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대환난인가 칠년환난 전 휴거인가? _오스왈드 스미스

by 갈렙 posted Feb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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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대환난인가 칠년환난 전 휴거인가?   


                  오스왈드 스미스(전세계가정문서선교회 회장)

 

  왜 주 예수님께서는 마태 24장에서 소위 환난전 비밀 휴거를 숨기셨는가? 교회가 이와 관련하여 여러 세기 동안 침묵을 지킨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성구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가짜 안전을 가지고 교회를 위로해 왔는가? 교회가 역사적인  대 환난을 겪을 것이라고 믿는 탁월한 교회 지도자들이 있는가?

 

  나의 첫 번째 책인 예언 1(Prophecy I)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교회는 대 환난을 거쳐야할 것인가 아니면 칠년환난전 휴거를 할 것인가?” 그 대답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나는 항상 휴거가 묵시를 7년 앞설 것이며 따라서 교회는 환난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러나 그에 대해 독단적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반대를 나에게 계시하신다면 나는 그 계시를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나는 새로운 빛에 대해 닫힌 마음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지 않았으며 나의 마음에 편견이 있지도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이제, 오랜 시간 동안의 연구와 기도 후에 나는 역사적인 환난 전에는 휴거가 없을 것이며, 교회는 의문이 여지없이 적그리스도를 대면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시무시한 기간의 시작이 아니라 종결에 오실 것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다른 이론을 믿은 것은 스코필드 참조 성경 및 예언 회의 및 성경 유파(Scofield Reference Bible and Prophetic Conferences and Bible Schools)의 블랙스톤(W. E. Blackstone)의 책 “예수께서 오고 계시다(Jesus is Coming)”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면서 성경에는 역사적 환란전 휴거 이론을 지지하는 단 하나의 성경 구절도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일치된 가르침은 항상 후 환난 부활: 즉 모든 곳에서 휴거 후 환난이 아니라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첫 번째 눈이 열리다


  이 중요한 진리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은 1925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 나는 온타리오(Ontario)의 스토니 레이크(Stoney Lake)의 오두막집에 며칠 묵고 있었다. 프랭크 에드먼드(Frank Edmonds)라는 이웃 사람이 그러한 제안을 했을 뿐이다. 나는 당장 그 제안을 반대했다. “왜”냐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성경은 그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전 천년기 환난 전 휴거 가르침은 분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틀렸음을 조용히 확인하면서 마지막 나팔에 관한 진리를 강조했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비웃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문제는 결론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게 되었다.

  20대 초 어느 날 나는 예언에 관해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움 없이 사람들에게 다니엘서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가 13장, 누가 21장, 마태 24장과 25장에 관해서 설교했다. 그런데 보라, 마태 24장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 번 설교에서 마태 24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알렸다. 수백 명이 모였었다. 나는 당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나는 24장의 여기저기에서 한 성구를 취하여 모인 사람들을 겨우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음 모임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설교해야 한단 말인가?  

 

  마태 24장에는 환난전 휴거가 없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재림은 틀림없이 “역사적인 환난 후에 곧” 있을 것이며 (29절), 만약 휴거가 칠년 환난 “전”이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적어도 그에 관한 암시를 주셨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시대의 끝 시간을 말씀하고 계셨다. 교회가 피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면서 환난을 그렇게 자세하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그분은 의도적으로 그분의 추종자들이 환난을 겪을 것을 믿도록 청중을 인도하셨다. 따라서 나는 흔들렸으며 나의 과거의 입장을 정직하게 변호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그 사람들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내가 나의 이전의 입장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며 후 환난 휴거의 증거를 봤다고 알릴 수가 있었다. 마태 24장과 25장을 읽으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여러 가지 일들, 즉 “이 모든 일들”(33절)이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일어날 것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복음의 전파에 관한 예언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다. 마가 13:10을 보라. 그리고 “먼저”라는 단어의 의미에 유의하라. 이처럼 하나님의 미래의 일정은 방치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을 “언제든지 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켜보아야 한다. 예언 하나하나가 성취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분이 나타나시는 것을 항상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과거 어떤 때보다 더욱 유의해 보아야 하며,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예언된 일들이 얼마나 빨리 일어나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것인지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언제든지" 이론


