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37)] 새 예루살렘 성밖에서 사는 만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가?(계22:15)_2024-10-15(화)
https://youtu.be/WUSiUNu4ZSM
1. 들어가며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관한 가장 완벽한 예표는 이스라엘의 절기다. 그런데 이스라엘 절기 중에 후반부의 3가지 절기(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려준다. 예수께서는 '나팔절'에 공중으로 강림하실 것이며, '속죄일'에 이스라엘을 거국적으로 회개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초막절'인 '수장절'에 모든 곡식을 천국창고에 들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인 천년왕국의 끝이면서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늘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일시적인 왕국 곧 천년왕국을 끝내는 것이다. 그것은 천년왕국을 지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 왕노릇하는 지위를 가진 성도들은 과연 영원천국에서는 어떤 지위를 갖게 될까? 그리고 이들이 성밖으로 나가서 다스릴 성밖의 만국백성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이 만국백성 곧 피지배계층이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2.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천년왕국이란 어떤 것인가?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왕국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천년왕국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살아서 왕노릇하는 왕국이기 때문이다(계20:6). 그럼, 첫째 부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적인 부활인 둘째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개인적으로 부활하는 부활을 가리킨다. 이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이후 모든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얻는 부활을 가리키는데, 이는 성도들이 죽은 즉시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부터는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천년왕국은 첫째 부활로 인하여 살아난 자들이 왕노릇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하늘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둘째, 천년왕국은 이 지상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땅 위에서 왕노릇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계5:9~10). 고로 천년왕국은 이 지구의 땅 위에서 펼쳐지는 왕국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들 성밖으로 나가서 왕노릇하는 것이 바로 천년왕국인 것이다.
셋째, 천년이라는 기간도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라 더 많은 충분한 시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모든 숫자는 실제적인 숫자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숫자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들 가운데 '7'은 이 세상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상에 있는 교회가 7개이며(계2~3장), 지상에서 펼쳐질 미래의 일들이 봉인되 두루마리도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12'는 하늘에서 완전수이다. 12개의 진주문, 12개의 기초석, 24(12+12)장로, 144,000명(12*12*1,000)의 하나님의 종들. 그리고 '10'은 충분한 수이나 작은 충분한 수이다. 서머나교회의 성도 몇을 마귀가 시험할 것인데 10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했다(계2:10). 그리고 사탄마귀와 짐승이 권세가 강하다고 해 10개의 뿔만 가졌다(계12:3, 13:1). 그런데 이러한 충분한 수가 3개가 곱해지면, 1,000이 된다. 그러니까 1,000은 많은 충분한 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주님의 재림때까지는 상징적인 숫자값으로 1,000년이라고 하는 것이다.
3.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얻게 될 상 및 지위와 신분은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죽어서 다음 세상으로 들어간다면, 거기에서 어떤 상을 얻게 되며 또한 어떤 지위와 신분을 얻게 되는가? 반대로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가?
먼저 사람들이 죽으면 세 군대로 간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가거나 성밖으로 가거나 불못으로 간다. 성 안에 들어간 자는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그들은 예배드릴 때에 앉아서 보좌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144,000명과 서서 예배를 드리는 허다한 무리들로 구분된다. 또다시 144,000명은 24장로들과 왕노릇하는 자들과 주인노릇하는 자들로 구분된다. 그리고 허다한 무리들은 면류관을 쓰거나 천국집에서 거주할 자들과 텐트나 꽃밭에서 거주하는 자들로 구분이 된다. 특별히 꽃밭에서 거주하는 분들은 섬기는 자들이 되어 왕노릇하는 자의 집에 가서 일하거나 주인노릇하는 자의 집에 가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일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개념과는 다른다.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감당하되 서로 존중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밖에 가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들에게 다스림을 받을 자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불못에 떨어지는 자들도 있다. 이곳에는 처음부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불신자들이 간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지 않은 자들 가운데 그 죄값을 무겁게 물어야 할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계21:8). 그런데 그곳에는 불과 유황이 타고 있어, 그곳에 들어간 자들은 엄청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4. 천년왕국 때에 주어지는 상 및 지위와 신분은 일시적인 것인가 영원한 것인가?
