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11) 아담의 범죄보다 큰 그리스도의 은혜(롬5;12~21)

by 갈렙 posted Dec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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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VQqZCXSNYI
날짜 2015-12-16
본문말씀 로마서 5:12~21(신약 24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칭의에서 성화로, 그리스도의 피와 그리스도의 생명, 첫아담과 마지막아담, 죄와 사망, 은혜와 생명 이들, 왕노릇하는 것들, 두 사람과 두 행동의 결과

  로마서에서 분수령은 과연 어디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전환되는 롬5장 안에 있을 것이다. 롬1:18~5:11에서는 죄와 칭의에 관한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를 다루고 있다 한다면, 이어지는 롬5:12~8:39까지는 성화에 관한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다루고 있다. 롬1:18~5:11에서는 칭의로 말미암은 외적인 신분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면, 롬5:12~8:39까지는 성화로 말미암은 내적의 성분의 변화를 다룬다. 또한 롬1:18~5:11이 죄들(sins) 즉 자범죄와 그 처리방법을 다루고 있다면, 롬5:12~8:39에서는 죄(Sin) 즉 죄된 본성(원죄)와 그 처리방법을 다룬다. 이 차이를 먼저 이해한다면 당신은 로마서를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로마서교리의 두번째 영역에 해당하는 성화(거룩하게 됨)의 관한 부분(롬5:12~8:39)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사람이 혹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믿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사람의 구원은 완성된 것인가? 아니다. 그 사람은 단지 칭의를 통해 구원의 여정 안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것뿐이다. 앞으로 구원의 완성을 위해 그가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어 의인으로 칭함받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분은 여전히 죄된 본성을 소유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주 예수를 믿어 칭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순간 그 사람의 속성분까지는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외적인 신분의 변화만을 가지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여겨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칭의가 믿는 이들을 구원 안으로 들여놓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구원의 골인지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로부터 전가받은 하나님의 의를 자기의 것으로 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받는 첫번째 혜택은 죄사함(정확히는 죄들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고, 화해와 화목을 누리게 된다(롬5:1~11). 하지만 그 사람의 속에는 여전히 죄된 성분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는 죄된 성분을 해결하는 데에 더욱 앞장서야 하며, 더불어 죄된 본성으로 말미암은 자범죄를 용서받기 위해 회개하는 삶도 병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죄된 성분은 인간 스스로 바꾸기가 정말 어렵다. 인간의 죄된 성분은 자신이 육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는 여전히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칭의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속 부분을 제어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죄된 본성을 인격화하면 사탄이요 루시퍼인데, 그가 얼마나 간사하며 지헤로운가?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에 오염되어 있기에 더욱 더 어렵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 때문에 이미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롬5:20, 14). 그러니 죄와 사망의 종인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해결책을 마련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가지고서 죄와 사망을 이기는 것이다(이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다룰 것이다).

  자, 그렇다면 먼저 믿는 이들은 과연 어떻게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은 두 번 태어나야 한다. 한 번은 첫 사람 아담 아래에서 엄마의 뱃속으로부터 태어난다. 그리고 어떤 이는 한 번 더 태어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한 번 더 태어나는 것이다. 첫번째 출생이 육신적인 출생을 가져 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두번째의 출생은 영적인 출생을 가져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자녀로 태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며, 죽은 다음에는 영원한 음부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육신이 살아 있을 때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거듭 태어나는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생각이 아니며, 육신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이 거듭 태어난다는 것이요 그것은 자신의 영에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즉 사람은 첫 사람 아담 아래에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들 중에 어떤 이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한 번 더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는 방법은 믿음이다. 사람은 믿음을 통해서 성령을 자신의 영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거듭남(중생)'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사람에게는 중생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는 것이 필요한가? 그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에서 기인한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특별한 피조물이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진 특별한 존재다. 그렇다면 영혼은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신 후에 그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창2:15~17). 하나님의 생명을 실과의 형태로서 먹어서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을 채우라 하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마귀의 꾐을 받아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아니하고 지식의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짓게 된 것이다.하지만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마귀의 말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죄'라고 명명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담의 불순종은 사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지지 전까지 아담같이 행한 것들을 다 죄라고 명명하지하는 아니했을 뿐이다. 당시 정죄는 없었던 것이다(롬5:13~14).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죄'였다는 것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기 때문이다(롬5:12).

