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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합오순절 교회에 대하여
esus 2014-02-17 05:09:30 | 조회: 6244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에 대하여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의 뿌리는 2000년 전 예루살렘 교회에 있다. 영원전부터 계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된 날은 오순절날이었다. 그 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의 심령에 부어지심으로써 자기 땅 자기 백성을 방문하셨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심령에 그분의 영원한 거처를 삼으셨다. 온 세상을 위해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의 초청에 응답한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의 영을 부어주신 그 사건은 가장 크고 놀라운 것이었다.

신약교회의 탄생일인 첫 오순절날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증거한 설교의 핵심은 3가지였다.

첫째, 성령침례를 받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행 2:14-21). 이 증표가 수많은 신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한 초유의 관심이 되었다.

둘째, 예수께서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정녕 알라는 것이었다(행 2:22-36). 옛언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이 되시겠다는 약속은 이제 이루어졌다고 선포되었다.

셋째, 구원의 복음이다.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는지 성령과 진리가 충만한 설교는 분명한 길(道)을 제시했다(행 2:37).

수천 명의 신자들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던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때 천국열쇠를 받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하며 다른 여러 말로도 확증하며 이렇게 구원을 받으라고 촉구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라 했다(행 2:38,39).
하나님은 이 복음으로 죄인을 부르신다. 그분의 초청에 응답하는 이들은 그 이름을 불러 회개하고 그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약속을 받는다.
그 날에 베드로의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제자의 무리가 3천명이나 증가되었다(행 2:40,41).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의 탄생도 이 세 가지의 진리에 따른 약속을 확증 받음으로써 태어났다.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시의 한 신학교에서 찰스 파햄(Charles Parham) 목사는 하나님의 약속인 성령침례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한 후 그 약속은 그들에게도 주어진 것임을 확신했다.

이어진 21일간의 간절한 기도는 20세기가 열리는 1901년 1월 1일,
한 학생이 신약교회 첫 오순절날의 체험과 같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는 증거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확증되었다.
성령의 늦은비는 이 학교와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의 부흥에 불길을 당겼다.
이곳에서 수년 동안 지속된 성령의 역사는 세계에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동일한 체험 속으로 몰아 넣었고 그 불길을 그들의 선교지로 옮겨가게 했다.

신약교회 첫 오순절의 역사는 단지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함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예수께서 누구이신 것과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는지 복음이 확증되어야 했다.
1913년 4월 세계적인 천막집회에서 물침례를 위해 설교를 한 맥알리스터(R. E. McAlister) 목사는 '사도들은 침례시에 항상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고 설교했다.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이름을 불러 죄사함을 받는 하나님의 약속이 신약교회 첫 오순절날처럼 선포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6세기 암흑기에서 루터와 개혁자들이 볼 수 없었던 초대교회의 진리가 드디어 그를 사모하는 이들의 심령에 영광의 복음의 빛을 비추며 그들의 눈을 밝히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고후 4:3-6).

이 진리는 프랭크 에와르트(Frank Ewart), 글렌 쿡(Glenn Cook), 가필드 헤이우드(G. T. Haywood)와 같은 경건하고 능력있는 목사들에 의해서 삽시간에 오순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하나님의 성회'의 임원들이었던 이 엔 벨(E. N. Bell), 하워드 고쓰(Howard Goss), 다니엘 오퍼맨(D. C. O. Opperman)목사도 예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다.
총회장이었던 벨 목사는 하나님의 성회의 두 기관지에 '예수는 영원하고 전능한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삼위 혹은 신성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다.'라는 글을 실었고 신약교회 첫 오순절의 복음의 나팔소리는 멀리까지 굉장한 반향을 일으키며 전파되었다.
이 시기에 전파된 복음은 후에 소련의 대통령이 된 고르바초프와 그 모친도 동일한 진리의 복음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증인들은 말한다.




