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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초대교회 이후에 방언이 폐해졌다고 주장하는 글입니다.




국내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방언 집회

                                                           권영문 (글)

 기독교 신자들이 신앙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교회 안팎에서 행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해야 한다. 또 그것들은 모두 다 성경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요일 2:5, 행 17:11). 이를테면 기독교의 수많은 교리나 여러 종류의 집회나 여러 가지 은사들도 마찬가지로 성경적인 근거와 지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떤 전통과 관습이나 개인적인 체험 등을 성경과 동등시하거나 아니면 성경보다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다면 거듭난 신자들은 그런 비성경적인 것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의 여러 문제 가운데 적지 않게 이슈가 되고 있는 '방언 기도와 방언 집회'도 그중에 하나이다. 그럼 여기서는 오늘날의 방언이 성경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세기 사도 시대 이후부터 20세기 이전까지 기독교계에서는 아주 드물게 비성경적인 방언을 주장하는 집단들이 있어 왔다. 먼저 주후 2세기에 몬타너스파가 방언을 주장하였는데 이들은 당시의 영지주의나 오늘날의 몰몬교처럼 공인된 이단이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몬타너스를 가리켜 "그는 거짓 교사였으며 귀신이 들린 사람이었다"고 기록했다. 그 후 약 1,500년간 방언이 없었다가 17세기 말경 프랑스 남부에서 군사적 활동을 하던 신교도들의 한 무리가 방언을 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에는 미국의 셰이커교도들이 춤추면서 방언을 했으며, 그 외 19세 초 가톨릭의 사도 교회의 방언과 19세기 중엽 몰몬교에서 수백 명의 장로들이 자기네 성전 봉헌식 때 집단적으로 방언을 했던 사례가 있었다(<무질서한 은사주의>, 존 맥아더, 부흥과 개혁사, 374쪽).

 

이처럼 20세기 이전의 방언들은 모두 이단 집단이거나 광신도 집단들에서 방언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지난 20세기 초 오순절파 계통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1960년대 이후 여러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이 활동하면서 방언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 이들은 기성 교단으로부터 이단시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방언이 점점 확산되면서 오늘날에는 국내 대부분의 교파에서 행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방언 집회까지 열리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옥성호, 부흥과 개혁사, 17쪽). 그러면 이러한 방언에 대해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방언과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첫째,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방언의 목적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고전 14:22)"이라고 씌어 있다. 이처럼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서, 그 목적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2장에서도 하나님이 표적의 은사를 주신 것은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했다(히 2:4). 이와 같이 방언의 목적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도 고린도 지역과 천하 각국으로부터 모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표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방언의 목적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방언을 추구하는 목적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기보다 다른 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것은 먼저, 교인들이 방언과 같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을 피부로 느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씀보다는 실제적인 영적 체험을 통해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를 실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방언의 경험이 구원받은 증표라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즉 방언을 함으로써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다(위의 책, 239쪽). 그 다음으로는 순복음 교인들처럼 성령세례의 대표적인 외적 증거 또는 처음 증거가 방언이라고 하는 엉터리 교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방언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에 나오는 방언은 모두가 외국어이다. 사도행전 2장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다른 언어'가 바로 방언이며 그 당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자기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모국어를 가리킨다. 당시 천하 각국에서 모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도 사도행전 2장과 같은 실제 언어인 외국어였다. 당시 방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방언을 말하려면 반드시 통역자가 옆에 있어야 하며,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방언을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했다(고전 14:28). 이처럼 방언은 외국어이기 때문에 옆에서 통역할 사람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방언인 외국어를 말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은사주의>, 이송오, 말씀보존학회, 66쪽).

 

그러나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방언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방언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방언은 인간의 실제 언어인 외국어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혼미하거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즉 소곤대거나 재잘거리는 개구리 소리나 시냇물 소리와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대 방언의 특징은 언어적 구조가 부적합하고 한두 개의 모음을 반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등 실제적 언어와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또한 여러 통역자들끼리의 통역의 내용도 일치하지 않아 비성경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인 방언이 아닌, 가짜 방언 내지 엉터리 방언인 것이다(<현대 교회 문제>, 김효성, 옛신앙, 109쪽).

