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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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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의 서신
하이용고 | 2012.08.01 15:47

바나바의 서신

 

제1장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그리고 평화 안에 나의 자녀 여러분이 늘 행복하길 빕니다.

하느님의 위대하고 탁월한 법에 관해서 여러분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나는 여러분의 축복 받은 놀라운 영혼들 때문에 크게 기뻐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허락된 은총을 정말 합당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구원되기를 바라면서 기쁨에 충만해 있으며, 동시에 하느님의 순수한 분수에서 나온 성령이 여러분 안에 주입되었음을 뚜렷이 봅니다.

이렇게 깨닫고 또 완전히 확신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설교를 시작한 이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님의 법의 길에 있어서 예상 밖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또한 여러분을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안에 신앙과 자선의 위대함 뿐 아니라 앞으로 올 저 생명에 대한 희망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받은 것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정성껏 전달해 줄 때 내게 돌아올 보상은, 내가 이토록 훌륭한 영혼들에게 봉사했고, 여러분의 신앙과 함께 지식도 완전해지도록 바란다고 부지런히 몇 자 적어 보냈다는 점입니다.

주님이 지시하는 사항이 3가지 있는데, 이것은 생명에 대한 희망, 생명의 시작, 그리고 생명의 완성입니다.

주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지나간 일들을 우리에게 선언했을 뿐 아니라,앞으로 닥칠 일들의 시작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같이 우리는 더욱 거룩하게, 더욱 가까이 제대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스승으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똑같은 일원으로 내가 몇 가지 사항을 제시해 보겠으니,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여러분은 더욱 큰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제2장

 

요즘은 시대가 악하고 원수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욱 열심히 주님의 정의로운 판단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이제 두려움과 인내가 우리 신앙의 보조자이고 긴 시련과 절제가 동료 병사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주님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 순수하게 남아있는 한편 지혜, 이해, 학문과 지식이 더불어 기뻐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예언자를 통해서 우리의 회생물이나 불태워 바치는 제물, 또는 봉헌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분명히 밝혀 주었고, 다음과 같이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 숱한 희생물을 내게 바치는 것이냐? 숫양을 태워서 바치는 제물과 어린 양의 기름을 피워서 바치는 것은 이제 질렸다. 나는 수소나 숫염소의 피를 즐기지 않는다. 너희가 내 앞에 올 때, 누가 그런 희생물을 가지고 와서 바치라고 지시했느냐? 너희는 더 이상 내 성전에 발을 들여놓지 마라. 헛된 봉헌물을 더 이상 바치지 마라.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내게는 지긋지긋하다. 너희 새로운 달과 안식일과 예배 모임도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장엄한 집회마저 사악하다. 너희 새로운 달과 지정된 축일들을 내 영혼은 증오한다.”

하느님이 이러한 것들을 폐지한 것은, 이러한 필수 조건의 멍에가 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법이 사람들 자신의 정신적 봉헌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 주님이 “너희 조상이 이집트의 땅에서 벗어날 때 내가 불태워 바치는 제물을 언제 한번이라도 요구한 적이 있느냐? 오히려 나는, 너희 이웃을 거슬러서 마음속에 악심을 품지 말고, 헛된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었다”라고 다시금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자비로운 우리 아버지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제물 봉헌에 있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우리가 그분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을 찾고 또 발견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느님의 제물은 부서진 영혼이며,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은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구원에 속하는 일들을 더욱 열심히 탐구해야 하며, 원수가 우리 안에 들어와 영적 생명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은 저 사람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너희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기 위해 요즈음 하는 식으로는 단식을 하지 마라. 내가 선택한 것이 이러한 단식이란 말이냐?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자기 영혼을 괴롭히는 것이 단식이냐? 갈대처럼 고개 숙이고, 마대를 깔고, 그 밑에 재를 뿌리는 것이 단식이냐? 너희는 이런 것을 단식이라 부르고, 주님이 기꺼이 용납하는 날이라고 하느냐?”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선택한 단식은 사악함의 끈을 풀고, 무거운 짐을 없애고, 억압 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선택한 단식은, 네 빵을 배고픈 자에게 나누어 주고, 버림받은 가난한 자를 네 집에 데려다 대접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자를 만나면 너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면 네 빛이 아침 햇살처럼 퍼져 나가고, 네 건강이 빨리 회복될 것이며, 정의로움이 네 앞에서 걸어갈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보상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너는 주님께 부르짖어라. 그러면 주님이 대답해 줄 것이다. 네가 그때 소리쳐 부르면 주님은 ‘내가 여기 있다’라고 응답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멍에와 비방과 공연히 큰소리만 쳐대는 짓을 없애버린다면, 네 영혼을 배고픈 자에게 바친다면.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해 준다면 주님이 응답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은 이렇게 하신 말씀 안에서 우리를 위한 섭리와 사랑을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주님이 자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넘겨 준 백성은 성실(단순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어, 우리가 유대인의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

 

제4장

 

우리 주님은 자기 몸을 파괴에 넘겨주기로 단단히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죄의 용서, 즉 자기 피를 뿌림을 통하여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하기 위찬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에 관한 기록 가운데서 어떤 것은 유대인들에게, 또 어떤 것은 우리에게 속해 있습니다.

