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권 중 관련내용

2014.01.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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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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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100년?)의 유대고대사

‘예수라고 하는 한 현자’가 살았으며, 메시아로서 한때 대중적인 명성을 얻다가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그를 따르는 족속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유대고대사>18, 63-64.) 요세푸스는 또한 62년 ‘율법 위반을 이유로’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대제사장 아나누스와 그가 이끄는 산헤드린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전한다.(<유대고대사> 20, 200)

 

② 랍비자료 [bSanh 43a] (구전되던 것을 기원후 2세기 초에 기록) :

“예수가 마술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불충한 자로 만들었다”면서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자료는 예수에게 다섯 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아무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유월절 축제 전날 밤에 매달았다”고 전한다.

 

③ 시리아인 스토아 철학자 마라 바르 사라피온의 기록(73년경):

이 철학자는 로마의 어느 감옥에서 자신의 아들 사라피온에게 쓴 편지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소크라테스는 죽지 않았다-플라톤 때문에. 피타고라스도 아직 살아 있다-헤라스타투에 때문에. 현명한 왕도 살아 있다-그가 준 새로운 율법 때문에.

 

④ 로마의 정치가 플리니우스(61-120년경)의 서간문:

폰투스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시절 그리스도인에 대한 고발을 받고 조사하면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떠했는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정해진 날 해가 뜨기 전에 모여서 차례차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나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도둑질, 강도, 간음, 약속 파기, 기탁금 횡령을 중단할 것을 맹세합니다.”

 

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55/56-120년경)의 <연대기>15,44,4 :

타키투스는 네로의 전기를 쓰면서, 64년 발생한 로마의 큰 화재로 인해 방화혐의를 받았던 기독교인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명칭(Christiani)은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혔다.”

 

 

예수의 역사성 - 자료4 [타키투스]  하나님을 위한 변증

2005.06.0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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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역사성(역사적 증거자료) - 자료4 [타키투스의 연대기]

 

타키투스(P. Cornelius Tacitus) : A.D.55/56-A.D.120년경. 로마 원로원 귀족, 평범한 관직생활을 했으나 로마 황제권에 대해 비판적인 ‘역사’와 ‘연대기’를 써서 유명해졌다.

그는 연대기 13-16장에서 네로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64년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다. 연대기는 A.D.115-117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사진은 티베리우스 황제)

 


원문 : [이 명칭(Christiani)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쳤다. ..(중략)..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 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접기

 

 

이 본문에서는 그리스도란 인물이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디오 빌라도의 직책이 총독이 아닌 행정관으로 되어 있는 오류가 발견된다.

 


회의론자들의 입장

먼저 문건의 작성연대가 예수 이후 80년 이상 지난 이후로서, 타키투스는 직접 아는 내용을 기술한 것이 아니고 소문이나 다른 누군가로부터 들은 정보를 말하고 있다. 게다가 ‘연대기’의 단 하나 남아 있는 현존사본은 A.D.85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원본이 만들어진 후 무려 700년 이상 지난 것이어서 요세푸스의 경우처럼 후대의 기독교인들이 가필하였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당초에 타키투스가 기록하였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이 문건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고 그냥 그리스도라고만 표현되어 있을 뿐이어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될 수 없다.

 


기독교의 입장

현존사본이 A.D.850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이 내용의 신뢰성을 해치는가?

  물론 오래된 사본일수록 원본과 차이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있는 연대기의 사본은 굉장히 정확한 로마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당초에 적혔을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본으로 필사되는 과정에서 변할 수 있는 요소들은 입장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지 사건 자체가 통째로 더해지거나 빠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약 회의론자들의 주장대로 사본의 제작연대가 원본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예수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사의 대부분에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사실 역사학에 있어서 이러한 주장은 모든 기록물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연구의 진행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채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는 것과 같다.

 

80년이 과연 신화적 인물을 창조할만큼 긴 시간인가?