사진 3. 하나님의 성회 임원들

신약교회의 첫날에 선포된 메시지에 담긴 세 가지의 핵심(the whole Gospel)을 따르는 이들은 온 땅(the whole world)에 이르러야 할 복음전파와 교제를 위해 교단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45년 9월 그중에 큰 두 교단인 '오순절 교회(법인)'와 (The Pentecostal Church, Incorporated)' 예수 그리스도의 오순절 성회'(The Pentecostal Assemblies of Jesus Christ)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연합함으로써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가 탄생했다.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는 지금 가장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다.
한 예를 풀러 신학교의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 박사가 쓴 [Look out! The Pentecostal Are Coming]이라는 책에서 콜롬비아의 개척 교회들에 대해 분석해 놓은 다음의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 그런 일은 콜롬비아에서도 일어났다. 급속히 성장하는 연합오순절 교회(United Pentecostal Church)는 주로 이 원리에 의해 수적으로 콜롬비아 개신 교회들 가운데 첫째의 자리에 올랐다. 콜롬비아 오순절 교회에 대한 완벽한 개관을 기록한 바 있는 도날드 팔머(Donald Palmer)에 따르면, 이것은 정립된 형태이다.
콜롬비아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은 정확히 지역교인들을 적극적으로 배가시키고 있는 교회들이다.
1960년과 1970년 사이에 하나님의 성회가 50개, 팬 아메리카 선교회가 36개, 포스퀘어 45개, 연합오순절은 무려 357개 교회를 개척했다.

이들 네 개는 건강한 교파들이다. 이들은 오순절 계통이며, 그들은 다 교회 배가의 원리를 적용한다.
반면에 컴버랜드 장로 교회는 오순절 교회들 중 어느 교회보다 오래 된 교회이지만, 콜롬비아에서 가장 느리게 성장하는 교회들 중의 하나이다. 동일한 십 년간 그들은 단 하나의 교회를 개척했다.>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사도들이 전파했던 동일한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한국 연합오순절 교회의 기관지인 '오순절'지의 2천년 1월 호에 실린 내용을 보면 그 부흥의 열기와 주님께서 오시기 전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재림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다.




< 카톨릭 국가로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필리핀에서는 개신교로서는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작년 한 집회에서 5,000명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는 증거로 성령을 받았다고 보고되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작년 부활절 집회에서 2만여 명이 참석하였고 9천 명이 성령을 받았다고 보고되었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에디오피아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된 부흥에 이어 작년에 열린 집회에는 7만여 명이 참석하여 5만여 명이 성령을 받는 경이로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 외에 전신마비가 되었던 환자가 즉시로 치료를 받거나 자궁암,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 에이즈 등 여러 질병을 앓던 많은 이들도 즉시로 치료를 받았다.>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는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주신 그 약속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복음으로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자들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복음임을 확신한다.

국제 연합오순절 교회는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다.
그 외의 정보나 관련된 서적 및 보다 상세하게 이 진리에 대해 알아보기를 원하는 분은 이용하기를 권한다.



참고로 풀러신학교와 연합오순절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피터와그너가 주도하는 신사도운동은 어쎔블리오순절 교단사람들과 함께 이루어 가고 있다.
한예로 베니힌도 어쎔블리고, 케서린쿨만도 어쎔블리이다.
처음에는 하나의 교단이었지만 어쎔블리가 신비적인 은사운동과 손을 잡으면서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딴 길로 이탈해서 그곳에서 나온 곳이 연합오순절이다.

연합오순절은 성경에 일어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물침례와 성령침례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주님오시는 날까지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고 구별된 삶(하나님 말씀을 지킴 즉 행함이 아니라 순종을 의미한다.)을 삶으로서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믿는다.
또한 물침례도 사도행전에 나온 사도들이 행했던것 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타이틀이 아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침례를 베푼다.