성서가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서 상처 받고, 우리 사악함을 위해서 매를 맞고, 자기 피로 우리를 치유했다. 어린 양처럼 도살 꾼에게 끌려가고, 양털 깎는 사람 앞의 양처럼 벙어리가 되어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지나간 것을 우리에게 선언해 주었을 뿐 아니라, 또한 앞으로 올 것에 관해서도 우리가 무지 속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해 주었으니,더욱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새들을 위해 둥우리가 부당하게 벌려진 것은 아니다.”라고 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진리의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암흑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비록 자신이 온 땅의 주님이고, 또한 하느님이 태초에 주님에게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게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혼을 위해 기꺼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분이 사람들 손에서 받는 줄 알면서 어떻게 수난을 당했는지 나는 여러분에게 보여 주겠습니다.

그분에게서 예언의 은총을 받은 예언자들이 미리 그분에 관해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없애고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분은 필요에 따라서 기꺼이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는데, 이것은 예전에 우리 조상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자기의 새로운 백성을 준비하고, 자신이 땅 위에 있는 동안 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보여 주며, 부활 후에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그 백성 가운데서 많은 기적과 징표를 실시하면서 설교를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자신의 참으로 풍성한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중에 자기에 관한 복음을 공표할 사도들을 선택할 때, 죄를 매우 많이 저지른 사람들을 골랐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도록 부르러 왔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그분이 육체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그분을 쳐다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분 손이 만들어 낸 물건이며 앞으로 사라질 태양만 사람들이 쳐다보아야 한다면, 태양 광선에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보는 일을 계속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 육체를 가지고 온 것은, 자기 예언자들을 박해해서 살해한 그 사람들의 사악함을 메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분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분 육체의 상처가 그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양치기를 내려치면 양떼가 흩어질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기 때문에 수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분에 관해서 “칼에서 내 목숨을 구해 주시오.” 또한 “당신의 공포로 내 살을 꿰뚫어 주시오.”라고 한 예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악한 짓을 하는 무리가 나를 거슬러 일어났다.” 또 “그 사람들이 내 손과 발을 꿰뚫었다.”라는 예언도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나는 등을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주고, 얼굴을 단단한 바위처럼 내놓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제5장

 

그분이 하느님의 계명을 다 지킨 다음에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누가 나와 겨루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를 대항해서 일어나라고 해라. 누가 나를 비난하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주님의 종 앞에 가까이 데리고 오라. 너희는 저주 받아라! 너희는 모두 헌 옷처럼 낡아 해지고, 모조리 좀에 쏠려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언자가 덧붙이기를 “그분은 걸림돌로 놓여졌다. 내가 시온의 중한 돌, 가장 좋은 모퉁이 돌, 영광스러운 돌을 머릿돌로 놓았는데, 결과는 무엇이냐? 그러니 그분 안에 희망을 거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의 희망이 돌 위에 있다는 말입니까? 천만에! 주님이 그분의 육체를 고통에 견디도록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분은 “나는 단단한 바위처럼 나를 내놓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언자는 추가하기를 “주님은 오늘을 위대하고 놀라운 날로 만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사항을 나는 여러분이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좀 더 쉽게 풀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나는 목숨마저 기꺼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예언자는 다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사악한 무리의 의견이 나를 둘러쌌다. 벌통에 벌이 몰려들 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 옷을 둘러싸고 제비를 뽑았다.”

우리 구세주가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 고통을 받게 되어 있었던 만큼 수난도 마찬가지로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예언자가 이스라엘을 거슬러서 “정의로운 자는 우리에게 불리하니까 함정에 빠뜨리자고 말하면서 그 사람들은 자기네에게 해로운 사악한 의견을 스스로 따랐기 때문에 그 영혼들은 저주를 받아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이와 비슷하게 그 사람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들어라. 즉 너희는 주님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서약한 좋은 땅으로 들어가라 그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니 차지하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이 말의 영성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십시오.

이 말은 마치 “너희에게 육체를 가지고 나타날 예수를 신뢰하라.”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당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흙에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자기 비밀을 이해할 정신을 준 우리 주님을 축복합시다.

예언자가 “주님의 어려운 말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지혜롭고 총명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어 우리를 새롭게 했다고 본 그분은, 우리를 다른 형태로 빚어서 영혼에 의해 그분이 직접 우리를 다시 만들어서 어린아이들의 영혼과 같은 영혼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을 닮도록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땅의 짐승과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을 지배하게 하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우리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빚어 낸 사람을 보고는 사람이 매우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번식하고 증가해서 온 땅을 뒤덮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자기 아들에게 “사람이 먼 훗날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우리에게 올지 앞으로 네게 보여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보라! 맨 꼴찌를 맨 첫째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관하여 예언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지배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빚어지게 되었는지 알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다른 예언자를 통하여 “보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이 사람들, 즉 주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돌의 마음을 꺼내 버리고 그 자리에 육체의 마음을 집어넣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분은 육체를 가지고 분명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 가운데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마음의 집은 주님에게 바쳐진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이 “나의 주 하느님 앞에서 내가 어디에 나타나고 또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인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는 내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서 당신에게 고백하고 성인들의 교회에서 당신에게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저 좋은 땅으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면 젖과 꿀은 무슨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아이가 우선은 젖으로, 그 다음에는 꿀로 영양분을 받아 자라듯이, 우리도 그분의 약속과 말씀에 대한 신앙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 있고, 땅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분은 위와 같이 “번식하고 증가하여 물고기 등을 지배하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가 야생 동물이나 물고기나 공중의 새를 지배할 수가 있습니까?

