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진리에는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칩시다. “아름다운 단풍을 볼려면 설악산으로 가십시오. 외설악산이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아래쪽에서 올라온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내장산으로 가보십시오. 내장산에 한 번 구경갔다 오시면 그 말이 쏙 들어갈 것입니다. 단풍하면 내장산이 최고로 아름답습니다.” 과연 어느 단풍산이 더 아름다운 산일까요? 이것은 보는 이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상대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그 진리가 맞았지만 언제든지 그 진리가 통용되지 못하고,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진리를 일컬어서 우리는 ‘상대적인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에 아름다운 여자의 기준은 허리가 굵은 여자였습니다. 얘를 잘 낳을 수 있어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에 아름다운 여자는 허리가 잘록한 여자입니다. 여자의 아름다움도 상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진리를 ‘상대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도, 장소가 달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언선
A.D.30년경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속의 죽음을 하루 앞둔 목요일날 저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성만찬을 집행하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내가 너희들을 떠나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그 길을 알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 길을 알겠습니까?"하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야말로 천국에 이르는 바로 그 길이요, 그분의 말씀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그 진리의 말씀이요, 당신이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더불어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다면 아버지도 알고 있는 것이며, 당신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빌립’이 질문합니다. “주님. 당신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우리는 아버지를 본 일이 없는데 어찌 보았다고 말씀하십니까?” 이에 예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내가 너에게 이른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라.”
위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늘 아버지깨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만이 진리의 말씀이며, 그 예수님을 붙잡지 않으면 결단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이 진리는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3. 변질된 WCC와 종교다원주적인 바아르 선언문
이제 내일부터 우리나라 부산에서 WCC 제10차 총회(2013.10.30-11.8)가 열립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즉 WCC는 1948년에 태동한 기독교연합체로서, WCC는 전 세계 약 140여개국, 349개 개신교 교단과 정교회와 성공회가 속한, 5억 7천만명이 속해 있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연합기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과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정교회 대교구가 회원교회로 참여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교회연합기구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WCC개최문제 때문에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합동측과 고신측을 중심으로 한 보수장로교교단에서는 WCC가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인본주의와 종교다원주의, 혼합종교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를 표방하고, 동성결혼과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기 때문에, WCC부산총회 개최를 취소하라고, 100만명 이상이 서명을 하였으며, 전국적으로 반대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WCC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원자이신 것을 부인하는가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적인 진리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WCC 헌장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WCC의 존재근거의 시작인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잘된 헌장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올해로 제10차 총회를 열리는데, 그동안 열려졌던 총회를 통해 발표된 것들에 의하면, WCC헌장 제1조는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제3차 인도 뉴델리대회 때부터 ‘종교간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그 열매가 1990년에 바아르 선언문으로 완성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 바아르 선언문(부제: 대다수의 신학적 전망)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사람들 가운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설령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도 거기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언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일체 피조물에 편재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들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 왔으며, 그 만남을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 오고 있다. 구원, 완전성, 깨달음, 인도 그리고 휴식과 해방을 추구하고 발전한 신앙적 열정은 이 증언들 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증언들에 지극히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며,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항존해 있었음을 자각한다. (중략).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종교적 모색과 발전 가운데 함께하셨음을 인정하며, 그들의 가르침 속에 지혜와 진리가 있고 그들의 삶 속에 사랑과 경건이 있는 이상, 이는 우리 가운데 발견되는 지혜. 통찰. 지식. 이해. 사랑. 경건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선물임을 분명히 밝힌다. 종교의 다원성 속에 현존하시는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그분의 구원사역이 어느 특정한 대륙. 문화. 민족에 국한된다는 편협한 사고를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자신들을 영적으로 권면하고 계도하는 종교적 전통에 따라 신성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교회 밖에 있으며, 이들에게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섭리가 있을 것이다.”
이 선언에 의하면, 불교에도, 이슬람교에도, 아프리카 토속종교에도 자체 내에 지혜와 진리가 있으며, 사랑과 경건이 들어 있기 때문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고 있으니, 굳이 그들에게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맞다면, 예수께서는 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했을까요? 그때 주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에 너희를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단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는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둘째,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언문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구속의 활동과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사역을 통한 특수한 구속의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해야만 한다.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으로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느낀다.”