  플루타크가 ‘영웅전’에서 알렉산더의 출생에 가미한 신화적 요소는 알렉산더의 어머니가 신비한 꿈을 꾸고 나서 그를 잉태한다는 내용 정도이다. 그가 사망한 지 400년이나 흐른 뒤였음에도 심한 과장은 별로 그려지지 않은 셈이다. 플루타크의 영웅전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신화적 악세사리 외에는 대체로 신뢰할 만한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400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화적 재창조는 우리의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80년이란 시간은 전혀 없던 인물을 만들어내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매우 짧다. 그 시대에도 학식을 갖춘 변증가와 논리적인 교양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키투스가 A.D.55년 경 출생한 인물임을 감안할 때 예수의 존재가 조작이라면 타키투스는 그 사기성을 고발하는 글을 적었을 것이다. 자신이 젊었을 때는 전혀 없던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늘그막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을 관료인 그가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해 ‘부패한 미신’이라고 일컬을 만큼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진 그였음에도 예수의 존재를 ‘사기’로 보지 않고 짧은 글이나마 사실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가필인가?

  요세푸스의 경우 부분적 가필이란 결론을 내렸던 기독교학자들도 타키투스의 저작에 대해서는 가필의 가능성을 매우 적게 보고 있다.

  우선, 빌라도를 행정관으로 묘사하고 있어 신약성경과 배치된다. 기독교인들이 적었다면 신약성경과 일치하는 내용인 총독이라 적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기독교를 인류를 증오하는 ‘부패한 미신’집단으로 보며 그리스도를 악의 근원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이 기록들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록되었을 리 만무하다. 의도적인 가필이라면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나 이 기록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반면 흠집만 더해지는 꼴이니 의도적 가필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 기록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란 사람이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 그리스도란 인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대화재 이후 박해받은 종교인은 오직 기독교인들 뿐이었으므로 이 글의 그리스도가 ‘예수’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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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 역사적예수(게르트 타이쎈 외), 예수는 역사다(리스트로벨)


[출처] 예수의 역사성 - 자료4 [타키투스]|작성자 주덥
 

 

 

 

 


⑥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70-130년경) :

그는 열두 황제의 생애를 집필했는데, 그 내용 중에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을 짤막하게 언급한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18:2)에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고린도로 이사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나온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수에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크레스투스에 의해 미혹되어, 끊임없이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그는 로마에서 추방했다.”

 

⑦ 로마인 혹은 사마리아인 역사가 탈루스(1세기) :

로마 역사가 율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170-240년경)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발생한 급작스런 어둠에 대해 탈루스가 그의 책에서 언급했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역사책 제 3권에서 탈루스는 이 어둠을 일식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불합리한 것 같다.”

 

 

 

 

 

역사적 예수가 기록된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3장의 전장내용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8권에서 본디오 빌라도의 유대총독 재임시절(AD 26~37)에 있었던 사건들과 연관해서 예수를 언급하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예수뿐 아니라 예수의 동생 야고보, 세례요한까지 신약성경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측면에서 신뢰성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예수에 대한 증거도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대고대사 18권(32년간) 1장

 

- 케사르는 로마 원로원 의원인 키레니우스(Cyrenius)를 유대인들의 세금 징수를 위해 수리아에 파견

- 세금부과에 반대하여 가말라(Gamala)에 사는 유다스(Judas)가 바리새인 사둑과 함께 반역을 선동

- 유대인의 철학종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엔센파에 이어 유다스와 사둑이 새로은 4번째 철학체계 도입

 

 

유대고대사 18권(32년간) 2장 : 본디오 빌라도 유대총독으로 부임

 

- 헤롯과 필립이 케사르(가이사 또는 옥타비아누스)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도시들을 건설한 경위, 가이사는 로마 황제의 칭호이다

 

1. 케사르가 악티움 전투(BC 31)에서 안토니를 무찌르고 승리한 지 제37년째가 되던 해(AD 6)에 키레니우스는 아켈라오의 재산을 처분하고 세금부과의 건을 매듭짓고 난 후, 백성들이 선택해 세웠던 대제사장 요아사르(Joazar)를 대제사장직에서 해임시키고 셋(Seth)의 아들 아나누스(Ananus)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헤롯과 필립은 각기 그들의 분봉국(tetrarchy)를 차지하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헤롯은 전 갈릴리 지역의 요충지인 세포리스 시를 성벽을 쌓아 요새화하여 분봉국의 중심도시로 만들었다.

