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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http://kcm.co.kr/HolyLand/index.html

성지순례   (에집트 이스라엘 이태리)  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0aYt6ljLAss$&play_loc=undefined&alert=true

 

베다니아(Bethania)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향하는 올리브 동산 동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약 3 km 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하여  어린 나귀를 타신 곳에 위치한 벳파게 기념 교회에서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베다니 마을이 있다.

벳바게는 구약성서에서는 언급되지 아니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여기와 공관복음 병행절에서만 나올 뿐이다. 벳바게는 구약시대에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거의 알려지지 아니한 무명(無名)의 마을이었던 것 같다. 그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여리고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하면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 베다니 마을을 지나서 올리브 산의 동쪽 산밑을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다. 벳바게와 올리브 산에 '이르렀다'라는 동사의 도착 지점을 가리키는 부사구로 형성되어 있다. 즉 '벳바게에'(to Bethphage)와 '올리브 산에'(to the Mount of Olives)라는 두 개의 부사구가 '이르렀다'라는 동일한 동사에 동격적(同格的)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순전히 지리적 관점에서 벳바게와 올리브 산을 비교한다면 벳바게는 올리브 산보다 작은 지점이며 올리브 산은 벳바게보다 큰 지점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해서 올리브 산이 벳바게의 위치를 규정하여 주는 형용사구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감람산 벳바게에'(개역), '감람산 근처 벳바게에'(새번역, 공동), 또는 '올리브 산이 있는 벳바게에'(표준)라는 번역은 모두 올리브 산(또는: 감람산)이 벳바게를 수식하는 형용사구로 풀이하여 번역한 것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벳바게에, 올리브 산에 이르렀다'인데 마태 기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된 관심은 '벳바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데 있었고 벳바게에 이른 것은 곧 올리브 산에 이른 것이라는 사실을 덧붙여 놓았던 것이다. 마치 과천으로 해서 관악산에 이르거나 신림동으로 해서 관악산에 이르는 방법이 있듯이 마태복음의 표현은 벳바게에 이르러 올리브 산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벳바게'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무화과 집' 또는 '무화과 골'을 뜻하는데 올리브 산의 동쪽 산기슭이나 산밑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거나 무화과 나무가 우거진 땅 이름일 것이다. 22절에 나오는 '맞은 편 마을'을 벳바게로 볼 수밖에 없다면 벳바게는 마을 이름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다. '올리브 산'이라는 명칭은 거기에 올리브 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졌다. 예루살렘 시가지가 해발 약 720m 되는 고지대에 놓여 있는 데 비하여 올리브 산은 높이가 820m 정도 되니까 올리브 산 위에서 예루살렘 성내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다(눅 19:37,41-44; 막 13:3 참조).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적병에게 함락되었을 경우에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작전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적 기지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예언자 스가랴는 야훼께서 열국을 치시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날에 야훼께서 올리브 산에 나타나시리라고 예언했다(14:4).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나온 한 메시야적 예언자가 군중에게 말하기를 올리브 산에서 발하는 자기의 명령 소리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며 그리하여 거룩한 도성으로 진군하고 구원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선전하여 많은 무리를 올리브 산에 집결시킨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 시대와 초대교회 시대에 있어서 유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올리브 산이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기대와 결합되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올리브 나무와 감람(橄欖) 나무는 식물학 상으로 서로 다른 과(科)에 속한다. 중국어 성경이 올리브나무를 감람나무와 비슷하다고 하여 감람나무로, 올리브 산을 감람산으로 번역한 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https://blog.naver.com/jjkkhh2232/50047271039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 중간에는 cheesemongers’ valley 가 있으며, 이 세 골짜기는 실로암과 엔로겔 사이에서 서로 만나게된다. 여기의 높이가 약 600 미터이다. 그리고 이제 기드론 골짜기는 동쪽으로 흘러 쿰란까지 흐르게 된다. http://imagingbible.tistory.com/247 

