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계시록(워런 워스비)

 
▣ 요한계시록 서론
 
▣ 배경:사도 요한은 주후 70년 경에 에베소의 목회 사역을 이어받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교회들, 즉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으나 베드로가 약속한 “불시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자(주후 81-96년) 박해는 맹렬해졌다.
도미티아누스는 역사의 어떤 페이지에서도 볼 수 없는 냉혹한 살인마였다. 그는 “황제 숭배“를 장려하였으며, 그의 포고문은 “우리의 주시요 하나님이신 도미티아누스가 명령하노니...“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에게 말하는 모든 사람은 그를 “주시요 하나님“이라고 인사해야 했다. 그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혹독하였으며,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시킨 것도 그의 명령이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바위 섬으로서 길이가 16km였고 너비는 약 10km였다. 로마는 죄수들이 광산에서 노역했던 그 곳에 유배 주둔지를 두었다. 요한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립된 이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이루고 있는 환상들을 받았으며, 본 서는 주후 95년 경에 기록되었다.
 
▣ 특성: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 독특한 책이다.
 
예언적이다-예언의 책이다(1:3/10:11/19:10/22:7/22:10/22:18-19).
 
그리스도 중심적이다-이 책은 단순히 예언적 계획에 관한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1장에서는 부활하신 제사장이자 왕으로서 2-3장에서는 교회를 진단하시는 분으로서, 4-5장에서는 창조의 권리 증서를 받으시는 분으로, 6-19장에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며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분으로서 20-22장에서는 영광과 능력 가운데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나타난다.
 
공개적이다-“계시“라는 말은 “베일을 벗긴다“는 뜻이다. 다니엘은 그의 책을 인봉하라는 말을 들었으나(단 12:4), 요한은 “인봉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22:10). 계시록은 어려운 예언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죄와 세상의 체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승리하실 것에 대하여 합리적이고도 질서있게 벗겨가는 책이다.
 
상징적이다-“하나님이... 보내어 지시하신“(1:1)이란 말은 이 책이 그 멧세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징표와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어떤것들은 설명되어 있고(1:20/4:5/5:8/12:9) 어떤 것들은 설명되어 있지 않으며(4:4/11:30 어떤 것들은 구약과 관련되어 설명된다(2:7/2:17/2:27-28). 이러한 신령한 상징은 이 책을 받아 들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명확했겠으나 그들의 로마 박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상징들은 실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예를 들자면, 국기란 그러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1장 12-16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지만, 각각의 이러한 상징들이 신령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구약에 근거하고 있다-이 책은 구약 성경들을 계속해서 참고하지 않고는 연구할 수 없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의 404구절 중에서 278구절은 구약에 대한 관련 구절을 포함한다.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에 대한 관련 구절이나 암시가 500개도 넘는다고 집계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시편, 다니엘, 스가랴, 창세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등이 가장 빈번히 언급되고 있다.
 
숫자로 나타낸다-성경의 어떤 다른 책에서도 이처럼 상징적인 숫자를 많이 사용한 곳이 없다. 이 책에는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촛대 등 일곱이란 숫자가 계속 나온다. 또한 일천 이백 육십(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 두달, 11:2-3/12:6/13:5)이라는 숫자와 십 사만 사천의 인맞은 이스라엘자손, 열두별(12:1), 열두 문(21:12), 열두 기초석(21:14)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우주적이다-요한계시록은 온 세상을 다루고 있다! 요한은 열국, 백성, 무리를 본다(10:11/11:9/17:15 등). 이 책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기 백성을 위한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한 요약이다.
 
장엄하다-이 책은 “보좌의 책“이며, 4장으로부터 마지막 장까지 왕과 그의 통치에 관하여 읽게 된다. 보좌라는 말이 44회, 왕, 왕국 또는 통치라는 말이 37회, 능력과 권위는 40회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그리스도를 본다.
 
동정적이다-이 책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과 땅에 있는 백성에 대한 하늘의 동전을 본다. 요한은 유배되어 있고(1:9), 안디바는 순교를 당하였으며(2:13), 서머나는 투옥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2:10),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의 신원하시는 심판을 호소하였다(6:9). 시련의 때가 임하고 있으며(3:10), 큰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취하였다(17:6/18:24/19:2). 이제 머지않아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10) 절정적이다-요한계시록은 성경의 절정이며, 우주에 대한 하나님에 계획과 목적의 성취를 보여 준다.
 
▣ 해석 방법:이 책의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넓게는 네 가지 다른 접근 방법이 있다.
 
과거적 해석 방법-이 접근 방법은 이 책에 있는 모든 일들이 1세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주장하며, 로마와의 싸움을 다룬다고 한다. 요한은 성도들이 박해 중에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가 예언을 적고 있다고 일곱 번이나 말한다! 물론 이 책이 로마의 박해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 가치가 사도 시대의 종국과 더불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 해석 방법-이 부류에 속하는 해석자들은 계시록의 상징들을 통하여 교회사의 성취를 본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 책이 사도 시대로부터 세상 끝까지의 역사의 과정을 요약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계시록에 있는 것들과 병행하는 사건들을 찾아내려고 역사서들을 탐구하지만 그 결과는 종종 비참하다.
어떤 해석자는 한 상징에서 루터와 종교개혁을 보는데 다른 연구자는 그 부분을 인쇄기의 발명으로 생각한다! 만일 계시록이 미리 기록된 세상의 역사에 불과하다면 요한 당대의 신자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영적 해석 방법-이런 학자들은 완전히 예언이라는 생각을 배제하고서 계시록을 다만 그리스도와 사단, 선과 악의 대결을 상징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요한이 실제적인 사건들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그가 다만 기본적인 영적 원리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한은 그가 예언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계시록에 많은 기본적인 영적 원리들이 상징의 형식으로 분명히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은 어느 날 세상에 발생할 실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용인해야만 한다.
 
미래적 해석 방법-이 학파는 요한계시록이 예언임을 강조한다. 4장부터 계속해서 우리는 교회가 휴거된 뒤에 땅과 하늘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본다. 그리고 또한 2-3장에 교회에 대한 예언의 역사가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책의 영적인 교훈들을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또한 미래 역사에 있을 실제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만일 계시록이 예언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세상의 미래, 역사의 과정, 교회의 승리, 죄의 심판, 구약에서 발견되는 약속들과 예언들의 성취 등을 설명할 한 책을 신약 성경에 주시지 않는 셈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계시록은 바로 그러한 책이다. 이 책을 교회가 휴거된 이후에 발생할 사건들을 예언한 책으로 경건하게 접근하는 연구자는 그의 수고로 인하여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성경의 최초의 책과 마지막 책은 상호 보완적이다.
 
창세기 계시록
천지의 창조(창 1-2 장)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21-22 장)
땅을 다스리는 첫아담(창 1:26) 영광중에 다스리는 마지막아담(계 21:5)
밤과 바다의 창조(창 1:5/창 1:10) 밤도 바다도 없음(21:1/21:25)
아담에게 데려온 신부(창 2:18-25) 그리스도를 위하여 단장한 신부(19:7-)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창 2:9/창 3:22) 새창조에서의 생명나무(22:2)
죄가 죽음과 저주를 가져옴 더이상 저주나 죽음이나 눈물이 없음
(창 3:14/창 3:17-19) (22:3)
그리스도와 사단의 대결(창 3:15) 사단의 마지막 운명(20:10)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람들이 영광중에 주님의 얼굴을 봄
쫓겨난 인간(창 3:23/창 4:16) (22:4)
신자들이 믿음으로 한 성을 영광중에 나타날 거룩한 성(21:10)
바라봄(히 11:13-16)
“어린양은 어디있나이까?“(창 22:7) 어린양이 보좌에 계신다(22:3)
사단이 첫 거짓말을 함(창 3:1) 거짓말하는 어떤 것도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함(21:27)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요약하고 있다. 오래 전에 첫 창조에서 시작된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새 창조에서 완성될 것이다. 이 책은 “축복을 담고 있는 책“이다(1:3/14:13/16:15/19:9/ 20:6/22:7/22:14 절에서 여섯 개의 다른 “축복들“을 찾아보라).
이 책은 “역사(history)가 주님의 이야기“(His story)인 것, 곧 인간사는 승리자이신 그리스도의 손 안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다시 오시는 때를 예비하기 위해 격려를 받아야 하며, 섬기도록 영감을 받으며, 정결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받아야 한다."
 
 
계 1:1-3
▣ 네가 본 것-요한계시록 1장-
 
▣ 서론:1장 1-3절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특징들을 보며 이 책이 어떻게 씌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책의 내용을 그리스도께 주셨으며, 주님은 이것을 그의 천사에게 주어 사도 요한에게 주도록 하셨다. “그의 천사“는 “그의 사자“라고 번역되어도 된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앙겔로스(천사)가 “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22장 16절을 읽고서 22장 8-9절은 이 특별한 사자가 구약 예언자들 중의 하나일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데에 유의하자.
 
“지시하다“는 말은 이 책이 신령한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징표나 상징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사실상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책의 내용을 실제로 보았다. 육체적으로 그는 밧모섬에 있었으나(1:9)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런 사건들을 목격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들을 기록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를 하늘로(4:1), 광야로(17:3), 산으로(21:10) 옮기셨다.
이 책을 소리내어 크게 읽는 자들과 마음을 기울여 경청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그러나, 3절은 요한계시록이 공연한 호기심으로 연구할 책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이 말씀들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가까움“과 “속히 될“이란 말은 이러한 예언들이 요한의 시대에 당장 성취되어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들이 성취되는 때의 신속함을 나타낸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이들을 위해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들이 임할 날이 올 것이며, 더이상 연기되지 않을 것이다."
 
계 1:4-8
1. 요한이 아는 그리스도(1:4-8)
 
요한은 11절에서 명령을 받은 대로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그의 안부를 보낸다. 그는 삼위일체의 위(位)를 각각 언급하면서 신성의 경이로움을 개관한다.
 
성부-“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란 뜻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뜻한다(1:8/4:8).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하여 계시며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성령-“일곱“이란 완전을 나타내는 수로서, 성령의 충만함을 뜻한다. 4장 5절에서 우리는 일곱 영이 일곱 등불로 상징되는 것을 본다. 또한 5장 6절에서는 일곱 눈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시며(3:1) 영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성자-그리스도는 선지자(충성된 증인), 제사장(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자, 즉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난 자 중 가장 높은 자), 왕(땅의 임금들의 머리)이라는 삼중 인격으로 제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삼중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도다 ! 아담에게서 잃었던 통치권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획득하였다 !“
 
7절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일곱 구절들 가운데 첫번째 것이다(2:25/3:3/3:11/22:7/22:12 /22:29 참조). 이 재림은 공개적이며(단 7:13/행 1:8- ) 교회의 은밀한 휴거는 아니다(살전 4:13-). 이방인들은 그로 인해 애곡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그들이 찌른 자를 볼 것이다(슥 12:10-12/마 24:27-30)."
 
계 1:9-11
2. 요한이 들은 그리스도(1:9-11)
 
요한은 그가 소아시아 교회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에베소에서 약 110 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에 유배되어 있었다. 마가복음 10장 33-35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보좌에 대해 질문하였었는데, 그 수년 후에 이들 둘에게 환란이 닥쳐왔다. 야고보는 목베임을 당했으며(행 12 장), 요한은 유배되는 고난을 겪었다. 요한은 그가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배되었다.
요한이 바다를 25회나 언급하고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섬에... 성령에“, 참으로 경이로운 국면이다! 우리의 지리적인 위치가 우리의 신령한 축복들을 결코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팔은 중요하다. 4장 1절에서 나팔 소리가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렸는데, 이는 휴거를 표상한다. 또한 8장 2절 이하에서는 나팔을 불자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쏟아졌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총회로 모이는 때, 전쟁을 알리는 때, 특별한 날을 선포하는 데에 나팔을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나팔은 교회를 본향으로 불러갈 것이며(살전 4:16), 이스라엘을 모을 것이고(마 24:31), 세상에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계 8:2-).음성은 요한에게 이 책을 기록하라고 말했고, 그것을 그와는 떨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라고 했다. 지도에서 이 교회들의 위치들 확인해 보라. 이 지역에는 일곱 개 이상의 교회가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영적인 필요를 묘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장차 올 교회들의 신령한 역사를 개관하기 위하여 이 일곱 교회들을 선택하셨다."
 
계 1:12-20
3. 요한이 본 그리스도(1:12-20)
 
요한은 더이상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 수 없었다(고후 5:16). 그리스도는 이제 부활하시고 높이 올리우신 왕인 제사장이시다 ! 요한은 일곱 촛대 사이에서 계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였다(1:20). 우리는 세상의 빛이며 교회는 그 빛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붙들고서 그것을 비치게 한다. 우리는 거대한 등불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있는 일곱 촛대를 갖는다.
 
여기서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상징들을 연구하려면 관주를 이용하면 된다. 그의 옷은 제사장으로서 왕의 옷이다. 흰 머리는 그의 영원성을 말한다(단 7:9). 그의 눈은 빠짐없이 두루보며 그 본 대로 심판한다(단 10:6/히 4:12/계 19:12). 교회들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는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며 심판하신다. 주석으로 된 발은 심판을 나타내는데, 죄가 심판받았던 장소가 놋제단이었다.
“많은 물소리와 같은“ 그의 음성은 두 가지 것을 암시했는데, 곧 바다와 같은 주의 말씀의 능력과, 그리스도 안에 모여진 신적 계시의 “시냇물“인 것이다(시 29편/ 겔 43:2 참조). 그는 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시는데, 이 별들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 또는 사자들(목회자들)이다. 이 교회들로부터 요한에게로 온 사자들이 이 계시록을 그에게서 개인적으로 받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별들은 사자들이다(1:20). 그리스도는 자기의 종들을 그의 장중에 붙드신다(단 12:3).
이 입에서 나오는 검은 심판하는 그의 말씀이다(사 11:4/사 49:2/계 2:12/계 2:16/계 19:19-21). 해같이 비취는 그의 얼굴빛은 그의 영광을 말한다(말 4:2 참조). 22장 16절에서 그는 광명한 새벽별로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직전인 가장 어두운 때에 교회를 위하여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요한은 그의 가슴에 기대었으나(요 13:23)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린다(단 8:17/계 22:8 참조). 오늘날 성도들은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서 그리스도와 “격이 없는“ 것처럼 된 듯한 것을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권위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을 안심시키시고 그의 두려움을 평온케 하신다.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1:8/22:13).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는 음부, 곧 죽은 자의 영역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음부는 어느 날 잃어버린 영혼들을 내놓고 텅비게 될 것이다(20:13-14).
 
그리스도는 1장 19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개관하신다(개요 참조). 다른 개요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보다도 이 책에 관하여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2-3장에서 그리스도는 일곱 교회들을 다루신다. 그는 그 한복판에 서서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그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신다. 주님은 오늘날도 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사람들이나 교파들이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13-16절에 있는 그리스도의 묘사에 대한 각기 다른 부분들이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반복되는 것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교회에 적용시킬 그리스도의 속성이 언급된다. 교회들에 대한 위험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증거를 옮기시는 것이다!(2:5) 그는 그의 신적 의지를 벗어나 있는 촛대를 가지시기보다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한 성읍을 가지려 하실 것이다 !
 
본 장에 나오는 많은 상징들이 이 책의 후반부에 반복되어 나온다. 연구할 때 관주를 살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는 없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만일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 영감된 이 책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면 2-3장은 “이제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특정한 멧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들 중에서 일곱교회를 선택하셨던 것이다. 확실히 다른 교회들에게 죄들이 있었지만 이 일곱편지들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은 가능한 모든 상황을 망라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이 일곱 교회들을 택하여 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있을 수 있는 교회의 형편들을 예증하며, 사도 시대로부터 세상 마지막까지의 예언적 교회사를 예증한다. 일곱은 그저 아무렇게나 정한 숫자가 아니다. 교회들이 관련된 한에 있어서 일곱이란 역사의 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언적 교회사에 나타난 일곱 단계를 보게 된다.
 
에베소:사도시대-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기 시작함.
서머나:초기의 박해받는 교회(주후 100-300년)
버가모:교회가 로마와 결탁함-국가 교회가 됨(주후 312년).
두아디라:로마 카톨릭 시대-간음과 우상 숭배
사데:개신교회-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어 있음.
빌라델비아:“형제 사랑“-이 마지막 시대의 선교하는 교회
라오디게아:마지막 시대의 배교하는 교회-미지근한 교회이며, 그리스도는 밖에 있음.
 
이 일곱 교회들은 교회사를 요약하고 있으며, 고백의 2대 주류인 로마 교회와 개신교의 발전을 요약한다.
 
에베소-사도적교회
서머나-로마가 교회를 박해함 사데-교회들이 로마에서 이탈함
버가모-로마가 교회를 받아들임 빌라델피아-현대의 선교운동
두아디라-로마가 교회를 조정함 라오디게아-미지근한 거대한 교회
결과-로마 카톨릭 결과-무기력한 개신교회각 교회의 “이기는 자“에 대해 특별한 말씀을 하고 계심에 유의하자(2:7/2:11/2:17/2:26/3:5/3:12/3:21). 이 “이기는 자“들은 각 교회에 있는 “초월적인 성도들“로서 그리스도로부터 특권을 부여받게 되는 특별한 부류인가? 아니다. “이기는 자“란 이러한 각 교회들에 있는 참된 신자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매 시대의 각 지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라고 섣불리 믿을수는 없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이기는 자들“이다(요일 5:4-5).
역사의 매 시대에서 고백 교회 내에 참된 성도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로마 카톨릭 주의를 나타내는 두아디라 교회 내에서조차 그러했다 ! 그리스도께서는 각시대에 사는 그들에게 격려하는 특별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며, 또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자신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할 수도 있다.
 
사단도 네 교회와 연관되어 언급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는 서머나 교회를 박해하는 배후에 있으며(2:9), 버가모에 그의 “보좌“(거하는 곳)를 두고 있고(2:13), 두아디라에서 그의 “깊은 교훈“을 가르치며(2:24), 그리고 빌라델비아에서 구령 사업에 전력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하여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회“(회당)를 사용한다(3:9).
그리스도는 이런 교회들에게 몇 가지 위험을 지적하신다.
 
니골라당(2:6/2:15)-이 말은 “하층 계급을 정복하다“란 뜻이며, 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를 암시한다. 이것은 에베소에서 “행위“로 시작하여 버가모에서 교훈으로 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사람들이 교회에 거짓 활동들을 소개하고 오래지 않아 이러한 활동들은 용납되고 즐거워하게 된다.
 
사단의 회(2:9/3:9)-이것은 아마도 신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마귀의 자녀들인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총회를 말하는 듯하다(요 8:44). 회(회당)라는 단어는 단순히 “함께 모이다“란 뜻이며, 그것이 사람들의 총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도 교회를 소유한다 !
 
발람의 교훈(2:14 /민 22-25 장)-발람은 이스라엘이 이교도와 혼합되어도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민이므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죄 가운데로 인도해 갔다. 그는 그들을 저주할 수는 없었으나, 육으로 유혹할 수는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교훈은 교회가 세상과 짝할 수 있다는 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의 황제가 박해를 중단하고 기독교 신앙을 공식적인 로마의 종교로 받아 들인 시기에 나타난 것임에 유의하자 ! 교회와 세상이 결합했고 거짓 선지자들이 가르친 발람의 교훈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세벨(2:20)-이 구절은 우리를 열왕기상 16장에서 열왕기하 10장까지를 회고케 한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이교도 아내였으며 이스라엘을 사악한 바알숭배로 인도해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거짓 가르침으로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다. 신약에서는 이세벨이라고 하면 거짓 가르침을 소개하는 여인을 말한다. 이세벨은 로마 카톨릭 주의가 발전하고 있던 시기에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그리고 우상들에 관하여 강조함으로써 나타난다.
 
