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오 목사의 "성경의 맥" Part 1 Lesson 1_성경의 기록 목적

by 갈렙 posted Dec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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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오 목사의 "성경의 맥" Part 1 Lesson 1

2017. 5. 26. 9:54

 

복사 https://blog.naver.com/rudiayage/221014563371

 

 

 

성경의 맥 Part1 Lesson1- 벤자민 오 목사

 

 

제가 성경의 맥이라고 하는 것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성경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좋아하는 것이 성경을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어떤 것보다도 성경을 많이 아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남달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당시 CCC에 대학부가 있고 어른이 있는데 대학부는 CCC라고 부르고 어른들은 나사렛회라고 불렀습니다. 그 어른들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저희 교회의 고등부 교사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 고등부 아이들 가운데 간부 아이들을 데리고 집사님 댁에서 성경을 가르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니까 참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네비게이토에 다니는 교회 선배가 그 많은 학생 중에 저를 찍어서 “넌 나랑 성경공부해야 돼”해서 네비게이토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또 예수전도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전도단에서 7단계, 육기초 성경공부도 해 봤습니다. 대학을 가서는 성경공부에 관심이 많아서 성경공부에 대한 교재들을 사다가 혼자 공부하기도 하고 배우러 다니기도 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남다르게 성경공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제 안에 갈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갈증이 나는가 하면 이 성경을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시면 아십니까? 사실 아시는 부분도 있고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이 성경 66권을 아주 간단하게,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요약 정리해 놓은 책이 없을까? 그러면서 그런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저희 교회 장로님께서 미국에서 영어로 된 교재를 하나 가져오셔서 복사해서 나눠주셔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그런 교재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 영어로 된 성경공부 교재가 그렇게 좋아보이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 미국에서는 흔했을 것을. 그래서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도 원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복사해서 제본한 교재였는데도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습니다.

 


그런다가 미국에 와서 신학을 하면서 여전히 성경 66권 전체를 한눈에 요약해 놓은 그런 책은 없을까. 그래서 계속해서 그런 교재를 찾다가 정말 깜짝 놀랄만한 좋은 교재를 하나 찾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때 당시는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면 부르스 윌킨슨 박사가 쓴 “Walk Thru the Bible”이란 교재였습니다. 참 좋은 교재입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정말 좋은 교재였습니다. 그 책은 그때까지만 해도 성경 66권을 정리해 놓은 최고의 교재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두꺼웠습니다. 그런데 평신도들은 일단 두꺼우면 안 봅니다. 그때는 제가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여서 이것을 평신도들에게 가르치려면 영어로 된 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누가 번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런 교재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9년에 “Walk Thru the Bible” 한국말 번역판이 나왔습니다. 제가 너무 반가워서 할렐루야 백화점에 가서 그 책을 교회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쓰려고 하니 20~30권을 달라고 했더니 할렐루야 백화점 사장님이 “세권밖에 없는데요?” 그때는 그 책을 찾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고 그렇게 많이 찾는 사람도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 책이 꽤 비싼 교재였는데 제가 그것을 사서 우리 성도들한테 공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저는 이 교재가 너무 좋으니까 이 교재만 있으면 우리가 성경을 잘 배울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가르치는 사람 마음과 배우는 사람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배운 사람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러고 별로 관심도 없고, 그러면서 목사님은 이 교재가 뭐가 그리 좋다고 흥분하냐고... 그래서 제가 그때 깨달은 것이 나의 마음과 성도들의 마음은 다를 수 있구나를 배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교재가 너무나 좋은 교재인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저희가 해보니까 일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두꺼운 교재로 일주일에 한번 하는데 일년 가지고 되겠습니까? 제가 보니까 한 2년은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2년동안 그것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말고 좀더 간단한 것, 좀더 요약이 잘 된 것. 제가 찾아보니까 사실 좋은 교재가 꽤 있는데 그 교재마다 다 특징들이 있고 장단점이 있는데 대부분이 분량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이애실 사모님이 하시는 “어? 성경이 읽어지네” 교재를 보고 이애실 사모님을 초청해서 저희 교회에서 “어? 성경이 읽어지네”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끝나고 성도들에게 물어보니까 반응이 시큰둥한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교재가 좋은 교재이고 얇아서 더 좋은 교재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어려워했습니다.

