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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진정성- 성경이 편집되었는가? 
 
- 성경이 인위적으로 편집되었다는 글들을 읽고, 전에 올렸던 글을 수정하고 정리하여 당당뉴스 컬럼으로 올린 글입니다 -
 
 입력 : 2013년 04월 22일 (월) 17:17:59 / 최종편집 : 2013년 04월 22일 (월) 17:46:39 [조회수 : 525]
[출처] 성경의 진정성 - 성경이 편집되었는가? (당당뉴스 컬럼)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
 

1969년, 달에 로켓을 쏘아 인간이 달 표면에 발을 디딘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지금도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제시하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직접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한마디로 일축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자신의 믿음에 관계된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인간이 달에 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총체적으로 조작을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혹간 불신자들이나 이단,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 학자들의 경우에 성경이 인간이 쓴 기록이라고 하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편집된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첫째 근본적인 신앙의 문제이며, 둘째, 성경의 역사와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본문비평에 직접 참여한 성경학자와 전문가들은 성경의 역사에 인위적인 편집과정이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혹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주장을 근본주의이며 보수주의 신학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야 말로 자의적이며 인위적인 학문의 산물로서, 결국 자기 자신의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1)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

현재 신약의 사본으로 부분적이나 혹은 전체적으로 발견되어진 헬라어 사본은 모두 합하여 무려 5,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본 중에서 놀랍게도 모두 동일한 기록이 거의 없으며 조금씩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차이는 미미하지만 모든 사본들은 조금씩의 다른 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모든 성경사본들이 모두 필사본으로 전하여졌기 때문입니다.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 그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 이것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기록들은 조금씩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이 수많은 성경의 사본을 서로 연구 조사하고 비교하여, 보다 원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우리는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부릅니다.

초기의 신약성경 사본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는데, 재질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여 현재는 부분적인 단편과 조각으로만 발견됩니다. 그후 AD 300년대가 되어서 비로소 가죽 위에 깨끗하게 성경사본이 책으로 묶여 만들어졌는데, 이를 ‘언셜체 사본’이라고 하며 ‘대문자 사본’이라고도 합니다. 후기의 헬라어는 약 9세기 이후로 ‘초서체’(흘림체)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을 ‘소문자사본’이라고 부릅니다.

즉 신약성경의 사본은 (1) 파피루스(P) (2) 대문자 사본(Codex) (3) 소문자 사본, 미너스쿨(MS), 이와 같이 세가지로 크게 분류하고 있으며, 영어 대문자를 약자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MS라고 하면 이 사본은 9세기 이후의 초서체의 소문자 사본을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수많은 성경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하며 검토함으로써, 보다 원문에 가깝게 접근하려는 작업이 바로 본문비평입니다. 전문가들은 더욱 많은 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함으로서 우리는 좀더 원문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비평의 기준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글리슨 아셔의 제안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 더 오래된 문헌이 우선적이다.
2. 보다 난해한 문헌이 우선적이다.
3. 보다 짧은 문헌이 우선적이다.
4. 상위본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5. 가장 광범위한 지역적 뒷받침이 우선적이다.
6. 저자의 문체와 용어가 일치하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7. 교리상으로 편견을 노출시키지 않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현재 본문비평의 외적증거는 크게 세 가지의 기본 문제, 즉 연대별, 지역별, 계보별 기준으로 봅니다. 예를 들자면,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계열의 사본 중 어떤 것이 원문에 가깝느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전문적인 일로서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그러한 비평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본문비평을 위하여 발견된 모든 헬라어 사본과 또 다른 언어로 번역된 고대번역판(시리아어, 라틴어, 곱트어등)과 초대교회 교부들에 문헌에 의해 인용된 신약의 구절등을 참고하기도 하며, 때로는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성구집등 모든 자료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어쨋든 보다 원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지금이라도 확실한 본문비평적인 증거를 찾는다면 성경은 다시 번역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본문비평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은 성경사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codex vaticanus


2)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B사본)

