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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특집③]방언 통역의 은사

2015.01.01. 20:30

 

복사 http://blog.naver.com/yoonh20/22022686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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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특집③]

방언 통역의 은사

-통역된 방언은 예언과 같다 :
정이철의 잘못된 방언통역관 비판-

▲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 14:13).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헤르메네이아 글로손)을”(고전 12:10).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한 때 희귀한 은사 중의 하나였다.
5년 동안 방언 통역의 은사를 위해 기도해 왔다는 어떤 분이 찾아왔다. 그 분과 함께 5분 정도 훈련했더니 쉽게 통변의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닌가!
본인도 놀랐고 우리도 놀랐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 14:13).

그러나 요즈음에는 음성을 듣고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도 많기 때문에 방언통역 은사가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통역’을 말하는 헤르메니아(명사), 헤르메뉴오(동사)는 ‘단어나 다른 언어들의 의미를 설명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에서 성경해석학을 말하는 허마뉴틱스(Hermeneutics)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해석, 번역, 통역"(interpretation)으로 번역했다.


방언통역 은사의 정의

대표적인 3가지 정의를 보자.

"이 은사는 방언으로 말한 것을 신자로 하여금 듣는 자의 언어로 교통하게 하는 성령을 통한 초자연적인 계시이다."1)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인데, 이를 통해 이들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자국어로 알게 한다."2)

"방언 통역의 은사는 신자가 성령에 의해 방언하는 사람의 말을 즉흥적으로 통역하는 은사이다".3)

임하는 방법

방언 통역은 방언을 들을 때 그 의미가 마음 속에 쑥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타이프라이터로 타자를 찍듯 한 자씩 보여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방언의 내용을 ‘그냥’ 아는 경우도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방언통역이 이런 식으로오는 것에 대해 뜬 구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초자연적 은사는 좌뇌 중심의 논리와 유추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뇌를 통한 직관으로 주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자나 초자연적 은사가 없는 자들은 모든 것을 교리와 논리와 유추로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방언 통역의 다양성

일반적으로 ‘통역’이라고 하면 화자의 말은 문자 대 문자로 번역하여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방언 통역을 해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방언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방언 통역자는 간단하게 요점만 통역할 수 있고 때로는 조금만 방언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많은 말로 통역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방언을 하더라도 통역자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통역하기도 한다.

성령운동 비판자인 정이철은 바로 이 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혹시 요즈음의 방언 통역의 은사가 시연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 스스로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거나, 또 다른 사람이 통역한다. 그런데 통역되는 내용을 들어보면 대부분 성경, 설교 등에서 자주 듣는 말들과 단어들이다.

“사랑하는 자여!, 왜 낙심하느냐?”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사랑하는 자여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길게 소리를 내고서 아주 짧게 한 문장으로 통역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짧게 소리를 내고서 길게 풀이하기도 한다. 성경의 방언과 방언통역이 요즘의 이러한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와 동일했다면 과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그러한 일을 하도록 권장했을까? 지금도 성경의 방언과 방언통역이 존재라는 은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별의 별 시도를 다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방언과 그 내용을 하나님이 해석하게 하시는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낸 방언이라는 소리를 같은 뜻으로 풀이하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4)

정이철이 비판하는 요지는 방언통역의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유사하고, 방언 길이에 따라 통역 내용이 비례하지 않고, 사람마다 통역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방언통역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첫째, 정이철은 방언통역 내용이 성경 내용과 비슷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성경도 모르고 방언통역도 모르고 예언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방언을 통역하면 예언의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방언통역이 성경 내용과 비슷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다르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 14:5).

예언의 기능은 안위하거나 권면하고(고전 14:3; 행 15:32), 교회의 덕을 세우고(고전 15:4), 책망하거나 훈계하여 회개하게 하고(고전 14:24-25),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다(행 11:28; 21: 10-14).

방언도 통역하면 예언의 효과가 있으므로 당연히 안위하고 권면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고, 책망하거나 훈계하고, 더 나아가서 미래의 일을 알게 해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둘째, 정이철은 방언통역이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아주 극악한 일부 이단을 제외하고서 성경 수준의 계시가 자신들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예언자들을 육성하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쉽게 예언 서비스를 제공하는 IHOP의 마이크 비클도 성경 수준의 계시를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피터 와그너도 그러한 노선에서 예언과 계시를 주장한다. 예언, 방언, 방언통역을 통하여 주어지는 계시와 성경에 담긴 계시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방언, 방언통역을 통하여, 계시적인 은사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계시는 불완전하고 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오류도 개입되지만, 성경의 계시는 완전하고 정확하다고 한다.

