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8(금) 금요기도회

제목: [금요기도회] 방언을 하되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는 법(고전14: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AyQu4XLF_80


1. 들어가며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가져다 줌으로 내 영이 살아나게 되었다는 표시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모든 성도는 자신의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로서 방언은 말할 수 있다(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몇몇은 하다). 그런데 이때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가운데, 내 영이 예수님과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고전14:2).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알기 위해서 방언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영적인 은사를 받는 경우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문제는 방언만 말하고 있으면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방언만 하면 자신의 영권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는 기왕 방언을 할 바에야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방언을 하고, 내 영이 강화되는 방언이자 내 영의 계급을 더 올려주는 방언, 그리고 더 나가서는 내 손에서 불이 나가게 하는 방언을 하려면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방언, 무엇이 문제인가?

  방언은 좋은 것이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내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요, 주님께서 그 때에 내게 주시는 레마말씀을 내 영이 듣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언통역의 은사를 가진 분들을 통해서 자기의 방언을 통역해보지 않았다면, 사실상 방언은 그에게 의미가 없다. 자신의 영이 아무리 말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모른다면, 자신이 지금 잘못하고 행하는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데도 고치지 않을 것이고,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깨우쳐주는 지식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역없이 방언만 말하는 것은 그의 영의 성장에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방언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날마다 수 십 년을 방언을 해온 분들은 사실상 방언만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방언이 자신의 영혼과 삶을 바꾸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방언은 아무리 말해도 자신의 성품은 달라지지 않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언만 말하면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삶을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언만 계속해서 말하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당장에 방언통역을 받아보기를 권면해본다. 그렇지 않고 방언을 하려면 방언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언만능주의 혹은 방언지상주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방언무용론, 방언중지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있기 때문이다. 곧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 곧 오순절날, 예수님의 제자들 120명이 했던 방언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진짜 방언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됨과 동시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방언은 방언이 아니라 고린도 현상으로서 귀신방언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귀신 씻나락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더 이상 의미없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경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표적들 가운데 하나로서 새 방언을 말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고전16:17). 참고로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했던 방언이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한 방언은 다 똑같은 방언이라는 것이다. 오순절날 했던 방언은 진짜방언이고,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가짜방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방언만능주의에 빠져서도 아니될 뿐만 아니라, 방언중지론에 빠져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3. 방언의 내용을 알아보면 어떤 것인가?

  감사하게도 오늘날에 들어와 방언하는 분들이 참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가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한 채 방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통역을 받아보지 않는 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그것 자체가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4:2).

  그래서 필자는 방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소상히 알아보았다. 그래서 방언 통역을 하신다는 여러 분들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그분들에게서 방언통역을 받아보았다. 그랬더니 방언통역의 방식도 여러 가지였다. 어떤 분은 방언을 듣고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알아듣고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알아듣고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직독직해식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다. 가장 심오한 방언통역은 역시 직독직해식의 방언통역이었다. 이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언을 말하게 하고서는 계속해서 방언을 통역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더 훌륭한 방언통역은 남들이 들어서 덕이 되지 않는 방언들은 살짝 바꾸어서 통역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방언통역의 최고봉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방언통역하시는 분들을 만나본 결과 훌륭하게 방언통역하시는 분을 찾아내었다. 그분은 바로 <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2013년, 예찬사 발행)의 저자인, 송재근 목사와 유순자 사모였다. 현재 이분들은 나이가 많아서 예언과 방언통역의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에 약50년간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방언통역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내용을 책에 써놓았다. 그래서 직접 그분들의 방언통역을 받아보고 또한 남들에게 방언통역해주는 것을 들어보고, 이분들이 쓴 책을 비교 검토한 결과 얻어낸 것은 방언통역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방언통역한 것을 비교해보면 방언은 크게 2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하나는 방언하는 자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고전14:14).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의 영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다(고전14:2). 이것이 바로 자신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특히 앞의 방언은 '방언기도'라고 말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일종의 '예언과 같은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그때 방언통역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방언의 내용이 방언기도는 약 5~1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이 예언적인 말씀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가 방언기도에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거의 가 예수님께서 그 영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방언을 하는 자는 반드시 방언통역을 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예언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방언을 사용할 때에는 한 사람이 방언을 하게 하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그가 하는 방언을 통역하라고 지시하였다(고전14:27~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는 잠잠하고 혼자 있을 때만 하나님께 방언을 말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방언의 90~95%가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면 방언을 해도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언 중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예언의 말씀을 구분해보니, 책망하고 꾸짖는 말씀, 위로하고 권면하는 말씀, 깨우쳐 주시는 말씀, 사명에 관한 말씀 등이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명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이 기뻐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역하여 자신의 것으로 취하 못한다면, 신령한 방언이라도 그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4. 가짜방언, 귀신방언도 있는가?

