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5호BC 6000-BC 5000 |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 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
|
――――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신문 ――――
|
오늘의 세계표정
바벨탑을 통한 인간의 반역
이 다시 시작되고......
|
바벨탑의 역사
|
바벨탑은 인류문명의 불꽃인가, 반역의 상징인가?
흩어짐을 면하자, 그리고 하늘에 닿도록 하자
|
(BC6000-BC5000)-노아가 죽고 얼마 있지 않아 노아에게서 난 세 아들 함과 셈과 야벳은 대단히 많은 자녀를 낳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다시 명령을 주셨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여야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들은 흩어지기를 원하지 아니했다. 그들은 말과 글이 같았고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의좋게 지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 곳에 살수가 없게 되자 서로 흩어져 각자 기업을 만들어 나갔다. 그들은 홍수 이후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에는 텐트나 움집에서 살며 미개한 생활을 당분간 해야 했다. 그들의 도구는 임시로 돌로 만든 연장들이었지만 곧 청동기와 같은 기구들이 발명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기술의 발전은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든 일이었다. 고대 바빌로니아 지역은 흙과 물이 풍부하여 일찍부터 세라믹 산업이 발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기술을 자랑할 마음으로 문명의 상징인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하늘에 이를 만큼 쌓아올린 바벨탑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높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
심층취재 |
그들은 왜 언어가 갈리었는가?
-현재 우리의 과학으로는 풀길 없어-
(BC 6000년 이전 경)-바벨탑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쯤, 사람들의 언어가 왜 갑자기 달라졌는가? 이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각 부족에서 학자들이 모여들어 진상을 조사했지만 아직도 그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서 바벨탑에서의 언어 혼잡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서 온 한 학자에 따르면 이러한 모든 현상들은 야훼라는 신에 의해 일어난 일임에 틀림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옛적 우리 조상 노아가 홍수를 벗어나 이곳에 정착할 때 야훼신은 한 언약을 세웠는데 그 언약은 노아의 자손들이 온 땅에 가득 퍼져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점점 한 곳에 모여 다투기만 할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부족을 이루어 각기 새로이 살기 좋은 것으로 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사진은 노아홍수 후 민족의 이동경로)
|
|
언어가 달라지자 공사가 진행되기 어려워
-언어가 다시 통일 되기전에는 많은 문제가 남을 듯-
(단신) 언어의 혼란은 인류의 역사이래 처음 있는 일로서 모두가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단지 다행히 말이 서로 통하는 부족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 듯, 이로서 바벨탑을 쌓기로 한 계획은 전면 백지로 돌아가고 당분간 모든 공사를 중단키로 했다고 원로회에서는 전한다.
|
●최근 조사가 끝난 각 민족의 분포는 다음과 같다●
① 야벳의 후손-북쪽지역, 인도유럽 인종, 고멜(겔트족), 마곡(카스피해 동, 북에 거주), 마대(메대인), 야완(이오니아인), 두말(두발인), 메섹(흑해 동남에 거주), 디라스(게르만족) ② 함의 후손-남쪽지역, 애굽인종, 구스(아프리카), 미스라임(애굽), 붓(아프리카 홍해연안), 가나안(수리아의 팔레스틴 선주민) ③ 셈의 후손-동쪽지역, 유럽인종, 엘람(엘람인), 앗수르(앗수리인), 아르박삿(갈대아인), 룻(소아시아의 리디아인, 아람(아람족, 히브리인)
|
|
전문기자칼럼 |
바빌론의 신화속에 남아 있는 바벨탑
'바벨'은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유태인들이 붙인 이름
|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고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와 비슷한 얘기 처럼 보인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바벨탑의 규모에 대해 언급했다. 과연 바벨탑은 실재로 존재했을까. 바벨탑처럼 각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드물다. 신들이 인간의 도전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간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건설중인 탑을 파괴한다는 전설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우선 예술가들은 바벨탑의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신들조차 두려워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늘까지 오르려면 어떤 구조로 건설해야 하는지는 더욱 궁금한 일이었다. 중세시대의 삽화를 보면 상상력으로 그린 바벨탑이 여러 가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벨탑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탑이다. 지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여겨진다.