▣ 개인적인 멧세지
 
우리는 이 일곱 편지들에서 교회의 예언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의 지교회들이 거짓 교훈의 희생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 서신들에서 개인적인 멧세지를 보아야만 한다.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되므로, 회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이런 교회들에 있었던 영적인 문제들을 살펴보자.
 
에베소-주님을 위하여 분주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진지한 사랑은 없다. 열정이 없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 이런 교회는 통계는 훌륭하지만 그리스도로부터 표류하는 분주한 교회이다.
 
서머나-주님으로부터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으나 위험은 역시 존재한다. 이 교회는 가난하고 고난받는 교회였다. 타협하며 부요하게 되며 박해를 피하게 되기란 참으로 쉽다 ! 라오디게아 교회 만큼 “부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용기를 잃었겠는가 !
 
버가모-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죄의 삶을 살기에도 쉽게 했던 거짓 교훈을 붙든 회원들이 있는 교회였다! 또한 이 사람들은 주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선전하고 있었던 영적인 독재자들의 수중에서 견디기 힘든 상태에 있었다.
 
두아디라-한 여인이 교훈하는 과정에서 자기 위치를 떠났다. 그녀의 교훈은 백성의 죄 가운데로 이끌었다.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로마에 강조를 두고 있으나 어떤 지교회라도 이러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데-생명이 없는 명성 ! 그 교회의 미래는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명성을 떨쳤으나 오늘에는 아무런 사역도 없는 “시대에 뒤진“ 교회에 불과하다. 사멸되는 것만 남아있는 것이다 !
 
빌라델비아-문호를 개방하고서 복음을 세상에 가져가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교회이다. 그러나, 사단의 회가멀리 있지 않아서 언제나 타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라오디게아-예산은 많지만 어떠한 복도 가지지 않은 미지근하고 변절된 교회이다. 이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하나 영적으로는 가난된 교회로서, 그리스도는 교회 밖에 계시며 그에게 순복할 단 한 사람이라도 초청하시고 계신다."
 
 
계 2:1-7
▣ 교회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멧세지-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타락하는 교회(2:1-7)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여기서 강조되고 있다. 그는 별들(교회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시며 교회들(촛대들)을 심판하시러 다니신다. 그는 밧모섬에서 가장 가까운 에베소 교회로부터 시작하신다. 이곳은 거대한 상업 중심지로서 수로 및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로마는 에베소를 자유 도시로 만들었으며, “아시아 제일의 대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길이 약 120미터, 너비 66미터, 높이 18미터쯤 되는 신전으로, 대문들과 127개의 대리석 기둥들이 있었고 이들 중의 더러는 금으로 싸여 있었다. 다이아나(아데미)숭배는 최악에 달해 있는 “종교적인 부도덕“ 그것이었다(행 19-20장 참조).
 
에베소 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칭찬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행하는 일이 아니라 그 배후의 동기인 것이다.
이 교회는 분주한 교회였으며 표준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다. 그 표준이 “무가치한 사람들“(악)을 용납할 수 없었고, 거짓 선생들을 경청치 못하게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모든 면에 있어서 성공적인 교회였다. 오늘날, 줄잇는 각종 행사와 지친 일꾼들로 가득찬 분주한 교회들은 아마도 이 설명에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들 가운데 계시는 이는 무엇이 잘못인지를 보셨다. 이들은 첫사랑에서 떠났다(렘 2:2). “잃은 것“이 아니었다. 지교회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이며(고후 11:2) 사랑이 점점 식어갈 위험도 항상 있는 법이다. 마르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분주하게 일하다가 주님을 사랑할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눅 10:38-42).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수고가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일반에게는 에베소 교회가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한 교회였다.그들에게 주는 주님의 권고는 세 마디였다.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우리가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처음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그리스도와의 처음 만남을 생각나게 하였다. 만일 교회가 그 중심을 바른 상태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촛대가 옮겨지게 될 것이다 ! 지교회는 세상에서 빛을 비춰야 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이는 그 빛은 꺼지고 말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칭찬하신다. 니골라당의 헬라어 어의는 “하층 계급을 정복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교회 내의 제사장 특권 계급(성직자)의 발달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일반 신자들이 외면당한다는 말이 된다. 교회 내에서 목사의 지도력은 있어야 하지만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베소는 교회가 늘 분주했던 때인 사도 시대를 방불케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은 쇠미해지고 있었다. 이 일이 다른 실패의 길을 걸을 여지를 남겨 놓았다."
 
계 2:8-11
2. 서머나 교회-고난당하는 교회(2:8-11)
 
그리스도에 대한 각각의 서술이 1장 13-16절의 묘사를 어떻게 회고케 하는지 살펴보고, 또한 각각의 서술이 그 교회의 특별한 필요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라. 서머나는 박해당하는 교회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고난, 죽음, 부활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계신다(2:8). 서머나는 “씁쓸한“이란 뜻이며 “몰약“이란 말과도 연관된다. 어떤 이는 짓밟는 박해로 인하여 향기를 생각해 낸다. 교회는 언제나 고난의 때를 통과하고 있었을 때 가장 순전하고 향기로웠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말이 없다 !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충성스러웠다. 이들은 그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실상은 부요하였다. 이는 실상은 가난하면서 부자라고 생각한 라오디게아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3:7)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사단의 회, 마귀의 자녀들, 요 8:44/빌 3:2)로 말미암아 모독을 받고 있었다(중상을 받고 있었다). 사단은 모든 박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에서조차 그렇다.
그리스도는 더 많은 박해가 오고 있음을 그들에게 약속하시는데, “십 일“이란 초기 교회에 있었던 열 가지의 큰 박해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서머나는 주후 100년으로부터 300년에 이르기까지 박해받는 교회를 나타낸다. 사단은 삼킬 자를 찾고 있는(벧전 5:8) 사자와 같이 달려왔으나 박해는 교회를 더 강하게 했을 뿐이다.사람들은 몸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둘째 사망 곧 지옥(20:14/21:8)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은 한 번만 죽으면 된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을 것이다!"
 
계 2:12-17
3. 버가모 교회-세속적인 교회(2:12-17)
 
버가모는 “결혼한“이란 뜻이며 이 교회는 국가와 결혼한, 곧 로마 제국과 결합했던 시기인 주후 312년 이후의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십자가 환상을 보고 기독교를 채택하였으며, 제국에 이 새로운 믿음을 받아 들이도록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충성된 교회에 대한 파국의 시작이었다! 버가모에는 중대한 세 가지 잘못이 있었다.
 
사단의 보좌가 있었다-이것은 바벨론의 “비밀 종파“가 그 곳에 총본부를 두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또한 이런 이교 도시에서 핵심 역할을 한 황제숭배를 포함한다.
 
발람의 교훈이 있었다(민 22-25장)-발람을 그가 받은 부와 특권의 답례로 이스라엘 백성을 죄 가운데로 인도해간 삯군 선지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방 우상들을 섬기게 하여 간음에 빠지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얻으려고 세상과 짝한 교회를 본다. 로마제국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와 세상의 권력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매수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있다!
 
니골라당의 교훈이 있었다(2:6)-“행위“에서 정착된 교훈에로 점차 나아간다. 우리는 이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로 분리된 교회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주의의 시작이다."
 
계 2:18-29
4. 두아디라 교회-회개하지 앉은 교회(2:18-29)
 
로마 카톨릭이 이제 완전한 성장을 보여 주는 때이다. 불꽃같은 눈과 주석으로 된 발이 보고서 심판하러 오신다. 그러나, 사악한 교회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교회는 사업과 섬김과 인내를 가지고 있었으나(병원과 학교 등 로마교의 활동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죄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일곱 편지들 중 유일하게 언급되는 여자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이는 아합왕의 아내인 사악한 왕비 이세벨을 가리키고 있다(왕상 16-왕하 10장).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바알 제사장의 딸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바알숭배를 소개하였다. 그녀는 우상 숭배, 살인, 사기 사제술(司祭術)과 마찬가지로 매음과 마법의 죄를 지었다(왕하 9:22). 오늘날 로마의 모습이 아닐 수없다!
 
교회의 이 거짓 여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기 위해(속이기 위해) 거짓 교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녀는 그들에게 죄를 지어도 되는 면허를 주었다! 로마교 이상으로 거짓 교훈과 우상과 죄의 면허를 가진 종교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로마교 이상으로 여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 이들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한다!
오늘날 로마는 배교자라 부른 신교 교회를 향해 우정의 손짓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21절에서 로마가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 예배에서의 몇 가지 것들을 고칠지는 모르지만 그 불경건한 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로 로마는 요한계시록 6-19장에 나오는 대환란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이 땅을 타락시킨 큰 음녀로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교훈을 “하나님의 깊은 것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리스도는 “사단의 깊은 것“이라고 부르신다(24절). 하지만 24-29절은 카톨릭주의 안에서조차 참된 신자들(이긴 자)이 일을 것을 분명히 밝힌다. 로마의 자녀들(22-23절/ 이 제도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교회의 참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굳게 잡을“ 것이다."
 
 
계 3:1-6
▣ 교회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멧세지-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죽어가는 교회(3:1-6)
 
사데라는 이름은 “도피한 자들“이란 뜻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의 더러가 로마의 타락을 피하였던 때인 종교개혁 시대(1500-1700주후)의 교회를 묘사한다. 이 교회는 행위는 가지고 있으나 생명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다! 이것은 거대한 교단적인 프로그램과 세계적인 지도자들, 그리고 눈길을 끄는 건물을 가진 “죽은 개신교주의“를 참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명성뿐이고 실제가 없는 교회이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경고하신다.
 
-깨어있으라, 경계하라.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가 받고 들은 말씀을 생각하라.
-그것을 굳게 잡고 내가 올 때 준비가 되어 있도록 하라!
 
마틴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되돌려 놓았으나, 현대 개신교는 말씀에서 떠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기조차 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충실한) 결실을 맺은“ 개혁자들의 행위를 찾지 못하셨다. 이는 옳은 말이다! 루터는 사람들을 로마로부터 데리고 나왔으나 이들을 충분히 멀리 데리고 가지는 못하였다. 그는 여전히 정교의 연합, 촛대, 법의 등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 그의 행위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5절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불충성한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생명책“은 출생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졌고, 참된 신자들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13:8/21:27).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다(20:15). 물론 사람이 교회 명부에는 이름이 올라 있으나 구원은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적용해도 된다.
“책들이 펼쳐질“ 때(20:12)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오늘날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질 수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은 정통이상으로 더 악화될 수는 없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참 생명을 지니고 있지 못한가!"
 
계 3:7-13
2. 빌라델비아 교회-섬기는 교회(3:7-13)
 
이 이름은 “형제애“란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장 서로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는 과거 250년 간의 선교하는 교회를 나타내고 있다. 드물게 있던 선교 모험을 제외한다면 중세기의 교회들은 복음을 퍼뜨리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들은 종교전쟁을 하며 통치자들과 정치 유희를 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필연적으로 크거나 강하지는 못하지만(9절) 이들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열쇠로 열어 놓으신 봉사의 문을 지나가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교회들이다. “다윗의 열쇠“란 다윗의 아들로서의 주님의 권위를 가리킨다. 이사야 22장 22절에 보면 열쇠는 권위를 상징한다. 세상 도처에서 문들을 닫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문을 여시거나 닫을 때는 아무도 이를 방해할 수가 없다!
 
이 교회는 거짓 교회(사단의 회), 곧 거짓말 하는 자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다. 이 거짓 형제들은 교회임을 주장하나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로 무릎을 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거짓 교회는 인기와 영향력과 돈을 가지고 있으나 이 세대의 어느 날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소수의 성도들 앞에 절을 해야만 한다.
 
10절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참된 신자들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일원이며 이 땅에 임할 무서운 7년 심판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살전 5:8-9 참조).
요한계시록의 요약도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계시록 3장 이후부터 22장 13절까지에는 교회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2-3장은 교회 시대를 개괄하며, 4장은 환란기로 인도한다. 만일 우리가 휴거하기 전에 임박한 환란을 기다려야만 했었다면 22장 20절의 기도는 기도드리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계 3:14-22
3. 라오디게아 교회-변절하는 교회(3:14-22)
 
이 이름은 “사람들의 법“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속한 영적인 지도자들을 더이상 따르지 않는 민주적인 교회를 암시한다. 이 교회가 진리를 외면한 개신교이다. 교회는 미지근하다. 이는 뜨거운 것과 찬 것을 섞었을 때 일어나는 상태로서, 진리에 오류를 섞어 약화된 진리를 지니고 있는 혼합된 교회이다.
이 교회는 부요하다고는 하나 실상은 가난하고 불쌍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회이기에 참으로 비극이다! 오늘날 명성과 부와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는 신앙을 버린 세상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동안은 영적으로 가난할 뿐이다!
 
라오디게아 시는 양모와 부와 의술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18절에서 이러한 표상을 사용하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의복과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의 참된 부요함을 그들에게 주고자 하셨다. 그들의 가치관, 의복, 그들의 환상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사랑으로 그들을 징계하셨을 것이다.
 
20절은 자주 복음에의 초청에 사용된다. 이러한 적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변절한 교회 문 밖에서 계신다는 것이다! 이 교회는 부와 권력은 있으나 그리스도는 없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 주님을 초청만 한다면 그 사람의 생활에 기꺼이 들어가려고 하신다.
교회가 대단히 미지근하고 교만하여져 그리스도께서 떠나 밖에 서 계셔야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이들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냉담한 자들이다! 이 변절한 교회들은 그들의 교단 지도자들을 높이며 경건치 못한 세상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높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계획과 프로그램을 떠나 계시며 또한 그들의 마음에서도 떠나 계신다.
 
물론 이와 같은 모든 교회들이 요한의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모두 존재한다. 이러한 일곱 교회 전체는 요한의 시대로부터 세상 끝까지의 교회들의 역사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그것들 모두는 오늘날 존재하는 교회들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렸고(에베소) 마침내는 그리스도를 향해 미지근한 교회로 끝마치는(라오디게아) 그런 분주한 교회를 갖는다. 거짓 교훈들은 미미하게 시작되나 장성한 후에는 교회에 전체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각 교회에는 참신자들(이기는 자들)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서 그가 돌아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께 충성스럽게 책임을 질 수 있다.
 
성경 학자들은 본 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약속들을 구약사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지적했다. 에덴의 생명나무(2:7), 사람이 동산에서 쫓겨나 죽게 된 것(2:11) 광야를 방황할 때의 만나(2:17),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2:26-27), 제사장 직분(3:5), 성전(3:12),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보좌(3:21) 등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데 모으셔서 오늘날 그의백성에게 적용하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그리스도는 일곱 번이나 교회들에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신다. 교회가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기를 멈추면 사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며 진리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한다.
우리가 비록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믿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2:23).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3:8/3:10) 주의 이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서는 교회에 생명이나 소망이 없다."
 
 
계 4:1
▣ 하늘나라를 들여다 봄-요한계시록 4장-
 
본 장에 나오는 핵심 단어는 “보좌“에서 12회 사용되며, 이 책 전체에서는 37회 사용된다. 요한계시록은 우주를 다스리는 것이 인간들의 보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임을 분명히 밝힌다(시 103:19 참조).
 
1. 보좌로부터의 소환장(4:1)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휴거에 관한 생생한 모습을 본다.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 이 책에 대한 신적으로 주어진 요약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려고 한다. 4장 1절로부터는 계속 예언이 나온다. 요한이 이 시점에서 “들리움받는“ 것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다른 증거이다. 이제 이 경험이 어떻게 휴거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자.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를 영접하도록 열려 있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있다(살전 4:16/고전 15:52).
-그것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그것은 2-3장에서 요약하고 있는 “교회 시대“가 끝날 때 생긴다.
-그것은 요한에게 하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소개한다.
-그것은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요한계시록에 여러 가지 다른 문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봉사의 문(3:8),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닫혀진 문(3:20),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4:1), 하늘나라로부터 나오는 문(19:11) 등이다."
 
계 4:2-3
2. 보좌의 영광(4:2-3)
 
보좌에 앉으신 이는 분명 성부 하나님이신 듯하다. 왜냐하면 성령은 보좌 앞에 있는 등불로 표현되며(4:5) 성자는 5장 6절에서 보좌로 나오기 때문이다. 요한은 성부의 영광을 상징하는 데에 진귀한 보석들을 사용한다. 벽옥은 투명한 돌로서 하나님의 순전하심을, 홍보석은 붉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칠녹보석은 초록색으로서 은혜 및 자비와 관련된 색이다.
이 보석들은 모두 대제사장의 아름다운 흉패에 있는 것들이다(출 28:17-21). 보좌 주위에는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을 인류와 자연계에 언약하셨을 때인 창세기 9장 11-17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언약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무서운 심판이 인류 위에 내려지는 그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비를 보이신다(합 3:2 참조).
계시록 10장 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 위에 두르신 무지개를 보는데 그것은 은혜와 자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무지개와 노아 시대의 무지개 사이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즉, 노아는 하늘에 있는 활 모양의 무지개를 보았을 뿐이지만 요한은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완전한 무지개를 보았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우리가 보는 바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 전체의 원형(原形)을 보게 될 것이다."
 
계 4:4
3. 보좌 주위에 있는 장로들(4:4)
 
이 장로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천사로 볼 수가 없다.
 
우리는 보좌에 앉은 천사들을 본 일이 없다.
면류관을 쓴 천사들을 본 일이 없다.
7장 11절에서 장로들은 천사들과 구별된다.
5장 8-10절에서 장로들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천사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기록은 아무데에도 없다.
그들의 노래에서 그들은 구속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천사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6장 12절에서 천사들은 말하고 한편 장로들은 노래한다.
천사들은 결코 계수되지 않는다(히 12:22).
“장로“라는 명칭은 성숙을 뜻하나, 천사들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다.
 
구약의 성전에는 제사장들의 24반차가 있었다(대상 24:3-5/눅 1:5-9). 이 24장로들은 휴거되어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다니엘이 왕좌가 “높이는“ 것을 보았을 때(단 7:9) 그것들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채워진 보좌들을 보는데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본향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함께 누리는 왕들이요 제사장들이다(1:6)."
 
계 4:5
4. 보좌로부터의 심판(4:5)
 
이것은 은혜의 보좌가 아니라 심판의 보좌이다. 천둥과 번개는 폭풍우가 오고 있다는 경고들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천둥을 치셨으며(출 19:16)하나님은 그의 법을 어긴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천둥을 치실 것이다(시 29편/ 시 77:18 참조).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애굽을 경고하셨고(출 9:23-28), 그리고 또한 이 사악한 세상도 경고하실 것이다. 그의 보좌는 심판을 위하여 예비되었다(시 9:7)!
 
계 4:5-11
5. 보좌 앞에 있는 것들(4:5-11)
 
등불-이 등불들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들이며(1:4), 불로 소멸하는 성령을 나타낸다(사 4:4). 그리스도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고 계신데, 이는 일곱이 완전을 나타내는 수이기 때문이다(3:1). 은혜 시대에는 성령이 평화의 비둘기로 묘사되지만(요 1:23-34) 교회가 들림받은 이후에 성령은 불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유리 바다-우리는 여기서 구약 성전과 비슷한 하늘의 성전을 본다(11:19/히 9:23). 일곱 등불은 일곱개로 된 촛대와 상응하며, 유리 바다는 물두멍과 상응하고, 보좌는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서 통치하셨던 곳인 법궤와 상응한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은 하늘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있음을, 8장 3-5절은 향단이 있음을 시사한다.
24장로들은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상응되며, 생물들은 휘장에 수놓아진 천사들과 상응한다. 성전의 물두멍(또는 “바다“)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7장 23-27절을 참조하라. 하늘의 바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불은 그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그의 심판을 나타낸다.
 