실재로 증거가 행2:38, 8:16, 10:48, 19:5, 22:16 모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

우리 연합 오순절은 성경대로 사도들이 행했던데로 순종하는 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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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있었던 ‘초기 한국연합오순절교회의 역사’
esus 2014-02-17 05:11:57 | 조회: 5793

초기 한국연합오순절교회의 역사



한국연합오순절교회는 1965년에 엘톤 버나드(Elton D. Bernard) 선교사 가족에서 비롯합니다. 그는 6.25 전쟁에 참전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참으로 놀라운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 부인)도 그때 은혜를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1976년 2월에는 벤타 선교사 가족이, 1979년 6월에는 월리럼 터너 선교사 가족이 내한하여 한국 선교를 도왔습니다. 한국에서 선교사 일을 마치고 1985년 6월에 떠난 버나드 목사의 저서 ‘한국의 개척자 The Korean Frontier’에는 사도행전과 똑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적혀 있습니다. 아랫글은 그 책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국에 완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분들이 흘린 땀과 눈물과 피는 진리의 씨앗이 되어 한국 연합 오순절 교회의 이름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쉼 없는 열정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1966년 2월, 처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물과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성도를 얻었다.

1968년에 본부교회 건물이 세워지고 1969년 2월 25일에 문화체육부에 ‘재단법인 한국 연합 오순절교회’로 등록하였다.

1970년 선교 5년 만에 전국에 10개 교회, 1570명의 신자들이 생겼다.

같은 해 10월에 본부교회에 출석한 교인은 모두 459명이었고 지방의 신태인 교회에도 457명이 출석하였다.

1971년 여러 교파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한국에서 유명한 부흥사들과 목회자들 100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와서 가르쳐 달라며 우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이미 성령침례를 받았던 그는 인천에서 1500여명이 참석하는 감리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다. 10월에 그에게 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1500~2000여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완전한 복음을 설교했고 그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1972년 4월 24~29일에는 이 기도원에 모인 2000여명의 교인 앞에서 모든 설교를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했는데 수백 명이 성령침례를 받았고 성령 안에서 춤추고 부르짖고 외치며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로운 장관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산으로 올라가 철야기도로 부르짖었는데 산 사방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령침례를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홍제동 본부교회로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장년들만 45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그 주에 60명이 성령침례를 받고 66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간증을 했는데, 한 쪽 눈을 실명했던 사람은 성령을 받고 다시 보게 되었으며, 폐가 망가져 치료를 포기했던 두 사람도 완전히 치료받고 큰 소리로 간증하였다.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때도 많은 어린이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여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어린이들의 순수한 간증은 듣는 이를 감동케 했다.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5일에 인천 마가 다락방 기도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약간의 교리적 반대가 있었으나 진리의 말씀으로 싸웠다. 예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기 위한 대형 풀장이 만들어졌다. 1시간 동안 7명의 교역자가 550명의 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고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4명의 타교단 목사들을 포함한 50명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이 집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은 200명 이상이었다.

이어서 8월 14~19일에 2000여명이 모인 기도원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 교인은 성령에 취하여 일어서서 찬양하고 춤을 추었으며 안수를 통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또한 성령침례를 받았다. 한 목회자가 우리가 가르친 모든 가르침을 반대하고 일어나 다른 이들에게도 반대하도록 충동질했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진리의 말씀을 설교했다. 150여명이 오순절 날과 똑같이 성령침례를 받았고 52명이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더 많은 교인들이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홍수로 말미암아 침례식은 중단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후의 예배에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12월에는 12명의 타교단 목회자들에게 사도적인 진리를 가르쳤고 그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

1973년 1월 첫 주일의 목회자 세미나에는 우리가 인도했던 집회나 다른 집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아 우리와 함께 사역하려는 20명의 목회자들이 모였다. 그들 중 절반가량은 주 예수 이름으로 이미 침례를 받았으며 6명이 이 세미나에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다.

2월에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43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3월에는 한 곳에서 8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200여명의 장년들 중 불과 몇 사람만이 성령을 받았던 한 감리교에서는 부흥회 때 14번이나 설교했는데 한 번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50여명이 교인이 되었다.

