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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은 과연 신약의 안식일일까?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3.08.16 04:07

쉬는 날 아닌 거룩한 예배의 날…율법과 반율법 사이 균형 필요

 

들어가는 말 

이 글은 본인(이민규 교수, 한국성서대 신약학)의 논문 <사회학적 시각으로 본 마태복음에 나타난 안식일>(신약논단, 봄호 2006. 3)과 복음주의의 대표학자인 D.A. Carson이 편집한 <From Sabbath to Lord's Day>(1982)에 실린 7명의 성서학자와 교회사 학자들의 심포지엄, 그리고 특히 양용의 교수의 <예수와 안식일 그리고 주일>(이레서원, 2000)의 내용을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게 정리 요약한 것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교포 목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미국 교회와 한국교회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그 젊은 목사는 율법적인 '주일 성수'를 들었다. 주일 성수란 말도 생소할뿐더러 대부분의 미국 교회에서는 주일은 예배의 날이며 축제의 날로 여기지 신약의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교인들은 율법적인데 특히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여긴다는 짐이 신기했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미국 목사 한 분과 통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주일을 예배의 날로 여기지 안식일과 무관하게 본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보는 것에 대하여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주일이 신약의 안식일이라는 전통은 자기가 아는바 일반 교회에서는 없다고 했다. 주일/안식일 엄수주의 전통은 사실 과거 청교도 신학에서 수입한 것인데 막상 미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한국교회는 신학의 측면에서 자생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 전통을 비판 없이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한국교회 대부분은 예전부터 안식일 엄수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이미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문제점을 복음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 해결한 서양 교회들과 달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유별나게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신약의 성도들은 주일을 그리스도의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날짜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제칠안식교의 가르침을 거의 문자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주일 성수란 이름으로 주일에는 사업이나 장사도 접고 절대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을 신앙이 좋은 것으로 본다. 주일은 말 그대로 신약의 안식일로 지킨다.

물론 지금은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는 것이 예전처럼 과격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과거 청교도주의를 모범으로 삼아 주일날노동을 금하는 것은 물론 봉헌 이외에는 돈을 쓰는 모든 행위, 일과 오락에 대한 일절 금지를 요구한 교회들이 많았다. 따라서 버스 택시와 같은 공중 교통수단 사용 금지, 식당 찻집 금지, TV 극장, 연극, 세속 음악 시청 금지, 모든 스포츠 오락 금지 및 각종 시험 응시 금지를 주일 성수의 모범으로 여겼다. 어느 교회에선 주일날 바자회도 금지한다. 어느 목사는 주일날엔 자판기 커피도 빼 먹지 않는다고 하며 교인들이 그의 엄격한 경건 생활을 칭송하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초대교회도 주일 성수를 했을까?

주일에 일하면 안 되나요?

답 : 초대교회는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로 여겼지 쉬는 날로 여기지 않았다. 주일은 보통 때와 같이 일하는 날이었다!

이 질문은 주일을 구약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 로마제국에서 일요일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원래 자기 문화에서 하던 것처럼 계속하여 안식의 날만 쉬었다.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일요일은 당연히 일하는 날이었다. 일요일이 공휴일이 된 것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부터다. 콘스탄틴 황제는 기원후 321년 3월 3일 주일을 쉬는 날로 정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리고 7월 3일 로마법은 주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Codex Instinianus 3.12. Codex Theodosianus 2.8.1).

그러나 이때에도 주일은 예배의 날임을 강조했지 신약의 안식일로 강조하지는 않았다(330년 교부 유세비우스의 시 91편 주석 참조). 초대 교부들인 저스틴(Justin), 터툴리안(Tertullian),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드(Clement of Alexandria), 그리고 오리겐(Origen)까지 모두 주일을 예배의 날로 강조할 뿐 신약의 안식일이라거나 쉬는 날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지만 4세기경 성 암브로시우스와 같이 일요일에는 여행과 연극 관람 등을 금하고 성찬 행위와 자비로운 행위만 하라고 권한 경우도 있었다(Exam, III. 1.1).

