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힘, 주체성·민족주의
<편집인 대담>세필드대 그레이슨 교수…추도예배의 기원을 찾아서
 
 
 
 
 
<뉴스앤조이> 편집인 박정신 교수가 한국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교계 인사들을 찾아 나섰다. 그 첫걸음으로 한국종교와 문화를 40년 가까이 연구한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James Huntley Grayson·한국명 김정현·영국 세필드대)를 연세대에서 7월 24일 만났다.

감리교 목사인 그레이슨 교수는 한국의 종교·문화를 연구해 에딘버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감신대·경북대·계명대·연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국 세필드대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레決?교수는 1965년 퀘이커교도의 한국 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줄곧 한국사회와 문화, 특히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게다가 한국아이 두 명을 입양할 만큼 한국인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대담하는 동안 그레이슨 교수는 한국전문가답게 한국어를 막힘 없이 구사했다(편집자 주).
 
 
 
 
▲ 뉴스앤조이 편집인 박정신 교수가 한국교회를 진단하기 위해 그레이슨 교수를 만났다. 그레이슨 교수는 감리교 목사이며 평생 한국종교문화를 연구한 사람답게 한국교회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레이슨 교수가 바라보는 초기 한국기독교는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민족의 수난을 함께 지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세력이었다. 한국인들은 해외로 나가 기독교신앙을 배웠다. 특히 평신도들은 선교사나 목사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신앙고민을 풀어갔다. 대표적인 예가 추도예배다. 유교의 영향으로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사람들. 효가 예식으로 표현된 것이 제사다. 제사를 우상숭배로 금하는 선교사들과 달리, 한국의 평신도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신앙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레이슨 교수는 추도예배가 언제 시작했는지, 교단들은 언제 공식적으로 인정했는지를 캐내면서 한국기독교의 뿌리를 추적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기독교는 너무 성장만을 강조하다가 100년 전에 가졌던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잃고, 예언자적인 능력까지 상실한 종교로 전락했다는 것이 그레이슨 교수의 냉정한 평가다.

다음은 박정신 교수와 그레이슨 교수가 나눈 대담의 요약문이다.

부패를 넘어 새 시대의 갈망과 함께 온 기독교

 
 
 
 
▲ 그레이슨 교수는 초기 한국교회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세력이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정신 : 한국기독교의 특성이 서양기독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 서양의 종교에 없는 한국기독교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레이슨 :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빨리 그리고 튼튼하게 성장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선교사들이 세우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먼저 외국에 가서 기독교신앙을 배우고 돌아와 교회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국인들이 성경번역하고 전도한 뒤에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작지만 교회공동체가 출발했다. 대표적인 곳이 소래, 용천, 간도 등의 교회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들어온 18세기말과 19세기말의 상황은 비슷한 점이 있다. 18세기말 선비 중에는 유교사상을 뛰어 넘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정약용이다. 이승훈 선생 같은 분도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성리학은 철학이며 무신론적인 우주론인데, 이 선생은 성리학이 담고 있지 않은 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19세기 조선은 약했다. 안으로는 당파 싸움이 치열했고, 밖으로는 열강의 침략도 거셌다. 당시 지식인들은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찾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18세기말에는 국가가 강해 힘으로 이런 기운을 누를 수 있었지만 19세기말에는 국가의 힘이 약했다는 점이다. 100년 이상 지식인층은 새로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기독교 지식인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기독교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선교사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배웠다. 선교사들이 학교, 병원을 만들자, 이들도 그대로 따라했다. 한일합방 뒤에는 기독교의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드러났다. 3·1운동의 대표적인 활동가들은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 토착화의 상징, 추도예배 

 
 
 
 
▲ 박정신 교수는 한국교회의 공과를 집중 질문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정신 : 기독교가 빠르게 성장한 원인은 지적한 대로 주체적으로 신앙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주의 운동이 요구될 때,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동참해 호응을 얻었다. 특히,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세력보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지적도 옳다. 한국기독교의 또 다른 특성은 없는가.

그레이슨 : 한국기독교의 중요한 특징은 토착화다. 이것이 내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이고, 지금까지 내 연구의 핵심이기도 하다. 토착의 대표적인 예가 추도예배다. 토착화 과정을 보면, 제일 먼저 들어온 종교는 기존의 가치관·종교관의 차이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을 수백 년 간 지배한 유교는 오륜, 그 중에서 효도를 강조한다. 효가 밖으로 드러나는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효의 경우, 가장 중요한 예식이 제사다. 제사는 효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18세기 초 천주교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반대했다. 이것 때문에 거의 100년 간 박해를 받았다. 개신교 선교사도 천주교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추도예배라는 형태로 해결했다. 추도예배에는 유교사상의 효 정신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신앙을 지키려는 한국기독교인들의 고민이 들어있다. 

