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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요강해설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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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6 Oct 2026 04:45: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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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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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수기강해(03)]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2)(민1:1~4)_2026-10-21(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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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6-10-21(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민수기강해(03)]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2)(민1: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f8SQ6A5_Om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8SQ6A5_Om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민수기의 전체적인 역사적 배경과 구조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영적 정체성&lt;/strong&gt;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쓰러진&amp;nbsp;&lt;strong&gt;출애굽 1세대&lt;/strong&gt;와 달리, 끝까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amp;nbsp;&lt;strong&gt;출애굽 2세대&lt;/strong&gt;의 차이를 강조하며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를 촉구합니다. 또한, 만나와 매출하기, 붉은 암송아지의 제사, 그리고 반석의 생수 같은 민수기 속 다양한 사건들은 결국&amp;nbsp;&lt;strong&gt;우리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임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일상의 고난 속에서도 원망을 버리고 회개를 통해&amp;nbsp;&lt;strong&gt;내면의 악한 영을 물리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사&lt;/strong&gt;로 살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민수기는 &lt;strong&gt;출애굽 1세대와 2세대&lt;/strong&gt;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lt;br /&gt; 2.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왜 &amp;#39;&lt;strong&gt;여호와의 군대&lt;/strong&gt;&amp;#39;라고 부르셨는가?&lt;br /&gt; 3. 우리 속의 &lt;strong&gt;악한 영&lt;/strong&gt;은 어떻게 들어왔으며, 누가 그것을 내보내야 하는가?&lt;br /&gt; 4. 광야에서 엎드러진 &lt;strong&gt;1세대&lt;/strong&gt;는 모두 멸망했으며, &lt;strong&gt;죄값의 기간&lt;/strong&gt;은 무슨 의미인가?&lt;br /&gt; 5. &lt;strong&gt;만나와 메추라기&lt;/strong&gt;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6. &lt;strong&gt;붉은 암송아지의 재&lt;/strong&gt;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7. 반석에서 나온&lt;strong&gt; 생수 사건&lt;/strong&gt;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민수기강해(0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 1: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오신 것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려고 데려오셨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합당하지 않은 자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졌다. 민수기는 백성을 세어 본 기록이다. 1장에서 한 번, 26장에서 한 번, 두 번 세었다. 1장은 출애굽 1세대의 숫자이고 26장은 출애굽 2세대의 숫자인데, 그 수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다. 반면 그들이 광야에서 죽으리라고 말했던 처자식들은 오히려 살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정복자가 되었다(민 14:31). 그렇다면 민수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amp;#39;너는 출애굽 1세대처럼 살아갈 것인가, 출애굽 2세대처럼 살아갈 것인가?&amp;#39;를 묻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는 민수기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았다. 역사의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미리 알려 주는 일종의 샘플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나 개인의 신앙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한다고 하셨다(요 5:39). 그러므로 민수기를 공부할 때 우리 인생의 전철만 볼 것이 아니라,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어떻게 보셨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민수기 곳곳에 스며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만나와 메추라기,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는 두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묻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기록을 통해 &amp;#39;너는 대체 어느 군대에 속하느냐?&amp;#39;고 물으신다. 이 질문에 우리는 망하는 길로 가는 세대가 아니라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세대에 속한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서 갈 것인가를 민수기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어떻게 보셨는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신 그대로 합당하게 살아 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셨는데도 거기에 합당하게 살아 내지 못한다면 복을 빼앗기고 만다. 출애굽 1세대는 하나님께서 주시려던 땅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했고, 출애굽 2세대는 그 땅을 차지했다. 같은 숫자로 계수된 백성이었지만 그들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고로 민수기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를 알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왜 &amp;#39;여호와의 군대&amp;#39;라고 부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을까?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먼저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리라(출 12:11-12). 애굽이 강력하다 하니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그 신들을 치시고, 홍해에서 애굽 군대까지 없애셨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amp;#39;내가 애굽의 모든 군대와 애굽의 신을 다 칠 것이니 너희는 나를 믿고 따라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만 되면 된다&amp;#39;고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군대로 부르셨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12:40-4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합지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명하셨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amp;#39;너는 나의 군대다&amp;#39;라고 이미 작정된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게 된다고 믿고 계속 갔고, 나머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amp;#39;그래, 안 된다고 하는 너는 되지 마라&amp;#39;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들을 싸움에 내보내시려고 계수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수기 1장의 계수는 여호와의 군대를 계수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하나님께서 세금을 거두시려고 계수하신 것도 아니고 일을 시키시려고 계수하신 것도 아니라, 싸움에 나갈 자를 계수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으면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마지막 때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하나님의 군사, 영적 전쟁에 참여할 군사를 만드는 곳이다. 교회에 70만 명이 모여도 영적 전쟁에 싸우러 나갈 자가 없으면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들은 광야에 엎드러질 사람들이요 성 밖으로 갈 사람들이다. 광야 시절, 곧 교회 시절은 그 군사를 만드는 때다. 그런데 &amp;#39;나는 안 된다&amp;#39;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신다. 반면 출애굽 2세대는 원망하기도 했지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수었다(민 21:21-3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려 두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때에 주님께서는 변절하지 않을 사람을 찾고 계신다. 6&amp;middot;25 때에도 우리나라의 장수였던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간 일이 있었다. 별을 단 사람도 얼마든지 변절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에 왔다가 사탄 편에 설 자는 뽑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회개를 시키고 계신다. 회개하여 내 속의 악한 영이 나가면 변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복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축복을 적당히 넘겨 버린다면 나중에 성 밖에서 &amp;#39;내가 그 말씀을 들었는데 왜 힘들다고 빠져나갔던가, 왜 다른 길로 갔던가&amp;#39; 하며 평생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우리 속의 악한 영은 어떻게 들어왔으며, 누가 그것을 내보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아 &amp;#39;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셨으니 감사합니다&amp;#39;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내 속의 귀신이 하나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를 믿을 때 귀신을 다 내보내야 구원받는다고 했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겠다 하고 내가 죄인이라고 시인하면 칭의로 그냥 덮어 버리셨다. 의롭지 않은데도 &amp;#39;너는 의롭다&amp;#39; 하시고, 부패하고 더러운데도 덮어 버리시고, 생명의 영을 집어넣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여전히 악한 영이 한 놈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던 부패한 삶과 성품이 달라지지 않고, 내 삶의 저주가 떠나지 않으며, 질병도 낫지 않고, 자식의 미래도 계속 불투명한 것이다. 악한 영이 그 뒤에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영은 어떻게 들어왔는가? 사탄은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받았다(겔 28:1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무엇인가로 쓰실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만세 전 계획은 이 지구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존재가 되어 모든 동물을 다스리며 사는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지구는 천국과 똑같은 구조로 지어졌다. 천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고 그 성 밖이 있으며 그 밑에 불못이 있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그 밑에 있다. 지구도 똑같다. 땅 위에는 푸르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고, 새 예루살렘 성처럼 에덴동산이 있어 생명나무가 있고 네 강이 흘러나왔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지구의 땅속에는 마그마, 곧 불이 있다. 불못과 같다. 그런데 인간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amp;#39;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amp;#39;고 하셨다(창 3:14). 여기서 흙(아파르)은 사람의 육체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 속에 수억, 수조 마리의 뱀과 영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하와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었고, 하와가 가인을 임신했을 때 이미 태중의 가인에게 들어갔다. 하와는 가인을 낳고 메시아를 낳은 줄 알았지만, 가인은 시기와 질투와 혈기와 분노로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다. 부모가 동생을 죽이라고 가르쳤는가? 시기 질투를 가르쳤는가?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가르쳤는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된 것은 영이 들어가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죄를 짓는 데에는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도 있지만 강력한 악한 영의 작용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 악한 영들은 누가 내보내야 하는가? 구약 시대는 아직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들어오지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영들은 쫓아 주시고, 그 영들에게 물든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멸하라고 하셨다. 민수기 33장은 출애굽 40년의 여정을 장소별로 한 장에 요약해 놓았는데, 그 출발을 이렇게 기록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3:3-4 그들이 첫째 달 열닷새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이스라엘이 B.C.1446년 첫째 달 열나흗날 유월절을 지키고 열닷새 날에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였다. 정탐하고 돌아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가나안 땅을 지키던 신, 곧 그들의 보호자가 이미 떠났으니 이제 이스라엘은 그 민족만 치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큰 영들을 쫓아 주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육체에 물든 그 사람들을 멸하는 일은 이스라엘이 해야 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주실 수 없었다. 그것이 출애굽 1세대였다. &amp;#39;그 땅은 아주 좋지만 거민의 신장이 장대하여 우리는 메뚜기 같으니 다 죽는다&amp;#39;고 했다(민 13:32-33). 그러자 하나님께서 &amp;#39;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amp;#39;고 하셨다(민 14: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귀신들과 처음 싸우게 된 것이 6년 전이다. 그전에는 이렇게 싸우지 않았다. 필자도 몰랐다. 그런데 싸우려고 하니 귀신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필자를 죽이려 했다. 2년 동안 지켜보더니 강력하게 역사하여 필자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되어도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amp;#39;이때도 지나가리라.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믿게 하시고 목사가 되기까지 인도하셨는데, 나를 폐인으로 만들려고 이 공격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다 뜻이 있다.&amp;#39; 그리고 깨달았다. &amp;#39;강력한 리더십과 강력한 권세와 강력한 불과 강력한 무기를 가진 존재가 있어야 하는구나.&amp;#39; 그래서 필자는 그런 분을 찾아냈고, 그분에게 지도를 받으니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대로 필자에게 넘어왔다. 흔히 임파테이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것을 받으려고 간 것이 아니다. 죽기 살기로 회개하여 엄청난 영을 뽑아냈다. 그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참아 냈다. 죽으면 천국이고, 살아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바꾸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출애굽 1세대처럼 나약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필자는 지금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사람들이 더 강력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도록 만들려면 필자가 더 강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앞장서는 일꾼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끌어 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예전에 쓰지 않던 방법을 계속 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무엇이 부족하면 사람을 붙여 주셔서 알게 하신다. 있다가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붙여 주셔서 다 이야기하게 하시고 떠나게도 하신다. 그렇게 계속 알려 주셨다. 지금도 떠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복이다. 어쨌든 주님께서는 이 시대에 출애굽 2세대와 같은 영적 전사를 만드시려고 우리를 불러 모으고 계신다. 그 전사에 동참하면 엄청난 하늘의 복이 있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회개를 시켜 보니 쉽지 않다. 그러나 가능하다. 이것을 믿고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광야에서 엎드러진 1세대는 모두 멸망했으며, 죄값의 기간은 무슨 의미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광야에서 38년 동안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 그렇지 않았다. 출애굽 1세대도 잘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모든 은금 패물을 바쳐 성막을 지었다(출 35:20-29). 그러므로 그들이 다 지옥에 간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퍼뜨린 열 명의 정탐꾼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자들이 문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민수기 16장의 고라 무리의 반역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부정한 것이다.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었는데, 같은 레위인인 고라가 &amp;#39;나도 제사장을 하겠다&amp;#39;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그래서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산 채로 삼켰다. 그런데 고라의 자손들은 죽지 아니했다(민 26:11). 악의 무리였던 고라의 자손인데도 그 반역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나와 찬송을 부르게 되었고 그 찬송이 시편에 고라 자손의 시로 남아 있다(시 42편 등). 그러므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설령 우리 민족이 엄청난 악을 저지르고 우상을 숭배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그 사람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살아 나올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를 우리의 본보기라고 했다. 그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는 금송아지 우상 숭배(출 32:6),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은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민 25장),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한 불뱀 사건(민 21장),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한 열 정탐꾼의 원망(민 14장)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고전 10:6-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그들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미리 말해 놓았으니, 지금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보라는 것이다. 너도 38년 동안 엎드러져 죽을 자인가, 그 죄값을 다 받고 죽을 자인가, 아니면 살아날 자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요한복음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요한복음 5장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나온다(요 5:5). 왜 38년인가? 성령께서 깨우쳐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죄값을 받은 기간이 38년이었다(신 2:14). &amp;#39;이스라엘 민족이 죄값을 다 받았으니 내가 왔다. 이제 병든 그들을 살려 내려고 내가 왔다.&amp;#39; 성령께서 필자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죄값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amp;quot;하나님, 목사님은 특사 조치로 저렇게 해 주시는데 왜 저는 특사 조치를 해 주지 않으십니까? 저는 2천 번, 3천 번 회개했는데 왜 차도가 없습니까?&amp;quot; 그러나 죄값을 받아야 할 사람도 있고 끝까지 받아야 할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남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낼 때 다니엘은 빨리 회복시켜 주실 수 없느냐고 기도했다(단 9:2-3). 그러나 안 된다고 하셨다. 70년을 다 채워야 했다. 그런데 다니엘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칠십 이레를 통해 메시아가 기름 부음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쓰임받을지를 더 많이 가르쳐 주셨다(단 9:24-27). 70년은 받아야 했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또 다른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내가 지금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는 기간은 무미건조하고 의미 없는 기간이 아니다. 그 기간은 나를 하나님께서 진짜 쓰실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설령 귀신의 공격으로 죽을 것만 같이 숨이 차오른다 할지라도 &amp;#39;주님, 나는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이 길을 끝까지 갈 것입니다&amp;#39; 해야 한다. 내가 죄값을 받아 죽고 끝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아브라함을 끝내지 않으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해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이긴 자라 하셨듯이, 비록 내가 회복되지 못하고 귀신에게 시달리다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긴 자로 보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 악한 영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내가 그렇게 고통을 당하겠는가? 그 고통이 필자를 아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시련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필자가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것이다. 필자가 무엇을 보고 산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된다. 너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준다고 하셨으면 그대로 된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인가? 민수기 11장은 예수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표현한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amp;#39;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amp;#39;라고 하시며 자신이 만나의 실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나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육의 양식이었다. 예수님께서 영의 양식이시듯이, 하늘에서 내려 준 양식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1:4-9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인데, 밤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함께 내렸다가 해가 뜨거워지면 스러져 없어졌다. 그리고 고기가 없다고 울자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도 내려 주셨다.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내내 먹게 하리라고 하셨다(민 11:18-20). 바람이 바다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사방 하룻길 되는 지역의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하셨다(민 11:31). 한 규빗이 약 45cm이니 약 90cm, 1m 가까이 쌓인 것이다. 백성은 그날 종일 종야와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었고, 냉장고가 없으니 진영 사면에 펴 두고 말려서 먹었다(민 11: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6:3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시며,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떡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나와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나는 예표이고 예수님은 실체다. 그래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조상들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자는 영생한다(요 6:49-5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amp;#39;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amp;#39;고 하셨다(요 6:63).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먹을 때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그 말씀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만나와 메추라기 둘 다 예수님의 예표인가? 만나는 식물 생명을 상징하고, 메추라기는 동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식물도 생명체이고 동물도 생명체다. 예수님께서는 &amp;#39;생명의 떡&amp;#39;이라고 하셔서 식물 생명으로 자신을 표현하셨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예수님께서 살과 피, 곧 동물 생명으로도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표현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 생명의 예표는 만나이고, 동물 생명의 예표는 메추라기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것이 곧 주님을 믿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38년 동안 그래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광야 같은 교회 생활을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떠나갈 때 베드로는 &amp;#39;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amp;#39;라고 고백했다(요 6:68). 고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예수님의 예표는 민수기 19장의 붉은 암송아지의 재다. 하나님께서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뿌리면 깨끗해진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9: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정결한 자가 그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두었다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쓰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였다(민 19:9). 그렇다면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그것은 두 가지 정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붉은 암송아지는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은 항상 모형이고 예수님은 실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해석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9:12-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암송아지의 재가 육체를 정결하게 했다면, 흠 없이 자기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피를 계속 보관할 수 없으니 암송아지를 다 태워 그 재를 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토록 살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그 피는 속죄뿐만 아니라 정결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축사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엄청난 전환을 경험했다. 그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한다는 속죄만 생각했다. 그런데 속죄는 그 일부분이었다. 속죄는 천국에 있는 내 행위책의 죄목을 덮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땅에 물과 피를 남겨 두고 가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은 땀을 흘리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에 찔리시고, 손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그리고 살과 뼈는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입으셨던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 필자가 보니 못 자국이 손목이 아니라 손바닥 중앙에 뻥 뚫려 있었다. 엄청 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게 주님께서 이 땅에 두고 가신 것이 물과 피다. 물은 깨끗하게 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생명을 뜻한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다(요 7:38). 그리고 피는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 악한 영을 씻어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회개하면 악한 영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필자는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찾아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는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물과 피와 성령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요일 5:5). 물과 피는 흩어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주님께서 땅에 쏟으신 물과 피가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고, 대기를 순환하여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다시 내려서, 생명의 역사와 속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피를 칭의의 속죄로만 계속 우려먹었다. 그러나 레위기를 보니 피가 정결 예식에도 쓰였다. 그렇다면 어디를 깨끗하게 하는가? 내 속에 들어 있는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데에도 쓰인다. 고로 우리는 민수기를 통하여 회개하면 예수의 피가 들어와 우리를 정결하게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반석에서 나온 생수 사건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예수님의 예표는 민수기 20장의 반석에서 나온 생수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출애굽 1세대를 먹였다(출 17:6). 그런데 민수기 20장은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다. 똑같은 사건이 두 번 벌어진 것이 아니라 대상이 달랐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20장 1절의 &amp;#39;첫째 달&amp;#39;은 출애굽 40년째 해의 첫째 달이다. 그때 미리암이 죽었다. 그리고 같은 장 22절 이하에서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3:38-39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이었더라 39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40년째 첫째 달에 미리암이 죽고, 5월 1일에 아론이 죽은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 2세대와 함께 갈 수 없었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거역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어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했다. 그렇다면 모세만 살았는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민수기 20장 사건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언제 죽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에게 유언처럼 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신명기라는 이름도 십계명의 명령을 되풀이하여 거듭 기록했다는 뜻이다. 그때가 40년째 해 11월 1일이었다. 그러니 모세는 40년째 해 11월이나 12월 어느 때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30일 동안 애곡하고(신 34:8), 이듬해 첫째 달 열흘날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넜다(수 4:19). 미리암도 아론도 모세도 40년째 해에 다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무서우시다. 지도자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지도자에게는 죄값을 더 크게 물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 20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출애굽 2세대가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다투며 원망했다. &amp;#39;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amp;#39;(민 20:3-5). 광야에서 태어난 그들이 무화과와 포도와 석류가 맛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있다. 한 번 원망했다고 그냥 죽이지 않으신다. 출애굽 1세대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했다(민 14:22). 그러나 출애굽 2세대는 처음 원망하는 것이었다. 처음 원망했는데 &amp;#39;그래, 죽여 주마&amp;#39; 하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아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민 20: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모세가 화를 내 버렸다.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더한 사람이었다(민 12:3). 그런데 마지막에 그것을 참지 못했다. &amp;#39;너희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못 보았느냐? 한 달이면, 아니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그 거리를 못 가고 38년 동안 빙빙 돌다가 다 죽는 것을 너희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또 원망하느냐?&amp;#39; 그렇게 화가 나서 반석에게 명령하지 않고 반석을 두 번 쳐 버렸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0:11-12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변하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화나고 짜증 내는 존재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amp;#39;나는 거룩한 존재, 인간과 똑같지 아니하고 구별된 존재다. 나는 지켜보고 공의로 판단하는 존재다. 그런데 너는 나를 대변하면서 화만 내는 존재로 나를 표현했느냐? 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amp;#39; 그래서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모세처럼 쓰임받은 자가 이 세상에 누가 있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기 때문에 &amp;#39;너는 여기까지다&amp;#39; 하신 것이다. 필자가 칼빈주의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칼빈주의는 만세 전부터 어떤 사람은 저주하기로,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기로 예정하셨다고 하면서 입을 다물라고 했다.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amp;#39;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amp;#39;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마음을 추스른 때는 2007년 개척하기 전인 2006년에 다녀온 성지순례였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 가운데 하나가 모세가 죽은 산, 곧 느보 산의 비스가 꼭대기였다(신 34:1). 한낮에 그 꼭대기에 올라가 내다보니 태양 빛에 사해가 반짝반짝 빛났다. 반나절, 네 시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앞쪽으로 조금 가니 메마른 광야 가운데 숲이 우거진 곳이 보였다. 종려나무 성읍(신 34:3), 곧 물이 있어 사람이 사는 여리고였다. 그것이 반짝반짝 보였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amp;#39;여기까지다&amp;#39; 하셨던 곳이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amp;#39;주님, 제가 평생 모세처럼 쓰임받다가 어느 날 주님께서 여기까지다 하시면 저도 기꺼이 모세처럼 모든 것을 접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세의 전철을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amp;#39;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언제라도 접을 마음이 있다. 주님께서 그만하라 하시면 딱 접을 것이다. 필자는 주님의 종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필자의 몸에서 악한 영들을 다 내보내셨는가? 단 하나의 이유였다. &amp;#39;너는 모세처럼 되지 말고, 마지막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처럼 갈 사람이니, 내가 너를 장수로 세운 것을 기억하라.&amp;#39; 그래서 하늘에서 필자가 그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로 쓰이는 것을 환상으로 다 보여 주셨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타락할 수도 있다. 그래도 회개를 해 보니 하나님 앞에 온전히 쓰임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이제는 짐작이 된다. 고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바르게 나타내야 하며,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자기 성품까지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부지런히 회개한다. 속에서 원망과 불평의 영이 다 사라질 때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절대 주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자들을 광야에서 38년 동안 엎드러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품을 드러내야 할 지도자에게는 작은 것도 용서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경각심을 가지고 알아듣고 열심히 회개하여 우리 속의 영을 내보낸다면, 모세처럼 가다가 중단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살아서 휴거되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전사로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에 관해서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다. 우리의 삶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성품을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께서 &amp;#39;안 된다&amp;#39;고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어 성품까지 주님을 닮아 가야 한다. 그리고 인생 여정의 원망을 완전히 버리고, 나를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며 인도하시고 써 주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1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민수기</category><category>민수기강해</category><category>그리스도의예표</category><category>여호와의군대</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출애굽2세대</category><category>하나님의백성</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영적정체성</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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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330771#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Oct 2026 21:30: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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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수기강해(02)]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민1:1~4)_2026-10-14(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33015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민수기강해(02)] 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민1: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7ZDL9t_icK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ZDL9t_icK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성경&amp;nbsp;&lt;strong&gt;민수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핵심 교훈&lt;/strong&gt;을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대비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1장부터 19장까지의&amp;nbsp;&lt;strong&gt;출애굽 1세대 이야기&lt;/strong&gt;는 광야 생활 속에서&amp;nbsp;&lt;strong&gt;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lt;/strong&gt;을 세워야 함을 보여주며, 이들이 성막을 헌신적으로 지은 긍정적인 면도 함께 조명합니다. 반면 20장부터 마지막까지의&amp;nbsp;&lt;strong&gt;출애굽 2세대 이야기&lt;/strong&gt;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amp;nbsp;&lt;strong&gt;영적 전쟁에서 순종으로 승리&lt;/strong&gt;를 거둔 세대의 모습을 그립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광야 같은 교회 생활 속에서&amp;nbsp;&lt;strong&gt;애굽의 더러운 노예 근성과 악한 영을 회개로 물리치고&lt;/strong&gt;&amp;nbsp;천국을 향해 나아갈 합당한 하나님의 군사로 준비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민수기는 왜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두 이야기로 기록되었는가?&lt;br /&gt; 2. 모세오경의 흐름 속에서 민수기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lt;br /&gt; 3. 광야는 왜 애굽의 노예근성과 악한 영을 빼내는 곳인가?&lt;br /&gt; 4. 출애굽 1세대는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군대로 세워져야 했는가?&lt;br /&gt; 5. 광야에서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lt;br /&gt; 6.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각각 잘한 일은 무엇인가?&lt;br /&gt; 7. 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전사가 되라고 가르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민수기강해(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 1: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민수기 강해 두 번째 시간이다. 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민수기(民數記)란 백성을 세어 본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두 번 세었다. 출애굽 1세대를 센 것이 1장에 나오고, 출애굽 2세대를 센 것이 26장에 나온다. 그런데 2세대를 센 것은 26장이지만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는 20장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이고, 20장부터 마지막 36장까지는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민수기는 왜 이 두 세대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출애굽 1세대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고, 출애굽 2세대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lt;strong&gt;먼저 민수기의 전체 흐름을 1세대와 2세대로 나누어 정리하려&lt;/strong&gt; 한다. 앞부분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민수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고, 그다음부터 민수기 1장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갈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민수기는 왜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두 이야기로 기록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 나온 첫 세대&lt;/strong&gt;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려고 데리고 나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다. 민수기 20장은 출애굽 40년 첫째 달에 시작된다(민 20:1). 그때까지 살아 있던 출애굽 1세대의 지도자는 미리암, 아론,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섯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해에 세 사람이 차례로 죽는다. 미리암이 첫째 달에 가데스에서 죽고(민 20:1), 아론이 출애굽 40년 다섯째 달 첫째 날에 호르산에서 죽었다(민 33:38). 그리고 같은 해 신명기의 말씀을 선포한 뒤 모세도 죽었다(신 1:3; 34:5). 하나님은 그때 모세에게도 너는 출애굽 2세대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민 20:12). 그래서 과거를 이끌어 온 한 세대인 모세의 가족이 출애굽 40년에 모두 죽은 것이다. 성경은 시내 광야에서 계수된 사람 가운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민 26:64-6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백성을 세게 하셨는가? &lt;strong&gt;전쟁에 나갈 용사를 헤아리게 하신 것&lt;/strong&gt;이다. 민수기의 계수는 세금을 거두려는 인구조사가 아니었다. &lt;strong&gt;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군사의 수를 헤아린 것&lt;/strong&gt;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2-3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민수기의 계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전쟁에 나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 계수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시내 광야에서 시작되었다(민 1:1). 그리고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중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민 13:25-33). 그러자 백성이 밤새 통곡하며 원망했고, 하나님은 그 세대를 심판하셨다(민 14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이야기는 우리 생각 가운데 있는 &lt;strong&gt;부정적인 생각과 원망 불평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천국에 들어가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lt;/strong&gt;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날마다 원망 불평하며 살고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 같은가?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lt;strong&gt;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는 원망하는 자가 어떻게 되고, 순종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려고 기록된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모세오경의 흐름 속에서 민수기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는 어떤 책인가?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민수기를 기록한 이유를 제대로 알려면 모세오경의 흐름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창세기는 만물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인간이 창조되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말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부르심을 받은 족속을 만드시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자손 대대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5:18). 그런데 그때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족속을 먼저 애굽으로 들여보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셨다(창 15:5; 22:17). 이것이 일차적인 완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는 그 민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이것이 출애굽기다. 출애굽기 1장부터 24장까지는 시내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이고, 25장부터 마지막 40장까지는 성막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그들이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다. 그 법도를 모르면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하고, 빼앗고,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최소한 이렇게 지켜야 한다고 율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용서를 받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 성막법이다. 성막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그 말씀을 들려주시는 장소였다. 레위기는 그 성막에서 진행되는 제사와 성결, 정결에 관한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민수기에 이른다.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매우 많아졌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lt;strong&gt;출애굽한 이 백성은 과연 그 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lt;/strong&gt;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가나안 땅에 사는 일곱 족속의 죄가 관영해야 그 땅이 그들을 토해 내게 되어&lt;/strong&gt; 있었다(신 7:1; 레 18:2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창 15:16). 그 땅이 아직 죄악의 관영에 조금 덜 찬 상태였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땅이 죄악으로 가득 차 그들을 내버릴 때가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그 땅을 차지하려면 합당한 준비가 되어야&lt;/strong&gt; 했다. 노예근성이 빠져야 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식들 수준으로 디자인하셨다. 그러므로 평생 노예근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금도 원망 불평하며 &amp;quot;목사가 나를 친다&amp;quot;고 말하는 사람은 들어가기 어렵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디자인하셨는지, 무엇을 예정하셨는지를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엡 1:3-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상으로서 &amp;#39;우리&amp;#39;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을 말한다. 하나님은 천사를 종으로 지으셨고, 우리 인간은 아들들로 지으시려고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다. 우리에게는 원래 아들들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들로 계획하셨으니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가 천사로 태어났다면 &amp;quot;하나님, 왜 저를 천사로 만드셨습니까?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시지요&amp;quot; 하고 항의할 수 있는가? 없을 것이다.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롬 9:20-21). 그런데 살고 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귀한 존재,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엡 1:6). 천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찬송하며 예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칼빈주의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개인 구원 예정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고 만세 전에 계획하셨다(엡 3:6).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의 아들들답게 된 자만 들어간다. 처음부터 아들다운 자만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다 부르신다. 예수를 믿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갈 때는 그가 들어가기에 합당한지를 보신다. 그것을 시험하는 곳이 광야이고, 오늘날에는 교회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지만, 그에게 최종적으로 복을 약속하신 것은 22장의 시험을 통과한 뒤였다(창 22:16-18). 그래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약 2:21). 고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지 못한다면 결국 죽어서 성 밖으로 갈 수밖에 없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광야는 왜 애굽의 노예근성과 악한 영을 빼내는 곳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번 새벽기도회 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필자의 삶을 돌아보았다.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항상 슬펐고, 쨍하고 해 뜬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힘든지도 모르면서 너무 힘들었다. 요즘에는 필자의 얼굴에 웃음이 잘 피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슬픈 남자였고, 외로운 남자였고, 우울한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필자 속에 악한 영이 어마어마하게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도 있었지만, 필자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 영이 계속 있으면 우리를 침체에 빠뜨리고 어둠 가운데로 끌고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작 누군가 회개기도문을 주고 회개를 시켜 주었더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교회 지도자들인 목사들부터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배우고 회개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에 의미가 있고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다. 살아갈 이유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대되고, 오늘 해야 할 일에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필자는 우울한 감정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항상 &amp;quot;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amp;quot;, &amp;quot;이 한 많은 세상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amp;quot;고 생각했다. 주님이 오셔야 이 힘든 세상을 끝내고 주님 나라에 들어갈 텐데, 죽으면 지옥에 갈 것 같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날짜를 계산했다. 그래서 필자는 종말론을 어마어마하게 연구했고, 종말론자들과 엄청나게 토론했다. 환난 전 휴거인가, 환난 중간 휴거인가, 환난 후 휴거인가, 전천년인가 아닌가를 놓고 엄청나게 이야기했다. 그 수많은 논란을 필자가 다 겪었다. 