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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존 캘빈(요한 캘빈,Jean Calvin,1509~1564) S영의 중세교회사  

2014. 9. 23. 10:12

복사 https://blog.naver.com/elnala/220130031516

 
 

 

 

23. 존 캘빈(요한 캘빈,Jean Calvin,1509~1564)

 

(1) 캘빈의 이력

 

1509년7월10일, 프랑스 피가르디 지방 북부 교회도시 노용에서 명문 법률자문관 게라드 코뱅과 잔느 라 프랑스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출생

1521년 5월, 로마 카톨릭 참사회 소속 소년학교 까페뜨 입학, 대성당으로 부터 성직록 장학금 수령

1523년 8월, 파리 대학교육 준비과정학교 마르슈학교에서 수학

1523년, 캘빈의 개명 "요아니스 칼비누스"(Ioanis Calvinus)

1523년 12월, 파리대학교 몽테귀 칼리지에서 수사학 수학

1527년 9월, 누와용 마르뜨비여(Martheville)의 쌩 마르뗑(Saint Martin) 사제직 성직록 장학금 수령

1527년, 누와용교회참사회와 직무상 마찰로 부친 게라드 코뱅은 캘빈에게 법학을 권유

1528년, 오를레앙 대학교 법학과로 전학 전과(유럽 최고의 법학자 피에르 드 레스뚜왈 교수)

1529년, 부르쥬 대학교로 전학, 부친, 게라드 코뱅, 로마 카톨릭교회로 부터 파문당함

1530년, 파리 포르떼 대학교에서 히브리어 수학

1531년 3월, 니꼴라 뒤세맹의 "반박문" 서문작성

1531년 5월26일, 부친, 게라드 코뱅 사망

1532년 4월4일, 고대로마제국의 정치,사상,문학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BC4년~AD65년4월)의 "관용에 관하여" 주석 출판

1532년, 오를레앙 대학교 법학과 졸업

1533년 11월1일, 만성절,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저주받은 루터 이단"박해 기간 중 니꼴라 콥의 연설이 파리국회에 의해 제소, 니꼴라 콥 도주

1533년, 캘빈은 니꼴라 콥 사태로 파리근교로 도주

1534년, 파리남부지역 생통쥬지방에서 샤를르 데스뻬비여(Charles d'Espeville)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프로테스탄트 참사회원 루이 뒤 띠예(Louis du Tillet)의 사택에 거주, "기독교 강요"초판구상

1534년 4월, 네락(Nérac)지방에서 "르페브르"(Jacuques Lefèvre d’Etaples), 클레락수도원(Clairac)의 궁정설교자 "제라르 루셀" 방문

1534년, 캘빈, "에띠엔느 들 라 포르쥬 그룹" 방문, 파리 외곽 "생 브누와"(Saint-Benoît)에서 설교,

"뒤 띠예"와 함께 오를레앙으로 여행 중 "영혼불멸" 집필 

1534년 10월17~18일, "앙뚜완느 마르꾸르"가 제안한 성만찬때 면병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변화교리를 반박하는 대자보가 파리시가지 전체에 게시되는 플래카드 사건 발생

1534년 11월, 프랑스국왕 프랑수와 1세, 캘빈의 친구 "에띠엔느 들 라 포르쥬" 등 수백명을 체포하고 처형함,

1535년 6월, 캘빈은 바젤로 도피하여 "마르티아누스 루카누스"(Martianus Lucanus)라는 가명으로 생활, "올리베땅" 프랑스어 성경번역본 출판

1535년, 캘빈의 대표작 "기독교 강요" 완성, 프랑스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