17세기 이후에는 킹제임스 성경의 독주 시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권위있는 킹제임스 성경외에 또 다른 성경번역이 필요하게 되었을까요? 15세기(1475년) 바티칸 학자들은 바티칸도서관에서 오래된 도서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다가 한 사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본이 양피지에 기록된 대문자체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판명되는데, 이 연대는 4세기 경, 즉 AD 325-350년경으로 밝혀집니다. 이 사본을 ‘바티칸사본’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본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으로 대부분의 구약과 신약, 일부 외경까지 거의 완벽한 책의 형태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70인역(LXX)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다른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원전 250년경 이집트의 왕인 프톨레미 2세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말합니다. 즉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가르킵니다.

이 바티칸 사본은 거의 완벽한 칠십인역으로서, 거의 대부분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마가복음 16:9-20과 요한복음 7:53-8:11이 누락되어 있었는데, 그 외에는 거의 완벽한 보존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 사본이 그 당시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대문자 사본으로, 일명 B사본(Codex B)이라고 불리워지며, 전 세계의 성경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됩니다.

 

   
▲ Codex Sinaiticus


3) 시나이 사본(Codex Ainaiticus, Aleph)

또 그후 19세기 중엽에 성경사본의 역사 중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독일의 성경학자인 티센도르프가 1844년에 시내산에 있는 성캐더린 수도원에 묵고 있을 때에, 그 방에서 난로의 불을 붙이는데 사용되는 불쏘시개 중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의 일부분인 역대상,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더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구하였는가”라고 묻는 티센토르프에게 성캐더린 수도원의 수도사는 “이미 많이 태워 버렸다”고 말하였습니다.

티센도르프는 이 사본을 독일로 가져와 번역하여 이 사본에 관한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 후 1859년, 그는 다시 수도원을 방문하여 거의 완전히 보관된 300년대에 필사본 되어진 성경사본을 발견하는 금세기 최대의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물론 티센도르프로를 통하여 그 양피지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 수도사들은 더 이상 그에게 양피지를 내놓지 않았는데, 티센도르프가 자신이 발간한 사본의 책을 어느 한 수도사에게 선물하자, 그 수도사도 자신이 갖고 있는 한 권의 완벽한 성경 필사본을 티센도르프에게 보여줍니다. 티센도르프는 그날 밤을 새워 그 성경 필사본을 읽는데, 훗날 그는 “잠을 자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고 훗날 증언합니다. 다음날 티센도르프는 그 사본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으나, 그 수도원은 완강히 그것을 거부하였고, 결국 티센도르프는 수도원에서 차용증의 각서를 써주고 그것을 잠시 빌려오게 됩니다. (훗날 수도원측은 티센도르프가 성경을 잠시 빌려간다고 서명날인한 문서를 제시하며, 차용한 것이므로 돌려 주어야만 한다고 하며 대영박물관에 주장하게 됩니다)

이 사본이 ‘시나이사본’이라고 불리우는데, 마가복음 16:9-20, 요한복음 7:53-8:11을 제외한 신약성경 전체와 일부 구약 외경과 구약의 절반 이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티센도르프는 이것을 갖고 와서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하였고, 그 대가로 성캐더린 수도원은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과 약간의 돈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훗날 러시아는 혁명 후 재정이 궁핍하여지자 돈이 필요하였고 성경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이것을 영국에 팔기로 작정하였고, 영국정부는 1933년 크리스마스 전날에 러시아로부터 십만루블(US$ 500,000)에 그 사본을 사들여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codex alexandrinus

 

 