다 겪고 나서 전하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종말론은 어디서 하루아침에 배워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엄청나게 연구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다 파서 먹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이 조금 더 늦게 오셔서 하늘나라를 더 준비하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좌 자리도 한 자리라도 더 앞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 1세대도 그랬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시기는 했지만 귀신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틈만 나면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고기가 없다, 너만 지도자냐 나도 지도자 좀 해 보자며 불평하면서 난리를 피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과연 광야에서 굶어 죽었는가? 아니었다. 날마다 만나를 배급받았다. 안식일 외에는 매일 내렸다(출 16:26). 그러면 감사해야 했다. 만나가 무엇인지는 출애굽기 16장에 처음 나오고, 요리해 먹는 방법은 민수기 11장에 나온다. 쌀을 주면 밥만 짓는 것이 아니라 떡도 해 먹듯이 만나도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을 수 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1: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 만나도 함께 내렸다(민 11:9). 그 양식은 공짜였다. 다만 공짜라도 새벽에 나가서 거두어야 했다. 해가 뜨겁게 쬐면 녹아 버렸기 때문이다(출 16:21).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풀도 물도 제대로 없으니 가축도 기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산 것이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살았으면 늘 감사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출애굽 1세대는 원래 노예 신분&lt;/strong&gt;이었다. 노예는 늘 불평해야 주인이 무엇이라도 준다. 노예가 &amp;quot;주인님, 지금 환경이 너무 좋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amp;quot;라고 하면 주인이 환경을 바꾸어주겠는가? 그래서 불평이 몸에 밴 것이다. 그런 노예근성이 빠지지 않은 채 갑자기 자유민이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켜 홍해 앞 비하히롯 앞에 진을 치게 하셨다(출 14:2). 바로는 선발된 병거 육백 대를 이끌고 쫓아와서 앞은 바다, 뒤는 군대로 막혔다(출 14:7, 9). 그때 하나님의 사자와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뒤로 옮겨 가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서서, 애굽 쪽에는 흑암이 되고 이스라엘 쪽에는 밤을 밝혔다(출 14:19-20).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다를 가르게 하여 이스라엘을 건너가게 하셨다. 뒤따르던 애굽 군대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 하나님이 왜 그들을 홍해 앞으로 돌려 세우셨는가? 애굽 군대를 없애 그들을 자유민으로 만들려고 하신 것이다. 그냥 넘어가면 계속 도망자다. 전쟁에서 이겨야 자유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도 &lt;strong&gt;출애굽 1세대들은 애굽에서의 노예근성이 계속 남아&lt;/strong&gt;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의 성도라도 노예근성이 남은 사람은 날마다 불평한다. &amp;quot;교회가 이래서 되느냐? 안내위원 복장이 저게 뭐냐? 교회에 식당도 없느냐?&amp;quot; 목사가 못생겼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별 것을 다 신경 쓴다. 사모가 비싼 옷을 입고 다녀서 시험에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불평불만으로 입에 거품을 문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회개를 시켜 놓았더니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mp;quot;내가 잘못한 것이지, 이 교회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amp;quot; 이렇게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를 하나님의 군대로 데리고 나오셨다. 오합지졸이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처음부터 군대로 보셨다. 그러나 그 속에 악한 영이 가득했기 때문에 원망 불평이 가득했다. 그래서 &lt;strong&gt;민수기 1장부터 19장까지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amp;quot;원망 불평하지 말라&amp;quot;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고 날마다 원망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자 지도자를 탓했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며 모세를 비방했다(민 12:2). 민수기 16장에서는 고라 일당과 이백오십 명의 족장들이 &amp;quot;너희만 제사장을 하느냐&amp;quot;며 우리도 제사장을 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일어났다(민 16:1-3).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질서가 있는데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애굽에 있을 때는 무조건 불평하고 지도자를 물어뜯어야 무엇이라도 나왔으니 그 습성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광야는 애굽에서 가져온 더러운 노예근성을 빼는 곳&lt;/strong&gt;이다. 이것은 빨리 뺄수록 좋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것을 빼는 법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20년, 30년을 교회에 다녀도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삐친다. &amp;quot;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나를 쳤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 교회를 안 나가겠다.&amp;quot; 목회자가 칠 것이 없어서 그 권사님을 치겠는가? 언제까지 &amp;quot;아프니까 호 해 주세요&amp;quot; 하겠는가? 그래서 정말 전쟁을 치를 군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을 치를 군인을 만들려고 데리고 나오셨다. 그래서 그 자격이 있는지 민수기 13-14장에서 시험해 보신 것이다. 그랬더니 &amp;quot;저쪽은 키가 장대하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 우리를 죽이려고 이 광야로 데려왔느냐?&amp;quot; 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민 13:32-33; 14: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교회 생활은 애굽에서 찌든 때를 빼내기 위한 장소&lt;/strong&gt;다.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듯이,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lt;strong&gt;교회 생활에서 애굽의 잔재를 다 뽑아내야&lt;/strong&gt; 한다. 우상을 섬기던 때가 빠지지 않으니 그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amp;quot;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amp;quot; 하였다(출 32:4). 우상숭배 신앙이 빠지지 않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lt;strong&gt;무당신을 섬기다가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무당 섬기듯 섬기는 사람&lt;/strong&gt;이 있다. 천지신명께 빌던 사람이 교회에 와서 천지신명을 하나님으로 바꾼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화수 떠 놓고 빌던 것과 비슷하게 빈다. 무당, 천지신명, 북두칠성, 칠성신, 뱀신을 섬기다가 섬기는 대상만 하나님으로 바꾸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니 교회가 무당이 된다. 귀신이 가르쳐 주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신다고 말한다. 성령도 귀신도 보이지 않으니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떤 분은 &lt;strong&gt;광야 생활을 음식을 바꾸는 생활&lt;/strong&gt;이라고 한다. 애굽에서 먹던 음식을 버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날마다 그리워했다(민 11:5). 맛이 센 음식이다. 만나는 양념을 넣거나 마늘처럼 톡 쏘는 음식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식이었다. 이처럼 세상 음식은 조미료를 많이 넣어 맵고 짜다. 그래서 교회 음식은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 맛있고, 그 음식이 나의 영적 건강을 만들고 나를 영적인 천사처럼 만든다는 믿음이 올 때가 있다. 그것이 교회 생활이다. 세상 지식만 먹고 살다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먹을 때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영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 그러므로 양식을 바꾸는 것이 교회 생활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성경 말씀이 맛이 없다. 설교가 듣기 싫다. 목사님은 왜 설교를 그렇게 길게 합니까?&amp;quot; 하며 날마다 시계만 보는 사람은 지금 말씀의 맛을 모르는 자이다. 필자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말씀을 맛있게 전하지 못할 바에는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이 설교 듣기를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가? 설교를 잘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amp;quot;광야에서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끝.&amp;quot;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게 요리해야 한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면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출애굽 1세대는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군대로 세워져야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1장 1절부터 10장 10절까지는 &lt;strong&gt;시내 광야에서 전쟁을 수행할 민족의 청년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리고, 그들이 어떻게 진을 치고 행진할지를 준비시키는 이야기&lt;/strong&gt;다. 고로 마지막 시대에는 귀신과 싸워 이기는 전쟁을 하는 사람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10장에 가면 나팔을 어떻게 불 때 어느 진이 나가는지 순서가 나온다(민 10:1-10). 여호와의 언약궤가 앞서 행하고(민 10:33), 동쪽에 진 친 유다 자손의 진영이 먼저 행진했다(민 10:14). 전쟁할 때와 이동할 때 나팔을 어떻게 부는지가 10장에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진을 친 모습을 보면 그 한가운데에 성막&lt;/strong&gt;이 있다. 성막을 중심으로 제사장과 레위 지파가 사방에 진을 치고, 그 바깥에 열두 지파가 진을 쳤다(민 2-3장).&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출애굽 1세대가 받은 첫째 교훈이다. &lt;strong&gt;하나님의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lt;/strong&gt; 한다는 것이다. &lt;strong&gt;하나님의 말씀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좇아야&lt;/strong&gt; 한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하나님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바뀐다. 겉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을 통해 성분이 바뀌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에게 &amp;quot;나를 중심으로 내 율법을 지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이동하는 것조차 너희 마음대로 하지 말고 내가 가라고 할 때 가라&amp;quot;&lt;/strong&gt;고 가르치셨다. 처음에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하심이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 아침까지 이르렀다(민 9: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9:17-18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않았다(민 9:19). 이처럼 &lt;strong&gt;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교회생활이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말씀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엉망이 된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니 교회에 와서 교양생활을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공연을 즐기듯 문화생활을 하려 하고, 교양 있게 보이려 한다. 어떤 사람은 말씀은 듣지 않고 기도만 한다. 자기가 소원하는 것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 무당에게 빌듯이 헌금을 내며 &amp;quot;잘 봐 주세요, 내 기도 좀 들어 주세요&amp;quot; 한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헌금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헌신이다. 그런데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우상숭배하던 생활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amp;quot;하나님 살아 계십니까?&amp;quot; 하고 따진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려 해도 악한 영이 중간에서 가리고 차단하여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회개를 통해 그 진노를 없애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느냐고 한다. 모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닌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원망 불평이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무엇이 없다고 날마다 원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출애굽 1세대에게서 기억할 것은 두 가지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사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려면 애굽의 습관, 애굽의 음식, 애굽의 문화, 애굽의 신관을 다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lt;/strong&gt;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적극적인 교훈이다. 그런데 소극적인 교훈도 있다. 그것은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질서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광야에서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이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로 이동했고(민 10:11-12), 그곳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냈다(민 13:3, 26).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환경만 바라보고 &amp;quot;우리를 죽이려고 여기로 데려왔느냐&amp;quot;며 원망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28-29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15장부터 19장까지 1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민수기 19장에서 출애굽 1세대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20장부터는 출애굽 2세대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출애굽기 19장에서 20장 사이에는 38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3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신 것이다. 그들이 말한 대로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 기간이 바로 38년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려면 애굽의 잔재를 싹 뽑아내야 한다. 그럼, 애굽의 잔재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귀신이고 뱀들이다. 이것을 뽑아내야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광야에 엎드러져 죽을 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 1차적 구원은 받았으나 최종적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도 발생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것을 경고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3:17-19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히브리서를 보면,, 성령께서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심을 본다(히 3:7-8).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들어가지 못했던 안식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히 3:11). 그러므로 1차적인 구원을 받은 자라도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어야 한다(히 3:12-14).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도 똑같은 말씀이 적용된다. 우리 스스로가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구원의 노정에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조금 앞서 나가신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amp;quot;목사님, 광야로 나온 출애굽 1세대 가운데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 그리고 실제 육신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은 다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럼 그들은 다 지옥에 갔습니까?&amp;quot; 히브리서를 보면 광야에 엎드러진 자들은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며 시험하고 거역하다가 죽었으니 지옥에 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질문을 해 봐도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천국상황을 확인해 보니 출애굽 1세대 가운데 천국에 들어간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것은 우리가 착각한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메뚜기 같아서 다 죽을 것이라며 불평불만을 사람들은 출애굽 1세대 전부가 그랬는가? 그러지는 않았다. 그 일을 주도한 것이 부정적인 열 명의 정탐꾼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자 동조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이 불평에 참여했지만 모든 백성이 다 불평한 것은 아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결정한 산헤드린 공회를 보자. 유대 전승에 따르면 산헤드린은 일흔한 명이다. 그중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사람이었다(눅 23:50-51). 니고데모도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이었다(요 7:50-51). 필자는 그 두 사람이 그때 그들의 결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공회는 다수의 결정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론을 내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출애굽 1세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처음에 38년 동안 광야를 돌며 다 죽었으니 모두 지옥에 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천국에서 확인해 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불평불만으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거역하는 나쁜 자들과 그들을 동조하던 자들을 이끈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갔고, 그때 살았던 사람 중에 144,000석의 보좌 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각각 잘한 일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lt;strong&gt;출애굽 1세대가 주님께 칭찬받을 만큼 잘한 일이 있었는가&lt;/strong&gt;? 그런데 있었다. 우리는 민수기 13-14장만을 과대 확장해서, 출애굽 1세대들 모두는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다가 죽은 자들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부분은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고 하면서 불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잘한 일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도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 드린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성막을 지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것도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은금패물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쳤다.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를 너도나도 빼서 가져왔다(출 35:22).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모세가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출 36:5-7). 오늘날로 말하면 수십억 원에 이를 귀중품을 성막, 곧 교회를 지으라고 내놓은 것이다. 이처럼 그들에게도 이런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그들에 관한 나쁜 것만 이야기를 들으니, &amp;quot;불평했던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 엎드러져 죽어도 싸다, 다 지옥에 갔을 것이다&amp;quot;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불평에 다 동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두 지옥에 갔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출애굽 2세대는 어떠했을까? 출애굽 2세대도 출애굽 1세대와 같이 똑같이 하나님께서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그들도 역시 물이 없다고 므리바에서 다투었고(민 20:2-13),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다(민 21:4-6). 그런데도 출애굽 2세대들도 잘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쟁을 수행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20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보면 그들은 크게 두 번 전쟁에 성공한다. 첫째는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친 것이다(민 21:21-35). 둘째는 미디안의 다섯 왕을 다 죽인 것이다(민 31:7-8). 하나님은 21장과 31장에서 그들이 과연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자들인지 시험해 보셨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합격했다. 당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엄청나게 센 족속이었다. 바산 왕 옥은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로, 그의 철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신 3:11). 거인족속이었던 것이다. 또한 미디안의 다섯 왕도 매우 강한 족속이었다. 그런데 2세대는 그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싹 다 물리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그때까지 전쟁을 해 본 것은 사실 출애굽기 17장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운 것이 거의 전부였다(출 17:8-13).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가데스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올라갔다가 호르마까지 패한 적이 있었고(민 14:44-45), 2세대는 아랏 왕과 싸워 이긴 적도 있었다(민 21:1-3). 그러나 민수기 21장에서 본격적인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출애굽 2세대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런데 이 승리가 얼마나 엄청났었는지는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성의 라합이 들은 소식으로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라합은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줄 안다고 하면서, 가나안 땅 주민들이 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간담이 녹는다고 말했다(수 2:9). 그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수 2:10-11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켰다. 여기서 &amp;#39;전멸시켰다&amp;#39;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렘, 곧 모든 생명있는 것을 다 진멸하고, 불에 태웠을 때에 타지 않는 것은 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킨 일은 가나안 족속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일을 출애굽 2세대가 해낸 것이다. 그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만하지 않은가? 혹 불평할 때 불평하더라도 가서 나가서 싸우라 하시면 &amp;quot;할렐루야, 아멘&amp;quot; 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출애굽 2세대들은 아버지 세대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다가 그만 다 죽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하고, 거기서 불평했다가는 끝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amp;quot;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아무리 힘쎈 아모리 왕 시혼이고 바산 왕 옥이라도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바산 왕 옥은 거인이라는데 상관없습니다. 어서 가서 칩시다.&amp;quot; 하고 전장으로 나갔던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안에 있는 거인 족속을 물리칠 수 있는지, 먼저 바산 왕 옥을 통해 시험해 보셨다. 그런데 출애굽 2세대는 그들을 쳤다. 그래서 시험에 통과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amp;quot;됐다. 여호수아야, 그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라&amp;quot; 하신 것이다. 그랬다. 출애굽 1세대는 성막을 지어 잘한 것이 있었고, 출애굽 2세대는 전쟁을 수행하여 잘 한 것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교회에 나와서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이 성경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전사가 되라고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누구인지를 선발하기 위해서 쓴 책이다. 싸움을 못 하는 자는 주님이 뽑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교회에 와서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려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귀신을 쫓고 악한 영을 내보내야 성도들이 온전해지고 저주에서 끊어지며, 종국에는 천국에도 들어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이 영적 전쟁을 해보지도 못한 채 미끄러지고 만다. 맨날맨날 징징 짜기만 한다. &amp;quot;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서 저 귀신들을 아작 낼까?&amp;quot; 이렇게 생각야 하는데, &amp;quot;귀신은 무서워, 오지 마, 꿈속에라도 나타나지 마&amp;quot;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 예수님의 군대로 들어가야 한다. 나팔절은 이러한 군대를 소집하는 날인데 그날 &amp;quot;올라오라&amp;quot;고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amp;quot;할렐루야, 아멘&amp;quot; 하고 나서야 한다. &amp;quot;나 같은 사람은 빼 주세요&amp;quot; 하면 되겠는가?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을 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교회는 보통 교회에서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린다. 특이한 교회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회다. 왜냐하면 성경대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말씀대로 그대로 선포한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의문점을 가진 분들이 말씀을 듣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세상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덜컥 천국 복음을 물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병들고 신음하고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말한다. &amp;quot;저 교회는 다르다. 다른 데서는 가르쳐 주지도 않으며, 또한 등록해야만 가르쳐 주는데, 여기서는 돈도 필요 없고 오직 회개만 하고 오라고 한다. 참으로 성경적인 교회로다&amp;quot;&amp;nbsp; &amp;nbsp;그런데 사실 이러한 방침은 예수님을 따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심으로,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필자는 예수님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러분은 이 시대에 태어나 이런 말씀을 배우고 있으니 참으로 복된 자다. 여자 성도들은 이 시간 남편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편들이 돈을 벌어다 주니 여기 와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남편에게 바가지 긁지 말라. 남편을 위해 남편의 이름으로 헌금도 올리고, 남편을 위해 기도도 해 주고, 남편의 이름을 넣어 회개도 해 주어야 한다. 남편이 그래도 열심히 일해 주어서,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리하면 이렇다. 민수기의 전체 여정은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다. 1세대를 통해서는 하나님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광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소극적으로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고 그것을 함부로 뒤집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2세대를 통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라고 하실 때 &amp;quot;아멘&amp;quot; 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불평할 때 불평하더라도 전쟁하라 하시면 순종하라. 원망과 불평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이 엄청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펼쳐질 때 우리는 어마어마한 감동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은 민수기의 전체 내용이 어떤 주제를 담고 있으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민수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소상히 살펴보고, 그다음부터는 민수기 1장부터 펼쳐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민수기를 이야기의 핵심을 오늘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다가 그만 시간이 다 흘러갔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성도라 할지라도 광야에서 무너져서 믿음에서 파선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만 깨달았어도 엄청나게 복을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전에 민수기를 생각할 때, 출애굽 1세대들의 원망과 불평의 이야기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이 민수기의 전체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수의 전체 이야기는 이렇다. 비록 1차적인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전부를 광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이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거주자들이 될 만한 존재인지를 광야 생활을 통해 확인해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 세대들의 광야 생활이 곧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 생활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3가지다. 첫째는, 교회생활은 성막 중심이자 하나님 중심이요, 말씀 중심이자 하나님의 임재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애굽의 잔재를 다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믿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애굽에서의 음식과 삶을 동경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확실히 바꿔야 한다. 애굽의 우상숭배 문화를 확실히 버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회개를 통해 제거하는 것이다. 셋째는 영적 전쟁의 수행자로 준비되는 것이다. 누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를 받았어도 거기에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사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우리에게서 지금도 나오고 있는 원망 불평의 영, 시기 질투의 영은 다 사탄 마귀로부터 나왔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다섯째 나팔이 불어지면 무저갱에 감금된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풀려날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은 정말 지옥을 방불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경륜상으로 볼 때, 모든 주의 백성들이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었던 것처럼, 영적 전쟁을 수행할만한 전사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교회 생활을 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을 먼저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찌 자기 안에 첩자가 들어 있는 사람을 장차 마지막 때의 아마겟돈 전쟁의 전사로 사용하겠는가? 먼저 회개를 통해 그 영들부터 우리 몸에서 싹 몰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악한 영들과 치열한 싸움을 하는 마지막 시대의 영적 전사들로 전환되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14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인포_민수기,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92886ec15631e688cd8bc4da22b689a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f2a3e4508d71f2727682b24d2b0b39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42fc3100feaa6bc0df33b0f1c61699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705fc26891ee542c42a0fc0d7e3d90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2f1bb04b2f5ea9ab120a78afe99218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2417f8d3565489cbdccada2fafba46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c28a1fbc3727fec4e1e596e187f230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139d87b3683bab649e669d2c952cd8a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3dc1b9c1218a076bec302a6098b99e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e9678ba731ea68773f55f11f817443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0df126ec9b3097117a2c64252dcbb1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c4c1be17e51652340979bce43d11af3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65797428f407d4533ab91f7932be80a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072518386e8f6d86c17de8c581612e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6f5b65286c33c0f16361134481aa38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_영적_군대의_탄생.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b19ebd17c2dfba285bc9e2f499e44e2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광야에서_배우는_영적_군사의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d0c18741097d55eb9bd06221c38bc8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민수기로_보는_영적_군사의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dd7c2b0143679f37b2ef9ccfcd83004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c6c229a8caca33a1cb9a37aab6c662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4c90edf58db6e13891486b8cfcbcac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5885fdcbe90c107127e0f1f37ba1f3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ccc9e9603ca9345a4a9ba0b4143006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a00ad31fd9f8d4edcddf75d5c18f4c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7d1742567d0df613a313de5341c327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1f98c1791e4af47dcce69dcf2d1cc1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c530d8f2595028795daafe69c947ce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60b35e00483e34edbefeaf57331ffa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민수기강해(02)] 천상의_청사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54/330/855852d246d68516c03ea6f4b57a5f1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민수기</category><category>민수기강해</category><category>성경공부</category><category>출애굽</category><category>광야생활</category><category>하나님의군사</category><category>영적전쟁</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신앙훈련</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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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330154#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Oct 2026 23:56: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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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수기강해(01)] 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민1:1~4)_2026-10-07(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306341</link>
				<description>&lt;p&gt;2026-10-07(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민수기강해(01)] 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민1: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imDTxHcEyS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mDTxHcEyS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 구약성경의 &lt;strong&gt;민수기&lt;/strong&gt;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핵심 주제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설교입니다. 이 책의 히브리어 원제목인 &amp;#39;광야에서&amp;#39;와 헬라어 번역에서 유래한 &amp;#39;숫자들(민수기)&amp;#39;의 배경을 설명하며, 이 책이이 단순한 인구 조사를 넘어 &lt;strong&gt;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실제 삶과 광야 여정&lt;/strong&gt;을 다룬 역사서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1차 인구 조사의 대상이었던 1세대들이 불신앙과 원망으로 광야에서 소멸한 반면, 2세대들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가나안 정복의 전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lt;strong&gt;구원과 순종의 교훈&lt;/strong&gt;을 전달합니다. 나아가 민수기 전반에 나타나는 &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적 사건들과 인물들&lt;/strong&gt;을 조명하며, 성도가 영원한 천국이라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신앙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도전하는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민수기의 &lt;strong&gt;히브리어&amp;middot;70인역&amp;middot;한글 제목&lt;/strong&gt;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lt;br /&gt; 2. 모세오경에서 &lt;strong&gt;민수기의 위치와 기록 시기&lt;/strong&gt;는 어떻게 확인되는가?&lt;br /&gt; 3. &lt;strong&gt;두 차례 인구조사&lt;/strong&gt;는 누구를 왜 계수하며 무엇을 보여 주는가?&lt;br /&gt; 4. 광야 여정은 &lt;strong&gt;장소와 출애굽 세대&lt;/strong&gt;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가?&lt;br /&gt; 5. &lt;strong&gt;출애굽 1세대&lt;/strong&gt;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lt;br /&gt; 6. &lt;strong&gt;출애굽 2세대&lt;/strong&gt;는 원망을 거쳐 어떻게 전사로 세워졌는가?&lt;br /&gt; 7. 민수기는 우리의 &lt;strong&gt;구원 여정과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민수기강해(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민 1:1-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부터 민수기 강해를 시작한다. 첫 시간의 제목은 &amp;lsquo;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amp;rsquo;이며, 그 부제는 &amp;lsquo;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amp;rsquo;이다. 그동안 우리는 레위기를 공부해왔다.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지, 어떻게 정결해지고 어떻게 성결해지는지를 배웠다. 이제 그 말씀을 받은 백성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차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는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두 번 센 기록으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하나님께서는 왜 백성을 세게 하셨는가? 무엇을 세게 하셨는가? 그리고 그렇게 센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정면으로 묻는 책이 된다. 나는 출애굽 1세대처럼 광야에서 흔적 없이 사라질 사람인가, 아니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전사로 준비될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를 공부하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정보 가운데 교정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른들이 그렇게 해 왔으니 그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번 시간에는 &lt;strong&gt;민수기의 이름과 위치, 구조와 기록 목적&lt;/strong&gt;을 살펴보자.&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민수기의 히브리어&amp;middot;70인역&amp;middot;한글 제목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우리말 제목부터 보자. 민수기(民數記, Numbers)는 백성 민(民), 셀 수(數), 기록할 기(記) 자를 쓴다. 곧 백성을 센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보아도 무엇인가 숫자를 헤아리는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맞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는 일이 두 차례 나온다. 한 번은 1장에, 또 한 번은 26장에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lt;strong&gt;이 책의 제목&lt;/strong&gt;이 전혀 다르다. &lt;strong&gt;히브리어 성경&lt;/strong&gt;은 이 책을 &lt;strong&gt;&amp;lsquo;베미드바르&amp;rsquo;&lt;/strong&gt;라고 부른다. &amp;lsquo;베&amp;rsquo;는 &amp;lsquo;~에서&amp;rsquo;라는 뜻이고, &amp;lsquo;미드바르&amp;rsquo;는 광야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amp;lsquo;광야에서&amp;rsquo;이다. 별로 탐탁지 않은 이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원래의 제목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amp;lsquo;광야에서&amp;rsquo;인가? 민수기가 광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밑의 시내 광야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그다음 13장과 14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 바란 광야로 갔다. 그리고 15장을 지나면 신 광야가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amp;lsquo;진&amp;rsquo; 광야다. 이처럼 시내 광야, 바란 광야, 진 광야라는 세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은 이 책의 제목을 &amp;lsquo;광야에서&amp;rsquo;라고 붙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누가 이 제목을 바꾸었는가? 한글로 번역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처음 바꾼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B.C. 3세기에서 2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것을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이라 하고 LXX로 표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lt;strong&gt;70인역&lt;/strong&gt;은 이 책의 제목을 &lt;strong&gt;&amp;lsquo;아리스모이&amp;rsquo;&lt;/strong&gt;라고 기록했다. 아리스모이는 복수형으로 &amp;lsquo;숫자들&amp;rsquo;, 곧 넘버들이라는 뜻이다. 무슨 숫자인가? 사람을 헤아린 숫자다. 사람을 헤아린 기록을 보니 두 번 헤아렸다. 한 번은 시내 광야에서 헤아렸고(민 1장), 또 한 번은 모압 평지에서 헤아렸다(민 26장). 이처럼 백성을 두 번 헤아린 기록이라 하여 70인역이 &amp;lsquo;숫자들&amp;rsquo;이라 이름 붙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번역하면서 &amp;lsquo;민수기&amp;rsquo;라고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한글성경이 정한 &amp;#39;민수기&amp;#39;라는 책 제목은 잘한 번역인가, 아니면 못한 번역인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를 한 번 헤아려 기록하고, 출애굽 2세대를 한 번 헤아려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차례의 인구조사, 곧 싸움에 나갈 만한 장정을 조사한 일을 기준으로 붙인 &amp;lsquo;민수기&amp;rsquo;라는 제목은 출애굽 1세대가 되지 말고 출애굽 2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교훈을 시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필자는 &amp;lsquo;광야에서&amp;rsquo;라는 제목이 더 좋다고 외치고 싶다. 다음에 누군가 새로 번역한다면 &amp;lsquo;광야에서&amp;rsquo;라고 붙이면 좋겠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 책은 본래 세 광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모세오경에서 민수기의 위치와 기록 시기는 어떻게 확인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는 모세오경(五經, Pentateuch) 가운데 네 번째 책으로 레위기와 신명기 사이에 있다. 민수기의 위치를 알려면 앞의 책들을 복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의 과정을 1장부터 11장까지 기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하늘나라를 이루시려고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 그래서 창세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세 족장의 이야기다. 그 야곱 때에 열두 아들을 비롯한 일흔 명이 애굽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출애굽기가 시작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다. 12장에 유월절이 나오고, 13장부터 백성이 나오기 시작하며, 14장에서 홍해를 건넌다. 15장에서는 쓴 물을 단물로 만드는 일이 있었다. 19장에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율법(律法, law)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시고, 20장에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십계명을 주셨다. 21장부터 23장까지는 백성이 지켜야 할 법도이며, 24장에서 온 백성이 피를 두고 언약을 맺는다. 그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에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받을 법이 있어야 하므로 성막(聖幕, tabernacle)을 지어 제사를 드리고 용서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것이 25장부터 40장까지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1장부터 24장까지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의 역사이고, 25장부터 40장까지는 중간에 조금 이야기가 들어가지만 성막을 짓는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날짜를 보자.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첫해 1월 10일에 유월절 양을 준비했다가 1월 14일에 잡고, 1월 15일에 애굽에서 나왔다(민 33:3). 그리고 그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웠다(출 40:17). 출애굽 2년 1월 1일이다. 출애굽한 지 만 1년이 되려면 아직 15일이 더 지나야 하는 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민수기 1장 1절은 출애굽 2년 2월 1일이다. 성막을 세운 날부터 딱 한 달이 지났다. 연대로 말하면 B.C. 1445년 2월 1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한 달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가? 레위기가 있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그 한 달 사이에 주어졌다. 성막을 지었으니 이렇게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1장부터 7장까지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결례(淨潔禮)가 11장부터 17장까지, 성결례(聖潔禮)가 18장부터 27장까지 나온다. 성결례 가운데 18장부터 22장까지는 개인적인 성결례이고, 23장부터는 절기를 통한 공동체적인 성결례다. 이것이 한 달 만에 끝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레위기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율법 규정 이야기다. 그러나 민수기는 규정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다. 그들에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amp;lsquo;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제사는 이렇게 드려야 한다. 절기는 이렇게 지켜야 한다.&amp;rsquo; 이런 책이 아니다. 실제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규정은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다. 민수기는 그 규정을 들은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써 놓았다. 그래서 민수기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의 끝은 어디인가? 출애굽 40년 5월 1일에 아론이 죽는다. 아론이 죽은 뒤에도 조금 더 기록이 이어지지만 모세는 아직 죽지 않는다. 모세가 죽는 이야기는 신명기 끝에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명기의 시작은 출애굽 40년 11월 1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명기(申命記, Deuteronomy)는 되풀이한다는 뜻의 신(申) 자와 명령이라는 뜻의 명(命) 자를 쓴다. 율법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기록이다. 모세가 출애굽 2세대를 모아 놓고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 이것이라고 다시 교육한 것이 신명기다. 그래서 신명기는 규정이 중심이지만 그 규정을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순서에 따라 다시 설명해 준다. 아론이 죽은 그해 열한째 달에 이 말씀을 다 알린 뒤,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죽을 때 나이는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신 34: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민수기는 출애굽 2년부터 40년까지 약 38년 9개월 16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실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가 흔히 민수기를 &amp;lsquo;38년간의 광야 생활의 기록&amp;rsquo;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규정이 아니라 삶을 기록하게 하셨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두 차례 인구조사는 누구를 왜 계수하며 무엇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누구를 세었는지 보자. 그냥 백성의 숫자를 센 것이 아니다. &amp;lsquo;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amp;rsquo;를 세라는 규정이 있었다(민 1:3). 남자로서 스무 살 이상이고 싸움에 나갈 만한 자다. 출애굽 2년 2월 1일에 계수했으므로 이 사람들은 모두 출애굽 1세대다. 애굽에서 나온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 숫자가 몇 명이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5-4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스무 살 이상의 남자만 60만 3,550명이었다. 그렇다면 전체는 몇 명이었겠는가? 흔히 200만 명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 또 스무 살 아래의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60만 명이면 여자가 같은 숫자만 되어도 120만 명이다. 여자가 좀 더 많아 150만 명쯤 되었다고 치고, 여기에 스무 살 아래의 아이들을 더하면 200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200만 명의 역사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각해 보라. 200만 명이 광야에서 농사를 지었는가? 우리 집에 시어머니 한 분만 오셔도 한 달 동안 밥을 해 드리기가 쉽지 않다. &amp;ldquo;어머니, 밭에 고추가 풀에 묻혔을 텐데 집 생각나지 않으세요?&amp;rdquo;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한 사람만 집에 와도 밥 먹이기가 그렇게 힘들다. 그런데 200만 명이 먹을 양식이 광야 어디에 있었겠는가? 여기에 엄청난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고, 민수기에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탐한 백성에게 메추라기가 내려진 사건이 나온다(민 11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계수는 26장에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나온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십 세 이상 된 자를 계수하라고 전했다(민 26:3-4). 모압 평지는 요단강 건너편, 여리고 앞에 있는 평지다. 첫 번째 계수는 모세와 아론이 했고, 두 번째 계수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했다. 첫 번째는 시내 광야에서 했고, 두 번째는 모압 평지에서 했다. 첫 번째는 출애굽 1세대였고, 두 번째는 출애굽 2세대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숫자는 60만 1,730명이었다(민 26:51). 60만 3,550명에서 60만 1,730명을 빼면 1,820명의 차이가 난다. 거의 똑같다. 그런데 숫자는 거의 같지만 사람은 전적으로 다르다. 민수기는 바로 이것을 드러내려 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와 출애굽 2세대를 구분해 보여 주시면서 &amp;ldquo;너희가 이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amp;rdquo;라고 물으신다. 이것을 찾지 못하면 민수기를 헛되이 읽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숫자를 세게 하셨는가? 왜 스무 살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만 세게 하셨는가? 