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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이스라엘의 역사(왕상12장~22장, 왕하1장~17장)

  세겜과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이스라엘은 유다에 비해 영토가 넓고 비옥했으며 군사력에 있어 남유다를 훨씬 능가했다. 다만 옛 지파 동맹의 중심에 위치하였으나 가나안 원주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동질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었으며, 지리적 여건도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세의 영향을 받기 쉬웠을 뿐만 아니라 왕조의 정당성과 이념의 부재 등으로 말미암아 국내 정세는 불안정하였다.
 
 

 


①여로보암1세-②나답-③바아사-④엘라-⑤시므리-⑥오므리-⑦아합-⑧아하시아-⑨여호람,요람-⑩예후-⑪여호아하스-⑫요아스,여호아스-⑬여로보암Ⅱ세-⑭스가랴-⑮살룸-?므나헴-?브가히야-?베가-?호세아
 

 

    北왕국 이스라엘(B.C922~B.C721, 首都 사마리아)은 209년(B.C.931~B.C.722) 동안 ‘아홉 王朝 19왕’이 역성혁명(易姓革命), 이신벌군(以臣伐君)으로 여로보암의 길로 달려감. 주전722년 19대 호세아 왕 때 앗수르왕 사르곤2세(주전722~705년)에게 멸망당함. 

 


1대(①여로보암 왕조-②둘째 아들 나답)

2대(왕위 찬탈한 ③바아사 왕조-④아들 엘라)

3대(⑤엘라의 신복 장군 시므리 왕조)

4대(⑥오므리 왕조-⑦아합-⑧아하시야-⑨여호람)

5대(⑩예후 왕조-⑪여호아하스-⑫요아스-⑬여로보암2세-⑭스가랴)

6대(⑮살룸 왕조)

7대(?므나헴 왕조-?브가히야)

8대(?베가 왕조)

9대(?호세아 왕조)
 


  

  기원전 925년 솔로몬 사후 등극한 여로보암 왕으로부터 721년 아시리아로부터 멸망당할 때 마지막 왕인 19대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약 209년을 유지해 온 북이스라엘 왕조는 모두 19명의 왕을 낳았다. 4대 오므리 왕조와 5대 예후 왕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통치 기간이 짧았다. 19명의 왕 가운데 8명이나 암살되는 등 비교적 불안정한 파란의 역사를 겪었다. 구약 히브리 성서는 대부분 이들 왕들을 나쁘게 평가하고 있다.
 

 

▶ 열왕기상,하

(1)머리부분(왕상1장~15장): 왕국의 분열

?솔로몬의 통치((B.C961~B.C922): 통치(왕상1:1~11:43)

?나라가 갈라짐(왕상12장~15장)  

(2)몸통부분(왕상 16장~왕하15:12): 아합왕,엘리야,엘리사 중심의 왕사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왕조(아합)와 예후왕조  

(3)꼬리부분(왕하14~왕하 끝):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멸망

?북 이스라엘의 멸망(왕하14~17장)

?남방유다와 꼬리부분 요약(왕하18~25장 끝)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
 


  ●①여로보암1세 Jeroboam(B.C922~B.C901)(왕상 12장~14장/22년재위):


  북왕국 이스라엘은 초대 왕 여로보암이 이끄는 에브라임의 노동자 집단의 반란으로 세워졌다. 이 반란은 솔로몬의 억압적인 정책과 시정 방침에 불만을 품은 자들의 소행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사건은 지파 동맹 시대부터 내려오던 남북 간의 구(舊) 동맹 관계가 깨지고, 사울 시대로부터 잔존해 있던 지파 간의 갈등이 재현된 것이었다. 솔로몬이 죽자, 쿠데타가 사전에 발각되어 이집트로 피신해 있던 여로보암 1세가 돌아와 민심을 장악하고 세겜을 수도로 정하여(열왕기상 12:25)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였다. 그는 즉각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상을 세우고 제의를 시행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성전 제의를 대치시키는 개혁을 단행하였다(열왕기상 12:27~30).

