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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1)

    김효성 박사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즉 ‘말씀이 육신이 되셨음’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했다.37) 또 폴 틸리히는 조직신학이라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라고 했다.38)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함은 바로 그를 부정하는 적그리스도적 사상이다. 요한일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이서 7, “이는 미혹하는[속이는] 자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미혹하는[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와 밀접한 또하나의 진리는 처녀 탄생의 진리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그의 모친이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39)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처녀 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고,40) 자아(自我)와 역사의 드라마라는 다른 책에서도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41)

 

그러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복음서에 밝히 증거된 내용이다. 마태복음은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으며, 남편 요셉이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며,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고 증거했다(마 1:18, 20, 25). 누가복음은 처녀 마리아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리라고 전언(傳言)한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했고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했다고 증거했다(눅 1:34-35).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믿음의 시금석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자는 처녀 탄생을 믿을 수 있다. 또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그의 신성(神性)과 연관되어 있다. 누가복음 1:35,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의 사상이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2:29).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한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나 기적을 의심하는 성경의 비평적 연구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루돌프 불트만은 요한복음이라는 책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4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의 행적 전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굴복시키고 본질적인 부분들뿐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굴복시킨다”고 했다.43)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신약신학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또 우리는 특히 헬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 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 주변 환경에서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에서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고 했다.44)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게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또 제자들은 주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말했다(행 10:39).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에 의해 증거된 내용들이다(요 20:30-31; 21:2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고 하신 말씀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C. H. 다드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가라앉힘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말했다.45)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했다.46) 루돌프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神話)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救贖)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속죄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속죄제물이 택함받은 자들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3:24-25,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고린도후서 5:14, 21,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에게서 유전된 망령된 행실로부터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고 말했다.48) 또 그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이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은 아니다”라고 말했다.49) 또 그는 교회교의학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나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50)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신약신학에서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한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이다”라고 말했고,51) 또 다른 토론에서 말하기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 “역사 연구는, 그것의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고 했다.53)

 

판넨베르크는 예수: 신인(神人)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을 바울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인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했다.54)

 

그러나 이런 사상은 신약성경의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는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충분하게 증거한다.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다(행 1:3).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썼고(롬 1: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썼다(롬 10:9). 또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며(고전 15:3-4) 장차 죽은 자들의 근거임을 강조하였다(고전 15:12-13, 16, 19).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승천과 재림과 관련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승천이나 재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기본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그의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2)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장에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것을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 예수는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이제 우리는 추가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다는 성경에 전제된 기본적 진리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했다.55)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했다.56) 또 오스카 쿨만도 영혼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다.57)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밝히 증거한다. 영혼 불멸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묘사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전 3:20-21; 12:7). 또 성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창 15:15; 25:8). 이것은 죽음 후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증거한다.

둘째,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시편 73:24은 성도가 죽은 후 영광 중에 영접되리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은 후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다(눅 23:43). 특히,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증거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는데 그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22-23절).

셋째,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행 24:15). 죽은 자의 부활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혼 불멸은 성경적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8)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했다.59)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았다.60) 상징은 신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이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명백히 증거하였고,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서 그는 매 장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였다. 베드로후서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재림과 그 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책을 저술하였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또 그는 자신의 재림을 증거하신 주 예수의 말씀에 간절히 화답하는 말로 그 책을 마쳤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모든 정통적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요 복된 소망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했다.61)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이런 식으로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라고 했다.62)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진리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 의인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며 악인들은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분명히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는 또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책망하셨다(마 22:29).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었다.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논증하였다. 고린도전서 15:12-13, 51-5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인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라고 했다.63)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말은 신학 용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64)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65)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진리는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13:39-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2:5-6,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또 히브리서 저자는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이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 속하며 그런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교훈하였다(히 6:1-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마지막 대심판에 대해 증언하였다.

 

또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이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특히 마가복음 9:43-48에는 주께서 지옥에 대해 증거하신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43절). 그 외에도 그는 마태복음 25:41, 46에서 ‘영영한 불’ ‘영벌’에 대해 증거하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9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8에서 악인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심판과 지옥에 대한 진리는 두려운 진리이지만, 분명히 성경적 진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인쳐진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주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속죄 사역, 그의 부활, 사람의 영혼의 불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마지막 심판과 지옥 등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은 확실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사상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교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분별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출처- http://cafe.naver.com/cpf2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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