단지 인구조사를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핵심은 &amp;lsquo;싸움에 나갈 만한 자&amp;rsquo;다. 앞으로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전쟁을 해서 그 땅을 정복해야 한다. 그래서 싸움에 나갈 전사들의 숫자를 계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왜 전사가 필요했는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주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땅은 거저 가져갈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죄가 찼는데도 그 땅을 내놓지 않으려 했다. 그들을 쫓아내려면 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사를 세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광야 여정은 장소와 출애굽 세대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는 장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장부터 10장 10절까지는 시내 광야의 이야기다. 시내 광야에서 인구조사를 시키고 진영을 배치한다. 나팔을 불면 어느 지파가 먼저 나가는지, 진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다 이야기한다. 유다 지파가 맨 앞에 서고, 전쟁할 때 어떻게 나갈 것인지를 모두 연습한다. 그리고 10장 11절에 드디어 출발한다. 언제 출발했는지가 정확히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0:11-12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란 광야에는 가데스 바네아가 있다. 성경은 이곳을 신 광야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진 광야다. 이 진 광야와 바란 광야 사이에 가데스 바네아가 있다. 다음 시간에 지도를 보여 주며 설명하겠지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광야 지도는 많이 틀렸다. 민수기에도 교정할 것이 엄청 많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열하룻길이었다(신 1:2). 그 열하룻길 만에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정탐꾼을 보냈다. 이것이 13장과 14장이다. 민수기는 이 가데스 바네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결정타가 났다.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바람에 백성은 광야를 빙빙 돌게 되었고, 그 이야기가 15장부터 19장까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20장에서는 불신앙(不信仰, unbelief)의 세대가 소멸되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미리암과 아론이 죽는다. 왜 그들이 이때 죽는가?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amp;ldquo;모세 너만 지도자냐? 우리도 지도자다&amp;rdquo; 하며 반항하고 불평한 불신앙의 이야기가 나온다(민 12:1-2).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가 끝날 때 그들도 함께 죽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다음 21장부터 25장까지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이야기이고, 26장부터 36장까지는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한 뒤의 이야기다. 장별로 보면 1장부터 9장까지 시내 광야, 9장부터 12장까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행군, 13장의 정탐과 보고, 14장의 원망과 심판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세대로 나누면 더 분명하다.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는 민수기 1장부터 19장까지이고,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는 20장부터 36장까지다. 그런데 20장 1절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바뀐다. &amp;ldquo;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amp;rdquo;(민 20:1). 이 첫째 달은 출애굽 40년 1월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리암이 죽은 그해에 아론도 죽기 때문이다. 아론은 호르 산에 올라가 그의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힌 뒤 산꼭대기에서 죽었고, 온 회중은 삼십 일 동안 애곡했다(민 20:25-29). 그때가 언제인지는 33장에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3:38-39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2년째의 이야기이고, 20장은 출애굽 40년 첫째 달로 곧장 넘어간다. 그 사이 38년의 역사가 없다. 19장에서 뛰어넘어 버렸다. 민수기는 출애굽 2년 2월 1일부터 40년까지의 삶을 기록하지만, 그 가운데 38년의 공백이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다음 질문에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출애굽 1세대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광야로 데려오신 목적은 분명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려고 하셨다. 그래서 전쟁할 사람을 뽑으려고 숫자를 헤아리셨고, 나팔을 불 때 어떻게 나가는지를 다 연습시키셨다. 그런데 막상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더니 &amp;ldquo;우리를 죽이려고 데려왔느냐?&amp;rdquo; 하는 식이 되어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3장에서 하나님은 열두 정탐꾼을 준비시키셨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 보고할 때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 땅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은 메뚜기 같아서 밟히면 다 죽는다고 했다(민 13:31-33). 그러자 백성들이 난리가 나서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섰다.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했다(민 14:9). 그런데 그들이 불신앙의 보고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을 때까지 광야를 돌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것이 14장의 이야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29-31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다(민 14:32-33).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며 &amp;ldquo;우리를 죽이려고 이런 일을 시켰느냐?&amp;rdquo;라고 하면, 하나님은 그 말대로 하신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에게 가나안 땅을 주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거부했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들어가기 싫다고 하니 &amp;ldquo;그래, 그렇다면&amp;rdquo; 하신 것이다. 열하룻길이면 이를 수 있었던 길을 38년 동안 방황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38년은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의미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 죽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헛된 삶을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에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던 이야기는 행위책에 아름답게, 더 많은 이야기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죄를 지어 그 죗값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자기를 남기려고 한다. 일기장에도 역사책에도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기려 한다. 그런데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계속 저주를 받는 삶은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채 3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의미 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고, 의미 있는 삶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죽이려고 이스라엘을 데려오셨겠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회개로 부르신 것도 회개하다가 죽어 버리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와도 회개를 끝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회개하다가 무서우면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6년 전에는 영적인 세계가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니 귀신이 나가고 깨끗해졌고, 그러자 은사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몸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은사가 달라붙어 지금의 사역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민수기 깊은 곳에는 믿음과 순종이라는 주제가 흐르고 있다. 믿음과 순종이 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이것이 없으면 차지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출애굽 2세대는 원망을 거쳐 어떻게 전사로 세워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출애굽 2세대는 감사하며 살았는가? 아니다. 20장에서 물이 없자 회중이 또 모세와 아론에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 자기들도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다투며,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자기들과 짐승이 다 죽게 하느냐고 했다. 또 어찌하여 자기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했느냐고, 이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마실 물도 없다고 했다(민 20:2-5). 2세대도 아버지 세대와 똑같았다. 그래서 누구를 따르느냐가 중요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지도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나쁜 곳&amp;rsquo;이라니,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고 밥을 먹고 살았으면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농사를 지었는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만나를 먹고 살았다. 필자 같으면 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중보기도가 필요했다. 모세는 엎드려 주께 또 살려 달라고 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물이 없다니 물을 주라고 하셨다. 지난번에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지만(출 17:6) 이번에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민 20:8). 그런데 모세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반석을 두 번 쳐 버렸다(민 20:11). 물은 많이 솟아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도자는 성질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이 원망하니 그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 놓고는 &amp;ldquo;이것들아!&amp;rdquo; 하며 반석을 쳐 버린 것이다. 지도자는 한 번의 실수로 끝난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엄하게 심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이것으로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21장에서 백성은 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어찌하여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먹을 것도 물도 없고 이 하찮은 음식이 싫다고 했다(민 21:5).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불뱀들을 보내셨고, 그 독뱀에 물려 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그러자 백성은 모세에게 와서 잘못했다며 살려 달라고 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다(민 21:6-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출애굽 2세대에게는 놀라운 점이 있다. 그들도 처음에는 아버지들처럼 똑같이 반응했지만 결국 정신을 차렸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을 예행연습시키셨다.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하라고 시험해 보신 것이다(민 21:21-35). 그곳에도 거인 족속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는 못 간다고 반항하지 않았다. 모세를 따라 나가 단숨에 무찔러 버렸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결국 출애굽 2세대는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왜 그런가? 회개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의 영이 입과 턱 밑에 가득 들어차 있다. 그 영들이 있으니 내가 원하지 않아도 원망과 불평의 영에 의해 불평을 해 버린다. 말을 하다가 끝에 가서 꼬아 버리고, &amp;ldquo;너도 좀 아파 봐라&amp;rdquo; 하는 식으로 싹 꼬집는다. 그것은 입에 붙은 혈기와 분노, 미움과 다툼, 시기와 질투다. 뱃속에 그런 것이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자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았다가는 출애굽 1세대처럼 징계를 받아 광야에 엎드러져 죽는다. 혹시 우리의 삶이 출애굽 2세대의 초기처럼 불평과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온 삶이었다 해도, 빨리 회개하여 그것을 없애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세대는 처음에는 아버지들을 그대로 답습했으나 중간에 정신을 차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민수기는 우리의 구원 여정과 그리스도의 예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구원론과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출애굽으로 일차적으로 구원(救援, salvation)하여 광야로 데려오셨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합당하지 않았기에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다. 우리도 일차적 구원을 받아 주 예수를 믿는다. 그러나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나중에 열매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열매가 없다면 결국 구원에서 탈락된다. 이것이 히브리서가 말하는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일차적 구원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그 구원을 완성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 이야기를 모세가 쓰고 싶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쓰게 하셨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일차적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너희는 출애굽 1세대처럼 살지 말고 적어도 2세대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들어가지 못한다. 가나안 땅, 곧 천국을 가르쳐도 그곳이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amp;ldquo;그래, 너는 안 된다&amp;rdquo; 하신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처소, 안식의 처소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이 어떤 도시이고 거기서 어떤 법칙이 적용되며 거기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거기서 자신이 어떤 신분을 유지하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상을 받고 살 것인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을 천국에 데려가시겠는가? 그래서 첫 번째로 계수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쓸려 나가 탈락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전사를 뽑으신다. 믿음이 있는 전사, 순종할 수 있는 전사를 뽑으신다. 이것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갔을 때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된다. 그때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가나안 일곱 족속과 같은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귀신은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가도 변두리에 살거나 쫓겨난다. 여러분은 모두 들어가야 한다. 이 말씀을 듣게 하신 것도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인가?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rdquo;(마 4:17)이며, &amp;ldquo;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amp;rdquo;(막 1:15)이다. 우리는 지금 이 회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이 번쩍 뜨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가을 단풍을 어디로 구경 갈지, 새로 생긴 좋은 커피집이 어디인지에 마음을 쓴다. &amp;ldquo;내가 커피 살 테니 그리로 와라&amp;rdquo; 하여 찾아가 보고 &amp;ldquo;이런 데가 다 있네&amp;rdquo; 하며 그것을 자랑하다가 일평생이 지나간다. 그나마 커피집은 괜찮은 편이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등산을 다니다 바람이 나서 가정이 파탄 나는 일도 있다. 이 시대 가운데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이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시대는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물 한 방울이 모여 도랑을 이루고, 도랑이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강물을 이룬다.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에는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e)도 많이 나온다. 직접적인 예표와 간접적인 예표가 있다. 직접적인 예표로는 19장의 붉은 암송아지, 20장의 반석, 21장의 놋뱀이 있다.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0장에 나온다(고전 10:4). 또 민수기 전체로 보면 광야의 만나와 물도 그리스도의 예표다. 19장의 붉은 암송아지부터 그리스도의 예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간접적인 예표는 22장부터 24장까지의 발람 선지자 이야기에 나온다. 이스라엘이 모압 땅의 경계를 지나가자 모압 왕은 발람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게 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자를 어찌 저주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예언했다. 그 가운데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한 별은 왕으로 오실 메시아다. 그래서 이 예언은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 박사 이야기의 예표가 된다. 또 35장의 도피성(逃避城, city of refuge)이 있다. 사람을 죽게 한 자가 살려면 도피성으로 도망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있어야 했다(민 35:25). 이처럼 우리의 대제사장(大祭司長, high priest)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물로 보면 세 사람을 살펴볼 수 있다. 중보자(仲保者, mediator)로서의 모세,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기업을 차지하게 해 주는 인도자로서의 여호수아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광야에서&amp;rsquo;든 &amp;lsquo;숫자들&amp;rsquo;이든, 민수기가 묻는 질문은 하나다. 누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 살아 있는 역사를 남기게 하시고 &amp;ldquo;너희는 잘 보라&amp;rdquo;고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 가데스 바네아에 서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바로 그 땅에 있다. 여기서 불신앙으로 불평하는 열 명의 정탐꾼처럼 된다면 우리도 38년의 의미 없는 삶으로 쓰러져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출애굽 1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사가 되었다. 그들처럼 믿음의 보고를 하고 순종하면 우리도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 그리고 전쟁할 때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에 뛰어들어 귀신과 싸울 수 있는 자가 결국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 이것이 민수기가 말하는 것이다. 이제 민수기를 통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전사로 합당한가? 나에게 전사가 되지 못할 요소는 무엇인가? 원망과 불평, 거역과 반역과 불순종이 있으면 결국 탈락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민수기의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그 사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빠졌으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출애굽 1세대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07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민수기</category><category>민수기강해</category><category>광야</category><category>출애굽</category><category>성경공부</category><category>모세오경</category><category>이스라엘</category><category>신앙여정</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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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23) 최종회] 성결법(10) 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레27:1~34)_2026-09-30(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7452</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2026-09-30(수) 수요기도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제목:&lt;/span&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23) 최종회] 성결법(10) 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레27:1~34)&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https://youtu.be/7Nv23EIsGrs&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Nv23EIsGrs?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레위기의 마&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지막 성결법 규례인 서원,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의미를 해설하는 이 설교는, &lt;strong&gt;하나님께 자신과 소중한 소유를 자발적으로 바치는 행위&lt;/strong&gt;가 어떻게 &lt;strong&gt;속세를 거룩한 성물로 변화&lt;/strong&gt;시키고 &lt;strong&gt;하늘의 영원한 보상과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lt;/strong&gt;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한 입술의 맹세를 넘어 자신의 몸과 재물을 온전히 드리는 &lt;strong&gt;헌신의 가치&lt;/strong&gt;를 강조하며, 첫 열매나 십일조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생색을 내거나 임의로 처분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가르침은 물질과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lt;strong&gt;개인의 신앙이 성화&lt;/strong&gt;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레위기의 제사법&amp;middot;정결법&amp;middot;성결법은 왜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바침의 성결례&lt;/span&gt;로 마무리되는가?&lt;br /&gt; 2.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서원&lt;/span&gt;이란 무엇이며 언제 성립하고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가?&lt;br /&gt; 3.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일반 서원&lt;/span&gt;과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온전히 바침인 헤렘&lt;/span&gt;은 무엇이 다른가?&lt;br /&gt; 4. 자신을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온전히 바친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사람&lt;/span&gt;을 하나님은 왜 지키시는가?&lt;br /&gt; 5.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lt;/span&gt;은 어&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떻게 서원하며 그 값을 어떻게 무르는가?&lt;br /&gt; 6.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처음 난 것&lt;/span&gt;과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 열매&lt;/span&gt;는 왜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br /&gt; 7.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십일조&lt;/span&gt;는 왜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드릴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3) 최종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1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서원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의 성결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7: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강해의 마지막 시간이다. 레위기 27장은 사람이 자신과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誓願, vow), 이미 하나님의 것인 첫 것, 그리고 십일조(十一條, tithe)에 대해 다룬다. 이것은 거룩함의 마지막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속죄(贖罪, atonement)받고, 부정한 것을 씻어 정결(淨潔)해지고, 말씀에 순종하여 성결(聖潔, holiness)에 이르러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마지막으로 성결에 이르는 마지막의 길로서 무엇을 더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번 말씀을 생각할 때에 노다지를 캘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기대해본다. 과거 미국 서부에서는 금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이 &amp;lsquo;노 터치&amp;rsquo;라고 외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말과 실제의 역사의 사이를 재미있게 공부했다. 만리장성과 동이족에 관해 전해지는 말도 있다. 그것은 &amp;quot;용용 죽겠지!&amp;quot;라는 말이다. 이렇게 역사를 살피는 일이 흥미롭듯, 성경 전체를 전체를 알고 보면 한 장 한 장마다 숨은 보화가 보인다. 레위기 마지막 장에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하나님께 올려 드릴지에 관한 귀중한 보화가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바침을 막연한 헌금 권유로 받아들여서는 말씀의 깊이를 놓친다. 사람이 무엇을 서원할 수 있는지, 바친 것의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다시 무를 수 있는 것과 결코 무를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첫 것과 십일조는 왜 새 서원이 될 수 없는지 차례로 살펴야 한다. 필자가 젊은 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경험도 이 말씀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의 성결법이 바침으로 어떻게 마무리되며 서원과 첫 것과 십일조를 통해 무엇이 거룩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제사법&amp;middot;정결법&amp;middot;성결법은 왜 바침의 성결례로 마무리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전체를 다시 펼쳐 보자.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의 큰 흐름이다. 1장부터 7장에는 번제&amp;middot;소제&amp;middot;화목제&amp;middot;속죄제&amp;middot;속건제의 다섯 제사와 그 부가 규례가 나온다. 8장에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위임식이 있고, 9장에서는 아론이 처음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불이 나와 제단의 제물을 사른다. 10장에서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는다. 제물과 제사장의 길을 모두 가르쳐 주신 것이다(레 1-10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음 11장부터 17장까지는 정결법이다. 11장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2장은 아이를 낳은 여인의 정결, 13장과 14장은 나병의 진단과 나은 뒤의 정결례, 15장은 남녀의 유출에 관한 규례를 다룬다. 16장의 대속죄일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위한 속죄가 행해지고, 17장은 피에 관한 규례를 가르친다(레 11-17장). 무엇을 먹고 무엇과 접촉하는지 살피며 몸과 삶을 씻고, 제사의 피로 정결례를 마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거룩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먼저 죄의 문제에는 피가 필요하다. 씻어야 할 부정에는 물이 필요하다. 시체나 부정한 짐승 등 접촉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이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이방의 풍속과 금지된 성관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필자는 몸속의 악한 영으로 고통받는 문제도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과 연결하여 살펴 왔다. 땅을 쉬게 하는 규례처럼 몸에도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 사람만이 아니라 땅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복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8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다. 개인의 성결을 다루는 18장부터 22장까지에는 백성이 이방 풍속을 따르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며 안식일과 계명을 지키는 일이 나온다. 제사장은 시체 접촉과 혼인과 제물에서 더욱 엄격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구약에서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해야 했다. 신약의 성도는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가운데 그 말씀을 따라 거룩함에 나아간다(레 18-22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23장부터는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지는 길이 이어진다.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에는 온 백성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뻐한다. 그래서 집회에 나아와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개인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공동체의 예배 가운데 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백이십 명에게 성령이 임한 일도 함께 모인 자리를 생각하게 한다(레 23장; 행 1:15, 2:1-4).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믿음이 모두 똑같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성령은 각 사람 위에 임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24장에서는 백성이 가져온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고운 가루로 진설병을 마련한다. 함께 드린 것이 성막의 섬김에 쓰인다. 성막 밖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일을 다루고 동해보복의 법도 가르친다. 25장에서는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마다 땅을 쉬게 하고 희년(禧年, jubilee)에는 기업을 돌려주게 한다. 혼자 땅을 쉬게 하면 손해를 염려하겠지만 백성이 함께 지킬 때 공동체와 땅이 쉼을 얻는다. 26장은 순종에 따른 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들려준다(레 24-26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에 왜 27장이 놓였는가? 하나님께서 제사, 씻음, 말씀에 대한 순종, 공동체의 절기와 땅의 쉼을 가르치신 뒤 마지막으로 무엇을 드릴 것인지 물으시는 것이다. 몸만 하나님의 것이고 귀하게 여기는 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amp;middot;소득은 자기 것이라고 따로 둘 수 없다. 서원으로 드리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성물(聖物)이 된다. 바침은 성결법의 끝에 덧붙은 사소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을 드러내는 마지막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순서를 거꾸로 세우지 말아야 한다. 피도 없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고, 씻어야 할 것을 품은 채 절기만 지킨다고 정결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사와 씻음만 받고 가진 것을 끝까지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성결의 마지막 자리에는 이르지 못한다. 정한 음식과 접촉의 규례에서 시작해 말씀의 순종, 함께 드리는 예배, 땅의 안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을 구별하셨다. 마지막 장은 그 모든 영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침으로 고백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서원이란 무엇이며 언제 성립하고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응답하여 자신이나 귀한 소유를 드리겠다고 입으로 약속하는 맹세다. 단지 &amp;lsquo;언젠가 드리면 좋겠다&amp;rsquo;는 생각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했고, 사무엘을 데리고 가서 그 약속을 행한 일이 그 예다(삼상 1:11, 24-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은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했다면 그 값을 정하라고 시작한다(레 27:1-2). 사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평생 그 섬김에 들어갈 수도 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무엘이나 삼손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어도 정해진 값을 드려 자신을 구별하는 길이 있다. 그 값의 표는 뒤에서 자세히 살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찌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을 하였으면 미루어서는 안 된다. 전도서는 하나님께 서원했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고,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한다.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전 5:4-5). 마음에 감동이 들었다가 형편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입으로 한 맹세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다만 당장 전액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식으로 레위기의 규정에 없는 기한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형편을 따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수기 30장은 입으로 한 서약의 무게를 다시 들려준다. 말한 대로 행하고 파약하지 말라는 것이다(민 30:2).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에 집을 드리겠다거나 가축을 드리겠다고 말했다면 그 말의 값을 알아야 한다. 필자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까닭은 누구에게 무엇을 강요하려는 데 있지 않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무게를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서원에 관한 가족의 규례도 알아야 한다. 당시 아버지 집에 있던 어린 딸이 서원했을 때 아버지가 듣고 허락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성립하지 않았다. 결혼한 여인의 서원도 남편이 들은 날에 허락하지 않으면 무효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버지나 남편이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지켜야 했다. 과부나 이혼한 여인의 서원도 본인이 지켰다(민 30:3-16). 본문이 정한 책임의 관계를 살피지 않고 모든 서원을 한 가지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소유를 팔아 일부를 두고 나머지를 드렸으면서도 전부를 드린 것처럼 말했다.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서 한 말과 실제 바침이 달랐다는 일이 있다(행 5:1-11). 일반 서원을 했다고 이 사건의 형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온다고 쓰여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일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분명하다. 서원은 입술의 소리로 끝나지 않고 실제 바침에 이르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일반 서원과 온전히 바침인 헤렘은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는 일반적인 서원과 한층 엄중한 온전한 바침이 함께 나온다. 일반 서원으로 드린 물건은 규정에 따라 정해진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무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드린 것을 다시 쓰고 싶으면 그 값을 더 내고 되찾는 것이다(레 27:13, 15, 19). 그러나 온전히 바친 것에는 그런 길이 없다. 이것을 헤렘(חֵרֶם)이라고 한다. 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기업의 밭 가운데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은 팔지도, 무르지도 못하며 지극히 거룩하다(레 27:28-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8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지극히 거룩하다&amp;rsquo;는 말을 가볍게 읽지 말라. 지성소를 말할 때처럼 거룩함 가운데서도 특별히 구별된 것이다. 일반 서원에서도 드리는 순간 하나님께 속하지만, 헤렘으로 온전히 드린 것은 자기 뜻대로 돌려받을 수 없다. 레위기 27장 29절은 아주 바친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함부로 취하지 말라는 엄중한 선언으로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리고에서 아간이 저지른 일을 보라. 여리고의 물건은 여호와께 바쳐졌고 은과 금과 기명은 여호와의 곳간에 두어야 했다(수 6:18-19). 그런데 아간은 아름다운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를 취했다(수 7:21). 온전히 바쳐진 것에 손을 댄 것이다. 결국 아간과 그에게 속한 것들이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심판을 받았다(수 7:24-26). 이 사건은 드리기로 한 것의 일부를 나중에 바꾸는 일반 서원의 문제보다 더욱 엄중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을 드리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집이나 밭을 드리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값을 더 내어 무르는 길과, 아예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는 길을 같은 말로 뭉개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할 때에는 자신의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온전히 바쳤다고 한 뒤 다시 자기 소유처럼 취한다면 여호와의 것을 취하는 일이 된다. 필자는 아간의 일을 보며 그 엄중함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는 일이 왜 두려운지 이 말씀과 성경의 역사를 함께 놓고 살핀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신데 그분을 거절하고 죽인 이들에게 예루살렘의 심판이 닥쳤다고 전한다. 그 멸망까지 약 사십 년이 흘렀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필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업신여기는 사람의 길이 결국 심판으로 간다고 가르친다. 이 대목을 아무 목회자에게나 무조건 손대지 말라는 구호로 써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렸는지 살펴야 한다. 필자가 말하는 핵심은 직함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의 바침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을 하나님은 왜 지키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원의 예물로 드리는 가축은 드릴 때 거룩해진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레 27:9). 짐승의 겉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가축을 하나님께 드리는 그 순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받아 주신다. 돈도 마찬가지다. 지갑 안의 돈에는 특별한 빛이 없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구별하면 성물이 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더 깊겠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9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스물다섯 살 무렵 군 복무를 마치고 이상관 목사님을 만났다. 그분이 인도한 집회에서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고, 그 뒤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에서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 맡은 일은 반주였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순종하여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니며 코드 반주를 익혔다. 1도&amp;middot;4도&amp;middot;5도 화음과 몇 가지 코드를 외우고 찬송가를 따라 연습하여, 한 달 뒤에는 집회의 반주를 시작했다. 잘할 수 있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주어진 섬김에 순종한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목사님의 말씀은 당시 필자가 듣지 못했던 영적 세계를 열어 주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받아 적고 밑줄을 긋고, 집에 가서는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들었다. 말씀이 알아지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컸으므로 무언가 드려 그 감사를 새기고 싶었다. 그러나 시골에서 도시로 오가며 공부하던 필자에게는 드릴 돈이 없었다. 저녁 버스를 놓치면 돌아갈 길도 막막한 형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은혜가 넘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릴 것이 없어 눈물이 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침내 봉투 하나를 가져와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고 적어 드렸다. 돈이 없어서 몸을 대신 적어 낸 장난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때 자신을 주님께 남김없이 드렸다. 지금 레위기 27장을 읽으며 그때의 바침이 헤렘이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는다. 온전히 바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다. 필자는 이후의 삶에서 그 소유를 하나님께서 지키셨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회하며 기존의 교리와 다르게 성경을 읽은 대목을 전할 때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단이라 몰고 제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영적 공격이 여섯 달 동안 계속된 때도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필자가 전한 말씀을 막으려다 위험한 일이 생길 뻔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을 지나 살아남아 지금도 말씀을 전하게 된 일을 필자는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받아들인다. 필자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드린다고 말하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핍박을 견뎌야 할 때에는 견디며, 자신의 뜻을 계속 내려놓아야 한다. 물건을 드리는 일보다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일이 더 무겁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가장 강한 보호의 길임을 경험했다. 지켜 달라는 말만 거듭하기 전에 주님께 실제로 드린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삶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쓰시고 지키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예전에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한 분 하나님에 관한 이해, 종말의 시간표 등 여러 문제를 성경 앞에서 다시 살펴 전했다. 오래 배운 교리와 다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반발했다. 그때에는 왜 필자가 살아남아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지 그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스물다섯 살 때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고 적어 올린 일이 떠오른다. 필자는 그때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지키셨다고 확신한다. 그것이 필자의 삶에서 레위기 27장의 말씀이 현실이 된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사람&amp;middot;가축&amp;middot;집&amp;middot;밭은 어떻게 서원하며 그 값을 어떻게 무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서 서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람, 가축, 집, 기업의 밭이라는 네 갈래다. 각각의 가치를 매기는 방법이 다르다. 무엇을 어떻게 드릴지 알아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한 말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다. 첫째로 사람을 드리는 경우부터 보자. 직접 섬김의 길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값을 매겨 대신 드리는 길도 있다(레 27: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값은 나이와 남녀에 따라 달리 정해졌다.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 남자는 은 오십 세겔, 여자는 삼십 세겔이다. 다섯 살부터 이십 세까지는 남자 이십 세겔, 여자 십 세겔이다. 한 달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 다섯 세겔, 여자 세 세겔이고, 육십 세가 넘으면 남자 십오 세겔, 여자 십 세겔이다(레 27:3-7). 힘이 있는 젊은 때를 하나님께 드리는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표다. 나이가 들어 몸이 힘들어졌을 때보다 힘 있게 섬길 수 있을 때 헌신하는 일이 귀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 너의 정한 값은 이십세로 육십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형편이 가난하여 정한 값을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서원한 사람을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가면, 제사장이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값을 다시 정한다(레 27:8). 그러므로 가진 돈이 적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길이 전혀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큰값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정해진 표와 가난한 사람의 형편을 함께 살피도록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가축이다. 소나 양과 같이 예물로 드릴 수 있는 가축을 서원하여 드리면 그 가축은 거룩해진다. 드린 뒤에 더 좋은 것 또는 더 나쁜 것으로 바꾸면 처음 가축과 바꾼 가축이 둘 다 거룩해진다(레 27:9-10). 한 마리를 드리기로 하고 뒤늦게 아깝다고 다른 마리를 내놓으면 둘 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처음 약속한 것을 정직하게 드리는 편이 낫다. 직접 예물로 드리지 못할 부정한 가축은 제사장이 값을 매기고 그 값으로 처리한다. 다시 무르려면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레 27:11-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는 자기 집이다. 집을 통째로 성막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다. 제사장이 집의 가치를 정하고, 주인은 그 값을 하나님께 드린다. 다시 집을 자기 소유로 무르고자 하면 정한 돈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레 27:14-15).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뒤에도 계속 그것을 사용할 길이 열려 있으나, 그 길에는 정해진 대가가 따른다. 바침을 말만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는 기업으로 받은 밭이다. 밭의 크기와 파종량을 기준으로 값을 정하고, 다음 희년까지 남은 해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계산한다. 희년이 멀면 값이 커지고 가까우면 줄어든다(레 27:16-18). 밭을 다시 무르려면 정가에 오분의 일을 더한다. 그러나 무르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면 다시 무를 수 없고, 희년에 그 밭은 여호와께 드린 성물로서 제사장의 기업이 된다(레 27:19-21). 땅은 본래 여호와의 것이며 사람이 받은 기업도 그분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까지 읽으면 바침의 규정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보인다. 사람의 나이와 가난한 형편, 가축의 정함과 부정함, 집의 값, 땅과 희년의 거리까지 살핀다. 성급히 큰말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드리는지 알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일반 서원의 무름 규정을 안다고 해서 온전히 바친 헤렘까지 값을 내고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두 바침의 차이를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밭의 가격을 계산할 때 본문은 보리 한 호멜을 뿌릴 수 있는 밭에 은 오십 세겔이라는 기준을 둔다(레 27:16). 희년이 지나 얼마 남지 않았다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의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에서 덜어 준다. 같은 넓이의 밭이라도 사용하는 시간이 다르면 값이 달라지는 것이다. 성소의 세겔은 이십 게라로 계산하도록 정했다(레 27:25). 이렇게 실제 크기와 시간과 무게를 정한 까닭은 드린다고만 말하고 형편에 따라 임의로 낮추거나 높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바침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가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처음 난 것과 첫 열매는 왜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것은 서원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처음 난 것과 첫 열매를 이미 당신의 것으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장자의 죽음이 있었을 때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신 하나님은 처음 난 것들이 당신께 속한다고 말씀하셨다(출 13:1-2, 12-15). 장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셨고, 레위인의 수보다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많았을 때에는 남는 수를 돈으로 속하게 하셨다(민 3:11-13, 40-51).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생명이기에 첫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몫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은 가축의 첫 새끼를 새롭게 구별하여 드릴 수 없다고 한다. 소든 양이든 원래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레 27:26). 부정한 짐승의 첫 것은 정한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속하거나 정한 값대로 팔 수 있다(레 27:27). 그러나 그 절차도 자기 것이던 것을 특별히 서원하여 새로 바친다는 뜻이 아니다. 처음부터 주님께 속한 것을 그분의 규정대로 처리하는 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26 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 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땅에서 얻은 첫 열매도 같은 원리로 보아야 한다. 처음 거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규례가 이미 있다(레 23:10-14). 그러면서 &amp;lsquo;필자가 이것을 드리겠다고 특별히 서원했다&amp;rsquo;고 말하면, 원래 하나님의 것을 마치 새로 내놓은 자기 소유처럼 말하는 셈이 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첫 것의 몫과,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해서 더 드리는 서원을 구별해야 한다. 첫 것을 충실히 드리는 일도 중요하고, 그 밖에 무엇을 드리기로 했다면 그 약속도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을 모르고 첫 것만 드리면서 자신의 특별한 헌신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특별한 서원을 했다는 말로 이미 하나님께 속한 첫 것을 뒤로 미룰 수도 있다. 둘 다 바른 길이 아니다. 주님께서 먼저 정하신 것은 그분의 것으로 인정하고, 자원하여 약속한 것은 별도로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 원리는 이어지는 십일조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십일조는 왜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드릴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일조도 서원으로 새로 만드는 몫이 아니다. 땅의 곡식과 나무의 열매 가운데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며 성물이라고 레위기가 정했다(레 27:30).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amp;lsquo;필자가 특별히 마음을 먹고 바칩니다&amp;rsquo;라고 하면서 자기 임의의 선물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떼어 드리는 것이 옳다. 소득을 주신 분을 알아보며 그분의 몫을 돌려 드리는 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곡식이나 열매의 십일조를 다시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라면 그 값을 무를 수 있다. 그러나 그냥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한다(레 27:31). 일반 서원 가운데 다시 무를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도 규정된 값이 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손에 두고 쓰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축의 십일조도 있다. 목자의 막대기 아래로 소나 양을 한 마리씩 지나가게 하여 열 번째 되는 것을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한다(레 27:32). 그 열 번째가 탐스럽다고 아홉 번째나 열한 번째와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 바꾼 것과 본래 열 번째 것이 둘 다 거룩해지고 무를 수 없다(레 27:33).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진 것을 드려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7:32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분의 일을 드리는 일을 손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은혜로 온다. 주님께서는 한 몫을 당신의 것으로 받으시면서 나머지 아홉 몫을 우리가 사용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통하여 땅의 것이 하늘의 것이 되고, 잠시 쓰고 끝날 것이 영원한 기업과 연결된다. 필자는 천국의 아름다운 집과 상급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드리는 일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감추면 손에 남긴 것 같아도 하늘의 몫을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젊은 날 은혜를 받았으나 드릴 물질이 없어 울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뒤에 드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힘껏 드렸다. 한 번은 필자가 약 이백만 원을 드린 뒤 어떤 성도가 그보다 만 원을 더 드린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남과 겨루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받은 은혜를 놓치고 싶지 않아 물질로도 응답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보여 주는 필자의 경험이다. 형편이 안 되면 억지로 드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는 기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바침은 거룩하게 되는 길이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하늘의 기업에 참여하는 길이다. 물질만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시간, 귀하게 여기는 것까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입으로만 지켜 달라고 구하면서 자신은 온전히 자기 것으로 붙잡고 있지 않은가? 십일조와 첫 것은 원래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주님께 속한 것은 주님께서 거룩하게 사용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헌금을 말할 때마다 돈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돈을 많이 내라는 경쟁이 아니다. 소가 없으면 소를 드릴 수 없고, 값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제사장이 형편을 살피도록 하셨다. 필자도 드리고 싶으나 드릴 물질이 없어 자신의 몸을 드린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바침을 물질 한 가지로 제한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것인 첫 것과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없애서도 안 된다. 드릴 수 있는 것을 정직하게 드리는 순간 세상의 것이 하나님께 속한 성물로 구별된다. 필자는 그 변화가 땅에서만 끝나지 않고 하늘의 영원한 기업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마지막 장에서 서원과 온전한 바침, 첫 것과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이 어떻게 거룩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피로 속죄받고 물로 씻으며 말씀과 공동체의 예배에 순종하는 성결의 길은, 마지막에 자신과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로 이어진다. 서원은 입으로 한 맹세를 실제로 지키는 일이고, 헤렘은 되돌릴 수 없는 온전한 바침이다. 첫 것과 십일조는 특별한 서원에 앞서 이미 여호와께 속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을 드릴지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소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형편에 따라 정한 값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속한 몫을 마음대로 바꾸지 않으며, 자신을 드린 약속을 삶으로 지켜야 한다. 필자가 젊은 날 적은 &amp;lsquo;이 몸을 바칩니다&amp;rsquo;라는 고백처럼, 드릴 물질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삶이 있다. 형편이 허락할 때에는 주신 것 가운데 귀한 것을 감사로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과 소유를 주님께 드리고 그분의 지키심과 하늘의 기업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30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서원</category><category>첫열매</category><category>십일조</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헌신</category><category>거룩함</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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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7452#comment</comments>			<pubDate>Wed, 30 Sep 2026 22:49:09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_2026-09-23(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936</link>