헤롯은 또한 베타람프타 시도 성벽을 쌓아 요새화한 후 황제의 아내인 이름을 본따 율리아스(Julias)라고 이름 지웠다.

필립도 요단강 근원지에 도시를 건설하고 가이사랴로 불렀다.

그는 또한 게네사렛 호숫가에 위치한 벳새다 마을을 주민의 수로나 그 밖의 점에서 시로서의 면목을 갖추도록 만든 후에 케사르의 딸의 이름을 본떠서 율리아스라고 명명했다.

 

2. 코포니우스는 키레니우스와 함께 케사르의 명을 받고 유대 총독으로 보냄을 받았다.

코포니우스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있을 때 아래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무교절에 제사장들은 밤 12시가 지나면 바로 성전 문을 여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었다.

그런데 성전문이 열리자마자 몇몇 사마리아인들이 몰래 예루살렘에 잠입하여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을 성전 회랑에 던져 놓고 도망을 쳤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그후로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일이 일어 난 후 코포니우스는 로마로 돌아가고 마르쿠스 암비비우스가 후임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헤롯 왕의 여동생인 살로메가 세상을 떠났다.

살로메는 유언으로 얌니아와 그 인근 전지역과 파사엘리스 평지를 케사르의 아내 율리아에게 주었으며 아르겔라우스에겍는 종려나무 대농장-최고급 열매가 맺히는-을 남겨 주었다.

 

그 후 마르쿠스 암비비우스의 후임으로 안니우스 루푸스가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케사르 즉 로마의 두번째 황제가 새상을 떠났다.

케사르의 재위기간은 모두 57년 6개월 2일간이었다. (이 기간 중 안토니우스와의 공동 통치기간은 14년이었으며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죽자 율리아의 소생인 티베리우스 네로가 뒤를 이었다.

티베리우스 네로는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그는 안니우스 루푸스 후임으로 발레리우스 그라투스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발레리우스 그라투스는 아나누스를 대제사장직에서 해임시키고 파비의 아들 이스마엘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스마엘을 대제사장직에서 해임시키고 아나누스의 아들 엘루아살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엘루아살도 1년 만에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후 그라투스는 카미투스의 아들 시몬에게 대제사장직을 주었다.

그러나 시몬도 1년이 채 못 되어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요셉 가야바가 후임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마태26:57)

그라투스는 11년 동안 유대를 통치하다가 로마로 돌아갔다.

 

이에 본디오 빌라도가 후임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961년 발견된 건물 준공 석회암에 라틴어로 빌라도 이름이 있다>

 

 

유대고대사 18권(32년간) 3장 : 유대인의 반역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기록된 3장은 모두 5개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1파트 : 케사르의 우상 사건

2파트 : 유대인의 반역과 살해(누가 13:1~2)

3파트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4파트 : 로마 이시스 신전에서 일어난 추잡한 사건

5파트 :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건

 

1파트 : 케사르의 우상 사건 

 

유대 총독 빌라도는 유대 율법을 말살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겨울 진영으로 삼고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빌라도는 또한 상(Image)을 만드는 것조차도 금하는 유대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사르의 상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전임 총독들은 유대 율법이 우상을 금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상이 그려지지 않은 깃발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었다. 따라서 이런 상을 예루살렘에 가지고 들어온 것은 빌라도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밤에 일어났기에 유대인들은 처음에 몰랐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떼를 지어 가이사랴로 몰려가서 에루살렘으로부터 케사르의 상을 제거해 달라고 여러 날 빌라도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것이 케사르에게 욕이 된다는 이유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유대인들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간정하였다. 6일째 되는 날 빌라도는 병사들에게 은밀히 무기를 소지하고 자기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라고 명령하였다. 빌라도는 6일때 되는 말 재판석에 나와 앉았다 그는 병사들을 숨길 수 있도록 도시의 공터에 재판석을 만들어 놓았었다. 유대인들이 다시 간청을 하려고 나타나자 빌라도는 신호를 보내 병사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에워싸게 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괴롭히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땅에 엎드려 목을 길게 빼고는 울법을 범하느니 차라리 달게 죽겠다고 말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키려는 굳은 결의에 크게 감동하여 즉시 케사르의 상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옮겨 오라고 지시하였다.

