 금식하는 날에 드리는 제사, 이 모든 특성이 대속죄일 제사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대제사장만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를 위한 대속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 히브리서 7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선언한다. 레위 계열의 대제사장들은 죽으면 후임자가 세워져야 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영원히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회중 속죄 제사가 사람의 죄를 다루는 제사라면,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과 장소와 성물을 모두 깨끗하게 하는 제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차이를 정리하면, 회중 속죄 제사는 특정한 죄를 깨달았을 때 드리는 처방적 제사이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알든 모르든 지은 모든 죄를 포괄적으로 정결케 하는 예방적 제사이다. 레위기 16장 30절에서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고 선언한다. 모든 죄,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다루는 것이 대속죄일 제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대속죄일 제사가 사람뿐 아니라 장소와 분향단까지 정결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와 성물도 정결케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반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를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차이이다. 일반 회중 속죄 제사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을 넘어 장소까지 정결케 해야 한다. 레위기 16장 33절은 이것을 명확히 선언한다. 지성소를 속죄하고,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제사장들과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다고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33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lt;/p&gt; &lt;p&gt;&amp;nbsp; 레위기 16장 16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범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도 속죄한다고 말한다. 지성소와 회막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성소는 법궤가 있는 가장 거룩한 공간이다. 일 년 중 오직 대속죄일 하루만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신성한 공간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거기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들어오면 그 공간도 영향을 받는다. 제사장들이 날마다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며 일했지만, 그들 자신이 완전히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도 점차 더러워졌다. 이것을 연간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와 성소에 피를 뿌림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 깊은 이유가 있다. 에스겔서 28장 16절부터 18절은 타락한 그룹 천사 즉 사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존재는 원래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을 드리던 기름부음 받은 그룹 천사였다. 에스겔서 28장 14절은 그를 덮는 그룹이라고 부른다. 덮는이란 보호하고 가린다는 뜻이다. 그는 법궤 위의 속죄소 위에 날개를 펴고 있는 그룹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존재가 교만해져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다. 이사야 14장 13절에서 그는 내가 하나님 보좌 위에 내 보좌를 높이리라고 말한다. 그가 교만해져서 하나님 보좌를 찬탈하려 했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쪽 끝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겔 28:18 네가 네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본문은 사탄이 천상의 성소를 더럽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속죄일 제사에서 지성소를 정결케 하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하늘 지성소를 자신의 피로 정결케 하기 위해 오셨다. 히브리서 9장 23절은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분향단도 더러워진다. 출애굽기 30장 10절은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분향단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규정한다. 분향단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기관이었다. 그것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더러운 기도가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분향단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서 분향단의 향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30:10 아론은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도들의 기도도 더러워질 수 있다. 기도의 내용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일 때, 그 기도가 분향단을 더럽힌다. 성도들의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이 잘못된 기도를 드릴 때, 그 영향이 함께 기도하는 모든 성도에게 미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직 자기의 물질적 풍요와 건강만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없는 기도는 분향단을 더럽히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면서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라고 하셨다(마 6:10).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가 분향단을 향기롭게 한다. 그런 기도가 요한계시록 8장 4절처럼 향연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lt;/p&gt; &lt;p&gt;&amp;nbsp; 그래서 대속죄일에 분향단도 정결케 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예배에서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기도도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상징하며, 정결의 완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아사셀 염소이다. 두 마리의 염소 중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보내진다. 아사셀 염소는 죽여서 피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광야로 내보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6:21-22 아론은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 의하여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제사장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아뢴다.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얹은 다음,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정결의 완성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속죄 제사는 죄를 덮어 용서한다. 그러나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은 아직 우리 안에 있다. 이것들을 내보내야 진정한 정결이 이루어진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이 우리에게서 떠나 광야 곧 음부로 보내지는 것을 상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사셀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광야에 있는 사탄 혹은 마귀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 나가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이와 연결된다. 죄와 더러운 영들을 아사셀 광야의 마귀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네 것을 가져가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선언하며 내보내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아사셀 염소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회개 기도이다. 회개를 통해 자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하고 동시에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에 안수하며 죄를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회개 기도를 통해 자백할 때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넘겨진다. 이것은 신비가 아니라 영적 실재이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 저편으로 사라질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회개를 통해 내보내진 더러운 영들은 다시 돌아올 권리를 잃는다. 시편 103편 12절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선언한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 멀리 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기억에서 멀리 제거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lt;/p&gt; &lt;p&gt;&amp;nbsp; 그분이 그 죄를 대신 지시고 광야로, 음부로 가지고 가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회개 기도는 단순한 감정적 참회가 아니라, 영적 정결의 구체적 행위이다. 대속죄일 제사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아사셀 염소에 올려놓는 안수가 영적 실재를 일으킨 것처럼, 우리의 회개 기도도 실제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영적 실재이다. 내 속에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도구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모르면 평생 예수 믿으면서도 속에 더러운 영들이 가득한 채로 살게 된다. 속죄를 받았어도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덮어 놓은 것이지 씻어 낸 것이 아니다. 대속죄일 제사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다. 반드시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아사셀 광야로 보내야 한다. 회개 기도가 그 통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속에 들어온 죄의 영들을 내보내는 것, 이것이 신약 시대의 아사셀 의식이다. 이것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에서 죄를 광야로 보내는 아사셀 염소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담당하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 안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넘겼다. 이튿날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언한 것이 바로 이 사실을 가리킨다. 안수를 받아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버림받으러 가는 아사셀 염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lt;/p&gt; &lt;p&gt;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수많은 사람을 고치고 먹이고 섬기셨지만, 십자가를 앞에 두고는 모두에게 버림받으셨다. 정치 지도자들도, 종교 지도자들도, 백성들도, 심지어 제자들도 모두 그분을 버렸다. 이것이 아사셀 양의 성취이다.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어린 양,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53: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지성소에서 무엇을 하셨으며, 우리는 어떻게 정결해지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지상의 성막과 성전은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의 모형이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이 산에서 보여 주신 본을 따라 지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즉 지상 성전은 천상 성전의 그림자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상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며 정결을 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성전에 들어가서 자신의 피로 그곳을 정결케 하셨다. 히브리서 9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선언한다. 지상 성전은 그림자이고, 하늘 성전이 실체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왜 하늘 지성소도 정결케 해야 했는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탄 곧 타락한 그룹 천사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이다(겔 28:18). 구약 시대에는 사탄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욥을 참소하기도 했고(욥 1:6-7), 스가랴 3장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천상 성소가 아직 완전히 정결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자신의 보혈을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피를 하늘 법궤 위에 뿌리심으로 천상 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이것으로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우리를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가진 의미이다. 승천은 단순히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 지성소에서 대속죄일 제사를 집행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이었다. 지상의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오직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선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욥 1:6-7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왔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가 행위책에서 지워지고 더러운 영들이 나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셔서 지성소를 정결케 하신 이후,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일반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제사장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마 27:51). 이것은 지성소가 열렸다는 신호이다. 이제 모든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며 히브리서 10장 19절부터 22절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선언한다. 구약에서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오직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이제 우리가 언제든지 담대히 들어갈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본문에서도 뿌림과 씻음, 즉 속죄와 정결이 함께 언급된다. 마음에 뿌림을 받는 것은 피로 속죄받는 것이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정결례이다. 이 둘이 함께 이루어질 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탄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참소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늘 지성소를 이미 정결케 하셨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서 그리스도의 승리 이후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났다는 선언이 나온다. 형제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가 쫓겨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정결해지는 길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속죄를 이루었고, 그 피가 하늘 지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땅에서 매인 것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푼 것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마태복음 16장 19절의 약속이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회개를 통해 죄를 자백할 때, 그 용서가 하늘에서도 유효하다. 지상의 정결과 천상의 정결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회개를 통해 자백함으로 우리 죄를 고백하고,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아사셀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이 정결이 계속되어야 우리가 흠 없는 신부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을 정결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와, 속죄와 정결의 차이, 죄가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 회중 속죄 제사와 대속죄일 제사의 차이, 장소와 분향단이 더러워지는 이유, 아사셀 염소의 상징,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지성소 정결 사역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은 단순한 제사 규정이 아니라 정결의 놀라운 비밀을 담고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죄를 지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늘 행위책에 기록이 남고, 더러운 영들이 들어온다. 속죄 제사는 그 기록을 덮는다. 그러나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려면 정결례가 필요하다. 자백을 통한 회개가 그 정결례이다. 자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성취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와 분향단도 정결케 한다. 죄인이 드나들었던 성소도 더러워지고, 더러운 기도가 올라간 분향단도 더러워진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예배와 기도에 중요한 도전을 준다. 예배 장소도, 기도하는 사람도 정결해야 한다. 특히 성도 앞에서 대표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가 성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야 한다. 대표 기도는 단순히 기도 제목을 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향단에 향을 올리는 제사장의 역할이다. 그 향이 향기로울 때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함께 향기롭게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아사셀 염소는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으시며 이 아사셀의 역할을 담당하셨다. 그분이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때 그 죄들이 실제로 우리에게서 떠난다. 더러운 영들이 음부로 보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후 하늘에 오르셔서 자신의 피로 하늘 지성소를 정결케 하셨다. 사탄이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와 우리를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완성이다. 지상의 제사는 그림자이고, 하늘 지성소의 정결이 실체이다. 모세 시대부터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반복되었던 대속죄일 제사들은 모두 이 한 분의 단번의 사역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그 예표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위에 우리의 구원이 서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이 가르치는 이 진리를 붙잡고, 날마다 회개를 통해 자백하며 정결하게 살아가고,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죄를 깨끗이 지우며, 속죄와 정결이 함께 이루어지는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며, 하늘에 올라가실 때에 흠 없는 신부로 주님 앞에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6월 24일(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16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대속죄일 제사법&lt;/strong&gt;에 담긴&amp;nbsp;&lt;strong&gt;정결의 영적 비밀&lt;/strong&gt;을 강해한 것인데, 단순한 죄의 용서를 넘어선&amp;nbsp;&lt;strong&gt;근원적인 깨끗함&lt;/strong&gt;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일반 속죄제와 달리, 대속죄일 제사는&amp;nbsp;&lt;strong&gt;사람과 장소, 성물 전체를 정결케 하는 절차&lt;/strong&gt;로서 우리 내면의&amp;nbsp;&lt;strong&gt;더러운 영을 몰아내는 과정&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죄는 예수의 피로 덮음으로써 용서받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amp;nbsp;&lt;strong&gt;악한 영과 귀신들은 회개와 자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야&lt;/strong&gt;&amp;nbsp;비로소 온전한 정결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회개 기도&lt;/strong&gt;를 통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고 내면의 악한 영들을&amp;nbsp;&lt;strong&gt;아사셀 염소처럼 광야로 떠나보냄&lt;/strong&gt;으로써, 하나님 보좌 앞에 설 수 있는&amp;nbsp;&lt;strong&gt;거룩하고 정결한 상태&lt;/strong&gt;를 유지할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대속죄일의_비밀_속죄와_정결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af94c3dfdfdee0e43214e0bfc989495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3aa2808780f303298965df98d7acd3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c926dd7f86f32446ede24ec534b326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8109e7505d93de3010f1924cedd67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3cfdb270041aa0782862b4634cbe7a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8024ee7660aa09aa2f13643608ef0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de4494d7912fd94ab96b5d3ab1d61d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7906e071fc49ac59fe1d06ac8acc7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1d2c51e885a24512bc1b1969a5f5bf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19bc09aac75820c3502efd44a44419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51ae86f66428f60acc0b4eab4b0e5c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d3877136f7e884dbceaec32849e8e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084398765af50ef302e48f9270e557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69ac163ff408f34e9075ad97a67ee0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The_Purity_Blueprint_(2).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9738fdcc518aefaf4425756ca397aff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2026-06-24(수) 수요기도회(정제된 요약 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NanumGothic&#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72; color: #222; } p { margin: 0 0 1em 0; padding: 0; } h2 { margin: 2.4em 0 0.9em 0; padding: 0; font-size: 17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 .bibl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margin: 0 0 1em 0; padding: 0; } .date { margin: 1em 0 0 0; padding: 0; } &lt;/style&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은 흔히 &amp;ldquo;대속죄일 제사법&amp;rdquo;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단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법으로만 읽으면, 레위기 16장이 들려주는 깊은 정결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레위기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의 큰 틀을 다루고, 11장부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깨끗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음식의 정결, 해산 후 여인의 정결, 나병 환자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 뒤에, 16장에서 드디어 대속죄일의 정결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반복이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범하면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더러워졌을 때에는 씻어야 했다. 죄는 피로 덮어야 하고, 더러움은 씻어야 하며, 몸 안으로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이해될 때,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죄를 덮는 일과 죄의 기록을 지우는 일, 그리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똑같지는 않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약에 와서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대속죄일 제사는 단지 구약의 옛 의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속죄와 정결, 그리고 성도가 오늘 회개를 통해 실제로 경험해야 할 영적 정결을 미리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어떻게 속죄와 정결을 함께 보여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오늘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왜 레위기 16장은 정결법의 절정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은 레위기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제사장의 위임식을 다룬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피와 제사를 통해 열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레위기 11장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백성은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의 정결, 출산 후 정결, 나병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흐름의 마지막에 레위기 16장이 있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을 레위기 4장의 속죄제와 같은 차원에서만 읽으면 본문의 배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레위기 16장은 제사를 통하여 정결을 완성하는 장이다. 특히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만이 아니라 성소와 회막과 제단까지 정결하게 하는 날을 다룬다. 즉 대속죄일은 죄를 사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은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 이후에 주어진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사람이 함부로 지성소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대제사장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정하신 옷, 정하신 제물, 정하신 피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레 16:2).&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dquo;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amp;rdquo;는 말씀은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바로 그 거룩한 장소도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의 놀라운 비밀이다. 죄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과 기도의 자리까지 더럽힌다. 그래서 대속죄일은 사람의 죄만 처리하지 않고 성소의 부정까지 처리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의 정결법은 개인과 생활의 정결을 다룬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출산 후 어떻게 정결하게 될 것인가, 피부병과 집의 곰팡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리할 것인가, 몸에서 유출이 있을 때 어떻게 정결하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은 이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정결법의 마지막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이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은 30절에서 가장 분명해진다. 그날 하나님은 &amp;ldquo;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amp;rdquo;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속죄와 정결이 함께 들어 있다. 속죄가 목적의 전부라면 &amp;ldquo;속죄하리니&amp;rdquo;에서 멈추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amp;ldquo;정결하게 하리니&amp;rdquo;라고 덧붙이신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를 덮는 날인 동시에 더러움을 제거하는 날이다(레 16:30).&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정결법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 보인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이 먹는 문제를 다루신다. 그다음 출생의 문제를 다루시고, 피부와 집에 나타나는 부정함을 다루시며,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출의 문제를 다루신다. 마지막에는 그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대속죄일로 인도하신다. 먹는 것, 태어나는 것, 피부와 집, 몸의 유출, 그리고 성소의 정결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삶 전체가 더러움과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삶 전체가 정결해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정리하면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은 정결법의 절정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통해 죄를 덮어야 하고, 물과 피를 통해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까지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이 가진 신학적 위치다.&lt;/p&gt; &lt;h2&gt;3.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속죄와 정결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속죄는 죄를 처리하는 말이다. 정결은 더러움을 처리하는 말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책이 생기고, 그 죄는 하나님 앞에서 피로 덮여야 한다. 그러나 죄를 통해 사람 안에 더러운 영이 들어오면, 그 사람은 더러워진다. 이때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속죄는 죄책의 문제를 다루고, 정결은 더러움과 오염의 문제를 다룬다.&lt;/p&gt; &lt;p&gt;&amp;nbsp;&amp;nbsp;구약에서 속죄와 관련된 중요한 단어는 히브리어 &amp;ldquo;카파르&amp;rdquo;다. 이 단어는 덮다, 가리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제사에서 피는 죄를 덮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피를 보시고 그 죄를 넘어가신다. 그러나 덮였다고 해서 더러운 영의 문제가 자동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결법에는 반복적으로 씻음이 나온다. 옷을 빨고, 몸을 씻고, 물로 정결하게 하는 절차가 나온다. 이것은 더러움의 문제는 실제로 씻겨야 함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신약은 이 두 차원을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요일 1:7).&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의 피는 단지 죄를 덮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피는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동으로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화된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9).&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dquo;자백&amp;rdquo;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amp;ldquo;호몰로게오&amp;rdquo;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같은 말을 한다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죄라고 말하는 것이 자백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우상숭배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음란이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음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자백이다. 이 자백이 있을 때 죄 사함과 정결이 함께 일어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영적 팩트에 따르면, 사람이 죄를 범하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첫째, 그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기록된다. 둘째, 그 죄를 통로로 뱀들과 귀신들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죄는 기록의 문제를 만들고, 동시에 더러운 영의 거처 문제를 만든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늘에서는 행위책의 죄를 지우는 사건이고, 땅에서는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사건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에서 더러움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결법은 위생적 유익도 가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뜻은 영적 접촉의 문제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고, 부정한 것을 먹으면 몸 안으로 부정함이 들어온다. 복음서에서 귀신은 &amp;ldquo;더러운 영&amp;rdquo;으로 불린다. 헬라어로는 &amp;ldquo;프뉴마 아카타르톤&amp;rdquo;, 곧 깨끗하지 않은 영이라는 뜻이다. 더러운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거주하면, 그 사람의 몸은 성령이 온전히 거하시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지 못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정결은 단순히 죄책감이 사라지는 심리적 위로가 아니다. 정결은 실제적인 영적 사건이다. 더러운 영이 떠나가고,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지며, 성령이 더 깊이 역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정결법을 오늘 성도가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예수 믿는 사람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수 있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결은 구원 이후의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런 점에서 속죄와 정결은 함께 가야 한다. 예수 믿는다는 말로 죄가 덮였다고만 생각하고, 실제로 자백하지 않으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성령의 거처로서 몸이 온전히 깨끗하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의 은혜를 붙들되, 반드시 정결의 실제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h2&gt;4. 일반 속죄제와 대속죄일 제사는 무엇이 다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4장에는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가 나온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 나중에 그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드리는 제사다. 이때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회중의 장로들이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한다(레 4:13~15).&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4:13-15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다르다. 대속죄일 제사는 죄를 깨달았을 때마다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해마다 일곱째 달 열째 날에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연례 제사다. 그날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했고, 백성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단순한 임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의 죄와 부정을 정리하는 정해진 날이었음을 보여 준다(레 16:29~31).&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6:29-31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lt;/p&gt; &lt;p&gt;&amp;nbsp;&amp;nbsp;두 제사는 집례자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는 제사장이 집례한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대제사장이 집례한다. 대제사장도 죄인이므로 먼저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백성을 위한 속죄를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장차 죄 없으신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함을 예표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피가 들어가는 장소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에서는 피를 회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른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피를 뿌린다. 이것은 대속죄일 제사가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제사임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 하나의 차이는 백성의 참여 방식이다. 레위기 4장의 회중 속죄제에서는 회중의 장로들이 대표로 안수한다. 그러나 대속죄일에는 온 백성이 그날을 안식일처럼 지키며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지도자 몇 사람의 예식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자기 죄와 부정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날이었음을 뜻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결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예배 인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정결의 범위도 다르다. 일반 속죄제는 죄를 범한 사람이나 회중의 죄를 처리하는 데 초점이 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정결하게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대속죄일은 사람을 위한 제사이면서 동시에 성소를 위한 정결 사건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레위기 4장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정결의 예식이다.&lt;/p&gt; &lt;h2&gt;5.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에서 가장 독특한 장면은 두 마리의 염소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고, 그 피는 백성을 위한 속죄와 성소 정결에 사용된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염소는 살아 있는 채로 광야로 보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은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뢴 뒤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내라고 말한다(레 16:21~22).&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6:21-22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장면은 죄의 처리가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는 피를 통한 속죄다. 다른 하나는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속죄가 죄를 덮는 것이라면, 아사셀 염소는 죄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결의 중요한 원리가 드러난다. 죄는 단지 덮여야 할 뿐 아니라, 내게서 떠나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사셀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광야의 장소로 보는 견해도 있고, 광야의 악한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설교의 영적 해석에 따르면 아사셀은 광야와 관련된 사탄적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죄가 백성 가운데 남아 있지 않고 광야로 보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 성도의 회개와 축사 원리와 연결된다.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은 후,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은 몸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쫓겨나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아사셀 염소는 단순한 구약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죄와 더러움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는 자백되어야 하고, 피로 씻겨야 하며,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처럼 피 흘려 죽으셨고, 동시에 아사셀 염소처럼 백성의 죄를 지고 진영 밖으로 나가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았으며, 십자가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두 염소는 나뉘어 있지만, 그 예표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분은 피 흘려 속죄하신 분이시며, 우리 죄와 부정을 멀리 옮기신 분이시다.&lt;/p&gt; &lt;h2&gt;6. 왜 성소와 향단도 정결케 해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대속죄일 제사의 놀라운 점은 사람만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도 속죄한다는 데 있다. 레위기 16장 16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회막을 위하여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한다(레 16:16).&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6: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할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죄와 부정이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백성의 죄와 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까지 더럽힌다. 제사장이 매일 성소에 들어가 등잔을 관리하고, 향을 사르고, 진설병을 두는 일을 했지만, 제사장 자신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섬기는 장소도 정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특히 향단은 매우 중요하다. 출애굽기 30장 10절은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해야 한다고 말한다(출 30:10).&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출 30: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향단은 성도의 기도와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8장에서는 금 향로와 많은 향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계 8:3~4).&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계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향단이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도라고 해서 다 거룩한 것은 아니다. 기도도 자기 욕망과 세상 성공과 육체의 안일만 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더럽혀질 수 있다. 대표기도도 마찬가지다.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자리가 인간의 욕심과 체면과 세상적인 말로 채워지면 그 기도는 정결하지 못한 향이 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대속죄일은 사람과 장소와 기도의 자리까지 정결하게 한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하다. 성도 개인이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기도의 내용도 정결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통로가 깨끗해야 한다. 정결은 개인 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전체의 문제다.&lt;/p&gt; &lt;h2&gt;7. 하늘 성소는 왜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6장을 읽을 때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매일 드나들었으므로 더럽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간다. 그렇다면 지성소는 왜 정결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땅의 성막을 넘어 하늘 성소의 비밀로 우리를 이끈다.&lt;/p&gt; &lt;p&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이 땅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한다(히 8:5).&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땅의 성막이 모형이라면, 하늘에는 원형이 있다. 그런데 에스겔 28장은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하나님의 성산에 있었고, 그가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고 말한다(겔 28:14, 18).&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겔 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겔 28:18 네 죄악이 많고 네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본문은 두로 왕을 빗대어 사탄 마귀의 타락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 가까이에서 지음을 받은 존재였으나 교만과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도 정결이 필요했다. 땅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일을 예표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히 9:24).&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나은 제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히 9:23).&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피로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탄 마귀는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서 성도들을 참소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말한다(계 12:10).&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땅의 죄인만을 위한 피가 아니다. 그 피는 하늘 성소까지 정결케 한 피다. 이것이 대속죄일 제사의 신약적 성취다. 예수님은 참 대제사장이시고, 자기 피를 가진 제물이시며,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만이 온전한 정결을 이룬다.&lt;/p&gt; &lt;h2&gt;8. 오늘 성도는 어떻게 정결을 완성해야 하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는 대속죄일 제사를 그대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속죄일이 보여 준 영적 원리는 오늘도 그대로 유효하다. 죄는 속죄되어야 하고, 더러움은 정결케 되어야 하며,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어야 한다. 죄를 덮고 씻는 것은 사람의 결심이나 선행이 아니다. 오직 예수의 피다. 구약의 동물 피는 그림자였고, 예수의 피는 실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예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둘째, 성도는 죄를 자백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다. 진실한 자백은 행위책의 기록을 지우는 통로가 된다. 다윗이 &amp;ldquo;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amp;rdquo;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성도도 자기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지워지도록 회개해야 한다(시 51:1).&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lt;/p&gt; &lt;p&gt;&amp;nbsp;&amp;nbsp;셋째, 성도는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은 더러운 영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amp;ldquo;더러운 영&amp;rdquo;이라고 부르셨다(막 1:23).&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lt;/p&gt; &lt;p&gt;&amp;nbsp;&amp;nbsp;더러운 영은 깨끗한 성전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넷째, 성도는 자기 기도와 예배의 자리도 점검해야 한다. 향단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 기도가 자기 욕심과 세상 욕망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그 기도 역시 정결의 대상이 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회개와 정결, 천국과 상급, 신부의 준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정결의 목표는 단지 &amp;ldquo;귀신이 나갔다&amp;rdquo;는 체험 자체에 있지 않다. 그 목표는 하나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데 있다. 몸이 정결해지면 말씀이 더 잘 들리고, 기도가 더 맑아지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열린다. 정결은 성결로 가는 문이고, 성결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섯째, 성도는 정결에서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레위기의 흐름은 정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깨끗해진 다음에는 거룩해져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결은 정결 위에 세워진다. 더러운 것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거룩함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의 부속품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핵심 과정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죄를 자백할 수 있고, 행위책의 죄를 지울 수 있고,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행위책이 고정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정결해야 한다. 이것은 두려움만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는 은혜의 선포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단순한 속죄제사가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레위기 16장은 죄를 피로 덮는 일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성소와 향단까지 정결케 하는 날을 말한다. 또한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아사셀 염소를 통해, 죄가 피로 속죄될 뿐 아니라 백성에게서 멀리 보내져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예수의 피가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가 되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은 몸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정결을 단순한 의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정결은 하늘의 기록과 몸의 실제와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내용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죄를 자백해야 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하며,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 또한 기도도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도 정결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는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고, 사탄이 더럽힌 하늘 성소까지 정결하게 하셨다. 그분의 피가 하늘과 땅의 정결을 이루었으므로, 성도는 그 피를 붙들고 회개와 정결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고 몸 안의 더러운 영들이 떠나가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24일(수)&lt;/p&gt; &lt;p class=&quot;date&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date&quot;&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4742e26d6626c221376a022b81425b6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6fe5900eb88028de14a51aa06e129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d6d7967db01ed3b9d5da1e2224fbf3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227927bbfcdd4e39df47afe1b5b411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9be5f08c8ae8997e1081ece6143b2d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73d4758f00d29730ae6ae1d1bd7572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aac7c2b5e4756aae3942aa68d7dd27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8046b16f352b517864f4d905f04819f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4d5a7dbe67184b388c76cee9a4d6a8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깅해(12)] 레위기16장_Sacred_Purification_Secret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028/261/e0183e8c9381374fe639b5b8da97552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1)] 정결법(04) 유출병은 어떻게 깨끗함을 받아야 했는가? (레위기 15:1~33)_2026-06-17(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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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17T15:48:30+09:00</published>
