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50) 이긴 자 요셉의 두번째 속성 '충성됨'(부제: 보디발의의 집과 감옥, 고통과 좌절의 장소인가?)(창39:19~23)_2021-07-14(수)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Jul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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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50) 이긴 자 요셉의 두번째 속성 '충성됨'(부제: 보디발의의 집과 감옥, 고통과 좌절의 장소인가?)(창39:19~23)_2021-07-14(수)

https://youtu.be/20yhfzt_vbQ

 

1. 요셉에게 보디발의 집과 감옥은 어떤 곳이었는가?

  요셉에게 있어서 보디발의 집과 감옥은 어떤 곳이었는가? 그곳은 자신이 노예로 팔려온 장소였으며, 또한 그에게 감옥은 죄수가 되어 쳐넣어진 장소였다. 한 마디로 그곳들은 불행의 장소요 비참한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에 있어서 보디발의 집과 감옥은 그러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이 비록 시련과 고난의 장소임에는 분명하나그곳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쓰실 사람을 위한 훈련장소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셉이 아니라 비전이 없는 보통 사람 같았으면 노예로 팔려갈 때부터 그는 좌절했을 것이며, 감옥에 쳐넣어질 때에는 이빨을 악물고 보복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요셉이 악한 마음을 품었다면 결코 그의 주인 보디발과 간수장의 눈에 그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해주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피해의식적인 평가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을 때나 감옥에 쳐넣어졌을 때에 원망과 좌절함에 붙잡혀 있었고, 보복을 다짐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른지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의 차원으로 보았고 연단의 과정으로 보았으며, 훈련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보디발이나 간수장은 요셉의 얼굴에서 결코 분노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고, 원망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요셉의 말과 행동에서 짜증이나 한숨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여호와께서 보디발의 집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죄가 있어서 노예가 되었거나 그가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감옥은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안배해 주신 장소였던 것이다. 또한 요셉도 죄가 있어서 그곳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늘 언제나 요셉과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3.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요셉은 억울하게 주인의 아내의 모함을 받았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일반 죄수들과 달라 보였다. 그러자 간수장이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옥중 제반 사무를 그에게 맡기게 되었다. 감옥 간수장이 아무에게나 그러한 일들을 맡기겠는가? 그러므로 요셉을 신뢰한 간수장은 그의 손에 모든 사무를 맡겼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이라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요셉이 손대는 모든 일에 형통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되어서 감옥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우선 밖으로 보기에는 그가 성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늘 주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렸기에 주인의 눈에 들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충성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 드러난 모습일 뿐 그가 손대는 모든 일이 잘 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도 일평생 형통함을 누리지 못한 채 이 생을 마감한다. 다시 말해, 요셉이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려갔지만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고, 감옥에 갇혔어도 또다시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성실함이나 충성됨 말고도 다른 요인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조상들이 그것에 준 복이 있었다. 즉 요셉이 태어났을 때에는 이제  자신의 가문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로 참여할 때가 된 것이다. 형통의 축복은 그에게 따라다닌 것은 요셉 혼자서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증조부였던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던 저주의 끝남이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 대에 이르러 조상 때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온 우상숭배의 저주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 이삭이나 손자 야곱도 자신이 손대는 모든 일에 형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축복은 요셉에 이르서도 가능했던 것이다. 더욱이 요셉에게는 성실함도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요셉 대에 이르러 저주가 끊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가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형통함의 축복은 따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성실함은 보디발의 눈에도 들게 했으며, 간수장의 눈에도 들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디발이나 간수장은 요셉에게 가정과 감옥의 제반 모든 일들을 다 요셉에게 다 맡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4. 요셉의 충성됨은 어떤 것이었는가?

  사실 요셉의 신실함과 충성됨은 항상 그에게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말씀에도 항상 충성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멀리 떨어져 있는 형들의 안부를 물으러 100km나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오라고 했을 때에요셉은 불평 하나 하지 않았고 즉각적으로 순종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을 종으로 삼은 보디발의 눈에 보기에게도 충성스런 종이었다. 그리고 셋째로, 감옥에 쳐넣어졌으나 간수장의 눈에 보기에도 그는 충성된 죄인이었다. 요셉은 큰 일에는 순종하고, 작은 일에는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항상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에서도 충성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감옥에서도 충성을 다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 나라의 일지라도 맡겨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작은 것일지라도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겨주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25:21). 그리고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는 자에게 더 큰 일도 맡겨주시기 때문이다

 

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교회를 보면, 과연 어떤 자가 이긴 자가 될 수 있다고 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긴 자' 어떤 자인지가 나온다. 그것들 중에서도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고난과 환난이 오더라도 그것을 잘 이겨내는 자가 이긴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10)" 이것은 요셉의 삶과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머나 교회처럼 해야 한다. 첫째,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마귀가 우리 가운데 있는 지도자들 몇 명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게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생사화복은 다 주 예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이요, 우리를 잡아가거나 옥에 가두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견고해져야 한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하늘에서의 나의 신분도 상승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07월 1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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