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유튜브를 통해서 지난 2017년 7월 28일 제가 전했던 설교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가?(마7:7~12)"를 듣고서 리플을 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기도해보고 다 해봤지만 결국 이뤄지지않았거든..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7년이 넘게 기도했었는데, 남은거라곤 만신창이 걸레짝 되서 회복불가능한 내 인생만 남더라고, 기도? 안해,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거든, 충분히, 그리고 정당히, 이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 후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않게되었지, 구원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셔도, 사람은 변명할 말이 없어. 그냥 지옥가야지, / 목회자에게 상담도 해보고, 교회도 다니고, 설교도 미친듯 듣고, 신앙서적도 닥치는대로 읽고, 신대원까지 다니면서 해결보려고 발버둥을 쳤었지 ㅋㅋ 아주...주말이면 전도하러 다니고.. 애들 취합해가지고 여름성경학교 보내보겠다고 별 짓거리, 교회 청소에, 헌신에, 새벽예배, 주중 예배, 구역예배, 헌금에, 기도원에, 십일조, 뿐만아닌 모든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되었어, 하나님은 분명 계셔, 나도 느꼈어, 하지만 하나님은 구원 이것 하나만 확실히 주시지, 그 외의것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어 . 난 이제 교회도 다니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설교를 찾는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는거지.. 이 설교도 별다를거 없네, 말뿐인 설교, 이 설교 준비는 열심히 했나 싶다.. 이딴식으로 설교할거면 단에 서질 말던가!"
2017년 12월 5일(화)
먼저 OOO님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빕니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고 만나려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응답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했다는 고백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정말 주님 앞에 충성되고 힘썼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열매를 맺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응답이 없어서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으신은 듯 합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OOO님의 모든 삶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만약 선생님의 삶이 하나님 앞에 정말 진실되고 충성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주실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계시며 마음까지 다 꿰뚫어보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기도의 응답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결코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탄처럼 악하신 분이 아니며, 불공평한 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선하시며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내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것도 다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났으면 기본적으로 70~80년은 살도록 되어 있는데, 나사로처럼 일찍 죽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유없는 결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겸손히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를 한번 골똘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시면 어떤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 구약의 율법에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축복과 재앙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신28:2~14, 15~68).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인류에게는 고통도 아픔도 시련도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심한 노동조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에 땅은 인간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산출해내었고, 남자는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었으며, 여자는 해산의 더한 고통을 가져야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불행에는 어떤 원인들이 있을까요? 그러한 원인으로는 첫째로, 조상들이 지은 죄가 있습니다. 특히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는 자기와 자기후손들에게 반드시 어떤 저주를 가져다 줍니다. 어떤 경우는 3~4대까지 그 저주를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출20:5). 다시 말해 내가 당하는 아픔과 고통이 꼭 내 죄 때문이 아니라 나의 조상의 극심한 우상숭배 행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조상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그 죄를 대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마치 민족의 우상숭배의 죄를 대신 회개함으로 남유다를 포로에서 돌려주십사고 기도했던 느헤미야나 다니엘의 기도를 본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내가 지은 수 있는 실수와 허물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마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오는데, 한 달란트받았던 종의 경우가 그러한 예라고 보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훗날에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았고 결국 바깥 어두운 곳 곧 지옥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가지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기를 향한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실천하는 않은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자신의 게을러서 일하지 않은 것을 한사코 주의 탓으로 돌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기 싫어서 땅 속에 한 달란트를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주면서, 주인을 엄한 사람이요 자신의 종에게 돈이나 갈취하려는 고리대금업자라고 몰아붙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종으로 실컷 부려먹고 우리의 것을 착취하려는 나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분량을 따라 맡긴 일에 충성했는가를 보신 후에 그것에 따라 복을 주시는 분이지, 우리에게 일을 시켜 부려먹는 그러한 악덕지주같은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이내 깨달았지만 끝까지 그것을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앞선 두 명의 종들이 어떻게 결산을 받았는지를 먼저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차례가 되었을 때에 자신의 죄를 아뢰기는커녕 둘러대기에 바빴고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시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기에 자신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더라면 그는 용서받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을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엄한 책망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둘째, 이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의 첫번째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셨던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이었으며 원시율법을 고스란히 잘 실천하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늘 갑자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자식까지 잃어버렸습니다. 그리 나중에는 부인도 잃어버렸고 자기의 건강마저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가 사실 범죄하지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한데, 그는 왜 그토록 엄청난 고난을 받아야 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를 시험할 수 있도록 괜히 허용해주어서가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이유는 진정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를 시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욥의 잘못과 부족함을 깨우쳐주기 위함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욥기서의 후반부에 나옵니다.
그럼, 욥과 잘못과 부족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그는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욥은 항상 떳떳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신의 뒤를 돌아보아도 자신은 범죄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원시율법 앞에서 그는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고난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욥38장 이하에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보니,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즉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끝까지 기도의 줄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15가지 이상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질문에 단 한 가지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자기의 생각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는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의 잘못을 드디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잘못은 하나님보다도 자신은 더 의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괜히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는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던 것입니다(욥33:9~11). 한 마디로 그는 교만했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제일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님께서는 욥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38:20)"
둘째로, 사람이 아무리 율법적으로 흠없는 삶을 살려고 한다 할지라고 율법적인 제사만으로는 자신의 죄된 본성까지는 용서받을 수 없고, 회개를 통해서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신 속에 죄된 본성이 있어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것이 언제라도 올라와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이 발견되면, 오직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용서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죄가 밖으로 드러난 죄만 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시어 그의 죄된 본성이 올라오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분노했고 하나님을 대항했고 원망했고 불평했습니다(욥7:11, 10:1). 결국 그의 죄된 본성이 제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3~6)"
셋째, 이번에도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경우인의 한 예인데, 사도바울과 같은 경우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후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복음전파를 위해 이전에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욕심과 꿈을 다 내려놓고, 자신의 모든 삶을 주님께 헌신하며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음전도자의 삶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겨야 했습니다. 매도 엄청 많이 맞았습니다. 못먹고 못입고 못자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아 거짓모함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사탄의 사자(천사) 즉 귀신의 역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고후12:7).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어느날 사도바울은 자신의 육체 속에 있는 사탄의 천사인 귀신을 몰아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세번씩이나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가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의 몸 속에 있었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 성경에는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안질이었는지, 간질이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자신을 괴롭힐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그에게 은혜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여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 큰 것이었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도록 그에게 붙여준 바로미터였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받은 계시 때문에 자만하려고 하면 그것이 일어나서 그를 괴롭혔을 것이고, 그럴 때면 그는 엎드려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귀신도 나의 나됨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는 많은 예는 아닙니다. 100년이나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물어보십시오. 이런 것들 중에서 무엇이 내게 있는 것인지를 말이죠. 그러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바로 잡아 줄 것입니다. 혹시 이전에 충성했던 것까지 다 합쳐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혹이 이 땅에서 응답이 없다면 천국에서라도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이고, 내 자식에게라도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7년 12월 5일(화)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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