  방언 중에는 가짜방언 그리고 귀신방언도 있는가? 안타까운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가짜방언도 있고 귀신방언도 있기 때문이다. 방언이 아닌데 방언으로 알고 방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귀신방언을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방언을 말하는 자의 약 70% 정도는 성령이 주는 방언을 하기는 하는데, 귀신들이 살짝 살짝 귀신의 방언을 집어넣는 경우라는 사실이다. 방언하는 자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영이 자신의 혀를 사용해 말할 때에, 귀신이 자기의 말을 거기에 살짝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귀신이 방언에 집어넣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2가지다. 하나는 저주하는 말들이며 또 하나는 욕하는 말들이다. 예를 들어, 사모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목사새끼 뒈져라. 목새새기 뒈져라"라는 말이 섞여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가 방언을 하는데, 그 내용이 "이 교회 망해라. 이 교회 망해라"고 방언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 귀신이 혀를 붙잡아 그렇게 말이 섞여 나오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듯 저주하는 말도 나오지만 욕설도 나온다. "씹쌔기 지랄하고 자빠져 있네" 등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성령사역자에게 방언을 점검받을 필요가 있다. 내 방언이 제대로 된 방언인지 아니면 중간중간에 섞여 나오는 방언인지를 점검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혀에 붙어있는 영들을 불로 태워서 방언이 정상적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평생 방언하면서, 맨날 맨날 목사를 욕하고 교회가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스러운 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5. 가짜방언, 귀신방언, 섞는 방언을 방지하는 방법은 없으며,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만일 자신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방언이 진짜인지를 점검을 받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방언이 진짜방언이지 아니면 흉내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는 방언이 귀신이 하는 내 혀를 붙잡고 하고 있는 방언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성령이 주는 방언을 하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섞는 방언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방언을 점검해주는 사역자가 해야 할 조치사항은 다음과 같이 2가지다. 첫째, 혀를 붙잡고 있는 귀신들을 불태워서 제거해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많이 할수록 자신의 혀에 엄청난 양의 귀신들이 수많은 실처럼 감겨있기 때문이다. 둘째, 귀신이 자신의 혀를 사용해서 방언을 하지 못하도록 방언을 바꾸어주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전투방언기도'라는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데, 귀신과 싸우는 방언 곧 대적방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이때에는 거의 침투하지 못한다. 방언하는 사람이 집중해서 귀신과 싸우는 방언을 하는데, 귀신이 혀를 붙잡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투방언기도는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강력하게 쓰는 방언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만약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그가 전투방언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6. 전투방언기도란 무엇인가?

  전투방언기도란 귀신과 싸우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방언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천사들도 모르고 사람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다(고전14:2). 그런데 이러한 천사들 중에 일부가 타락하여 귀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귀신들도 방언을 결코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전14:2). 그러므로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들은 약간씩 인상을 찌뿌린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방언기도하는 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을 처단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혹시 하늘에서 전투천사들이 내려와 자신을 결박하게 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자신을 태워버리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성도들이 방언기도를 하면 긴장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이때 가상의 적인 귀신들을 상상하고 그들과 싸우는 전투방언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곧바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자기에게 행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전투방언을 하면 귀신들은 금새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려 하는 자들에 있어서 전투방언기도는 회개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전투무기이자 기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 성도들이 방언기도를 하려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기도를 계속하기보다는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전투방언기도는 방언을 귀신과 싸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내 마음이 귀신과 싸우는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내 영도 같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전투방언기도는 일종의 대적기도인데, 대적기도와 이것이 다른 것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자기 눈 앞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투방언기도는 귀신이 나를 공격하고 내 집안식구들와 교회를 공격하려고 내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신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때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전투를 용이하게 하려고 전투용 무기(대부분은 칼, 그리고 지팡이나 망치, 화살과 창, 화염방사기 등)를 주셨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을 그것으로 대적하면서 방언을 하는 것이다. 악한 영들의 눈을 찌르고 몸을 베어버리고 손과 발 그리고 다리를 베어버리는 상상을 하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더 내 영의 에너지가 올라가게 되고 나의 전투의지는 더 강해진다. 그러면서 악한 영들을 싸우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투방언기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처음부터 높은 계급의 귀신을 불러다놓고 기도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영적인 계급이 이제 이등병, 혹은 일병이나 상병 수준인데, 대사급이나 장군급의 귀신을 불러다놓고 싸우면 힘에 부대껴 그만 오히려 내가 그놈들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여자 보살 정도를 가상하고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가 보살급 2명에서 3명 정도로 늘린다. 그리고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대사 후보생 하나를 불러다 놓고 대적하고, 이어서 대사(사명대사, 서산대사, 원효대사 등)나 장군(최영장군, 이순신장군, 강감찬장군, 계백장군 등)중에 한 명을 불러다놓고 대적하면 된다. 참고로 대사나 장군을 불러서 대적하려면 내 영의 계급이 대령이나 별 한 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