생물들-넷은 땅의 수이며,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맺으신 언약을 보게 된다. 창세기 9장 8-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과 새와 가축과 짐승과 언약하셨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피조물 각각이 생물의 얼굴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피조 세계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으나 죄로 말미암아이 권세를 잃었다(창 1:28-31/시 8:1-).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왕국이 건설될 때 그 권세를 다시 얻게 될 것이다(사 11:6-8/사 65:25 참조).
네 생물(피조 세계를 상징함)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는 것은 그가 피조 세계를 통제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며, 또한 그가 피조물을 한 날에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하시겠다는 그의 약속을 지키실 것을 가르치고 있다(롬 8:19-24).
 
이 네 생물은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천사와 에스겔 1장과 10장에 나오는 피조물들의 결합이다. 이 생물들에는 이름이 없다.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각 생물이 네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4장 7절에 나오는 넷에 상응한다. 보좌 앞에 있는 이런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돌린다. 시편 148편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죄악된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기를 거절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이 찬양에 장로들이 함께 하여 그 보좌 앞에 자기의 면류관을 던진다. 이 면류관들은 땅에 있을 동안에 봉사한 것을 인하여 받은 상급을 상징한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모든 찬송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다는 것을 생생한 방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11절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몇 개의 송영들 중 첫번째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요한 계시록 5장 9-10절에서 생물과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함께 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이라도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받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6-19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그 죄로 인해 공평히 형벌하실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하늘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무대가 이제 마련된다. 교회는 하늘로 취한 바되었고 주님은 보좌에 계신다. 하늘의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며 그의 진노를 쏟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명칭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4:8)인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역사는 이 명칭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사용하였던 공식칭호였음을 말해 준다. 그 황제는 요한을 밧모섬에 보냈던 박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존귀를 취하려 할지 모르지만,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주이심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
 
 
계 5:1-5
▣ 일곱인으로 봉한 책-요한계시록 5장-
 
1. 인봉한 책(5:1-5)
 
“책“이라는 말은 물론 두루마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제본한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두루마리는 강가에서 자라난 갈대로 만들어졌으며 값이 비쌌다. 이 두루마리는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리 증서이다. 로마인은 언제나 일곱 인으로 봉했다. 이 두루마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으심의 공로로 인해 창조를 주장할 권리를 허락받는 유언장 또는 유서이다(9절).
유언장은 상속자에 의해서만 개봉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만물의 후사“이시다(히 1:2). 어떤 연구자들은 6-9장에 나오는 심판이 이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루마리 양면에 씌어졌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더이상 첨부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악된 세상의 운명은 정해졌다.
 
이 장면의 배경은 땅을 소유하는 유대인의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가난하여 자기의 땅이나 자신을 팔게 되면 친척에 의해 구속을 받을 수가 있다. 룻의 이야기는 이 법에 근거하고 있다(렘 32:6-15/레 25:23-25 참조). 이 구속자는 그 사람의 친척으로서 그의 재산을 구입하여 그 친척을 해방시키기를 원해야 하며 또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모든 피조물은 죄와 사단과 죽음의 속박 아래 있어 왔으나 이제 우리의 친족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을 자유롭게 해방하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만이 구속하실 수가 있다고 분명히 밝히신다. 영광 중에 있는 어떤 성도나 땅의 어떤 사람이나, 또는 죽음의 세상에 있는 어떤 영혼도 이 책을 취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럴 만한 자격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할 때 성인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높아지신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왜 성인들을 의존해야 하겠는가 ! 요한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울었다.
 
그는 피조물인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다.
그는 4장 1절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이 이 두루마리가 펼쳐지기까지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한은 로마서 8장 23절에 나오는 “탄식“에 동참하고 있었다. 천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써 그의 눈물을 마르게 했다. “사자“라는 이름이 우리를 창세기 49장 8-10절로 데리고 가며, 그것이 다윗의 계보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나타낸다.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주님의 신성을 말하며, 다윗으로 말미암아 나신 자임을 뜻한다(사 11:1/사 11:10). 그리스도는 우세하셨기 때문에 이 책을 펼 자격이 있으시다. 우세하다는 말은 이기는 것(2:7/2:11/2:17/2:26 , 등), 정복(6:2) 또는 승리하는 것(15:2)을 뜻한다. 어린 양이 승리하셨다!"
 
계 5:6-10
2. 죽임당한 어린 양(5:6-10)
 
요한은 사자를 찾고 있었는데 어린 양을 보았다! 사자와 양이라는 두 이름에서 우리는 구약 예언의 이중적인 강조점을 본다. 사자로서 그리스도는 정복하고 다스리시며, 어린 양으로서 그는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다. 우리는 고난과 영광을(눅 24:26/벧전 1:11), 그리고 면류관과 십자가를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요한계시록에서 29회나 어린 양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사실상 성경 전체는 “어린 양“이라는 주제로 추적, 요약될 수 있었다. 창세기 22장 7절에서 이삭은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고, 세례(침례)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응답하였다. 이제 요한은 “어린 양이 합당하시도다!“고 쓰고 있다(출 12장/ 사 53장 참조).
 
“죽임을 당한“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하여 목이 잘린“이란 뜻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희생제물로 바쳐졌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가 피조계의 상속자가 되시며 이 책을 취하여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책을 취하실 때 장로들(영화롭게 된 교회)은 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멸망할 피조계를 구속하기 위한 그의 죽으심을 찬미한다. 하늘은 십자가에 대하여 노래한다! 향을 담은 대접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모형으로 보여 준다(시 141:2/눅 1:10). 이 말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있는 성도들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기도, 곧,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는 상징적인 교훈이다.
6장 9-11절과 8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와 시련을 당한 자기 백성의 기도에 어느 날 응답하실 것에 대해 살펴보자. 기나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것과 세상의 잘못을 곧게 하실 것에 대해 기도해 오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이 기도들에 응답하실 것이다.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는 그들이 고대하는 바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문자 그대로 지상에서 왕노릇하실 것에 대해 말하는 또하나의 증거이다(10:4)."
 
계 5:11-14
3. 큰 음성으로 외치는 무리들(5:11-14)
 
장로들은 노래부르나 천사들은 “큰 음성으로 말한다.“ 천사들이 노래한다는 성경의 증거는 한 군데도 없다. 욥기 38장 7절은 창조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고 언급한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에 나오는 “크리스마스의 천사들“은 노래함으로써가 아니라 “말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늘에 있는 허다한 천사들은 어린 양이 이 책을 취할 때 큰 소리로 찬양하는데에 그들의 음성을 합했으나 노래하지는 않았다. 노래는 구원의 기쁨을 맛본 하나님의 성도들이 차지할 특권이다. 성도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천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그러나, 천사들은 구원받을 수 없으며 성도들과 더불어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도 부를 수 없다! 천사들의 수에 대해서는 다니엘 7장 10절을 참조하라.
 
그리스도만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다음의 송영을 그리스도의 지상생활과 대조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이로다“ “그는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요 19:7)
“그는 사단의 능력으로 일한다“ “그는 능력을 지니시기에 합당하도다!“
(고후 8:9)
“우리를 위하여 그가 가난하게 “그는 부유하시기에 합당하도다!“
되셨다“(고후 8: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 “그는 지혜를 지니시기에 합당하도다!“
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 1:18)
“그리스도께서 약하시므로 십 “그는 강함을 소유하시기에 합당하도다!“
자가에 못박히셨도다“(고후 13:4)
“너희가 나를 무시하도다“(요 8:49) “그는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아니한다“ “그는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요 8:5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는 축복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저주를 받으셨다“(갈 3:13)천사들이 찬미의 말을 마치자 모든 피조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 합세한다.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원수를 이기시고 그의 왕국을 설립하실 때 임하게 될 구속을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다고 암시한다(13절/ 빌 2:10-11/골 1:20 비교). 모든 피조물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찬양한다(요 5:23 참조).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은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이다 !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와 모든 휴거된 성도가 성부와 성자를 높이며 찬양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인봉한 책을 떼실 작정이시며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이다. 환란의 이중 목적을 명심하자. 곧, 그들의 죄로 인해 열방을 벌하시는 것과, 이스라엘을 깨끗케 하시어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임하실 때 믿는 남은 자들로 그를 영접하도록 예비케 하시는 것이다(계 19:11).
이 땅의 거민들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이 영광스러운 장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범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 때 어린 양은 책을 펴기 시작하실 것이며 심판이 임할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지금 당신이 구원받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일 것이다 !"
 
 
계 6:1-2
▣ 인봉한 책을 펴다-요한계시록 6장-
 
우리는 이제 다니엘의 70이레(단 9:27), 곧 7년환란기의 전반부에 들어서고 있다. 어린 양이 인봉한 책을 취하셨으며(피조물에 대한 그의 권리증서) 인을 떼시고 불경건한 세상에 전쟁을 선포하시려는 순간이다. 하늘에 있는 인(印)들을 하나씩 뗄 때마다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 인들을 마태복음 24장에 나와 있는 마지막 때에 관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와 비교하는 것을 잊지 말라.
 
1. 첫째 인-적그리스도가 일어나 권력을 잡는다(6:1-2)
 
첫번째 네 인들을 떼자 보좌 앞에 있는 네 생물 중의 하나가(4:6-11) 말탄 자와 말을 “오라“고 부른다. 처음 말은 흰색이고 그 말을 탄 자는 활과 면류관을 가졌다. 이 말을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나오는 말과 혼동하지 말라. 그곳에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말을 타고 정복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한 자는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그리스도로서 이 땅을 정복하는 자이다. 그가 화살이 아닌 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평화롭게 열방을 정복할 것을 시사한다. 교회가 휴거된 후에 적그리스도가 승리 가운데 행진할 수 있도록 길이 열릴 것이다(살후 2장). 일시적으로 거짓된 평화가 있을 것이지만 그가 유럽을 연합시키고 유대인과 조약을 맺게 할 것이다(살전 5:2-3). 이 일은 마태복음 24장 5절과 평행을 이루며 요한복음 5장 43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한다."
 
계 6:3-4
2. 둘째 인-전쟁(6:3-4)
 
세계적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할 때 무서운 전쟁은 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6-7절과 평행을 이룬다. 붉은 색은 공포나 죽음과 관련된 색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전쟁하는 붉은 말(6:3-4), 붉은 용(12:3), 붉은 빛 짐승(17:3)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에게 이 땅의 평화를 빼앗아갈 권위를 주시는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화살이 없는 활을 큰 검으로 바꿔 주신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국제 간의 협상이나 토론이라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명백하게 말해 준다."
 
계 6:5-6
3. 세째 인-기근(6:5-6)
 
기근과 전쟁은 함께 다니기 마련이다(마 24:7 참조). 검은 색은 기근을 생각하게 한다(렘 14:1-2/애 5:10 참조). 말탄 자(여전히 적그리스도임)가 저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식량 소비를 통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밀 한 되는 1리터가 약간 더 되며,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임금에 해당한다. 달리 말하자면, 식량이 너무도 귀하여 곡식 1리터를 구하려면 남자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자를 위하여는 감람유나 포도주가 부족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자. 우리는 여기서 부자는 더 부요하게 되고 사치를 즐기지만 가난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여져서 연명하기조차도 어렵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생활 필수품만은 주겠다는 모든 인위적 계획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곡식과 감람유와 포도주가 이스라엘의 주 생산품이라는 점에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호 2:8).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했으므로 그 자원을 보호하고자 원했을 것이다.
 
계 6:7-8
4. 네째 인-사망(6:7-8)
 
“청황“이란 색은 문둥병의 병색(病色)을 나타낸다(레 13:49). 사망이 이 말을 탔고 “음부“(지옥이 아님)도 그와 함께 타고 있다. 사망은 시체를 요구하고 음부는 영혼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땅의 인구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를 그들에게 주신다 !
네 가지 방법이 사용되는데, 검(폭력과 전쟁)과 흉년(기근)과, 사망 또는 흑사병(전쟁과 기근에 동반하는 질병)과 짐승들(자연은 문명이 타락할 때 이 권한을 인계받는다)이다. 이와 평행을 이루는 귀절인 에스겔 14장 21절을 읽어보라. 들짐승들조차 굶주려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 ! 교회가 하늘로 데려감을 당한 후에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세상이 맞이할 심판이란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마 24:7)"
 
계 6:9-11
5. 다섯째 인-순교자들(6:9-11)
 
구약의 제사장은 놋제단 아래 희생제물의 피를 부었다(레 4:7). 피는 생명(또는 영혼, 레 17:11)을 말하는 것이므로 하늘의 제단 아래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있다. 이들은 휴거 이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의 생명으로써 증거를 나타낸 사람들이다. 그들을 죽인 자들은 그 당시까지도 여전히 지상에 생존해 있었고 아직 심판을 받지 않고 있었다.이 순교한 성도들은 신원해 줄 것을 기도한다(시 74:9-19/시 79:5/ 시 94:3-4 참조). 이 세대에 사는 성도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바울과 스데반이 그렇게했던 바이다(눅 23:34/행 7:60/딤후 4:16).
 
그러나, 지금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도, 곧 구원해 줄 것과 신원해 줄 것을 바라는 기도에 응답하실 때인, 심판이 때일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할 때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 계시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24장 9절과 평행을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먼저 그들의 형제들이 좀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12장 11절, 14장 13절, 그리고 20장 4-5절에서 죽임당한 다른 성도들을 본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중에는 그 때까지도 땅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도 있을 것이다(11:1-7). 요한계시록 20장 4절은 이 환란의 순교자들이 천년왕국 동안에 부활하여 왕노릇할 것임을 시사한다.
 
계 6:12-17
6. 여섯째 인-세상의 혼돈(6:12-17)
 
이 귀절은 누가복음 21장 25-26절과 평행하다(욜 2:30-31/욜 3:15/사 34:2-4/사 13:9-10 참조). 계시록에는 세 지진이 지적되어 있다(6:12/ 11:13/16:18-19). 문자 그대로의 지진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이 지진들과 더불어 이 땅과 하늘에 소동들이 생겨서 크건 작건 간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귀절들이 원폭전의 결과, 곧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큰 땅이 옮기워지고, 사람들은 땅의 굴을 찾아 핵 방사선을 피할 것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으나,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로부터, 그리고 그의 진노로부터 피하여 숨는 것이지 사람이 만든 장치로부터 피하여 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5절은 환란의 전반 삼년반 동안의 생활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왕국들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 오늘날은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나 이것은 변할 것이다(16:12-14).
적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하찮은 많은 왕들을 거느린 “유럽 연맹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 곧 회생한 로마 제국을 통치할 것이다(17:12-14). 환란 날의 또다른 특징은 군주주의이다. “장군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로마의 칭호로서(사단 사령관)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부활한 로마 제국에 줄곧 따라다니게 될 칭호이다. 노예들(종들)도 있을 것이다. 18장 13절을 보면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 바벨론의 상품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큰 부와 큰 빈곤이 있을 것이며 열방의 경제를 파산시킬 부의 재분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심판은, 마치 열방의 경제적 정치적 제도들을 뒤흔들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에서 문자적인 물리적 파괴를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일들은 적그리스도가 그의 통치를 확장하는 데 용이하게 할 것이다.
 
땅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심판을 내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 것이지만 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 ! 그들은 반석이신 그분안에 피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바위틈에 숨으려 할 것이다. 환란의 처음 삼년 반은 후 삼년 반을 위한 준비 과정이며, 후반기는 하나님의 진노의 기간으로 알려져 있다(11:18/12:12/14:10/18:3 참조).
그런데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는 휴거가 있는 것은(여섯째와 일곱째 나팔사이에도 있다(10:1-11:13). 환란기 중에 구원받게 될 두 부류의 구속받은 큰 무리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 연구에서 이 부류를 검토할 것이다.
 
요약컨대, 적그리스도는 평화로운 정복자로서 그의 역할을 시작할 것이나, 열방을 통제하기 위하여 전쟁과 경제적인 통제로 호소할 자라는 것을 주목하자. 세상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므로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를 받아 들일 것이다."
 
 
계 7:1-8
▣ 구원받은 두 무리-요한계시록 7장-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을 떼는 것 사이에 하나의 휴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멧세지를 땅 끝까지 전할 십 사만 사천의 유대인 선교사들을 인치시는 잠시동안은 심판을 멈추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오고 있음에 대하여 살펴보았다(6:15-17). 따라서 하나님은 폭풍우를 가라 앉히시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뻗치신다. 우리는 여기서 두 그룹의 구속받은 백성을 본다.
 
1. 인맞은 유대인들(7:1-8)
 
하늘의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며, 여기서 심판은 특별히 땅과 바다와 초목에 임하는 심판이다.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들은 처음의 네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다. 왜냐하면 심판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8:6-12 참조). 동쪽으로부터 온 천사는 하나님의 인을 붙들고 있다. 인은 소유와 보호를 뜻한다(9:4).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쳐진다(엡 1:13-14). 성령의 인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즉시로 일어난다. 또한 이 인침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유업을 확신케 한다. 인치는 천사는 바람의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종이 아무리 불순종했다 해도 상관치 않고 그가 구원받을 때까지 그들의 심판을 보류할 것을 명령한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에스겔 9장에서 찾아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주께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던 것을 기억하자(마 24:31). 바람의 천사들과 더불어 우리는 또한 불의 천사(14:18)와 물의 천사(16:5)를 본다. 이 천사들은 자연의 활동에 자주 관여되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들이다.
 
이 인맞은 종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들로부터 각각 일만 이천씩이다. 어떤 악의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십 사만 사천은 교회(새 이스라엘)를 상징한다고 가르쳤는데, 이는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역사의 이 시점에서 교회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지상에 생존해 있는 참유대인으로서 십 사만 사천을 가르치고 있는 본 장을 여호와의 증인은 오용했다. 그들은 아마도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될 것인데, 이 두 증인은 환란의 처음 삼년 반 동안에 말씀을 전파할 사람들이다(11:1-12 참조). 이들은 복음을 온 족속에게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보호받은 선교사들, 곧 144,000명의 “사도 바울들“일 것이다 !
이렇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4절의 그리스도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며, 그 결과 수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7:9-). 바울이 그의 사역 기간 동안에 얻은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면 십 사만 사천의 그런 선교사들이 과연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단 지파가 명단에서 빠지고 그 대신 므낫세 지파가 그 자리에 든 것에 흔히들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단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이끌어갔다(삿 18:30/왕상 12:28-30).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의 이름을 지우겠다고 약속하셨다(신 29:18-21).
적그리스도는 단 지파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렘 8:16)."
 