그런데 정말 놀랄 일이 있다. 그것은 천년왕국에 천국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상 및 지위와 신분이 영원천국에서도 계속해서 세세무궁토록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번 천국에서 섬기는 자로 들어간 자는 영원토록 섬기는 자로 살게 되며, 왕노릇하거나 주인노릇하는 자도 역시 영원무궁토록 왕노릇하고 주인노릇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계22:2~5). 그러니까 한 번 천국에서 얻은 상 및 지위와 신분은 변함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상이 되는 것이고, 지위와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 및 지위와 신분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을 때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준비해서 가는 것이지 응당 주어진다거나 그것을 받을 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분초를 아끼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천국와 영원천국에서 받을 상과 누릴 지위와 신분을 지금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성밖에 거주하는 자들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럼, 성밖에 거주하는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왜 거기에 들어가서 살게 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해 결국 성밖으로 쫓겨나서 그리로 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밖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계21:27). 그런데 만약 아예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다면 그들은 곧장 불못에 떨어졌을 것이다(계21:8).
둘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이름이 지워졌기 때문이다(계3:5).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워지는 자들은 흰 옷을 입지 않아서다. 그런데 그들이 흰 옷을 입지 못했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더럽혀졌으나 자기의 옷을 깨끗하게 씻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을 믿었으나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지 않았기 때문이다(계22:14).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지 않았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예수님의 피로 자기의 죄를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계7:14). 우리들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만 씻을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었으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더렵혀진 채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6. 왜 만국백성은 성밖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
왜 만국백성은 성밖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 그들은 사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채 있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짐으로 인하여 성밖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떤 죄를 지은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지은 죄에 따라 2가지로 구분이 된다.
계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하나는 비유적인 것이요 또 하나는 실제적인 것이다. 비유적인 것은 '개들'이 성밖으로 간다. 그리고 실제적인 것은 5가지 죄를 지은 자들인데, 이들은 점술가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5가지 죄는 다실 십계명을 어긴 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점술가들은 십계명의 1~2계명을 어긴 죄를 지었기 때문이요, 음행하는 자들은 7계명을 범했기 때문이요, 살인자들은 6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며, 우상숭배자들은 2계명을 어겼기 때문이요, 거짓말하는 자는 9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개들이 누군가 하는 것이다.
7. 성밖에 떨어질 자들 중에 '개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개들은 실제 멍멍 짓는 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 있는 개들은 결코 성밖으로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개는 영혼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들이란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개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비유적인 표현인가? 사실 성경에서 가끔씩 '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성밖에 떨어지는 자에 대한 해석으로서 가장 부합한 것은 이사야의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이사야 56장에서 개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를 일컫는 개념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56:10~12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 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세워진 지도자들이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맥을 보면 바벨론의 군사들에게 이들이 포로로 붙잡혀가게 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왜 성밖으로 가는가? 그 이유는 이들은 맹인으로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하다. 성경지식도 없고 영적인 분별력도 약하다. 그리고 이들은 벙어리 개들이다. 짖지 못한다. 성도들을 향하여 외쳐야 할 것이 있는데도 외치지 못하는 자들이다. 장로들이 무섭든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갈까봐 그런 것이다. 이들은 사실 선지자들이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잠을 자 버린다. 아예 예언한답시고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게으르고 악한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고, 낮에도 포도주와 독주를 찾는 방탕과 쾌락과 사리사욕이 가득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천국에 가보면 주의 종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거의 가 다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던져지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8. 나오며
누가 성밖에서 살아가는가? 그것은 영원무궁토록 말이다. 그들 중에는 불신자들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다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들이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주의 종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 분별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게으르고 악했으며, 방탕한 삶과 자기영광만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산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도 역시 성밖으로 던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지금부터라도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자기의 더럽혀진 겉옷을 빨아서 흰옷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의 종들은 빨리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그것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밖으로 던져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께서는 이러한 주의 종들 곧 개들을 가장 먼저 성밖으로 내던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밖에서 살아야 할 제일순위가 바로 주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2024년 10월 15일(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