				<description>&lt;p&gt;2026-09-23(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bcpbzHMOM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bcpbzHMOM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들]&lt;/strong&gt;&lt;/p&gt; &lt;p&gt;1.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lt;br /&gt; 2.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lt;br /&gt; 3.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lt;br /&gt; 4.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lt;br /&gt; 5.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lt;br /&gt; 6.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lt;br /&gt; 7.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회개&lt;/strong&gt;가 인간과 땅의 운명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순종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최고의 복을&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임재&lt;/strong&gt;로 규정하며, 반대로 불순종의 끝은 질병과 가난을 거쳐 결국&amp;nbsp;&lt;strong&gt;국가적 멸망과 땅의 황폐화&lt;/strong&gt;라는 단계별 징계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메시지는 신명기 28장과 달리&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회복의 약속&lt;/strong&gt;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벌을 달게 받는&amp;nbsp;&lt;strong&gt;겸손한 태도&lt;/strong&gt;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예수의 피와 성령&lt;/strong&gt;에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저주를 끊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복구하여&amp;nbsp;&lt;strong&gt;천국 기업&lt;/strong&gt;을 물려받는 진정한 성결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6:1-4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레위기 강해 스물두 번째이자 성결법으로는 아홉 번째 시간이다. 필자는 2010년에도 레위기를 강해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거대한 보화의 광맥을 발견하고 있다.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필자에게 레위기는 속죄(贖罪, atonement)만이 아니라 정결(淨潔)과 성결(聖潔)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백성을 잘 인도해야 하지만 백성도 제사에 참여하여 속죄받고, 더러워진 것을 씻으며,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열심을 낸다고 속죄와 정결과 성결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한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3장 13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거듭 암송하며 실천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저주에서 속량받았으며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온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귀하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 안에 더러운 것을 씻어 내는 회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몸속에 고름이 차 있는데 파스만 붙이면서 이미 나았다고 되뇌이는 것으로는 병에서 낫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회개를 통해 정결해지지도 않은 가운데 봉사하면 진실한 섬김 대신 겉모양과 외식으로 봉사할 수 있다. 필자는 그 위험을 뒤늦게 깨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어떤 길을 열어 놓으셨는가? 그것의 핵심은 정결함과 성결함에 있다. 속죄는 그 앞 단계에 있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하여 죄가 덮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결은 그 피와 물로 계속 씻음을 받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일이며, 신약의 성도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완성된다. 레위기 26장은 이 성결이 사람뿐 아니라 땅과 공동체에까지 관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이 어떻게 이어지고, 공동체가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때 사람과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나며, 회개한 백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시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 시간은 공동체의 정결로서 레위기 26장에 나오는 사람과 땅의 정결례를 살펴볼 차례다. 그런데 레위기 26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 전체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레위기는 제1장부터 제10장까지 제사와 제사장의 직무를 중심으로 속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제1장부터 제7장까지 제사법이 나오고, 제8장에는 제사장 위임식, 제9장에는 아론이 처음 드린 제사, 제10장에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나온다. 그리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법이 나오고, 제18장부터 제27장까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는 성결법이 나온다. 이 배열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정결과 성결로 나아가야 함을 그대로 가르쳐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정결법의 내용을 보자. 레위기 제11장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제12장은 출산한 여인,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제15장은 남녀의 유출병을 다룬다. 제16장의 대속죄일(大贖罪日, Day of Atonement)인데, 이는 단지 제4장에 이미 나온 속죄제를 반복하는 말씀이 아니다. 피로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의 자리로서 읽어야 한다(레 16:16-20, 33). 그리고 제17장은 피를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할 이유와 피가 속죄에 쓰인다는 사실을 가르친다(레 17:10-11). 필자는 제16장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깨닫고 나서야 가을 절기에 속하는 대속죄일을 풀어 갈 실마리를 찾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레위기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개인과 제사장의 성결을 자세히 가르친다. 제18장부터 20장까지는 개인의 성결례를 말한다. 먼저 제18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금지된 성관계와 동성 간의 성행위와 짐승과의 성행위를 멀리해야 했다(레 18:3-23). 제19장은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이웃에게 거짓과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계명을 다시 들려준다. 제20장은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지 말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따르지 말라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제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로서, 제사장이 시체와 접촉하는 일, 결혼, 몸의 흠, 드릴 제물의 흠을 다룬다. 하나님께 가까이 서서 백성을 섬기는 제사장일수록 더 철저하게 깨끗해져야 한다. 오늘 주의 종에게도 얼마나 깊은 회개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23장부터 27장까지는 온 백성이 함께 지켜야 할 단체적인 성결례가 펼쳐진다. 그중에서 제23장은 안식일과 절기의 성결례, 제24장은 성막 안에서의 제사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등잔과 진설병을 다루고, 성막 밖에서의 일반백성의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일과 그에 대한 판결과 동해보복법을 다룬다. 그리고 제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를 다룬다. 그리고 드디어 제26장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맞설 때 사람과 땅에 임할 단체적인 성결례를 다룬다. 제사장 개인의 성결과 백성 개인의 성결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한 민족이 함께 행해야 할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위한 제사를 단번에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 피를 의지하여 믿은 뒤에는 죄를 자백하는 회개로 계속 정결해져야 한다. 필자가 전하는 회개에는 죄가 행위책에 기록된 것을 씻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는 일이 포함된다. 피와 물로 씻는 정결 뒤에는 성령께 순종하는 성결의 삶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말하면서 자백을 버릴 수 없고, 회개를 말하면서 순종을 버릴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에 등장하는 정결례와 성결례를 요한일서가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음을 본다.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 물과 피와 성령이라고 말한다(요일 5:6-8). 이 세 가지를 읽을 때 필자는 레위기가 가르친 정결과 성결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려면 물과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께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킹제임스(KJV) 성경의 해당 대목을 보면, 성부&amp;middot;성자&amp;middot;성령, 이 셋이 하나라는 말씀으로 바뀌어 있다. 이는 개역개정이 말씀하는 바, &amp;lsquo;성령과 물과 피&amp;rsquo;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성경 원문에 더 가까운 대문자 사본에는 &amp;#39;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amp;#39;라고 되어 있지 않고, &amp;#39;성령과 물과 피&amp;#39;가 하나라도 되어 있다. 그러므로 후대에 나온 소문자 사본을 번역할 킹제임스 성경 우월주의에 빠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한일서에서 정결과 성결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들은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깨끗해져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경험을 보더라도, 내 몸에 있는 모든 악한 영의 집을 다 파괴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들어왔던 영은 다시 들어오려 시도하며, 사역의 자리에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날마다 회개하며 예수님의 피로 자신을 덮고, 귀와 눈을 살피며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축사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눈을 점검하면, 벌써 눈이 많이 흐려져 있음을 본다. 이것은 필자가 겪고 전하는 사역의 실제다. 무당의 신기를 지닌 사역자가 예수라는 간판만 달고서 능력을 행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능력의 겉모양보다 자백하는 회개와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자는 아침마다 귀를 비벼 보고 눌러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귀에는 제사의 영이 달라붙어 믿음을 방해하고, 의심을 갖게 하며, 불신앙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의 아픈 곳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면서 여전히 필자에게 달라붙으려고 시도하는 영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말씀을 열심히 준비하고 새벽 두 시쯤 잠자리에 들 때에 눈을 눌러 보면 밝은 빛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회색빛일 때가 많다. 이는 필자가 사역 가운데 겪은 개인적 체험이다. 그러므로 한 번 자신이 깨끗해졌다고 해서 그리고 한 번 축사를 받았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시간이 성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필자는 자신의 삶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공동체의 정결과 성결에 있어서,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안식년과 희년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알아야 왜 공동체의 정결과 성결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레 25:2-7). 해마다 안식년이 되면 그해에 저절로 자라난 것은 땅을 가진 소유주가 독점할 수 없고, 자기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품꾼과 함께 사는 사람, 가축과 들짐승도 먹게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안식년이 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어 소출을 거두어들이는데, 자기 혼자만 땅을 쉬게 한다면 손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함께 성결례를 지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땅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전체가 행동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도 자기만을 위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내 자신 안에 있던 악한 영의 집들이 파괴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다. 필자를 통해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아직 남아 있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자가 쓰러지면 양 떼가 흩어진다. 또한 일반 성도가 자기만 괜찮아졌다고 회개를 그만두거나 이웃의 짐을 외면한다면 공동체의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함께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까닭도 각자의 몸과 가정에서 시작한 회개가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를 살리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안식년과 회개가 같은 방식의 의식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태도로는 공동체의 성결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레위기 26장 1절과 2절은 이 공동체가 먼저 지켜야 할 기본을 말한다. 우상을 만들거나 석상 앞에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경외해야 한다(레 26:1-2). 하나님을 향한 관계가 무너지면 땅을 쉬게 하는 일도, 이웃을 바르게 대하는 일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3절부터는 그분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라고 한다. 순종은 예배당 안의 말에 머무르지 않고 땅을 경작하는 법, 서로를 대하는 법, 온 민족이 살아가는 법으로 확장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명기 28장도 레위기 26장과 거의 비슷하게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신명기 28장 제1절부터 제14절까지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복을 말한다. 순종하면 성읍과 들, 자녀와 가축,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 들어감과 나감에 복이 임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게 하시며, 백성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신 28:1-14). 그리고 이어지는 제15절부터 제68절까지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훨씬 길게 들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성읍과 들과 몸의 소생이 저주를 받고, 질병과 빼앗김과 흩어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긴 경고 속에서 하나님이 백성의 돌아옴을 기다리시며 거듭 깨우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번 시간에 다루는 &lt;strong&gt;레위기 26장의 말씀은 신명기 28장과 맞닿으면서도 특별히 붙잡아야 할 포인트&lt;/strong&gt;가 두 가지 정도 있다. &lt;strong&gt;하나는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징계(懲戒, discipline)가 불순종할수록 단계별로 더 무거워진다&lt;/strong&gt;는 점이다. 하나님은 단번에 불순종한 사람과 민족을 끝내지 않으시고 징계 속에서도 &amp;lsquo;그렇게까지 되었는데도&amp;rsquo; 왜 순종하지 않는지 계속해서 물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레 26:18, 21, 23, 27). 그리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원수의 땅에 끌려간 백성이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출 때 언약(言約, covenant)을 기억하여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lt;/strong&gt;이 있다(레 26:40-45). 이것은 신명기 28장에는 나오지 않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야말로 정결과 성결의 문맥에 왜 레위기 26장이 들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게 해 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는 사람과 땅에 대한 공동체의 정결례가 함께 들어 있다.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나라가 평안을 누리고 땅도 소출을 낼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병과 패배가 오고, 땅은 비와 열매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역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그때에 땅은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쫓겨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그 땅도 기억하신다. 공동체의 운명을 한 사람의 경건이나 한 번의 행사로 줄여서는 안 된다. 제사장과 백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복은 사실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는 땅에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규례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백성에게 철을 따라 비를 주시므로 땅은 산물을 내고 나무는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레 26:3-4). 타작이 포도를 딸 때까지 이어지고, 포도 따기가 다음 파종 때까지 이어진다. 묵은 곡식을 다 먹기도 전에 새 곡식이 들어온다(레 26:5, 10). 땅의 복은 하늘의 비와 밭의 결실과 풍족한 식탁으로 드러난다. 사람이 땅을 소유했다고 해서 그 열매를 자기 힘만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주시는 복도 매우 구체적이다.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고 평화롭게 누우며, 사나운 짐승과 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26:5-6). 전쟁에서는 다섯이 백을, 백이 만을 쫓는다(레 26:7-8). 하나님이 돌보시므로 백성은 번성하고 창대해지며 언약을 누린다(레 26:9). 그러므로 순종의 복을 돈 한 가지로만 읽지 말아야 한다. 거주할 안전, 원수를 이기는 힘, 다음 세대의 번성, 하나님의 돌보심이 모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땅의 산물과 사람의 평안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이 모든 복의 끝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lt;/strong&gt;은 무엇인가? 필자는 제11절과 제12절을 읽으면서 답을 찾았다. 하나님은 성막을 백성 가운데 세우고 그들 가운데 행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레 26:11-12). 곡식이 많은 것보다 더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이 임재(臨在, presence)가 사람을 참으로 복되게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멍에의 빗장을 부수어 바로 서서 걷게 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다(레 26:13). 이것은 땅을 하나 더 얻는 복과 견줄 수 없다.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시면, 내가 하는 말과 섬김을 통하여 살아 계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악한 영을 만나도 그 앞에서 떨지 않고 사람을 해방하는 통로가 된다. 이것이 필자가 붙잡은 순종의 최고의 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집이나 땅을 샀다고 간증할 수도 있다.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그러한 소유는 몇 년 뒤 잃을 수도 있다. 소유의 많고 적음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재서는 안 된다. 필자가 이제 동탄에 있든 다른 고장에 있든,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든지 성령께서 필자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면 어디서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열매는 악한 영도 흉내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사람 안에 실제로 거하시는 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복과 땅의 복을 구하면서도 그 모든 복의 중심인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레위기 26장을 읽어보면, 순종의 복에 대한 말씀보다 불순종의 징계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순종한 백성을 처음부터 원수의 땅에 던져 없애시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규례를 멸시하며 언약을 배반할 때 징계를 시작하시고, 그 징계를 받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 더 무겁게 치시는 것이다(레 26:14-18). 본문에는 일곱 배나 더 징벌하겠다는 경고가 거듭 거듭 나온다(레 26:18, 21, 24, 28).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자들에게 여러 단계를 걸쳐서 치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고통의 자리에서도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이 순서를 읽어야 끝에 나오는 회복에 관한 약속도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징계의&amp;nbsp;첫 단계는 제14절부터 제17절까지&lt;/strong&gt;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해질 것이며, 애써 뿌린 씨의 열매를 대적이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싸움에서는 패하고 미워하는 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쫓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했다. 병에 걸리고 빼앗기며 패배하는 것이다. 필자는 신명기 28장에서도 폐병과 열병, 여러 질환이 불순종의 경고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신 28:21-22, 27).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한 자에게 내려지는 성경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단계는 제18절부터 제20절까지&lt;/strong&gt;다. 앞의 재앙을 겪고도 청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백성의 교만을 꺾으시고 하늘을 철과 같게, 땅을 놋과 같게 하신다고 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이 굳어 산물을 내지 못하며,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땀 흘려 수고했지만 거둘 것이 없는 가난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면서도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면 땅의 결실을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몸과 전쟁의 문제로 경고받다가 이제 일상의 먹을거리와 땅의 소출까지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단계는 제21절과 제22절&lt;/strong&gt;이다. 또다시 하나님을 거슬러 청종하지 않으면 들짐승이 달려들어 자녀를 움키고 가축을 멸하며 백성의 수효를 줄인다고 했다. 그러면 길마저 황폐해진다고 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곳에서는 밤에 되면 들짐승 특히 늑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들짐승의 소리를 두려워했다. 어머니와 함께 산에 갔을 때에는 호랑이 똥이라고 알려 주신 것도 보았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전기가 늦게 들어온 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으며, 물에 튀어 들어간 벼룩을 잡고 살았다. 보리밥을 먹던 때에 쌀밥을 입에 넣으면 아까워서 오래 씹었다. 필자가 겪은 그 시절의 두려움과 궁핍을 떠올리면 자녀와 가축을 들짐승에게 빼앗기는 경고가 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단계는 제23절부터 제26절&lt;/strong&gt;이다. 앞선 일을 당하고도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면 칼이 임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성읍에 모여 피하려 할 때에도 염병이 퍼진다고 했다. 양식이 끊어져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어도 배부르지 못한다(레 26:25-26)고 했다. 전쟁, 전염병, 기근이 함께 온다. 성벽 안에 숨었다고 안전하지 않고, 떡이 조금 있다고 배부른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경고를 계속 거부하면 징계가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필자가 자란 전라도에는 &amp;lsquo;단골네&amp;rsquo;라고 부르던 무당이 동네마다 있었고 외할머니의 할머니도 무당이었다. 필자는 이런 가문의 후손에게 이어진 고통을 실제로 겪어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단계는 제27절부터 제39절까지&lt;/strong&gt; 이어진다. 그래도 또다시 청종하지 않으면 포위와 기근이 극심해져 아들과 딸의 살을 먹는 참혹한 지경에 이른다(레 26:29)고 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섬기던 산당과 분향단을 부숴버리고,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신다고 했다. 땅을 황무하게 하며 백성을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신다(레 26:30-33)고 했다. 마지막 징계는 단지 개인의 질병이나 가난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땅에서 쫓겨나 원수의 땅에 살게 되는 것이다. 남은 자도 자기 죄와 조상의 죄 때문에 그곳에서 쇠잔해질 수 있다(레 26:38-39). 이것이 불순종이 끝까지 이어질 때 맞는 최악의 결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이 경고를 읽으면서 필자는 우리 민족을 돌아본다. 조선시대 적어도 350년간 조상에게 제사하는 일을 효도의 의무로 여기던 민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배 아래 넘어가 35년을 지내야 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필자는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 조상 제사를 끊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거듭 외치고 있다. 나라가 아직 있다고,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을 붙들고 미래에 닥칠 불행을 사서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려야 한다. 필자가 공산화와 동성애를 경고하고, 회개하지 않는 교회를 향하여 경고하는 까닭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 끝에 민족적 무너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말씀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순종여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6장이 특별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의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내리는 징계와 땅이 누릴 안식이 공동체가 지키는 성결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땅은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에 맡겨진 땅은 안식년이 되어도 자기 자신을 쉬게 하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달려 있어서 멀리 떠나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땅에 안식을 주려면, 사람을 그 땅에서 옮기시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 원수의 땅에 사는 동안 자기들의 땅은 황무하여 비로소 쉬게 된다(레 26:34-35). 이것은 또한 제25장에서 명령하신 안식년을 이스라엘 백성이 거역한 결과이기도 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땅의 주인이 대체 누구인지를 묻는다. 이스라엘 사람이 전쟁하여 그 땅을 차지했으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그 땅을 계속 경작하여 수확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쉬게 해 주어야 한다. 고로 제25장의 안식년에는 땅의 자생 소산을 주인만이 차지하지 말고, 종과 품꾼, 가축과 들짐승도 먹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러나 만약 주인의 욕심이 이 질서를 깨뜨린다면, 사람도 땅도 함께 손상될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람을 내보내 땅에 안식을 주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리지 못한 쉼을 땅이 황폐한 상태에서 누리게 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람과 땅의 공동체적인 성결례는 따로 떨어진 두 의식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도 제때 쉬고 열매를 낸다. 사람이 탐욕과 불순종으로 땅을 몰아붙이면 하나님은 소출을 그치게 하고 마침내 거주하는 사람을 쫓아버리신다. 레위기 26장 제34절과 제35절 뒤에는 원수의 땅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공포가 나온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며 서로 넘어진다고 나온다(레 26:36-37). 자기 땅에서는 땅을 쉬게 하지 않아 버림받고, 남의 땅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두려움 속에 쇠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순종의 최종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순종의 복에서 약속받은 평안한 거주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자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땅을 다시 얻는 길은 무엇인가? 무력으로 되돌아와 다시 그 땅을 점유하는 데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그 땅에서 옮기셨는지를 깨닫고 죄를 자복해야 한다. 땅의 문제는 사람의 마음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땅을 안식하게 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땅을 기억하시면 사람도 다시 돌아올 길을 얻는다(레 26:40-43). 안식년을 지키는 일도, 원수의 땅에서 회개하는 일도 공동체의 순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결을 개인의 마음속 문제로만 좁히면 이 장의 절반을 잃어버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원수의 땅에 끌려갔다고 모든 길이 닫힌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제40절과 제41절에 보면,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셨다. 즉 회개할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여기서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참된 회개의 네 요소가 있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로 회개는 자기의 죄악과 자기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는 것&lt;/strong&gt;이다. 제39절은 남은 자가 자기 죄로 쇠잔하고 조상의 죄로도 쇠잔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죄만 입에 올리고 조상에게서 이어져 온 우상숭배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 회개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죄가 후손에게 미친 영향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씻음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왜 이런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lt;/strong&gt;이다. 백성은 자기가 우연히 원수의 땅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했으므로 하나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끌어가셨음을 알아야 한다(레 26:40-41). 고통만 빨리 끝내 달라고 구하면서 그 원인을 알려 하지 않으면 같은 길로 돌아간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 하나님 말씀에 맞선 완고함을 깨닫는 것이 회개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먼저 남을 탓하거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기보다 자기 마음과 행위를 말씀 앞에 놓아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지는 것&lt;/strong&gt;이다. 자복과 깨달음이 있어도 마음속에 &amp;lsquo;충분히 회개했으니 이제 복을 내놓으셔야 한다&amp;rsquo;는 요구가 남아 있다면 아직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겸손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성도들이 회개기도문을 천 번, 이천 번 회개하면서 자신이 읽은 숫자를 하나님께 들이밀면서 왜 변화가 없느냐고 따지는 모습을 경계한다. 가문마다 쌓인 죄와 그 영향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회개했던 회개의 횟수를, 하나님께 값을 치르는 계산서처럼 내밀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낮아져야 자신의 죄를 진실로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는 것&lt;/strong&gt;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도 놀랐다. 징계가 시작되자마자 억울하다고 대항하는 사람의 태됴는 결코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개의 자세가 아니다. &amp;lsquo;저지른 죄로 이런 고통을 당해도 마땅합니다&amp;rsquo;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를 달게 받으며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 이는 형벌을 좋아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참된 회개의 기도가 된다(레 26:40-4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40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회개의 태도는 서로 바꾸거나 하나만 떼어 놓을 수 없다.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왜 왔는지 깨닫고, 마음을 낮추며, 받아야 할 형벌을 기쁘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 네 가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고, 그 뒤에는 같은 죄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회개를 지루한 반복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사람을 씻어 다시 세우시는 복된 길이 그 안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가 자신이 잘못했음을 네 가지를 통하여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그를 대하시는가? 제42절을 보니, 하나님은 자신이 야곱과 맺은 언약, 이삭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제45절에서도 애굽에서 이끌어낸 조상과 맺은 언약을 다시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기 백성을 향해 하신 약속을 다시 이행하시고 땅과 사람의 회복을 이루신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약속을 이어 가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것이다(레 26:42, 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약속했던 세 사람의 이름을 야곱, 이삭, 아브라함처럼 거꾸로 말한다. 필자는 이 거꾸로 놓인 순서를 읽으며 하나님이 회개한 자에게 넉넉히 주시려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사람, 이삭에게는 야곱 한 사람뿐이었지만 야곱에게서는 열두 아들에게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좋은 땅 비유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결실의 축복은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아니라 백 배와 육십 배와 삼십 배의 결실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마 13:8). 그렇다. 필자도 이 숫자와 이름의 순서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회개한 백성에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숫자의 크기만 붙들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회개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관한 말에만 멈추지 않는다. 백성이 원수의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리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아주 멸하지 않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26:44).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부정의 약속이 얼마나 우리에게는 큰 소망인가! 심한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에게 결코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올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먼저 언약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6:44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말씀 앞에서 천국의 성 밖에 이른 사람에게까지 소망을 품어본다. 성 밖에서 자기 죄의 형벌을 달게 받는 이들이 언젠가는 다시 성 안에 들어오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떤 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레위기 26장의 약속을 읽다가 &amp;lsquo;아주 멸하지 아니하리라&amp;rsquo;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필자가 품게 된 조심스러운 소망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성도들은 죽은 뒤에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미루지 말고, 지금 이 땅에 있을 때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지금 아예 눈물로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 형벌을 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뒤에 소망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그대로 믿고 걷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과 우리와 맺은 약속을 이루신다. 필자는 눈에 뚜렷한 증거가 보이지 않고 귀에 특별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에도 말씀을 믿고 걸어왔다. 돌아보니 주님이 그 말씀대로 이끄셨다. 우리도 회개하여 정결해지고 순종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기억하시고 땅을 기억하시며, 자손이 번성하도록 돌보신다. 필자는 성도들이 이 회복을 몸과 가정과 공동체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장차 천국의 기업(基業, inheritance)을 누릴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하다가 지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아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낙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자신의 형벌을 달게 받으며 이 땅에서 돌이키고, 오늘 각자에게 맡기신 사람을 위해 다시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는 성도 한 사람이 있을 때에 그것은 다른 이에게 회개의 본이 될 것이고, 그 가정과 교회가 함께 정결과 성결의 길로 나아가게 될&amp;nbsp;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레위기 26장에서 사람과 땅에 주시는 순종의 복, 불순종에 따른 다섯 단계의 징계, 땅이 누리는 안식, 네 요소를 갖춘 회개와 언약에 따른 회복을 살펴보았다. 사람의 복과 땅의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일이다. 반대로 끝까지 거역하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고 원수의 땅에서 쇠잔해지고 말 것이다. 그 사이에서 하나님은 여러 번 징계하시며 우리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 중의 복이다. 우리가 형벌을 받을 때에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계의 까닭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낮추며, 죄의 형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돌이켜 회개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정결함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3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hatGPT Image 2026년 9월 25일 오전 12_19_3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4d08594e911dc9b2dbe7ddc8eaeddf9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9df7f489e95d42a05e5c86225b4e3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3a20d31a8a0f7dd2d14c498b975ddc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04e174c5469d0bfb38ef0f2d89b60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293852864d5e819219646430f34dd8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608e6cfdbcbfd6b16c15f27f3feff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877ea3dfb338dd02229121c5a8902d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88a88a237d7e8a75a39eb1e76e25b3a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9532f24c5ab82a3a298b69af80cb0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42e079a1cd78bd745655ce04ff768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5ffb4c271a4ba4a77a7c79b33563f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fbc422d0815c9b505b4145f82120a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Covenantal_Ecolog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75c5e3f813310e553c5a7a6f5841e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레위기_26장_순종과_성결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a76705ab5972abbe0efe22eb831120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성결의_여정_순종과_회복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3a86ae9b6c42e8cd1beadf9f2843f1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fa0f51fd8ed88953522e16405fb20b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d1c8e69feeb12eee1e5db1cace8dd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b3cdc7d4283591186e3b0bf9041d5b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da4c9e4f53ca5c5e67ab9450338cc9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099e8932c32bcb54290a7440616857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f5bfb95fb14ae543e9af0d2537b7b3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1ed2f5aa4b83eeeee572892b180b207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287b2c78f2be547743df1e202150d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a3846793528ecf8e72af56591a20c3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01ed4aac820e8a10d36914f3b9d874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50431b4cd7243d91dd5b76edf0f7d7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6cbc685118d37daf5c3772856a9708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c87ad59a7dcf31835359729c83d453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ebecb9d8ad14ddbe9aedbf1f8449f7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2)] The_Path_of_Sanctific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936/266/2dcfae13cd9fb409429bd4f6d957cd5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강해</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순종</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정결</category><category>속죄</category><category>공동체성결</category><category>하나님의언약</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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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936#comment</comments>			<pubDate>Wed, 23 Sep 2026 22:13:26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2026-09-16(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485</link>