 

7. 전투방언기도를 하면 어려움은 없는가?

  문제는 방언을 하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날마다 지속할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영권을 강화시켜주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은 바로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내가 영적인 계급이 약할 때에는 계속해서 전투방언기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뜨이는 변화가 잘 나타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지속해야 한다. 약 6개월에서 일년 정도 하면 확실히 뭔가가 달라진다. 둘째는, 힘이 많이 들고 몸이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투방언기도는 적과 싸우는 기도이기 때문에 적당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상의 적과 싸울 때에는 전투용 무기를 사용해 한다. 그래서 찌르고 짜르고 베어버려야 하는데, 그때 가만히 적과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의 든 칼을 자꾸 사용하다보면 얼마 못가서 어깨가 아파서 손을 들지도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투방언기도는 누워서 하는 것이 좀 더 낫기는 하다. 너무 힘들면 손에 칼을 들었다고 상상만 하고 기도하면 된다. 셋째는 자기보다 너무 큰 귀신들을 불러다 놓고 기도하다가는 그만 그놈들의 실제 공격을 받아서 몸이 굳어지거나 몸이 공격받아서 몸살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적 수준에 맞는 가상의 적을 불러놓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8. 영의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것은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것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되, 다음과 같이 해보는 것이다.

  첫째, 성령이 나를 강권으로 사로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말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은사로 주어지는 방언일 뿐만이 아니라 동시 표적으로 주어지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고전12:10, 마16:17).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120명의 성도들이 받았던 방언기도는 사실 알아듣지 못하는 표적방언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듣는 사람들이 자기말로 알아듣는 은사방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은사방언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곧바로 말하는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즉시 우리는 전투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다. 만약 우리 성도들이 은사방언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평생 가보아도 전투방언기도를 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둘째, 방언을 할 때 기왕이면 랄랄라 방언을 할 것이 아니라 언어방언을 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방언기도를 시작할 때에 랄랄라로 시작하기도 한다. 이것도 잘못된 방언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언어처럼 나오는 방언을 해야 한다. 사실 언어방언은 익숙하지 않아서 못하고 있는 것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언이다. 그러면 따라서 하면 금방 따라서 할 수 있다. 방언도 일종의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방언을 잘 못한다면 언어방언을 잘 하는 분에게 배워서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따라서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언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전투방언기도를 하려 할 때에는 랄랄라 방언보다는 언어방언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계속해서 방언을 이어서 할 것이 아니라 한 음절씩 끊어서 방언을 해보는 것이다. 전투방언기도를 계속해서 이어서 하보다면 금방 나가 떨어진다. 5분이상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방언기도를 계속해서 하려면, 방언을 하되 한 음절씩 끊어서 기도해 보는 것이 좋다. 한 음절로 기도하고 약간 쉬었다가 또 한 음절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투방언기도를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지속할 수 있다. 