4) 중립 본문에 입각한 성경 발간의 필요성

이 시나이 사본은 많은 성경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는데, 앞서 언급한 바티칸 사본(B사본)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으며, 그 뒤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사본(A사본, 대영박물관 보관)과 에브라임 사본(C사본, 파리국립박물관 보관)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 혹은 ‘중립사본’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이러한 사본들과 킹제임스성경에 차이점이 발견됨에 따라, 다른 성경번역본을 발간하여야 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헬라어 성경사본은 우리가 지금 보는 개역성경과 NIV 영어성경의 근본이 되며, 그 신약성경의 본문비평은 성경학자인 티센도르프, 웨스트코트, 호르트등이 이루어 놓은 작업으로, 그 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총괄하여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계열의 본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집트 땅속에서 파피루스 더미가 발견되었는데, 체스터비티 파피루스(P)라고 불리는 신약의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연대는 놀랍게도 AD 200년대로 보며, AD 125년경으로 추정되는 라일란드 파피루스는 비록 작지만 신약본문에 대한 아주 가치있는 증거자료가 됩니다. 이것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과 일치하며, 보드머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본문들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을 증거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본들의 발견이 킹제임스외에 또 다른 성경의 발간을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이 차이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본문비평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최근에 발견된 사본들로부터 원문에 더욱 접근하려는 본문비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일 최근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보다 다 연대가 오래 되고, 더 보존상태가 좋으며, 더 많은 중립적인 성경사본들과 증거자료들이 발견된다면, 당연히 또 다른 성경의 발간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원본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번역 성경과 거의 차이점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1881년 본문비평작업에 직접 참여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사소한 것들을 제쳐 둔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는 표현들은 전체 신약성경의 0.1%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레어드 해리스, 성경이란 무엇인가, 84쪽)

그러나 세계 최고의 신약성경사본을 티센도로프에게 빌려주었다가 그만 빼앗긴 성캐더린수도원은 얼마나 억울하였을까요?

그런데 그 후 1975년 9월, 수도원 측은 보수공사를 하기 위하여 한쪽 벽을 허물고 공사를 하던 중에, 벽과 벽 사이의 작은 틈에서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을 무려 수십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도원 측은 이것을 외부세계에 극비로써 엄격히 통제하였으나, 1977년 독일의 한 신문이 이 사건을 알게 되어 기사화한 후로부터 외부로 알려졌으며, 그로부터 수도원측은 이 성경사본들을 철저히 경계하며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5) 구약성경의 사본

신약성경에 비하여 연대가 오래된 구약성경의 사본은 사실 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필사할 때에 거의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필사본에 의한 오류가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신약과 달리, 이 구약성경사본을 필경하는 전문 필경사가 있었다는 것도 오류가 적다는 이유를 입증하여 줍니다. 성경필경사는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도중에 왕이 들어와도 그것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전하여 집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 자체가 곧 거룩한 유일신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였으며 낡아지고 파괴되어진 성경은 그 자체가 모독적이었으므로, 그들은 그 성경을 필사하였을 때에 낡고 상한 성경을 폐기처분시켜 나갔기에, 사본의 발견이 용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장 권위가 있는 구약의 맛소라사본이 AD 10세기 이전의 것이 단지 몇 편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권위를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또한 이 맛소라 사본의 완전성을 지지하여 주는 다른 이유는, 주전 3세기와 2세기 사이에 제작된 70인역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70인역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이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직접 사용한 성경이라는 점이며(기원전 250년경부터 번역되어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으므로), 또 실제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많은 구약의 헬라어 구절은 이 70인역의 본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구약성경사본은 10세기 이전의 것이 거의 발견되어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바티칸사본이나 시나이사본은 AD 4세기의 연대를 가지므로서,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 시대에는 헬라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또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과 유대 경전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헬라어 구약 성경의 필요가 절실하게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70인역(LXX)입니다.

 

   
▲ 70인역

 

 



이것은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전승에 의하면 프톨레미 필라델푸스 왕(주전 285-246)의 요구로 70인의 장로들이 번역에 참여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또 12지파에서 6명씩의 장로들이 대표로 선택되어 72명이 모여 70일 만에 번역을 마쳤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모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그 후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고 봅니다.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는 구약성경의 번역이 완료되었으리라고 보며, 기독교의 전파에 큰 비중을 차지하였을 것입니다.

