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이 말씀이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집도되는 고백과 속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하지만 이것이 단지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내적 회개(inner repeutance)는 육신의 다양한 외적 수행을 수반하지 않는 한, 무가치한 것이다.
4. 죄에 대한 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여도, 즉 참된 내적 회개를 하여도 우리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은 자기의 권위나 교회법의 권위에 부여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벌도 가감할 수 없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음을 선언하신 것과 같이 자신의 판결에 위임된 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죄도 용서할 수 없다. 교황의 권한을 넘는 죄는 교황의 용서로 사하여 지지 않는다.
7. 하나님은 인간이 겸손해져서 그의 대목(代牧)인 사제들에게 복종치 않는 한, 누구의 죄도 사하지 아니하신다.
8. 속죄의 법은 단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다. 그 법에 따라, 죽은 자의 죄가 사하여질 수는 없다.
9. 그러므로 교황이 그의 교령(敎領)에서 언제나 죽음과 필요의 항목을 제외한다면, 교황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은 우리에게 자애롭다.
10. 죽어서 가는 연옥을 교회법의 벌로 삼는 사제들은 무식하고 악한 이들이다.
11. 교회의 법의 벌을 연옥의 벌로 바꾸는 가라지가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분명히 뿌려졌다.(마 13:25)
12. 이전에 교회법의 벌은 진정한 회개의 시금석으로서 사면 후가 아니라 그전에 가해졌다.
13.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형벌로부터 벗어나고, 교회법에 관한 한 이미 죽었으며 그로부터 해방될 권리를 갖고 있다.
14. 죽어가는 사람에 있어서 불완전한 경건이나 사랑은 반드시 커다란 불안을 수반한다.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두려움은 더욱 크다.
15. 이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가 바로 절망의 공포이므로 연옥의 형벌로써 충분한 것이다.
16.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의 차이는 절망, 두려움 그리고 구원의 확신간의 차이가 같다.
17.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두려움이 감소하여야 하며, 사랑은 증가하여야 할 것 같다.
18. 또 연옥에 있는 영혼이 공과(功過)의 영역밖에 있는지, 즉 사랑을 더 입을 수 없는지의 여부는 이성으로도, 성서를 통해서만도 입증되지 않는 것 같다.
19. 또 연옥에 있는 영혼들 중 모두는 아니라 해도 얼마는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입증되지 않을 것 같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무조건적인 사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는 실제로 모든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형벌에 국한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인간이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모든 형벌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22. 사실상 교황이 교회법에 따라 이 세상에서 치러야 할 벌을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사하여 줄 수는 없는 것이다.
23. 모든 벌의 사함이 가능하다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가장 완전한,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될 뿐일 것이다.
24.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로부터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하고도 무분별한 약속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갖는 일반적 영향력은 주교나 사제가 자신의 교구에 대해 갖는 특별한 영향력에 상응하는 것이다.
26. 교황은 실제 자신이 갖지 못한 결정적인 열쇠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보를 통해서만 연옥에 있는 영혼의 죄를 사할 수 있을 뿐이다.
27.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단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욕심과 탐욕도 분명히 증가한다. 그리고 교회의 중보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9. 성 세베리누스(St.Severinus)와 성 파샬(St.Paschal)에 관한 전설에서처럼,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의 여부를 누가 알겠는가?
30. 누구도 자신의 회개의 완전성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더군다나 속죄의 완전성 여부는 더욱 더 확신할 수 없다.
31. 실제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실제로 회개를 하는 사람만큼이나 드물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32. 면죄부를 사므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이들은 그들의 교사들과 더불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특별히 경계하여야 한다.
34. 왜냐하면, 그 사면의 은혜는 오로지 인간이 설정한 성례의식에 대한 벌에만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하거나 고해신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허가증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회개가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비기독교적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37.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살았든 죽었든 모든 그리스도의 축복과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축복과 용서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6조]에서 언명했듯이, 이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39. 아무리 박식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면죄부와 동시에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을 설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으로 회개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 값을 달게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면죄부는 벌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벌 받기 싫어하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는 벌 받기를 싫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41. 교황의 면죄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위들보다 더 낫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42. 교황은 면죄부를 사는 일이 자선사업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43. 그리스도인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44. 사랑은 행함으로써 더욱 커지고, 인간은 이를 통해서 더욱 선해지나, 면죄부를 통해서는 인간이 선해질 수 없고 단지 벌을 면할 뿐이기 때문이다.
45.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이를 지나치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46. 그리스도인들은 생계의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충분히 저축하여야 하며, 결코 이를 면죄부에 낭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7. 그리스도인들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유선택의 문제이지, 명령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48.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면죄해주는 데 있어서는 돈보다 경건한 기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9.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의 면죄부가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때에만 유용한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이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망각한다면 매우 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50. 교황이 면죄부 교사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 베드로 사원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화하기를 원했을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1. 교황은 면죄부 판매자들로부터 돈을 갈취당한 많은 이들에게 성 베드로 사원을 팔아서라도 돈을 나누어 주기를 원할 것이며 또 원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2. 비록 면죄부 담당 주교나 교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영혼의 안전을 위해 면죄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것은 헛된 일이다.
53.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금하는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다.
54.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이다.
55. 극히 무의미한 것인 면죄부가 한 단어, 한 문장, 한 구문으로 표현된다면, 매우 중요한 것인 복음은 백 단어, 백 문장, 백 개의 구문으로 설교되어야 한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파는 교회의 보물은 그리스도의 사람들 사이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57. 면죄부가 이 세상의 보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많은 면죄부 판매자들이 이를 마음대로 나누어 주기보다는 이를 긁어모을 뿐이기 때문이다.
58. 이는 또 그리스도와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 없이도 그리스도의 공로는 속사람에게는 은혜를 , 겉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스(St.Laurence)는 교회의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는 그 당시 말의 어법에 따른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보물이라는 우리의 말은 충분히 숙고한 결과이다.
61. 왜냐하면 분명한 것은 교황의 권한이 자신에게 부여된 벌과 재판을 면해주기에 충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증언인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하지만 이 보물은 가장 싫게 여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는 처음 된 자를 나중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마20:16)
64. 한편, 면죄부의 보물은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나중 된 자를 처음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러므로 복음의 보물은 이전엔 사람을 위해 부를 낚았던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보물은 지금 부를 위해 사람을 낚고 있는 그물이다.