…………………….

방언과 방언통역으로 얻을 수 있는 계시의 권위에 대하여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고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근본적으로 피터 와그너의 사상은 교회와 성도의 신앙에 엄청난 혼란을 주게 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에 의해 이미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허황된 예언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의 불행한 이야기들이 홍수처럼 넘친다. 방언과 방언통역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과연 주관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항상 객관적이고 성경적인 자세를 유지하여 그 내용을 잘 검증함으로 해를 당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반 성도들 중에서 그 정도의 신학과 분별력을 가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의 방언, 방언통역으로 하나님의 계시와 음성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심각한 사안이다. 피터 와그너의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들이다. 그는 성경의 방언과 방언통역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고 있다.” 5)

인용문에서 강조한 내용을 ‘성경’이란 단어로 대체해 보자.

성경(<s>방언과 방언통역</s>)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과연 주관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항상 객관적이고 성경적인 자세를 유지하여 그 내용을 잘 검증함으로 해를 당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방언이나 방언통역’이란 말 대신에 ‘성경’이란 단어를 대입해도 정이철의 주장은 통한다. 그 결과 정이철의 논리 대로 라면 성경도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 그런가? 애초부터 정이철의 논리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성경은 비록 무오하지만 해석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이 나온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 자체가 죄의 영향권 아래 있고, 사람에 따라 성격, 기호, 성장배경, 추구하는 이상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성경이나 구절도 다르게 해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성경 기록은 100%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성경 해석은 그 보다 수준이 낮은 조명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이철의 논리에 딱 맞는 한 집단이 있다. 바로 천주교이다. 교파도 없고 성경 해석도 본부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일사불란하다.)

서로 다른 성경 해석도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신학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단계이다

전문성과 학문성을 갖춘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이 그래도 일반인들의 해석보다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신학자 또한 죄인이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인 것이 기적중지론, 계시종료론이 전형적인 성경 해석의 오류이다. 정이철은 지금 이 두 가지 병에 심하게 걸려있기 대문에 다른 수많은 신실한 신자들이 방언하고 통역한다고 해도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필자는 신학교 다닐 때 설교학 시간에 교수가 말한 대로 설교를 준비 하기 위해 20권 정도의 주석을 참조한 적이 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전체적인 뼈대는 비슷하지만 주석가에 따라 전혀 다른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 주석의 요점을 정리하다 보니 한 본문으로도 몇 개의 다른 내용의 설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한 성경의 본문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서로 다른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방언통역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목사들의 설교이다

동일한 본문으로 동일하게 한 설교가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각인각색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설교가 무익하고 틀린 것일까? 물론 전혀 본문의 의도에 맞지 않게 설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본문의 틀 안에서 설교한다. 그러나 본문 해석이나 내용 전개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정이철은 비장한 결심을 하여, ‘동일하게 방언통역하는 사람 찾아보겠다’고 하는데 동일한 본문으로 동일하게 설교하는 사람이 있는가도 좀 찾아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QT이다

동일한 본문으로 QT를 해도 은혜 받은 내용이 성도 마다 다르다.
정이철의 논리 대로 하면 QT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방언통역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동일한 방언이라도 사람마다 통역이 다른 것은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성령께서 다른 내용을 깨닫게 하시거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통역하게 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짧은 방언이라도 심오한 내용이면 통역이 길 수도 있고 긴 방언이라도 내용이 단순하면 해석은 짧게 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긍정의 자세로 대하면 설명이나 해결책이 있고 부정의 자세로 보면 버릴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정이철은 자신의 동굴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통역의 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

사실 필자는 음성듣기와 예언의 은사를 받은 후에는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방언을 하면서 그 내용은 하나님께 문의하면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방언과 통역의 은사를 사모하는 분들을 훈련하기 위해 이분 저분을 훈련하던 중 내 방언을 통역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해보았더니 음성 듣기를 통해 방언 통역을 하던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비록 음성을 잘 듣는 편에 속하지만 필자의 중요가 개인적 문제가 개입되어 있을 경우, 내가 아무리 객관적인 관점에서 음성을 들으려 해도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하나님의 음성 대로 일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되지 않아 다소 낙심될 때가 있었다. 하나님의 음성과 현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염려 말고 기뻐하라, 감사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래서 방언을 하고 직접 통역해 보니 동일한 위로의 말씀을 주셨는데, 마음에 와 닿는 강도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약속의 음성과는 반대되는 환경으로 인해 잠시 낙심하고 울적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강하게 믿어지고 마음에는 기쁨이 넘치는 것이 아닌가?