		<updated>2026-06-18T08:48:5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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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6-17(수) 수요예배 제목:[레위기강해(11)] 정결법(04) 유출병은 어떻게 깨끗함을 받아야 했는가? (레위기 15:1~3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jSwetb9mgtA 1. 들어가며 레위기 15장은 현대 독자에게 가장 낯설고 조심스러운 본문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남자의 유출(流出), 설정(泄精), 부부 관계 후의 부정, 여자의 월경, 비정상적인 혈루가 모두 정결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이런 본...</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6-17(수) 수요예배&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1)] 정결법(04) 유출병은 어떻게 깨끗함을 받아야 했는가? (레위기 15:1~3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Swetb9mgt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Swetb9mgt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1. 들어가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은 현대 독자에게 가장 낯설고 조심스러운 본문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남자의 유출&lt;span style=&quot;text-autospace:none&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함초롬바탕&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流出&lt;/span&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lt;/span&gt;&lt;/span&gt;, 설정&lt;span style=&quot;text-autospace:none&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함초롬바탕&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泄精&lt;/span&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letter-spacing:0pt&quot;&gt;)&lt;/span&gt;&lt;/span&gt;, 부부 관계 후의 부정, 여자의 월경, 비정상적인 혈루가 모두 정결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이런 본문을 읽다가 쉽게 질문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인 생리 현상까지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왜 남자와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성막 가까이 나아가기 전에 씻고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레위기의 큰 흐름을 알아야 한다. 레위기는 단지 제사 규정만의 책이 아니다. 레위기는 속죄받은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레위기는 1장부터 10장까지가 제사와 제사장 위임을 중심으로 속죄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면, 11장부터는 정결과 성결의 길을 보여 준다. 음식섭취와 사체 접촉 정결법(11장), 해산 후 여인의 정결법(12장), 나병의 정결법(13-14장), 유출 정결법(15장) 외에도 피, 성적 질서, 절기와 삶의 거룩함까지 모두 하나님 백성의 삶을 정리해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은 그 흐름 가운데 &amp;ldquo;몸에서 흘러나오는 것&amp;rdquo;을 다룬다. 유출은 히브리어로 &amp;lsquo;주브&amp;rsquo; 계열의 말과 연결되며, &amp;#39;흐르다&amp;#39;, &amp;#39;흘러나오다&amp;#39;라는 뜻을 가진다. 남자의 유출자는 &amp;lsquo;자브&amp;rsquo;라 할 수 있고, 여자의 유출자는 &amp;lsquo;자바&amp;rsquo;라 할 수 있다. 본문은 단순히 위생 규칙만 말하지 않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성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명과 피와 씨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정결함을 입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의 결론은 매우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부정 가운데 성막을 더럽히고 죽지 않도록 그들을 부정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셨다(레 15:31). 그러므로 유출병 규례는 단순한 고대 의식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백성이 반드시 배워야 할 정결의 원리를 담고 있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5:31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의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 우리는 더 이상 동물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결의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셨을 뿐 아니라, 회개하는 자를 씻어 정결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데서 멈추지 말고,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실제 삶과 영적 상태가 깨끗해지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유출병의 정결법이 왜 속죄받은 성도에게 정결과 생명과 회개의 길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2. 속죄와 정결은 왜 구별되어야 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은&lt;strong&gt;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의 구별&lt;/strong&gt;이다. &amp;#39;속죄&amp;#39;는 죄값을 덮고 죄인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은혜다. &amp;#39;정결&amp;#39;은 더러움에서 씻김받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합당한 상태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속죄가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근거가 없다. 그러나 정결이 없으면 속죄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 수가 없다.&lt;/p&gt; &lt;p&gt;&amp;nbsp;&amp;nbsp;구약의 제사법에서 피는 속죄의 핵심이었다. 피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피가 생명을 위하여 속죄한다고 하셨다(레 17:11). 피는 죽음으로 죄값이 처리되었음을 보여 주며, 동시에 생명이 생명을 대신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속죄와 정결은 동일한 말이 아니다. &lt;strong&gt;죄값을 덮는 것과 더러움을 씻는 것은 서로 연결되지만 구별&lt;/strong&gt;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마찬가지다. &lt;strong&gt;예수의 피는 믿는 자를 속죄한다. 동시에 죄를 자백하는 자를 깨끗하게 한다&lt;/strong&gt;.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증언한다(요일 1:9). 여기에는 용서와 정결이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을 얻기 전 한 번만 하는 입문 절차가 아니다. 회개는 속죄받은 성도가 정결함을 입기 위해 평생 붙들어야 할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의 피를 의지할 때 속죄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돌이킬 때 그 피가 실제로 우리 안의 더러움을 씻고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를 제거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이 정결의 필요성을 반복&lt;/strong&gt;해서 보여 준다. 11장은 음식과 사체 접촉을 말한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과 접촉하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2장은 해산 후 여인의 정결을 말한다. 사람의 몸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도 타락한 세상 안에서는 정결을 요구한다. 13장과 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을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5장은 유출병을 말한다. 사람의 몸의 생식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성막 앞에서 정결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바깥의 부정만 다루지 않으신다. 안에서 나오는 부정도 다루신다. 접촉의 부정만 다루지 않으신다. 생명과 연결된 몸의 유출도 다루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죄만 회개해서는 안 된다. 마음과 몸과 영적 상태 안에 숨어 있는 더러움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밖에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7:21~23). 레위기의 정결법은 신약에서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은 내면의 정결로 성취된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속죄와 정결을 구별하지 못하면 구원론이 약해진다. 속죄만 강조하면 성도가 죄와 더러움을 가볍게 여길 위험이 있다. 정결만 강조하고 속죄를 놓치면 인간의 노력으로 깨끗해지려는 율법주의에 빠진다. 바른 길은 예수의 피로 속죄받고, 그 피를 의지하여 날마다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정결함을 입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3. 나병은 왜 거역과 교만의 부정을 드러내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의 유출병을 보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법과 관련하여 누가 과연 나병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나병의 정결법을 매우 까다롭고 강하게 요구하셨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레위기 13장과 14장에서 다룬 나병의 정결법의 규례를 보면, 정결을 매우 강하게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나병은 히브리어로 &amp;lsquo;차라아트&amp;rsquo;라 불린다. 이 말은 현대 의학의 한센병만 가리키지 않는다. 피부의 병변, 의복의 오염, 집에 생긴 부정까지 포함하는 넓은 정결법 용어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피부병이나 한센병을 곧바로 특정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차라아트가 영적으로 무엇을 경고하는지 알 수 있다.&lt;/p&gt; &lt;p&gt;&amp;nbsp; 구약 성경에서 나병과 연결된 대표적 인물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성경에는 총 5명이 나병환자를 소개한다. 첫째로, 모세는 출애굽기 4장에서 손을 품에 넣었다 빼니 나병이 생겼고, 다시 넣었다 빼니 회복되었다. 그것은 모세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표징이었다. 그러나 둘째로, 미리암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거역했다. 그때 미리암에게 나병이 생겼다(민 12:10). 이는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를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민 12: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lt;/p&gt; &lt;p&gt;&amp;nbsp; 셋째로, 이방인으로서 아람나라의 벤하닷2세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나병환자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왜 나병에 걸렸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넷째로,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도 나병에 걸렸다. 그는 엘리사의 종이었지만 나아만에게서 은과 옷을 몰래 받아 탐욕을 채웠고, 거짓말까지 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와 그의 자손에게 붙을 것이라고 선언했다(왕하 5:27). 게하시의 죄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치유의 영광을 물질로 바꾸고, 하나님의 종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취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왕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lt;/p&gt; &lt;p&gt;&amp;nbsp; 다섯째로, 남유다의 웃시야 왕도 나병에 걸렸다. 그는 왕으로서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졌고, 제사장이 해야 할 향단의 분향을 자신이 하려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제사장들이 막았지만 그는 분노했고, 바로 그때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대하 26:19). 이는 월권의 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권세로 거룩한 직무를 침범하면, 영적 부정이 드러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대하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모든 사건을 연결해보면, 나병의 영적 의미가 보인다. 나병은 겉으로 피부에 드러나는 병이지만, 성경의 사례에서는 &lt;strong&gt;사람&amp;nbsp;속의 교만과 거역과 탐욕과 월권이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lt;/strong&gt;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지만 모든 현대 질병을 이런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는 영적 원리는 분명하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거역하고,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며,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태도는 공동체를 더럽히는 심각한 부정&lt;/strong&gt;이 나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나병환자는 진영 밖에 있어야 했다. 이는 단순한 격리 조치만이 아니다. 죄와 부정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준다. 특히 거역과 교만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 사람의 불순종은 말과 태도와 미혹을 통해 다른 사람을 흔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진단하게 하시고, 부정이 확인되면 격리하게 하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의 정결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약함이 아니다. 실패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거역을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다. 다윗도 넘어졌지만 회개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변명과 불순종 가운데 굳어졌다. 나병의 정결법은 성도가 거역과 교만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함을 보여 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4. 나병에서 깨끗하게 되는 길은 왜 순종과 감사인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4장의 나병 정결 절차는 매우 엄격하다. 먼저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나가 그 사람이 나았는지 확인한다. 그 후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 실, 우슬초를 가져오게 한다.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다른 새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그 피에 찍어 정결함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린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아준다(레 14:4~7). 이것은 죽음과 생명, 속죄와 해방을 함께 보여 주는 강력한 표징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4: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lt;/p&gt; &lt;p&gt;&amp;nbsp;&amp;nbsp;그 뒤에도 절차가 끝나지 않는다. 나병에서 나은 자는 자기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몸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여덟째 날에는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를 드린다. 특히 속건제 숫양의 피를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른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엄숙함을 가진다. 귀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손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나병은 어떻게 해서 나을 수 있을까? 그것은 순종이다. 나병의 부정이 거역과 교만의 표지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면, 나병에서의 정결케되는 비결은 순종이다. 왜냐하면 거역의 반대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월권의 반대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의 반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특히 나아만 장군의 치유사건은 이것을 잘 보여 준다. 그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지만 나병환자였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아만은 분노했다. 그러나 결국 종들의 권면을 듣고 순종했다. 그가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었다(왕하 5:14).&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amp;#39;순종&amp;#39;이다. 요단강 물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정결의 길을 연 것이다. 거역의 부정은 순종으로 풀린다. 나아만은 자기 체면과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했다. 바로 그때 정결함을 받았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신약에서 나병은 어떻게 치유되었는가?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때 예수님을 향하여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즉시 손을 대고 고치시지 않았지만, &amp;ldquo;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amp;rdquo;고 말씀하셨다(눅 17:14). 그러자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찾아갔다. 그들은 아직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치유의 변화가 나타나기 전에 말씀을 따라갔다.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눅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열 명 모두가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다. 한 사람만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amp;ldquo;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amp;rdquo;고 말씀하셨다(눅 17:19). 열 명은 육체의 깨끗함을 받았지만,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더 깊은 영혼의 구원의 선언까지 들었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나병 정결법의 영적 결론이다.&lt;strong&gt; &amp;#39;순종&amp;#39;은 정결의 문을 열고, &amp;#39;감사&amp;#39;는 구원의 깊이를 드러낸다.&lt;/strong&gt; 성도는 죄를 깨닫고도 자기 생각을 붙들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한다. 또한 깨끗함을 받은 뒤에는 그 은혜를 자기 공로로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회개도 이와 같다. 회개는 감정의 후회가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정결함을 경험한 뒤에는 &amp;ldquo;내가 잘해서 깨끗해졌다&amp;rdquo;고 말하지 않고, &amp;ldquo;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amp;rdquo;고 감사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5. 유출병은 어떤 종류의 부정을 가리키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레위기 15장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amp;#39;유출병&amp;#39;은 사람의 몸, 특히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에서 무엇인가가 흘러나오는 상태를 가리킨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 경우를 다룬다. 첫째, 남자의 비정상적인 유출이다(레 15:2~15). 둘째, 남자의 설정과 부부 관계 후의 정결이다(레 15:16~18). 셋째, 여자의 월경으로 인한 부정이다(레 15:19~24). 넷째,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피가 오래 흘러나오는 비정상적 혈루다(레 15:25~30).&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lt;/p&gt; &lt;p&gt;&amp;nbsp;&lt;strong&gt; 첫째로, 남자의 비정상적 유출 곧 성병(임질이나 매독 등)으로 인한 유출&lt;/strong&gt;은 침상과 앉은 자리와 접촉한 물건까지 부정하게 한다. 그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물로 씻어야 했다. 이는 유출의 부정이 개인 안에 머물지 않고 접촉을 통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병리적 유출은 몸의 질서가 깨진 상태이며, 공동체적 정결까지 흔들 수 있는 상태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로, 여자의 비정상적 혈루&lt;/strong&gt;도 마찬가지다.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 피가 흐르거나 월경 기간을 넘어서 계속 흐르면, 그 유출이 있는 동안 부정하다고 하셨다(레 15:25). 마가복음 5장의 열두 해 혈루증 여인이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만졌을 때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막 5:29).&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5:25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 외에 여러 날이 계속되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의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운다. 레위기의 정결법은 병자를 혐오하라는 법이 아니다. 병자와 약자를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고 끝내 버리라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결의 길을 마련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부정은 분명히 다루어야 하지만, 정결의 길도 분명히 열려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유출병은 성과 몸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가볍게 다루지 말라고 가르친다. 사람은 영만 가진 존재가 아니다. 몸도 하나님께 속해 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몸이 접촉하는 것, 몸으로 맺는 관계까지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몸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소유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몸은 성령의 전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영이 틈타는 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은 이 사실을 의식법의 언어로 가르친다. 부정한 유출이 있을 때 몸을 씻고 옷을 빨고 기다려야 한다. 병리적 유출이 그치면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몸과 마음과 영적 상태를 아무렇게나 가지고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는 의학적 질병이 있으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적 의미도 살펴야 한다. 몸의 질서가 깨졌을 때, 마음과 삶과 영적 상태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질병을 모두 죄로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질병을 통해 회개와 정결을 돌아보는 것은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도 사람을 부르시고, 더 깊은 정결의 자리로 인도하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6. 정상적인 유출도 왜 부정하다고 하셨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lt;strong&gt;정상적인 유출도 왜 부정하다고 선언하고 있느냐 하는&lt;/strong&gt;&amp;nbsp;것이다. 남자의 설정은 생리적 현상이다. 부부가 동침하여 설정하는 것도 정상적인 부부 관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여자의 월경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정결법의 대상으로 다루셨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5:16 설정한 자는 전신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레 15:19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피가 흐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lt;/p&gt; &lt;p&gt;&amp;nbsp;&amp;nbsp;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레위기의 &amp;ldquo;부정하다&amp;rdquo;는 말은 그 현상 자체가 도덕적 죄라는 뜻이 아니다. 월경하는 여인이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니다.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죄라는 뜻도 아니다. 레위기의 부정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정결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의식적 부정이다. 그러나 의식적 부정 안에는 깊은 영적 상징이 담겨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 상징의 중심에는 &amp;#39;생명&amp;#39;이 담겨 있다. 남자의 씨는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통로다. 히브리어 &amp;lsquo;제라&amp;rsquo;는 씨앗, 후손, 자손을 뜻한다. 또한 여자의 피도 역시 &amp;#39;생명&amp;#39;과 연결되어 있다. 레위기는 피를 생명으로 본다(레 17:11). 남자의 씨와 여자의 피는 모두 생명의 신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표지로 다루어진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여인의 월경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lt;/strong&gt;된다. 임신이 되면 월경은 멈춘다. 월경은 생명이 잉태되지 않았을 때 몸 밖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5장의 관점에서 월경은 여성 자체를 더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피조 세계 안에서 생명이 잉태되지 못하고 피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현실을 보여 주는 표지로 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남자의 설정도 생명과 연결&lt;/strong&gt;된다. 씨가 생명 잉태의 목적 안에서 사용되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왔을 때, 그것은 생명의 가능성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남자에게도 씻음을 요구한다. 이것은 남자에게 더 가볍고 여자에게만 무거운 법이 아니다. 남자도 씻어야 하고 여자도 씻어야 한다. 생명과 관련된 유출 앞에서 모두가 하나님께 정결을 배워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은 창조 질서와도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성은 쾌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은 언약 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가정을 세우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가는 통로다. 타락 이후 인간의 성은 욕망과 죄와 악한 영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과 생명과 피와 씨의 문제를 거룩하게 다루도록 정결법을 주셨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따라서 &lt;strong&gt;정상적인 유출의 부정은 몸을 혐오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더 깊이 존중하라는 뜻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신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과 연결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다루지 말라는 뜻&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현대의 성도는 이 말씀을 문자적 의식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원리는 살아 있다. 성도는 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피와 씨와 생명의 문제를 장난처럼 다루지 말아야 한다. 남녀의 몸은 하나님께서 생명과 언약을 위해 주신 거룩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우리에게 몸을 통해 생명을 배우고, 생명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르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7. 성적 유출은 왜 영적 교류와 생명 질서의 문제인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을 오늘의 성도에게 적용할 때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있다. 성적 결합은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창 2:24). 사도 바울도 음행의 죄를 몸 밖의 죄와 구별하여,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고 말했다(고전 6:18). 이는 성적 결합이 몸과 영혼과 언약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깊은 연합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성적 접촉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다. 영적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다. &lt;strong&gt;부부 관계는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 안에서 거룩한 것이지만, 음행과 혼전 성관계와 불륜과 동성적 음행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생명 질서를 거스른다. 이러한 죄는 악한 영에게 틈을 줄 수 있으며, 가문과 세대의 영적 영향이 서로 얽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사람을 영의 눈으로 보면, 남여의 성적 결합은 영적 교류가 일어나는 장인 것&lt;/strong&gt;을 알 수 있다. 무속인들의 음행, 그리고 이들의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은 성경에서도 자주 함께 나타난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적 타락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성적 부정은 한 개인의 몸만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문을 여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관점에서 혼전 순결은 단지 옛날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보호다. 부부의 정결은 단지 가정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다. 성도가 성적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자기 몸을 보호하고, 배우자를 보호하고, 자녀와 후손에게 흘러갈 영적 영향을 보호하는 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정죄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가볍게 넘기지도 않으셨다. &amp;ldquo;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amp;rdquo;고 하셨다(요 8:11). 은혜는 죄를 덮어 방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다시 살게 하는 능력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요 8: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적 유출과 정결의 문제를 다룰 때 사람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 성병에 걸린 사람, 성적 죄로 무너진 사람, 가정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향해 조롱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그들도 회개하고 돌아와 정결함을 입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한다. 성적 질서가 무너지면 생명 질서가 무너지고, 생명 질서가 무너지면 가정과 후손과 영적 상태까지 흔들리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특히 동성애와 성적 타락의 문제도 창조 질서와 생명 질서 안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 결합을 통해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통로다. 그것을 생명과 언약에서 분리하여 욕망과 쾌락만을 위한 것으로 만들면, 인간은 몸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성도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죄와 거짓된 영의 흐름은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영적 전쟁은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영과 죄의 통로를 대적하는 것이다. 성도는 성적으로 무너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회개와 복음으로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자기 자신과 자녀들에게 성적 정결을 가르쳐야 한다. 성은 생명의 자리이므로 정결해야 한다.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 거룩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8. 예수의 피와 회개는 어떻게 성도를 정결하게 하는가?&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의 정결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구약의 사람은 유출이 그치면 몸을 씻고 옷을 빨고, 경우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한다. 그분은 단번에 드려진 참 제물이시며, 더 좋은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히 9:14).&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lt;/p&gt; &lt;p&gt;&amp;nbsp;&lt;strong&gt; &amp;#39;예수의 피&amp;#39;는 사람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lt;/strong&gt; 한다.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이것이 정결의 목적이다. 정결은 단지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레위기의 정결법이 성막을 더럽히지 않게 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면, 신약의 정결은 성령의 전인 성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이 정결은 자백하는 회개와 연결&lt;/strong&gt;된다. &lt;strong&gt;믿음으로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것은 속죄의 길이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것은 정결의 실제적 통로&lt;/strong&gt;다. 죄를 숨기면 악한 영은 합법적 근거를 붙든다. 우상숭배, 음행, 거역, 교만, 탐욕, 불순종, 혈기와 분노, 거짓과 미혹을 자백하지 않으면 그 죄를 발판으로 들어온 영들이 계속 역사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회개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길이다. 자백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자백은 죄의 근거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예수의 피를 적용받는 행위다. 죄가 드러나고 예수의 피가 들어오면, 악한 영은 붙들 근거를 잃는다. 이것이 회개와 축사의 실제적 연결&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 그런데 나병의 정결법도 이것을 보여 준다. 속건제의 숫양의 피가 나병에서나은 자의 귀와 손과 발에 발라졌다. 이는 듣는 것, 행하는 것, 가는 것이 정결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유출병의 정결법도 이것을 보여 준다. 몸을 씻고 옷을 빨아야 했다. 이는 몸의 상태와 삶의 외적 행실이 함께 정결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의 피와 회개는 이 두 원리를 모두 성취한다. 속은 피로 씻기고, 삶은 회개의 열매로 바뀐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정결함을 단번의 감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결은 계속되는 과정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을 믿어 속죄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미 목욕한 자도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3:10). 이것은 구원받은 자에게도 매일의 정결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요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회개는 성도를 더럽히는 모든 통로를 닫는 일이다. 음식과 접촉의 부정을 돌아보듯이, 무엇을 보고 듣고 만지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해산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자녀와 후손에게 어떤 영적 영향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병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amp;#39;거역&amp;#39;과 &amp;#39;교만&amp;#39;과 &amp;#39;월권&amp;#39;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유출병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성과 생명과 몸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길은 무거운 율법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다. 깨끗한 자가 보좌 가까이 간다. 죄와 악한 영이 많이 남아 있으면 천국에서도 영광이 약해진다. 그러나 회개하여 정결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정결을 사모해야 한다. 속죄받은 자답게 정결해야 하고, 정결한 자답게 성결해야 하며, 성결한 자답게 영광의 나라를 준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경륜은 분명하다. 창조 때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다. 타락 때 인간은 죄와 사망 아래 들어갔다. 율법은 속죄와 정결의 길을 그림자로 보여 주었다. 한 분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 흘려 속죄를 이루셨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 오셔서 성전을 삼으셨다. &lt;strong&gt;이제 성도는 회개와 정결을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내고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bible&quot;&gt;계 19:7~8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15장은 낡은 의식법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성도에게 묻는다. 너는 속죄받은 뒤 정결해지고 있는가? 너는 몸과 성과 생명을 거룩하게 여기고 있는가? 너는 거역과 교만을 회개했는가? 너는 예수의 피로 씻김받고 악한 영을 내보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성도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는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title&quot;&gt;9. 나오며&lt;/div&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15장의 유출병 정결법이 속죄받은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았다. 유출병 규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해 생명과 피와 씨의 문제를 가르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백성에게 정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정상적인 생리 현상까지 정결법의 대상으로 다룬 것은 그 자체를 죄악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한 피조 세계 안에서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몸으로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을 구별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속죄의 은혜를 붙들어야 하며, 동시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실제로 깨끗해지는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속죄만 말하고 정결을 말하지 않으면 신앙은 방종으로 기울 수 있다. 정결만 말하고 속죄를 잊으면 인간의 노력과 율법주의로 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 안에서 속죄와 정결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 또한 성도는 거역과 교만과 월권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미리암과 게하시와 웃시야의 사례는 하나님의 질서와 영광을 침범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나아만과 열 명의 나병환자의 사례는 순종과 감사의 길이 정결과 구원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패했을 때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으로 돌이켜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성과 몸과 생명의 문제를 거룩하게 다루어야 한다. 몸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물건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다. 남자의 씨와 여인의 피는 생명 질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성도는 성적 접촉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부의 언약 안에서 성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음행과 불륜과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성적 타락을 회개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죄와 악한 영의 통로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회개를 통해 정결해져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는 악한 영이 붙든 합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길이다. 예수의 피가 들어가면 죄가 씻기고, 악한 영은 더 이상 머물 근거를 잃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회개를 통해 자신과 가정과 후손에게 흘러가는 영적 영향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단지 구원받았다는 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좌 가까이 가는 성도, 어린양의 신부로 준비되는 성도, 생명을 살리는 성도, 악한 영을 내보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레위기의 정결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은 회개의 복음으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받은 자답게 정결해야 하고, 정결한 자답게 성결해야 하며, 성결한 자답게 천국의 영광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의 피와 회개로 정결함을 입고 생명을 살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6월 17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속죄와 정결&lt;/strong&gt;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구원의 단계를 설명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나병과 유출병&lt;/strong&gt;이 지닌 영적인 의미와 회복의 절차를 다룹니다. 나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거역과 교만의 죄&lt;/strong&gt;가 발현된 결과로 규정되기에, 이를 치유받고 공동체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사장 위임식에 준하는&amp;nbsp;&lt;strong&gt;철저한 순종과 정결 의식&lt;/strong&gt;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생리적 현상인 유출병을 부정하다고 본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못한&amp;nbsp;&lt;strong&gt;생명의 상실&lt;/strong&gt;이자 부부 관계를 통한&amp;nbsp;&lt;strong&gt;악한 영의 교류&lt;/strong&gt;&amp;nbsp;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라고 독창적으로 풀이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일평생&amp;nbsp;&lt;strong&gt;자백과 회개&lt;/strong&gt;를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함으로써, 칭의를 넘어&amp;nbsp;&lt;strong&gt;성화와 영화의 단계&lt;/strong&gt;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앙적 권고를 목적으로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2)] 인포그래픽2026-06-1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b6d671a3b31aa0c28b3e55b71a125d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8deea84ef70da3566a55f5753a9331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c8d328f3cb92b375076d642e3e51ba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1e2e060e6863210dcbf6d06492c177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fc3090ae185668f431a5af69abef11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bb10d2e32d858aa0bc7eed1931efea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a66f82917536149bf25379f030f720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5fb87c9be57172d409cf95adf497b2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695b82461638734302055a34bf5cb5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49988d340e27a9158376634506d345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1f60859ab1c8cfec080c46db32f667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5c80fd3795ed40db72a1a9caacb347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7938be6167ff17a78b3b6c9784284e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12fb571bf987f530782c3a87807484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a620b7ae824262b2f8ad76c327178b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1)] The_Gospel_of_Purity_and_Life.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93/260/f4adca0b17c1227e0115a08e015be71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0; padding:0; font-family:&#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Arial,sans-serif; font-size:16px; line-height:1.8; color:#222; } .title { font-size:18px; font-weight:bold; margin:0 0 1em 0; } .subtitle { font-size:17px; font-weight:bold; color:#38688c; margin:0 0 0.8em 0; } p { margin:0 0 1em 0; } .bible { font-weight:bold; color:#854ba0; margin:0 0 1em 0; } .date, .author { margin:0; } &lt;/style&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0)] 정결법(03)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2)(레13:1~14:57)_2026-06-10(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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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10T21:08:07+09:00</published>
		<updated>2026-06-10T23:53:4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6-10(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0)] 정결법(03)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2)(레13: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fVuVwscBuM 1. 들어가며 레위기는 제사법과 정결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제사를 드리고 정결 의식을 행할 자는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039;레위기&#039;라 이름 한 것이다. 레위기의 구조를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 위임식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6-10(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0)] 정결법(03)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2)(레13:1~14:5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fVuVwscBu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fVuVwscBu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제사법과 정결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제사를 드리고 정결 의식을 행할 자는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amp;#39;레위기&amp;#39;라 이름 한 것이다. 레위기의 구조를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 위임식을 다루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법을 다룬다.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분량에서 훨씬 많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은 속죄보다 정결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에서 정결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정결(淨潔)이고, 다른 하나는 제사를 지내 거룩하게 하는 성결(聖潔)이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는 정결을, 17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을 다룬다. 정결은 더럽혀진 것을 씻는 것이고, 성결은 세속화된 것을 하나님 편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강조점이 다소 다르지만 전체를 합쳐 정결 의식이라 부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제사는 속죄를 가리키는 의식이다. 속죄는 피로 죄를 덮어 버리는 것이며 칭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결은 씻어 내는 것이다. 천국의 행위책에서 자신의 죄의 기록을 씻어 버리는 것이 정결이다.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다른 목적과 다른 기능을 가진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어 속죄를 받았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착각한다. 이 착각이 신앙생활을 정체시키고 영적 성장을 막는다. 정결케 되지 않으면 귀신이 합법적 근거를 빌미로 우리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수 믿고 40년이 지나도 저주가 떠나지 않고, 병이 낫지 않으며, 가난이 지속되고, 귀신이 떠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정결을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의 핵심은 자백하는 회개에 달려 있다. 회개를 통해 천국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질 때, 악한 영은 더 이상 우리 안에 합법적으로 머물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결례가 신앙생활의 본질임을 레위기는 분명히 가르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한편 레위기 13장과 14장은 정결법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말씀이다. 나병을 진단하는 법이 13장 전체에 기록되어 있고, 나병에서 나온 자가 정결케 되는 법이 14장 전체에 걸쳐 기술되어 있다. 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나병에 할애하고 있을까? 이건 나병이 죄의 속성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나병을 통해 하나님은 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죄에서 해방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나병의 진단법과 정결법을 아는 것은 곧 죄의 속성을 알고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길을 아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레위기는 더 이상 낡은 율법서가 아니라 오늘 나의 신앙생활을 안내하는 생생한 말씀이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속죄와 정결의 차이, 물&amp;middot;피&amp;middot;기름 세 가지의 정결 원리,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이 가르치는 인간의 본질적 부정함, 레위기 13장 나병의 포괄적 의미, 나병의 세 가지 속성이 드러내는 죄의 본질, 나병에서 나은 자의 두 가지 정결 의식, 그리고 나아만의 요단강 목욕이 오늘날 성도가 자백하는 회개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진리를 가리킨다. 예수 믿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자백하는 회개로 날마다 정결케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레위기에서 속죄(덮음)와 정결(씻음)은 어떻게 구별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축은 속죄와 정결이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은 레위기를 오독하는 것이며 신앙생활 전반에 치명적 오류를 낳는다. 그러므로 먼저 이 둘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째로, 속죄(贖罪)란 무엇인가? 속죄는 히브리어로 &amp;#39;카파르(כָּפַר)&amp;#39;인데, &amp;#39;덮다&amp;#39;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어 버리는 것이 속죄이다. 이것은 칭의를 가리키며,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여김 받는 은혜이다. 신약 성경에서 &amp;#39;용서&amp;#39;로 번역된 헬라어 &amp;#39;아피에미(ἀ&amp;phi;ί&amp;eta;&amp;mu;&amp;iota;)&amp;#39;는 사실 &amp;#39;내버려 두다&amp;#39;, &amp;#39;있는 그대로 두다&amp;#39;라는 뜻을 가진다.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되 없는 것처럼 여겨 주는 것이 속죄이다. 거름이 있는 자리에 덮개를 덮어 놓은 것과 같다. 덮개를 치우면 거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처럼 속죄는 죄를 없앤 것이 아니라 덮어 준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속죄는 칭의적 은혜이며,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이제 정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로 먼저 베풀어 주신 일시적 은혜이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은 뒤에는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정결케 되어야 한다. 예수 믿어서 속죄는 받았으나 정결케 되지 않으면, 예수 믿고 40년이 지나도 저주가 떠나지 않고 병이 낫지 않으며 귀신이 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 많은 신자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둘째로, 정결(淨潔)이란 무엇인가? 정결은 씻어 내는 것이다. 천국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명부를 씻어서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이다. 죄의 기록이 행위책에서 지워지면, 그 죄를 근거로 우리 안에 들어와 있던 악한 영은 더 이상 합법적으로 머물 수 없게 된다. 악한 영은 우리의 죄를 합법적 근거로 삼아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귀신은 합법적으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회개로 그 합법적 근거가 사라지면, 귀신은 합법적으로 나가야 한다. 귀신이 합법적으로 나가야 하는데도 나가지 않으면, 그것이 불법이다. 그래서 그 불법을 선포하며 내보내는 것이 축사이다. 이처럼 속죄와 정결과 축사는 연결된 하나의 신학 체계이다. 아직 회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귀신을 뽑아내면, 귀신이 나가서 해코지를 한다. 회개가 70%밖에 안 되었는데 110%의 힘으로 뽑아내면, 귀신은 나간 뒤에 더 강한 다른 귀신을 데리고 돌아온다. 그래서 자백하는 회개를 먼저 충분히 행하는 것이 정결이요, 정결이 이루어진 후에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법에도 두 단계가 있다. 하나는 물로 씻는 정결이요, 다른 하나는 기름과 피를 바르는 의식이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는 주로 물로 씻는 정결을 다루고, 17장부터 27장까지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성결을 다룬다. 이 전체를 아울러 정결 의식이라 부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구조가 이 진리를 잘 보여 준다. 1장부터 10장이 제사법이라면, 11장부터 27장은 정결법이다. 분량 면에서 정결법이 훨씬 많다. 하나님은 속죄보다 정결에 더 많은 관심을 두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예수의 피로 속죄를 받는 것만을 강조하고, 자백하는 회개를 통한 정결을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amp;quot;예수 믿으면 과거&amp;middot;현재&amp;middot;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amp;quot;라는 신학적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레위기의 정결법을 무시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피와 물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다. 속죄는 칭의이고 정결은 성화이다. 칭의로 시작했으면 반드시 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가 신약 성도에게도 살아있는 교훈인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과 관련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결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구원 이후의 삶에서 귀신이 떠나고, 병이 낫고, 저주가 끊어지는 것은 정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 믿어서 구원받은 것과,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낫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후자는 정결 예식, 곧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별해야 신앙생활의 방향이 바로잡힌다. 속죄는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 주신 선물이고, 정결은 그 선물을 받은 우리가 날마다 행해야 할 응답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신앙생활이 온전히 세워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귀신을 내쫓으면 어떻게 되는가? 귀신이 나가서 해코지를 한다. 합법적으로 들어왔는데 합법적인 과정 없이 강제로 뽑혀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신이 더 강한 귀신을 데리고 돌아온다. 이것이 자백하는 회개를 먼저 충분히 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결 예식이 선행될 때, 귀신은 합법적으로 나가고 다시 들어올 근거를 잃게 된다. 