67. 선동가들이 최고의 은혜라고 주장하는 면죄부는 실제로는 면죄부가 이익을 증진시킬 때에만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68. 하지만 이는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신앙에 비교해 볼 때 가장 무의미한 은혜에 불과하다.
69. 감독과 사제들은 교황 면죄부 사절들을 기꺼이 그리고 매우 경건하게 맞아들여야 한다.
70. 하지만 그들은 이 사절들이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것 대신에 자신들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도록 보다 더 축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71. 교황의 면죄부에 관한 진리를 거스리는 이는 파문되어야 한다.
72. 하지만, 면죄부 사절의 욕심과 방종을 경계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73. 교황은 여하튼 면죄부 판매에 해를 끼치는 이들을 혹독하게 꾸짖을 수 있다.
74. 하지만, 교황은 이보다는 더욱 더 거룩한 사랑과 진리에 해를 도모하기 위한 구실로 면죄부를 사용하는 이들을 꾸짖기를 원한다.
75. 면죄부를 과대평가하여 인간이 아무리 못할 짓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어머니를 범했다 할지라도 면죄부가 그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76. 우리의 주장은 정반대로 교황의 면죄부는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 성 베드로가 지금의 교황이라 할지라도 더 큰 은혜를 베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동시에 모독하는 것이다.
78. 우리의 주장은 반대로 지금의 교황, 또는 어떤 교황이라 할지라도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쓰여진 대로 복음과 영력 그리고 치유의 은사 등 훨씬 더 많은 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79. 교황의 성의에 그려진 십자가와 면죄부 사절이 세운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80. 그러한 말을 퍼뜨리는 감독, 사제 그리고 신학자들은 다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81. 이 무분별한 면죄부의 강조 때문에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세인들의 중상 또는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교황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82. "교황이 교회를 세우는 데 드는 하찮은 돈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영혼을 구속한다고 한다면, 그는 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절박한 필요를 들어주거나, 또는 거룩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연옥을 완전히 비우지 않는가? 후자는 가장 사소한 것이 아닌가?"
83. 또, "이미 구속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부당한 것인데, 왜 죽은 자의 장례 미사나 기념 미사는 계속되는가? 또, 왜 교황은 그러한 이유에서 바쳐진 기부금을 돌려주지도 않고, 이의 취소를 허락하지도 않는가?"
84. 또, "돈 때문에 불경건한 자와 적들로 하여금 연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경건한 영혼을 살 수 있도록 하면서, 오히려 경건하고 사랑스런 영혼을 위해서는, 즉 순수한 사랑의 목적으로는 이를 행치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85. 또, "이미 오래 전에 취소 되었고, 사실상 사문화되었으며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회피총칙(悔罪總則)이 왜 면죄부판매를 통해 아직도 살아있고 강력한 힘을 갖는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가?"
86. 또,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Crassus)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 베드로 사원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7. 또, "이미 전적인 회개를 통해 완전한 구속과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 교황은 또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축복하겠다는 것인가?"
88. 또, "교황이 지금 하루에 한 번 모든 신자들에게 베풀고 있는 사면과 축복을 하루에 백 번을 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큰 축복이 교회에 임하겠는가?"
89. "교황이 면죄부를 통해 돈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구하고 있다면, 왜 그는 지금까지 행해 온 똑같은 효력을 갖는 사면과 특사를 중지하는가?"
90. 세인들의 날카로운 논박을 오직 힘으로만 억누르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소치 않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적들의 웃음거리고 만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면죄부가 교황의 마땅한 뜻과 생각에 따라 설교된 것이라면, 이 모든 의문들은 이미 해결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없어져야 했을 것이다.
92.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향하여 평안하지도 않은데 "평안하라, 평안하라"하는 모든 선지자들은 다 물러가야 한다.(레 6:14)
93.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가 없는 곳에서 "십자가,십자가"를 외치는 모든 선지자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94.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형벌, 죽음 그리고 지옥을 거치면서 부지런히 따르도록 교훈되어야 한다.
95.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평화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행14:22)
루터의 95개조 반박문(다른 번역본)
1. 만유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그 골자는 성도들의 생애가 참회의 요소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노라
2. 이 증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Sakra- mentlishen) 곧 제사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속죄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선언하노라
3. 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이유로 성도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참회의 가치는 무용이며 징계 또한 계속될 것이며 성도의 생명이 끝날때까지 괴로움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으로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징계나 그 어떤 벌도 용서할 권세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그 어떤 죄라도 사할 힘이 없다.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에도 부족을 느껴야 하며 오히려 업신여김(Verachten)을 당하게 될 때 그 죄 자체도 그대로 잔재하여 있는 것이다.
7. 하나님은 그의 대행자인 제사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교회 법은 징계를 전제로 할 때 그것은 산자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나 교회의 규정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고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황은 오히려 자비를 베풀면 되는 것이다.
10.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연옥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응용하는 제사들의 행위는 아주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11. 성경적인 죄의 적용을 연옥의 죄로 변질시키는 가라지 같은 행위는 감독들의 잘못임을 지적하고 싶다.
12. 전례의 법대로 한다면 종교상의 벌은 회오의 증거로서 사면의 뒤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회개치 않은 죄인이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의 심령상태는 오직 공포를 초래할 것이며 그 불완전이 크면 클수록 공포도 또한 클 것이다.
15. 여기에 불안과 공포는 연옥의 고통을 뜻하며 그것은 곧 절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차이점은 구원의 확실성과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절망의 상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17. 연옥이란 공포의 장소이며 그곳은 공포의 감소로도 해석할 수 있다.
18. 이상의 지적들이 성경적 근거로서나 이성의 증거로서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예정성에 대하여는 확실한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나 연옥의 영들에 대하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20. 교황이 모든 죄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사면을 공포할 때 그는 죄를 사면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다만 그 자신에게 지은 문제에 대해서만 용서적 사면을 의미해야 한다.
21.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교황은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사면해 줌으로써 형벌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행위이다.
22. 교황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죄 문제로 인한 형벌은 오직 성경적 방법으로서 현세에서 사함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모든 죄의 문제로 사면이 가능하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 수는 극히 제한된 숫자일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버젓이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의 내세관의 잘못으로 인해 감독 교구 목사들까지도 그 영향력으로 잘못 되어가고 있다.
