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성서적 의미
이스라엘이 추구한 사회는 자유.평등.평화.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였다. 판관시대에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노력하였다. 그러나 왕조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변했다. 사울에 뒤이어 다윗 왕조가 그 기틀을 잡아가면서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력도 소수의 상류층에 편중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평등 공동체가 불평등 공동체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사회는 이스라엘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이끌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하였다. 희년도 이러한 노력들 가운데 하나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희년법은 성결법전에 속하는 레위기 25장 8-55절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희년 계산법(8,10절)
희년 계산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곱번째 맞는 안식년, 즉 49년에 1년을 더하여 50년째를 희년으로 보는 계산법이다. 다른 하나는 일곱번째 맞는 안식년, 즉 49년째를 희년으로 보는 계산법이다. 본문 자체가 불명확해서 이러한 두가지 계산법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계산법이 절대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실정이다.
2. 대속죄인 선포(9절)
희년은 속죄일 선포로부터 시작한다(7월10일). 속죄는 참회를 전제한다. 참회, 회개없는 속죄는 있을 수 없다(레위 23,27,32). 희년에 뉘우침과 잘못을 고치려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속죄일로부터 희년은 시작된다.
3. 자유선포(10절)
이 날에 나팔을 불고 전국민에게 자유(드로르)를 선포한다. 9절에서 나팔을 '쇼파르'로 표시하고 있으니 희년에는 특별히 숫양의 뿔로 남든 '요벨'나팔을 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희년을 '요벨의 해' 즉 The Year of Jubilee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날에 선포된 자유의 나팔소리는 모두가 제자리를 떠나 헤매고 있는 모든 사람에들에게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라는 신호이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주인도 종도, 권력자도 약자도, 심지어 자연까지도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 내용이 다음에 이어진다. 앞에서 말한 바와같이 희년은 안식년과 겹친다. 그래서 25장 2, 7절에 말한 안식년의 휴경에 대해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한다(11,12절). 휴경의 목적은 자력 향상(토질보존)이란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그 보다는 가나한 민중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 그 일차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은 이러한 빈부차이가 나서는 안되는 것이 이스라엘 평등 공동체 이상이다. 그러나 빈부 격차가 심해져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으므로, 이 현실문제를 일시적이나마 해결하기 위하여 안식년의 휴경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5. 토지소유의 원상회복(23,28절)
여기서 토지 소유의 원상회복을 선포한다. 가난해서 팔아버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의 토지를 희년에 무조건 원소유자에게 되돌려 주도록 되어 있다. 토지를 영원히 팔 수 없다는 근거는 "토지의 주인은 야훼 하나님"이라는 데 있다(23절). 토지 소유의 원상회복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실패한 삶을 떨쳐 버리고 새 출발을 하게 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이 평등 공동체로 출발했던 정착 초기의 평등 상태로 되돌아가 모든 백성이 다같이 동등한 조건에서 다시 출발하게 하려는 데 희년의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등 상태가 영원히 변치 않고 계속되게 하려는 것이 희년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희년은 매 50년마다 실시하라는 법이 아니라, 사실은 매일, 매월, 매년을 희년정신으로 살아야 함을 가리키는 법이다. 안식년의 휴경법이 일시적인 빈민구제법이라면, 희년의 토지 소유 원상회복법은 보다 근본적인 빈부격차 해소의 치유책이다. 토지 소유 원상회복의 또 다른 목적은 소수가 토지를 독과점하지 못하게 하고, 경작하는데 농민에게 토지를 되돌려 주는 데 있다.
더우기 한반도는 두동강이 난지 49년이 되도록 아직도 한 몸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한반도는 늦어도 해방 후 50년이 되는 희년에는 하나로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이것이 희년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다. 우리는 한반도를 하나로 통일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6. 주택소유의 원상회복(29,34절)
주택을 판 후에 주인이나 친척(고엘)이 무를 수 없는 경우에는 희년에 원소유주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이 주택 소유의 원상회복은 성 밖에 있는 주택과 레위인의 주택에만 해당되고, 성 안에 있는 주택은 판지 2년 내에 무르지 못하면 영원히 무르지 못하고 산 사람의 소유자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성안의 주택은 균등분배 이전에 가나안의 도시 안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희년법에서 제외된 것 같다.
7. 이자 없는 대부(35,38절)
가난한 동족이 돈이나 곡식을 빌려달라고 할 때 이자를 받지 말고 꾸어 주라고 한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기 위한 제도다. 이웃이 어려울 땐 이자를 생각하지 말고 빌려주어, 힘을 얻어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8. 노예해방(39,55절)
가난해서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을 희년이 되면 해방시키라는 법이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은 결코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상에서 나온 법이다. 이 법은 또한 평등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신분이 생기나 불평등 공동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기도 하다.