지배한다는 것은 힘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여러분은 알고 있으니, 인간은 자기가 지배하는 대상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그런 처지에 있지 못한 만큼, 그분은 언제 우리가 지배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우리가 완전해지고 주님의 계약의 상속자가 될 때라고 말해 줍니다.

 

제6장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여, 좋으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미 드러내어 우리가 누구에게 감사와 찬미를 바쳐야 할지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을 깨달으십시오.

하느님의 아들, 즉 모든 것의 주님이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올 그분의 수난은 그 채찍질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아들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수난을 당할 수 가 없었다고 믿읍시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리자 사람들은 그분에게 식초와 쓸개를 주었습니다.

성전의 사제들이 이것도 예견했으니 잘 들어 두십시오.

지정된 단식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죽음을 죽어야만 한다고 기록된 계명과 같이 주님이 선언했습니다.

그분 자신도 언젠가는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단에 바쳐진 이사악의 모습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를 통해서 그분이 “자기네 모든 죄를 위하여 단식의 날에 바친 염소를 사람들이 먹도록 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형제 여러분! 잘 들어 두십시오. 모든 사제와 그 사람들은 식초로 씻지 않은 내장을 먹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알기에는 “새로운 백성의 죄를 위해서 이제부터 내 살을 바칠 것이나, 너희는 쓸개를 섞은 식초를 내게 마실 것으로 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단식하고, 마대와 재를 쓰고 탄식하는 동안 너희는 그저 먹기만 해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 사람들을 위해 수난당할 것이라고 예견했으니 그분이 어떻게 그것을 드러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분은 “튼튼하고 비슷한 염소 두 마리를 가져 다가 바쳐라. 그리고 대사제가 한 마리를 불태워 제물로 삼도록 하라. 그러면 나머지 한 마리를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만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또 그분은 “그 염소는 저주 받은 것으로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이것이 예수의 모습으로 얼마나 정확히 나타났는지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

“모인 사람이 모두 그 염소를 저주하고 때리고, 머리에 진홍색 양털을 씌워 황야로 데리고 나가도록 하라.”

그 염소에게 그렇게 한 뒤, 염소를 끌어가도록 지명된 사람이 황야로 끌고 가서는 진홍색 양털을 치우고 그 대신 가시덤불을 씌웠습니다.

우리는 가시덤불의 새 순을 들에서 발견하면 먹고는 하는데, 그것은 그 가시나무의 열매가 아주 맛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식을 치르는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리는 제대 위에 바쳐지고, 또 한 마리는 저주 받았다는 점을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주 받은 염소에게 왜 관을 씌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진홍색 옷으로 몸을 두른 그리스도를 그날 볼 것이며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고, 경멸하고, 창으로 찌르고, 조롱하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바로 이 시림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그분이 땅 위에 있던 모습 그대로 올 것이므로, 유대인들도 그때까지 튼튼하고 비슷한 염소 두 마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구세주가 앞으로 하늘의 구름 속에서 다시 올 때, 염소들이 꼭 닮은 데 대해 놀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위해 수난당할 예수의 모습을 여기서 또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양털을 가시덤불 사이에 놓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도 역시 교회에 보내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가시가 너무 예리할 뿐 아니라 얻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진홍색 양털을 치우는 사람도 많은 곤란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보고 또 내 왕국에 들어 올 사람들은 많은 고통과 시련을 거쳐야만 나에게 도달할 수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제7장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모습이었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죄를 완전히 씻으려는 성인 남녀는 어린 암소를 바치고, 그것을 죽인 뒤 모두 태워 버리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재를 모아서 그릇에 담고, 진홍색 양털과 히솝(우슬초)을 막대기에 묶어서는 모인 사람에게 일일이 재를 뿌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죄가, 깨끗이 씻어졌던 것입니다.

이 어린 암소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암소를 바치는 사악한 사람들은 예수를 죽음으로 끌고 간 죄인들인데, 죽인 뒤에는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해 어린 암소를 다루는 영광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를 뿌려 주는 일을 맡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마음의 정화를 설교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교 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12명이었는데, 이 12명은 이스라엘 12부족이 있기 때문에 각 부족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재를 뿌리던 일이 3젊은이에게 맡겨졌습니까?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 3사람을 의미합니다.