 

이러한 비성경적인 방언에 관한 실례를 들자면, 밥퍼목사로 유명한 장로교파의 최일도 목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이밥 먹고 밥이 되어>)에서 방언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는 교육 전도사 시절에 방언을 하지 못했다. 당시 자신이 속해 있는 교인들 대부분이 방언을 했기 때문에 명색이 전도사인 주제에 방언도 하나 못 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전도사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방언 은사를 받기 위해 삼각산 기도원에 올라가 보름 동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금식 기도를 했는데도 방언을 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주기도문을 헬라어로 몽땅 외운 뒤 중고등부 교사 방에 들어가 방언을 하는 대신에 주기도문을 헬라어로 반복해서 외우자, 그 소리를 듣던 교사들은 '기똥찬 방언'이라 하면서 '끝내 주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쨌든 당시에 방언 문제에서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고백했다(<이밥 먹고 밥이 되어>, 최일도, 울림, 161쪽).

 

또 다른 실례로서 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집사는 자신의 저서(<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에서 소개하기를, 과거 중학교 시절에 한얼산 기도원에서 수련회를 가졌는데 당시 그는 방언을 받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집념을 갖고 노력한 끝에 고등학교 때 방언을 받아 꽤 유창하게 방언을 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언을 하는 비법을 소개하면서, 예컨대 방언 집회에서 전자 악기와 드럼 등으로 시끄러운 분위기로 격앙된 가운데 '주여 주여'나 '할렐루야 할렐루야' 등을 반복하고, 특히 할렐루야를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에는 'ㄹ(l)' 발음이 세 번씩이나 들어 있는데(hallelujah), 이 말을 빨리 반복하면 누구라도 혀가 꼬이며 '할렐루야'에서 점점 '랄랄랄···'로 바뀌며 머지않아 유창한 방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212쪽)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엉터리 방언이며 비성경적임을 고백했다.

 

셋째,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방언은 표적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서 일시적 또는 한시적으로 주어졌다.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일시적인 표적 은사에는 기적, 예언, 신유, 방언, 방언 통역 등이 있다. 이런 은사들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복음을 확증할 목적으로 사도들이나 선지자 등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었다(히 2:4). 그리고 고린도전서에는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10)"고 쓰여 있다. 여기에서 온전한 것은 헬라어로 '완성'이라는 뜻이며, 이 '완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사물을 가리킬 때 사용하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온전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며 1세기 말에 완성된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이러한 표적의 은사들은 더 이상 필요성이 없어져 사라졌다(<방언의 문제>, 데이빗 롱, 전도출판사, 40쪽).

 

그러나 예전부터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1세기의 사도들이나 선지자 등 특정인들에게 주어졌던 표적의 은사가 오늘날의 교회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구약성경 신명기 11장에 나오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개념을 교리화시켜 '이른 비와 늦은 비'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른 비를 사도행전 2장의 최초의 성령세례를 가리키며 늦은 비를 20세기 초 오순절 운동의 탄생으로 여긴다. 그들은 신명기의 이 구절을 다른 학자들처럼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기네 나름대로 해석을 하여 교리화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세례가 20세기부터는 자기네 집단과 함께 역사한다고 믿는 것이다(<한국 개신교 주요 교파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31쪽).

 

교회사적으로 살펴볼 때 오순절교는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성결교로부터 분리된 집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의 오순절 운동은 현대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파램에 의해 시작되었다. 오순절교는 교리적으로 성경과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구원론이 비성경적이다. 오순절교의 구원 교리는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별도로 구분시켜, 거듭난 후에 성령세례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구원받는 순간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고 씌어 있다(엡 1:13).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은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오순절교의 구원 교리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여겨 오순절교를 이단시해 왔다(위의 책, 233쪽).