초대교회는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바꾸지 않았다. 초대교회에서 주일은 안식의 날이 아니라 예배의 날로 정착되었다. 그들은 언제 예배를 드렸을까? 그들은 일을 마치고 주의 만찬을 포함하는 저녁 예배를 주로 드렸다. 기독교가 탄생하고 300여 년이 지나기까지도 주일은 기독교인들에게 일하는 날이었다. 주일날 사업을 접고 직장을 가지 않고 쉬는 날로 생각한 기독교인은 있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공휴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초대교회에 주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주중에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날'이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예배는 예배대로 드렸기 때문이다.

그럼 주일날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신학은 어디서 나왔을까?

일요일이 공휴일로 선포된 이후에도 기원후 6세기까지 일요일에 일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시도는 드물었다(Bauckam, <Post-Apostolic Church>, p. 286). 기원후 1200년경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74)는 안식일 엄수주의(Sabbatarianism) 교리를 확립한다. 그는 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이라 선포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므로 모든 일을 금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안식일에 관한 제4계명은 폐지될 수 있는 의식법이 아니라 신약의 백성에게도 유효한 하나님의 도덕법이라 주장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즉 날짜만 바뀐 것이라 했다(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 5 vols,; [repr.: New York: Benzier Brothers, 1948], 1a 2ae 100.).

아퀴나스의 오류

아퀴나스의 율법에 대한 분류는 율법의 절기와 의식, 제사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대치되었고 이스라엘과 관련된 율법의 시민법 역시 민족을 넘어선 복음으로 효력이 다하였고, 오직 도덕법만이 남는다는 이론이다. 이 중 안식일의 쉼이 도덕법에 속한다는 것이기에 오늘날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을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분류하는 아퀴나스의 전통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와 종교가 구분되지 않았던 고대 유대인들에게 종교법과 시민법, 혹은 도덕법의 분류는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이런 구분 자체는 헬라적 이원론의 산물에 불과하다. 신정 통치를 추구한 이스라엘은 종교국가로 율법은 국가법이자 종교법이며 도덕법이다. 그들에게 제사제도는 곧 시민법이요 도덕법이다. 또한, 도덕은 하나님에 대한 제사이다. 율법을 통합적으로 보는 그들에겐 절기, 의식, 제사법을 다른 법에서 구분할 방법이 없다.

설사 아퀴나스의 분류를 인정한다 해도 율법 조항 중엔 이렇게 분류하기 모호한 것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희년은 의식법으로 보기도 시민법으로 보기도 모호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밭의 모퉁이를 남겨 두라는 것은 시민법일까 도덕법일까? 십일조는 그럼 도덕법이라 오늘날 강조하는 것일까? 율법은 하나로 되어 있지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없다. 안식법도 쪼개서 결코 도덕(쉼의 논리)법과 의식법(요일의 변경) 부분으로 나눌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의 반기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안식일 엄수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었다. 칼뱅은 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선포한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유대교의 미신을 기독교에 접목한 거짓 선지자로 몰아세웠다. 안식일 엄수주의적인 주일성수에 대한 칼뱅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의 덧없는 이야기들은 사라진다. 그들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을 유대교의 견해로 감염시켰다. 그들은 이 안식일 계명의 의식적 부분(그들이 하는 말로, 일곱째 날의 '제정')만이 폐지되었고, 도덕적 부분(즉, 으레 가운데서 하루를 정하는 것)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의미에서 날을 변경한 것일 뿐이고, 그날을 거룩하다고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러한 자신들의 교회 규정들을 고수하는 자들의 미신은 유대인들보다 세 배나 더 유치하고 육욕적인 안식일 엄수주의적 미신이다(Calvin, Institute, 2, 8, 34)

<기독교 강요> 2, 8, 28~34에서 칼뱅은 안식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폐지되었음을 강조한다. 칼뱅은 여기서 예배가 꼭 일요일(주일)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주일 예배는 일요일이 쉬는 날이기에 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편의성 때문이다. 성취된 안식일에 대한 그의 견해는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The Heidelberg Catechism, 1563). 따로 주일을 인식일로 지킬 필요란 없다.