 


그런데 2년정도 지나서 문봉주 장로님의 “성경의 맥을 잡아라”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 책을 보니까 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또 그분을 초청해서 성경의 맥을 잡아라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또 물어봤더니 이애실 사모님의 세미나보다 더 쉬웠지만 이 교재도 상당히 두꺼워서 성도들이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여러 교재들을 보면서 각 교재마다 굉장히 좋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아쉬운 점, 결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적어도 성경 전체를 한번 죽 볼 수 있는 그런 교재들 중에서 좋은 교재들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다 훓어봤는데 “이거다”하는 교재가 아직까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민을 하다가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해서 우리 교회에서 시작을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굉장히 많이 참석을 하시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분은 본인이 정말 성경이 읽기도 어렵고 성경이 낯설었는데 성경의 맥 끝나고 그분이 너무 흥분해서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님. 제가 요즘 성경에 빠졌어요”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성경의 맥을 하고 나서 성경을 읽었는데 정말로 성경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의 맥을 끝내면 정말 성경이 보입니다. 정말 성경이 보입니다.

 


저도 성경의 맥을 하면서 깨닫는 것인데 참 할수록 좋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보통 구약을 분류할 때 율법서, 역사서. 그 다음에 시가서, 예언서로 분류합니다. 율법서가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가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시가서. 예언서는 이사서부터 말라기까지. 그렇게 보통 나눕니다. 그래서 율법서 5권과 역사서 12권을 합치면 17권이고 시가서 5권, 예언서 중 대선지서 5권, 소선지서 12권을 합치면 17권. 보통 그렇게들 나눕니다.

저희가 1학기에는 모세오경을 합니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배워보시면 알겠지만 구약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모세오경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에 가장 시간을 많이 집중합니다. 2학기는 역사서입니다. 여호수아서부터 에스더까지 2학기를 끝마치고 그 다음에 3학기가 예언서인데 제일 어려운 것이 예언서입니다. 예언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상징적인 것을 많이 쓰고 있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취된 것도 있지만... 그래서 예언서는 여러분들에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오경에 대한 지식이 강하고 제가 말씀드리는 큰 흐름을 잡아서 가다보면 예언서도 충분히 정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언서를 빠르게 하면 한 학기에 끝낼 수 있고 아니면 예언서를 좀더 자세히 보려면 두 학기 정도에 걸쳐서 해야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마지막 한 학기는 신약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성경은 열리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봐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열어주시?면 푹 빠지는 책입니다. 그 차이는 딱 한가지입니다. 닫혀 있느냐, 열려 있느냐. 정말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을 펴 보겠습니다.

* 눅 24:13~16-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된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합니다. 제가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을 잘 알아요? 잘 몰라요? 잘 아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옆에 와 계시는데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소경이 되어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의 눈이 뭘까요? 그들의 눈이 뭔지를 알려면 누가복음 24장 29절부터 보시면 됩니다.

* 눅 24:31-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굉장히 신기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몰라봤습니다.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었는가? 눈이 가리워져서. 그랬는데 다시 눈이 밝아져서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눈이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눈은 분명히 우리의 두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은 아시겠죠? 분명히 우리 두 눈은 아니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성경은 더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누가복음 24장 45절입니다.

* 눅 24: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것이 열쇠입니다. 성경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리지 않으면... 그런데 열어지면 쉽고 깨달아지고 푹 빠지게 됩니다. 성경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주세요. 제 눈을 열어주세요” 하나님이 열어주시면 진짜 성경이 보입니다. 성경이 진짜 보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경이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여러분에게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절대 저는 어렵게는 안 가르칩니다. 저는 어려운 것 자체를 거부합니다. 제 자신이 어려운 것을 싫어합니다. 저는 쉬워야 이해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이해를 못하면 저는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해가 되면 그것을 쉽게 설명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쉽게 합니다.

그 다음에 재미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경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만약에 재미가 없다면 그것은 제 탓이지 성경은 재미있습니다. 성경의 맥이 끝나면 여러분들이 “야, 성경은 정말 쉽다. 재미있다. 성경이 한 눈에 보인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짜 한 눈에 보입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책을 쓸 때에는 책을 쓴 저자는 그 책을 통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저자가 책을 쓸 때는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 말만큼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그것이 책을 쓴 사람의 마음이다.

성경은 누가 썼습니까?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목사님, 틀렸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썼습니다.”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사람이 했지만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나옵니다. 성령님이시라고 나옵니다.

어쨌거나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하셨는데 하나님이 이 책을 기록하시면서 이 66권이나 되는, 참으로 장대한 분량의 책을 기록하시면서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긴 책을 쓰시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으셨을까요?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 책 66권을 통해서 우리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 꼭 하고 싶은 말. 그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과연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할까?