그래서 레위기의 정결법은 오늘날의 축사 사역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요한일서 5장의 물&amp;middot;피&amp;middot;기름 세 가지는 어떻게 우리를 정결케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3장과 14장이 말하는 정결 의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신학적 근거를 알아야 한다. 요한일서 5장이 그 열쇠를 제공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5:5-8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본문은 정결의 세 요소를 선포한다. 물과 피와 성령, 곧 기름이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를 이 땅에 남겨 두고 승천하셨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고 땀을 흘리시며, 창에 찔려 피와 물을 다 쏟으셨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물과 피를 이 땅에 남겨 두셨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살은 부활 때 갖고 가셨지만 뼈와 피와 물만 남기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 성령, 곧 기름을 보내셨다. 사도행전은 &amp;quot;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amp;quot;(행 10:38)고 증언한다. 성령은 기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정결의 세 요소는 물과 피와 기름이다. 이 세 가지가 우리를 정결케 한다. 레위기 14장의 정결 의식을 보면, 나병에서 나은 자는 먼저 흐르는 물로 씻고, 피를 뿌리며, 기름을 바른다. 이것은 단순한 의례적 절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물&amp;middot;피&amp;middot;기름으로 정결케 된다는 진리를 상징하는 예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체적으로 이 세 가지의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로, 물(水)은 자백하는 회개이다. 자백으로 천국 행위책의 죄 기록이 지워지는 것이 물로 씻는 정결이다. 물로 씻는 것이 정결의 핵심이다. 레위기 14장을 자세히 보면 정결 의식에서 물로 씻는 과정이 거듭 반복된다. 처음에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고, 7일째에 다시 털을 밀고 몸을 물로 씻는다. 그 반복이 자백하는 회개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둘째로, 피(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이다. 피 없이는 속죄도 정결도 없다.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덮어 주는 기반 위에서 정결이 시작된다. 셋째로, 기름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정결케 하시며, 정결된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채워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많은 그리스도인들은 &amp;quot;예수의 피로 용서받았으니 끝났다&amp;quot;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일서 5장은 세 가지가 합하여 하나라고 분명히 말한다. 물 없이는, 곧 자백하는 회개 없이는 피의 은혜도 완성되지 않는다. 또한 기름, 곧 성령의 역사 없이는 정결이 지속될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함께 작동한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만으로는 안 된다. 물만으로도 안 된다. 기름만으로도 안 된다. 세 가지가 합하여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정결이 이루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신앙생활은 날마다 이 세 가지로 정결해지는 삶이다. 물로 씻듯 자백하며, 피의 은혜를 의지하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예수 믿고 나서 자백하는 회개를 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핵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을 모르면 예수 믿어도 귀신이 나가지 않고 병이 낫지 않으며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 주님이 이 땅에 물과 피를 남겨 두고 기름을 보내 주신 것은, 그것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정결에는 물이 가장 핵심이다. 그래서 레위기 14장의 정결 의식에서도 물로 씻는 과정이 가장 강조된다. 흐르는 물에서 새를 잡아 그 피를 섞은 물로 일곱 번 뿌린 뒤, 몸을 물로 씻는다. 7일 후에 또 몸을 물로 씻는다. 물로 씻는 것이 두 번, 세 번 반복된다. 이것은 자백하는 회개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행하라는 가르침이다. 한 번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자백하며, 날마다 씻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것이 주님이 남겨 주신 물의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피와 기름도 중요하지만 물이 가장 중심이다. 이는 자백하는 회개가 정결의 핵심 수단임을 보여 준다. 예수의 피는 이미 충분히 공급되었고, 성령도 이미 보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라는 물로 씻는 것이다. 주님은 피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 두셨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물로 씻는 것, 자백하는 회개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위기 정결법이 오늘 성도에게 요구하는 바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은 인간의 어떤 본질적 부정함을 가르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을 규정한다. 정결법의 두 번째 주제이다. 첫 번째 주제인 11장이 음식법과 접촉법&amp;mdash;무엇을 먹고 무엇을 만짐으로써 더럽혀지는가&amp;mdash;을 다루었다면, 12장은 인간 자체의 부정함을 다룬다. &amp;quot;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정하다&amp;quot;는 진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부정해진다. 아들을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고 33일간 산혈이 지속된다. 딸을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고 66일간 산혈이 지속된다. 아들의 경우 40일, 딸의 경우 80일, 곧 두 배의 차이가 있다. 아들의 경우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기 때문이다. 할례는 회개의 의식이다. 남자아이는 이 의식을 먼저 행함으로 절반의 기간이 단축된다. 여자는 그 의식이 없기 때문에 두 배의 기간이 요구된다. 또한 하와가 먼저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의식적 의미도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정결법이 선포하는 핵심 진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이미 부정하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이미 악한 영이 침투하여 들어간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더러운 존재로 세상에 나온다. 다윗은 이 진리를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왜 이렇게 고백하였는가? 다윗의 어머니는 특별한 상황에 있었다. 다윗의 형들과 어머니가 달랐기 때문에, 다윗의 어머니는 이세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장군들의 유전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수루야와 아비가일이라는 두 딸을 낳았는데, 수루야에게서 요압&amp;middot;아비새&amp;middot;아사엘이 나왔고, 아비가일에게서 아마사가 나왔다. 모두 유명한 장수들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다윗이 태어났기 때문에,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amp;quot;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amp;quot;라고 고백한 것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죄 중에 태어나는 존재임을 다윗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내 어머니, 나의 탄생 자체가 이미 부정함을 담고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 고백이 얼마나 솔직하고 깊은 것인지 놀랍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어머니 탓으로 돌린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이미 죄 중에 잉태된다는 진리를 고백한 것이다. 이 진리를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낮아질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마가복음 7장에서 같은 진리를 가르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막 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속에 있는 것들&amp;mdash;악한 생각, 음란, 살인, 간음, 탐욕, 속임, 교만&amp;mdash;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이것들은 단순한 감정이나 기질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며 악한 영들의 역사이다. 뱀이요, 귀신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부정한 존재이다.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은 이 진리를 의식화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정결 예식은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반드시 행해야 했다. 번제를 위해 1년 된 어린 양을 드릴 형편이 안 되는 자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로 대신할 수 있었다(레 12:8).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마리아가 비둘기로 정결 예식을 드렸다는 사실이 이것을 확증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 드리려 함이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양을 드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가난했다. 그러나 그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했다. 정결 예식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요구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부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결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이 오늘 성도에게 전하는 진리이다. 우리 모두가 죄 중에 잉태되었다. 그 부정함은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만 씻겨 나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이전에 지었던 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어온 악한 영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온 저주들&amp;mdash;이 모든 것들이 정결 예식을 통해 씻겨 나가야 한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그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속죄는 덮어 주는 것이요, 정결은 씻어 내는 것이다. 해산한 여인이 반드시 정결 예식을 행해야 했듯이, 우리도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날마다 정결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 믿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신학적 근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레위기 13장의 나병은 왜 악성 피부병을 포괄하는 표현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3장은 나병 진단법을 상세히 기술한다. 그런데 이 나병은 오늘날 우리가 한센병이라 부르는 특정 질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 13장의 나병은 악성 피부병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 장을 바르게 읽는 첫 번째 열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한센병, 곧 진짜 나병은 1871년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이라는 사람이 나병 세균인 작은 박테리아를 발견하면서 알려진 질병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한센씨 병이라 불린다. 이 질병은 기본적으로 낫지 않는다. 성경에 나병에서 나은 경우로는 모세, 미리암, 나아만 장군 세 사람이 이름이 밝혀져 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치유하신 열 명의 나병 환자가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특별한 경우이다. 원칙적으로 진짜 한센병은 낫지 않는 질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미리암이 나병에 걸린 것은 민수기 1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이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을 두고 미리암이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음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미리암은 단순히 구수 여인을 비방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빌미로 삼아 &amp;quot;모세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아니라, 나도 지도자다&amp;quot;라는 말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어겼다. 그 결과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처럼 희어졌다. 이처럼 나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되는 질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레위기 13장에 등장하는 나병은 이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레위기 13장을 살펴보면 나병의 종류가 일곱 가지나 된다. 첫 번째는 피부에 생긴 피부병이다(레 13:2).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생기거나 색점이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살이 올라오는 것이다(레 13:10). 환부에 생살 곧 붉은 살이 볼록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종기가 생긴 것이다(레 13:18). 종기가 나서 그 자리에 이상이 생기면 나병으로 진찰한다. 네 번째는 불에 덴 화상이다(레 13:24). 불에 데어 진물이 생긴 것도 나병에 포함한다. 다섯 번째는 머리털이나 수염에 누르스름한 털이 생기는 모발 나병이다(레 13:29). 여섯 번째는 피부의 색점이 부유스름하게 노랗게 보이는 어루러기이다(레 13:38). 일곱 번째는 머리털이 빠진 대머리이다(레 13:40). 심지어 대머리도 나병으로 분류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레위기 13장의 나병은 피부에 이상이 생긴 모든 악성 피부병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뾰루지, 종기, 화상 흔적, 어루러기, 대머리까지&amp;mdash;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나병이라 할 수 없는 것들도 다 포함한다. 이 넓은 의미의 나병은 죄의 광범위한 속성을 보여 준다. 죄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뾰루지 같은 작은 죄도, 온몸을 썩게 하는 큰 죄도 모두 나병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병 진단의 절차도 중요하다. 먼저 나병 의심 환자를 제사장에게 데려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3: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만일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생기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의 색점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죄인인지 아닌지를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자다. 이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러나 제사장은 섣불리 결정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우면 일주일 동안 격리하여 지켜본다. 그래도 여전히 나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 부정하다고 선포한다. 이처럼 죄에 대한 판단은 신중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이루어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람에게만 나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의복 나병도 있다(레 13:47-48). 털옷이나 베옷, 가죽 옷에 색점이 발생하면 나병처럼 진찰한다. 이는 죄가 우리의 육체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 환경까지 더럽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신 들린 사람을 보라. 몸도 더럽고 옷도 더럽다. 내부가 더럽혀지면 외부도 더럽혀지는 것이 죄의 본성이다. 반대로 귀신이 나가면 그 사람은 정숙해지고 옷도 빨아 입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나병의 종류가 죄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한다. 뾰루지 같은 작은 죄부터 종기 같은 고름이 가득 찬 죄, 화상처럼 고통스러운 죄, 어루러기처럼 색이 변질된 죄, 대머리처럼 드러나는 죄까지&amp;mdash;죄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제사장에게, 곧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가져가 진찰받아야 한다. 스스로 &amp;quot;나는 괜찮다&amp;quot;고 판단하면 안 된다. 제사장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예수님 앞에 내 죄를 드러낼 때, 비로소 정결의 과정이 시작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나병의 세 속성&amp;mdash;잠복&amp;middot;전염&amp;middot;감각 마비&amp;mdash;은 죄의 어떤 본질을 드러내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가 수많은 질병 중에서 유독 나병에 대해 방대한 분량을 할애한 이유가 있다. 나병이 죄의 속성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내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나병의 세 가지 특성&amp;mdash;잠복, 전염, 감각 마비&amp;mdash;은 죄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 속성은 잠복기가 매우 길다는 것이다. 나병균이 몸 안에 들어와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짧게는 2년에서 3년, 길게는 20년까지 아무런 증상 없이 균을 보유한 채 살아갈 수 있다. 균이 들어와 있는데도 전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폭발한다. 이것이 죄의 첫 번째 속성이다.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어도 당장은 아무 증상이 없다. 무당에게 신기가 있는 사람처럼, 20년 동안 잠복해 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발동한다. 처음에는 무당집 냄새가 좋아지고, 무당 옷이 입고 싶어지고, 징 소리가 들리면 몸이 움직이고 싶어진다. 죄의 결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죄는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중 죄 없다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 속에는 저마다 잠복된 죄성이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자백하는 회개를 꾸준히 행하는 것이 영적 건강의 비결이다. 죄가 드러나기 전에 미리 씻는 것이 지혜이다. 마치 건강할 때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하듯이, 죄가 폭발하기 전에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로 죄의 잠복을 없애는 것이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속성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병은 감염된 사람 옆에 있으면 전염된다. 죄도 마찬가지이다. 죄짓는 사람 옆에 지속적으로 있으면 그 죄에 전염된다. 음란한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 음란해진다. 수다를 떠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으면 입술이 수다로 가득 차게 된다. 공산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레위기 11장이 가르치는 접촉법의 핵심이다. 더러운 것과 접촉하면 더러워진다. 검은 것과 같이 가면 검어지고, 빨간 것과 같이 있으면 빨개진다. 그래서 누구와 교제하며 살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회개 기도를 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성장하고, 회개를 가로막는 사람과 함께하면 영적으로 쇠락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영혼을 지키기 위해 교제의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1장의 접촉법이 오늘 성도에게 주는 교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병 환자가 해야 할 행동을 레위기 13장은 이렇게 규정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3:45-46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이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는 것은 슬픔과 애통의 표현이다. 부정하다고 두 번 외치며 진영 밖으로 나가 혼자 살아야 한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격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덮어 주고 일주일 지켜보지만, 계속 더러운 채로 살면 완전히 격리된다. 이것이 지옥의 예표이다. 죄를 짓고 회개치 아니하면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그것이 지옥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중하게 다루신다. 그러나 동시에 정결 의식을 마련해 주시며, 돌아올 길도 열어 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속성은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이다. 나병이 진행되면 눈썹이 빠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썩어 가고, 코와 입이 무너진다. 산 송장의 냄새가 날 정도로 몸이 썩어 간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아프지 않다.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의 세 번째 속성이다. 죄를 짓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이미 영적으로 병든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인 뒤 열 달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 그 고통이 다윗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시편 32편을 보면 다윗이 고백을 하지 않는 동안 뼈가 녹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반대로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자,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자는 감각이 마비된 것이다. 귀신이 들어와 감각을 마비시킨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죄는 잠복하고, 전염되며, 감각을 마비시킨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회개만이 죄의 잠복을 드러내고, 그 감각을 회복시키며, 전염을 끊는 유일한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가 무수한 질병 중에서 왜 나병을 선택하여 방대한 분량으로 다루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나병은 죄의 속성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 주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병이라는 질병을 통해, 죄가 어떻게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지를 눈에 보이도록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그 나병에서 어떻게 정결케 되는가를 14장에서 가르쳐 주심으로, 죄에서 어떻게 깨끗해지는가를 보여 주신다. 나병은 죄의 상징이요, 정결 의식은 회개의 예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나병 진단 과정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나병이 의심될 때 제사장은 즉시 선고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격리하며 지켜본다. 그래도 증상이 지속되면 그때 부정하다고 선포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신다. 충분히 살펴보신 후에 심판하신다. 그러나 일단 부정하다고 선고되면, 그 결과는 명확하다.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죄를 방치하면 반드시 격리가 따른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죄를 방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적 격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즉시 자백하는 회개로 나아가는 것이 영적 건강의 비결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나병에서 나은 자의 두 가지 정결 의식&amp;mdash;두 새와 네 가지 제사&amp;mdash;은 무엇을 의미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4장은 나병에서 나은 자가 어떤 정결 의식을 행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규정한다. 나병에서 나았다고 해서 곧바로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제사장이 다시 진찰하여 나았음을 확인한 뒤, 두 단계의 정결 의식을 행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정결 의식이요, 두 번째는 제사 의식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첫 번째 정결 의식을 살펴보자. 제사장은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한다(레 14:4). 그리고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는다. 새의 피가 흐르는 물에 섞여 붉은 물이 된다. 다른 한 마리의 살아 있는 새는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그 피에 찍어서 나병에서 정결케 될 자에게 일곱 번 뿌린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4:5-7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중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서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일곱 번 피를 뿌린 뒤,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날려 보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잡힌 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 날려 보낸 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죽음과 부활, 이것이 정결의 근거이다. 백향목은 높음과 의로움을 상징하고, 홍색 실은 속죄의 피를 상징하며, 우슬초는 정결케 하는 도구를 상징한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이 &amp;quot;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amp;quot;(시 51:7)라고 기도한 것이 바로 이 정결 의식의 맥락에서 이해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다음, 정결함을 받는 자는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씻어야 한다(레 14:8). 7일이 지난 후 다시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물로 씻어야 비로소 진영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로 씻는 정결이 반복되어 강조된다. 이 물로 씻는 과정이 바로 자백하는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는 제사 의식이다. 8일째 되는 날, 흠 없는 순양 두 마리와 1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고운 가루 소재물과 기름 한 록을 가져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4: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으로 네 가지 제사를 드린다.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이다. 속건제의 어린 양의 피를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른다. 그리고 기름도 같은 방식으로 바른다. 귓불은 말씀을 듣는 기관이요, 엄지손가락은 일하는 손이며, 엄지발가락은 걸어가는 발이다. 죄로 오염된 모든 삶의 영역&amp;mdash;듣는 것, 행하는 것, 걸어가는 것&amp;mdash;을 피와 기름으로 정결케 한다는 의미이다. 삶의 전 영역이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의식은 보여 준다. 귓불에 피와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에 바른다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지발가락에 바른다는 것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걸어갈 것인가가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난한 자라도 이 의식을 면제받지 못한다. 순양을 드릴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로 대신할 수 있었다(레 14:21-22). 정결 예식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요구된다. 어떤 형편에 있든 정결 예식은 반드시 행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나병에서 나은 자의 두 가지 정결 의식&amp;mdash;두 새와 네 가지 제사&amp;mdash;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위에서 물과 피와 기름으로 정결케 되는 진리를 예표한다. 죄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냥 진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진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 곧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천국 백성의 온전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또한 이 정결 의식이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는 사실도 의미 있다. 첫날 물로 씻고 진영 밖에서 이틀을 더 지낸 뒤, 일곱째 날에 다시 씻고 진영 안으로 들어온다. 그 이후에야 8일째에 제사를 드린다. 정결의 과정은 즉각적이지 않다. 인내와 지속적인 씻음이 필요하다. 자백하는 회개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의 회개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자백하는 회개를 행해야 한다. 그 과정이 쌓일 때 마침내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해지는 날이 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나아만의 요단강 일곱 번 목욕은 오늘 성도의 자백하는 회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병 치유의 가장 생생한 실례가 열왕기하 5장에 기록된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레위기 14장의 정결 의식이 실제로 적용된 사건이며, 동시에 오늘 성도가 어떻게 정결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강력한 모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다. 전쟁에서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여 왕의 총애를 받던 자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나아만은 아마도 뚜껑이나 모자로 항상 나병 부위를 가리고 살았을 것이다. 왕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수 있다. 그 나아만이 어느 날 이스라엘 선지자를 찾아가게 된다. 그의 아내의 종으로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소녀가 있었는데, 그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하 5:3 그 아이가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작은 소녀의 말 한 마디가 나아만의 운명을 바꾸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왔다. 이스라엘 왕은 그 친서를 받고 옷을 찢으며 &amp;quot;내가 하나님이냐 죽이고 살리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느냐&amp;quot;고 탄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amp;quot;그를 내게로 보내소서&amp;quot;라고 했고, 나아만은 병거와 말과 많은 예물을 이끌고 엘리사의 집 문에 이르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엘리사는 직접 나와서 만나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amp;quot;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amp;quot;(왕하 5:10). 나아만은 크게 노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하 5:11-12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노한 마음으로 떠나려 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이 기대한 것은 선지자가 직접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얹어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사람 하나 달랑 보내어 &amp;quot;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amp;quot;는 말만 전했다. 나아만의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요단강은 흙탕물이 흐르는 강이다. 다메섹의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더 깨끗한데 왜 굳이 저 흙탕물 흐르는 요단강에서 씻어야 하는가? 나아만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나아만의 종들이 그를 설득했다. &amp;quot;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라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amp;quot;(왕하 5:13). 어렵게 여기에 왔는데, 시키는 것이 어렵지도 않은데 왜 안 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이다. 이 말이 나아만의 마음을 돌렸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요단강에 내려가 일곱 번 몸을 잠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왕하 5:14 이에 그가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여섯 번까지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일곱 번째 올라오는 순간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해졌다. 이것이 중요하다. 자백하는 회개도 한 번이나 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일곱 번, 수십 번, 수백 번 거듭 자백하며 씻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자백해야 한다. 흙탕물로 보이는 요단강의 물은 사실 산 새의 피가 섞인 핏물을 상징한다. 흐르는 물에서 새를 잡아 그 피가 섞인 물이 요단강이다. 그 물에 일곱 번 잠기는 것이 바로 레위기 14장의 정결 의식이다.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섞인 물로 씻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나아만의 사건을 직접 언급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 안에 있는 나병환자들은 낫지 못했다. 이방인인 나아만만 정결케 되었다. 무엇이 달랐는가? 자신을 낮추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정결 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여 정결 의식을 행한 나아만은 천국에 들어간 자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오늘 성도에게 주는 교훈이다. 자백하는 회개를 통한 정결 의식은 어렵지 않다.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듯이, 우리에게 자백하는 회개를 하라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왜 하지 않는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나아만처럼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할 때,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는 것처럼, 예수의 피로 덮어진 그 은혜 위에서 자백하는 회개를 행하는 것이다. 그 회개가 천국 행위책에서 죄를 씻어 낼 때, 귀신은 합법적으로 나가야 하고, 병은 낫게 되며, 저주는 떠난다. 예수 믿어서 속죄만 받았다고 만족하지 말고, 나아만처럼 요단강으로 내려가 자백하는 회개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은 이방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정결 의식을 행하여 천국에 들어간 자가 되었다. 반면 이스라엘 안에 있는 나병환자들은 그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아 낫지 못했다.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아만처럼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가 그 요단강이다. 그 강에 일곱 번 잠기는 것이 지속적인 자백하는 회개이다. 번거롭고 자존심 상하는 것 같아도, 나아만이 장군의 체면을 내려놓고 요단강에 몸을 잠갔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도 자백하는 회개로 요단강에 내려갈 때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속죄와 정결의 차이, 물&amp;middot;피&amp;middot;기름으로 정결케 되는 원리, 해산한 여인의 정결법이 가르치는 인간의 본질적 부정함, 레위기 13장의 나병이 악성 피부병을 포괄하는 표현, 나병의 세 가지 속성이 죄의 본질을 드러냄, 나병에서 나은 자의 두 가지 정결 의식의 의미, 그리고 나아만의 요단강 일곱 번 목욕이 오늘 성도의 자백하는 회개와 연결됨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속죄는 칭의이고 정결은 곧 성화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속죄를 받은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 고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생각은 레위기의 가르침과 다르다. 레위기는 속죄 이후에 반드시 정결의 과정이 따라야 함을 가르친다. 그 위에서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날마다 정결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는 나병처럼 잠복하며, 전염되고, 감각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죄를 지었을 때 즉시 자백하는 회개로 돌아와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를 늦추는 것은 나병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천국 행위책에서 죄의 기록이 지워질 때, 합법적으로 들어온 귀신은 합법적으로 나가야 한다. 귀신도 법 앞에 굴복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을 때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해진 것처럼, 오늘 성도도 예수의 피와 물과 성령으로 날마다 정결케 되어야 한다. 속죄만으로는 병이 낫지 않고 저주가 떠나가지 않으며, 귀신이 나가지 않는다. 레위기 11장부터 27장까지, 분량 면에서 제사법의 두 배가 넘는 이 정결법의 가르침이 그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준다. 주님이 이 땅에 물과 피를 남겨 두고 기름 곧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려는 뜻이다. 해산한 여인이 반드시 정결 예식을 행해야 했듯, 우리도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정결케 되어야 한다. 나병에서 나은 자가 두 마리의 새로 정결케하는 의식과 4가지 제사를 드렸듯,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지하며 물과 피와 기름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를 믿어 속죄를 받은 것은 이 정결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출발점이다. 속죄 없이 정결 예식을 행할 수 없다. 먼저 예수의 피로 덮어진 자만이 그 피를 근거로 자백하며 씻을 수 있다. 그러나 속죄에서 멈추어서도 안 된다. 속죄로 시작하여 정결로 나아가고, 정결을 통해 성결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보여 주신 신앙의 여정이다.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로 물로 씻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해질 때, 나아만처럼 어린아이의 살처럼 새롭게 회복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레위기 정결법은 오늘 이 시대에도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 앞에 순종하여 자백하는 회개로 날마다 정결케 되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10일(수)&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의 핵심 체계를&amp;nbsp;&lt;strong&gt;속죄와 정결&lt;/strong&gt;이라는 두 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실질적인 깨끗해짐&lt;/strong&g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죄를 덮어주는 &amp;#39;칭의&amp;#39;의 단계를 넘어, 삶 속의 악한 영과 저주를 몰아내기 위해서는&amp;nbsp;&lt;strong&gt;물과 피와 성령&lt;/strong&gt;의 상징이 담긴 정결 예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나병을 단순한 질병이 아닌&amp;nbsp;&lt;strong&gt;죄의 속성 즉&amp;nbsp;&lt;/strong&gt;긴 잠복기, 강한 전염성, 감각의 마비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며, 나만 장군의 치유 과정을 통해&amp;nbsp;&lt;strong&gt;순종과 자백&lt;/strong&gt;이 어떻게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이 설교의 목적은 신앙인이 관념적인 용서에 머물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amp;nbsp;&lt;strong&gt;정결례를 행하는 회개&lt;/strong&gt;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을 회복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2026-05-27(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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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7T21:06:08+09:00</published>
		<updated>2026-05-27T21:57:0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5-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i9yKuuuIAQ 1. 들어가며 정결례는 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결례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정결례를 행하지 않았다. 속죄만 받으면 끝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5-27(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Vi9yKuuuIA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i9yKuuuIA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나눔고딕&#039;, NanumGothic, sans-serif; font-size: 16px; margin: 0; padding: 0; line-height: 1.8; color: #333; } h1 { font-size: 20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text-align: center; margin-top: 20px; } h2 { font-size: 17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50px; margin-bottom: 15px; } .vers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margin: 15px 0; } .signature { margin-top: 30px; } &lt;/style&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정결례는 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결례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정결례를 행하지 않았다. 속죄만 받으면 끝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속죄받았으면 곧 구원받은 것이라고,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그렇게 손쉽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산모가 해산 후에 부정해진 상태에서 정결케 되어 다시 공동체로 회복되는 일, 또 나병환자가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케 되어 공동체로 회복되는 일이 그토록 자세하게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공동체가 곧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합당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정결례를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천국에 갔을 때 격리되는 것이다. 곧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너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고 이스라엘 민족이었고 유대인이었으며 너도 할 일을 받았다 하시되, 네가 영적 나병에 걸렸으되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격리시킨다 하시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 강해 시리즈의 그 첫 시간부터 여덟 번째 시간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법, 그리고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 아홉 번째 시간으로서, 정결법의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하면서 산모의 정결례가 무엇이며 왜 여인이 해산 후에 부정한지, 그 부정 기간이 남아와 여아에 따라 두 배 차이 나는 영적 이유가 무엇이며,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이 무엇이고, 나병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영적 진리와 나만의 이야기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와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먼저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를 깊이 살펴보자.&lt;/p&gt; &lt;p&gt;&amp;nbsp;&amp;nbsp;레위기서의 분량 자체가 이 사실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법 곧 속죄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례에 관한 내용이다. 분량으로 비교해 보라. 정결례의 분량이 속죄의 분량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이는 곧 정결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영적 팩트의 분명한 증거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는가? 한번 믿었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그것이 곧 성화로 자동 연결되며, 성화가 되면 곧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마치 구원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가르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구원은 결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다. 우리의 수많은 노력과 고군분투가 필요한 것이다. 회개가 필요하고, 충성이 필요하고, 땀 흘림이 필요한 것이다.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무엇이 거저 주어지는가? 곧 &amp;#39;속죄&amp;#39;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속죄는 거저 주신 것이다. 왜 거저 주셔야만 했는가? 어느 누가 돈을 받고 우리의 죄를 속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주께서 거저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는 은혜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은혜로 구원이 시작되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천국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정결례이다. 그러기에 속죄만으로 평생 우려먹어서는 안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결정적으로 짚어야 할 영적 비밀이 하나 있다. 곧 마 18장의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비유이다. 거기서 우리는 &amp;#39;용서한다&amp;#39;는 말이 &amp;#39;없앤다&amp;#39;는 말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었으나, 그 종이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자 결국 옥졸들에게 그를 잡아 넣어 다시 옥에 가두었다. 곧 죄를 영원히 없애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덮어 두었던 것이다. 덮어 두었으면 정결케 하고 자신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에 다시 옥졸들에게 잡혀 옥에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18:34-35 그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이미 받았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정결례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빌 2장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 결정적인 영적 비유가 또 하나 있다. 곧 나병환자의 격리이다.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일주일 동안 격리시켜 진찰하라 하셨다. 그 살의 부분에 흰 털이 나고 우묵하게 패는 등 나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병이 들었는데 이 병을 치유하지 않으면 천국에서 격리시킨다. 곧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는 결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영적 팩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정결례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정결례를 공부할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 살았던 모든 것이 인정을 받아 천국에 쑥 들어가서 아름다운 지위와 또 많은 상을 얻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그 답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lt;/p&gt; &lt;h2&gt;3. 산모의 정결 기간이 남아 40일&amp;middot;여아 80일로 두 배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본격적으로 산모의 정결을 살펴보자. 레 12장 1절에서 5절까지를 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고, 8일째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라 하셨다. 그리고 그 여인은 33일을 더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고 하셨다. 곧 7일 더하기 33일이 합쳐 40일이 된다. 반면 여자아이를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고, 그 후 66일을 더 지내야 한다고 하셨다. 곧 14일 더하기 66일이 합쳐 80일이 된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 매우 중대한 두 가지 영적 힌트가 있다. 첫째 힌트는 무엇인가? 곧 8일째에 남자아이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라 하신 것이다. 둘째 힌트는 무엇인가? 곧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따라 부정 기간이 정확히 두 배로 차이 난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먼저 두 배 차이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여자가 부정하다고 더 무겁게 다루신 까닭이 있는가? 그것은 곧 디모데전서 2장에 나오는 영적 팩트와 직결된다. 사도 바울이 이르기를,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후에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딤전 2:13-15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곧 여자가 인류 가운데 최초로 죄를 지은 자라는 영적 팩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에게 두 배의 부정 기간을 두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똑같다. 그러나 의식적이고 원리적인 차원에서 여자가 죄를 먼저 들여왔음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의미로 두 배의 부정 기간을 두신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있다. 캥거루를 보라. 캥거루는 새끼가 손톱만 한 크기로 나와 어미의 주머니로 기어 올라가 그 안의 젖꼭지를 빨면서 자라난다. 그러기에 캥거루는 새끼를 낳을 때 통증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의 해산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동반한다. 만약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캥거루처럼 통증 없이 출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해산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해산의 고통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amp;#39;내가 죄를 지었다, 내가 죄인이다, 그러기에 메시아를 낳아 그 메시아를 통하여 내 죄를 없애야 하리라&amp;#39;라는 평생의 기억이다. 창 3장에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그 영적 진리가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매번 일깨워지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두 번째 영적 의미인 &amp;#39;할례&amp;#39;를 살펴보자. 남자아이가 8일째에 할례를 행한다는 사실이 부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할례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골 2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치기를, 그리스도의 할례란 곧 &amp;#39;육의 몸을 벗는 것&amp;#39;이라고 하였다. 곧 육적인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는 영적 행위가 할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아이가 8일째에 할례를 받는 것은 곧 최선의 회개 행위를 미리 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자는 40일로 감해졌고, 할례를 행할 수 없는 여자는 80일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 또 하나의 영적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고전 11장 3절을 보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곧 그리스도-남자-여자라는 영적 질서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 자기 머리 되는 남자에게 먼저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함께 죄를 지었다. 곧 영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영적 질서를 평생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산모의 부정 기간이 남녀에 따라 두 배 차이가 나도록 정해진 것이다.&lt;/p&gt; &lt;h2&gt;4. 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한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고 하신 그 근본적인 영적 이유를 살펴보자.&lt;/p&gt; &lt;p&gt;&amp;nbsp;&amp;nbsp;사실 산모의 부정에는 육체적인 이유와 영적인 이유가 함께 있다. 먼저 육체적인 이유부터 살펴보자. 여자가 해산을 하게 되면 골반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빨리 벌어지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벌어지나, 어떻든 골반이 충분히 벌어져야 아이가 나올 수 있다. 그러기에 12시간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벌어진 골반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정확히 40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산후조리 기간에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주의 사항이 있다. 첫째,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지 말아야 한다. 추우면 옷을 싸 입게 되고, 그러면 벌어졌던 뼈가 잘못된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둘째, 찬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출산 시 아이가 영양분을 빼앗아 가서 산모의 이가 약간 헐렁해진 상태인데, 이때 찬물을 마시면 이가 엉뚱한 위치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기에 여자가 남자보다 합죽이가 많은 것이다. 셋째, 찬물로 샤워하지 말아야 한다. 찬물로 샤워하면 벌어진 뼈가 억지로 잘못된 위치로 굳어지게 된다. 항상 미지근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까닭에 산모는 40일 동안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성소에 들어가지 말라 하신 말씀도 이러한 육체적 이유와 영적 이유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더 깊은 영적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여자가 인류 가운데 최초로 죄를 지었다는 사실과, 그 결과 해산의 고통을 평생 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해산의 고통을 겪을 때마다 여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그 깨달음 속에서 메시아를 낳아 죄를 없애야 한다는 영적 갈망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해산의 고통을 두신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창 3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셨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하셨다. 곧 해산의 고통과 여자 후손의 약속이 한 흐름 가운데 주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서 느끼는 영적 깨달음이 이것이다 - &amp;#39;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를 지었다, 그러기에 이 고통이 내게 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면 이 죄가 없어지리라&amp;#39;라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영적 의미가 산모의 부정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는 것은 그 여인이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의 죄가 거기서 시작되었음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영적 표지인 것이다.