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과 지옥은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연옥과 지옥은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자랑스러운 전통 중 하나는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희생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축일 미사를 비롯한 모든 미사의 성찬기도에서 산 이들 뿐 아니라 죽은 이들도 기억합니다. 또한 묵주기도를 바칠 때에 매 단마다 연옥이 영혼, 특히 가장 외로운 영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장례 때나 기일에 연도를 바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알고 있지요! 그리고 위령성월에는 앞서 가신 모든 영혼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희생하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연옥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연옥이란 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해 용서는 받았으나 그 죄에 대한 보상을 다하지 못한 영혼이 주님 곁으로 가기 위하여 남은 보상을 다하는 곳을 말합니다. 일반사회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감옥생활을 하거나 일정한 벌금 또는 봉사활동을 해야 정상적인 시민생활을 하게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연옥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연옥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 삶을 마감할 때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저주 밖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나는 반드시 천국행”이라고 장담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리고 천국에 갈 자신이 없다고 해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연옥은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을 보장하는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정화된 다음에 주님 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연옥과 지옥은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고통스럽다는 것인데, 이는 특별히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失苦)입니다. 반대로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지옥이 영원한 벌을 받아야하는 곳인 반면 연옥은 한시적으로 정화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에게는 희망 없이 절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연옥에 있는 영혼은 아무리 큰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 공심판 후에는 연옥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이 구원 받을 것은 확실하지만 연옥의 상태에서 스스로 자기의 잠벌을 감면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복역 생활을 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공로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한 매우 뜻깊은 선행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연옥 도리를 거부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특히 개신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연옥이란 말 자체가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도 연옥이란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읽어보면 이미 구약시대에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풍습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연옥에 관한 언질을 주신 대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속죄 제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2마카 12,43-45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라고 말씀하심으로 연옥을 암시하셨습니다. 위의 두 구절은 구원받을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전에 머무는 곳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들입니다.
우리는 연옥 도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깊이 묵상하고 하느님께 끝없는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며, 연옥영혼을 돌보시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구원송)
가톨릭전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