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경주에서 이기는 방법(히12:1~2)_2017-12-03

by 갈렙 posted Dec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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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ttceCmBW8bM
날짜 2017-12-03
본문말씀 히브리서 12:1~2(신약 36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신앙은경주다,끝까지완주해야,골인지점,장애물극복,장애물과죄짐,기도와회개,믿음의창시자요완성자,경주자,이기는자,보좌우편,천국,본향

신앙은 무엇과 같은가? 히브리서 기자는 수많은 구약의 신앙의 인물들을 소개한 후에 신앙은 경주와 같다고 정의하였다. 왜냐하면 신앙의 완성은 믿는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기나긴 경주의 과정을 마친 후에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람의 구원은 꼭 상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상얻기 위해 달려가듯이 신앙의 목적인 천국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경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경주는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끝까지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에 탈락하거나 포기하면 신앙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 둘째, 장애물을 잘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무거운 짐과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부모의 신앙으로 천국갈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대신해주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자이지 결코 경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은 달랐다.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주님은 왜 그러한 일을 하셨을까?

 

1. 들어가며

  신앙은 무엇과 같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11장에서 신앙의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행적을 하나씩 하나씩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나서 결론적으로 그는 신앙에 대해 정의했는데, 그것은 신앙이 곧 경주와 같다는 것이다(히12:1~2). 왜냐하면 신앙은 어떤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 소요됨으로 완성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히브리서 기자가 왜 신앙을 경주에 비교했는지, 경주와 신앙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살펴 펴보고자 한다.

 

2. 히브리서 12장은 왜 쓰여진 것일까?

  히브리서 12장의 이야기는 신앙의 경주를 끝마치지 못할 위험성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에게 주신 경고의 메시지다. 그렇다. 신앙생활은 누구든지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목표인 천국에 도달할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도에 탈락하거나 중도에 포기하여 넘어질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에 속해 있었다가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자들 중에서도 그러한 자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고보니, 정작 유대교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뛰어남과 기독교의 우월성을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 히브리서를 썼다. 그리고 배교의 위험성에 대해 5번이나 연거푸 경고하는 말씀을 전했다. 그중에서 히12장의 말씀은 배교의 위험성 가운데 마지막 5번째 위험성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 중에 끝까지 경주를 마치지 못할 자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자가 신앙의 경주에서 넘어지는 것일까? 또한 어떻게 하면 경주를 끝까지 달려자가 끝마칠 수 있는 것일까?

 

3. 히브리서 기자가 정의한 신앙은 경주와 같은 것이다.