&lt;/p&gt; &lt;h2&gt;5.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더 깊은 영적 비밀로 들어가자. 곧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이다. 이 부분은 사실 어그스틴(아우구스티누스)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였고, 칼빈도 풀지 못한 깊은 비밀이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비밀을 풀어 보이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먼저 막 7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말씀을 보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amp;#39;속&amp;#39;이 무엇인가? 곧 사람의 육체 속이다. 그 육체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이 자꾸 나오는가? 사도 바울도 이 깊은 비밀과 씨름하였다. 롬 7장 18절에서 20절까지를 보라.&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롬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이를 &amp;#39;내 속에 거하는 죄&amp;#39;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 &amp;#39;죄&amp;#39;를 인격화시키면 그것이 곧 무엇인가? 바로 &amp;#39;귀신&amp;#39;이며 &amp;#39;뱀&amp;#39;이다. 곧 우리 육체 속에 귀신과 뱀이 들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음란의 영이 들어 있고, 교만의 영이 들어 있고, 우상숭배의 영이 들어 있어 그 영들이 결국 우리 입과 행위를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영들은 언제부터 우리 안에 있었는가?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이다. 자궁 안에 있는 영들이 임신되자마자 태아의 육체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그 속에 뱀과 귀신들이 가득 들어찬 상태로 태어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어그스틴이 발견한 &amp;#39;원죄(Original Sin)&amp;#39;의 정체이다. 어그스틴은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발견했는가?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이다. 둘째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첫째 아이가 자기 젖을 먹는다고 둘째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막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 악한 본성이 어디서 나오는가? 어그스틴은 거기서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이 곧 &amp;#39;Original Sin&amp;#39; - 대문자로 시작하는 그 원죄 교리의 시작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어그스틴도 이 원죄가 &amp;#39;어떻게&amp;#39; 전달되는지는 풀지 못하였다. 만약 모든 인류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면, 예수님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기에 어그스틴은 이 부분을 끝까지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누가복음 1장에 그 답이 분명하게 들어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하였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곧 예수님께만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히 임하셔서 자궁 안의 영들이 태아 예수님께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것이다. 이는 오직 예수님께만 베푸신 특별한 영적 조치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른 모든 인류는 어떠한가? 누가 그것을 막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는 영들이 자녀가 잉태되는 그 순간 그대로 자녀의 육체에 빠글빠글 기어 들어간다. 곧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죄된 본성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죄가 전달되는 영적 메커니즘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우리 자식들이 힘들게 사는 것이다. 조상이 제사를 많이 지내면 후손이 신앙을 거부하게 되고, 무당이 많이 들어간 가문이면 우상숭배의 영이 후손에게 들어가고, 억지로 살인을 많이 한 가문이면 후손이 조현병에 걸려 망가지는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 영들이 들어 있는데, 다만 발현되지 않다가 때가 되면 발현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창 3장 14절에서 뱀에게 이르시되 너는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다. 곧 뱀이 흙을 먹고 산다는 영적 팩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니, 뱀들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여자가 해산 후에 부정하다고 하신 그 깊은 영적 이유가 비로소 풀린다. 곧 여자가 죄를 먼저 들여왔고, 그 죄가 곧 영(귀신과 뱀)으로 그 자궁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잉태되는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인류가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적 사슬을 평생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산모의 부정 기간이 주어진 것이다.&lt;/p&gt; &lt;h2&gt;6. 산모 정결 기간 40일과 7일이 갖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산모 정결 기간의 숫자 자체가 갖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두 가지 숫자가 결정적이다. 곧 &amp;#39;7일&amp;#39;과 &amp;#39;40일&amp;#39;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먼저 &amp;#39;7일&amp;#39;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왜 처음 부정 기간이 7일인가? &amp;#39;7&amp;#39;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함과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6일에 만드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다. 곧 7은 완성의 숫자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7일 동안 부정하다는 것은 &amp;#39;온전히 부정하다&amp;#39;는 의미이다. 부분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무서운 영적 선언이다. 이전 시간에 살펴본 레 11장에서는 &amp;#39;먹어서 부정해지거나 접촉해서 부정해지는&amp;#39; 부분적 부정이었으나, 여기 산모의 부정과 후에 살펴볼 나병환자의 부정은 &amp;#39;존재 자체의 부정&amp;#39;이다. 우리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죄로 인하여 더럽혀졌다는 영적 팩트를 7일이라는 숫자로 표현하신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그 더러움을 없애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안 된다. 단지 어떤 의식으로 깨끗해질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더럽혀졌기에 보혈로만 정결케 될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제 &amp;#39;40일&amp;#39;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 7일 뒤에 33일을 더하여 40일이 되어야 산혈이 깨끗해진다고 하셨다. 왜 33일을 더하여 40일을 채우게 하셨는가? 그것은 곧 &amp;#39;40&amp;#39;이 인간 고통의 숫자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왜 &amp;#39;40&amp;#39;을 인간 고통의 숫자로 정하셨는가? 그것은 민 14장의 정탐꾼 사건에서 시작된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 정탐꾼이 40일 동안 정탐한 후에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 40일을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통받게 하신 것이다. 거기서부터 &amp;#39;40&amp;#39;이 인간 고통의 숫자가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민 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까닭에 모세도 40일 동안 시내 산에 머물렀고,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으며, 산모도 40일 동안 부정 기간을 보내는 것이다. 곧 회개와 정결의 기간이 단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기한이 있다는 영적 진리가 거기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 매우 중요한 영적 적용이 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도 채워야 할 기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빨리 끝나고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린다. 왜 그러한가? 사람마다 죄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상의 우상숭배가 많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만큼 죄의 분량이 많기에 회개의 기간도 길고 회개의 횟수도 많아야 한다. 반면 3대째 4대째 신앙을 지켜 온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죄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회개의 기간이 짧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본 종도 그 경험을 직접 했다. 4대째 우상숭배를 많이 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회개해도 회개해도 좀처럼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졸리고 또 졸려서 회개 기도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3대째 신앙을 지킨 집안 출신의 어느 분은 단 120분의 회개로 권초염이 사라지고 시력이 좋아져 안경을 벗을 정도였다. 곧 회개의 기간과 분량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amp;#39;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amp;#39;라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조상의 죄가 무거웠고, 그 죄값을 자신의 시대에 와서 받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결국 7일은 우리 존재 자체의 부정을 가르치고, 40일은 회개의 기한이 차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두 숫자가 합쳐져 산모의 정결 기간을 이루는 것이다.&lt;/p&gt; &lt;h2&gt;7.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를 살펴보자. 곧 기한이 차고 난 후의 제사 드림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레 12장 6절에서 7절까지를 보라. 아들이나 딸의 정결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1년 된 어린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문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고 하였다.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고 하였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6-7 아들이나 딸을 위하여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는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 두 가지 제사가 함께 등장한다. 곧 &amp;#39;번제&amp;#39;와 &amp;#39;속죄제&amp;#39;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amp;#39;번제&amp;#39;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이다. 1년 된 어린양을 드리라 하신 까닭이 무엇인가? 1년 된 양은 가장 성숙하면서도 가장 깨끗하고 흠 없는 시기의 양이다. 예수님께서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33년 반에 돌아가신 것이 이 영적 원리와 맞닿아 있다. 곧 가장 정한 시기의 어린양으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 - 그것이 번제의 의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amp;#39;속죄제&amp;#39;는 무엇인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드리게 하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하시리라는 영적 표지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고 8절에 매우 깊은 영적 자비가 담겨 있다. 어떤 여인이 어린양을 바칠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삼으라 하셨다. 곧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배려에 결정적인 영적 의미가 있다. 곧 정결례는 빈부와 학식과 남녀와 가문의 차이를 막론하고 반드시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한다는 영적 선언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무식한 자는 무식한 자대로 자기 형편에 맞게 반드시 정결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정결례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한다. 부자라고 더 많이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고 덜 회개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분량대로 회개해야 한다. 1대째 신앙이든 3대째 신앙이든, 본 종처럼 4대 우상숭배를 한 집안의 후손이든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아니하고는 정결케 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속죄만 받고 정결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계속 더러운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더러운 자가 어떻게 흰 두루마기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결국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거나 성 밖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는 일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렇게 산모의 정결례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기한이 차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완전한 정결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된다. 곧 회개의 기한을 채우고, 헌신과 속죄의 제사 곧 그리스도의 보혈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lt;/p&gt; &lt;h2&gt;8. 나병을 통해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와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마지막으로 나병을 간략히 살펴보자. 나병에 대한 본격적인 강해는 다음 시간에 다루겠지만, 그 전체 흐름을 먼저 잡아 두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나병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amp;#39;죄의 속성을 가르치는 가장 탁월한 영적 재료&amp;#39;이다. 죄가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죄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 무엇인지, 죄의 핵심 세력이 무엇을 못 하게 만드는지 - 이 모든 것을 나병이 우리에게 알려 준다.&lt;/p&gt; &lt;p&gt;&amp;nbsp;&amp;nbsp;나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격리된다. 일주일 동안 가두어 놓고 진찰한 후에, 그 살에 흰 털이 나고 우묵하게 패는 등 나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영적 나병에 걸린 자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천국에서 격리되어 성 밖으로 보내진다는 영적 팩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나병에 걸렸을 때 빨리 회개하여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나병을 고쳐 주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곧 누가복음 4장 27절의 &amp;#39;나만&amp;#39;이라는 인물이다.&lt;/p&gt; &lt;p class=&quot;verse&quot;&gt;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나만은 누구인가?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수리아 곧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다. 베나닷 왕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러나 나병에 걸려서 늘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갑옷으로 온몸을 가리며 살아야 했다. 왕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를 가장 신임하며 총애하였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어느 날 왕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한 여종이 이스라엘 나라에 병을 고치는 선지자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왕은 엄청난 많은 예물을 주어 나만을 이스라엘로 보냈고, 결국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나만은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처방을 받았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여 거절하였으나, 그 부하들의 권면을 받고 결국 그대로 행하여 일곱 번 만에 깨끗함을 얻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일이 더욱 감동적이다. 나만은 자신을 고쳐 준 그 나라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기에 이스라엘에 머물 수 없는 처지였다. 자기 왕인 베나닷 왕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보내 주었기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기에 나만은 이스라엘 땅의 흙을 두 노새에 실을 만큼 가져갔다. 무엇을 위함인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도 그 흙의 냄새를 맡으며 일평생 이 나라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함이다. 자신은 비록 아람 나라의 신민이지만 이스라엘 나라 사람처럼 살겠다는 결단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나만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자기가 왕을 모시고 림몬 신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왕이 부축을 받아야 절을 할 수 있으므로 자기도 부득이 함께 몸을 굽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자기를 용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엘리사는 이를 묵시적으로 허용하였다. 어쩔 수 없는 형식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나만의 마음에는 림몬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부축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 후 나만은 어떻게 되었는가? 놀라운 영적 팩트가 있다. 곧 나만이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기 부하들이 아프면 그가 안수하여 병을 고쳐 주었다. 이는 본 종이 영적 세계에서 직접 확인한 영적 광경이다. 나만은 그렇게 부하들을 돌보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갔다.&lt;/p&gt; &lt;p&gt;&amp;nbsp;&amp;nbsp;더욱 감동적인 사실은 천국에서 보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만을 영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의 생명책에 &amp;#39;흙&amp;#39;이 그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일평생 그 흙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고쳐 주신 그 나라, 그 교회, 그 종을 잊지 않고 산 흔적이 천국의 생명책에 흙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한 사람 나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첫째, 죄와 영적 나병에 걸린 우리도 회개하고 정결케 되어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치유받은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부득이한 형식에 매이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마음에 한 분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치유받은 자는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나병의 본격적인 강해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가도록 하겠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지금까지 본 시간을 통해 정결법의 둘째 시간으로서,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amp;middot;정결례를 살펴보았다. 정결례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와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를 살펴보았고, 산모의 정결 기간이 남아 40일&amp;middot;여아 80일로 두 배 차이 나는 영적 이유를 살펴보았으며, 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한 영적 이유 곧 죄의 시초와 해산의 고통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 곧 자궁 안의 영들이 잉태 시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영적 팩트를 살펴보았고, 산모 정결 기간 40일과 7일이 갖는 영적 의미 곧 존재 자체의 부정과 인간 고통의 숫자를 살펴보았으며, 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 곧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병을 통해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와 누가복음 4장 27절의 나만의 이야기 - 곧 흙을 가져가 일평생 기억하고 치유의 은사를 받아 그 흙이 천국 생명책에 새겨진 영적 광경을 살펴보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우리는 정결례가 결코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속죄만으로 우려먹는 종교개혁 신학의 한계를 분명히 분별하고, 회개와 정결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구원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기에 우리의 회개와 충성과 땀 흘림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남아 40일과 여아 80일이라는 산모 정결 기간의 두 배 차이가 가르치는 영적 질서를 깊이 새겨야 한다. 곧 그리스도-남자-여자라는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고,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에 해당하는 회개의 행위를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자가 해산 후 부정하다고 하신 그 영적 이유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곧 인류의 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자녀에게 전달되는지를 분명히 알아, 우리 후손에게는 더 이상 죄된 영을 물려주지 않도록 회개에 몸부림쳐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영적 메커니즘 곧 자궁 안의 영들이 잉태 시 자녀의 육체에 빠글빠글 기어 들어간다는 영적 팩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도 자기 힘으로는 죄 없는 인간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가 씻기고 우리 후손도 회개로 풀려나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7일과 40일이 갖는 영적 의미를 분명히 익혀야 한다. 7일은 우리 존재 자체의 부정을 말하고, 40일은 회개의 기한이 차야 함을 말한다. 사람마다 죄의 분량이 다르기에 회개의 기간도 다르다. 그러기에 &amp;#39;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amp;#39;라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 분량을 다 채울 때까지 끝까지 회개에 매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산모 정결례의 두 번째 단계인 제사 드림의 영적 의미를 새겨야 한다. 번제와 속죄제 곧 헌신과 죄 용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빈부와 학식과 남녀와 가문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형편대로 반드시 정결례를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나만의 이야기에서 깊은 영적 교훈을 받아야 한다. 영적 나병에서 치유받은 우리도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부득이한 형식에 매이는 경우라도 마음에 한 분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며, 치유받은 자로서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정결례의 깊은 영적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 날마다 회개하며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 하늘의 흰 두루마기를 입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 주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ignature&quot;&gt;2026년 05월 27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title&gt;&lt;/title&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html, 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85; color: #111; } .main-title { margin: 0 0 1em 0; padding: 0; font-size: 17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 .subheading { margin: 0 0 0.9em 0; padding: 0; font-size: 17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 .bodypara { margin: 0 0 0.9em 0; padding: 0; font-size: 16px; } .scripture { margin: 0 0 0.9em 0; padding: 0;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date, .count { margin: 0 0 0.2em 0; padding: 0; font-size: 16px; } &lt;/style&gt; &lt;div class=&quot;main-title&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main-title&quot;&gt;---------------------------------&lt;/div&gt; &lt;div class=&quot;main-title&quot;&gt; &lt;p&gt;2026-05-27(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레위기강해(09)] 정결법(02)산모의 정결례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01)(레12:1~14:5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Vi9yKuuuIAQ&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 dtmseditor-youtube-emb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i9yKuuuIA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1. 들어가며&lt;/div&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강해 아홉 번째 시간은 정결법의 두 번째 흐름을 다룬다. 레위기 11장이 먹는 것과 접촉하는 것을 통해 부정의 문제를 보여 주었다면, 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를 통해 인간 존재 자체가 죄 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어지는 레위기 13~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를 통해 죄가 어떻게 드러나고 퍼지며, 어떻게 격리와 회복의 절차를 거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순한 위생 규정이 아니라 속죄받은 성도가 반드시 정결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영적 법칙을 가르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많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속죄받았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위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레위기 1~10장은 제사와 제사장의 직무를 통해 속죄의 길을 보여 주고, 레위기 11장 이후는 정결의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서는 길을 보여 준다. 속죄는 예수님의 피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스스로 자기 죄를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속죄받은 자가 계속 더러움 가운데 머물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속죄받은 자는 정결케 되어야 하고, 정결케 된 자는 공동체 안으로 회복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에서 &amp;ldquo;속죄하다&amp;rdquo;는 히브리어 카파르(kāpar)와 연결되며, 그 기본 의미는 덮고 가리며 속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죄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피가 없이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 처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덮임을 받은 자가 계속 죄와 귀신의 더러움 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 사람은 정결한 공동체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속죄와 정결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속죄는 시작이고, 정결은 그 속죄를 받은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는 과정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어로 &amp;ldquo;정결하다&amp;rdquo;는 타헤르(tāhēr)이고, &amp;ldquo;부정하다&amp;rdquo;는 타메(tāmē)이다. 타메의 상태는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고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타헤르의 상태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공동체 안에서 합당하게 살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정결례는 외적인 의식에 그치지 않고, 회개와 회복과 천국 준비의 모형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 타락, 여자의 후손 약속, 예수님의 성육신과 피 흘림, 회개와 정결, 그리고 천국 성 안 입성으로 이어지는 시간표를 가진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산모의 정결례는 해산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건 속에서도 인간의 죄 문제를 보게 한다. 나병의 정결례는 피부에 드러난 병증을 통해 죄의 전염성과 격리, 그리고 회복의 길을 보게 한다. 이 둘은 모두 &amp;ldquo;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가&amp;rdquo;라는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의 예고를 통해 속죄받은 성도가 왜 반드시 정결의 길, 곧 회개의 길을 걸어 공동체와 천국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2. 왜 속죄만으로는 정결이 완성되지 않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구조를 보면 속죄와 정결은 구별되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속죄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피로 길을 여는 사건이다. 그러나 정결은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이 더러움을 벗고 하나님 백성답게 회복되는 과정이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amp;ldquo;나는 예수님의 피로 속죄받았으니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amp;rdquo;는 안일한 결론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속죄받은 사람이 정결케 되어야 함을 계속해서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왕은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지만, 그 종이 자신에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왕은 다시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다(마 18:32~35). 이것은 한 번 은혜를 받았으면 그 뒤의 삶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속죄를 받은 자는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18:32~35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속죄가 은혜라는 사실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어떤 죄인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그 은혜가 성도의 방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된 은혜는 회개와 정결을 낳는다. 은혜를 받은 자가 계속 더러움 속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그는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든다. 속죄만 붙들고 정결을 거부하는 것은 레위기 전체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일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구원은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은 회개와 순종과 충성과 인내 속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amp;ldquo;이미&amp;rdquo;와 &amp;ldquo;아직&amp;rdquo;의 긴장이다. 성도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천국에서 받을 최종 판정과 상급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옷을 빨고, 흰 세마포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계 22:1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정결례는 바로 이 지점을 보여 준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지 않으면 성소에 나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 온전한 삶을 회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례는 구약의 낡은 의식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늘 성도가 회개로 더러움을 씻고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서야 한다는 복음의 그림자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속죄의 피를 흘리셨고, 성도는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함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3. 정결례는 왜 공동체 회복의 관문인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환자의 정결례는 모두 개인의 내면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결은 공동체와 연결된다. 부정한 사람은 일정 기간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물을 만지지 못했다. 나병 환자는 병증이 확인되면 진 밖에 머물러야 했다. 이것은 부정이 개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적인 더러움도 마찬가지다. 죄와 귀신의 역사가 처리되지 않으면 개인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받는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이 정결 기간이 차기 전에는 성물도 만지지 말고 성소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다(레 12:4). 이는 여인을 낮추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는 정하신 질서와 기한이 있음을 보여 주는 규정이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를 영원히 버리기 위해 정결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다시 깨끗하게 하여 공동체 안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정결례를 주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4 그 여인은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3장의 나병 규정은 이 원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제사장은 병증을 살피고, 필요하면 이레 동안 가두어 다시 진찰했다. 퍼짐이 확인되면 나병으로 판단했고, 그 사람은 격리되었다. 이것은 죄의 속성이 전염성과 확산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그림자다. 죄는 감추면 사라지지 않는다. 귀신의 역사는 방치하면 약해지지 않는다. 드러내어 진단받고, 회개하여 정결케 되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ldquo;진영 밖&amp;rdquo;은 단지 장소의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와 성소와 예배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오늘날 성도에게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실제적 관계와 천국 공동체의 최종 질서로 연결된다. 이 땅에서 회개로 정결케 되지 않은 자는 천국의 성 안에 합당하게 들어갈 준비를 하지 못한 자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일 수 있고, 종교적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결케 되지 않은 더러움이 남아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정결례는 공동체 회복의 관문이다. 죄인은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하고, 용서받은 자는 회개로 더러움을 씻어야 하며, 정결케 된 자는 하나님 공동체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의 질서다. 교회는 죄인을 정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이 정결케 되어 회복되는 곳이다. 그러나 회복은 죄를 덮어 둔 채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복은 진단과 회개와 정결을 통해 이루어진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놓치면 성도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도 마지막에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예배를 드렸고 봉사도 했지만, 더러움을 씻지 않았다면 흰 세마포를 입은 자로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례를 공부하는 이유는 구약의 옛 절차를 지식으로 알기 위함이 아니라,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기 위함이다. 회개는 성도의 마지막 관문이며, 정결은 공동체 회복의 표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4. 산모의 부정은 인간의 원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이것이다. 여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왜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해산은 생명의 출산이고 축복의 사건인데, 왜 하나님은 정결 기간을 명하셨는가. 이것을 단순히 피의 문제나 위생의 문제로만 보면 본문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레위기 12장은 해산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로 태어나는지를 보게 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 깨끗한 존재가 아니라 죄의 영향을 받은 존재로 태어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창세기 3장은 이 문제의 뿌리를 보여 준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도 그 열매를 먹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말씀하셨고, 동시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복음의 씨앗을 주셨다(창 3:15~16). 그러므로 해산의 고통은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죄 아래 떨어졌다는 사실과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게 하는 표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창 3:15~16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에서 아담과 하와의 질서를 언급한다.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에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고 말한다(딤전 2:13~15). 이 말씀은 여자를 멸시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창조 질서와 타락의 질서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는 인류에게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적 표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딤전 2:13~15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사람 속에서 나오는 악이라고 말씀하셨다(막 7:20~23). 이것은 레위기 11장의 음식법을 폐기하는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그 음식법이 가리키던 더 깊은 실체를 밝히신 말씀이다. 사람의 더러움은 입으로 들어간 음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육체 속에 자리 잡은 죄의 본성과 악한 영의 역사에서 나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막 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로마서 7장은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든다. 바울은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것이 &amp;ldquo;내 속에 거하는 죄&amp;rdquo;라고 말한다(롬 7:18~20). 여기서 죄는 단순한 행위 목록만이 아니다. 죄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세력이다. 동탄명성교회가 귀신론에서 강조해 온 것처럼, 이 죄를 인격화하여 보면 뱀과 귀신의 역사와 연결된다.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죄와 귀신의 역사가 육체 안에 자리 잡고, 그것이 때가 되면 생각과 감정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롬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산모의 부정은 산모 개인을 정죄하려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사건 속에 이미 죄의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아이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그 아이도 아담 안에서 죄의 영향을 받는 존재로 태어난다. 산모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 &amp;ldquo;인간은 죄 아래 태어나며, 메시아의 속죄와 회개의 정결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amp;rdquo;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2장이 보여 주는 영적 팩트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진리를 알면 부모의 사명도 달라진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환경만 주는 사람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 속에 역사하는 죄와 귀신의 영향을 알고, 회개와 말씀과 기도로 자녀를 정결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자녀의 문제를 성격이나 환경으로만 보면 근원을 놓친다. 성경은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모와 성도는 자기 속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죄와 귀신의 사슬에서 풀려나도록 정결의 길을 열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5. 남자아이 40일과 여자아이 80일은 무엇을 뜻하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은 남자아이를 낳았을 때와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의 정결 기간을 다르게 말한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칠 일 동안 부정하고, 삼십삼 일을 더 지나 산혈이 깨끗하게 된다. 모두 합하면 사십 일이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두 이레, 곧 십사 일 동안 부정하고, 육십육 일을 더 지나야 한다. 모두 합하면 팔십 일이다(레 12:2~5). 왜 두 기간이 다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남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죄와 회개와 할례의 질서를 따라 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2~5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 아이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 아이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함 같이 두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나야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먼저 칠 일은 한 주기의 완전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칠은 완전한 한 주기를 상징하는 수로 자주 사용된다. 해산한 여인이 칠 일 동안 부정하다는 것은 인간 존재가 부분적으로만 더럽다는 뜻이 아니라,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의 실존 전체가 정결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나병 환자의 정결 절차에서도 이레라는 기간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정의 문제를 온전한 한 주기의 관점에서 다루신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사십 일은 성경에서 시험과 고난과 준비의 기간으로 자주 나타난다. 모세는 사십 일 동안 시내산에 있었고,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예수님은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시험을 받으셨다(마 4:1~2). 그러므로 남자아이를 낳은 여인의 사십 일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인간이 회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함을 보여 준다. 정결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결에는 기한이 있고, 회개에는 견딤이 있으며, 회복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과정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육체적 지혜도 담겨 있다. 해산 후 산모에게는 몸이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다. 레위기 12장은 여인이 성소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기간을 말함으로, 산모가 무리하지 않고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보호하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오늘 성도는 이 규정을 율법주의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과 회복의 시간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영적인 정결만 말하며 육체를 함부로 쓰는 것도 지혜가 아니다. 몸의 회복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일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 왜 팔십 일이 주어졌는가. 설교의 핵심 해석은 여기에 있다. 남자아이에게는 여덟째 날 할례가 행해졌다. 할례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겠다는 표이다. 남자아이에게는 출생 후 여덟째 날에 회개의 표지가 새겨진다. 그러나 여자아이에게는 육체에 할례가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레위기 12장의 두 배 기간은 여자아이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하와를 통해 죄가 들어온 창세기의 기억과 할례의 표지가 없다는 점을 함께 반영한 의식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남자에게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아담도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었다. 남자도 죄 아래 있고, 남자도 귀신의 역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질서와 타락 질서를 가르치기 위해 해산의 정결 기간을 다르게 명하셨다. 성도는 이 차이를 차별로 읽지 말고, 죄의 깊이와 회개의 필요성을 더 깊이 깨닫는 표지로 읽어야 한다. 핵심은 남녀가 모두 정결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십 일과 팔십 일은 회개의 분량과도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회개를 시작하자마자 빨리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씨름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다. 사람마다 조상의 죄, 우상숭배의 분량, 육체 속에 자리 잡은 악한 영의 세력, 살아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결에는 기한이 있다. 성도는 자기 회개의 기간이 길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의 길을 끝까지 통과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6. 할례는 왜 육체를 벗는 회개의 표인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의 핵심 힌트 중 하나는 여덟째 날의 할례다. 하나님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여덟째 날 그 포피를 베라고 하셨다(레 12:3). 이 명령은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표와 연결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그 후에 할례를 명하심으로, 육체의 방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라는 표를 주셨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할례는 히브리어 물(m&amp;ucirc;l), 곧 베다, 잘라내다와 연결된다. 헬라어로는 페리토메(peritomē)라 하며, 둘레를 잘라낸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할례의 참뜻은 단순한 육체 절개가 아니다. 그것은 육체를 의지하던 삶을 잘라내고, 죄된 본성을 따라 살던 길을 끊어내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겠다는 회개의 표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구약의 외적 표지였지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을 벗는 영적 할례로 완성된다(골 2: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골로새서의 말씀은 할례를 정확하게 해석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손으로 행하는 외적 절개가 아니라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와 직결된다. 회개는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로서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적 회개는 마음의 후회만이 아니다. 육체를 따라 살던 삶을 끊고, 죄와 귀신의 지배를 거절하며, 성령의 길로 돌아서는 실제적 돌이킴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회개의 표이고, 회개는 신약의 정결례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성도는 창조 질서도 함께 보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amp;ldquo;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amp;rdquo;이라고 말했다(고전 11:3). 하와가 뱀의 말을 들었을 때 남편에게 묻지 않고 선악과를 먹은 일은 창조 질서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아담이 하와를 따라 먹은 일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씀보다 사람을 앞세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죄는 단지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은 문제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할례는 바로 그 뒤집힌 질서를 다시 세우는 표다. 육체가 머리가 되는 삶, 욕망이 주인이 되는 삶, 귀신이 생각을 끌고 가는 삶을 잘라내야 한다. 남자에게 할례가 주어졌다는 것은 남자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남자는 가정과 교회에서 영적 책임을 져야 할 존재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남자가 회개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물러나며, 가정의 영적 전쟁을 아내에게만 맡긴다. 이것은 성경의 질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육체의 핑계를 끊고 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회개와 천국복음은 이 지점에서 할례의 영적 의미와 만난다. 회개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일이 아니다. 회개는 육체 안에 자리 잡은 죄와 귀신의 역사를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로 끊어내는 일이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와 음란과 폭력과 거짓과 교만의 영을 그대로 둔 채 천국을 준비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의 몸을 벗는 것이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속의 죄를 드러내고 잘라내는 회개의 길을 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할례는 남자아이에게만 주어진 옛 의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할례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회개의 표지로 완성된다. 육체를 따라 살던 자가 영을 따라 살고, 귀신에게 끌려가던 자가 성령께 순종하며, 조상의 죄에 매여 있던 자가 예수님의 피로 풀려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다. 이 할례가 없으면 정결도 없고, 정결이 없으면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삶도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7. 번제와 속죄제는 정결의 완성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2장은 정결 기간이 찬 뒤에도 여인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말한다. 기한이 찼다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가져가야 했다.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했고, 그때 산혈이 깨끗하게 되었다(레 12:6~7). 여기서 정결의 완성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피로 받는 속죄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6~7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번제는 자기 전부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다. 번제물은 일부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불살라져 하나님께 드려진다. 이것은 정결케 된 자가 이제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드려야 함을 보여 준다. 회개는 죄만 버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자기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더러움에서 빠져나왔지만 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아직 정결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속죄제는 죄가 반드시 피로 처리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산모에게도 속죄제를 명하셨다. 이것은 해산이 죄라는 뜻이 아니라, 해산을 통해 드러난 인간 존재의 부정과 죄의 문제를 피로 처리해야 함을 뜻한다. 성도는 아무리 깊이 회개해도 자기 눈물로 죄를 씻을 수 없다. 눈물은 회개의 표현일 수 있지만 죄를 속하는 능력은 없다. 죄를 속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히 9:2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가난한 여인을 위한 길도 열어 주셨다. 어린 양을 바칠 힘이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게 하셨다(레 12:8). 이것은 정결례가 부자에게만 주어진 길이 아님을 보여 준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하고, 누구든지 정결케 되어야 한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정결을 미룰 수 없고,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회개를 피할 수 없으며,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정결을 생략할 수 없다. 정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레 12: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정결을 반드시 요구하시지만, 정결의 길을 막아 놓지 않으신다. 어린 양을 드릴 수 없는 자에게는 비둘기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회개의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우상숭배가 많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삼대째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많이 배운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영적 신분과 배경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 속에 죄가 있고 귀신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번제와 속죄제는 정결의 완성을 보여 주는 두 기둥이다. 하나는 &amp;ldquo;내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amp;rdquo;라는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amp;ldquo;나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만 용서됩니다&amp;rdquo;라는 믿음이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 피를 말하면서 헌신이 없으면 값싼 은혜가 되고, 헌신을 말하면서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 의가 된다. 참된 정결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씻고, 씻김받은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데서 완성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의 예배와 헌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술로만 회개하고 삶을 드리지 않으면 정결의 열매가 약하다. 