어떤 문제가 있을 경우, 많은 경우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감사하지만 마음은 환경에 매여서 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심각한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는 분이 찾아왔다.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리느냐의 여부에 따라 이 분의 세상적 부귀 영화의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이 분은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게 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새벽기도 작정기도 등?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었지만 마음의 평강이나 확신은 없었다.

그러던 중 우리를 만나서 방언과 통변을 해보았다. 이 분은 생각보다 쉽게 방언을 하고 통변의 은사를 받았다.

이 분의 방언을 통역하던 중,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한 편의 시편처럼 통역되는 것이 아닌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마음으로는 극도의 긴장과 고통에 잠겨있는데 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합니다.
주님 제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평생에 주님만을 찬양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신앙 고백에 필자도 놀랐고 본인도 놀랐다.

“그렇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매여서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내 영혼은 그런 환경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 드리고 있구나!”

결국 우리 대부분이 힘들어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영적 실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메우지 못하여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필자가 보기에도 힘든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당사자는 물론 필자도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곧 해결된다, 염려하지 말라”고 응답하셨다.

필자는 문제가 곧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 대신 하나님은 그 분에게 신령한 은혜와 능력으로 응답해주셨다. 영적인 일에 전혀 무관하던 분의 영안이 열리고 능력이 임하고 음성과 환상이 임하기 시작했다.

이 분은 정작 자기가 원하는 문제는 해결해 주시지 않고 그 대신 별로(?) 원하지도 않은 신령한 은혜와 능력을 주신 것이 못마땅했다. “하나님 왜 제가 원하는 것 이루어 주시지 않으십니까?”라면서 때로는 떼를 쓰고 때로는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분을 위해 기도하는 데 조그만 개미 한 마리가 구두 뒷굽으로 인해 생긴 물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조그만 개미에게는 사람의 구두 뒷굽으로 인해 생긴 물 구덩이도 연못처럼 넓은 구렁텅이가 아닌가?

그런데 개미 같이 작던 사람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정상적인 성인의 모습이 되었다. 정상적인 성인의 모습이 된 그 사람에게 구두 뒷굽으로 인해 생긴 물 구덩이는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아, 하나님이 이 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시기 보다는 문제를 뛰어 넘을 수 있도록 이 분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시는구나.”

이 분도 이제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재점검하여 문제 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고, 또한 하나님이 문제를 통해 생긴 갈급한 마음을 선용하셔서 자기에게 더 좋은 영적 선물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이 분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해갔다.

이처럼 방언통역은 성령이 방언하는 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방언 통역을 통해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그 사람의 문제나 필요를 알아낼 수 있다. 통역된 방언은 예언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방언 말하는 자는 방언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 14:13).

성경은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회중 가운데 있으면 방언을 해도 좋다고 말한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7-28).

언젠가 필자가 미국의 어떤 교회를 방문했을 때, 예배 중에 담임목사가 어떤 자매 한 명을 불러 세우더니 방언을 하라고 했다. 그런 후 담임 목사는 자신이 그 방언을 통역하면서 자매의 방언을 통해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십여 분간 설교하는 것을 보았다.

필자도 어떤 사람이 방언할 때 굳이 "나는 지금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발동시켜야 되겠구나"라고 하지 않고 "저 뜻이 뭘까?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면 하나님은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것과 같이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의미를 알게 해주신다.

방언 통역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는 송재근 유순자 공저, 『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가 있다. 저자가 40여년 동안 방언 통역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성경은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했지만 무엇보다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 14:5).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방언, 방언통역은 물론 다른 은사도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잘못된 신학, 나쁜 경험 및 내 교회, 내 교단 보호라는 불순한 동기로 구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아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없어졌다’, ‘사라졌다’, ‘그게 아니다’고 하는 사람은 성령소멸죄를 짓는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대적하고 비판한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구해 보라.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

……………………………………………………………………………………………

미주(Endnotes)

1) David Pytches, Spiritual Gifts in the Local Church (Bethany House, 1985), 73 ; 『능력 은사』.

2) C. Peter Wagner, 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 (Regal Books, 1979), 235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3) Robert Clinton, Spiritual Gifts (Horizon House, 1985), 65.

4) 정이철,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에스라 서원, 2014), 119-20.

5) 같은 책, 9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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