 

 

2파트 : 유대인의 반역과 살해(누가 13:1~2) 

 

빌라도는 거룩한 돈(Sacred momey)을 사용해서 200퍼얼롱 떨어진 곳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일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빌라도가 그 일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하였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군중들이 모이면 흔히 하는 것처럼 빌라도에게 욕설을 퍼붓고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빌라도는 많은 병사들을 유대인 복장으로 변장시키고 단검을 옷 속에 숨기에 한 후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에 잠입시켰다. 그리고 빌라도는 몸소 나서 유대인들에게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비난을 퍼붓자 빌라도가 약속한 신호를 병사들에게 보냈다. 병사들은 빌라도가 명령한 것보다 더 가혹하게 행동하여 거기에 있던 사람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려고 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였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해당했고 일부는 부상당한채로 도망을 쳤다. 이렇게 해서 반역이 진압되었다. (이 사건은 누가 13장 1~2절에 나온다)

 

13: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1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13: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13: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13: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3파트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한편 바로 이때 예수라는 지혜로운 사람 - 너무나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 -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드릴 수 있게 만드는 선생이었다. 그는 수많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그의 곁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유대인의 유력 인사들의 청에 의해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으나 그를 처음부터 사랑하던 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에 관해 예언한 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뿐 아니라 그에 관해서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었다. 그의 이름을 본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4파트 : 로마 이시스 신전에서 일어난 추잡한 사건

 

또 다른 슬픈 재난으로 유대인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이때 로마에 있는 이시스의 신전에서도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이시스의 신전에서 일어난 추잡한 죄악에 대해서 먼저 살펴본 다음에 유대인들이 당한 재난도 살펴보도록 하자.

 

로마에는 파울리나란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명문 출신으로 정숙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명성이 매우 드높았다. 또한 그 여인은 매우 큰 부자였다. 게다가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으며 세상을 즐기려는 한창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숙한 삶을 살았다. 파울리나는 모든 면에서 결코 자기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사투르니누스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고위 기사단(equestrian order, 고대 로마에서 기병대를 구성하는 사람들로 특별한 권리를 가진 시민자들) 단원인 데키우스 문두스가 파울리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울리나는 선물 따위로 환심을 살 수 있는 그런 여인이 아니었다. 이에 데키우스 문두스는 많은 선물을 보냈으나 그 때마다 거절을 당하였다. 그러자 문두스는 오히려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어 하루밤만 같이 지내게 해주면 200,000아틱 드라크마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럼에도 파울리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파울리나의 거절에 상심한 문두스는 음식을 전폐하고 굶어 죽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문두스는 자기 생각을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문두스에게는 그의 부친이 해방시킨 이데(Ide)라는 여자 하인이 하나 있었다. 이데는 남을 해하는 일을 꾸미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여인이었다. 이데는 문두스가 계획한 것을 알고 문두스를 찾아가 위로하면서 파울리나와 하룻밤 지낼 수 있는 묘책이 있다고 했다.이에 문두스가 귀가 솔깃해지자 이데는 50,000드라크를 주면 파울리나를 올가미에 잡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데는 문두스를 설득하여 50,000 드라크마를 손에 넣었다. 이데는 파울리나가 돈에 넘어갈 여자가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문두스처럼 돈으로 유혹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대신 이데는 파울리나가 이시스 여신을 열성으로 섬긴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데는 이시스(Isis)를 섬기는 몇몇 제사장들을 찾아가 능란한 말솜씨와 돈으로 그들을 유혹하였다. 그들에게 25,000드라크마를 주면서 일이 성공하기만 하면 25,000드라크마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데는 문두스가 파울리나를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파울리나를 속여서 문두스가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시스의 제사장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져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이가 많은 제사장은 즉시 파울리나를 찾아가 은밀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파울리나가 말해 보라고 하자 제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누비스 신의 명을 받고 이렇게 오게 된 것입니다.