루터는 칼뱅보다 더욱 비판적이다. 루터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매주 '쉼의 날'이나 심지어는 '예배일'까지도 종교적 의무로써 지켜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the Augsburg Confession, 1530).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모범을 누리고, 따라서 안식일이나 혹은 다른 한 날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즐거워할 일이다."

청교도주의가 종교개혁 전통을 떠남 : 가톨릭의 안식일/주일 엄수주의 교리 선택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은 긴 세월 동안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지켜내지 못한다(M. Bucer, P. Martyer, H. Bullinger). 그리고 청교도들은 이후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엄수주의를 교리화한다. 청교도들은 분명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금욕적이고 정숙한 신앙을 엄격하게 추구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청교도 운동에는 공과 사가 있다. 청교도들은 율법주의와 배타주의적 성향이 강해 신앙 스타일이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쉽게 정죄하면서 자신들의 경건을 자기 의를 드러내는 잣대로 삼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영어권에서 청교도란 표현이 속어로 위선자라는 의미일 정도였다.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라는 소설은 특히 미국 청교도들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엄격성, 바리새적 위선을 꼬집는다.

청교도 운동의 안식일 엄수주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에 잘 나타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 21, 7~8,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1647) 제 59~60문,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1645년) 1, 1~6).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1647) 제59~60문

제59문 하나님께서 칠일 중에 어느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는가?

답 :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이 이레 중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까지는 이레 중에 첫날을 정하셨으니 이날이 곧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제60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다른 날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세상의 일과 오락을 끊고 그날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쉬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로 그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부득이한 일이나 자비를 베푸는 일에 드려야 할 시간만큼은 예외이다.

보쿰은 웨스트민스터의 예배모범에 나타난 주일의 노동, 운동과 오락 금지를 "위험할 정도로 바리새주의에 가깝다"고 하면서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비복음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Bauckham, <Protestant Tradition>, p. 327).

그렇다면 신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설사 아무리 엄격하게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킨다 해도 교회 시대에 구약의 명령을 그대로 지키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만일 주일이 신약의 안식일이라면 주일날 일반적인 노동 이외에도 불을 피우는 일(출 35:3), 음식을 만드는 일(출 16:23), 나무를 줍는 행위(민 15:32~35), 여행(사 58:13)은 금지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더욱 큰 문제가 된다. 불을 피우는 일은 현대적으로 엄격하게 전기를 키는 일을 포함해야 하는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는 행위까지, 그리고 투석형이 선고되었던 나무를 줍는 행위는 오늘날 휴지를 줍는 행위(종이도 나무니까)가 포함되어야 하는가? 또한 여행 금지로 인해 주일예배는 동네에 있는 곳에서만 드려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2000규빗(3/4마일) 이하의 거리만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랍비들처럼, 출 16:29과 민 35:5를 근거로 해석할 때).

이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자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율법으로 돌아가 이방인들이 유대교의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는 초대교회에도 논쟁이 되고 있었다.

바울서신과 안식일

사도바울은 안식일은 복음과 대치된 '율법의 행위'이며 부정적으로 반대하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갈라디아서 4:9~11에서 바울은 유대의 율법 교사의 요구를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복음을 부인하고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 종노릇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골로새서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혼합주의로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이는 본질적으로 이전 세대에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더는 구속력이 없다. 안식일 계명은 그리스도로 인해 나타날 영원한 안식에 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골 2:16~17).

로마서에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아직 율법의 행위에 대하여 자유를 얻지 못한 오직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서만 허락된다(롬 14:1~12).

히브리서와 안식일

히브리서는 3:7~4:11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다루고 있다. 복음에 응답하여 구원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며(4:2),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낸 목적이었다. 히브리서 저자에게 창조의 일곱 번째 날에 하나님의 쉬신 사실, 즉 안식일의 의미는 마지막 때 주어질 참된 안식(3~4, 10절)은 '하나님나라' 혹은 요한복음의 '생명'과 같은 뜻이다. 신약에서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이 제공되는 종말론적인 구속으로 성취된다. 결코, 안식일 율법이 신약에서 날짜만 바뀌어 연장된 것은 아니다(히 4:1~11).