 

 http://blog.naver.com/jjkkhh2232/220923037664

​예루살렘은 북위 31도 52분, 동경 35도 13분에 위치하고 있다(북위 33도인 제주도의 서귀포보다 조금 남쪽임). 이곳은 지중해로부터 약 52km 정도, 사해 북쪽으로부터는 약 2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해발 약 800m의 유다 구릉지 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의 사마리아 지방과 남쪽의 헤브론을 연결하는 남북 간선 도로와 동쪽 요단 계곡의 여리고에서 서쪽의 지중해안의 욥바와 가이사랴를 연결하는 동서 간선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전략적 거점 도시이다. 시편 125:2의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라는 말씀처럼 예루살렘은 높은 산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예루살렘 동쪽에는 해발 830m의 감람 산이 남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을 제외하고는 예루살렘 성으로 진입하는 모든 길들이 세 개의 깊은 골짜기에 의해 모두 차단되고 있다. 그 세 개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성과 감람 산 사이에 있는 동쪽의 기드론 골짜기와 예루살렘 성 남서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굽어 기드론 골짜기와 만나는 힌놈 골짜기, 그리고 성의 서쪽의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티로포에온(Tyropoeon) 골짜기이다. 이와 같은 지형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외적을 방어하는 데도 유리했다. 그러나 3면(동, 서, 남)은 산지였으나 북쪽은 터져 있고 중앙 산맥으로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을 때는 대부분 북쪽을 통해서였다.

800m 결코 높지 않은 산지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은 여부스 부족의 땅을 다윗 왕이 점령하면서 이스라엘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성서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당시 한 개의 성읍(살렘, 창 14:18)이었고 BC 13세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여부스 부족이 살았으며(수 15:8, 63), BC 1000년경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점령하여 수도로 정하고 다윗성이라 부르면서(삼하 5:7)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등장했다.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옮기면서 도시는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아름다운 성전(지금의 엘 아크사 사원 자리)을 세우고 왕궁도 만들어 팔레스타인 지역의 중심 도시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솔로몬 왕은 외부의 세력을 막을 수 있는 망루도 건설하는 등 예루살렘은 굳건한 요새로 만들었고 성벽 확장 공사 등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비운의 도시가 됐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 왕인 느부가넷살 왕이 공격한 뒤로 예수살렘은 2000년간 20여 차례나 주인이 바뀌고 10여 차례나 완전히 파괴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특히 기원 후 70년경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으며 오랜 식민시대를 거쳐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포한 후 당시 요르단 땅이었던 예루살렘을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획득, 자국의 수도로 선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성 안의 도시를 올드시티(Old City)로, 1세기 전부터 새롭게 현대식으로 세운 뉴 시티(New CI쇼)로 나뉜다. 구 도심은 기독교인 지역, 이슬람교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 유대인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성 안팎으로 수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다.

기드론골짜기에 있는 예루살렘의 두 식수원인 기혼샘과 엔로겔(노란색 안쪽 부분이 다윗이 정복했던 여부스성 '시온 산성'으로 다윗성이 되었다(삼하5:7))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에게서 이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고 하였으며, “시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삼하5:7). 예루살렘은 높이가 해발 750미터로, 유대 지방의 중앙 산지에 자리 잡고 있다(시48:2,122:3,4). 골짜기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쪽과 남쪽에는 힌놈 골짜기, 동쪽에는 기드론 급류 골짜기가 있다(왕하23:10,렘31:40).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과 남쪽에 있는 엔-로겔에서 깨끗한 물이 공급되었는데, 이러한 물 공급원은 적의 공격을 받을 때 특히 중요하였다(삼하17:17).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중에, 다윗 성은 북쪽으로 확장하여 오벨과 모리아 산까지 포함하게 되었다(삼하5:7-9,24:16-25). 솔로몬은 더 높은 산마루인 모리아 산 위에 여호와를 위한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였다.

후에 예루살렘은 서쪽과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솔로몬 이후의 유대 왕들은 이 도시에 성벽을 증축하고 성문을 더 만들었다. 이 도시는 기원전 607년에 파괴되어, 70년 동안 황폐된 상태로 있었다. 유대인들이 돌아오고 나서 약 80년 뒤에, 느헤미야는 대대적인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업에 착수하였다.