그 후 기독교가 칠십인역을 자기들의 성경으로 받아들이면서, 반대로 유대교에서는 칠십인역을 배척하고 자기들의 히브리어 본문 성서에 관심을 보이게 되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제 2성전 파괴 이후,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이 편집되면서, 히브리어 본문과 칠십인역 사이의 차이점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게 되자, 헬라어로 구약을 읽던 이들 쪽에서는 최신 히브리어 본문을 대본으로 하는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 오리겐의 헥사플라

 

 


6) 오리겐의 헥사플라(Hexapla)

오리겐은 주후 2세기에 태어났으며, 그는 젊어서부터 히브리어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오리겐은 히브리어 성서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칠십인역에 히브리어 표준 성서와 다른 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에 올바른 성서 문서와 그 원래의 뜻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로 생긴 것이 헥사플라입니다.

기원후 230-240년 경에 가이사랴에서 활동을 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이 ‘여섯 본문 대조 성서’를 편집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헥사플라’(Hexapla)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즉 (1) 히브리어 본문 (2) 히브리어 본문의 헬라어 음역 (3) 아퀼라역 (4) 심마쿠스역 (5) 칠십인역 (6) 테오도션의 개정역 등 그당시 사용되었던 여섯가지 성경역본을 서로 대조하고 비교한 것을 말합니다.

오리겐은 이 여섯권의 성경을 서로 평행으로 편집하여 동시에 비교해 볼 수 있게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오리겐의 주요 관심은 다섯째 난의 칠십인역이었습니다. 그는 칠십인역 본문을 히브리어 본문과 비교하여,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데 칠십인역에만 있는 첨가된 본문에는 앞과 뒤에 의구 표식을 달았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있는데 칠십인역에 그 본문이 번역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그리스어 번역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서 칠십인역에 삽입시키고 앞뒤에 의구 표식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성경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믿음의 선배들의 노력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사적 문헌의 기록으로 보면, 아쉽게도 헥사플라의 원본은 600년 경까지는 존속되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에는 단편만 남아 있습니다. 만약 그 헥사플라가 지금 발견된다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헥사플라는 주후 240년에서 245년경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헥사플라의 칠십인역은 주후 300년 경 팜필루스(주후 310년에 순교)와 가이사랴 감독 유세비우스(주후 338년 사망)에 의하여 가이사랴에서 필사되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은 이 유세비우스가 필사한 칠십인역 100권 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 쿰란동굴

 

 


7) 사해사본

1947년 3월, 모하메드 아디브란 아랍의 양치기 소년이 여리고 남쪽 사해서편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수직동굴을 발견하게 되고, 혹시 그 구멍에 염소가 빠지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어 돌을 던져보게 되는데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호기심이 들어서 그 동굴 입구를 찾게되고, 그곳에서 고대 히브리어가 기록된 몇 개의 가죽 두루마기를 찾게 됩니다. 그 양치기 소년은 몇푼의 돈을 받고 그 가죽 두루마리를 한 아랍의 골동품 상인에게 팔았고, 1947년 11월23일, 아랍상인은 그것을 귀한 가치의 성경사본임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팔기 위하여 성경학자를 찾던 중, 히브리대학의 수케닉이라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와 접촉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전쟁이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수케닉교수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그 아랍상인을 만나서 그 두루마기를 흥정하게 되며, 그 두루마리를 구입한 후에, 수케닉교수는 훗날 누군가에게 4개의 두루마기가 더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 후에 그 4개의 두루마리가 시리아정교회의 사무엘 대주교에게 전하여지고, 그에 의하여 수백만 달러를 홋가하며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지만 너무 비싼 가격으로 소문만 무성하게 됩니다.

수케닉교수는 1953년 죽고, 마침 수케닉교수의 아들, 야딘이 아버지의 뒤를 받아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 미국에 건너가게 되었다가, 아버지의 염원이며 꿈이었던 그 4개의 두루마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것을 25만 달러에 흥정하여 구입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액의 돈이 없었던 그는 이스라엘 정부에 급히 전보를 치게 되며, 이스라엘 수상으로부터 “이스라엘 정부에서 지불을 보증할 것”이라는 전보문을 받음으로, 마침내 그것을 구입하게 됩니다. 야딘이 구입한 이 사본들은 현재 사해사본 박물관의 ‘책의 전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케닉과 그의 아들 야딘의 성경에 대한 성경말씀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감히 본 받을만 합니다.

