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21)]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5)(계2:10)_생명의 면류관과 섬김의 면류관_2025-02-20(목)
https://youtu.be/1eOlnxhus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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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국에 들어가면 과연 누가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게 되는가?
천국에 들어가면 누가 과연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는가? 그들은 대체로 144,000석의 보좌에 앉아서 예배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서서 예배하는 자들도 면류관을 쓴 자들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144,000석의 보좌 바로 뒤쪽에서 서서 예배드리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쓰고 있는 면류관은 대체 어떤 것인가? 이들의 쓰고 있는 면류관은 사실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포개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개의 면류관이지만 한 개에서 수 십 개의 면류관이 합쳐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많이 쓰고 있는 면류관은 어떤 면류관들인가? 그것으로는 충성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고, 어떤 이는 섬김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2. 누가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가?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고 있는 성도들은 보면 이 세상에서 대부분 사역자(일꾼)으로 충성하신 분들이 쓰고 있다. 아무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천국 성도들 중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생명의 면류관은 가장 쓰기 어려운 면류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이 면류관을 쓰는가? 그것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산 제물로 바친 자들이 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이러한 면류관을 쓰고 있는 분들을 보면, 세례요한, 바울, 베드로, 스데반 등이다. 이들은 다 순교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자들은 보면 순교하지는 않았어도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모세나 엘리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다니엘도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들은 순교하지 않았는데도 면류관을 쓰고 있는가? 그것은 이들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였거나 목숨을 걸고 주 예수님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주님을 위해 순교하지는 않았어도 마음으로는 이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 것이다.
3. 장차 생명의 면류관을 쓰려면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생명의 면류관을 쓰기 원한다면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장차 자신에게 불어닥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계2:10). 고난이 두려운 자는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고난 가운데 처할 때에 순교자들은 극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것은 주님께서 그것을 이겨낼만한 힘과 용기를 주시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주님께서 그의 속사람을 먼저 빼내어 고통을 감해주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어느정도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러한 고통일지라도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계2:10). 왜냐하면 순교자의 사명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주님께서는 그러한 고통에서 그를 건져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말하기를, 대적이 그를 감옥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10일동안만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10일'이란 충분한 숫자이기는 하나 짧은 기간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00은 더 충분한 수이고, 1000은 완전한 충분한 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라 할지라도 어느정도는 환난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는 자가 결국에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자신이 주어진 길을 가면서 그것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목숨을 죽는데까지 내어주면서까지 충성해야 한다(계2:10). 생명의 면류관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자가 받는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랬기 때문이다.
4. 장차 누가 순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과연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바치게 되는가? 그것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사탄마귀의 권세는 죄없는 사역자를 죽을 수는 없다. 그것은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에 죄없는 예수님을 죽여서 얼마나 제한받는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그러므로 아무리 사탄마귀라고 할지라도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떤 사역자는 사탄마귀가 죽이는 것을 허용하실 때가 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불법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뜻을 펼치기 위해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순교의 제물로 사람을 내어주신 후에는 그 일로 인하여 더 큰 사역자를 끄집어 내어 사용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순교의 제물로 내어주신 후에 오히려 그보다 훨씬 뛰어나신 예수님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스데반을 순교의 제물로 내어주신 후에는 오히려 그보다 훨씬 뛰어난 사도 바울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목숨이 바쳐졌다고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장차 큰 복을 받게 된다. 순교의 제물로 교회가 세워지고 그의 후손이 복을 받기 때문이다.
5.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자들이 장차 들어가는 천국마을은 대체 어느 마을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순교하는 자들이 장차 들어간 천국마을은 어느 마을인가? 천국에서 24장로들의 다스리는 24개의 마을이 있다. 그리고 작은 마을들 따로 더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천국마을들 중에도 순교하는 자들이 장차 들어갈 천국마을은 어디인가? 그것은 그가 성경적인 인물이 아니어서 24장로가 아니라면 대부분 스데반 마을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스데반 마을은 순교자들이 들어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국에 나가 선교하다가 순교하는 선교자들이 들어가는 마을은 대부분 스데반 마을이다. 그리고 순교자들도 그리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주기철목사님과 손양원목사님 그리고 문준경전도사님께서 스데반 마을에 들어가 계신다.
6. 평신도가 쓸 수 있는 생명의 면류관은 대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평신도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과연 어떤 면류관을 얻게 되는가? 그것은 섬김의 면류관이다. 왜냐하면 섬김의 면류관이 점점 커져서 충성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자가 되고 이러한 자들 중에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섬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큰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는 자가 결국에 충성의 면류관을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성과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원하시는 분은 섬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평신도라면 평신도는 3가지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첫째로는 자기가족을 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행16:31). 그리고 둘째로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 곧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겨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를 주님 섬기듯 섬겨야 한다. 그러면 그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최소한 섬김의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 중에 충성의 면류관을 쓸 자가 나오고 나중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쓸 자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생명)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기 때문이다(마20:28). 그러므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출발은 섬김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7. 나오며
생명의 면류관은 사실 섬김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땅에서 섬기지 않았는데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에서 면류관을 얻기 원하는가? 그러면 자기자신부터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때로 주님께서 내 목숨을 달라하지면 천 개라도 주님께 드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도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섬김의 일을 하기 싫어한다든지 아미녀 섬기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천국에서 충성의 면류관이나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이 땅의 사람들을 섬기려 오셨던 예수님처럼 나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5년 02월 20일(목)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