히스기야 왕 당시 앗수르의 침공 시 성 밖의 모든 물을 막고,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곧게 서쪽에 있는 못으로 연결되는 터널을 팠다(대하32:4,30). http://www.newsnbib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7

기혼 샘 /다윗 성 오른쪽 맨 아래에 기드론 골짜기(Kidron Valley)가 있고, 그 위에 기혼 샘(Gihon Springs)이 있다. 기혼 샘은 다윗 성, 곧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water source)이었다. 이는 예루살렘의 동쪽, 곧 기드론 골짜기가 있는 곳에 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 여부스 족속이 시온 산성에 있을 때도 기혼 샘은 그들의 주요 수원이었다. 이 기혼 샘은 간헐천이어서 건기인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우기인 겨울에는 하루에 네댓 번 정도 솟아올라 물을 기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내서 1년 내내 예루살렘에 신선한 물을 공급했다(오늘날도 히스기야 수로를 통해서 흐르는 신선한 기혼 샘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족속들은 물을 안정되게 공급받기 위해서 기혼 샘에 수조처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성경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된 후 여부스 족속이 정착하고 있던 시온 산성, 곧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물 긷는 데”, 곧 수구, 수로를 이용해 ‘시온 산성’ 안으로 침입했다(삼하5:8). 여부스 족속은 기혼 샘의 물이 모이는 수로에 물동이를 내려서 물을 길었을 것이다. 이 수로는 아마도 수직 갱도였을 것이다. 기원전 18세기의 가나안 족속들도 기혼 샘 주변을 요새화하고 바위를 깎은 웅덩이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초기에는 기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은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모였을 것이다. 성경은 이 “윗못”(사7:3)에서 수로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 남쪽에 있는 “옛못”(사22:11,사8:6), 곧 일종의 저수지로 물을 끌어왔다. 이를 실로아 수로라고 불렀다(사8:6).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이 기혼 샘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으며(왕상1:38,43,110:7),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 산헤립의 공격에 대비해 기혼 샘에서 실로암 연못으로 이어지는 일명 ‘히스기야 수로’를 파서 안전하게 물을 확보함으로 장기전에 대비했다(대하32:30).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인 기혼 샘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망루(guard tower)를 세웠다. 철제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히스기야의 수로에 이르게 되고, 533m를 가게 되면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실로암 연못을 만나게 된다(왕상1:33,38,45,대하32:30,33:14). 기혼 샘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히스기야 수로(Hezekiah's Tunnel)인데 이는 훗날 앗수르의 공격에 대비해 만든 것이다. 기혼 샘에서 이어지는 히스기야 수로 중간에 수직 수로가 있는데, 이것이 수구에서 시온 산성 안으로 연결된 통로이다. 아마도 다윗과 그 군대는 여부스 족속의 시온 산성을 정복할 때 이 수구의 통로나 그 위 자연 동굴 통로(Natural Tunnel)를 통해 시온 산성으로 침입했을 것이다. 이 수구 통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 위에서 계단식 통로(Stepped Tunnel)를 거쳐 수평 통로로 지나야 한다. 통로를 완전히 다 지나게 되면 기혼 샘이 있는 넓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A18G&articleno=17050340#

성전 산(Temple Mount)라고 불리는 곳은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의 성전, 그리고 스룹바벨의 성전을 보수하고 더욱 크게 확장한 헤롯 성전이 서 있었던 곳이다. 산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주변보다 약간 더 높은 언덕과 같은 곳이다. 지금은 아라비아에 있는 제 1의 이슬람 성지 메카(Mecca)와 메디나 다음으로 이슬람권에서  세 번째로 거룩한 성지인 “황금의 돔(바위의 돔)”이 서 있는 곳이다.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한 곳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려 하였던 모리아 산이었다고 한다(성전 산의 바로 윗쪽 지역임)(대하3:1).  그 곳은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셨던 곳이다. 그곳은 다윗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으로부터 사들인 커다란 반석이 있었던 타작마당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곳은 그가 살고 있었던 네게브 사막이 시작되는 곳인 브엘세바(Beersheva)였다.