그는 사제 계급인 레위인들을 몰아내고 일반 백성 가운데서 제사장을 임명하여 세웠으며, 절기의 날짜(달력)를 임의로 바꾸어 버렸다(열왕기상 12:31~33). 이러한 종교적 개혁 조치는 남유다로 부터의 완전한 정치적 독립과 함께 종교적 합법성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유다와의 관계는, 영토의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수비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여로보암은 느밧의 아들로,  에브라임 족속의 스레다 지방사람인 편모(스루아)슬하에서 자람. 솔로몬 왕 때 요셉족속의 간역관(看役官)으로 눈에 띌 만큼 ‘큰 용사라‘(유능한 사람) 열심히 일한 사람. 아내18명과 첩60을 취하여 아들28명과 딸60을 낳음.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더 사랑함.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손을 들어 통일왕국의 솔로몬을 대적하여 주전931년에 분열왕국으로 찢어 나누고, 조공 바치던 번왕들이 조공을 거절하여 에돔의 왕자 하닷(다윗과의 에돔 전쟁 때 작은 아이로서, 애굽의 바로는 그를 맞아 자기의 처제(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아내로 삼게 함)을 일으키고, 수리아의 르손(다메섹 남쪽 소바의 왕 하닷에셀을 배반하고 도망 나옴)이 수리아를 점령하고 왕이 되어 대적하고, 국내에서는 실로사람의 선지자 아히야의 열지파 왕이 된다는 예언을 따라 여로보암이 모의를 꾸미다. “여로보암의 죄“ 혹은 ”여로보암의 길“이란 말은 그 아들(아비야, 나답)이후로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죄의 형태를 반복한 것을 지적함. 요새화된 세겜에서 왕도를 길르앗 땅 부느엘로 옮기고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으로 우상숭배한 애굽의 아피스(Apis)혹은 프타(ptah) 같은 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서 섬기게 하고, 아무 족속사람이라도 보통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고, 유다 절기와 비슷하게 새 절기(이스라엘 사람의 티슈리, 성력으로 제7월, 민력으로는 첫째 달에 대속죄일, 나팔절(티슈리 첫날로 ’로쉬 하샤나’ 곧 연시일(年始日), 일년에 3차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초막절)중 초막절이 들어있다)로 7월15일의 초막절을 본 따서 한 달 뒤인 마르케쉬반이라는 달, 제8월 15일을 새로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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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나답 Nadab(B.C901~B.C900)(왕상14:20, 15:25~32/2년재위): 

여로보암의 아들인 아비야는 병사하고 나답이 즉위함. 바아사 왕조는 20년간 모두 3차례나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세습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적인 권력다툼과 내정의 불안정이 이어졌다.  여로보암의 아들인 나답의 이스라엘 주력군이 남방 깁브돈(Gibbethon, 블레셋 국경지대로 단 지파가 제비뽑은 성읍으로 레위 사람들의 성읍으로 만들어주었다)을 탈환코자 포위 때 신복 바아사(잇사갈 족속의 아히야의 아들)가 모반하여 진중에서 나답을 죽임.

...............................................................................................................................................................●③바아사 Baasha(B.C900~B.C877)(왕상 15:33~16:7/2년재위):

아히야의 아들. 잇사갈족속. 남유다의 왕 3대 아사가 통치하던 때, 북이스라엘의 3대 바아사(2년재위)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자, 아사 왕은 다마스쿠스의 아람 왕 벤하닷에게 원군을 요청하자 벤하닷은 갈릴리 북부 지역을 정복하였다(열왕기상 15:16~22).유다 왕(아사)의 조공을 받은 아람 왕 벤하닷의 공격으로 디르사에 거함. 블레셋 땅 깁브돈에서 모반하여 나답을 죽이고 다르사에서 왕이 됨. 선왕조(先王朝)를 이신벌군(以臣伐君)하고 역성혁명(易姓革命) , 왕위찬탈의 효시가 됨.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일어남. 그는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나답 일가를 멸절시킴. 이는 패역한 이스라엘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신속하게 집행된 것임. 선지자 예후(하나니의 아들)가 바아사 가문을 꾸짖다. 디르사에서 장사됨.