계 7:9-17
2. 구원받은 이방인들(7:9-17)
 
유대인들은 계수되었으나 이 무리들은 셀 수가 없다. 이 이방인들은 십 사만 사천 인이 수고한 결실이며 하늘 아래 있는 온갖 족속으로부터 난 자들이다. 이들은 교회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좌 앞에 있는 그들을 보지만 장로들처럼 보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14절은 이들이 큰 환란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요한은 여기서 이들이 하늘 보좌 앞에 서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하는 것을 본다. 그들이 든 “종려가지“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축복을 즐거워했던 구약의 장막절을 암시한다(레 23:40-43). 이 절기에 이들은 흰 옷을 입는데, 이것은 어린 양으로 말미암은 그들의 의로움을 가리킨다.
14절은 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느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15-17절은 이 이방인들이 땅에서 참아야 했던 시련들을 암시한다. 이들은 먹을 양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굶주리고 목말라했다. 이들에게는 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할 어떠한 곳도 없었다. 눈물과 시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이방인들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나오는 “양“에 속하는 것 같다. 그들은 환란의 때에 유대인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던 이방인들이다.
이 신자들은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했을 것이며(13:16-18), 따라서 사거나 팔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움과 핍박을 받은 유대인들과 친교를 맺은 것이 통치자들의 진노를 일으켰을 것이므로, 이들은 음식의 배급(13:17), 물이 피로 바뀜(16:4), 그리고 열(16:8-9) 등과 같은 환란의 무서운 심판을 참아야 했을 것은 물론이다.십 사만 사천 인이 환란을 통과하는 한편, 큰 무리의 이방인이 환란의 때에 자기의 생명을 바칠 것임에 주목하자. 6장 9-11절에 나오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이러한 이방인 신자들을 상주실 것이며 그들의 고난을 보시고 그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14-17장의 약속들이 하늘나라가 아니라 천년왕국에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은 이 환란의 순교자들에 대한 특별한 부활을 가리키며 왕국 시대 동안에 살아서 왕노릇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14-17절을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축복받은 국가에 적용해야할 적절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이 모든 고난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불신앙 가운데 그들의 땅으로 돌아와서 성전 예배를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적그리스도는 유럽 연맹국을 다스리고 있고,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과 혼돈이 있다. 두 증인(모세와 엘리야)이 이스라엘에서 전파하고 있고 하나님은 이 민족 중의 남은 자들, 곧 이방인들 중에서 그의 증인이 될 십 사만 사천의 유대인들을 인치셨다.
물론, 이들이 사역에는 박해가 따를 것이며 이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마 25:36). 그러나, 이방인 회심자들은 그들을 지원할 것이며, 그들의 공개적 증거로 인하여 이방인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4절은 은혜 시대 동안에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교회가 이동된 후에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진리는 믿지 않으려 했지만 거짓말을 믿으려 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나 그것을 고의적으로 거절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라진 후에도 복음을 믿을 큰 무리의 이방인들이 있을 것이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는 환란 기간 동안에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더욱 현명하다!
 
우리는 본 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그룹(7:1-8) 제2그룹(7:9-17)
유대인들 이방인들
계수됨-십사만사천명 아무도 셀수 없을 만큼 큰 무리
인맞고 보호맞음 인맞지 못함-많이 죽을 것임
땅에서 증거하는 일을 보임 하늘에서 예배하는 것을 보임
하나님의 특별한 선교사들 그들의 증거를 완수한 사람들
왕국으로 들어감 이스라엘과 함께 왕국에 참여함"
 
 
계 8:1-6
▣ 처음의 여섯 나팔(Ⅰ)-요한계시록 8장-
 
이제 일곱째 인을 뗌으로써 그 다음에 나오는 연속된 심판이 소개된다. 곧, 일곱나팔의 심판이다. 구약에서 나팔은 전쟁을 알리거나(민 10:5-9), 진을 이동할 때(민 8:1-), 절기를 알릴 때(민 10:10), 심판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수 6:13-). 나팔 소리는 능력과 권위의 상징이다(출 19:16).
15-16장에 나오는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사이에 분명한 평행이 있음을 유의하자.
 
나팔 심판 대접
1 8:1-7 땅 16:1-2
2 8:8-9 바다 16:3
3 8:10-11 강 16:4-7
4 8:12-13 하늘 16:8-9
5 9:1-2 인류-고통 16:10-11
6 9:13-21 군대-유브라데 16:12-16
7 11:15-19 진노가운데 있는 열방 16:17-21
 
일곱 대접은 나팔의 심판에 잇따른 심판이다. 나팔이 처음 삼 년 반에 속하는 반면 대접은 후 삼년 반에 쏟아지는데, 그 시기가 “하나님의 진노“로 불리워졌다(14:10/15:7).
 
1. 하늘의 예비(8:1-6)
 
고요함(1절)-이것은 폭풍전의 고요이다(슥 2:13/합 2:20/사 41:1/습 1:7/습 1:14-18 참조). 7장 10-12절에서 우리는 천군의 큰 찬양소리를 들지만, 여기서는 심판이 곧 임하게 될 순간의 숨막힐 듯한 하늘의 고요를 본다.
 
탄원(2-6절)-4장에서 우리는 하늘의 성소가 있음을 살폈는데, 여기서는 기도를 상징하는 향단을 본다(레 16:12/시 141:2 참조). 이 천사는 하늘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 “성도들의 기도“는 영광 중에 있는 성인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다. 5장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책을펼 만한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다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 기도들은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이다. 이 향은 특히 환란의 순교자들이 외치는 기도를 나타낸다(6:9-11/20:4). 시편에 나오는 원수 갚음의 많은 기도들은 그런 고난의 날 동안에 이스라엘에 의해 정당하게 사용될 것이다.
제단으로부터 땅에 쏟아진 불은 불신자들에게 부어질 하나님의 진노를 말한다.(5절- 4:5/11:19/16:18 비교). 따라서 천둥은 언제나 폭풍이 오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곱 천사들은 행동을 취할 자세를 갖추고서 하나씩 하나씩 소리를 낸다."
 
계 8:7-11
2. 땅에 임한 황폐(8:7-11)
 
첫째 심판은 애굽의 일곱째 재앙과 평행을 이룬다(출 9:18-26). 애굽은 세상의 모형이거나 또는 모사(模寫)이며, 따라서 모세시대의 재앙들이 환란의 때에 세계적인 규모로 반복된다는 것은 논리적인 생각이다. 우박을 동반한 폭풍은 혹독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우박에 불이 섞일 때 그 황폐함이란 어마어마할 것이다.
 
수목과 푸른 풀의 삼분의 일은 이 첫째 나팔 심판으로 파멸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8-9장에는 “삼분의 일“에 대한 언급이 13회 나온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다만 적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되는 부활한 로마제국이 차지한 지역만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팔은 바다에 영향을 미쳐 삼분의 일을 피로 변하게 할 것이며 피조물의 삼분의 일을 죽일 것이고 삼분의 일의 배를 깨뜨릴 것이다. 이것은 애굽에서의 첫 재앙과 비교된다(출 7:19-21). 떨어지는 불타는 물체는 문자 그대로의 산이 아니라 큰 산과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여기서 지중해만을 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지구상의 모든 바다가 포함되는 것 같다.
세째 나팔은 강에 영향을 끼치며, 그 물을 쓰게 만든다. 10절의 큰 별은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는(욥 9:9-10)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별이다. 예레미야는 어느 날 이스라엘이 쓴물을 마셔야만 할 것을 예언하였다(렘 9:14-15). 이 쓴 맛은 천년왕국이 건설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왜냐하면 에스겔 47장 6-9절에 치료하는 물이 환란의 심판으로 생긴 쓴 결과들을 이기게 될 것으로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이 심판들은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모세 시대에 이와 같은 심판들을 내리셨다면 온 세계에 임할 이러한 심판을 보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단지 상상할 수 있는 바는 농장(목장)과 물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무서운 경제적 결말 뿐이다. 인류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의 축복들을 감사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일부를 가져가셔도 사람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9:20-21)."
 
계 8:12
3. 하늘의 동요(8:12)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천체계의 빛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복음 21장 25-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바의 성취이며 또한 아모스 8장 9절에 나오는 아모스의 예언이 성취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체계를 창조의 네째 날에 만드셨는데 네째 나팔로 그 빛을 잃게 하실 것에 대해 주목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한 가지 것은 땅에 공포가 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의 징후를 항상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 공포도 사람들을 회개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식물에게서 햇빛을 빼앗는 짧아진 낮으로 인해서 식물계에는 엄청난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환란의 때에 그 날들의 감하심이 생명의 구원을 뜻한 것으로 말씀하셨다(마 24:22).
그러나, 낮이면 어두움이 일찍 찾아오며, 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어둡게 될때, 거리에 발생할 죄와 못된 짓과 가공할 일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한다“고 요한복음 3장 19-20절은 말한다. 땅에는 전에 없던 범죄의 물결이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계 8:13
4. 천사의 선포(8:13)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문자 그대로의 사자로서, 다음의 세 가지 심판들이 더욱 혹독할 것임을 세상에 경고한다! 당신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마음에 새기고서 회개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구절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3:10/6:10/ 11:10/13:8/13:14/14:6/17:8). 그것은 단지 땅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목적으로 하여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속칭 “속물들“이다. 곧, 하늘나라와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이 세상을 위하여 살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빌립보서 3장 18-20절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잡족“으로 묘사되는데, 그들은 애굽의 음식을 탐하고 하늘의 만나를 거절했던 자들이다. 이러한 류의 사람들은 환란을 지나야 할 것이며(계 3:10), 하나님의 성도들을 살해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계 6:10). 이들은 하나님의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게 될 때 기뻐할 것이다(11:10). 그러나, 12장 12절에서는 대조적으로 하늘이 사단의 추방을 기뻐한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이런 땅의 거민들이 짐승을 예배할 것으로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완전히 거절할 것을 뜻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들은 외적으로는 종교를 위장할 것이지만 구원하는 믿음의 내적 경험은 갖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거절한 연고로 거짓을 믿을 것이다.
 
영혼마다 각자가 대답해야 한다.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가, 아니면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는가?"
 
 
계 9:1-12
▣ 처음의 여섯 나팔(Ⅱ)-요한계시록 9장-
 
유명한 성경 학자이며 요한계시록의 전문가인 월버 엠 스미스(Wilbur M. Smith)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17장과 18장에 나오는 바벨론에 대한 정확한 정체를 밝히는 것은 뒤로 하더라도, 본 장에 나오는 두 가지 심판의 의미를 밝히는 것도 요한계시록에 있어서 최대의 주된 난제일 것이다.“
8장 13절에 나오는 천사는 이 땅에 세 가지 “화“가 있을 것을 약속했으며, 이 화들은 다섯째(9:1-12), 여섯째(9:13-21)와 일곱째(11:15-19) 나팔 소리와 더불어 보내진다. 요한계시록의 개요를 확인해 보면 우리는 이제 환란의 중반기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인데, 이 시기에 몇 가지 위기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1. 풀려난 음부의 군대(9:1-12)
 
별(1, 11절)-요한은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즉, 과거의 어느 때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것은 사단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그는 “계명성“이라고 불리워지며 그것은 “밝음“ 또는 “새벽별“을 뜻한다. 이사야 14장 12절 이하는 연대를 모르는 과거에 사단이 떨어진 것을 묘사하며, 에스겔 28장 11-19절은 이 광경을 보완해 준다(눅 10:18 참조).
하나님은 사단에게 “무저갱의 열쇠“를 주신다. 이 무저갱은 음부나 지옥은 아니며 지하 어딘가에 있는 감옥으로, 귀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붙들려 있는 곳이다. 누가복음 8장 26-36절을 읽고 귀신들이 이 못에 보내지는 것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알아보자. 1장 18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열쇠를 쥐고 계심을 본다. 따라서 사단은 그 권세를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 떨어진 별(사단)이 11절에서는 또한 파괴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음부의 귀신들을 다스리는 왕이며, 그의 파괴적인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사용한다.
 
연기(2절)-연기는 귀신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3절은 이것들이 연기로부터 나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저승은 어두움과 불의 장소이다. 하나의 큰 용광로로 비교되는 곳이 이 곳이다! 지옥에 관하여 농담을 하는 사람은 그 고통이 어떠한지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무서운 어두움은 애굽에서의 재앙(출 10:21-29)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 때 이 어두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단은 어두움의 왕이다. 이 “무저갱“은어느 날 짐승을 내놓을 것이며(11:7/17:8), 마귀는 어느날 이 곳에 던져질(20:1-3) 것이므로 주목할 점이 있다.
 
전갈 같은 피조물(3-10절)-전갈의 길이는 6인치(약 15cm)정도이며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성지(이스라엘)가 본산지이다. 전갈의 주요 무기는 꼬리 끝으로 쏘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고통스러운 심판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신 28:38/신 28:42/왕상 12:11-14). 연기로부터 나온 이 지옥의 조물들은 또한 메뚜기와도 비교되는데, 그것은 메뚜기 재앙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일반적인 벌이었기 때문이다(욜 2장 참조).
이것들이 문자 그대로의 메뚜기가 아니라는 것은 4절에 나오는 경고에서(8:7), 그리고 그들에게 왕이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밝혀진다(11절/ 잠언 30:27 참조). 이것들은 인맞은 유대인들을 괴롭게 굴지 못하도록 금해지며(7:1-3), 이것들의 기간은 다섯 달로 제한된다. 이것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사람들은 죽고 싶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실 것이다(렘 8:3 참조).
메뚜기 모양에 대한 설명은 심판의 공포를 더하게 한다. 아마도 이것들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 무저갱에서 풀려나온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들인 것같다. 이 심판은 애굽의 여덟번째 재앙과 비교된다(출 10:3-10). 이것들이 짐승(7절, 말), 사람, 그리고 들짐승(8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4장 7절에 나오는 하늘의 생물을 사단이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이 첫째 화이며, 사람들은 고통의 때를 참아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다가오는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바이다!"
 
계 9:13-21
2. 강에서 풀려난 천사들(9:13-21)
 
이것은 8장 13절에 약속된 세 가지 “화“ 중의 두번째 것이다. 향단으로부터 음성이 나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리워져 그들의 피를 신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6:9-11/8:3). 7장 1절에서 우리는 감금하도록 한 네 천사들을 보았는데, 여기서는 풀려나게 된 네 천사들(타락한 천사들이 분명하다)을 본다.
유브라데강은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주목거리가 되어 왔다. 이 강은 에덴에서 발원하였는데, 여기서 역사가 시작했고 또한 여기서 역사의 절정을 이를 사건들을 나타낼 것이다(16:12-). 바벨론은 유브라데에 위치해 있다(계 17-18).
이 네 천사들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그 때“(년, 월, 일, 시)를 예비하였고 또한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6장 8절에서 우리는 사람 사분의 일이 죽임당한 것을 보는데 그것은 오는 심판을 위해서 사람 사분의삼을 남긴 것이다. 만일 이 천사들이 삼분의 일을 멸망시킨다면 결국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이 천사들이 풀려나면 2억의 기병대를 전쟁터로 보낸다. 이 사단의 기병대는 모양이나 사용하는 무기에 있어서 다른 군대와는 다르다. 불과 유황과 연기가 그들의 주된 무기이며, 이들은 뱀같이 꼬리도 갖는다.
이것은 1-12절에 나오는 군대를 달리 묘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군대는 죽이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을 받았으나 이 군대는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6장 9-11절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유일한 방법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이번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무서운 죄를 계속할 뿐이다! 그들을 남겨 두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을 회개로 이끌지는 못하였다(롬 2:4-6). 따라서, 이들은 장차 올 날들에서 더욱 큰 심판을 받아야만 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0-21절은 교회가 하늘로 데려감을 받은 후에 어떤 생활이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우상 숭배가 널리 퍼질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 물론 우상 숭배는 마귀를 섬기는 것이다(고전 10:16-22). 사단은 언제나 예배를 원하였으며(마 4:8-10), 이제 그는 예배를 받을 것이다. 우상 숭배가 있는 곳마다 무지와 부도덕이 있을 것이다. 21절은 그 날들에 발생할 무서운 죄들과 범법 행위에 대하여 말해 준다.
“복술“이란 말은 헬라어로 파르마케이아(Pharmakeia)인데 영어의 “약제사“(Pharmacist)와 “약학의“(Pharmaceutical)라는 말이 여기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 말은 “약과 관계됨“이란 뜻이다. 이와 똑같은 단어가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서는 “술수“로 번역되며, 21장 8절과 22장 15절에서는 “술객들“로 번역된다(18:23 참조). 술객들이 마귀적 행위를 하면서 약과 독약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 단어들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환란 후반기 날들에 술수가 재흥할 것이며 약의 사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암시이다. 세상에는 이미 마법사들의 조직체가 몇 개 있으며 강신술이 증가하고 있다. 약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우리의 약 상자를 열어 보면 알 일이다!
 
본 장은 요한계시록 전체 구조와 어떻게 조화되는가? 이 거대한 2억의 기병대가 환란의 중반기 바로 전에 나타나는 것 같다. 짐승은 이미 부활한 로마제국의 머리가 되어 있어 로마 카톨릭 교회와 국제 연합에 협력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단으로 하여금 이 거대한 군대를 소집토록 하실 것인데, 아마도 러시아로부터일 것이다.
우리는 에스겔 38-39장을 통하여 러시아가 환란기 중반쯤에 팔레스틴을 침략할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는 점령하려고 시도하나 짐승이 유대인들을 구원해낼 것이며, 7년 동안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언약을 지킬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러시아를 심판하시며 패전한 군대를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성지에서는 한때 짐승이 그의 언약을 어기고 성전으로 이동하여 세계적인 능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1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짐승이 환란의 처음 삼년 반 동안에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던 증인들을 죽일 것을 보여 준다. 이 거대한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러시아 군대가 아니다. 그러나, 여섯째 나팔 소리는 군사적인 정복이 흥왕할 것을 시사하며, 이 시점에서 발생하게 될 곡과 마곡의 전쟁을 가리킨다. 서론에 있는 예언의 예정표를 복습하자."
 
 
계 10:1-4
▣ 때의 마지막과 두 증인들(Ⅰ)-요한계시록 10장-
 
본 장은 환란 기간의 중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개요 참조). 다니엘 9장 27절에 의하면 이 때가 짐승이 이스라엘과 맺은 그의 언약을 깨뜨릴 때이며, 스스로 사단의 광포를 나타낸다. 다음의 사항들에도 유의하자.
 
-두 증인이 처음 삼 년 반 동안 사역한다(11:3)
-유대의 남은 자는 마지막 삼 년 반 동안에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12:6/12:14)
-짐승은 마지막 삼 년 반 동안 세계적인 권세를 갖는다(13:5)
-사단은 삼 년 반 동안 신자들을 무섭게 박해하도록 땅에 던져진다(12:12).
-예루살렘은 삼 년 반 동안 이방인들에게 짓밟힌다(11:2).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 사이에 하나의 삽입구가 있다(10:1-11:14). 일곱째 나팔은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소개할 것이며, 삼 년 반의 환란(“하나님의 진노“)은 내리막 길로 접어든다.
 
1. 천사의 출현(10:1-4)
 
이 하늘의 사자는 분명 여호와의 사자, 곧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 같다. 요한은 5장 2절에 보면 “힘있는 천사“를 보았었는데 이제는 “힘센 다른 천사“를 본다. 여기서 사용된 상징들은 1장 12-16절에 나오는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설명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구름과 무지개는 1장 16절을, 불의 발은 1장 15절을, 해같이 빛나는 얼굴은 1장 16절을 가리킨다. 사자와 같은 음성은 분명히 5장 5절을 가리킨다(호 11:10/욜 3:16 참조). 이것은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이 아니며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알리는 음성이다. 아마도 이 천사가 그리스도라는 최선의 증거는 11장 3절일 것이며, 여기서 그는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 계신 분은 여호와의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하나님께서 속히 행하셔서 그의 목적들을 마치려 하신다고 알리러 오신 자이시다.
 