시온산- 예루살렘에는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산봉우리가 있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764m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찾아가는 시온산은 구약성경에서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에게 빼앗아 다윗성 또는 시온산이라고 불렀던 장소와는 다르다(삼하5:7). 그곳은 오늘날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포함해서 성전산(모리아산)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온산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의 시온산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주후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한 높고 널찍한 산봉우리를 시온산으로 불렀다. 이후 비잔틴 시대가 되면서 크리스천들도 이 산봉우리를 시온산으로 불렀고(주후 4세기), 20세기 초에 와서 학자들의 연구결과 구약시대의 시온산 위치가 다윗성과 성전산 일대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예루살렘 남쪽 산봉우리를 오늘날에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시온산 산봉우리에 우뚝 솟아 그 위용을 드러내는 교회가 ‘마리아 영면교회’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락방 기념교회(최후 만찬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https://blog.naver.com/jjkkhh2232/222023391892

# 시온 산(Mount Zion) : 예루살렘 성의 남서쪽 끝에 있는 산(해발 765m)이며 위쪽의 성전 산과 거의 연결되어 있는 산이다. 예루살렘 성의 남쪽의 시온 문을 통하여 나오게 되면 만나게 되는 곳이다. 왼쪽에는 티로포이온 골짜기가 있고, 그 아래 쪽에는 힌놈(Hinnom) 골짜기가 있고, 동쪽은 키드론(Kidron) 골짜기가 있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이 살던 '시온 산성'을 점령한 후 다윗 성이라고 불렀다(삼하5:7). 시온 산에는 다윗 왕의 무덤, 최후의 만찬 장소, 베드로 통곡교회, 마가의 다락방, 성모 마리아 영면교회 등의 유적이 있다. 이곳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많은 유대인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도 있다. 

예루살렘 성은 해발 760 m의 돌산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예루살렘의 스데반 문을 나오면 넓은 광장이 있고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큰 길이 나온다. 그 길을 건너면 다시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키드론 골짜기(The Kidron Valley)다. 예루살렘 성전산과 감람산(860m) 사이에 있다. 예루살렘 성에서 감람산으로 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 계곡을 거쳐야만 한다. 예루살렘 성은 서쪽과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며, 동쪽으로 키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올리브산과 마주 보는 곳에 있다. 키드론 계곡 끝자락에는 다윗 왕이 처음으로 성을 쌓고 그의 도성으로 만들었던 다윗 성이 있다.  

​성전산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전 터에 남아있는 ‘서쪽 벽(일명 통곡의 벽)’과 바위돔 사원(황금돔 사원),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언덕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무슬림 모두가 신성시하는 장소이다.

성전산은 성경에서 ‘모리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산이며(창22:2), BC 9세기 솔로몬 왕이 건설한 성전이 있던 장소이다(왕상6:37,38,대하3:1,2).

솔로몬 성전(1차 성전)은 바빌로니아 포로기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파괴됐다가(대하36:18,19),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스룹바벨이 재건했고(2차 성전, 스3:7~13), AD 1세기 헤롯왕(Herod I)이 성전산을 확장, 보수하며 성전을 재조성했다.

B.C. 19년 헤롯왕은 유대인의 민심을 얻기 위해 기존의 성전을 헐고 대규모의 성전, 부속 건물, 요새 등을 세우며 과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AD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파괴됐고 지금은 성전의 서쪽 벽만 남아있다.

성전산은 로마 지배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주피터 신전을 세웠던 장소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집을 모독한 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고 결국 2차 유대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했고 아예 유대 지역 이름을 바꿔버렸다. 블레셋 평원의 로마 이름인 ‘팔레스티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지역을 통칭해 부르는 영어 이름인 ‘팔레스타인(Palestine)’은 바로 이 로마 이름에서 기원했다.

유대인의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유대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예루살렘 방문이 금지됐다. 1년에 단 한 차례, 바벨로니아가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린 날이면서 동시에 로마가 헤롯 성전을 허문 날인 ‘티샤 베아브’(아브월 아홉 번째 날)라 불리는 이 날에만 예루살렘 성전산의 서쪽 벽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현재 성전산은 사실상 이슬람교가 차지한 상태이며 유대인들은 접근할 수 없다. 그나마 성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서쪽 벽에 모이고 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세계 유대인들은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며 미래의 성전을 위해 기도한다.