1536년 2월, 이탈리아 여행중 국왕 루이 12세의 공주인 레나타(Renata, Renée)공작부인의 페라리궁정에서 머물며 사상을 전파함

1536년 3월, 기독교 강요 라틴어 초판 출판, 빠른 속도로 전파됨

1536년 9월, 스위스 제네바 생 피에르 성당에서 성서교사로 임명되어 바울서신 강해,

어떤 지역에서는 목사로 활동함

1536년 10월, 스위스 로잔과 베른에서 종교토론회 및 종교회의 참석

1538년 4월, 캘빈은 제네바를 떠나 베른과 취리히를 거쳐 바젤로 이동,

1538년 9월, 슈트라스부르크에서 400~500명으로 구성된 프랑스 망명객의 교회 목사로 취임

1538년 10월24일, 파렐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 혼란속의 제네바를 논의 함

1539년, 김나지움 지역교회에서 신약성경 해석 교수함, 기독교 강요 두번째 출판

1540년, 캘빈, "로마서 주석" 출판

1540년 3월29일, 파렐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 제네바로 복귀하려는 사람들을 말려 달라고 함

1540년 8월6일, 캘빈, 재세례파 출신인 쟝 스또르되르의 미망인 "이델레뜨 드 뷔르"와 결혼

1540년 9월21일, 제네바 시의회 칼빈을 제네바로 소환할 것을 강구하고 10월22일, 귀환요청 서신 발송

1541년, 캘빈, 스위스 제네바에서 "성만찬 소고" 출판

1541년 5월1일, 제네바 시의회 캘빈금지령을 폐지하고 만장일치로 청빙결정, 캘빈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함

1541년 11월21일, 제네바 시의회 시민법제정을 위한 쇠위원회에 캘빈 임명

1542년 7월28일, 아들 "자끄"(Jacques) 출생하였으나 조산으로 사망

1549년 3월29일, 아내 이델레뜨 드 뷔르 사망

1556년, 캘빈은 오래동안 지병으로 쇠약해짐

1559년, 스위스 제네바 시민권 취득

1559년 6월5일, 캘빈, 제네바대학교 전신인 제네바 아카데미 개원

1564년 2월2일, 에스겔서와 관련된 마지막 강의

1564년 2월6일, 캘빈의 마지막 설교

1564년5월27일, 캘빈 사망, 자신의 유언에 따라 오늘날 무덤이 전해지지 않음

 

(2) 캘빈의 생애와 개혁운동

 

1509년7월10일, 캘빈은 프랑스 피가르디 지방 북부 교회도시 노용에서 명문 법률자문관 출신의 부친 게라드 코뱅과 모친 잔느 라 프랑스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1521년, 누와용의 로마 카톨릭 참사회가 운영하는 소년학교 까뻬뜨에 입학한 후 대성당으로 부터 성직록을 받았습니다 1523년 8월, 캘빈은 파리로 이주하여 대학입학 준비과정인 인문주의 교육기관, 마르슈 학교에 다니면서 근대식 교수법으로 유명한 꼬르디에르 교수로 부터 신앙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기간 중 캘빈은 "요아니스 칼비누스"(Ioanis Calvinus)로 개명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존 캘빈"(Jean Calvin)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523년 말, 캘빈은 파리대학교 몽테귀 칼리지에서 수학하며 에라스무스와 라블레 교수 등으로 부터 인문학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캘빈이 파리대학교에 다닐 무렵 프랑스는 공동생활형제단의 근대적 경건운동과 유명론 등이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시기였습니다  캘빈은 콥(Cop)가문과 친분을 갖게 되면서 당대의 다양한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사상에 접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삐에르 로베르 올리베땅(Pierre Olivetan)은 이러한 종교개혁사상을 사촌동생인 캘빈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27년 9월27일, 누와용 인근 마르뜨비여(Martheville) 마을의 성 마틴(Saint Martin) 사제직을 맡으며 성직록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캘빈의 부친인 게라드 코뱅은 교회 참사회와 직무와 관련하여 극한 마찰을 빚게 되고 이 일로 인하여 캘빈은 부친의 권유로 1528년, 오를레앙 대학교 법학부에서 당대 명법학자 피에르 드 레스뚜왈로 부터 수학하게 되었습니다  오를레앙 대학교에서 그리스어를 배운 캘빈은 이듬해인 1529년 여름, 부르쥬대학교로 전학을 하여 역사학파의 창시자인 안드레아 알키아티로 부터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해 그의 부친인 게라드 코뱅은 로마 카톨릭교회로 부터 파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1530년, 파리로 돌아간 캘빈은 포르떼 대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등 종교개혁을 향한 기초적인 지혜들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습니다