그로부터 학자들은 1956년까지 11개의 동굴을 정밀하게 탐사하여 수천 개의 필사본 단편을 포함하여 대략 600부의 성경필사본을 발견하게 되며, 구약성경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발견이 시작되어 집니다. 그 동굴은 유대인의 한 종파인 엣세네파의 도서실로 판명되어지는데, 그들은 서기전 1세기부터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던 소위 종말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AD68년 로마에게 멸망 당하는데, 이들은 로마가 쳐들어오자 대대로 보관하던 구약성경과 문헌들을 질그릇항아리에 넣어 동굴 속에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 Manuscript found at Qumran byThe DeadSea


현재 히브리어 구약성경 사본은 서기 10세기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 사해사본은 구약의 역사를 약 1천년을 앞당긴 희대의 발견이 된 것입니다. 이 사해사본에는 BC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사무엘서 단편도 발견되어지며, 주후 1세기의 연대의 것입니다.

이 사해문서가 발견된 직후, 많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학자들은 현재의 성경이 ‘혹시 조작되고 변질될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상당히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해문서의 조사에 참여한 아셔라는 학자는 “제1동굴에서 찾은 이사야서는 지금의 성경과 95%가 동일하며 그 5%의 다른 점도 대부분 약 일천 년간에 걸쳐 변화되어진 철자법의 차이로 야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밀러 부로우스는 그의 저서 ‘사해두루마리(The Dead Sea Scrolls)’에서 “거의 일천년이나 되는 기간에서 변경된 것이라고는 거의 미미할 정도”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많은 안티기독교와 이단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이 조작되었고 편집되었다고 주장을 하여 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존되어 왔던 것입니다.


8) 유기적 영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당연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영감(Inspiration)에 대한 정의는 “선택된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없이 각자의 언어적 표현으로 기록하도록 하신 성령의 역사”를 뜻합니다.

하지(Hodge)라는 학자는 “계시의 목적과 전달은 지식의 전달에 있다. 영감의 목적과 의도는 가르침에 있어서 무오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느 학자는 “성경의 저작권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은 축자영감설을 따르고 있었지만, 지금의 가톨릭은 오히려 자유주의에 가깝습니다. 또 합리주의가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때에, 어떤 학자들은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기도 하였고, 어느 학자들은 부분적인 영감설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성경의 영감에 대한 주장을 ‘축자영감설’(하나님의 말씀을 선경기자가 그대로 받아쓰기 했다는 설)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기록자의 인성이나 문체, 나름대로의 습관, 판단을 갖고 기록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때로는 어떤 문헌과 전승을 조사하고 탐구하기도 하며,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고 인용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 포괄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께서 성경기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과정에서 ‘영감(Inspiration)의 감동’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이 직접 불러 주신 것을 그대로 받아쓰기로 기록하게 하였다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인 점이 50%, 하나님의 것이 50%라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러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어질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성경기자들을 도구로서 이용하시되, 인간의 요소를 전혀 배제한 것이 아니라, 그들 성경기자들의 완전하고 독자적인 영감 그대로 사용하면서, 성령께서 감동과 조명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유기적영감설(Organic Inspi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모두 기록한 사람들과 시간적, 환경적, 사건적인 상황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경은 오직 한 가지 주제, ‘하나님의 구속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서로 다른 성경의 기자들이 똑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본문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은 “Moved by Holy Spirit (KJV) / Carried along by Holy Spirit (NIV)”라고 번역되며,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배가 물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 교회는 예배시간에 인도자가 성경봉독을 한 후에 항상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며,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필자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혹시 성경이 인간의 기록이라고 생각되거나, 인위적인 편집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교회나 공공 장소에서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거나 선전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주장은 자신의 눈에는 당당함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장성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눈과 귀에는 그러한 주장이 모두 미성숙한 불신앙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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