오늘 우리가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기를 원하실까? 도대체 하나님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길 원하실까? 이런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 성경 66권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 왜 하나님은 이 책을 기록하셨을까? 그것을 알아야 이 성경을 통해서 그 목적을 찾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 그것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 20:30~31-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써 놓은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요한이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그러니까 요한복음을 통해서 요한이 원하는 것은 이 요한복음을 읽은 사람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는 것이 결과입니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예수가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복음에 대한 이야기이지 성경 전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알겠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말고 성경전체를 기록한 목적을 이야기하신다면서 왜 요한복음만 이야기하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 눅 24: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 모든 성경, 자기에 관한 것”입니다.

* 눅 24: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방금 우리가 읽었던 27절 말씀을 44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 뭔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성경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예, 둘 다 맞습니다. 있었단 말도 맞고 없었단 말도 맞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첫째 신약성경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던 당시에 신약성경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한참 뒤에 써 졌습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은 있었나?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이때 당시에는 히브리 원어로 된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인가하면 유대인들은 이때 당시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그때 당시에 70인역, 구약성경을 이렇게 가리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오늘날 구약을 구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구약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구약을 인용하실 때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라는 말을 오늘날 우리말로 해석하면 “구약에”라는 말입니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쓰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이 보던 구약성경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파트가 모세의 율법입니다. 5권. 두 번째 파트가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예언서는 전선지서, 후선지서로 나눕니다. 그리고 세 번째 파트가 시가서입니다. 시편, 잠언, 전도서 포함해서 여러 가지 글들을 거기에 포함시켜 놓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니엘서도 예언서로 포함하지 않고 시가서로 포함했습니다.

어쨌거나 예수님 당시의 구약은 세 파트로 나누어졌다.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 그러나 때로는 줄여서 율법과 선지자로도 말합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구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24장 44절을 이렇게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눅 24: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구약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풀어 읽을 수 있습니다.

* 눅 24:45~48-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참으로 신기한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구약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수님에 관한 것이 다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요약하면 46절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 기록되었다고요? 구약에.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 기록되었다고요? 구약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예수님은 구약을 이렇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5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요한복음 5장은 성경의 맥을 예수님이 직접 짚어주신 말씀이니까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 요 5:39~40-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이 너무나 중요하니까 소리 내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가”는 그때 당시에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과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너희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니까 이 사람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틀립니까? 맞습니까? 맞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너희가 왜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왜냐하면 너희가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그때 당시에 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다구요? 영생을 얻으려고. 영생을 얻으려고.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 되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맞다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요한복음 5장 39~4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 요 5:39~40-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그런데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초점은 성경은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맞죠? 구약을 요약하면 오실 예수님. 신약을 요약하면 오신 예수님, 또 다실 오실 예수님. 그러니까 성경을 요약하면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은 다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도대체 그 영생이 뭐냐? 내가 바로 그 영생이다. 나다. 나. 왜냐하면 구약은 전부 나에 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너희들이 얻기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연구하던 대상이 여기 있는데 왜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느냐? 내가 생명이다. 내가 영생이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너희가 구약을 정말 제대로 연구한다면 반드시 나에게 오게 되어 있고 나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어 있다.”라는 말입니다. 쉽죠?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면 종합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우리가 이 성경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라고? 생명을 얻으라고.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으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원한 생명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경 66권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죠?

내가 성경을 100독을 하고 성경을 정말 많이 외우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해박하고 박사학위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영생이 없어요. 그러면 내가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의미가 없습니다. 이해가 되시죠?

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되는가? 왜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되는가? 왜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면서 암송해야 되는가? 그 모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이 성경의 맥을 다 마치고 나면 여러분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생명이고 예수님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식을 더하려고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온 것은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왔다. 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왔다” 예수님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생명을 얻는 차원, 또 하나는 더 풍성히 얻는 차원. 그러니까 생명을 얻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명을 더 풍성히 얻어서 정말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가 이렇게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날마다 겨우 하루하루를 지탱할만큼만 그렇게 생명을 공급받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한하신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받아 누리느냐 하는 것은 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어디에서 얻는다고요? 바로 성경에서 얻는다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날마다 성령충만해서 얼굴이 빛같이 빛나면서 행복하고 주님을 사랑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똑같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항상 온 세상의 짐은 다 짊어지고 사는 것 같습니까? 물론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힘들 때나 힘들지 않을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늘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으라고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지식은 절대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사람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공부를 했어도 사람이 변화가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지식을 배우면 안 됩니다. 성경은 절대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닙니다. 생명. 생명을 얻는 책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할 생각을 했을까요? 참으로 대단한 시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할 생각을 한 분도 대단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시도한 분이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다른 성경학자는 없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려는 시도를 한 유일한 분이 문봉주 장로님입니다. 이분은 성경을 뭐라고 요약했는지 읽어드리겠습니다. “결국 성경 66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를 부인하기이며 나를 비우기입니다. 나를 벗어던지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봉주 장로님이 성경 66권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이 분에게 너무나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이분이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성경 66권을 한 마디로 요약할 엄두나 냈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정말 착각에 빠진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벤자민입니다.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려고 노력했으니 이게 제 정신입니까? 제 정신이 아니죠. 그런데 우리가 한번 해 봅시다. 과연 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성경을 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4절부터. 지금 이 배경이 뭔가 하면 사두개인들도 성경박사들이고 바리새인들도 성경박사들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 성경박사들이 예수님하고 붙어서 패배했다는 얘기를 바리새인 학자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학자들이 사두개인 학자들은 패배했지만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바리새인 성경학자들이 예수님과 한판 승부를, 진검승부를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율법사, 율법의 대가가 드디어 예수님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순간입니다.