④엘라 Elah(B.C877~B.C876)(왕상16:8~14/2년):

바아사 왕의 아들, 잇사갈 족속인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된지 1년만에 혁명으로 디르사에서 시해됨.

..............................................................................................................................................................●⑤시므리 Zimri+디브니 Tibni(B.C876)(왕상 15:15~20/7일재위):

엘라 왕의 신복 노릇하던 시므리는 병거의 절반을 관할하는 군대장관(친위대장)이 모반하고 디르사에서 7일간 왕위에 있음. 시므리의 반역소식을 듣고 군사령관인 오므리를 추대해서 왕으로 삼고, 궁중에 있는 시므리를 토벌하려고 당시 수도인 디르사(세겜의 동북쪽에 에발산 북쪽 모퉁이아래, 여로보암1세~오므리에 이르기까지 약40년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됨)로 북행하여 왕궁 위소로 가자 시므리는 궁중 내부 위소인 고탑에 올라가서 불을 지르고 스스로 타죽음. 7일 사이에 성을 포위하고 함락시켜 신속 처리했다. 이스라엘역사에서 2년만에 세 왕이 교체되는 비운을 낳음. 수도에서는 그만 시므리가 엘라 왕을 모반했던 적이 있다. 이번 깁브돈 공략 때에는 엘라 왕이 직접 깁브돈까지 내려가서 지휘하지 않고 왕궁에 있었는데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먹고 마시며 취해 있을 때 엘라의 신복 시므리가 왕을 시해. /디브니는 왕으로 삼으려 했던 자로 오므리의 부대가 깁브돈에 원정중일 때 디르사에 남아있던 다른 부대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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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오므리 Omri(B.C876~B.C869)(왕상 16:21~28/12년재위):

군대지휘관, 디브니와 오므리로 두패 갈림.

군은 자기네가 추대한 오므리 편에, 군 외의 다수 민간인들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으므로 둘로 갈려서 내란이 4년이나 계속되어 오므리 왕 5년에야 통일되었다. 오므리는 12년 재위 중 6년은 디르사, 나머지 6년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살았다. 깁브돈에서 진을 치고 군대를 지휘하고 있을 때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수도 디르사를 행 24년 전에도 바아사가 24년 동안 왕 노릇하고 죽은 이듬해 다시 군대를 깁브돈으로 보내서 공략하도록 했을 때 사령관이 오므리였을 것이다.

시므리의 왕위찬탈에 불복하고 오므리를 왕으로 세운 이유 세 가지는 1)시므리가 하위계급출신이고 2)엘라와 그의 모든 친족과 친구들까지 살해했으며 3)오므리는 왕 다음 가는 지위에 있었기에(왕하4:13, 삼하5:8, 19:13, 20:23).

 


1) 1868년 요르단 왕국의 디반(Dhiban)에서 발견된 모압 왕 메사의 비문(Moabite Stone 또는 the Stele of Mesha)에 따르면, "오므리는 마데바의 모든 땅을 점령하였으며, 이스라엘은 그 안에서 오므리의 통치 기간과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통치 시대인 40년간에 걸쳐 거기 머물렀으나, 그모스는 나의 기간에 거기에 거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메사는 오랜 기간 이스라엘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모압을 해방시킨 군주로 등장한다. 높이 70㎝의 이 비문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정국이 불안정한 틈을 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6대 오므리는 4년간에 걸친 내전에서 승기를 잡고, 보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군주 국가를 만들어 나갔다(열왕기상 16:21~23). 그는 사마리아에 화려한 상아궁을 건설하고 천도하였다(열왕기상 16:24, 22:39). 페니키아, 다마스쿠스 및 유다와 군사 동맹을 맺고 왕성한 무역 활동을 개시하였다. 또, 모압을 정복하고 봉신국으로 삼았다(cf. 열왕기하 3:4). 오므리는 외국에서 볼 때도 '오므리 왕국'으로 표기될 정도로 그 위세를 떨쳤다.1)

 