  우선 우리가 알 것은 신앙은 경주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신앙은 경주가 아니라 믿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믿을 때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주의 종들의 책임이 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주의 종들이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 순간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믿음으로 이신칭의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이며,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지 그 사람을 천국에까지 꼭 인도하여 데려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믿는 순간에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구원은 믿음으로 통해서 시작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믿는 순간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맞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의 여정에 첫 발을 내딛은 것뿐이지 결코 구원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말씀들을 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그렇다. 구원을 얻기까지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지, 믿을 때에 구원이 완성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구원을 비유할 때 가장 좋은 것은 경주다. 그것도 장거리 경주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었는가? 그러면, 구원의 여정을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여러분 앞에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달려서 꼭 골인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4.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3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누구든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가? 히브리서 기자를 3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첫째, 끝까지 달려야 한다고 권면한다(히12:1). 그리하여 구원의 골인지점에 꼭 도착하라고 권면한다. 그렇다면 구원의 골인지점 곧 목표점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늘에 준비된 본향 곧 천국이다. 천국의 새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는 것이다. 사실 히브리서 12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처럼 살아야 함을 말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히브리서 12장은 어떻게 신앙의 경주를 독려하는가? 헬라어원문으로 보자. "그리고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증인의 구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모든 장애물과 쉽게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린 후에, 우리는 인내하여 우리에게 지금도 계속해서 앞에 나타나 있는 경주를 계속해서 경주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면서(히12:1~2a)" 그렇다. 모든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힘껏 달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는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처럼 관중석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지 신앙의 경주를 시작했다면 꼭 골인지점을 통과하여 천국까지 들어가야 한다. 구원은 이처럼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과정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끝까지 달리기를 해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골인지점을 아직 통과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달려가자. 나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온갖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히12:1b). 신앙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경주를 막는 장애물을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히브리서기자는 "모든 무거운 짐(장애물)과 쉽게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리는 것(히12:1b)"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장에 나오는 동사는 과거분사다. 이것은 이것을 먼저 해야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인생의 짐과 자기가 지은 죄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걸림돌은 '짐'과 '죄'라는 것을 무섭게 깨달아야 한다. 짐이 무거우면 중간에서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가 얽어매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경주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짐을 덜어버리고, 죄를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무거운 짐을 덜어버리고, 죄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2가지 방법이 적용된다. 먼저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방법은 기도다. 자신의 짐들을 하나씩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이다. 사도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그렇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순간마다 기도해야 한다. 자신의 무거움 짐을 주님께 맡김으로 짐을 가볍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자녀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경주를 계속할 수가 없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건강문제로, 어떤 이는 돈문제로 인하여 신앙의 경주를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주님께 맡겨버리고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인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는 죄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신앙의 경주의 발목을 붙잡아버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은 죄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럼, 죄들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죄를 고백한 다음 용서를 비는 것이다(행3:19, 요일1:9).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라야 죄가 벗겨지며, 죄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주를 잘하려는 성도들이여,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 생각나지도 않은 죄까지 너무 신경쓰려고 하지 말라. 다만 생각나는 죄가 있거든 즉시 엎드리어 회개하여 죄를 씻어버리라. 그래야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죄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롭게 경주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신앙의 경주를 남에게 혹은 하나님께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경주는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부모나 하나님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앙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부모의 신앙으로 천국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는 어떡하겠는가? 부모님 때문에 지옥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모가 기도로서 나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목회자의 코치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야 할 경주이지, 부모가 경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경주를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주하는 우리들을 심판하는 심판주이지 결코 경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상과 벌을 주시는 심판주이시다. 그런데 그분에게 나 대신 경주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안 된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 중에는 신앙의 경주마저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데 왜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고 했겠는가? 우리가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면 하나님이 상을 받으실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경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으로 도와주신다. 지혜를 주시어 도와주신다. 그러나 경주는 내가 해야 할 몫이지 내 부모나 내 배우자, 하나님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알라.

 

5.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해 친히 경주자가 되어주신 예수님

 그렇다면, 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창시자와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을까? 그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분이 우리의 경주를 완성시켜 줄 분이니까 그러라고 했을까? 아니다. 우리말성경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헬라어원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는 먼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믿음을 창조하신 창조주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분은 또 하나 믿음의 경주의 완성자도 되신다는 뜻이다. 즉 그분은 우리만 경주하라고 우리를 경주장으로 내몰지 않으시고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시어 스스로 경주자가 되어주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경주는 오직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아닐텐데도,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먼저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경주를 심판하실 그분이 오히려 경주자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그분도 끝까지 달려가셨는데, 예수님에게 주어진 경주는 결코 쉬운 경주가 아니었다. 그에게 2가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고난이요 또 하나는 부끄러움(수치와 멸시)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아들이셨으며, 부끄러움마저 기쁘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끝까지 견디어내셨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그분은 부활승천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지상의 경주를 잘 마치고 하늘에 오르시어 왕으로 통치하는 자가 되셨다는 뜻이다.

 

6. 나오며

  그렇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힘써서 달려가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계속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무거운 짐이 있으면 끝까지 달려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죄가 있으면 그것의 나의 발목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기 못하게 막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지 무거운 짐을 내버리고, 더러운 죄도 씻어버려서 가볍게 해야 한다. 이것은 오직 기도와 회개를 통해서 하는 것이다.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달릴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눈여보아야 한다. 그분은 경주자들을 심판하실 심판주였지만 우리를 위해 경주자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끝까지 경주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난도 받아야 했고, 수치와 멸시와 천대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꿋꿋이 그것을 이겨내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결국 예수께서는 지상의 경주를 마치고 하늘에 오르셨으나 하나님의 보좌에 앉자 통치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은 비단 예수님의 삶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경주를 하되 끝까지 경주할 수 있는 경주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도 어느날 예수님처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어있을 것이다(계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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