바아르 선언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만을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로 인정하는 신학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선언은 한 마디로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를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다고 칩시다. 병을 고치는 방법이 하나 뿐일까요?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방법은 지역과 시대를 따라 각기 다른 방법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침술과 약재를 이용해서 병든 자를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는 의술기계를 이용한 정확한 분석과 아울러, 약물치료와 수술요법을 통해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자연치유방법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상대적 진리’라고 말합니다. 이 진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입니다. 세상에 있는 아무리 훌륭한 양방의사, 한방의사, 정신과의사가 있다고 해도,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영을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병든 영이 치료받고 영이 구원받는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철학과 종교에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의 영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할 수도 없고, 치료할 수도 없는데, 어디 누가 누구를 치료한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방식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의 무게가 실로 59조8천억톤이나 되는데 어느 누가 그것을 공중에 아무 끈도 없이 매달아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사람이 지은 죄값은 사형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이 불못 곧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그 죄를 제거해주시고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죄를 없애는 방법을 마련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흠없는 속죄제물에 죄를 전가시키고 그 제물을 대신 피흘려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인간이 고안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리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불변의 법칙이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그것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속죄의 방법을 알려주셨지만 그 방법을 계승유지하고 있었던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그들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직접 자신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흘려죽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은 죄용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수 만 가지 방법이 있다 해도 다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그 방법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와 만물 속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언문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요 3:8) 우리의 정의와 규정, 그리고 제한을 넘어서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인위적으로 구속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만물 가운데 현존 하시는 성령의 “경륜”에 찬탄하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게 된다.”
결국 1991년 제7차 호주 켄버라 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이화여대 정현경 교수는 초혼제를 열어 초혼굿의 형식을 빌려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억압받고 소외받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탄식과 울부짖음을 성령의 목소리와 동일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기도했던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착취를 당하였고 버림을 받은 이집트의 흑인 여성 하갈의 영혼이여! 예수탄생시 헤롯왕의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남자 아기들의 영혼이여! 잔 닥과 중세시기 동안 마녀심판으로 화형에 처해진 많은 다른 여성들의 영혼이여! 십자군 전쟁 때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여! 식민주의 시대와 기독교 이방선교 시기 동안에 대량 살상된 토착민들의 영혼들이여! 홀로코스트 동안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영혼들이여!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광주와 천안문광장과 리투아니아에서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매일 같이 죽임을 당하는 아마존 우림의 영혼들이여! 인간의 물질과 금전에 대한 탐욕으로 강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여 착취를 당하는 땅과 공기와 물의 영혼들이여! 십자가에서 고문을 당하셨고 죽임을 당하신 우리의 맏형 해방자 예수님의 영혼이여!”
어찌 피조물인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영혼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해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과연 어디에 있는 영혼을 불러들인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불러들이면 누가 오는 것입니까? 귀신들이 그 사람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찾아와 그 경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우상숭배행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2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그 길이다. 내가 그곳에서 이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속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요14:24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1:11).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산에 올라가는 방법이 어디 하나 뿐이겠냐고. 하지만 구원의 방법은 우리가 산에 올라갈 것 만큼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이 세상의 임금 루시퍼로부터 구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것이 산을 올라가는 방법처럼 쉬운 것입니까?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해 낼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으로서 그 방법이 없고,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 우주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 오신 것이 아닙니까?
4. 결론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인류의 속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아닙니까? 그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구원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수천년을 통해서 인류에게 알려준, 구원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 카드 이외에 다른 카드가 없다는 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구원하러 오셨다는 데에 누가 그것을 석가모니와 공자와 비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고 떠들어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후통첩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구원의 방법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WCC의 바아르선언문이나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한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마련해 놓으셨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 방법이 있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오셔서, 내가 바로 너희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씀하는데도 그것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을 용서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이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불구덩이 속에 쳐넣으시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니 굳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다 양심적으로 살면 천국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고 살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죄의 값은 사망인데, 양심적으로 산다고, 사랑하고 산다고 지은 죄가 용서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마귀가 쳐놓은 함정에 모두가 다 빠져있습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으니 서로로 서로를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마저 상대적인 진리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고,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라고 말하거나,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면, 우리를 ‘독선적이다, 편협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가령, 지금 홍수가 나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 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에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가 고무 튜브를 던져주면서 그것을 붙잡고 살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떠내려가는 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 튜브를 붙잡아야 산다고, 헛소리 지랄하지 말고 어서 꺼져.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데에 얼마든지 있어. 두고 보라구. 너의 그 독선을 버려. 알았어”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이 옳다고 박수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시체는 강 하구에서 3일 뒤에 발견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로 가면 낭떨어지가 있어서, 그리 가면 안 된다고, 그리 가면 죽는다고 가르쳐주는 것을 독선이요 편협적인 생각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구원의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는 마귀였고, 이미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 마귀가 뿌려놓은 죄성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그 독에서 헤어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약에 취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가 마약에 취해서 하는 말이 과연 정상입니까? 그가 지껄이고 있는 말을 성경의 진리의 말씀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무엇인가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느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가 어디에 돈을 쓰고 있고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오시서 구원자가 되셨다는 이 사실을 끝까지 믿음으로 지킵시다. 이것만이 살 길인 것을 끝까지 붙듭시다.
정병진목사(alletei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