 오므리 왕조는 북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 물질적으로 상당한 번영을 누렸으며, 6대 오므리에 의해 착공되고 그의 아들 7대 아합에 의해 완공된 수도 사마리아는, 고고학 발굴 결과가 밝혀 주는 대로 탁월한 기술과 화려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 당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였다. 또, 하솔과 므깃도의 마병장과 수로용 터널은 바로 이 시기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므깃도의 마병장에서 발굴된 구유와 말을 묶어 두던 돌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오므리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Shemer)에게서 사마리아산(hill of Samaria)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Samaria)라 일컬었더라”(왕상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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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아합 Ahab(B.C869~B.C850)(왕상 16:29~22:40/22년재위):

오므리 왕의 아들, 6대 오므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7대 아합 왕은 기원전 853년에 카르카르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3세(기원전 858~824년)에게 대규모의 전차 부대를 파견할 수 있는 정도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국제적 지위도 크게 격상되었다.2)
 


2) 살만에셀이 부조되어 있는 모놀리스 비문(Monolith Inscription)에 따르면,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여러 왕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살만에셀에게 대항하여 그의 진군을 오론테스 강변의 성읍 카르카르 근방에서 저지하였다. '이스라엘의 아합'도 연합국의 일부로 파병하였다. "나는 그의 왕의 관저를 카르카르에서 부숴 버리고 허물었으며 불을 질렀다. 다마스쿠스의 하다데제르의 1200대의 전차, 1200명의 기병들, 20,000명의 보병들, ······ 이스라엘의 아합의 2000대의 전차들, 1000명의 보병들, ······ 그는 이러한 12명의 왕들의 도움을 이용하였다."(Ancient Near Eastern Text 278~279)
 

 
 부친 오므리가 천도한 사마리아에서 22년 재위.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 상아궁을 짓고 화려한 생활을 하였으며(열왕기상 22:39), 이세벨(시돈왕 엣바알의 딸)로 아내를 삼아 바알의 제단(altar for Baal)과 아세라 목상(Asherah pole)을 숭배함(열왕기상 16:31), 아합 별궁이 있는 이스르엘의 나봇(Naboth)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백성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다(열왕기상 21:1~16). 
 
 


3)셈어로 바알은 '주인' 또는 '소유주'라는 뜻이다. 고대 서부 셈족에게 잘 알려진 농경 신이다. 기원전 3000년경에 고대 근동 텍스트에 나오기 시작하나, 바알의 현저한 역할이 잘 알려진 것은 기원전 약 1250년경 우가릿 문학에서이다. 바알은 다곤의 아들과 동일시되고 있으나, 가나안 만신의 우두머리인 엘(El)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다. 우가릿 텍스트에 나오는 바알의 배우자이자 누이인 아낫(Anat)은 히브리 성서가 말하는 아세라 또는 아세롯과 연결된다(열왕기상 16:33). 고대 근동에서 바알은 태풍의 신, 구름과 천둥과 비의 신으로 등장한다. 건조한 기후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알은 농경 신, 즉 비를 주는 풍요 다산의 신이었다. 히브리 성서는 유목민의 신 야훼를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토착민들이 섬기던 바알 신을 따르자 이에 맞서 싸우는 여러 기사들을 싣고 있다(민수기 25장, 사사기 6장, 열왕기상 18장, 호세아서 2장. 시편 29편, 68:4)·
 
 

 
사마리아에서 발견된 상아로 만든 그룹

유대교, 기독교 문헌에 나오는 날개달린 천사
 
 
 
아합은 국가의 부흥과 번영을 가져온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성서는 그를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열왕기상 21장), 타 민족 여인인 이세벨과의 결혼, 바알 신 숭배 등 신명기 사가의 모세법에서 볼 때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4대 오므리 왕가의 종교 정책은 이때에 활동한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열왕기상 17장∼19장).  가장 암울한 시대에 길르앗 출신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는 종교적으로 어두운 억압의 시기에 이스라엘의 신앙과 종교를 새롭게 일으킨 예언자였다.