26. 천국의 열쇠를 핑계삼는 일은 아주 잘못 되었으나 영혼들에게 사죄를 가르치는 일은 잘한 점이다.
27. 연보 궤안에 넣은 돈의 소리가 때그랑 날 때마다 지옥에 간 영혼이 해방된다는 말은 인간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
28. 성도들이 헌금한 돈이 연보궤 안에서 땡그랑 소리를 낼 때 그 행위는 탐욕에 가득찬 행위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성직자의 대속의 기도도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린과 파스칼리스에 관한 전설의 기록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누가 알것이가!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를 위의 행위들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귀한 것 같이 면죄증을 사는 사람도 사실은 거짓의 행위로 그리한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은총이라고 설득한 사람을 모든 이들은 특별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그 이유는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35. 연옥에 가 있는 자들의 영혼을 신부의 중견적 역할을 통해서 드려진 사면장의 이유로 그들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비성서적 교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6. 진심으로 회개한 모든 크리스천들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중생한 성도는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증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하나님의 사면 선언이 교황에게 부여됐다면 교황이 주는 사면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39. 면죄증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유능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40. 참다운 회개는 징계를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증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징계를 등한시하고 슬픔을 가지려하는 행위까지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41. 사도계승과 교황 사면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알도록 설교해서는 안된다.
42. 교황의 지도가 면죄증을 미끼로 해서 그것을 자선 사업인양 교훈한 것은 교황의 잘못된 의도임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교훈해야 한다.
44. 면죄증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지 못하며 사랑의 선한 행위로만이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45. 오직 면죄증을 위하여서는 교황에게 돈을 바치고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딤전 5장 8절의 교훈 같이 경제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위하여서는 필요한 것을 저축할 수 있어도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증에 대한 판매 행위는 그 어떤 개인에게는 자유로운 행위일지 모르나 그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결단코 안된다.
48. 경건의 신앙생활은 교황에게 면죄증을 사는 일보다 그 개인을 위해 훨씬 좋은 행위인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증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옳은 행위이다. 그러나 면죄증 문제로 하나님께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들으라. 교황은 당신의 면죄증을 위해 설교자들의 행상행위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양의 가죽의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다는 사실은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이 나을거라고 크리스천들에게 교훈함이 좋지 않겠는가?
51. 교황 사제자들의 잘못 때문에 많은 돈을 빼앗긴 자들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까지 갚아주어야 하리라.
52. 교황 자신도 면죄증서로 영혼을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그 행위 자체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3. 모든 교회에서 면죄증 문제가 묵인된다면 그렇게 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이리라.
54.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증 문제를 더 깊게 다루는 행위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의중이 그 어떤 의식이나 행위 따위가 복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바른 의사임에 틀림없다.
56. 교황의 면죄 사건은 아직까지 교회나 그리스도인에게 표시되어 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57. 위의 행위들은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오히려 면죄증 판매인들은 이것을 쌓아 두고자만 하고 있다.
58. 위의 잘못된 행위들은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에게 은총과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에 관한 교훈을 혼돈시키고 있을 것이다.
59. 성 로렌티어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St. Laurentius는 258년 순교했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주어진 교회의 열쇠는 장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관리의 유보사건을 위하여는 교황의 능력에 적용된다고 봄이 좋다.
62. 교회의 참 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복음이 되는 것이다.
6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이런 일들 때 증오의 사건이 있음을 지적한다.
64. 이와 반대로 면죄증의 사건은 항상 나중된 것을 먼저로 하기 때문에 모순이다.
65. 돈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오는 복음의 가치는 사람들이 낚던 그물에 비유된다.
66. 그러므로 면죄증 사건 역시 오늘날에 와서도 재물 많은 사람들을 낚는 그물에 비유된다.
67. 사실인 것처럼 가장 시키는 면죄증 설교자들은 이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이다.
68.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총은 면죄증이 아무것도 아님을 교훈시키고 있다.
69. 감독들 교구 목사들은 사도 계승의 면죄의 대리자가 아님을 적의를 갖고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70. 성직자들의 의무는 교황이나 자기들의 꿈을 설교해서는 안된다.
71. 사도 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분별해야 한다.
72. 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잘못되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을 받을지어다.
73. 교황은 어떤 방법이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분노로써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74. 그것을 구실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교황은 심한 의분을 나타내어야 하리라.
75. 하나님을 능욕한 죄까지도 면죄증으로 사할 수 있다는 교황의 발언은 정신나간 발언들이다.
76. 우리들의 주장은 교황의 면죄증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7. 베드로가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면죄증과 같은 그 이상의 은총은 줄 수 없다.
78.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도 사실 면죄보다 더 큰 은총(고전 12장) 즉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 혹은 병 고치는 은사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79. 교황의 팔로써 사용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독한 행위다.
80. 위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묵인된다면 이것은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81. 잘못된 면죄증 설교나 비방은 교황의 존경에 대한 것으로 응용되지만 그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쉬운 일은 아니다.
82. 베드로 성당을 지식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돈의 가치를 높이는 교황의 행위가 위대하면 왜 연옥을 비우지 못하는가?
83. 구속 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를 계속 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 취소를 명령하지 않는가?
84. 경건치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를 돈으로 인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건한 영혼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구속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교황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85. 회개의 가르침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고 이제는 면죄증 덕분으로 구속된다는 사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제일 돈 많은 자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자들이 내는 돈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 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속죄함 받은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려고 또한 무슨 영적 은혜의 참여를 추구할려고 하는가?
88. 교황이 신자들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씩 행하는 것을 하루에 백번 실행 한다고 한다면 교회는 더 큰 복을 받겠는가?
89. 면죄증의 효과가 돈보다도 먼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한다면 왜 중지했는가? 그와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90. 교황은 수많은 세인들의 예리한 반기에 대해서 떳떳하게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일들 때문에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가?
91. 면죄증이 교황의 바른 정신에 따라 의도 되었다면 오늘의 이러한 어려움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택함받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불안도 없는 상태에서 평안만을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외침은 모순이요 잘못이니 떠날지어다.
93.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십자가를 강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겔 13:10, 렘 6:14,8:11, 살전 5:3).
94. 모든 신자들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또 지옥 같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해야 한다.