 

1531년 3월 초, 캘빈은 니꼴라 뒤쉐맹의 "반박문"을 가지고 파리로 돌아가 6일에 이 책의 서문을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캘빈의 첫 출판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인 5월26일, 그의 부친은 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1532년 4월4일, 고대로마제국의 정치,사상,문학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BC4년~AD65년4월)의 "관용에 관하여"를 주석하여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법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533년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인 만성절이었습니다 니콜라 콥은 교수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모인 신학기 개강예배에서 기독교적 철학과 법률과 복음의 관계에 관하여 비판적인 설교를 하였습니다  파리국회는 바로 이의를 제기하였고 니콜라 콥을  소환하기로 하였으나 캘빈과 함께 이미 도주한 후 였습니다 분노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저주받은 루터 이단"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533년 말, 파리를 벗어난 캘빈은 다시 파리시내 남부지역 생통쥬 지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캘빈은 "샤를르 데스뻬비여"Charles d'Espeville)라는 가명으로 클레교구 목사이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참사회원인 루이 뒤 띠예(Louis du Tillet)의 저택에 은둔하며 그의 일생의 대표작이며 기독교 장로교의 신학적 기초가 되는 "기독교 강요" 초판을 구상하였습니다

 

1534년 4월, 캘빈은 르페브르(Jacuques Lefèvre d’Etaples)의 80세 생일을 맞이하여 네락(Nérac)으로 갔습니다 또한, 클레락(Clairac)수도원의 궁정 설교자 제라르 루셀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띠엔느 들 라 포르쥬 그룹"을 방문하여 재세례파교회의 지도자인 "깡뗑 티프리"를 만났습니다  캘빈은 뒤 띠예와 함께 푸와티에르(Poitiers)에 있는 지지자들에게로 갔고 외곽지역인 성 브누와(Saint-Benoît)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후 캘빈은 오를레앙으로 가면서 "영혼불멸"을 집필하였습니다

 

1534년 10월17일, 전병과 포도주가 성만찬시에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변화 교리"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 게재되는 이른바 "플래카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대자보의 기안자는 뇌샤뗄의 주교인 앙뚜완느 마르꾸르였습니다  프랑스국왕 프랑수와 1세는 수백명의 관련자들을 체포하였고 캘빈의 절친인 에띠엔느 들 라 포르쥬를 포함하여 수십명이 화형되는 극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캘빈은 이 사건으로 바젤로 도피하였고, 마르티아누스 루카누스(Martianus Lucanus)라는 가명으로 한동안 지내야 했습니다  1535년 6월4일, 올리베땅에 의해프랑스어 성경이 출판되었고 캘빈은 성경의 서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고대교회 교부 크리소스톰 주교의 설교집에 서문을 기록하였으며 1536년 3월에는 그의 대표작인 "기독교 강요"도 완성되어 이 책을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에게 헌정하였습니다

 

프랑스국왕 프랑수와 1세는 망명객의 귀환을 허용하는 임시특별사면과 6개월 기간내에 프로테스텐트 등의 이단과 단절해야 하는 자수기간을 선포하였습니다  기독교 강요 출판 전후로 이탈리아 여행중이었던 캘빈은 국왕 루이 12세의 딸이며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의 친척인 레나타(Renata, Renée) 공작부인과 함께 다수의 프로테스탄트교 성도들과 함께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인 클레망 마로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국왕의 특별사면으로 캘빈은 파리로 향하였고 프랑스에 다시 올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때마침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황제간에 전쟁이 발발하고 캘빈은 스위스 제네바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1526년, 사부와 공작령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한 제네바는 10,000여명이 거주하는 도시였습니다  1532년, 프로테스탄트지역이 된 베른을 계기로 기욤 파렐과 그를 지원하던 사람들은 이 시기에 제네바에 종교개혁운동을 도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534년, 제네바의 목사 페렐은 캘빈이 제네바에 방문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1536년 5월21일, 제네바 시민들은 파렐의 지휘아래 종교개혁운동을 찬성하였습니다 4개월 후인 9월5일, 캘빈은 제네바의 피에르 성당에서 바울서신을 강해하는 성서교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캘빈은 그 이전부터 이미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제네바에서는 성서교사로서 부임하였습니다