 
엘리야 선지자의 활동(시돈의 사르밧(Zarephath, 신약의 사렙다(Zarephath in the region of Sidon,NIV/Sarepta, a city of Sidon,KJV) 과부, 주모되는 여인의 아들을 살림, 궁내대신 오바댜가 선지자 100인을 숨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에서 대결함). “토지를 팔지 말 것은 하나님 것이니라”(레25:23~28).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도 토지분배(민27:1~11). 벧엘 사람 히엘의 두 아들(아비람, 스굽)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다가 여호수아의 말씀(수6:26)대로 죽음. 아합이 유다 왕(사위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아람간 3차 전쟁에 앞서 선지자 미가야(Micaiah)가 전쟁의 패전과 아합 왕의 죽음을 예언함. 변장한 아합의 갑옷 솔기에 우연히 쏜 화살에 맞고 피흘려 죽음. 아람왕 벤하닷의 군사를 지휘하는 군대장관 하사엘을 아람왕으로 세우라고 하시고, 엘리사(사밧의 아들)에게도 이 사명을 주심(왕하8:7~15). 아합의 아들 70인이 사마리아에서 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예후에게 시체머리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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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아하시아 Ahaziah(B.C850~B.C849)(왕상 22:51~왕하 1:18/2년재위):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 사마리아에서 2년간(BC 854-853년) 이스라엘을 다스린 악명높은 왕. (유다 6대왕도 아하시아(여호람의 아들), 부친 아합왕의 왕위를 계승. 부친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대신에 바알신을 섬겼다. 그는 왕궁 난간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재위한지 얼마 안되어 엘리야가 예언한대로 죽었다(왕상1:2, 대하20:35-37).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기적.  부왕 또는 섭정왕으로 아합과 함께 다스리다가 아비와 같은 해에 죽음. 사마리아 왕궁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죽음.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왕하 1:3-4).
 
  예후 왕조의 피의 숙청은 오므리 왕조의 정책에 의거하고 있던 주변 국가와의 동맹 체제를 한꺼번에 파괴시키고 말았다. 이세벨의 처형으로 두로와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8대 아하시아의 처형은 남유다와의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이러한 주변 국가와의 동맹 체제 와해로 북이스라엘은 물질적인 번영의 주요 원천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이스라엘에게 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제무대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아시리아의 세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아람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굴욕적인 경험과 아람의 그늘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예후는 혁명을 감행해 놓고도 국가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만한 능력이 없었으며, 효과적인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1,2,3차로 50부장과 50인대를 엘리야에게 보내 잡아오게 함. "아하시아의 사자들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을때 왕은 즉시 오십부장과 수하 50명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그를 체포해 오도 록 했다. 이들이 엘리야에게 가서 왕명을 전했을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살라 버렸으며 두번째도 그렇게 했다"(왕하 1:9-1 2).

바알의 신탁을 바라고 에그론(남쪽 해안의 지금의 아키르로 블레셋의 가장 북쪽, 블레셋의 5도시는 에그론, 아스돗, 가드, 아스글론, 가사)에 있는 바알세붑(Baal-Zebub, ‘날아 다니는 파리‘의 뜻인 ’제붑‘과 ‘주‘를 뜻하는 ’바알‘의 합성어=’파리의 주인', '파리의 바알’)에게 병세를 물음. "에그론에 있는 바알세붑(파리신으로 병충해와 기타 재해를 예방하는 신)에게 사자를 보내어 병이 회복될수 있나 없나를 알아보게 했다"(왕하1:2). 결국 아하시아는 회개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여호와의 계명보다 금을 더 사랑하며, 여호와 신앙보다 이방신을 더 사랑하는 자의 말로가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다. 모압의 배반

※ 여호람의 끝 아들 아하시야(여호아하스 또는 아사랴/유다 왕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아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이다)는 아라비아인과 블레셋 사람의 침략시 모면하여 살았다.
 
