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14) 사례를 통해 살펴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귀신과 교제하는 것의 상관관계(고전10:1~11:1)_2021-06-30(수)

by 갈렙 posted Jun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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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cyMONf3mYi0
날짜 2021-06-30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0:1~11:1(신약 27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우상제물취식문제,이스라엘조상들의자유남용실례,우상숭배하지말라,우상제물취식과귀신교제상관관계,다른사람의유익을위하여,하나님의영광을위하여,추도예배장례예배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사실 영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 문제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우상을 숭배해도 귀신이 들어오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음식을 통해서 귀신이 몸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것을 정확히 규명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우상제물 취식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사례를 갖고 들어오며, 성만찬의 사례를 가지고 들어온다. 과연 사도바울은 우상제물취식의 문제를 어떻게 결론지어 말했을까? 

1. 들어가며

  성도가 되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까? 사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이 없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제물이 바쳐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만약 우리가 부처상에다가 절을 하고 그것에게 소원을 빈다고 쳐보자, 그때 영적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또한 조상이 죽은 날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쳐보자. 그 제삿상에 올려진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없을까? 그러므로 우상이나 우상의 제물에 관한 원칙적인 기술과 그것의 실제는 다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에 우상은 없다고 말하는 진술은 맞다. 그렇다고 우상에게 절을 하는데 과연 귀신이 그 우상에 달라붙지 아니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론상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실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두 번의 시간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바울의 최종적인 결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는 것인가?

 

2. 고린도전서 10장의 위치는 어떠한가?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 부분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책망하는 부분이고 또 한 부분은 성도들이 바울에게 질문한 것을 답변하는 부분이 잇다. 책망하는 부분은 고전1~6장까지인데, 1~4장까지는 교회의 분열과 분파를 책망하는 내용이고, 5장은 근친상간의 죄를 책망하고, 6장은 성도간의 송사를 책망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답변하는 부분은 고전7~15장까지인데, 7장은 결혼과 이혼과 재혼에 관한 답변이고, 8장에서 10장까지는 우상의 제물 취식문제에 대한 답변이며, 11장은 여자가 머리에 쓰는 문제와 성만찬에 대한 답변이고, 12~14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답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5장은 부활에 관한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0장은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에 대한 결론부분에 해당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답변하고 있다. 

 

3. 고린도전서 10장은 우상제물 취식문제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고전10:1~11:1)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우상의 제물 취식문제를 어떻게 답변한 것인가? 사실 우상의 제물 취식문제는 고전8장에서부터 답변하고 있다. 고전8장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 것처럼 답변한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우상은 실제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없다는 믿고 있는 성도들이 고린도교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실족시키지 않고자 그렇게 답변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고전9장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사도적인 권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권한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말한다. 그리고 고전10장에 와서 우상의 제물에 대한 취식문제에 결론적인 답변을 한다. 그것은 이렇다.

  바울은 고전10장에서 나눠서 3부분으로 우상의 제물 취식문제를 언급한다. 첫째, 이미 일차적인 구원을 받아 광야에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의 실례를 언급하면서, 비록 모세에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영적인 음식인 만나와 영적인 음료인 반석에서부터 나오는 생수를 마셨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하고 오용하다가 결국 멸망당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로 나오는데까지는 다 성공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하다가 결국 광야에서 다 엎드려져 죽었다는 것이다. 둘째, 성만찬의 실례를 언급함녀서 성도들이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듯이, 귀신의 식탁과 귀신의 잔을 먹고 마시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결국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를 통해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때부터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여야 한다고 권면한다. 

 

4. 출애굽후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백성 중 우상숭배한 자는 지옥에 갔는가?(고전10:1~13)

  바울은 고전10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먼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의 사건을 예로 들어서 일차적인 구원을 받은 자라도 우상의 제물을 먹다가 멸망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즉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나오게 되었으며, 홍해에서 애굽의 군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바다를 건넘으로 그들의 신분이 바뀐 사실을 언급한다. 그때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 이스라엘인들의 신분은 종이었고 또한 도망자이었으나, 홍해에서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킴으로써 승리자기 되었으니, 그때부터는 자유인이 되었음을 언급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자유민이 되어 광야로 나왔다고 할지라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습성을 버리지 않아 광야에서도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고전10:7, 출32장의 송아지우상숭배사건), 음행을 저질렀으며(고전10:8, 민25장의 모압여인과 음행한 사건),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시험하였을 뿐만 아니라(고전10:9, 민21장의 불뱀사건), 그리고 원망불평하다가(고전10:10, 민14장의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에 따른 백성들의 원망불평 등등)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다는 것이다. 즉 출애굽1세대 가운데에는 20세 이상의 장년의 남자들 모두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는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그들이 그렇게 광야에서 멸망을 받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불신앙의 다수를 따라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수"라 함은 가나안 정탐꾼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과 같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라는 것은 인정하였으나, 그 땅은 이스라엘 민족을 삼켜버릴 땅이라고 보고하였으며, 가나안 족속 중에는 거인족이 있어서 자기들은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고 함으로서 이스라엘민족이 그들의 의견에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결국 부정적인 보고자였던 10명의 정탐꾼들과 그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아 원망했던 20세이상의 남자들은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다가 40년 안에 다 죽게 된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다(고전10:5)"고 인용하였다. 더욱이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도 역시 애굽에서부터 탈출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았지만 그렇게 해서 광야로 나온 이들이 전부다 광야에서 멸망당했다고 언급함으로서 이를 확증해 준다(유1:5). 결국 광야에 나왔으나 우상숭배한 자들은 다 지옥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계21:8)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또 하나의 사실은 출애굽에 관해 보도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40년동안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신 이를 "그리스도"라고 언급(고전10:9, 헬라어원문참조)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도 역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이를 "예수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헬라어대문자사본을 참고할 것).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이끄시고 먹이시고 심판하셨던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는 여호와이셨고, 신약에서는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님을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20세 이상의 출애굽1세대 중에는 거의 없었다. 고로 인간의 구원은 처음 믿을 때에 따놓은 당상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이미 받은 자라도 죽는 날까지 회개함으로 구원을 이뤄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 가졌던 믿음을 어떤 중에서도 부인하지 않아야 하며,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5. 추도예배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하여도  귀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고전10:14~22)