95. 이와 같이 하여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값진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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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 Luther 의 95개조 반박문 주요내용 요약
1~4 마태복음 4장 17절 회개에 대한 말씀, 고해성사를 통해 사제에 의해 집도되는 고백과 속죄로 해석되면 안된다. 내적 외적 수행없이는 무가치하다는 내용
5~9 교황이 어떠한 벌도 가감할 수 없다. 죽은자의 죄를 사할 수 없다.
10~19 죽어서 가는 연옥을 교회법의 벌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두려움은 더욱 크고 이 두려움과 공포가 절망의 공포이므로 연옥의 형벌로 충분하다. 지옥, 연옥, 천국의 차이를 설명하고 입증되지 않은 것 같다.
※ 연옥 purgatory 煉獄 (달굴 연, 감옥 옥)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가톨릭교리에서 나오는 연옥은 천국행과 지옥행 가기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는 곳입니다. 완벽히 선을 행하고 살지않은 신자가 머무르다가 천국에 가는 중간 장소로 보시면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부정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들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도나 회개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는 거죠~
20~31 인간의 모든 잘못 형벌을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통해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여난다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고 이러한 행위는 욕심과 탐욕이 증가시키게 된다.
32 면죄부 구매하는 사람들은 저주 받을 것이다.
33~35 교황의 사면을 경계하라. 면죄부를 사는 것은 비기독교적이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37~42 교황의 축복와 용서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43~46.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선한 행위이고 가족을 위해 저축하는 것이 낫다
47~54 돈보다 더 경건한 기도가 필요하고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라
계속해서 비슷한 내용으로 일관되고 있습니다.
84 돈 때문에 불경건한 자와 적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경건한 영혼을 살 수 있게 하며, 오히려 경건하고 순수한 사랑의 목적으로 이를 행치 않는 다면 신앙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95 하늘나라는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 루터의 종교개혁의 계기로 개신교가 탄생했는데 결국에는 지배세력과 결탁하는 한계점을 보여 아쉬운점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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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조 반박문(다른 번역본)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생활속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회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신 말의 뜻은
신부에게 죄를 자백하는 고해성사와 관련이 없으며
죄를 사면해주는 속죄 의식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3. 회개는 다만 마음으로 하는 반성뿐 아니라
외적으로 모든 욕정을 죽이는 고행의 노력이 또한 있어야 합니다.
4. 참된 마음의 반성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5. 교황은 자기와 자기 교회가 만든 법을 범한 죄 외에는 그 누구의 죄도
사면할 권한이 없습니다.
6. 교황에게는 그 누구의 죄도 사면할 권한이 없습니다.
교황은 다만 하나님께서 사면하심을 공포하거나 보증할 뿐입니다.
자기 자신이 사면해주는 권한 범위내에 있는 경우에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라도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 그 누구가 되었든 그의 죄를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하나님의 대표인 신부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8. 죄를 해결하는 교회의 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니
이 법을 이미 죽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9. 그러므로 교황은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서 죄에 관련된 법을 행하되
죽은 사람에게는 그 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10. 이미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겪는 괴로움을
신부가 교회법으로 면하게 해준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것입니다.
11. 교회의 벌이 연옥의 벌로 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감독들이 잘 때에 가라지를 뿌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12. 예전에는 죄를 사하기 전에 교회의 벌 선고를 함으로 참된 회개를 했으니
지금은 죄를 사한 후에 하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13.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의 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14. 죽는 사람이 신앙과 자신에 부정한 부분이 있다면 큰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 부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15. 다른 것은 말고 이 공포만으로도 연옥의 고통에 해당됩니다.
이 공포는 절망의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16. 지옥, 연옥, 천당이 서로 다른 것 같이 마음의 절망도 평안도 또한 각각 다릅니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 자선이 증가되면 공포가 감소될 것은 사실입니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이 자선을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이나 성서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19.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자신들이 누릴 복을 확신하는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연옥은 사람이 그 곳에서 얼마 동안 속죄고생을 하면 천당으로 올라가는 곳이라고 정의함)
20. 교황이 사람의 지은 죄를 사한다 하는 것은 자기가 규정한 죄에만 국한 된 것입니다.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도하며 말하기를
교황의 면죄부로 사람이 받을 모든 형벌에서 석방구원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틀린 말입니다.
22.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습니다.
그 영들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 법대로 속죄 행위를 했어야 했습니다.
23. 만일 어떤 사람의 모든 죄를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권능을 받은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소수의 사람일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울 좋은 약속을 하는 기만적 사기죄의 적용을 받을 것입니다.
25.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는
교황의 교구내의 모든 감독들도 가질 수 있고 모든 목사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6. 교황이 영들의 죄를 사함에 있어서
직권으로 하지 않고 공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은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연옥에서는 교황의 직권도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27. 그들이(=면죄부 파는 자들이) 전도하기를
돈이 헌금 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28. 돈이 그렇게 쩔렁하고 떨어질 때에 탐욕스러운 무리가 더 늘어날 것입다.
29.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구속받기를 원하는지 않는지 누가 알 것입니까?
성셀비니누스와 파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30. 각 사람이 자기 회개에 대한 진실성도 자신이 알 수가 없는데
자기가 완전한 사죄함을 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겠습니까?
3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 참으로 회개를 하고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32. 면죄부를 받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그의 선생은 다같이 영원히 멸망될 것입니다.
33.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멀리할 것입니다.
34.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은 사람이 만든 제도에 의한 속죄에 불과합니다.
35. 사람이 면죄부를 사면 영을 연옥에서 구출한다는 주장은 기독교 교리가 아니며
면죄부는 사람에게는 회개가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도 기독교 교리가 아닙니다.
36. 그리스도인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으로 회개한다면
그는 면죄부가 없어도 구원을 얻어서 고통과 정죄함을 면할 수 있습니다.
37.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면죄부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습니다.
38.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내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다고 공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9. 죄를 사해주는 효력과 진정한 회개의 필요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조하는 것은
박학다식한 신학자라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40. 진정한 회개는 형벌 받을 것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나 죄 사하는 행위를 함부로 하면 형벌의 형량을 감형하는 것이며
수형법을 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41. 사도적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조심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이것을 자선 사업보다 더 중요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선사업보다 낫다고 교황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3. 그리스도인이 또 알아야 할 것은
이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는 자선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44. 자선사업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늘어나고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면죄부를 사면 그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형벌만 면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45.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돕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서 면죄부를 산다면
그는 교황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는 것입니다.