4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청와대에서 무척 가까운 곳인 진명여고 강당(삼일당)을 빌려 집회를 열었다. 일제의 잔인한 칼은 한민족의 무수한 피를 흘렸지만 예수님의 보혈은 이들의 죄를 영원히 씻기는 역사를 이루셨다. 174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200여명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

5월 8일부터 11일 기독교 수양관에서 340명의 비오순절교파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3일간의 집회를 열었다. 열 번의 설교를 했고 설교가 끝나자 그들은 강단 앞으로 달려 나와 우리의 다리를 붙잡고 특별 기도를 간청했다.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들이 “제가 성령 충만을 받도록 꼭 좀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외쳤으며 자기들의 사역에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모든 목회자들이 안수를 부탁했다. 25명의 목회자들이 거기 풀장에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다른 15명의 목회자들은 밤에 본부교회로 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오순절 성령 체험을 반대하는 기성교파들이 주목하고 있는 중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1974년 여의도에서 열린 범기독교 연합집회에서 하나님의 성회 조용기 목사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우리들이 이단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비난과 핍박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들과 많은 신자들이 완전한 진리를 끝까지 붙잡는데 실패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실족했다.

우리가 배포한 전도지에 실린 불상과 문구를 가지고 불교도들도 거센 항의와 위협을 해왔다. 우리의 삼일당 집회장에 폭탄을 장치했다는 전화를 여러 번 하는 등 많은 핍박을 했다. 내가 한국 최고위불교 지도자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의 사무실에 찾아 갔을 때 대통령 부인(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그녀는 한국 최고의 불교 후원자였다)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전갈이 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모든 괴롭힘이 사라졌다. 주님은 우리의 피할 길을 미리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나는 우리를 이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조 목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우리 목회자들은 그의 공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었고 우리 교회에 호의를 갖고 있던 이들도 그가 우리를 중상 모략한 것을 고소하라고 강하게 권고했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 같은 오명을 씌운 것을 즉시 사과했다. 우리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그의 교인들에게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며 말했고, 이 문제로 그는 교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느라 애를 써서 피곤해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의 이전 교회 교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후 그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버나드 선교사를 찾아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대회장(범기독교 연합집회)에서 우리의 전도지를 본 목회자들이 비난을 하자 오순절 메시지를 거론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일을 잊고, 마지막 절제의 한계를 넘어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고 했다. 용서를 빈 후에 그는 나에게 “이제 나를 형제라고 불러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 나는 우리 목회자 두 사람과 다시 그를 방문했다. 그는 다시 우리 앞에 사과했지만 여전히 공적으로 사과하는 일은 거절했다.

1976년, 한국에서 세 번째 선교기를 맞이했을 때 우리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성결에 대한 가르침을 부인하려 했고 나의 충고나 임원들의 권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무고(誣告)했으며 익명으로 한국 정보부에 내가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다고 제보했다. 그는 몇 명의 목사들과 함께 거짓 증인도 세우고 우리가 전문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했다. 이 일로 한국의 비밀경찰과 중앙정보부는 나와 임원, 신학교 학생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나를 무고한 자들은 이렇게 하면 재단법인으로 등록된 연합 오순절 교단이 취소되어 우리 법인의 모든 소유권이 다른 교단으로 이전되고, 나는 본국으로 추방되어 그들이 재정상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내와 나는 금식하고 기도했다.

공산침략에 유난히 민감했던 한국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개최될 국제 연합 오순절 교회 세계총회에서 내가 연설한다는 걸 알고는 우방국(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재입국을 허락하지 않기로 비밀리에 결정을 했었다.

성령은 내가 세계총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머물러 있는 동안 KCIA(중앙정보부)는 6주간이나 엄밀하게 조사를 하였고 추수감사절에 법무부에 소환되었다. 법무부 관리는 나에게 ‘면밀한 감시와 조사를 했으나 당신을 고발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선교사역을 계속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지켜주셨다.