마태복음의 안식일 : 주님을 만나 안식을 성취하고 완성하는 날!

복음서는 기본적으로 예수를 율법의 위에 있으신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배하는 주님으로 소개한다(눅 6:1~11, 막 2:23~28).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핵심 구절은 마태복음 12:1~14(병행 구절 눅 13:10~17; 14:1~6; 요 5:1~8)이다. 필자 역시 이 본문에 관한 졸저를 쓴 적이 있다(<사회학적 시각으로 본 마태복음에 나타난 안식일>, 이민규).

마태복음은 안식일 논쟁을 철저히 기독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안식을 제공하는 하나님이신 예수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전개한다. 안식일 논쟁은 '예수가 누구신가?'를 답하는 기회로 사용된 것이다. 예수는 다윗보다 크시고 참된 성전이시며, 안식일의 의도인 자비를 실현하시는 분이고, 더욱 놀라운 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즉 마태복음에서 안식일 논쟁은 예수가 안식법을 성취/완성하시는 하나님/주님이심을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예수의 구속 사역이야말로 구약 안식일에 대한 원래 의도요, 안식일 율법의 종말론적 성취이자 완성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종말론적인 안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만나 구원에 참여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안식일 율법의 성취이자 완성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완전히 폐지된 것인가? 아니다! 예수는 안식일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고 완성하러 오셨다. 구원으로 성취되고 그 원래 의도했던 정신은 복음으로 완성되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어 구원의 안식에 거하면 안식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후 기독교인에게는 영적인 차원에서 날마다 안식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육체적 안식은 필요하다. 육체의 완전한 구원은 장래의 것이기에(고전 15:51~54; 빌 3:21),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일곱째 날의 안식이란 창세기의 내용은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나만의 쉼이 아니라 모든 고용인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쉼을 제공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구약의 안식일 율법에는 오늘날도 배워야 할 사회 복지적 정신이 있다. 아래의 내용은 본인의 졸저에서 인용한 것이다(<사회학적 시각으로 본 마태복음에 나타난 안식일>, 이민규, <신약논단>, 봄호 2006. 03. 01).

1) 예수의 말에 따르면 안식일 법의 조항은 가난한 자의 절실한 필요의 상황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이는 구약의 안식일 의도의 회복이다. 여기서 구약과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종교/정치적 차원에서 위정자들을 향해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안식일 정신의 구현을 말했다면 예수는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차원에서 자신을 따르는 개개인들과 그의 제자 공동체에 소외된 자들을 향한 영적이고 육체적 필요에 관심을 보이길 원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2) 예수는 안식일에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안식을 누리게 하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즉 모두에게 쉼과 예배하는 날로서의 안식일 전통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자들의 안식을 위해 이제 제자들은 안식일에도 휴식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선을 행하는 것을 통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성취하는 것이다.

3) 예수는 안식일에 모든 사회적 경제적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 참된 안식을 제공한다.

4)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안식일의 성취이다.

5)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대치하려는 시도도 없다. 그러나 안식일 정신은 지속하며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안식을 제공하여야 하는 의무는 오늘날도 계속된다.

안식일과 주일

그간 안식일과 주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있었으나(<This is the Day: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Christian Sunday in its Jewish and Early Church Setting>, Roger T. Beckwith and Wilfrid Stott, London: Marshall, Morgan & Scott, 1978), 현재까지 학계의 절대 다수의 성서학적인 연구는 주일과 안식일이 신학적으로 상관없음을 밝히고 있다.

신약은 안식 후 '첫날'을 신약의 안식일로 대치하려거나, 안식일 신학을 주일예배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주일은 예배의 날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상응하는 공휴일을 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일이란 표현에 익숙하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주의날(퀴리아케 해메라, 주일)'이란 표현이 딱 한 번 요한계시록에 나온다(1:10). 여기서 '주의날'은 △종말론적인 "주의날(Yom Yahwe, 심판과 구원의 날)" △안식일(토요일) △부활절 △일요일로 제안되었다. 아마도 이 표현은 일요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유는 12사도의 가르침을 적은 2세기 초 기독교 문헌인 디다케에서 주일예배를 명령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디다케 14:1)."