작은 책은 5장 1절에 나오는 두루마리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작고 그 책은 보다 크다. 이 두루마리는 펼쳐져 있고 5장 1절의 책은 봉인되어 있다. 10장 9-11절을 볼 때 이것은 예언의 책이다. 7절은 책의 내용이 예언으로 선포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교회 진리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예언들이 이스라엘, 유대인, 그리고 예루살렘과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11장과 그 다음 장들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내용들이다. 아마도 이 책은 다니엘 12장 4, 9절에 나오는 인봉한 멧세지일 것이다. 이제는 그것이 펼쳐져 성취되고 있다.
 
주님은 땅과 바다를 밟고 서 계심으로써 사실상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을 그의 소유라고 주장하신다(수 1:1-3 참조). 우리는 그가 말했던 바도 알지 못하며 우뢰가 발했던 바도 알지 못한다(삼상 7:10/시 29:1- 참조). 생각해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요한은 우뢰의 말을 인봉하라(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계시록에서 유일하게 인봉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환상은 그가 통제하고 계시며, 그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며, 그의 유업을 주장하실 것에 대하여 분명히 한다."
 
계 10:5-7
2. 천사가 알리는 말(10:5-7)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손을 드시고 더이상 지체하지 않으실 것임을 확인하는 숙연한 장면은 아니다.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은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물었는데 그 대답이 이제 주어진다. 더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왜 하나님은 아무것도 행치 아니하시느냐?“고 묻는다(벧후 3장). 연기된 이 시기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기회이다 !
그리스도는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날에(11:15-19) 하나님이 그의 계획을 끝낼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비밀“이라는 말은 감추인 하나님의 진리를 뜻한다. 죽음을 면치 못할 사람은 세상에는 왜 죄와 고난이 있는지, 그리고 왜 정직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반면에 거역하는 죄인들이 자유를 누리는 지금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곧게 하실 것이며 그의 계획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11장 18절을 특히 주목하자. 그리고 위로를 삼자 !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비밀“이 작은 책의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관할하시며, 최종적으로는 의가 악을 이긴다는 것도 볼 것이라는 것이다."
 
계 10:8-11
3. 이 책의 충당(10:8-11)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이 책을 본다거나 그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는 이것을 전유하며 속 사람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이와 비슷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에스겔 2-3장과 예레미야 15장 16절을 참조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식이다(마 4:4/시 119:103).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기에 앞서, 우리는 그 말씀을 취해서 소화시켜야만 한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많기는 하나, 말씀을 암송하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하여 말씀을 내적으로 소화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작은 책을 먹는 일은 요한에게 이중의 효과가 있었다. 그 맛이 달고 뼈에는 썼다. 여기에 좌우에 날선 말씀의 검이 있다(히 4:12). 우리는 말씀의 축복을 즐기지만, 또한 말씀의 짐도 느껴야 한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아는 축복을 받았지만, 환란의 삼 년 반 동안에 일어날 고난을 깨달았을 때는 쓴 맛을 느꼈다.
말씀을 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요한은 예언자로서의 사역을 계속해 나갈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가 증인으로서 본받아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당할 시간을 먼저 갖지 않고서 주님을 섬기려 하거나, 그를 위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내적으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성도가 매일 말씀을 읽고 내적으로 그 말씀을 소화시킬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11절에서 “...에게“라는 말은 “... 관하여“라고 읽어야 옳다. 요한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 관하여 예언했었다. 요한계시록의 다음 부분에 세상의 나라들이 가끔 언급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아마겟돈 전쟁을 대비케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6:12-14)."
 
 
계 11:1-14
▣ 때의 마지막과 두 증인들(Ⅱ)-요한계시록 11장-
 
11-12장에서 우리는 분명히 유대인의 땅에 서 있다. 유대인의 성전을 보며(11:1-2), 예루살렘(11:8)과 법궤(11:19), 다스리시는 그리스도(12:5), 미가엘(12:7), 유대인들에 대한 사단의 박해(12:17)를 본다. 이것들 중의 어느 하나라도 교회에 적용시킨다면 우리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환란기간의 중반에 와 있다.
 
1. 두 증인의 사역(11:1-14)
 
그들의 사역하는 시기(1-4절)-유대인의 성전은 재건되었고 이 나라는 비록 불신앙 안에서이지만 다시금 거기서 예배를 드린다. 두 증인은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파하면서, 그리고 성전을 출입하면서 환란의 전반부 동안에 사역하는 듯하다. 환란의 중반부에서 적그리스도는 그의 언약을 깨뜨리고 성전 지역을 소유할 것이다(살후 2:1-/단 9:27/마 24:15).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여 다니엘과 주님을 통해 예언된 “멸망의 가증한 것“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방인에 의해 성전이 삼년 반동안 침략된 것을 본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성전을 측량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에스겔 40-41장과 스가랴 2장에 나오는 상징적인 행위와 같다. 무엇을 측량한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주장한다는 뜻이다. 사단의 세력이 유대인의 성전을 점령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것을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하실 것이며, 자기의 백성에게 그것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4절의 관련 구절로서 스가랴 4-5장에 나오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살펴보자. 이 두 사람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민족이 난국에 처해 있을 동안에 국가를 되찾고 재건했던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이들은 특히 그들의 사역을 성취할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들의 사역 목적(5-6절)-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보일 것이다. 이들의 증거를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들은 증인인 동시에 선지자로 불리워질 것이다(6, 10절). 이들은 세상에 장차 올 큰 사건들을 알릴 것이며 짐승의 진노와 사람들의 진노를 당할 것이다. 그들이 행하는 기적으로 인하여 모세와 엘리야로 신분이 밝혀진다.
모세는 애굽에서 물을 피로 바꾸었으며 엘리야는 가뭄을 위해, 또한 비올 것을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오게 하였다. 말라기 4장 5-6절은 엘리야가 다시 섬기러 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두 증인들을 에녹과 엘리야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 두 사람이 모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데려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이름들을 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사역에서의 박해(7-10절)-죄악에 빠진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순종하려 들지 않는다(9:20-21 참조). 이 두 증인은 그들의 사역을 완성하기까지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짐승에게 그들을 반대하고 죽일 것을 허락하실 것이다. 물론 적그리스도는 이 두선지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성전을 소유할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 시민들은 그들을 장사지내지도 않을 것이지만(시 79편 참조) 전세상은(국제적인 텔레비젼에 감사하자) 그들의 시신들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 사흘 반 동안의 이 기간은 “사단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파티를 열고 예물을 교환하며 그들을 괴롭게 하던 자가 죽은 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들의 사역에 뒤이은 공포(11-14절)-하나님은 이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것이다! 죽은 두 사람이 살아나서 예루살렘 거리에 나타난 것을 그들이 보게 될 때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날 두려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그리고 두 사람은 그들의 원수들이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데려감을 받을 것이다!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지축의 흔들림이 있을 것이며, 그리고서 이 성의 삼분의 일을 파괴하고 7,000명을 죽게 한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그 날은 참으로 어떠하겠는가!"
 
계 11:15-19
2. 일곱째 나팔의 증거(11:15-19)
 
우리는 8장 13절이 “세째 화“를 약속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다려 왔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서 이 세상 나라(나라들이 아님-왜냐하면 이제 짐승은 연합한 나라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7:13)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음을 알린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19장 11절 이하에 이르기까지는 통치권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차라리 장차 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장로들이 장차 일어날 일을 살피려고 앞일을 생각할 때 하늘의 예언을 듣게 된다. 땅의 소리가 아닌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 순간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는 일로 이끌어져간다.이 예언은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해 그를 영화롭다고 하는 찬양을 드린 이후에 뒤따라 나온다. 이것은 하늘의 세번째 찬양이다. 4장 10-11절에서 그들은 그를 창조주로서, 5장 8-10절에서 그들은 그를 구속자로서, 그리고 여기서 그들은 그를 왕이요 재판장으로서 찬양한다. 순교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 즉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6:9-11).
 
18절은 환란 기간의 후 삼 년 반에 일어날 일들을 요약한다.
 
국내외적으로 생기는 증오-“이방들이 분노하매!“(시 2편/ 83편/ 욜3:9-13 참조) 이는 열방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에 대해 증오를 보일 것이며, 박해는 더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사단은 무대에 등장하여(12:12 이하) 유대인들을 쓸어버릴 특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부활-20장 4절에는 환란 기간의 순교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그리고 20장 12절 이하에서는 사망한 악인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각각 적고 있다. 다니엘 12장 1-3절은 구약 성도들이 환란 후에 일으킴 받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심판-성도들은 행한 일들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이며, 악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상을 받는 시기일 것이며 죄인들에게는 형벌의 때일 것이다. 잃어버린 자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사단은 망하게 하는 자이며(9:11), 그를 따르는 모든 자가 그의 멸망의 계획에 참여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명령하셔서 땅을 돌보게 하셨으며, 그 자원들을 사람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파괴하고 그 보물을 악에 사용하도록 이끌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환란의 최후의 삼 년 반이 하나님의 계획을 절정에 이르게할 것임을 안다. 더이상 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10:6)
본 장은 지상에 세워진 성전으로 시작하여 하늘의 성전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다시 임하고 있는 폭풍의 증거들, 곧 번개, 천둥, 음성을 본다. 우리는 4장 5절에서 보좌로부터 나는 것을 보았고, 8장 5절에서는 향단에서 나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성전의 지성소로부터 이러한 결과들이 나오는 것을 본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말하는 언약궤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언약궤로서 포로 이후에 없어졌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맞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하늘에 있는 다른 성전 기구들은 그 어느 것도 그 근원을 땅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다.
지상에서 이스라엘은 맹렬한 고난을 통과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가 돌볼 것을 재확인하고 계신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질 때 천둥과 그 밖의 것들이 있었다. 이제 하나님이 그의 율법을 범한 사람들을 심판하시려는 이 때도 천둥은 있다.
 
18절은 “주의 진노가 임하여“라고 진술하는데, 15-16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진노의 대접을 부르실 때 이것은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처음 삼 년반은 환란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후 삼 년 반은 “하나님의 진노“로 알려지고 있다(14:10/14:19/15:7/16:1)."
 
 
계 12:1-6
▣ 해를 받은 여자-요한계시록 12장-
 
본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반대하는 사단의 세력과의 투쟁이다. 이 환상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성경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요약한다.
 
1. 하늘의 이적들(12:1-6)
 
여자-로마는 이 여자를 마리아인 것으로 믿게 하려 했다. 그러나, 6절과 13-17절로 말미암아 이 일은 불가능해진다. 창세기 37장 9절을 보면 이 여자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절은 여자가 그리스도를 낳을 것을 알리며 이 구절은 다시 그 여인이 이스라엘임을 지적하고 있다(롬 1:3/롬 9:4-5 참조).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흔히 여자로 상징된다(사 54:5/렘 3:6-10 참조). 이 여인은 산고 중에 있고 태어난 아이는 그리스도이시다. 5절은 그 아이가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표명한다. 이 내용은 시편 2편 9절과 계시록 19장 14절 이하와 평행을 이룬다(미 5:2-3 참조). 5절에 나오는 첫 문장과 두번째 문장 사이에는 최소한 33년의 간격이 있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가 태어나시고 그리고는 하늘로 올리워진다.
그의 생애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죽임당하신 어린 양임을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 5절과 6절 사이에는 전(全)교회시대가 있다.
 
용-9절은 이 큰 붉은 용이 사단임을 밝힌다. “붉은“ 색은 이미 죽음, 멸망과 연관되었다. 일곱 머리, 열 뿔, 일곱 면류관은 짐승을 묘사하고 있는 바. 13장 1절과 17장 3절을 참고하게 한다. 짐승은 사단에 대한 인간의 모방일 것이다. 짐승은 처음부터 유럽 연맹국의 지도자로서 무대에 등장하지만, 환란 기간의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자신이 사단의 초인(Super man)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4절은 우리에게 이 용이 어느 때 별 삼분의 일을 하늘에서 떨어뜨렸는가를 가르쳐 준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사야 14장 12절 이하에 나오는 사단의 떨어짐을 설명한 것이다. 이 때 많은 천사들(별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다(욥 38:7 /유 6절 참조). 9절은 장차 사단이 하늘에서 던져질 것이며,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날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사단은 언제나 살인자였으며(요 8:44) 이제 그는 그리스도를 멸망시키려 한다. 사단은 구약에서 구세주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하였고, 그가 태어나자 사단은 그를 죽이려고 했다(마 2:16-). 그리스도는 지상 생활을 하시는 동안 자주 살인자인 사단의 공격을 받으셨다.
 
6절은 이스라엘이 후 삼 년 반의 환란 기간 동안에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될것에 대해 알려 준다. 물론 144,000명은 인침을 받고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믿는 남은 자가 돌봄을 받게 될 것을 보실 것이다. 6절에 나오는 “그들“(주-한글 성경에는 문맥에 감추어 있다)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나오는 믿는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들은 환란의 때에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친절을 베푼 자들이다.
마태복음 24장 15-21절을 읽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유대인들이 야곱의 때를 당하여 도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을 볼 것이다. 15절은 짐승이 유대인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성전에 그의 형상을 세울 때, 곧 환란기 중반쯤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명백히 밝힌다. 15절이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고 하는 말에 주목하자. 달리 말하자면 환란의 때에 유대인 신자들은 이 구절들을 읽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것이다 !"
 
계 12:7-12
2. 하늘에서의 전쟁(12:7-12)
 
욥기 1-2장은 사단이 이 세대 동안에 하늘로 들어가게 된 것을 명백히 밝힌다. 그리고 스가랴 3장은 그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성도들을 고발한다고 제시한다. 사단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나타나도록 허락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의 결백을 입증하시고 고발자를 단번에 영원토록 잠잠케 하실 수 있다! 그러나, 환란의 중반에 사단이 하늘로부터 쫓겨날 것은 어린 양과 정결케 된 교회의 축복된 혼인에 분명코 참예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미가엘은 이스라엘에 배정된 천사장이다(단 10:13/단 10:21/단 12:1/유 1:3). 그의 이름은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인고 ?“라는 뜻이다. 사단은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을 패배시켰고 이제 하늘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하늘에 더이상 있을 곳이 없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죄가, 모든 흠과 티가(엡 5:24-27) 씻겨졌기 때문이다 !
 
9절은 사단을 뱀으로 묘사하는데 이 표현은 우리를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귀라는 단어는 “참소하던 자“란 뜻이며 그것이 10절을 스가랴 3장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사단은, “대항자“란 뜻이다. 사단은 정말로 원수이다 ! 하늘에서 사단은 성도들을 참소하고 있었지만 성도들은 세 가지 무기로 그를 정복했다. 즉, 모든 죄를 제거하는 피와(요일 1:9-2:2), 우리에게 용서를 확신시키는 성령의 검인 말씀과, 사단에게 순종하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헌신이다.
사단이 패배하였기 때문에 하늘에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사단의 때는 짧다(3년반). 그 다음에 그는 무저갱으로 던져질 것이다(20:1-3)."
 
계 12:13-16
3. 땅위의 진노(12:13-16)
 
큰 용이 큰 진노를 가지고 내려온다. 하늘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성도들을 더이상 참소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들을 박해할 것이다. 그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데에 촛점을 맞춘다. 반유대주의 운동(유대인 핍박)은 언제나 사단의 짓이었다. 애굽이 유대인을 박해했으며 바벨론이 그러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수 백만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고, 하나님은 이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셨다. 사단은 여자의 아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그녀의 씨, 곧 믿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근절시키려고 한다.
 
14절은 하나님이 유대인의 남은 지를 보호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을 때 “독수리의 날개로“ 업었었다(출 19:4).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들을 돌보시기를 마치 어미 독수리가 그 알을 품듯 하셨다(신 32:11-12). 이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독수리의 날개치는“ 격이었다(사 40:31). 하나님은 그의 믿는 남은 자를 사단이 뚫을 수없도록 보호할 특별한 장소로 데려가신다(6절).
 
사단은 유대인을 시험하기 위하여 “강 같은 물“을 사용하는데(15절) 이것은 아마도 이방인의 박해를 상징하는 듯하다. 시편 124편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 이 시는 물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때 환란 중에 있는 그들이 부른 노래일 것이다(사 26:20-27:13 참조).
다니엘 11장 41절은 사단에 의해 영감받은 짐승이 환란의 중반에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하면 유대인들은 에돔, 모압, 암몬에 있는 피난처들로 도망할 것임을 가리킨다. 이 지역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피난처로 바위를 뚫어서 세운 성들을 찾아냈다. 마태복음 24장 16-21절의 도망하는 유대인은 환란의 마지막 삼 년 반 동안 거기서 안전과 평화를 찾을 것인데, 이 시기는 “대환란“이라고 불리우는 기간이다.
 
이중의 전쟁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세상에 대항하여 전쟁하고 계시며, 사단은 짐승을 통하여 성도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13:7). 이 시기는 얼마나 고통과 비극의 기간일 것인가 ! 예수님에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마 24:22)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믿는 유대인들)을 위하여이 날들이 감해질 것이다.
 
본 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들이 있다.
 
사단은 성도들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서는 그를 이길 수가 없다.
 
사단은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이다. 성도들의 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사단이 필요로 하는 모든 논쟁거리를 그에게 제공한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변호자가 계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사단을 잠잠케 하신다.
 
성도들을 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만일 우리가 참소한다면 이는 우리가 주님의 편에 있지 않고 사단의 편에 있는 셈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는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며 이스라엘이 아니었더라면 구세주나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사랑해야만 하며,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의 유대인 친구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힘써야만 한다."
 
 
계 13:1-10
▣ 짐승과 적그리스도-요한계시록 13장-
 
본 장은 우리에게 두 짐승을 소개한다. “짐승“이란 말은 그것들이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들은 동물과 같은 식욕과 능력을 가진 산 인격체들이다. 이 구절들은 “사단의 삼위일체“ 곧 사단. 짐승(적그리스도), 거짓 예언자를 제시한다.
 
1. 적그리스도-바다에서 나온 짐승(13:1-10)
 
1절은 이렇게 읽을 수있다. “그리고 그(사단, 12:17)가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바다는 이방나라들을 상징하며(17:15), 바다의 모래도 마찬가지이다(20:8). 사단은 민족들로부터 “초인“(超人)을 불러내며 세상에 그 본성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친구로 평화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삼 년 반 전에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기를(단 9:27), 그가 조종하는 유럽연맹을 보호하기로 그들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이제 이 세상 통치자는 그의 사탄적 잔혹함을 드러내야 했다. 머리, 뿔, 면류관에 대해서는 17장 10-12절을 참조하라.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그의 예언을 참고로 한다면 이 짐승을 설명하는 데에 세 가지 동물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 장을 주의깊게 읽자. 네 짐승들은 계속되는 네 제국, 즉 바벨론(사자), 메대-바사(곰), 그리이스(표범),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왕국(무서운 네번째 짐승)을 상징한다.
다니엘 7장 8절의 “작은 뿔“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곧 짐승을 말한다. 요한은 이 동물들의 순서를 뒤에서부터 보았는데 그것은 그가 과거를 회고하는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은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짐승의 왕국이 이 왕국들을 계승해 갈 것이며, 그 왕국이 바로 부활한 로마 제국인 것이다.
 