  뿐만 아니라 우리는 아담의 범죄가 온 인류의 범죄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범죄하지 아니하였는데, 아담의 범죄 때문에 자신이 죄된 본성아래에 태어나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아담이 범죄할 때 아담 혼자 범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우리도 아담의 허리에 있어서 아담의 범죄에 같이 동참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아담의 허리에서 나온 그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의 결과를 아담에게만 돌리고 나에게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온 세상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사망도 또한 들어왔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살펴볼 것은 '죄'와 '사망'이라는 것이다. 죄와 사망은 원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 밖에 있었는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럼 어디에 죄와 사망이 있었는가? 그것은 셋째하늘에서 있었다. 그러면 죄와 사망이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는가? 아니다. 죄와 사망은 루시엘 천사장에게서 최초로 나온 것이다. 루시엘 천사장은 찬양을 담당하는 하나님의 천사장이자 가장 지혜로운 천사장이었다(겔28장, 사14장, 계12장). 하지만 그가 지음을 받던 날에 교만하여졌다. 자신이 너무나 지혜롭고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일날 그를 셋째하늘에서 내어쫓아버렸다. 하나님의 군대장관인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부하들이 나서서 루시엘과 루시엘을 따르는 다른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어쫓아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셋째하늘에서 이 우주로 쫓겨남을 받았다. 그때에 그들의 얼굴들은 흉측하게 변해있었고, 날개는 이리저리 찢어진 상태가 되었다. 또한 그들 중에 상당수는 파충류인 뱀과 전갈들로 그들의 모습이 바뀐 것도 있었다(눅10:19). 이때 루시엘은 루시퍼라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바뀌었고, 루시엘을 따르는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 곧 귀신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헬라어로 '죄'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빗나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 죄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빗나간 것을 가리킨다. 그것의 최초는 루시엘에게서 있었다. 그리고 루시엘롸 그를 따르는 천사들은 셋째하늘에서 쫓겨나 이 은하계 안으로 들어왔다. 결국 그들은 이제 영원히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을 일컬어 '사망'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망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서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겨난 것을 가리킨다. 결국 죄와 사망이 하늘에서 루시엘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하늘에서 루시엘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이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뱀으로 둔갑한 루시퍼에 의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마자 죄와 사망도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마6:9~10, 눅10:18~19, 롬5:12). 그때로부터 죄와 사망은 인간 위에서 왕노릇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지은 죄값을 하나님께서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건져내신 것이다. 죄값은 사망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 없는 분이시므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오셨고, 피가 죄를 속할 수 있다고 하셨기에(히9:22, 레17:11) 하나님께서는 피가 없지만 피흘리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으며, 그분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게 된다.

  그렇다면 첫 사람 아담보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더 뛰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주신 것이 더 풍성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인류에게 준 것은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에게 죄와 사망을 선물로 준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죄와 사망아래 종로릇하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이 일을 위해 일차적으로는 피를 흘려 죽으셨다. 그리하여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름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류를 건져내신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주신다. 이 생명은 아담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이자 아버지의 생명이다. 그리하여 오직 이 생명을 가진 자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망보다 더 세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로 입증된 바 있다.

  그렇다면 율법이란 무엇인가? 율법이란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 사이에 끼어들어온 임시법을 가리킨다. 첫 사람이 아담이 범죄한 것으로 인하여 인간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진단해주는 것이다. 일종의 거울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신분으로 만들어준다. 그것은 죄인이라는 신분이다. 그리하여 율법은 모든 인류를 정죄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율법의 역할이란 초등교사(몽학선생)라고 하였다. 율법이 중간에 끼어들어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하게 하고, 더욱 심히 더 죄가 죄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가 많아진 곳에 더욱 은혜가 넘친다고까지 말하였다. 당신도 자신이 심히 죄된 것을 발견하고 있는가? 그러면 더욱 더 큰 은혜를 알 수 있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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