 

또한 오순절교는 영구적인 은사와 일시적인 표적 은사를 구분하지 않고 상술한 것처럼 '늦은 비'를 교리화시켜 오순절 운동의 탄생으로 여기며, 표적 은사를 합리화시키면서 기적, 예언, 신유, 방언 등을 주장하며 비성경적인 행위를 계속 자행해 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내의 순복음교회의 대명사인 조용기 목사도 방언, 신유, 예언 등을 주장하다가, 장로교단으로부터 1982년부터 1994년까지는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조용기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 교인으로 성장하자, 1994년 장로교 통합측 교단은 제79회 총회에서 조용기를 이단에서 해제시켜 버리고 말았다 (<한국교회 이단논쟁 그 실체를 밝힌다>, 한국기독교총연합, 36쪽).

 

순복음교회의 신오순절주의인 은사 운동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또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로 방언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순복음교회의 헌법 제 12조에도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며 증거의 방언은 은사의 방언과 본질은 같다"고 씌어 있다. 이처럼 순복음교회의 은사 운동은 방언 운동에서 시작하였고 특히 방언 은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용기 목사뿐만 아니라 순복음교회에 속한 모든 비성경적인 목사들은 집회 때마다 시시때때로 교인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은사 체험을 강조해 오면서 교회가 양적으로 팽창해지자 다른 교파들도 은사주의에 물들면서 방언의 은사뿐만 아니라 신유, 예언, 귀신 쫓기 등의 은사까지 유입하면서 은사 운동이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20~30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방언을 옹호하는 수많은 방언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면서 교회 안팎에서 방언을 받기 위한 훈련이나, 집회 등이 개최되어 왔다. 특히 2007년 7월에는 제자 훈련으로 유명한 '사랑의교회' 소속인 '김우현 감독'이 쓴 '하늘의 언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짧은 기간에 10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책에서 김 감독은 "방언은 모든 은사의 기본으로, 방언을 통해 우리의 영이 청소되며, 이 시대 방언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했다. 이 후 김 감독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방언 집회를 가졌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에 참석하여 열광했으며, 그는 가는 곳마다 방언 열풍을 일으켰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17쪽).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김 감독 역시 신유 집회로 유명한 손기철 장로처럼 마귀 내지는 귀신들에게 크게 쓰임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신약성경에서 '방언이 교인이 아닌 불신자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표적'인 줄도 모르며, 또한 '방언이 하늘의 언어가 아닌 이 땅의 외국어'이며, 그리고 '방언은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인 은사로서 성경의 완성과 함께 끝난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거듭나지 못한 장로교인에 불과한 사람이다. 그리고 장로교 '사랑의교회' 목사인 오정현과 故 옥한흠 그리고 약 100명이나 되는 부목사들도 모두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오순절 계통의 방언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신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을 것이며, 또한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장로교로부터 10년 이상 이단으로 규정받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장로교에서는 비성경적인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 내에서 장로나 집사 같은 직분을 맡을 수 없다는 개혁주의의 입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한국 개신교 주요 교파 연구>, 23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성경적인 방언'을 전국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김 감독을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원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랑의교회 내의 소그룹 집회에서 김 감독이 교인들을 대상으로 방언 훈련까지 지도하고 있으니(<내가 꿈꾸는 교회>, 옥성호, 부흥과개혁사, 130쪽)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한마디로 영적으로 소경 된 인도자들인 것이다. 국내 대표에 해당하는 장로교회가 이 모양이니 나머지 장로교회들도 영적으로 얼마나 썩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교회사를 통해서 살펴볼 때 일반적으로 사도 시대 이후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중단되거나 폐지'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컨대 주후 4세기의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며 성경 주석가였던 크리소스톰은 방언은 이미 그쳤다고 했으며, 5세기의 어거스틴도 방언은 초기의 표적이었고 이미 사라졌다고 말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자들도 표적 은사들은 사도 시대와 함께 끝났다고 가르쳤다. 칼뱅도 방언의 은사와 함께 다른 것들도 초기 시대에 이미 중지되었다고 말했다. 19세기의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찰스 스펄전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일시적인 표적 은사라고 말했다. 이처럼 교회사에서도 일반적으로 방언 등 표적의 은사들은 사도들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현대 교회 문제, 100쪽).