한국 법무부 관리는 나를 ‘공산주의 침략 감시 위원회 대통령 자문기관’의 자문위원과 ‘경기도 재소자 갱생 위원회’ 임원으로 임명했는데 외국인이 후자의 자격을 얻어 한국 타임지로에 보도된 일은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초기 한국연합오순절교회의 역사’
esus 2014-02-17 05:11:57 | 조회: 5793
초기 한국연합오순절교회의 역사



한국연합오순절교회는 1965년에 엘톤 버나드(Elton D. Bernard) 선교사 가족에서 비롯합니다. 그는 6.25 전쟁에 참전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참으로 놀라운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 부인)도 그때 은혜를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1976년 2월에는 벤타 선교사 가족이, 1979년 6월에는 월리럼 터너 선교사 가족이 내한하여 한국 선교를 도왔습니다. 한국에서 선교사 일을 마치고 1985년 6월에 떠난 버나드 목사의 저서 ‘한국의 개척자 The Korean Frontier’에는 사도행전과 똑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적혀 있습니다. 아랫글은 그 책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국에 완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분들이 흘린 땀과 눈물과 피는 진리의 씨앗이 되어 한국 연합 오순절 교회의 이름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쉼 없는 열정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1966년 2월, 처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물과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성도를 얻었다.

1968년에 본부교회 건물이 세워지고 1969년 2월 25일에 문화체육부에 ‘재단법인 한국 연합 오순절교회’로 등록하였다.

1970년 선교 5년 만에 전국에 10개 교회, 1570명의 신자들이 생겼다.

같은 해 10월에 본부교회에 출석한 교인은 모두 459명이었고 지방의 신태인 교회에도 457명이 출석하였다.

1971년 여러 교파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한국에서 유명한 부흥사들과 목회자들 100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와서 가르쳐 달라며 우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이미 성령침례를 받았던 그는 인천에서 1500여명이 참석하는 감리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다. 10월에 그에게 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1500~2000여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완전한 복음을 설교했고 그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1972년 4월 24~29일에는 이 기도원에 모인 2000여명의 교인 앞에서 모든 설교를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했는데 수백 명이 성령침례를 받았고 성령 안에서 춤추고 부르짖고 외치며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로운 장관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산으로 올라가 철야기도로 부르짖었는데 산 사방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령침례를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홍제동 본부교회로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장년들만 45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그 주에 60명이 성령침례를 받고 66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간증을 했는데, 한 쪽 눈을 실명했던 사람은 성령을 받고 다시 보게 되었으며, 폐가 망가져 치료를 포기했던 두 사람도 완전히 치료받고 큰 소리로 간증하였다.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때도 많은 어린이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여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어린이들의 순수한 간증은 듣는 이를 감동케 했다.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5일에 인천 마가 다락방 기도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약간의 교리적 반대가 있었으나 진리의 말씀으로 싸웠다. 예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기 위한 대형 풀장이 만들어졌다. 1시간 동안 7명의 교역자가 550명의 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고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4명의 타교단 목사들을 포함한 50명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이 집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은 200명 이상이었다.

이어서 8월 14~19일에 2000여명이 모인 기도원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 교인은 성령에 취하여 일어서서 찬양하고 춤을 추었으며 안수를 통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또한 성령침례를 받았다. 한 목회자가 우리가 가르친 모든 가르침을 반대하고 일어나 다른 이들에게도 반대하도록 충동질했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진리의 말씀을 설교했다. 150여명이 오순절 날과 똑같이 성령침례를 받았고 52명이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더 많은 교인들이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홍수로 말미암아 침례식은 중단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후의 예배에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12월에는 12명의 타교단 목회자들에게 사도적인 진리를 가르쳤고 그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

1973년 1월 첫 주일의 목회자 세미나에는 우리가 인도했던 집회나 다른 집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아 우리와 함께 사역하려는 20명의 목회자들이 모였다. 그들 중 절반가량은 주 예수 이름으로 이미 침례를 받았으며 6명이 이 세미나에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다.