성전산이 본격적으로 이슬람의 성지가 된 것은 638년 이슬람 군대가 점령하면서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이 곳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여겨진다. 현재 황금돔으로 불리는 바위사원은 우마미야 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에 의해 건축이 시작돼 691년 완공됐다. 사원의 돔 아래에는 높이 1.8m, 폭 11m의 바위가 있다.

유대인들은 이 바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 했다고 믿는 반면,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바치고자 한 아들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라고 믿으며,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기독교 측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했다. 하지만 성전산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후 성전산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세 종교의 성지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순례 장소가 되었다.  http://blog.naver.com/jjkkhh2232/220841617033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곳을 성지로 여기는 이유는 창세기 22장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받치려 했던 모리아산이기 때문이다(창22:2). 해발 734m의 모리아 산에 바위(길이 약 18m, 폭 13m, 높이 1.25~2m)가 있는데 이곳이 번제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솔로몬 왕이 처음으로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대하3:1). 그리고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이 산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여겨졌다(왕하25:8-9, 대하36:19).

그 이후 주전 20년경 헤롯은 성전축대를 확장하고, 성전을 증축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했다. 이때 완성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보게 되는 서쪽 490m, 동쪽 474m, 남쪽 283m, 북쪽 321m의 거대한 축대이다. 이때 만들어진 성전의 모습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성전의 겉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그저 놀라움만 자아낸다. 화려한 금관으로 두루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햇빛이 성전을 내리비추는 날에는 불빛처럼 반사되어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이곳을 옛 이름 ‘모리아산’이라고 부르기보다 ‘성전산’이라고 부른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이후(4~6세기를 비잔틴 시대라고 부른다)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기념교회’, 골고다에 ‘예수님 무덤교회’ 그리고 감람산에 ‘예수님 승천기념교회’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예수님 무덤교회는 그 길이가 150m나 되는 거대한 교회로 예루살렘의 상징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성전산은 기독교인들의 관심 밖이었고 폐허로 방치되었다.

왜냐하면 초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마23:38, 눅19:41-44). 그래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폐허가 된 성전산을 방치해 두고, 한편으로는 예수님 말씀이 성취된 현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을 박해하는 증거로 이용한 것이다.

주후 638년 이슬람의 칼리프 오마르(Caliph Omar)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들에게 이곳을 성역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부라크(번갯불)’라는 희귀한 말(여자 얼굴을 한 말로, 양어깨에 날개가 달렸고, 공작의 꼬리를 지녔다고 전해진다)을 타고 가브리엘 대천사의 안내를 받아 메카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와서 황금사원 중앙에 있는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코란 제17장). 바위 표면에 움푹 팬 곳은 마호메트의 발자국과 가브리엘 대천사의 손자국이라고 믿는다. 또한 최후의 심판 때, 이 바위에서 심판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며, 알라신은 바로 이 바위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믿고 이곳을 성역화했다. 이러한 전설과 함께 우마야드 칼리프 아브드 알-말릭(Umayyad caliph abd al-Malik)은 주후 687~691년 이곳에 사원을 완성했다. 그리고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을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십자군 시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했을 때, 이곳을 개조하여 주님의 교회(Temple of the Lord)라고 이름 붙였다(주후1099). 그러나 이곳은 다시 1187년 이슬람을 재통일한 살라딘(Saladin)( 1138~1193) 쿠르드 무슬림으로서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로, 1187년에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며, 제3차 십자군도 격퇴하여 세력을 확보하다. 재위 기간은 1169~1193년)에 의해 점령된 후, 약 700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접근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리고 납으로 도금된 사원의 지붕을 1964년 알루미늄과 청동의 합금으로 보수하여 황금사원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90년대 초 지붕은 다시 18금으로 갈아입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의 성지에, 이슬람 사원을 세워 유대교의 여호와보다, 기독교의 하나님보다 이슬람의 알라가 더 위대하다고 선포한 것이다. 동시에 유대교와 기독교로부터 박해를 받아온 이슬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게 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https://blog.naver.com/jjkkhh2232/221935368758 

 