막대기에 양털은 왜 매달았습니까? 이것은 예수의 왕국이 십자가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양털과 히솝을 함께 묶었습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사악하고 더러운 시기가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구원될 것이며, 어떤 못된 체질 때문에 육체적으로 병이 든 사람이 히솝으로 치유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명백히 드러나는 반면, 유대인들에게는 숨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8장

 

성서는 우리 귀에 관하여, 하느님이 우리 마음과 함께 귀도 할례 했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님은 “귀로 들음으로써 이 사람들이 나에게 복종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나의 행적을 듣고 이해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너희 마음을 할례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오오, 이스라엘이여, 들어라! 너희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영원히 살려고 하는 사람은 내 아들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라고 예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오오, 하늘이여, 들어라! 오오,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라고 말했고, “백성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라고 했으며, “오오, 자녀들아, 들어라! 황야에서 고함치는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귀를 할례 했으며 자기 말을 듣고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저 할례는 이렇게 해서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할례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악한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분의 계명을 위반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 관하여 하느님은 “주님이신 여러분의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뿌리지 말고, 너희 자신을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에게 할례 하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러분의 주님에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또한 그분은 “너희 딱딱해진 마음을 할례 하라. 너희 목을 뻣뻣하게 지탱하지 마라.”라고 했고, 또한 주님은 “보라! 모든 민족이 할례를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민족은 물론 음경 끝의 살갗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을 할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유대인들이 징표로서 할례를 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리아인과 아라비아인과 우상을 섬기는 사제들 모두가 할례를 받았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약속에 속한단 말입니까?

심지어는 이집트인들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여, 처음으로 할례를 시작한 아브라함이 성령 안에서 예수를 고대하면서, 세 글자의 신리를 받아 할례를 했다는 점을 더욱 철저히 이해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자기 가문의 남자 318명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밝혀진 신비는 무엇입니까?

먼저 18, 그러고 나서 100이라는 숫자를 잘 보십시오. 10과 8이라는 단어가 숫자를 나타내면 I와 H가 되는데 이것은 예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은총을 받게 되었으므로 성서에는 300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는데, 숫자를 나타내는 그 문자는 T, 즉 십자가의 모습이 됩니다.

그러므로 두 글자로는 예수를, 세 번째 글자로는 십자가를 의미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기 가르침을 무상으로 선물해 준 그분은 내가 이것보다 더 확실한 진리를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친 적이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진리를 배울 자격이 충분하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제9장

 

그러면 모세가 “너희는 돼지나 독수리나 매나 까마귀의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또한 비늘이 없는 물고기도 먹지 말라.”라고 말했습니까?

그 해답은, 모세가 그 다음에 나오는 세 가지 가르침을 영적 의미에서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모세는 신명기에서 “나는 이 백성에게 나의 지시 사항들을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계명이 아니라 모세가 영적 의미로 유대인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모세가 유대인에게 먹지 말라고 금지한 암퇘지의 의미를 풀어 봅시다.

이것은 돼지와 같은 사람하고는 어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돼지와 같은 사람은 편안히 살 때 하느님을 망각하고, 무엇인가 결핍에 몰리게 되면 주님을 알아봅니다.

암퇘지는 배가 부르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가 고프면 꿀꿀거리다가 먹이를 주면 조용해지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나 매나 솔개나 까마귀의 고기도 먹지 말라는 것은, 이러한 짐승과 같은 사람하고는 어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부류의 인간은 노동과 땀으로 자기 식량을 얻으려 하지 않고, 남의 식량을 불의하게 빼앗아가기만 하고, 남에게 올가미를 걸려고 항상 노리면서도 동시에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행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들만 자기 힘으로 먹이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빈둥빈둥 놀면서, 다른 사람들이 애써 마련한 식량을 먹어 치울 방법만 생각하며, 자기네 사악한 짓으로 파괴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또한 장어, 문어, 오징어 따위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사람과 수작을 나누어 닳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사악하고 죽음으로 단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물고기들은 저주 받아서 진흙탕 속에 처박히고 다른 물고기처럼 헤엄치지도 않으며, 깊은 물 맨 밑바닥의 더러운 곳이나 휘젓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또한 토끼 고기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던지는 것입니까?

이 말은 간음을 하지 말고, 또 간음하는 자를 닮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토끼는 매년 새끼를 많이 배어 급속히 증가하고, 살면 살수록 더욱더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하이에나를 먹지 말라고도 모세는 말했습니다.

이 말은 간음하지 말고 남을 타락시키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또 그런 사람을 닮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 짐승은 매년 성을 바꾸어 어떤 때에는 수컷이 되고 어떤 때에는 암컷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모세가 족제비를 미워한 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의 불결함 때문에 입으로 사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닳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한 입으로 사악한 짓을 하는 불순한 여자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족제비가 입으로 새끼를 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기(육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모세는 이러한 율법의 영적 의미 안에서 3가지 중요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유대인은 오로지 고기(육류)에 관한 것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다비드가 이 3가지 지시를 올바로 깨닫고는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깊은 물 밑바닥의 암흑 속에 있는 물고기들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면 축복 받은 사람이다. 암퇘지처럼 주님을 두려워하는 척하면서도 죄를 저지르는 죄인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축복을 받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는 새들처럼 남을 경멸하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 사람도 축복을 받는다.”

