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69) 고대 한자 속에 담겨있는 바벨탑 이야기(창11:1~9)_2021-04-15(목)

by 갈렙 posted Apr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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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주소 https://youtu.be/UfrS0PNl3V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69) 고대 한자 속에 담겨있는 바벨탑 이야기(창11:1~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frS0PNl3Vo

 

1. 고대 한자 속에는 천지창조와 인간 타락, 노아의 홍수, 바벨탑 사건 등이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고대 한자에는 노아의 자손 중의 욕단 자손이 바벨탑 사건이 있었던 그 즈음, 동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자기들이 노아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고대 그림(상형)문자 속에 기록해 둔 것들이 있다. 그러한 상형 문자가 발전하여 훗날 '갑골 문자'가 되었고 '한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한자 속에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2. 고대 한자 가운데 바벨탑 사건과 관련된 한자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고대 한자 속에는 바벱탑 사건 이야기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러한 한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탑 탑(塔=土+艸+合)'이라는 글자다. 당시 사람들이 세웠던 바벨탑은 돌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흙(土)을 가지고서 거기에다가 풀(짚)(艸)을 넣어서 만든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다(창11:3).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合) 바벨탑을 쌓은 것이다(창11:4).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합(合)하여 탑을 쌓은 것인데, 그때 한 마음이 되게 했던 요인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하나(合=人+一+口)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이 놀랍게도 창세기 11:1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11:1)" 그렇다. 사람이 서로 마음을 합할 수 있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향이 같아서, 핏줄이 같아서, 피부색이 같아서 등등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원인이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口)가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자와 성경이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흩을 산(散=共+月(肉)+攵)'자이다.  성경은 당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을 거역하던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흩으셨다고 했는데, 이때 사용된 단어가 '흩을 산(散)'자(字)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그때 사람들이 한 가지(한 마음으로)(共)인 혈통(肉)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쳐서(攵) 혼합시키셨다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셋째, '어지러울 란(乱(亂)=舌+乙)'이라는 글자이다. 이 글자는 '혀 설(舌)'자에 '새 을, 굽을 을(乙)'자를 합친 단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때 사람들로 하여금 바벨탑 쌓기를 그치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는데, 그렇게 해서 어지럽게 된 그들의 모습을 '어지러울 란'자가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된 이유가 바로 다름 아닌 혀가 꼬여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이 말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당시 사람들의 언어가 분화된 것은 수천 종류의 언어였기에, '혀 설(舌)'이라는 글자를 나누어서 보면, '일천 천(千)'에 '입 구(口)'자를 사용한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일천 천'자는 아주 많은 수를 의미한다. 마치 천년왕국에서 '천년'은 많은 기간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넷째, 이제는 '옮길 천(遷=辶+西+大+?)'이라는 글자를 살펴보자. 이 글자는 당시 사람들이 언어의 혼잡 때문에 어떻게 갈라져서 이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옮길 천'이라는 글자를 보니, 그들이 언어의 혼잡으로 인하여 점차적으로(辶) 흩어졌는데, 그 이동이 서쪽(西)에서 동쪽으로 대거(大) 물결이 소용돌이치듯이 이주해 갔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때 욕단족들이 동쪽으로 이동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생긴 나라가 바로 고조선(동이족이 세운 나라)인 것이다. 

 

3. 왜 고조선을 세운 동이족들은 이러한 좋은 글자인 한자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것인가?

  고대 한자 속에는 노아에게서 직접 듣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엄청난 사실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대 한자를 사용했던 동이족들은 노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결론이 난다. 그들은 아마도 노아의 가족이었거나 아니면 노아로부터 직접 그 소식을 들은 어떤 경건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바로 욕단이거나 욕단 자손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욕단 자손인 동이족들이 만든 고대 한자 속에는 이러한 사실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이족들이 오늘날 중국 땅에 세운 나라가 바로 하나라, 은나라(상나라), 주나라이고, 드디어 중국의 화하족(지나족)이 처음으로 중국의 패권을 차지한 것이 진시황제 때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자, 고구려와 백제를 차례로 멸망시키는데, 그때 백제의 영토는 중국 본토에도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충청도와 전라도에도 있었다. 그런데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공격을 받고 백제가 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라는 당나라에게 제사 드릴 수 있는 권리를 내주게 되었고, 한자마저 중국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4. 고조선을 세웠던 동이족들의 역사가 귀신의 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놀라운 사실들을 문자로 기록하고 살았던 민족은 고조선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2천 년간 귀신을 섬기다가 망하게 된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 왕검과 대를 이은 단군들(총 47명의 단군들)이 자신이야말로 천자(하늘이 보낸 통치자)라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즉 고조선의 단군들은 자신들만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신의 뜻을 물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처했다. 그런데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보면 거기에는 장차 인류를 구원하러 올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가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욕단 자손을 만나 주셨다는 말씀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단군의 후예들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욕단자손에게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의 후예들은 귀신을 받은 무당들이 되거나 혹은 그러한 무당들을 섬기고 살았으니 죄는 하늘까지 미쳤던 것이다. 

 

5. 한자 공부를 많이 하고, 환단고기 등 고조선의 역사를 많이 공부해도 구원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사실 성경을 알고 한자를 공부보면, 한자가 창세기 1~11장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놀라운 글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분들이 한자를 보면 위와 같은 해석을 할 수 없다. 오늘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러한 예를 하나 든다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는데 왜 그것이 모두가 마음을 합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는지 오로지 성경만이 그 답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한자 공부를 많이 하고 환단고기 등 고조선의 역사를 공부했다고 할지라도 그것 안에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다. 거기에 등장하는 하늘과 땅의 중보자는 오직 단군들일 뿐 거기 어떤 곳에서도 메시야가 없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유일한 천자(하나님의 아들)인데, 그것을 사람들(단군들)이 가로채어 갔으니 결코 거기에서는 메시야를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 전파는 복음을 가진 자가 가서 전해 줌(선포함)으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욕단족은 단군들이 죽어서 하늘에 올라가 신선들 혹은 삼신 할머니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 그 기운을 받은 자들 중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을 가키려 '무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무당이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그들은 신적인 존재와 사람을 연결해 주고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매개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내림을 받아서 굿을 하거나 점을 치지만, 이는 다 귀신에게 정보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점을 치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요 저주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04월 15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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