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46) 유다,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참된 리더십(창37:26~36)_2021-07-09(금)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Jul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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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천국에 들어가서 보좌에 앉아있는 이기는 자들이 되었다(마8:11). 그런데 야곱의 열 두 아들들 가운데서도 이기는 자가 둘이 더 있다. 그들은 넷째 '유다'와 열한째 '요셉'이다. 왜 유다와 요셉은 이기는 자들이 되어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그중에서 오늘은 유다가 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가 나온다. 그의 생애를 글로 표현하는 나 자신도 눈물이 나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1. 들어가며

  요셉은 창세기의 꽃에 해당한다. 창세기 12장부터는 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이 누군지를 예표하고 있고, 이삭은 성자 예수님을 그리고 야곱은 성령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마8:11,22:32). 고로 우리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교회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셉의 12아들들 중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 가운데 이긴 자들이 누가 되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이러한 믿음의 족장들 이야기 가운데, 오늘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요셉 이야기가 창세기 37장에서 시작하여 50장에서 마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몇 번의 시간을 통하여 요셉의 꿈 이야기를 보았다. 그리고 요셉의 꿈들은 일종의 계시적인 꿈이었다는 것과 이기는 자는 결국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을 들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셉이 꾸었던 꿈들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 곧 다스리는 자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기는 자의 예표라 할 수 있는 요셉이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떻게 위기상황이 극복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어 동생 요셉을 죽음의 위기에서 살린 유다를 살펴보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뒤에 가족을 기근의 굶주림으로부터 구해내었으며, 마지막으로 동생 요셉과 화해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이어서 유다가 과연 어떻게 되어서 메시야의 직계조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영적인 언약의 계승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놀라운 주님의 계시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빈다. 

 

2.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왜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까?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요셉의 형들이 가지고 있던 악한 성품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꿈을 듣고는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셉의 꿈 속에서 요셉은 왕과 같은 존재였고 자신들은 섬기는 자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며, 양 떼를 치는 형들과는 달리 그는 형들이 양 떼를 치는 것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더욱이 형들이 잘못한 것이 있었을 때에는 고해 바치는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편애하는 아버지를 좋아했을 리가 없었고 요셉을 좋게 말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양떼가 먹을  풀이 모자  라자 헤브론에 살고 있던 요셉의 형들을 거기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북쪽의 세겜에까지 가서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세겜은 어떤 장소였는가? 10여년 전 야곱의 딸 디나의 강간사건이 발생한 장소다. 그 이유 때문에 디나의 두 오빠였던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서 히위족속 세겜사람들이 전멸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차하면 가나안족속들이 힘을 모아 야곱의 가족을 공격할 수도 있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야곱은 형들의 안부와 양 떼의 안부를 묻기 위해 요셉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또 하나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온 요셉을 죽이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최적의 장소이자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묻고 물어서 요셉의 형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없애 버리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동생들을 보살피도록 명령받은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서 애를 썼는데, 그것은 요셉의 목숨은 건드리지 말자고 한 것이다. 다만 그를 광야에 있는 구덩이에 던지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그가 나중에 요셉을 구출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그리하여 요셉은 채색옷이 벗겨진 채 구덩이에 쳐넣어지게 된다. 그런데 또한 다행히도 그 웅덩이에는 물이 없어서 당장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그곳에 있게 된다면 요셉은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그리고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견디다가  죽게 될 것이 뻔했다.

 

3. 죽음의 위기상황에 처한 요셉을 유다는 어떻게 살려주었는가?

  르우벤은 순서상으로 볼 때 맏형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일 때문에 맏형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넷째 아들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요셉의 생명을 구원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을 하였다. 대체 유다는 자기 형제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왜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유다의 지혜로운 설득 때문이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첫째, 동생이 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동생의 피를 흘려 무엇이 좋을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둘째, 동생이 아무리 미워도 요셉은 자기들의 동생이요 혈육(살붙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안하기를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들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것은 자기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요셉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기에 형들은 유다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요셉은 지나가는 대상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대상들은 그를 애굽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아버렸다. 한 마디로 야곱의  넷째 유다의 기지로 인하여 요셉은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영적으로 보면, 영락없이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왜냐햐면 예수께서도 이 땅에 죽을 사람을 죽지 않게 하고 살리려고 오셨기 때문이다(요10:10). 