 

1536년 10월, 파렐 목사와 캘빈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공개 종교회의와 베른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캘빈의 성경적 지혜와 지식은 매우 뛰어났으며 회의를 주도할 만큼 논리적이고 정확하였습니다  1537년 1월16일, 제네바의 목사들은 시의회에 제네바 교회의 개혁에 필요한 규정들을 제출하였습니다 교리교육서와 신앙고백서 등의 규정들이 시의회를 통과하였지만 재세례파와 같은 다른 종교개혁세력과 마찰을 빚게 되자 시의회는 베른의 관례들을 제네바에 도입하는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이 일로 1538년 4월25일, 제네바의 목사들은 제네바로 부터 추방을 당하고 캘빈과 파렐은 베른과 취리히를 경유하여 바젤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젤에서 뇌샤뗄로 옮긴 캘빈은  기독교 강요의 2판을 준비하면서 500명의 프랑스 망명객으로 구성된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1539년, 캘빈은 김나지움 지역에서 신약성경의 해석을 가르치며 라틴어로 구성된 기독교 강요 2판을 출판하였습니다  1540년 봄, 재세례파 출신인 쟝 스또르되르가 1남1여를 두고 흑사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미망인인 "이델레뜨 드 뷔르"와 8월6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해 캘빈은 로마서 주석을 출판하였고, 이듬해 인 1541년에는 평신도들에게 성찬식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성만찬 소고를 제네바에서 출판하였습니다  1542년 7월28일, 이델레뜨 드 뷔르는 캘빈과의 사이에서 자끄(Jacques)를 출산하였으나 조산으로 단명을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상심에 빠진 이델레뜨 드 뷔르 또한 1549년 3월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캘빈은 그의 남은 자녀들을 돌보며 그녀를 위로 하였습니다

 

1538년 이후, 제네바의 상황은 종교적 혼란이 지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파렐과 캘빈의 후원자들은 기에르멩(Guillermin)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제네바 시의원 아미 페렝(Ami Perrin)과 라리브학교(La Rive)) 학장 앙뚜와느 소니에르(Antoine Saunier) 등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앙리 드 라 마레(Henri de la Mared), 자끄 베르나르(Jacques Bernard)목사 등 신임목사들을 부인하고, 성찬에 참여여부에 관하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540년 2월, 제네바에 불리한 협약을 베른과 맺은 제네바 시의원모임 아르띠쿨랑(Articulants)파와  기에르멩(Guillermin)파는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캘빈은 제네바 성도들이 귀환을 위한 노력을 귀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1536년의 제네바 상황이 캘빈을 주저하게 하였습니다  1540년 9월 제네바 시의회는 캘빈의 제네바 입성을 요구했고 10월22일에는 정식 초청장을 발송하였습니다 1541년 5월1일 제네바 시의회는 캘빈에게 내려졌던 금지령을 폐지하고 파렐, 소니에르와 함께 캘빈을 하나님의 목자로 인정하였습니다

 

1541년 9월, 제네바로 입성한 캘빈은 시의회와 제네바 목사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법을 작성하였고 26일 의회에 제출되었으며 시의회는 이것을 승인하였습니다 11월21일 시민법 제정을 위한 소위원회가 소집되었고 캘빈은 위원으로 참여하여 1543년 1월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캘빈은 제나바의 목사가 되었으며 1538년 이후 중단되었던 성경본문 강해설교에 집중하였습니다

