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받은 죄사함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자가는 이렇게 행한다(눅7:40~50)_2018-03-20(화)

by 갈렙 posted Mar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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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자신이 받은 죄사함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자가는 이렇게 행한다(눅7:40~50)
https://youtu.be/DhvBegN5fQY

 

1. 눅7:36~50에 나오는 이 여인은 당시 그 도시 사람들에게 어떤 여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어떤 죄를 지었던 여인이었을까요?(눅7:37,39)

 

2. 이 여자는 죄인인 여자로서, 그 도시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죄를 지은 여자이자 결혼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죄인이라고 불리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두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남자였다고 한다면 세리고, 여자였다고 한다면 창녀입니다(마9:120,21:31~32). 그러므로 이 여인이 창녀였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전에 언젠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으로부터 죄용서를 받은 것 같습니다(눅7:4~42). 그렇지만 그 도시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그 여자를 계속해서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었고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과거에는 분명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용서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그때 바리새인집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확고히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눅7:48)
눅7:48[직역] 이에 그분이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죄들이 이미 사함받은 상태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이 여인이 달려와서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내었으며, 연신 그 발에 입을 맞춘 후에, 그 발에 향유를 부어 향기가 나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서 행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주님께 자신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까 해서 행한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의 동네에 주님이 오셨고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곧바로 향유를 들고 그곳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여인이 이미 용서받은 상태에서 예수님께 와서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두 가지 이유를 말해보십시오(눅7:48, 눅7:41~43)

 

4. 예수님의 비유말씀에 의하면, 이 여자는 이미 죄사함을 받은 상태에 있었고(눅7:48), 이미 자신이 지은 죄를 많이 탕감받은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눅7:41~43). 그러니 그녀의 사랑함이 그렇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예수님께 행던 행동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크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그녀가 엄청나게 크게 죄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흔적은 대체 무엇입니까?(눅7:37~38)

 

5. 이 여자는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죄가 많이 탕감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수치스러운 일(발을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드리거나 거기에 입을 맞춤)이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전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자신의 값지고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렿지만 그것이 전혀 아깝게 생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거꾸로 우리에게 적용해본다면, 우리가 낮은 데에 처하여 일하는 것들이 수치스럽게 느껴지거나, 주님께 드린 것이 아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곧 내가 주님께 받은 죄용서의 크기를 아주 적게 느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는 자는 그 여인처럼 자신을 낮추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것을 드려도 아깝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금 현재 나는 주님께 어떻게 행하고 있습니까?

이 여인이 행한 행동은 결코 죄사함받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죄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행동을 통해서 주님의 죄사함을 받아낸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거래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래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자가 낮은 데에 처해도 전혀 부끄럽지 아니하며, 주님께 내 소중한 것을 드려도 아깝지가 않는 것입니다.

2018년 3월 20일(화)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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