* 마 22:34~-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이 율법사가 이것을 예수님께 물었을 때는 예수님이 맞출 것이라고 기대했을까요? 못 맞출 것이라고 기대했을까요? 못 맞출 것이라고 기대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맞출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왜 물어봤겠습니까? ‘이제 이 질문 하나면 이 승부는 끝난다’라고 기대하고 이 율법사가 “선생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 마 22:37~40-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앞에서 우리가 이미 말한 것처럼 율법과 선지자는 무엇입니까? 구약입니다. 그러면 이 말은 “이 두 계명이 구약의 강령이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강령이 무슨 뜻입니까? “이 두 계명이 구약의 강령이다” 강한 명령? 사실 제가 강령이라는 말을 잘 몰라서 다른 한국말 번역본을 찾아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국말 번역본을 읽어보겠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에 보니까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있다”

쉬운성경에 보니까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바른성경에 보니까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현대어성경에 보니까 “모든 다른 계명과 예언자들의 요구는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영어성경 중 NASB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구약의 모든 성경이 이 두 계명에 의존하고 있다”

킹제임스버전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모든 구약성경이 이 두 계명에 매달려 있다. 이 두 계명을 지탱하고 있다. 이 두 계명에 의존하고 있다”

NIV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즉 구약성경 전체가 이 두 계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두 계명을 붙들고 있다”

이것을 풀어쓴 앰플리파이드 성경(확대번역)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두 계명이 완전히 종합하고 있다. 바로 이 두 계명위에 모든 구약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두 계명이 구약의 종합이라는 말입니다. 이 두 계명이 구약의 결론이요, 요약이요, 핵심이다. 모든 구약성경은 이 두 계명으로부터 시작하고 이 두 계명으로 모아지고 이 두 계명이 바로 그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누가 지금 구약을 요약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지금 구약을 요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구약을 요약해 주셨는데 이 두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이 뭐냐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다다.

예수님 자신이 바리새인 최고의 율법사와 한판 승부해서 완전히 KO시키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다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다 갔습니다. 역시 예수님 너무 멋있습니다. 예수님한테 한판 붙으러 온 사람마다 다 KO패 당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았습니다.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니까 “사랑하라” 이구나.

 


그러면 우리가 조금더 좁혀보겠습니다. 제가 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요약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한 단어로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고백하면 하나님이 “오~, 그렇구나. 너희가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러시나요? 성경을 보겠습니다.

* 요 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요 14: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내 말대로 행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말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다.” 즉 예수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하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내 말대로 살았냐, 살지 않았냐. 순종을 했느냐, 안 했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다 종합하니까 사랑. 신약도 예수님의 이야기이니까 사랑. 결국 성경을 종합하면 사랑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알 수 있다고요? 순종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순종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요약해서 “순종”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더 주님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거 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곧 순종이다. 사랑은 곧 순종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결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결론.

제가 성경을 한 단어로 순종이라고 요약하는데 무리가 있습니까? 혹시 억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제가 성경을 보고 또 보고, 지금도 보고 앞으로도 볼 것이지만 정말 성경은 그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순종.

 


그러면 제가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좀더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서 모세오경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이 39권입니다. 구약성경 39권이 좀 많으니까 구약성경을 다 읽을 시간이 없으시면 5권만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입니다. 모세오경.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다 모세오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전부 다 모세오경에 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을 다 누가 받았습니까? 모세가 받아서 기록한 책이 모세오경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것이 그냥 구약의 본체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는 모세오경에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대로 살았냐?, 못 살았냐? 그것만 얘기해라. 그것이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입니다.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 죽고 포로로 잡혀가고... 그러면 예언서는 무엇인가? 예언서는 그렇게 안 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외치는 것이 예언서입니다. 이게 다입니다. 이것이 구약 다입니다.