46.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큰 부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사는데 돈을 쓰지 말고
자기 집 살림살이에 사용해야 합니다.
47. 그리스도인의 알아야 할 것은
면죄부 사는 것은 자유로 할 것이고 의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48.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교황이 죄를 사해줄 때에 기도를 요구해야 마땅한 것이지
돈을 요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49.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은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아야 유익한 것이고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잃는다면 이는 극히 해로운 것입니다.
50.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만일 교황이 목사들의 면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이 불에 타 버릴지언정
저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51.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목사들이 면죄부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교황이 알게된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개인 재산으로
면죄부 산 사람들의 낸 돈을 반환해야 할 것입니다.
52. 면죄부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고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53. 면죄부를 선전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황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54. 교회 설교 시간에 면죄부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이 길게 한다든지 혹은 더 길게 하면
이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55. 교황이 죄 사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죄 사해줄 때에 종 하나만 올리고 행렬도 한번만 해야 합니다.
그 반면에 있어서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복음에는 종 백 개로 울려 전하고 의식도 백 번 해서 전해야 합니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교인들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57. 그 금고에 세상 재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다 써야 마땅합니다.
많은 신부들은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습니다.
58. 면죄부 금고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황도 모르게 면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59. 성 로랜스가 말하기를 교회의 보배는 빈곤한 교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에 쓰는 말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교회가 맡은 직권이 곧 교회의 보배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61. 지금의 형벌내리는 것은 교황의 권력만이 기결죄와 미결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62. 교회의 보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입니다.
63. 그러나 그 보배는 하찮게 여겨지고 있으니,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이 가장 끝에 가서 서있습니다.
64. 면죄부 보배는 맨 끝에 있어야 할 것인데, 가장 앞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65. 복음의 보배는 예로부터 사람을 많이 낚는 그물이었습니다.
66. 면죄부의 보배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67. 가장 큰 은혜가 면죄부라고 신부들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천한 잡것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68. 면죄부는 하나님 은혜와 십자가 신앙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69. 감독들과 신부들도 사도의 사면특사를 경건하게 영접할 것입니다.
70. 그러나 그들이 주의할 것은
이 특사들이 교황의 말을 전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욕망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71. 사도가 죄를 사한다는 것을 반대한다면 그 누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72. 한편 면죄부를 선전하는 자의 방종하게 나아감을 반대하는 사람 또한 복을 받을 것입니다.
73. 면죄부 판매에 기만적 수단을 사용해서 죄사함 하는 행위를 교황이 금하고 있는데
이는 잘하는 일입니다.
74. 누구든지 죄를 사한다는 명분으로 거룩한 자선의 진리를 기만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교황이 절대로 용납해서 안될 것입니다.
75. 교황의 죄사함 권한으로 성모에게 범죄함과 같은 것까지 죄사함 할 수 있고 생각한다면
이는 미친 생각입니다.
76. 교황이 죄를 사하는 것은
죄 중에 제일 경한 죽지 않을 죄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77. 성 베드로가 교황 이상의 은전을 베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 베드로에 대한 큰 모독입니다.
78. 현 교황이나 혹은 다른 어느 교황이든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의 능력이요 병 고치는 은사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고전12:9∼)
79. 교황의 팔에 다른 휘장들과 같이 있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80. 이러한 주장을 신도들에게 주입하는 감독, 신부, 신학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81. 죄를 사해주는 것에 대한 패역한 설교에 일반 신자로부터 예민한 질문을 받게되는데
교황의 위신을 꺾이지 않게 하고 대답한다는 것은
유식한 학자라 할지라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82.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겠습니까?
만일 교황이 지극히 거룩한 자선주의를 가지고 영들의 가장 큰 요구를 덜어준다면
왜 연옥 전체를 공존하도록 하지 못합니까?
이는 이치에 맞는 당연한 대의 명분입니다.
성당 짓는 데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황이 무수한 영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하면
위에 말한 대의명분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83. 영들이 연옥에서 구출되어 온다면
왜 그런 영들을 위하여 장례미사기일 추도미사를 드려야 합니까?
그런 미사를 위하여 기부한 돈은
그런 미사가 소용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84.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하나님의 원수 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에 있는 영을 구출하는 은혜를 베풉니다.
연옥에 있는 그 영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왜 돈을 받지 않고 순전히 은혜로 그런 영을 구출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교황에게 주어진 새로운 은혜입니까?
85. 회개한 교역자들 중에 이미 죽은 지가 오래 되어 들의 죄가 사해진 줄 아는데
그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들을 위하여 면죄부를 돈주고 사서 그들을 구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86. 오늘 교황은 부자 중에서도 큰 부자인데
자신의 돈을 들여 성당을 짓지 않고 왜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 합니까?
87. 참으로 회개하고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교황은 왜 죄사함 받으라고 합니까?
88. 만일 교황이 하루 한번뿐 아니라 백 번씩이라도
진실한 신자들에게 죄사함의 은전을 베푼다면 교회에 매우 큰 유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89. 교황의 목적이 영을 구원하는 것이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이전에 내린 면죄부가 왜 무효가 됩니까?
그것이 면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90. 평신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누르려고만 한다면
교회는 그들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면죄부를 억지로 강요하는 자들을 불결하게 여길 것입니다.
91. 만일 죄사함에 대하여 교황이 옳은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92.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하고도 평안이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은 다 물리칠 것입니다.
93.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라 십자가라"하면서
십자가가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94.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입니다.
95. 그러므로 많은 고난을 겪고 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해야하며
안전하게 간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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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조 반박문( 다른 번역본)
1.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 위에 믿는 자들의 전 생애는 계속적 참회라야 한다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
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의 직에 의하여 집행되는 참회나 사죄에 대한 말로 이해될 수 없다.
3. 참회는 내면적 참회가 외적으로 여러 가지 육욕을 죽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 은 참된 참회일 수 없다.
4. 형벌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과 같이 내면적 참된 회개 역시 우 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은 그 직권에 따라서나 교회의 칙령에 따라서 부과하는 징벌 외에 다른 아무 것 도 용서할 수 없다.
6. 교황은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 이외에 아무 죄책도 용서할 수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억제당한 일에서 사죄한다든지 그의 직책 이 멸시받는 경우에는 죄는 제거되지 않고 용서 받지도 못한다.