짐승은 누구인가? 성경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과 17장에 나오는 상징들을 달리 해석해 왔다. 그가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하여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13:3/13:12/13:14). 이것은 아마도 이 짐승이 죽임을 당하였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날 것임을 제시하는 듯하다. 11장 7절과 17장 8절에 의하면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데, 이는 물론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짐승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한 유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짐승과 유다는 똑같이 “멸망의 자식“이라고 불리워진다(요 17:12/살후 2:3). 유다는 요한복음 6장 70절에서 “마귀“라고 불리워진다.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우리는 짐승이 사단의 초인(超人), 곧 그리스도의 탈을 쓴 자임을 안다. 온 세상은 짐승을 찬양할 것이며 사단을 예배할 것이고(4절), 사단이 언제나 갈망했던 것을 추구할 것이다(사 14장).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짐승은 유럽 연맹의 머리로서 로마 교회와 긴밀한 협력관계 속에서 일해 왔다는 것을 명심하자(계 17장). 그는 로마 제도에 복종하는 것처럼 가장할 것이며 자기의 정복지를 더 늘리기 위해 교회를 이용할 것이다. 환란의 중반 쯤에 애굽과 러시아가 팔레스틴을 침략할 것이며(겔 37-38장), 짐승은 유대인들을 보호하려고 밀어닥칠 것이다. 짐승이 이스라엘에 도착하면 러시아가 하나님께 패배당한 것을 보고 짐승은 점령하기로 결심할 것이다.
그는 이 시점에서 배교한 교회를(계 17장의 음녀) 멸망시킬 것이며 스스로 세상의 통치자로 나타낼 것이다. 사단은 그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줄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믿지 않은 세상에 “완고한 망상“을 문득 떠오르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며 “거짓말장이“인 적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다 ! 짐승은 하늘의 교회를 모독할 것이며 땅에 거하는 믿는 유대인 남은 자를 박해할 것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보았듯이 이 지점에서 그는 또한 두 증인들을 살해할 것이며, 이들은 삼 년반 후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할 것이다."
 
계 13:11-18
2. 거짓 선지자-땅에서 올라온 짐승(13:11-18)
 
사단도 삼위일체로 존재한다(19-20절). 사단은 성부로 가장하고 짐승은 구세주이신 성자로 표방하며 거짓 선지자는 성령으로 가장한다. 이 둘째 짐승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듯한 “그 땅“에서 출현한다. 그는 유대인인 듯하다. 다니엘 9장 26절은 적그리스도가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것으로 말한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세상을 그에게로 이끌기 위해 조력자를 필요로 할 것인데, 이 조력자는 거짓 선지자일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는 평화와 우호를 뜻하는 “새끼 양 같은 뿔들“을 가지지만 활에는 면류관(권위)이 없다. 사단은 그에게 처음 짐승에게 준 그런 능력을 주지만 그의 임무는 짐승을 영화롭게 하여 세상으로 그를 따르고 숭배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와 비슷한 국면으로는 다니엘 3장을 읽자.
 
거짓 선지자는 하늘로부터 불을 땅에 내리게 함으로써 두 증인이 행하는 기적들을 따라할 것이다(11:5/13:13).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 있는 바울의 예언과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할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15절, 다니엘 11장 45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이 즈음에 예루살렘에는 회복된 유대인의 성전이 있게 되며 짐승은 이 우상을 거기에 세워 둘 것이다. 놀랄 만한 일은 이 우상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잘 말할 것이며 크게 감명을 끼칠 것이다. 5절은 짐승과 그의 우상이 하늘을 향하여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종교가 거짓 선지자의 유일한 사역만은 아니다. 그는 또한 범세계적인 경제적 통제력을 수립할 것이다. 십 사만 사천 인이 하나님 아버지의 표를 그들의 이마에 받게 되듯이 짐승의 추종자들도 그의 표를 이마에, 또는 오른 손에 받게될 것이다. 이 표가 그들로 하여금 사고 파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짐승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과 그의 표(그의 이름)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크게 고난을 당할 것이다(20:4 참조).
사단은 이제 그가 늘 원하였던 바로 그것을 갖게 될 것이다. 즉, 세상이 그를 예배할 것이며 그는 세상의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옥의 티라면“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고 계시며, 어느 날 그 왕국이 땅에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그의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을 손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17-18절은 많은 억측을 일으켜 왔다. 짐승의 수, 666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마의 숫자를 앞에서부터 하나씩 차례로 여섯 개를 더하면 666이 된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Ⅰ=1, Ⅴ=5, Ⅹ=10, L=50, C=100, D=500). 이것은 물론 로마 제국의 부활을 뜻하지 짐승에 관해서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의 형상과 거인 골리앗이 6이란 숫자와 동일시되는데(단 3:1/삼상 17:4-7), 이것은 세상의 눈들이 짐승을 “초인“(超人)으로 볼 것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 숫자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문자로 숫자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헬라어로 “예수“는 888에 해당된다. 그러나, 숫자와 문자를 짜맞추어서 하나의 이름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알고 있다. 6을 사람의 수이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으며 6일 동안 일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루의 시간은 6으로 나누어지며(4X6=24), 달(月)의 수도 그렇고(2X6= 12), 일 분도 그렇다(6X10=60).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사람“을 네 가지 다른 단어들로 나타내며 헬라어 신약은 두 단어로 사용하는데, 합해서 여섯 가지가 된다. 구약에는 뱀과 사자에 대하여 여섯 개의 다른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이들은 둘 다 사단을 상징한다.
 
역사는 “6“이란 숫자가 동방의 밀의 종교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렇다면 “666“이란 숫자는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지고(至高) 인간인 적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사단의 “초인“(超人)이며 사단의 거짓 그리스도이다. 일곱은 완전의 수이며, 사단은 이수에 도달할 수가 없다."
 
 
계 14:1-5
▣ 추수와 포도주-요한계시록 14장-
 
우리는 본 장에서 환란의 후반부와 환란이 끝난 직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내다보는 일련의 환상을 대하게 된다. 하나님은 여기서 요한계시록에 펼쳐져 있는 바의 “전경“ 곧 요약을 보여 주신다. 예상되는 사건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왕국의 설립(14:1-5)
 
이 광경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것인지(히 12:22-23 에 오는 하늘의 시온) 또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인지(시 2:6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시온 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마도 임하게 될 왕국의 모습은 지상의 장면인 듯하다.
한 가지 예로 2절에서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데, 이것은 그가 이 땅에 있음을 암시한다. “새 노래“는 새로운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환란을 통과하고서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늘의 장면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지상에 임할 왕국을 예상케 한다. 3절은 교회(장로들)가 지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뜻이며 네 생물도 거기 있을 것이다.
 
십 사만 사천의 특성이 이제 설명된다.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라는 말과 “정절“이라는 말은 영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하지 육적으로 받아 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 날에 땅에 거하는 거민들의 죄는 영적인 간음일 것이다(14:8/약 4:4/출 34:15).
짐승의 이름이 아닌 성부의 이름으로 표를 받은 이 믿는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구별되며,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할 것이다. 짐승을 예배하는 대신 이들은 어린 양을 따른다. 이들은 유대 왕국의 핵심이 될 것이며 다가올 추수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될 것이다."
 
계 14:6-13
2. 진노의 대접을 쏟아부음(14:6-13)
 
이제 소식을 전하는 세 천사가 보이고, 각각은 특별한 사항을 알린다.
 
영원한 복음(6-7절)-오늘날 하나님은 그의 멧세지를 전하는 데에 사람들을 사용하시지만 심판의 마지막 기간에는 천사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제시하지 구세주로서 제시하지는 않으며,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사람들을 초청하나, 짐승과 사단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이라는 암시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면서도 창조주를 경배하고 섬기지는 않는다. 이것은 사단에게 속은 세상을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최종적 부르심이다.
 
바벨론의 멸망(8절)-이 일은 이곳과 16장 18-19절에서 예상되기는 하지만 17장과 18장에 나온다. 바벨론은 여기서 로마와 관련되어 있으며, 짐승으로 머리를 삼은 배교한 종교적, 정치적 제도를 말한다. 당신은 이 예언의 성취를 보기 위해 요한계시록 17-18장을 읽고 싶을 것이다(렘 50:14/렘 50:15/렘 50:38/렘 51:7-8 참조).
 
최후 심판(3-13절)-우리는 심판의 일곱 대접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본다(계 15-18장). 그것은 “섞인 것이 없는“ 것이다. 즉, 어떤 은혜나 자비도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다(합 3:2). 이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안식이나 구제됨이 없는 영원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세상에 경고한다. 짐승을 따르는 자들의 운명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의 운명 사이에는 현저한 대조점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자들이 그들의 수고로부터 안식하게 될 것이며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삼 년 반 동안 왕노릇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1,000년 동안 왕노릇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12절은 시련을 통과해야 할 성도들의 입장에서 “인내“를 권유하고 있다(눅 21:19 참조).
 
13절은 분명히 환란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적용해도 물론 좋을 것이다. 세상은 죽음을 저주로 보며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는 죽음이 저주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축복이다. 그리스도인은 안식과 상급을 경험할 것이지만 불신자들은 영원한 고통과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계 14:14-20
3. 아마겟돈 전쟁(14:14-20)
 
요한은 흰 구름을 타고 땅을 추수하러 낫을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본다. 이것은 심판을 상징한다. 그가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그는 씨 뿌리는 자로 오셨으나, 사람들은 말씀의 씨를 원하지 않았다(마 13:3-23). 그 대신 사람들은 사단의 거짓말을 받아 들였고 이제 그리스도는 추수하시는 분, 곧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오셔야 한다. “땅의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는 말은 둘째 천사를 부른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정확한 때를 아신다. 그는 불법의 씨가 무르익기를 애써 기다리신다(약 1:14-15/창 15:16).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이다(욜 3:11-16 참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끌어 가는 사건들을 복습해 보는 것이 좋겠다. 환란의 전반부 동안에 짐승이 유대인과 더불어 사역할 때 러시아와 애굽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짐승은 유대인과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팔레스틴으로 갈 것을 강요받는다. 하나님은 러시아를 패배시키고 짐승은 애굽을 패배시킨다. 그래서 두 원수들은 패전의 슬픔을 안고서 본국으로 돌아간다.
짐승은 자신을 세상 통치자라 자처하고서 예루살렘에서 통치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은 짐승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을 계속 계획한다.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 짐승의 원수들은 공격할 기회를 얻게 된다. 환란의 후 삼 년반 동안에는 짐승과 싸우기 위해 팔레스틴으로 향하는 군대의 이동이 있을 것이다(16:13-16 참조).
드와이트 펜테코스트(Dwight Pentecost)박사는 “전쟁“이란 말이 “출진“(出陣)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계 16:14 참조). 달리 말하자면, 세계의 군대들이 므깃도에서 격전의 절정을 이룰 “아마겟돈 전쟁“은 군사 행동이라고 할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17-21절은 인자의 징조가 그 때 나타나므로 군대들은 서로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그 대신 그리스도를 대항할 것이라고 제시한다.
 
어떤 사람이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따는 모습이 나온다. 악한 세상의 제도는 “땅의 포도나무“이며 그리스도는 참 포도나무이시다(요 15장).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포도나무가 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도록 심기워졌다(사 5:1-7/시 80:8-16). 비통하게도 이스라엘은 쓴 열매를 맺었다.
사실상 이스라엘은 참 메시야를 거절하고 거짓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씁쓸한 결말을 보아야 했다. 이 최후의 전쟁에 관한 추가 자료로는 이사야 66장 1-6절과 요엘 3장을 참조하라.
 
20절은 무서운 광경을 나타낸다. 피가 예루살렘 성 밖 320km에까지 흐를 것이고 말 굴레에서 지면까지의 높이 만큼의 깊이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틀이다(19:15/사 63:1-6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본 장에서 앞으로 닥칠 사건에 대한 예언적인 요약을 보게된다. 본 장에는 우리가 배울 몇 가지의 실제적인 교훈들이 있다.사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왕국을 지상에 세우실 것이며, 구약의 약속들은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거절한 사람들은 내일 맞이할 무서운 심판의 위험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 마귀를 위하여 살다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일이다.
 
세상의 나라들은 오늘날 아마겟돈으로 이끌려가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와 애굽과 아프리카 나라들이 흥왕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또한 장차 나타날 유럽 연맹도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최종적인 전쟁은 사단과 그의 동맹국의 처참한 실패로 끝날 것이다."
 
 
계 15:1-4
▣ 진노의 일곱 대접(Ⅰ)-요한계시록 15장-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붓는 서곡을 본다. 인이 떼어지기 전에 하늘의 광경을 보게 되는데(4-5절), 이 때는 나팔이 울리기 전이기도 하다(8:1-6). 이것은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가 하늘에서 통제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좌에 좌정에 계심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요한은 두 장면을 응시한다.
 
1. 승리자들과 그들의 노래(15:1-4)
 
우리는 이 성도들을 전에도 만나보았다. 이 성도들은 짐승에게 무릎 꿇기를 거절하였고, 그 결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잃은 환란기의 신자들이기 때문이다(12:11/13:7-10). 요한은 하늘 바닷가에 서 있는 승리자인 그들을 본다.
우리는 즉시로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때는 하나님이 이들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승리 가운데로 인도하셨었다. 이제 “유리 바다“에는 불이 섞여 있음에 주목하자. 4장 6절을 회고해 보면 이 수정바다는 맑았었다. 불은 하나님의 진노가 지금 막 나타나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히 12:29).
 
이 성도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으나 요한은 이들이 짐승을 이기고 “벗어난다“고 말한다 ! 이들은 그의 우상을 예배하거나 표를 받지 않고서 그들의 성장을 잃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잃음으로 이들은 자신을 다시 발견하였다 !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증인으로 살다가 죽는다 해도 그는 잃은 자가 아니라 승리한 자이다 !
우리는 여기서 다시 이 성도들이 하늘 바닷가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본다. 20장 4절에 의하면, 그들이 육체로 부활하는 것은 천년왕국 동안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그와 더불어 왕노릇할 것이다.
 
14장 3절에 보면, 십 사만 사천 인이 그 이외의 어느 누구도 부를 수없는 새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본다.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홍해에서의 승리를 노래한 것인 듯하다. 비록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신명기 31-32장에 나오는 모세의 최후의 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저자는 전자를 더 좋아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 15:2)하는 후렴구는 시편 118편 14절과 이사야 12장 1절 이하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런 각 경우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언급이 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 당시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 모세의 노래를 불렀으며, 또한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시편 118편이 포로 생활 이후의 시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사야 12장은 이스라엘이 세계의 각국으로부터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때를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각 경우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이 원수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찬양한다. 출애굽기 15장으로 가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지상의 바닷가에 서 있었지만 여기서는 하늘 바다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12:11).
그리고 여기서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 짐승을 이겼다. 그들은 모세의 노래뿐 만이 아니라 어린 양의 노래도 부른다는 점에 주목하자. “어린 양“은 계시록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칭호이다. 그것은 최소한 29회는 사용된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과 은혜, 곧 모세와 어린 양의 놀라운 연합을 본다. 하나님의 율법은 입증되고 하나님의 은혜는 일하고 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나라들을 심판하심으로, 그리고 왕노릇하시러 오실 준비를 갖추심으로 성취되고 있다.
 
시편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조사하면 3-4절에서 주어진 노래의 기원을 알게될 것이다(시 90:1-2/시 92:5/시 145:17/시 86:9/시 111:9/시 98:2). 교회에게는 그리스도가 왕이 아니라 신랑 또는 몸의 머리가 되신다."
 
계 15:5-8
2. 대접들과 그 의의(15:5-8)
 
1절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들이 일곱 가지 마지막 재앙을 가져올 것임을 가리킨다. 당신은 10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 대접을 쏟아 부으심으로 “하나님의 비밀“이 완성된다고 선전하셨던 것을 회상할 것이다.
더이상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마지막 일곱 심판에서 하나님은 그의 진노를 완성하실(완전히 성취하실) 것이다. 이 때 사단은 신자들에게 특히 유대인들에게는(12:12-) 무서운 진노를 쏟아 부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최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신다.
 
다시 한 번 하늘의 성전이 열린다(11:19 참조). 지상의 성전은 짐승으로 말미암아 점령을 당하게 되었으나(13:13-/살후 2:3-4), 짐승이 하늘의 성전을 건드릴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란 모독하는 일뿐이다(13:6).
성전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실 것임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믿는 유대인들 중에는 에돔, 모압, 암몬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은 거기서 이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다른 이들은 많은 이방인들과 더불어 그들의 신앙 때문에 죽을 것이다.
 
일곱 천사들은 성전에서 나온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진노의 대접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완성된다. 천사들은 지성소에서 나오는데, 여기는 언약궤가 보관되는 곳이다. 악한 세상은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해 왔으나 심판이 이제 임하고 있다.
이 천사들의 옷은 거룩함과 왕권을 의미한다. 흰 세마포는 구약 제사장의 옷을 상기시키며, 금띠는 왕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나라와 제사장“(계 1:6) 곧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물론 그들의 옷은 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1장 13절을 생각케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요 왕이시기 때문이다.
생물 중의 하나가 진노의 대접을 천사들에게 준다. 모든 자연은(네 생물로 상징됨)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게 될 것이다.
 
하늘의 성전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나는 연기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구약 성막이 바쳐졌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장막에 충만하였다(출 40:34-35). 그리고 구약 성전이 봉헌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대하 7:1-4). 그러나, 영광과 자욱한 연기는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연기를 보며, 연기는 대개 심판을 상징한다(9:2).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온 집이 연기로 가득 찼다(사 6:4).
이것은 이사야의 멧세지가 자비와 더불어 심판의 멧세지였기 때문이다. 요한은 진술하기를 하늘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도나 천사 그 누구라도 세상의 나라들을 중재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라들에는 “중재라는 것이 과거의 것“이 되었고 하나님의 참으심은 이제 끝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차례이다.
 
예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 나팔, 대접들의 배열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심판들이 각각 차례로 일어난다고 믿는 학자들도 많다. 일곱째 인은 나팔들로 인도해가고 일곱째 나팔이 대접들로 인도해간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일곱째 나팔과 일곱째 대접은 사실상 일곱째 인에속하는 것이 된다 ! 이것은 사실상 일곱 인이 7년 대환란 전반에 걸쳐 떼어진다는 것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나팔과 대접은 끝부분의 잠깐 동안에 임하는 것이 된다.
뉴엘(Newell)은 처음 여섯 인들이 처음 삼 년 반에 해당하며, 일곱째 인(나팔들과 대접들을 포함하며)이 후 삼 년 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노만 해리슨(Norman Harrison)은 나팔을 처음 삼년반에, 대접들은 후 삼년반에 넣기도 한다. 일곱째 나팔은 환란의 종국에서 신속히 부어지는 일곱 대접을 소개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표를 그릴 수 있다.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 대접
<-----------------------X------------------->
전 삼년 반 후 삼년반"
 
 
계 16:1-2
▣ 진노의 일곱 대접(Ⅱ)-요한계시록 16장-
 
나팔 심판들과 대접 심판들 사이의 유사점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 8장에 나오는 연구 내용을 복습하자. 각 경우마다 심판은 같은 지역에 내리지만 대접 심판이 더욱 맹렬하다. 대접 심판들은 빠르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특히 짐승과 사단의 왕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들은 아마겟돈으로 가는 길을 예비하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주장하기 위해 지상에 다시 오시는 길을 예비한다.
 
1. 독한 헌데(16:1-2)
 
이 심판은 원수에게 종기들이 생겼던 애굽에서의 여섯째 재앙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출 9:9). “악하고“란 말은 “골치아픈“ “괴롭히는“의 뜻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를 대적하면 이 재앙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다(신 28:27/신 28:35).
불신한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더불어 고난받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섯째 대접이 쏟아지자 이 종기들이 계속 세상을 괴롭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11절). 이러한 고뇌로 그들의 마음은 부드럽지 못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 앞에 절하기를 거절한다."
 