				<description>&lt;p&gt;2026-09-1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kJ8C_9uSBu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J8C_9uSBu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br /&gt;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br /&gt; 4.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br /&gt; 5.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6.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7.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5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안식년과 희년&lt;/strong&gt;이 단순한 휴식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거룩함을 회복하는&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모든 땅과 인간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소유&lt;/strong&gt;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탐욕으로 잃어버린&amp;nbsp;&lt;strong&gt;자유와 기업을 원상태로 회복&lt;/strong&gt;시키는 &amp;#39;특사 조치&amp;#39;와 같은 은혜를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amp;nbsp;&lt;strong&gt;고엘(기업 무를 자)&lt;/strong&gt;&amp;nbsp;제도를 현대의&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와 연결하여, 가까운 친족이 대신 빚을 갚아주듯 우리가 조상과 자녀를 위해 대신 회개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영적인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lt;/strong&gt;을 역설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amp;nbsp;&lt;strong&gt;하늘의 가족과 기업을 되찾는 것&lt;/strong&gt;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축복임을 일깨워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5:1-5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성결법(레 18~27장)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다룬다. 먼저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각각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을 가르친다. 그러나 제23장부터 제27장까지는 온 회중이 함께 모이고 함께 순종함으로 이루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 제23장에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지킴으로 거룩해지고, 제24장에서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돌보아 거룩해지며, 제25장에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온 백성이 함께 시행함으로 거룩해짐을 말씀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것으로 온전하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안식일과 절기에는 성회를 열어 함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들어야 한다. 혼자 부르는 찬양과 온 회중이 한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은 다르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예배의 풍성함이 커지고, 천사들의 도움과 마음을 치유하는 은혜도 강하게 임한다. 개인적인 회개(悔改, repentance)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함께 모여 순종하는 단체적인 성결례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막 안에서의 봉사도 제사장만의 일이 아니었다. 백성이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으로 등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을 차렸다. 주의 종이 성령의 불을 밝히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려면 성도도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과 백성이 서로의 사명을 다할 때 공동체 전체가 빛을 받고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5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는 이 협력을 땅과 경제와 가족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추가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희년(禧年, jubilee)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原狀回復)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גֹּאֵל, go&amp;rsquo;el) 제도는 장차 우리를 되찾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규례들을 실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공동체 전체가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자유와 회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 규례의 영적 실체를 이루셨고, 지금은 회개하는 자가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이 왜 함께 필요한지, 등잔대와 진설병이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은 무엇을 선포하는지,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그리고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결례 중에서도 개인적 성결례(레 18-22장)는 각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 백성은 이방인의 음란과 우상숭배를 버려야 했고, 제사장은 죽음과 부정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거룩한 제물과 성물을 바르게 다루어야 했다(레 18:1-22:33).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성결을 대신할 수 없다. 자기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각자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동체의 성결례도 필요하다(레 23-27장). 만약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거룩함을 지키기가 어렵다. 한 사람만 안식년을 지켜 밭을 쉬게 하는데 이웃은 계속 농사를 짓는다면, 순종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계속 채무자를 독촉하고 종을 부린다면 하나님의 질서가 공동체 안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때에 함께 멈추고 함께 놓아주며 함께 회복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레위기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단체적인 성결의 첫 형태다. 백성은 정한 날에 성회로 모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다.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을 제외한 절기에는 창조와 출애굽과 추수의 은혜를 기뻐하며 축제를 누렸다.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온 공동체가 기억하고 감사할 때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예배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함께 닮아 가는 통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교회도 같다.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회개할 때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준다. 낙심한 사람은 공동체의 찬양 속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도의 간증과 순종을 보며 깨닫는다. 하나님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셨다(고전 12:12-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단체적 성결례는 획일적으로 똑같은 일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일을 하고 백성은 백성의 일을 하되, 서로의 역할이 한 목적을 향해야 한다. 백성은 기름과 곡식을 드리고 제사장은 등불과 떡을 잘 관리해야 한다. 성도는 헌신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주의 종은 기도와 연구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한 지체가 자기 역할을 버리면 공동체 전체가 약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은 결국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이 땅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질수록 천국에서도 주님 가까이에 나아갈 자로 준비된다. 한 사람만 뜨거워지고 다른 사람들은 차가운 교회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회개하고 충성하여 함께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정결(淨潔)한 마음과 공동체의 질서 있는 순종을 함께 받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4장의 &amp;#39;등잔대&amp;#39;와 &amp;#39;진설병&amp;#39;은 성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체적 성결례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등잔대의 등불을 간검하는 것부터&lt;/strong&gt; 살펴보자(레 24:1-4).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봉사해야 했지만 필요한 재료는 백성이 다 가져왔다. 백성이 감람나무를 가꾸고 감람을 찧어 순결한 기름을 드리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등잔을 살피고 심지를 손질하여 밤새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레 24:1-4). 제사장의 봉사와 백성의 헌신이 합쳐져야 성소가 밝아졌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ㄷ게 이때의 감람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등잔불은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빛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성도도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요 1:9; 8:12; 마 5:14-16). 교회가 어둠을 밝히려면 성도는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을 받아야 하고, 주의 종은 공동체 안에서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통치를 받지 않으면 세상과 구별된 빛을 낼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피땀 흘려 드린 헌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 헌금 가운데 일부로 사례를 받는다면 성도의 노동과 헌신을 기억하며 더 충성해야 한다. 백성이 힘들게 마련한 감람기름을 제사장이 허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목회자는 성도가 드린 시간과 물질을 말씀과 기도와 영혼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불을 밝히고 진리를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그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제는 진설병을 진설하는 규례를 살펴&lt;/strong&gt;보자(레 24:5-9). 등잔불의 간검 외에도 제사장이 성막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진설병을 진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등잔불과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성막 안에서 진행되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두 번째 사례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 떡을 진설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운 가루를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 첫 열매이든 십일조이든지 하나님께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열두 덩이의 떡을 만들어 두 줄로 떡상 위에 놓아야 했다. 이때 열두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상징한다. 제사장은 온 백성을 어깨에 메듯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어느 한 지파도 굶지 않도록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했다(레 24:5-9; 출 28: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묵은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진설해야 했다.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도 매주 신선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이전에 전한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간에 성도들이 먹어야 할 말씀을 기도와 연구로 새롭게 차려야 한다. 성도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이 자라지 못하고 작은 환난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명의 떡을 꾸준히 먹을 때 영적 내공이 쌓이고 가정의 파수꾼으로 담대히 설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떫은 감을 된장물에 우려 떫은 맛을 빼고 먹었다. 먹을 것이 귀했기에 그것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에게 공급하는 말씀까지 묵은 것을 계속 우려내어 먹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영원하지만 공동체가 지금 들어야 할 적용과 깨달음은 신선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의 종은 말씀의 큰 우물에서 계속 길어 올려 성도가 배불리 먹도록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물린 떡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이 거룩한 곳에서 먹게 했다. 이는 말씀을 충성스럽게 진설하는 제사장과 그 가족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원리도 함께 보여 준다. 주의 종이 세상일로 인하여 지쳐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성도도 굶고 자신도 먹을 떡을 잃는다. 반대로 성도를 살리는 생명의 떡을 풍성히 공급하면 공동체의 헌신을 통해 목회자와 가족도 돌봄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목회자 혼자 잘해서도 안 되고 성도 혼자 열심을 내서도 안 된다. 성도는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드리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소중히 받아 성령의 빛과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몫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밝아지고 자라며 거룩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성막 밖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자와 이웃의 형제를 살인을 행한 자에게는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그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죽이라&lt;/strong&gt;고 하셨다(레 24:10-24).&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은 어떤 단체적인 성결례인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들 그리고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의 성결례를 언급하신 후에, 두 가지 단체적인 성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단체로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이었다(레 25:1~2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어떻게 안식년을 지켜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육 년 동안 농사를 하고 나서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해에 땅을 쉬게 하라는 규례였다(레 25:1-7). 그러면 그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해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저절로 난 곡식과 포도는 자기 소유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레 25:1-5).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생계를 막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땅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되었고,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찬 뒤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유권 자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살면 계속해서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그 땅이 자기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 저절로 자신 소출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주인만이 그것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절로 자란 것들은 땅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의 남종과 여종, 그의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을 수 있었고, 또한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 해는 주인이 그 땅에서 농사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그 땅의 산물을 가리켜 &amp;ldquo;내가 수고해서 얻은 내 것&amp;rdquo;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경험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 규례를 한 사람에게만 지키라고 한다면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나만 밭을 놀리고 이웃은 계속 소출을 거둔다면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이 안식년이 되면 그 해에는 모두 함께 쉬라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안식년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성경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켰다는 대목을 발견하기 어렵다. 역대하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서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게 했다고 언급하였다(대하 36:21). 그리고 신약 시대가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안식년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드러내셨다. 즉 당신이 안식일의 주라는 것을 선포하시면서(마 12:8), 그날 병든 자를 고쳐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시어,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마귀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켜 주셨다(눅 13:16).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셨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1:28-3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건 &lt;strong&gt;십일조도 마찬가지다&lt;/strong&gt;.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권을 믿고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신만 드린다고 생각하면 손해처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단체적 성결은 서로의 순종을 지지하여 탐욕을 이기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땅의 소유권에 관한 말씀은 &lt;strong&gt;우리의 몸과 재물과 재능에도 적용&lt;/strong&gt;된다. 건강할 때에는 몸이 내 것처럼 보이고, 지혜와 노래와 기술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병이 들거나 힘이 사라지면 그것이 맡겨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과 시간과 지식도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기업이다. 내 것처럼 움켜쥐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성경을 연결하여 깨달은 바에 따르면 흙으로 지음받은 육체도 하나님께 속한 땅이다(창 2:7). 귀신이 죄를 틈타 사람의 몸에 들어와 괴롭힌다 해도 그 몸의 영원한 소유자가 될 수 없다. 안식년이 되면 땅을 쉬게 해야 했듯이, 하나님은 자기 소유인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악한 영의 압제에서 놓이게 하기를 원하신다. 병이 심해졌다 약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으며, 마귀가 사람을 끝없이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안식년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주인을 인정하는 데&lt;/strong&gt; 있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고, 맡기신 것을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과 은사를 주님의 뜻에 돌려 드리는 것&lt;/strong&gt;이다. 땅을 쉬게 하는 순종을 통해 온 백성은 자신들이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안식년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7년에 면제년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레위기에는 나오지 않고 신명기 15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매 칠 년 끝에 동족의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다(신 15:1-18). 안식년은 국가 전체가 같은 주기로 일곱째 해를 지키는 규례이지만, 빚과 종살이의 면제는 각 관계가 시작된 때부터 계산해서 7년째에 지키는 공동체 성결례였다. 즉 돈을 빌렸더라도 일곱째 해가 되면 채권자는 더 독촉하지 말아야 했고(신 15:1-11), 동족이 종으로 팔려 여섯 해를 섬겼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던 것이다(신 15:1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규례는 희년에도 지속되어야 했다. 형제가 가난하여 곁에 머물면 이자를 받아 이익을 남기려 하지 말고, 거류민과 동거인처럼 함께 살게 하라고 하셨다(레 25:35-37). 종을 놓아줄 때에도 빈손으로 보내지 말도록 했다. 양 떼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넉넉히 주되, 하나님께서 복 주신 만큼 나누어 새 삶을 시작하게 하라고 하셨다(신 15:13-14). 면제는 채무자를 겨우 풀어놓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반까지 마련해 주는 은혜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모든 사람은 빚을 끝까지 받아내기를 원하고, 값없이 일하는 종을 계속 붙들어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만 면제를 요구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공동체가 함께 면제년을 시행하게 하여 어느 집이나 같은 기준으로 형제를 놓아주게 하셨다. 개똥이네와 소똥이네가 면제했다면 말똥이네도 면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공동체 가운데 영구적인 종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면제년를 실시하라고 한 것인가? 그것의 근거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셨으므로 그들은 사람의 영구적인 종이 될 수 없고, 언제나 하나님의 종이었다. 채권자와 주인은 잠시 그들의 노동과 채무 관계를 맡았을 뿐 한 사람의 미래를 영원히 붙잡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동시에 마귀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붙잡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이 죄를 지어 마귀의 종이 되고 악한 영에게 시달릴 수 있지만 사람의 참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탄은 죄의 빚을 붙들고 사람을 영원한 채무자처럼 부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값을 치러 우리를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다(막 10:45; 벧전 1:18-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면제년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셨다. 즉 &amp;ldquo;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amp;rdquo;라고 번역된 말을 보면, 빚을 탕감해 주라는 뜻이다(마 6: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이 70&amp;times;7의 용서는 다니엘의 70이레가 품은 면제와 희년의 정신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용서에는 계산의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면제는 무책임과 게으름을 장려하는 제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자유를 기억하여 형제의 미래를 빚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명령이다. 나도 애굽에서 구원받은 종이었고,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탕감받았음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면제년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경제와 노동의 관계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성결례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에 의해 희년은 어떤 제도인가? 이 규례는 안식년과 면제년을 확대하여 완전한 원상회복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일곱 번의 안식년, 곧 7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뒤 오십 년째가 되면 그 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고 하셨다. 안식년은 49년째 되는 해의 일곱째 달 열흘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어 자유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amp;lsquo;요벨&amp;rsquo;(יוֹבֵל)이라는 말은 뿔나팔(쇼파르)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 수 있다(레 25: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희년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그 해에는 네 가지 일을 해야 했다. &lt;strong&gt;첫째, 49년째 안식년에 이어 50년째에도 땅을 쉬게&lt;/strong&gt; 했다. &lt;strong&gt;둘째,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lt;/strong&gt;다. &lt;strong&gt;셋째, 가난 때문에 팔았던 기업을 원래 소유자에게 되돌려&lt;/strong&gt;주어야 했다. &lt;strong&gt;넷째, 흩어진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게&lt;/strong&gt;&amp;nbsp;해야 했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휴식의 해가 아니라 땅과 신분과 기업과 가족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lt;strong&gt;자유와 해방의 해&lt;/strong&gt;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부득이 땅을 매매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희년까지 남은 햇수에 따라 값을 정하도록 했다. 희년이 오래 남았으면 여러 해의 소출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값을 많이 받고, 희년이 가까우면 적게 받아야 했다(레 25:14-17). 땅 자체를 영원히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다음 희년까지 얻을 소출의 권리를 거래한 셈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 많은 땅을 사들여도 희년이 되면 원래 기업을 받은 가문으로 돌려주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을 지켰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희년도 역시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사렛 회당에서의 첫 공생애 취임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게 하셨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게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날 듣는 사람의 귀에 응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돌아보면 그분이 희년을 실제로 시행하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랬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몸을 고쳐 육체라는 땅에 안식을 주셨다. 죄의 빚을 자기 피로 갚아 마귀의 종을 자유롭게 하셨다.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다시 차지할 길을 여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값을 치르셨기에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실제로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 규례가 선포될 때 땅은 쉬고 종은 풀려났을 것이며, 기업과 가족은 원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영적 원리에 따르면, 그렇게 되었다면 귀신도 일곱째 해마다 사람의 몸을 놓아주어야 했고, 희년에는 사람이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규례를 행하지 않았기에 그 회복이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희년을 강제로 시행하셨다. 희년이란 우리가 아무리 갚아야 할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값을 해결하고 본래 자리로 돌려놓으시는 특별사면과 같은 것이다. 다만 지금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적용된다.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며, 하나님 가족의 신분과 하늘 기업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혜택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희년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민족이므로, 그들을 위한 선교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순종한 육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물질적 성전만을 위해 성도의 피땀 어린 물질을 쏟아야 한다는 세대주의적 선교는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민족에게 열어 놓으신 희년의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영혼을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그들이 하늘 기업을 얻도록 돕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만 탓할 수 없다. 우리가 채권자와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빚을 없애 주고 종을 놓아주며 산 땅을 돌려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같은 아담의 후손이며 탐욕에 기울어진 죄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부지런히 회개하여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제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돌아오기 전에 팔아서 잃어버린 토지와 가옥(집)과 종살이는 어떻게 되물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희년이 오기 전에도 무르기(히브리어로, &amp;#39;게울라&amp;#39;)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팔어버린 토지도 가능했고, 팔아버린 가옥도 가능했다. 심지어 팔아버린 사람(노예)도 가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토지 무르기&lt;/strong&gt;를 보자(레 25:23-28).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가 가난하게 됨으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았다고 치자. 그것을 자신이 다시 되돌려받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 그때에는 그 땅을 판 자기가 부유해져서 그 값을 치를 수 있다면,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을 치르고 다시 토지 무르기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에게 만약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 값을 치러 주고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 팔렸던 토지를 다시 사서 되찾아 줄 자 곧 기업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amp;lsquo;고엘&amp;rsquo;이라고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를 들어,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대표적인 고엘제도의 실행의 예인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맏며느리 룻은 아무 기업도 없는 이방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며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바로 그녀의 전남편의 기업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룻 3:9; 4:9-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사람이 종으로 팔린 사람을 무르는 경우를 보자&lt;/strong&gt;.(레 25:39-55) 이때에는 가까운 혈족이 와서 종의 값을 치르고 놓아주라고 하셨다. 먼저 형제가 무를 수 있는 것이 제일 우선 순위이고, 그다음에는 삼촌이나 삼촌의 아들, 곧 사촌이 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가까운 살붙이도 무를 수 있었다(레 25:47-49). 그러나 팔린 종에게 고엘이 되어 주려면 혈연적으로 가까워야 하고, 값을 치를 능력이 있어야 하며, 기꺼이 무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예수님이야말로 이 세 조건을 완전히 갖춘 우리의 고엘(기업무를 자)&lt;/strong&gt;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기꺼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같이 피와 살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14). 그런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우리의 죄값을 치를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보아스가 룻을 덮고 기업을 되찾아 주었듯이 예수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회복하셨던&amp;nbsp;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가옥을 무르는 규례&lt;/strong&gt;를 보자(레 25:29-34). 이때에는 집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집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 없는 마을 안쪽의 집의 경우는 토지처럼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지만, 만약 성벽 있는 성읍의 집은 판 뒤 일 년 안에 무르지 않으면 산 사람의 영구적인 소유가 된다고 하셨다(레 25:29-31). 필자는 성벽에 붙은 집을 기생 라합의 집과 같이 멀리 내다보는 파수꾼의 사명을 가진 자와 연결하여 이해한다(수 2:15). 시대를 먼저 보고 경고해야 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사명을 팔아 버렸다면 지체하지 말고 빨리 회개하여 그 사명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한 때를 넘기면 그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경우는 레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옥을 무를 수 있었다. 혹시 물어줄 사람이 없으면 희년이 되면 응당 레위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레 25:32-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고엘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필자가 교회 건물을 마련할 힘이 없었을 때 누나와 매형이 동생의 사명을 알아보고 자기 재산을 드려 교회 명의로 마련하도록 도왔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어두운 부엌에서 설거지할 때 필자가 늑대 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곁을 지켜 주었다. 혈육이 서로를 지킨 작은 사랑이 세월 뒤에는 사명을 살리는 큰 헌신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친족은 어려움에 빠진 가족의 기업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매형과 누님 가족은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어떤 인간 친족도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줄 수는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를 수 있는 참된 고엘이시다. 성도는 그분의 속량(贖良, redemption)을 받아 자유인이 되고, 이어 가족을 위해 값을 치르는 사랑과 회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고엘 제도는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속한 가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되기 전에 땅과 집과 종을 되돌려주는 고엘 제도는 자신의 혈통과 관계없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자기와 피를 나눈 가까운 친족만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lt;strong&gt; 가족을 위한 회개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것인지&lt;/strong&gt;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즉 자기 조상이 지은 우상숭배와 음란과 살인과 무속의 죄로 인하여 나와 내 후손에게 악한 영이 내려왔다면, 누가 그것을 끊어 주어 자유롭게 놓아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나의 혈통에 속한 자여야 한다. 나와 피를 나눈 가까운 사람이 내 조상의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써 저주의 사실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부모가 회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자녀가 그 죄를 찾아 회개함으로 내려온 영을 내보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녀를 위한 회개도 마찬가지다. &lt;strong&gt;자녀가 영적으로 어리고 죄에 묶여 스스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자녀의 사슬을 풀어줄 수 있다&lt;/strong&gt;.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부모가 깨끗해진 뒤 자녀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불러내어 예수 이름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의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자기 속의 영을 뽑을 때보다 자녀에게서 불러온 영을 뽑을 때 더 큰 고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 이는 가까운 혈육을 살리는 일에는 그만큼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자녀의 책임을 아예 삭제해 준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을 위한 대신 회개는 악한 영이 붙잡은 혈통의 근거를 제거하고 회개할 길을 열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후에 자녀가 깨닫고 자기 죄를 직접 회개하고 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에게 드리워진 저주의 사슬을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본인이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고엘처럼 앞서 값을 치르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찾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그 죄와 관계된 우상과 물건과 습관을 끊으며, 악한 영에게 떠나갈 것을 명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먼저 정결해져야 가족의 영을 받아서 쫓아낼 힘이 생긴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자녀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싸움을 감당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가족을 위한 회개는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을 가져오게 한다. 육체라는 땅이 안식을 얻게 하고, 마귀의 종 된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며,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주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자매가 함께 회개한다면, 한 사람만의 회복을 넘어 가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는 단체적인 성결이 일어날 수 있다. 자녀가 부모와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 부모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길이 열리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회개하면 자녀가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알면 가족이 완고하다고 해서 가족 전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자녀가 회개하지 않고 방황한다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더 깊이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원망하기보다, 나를 통하여 그 죄의 사슬을 끊으시려는 통로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먼저 구원받고 회개의 길을 알게 된 것은 가족 전체를 천국으로 이끄는 파수꾼이 되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족을 무르는(되돌리는, 회복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능력은 예수님의 피에 있다. 우리의 회개가 값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족에게 적용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참된 고엘로서 우리를 덮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여 부모와 자녀와 형제의 영적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믿은 자가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악한 영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회개가 가정으로 번지고 가정의 회개가 교회 공동체의 성결로 이어질 때 희년의 원상회복이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 그리고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가 단체적인 성결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사장과 백성, 채권자와 채무자, 주인과 종,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등잔대와 진설병은 교회의 협력을 보여 준다. 성도는 순결한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받아 성령의 빛과 신선한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면제년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희년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희년과 고엘로 오셔서 자기 피로 죄의 빚을 갚고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하늘 기업과 하나님 가족을 되찾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 적용된다.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가까운 가족을 위한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부터 정결해지고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 사람의 자유가 온 가문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맡기신 몸과 재물과 은사와 사명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아니다. 청지기로서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의 자유와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고 온 가정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후 04_59_2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ffea5128d8fe265d30b058625237fdc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a1d6a3bf2445af6f072ff5c10c326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c8490b88a7a9101efb417fe6c47e5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619926d28168a500708e3b5984343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171f08026c703a26a5ba1ea73e3fa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b7582e3633bb7e2c31d7fb79f8395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db42f0c1eb1843117db52e06727f4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c29c8bf4a05e516f7ea9bc3e895ff8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a783046b00a0ad7cd00a2c1faadf0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1a34c69ea642470058f4d9281a96c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06fa962f852c83b52512fd27faa4f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9df974ebb28d31596275cdb240cfc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fddbbe9b4f9a5790efa81a3879bce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55120bff113e94fa0500d42a68c8a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c5173d27e5693307ba990834ced92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1c26d7e8a2fe034862a2351a7f5baf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_희년_고엘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9bbf470919426a9b4cbb8b6350cf0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과_희년의_성경적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6f79de2c33fcbde0342301e5e7a42e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b14c68d460ef554af2867eb6cf2f6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5ce651205af0371c07ba8cc3294b3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76acbc70c98baf64b9ea09e1c065e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9c4eb42c8b352f576d9f4ac04382d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8d6bfc0f8803c7a07dd715208ff2f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00fc8d0ba1cda6ca92e02634a0678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f74b9e50696c50bcc39b8d05e01c8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13f25ef029af58f86f62ec2576025d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282daad3f16d472aa374821d4b124b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e108f9bdb4a53bfd0049a391368f3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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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강해</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안식년</category><category>희년</category><category>고엘</category><category>단체적성결</category><category>회복</category><category>하나님의소유권</category><category>영적자유</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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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485#comment</comments>			<pubDate>Wed, 16 Sep 2026 21:01:27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20)] 성결법(07) 성막 안팎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레24:1~25:22)_2026-09-09(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131</link>
				<description>&lt;p&gt;2026-09-09(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20)] 성결법(07) 성막 안팎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레24:1~25: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oCAZGdKPul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CAZGdKPul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br /&gt; &amp;nbsp; 1. 정결법과 성결법은 무엇이 다르며 단체적 성결은 왜 필요한가?&lt;br /&gt; &amp;nbsp; 2. 회개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lt;br /&gt; &amp;nbsp; 3. 성막의 등잔불은 교회의 성령 충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4. 열두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과 제사장의 책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5.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은 공동체의 성결을 어떻게 지켰는가?&lt;br /&gt; &amp;nbsp; 6. 예수님의 원수 사랑은 보복의 악순환을 어떻게 끝내는가?&lt;br /&gt; &amp;nbsp; 7. 안식년은 희년을 향해 땅&amp;middot;몸&amp;middot;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7) 성막 안팎&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4:1-25:2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를 깊이 공부할수록 이전에 보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가 보인다. 필자에게 특별히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회개(悔改, repentance)를 계속한 뒤였다. 성경과 교회사와 여러 교단의 신학을 공부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해 왔지만, 회개하기 전의 눈으로 보던 성경과 내 속의 악한 영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는 성경은 달랐다. 말씀이 서로 연결되고, 절기의 의미와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의 비밀이 한순간에 열리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회개가 되어 깨끗한 사람이 되니 책상에서만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쉬거나 밥을 먹을 때, 일상의 한순간에 여러 말씀이 빠르게 연결되어 지나갔다. 이는 성령의 조명(聖靈의照明,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이었다. 필자의 지능이나 연구 경력만으로 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명철과 지혜를 주시고 환상과 꿈을 깨닫게 하셨듯이, 회개하여 마음이 깨끗해질 때 말씀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올라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먼저 목숨을 걸고 회개해야 한다.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이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회개하고 그리고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럼 반대로 말씀을 듣는 성도는 어떻해야 하는가? 이들에게도 역시 회개가 필요하다. 귀를 막고 졸게 하며 말씀을 길다고 불평하게 하는 영을 제거할 때에 집중하여 들을 수 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깨끗해질 때 하나님께서 차려 주신 영의 양식을 온전히 먹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4장과 25장은 대체 어떤 말씀인가? 이 말씀은 단체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의 한 부분이다. 레위기 18장에서 22장까지가, 개인적인 백성과 제사장의 성결을 가르쳤다면, 레위기 23장부터 27장까지는 단체적인 성결례 곧 온 회중이 지켜야 할 성결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 24장에서 어떤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말 밖에서의 성결례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성막 안에서는 순결한 기름으로 등잔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陳設餠, Bread of the Presence)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성막 밖에서는 신성모독(神聖冒瀆, blasphemy)을 금하고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lex talionis)으로 공의로운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위기 25장에서는 약속의 땅에서 온 백성이 함께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과 희년(禧年, Jubilee)을 지켜서 성결례를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단체적인 성결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혼자서는 온전히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래야 감사의 축제가 된다. 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희년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만 밭을 쉬게 하고 이웃은 계속 경작한다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동체가 함께 멈추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오늘날 교회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도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했음을 나타내는 공동체적 행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단체적인 성결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원받은 사람을 통하여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출생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만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으로 맺어진 배우자와 사돈의 집까지 복음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의 범위가 넓혀질 것이다(행 1:8).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정결(淨潔, purification)과 성결의 차이와 단체적인 성결의 필요성, 성막 안팎에서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례, 그리고 안식년이 희년을 향하여 땅과 몸과 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정결법과 성결법은 무엇이 다르며 단체적 성결은 왜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서로 연결되지만 강조점이 좀 다르다. &amp;#39;정결&amp;#39;은 부정해진 사람과 사물을 물과 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amp;#39;성결&amp;#39;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방인의 풍속과 구별된 삶을 살아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amp;#39;정결&amp;#39;이 더러움을 씻는 데 초점을 둔다면, &amp;#39;성결&amp;#39;은 깨끗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어 사는 단계까지 나아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전체의 흐름을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먼저 제사법이 1장부터 10장까지 나온다. 그중에서 제1장부터 제7장까지는 번제&amp;middot;소제&amp;middot;화목제&amp;middot;속죄제&amp;middot;속건제라는 오대 제사(五大祭祀, five major offerings)를 가르친다. 그리고 제8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장과 관련된 것으로, 제8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이며, 제9장은 아론이 처음으로 집례한 제사다. 그리고 제10장은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을 통하여 제사장이 얼마나 거룩해야 하는지를 경고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주로 정결법에 관한 말씀이다. 제11장은 음식과 부정한 짐승의 사체, 제12장은 해산한 여인,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제15장은 유출병의 정결을 다룬다. 제16장은 속죄일에 지성소와 성막과 분향제단을 속죄하는 규례이며, 제17장은 피를 거룩하게 다루는 법이다. 물로 몸과 옷을 씻고 피의 제사로 속죄(贖罪, atonement)하여 부정에서 깨끗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제18장부터는 성결법으로 넘어간다.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일반 백성이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할 성결을 가르친다. 우상과 무당을 따르지 않는 영적 순결과 근친상간&amp;middot;동성애&amp;middot;수간을 금하는 육체적 순결이 함께 나온다.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성결을 다룬다. 제사장은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고, 특히 대제사장은 부모가 죽어도 성소의 직무를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23장부터는 개인을 넘어 단체적인 성결로 나아간다. 제23장에 나오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온 회중이 정해진 때에 함께 모여 지키라고 하였다. 그중에 일곱 절기들은 속죄일을 제외하고는 다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절기 가운데에도 일곱 번의 안식일을 두어 일을 멈추고 함께 예배하게 하셨다. 혼자 기뻐하는 것으로는 공동체의 절기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어지는 제24장은 성막 안팎의 성결법을 다룬다. 즉 성막 안에서 등잔대와 진설병을 통한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을 통한 성결례를 다룬다. 이어지는 제25장은 온 민족이 함께 지켜야 할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정결레를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 제26장과 제27장은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복과 징계와 서원과 십일조(十一條, tithe) 등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므로 성결례를 행할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 이렇듯 레위기의 성결은 개인의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예배와 가정과 재판과 토지와 재물까지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개인적인 성결례에서만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단체적인 성결례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사람이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면 오래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날 일을 멈추고,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떡을 먹고, 함께 죄를 경계하며, 함께 땅을 쉬게 하셨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 한 사람의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을 전하는 제사장과 기름을 가져오는 백성과 함께 예배하는 회중이 모두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회개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지 이미 지은 죄를 용서받는 절차가 아니다. 회개하면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고, 마음과 생각을 가리던 장막이 걷히며, 성령께서 말씀을 비추어 주시는 통로가 넓어진다. 필자는 회개를 계속하면서 전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lt;strong&gt;가을 절기와 속죄일의 의미&lt;/strong&gt;가 분명하게 다가왔다. 같은 성경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내면의 상태에 따라 깨닫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회개가 중요한 까닭은 한 사람의 깨달음이 공동체 전체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성막의 등잔불을 관리하고 진설병을 차렸듯이,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은 성령의 빛을 밝히고 생명의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이 세상의 욕심과 죄에 사로잡혀 있다면 백성에게 맑은 빛과 신선한 떡을 공급할 수 없다. 먼저 자신이 깨끗해지고 성령께 붙들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를 위해 말씀을 맡은 주의 종들은 공부와 기도에 전념해야 한다. &lt;strong&gt;성경 원문과 역사와 교리&lt;/strong&gt;를 깊이 연구하고, 밤늦도록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이라고 하시는지 물어야 한다. 필자는 성도들에게 한 끼의 영적 양식이라도 온전히 공급하기 위하여 밤이 깊도록 연구한다. 이것이 제사장으로 받은 사명이며, 말씀을 준비하는 수고 자체가 공동체를 위한 섬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성도는 자신이 모든 분야를 다 연구하지 못한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가정과 직장과 시장의 일을 감당하면서 &lt;strong&gt;히브리어와 헬라어,&lt;/strong&gt;&amp;nbsp;&lt;strong&gt;교회사와 모든 교단의 신학&lt;/strong&gt;을 다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신 주의 종이 충성스럽게 차려 놓은 밥상을 분별하여 잘 먹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은사와 달란트와 시간과 물질로 충성할 때 하늘의 집과 승리의 면류관과 충성의 면류관이 준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악한 영이 귀와 생각을 붙들면 설교가 길다고 불평하고 중요한 순간에 졸게 된다. 그리고 들은 말씀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나 회개하여 방해하는 영을 제거하면 집중력이 살아나고, 한 말씀을 들어도 여러 의미를 깨닫게 된다. 성령께서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명철과 분별력을 주시며,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제 삶으로 옮기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는 전하는 자를 겸손하게 한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깨달음이 전적으로 성령께서 주신 은혜임을 인정하게 한다. 또한 듣는 자를 순종하게 한다. 사람의 말처럼 가볍게 듣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주시는 양식으로 받는다. 전하는 자는 더 깊이 회개하고 준비하며, 듣는 자는 귀를 열고 순종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튼튼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성막의 등잔불은 교회의 성령 충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제사장이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 등장불을 정리하는 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결을 유지하게 해주는가? 성막의 성소 안에는 금등잔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뚜껑인 속죄소 위에 두 그룹이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성막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피의 제사를 드린 뒤 물두멍에서 몸을 씻고 성소로 들어갔다. 거룩한 성막을 부정하게 하지 않도록 피와 물로 깨끗하게 된 뒤 봉사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4장에서는 단체적인 성결례로서, 가장 먼저 등잔불의 규례를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감람을 찧어 만든 순결한 기름을 가져와야 했고, 아론은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정리하여야 했다. 