아누비스 신께서 그대를 사랑하시어 그대를 불러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파울리나는 제사장의 말을 호의로 받아들였으며 아누비스 신이 황공스럽게도 그런 은혜를 자기에게 베푼 것엗 대해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파울리나는 남편에게 아누비스 신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동침하자는 내용의 전갈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남편은 그동안 아내의 정절에 크게 만족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마침내 파울리나는 신전으로 갔다. 식사가 끝나고 잘 시간이 되자 제사장은 신전의 모든 문을 닫았다. 성소의 불도 모두 꺼졌다. 그리고 제사드리는 동안 그를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문두스가 나와 파울리나와 동침을 했다. 문두스는 이런 계략을 전혀 모르는 다른 제사장들이 눈치채기 전에 일찍 사라졌다. 한편 파울리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찍 남편에게로 돌아가 아누비스 신이 그녀에게 나타났었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도 그누가 아누비스 신에게 이보다 더 큰 은혜를 입을 수 있겠느냐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신반의하면서 파울리나의 신분과 정절을 생각하면 믿지 않을 수도 없어서 놀라워했다. 이런 일이 있은지 3일째 되는 날 문두스는 파울리나를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오 파울리나여, 그대는 200,000드리크마를 벌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소. 그러나 어쨌든 그대 덕분에 나는 200,000드라크마를 쓰지 않게 되어 기쁘오. 또한 내가 찾아갔을 때 나를 극진히 섬겨 주어 고맙기 그지 없소. 그대가 문두스라는 이름에 그동안 먹칠을 해왔으나 이름이 무슨 상관이 있소. 실제로는 내가 그대를 안고 즐긴 것을 알고 있지 않소? 내가 아누비스 신의 행세를 하고 그대를 내 품에 안은 것을" 문두스는 이렇게 말하고는 가버렸다. 파울리나는 그때야 비로서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파울리나는 옷을 찢고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알린 후 이번 일을 모른체 하지 말고 제발 자기를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남편인 사투리니누스는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렸다. 티베리우스 네로 황제는 제사장들을 심문하여 사실을 밝혀내고, 제사장들은 물론 흉계를 꾸민 이데를 십자가에 처형시켰다. 황제는 또한 이시스 신전을 파괴하고 이시스 여신의 상을 티베르 강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문두스를 단지 추방만 시켰다. 문두스가 사랑에 눈이 어두워 멋모르고 지은 죄라는 이유였다. 이시스 신전과 이시스 신의 제사장들이 저지른 죄악은 이와 같이 추잡했다

 

이제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살펴보도록 하자.

 

5파트 : 유대인들이 로마에게서 추방된 사건 

 

한 유대인이 율법을 범한 죄로 고소를 당하자 벌을 받을까 무서워 로마로 도망쳤다. 그는 어디로 보나 사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에 거주하면서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의 지혜를 가르친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또한 성품이 악한 세사람을 공모자로 끌어들였다. 그는 유대종교를 신봉하는 매우 지체 높은 부인 풀비아(Fulvia)를 감언 이설로 꼬여 자주색 옷감과 금을 예루살렘 성전에 보내게 한 다음 그것을 중간에서 가로체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풀비아의 남편 사투루니누스는 자세한 내막을 황제에게 알렸다. 이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사실을 자세히 조사한 연후에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 밖으로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집정관들은 유대인 중에서 4,000명을 뽑아 사르디니아 섬으로 보내는 한편 조상 전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병사가 되기를 거절하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처벌하였다. 이같이 단 4명의 범죄로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 것이다.

