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강해(27) 개인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과연 어느 때에 쏟아지는가?(렘25:15~29)_2023-03-10(금)

by 갈렙 posted Mar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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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hu-n7NCv0E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7) 개인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과연 어느 때에 쏟아지는가?(렘25:15~29)_2023-03-10(금)

https://youtu.be/Mhu-n7NCv0E [또는 https://tv.naver.com/v/34139656]

 

1. 개인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 임하는가?

  개인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 임하는가? 하나님께서 개인과 민족에게 심판하시는 때가 있다. 그때가 진정 오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죄는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자에게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가 있으니, 그 때는 바로 그 사람에게 죄가 가득 찼을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많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형벌받을 죄를 그날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징계가 임하지 않는 것은 그가 심판받을 만한 죄가 아직 가득 찬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남유다가 제20대 시드기야왕 때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남유다가 르호보암 때부터 시작된 바벨론의 침략으로 결국 20대 시드기야왕(재위 B.C.597~586) 때에 멸망하게 된 것은 그동안 남유다가 지은 죄가 드디어 벌할 만큼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남유다의 14대 왕 므낫세(재위 B.C.697~642) 때에 이미 심판받을 죄의 분량이 거의 가득찼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재위 B.C.715~686)의 신앙과 간절한 기도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지 않았고 조금 더 존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유다가 범죄함으로 남유다는 그만 멸망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죄가 가득 차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되면, 그 심판은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기 전에 빨리 회개함으로 죄의 분량을 비워야 한다. 

 

3. 개인의 심판은 어떠한가?

  국가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심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개인의 죄는 조상들로부터 지은 죄들의 결과(악한 영들)가 계속 자기 후손에게 내려가다가 어느 때가 되어 죄가 가득차면 그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아무리 선하게 살고 있어도 그 사람에게 징계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다윗의 경우다.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했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밧세바가 낳은 아들을 데려가셨는가? 그렇게 성군이었던 다윗의 자식들이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으로 죽어야 했는가? 그리고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역을 하고 정권을 탈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의 후궁들 10명과 더불어 대낮에 동침하는 사건이 발생해야 했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막아주시지 않은 것인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다윗이었는데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핀 하나님의 분노가 쏟아지는 때에 관한 말씀을 대입해 보면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죽게 된 것은 다윗이 지은 죄의 분량이 그때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야를 적진에서 죽이게 한 살인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야 장군을 죽인 바로 그 죄가 다윗에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심판이 임하는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살인죄는 필연적으로 심판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윗이 그 죄를 짓고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고 통회 자복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죽이지 않고 그 아들을 죽게 한 것이다. 사실 그때 다윗이 죽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이 회개함으로 인하여 잠깐 가득 찬 죄의 분량이 약간 비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사망이 임하지 않고 그의 아들에게 사망이 임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 집안에 흐르는 사망의 저주가 다윗의 아들 대에서는 멈추지 않는다. 셋째 아들 압살롬이 첫째 아들 암논을 죽였고, 아들 솔로몬이 넷째 아들 아도니야를 죽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의 간음죄도 역시 다윗이 심판을 받을 마지막 순번의 간음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윗이 회개를 했기 때문에 간음죄로 인한 형벌이 아들 대에 나타나는 것이다.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동생 다말을 범하게 되고, 셋째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4. 왜 남유다의 가장 선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에게서 가장 악한 왕인 므낫세가 태어나게 되었는가?

  남유다는 총 20명의 왕들이 있었다. 그중에 13번째 왕은 히스기야왕이었다(재위 B.C.715~686). 그런데 히스기야왕은 남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선한 왕이요 칭찬받는 왕으로 기록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상들을 제거하고 율법 말씀을 지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기를 넘겼던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재위 B.C.697~642)는 남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종류의 우상을 다 섬겼으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몰록신에게 제물로 바쳤고, 자신을 꾸짖는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기 때문이다(히11:37). 그런데 생각해 보면 히스기야는 잘못한 일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이었는데, 왜 므낫세가 그렇게 악한 죄를 많이 저지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히스기야 이전의 왕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그 집안에는 악한 영들이 가득 들어찬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왕이 그렇게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할지라도, 므낫세에게는 윗대 선조들이 지은 죄로 인해 악한 영들이 엄청 많이 내려온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왕 때에는 문제가 없었다. 예를 들어, 거대 제국 앗수르가 쳐들어왔으나 히스기야의 기도로 인해 그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가 12살이 되었을 때에 다시 악한 영들이 내려와 활동을 하므로, 므낫세는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온갖 악행과 우상숭배를 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왕하21:1~11). 다시 말해 히스기야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했던 왕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회개를 통하여 자기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일을 비교적 많이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그대로 므낫세에게 내려가서 므낫세가 완전히 악한 영들의 도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와 그의 어머니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 왕21:1, 사62:4)의 기도 덕분에 므낫세가 60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회개를 하여 천국에는 들어가게 된다(대하33:12~13). 

 

5. 오늘날 우리들에게 임하는 저주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고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임하는 저주의 문제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집안이 가난하게 살고 있고, 병에 시달리는 자가 많으며,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고 일찍 죽는 자가 발생하는 것은 다 자기 자신과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수도 없이 내려와 나와 내 가문의 사람들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회개하여 그 악한 영들을 내보냈다고 한다면 자기의 시대에 저주를 받지 않겠지만, 회개하는 자가 없었다면 죄는 쌓이고 쌓여서 나의 시대에 형벌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의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회개하는 자 없이 믿기만 하는 성도였다면 그 믿음으로 혹시 간신히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있을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의 육신의 삶은 가난하고 병들고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는 저주를 계속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결코 우리들의 자백없이는 우리 몸에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자기의 대에 이르러 죄값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죄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값을 치르거나 혹은 회개를 통해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면 나와 내 후손에게 들어가는 악한 영들을 우리는 결코 제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회개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는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끔 나를 이끌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받아야 할 저주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03월 1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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