추도예배가 언제 시작됐고, 언제 교단에서 인정받았는가를 연구하면 재미있다. 1897년에 추도예배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당시 아펜젤러 선교사 등이 발행한 신문 <조선그리스도인회보> 9월호를 보면, 추도예배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온다.

기사를 보면 처음으로 추도예배를 드린 사람은 이무영이라는 정동감리교회 교인이다. 이 씨는 궁궐에서 물품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정3품이라는 높은 직위다. 이 씨는 윤치호와 함께 독립협회 운동을 한 사람이다. 역사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중요한 인물이다. 이 씨는 모친 기일이 되어서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하다가 추도예배를 드렸다. 기사는 다른 교인들이 그 것을 보고 좋다고 생각해서 그 후에 이 교회에서 추도예배를 많이 드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 해결 방식이 선교사가 가르치는 데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교인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기독교의 힘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추도예배가 공식화되기까지

박정신 :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선교사나 목사의 지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추도예배 문제는 교회와 사회의 논란거리이지 않았나.

그레이슨 : 기록을 살펴보면 계속해서 제사가 큰 고민거리로 등장한다. 1920년에 아주 큰 사건이 터졌다. 경북에 사는 한 며느리는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려는데, 기독교인 남편이 안 된다고 하자 시어머니 묘에서 제사를 드렸다. <동아일보>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해 며칠간 지상 논쟁이 붙었다. YMCA에서 나온 사람은 제사를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양주삼 목사는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맞섰다.

교단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한 것은 1934년 감리교 총회 때다. 감리교는 「교리와 장정」에 부모님 기일 추도예배 규정을 만들 것을 논의하고, 「교리와 장정」 예문서에 '부모님 기일 기념예문'을 삽입했다.

한국감리교는 선교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전에도 회의 순서에 추도식을 넣었지만, 그 때 추도식은 중요한 순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독립하고 나서는 개회식 다음에 바로 추도식을 했다. 그 만큼 추도식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람의 사고방식이다.

감리교의 영향을 받은 구세군과 성결교가 50년대에 추도식을 공식적인 예식으로 인정했다. 장로교는 70년대 말에 가서야 인정했다.

성장 강조하다 예언자 소명 상실

박정신
 : 제사를 추도예배로 바꾼 것은 우상숭배라는 비난을 극복하면서도 유교 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효를 기독교 안으로 받아들인 좋은 본보기다. 감리교가 다른 교단보다 먼저 수용한 것은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본다. 지적하신 한국기독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주체적 수용, 평신도의 주체적 결정 등을 지적하셨는데, 고칠 점은 없는가.

 
 
 
 
▲ 그레이슨 교수의 한국 이름은 김정현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레이슨 : 한국사람도 천사는 아니다(웃음). 한국을 만난 지 40년 됐다. 1965년 대학교 3학년 때 퀘이커교의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요즘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충격을 받았다. 고속전철이 생겼지만 노숙자들도 많다는 것을 보았다. 60년대에는 굉장히 가난했지만 이렇게 많은 노숙자를 보지 못했다. 어렵지만 같이 나누고 도와주고 살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노숙자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수도를 이전한다고 나선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농촌발전, 노숙자 문제, 사회복지제도를 만드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 아닌가. 교회도 정부에 대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너무 오랫동안 성장을 강조했기 때문에 자기 역할을 상실했다. 게다가 한국기독교는 잘 사는 것을 하느님께 비는 기복신앙이 너무 강하다.

박정신 : 앞으로 한국의 어떤 문제를 연구할 계획인가.

그레이슨 : 여러 개의 연구 주제 중 하나가 한국인 제자 가족사에 대한 것이다. 제자의 할아버지는 안동의 양반이었지만, 3·1운동을 하다가 목사와 함께 2년 넘게 복역한 뒤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뒤 그는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와 교회를 설립했다. 제자의 아버지가 결혼할 때는 기독교식 관례식을 만들어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유교세력은 기독교적이어서 안 된다고 하고, 기독교인들은 너무 유교식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박정신 : 65년에 처음 한국에 왔는데, 이제는 한국의 종교와 문화를 공부해 전문가가 되었다. 한국종교 연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은 것 같은데.

 
 
 
 
▲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레이슨 : 다섯 살 때부터 동양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민족과 풍속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인류학자가 되길 원했다. 한국에 봉사활동하러 오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듀크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2년 간 한국 목사와 같이 살았고,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박정신 : 사적인 질문인데,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고 들었다.

그레이슨 : 두 아이를 입양했다. 큰 아이를 입양할 때 감신대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도 결혼해서 입양하라고 했다. 입양이 한국의 큰 문제인데, 기독교인, 기독교지도자들이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했다. 제자 중에 한 부부가 입양했다고 말해 뿌듯했다.
 
2004년 08월 05일 17: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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