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에 아랍권 분노하는 이유는]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모두의 성지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아...제3의 인티파다 가능성
 
▎12월 7일(현지시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발언에 대한 거센 항의시위가 주 요르단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한 여성이 트럼프와 미국을 조롱하는 그림을 들고 있다. / 사진 :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월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하면서 중동 지역에 평지풍파를 부르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제정된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따라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하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국익과 외교적 이해관계, 이스라엘과 아랍 간 균형외교, 분쟁 예방을 위해 이를 보류하는 문서에 6개월마다 반복적으로 서명해왔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령인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지인 동예루살렘으로 분할돼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도시다. 이스라엘은 1967년 국회에서 이 도시를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스라엘의 국회(크네세트)와 최고법원, 총리 관저 등은 모두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모든 회원국의 외교관에게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한 안보리 결의안 제478호를 1980년 8월20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텔아비브를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로 여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미국대사관 이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69년 간 계속된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의 기조를 뒤집는 대사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을 중재하겠다고 말해왔지만 이번 선언으로 오히려 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형국이 됐다.

중동 분쟁의 도화선에 불 붙인 형국

미국과 국제사회는 그동안 이스라엘 점령지 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해 독립시키는 ‘2국가 체제’를 통해 중동 분쟁을 종식하자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트럼프의 주장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으로 ‘2국가 체제’를 통한 평화 추구는커녕 팔레스타인인들의 제3차 인티파다(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를 유발할 가능성만 키우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87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소녀를 총기로 살해한 유대인이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점령이 계속되자 들고 일어나 제1차 인티파다를 일으켰다. 2000년에는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매파 아리엘 샤론 전 국방장관이 무장 호위병력을 데리고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것이 도화선이 돼 제2차 인티파다가 발발했다.

이 모든 사건은 예루살렘의 역사와 관련 있다. 예루살렘 현대사는 1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대전이 한창인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의 아래 전후 오스만튀르크를 해체하고 중동을 분할해 차지하는 ‘사이크스 피코 비밀 협정’을 맺었다. 협정 이름은 협상을 맡았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와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1917년 11월7일 10월혁명으로 러시아 정권을 장악한 볼셰비키가 로마노프 정부의 비밀문서를 폭로하면서 내용이 드러났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은 원래 남시리아 지역으로 불리던 시스요르단과 트란스요르단은 물론 이라크 남부 지중해 해안의 항구와 인근 해양의 지배권까지 얻었다. 프랑스는 터키 남동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확보했다. 이라크와 관련한 내용은 나중에 영국이 이라크 전체를 점령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에는 이스탄불, 터키 해협, 아르메니아 빌라예트를 넘기기로 했지만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면서 무산됐다.

남시리아 지역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불렀다. 1921~22년 식민지 장관을 지낸 윈스턴 처칠은 이 지역을 요르단 강을 경계로 나눴다. 트란스요르단과 시스요르단으로 나누었다.

얽히고설킨 예루살렘의 역사
 
 
트란스요르단은 요르단강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의 요르단 왕국에 해당한다. 영국은 1921년 이슬람 성지 메카의 유력 가문인 하심가 출신의 압둘라(1882~1951)를 트란스 요르단의 에미르(이슬람 군주)로 세웠다. 압둘라는 1차대전 당시 아랍인들이 영국군의 부추김을 받고 오스만에 대항해 봉기했던 아랍반란(1916~1918)에서 활약했다. 그는 특히 ‘아라비아의 로런스’로 불리던 영국군의 토마스 에드워드 로런스(1888~1935) 중령에게 협력했고, 그 대가로 영국 점령 지역의 일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트란스요르단 에미르국은 1946년 요르단 왕국으로 독립해 압둘라는 초대 국왕 압둘라 1세로 즉위했다. 하지만 1951년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했다가 팔레스타인 급진파에게 암살당했다.

