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성지 이야기 5] 형제 사랑의 도시,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도살 전 구입해 온 양을 놓고 이슬람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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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반 바이람
한국은 9월 27일이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인데, 터키도 9월 24일부터 27일까지를 전통적인 명절인 ‘쿠르반 바이람(Kurban Bayram)’으로 지킵니다. ‘쿠르반’(Kurban)은 희생을, ‘바이람’(Bayram)은 휴일·축일·기념일을 의미합니다.
쿠르반 바이람은 라마잔(Ramazan, 일반적으로 라마단이라 불리는, 이슬람교의 종교적 금식 기간)이 끝난 뒤 70일째부터 4일간 계속됩니다. 올해는 7월 16일 라마잔이 끝났는데, 그로부터 70일 후인 9월 24일부터 4일간입니다.
창세기 22장에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아들 이삭을 번제하라고 요구하시고, 실제로 아브라함이 제단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빼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희생양을 준비해 주셨고, 그는 아들 이삭 대신 그 양을 번제로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양시장에서 쿠르반 바이람 용으로 판매하는 양들을 진열한 모습.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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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브라함이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람이 이삭이 아니라, 배다른 형제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라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쿠르반 바이람은 이스마엘의 희생을 기념하는 이슬람교의 종교적 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이슬람식 표현)과 이스마일(이스마엘의 이슬람식 표현)이 알라에게 보였던 신앙을 기념하기 위해, 알라가 예비한 양을 제물로 드려 경의를 표했던 사건을 되새기며 축제로 고양시킨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이브라힘이 알라에게 보였던 신앙을 본받아, 쿠르반 바이람을 통해 알라에게 절대 복종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개인 가정에서 소나 양을 도살해서 쿠르반 바이람 기간만 되면 온 동네가 핏빛으로 물들고, 양이나 소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했으며, 도살을 하다 실수를 해서 목이 잘리다 만 소가 거리로 뛰쳐나와 온 동네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진기한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길이나 개인 가정에서의 도살은 금지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쿠르반 바이람이 되면 여전히 길에서 도살하는 풍경, 뒷마당에서 생고기를 자르는 풍경 등을 볼 수 있답니다.
▲쿠르반 바이람에 제물로 대기하고 있는 양의 모습.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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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쿠르반 바이람이 종교적 의식을 넘어, 거의 모든 터키 국민이 이를 한국의 설이나 추석처럼 커다란 민족 명절처럼 지킵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민족 대이동이 있는 기간으로, 터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고향이나 친지 집을 방문하곤 한답니다.
터키에서는 쿠르반 바이람을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이날 희생물로 삼았던 양과 소의 고기 중 1/3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1/3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머지 1/3은 가족과 친척들에게 나누며 축제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와 이웃, 친지들과 본인들의 것을 나누는 귀한 삶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쿠르반 바이람 때 도살하는 영상(임산부 및 노약자는 보지 마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13ELb669xk
https://www.youtube.com/watch?v=zBHkfuVrmn0
▲제물로 대기 중인 양들.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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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Philadelphia), 그리고 알라쉐히르(Alasehir)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도 이렇게 나눔의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로 오늘 소개할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필라델피아는 헬라어 ‘Philos(사랑)’와 ‘Adelpos(형제)’를 합친 것이며, 그 의미는 ‘형제 사랑’이랍니다.
이곳의 현재 지명은 알라쉐히르(Alasehir)입니다. 해석하면 ‘알라(神)의 도시’란 뜻이지요. 투르크인들이 빌라델비아를 점령한 후 이름을 알라쉐히르로 명명한 것은, 셀주크 투르크가 이 아나톨리아를 점령하면서 주민들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제적으로 혹은 회유하면서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빌라델비아만은 끝까지 개종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 했던 모습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르크인들은 도시 이름을 통해 ‘이곳은 진정 신의 도시’라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실제 빌라델비아는 아랍인들의 침략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던,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었습니다.
잘 알려진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이름도, 이 소아시아 빌라델비아에서 따온 것입니다.