7. 하나님은 철저히 겸손하게 되지 않은 사람의 죄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자기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굴복하신다.
8. 고해와 참회를 하게하는 교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 것도 용서할 수 없다.
9. 그러므로 교황이 언제나 죽음과 외적 공경을 예외로 취급할 때면 성령께서 교황을 통하여 자비를 내리신다.
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장차 사면을 받을 연옥 때문에 교회가 제정한 참회를 보 류하는 사제들이 몽매하고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11.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참회와 사죄를 연옥의 징벌이란 것으로 변해버린 이 가라지 는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다.
12. 전에는 일어난 죄의 사건에 대한 참회와 사죄라는 소위“교회법에 따른 징벌”은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사면 선언 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과되는 것이다.
13.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모든 허물에 대하여 치루어야 할 것을 만족시켰고 교회 법규에 대하여 이미 폐기 되었다.
14. 죽은 사람의 불완전한 경건이나 불완전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하는데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큰 공포가 있게 된다.
15. 이 공포와 놀람 자체만으로도-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 끼기에 충분하다.
16. 지옥, 연옥, 또 천국은 각각 구별되기를 이미 절망한 상태와 절망에 빠져들어 가는 경우와 구원의 확실성이 각각 구별되는 것과 같다.
17.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가 증가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점점 자라고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18.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공로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019.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축복을 확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
20. 그래서 교황은 “모든 징벌의 완전한 사면”이란 말로써 벌이 깨끗이 사면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부과하려 했던 징벌만을 사면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사므로써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고 행복해 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22. 사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에 대해서 단 하나의 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징벌은 그들의 교회의 법규에 의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다.
23. 만일 징벌의 사면이 누구에게든지 주어질 수 있다면 그러한 사면은 소수밖에 없는 완전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 확실하다.
24. 그래서 백성은 대부분은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는다는 무차별적이고 찬란한 약속에 의하여 기만을 당한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서도 일반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은, 같은 권세를 가진 모든 감독과 목사도 자기의 감독구와 교구 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26. 교황은 그가 (연옥에 대하여 전혀 갖지 않은) 이 열쇠의 권세를 근거로 하여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도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용서를 사여한다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27. 헌금 궤에 떨어진 돈이 쩌렁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람은 교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헌금궤 안에서 울려나자마자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교직자의 도움이나 대도가 성립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29. 성 베리누스와 파스칼리스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사면을 받겠는지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0. 아무도 자기의 회개가 진실된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받겠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1. 진실된 참회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다.
32. 그들이 산 면죄부 증서로써 행복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교사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면죄부가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 의존하는 가장 높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34. 왜냐하면 면죄부로서 얻는 은총은 사람으로서 지워진 성례전적 속죄행위로 사하는 벌에만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 그리스도적인 것을 설교한다.
36. 어떤 크리스천이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참된 회개를 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면죄 받는다.
37. 모든 참된 크리스천들은 산자든지 죽은 자든지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의 선물에 의하 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역 재산에 참예할 수 있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와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의 관대한 선사와 동시에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40. 참된 회계는 징벌을 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나 많은 면죄부를 갖는 것은 징벌에서 해방하고 사랑이 그것이 싫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그렇게 할 기회를 준다.
41. 교황의 사죄권에 대해서 설교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그것을 사랑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2. 면죄부에 의한 사죄는 자선사업과 비슷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교황의 뜻이 아니라 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궁핍한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 보다 더 낳은 것을 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 성장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면죄부로써 더 선명해지지 못하며 다만 징벌을 면할 뿐이다.
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면죄부를 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6.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한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기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장할 의무를 지며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47. 면죄부를 사는 일은 자유로 할 것이며 결코 강제로 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데서 얻는 돈보다는 사랑의 열성이 깃든 기도를 더 원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잃는다면 그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에 설교자들의 공갈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51. 어떤 면죄부 판매설교자들 그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자기 돈으로 또는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薡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53. 면죄부 설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선포되기를 금지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만일 사람이 한 설교에서 사죄권을 행사함에 복음말씀을 전하는 시간보다 더한 시간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사람이-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면죄부를 한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매우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배의 행렬과 굉장한 축제로써 기리고 축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견해이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나눠주는 것은 근본인 교회의 “보화”(여분의 공적을 말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설교자들이 이 보화를 쉽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기에만 힘쓴다는 것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황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내적 인간을 위해서는 은총을 주며 외적 인간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59. 성 로체스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배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 시대의 통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60. 우리는 이 보화란 것을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교회의 산물로 준 교회의 열쇠의 권한이라고 근거있게 또 심증있게 말할 수 있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이 관리하도록 된 조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호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대한 거룩한 복음이다.
63. 이 보화는 자연적 상태로는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된 자를 마지막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64. 그 반대로 면죄부의 근거인 보화는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것은 마지막 자를 첫째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래서 복음의 보화는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66.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오눌날에는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67. 설교자가 큰 은총을 주기 위하여 외치며 파는 면죄부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갖다 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68. 그러나 그 같은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과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은총이다.
69. 감독들과 교구 목사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지고 맞아들이게 한 책임이 있다.
70. 그러나 그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맡긴 일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 대해서 이다.
71. 교황의 사죄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저주받고 추방당할 것이다.
72. 그러나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의 변덕스럽고 파렴치한 말을 거슬러 걱정하고 슬퍼하는 축복을 받을 찌어다.
73. 교황은 면죄부 판매에 손해를 입히고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분노나 추방으로 보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74. 교황은 면죄부라는 구실 안에서 거룩한 사랑과 진실성에 손실을 끼치기 위하여 책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와 추방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볼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성모를 능욕했더라도 죄에서 해방해 줄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교황의 면죄부는 가장 적은 죄도 없이 할수 없으며 죄로써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도 큰 은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이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 즉. 다시 말하자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福音)과 성령의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들을 자유로이 줄수 있다고 주장한다.
79. 교황의 문장을 화려하게 찍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능력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80. 이 같은 가르침이 민중 앞에서 말해지는 것을 보고 묵인하는 감독 교구 목사 신학자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면죄부에 대한 그 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는 교황의 명예와 품위를 비방이나 또는 순박한 삶을 끌 수 없는 예리한 질문에 대해서 수호하는 것은 아무리 학식있는 사람일 찌라도 어렵게 만든다.