반대로 열심히 봉사하지만 예수님의 피 앞에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그 열심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제사가 되기 어렵다. 성도는 속죄제와 번제의 질서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 몸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8. 나아만의 치유는 나병 정결례의 소망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번 설교의 본론은 레위기 12장의 산모 정결례에 집중되어 있지만, 레위기 13~14장의 나병 정결례는 반드시 이어서 보아야 할 주제다. 히브리어 차라아트(tsāra&amp;lsquo;at)는 오늘날 의학적 의미의 한센병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피부의 병증뿐 아니라 의복과 집에 나타나는 재앙성 부정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나병은 죄의 속성을 보여 주는 탁월한 모형이다. 죄는 피부에 번지는 병증처럼 드러나고, 퍼지고, 공동체를 위협하며, 반드시 진단과 격리와 정결의 절차를 요구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나병 환자는 제사장의 진단을 받아야 했다. 병증이 애매하면 이레 동안 격리되어 다시 살핌을 받았다. 이것은 죄의 문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도 있고, 동시에 죄가 분명해졌을 때는 단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뜻도 있다. 영적 질병은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겉으로 옷을 입고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속에서 죄와 귀신의 병증이 퍼지고 있다면 결국 드러난다. 나병의 진단은 성도의 자기 점검을 요구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엘리사 때의 나아만을 언급하셨다.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지만 깨끗함을 얻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고 하셨다(눅 4:27). 나아만은 이방 나라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는 지위와 명예가 있었지만 나병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습은 겉으로는 성공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죄와 부정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이 고침받은 길은 단순했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다. 처음에 나아만은 분노했다. 자기 생각에는 선지자가 직접 나와 손을 흔들고 병을 고쳐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의 교만을 꺾는 방식이었다. 나아만은 결국 종들의 권면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고,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었다(왕하 5:14). 여기에서 정결의 길은 인간의 자존심과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임이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의 치유는 나병 정결례의 소망을 보여 준다. 이방인이라도 말씀에 순종하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깊은 부정 가운데 있던 사람도 하나님이 고치시면 회복될 수 있다. 나병 환자처럼 격리될 수밖에 없는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과 회개의 순종 안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만 나아만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 체면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몸을 씻는 순종이었다. 오늘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피와 회개의 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나아만은 고침받은 후에도 중요한 고백을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흙을 싣고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부터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번제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왕하 5:17). 이것은 단순한 감동의 표현이 아니다. 나아만은 자신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병이 낫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고침받은 자는 이제 누구를 섬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결케 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class=&quot;vers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왕하 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나아만 이야기는 레위기 13~14장의 나병 정결례를 향한 문을 열어 준다. 나병은 죄의 전염성과 격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지만, 나아만은 그 가운데서도 회복의 길이 있음을 보여 준다. 죄가 아무리 깊어도, 귀신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낮아지고 회개하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성도는 자기 병증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씻겨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가 만나는 지점이다. 산모의 정결례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결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고, 나병의 정결례는 살아가며 드러나는 죄의 병증도 반드시 진단받고 회복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처음부터 정결이 필요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정결이 필요하며, 마지막 천국 입성 앞에서도 정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회개는 어느 한 시기의 사건이 아니라 성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subheading&quot;&gt;9. 나오며&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산모의 정결례와 나병 정결례의 예고를 통하여 속죄받은 성도가 왜 반드시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 12장은 해산한 여인의 정결례를 통해 인간이 죄 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레위기 13~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례를 통해 죄가 드러나고 퍼지고 격리되며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속죄받은 성도가 회개와 정결의 삶으로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영적 원리를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속죄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속죄받은 자는 그 은혜를 핑계 삼아 더러움 속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속죄는 구원의 시작이고, 정결은 천국 공동체에 합당한 자로 회복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죄의 본성과 귀신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자기 회개의 기한이 길다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빨리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오래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죄의 분량과 영적 상태를 아신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정결의 기한이 차기까지, 하나님이 &amp;ldquo;되었다&amp;rdquo;고 하실 때까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정결을 개인 경건의 문제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정결은 공동체 회복의 관문이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어야 성소와 공동체로 돌아오듯이, 오늘의 성도도 회개로 깨끗해져야 교회와 천국 공동체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가 죄와 귀신의 영향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결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아만은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결국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깨끗함을 받았다. 정결의 길은 인간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우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다. 고침받은 자는 나아만처럼 자신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오직 한 분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bodypara&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속죄만을 말하는 신앙에서 멈추지 말고, 정결의 길까지 걸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 사함을 받고, 회개로 더러움을 씻으며, 자기 삶을 번제처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흰 세마포를 준비하고 성 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2026년 05월 27일(수)&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date&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p class=&quot;count&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12장에서 14장에 나타난&amp;nbsp;&lt;strong&gt;산모와 나병 환자의 정결례&lt;/strong&gt;를 통해 현대 그리스도인에게&amp;nbsp;&lt;strong&gt;회개와 성결의 필수성&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속죄의 단계를 넘어,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amp;nbsp;&lt;strong&gt;공동체와 천국 시민의 자격을 회복&lt;/strong&gt;하는 과정으로서의 정결 예식을 오늘날의&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산모의 부정과 나병의 진단을 인간 내면의&amp;nbsp;&lt;strong&gt;죄된 본성과 악한 영의 침투&lt;/strong&gt;라는 영적 원리로 풀이하며, 구원은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lt;/strong&gt;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성도가 천국에 입성하기 전 통과해야 할&amp;nbsp;&lt;strong&gt;마지막 관문인 정결함&lt;/strong&gt;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헌신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8477872023a210dfb08188a9ac11389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3ad1820e1cf91c718538f2d676707d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31e59205fac1512ace09802d674ce4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f039ca6863a5d6be96ac1dd9fe686f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c6b5b2acd44c901bc27df1fd5064e7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feb59dcf314f6be84615e18b53cc49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d691f68311b853ef310824f5556fed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7fc472bdb9ccb524a8c57572f21853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9e586faf654617967683ee61eb216c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fb9363723e4edc3df3f1c91562f8b6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9c45eeb1cc43c52f277920297ca011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09)] Blueprint_of_Spiritual_Pur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09/254/09399926a16e0d19fed88d85604c9d4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_2026-05-20(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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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0T20:50:01+09:00</published>
		<updated>2026-05-21T23:55:4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5-20(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NsNBU-wgpE 1. 들어가며 음식과 관련된 정부정법(淨不淨法)을 우리가 굳이 배워야 하는가? 신약 시대에 들어와 모든 음식이 풀렸는데, 굳이 구약의 음식법을 왜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부정법을 단지 음식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20(수) 수요기도회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hNsNBU-wgpE&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hNsNBU-wgpE?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음식과 관련된 정부정법(淨不淨法)을 우리가 굳이 배워야 하는가? 신약 시대에 들어와 모든 음식이 풀렸는데, 굳이 구약의 음식법을 왜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부정법을 단지 음식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음식법은 깊은 영적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림자이며 모형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또한 행 10장에서 베드로에게 보여 주신 보자기 환상을 통해 모든 음식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어떤 음식도 부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음식법이 본래 가지고 있던 영적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풀렸다는 사실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영적 보고(寶庫)를 그대로 묻어 두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레위기 강해 시리즈의 첫 시간부터 일곱 번째 시간까지는 제사법과 제사장법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 여덟 번째 시간으로서, 정결법 첫째 시간을 시작하면서 레위기 11장의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이 신약 시대에 어떻게 풀렸는지, 그러면서도 그 영적 의미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그리고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가르는 영적 구분 기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신약 시대에 음식법이 풀린 영적 이유와 두 가지 정결법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신약 시대에 음식법이 풀린 영적 이유&lt;/strong&gt;를 먼저 살펴보자. 그것은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보자기 환상이 결정적이다. 베드로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황홀한 가운데 환상을 보게 되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워졌다. 그 안에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들어 있던 짐승들은 다 부정한 짐승일 확률이 매우 높다. 곧 돼지가 들었을 것이고, 독수리가 들었을 것이고, 박쥐가 들었을 것이며, 호랑이도 들었을 것이다. 다 부정한 짐승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의 영적 의미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때 주께서 &quot;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quot;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quot;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quot;라고 거절하였다. 베드로는 어려서부터 레 11장의 음식법을 철저히 지켜 온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소리가 있어 &quot;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quot; 하셨다. 이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이 환상은 단순히 음식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곧 이방인도 이제는 깨끗하게 될 때가 되었다&lt;/strong&gt;는 것이다. 너희만 정결한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도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을 통해 알려 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0:11-16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 4장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도 이제는 음식물의 율법규정이 없어졌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왜냐하면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서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 후에 감사함으로 받아 먹을 수가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딤전 4:3-5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별이 필요하다. 음식법을 적용할 때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27년 2월부터 강제로 보신탕을 먹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떻게 예쁜 강아지를 잡아먹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원칙으로 보자. 미꾸라지 추어탕은 어떠한가? 미꾸라지는 비늘이 없다. 지느러미는 옆에 약간 달리고 뒤에 큰 것이 있긴 하나, 비늘이 없으므로 영적 원칙으로는 부정한 음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추어탕을 맛있게 먹는다. 또한 오징어, 문어, 갑오징어, 고등어, 새우, 게, 가재, 랍스터 - 이것들이 다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별 거부감 없이 먹는다. 그러므로 적용을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되고 저런 것은 안 된다는 식의 자의적 적용은 옳지 않다. 신약 시대에는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 그러나 그 영적 의미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이 정결법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039;먹어서 부정해지는 것&#039;이다. 둘째는 &#039;접촉해서 부정해지는 것&#039;이다. 그리고 이 둘은 영적으로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먼저 &#039;먹어서 부정해진다&#039;는 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죄를 지어 뱀들과 귀신을 자기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식이 내 속에 들어와 살과 피가 되듯이, 죄를 지으면 그 영이 내 살과 피가 되어 내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 반면 &#039;접촉해서 부정해진다&#039;는 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무당집에 간다든지 우상의 처소에 간다든지 하여 영적으로 잠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는 그날 저녁까지 부정하다고만 하였다. 곧 잠시 영향을 받지만 영원히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039;먹어서 부정해진 것&#039;에는 정결케 하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토해 내라고도 하지 않고, 물을 한 동이 마시라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부정하다고만 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가? 곧 죄를 지어 귀신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말해 준다. 신약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 정결케 하는 법이 분명히 밝혀졌다. 곧 요일 1장 9절의 회개와 자백을 통해서만 그것이 정결케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정결법은 레위기 전체에서 어디에 위치하며 대속죄일은 왜 정결법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레위기서 전체 구조를 살펴보자. 레위기서를 영적으로 깊이 이해하려면 그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레위기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째 파트는 1장부터 10장까지의 &#039;제사장법&#039;이다. 그 가운데서도 1장부터 7장까지는 &#039;제사법&#039;이고, 8장부터 10장까지는 &#039;제사장법&#039;이다. 곧 어떤 제사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누가 그 제사를 집행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둘째 파트는 11장부터 28장까지의 &#039;정결·성결례&#039;이다. 그런데 이 둘째 파트는 다시 둘로 나뉜다. 11장부터 17장까지는 &#039;정결법&#039;이고, 18장부터 28장까지는 &#039;성결법&#039;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039;정결&#039;과 &#039;성결&#039;은 한자 표기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039;정결(淨潔)&#039;은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고, &#039;성결(聖潔)&#039;은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깨끗하게 하는가? &#039;정결&#039;은 물과 피로 깨끗하게 한다. 무엇이 거룩하게 하는가? &#039;성결&#039;은 피와 관유(冠油)와 옷으로 거룩하게 한다. 그 방법이 좀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정결법의 각 장을 살펴보자. 11장은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이다. 12장은 산모(産母)가 피를 흘려 아이를 낳았을 때의 정부정에 관한 것이다. 13장과 14장은 나병에 관한 것이다. 15장은 유출병에 관한 것이다. 16장은 대속죄일 제사에 관한 것이다. 17장은 피에 관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곧 16장의 &#039;대속죄일 제사&#039;가 &#039;속죄법&#039;이 아니라 &#039;정결법&#039;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속죄일을 그저 속죄법으로만 접근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영적 핀트가 아니다. 대속죄일은 정결법에 속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그렇다면 왜 대속죄일이 정결법에 속하는가?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 지성소가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사단 마귀에 의해, 또한 타락한 그룹 천사에 의해 하늘이 더럽혀졌기에, 그것을 청소하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의 피를 가져와 뿌리는 것이 곧 대속죄일 제사이다. 이는 단순히 죄를 속하는 일이 아니라 더럽혀진 지성소를 청소하는 일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므로 우리는 정결법으로 대속죄일에 접근해야 한다. 속죄법으로만 접근하면 왜 예수께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들어가셔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정결법으로 접근하면 그 영적 비밀이 풀린다. 곧 하늘이 사단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더럽혀졌기에, 예수의 피로 그 하늘 자체를 청소해야 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렇게 레위기서의 전체적인 구조 가운데서 11장의 음식법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11장은 정결법의 첫 번째 항목이다. 곧 &#039;깨끗하게 한다&#039;는 큰 흐름 가운데서 &#039;음식과 접촉&#039;을 다루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신약 시대에도 멀리해야 할 세 가지 음식은 무엇이며 왜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신약 시대에 모든 음식이 풀렸으나, 그래도 멀리해야 할 음식이 있다. 그것이 세 가지&lt;/strong&gt;이다. 행 15장 19절에서 20절까지를 보라. 또한 28절에서 29절까지를 보라. 이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며, 최초의 교회 회의가 정한 핵심 사항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5:19-20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5:28-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한 가지 정확히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행 15장 본문은 &#039;먹지 말라&#039;가 아니라 &#039;멀리하라&#039;고 말한다. 단호한 금지의 명령이 아니라 가까이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그러나 그 권고에는 깊은 영적 이유가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039;우상의 재물&#039;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lt;/strong&gt; 고전 10장 19절에서 22절까지를 보라.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상에 바쳐진 재물을 먹는 것은 곧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다. 영의 눈으로 우상의 재물을 보면 거기에 뱀들이 가득 들어가 있다. 그것을 먹으면 그 뱀들이 우리 위장 속에 그대로 들어와 달라붙어 우리를 괴롭힌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10:19-22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순수한 자연상태의 쌀이나 미역이나 소고기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그것이 제사상에 올라가는 순간 영적 성격이 바뀌어 버린다. 그 음식에 뱀들이 가득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명절에 친지 집에 갔을 때 제사 음식을 그냥 먹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말씀과 기도로 깨끗하게 한 후에 먹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둘째, &#039;피&#039;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lt;/strong&gt; 이는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039;피를 멀리하라&#039;는 말씀을 가지고 &#039;수혈도 받지 말라&#039;고 잘못 해석한다. 그래서 그들은 수술 도중 피를 수혈받지 않아 죽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성경에서 피를 멀리하라고 하신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레 17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함부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피를 함부로 먹고 핏기를 막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중요성이 떨어진다. 보혈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인데, 일상에서 피를 함부로 다루면 그 영적 중요성이 가벼이 여겨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셋째, &#039;목매어 죽인 것&#039;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lt;/strong&gt; 이는 가장 깊이 들어가야 할 영적 비밀을 담고 있다. 뱀들이 사람을 자살시킬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무엇인가? 곧 목매어 죽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관여하는 영들이 따로 있다. 어깨 쪽에서 타고 올라온 영들이 목 안에 들어가는데, 어깨에는 귀신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목에는 뱀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 뱀들이 양쪽에서 목을 엮어 점점 굵어진다. 영의 눈으로 보면 그 굵어진 뱀들이 마치 자살할 때 쓰는 끈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목매어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망의 영, 자살의 영이 그 사람에게 달라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고로 이 세 가지 것 곧 우상의 재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은는 모두 깊은 영적 이유 때문에 멀리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의미를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가르는 영적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레 11장의 본격적인 정부정 기준을 살펴보자. 그러나 그 기준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곧 레 11장이 기록되기 이전에도 이미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7장 2절에서 3절까지를 보라. 노아의 홍수 때 노아에게 정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데려오라 하셨다. 또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하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창 7: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노아의 홍수 시대 곧 모세보다 한참 이전에 이미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정의 기준은 모세에게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미 영적으로 존재하던 것이며, 모세 시대에 와서 율법으로 명문화되었을 뿐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가르는 영적 구분 기준이 무엇인가? 그 기준은 곧 &#039;사단의 타락에 동조했는가&#039;에 있다. 사단이 천사들을 미혹하여 타락하게 할 때, 그 사단은 동물들에게도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게 한 것 같다. 본 종이 이를 직접 영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나 영적 흐름을 종합해 보면 그렇게 추정된다. 그래서 사단 편에 가담한 동물은 부정한 짐승이 되었고, 가담하지 않은 동물은 정한 짐승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영적 팩트가 하나 있다. 곧 &#039;물고기&#039;에 관한 사실이다. 행 10장의 베드로의 보자기 환상에서 &#039;물고기&#039;는 등장하지 않는다. 보자기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이었다. 또한 레 11장에서도 물고기 가운데 부정한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지, 물고기 전체가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물고기는 사단의 타락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사단이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라 했을 때, 물고기는 그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물고기는 부정한 짐승의 큰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다만 그 가운데 &#039;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것&#039;만 별도로 부정한 것으로 분류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육지에 사는 짐승과 하늘에 나는 새들 가운데서는 사단의 타락에 동조한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어둠 쪽으로, 사망을 좋아하는 것은 사망 쪽으로, 약자를 착취하는 것은 착취 쪽으로, 이 세상에 딱 달라붙어 사는 것은 세상 쪽으로 분류되어 부정한 짐승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결론적으로 부정한 것이 무엇인가? 곧 &#039;사단이 부정한 것&#039;이다. 뱀과 귀신이 부정한 것이다. 죄가 부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은 결국 사단 마귀의 영역에 속하느냐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느냐의 영적 구분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육지 동물의 &#039;쪽발이와 새김질&#039;이 가진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레 11장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부정 기준을 살펴보자. 먼저 육지 동물의 기준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육지 동물은 &#039;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039;은 정한 짐승이며, 그 외의 것은 부정한 짐승이라&lt;/strong&gt;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039;쪽발이&#039;와 &#039;새김질&#039;이 둘 다 충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곧 &#039;AND&#039;의 조건이지 &#039;OR&#039;의 조건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대표적인 짐승이 무엇인가? 사슴, 노루, 소, 양, 염소 등이다. 이런 짐승들은 정한 짐승이다. 반면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부정한 짐승이다. 사자, 호랑이, 곰, 고양이 등이 그러하다. 레 11장 27절에서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걷는 것은 모두 부정하다고 하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27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걷는 것은 모두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또한 기는 것은 모두 부정하다. 도마뱀, 악어, 그리고 모든 뱀이 그러하다. 왜인가? 뱀이 타락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단 마귀에게 쓰임을 받은 뱀이 하나님께 거역하는 쪽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모든 짐승이 부정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돼지는 어떤가? 돼지는 쪽발이 되어 있다. 그러나 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돼지는 부정하다. 낙타는 어떤가? 낙타는 새김질을 한다. 그러나 쪽발이 아니다. 발바닥이 납작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부분적으로 갈라져 있긴 하나 완전히 갈라져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낙타도 부정하다. 한 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부정한 짐승이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이제 이 기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먼저 &#039;쪽발이&#039;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lt;/strong&gt; 쪽발이가 되어 있는 짐승들은 모두 톡톡 튄다. 사슴이 톡톡 뛰고, 노루가 톡톡 뛴다. 발이 갈라져 있어서 마치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톡톡 튀어 오른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이 세상에 딱 달라붙지 않고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039;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반면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어떠한가? 발바닥이 넓고 부드러워서 땅에 딱 붙는다. 그 짐승들은 결국 &#039;이 땅에 딱 달라붙어 사는 모습&#039;을 표현한다. 곰이나 호랑이가 발바닥을 땅에 딱 붙이고 다니는 그 모습 - 그것이 영적으로 부정한 모습이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다. 곧 이 세상에 딱 달라붙지 말고 빨리 벗어나라는 명령이다. 쪽발이 짐승의 톡톡 뛰는 모습이 바로 그 영적 자세를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그렇다면 &#039;새김질&#039;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lt;/strong&gt; 음식을 한번 먹고 그것을 위에 보내었다가 다시 끌어올려 되씹는 것이 새김질이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세&#039;이다. 시편 1편 2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 하지 않았는가?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듯이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한번 들은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곱씹고 또 곱씹어,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가 자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자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결국 육지 동물의 정부정 기준은 우리 성도의 영적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딱 달라붙지 아니하고 톡톡 튀어 천국을 향해 빨리 벗어나려고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듯이 주야로 묵상하는 자 - 그가 곧 영적으로 정결한 자이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정결한 것이지, 어느 한쪽만 있어서는 부정한 짐승이 되어 버린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수중 생물과 새들의 정부정 기준이 가진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수중 생물과 새들의 정부정 기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먼저 수중 생물&lt;/strong&gt;이다. 레 11장 9절은 &lt;strong&gt;물에서 사는 모든 것 가운데서 &#039;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039;은 먹을 수 있다&lt;/strong&gt;고 하였다. 여기서도 &#039;AND&#039;의 조건이다. 지느러미만 있어서는 안 되고, 비늘만 있어서도 안 된다. 둘 다 있어야 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꾸라지는 어떠한가? 미꾸라지는 비늘이 없다. 지느러미는 옆에 약간 달리고 뒤에 큰 것이 있긴 하나, 비늘이 없으므로 부정한 음식이다. 그러므로 영적 원칙으로 보면 추어탕은 부정한 음식에 속한다. 고등어는 어떠한가? 고등어도 비늘이 거의 없으므로 부정한 음식이다. 오징어, 문어, 새우, 게, 가재, 랍스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이 다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이제 이 기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039;비늘&#039;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lt;/strong&gt; 비늘은 물고기의 몸 전체를 덮어 보호한다. 마치 갑옷과 같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자세&#039;이다. 비늘은 물이 직접 살에 닿지 못하게 막아 준다. 그렇듯이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의 더러운 물이 우리의 영혼에 직접 닿지 못하도록 영적 갑옷을 입어야 한다. 곧 진리의 띠로 허리를 동이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039;지느러미&#039;의 영적 의미는 또 무엇인가?&lt;/strong&gt; 지느러미는 물고기에게 추진력을 준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이 세대의 조류를 거슬러 하나님께로 차오르는 자세&#039;이다. 세상은 자꾸 거꾸로 흘러간다. 그 흐름에 그대로 떠내려가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향해 차고 올라가는 자세 - 그것이 곧 영적인 지느러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그러므로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정결한 것은, 영적으로 &#039;자기를 보호하면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동시에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하나님께로 차오르는 자세&#039;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 보호만 있고 추진력이 없으면 그저 정체되어 있을 뿐이고, 추진력만 있고 보호가 없으면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더럽혀진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lt;strong&gt;새들의 정부정 기준&lt;/strong&gt;을 살펴보자. 레 11장 13절 이하에서는 부정한 새들의 목록이 길게 나온다. 거기에는 독수리, 까마귀, 박쥐, 부엉이, 올빼미 등이 들어 있다. 이렇듯 부정한 새들의 예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들은 네 가지 영적 부류로 정리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첫째, &#039;약한 새를 잡아먹는 맹금류&#039;&lt;/strong&gt;이다. 곧 약자를 착취하는 부류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약한 자를 막 누르고 압제하며 빼앗아 먹는 모습이 영적으로 부정한 모습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둘째, &#039;까마귀와 독수리처럼 시체를 뜯어먹는 새&#039;&lt;/strong&gt;이다. 이는 동물의 사체 곧 죽은 것을 먹는 부류이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사망을 추구하는 부류&#039;이다. 죽음을 좋아하고, 죽음을 미화하고, 죽음 쪽으로 자꾸 끌리는 그 모습이 영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셋째, &#039;박쥐와 부엉이와 올빼미처럼 어둠을 좋아하는 새&#039;&lt;/strong&gt;이다. 이들은 캄캄한 밤에 활동한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어둠을 추구하는 부류&#039;이다. 죄를 짓는 자가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사단이기 때문이다. 나이트 클럽이 캄캄하다가 빨간 불이 돌아가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이 어둠의 속성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넷째, &#039;잡식성으로 이것도 저것도 먹는 새&#039;&lt;/strong&gt;이다. 시체도 먹고 곡식도 먹고 가리지 않고 다 먹는 부류이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039;세상도 즐기고 교회도 다니는 양다리 신앙&#039;이다. 세상의 즐거움도 즐기다가 교회에 와서 찬송도 부르며 은혜도 받는 척하는 모습이 영적으로 부정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반면 정한 새는 어떠한가? 정한 새는 풀과 씨앗을 먹는 새&lt;/strong&gt;이다. 비둘기가 대표적이다. 풀과 씨앗을 먹는다는 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씨앗은 &#039;생명을 잉태한 것&#039;이다. 그 안에 생명이 다 들어 있다. 그러므로 씨앗을 먹는다는 것은 &#039;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추구한다&#039;는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결국 새의 정부정 기준은 우리에게 분명한 영적 교훈을 준다. 약자를 착취하지 말고, 사망을 추구하지 말고, 어둠을 좋아하지 말고, 양다리 신앙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도리어 비둘기처럼 생명을 추구하고 빛 가운데 살라는 것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뿐만 아니라 시체나 사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짐승이든 정한 짐승이든 모두 부정하다. 사람이 죽은 몸은 &#039;주검&#039;이라 하고, 동물이 죽은 몸은 &#039;사체&#039;라 한다. 또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죽은 사람의 몸은 &#039;시체&#039;라 하고, 신원이 확인된 죽은 사람의 몸은 &#039;시신&#039;이라 한다. 그 정확한 용어를 알면 보다 정확히 사용할 수가 있다. 어떻든 죽음과 접촉하는 것은 부정하다. 그러나 그 부정은 그날 저녁까지의 일시적 부정이다. 곧 접촉한 영향이 일시적으로만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음식 정부정법이 가르치는 궁극적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음식 정부정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궁극적인 영적 교훈을 정리해 보자. 이 음식법은 결국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lt;strong&gt;첫째는 너의 속에 악한 영을 받아들이지 말라&lt;/strong&gt;는 것이고, &lt;strong&gt;둘째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지 말라&lt;/strong&gt;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두 가지의 영적 무게가 같지 않다. &#039;먹은 것&#039;은 살과 피가 되어 우리 몸 안에 깊이 박힌다. 그러나 &#039;접촉한 것&#039;은 그날 저녁까지의 일시적 부정에 그친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 귀신을 받아들이는 일과, 어떤 부정한 처소에 잠시 다녀오는 일은 그 영적 무게가 크게 다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죄를 지으면 그 영이 우리 몸에 들어와 살과 피 사이에 박힌다. 살 속에도 들어가고, 피 속에도 들어가고, 뼈 속에도 들어간다. 특별히 등뼈 사이사이에 그 영들이 깊이 박힌다. 사람의 등뼈는 24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오래된 영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이것이 곧 히브리서가 말하는 &#039;쓴뿌리&#039;이다. 이 쓴뿌리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개의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만큼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반면 무당집에 잠시 들렀거나, 우상의 처소에 잠시 다녀오거나, 부정한 곳에 잠시 갔다 오는 것은 그날 저녁까지의 영향에 그친다. 회개와 정결 의식으로 금방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그것이 가벼운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죄지어 영을 받아들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시적이라는 의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한 짐승의 영적 표상을 본받아 살아야&lt;/strong&gt; 한다. 정한 짐승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 무엇인가? 곧 &#039;노루와 사슴&#039;이다. 아가서 2장 8절에서 9절까지를 보라. 신랑이 신부를 찾아오는 그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그 모습이, 마치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다고 하였다. 곧 그리스도가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 모습이 정한 짐승의 표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아 2: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신명기 12장 15절과 22절, 그리고 신 15장 22절에서도 노루와 사슴이 정결한 짐승의 표상으로 거듭 등장한다. &#039;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039;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이들이 영적으로 정결한 짐승의 대표적인 표상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신 12:22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뿐만 아니라 시 18편 33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발이 암사슴 같다고 노래하였다. 다윗도 이 영적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하려고 하지 않았고, 톡톡 튀어 하나님께 차오르는 영적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18: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곧 예수님께 속한 것은 모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펄쩍펄쩍 뛰며 천국을 향해 차오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이미 더럽혀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신약 시대를 살면서 잘못 알아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 죄를 지어 더 많은 귀신과 뱀을 받아들였다면, 우리 몸은 이미 귀신의 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회개로 이 모든 것을 빼내야 한다. 회개로 정결케 되면, 우리 육체까지도 성령이 지배하시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 곧 귀신의 집이었던 우리 몸이 성령의 전, 성령의 집으로 바뀌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기 두루마기를 날마다 빨아야 한다. 그 두루마기에 무엇이 묻었으면 즉 죄가 묻었으면, 부정함이 묻었으면 즉시 빨아야 한다. 그것이 곧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결국 음식법이 가르치는 궁극적 영적 교훈은 이것이다. 곧 사단 마귀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 마귀에 속한 자를 하나님께 속하게 하는 길이 곧 &#039;회개&#039;이다. 회개는 물로 씻는 것이고, 회개는 피로 씻는 것이다. 우리는 일평생 영에 속한 사람이 되고,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고, 생명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금까지 본 시간을 통해 정결법의 첫째 시간으로서,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을 살펴보았다. 신약 시대에 음식법이 풀린 영적 이유와 두 가지 정결법 곧 &#039;먹어서 부정해짐&#039;과 &#039;접촉해서 부정해짐&#039;을 살펴보았고, 정결법이 레위기 전체 구조에서 11장부터 17장까지에 위치하며 대속죄일이 정결법에 속하는 영적 이유 곧 더럽혀진 지성소의 청소를 살펴보았다. 또한 신약 시대에도 멀리해야 할 세 가지 음식 - 우상의 재물, 피, 목매어 죽인 것 - 의 영적 이유를 살펴보았고, 노아 홍수 때부터 이미 존재한 정·부정의 영적 구분 기준이 곧 &#039;사단의 타락에 동조했는가&#039;에 있으며 물고기는 그 참여에서 빠져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육지 동물의 &#039;쪽발이와 새김질&#039;의 영적 의미 곧 세상에서 벗어남과 말씀 묵상을 살펴보았고, 수중 생물의 &#039;비늘과 지느러미&#039;의 영적 의미 곧 세상에 물들지 않음과 조류를 거슬러 차오름을 살펴보았으며, 새들의 정부정 기준 네 가지 곧 맹금주류·시체 먹는 새·어둠의 새·잡식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음식 정부정법이 가르치는 궁극적 영적 교훈 곧 정한 짐승의 표상인 노루와 사슴처럼 살아 회개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되어야 함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우리는 신약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옛 음식법의 영적 의미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음식이 풀렸다는 사실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음식법이 가리키는 영적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리는 두 가지 부정 곧 &#039;먹어서 부정해짐&#039;과 &#039;접촉해서 부정해짐&#039;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죄를 지어 귀신과 뱀을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 몸의 살과 피가 되어 깊이 박히지만, 우상의 처소에 잠시 들르는 일은 일시적 영향에 그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회개와 정결로 깨끗하게 해야 한다.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이 정결법에 속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단순한 속죄법으로만 대속죄일을 보아서는 안 된다. 사단 마귀와 타락한 그룹 천사에 의해 더럽혀진 지성소를 예수의 피로 청소하시는 그 영적 진리를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신약 시대에도 우상의 재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은 멀리해야 한다. 우상에 바쳐진 재물에는 뱀들이 가득 들어가 있고, 피를 함부로 다루면 예수의 보혈의 중요성이 떨어지며, 목매어 죽은 짐승의 고기에는 자살의 영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영적 구분 기준이 곧 &#039;사단의 타락에 동조했는가&#039;에 있음을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사단 편에 속한 모든 것은 부정한 것이고, 하나님 편에 속한 모든 것은 정결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할 것인지를 매 순간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육지 동물의 &#039;쪽발이와 새김질&#039;의 영적 교훈&lt;/strong&gt;을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이 세상에 발바닥을 딱 붙이고 살지 말고 톡톡 튀어 천국을 향해 차올라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듯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영적으로 정결한 사람이 된다. &lt;strong&gt;수중 생물의 &#039;비늘과 지느러미&#039;의 영적 교훈&lt;/strong&gt;도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영적 갑옷으로 자신을 보호하여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동시에 이 세대의 조류를 거슬러 하나님께로 차고 올라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lt;strong&gt;새들의 정부정 기준이 가르치는 네 가지 영적 교훈&lt;/strong&gt;을 분명히 익혀야 한다. 약자를 착취하지 말고, 사망을 추구하지 말고, 어둠을 좋아하지 말고, 양다리 신앙으로 살지 말고, 도리어 비둘기처럼 생명을 추구하며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무엇보다 회개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우리 육체에 깊이 박힌 영들 곧 등뼈 사이사이에 자리한 쓴뿌리들을 회개로 빼내야 한다. 두루마기를 날마다 빨아 정결하게 함으로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거룩한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날에, 정한 짐승의 표상을 따라 산 우리가 그분의 정결한 신부, 거룩한 신부로 인정받아 천국 잔치에 합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20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여기까지는 &#039;클로드&#039;가 정리한 것입니다.&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설교핵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의 &lt;/span&gt;&lt;strong&gt;레위기 11장 강해&lt;/strong&gt;&lt;span&gt;를 담고 있으며, 구약의 &lt;/span&gt;&lt;strong&gt;음식 정결법&lt;/strong&gt;&lt;span&gt; 속에 담긴 영적 교훈과 현대 기독교인의 &lt;/span&gt;&lt;strong&gt;회개와 성결&lt;/strong&gt;&lt;span&gt;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육지 동물, 수중 생물, 조류 등의 &lt;/span&gt;&lt;strong&gt;정부정(正不正)&lt;/strong&gt;&lt;span&gt; 기준이 단순히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lt;/span&gt;&lt;strong&gt;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의 생명을 추구&lt;/strong&gt;&lt;span&gt;해야 하는 성도의 영적 태도를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설교는 신약 시대에 음식의 제한은 풀렸으나 &lt;/span&gt;&lt;strong&gt;죄를 통해 악한 영을 받아들이는 것&lt;/strong&gt;&lt;span&gt;을 경계해야 하며, 오직 &lt;/span&gt;&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lt;span&gt;만이 신자를 정결케 하여 천국 상속자로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최종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lt;/span&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lt;/strong&gt;&lt;span&gt;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다가올 &lt;/span&gt;&lt;strong&gt;천국을 준비하는 정결한 신부&lt;/strong&gt;&lt;span&gt;가 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레위기강해 #정결법 #음식정결법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회개 #성결 #정부정 #세상에속하지않음 #하늘의생명 #신약시대 #죄 #악한영 #천국상속자 #예수그리스도 #거룩한구별 #천국준비 #정결한신부&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2026-05-20(수) 수요기도회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trong&gt;[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lt;/strong&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hNsNBU-wgpE&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128&quot; data-end=&quot;139&quot;&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 &lt;br&gt; 레위기 11장은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을 다룬다. 겉으로 보면 이 본문은 매우 낯설다. 어떤 짐승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짐승은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물고기는 정하고, 어떤 물고기는 부정하다고 한다. 어떤 새는 부정하며, 어떤 기는 것은 가증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미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레위기 11장의 음식법을 왜 다시 배워야 하는가?” &lt;br&gt;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신약 성도는 구약의 음식 규례로 다시 돌아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다(막 7:18-23). 또한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큰 보자기 안에 담긴 각종 부정한 짐승을 보았고, 주께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행 10:13-15). 