 

제네바에 새롭게 도입된 엄격한 신행일치의 생활은 많은 도시민들의 저항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546년 1월, 소의회의 일원인 삐에르 아모의 부인이 부도덕한 행위로 인하여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게되었을때 캘빈의 교리와 생활준칙은 아모의 이혼소송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아모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었고 처벌수위 문제로 200인의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그 해, 춤을 금지하는 법을 위반한  사건에는 시장관인 앙블라르 꼬르느(Amblard Corne)와 포병대장 아미 페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치리회는 그들을 선처하지 않았고 처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8월에는 아벨 뿌핑(Abel Poupin)이 집례한 아미 페렝의 결혼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서약서의 질문에 "예"라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어 버리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곁에있던 아미 페렝이 순간적으로 웃어 버리는 사건으로 시의회는 두사람을 성례위반으로 처벌을 하였습니다  1547년 9월, 아미 페렝 시의회 의장은 부인과 장인의 수감과 관련하여 시의회를 맹비난하였습니다 이 일로 아미 페렝은 10월에 의장직분이 박탈되고 그 역시 체포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1548년 캘빈은 스위스 로잔느에서 카인(Cain)으로 불리워졌으며 제네바에서 축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였습니다 11월 선거에서 캘빈의 대적들이 대승하고 사법부와 관련된 주요관직들을 그들이 석권하게 되었습니다 1549년 1월, 시의회는 포고문을 팔표하고 시 전체에 복음을 따라 개혁주의의 종교법을 지키도록 요구하였습니다 모든 시민들에게 기독교적 생활을 준수하고 교회 예배에 빠짐없이 출석하라는 강력한 요구였습니다 규정준수를 감독하는 감독자들에게 책임감이 주어졌고 그들이 모범적 삶이 동일하게 요구되었습니다  1549년 2월의 선거에서 아미 페렝은 수석장관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6년후인 1555년 2월의 선거에서는 캘빈의 추종자들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습니다

 

1555년 5월, 시의회는 프랑스망명객 50여명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아미 페렝은 이들에게 10년간 선거권과 무기소지권을 금하자고 제안하였으나 거절 당하자 500명의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집회를 가지며 폭력사태까지 빚어지는 시위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오베르 시장관은 12명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나머지는 도주하며 아미 페렝파의 도전은 끝이 났습니다 캘빈은 이것으로 제네바에 이루려한 도시교회개혁운동을 위한 목숨을 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556년, 캘빈은 이미 쇠약한 몸으로 건강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1559년, 캘빈은 제네바 시민권을 취득하고 기독교강요의 신판을 출판하였습니다  6월5일에는 명문사학 제네바대학교의 전신인 제네바 아카데미가 개원하고 캘빈의 정신을 이어가는 종교개혁은 이제 체계화된 교육으로 이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1564년 2월2일, 에스겔서를 강해하며 생에 마지막 강의를 했고, 4일후인 6일에는 마지막 설교를 하였습니다 5월27일, 위대한 종교개혁자 캘빈은 소천을 하였습니다  그의 무덤은 자신의 유명세로 인하여 숭배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그의 무덤은 후대가 추정하여 설정한 상징적인 무덤일 뿐이었습니다

 

