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중의 핵심은 역시 "믿음"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는데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믿고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로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조건은 대체 무엇이며, 사람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었으나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는지, 그리고 한 번 얻은 구원은 정말 안전하고 영원한 것인지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칭의가 곧 구원인가?
어떤 분은 사람이 칭의를 얻게 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은 자라도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칭의란 무엇을 가리키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칭의"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나는 비록 추하고 더럽지만 예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해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더러운 죄인이라도 얼마든지 칭의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칭의를 얻은 사람은 다 구원을 받는 것일까? 대체로 그렇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바른 구원관이 아니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은 것은 다만 구원의 첫 출발을 가리키는 것이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구원의 종착역에 도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의 여정에서 "칭의"는 구원의 시작점에 있는 것이지 결코 구원의 종착점을 가리키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눅18:13~14).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칭의를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알고 있다. 물론 칭의는 믿음으로 받는다(롬5:1). 그렇지만 칭의를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되는 예수께서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하여, 사람이 칭의를 받는 것은 회개함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8:13~14).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서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을 읽은 사람들은 회개가 칭의의 반대쪽에 있는 요소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칭의가 회개를 통해 얻는다고 되어 있다(눅18:13~14). 예수께서는 그때 이 비유를 들어서 누가 의롭다함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는지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하게 회개했던 자라고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칭의는 구원의 노정에서 첫 출발점일 뿐이다. 그것은 종착역이 아니다. 그리고 칭의는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회개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회개하지도 않은 채 죄로 인해 계속해서 더럽혀져 있는 신부를 신랑은 그날 결코 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더이상 하나님께서는 죄값을 묻지 아니하실까?
또한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더 이상 우리에게 묻지 않고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믿고 회개할 때에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에 해당하는 것일 뿐, 믿기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을 면해준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할지라도 또다시 죄를 지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그 죄를 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엡5:5:~6). 뿐만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도 이긴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대로 믿는 자라 할지라도 비겁한 자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한 자들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1:7~8).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을 주님이 묻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음행하는 자는 결국 불못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심판의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함의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회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야고보 장로는 말하기를,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어찌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약2:14,17).
또한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 데에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 개인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에 그를 불러내셨고 또한 그를 구원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구원받게 된 데에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고 오직 그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만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를 생각해보았는가! 어떤 사람이 멸망으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친다면, 그가 심판의 법정에서 왜 나를 처음부터 버리기로 결정하셨는지를 묻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예정되었다고 믿는 이들은 자신의 구원은 절대 취소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주님의 예정에 따른 구원이므로 자신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며, 자신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 주장은 옳다고 보는가? 성경66권을 보라. 성경 어디에도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영원히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은 있는가를 말이다. 한 구절도 없다. 오히려 주님이 말씀하신 예정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예정 뿐이다. 예수믿고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계속해서 이뤄가라고 권면하였으며(빌2:12), 남에게 복음을 전파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떨어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던 것이다(고전9:27)
4. "구원"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구원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성경에서는 구원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에서 나은 것을 일컬어서 구원받았다고도 하며(막5:34), 바다에 빠진 사람이 건짐을 받은 것도 구원이라고 말하고(마14:30,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나나가 정신이 온전해진 것도 구원이라고 하고(눅8:36), 한 민족이 타 민족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해방받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행7:34).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하려는 구원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구원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의 진로하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말하려고 한다(딤후4:18, 벧전1:9).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야말로 구원의 최고봉이요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5.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다(롬10:9).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어야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에 입성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인가? 어떤 분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믿을 때를 생각해보라. 사람이 처음으로 믿게 될 때에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한 것인가? 아니었다. 처음 믿을 때에는 자신이 이전의 삶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자인 것을 시인하면서 믿는 것이다. 즉 지난 날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고로 구원받는 믿음은 기본적으로 회개가 동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그러므로 구원받으려면 믿어도 회개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2:38)"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즉 자신이 과거에 우상숭배하던 것과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죄인이었음을 시인하면서 그 길에서 돌이켜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되심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6. 맨 처음에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럼, 우리가 처음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지난 날에 지었던 모든 죄들에 대한 용서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다(눅15:11~24). 이 탕자의 비유는 사람이 회개할 때 과거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아들(젊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하더니,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면서 물쓰듯 돈을 날려버린다. 그런데 그 해에 큰 흉년이들어서 돼지라도 치게 되는데, 배가 고파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를 결정하게 된다. 그때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기에 어떻게 하면 아버지께서 자신을 받아주실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는 가서 아버지를 만나뵙고서 이렇게 말하려고 결정한다. 