계 16:3-7
2. 피같이 된 바다(16:3-7)
 
두 대접이 여기에 관여된다. 둘째 천사가 바다를 피로 바꾸며 세째 천사가 샘물과 강들을 바꾼다. 또다시 우리는 둘째 나팔 심판 때와 같이(8:8-) 애굽의 첫째 재앙을 상기하게 된다(출 7:18/시 105:29). 그러나, 나팔 심판 때에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로 변하였지만 여기서는 세상의 모든 물이 오염된다! 물을 다스리는 천사(7:1-2/14:18)는 이 심판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공정한 심판이라고 설명한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피를 흘렸다. 따라서 피를 마셔야 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 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 바로는 유대의 사내 아이들을 강에 익사시켰는데 이처럼 그의 군대가 홍해에서 익사하게 되었다. 에스더서의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장대를 세웠는데 그와 그의 아들들이 대신 그 장대에 달리게 되었다! 7절에서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이제 만족하게 된 것을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6장 9절에 나오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계 16:8-11
3. 불에 태움과 어두움(16:8-11)
 
네째와 다섯째 천사에게서 나는 심판은 하늘을 포함한다. 네째 천사는 해로 사람들을 태우게 한다. 이것은 8장 12절에 나오는 나팔 심판과는 반대가 되는데, 거기서는 해의 일부가 빛을 잃고 어두워졌으나 이번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해로 사람들을 태우도록 허락하신다. 이는 사실상 그들에게 지옥을 미리 맛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극렬한 풀무 불“ 같을 것이라는 말라기의 예언한 날이다(말 4:1-2). 사람들은 회개했는가? 아니다! 이와 같은 일이 사람의 마음을 완고하게 한다!
 
다섯째 천사는 상황을 반전시켜 어두움을 가져온다. 이 어두움은 짐승의 보좌가 있는 그의 왕국에만 덮었던 것일 수 있다. 이 어두움은 애굽의 아홉째 재앙을 회상케 한다(출 10:21-23). 사단은 어두움의 왕이므로 어두움이 그의 왕국을 덮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요엘 2장 1-2절은 여호와의 날이 어두움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마가복음 13장 24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예언하셨다. 어두움 가운데서 고통을 견디어야 하며 치료되지 않을 종기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한번 상상해 보자!
이것은 지옥을 미리 맛보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월리엄 뉴웰(William Newell)이 말하듯이 “은혜로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들은 어쨌든 결국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계 16:12-16
4. 군대를 모음(16:12-1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그들을 건너게 하려고 홍해를 마르게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유브라데강의 일부를 마르게 하여 동방 왕들의 군대들로 아마겟돈에서 세계 각국의 군대와 만나도록 하실 것이다. 14절의 “전쟁“이라고 한 말은 “출진“(出陣)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당신은 환란의 중반에 러시아와 그 동맹군들이 팔레스탄을 침략했다가(곡과 마곡, 겔 38-39장) 주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일이 짐승으로 하여금 세상제도를 완전히 관할하게 하는 예루살렘에서의 통치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동방의 왕들과 애굽은 군대를 연합하자 아마겟돈에서 짐승의 군대들과 전쟁하게 된다. “아마겟돈“이란 말은 “므깃도의 산“이란 뜻이다. 성경 지도에서 므깃도를 찾아보라. 이 지역은 세계의 위대한 전쟁터들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인정되어 오고 있다.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서 벌어질 최후의 전쟁이 있을 곳도 바로 여기이다.이 군대들은 어떻게 모일 것인가? 사단의 삼위일체는 그들을 모집하는 데에 귀신들을 사용한다(13-14절). 이들이 문자 그대로의 개구리들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사단이 주님께 대항하여 싸우려고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군대를 모으는 데 사용할 마귀적인 수단(아마도 선전)의 상징인 것이다(딤전 4:1/출 8:5-7/왕상 22:20-38 참조).
군대들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하여 모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인자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마 24:29-30), 군대들은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싸우려고 연합할 것이다. 결과는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에 주어져 있다. 다음의 구약의 구절들도 읽어 보라(욜 3:9-14/습 3:8/슥 12장/사 24:1-8).
 
15절은 그 당시 땅에 거하는 성도들에 대한 약속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은 이 세대의 교회가 “어두움“에 잡힌 바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요한계시록 18장 4절을 읽으면, 그리스도께서 이 경고를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세상과 사단의 제도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계신 것을 알게될 것이다. 당신의 옷을 깨끗하게 보전하라 !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시는 좋은 경고이다."
 
계 16:17-21
5. 이루어진 하나님의 비밀(16:17-21)
 
10장 6-7절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면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제 우리는 성취된 이런 일을 본다. 이 부분에 묘사된 사건들은 바벨론의 멸망과 왕노릇하시기 위해 최종적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내다보게 한다. 다음 장에서 일어나는 일(17-19장)은 이 일곱째 대접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의 대접은 왜 공중에서 쏟아지는가? 이것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엡 2:2)인 사단에게 지정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심판들은 이처럼 자연계와 인간 세상에 깊숙히 와 닿았지만, 이 모든 것 배후에 있는 “조종자“(사단)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종교적인 제도(17장), 그의 정치적인 제도(18장), 그의 군대(19장), 옛 뱀인 사단 자신을(20:1-3) 다루실 것이다.
일곱째 대접이 비워지자 하늘의 보좌와 성전은 일제히 “이루어졌도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졌다!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더이상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이 알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들을 생각나게 한다. “다 이루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때 하나님은 또다시 “이루었도다 !“라고 말씀하실 것이다(계 21:6).
 
지진은 예루살렘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슥 11:8/슥 14:4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만이 심판을 받을 유일한 도시는 아니다. 지상의 다른 큰 도시도 망할 것이며, 큰 바벨론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나올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바벨론은 마지막 날들에 배교한 교회이며, 18장에 나오는 바벨론은 짐승의 정치 경제적인 제도이다.
우박은 일곱째 재앙을 상기시킨다(출 9:22-26). 56kg이나 되는 우박 덩어리를 상상해 보라. 이는 요한의 시대에 은 한 달란트의 무게이다. 레위기 24장 16절은 참람한 말을 한 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한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훼방하기를(9, 11, 21절) 계속하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다."
 
 
계 17:1-2
▣ 음녀와 그 딸들(Ⅰ)-요한계시록 17장-
 
17장과 18장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있을 큰 세상 체제를 바벨론이라는 모형을 통하여 소개한다. 17장에서는 이 체제의 종교적인 면을 강조하며, 18장에서는 상업적인 면에 강조를 둔다. 종교적인 바벨론은 짐승에 의해 정복될 것이며(17:16-18), 반면에 상업적인 바벨론은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1. 초대(17:1-2)
 
일곱 대접들이(16장) 바벨론의 멸망을 포함하여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절정을 세상에 가져온 후에(16:17-21) 이 천사들 중의 하나가 요한을 광야로 데려가 “큰 음녀“ 곧 배교하는 최종적 세상 체계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는 네 여인이 나온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즉, 교회에 잠입한 배교를 나타내는 이세벨(2:20)과 이스라엘(12:1), 배교하는 최종적 세상 체계인 음녀와 교회인 신부(19:7)이다.
자연인은 본 장에 주어진 진리들을 알 수가 없다. 요한조차도 천사의 초청이 없이는 이것들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속적인 교인들은 본 장의 국면들에 접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세속 교회“가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믿기를 좋아한다 ! 어느 날 이들이 대단히 잘못되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계 17:3-18
2. 설명(17:3-18)
 
이 묘사에는 몇 가지 상징들이 연관되어 있지만 천사가 우리에게 이들을 설명한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을 받아 들인다면 본 장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여인-18절은 그녀가 한 도시라는 것과 요한의 시대에 땅의 왕들을 통치하고 있었다고 명백히 밝힌다. 3절의 일곱 머리는 9절에 나오는 일곱 산들과 동일시된다. 이 도시가 로마라는 데에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위치해 있으며,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을 때 로마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짐승-이 짐승은 우리가 13장에서 살핀 짐승과 동일한 적그리스도이다. 8절은 이 세상 통치자가 무저갱에서 나올 것인데, 그는 죽은 자로부터 일으킴받은 한 사람일 것이라고 한다. “멸망“은 유다와 연관된다(요 17:12/살후 2:3).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적그리스도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한 유다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짐승은 붉은 색인데 그를 용, 곧 사단과 연관시키고 있다(12:3).
짐승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다는 사실은 또한 그가 사단임을 밝혀 준다(12:3/13:1 참조). 10절은 일곱 머리가 일곱 산들과 마찬가지로 일곱 왕임을 말해 준다. 12장은 열 뿔이 열 사람도 더 되는 왕들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인격뿐 아니라 그의 왕국을 묘사하는 것이다.
10절에 나오는 “일곱 왕“은 “일곱 왕국“으로도 용이하게 번역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짐승의 왕국은 일곱째의 세상 왕국이 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연구하기로 하자.
 
일곱 머리-우리는 이것들이 일곱 산(9절)과 일곱 왕이나 왕국(10절)을 나타내는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멸망한 왕국들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그리고 그리이스였다. 요한 당대의 왕국이라면 로마였고, 아직 이르지 않은 일곱째 왕국은 짐승의 왕국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일곱 머리가 왕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멸망한 다섯 왕들(로마의 통치자들)은 줄리어스 씨저, 티베리우스, 칼리쿨라, 클라우디우스, 네로일 것이다. “하나는 있고“(10절)라고 한 것은 요한시대의 도미티아누스를 가리키며, 아직 이르지 않은 자는 부활한 로마 제국의 왕인 짐승일 것이다.
 
열 뿔-12절은 이를 열 왕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다니엘서 2장 36-45절에 나오는 다니엘의 신상에서 열 발가락과 평행을 이루는데, 이는 부활한 로마 제국인 것이다. 요한의 시대에 이 왕들은 아직 그들의 권세를 받지 못했는데, 이는 유럽 연맹이 그 짐승을 머리로 하여 촛점을 맞추는 마지막 때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다.
이 열 왕들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대항하는 짐승의 전쟁에서 기꺼이 이 짐승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이들은 짐승의 도움을 입어 큰 음녀를 멸망시킬 것이다!
 
물-음녀의 앉은 물은 세상의 백성이다(15절). 그녀는 온 세상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적용
3. 적용
 
음녀는 말세에 배교하는 세계 교회를 나타내며, 로마에 그 본부를 두고 있다. “바벨론“이란 이름은 창세기 10장 1-11절과 11장 1-9절로 우리를 인도하며, 그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조직화된 반역이 일어났다. “바벨“이란 이름은 “혼란“을 뜻하며, 배교한 제 종교를 대표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로 바벨론 체제가 참된 신자들을 박해하는 죄를 지어왔음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단순히 로마 체제만이 아니라 모든 적그리스도 체제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라도, 수 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다.
 
마지막 때는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것 같다. 개신교 단체가 로마에 더욱 접근해가 마침내는 하나님의 큰 세계 교회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 교회(음녀)는 세상의 정치적, 경제적인 일들에서 짐승의 도움을 받아 관여할 것이며, 큰 세력을 이룰 것이다.
세계 교회는 짐승을 배경으로 하여, 다시 말하자면 사단과 유럽 연맹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다. 바티칸은 언제나 유럽 연합국을 살피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티칸이 이를 살핌으로써 보다 큰 세력을 쥐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짐승은 열 왕의 지원을 얻어 승승장구할 것이다(계 6:1-2). 그럼으로써 유럽의 국가들, 곧 짐승과 로마에 본부를 둔 세계 교회 사이의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이 곳 17장에서 보는 광경은 사실상 환란기의 전반부 동안에 일어날 일들이다. 짐승이 그의 사단의 본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 주목하자.
환란의 중반 쯤에 짐승은 스스로 모든 권세와 경배를 소유하려 할 것이다(13장). 이것은 그가 음녀를 등에 업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비록 배교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6절은 유럽 연맹국이 로마에 있는 세계 교회에 대해 등을 돌릴 것과 이를 멸망시킬 것에 대해 가리킨다. 이 일이 요한계시록 2장 20-23절의 예언을 성취할 것이다. 음녀가 일단 쫓겨나게 되면 짐승은 자신을 하나님이라 할 것이며, 나라들에게 자신을 예배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큰 세계 교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본다. 거짓 종교는 바벨론에서 니므롯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나라에서 나라로 퍼져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교 교리들과 실천 사항으로 가득찬 전체 로마 체제를 본다. 교황 바오로의 유엔(U.N)방문은 세계 교회에로의 진일보이며, 배교하는 모든 종교 단체들을 로마와 연합시키는 일이다.
배교하는 교회는 “음녀“라 불리우며 참된 교회는 순전한 신부로 표상된다. 음녀는 광야에, 신부는 하늘에 있다. 음녀는 사단에 의해 단장되지만(17:4) 신부는 그리스도에 의해 단장된다(19:8). 음녀는 영원히 심판을 받고 신부는 영원히 왕노릇한다. 음녀는 순교자들의 피로써 더럽혀지나 신부는 어진 양의 피로써 구속을 받는다.헌신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사단의 거짓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해져야 한다. 거짓 교회는 잠시 동안은 잘되는 것 같으나 그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계 18:1-3
▣ 음녀와 그 딸들(Ⅱ)-요한계시록 18장-
 
여기서 우리는 상업적인 바벨론을 보는데, 그것은 말세의 세계적인 거대한 체제를 대표한다. 물론, 종교적인 바벨론(배교하는 교회는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다)은 로마 제국이 수십 세기 전에 그러했듯이 나라들의 경제 분야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종교적인 체제가 붕괴하면, 비록 삼 년 반은 더 다스릴 수 있다고는 해도 이 일은 짐승의 전 제국에 대한 종국의 시작이 될 것이다. 17장 17절을 읽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인식할 때 위로가 된다 ! 본 장에서 네 가지 다른 음성에 유의하자.
 
1. 심판의 음성(18:1-3)
 
이 천사는 바벨론의 멸망을 고하는데, 이 사건은 앞서도 고한 바 있다(14:8/16:19).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를 반복하는 것은 두 장에 걸쳐 나오는 바, 종교적이며 상업적인 바벨론에 대한 이중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이는 6절의 언급이 바벨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두 배로 받는다는 뜻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큰 성“(10절), 곧 세계 경제 체제의 본부는 마침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이 곳은 귀신의 거주지가 되었고(엡 2:22 , 교회는 성령의 거하시는 곳) 더러운 영의 피난처가 되었다(16:13-14 참조).
사단은 흔히 새로 표상된다(마 13:4/마 13:19/마 13:31-32). 3절은 음녀가 각국에 영향력을 미쳐 마치 사람들이 술로 취한 것같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그들을 부유하게 했고, 그들에게는 그 부가 생활의 전부였다."
 
계 18:4-8
2. 분리의 음성(18:4-8)
 
하나님의 백성들 중 더러가 이 성에 거하는데 하나님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을 나오라고 하신다. 즉, 그 성은 멸망받을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그 성은 사단적이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부르시는 초청이었다. 그것은 구원이 세상으로부터 주께로 분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고후 6:14-).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속하거나 세상에 거하지 않는다. 세상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나(7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한다. 세상은 “죄의 향락“을 위하여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기쁨을 위하여 산다.7절에 나오는 바벨론의 교만을 보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8절은 그녀가 하루 동안에 기쁨을 애통으로, 부요함을 흉년으로 바꿀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한 가지 교훈을 본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라“(딤전 5:22)."
 
계 18:9-10
3. 애곡의 음성(18:9-19)
 
우리는 바벨론의 멸망을 탄식하는 두 무리를 본다. 땅의 왕들(9-10절)과 땅의 상고들(11-19절)이다. 이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거절하고서 특히 우상과 돈을 쫓아다님으로써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였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이제 종국에 와 있다 ! “화 있도다 화 있도다“는 말이 10, 16, 19절에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자 ! 바벨론은 하루 동안에(8절), 일시에(10, 19절) 심판을 받는다.
 
상고들과 왕들은 왜 애통하는가? 그들의 상품이 이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12-13절은 상인 체제의 막대한 부를 가리키는데, 여기에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도 포함된다. 마지막 날에는 노예들이 증가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사단이 언제나 인간의 영혼과 몸을 종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부자는 더욱 치부하게 될 것이요, 가난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될 것이다. 사치품과 필수품 모두가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멸망받을 것이다. 해운업도 멸망받을 것이며 해운산업도 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만족시키기 위해 경제 제도를 의지하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그들을 쇠하게 할 것이다."
 
계 18:20-24
4. 즐거움의 음성(18:20-24)
 
땅의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일한 관점을 갖지 않는다.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날 때 하늘은 기뻐하나 땅은 통곡한다(12:10-12). 이제 바벨론이 멸망받자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통곡하는 점에 주목하라.
하늘이 즐거워하는 참된 이유는 순교자들의 피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신원되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체제는 사단적이며, 처음부터(창 4장)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에 나오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은 “대주재여...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물었다. 이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를 신원하셨다(롬 12:19 참조).
 
맷돌을 내던진다는 것은 짐승의 제국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게 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맷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며, 다니엘 2장 34-35, 44-45절에 묘사된 “부숴뜨리는 돌“로 본다. 세상이 그리스도 없이도 일이 아름답게 잘 진행되어 간다고 생각할 때 그가 돌아오셔서 그들의 체제를 부수고 그들의 업적을 넘어뜨리실 것이다.
본 장에서 “결코 다시“란 말이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고 예레미야 25장 9-11절을 읽어보자. 하나님께서 “결코 다시“라고 말씀하실 때는 사람이 이를 어떻게도 변경시킬 수 없다(렘 51장 참조).
 
다음으로 우리는 짐승의 제국이 경제적, 종교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본다. 남은 일이란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군대를 멸망시키는 것뿐인데, 19장에서 우리는 이를 보게 된다."
 
 
계 19:1-10
▣ 큰 두 잔치-요한계시록 19장-
 
이 귀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나라의 군대를 멸망시키실 때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의 절정을 설명한다.
 
1. 하늘의 기쁨의 찬양(19:1-10)
 
하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실 것을 예상하므로 네 번에 걸친 “할렐루야 합창“을 한다. 할렐루야라는 말은(헬라어로는 “알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며, 친숙한 구약 용어이다. 하늘은 왜 기뻐하는가?
 
죄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4절)-18장에서 땅의 상고들과 임금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탄식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하늘이 즐거워하고 있다. 바벨론은 모든 종교적인 사기와 혼란의 근원이었으며 하나님의 성도들을 무수히 죽였는데, 이제 바벨론은 멸망받았다. 사실상 바벨론의 몰락이 하늘에서 세 번의 “할렐루야“를 부르게 한다 !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기 때문이다(5-6절)-하늘의 모든 음성들이 그가 하나님이신 것과 보좌에 계신 것 때문에 연합하여 찬양하는 것 같다. “전능한“이란 “모든 것에 능하신“이란 뜻이다. 헨델이 그의 웅장한 “할렐루야 합창“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좌에 계심을 인하여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 !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기 때문이다(7-10절)-“이르렀다“는 단어는 “채워졌다“고 번역될 수도 있다. 신부는 이제 아내(7절)가 되며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게 된다. 이것이 왕이나 주인의 혼인 잔치가 아니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강조하고자 하시는 한 칭호는 “어린 양“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과, 교회를 값주고 산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는 이 잔치를 위하여 자신을 “예비했어야“ 한다. 모든 “흠과 티“가 없어졌던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을 동안이었다(엡 5:25-27). 신부는 선한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늘나라에 가면 신자들이 섬김에 있어서 충성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다.8절은 아내가 성도의 의(義), 곧 “성도의 의로운 행위“를 옷입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충성에 따라서 상을 주실 것이며, 우리가 받는 상급이 그대로 “혼인 예복“을 꾸밀 것이다. 레만 스트라우스(Lehman Strauss)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부가 어린 양과의 혼인 기약이 차면 우리들 각자가 손수 만든 혼인 예복을 입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얼마나 숙연한 생각인가 !
물론 신부와 신랑은 혼인 잔치에 초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늘 나라에서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는 아니면서도 그 영광에 참여할 구약 성도들이다."
 