 


모세오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는? 순종했냐, 안 했냐. 순종하면 축복, 순종 안하면 저주. 뿔뿔이 다 흩어져 가장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예언서는 “순종하라니까~ 왜 순종 안 해가지고 그래~” 이 말이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면 조금더 구체적으로 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직접.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성경에 보니까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수로 돌판에 새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말해서 너는 이것을 기록하라고 해서 모세가 다 기록을 했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나옵니다. 그러면 출애굽기와 레위기만 요약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출애굽기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 율법의 내용을 요약하면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나를 예배해라”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나를 예배해라. 다른 신을 예배하지 말고 나만 예배해라. 그 얘기가 출애굽기입니다. 그리고 나를 예배하기 위해서 예배할 장소를 이렇게 만들어라. 그것이 출애굽의 다입니다.

 


그러면 레위기는 무엇입니까? 레위기는 출애굽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따로 빼서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나를 예배해라” 레위기는 “이렇게 예배해라” 그 다음에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부분적으로 성막 제작 외에 너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고 순종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삶에 대해서 내 말대로 살아야 된다고 순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레위기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하면 “무엇을 순종해야 되는가?”

그래서 출애굽기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나를 예배하고 내 말대로 살아라. 즉 예배와 순종입니다.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받아서 말씀대로 살고, 또 주일날 되면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받아서 그대로 살고... 이것이 출애굽의 다입니다.

레위기는 “나를 예배할 때는 이렇게 예배해라”입니다. 다섯 가지의 예배방법. 그리고 “너희가 순종해야 될 내용들은 이러한 것들이다” 그것이 레위기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여러분이 읽어보면 읽을수록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민수기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예배하고 이렇게 살아라고 한 대로 너희들이 이제는 살아라” 그렇게 산 이스라엘 백성들의 스토리가 나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의 세대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신명기는 다 죽고 나니까 이제 광야 2세대, 과거에 광야에서 다 죽은 사람들의 자녀들. 2세대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기 전에 2세대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시고 1세대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요약정리해서 다시 재방송하는 것이 신명기입니다.

이렇게 쉽습니다. 진짜 쉽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성경을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쉽습니다. 정말 쉽습니다. 성경은 쉽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오경도 결국은 예배와 순종입니다. 성경전체도 예배와 순종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너희가 정말 나를 사랑해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렇다면 내 말대로 살아라. 순종해라.

마지막 궁극적으로 가서 계시록에 가면 누가 이기는 자이고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순종하는 자입니다. 계시록은 그렇게 나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주의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 말대로 순종합니다. 그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주님과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 같습니까? 맞는 것 같습니까? 그러면 조금 더 좁혀보겠습니다.

출애굽기도, 레위기도 예배와 순종이라고 말했는데 예배와 순종이 만약에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예배와 순종이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요? 예배가 더 중요합니까? 순종이 더 중요합니까? 예배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예배가 진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순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삼상 15:22~23-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싫어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너무나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정말로 중요한 예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순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 이유는 불순종하는 것은,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다른 신에게 절하고 예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에게 순종하게 되어 있는데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나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게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보다도 더 나에게 예배하고 숭배할만한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성공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물질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쾌락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굉장히 엄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가 하면 순종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술의 죄, 점치는 죄라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 점치는 죄고 완고한 것은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그렇게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반복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 말을 단어를 바꾸어서 준행해라, 행해라, 지켜라 이런 말로 쓸 뿐이지 결론은 다 똑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 말대로 살았냐, 안 살았냐. 순종했냐, 안 했냐.

그것이 결론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한 단어로 순종이라고 요약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신약에도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있는데 큰 아들에게 아버지가 “얘야, 이것 좀 해라” 했더니 큰 아들이 “예, 아버지” 그러고는 안 합니다. 둘째 아들은 “싫어요” 했는데 나중에 뉘우치고 깨닫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가 잘 했냐?” 순종한 자가 잘 했다. 결국 순종한 자가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면서 창기와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먼저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치명적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얼마나 교회도 많고 크리스챤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과연 그 중에 순종하는 크리스챤들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크리스챤들 중에서 10%만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은 뒤집어질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렇게 중요한 순종을 간과하고 오늘날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잘못된 복음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소위 은혜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구약시대의 사람들이나 율법에 순종하고 살지 우리는 은혜의 시대인데 무슨 율법을 순종하며 삽니까?” 그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경을 다시 잘 보시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똑같은 말씀.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구약은 내 힘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신약은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은혜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뭐가 쉽겠습니까? 신약이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잘못 해석해가지고 우리는 신약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절대 비성경적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딱 한 가지입니다.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성경 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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