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메시야를 선택하지 않고 메시야로 오신 이유?(히2:5~18)_2018-11-25

by 갈렙 posted Nov 25,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9Xew0eUX_dM
날짜 2018-11-25
본문말씀 히브리서 1:5~18(신약 35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한 분 하나님, 하나님에 메시야로 오신 이유, 고난과 죽음 체현, 마귀멸함,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대속물로 주심, 대속의 죽음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메시야로 오신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메시야를 보내실 때에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여 마리아의 뱃속에 잉태시키기 아니하시고, 직접 자신이 사람이 되신 것일까? 그렇게 하셨더라도 아무도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대들 수 없었을텐데...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을 아시고는 하나님께서 친히 죄값을 치르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다 겪으셨다. 배고프고 지치고 힘들고... 심지어 마귀에게 시험도 받으셨다. 그리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고 채찍에 맞으실 때에는 살점도 떨어져나갔다. 결국 죽음이라는 것까지 맛보셔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냥 메시야를 새 인류로 보내실 것이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왜 메시야를 어떤 사람으로 선택하여 보내지 않으시고 직접 오신 이유에 대해서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왜 메시야를 선택하여 사용하지 않고 왜 메시야로 직접 오셔야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 있다. 히브리서 2장은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따로 선택하여 사용하실 수도 있으셨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메시야로서 자신의 아들을 내려보내셨던 것이다. 아니 아들의 신분으로 하나님 자신이 오셨던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다른 죄없는 둘째아담을 창조하여 그를 투입시키지 않으셨다. 왜 직접 오셔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공의로우신 분이실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직접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으로서 겪어야할 모든 과정들을 겪으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신분으로 직업오셔서 메시야의 역할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은 대체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누가 메시야로 오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직후부터 이 땅에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다고 약속하셨다. 창3:15에서는 "여인의 후손"으로, 창22:17~18에서는 "아브함의 씨"로 그리고 삼하7:12~14에서 "다윗의 씨"로서, 이사야7:14에서는 "처녀"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결국에 누군가를 보내주셨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아들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메시야로 보내 주신 것이다(요3:16).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마16:16).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는 하늘에 있는 어떤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그때 직접 나와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요16:28). 물론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메시야라는 것도 직접 말씀하셨다(시110:1).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품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요1:18). 그러다가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의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셨다(딤전3:16). 그렇다. 성경은 2가지를 다 말씀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로서 그의 아들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요일4:10,14).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것만 알려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다고 되어 있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14장만 보더라도 그렇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 자신을 제자들이 알았다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며, 주님 자신을 보았다면 아버지도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10).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4:10). 예수 안에 아버지가 함께 거하고 계셨기 때문이요(요14:11),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였기 때문이다(요10:30). 더욱이 메시야가 오실 길은 "여호와의 오실 길"이라고 예언되어 있고(사40:3, 말3:1), 예수께서 나귀타고 입성하실 때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예언의 성취였으며(시118:24~25), 여호와께서 은 30에 팔린다고 예언되어 있고(슥11:12~13), 여호와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슥14:5~9). 구약의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여호와하나님에 대한 칭호이지만(딤전6:15),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의 칭호이며(계17:14),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이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칭호이기 때문이다(사41:4,44:6,48:12,계22:13). 그렇다. 메시야로 오실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실제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다.

 

3. 하나님은 왜 메시야를 사람 중에 선택하지 않고 직접 오신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메시야를 사람 중에서 선택하여 보내시지 않고 직접 오신 것인가? 사실 죄없는 인간인 첫사람 아담을 창조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죄없는 둘째사람을 만드실 수 있으셨다. 그분을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어 태어나게 하시어 그분에게 메시야적인 직무를 맡기시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자신이 직접 아들로서 그리고 메시야로서 오신 것이다. 왜 그랬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왜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지에 대해서 4가지로 언급한다.

  첫째는 예수께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게 하시 위해 직접 고난을 맛보고 죽음도 맛보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히2:9~10).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던지시는, 우리에게서 먼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속사정을 아시고 경험해보시기 위해 직접 우리와 같이 혈과 육을 입으신 분이시다. 그래야 고난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야 고난받는 자들에게 나도 고난을 받고 죽음까지 경험했으니 너희들도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맛보시고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직접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요일2:1~2, 히2:17~18). 그래서 지금도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의 사정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실 수 있으시다(히4:14~15)

  둘째,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히2:14). 마귀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처음에는 잘 몰랐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로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통해서, 그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옛날 천국에 있을 때에 얼마동안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지는 모르나, 한 번도 그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그를 찾아서 시험해본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그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첫째 아담을 속여 자기의 종으로 삼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유혹하여 자기의 종으로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람의 자격으로서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사탄을 물리치 이기셨다. 결국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단한다. 그래서 뒤에서 사람들을 꼬드긴다. 그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꼬드겼고, 예수님의 12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가룟유다를 꼬드겼다. 아니 가룟유다 속에 직접 들어가서 역사하여, 예수님을 죽이도록 시도한다(요13:27). 하지만 그는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허락된 권세가 아니었다. 그는 죄있는 사람에게만 역사할 수 있었다. 아담의 범죄 후에 뱀에게 흙을 먹고 살라고 했던 말씀처럼(창3:14), 사탄마귀는 사람의 육체에게만 역사할 수 있었으나,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그래서 권한 밖의 일을 감행한 것이다. 그것은 곧 불법이 되었고(요일3:4), 불법자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으니(요12:31), 예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히2: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우리 인간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무효화시키기) 위함도 있었다(요일3:8). 결국 예수님의 성육신이란 마귀를 불법자로 만들어 심판하기 위해 포석이었던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심으로 일생에 죽음의 공포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을 놓아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2:15).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의 공포일 것이다(히2:15). 이러한 죽음의 공포에 당당하게 맞설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신 예수께서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주실 수 있기에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신다. 그렇더라도 혹시 마귀가 불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게 되면, 그도 자신의 생명 곧 그가 이 세상에서 임금노릇하는 기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함부로 순교자를 배출하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순교자는 하늘에서 놀라운 상급이 주어지는 것이니, 함부로 죽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임할 그 어떠한 죽음의 공포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죽으셨지만 다시 사는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일부러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것이다.

  넷째, 예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대신 죽어 속죄함)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범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인류의 범죄는 곧 사망을 불러왔다(창2:17).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이다(롬6:2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온 것이다(롬5:12). 그러나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 죄값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곧장 불못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대신 죽는 방법을 선택하셔어 인류 대신 죽기로 결정하신다. 대속의 죽음이다. 이것이 출12~13장에 나오는 유월절에 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흠없는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죽어 장자를 살린 것처럼, 우리 범죄한 인류 대신 죽어 인류의 죄를 속죄하려 하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에(요4:24) 피와 살이 없으며(눅24:39), 죽으실 수도 없으시니까, 죄값으로 죽으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이다. 결국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유월절양으로 대신 죽으신 것이다(고후5:14~15). 그래서 인류의 죄가 속량되었다. 그러므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요19:30)"고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

께서 인류의 죄값을 다 치르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4.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사실 메시야로서 새 인류를 창조하여 메시야로 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직접 사람이 되어 오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서 살아보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을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왜냐하면 부활승천이후 중보자의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요일2:1~2). 그러므로 우리의 중보자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다(히4:15). 그래서 좋다. 우리 주님은 우리처럼 사람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그분에게 황송할 따름이요 절로 고개를 숙여 경배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자기를 낮추시고 죽이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이다(빌2:6~8). 그러므로 이분을 우리는 다만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 하나님께 오직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2018년 11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