이때 제사장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채우고 심지를 손질하여 일곱 등잔의 빛이 계속 밝게 타오르게 해야 했다(레 24: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lt;strong&gt;감람기름은 &amp;#39;성령&amp;#39;을 상징&lt;/strong&gt;하고, &lt;strong&gt;일곱 금등잔대는 &amp;#39;교회&amp;#39;&lt;/strong&gt;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이며, 인자 같은 이가 그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 주님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계신다(계 1:12-13, 16, 20). 그러므로 &lt;strong&gt;교회의 단체적인 성결은 성령의 불이 공동체 가운데 얼마나 밝고 뜨겁게 타오르느냐와 깊이 연결&lt;/strong&gt;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제사장이 등잔대를 정리하는 것이 왜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가? 그것은 &lt;strong&gt;등잔대를 정리하는 것이 제사장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백성도 공동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감람나무를 재배하고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는 일은 백성이 해야 했고, 그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정리하는 일은 제사장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도 각자가 성령을 받고 충만해야 하지만, 말씀을 맡은 종은 그 성령의 불이 공동체 가운데 활활 타오르도록 깨우치고 책망하며 인도해야 한다. 제사장 혼자서 기름을 만들 수 없지만, 백성도 기름은 가졌어도 일곱 금촛대의 등불을 관리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은 성도를 세상의 빛으로 살게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amp;#39;세상의 빛&amp;#39;이라 하시고, 그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마 5:14-16). 고로 빛을 비춘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된 착한 행실을 살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성도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amp;#39;참빛&amp;#39;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려주셨다. 당시 초막절에 큰 횃불을 밝히는 의식이 있었지만, 그 불은 영원한 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amp;#39;세상의 빛&amp;#39;이라 선언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요 8:12). 참빛이신 예수님에게서 빛을 받은 성도가 세상에 그 빛을 비춘다. 장차 들어갈 천국에는 주님의 영광이 비치므로 해와 달도 필요하지 않다(계 2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의 종이 세상일에 지쳐 말씀과 기도를 준비하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는 말씀을 맡은 종이 성경 연구와 기도와 성도 돌봄에 전념하도록 함께 책임져야 한다. 주의 종은 자기 속에 성령의 불이 먼저 타오르게 해야 하며, 살아 있는 동안 성도들의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와 천국 준비를 끝까지 돕겠다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앞장 선 한 사람의 불이 공동체 전체를 밝힌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열두 진설병은 생명의 말씀과 제사장의 책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소의 두 번째 단체적 성결례로서, 성막의 떡상에 항상 12덩이의 떡이 진설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제사장은 이러한 진설병의 규례에 따라 항상 떡상에 떡이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떡상의 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사장은 고운 가루로 떡 열두 덩이를 만들어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놓되, 각 줄에 여섯 덩이씩 진설했다. 각 줄 위에는 정결한 유향을 두어 기념물로 삼고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 열두 덩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하나님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레 24: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제사장의 에봇 어깨받이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호마노 두 개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겨 양어깨에 메었다(출 28:9-12). 이는 제사장이 백성 전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떡상의 열두 떡은 어느 한 지파도 빠지지 않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떡은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해야 했다. 묵은 떡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고, 새 떡을 다시 여호와 앞에 놓았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영원한 언약이었다(레 24:8-9). 교회도 매주 성도에게 신선한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전에 전했던 내용을 반복하여 때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연구를 통해 그 주간에 공동체가 먹어야 할 양식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설병은 &lt;strong&gt;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lt;/strong&gt;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자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요 6:35).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 4:4).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듯이 영혼도 살아 있는 말씀을 먹어야 성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도가 말씀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환난과 풍파가 닥칠 때 쉽게 흔들리게 된다. 영이 자란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영이 마른 사람은 작은 충격에도 넘어간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우유처럼 삼키기 쉬운 말씀만 줄 것이 아니라, 영을 강하게 하고 귀신과 싸울 수 있게 하는 단단한 양식도 공급해야 한다. 성도는 말씀을 씹고 순종함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감람유와 마찬가지로 떡을 만드는 재료 역시 백성이 드린 곡식에서 나왔고(레 24:8, 민 7:13), 레위인들이 진설병을 준비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도왔다. 말씀 사역 역시 한 사람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십일조와 첫 열매(初實, firstfruits)와 헌신을 드리고, 여러 일꾼이 봉사하며, 말씀을 맡은 종이 연구하여 생명의 떡을 진설한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열두 지파와 같은 교회 전체가 배불리 먹고 거룩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등잔대와 떡상 사이에 있던 &amp;#39;분향단&amp;#39;이 이 제사장의 단체적 규례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은 데에도 의미가 있다. 기도는 제사장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기도 제목을 맡기고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 태도는 옳지 않다. 성도도 먼저 자기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하며, 결정적인 싸움의 때에 주의 종과 함께 중보해야 한다. 빛과 말씀을 맡은 종의 책임이 특별하지만, 기도에는 온 성도가 참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은 공동체의 성결을 어떻게 지켰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제 레위기 24장의 후반부는 &lt;strong&gt;성막 밖에서 지켜야 할, 일반 백성의 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2가지가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사건은 신성모독에 대한 처벌&lt;/strong&gt;이다. 이스라엘 여인 슬로밋과 애굽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한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했다. 그의 어머니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다(레 24:10-11). 이 사건은 가정에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신다(출 20:7). 삶이 아무리 어렵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도 &amp;ldquo;하나님이 어디 있느냐&amp;rdquo;라고 대들거나 그 이름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저주하면 마음이 강퍅해져 주님께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독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의 머리에 안수한 뒤 온 회중이 돌로 치라고 하셨다. &lt;strong&gt;본토인이든 거류민이든&lt;/strong&gt; 같은 법을 적용했다(레 24:14-16). 한 사람의 범죄를 온 공동체가 함께 처리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경고를 받고 같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막 밖에서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군 복무 중 교회에 가는 것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매일 직면해야 했다. 고참들이 저녁마다 필자를 무 저장창고로 불러내어 구타를 하였다. 그러므로 밤 12시경, 고참들에 의해 불려 갈 때마다 손과 발이 떨리는 두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의심하거나 주님께 대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이며, 이 시간을 통하여 내가 주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변함없는 신앙의 정절을 보시고 오늘날에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규례는 동해보복법의 준수&lt;/strong&gt;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짐승을 죽인 자는 짐승으로 갚으며, 이웃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그가 행한 것과 같은 정도로 갚게 했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게 한 것이다(레 24:17-22). 여기에서도 거류민과 본토인에게 동일한 법을 적용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법의 목적은 복수를 부추기는 데 있지 않았다.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마음대로 때리고 빼앗지 못하도록 형벌의 한계를 정하고 공의를 세우는 데 있었다. 지위와 힘이 있는 사람도 자신이 가한 만큼의 책임을 져야 했기에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동일한 해에는 동일한 보상이 따르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질서와 약자의 생명을 보호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수님의 원수 사랑은 보복의 악순환을 어떻게 끝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동해보복법은 죄를 억제하고 공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죄악 된 인간은 한 번 당하면 같은 만큼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크게 보복하려 한다. 그러면 상대편도 다시 보복하고, 두 집안과 두 공동체의 원한이 세대를 이어 간다. 서로 원수가 된 두 가문의 자녀가 사랑했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처럼, 보복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결국 모두를 파괴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이 악순환을 끝내는 길을 가르치셨다. &amp;ldquo;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amp;rdquo;는 말을 들었으나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마 5:38-44).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응답할 때 원한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그 길을 걸으셨다. 죄 없는 분이 죄인들의 보복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셨다(눅 23:34).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셨지만, 그 형벌을 독생자에게 담당하게 하심으로 원수를 자녀로 받아들이는 길을 여셨다. 예수님의 희생이 보복의 사슬을 끊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우자가 상처를 주었다고 똑같이 상처를 돌려주거나, 가족이 나를 무시했다고 더 심한 말로 갚아서는 안 된다. 내가 희생하고 용서함으로 그 자리에서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이는 불의를 선이라고 부르라는 뜻이 아니다. 공의로운 질서를 세우되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를 내려놓고, 회개할 기회를 주며,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원수 사랑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세상의 공동체는 편을 가르고 배척하지만, 교회는 회개한 자를 용서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직분과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공의를 지키면서도, 잘못한 이를 파멸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회복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의와 사랑이 십자가 안에서 만날 때 공동체는 세상과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안식년은 희년을 향해 땅&amp;middot;몸&amp;middot;재물의 주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곻 이어지는 &lt;strong&gt;레위기 25장의 안식년은 이스라엘 온 민족이 함께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대표적인 명령&lt;/strong&gt;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육 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하여 여호와께 안식하게 해야 했다. 밭에 파종하지 않고 포도원을 가지치지 않으며, 저절로 난 것을 자기 소유로 거두어들이지 말아야 했다(레 25: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안식년이 되다고 할지라도 먹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해에 떨어진 씨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과 손대지 않은 포도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땅 주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땅에서 나오는 것은 주인을 비롯하여, 그의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도 다 같이 먹을 수 있었고,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었다(레 25:6-7). 주인도 먹을 수 있지만 여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먹었다. 누구도 그 소출을 독점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년을 꼭 지키어, 그 해에는 땅을 쉬게 하라고 하신 것일까? 그리고 그 땅의 소산은 누구나 먹게 하신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규례의 핵심은 &lt;strong&gt;&amp;ldquo;땅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amp;rdquo;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에 있다(레 25:23)&lt;/strong&gt;.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주셨지만, 소유권까지 넘겨 주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사람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lt;/strong&gt;다. 육 년 동안 경작하면서 자기 땅으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일곱째 해마다 경작을 멈추고 원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셨던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23&amp;nbsp;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안식년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자기 땅을 놀리고 다른 사람이 그 소출을 먹게 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아(B.C.1399~1391년) 그땅에서 쫓겨나던 날까지(B.C.586년) 약 813~805년간 계속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땅에서 뽑아 바벨론으로 보내셨고, 그들이 떠난 동안 땅이 70년의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대하 36:20-21). 온 백성이 함께 지켜야 할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에 온 민족이 함께 포로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땅을 더럽혔기에 땅이 그 주민을 토해 낸 것이다(레 18:24-25). 둘째, 그들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옮겨 그 땅이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70년 동안 땅을 비우게 하여 밀린 안식을 되찾으시고, 가나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나타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의 몸(육체)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지으셨다(창 2:7). 필자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사람의 육체라는 땅에 악한 영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실은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는 일이다. 그러나 악한 영은 죄를 통하여 합법적인 근거로 들어오므로, 사람이 악한 영을 추방하려면 죄를 회개한 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쫓아내야 한다. 축사는 내 몸이 귀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하고 주님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행위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귀신이 나간 뒤에는 자기의 몸을 다시 쾌락만을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 의의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롬 6:13, 12:1). 원래 내 몸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주어진 시간과 건강, 지혜와 재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며 성도를 살리는 데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 실제 봉사와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드리는 십일조와 첫 열매도 이와 같은 주권적인 고백에 해당한다. 모든 소득과 소출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처음 것과 십분의 일을 먼저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레 27:30). 십일조는 단지 번 돈의 일부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시간과 재능과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를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흐리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면제년과 연결되고 마침내 희년의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간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며, 종을 놓아주고, 잃었던 기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그 방향이다. 이번 본문에서는 먼저 안식년의 원리를 분명히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희년의 회복을 준비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정결법과 성결법의 차이, 회개와 말씀의 조명,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 성막 밖의 신성모독과 동해보복법, 예수님의 원수 사랑, 그리고 안식년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을 살펴보았다. 레위기의 성결은 개인이 마음으로만 거룩해지는 일이 아니다. 제사장과 백성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토지와 재물까지 함께 하나님께 구별되어야 하는 단체적인 성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하면 말씀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린다. 말씀을 맡은 종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성령의 불을 밝히며, 매주 신선한 생명의 떡을 준비해야 한다. 성도는 순결한 기름과 곡식을 가져오듯 자신의 은사와 시간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준비된 양식을 잘 먹어야 한다. 그렇게 제사장과 백성이 함께 충성할 때 교회 전체가 세상의 빛이 되고 환난을 이기는 강한 공동체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막 밖에서도 거룩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않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짓밟지 못하도록 공의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같은 해로 보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끝내셨듯이, 우리도 용서와 희생으로 가정과 교회의 원한을 끊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로 보내고 땅이 70년 동안 쉬게 하셨다. 우리의 몸도 흙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며, 재물과 시간과 재능도 주님에게서 왔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을 쫓아내며, 몸을 의의 무기로 드리고, 십일조와 첫 열매와 봉사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혼자만 거룩해지려 하지 말고 공동체가 함께 성결해져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성령의 불을 밝히며, 함께 말씀을 먹고, 함께 공의를 지키며,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와 성령과 생명의 말씀으로 교회를 밝히고 몸과 재물과 모든 기업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봉헌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4장과 25장을 바탕으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의 중요성과 그 영적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관리하는 제사장의 직무가 성령의 역사와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여&amp;nbsp;&lt;strong&gt;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유지&lt;/strong&gt;하는 핵심 사역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막 밖의 신성모독 처벌과 안식년 제도를 통해 모든 삶의 터전과 인간의 육체가 본래&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소유&lt;/strong&gt;임을 인정하는 것이 성결의 본질임을 설명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를 통해 영적 통찰력을 얻어야만 성경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으며, 성도는 이러한 구별된 삶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이 모든 규례는 인간이 탐욕을 내려놓고 창조주께 온전히 복종함으로써&amp;nbsp;&lt;strong&gt;하늘의 복과 구원&lt;/strong&gt;에 참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설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hatGPT Image 2026년 9월 10일 오후 04_46_3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15fb7b048e000f197bda1d568c65689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7207f2be18a6d51db0f639d061e9a1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df354fd419560f45cdd53b86350159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a8b3c370f017fc4598838a73cdeee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Collective_Holines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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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0f422188c26c19c8f917ac7cbe146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19782426c3146c5a36320b7816b551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0c4748cbf6f89ae27e6f808847679e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06654c1ae4c2f0e92081ac7be208dc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21a2c01762dfc9ad844249e2a52377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646c3d22d32c6ccf6365caceceaf9e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98d933c6eb7ddf5ef1f47acceafbe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44cd644576156e4231b5790b4d41e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7d6ee592ff51e10a55a572ca20fd76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84419f015634feb26b31fa9b6df34e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0)] The_Holines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31/266/5b97c2a11ffc0d77694338932c49b01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강해</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단체적성결</category><category>안식년</category><category>희년</category><category>성막</category><category>회개</category><category>성령충만</category><category>공동체</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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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6131#comment</comments>			<pubDate>Wed, 09 Sep 2026 23:25:44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레23:1~44)_2026-09-02(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5684</link>
				<description>&lt;p&gt;2026-09-02(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9)] 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KSO35POlV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KSO35POlV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6)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 가을 절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과 어린양의 혼인잔치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받아 주시고, 받아 주신 백성을 어떻게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드시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다. 대부분의 성도는 예수를 믿어 속죄받고 구원(救援, salvation)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그러나 속죄(贖罪, atonement)는 신앙의 끝이 아니라 출발이다. 속죄를 통해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고 중생(重生, regeneration)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은 계속 정결해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의 핵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서의 구성을 보면, 제1장부터 제10장까지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제사와 제사장 직무를 다루는 속죄법을 다루고 있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부정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법을 다룬다. 그리고 제18장부터 제27장까지는 거룩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성결법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제23장은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통하여 온 회중이 함께 거룩해지는 단체적인 성결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결례에는 절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지나간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면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예표라 할 수 있다. 고로 봄의 네 절기는 초림(初臨, first coming)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復活, resurrection)과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야 한다.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실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과 성도들의 소집, 그리고 지상 강림과 아마겟돈 전쟁을 통한 악한 자들의 청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해석하는 중요한 기준은 2가지다. 하나는 절기를 포함한 의식법 전체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것이며(요 5:39, 눅 24:44), 또 하나는 절기가 개인적인 경건 행위가 아니라 단체적인 성결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중절기 가운데 가을의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팔절에는 회중을 모으고, 속죄일에는 성소와 백성을 깨끗하게 하며, 초막절에는 추수를 마친 온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 아래 함께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구원도 혼자만 살아남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익은 곡식들이 함께 소집되고, 그리스도의 군대로 악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장막에서 함께 안식하는 사건으로 연결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 안에서 어떻게 배열되는가? 안식일은 왜 절기 목록에 포함되며,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봄과 가을의 일곱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와 레위기의 배열, 절기와 안식일이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 이유, 절기의 안식일과 주일 예배의 관계, 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성취된 과정,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가 보여 주는 구원의 추수,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의 가을 절기 해석, 그리고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는 이를 어떻게 배열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레위기는 이를 어떻게 배치하고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속죄(贖罪, atonement)란 깨끗한 피로 죄값을 처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lt;/strong&gt;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희생에 근거한다(히 9:12; 10:10-14). 그러나 속죄받았다고 해서 몸과 마음과 생활에 묻은 모든 부정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믿은 뒤에도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계속 깨끗해져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정결(淨潔, purification)은 물과 피를 통해 부정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과정&lt;/strong&gt;이다. 레위기 제11장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제12장은 출산한 여인의 정결을,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환자와 집의 정결을, 제15장은 유출병의 정결을 다룬다. 제16장의 대속죄일도 이 정결법 안에 들어 있다. 대속죄일에는 백성의 속죄만 행한 것이 아니라 피를 지성소와 회막과 분향단에 뿌리고 발라 성막의 기구와 제단을 정결하게 했다(레 16:16-20, 33). 이 의식은 장차 하늘의 지성소를 청소하고 정결하게 하는 일을 예표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레위기에서 발견하는 중요한 열쇠다. 대속죄일 제사에는 속죄가 포함되지만 초점은 더럽혀진 성소와 제단과 회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 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가을 절기의 속죄일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가 다시 반복되는 날처럼 잘못 풀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유월절에 단번에 이루어졌고, 가을 속죄일의 예표는 마지막 때 악을 제거하고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는 일로 풀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성결(聖潔, holiness)은 깨끗해진 사람이 행위와 생활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lt;/strong&gt;이다.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성적인 부정과 몰렉 숭배와 무당을 멀리하라는 개인적 성결을 가르친다.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의 결혼과 장례와 제물에 관한 성결을 다룬다. 제23장과 제25장은 온 민족이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을 함께 지키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이해할 때에는 속죄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정결로 더러움을 씻으며, 성결로 구별된 삶을 사는 순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절기와 안식일은 왜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제23장의 절기는 개인이 편리한 때에 혼자 지키는 행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온 회중이 성회로 모여 함께 예배하고 쉬며 제물을 드리는 &amp;#39;거룩한 소집&amp;#39;(성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기 목록의 첫머리에 매주 지키는 안식일까지 포함하셨다(레 23:1-3).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간의 절기이고, 일곱 절기는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연중절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결례에는 개인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이 같이 있다. 그러므로 성결은 혼자 죄를 짓지 않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공동체 전체에 임한다. 그래서 말세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따르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 10:24-25). 개인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모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해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 세 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다(출 23:14-17; 34:22-23). 고로 온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고, 예루살렘에 마련된 각 지역에서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 회당에 가서 말씀을 배웠다. 오순절에도 여러 나라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기에,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과 방언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행 2:1-11, 37-42). 단체적인 절기 소집이 초대교회 탄생의 현장이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처음으로 탄생한 예루살렘 교회는 본토의 히브리파 유대인과 이방 지역에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2사도들은 전부 다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그러자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는 문제로 인해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워 공동체를 섬기게 했는데(행 6:1-6), 이때 세워진 집사들은 전부 다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해소되었다.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렇듯 갈등도 나타나지만, 그 문제를 말씀과 성령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더욱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체적인 성결례의 실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절기의 안식일은 왜 그림자이며 주일 예배와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로 지키라고 명한 안식일에는 사실 두 개의 층위가 있다. 그것은 그것이 도덕법인 십계명에도 속해 있고(출 20:8-11), 의식법인 절기법에도 속해 있다는 것이다(레 23: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 명령(출 20:8-11)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쉼을 누리라는 도덕적 뜻을 지닌다(출 20:8-11). 그러나 레위기 제23장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 준수 명령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절기법에 포함되어 있다. 예표란 실체가 오기 전까지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델하우스가 실제 집이 완성되기까지 집의 모습을 보여 주듯이, 절기는 그리스도께서 주실 참 안식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가 오면 모형은 없어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 자신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안식을 주는 분이라고 선포하셨다(마 11:28-29; 12:8).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짐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날짜 자체를 구원의 조건으로 붙들 것이 아니라 실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절기와 초하루와 안식일이 장래 일의 그림자이고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인 안식일을 붙들 것이 아니라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말한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전부 다 유대인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안식일에 모였다. 그러나 점차 이방인 성도가 많아지고 이방인 교회가 세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수께서 주간의 첫날 부활하신 사실을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주일에 예배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요 20:1, 19; 행 20:7; 고전 16:2). 그러다가 주후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한 뒤에는 주일 예배가 사회적으로도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태양신 문화가 섞여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가 붙드는 실체는 태양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안식일이나 주일을 이유로 서로간에 정죄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지만, 각자 주를 위하여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롬 14:5-6). 지하철 기관사와 소방관처럼 주일 근무가 필요한 사람은 맡은 일을 버려 가족을 굶게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다른 시간에 예배해야 한다. 날이 주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의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안식일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함께 지키는 자신들만이 마지막에 남은 자라고 주장하며 주일 예배를 짐승의 표와 연결한다(계 12:17). 그러나 안식일을 절대적인 구원 조건으로 삼으려면, 초하루와 나팔절과 초막절 같은 다른 절기법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할례도 받아야 한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안식교인 가운데도 구원받은 사람이 적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교리는 천국에서 받을 상을 크게 잃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지옥 간다고 단정하지는 않되 그림자와 실체를 분명히 구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봄의 네 절기는 초림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먼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간의 절기로서 안식일이 있다. 그리고 연중 절기로서 일곱 절기들이 있다. 그중에서 봄 절기는 4가지로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이 있다(레 23:4-21). 유월절은 첫째 달 열나흗날이고, 무교절은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이어진다. 초실절에는 안식일 이튿날 첫 보리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드리고, 칠칠절은 일곱 안식일을 채운 뒤 오십 일째 되는 날 지킨다(레 23:5-21). 이 네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으로 차례대로 성취되었다. 자, 이제는 조금씩 그 세부사항을 살펴보자.&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유월절(1.14)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속죄를 예표&lt;/strong&gt;한다. 애굽의 장자가 죽임당할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심판이 넘어갔다.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셨다(출 12장; 요 1:29).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고 선언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무교절(1.15-21)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묻혀 정결을 이루신 기간을 보여 준다&lt;/strong&gt;. 누룩은 부패와 죄를 상징하므로 무교병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전 5: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초실절(1.17)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lt;/strong&gt;. 첫 보리 이삭 한 단이 전체 추수의 시작을 알리듯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칠칠절(약3.5) 곧 오순절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신 사건으로 성취되었다&lt;/strong&gt;(행 2:1-4, 33). 이때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흔들어 드렸는데, 이는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각각 불완전함을 지녔어도 성령 안에서 한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여 준다(레 23: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유월절 어린양으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구속을 보며, 초실절의 첫 열매로는 그분의 부활 생명과 장차 있을 성도의 부활을 본다. 예수께서는 동물의 희생과 식물의 첫 열매라는 두 상징을 모두 성취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는 구원의 추수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렇듯 봄의 네 절기가 성취된 뒤에는 약 &lt;strong&gt;넉 달 동안 농사(3-6월)&lt;/strong&gt;가 계속된다(요 4:35). 초실절(1.17)에 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주님께 드림으로 추수가 시작되고, 칠칠절(약3.5)에 보리 추수가 마무리되면서 밀 추수가 이어진다. 여름 동안 밀과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 열매가 익고, 일곱째 달 초막절(7.15-22) 무렵 모든 토지 소산을 거두어 저장한다(레 23:39). 그러므로 이 넉 달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재림 직전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구원 추수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른다고 말하지 말고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다.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요 4:35-38).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복음의 씨를 뿌리고 익은 영혼을 거두어 오셨다. 지금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계속되는 추수의 때다(롬 11:25). 봄 절기와 가을 절기 사이의 긴 공백은 교회가 복음을 전해 알곡을 준비하는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첫 절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 일곱째 달 첫날에 지키는 나팔절(7.1)&lt;/strong&gt;이 있다. 이스라엘은 양이나 염소의 뿔로 만든 쇼파르를 불어 새해를 알리고 회중을 소집한다(레 23:23-25). 나팔은 사람들을 모으고 진영을 출발시키며 전쟁에 나아가게 하는 신호였다(민 10:1-10).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지키며 다가올 속죄일을 준비해 회개하도록 서로를 깨운다. 나팔절은 흩어진 백성을 한데 모으는 절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일곱째 달 열흘의 속죄일(7.10)&lt;/strong&gt;이다. 이 날에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며 성회로 모인다(레 23:26-32). 성전이 없는 오늘날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릴 수 없으므로 금식과 회개로 이 날을 지킨다. 그러나 레위기 제16장이 보여 주듯이 대속죄일의 초점은 이미 속죄받은 공동체와 성소를 피로 정결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가을 속죄일은 유월절의 십자가를 반복하는 절기가 아니라 마지막 때 악을 청소하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예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지키는 초막절(7.15-22)&lt;/strong&gt;이다. 이때는 첫날부터 일곱 날을 지킨 뒤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인다(레 23:33-36, 39). 토지 소산을 모두 거두어 저장했기 때문에 &amp;#39;수장절&amp;#39;이라고도 하고(출 23:16; 34:22), 광야에서 초막에 살던 구속의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amp;#39;초막절&amp;#39;(레 23:15) 또는 &amp;#39;장막절&amp;#39;(출 19:2)이라고도 한다. 창조의 열매를 감사하는 &amp;#39;수장절&amp;#39;과 애굽에서 구출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amp;#39;초막절&amp;#39;의 두 의미가 한 절기 안에 합쳐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아름다운 나무의 열매인 에트로그와 종려나무 가지인 룰라브, 무성한 나무인 하다스, 시내 버들인 아라바를 취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였다(레 23:40). 그들은 집 마당과 지붕과 광장에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거주했으며, 지붕 사이로 별이 보이도록 초막을 덮었다. 밤에는 자녀들과 별을 보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가르쳤다. 초막절은 추수를 마친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뻐하는 큰 축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lt;strong&gt; 가을에 지키는 이 세 절기는 추수의 마지막 순서&lt;/strong&gt;를 보여 준다. 나팔절에는 익은 알곡을 소집하고, 속죄일에는 악한 세력을 제거하여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며, 초막절에는 거두어진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가 잔치를 누린다. 따라서 가을 절기를 민족적 달력의 반복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봄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구원이 교회의 넉 달 추수를 지나 마지막에 완성되는 시간표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절기의 핵심은 안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주간의 안식일도 안식하는 날이요, 일곱 절기에도 일곱 개의 안식일(절기의 안식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백성이 쉬라는 안식 명령이 없는데, 이는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안식을 마련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고 하신 예수께서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쉰다(요 5:17). 그리고 초막절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히 4:9-11). 고로 봄부터 가을까지의 추수는 죄인을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가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救援經綸)이라고 말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는 가을 절기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교회사를 살펴보면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1800년대 초기 세대주의자들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봄의 절기보다 가을의 절기를 일관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초기 교부 이레네우스(A.D.130년경-202년)&lt;/strong&gt;는 나팔절과 속죄일에 뚜렷한 종말론적 대응을 제시하지 않았고, 초막절을 장차 올 지상 왕국과 연결했다. 그리고 &lt;strong&gt;오리게네스(A.D.185년경-253년경)&lt;/strong&gt;는 나팔절을 영적인 교훈으로, 속죄일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으로, 초막절을 알레고리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lt;strong&gt;아우구스티누스(A.D.354-430)&lt;/strong&gt;도 나팔절의 시간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속죄일을 단지 그리스도의 속죄라고 했고, 초막절을 광야 같은 교회 생활로 이해했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지는 종교개혁자들도 가을의 세 절기를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연속된 사역으로 풀지는 못했다. &lt;strong&gt;칼빈(A.D.1509‑1564)&lt;/strong&gt;은 나팔절을 회개와 소집, 속죄일을 속죄와 회개, 초막절을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와 안식의 기념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해석에는 부분적인 통찰이 있지만, 유월절부터 초막절까지 일곱 절기 전체를 초림과 재림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시간표로 연결하지는 못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오랫동안 레위기를 연구하고 천국에서 확인한 상황과 대조하며 이 문제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초대교회 교부와 종교개혁자와 현대 신학자의 해석을 폭넓게 조사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자료를 신속하게 찾아 비교해 주는 유익한 비서이기는 하지만, 기존 자료에 없는 영적인 깨달음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성령의 조명을 대신하지 못한다. 때로는 사용자가 원하는 답을 맞추려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만들어 내므로 반드시 원자료와 성경으로 재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19세기의 존 넬슨 다비(A.D.1800-1882)&lt;/strong&gt;는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는 길을 새롭게 열었다. 그는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는 데서 출발해 봄 절기를 초림의 사건으로 체계화했고, 그의 세대주의는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통해 널리 퍼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앞선 시대에 없던 성경의 연결을 시도했다는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인류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고,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원 경륜을 지나치게 분리하면서 많은 오류도 낳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초기 세대주의를 열었던 존 넬슨 다비였지만 가을의 절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중심적으로 풀었다. 즉 나팔절을 흩어진 이스라엘의 민족적 재소집으로, 속죄일을 환난 중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회개로, 초막절을 회복된 이스라엘과 왕국의 기쁨으로 풀었다. 그는 나팔절을 비롯한 가을의 절기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하지는 못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lt;strong&gt;후기 세대주의&lt;/strong&gt;가 되면서, 가을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연결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후기 세대주의자들은 나팔절을 교회의 휴거로, 속죄일은 지상의 칠 년 환난으로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개 기간으로, 교회는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특히 속죄일은 유대인들의 회개로 풀었으니, 그때에 비로소 유대인들이 새 성전을 다시 짓고 제사를 드리다가 전 삼 년 반 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깨닫고, 후 삼 년 반 동안 큰 환난을 통과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7년 대환난 전에 이방인 교회는 휴거(携擧, rapture)되어 공중에 있고, 지상에서만 이스라엘이 구원되는 별도의 경륜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막절은 환난을 통과한 유대인들이 드디어 천년왕국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어 온 세계를 하나님께 인도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알고 있는 환난 전 휴거와 지상 천년왕국의 구도가 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다른 구원의 길을 걷지 않는다. 육신의 혈통이 유대인이라고 자동으로 우월한 자리를 얻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나 무당의 후손이라고 뒤로 밀리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한 새 사람과 한 몸을 이룬다(엡 2:14-18). 지금은 혈통보다 누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끝까지 충성하는가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세대주의가 일곱 절기를 그리스도와 종말의 시간표로 바라보게 했던 공헌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세대주의가 이스라엘과 교회를 끝까지 두 구원 집단으로 나누는 틀은 결코 따르지 말아야 한다. 봄의 절기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한 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듯이, 가을의 절기도 한 교회와 한 성도를 소집하고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장막으로 인도하는 재림의 사건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그리스도 중심으로 볼 때 가을의 세 절기는 무엇을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그것은 최소 두 가지다. 첫째, 봄의 네 절기가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으므로 가을의 세 절기도 재림하실 그리스도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의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이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그분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둘째, 레위기 제23장의 절기는 온 회중이 함께 거룩해지는 단체적인 성결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세 절기를 해석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 기준을 함께 붙들어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을 제대로 풀 수가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 그렇다면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푼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가? 