2월에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43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3월에는 한 곳에서 8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200여명의 장년들 중 불과 몇 사람만이 성령을 받았던 한 감리교에서는 부흥회 때 14번이나 설교했는데 한 번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50여명이 교인이 되었다.

4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청와대에서 무척 가까운 곳인 진명여고 강당(삼일당)을 빌려 집회를 열었다. 일제의 잔인한 칼은 한민족의 무수한 피를 흘렸지만 예수님의 보혈은 이들의 죄를 영원히 씻기는 역사를 이루셨다. 174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200여명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

5월 8일부터 11일 기독교 수양관에서 340명의 비오순절교파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3일간의 집회를 열었다. 열 번의 설교를 했고 설교가 끝나자 그들은 강단 앞으로 달려 나와 우리의 다리를 붙잡고 특별 기도를 간청했다.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들이 “제가 성령 충만을 받도록 꼭 좀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외쳤으며 자기들의 사역에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모든 목회자들이 안수를 부탁했다. 25명의 목회자들이 거기 풀장에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다른 15명의 목회자들은 밤에 본부교회로 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오순절 성령 체험을 반대하는 기성교파들이 주목하고 있는 중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1974년 여의도에서 열린 범기독교 연합집회에서 하나님의 성회 조용기 목사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우리들이 이단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비난과 핍박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들과 많은 신자들이 완전한 진리를 끝까지 붙잡는데 실패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실족했다.

우리가 배포한 전도지에 실린 불상과 문구를 가지고 불교도들도 거센 항의와 위협을 해왔다. 우리의 삼일당 집회장에 폭탄을 장치했다는 전화를 여러 번 하는 등 많은 핍박을 했다. 내가 한국 최고위불교 지도자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의 사무실에 찾아 갔을 때 대통령 부인(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그녀는 한국 최고의 불교 후원자였다)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전갈이 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모든 괴롭힘이 사라졌다. 주님은 우리의 피할 길을 미리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나는 우리를 이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조 목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우리 목회자들은 그의 공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었고 우리 교회에 호의를 갖고 있던 이들도 그가 우리를 중상 모략한 것을 고소하라고 강하게 권고했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 같은 오명을 씌운 것을 즉시 사과했다. 우리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그의 교인들에게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며 말했고, 이 문제로 그는 교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느라 애를 써서 피곤해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의 이전 교회 교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후 그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버나드 선교사를 찾아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대회장(범기독교 연합집회)에서 우리의 전도지를 본 목회자들이 비난을 하자 오순절 메시지를 거론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일을 잊고, 마지막 절제의 한계를 넘어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고 했다. 용서를 빈 후에 그는 나에게 “이제 나를 형제라고 불러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 나는 우리 목회자 두 사람과 다시 그를 방문했다. 그는 다시 우리 앞에 사과했지만 여전히 공적으로 사과하는 일은 거절했다.

1976년, 한국에서 세 번째 선교기를 맞이했을 때 우리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성결에 대한 가르침을 부인하려 했고 나의 충고나 임원들의 권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무고(誣告)했으며 익명으로 한국 정보부에 내가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다고 제보했다. 그는 몇 명의 목사들과 함께 거짓 증인도 세우고 우리가 전문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했다. 이 일로 한국의 비밀경찰과 중앙정보부는 나와 임원, 신학교 학생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나를 무고한 자들은 이렇게 하면 재단법인으로 등록된 연합 오순절 교단이 취소되어 우리 법인의 모든 소유권이 다른 교단으로 이전되고, 나는 본국으로 추방되어 그들이 재정상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내와 나는 금식하고 기도했다.

공산침략에 유난히 민감했던 한국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개최될 국제 연합 오순절 교회 세계총회에서 내가 연설한다는 걸 알고는 우방국(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재입국을 허락하지 않기로 비밀리에 결정을 했었다.