  넷째, 전투방언기도를 할 때에는 마음으로 적과 싸우는 기도를 하되 힘을 써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혀에 붙어있던 귀신들이 순간순간 우리의 혀를 써서 섞는 방언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방언기도를 할 때에 말에 힘을 주어서 강하게 말해야 한다. 전투의지를 불태우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그때만큼은 내 혀를 사용하지 못한다. 내 혀가 온전히 성령에 붙들림바 되어 기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내가 제대로 전투방언기도를 하고 있는지는 내게서 땀이 나오는지 확인해보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내 몸에서 열이 나지 아니하고 땀이 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전투방언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전투방언기도는 강력하게 내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방언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방언기도를 하면 성령의 불이 내 온 몸에 붙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제대로 된 전투방언기도를 한다면 내 몸에서 강력한 열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면 몸이 뜨거워지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 내 아랫배에서 불을 때주고 내 영이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영의 에너지가 내 온 몸을 감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제대로 된 전투방언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 나오며

  어떤 분은 자신이 방언을 하고 있다면 자신은 신령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방언기도를 계속하면 자신이 미쳐 깨닫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성령께서 대신 기도해주기 때문에, 영적으로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언기도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표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막16:17). 또한 방언기도는 내가 미쳐 깨닫지도 못한 것을 성령께서 대신 해 주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언기도는 내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 시에 내게 주시는 레마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을 해서 그 내용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방언은 별로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언만능주의나 방언지상주의에서 우리는 빨리 빠져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기왕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내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주고, 내 영적 계급이 올라가게 하며, 나중에는 내 손에 불이 나오게 하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전투방언기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투방언기도는 까딱 잘못하면 금방 지쳐버린다. 온 마음을 쓰고 힘을 쓰고 목소리를 다 써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몸이 아파서 계속해서 전투방언기도를 지속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을 할 때에 기왕이면 전투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것을 할 때에 좀 더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투방언기도를 할 때에 한 음절씩 끊어서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더 쉽게 전투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다. 그러면 땀이 난다. 제대로 전투방언기도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30분에서 1시간씩 기도하면 어느새 내 영의 에너지는 충만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로 내 영의 계급도 올라가는 것이다. 나중에는 내 몸이 불덩이가 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손에서도 불이 나오는 것이다. 고로 내 손에서 불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이 나오는 사역자로부터 안수만 기대하고 사모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한 음절씩 끊어서 기도하는 전투방언기도를 해보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24년 11월 08일(금)

정보배 목사

 

?
  • ?
    동탄명성교회 2024.11.11 10:00

    1. 들어가며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가져다 줌으로 내 영이 살아나게 되었다는 표시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모든 성도는 자신의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로서 방언말할 수 있다(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몇몇은 다). 그런데 이때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가운데, 내 영이 예수님과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고전14:2).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알기 위해서 방언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영적인 은사를 받는 경우 매우 드물다. 그런데 문제는 방언만 말하고 있으면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방언만 하면 자신의 영권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는 기왕 방언을 할 바에야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는 방언을 하고, 내 영이 강화되는 방언이자 내 영의 계급을 더 올려 주는 방언, 그리고 더 나가서는 내 손에서 불이 나가게 하는 방언을 하려면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방언, 무엇이 문제인가?

      방언은 좋은 것이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내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요, 주님께서 그 때에 내게 주시는 레마 말씀을 내 영이 듣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언통역의 은사를 가진 분들을 통해서 자기의 방언을 통역해 보지 않았다면, 사실상 방언은 그에게 의미가 없다. 자신의 영이 아무리 말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모른다면, 자신이 지금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도 고치지 않을 것이고,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지식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역없이 방언만 말하는 것은 그의 영의 성장에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방언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날마다 수십 년을 방언을 해 온 분들은 사실상 방언만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방언이 자신의 영혼과 삶을 바꾸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방언은 아무리 말해도 자신의 성품은 달라지지 않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언만 말하면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삶을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언만 계속해서 말하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당장에 방언통역을 받아보기를 권면해 본다. 그렇지 않고 방언을 하려면 방언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언 만능주의 혹은 방언 지상주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방언 무용론, 방언 중지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 곧 오순절 날, 예수님의 제자들 120명이 했던 방언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진짜 방언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됨과 동시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방언은 방언이 아니라 고린도 현상으로서 귀신 방언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경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표적들 가운데 하나로서 새 방언을 말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고전16:17). 참고로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했던 방언이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한 방언은 다 똑같은 방언이라는 것이다. 오순절 날 했던 방언은 진짜 방언이고,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가짜 방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방언 만능주의에 빠져서도 아니될 뿐만 아니라, 방언 중지론에 빠져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3. 방언의 내용을 알아보면 어떤 것인가?

      감사하게도 오늘날에 들어와 방언하는 분들이 참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가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한 채 방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통역을 받아 보지 않는 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그것 자체가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4:2).