                                          http://kozip.net/goods_detail.php?goodsIdx=274&inflow=mudepo3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 이곳에 예루살렘이 세워졌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이 있는 곳이다. 모리아 땅 : 예루살렘 주위의 산지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후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예루살렘의 한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당시 아브라함이 거하던 그랄, 곧 브엘세바에서 약 3일 거리(80km)에 위치한 곳이다. 이삭을 하나님에게 제사 하려던 산(창22:2). 후세에는 성전의 언덕을 모리아 산이라고 불렀다(대하3:1). 당시 예루살렘 언덕에 붙여졌던 이름이 모리아산이었는데 이곳은 아브라함이 그의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서 솔로몬 성전의 유적이기도 하다(대하 3:1) 이 성전 언덕의 정상 바위는 오늘날 이곳에 세워진 오마르 모스크에 안치되어 있다. A.D.638년 부터 예루살렘을 통치한 무슬림에 의해 성전 산(모리아 산)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스람 전통에 의하면 이곳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여겨지며 이곳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다. 현존하는 8각형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바위사원은 우마미야조 칼리프 압둘 말리크(Abd al-malik ibn Marwan, 685-705 재위)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어 691년에 완공된 것이다. 사원의 돔 아래에는 높이 1.8m, 폭 11m의 바위가 있다. 유대인들은 이 바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 했다고 믿는다. 반면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바치고자 한 아들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라고 믿으며,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현재 모리아 산이라고 추정하는 이스라엘 성지에는 바위 사원 실내에는 폭 12야드 길이 15야드 높이 2야드의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슬람들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세계의 3대 성도가 되는 것이다.  http://www.shinchun.com/bible/view/bible_sense/no/38

예루살렘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그곳에 감람산(올리브산)이 있다.

키드론 골짜기에서 감람산 방향으로 예로부터 유대인, 모슬렘, 기독교인들의 수많은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실 때 막힌 동쪽문(황금문)을 열고 예루살렘에 들어설 때 부활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최후의 날”에 육신과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서 메시야가 들어갈 황금 문 앞 골짜기에 그들의 무덤들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곳의 대부분의 무덤들은 돌로 만든 석관으로 땅 속에 매장하지 않고 지상에 석관을 놓아둔 것이다.​

 

통곡의 벽과 이슬람 바위돔 황금성전-옛 예루살렘 성전터,  멀리 보이는   올리브산

 

예루살렘 성전산-이슬람 황금바위 돔 Dome_of_Rock,_Temple_Mount,_Jerusalem

​예루살렘 성 북쪽 문인 다마스쿠스 문.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그 바위, 이슬람 성전-옛 예루살렘 성전터 안에 있다. 바윗돌의 크기는 길이가 약 18m, 폭이 13m, 높이는 1.25-2m 가량 된다.   http://blog.naver.com/panem/70190305416 

                                                                                                         겟세마네 기념교회당

 

감람산[橄欖山]-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길이 4km, 해발 814m의 산. 감람나무(올리브)가 무성하여 감람(올리브)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서 요르단 계곡과 멀리 사해까지 바라보이며, 예루살렘 전경(全景)을 내려다 볼 수 있다.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이 산의 서쪽 기슭 근처에 그리스도의 수난이 시작되는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감람원이라고도 한다. 예수님이 자주 와서 기도를 올렸으며, 승천도 이 산에서 이루어졌다. 여리고에서 감람산으로 올라오다 보면 베다니가 있고, 감람산을 넘어가면서 벳바게에 이른다. 그리고 언덕 반대편에 바로 예루살렘 옛 성을 기드론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오늘날 감람산에는 무척 많은 유대인들의 묘지가 있다. 감람산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치열하게 묻히고 싶어하는 장지이다.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감람산으로 강림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부활을 맞이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겟세마네 동산은 올리브산 아래 기슭이다. 올리브산은 높은 산은 아니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 정도이고, 올리브산은 이보다 조금 높은 해발 820m 정도다. 예루살렘보다 100m 높은 산이다.

감람산 정상에서부터 기념교회들을 방문하며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기념교회를 만나게 된다. 신약성경은 감람나무가 많은 산(감람산), 감람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는 곳(겟세마네), 감람나무가 많은 숲(감람나무 숲)이라고 했다. 동산이라고 하지 않았다. 한글 성경이 동산이라고 번역했을 뿐이다(요18:1). 그곳에 가보면, 동산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감람나무들이 있는 산기슭일 뿐이다. 