82. 예를 들면 교황은 왜 모든 영들을 그의 가장 정당한 이유로서 가장 거룩한 사랑 때문에 또 심령들의 지극한 곤궁 때문에 연옥에서 해방시키지 않는가. 실제로 그는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써 하기 보다는 자기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83.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아직 죽은 자의 장래식이나 해마다 하는 제사가 남아있으며 교황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바친 것을 돌려주지도 않고 그 기부금을 취소하기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84. 또는 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 즉, 적대자들에게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으로 속해내기를 허락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자체의 큰 곤경을 위해서 사랑으로부터 해방하여 내지 않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과 교황에 대한 경건이 아니겠는가.
85. 또는 참회에 관한 옛 조문이 오래전에 사실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아직 사죄권과 관련되어 그것이 아직 효력이 있고 산 조문인 것처럼 돈으로써 구해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86. 또는 오늘날 제일 부자보다 더 능력을 가진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 하기 보다는 자기 돈으로 할 것이 아닌가.
87. 또는 교황은 참회로써 완전한 용서를 받고 영적 재산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사해주고 나누어 주려고 하는가.
88. 또는 교황은 용서와 은총에 대한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대신에 백번 모든 믿는 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89.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 구원을 관심했다고 본다면 왜 그는 똑같은 효력을 가졌다고 보이는 면죄부에 대한 옛 교서를 정지시켰겠는가
90. 만일 평신도의 예리하고 사려 깊은 항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근거제시를 통하여 가라 않히지 않는다면 교회의 교황은 원수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91. 만일 면죄부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한다면 이 모든 의문은 해답 되었을 것이며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 '평화'하고 말하는 모든 예언자들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93. 그러나 십자가 없는 곳에 '십자가', '십자가'하고 그리스도 백성들에게 말하는 예언자만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94. 기독교인은 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해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95. 그래서 여기 평화가 있다고 하는 태평한 환상으로 보다는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더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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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95개조 반박문 [한국어 번역]
자애와 진실과 간청으로서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동소(EIVSDEMQVE IBIDEM, '같은 장소', 비텐베르크를 의미)의 미술 및 성 신학 박사이자 일반강사, 총장인 존경받는 신부 마르틴 루터가 말한다. 이(토의)를 요구한 자의 출석이 불가하므로 편지로써 구두 토론을 대신한다.
주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의 이름으로.
아멘.
1. 우리의 스승이신 이에수스 크리스토스가 '회개하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 위에 믿는 자들의 전 생애는 계속적 참회라야 한다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
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의 직에 의하여 집행되는 참회나 사죄에 대한 말로 이해될 수 없다.
3.
참회는 내면적 참회가 외적으로 여러 가지 육욕을 죽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참회일 수 없다.
4. 형벌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과 같이 내면적 참된 회개 역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은 그 직권에 따라서나 교회의 칙령에
따라서 부과하는 징벌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용서할 수 없다.
6. 교황은 신으로부터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 이외에 아무
죄책도 용서할 수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억제당한 일에서 사죄한다든지 그의 직책이 멸시받는 경우에는 죄는 제거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다.
7. 신은 철저히 겸손하게 되지 않은 사람의 죄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자신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굴복하신다.
8.
고해와 참회를 하게하는 교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 것도 용서할 수 없다.
9. 그러므로 교황이 언제나
죽음과 외적 공경을 예외로 취급할 때면 성령께서 교황을 통하여 자비를 내리신다.
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장차 사면을 받을 연옥
때문에 교회가 제정한 참회를 보 류하는 사제들이 몽매하고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11.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참회와 사죄를 연옥의
징벌이란 것으로 변해버린 이 사태는 주교들이 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다.
12. 전에는 일어난 죄의 사건에 대한 참회와
사죄라는, 이른바 "교회법에 따른 징벌"은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사면 선언 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과되는 것이다.
13.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모든 허물에 대하여 치루어야 할 것을 만족시켰고 교회 법규에 대하여 이미 폐기 되었다.
14. 죽은 사람의
불완전한 경건이나 불완전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하는데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큰 공포가 있게 된다.
15. 이 공포와 놀람
자체만으로도 - 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 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 끼기에 충분하다.
16. 지옥, 연옥, 또 천국은 각각 구별되기를
이미 절망한 상태와 절망에 빠져들어 가는 경우와 구원의 확실성이 각각 구별되는 것과 같다.
17.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가
증가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점점 자라고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18.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공로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19.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축복을 확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
20. 그래서 교황은 "모든 징벌의 완전한
사면"이란 말로써 벌이 깨끗이 사면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부과하려 했던 징벌만을 사면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대사를 구입함으로써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받고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대사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었다.
22. 사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에 대해서 단 하나의 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징벌은 그들의 교회의 법규에 의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다.
23. 만일 징벌의
사면이 누구에게든지 주어질 수 있다면 그러한 사면은 소수밖에 없는 완전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 확실하다.
24. 그래서 백성은 대부분은
모든 징벌에서 해방받는다는 무차별적이고 찬란한 약속에 의하여 기만을 당한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서도 일반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은,
같은 권세를 가진 모든 주교와 신부도 자기의 주교구와 교구 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26. 교황은 그가 (연옥에 대하여 전혀 갖지
않은) 이 열쇠의 권세를 근거로 하여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도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용서를 사여한다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27.
헌금 궤에 떨어진 돈이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람은 교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헌금궤 안에서
울려나자마자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교직자의 도움이나 대도가 성립하는 것은 신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29.
세베리누스(SEVERINVS)와 파스칼리스(PASCHALIS)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사면을 받겠는지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0. 아무도 자기의 회개가 진실된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받겠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1. 진실된 참회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된 마음으로 대사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다.
32. 그들이 산 대사 증서로써 행복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교사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대사가 인간이 신과 화해하는 데 의존하는 가장 높고 귀한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34. 왜냐하면
대사로서 얻는 은총은 사람으로서 지워진 성례전적 속죄행위로 사하는 벌에만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크리스토스적인 것을 설교한다.
36.
어떤 크리스토스교도이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참된 회개를 하는 사람은 대사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면죄 받는다.
37. 모든 참된
크리스토스인들은 산자든지 죽은 자든지 대사 없이도 신의 선물에 따라 크리스토스와 교회의 모든 영역 재산에 참예할 수 있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와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대사의 관대한 선사와 동시에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40. 참된 회계는 징벌을 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나 많은 대사를 갖는 것은 징벌에서 해방하고 사랑이 그것이 싫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그렇게 할 기회를 준다.