고기(육류)에 관한 율법을 진정한 지식에 따라서 완전하게 해석하면 위에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너희는 굽이 갈라진 짐승과, 새김질하는 짐승의 고기는 모두 먹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먹이를 취하는 이러한 짐승이 자기를 길러 주는 그분을 알고, 그분 안에서 쉬고, 그분 안에서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계명을 존중하면서 한 모세의 그 말은 정말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마음 깊이 받아들인 말씀의 계명을 곰곰 명상하는 사람들, 주님의 정의로운 판단을 선언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굳세게 매달려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합니까?

요약하면, 명상은 즐거운 일이며, 따라서 주님의 말씀 안에 자기 자신을 훈련시킨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사람들이 굽이 갈라진 짐승의 고기를 먹어도 됩니까?

정의로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저 세상에 기대를 걸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모세가 이러한 사항을 얼마나 멋지게 지시했는지 깨달아 아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내용을 알고 또 이해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을 올바로 깨닫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기 위하여 귀와 마음을 할례 했습니다.

 

제10장

 

그러면 이제 물과 십자가에 관해서 주님이 미리 드러내려고 의도한 적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먼저 물에 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용서해 주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죄의 용서가 없는 다른 것을 만들도록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오오, 하늘이여. 놀라움에 잠겨라. 땅도 또한 이 일로 부들부들 떨어라. 이 백성이 엄청난 짓, 사악한 짓을 두 가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물의 샘인 나를 떠났고, 물이 고일 수도 없는 엉터리 저수지들을 스스로 만들었다. 나의 거룩한 산 시온이 버림 받은 황야라고 하느냐? 둥지를 빼앗긴 어린 새처럼 너희는 될 것이다.”

또한 예언자는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산을 평평하게 만들고, 청동 성문을 부수고, 쇠 빗장을 꺾어 버리고, 네게 캄캄하게 숨겨져 보이지 않는 보물을 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주 하느님이라는 점을 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분은 강한 바위의 높은 굴에 거주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예언자의 다음 말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물은 충실하다. 너희는 영광의 왕을 보고, 너희 영혼은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예언자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냇물 가에 심겨진 나무, 철마다 열매를 내는 나무와 같이 될 것이다. 그 일은 시드는 일이 없고,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번영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악한 무지는 경우가 다르고, 바람 따라 땅 위에서 흩어져 사라지는 먼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견뎌 내지 못하고, 죄인의 무리는 정의로운 라의 판단을 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정의로운 자의 길을 알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의 길은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예언자가 십자가와 물을 어떻게 함께 연결시키는지 생각해 봅시다.

저 예언자는 “십자가를 믿고 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축복 받는다. 때가 되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뒤 “그때에는 내가 보상을 줄 것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 관해서는 그 사람들의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여러분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신앙과 자선을 통해서 많은 사람의 개종과 희망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예언자는 “온 땅이 야곱의 땅을 칭찬했고, 그래서 그분의 정신의 그릇(주 그리스도의 몸)을 확대시켰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구절은 무엇입니까? “오른쪽에 흐르는 강이 있고 강가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자랐다. 그 열매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죄와 더러움에 가득 찬 우리가 물에 들어가지만 나을 때는 열매를 가지고, 성령에 따라 우리 마음에 두려움과 예수 안의 희망을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시는 분의 말을 듣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제11장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다른 예언자를 통해 십자가에 관한 말을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 일들이 이루어질 것인가? 주님은 '넘어진 나무가 일어서고 그 나무에서 피가 흐를 때이다'라고 대답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십자가와 또 거기 매달릴 분에 관한 말을 다시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모세를 통해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민족과 싸워 패배했을 때,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자기네 죄 때문에 어떻게 죽음에 넘겨졌는지 하느님이 깨닫게 만들려고 할 때 그렇습니다.

성령은 십자가의 징표와 그 위에서 수난당할 분을 동시에 드러낼 생각을 모세의 마음에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분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정복당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조금 높은 땅 한가운데에 갑옷이며 투구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게 하고는 그 위에 올라가 서서 두 팔을 벌렸고, 이스라엘은 다시금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두 팔을 내리자마자 이스라엘 민족이 또다시 살육 당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분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예언자의 입을 통해 그분은 “나는 순종하지 않는 백성, 내 올바른 길을 거슬러서 말하는 백성을 향해 하루 종일 두 팔을 내뻗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예수의 모습, 즉 그분도 죽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죽은 자라고 여기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살해된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모든 종류의 뱀을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브가 뱀에 의해서 최초로 죄를 짓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자기네 죄 때문에 죽음의 고통에 넘겨질 것임을 똑바로 깨닫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휘하던 모세는 “너희는 조각된 상이나 주조한 상을 만들어서 너희 하느님으로 섬겨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주 예수의 모습으로 보여 주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이 세우고는 소리쳐 백성들을 모두 불러 모았던 것입니다.