시스요르단은 요르단을 경계로 서쪽으로 해안까지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 자지치역(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가지지구)에 해당한다. 영국은 처음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불렀다. 그러면서 이 지역을 분할해 유대 국가와 펠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미 영국은 1차대전 중인 1917년 11월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영국의 저명한 유대인 부호 리오넬 월터 로드쉴드 남작에게 편지를 보내 유대인들이 전쟁에 협조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이른바 ‘밸푸어 선언(1917)’이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리해서 각각 독립시키는 내용의 결의안 제181호를 내놨다. 아랍인 지역, 유대인 지역과 함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등은 유엔이 관할하는 공동 구역으로 삼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역에 유대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아랍 국가들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분쇄하려고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인근 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은 물론 이라크·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수단·예멘 등 이슬람권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1949년 3월까지 계속된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다.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스라엘-아랍 전쟁’ ‘제1차 중동전쟁’으로도 불린다. 신생국 이스라엘의 국민은 자국을 포위한 아랍·이슬람권 국가들과 온몸으로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다. 이스라엘은 이를 독립전쟁으로 부르지만 팔레스타인은 ‘알 나크바’, 즉 ‘재앙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6일전쟁 때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빼앗아
 
▎트럼프 미 대통령이 12월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해 정전협정을 맺고 전투를 끝냈다. 이웃한 이집트와는 1949년 2월에, 레바논과는 3월에, 요르단과는 4월에, 시리아와는 6월에 각각 정전협정을 맺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독립을 지켰으며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에 독립 국가를 세우지도 못하게 됐다. 이스라엘은 원래 유엔이 제시했던 영토에 상당수 영토를 더하게 됐다. 다만 시스요르단, 즉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요르단이 차지했으며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치하게 됐다. 이때 예루살렘의 분할이 시작됐다. 예루살렘 지역을 동서로 분할해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왕국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됐다. 영국군의 훈련으로 막강한 육상 전력을 보유했던 요르단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밀리지 않고 잘 버틴 덕분이었다. 그 후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빼앗았다. 이집트로부터는 가자지구는 물론 원래 이집트 영토였던 시나이 반도까지 넘겨받았다. 그 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국교를 맺으면서 시나이 반도를 돌려줬다.

팔레스타인은 1993년 이스라엘과 협상을 거쳐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지지구에 야세르 아라파트가 주도하는 자치정부를 세웠다. 2011년 유네스코 회원국이 됐으며 2012년 유엔에서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가 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헌법상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다. 하지만 행정지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 있다. 임시행정수도다. 가지지구는 강경파 하마스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예루살렘의 가치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중앙부에 자리해 전략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유서 깊은 도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으로는 ‘아브라함 종교’로 불리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 3개의 유일신 종교에 ‘신성한 도시’라는 사실이다. 특히 세계 1600만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은 마음의 고향이다. 다윗왕이 기원전 1000년 무렵 유대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을 통일한 후 예루살렘을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은 기원전 957년에 7년에 걸쳐 이 도시에 있는 ‘성전산(Temple Mountain)’에 성전을 건설했다. 성전산은 헤브루어로 하르 하바이트, 즉 ‘하느님의 집(사원)이 있는 산’, 아랍어로는 하람 에쉬 샤리프, 즉 ‘고귀한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 성전이 솔로몬의 제1성전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거룩한 집’으로 부르는 곳이다. 성전 안에 모세의 십계명 석판을 보관했던 목상자인 언약궤(言約櫃)를 보관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가 갈리지는 기적을 경험하며 출애굽을 이룬 모세는 40년 간 광야 생활을 했다. 그 당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보관한 것이 언약궤다.