 

그리고 국내 주요 교파의 헌법에도 순복음교회를 제외하곤, 방언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만약 여러 교파에서 성령의 은사로서 방언이 필요했다면 헌법에도 분명히 명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헌법이나 침례교나 성결교 헌법에 방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특히 장로교의 경우에는 상술한 것처럼, 소위 장로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뱅이 "방언은 초기에 중지되었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헌법에 언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리교의 경우에는, 헌법 종교의 강령 제15조에 "예배당에서 공중 기도할 때나 혹 성례를 할 때에 교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의 규례를 분명히 위반하는 것이다"고 씌어 있다(<교리와 장정>, 기독교대한감리회, 27쪽).

 

이처럼 감리교회도 교회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단지 오순절 계통의 순복음교회만이 헌법 제12조에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며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를 적어 놓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개신교파는 상술한 것처럼 비성경적인 순복음교회의 은사주의에 물들어 왔다. 그리하여 순복음교회처럼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언급하며 순복음교회의 '예언, 귀신 쫓기, 신유, 방언' 등을 모방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국 곳곳에 가짜 부흥사들이 판을 치며, 방언 집회, 신유 집회, 성령 집회, 은사 집회 등의 명칭을 사용하여 각종 은사 집회를 갖고 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가짜 방언들, 소위 하늘의 언어니, 성령의 언어니, 기도의 언어 등은 성경에 나오는 방언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은 모두 사탄 내지는 귀신들에 의한 역사이며 또한 악령에 의해 인위적인 심리 현상의 일종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비성경적인 방언은 기독교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이슬람교, 힌두교, 토속 종교, 샤머니즘, 심지어 불교에서도 방언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처럼 오늘날 방언은 성경적인 방언이 아니며 완전히 엉터리이며 가짜 방언인 것이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220쪽).

 

사탄은 성경에 나타난 방언의 참된 의미를 변질시키면서 방언이 마치 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하늘의 언어나 성령의 소리인 것처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실제 언어이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서도 방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다른 사람에게 방언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방언 훈련을 받은 사례가 나와 있지 않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방언은 개인이 그 은사를 구함으로써 받거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특정한 때에 특정한 무리에게 임했다.

 

창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창조과학연구소 소장이었던 헨리 모리스 박사는 그의 책(<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에서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의 방언 현상은 이교도와 강신술사들, 이슬람교의 어떤 교파들, 기타 다른 무리들 사이에서 행하는 방언들과 다를 바 없으며, 이러한 방언을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로 간주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성경에 나오는 방언은 모두 다 실제의 언어인 외국어이며, 오늘날의 가짜 방언처럼 황홀경에서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이 아무렇게나 지껄여 대는 말이 아니며, 방언의 경험이 구원의 증거라거나 기독교인의 효과적인 삶과 증거를 위해 능력을 부여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헨리 M 모리스, 전도출판사, 208쪽).

 

결론적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인 방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부족으로, 방언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함께 거짓 방언 은사자들에게 미혹되어 있다. 그들은 가짜 방언을 받기 위해 여러 방언 집회에 참석하거나 기도원이나 부흥회 등을 찾아가기도 하고, 또 인위적인 방언 훈련을 통해 방언 받기를 갈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들은 그러한 온갖 집회가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좀처럼 속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성경 말씀에서 올바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1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되었다(벧전1:23)"고 말했다. 이와 같이 거듭난 신자들은 거듭난 증거나 구원의 확신을 '방언이나 신유, 입신' 등에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은 증거를 오직 불변하는 '성경 말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늘날 개신교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온갖 비성경적인 방언 집회들은 하루속히 없어져야 하며 일반 교인들도 더 이상 이러한 비성경적인 방언 기도나 방언 집회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365번길 39

Comments & Question : 노우호 목사님 (rowoo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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