 

 

 

유대고대사를 기록한 요세푸스의 삶 - 지식카페

http://blog.naver.com/acoloje/60196895334

 

요세푸스는 서기 37년에 태어나 서기 100년이 지난 언젠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고 어머니는 하스모니안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의 생애 중 33년은 유대인 제사장, 사령관 ,죄수 등으로 보냈고 후반기 30여년은 로마시민과 저술가로 활동하였다

19세 때 요세푸스는 바리새파에 가담했고 평생동안 바리새파로 살았다

서기 64년, 그의 나이 26세 때 네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벨릭스에 의해 로마로 보내진 제사장들의 석방을 얻어 내기 위해 로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로마 방문에서 로마가 도전할 수 없는 무적의 강한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왔다

서기 66년에 케스티우스 갈루스가 로마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벤호론 골짜기에서 로마 제 12군단은 유대군에 의해 참패를 당했다

그 다음해 봄에 베스파시안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왔고 유대군의 사령관이었던 요세푸스는 6주간 적의 공격을 버티어내다 로마군에 항복하였다

네로의 죽음과 그 후 3명의 황제의 경질과 계속되는 역모로 얼룩진 격동기로 인해 유대인과의 전쟁은 잠시 중단되었고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될 거라고 예언했던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되자 석방되었다

유대전쟁이 재개되자 요세푸스는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예루살렘의 함락을 목도하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면서 항복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큰 미움을 사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이것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위해 이렇게 행동한 것이라 본다.

예루살렘 함락 후 요세푸스에게는 예루살렘 근처의 토지와 수많은 책들과 고요한 명상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티투스는 함께 로마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거기서 플라비우스 가문의 가신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의 역사를 저술하라는 의뢰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요세푸스는 저술 활동을 위한 공개적인 무대를 갖게 되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로마에 다른 많은 저술가들이 있었음에도 요세푸스는 그 당시 로마에서 널리 존경을 받았으며 대중들의 종교적인 견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저술가였다

요세푸스의 첫 저서는 베스파시안 치세 말년에 발간된 유대 전쟁사고 유대고대사는 이보다 약 15년 후인 서기 93년경에 발간되었다

그는 창세기부터 기록된 유대고대사를 기록하면서 헬라어 70인경 성경을 참조하였고 당시의 세속 자료와 전설도 참조하여 기록하였으나 일부 잘못되게 인용한 사례도 있었는데 이것은 동일한 사건을 가지고도 증인들의 진술에 불일치가 심각한 사례는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 문제점으로 보인다.

자서전은 서기 100년 직후에 썼고 유대주의를 옹호하는 변증서인 아피온 반박(Against Apion)을 저술하였다

그는 3~4번 결혼하였는데 한 부인은 그에게서 도망쳤고, 다른 부인과는 이혼을 한 것으로 볼 때 그의 가정 생활은 평탄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고대사 목차

1권 (3,833년간의 역사기록) : 창조로부터 이삭의 죽음까지

2권 (220년간 역사) : 이삭의 죽음으로부터 출애굽까지

3권 (2년간 역사) : 출애굽으로부터 그 세대가 버림받기까지

4권 (38년간 역사) : 모세의 죽음까지

5권 (476년간 역사) : 엘리의 죽음까지

6권 (32년간 역사) : 사울의 죽음까지

7권 (40년간 역사) : 다윗의 죽음까지

8권 (163년간 역사) : 아합의 죽음까지

9권 (157년간 역사) : 열지파가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10권 (182년간 역사) : 고레스 원년까지

11권 (253년 역사) :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까지

12권 (170년간 역사) : 유다스 마카베우스의 죽음까지

13권 (82년간 역사) : 알렉산드라 여왕의 죽음까지

14권 (32년간 역사) : 안티고누스의 죽음까지

15권 (18년간) : 헤롯 성전의 완공까지

16권 (12년간) :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까지

17권 (14년간) : 아루켈라우스의 추방까지

18권 (32년간) : 유대인의 바벨론으로 이거까지

19권 (3년6개월) : 로마 총독 파두스까지

20권 (22년간) : 플로루스까지

[출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권 중 관련내용|작성자 소영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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