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성도들이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일까? 칼빈주의자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믿은 성도가 구원에서 탈락되는 일을 절대 발생하기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오늘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얻은 1차적인 구원의 그 안정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구원의 안정성과 보장에 관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체로 이렇다.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계속해서 구원받는다. 한 번 믿으면 멸망받을 수도 없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해 주실 것이고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안전하다. 결국에 천국에 들어가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구원에 관한 안전성의 근거들로서 여러가지 성경구절을 언급한다. 그 중에서 우선 대표적인 성경구절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요5:24을 제시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들은 말한다. 여기에 보니까, 믿는 자는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번역하던 사람들이 이미 칼빈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어서 생겨난 그릇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헬라어 성경원문에는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원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항상) 듣고 있고, 또 나 보내신 이를 (계속해서)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그리고 심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도리어 사망으로부터 생명 안으로 옮긴 것이다." 본문은 구원을 결코 완료형으로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현재진형형으로 말한다. 어떤 사람이 끝끝내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그 사람은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 번 믿었던 자가 아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즉 순종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가 구원을 갖게 된다는 선언일 뿐이다.
둘째, 요10:28-29을 제시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보아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멸망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고 주님께서도 그들을 끝까지 인도하여 천국에 데려간다고 하지 않느냐?"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그 본문을 과대해석하고 있고 문맥을 무시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누구인지를 정확히 보지도 않고 이 구절만을 딱 떼어서 구원의 안정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가 영원히 멸망치 않고 주님의 손에서 보호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들이 누구인지는 바로 앞구절인 27절에 나와 있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그들은 지금도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이다. 그들은 이 조건을 빼버린 채 무조건 주님의 양들은 반드시 보호받을 것이고 결국에는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에 의하면 그것은 잘못된 주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믿은 자라 할지라도 지금 현재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있으며(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있으며),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지 않는 자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당신이 성경을 본다면 앞뒤문맥을 다시 보면서 읽으라. 그리고 기왕이면 헬라어원문을 직역한 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라. 한 번 복음을 듣고 한 번 믿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자들 중에 상당수가 구원에서 떨어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5장을 보라. 거기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이 그날 즉사해서 죽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징계로 죽은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안 믿던 불신자들이었는가? 아니었다. 아니다. 그들도 복음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믿어서 초대교회에 합류해 들어온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속이려 했다. 그래서 거짓말하다가 그만 그날 멸망에 이르는 성도가 되고 말았다. 또한 마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보라(마25:14~30). 이 비유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받게 될 보상과 게으르고 악한 종이 받게 될 징계에 관한 비유말씀이다. 그런데 나중에 징계받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나온다. 그는 주인의 종이 아닌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도 주인의 종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악하고 게을렀다. 그는 주인을 나쁜 고리대금업자로 여기고서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인이 그에게 맡긴 달란트를 썩혀버렸다. 주인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쫓겨나게 될 장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곳은 곧 불타는 지옥이다(마13:42,50, 22:13, 24:51, 계20:10~15). 그렇다. 주님의 종으로 쓰임받는 자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겨날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가 주님의 종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순종하는 자가 훗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회개하고 믿어서 받은 1차적인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증거에 대해서 히브리서 곳곳에서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히브리서 6장을 보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히6:4-6)"고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 믿는 자도 얼마든지 타락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믿음을 가져 구원의 노정에 들어왔지만 끝내 그 경주를 다 마치지 못하고 타락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또한 히10장을 보라. 거기에 보면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고) 고의로 죄를 범하는 자는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을 것이라고 했으며, 그러한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과 맹렬한 지옥불이라고 말씀하고 있다(히10:26-27). 그렇다. 믿는 자라도 얼마든지 타락하여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안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져 1차적인 구원을 받은 자라도 그가 그 후에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구원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주님이 마련해놓으신 속죄를 받아들이고 그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실패하게 되면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인됨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1차적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범죄하고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겔18:24).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1차적인 구원을 끝까지 이뤄가야 한다. 아마도 당신과 나는 지금도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구원의 완성은 우리가 죽는 그날에 아니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양심의 화인을 맞아 죄를 짓고도 회개치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정말 시인해야 할 자리에서 주님을 결코 부인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한 번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을 통해서 계속되어야 할 것들이다. 구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라. 구원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라. 당신도 구원의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날마다 힘쓰라. 회개하라. 순종하라. 건투를 빈다.
정병진목사(alletei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