|
■■이걸 아십니까?■■
수메르어에는 홍수전의 언어의 흔적이
셈족 계열인 히브리어와 한국어에도 유사한 말이 많아
노아의 장자인 셈은 절기 때마다 제사를 드리려고 산으로 갔다. 셈의 장자 이름은 '엘람'인데 그 뜻은 '높은 곳'을 의미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를 이룬 '수메르'는 이 셈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의미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이다. 쐐기문자 속에 나타나는 수메르어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던 바벨탑 사건 이전의 언어가 아닐까하는 견해가 많다. 미국 시카고 대에서 수메르어를 연구하고 있는 강신택박사의 말을 빌면 수메르어에는 우리말의 원형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메르어의 'gir'은 우리말의 '길'이며 bad는 '발'을 의미하며 nim은 우리말의 '님'과 같은 것이다. '하늘'은 가장 높다는 뜻의 an-ur에서 온 것이며 아버지를 부를 때 abba라 부르며 자신의 아버지를 부를 때는 abi라고 낮추는데 이것은 셈계인 히브리어도 공통이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일본어와 한국어에서 볼 수 잇는 '토씨(助詞)'가 수메르어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에 '~가' ~을', '~의' 등 토씨가 있는 처럼 수메르어에도 주격, 목적격, 소유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ke,ir, ak등을 붙인다. 게다가 수메르어의 문장구조는 놀랍게도 한국어와 같은 S+O+V형으로서 주어+목적+동사 순서이다고 한다.
|
|
|
주거문화의 혁신-( 진흙 벽돌 모델하우스 공개 중) 50%융자
주변환경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택을 개량하여야 합니다. |
타임머신을 타고서
현대 고고학의 허구를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1910년 창스 월코트(Chales Walcott) 는 캐나다 로키 산맥을 횡단하다가 캄브리아기 화석들을 다수 발견했다. 그는 대단히 고운 흙에 보존되어 있는 연체동물의 화석과 많은 종류의 벌레, 새우와 게종류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화석에는 위나 소장 같은 소화기관까지 나타나 있었으며 벌레나 갑각류의 구조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또 눈이나 감각기관은 잘 발달된 신경조직을 갖고 있었고 아가미의 구조로 보아 용존산소(DO)를 취한 뒤 이를 온몸으로 운반하는 혈관조직을 가졌음을 짐작케 했다. 또 개중에는 메뚜기처럼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것도 있었다. 이 탈피 메카니즘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복잡한 생리현상이다. 그런가하면 세밀한 입의 구조는 물에서 특별한 먹이를 취하는데 알맞도록 잘 발달되어 있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발달된 동물들이 갑자기 그리고 다양하게, 가장 오래된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발견되는데 이들의 조상은 어디에 있는가?
|
|
바벨탑의 발굴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몇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렇듯 바벨탑의 규모는 다른 지구라트보다 훨씬 크다.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탑들이 서있었다.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성안에 있었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만여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된 후의 일이었다.
|
|
바벨탑
유적지 관광
|
이제는 기억 속에
묻힌 바벨탑 유적지를 관광
할 관광단들을 모집합니다.
"역사인가?"
"전설인가?"
"허구인가?"
일시: BC 2000년 1월 10일
장소: 메소포타미아 관광청요금: 양 10마리
- 문의처 -
메소포타미아 관광청
|
|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전문 기자의 코너
한민족의 어디서부터 이동해 왔을까?
인류학적으로 볼 때 한 민족은 몽골 족에 속한다.
그리고 언어학적으로는 우랄 알타이어 계에 속하는데 여기에는 동이와 예맥이 들어간다.