하지만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제1성전은 파괴됐다. 그 후 새로운 성전의 건축이 기원전 535년 시작돼 봉헌됐다. 당시 유대 지역은 페르시아 아키메네스 왕조의 지배 하에 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피정복민의 종교에 관대한 정책을 폈다. 초대 군주인 키루스 대왕은 예루살렘 제2 성전 건립을 허가했으며 그의 후손인 다리우스 대왕은 보수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기원 1세기 간접 지배를 위해 유대의 왕으로 임명한 헤로데 1세가 기원전 20년 무렵 성전을 보수하면서 ‘헤로데 성전’으로 불렸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독립을 위해 일으킨 일련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인은 제2성전을 파괴했으며 유대인의 예루살렘 입성까지 금지했다. 제2성전은 일부 벽돌과 서쪽 벽만 남았다.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통곡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통곡의 벽’으로 불린다.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기원전 967~기원전 586년에 서있던 제1성전과 기원전 515~기원전 70년까지 서있던 제2성전에 이어 제3성전이 메시아가 온 다음에 세워질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이곳 성전산은 이슬람교에도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의 3대 성지다.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 무함마드(570년 무렵~632년)가 겪었다는 신비한 영적 체험기에 등장하는 승천장소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메카의 성스러운 모스크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산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뒤 하늘나라로 승천해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과 만났다는 내용이다. 무슬림들은 이를 실제 세계와 영적 세계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여긴다. 이슬람에서는 ‘알이스라 왈미라지(이스라와 미라지)’라고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밤의 여행’으로 번역한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 17장 1절은 이를 “알라는 그의 종을 데리고 밤에 성스러운 예배당으로부터 우리들이 정결하게 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까지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조짐을 눈으로 경배하도록 하여 주셨도다”라고 모호하게 기록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생전 발언과 행동, 그리고 타인의 행동을 묵인한 내용을 기록한 이슬람 경전인 ‘하디스’에는 이와 관련한 무함마드의 승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서 승천은 사후 하늘나라로 간 것이 아니라 생전에 다녀온 것을 가리킨다.

트럼프의 일방적 선언에 세계가 고민에 빠져

‘이스라’는 메카에 살던 무함마드가 천마 부라크를 타고 순식간에 ‘가장 먼 모스크(아랍어로 알마스지드 아크사)’로 여행한 것을 가리킨다. 무함마드는 이곳에서 다른 예언자들의 기도를 인도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전통적으로 여기서 말한 ‘가장 먼 모스크’를 실제 세계의 예루살렘 성전산의 한 지점으로 여겨 나중에 이곳에 같은 이름의 아크사 사원을 지었다. 무함마드는 이곳에서 천사들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7개의 하늘나라에 다니며 7명의 예언자를 만났다. 이들 7명의 예언자는 인류의 조상 아담, 예수가 올 것을 예언하다가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행한 세례자 요한,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으나 이집트 재상이 된 구약성서 속 인물 요셉, 노아의 조상으로 이슬람 예언자인 이드리스, 모세의 형으로 최초의 대사제장이 된 아론, 유대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모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슬람에서도 예언자로 여긴다. 이슬람에는 무함마드가 일곱 번째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을 만나 예배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도 있었으나 그럴 수가 없다며 이를 부인하는 주장도 있다.

7세기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의 압달 말리크 칼리프 때인 691년 성전산에 ‘바위의 돔(아랍어로 마스지드 쿱밧 알사크라)’라는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 유대민족의 제2성전이 자리 잡았다가 기원전 70년 로마가 파괴한 후로 주피터 신전이 서있던 곳이다. 이슬람에서 마스지드는 학교가 딸린 이슬람 사원을 가리킨다. 돔형 지붕에 금박을 입혀 황금사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슬람 세력은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바로 그 자리에 705년 알아크사 모스크를 처음 건설했다. 십자군 시대에 이곳을 점령한 십자군 군주들이 왕궁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지진으로 무너져 여러 차례 재건축됐으며 현재 건물을 1066년 들어섰다. 돔이 은색이라 은색 사원으로도 불린다. 이슬람 초기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긴 헤지라(622년) 이후 첫 17개월 동안은 무슬림은 이곳을 향해 기도했다. 하지만 알라(하느님)께서 무함마드를 통해 메카의 카바를 향해 기도하라는 계시를 내리면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이 두 사원을 포함한 성전산 전체는 이슬람 3대 성지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곳에 산다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느낀다. 이스라엘에 의해 독립이 박탈되거나 미뤄진 상태에서 예루살렘과 성전산, 그리고 바위의 돔과 알아크사를 지키는 일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마지막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한 트럼프의 행동에 전 세계가 고개를 가로 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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