"유다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왕 아하시아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아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이었더라 두 왕이 서로 결합하고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었더니"(대하2 0:35-36)

  선지자 엘리에셀이 여호사밧과 아하시아의 결합을 못 마땅히 여긴 나머지 그 배가 순항치 못하고 파선될 것을 예언했다.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아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의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지 아니 하였더라"(왕상 22:48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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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여호람,요람 Jehoram,Joram(B.C849~B.C843)(왕하 3:1~9:37/12년재위):

 32세에 즉위. 아합 왕의 아들, (유다 5대왕도 여호람(여호사밧 왕의 아들), 아하시야의 동생, 사마리아에서 치리, 예후는 곧 군대의 장군들과 함께 혁명을 일으키고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여호람)과 남유다의 왕 6대 아하시야를 처형하고(열왕기하 9:14~29), "예후의 살이 요람의 어깨사이의 등을 쏘니 염통을 꿰뚫다",  아합의 왕비인 이세벨과 아합 가문의 모든 남은 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열왕기하 9:30~10:11). 아내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모압왕 메시는 아합왕때에는 조공을 바쳤으나 아합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을 배반함.이스라엘과 유다가 동맹함. 엘리사의 활동은 수넴여인, 아람군대장관 나아만의 치료,아람왕 벤하닷(왕하8:15,13:3, 하사엘이 계승)의 병을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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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예후 Jehu(B.C843~B.C815)(왕하 9:1~10:36/28년재위):

  여호사밧 왕의 아들, 요람을 배반. 이세벨을 던져죽임.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예후가 기름부음 받을 것을 17년 전에 계시 받음. 약 40년간 유지해 오던 4대 오므리 왕조는 극심한 타락과 호화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백성들과 점차 멀어져 갔으며, 민중들의 불만은 계속 커져 나갔다. 급기야 길르앗 출신의 선지자 엘리사는 그의 제자를 보내 길르앗 라못에 사는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열왕기하 9:1~3). 요람왕은 하사엘과의 전쟁에서 부상당했고 예후에 의해 배신당하고 죽음. 원래 아합 왕의 친위대 대장으로 요람왕의 군대장성. 아합가와 바알종교를 진멸함. 자손4대가 200여년을 통치함.

  예후는 외형적으로 혁명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종교 개혁을 통하여 고대의 신앙을 회복하였으나, 피흘림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호세아서 1:4). 이 시기에 활동하였던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그의 착취와 불의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였다. 특히 아모스는 소수에게 편중된 부와 권력 구조를 비판하였으며, 경제적 착취를 날카롭게 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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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여호아하스 Jehoahaz(B.C815~B.C802)(왕하 13:1~9/17년재위):

  여호아하스 왕의 아들, 아람 왕 하사엘에게 패배.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내 아버지여’하고 울었고 엘리사가 화살을 쏘게 하고 땅을 치라 하니 세 번 치매 아람을 세 번만 치게 하리라고 함.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아들 벤하닷(Ben-Hadad)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함. 자기의 장자를 이스라엘의 창건자 여로보암의 이름을 땀. 유다 8대왕도 요하스(아하시야 왕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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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요아스,여호아스 Jehoash(B.C802~B.C786)(왕하 13:10~25/16년재위):

여호아하스 왕의 아들, 유다 8대왕도 요하스(아하시야 왕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아들로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내 아버지여’하고 울었고 엘리사가 화살을 쏘게 하고 땅을 치라 하니 세 번 치매 아람을 세 번만 치게 하리라고 함.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아들 벤하닷(Ben-Hadad)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함. 자기의 장자를 이스라엘의 창건자 여로보암의 이름을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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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여로보암Ⅱ세 Jeroboam(B.C786~B.C746)(왕하 14:23~29/41년재위):