(3) 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자 캘빈이 지은 프로테스탄트교의 조직신학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1536년, 라틴어 초판을 시작으로 1539년의 증보판, 1541년의 프랑스어판, 1543년과 1550년의 증보판, 그리고 1560년의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기록된 결정판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강요는 당시의 프로테스탄트교 사상을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서적이었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경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사회를 비롯하여 중세 기독교의 상황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정과 부패로 인하여 진리는 훼손되고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사람들은 복음을 알지 못한채 정체되어 있슴을 가슴 아파하며 진리구현과 국가변혁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기록한 순수 복음의 해석서 인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는 전권 4권, 8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권별로 내용은 더욱 심화되어 과연 이 책을 인간의 지혜로 기록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영적 분석이 명쾌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 1권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의 본질은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를 아는 지식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가? 3)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본성적으로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4) 무지에 의해서나 악의에 의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지식은 오염되고 더럽혀졌습니다 5)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숨겨져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주의 창조와 그 지속적인 운행에서 확연히 드러나 있습니다  6)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성경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7) 성령의 증거는 성경의 권위의 확립에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신빙성이 교회의 판단에 있다는 논리는 사악한 거짓입니다  8) 성령의 신빙성은 인간의 이성 범주내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9) 그러나 성경을 버리고 계시들을 쫓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10) 성경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선포하여 모든 이방신들을 제거하고 모든 미신과 지역적 토테미즘사상을 타파하고 있습니다  11) 하나님 앞에서 눈에 보이는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행위이며 우상을 세우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극악한 행위입니다  12) 하나님은 우상과 전적으로 구별되시므로 오직 하나님께만 완전하고 전적인 존귀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13) 성경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한 본질이시며 그 안에 삼위하나님이 계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14) 우주와 만물의 창조에 이르기 까지 성경은 명확한 표지로 참되신 하나님을 거짓 우상신들과 구별되었슴을 증명합니다  15) 사람의 창조된 본성, 영혼의 기능, 하나님의 형상, 자유의지, 원시의(原始義)는 중요한 성경적 교훈이 됩니다 16)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스스로의 권능으로 양육하시고 유지하시며 그의 섭리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17) 섭리 교리의 올바른 적용은 무엇인가? 18) 하나님은 불경한 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심판을 시행하시며 스스로 부정함이 없이 순결성을 항상 유지하십니다

 

제 2권은 "율법아래에서 조상들에게 나타나셨고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구속주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1) 원죄론(原罪論)은 아담의 타락과 죄로 인하여 온 인류가 저주를 받았고 원시상태에서 부패하였다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비참한 현 상태는 의지의 자유를 빼앗긴 채 종의 상태에 매여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사람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저주받은 것 뿐입니다  4)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5) 자유의지를 변호하여 제기되는 반론들을 반박하였습니다  6) 타락한 인간은 마땅히 그리스도안에서 구속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7) 율법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구약백성들을 그 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메시아가 오시기 까지 견고히 세우기 위함입니다 8) 십계명의 해설 9) 그리스도는 율법아래에서 유대인들에게 알려졌으나 오직 복음안에서 분명히 알려졌습니다 10)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유사점 11)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차이점 12)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의 직분을 행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본성의 참 본질을 취하셨습니다 14) 중보자의 두 본성이 한 위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15) 성부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낸 목적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지자, 왕, 제사장직 등 그의 세가지 직분을 보아야 합니다  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구속자의 기능을 어떻게 행하셨는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중요한 논의는 기독교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우리를 위해 얻으셨다는 진술은 올바르고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제 3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로 1)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령의 은밀한 역사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것입니다 2) 믿음의 정의과 특성을 명확히 알고 3) 믿음으로 말미암는 중생과 회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4) 스콜라 신학자들의 회개론은 복음의 순결성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서 고해와 복속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5) 보속설을 보충하기 위한 장치들 : 면죄부와 연옥은 무엇인가?  6)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7)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8) 십자가를 지는 일은 자기 부인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 영생에 대한 묵상과 10)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 11)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12) 값없는 칭의의 교리를 확실하게 납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우러러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13) 값없는 칭의의 교리에서 유념해야 할 두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14) 칭의의 시작과 그 이후의 과정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5) 행위의 공로에 대한 자랑은 의를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립니다 16) 칭의의 교리에 오명을 씌우기 위한 교황주의자들의 거짓 비난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17) 율법의 약속과 복음의 약속의 일치 18) 행위의 의는 상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20) 기도는 믿음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며 기도로써 얻는 일상적인 유익은 무엇인가? 21) 하나님은 이로써 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고 어떤 이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습니다  22) 성경적 증거들을 통하여 선택교리를 확증합니다 23) 선택교리를 공격해온 거짓된 비방들에 대한 반박은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24)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확증되며 악인은 그들에게 정해진 공의로운 멸망을 자초합니다 25) 최후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은혜의 길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분명한 미래로 우리를 표현할 것입니다