계 19:11-16
2. 하늘에서 온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들(19:11-16)
 
4장 1절에서 하늘이 열린 것은 교회를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하늘이 열린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로 개선의 출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판받을 때에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천군을 보내어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영광된 군대들, 곧 구약 성도들, 교회, 그리고 천사들과 더불어 말타고 나아가신다(마 25:31/살전 3:13). 6장 1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흰 말을 탔었지만 여기서는 “충신과 진실이라“ 하는 자가 심판과 전쟁을 위하여 말을 타고 나아가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제 더이상 겸손한 나귀를 타지 않으시고 사나운 흰 군마를 타고 계신다. 그의 눈은 예루살렘을 보셨을 때와 같은 눈물에 젖어 있지도 않으며 모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계시지도 않는다. 그의 원수들에게 옷을 벗기우는 대신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시는데, 이는 심판과 승리를 의미한다. 땅에 계실 때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버렸지만 이제 하늘의 군대들이 정복하는 그를 따르고 있다.
그의 입은 “은혜의 말씀“을 하지 않고(눅 4:22) 도리어 승리와 공의의 말씀을 하신다(사 11:4 참조). 그는 철장으로 다스리러 오신다(시 2편). 그는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마겟돈전쟁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기 위해 오신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세상의 군대들이 짐승과 그의 군대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에 모이게 되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나, 이들은 하늘에서 인자의 징조를 볼 것이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려고 모두들 연합할 것이다. 다시 요한계시록 16장 12-16절과 14장 14-20절을 읽어 보라."
 
 
계 19:17-21
3. 땅에 임할 심판을 고함(19:17-21)
 
본 장에서는 두 잔치를 본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9절)와 하나님의 큰잔치, 곧 아마겟돈이다. 첫 잔치는 축복과 기쁨의 시간이나 둘째 것은 심판과 슬픔의 시간이다. 모든 인류사는 아마겟돈을 향하여 급히 이동해 가고 있다.
 
천사는 땅의 군대들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고한다. 사실상, 전쟁은 길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를 즉각적으로 쳐부술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1장). 이 부분에서 “고기“(육신)란 말이 반복되어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이 고기(육신)일 따름이며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울 수가 없다는 뜻이라는 데에 주목하자.
“육신“이란 아담의 타락 이래로 문제의 근원이 되어 왔다. 육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육신을 정죄하셨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육신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싸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 “왕들과 장군들과 장사들“이라 해도 만왕의 왕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대항하기 위해 모여질 군대는 어떤 자들인가? 이들은 유럽 연맹의 열 왕국과 동방의 왕들과 애굽과 러시아의 군대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틴에 있는 에스드렐론(Esdraelon)평지에 모이는데, 나폴레옹이 이 곳을 세계 최고의 천연적 전쟁터라고 한 지역이다. “아마겟돈“이란 말은 “므깃도의 산“이란 뜻이다. 지도에서 이 곳을 찾아 보라.
그리스도는 말씀,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원수들을 멸하신다(히 4:12).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복종치 않았고 복음을 영접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들은 그와 동일한 말씀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한다. 짐승을 따르는 사람들은 “표를 받은 사람들“이며, 몸에 짐승의 표가 있는 것은 분명히 심판을 받는다는 인이 된다. 그리스도는 짐승의 군대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사로잡아 산 채로 지옥에 던지신다. 그는 또한 사단을 취하여 무저갱에 던지신다(20:1-3).
 
구약 선지자들은 이 큰 전쟁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사 63장/ 슥 14장/ 욜 2-3장 참조)."
 
 
계 20:1-5
▣ 흰 보좌 심판-요한계시록 20장-
 
본 장은 “천년“장으로서(이 곳에 6회 언급됨) 천년 왕국의 교리를 다룬다. 밀레니움(millenium)이란 라틴어로 “천년“이란 뜻이다. 진지한 성경 학자들 중에도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있을 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구약의 왕국 예언을 “영해“하는 것을 더 좋아하여 이 예언들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문자적인 지상 천년 왕국이 존재할 것을 믿는다.
 
구약의 약속들이 이스라엘에 성취된다(눅 1:30-33).
그리스도의 영광의 공적 표명이 땅의 나라들에 주어진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22절에 나오는 약속대로 자연의 완전한 구속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 하에서 사람에게 최후의 한 시련이 주어진다.
 
1. 천년 왕국 이전(20:1-5)
 
이제 아마겟돈 전쟁은 끝났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지옥으로 던져졌고, 그리스도는 이제 옛 뱀인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지신다. 사단의 추종자들 중에는 이미 쇠사슬에 묶인 자들도 있으나(벧후 2:4/유 1:6), 이제 “옛 뱀“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 짐승은 무저갱에서 나와(17:8) 지옥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사단의 최후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단이 던져진 후에는 환란당한 성도들이 부활할 것인데, 이들은 그리스도를 충성되이 섬기는 데에 자신의 생명을 바친 자들이다. 다니엘서 12장 1-3절을 보면 구약 성도들 역시 이 지점에서 일으켜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곧 교회의 일원이 아닌 그들은 휴거할 때에 성도들과 더불어 반드시 일으킴받는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죽은 자의 영역에 남아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모두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려고 일으킴받게 된다. 이것이 첫째 부활로 여겨진다. 이 일은 교회의 휴거로부터(살전 4:13 이하)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주어진 성도들의 부활에 이르도록 전개된다. 첫째 부활에서 다시 살아난 자는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둘째 죽음, 곧 지옥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구약 성도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으나, 신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죽은 자 가운데서의 완전한 부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막 9:9-10 ,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은 문자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완전한 부활“을 뜻한다). 성경에는 “일반 부활“과 같은 것은 없다. 구원받은 자는 모두 부활에서 일으킴받으며(시간은 다르지만), 잃어버린 자는 둘째 부활 시에 일으킴받는다. 첫째와 둘째 부활 사이에는 일천 년의 기간이 흐른다.
보좌들이 예비되어 정결케 된 이스라엘 국가, 교회 그리고 환란기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은 이방인들이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심판받게 될 것을 명백히 밝힌다. 믿는 이방인들(양)은 믿는 유대인들(“내 형제들“)을 사랑하고 도와 줌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입증할 것이며, 왕국의 기쁨에 참여할 것이다."
 
계 20:6
2. 천년 왕국 기간(20:6)
 
천년 왕국은 지상에 임한 하늘의 신적 통치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불의나 죄를 허락지 않을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왕국의 중심이 될 것이며(사 2:1-4)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마 19:28). 이스라엘은 의로운 왕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자기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며, 땅에는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사 11:7-9/사 54:13-14).
각 사람은 최적한 직업을 얻게 될 것이며, 완전한 능률과 기쁨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땅에 거하는 인간들, 곧 교회와 무관하게 영화롭게 된 부활한 성도들이 있을 것이므로, 자녀들은 죄악된 본성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천년이 끝나는 때에 외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은 하나 충심으로 그에게 결코 순복치 않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천년 왕국의 주된 목적 중의 하나는 완전한 환경 가운데의 완전한 통치에서라도 인류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천년기의 마지막에서 사단이 그리스도를 대항할 큰 군대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으로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성도들은 왕과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며, 천년왕국 동안에 여러 가지 능력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왕국 시대 동안에 우리가 맡게 될 영화로운 책임의 한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계 20:7-15
3. 천년 왕국 이후(20:7-15)
 
최후의 전쟁(7-10절)-사단은 천년이 차면 풀려나게 되며 그리스도와 싸우기 위해 큰 군대를 모은다. 이것은 완전한 법의 통치도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입증한다. 이들은 오히려 사단을 따르려 할 것이다. 이것이 곡과 마곡의 전쟁이 아닌 것은, 그 전쟁이 환란의 전반부 마지막에 일어나며, 짐승이 러시아와 애굽을 모두 패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는 러시아(곡과 마곡)가 주도적인 세력이 될 것이며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이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군대들은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들을 소멸할 것이다. 사단은 사로잡혀 영원히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사로잡힌 후에 천년간 지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거기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다.
 
최후의 심판(11-15절 이하)-요한은 심판의 보좌를 본다. 이것은 큰 보좌이다. 왜냐하면 역사상의 모든 죄인들이 이 보좌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흰색인 까닭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거룩함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실 것이다. 땅과 하늘이 피하여 간 데가 없자, 죄인들은 숨을 곳이 없어진다 !
 
보좌에 앉으신 재판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5:22). 오늘날은 그가 세상의 구세주이시지만 그 때 그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실 것이다. 부활은 있다. 죽음이 잃어버린 죄인들의 몸을 내어주고 음부(13절에서와 같은 “지옥“이 아님)는 영혼을 내어준다. 잃어버린 죄인들의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연합하는 짧은 순간은 이 죄인들이 지옥에 던져지기 전에 알게 될 유일한 구제의 순간이다.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이 거기 있을 것이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도, 피할 곳은 없다(히 9:27).
 
이 최후의 심판에 관여되는 책들은 어떤 것인가? 물론 요한복음 12장 48절에 의하면 성경책이 거기 있을 것이다. 오늘날 죄인들이 듣고 거절한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성도들의 이름이 녹명된 생명책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는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15절).
또한 사람들이 행한 행위들을 적은 책이 있다. 하나님은 실로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는 각 사람의 일생의 행위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고 계신다. 물론 진리를 알고 고의적으로 진리에 불순종한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욱 맹렬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상을 받는 정도가 각기 다르듯이 지옥에서도 그 형벌을 받는 정도가 각기 다르다(마 11:10-24). “선한행실이 사람을 구원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며 지옥의 공정한 형벌을 받게 하실 것이다.
 
죄인에게는 자기의 경우를 논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책들이 펼쳐지고 사실들이 드러나면, 그는 그리스도 앞에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롬 3:19). 하나님은 선과 악을 저울질하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유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이런 모든 자들이 둘째 부활에 참여하면 둘째 죽음 곧 영원한 지옥을 맞이해야 한다.
 
사단과 죄는 심판을 받았고 인간의 반역은 제지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칠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복이다 !"
 
 
계 21:1-2
▣ 우리의 영원한 본향-요한계시록 21-22장-
 
본 두 장의 주제는 21장 5절에 진술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본 장에 나오는 상세한 사항들을 많이 다루는 것이 흥미도 있고 유익도 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주된 “교훈들“을 다루는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새것들“을 주목하자.
 
1. 새 하늘과 새 땅(21:1-2)
 
헬라어로 “새로운“이란 말은 “특성이 새롭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죄악되고 파괴적인 모든 것이 제거됨으로써 옛 하늘과 옛 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후서 3장 7-10절을 살펴보면 불의 심판이 옛창조에 이런 갱신을 가져온다고 되어 있다.
“없어졌다“는 말은 “파괴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절이며, 그것은 요한이 섬에 유배되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의 삼분의 이가 물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에서는 땅에 물을 공급함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할 것이다. 2절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계 21:3-8
2. 새 하나님의 백성(21:3-8)
 
우리가 영원한 상태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친밀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지내실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죄를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지만(창 3장) 이제 그 저주는 제거되었다(22:3).
하나님께서 “이루었도다“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도다“하신 말씀과 평행을 이룬다. 창조를 시작하셨던 그 동일하신 주님이 또한 창조를 완성하실 것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헬라어 알파벳 첫자와 마지막 자).
그러나, 8절은 이 새 창조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이들은 두려워하는 자들 또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못한 겁장이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들, “군중과 함께 다니다“ 죄를 행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목록의 처음에 “겁장이“를 두신 것에 유의하자 ! 사람이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데 두려워하면 그 결과로 범하게 되는 어떤 종류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져야 한다."
 
계 21:9-27
3. 새 예루살렘(21:9-27)
 
2절은 이 하늘의 성이 천년 왕국 동안에 땅 위에 떠다니다가 새 창조가 시작되면 내려올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 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되며, 또한 신부로 보이게 된다. 당신은 17장에 나오는 바벨론 체제가 음녀로 묘사된 한 성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성이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창세기 4장 17절에서 반역한 가인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떠나 한 성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믿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다“(히 11:10). 이것이 그 성이다.
그 성이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 곧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합시키는 것에 유의하자.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파들이 문들에 이름이 새겨 있고 열 두 사도의 이름이 기초석에 새겨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2장 20절과 마태복음 19장 28절을 참조하라.
 
성의 규모와 그에 대한 묘사는 우리의 상상을 어리둥절케 한다. “네모가 반듯하다“는 말은 “사면이 같다“는 뜻이며, 아마도 성이 완전한 입방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지성소“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이것이 피라밋같이 사각뿔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성은 사방 2,400km로 측량되며 미국의 삼분의 이에 해당한다 ! 보석의 아름다운 색들은(18-20절)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은혜“를 암시한다. 이 보석들의 색에 대해서는 사전으로 조사해 보라.
 
이 성에는 몇 가지 빠진 것들이 있다. 성전, 자연의 빛, 그리고 밤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인격적으로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은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을 대신한다. 성경에서 밤은 죽음, 죄, 슬픔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에서 죽음과 죄와 슬픔이 영원히 사라졌다면 밤은 있을 수없다.
성문들은 도무지 닫지 않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새롭게 하신 우주의 어느 곳에서도 그 성에 들어갈 수가 있다. 땅에는 만국이 있을 것이다(24절/ 22:2 참조). 만국의 모든 영광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에게로 돌려질 것이다."
 
계 22:1-5
4. 새 낙원(22:1-5)
 
이러한 새 창조에서 하나님은 본래 처음 창조의 비극들을 모두 반전시키신다. 옛 하늘과 땅은 혼돈에 처해 있었으나(창 1:2), 이제 완전함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있다. 에덴은 땅의 강이 있었는데(창 2:10-14) 여기는 놀라운 하늘의 강이 있다.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는 사람이 죄를 범한 후에 파수꾼이 세워졌으나(창 3:24), 하늘의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용할 수가 있다.
창세기 3장 14-17절에 보면 저주가 끼어 들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저주가 없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의 낙원을 떠나야 했고 매일의 양식을 위하여 수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완전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대한다. 처음 남자와 여자가 범죄하여 종이 되자 그들은 에덴에서의 그들의 왕관을 잃었다. 그러나 5절은 이 왕권을 다시 얻을 것임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이다 !
 
현재의 피조계는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속박아래 신음하며 통곡하고 있다(롬 8:18-23). 그러나 어느 한 날, 하나님은 새 창조로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는 영원토록 완전한 자유와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것이다!
 
계 22:6-21
5. 마지막 멧세지(22:6-21)
 
이 책의 마지막에서 “그리스도는 내가 속히 오리라 !“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다(7, 12, 20절), “속히“라는 단어는 요한의 시대에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신속히“를 나타내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지체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를 알지 못하므로 예비하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다니엘 12장 4절에서 선지자는 이 책을 인봉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요한은 “때가 가까우니라“는 이유로 책을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다니엘의 말은 여러 해 동안 성취되지 않을 것이었으나, 요한의 예언은 곧 이루어질 것이었다.
11절은 죄인들이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라는 논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17절에 나오는 초청은 하나의 조롱이 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11절은 계속되는 죄가 사람의 성품을 규정하고 그의 운명을 결정짓게 한다는 경고이다. 다니엘 12장 10절은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람의 참된 성품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얻는 또하나의 교훈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억지로 악하게 하거나 의롭게 하지는 않으신다(22:15/ 21:8).
 
이 책의 마지막 구절들은 간구와 기도와 약속이다. 7절과 12절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셨고,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신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보내는 또하나의 초청이 있다. “와서 생명수를 마시라“는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기도는 요한의 말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기도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18-1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난하는 데에 대한 경고가 있다.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말씀에서 무엇을 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것이다(신 4:2/잠 30:5-6 참조). 물론 요한의 시대에는 책들이 필사되었는데 필사자들은 이 자료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그들의 신학 구조에 맞지 않는 것은 빼버리기도 한다.
 
이리하여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일들에 대한 책이 끝난다. 이 연구를 끝마침에 있어서 성령의 기도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 동탄명성교회 앱을 아이폰, 아이패드 등 iOS 계열 휴대폰에서 사용하기

  2. 동탄명성교회 모바일 홈페이지 어플리케이션

  3. No Image 01Aug
    by 갈렙
    2017/08/01 by 갈렙
    Views 391 

    100%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4. No Image 01Aug
    by 갈렙
    2017/08/01 by 갈렙
    Views 356 

    기도응답의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5. [인터뷰] 칭의론 논쟁, 김세윤 교수에게 듣는다_칭의의 완성은 마지막 그 날에 예약(reservation) 되었다

  6. [교계뉴스] 믿기만 하면 구원? '칭의론' 곡해한 이단적 발상"_데일리굿뉴스

  7. No Image 28Jul
    by 갈렙
    2017/07/28 by 갈렙
    Views 364 

    [교계뉴스] 칭의론은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_고신대 교의학교수 박영돈목사

  8. [찬송가] 미국(캐나다) 찬송가 229장 그리스도,당신은 충만하심이라_ 우리나라 아리랑곡이 찬송가에 포함되어 있다

  9. [천주교]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구속자(Co-Redemptrix)로 요청하다

  10. No Image 10Jul
    by 갈렙
    2017/07/10 by 갈렙
    Views 577 

    [강해] 요한계시록강해_워런 워스비

  11. No Image 09Jul
    by 갈렙
    2017/07/09 by 갈렙
    Views 852 

    [주석] 요한계시록 장별 연구교재_김갑중목사

  12. No Image 08Jul
    by 갈렙
    2017/07/08 by 갈렙
    Views 328 

    [교회사] 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의 역사_심상용

  13. No Image 08Jul
    by 갈렙
    2017/07/08 by 갈렙
    Views 433 

    [교회사] 종교개혁의 선구자 위클리프 , 그는 누구며 무슨 일을 했는가?

  14. No Image 07Jul
    by 갈렙
    2017/07/07 by 갈렙
    Views 2931 

    [ 성경] Wycliffe Bible(WYB)(A.D.1382)

  15. No Image 06Jul
    by 갈렙
    2017/07/06 by 갈렙
    Views 1051 

    [강해] 창세기의 구조와 신학_송제근교수

  16. [주석] 신구약 66권 주석_김효성목사

  17. No Image 27Jun
    by 갈렙
    2017/06/27 by 갈렙
    Views 730 

    [교리]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

  18. No Image 24Jun
    by 갈렙
    2017/06/24 by 갈렙
    Views 427 

    [교리] 모든 피조물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가?

  19. [교리] 하나님의 섭리

  20. No Image 23Jun
    by 갈렙
    2017/06/23 by 갈렙
    Views 574 

    [신조] 니케아신조(325년) 콘스탄티노플신조(381년) 아타나시우스신조(420~450년) 칼케톤 신조(451년)

  21. [도표] 유대력과 유대절기들

  22. No Image 22Jun
    by 갈렙
    2017/06/22 by 갈렙
    Views 418 

    [교리- 2~3세기의 삼위일체

Board Pagination Prev 1 ...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 48 Next
/ 48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