또한, 초대교회 교부인 이그나티우스는 일요일을 주의날로 표현하면서 일요일을 "안식일화 하지 말고 주님의 날(Lord's Day)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명령한다(Ignatius, Magnesians 9:1). 이 구절은 교부들이 초대교회가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여기려던 시도를 금지한 증거이기도 하다.

대략 기원후 70년 이후 1세기경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바나바 서신도 제 팔일(주일)의 기념(예배)을 강조한다.

"우리 역시 팔 일을 기념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 왜냐하면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Epistle of Barnabas 15)."

2세기 이후에는 '주일(주의날)'이 기독교인들에게 날짜의 차원에서 일요일의 의미로 확실하게 정착되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안식 후 첫날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안식 후 첫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행 20:7). 이 표현은 일요일인 주일, 아니면 토요일 저녁을 의미할 수 있다. 누가가 로마식 날짜 계산법을 따랐다면 '안식 후 첫날'은 자정부터 자정까지의 일요일을 의미할 것이다(사도행전이 전반에 걸쳐 로마식 제도를 따랐다는 증거는 4:3; 20:7; 23:31~32).

그러나 누가가 유대식 날짜 계산법을 따랐다면(일몰에서 일몰까지)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저녁'이다('그 이튿날'로 번역된 '헤 아우리온'은 헬라어로 '그다음 아침'도 의미할 수 있다). 사실 New English Bible과 Good News Bible, Today's English Version 등은 “Saturday"(토요일)로 그리고 표준새번역성경(난외주를 통해)은 이를 '토요일 저녁'으로 번역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일요일 오전 선교지로 출발하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강론을 듣기 위해 토요일 저녁 애찬식(성찬식)을 하며 예배를 드리던 시간이었다. 이날 유두고는 밤이 깊어 졸다가 2층에서 떨어진다.

고린도 교회에서 한 주의 '첫날'을 예배를 위한 날로 모였다는 암시가 있다(고전 16:2, 당시는 저녁 만찬을 포함하는(애찬식, 성찬식) 예배로 드렸는데 이것이 로마식이거나 다다케의 고정화된 표현이라면 분명히 일요일 저녁 식사 때일 것이나 유대식의 일요일 개념이라면 토요일 밤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있다). 성만찬을 주일날마다 모여 드린 가장 전통은 사실 디다케에서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강한 주일 전통을 세운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주일이 노동의 날이었고 사도바울이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일을 소중하게 여기지 말란 말은 아니다. 바울의 의도를 '모든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지 특정 날만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새 언약의 성도들에게 가하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미 논의한 대로 골 2:16~17; 참조 롬 14:5~8; 히 4:1~11, Ignatiusgnatius, Magnesians 9:1).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주일은 특별하게 거룩한 날이다. 그러나 다른 날들도 똑같이 특별하게 거룩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일만 거룩한 날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날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울이 특별한 날을 지키는 것을 금한 의도이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주일 오전 예배는 중요하고 오후 예배나 평일 날 드리는 예배는 덜 중요하단 말인가? 모든 날이 소중한 것같이 모든 예배가 중요하다. 특히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며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구해 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구원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넓게 본다면 주님의 날이 아닌 날이 어디 있는가? 주일을 특별하게 거룩한 날로, 주일예배를 특별하게 소중한 예배로 드리는 차별적인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아직도 안식일 율법을 지키는 안식교와 다름이 없어진다. 우리는 주일뿐만 아니라 모든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고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토요일도 공휴일로 변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일부 주일 대체 예배에 대한 논의가 있다. 주일 대체 예배라는 것은 없다. 모든 예배는 대체할 수 없으며 항상 거룩하고 특별하다.