  사도바울은 이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고 있을 것"을 권면한다(고전10;14). 왜 그런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로서 모일 때에 성만찬을 집행하여 그리스도의 한 떡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한 피에 참여하고 있는데 어떻게 되어서 귀신의 식탁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참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의 경우도 제물들을 먹는 자들은 곧 제단에 참여하는 제사장들이라고 하면서, 만약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가 곧 우상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상의 제물이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제로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그 제물을 먹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이 되어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이가 있다면 그는 귀신과 교제하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마시며, 동시에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계속해서 행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위해 피흘리겨 죽으시고 자신의 생며을 내놓으신 예수님을 질투하게 할 것이며, 주님을 노여워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만약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주님보다 더 강한 자라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방인들이 제물을 바치는 것은 다 우상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또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도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결단코 우상에게 절하거나 섬겨서도 아니되며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 노여워하시게 함으로서 자신의 후손 3~4대까지 저주가 임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출20:5). 

  문제는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과연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잘 몰라서 예수님을 믿고도 제사를 지낸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상숭배행위"라고 알려짐에 따라, 예수믿는 사람들은 이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어떤 교단에서는 십자가 긋고 제사음식 준비하고 또한 제사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제사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행위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제사음식을 먹게 되면 귀신들이 그 음식을 통하여 자기의 몸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인 비을 아는 자는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기도 하지만, 조상도 몰라보는 자식이라고 야단을 맞을까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가족이 죽은 날에 장례예배(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또한 매년 그날에 모여서 추도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그럼, 이것은 괜찮은 것인가? 사실 그것이 괜찮은 것인지 괜찮지 않은 것인지는 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이 우상숭배행위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알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해서 추도예배 장례예배 드린 성도들이 과연 저주를 받지 않고 살고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올시다이다. 대부분의 성도들 역시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병들기도 하고 사건사고에 시달리기도 하며 자식이 이상하게 되기도 하고 물질이 새어나갈 뿐 들어오지 않는 일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다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이유들 중에는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같은 것을 드림으로 귀신을 자기의 몸 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시체를 놓고 예배드리는데 어찌 귀신이 들어오지 아니하겠으며, 죽은 날에 모여 예배드리는데 어찌 귀신이 설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은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단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례가 났을 때에는 산 사람에게 조문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의 초상 앞에 꽃을 바치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꽃을 바치는 것은 향불을 태우는 행위를 대신하는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도예배도 더이상 드리지 말라. 그날 죽은 자가 절대 오지 않고 귀신이 와서 그 예배를 받기 때문이다. 

 

6. 우상의 제물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성도가 늘 고민해야 할 사항 2가지는 무엇인가?(고전10:23~11:1)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가 되는지 아니 되는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죄가 되느냐 아니 되느냐 하는 것은 사실 영적으로 보면 그렇게 했을 때에 귀신이 사람 몸 속으로 들어오느냐 안 들어오느냐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성도들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믿음이 연약한 자로 하여금 죄를 대범하게 범하도록 조장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또한 믿음이 연역한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도 역시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모든 것이 다 가하다(허용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모든 것이 가하다(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사람을 다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고전10:23). 그러므로 누구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할 때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위하여 특히 믿음이 연약한 자의 유익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고전10:24). 그리고 그는 더욱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고전10:31). 왜냐하면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자유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이유는 그것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걸려넘어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조심스러운 모습 또한 남을 배려하는 모습 그리고 절제된 행동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10:33). 

 

7. 나오며

  성경 말씀에도 '원리'가 있고 '실제'가 있다. 원리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실제에서는 불가능한 것들도 역시 많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른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왼 발을 내딛으면 되고, 왼 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 발을 내믿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일 뿐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물 위를 걸어갈 만큼 발을 빨리 움직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도 역시 우상은 없다. 또한 우상이 없으니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인간이 경배하고 섬기는 모든 대상에게 귀신이 관계하여 섬김을 받고 있다. 그때에 귀신들은 합법적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그렇게 하여 사람이 우상숭배행위를 하기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 있어서 우상이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우상의 제물도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우상의 제물은 어떤 식으로든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불신자가 성도들을 대접한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우상의 제물로 만든 음식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때는 그 음식을 먹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불신자가 나를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고기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라고 말한다면 그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게 하거나 모든 것이 덕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보면, 모든 것이 불가하지만 모든 것이 무익한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더욱 세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유익을 위하는 일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6월 3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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