41. 교황의 사죄권에 대해서 설교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그것을 사랑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2. 대사에 의한 사죄는 자선사업과 비슷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교황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크리스토스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궁핍한 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대사를 사는 것 보다 더 낳은 것을
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크리스토스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 성장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사로써 더 선명해지지 못하며 다만 징벌을 면할 뿐이다.
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대사를 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도 얻지 못하고 신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토스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6. 크리스토스인들이 넉넉한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장할 의무를 지며 대사를 사는 것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47. 대사를 사는 일은
자유로 할 것이며 결코 강제로 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8. 교황은 대사를 주는 데서 얻는 돈보다는 사랑의
열성이 깃든 기도를 더 원한다는 것을 크리스토스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9. 교황의 대사는 사람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잃는다면 그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크리스토스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대사 판매에 설교자들의 공갈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페트로스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51. 어떤 대사 판매설교자들 그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자기 돈으로, 또는
페트로스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토스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대사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53. 대사 설교 때문에 신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선포되기를
금지한 자들은 크리스토스와 교황의 적이다.
54. 만일 사람이 한 설교에서 사죄권을 행사함에 복음말씀을 전하는 시간보다 더한 시간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사람이 - 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 - 대사를 한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매우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배의 행렬과 굉장한 축제로써 기리고 축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견해이다.
56.
교황이 대사를 나눠주는 것은 근본인 교회의 "보화(여분의 공적)"는 크리스토스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설교자들이 이 보화를 쉽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기에만 힘쓴다는 것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58. 그 보화는 크리스토스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황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내적
인간을 위해서는 은총을 주며 외적 인간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59. 성자 라우렌티우스(LAVRENTIVS)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배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 시대의 통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60. 우리는 이 보화란
것을 크리스토스의 공로로써 교회의 산물로 준 교회의 열쇠의 권한이라고 근거있게 또 심증있게 말할 수 있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이 관리하도록 된 조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호는
신의 영광과 은혜에 대한 거룩한 복음이다.
63. 이 보화는 자연적 상태로는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된 자를 마지막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64. 그 반대로 대사의 근거인 보화는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것은 마지막 자를 첫째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래서 복음의 보화는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66. 그러나 대사의 보화는 오늘날에는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67. 설교자가 큰 은총을 주기 위하여 외치며 파는 대사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갖다 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68. 그러나 그 같은 대사는 사람이 그것을 신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과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은총이다.
69. 주교들과
교구신부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지고 맞아들이게 한 책임이 있다.
70. 그러나 그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맡긴 일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 대해서 이다.
71. 교황의 사죄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저주받고 추방당할 것이다.
72. 그러나 대사 판매 설교자들의 변덕스럽고 파렴치한 말을 거슬러 걱정하고 슬퍼하는 축복을
받을 지어다.
73. 교황은 대사 판매에 손해를 입히고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분노나 추방으로 보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74. 교황은
대사라는 구실 안에서 거룩한 사랑과 진실성에 손실을 끼치기 위하여 책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와 추방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볼
것이다.
75. 교황의 대사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 성모를 능욕했더라도 죄에서 해방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교황의 대사는 가장 적은 죄도 없이 할 수 없으며 죄로써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77. 만일 성 페트로스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도 큰 은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페트로스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이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대사보다 더 큰 은총, 즉. 다시 말하자면 코린토스
전서(Επιστολή προς Κορινθίους)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과 성령의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들을 자유로이 줄수 있다고
주장한다.
79. 교황의 문장을 화려하게 찍은 십자가가 크리스토스의 십자가보다 더 능력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80. 이 같은 가르침이 민중 앞에서 말해지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는 주교, 교구신부와 신학자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대사에 대한 그 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는 교황의 명예와 품위를 비방이나 또는 순박한 삶을 끌 수 없는 예리한 질문에
대해서 수호하는 것은 아무리 학식있는 사람일지라도 어렵게 만든다.
82. 예를 들면 교황은 왜 모든 영들을 그의 가장 정당한 이유로서 가장
거룩한 사랑 때문에 또 심령들의 지극한 곤궁 때문에 연옥에서 해방시키지 않는가. 실제로 그는 성 페트로스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크리스토스인의
돈으로써 하기보다는 자기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83.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아직 죽은
자의 장래식이나 해마다 하는 제사가 남아있으며 교황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바친 것을 돌려주지도 않고 그 기부금을 취소하기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84. 또는 그들이 신 없이 사는 자, 즉 적대자들에게는 돈 때문에 신을 두려워하고 신께 사랑받는 영혼으로 속해내기를 허락하면서
신을 두려워하고 신께 사랑받는 영혼자체의 큰 곤경을 위해서 사랑으로부터 해방하여 내지 않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신과 교황에 대한 경건이
아니겠는가?
85. 또는 참회에 관한 옛 조문이 오래전에 사실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아직 사죄권과 관련되어 그것이
아직 효력이 있고 산 조문인 것처럼 돈으로써 구해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86. 또는 오늘날 제일 부자보다 더 능력을 가진
교황이 지금 성 페트로스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크리스토스인의 돈으로 하기 보다는 자기 돈으로 할 것이 아닌가?
87. 또는 교황은
참회로써 완전한 용서를 받고 영적 재산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사해주고 나누어 주려고 하는가?
88. 또는 교황은 용서와 은총에
대한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 번 주는 대신에 백 번 모든 믿는 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89. 교황이 대사로써
돈보다 구원을 관심했다고 본다면 왜 그는 똑같은 효력을 가졌다고 보이는 대사에 대한 옛 교서를 정지시켰겠는가?
90. 만일 평신자의
예리하고 사려 깊은 항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근거 제시를 통하여 가라 앉히지 않는다면 교회의 교황은 원수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크리스토스인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91. 만일 대사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한다면 이 모든 의문은 해답되었을 것이며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를 말하는 모든 예언자들은 사라져야 한다.
93. 그러나 십자가가 없는 곳에서
'십자가'라고 크리스토스 백성들에게 말하는 예언자만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94. 크리스토스교인은 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해서 머리되신
크리스토스를 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95. 그래서 여기 평화가 있다고 하는 태평한 환상보다는 많은 고난을 통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더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15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