필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과 익은 곡식의 휴거를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은 가장 기본적으로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시키기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은 나팔 둘을 만들어 회중을 모으고 전쟁에 나아갈 때 불었다(민 10:2-9). 마지막 때에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터인데, 그때에 &amp;#39;큰 나팔&amp;#39;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신다고 하셨다(마 24:30-3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amp;#39;하나님의 나팔&amp;#39; 소리로 하늘에서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주를 영접한다고 했다(살전 4:16-17). 또한 &amp;#39;마지막 나팔&amp;#39;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성도들이 변화된다(고전 15:51-52).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amp;#39;일곱째 나팔&amp;#39; 때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하였다(계 11: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곡식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요한계시록 제14장을 보면,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둘 때 추수할 곡식은 충분히 익어 있는 곡식뿐이었다(계 14:14-16). 고로 나팔절의 소집에 참여하는 사람은 회개로 정결해지고 믿음이 익은 알곡들임을 알 수 있다. 아직 익지 않은 곡식과 쭉정이는 땅에 남아 환난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를 날짜 계산으로만 기다리지 말고 오늘 회개하여 익은 곡식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나팔절의 소집에는 전쟁의 목적도 있었다. 민수기의 나팔은 진영을 출발시키고 대적을 치러 나갈 때 울렸다(민 10:5-9). 공중으로 올라간 성도는 자기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주님의 군대로 준비되기 위해 올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어 지상으로 강림하여 악한 세력을 심판하실 때에 그분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가 함께 내려올 것이다(계 19:11-14). 나팔은 혼인 잔치의 초청이자, 마지막 전쟁을 위한 군대의 소집의 나팔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과 아마겟돈 심판을 통한 단체적인 정결을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유월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인류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으므로 속죄일에 그분이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 특히 레위기 제16장을 보면, 대속죄일의 피가 성소와 제단에 발라져 그곳에 쌓인 부정을 청소했듯이,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땅을 더럽힌 사탄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악한 군대를 제거하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요한계시록 제19장은 백마를 타신 충신과 진실로 오신 예수께서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때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군대가 예수님과 싸우려고 모이지만,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사탄마귀가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 19:11-21). 필자는 이 아마겟돈 전쟁과 요한계시록 제20장의 곡과 마곡 전쟁을 같은 마지막 전쟁으로 본다(계 20:7-10). 이 전쟁을 통해 악의 무리가 청소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그 날의 청소에 참여하기 전에 지금 자기 안의 악한 영부터 내보내야 한다. 회개로 죄를 자백하면 악한 영이 붙들 근거가 제거되고, 예수 이름으로 그 영들을 쫓아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정결해질수록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마지막 전쟁에서 주님의 군사로 쓰임받을 준비가 이루어진다. 속죄일을 단순히 과거의 죄 사함으로만 보지 말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함께 악을 제거하는 단체적인 성결의 날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초막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베풀어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다.&lt;/strong&gt; 초막절에는 모든 추수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동한 이기는 알곡 백성이 하나님의 장막 아래 모이는 날이다. 요한계시록은 보좌에 계신 이가 구원받은 무리 위에 장막을 치시며,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계 7:15; 21:3). 고로 광야의 임시 초막은 장차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처소를 보여 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펼쳐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계 19:6-9). 특별히 이 잔치는 간신히 천국 문턱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누리는 잔치 자리가 아니다. 오직 회개와 충성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한 이기는 자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리이다. 고로 초막절을 설명할 때에는 지상에서 다시 동물 제사를 드리는 민족적인 천년왕국의 생활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가 함께 누리는 추수 잔치로 풀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렇게 가을의 세 절기는 하나의 연속된 재림 시간표를 이룬다&lt;/strong&gt;. 일곱째 달 첫날 나팔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여 익은 성도를 나팔로 소집하신다. 열흘째 속죄일에는 그들과 함께 지상으로 강림하여 아마겟돈에서 악한 세력을 제거하고 땅을 정결하게 하신다. 열닷샛날 시작되는 초막절에는 추수가 끝난 백성을 하나님의 장막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인도하신다. 소집, 정결, 안식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날마다 회개하여 몸과 마음에서 악한 영을 내보내고, 말씀과 기도로 익은 알곡이 되어야 한다. 혼자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도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찬에 참여하며 공동체적인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할 때 공중 강림의 나팔 소리에 소집되고, 주님의 군사로 악을 무찌르며, 마침내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와 레위기의 배열, 절기와 안식일이 단체적인 성결례가 되는 이유, 절기의 안식일과 주일 예배의 관계, 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성취된 과정, 넉 달 농사와 가을의 세 절기가 보여 주는 구원의 추수, 교회 전통과 세대주의의 해석, 그리고 가을의 세 절기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푸는 원리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이루어졌지만 정결과 성결은 믿은 뒤에도 계속 이루어 가야 한다. 대속죄일이 정결법 안에 놓인 사실은 가을 속죄일의 비밀을 여는 열쇠다. 가을 속죄일은 십자가의 반복이 아니라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악을 제거하여 공동체를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봄 절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 넉 달 동안 교회의 추수가 계속된 뒤 가을 절기에는 나팔절의 공중 소집, 속죄일의 지상 심판과 정결, 초막절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안식이 이어질 것이다. 절기의 모든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우리는 날이나 혈통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지 말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동시에 모이기를 힘쓰며 단체적인 성결에 참여하고, 철저한 회개로 악한 영을 내보내며, 다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 익은 알곡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나팔소리에 함께 소집되고 주님의 군사로 악을 이기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02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3장의 절기법을&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lt;/strong&gt;이자&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며, 구약의 절기가 신약의 구속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의 봄 절기를&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초림&lt;/strong&gt;으로 보고, 나팔절부터 초막절까지의 가을 절기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천국 혼인 잔치&lt;/strong&gt;라는 종말론적 성취로 연결합니다. 특히 대속죄일을 단순한 속죄가 아닌 아마겟돈전쟁으로 &lt;strong&gt;우주를&amp;nbsp;정결케 하는 행위&lt;/strong&gt;로 정의하며,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amp;nbsp;&lt;strong&gt;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lt;/strong&gt;을 동시에 이루어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인공지능 등 현대적 도구를 활용하여 기존 신학적 한계를 보완하고,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알곡 신앙&lt;/strong&gt;을 갖추어 영원한 안식인 천국에 입성하도록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lt;strong&gt;제목: 이스라엘의 7절기에 대한 그리스도 예표론적 성경해석&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rong&gt;1. 봄의 절기&lt;/strong&gt;&lt;br /&gt; 1)유월절(1.14): 그리스도의 죽음(속죄)(고전5:7)&lt;br /&gt; 2)무교절(1.15-21): 그리스도의 묻히심(죄를 정결케 함)(고전 5:8)&lt;br /&gt; 3)초실절(1.17): 그리스도의 부활(고전15:20)&lt;br /&gt; 4)오순절(칠칠절)(3.5): 그리스도의 성령보내심(고전15:45, 행2:1-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중간: 넉달농사&lt;/strong&gt;(3-6월)(요4:35): 교회의 추수기간(이방인의 충만한 때)(롬11:2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2. 가을의 절기&lt;/strong&gt;&lt;br /&gt; 5)나팔절(7.1):그리스도의 공중재림(알곡성도의 휴거)(마 24:30-31, 살전4:16-17, 고전15:51-53, 계11:15, 계14:14-16)&lt;br /&gt; 6)속죄일(7.10):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단체적인 정결례(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계19:11-21, 계20:7-10)&lt;br /&gt; 7)초막절(장막절,수장절)(7.15-22): 그리스도의 추수잔치(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치르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계7:15, 19:6-9, 21:3)&lt;br /&gt; &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ChatGPT Image 2026년 9월 3일 오전 12_22_3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429bdb285aac00533043dea0e2a46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247b64e062a08e8502724f3bd6769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6127fb58ad1bf75346d2fa5a00e8d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538bed655ebb4c987f09c706c1fc7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04ff4a37fe401030d141b810652747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ae06e6c80a6afc2277deefb0c345f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ee6daf83a36c328087cc609381cda1b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403b7872044625d9fbb4852a3c3cbf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d47919f63c2c5cc6eab84dc94d805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811ef9310c823d5ef1b57f52e0c52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38033978e01e3c0ff66674b2e93cc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db974b8fe7171b65e26f1637283d5e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7211165c356274ee013d80339e32e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1e926d236d1d6c2a2e6fea942ceaa8f.webp&quot; /&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Divine_Redemption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76b1359b173e850148de4785deaa7d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9c1f964187a3a6c5d0a4690d15ef7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01c4b35535cb16127be3cc41eb8c0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b4feca118a9bbbba046c0d789082bd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99e947c747c5d248d8d2364d8467a9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a7dea8b94b495516d7b0eec3794cd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dc31acb5e6fae8adeda43ec38b2bb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5da08a4808495fd83fe456f333de8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3e9d85b7b53eee484d9299ff327fe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47d96602ca6ea76e91575d1477d73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f0eea11307e14e46b8d51506432991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2048cd792bc5b5160c36305afb9bef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e5e45c85b6302f3e70e8014413742f5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Architecture_of_the_Fall_Feast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0b2f4544f96ee5bea967d083e094d02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af110cfe5dd046bb87c9f1bc1e0e22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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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7a0bdea97644e57038bca89fd52fd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78657d1b20ae027cdd32b8b61818a6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54cbde102d50df25d469e2d7a28c2e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ee079893f13da1b5a04d695cf02d0d3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d729ee0e464fe65d6fa8b4975e46fb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23장의 가을절기해석] The_Fall_Feasts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ae56c5175b32a731d3c9dc952a8bdc9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13589231ee7ec255060ac51b0f048f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04b89563a5af04d21e2e1ff473c036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cd60338c7a4356debb892ec75c99b7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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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9ae5131bd39e3110526f7c9f84740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3fa929c34c6d3fb23c48f6be7fe4bc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1497eb257b213ab2bd4632866e660c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84/265/6f33b43d81ffe49bfacbb0460f19b6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9)] The_Holy_Blueprint_of_Christ’s_Return.pdf_1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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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강해</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절기</category><category>그리스도</category><category>재림</category><category>속죄</category><category>정결</category><category>성결</category><category>안식일</category><category>주일예배</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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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5684#comment</comments>			<pubDate>Wed, 02 Sep 2026 23:46:59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_2026-08-26(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5140</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6(수) 수요기도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Ru0vBbOTbY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u0vBbOTbY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질문 7가지 ]&lt;/strong&gt;&lt;br /&gt; &amp;nbsp; 1.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br /&gt; &amp;nbsp; 2.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br /&gt; &amp;nbsp; 3.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4.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br /&gt; &amp;nbsp; 5.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amp;nbsp; 6.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7.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어떻게 더러움에서 씻음을 받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짐승의 피를 중심으로 한 속죄(贖罪, atonement)의 법을, 11장부터 17장까지는 물로 씻는 일을 중심으로 한 정결(淨潔)의 법을, 18장부터 27장까지는 구별된 삶을 요구하는 성결(聖潔)의 법을 다룬다. 속죄가 죄를 덮고 용서받게 하는 일이라면, 정결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일이며,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결법 안에도 개인적인 성결법과 단체적인 성결법이 있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일반 백성이 지켜야 할 개인적 성결을, 21장과 22장은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을 다룬다. 이어지는 23장은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을,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공동체의 성결을 보여 준다. 거룩함은 혼자만의 경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누릴 때 공동체 전체가 거룩해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3장을 보면, 절기들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주간의 절기인 안식일과 일곱 번의 연중 절기가 나온다. 봄 절기에는 유월절&amp;middot;무교절&amp;middot;초실절&amp;middot;오순절이 들어있고, 가을 절기에는 나팔절&amp;middot;속죄일&amp;middot;초막절이 들어있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과 구원의 역사를 함께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분의 죄 없으심을, 초실절은 그분의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오순절은 생명 주는 성령의 강림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 절기가 주님의 초림(初臨, first coming)을 보여 주고 있다면,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과 연결된다고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레위기 23장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가지 질문에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절기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둘째, 초실절의 날짜를 결정하는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 셋째, 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왜 죄를 지닌 두 무리를 가리키는가? 넷째, 무엇보다 다른 절기에는 노동을 금하면서도 왜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그러한 명령이 없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절기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성결하게 하며, 일곱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고, 그 안에 담긴 안식과 교회와 구원의 비밀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 나타나 있는 세 개의 법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구원의 한 과정을 이루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속죄법&lt;/strong&gt;이 있다. 죄인은 누구나 먼저 피로 속죄받아야 한다. 그리고 &lt;strong&gt;둘째, 정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물로 씻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셋째, 성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는 짐승의 피가 중심인 &amp;#39;속죄법&amp;#39;, 물로 씻는 &amp;#39;정결법&amp;#39;, 말씀을 지켜 행하는 &amp;#39;성결법&amp;#39;이 이 순서로 놓여 있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속죄를 통하여 죄 사함만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생활과 성품까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깨끗하고 거룩해지려면 씻음과 순종의 성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백성에게 없었던 큰 은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 주는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영 속에 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는 하나님의 법을 밖에서만 듣게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결은 자기 힘으로 율법 조항을 붙드는 생활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라 구별되게 살아가는 생활이다. 그렇다고 성도의 순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깨우치실 때 자유의지로 그 말씀을 선택하고 뒤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결법이 있는데, &lt;strong&gt;성결법에는 다시 개인의 성결법과 공동체의 성결법으로&lt;/strong&gt; 나뉜다. 개인의 성결법은 레위기 18장부터 22장까지 나오는데, 그중에서 18장에서 20장까지는 음행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반 백성의 성결법이 나온다. 그리고 21장과 22장은 거룩한 직무를 맡은 제사장에게 더 엄격한 성별을 요구함을 본다. 그리고 23장에 이르면 시선이 이제는 온 회중에게로 넓어진다. 한 사람만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가 같은 날, 같은 사건, 같은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모여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주어진 성결법이 단체적인 성결법이다. 이러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레위기 23장과 25장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특별히 레위기 23장은 단체적인 성결법으로서 &amp;#39;안식일&amp;#39;과 &amp;#39;절기&amp;#39;를 다룬다. 이때 절기는 어떤 개인이 임의로 정하는 날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하는 날이다. 안식년과 희년도 어느 한 사람만 쉬고 빚을 면제해서는 그 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온 땅과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양심만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과 경제와 공동체의 관계까지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은 성결법의 부록이 아니다. 개인의 성결을 공동체의 성결로 확장하는 핵심 장이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개인들이 저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정한 때에 한 백성으로 모여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함께 누리게 하셨다. 이 질서를 통해 개인의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고, 공동체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서 반복되는 핵심 표현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amp;lsquo;성회&amp;rsquo;, 곧 거룩한 모임&lt;/strong&gt;이라는 단어인데, 무려 열한 번에 걸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절기들을 선포하시면서 그것들을 여호와의 &amp;#39;절기&amp;#39;(모에드=정한 때, 명절, 기한, 계절)요 &amp;#39;성회&amp;#39;(거룩한 소집)라고 말씀하셨다. 절기는 쉬는 날이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함께 모이는 날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이 깨끗하게 거룩해지는 데에 있어서 개인의 경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서라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죄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경건만으로 신앙의 전부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와 들어맞지 않는다. 한때 자기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중시하는 경건주의가 힘을 얻기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한몸 된 백성이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거룩함에는 개인적인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방면도 동시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단체적인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한 사람이 받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약한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에게 붙들리며,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배우게 된다. 유월절을 가정과 민족이 함께 지켰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마다 성회가 선포되었다. 함께 모이는 행위 자체가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자리에 자신을 두는 순종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이어진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고 서로 권하며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라고 권한다(히 10:24-25). 고로 오늘날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lt;strong&gt;주일예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단체적인 성결의 자리&lt;/strong&gt;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부득이한 형편이 아니라면 주일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혹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다면 그는 다른 예배의 자리라도 찾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기독교의 절기는 어떠한가? &lt;strong&gt;기독교의 절기&lt;/strong&gt;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공동체가 기억하게 하는 절기들이다. 그러한 절기에는 &lt;strong&gt;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lt;/strong&gt;이 있다. 이것들 중에서 성탄절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신 주님의 오심을, 사순절은 그분의 고난을, 부활절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성령강림절은 보혜사 성령의 오심을 기념한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도 있기는 있지만 이것들은 창조의 절기를 기념하는 것들이다. 이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은총을 감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 찬양하며 실제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혼자서는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면 믿음이 교정되고 굳세어진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거룩함뿐 아니라 한 몸의 거룩함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회는 신앙의 부차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는 통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는&lt;strong&gt;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과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 동시에 함께 등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은 엿새 동안 일한 뒤 맞는 일곱째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은 연중 절기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노동을 금하신 날을 가리킨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안식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실절의 날짜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시간표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일곱 절기들 가운데 &lt;strong&gt;노동을 쉬라는 명령&lt;/strong&gt;은 언제인가? 모두 &lt;strong&gt;일곱 번&lt;/strong&gt; 있다.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에 두 번, 오순절에 한 번, 나팔절에 한 번, 속죄일에 한 번,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 두 번이 있다(레 23:7-8, 21, 24-25, 27-32, 35-36).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일곱 종류인데 무교절과 초막절에는 각각 두 번씩 절기의 안식일이 있어서 일곱 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절기들 중에 &lt;strong&gt;안식일이 없는 절기&lt;/strong&gt;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lt;/strong&gt;이다. 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별도의 노동 금지 명령이 없다. 이를 잘 모르면 일곱 절기가 다 일곱 개의 절기의 안식일인 줄 착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절기들 가운데 무교절과 초막절은 하루만 지키는 절기가 아니라 일주일과 여드레를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절과 초막절은 첫날도 아무 노동하지 않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요, 마지막도 역시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일곱 절기들 모두를 다 안식일로 계산한다면 그날은 총 9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절기의 안식일은 9일이 아니라 7일이다. 그럼 어떤 절기가 절기의 안식일에서 빠져있는가? 그것은 바로, 유월절과 초실절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주간의 안식일이 되었든지 또한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는지 상관없이 &lt;strong&gt;안식일의 근본적인 뜻&lt;/strong&gt;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 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 그 일을 그치셨다는 데서 안식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창 2: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목적한 일들을 다 이루셨으므로 그 일을 그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기뻐하며 누리도록 시간을 주셨다. 그것이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이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하는 명령인 것이지 안식의 최종 목적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본질을 놓치면 안식일 규정이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억누르는 짐으로 변할 수 있다. 어느날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시자 유대인들은 그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문제 삼았다(요 5:1-16). 그들의 기준으로는 계란 하나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 안식일을 어긴 것이라고 계산하려 했지만, 정작 한 병자가 오랜 속박에서 풀려 참된 안식을 얻은 일은 전혀 보지 못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해 일해도 죄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날에 그들이 백성에게 속죄와 안식의 은혜를 누리게 하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란 &lt;strong&gt;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기뻐하는 날&lt;/strong&gt;이다. 무교절에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순절에는 성령의 강림을,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에는 장차 주의 재림으로 완성하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려야 한다. 그날에 일을 쉬는 것만 남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사라진다면, 안식의 껍데기만 붙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같은 잘못에 빠질 수 있다. 주일에 직장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몸은 쉬면서 마음은 세상일에 빼앗길 수도 있고,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전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참된 안식은 창조주께서 생명과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을 감사하고, 구속주께서 죄와 죽음의 멍에를 끊으셨음을 찬양하는 데 있다. 노동의 중단은 그 은혜에 집중하기 위한 울타리다. 울타리만 지키고 그 안의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날짜가 언제인지를 정하는 열쇠는 레위기 23장 11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이라는 표현에 서 시작된다. 여기에 나오는 &amp;#39;안식일&amp;#39;을 무교절 첫날인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매주 돌아오는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를 두고 유대교 안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바리새파와 후대 랍비들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인 첫째 달 16일로 보았다. 반면 사두개파 제사장들과 보에투스파는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로 해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시간표&lt;/strong&gt;를 통해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는 오늘날에 알려진 것처럼 성금요일에 돌아가셨다가 주일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삼일삼야를 땅 속에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2:4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인 첫째 달 14일 수요일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셨고, 해가 지기 전에 무덤에 장사되셨다. 날짜과 요일로 보면 수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유월절은 이제 오후6시가 되면서 무교절의 첫날이자 절기 안식일이 된다. 금요일은 향품을 준비할 수 있는 평일이었고, 토요일은 주간의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직접 말씀하신 대로 사흘 밤낮을 땅 속에서 채우신 뒤 토요일 오후 3시가 지난 때에 부활하셨다(마 12:40). 여인들이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무덤에 갔을 때에는 이미 무덤이 비어 있었다(마 28: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이 아니라,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킨&lt;/strong&gt;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실절의 예표를 정확히 성취했다.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교회는 주간의 첫날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초실절에 드려진 첫 곡식은 이삭 하나가 아니라 첫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바쳐야 했다. 이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과 함께 일어난 성도들의 몸까지 한 묶음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마 27:52-53).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을 보증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날 초실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온전히 세고 그 이튿날까지 합하면 오십 일이 된다. 이날이 바로 &amp;#39;오순절&amp;#39;이다(레 23:15-16). 따라서 초실절의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단순한 달력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연결을 푸는 시간표의 열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절기는 농사의 주기와 출애굽의 기억을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그러므로 절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 예표(豫表, type)의 문을 열어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유대인들은 절기를 계속 지키면서도 그것을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지 않는다. 유월절에는 출애굽을 기억하고 초막절에는 광야 생활을 기념하지만,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그 절기의 실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형만 붙들고 있을 뿐 실체는 놓치고 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속 명절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기를 문자적인 의식으로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말고, 각 절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일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7절기를 이해하는데 무엇이 도움이 될까? 사복음서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요한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절기의 책이라 할 만큼 절기와 예수님의 사역을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신 장막절(초막절)을 보여 준다(요 1:14).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고, 또 다음 해 유월절 무렵에는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밝히셨다(요 2:13-22; 6:4, 35). 그리고 초막절에는 목마른 자가 자신에게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으며, 수전절에도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증언하셨다(요 7:2, 37-39; 10:22-30). 절기의 모형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실체를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는 무엇을 예표하는 절기들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lt;/strong&gt;을 예표한다. 이스라엘은 흠 없는 어린양을 첫째 달 14일 해 질 때에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죽음의 사자가 피를 보고 넘어갔고, 백성은 애굽의 속박에서 나왔다(출 12:1-14). 신약의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의 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救援, salvation)을 얻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lt;/strong&gt;을 예표한다. 누룩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을 나타낸다(고전 5:8).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덤과 음부(하데스)에 내려가셨지만 음부의 권세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음부는 최후 심판 전까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임시 처소로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으므로 그곳의 어떤 악한 영도 그분을 건드릴 수 없었고 사흘 동안 그곳을 둘러보신 뒤 나오셨다. 무교절은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에 매이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lt;/strong&gt;을 예표한다. 첫 이삭 한 단이 이후에 거둘 모든 곡식의 시작이듯, 예수님의 부활은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의 부활을 보증한다(고전 15:20-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오순절은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사건&lt;/strong&gt;을 예표한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다(고전 15:45; 행 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역사도 이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간 것은 모세에게 속하여 받은 집단적인 세례였고,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반석에서 마신 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보여 주었다. 그들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다(고전 10:1-4). 이처럼 절기와 출애굽의 사건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면, 가을의 세 절기는 아마도 재림으로 완성하실 일을 보여 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지만 가을의 세 절기를 해석한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나팔절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되는 사건&lt;/strong&gt;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전 15:50-53). 예수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며,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가운데 강림하신다(마 24:30-31; 살전 4:16-17).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계 11:15). 속죄일과 초막절이 보여 주는 재림 이후의 의미는 다음 말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참고로, 오순절(3월 5일경)과 나팔절(7월 1일) 사이에는 약 넉 달의 추수 기간이 놓인다. 보리 추수가 초실절에 시작되어 오순절에 마쳐지고, 밀 추수는 오순절부터 나팔절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이미 희어진 밭을 보라고 하셨다(요 4:35-36). 지금은 복음으로 영혼을 거두는 교회의 시대다.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씨를 뿌리고, 어떤 사람은 다 익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한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함께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같은 상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7개의 절기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연결하여 체계적으로 해석한 시도는 종교개혁자들과 그 이전의 세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19세기 존 넬슨 다비(1800-1882)에게서 이러한 해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영국 성공회 신부 출신으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기초를 놓았고, 그 영향은 미국의 스코필드 성경으로 이어졌다. 그 흐름의 끝자락인 1900년 무렵 미국에서는 방언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나 세대주의가 제시한 가을 절기의 해석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절기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되, 성경 전체가 보여 주는 구원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은 초실절부터 날짜를 계산하여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인 오십 일째 되는 날을 계수하여 지켰다. 이날에는 고운 가루로 만든 떡 두 개를 흔들어 첫 요제로 드렸는데, 특별히 누룩을 넣어 구우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소제에는 누룩이 금지되지만 오순절의 두 떡에는 누룩이 허용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amp;#39;누룩&amp;#39;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령이 강림하는 오순절에 왜 누룩이 들어간 떡을 드리라고 했을까? 이는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아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죄가 없는 자처럼 여겨 주시고, 그 상태에서 생명을 분배하여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까지 하루아침에 완전해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두 개의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들을 주셨기 때문이다(마 16:19). 베드로는 오순절에 첫째 열쇠를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다(행 2:14-42). 이어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으며, 이방인 교회의 문이 열렸다(행 10:34-48).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무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두 떡 모두에 누룩이 들어 있었다. 유대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고 이방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다. 예수를 믿을 때 과거의 모든 죄가 자동으로 사라지고 몸 안에 들어온 악한 영까지 즉시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였고 생명의 성령은 영 안에 들어왔지만, 육체에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과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유혹을 받고 혈기와 분노 그리고 음란에 넘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와 생명주는 영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때부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amp;nbsp;&lt;strong&gt;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悔改, repentance)&lt;/strong&gt;다. 회개는 이미 받은 속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실제로 깨끗하게 하도록 그 죄를 빛 가운데 내놓는 일이다(요일 1:7-9). 왜냐하면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을 받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회개기도문을 따라 자신과 조상의 우상숭배와 자범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도록 가르친다. 속죄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의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놀라운 은혜와 엄중한 책임을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누룩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교회의 지체로 받아 주신다. 그러나 &lt;strong&gt;누룩을 그대로 품고 살아도 된다고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품과 행실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그렇게 하여 내가 정결해질수록 죄의 충동과 저주의 힘은 약해지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도 우리가 거듭난 이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산다면, 자신은 겨우 구원을 받더라도 준비된 신부와 충성된 종의 상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훗날 &amp;lsquo;그때 회개할 걸, 그때 말씀을 들을 걸&amp;rsquo; 하고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들을 때 회개하고, 지금 씻을 때 정결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으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성회와 제물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amp;lsquo;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amp;rsquo;는 명령이 없다. 왜 그럴까?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는 분명히 노동 금지 명령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그 명령이 빠져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필자는 이 질문을 인공지능(AI)에게 던져 초대교부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온 해석을 찾아보게 했다. 그 답은 &lt;strong&gt;절기들의 짝에서 이유를 찾는 것&lt;/strong&gt;이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그 해의 첫째 달 14일부터 이어지는 한 묶음이므로, 유월절(1월 14일)에 이루어진 일을 그다음 날인 무교절 첫날(1월 15일) 쉬면서 기념한다는 것이다. 초실절(1월 18일)과 오순절(3월 5일경)도 첫 이삭을 거두기 시작한 날부터 오십 일을 세어 추수를 마치는 한 묶음이므로, 초실절에 시작된 일을 오순절에 쉬면서 기념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두 절기가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필자는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의 은혜는 그날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고, 부활하신 날의 기쁨도 그날 누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생일을 두 달 뒤에 축하하는 것보다 당일에 축하하는 것이 합당하듯,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각각 유월절과 초실절 당일에 기념해야 한다. 더욱이 이 두 사건은 나머지 모든 구원 사건들의 근간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답의 실마리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논쟁 가운데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신 뒤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자신이 일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 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버지께서는 창조를 위하여 일하셨고, 아들은 구속을 위하여 일하셨다.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죄인이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안식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식이 주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이 말씀에 비추어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 이유&lt;/strong&gt;를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유월절은 아들이 구속을 위하여 일하신 날이며, 초실절은 아버지의 창조 능력으로 새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다. 고로 두 날에 노동 금지 명령을 두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일하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려는 뜻일 수 있다. 그날에도 성회로 모여야 하지만, 그 모임의 초점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바라보는 데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내가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생각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정확한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야 할 부분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안식 앞에 하나님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초실절을 지킬 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만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의 일곱 절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구원의 서로 다른 방면이며, 개인적인 성결은 거룩한 모임을 통한 공동체적 성결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주간의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을 주셔서 그분이 완성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이며, 예수님은 그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 무교절의 무교병, 초실절의 첫 이삭 한 단,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마지막 나팔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게 한다.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넉 달은 교회가 복음으로 영혼을 추수해야 할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키며, 성령을 받은 교회 안에도 아직 죄된 본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칭의를 받고 생명을 얻는 것은 시작이다.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개인이 정결해지고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 단체적인 성결이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유월절&amp;#39;과 &amp;#39;초실절&amp;#39;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었던 까닭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하셨고 아들께서 구속의 일을 하셨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예배와 절기를 형식으로만 지킬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께서 이루신 일을 알고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혼자만의 경건에 머물지 않고 거룩한 모임을 소중히 여기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한다. 또한 희어진 밭을 바라보며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복음의 추수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찬양하고, 정결한 공동체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3장에 나타난&amp;nbsp;&lt;strong&gt;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을 주제로, 구약의 절기가 어떻게&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인도&lt;/strong&gt;로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결이 개인의 경건을 넘어 공동체적 소집(성회)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의 봄 절기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죽음, 무죄함,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lt;/strong&gt;의 예표로 분석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규정과 초실절 날짜에 관한 신학적 논란을 다루면서도, 결국 절기의 핵심 목적은 하나님이 행하신&amp;nbsp;&lt;strong&gt;창조와 구속의 은총&lt;/strong&gt;을 기억하고 누리는 것임을 명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문법적 준수를 넘어&amp;nbsp;&lt;strong&gt;회개와 성령의 역사&lt;/strong&gt;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결의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ChatGPT Image 2026년 8월 27일 오후 07_40_3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838589f3b26777c0f1b725183ccd15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4452c50e71b2c39c4a5c2c61ead188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edbee022b513ed64c97716b8c5a470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06efdcc629baacced2015d9116592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ab7248a412ecd0d2a9c4dcacffb58b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917371b802c0871d8607ea4463c6af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30852811d87ce2375b38f9df61759b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0d359dadba85b30b2c0f48de6f5d97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c1bd6455bed4cb6334aaa8af3caf2a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a12b14f75a7debdb2099d7f6e2bf58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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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이스라엘_일곱_절기와_그리스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d8761031f3ba670b175ef5f8befcb2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c8aa233b988d05ca824584d61aeae3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735e66dd704847cb8ff3ed1ef89b49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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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절기</category><category>안식일</category><category>유월절</category><category>초실절</category><category>오순절</category><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category>공동체</category><category>성결례</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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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5140#comment</comments>			<pubDate>Wed, 26 Aug 2026 23:35:29 +0900</pubDate>