      그래서 필자는 방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소상히 알아보았다. 그래서 방언통역을 하신다는 여러 분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분들에게서 방언통역을 받아보았다. 그랬더니 방언통역의 방식도 여러 가지였다. 어떤 분은 방언을 듣고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알아듣고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알아듣고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직독직해식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분들도 있었다. 가장 심오한 방언통역은 역시 직독직해식의 방언통역이었다. 이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언을 말하게 하고서는 계속해서 방언을 통역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더 훌륭한 방언통역은 남들이 들어서 덕이 되지 않는 방언들은 살짝 바꾸어서 통역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방언통역의 최고봉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방언통역하시는 분들을 만나본 결과 훌륭하게 방언통역하시는 분을 찾아내었다. 그분은 바로 <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2013년, 예찬사 발행)의 저자인, 송재근 목사와 유순자 사모였다. 현재 이분들은 나이가 많아서 예언과 방언통역의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에 약50년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방언통역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내용을 책에 써 놓았다. 그래서 직접 그분들의 방언통역을 받아보고 또한 남들에게 방언통역해 주는 것을 들어보고, 이분들이 쓴 책을 비교 검토한 결과 얻어낸 것 방언통역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방언통역한 것을 비교해 보면 방언은 크게 2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하나는 방언하는 자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고전14:14).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의 영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다(고전14:2). 이것이 바로 자신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특히 앞의 방언은 '방언기도'라고 말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일종의 '예언과 같은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그때 방언통역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방언의 내용이 방언기도는 약 5~1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이 예언적인 말씀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가 방언기도에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거의가 예수님께서 그 영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방언을 하는 자는 반드시 방언통역을 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예언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방언을 사용할 때에는 한 사람이 방언을 하게 하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그가 하는 방언을 통역하라고 지시하였다(고전14:27~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는 잠잠하고 혼자 있을 때만 하나님께 방언을 말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방언의 90~95%가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면 방언을 해도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언 중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예언의 말씀을 구분해 보니, 책망하고 꾸짖는 말씀, 위로하고 권면하는 말씀, 깨우쳐 주시는 말씀, 사명에 관한 말씀 등이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명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이 기뻐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역하여 자신의 것으로 취하 못한다면, 신령한 방언이라도 그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4. 가짜 방언, 귀신 방언도 있는가?

      방언 중에는 가짜 방언 그리고 귀신 방언도 있는가? 안타까운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가짜 방언도 있고 귀신 방언도 있기 때문이다. 방언이 아닌데 방언으로 알고 방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귀신 방언을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방언을 말하는 자의 약 70% 정도는 성령이 주는 방언을 하기는 하는데, 귀신들이 살짝 살짝 귀신의 방언을 집어넣는 경우라는 사실이다. 방언하는 자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영이 자신의 혀를 사용해 말할 때에, 귀신이 자기의 말을 거기에 살짝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귀신이 방언에 집어넣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2가지다. 하나는 저주하는 말들이며 또 하나는 욕하는 말들이다. 예를 들어, 사모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목사 새끼 뒈져라,사 새끼 뒈져라"라는 말이 섞여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가 방언을 하는데, 그 내용이 "이 교회 망해라, 이 교회 망해라"고 방언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 귀신이 혀를 붙잡아 그렇게 말이 섞여 나오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듯 저주하는 말도 나오지만 욕설도 나온다. "씹새끼 지랄하고 자빠져 있네" 등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성령 사역자에게 방언을 점검받을 필요가 있다. 내 방언이 제대로 된 방언인지 아니면 중간중간에 섞여 나오는 방언인지를 점검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혀에 붙어 있는 영들을 불로 태워서 방언이 정상적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평생 방언하면서, 맨날 맨날 목사를 욕하고 교회가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스러운 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5. 가짜 방언, 귀신 방언, 섞는 방언을 방지하는 방법은 없으며,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만일 자신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방언이 진짜인지를 점검을 받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방언이 진짜방언지 아니면 흉내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는 방언이 귀신이 내 혀를 붙잡하고 있는 방언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주는 방언을 하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섞는 방언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방언을 점검해 주는 사역자가 해야 할 조치 사은 다음과 같이 2가지다. 첫째, 혀를 붙잡고 있는 귀신들을 불태워서 제거해 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많이 할수록 자신의 혀에 엄청난 양의 귀신들이 수많은 실처럼 감겨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귀신이 자신의 혀를 사용해서 방언을 하지 못하도록 방언을 바꾸어 주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전투 방언기도'라는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데, 귀신과 싸우는 방언 곧 대적 방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이때에는 거의 침투하지 못한다. 방언하는 사람이 집중해서 귀신과 싸우는 방언을 하는데, 귀신이 혀를 붙잡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투 방언기도는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강력하게 쓰는 방언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만약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그투 방언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6. 전투 방언기도란 무엇인가?