모여든 백성들은 모세에게 대신 속죄하고 기도하여 자기네가 치유되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뱀에게 물리면, 막대기에 높이 매달린 이 뱀 앞으로 데려와라. 그리고 그분을 믿게 하라. 비록 그 사람이 죽었다 해도 그분이 생명을 줄 수 있으므로 즉시 구해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백성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여기서도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며 또한 그분 안에, 그분에게 모든 것이 있다는 점을 잘 깨달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유일한 예언자인 모세가 눈의 아들 예수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한 말을 유의하십시오.

아버지는 눈의 아들 예수를 통해서 자기 아들 예수에 관해 모든 것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눈의 아들을 떠나보낼 때 모세가 여호수아(헬라어로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면서 “책을 들고 가서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아말렉 가문 모두를 뿌리째 잘라 낼 것이다.’라고 주님이 한 말씀을 적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도 또한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육체와 구체적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다비드의 아들이었다고 앞으로 전해질 것이고, 또 다비드는 사악한 자의 잘못을 잘 알고 두려워하여 “내 주님에게 ‘네 원수를 발판으로 삼아 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고 말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같은 식으로 “주님이 나의 주님 그리스도에게, 나는 모든 민족을 그분 앞에 굴복시키려고 그 오른팔을 잡아주었고, 왕들의 세력을 꺾어 버리겠다고 말씀했다.”라고 했습니다.

다비드와 이사야가 어떻게 그분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는지 잘 보십시오.

 

제12장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백성이 또는 유대인이 상속자인지, 약속이 우리 또는 유대인과 함에 있는지 세밀히 검토해 봅시다.

우선은 백성에 관하여 성서가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입시다.

“이삭은 임신을 못하는 아내 리브가를 위해 기도했고, 그래서 리브가는 임신을 했다. 주님은 리브가에게 ‘네 뱃속에 두 민족이 들어 있고,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을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을 지배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이 누구고 리브가는 누군지, 그리고 다른 민족보다 더 강성해질 민족이 무엇인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예언에서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더욱 분명히 말했습니다.

“야곱이 ‘보라! 주님은 내가 당신 얼굴을 보지 못하게 속이지는 않았다. 축복해 주려고 하니 네 아들들을 데려오라.’고 요셉에게 말했다. 그러자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기 아버지 앞에 데려갔는데, 아버지가 형 므낫세에게 축복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장남을 야곱 오른편에 세웠다. 그러나 야곱은 앞으로 나을 백성과 모습을 성령으로 예견했다.”

성서에는 어떻게 기록 되었습니까?

“야곱이 두 손을 교차시켜 오른손을 차남이며 동생인 에브라임 위에 얹고 축복했다. 그러자 요셉이 야곱에게 ‘므낫세가 장남이니까 그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에게 ‘얘야, 알고 있다. 암, 알고말고. 그렇지만 형이 물론 축복은 받겠지만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여러분은 누가 최초의 백성으로서 계약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분이 지적하는지 잘 압니다.

그러므로 또한 하느님이 이 점에 관해 아브라함에게도 주의 깊게 한 말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완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또 그 정의로움에 관해 논쟁이 벌어졌을 때 성서가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보라! 할례가 없이 주님을 믿는 너를 내가 여러 백성의 아버지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하느님은 우리 선조에게 맹세한 계약, 이 백성에게 주겠다고 한 것을 이루었는지 살펴봅시다.

물론 그분은 창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죄 때문에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주님이 백성과 맺은 계약을 받기 위해서 40일 밤낮을 시나이 산에서 계속 단식했다. 주님의 손가락이 성령 안에서 쓴 석판 2개를 받았다. 그 석판들을 받아 들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달하려고 산에서 내려왔다. 주님이 모세에게 ‘모세야, 모세야! 네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백성이 사악한 짓을 하고 있으니 빨리 내려가 보아라.’고 말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 석판들을 받았는지 알아봅시다.

모세는 주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석판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직접 석판들을 주어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당함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상속 받을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저 백성 유대인들이 자기네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반면, 우리는 그분이 직접 자기 상속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주 예수의 계약을 받게 되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언자는 또 “너를 구원한 주 하느님이 ‘보라,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워 모든 땅 끝의 구원자가 되게 했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준비된 그분은 우리 가운데 나타나서, 이미 죽음에 점령당하고 과오덩어리 길에 넘어진 우리 마음을 암흑에서 구하고, 자기 말로써 우리와 계약을 맺으려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분에게 우리를 암흑에서 구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언자는 “너의 주 하느님인 내가 너를 정의로움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네 손을 잡아 주고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를 백성의 계약, 이방인들의 빛으로 삼겠다. 이것은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죄수를 감옥에서 풀어 주며, 암흑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감옥에서 끌어내도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서부터 구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예언자는 또한 “주님이 내게 기름을 발라주었으므로 주님의 성령이 내 위에 있다. 그분이 나를 파견하여 서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을 치유하고, 포로들을 석방시키며, 장님을 눈뜨게 하고, 주님의 정의의 해와 권리 회복의 날을 선포하고, 비탄에 잠긴 모든 이를 위로하게 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제13장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 십계명 중 “주님의 안식일을 깨끗한 손과 깨끗한 마음으로 거룩하게 지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그분은 “너희 자녀들이 내 안식일을 지킨다면, 나도 그 자녀들을 잘 돌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천지 창조 당시에도 이미 그분은 안식일에 관해서 언급했습니다.