올리브산 아래쪽에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의 동쪽, 기드론 계곡을 건너면 바로 만나게 되는 작은 언덕이다. 벳바게를 지나 예수살렘으로 가는 감람산 사이에 나 있는 꽤 가파른 내리막 길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아래 건물은 겟세마네(만국)교회, 위의 건물은 막달라 마리아교회다.

올리브산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다. 올리브 나무는 아주 단단하고 강인한 나무다. 올리브 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열매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고, 열매를 짜서 나오는 기름은 건강에 좋은 최고 품질의 기름이다. 나무는 아주 단단해서 목공이나 조각품을 만든다. 올리브 나무는 똑 바로 자라지 않고 줄기가 뒤틀리면서 자란다.

겟세마네 동산에는 8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는데 그 나이는 확실치 않다. 몇몇 식물학자들은 올리브 나무들이 약 3,000년 됐다고 주장한다.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 디도 장군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모든 나무들도 함께 없앴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감람나무들은 예수님 당시 이후의 나무들일 것이다. 아직도 이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죽지않고 영원히 열매를 맺는 나무다. 몸통이 오래되어 말랐음에도 그 옆으로 새로운 가지들이 나와서 새로 시작된다. 뿌리로부터도 새로운 가지들이 나와서 다시 새로운 나무를 형성하고 한다. 식물학적으로는 올리브의 나무의 평균 수명은 1,000년 이라고 한다.

                                                                                                               겟세마네동산

                                                                                                     겟세마네 기념교회 정원에 있는 감람나무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 나무

 

올리브 열매  https://blog.naver.com/garden12221/221646347050   더보기

​종려나무

 

예루살렘에서 소렉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엔-케렘. 사진의 중앙 오른쪽에 있는 큰 건물이 마리아 방문 기념교회로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눅1:39-40)

예수님 탄생교회(The Church of Nativity)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교회 (The Church of Nativity)의 지하 동굴에 내려가면(지하 동굴인 것은 2,000년 동안 지층이 쌓아올려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 구유 자리에 별을 새겨 놓았다. 대리석 바닥에 놋쇠로 만든 별을 붙이고 14개의 광채가 나도록 했다. 이것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라는 것과, 다윗부터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 간 때까지 14대라는 것, 그리고 바빌로니아 포로로 끌려 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 할 때까지 14대라는 것을 상징한다. 별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주변에 라틴어로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Here Jesus Christ was born of the virgin Mary)”라고 새겨져 있다. 

http://blog.naver.com/jjkkhh2232/220575322488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묘교회 내 예수님의 무덤. 성묘교회는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가 325년에 건립했으나 이슬람 세력이 1009년 구조물을 파괴했다. 십자군이 12세기에 복원한 이후 현재 모습을 지키고 있다.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이집트 콥트교, 시리아 정교회 등 기독교 6개 종파가 구역을 나눠 교회를 공동 관리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여관(개역성경에는 사관이라고 나옴)은 그 당시 용어로 칸(khan)이라고 불렀던 여행자 숙소다. 대개는 공용 뜰(common courtyard)이 있고, 공용 뜰에서 조금 떨어져 일렬로 나열해 있는 간단이 잠을 잘 수 있는 시설이 칸(khan)이다. 여행자들은 대개가 각자가 먹을 것을 싸가지고 다녔고, 칸(khan) 주인은 동물들이 먹을 사료를 준비해 주거나, 요리를 하기 위해 불을 피워주는 것뿐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나마 있을 곳이 없어서 칸의 한 쪽에 있는 말이나 낙타를 매 놓는 외양간에서 지내게 되었고,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된 것이다. 

http://blog.naver.com/jjkkhh2232/220575322488

야곱의 우물(요4:6-12)