9. 되무르기법-고엘법(23,28,55절)
토지든 노예든 가옥이든 일단 판 다음에는 본인의 논이 있으면 되무를 수가 있다. 그러나 만약 본인이 무를 만한 힘이 없으면 친척이 대신 물려 줄 수도있다. 이 되무르기법은 반드시 희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법이다.(룻기 2,20:렘 32, 7 ,8 참고). 이 되무르기법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평등공동체로 유지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스라엘도 사람이 사는 사회였으므로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요, 이러한 현상이 다른 사회적 요인들과 겹쳐서 빈부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므로 이는 시정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시정방안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은 '되무르기법'(고엘법)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정한 것이다. 이 되무르기법의 핵심은 본인이 돈을 다시 벌어 되무르기보다 가까운 친척이 되물려 주게 하는데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해진 사람이 짧은 기간동안에 다시 부자가 되어서 팔아먹은 토지나 가옥을 되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노예로 팔린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친척(고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에 연대 행위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만약 이 친척의 되무르기 미덕이 제대로 지켜지기만 했다면 희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다른 법들이 전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이 고엘법은 희년정신을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라는 법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고엘법이 이스라엘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최소한 50년 만에 한번만이라도 희년을 선포하여 사회에 발생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려고했던 것이다.
10. 희년법의 실시 여부
고엘정신이 철저히 발휘되었더라면 필요없는 법, 그러나 최소한 50년 만에 한 번만이라도 실시됨으로써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평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희년법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시되었는가? 서구 학자들 가운데서는 희년법을 인간사회에선 실현 불가능한 한낱 '유토피아적인 법'(a utopian law)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희년법을 결코 실현 불가능한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슬로브핫 딸들의 경우(민 36, 1-12), 토지를 야훼에게 헌납한 경우(레 27, 16-25), 시드기야의 노예해방(렘 34, 8-22), 제3이사야의 은혜의 해 선포(사 61, 1-3), 왕이 신하에게 토지를 하사할 경우(렘 46, 17), 느헤미야의 조치(느 5, 1-13)등이 희년법의 역사적 실재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구약성경에는 희년법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철저하게 지켜졌다는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11. 이스라엘과 가톨릭의 경우
성서시대를 지나 형성된 유대교는 희년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전 2세기경에 쓰여진 <희년의 책>(The Book of Jubilee)이 희년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으나, 위에서 설명한 희년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50년이라는 숫자를 이용한데서 희년이란 책명이 붙은 것 뿐이다. 유대교에서 희년은 관심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에 희년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지키지는 않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성년(聖年:Holy Year) 혹은 내축제(jubilacum majus)라 불리우는 제도가 있다. 추후 1300년에 시작해서 매 25년마다 선포되고 있는 성년은 대사면(Ablass)을 베풀고 신자들이 영적 은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평상시에는 완전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이 기간에는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다. 성년의 간접적인 기원이 구약의 희년이긴 하지만 휴경, 토지와 주택의 원상회복, 노예해방 등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구태여 그 의미를 찾는다면 성년은 구약 희년의 정산화라고나 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비록 희년법이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예는 우리가 찾을 수 없지만, 희년법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전제한, 공상적이며 유토피아적인 법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희년법이 실시되지 못한것은 그것이 실천 불가능한 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법을 실천할 의지가 없어서 실시되지 못했던 것이다. 권력자, 부자, 강자들의 실천의지 여부가 희년법의 실시 여부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들 가진 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희생하고 못가진 자들, 즉 민중들과 연대하려는 자세를 전혀 갖지 않은 것이 희년법실시 불가능의 원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세계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신음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 계층간의 갈등, 영토분쟁 민족간의 갈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로 세계는 진통을 격고 있다. 문제는 많고 다양하지만 핵심적인 원인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 아는 이기심 때문에 이 모든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이들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과 평등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이 희년법이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나타난 그 어떤 제도나 법도 이 희년법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이 희년법이 제대로 실시된다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이 세상에 일어날 것이다. 현대사회의 양대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도 희년정신의 완전한 실천에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세계는 이 모양으로 진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가 그동안 오랜 역사가운데서 잊혀지고 무시되어 온 희년정신을 되살려 오늘에 실천한다면 이러한 국내외의 갈등과 진통들이 사라지고, 자유, 정의 평등, 평화의 세계가 건설될 수 있을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신 희년법 제정의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희년법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는 데 기여하는 획기적인 법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에서도, 그리고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전반적으로 희년정신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희년정신을 세계에 되살릴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가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단순히 갈라진 땅덩어리가 하나로 통일 되어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앞서 말한 희년법이 포괄하고 있는 광범위한 내용과 정신이 이 한반도에서 성취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해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희년정신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것이다.
http://www.theology.ac.kr/institute/dtdata/%EC%84%B1%EC%84%9C%EC%8B%A0%ED%95%99/%EA%B5%AC%EC%95%BD%EC%8B%A0%ED%95%99%EC%9E%90%EB%A3%8C/%ED%9D%AC%EB%85%84%EC%9D%98%20%EC%9D%98%EB%AF%B82.htm
에서 발췌한 자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