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천국에 초대받은 자들(과연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눅14:15-24)_2014-06-01

by 갈렙 posted Nov 25,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신칭의의 복음을 듣고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날 바로 죽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 이상 살게 된다면 이신칭의의 복음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듣고 믿어야 할 복음은 다름 아닌 '천국복음'이기 때문이다(마4:23).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그 복음만을 전하셨고 그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마4:17, 24;14). 천국복음이란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왕으로 모셔들여 그분으로 인하려 살라는 복음이요, 그러면 죽은 다음에 셋째하늘에 마련해두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복음이다. 그러므로 이신칭의의 복음이 구원의 시작을 위한 복음이라면, 천국복음은 구원의 과정이자 마침이 되는 복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주님께서는 왕의 아들의 잔치의 비유(눅14:15-24, 마22:1-14)를 통해 그들이 누가 될른지 말씀해주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원래 초대된 자였으나 그날 잔치자리를 거부한 자들은 제외되었다. 오히려 길거리나 골목에 버려진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과 그 잔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이 그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왕은 '하나님'을 상징하며, 아들은 '예수님'을, 초청하러 갔던 종들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처음에 일찍이 초대받았으나 가지 않았던 자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상징하고,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자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냉대받고 천대받았던 세리와 창기들과 죄인들을 의미하고, 성 밖에 길을 가던 자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애시당초 초대하려 했는가? 미리 초대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어디로보나 그 잔치자리에 참여할 합당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왕의 아들이 왔을 때 그 왕을 배척해 버린다. 그래서 일부러 핑계대고 그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들의 잔치가 있기 전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와 명예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사는 문제와 소를 사는 문제가 더 중요시했다. 또한 세상이 주는 기쁨을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중하게 때로는 일언지하에 그 잔치를 거절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오셔서 복음전파 방향을 달리 정하셨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즉 소외되고 병들고 비천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인 갈릴리로 가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았고 그런 자들에게 천국의 실재를 경험케 해 주었으며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천국잔치 자리가 비자, 예수님은 이방인들 즉 천국잔치에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을 그곳에 초대하신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천국복음을 들었을 때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족속의 가나안 이방여인의 믿음은 놀라웠다. 그들이 가진 믿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구약시대 갈렙이 본래가 가나안 잡족이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단 두 사람 중의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비록 이방인이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복이 그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방여인 기생 라합처럼 여관집을 운영하면서도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는그녀는 자신이 섬기던 가나안의 여신인 아스다롯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홍해물을 말리신 여호와만이 진짜 신인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방 모압여인 룻은 자기 민족이 섬기던 그모스 신을 버리고, 자기의 시어머니가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인 것을 알고, 고생길이 환히 열린 것을 보면서도 시어머니를 따라 낮설고 물설은 곳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보아스는 자기 민족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온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었고, 결국에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렇다. 예수님 때부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 천국을 침노하고 사모하는 자의 것이 되었다(마11:12). 유대인이라고 하는 특권을 주님께서 철폐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바라고 그분을 기꺼이 따르기로 원하는 자를 천국잔치로 초대하신다. 그래도 당신도 이 복음을 듣고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자격이 없어 비천한 우리들을 불러내어 예수님으로 의의 옷을 입혀 천국잔치에 참여케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드린다.  

Articles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