지난번 한민족 대이동 탐사에 들어갔던 한국창조 과학회의 탐사에 따르면 아라랏산에서 갈라져 나온 셈족 계열에 한 일파가 소련의 바이칼 호수를 거쳐서 몽고 그리고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러 정착할 것으로 최종 보고했다. 이 루트에는 공통된 문화와 풍습 그리고 도구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우리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맷돌'이라는 것이다.
|
|
바빌로니아의 천하통일
(BC. 19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일찍이 수메르가 패권을 차치하였으나 최근 바빌론이 새롭게 패권을 차지 왕국을 수립했다고 지난 달 발표했다. 수메르에 속한 작은 도시였던 바빌로니아가 이렇게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수메르의 세력 약화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메르의 지나친 패권주의가 잦은 군사 출정을 가져왔고 이로 인한 세력의 약화를 틈타 아부르족의 장자들이 독립 선포와 동시에 수메르 지역을 통일시킨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이 바뀐 것이다.
|
|
|
●●●성서로 보는 세계사-2●
조지 스미트와 메소포타미아 홍수설화
오늘날 성서와 관련이 있는 지역들은 이스라엘을 비롯해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등모두 11개국이나 된다.
●바벨탑의 전설-신을 경배하는 지구라트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고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의 하나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풍요로운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3000-500년 사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모시는 수백개의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바빌론, 우르크, 우르와 같은 주요 도시들은 도시 중앙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 유적이 확인된 것만 해도 30곳 이상이다.
|
● 지구라트를 만든 동기는 홍수에 대한 피난책인듯
홍수에 휘말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불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 지구라트를 만든 동기가 신의 강림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탑들이 서있었다.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성안에 있었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
------------------------------------------------------------------------------------------------
역사추적(TIME LINE)
|
노아의 세 아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각 인종의 시조가 되다
|
노아는 포도농사를 지었다.하루는 포도주에 취하여 하체를 드러낸 채 자고 있었다.노아의 세 아들 이름은 셈 함 야벳으로 둘째아들 함이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두 형제에게 고하니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해 뒷걸음질쳐 아비의 하체를 덮었고 고개를 돌이켜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창9:20∼23). 노아가 술이 깬 후 이 사실을 알고 셈과 야벳은 축복하고 함은 그 자손이 셈과 야벳 자손의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셈이 받은 축복은 그 후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길 것이라는 영적 종교적 축복이고,야벳이 받은 축복은 물질적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경제적 축복이었다(창9:25∼27). 여기서 노아의 저주는 불공평하게 보기도 한다. 먼저 야벳의 아들은 일곱이었는데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였다.이들이 번져나가 여러 나라를 세웠고 각기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으니 대체로 유럽에 퍼져 살았다.특히 야완은 이아온으로 표기되는데 이는 이오니아족을 말하며 헬라인의 조상이 되었다.함의 아들은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인데 구스의 아들들을 열거하고 그중 니므롯이라는 특이한 통치자에 대해 언급한다.이들은 구스(에티오피아)지역을 비롯해 주로 아프리카 지역으로 뻗어나갔다.검은 피부에 건강한 신체를 소유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창10:2∼20).셈의 아들은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인데 11장에서 아르박삿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으며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이르고 있다.이들은 처음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후에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의 발달과 함께 다시 이목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
수메르에서 움트는 국가주의
-역사발전인가, 악의 성장인가?-
(BC 2800년경)- 최근 수메르 지역에서는 부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 고대국가 형태의 왕조가 들어설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은 연합으로 전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부족의 하나였던 수메르가 인근의 부족들을 연합시키면서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고 하는데, 원근의 많은 부족들이 특별경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
|
수메르의 패권주의
수메르의 강성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 있어
(BC 2700년경)-홍수 이후 사람들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가로 몰려들어 집단 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히 세계최초의 부족연맹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름진 땅의 소출과 청동기의 발견으로 점점 그 힘이 강해지고 세력균형이 깨어지자 그 틈을 타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
|
|
한문속의 성경
|
|
탐할람 창3:6 여자가 두 나무+여자=탐할탐
그 나무를 본즉...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관련인터넷: ▶워싱턴 주립대학 홈페이지내의 세계시민편 http://www.wsu.edu:8080/~dee/MESO/MESOPOT.HTM.
▶http://www.geocities.com/Athens/Forum/6946/rome.html 에모리대학 교육자료실
▶http://www.emory.edu/CARLOS/ODYSSEY/index.html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