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1)] 주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마4:18~22)_2023-07-09(주일)

by 갈렙 posted Jul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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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부르심(1)] 주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마4:18~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lwHcOYyRPuY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93]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주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서 사역자를 부르시고 있다. 그렇다면 주께서 과연 나를 주의 나라를 위한 사역자로 부르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주님께서는 주의 사역을 이해하고, 자신을 도와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이 땅에 주께서 행하신 사역을 계속해서 계승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대체 어떤 것인가?

 

2.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의 계승자로서 첫 네 명의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가?

  예수께서 30세가 되셨을 때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가셨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성령을 받아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신 곳은 유대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그분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머무르신 후에 당신의 사역을 계승할 사람을 찾으셨다. 그런데 그분의 첫 제자들은 다름 아닌 어부들이었다. 

  먼저,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그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즉시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다(마4:18~19).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셨다. 또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도 역시 배와 부친을 배에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다(마4:21~22). 그런데 당시 베드로나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각적으로 응답을 한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시는가?

  왜 주님께서는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자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인가?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당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굳이 불러내셨는가? 당시 베드로는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남 야고보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있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를 결코 당신의 사역자로 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부지런한 자,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자를 쓰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자는 앞으로 교회를 세워야 하고, 천국복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를 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는 결코 게을러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를 불러내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4. 예수께서는 왜 가버나움을 3년 반 공생애의 근거지로 사용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어부가 아니셨다. 그리고 갈릴리 바닷가의 가버나움이 그분의 고향도 아니셨다. 그리고 장차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셔야 할 곳은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근거지를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삼으시기 위해 그리로 가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당신의 첫 제자들로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절반 이상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장소가 바로 갈릴리 가버나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이사 가신 것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제자들을 불러내셔서, 그들을 당신의 계승자로 삼기 위해서였다.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의 계승자로서 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그들을 사역자로 불러내서 쓰시기 위해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처음부터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는가? 그런 건 아니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인,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의 어부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필요에 따라 베드로와 안드레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장소로 이사가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회개와 천국복음을 접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주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계승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시고, 그러한 영혼을 이 땅에 보내시고 있다. 고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제자로 삼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왜 가버나움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그들의 아버지인 세베대가 그 비밀을 알려 준다. 예수께서 그 많고 많은 마을들 가운데 3년간의 거점을 가버나움으로 정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그곳에 자신의 이모부와 이모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이모부는 세베대를 가리키며, 이모는 살로메를 가리킨다(막15:40, 요19:25). 고로 야고보와 요한은 이모 아들들로서 외사촌동생들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천국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가장 존귀한 자의 반열에 들어 있는 자들이다. 아니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 때에, 가족관계도 매우 깊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려고 이 땅에 보내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을 따라 이 땅에 보내어진 특별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약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더라도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이 땅에 보내어졌는지를 반드시 알게 될 날이 찾아온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깨우시고 불러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 네 명의 제자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자신의 관심은 이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 곧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사역자로 보내어진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그들은 자신의 본연의 직무를 찾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예수님이 그곳에 이사가신 때였던 것이다. 그 일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네 명은 어부의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거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 보다 더 가정에 책임이 적었던 동생들 곧 안드레와 요한이 먼저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예루살렘 근방에 갔다. 왜냐하면 소문에 메시야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 보니, 그는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을 굴복시키며 하늘나라의 일을 전파하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은 곧바로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는 자는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더 채워주는 스승을 갈망하게 되고 결국 그를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던 안드레와 요한은 어느 날 세례 요한으로부터 놀라운 증언을 듣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며,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하면서, 진정 자신의 제자들이 따라갈 분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찾아간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본 후, 동생 안드레는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데려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다. 그러자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신 후에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바꿔주신다. 결국 이후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되었으며, 그의 형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되었다. 

  셋째, 주님께서 쓰실 사람들은 어느 날 주님께서 직접 그들을 불러내시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즉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제자가 되는 일은 사실 본인이 결정하여 스승을 찾아가서 부탁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아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소관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성공해도 되고 실패해도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맡기실 때에는, 이미 하늘에서 정한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내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를 불러서 그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쓰시는 특별한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이다. 고로 그러한 자가 아님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로 쓰임받을 일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 세상에 보내어진 사람은 세상일을 잘 한다고 해도 그 일이 그리 기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와서 고기잡이 전문가가 되었고, 또한 안드레가 어업을 통해 예루살렘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 생선 판매망을 이용하여 부자로 살고 있었어도,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그들을 이 땅에 고기잡이로서 내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시자,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주님을 따라나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쓰시려고 불러내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모든 사람이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수백 억의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 땅에 보낸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이러한 자들의 힘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도와서 함께 일할 사람도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며 또한 누가 과연 하나님의 사역자를 도와서 그 일을 감당할까? 

  첫째, 현재 자신에게 어떠한 풍족한 삶이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관한 것, 영적인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대단하다. 둘째,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맡겨 주신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내려놓는다 할지라도 그것에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 일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 세상에서 시대적으로 하나님이 쓰실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개인적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자신이 깨달아서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도로서 예정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께서는 그를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셨고 또한 부르셨다. 넷째, 이 땅에 사는 자들 중에는 주님께서 쓰시는 사역자를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역자를 돕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귀한 물질,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시간을 하나님의 사역에 기꺼이 내어놓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그에게 의무 사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함으로 그 일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0:41~42). 그러므로 천국에 가보면,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도왔던 자들로서, 바나바와 실라, 디모데와 누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은 매우 큰 상을 받은 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 나오며

  큰 교회를 목회하다가 성도들을 지옥 보낸 주의 종들이 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여 간신히 천국에 들어갔다고 치자, 과연 이들의 이름이 천국에서 빛나게 될까?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가 가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회개하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 누릴 상은 그에게 없는 것이다. 남들을 지옥가게 했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서 어떻게 영광스런 지위를 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은 거의 성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작은 일일지라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라면, 그러한 자가 오히려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일반 성도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대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께 선택받지 않았어도, 자신이 가진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물질을 사용하여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상을 내리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작은 것일지라도 주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자는 천국에서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책망할 것이 없는데, 주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물질과 시간, 은사와 달란트를 드렸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으로 자신의 사명의 때를 알아차린 네 명의 제자,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갔다. 그래서 저 하늘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제자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드려 하나님의 사역자를 돕는다면, 그는 사도 바울을 도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천국에서 정말 큰 상을 받은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3년 07월 09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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