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의 딱 2가지 사명(막1:1~8)_2016-05-29

by 갈렙 posted May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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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06qIN3rcKnY
날짜 2016-05-29
본문말씀 마가복음 1:1~8(신약 5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선구자, 세례요한, 선지자, 오리라 한 엘리야, 광야의 소리, 여호와의 길을 닦는 자, 선구자의 2가지 사명, 회개선포, 메시야소개

  선구자(先驅者), 앞서서 말을 달리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나중에는,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말이 되었다. 세례요한,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일평생동안 한 가지 일만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다. 그것은 메시야 앞서 보내심을 받아, 사람들을 회개시킨 뒤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그는 바로 선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아무리 외친다고 한들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잘못하면 그가 하는 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죽임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 앞서 보냄을 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했다. 세례요한,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맡은 사명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맡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세례요한,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는 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신분이 있었다. 그것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사장이 직분을 한 번도 감당하지 못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론가문의 후손으로서 다윗이 정한 24반차 중에 8번째 반차인 아비야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늙어서 성전에 봉사하러 가더 날, 제비뽑기를 통해 그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한 제사장의 일은 일평생 한 번 맡기도 어려운 직책이었다. 그때 그는 향단에 분향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아들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 쓰시고자 하여,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태를 막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말이다. 그러자 그는 기도를 통해 늙으막에 아들을 얻게 된다. 그러자 사가랴는 기꺼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도록 주님께 내어드린다. 그래서 일치감치 세례요한은 광야로 내보내졌고 거기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살아야했다. 그리고 음식은 광야에서 뛰어다니는 곤충을 잡아 먹었고 야생꿀을 먹고 자라게 되었다. 그러므로 훗날 예수께서는 그를 일컬어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칭하였다. 선지자의 직분을 뛰어넘어 선구자로서의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마11:9)

  둘째, 그렇다면 그가 맡은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그의 나이 30세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직책 곧 선구자의 일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야에 소리가 되어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사40:3, 말3:1, 4:5~6).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2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이었고 또 한 가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마3:2)"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이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더니 그에게 나아와서 죄를 자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을 인도하여 요단강으로 가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례주는 행렬에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고, 그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세례요한의 세례주는 일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6개월은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세례요한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금방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사코 말리는 세례요한에게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라라고 요청하셨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같은 성령이 내려와 그분 위에 앉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내가 기뻐하는 자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즉시 "저 분이 바로 메시야이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은 다 저분을 여러분에레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그는 커저 나가야 하겠고 이제 나는 줄어들어야 합니다."

  셋째, 그렇다면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최소한 2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담대함이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메시야 앞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데에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에 담대함은 필수적이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면서 메시야를 소개하려면 쉽겠지만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면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담대함이었다. 마치 모세가 떠난 뒤 두려워하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할 것을 주문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회개를 외쳐야하는 선구자로서의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한다는 믿음이요(수1:6,9), 또 하나는 기도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요일5:14~15). 오늘날 왜 믿는 이들이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담대함의 부족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요, 기도부족이 그 원인인 것이다.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으라.

  둘째로,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데 어찌 선구자로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과 마태,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을 통해서 살펴보면, 세례요한이 소개해야했던 예수님이 누군지가 나온다. 하나는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소개했다(막1:1, 요1:33~34). 그리고 하나는 그분은 바로 세상죄를 없애러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소개했다(막1:1, 요1:29). 마지막으로 하나는 그분이 바로 구약에 나타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소개했다. 자, 보라. 사40: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광야에서 여호와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곧 메시야의 선구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막1:3에 의하면, 그는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선구자가 외치는 메시야는 바로 주님이요 여호와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로 쓰임받았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전 세계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자들이 많지 않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이 지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야로 가둬놓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이 죽고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분은 계속해서 아들이신가? 아니다. 아들도 되시지만 이제 그분은 하나님 자신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시다. 그래서 부활후 제자들의 고백에서 예수님은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고백되어졌다(요20:28). 그렇다. 여러분은 세종대왕을 장헌세자로 부르는가? 아니면 충녕군으로 부르는가? 세종이 대왕자리에 오르기 전에 그는 먼저 충녕군이라 불리웠고, 세자로 책봉된 다음에는 장헌세자로 불렸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세종이라고 불렸고 후대에 가서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27명의 왕중에서 유일하게 세종만을 세종대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 아무도 그분을 세종이나, 장헌세자, 충녕군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가 받은 최고의 직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장헌세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부른다. 아니다. 그분은 이미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분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 자신이요,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한 바로 그분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 자들이 이제는 선구자의 사명을 가진 것을 깨닫고 나가서 외치는 것이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요, 예수님을 외치는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성경에 300번이상 예언된 메시야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외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게 담대함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승천하기전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을 신뢰해야 하며,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그분을 소개해야 한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해 회개할 것과 예수님을 붙들라고 믿음으로 외쳤던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그에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돌로 그를 치려고 했을까? 아니었다. 성경에 보니, 모든 유대사람들과 예루살렘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막1:5). 그리고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외침대로 예수님께로 나아갔고 그들은 결국에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천국에서 세례요한은 전도의 축복을 받아서, 영광스런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또한 그의 선구자적인 외침을 듣고 지금도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끝까지 붙드는 자들도 다 하나씩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 선구자는 이렇듯 외치는 자이다. 특히 회개하라고 외치는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붙들라고 외치는 자이다. 당신도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땅 위에 복음에 빚진 자로서 우리들을 남겨진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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