 

제 4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회에 들이셔서 그 속에서 지키시는 외적인 수단 및 목표"로서 1)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을 유지해야 할 참된 교회는 무엇인가? 2) 거짓 교회와 참교회는 어떻게 다른가? 3) 교회의 교사들과 사역자들에 대한 선출과 직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고대 교회의 상태와 교황제 확립 이전의 교회정치의 형태는 무엇인가? 5) 고대 교회의 정치 형태가 교황제의 횡포로 인하여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6) 로마 관구의 수위권(首位權) 7) 로마 교황제의 기원과 성장은 스스로 최고의 왕으로 부상하여 결국 교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모든 콘트롤 장치를 무너뜨리기에 이르렀습니다 8) 신조에 대한 교회의 권세는 교황제의 무절제한 방종으로 교리의 순수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9) 교회 회의들과 그 권위는 무엇인가? 10) 입법권을 가진 교황은 이 권한으로 지지자들과 함께 사람의 영혼에 대한 가장 야만적인 압박과 도살 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11) 교회의 재판권과 교황제도에서의 재판권 남용은 도를 넘어 자행되었습니다 12) 교회의 권징은 주로 견책과 출교로 나타 납니다 13) 경솔한 맹세로 불행한 속박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4) 성례 15) 세례 16) 유아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신 제도와 표적의 본질에 가장 잘 일치되는 것입니다 17) 그리스도의 성만찬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18) 카톨릭의 미사는 성만찬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멸하는 모독행위입니다 19) 성례에 포함되어 있는 다섯가지의 의식은 거짓이며 그것이 거짓된 이유와 그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20) 국가 통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캘빈의 5대교리

 

캘빈의 5대교리는 캘빈이 사망한 후 50년후에 있었던 "도르트레흐트 종교회의"(1618년 ~ 1619년)에서 채택된 것이었습니다  종교회의는 캘빈의 예정론에 대하여 아르미니우스가 논쟁을 촉발시켰고 캘빈의 후계자들이 격돌하면서 회의는 1년여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① 전적타락(Total deprivity), ②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③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④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등 "캘빈의 5대교리"가 정립되었습니다

 

① 전적타락(Total deprivity) :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사람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앞에서 불순종함으로서 원죄가 발생하였고, 그 원죄에 의하여 모든 후손들은 단 한명의 예외없이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전적 타락이란 바로 이러한 영적, 정신적, 육체적,죄의 속성으로 완전히 타락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적 타락이 도덕적, 윤리적 타락을 완전히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동물과는 다르게 상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죄로 부터 자유로울수 없고, 특히 이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찾으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는 탈복음의 상태에 놓여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자에게 거져 주시는 은혜이며 댓가없는 선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즉,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 주어진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은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권을 미리 작정하신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악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며 신분과 행함과 절차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하고 단회적이며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중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③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 "특별 속죄"라고도 불리우는 "제한적 속죄" 또는 "제한적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택함을 입은 자녀의 죄를 제한하여 대속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14~15절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30절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못박음으로서 제한적 구속을 확증하셨습니다  "제한"이라는 것은 "선택"과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특별한 구속으로 보는 것입니다

 

④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 "효과적인 부름"이라고도 불리우는 불가항력적 은혜는  디모데후서1장9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오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의 섭리만이 구원을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주가 되기 때문에 그 분의 부르심과 은혜는 절대로 실패하거나 실수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 히브리서 6장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맹세와 보증으로 확증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보호와 안전성은 하나님의 성도의 구원을 위한 확증적 약속을 표현한 것입니다 절대 불변의 원칙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죄를 지을수도 있고 낙심과 절망에 귀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회복될것임은 분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은 항상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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