기독교인이 주일날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날에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주일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양용의 교수가 어디선가 한 말이다). 주일을 율법적으로 사업이나 운동, 오락을 금하는 날로 여겨서도 안 되지만 경건한 예배와 모임의 중요성을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예배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명령이다. 주일은 특별하고 소중한 날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들도 다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안식일/ 주일 엄수주의를 떠날 때 또 다른 위험도 따른다. 율법의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주말의 여가나 사회적 활동을 위해 주일의 참된 의미를 무시하거나 간과한다면 이는 율법주의만큼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다.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며 공휴일이기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에 적합한 날이다. 주일은 예배를 위한 기독교의 중요한 전통이다. 예배를 온전히 드릴 목적으로 그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 수는 없어도 매우 바람직한 현실적인 권장 사항이다. 또한 창세기 2장 2절을 모델로 하여 일주일에 최소 하루 정도 육체적으로도 쉬는 것은 바람직하다. 마침 공휴일인 주일날예배를 위해 모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좋은 전통이다.

나가는 말

구약의 안식일이 변하여 신약의 주일이 된 것이 아니다. 안식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영원한 '안식'인 구원으로 성취되고 완성되었다.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초대교회는 주일날 모여 예배를 드렸다.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에 예수님의 영원한 안식인 복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말이다.

신약에서 주일은 결코 신약의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일은 모세 율법이지 신약의 계명이 아니다. 즉, 이스라엘에 특별한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율법은 신약에서 어떤 것이 폐하여지고 어떤 것은 유지되고 어떤 것은 어정쩡하게 타협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통째로 폐하여졌고 통째로 갱신/성취/완성되었다. 신약의 계명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율법의 뜻과 정신이 완성된 것이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안식으로 성취된 것이다(히 4:1~11).

제발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지키지 말아라!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이 올바른 안식일 계명을 성취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참된 안식일의 유일한 모임이라면 미래에 있을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서 어린양과 함께 영원히 세상을 통치할 하나님과 어린양의 종들의 모임이다(계 22:3~6).

물론, 안식법의 정신 중 신약 성도에게 아직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몸은 아직 연약 가운데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완전한 몸의 구원은 미래의 부활 때 이루어질 것이다(고전 15:51~54; 빌 3:21). 그 전에 우리는 정기적인 쉼이 필요하다. 특히 고용인들에게도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 온 세상에 적용돼야 할 안식일 정신이다. 특히 쉬는 날을 함께 모여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는 기회로 삼으면 유익할 것이다.

신약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과 같은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을 금지한다(골 2:14, 15~16).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안식일 율법은 그리스도의 참되고 영원한 안식에 대한 그림자였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취/완성되었다. 구원의 안식을 누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미덥지 않은 율법 준수는 이제 피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종하는 신약의 교회는 안식일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마 11:28). 우리는 구약과 동일한 방법으로 안식일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킬 의무도 없다. 종교개혁자들도 안식일 엄수주의가 성경에 근거할 수 없는 가르침임을 간파하고 다시 초대교회의 성경적 신학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였다. 주일은 안식일의 의도가 아닌 거룩한 예배를 위한 모임 날로 지켜야 한다.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주간의 첫날로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의 날인 주일날 자발적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디다케 14:1 참조 고전 16:2).

주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주일은 율법적인 의무가 아니라 기쁨의 잔치에 초대이다. 주님을 위한 예배를 억지로 드리거나 자주 빠진다면 문제가 있는 그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예배 모임을 위해 명령을 받았다.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히 10:25)."

이 글은 마치며 또 다른 위험성을 경고하고 싶다. 이 글이 오해되어 반율법주의로 빠질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율법주의의 위험에서 점차 반율법주의의 위험으로 빠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의 졸저인 안식일/주일 논쟁이 오히려 주일예배를 소홀히 여기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 같아 두렵다. 요즘 안식일 엄수주의에 빠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그런 성도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리새인처럼 헌금과 예배, 기도와 말씀에 열심도 없으면서 그들을 욕하면 안 된다. 진정성 있는 복음을 믿기는 정말 쉬우면서도 어렵다.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오늘날 절실하다. 오직 예수의 주 되심과 진실한 복음이 그립다.

 

<뉴스앤조이> 2013년 7월 26일자 이민규 교수(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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