		</item><item>
			<title>[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레23:1~44)_2026-08-19(수)</title>
			<link>https://dongtanms.kr/wednesday_sermon/264651</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19(수) 수요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7)] 성결법(04)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5hgyeBkOMe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5hgyeBkOMe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성결법(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깨끗함을 얻은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amp;#39;제사법&amp;#39;을 다룬다. 소제처럼 피 흘림이 없는 제사도 있지만, 중심은 제물의 희생과 피를 통한 속죄다. 죄인은 자기 힘으로 죄값을 없앨 수 없기에 흠 없는 제물이 대신 죽고 피를 흘려야 했다. 이 제사는 장차 세상 죄를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는 &amp;#39;정결법&amp;#39;을 다룬다.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옷을 물로 씻고 정해진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해산한 여인과 나병에서 깨끗해진 사람에게도 씻음이 요구되었다(레 12:6-8, 14:8-9). 그러므로 정결의 핵심에는 피와 물이 함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찔리실 때 피와 물이 나온 사건은 신약의 성도에게 속죄와 씻음이 모두 필요함을 보여 준다(요 19: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부터 27장까지는 &amp;#39;성결법&amp;#39;을 다룬다. &amp;ldquo;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amp;rdquo;는 명령 아래, 하나님의 백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레 19:2). 속죄와 정결이 죄와 부정을 처리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게 한다면,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실을 바꾸어 그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과정이다. 신약에서는 거룩하신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이 길을 걷게 하신다(요 14:26, 16:8, 16: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거룩함은 천국에서 내가 받을 신분과 내가 받을 상급과 연결된다.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지는 일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과 관계되는 것이지만,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말씀대로 살았는지는 천국에서의 나의 위치와 상급에 관계되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정결과 성결의 필요성을 치워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정결화 성결을 위해 회개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면 성품과 행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과 삶의 저주에서도 온전히 벗어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에 다루게 될 레위기 23장은 이 성결을 개인의 차원에서 공동체의 차원으로 넓혀 준다. 한 사람이 홀로 지킬 수 없는 절기를 온 회중이 함께 지키며 거룩함을 입는 단체적인 성결례가 바로 이러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과 해마다 돌아오는 일곱 절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함께 모여,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한 민족과 공동체를 거룩하게 만들어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거룩한 소집을 통하여 백성을 반복해서 자기 임재 앞으로 부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3장의 절기의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대부분 성취되었으므로 신약의 성도가 구약의 달력과 제사를 문자적으로 되풀이해서 실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절기에 담긴 영적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을 받고 자신을 바로잡을 때 공동체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의 차이,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의 관계, 모에드와 성회의 뜻, 안식일의 창조와 구속의 의미, 절기 안식일과 예수님의 죽음&amp;middot;부활 시간표, 그리고 신약 성도가 절기의 영적 원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의 속죄&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은 어떻게 구별되며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는 죄의 값을 처리하는 일이다. 레위기의 제사에서 흠 없는 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고 피를 흘렸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하나님은 피를 제단에 뿌려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셨다(레 17:11). 특히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은 죄의 삯이 사망이며 죄 사함에는 생명의 대가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모든 제사는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일을 예표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정결&amp;#39;은 부정하게 된 사람을 씻어 공동체와 성소에 다시 나아오게 하는 일이다. 음식과 출산과 피부병과 유출과 시체 접촉에 관한 규례에서 물로 씻는 행동이 반복된다(레 11:24-25, 12:2-8, 14:8-9, 15:5-13). 피가 죄의 값을 담당한다면 물은 오염을 씻어내는 대포적인 표지다. 물론 물 자체가 마음의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죄와 부정이 씻기는 신약의 실체를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성결&amp;#39;은 속죄와 정결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단계다. 레위기 18장 이후에는 &amp;ldquo;하지 말라&amp;rdquo;와 &amp;ldquo;지키라&amp;rdquo;는 명령이 집중된다. 거룩함은 머리로 아는 교리가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구별이다. 십계명을 지키고,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으며, 성적인 죄와 우상숭배와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레 18:3-5, 19:3-18, 20:7-8). 행실이 바뀌지 않으면 거룩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단계는 서로 대체할 수 없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고백이 물과 말씀의 씻음이나 거룩한 행실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선한 행동만으로 그리스도의 피 없이 속죄받을 수도 없다. 먼저 죄값이 처리되고, 더러움이 씻기며, 그 뒤에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이 구별되어야 한다. 속죄와 정결과 성결을 함께 붙들 때 레위기의 구원 교육이 온전하게 보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신약 시대에 성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러한 한마디로 성결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이끌며, 죄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는 사람의 순종을 없애지 않는다. 책망을 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말씀대로 행실을 고쳐야 한다. 거룩한 영을 모시고도 그 음성을 거슬러 계속 옛 습관을 따른다면 거룩의 열매가 나타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과정에서는 영적 싸움도 일어난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르던 악한 영들이 진실한 회개가 시작되면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더 강하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회개를 시작했더니 오히려 힘들어졌다고 포기하면 정결과 성결의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 죄를 합리화하지 말고 끝까지 회개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죄의 지배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품과 생활이 실제로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결법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필요 없는 부록이 아니다. 속죄는 출발이고, 정결은 씻음이며, 성결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과정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쓰임받는 자가 되려면 죄 사함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행실이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거룩의 분량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성결례를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레위기에서 성결례는 18장에서 시작하여 27장으로 끝난다. &lt;strong&gt;그중에서 18장부터 20장까지의 말씀은 일반 백성이 지켜야 할 &amp;#39;개인적인 도덕적 성결&amp;#39;을 가르친다&lt;/strong&gt;. 그 핵심은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살던 방식과 가나안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아야 했다.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우상을 만들지 않고, 도둑질과 거짓말과 압제를 버리며,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했다(레 19:3-4, 11-18). 특히 친족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규례를 상세히 주어 성적 성결을 지키게 하셨다(레 18:6-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리고 이어서 21장과 22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를 다룬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는 더 엄격한 성결을 요구하셨다. 제사장은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고, 결혼에서도 배우자에게 있어서 어떤 제한을 받어야 했다. 대제사장은 자기 부모의 시체로도 몸을 더럽히지 말고, 오직 처녀를 아내로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레 21:1-15). 몸에 흠이 있는 제사장은 제사장의 음식은 먹을 수 있었지만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레 21:16-23). 이는 사람의 가치가 낮다는 뜻이 아니라 제사장 직무가 지닌 상징성과 실제 수행 능력을 구별한 규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사실 제사장의 혼인과 시체 접촉 규례에서 사역자를 악한 영의 침입에서 보호하려는 영적 의미도 있는 것이다. 특히 성적인 결합을 통하여 상대에게 있던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많은 영혼을 섬겨야 할 제사장은 처음부터 자신을 더욱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도 흠이 없어야 했다.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가 더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되었다(레 22:17-25). 제사장만 거룩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하나님께 올리는 예물과 태도를 거룩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께 남은 것이나 쓸 수 없는 것을 내어놓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동이다.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행위가 거룩함의 일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제 &lt;strong&gt;레위기 23장부터는 개인이 혼자 수행할 수 없는 공동체적 성결이 본격적으로&lt;/strong&gt; 나타난다. 23장의 절기들, 25장의 안식년과 희년은 온 백성과 나라가 함께 지켜야 한다. 24장에는 등잔과 진설병과 신성모독에 관한 보충 규례가 배치되어 있다.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은 한 사람만 쉬거나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러한 단체적인 성결의 절정은 희년에 나타난다. 희년에는 각 사람이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고, 종이 자유를 얻으며, 속박에서 풀려나야 했다(레 25:8-17, 39-55).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주의 은혜의 해가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필자는 이 말씀을 예수께서 희년의 선포자이자 집행자로 오셨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자기 백성을 풀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 성결과 공동체적 성결은 결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십계명을 어기면서 예배 모임에 참석한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바르게 산다고 공동체 예배를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생활을 거룩하게 하시며 동시에 백성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하신다. 개인의 순종이 모여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의 예배는 다시 개인을 깨우고 바로 세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lsquo;모에드&amp;rsquo;는 무엇이며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어떻게 구성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서 &amp;lsquo;절기&amp;rsquo;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amp;lsquo;모에드&amp;rsquo;(מוֹעֵד)다. 이 말은 &amp;#39;정해진 때&amp;#39;, &amp;#39;약속된 시기&amp;#39;, &amp;#39;회합의 시간&amp;#39;을 뜻하며 문맥에 따라 &amp;#39;절기(명절)&amp;#39;나 &amp;#39;계절&amp;#39;이나 &amp;#39;기한(시기, 때)&amp;#39;로 번역된다. 이는 하나님이 임의로 바뀌는 인간의 일정에 맞추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때를 정하시고 그때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절기는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도록 지정된 시간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에드는 창세기 1장 14절에서 광명체가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한다는 말씀의 &amp;lsquo;계절&amp;rsquo;에 처음 사용되었다. 계절이 정해진 순서대로 되돌아오듯 절기도 반복하여 돌아온다. 아브라함에게 정한 때에 다시 와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에도 약속된 시기의 개념이 나타난다(창 18:10, 14). 회막을 가리키는 &amp;lsquo;오헬(텐트) 모에드&amp;rsquo;는 하나님과 만나는 지정된 만남의 장막이라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레위기 23장은 어떤 모에드를 말하는 것일까? 우선 레위기 23장에서는 연중 일곱 절기에 앞서, &lt;strong&gt;매주 돌아오는 안식일&lt;/strong&gt;부터 말한다. &lt;strong&gt;매주간의 절기를 맨 처음 말씀하신 것&lt;/strong&gt;이다. 이는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며 성회로 모이는 안식일이 절기 체계의 기초다(레 23:3).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lt;strong&gt;절기는 매주의 안식일 하나와 연중 일곱 절기를 합하여 모두 여덟 가지&lt;/strong&gt;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매주 백성을 부르시고, 해마다 구원 역사의 특별한 장면들을 반복하여 기억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연중 절기가 있다. &lt;strong&gt;연중 절기는 봄의 네 절기와 가을의 세 절기로&lt;/strong&gt; 나뉜다. 봄에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곧 오순절이 있다(레 23:5-22). 가을에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있다(레 23:23-43). 봄의 네 절기는 씨를 뿌리고 첫 열매를 거두는 계절에 있으며, 이는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 강림을 예표한다. 가을의 세 절기는 추수를 마치는 계절에 있으며, 마지막 때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과 정결과 혼인 잔치 곧 회개와 심판과 거두어 들임을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성경에서 일곱이 자주 넷과 셋으로 구성되는 법칙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 가운데 먼저 네 말 탄 자가 나오고, 뒤의 세 인에서 순교자의 호소와 천체의 큰 변동과 일곱 나팔로의 전환이 이어진다(계 6:1-17, 8:1-2). 일곱 나팔도 앞의 네 나팔은 땅과 바다와 강과 천체를 치고, 뒤의 세 나팔은 화화화로 선언되며 사람에게 더 직접적인 심판을 가져온다(계 8:7-13, 9:1-21, 11:15-19). 봄의 네 절기와 가을의 세 절기도 이 넷과 셋의 구조를 따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구조를 아는 목적은 숫자 자체를 신비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구원 경륜을 질서 있게 계획하셨고, 구약의 절기와 신약의 성취가 서로 연결됨을 보는 데 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초실절은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되신 부활을, 오순절은 성령 강림을 바라본다(고전 5:7, 15:20, 행 2:1-4). 이미 이루어진 절기를 다시 되풀이하려 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모에드라고 하신 것인가? 즉 절기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지키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반복적인 기억과 순종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예배드렸다고 이번 주의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생각과 행실이 흐려지기 쉬우므로 정한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행위가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amp;lsquo;성회&amp;rsquo;는 왜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소집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레위기 23장을 보면, &amp;#39;성회&amp;#39;라는 말이 무려 11번 나온다. &amp;lsquo;성회&amp;rsquo;는 히브리어로 &amp;lsquo;미크라 코데쉬&amp;rsquo;(מִקְרָא־קֹדֶשׁ)라는 말인데, 이는 &amp;#39;거룩한 소집&amp;#39; 또는 &amp;#39;거룩하게 부름받은 모임&amp;#39;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흩어진 생활에서 불러내어 자기 앞에 모으시는 것이다. 레위기 23장에는 성회라는 표현이 열한 번 나오는데, 실제로 노동을 멈추고 모이는 절기의 날들은 주간 안식일과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 등으로 배열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 &lt;p&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lt;u&gt;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u&gt;&lt;/p&gt; &lt;p&gt;레 23:3[안식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의 날이라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일도 하지 말라&lt;/span&gt;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lt;/p&gt; &lt;p&gt;레 23:4 이것이 &lt;u&gt;너희가 그 정한 때에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u&gt;&lt;/p&gt; &lt;p&gt;레 23:7[무교절의 첫 날] 그 첫 날에는 너희가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이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lt;/span&gt;&lt;/p&gt; &lt;p&gt;레 23:8[무교절의 마지막 날]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이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lt;/span&gt;&lt;/p&gt; &lt;p&gt;레 23:21[오순절]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공포하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lt;/span&gt;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lt;/p&gt; &lt;p&gt;레 23:24-25[나팔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쉬는 날이 될지니 &lt;/span&gt;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라.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lt;/span&gt;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lt;/p&gt; &lt;p&gt;레 23:27-28[속죄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lt;/span&gt;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lt;/p&gt; &lt;p&gt;레 23:35[초실절의 첫 날] 첫 날에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일지니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lt;/span&gt;&lt;/p&gt; &lt;p&gt;레 23:36[초설절의 마지막 날]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lt;/span&gt;&lt;/p&gt; &lt;p&gt;레 23:37 &lt;u&gt;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성회&lt;/span&gt;를 열고&lt;/u&gt;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lt;/p&gt; &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 3절의 &amp;lsquo;쉴 안식일&amp;rsquo;은 히브리어로 &amp;lsquo;샤바트 샤바톤&amp;rsquo;(שַׁבַּת שַׁבָּתוֹן)이라고 하여 온전한 쉼을 강조한다.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개인 예배와 다른 거룩의 힘이 나타난다. 혼자 신앙생활하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보기 어렵다. 다른 성도가 회개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말씀을 함께 들으며 생각과 삶을 바로잡게 된다. 한 사람의 간구와 찬양이 다른 사람을 깨우며,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거룩함이 공동체 안에 집약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받는 것이 함께 있는 자리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축복과 성찬의 은혜를 주신다. 이 주고받음은 거래가 아니라 언약적 교제다.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을 드리고, 다시 말씀과 은혜를 받아 다음 한 주를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물을 드리는 일도 결코 성결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음을 인정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인색함과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훈련이 된다. 찬송과 기도와 예물과 말씀과 축복과 성찬이 조화를 이룰 때 예배 전체가 성도를 하나님께 맞추는 거룩한 통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한 때의 예배를 가볍게 여기면 거룩함도 약해진다. 한 달 동안 세상 속에서만 살며 말씀과 기도와 회개의 자리를 떠나 있으면 생각과 욕망이 세상의 방식으로 굳어진다. 매일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고, 적어도 매주 공동체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반복하여 부르시는 것은 그분께서 모임의 수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적으로 말씀 앞에서 씻기고 바로잡혀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배의 내용도 중요하다. 세상 이야기로만 채우면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경륜을 배우기 어렵다. 창조주께서 무엇을 지으셨고, 구속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으며, 앞으로 어떤 나라로 이끄시는지를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그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지는 것이 성회의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늘나라에서 성도가 영원히 행할 중요한 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계 4:8-11, 7:9-12). 이 땅의 공동체 예배는 하늘의 거룩한 모임을 미리 배우고 참여하는 시간이다. 예배를 귀히 여기고 정한 때에 기쁨으로 모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을 더욱 깊이 경험한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단순한 출석 규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거룩함을 유지하는 평생의 중요한 행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안식일은 왜 창조와 구속을 함께 기념하는 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제시한다. 먼저 출애굽기 20장은 출애굽 1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게 하지만, 이어 신명기 5장은 출애굽 2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는 육적인 삶과 만물을 주신 창조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종의 속박에서 해방하신 구속의 은혜다. 고로 우리의 예배에는 이 두 감사가 함께 있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셨으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피곤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이 안식일에 쉬셨다고 하는 말씀은 그분이 피곤하여 쉬어서 힘을 회복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의 육체처럼 산소와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하다 즉 쉬다는 말의 근원적인 뜻부터 살펴야 한다. 안식일을 뜻하는 &amp;lsquo;샤바트&amp;rsquo;(שַׁבָּת)는 일을 &amp;#39;그치다&amp;#39; 혹은 &amp;#39;그만두다(멈추다)&amp;#39;는 뜻의 동사 &amp;lsquo;샤바트&amp;rsquo;(שָׁבַת)에서 시작된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 하나 더 추가되어 &amp;#39;안식하다&amp;#39;, &amp;#39;쉬다&amp;#39;라는 뜻도 생겨났다. 고로 창세기 2장 2절은 하나님이 피곤해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이 아니라 창조사역을 끝마치시고 하시던 일을 그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출애굽기 20장 11절의 &amp;lsquo;쉬셨다&amp;rsquo;는 말에는 역시 &amp;#39;샤바트&amp;#39;와 동일한 뜻을 가진 &amp;lsquo;누아흐&amp;rsquo;(נוּחַ) 계열의 동사가 사용된다. 두 표현 모두 문맥상 피로 회복을 위해 쉬셨다는 뜻보다 창조를 완성하고 일을 그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마지막으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뒤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으셨다고 말씀하셨다(창 1:26-31). 해와 달과 별과 땅과 바다와 생물을 사람이 누리도록 마련하신 뒤에 만족하신 것이다. 그리고 창조 사역을 끝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오늘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에는 먼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를 바라보며 창조주를 찬양하고 기뻐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이 창조한 별들의 수를 세시고 그 이름을 부르고 계신다. 이러한 위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상심한 자를 고쳐 주시고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시 147: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이어서 우리는 안식일에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해야&lt;/strong&gt; 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이끌어내셨다. 신약의 성도도 죄와 마귀의 종노릇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누리도록 주신 은혜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은혜도 함께 찬송해야 한다. 이처럼 창조주와 구속주는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두 가지 사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는 창조의 하나님 곧 여호와를 특히 강조하고 신약 시대에는 구원의 하나님 곧 예수님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호와와 예수님은 두 분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한 분 하나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신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 대신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을 경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로 필자는 우리 민족이 오천 년 이상 해와 달과 별과 나무와 돌, 그리고 무당과 점쟁이, 그리고 천 년 이상 석가모니를 그리고 오백 년 이상 공자와 조상을 숭배해 온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인간이나 자연만물인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할 때에는 바로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누리되 그것에 절하지 않고, 조상이나 부모는 공경하되 조상을 하나님이나 구원자로 섬기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안식일의 쉼은 단순히 노동을 하지 않는 소극적 휴식이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뻐하며, 창조와 구속을 찬양하는 적극적인 거룩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그날에 자신의 몸을 쉬게 함으로 창조의 선물을 누리고, 말씀과 예배 안에서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얻은 영적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두 의미를 붙들 때 오늘날 주일 예배는 의무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의 날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어떻게 밝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하루는 어떻게 계산하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기준과는 달리 저녁(오후 6시)부터 다음 저녁(오후 6시)까지 계산되었다. 창세기 1장이 &amp;ldquo;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amp;rdquo;라고 날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고로 주간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레위기 23장에는 매주 돌아오는 주간의 안식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절기 가운데 노동을 멈추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레위기 23장에는 절기의 안식일도 있었던 것이다.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 절기 안식일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시간표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절기의 첫 번째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이다(1월 15일). 이때 무교절은 일주일 동안 지켰으며 첫날(1월 15일)과 일곱째 날(1월 21일)에 각각 성회로 모였으며 이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았다(레 23:6-8). 이와 마찬가지로 초막절에도 첫날(7월 15일)에 성회로 모이고, 칠 일 뒤 하루 더 지난 여덟째 날(7월 22일)에 다시 거룩한 대회로 모였다(레 23:34-36, 39). 유월절 당일의 규정에는 노동 금지가 직접 적혀 있지 않지만, 다음 날인 무교절 첫날에는 분명히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교절 첫날은 절기의 안식일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선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헬라어 표현은 직역하면 &amp;lsquo;땅의 마음 안에&amp;rsquo;이며 문맥상 땅속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흘 동안이다. 이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낮들과 세 번의 밤들, 곧 72시간의 온전한 사흘이다. 전통적인 성금요일 오후의 죽음과 일요일 새벽의 부활로는 낮 한 번과 밤 두 번 정도만 계산되므로, 3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통적인 견해는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과 맞지 않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사실은 공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운명하신 날이 준비일이었다고 말하고, 뒤이어 오는 안식일이 큰 날이었다고 기록한다(요 19:30-31).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은 준비일이었고, 그 다음날이 안식일 중의 큰 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안식일 중의 큰 날이라고 함은 그날이 절기의 안식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돌아가셨던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이었고, 준비일은 유월절 날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유월절 날 오후 해질 무렵 곧 오후 3시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무교절의 첫날인 큰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는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하길 원하였다. 왜냐하면 시체와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기의 안식일이 되기 전에 시체를 처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때였다. 산헤드린 공회원의 한 사람이었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주었다. 이때 산헤드린 공회원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침향(알로에) 섞은 것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둘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향품과 세마포로 싸서, 골고다에 가까이에 있는 바, 아리마대 요셉이 장차 죽으면 들어가려고 파 놓은 새 무덤에 장사하였다(요 19:38-4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결국 이 해석에 따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순서는 이렇다. 예수님은 유월절인 수요일 오후 세 시 무렵에 돌아가셨다. 수요일 해질 때부터 목요일 해질 때까지는 무교절 첫날인 절기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에 모두가 쉬었다. 그리고 금요일은 다시 평일이었기에 여인들이 가서 향품을 사서 장만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는 주간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쉬었다(막 16:1, 눅 23:5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요일 밤&amp;middot;목요일 밤&amp;middot;금요일 밤(삼일밤)과 목요일 낮&amp;middot;금요일 낮&amp;middot;토요일 낮(삼일낮)을 채운 뒤 토요일 해질 무렵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간법에 따르면 오늘날 토요일 저녁 시간부터는 주일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8장 1절을 보라.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는 &amp;#39;안식일&amp;#39;이 아니다. &amp;lsquo;안식일들&amp;rsquo;이라는 복수형 &amp;lsquo;사바톤&amp;rsquo;(&amp;sigma;&amp;alpha;&amp;beta;&amp;beta;ά&amp;tau;&amp;omega;&amp;nu;)이 나온다. 이 형태는 문맥에 따라 한 주를 가리키는 관용 표현으로도 쓰이지만, 분명히 &amp;#39;안식일들&amp;#39;이라고 하는 복수명사가 나온다. 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의 절기 안식일과 주간 안식일을 함께 놓고 보면, 여인들은 절기의 안식일(무교절의 첫 날)이 지나고 평일에 향품을 준비하고 다시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뒤에, 무덤에 찾아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인들은 일요일 새벽에 무덤으로 갔을 때 이미 돌이 옮겨져 있었고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마 28:1-6, 요 20:1). 성경은 그들이 새벽에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지, 바로 그 순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식 날짜로 토요일 해질 뒤는 이미 안식 후 첫날이 시작된 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토요일 늦은 오후 곧 해질 무렵에 온전한 사흘을 채우신 후에 부활하셨다고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필자는 당시 유월절의 요일을 역사적으로 대조한 계산도 참고해 보았다. 그래서 주후 28년부터 34년 사이의 유월절 날짜들을 살펴본 결과, 주후 30년 유월절만이 수요일에 해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A.D.30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고로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 있던 전통만을 주장하지 말고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을 모두 고려하여 성경의 시간 표현을 면밀히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절기의 안식일(무교절의 첫 날로서 수요일)과 주간의 안식일(그 주간의 토요일)이 지난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신약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기의 영적 원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절기를 구원을 얻기 위한 의식으로 다시 지킬 의무는 없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고전 5:7, 15:20, 행 2:1-4). 이미 실체가 이루어졌는데 다시 유월절 어린양을 잡거나, 예루살렘 성전을 세워 동물 제사를 드리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거꾸로 돌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절기의 영적 원리는 우리가 간직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으므로 묵은 누룩과 악의 누룩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명절을 지키자고 말했다. 이는 구약 달력을 의무로 되돌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은 사람이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절기의 성취를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와 성결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가장 기본적인 적용은 정한 때에 함께 예배하는 것&lt;/strong&gt;이다.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 성도들은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 규정 아래 있지 않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에 함께 모이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리고 개혁교회 성도들이 성탄절이나 부활절처럼 특별히 주님을 기념하는 날에 함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을 공동체적으로 기억하는 절기의 원리를 그대로 보여 준다. 날짜 자체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때 하나님 앞에 모여 말씀과 은혜를 받는다면 그날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기념의 날 혹은 주일에 예배에 참석할 때는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한다. 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그것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찬송해야 한다. 그래서 주일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께 &amp;#39;기도&amp;#39;와 &amp;#39;찬송&amp;#39;과 &amp;#39;예물&amp;#39;을 드리고,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amp;#39;말씀&amp;#39;과 &amp;#39;축복&amp;#39;과 &amp;#39;성찬&amp;#39;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온몸으로 익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공동체 예배가 개인의 회개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주일마다 모이면서도 십계명을 어기고 이방 풍속과 음란과 탐욕을 따랐는데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그에게서 거룩한 열매는 맺히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개인 기도만으로 공동체의 모임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정한 때 성회에 참여하여 다른 성도들과 함께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의 성결과 더불어 단체적인 성결도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 교회는 과연 성경의 절기 구조와 영적 원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성도가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의 차이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단 하나님의 교회나 그리고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안식일에 관한 낯선 지식을 우리에게 제시할 때, 그것을 새로운 진리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끌려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아니, 지도자는 그것을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성도들도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문자적인 절기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혹 어떤 주장도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분별하고 멀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배를 빠뜨리지 않는 것에만 목표로 두지 말고, 예배를 통하여 실제로 거룩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시 찬송할 때에는 창조와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는 자신의 죄와 잘못된 생각을 발견하며, 새로운 영적인 진리의 말씀을 따라 회개와 순종으로 행실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반복하여 돌아오는 모에드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의 때가 벗겨지고 천국의 성품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가 신약의 성도에게 가르치는 영적 원리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레위기의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이 서로 어떻게 구별되고 연결되며,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제사는 피를 통한 &amp;#39;속죄&amp;#39;를, 11장부터 17장까지의 규례는 물과 피를 통한 &amp;#39;정결&amp;#39;을, 18장부터 27장까지의 법은 말씀을 지키는 행실의 &amp;#39;성결&amp;#39;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죄 사함을 출발점으로 삼되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개인의 성결은 십계명과 성윤리와 제사장의 규례와 흠 없는 예물에서 나타나야 하며, 공동체적 성결은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처럼 온 백성이 함께 순종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희년은 속박에서 놓아주는 해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희년의 선포자이자 집행자로 오셨음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모에드&amp;#39;(정한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만남의 때이고, 성회는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는 소집이다. 주간의 안식일과 연중 일곱 절기는 반복하여 실행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불러내신다. 그중에서 봄의 네 절기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 강림을 보여주고 있고, 가을의 세 절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와 더불어 마지막 거두어 들임을 바라보게 한다. 이제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절기를 문자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을 영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안식일에는 &amp;#39;창조&amp;#39;와 &amp;#39;구속&amp;#39;이라는 두 감사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물을 창조하시어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주간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시간표에 대해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성경의 직접 진술과 해석을 살펴보면서, 익숙한 전통보다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정한 때인 주일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와 찬송과 예물을 드리고, 말씀과 축복과 성찬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더욱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단체적인 성결례를 집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개인의 회개와 더불어 공동체 예배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예배 시에 받은 말씀을 실제 행실로 옮겨 열매를 맺는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예배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는 삶을 실천하여 복된 성도가 되어 장차 도래할 천국의 혼인잔치에 꼭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레위기 23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의 의미와&amp;nbsp;&lt;strong&gt;절기&lt;/strong&gt;&amp;nbsp;속에 감춰진 영적 법칙을 강해한 자료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결을 개인적 도덕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정한 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완성되는 상태로 정의하며, 특히&amp;nbsp;&lt;strong&gt;안식일&lt;/strong&gt;을 모든 절기의 기초이자 성결의 핵심 수단으로 강조합니다. 이 설교의 구조적 핵심은 성경 속&amp;nbsp;&lt;strong&gt;&amp;lsquo;4대 3&amp;rsquo;의 법칙&lt;/strong&gt;을 통해 봄 절기는 예수의 초림을, 가을 절기는 재림과 천국 소망을 상징한다는 논리적 체계입니다. 또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단순한 주간 안식일이 아닌&amp;nbsp;&lt;strong&gt;절기 안식일&lt;/strong&gt;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히며, 이를 통해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창조와 구속의 은총&lt;/strong&gt;을 기억하는 예배의 삶을 회복할 것을 독려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목적은 절기에 담긴 하나님의 정한 때(모에드)를 준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더욱 거룩한 존재로 빚어가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일깨우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ChatGPT Image 2026년 8월 20일 오전 12_51_2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c6e6c3d1ab38494babf87426a9b95eb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5a1698266affd513dd39b47b229cf8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e8da956dbb567d6a29eceba8310e23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ab1e5cb141ad31b5412ac8da93671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83f880e2de289051dd71d0daffdd76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390407e0c4d643f947efa95a1eda7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1264e04661c07714053dae58f0a3d5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c2d7ae7bc61106b80ec75627909894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56a038aecea1d8fd22afb63759a39b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0bf0aef1116393ae9d1dbf3091b2f4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b0695062973ff7a648c2d90185de94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7cbd711c74fb66b13953e562cdc63e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b9e1f2d21bac3f644fe56983329e54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Divine_Clockwork.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7ba496e85d02591f5dcb264f7ac39ac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하나님이_정하신_거룩한_시간_모에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6fea31878bad5662e152e54910da065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a960661aff7e249ea452d7423bffa8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6aa93baf197ae99a046fcdbb1ef7f2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385c236563b8490f17887c526f94da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dea6a9b9a6db457f2f43f3867b1037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53d5b20eb0bc2d8be589ab265d74be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826f0a4550a867b829cacdc378d605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af89adcf4bf2c67fd81873860e85e8b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74b0c75983ec06f3963e6efcb4984f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651/264/266799fd2d3817658dd281d160240c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7)] The_Holy_Time_Master_Grid.pdf_10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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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요강해설교</category>		<category>레위기</category><category>성결법</category><category>절기</category><category>안식일</category><category>속죄</category><category>정결</category><category>공동체적성결</category><category>모에드</category><category>희년</category><category>성경강해</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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