그러므로 신약 성도에게 음식 자체는 더 이상 구약 율법처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뉘어 금지되지 않는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막 7: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0:13-15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렇다면 레위기 11장은 오늘날 아무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에게 음식 정·부정법을 주신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그 뜻은 단순히 위생법이나 민족 구별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탄에게 속한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 교육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사망,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말씀과 죄, 성령의 역사와 귀신의 역사를 구별하게 하는 하나님의 교육이 바로 음식 정결법이기 때문이다. &lt;br&gt;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뜻을 가지신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예표와 그림자로 가르치셨고, 신약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이제도 이 동물을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정하다고 하셨는가, 왜 이것을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그 영적 기준은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lt;br&gt; 히브리어로 ‘정하다’는 말은 ‘타호르’이다. 이는 깨끗하고 순전하며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반대로 ‘부정하다’는 말은 ‘타메’이다. 이는 더럽혀져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단순히 음식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어떤 상태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법이다. &lt;br&gt; 고로 레위기 11장의 음식 정·부정법은 결국 성도의 영적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이다. 어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영이 죄를 통하여 내 안으로 들어오느냐이다. 무엇을 만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과 접촉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세계에 마음을 붙이고 사느냐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 11장의 음식 정·부정법이 오늘의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우리가 어떻게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1980&quot; data-end=&quot;2014&quot;&gt;2. 왜 신약 성도도 음식 정·부정법을 배워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 &lt;br&gt; 신약 성도는 구약의 음식법 아래로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그림자는 실체를 만났다. 구약의 음식 정·부정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고, 사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유대인의 음식 규례 전체를 짐으로 지우지 않았다. 디모데전서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딤전 4:4-5).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딤전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렇다면&lt;strong&gt; 왜 우리는 음식에 관한 정부정법을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음식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음식법 안에 담긴 영적 원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신약에서 음식 자체는 깨끗하게 되었지만, 정결과 부정의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음식에 관한 문자 규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탄에게 속한 것을 분별해야 하는 영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lt;br&gt; 예수께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도가 이제 아무 영적 분별 없이 무엇이든 받아들여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음식 자체보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죄가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는 더 깊은 차원의 정결을 요구받는다. 구약에서는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을 외적으로 구별했다면, 신약에서는 내 마음과 영혼 안으로 무엇을 받아들이고 접촉해야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막 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 구약의 음식 정·부정법은 성도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친다. 그것은 부정은 밖에서 스쳐 지나갈 때가 아니라, 안으로 받아들일 때 더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레위기 11장은 먹는 것과 접촉하는 것에 관해 분명한 기준을 제공한다. 특히 죽은 사체를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정한 것을 먹는 문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죄를 통해 악한 영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연결된다. &lt;br&gt; 그러므로 &lt;strong&gt;신약 성도는 레위기 11장을 통해 귀신론의 중요한 원리를 배워야 한다. 악한 영은 아무 근거 없이 사람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죄가 문의 역할을 한다. 불순종이 통로인 것이다. 우상숭배가 자리인 것이다. 또한 음행과 탐욕과 거짓과 교만같은 것들은 악한 영이 들어와 거처를 만들 수 있는 영적 공간을 제공&lt;/strong&gt;한다. 접촉은 외부에 영향일 수 있지만, 죄를 지어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화가 되어버린다. 바로 이 점에서 먹음의 부정은 오늘날 성도의 영적 상태를 깊이 경고한다. &lt;br&gt; &lt;strong&gt;레위기 11장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이 법이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후, 그들에게 아무렇게나 살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와 제사만 규정하신 것이 아니라, 먹는 것과 만지는 것까지 가르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생활 전체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lt;/strong&gt;&lt;/span&gt; &lt;br&gt; 여기서 ‘거룩하다’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것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따로 떼어졌다는 뜻이다. 신약의 헬라어 ‘하기오스’도 같은 방향을 가진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땅을 밟고 살지만 땅이 전부인 사람처럼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의 음식법은 오늘날에도 성도에게 묻는다. “너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먹고 있는가, 세상과 죄와 사망에 속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lt;/p&gt; &lt;p&gt; &lt;strong&gt;신약 성도는 음식법의 문자 규정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음식법의 영적 의미는 반드시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다고 하신 것에는 생명과 빛과 하늘의 원리가 들어 있고,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하신 것에는 사망과 어둠과 땅의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lt;/strong&gt;.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매우 실제적인 말씀이다. 그것은 식탁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이며, 입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몸과 영의 정결 문제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4252&quot; data-end=&quot;4285&quot;&gt;3. 레위기 11장은 정결법 안에서 어디에 놓이는가?&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러므로 우리가 레위기 11장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lt;strong&gt;먼저는 레위기 전체 구조를 살펴 보아야 &lt;/strong&gt;한다. 레위기는 무작위로 배열된 제사 규례 모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은 분명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위기서를 크게 보면,&lt;strong&gt; 레위기 1장부터 7장까지는 제사법&lt;/strong&gt;을 다룬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같은 제사가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lt;strong&gt;레위기 8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장법&lt;/strong&gt;을 다룬다. 누가 제사를 집례하며, 제사장은 어떻게 위임받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lt;br&gt; 그리고 이어지는 &lt;strong&gt;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가 정결법&lt;/strong&gt;이다. 여기서는 더럽혀진 것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음식으로 인한 부정, 출산으로 인한 부정, 나병과 악성 피부병으로 인한 부정, 유출로 인한 부정, 성소와 지성소의 정결, 피에 관한 규례가 이어진다.&lt;/p&gt; &lt;p&gt; 그다음&lt;strong&gt; 레위기 18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lt;/strong&gt;이다.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정결과 성결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은 말이 아니다. &lt;strong&gt;정결은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결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lt;/strong&gt;이다. 더러움이 제거되어야 거룩한 봉사가 가능하다. 깨끗하게 되지 않은 사람이 거룩한 일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성결법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여 있다. &lt;br&gt;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이 바로 이러한 정결법의 첫머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정결을 말씀하실 때 가장 먼저 음식과 접촉의 문제를 다루신다. 왜냐하면 사람은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삶에서 접촉하는 것이 그의 상태를 좌우한다. 이것은 오늘날 영적인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도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접촉하고, 무엇을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조심해야 한다. &lt;br&gt; 특히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정결법 안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흔히 대속죄일을 단순히 속죄의 관점에서만 본다. 물론 대속죄일은 죄를 속하는 날이다. 그러나 레위기 구조 안에서 보면 그것은 동시에 성소와 지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날이다. 왜 지성소가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공간까지도 먼저는 하늘에서 지었던 죄 그리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에서 지었던 죄와 부정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야 했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6:15-16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lt;/strong&gt;&lt;/span&gt; &lt;br&gt;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을 보아야 한다. 창조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죄가 들어왔고, 죄와 함께 사망이 들어왔다. 노아 시대에는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이 나타났다(창 7:2-3). 모세 시대에는 그 구분이 율법으로 명문화되었다. 성막 시대에는 부정이 성소까지 더럽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의 피로 참된 정결을 이루셨다. 이제 성도는 그 보혈을 힘입어 날마다 회개함으로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와 성 밖에 남는 자가 나뉜다. &lt;br&gt; 그러므로 &lt;strong&gt;레위기 11장은 단지 “먹을 수 있는 동물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정결을 배우는 첫 관문&lt;/strong&gt;이다. &lt;strong&gt;사람이 무엇으로 더럽혀지는가, 더럽혀진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어떤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출발점&lt;/strong&gt;이다. &lt;br&gt; 정결법의 핵심은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물로 씻고, 피로 속죄하며, 정결 기간을 지나야 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정결케 된다. 요한일서는 성도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레위기 정결법의 신약적 성취를 보여 준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trong&gt;&lt;/span&gt; &lt;br&gt; 따라서 &lt;strong&gt;레위기 11장은 구약에 갇혀 있는 음식 규례가 아니다. 그것은 정결법의 문을 여는 말씀이다. 정결하지 않으면 거룩할 수 없고,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레위기 11장이 오늘날에도 성도에게 중요한 이유&lt;/strong&gt;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6516&quot; data-end=&quot;6546&quot;&gt;4. 굽이 갈라짐과 새김질은 무엇을 가르치는가?&lt;/strong&gt;&lt;/span&gt; &lt;br&gt; 레위기 11장에서 육지 동물의 정결 기준은 두 가지다(레 11:3).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첫째,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어야 &lt;/strong&gt;한다. &lt;/span&gt;&lt;strong&gt;둘째, 새김질해야&lt;/strong&gt; 한다. 이 둘은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는 조건이 아니다. 둘 다 있어야 한다. 돼지는 굽이 갈라졌지만 새김질하지 않으므로 부정하다. 낙타는 새김질하지만 굽이 완전히 갈라진 쪽발이 아니므로 부정하다. 하나님은 이 두 기준을 함께 요구하셨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3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lt;/strong&gt;&lt;/span&gt; &lt;br&gt; 히브리어로 굽은 ‘파르사’라는 말과 연결된다. 굽이 갈라진다는 것은 땅을 딛고 살되, 발바닥 전체를 땅에 밀착시켜 사는 방식이 아니라는 뜻을 가진다. 레위기 11장 27절은 네 발로 다니는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부정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묘사가 아니다. 영적으로 보면, &lt;strong&gt;발바닥을 땅에 완전히 붙이고 다니는 것은 이 세상에 밀착된 삶을 상징한다.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육신의 쾌락과 물질과 이생의 자랑에 붙어 사는 삶&lt;/strong&gt;을 보여 준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27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너희에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러나 &lt;strong&gt;굽이 갈라진 짐승은 땅을 밟지만 땅에 붙어 살지 않는다&lt;/strong&gt;. 사슴과 노루와 양과 소는 땅 위를 걷지만, 발의 구조가 다르다. 특히 사슴과 노루는 가볍게 뛰어오른다. &lt;strong&gt;이것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성도의 삶을 보여 준&lt;/strong&gt;다. 성도는 땅에서 산다. 직장도 다니고, 가정도 이루고, 음식을 먹고, 돈도 사용한다. 그러나 성도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지 않는다. 성도는 땅을 밟지만 하늘을 향해 산다. &lt;br&gt; 예수께서도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요 18:26). 주님은 이 땅에 오셨지만 땅에 속한 방식으로 살지 않으셨다. 주님은 로마의 정치 권력이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인정에 매이지 않으셨다. 주님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다. 그러므로 주님께 속한 성도 역시 이 세상에 완전히 달라붙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 아가서에서 신랑은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되고 있다. 신랑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한다. 그분은 땅의 무거움에 붙잡힌 분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자를 찾아오시는 생명의 주님이다. 노루와 사슴은 정한 동물이며 땅에 매이지 않고 뛰어오르는 모습을 가진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아 2: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두 번째 기준은 새김질이다.&lt;/span&gt; 새김질은 히브리어 표현으로 ‘게라를 올린다’는 뜻과 관련&lt;/strong&gt;된다. 먹은 것을 다시 올려 되씹는 행위다. 영적으로 이것은 말씀 묵상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한 번 듣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고, 삶 속에서 되새긴다. 이것이 새김질하는 신앙이다. &lt;br&gt;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묵상은 단순한 지적 사색이 아니다. 말씀을 마음에 품고 되씹는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서 다시 올라오게 하는 것이다. &lt;strong&gt;세상 사람은 세상 말과 세상 정보와 세상 욕망을 되새긴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이것이 정결한 삶의 두 번째 기준&lt;/strong&gt;이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lt;/strong&gt;&lt;/span&gt; &lt;br&gt; 굽이 갈라짐과 새김질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완전히 붙어 산다면 정결한 삶이 아니다. 반대로 세상과 구별되려고 한다면서 말씀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그것도 정결한 삶이 아니다. 하나님은 둘 다 요구하신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발과 말씀을 되씹는 입이 함께 있어야 한다. &lt;br&gt;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는 말씀을 듣지만, 삶의 방향은 여전히 땅에 붙어 있다. 돈이 전부이고, 성공이 전부이며, 육신의 즐거움이 전부인 것처럼 산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과 구별된 척하지만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구별은 쉽게 자기 의나 종교적 고집이 된다. 정결한 성도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발은 땅에 달라붙지 않아야 하고, 입과 마음은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굽이 갈라짐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이다. 새김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다. 이 둘을 갖춘 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236fa1;&quot;&gt;&lt;strong data-start=&quot;9014&quot; data-end=&quot;9045&quot;&gt;5. 지느러미와 비늘은 어떤 신앙을 보여 주는가?&lt;/strong&gt;&lt;/span&gt; &lt;br&gt; 물속 생물의 정결 기준도 두 가지다.&lt;strong&gt; 지느러미가 있어야 하고, 비늘이 있어야&lt;/strong&gt; 한다. 이 역시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는 조건이 아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물에 있는 것 중 바다든 강이든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다고 하셨고, 둘 중 하나가 없거나 둘 다 없는 것은 가증하다고 하셨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9-10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lt;/strong&gt;&lt;/span&gt; &lt;br&gt; 히브리어로 지느러미는 ‘세나피르’이고, 비늘은 ‘카스케세트’이다. 지느러미는 물속에서 방향을 잡고 나아가게 하는 기관이다. 비늘은 몸을 보호하는 덮개다. 그러므로 &lt;strong&gt;물속 생물의 두 기준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두 가지 원리를 보여 준다. 하나는 세상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추진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력&lt;/strong&gt;이다. &lt;br&gt; 물은 성경에서 여러 의미로 쓰인다. 때로는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열방과 세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 물속 생물의 정·부정법을 영적으로 볼 때, &lt;strong&gt;물은 성도가 살아가는 세상 환경을 보여 준다. 세상에는 흐름이 있다.&lt;/strong&gt; 시대의 흐름, 문화의 흐름, 욕망의 흐름, 죄의 흐름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흐름을 따라간다.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성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도는 물결에 떠내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처럼 방향을 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lt;br&gt; &lt;strong&gt;지느러미는 거슬러 올라가는 힘&lt;/strong&gt;이다. 믿음은 시대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넓은 길을 좋아할 때 성도는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이 육신의 쾌락을 찬양할 때 성도는 거룩을 붙들어야 한다. 세상이 탐욕을 능력이라고 부를 때 성도는 자족과 청지기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지느러미 있는 신앙이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비늘은 보호막&lt;/strong&gt;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지만 물이 몸 안으로 함부로 스며들지 않도록 보호한다. 성도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이 마음과 영혼 속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비늘의 영적 의미다. 성도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갈 수 없다. 직장과 학교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신자와 접촉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접촉과 동화는 다르다. 세상 속에 있는 것과 세상에 물드는 것은 다르다. 고로 비늘이 없는 신앙은 위험하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유행에 쉽게 따라가며,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린다. 세상의 가치관이 조금만 들어와도 마음이 오염된다. 돈, 명예, 쾌락, 인정욕구, 비교의식, 원망, 음란, 교만이 마음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비늘을 가져야 한다. 그 비늘은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다. &lt;br&gt; 지느러미만 있고 비늘이 없으면 앞으로 가려는 열심은 있지만 쉽게 상처받고 오염된다. 비늘만 있고 지느러미가 없으면 보호하려는 태도는 있지만 하나님 뜻을 향해 전진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지느러미와 비늘을 함께 요구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도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보호력과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을 함께 가져야 한다. &lt;br&gt; 이 원리는 오늘날 교회에도 적용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교회가 세상의 성공 방식, 세상의 경쟁 방식, 세상의 인기 방식, 세상의 소비 방식에 물들면 비늘을 잃은 것이다. 또한 교회가 자기 보호에만 머물고 복음 전파와 영적 전진을 멈춘다면 지느러미를 잃은 것이다. 정결한 교회는 세상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향해 전진한다. 이처럼 물속 생물의 정결 기준은 성도의 영적 균형을 가르친다.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신앙이다. 성도는 세상의 물결 속에 살지만, 그 물결이 이끄는 대로 떠내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향해 올라가는 존재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11188&quot; data-end=&quot;11218&quot;&gt;6. 부정한 새와 기는 것은 무엇을 경고하는가?&lt;/strong&gt;&lt;/span&gt; &lt;/span&gt; &lt;br&gt; 레위기 11장은 새들 가운데 부정한 것들을 열거한다. 독수리, 솔개, 매, 까마귀, 타조, 올빼미, 갈매기, 새매, 부엉이, 가마우지, 따오기, 학, 박쥐 등이 언급된다. 본문은 육지 동물이나 물속 생물처럼 “이런 조건을 가진 새는 정하다”라고 명시하지 않고, 부정한 새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새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야 한다. &lt;br&gt; 그러므로 성경에 나열된 &lt;strong&gt;부정한 새들의 특징&lt;/strong&gt;을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lt;strong&gt;첫째, 사체를 먹는 새들&lt;/strong&gt;이다. 독수리와 까마귀는 죽은 것을 먹는다.&lt;strong&gt; 둘째, 약한 것을 잡아먹는 맹금류&lt;/strong&gt;다. 매와 솔개와 같은 새들은 다른 생명을 사냥한다. &lt;strong&gt;셋째, 어둠과 관련된 새들&lt;/strong&gt;이다. 올빼미와 부엉이와 박쥐는 밤과 어둠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 특징들은 모두 영적 의미를 가진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13 너희가 새 중에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사체를 먹는 것&lt;/strong&gt;은 사망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 반대로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사망의 세력을 가진 자다. 그러므로 죽은 것을 가까이하고, 사망의 문화를 즐기고, 자살과 죽음을 미화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부정한 영의 속성과 연결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약한 것을 잡아먹는 맹금류&lt;/strong&gt;는 착취와 폭력을 보여 준다. 이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구조를 당연하게 여긴다. 돈 있는 자가 돈 없는 자를 이용하고, 권력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지식 있는 자가 모르는 자를 속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이다. 약한 자를 삼키는 속성은 사탄의 속성이다. 성도는 힘을 가졌을 때 남을 짓누르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lt;br&gt; &lt;strong&gt; 밤에 활동하는 새 곧 어둠에 속한 새들&lt;/strong&gt;은 죄의 환경을 보여 준다. 죄는 대개 어둠을 좋아한다. 감추어진 곳에서 자란다. 은밀한 욕망 속에서 자란다. 밝은 빛 앞에 나오기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어둠을 좋아하는 삶, 은밀한 죄를 붙드는 삶, 빛 가운데 드러나기를 거부하는 삶은 부정한 삶이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빛 가운데 걸어가야 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1:5-7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trong&gt;&lt;/span&gt; &lt;br&gt; 반대로&lt;strong&gt; 정한 새들은 대체로 씨앗과 곡식을 먹는 새들&lt;/strong&gt;로 볼 수 있다.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다. 작은 씨 안에는 장차 자라날 생명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씨앗을 먹는 새는 생명의 원리와 연결된다. 이것을 절대화하여 생물학적 분류로만 읽어서는 안 되지만, 영적 상징으로 볼 때 의미가 분명하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사망을 즐기지 않고 생명을 귀히 여긴다. 어둠을 사랑하지 않고 빛을 사랑한다. 약한 자를 삼키지 않고 살리는 일을 한다. &lt;br&gt; 그리고 &lt;strong&gt;기는 것의 부정은 더 직접적이다. 레위기 11장은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하다고 말한다&lt;/strong&gt;. &lt;strong&gt;배로 기어 다니는 것, 네 발로 걷는 것 중 땅에 배를 붙이는 것, 여러 발을 가진 것 중 기는 것은 부정하다&lt;/strong&gt;. 그 대표는 &lt;strong&gt;뱀&lt;/strong&gt;이다. 뱀은 창세기 3장에서 인간 타락의 도구로 쓰였다. 사탄은 뱀을 통하여 하와를 미혹했고,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그러므로 뱀의 계열은 성경 전체에서 사탄의 속성과 연결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1:41-42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곧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기는 것은 땅에 밀착된 삶을 보여 준다. 특히 배로 기는 것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사는 모습이다. 영적으로 이것은 땅의 것만 추구하는 삶이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영원을 생각하지 않고, 생명나무와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지 않고, 오직 이 땅의 만족만 붙드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부정&lt;/strong&gt;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원리가 아니라 사탄에게 속한 땅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lt;br&gt;여기서 우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는 큰 기준을 볼 수 있다. 생명에 속한 것은 정하다. 빛에 속한 것은 정하다. 하늘을 향하는 것은 정하다. 말씀을 되새기며 하나님께 속한 것은 정하다. 그러나 사망에 속한 것은 부정하다. 어둠에 속한 것은 부정하다. 땅에 완전히 달라붙은 것은 부정하다. 약한 자를 삼키고 착취하는 것은 부정하다. 뱀과 귀신의 속성과 연결된 것은 부정하다. &lt;br&gt; 그러므로 부정한 새와 기는 것에 관한 말씀은 성도에게 강력한 경고가 된다. 사망의 문화를 즐겨서는 안 된다. 어둠의 환경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약한 자를 삼키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땅에 배를 붙이고 사는 자처럼 땅의 것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성도는 생명과 빛과 하늘과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삶을 선택해야 한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 data-start=&quot;13904&quot; data-end=&quot;13931&quot;&gt;7. 먹음과 접촉의 부정은 어떻게 다른가?&lt;/strong&gt;&lt;/span&gt; &lt;/span&gt; &lt;br&gt; 레위기 11장은&lt;strong&gt; 부정한 것을 먹는 문제와 부정한 것에 접촉하는 문제&lt;/strong&gt;를 각각 따로 구분한다. &lt;strong&gt;부정한 사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다. 그 옷을 빨아야 한다. 어떤 그릇은 씻어야 하고, 어떤 토기는 깨뜨려야&lt;/strong&gt; 한다. 접촉의 부정은 분명히 실제적인 부정이지만, 대개 시간의 제한이 있다. 저녁까지 부정하고, 씻음으로 정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레 11:24-25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lt;/span&gt; &lt;br&gt; 그러나&lt;strong&gt; 먹는 것은 다르다. 먹는다는 것은 밖에 있던 것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lt;/strong&gt;이다. 입으로 들어온 것은 몸 안에서 소화되고, 살과 피의 일부가 된다. 바로 이 점에서 먹음의 부정은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 접촉은 외부 영향이지만, 먹음은 내면화다. 접촉은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 먹음은 내 안에 들어온다. 이것이 레위기 11장이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귀신론적 교훈이다. &lt;br&gt; 영적으로 볼 때, 접촉은 악한 환경과 부정한 장소에 들어갔을 때에 악한 영들과 접촉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때로는 장례식장에 갈 수도 있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만날 수도 있다. 세상 직장에서 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접촉 자체가 곧바로 영혼의 영구적 오염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부정한 환경은 영향을 준다. 죄의 장소, 유흥의 장소, 우상숭배의 장소, 음란과 탐욕이 역사하는 공간은 성도에게 해롭다. 그러나 접촉으로 인한 영향은 회개와 말씀과 기도로 씻어내야 할 외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lt;br&gt; 반면&lt;strong&gt; 죄를 짓는 것은 먹는 것과 같다&lt;/strong&gt;. 성도가 음란을 행하면 음란의 영에게 문을 여는 것이다. 거짓을 행하면 거짓의 영에게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하면 우상 뒤에서 역사하는 귀신과 접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미움과 살인, 탐욕과 교만, 불순종과 원망도 마찬가지다. 죄는 악한 영이 들어오는 합법적 근거가 된다. &lt;br&gt; 그러므로 &lt;strong&gt;성도는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lt;/strong&gt;.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죄는 더러움이다. 죄는 악한 영이 들어오는 문이다. 죄는 몸과 영혼을 귀신의 집처럼 만들 수 있다. 물론 성도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반드시 즉시 구원을 잃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죄를 품고 회개하지 않는 삶은 몸과 영혼을 계속 더럽힌다. 결국 그 더러움은 성도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손해가 된다. &lt;br&gt; 여기서 회개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구약의 레위기 11장에는 부정한 것을 먹은 사람을 어떻게 정결하게 하는지 세밀한 방법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약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가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이것이 신약 성도에게 주어진 정결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지 처음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성도는 날마다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strong&gt;&lt;/span&gt; &lt;br&gt;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헬라어로 회개는 ‘메타노이아’이다. 마음과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죄를 사랑하던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한 자리에서 나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다. 회개는 물로 씻는 것과 같고, 피로 정결케 되는 것과 같다. 회개를 통해 몸속에 자리 잡은 악한 영의 근거가 제거되고, 성도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으로 회복된다. &lt;br&gt; 사도 바울은 성도의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몸이 누구에게 쓰임받느냐의 문제다. 죄를 지으면 몸은 죄의 도구가 된다. 귀신이 역사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회개하고 성령께 자신을 드리면 몸은 의의 무기가 된다. 성령이 거하시는 집이 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lt;/strong&gt;&lt;/span&gt; &lt;br&gt; 먹음과 접촉의 차이는 성도의 영적 분별에 매우 중요하다. 모든 접촉을 두려워하여 세상 밖으로 도망갈 필요는 없다. 주님도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셨고, 사도들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죄를 먹어서는 안 된다. 죄를 마음 안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부정한 것을 즐기고, 반복하고, 합리화하고,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접촉은 씻어내야 하지만, 먹음은 반드시 토해 내듯 회개해야 한다. 죄를 품고 살면 악한 영이 거처를 만들기 때문이다. &lt;br&gt; 이것이 레위기 11장이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매우 실제적인 경고다. 성도는 무엇을 보고 듣고 만지는지도 살펴야 하지만, 더 깊이 무엇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먹는 것은 내가 된다. 죄를 먹으면 죄의 사람이 되고, 말씀을 먹으면 말씀의 사람이 된다. 성도는 날마다 말씀을 먹고,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236fa1;&quot;&gt;&lt;strong data-start=&quot;16499&quot; data-end=&quot;16530&quot;&gt;8. 음식의 자유 안에서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 신약 성도는 음식의 자유를 받았다. 이것은 분명하다&lt;/strong&gt;. 예수께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게 하셨고(막 7:19-20), 베드로의 환상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깨끗하게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행 10:10-16).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5). 그러므로 성도는 구약 음식법의 문자적 금지에 매여 두려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lt;br&gt; &lt;strong&gt;그러나 음식의 자유가 영적 방종을 뜻하지는 않는다.&lt;/strong&gt; 신약 성경은 분명히 멀리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율법 전체를 짐으로 지우지 않았지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멀리하라고 결정했다(행 15:19-20, 28-29). 이것은 단순한 문화적 배려만이 아니다. 영적 오염과 깊이 관련된 문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5:19-20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lt;/strong&gt;&lt;/span&gt;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행 15:28-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lt;/strong&gt;&lt;/span&gt; &lt;br&gt; &lt;strong&gt; 첫째, 우상의 제물을 멀리해야&lt;/strong&gt; 한다. 음식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쌀 자체, 고기 자체, 채소 자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바울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숭배의 배후에는 귀신이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귀신의 식탁과 연결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10:20-21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lt;/strong&gt;&lt;/span&gt; &lt;br&gt; 성도는 여기서 분별해야 한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 일반 식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받는 음식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우상숭배 의식에 참여하거나,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는 의미를 알면서 그것을 먹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영적 교제의 문제가 된다. 성도는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하여 참여할 수 없다. &lt;br&gt; &lt;strong&gt; 둘째, 피를 멀리해야&lt;/strong&gt; 한다. 피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레위기 17장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피를 제단에 주신 것은 생명을 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피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생명과 속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 신약 성도에게 피를 멀리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귀하게 여기라는 영적 의미를 품고 있다. &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lt;/span&gt;&lt;/strong&gt; &lt;br&gt; 이 말씀을 잘못 적용해서 수혈 자체를 금지하는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학적 처치에까지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본문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핵심은 피를 생명과 속죄의 관점에서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그 피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lt;br&gt; &lt;strong&gt;셋째,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해야&lt;/strong&gt; 한다. 목매어 죽인 것은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죽음과 관련될 뿐 아니라, 영적으로는 비정상적 죽음과 자살의 어두운 이미지와 연결된다. 목은 생명의 호흡이 지나가는 자리다. 성경은 이 항목을 우상의 제물과 피와 함께 두며 멀리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과 자살과 절망을 부추기는 어두운 영의 흐름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사탄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려 하지만, 주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 &lt;br&gt; &lt;strong&gt; 넷째, 음행을 멀리해야&lt;/strong&gt; 한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음식 항목들과 함께 음행을 언급한다. 이것은 음행이 단순한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영적 오염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행은 몸을 더럽히고, 영혼을 무너뜨리며, 악한 영에게 문을 연다.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 음행은 성령의 전을 더럽히는 일이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6:18-20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lt;/strong&gt;&lt;/span&gt; &lt;br&gt; 그러므로 신약 성도의 음식 자유는 영적 분별과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음식 자체는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귀신의 식탁에 연결된 것은 멀리해야 한다. 피를 함부로 여기며 생명과 보혈의 의미를 가볍게 만드는 태도를 멀리해야 한다. 목매어 죽인 것과 같이 죽음과 절망의 어두운 흐름을 담은 것을 멀리해야 한다.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영적 정결의 문제다. &lt;br&gt; 성도는 자유를 받았지만,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유는 아무것이나 받아들이는 방종이 아니다. 참된 자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죄와 귀신의 종노릇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을 수 있는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 정결하게 사는 자유다. &lt;br&gt;&lt;strong&gt;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lt;/strong&gt;&lt;/p&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236fa1;&quot;&gt;&lt;strong data-start=&quot;19286&quot; data-end=&quot;19296&quot;&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 &lt;br&gt; 우리는 레위기 11장의 음식 정·부정법이 오늘날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법은 신약 성도를 다시 구약 음식 규정 아래로 묶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동물의 정·부정법을 통해 영적 분별의 그림자를 보여 주셨고, 신약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밝히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음식 자체의 금지에 머물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정결과 부정의 영적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lt;br&gt;육 지 동물의 굽이 갈라짐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보여 준다. 새김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사는 삶을 보여 준다. 물속 생물의 지느러미는 세상 조류를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을 보여 준다. 비늘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영적 방어력을 보여 준다. 부정한 새들은 사망과 착취와 어둠을 경고한다. 기는 것들은 뱀의 계열, 곧 땅에 배를 붙이고 사는 사탄적 속성을 경고한다. 먹음과 접촉의 차이는 죄를 통해 악한 영을 내면화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준다. &lt;br&gt; 신약 성도는 음식의 자유를 받았지만, 영적 분별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은 멀리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식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귀신의 식탁과 주의 식탁을 구분하는 문제다. 성도는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실 수 없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다. &lt;br&gt; 성도는 또한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죄는 악한 영이 들어오는 통로이며, 회개는 그 근거를 제거하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고 충성하며, 자신의 몸을 귀신의 집이 아니라 성령의 전으로 세워 가야 한다. 몸을 죄의 도구로 내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lt;br&gt; 정결법의 최종 목적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있다. 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날마다 회개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의 것에 배를 붙이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늘의 것과 영원한 것과 생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lt;br&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span&gt; &lt;br&gt;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단지 구원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승점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으로 시작한 성도가 회개와 충성과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함을 말한다. 정결하지 못한 삶을 지속하면서도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날마다 자신을 씻어야 한다. 말씀을 새김질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빛 가운데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길을 걸어야 한다. &lt;br&gt; 레위기 11장의 음식 정·부정법은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속한 자인가?” 생명과 빛과 하늘과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인가, 아니면 사망과 어둠과 땅과 죄와 뱀과 귀신의 속성에 끌려가는 자인가를 묻는다. 성도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사탄에게 속한 자리에서 벗어나 한 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EndFragment--&gt;&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20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여기까지는 쳇GPT가 정리한 것입니다.&lt;/p&gt; &lt;p&gt; &lt;/p&gt; &lt;p&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gt;2026-05-20(수) 수요기도회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 &lt;strong&gt;[레위기강해(08)] 정결법(01) 음식과 관련된 동물의 정부정법(레11:1~4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hNsNBU-wgpE&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1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 color: #236fa1;&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1&gt; &lt;p&gt;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다. 특히 레위기의 정결법은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의 음식 규례라는 역사적 껍데기를 넘어, 오늘날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는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거룩함의 표준이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과 접촉하며, 어떻게 우리 자신을 구별할 것인가의 문제는 곧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인가,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을 좇아가는 자인가를 결정짓는 중대한 신앙의 기로가 된다.&lt;/p&gt; &lt;p&gt;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분명히 명하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거룩함이 무엇인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 거룩함을 어떻게 실제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성도가 막연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식을 구별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존재임을 매 순간 잊지 않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음식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나, 그 내면에 담긴 영적 원리는 여전히 우리 신앙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lt;/p&gt; &lt;p&gt;우리는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며 영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고 있는가? 혹시 세상의 가치관과 혼합되어 우리의 영이 오염되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쌓인 부정함을 씻어내고, 영적인 눈을 떠서 사탄의 궤계를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섞여 사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정결법을 주셨으며,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하나님은 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어 구별하게 하셨는가?&lt;/span&gt;&lt;/h3&gt; &lt;p&gt;하나님께서 레위기 11장을 통해 짐승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신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이나 위생 관념을 넘어, 이스라엘이 세상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된 민족임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영적 전략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세상의 부정한 속성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다.&lt;/p&gt; &lt;p&gt;구체적으로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을 정결하다고 하신 것에는 깊은 영적인 상징성이 담겨 있다. 굽이 갈라졌다는 것은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세상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완전히 구분됨을 의미한다. 또한 되새김질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발성으로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묵상하고 심령 깊은 곳에 새기는 신앙인의 태도를 상징한다. 반면, 그렇지 않은 짐승들은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거나, 어둠과 사망에 속한 특징들을 여실히 보여준다.&lt;/p&gt; &lt;p&gt;이스라엘 백성이 이 규례를 지키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했다. (레 11:44)&lt;/p&gt; &lt;p&gt;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lt;/p&gt; &lt;p&gt;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가치관을 섭취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음식법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자신의 삶으로 투영해내라는 고도의 영적 훈련 과정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무엇을 마음에 담고, 무엇을 생각의 재료로 삼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적 상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 음식 정결법은 어떤 영적 교훈을 주는가?&lt;/span&gt;&lt;/h3&gt; &lt;p&gt;많은 성도가 신약 시대에 들어와 음식에 대한 규례가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무엇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에게 보이신 환상은 분명 모든 것이 깨끗해졌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모든 것을 무분별하게 섭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는 율법의 조항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율법에 담긴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lt;/p&gt; &lt;p&gt;음식 그 자체가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거나 귀신과 교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를 귀신과 교제하는 것으로 경고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문화, 사상 등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원리다. 비록 먹는 것의 자유는 얻었으나, 그 행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lt;/p&gt; &lt;p&gt;우리는 이제 율법의 문자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선하지만, 그것을 왜곡하여 사탄의 통로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고전 10:20)&lt;/p&gt; &lt;p&gt;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lt;/p&gt; &lt;p&gt;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정결법은 &#039;어떤 음식을 먹느냐&#039;의 문제가 아니라, &#039;무엇을 통해 영적 공급을 받느냐&#039;의 문제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세상의 정보와 문화가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인지, 아니면 우리를 병들게 하는 독소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영적 세계에서 ‘먹는 행위’와 ‘접촉’은 어떻게 우리를 더럽히는가?&lt;/span&gt;&lt;/h3&gt; &lt;p&gt;영적 세계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곧 그 대상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육적인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피와 살이 되듯, 우리가 영적인 가치관이나 죄의 유혹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우리의 속사람을 형성한다. 특히 귀신이 틈타는 죄를 범하는 것은 영적인 독을 섭취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lt;/p&gt; &lt;p&gt;반면 접촉은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의미한다. 부정한 장소, 부정한 사람, 부정한 문화를 접촉할 때 우리는 그 영적인 영향력을 받게 된다. 성경은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가르친다. 이는 일시적인 오염이라 할지라도 즉각적인 정결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의 현장에 머물거나 악한 영의 영향을 받는 문화에 노출될 때, 우리의 영적 민감도는 급격히 떨어진다.&lt;/p&gt; &lt;p&gt;많은 이들이 죄를 짓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세상의 유흥과 악한 문화와 접촉할 때, 우리 주변에는 그 영들이 달라붙는다. (레 11:24)&lt;/p&gt; &lt;p&gt;레 11:24 이런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죽음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lt;/p&gt; &lt;p&gt;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까이하고 무엇을 멀리하는지는 우리의 영적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누구와 교제하고, 어떤 곳을 방문하며,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접촉은 영적 영향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세상에 발을 딛고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진 역설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분명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부정한 동물들이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는 반면, 정결한 동물들은 굽이 갈라지고 톡톡 튀어 오른다.