첫째,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둘째,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자신을 받아주시려면 자신을 품군(일꾼)으로 하나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번째를 미쳐 말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는 용서해주고 말았다. 아버지는 결코 지난 시간동안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탕진했는지를 낱낱이 고백하라고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다. 우선 아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는 가장 좋은 옷으로 입혀주었고, 손에 가락지도 끼워주었으며,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렇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날, 진실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지었던 죄를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과거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과거의 지은 죄를 다 낱낱이 고백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던 길을 돌이켜 아버지께로 향해 왔기에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7. 왜 예수믿은 자라도 과거 조상들 지은 죄들과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이 자백해야만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과거의 지은 죄를 낱낱이 자백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죄용서를 받기 위함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이미 죄를 다 용서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지었던 죄들로 인한 결과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죄들을 낱낱이 고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들로 인하여 우리의 몸과 내 자녀들 속에 귀신들이 침투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주받은 영들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인해 우리 안에는 여전히 저주가 남아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된 자라도 귀신을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놈들은 그냥 순순히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나가는 것이다. 그놈들이 나가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놈들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 모든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어리석음들도 같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형통과 부요와 건강과 지혜의 복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들을 자백하고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을 대신 자백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가 지은 죄들도 용서받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들 그리고 3~4대까지 받아야 할 벌이 있는데, 그 벌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백하므로 이놈들을 우리 몸에서 제거하면 우리는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8. 예수믿은 다음에 지은 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믿고 난 다음에 지은 죄들은 가만히 있어도 믿고 있기만 하면 그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예수믿을 때에 우리는 주님께로 돌이켰다. 그때에는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들을 한꺼번에 용서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죄들로 인하여 내게 침투해 들어온 귀신들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들이 용서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은 후에 지은 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른 길로 가려고 했으니, 그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는 낱낱이 고백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대부분의 성도들은 죄를 잘 지을 수가 없다. 죄를 지으려면 나 자신이 동의를 해주어야 하는데, 성령께서 죄를 참소함으로 죄를 짓기가 여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된 옛습관들이 남아 있어서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우리는 즉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믿어서 회개한 자는 치명적인 죄들을 짓지 못하게 된다. 특히 행동으로 죄를 짓지 못한다.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하던 행동들이었지,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그러한 과감한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 막으시기 때문이다.
9.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중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왜 일어날 수 없으며 일어나서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어떻게 해서 내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잘못된 교리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제대로 아는 자는 함부로 죄를 범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들이 달랑 죽은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딤전3:16).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받으시고 대신 버림받아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는 하나님의 피라고 말할 수 있다(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으시려고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그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자들은 결코 성령의 의지를 꺾으면서 죄를 범할 수 없다. 그리고 둘째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의 범죄가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예정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성경66권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말씀은 없다. 다만 번역을 잘못하여서 발생한 오역을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바램을 기정사실화하여 주장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결국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일차적인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멸망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자신의 범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교리)를 신봉해서다. 그러다가 결국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자백하지 아니하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라(요일1:9). 그 죄는 회개하지 않는한 여전히 남아 있으며 죽을 때까지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은 결국 최소되고 말 것이며,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말 것이다.
10. 나오며
사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를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고 하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예수를 믿은 성도는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지금도 귀신들이 호시탐탐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은 다음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린다는 것을 아는 자는 결코 성령을 거역하여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 범죄는 우리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때 성령께서 우리가 죄를 지으려면 책망하여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 중에는 자기가 죄를 짓는다 해도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는다는 가르침에 미혹을 받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치르신 값진 희생을 잘 모르기에 또 죄를 짓는 것이요, 죄를 지어도 그 죄가 자신의 구원을 흔들어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종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값진 희생도 모르고, 회개없이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으려고 한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무서운 일이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죄를 지어도 자신이 삶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에게 죄짓는 일은 대수롭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한 번 구원받았으면 구원은 최소되지 아니한다는 가르침을 꼭 붙잡는다. 그리고 우리가 더러워도 예수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시면 우리가 칭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살아간다. 그러다가 결국 회개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과연 구원받을 사람으로서 지금 합당한 자인지를 점검할 때가 되었다. 사실 구원은 이미 믿을 때에 시작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죽을 때에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때 가서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회개하자. 그리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배워 그분의 값진 희생을 값싸게 만들지 말자. 그리고 거듭날 때 들어온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지 말자.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자. 그리고 혹 넘어졌을지라도 즉시 회개하여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지 말자. 건투를 빈다.
2020년 11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