      투 방언기도란 귀신과 싸우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방언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천사들도 모르고 사람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다(고전14:2). 그런데 이러한 천사들 중에 일부가 타락하여 귀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귀신들도 방언을 결코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전14:2). 그러므로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들은 약간씩 인상을 찌뿌린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방언기도하는 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을 처단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혹시 하늘에서 전투천사들이 내려와 자신을 결박하게 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자신을 태워버리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성도들이 방언기도를 하면 긴장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이때 가상의 적인 귀신들을 상상하고 그들과 싸우는 전투 방언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곧바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자기에게 행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전투 방언을 하면 귀신들은 금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려 하는 자들에 있어서 전투 방언기도는 회개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전투 무기이자 기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 성도들이 방언기도를 하려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기도를 계속하기보다는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투 방언기도는 방언을 귀신과 싸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내 마음이 귀신과 싸우는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내 영도 같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전투 방언기도는 일종의 대적기도인데, 대적기도와 이것이 다른 것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자기 눈앞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투 방언기도는 귀신이 나를 공격하고 내 집안 식구들 교회를 공격하려고 내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신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때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전투를 용이하게 하려고 전투용 무기(대부분은 칼, 그리고 지팡이나 망치, 화살과 창, 화염 방사기 등)를 주셨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을 그것으로 대적하면서 방언을 하는 것이다. 악한 영들의 눈을 찌르고 몸을 베어버리고 손과 발 그리고 다리를 베어버리는 상상을 하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더 내 영의 에너지가 올라가게 되고 나의 전투 의지는 더 강해진다. 그러면서 악한 영들 싸우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투 방언기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처음부터 높은 계급의 귀신을 불러다 놓고 기도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영적인 계급이 이제 이등병, 혹은 일병이나 상병 수준인데, 대사급이나 장군급의 귀신을 불러다 놓고 싸우면 힘에 부대껴 그만 오히려 내가 그놈들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여자 보살 정도를 가상하고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가 보살급 2명에서 3명 정도로 늘린다. 그리고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대사 후보생 하나를 불러다 놓고 대적하고, 이어서 대사(사명대사, 서산대사, 원효대사 등)나 장군(최영장군, 이순신장군, 강감찬장군, 계백장군 등)중에 한 명을 불러다 놓고 대적하면 된다. 참고로 대사나 장군을 불러서 대적하려면 내 영의 계급이 대령이나 별 한 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

     

    7. 전투 방언기도를 하면 어려움은 없는가?

      문제는 방언을 하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날마다 지속할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영권을 강화시켜주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더 좋다. 그것 바로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내가 영적인 계급이 약할 때에는 계속해서 전투 방언기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는 변화가 잘 나타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지속해야 한다. 약 6개월에서 일 년 정도 하면 확실히 뭔가가 달라진다. 둘째는, 힘이 많이 들고 몸이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투 방언기도는 적과 싸우는 기도이기 때문에 적당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상의 적과 싸울 때에는 전투용 무기를 사용해 한다. 그래서 찌르고 짜르고 베어버려야 하는데, 그때 가만히 적과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 든 칼을 자꾸 사용하다 보면 얼마 못 가서 어깨가 아 손을 들지도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투 방언기도는 누워서 하는 것이 좀 더 낫기는 하다. 너무 힘들면 손에 칼을 들었다고 상상만 하고 기도하면 된다. 셋째는 자기보다 너무 큰 귀신들을 불러다 놓고 기도하다가는 그만 그놈들의 실제 공격을 받아서 몸이 굳어지거나 몸이 공격받아서 몸살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적 수준에 맞는 가상의 적을 불러 놓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8. 영의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영의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것은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것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되, 다음과 같이 해 보는 것이다.