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lt;/p&gt; &lt;p&gt;우리는 세상의 부와 명예, 쾌락이라는 땅의 가치에 배를 대고 기어 다니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스프링을 달고, 세상의 유혹을 훌쩍 뛰어넘어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성도의 모습이다.&lt;/p&gt; &lt;p&gt;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요 18:36)&lt;/p&gt; &lt;p&gt;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lt;/p&gt; &lt;p&gt;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삶은 영적으로 부정한 삶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땅을 밟고 있지만, 그 땅의 법칙이 아닌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 정체성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사슴과 노루의 영적 특성을 성도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lt;/span&gt;&lt;/h3&gt; &lt;p&gt;성경에서 노루와 사슴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의 영성을 상징한다. 그들의 특성인 &#039;쪽발&#039;과 &#039;되새김질&#039;은 오늘날 성도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신앙의 자세이다. 쪽발은 세상과 구별된 발걸음을 의미하고, 되새김질은 말씀에 깊이 침잠하는 묵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lt;/p&gt; &lt;p&gt;다윗은 자신의 발을 암사슴과 같게 하사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는 성도가 영적인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더러운 것을 밟지 않는 구별된 삶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시 18:33)&lt;/p&gt; &lt;p&gt;시 18: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lt;/p&gt; &lt;p&gt;성도는 사슴처럼 민첩하게 영적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의 안일함과 죄악의 늪에 빠져 있는 자들은 하늘을 향해 뛸 수 없다. 오직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민첩하게 지켜내는 자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문제이다. 세상의 낮은 곳에 머물며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말씀을 붙들고 영적인 높은 곳으로 비상할 것인가를 매 순간 결단해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일상에서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멀리해야 할 것과 추구할 것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gt;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 속에서 정기적인 &#039;청소&#039;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멀리할 것을 과감히 멀리하고, 추구할 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결단이다. 성경은 우상의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단순한 금기를 넘어, 생명과 경건을 위협하는 영적 통로들을 차단하라는 명령이다.&lt;/p&gt; &lt;p&gt;우리는 사망을 추구하거나 어둠을 즐기는 삶의 방식에서 떠나야 한다. 죽음을 미화하거나, 약자를 착취하거나, 세상의 정욕에 빠져 있는 것은 영적 오염을 자초하는 일이다. 대신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 빛 가운데 행하는 일,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한다.&lt;/p&gt; &lt;p&gt;성도의 정결함은 소극적으로 죄를 피하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거룩함을 좇는 것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서의 모습을 가꾸어가야 한다. 정결함은 목적지가 아니라 매일 걸어가야 할 여정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빛이 가득할 때, 어둠은 자연스럽게 물러가고 우리는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 단장될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회개는 왜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인가?&lt;/span&gt;&lt;/h3&gt; &lt;p&gt;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해질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죄의 먼지를 묻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매일의 회개가 필요하다. 회개는 더러워진 우리의 두루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lt;/p&gt; &lt;p&gt;회개 없는 신앙은 외식이며, 거짓된 평안일 뿐이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넘어, 내 안에 자리 잡은 귀신의 통로를 깨뜨리고 성령의 전으로 다시 건축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우리가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 속사람은 정결해지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lt;/p&gt; &lt;p&gt;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를 얻는다고 선포한다. (계 22:14)&lt;/p&gt; &lt;p&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p&gt; &lt;p&gt;회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죄를 씻어내고, 우리 안에 틈타는 악한 영들을 몰아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한 신부로 준비될 수 있다. 회개는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을 허무는 거룩한 도구이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3&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gt;성경에 기록된 정결법과 그 영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단순히 음식을 가려 먹는 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거룩의 원리를 통해 당신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셨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음식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영적 분별력과 거룩함을 지켜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lt;/p&gt; &lt;p&gt;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며, 날마다 회개를 통해 우리 영혼의 두루마기를 씻어내야 한다. 죄를 짓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귀신에게 내 마음의 집을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사슴과 같이 영적인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gt;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다. 그러므로 부정한 접촉을 피하고, 거룩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한다.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흠 없고 점 없는 신부로 주님 앞에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20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여기까지는 제미나이가 정리한 것입니다.&lt;/p&gt; &lt;p&gt; &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레위기강해 #정결법 #음식정결법 #레위기11장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신약시대 #음식의자유 #영적이미 #죄 #회개 #성결 #정결 #먹음 #접촉 #우상의제물 #피 #목매어죽인것 #음행 #굽이갈라진것&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강해"/><category term="정결법"/><category term="음식정결법"/><category term="레위기11장"/><category term="동탄명성교회"/><category term="정보배목사"/><category term="신약시대"/><category term="음식의자유"/><category term="영적이미"/><category term="죄"/><category term="회개"/><category term="성결"/><category term="정결"/><category term="먹음"/><category term="접촉"/><category term="우상의제물"/><category term="피"/><category term="목매어죽인것"/><category term="음행"/><category term="굽이갈라진것"/>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07)] 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레10:8~20)_2026-05-13(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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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13T21:55:12+09:00</published>
		<updated>2026-05-14T08:32:3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5-13(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7)] 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레10:8~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9RZSmMcQ2k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흔히 신약 성도에게 가장 거리감이 큰 책으로 여겨진다. 제사 규례와 정결 규례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옛 이스라엘의 의식 문서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위기는 단순히 고대의 종교적 매뉴얼이 아니다...</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2026-05-13(수) 수요기도회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07)] 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레10:8~2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r9RZSmMcQ2k&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9RZSmMcQ2k?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div data-test-render-count=&quot;1&quot;&gt; &lt;div class=&quot;group&quot;&gt; &lt;div data-is-streaming=&quot;false&quot; class=&quot;group relative relative pb-3&quot;&gt; &lt;div class=&quot;font-claude-response relative leading-[1.65rem] [&amp;amp;_pre&amp;gt;div]:bg-bg-000/50 [&amp;amp;_pre&amp;gt;div]:border-0.5 [&amp;amp;_pre&amp;gt;div]:border-border-400 [&amp;amp;_.ignore-pre-bg&amp;gt;div]:bg-transparent [&amp;amp;_.standard-markdown_:is(p,blockquote,h1,h2,h3,h4,h5,h6)]:pl-2 [&amp;amp;_.standard-markdown_:is(p,blockquote,ul,ol,h1,h2,h3,h4,h5,h6)]:pr-8 [&amp;amp;_.progressive-markdown_:is(p,blockquote,h1,h2,h3,h4,h5,h6)]:pl-2 [&amp;amp;_.progressive-markdown_:is(p,blockquote,ul,ol,h1,h2,h3,h4,h5,h6)]:pr-8&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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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lt;strong&gt; 한국 교회 안에는 오랫동안 한 가지 큰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quot;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quot;이라는 표현&lt;/strong&gt;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근거로 모든 신자가 곧 제사장이고, 따라서 누구든지 강단에 설 수 있고, 누구든지 직접 가르치며, 누구든지 같은 신분이라는 식의 평등주의적 해석이 무비판적으로 퍼져 왔다. 이러한 해석은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을 한국적으로 잘못 번역하고 잘못 적용한 결과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루터가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했을 때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은 무엇이며, 이를 토마스 뮌처와 같은 자들은 어떻게 왜곡했는가? 신약 시대의 성도는 진정 어떤 신분에 속한 자이며, 천국에서 우리가 받게 될 보상은 모두 동일한가, 아니면 차등이 있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를 헬라어 원문과 종교개혁사, 그리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따라 깊이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2. 레위기서는 어떤 책이며, 레위인과 제사장은 어떻게 구분되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레위기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lt;strong&gt;먼저 레위 지파의 기원을 살펴야&lt;/strong&gt; 한다.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이었다. 야곱이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셋째 아들 레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보여 따로 구별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 지파를 따로 떼어서 주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레 3:41,45). 이로써 레위 지파는 다른 열한 지파와 구별된 자들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른 지파는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절기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오고, 죄를 지으면 속죄제를 드리러 오고, 첫 열매와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드렸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그러한 일상의 삶에서 떨어져 나와 오직 회막의 봉사를 위해 구별된 자들이 되었다(레 3:6-7, 8:14-16). 오늘날로 말하면 일반 지파는 그냥 살아가는 평신도에 해당하고, 레위 지파는 회막의 직무를 감당하는 헌신된 평신도 그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레위인들 중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목회자와 사도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으니 곧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가 있었다. 이 세 종족이 레위 지파를 이루었고, 회막에서 각기 다른 직무를 감당했다. 게르손 자손은 회막의 휘장과 덮개 등 천막 부분을 운반했고, 고핫 자손은 분향단과 떡상과 법궤 같은 거룩한 성물을 운반했으며, 므라리 자손은 회막의 나무 기둥과 받침을 운반했다. 각자에게 정해진 직무가 있었던 것이다(민 3장).&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lt;strong&gt;하나님은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다시 한 그룹을 따로 불러내셨&lt;/strong&gt;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다. 이들은 레위의 둘째 아들 고핫의 손자인, 아므람의 아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다. 아론은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졌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모두 제사장 계열에 속한 사람이지만, 모든 레위인이 다 제사장은 아니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과 그의 자손들만이 될 수 있었고, 그 직분은 혈통으로 유전되었다. 일반 레위인이 따로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일은 없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레위인과 제사장의 결정적 차이&lt;/strong&gt;는 무엇인가? 제사를 직접 집례하는 권한이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회막 안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백성의 송사를 재판하며, 백성에게 복을 선포하는 직무를 감당했다. 반면 레위인은 제사장이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자들이었다. 회막의 성물을 운반하고, 제사에 쓰일 것을 준비하며, 회막을 지키고 청소하는 일들이 그들의 몫이었다. 나중에는 성전 문지기의 일과 찬양하는 일을 추가로 담당하게 된다.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렇게 &lt;strong&gt;레위인과 제사장이 무슨 일을 하느냐를 규정해 놓은 책이 바로 레위기서&lt;/strong&gt;이다. 곧 &lt;strong&gt;레위기서는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이 어떤 직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가르치는 책&lt;/strong&gt;이다. 1장부터 5장까지는 다섯 가지 제사의 기본 규례를, 6장과 7장은 그에 대한 보조 규례를 가르치고, 8장은 제사장 위임식의 일곱 가지 절차를, 9장은 아론의 첫 제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0장에 이르러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3.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포도주 금지는 어떤 경건성을 요구하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아론이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9장에서 최초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것이 곧 &#039;여호와의 불&#039;이었다(레 9:24). 그 후 그 불은 번제단 위에서 끊어지지 않게 계속 유지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론의 첫째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제사 실습 차원에서 분향단의 향로에 향을 피우게 되었다. 그 향을 사를 때 사용해야 할 불은 반드시 번제단의 거룩한 불, 곧 하늘에서 내려온 여호와의 불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그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져다 향을 피웠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레 10:1-2).&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하나님은 큰 교훈을 주신다. &quot;나를 위해 구별된 자는 나를 위해 봉사할 때에 조심하라. 내가 시키는 법대로 정확히 행해야만 한다. 네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quot; 이것이 곧 거룩한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경고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모든 제사장이 영원토록 지켜야 할 규례를 명하신다(레 10: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0: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제사장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실 수 없었다. 만약 술기운이 있는 상태로 회막에 들어가면 즉사한다는 무서운 경고였다. 왜 이렇게 엄중한가? 그 이유가 곧 이어지는 말씀에 분명히 드러난다(레 10:10-11).&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0:10-11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제사장의 본질적 직무 가운데 하나는 분별이다. 무엇이 거룩하고 무엇이 속되며, 무엇이 부정하고 무엇이 정한지를 가려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술에 취해 정신이 흐려져 있는 자가 어떻게 그러한 분별을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 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것이 바로 &lt;strong&gt;지도자의 경건성이 가지는 무게&lt;/strong&gt;이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죄가 많은 자들로 가득 차면 그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듯이, 한 교회의 지도자가 흐트러지면 그 교회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사사기 시대를 보라. 백성이 타락하니 하나님은 악한 주변국의 지도자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게 하여 부르짖게 하셨다. 그리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회 전체의 타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직시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필자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현실을 떠올린다. 오늘날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술을 가까이한다는 사실이다. 신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기숙사에서도 몰래 술을 마시는 자들이 있었다. 술을 끊지 못한 채 신학교로 들어와 그 습관을 이어가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절제할 수 있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은 회막에 들어가는 자의 자격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필자도 솔직히 술이 당기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부친께서 술을 즐기셨던 까닭에 그 영적 흔적이 내 안에도 있다. 그러나 회막에 들어가야 할 자가 술 냄새를 풍긴다면 어떻게 백성을 가르치겠는가? 그래서 절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회막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에게 주어진 거룩한 명령이며, 어기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엄중한 규례이다. 더 나아가 이는 제사장에게만 적용되는 규례가 아니었다. 나실인의 경우는 더 무거웠다. 회막에 들어갈 때만이 아니라 서원하는 모든 날 동안 포도주를 비롯한 모든 술을 입에 대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구별하여 드린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경건성의 수준이다. 우리는 이 수준 앞에서 자신을 깊이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4.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은 원문상 어떤 의미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본격적으로 본 강의의 핵심 주제로 들어가자.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가 베드로전서 2장 9절이다(벧전 2: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필자도 한때 이 말씀을 근거로 제자 훈련을 열심히 시킨 사람이다. &quot;당신은 누구입니까?&quot; &quot;왕 같은 제사장입니다!&quot; &quot;할렐루야!&quot; 이렇게 외치며 서로에게 신앙 고백을 시켰다. 모든 성도가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깊이 살펴보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글 성경은 번역 성경이지 원문 성경이 아니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원문에 비추어 다시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헬라어로 제사장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는 &#039;히에류스(ἱερεύς)&#039;이다. 그리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뜻의 동사는 &#039;히에라튜오(ἱερατεύω)&#039;이며, 그 명사형은 &#039;히에라테이아(ἱερατεία)&#039;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설명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롬 15:16).&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로서 &quot;제사장 직분&quot;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039;히에라테이아&#039;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곧 직무로서의 제사장 사역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lt;strong&gt;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으로 번역된 단어는 &#039;히에라테이아&#039;가 아니다. 그것은 &#039;히에라튜마(ἱεράτευμα)&#039;&lt;/strong&gt;이다. 이 단어는 &#039;직무&#039;가 아니라 &lt;strong&gt;&#039;체계&#039; 또는 &#039;제사장 집단의 구조&#039;&lt;/strong&gt;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 본문은 &quot;너희는 &lt;strong&gt;왕에 속한 제사장 체계에 속한 자들&lt;/strong&gt;&quot;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성도가 한 명 한 명 제사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lt;strong&gt;우리 성도 전체가 하나의 거룩한 제사장 체계 안에 속해&lt;/strong&gt; 있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차이가 왜 중요한가? 제사장 체계는 단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대제사장이 있고, 그 아래 제사장이 있으며, 그 아래 레위인이 있고, 또 그 아래 느디님 사람(회막에 봉사하도록 바쳐진 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을 &quot;제사장 체계에 속한 자&quot;라고 할 때, 그 체계 안에서 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사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들을 보내실 때 각자의 위치를 정하여 보내신다.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자로 보내신 자가 있고,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자로 보내신 자가 있고, 레위인의 직무를 감당할 자로 보내신 자가 있다. 그리고 본래는 멸망 받아야 했으나 항복하여 회막 봉사에 받쳐진 나무패며 물긷는 자(나중에 느디님 사람이라 불림)의 위치로 보내신 자도 있다. 이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lt;strong&gt;많은 사람이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여 &quot;내가 곧 제사장이다&quot;라고 생각해&lt;/strong&gt; 버렸다. &lt;strong&gt;이로 인해 자신의 부르심과 분량을 살피지 않은 채 함부로 목회자의 길에 뛰어드는 일이 빈번해졌다&lt;/strong&gt;. 그 결과 무엇이 일어났는가? 부적격자가 강단에 서게 되었고,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역자가 양산되었으며, 결국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평생 헤매다 가는 안타까운 인생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다시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우리는 왕에 속한 제사장 체계 안에 속한 자들이며, 그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은 본래 무슨 뜻이었으며 어떻게 왜곡되었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잘못 이해하게 된 데에는 종교 개혁사의 한 흐름이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곧 마르틴 루터가 주장한 &#039;만인 제사장설&#039;(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 그것이다. 그런데 &lt;strong&gt;루터가 본래 의도한 만인 제사장설의 의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strong&gt;먼저 종교 개혁의 배경&lt;/strong&gt;을 잠시 살펴보자.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 개혁의 직접적 도화선은 교황의 면죄부 판매였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게 했다.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있는 사람도 천국으로 갈 수 있고, 이미 죽은 부모의 영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가르침이 횡행했다. 이는 명백한 권력 남용이자 착취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자 신부였던 루터는 이러한 부당함에 분노하여 신학적 반박을 시도했다. 그가 근거로 든 핵심 구절 중 하나가 히브리서 9장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으므로, 이제 사람이 죄 용서를 받기 위해 사제에게 가서 고해 성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히 9:11-12). &lt;strong&gt;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이것이 곧 루터가 주장한 만인 제사장설의 본질&lt;/strong&gt;이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시 말해 루터의 &lt;strong&gt;만인 제사장설은 &quot;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다&quot;라는 신분상의 선언이 아니었다&lt;/strong&gt;. 그것은 &lt;strong&gt;&quot;누구든지 사제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quot;라는 접근성에 대한 선언&lt;/strong&gt;이었다. 독일어 원문을 보아도 루터가 말한 것은 &quot;모든 믿는 자들의 제사장 체계&quot;(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지, &quot;모든 사람이 곧 제사장&quot;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글 번역으로 들어오면서 &quot;만인 제사장설&quot;이라는 잘못된 표현이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마치 &quot;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다&quot;라는 뜻으로 오해되기 시작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더 큰 문제는 &lt;strong&gt;루터의 본래 의도와 무관한 방향으로 이 가르침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lt;/strong&gt;는 점이다. 1525년 토마스 뮌처(1489~1525)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quot;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면 사제 계급도 필요 없고, 지주 계급도 필요 없다. 우리 모두 평등한 형제다. 따라서 사제도 지주도 다 없애자.&quot; 이로 인해 독일 전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고,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토마스 뮌처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lt;strong&gt;그가 뿌린 평등주의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흐름은 재세례파로, 다시 형제회로, 그리고 후대에는 위트니스 리와 신천지 같은 이단으로까지 이어졌다&lt;/strong&gt;. &lt;strong&gt;이들 그룹의 공통된 특징&lt;/strong&gt;은 무엇인가? &lt;strong&gt;직분 자체를 부정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039;목사&#039;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모두를 &#039;형제&#039;라 부르며, 권위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 집단 내부에는 여전히 지도자가 있고 권력자가 있다. 다만 명칭만 평등하게 위장한 것뿐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영지주의적 평등주의이며, 사회적으로는 공산주의적 발상과 닮아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루터 자신도 후에 이러한 왜곡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본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음을 거듭 해명했다. 그러나 한 번 잘못 풀려 나간 가르침은 쉽사리 바로잡히지 않았다.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오해는 여전히 한국 교회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종교 개혁이 모든 면에서 옳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lt;strong&gt;종교 개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잘못된 가르침까지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일은 위험하다&lt;/strong&gt;. &lt;strong&gt;칼뱅이 정립한 이중 예정론, 곧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천국 갈 자로 어떤 사람은 지옥 갈 자로 예정되어 있다는 가르침 역시 성경에서 분명히 입증되지 않는 교리&lt;/strong&gt;이다. 성경은 &quot;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quot;고 말씀하지, 처음부터 일부를 지옥에 예정해 두셨다고 말씀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결국 만인 제사장설은 그 본래의 의미인 &quot;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quot;는 진리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직분에 부르심을 받은 자인지를 신중히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6. 달란트 비유와 계시록 1장 5~6절은 천국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성경은 천국에서의 보상이 모든 자에게 동일하다고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본문이 있다면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이다(마 25:14-15).&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 &lt;strong&gt;그 분배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quot;각각 그 재능대로&quot;&lt;/strong&gt;이다. 곧 &lt;strong&gt;각 종에게 주어진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른 분량의 달란트가&lt;/strong&gt; 맡겨졌다. 이는 &lt;strong&gt;결코 차별이 아니라 적합한 배정&lt;/strong&gt;이다. 한 달란트 그릇의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면 감당하지 못한다. 다섯 달란트 그릇의 사람에게 한 달란트만 맡기면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자에게 적합한 분량을 주신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고 이 &lt;strong&gt;달란트의 비유에 나오는 &#039;종&#039;&lt;/strong&gt;이라 개념은 그저 평범한 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본문의 헬라어와 문맥을 살피면 이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자들, 곧 요한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14만 4천 명의 인 맞은 자들&lt;/strong&gt;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lt;strong&gt;하나님의 일을 위해 따로 구별된 자들 사이에서도 그 그릇과 분량이 다르다&lt;/strong&gt;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각각 그것으로 장사하여 배의 결과를 남겼다. 두 사람 모두 주인에게 같은 칭찬을 받았다. &quot;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quot;라는 동일한 칭찬이다(마 25:21, 23).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의 크기가 아니라 &lt;strong&gt;충성의 비율이 평가의 기준&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분량 안에서 최선을 다한 자가 주인 앞에 칭찬받는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어떠했는가? 그는 자기에게 적게 주어진 것을 불만으로 여기고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다. 그의 변명은 이러했다. &quot;주인이여 당신은 굳은(인색한)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quot;(마 25:24-25) 이는 주인을 향한 왜곡된 인식이며, 일하기 싫어하는 자의 핑계이다. 그렇다면 주인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떻게 처분했는가?(마 25:30) &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여기서 &quot;바깥 어두운 데&quot;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사실 비교급으로, 정확히 옮기면 &quot;더 바깥의 어두운 곳&quot;이다. 이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 밖에서도 더 멀리 떨어진 바깥 어둠의 장소로서 고통받는 장소를 의미한다. 거의 지옥에 방불한 징계의 자리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았음에도 충성하지 못한 자가 받게 될 무서운 결말이 이것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이러한 차등 보상은 요한계시록 1장 5절과 6절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계 1:5-6)는 사실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quot;왕&quot;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quot;왕국(바실레이아, kingdom)&quot;으로 삼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quot;제사장&quot;이 아니라 &quot;제사장들&quot;로 삼으셨다고 한다. &#039;왕국&#039;이라 함은 무엇인가? 그 안에 왕이 있고, 장관이 있고, 백성이 있고, 종이 있는 체계이다. 제사장들이라 함도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이 함께 이루는 위계 체계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곧 &lt;strong&gt;신약 성도가 받게 될 천국의 모습은 결코 평등한 단일 신분의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각자의 충성에 따라 분명한 차등을 두시는 질서 있는 나라&lt;/strong&gt;이다. 어떤 자는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서 어린 양께 가장 가까이 있고, 어떤 자는 변두리에서 간신히 성 안에 들어가 살게 된다. 이것이 천국의 실제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7. 신약 성도가 신약의 레위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오늘날 신약 시대의 평신도는 구약의 어떤 계열에 해당&lt;/strong&gt;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lt;strong&gt;신약의 평신도는 본질적으로 레위인급에 해당&lt;/strong&gt;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근거를 살펴보자.&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먼저, 레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바쳐진 자가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 기원은 출애굽 사건에 있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 번째 재앙은 모든 장자와 동물의 초태생에게 죽음을 내리는 재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는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본래는 죽었어야 마땅했으나 살아난 장자들과 초태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각 가정의 장자와 초태생을 모두 회막으로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에 하나님은 한 지파 전체를 그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자신께 바치도록 정하셨다(민 3:41). 이렇게 해서 레위 지파가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받쳐진 자가 되었다.&lt;!--EndFragment--&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3:41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레위인들이 감당해야 할 직무는 대체 무엇이었는가?(민 8:14-15, 19)&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8:14-15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정결하게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민 8: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레위인의 직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봉사였고, 다른 하나는 백성을 향한 매개체 역할이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회막에서 봉사하면서 제사장을 도왔고, 이스라엘 백성과 거룩한 성막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진을 칠 때에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성막 사방에 진을 치는 그 안쪽, 곧 회막을 둘러싸는 동서남북의 위치에 레위인 세 종족과 아론 자손이 자리를 잡았다. 동쪽에는 아론 자손이, 남쪽에는 고핫 자손이, 북쪽에는 므라리 자손이, 서쪽에는 게르손 자손이 진을 쳐서 일반 백성이 회막에 함부로 접근하여 죽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완충지대를 이루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런데 이러한&lt;strong&gt; 레위인의 역할은 신약 시대에 그대로 적용&lt;/strong&gt;된다. 오늘 &lt;strong&gt;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어떠한 자들&lt;/strong&gt;인가?(고전 6:19-20) &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우리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어린 양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된 자들이다. 본래는 죽었어야 마땅한 자들이었으나 그 보혈로 살림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구약의 장자에 해당하며, 동시에 그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의 위치에 서게 된 자들이다. 모든 평신도는 곧 신약의 레위인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고전 6:19-20 &quot;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quo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렇다면, &lt;strong&gt;신약의 레위인인 우리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lt;/strong&gt;은 무엇인가? &lt;strong&gt;첫째, 불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중간 매개 역할&lt;/strong&gt;이다. 곧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이다. &lt;strong&gt;둘째, 회막에서 제사장을 돕는 봉사&lt;/strong&gt;이다. 곧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의 사역이 잘 이루어지도록 돕는 일이다. 진설병을 굽고, 분향단의 향을 준비하며, 성소를 청결히 유지하던 그 일들이 오늘날의 교회 봉사로 이어진다. 안내, 찬양, 교육, 구제, 행정 등 교회의 모든 봉사가 곧 신약 레위인의 직무이다. 이것은 추가적인 것으로서 &lt;strong&gt;셋째, 영적 전쟁의 임무&lt;/strong&gt;이다. 구약에서 일반 12지파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전쟁하여 그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고 중간에서 회막을 지켰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신약의 레위인인 우리 성도들이 직접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하기 대문이다. 불신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 전쟁을 많이 감당하면 감당할수록 천국에서 우리의 기업, 곧 차지하는 땅의 면적이 넓어질 것이다. 보통 평신도가 천국에서 차지하는 땅은 50평에서 300평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혼 구원에 헌신하고 영적 전쟁에 충성한 자는 그 기업이 크게 확장된다. 이것이 신약의 레위인인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부르심이며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8. &quot;예정은 있지만 고정은 없다&quot;는 진리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주는가?&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곧 &lt;strong&gt;&quot;예정은 있지만 고정은 없다&quot;는 명제&lt;/strong&gt;이다. 이것은 필자가 깊이 묵상하고 체험하면서 얻게 된 표현으로써, 어쩌면 &lt;strong&gt;&quot;만인 레위인설&quot;이라 부를 만한 가르침&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앞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각자의 위치와 신분을 정하여 보내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곧 대제사장급, 제사장급, 레위인급, 느디님 사람의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다. 이것이 바로 &quot;사역적 예정&quot;이다. &lt;strong&gt;하나님은 무계획하게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는다. 각자의 그릇과 부르심에 따라 정확히 자리를 정해 주시고 이땅에 내려보내신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나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더해진다.&lt;strong&gt; 그 예정된 자리가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lt;/strong&gt;이다. &lt;strong&gt;우리의 충성과 헌신, 그리고 회개와 영적 전쟁을 통해 본래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로 업그레이드될 수&lt;/strong&gt; 있기 때문이다. &lt;strong&gt;반대로 게으름과 불순종을 통해 본래의 자리에서 떨어질 수도&lt;/strong&gt; 있다. 곧 &quot;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quot;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이 진리를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필자의 경우가 그 산 증거이다. 처음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나에게는 본래 정해진 위치와 신분이 있었다. 본래 나는 세례 요한 마을에 속한 자로 보내심을 받았다. &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quot;를 외치는 자, 곧 길을 예비하는 자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25세에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이후, 본래의 분량보다 더 깊이 충성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수행할 때마다 120퍼센트를 주님께 드리려고 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본래의 위치보다 더 높은 위치로 나를 옮겨 주셨다. 어느 날 천국에 데려가셔서 엘리야를 만나게 하셨고, 엘리야가 나에게 칼을 건네 주었다. 이는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거짓 선지자들을 멸하고 칼로 그들을 처단했던 그 권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래 나에게는 없었던 불과 칼의 능력이 더해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졌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lt;strong&gt;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분량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충성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을 더해 주신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quot;너는 이만큼이니까 더는 안 된다&quot;라고 못 박아 두시지 않는다. 우리의 열심과 노력과 수고와 헌신을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기억하시며 더하여 갚아 주신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러므로 우리는 &lt;strong&gt;자신의 현재 위치를 두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작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영영 작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lt;/strong&gt;.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면 그 자리가 더 큰 자리로 확장된다. 반대로 큰 자리에 있다고 해서 영원히 그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게으르고 불충성하면 그 자리도 잃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 진리는 &lt;strong&gt;천국이 결코 운명론적 결정으로 닫혀 있는 곳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며, 그 의지가 충성과 헌신으로 표현될 때 더 큰 영광으로 응답하신다&lt;/strong&gt;.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더 헌신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큰 일이 맡겨진다는 주님의 약속을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h3 class=&quot;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9. 나오며&lt;/span&gt;&lt;/h3&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지금까지 우리는 &lt;strong&gt;신약의 성도들도 과연 아론과 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lt;/strong&gt;에 대해 살펴보았다. 레위기서가 어떤 책이며 레위인과 제사장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과 포도주 금지 규례가 주의 종에게 요구하는 경건성의 무게가 어떠한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이 헬라어 원문상 &#039;히에라테이아&#039;가 아니라 &#039;히에라튜마&#039;, 곧 &#039;제사장 직무&#039;가 아니라 &#039;제사장 체계&#039;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더 나아가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이 본래는 사제를 거치지 않고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접근성에 관한 가르침이었으나, 토마스 뮌처와 후대 사람들에 의해 모든 신분 구분을 철폐하는 영지주의적 평등주의로 왜곡되어 재세례파, 형제회, 신천지로 이어진 흐름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와 요한계시록 1장 5~6절을 통해 천국에서의 보상이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행한 대로 차등이 있음을, 신약 성도가 신약의 레위인으로서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마지막으로 &quot;예정은 있지만 고정은 없다&quot;는 영적 진리가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주는지를 함께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lt;strong&gt;첫째, 자신이 어느 자리에 부르심을 받은 자인지를 분명히 분별해야&lt;/strong&gt; 한다. 자신이 대제사장급인지, 제사장급인지, 레위인급인지, 느디님 사람급인지를 진지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 자리를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lt;strong&gt;둘째,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다른 사람의 큰 그릇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작은 그릇을 땅에 묻어 두는 어리석음에서 떠나야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동일한 칭찬을 받았듯이, 자기에게 주어진 분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lt;strong&gt;셋째, 회막에 들어가는 자의 경건성을 회복해야&lt;/strong&gt; 한다. 술과 세상의 흥취에 영혼이 흐려진 상태로는 결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없다.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이는 목회자에게만이 아니라 신약의 레위인인 모든 성도에게 요구되는 본질적 자세이다. &lt;strong&gt;넷째, 만인 제사장설의 잘못된 이해에서 떠나야 &lt;/strong&gt;한다.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평등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우리가 제사장 체계에 속한 자들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는 본래의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교회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고 부적격자가 강단에 함부로 서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lt;strong&gt;다섯째, &quot;예정은 있지만 고정은 없다&quot;는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헌신해야&lt;/strong&gt; 한다. 오늘의 자리가 영원한 자리가 아니다. 우리의 충성에 따라 하나님은 더 큰 은사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며, 더 높은 자리로 이끌어 주신다. 그러므로 결코 좌절하지 말고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그리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장 체계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분명히 알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함으로 본래의 분량보다 더 풍성한 은혜로 업그레이드되며, 마침내 천국에서 넓은 땅과 높은 집과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어 영원토록 어린 양과 함께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font-claude-response-body break-words whitespace-normal leading-[1.7]&quot;&gt; &lt;/p&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 class=&quot;flex justify-start&quot; role=&quot;group&quot; aria-label=&quot;Message actions&quot;&gt; &lt;div class=&quot;text-text-300&quot;&gt; &lt;div class=&quot;text-text-300 flex items-stretch justify-between&quot;&gt; &lt;div class=&quot;w-fit&quot; data-state=&quot;closed&quot;&gt;&lt;/div&gt; &lt;div class=&quot;w-fit&quot; data-state=&quot;closed&quot;&gt;2026년 05월 13일(수)&lt;/div&gt; &lt;div class=&quot;w-fit&quot; data-state=&quot;closed&quot;&gt;&lt;/div&gt; &lt;div class=&quot;w-fit&quot; data-state=&quot;closed&quot;&gt;정보배 목사&lt;/div&gt; &lt;div class=&quot;w-fit&quot; data-state=&quot;closed&quot;&gt;&lt;/div&gt; &lt;div class=&quot;flex items-center&quot;&gt;&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 class=&quot;ml-1 flex items-center transition-transform duration-300 ease-out mt-6&quot;&gt; &lt;div class=&quot;p-1 -translate-x-px&quot;&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6f8f005ce005d759e25bbc5c74dd41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6f8f005ce005d759e25bbc5c74dd417.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왕같은 제사장의 의미.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div&gt; &lt;/div&gt; &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lt;!--StartFragment--&gt;&lt;span&gt;이 설교는 레위기에 나타난 제사장 제도를 통해 &lt;/span&gt;&lt;strong&gt;신약 시대 성도의 정체성과 직분&lt;/strong&gt;&lt;span&gt;을 재정립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lt;/span&gt;&lt;strong&gt;만인제사장설의 오해&lt;/strong&gt;&lt;span&gt;를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저자 정보배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권권을 가진 &lt;/span&gt;&lt;strong&gt;레위인적 존재&lt;/strong&gt;&lt;span&gt;가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천국에서도 사역의 분량과 영적 수준에 따른 &lt;/span&gt;&lt;strong&gt;제사장 체계와 위계&lt;/strong&gt;&lt;span&gt;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아론의 아들들이 부정한 불을 사용하다 죽임당한 사건을 통해 &lt;/span&gt;&lt;strong&gt;지도자의 경건성과 법도 준수&lt;/strong&gt;&lt;span&gt;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지를 경고하며, 성도들에게는 각자에게 맡겨진 &lt;/span&gt;&lt;strong&gt;달란트와 위치에서 최선&lt;/strong&gt;&lt;span&gt;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적 예정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성도의 &lt;/span&gt;&lt;strong&gt;헌신과 회개&lt;/strong&gt;&lt;span&gt;를 통해 하늘의 기업과 신분이 확장될 수 있다는 &lt;/span&gt;&lt;strong&gt;영적 성장의 가능성&lt;/strong&gt;&lt;span&gt;을 시사하며 강의를 마무리합니다.&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레위기강해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왕같은제사장 #만인제사장설 #레위인 #신약성도 #하나님께직접나아갈권리 #경건성 #법도준수 #달란트 #영적예정 #헌신 #회개 #하늘의기업 #영적성장&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9ca1b6cf33768838c1428f5a3a0f1e0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9ca1b6cf33768838c1428f5a3a0f1e03.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c16bc823b5919cb0e89c0fa3d8fa80c8.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c16bc823b5919cb0e89c0fa3d8fa80c8.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2b7d6d742b63fcd1e14cde7ac97dc7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2b7d6d742b63fcd1e14cde7ac97dc77.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dc3d6e6e59649f88c97713c9d2b88cf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dc3d6e6e59649f88c97713c9d2b88cf4.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5a6870a11ec5a517d2b40320b63d8a90.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5a6870a11ec5a517d2b40320b63d8a90.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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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9cc10a87ef831b3458b94a85b5d57924.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9cc10a87ef831b3458b94a85b5d57924.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11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69ad82ebb586e14b801fc80e3a34ab7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69ad82ebb586e14b801fc80e3a34ab7e.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The_New_Testament_Levite.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0bd811aef28a55162b93c24b49388557.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0bd811aef28a55162b93c24b49388557.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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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ec24898cab164664147837cb0d0ba2ab.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ec24898cab164664147837cb0d0ba2ab.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Royal_Priesthood_System.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ce9d81f6deb3af5585df734c264325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bce9d81f6deb3af5585df734c264325e.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7)] Royal_Priesthood_System.pdf_6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240a9d740a749e2c2c1b63e80561f05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40/250/240a9d740a749e2c2c1b63e80561f059.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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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10:20)_2026-05-0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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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06T20:43:58+09:00</published>