  그리고 다음 단계가 되었다. 당시 중국 내륙 선교의 국내 감독자였던 프로스트 박사(Henry W. Frost)의 책 한 권이 입수되었다. 제목은 “마태 24장과 계시록”으로서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에 상당히 열중했다. 일부는 두 번이나 읽었다. 그 책은 상징적 천년기 휴거를 단호하게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맥콘키(James H. McConkey)의 책 “계시록”과 또 한 권의 책, 아마 가장 최상일 수 있는 새클턴(Edmund Shackleton)(영국)의 “교회는 큰 환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책도 입수했다.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나는 환난 전에는 휴거가 없을 것이며, 가장 확실하게 기다려야 하는 그 끔찍한 시련을 대비하는 대신에 교회에 도피를 약속한 것으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의 “언제든지” 이론은 지지될 수 없었다. 사실, 1890년경에 쓰여 진 후자의 책의 최초의 언급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놀라게 했으며, 그 중요성을 알고는 상당히 당혹하게 되었다. 요약해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약 60년 전까지는 환란 전 천년기 그리스도의 오심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한 마음이었다. 그때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단계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이 땅으로 두 번 오시지만, 첫 번째는 공중까지 오신다는 새로운 견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첫 번째 강림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데려가시려는 목적이며, 그 일은 적그리스도 치하의 큰 환난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그들은 “그분의 성도들을 위한 오심” 혹은 “비밀 휴거”라고 한다. 두 번째 오심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셔서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키는 때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그들은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오심”이라고 한다.

최종 권위인 말씀의 증언과는 별도로 이 가르침이 의문시되는 이유들이 있다. 그 가르침은 겨우 6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만약 성경적이라면 그들의 글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보존된 여러 충실한 성경 연구생들의 조사를 피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만약 사도들이 그렇게 가르쳤다면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 우리는 이 가르침에 대한 어떤 언급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쓴 사람들은 교회가 적그리스도 하의 환난을 피하거나, “큰 환난 후에” 영광을 현시하면서 나타나는 마태 24장에서 언급한 오심 이외의 어떤 “오심”이 있다는 이론에 대한 지식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러한 필자들이 적그리스도와 큰 환난이라는 주제에 크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다니엘 7장을 언급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기록했다: “이 구절을 심지어 졸면서 읽는 사람도 적그리스도의 왕국은 교회를 격렬하게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베드로의 죽음과 그가 죽은 후에 있게 될 부패와 배교에 대한 그의 예언, 바울의 죽음, 그리고 휴거 이전에 있게 될 여러 가지 다른 일들, 특히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마가 13:10과 마태 24:10)을 기억하자 나의 “언제든지” 이론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스크루비(John B. Scruby)의 “큰 환난-교회에 대한 최대의 시험”이라는 가장 확신을 주고 전혀 반박할 수 없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 책은 역사적인 환난이 휴거(부활)에 앞설 것이라는 것에 관한 모든 세부 점을 다루면서 확실하게 입증한다. 

 

  최근에 나는 베이커(H. A. Baker)의 “환난에서 영광으로”라는 괄목할 만한 책을 입수했다. 그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18세기 동안 환난에서 영광으로라는 근본적인 원리가 교회의 진정으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의 보편적인 믿음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새로운 전 환난 휴거 가르침이 예수회 제자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교회에서 한 여인에 의한 직통 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포되었으며, 그 후 1800년 동안의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되게 역시 예수회 제자인 다비(John Nelson Darby)(와 스코필드 참조 성경)에 의해서 채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어빙계의 여인으로 시작해서 1830년에 다비에 의해 전파된 이 새로운 ‘영감을 받은’ 가르침은 우리에게 전달되어서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뮬러(George Muller)는 이를 반대하였으며, 뉴턴(Benjamin Wills Newton)도 그러하고, 트레겔레스 (S. P. Tregelles) 박사와 다른 교회 성원들도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의 지도적인 성경 선생들 중 다수가 원래의 역사적인 대환난 신앙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나는 휴거가 관련되는 한 부활과 관련된 휴거를 제외하고는 시간적 요소가 전혀 언급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부활은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는 때에 항상 일어난다는 것도 발견했다 (고린도전서 15:51-54). 의문의 여지없이 이 나팔 소리는 환난을 종결짓는다. 여덟 번째 나팔은 없다. 성도들은 상을 받는다 (계시 11:18). 그러면서 “하나님의 신비”는 끝나며, (지체할) 시간이 없으며 (계시 10:6과 7), 물론 부활은 살아있는 성도의 변화 바로 직전에 일어난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당연히 나는 데살로니가후서 2:7을 생각했다: “다만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그가 길에서 제거될 때까지 그를 막으리라.” 그러나 나는 두 번째 “그”는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리스어로부터 알게 되었으며, 그리스어는 “그가 길에서 제거되다”가 아니고 “가운데 나타나다” 혹은 “가운데로부터 태어나다”를 언급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리 말하자면, 불법은 합법적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지정된 때까지 억제될 것이다. 성령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것이 스코필드 성경의 잘못된 가정이다. 성령님과 교회는 역사의 끝까지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누가 21:36과 계시록 3:10도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노아는 보존됨으로써 “도피했다.” 다니엘은 “지켜졌고” 사자 굴에서 보호를 받았다. 세 명의 히브리 청년은 불타는 용광로에서 “지켜졌다.” 아무도 데려감을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지켜졌고, 보존되었으며, 보호를 받아서 도피했다. 교회는 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인가? 데살로니가후서 1:7-10에서 성도들이 고난과 환난을 겪고 마지막에 쉴 것이라고 한 것에 유의하라. 사실 데살로니가후서의 처음 두 장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해석될 수 없다. 2장 1절은 가장 분명하다.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나타나심)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일 것에 (부활,휴거) 관하여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구하노니”라고 언급한다. 여기서는 부활휴거와 나타나심 사이에 간격이 없다. 재림은 하나이며 그 두 장에서 언급한 재림이 그것이고, 1장 7절과 8절에서 묘사한 재림이 그것이다.  