“하느님은 6일 동안 자기 손으로 일하고는, 7일째 되는 날 끝마치어 이날은 일을 쉬고 거룩한 날로 삼았다.”

그분이 6일 만에 일을 마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의 자녀 여러분은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은 주 하느님이 6천년 만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끝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 자신이 “보라! 이날은 1천년 같이 될 것이다.”라고 증언한 바와 같이 그분에게는 하루가 1천 년이기 때문입니다.

6일 만에, 즉 6천년 만에 모든 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면 7일째 되는 날 쉬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그분의 아들이 와서 사악한 자의 계절을 폐지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를 심판하며, 해와 달과 별을 변하게 하는 날이 되면 7일째 되는 날에 그분이 영광스럽게 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끝으로 “깨끗한 손과 깨끗한 마음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라고 추가했습니다.

모든 일에 깨끗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도 하느님이 거룩하게 한 그날을 거룩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크게 속고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정의로운 약속을 우리가 받았고, 그래서 사악함이 더 이상 깃들지 못하고 모든 것이 주님의 손으로 새롭게 되어 우리가 먼저 스스로 거룩한 사람이 되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분은 축복 된 휴식으로 그날을 정말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끝으로 그분이 저 사람들에게 “너희 새로운 달과 안식일을 참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너희가 지금 지키는 안식일은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만든 원래의 안식일만 받아들이겠다. 모든 일에서 쉰 다음 나는 8일째 되는 날, 즉 다른 세상의 시작을 시작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8일째 되는 날, 즉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났고,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인 뒤 하늘로 올라간 그날을 기꺼이 지키는 것입니다.

성전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해 줄 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가련한 사람들이 스스로 속아서, 자기네를 만든 하느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마치 하느님의 집이나 되는 듯 믿는데, 이 점을 설명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을 성전 안에 거룩하게 모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성전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 하늘을 자로 재고, 땅을 손으로 잴 수가 있는가? 나 외에 누가 그런 능력이 있는가? 하늘이 나의 옥좌이고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지었다는 집이 도대체 뭐냐? 아니면, 나의 안식처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들의 희망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잘 알아 두십시오.

그분은 또한 “보라! 이 성전을 파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마저 이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전쟁을 통해서 적군이 성전을 파괴했고, 적군의 종들이 성전을 다시 세웠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성전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버림받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성서에 “주님이 자기 목장의 양 떼를 넘겨주고, 우리와 탑이 파괴되도록 하는 일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과연 있는지 질문해 봅시다. 물론 있습니다. 그분 자신이 만들고 완전하게 하겠다고 한 그 성전이 있는 장소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주간이 끝나자마자 주님의 성전이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스럽게 세워질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전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어떻게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단 말입니까? 이제 그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기 이전에는 우리 마음의 집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전과 같이 부패하고 연약했습니다.

우상숭배로 가득 찬 집, 악마들의 집, 거기서 무슨 짓을 하든지 모두 하느님을 거슬리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주님의 성전이 어떻게 지어질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 건축 수단이 무엇인지 배우십시오.

죄를 용서 받고 또 주님의 이름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워졌고, 창조 당시처럼 새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진정으로 우리의 집, 즉 우리 안에 거주하십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 안에 그분이 살고 있습니까?

그분의 신앙의 말씀과 약속의 부르심, 그분의 올바른 판단의 지혜와 가르침의 계명이 우리 안에 살아 있고, 그분 자신이 우리 안에서 예언하고, 그분 자신이 우리 안에 거주하고, 죽음의 사슬에 묶여 있던 우리에게 우리 성전의 문, 즉 지혜의 입을 열어 주고, 우리에게 참회를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우리가 부패할 수 없는 성전이 되도록 해 줍니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거주하고 자기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분에게 기대를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입에서 나오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도, 듣기를 원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매우 놀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해 지어서 바치는 영신적인 성전입니다.

 

제14장

 

지금까지 나는 여러분의 구원에 유익한 일과 필요한 사항을 최대한으로 알아듣기 쉽도록 빠짐없이, 충분하게 밝혔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일과 미래의 일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제 다른 지식과 가르침으로 넘어갑시다. 가르침과 세력에는 두 길, 즉 빛의 길과 암흑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길은 그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빛의 길의 지도자들로 지정되었고, 암흑의 길에는 사탄의 천사들이 지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빛은 영원한 주님이고, 암흑은 불의의 시대의 왕입니다.

그러면 빛의 길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지정된 자리에 도달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행동(선행)으로 거기 빨리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살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지식입니다.

너를 만드신 그분을 사랑하라.

너를 죽음에서 구원한 그분에게 영광을 드려라.

마음이 단순하고 정신이 풍부하도록 하라.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 마라.

하느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든 하지 마라.

모든 위선을 미워하라.

주님의 계명을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마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

명예를 탐내지 마라.

이웃을 해치려는 나쁜 생각은 아예 품지 마라.

