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52)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창41:1~36)_2021-07-16(금)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Jul 16,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rqw67qKDPI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52)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창41:1~36)_2021-07-16(금)

https://youtu.be/rqw67qKDPIo

 

1. 요셉의 꿈은 어떤 단계를 거처 성취될 수 있었나요? 

  요셉의 꿈(창37:7,9)은 드디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요셉의 꿈은 그의 나가 17세되던 해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모먼저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해와 달과 열 한 별들도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두번째 꿈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요셉이 직접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옥중에서 바로왕의 두 신하들을 시중들고 있을 때에 두 신하들의 꿈을 꾼 것이었고, 그것을 요셉이 해석해줌으로써 요셉의 꿈이 성취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창40:1~23). 그리고 세번째로 바로의 꿈을 해석해줌으로써 그는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이후 7년만에 형들이 와서 요셉에게 절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이 성취되기까지는 20년 이상 걸렸던 것입니다. 

 

2. 바로의 꿈은 어떤 꿈이었나요?

  바로는 하룻밤에 꿈을 연거푸 두 차례나 꾸었습니다. 그 꿈들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다른 꿈이었습니다. 먼저 꾼 꿈은 암소에 관한 꿈이었고 뒤의 꿈은 이삭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입곱 암소의 꿈을 꾸었습니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튼실한 일곱 암소가 나일강에서 올라와서 갈대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나일강에 올라오는 다른 일곱 암소들 곧 흉측하고 빼빼마른 일곱 암소가 앞의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두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한 줄기에 토실토실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올라오더니 그후에 마르고 시든 일곱 이삭이 올라와 전의 일곱 이삭을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이 꿈이 뜻이 있는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점술가들(술객들)과 현인들(지혜자들)을 불러모아 그 꿈을 해석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틀리게 해석했다가는 당장 목이 달아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은 불길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3. 요셉은 그 꿈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요셉은 먼저 있었던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에 대해서는 7년 풍년으로 해석했고, 뒤이어 나오는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에 대해서는 7년 흉년(기근)으로 해석했습니다(창41:25~32).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그 나라에 행하실 일을 바로에게 미리 알려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요셉은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7년 풍년 뒤에 뒤따라 오게 될 7년 흉년(기근)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서도 미리 왕에게 말씀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바로의 꿈을 비롯하여 요셉의 꿈과 두 관원장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해주는 꿈이 가지고 있는 7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요셉의 꿈, 두 관원장의 꿈 그리고 바로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약 7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는 꿈은 선명하다는 것입니다(18~23절). 그러므로 꿈을 꾸고 나서도 그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꿈을 꾼 다음에는 즉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4,7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꾼 꿈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하시기 위한 방편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셋째, 꿈을 꾸되 겹쳐서 반복해서 꾼다는 것입니다(32절). 사실 바로가 꾼 꿈들은 내용만 다를 뿐 의미는 똑같은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꿈도 그랬고 두 관원장의 꿈도 그랬습니다. 다 겹치게 꾼 꿈들입니다. 넷째, 꿈의 내용은 중구난방(衆口難防)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와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26~27절).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꿈을 보면 그것은 대부분 장차 되어질 일에 관한 것으로서 계시적이라는 것입니다(26~27절).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적인 꿈은 보통 상징적으로 표현이 됩니다. 그리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환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되어질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때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에게 요즘처럼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그가 잘 이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래의 일은 상징적인 것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섯째, 그 꿈을 잘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언이 된다는 것입니다(26~27, 29~36절). 요셉의 꿈도, 관원장의 꿈도, 바로의 꿈도,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의 꿈도, 다니엘의 꿈도 다 예언적인 꿈들이었습니다. 일곱째,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53~57절). 그렇다고 자신은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꿈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계시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 될 때 꿈이 비로소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5. 요셉이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바로가 꾼 꿈을 애굽의 점술가들이나 현인들은 해석하지 못했는데, 요셉이 잘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창40:22) 거기에는 3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요셉은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창40:15). 그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였고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옥에 갇힐 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언제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충성했고 성실했던 자였기 때문에, 악한 것들이 그의 꿈의 해석에 끼어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언자들의 예언이나 방언 통역이 자꾸 빗나간다든지 아니면 틀리게 되는 이유는 예언이나 방언하는 자가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언하고 방언통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이 회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언하고 방언을 통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요셉은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과 늘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창40:8, 41:16, 25). 그러므로 요셉은 언제나 망설임없이 꿈을 곧바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꿈을 해석해주는 것을 그대로 말할 뿐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주님과 조금 멀어진 상태에 있었다면, 그는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 알아보고 해석해준다고 말했을텐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해석해주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음을 방증해줍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였기 때문입니다(창41:38). 곧 성령께서 그에게 영적 분별력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분별력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분량도 제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영적 분별력의 분량을 정해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따라 은사를 선물로 주시는데, 요셉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의 은사를 더 강하고 풍성하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애굽의 그 어떤 점술가보다도, 애굽의 그 어떤 현인보다도 꿈을 잘 해석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만큼 깨끗한 그릇으로 지금 준비된 상태에 있습니까?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내게 풍성하게 있는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없거나 부족하다면 지금부터라도 회개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없다면 기도로 더욱 더 간구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7월 16일(금)

정병진목사

20210716_071631[크기변환].jpg


Articles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