성령은 내가 세계총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머물러 있는 동안 KCIA(중앙정보부)는 6주간이나 엄밀하게 조사를 하였고 추수감사절에 법무부에 소환되었다. 법무부 관리는 나에게 ‘면밀한 감시와 조사를 했으나 당신을 고발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선교사역을 계속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지켜주셨다.

한국 법무부 관리는 나를 ‘공산주의 침략 감시 위원회 대통령 자문기관’의 자문위원과 ‘경기도 재소자 갱생 위원회’ 임원으로 임명했는데 외국인이 후자의 자격을 얻어 한국 타임지로에 보도된 일은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특별히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국립예술관 개관식에 참여하게 되었고 수차례 대통령의 조찬 기도모임에 참석하여 한국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었다.

그동안에도 각 지역의 오순절 교회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젊은 전도사가 첫 주에 우리 총회에서 저녁 설교를 했는데 16명이 성령침례를 받고 12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둘째 주에 5일간 밤 집회에서 34명이 침례를 받았고 30명이 성령침례를 받았다. 세 번째 부흥집회에서는 40명이 침례를 받았고 35명이 성령침례를 받았다. 그가 각 지역의 교역자들과 함께 전도하여 불신자들이 많이 나와 회개하고 주님의 은사를 사모하게 되었다.

안팎의 시련 중에도 우리는 완전한 진리를 증거하는 집회를 다시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죄사함 받기 위해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기를 원했다. 다시 한 번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하루 동안에 처음에 423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후 20명이 다시 침례를 받았다. 두 주일 후에는 다시 212명이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다른 교단 목회자들을 위해 계시록 강해 세미나를 준비했다. 그들 중에 대전에서 날마다 기차를 타고 참석했던 -기독교계에 무척 영향력이 있는- 어느 목회자는 내 아내가 자기 교회 세미나에서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그 교회는 4000여명이 출석하는 큰 침례교회였다. 저녁 집회에 1000명 이상이 참석했다. 내 아내는 계시록을 강해하면서 기회가 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했다. 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의 말씀을 가지고 구원의 메시지를 증거했다. 그녀는 매일 밤마다 제단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했고 많은 이들이 성령침례를 받았다.

이 큰 침례교회의 부인회 회장은 내 아내에게 “이 세미나로 저는 우리가 반드시 성령침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다는 걸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에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함께 둘러앉은 식사 자리에서 그 목사는 내 아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사모님이 그 작은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되면 나는 사모님께 모든 큰 강단과 기도원의 중요한 집회를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교회를 가리키며 체류 중 동석한 국제 연합 오순절 교회의 우리 선교사를 보고 “나는 이 사모님이 우리 교회의 부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제안은 연합 오순절 교회와 연합 오순절 신학교를 세우려는 우리의 선교 목적과 달랐지만 우리가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과 진리에 응답해 준 것을 고맙게 여겼다.

오직 주 예수님만이 우리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아셨다.

예를 들어, 감리교에서 우리 신학교로 온 학생은 이미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었고 우리의 가르침대로 사는 자였다. 내가 그에게 어디서 이걸 배웠는지를 물었더니 그의 담임 목사가 우리의 열었던 세미나에 참석하여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그의 교회로 돌아가서는 그의 모든 교인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뿌린 일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신 첫 소식이었다.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한 장로교 목사는 내가 그에게 보내 준 ‘진리가 승리한다’, ‘하나님의 유일성’ 같은 책을 신중하게 연구한 뒤에 자기의 2000여명의 교인에게 다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기 시작했다. 이 일은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이 증언하여 알게 되었다. 또 하나님의 성회에속한 한 교회는 우리의 책과 세미나로 인해 4000여명의 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침례를 준 다른 교단의 목회자들 중에는 이름 있는 감리교 목회자도 있었는데 그는 독립적으로 성령침례와 예수 이름의 침례를 설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내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준 목회자는 100명이 넘으며 그 외 3000여명의 한국인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게다가 우리가 인도한 집회나 교회에서 10,000여명이 성령침례를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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