​1890년의 실로암 연못

히스키아 터널이 끝나는 곳에 있는 실로암의 1934년 모습

2009년의 실로암연못

​기혼샘의 물을 히스기야​터널(S형,533m)을 통해 실로암못으로 흘려보냄(기혼샘~실로암못 직선 거리는 330m). 년중내내 중동에서 제일 많은 물이 종아리~허벅지까지 차게 흐른다. 실로암못은 매우 큰 못으로 일반인의 휴식처, 절기 시에 이 곳에서 의식을 행하였다. 실로암못에서 성전 통곡의 벽까지 돌계단 길이다. 실로암못의 물을 긴 배수구를 통해 성밖으로 흘려보냈다. 8개의 성문 외에 유일하게 이 긴 배수구를 통해 성안 통곡의 벽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통과한 로마시대 돌계단

 

​갈릴리 호수와 눈덮인 헤르몬 산(1,850m)

 

 

눈에 덮인 헐몬산과 골란고원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골란고원은 면적이 약 1,800㎢(제주도 면적과 비슷)로서, 이 가운데 1,200㎢는 이스라엘에 속해 있고 나머지 600㎢는 시리아에 속해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에는 모두 시리아에 속하였으나,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일 전쟁)과 제4차 중동전쟁(1973년)을 통해 시리아로부터 탈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계속 영토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거부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 바산(Bashan)이라고 여러 번 나오는 지명이 바로 오늘날의 골란고원이다. 성경에는 바산이 토지가 비옥하여 목축하기에 좋고, 재질 좋은 상수리나무(참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고 여러 곳에 쓰여 있다.

오늘날도 골란고원은 목축하기에 좋아 현지 유대인들이 고원 곳곳에서 목축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이스라엘에서 만드는 밀크 초콜릿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바산의 상수리 나무’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참나무(Palestine Oak)’라는 이름을 가지고 골란고원의 서북부를 덮고 있다.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해발 800-1,000m로 급격히 솟아오른 고지대로 이루어진 골란고원은 남북 길이 70km, 동서 폭(가장 넓은 곳) 40km이다. 고원의 지형은 남북이 대조적이어서, 북부는 높이 2,814m로 눈에 덮인 최고봉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높은 봉우리를 갖고 있는 헐몬산(Mt. Hermon)과 이 화산이 폭발할 때 형성된 거대한 용암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헐몬산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산 아래에서 산 정상까지 리프트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산 정상에서는 멀리 서쪽의 지중해와 동쪽의 다메섹이 보이므로, 이곳에는 이스라엘군의 관측소가 있다.

   https://blog.naver.com/jjkkhh2232/222662432379

 

둘레 50~60km, 깊이 ?

헐몬산의 눈녹은 물이 윗쪽 요단강으로 흘러내려온​ 물. 40여종의 물고기가(16종은 갈릴리 호수에만) 있다

 

​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는 요단 강에서 세례예식을 하고 있는 러시아 기독교도들, 1899년 ​

                                                                                                                                                           요단당​ 2007

​                                                                                                                                             베들레헴 양들 2009

엠마오 마을 (옛 기럇 여아림)

다볼산(Mt. Tabor)- 이스라엘 갈릴리 저지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해발 588m이며 갈릴리 호수에서 서쪽으로 18km 정도, 나사렛에서 갈릴리 호수쪽으로 10km 정도 거리에 있다. 험한 비탈의 바위산으로 물이 없다. 개신교인들은 이 산을 변화산이라고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타보르 산 정상에는 1921년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서기 4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의 교회 터에 세운 예수님의 변화(마 17장) 기념교회, 그리스 정교회가 세운 엘리아 기념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주위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헤로디움.  헤롯대왕은 BC 4년에 여리고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거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헤로디움 궁에 묻혔다.  헤로디움은 현재의 팔레스타인 영역, 사해로부터 서쪽으로 약 18km, 유다 베들레헴으로부터 남동쪽 약 6km 정도의 거리에 원래의 산을 두 배로 높여 원형 지름 약 370m, 높이 780m의 인공으로 만든 거대한 산 위에 지름 90m 정도의 대형 별궁 '헤로디움'이 자리하고 있다. 수영장과 별장터, 경기장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한 이 궁전은 헤롯 대왕이 여름을 나기위해 만든 별궁으로 막강한 그의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https://blog.naver.com/bible-map/221413612865

 

마사다

마사다

 

과거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 

[출처] 성지/신약|작성자 white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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