 

4. 가족을 구출하고 베냐민을 살리기 위하여 요셉이 발휘했던 강력한 리더십은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유다의 리더십은 요셉을 구출하는 데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위기 때마다 그가 등장하여 가족의 문제들을 해결하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유다는 그후에도 2가지 문제들을 극복하는데 크게 결정적인 일을 감당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야곱의 온 가족을 굶주림에서 구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요, 또 하나는 형재애를 요셉에게 보여주어 온 가족이 요셉과 화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첫째, 유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야곱의 온 식구를 기근으로부터 구출한다. 사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30살에 총리가 된다. 그리고 이어 7년간의 풍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근이 시작되어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5년이 더 남은 상태였다. 그때 가나안 땅에 있는 야곱도 곡식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야곱은 10명의 자기 아들들을 불러놓고는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서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애굽에 갔지만, 형들은 요셉이 총리로 있는 줄을 전혀 몰랐다. 다만 총리에게 절을 한 다음에 값을 주고 곡식을 사오게 된다. 하지만 오는 중에 정탐꾼으로 오인받은 가운데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있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9명의 형제들만이 가나안땅으로 돌아오는데 그땅에 계속 기근이 심하다보니 식량은 또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이미 요셉은 그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올 때에는 반드시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생명처럼 여기는 베냐민을 아무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유다가 또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아버지를 설득한다. 

창43:8-9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그랬다. 유다가 자신이 베냐민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만약 베냐민을 다시 데려오지 못할 것 같으면 자신이 영원히 죄값을 담당하겠다고 하여 아버지를 설득한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도 유다의 말을 듣고 베냐민을 데려가도록 허락한다. 그리하여 요셉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기근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감당하겠으니 모든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예수님의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떠오르게 한다. 

  둘째, 유다가 또 결정적인 순간에 요셉의  마음을 녹여 형제들간의 화해를 이루어낸다. 베냐민이 애굽에 같이 갔다. 하지만 가짜 누명을 받아 그가 그곳에 볼모로 잡히게 되는 순간, 또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 대신에 자신이 볼모로 잡혀 있겠다고 하면서 동생 베냐민은 꼭 놓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간절한 호소를 통하여 요셉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사실 요셉이 자신의 형들에게 올무를 놓은 것은 과연 배다른 동생이었던 베냐민을 자신의 형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다가 나서서 동생 베냐민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물로 내놓자 요셉은 그제서야 형제사랑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힌다. 그렇다. 지도자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신의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는 자인 것이다. 그랬다. 이번에도 유다는 요셉에게 자신을 희생제물로 삼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베냐민만큼은 풀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리하여 요셉과 그의 형제간의 화해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자신의 목숨을 희생제물로 내어놓아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었기 때문이다. 

 

5. 유다가 가문의 영적인 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서에 밀려서 된 것인가?

  그렇다. 유다가 영적으로 장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진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야곱의 장자는 원래 누구였는가? 그는 르우벤이었다. 하지만 르우벤이 자신의 서모 빌하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는 바람에 그는 그만 장자의 권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동생들도 맏형의 권위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장자권은 그 아래의 동생에게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였던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 간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그들도 장자의 명단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순서적으로 보았을 때 넷째 아들 유다가 영적인 장자권을 물려받게 된다. 그렇다면, 유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유다에게 장자권이 넘어간 것인가? 아니었다. 창세기 이야기는 유다가 왜 야곱의 영적인 장자의 권리를 얻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히 묘사해 주고 있다. 첫째는 요셉이 죽임당함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에 요셉을 살려냄으로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아무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어서 가족들을 식량위기로부터 구출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그 해법을 열었기 때문이다. 즉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물로 내놓음으로 위기상황을 또 극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배다른 동생 베냐민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담보물을 잡히려는 갸륵한 형제애 때문에 요셉의 마음마저 완전히 녹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요셉은 얼마나 자신의 형인 유다가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유다가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청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들을 살리고자 하는 그러한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야곱도 훗날 죽기전에 유다가 행한 모든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를 언약계승자로서 그리고 메시야의 조상으로 유언한 것이다.  

 

6. 위기상황을 세번씩이나 돌파했던 유다가 받은 축복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결국 야곱의 가족에게 생겨난 위기상황은 유다에 의해서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위기상황을 잘 돌파했던 유다가 받은 축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첫째로, 그가 야곱가문의 영적인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가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족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유다는 확실히 야곱의 장자라는 위치를 확실히 확보하게 된다. 사실 그는 지금도 천국에 가면 이긴 자가 되어있어, 24장로 중의 한 사람으로 보좌에 앉아있다(천국에 가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천국에 있는 24반차 제사장의 자리 중 한 자리를 그가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7. 나오며

  사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의 결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라야 그 은총 속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 것은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가 모든 성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이기는 자만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이기는 자가 되는 방법이 무엇이며, 또한 이기는 자가 받을 상급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다. 결국 이기는 자가 보좌에 앉아 만국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우리 성도들도 유다처럼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셉의 생애와 유다의 생애를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바로 창세기에서도 이기는 자의 표상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다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그는 사람을 살리는 자로 쓰임을 받았다. 그리고 위기상황 가운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던졌던 인물이다. 위기상황에서 모든 무거운 짐을 자신이 다 짊어지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물로 내놓아 다른 사람을 살렸던 것이다. 그렇다. 희생이 없는데 어찌 상급이 있겠으며, 헌신이 없는데 어찌 하늘에서 면류관 쓰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을 더 돌아봐야 한다. 내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과연 이기는 자가 되어 만국 위에 왕노릇하는 자가 될른지를 말이다. 

 

 

2021년 07월 0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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