		<updated>2026-05-06T22:07:2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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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5-0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10: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szjMxlXeDc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는 철저한 팩트와 질서로 움직인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인간적인 감상이나 얕은 신학적 추론으로 접근하면,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 제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2026-05-0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lt;span&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10:20&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HszjMxlXeDc&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HszjMxlXeDc?enablejsapi=1&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loading=&quot;lazy&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영적 세계는 철저한 팩트와 질서로 움직인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인간적인 감상이나 얕은 신학적 추론으로 접근하면,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 제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확한 프로토콜을 제시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일주일간의 위임식을 마치고 드디어 첫 제사를 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사름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인준하셨다(레 9:24).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레위기 10장에서는, 영적 질서를 무시하고 임의대로 행동했던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에 타죽는 충격적인 심판의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레 10:1-2).&lt;/p&gt; &lt;p&gt; 이 사건은 단순히 구약 시대의 엄격함을 보여주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신약 교회를 병들게 하는 영적 무질서와 교만, 특히 수백 년간 정설로 굳어지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 &#039;만인 제사장설&#039;의 오류를 정조준하는 날 선 검과 같다.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목회자와 동등한 제사장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의 질서를 허물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영적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 우리는 어설픈 평등주의를 박살 내고, 성경 원어가 증명하는 팩트와 천국의 실제적인 계급 체계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진정한 영적 위치를 재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왜곡된 만인 제사장설의 실체를 밝히고, 오늘날 성도들이 천국 상급을 위해 지켜야 할 참된 영적 질서와 직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정확한 영적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lt;/strong&gt;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불타 죽은 치명적인 실수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드디어 성소의 직무를 시작한 아론의 장남 나답과 차남 아비후는, 분향단에 향을 사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성소에 들어가 향을 피우다가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불에 삼켜져 숯검정이 되고 말았다. 이 참혹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039;다른 불&#039;을 담아 분양했기 때문이다(레 10: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양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해야 했던 &#039;정확한 불&#039;은 무엇인가? 그것은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불, 즉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거룩한 불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번제단의 불을 가져오는 것이 두려웠거나 귀찮았는지, 외부에서 임의로 불을 취하여 향로에 담았다. 하나님은 첫 번째 시행 케이스(시범 케이스)에 대하여 절대 용납하지 않으신다. 영적 질서를 세우기 위해 그들의 불순종을 즉각적이고 엄중하게 심판하신 것이다.&lt;/p&gt; &lt;p&gt;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치르는 영적 전쟁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시사한다. 내 육체 속에 들어와 집을 지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영혼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열심이나 율법적인 의로움이라는 &#039;다른 불&#039;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불만이 합법적인 무기다. 회개를 통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속에 들어올 때 비로소 악한 영을 우리 몸에서 떼어내어 이격시키고 녹일 수 있으며,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가 이것들을 완벽하게 태우고 자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과 질서를 무시한 채 내 방식대로 영적 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사망을 자초하는 영적 자살 행위와 같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3.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회막에서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신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두 아들의 끔찍한 죽음 직후, 하나님은 아론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엄격한 규례를 내리신다(레 10:9). 평상시의 음주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거룩한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는 절대 술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 10:9-10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 이유는 명확하다.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지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 분별력이 마비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죽음을 면치 못할 중죄다.&lt;/p&gt; &lt;p&gt;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천주교 신부들은 매일 미사 때마다 포도주를 마시는 의식을 치르며 때로는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영적 한계에 부딪혔다. 반면, 한국의 초기 개신교 목회자들은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술과 담배, 도박과 기생 문화를 끊어내며 절대적인 영적 각성을 유지했다.&lt;/p&gt; &lt;p&gt; 이것은 철저한 영적 팩트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탄 마귀는 무저갱에 완전하게 결박당해 갇혀 있으며, 하늘에서는 천년왕국이 실제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우상숭배와 제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들과 수많은 귀신들이 우리 몸 속에서 죄로 유혹하고 있으며, 우리 몸 밖에서 맴돌면서 우리 속에 들어오기 위해 틈을 엿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고 말씀과 회개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술에 취해 감각이 둔해진 제사장처럼 판단력을 잃고 말 것이다. 그때 뱀과 같은 악한 영들은 실처럼 줄어들어 교묘하게 우리 육체 안으로 밀고 들어와 집을 짓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를 일으키는 것이다. 제사장의 맑은 정신은 곧 영적 전쟁의 최전선을 방어하는 방패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4. 마틴 루터가 천주교의 타락에 맞서 &#039;만인 제사장설&#039;을 주장했던 본래의 의도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오늘날 개신교회가 금과옥조처럼 가르치는 개신교 가르침 가운데 &#039;만인 제사장설&#039;이라는 교리가 있다. 이 교리는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로마 천주교회는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는 극악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죽은 영혼이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산 자가 헌금함에 돈을 떨어뜨리는 순간 그 영혼이 천국으로 튀어 올라간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중세 성도들을 기만했다.&lt;/p&gt; &lt;p&gt; 더욱 심각한 것은 죄 사함의 권세가 오직 사제(신부)들에게만 독점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성도들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세뇌당했다. 구원과 속죄의 여탈권이 교황과 사제라는 특정 계급의 손에 쥐여 있던 암흑기였다. 이에 분노한 루터는 95개 조 반박문을 통해, 죄 사함은 돈이나 사제의 권력이 아니라 오직 각 개인의 진실한 &#039;회개&#039;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것임을 천명했다.&lt;/p&gt; &lt;p&gt; 1520년, 드디어 루터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quot;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계급에 속한다&quot;고 선포했다. 그의 본래 의도는 선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으니, 이제 성도들은 거추장스러운 인간 중보자(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위대한 선언을 한 것이다. 누구든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며 회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 이것이 만인 제사장설의 출발점이었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5. 루터의 &#039;만인 제사장설&#039;은 어떻게 왜곡되어 교회의 영적 질서를 파괴하는 병폐를 낳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러나 루터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이 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교만과 결합하여 무서운 괴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은 &quot;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다&quot;라는 말을, &quot;모두가 동등한 권위와 영적 지위를 가졌다&quot;는 세속적인 평등주의로 오독했다. &quot;나도 제사장이니 목사의 가르침이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나도 성경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강단에서 가르칠 수 있다&quot;라는 영적 무정부 상태가 도래한 것이다.&lt;/p&gt; &lt;p&gt; 이러한 왜곡된 해석은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와 같은 과격파들을 자극하여 농민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사제와 지주들을 죽여도 좋다는 식의 공산주의적 평등사상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교묘한 전술이 적중한 것이다. 이에 참혹한 결과를 목도한 루터는 그제야 가슴을 치며 통곡했고, 무분별한 성경 해석과 권위의 붕괴를 되돌리려 발버둥 쳤다.&lt;/p&gt; &lt;p&gt;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 무서운 잔재가 남아있다. 셀(Cell) 처치나 각종 제자훈련의 이름 아래, 충분한 영적 무장과 축사의 능력도 없는 평신도들에게 함부로 지도자의 자리를 남발하여 교회를 멍들게 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있는 귀신 하나 제대로 내쫓지 못하면서, 어찌 타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제사장의 반열에 설 수 있단 말인가. 무분별한 권위의 탈취는 결국 귀신들에게 교회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6. 베드로전서 2장의 &quot;왕 같은 제사장&quot;에서 &#039;히에라튜마&#039;의 정확한 원어적 팩트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만인 제사장설의 가장 강력한 성경적 근거로 오용되는 구절이 바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 한글 성경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을 &quot;왕 같은 제사장들&quot;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헬라어 원어의 팩트를 무시한 치명적인 오역이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개인적인 직분으로서의 &#039;제사장&#039;을 뜻하는 단어는 &#039;히에류스(hiereus)&#039;인데, 여기에 쓰인 단어는 이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 단어는 히에류스가 아니라 &#039;히에라튜마(hierateuma)&#039;였던 것이다.&lt;/p&gt; &lt;p&gt; &#039;히에라튜마&#039;는 개별적인 제사장 신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quot;제사장적 직무를 감당하다&quot; 또는 &quot;제사장의 체계(priesthood)를 이루다&quot;라는 뜻을 가진 집합적이고 기능적인 명사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 개개인을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이라는 완장 찬 계급으로 임명하신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해 중보하고 전도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039;제사장적인 기능과 사명&#039;을 감당하는 그룹으로 부르셨다는 뜻이다.&lt;/p&gt; &lt;p&gt; 이 헬라어 어원의 팩트를 정중앙에 놓고 보면, 만인 제사장설이 주장하는 &quot;모두가 목사요, 모두가 지도자다&quot;라는 식의 주장은 성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이단적 사상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철저하게 구별된 사명자를 부르셔서 대제사장(목회자)의 위치에 세우시고, 성도들은 그 영적 지도 아래 제사장적 직무를 협력하여 감당하는 체계를 원하시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7. 천국의 4대 신분 체계 실상에 비추어 볼 때, 성도들이 부여받은 제사장적 직무의 한계와 사명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가 이 땅에서 교만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영적 분량을 지켜야 하는 진짜 이유는, 천국이라는 실재하는 세계의 철저한 계급 체계 때문이다. 천국은 절대 공산주의 국가처럼 모두가 똑같이 평등한 곳이 아니다. 영안을 열어 천국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철저히 4대 신분 체계가 존재한다. 바로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물 긷는 자(허드렛일을 하는 자)의 계급이 있다.&lt;/p&gt; &lt;p&gt; 여기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으로 구성된 제사장 그룹은 하나님이 특별히 지명하여 이 땅에 &#039;보낸 종들&#039;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불려지는 이들은 천국에서 14만 4천 명이라는 숫자로 고정되어 있다. 반면 일반 성도들은 천국에서 제사장이 아니라 레위인이나 물 긷는 자의 그룹에 속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주장은 천국의 실제 질서와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것이다.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피 흘린 수고의 분량을 따라 영원한 신분이 고정되는 것이다.&lt;/p&gt; &lt;p&gt; 사실 천국 백성은 크게 4대 신분 체계로 나뉘어진다. &lt;strong&gt;첫째, 보좌에 가장 가까운 &#039;대제사장(사도급)&#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구약의 위대한 신앙인물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여기에 속한다. 구약 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모세, 아론,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 등과 신약 시대의 베드로와 바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039;24장로&#039;라고 칭한다. &lt;strong&gt;둘째, 하나님이 이 땅에 지명하여 보낸 종들인 &#039;제사장&#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이들이 바로 대제사장 반열의 아래의 그룹이다. 신약시대로 치자면 바나바, 누가, 마가, 디모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의 특별한 사명자들로서,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자 제사장의 그룹으로서 하나님의 보낸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바로 시온산에 서 있는 14만 4천 명의 사람들에 해당한다. &lt;strong&gt;셋째, 교회 안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한 &#039;레위인&#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신약시대에 이러한 자들을 찾아보면, 로마 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여기에 속한다. &lt;strong&gt;넷째는 겨우 구원만 받아 천국에 들어온 &#039;물 긷고 나무 패는 자&#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에 오른편에 있다가 죽기직전에 구원받은 한 편 강도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헌신과 영적 성숙도에 따라 이기는 자들의 대표로서 24장로들, 144,000명의 이기는 자들, 천국에 집이 있고 면류관을 쓰고 있는 성도들, 집에 없어 천국의 꽃밭에 거하는 자들이 있다. &lt;/p&gt; &lt;p&gt; 특히 천국 행정의 핵심인 24장로를 보자. 그들은 단순한 노인들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24개 마을을 통치하는 절대적인 &#039;수장&#039;들이다. 그들은 주님께 나아갈 때 철저한 예배의 직무 순서를 따른다. 먼저 수금으로 주님을 찬양하여 기쁘게 해 드린 다음, 천국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를 금 대접에 담아 하나님 보좌 앞에 올리는 중보적 역할을 수행한다(계 5:8). 이것이 하늘의 질서다. 천국에서는 누구나 장로가 되고 누구나 대제사장이 되는 곳이 결단코 아니다.&lt;/p&gt; &lt;p&gt;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039;성 밖&#039;에 거주하는 자들의 실체다. 그들은 지옥에 간 자들이 아니다. 성 밖은 구원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위해 충성하지 않고, 특히 &quot;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quot;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죄를 짓고도 심각성을 모른 채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쫓겨나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노동하고 땀흘려야 하고 다치기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삶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곳에는 생명수와 과일이 풍성할 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나와 다양한 떡, 견과류, 최고급 포도주가 풍성하게 제공되는 곳이다. 또한 성 안의 성도들은 결코 더러워지지 않아 세탁이 전혀 필요 없는 희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살아가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이런 압도적인 상급과 신분 체계 앞에서, 어찌 감히 천국에서 모든 신분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할 것인가?&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8. 왜곡된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천국 상급을 위해 오늘날 성도들이 취해야 할 진정한 태도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루터의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그것이 권위의 파괴나 직분의 탈취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낙원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환상은, 영적 세계에서도 똑같이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마귀의 기만술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무자격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혹독한 연단과 회개를 통해 내면의 귀신을 몰아내고 영권을 부여받은 훈련된 종들을 통해 교회를 치리하신다.&lt;/p&gt; &lt;p&gt;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취해야 할 진정한 태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039;분량(measure)&#039;을 정확히 깨닫고 그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제사장적 직무란 강단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이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도록 기도하며 전도하는 야전(野戰)의 사역이다.&lt;/p&gt; &lt;p&gt; 우리는 지금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 서 있다.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 있지만, 악한 조상의 영들과 수많은 귀신들이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으르렁거리고 있다. 헛된 권력욕이나 영적 교만이라는 &#039;다른 불&#039;을 꺼트려야 한다. 오직 무릎 꿇고 통곡하는 회개만이 살길이다. 회개를 통해 십자가의 피가 내 혈관을 타고 흐를 때, 내 안에 집을 짓고 있던 뱀들은 찢겨나가고 녹아내린다. 그리고 성령의 불과 검이 그 더러운 잔재들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잘라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획득해야 할 진짜 권세이며,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는 상급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는 지금까지 왜곡된 만인 제사장설의 실체와 참된 직분, 그리고 영적 전쟁의 팩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 처참하게 타죽은 역사는, 영적 세계의 질서를 무시한 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뼈저리게 증명한다.&lt;/p&gt; &lt;p&gt; 루터가 외쳤던 진정한 영적 해방은 무분별한 권위의 평등이 아니라, 누구든지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보좌 앞으로 나아가 죄를 씻어낼 수 있다는 회개의 특권이었다. 이 놀라운 특권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만에 빠져 질서를 허물거나, 회개하지 않고 쾌락에 취해 살아간다면, 장차 천국의 문이 열릴 때 눈부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으로 쫓겨나는 참담함을 겪어야만 한다.&lt;/p&gt; &lt;p&gt; 그러므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천국은 노력 없이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는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철저히 죄를 토해내고 악한 영을 박살 냈느냐, 얼마나 영적 질서에 순종하며 내게 맡겨진 직무에 목숨을 걸었느냐에 따라 대제사장부터 물 긷는 자까지 영원한 신분이 고정되는 철저한 실력의 세계다. 매일의 삶 속에서 거짓된 평등주의를 버리고, 예수의 피와 성령의 불로 내 안의 뱀들을 이격시키며, 내게 주어진 제사장적 중보의 직무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그리하여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썩지 않는 세마포 옷을 입고 영광스러운 왕의 반열에 당당히 입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06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88b5dfe17c8bfd65d6c42839e0301f93.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88b5dfe17c8bfd65d6c42839e0301f93.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6)] 인포그래픽.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7ce386a32d7f998af8536d430984f6fd.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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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9f999e7157ea230bd776f4eecf20f5e9.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9f999e7157ea230bd776f4eecf20f5e9.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6)] Sacred_Order_and_Spiritual_Protocol.pdf_4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2df695ed5865c9105f65227dc65cbac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2df695ed5865c9105f65227dc65cbacd.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6)] Sacred_Order_and_Spiritual_Protocol.pdf_5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d73164fed32b41d2cda53b85775b458d.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d73164fed32b41d2cda53b85775b458d.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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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61c9c07d92882d12dc71be29a6cd7b45.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61c9c07d92882d12dc71be29a6cd7b45.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6)] Sacred_Order_and_Spiritual_Protocol.pdf_12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lt;img data-cke-saved-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e6226e3466915da1bfbdaaa00fd0ca4e.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522/249/e6226e3466915da1bfbdaaa00fd0ca4e.webp&quot; alt=&quot;[레위기강해(06)] Sacred_Order_and_Spiritual_Protocol.pdf_13_vora.jpg.webp&quot; class=&quot;ed-image&quo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r&gt; &lt;p&gt;아래는 문장을 짧게 짧게 쓴 요약문입니다.&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r&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data-pm-slice=&quot;1 1 []&quot;&gt;2026-05-0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lt;span&gt;제목:&lt;strong&gt; [레위기강해(06)] 아론의 첫 제사와 제도 실시 초기에 나타난 시행착오(레9:1~&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10:20&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HszjMxlXeDc&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잃어버렸다. 영적 세계의 정확한 팩트를 모른 채 종교적 행위에만 매달려 있다. 무엇보바도 구약의 제사 제도가 단순히 소와 양을 죽이는 의식이 아니었음을 잘 몰랐다. 그것은 죄로 인해 우리 몸에 들어와 집을 지은 악한 영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철저한 영적 전투의 모형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다.&lt;/p&gt; &lt;p&gt; 이를 위해 레위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네 아들에게 7일 동안 제사장 위임식을 치러주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목사 안수식를 행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 후, 드디어 레위기 9장에 가면, 위임을 받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첫 제사를 집례한다. 이 제사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단의 제물을 불태우는 영적 실상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공식적으로 인준하신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하신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거룩한 직분이었다. 이들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제사장 직분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교회 안에 팽배하다. 또한 종교개혁자 루터가 주창한 만인제사장설도 영적으로 많이 왜곡되어 우리에게 알려진 채 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영적 질서를 무시하고 각기 제 길로 가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lt;strong&gt; 아론의 제사부터 시작하여 신약의 제사장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아론의 첫 제사에 하나님은 하늘의 불로 어떻게 응답하셨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아론이 드린 첫 제사는 자기자신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먼저 드림으로 시작된다. 첫 제사를 드리는 아론 제사장 역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백성을 위한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를 차례로 드렸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아론이 제단에서 내려왔다. 모세와 함께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을 축복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다(레9:23-2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9:23-24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이다. 그러자 그 불은 제단 위의 번제물을 순식간에 살랐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확한 응답이다. 아론의 제사를 하나님이 흠향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 땅의 제단에서 올려드린 제물이 하늘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lt;/p&gt; &lt;p&gt; 구약 시대에 제물은 죄를 전가받고 피를 흘렸다. 오늘날 이 속죄제는 철저한 회개로 성취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사함은 없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뱀이 실처럼 줄어들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우리 몸속 장기에 들어와서 견고한 집을 짓는다. 우상숭배를 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 들어온 조상의 영(무당, 제사의 영)들이 바로 그 실체다.&lt;/p&gt; &lt;p&gt; 이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회개할 때 엄청난 영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먼저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이 피가 악한 영을 우리 몸에서 떼어내어 이격시킨다. 그리고 그 영들을 완전히 녹여버린다. 이와 동시에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가 작동한다. 이격된 악한 영들을 성령의 불이 태워버리고, 성령의 칼이 도려내고 자른다. 하늘에서 번제단에 불이 내려온 것은 바로 이 성령의 불이 죄의 세력을 박살 내고 태워버리는 것을 예표한다. 아론은 이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백성을 대신하여 피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3.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불타 죽은 영적 원인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아론의 첫 제사는 영광스럽게 끝났다. 그러나 곧바로 레위기 10장에서 비극이 터진다. 아론의 첫째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불타 죽었기 때문이다. 성소의 분향단에 향을 사르러 들어갔다가 벌어진 일이다(레10: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분향단에는 자체적인 불이 없다. 향을 사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밖에서 불을 가져와야 한다. 영적 법칙이 있다.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불을 가져다 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번제단의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이 원칙을 무시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갔다. 번제단의 불을 가져가는 것이 번거로웠거나 아니면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적인 편의를 택한 것이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하늘에서 불이 나와 두 사람을 그대로 집어삼켰다.&lt;/p&gt; &lt;p&gt; 이처럼 영적 세계는 철저한 원칙대로 움직인다. 첫 번째로 시행되는 것은 항상 시범 케이스다. 첫 열매의 법칙이 작동한다. 하나님은 첫 번째 불순종이나 과오를 결코 좌시하지 않으신다. 강력하게 징계하여 영적 질서를 세우신다. 나답과 아비후는 이 시범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 즉 다른 불을 사용한 죄악이 그것이다.&lt;/p&gt; &lt;p&gt;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다른 불을 드리는 자들이 많다. 성령의 불이 아닌 감정의 불, 인간적인 열심의 불을 드린다. 조상의 영들이 주는 신비 체험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한다. 철저히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악한 영을 이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열심은 모두 다른 불이다. 이것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을 태워 죽인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4.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신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두 아들의 끔찍한 죽음 앞에서 아론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즉시 아론에게 영원한 규례를 주셨기 때문이다.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는 제사장이 회막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절대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레10:9-10).&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레10:9-10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목적은 분명하다.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영적 분별력이 떨어진다. 정신이 몽롱해지면 악한 영들이 틈을 탄다. 뱀이 실처럼 줄어들어 들어와 생각과 마음을 장악한다. 그런데 제사장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영적 재판관이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히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lt;/p&gt; &lt;p&gt;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천주교의 사제들은 이 원칙에서 많이 실패한다. 그들은 매일 미사를 드린다. 초기의 시기에는 영성체를 나눌 때 떡과 포도주를 함께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신자가 폐렴에 걸린 채 포도주를 마시다가 기침을 하여 토하고 말았다. 그런데 천주교는 화체설을 믿는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가 땅에 떨어진 그 포도주를 다 핥아 먹었다. 결국 그 신부는 폐렴에 감염되어 죽고 말았다. 이후 교황은 일반 성도에게는 떡만 먹어도 포도주까지 먹은 효과가 있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포도주는 신부 혼자 마신다. 그 결과 매일 포도주를 남김없이 마셔야 하는 신부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간 질환으로 일찍 죽는 비극이 속출하기 시작했다.&lt;/p&gt; &lt;p&gt; 반면에 대한민국 개신교는 달랐다. 복음이 전파되던 초기의 시기에 철저히 금주를 실시했다. 왜냐하면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 왔을 때, 양반들의 타락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름, 술과 담배, 기생질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선교사들은 이 악습을 끊어내지 않으면 참된 신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세례를 받을 때에 술과 담배를 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이 영적 결단이 한국 교회를 살렸다.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영안이 맑아진다. 새벽마다 깨어 기도하며 조상의 영들을 회개로 도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5. 루터가 로마 천주교회에 맞서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한 결정적 배경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런데 중세 천년 동안 기독교는 영적인 암흑기였다. 로마 천주교가 영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교황과 사제들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반 성도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는 죄 용서를 받지 못했다. 사제를 거치지 않으면 구원도 없었다. 천주교는 지옥과 천국 사이에 &#039;연옥&#039;이라는 가짜 교리를 만들었다. 구원받기에 공로가 부족한 자들이 가는 연단 장소ㄹ르 &#039;연옥&#039;이라고 정했다. 1517년, 로마 대성당 건축비가 모자라자 교황청은 면죄부를 팔았다. 돈이 연보궤에 떨어지는 짤랑 소리를 낼 때, 연옥에 있는 부모의 영혼이 천국으로 뛰어오른다고 백성들을 속였다. 인간의 얄팍한 상술이 영적 팩트를 짓밟았다.&lt;/p&gt; &lt;p&gt; 이때 수도사이자 신학자였던 마틴 루터가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그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박아 넣었다. 반박문의 핵심인 1번 조항은 분명했다. 회개는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할 때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이다.&lt;/p&gt; &lt;p&gt;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이미 완전한 속죄 제사를 완성하셨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장이나 천주교의 사제와 같은 중보자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회개할 때 우리 몸에 들어와 집을 지은 우상숭배의 영, 무당의 영들이 예수님의 피에 의해 계속해서 조금씩 이격되고 마침내는 녹아내린다. 돈이 악한 영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피와 성령의 칼만이 귀신을 쪼개고 불태우는 것이다. 루터는 이 영적 팩트를 바탕으로, 모든 성도가 사제 계급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위대한 선언을 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었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6. 베드로전서 원문(히에라튜마)이 증명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루터의 이러한 주장은 1520년 &#039;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039;이라는 논문을 통해 &#039;만인제사장설&#039;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다 영적 계급에 속하며, 세례를 통해 예외 없이 제사장이 된다고 선포했다. 근거 구절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이었다(벧전2:9).&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러나 여기에 치명적인 번역의 오류가 숨어있었다. 한글 성경은 &quot;왕 같은 제사장들&quot;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원어인 헬라어 팩트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헬라어로 직분으로서의 개별적인 &#039;제사장(Priest)&#039;을 뜻하는 단어는 &#039;히에류스(hiereus)&#039;라는 단어가 쓰인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가 2장 5절과 9절에서 사용한 단어는 &#039;히에류스&#039;가 아니다. &#039;히에라튜마(hierateuma)&#039;라는 단어를 썼다. &#039;히에라튜마&#039;는 동사 &#039;히에라튜오(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다, 제사장의 체계를 이루다)&#039;에서 파생된 명사다. 그 정확한 뜻은 개별 제사장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039;제사장적 직무&#039; 또는 &#039;제사장 체계(Priesthood)&#039;를 의미한다. 즉, 모든 성도가 목사처럼 개별적인 제사장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적인 직무를 담당하는 그룹, 제사장 체계를 이루는 무리가 되었다는 뜻이다.&lt;/p&gt; &lt;p&gt; 루터의 원래 의도는 누구든지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039;만인ㅈ제사장설&#039;을 &quot;나도 제사장이구나!&quot;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번역의 오류가 이 착각에 불을 붙였다. 영적 지위와 직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lt;/p&gt; &lt;p&gt; 천국에서의 4대 신분 체계를 보면 이 팩트가 더 명확해진다. 천국에는 영적으로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물 긷는 자(나무 패는 자)라는 4가지 신분 계층이 존재한다. 여기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으로 구성된 제사장 그룹은 하나님이 특별히 지명하여 이 땅에 &#039;보낸 종들&#039;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불려진 이들은 천국에서 14만 4천 명이라는 숫자로 정해져 있다. 반면 일반 성도들은 천국에서 제사장이 아니라 레위인이나 물 긷는 자의 그룹에 속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주장은 천국의 실제 질서와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7. 만인제사장설의 영적 오독이 불러온 역사적 참상과 질서 파괴는 어떠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만인제사장설의 영적 오독은 끔찍한 역사적 참상을 불러왔다. &quot;누구나 제사장이다. 누구나 평등하다&quot;는 말은 인간의 타락한 죄성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적 직분의 평등을 넘어 세속적인 계급 타파로 진행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토마스 뮌처다. 그는 만인제사장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독일 농민전쟁을 일으켰다. &quot;사제 계급에 눌려 살 필요 없다. 우리도 대장이다. 지주들을 다 죽이자!&quot;며 폭동을 선동했다. 수많은 지주가 참수당하고 피바람이 불었다. 이것이 훗날 공산주의 사상의 뿌리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철저히 사탄의 작품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대장이 되어 권력을 쟁취하려는 반역이다.&lt;/p&gt; &lt;p&gt;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이 불러온 이 끔찍한 병폐를 보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불과 5년 만인 1525년에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입장을 철회했다. 성경 해석의 권한을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모두 열어주었더니, 이단과 사이비가 창궐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교회를 세우고 자기가 목사라며 질서를 박살 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다.&lt;/p&gt; &lt;p&gt; 우리도 현재 영적 세계의 타임라인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 이후 무저갱에 결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하늘에서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과 함께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천년왕국의 엄위한 통치를 위해, 철저한 영적 질서 아래 특별한 당신의 종들을 이 땅에 보내신다. 오늘날에 이들은 우상숭배와 귀신의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 목숨을 걸며 사투하는 자들이다. 조상의 영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악한 영과 싸우도록 하나님이 지명하여 파송한 자들이 이들이다. 그러므로 일반 성도가 함부로 이 직분을 탐내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8. 천국의 4대 신분 체계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직분의 참된 질서는 어떠한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는 죽음 이후에 펼쳐질 천국의 실상을 정확히 팩트로 알고 있어야 한다. 두루뭉술한 천국은 없다. 천국은 철저한 계급과 상급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질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천국 백성은 크게 4대 신분 체계로 나뉘어진다. &lt;strong&gt;첫째, 보좌에 가장 가까운 &#039;대제사장(사도급)&#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구약의 위대한 신앙인물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여기에 속한다. 구약 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모세, 아론,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 등과 신약 시대의 베드로와 바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039;24장로&#039;라고 칭한다. &lt;strong&gt;둘째, 하나님이 이 땅에 지명하여 보낸 종들인 &#039;제사장&#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이들이 바로 대제사장 반열의 아래의 그룹이다. 신약시대로 치자면 &lt;!--StartFragment--&gt;바나바, 누가, 마가, 디모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의 특별한 사명자들로서,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자 제사장의 그룹으로서 하나님의 보낸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바로 시온산에 서 있는 14만 4천 명의 사람들에 해당한다. &lt;strong&gt;셋째, 교회 안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한 &#039;레위인&#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신약시대에 이러한 자들을 찾아보면, 로마 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여기에 속한다. &lt;strong&gt;넷째는 겨우 구원만 받아 천국에 들어온 &#039;물 긷고 나무 패는 자&#039; 반열&lt;/strong&gt;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에 오른편에 있다가 죽기직전에 구원받은 한 편 강도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헌신과 영적 성숙도에 따라 이기는 자들의 대표로서 24장로들, 144,000명의 이기는 자들, 천국에 집이 있고 면류관을 쓰고 있는 성도들, 집에 없어 천국의 꽃밭에 거하는 자들이 있다. &lt;/p&gt; &lt;p&gt; 지금 천국에 들어가보면, 천국의 행정은 24장로를 통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모세와 아론도 천국에 가보면, 24장로 중 한 명에 속한다. 사실 24장로는 단순히 관념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천0국에 있는 24개 마을의 수장으로서 거대한 하늘의 행정을 집행하는 자들이다. 예배드릴 때에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빙 둘러 있는 24보좌에 앉아있다. 그래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우리 주님께 철저한 직무를 행한다. 먼저 수금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린 다음,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향이 가득한 급대접에 담아 올려드린다. &lt;/p&gt; &lt;p&gt; 그러나 충격적인 영적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바깥 어두운 곳)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옥에 간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역시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아 이미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위해 일하지 않아 여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다. 특히 &#039;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039;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죄를 짓고도 그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은 자들이다. 무당과 제사의 영들이 자기 몸에 들어와 집을 짓고 있는데도 회개조차 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러면 이들이 죽을 때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서, 천국 성안의 찬란한 영광을 누리지 못한 채 성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lt;/p&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지금까지 구약의 제사 제도와 신약의 제사장 직분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영적 세계는 뜬구름 잡는 은유가 아니라 철저한 원칙이 지배하는 팩트의 세계다. 아무리 제사장이 되었어도 번제단의 불이 아닌 것을 분향단의 향을 사르면 다 타 죽었듯이, 오직 예수의 피와 성령의 불만이 우리 속에서 역사해야 한다. 그래야 내 속에 집을 지은 악한 영들도 이격시키고 태울 수 있다.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던 의도는 좋았으나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만인제사장설은 왜곡되었고 변형되고 말았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2:5, 9의 말씀에 대한 번역 오류도 한 몫 했다. 아니다. 천국에 가보라.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지 아니한다. 그렇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소수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과 영적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특히 회개를 날마다 지속하여 악한 영들이 내보내고 동시에 악한 영들이 나를 범죄로 유혹하지 못하도록 늘 맑은 정신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성 밖으로 밀려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날마다 회개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이미 얻은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힘입어 악한 영의 진을 부수고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천국의 기업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아름다운 지위와 상급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6년 05월 06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 설교는 &lt;/span&gt;&lt;strong&gt;아론의 첫 제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녀들의 죽음&lt;/strong&gt;&lt;span&gt;을 다루며 올바른 예배의 자세를 역설합니다. 아론이 제사장의 위임식을 마친 후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lt;/span&gt;&lt;strong&gt;다른 불&lt;/strong&gt;&lt;span&gt;을 사용한 두 아들이 즉각적인 심판을 받은 사건을 통해,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lt;/span&gt;&lt;strong&gt;거룩함과 영적 분별력&lt;/strong&gt;&lt;span&g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현대 목회자의 &lt;/span&gt;&lt;strong&gt;술과 독주에 대한 절제&lt;/strong&gt;&lt;span&gt;를 구약의 규례와 연결하여 설명하는 한편, 종교개혁가 루터의 &lt;/span&gt;&lt;strong&gt;만인제사장설&lt;/strong&gt;&lt;span&gt;이 현대에 이르러 직분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오해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결국 이 강해 설교는 성도 개개인이 &lt;/span&gt;&lt;strong&gt;중보적 직무&lt;/strong&gt;&lt;span&gt;를 수행하는 제사장적 사명을 지니되, 하나님이 세우신 &lt;/span&gt;&lt;strong&gt;영적 권위와 질서&lt;/strong&gt;&lt;span&gt; 안에서 각자의 분량을 지키며 헌신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레위기 #제사 #아론 #나답과아비후 #제사장 #만인제사장설 #영적실상 #영적전투 #회개 #예수피 #성령의불 #영적질서 #천국 #계급 #상급 #정보배목사 #기독교&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EndFragment--&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content>		<category term="레위기"/><category term="제사"/><category term="아론"/><category term="나답과아비후"/><category term="제사장"/><category term="만인제사장설"/><category term="영적실상"/><category term="영적전투"/><category term="회개"/><category term="예수피"/><category term="성령의불"/><category term="영적질서"/><category term="천국"/><category term="계급"/><category term="상급"/><category term="정보배목사"/><category term="기독교"/>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