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종말신앙(10)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말의 의미는?(눅17:22~33)_2021-08-27(금)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Aug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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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uKeLTtchUY
날짜 2021-08-27
본문말씀 누가복음 17:22~33(신약 12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인자의 날들, 노아의 날들, 롯의 날들, 인자가 나타나는 날, 물심판과 불심판, 구원의 날이자 심판의 날, 성도들의 휴거와 그리스도의 심판,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의 날

그날은 과연 언제 오는가? 그리고 그날이 왔을 때에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주님께서 비유를 통해 미리 말씀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날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날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때를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노아의 날들"이자, "롯의 날들"로 나와 있다. 그럼, "날들"이라는 의미는 대체 무었일까?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있다.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는 날은 대체 언제일까?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영성가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날짜와 그 시각을 알 수 없다(마24:36).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아들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했다(행1:7, 마24:36). 그러므로 우리가 그 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신성모독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을 징조들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만 징조를 통하여 그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자의 날들이 되어 성도들의 하늘로 휴거되어 올라가게 되고, 남겨진 불신자들에게 심판이 내려지는 날은 대체 언제인 것인가? 우리는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인자의 날들"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이며, 그날이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마지막 시기에 일어날 일들을 잘 대비하여 그날을 잘 준비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예수께서는 마지막의 때를 왜 '인자의 날들'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어느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 관하여 예수께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인자의 날들"이 다가올 것인데, 너희가 그 인자의 날들의 하루를 보고자 갈망하겠지만 그날을 너희는 보지 못할 것이다(눅17:22)" 그리고 그날은 어느날 번개가 치듯 갑자기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날이 어떻게 올 것인지에 대하여 2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노아의 날들'이요 '롯의 날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그날을 '인자의 날(단수)'이라고 말하지 않고 '인자의 날들(복수)'이라고 말한 것인가? 우리는 인자가 나타나는 날을 하루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인자가 나타시는 날을 '인자의 날'이라고 말하지 않고, '인자의 날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자의 날들은 단 하루로 끝마칠 수 있는 날이 아니라, 적어도 이틀 이상 걸리는 복수적인 의미의 날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날 한 날 때문에 모든 사건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서 종말의 날들이 종료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3. 인자의 날들은 구원의 날인가 심판의 날인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인자의 날들'은 하루만이 아니라 여러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자의 날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인자의 날들"이란 어떤 의미인가? 다음과 같은 이런 것이다. 예수께서 나타나시는 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 때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고 또한 그때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날에 '성도들의 휴거'와 '아마겟돈 전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나하면 그날은 복수적인 단어로서, '인자의 날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당신이 나타나는 날을 '인자의 날(단수)'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인자의 날들(복수)'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인자의 날들 안에서 적어도 2가지 이상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인자의 날들의 예표인 '노아의 날들'을 빌린다면, 그날은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날은 '심판의 날' 내지는 '파멸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다시 말해, 인자의 날들 중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 그 뒤에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에, 그날들은 구원의 날임과 동시에 심판의 날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먼저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이제 남은 자들은 불신자들이다. 그날이 되면, 주님께서 이미 천국에 불러들인 성도들과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지상의 군대인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섬멸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군대에게는 그날이 '구원의 날'이라고 할 수 있고, 지상의 군대에게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요, 파멸의 날'이 될 것이다. 

 

4. 그날이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럼 그러한 날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취되는 것일까? 그것은 주님께서 2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나는 그때가 '노아의 때(날들)'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하나는 그때가 '롯의 때(날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그날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니까, 그날이 되면 예수께서 7년 대환난 전에 공중으로 오셔서 보석같은 성도들을 다 공중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때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일주일(7일)이 지난 다음에 비가 쏟아짐으로 남겨진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먼저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 지상에 7년 대환난이 있은 후에 아마겟돈 전쟁으로 모든 인류가 죽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마지막 때는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대환난의 날은 너무나 심한 것이어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22). 우리는 모든 성경을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고 해석해야 한다. 얼핏 보면, 7년 대환난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가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총8명)가 방주가 들어가고 나서 7일 뒤에 홍수가 쏟아졌기 때문이요, 요셉시대에는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7년)도 마지막 때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대환난의 날도 요한계시록에 보면, 42달(계13:5)으로서 다섯째와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 재앙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예수께서 분명하게 그 환난의 날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감축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날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날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눅17:26-27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그렇다. 노아의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날을 대비했던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는 방주에 들어감으로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심판의 때를 준비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날이 갑자기 그들에게 도래함으로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전부가 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롯의 시대에는 심판의 소식을 들었던 롯의 사위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었다. 그렇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홍수가 나서 자기를 심판하던 그날까지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 헬라어원문에 보니, 그날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먹는 것에 치중하고 마시는 일에 치중하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육체를 위해 살았다는 말이다. 당시 그들에게는 먹고 즐기는 것이 기쁨이었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시의 사람들 모두가 육체가 되어버린 것을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이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실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은 다음에 들어갈 다음 세상에 대해 관심이 없었ㄷ언 것이다. 

  그렇다면 롯의 때는 또 어떠했는가? 롯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있었고, 사고 팔고 있었고, 심고 집을 짓고 있었다(눅17:28)"고 했다. 모두가 다 미완료형태의 동사들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 당시 사람들이 육체를 위한 일상생활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이때에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원인의 하나는 동성애였는데 말이다. 어찌되었든지 롯의 때에도 오직 육체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롯이 소돔에 나가는 그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다 멸망시키고 말았다. 그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보내어진 천사의 지시를 따라 그 성에서 빠져나온 롯의 그의 두 딸들만 구원을 받은 것이다. 롯의 아내도 그때 성은 탈출하기는 했으나, 세상의 소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었으니 그녀도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5. 나오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기가 지금 죄를 짓고 살고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부지기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기를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으니 자신이 지은 죄들이 자신의 구원의 상태를 결코 바꿀 수는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 보라.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수 믿고도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미래가 어떻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미 무화과 나무가 싹이 났으니 인자가 문앞에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깨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은 어찌할 것인가? 불신자야 불신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겠지만 신자들 중에서도 그날을 대비하지 않고 있는 많다.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살아야 할 텐데,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상급들 곧 천국집과 면류관과 보좌자리를 준비하지도 않는다. 아마 그날이 되었을 때에, 슬피 울며 이빨을 갈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의 상태는 우리가 육체를 갖고 있을 때에만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 가면 너무 늦는다. 그때에는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날을 대비하자. 그리고 그날 이후에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하자.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2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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