      첫째, 성령이 나를 강권으로 사로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말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은사로 주어지는 방언일 뿐만이 아니라 동시 표적으로 주어지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고전12:10, 마16:17).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120명의 성도들이 받았던 방언기도는 사실 알아듣지 못하는 표적 방언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듣는 사람들이 자기 말로 알아듣는 은사 방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은사 방언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곧바로 말하는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즉시 우리는 전투 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다. 만약 우리 성도들이 은사 방언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평생을 가도투 방언기도를 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둘째, 방언을 할 때 기왕이면 랄랄라 방언을 할 것이 아니라 언어 방언을 해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방언기도를 시작할 때에 랄랄라로 시작하기도 한다. 이것도 잘못된 방언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언어처럼 나오는 방언을 해야 한다. 사실 언어방언은 익숙하지 않아서 못하고 있는 것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언이다. 그래서 따라서 하면 금방 따 할 수 있다. 방언도 일종의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방언을 잘 못한다면 언어방언을 잘 하는 분에게 배워서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따라서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언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전투 방언기도를 하려 할 때에는 랄랄라 방언보다는 언어방언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계속해서 방언을 이어서 할 것이 아니라 한 음절씩 끊어서 방언을 해 보는 것이다. 전투 방언기도를 계속해서 이어서 하다 보면 금방 나가 떨어진다. 5분 이상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 방언기도를 계속해서 하려면, 방언을 하되 한 음절씩 끊어서 기도해 보는 것이 좋다. 한 음절로 기도하고 약간 쉬었다가 또 한 음절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투 방언기도를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지속할 수 있다. 

      넷째, 전투 방언기도를 할 때에는 마음으로 적과 싸우는 기도를 하되 힘을 써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혀에 붙어 있던 귀신들이 순간순간 우리의 혀를 써서 섞는 방언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 방언기도를 할 때에 말에 힘을 주어서 강하게 말해야 한다.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그때만큼은 내 혀를 사용하지 못한다. 내 혀가 온전히 성령에 붙들린 바 되어 기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내가 제대로 전투 방언기도를 하고 있는지는 내게서 땀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내 몸에서 열이 나지 아니하고 땀이 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전투 방언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전투 방언기도는 강력하게 내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는 방언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 방언기도를 하면 성령의 불이 내 온 몸에 붙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제대로 된 전투 방언기도를 한다면 내 몸에서 강력한 열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면 몸이 뜨거워지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 내 아랫배에서 불을 때주고 내 영이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영의 에너지가 내 온 몸을 감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제대로 된 전투 방언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 나오며

      어떤 분은 자신이 방언을 하고 있다면 자신은 신령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방언기도를 계속하면 자신이 미 깨닫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성령께서 대신 기도해 주기 때문에, 영적으로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언기도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표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막16:17). 또한 방언기도는 내가 미 깨닫지도 못한 것을 성령께서 대신 해 주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언기도는 내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 시에 내게 주시는 레마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해서 그 내용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방언은 별로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언 만능주의나 방언 지상주의에서 우리는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기왕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내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고, 내 영적 계급이 올라가게 하며, 나중에는 내 손에 불이 나오게 하는 방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전투 방언기도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투 방언기도는 까딱 잘못하면 금방 지쳐버린다. 온 마음을 쓰고 힘을 쓰고 목소리를 다 써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몸이 아파서 계속해서 전투 방언기도를 지속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을 할 때에 기왕이면 전투 방언기도를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것을 할 때에 좀 더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투 방언기도를 할 때에 한 음절씩 끊어서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더 쉽게 전투 방언기도를 할 수가 있다. 그러면 땀이 난다. 제대로 전투 방언기도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30분에서 1시간씩 기도하면 어느새 내 영의 에너지는 충만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로 내 영의 계급도 올라가는 것이다. 나중에는 내 몸이 불덩이가 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손에서도 불이 나오는 것이다. 고로 내 손에서 불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이 나오는 사역자로부터 안수만 기대하고 사모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한 음절씩 끊어서 기도하는 전투 방언기도를 해 보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24년 11월 08일(금)

    정보배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방언을 하되 영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언을 하는 법(고전14:2~5)_2024-11-08(금) 1 file 갈렙 2024.11.09 61
2 [금요기도회 제2부순서] 전투방언기도 실습하기_2024-10-11(금) 1 file 갈렙 2024.10.12 111
1 영권을 강화시키는 전투 방언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고전14:14~15)_2024-03-22(금) 1 file 갈렙 2024.03.23 391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