요아스 왕의 아들, 예후의 증손자. 이스라엘의 창건자 여로보암의 이름을 땀. 북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3세(앗수르 왕, '불'이라고도 부름. B.C. 745-727년, 아닷니라리 3세의 아들)가 강대해져 징벌의 도구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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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스가랴 Zechariah(B.C746~B.C745)(왕하 15:8~12/6개월재위):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6개월 만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죽임. 예후 왕조 95년이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왕인 스가랴는 살롬에게 암살당하고, 이후 다섯 왕들 가운데 4명이 암살당하는 등 북이스라엘 왕조의 말기는 매우 불안정하였으며, 이로써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속되던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성서는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 예후 왕조가 바알 숭배를 근절하기 위해 사마리아의 바알 제단에 모든 사제들을 불러 모은 후, 신전을 부수고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처형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열왕기하 10:18~27). "이렇게 하여 예후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로부터 쓸어 버렸다."(열왕기하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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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살룸 Shallum(B.C745)(왕하 15:13~15/1개월재위):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달을 치리함. 왕의 군대 일부가 지지하고 반란으로 군대 힘을 가진 한사람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디르사에서 치고 올라와 왕이 된지 한 달 만에 디르사의 군정장관 므나헴의 손에 죽다. 왕을 반역하고 살해함.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가 마차를 타고 출정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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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나헴 Menahem(B.C745~B.C737)(왕하 15:16~22/10년재위):

 '위로자'. 가디의 아들이다(주전771-760).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됨. 딥사에서 성내 시민들이 성문을 닫자 잔인무도하게 진멸함. 사마리아에서 십년을 치리. 군대 장관직에 있다가 사마리아에 올라가 살룸왕을 죽이고 왕위를 탈취하였다(왕하 15:14). 성격이 횡폭하고 잔인하였기 때문에 적이 많이 생기고 친애굽파와 친앗수르 파가 생겨 당파 싸움이 심하였다(호 7:11). 이때를 기회로 디글랏빌레셀 3세(앗수르의 군대사령관으로 있다가 왕을 제거하고 앗수르의 '불'이란 왕(Pul the king of Assyria)가 침입하자 그에게 은 천 달란트를 주고 보호국이 되기를 간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왕하 15:19-20). 이스라엘을 침공해 북방 갈릴리의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주전 734년의 “갈릴리 포로“이후 13년 뒤에 이스라엘은 멸망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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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의 몰락과 멸망

기원전 752년 5대 예후 왕조가 붕괴된 이후 국제 정세는 이스라엘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해지기 시작하였다.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3세는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가장 막강한 군사력과 무기를 동원하여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기원전 743년, 그는 상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였으며, 북시리아의 아르파드 왕국과 하맛 왕국을 정복하고 동부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 그는 이집트를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반(反)아시리아 연합군을 진압하기 위해 시리아 - 팔레스타인을 침공하였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13대 여로보암 2세, 남유다에는 10대 웃시야(아사랴) 같은 유능한 왕이 있어 새로운 부흥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12대 요아스의 아들인 13대 여로보암 2세는 41년간을 통치하면서 북쪽 다마스쿠스와 동부 아람족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국경을 넓혀 나갔다(열왕기하 14:23). 18세의 젊은 나이에 유다의 왕에 올라 20년간을 통치한 10대 웃시야 왕은 예루살렘을 개수(改修)하고 군대를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무기를 수입하여 에돔 및 서북 아라비아 부족들을 공격하여 교역로를 열어 놓았다(역대지하 26:6~9, 11~15).

이 기간 남북 관계도 매우 원만하였으며, 솔로몬 시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사회 내부의 부패로 이어져 망국병으로 번져 나갔다. 이 시대 북이스라엘 사회의 두드러진 빈부의 격차는 부패의 표상이었다. 부자들의 탐욕은 부정적인 관행을 낳았으며, 권력을 이용한 재산의 강탈과 토지의 몰수는 가난한 자들이 생활고(生活苦)에서조차 구제받을 길을 차단해 버렸다(아모스서 2:6f., 5:10~12, 8:4~6). 사회적 부패는 종교적 부패와 보조를 같이하였다. 대부분의 성소에는 예배자들로 붐볐지만(아모스서 4:4f., 5:21~24), 순수한 형태의 야훼 신앙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다. 가나안의 토착 신 바알과의 혼합주의는 야훼의 신앙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혼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드고아 목동 출신의 아모스와 사랑했던 아내의 배반을 경험한 호세아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기원전 746년 ●13대 여로보암 2세(41년재위)가 죽은 후, 그의 아들 ●14대 스가랴(6달재위)는 단지 6개월의 통치 후에 야베스의 아들 ●15대 살룸(1달재위)에게 암살당하였고, 살룸도 한 달 뒤에 가디의 아들 ●16대 므나헴(10년재위)에 의해 살해되었다. 므나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17대 브가히야(2년재위)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군관이었던 ●18대 베가(20년재위)가 일어나 그를 살해하고 왕권을 장악하였다. 나라 전체는 내란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북이스라엘의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예언자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한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호세아서 9:11~17, 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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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가히야 Pekahiah(B.C737~B.C736)(왕하15:23~26/2년재위):