  나는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만나다”는 말이 두 곳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두 가지 경우 모두 만나는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로마에서 온 형제들이 바울을 만났을 때, 그들은 즉시 바울과 함께 그 도시로 돌아갔다. 처녀들이 신랑을 만났을 때 그들은 그를 따라 결혼식으로 돌아갔다. 성도들이 나라들을 심판하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만날 때 그들은 그분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공중에서 약 7년간을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의 각 장은 두 번째 오심에 대한 언급으로 마치지만 구별을 하지는 않는다. 환난 후에 그리스도가 그분의 천사들과 함께 내려오실 때 성도들은 올라가서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교회와 만나신 후에 이어서 그분이 얼마 동안 공중에 머물러 계실 것인가를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데살로니가전서 3:13)는 의문이 여지없이 환난 후의 나타나심인데, 그 이유는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라는 말이 부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데살로니가전서 4:17과 1:10 혹은 5:23?에서 다른 오심, 즉 이전의 오심을 언급하는가? 그것은 모두 하나이고 같은 오심이다. 비밀 휴거는 없다. 그 이론은 그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계시록은 19장에 이르기까지 휴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나는 그리스어 “파로우시아(parousia)”가 항상 휴거를 언급하며 환난 후의 그리스도의 영광중의 오심을 위해서는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었다고 배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파로우시아는 후자를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데살로니가후서 2:1을 보라.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분노를 겪으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 분명한 한편, 교회가 하나님의 분노를 인내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분의 심판이 적그리스도(교황권)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쏟아질 때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인데,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분노가 이집트에 쏟아질 때 휴거가 아니라 보존됨으로써 보호를 받은 것과 같다.

 

  신약의 필자들 모두를 검토하더라도 우리 주님의 오심이 소위 두 단계라는 지적을 발견할 수 없다.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의 이야기도 동일하다. 역사적 환난전 휴거설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그 이론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도 없다.

 

  나는 거의 모든 복음주의 선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단지 문명화된 세상으로부터 만이 아니라 모든 종족, 부족, 언어 및 나라들에서 나온 대표자들이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재촉하는 유일한 길은 아직 전파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님께서는 이점을 온전히 분명히 하여 “복음이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리라” (마가 13:10) 그리고 “그런 후에야 그(시대-아이온) 끝이 오리라”(마태 24:14)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교 사업에 최대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영적으로 준비하고 있음


  나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에게는 이것이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말하는가? 왜 반대하는가? 그분의 계획이 최상이 아닌가?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영적으로 준비하고 있음”은 결국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이다. 

 

  거짓 평안과 안전으로 교회를 안심시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손쉬운 도피를 전파한 것이 아닌가? 교회가 최대의 시련을 준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가르침은 역사적인 환난의 불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한 것이 아닌가? 어떤 종류의 군인들을 우리가 훈련시키고 있는가? 나는 우리에게 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의 전파가 산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유형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이 두렵다.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서 순교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종교 재판의 시험이 다시 다가오고 있으며 준비되어 있지 않은 환난전 휴거주의자들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주님의 참된 교회는 반드시 박해의 불로 정화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