지나친 자만심은 버려라.

간음이나 간통을 하지 마라.

남색에 빠져서도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절대로 더러운 목적으로 사용하지 마라.

남의 잘못을 꾸짖을 때 결코 사람 차별을 하지 마라.

온화하고 조용한 사람이 되라.

들은 말에 대하여 경외심을 품으라.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마라.

근거가 있든 얼든 의심을 하지 마라.

주님의 이름을 쓸데없이 들먹거리지 마라.

이웃을 네 영혼보다 더 사랑하라.

태아를 죽이지 말고 출산해라.

출생한 뒤에도 아이를 죽이지 마라.

너 아들과 딸에게서 손을 떼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쳐라.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마라.

또한 남을 착취하지도 마라.

오만한 사람들에게 맞장구치지도 마라.

오히려 정의로운 사람과 서민들과 어울려라.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꺼이 받아들여라.

겉 다르고 속 다른 생각이나 말을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런 말은 죽음의 덫이기 때문이다.

주님에게 복종하라.

그리고 지상의 주인(지배자)들을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보고 존경과 두려움으로 섬겨라.

하느님을 믿는 네 종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가혹하게 하지 마라.

너와 종들을 모두 다스리는 하느님을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사람을 차별해서 부르지 않고, 성령이 준비한 사람은 누구나 부르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다.

네가 가진 것은 모두 이웃과 나누어 써라.

무엇이든지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마라.

영원불멸한 것에 네가 참여했다면, 썩어 버릴 것을 같이 나누어 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쓸데없이 남 앞에 나서서 떠들어대지 마라. 입은 죽음의 덫이기 때문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네 영혼을 돌보아라.

무엇이든지 얻으려고 손을 내밀지 말고, 내주어야만 할 때에는 움켜쥐지 마라.

네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라.

앞으로 닥칠 심판을 밤낮으로 기억하라.

정의로운 사람들을 날마다 찾아 다녀라.

남을 어떻게 말로 충고할지 생각하고 또 실천하라.

그리고 남의 영혼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라.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내 손으로 일을 하라. 그러면 네 죄가 용서 될 것이다.

무엇을 나누어 줄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일단 주고 난 뒤에는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지 마라.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주어라. 그러면 네 선물에 대해 훌륭한 보상을 해주는 분을 알게 될 것이다.

받은 것을 잘 간직하라. 거기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도 마라.

사악한 무리를 항상 피하라.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라.

분열을 절대 일으키지 말고, 대립하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고 그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죄를 고백하라.

그리고 양심에 꺼리는 점이 있으면 기도에 오지 마라.

이것이 빛의 길입니다.

 

제15장

 

암흑의 길은 비틀리고 저주에 가득 찬 것입니다.

이 길은 벌을 받아 영원한 죽음의 길이며,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망치는 것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망치는 것은 우상 숭배, 과신, 세력의 자랑, 위선, 이중적 생각, 간통, 살인, 약탈, 자만, 위반, 속임수, 악의, 교만, 마술, 탐욕, 그리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짓입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의 박해자, 진리의 증오자, 거짓말의 애호가가 되며, 정의로움의 보상을 알지 못하고, 선한 것에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부와 고아에게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 주지 않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악한 짓만 노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친절과 인내와 거리가 멀고, 허영을 사랑하고, 대가를 추구하며, 가난한 이들을 동정하지 않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과 억압 받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도 수고하지 않습니다.

악을 떠들어대기만 하고, 자기네를 만드신 그분을 알지 못하며,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하느님이 창조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며,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의의 재판관이 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주님의 올바른 계명을 세워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 걸어가야만 합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주님의 왕국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쪽 길을 택하는 사람은 그 행적과 더불어 멸망할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부활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덕망이 높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니,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면 내가 좋은 뜻으로 여러분에게 하는 충고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행을 베풀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사악한 무리와 함께 모든 사물이 파괴되어 버릴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까이 계시며, 그분은 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거듭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선의의 계명을 주고받으십시오.

서로 충실한 충고자가 계속 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서 위선을 말끔히 없애 버리십시오.

온 세상의 주님이신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지혜와 지식과 좋은 의견을 주고, 인내 안에 그분의 심판을 이해하도록 해 주기를 빕니다.

하느님에 관해서 배우고, 주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을 탐구하고 또 실천하여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선한 것을 기억한다면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러한 가르침을 잘 생각해 보고, 나의 소망과 여러분에 대한 관찰이 좋은 결실을 내도록 하십시오.

나의 부탁은 여러분 스스로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아름다운 육체의 그릇 안에 있는 동안 이러한 가르침을 모두 받았지만, 끊임없이 이 가르침을 추구하고 모든 계명을 남김없이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들은 타당하고 또 지킬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더욱 부지런히 글을 적어 보내며, 여러분을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사랑과 평화 안에 안녕히 계십시오. 영광과 모든 은총의 주님이 여러분의 영혼과 함께. 아멘,

 

- 사도 바울의 여행 동반자 사도 바나바의 편지 끝이다. -

출처 : Jesus Nation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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