므나헴 왕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

...........................................................................................................................................................●?베가 Pekah(B.C736~B.C732)(왕하 15:27~31/20년재위):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는 사마리아 왕궁 위소(衛所) 높은 탑으로 자기 신복 세력 50명을 이끌고 충신들(아르곱, 아리에)을 죽인 사람으로 므나헴 10년 통치와 브가히야 2년 통치 후에 주군을 반역함. 브가히야의 장관인데 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이 재위기간 중에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주전745~727년) 왕에게 많은 주민들의 귀를 베고 눈을 빼고 손목을 끊거나 포로로 잡아 감. 베가 때에 “갈릴리 포로“ 사건이 일어남. 유다왕 아하스때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군으로 예루살렘 유대에 침입했다(왕하 16:5, 사 7:1, 대하 28:5). 유대 왕 아하스를 자기들의 동맹에 가담시키려 했으나 거절 당하자 다브엘(Tabeal)의 아들을 유대 왕으로 세우려 했다(사 7:6). 그 결과 스스로 에브라임(B.C8세기 이후에 종종 북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됨,사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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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Hoshea(B.C732~B.C724)(왕하 17:1~6/9년재위):

이스라엘 마지막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베가를 쳐죽이고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년을 치리함. 

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포로로 잡아가고 드디어 북이스라엘은 19대 호세아 때에 유프라테스 강 서편 지역과 지중해 연안을 공격하기 시작한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king of Assyria)의 공격을 받았고, 3년 동안(호세아 재위 7년부터 9년까지, 히브리인의 계산법은 1년미만도 1년으로 계산됨)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수도 사마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함락되고 말았다(열왕기하 17:1~6).

  아시리아의 속주 체제에 편입된 이 지역은 아시리아의 총독이 다스렸다. 더구나 귀족들은 아시리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으며(끌려간 포로는 2만7290명), 이 지역에는 아시리아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통혼 정책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과 종교적 전통은 말살되어 갔다.
 
  솔로몬의 억압 정치로부터 벗어나려고 독립하였던 북이스라엘은 군주들의 계속되는 억압과 권력 남용으로 결국 막을 내리게 되었다. 히브리 성서는, 멸망의 원인은 북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법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타 민족의 신을 섬겨 여호와의 눈에 벗어났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열왕기하 17:7~18). 


 
 


▶살만에셀(Sharmaneser): '술만 신이 주장함. ‘앗수르 음으로 '술만누아사리두' 곧 '술만 신의 머리가 되신다'는 뜻. 앗수르 왕은 5명인데 성서에 나오는 왕은 3세와 5세이다.

[1] 살만에셀 3세(B.C.859-824). 구약에 그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다른 기록에 보면 주전 853년 칼칼에서 아합왕과 그의 동맹군인 다메섹의 벤하닷의 군사와 싸웠다. 이때는 하는 수 없이 퇴군하였으나 주전841년 수리아를 공격했을 때 예후가 조공을 바쳤다.

[2] 살만에셀5세(B.C.727-722).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왕. 북왕국의 마지막 왕 호세아가 처음에는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쳤으나 애굽왕과 동맹하고 앗수르를 배반하니 살만에셀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3년간이나 포위하고 호세아 왕과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왕하 17:3-6, 18:9-11). 사실은 살만에셀은 도중에 죽고 후계자인 사르곤2세가 주전 722년 12월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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