  이제 이 주제를 세부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수많은 성구들을 다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중복된 일이 될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나는 여러분이 이 주제에 관해 쓰여 진 책들을 구하여 한쪽 편을 들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열린 정신으로 연구하도록 제안한다. 대서양 양안에서 사람들이 많은 책을 썼다. 다음의 책들은 영국에서 발행된 최상의 책들 중 일부이며 대부분을 제임스 파인(James Payne)이 편집자인 역사적인 환난 잡지 파수하며 기다림(Watching and Waiting)을 발행하는 단체인 THE SOVEREIGN GRACE ADVENT TESTIMONY(I DONALD WAY, CHELMSFORD, ESSEX, CM2 9JB)로부터 구할 수 있다.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큰 환난을 피할 것인가? (Will the Church Escape the Great Tribulation?) (에드먼드 새클턴 - Edmund Shackleton); 그리스도의 재림 (Christ’s Second Coming) (트레겔레스 - S. P. Tregelles) [이 두 책은 희귀본이다]; 우리 주님이 오신다 (Our Lord Cometh) (로우랜드 - W. J. Rowlands); 인자의 오심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풀레-코노 목사 - Rev. E. J. Poole-Connor); 우리 주님의 재림, 은밀히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 가운데 오신다 (The Second Advent of our Lord, Not Secret, but in Manifested Glory (뉴턴 - B. W. Newton); 그리스도의 한 번의 재림 (One Second Coming of Christ) (로우랜드 - W. J. Rowlands); 첫째 부활 (The First Resurrection) (트레겔레스 - S. P. Tregelles); 주의 오심에 관하여 (Touching the Coming of the Lord) (크로포드 - Dan Crawford); 성도들의 쉼과 휴거 (The Saints’ Rest and Rapture) (화이트 - Frank H. White); 그리스도의 재림 (The Second Coming of Christ) (물러 - George Muller). 이 책들의 가달로그를 받아볼 수 있다.

  다음은 북미에서 발행된 책들이다: 복된 소망 (The Blessed Hope) (레드 교수 -  George E. Ladd). 레드 박사는 파사데나(Pasadena)의 풀러 (Fuller) 신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걸작이며 전 환난 재림과 후 환난 재림의 역사와 교리를 다룬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단계로 오실 것인가? (Will Christ’s Coming he in two stages?) (도우티 - Norman F. Douty).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이 견해를 선포한 거의 70명의 성경 교사들의 목록이 있다. 그들 중에는 상기한 책들을 지은 사람들 외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드만 (W. J. Erdman), 찰스 어드만 (Charles R. Erdman), 모건 (Campbell Morgan) 박사, 휴턴 주교 (Frank Houghton), 심슨 (A. B. Simpson) 박사, 서틀 (J. W. Thirtle) 박사, 쿡 ( Charles T. Cook), 리스 (Alexander Reese), 보나르 (Horatius Bonar) 박사, 사피르 (Adolph Saphir) 박사, 바리 (Henry Varley), 웨스트 (Nathaniel West) 박사, 바론 (David Baron), 솔타우 (H. W. Soltau), 베르긴 (Bergin) 박사, 오켄가 (Harold J. Ockenga) 박사, 등등. 이러한 영적 지도자들의 확신을 무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견해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음의 견해는 파수하며 기다림에서 인용하여 요약한 것이다—“우리는 이것이 우리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 견해가 초기 교회에 의해서 그리고 재림에 관한 빛을 조금이라도 받은 중세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견지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이 초기 형제들의 가르침이며 언제든지 (Any Moment) 운동이 있기 전에는 어떤 다른 견해도 그들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도 믿는다. 비밀 휴거, 전 환난기, 혹은 두 단계 오심 이론은 에드워드 어빙이 자신의 교회의 한 여인(맥도날드)이 받은 환상에 근거를 두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없이 언제든지 (휴거할 수 있다) 가르침은 성경적이 아닌 ‘새로운’ 가르침이다.


나의 마지막 호소


  친애하는 여러분, 그림자는 어두워지고 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교회의 역사상 지금은 토요일 밤이다. 이방인의 때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사건들은 끝을 위해 신속히 조성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오랜 세월 이미 박해하고 있다.(교황권을 말함-역자주)

  한 가지 사실이 그리고 단 한 가지 사실만이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질문이 그리고 단 한 가지 질문만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예언의 세부 사항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때에 관해서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예언적 사건의 순서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알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은 분명하다. 그분께서 오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부활의 때는 가까이 왔으며 우리 모두가 그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고 함께 수고하도록 하자.(요13:43)

  내가 잘못이라면 그때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다투지 않기로 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만약 내가 그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곧 그 날이 밝을 것이며 그림자는 사라질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복된 소망과 크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린다. (디도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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