▲6세기에 지은 빌라델비아 성 요한 교회 모습.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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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사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B.C. 150년경 페르가몬 왕 앗탈로스 2세에 의해 건설됐다가, A.D. 130년 로마에 귀속되었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앗탈로스 2세의 이름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름과 함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앗탈로스 2세는 페르가몬(Pergamon) 왕국 앗탈로스 왕조의 4대 왕인 유메네스 2세의 동생이었습니다. 유메네스 2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동생 필라델푸스, 즉 앗탈로스 2세에게 내정을 맡기곤 했지요. 로마는 인기가 많은 필라델푸스를 빌라델비아의 통치자로 세워 놓고 자기들 뜻대로 이용하려고 필라델푸스를 충동하였으나, 그는 여기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형 유메네스 2세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유메네스 역시 죽을 때 자식이 아니라 동생인 필라델푸스(앗탈로스 2세)에게 왕위를 계승해 주게 됩니다.
앗탈로스 2세는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도시를 건설하는데, 도시 이름은 자기의 원래 이름을 따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리디아 왕국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서쪽으로는 버가모와 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를 잇는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많은 지진 피해를 겪었답니다. A.D. 17년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처음에는 시민들이 잘 대처하였으나 계속되는 지진으로 인해 도시를 떠나 넓은 평원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 집이 끊임없이 허물어졌고, 도시 또한 크게 붕괴됐다. 그러므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고, 대부분 기름진 땅이 있는 농촌에서 살았다. 거주지가 불안정할 때마다, 그들은 농촌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다.”
▲6세기에 지은 빌라델비아 성 요한 교회 모습.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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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의 기원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이 그의 친척 누기오를 빌라델비아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승으로는 이 도시의 첫 교회 감독은 요한이 임명한 데메트리우스라였다고 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비아는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가 이슬람 교도에 의해 짓밟힐 때 기독교의 유일한 보루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입니다.
사도 요한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는 가난하고 약했으며, 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많은 멸시와 핍박을 받았지만 생명과 활력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쓴 지 10년이 지난 주후 105년, 빌라델비아 교회는 로마로 압송당하던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가 트로이에서 쓴 편지를 받아 보게 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빌라델비아 교회 감독에게 교회의 분열과 잘못된 교리를 막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로 연합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2세기 암미아라는 여선지자가 빌라델비아 교회를 섬기면서부터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암미아는 초대교회 내에서 빌립 집사의 네 딸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그녀의 예언과 은사는 교회의 부흥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이 매우 불안해했지만,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주었습니다.
▲알라쉐히르에 있는 포도 농장.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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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로는 포도를 주로 재배하였는데, 지금도 이곳에 수십 킬로미터의 포토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소아시아 내 300여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형제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합니다.
이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했으나, 내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잘 극복해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구도 적고, 가난했고, 잦은 지진으로 인해 삶이 늘 불안해 약하고 작아 보였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라 칭찬을 받고, 이민족의 침입 때에 적들도 인정하는, 신앙을 잘 지키는 교회가 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아마 그것은 형제 사랑을 삶에서 늘 실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소아시아는 사랑의 사도 요한이 순회 목회를 했던 지역으로, 요한 사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형제 사랑하기에 힘썼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험이 몰려올지라도, 형제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의지가 되어 준다면 굳건하게 이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라쉐히르에 있는 포도 농장에서 수확을 하는 터키 여인들.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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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약속받고, 오늘날에도 교회의 모범이 되는 것 아닐까요.
신기하게도 전성기 때 큰 규모였으리라 짐작되는, 6세기에 지어진 ‘성 요한 교회’는 터키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으로 거의 다 무너지고, 아래는 돌로, 윗부분은 벽돌로 된 3개의 육중한 기둥만 앙상하게 남아 있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계 3:12)’.
이제 한국도 며칠 후면 전통 명절인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만나게 될 텐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몸소 실천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고, 생명 길로 다니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처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1 3:14)’.
[성지선교회] 이스탄불에서 원제연 선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